서울출판예비학교 웹진 _5호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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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출판예비학교 웹진 _5호 2015,          SBI Webzine Number 5

Transcript of 서울출판예비학교 웹진 _5호 2015

Page 1: 서울출판예비학교 웹진 _5호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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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열

집중하다 보니 시간가는 줄 몰랐고

이렇게 또 두 번째 편집후기를 쓰고

있습니다 두 번째라니hellip 섭섭합니

다 두 번째라서가 아니라 마지막이

라서 섭섭함이 두 배가 되는 듯합니

다 이젠 보내줘야겠지요 더 좋은

사람들 만나겠지요 더 좋은 웹진이 되겠지요 행복해야 해요

웹진 아디오스(adioacutes)

사공예원

웹진 활동도 이제 이 결과물을 마지막으로 정리하게 되네요

아쉽기도 하고 서울예비출판학교 12기 학생들의 웹진은 어떠

할지 기대가 됩니다(하하) PDF파일로 다운받아보았던 여태

까지의 웹진이 SNS와 이슈닷컴(httpissuucom)을 통해서

더 활성화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새로운 시도가 계속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웹진이 완성되기까지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고 항상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이창환

짧지만 오랫동안 고생한 팀원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

네요 장열이 예원이 수진이 소현이 가은이 상화 모두 출판

계에서 어떤 활약을 펼칠지 궁금하고 기대되네요 올해 마지

막 웹진 차근차근 읽으면서 많은 관심 보내주세요

백가은

서울예비출판학교에서의 6개월이 끝나가네요 우리 웹진팀

마지막까지 모두 고생 많았습니다

이상화

지난 6개월간 자원해 웹진을 만들면서 느낀 것은 나의 lsquo부족

함rsquo이었다 잘하고픈 마음은 굴뚝같지만 모든 것이 마음처럼

따라주지는 않았다 아이디어 기획 팀원들과의 소통 최선을

다했지만 아쉬운 지점이 있었고 나의 한계와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떨어진 체력과 마감의 압박감에 힘들어할 때 누

군가 해준 충고가 귓가에 맴돈다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 이

과정을 즐기고 반성과는 별개로 만족을 이끌어 내는 것이라

는 말 부끄럽고 부족한 결과물이지만 나는 이 글과 그림들을

사랑하려 한다

이소현

두 번째이자 마지막 웹진입니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6개

월이 순식간에 흘러갔습니다 열심히 한 만큼 나중에 뒤를 돌

아봤을 때 lsquo한 뼘 더 클 수 있었구나rsquo라고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김수진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lsquo풀꽃rsquo

캘리그라피 기하늘

기사 작성자 디자인반 백가은 디

자인반 사공예원 마케터반 이창환

마케터반 이장열 편집자반 김수진

편집자반 이상화 편집자반 박혜원

마케터반 최다은 편집자반 성준근

교정middot편집 편집자반 김수진 편집

자반 이상화

디자인 디자인반 백가은 디자인반 사공예원 디자인반 이

소현

일러스트 편집자반 김영준 편집자반 김지영 웹진 디자인

멤버들

편집후기

기억할게

마케터 이장열 디자이너 사공예원 편집자 김수진 마케터 이창환 디자이너 백가은 편집자 이상화 디자이너 이소현마케터 이장열 디자이너 사공예원 편집자 김수진 마케터 이창환 디자이너 백가은 편집자 이상화 디자이너 이소현 이소현

3

일~이 쪽 홍rsquos피어 김홍민 대표님 인터뷰

삼~오 쪽 날보러와 교육발표회 준비취재

삼~오 쪽 설왕설래 릴레이 소설

삼~오 쪽 알고싶어 선생님 인터뷰

삼~오 쪽 기억에콕 수업후기

삼~오 쪽 1일일탈 견학후기

삼~오 쪽 화양연화 동아리후기

삼~오 쪽 책씹는맛 서평

삼~오 쪽 돋을세길 박세길 인터뷰

차례일

러스

트 _ 편

집자

반 김

지영

3

일~이 쪽 홍rsquos피어 김홍민 대표님 인터뷰

삼~오 쪽 날보러와 교육발표회 준비취재

삼~오 쪽 설왕설래 릴레이 소설

삼~오 쪽 알고싶어 선생님 인터뷰

삼~오 쪽 기억에콕 수업후기

삼~오 쪽 1일일탈 견학후기

삼~오 쪽 화양연화 동아리후기

삼~오 쪽 책씹는맛 서평

삼~오 쪽 돋을세길 박세길 인터뷰

차례일

러스

트 _ 편

집자

반 김

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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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몸 풀기 질문부터 시작합니다 출판사 이름인 lsquo북스피어rsquo의

뜻은 무엇인가요

처음에는 lsquo정신rsquo을 뜻하는 lsquo누(noo)rsquo와 lsquo시공간rsquo의 의미를 담고 있는

lsquo스피어(sphere)rsquo를 합친 lsquo누스피어(noosphere)rsquo를 생각했어요

lsquo정신을 만드는 공간rsquo이라는 뜻이죠 철학적인 뜻인데 lsquo누rsquo 대신에

lsquo북rsquo을 넣었죠 책을 만드는 공간일 수도 있고 모아 놓은 공간일

수도 있어요 다른 의미로는 출판사를 차릴 때 lsquo망할지도 모른다rsquo는

두려움이 있었어요 책을 만든다는 행위 자체가 좀 무섭더라고요

책에 대한 두려움 책의 두려움 여러 해석을 할 수 있어요

보통은 표지 안쪽을 백면으로 두고 인쇄하지 않는데 『흔들리는

바위』에서 뒤표지 안쪽에 심리테스트를 넣으셨어요

책에 뭔가 장난을 해 보자 이게 시작이었죠 프로필 각 줄의 앞

글자를 연결하면 말이 되거나(『레벨7』 옮긴이 소개의 lsquo참한 애인

구함rsquo) 어떤 책은 1권과 2권의 표지가 똑같은데 자세히 보면

숨은그림찾기처럼 다른 부분이 있어요(『가모우 저택사건』) 각

책마다 특성을 살려서 이것저것 했죠 『외딴집』 앞쪽에 에도 시대

지도가 있는데 그 지도에 북스피어 이름을 넣기도 했어요 『흔들리는

바위』의 경우 특별히 심리테스트여야 할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표지 안쪽에 뭔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을까 하다가 생각해낸

거예요 나중에 심리테스트의 결과에 따라 책을 추천하는 lsquo책 추천rsquo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됐죠

일 잘하는 마포 김 사장

홍rsquos피어작은 사무실을 상상했는데 보통의 가정집 같은 모습에 한 번 놀라고 자리에 앉기도 전에 냉장고에서 주섬주섬 꺼내지는 캔 맥주에

또 놀랐습니다 곧이어 상 위에는 과자가 안주로 놓이고hellip 이거 참 인터뷰가 lsquo취중농담rsquo이 되어버리는 것은 아닐지 하지만 상대는

노련한 lsquo마포 김 사장rsquo입니다 맥주의 뚜껑을 따면서 lsquo이제 합시다rsquo라고 호탕하게 외치는 김홍민 대표 그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친히 맥주를 꺼내주는 김홍민 대표(좌) 숟가락으로 맥주병 뚜껑을 따는 김홍민 대표(우)

『흔들리는 바위』 뒤표지 안쪽의 심리테스트

재미있게 노는 것이 곧 일 잘하는 것 북스피어 김홍민 대표

북스피어 대표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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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에는 lsquo원기옥 이벤트rsquo로 모아진 돈으로 미야베 미유키 작가를

만나기 위해 혼자 일본에 다녀오셨는데 이번엔 독자 3분을 뽑아

일본에 다시 다녀오셨어요 두 번의 방문이 어떻게 달랐나요

3년 전에 내가 갔을 때는 답변이 되게 무미건조했어요 lsquo어떻게

생각하십니까rsquo lsquo좋다고 생각합니다rsquo lsquo이게 맞습니까rsquo lsquo네

맞습니다rsquo 가족 얘기 안하고 정치적인 질문 싫어하고 제약이

많 았 어 요 이 번 에 는 독 자 와 있 으 니 까 사 람 이 약 간 달 떴 다 고

할까요 가족 얘기 정치적인 얘기도 하더라고요 독자에게 직접

준비한 선물도 주고 사인도 일일이 해주고 사진도 같이 찍어주고

팬서비스가 남달랐죠 그도 그럴 것이 미야베 미유키가 만난 첫

번째 한국 독자인 거예요 미야베 작가는 한 번도 외국 여행을 해본

적이 없거든요 청각에 문제가 있어 비행기를 탈 수가 없대요 도쿄

밖을 안 나간다고 하니 당연히 해외 독자를 만나본 적이 없죠

세계 어느 나라에서 독자들이 인터뷰를 하러 왔겠어요 당초 한

시간 반 예상했는데 세 시간까지 걸렸어요 그때 「르 지라시」가

8면짜리였는데 인터뷰 내용이 좋기에 12면으로 증면해서 다 실었죠

독자들과 같이 가지 않았더라면 그런 내용이 못 나왔으리라고

생각해요

내가 만약 기자를 데리고 갔다면 기사 나오는 건 따 놓은 당상이고

비용도 훨씬 적게 들어요 이 이벤트를 한다고 했을 때 기자들이

전화를 걸어와서 lsquo자기도 가면 안 되겠냐rsquo lsquo회사 비용으로 가겠다rsquo고

하는데 나는 그랬죠 ldquo아닌데 독자랑 갈 건데rdquo

다른 출판사 사장님들은 lsquo말이 안 된다rsquo고 했어요 기자랑 가면

기사도 나오는데 왜 독자들을 몇 명씩 데리고 가겠어요 만우절에

올 렸 으 니 까 거 짓 말 이 라 고 들 하 더 라 고 요 하 지 만 결 과 적 으 로

이벤트도 재미있었고 일단 작가가 너무 좋아해 내후년이 자신의

데뷔 30주년인데 꼭 또 오라고 하더라고요

북스피어 10주년을 기념하여 900쪽짜리 『십자가와 반지의 초상』을

출간하셨죠 그 소설의 배경이 되는 호빗 마을에 다녀오는 lsquo반지의

제왕 촬영지 기행 원정대rsquo를 꾸리셨었어요 다녀오신 후기를

들려주시겠어요

나 와 편 집 장 과 독 자 세 명 이 렇 게 다 섯 이 갔 는 데 와 정 말

행복했어요 열흘 동안 캠핑카로 반지의 제왕 촬영지를 다 돌았어요

뉴질랜드 면적이 우리나라 면적의 25배래요 그리고 인구는 400만

명이 좀 넘는대요 사람이 없어요 마을이 있다 그 다음은 다

고속도로야 그리고 또 마을이 있고 바로 고속도로 상점들은 6시에

열고 5시에 닫으니까 밤에 차도 없고 사람도 없고

농경 목축을 하느라 상품을 생산하는 비율이 높지 않으니까

자급자족이에요 그런데 촬영지가 되니까 세계 각지에서 사람들이

오는 거죠 관광업이 활황이 되어서 뉴질랜드 곳곳에 캠핑카를 타고

묵을 수 있는 곳이 많더라고요 갔다 와서 독자가 그걸 후기로 남겼죠

최근 lsquo낭만독자열차교정rsquo을 크게 여셨어요 그동안 북스피어의

독자 교정 이벤트는 꾸준히 진화해왔는데 지금까지의 변화들을

말씀해주세요

교정을 권당 120만 원씩 주면 1000만 원이잖아요 그건 어려우니까

처음엔 출판사에 다니는 친구들에게 도움을 받으려고 했었죠 그런데

점점 연락이 안 돼 부탁하는 빈도가 늘어날수록 전화를 안 받아요

아 그러면 독자에게 놀이처럼 하게 해야겠다 싶었어요 처음에는

몇몇이 와서 교정을 보면 점심을 줬어요 점심 먹고 그냥 갔지 뭔가

재미가 없어 다음에 왔을 때는 점심도 주고 저녁도 줬어요 또 그

다음은 점심도 주고 저녁도 주고 술도 먹여 그랬더니 재미가 있는

거예요 이후로는 1차에서 끝나지 않고 4차까지 가고 밤새 마시고

홍대 일대를 막 돌아다니고 아침엔 해장국 먹고 헤어지고 전문

만우절 때 블로그에 장난으로 올렸다는 lsquo홀로 남겨져rsquo 앨범 이미지

하지만 독자들의 요청으로 직접 제작하기에 이른다 오른쪽은 박기영의 목소리로 재탄생한 『홀로 남겨져』(미야베 미유키 2011)의 북 OST lsquo홀로 남겨져rsquo

『흔들리는 바위』 뒤표지 안쪽의 심리테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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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을 맡기는 것보다 술값이 더 나가겠더라고요 하지만 그렇게

술 먹고 간 독자들이 홍보를 해준다고 할까 그래서 좀 더 발전시켜

보기로 했어요 밤샘독자교정 1박 2일 동안 교정을 보는 거죠

번역자가 아침고요수목원 근처에 있는 축령산 자락에 살기에 그 집을

빌렸어요 낮에는 교정을 보고 저녁에는 번역자와 함께 고기를 구워

먹으며 번역 뒷이야기도 듣는 거죠 그때부터 교정 MT가 시작이

됐어요 그러다가 지지난달에 한 것이 낭만독자열차교정이라고 열차

안에서 교정을 보고 밤에는 펜션에 도착해 놀다 오는 거였어요 마침

한겨레 기자도 독자 교정에 참여해 기사를 써주기도 했죠 앞으로요

인천에서 제주도로 가는 크루즈가 있대요 배 안에서 교정을 보고

제주도에 도착해서 노는 그런 독자 교정 이벤트를 구상하고 있어요

올해 4월에 lsquo북amp쿡 퍼포먼스 맏물이야기rsquo를 진행하셨어요 전문

성우가 소설을 읽어주고 푸드스타일리스트가 소설 속 음식을 직접

만들어 독자가 먹어볼 수 있게 한 신선한 기획이었죠

『맏물이야기』가 요리에 관한 책이어서 처음에는 독자들을 불러서

요리를 시켜야겠다고 생각했죠 늘 그렇듯 처음에는 소박했어요

이 책에 나오는 요리를 직접 하게 해서 독자에게 먹여야겠다 혹은

사진을 찍게 해야겠다 그런데 은근히 어려운 거야 에도 시대의

음식 맛이 나리라는 보장도 없고 그래서 푸드스타일리스트에게

의뢰를 했죠 의뢰하면 비싸다 보니 그냥 진행하기에는 아쉽고 판을

키우자 싶었죠 그러다 낭독할 성우까지 붙은 거고 선착순 200명

한정이었기에 오지 못한 독자들이 아쉬워하더라고요 텍스트에

머물지 않고 공연을 통해 시각 청각을 넘어서 후각으로도 독자들과

소통할 수 있었어요 책의 확장성을 보여준 신선한 행사였다는 평도

들었죠

북스피어는 장르문학만 출간하지만 그동안 진행해온 라디오

프 로 그 램 을 보 면 다 양 한 분 야 의 독 서 를 하 시 는 것 같 아 요

개인적으로는 어떤 분야의 책을 주로 읽으시나요

장르문학이요 내 분야에서 전문가 행세를 해야 해요 왜냐하면 내가

이 분야 책을 내니까 끊임없이 읽어야 해요 그래야 끊임없이 얘기할

수 있지 잘난 척하는 거 정말 중요해요

그렇다면 추천해 주실 만한 책이 있으신가요

최 근 에 『 마 션 ( M a r t i a n ) 』 을 재 미 있 게 읽 었 어 요 화 성 에

갔다가주인공만 빼고 다 귀향하게 되자 주인공 마크 와트니가

화성의 토양으로 감자를 재배해요 그걸 읽고 감자를 한 박스 샀죠

갑자기 먹고 싶어서요 10월 8일에 영화로도 개봉되는데 꽤나 흥행할

것 같아요 앤디 위어의 처녀작인데도 줄거리가 탄탄하거든요

작은 출판사가 출판계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방법이 있을까요

가급적이면 한 분야를 해야죠 김밥천국보다는 돈까스 전문점이

사람 모으기는 더 쉬워요 장사라는 것은 독특한 무언가가 있어야

해요 그동안 수많은 김밥천국이 사라져온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한

분야에서 독보적인 존재가 되는 것도 방법이에요 그런 존재가 되고

나면 독자들에게 알릴 lsquo채널rsquo이 있어야죠 그게 다일 것 같은데요

사실은 lsquo그 정도rsquo조차 정말 어렵죠

맏물 이야기 북amp쿡 퍼포먼스 포스터(좌)와 행사에서 재현된 소설 속에 나오는 음식(우) 김홍민 대표의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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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서울출판예비학교 학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망설임 없이) 외국어를 해라 정말 강조하고 싶네요 외국어를 뭐든

하나는 확실하게 해야 해요 또 글을 잘 써야 해요 저자만큼 저자가

lsquo에이 편집자 주제에 뭘 그리 잘 써rsquo라고 할 정도로 잘 써야 해요

글쓰기 연습을 매일매일 하세요 요즘은 환경이 좋잖아요 페이스북에

매일 끼적이기만 해도 실력이 늘어요 글 잘 쓰고 외국어 잘한다

프리패스예요 어느 출판사든 들어간다 어디든

편집자반 11기 김수진

잠깐만 우리 새우치킨 하나 먹을까

(바로 전화한다) 두 마리요 새우치킨 한

마리랑 양념치킨으로요

(주소를 말하지 않는다) 주소가 저장되어

있으신가 봐요

그럼요 lsquo또 전화하셨군요 오늘은 어쩐

일로 두 마리세요rsquo 이렇게 받아요

마포 김 사장

웹진팀

마포 김 사장

웹진팀

마포 김 사장

기발한 와우북페스티벌 상품들

북스피어 출간 도서 저자 일러스트가 들어간 과자 패키지(좌)와 파본된 책을 한 장(章)씩 분권 해서

500원에 파는 상품(우)

2015 와우북페스티벌 르 지라시 특별판

8

7인 7色 분투기

20150921 월요일 d-25

교육발표회 TF팀 발족 시작이 좋다

9월 21일 월요일 401호에서 교육발표회 태스크포스(task

force)팀(이하 TF팀)의 첫 번째 회의를 시작했다 반 친구들의 투표로

얼떨결에 TF팀의 일원이 되어서 처음에는 부담감을 느꼈지만

한편으론 우리의 성과를 발표하는 자리를 직접 꾸려간다는 것이

기대되었다 첫 만남에는 마케터반 디자인반 사람들과 얼굴을

익히고 가벼운 농담과 함께 분위기를 즐겼다 아직은 어떻게 계획을

짜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지만 그만큼 긴장감을 갖고 열띤 토론을

했다

먼저 공간 구성을 토의했는데 각 반에 할당된 공간은 각 반에

일임하기로 했다 지하 1층은 편집자반과 마케터반이 사용하고

지하 로비부터 계단 외벽은 디자인반의 작품을 전시한다 1층에는

안내소를 설치하고 안내팀을 배치할 것이다 마케터반은 면접실로

사용할 예정이고 디자인반은 전시실로 편집자반은 대기실로

사용할 것이다

두 번째로 홍보에 관해 토의했는데 편집자반의 김종민을

팀장으로 하는 별도의 홍보팀을 꾸렸다 홍보 문구는 10월 2일까지

취합하기로 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포스터를 제작하면 된다 홍보

영상이나 카드 팸플릿을 만들기로 한 안건도 추후 논의하기로 했다

아이디어들이 모아져 하나의 그림이 완성되어가는 듯 했다 점차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던 틀이 잡히면서 그 공간을 하나씩 채워가는

우리를 보고 스스로 대견스러웠다 아직도 걱정되는 일들이 많지만

지금과 같은 패기와 열정으로 준비한다면 잘 마무리 해낼 수 있다고

믿는다 시작이 좋다

편집자반 11기 남민희

20150925 금요일 D-21

두 마리 토끼 잡기 교육발표회 자료집 만들기

9월 초 디자인반에서 세 명의 팀원으로 교육발표회 자료집

담당 팀이 꾸려졌다 교육발표회 자료집은 6개월 동안의 교육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책자로 편집자반 마케터반

학우들의 자기소개서와 디자인반 학우들의 작품이 실린다 디자인

반은 판면을 디자인하고 원고를 받아 책으로 묶는 작업을 맡았다

가장 먼저 수행한 일은 편집자반과 마케터반 학우들의 글이 담길

텍스트 위주의 판면을 잡는 일이었다 40명 이상 인원의 글이 실리는

만큼 반복적으로 보기에 부담이 없어야 하고 변화를 주어 지루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편집자반과 마케터반의 페이지를

마무리한 뒤에는 디자인반의 포트폴리오 작업으로 이어졌다

디자인반의 판면에서 중요한 것은 각자의 성향을 잘 담을 수 있도록

전집 위주 본문 위주 단행본 위주의 세 가지 사항에 따라 판면을

잡는 일이었다 이러한 큰 산을 넘고 나니 정해진 양식에 맞춰

축사와 연혁 교육과정 소개 페이지를 완성하고 각 반을 상징하는

색을 살린 간결한 표지를 만드는 것은 무리 없이 진행되었다

자료집 팀원들은 자신의 포트폴리오와 병행해야 하는 압박감과

6개월간 우리의 행로를 담아내는 작업인 만큼 실수가 없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으나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계획을

꼼꼼하게 세워 차근차근 진행해 나갔다 또한 다른 학우들이 시간

약속을 잘 지켜주었기 때문에 촉박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차질 없이

마무리할 수 있었다 자료집을 만든다는 것은 디자인반으로서는

작업을 정리함과 동시에 모든 학우들이 자신의 학교생활을 마무리

짓는 일로 소중한 경험이었다

디자인반 11기 홍기화

20151001 목 요일d-15

걱정도 병인 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오늘은 발표회 편집자반 공간을 꾸밀 물품을 사러 가는 날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추석 연휴를 보내서 그런지 등교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할 일은 산더미인데 그저 막막하기만 했다 그래도

오전부터 교육발표회 준비 팀장인 종민이가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것 같아 다행이다 종민이가 좀 힘들어 보이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난 그저 시키는 대로 따라가고 옆에서 도와주면 될 것 같다 뭐가

됐든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는 언제나 어렵고 외롭다

각 조의 콘셉트가 정해지고 필요한 물품의 목록이 정리됐다 10만

원 정도만 지원해준다고 한 것 같은데 다들 뭐가 이리 살 게 많은지

사무국에서 다 사줄지 모르겠다 (우리 조도 살 게 꽤 많은 것

날보러와

디자

인 사

공예

교육발표회 준비취재

9

같았는데hellip) 한 시간 동안 호미화방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필요한

물품을 샀다 그런 와중에 혹시 빼먹은 건 없는지 예산이 부족하진

않을지 걱정이 들었다

교육 과정 내내 걱정하고 고민하고 불안해한 것 같다 마음 편하게

생각하라는 말을 친구들에게 줄곧 들은 것 같은데 할 수 없다 내가

원체 이렇게 생겨 먹은 걸 이제 발표회까지 남은 시간은 정확히

보름 우리가 보낸 6개월을 4시간 동안 보여주는 행사다 이 행사가

전부는 아니지만 그래도 24명 모두에게 아니 11기 출판학교 교육생

모두에게 주어진 마지막 과제다 lsquo혼자 하는 것도 아닌데 걱정만

하지 말고 차근차근 준비하면 되겠지rsquo 하면서도 걱정이 앞선다 진짜

이것도 병이다

편집자반 11기 권오권

20151008 목요일 D-8

가을 나들이 같은 인터뷰

내가 인터뷰 팀이라니 게다가 팀장이라니 누구 마음대로 이건

음모라고 구시렁대며 일정을 짠다 수료 때까지 감투 안 쓰는 게

목표였는데 망했다고 말하며 멘트를 고민한다 그래 사실은 즐겼다

어차피 할 일 없으니 잡배마냥 학우들에게 치근대며 시간 보냈을

터였다 그럴 바에야 나들이 간다 치고 즐기는 편이 나았다 날씨는

또 얼마나 좋은가 투덜댔지만 가벼운 걸음이었다

지금까지 교육 과정 내에서 강의 또는 특강으로 만났던 많은 분들을

카메라로 담았다 대부분 직접 회사로 방문했기 때문에 다양한

사무실을 보는 것도 재미였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강의 때보다 더

진하고 선명하게 한분 한분을 볼 수 있었다 그들도 마찬가지였을까

본인에게는 일상인 세계를 동경한다면서 비집고 들어오려는 우리를

보는 우려와 격려 섞인 눈빛에서 ldquo너희도 이거 하려고 아이고 힘들

텐데 부디 잘 해나갔으면 좋겠네rdquo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아름답다

감사하다

시시덕거리며 돌아오는 길에 생각한다 앞으로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이 가을 이 마음의 우리가 그리울 건 알겠다 벌써부터

아릿하다 역시 인터뷰 괜히 했다 귀찮아 죽겠다 진짜

편집자반 11기 김상흔

20151009 금요일 D-7

교육발표회를 홍보하라 티저 포스터 만들기

드디어 6개월의 과정이 끝나가고 있었다 우리를 보여 줄 마지막

기회인 교육발표회를 앞두고 TF팀은 lsquo홍보rsquo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꼭 보러 와달라는 메시지를 어떻게 하면 잘 전달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 끝에 lsquo티저 광고rsquo를 제작하기로 결정했다 CF나 기타 광고에서

활발하게 활용되는 서서히 베일을 벗어가며 호기심을 자극하는

광고 기법 말이다 우리의 타깃은 대중이 아닌 출판계라 처음엔

lsquo이런 홍보를 과연 좋아하실까rsquo 하는 의구심이 앞섰다 하지만

회의를 거듭하며 아이디어를 잘 뽑아내고 두 반이 협력한다면

효과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케터반 편집자반 학생들의 문구들을 취합해 투표로 가장

적합한 것을 뽑았다 1등은 정혜림 학우의 lsquo북쪽으로 가라 귀인을

만난다 BOOK쪽으로 오라 귀인을 얻는다rsquo가 차지했다 lsquo북쪽rsquo이라는

방향표현을 lsquoBOOKrsquo으로 바꾼 게 참신하고 재밌어 모두의 공감을

얻었다 2등은 김수경 학우의 lsquo내가 동네북이니 응 SBI 동네북

페스티벌rsquo이 뽑혔다 평소에도 재미있는 말투로 늘 주변을 웃게

만드는데 그 재기발랄함이 묻어나는 문구였다 3등으로 뽑힌

유보미 학우의 lsquo날 떠난 후 너는 행복하니 내 인생 책임져 책책책

책임져rsquo는 아쉽게 광고에는 쓰이지 않았지만 시선을 끄는 기발한

문구였다 이 외에도 lsquo책 잡힐 일 하지마라 책 잡을 일 해라rsquo lsquo갈피를

못 잡을 땐 책갈피rsquo 등 재밌는 문구들이 많았다

전부 광고에 쓰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라 12등 문구를

멋지게 디자인하기로 했다 디자인에 대한 의견을 반 친구들과

나누며 포스터들을 직접 디자인했다 서로 의견이 맞지 않기도 하는

등 고단할 때도 있었지만 많은 분들이 우리를 보러 와주신다면 모든

고생이 잊힐 것이다 제발 그랬으면 한다

편집자반 11기 박혜원

10

20151012 월요일 D-4

수많은 이름들을 위하여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난리다 난리 우리 반이 이렇게 시끄럽고

활기찬 적이 있었던가 자타공인 조용하다던 편집자반 학우들은

어디로 가고 요 며칠 온통 돌아다니거나 무언가를 만드느라

고군분투하는 풍경들과 마주하고 있다 나쁘지 않은 아침이다

그 동안 우리는 직책의 기근()에 익숙해져 있었다 반장 부반장

조장의 휘하에서 맡은 바를 다하며 펠로우십을 뽐내고 있던

우리에게 갑자기 수많은 이름들이 떠맡겨졌다 누군가는 TF팀이

되고 누군가는 홍보 팀장이 되었으며 누군가는 인터뷰 팀장이라는

직책을 맡았다 그런가 하면 건축학을 전공한 학우는 공간 배치를

구상하는 역할을 맡고 누군가는 가을 단풍을 모티프로 해서

편집자반 전체의 부스를 꾸미고 있다 그뿐이랴 각 동아리의

장(長)들은 동아리 부스를 만들랴 그 동안의 활동을 책으로 만들기

위해 인디자인 작업에 몰두하랴 정신이 없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웅장하게 꾸며질 조별 부스를 살펴보면 아마도 입이

떡 벌어질 것이다 각 조는 워크숍으로 만든 자신들의 책에 맞춰

콘셉트를 잡았다

편집자반 lsquo윌비rsquo 조는 『창업 자금 날려먹지 않는 법』에 맞게

카페처럼 부스를 꾸미기로 했다 거대한 간판도 이미 완성되었고

맛있는 커피도 만든다고 하니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lsquo길목rsquo 조는 『서태후 비사』의 내용에 따라 서태후가 좋아했던

벚꽃으로 부스를 장식한다 게다가 한 켠에는 『서태후

비사』전자책과 예쁜 책갈피까지 마련되어 있을 것이다

lsquo달로rsquo 조는 『사이의 거리』의 표지에도 실 그림이 들어간 것에 맞춰

실을 이용하고 있다 특히 실로 lsquo사이의 거리rsquo 글자를 만들었을

때에는 학우들 모두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어떻게 실로 글자를

만들 수 있었는지 많은 분들이 와서 봐주시면 좋겠다

lsquo세모북스rsquo 조는 강명관 잡문집인 『허울 좋은 나라』를 만들었다

시대상과 일상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lsquo사진rsquo에 착안해 옛날

사진관처럼 부스를 꾸미고 있다 흑백 사진과 손글씨가 고즈넉한

멋을 더할 것이다 돌림판 이벤트도 있을 예정이다

편집자반 11기 이상화

2015101 목요일 D- 15

lsquo정rsquo이 있어 lsquo반rsquo을 찾아 lsquo합rsquo을 보니 마케터더라

lsquo차별성이 있어야 한다rsquo

책의 차별성을 찾았던 6개월 그리고 6개월 간의 경험을 토대로

lsquo차별성이 있는 마케터반의 발표회rsquo를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각

조의 조장들과 발표회 테스크포스 팀원이 머리를 맞댔다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lsquo책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그렇다고 너무 책에

집중하지 말자rsquo였다 마치 lsquo정rsquo과 lsquo반rsquo을 통해 lsquo합rsquo을 만들어내는

과정이었다 세상에 이마저 변증법적 접근이라니 그러나 우리가

누구인가 책이라는 물성에 가치의 효용을 불어넣는 우리가

아니던가 분명 발표회에도 그와 비등한 가치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전체 콘셉트은 lsquo북북 쓰는 마케팅rsquo으로 각 조를 하나의 챕터로

삼았다 즉 개성이 뚜렷한 5개의 챕터로 이루어진 lsquo마케팅 북rsquo인

것이다 그리고 각 챕터는 lsquo마케팅이란rsquo이라는 소주제를 부여하여

각 조의 교육과정과 보여주고 싶은 것들을 자유롭게 보여주기로

했다

이제 정이 끝났으니 반을 제시할 차례 lsquo반rsquo으로 lsquo소책자rsquo와 lsquo상품rsquo를

선택했다 소책자는 그저 소개하는 글만을 넣지 않고 lsquo스탬프

여행rsquo의 컨셉을 빌려 꾸미기로 했다 각 조의 부스를 돌아볼 수 있는

장치로 충분한 역할을 할 것이다 상품은 lsquo책rsquo에 대한 행운을 줄 수

있는 lsquo무언가rsquo를 준비하기로 했는데 지금 당장 밝히기는 쉽지 않은

lsquo무언가rsquo를 준비할 것이다 (기대되시지요)

이제 합이다 합은 발표회 당일 분명 lsquo정rsquo과 lsquo반rsquo의 효과가 나타날

것이며 어느 때의 발표회보다 멋질 것이다 (라고 근자감을

부려본다) 곧 시작될 발표회 기대하시라

마케터반 11기 이장열

11

1212

설왕설래

『호밀밭의 파수꾼』의 결말이

궁금해서 견딜 수 없다면

세 반 학우들의 상상력을 동원한 우리들의 릴레이 세

나에 대해 듣고 싶다면 내가 어디서 태어났는지 어린

시절이 얼마나 형편없었는지 내 부모님이 무슨 직업을

가지고 있는지 내가 태어나기 전에 무슨 일들이 있었는

지 같은 데이비드 코퍼필드 식의 헛소리가 듣고 싶겠지

하지만 난 그딴 이야기 하고 싶지 않아 (JD 샐린저 『호

밀밭의 파수꾼』

내 속으로 지나가지만 어쨌든 내 것이 아닌 섬광을 내

가 앉았던 내가 읽었던 생을 한순간에 으스러뜨리는

섬광을 이야기하고 싶어 이창환

아니 잠깐 내가 뭔 병신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

지 내일 서울출판예비학교 면접 있어서 빨리 자야 하

는데hellip 공태준

어서 잠에 들어야 한다는 조급함이 커질수록 허기 또

한 함께 치밀어 올랐다 결국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파

스타 면을 삶는 시간 8분 (그 동안엔 냉장고의 한 쪽

에 남아있던 산토리 한 캔을 단숨에 들이켜야 했다)

음악은 야나체크의 산포니에타 김사룡

맥주 한 캔으로 살짝 취기가 돌자 술이 더 마시고 싶었

다 결국 소주 한 병을 꺼내어 마시며 적당히 삶아진 파

스타 면을 올리브유에 볶았다 내일 입을 정장치마가

끼지 않을까 걱정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엎질러진 물

인걸 최다은

침대에 누워 억지로 잠을 청해본다 잡념이 사라지지

않는다 고민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된다 젠장 벌

써 새벽 3시 자긴 글렀네hellip 그렇게 뒤척이다 날은 밝았

다 이다혜

밝아진 창밖을 보며 어젯밤 나를 뒤척이게 한 면접을

떠올렸다 어제만 해도 중요한 일이라 생각했는데 날

이 밝으니 이미 그 중요성은 나와 멀어진 느낌이다 의

무감에 옷을 챙겨입고 집을 나섰다 양화대교를 건너는

버스 안 새로운 계획이 떠올랐다 황하정

새로운 계획으로 들뜬 나에게 창밖의 풍경이 눈에 들어

온다 수많은 사람과 차량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

어진다 다른 듯 보이지만 얼굴을 장식한 특유의 무표

정함과 발등에 불이 떨어진 듯 바삐 움직이는 모습 속

에 내가 겹쳐 보인다 그래 이번 계획은 나에게 얼마

동안의 기대감을 선사해 줄 수 있을까 뭐 어때 잠깐

이라도 좋다 쓸데없는 잡념보다는 시한부 희망이 차라

리 낫다며 애써 위로한다 유수지

순간 어렴풋한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니 내 또

래의 남자가 거북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김단희

그의 혐오에 가까운 시선과 마주쳤을 때 나는 순간 얼

어버렸다 면접 장소에 가기 위해선 이번 정류장에서 내

렸어야만 했다 그러나 나에게 다가오는 그 남자 때문

에 그러지 못했다 남자가 말했다 김선아

ldquo너였구나 그래 너였어 3년 전 3만원을 빌리고 도망

간 김말숙이 그래 너야rdquo

그 남자는 미친 게 분명했다 lsquo잠깐 이 관능적인 머스

크 향은 뭐지rsquo 순간 뇌리를 스치는 불가리 향수는

그 남자를 떠올리게 했다 지독하게 얼굴을 기억하지

못했던 그 남자를 말이다 이장열

대학교 1학년 설레는 마음으로 나간 첫 번째 미팅을

내 인생 최악의 시간으로 만들었던 lsquo불가리 그놈rsquo이었

lsquo젠장 이 안면 인식 장애놈이 내 얼굴을 어떻게 기억하

는 거지rsquo 내 이름이 김말숙이든 아니든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내 얼굴을 기억한다는 것이 의아할 뿐

양화대교 위에서 떠오른 새로운 계획 그래 지금부터

시작이다 오늘 하루는 lsquo나rsquo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 살

아보는 거야

난 매섭게 치뜬 눈으로 나를 응시하는 그를 뒤로하고

소설의 첫 문장으로 시작하는 릴레이 소설

13

무심히 다음 역에서 내렸다 아무런 동요 없이 발걸음

을 옮기는 나를 보고는 그도 무안한지 이내 제자리로

돌아가는 듯했다 이상한 사람 나는 계속해 나의 목적

지를 향해 걸어갔다

결국 지각했다 면접은 진행 중이었다 이게 다 불가리

때문이다 불가리 냄새가 몸에 밴 것 같다 아니 불가

리 냄새는 내 옆에서 나고 있었다 내 옆에는 불가리가

앉아 있었다 부처님의 손가락을 본 손오공의 심정이

이러했을까 강귀욱

끔찍했다 냄새도 면접도

lsquo젠장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야rsquo

담배에 불을 붙여 한 모금 깊게 빤다 lsquo후-rsquo 치미는 화

도 잡념도 불안도 이 연기처럼 쉬이 사라져버리면 좋

으련만 무의미한 푸념만이 입 안에 맴돈다

ldquo김말숙~ 여기 있었냐rdquo 그 말에 얼마나 놀랐냐면 떨

어진 담뱃불이 내 정장치마를 태우고 있는 줄도 몰랐을

정도였다 lsquo불가리 그놈을 피해 골목까지 들어왔는데

여긴 어떻게 찾은거야rsquo

ldquo밥 먹을래rdquo lsquo꺼져 꺼져 제발 꺼져helliprsquo 못 들은 척 고

개를 돌렸다

ldquo소달구지라고 괜찮은 식당 있는데 같이 가면 그 3만

원 없던 걸로 해줄게rdquo

우리는 눈이 마주쳤다 김영준

해질 무렵 서서히 불이 들어오는 보고 있어도 언제 밝

아졌는지 알 수 없는 양화대교 위 가로등처럼 우리는

천천히 그러나 깊게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새카

만 흑암의 공간 무저갱 같이 깊고 검은 눈동자 속에

숨겨 놓은 비밀을 알아내기라도 하려는 듯 그렇게 서

로의 눈을 망막 너머의 시신경을 시신경을 타고 올라

가 전두엽 어딘가에서 터지고 있을 스파크를 계속 들여

다보았다 이윽고 두 남녀의 입이 열렸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낮은 목소리가 화음을 내며 울려 퍼

졌다 ldquo몽마르뜨가 좋겠어rdquo 권오권

끔찍했던 면접과 기분 나쁜 불가리놈의 얼굴이 잊힐 정

도로 음식의 맛은 정말 좋았다 고작 음식 때문에 기분

이 나아지는 내 자신에게 정말 어이가 없었지만 어쨌

든 맛은 좋았다 된장국으로 숟가락을 옮기며 슬쩍 앞

의 녀석 얼굴을 쳐다보았을 때 그 녀석도 나를 쳐다보

고 있었다 김희연

3년 전의 얼굴과 꽤 변해있었다 그 당시 철없는 어린

애 같은 얼굴이었는데 지금은 사회인이 되려고 꾸며댄

듯한 모습 물론 3년 전보다 더 나아졌다거나 잘생겨진

것은 아니다 전보다 훨씬 평범한 얼굴이다 ()

그런 그는 어째서 날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어째서 날

기억하고 다가와서 말을 걸고 함께 식사까지 하려 하

는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이 텅 빈 머릿속을 메

운다 엄청나게 망쳐 버린 하루지만 이상하리만큼 멀

쩡한 내가 낯설다 김하얀

그러다 내가 집에 돌아가는 길 문득 미니스톱에 담배

를 사러 들렀다가 ldquo여기 국산담배밖에 없는helliprdquo 음hellip

없단다 가뜩이나 기분도 꿀꿀한데 없다니 빵만 사서

나왔다

빵을 사서 가는 길에 낯익은 얼굴에 걸음을 멈추었다

ldquo너 혼자 빵 먹냐 나도 같이 먹자rdquo 불가리 그놈이었

다 ldquo혹시 너 나 따라온 거야rdquo 기가 막혔다 백가은

어쩐지 불가리 향수 냄새가 난다 했다 ldquo왜 따라왔어rdquo

그랬더니 불가리 그놈이 하는 말

ldquo난 내 집 가는 건데rdquo 믿을 수 없다 수상쩍다 그놈은

나를 앞질러 가더니 우리 집 주인 아줌마네 집으로 들

어가 버렸다 아 저 놈이 집주인 아줌마 아들놈인가

월세 밀렸는데 망할

망할 이상한 하루였다 잊자 오늘 일은 전부 다 잊어

버려야지 방으로 들어오기 직전에 산 맥주 한 캔의 뚜

껑을 따고 들이킨다 캬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가는 듯

시원하다 씻고 자리에 눕는 순간 면접 결과가 나올 때

까지 무엇을 하고 있어야 할지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TO BE CONTINUEDhellip

은 익명 표시입니다

13

무심히 다음 역에서 내렸다 아무런 동요 없이 발걸음

을 옮기는 나를 보고는 그도 무안한지 이내 제자리로

돌아가는 듯했다 이상한 사람 나는 계속해 나의 목적

지를 향해 걸어갔다

결국 지각했다 면접은 진행 중이었다 이게 다 불가리

때문이다 불가리 냄새가 몸에 밴 것 같다 아니 불가

리 냄새는 내 옆에서 나고 있었다 내 옆에는 불가리가

앉아 있었다 부처님의 손가락을 본 손오공의 심정이

이러했을까 강귀욱

끔찍했다 냄새도 면접도

lsquo젠장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야rsquo

담배에 불을 붙여 한 모금 깊게 빤다 lsquo후-rsquo 치미는 화

도 잡념도 불안도 이 연기처럼 쉬이 사라져버리면 좋

으련만 무의미한 푸념만이 입 안에 맴돈다

ldquo김말숙~ 여기 있었냐rdquo 그 말에 얼마나 놀랐냐면 떨

어진 담뱃불이 내 정장치마를 태우고 있는 줄도 몰랐을

정도였다 lsquo불가리 그놈을 피해 골목까지 들어왔는데

여긴 어떻게 찾은거야rsquo

ldquo밥 먹을래rdquo lsquo꺼져 꺼져 제발 꺼져helliprsquo 못 들은 척 고

개를 돌렸다

ldquo소달구지라고 괜찮은 식당 있는데 같이 가면 그 3만

원 없던 걸로 해줄게rdquo

우리는 눈이 마주쳤다 김영준

해질 무렵 서서히 불이 들어오는 보고 있어도 언제 밝

아졌는지 알 수 없는 양화대교 위 가로등처럼 우리는

천천히 그러나 깊게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새카

만 흑암의 공간 무저갱 같이 깊고 검은 눈동자 속에

숨겨 놓은 비밀을 알아내기라도 하려는 듯 그렇게 서

로의 눈을 망막 너머의 시신경을 시신경을 타고 올라

가 전두엽 어딘가에서 터지고 있을 스파크를 계속 들여

다보았다 이윽고 두 남녀의 입이 열렸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낮은 목소리가 화음을 내며 울려 퍼

졌다 ldquo몽마르뜨가 좋겠어rdquo 권오권

끔찍했던 면접과 기분 나쁜 불가리놈의 얼굴이 잊힐 정

도로 음식의 맛은 정말 좋았다 고작 음식 때문에 기분

이 나아지는 내 자신에게 정말 어이가 없었지만 어쨌

든 맛은 좋았다 된장국으로 숟가락을 옮기며 슬쩍 앞

의 녀석 얼굴을 쳐다보았을 때 그 녀석도 나를 쳐다보

고 있었다 김희연

3년 전의 얼굴과 꽤 변해있었다 그 당시 철없는 어린

애 같은 얼굴이었는데 지금은 사회인이 되려고 꾸며댄

듯한 모습 물론 3년 전보다 더 나아졌다거나 잘생겨진

것은 아니다 전보다 훨씬 평범한 얼굴이다 ()

그런 그는 어째서 날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어째서 날

기억하고 다가와서 말을 걸고 함께 식사까지 하려 하

는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이 텅 빈 머릿속을 메

운다 엄청나게 망쳐 버린 하루지만 이상하리만큼 멀

쩡한 내가 낯설다 김하얀

그러다 내가 집에 돌아가는 길 문득 미니스톱에 담배

를 사러 들렀다가 ldquo여기 국산담배밖에 없는helliprdquo 음hellip

없단다 가뜩이나 기분도 꿀꿀한데 없다니 빵만 사서

나왔다

빵을 사서 가는 길에 낯익은 얼굴에 걸음을 멈추었다

ldquo너 혼자 빵 먹냐 나도 같이 먹자rdquo 불가리 그놈이었

다 ldquo혹시 너 나 따라온 거야rdquo 기가 막혔다 백가은

어쩐지 불가리 향수 냄새가 난다 했다 ldquo왜 따라왔어rdquo

그랬더니 불가리 그놈이 하는 말

ldquo난 내 집 가는 건데rdquo 믿을 수 없다 수상쩍다 그놈은

나를 앞질러 가더니 우리 집 주인 아줌마네 집으로 들

어가 버렸다 아 저 놈이 집주인 아줌마 아들놈인가

월세 밀렸는데 망할

망할 이상한 하루였다 잊자 오늘 일은 전부 다 잊어

버려야지 방으로 들어오기 직전에 산 맥주 한 캔의 뚜

껑을 따고 들이킨다 캬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가는 듯

시원하다 씻고 자리에 눕는 순간 면접 결과가 나올 때

까지 무엇을 하고 있어야 할지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TO BE CONTINUEDhellip

은 익명 표시입니다

14

이옥란 선생님

캡틴 오 마이 캡틴(captain oh my captain)선생님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

편집자반 학우들은 늘 이분의 얼굴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며

끝마친다 몇 번의 마주침은 덤이다 그분은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도 가깝지만은 않았던 편집자반의 담임 교수

이옥란 선생님 자신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우리를 위한

이야기를 풀어놓으시느라 매일 종례시간이 부족하신 이옥란

선생님께 이번엔 우리가 물었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 일상을 어떻게 보내고 계신가요 선생님의

주말이 취향이 추억이 삶이 궁금하다 편집자반 학생들에게

직접 받은 질문들로 lsquo한 사람rsquo에게 궁금한 것들을 물었다

이 인터뷰를 읽은 뒤 그녀를 한층 좋아하게 되리라고

확신한다

왜 디토 커피에 자주 가시나요

커피가 제일 맛있고 값이 싸고

넓은 창으로 햇빛이 많이 들어와

그리고 주인장들이 공간은 물론이고

손님들과도 잘 어우러지는 것 같아

옥란 선생님께 스카프란

어느 날 발견한 패션 아이템 몇 년 전인가

홍대 앞 가판대에서 우연히 마 레이온 합성의

보라색 스카프를 발견한 이후인 것 같아

왜 고양이를 좋아하시나요 고양이를 키우시나요

고양이가 나를 키웠다고 할 수 있지 시골집 막내였는데

고양이가 친구가 되어주었어 (선생님이 고양이를 닮아

가시는 것 같아요 혹시 키우세요) 둘 있는데 13년쯤 되었나

최근에 읽었거나 읽고 계신 책은

이익섭 저의 『국어학개설』 『말과 사물』 『좌파는

어디에 있었는가』 『논어』 『번역어의 성립』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등 여러 권 들고 다니면서 돌려본다

(국어학개설은 읽는다기보다 공부 아닐까요) 아니야

재미있어

인생의 책을 꼽자면

김훈의 『남한산성』 표지가 핫핑크 색이야 건조하고 힘

있는 남성적인 문체의 마초라고 불리기까지 하는 작가의

책이 핑크색이라니 크기도 아마 46판에 더스트 커버(dust

cover)는 질긴 천의 느낌이고 본문은 재생지인지 무겁지

않고 두께도 딱 손에 잡히는 정도 감각까지 장악한 책이야

몇 권 사서 주변 사람들에게 돌렸어

선생님의 멘토는

이런 질문에 답하게 될 줄은 몰랐네 글쎄 그러고 보면

존경스러운 사람은 있었지 대학 때 문학 동아리 선배였어

양상현 형 (어떤 점이 제일 존경스러우셨어요) 자유롭게

사는 사람이었던 것 얼마 전에 돌아가셨어 이제 조금

실감이 나네 그분은 건축 전공에 시를 쓰고 음악을

즐기고 노는 문화를 나누고hellip 어떤 사태도 회피하지 않고

자유로웠던 사람이었지 앞으로 할 일이 더 많았을 터인데

양상현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졸업 동대학원

박사학위 2002년 대한민국건축대전

초대작가 선정 순천향대 건축학과

교수 재직 민족건축인협의회

의장 설계 작품으로는 lsquo장암리

주택rsquo lsquo녹촌리 조각가의 집rsquo 등

대표 저서『거꾸로 읽는 도시

뒤집어 보는 건축』 2015년

8월 14일 별세

졸업 후 편집자로 일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우리 때는 노동운동이나 농민운동을

했던 대학생이 사회과학 출판사로

진출하는 경우가 많았고 내 친구도 졸업을 해서

출판사에 있었어 그 녀석이 나를 사무실로

초대했는데 반지하도 아니고 그냥 지하였던 것

같아 ldquo옥란이 이리와 봐 이게 뭔지 아니 바로

매킨토시라는 거야 이게 얼마짜린지 아니rdquo

매킨토시 컬러 클래식(Macintosh Color Classic)

웬만한 공책보다 좀 클까 본체가 화면에 같이

붙어 있는 하드웨어를 가진 컴퓨터였지 친구 말로는

300~400만 원 한다고 했어 20년 전이니 당시로는

큰돈이지 교정지를 보여주더니 마치 lsquo음 너는 아직 이런 거

모르지rsquo라고 하는 듯이 ldquo잠깐만 언니가 뭐 좀 할 테니까

잠깐 기다려봐 하hellip 이거 띄어쓰기 어떻게 해야 하려나 이게

전문용어라 통일을 해줘야 하는데helliprdquo 하던 잘난 척이 기억이

나네 그렇게 출판사를 접했지 문학 동아리를 하느라 알게

된 선생님들 선배님들도 여럿 출판사에들 계셨어

편집자로 일하셨을 때 어떤 분야를

편집하셨나요

하다 보니 주로 예술 서양 미술 분야였고

출판사는 학고재 예경 마로니에북스까지

그런 기회가 나한테 왔고 재미있었어

전공이 그쪽이 아니었기 때문에 공부를

해야 했지

지난 서울출판예비학교생활 중 특별히

기억나는 사람이나 사건이 있다면

8기 졸업식 날 남학생 셋이 ldquo저는 출판학교에

와서 모든 것을 얻었습니다rdquo 그러면서 흑흑 우는 거야

누군지 얘기하면 창피하겠지 남학생들이 울어서 애들이

알고싶어 편집자반

15

완전 눈물 바다였잖아 (우리 반 오빠들이 운다는 건 상상할

수 없네요) 다음 해에는 애들이 완전 유머 코드여서 웃다

끝났지

출판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된 계기나 동기는

무엇인가요

나는 8기부터 시작했는데 7기 담임이던 김장환 씨가 나를

불렀어 공동 담임을 해달라고 lsquo그러지 뭐rsquo 이렇게 시작했지

직장은 2008년도까지 다녔고 프리랜서로 활동하면서

여기저기서 강의를 하고 있었어 한겨레 문화센터에도

23년쯤 있었지 (편집자보다 이렇게 선생님으로 있는 게 더

즐거우세요) 지금은 진짜 만들고 싶은 책 함께 작업해보고

싶은 저자 그런 게 아닌 한 직업으로 신간을 꾸준히 내는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당신들은 눈이 반짝반짝해서 업계에 들어와야겠다고

준비해서 오잖아 그 친구들이 1년차 3년차 되는 것을

지켜보고 있으려니까 내가 그 나이쯤 사회생활을

시작해 고민했던 지점이 보이는 거지 그 때

이걸 알았더라면 하는 안타까움이 있어서

여러분들이 애틋해지지

요즘 최대의 관심사는 무엇인가요

저녁에 후배들에게 가르칠 강의를 하다

보니 국어 공부의 필요성을 여실히 느끼고

있어 출판 동네에서 20년 넘게 일한 사람이

공부해온 것을 한 번 정리해서 후배들한테 줄 필요도

있겠구나 싶고 (뭔가 일 얘기가 아닐 줄 알았는데요

하하)

은퇴 후에 무엇을 하고 싶으신가요

오늘은 말이 절로 나오는 걸 하하 마당 있는 시골집 텃밭을

일구며 역사에 길이 남을 인간과 세상을 통찰하는 대작

소설을 발표하겠다 (와)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이 되고 싶으신가요

다시 태어나고 싶지가 않아hellip(웃음) 지구에서는 내

대에서 멸종하기로 했다

저희들에게 속 시원하게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자신 있게 해라

생각해보면 다들 자기가 못났어 키도 좀 더 컸으면

좋겠고 외모도 마음에 안 들고 내가 저 때 저렇게

했으면 지금 달라졌을까 부럽기도 하고

그런데 사실 부질없는 거거든 세상 사는

힘이 실력에만 있는 게 아니고 태도의 문제가 더

클 때가 많아 내 것이 아닌 것에 목매고 있을

필요가 없어 신입사원으로 전혀 모르는 곳에

뚝 떨어졌을 때 저들의 세계 속에 혼자 쏙

들어간 기분이니까 일단은 주눅이 들지

하지만 거기서 살아가야 하지 않겠어

둘러보면서 아 저기가 화장실이구나 사람들은

이런 걸 이렇게 하는구나 파악하고 나면 좀

수월해지잖아

마지막으로 대망의 이상형 월드컵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정우 주원 김수현 유아인 이렇게

4강전으로 시작하겠습니다

(하정우와 주원 중에서는 누가 더 좋으세요) 하정우지

주원이 최근에 좋아지긴 했는데 아직도 하정우를 따라올 수

없어

(그럼 김수현유아인 중에서는요) 유아인이지

(너무 확고하셔요 드라마 lt밀회gt 보셨나요) 집에선 케이블

방송도 안 나오고 관심 갖게 되었을 땐 너무 유행이라

안보고 말았지 대신 영화 lt완득이gt는 봤다

(이제 결승인데요 마지막으로 하정우와 유아인은요)

아인이는hellip 나한테 좀 과분한 것 같아(웃음) 하정우가 삐질

것 같은데 그래서 둘 다 잃는 거야hellip

편집자반 11기 김수진 이상화

lt베테랑gt의 악랄한 재벌 2세유아인

lt프로듀사gt의 어리버리 신입PD

김수현

lt용팔이gt의 천재 외과의사

주원

lt 암 살 gt 의 순 정 마초

하와이 피스톨하정우

하정우

16

한대웅 선생님

『동백꽃』의 주인공 같은 그 남자착하디착한 순하디순한 한대웅 선생님의 속마음

좀처럼 화내시는 일도 없고 허허 웃기만 하시고hellip 하지 못한

말들을 땀으로 발산하듯 여름이면 온몸이 열정으로 흠뻑

젖으시는 분 세상 어디에도 없을 착한 남자 마케터반의

한대웅 선생님이다 그에게 던진 몇 가지 질문에 돌아온 것은

가장으로서의 고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 아직도 앳된

소년 같은 순수함이 묻어나는 답변들이었다 이제 그를 좀 더

깊게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평소에 칼라(collar) 티셔츠를 즐겨 입으시던데

좋아하시는 옷인가요

좋아한다기보다는 제 딴에는 편하게 입을 수 있는 듯해서

즐겨 입고 있습니다 또 아내가 이런 종류의 옷을 많이

사주기도 하고요

선생님께 lsquo출판rsquo이란 무엇인가요

출판은 lsquo꿈을 이루는 판도라의 상자rsquo lsquo내가 가진 능력에 가장

맞는 일rsquo입니다

출판을 업으로 삼지

않으셨다면 어떤 일을

선택하셨을까요

모르겠네요 아마도 운명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요 다만 다음과

같은 3가지 생각은 해보았습니다

첫째 고등학교 시절 성적이 조금

더 좋았다면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해서

지금쯤이면 텔레비전이나 영화에 나오는 큰 전투함의

함장이 되지 않았을까요

둘째 대학교에 입학하지 못했다면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로 이민을 가서 장사를 하거나 농부로 농장을

운영하면서 그곳 사람으로 국적을 바꾸고 살고 있지

않을까요 고등학교 3학년 때 대학교 입학 시험에

떨어지면 다른 나라로 가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다는

마음의 준비를 했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 모 일간지에 실린

해외에서 성공적인 삶을 사는 한국 사람들에 관한 기사를

꼼꼼하게 읽었었거든요

셋째 대학교 3학년이나 4학년 때 신춘문예까지는 아니라도

대학교 교내 문학상 정도를 받았다면 아마도 그 결과에

탄력을 받아 시나리오 작가나 연극 연출가의 길로 가려고

하지 않았을까요

ID와 블로그에 lsquo봄rsquo이라는 단어가 들어있는데 봄을

좋아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그 ID를 만들 무렵 저의 미래는 꽤나 불확실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바꿔 말하면 어떻게

돈을 벌어야 하고 어떻게 자아 성취를

해야 하는지가 불확실하고

힘들었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lsquo봄rsquo이라는

단어를 좋아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누구나

알다시피 봄은 겨우내

얼어 있던 것들이

새롭게 싹을 틔우고

새롭게 기지개를 펴는

계절이죠 물론 봄

자체가 주는 느낌도

좋고요 그래서 lsquo봄rsquo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던 것

같습니다

블로그는 서울출판예비학교에서

일을 시작한 후 만들었습니다

블로그에 lsquo봄바람rsquo이라는 의미를 부여한

것은 ID를 만들던 때의 생각이 이어진 것이겠지요 요즘에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이 많이 사라진 것 같습니다 만약

앞으로 블로그나 ID를 만든다면 아마도 lsquo여름rsquo 혹은 lsquo풍성함rsquo

아니면 lsquo내가 원하는 세상을 상징하는 어떤 것rsquo을 이름으로

사용할 것 같습니다

편집자로 첫 시작을 하셨는데 나중에 출판 마케터로

일하게 된 동기를 알고 싶어요

시장 상황을 분석하고 이에 맞게 마케팅 계획을 세우고

사람이나 집단을 만나고 힘을 합쳐 뭔가 새로운 결과를

만들어 내는 일이 재미있었습니다

은퇴 후에 꿈꾸시는 삶이 있으신가요

아직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20대와 30대

초반에 꿈꾸던 것들을 lsquo은퇴 후에 여유가 생긴다면 이것들을

해볼까rsquo라고 간혹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현재겠죠 출판에서 뭔가를 이루려고 열심히 계획하고

실행하다 보면 은퇴 후의 삶도 더 풍요로워지지 않을까요

알고싶어 마케터반

17

일하실 때 다뤘던 책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무엇인가요

입사 초기 편집을 하거나 시장조사를 하고 제가 출간 여부에

대한 판단을 내렸던 책들이 기억납니다 『펠레』 자서전은

제가 편집자로 있을 때 출간했던 책인데 주요 일간지의

서평란 메인을 장식했던 책입니다 출간 시점을 맞추기 위해

촉박한 기간 동안 밤새가며 책을 만들었습니다 출간 시점에

대한 판단이 정확히 맞았고 그 결과 기대 이상으로 많은

서평을 받았던 책입니다

서울예비출판학교 선생님으로 오신 계기를

알고 싶어요

전에 다니던 출판사를 그만둔 후

개인적으로 뭔가를 해보려고 고민

중이었습니다 그러나 능력이

부족하다 보니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았죠 그러던 중에

출판학교에서 일해 볼 것을

제안 받았고 저도 출판학교

학생들처럼 면접을 보고 이

학교에 오게 되었습니다

일을 하게 되었을 때 매우

즐거웠습니다

다시 출판사 마케터로 돌아갈

생각이 있으신가요

아니오 이유는 2가지인데 첫째는 제 나이가

48세입니다 다른 업종도 그렇지만 출판 산업에서도

48살에 마케터로 직장인의 생활을 이어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죠 정말 현실적인 고민이죠 게다가 출판학교에서

여러분과 소통하며 제 지식을 전수하는 일이 재미있습니다

물론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언젠가 저만의 꿈을

찾아갈 수 있겠죠

평소 몇 권의 책을 읽으시나요 최근 읽은 책 중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요

예전에 많이 읽을 때는 1주일에 2권 정도 읽었습니다

황석영의 『장길산』과 홍명희의 『임꺽정』 이문열의

『삼국지』를 읽을 때 짬짬이 쉬는 시간을 비롯해 지하철에서

보내는 시간까지 거의 모든 시간을 책을 읽으며 보냈습니다

요즘에는 1달에 1~2권 정도 읽는 것 같네요 최근 읽은

책 중에 기억에 남는 책은 『내 아이와 어떻게 대화할

것인가』(율리아 기펜레이테르 저 써네스트 2006)와 『내

아이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율리아 기펜레이테르

저 써네스트 2009)입니다 제목만으로도 왜 이 책을

추천하는지 금방 눈치 챌 수 있을 것입니다 아이가 둘

있는데 첫째는 15살 딸이고 둘째는 10살 아들입니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lsquo어떻게 하면 아이와 싸우지 않고

윽박지르지 않고 아이의 자존감을 높여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성실하고 삶의 열정과 꿈이 넘쳐나는 아이로

키울까rsquo 같은 고민을 항상 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단비처럼 다가왔습니다 위의 2권의 책을 읽고 몇

가지 중요한 것들을 배웠습니다 아이와 어떻게 소통하고

어떻게 대화해야 하는지 아이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등등 이전에 『부모와 아이 사이』(하임 G 기너트

등 저 양철북 2003)를 읽고 아이를 이해하는 법에 대해

큰 인상을 받았는데 이 책도 그 연장선에서 저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아들과 딸을 좀 더 이해하게 되고 그

결과 아이들에게 화를 내거나(저도 나약한 인간인데 화가

날 때가 심심치 않게 있거든요) 아이들의 긍정적인 싹을

본의 아니게 꺾어 버리는 경우가 줄었다고 할까요 게다가

이 책은 lsquo부모와 아이 사이rsquo만이 아니라 lsquo친구와 친구 사이rsquo

lsquo회사 내부 구성원 사이rsquo에서 소통하는 데도 많은 영감을

제공합니다 출판학교 학생들과 소통할 때도 이해의 폭을

넓혀주고 긍정적인 소통을 하는 방법을 제공해 줍니다

이제 수료를 앞둔 마케터반 학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으시다면

개인별로 처한 처지와 조건에 따라 다르겠지만 다음과 같은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 연인을 사랑하듯 출판에 대해서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보세

- 이 길이 나에게 최선의 길인가 생각해 보세요

- 목표를 세우고 지금부터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한 후 그것을 어떻게 이루어 나갈 것인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보세요

저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스스로의 내면을 단단하게 할 중요한

질문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앞으로도 끊임없이

새로운 답을 찾아나갈 질문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케터반 11기 이장열 이창환

18

선생님은 주말에 뭐하세요

무조건 가족과 함께hellip

만약 편집 디자인을 안 하셨다면 무슨 일을 하고

계실까 궁금해요

어찌 됐든 개인 사업자로 살았을 듯 윗사람 비위 맞추는

것을 너무 못하므로hellip

선생님 주량이 어떻게 되세요 주사가 있으세요

몸 상태 좋고 안주 많이 먹으면 1병(클래식으로)

좋은 출판 디자인을 생각한다

심우진middot안광욱 선생님

lsquo멋rsquo이라는 것이 폭발한다뼛속까지 디자이너스러운 심우진 선생님

멀리서도 눈에 띄는 큰 키에 멋들어진 베레모 디자인반의

심우진 선생님 되시겠다 서울출판예비학교에서 lsquo멋rsquo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가끔은 조금 키 큰 학생처럼 학생들

속에 잘 어우러지는 사람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모습은

여기까지다 그를 조금 더 알고 싶다 지금까지의 그를

만들어왔을 lsquo심우진의 생각들rsquo이 궁금했다

선생님은 무엇을 드시고 그리 멋지시나요

학생들의 사랑 밥 김치

일본 유학길에 오르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lsquo동아시아rsquo lsquo근대rsquo가 당시 나의 화두였으므로 그리고

스기우라 고헤이 선생을 뵈러

첫 직장을 다녔을때 일의 강도()나 다니는 동안

마음은 또 어떠셨는지

출판 쪽 첫 직장은 lsquo정디자인rsquo인데 lsquo나는 왜 이렇게 디자인을

못할까rsquo 답답해했던 기억이 있어요 그러나 매우 즐거웠고

술도 자주 마셨죠 아직도 당시의 OB들과 가깝게 지내요

lsquo둥지rsquo 같은 곳이죠

선생님께서 생각하는 완벽한 판면이란

디자이너의 삶의 방식과 콘텐츠의 삶의 방식이 녹아든 판면

선생님의 피로회복 방법은

알고싶어 디자인반

19

디자인반의 히어로좋은 출판 디자인을 생각한다 안광욱 선생님

여자 화장실 앞에 있어 인파로 북적대는 디자인반 교실을

학생들과 함께 굳건히 지켜온 분 디자인반 학생들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애정공세를 아끼지 않는 분 안광욱

선생님에게 물어본 4가지

디자이너로서 첫 직장을 다닐 때의 마음이

어떠셨나요

잘하고 싶었는데 못해서 힘들었지 사수에게 하루 서너

시간씩 야단맞으면서 했다오 매일 2호선 양화대교에서 뛰어

내리고 싶었는데hellip 이 부분은 내일 수업 때 얘기해줄게^^

선생님께서 생각하는 좋은 출판 디자인이란

세상을 향한 사랑과 희망이 듬뿍 담긴 디자인

출판 디자인을 안 했다면 지금 무슨 일을 하고

계실까요

모르겠네 그냥 선녀 옷 훔치는 나무꾼이 되어 있을 듯^^

어떤 주사가

있으신지 궁금해요

말이 조금 더 많아지고 장소 불문 쿨쿨 자 특별한 주사는

없는 듯

디자인반 11기 이소현 백가은 사공예원

디자

인 사

공예

20

편집자반 김영준 학우가 그린

『이 외로운 사람들아』 일러스트

기억에콕

수업 후기

ldquo우리에게는 lsquo일탈rsquo이 필요합니다rdquo

잠깐 딴 짓을 하는 사이에 귓가에 들려온

한 문장이 나를 사로잡았다 배는 부르고

따 사 로 운 햇 살 에 잠 이 쏟 아 지 는 시 간

오후 1시 30분 시간을 칼같이 맞춰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선 그는 딱 봐도 지루하고

고리타분해 보이는 첫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순간 눈으로 들어온 이미지는 뇌로 흘러갔고

뇌는 망설임 없는 확신으로 귀에 명령을

전달했다 그렇게 귀는 이미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내 들려올 그렇고 그런 뻔한

이야기에 대하여

눈의 판단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의 한마디

한마디는 파격이었다 아니 어쩌면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였지만 누구도 자신 있게

내던지지 못하는 말들을 서슴지 않고 내뱉는 그

거침없음에 신선함을 느낀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의 관심을 돌려놓았던 lsquo일탈rsquo에 대한 그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lsquo일탈을 하라rsquo는 말이

lsquo제멋대로 하라rsquo는 의미가 아니라 어떤 규칙을

벗어나는 행위를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다르게

생각하는 방식을 몸으로 익히게 된다는 것

새로운 것을 생각해내는 창의성이라는 힘은

당연히 새로운 경험에서 나온다는 것이었다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니 강의를 듣던

친구들의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때 보고 들었던 그의 말과 행동이 우리에게는

딱 딱 한 강 의 실 에 서 느 끼 는 새 로 운 경 험

lsquo일탈rsquo이었다

그 와 의 만 남 은 계 속 이 어 졌 다 이 곳

서 울 출 판 예 비 학 교 에 입 학 한 이 후 로 는 좀

더 완 벽 한 일 주 일 단 위 로 시 간 이 흐 르 기

시작했는데 매주 쌓여가는 새로운 배움 뒤에는

수많은 물음이 불쑥불쑥 솟아났고 그는 마치

예상을 했다는 듯이 일주일에 한 번씩 나타나

우리의 설익은 궁금증을 해소해주고 떠나갔다

첫 만남에서는 책이라는 대상과 책을 대하는

편집자의 자세에 대해 이야기하며 큰 그림을

그려주었고 다음엔 저자와의 관계 맺기 그

다음엔 스스로 만들어 가야할 편집자의 자기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담백하게 들려주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네 번째 만남이었다

누구도 쉽게 이야기하기 어려운 완벽하게

솔직해지기는 더더욱 어려운 자신의 좌절과

실패를 그는 담담하고 진솔하게 소개해주었다

모든 성공에는 대개 7할의 실패가 전제되어

있기 마련인데 성공에 이르기까지 거치는

우 리 가 lsquo실패rsquo라고 명 명하는 것들이 사실

진짜 실패가 아니라 성공의 다른 이름이라는

그의 말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성공도 실패도

어 느 한 지 점 에 서 내 리 는 판 단 인 것 이 고

결 국 성 장 하 고 성 숙 한 다 는 것 은 성 공 과

실패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lsquo차이rsquo를 얼마만큼

발견하느냐 하는 것에서 결정된다는 그의 말이

가슴을 뜨겁게 했다 비로소 lsquo편집자rsquo로서가

아닌 한 lsquo사람rsquo으로서의 그가 보이기 시작했다

담담하게 말을 하고 있지만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아프고 쓰린 기억을 후배들에게

들 려 주 는 그 에 게 서 진 심 이 전 해 져 왔 다

사랑하는 일에 대한 함께 걸어갈 동지들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 참 고마웠다

어느덧 마지막 만남이 찾아왔다 한 권의

책을 만들면서 진행했던 편집의 과정을 예로

실 제 적 인 이 야 기 를 우 리 에 게 마 지 막 으 로

들려주었다 편집의 능력은 지식과 정보에서

나온다는 것 그것은 단숨에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 꾸준히 쌓아가야 한다는 것 그래서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의 문제라는 것을 경험을

근거로 자신 있게 말해 주었다 이미 지나온

과거의 결과 대신 앞으로 걸어갈 길에 대한

희망을 들려주어서 그게 참 고마웠다

편집자반 일탈이 주는 파격 우리가 낳을 lsquo새로운 책rsquo과 편집자선완규 선생님과의 다섯 번의 만남이 키운 생각들

21

그 가 우 리 에 게 마 지 막 으 로 이 야 기 를

들려주었던 그날 이후 석 달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났다 나는 여전히 같은 강의실에 앉아

앞서 길을 걸어간 선배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고 조금씩 가까워지고 밝아져가는 내 앞에

놓인 길에 대해 생각한다 그러다 문득 마음이

무거워지고 막막해질 때면 종종 그의 말들을

떠올려 본다 그리고 그 생각의 끝에서 마음을

의지하며 함께 이 길을 걸어갈 따뜻한 선배가

하나 있다는 위로 한 줌을 발견한다

ps 선완규 선생님 고맙습니다 보고 싶어요

편집자반 11기 성준근

마케터반 강한 수면욕 환상과 환기

판형과 종이를 예술로 편입시키려는 영업자다빈치 출판사 박성식 대표 특강 후기

9월 23일 평소보다 점심을 많이 먹었던 날이다 잠을 며칠간 못 자 피곤했다

오후 1시 30분이 살짝 지나서 다빈치 출판사 박성식 대표의 특강이 시작됐다

다빈치 대표님은 처음 뵐 때부터 남다르셨다 서울출판예비학교 입학 면접에서

여자 술 담배를 각각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보셨다 lsquo솔직함을 어필해야

하는 순간인가rsquo하는 생각에 직설적으로 답했지만 lsquo더 문학적으로 얘기할 수

있었는데rsquo라는 후회를 안고 돌아왔다

마음과 다르게 첫 번째 시간은 정신없이 잠이 쏟아졌다 눈을 감고 귀 기울였지만

턱을 괸 채 버티는 동안 50분이 지났다 대표님께 캔 커피를 하나 드리고 맞이한 두

번째 시간 그 한 시간 동안 나는 현실 옆의 어떤 이상 내지는 환상을 본 것 같다 그동안

듣던 강의들을 놓고 lsquo이상적인 관점이다rsquo 혹은 lsquo현실적이다rsquo라고 구분했던 판단의 폭

자체가 좁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성식 대표님은 내 머리에 있던 lsquo책rsquo에 대한 인식을 전복시켰다 자본주의 출판의

몰락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시작됐다는 말 출판 기본 특성인 다품종 소량 생산은 돌아올

것이며 다품종 소량 생산을 넘어 다품종 소량 lsquo고급 생산rsquo을 추구하고 싶다는 말은 나를

달뜨게 했다 주류에 반하는 사고를 가진 중년의 개성과 내공에 교실 풍경이 환기됐다

교육 수단으로 책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지만 책은 그만큼 사회적 의무와 희생을

짊어져왔다 출세와 공부 앞에서 책이 가진 기호(嗜好)성은 변두리로 내몰렸다 책을

읽어야만 제대로 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분위기는 옳지 않다 독서는 성향의 범주지 성역이

돼선 안 된다 정보와 지식의 전달은 모바일 등에 넘겨주고 종이책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공동체로 돌아와야 한다 그게 원래 자리라는 대표님의 주장이 새롭고 강렬하다

자본주의 3대 원칙인 lsquo더 빨리 더 많이 더 싸게rsquo 체계는 표준화와 규격화를 동반하며

매우 효율적이다 현재 사용하는 종이는 자본주의 원칙에 최적화돼 있다 그러나 대표님은

인쇄기계로 소화하지 못하는 질감과 전혀 다른 발색을 지닌 lsquo종이rsquo에 주목했다 그 종이로

콘텐츠 종이 판형이 완벽하게 들어맞는 예술서를 만들고 시장을 설득한다면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책 판매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전했다 종이 자체가 책의 예술성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한지(韓紙)를 예로 들면서 훌륭한 텍스트와 이미지를 한 차원 끌어올리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많은 부수를 팔아야 성공한 출판 많은 부수를 파는 것을

목표로 하는 시대는 저물고 있다 기존 유통과 판매 방식

안에 갇혀서는 불황에 매몰될 뿐이다 소량의 고급화된

책을 꿈꾸는 것과 전시회를 책과 결합하는 것도 다른 길을

물색하는 과정이다

대표님은 10년 전부터 lsquo이 원고는 내가 누구보다 잘

만들겠다rsquo lsquo이 원고는 내가 못하면 누구도 못할 것 같다rsquo라는

생각이 든 책만 출간을 진행했다고 한다

강의 중간 자신의 독특한 철학을 전달하는 것에 대해 가벼운

염려를 하셨지만 이론적이고 실용적인 분야에 몸담더라도

예술적 사고의 유연성은 필요하다고 본다 돈과 인문정신을

구분하면서 필요할 때 양쪽에서 자극 받고 차용하는 것이 마케팅의 융통성과 힘을 기르는 길일 것이다

마케터반 11기 이창환

편집자반 김영준 학우가 그린

『이 외로운 사람들아』 일러스트

박성식 대표가 기획한 lsquo오름rsquo전

22

하늘

습탁은 농도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하늘

습탁은 농도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이 글은 심우진 선생님의 탁본 세미나 수업에 대한 우리들의 즐거운

기록이다 탁본은 습탁(濕拓)과 건탁(乾拓) 두 종류로 구별된다

습탁은 나타내고자 하는 물체 위에 물을 묻힌 후 종이를 그 위에

밀착시키고 먹물 묻은 솜방망이로 가볍게 두드려서 물체를 표현하는

방법이다 물체의 패인 부분을 제외하고 볼록한 부분의 모양대로

종이에 먹이 묻어 문자나 문양이 드러난다 건탁은 이름 그대로 물을

사용하지 않고 마른 상태의 먹인 고형묵(固形墨)을 사용한다 우리는

각자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사물과 자연을 이용해 탁본 작품을

만들고 서울출판예비학교 꼭대기 층에서 작품을 공유했다

디자인반 이 시간을 그대로 탁본할 수 있다면심우진 선생님의 탁본 세미나

저는 신문지를 구겨서 해봤어요

응 그런데 이건 방바닥 같은데

방바닥까지 묻어 나와 버렸네요

[학생들 하하하]

저는 일단 큰 나무 기둥을 떠봤고요

오솔길의 짚도 해보고 저희 집 바닥과

벽면도 신기해서 떠봤어요 집 벽면 중에

대리석도 있고 특이한 벽면이 많거든요

부잣집인가 보네

[학생들 깔깔깔]

승연

심우진 선생님

승연

승연

심우진 선생님

이건 파프리카인데 저희 집 개가 완성한 종이를 찢었어요

[학생들 하하하]

좀 작고 납작한 파프리카를 반으로 잘라서 습탁했어요 또

이건 철조망인데 용 비늘처럼 나와서 재밌었어요 아나콘다

같기도 하고 철조망이 날카로워서 습탁하니 종이가 자꾸

찢어져서 다시 하게 됐어요 근데 이거요hellip 남자친구

있으면 커플끼리 한 번 해보세요 한 명은 잡아주고 한 명은

습탁하고hellip 되게 로맨틱 성공적

자랑하는 거니

[학생들 깔깔깔]

수빈

수빈

심우진 선생님

혜민

정묵

처음에 나뭇잎이 세세하게 잘 나올 줄 몰랐는데 그

줄기의 질감이 잘 나왔고 버려진 타이어를 끌어서

생긴 모양으로도 습탁을 했는데 생각보다 잘 나와서

막상 찍어보면 생각과 다르다는 것을 느꼈어요

저도요 결과물이 뚜렷하게 안 나올 줄 알았는데

디테일이 잘 나타나 있었고 입체를 평면적으로

찍는 것 자체가 재밌었어요

수정

저는 빗자루를 해봤어요 너무 얇아서 안 나올

거라 생각했는데 빗자루 문양이 잘 나와서

재밌었고 머리카락도 해봤는데 머리카락은

끝 부분이 잘 나오는 편이에요 위쪽은 다

뭉쳐있는데 끝 부분은 펼칠 수 있으니까요

23

저는 결이 얇은 것들을 뜨는 것이 재밌었어요

머리카락처럼요 머리 긴 사람에게 부탁해서

눕히고 했어요 그리고 이건 얼굴인데요

처음에는 그냥 했는데 얼굴은 입체를 살리려면

스케치하듯 떠야 되요 결국 명암으로 입체감

조절을 해야 되죠 코가 너무 입체적이라 특히

힘들었어요

누구 얼굴이야

우리 언니hellip

[학생들 우와]

가은

심우진 선생님

가은

하얀

음각이 나왔을 때 너무 좋았고요하늘

습탁은 농도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소리

건 탁 보 다 는 습 탁 이 농 도 조 절 하 는 게

희 한 해 서 재 밌 었 어 요 농 도 조 절 이

관 건 이 거 든 요 먹 과 물 의 배 합 과

솜방망이가 먹물을 얼마나 흡수하는지 그

흡수량이 중요하고요

윤미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꽤 많은데 만져보면서 건탁을 뜨니까 좋았어요 전에

습탁할 때는 시멘트 벽 같은 걸 하다가 나뭇결을 하니까

살아있는 느낌이었어요 생각했던 것처럼 나와서

좋았고 솔방울이나 나뭇잎 같은 섬세한 것들은 제대로

나오지 않아서 아쉬웠어요 섬세한 것들은 습탁으로

해봐야겠어요 그래도 다양한 나무를 건탁해봐서

만족해요

소현

저는 일상적인 것들로 습탁을 해봤어요

처음에는 단순하게 오돌토돌한 느낌만

있 을 줄 알 았 는 데 색 다 른 느 낌 이 나 서

재밌었어요

탁본 세미나를 마치고 그 다음 주에 지하 강당에서 촬영하는 시간을

가졌다 촬영 후에 보정도 했다 나뭇잎의 결 무늬 타이어 자국

그리고 사람의 머리카락까지도 좋은 디자인의 재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보았고 나누었다 건탁과 습탁의 장단점을 이 수업으로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심우진 선생님의 이번 탁본 수업도 지난 활자

수업처럼 지식 습득은 물론이고 경험까지 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 시간들이 앞으로 출판 디자이너로서의 감각을 더 풍요롭게 해 주지

않을까

디자인반 11기 사공예원

하얀

음각이 나왔을 때 너무 좋았고요

습탁은 농도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솜방망이가 먹물을 얼마나 흡수하는지 그

흡수량이 중요하고요

윤미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꽤 많은데 만져보면서 건탁을 뜨니까 좋았어요 전에 꽤 많은데 만져보면서 건탁을 뜨니까 좋았어요 전에

이건 파프리카인데 저희 집 개가 완성한 종이를 찢었어요

[학생들 하하하]

좀 작고 납작한 파프리카를 반으로 잘라서 습탁했어요 또

이건 철조망인데 용 비늘처럼 나와서 재밌었어요 아나콘다

같기도 하고 철조망이 날카로워서 습탁하니 종이가 자꾸

찢어져서 다시 하게 됐어요 근데 이거요hellip 남자친구

있으면 커플끼리 한 번 해보세요 한 명은 잡아주고 한 명은

습탁하고hellip 되게 로맨틱 성공적

자랑하는 거니

[학생들 깔깔깔]

24

9시 30분 합정역 1번 출구 앞

ldquo누나rdquo 소리에 쳐다보니 반가운 공 총무의 얼굴이 보였다 정류장

앞으로 길게 늘어선 줄에 합류하여 파주로 날 데려다 줄 2200번

버스를 기다리고 있으니 반가운 얼굴들이 계속 나타났다 한 대의

버스를 보내고서야 겨우 2200번 버스에 탑승해 파주로 출발할 수

있었다

10시 15분 파주 lsquo다산교 앞rsquo 정류장 하차

4개의 정류장 총 57분이 걸린다고 알려준 N사 지도 어플의 정보와는

달리 30분 만에 파주에 도착했다 일찍 도착해 먹을 것을 찾아 헤맨

예비 마케터들은 편의점에서 주린 배를 채웠고 lsquo지혜의 숲rsquo을 살짝

염탐하며 11시까지 시간을 보냈다

11시 05분 보진재 2층

1912년 설립되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인쇄소인 보진재 관계자

분이 나와 간단히 인사 말씀을 하고 각 반의 인솔자를 소개해주셨다

마케터반의 인솔자는 서동관 과장님 디자인반 편집자반 마케터반

순으로 견학을 시작했다

11시 15분 보진재 견학 시작

제일 먼저 본 곳은 제판실이었다 필름 인쇄가 줄어들고 CTP로

대체되는 추세지만 어떤 분들은 여전히 필름 작업을 하고 계셨다

이유를 물어보니 서동관 과장님은 예전 필름이 남아 있기도 하고

출판사에 따라 필름을 고집하는 곳이 있다고 하셨다

한번에 5도 인쇄가 가능한 기계를 보는 중에 서 과장님이 말씀하셨다

ldquo한 유닛(unit)당 23억 정도 해요rdquo 그렇다면 유닛 다섯 개가

돌아가고 있으니 적어도 10억짜리 기계라고 내 눈에 보이는 건 그냥

낡고 큰 기계인데 10억이 넘는다니 놀랐다 또 과장님께서 자랑스레

말씀하신 한 가지 잉크 농도 조절을 자동으로 하는 기계가 보급된

곳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었다 원래는 사람이 눈으로 보고 수정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재판을 찍을 경우 초판과 동일한 색상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있지만 보진재는 기계가 자동으로 조정해주어 수월한

작업을 할 수 있다고 하셨다

매염실도 보고 제본실도 구경했다 인쇄된 종이를 접지하고 제본을

마친 후 마지막으로 제단을 하면 책이 완성되어 나왔다 그 모든

과정을 보고 난 후 서 과장님이 건넨 완성된 책의 무게는 보통의

그것보다 조금 더 무겁게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윤전실이었다 견학 당일은 작업이 없어서

비어있던 윤전실이지만 윤전실이 주는 무게감은 컸다 윤전실은

롤(roll)로 인쇄하는 곳으로 8개의 롤이 양면 인쇄를 하고 건조와

접지까지 한 번에 가능한 기계도 있었다 대량생산을 위한 곳으로

주로 교과서나 EBS 학습지를 인쇄한다고 하셨다

12시 20분 견학 끝

1시간을 조금 넘긴 견학을 끝내고 밖으로 나오니 코가 따갑고 목이

말랐다 기계가 먼지를 빨아들여준다고는 하지만 수없이 많은

종이가 존재하는 공간에서의 종이 냄새는 강력했던 것이다 책이

제작되는 과정은 실제로 보니 다양하고 복잡했다 자동화가 많이

되어있지만 사람의 손길 없이는 절대 완성될 수 없는 과정들을 보며

책이 완성되기까지의 노력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lsquo책이 어떻게

만들어진다rsquo를 배우다가 lsquo책이 이렇게 만들어진다rsquo를 보니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예비 출판 마케터의

길로 들어선 후에 새로운 것을 보고 배울 수 있었는데 보진재 견학은

그 중에서도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책을 완성시키기 위한 모든 과정이

저마다의 몫을 하고 있었다 서울출판예비학교 졸업 후 출판계에

들어섰을 때 나는 과연 어떤 몫을 할 수 있을까 남은 2개월을 조금은

더 열정적으로 보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마케터반 11기 최다은

1 일일탈

학교 밖 견학 후기

피부로 와 닿는 책의 감촉 책의 냄새 책의 소리 보진재에서 책이 인쇄되는 과정을 만나다

필름과 인쇄판이 만들어지는 과정

25

우리가 이제 각자 편집자 마케터 디자이너가 되어 책 만드는 일을

시작하면 우리의 책은 이곳에서부터 그 lsquo탄생rsquo을 시작할 것이다 책의

근간이 되는 종이가 만들어지는 곳 한솔제지 공장에 다녀왔다 학기

초에 책을 파는 서점을 견학한 뒤 그 다음으로 출판사 종이에 활자를

찍어내는 인쇄소 그리고 마지막으로 lsquo종이rsquo를 만드는 제지 공장을

찾은 것이다 책이 만들어지는 순서대로라면 우리가 다녀온 순서를

거꾸로 해서 다녀왔어야 했지만 우리는 반대로 실제 과정을 거슬러

올라간 것이다 이렇게 거슬러 올라가는 과정에서 오히려 편집자란

직업에 겸허해질 수 있었다 가끔은 편집자가 책을 만드는 모든

과정 위에 군림하는 것 같이 느껴지지만 책의 물성을 만들어내는

거대한 기계 앞에서 우린 한없이 작아지기도 한다 lsquo한 권의 책rsquo이

만들어지려면 이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함을 이해해야 했다 이렇게도

복잡하고 힘겹게 만들어지는 책의 가치를 한 번 더 깊이 생각하게 된

계기였다 책이라는 건 의미가 담긴 조각들의 집합체이자 종이를

보기 좋게 물성화한 것 이론적으로야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눈으로 보고 느끼는 것과는 천지차이다

날씨마저 좋았던 9월 11일 평소보다 한 시간이나 이른 8시

30분에 세 반 학우들은 눈도 제대로 못 뜬 채 집합했다 대전까지

간다니 마치 여행가는 것 같은 살짝 들뜬 기분까지 안고 아침도 못

챙겨먹고 나왔을 우리를 생각해서 빵과 우유까지 준비한 한솔제지

측의 세심한 배려에 감동했다 배도 채우고 부족한 잠도 보충해가며

2시간 넘게 달려 신탄진 공장에 도착했다 도착하자 보이는 우리를

환영하는 현수막에 2차로 감동했다 우리를 위해 정말 많은 준비를

하셨구나 느낀 순간이었다

신탄진 공장 강당에 들어가서 간단한 공장 소개를 먼저 들었다

그리고 뒤이어 종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경청했다 수업 때보다

학생들의 집중력이 더 높아 보였던 건 내 착각이었길 종이는

1퍼센트의 펄프와 99퍼센트의 물로 이루어진단다 그래서 전반적인

공 정 의 대 부 분 은 물 을 처 리 하 기 위 한 과 정 이 나 다 름 없 었 다

생각보다 종이는 순수한 물질이라고 생각했다 종이(paper)의

어원은 이집트의 파피루스(papyrus)에서 왔다고 한다 중국의

lsquo채륜(蔡倫)rsquo이라는 사람이 제일 먼저 발명했고 고려시대에

일본으로 넘어간다 일본에 가장 마지막으로 넘어갔지만 종이의

기술력은 현재 일본이 가장 좋다 원료rarr초지rarr코팅 등의 공정을 거쳐

종이가 완성되는데 마지막 코팅 공정을 여자의 화장에 비유한 것

역시 기억에 남는다 코팅이 그렇게나 대단한 과정이라니

공장 안으로 들어가서는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시끄러워서 설명을

제대로 듣진 못했지만 앞서 들었던 설명을 떠올리며 기계들을

관찰했다 인쇄소에서 본 광경들도 거대하고 박력 있었지만 여긴

그보다 더 거친 느낌이었다 책은 서점에 놓여있을 때는 그렇게

얌전하건만 태어날 땐 이렇게 시끄럽다 또한 막 태어난 종이는

거대하고 또 거대했다 다들 마치 거대한 두루마리 휴지 같다고들

했다

견학을 다 마치고 다시 대전 공장으로 이동해 다 같이 점심 식사를

했다 기대 이상으로 맛있는 밥에 또 감동 더 힘내서 견학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아쉽게도 대전 공장 안에는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라 그 힘()을 발휘하진 못했다 대전 공장은 신탄진 공장과

다르게 책에 쓰이는 것이 아닌 제품 포장용 박스 종이컵 등 다른

용도에 쓰이는 종이를 만드는 곳이었다 그 과정의 차이를 눈으로

비교하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마지막으로 좋은 선물까지 손에

받아들고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다시 서울로 향했다

언제나 시작은 중요하다 각자의 일에 빠져들게 되면 점점 잊게 될

그 시작을 눈에 담고 오래 기억하기 위해 다녀왔다고 생각한다 요즘

초심을 잃었다는 생각이 종종 드는데 책에게도 초심이 있다면 바로 이

곳일까 시작의 의미에 대해 다시 곱씹어보았다

편집자반 11기 박혜원

우리의 글과 그림이 펼쳐질 종이의 탄생 한솔제지 신탄진 공장 견학

거대한 롤(상) 한솔제지 공장 앞에서 (하)

26

화양연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삶과 문학에 취하다

편집자반 한국문학 동아리 lsquo공감rsquo 그 대담의 현장

훗날 서울출판예비학교를 떠올릴 때 가장 즐거운 시간으로 기

억되는 날들은 동아리 활동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들의

화양연화(花樣年華)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 중

의 하루를 소개한다 문예창작학과를 전공한 문학소녀 김한나

학우를 필두로 창단된 편집자반 내 한국문학 동아리 lsquo공감rsquo은

모임 전에 한국작가를 한 명 정해 단편 두 편을 함께 읽고 키워

드나 질문을 스스로 뽑아 글을 써왔다 모여서 때로는 소설의

플롯이나 주제 문체에 대한 열띤 토론을 하고 때로는 작가의

외모()와 같은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며 삼천포로 빠지기도 했

다 우리끼리만 듣기엔 아쉽다 이 즐거운 대화를 모두에게 들

려주고 싶었다 이날 모임에선 김영하 작가의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단편집 속의 두 단편 lsquo엘리베이

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이하 엘리베이터)rsquo와 lsquo사진

관 살인사건(이하 사진관)rsquo에 대해 이야기했다 여기서는 lsquo엘리

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rsquo를 읽고 토의한 내용을

실었다

한나 참고로 김영하는 사람의 욕망에 대해 천착하는 작가야

그런 특성이 엘리베이터에는 안 나와 있는데 사진관에서는

잘 드러나 있어

상화 백가흠 작가에게 소설창작론 강의를 들었는데 그분이

소설의 기법을 설명하면서 알레고리랑 아이러니를 얘기했어

알레고리가 인물이나 소재를 비유적으로 설명하는 거래 예를

들어 핸드폰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다른

것에 핸드폰을 빗댐으로써 소설을 풀어가는 거

야 아이러니는 속도감 있게 이야기를 전개함으

로써 부조리나 모순을 드러내는 건데 김영하가

아이러니의 대표적인 작가래 단편인데도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내면보다는 사건이 일어나는

걸로 소설을 끌어가는 작가 우리가 지난 모임

에서 성석제를 굉장한 이야기꾼이라고 했잖아

그런데 난 김영하가 훨씬 이야기꾼스럽게 느껴

졌어 속도감 있고 lsquo이렇게 몰입을 할 수 있나rsquo

싶고 지난 모임들에서 읽었던 손보미나 편혜영

소설의 경우는 분위기나 주인공의 심정 내면에

의미를 부여해 야 했는데 김영하의 소설은 덮

자마자 아이러니가 느껴지면서 lsquo아 세상은 왜

이래rsquo 말하게 만들었어

법열 나는 엘리베이터 읽고 딱 lsquo뫼비우스의 띠rsquo가 생각났거든

뫼비우스의 띠가 안하고 겉이 구분이 안 되잖아 끝과 시작이

어딘지도 모르고 lsquo나rsquo가 겪는 상황이 현실인지 아닌지 구분이

안 되는 느낌 마지막에 lsquo나rsquo가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가 존재

하기는 했는지 혼란스러운 느낌을 받잖아 그게 앞의 환상적

인 부분이랑 맞물리면서 하나가 되는 느낌이라 뫼비우스의 띠

가 생각났어

상화 lsquo나rsquo가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구해주려고 고분군투하

다가 나중에 자기가 엘리베이터에 갇히잖아

오권 낀 남자의 발을 보면서 느꼈던 감상이 사실은 자기를 구

하고 싶었던 마음인 거지

(일동 오~ 그렇게도 볼 수 있네)

오권 무한도전의 무한상사 특집도 생각났어 뜬금없이 휴지

사용하는 길이에 대해 회의하는 장면에서 엘리베이터는 갇힌

사회 서로를 돌아보지 않는 사회를 의미하는 것 같아

한나 나는 반대로 오히려 엘리베이터를 희망적인 존재로 봤

거든 아파트도 그렇고 회사도 그렇고 각자 자신의 공간 안에

서 살다가 서로 만날 수 있는 장소는 엘리베이터 밖에 없으니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김영하 지음

문학동네 20100216

동아리 후기

27

까 lsquo나rsquo가 회사 엘리베이터 안에 여자와 같이 갇히잖아 사실

은 갇히지 않았으면 대화도 안하고 지나쳐 갔을 텐데 남자는

자기가 아침부터 버스 사고도 나고 성추행범으로 몰렸다고 얘

기하고 또 남자의 담배 피워도 되냐는 말에 여자는 담배에 대

한 불평불만을 속사포처럼 얘기하고 엘리베이터라는 공간이

아니었다면 이런 대화 자체가 없었겠지

오권 엘리베이터 타면 사람들이 하나같이 층수 바뀌는 것만

쳐다보고 있잖아

상화 요즘은 스마트폰

오권 자기 얘기를 하고 싶은 것 같아 하지만 상대의 얘기는

안 들어 lsquo너의 얘기는 관심 밖이지만 내가 불편한 것에 대한

얘기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하겠어rsquo라는 느낌

한나 그리고 우스웠던 게 볼일 보고 휴지 몇 칸 쓰는지 회의에

서 얘기하는 건hellip 사실 굉장히 사적인 얘기잖아 (일동 하하

하) 서로에 대해 다른 얘기는 일절 하지 않으면서 회의 내용은

개인적이고 사적이라니 아이러니한 거지

수경 진짜 웃기지 않았어 lsquo나rsquo가 자원 재활용 문제에 대한 중

대 보고가 있다고 계속 빨리 가야한다고 했던 게 겨우 그거야

상화 겨우 이딴 회의하려고 지금 엘리베이터에 낀 사람 놔두

고hellip 생명이 더 중요한데 지금 휴지 구하려고hellip

(일동 하하하)

한나 lsquo나rsquo가 불쌍했던 이유가 자기한테 닥친 일들은 lsquo할 수 없

지 뭐rsquo 이런 식으로 넘기는데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 걱정하고

갇힌 여자 걱정하고hellip 정작 자기 걱정은 안 해

오권 영화 lt라이터를 켜라gt 봤어 조폭들한테 얻어맞으면서

도 주인공은 무조건 자기 라이터만 찾겠다고 그러거든 이 소

설의 lsquo나rsquo와 비슷한 느낌이 들더라고 그 영화에서는 라이터가

주인공의 존재를 투영하는 소재거든 lsquo나rsquo는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구해야만 자기가 산다는 느낌을 받은 거라 해석하면

너무 나간 건가

법열 아니요 형이 아까 지적해준 게 와 닿았어요 그 고군분

투가 결국 자기를 구하려는 노력이라는 지적이요

상화 그나마 lsquo나rsquo가 이 소설에서 제일 인간적이지

수경 어딘가 찌질한 느낌도 들어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와

lsquo내rsquo가 동류라고 자각하고 연민을 갖는 느낌이었거든 lsquo나rsquo가

인간적이고 윤리적이라는 생각은 나는 글쎄hellip 더 적극적으

로 할 수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 자기 사이클에서 벗어나

지 않는 한도 내에서 걱정만 하잖아 소설 안에서 비극과 희

극이 번갈아 가며 나타나는데 트럭과 버스가 충돌했을 때

lsquo나rsquo는 lsquo버스 카드 일로 충돌하지 않게 되어 적이 기뻤다rsquo고

생각해 버스 운전사는 트럭 백미러에 가슴이 받혀서 죽었는

지도 모르는데 lsquo다행히 나는 허리가 좀 뻐근한 것만 빼면 별

다른 상처가 없는 듯했다rsquo 이런 생각들을 하는 게 좀 섬뜩했

민희 사람은 다 이중성을 가지고 있잖아 나를 보는 듯했어

만약 학교 가는 길에 엘리베이터에 낀 사람을 봤다면 그렇

지만 나도 얼마나 바빠 몇 분 늦으면 지각 체크 당하고 출석

80퍼센트를 못 채울 수도(일동 웃음) 있는 상황이라면 내

가 그 남자를 구할 수 있을까 일단 지나치고 119에 전화하려

고 했으나 핸드폰이 없는 상황에 나도 처할 수 있는 거잖아 나

만 생각하는 잔인한 면도 내 안에 있고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

도 내 안에 있어 이런 찌질한 모습도 나고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정의롭게 구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상화 기준이 다른 것 같아 lsquo나rsquo 정도면 착하다고 생각했거든

수경 주변 사람들이 약간 마네킹 같지 않아 주인공 주변에

장치되어있던 다른 사람들이 너무 비인간적이기 때문에 lsquo나rsquo

가 돋보이는 거지 lsquo나rsquo는 지극히 평범한 우리 모습 같아 내가

어떻게 할 생각은 없고 궁금하기만 한 거야

민희 그 궁금함과 찜찜함도 죄책감이라 생각돼 아 내가 어떻

게 해줬어야 했나

한나 책임 회피일까

상화 그래서 나는 키워드 뽑은 것 중 하나가 119야 구해주고

싶으면 직접 내 손으로 잡아 빼주던가 엘리베이터를 들어 올

릴 사람을 모아야 했는데 신고 생각만 하잖아 이미 이건 누

가 대신 해결해줘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그나마 우리

사회에서 사고를 수습해주는 건 119밖에 없고 조선시대에는

119같은 거 없고 마을 사람들이 모여 구해줬을 텐데 어쩔 수

28

없는 현대인의 단상이긴 해 현대가 분업사회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들 바쁘고 삶이 개인화 파편화되어 있으니까 119 같

은 집단이 필요한 거지 그래서 난 119를 신의 영역이라고 썼

어 lsquo나rsquo는 119를 거의 신적인 존재처럼 생각하잖아 부르면 모

든 게 해결될 것처럼 핸드폰 빌리고 공중전화 찾고 그런데 막

상 교통사고 현장에서 119 대원에게 면대 면으로 얘기를 했더

니 그들은 무슨 그따위 장난을 하냐고 말해 구조도 실은 신이

아니라 사람이 하는 일이고 그 사람이 관심이 없으면 묻히는

거지

오권 전화를 거는 것과 직접 구해주는 것의 차이가 큰 것 같아

자기가 구해주는 건 적극적인 행동이고 119에 전화하는 건 스

스로 최소한 양심적이긴 하다고 여기는 행동

수경 그런데 엘리베이터에 낀 사람을 아무 것도 모르는 일반

인이 어떻게 했다가는 더 위험해질 수도 있잖아

오권 맞아 사회가 시스템화하고 고도화될수록 각자의 업무가

분업화되었고 전문분야가 생겨났으니까 옛날 같았으면 애 낳

으면 그냥 동네 아주머니가 애 받고 어미가 죽으면 젖동냥 다

녔는데hellip 이젠 사고가 나면 생각이 119에 먼저 미치는 시대가

된 거지

수경 그래서 어딘가에 널브러져 다친 인간이 아니라 엘리베이

터라는 공간에 낀 남자를 설정한 것 아닐까 엘리베이터는 현

대화의 상징이잖아

한나 lsquo나rsquo도 어쩔 수 없는 게 출근 시간에 쫓겨서 시계를 계속

봐 먹고 사는 일이니까

오권 출근했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다시 집으로 돌아가

낀 사람을 구해주면 굉장히 희망찬 소설로 바뀔 텐데hellip (일동

웃음)

수경 이 소설로 현대 사회의 폐단은 다 얘기할 수 있겠는데

상화 김영하는 천재인 것 같다

누군가 그리고 잘생겼잖아

누군가 잘생긴 거야

누군가 지적인 분위기가 있어서 좋아 (한참 얘기)

한나 또 인상 깊었던 게 구두에 집착하는 거 lsquo나는 날렵한 치

타처럼hellip 구두를 가지고 엘리베이터에서 빠져나오는 데 성공

했다 허탈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rsquo는 구절

오권 자살한 사람들이 구두를 가지런히 벗어놓는 이미지가 무

슨 상징처럼 있잖아

한나 신발 한 쪽 없이 다녀봤어 계속 기우뚱대서 내가 걷거

나 서 있을 때 내가 잘못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여기서 lsquo나rsquo가

그랬을 거야 사실 lsquo나rsquo처럼 사는 게 정상인데 세상이 잘못된

건데

상화 이 소설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감정표현이잖아 하루 종

일 얼마나 힘들었겠어 처음으로 감정표현을 하니까 불쌍했어

오권 휴머니즘 불쌍론 또 나왔네(일동 웃음) 그럼 이제 사진

관으로 넘어가볼까hellip

편집자반 11기 이상화

2929

책씹는맛 01 냄새라는 경이 lt감각의 박물학gt 후각편을 읽고

냄새에는 언어가 없다 어휘가 부족한 우리는 말문이 막힌

채 불명료한 쾌감과 자극의 바다에서 말을 찾을 수밖에

없다1

이 말은 다이앤 애커먼의 『감각의 박물학』 제 1장 후각에

나오는 구절이다 냄새를 글로 쓰고자 하는 나의 시도가 늘

실패로 귀결되는 이유를 이 구절에서 찾았다 작가의 말처

럼 냄새에 대해 쓴다는 건 언어 밖 세계로 나갔다가 다시

언어로 되돌아오는 길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길에서 헤매

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후각이라는 감각에서 길을

잃는 것은 낭만적인 일이기도 하다 lsquo냄새의 뇌관을 건드리

면 모든 추억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기rsquo2 때문이다 냄새 하

나에 수많은 추억들이 줄줄이 기억의 회로 위로 떠오른다

예를 들면 바다 냄새 하나만 상상해도 그와 관련된 수많

은 기억들이 머릿속에 뒤섞인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바닷가와 관련된 그 모든 추억들이 기억의 영사막에서 한

편의 옴니버스 영화 형태로 내게 다가온다 난 내 기억의

관객이 되어 그 영화를 보다가 견딜 수 없는 그리움에 젖는

다 이 영화에 대한 감상문을 적으려면 나는 말문이 막힌

다 그래서 몇 글자 적다가 결국 글을 쓰기를 멈춘다 굳이

언어로 표현하자면 쓸 수 없는 그리움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1 『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옮김 작가정신 20040720

A Natural History of the Senses(1991) 17쪽

2 같은 책 18쪽

결국 lsquo언어가 존재하는 세계에서 경이는 언어의 칼날 아래

서 쉽게 해부되고 냄새는 자주 혀끝에서 맴돈다rsquo3 냄새의

숭고함 앞에서 우리는 말을 멈춘다 이처럼 냄새는 말할 수

없는 자연의 경이로움과 닮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lsquo냄새가 우리의 마음을 그토록 강하게 움직이는 것은 부분

적으로 그 이름을 부를 수 없기 때문rsquo4이라고 한다 저자는

그렇기에 사람들이 냄새를 lsquo분 냄새 비슷한 펭귄 냄새가

나는 호화로운 화장실 냄새가 나는rsquo 같은 말로 표현할 뿐

이며 냄새에 대한 이름은 주어져 있지 않다고 말한다 또

한 종류는 같아도 강약과 농도가 다른 각각의 냄새에 이름

을 붙여줄 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우린 일상적으로 냄새를

맡으면서도 그 냄새와 멀리 떨어져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명명되지 않은 것은 결국 잊히는 게 아닐까 부를

수 없음에서 오는 경외감과 숭고함이 있을지라도 냄새는

말해져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말할 수 없는 것에 자꾸

만 침묵하기만 해야 할까

감각도 모험의 영역이 될 수 있다 세계 일주만이 세상을

아는 길일까 lsquo나rsquo를 온전히 아는 것이 역설적으로 세상과

가까워지는 일인지도 모른다 나를 알기 위한 길 중 하나가

내가 가지고 있는 감각을 이해하고 그걸 언어로 표현하는

일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어쩌면 우리와 제일 가깝지만 말

하기 낯선 감각 후각을 이해하는 일이 중요한지도 모른다

냄새라는 감각 속에서 우리 모두 길을 잃고 헤매고 모험해

보자 냄새에 나름의 이름을 지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

리고 농도에 따라 냄새를 구분하는 일도 해보자 냄새라는

경이는 우리를 더 이상 침묵으로 이끌지 않을 것이다

디자인반 11기 백가은

3 같은 책 22쪽

4 같은 책 22쪽

『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 옮김

작가정신 20040720

A Natural History of the Senses(1991)

3030

02 현실을 전복시키는 비현실

모호함이 주는 환상성

20세기 중반 중남미 소설은 전통적인 사실주의 서사 구조

를 깨고 현실과 환상을 혼합시키는 새로운 글쓰기 방식으

로 세계문학의 중심에 선다 이 시기에 주목 받은 일련의

중남미 작가들을 가리켜 lsquo붐 세대 작가rsquo라 칭하는데 아르

헨티나의 환상문학 작가 코르타사르는 이 붐 세대 작가군

의 선구자이자 대표 주자 격인 인물이다 그러나 그 문학적

성과와 명성이 무색하게도 국내 독자들에겐 그의 이름이

아직 생소한 것이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에서는 그

의 작품이 중남미 단편 선집에나 몇 편이 번역되었을 뿐 본

격적으로 소개된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중남미 문학을 공부했고 그의 몇 안 되는 번역 작품을 인

상 깊게 읽었던 독자 입장에서 이번에 출간된 코르타사르

의 단편집『드러누운 밤』은 가뭄의 단비처럼 반가운 신간

이다

환상 문학이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J R R 톨킨 류의 판타

지소설 혹은 쥘 베른이나 아이작 아시모프 류의 SF소설을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코르타사르의 환상문학은 이들 범

주에 들어가지 않는다 코르타사르 작품에서 나타나는 환

상이란 토도로프가 정의한 바 있는 환상 그러니까 자연적

인 것과 초자연적인 것 사이의 망설임에서 발생하는 환상

에 가깝다 따라서 판타지소설의 lsquo현실과 동떨어진 환상rsquo

혹은 SF소설의 lsquo설득력 있고 현실감 있는 환상rsquo을 기대하

는 독자라면 아마 십중팔구 그의 작품을 읽고 실망할 것

이다 어쩌면 이게 무슨 환상문학이냐는 푸념을 늘어놓을

지도 모르겠다 역시 가장 좋은 것은 선입관을 버리고 책을

읽는 것이다

코르타사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lsquo모호함rsquo이다 인물이나

배경 묘사에서 제시되는 기본적인 정보도 모호하고 사건의

전개 양상이 가진 당위성도 모호하다 작품 내에서 주요한

스토리 라인을 담당하는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경계도 모

호하며 심지어는 화자의 정체마저 모호한 작품도 있다 이

런 모호함의 향연은 짙게 깔린 안개와도 같아서 독자들은

그 속에서 한 치 앞도 제대로 내다볼 수 없음은 물론이요

이미 지나간 사실조차도 자신이 맞게 인식한 것인지 확신

할 수 없을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무엇이 진짜인지

독자들의 판단을 망설이게 만드는 이런 상태야말로 코르

타사르의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는 환상이란 개념이다 독

자들은 이 환상 속에서 그저 전방을 주시하며 천천히 나아

갈 수밖에 없다

다행스럽게도 코르타사르는 독자들의 시련을 헛되게 하지

않는다 작품의 시작점 일상 세계에 우연히 침투한 lsquo비현

실적인 것rsquo은 안개 속에서 알게 모르게 자신의 지분을 늘려

나간다 그리고 작품의 종점에 다다른 독자들은 비현실이

현실이 되고 현실이 비현실이 되는 이전과는 전혀 새로운

세계와 마주할 것이다 다시 말해 필연과 이성의 법칙이 지

배하는 세계가 우연과 환상이 지배하는 세계로 변하는 것

이다 이러한 세계의 전복은 마치 여기저기 단서를 흩뿌리

고 사람들을 알쏭달쏭하게 만들었다가 결말부에서 모든

것을 폭발시키는 추리소설 혹은 반전영화를 보는 듯한 재

미를 선사한다

그렇다면 코르타사르가 이 소설들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책을 다 읽고 난 독자라면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의문점이다 코르타사르는 자신이 환상문학을 쓰는

이유를 ldquo법칙이나 원칙 혹은 인과관계나 특정한 심리 또

는 잘 그려진 지리학과 같은 체계에 의해 세상이 지배되고

있다는 것에 반대rdquo하고 ldquo우리가 잘 모르며 우리에게 잘 다

가오지 않는 새로운 질서에 관해 생각해보기 위함rdquo이라고

설명한다 짧게 말해 이 세상에 필연이란 존재하지 않으

며 자신은 그것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말이다 이

게 전부다 순문학이라면 거장의 문학이라면 이보다 더 심

오한 통찰 혹은 비판이 있을 것이란 생각에 문장 속 숨겨진

의미를 발견하고자 머리를 싸맬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조

언을 하자면 독서는 독서 그 자체로 즐기면 된다 적어도 이

책에서는 그렇다 모호함과 예상외의 전개 속에서 재미를

느끼고 코르타사르가 묘사하는 세계의 불가지(不可知)성

을 어렴풋하게나마 인식할 수 있다면 이미 그것으로 충분

하다

편집자반 11기 강귀욱

『드러누운 밤』

훌리오 꼬르따사르 지음 박병규 옮김

창비 20141124

La noche boca arribaJulio Cortazar

31

03 얼어붙은 자의식의 바다를깨뜨리고 생명을 불어넣는 책 『데미안』

데미안을 읽고 나서야 그 동안 내가 두 발 딛고 서 있던 땅이

굳고 단단한 대지가 아니라 얼어붙은 바다에 불과했음을 알

았다 데미안은 도끼를 가져와 이 꽁꽁 언 바다를 가차 없이

내리 찍었다 그리고 말했다 얼어붙은 바다를 단단한 땅인

줄 알고 사느니 그 얼음을 깨부수고 그 속에 빠져 죽기 살기

로 허우적대라고 그러면 그 속에서 너는 너 자신을 똑바로 마

주하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성장할 것이라고

주인공 싱클레어도 그를 둘러싸고 있던 세계를 깨뜨려 나가

며 성장한다 그 모든 과정은 결국 진정한 자기 자신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가 깨뜨린 가장 큰 세계는 바로 자신의 사고 체계였다 세상

을 바라보는 기존의 이분법적이던 시각 고정되고 획일화된 시

각을 버렸다 주인공은 세계 안에 심지어는 자신 안에도 선하

고 악하며 밝고 어두운 양극단의 것들이 공존함을 이해하고

두 세계를 끌어안았다 주인공은 귀와 눈을 가리던 장막을 걷

어내 버리고 세상을 바로 보게 되었다 상극인 것들의 괴리로

이루어진 이 모순된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곧 자신 안의 부조

화 또한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스스로에게 다가서는 첫 걸음

이었다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양극단의 세계 사이에서 싱

클레어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며 흔들리기를 반복했다 이

때 그에게는 삶을 지탱할 중심축이 없었다 항상 내면이 아닌

외부 세계에서 자신이 속할 자리를 찾아 헤맸다 그가 비로소

온전한 자신을 만난 순간은 어느 편으로도 치우침 없이 스스

로의 기준으로 홀로 서게 되었을 때였다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 이 길은 당신이 내면에 있는 모

순되는 두 세계 한없이 나약하고 뒷걸음치는 비열한 모습들

과 정갈하고 깨끗한 곧은 힘들을 동시에 직시하는 순간에 시

작된다 그리고 이 길은 두 세계 속에 들어가 이리저리 휩쓸리

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세계를 밟고 우뚝 올라서서 스스로

가 중심이 됨으로써 앞으로 펼쳐진다

이제 lsquo자아를 찾으라rsquo는 지루하고 흔한 이야기가 더 이상 빤

하거나 우습지 않다 묵직한 울림이 되어 나를 흔든다 그냥

나만 붙잡고 흔드는 것이라면 손사래 쳐 뿌리치겠는데 내가

밟고 있던 땅 속해 있던 세계를 뿌리째 흔들어 버린다 읽는

내내 속이 답답하고 나에게 화가 난다 그런데 이렇게 마구

혼나면서 이상하게도 후련한 구석이 있다 호통을 치는 데미

안이 사실은 우리를 응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막연

하고 무기력한 안개에 휩싸여 있을 때 데미안은 그만의 방

식으로 우리에게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준다 물론 갈 방향을

정해준다거나 각자의 사정을 듣고 상담을 해주는 것은 아니

다 오로지 궁지로 몰아세울 뿐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사람들

은 잊고 있던 lsquo나 자신rsquo을 일깨운다 아 그동안 lsquo나rsquo에 대해 생

각해본 적이 있던가 라는 정도만이라도 좋다 이 물음이 바로

여정의 시작이니까

그렇게 스스로에게 묻고 나면 더 이상 전처럼 살 수는 없기 때

문이다 아니라면 자기 자신에게 면목이 없을 것이다 이 무서

운 책이 우리를 혼내고 몰아치면서도 여전히 영원한 고전이자

필독서로 사랑 받는 이유다

lsquo우리들 속에는 모든 것을 아는 한 사람이 있다rsquo고 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혼이 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혼

이 났다는 것은 자신 안에 있는 lsquo그 사람rsquo이 말을 하기 시작했

다는 뜻이니까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목소리가 희미하

고 멀리 있다 하여도 숨죽여 귀 기울이는 일 자체가 자신에게

로 가는 과정임을 잊지 말고

편집자반 11기 배예리

『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민음사 20001220

Demian Die Geschichte von Emil

Sinclairs Jugend(1919)

31

03 얼어붙은 자의식의 바다를깨뜨리고 생명을 불어넣는 책 『데미안』

데미안을 읽고 나서야 그 동안 내가 두 발 딛고 서 있던 땅이

굳고 단단한 대지가 아니라 얼어붙은 바다에 불과했음을 알

았다 데미안은 도끼를 가져와 이 꽁꽁 언 바다를 가차 없이

내리 찍었다 그리고 말했다 얼어붙은 바다를 단단한 땅인

줄 알고 사느니 그 얼음을 깨부수고 그 속에 빠져 죽기 살기

로 허우적대라고 그러면 그 속에서 너는 너 자신을 똑바로 마

주하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성장할 것이라고

주인공 싱클레어도 그를 둘러싸고 있던 세계를 깨뜨려 나가

며 성장한다 그 모든 과정은 결국 진정한 자기 자신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가 깨뜨린 가장 큰 세계는 바로 자신의 사고 체계였다 세상

을 바라보는 기존의 이분법적이던 시각 고정되고 획일화된 시

각을 버렸다 주인공은 세계 안에 심지어는 자신 안에도 선하

고 악하며 밝고 어두운 양극단의 것들이 공존함을 이해하고

두 세계를 끌어안았다 주인공은 귀와 눈을 가리던 장막을 걷

어내 버리고 세상을 바로 보게 되었다 상극인 것들의 괴리로

이루어진 이 모순된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곧 자신 안의 부조

화 또한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스스로에게 다가서는 첫 걸음

이었다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양극단의 세계 사이에서 싱

클레어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며 흔들리기를 반복했다 이

때 그에게는 삶을 지탱할 중심축이 없었다 항상 내면이 아닌

외부 세계에서 자신이 속할 자리를 찾아 헤맸다 그가 비로소

온전한 자신을 만난 순간은 어느 편으로도 치우침 없이 스스

로의 기준으로 홀로 서게 되었을 때였다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 이 길은 당신이 내면에 있는 모

순되는 두 세계 한없이 나약하고 뒷걸음치는 비열한 모습들

과 정갈하고 깨끗한 곧은 힘들을 동시에 직시하는 순간에 시

작된다 그리고 이 길은 두 세계 속에 들어가 이리저리 휩쓸리

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세계를 밟고 우뚝 올라서서 스스로

가 중심이 됨으로써 앞으로 펼쳐진다

이제 lsquo자아를 찾으라rsquo는 지루하고 흔한 이야기가 더 이상 빤

하거나 우습지 않다 묵직한 울림이 되어 나를 흔든다 그냥

나만 붙잡고 흔드는 것이라면 손사래 쳐 뿌리치겠는데 내가

밟고 있던 땅 속해 있던 세계를 뿌리째 흔들어 버린다 읽는

내내 속이 답답하고 나에게 화가 난다 그런데 이렇게 마구

혼나면서 이상하게도 후련한 구석이 있다 호통을 치는 데미

안이 사실은 우리를 응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막연

하고 무기력한 안개에 휩싸여 있을 때 데미안은 그만의 방

식으로 우리에게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준다 물론 갈 방향을

정해준다거나 각자의 사정을 듣고 상담을 해주는 것은 아니

다 오로지 궁지로 몰아세울 뿐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사람들

은 잊고 있던 lsquo나 자신rsquo을 일깨운다 아 그동안 lsquo나rsquo에 대해 생

각해본 적이 있던가 라는 정도만이라도 좋다 이 물음이 바로

여정의 시작이니까

그렇게 스스로에게 묻고 나면 더 이상 전처럼 살 수는 없기 때

문이다 아니라면 자기 자신에게 면목이 없을 것이다 이 무서

운 책이 우리를 혼내고 몰아치면서도 여전히 영원한 고전이자

필독서로 사랑 받는 이유다

lsquo우리들 속에는 모든 것을 아는 한 사람이 있다rsquo고 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혼이 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혼

이 났다는 것은 자신 안에 있는 lsquo그 사람rsquo이 말을 하기 시작했

다는 뜻이니까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목소리가 희미하

고 멀리 있다 하여도 숨죽여 귀 기울이는 일 자체가 자신에게

로 가는 과정임을 잊지 말고

편집자반 11기 배예리

『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민음사 20001220

Demian Die Geschichte von Emil

Sinclairs Jugend(1919)

32

박세길 인터뷰

진정한 역사가는 과거에 파묻히지 않는다옥(獄)에서 옥(玉)을 만든 작가 박세길 인터뷰

박세길 저자는 처녀작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로 80년대

대표 역사서 자리를 꿰찬 분입니다 1986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감되었을 때 감옥에서 역사책을 읽으며

사회 모순에 대해 고민했고 출소하자마자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집필했습니다 정권 탄압 속에서 왜곡된

현대사를 바로 잡았다는 의미를 지닌 이 대표작은 오랫동안

고시생과 대학생들의 필독서로 꼽혔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읽은 박세길 저자의 저서는 지난 6월 출간한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입니다 기사를 쓰고 편집할 때 청년 세대를

겨냥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박세길 저자는 역시나

청년들의 미래에 큰 관심을 갖고 계셨습니다 취업을

눈앞에 둔 서울출판예비학교 학생들이 가져야 할 자세를

여쭸습니다

출판학교에서 강의하신 한 선생님은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가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와

더불어 80년대 인문학의 양대

산맥이라고 하셨습니다

책의 성공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강의

요청이 많이 들어왔어요 먹고사는

경제적인 문제도 해결됐습니다

몇 부 팔렸는지는 잘 모릅니다

출판사에서 기밀 사항이라고

하더군요 요즘은 마케팅 차원으로도

몇 쇄 몇 부인지 밝히지만 그때는

세금 문제를 피해가기 위해서인지

쉬쉬하던 시절이었나 봅니다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는 대학

선후배끼리도 많이 물려주는 책이라고

들었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의 쉬운 설명이

좋았습니다 더불어 어떤 사명감을 안고 썼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완성하기에 앞서 어떤 목표를

두셨나요

청년 세대가 외환위기 이후 집중적인 희생양으로 전락하면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드러내면서 여기에

머물지 않고 청년 세대의 잠재력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들이 역사 무대 한복판에 진출해 자기 몫을 다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습니다

역사 분야는 시장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역사 혹은 현대사가 주목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통해 얘기하자면

80년대 후반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lsquo왜곡된

역사를 바로 알자rsquo는 시각 교정의 욕구가 있었던

차에 제 책이 나름 부응했는지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시기가 적절했던 셈이죠

2012년 대선 후 역사 분야가 잠시 반짝했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금세 시들었다고

하더군요 당시 역사 분야 책들이 일반 독자가

읽기에 다소 어렵거나 출간한 지 오래된 것들

위주였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돋을세길

출판학교에서 강의하신 한 선생님은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가 유홍준 교수의

책의 성공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강의

하더군요 요즘은 마케팅 차원으로도

선후배끼리도 많이 물려주는 책이라고

역사 분야는 시장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역사 혹은 현대사가 주목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통해 얘기하자면

80년대 후반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lsquo왜곡된

역사를 바로 알자rsquo는 시각 교정의 욕구가 있었던

차에 제 책이 나름 부응했는지 큰 반향을

읽기에 다소 어렵거나 출간한 지 오래된 것들

위주였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의 저자

33

2012년 대선 후 역사 분야가 관심을 받았던 것은

보수층의 재집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한

불안 때문일까요

맞습니다 그러나 마땅한 책이 없어서 그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역사 분야에서 베스트셀러를 내기

위해서는 시기가 맞아 떨어지고 내용 또한 대중이 원하는

것을 담고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를 편집한 lsquo생각정원rsquo

출판사의 정희용 편집자에게 감사 표시를 하셨습니다

어떤 편집자를 선호하시나요

간단합니다 편집자는 철저히 독자 입장에서 독자와 작가

사이의 간극을 줄여줘야 합니다 예를 들면 어려운 내용을

과감히 생략하고 다음 기회로 미루도록 설득한다거나 좌파

운동권 색채가 너무 강한 문장을 조금 순화하는 것 등입니다

어떤 내용이 이번 책에 꼭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선택을

도와줘야 합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을 작가님께서 직접

독자들에게 홍보하신다면 카피 문구를 짧게 제시할 수

있을까요

청년 세대 희망 찾기 갑갑한 현실을 어떻게 타개할 수

있을지 그 답을 찾아보는 길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취업 후 첫발을 내디딜 서울출판예비학교 11기

학생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출판 또한 돈을 벌어야한다는 기본 전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출판계를 지켜본 결과 뭔가 소명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오래

살아남았습니다 출판학교 역대 대표 중 일부는 나와 관계가

있는 사람들인데 모두 고유한 소명의식을 갖고 출판계에

뛰어들었습니다 때로는 상업주의 안에서 재주도 부리곤

했지만 어쨌든 분야 내에서 고유한 캐릭터를 구축했습니다

출판학교 학생들이 출판 상황을 이해하고 자신을 역할을

정하는 개인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비전 중심의 경영을

하는 회사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지만 개인 비전을 기업

비전으로 나아가 사회 비전으로 접목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과거에 안주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부분을

출판계에서는 SNS 등 인터넷 환경을 통한 마케팅으로

이해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SNS망 자체에서 무엇이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건 사람과

사람이 서로 소통하고 공감하는데 필요한 도구입니다

콘텐츠 중심의 사고가 중요하고 그것이 전제되지 않을 때

SNS는 착각에 불과하며 성공할 수 없습니다 필요한 콘텐츠

중심의 사고를 가지고 철저하게 진행하지 않으면 그 공간에서

허망하게 헤엄만 칠 뿐 입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SNS에서

맥없이 헤엄치다 익사하는 경우를 볼 수 있을 겁니다

콘텐츠와 마케팅의 영역을 하나로 보는 것과 따로

보는 것 어떤 것이 독자를 위하는 것일까요

출판 마케팅은 책을 기획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에서부터

개입돼야 하고 그 과정에 독자를 참여시키는 방식을

고민해야 합니다 미국 네브래스카주립대학의 이상문

교수는 lsquo밀실 안에서의 혁신은 끝났다rsquo고 얘기합니다

개방된 체제에서 독자 곧 소비자 사용자의 참여 하에 함께

만들어갈 때 혁신은 이뤄진다고 합니다 출판사의 비전이

브랜드로 연결될 때 독자는 자발적으로 의견을 주고받고

싶어 할 겁니다

마케터반 11기 이창환

디자

인 사

공예

Page 2: 서울출판예비학교 웹진 _5호 2015

22

이장열

집중하다 보니 시간가는 줄 몰랐고

이렇게 또 두 번째 편집후기를 쓰고

있습니다 두 번째라니hellip 섭섭합니

다 두 번째라서가 아니라 마지막이

라서 섭섭함이 두 배가 되는 듯합니

다 이젠 보내줘야겠지요 더 좋은

사람들 만나겠지요 더 좋은 웹진이 되겠지요 행복해야 해요

웹진 아디오스(adioacutes)

사공예원

웹진 활동도 이제 이 결과물을 마지막으로 정리하게 되네요

아쉽기도 하고 서울예비출판학교 12기 학생들의 웹진은 어떠

할지 기대가 됩니다(하하) PDF파일로 다운받아보았던 여태

까지의 웹진이 SNS와 이슈닷컴(httpissuucom)을 통해서

더 활성화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새로운 시도가 계속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웹진이 완성되기까지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고 항상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이창환

짧지만 오랫동안 고생한 팀원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

네요 장열이 예원이 수진이 소현이 가은이 상화 모두 출판

계에서 어떤 활약을 펼칠지 궁금하고 기대되네요 올해 마지

막 웹진 차근차근 읽으면서 많은 관심 보내주세요

백가은

서울예비출판학교에서의 6개월이 끝나가네요 우리 웹진팀

마지막까지 모두 고생 많았습니다

이상화

지난 6개월간 자원해 웹진을 만들면서 느낀 것은 나의 lsquo부족

함rsquo이었다 잘하고픈 마음은 굴뚝같지만 모든 것이 마음처럼

따라주지는 않았다 아이디어 기획 팀원들과의 소통 최선을

다했지만 아쉬운 지점이 있었고 나의 한계와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떨어진 체력과 마감의 압박감에 힘들어할 때 누

군가 해준 충고가 귓가에 맴돈다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 이

과정을 즐기고 반성과는 별개로 만족을 이끌어 내는 것이라

는 말 부끄럽고 부족한 결과물이지만 나는 이 글과 그림들을

사랑하려 한다

이소현

두 번째이자 마지막 웹진입니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6개

월이 순식간에 흘러갔습니다 열심히 한 만큼 나중에 뒤를 돌

아봤을 때 lsquo한 뼘 더 클 수 있었구나rsquo라고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김수진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lsquo풀꽃rsquo

캘리그라피 기하늘

기사 작성자 디자인반 백가은 디

자인반 사공예원 마케터반 이창환

마케터반 이장열 편집자반 김수진

편집자반 이상화 편집자반 박혜원

마케터반 최다은 편집자반 성준근

교정middot편집 편집자반 김수진 편집

자반 이상화

디자인 디자인반 백가은 디자인반 사공예원 디자인반 이

소현

일러스트 편집자반 김영준 편집자반 김지영 웹진 디자인

멤버들

편집후기

기억할게

마케터 이장열 디자이너 사공예원 편집자 김수진 마케터 이창환 디자이너 백가은 편집자 이상화 디자이너 이소현마케터 이장열 디자이너 사공예원 편집자 김수진 마케터 이창환 디자이너 백가은 편집자 이상화 디자이너 이소현 이소현

3

일~이 쪽 홍rsquos피어 김홍민 대표님 인터뷰

삼~오 쪽 날보러와 교육발표회 준비취재

삼~오 쪽 설왕설래 릴레이 소설

삼~오 쪽 알고싶어 선생님 인터뷰

삼~오 쪽 기억에콕 수업후기

삼~오 쪽 1일일탈 견학후기

삼~오 쪽 화양연화 동아리후기

삼~오 쪽 책씹는맛 서평

삼~오 쪽 돋을세길 박세길 인터뷰

차례일

러스

트 _ 편

집자

반 김

지영

3

일~이 쪽 홍rsquos피어 김홍민 대표님 인터뷰

삼~오 쪽 날보러와 교육발표회 준비취재

삼~오 쪽 설왕설래 릴레이 소설

삼~오 쪽 알고싶어 선생님 인터뷰

삼~오 쪽 기억에콕 수업후기

삼~오 쪽 1일일탈 견학후기

삼~오 쪽 화양연화 동아리후기

삼~오 쪽 책씹는맛 서평

삼~오 쪽 돋을세길 박세길 인터뷰

차례일

러스

트 _ 편

집자

반 김

지영

4

가벼운 몸 풀기 질문부터 시작합니다 출판사 이름인 lsquo북스피어rsquo의

뜻은 무엇인가요

처음에는 lsquo정신rsquo을 뜻하는 lsquo누(noo)rsquo와 lsquo시공간rsquo의 의미를 담고 있는

lsquo스피어(sphere)rsquo를 합친 lsquo누스피어(noosphere)rsquo를 생각했어요

lsquo정신을 만드는 공간rsquo이라는 뜻이죠 철학적인 뜻인데 lsquo누rsquo 대신에

lsquo북rsquo을 넣었죠 책을 만드는 공간일 수도 있고 모아 놓은 공간일

수도 있어요 다른 의미로는 출판사를 차릴 때 lsquo망할지도 모른다rsquo는

두려움이 있었어요 책을 만든다는 행위 자체가 좀 무섭더라고요

책에 대한 두려움 책의 두려움 여러 해석을 할 수 있어요

보통은 표지 안쪽을 백면으로 두고 인쇄하지 않는데 『흔들리는

바위』에서 뒤표지 안쪽에 심리테스트를 넣으셨어요

책에 뭔가 장난을 해 보자 이게 시작이었죠 프로필 각 줄의 앞

글자를 연결하면 말이 되거나(『레벨7』 옮긴이 소개의 lsquo참한 애인

구함rsquo) 어떤 책은 1권과 2권의 표지가 똑같은데 자세히 보면

숨은그림찾기처럼 다른 부분이 있어요(『가모우 저택사건』) 각

책마다 특성을 살려서 이것저것 했죠 『외딴집』 앞쪽에 에도 시대

지도가 있는데 그 지도에 북스피어 이름을 넣기도 했어요 『흔들리는

바위』의 경우 특별히 심리테스트여야 할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표지 안쪽에 뭔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을까 하다가 생각해낸

거예요 나중에 심리테스트의 결과에 따라 책을 추천하는 lsquo책 추천rsquo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됐죠

일 잘하는 마포 김 사장

홍rsquos피어작은 사무실을 상상했는데 보통의 가정집 같은 모습에 한 번 놀라고 자리에 앉기도 전에 냉장고에서 주섬주섬 꺼내지는 캔 맥주에

또 놀랐습니다 곧이어 상 위에는 과자가 안주로 놓이고hellip 이거 참 인터뷰가 lsquo취중농담rsquo이 되어버리는 것은 아닐지 하지만 상대는

노련한 lsquo마포 김 사장rsquo입니다 맥주의 뚜껑을 따면서 lsquo이제 합시다rsquo라고 호탕하게 외치는 김홍민 대표 그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친히 맥주를 꺼내주는 김홍민 대표(좌) 숟가락으로 맥주병 뚜껑을 따는 김홍민 대표(우)

『흔들리는 바위』 뒤표지 안쪽의 심리테스트

재미있게 노는 것이 곧 일 잘하는 것 북스피어 김홍민 대표

북스피어 대표 인터뷰

5

3년 전에는 lsquo원기옥 이벤트rsquo로 모아진 돈으로 미야베 미유키 작가를

만나기 위해 혼자 일본에 다녀오셨는데 이번엔 독자 3분을 뽑아

일본에 다시 다녀오셨어요 두 번의 방문이 어떻게 달랐나요

3년 전에 내가 갔을 때는 답변이 되게 무미건조했어요 lsquo어떻게

생각하십니까rsquo lsquo좋다고 생각합니다rsquo lsquo이게 맞습니까rsquo lsquo네

맞습니다rsquo 가족 얘기 안하고 정치적인 질문 싫어하고 제약이

많 았 어 요 이 번 에 는 독 자 와 있 으 니 까 사 람 이 약 간 달 떴 다 고

할까요 가족 얘기 정치적인 얘기도 하더라고요 독자에게 직접

준비한 선물도 주고 사인도 일일이 해주고 사진도 같이 찍어주고

팬서비스가 남달랐죠 그도 그럴 것이 미야베 미유키가 만난 첫

번째 한국 독자인 거예요 미야베 작가는 한 번도 외국 여행을 해본

적이 없거든요 청각에 문제가 있어 비행기를 탈 수가 없대요 도쿄

밖을 안 나간다고 하니 당연히 해외 독자를 만나본 적이 없죠

세계 어느 나라에서 독자들이 인터뷰를 하러 왔겠어요 당초 한

시간 반 예상했는데 세 시간까지 걸렸어요 그때 「르 지라시」가

8면짜리였는데 인터뷰 내용이 좋기에 12면으로 증면해서 다 실었죠

독자들과 같이 가지 않았더라면 그런 내용이 못 나왔으리라고

생각해요

내가 만약 기자를 데리고 갔다면 기사 나오는 건 따 놓은 당상이고

비용도 훨씬 적게 들어요 이 이벤트를 한다고 했을 때 기자들이

전화를 걸어와서 lsquo자기도 가면 안 되겠냐rsquo lsquo회사 비용으로 가겠다rsquo고

하는데 나는 그랬죠 ldquo아닌데 독자랑 갈 건데rdquo

다른 출판사 사장님들은 lsquo말이 안 된다rsquo고 했어요 기자랑 가면

기사도 나오는데 왜 독자들을 몇 명씩 데리고 가겠어요 만우절에

올 렸 으 니 까 거 짓 말 이 라 고 들 하 더 라 고 요 하 지 만 결 과 적 으 로

이벤트도 재미있었고 일단 작가가 너무 좋아해 내후년이 자신의

데뷔 30주년인데 꼭 또 오라고 하더라고요

북스피어 10주년을 기념하여 900쪽짜리 『십자가와 반지의 초상』을

출간하셨죠 그 소설의 배경이 되는 호빗 마을에 다녀오는 lsquo반지의

제왕 촬영지 기행 원정대rsquo를 꾸리셨었어요 다녀오신 후기를

들려주시겠어요

나 와 편 집 장 과 독 자 세 명 이 렇 게 다 섯 이 갔 는 데 와 정 말

행복했어요 열흘 동안 캠핑카로 반지의 제왕 촬영지를 다 돌았어요

뉴질랜드 면적이 우리나라 면적의 25배래요 그리고 인구는 400만

명이 좀 넘는대요 사람이 없어요 마을이 있다 그 다음은 다

고속도로야 그리고 또 마을이 있고 바로 고속도로 상점들은 6시에

열고 5시에 닫으니까 밤에 차도 없고 사람도 없고

농경 목축을 하느라 상품을 생산하는 비율이 높지 않으니까

자급자족이에요 그런데 촬영지가 되니까 세계 각지에서 사람들이

오는 거죠 관광업이 활황이 되어서 뉴질랜드 곳곳에 캠핑카를 타고

묵을 수 있는 곳이 많더라고요 갔다 와서 독자가 그걸 후기로 남겼죠

최근 lsquo낭만독자열차교정rsquo을 크게 여셨어요 그동안 북스피어의

독자 교정 이벤트는 꾸준히 진화해왔는데 지금까지의 변화들을

말씀해주세요

교정을 권당 120만 원씩 주면 1000만 원이잖아요 그건 어려우니까

처음엔 출판사에 다니는 친구들에게 도움을 받으려고 했었죠 그런데

점점 연락이 안 돼 부탁하는 빈도가 늘어날수록 전화를 안 받아요

아 그러면 독자에게 놀이처럼 하게 해야겠다 싶었어요 처음에는

몇몇이 와서 교정을 보면 점심을 줬어요 점심 먹고 그냥 갔지 뭔가

재미가 없어 다음에 왔을 때는 점심도 주고 저녁도 줬어요 또 그

다음은 점심도 주고 저녁도 주고 술도 먹여 그랬더니 재미가 있는

거예요 이후로는 1차에서 끝나지 않고 4차까지 가고 밤새 마시고

홍대 일대를 막 돌아다니고 아침엔 해장국 먹고 헤어지고 전문

만우절 때 블로그에 장난으로 올렸다는 lsquo홀로 남겨져rsquo 앨범 이미지

하지만 독자들의 요청으로 직접 제작하기에 이른다 오른쪽은 박기영의 목소리로 재탄생한 『홀로 남겨져』(미야베 미유키 2011)의 북 OST lsquo홀로 남겨져rsquo

『흔들리는 바위』 뒤표지 안쪽의 심리테스트

6

교정을 맡기는 것보다 술값이 더 나가겠더라고요 하지만 그렇게

술 먹고 간 독자들이 홍보를 해준다고 할까 그래서 좀 더 발전시켜

보기로 했어요 밤샘독자교정 1박 2일 동안 교정을 보는 거죠

번역자가 아침고요수목원 근처에 있는 축령산 자락에 살기에 그 집을

빌렸어요 낮에는 교정을 보고 저녁에는 번역자와 함께 고기를 구워

먹으며 번역 뒷이야기도 듣는 거죠 그때부터 교정 MT가 시작이

됐어요 그러다가 지지난달에 한 것이 낭만독자열차교정이라고 열차

안에서 교정을 보고 밤에는 펜션에 도착해 놀다 오는 거였어요 마침

한겨레 기자도 독자 교정에 참여해 기사를 써주기도 했죠 앞으로요

인천에서 제주도로 가는 크루즈가 있대요 배 안에서 교정을 보고

제주도에 도착해서 노는 그런 독자 교정 이벤트를 구상하고 있어요

올해 4월에 lsquo북amp쿡 퍼포먼스 맏물이야기rsquo를 진행하셨어요 전문

성우가 소설을 읽어주고 푸드스타일리스트가 소설 속 음식을 직접

만들어 독자가 먹어볼 수 있게 한 신선한 기획이었죠

『맏물이야기』가 요리에 관한 책이어서 처음에는 독자들을 불러서

요리를 시켜야겠다고 생각했죠 늘 그렇듯 처음에는 소박했어요

이 책에 나오는 요리를 직접 하게 해서 독자에게 먹여야겠다 혹은

사진을 찍게 해야겠다 그런데 은근히 어려운 거야 에도 시대의

음식 맛이 나리라는 보장도 없고 그래서 푸드스타일리스트에게

의뢰를 했죠 의뢰하면 비싸다 보니 그냥 진행하기에는 아쉽고 판을

키우자 싶었죠 그러다 낭독할 성우까지 붙은 거고 선착순 200명

한정이었기에 오지 못한 독자들이 아쉬워하더라고요 텍스트에

머물지 않고 공연을 통해 시각 청각을 넘어서 후각으로도 독자들과

소통할 수 있었어요 책의 확장성을 보여준 신선한 행사였다는 평도

들었죠

북스피어는 장르문학만 출간하지만 그동안 진행해온 라디오

프 로 그 램 을 보 면 다 양 한 분 야 의 독 서 를 하 시 는 것 같 아 요

개인적으로는 어떤 분야의 책을 주로 읽으시나요

장르문학이요 내 분야에서 전문가 행세를 해야 해요 왜냐하면 내가

이 분야 책을 내니까 끊임없이 읽어야 해요 그래야 끊임없이 얘기할

수 있지 잘난 척하는 거 정말 중요해요

그렇다면 추천해 주실 만한 책이 있으신가요

최 근 에 『 마 션 ( M a r t i a n ) 』 을 재 미 있 게 읽 었 어 요 화 성 에

갔다가주인공만 빼고 다 귀향하게 되자 주인공 마크 와트니가

화성의 토양으로 감자를 재배해요 그걸 읽고 감자를 한 박스 샀죠

갑자기 먹고 싶어서요 10월 8일에 영화로도 개봉되는데 꽤나 흥행할

것 같아요 앤디 위어의 처녀작인데도 줄거리가 탄탄하거든요

작은 출판사가 출판계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방법이 있을까요

가급적이면 한 분야를 해야죠 김밥천국보다는 돈까스 전문점이

사람 모으기는 더 쉬워요 장사라는 것은 독특한 무언가가 있어야

해요 그동안 수많은 김밥천국이 사라져온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한

분야에서 독보적인 존재가 되는 것도 방법이에요 그런 존재가 되고

나면 독자들에게 알릴 lsquo채널rsquo이 있어야죠 그게 다일 것 같은데요

사실은 lsquo그 정도rsquo조차 정말 어렵죠

맏물 이야기 북amp쿡 퍼포먼스 포스터(좌)와 행사에서 재현된 소설 속에 나오는 음식(우) 김홍민 대표의 저서

7

마지막으로 서울출판예비학교 학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망설임 없이) 외국어를 해라 정말 강조하고 싶네요 외국어를 뭐든

하나는 확실하게 해야 해요 또 글을 잘 써야 해요 저자만큼 저자가

lsquo에이 편집자 주제에 뭘 그리 잘 써rsquo라고 할 정도로 잘 써야 해요

글쓰기 연습을 매일매일 하세요 요즘은 환경이 좋잖아요 페이스북에

매일 끼적이기만 해도 실력이 늘어요 글 잘 쓰고 외국어 잘한다

프리패스예요 어느 출판사든 들어간다 어디든

편집자반 11기 김수진

잠깐만 우리 새우치킨 하나 먹을까

(바로 전화한다) 두 마리요 새우치킨 한

마리랑 양념치킨으로요

(주소를 말하지 않는다) 주소가 저장되어

있으신가 봐요

그럼요 lsquo또 전화하셨군요 오늘은 어쩐

일로 두 마리세요rsquo 이렇게 받아요

마포 김 사장

웹진팀

마포 김 사장

웹진팀

마포 김 사장

기발한 와우북페스티벌 상품들

북스피어 출간 도서 저자 일러스트가 들어간 과자 패키지(좌)와 파본된 책을 한 장(章)씩 분권 해서

500원에 파는 상품(우)

2015 와우북페스티벌 르 지라시 특별판

8

7인 7色 분투기

20150921 월요일 d-25

교육발표회 TF팀 발족 시작이 좋다

9월 21일 월요일 401호에서 교육발표회 태스크포스(task

force)팀(이하 TF팀)의 첫 번째 회의를 시작했다 반 친구들의 투표로

얼떨결에 TF팀의 일원이 되어서 처음에는 부담감을 느꼈지만

한편으론 우리의 성과를 발표하는 자리를 직접 꾸려간다는 것이

기대되었다 첫 만남에는 마케터반 디자인반 사람들과 얼굴을

익히고 가벼운 농담과 함께 분위기를 즐겼다 아직은 어떻게 계획을

짜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지만 그만큼 긴장감을 갖고 열띤 토론을

했다

먼저 공간 구성을 토의했는데 각 반에 할당된 공간은 각 반에

일임하기로 했다 지하 1층은 편집자반과 마케터반이 사용하고

지하 로비부터 계단 외벽은 디자인반의 작품을 전시한다 1층에는

안내소를 설치하고 안내팀을 배치할 것이다 마케터반은 면접실로

사용할 예정이고 디자인반은 전시실로 편집자반은 대기실로

사용할 것이다

두 번째로 홍보에 관해 토의했는데 편집자반의 김종민을

팀장으로 하는 별도의 홍보팀을 꾸렸다 홍보 문구는 10월 2일까지

취합하기로 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포스터를 제작하면 된다 홍보

영상이나 카드 팸플릿을 만들기로 한 안건도 추후 논의하기로 했다

아이디어들이 모아져 하나의 그림이 완성되어가는 듯 했다 점차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던 틀이 잡히면서 그 공간을 하나씩 채워가는

우리를 보고 스스로 대견스러웠다 아직도 걱정되는 일들이 많지만

지금과 같은 패기와 열정으로 준비한다면 잘 마무리 해낼 수 있다고

믿는다 시작이 좋다

편집자반 11기 남민희

20150925 금요일 D-21

두 마리 토끼 잡기 교육발표회 자료집 만들기

9월 초 디자인반에서 세 명의 팀원으로 교육발표회 자료집

담당 팀이 꾸려졌다 교육발표회 자료집은 6개월 동안의 교육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책자로 편집자반 마케터반

학우들의 자기소개서와 디자인반 학우들의 작품이 실린다 디자인

반은 판면을 디자인하고 원고를 받아 책으로 묶는 작업을 맡았다

가장 먼저 수행한 일은 편집자반과 마케터반 학우들의 글이 담길

텍스트 위주의 판면을 잡는 일이었다 40명 이상 인원의 글이 실리는

만큼 반복적으로 보기에 부담이 없어야 하고 변화를 주어 지루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편집자반과 마케터반의 페이지를

마무리한 뒤에는 디자인반의 포트폴리오 작업으로 이어졌다

디자인반의 판면에서 중요한 것은 각자의 성향을 잘 담을 수 있도록

전집 위주 본문 위주 단행본 위주의 세 가지 사항에 따라 판면을

잡는 일이었다 이러한 큰 산을 넘고 나니 정해진 양식에 맞춰

축사와 연혁 교육과정 소개 페이지를 완성하고 각 반을 상징하는

색을 살린 간결한 표지를 만드는 것은 무리 없이 진행되었다

자료집 팀원들은 자신의 포트폴리오와 병행해야 하는 압박감과

6개월간 우리의 행로를 담아내는 작업인 만큼 실수가 없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으나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계획을

꼼꼼하게 세워 차근차근 진행해 나갔다 또한 다른 학우들이 시간

약속을 잘 지켜주었기 때문에 촉박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차질 없이

마무리할 수 있었다 자료집을 만든다는 것은 디자인반으로서는

작업을 정리함과 동시에 모든 학우들이 자신의 학교생활을 마무리

짓는 일로 소중한 경험이었다

디자인반 11기 홍기화

20151001 목 요일d-15

걱정도 병인 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오늘은 발표회 편집자반 공간을 꾸밀 물품을 사러 가는 날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추석 연휴를 보내서 그런지 등교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할 일은 산더미인데 그저 막막하기만 했다 그래도

오전부터 교육발표회 준비 팀장인 종민이가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것 같아 다행이다 종민이가 좀 힘들어 보이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난 그저 시키는 대로 따라가고 옆에서 도와주면 될 것 같다 뭐가

됐든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는 언제나 어렵고 외롭다

각 조의 콘셉트가 정해지고 필요한 물품의 목록이 정리됐다 10만

원 정도만 지원해준다고 한 것 같은데 다들 뭐가 이리 살 게 많은지

사무국에서 다 사줄지 모르겠다 (우리 조도 살 게 꽤 많은 것

날보러와

디자

인 사

공예

교육발표회 준비취재

9

같았는데hellip) 한 시간 동안 호미화방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필요한

물품을 샀다 그런 와중에 혹시 빼먹은 건 없는지 예산이 부족하진

않을지 걱정이 들었다

교육 과정 내내 걱정하고 고민하고 불안해한 것 같다 마음 편하게

생각하라는 말을 친구들에게 줄곧 들은 것 같은데 할 수 없다 내가

원체 이렇게 생겨 먹은 걸 이제 발표회까지 남은 시간은 정확히

보름 우리가 보낸 6개월을 4시간 동안 보여주는 행사다 이 행사가

전부는 아니지만 그래도 24명 모두에게 아니 11기 출판학교 교육생

모두에게 주어진 마지막 과제다 lsquo혼자 하는 것도 아닌데 걱정만

하지 말고 차근차근 준비하면 되겠지rsquo 하면서도 걱정이 앞선다 진짜

이것도 병이다

편집자반 11기 권오권

20151008 목요일 D-8

가을 나들이 같은 인터뷰

내가 인터뷰 팀이라니 게다가 팀장이라니 누구 마음대로 이건

음모라고 구시렁대며 일정을 짠다 수료 때까지 감투 안 쓰는 게

목표였는데 망했다고 말하며 멘트를 고민한다 그래 사실은 즐겼다

어차피 할 일 없으니 잡배마냥 학우들에게 치근대며 시간 보냈을

터였다 그럴 바에야 나들이 간다 치고 즐기는 편이 나았다 날씨는

또 얼마나 좋은가 투덜댔지만 가벼운 걸음이었다

지금까지 교육 과정 내에서 강의 또는 특강으로 만났던 많은 분들을

카메라로 담았다 대부분 직접 회사로 방문했기 때문에 다양한

사무실을 보는 것도 재미였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강의 때보다 더

진하고 선명하게 한분 한분을 볼 수 있었다 그들도 마찬가지였을까

본인에게는 일상인 세계를 동경한다면서 비집고 들어오려는 우리를

보는 우려와 격려 섞인 눈빛에서 ldquo너희도 이거 하려고 아이고 힘들

텐데 부디 잘 해나갔으면 좋겠네rdquo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아름답다

감사하다

시시덕거리며 돌아오는 길에 생각한다 앞으로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이 가을 이 마음의 우리가 그리울 건 알겠다 벌써부터

아릿하다 역시 인터뷰 괜히 했다 귀찮아 죽겠다 진짜

편집자반 11기 김상흔

20151009 금요일 D-7

교육발표회를 홍보하라 티저 포스터 만들기

드디어 6개월의 과정이 끝나가고 있었다 우리를 보여 줄 마지막

기회인 교육발표회를 앞두고 TF팀은 lsquo홍보rsquo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꼭 보러 와달라는 메시지를 어떻게 하면 잘 전달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 끝에 lsquo티저 광고rsquo를 제작하기로 결정했다 CF나 기타 광고에서

활발하게 활용되는 서서히 베일을 벗어가며 호기심을 자극하는

광고 기법 말이다 우리의 타깃은 대중이 아닌 출판계라 처음엔

lsquo이런 홍보를 과연 좋아하실까rsquo 하는 의구심이 앞섰다 하지만

회의를 거듭하며 아이디어를 잘 뽑아내고 두 반이 협력한다면

효과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케터반 편집자반 학생들의 문구들을 취합해 투표로 가장

적합한 것을 뽑았다 1등은 정혜림 학우의 lsquo북쪽으로 가라 귀인을

만난다 BOOK쪽으로 오라 귀인을 얻는다rsquo가 차지했다 lsquo북쪽rsquo이라는

방향표현을 lsquoBOOKrsquo으로 바꾼 게 참신하고 재밌어 모두의 공감을

얻었다 2등은 김수경 학우의 lsquo내가 동네북이니 응 SBI 동네북

페스티벌rsquo이 뽑혔다 평소에도 재미있는 말투로 늘 주변을 웃게

만드는데 그 재기발랄함이 묻어나는 문구였다 3등으로 뽑힌

유보미 학우의 lsquo날 떠난 후 너는 행복하니 내 인생 책임져 책책책

책임져rsquo는 아쉽게 광고에는 쓰이지 않았지만 시선을 끄는 기발한

문구였다 이 외에도 lsquo책 잡힐 일 하지마라 책 잡을 일 해라rsquo lsquo갈피를

못 잡을 땐 책갈피rsquo 등 재밌는 문구들이 많았다

전부 광고에 쓰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라 12등 문구를

멋지게 디자인하기로 했다 디자인에 대한 의견을 반 친구들과

나누며 포스터들을 직접 디자인했다 서로 의견이 맞지 않기도 하는

등 고단할 때도 있었지만 많은 분들이 우리를 보러 와주신다면 모든

고생이 잊힐 것이다 제발 그랬으면 한다

편집자반 11기 박혜원

10

20151012 월요일 D-4

수많은 이름들을 위하여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난리다 난리 우리 반이 이렇게 시끄럽고

활기찬 적이 있었던가 자타공인 조용하다던 편집자반 학우들은

어디로 가고 요 며칠 온통 돌아다니거나 무언가를 만드느라

고군분투하는 풍경들과 마주하고 있다 나쁘지 않은 아침이다

그 동안 우리는 직책의 기근()에 익숙해져 있었다 반장 부반장

조장의 휘하에서 맡은 바를 다하며 펠로우십을 뽐내고 있던

우리에게 갑자기 수많은 이름들이 떠맡겨졌다 누군가는 TF팀이

되고 누군가는 홍보 팀장이 되었으며 누군가는 인터뷰 팀장이라는

직책을 맡았다 그런가 하면 건축학을 전공한 학우는 공간 배치를

구상하는 역할을 맡고 누군가는 가을 단풍을 모티프로 해서

편집자반 전체의 부스를 꾸미고 있다 그뿐이랴 각 동아리의

장(長)들은 동아리 부스를 만들랴 그 동안의 활동을 책으로 만들기

위해 인디자인 작업에 몰두하랴 정신이 없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웅장하게 꾸며질 조별 부스를 살펴보면 아마도 입이

떡 벌어질 것이다 각 조는 워크숍으로 만든 자신들의 책에 맞춰

콘셉트를 잡았다

편집자반 lsquo윌비rsquo 조는 『창업 자금 날려먹지 않는 법』에 맞게

카페처럼 부스를 꾸미기로 했다 거대한 간판도 이미 완성되었고

맛있는 커피도 만든다고 하니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lsquo길목rsquo 조는 『서태후 비사』의 내용에 따라 서태후가 좋아했던

벚꽃으로 부스를 장식한다 게다가 한 켠에는 『서태후

비사』전자책과 예쁜 책갈피까지 마련되어 있을 것이다

lsquo달로rsquo 조는 『사이의 거리』의 표지에도 실 그림이 들어간 것에 맞춰

실을 이용하고 있다 특히 실로 lsquo사이의 거리rsquo 글자를 만들었을

때에는 학우들 모두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어떻게 실로 글자를

만들 수 있었는지 많은 분들이 와서 봐주시면 좋겠다

lsquo세모북스rsquo 조는 강명관 잡문집인 『허울 좋은 나라』를 만들었다

시대상과 일상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lsquo사진rsquo에 착안해 옛날

사진관처럼 부스를 꾸미고 있다 흑백 사진과 손글씨가 고즈넉한

멋을 더할 것이다 돌림판 이벤트도 있을 예정이다

편집자반 11기 이상화

2015101 목요일 D- 15

lsquo정rsquo이 있어 lsquo반rsquo을 찾아 lsquo합rsquo을 보니 마케터더라

lsquo차별성이 있어야 한다rsquo

책의 차별성을 찾았던 6개월 그리고 6개월 간의 경험을 토대로

lsquo차별성이 있는 마케터반의 발표회rsquo를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각

조의 조장들과 발표회 테스크포스 팀원이 머리를 맞댔다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lsquo책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그렇다고 너무 책에

집중하지 말자rsquo였다 마치 lsquo정rsquo과 lsquo반rsquo을 통해 lsquo합rsquo을 만들어내는

과정이었다 세상에 이마저 변증법적 접근이라니 그러나 우리가

누구인가 책이라는 물성에 가치의 효용을 불어넣는 우리가

아니던가 분명 발표회에도 그와 비등한 가치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전체 콘셉트은 lsquo북북 쓰는 마케팅rsquo으로 각 조를 하나의 챕터로

삼았다 즉 개성이 뚜렷한 5개의 챕터로 이루어진 lsquo마케팅 북rsquo인

것이다 그리고 각 챕터는 lsquo마케팅이란rsquo이라는 소주제를 부여하여

각 조의 교육과정과 보여주고 싶은 것들을 자유롭게 보여주기로

했다

이제 정이 끝났으니 반을 제시할 차례 lsquo반rsquo으로 lsquo소책자rsquo와 lsquo상품rsquo를

선택했다 소책자는 그저 소개하는 글만을 넣지 않고 lsquo스탬프

여행rsquo의 컨셉을 빌려 꾸미기로 했다 각 조의 부스를 돌아볼 수 있는

장치로 충분한 역할을 할 것이다 상품은 lsquo책rsquo에 대한 행운을 줄 수

있는 lsquo무언가rsquo를 준비하기로 했는데 지금 당장 밝히기는 쉽지 않은

lsquo무언가rsquo를 준비할 것이다 (기대되시지요)

이제 합이다 합은 발표회 당일 분명 lsquo정rsquo과 lsquo반rsquo의 효과가 나타날

것이며 어느 때의 발표회보다 멋질 것이다 (라고 근자감을

부려본다) 곧 시작될 발표회 기대하시라

마케터반 11기 이장열

11

1212

설왕설래

『호밀밭의 파수꾼』의 결말이

궁금해서 견딜 수 없다면

세 반 학우들의 상상력을 동원한 우리들의 릴레이 세

나에 대해 듣고 싶다면 내가 어디서 태어났는지 어린

시절이 얼마나 형편없었는지 내 부모님이 무슨 직업을

가지고 있는지 내가 태어나기 전에 무슨 일들이 있었는

지 같은 데이비드 코퍼필드 식의 헛소리가 듣고 싶겠지

하지만 난 그딴 이야기 하고 싶지 않아 (JD 샐린저 『호

밀밭의 파수꾼』

내 속으로 지나가지만 어쨌든 내 것이 아닌 섬광을 내

가 앉았던 내가 읽었던 생을 한순간에 으스러뜨리는

섬광을 이야기하고 싶어 이창환

아니 잠깐 내가 뭔 병신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

지 내일 서울출판예비학교 면접 있어서 빨리 자야 하

는데hellip 공태준

어서 잠에 들어야 한다는 조급함이 커질수록 허기 또

한 함께 치밀어 올랐다 결국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파

스타 면을 삶는 시간 8분 (그 동안엔 냉장고의 한 쪽

에 남아있던 산토리 한 캔을 단숨에 들이켜야 했다)

음악은 야나체크의 산포니에타 김사룡

맥주 한 캔으로 살짝 취기가 돌자 술이 더 마시고 싶었

다 결국 소주 한 병을 꺼내어 마시며 적당히 삶아진 파

스타 면을 올리브유에 볶았다 내일 입을 정장치마가

끼지 않을까 걱정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엎질러진 물

인걸 최다은

침대에 누워 억지로 잠을 청해본다 잡념이 사라지지

않는다 고민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된다 젠장 벌

써 새벽 3시 자긴 글렀네hellip 그렇게 뒤척이다 날은 밝았

다 이다혜

밝아진 창밖을 보며 어젯밤 나를 뒤척이게 한 면접을

떠올렸다 어제만 해도 중요한 일이라 생각했는데 날

이 밝으니 이미 그 중요성은 나와 멀어진 느낌이다 의

무감에 옷을 챙겨입고 집을 나섰다 양화대교를 건너는

버스 안 새로운 계획이 떠올랐다 황하정

새로운 계획으로 들뜬 나에게 창밖의 풍경이 눈에 들어

온다 수많은 사람과 차량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

어진다 다른 듯 보이지만 얼굴을 장식한 특유의 무표

정함과 발등에 불이 떨어진 듯 바삐 움직이는 모습 속

에 내가 겹쳐 보인다 그래 이번 계획은 나에게 얼마

동안의 기대감을 선사해 줄 수 있을까 뭐 어때 잠깐

이라도 좋다 쓸데없는 잡념보다는 시한부 희망이 차라

리 낫다며 애써 위로한다 유수지

순간 어렴풋한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니 내 또

래의 남자가 거북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김단희

그의 혐오에 가까운 시선과 마주쳤을 때 나는 순간 얼

어버렸다 면접 장소에 가기 위해선 이번 정류장에서 내

렸어야만 했다 그러나 나에게 다가오는 그 남자 때문

에 그러지 못했다 남자가 말했다 김선아

ldquo너였구나 그래 너였어 3년 전 3만원을 빌리고 도망

간 김말숙이 그래 너야rdquo

그 남자는 미친 게 분명했다 lsquo잠깐 이 관능적인 머스

크 향은 뭐지rsquo 순간 뇌리를 스치는 불가리 향수는

그 남자를 떠올리게 했다 지독하게 얼굴을 기억하지

못했던 그 남자를 말이다 이장열

대학교 1학년 설레는 마음으로 나간 첫 번째 미팅을

내 인생 최악의 시간으로 만들었던 lsquo불가리 그놈rsquo이었

lsquo젠장 이 안면 인식 장애놈이 내 얼굴을 어떻게 기억하

는 거지rsquo 내 이름이 김말숙이든 아니든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내 얼굴을 기억한다는 것이 의아할 뿐

양화대교 위에서 떠오른 새로운 계획 그래 지금부터

시작이다 오늘 하루는 lsquo나rsquo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 살

아보는 거야

난 매섭게 치뜬 눈으로 나를 응시하는 그를 뒤로하고

소설의 첫 문장으로 시작하는 릴레이 소설

13

무심히 다음 역에서 내렸다 아무런 동요 없이 발걸음

을 옮기는 나를 보고는 그도 무안한지 이내 제자리로

돌아가는 듯했다 이상한 사람 나는 계속해 나의 목적

지를 향해 걸어갔다

결국 지각했다 면접은 진행 중이었다 이게 다 불가리

때문이다 불가리 냄새가 몸에 밴 것 같다 아니 불가

리 냄새는 내 옆에서 나고 있었다 내 옆에는 불가리가

앉아 있었다 부처님의 손가락을 본 손오공의 심정이

이러했을까 강귀욱

끔찍했다 냄새도 면접도

lsquo젠장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야rsquo

담배에 불을 붙여 한 모금 깊게 빤다 lsquo후-rsquo 치미는 화

도 잡념도 불안도 이 연기처럼 쉬이 사라져버리면 좋

으련만 무의미한 푸념만이 입 안에 맴돈다

ldquo김말숙~ 여기 있었냐rdquo 그 말에 얼마나 놀랐냐면 떨

어진 담뱃불이 내 정장치마를 태우고 있는 줄도 몰랐을

정도였다 lsquo불가리 그놈을 피해 골목까지 들어왔는데

여긴 어떻게 찾은거야rsquo

ldquo밥 먹을래rdquo lsquo꺼져 꺼져 제발 꺼져helliprsquo 못 들은 척 고

개를 돌렸다

ldquo소달구지라고 괜찮은 식당 있는데 같이 가면 그 3만

원 없던 걸로 해줄게rdquo

우리는 눈이 마주쳤다 김영준

해질 무렵 서서히 불이 들어오는 보고 있어도 언제 밝

아졌는지 알 수 없는 양화대교 위 가로등처럼 우리는

천천히 그러나 깊게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새카

만 흑암의 공간 무저갱 같이 깊고 검은 눈동자 속에

숨겨 놓은 비밀을 알아내기라도 하려는 듯 그렇게 서

로의 눈을 망막 너머의 시신경을 시신경을 타고 올라

가 전두엽 어딘가에서 터지고 있을 스파크를 계속 들여

다보았다 이윽고 두 남녀의 입이 열렸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낮은 목소리가 화음을 내며 울려 퍼

졌다 ldquo몽마르뜨가 좋겠어rdquo 권오권

끔찍했던 면접과 기분 나쁜 불가리놈의 얼굴이 잊힐 정

도로 음식의 맛은 정말 좋았다 고작 음식 때문에 기분

이 나아지는 내 자신에게 정말 어이가 없었지만 어쨌

든 맛은 좋았다 된장국으로 숟가락을 옮기며 슬쩍 앞

의 녀석 얼굴을 쳐다보았을 때 그 녀석도 나를 쳐다보

고 있었다 김희연

3년 전의 얼굴과 꽤 변해있었다 그 당시 철없는 어린

애 같은 얼굴이었는데 지금은 사회인이 되려고 꾸며댄

듯한 모습 물론 3년 전보다 더 나아졌다거나 잘생겨진

것은 아니다 전보다 훨씬 평범한 얼굴이다 ()

그런 그는 어째서 날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어째서 날

기억하고 다가와서 말을 걸고 함께 식사까지 하려 하

는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이 텅 빈 머릿속을 메

운다 엄청나게 망쳐 버린 하루지만 이상하리만큼 멀

쩡한 내가 낯설다 김하얀

그러다 내가 집에 돌아가는 길 문득 미니스톱에 담배

를 사러 들렀다가 ldquo여기 국산담배밖에 없는helliprdquo 음hellip

없단다 가뜩이나 기분도 꿀꿀한데 없다니 빵만 사서

나왔다

빵을 사서 가는 길에 낯익은 얼굴에 걸음을 멈추었다

ldquo너 혼자 빵 먹냐 나도 같이 먹자rdquo 불가리 그놈이었

다 ldquo혹시 너 나 따라온 거야rdquo 기가 막혔다 백가은

어쩐지 불가리 향수 냄새가 난다 했다 ldquo왜 따라왔어rdquo

그랬더니 불가리 그놈이 하는 말

ldquo난 내 집 가는 건데rdquo 믿을 수 없다 수상쩍다 그놈은

나를 앞질러 가더니 우리 집 주인 아줌마네 집으로 들

어가 버렸다 아 저 놈이 집주인 아줌마 아들놈인가

월세 밀렸는데 망할

망할 이상한 하루였다 잊자 오늘 일은 전부 다 잊어

버려야지 방으로 들어오기 직전에 산 맥주 한 캔의 뚜

껑을 따고 들이킨다 캬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가는 듯

시원하다 씻고 자리에 눕는 순간 면접 결과가 나올 때

까지 무엇을 하고 있어야 할지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TO BE CONTINUEDhellip

은 익명 표시입니다

13

무심히 다음 역에서 내렸다 아무런 동요 없이 발걸음

을 옮기는 나를 보고는 그도 무안한지 이내 제자리로

돌아가는 듯했다 이상한 사람 나는 계속해 나의 목적

지를 향해 걸어갔다

결국 지각했다 면접은 진행 중이었다 이게 다 불가리

때문이다 불가리 냄새가 몸에 밴 것 같다 아니 불가

리 냄새는 내 옆에서 나고 있었다 내 옆에는 불가리가

앉아 있었다 부처님의 손가락을 본 손오공의 심정이

이러했을까 강귀욱

끔찍했다 냄새도 면접도

lsquo젠장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야rsquo

담배에 불을 붙여 한 모금 깊게 빤다 lsquo후-rsquo 치미는 화

도 잡념도 불안도 이 연기처럼 쉬이 사라져버리면 좋

으련만 무의미한 푸념만이 입 안에 맴돈다

ldquo김말숙~ 여기 있었냐rdquo 그 말에 얼마나 놀랐냐면 떨

어진 담뱃불이 내 정장치마를 태우고 있는 줄도 몰랐을

정도였다 lsquo불가리 그놈을 피해 골목까지 들어왔는데

여긴 어떻게 찾은거야rsquo

ldquo밥 먹을래rdquo lsquo꺼져 꺼져 제발 꺼져helliprsquo 못 들은 척 고

개를 돌렸다

ldquo소달구지라고 괜찮은 식당 있는데 같이 가면 그 3만

원 없던 걸로 해줄게rdquo

우리는 눈이 마주쳤다 김영준

해질 무렵 서서히 불이 들어오는 보고 있어도 언제 밝

아졌는지 알 수 없는 양화대교 위 가로등처럼 우리는

천천히 그러나 깊게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새카

만 흑암의 공간 무저갱 같이 깊고 검은 눈동자 속에

숨겨 놓은 비밀을 알아내기라도 하려는 듯 그렇게 서

로의 눈을 망막 너머의 시신경을 시신경을 타고 올라

가 전두엽 어딘가에서 터지고 있을 스파크를 계속 들여

다보았다 이윽고 두 남녀의 입이 열렸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낮은 목소리가 화음을 내며 울려 퍼

졌다 ldquo몽마르뜨가 좋겠어rdquo 권오권

끔찍했던 면접과 기분 나쁜 불가리놈의 얼굴이 잊힐 정

도로 음식의 맛은 정말 좋았다 고작 음식 때문에 기분

이 나아지는 내 자신에게 정말 어이가 없었지만 어쨌

든 맛은 좋았다 된장국으로 숟가락을 옮기며 슬쩍 앞

의 녀석 얼굴을 쳐다보았을 때 그 녀석도 나를 쳐다보

고 있었다 김희연

3년 전의 얼굴과 꽤 변해있었다 그 당시 철없는 어린

애 같은 얼굴이었는데 지금은 사회인이 되려고 꾸며댄

듯한 모습 물론 3년 전보다 더 나아졌다거나 잘생겨진

것은 아니다 전보다 훨씬 평범한 얼굴이다 ()

그런 그는 어째서 날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어째서 날

기억하고 다가와서 말을 걸고 함께 식사까지 하려 하

는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이 텅 빈 머릿속을 메

운다 엄청나게 망쳐 버린 하루지만 이상하리만큼 멀

쩡한 내가 낯설다 김하얀

그러다 내가 집에 돌아가는 길 문득 미니스톱에 담배

를 사러 들렀다가 ldquo여기 국산담배밖에 없는helliprdquo 음hellip

없단다 가뜩이나 기분도 꿀꿀한데 없다니 빵만 사서

나왔다

빵을 사서 가는 길에 낯익은 얼굴에 걸음을 멈추었다

ldquo너 혼자 빵 먹냐 나도 같이 먹자rdquo 불가리 그놈이었

다 ldquo혹시 너 나 따라온 거야rdquo 기가 막혔다 백가은

어쩐지 불가리 향수 냄새가 난다 했다 ldquo왜 따라왔어rdquo

그랬더니 불가리 그놈이 하는 말

ldquo난 내 집 가는 건데rdquo 믿을 수 없다 수상쩍다 그놈은

나를 앞질러 가더니 우리 집 주인 아줌마네 집으로 들

어가 버렸다 아 저 놈이 집주인 아줌마 아들놈인가

월세 밀렸는데 망할

망할 이상한 하루였다 잊자 오늘 일은 전부 다 잊어

버려야지 방으로 들어오기 직전에 산 맥주 한 캔의 뚜

껑을 따고 들이킨다 캬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가는 듯

시원하다 씻고 자리에 눕는 순간 면접 결과가 나올 때

까지 무엇을 하고 있어야 할지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TO BE CONTINUEDhellip

은 익명 표시입니다

14

이옥란 선생님

캡틴 오 마이 캡틴(captain oh my captain)선생님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

편집자반 학우들은 늘 이분의 얼굴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며

끝마친다 몇 번의 마주침은 덤이다 그분은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도 가깝지만은 않았던 편집자반의 담임 교수

이옥란 선생님 자신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우리를 위한

이야기를 풀어놓으시느라 매일 종례시간이 부족하신 이옥란

선생님께 이번엔 우리가 물었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 일상을 어떻게 보내고 계신가요 선생님의

주말이 취향이 추억이 삶이 궁금하다 편집자반 학생들에게

직접 받은 질문들로 lsquo한 사람rsquo에게 궁금한 것들을 물었다

이 인터뷰를 읽은 뒤 그녀를 한층 좋아하게 되리라고

확신한다

왜 디토 커피에 자주 가시나요

커피가 제일 맛있고 값이 싸고

넓은 창으로 햇빛이 많이 들어와

그리고 주인장들이 공간은 물론이고

손님들과도 잘 어우러지는 것 같아

옥란 선생님께 스카프란

어느 날 발견한 패션 아이템 몇 년 전인가

홍대 앞 가판대에서 우연히 마 레이온 합성의

보라색 스카프를 발견한 이후인 것 같아

왜 고양이를 좋아하시나요 고양이를 키우시나요

고양이가 나를 키웠다고 할 수 있지 시골집 막내였는데

고양이가 친구가 되어주었어 (선생님이 고양이를 닮아

가시는 것 같아요 혹시 키우세요) 둘 있는데 13년쯤 되었나

최근에 읽었거나 읽고 계신 책은

이익섭 저의 『국어학개설』 『말과 사물』 『좌파는

어디에 있었는가』 『논어』 『번역어의 성립』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등 여러 권 들고 다니면서 돌려본다

(국어학개설은 읽는다기보다 공부 아닐까요) 아니야

재미있어

인생의 책을 꼽자면

김훈의 『남한산성』 표지가 핫핑크 색이야 건조하고 힘

있는 남성적인 문체의 마초라고 불리기까지 하는 작가의

책이 핑크색이라니 크기도 아마 46판에 더스트 커버(dust

cover)는 질긴 천의 느낌이고 본문은 재생지인지 무겁지

않고 두께도 딱 손에 잡히는 정도 감각까지 장악한 책이야

몇 권 사서 주변 사람들에게 돌렸어

선생님의 멘토는

이런 질문에 답하게 될 줄은 몰랐네 글쎄 그러고 보면

존경스러운 사람은 있었지 대학 때 문학 동아리 선배였어

양상현 형 (어떤 점이 제일 존경스러우셨어요) 자유롭게

사는 사람이었던 것 얼마 전에 돌아가셨어 이제 조금

실감이 나네 그분은 건축 전공에 시를 쓰고 음악을

즐기고 노는 문화를 나누고hellip 어떤 사태도 회피하지 않고

자유로웠던 사람이었지 앞으로 할 일이 더 많았을 터인데

양상현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졸업 동대학원

박사학위 2002년 대한민국건축대전

초대작가 선정 순천향대 건축학과

교수 재직 민족건축인협의회

의장 설계 작품으로는 lsquo장암리

주택rsquo lsquo녹촌리 조각가의 집rsquo 등

대표 저서『거꾸로 읽는 도시

뒤집어 보는 건축』 2015년

8월 14일 별세

졸업 후 편집자로 일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우리 때는 노동운동이나 농민운동을

했던 대학생이 사회과학 출판사로

진출하는 경우가 많았고 내 친구도 졸업을 해서

출판사에 있었어 그 녀석이 나를 사무실로

초대했는데 반지하도 아니고 그냥 지하였던 것

같아 ldquo옥란이 이리와 봐 이게 뭔지 아니 바로

매킨토시라는 거야 이게 얼마짜린지 아니rdquo

매킨토시 컬러 클래식(Macintosh Color Classic)

웬만한 공책보다 좀 클까 본체가 화면에 같이

붙어 있는 하드웨어를 가진 컴퓨터였지 친구 말로는

300~400만 원 한다고 했어 20년 전이니 당시로는

큰돈이지 교정지를 보여주더니 마치 lsquo음 너는 아직 이런 거

모르지rsquo라고 하는 듯이 ldquo잠깐만 언니가 뭐 좀 할 테니까

잠깐 기다려봐 하hellip 이거 띄어쓰기 어떻게 해야 하려나 이게

전문용어라 통일을 해줘야 하는데helliprdquo 하던 잘난 척이 기억이

나네 그렇게 출판사를 접했지 문학 동아리를 하느라 알게

된 선생님들 선배님들도 여럿 출판사에들 계셨어

편집자로 일하셨을 때 어떤 분야를

편집하셨나요

하다 보니 주로 예술 서양 미술 분야였고

출판사는 학고재 예경 마로니에북스까지

그런 기회가 나한테 왔고 재미있었어

전공이 그쪽이 아니었기 때문에 공부를

해야 했지

지난 서울출판예비학교생활 중 특별히

기억나는 사람이나 사건이 있다면

8기 졸업식 날 남학생 셋이 ldquo저는 출판학교에

와서 모든 것을 얻었습니다rdquo 그러면서 흑흑 우는 거야

누군지 얘기하면 창피하겠지 남학생들이 울어서 애들이

알고싶어 편집자반

15

완전 눈물 바다였잖아 (우리 반 오빠들이 운다는 건 상상할

수 없네요) 다음 해에는 애들이 완전 유머 코드여서 웃다

끝났지

출판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된 계기나 동기는

무엇인가요

나는 8기부터 시작했는데 7기 담임이던 김장환 씨가 나를

불렀어 공동 담임을 해달라고 lsquo그러지 뭐rsquo 이렇게 시작했지

직장은 2008년도까지 다녔고 프리랜서로 활동하면서

여기저기서 강의를 하고 있었어 한겨레 문화센터에도

23년쯤 있었지 (편집자보다 이렇게 선생님으로 있는 게 더

즐거우세요) 지금은 진짜 만들고 싶은 책 함께 작업해보고

싶은 저자 그런 게 아닌 한 직업으로 신간을 꾸준히 내는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당신들은 눈이 반짝반짝해서 업계에 들어와야겠다고

준비해서 오잖아 그 친구들이 1년차 3년차 되는 것을

지켜보고 있으려니까 내가 그 나이쯤 사회생활을

시작해 고민했던 지점이 보이는 거지 그 때

이걸 알았더라면 하는 안타까움이 있어서

여러분들이 애틋해지지

요즘 최대의 관심사는 무엇인가요

저녁에 후배들에게 가르칠 강의를 하다

보니 국어 공부의 필요성을 여실히 느끼고

있어 출판 동네에서 20년 넘게 일한 사람이

공부해온 것을 한 번 정리해서 후배들한테 줄 필요도

있겠구나 싶고 (뭔가 일 얘기가 아닐 줄 알았는데요

하하)

은퇴 후에 무엇을 하고 싶으신가요

오늘은 말이 절로 나오는 걸 하하 마당 있는 시골집 텃밭을

일구며 역사에 길이 남을 인간과 세상을 통찰하는 대작

소설을 발표하겠다 (와)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이 되고 싶으신가요

다시 태어나고 싶지가 않아hellip(웃음) 지구에서는 내

대에서 멸종하기로 했다

저희들에게 속 시원하게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자신 있게 해라

생각해보면 다들 자기가 못났어 키도 좀 더 컸으면

좋겠고 외모도 마음에 안 들고 내가 저 때 저렇게

했으면 지금 달라졌을까 부럽기도 하고

그런데 사실 부질없는 거거든 세상 사는

힘이 실력에만 있는 게 아니고 태도의 문제가 더

클 때가 많아 내 것이 아닌 것에 목매고 있을

필요가 없어 신입사원으로 전혀 모르는 곳에

뚝 떨어졌을 때 저들의 세계 속에 혼자 쏙

들어간 기분이니까 일단은 주눅이 들지

하지만 거기서 살아가야 하지 않겠어

둘러보면서 아 저기가 화장실이구나 사람들은

이런 걸 이렇게 하는구나 파악하고 나면 좀

수월해지잖아

마지막으로 대망의 이상형 월드컵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정우 주원 김수현 유아인 이렇게

4강전으로 시작하겠습니다

(하정우와 주원 중에서는 누가 더 좋으세요) 하정우지

주원이 최근에 좋아지긴 했는데 아직도 하정우를 따라올 수

없어

(그럼 김수현유아인 중에서는요) 유아인이지

(너무 확고하셔요 드라마 lt밀회gt 보셨나요) 집에선 케이블

방송도 안 나오고 관심 갖게 되었을 땐 너무 유행이라

안보고 말았지 대신 영화 lt완득이gt는 봤다

(이제 결승인데요 마지막으로 하정우와 유아인은요)

아인이는hellip 나한테 좀 과분한 것 같아(웃음) 하정우가 삐질

것 같은데 그래서 둘 다 잃는 거야hellip

편집자반 11기 김수진 이상화

lt베테랑gt의 악랄한 재벌 2세유아인

lt프로듀사gt의 어리버리 신입PD

김수현

lt용팔이gt의 천재 외과의사

주원

lt 암 살 gt 의 순 정 마초

하와이 피스톨하정우

하정우

16

한대웅 선생님

『동백꽃』의 주인공 같은 그 남자착하디착한 순하디순한 한대웅 선생님의 속마음

좀처럼 화내시는 일도 없고 허허 웃기만 하시고hellip 하지 못한

말들을 땀으로 발산하듯 여름이면 온몸이 열정으로 흠뻑

젖으시는 분 세상 어디에도 없을 착한 남자 마케터반의

한대웅 선생님이다 그에게 던진 몇 가지 질문에 돌아온 것은

가장으로서의 고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 아직도 앳된

소년 같은 순수함이 묻어나는 답변들이었다 이제 그를 좀 더

깊게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평소에 칼라(collar) 티셔츠를 즐겨 입으시던데

좋아하시는 옷인가요

좋아한다기보다는 제 딴에는 편하게 입을 수 있는 듯해서

즐겨 입고 있습니다 또 아내가 이런 종류의 옷을 많이

사주기도 하고요

선생님께 lsquo출판rsquo이란 무엇인가요

출판은 lsquo꿈을 이루는 판도라의 상자rsquo lsquo내가 가진 능력에 가장

맞는 일rsquo입니다

출판을 업으로 삼지

않으셨다면 어떤 일을

선택하셨을까요

모르겠네요 아마도 운명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요 다만 다음과

같은 3가지 생각은 해보았습니다

첫째 고등학교 시절 성적이 조금

더 좋았다면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해서

지금쯤이면 텔레비전이나 영화에 나오는 큰 전투함의

함장이 되지 않았을까요

둘째 대학교에 입학하지 못했다면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로 이민을 가서 장사를 하거나 농부로 농장을

운영하면서 그곳 사람으로 국적을 바꾸고 살고 있지

않을까요 고등학교 3학년 때 대학교 입학 시험에

떨어지면 다른 나라로 가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다는

마음의 준비를 했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 모 일간지에 실린

해외에서 성공적인 삶을 사는 한국 사람들에 관한 기사를

꼼꼼하게 읽었었거든요

셋째 대학교 3학년이나 4학년 때 신춘문예까지는 아니라도

대학교 교내 문학상 정도를 받았다면 아마도 그 결과에

탄력을 받아 시나리오 작가나 연극 연출가의 길로 가려고

하지 않았을까요

ID와 블로그에 lsquo봄rsquo이라는 단어가 들어있는데 봄을

좋아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그 ID를 만들 무렵 저의 미래는 꽤나 불확실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바꿔 말하면 어떻게

돈을 벌어야 하고 어떻게 자아 성취를

해야 하는지가 불확실하고

힘들었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lsquo봄rsquo이라는

단어를 좋아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누구나

알다시피 봄은 겨우내

얼어 있던 것들이

새롭게 싹을 틔우고

새롭게 기지개를 펴는

계절이죠 물론 봄

자체가 주는 느낌도

좋고요 그래서 lsquo봄rsquo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던 것

같습니다

블로그는 서울출판예비학교에서

일을 시작한 후 만들었습니다

블로그에 lsquo봄바람rsquo이라는 의미를 부여한

것은 ID를 만들던 때의 생각이 이어진 것이겠지요 요즘에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이 많이 사라진 것 같습니다 만약

앞으로 블로그나 ID를 만든다면 아마도 lsquo여름rsquo 혹은 lsquo풍성함rsquo

아니면 lsquo내가 원하는 세상을 상징하는 어떤 것rsquo을 이름으로

사용할 것 같습니다

편집자로 첫 시작을 하셨는데 나중에 출판 마케터로

일하게 된 동기를 알고 싶어요

시장 상황을 분석하고 이에 맞게 마케팅 계획을 세우고

사람이나 집단을 만나고 힘을 합쳐 뭔가 새로운 결과를

만들어 내는 일이 재미있었습니다

은퇴 후에 꿈꾸시는 삶이 있으신가요

아직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20대와 30대

초반에 꿈꾸던 것들을 lsquo은퇴 후에 여유가 생긴다면 이것들을

해볼까rsquo라고 간혹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현재겠죠 출판에서 뭔가를 이루려고 열심히 계획하고

실행하다 보면 은퇴 후의 삶도 더 풍요로워지지 않을까요

알고싶어 마케터반

17

일하실 때 다뤘던 책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무엇인가요

입사 초기 편집을 하거나 시장조사를 하고 제가 출간 여부에

대한 판단을 내렸던 책들이 기억납니다 『펠레』 자서전은

제가 편집자로 있을 때 출간했던 책인데 주요 일간지의

서평란 메인을 장식했던 책입니다 출간 시점을 맞추기 위해

촉박한 기간 동안 밤새가며 책을 만들었습니다 출간 시점에

대한 판단이 정확히 맞았고 그 결과 기대 이상으로 많은

서평을 받았던 책입니다

서울예비출판학교 선생님으로 오신 계기를

알고 싶어요

전에 다니던 출판사를 그만둔 후

개인적으로 뭔가를 해보려고 고민

중이었습니다 그러나 능력이

부족하다 보니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았죠 그러던 중에

출판학교에서 일해 볼 것을

제안 받았고 저도 출판학교

학생들처럼 면접을 보고 이

학교에 오게 되었습니다

일을 하게 되었을 때 매우

즐거웠습니다

다시 출판사 마케터로 돌아갈

생각이 있으신가요

아니오 이유는 2가지인데 첫째는 제 나이가

48세입니다 다른 업종도 그렇지만 출판 산업에서도

48살에 마케터로 직장인의 생활을 이어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죠 정말 현실적인 고민이죠 게다가 출판학교에서

여러분과 소통하며 제 지식을 전수하는 일이 재미있습니다

물론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언젠가 저만의 꿈을

찾아갈 수 있겠죠

평소 몇 권의 책을 읽으시나요 최근 읽은 책 중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요

예전에 많이 읽을 때는 1주일에 2권 정도 읽었습니다

황석영의 『장길산』과 홍명희의 『임꺽정』 이문열의

『삼국지』를 읽을 때 짬짬이 쉬는 시간을 비롯해 지하철에서

보내는 시간까지 거의 모든 시간을 책을 읽으며 보냈습니다

요즘에는 1달에 1~2권 정도 읽는 것 같네요 최근 읽은

책 중에 기억에 남는 책은 『내 아이와 어떻게 대화할

것인가』(율리아 기펜레이테르 저 써네스트 2006)와 『내

아이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율리아 기펜레이테르

저 써네스트 2009)입니다 제목만으로도 왜 이 책을

추천하는지 금방 눈치 챌 수 있을 것입니다 아이가 둘

있는데 첫째는 15살 딸이고 둘째는 10살 아들입니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lsquo어떻게 하면 아이와 싸우지 않고

윽박지르지 않고 아이의 자존감을 높여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성실하고 삶의 열정과 꿈이 넘쳐나는 아이로

키울까rsquo 같은 고민을 항상 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단비처럼 다가왔습니다 위의 2권의 책을 읽고 몇

가지 중요한 것들을 배웠습니다 아이와 어떻게 소통하고

어떻게 대화해야 하는지 아이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등등 이전에 『부모와 아이 사이』(하임 G 기너트

등 저 양철북 2003)를 읽고 아이를 이해하는 법에 대해

큰 인상을 받았는데 이 책도 그 연장선에서 저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아들과 딸을 좀 더 이해하게 되고 그

결과 아이들에게 화를 내거나(저도 나약한 인간인데 화가

날 때가 심심치 않게 있거든요) 아이들의 긍정적인 싹을

본의 아니게 꺾어 버리는 경우가 줄었다고 할까요 게다가

이 책은 lsquo부모와 아이 사이rsquo만이 아니라 lsquo친구와 친구 사이rsquo

lsquo회사 내부 구성원 사이rsquo에서 소통하는 데도 많은 영감을

제공합니다 출판학교 학생들과 소통할 때도 이해의 폭을

넓혀주고 긍정적인 소통을 하는 방법을 제공해 줍니다

이제 수료를 앞둔 마케터반 학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으시다면

개인별로 처한 처지와 조건에 따라 다르겠지만 다음과 같은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 연인을 사랑하듯 출판에 대해서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보세

- 이 길이 나에게 최선의 길인가 생각해 보세요

- 목표를 세우고 지금부터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한 후 그것을 어떻게 이루어 나갈 것인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보세요

저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스스로의 내면을 단단하게 할 중요한

질문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앞으로도 끊임없이

새로운 답을 찾아나갈 질문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케터반 11기 이장열 이창환

18

선생님은 주말에 뭐하세요

무조건 가족과 함께hellip

만약 편집 디자인을 안 하셨다면 무슨 일을 하고

계실까 궁금해요

어찌 됐든 개인 사업자로 살았을 듯 윗사람 비위 맞추는

것을 너무 못하므로hellip

선생님 주량이 어떻게 되세요 주사가 있으세요

몸 상태 좋고 안주 많이 먹으면 1병(클래식으로)

좋은 출판 디자인을 생각한다

심우진middot안광욱 선생님

lsquo멋rsquo이라는 것이 폭발한다뼛속까지 디자이너스러운 심우진 선생님

멀리서도 눈에 띄는 큰 키에 멋들어진 베레모 디자인반의

심우진 선생님 되시겠다 서울출판예비학교에서 lsquo멋rsquo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가끔은 조금 키 큰 학생처럼 학생들

속에 잘 어우러지는 사람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모습은

여기까지다 그를 조금 더 알고 싶다 지금까지의 그를

만들어왔을 lsquo심우진의 생각들rsquo이 궁금했다

선생님은 무엇을 드시고 그리 멋지시나요

학생들의 사랑 밥 김치

일본 유학길에 오르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lsquo동아시아rsquo lsquo근대rsquo가 당시 나의 화두였으므로 그리고

스기우라 고헤이 선생을 뵈러

첫 직장을 다녔을때 일의 강도()나 다니는 동안

마음은 또 어떠셨는지

출판 쪽 첫 직장은 lsquo정디자인rsquo인데 lsquo나는 왜 이렇게 디자인을

못할까rsquo 답답해했던 기억이 있어요 그러나 매우 즐거웠고

술도 자주 마셨죠 아직도 당시의 OB들과 가깝게 지내요

lsquo둥지rsquo 같은 곳이죠

선생님께서 생각하는 완벽한 판면이란

디자이너의 삶의 방식과 콘텐츠의 삶의 방식이 녹아든 판면

선생님의 피로회복 방법은

알고싶어 디자인반

19

디자인반의 히어로좋은 출판 디자인을 생각한다 안광욱 선생님

여자 화장실 앞에 있어 인파로 북적대는 디자인반 교실을

학생들과 함께 굳건히 지켜온 분 디자인반 학생들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애정공세를 아끼지 않는 분 안광욱

선생님에게 물어본 4가지

디자이너로서 첫 직장을 다닐 때의 마음이

어떠셨나요

잘하고 싶었는데 못해서 힘들었지 사수에게 하루 서너

시간씩 야단맞으면서 했다오 매일 2호선 양화대교에서 뛰어

내리고 싶었는데hellip 이 부분은 내일 수업 때 얘기해줄게^^

선생님께서 생각하는 좋은 출판 디자인이란

세상을 향한 사랑과 희망이 듬뿍 담긴 디자인

출판 디자인을 안 했다면 지금 무슨 일을 하고

계실까요

모르겠네 그냥 선녀 옷 훔치는 나무꾼이 되어 있을 듯^^

어떤 주사가

있으신지 궁금해요

말이 조금 더 많아지고 장소 불문 쿨쿨 자 특별한 주사는

없는 듯

디자인반 11기 이소현 백가은 사공예원

디자

인 사

공예

20

편집자반 김영준 학우가 그린

『이 외로운 사람들아』 일러스트

기억에콕

수업 후기

ldquo우리에게는 lsquo일탈rsquo이 필요합니다rdquo

잠깐 딴 짓을 하는 사이에 귓가에 들려온

한 문장이 나를 사로잡았다 배는 부르고

따 사 로 운 햇 살 에 잠 이 쏟 아 지 는 시 간

오후 1시 30분 시간을 칼같이 맞춰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선 그는 딱 봐도 지루하고

고리타분해 보이는 첫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순간 눈으로 들어온 이미지는 뇌로 흘러갔고

뇌는 망설임 없는 확신으로 귀에 명령을

전달했다 그렇게 귀는 이미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내 들려올 그렇고 그런 뻔한

이야기에 대하여

눈의 판단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의 한마디

한마디는 파격이었다 아니 어쩌면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였지만 누구도 자신 있게

내던지지 못하는 말들을 서슴지 않고 내뱉는 그

거침없음에 신선함을 느낀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의 관심을 돌려놓았던 lsquo일탈rsquo에 대한 그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lsquo일탈을 하라rsquo는 말이

lsquo제멋대로 하라rsquo는 의미가 아니라 어떤 규칙을

벗어나는 행위를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다르게

생각하는 방식을 몸으로 익히게 된다는 것

새로운 것을 생각해내는 창의성이라는 힘은

당연히 새로운 경험에서 나온다는 것이었다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니 강의를 듣던

친구들의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때 보고 들었던 그의 말과 행동이 우리에게는

딱 딱 한 강 의 실 에 서 느 끼 는 새 로 운 경 험

lsquo일탈rsquo이었다

그 와 의 만 남 은 계 속 이 어 졌 다 이 곳

서 울 출 판 예 비 학 교 에 입 학 한 이 후 로 는 좀

더 완 벽 한 일 주 일 단 위 로 시 간 이 흐 르 기

시작했는데 매주 쌓여가는 새로운 배움 뒤에는

수많은 물음이 불쑥불쑥 솟아났고 그는 마치

예상을 했다는 듯이 일주일에 한 번씩 나타나

우리의 설익은 궁금증을 해소해주고 떠나갔다

첫 만남에서는 책이라는 대상과 책을 대하는

편집자의 자세에 대해 이야기하며 큰 그림을

그려주었고 다음엔 저자와의 관계 맺기 그

다음엔 스스로 만들어 가야할 편집자의 자기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담백하게 들려주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네 번째 만남이었다

누구도 쉽게 이야기하기 어려운 완벽하게

솔직해지기는 더더욱 어려운 자신의 좌절과

실패를 그는 담담하고 진솔하게 소개해주었다

모든 성공에는 대개 7할의 실패가 전제되어

있기 마련인데 성공에 이르기까지 거치는

우 리 가 lsquo실패rsquo라고 명 명하는 것들이 사실

진짜 실패가 아니라 성공의 다른 이름이라는

그의 말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성공도 실패도

어 느 한 지 점 에 서 내 리 는 판 단 인 것 이 고

결 국 성 장 하 고 성 숙 한 다 는 것 은 성 공 과

실패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lsquo차이rsquo를 얼마만큼

발견하느냐 하는 것에서 결정된다는 그의 말이

가슴을 뜨겁게 했다 비로소 lsquo편집자rsquo로서가

아닌 한 lsquo사람rsquo으로서의 그가 보이기 시작했다

담담하게 말을 하고 있지만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아프고 쓰린 기억을 후배들에게

들 려 주 는 그 에 게 서 진 심 이 전 해 져 왔 다

사랑하는 일에 대한 함께 걸어갈 동지들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 참 고마웠다

어느덧 마지막 만남이 찾아왔다 한 권의

책을 만들면서 진행했던 편집의 과정을 예로

실 제 적 인 이 야 기 를 우 리 에 게 마 지 막 으 로

들려주었다 편집의 능력은 지식과 정보에서

나온다는 것 그것은 단숨에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 꾸준히 쌓아가야 한다는 것 그래서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의 문제라는 것을 경험을

근거로 자신 있게 말해 주었다 이미 지나온

과거의 결과 대신 앞으로 걸어갈 길에 대한

희망을 들려주어서 그게 참 고마웠다

편집자반 일탈이 주는 파격 우리가 낳을 lsquo새로운 책rsquo과 편집자선완규 선생님과의 다섯 번의 만남이 키운 생각들

21

그 가 우 리 에 게 마 지 막 으 로 이 야 기 를

들려주었던 그날 이후 석 달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났다 나는 여전히 같은 강의실에 앉아

앞서 길을 걸어간 선배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고 조금씩 가까워지고 밝아져가는 내 앞에

놓인 길에 대해 생각한다 그러다 문득 마음이

무거워지고 막막해질 때면 종종 그의 말들을

떠올려 본다 그리고 그 생각의 끝에서 마음을

의지하며 함께 이 길을 걸어갈 따뜻한 선배가

하나 있다는 위로 한 줌을 발견한다

ps 선완규 선생님 고맙습니다 보고 싶어요

편집자반 11기 성준근

마케터반 강한 수면욕 환상과 환기

판형과 종이를 예술로 편입시키려는 영업자다빈치 출판사 박성식 대표 특강 후기

9월 23일 평소보다 점심을 많이 먹었던 날이다 잠을 며칠간 못 자 피곤했다

오후 1시 30분이 살짝 지나서 다빈치 출판사 박성식 대표의 특강이 시작됐다

다빈치 대표님은 처음 뵐 때부터 남다르셨다 서울출판예비학교 입학 면접에서

여자 술 담배를 각각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보셨다 lsquo솔직함을 어필해야

하는 순간인가rsquo하는 생각에 직설적으로 답했지만 lsquo더 문학적으로 얘기할 수

있었는데rsquo라는 후회를 안고 돌아왔다

마음과 다르게 첫 번째 시간은 정신없이 잠이 쏟아졌다 눈을 감고 귀 기울였지만

턱을 괸 채 버티는 동안 50분이 지났다 대표님께 캔 커피를 하나 드리고 맞이한 두

번째 시간 그 한 시간 동안 나는 현실 옆의 어떤 이상 내지는 환상을 본 것 같다 그동안

듣던 강의들을 놓고 lsquo이상적인 관점이다rsquo 혹은 lsquo현실적이다rsquo라고 구분했던 판단의 폭

자체가 좁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성식 대표님은 내 머리에 있던 lsquo책rsquo에 대한 인식을 전복시켰다 자본주의 출판의

몰락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시작됐다는 말 출판 기본 특성인 다품종 소량 생산은 돌아올

것이며 다품종 소량 생산을 넘어 다품종 소량 lsquo고급 생산rsquo을 추구하고 싶다는 말은 나를

달뜨게 했다 주류에 반하는 사고를 가진 중년의 개성과 내공에 교실 풍경이 환기됐다

교육 수단으로 책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지만 책은 그만큼 사회적 의무와 희생을

짊어져왔다 출세와 공부 앞에서 책이 가진 기호(嗜好)성은 변두리로 내몰렸다 책을

읽어야만 제대로 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분위기는 옳지 않다 독서는 성향의 범주지 성역이

돼선 안 된다 정보와 지식의 전달은 모바일 등에 넘겨주고 종이책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공동체로 돌아와야 한다 그게 원래 자리라는 대표님의 주장이 새롭고 강렬하다

자본주의 3대 원칙인 lsquo더 빨리 더 많이 더 싸게rsquo 체계는 표준화와 규격화를 동반하며

매우 효율적이다 현재 사용하는 종이는 자본주의 원칙에 최적화돼 있다 그러나 대표님은

인쇄기계로 소화하지 못하는 질감과 전혀 다른 발색을 지닌 lsquo종이rsquo에 주목했다 그 종이로

콘텐츠 종이 판형이 완벽하게 들어맞는 예술서를 만들고 시장을 설득한다면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책 판매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전했다 종이 자체가 책의 예술성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한지(韓紙)를 예로 들면서 훌륭한 텍스트와 이미지를 한 차원 끌어올리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많은 부수를 팔아야 성공한 출판 많은 부수를 파는 것을

목표로 하는 시대는 저물고 있다 기존 유통과 판매 방식

안에 갇혀서는 불황에 매몰될 뿐이다 소량의 고급화된

책을 꿈꾸는 것과 전시회를 책과 결합하는 것도 다른 길을

물색하는 과정이다

대표님은 10년 전부터 lsquo이 원고는 내가 누구보다 잘

만들겠다rsquo lsquo이 원고는 내가 못하면 누구도 못할 것 같다rsquo라는

생각이 든 책만 출간을 진행했다고 한다

강의 중간 자신의 독특한 철학을 전달하는 것에 대해 가벼운

염려를 하셨지만 이론적이고 실용적인 분야에 몸담더라도

예술적 사고의 유연성은 필요하다고 본다 돈과 인문정신을

구분하면서 필요할 때 양쪽에서 자극 받고 차용하는 것이 마케팅의 융통성과 힘을 기르는 길일 것이다

마케터반 11기 이창환

편집자반 김영준 학우가 그린

『이 외로운 사람들아』 일러스트

박성식 대표가 기획한 lsquo오름rsquo전

22

하늘

습탁은 농도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하늘

습탁은 농도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이 글은 심우진 선생님의 탁본 세미나 수업에 대한 우리들의 즐거운

기록이다 탁본은 습탁(濕拓)과 건탁(乾拓) 두 종류로 구별된다

습탁은 나타내고자 하는 물체 위에 물을 묻힌 후 종이를 그 위에

밀착시키고 먹물 묻은 솜방망이로 가볍게 두드려서 물체를 표현하는

방법이다 물체의 패인 부분을 제외하고 볼록한 부분의 모양대로

종이에 먹이 묻어 문자나 문양이 드러난다 건탁은 이름 그대로 물을

사용하지 않고 마른 상태의 먹인 고형묵(固形墨)을 사용한다 우리는

각자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사물과 자연을 이용해 탁본 작품을

만들고 서울출판예비학교 꼭대기 층에서 작품을 공유했다

디자인반 이 시간을 그대로 탁본할 수 있다면심우진 선생님의 탁본 세미나

저는 신문지를 구겨서 해봤어요

응 그런데 이건 방바닥 같은데

방바닥까지 묻어 나와 버렸네요

[학생들 하하하]

저는 일단 큰 나무 기둥을 떠봤고요

오솔길의 짚도 해보고 저희 집 바닥과

벽면도 신기해서 떠봤어요 집 벽면 중에

대리석도 있고 특이한 벽면이 많거든요

부잣집인가 보네

[학생들 깔깔깔]

승연

심우진 선생님

승연

승연

심우진 선생님

이건 파프리카인데 저희 집 개가 완성한 종이를 찢었어요

[학생들 하하하]

좀 작고 납작한 파프리카를 반으로 잘라서 습탁했어요 또

이건 철조망인데 용 비늘처럼 나와서 재밌었어요 아나콘다

같기도 하고 철조망이 날카로워서 습탁하니 종이가 자꾸

찢어져서 다시 하게 됐어요 근데 이거요hellip 남자친구

있으면 커플끼리 한 번 해보세요 한 명은 잡아주고 한 명은

습탁하고hellip 되게 로맨틱 성공적

자랑하는 거니

[학생들 깔깔깔]

수빈

수빈

심우진 선생님

혜민

정묵

처음에 나뭇잎이 세세하게 잘 나올 줄 몰랐는데 그

줄기의 질감이 잘 나왔고 버려진 타이어를 끌어서

생긴 모양으로도 습탁을 했는데 생각보다 잘 나와서

막상 찍어보면 생각과 다르다는 것을 느꼈어요

저도요 결과물이 뚜렷하게 안 나올 줄 알았는데

디테일이 잘 나타나 있었고 입체를 평면적으로

찍는 것 자체가 재밌었어요

수정

저는 빗자루를 해봤어요 너무 얇아서 안 나올

거라 생각했는데 빗자루 문양이 잘 나와서

재밌었고 머리카락도 해봤는데 머리카락은

끝 부분이 잘 나오는 편이에요 위쪽은 다

뭉쳐있는데 끝 부분은 펼칠 수 있으니까요

23

저는 결이 얇은 것들을 뜨는 것이 재밌었어요

머리카락처럼요 머리 긴 사람에게 부탁해서

눕히고 했어요 그리고 이건 얼굴인데요

처음에는 그냥 했는데 얼굴은 입체를 살리려면

스케치하듯 떠야 되요 결국 명암으로 입체감

조절을 해야 되죠 코가 너무 입체적이라 특히

힘들었어요

누구 얼굴이야

우리 언니hellip

[학생들 우와]

가은

심우진 선생님

가은

하얀

음각이 나왔을 때 너무 좋았고요하늘

습탁은 농도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소리

건 탁 보 다 는 습 탁 이 농 도 조 절 하 는 게

희 한 해 서 재 밌 었 어 요 농 도 조 절 이

관 건 이 거 든 요 먹 과 물 의 배 합 과

솜방망이가 먹물을 얼마나 흡수하는지 그

흡수량이 중요하고요

윤미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꽤 많은데 만져보면서 건탁을 뜨니까 좋았어요 전에

습탁할 때는 시멘트 벽 같은 걸 하다가 나뭇결을 하니까

살아있는 느낌이었어요 생각했던 것처럼 나와서

좋았고 솔방울이나 나뭇잎 같은 섬세한 것들은 제대로

나오지 않아서 아쉬웠어요 섬세한 것들은 습탁으로

해봐야겠어요 그래도 다양한 나무를 건탁해봐서

만족해요

소현

저는 일상적인 것들로 습탁을 해봤어요

처음에는 단순하게 오돌토돌한 느낌만

있 을 줄 알 았 는 데 색 다 른 느 낌 이 나 서

재밌었어요

탁본 세미나를 마치고 그 다음 주에 지하 강당에서 촬영하는 시간을

가졌다 촬영 후에 보정도 했다 나뭇잎의 결 무늬 타이어 자국

그리고 사람의 머리카락까지도 좋은 디자인의 재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보았고 나누었다 건탁과 습탁의 장단점을 이 수업으로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심우진 선생님의 이번 탁본 수업도 지난 활자

수업처럼 지식 습득은 물론이고 경험까지 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 시간들이 앞으로 출판 디자이너로서의 감각을 더 풍요롭게 해 주지

않을까

디자인반 11기 사공예원

하얀

음각이 나왔을 때 너무 좋았고요

습탁은 농도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솜방망이가 먹물을 얼마나 흡수하는지 그

흡수량이 중요하고요

윤미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꽤 많은데 만져보면서 건탁을 뜨니까 좋았어요 전에 꽤 많은데 만져보면서 건탁을 뜨니까 좋았어요 전에

이건 파프리카인데 저희 집 개가 완성한 종이를 찢었어요

[학생들 하하하]

좀 작고 납작한 파프리카를 반으로 잘라서 습탁했어요 또

이건 철조망인데 용 비늘처럼 나와서 재밌었어요 아나콘다

같기도 하고 철조망이 날카로워서 습탁하니 종이가 자꾸

찢어져서 다시 하게 됐어요 근데 이거요hellip 남자친구

있으면 커플끼리 한 번 해보세요 한 명은 잡아주고 한 명은

습탁하고hellip 되게 로맨틱 성공적

자랑하는 거니

[학생들 깔깔깔]

24

9시 30분 합정역 1번 출구 앞

ldquo누나rdquo 소리에 쳐다보니 반가운 공 총무의 얼굴이 보였다 정류장

앞으로 길게 늘어선 줄에 합류하여 파주로 날 데려다 줄 2200번

버스를 기다리고 있으니 반가운 얼굴들이 계속 나타났다 한 대의

버스를 보내고서야 겨우 2200번 버스에 탑승해 파주로 출발할 수

있었다

10시 15분 파주 lsquo다산교 앞rsquo 정류장 하차

4개의 정류장 총 57분이 걸린다고 알려준 N사 지도 어플의 정보와는

달리 30분 만에 파주에 도착했다 일찍 도착해 먹을 것을 찾아 헤맨

예비 마케터들은 편의점에서 주린 배를 채웠고 lsquo지혜의 숲rsquo을 살짝

염탐하며 11시까지 시간을 보냈다

11시 05분 보진재 2층

1912년 설립되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인쇄소인 보진재 관계자

분이 나와 간단히 인사 말씀을 하고 각 반의 인솔자를 소개해주셨다

마케터반의 인솔자는 서동관 과장님 디자인반 편집자반 마케터반

순으로 견학을 시작했다

11시 15분 보진재 견학 시작

제일 먼저 본 곳은 제판실이었다 필름 인쇄가 줄어들고 CTP로

대체되는 추세지만 어떤 분들은 여전히 필름 작업을 하고 계셨다

이유를 물어보니 서동관 과장님은 예전 필름이 남아 있기도 하고

출판사에 따라 필름을 고집하는 곳이 있다고 하셨다

한번에 5도 인쇄가 가능한 기계를 보는 중에 서 과장님이 말씀하셨다

ldquo한 유닛(unit)당 23억 정도 해요rdquo 그렇다면 유닛 다섯 개가

돌아가고 있으니 적어도 10억짜리 기계라고 내 눈에 보이는 건 그냥

낡고 큰 기계인데 10억이 넘는다니 놀랐다 또 과장님께서 자랑스레

말씀하신 한 가지 잉크 농도 조절을 자동으로 하는 기계가 보급된

곳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었다 원래는 사람이 눈으로 보고 수정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재판을 찍을 경우 초판과 동일한 색상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있지만 보진재는 기계가 자동으로 조정해주어 수월한

작업을 할 수 있다고 하셨다

매염실도 보고 제본실도 구경했다 인쇄된 종이를 접지하고 제본을

마친 후 마지막으로 제단을 하면 책이 완성되어 나왔다 그 모든

과정을 보고 난 후 서 과장님이 건넨 완성된 책의 무게는 보통의

그것보다 조금 더 무겁게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윤전실이었다 견학 당일은 작업이 없어서

비어있던 윤전실이지만 윤전실이 주는 무게감은 컸다 윤전실은

롤(roll)로 인쇄하는 곳으로 8개의 롤이 양면 인쇄를 하고 건조와

접지까지 한 번에 가능한 기계도 있었다 대량생산을 위한 곳으로

주로 교과서나 EBS 학습지를 인쇄한다고 하셨다

12시 20분 견학 끝

1시간을 조금 넘긴 견학을 끝내고 밖으로 나오니 코가 따갑고 목이

말랐다 기계가 먼지를 빨아들여준다고는 하지만 수없이 많은

종이가 존재하는 공간에서의 종이 냄새는 강력했던 것이다 책이

제작되는 과정은 실제로 보니 다양하고 복잡했다 자동화가 많이

되어있지만 사람의 손길 없이는 절대 완성될 수 없는 과정들을 보며

책이 완성되기까지의 노력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lsquo책이 어떻게

만들어진다rsquo를 배우다가 lsquo책이 이렇게 만들어진다rsquo를 보니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예비 출판 마케터의

길로 들어선 후에 새로운 것을 보고 배울 수 있었는데 보진재 견학은

그 중에서도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책을 완성시키기 위한 모든 과정이

저마다의 몫을 하고 있었다 서울출판예비학교 졸업 후 출판계에

들어섰을 때 나는 과연 어떤 몫을 할 수 있을까 남은 2개월을 조금은

더 열정적으로 보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마케터반 11기 최다은

1 일일탈

학교 밖 견학 후기

피부로 와 닿는 책의 감촉 책의 냄새 책의 소리 보진재에서 책이 인쇄되는 과정을 만나다

필름과 인쇄판이 만들어지는 과정

25

우리가 이제 각자 편집자 마케터 디자이너가 되어 책 만드는 일을

시작하면 우리의 책은 이곳에서부터 그 lsquo탄생rsquo을 시작할 것이다 책의

근간이 되는 종이가 만들어지는 곳 한솔제지 공장에 다녀왔다 학기

초에 책을 파는 서점을 견학한 뒤 그 다음으로 출판사 종이에 활자를

찍어내는 인쇄소 그리고 마지막으로 lsquo종이rsquo를 만드는 제지 공장을

찾은 것이다 책이 만들어지는 순서대로라면 우리가 다녀온 순서를

거꾸로 해서 다녀왔어야 했지만 우리는 반대로 실제 과정을 거슬러

올라간 것이다 이렇게 거슬러 올라가는 과정에서 오히려 편집자란

직업에 겸허해질 수 있었다 가끔은 편집자가 책을 만드는 모든

과정 위에 군림하는 것 같이 느껴지지만 책의 물성을 만들어내는

거대한 기계 앞에서 우린 한없이 작아지기도 한다 lsquo한 권의 책rsquo이

만들어지려면 이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함을 이해해야 했다 이렇게도

복잡하고 힘겹게 만들어지는 책의 가치를 한 번 더 깊이 생각하게 된

계기였다 책이라는 건 의미가 담긴 조각들의 집합체이자 종이를

보기 좋게 물성화한 것 이론적으로야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눈으로 보고 느끼는 것과는 천지차이다

날씨마저 좋았던 9월 11일 평소보다 한 시간이나 이른 8시

30분에 세 반 학우들은 눈도 제대로 못 뜬 채 집합했다 대전까지

간다니 마치 여행가는 것 같은 살짝 들뜬 기분까지 안고 아침도 못

챙겨먹고 나왔을 우리를 생각해서 빵과 우유까지 준비한 한솔제지

측의 세심한 배려에 감동했다 배도 채우고 부족한 잠도 보충해가며

2시간 넘게 달려 신탄진 공장에 도착했다 도착하자 보이는 우리를

환영하는 현수막에 2차로 감동했다 우리를 위해 정말 많은 준비를

하셨구나 느낀 순간이었다

신탄진 공장 강당에 들어가서 간단한 공장 소개를 먼저 들었다

그리고 뒤이어 종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경청했다 수업 때보다

학생들의 집중력이 더 높아 보였던 건 내 착각이었길 종이는

1퍼센트의 펄프와 99퍼센트의 물로 이루어진단다 그래서 전반적인

공 정 의 대 부 분 은 물 을 처 리 하 기 위 한 과 정 이 나 다 름 없 었 다

생각보다 종이는 순수한 물질이라고 생각했다 종이(paper)의

어원은 이집트의 파피루스(papyrus)에서 왔다고 한다 중국의

lsquo채륜(蔡倫)rsquo이라는 사람이 제일 먼저 발명했고 고려시대에

일본으로 넘어간다 일본에 가장 마지막으로 넘어갔지만 종이의

기술력은 현재 일본이 가장 좋다 원료rarr초지rarr코팅 등의 공정을 거쳐

종이가 완성되는데 마지막 코팅 공정을 여자의 화장에 비유한 것

역시 기억에 남는다 코팅이 그렇게나 대단한 과정이라니

공장 안으로 들어가서는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시끄러워서 설명을

제대로 듣진 못했지만 앞서 들었던 설명을 떠올리며 기계들을

관찰했다 인쇄소에서 본 광경들도 거대하고 박력 있었지만 여긴

그보다 더 거친 느낌이었다 책은 서점에 놓여있을 때는 그렇게

얌전하건만 태어날 땐 이렇게 시끄럽다 또한 막 태어난 종이는

거대하고 또 거대했다 다들 마치 거대한 두루마리 휴지 같다고들

했다

견학을 다 마치고 다시 대전 공장으로 이동해 다 같이 점심 식사를

했다 기대 이상으로 맛있는 밥에 또 감동 더 힘내서 견학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아쉽게도 대전 공장 안에는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라 그 힘()을 발휘하진 못했다 대전 공장은 신탄진 공장과

다르게 책에 쓰이는 것이 아닌 제품 포장용 박스 종이컵 등 다른

용도에 쓰이는 종이를 만드는 곳이었다 그 과정의 차이를 눈으로

비교하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마지막으로 좋은 선물까지 손에

받아들고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다시 서울로 향했다

언제나 시작은 중요하다 각자의 일에 빠져들게 되면 점점 잊게 될

그 시작을 눈에 담고 오래 기억하기 위해 다녀왔다고 생각한다 요즘

초심을 잃었다는 생각이 종종 드는데 책에게도 초심이 있다면 바로 이

곳일까 시작의 의미에 대해 다시 곱씹어보았다

편집자반 11기 박혜원

우리의 글과 그림이 펼쳐질 종이의 탄생 한솔제지 신탄진 공장 견학

거대한 롤(상) 한솔제지 공장 앞에서 (하)

26

화양연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삶과 문학에 취하다

편집자반 한국문학 동아리 lsquo공감rsquo 그 대담의 현장

훗날 서울출판예비학교를 떠올릴 때 가장 즐거운 시간으로 기

억되는 날들은 동아리 활동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들의

화양연화(花樣年華)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 중

의 하루를 소개한다 문예창작학과를 전공한 문학소녀 김한나

학우를 필두로 창단된 편집자반 내 한국문학 동아리 lsquo공감rsquo은

모임 전에 한국작가를 한 명 정해 단편 두 편을 함께 읽고 키워

드나 질문을 스스로 뽑아 글을 써왔다 모여서 때로는 소설의

플롯이나 주제 문체에 대한 열띤 토론을 하고 때로는 작가의

외모()와 같은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며 삼천포로 빠지기도 했

다 우리끼리만 듣기엔 아쉽다 이 즐거운 대화를 모두에게 들

려주고 싶었다 이날 모임에선 김영하 작가의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단편집 속의 두 단편 lsquo엘리베이

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이하 엘리베이터)rsquo와 lsquo사진

관 살인사건(이하 사진관)rsquo에 대해 이야기했다 여기서는 lsquo엘리

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rsquo를 읽고 토의한 내용을

실었다

한나 참고로 김영하는 사람의 욕망에 대해 천착하는 작가야

그런 특성이 엘리베이터에는 안 나와 있는데 사진관에서는

잘 드러나 있어

상화 백가흠 작가에게 소설창작론 강의를 들었는데 그분이

소설의 기법을 설명하면서 알레고리랑 아이러니를 얘기했어

알레고리가 인물이나 소재를 비유적으로 설명하는 거래 예를

들어 핸드폰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다른

것에 핸드폰을 빗댐으로써 소설을 풀어가는 거

야 아이러니는 속도감 있게 이야기를 전개함으

로써 부조리나 모순을 드러내는 건데 김영하가

아이러니의 대표적인 작가래 단편인데도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내면보다는 사건이 일어나는

걸로 소설을 끌어가는 작가 우리가 지난 모임

에서 성석제를 굉장한 이야기꾼이라고 했잖아

그런데 난 김영하가 훨씬 이야기꾼스럽게 느껴

졌어 속도감 있고 lsquo이렇게 몰입을 할 수 있나rsquo

싶고 지난 모임들에서 읽었던 손보미나 편혜영

소설의 경우는 분위기나 주인공의 심정 내면에

의미를 부여해 야 했는데 김영하의 소설은 덮

자마자 아이러니가 느껴지면서 lsquo아 세상은 왜

이래rsquo 말하게 만들었어

법열 나는 엘리베이터 읽고 딱 lsquo뫼비우스의 띠rsquo가 생각났거든

뫼비우스의 띠가 안하고 겉이 구분이 안 되잖아 끝과 시작이

어딘지도 모르고 lsquo나rsquo가 겪는 상황이 현실인지 아닌지 구분이

안 되는 느낌 마지막에 lsquo나rsquo가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가 존재

하기는 했는지 혼란스러운 느낌을 받잖아 그게 앞의 환상적

인 부분이랑 맞물리면서 하나가 되는 느낌이라 뫼비우스의 띠

가 생각났어

상화 lsquo나rsquo가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구해주려고 고분군투하

다가 나중에 자기가 엘리베이터에 갇히잖아

오권 낀 남자의 발을 보면서 느꼈던 감상이 사실은 자기를 구

하고 싶었던 마음인 거지

(일동 오~ 그렇게도 볼 수 있네)

오권 무한도전의 무한상사 특집도 생각났어 뜬금없이 휴지

사용하는 길이에 대해 회의하는 장면에서 엘리베이터는 갇힌

사회 서로를 돌아보지 않는 사회를 의미하는 것 같아

한나 나는 반대로 오히려 엘리베이터를 희망적인 존재로 봤

거든 아파트도 그렇고 회사도 그렇고 각자 자신의 공간 안에

서 살다가 서로 만날 수 있는 장소는 엘리베이터 밖에 없으니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김영하 지음

문학동네 20100216

동아리 후기

27

까 lsquo나rsquo가 회사 엘리베이터 안에 여자와 같이 갇히잖아 사실

은 갇히지 않았으면 대화도 안하고 지나쳐 갔을 텐데 남자는

자기가 아침부터 버스 사고도 나고 성추행범으로 몰렸다고 얘

기하고 또 남자의 담배 피워도 되냐는 말에 여자는 담배에 대

한 불평불만을 속사포처럼 얘기하고 엘리베이터라는 공간이

아니었다면 이런 대화 자체가 없었겠지

오권 엘리베이터 타면 사람들이 하나같이 층수 바뀌는 것만

쳐다보고 있잖아

상화 요즘은 스마트폰

오권 자기 얘기를 하고 싶은 것 같아 하지만 상대의 얘기는

안 들어 lsquo너의 얘기는 관심 밖이지만 내가 불편한 것에 대한

얘기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하겠어rsquo라는 느낌

한나 그리고 우스웠던 게 볼일 보고 휴지 몇 칸 쓰는지 회의에

서 얘기하는 건hellip 사실 굉장히 사적인 얘기잖아 (일동 하하

하) 서로에 대해 다른 얘기는 일절 하지 않으면서 회의 내용은

개인적이고 사적이라니 아이러니한 거지

수경 진짜 웃기지 않았어 lsquo나rsquo가 자원 재활용 문제에 대한 중

대 보고가 있다고 계속 빨리 가야한다고 했던 게 겨우 그거야

상화 겨우 이딴 회의하려고 지금 엘리베이터에 낀 사람 놔두

고hellip 생명이 더 중요한데 지금 휴지 구하려고hellip

(일동 하하하)

한나 lsquo나rsquo가 불쌍했던 이유가 자기한테 닥친 일들은 lsquo할 수 없

지 뭐rsquo 이런 식으로 넘기는데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 걱정하고

갇힌 여자 걱정하고hellip 정작 자기 걱정은 안 해

오권 영화 lt라이터를 켜라gt 봤어 조폭들한테 얻어맞으면서

도 주인공은 무조건 자기 라이터만 찾겠다고 그러거든 이 소

설의 lsquo나rsquo와 비슷한 느낌이 들더라고 그 영화에서는 라이터가

주인공의 존재를 투영하는 소재거든 lsquo나rsquo는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구해야만 자기가 산다는 느낌을 받은 거라 해석하면

너무 나간 건가

법열 아니요 형이 아까 지적해준 게 와 닿았어요 그 고군분

투가 결국 자기를 구하려는 노력이라는 지적이요

상화 그나마 lsquo나rsquo가 이 소설에서 제일 인간적이지

수경 어딘가 찌질한 느낌도 들어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와

lsquo내rsquo가 동류라고 자각하고 연민을 갖는 느낌이었거든 lsquo나rsquo가

인간적이고 윤리적이라는 생각은 나는 글쎄hellip 더 적극적으

로 할 수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 자기 사이클에서 벗어나

지 않는 한도 내에서 걱정만 하잖아 소설 안에서 비극과 희

극이 번갈아 가며 나타나는데 트럭과 버스가 충돌했을 때

lsquo나rsquo는 lsquo버스 카드 일로 충돌하지 않게 되어 적이 기뻤다rsquo고

생각해 버스 운전사는 트럭 백미러에 가슴이 받혀서 죽었는

지도 모르는데 lsquo다행히 나는 허리가 좀 뻐근한 것만 빼면 별

다른 상처가 없는 듯했다rsquo 이런 생각들을 하는 게 좀 섬뜩했

민희 사람은 다 이중성을 가지고 있잖아 나를 보는 듯했어

만약 학교 가는 길에 엘리베이터에 낀 사람을 봤다면 그렇

지만 나도 얼마나 바빠 몇 분 늦으면 지각 체크 당하고 출석

80퍼센트를 못 채울 수도(일동 웃음) 있는 상황이라면 내

가 그 남자를 구할 수 있을까 일단 지나치고 119에 전화하려

고 했으나 핸드폰이 없는 상황에 나도 처할 수 있는 거잖아 나

만 생각하는 잔인한 면도 내 안에 있고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

도 내 안에 있어 이런 찌질한 모습도 나고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정의롭게 구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상화 기준이 다른 것 같아 lsquo나rsquo 정도면 착하다고 생각했거든

수경 주변 사람들이 약간 마네킹 같지 않아 주인공 주변에

장치되어있던 다른 사람들이 너무 비인간적이기 때문에 lsquo나rsquo

가 돋보이는 거지 lsquo나rsquo는 지극히 평범한 우리 모습 같아 내가

어떻게 할 생각은 없고 궁금하기만 한 거야

민희 그 궁금함과 찜찜함도 죄책감이라 생각돼 아 내가 어떻

게 해줬어야 했나

한나 책임 회피일까

상화 그래서 나는 키워드 뽑은 것 중 하나가 119야 구해주고

싶으면 직접 내 손으로 잡아 빼주던가 엘리베이터를 들어 올

릴 사람을 모아야 했는데 신고 생각만 하잖아 이미 이건 누

가 대신 해결해줘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그나마 우리

사회에서 사고를 수습해주는 건 119밖에 없고 조선시대에는

119같은 거 없고 마을 사람들이 모여 구해줬을 텐데 어쩔 수

28

없는 현대인의 단상이긴 해 현대가 분업사회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들 바쁘고 삶이 개인화 파편화되어 있으니까 119 같

은 집단이 필요한 거지 그래서 난 119를 신의 영역이라고 썼

어 lsquo나rsquo는 119를 거의 신적인 존재처럼 생각하잖아 부르면 모

든 게 해결될 것처럼 핸드폰 빌리고 공중전화 찾고 그런데 막

상 교통사고 현장에서 119 대원에게 면대 면으로 얘기를 했더

니 그들은 무슨 그따위 장난을 하냐고 말해 구조도 실은 신이

아니라 사람이 하는 일이고 그 사람이 관심이 없으면 묻히는

거지

오권 전화를 거는 것과 직접 구해주는 것의 차이가 큰 것 같아

자기가 구해주는 건 적극적인 행동이고 119에 전화하는 건 스

스로 최소한 양심적이긴 하다고 여기는 행동

수경 그런데 엘리베이터에 낀 사람을 아무 것도 모르는 일반

인이 어떻게 했다가는 더 위험해질 수도 있잖아

오권 맞아 사회가 시스템화하고 고도화될수록 각자의 업무가

분업화되었고 전문분야가 생겨났으니까 옛날 같았으면 애 낳

으면 그냥 동네 아주머니가 애 받고 어미가 죽으면 젖동냥 다

녔는데hellip 이젠 사고가 나면 생각이 119에 먼저 미치는 시대가

된 거지

수경 그래서 어딘가에 널브러져 다친 인간이 아니라 엘리베이

터라는 공간에 낀 남자를 설정한 것 아닐까 엘리베이터는 현

대화의 상징이잖아

한나 lsquo나rsquo도 어쩔 수 없는 게 출근 시간에 쫓겨서 시계를 계속

봐 먹고 사는 일이니까

오권 출근했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다시 집으로 돌아가

낀 사람을 구해주면 굉장히 희망찬 소설로 바뀔 텐데hellip (일동

웃음)

수경 이 소설로 현대 사회의 폐단은 다 얘기할 수 있겠는데

상화 김영하는 천재인 것 같다

누군가 그리고 잘생겼잖아

누군가 잘생긴 거야

누군가 지적인 분위기가 있어서 좋아 (한참 얘기)

한나 또 인상 깊었던 게 구두에 집착하는 거 lsquo나는 날렵한 치

타처럼hellip 구두를 가지고 엘리베이터에서 빠져나오는 데 성공

했다 허탈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rsquo는 구절

오권 자살한 사람들이 구두를 가지런히 벗어놓는 이미지가 무

슨 상징처럼 있잖아

한나 신발 한 쪽 없이 다녀봤어 계속 기우뚱대서 내가 걷거

나 서 있을 때 내가 잘못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여기서 lsquo나rsquo가

그랬을 거야 사실 lsquo나rsquo처럼 사는 게 정상인데 세상이 잘못된

건데

상화 이 소설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감정표현이잖아 하루 종

일 얼마나 힘들었겠어 처음으로 감정표현을 하니까 불쌍했어

오권 휴머니즘 불쌍론 또 나왔네(일동 웃음) 그럼 이제 사진

관으로 넘어가볼까hellip

편집자반 11기 이상화

2929

책씹는맛 01 냄새라는 경이 lt감각의 박물학gt 후각편을 읽고

냄새에는 언어가 없다 어휘가 부족한 우리는 말문이 막힌

채 불명료한 쾌감과 자극의 바다에서 말을 찾을 수밖에

없다1

이 말은 다이앤 애커먼의 『감각의 박물학』 제 1장 후각에

나오는 구절이다 냄새를 글로 쓰고자 하는 나의 시도가 늘

실패로 귀결되는 이유를 이 구절에서 찾았다 작가의 말처

럼 냄새에 대해 쓴다는 건 언어 밖 세계로 나갔다가 다시

언어로 되돌아오는 길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길에서 헤매

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후각이라는 감각에서 길을

잃는 것은 낭만적인 일이기도 하다 lsquo냄새의 뇌관을 건드리

면 모든 추억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기rsquo2 때문이다 냄새 하

나에 수많은 추억들이 줄줄이 기억의 회로 위로 떠오른다

예를 들면 바다 냄새 하나만 상상해도 그와 관련된 수많

은 기억들이 머릿속에 뒤섞인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바닷가와 관련된 그 모든 추억들이 기억의 영사막에서 한

편의 옴니버스 영화 형태로 내게 다가온다 난 내 기억의

관객이 되어 그 영화를 보다가 견딜 수 없는 그리움에 젖는

다 이 영화에 대한 감상문을 적으려면 나는 말문이 막힌

다 그래서 몇 글자 적다가 결국 글을 쓰기를 멈춘다 굳이

언어로 표현하자면 쓸 수 없는 그리움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1 『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옮김 작가정신 20040720

A Natural History of the Senses(1991) 17쪽

2 같은 책 18쪽

결국 lsquo언어가 존재하는 세계에서 경이는 언어의 칼날 아래

서 쉽게 해부되고 냄새는 자주 혀끝에서 맴돈다rsquo3 냄새의

숭고함 앞에서 우리는 말을 멈춘다 이처럼 냄새는 말할 수

없는 자연의 경이로움과 닮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lsquo냄새가 우리의 마음을 그토록 강하게 움직이는 것은 부분

적으로 그 이름을 부를 수 없기 때문rsquo4이라고 한다 저자는

그렇기에 사람들이 냄새를 lsquo분 냄새 비슷한 펭귄 냄새가

나는 호화로운 화장실 냄새가 나는rsquo 같은 말로 표현할 뿐

이며 냄새에 대한 이름은 주어져 있지 않다고 말한다 또

한 종류는 같아도 강약과 농도가 다른 각각의 냄새에 이름

을 붙여줄 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우린 일상적으로 냄새를

맡으면서도 그 냄새와 멀리 떨어져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명명되지 않은 것은 결국 잊히는 게 아닐까 부를

수 없음에서 오는 경외감과 숭고함이 있을지라도 냄새는

말해져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말할 수 없는 것에 자꾸

만 침묵하기만 해야 할까

감각도 모험의 영역이 될 수 있다 세계 일주만이 세상을

아는 길일까 lsquo나rsquo를 온전히 아는 것이 역설적으로 세상과

가까워지는 일인지도 모른다 나를 알기 위한 길 중 하나가

내가 가지고 있는 감각을 이해하고 그걸 언어로 표현하는

일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어쩌면 우리와 제일 가깝지만 말

하기 낯선 감각 후각을 이해하는 일이 중요한지도 모른다

냄새라는 감각 속에서 우리 모두 길을 잃고 헤매고 모험해

보자 냄새에 나름의 이름을 지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

리고 농도에 따라 냄새를 구분하는 일도 해보자 냄새라는

경이는 우리를 더 이상 침묵으로 이끌지 않을 것이다

디자인반 11기 백가은

3 같은 책 22쪽

4 같은 책 22쪽

『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 옮김

작가정신 20040720

A Natural History of the Senses(1991)

3030

02 현실을 전복시키는 비현실

모호함이 주는 환상성

20세기 중반 중남미 소설은 전통적인 사실주의 서사 구조

를 깨고 현실과 환상을 혼합시키는 새로운 글쓰기 방식으

로 세계문학의 중심에 선다 이 시기에 주목 받은 일련의

중남미 작가들을 가리켜 lsquo붐 세대 작가rsquo라 칭하는데 아르

헨티나의 환상문학 작가 코르타사르는 이 붐 세대 작가군

의 선구자이자 대표 주자 격인 인물이다 그러나 그 문학적

성과와 명성이 무색하게도 국내 독자들에겐 그의 이름이

아직 생소한 것이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에서는 그

의 작품이 중남미 단편 선집에나 몇 편이 번역되었을 뿐 본

격적으로 소개된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중남미 문학을 공부했고 그의 몇 안 되는 번역 작품을 인

상 깊게 읽었던 독자 입장에서 이번에 출간된 코르타사르

의 단편집『드러누운 밤』은 가뭄의 단비처럼 반가운 신간

이다

환상 문학이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J R R 톨킨 류의 판타

지소설 혹은 쥘 베른이나 아이작 아시모프 류의 SF소설을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코르타사르의 환상문학은 이들 범

주에 들어가지 않는다 코르타사르 작품에서 나타나는 환

상이란 토도로프가 정의한 바 있는 환상 그러니까 자연적

인 것과 초자연적인 것 사이의 망설임에서 발생하는 환상

에 가깝다 따라서 판타지소설의 lsquo현실과 동떨어진 환상rsquo

혹은 SF소설의 lsquo설득력 있고 현실감 있는 환상rsquo을 기대하

는 독자라면 아마 십중팔구 그의 작품을 읽고 실망할 것

이다 어쩌면 이게 무슨 환상문학이냐는 푸념을 늘어놓을

지도 모르겠다 역시 가장 좋은 것은 선입관을 버리고 책을

읽는 것이다

코르타사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lsquo모호함rsquo이다 인물이나

배경 묘사에서 제시되는 기본적인 정보도 모호하고 사건의

전개 양상이 가진 당위성도 모호하다 작품 내에서 주요한

스토리 라인을 담당하는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경계도 모

호하며 심지어는 화자의 정체마저 모호한 작품도 있다 이

런 모호함의 향연은 짙게 깔린 안개와도 같아서 독자들은

그 속에서 한 치 앞도 제대로 내다볼 수 없음은 물론이요

이미 지나간 사실조차도 자신이 맞게 인식한 것인지 확신

할 수 없을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무엇이 진짜인지

독자들의 판단을 망설이게 만드는 이런 상태야말로 코르

타사르의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는 환상이란 개념이다 독

자들은 이 환상 속에서 그저 전방을 주시하며 천천히 나아

갈 수밖에 없다

다행스럽게도 코르타사르는 독자들의 시련을 헛되게 하지

않는다 작품의 시작점 일상 세계에 우연히 침투한 lsquo비현

실적인 것rsquo은 안개 속에서 알게 모르게 자신의 지분을 늘려

나간다 그리고 작품의 종점에 다다른 독자들은 비현실이

현실이 되고 현실이 비현실이 되는 이전과는 전혀 새로운

세계와 마주할 것이다 다시 말해 필연과 이성의 법칙이 지

배하는 세계가 우연과 환상이 지배하는 세계로 변하는 것

이다 이러한 세계의 전복은 마치 여기저기 단서를 흩뿌리

고 사람들을 알쏭달쏭하게 만들었다가 결말부에서 모든

것을 폭발시키는 추리소설 혹은 반전영화를 보는 듯한 재

미를 선사한다

그렇다면 코르타사르가 이 소설들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책을 다 읽고 난 독자라면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의문점이다 코르타사르는 자신이 환상문학을 쓰는

이유를 ldquo법칙이나 원칙 혹은 인과관계나 특정한 심리 또

는 잘 그려진 지리학과 같은 체계에 의해 세상이 지배되고

있다는 것에 반대rdquo하고 ldquo우리가 잘 모르며 우리에게 잘 다

가오지 않는 새로운 질서에 관해 생각해보기 위함rdquo이라고

설명한다 짧게 말해 이 세상에 필연이란 존재하지 않으

며 자신은 그것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말이다 이

게 전부다 순문학이라면 거장의 문학이라면 이보다 더 심

오한 통찰 혹은 비판이 있을 것이란 생각에 문장 속 숨겨진

의미를 발견하고자 머리를 싸맬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조

언을 하자면 독서는 독서 그 자체로 즐기면 된다 적어도 이

책에서는 그렇다 모호함과 예상외의 전개 속에서 재미를

느끼고 코르타사르가 묘사하는 세계의 불가지(不可知)성

을 어렴풋하게나마 인식할 수 있다면 이미 그것으로 충분

하다

편집자반 11기 강귀욱

『드러누운 밤』

훌리오 꼬르따사르 지음 박병규 옮김

창비 20141124

La noche boca arribaJulio Cortazar

31

03 얼어붙은 자의식의 바다를깨뜨리고 생명을 불어넣는 책 『데미안』

데미안을 읽고 나서야 그 동안 내가 두 발 딛고 서 있던 땅이

굳고 단단한 대지가 아니라 얼어붙은 바다에 불과했음을 알

았다 데미안은 도끼를 가져와 이 꽁꽁 언 바다를 가차 없이

내리 찍었다 그리고 말했다 얼어붙은 바다를 단단한 땅인

줄 알고 사느니 그 얼음을 깨부수고 그 속에 빠져 죽기 살기

로 허우적대라고 그러면 그 속에서 너는 너 자신을 똑바로 마

주하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성장할 것이라고

주인공 싱클레어도 그를 둘러싸고 있던 세계를 깨뜨려 나가

며 성장한다 그 모든 과정은 결국 진정한 자기 자신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가 깨뜨린 가장 큰 세계는 바로 자신의 사고 체계였다 세상

을 바라보는 기존의 이분법적이던 시각 고정되고 획일화된 시

각을 버렸다 주인공은 세계 안에 심지어는 자신 안에도 선하

고 악하며 밝고 어두운 양극단의 것들이 공존함을 이해하고

두 세계를 끌어안았다 주인공은 귀와 눈을 가리던 장막을 걷

어내 버리고 세상을 바로 보게 되었다 상극인 것들의 괴리로

이루어진 이 모순된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곧 자신 안의 부조

화 또한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스스로에게 다가서는 첫 걸음

이었다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양극단의 세계 사이에서 싱

클레어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며 흔들리기를 반복했다 이

때 그에게는 삶을 지탱할 중심축이 없었다 항상 내면이 아닌

외부 세계에서 자신이 속할 자리를 찾아 헤맸다 그가 비로소

온전한 자신을 만난 순간은 어느 편으로도 치우침 없이 스스

로의 기준으로 홀로 서게 되었을 때였다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 이 길은 당신이 내면에 있는 모

순되는 두 세계 한없이 나약하고 뒷걸음치는 비열한 모습들

과 정갈하고 깨끗한 곧은 힘들을 동시에 직시하는 순간에 시

작된다 그리고 이 길은 두 세계 속에 들어가 이리저리 휩쓸리

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세계를 밟고 우뚝 올라서서 스스로

가 중심이 됨으로써 앞으로 펼쳐진다

이제 lsquo자아를 찾으라rsquo는 지루하고 흔한 이야기가 더 이상 빤

하거나 우습지 않다 묵직한 울림이 되어 나를 흔든다 그냥

나만 붙잡고 흔드는 것이라면 손사래 쳐 뿌리치겠는데 내가

밟고 있던 땅 속해 있던 세계를 뿌리째 흔들어 버린다 읽는

내내 속이 답답하고 나에게 화가 난다 그런데 이렇게 마구

혼나면서 이상하게도 후련한 구석이 있다 호통을 치는 데미

안이 사실은 우리를 응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막연

하고 무기력한 안개에 휩싸여 있을 때 데미안은 그만의 방

식으로 우리에게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준다 물론 갈 방향을

정해준다거나 각자의 사정을 듣고 상담을 해주는 것은 아니

다 오로지 궁지로 몰아세울 뿐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사람들

은 잊고 있던 lsquo나 자신rsquo을 일깨운다 아 그동안 lsquo나rsquo에 대해 생

각해본 적이 있던가 라는 정도만이라도 좋다 이 물음이 바로

여정의 시작이니까

그렇게 스스로에게 묻고 나면 더 이상 전처럼 살 수는 없기 때

문이다 아니라면 자기 자신에게 면목이 없을 것이다 이 무서

운 책이 우리를 혼내고 몰아치면서도 여전히 영원한 고전이자

필독서로 사랑 받는 이유다

lsquo우리들 속에는 모든 것을 아는 한 사람이 있다rsquo고 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혼이 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혼

이 났다는 것은 자신 안에 있는 lsquo그 사람rsquo이 말을 하기 시작했

다는 뜻이니까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목소리가 희미하

고 멀리 있다 하여도 숨죽여 귀 기울이는 일 자체가 자신에게

로 가는 과정임을 잊지 말고

편집자반 11기 배예리

『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민음사 20001220

Demian Die Geschichte von Emil

Sinclairs Jugend(1919)

31

03 얼어붙은 자의식의 바다를깨뜨리고 생명을 불어넣는 책 『데미안』

데미안을 읽고 나서야 그 동안 내가 두 발 딛고 서 있던 땅이

굳고 단단한 대지가 아니라 얼어붙은 바다에 불과했음을 알

았다 데미안은 도끼를 가져와 이 꽁꽁 언 바다를 가차 없이

내리 찍었다 그리고 말했다 얼어붙은 바다를 단단한 땅인

줄 알고 사느니 그 얼음을 깨부수고 그 속에 빠져 죽기 살기

로 허우적대라고 그러면 그 속에서 너는 너 자신을 똑바로 마

주하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성장할 것이라고

주인공 싱클레어도 그를 둘러싸고 있던 세계를 깨뜨려 나가

며 성장한다 그 모든 과정은 결국 진정한 자기 자신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가 깨뜨린 가장 큰 세계는 바로 자신의 사고 체계였다 세상

을 바라보는 기존의 이분법적이던 시각 고정되고 획일화된 시

각을 버렸다 주인공은 세계 안에 심지어는 자신 안에도 선하

고 악하며 밝고 어두운 양극단의 것들이 공존함을 이해하고

두 세계를 끌어안았다 주인공은 귀와 눈을 가리던 장막을 걷

어내 버리고 세상을 바로 보게 되었다 상극인 것들의 괴리로

이루어진 이 모순된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곧 자신 안의 부조

화 또한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스스로에게 다가서는 첫 걸음

이었다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양극단의 세계 사이에서 싱

클레어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며 흔들리기를 반복했다 이

때 그에게는 삶을 지탱할 중심축이 없었다 항상 내면이 아닌

외부 세계에서 자신이 속할 자리를 찾아 헤맸다 그가 비로소

온전한 자신을 만난 순간은 어느 편으로도 치우침 없이 스스

로의 기준으로 홀로 서게 되었을 때였다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 이 길은 당신이 내면에 있는 모

순되는 두 세계 한없이 나약하고 뒷걸음치는 비열한 모습들

과 정갈하고 깨끗한 곧은 힘들을 동시에 직시하는 순간에 시

작된다 그리고 이 길은 두 세계 속에 들어가 이리저리 휩쓸리

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세계를 밟고 우뚝 올라서서 스스로

가 중심이 됨으로써 앞으로 펼쳐진다

이제 lsquo자아를 찾으라rsquo는 지루하고 흔한 이야기가 더 이상 빤

하거나 우습지 않다 묵직한 울림이 되어 나를 흔든다 그냥

나만 붙잡고 흔드는 것이라면 손사래 쳐 뿌리치겠는데 내가

밟고 있던 땅 속해 있던 세계를 뿌리째 흔들어 버린다 읽는

내내 속이 답답하고 나에게 화가 난다 그런데 이렇게 마구

혼나면서 이상하게도 후련한 구석이 있다 호통을 치는 데미

안이 사실은 우리를 응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막연

하고 무기력한 안개에 휩싸여 있을 때 데미안은 그만의 방

식으로 우리에게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준다 물론 갈 방향을

정해준다거나 각자의 사정을 듣고 상담을 해주는 것은 아니

다 오로지 궁지로 몰아세울 뿐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사람들

은 잊고 있던 lsquo나 자신rsquo을 일깨운다 아 그동안 lsquo나rsquo에 대해 생

각해본 적이 있던가 라는 정도만이라도 좋다 이 물음이 바로

여정의 시작이니까

그렇게 스스로에게 묻고 나면 더 이상 전처럼 살 수는 없기 때

문이다 아니라면 자기 자신에게 면목이 없을 것이다 이 무서

운 책이 우리를 혼내고 몰아치면서도 여전히 영원한 고전이자

필독서로 사랑 받는 이유다

lsquo우리들 속에는 모든 것을 아는 한 사람이 있다rsquo고 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혼이 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혼

이 났다는 것은 자신 안에 있는 lsquo그 사람rsquo이 말을 하기 시작했

다는 뜻이니까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목소리가 희미하

고 멀리 있다 하여도 숨죽여 귀 기울이는 일 자체가 자신에게

로 가는 과정임을 잊지 말고

편집자반 11기 배예리

『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민음사 20001220

Demian Die Geschichte von Emil

Sinclairs Jugend(1919)

32

박세길 인터뷰

진정한 역사가는 과거에 파묻히지 않는다옥(獄)에서 옥(玉)을 만든 작가 박세길 인터뷰

박세길 저자는 처녀작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로 80년대

대표 역사서 자리를 꿰찬 분입니다 1986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감되었을 때 감옥에서 역사책을 읽으며

사회 모순에 대해 고민했고 출소하자마자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집필했습니다 정권 탄압 속에서 왜곡된

현대사를 바로 잡았다는 의미를 지닌 이 대표작은 오랫동안

고시생과 대학생들의 필독서로 꼽혔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읽은 박세길 저자의 저서는 지난 6월 출간한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입니다 기사를 쓰고 편집할 때 청년 세대를

겨냥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박세길 저자는 역시나

청년들의 미래에 큰 관심을 갖고 계셨습니다 취업을

눈앞에 둔 서울출판예비학교 학생들이 가져야 할 자세를

여쭸습니다

출판학교에서 강의하신 한 선생님은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가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와

더불어 80년대 인문학의 양대

산맥이라고 하셨습니다

책의 성공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강의

요청이 많이 들어왔어요 먹고사는

경제적인 문제도 해결됐습니다

몇 부 팔렸는지는 잘 모릅니다

출판사에서 기밀 사항이라고

하더군요 요즘은 마케팅 차원으로도

몇 쇄 몇 부인지 밝히지만 그때는

세금 문제를 피해가기 위해서인지

쉬쉬하던 시절이었나 봅니다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는 대학

선후배끼리도 많이 물려주는 책이라고

들었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의 쉬운 설명이

좋았습니다 더불어 어떤 사명감을 안고 썼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완성하기에 앞서 어떤 목표를

두셨나요

청년 세대가 외환위기 이후 집중적인 희생양으로 전락하면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드러내면서 여기에

머물지 않고 청년 세대의 잠재력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들이 역사 무대 한복판에 진출해 자기 몫을 다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습니다

역사 분야는 시장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역사 혹은 현대사가 주목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통해 얘기하자면

80년대 후반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lsquo왜곡된

역사를 바로 알자rsquo는 시각 교정의 욕구가 있었던

차에 제 책이 나름 부응했는지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시기가 적절했던 셈이죠

2012년 대선 후 역사 분야가 잠시 반짝했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금세 시들었다고

하더군요 당시 역사 분야 책들이 일반 독자가

읽기에 다소 어렵거나 출간한 지 오래된 것들

위주였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돋을세길

출판학교에서 강의하신 한 선생님은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가 유홍준 교수의

책의 성공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강의

하더군요 요즘은 마케팅 차원으로도

선후배끼리도 많이 물려주는 책이라고

역사 분야는 시장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역사 혹은 현대사가 주목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통해 얘기하자면

80년대 후반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lsquo왜곡된

역사를 바로 알자rsquo는 시각 교정의 욕구가 있었던

차에 제 책이 나름 부응했는지 큰 반향을

읽기에 다소 어렵거나 출간한 지 오래된 것들

위주였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의 저자

33

2012년 대선 후 역사 분야가 관심을 받았던 것은

보수층의 재집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한

불안 때문일까요

맞습니다 그러나 마땅한 책이 없어서 그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역사 분야에서 베스트셀러를 내기

위해서는 시기가 맞아 떨어지고 내용 또한 대중이 원하는

것을 담고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를 편집한 lsquo생각정원rsquo

출판사의 정희용 편집자에게 감사 표시를 하셨습니다

어떤 편집자를 선호하시나요

간단합니다 편집자는 철저히 독자 입장에서 독자와 작가

사이의 간극을 줄여줘야 합니다 예를 들면 어려운 내용을

과감히 생략하고 다음 기회로 미루도록 설득한다거나 좌파

운동권 색채가 너무 강한 문장을 조금 순화하는 것 등입니다

어떤 내용이 이번 책에 꼭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선택을

도와줘야 합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을 작가님께서 직접

독자들에게 홍보하신다면 카피 문구를 짧게 제시할 수

있을까요

청년 세대 희망 찾기 갑갑한 현실을 어떻게 타개할 수

있을지 그 답을 찾아보는 길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취업 후 첫발을 내디딜 서울출판예비학교 11기

학생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출판 또한 돈을 벌어야한다는 기본 전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출판계를 지켜본 결과 뭔가 소명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오래

살아남았습니다 출판학교 역대 대표 중 일부는 나와 관계가

있는 사람들인데 모두 고유한 소명의식을 갖고 출판계에

뛰어들었습니다 때로는 상업주의 안에서 재주도 부리곤

했지만 어쨌든 분야 내에서 고유한 캐릭터를 구축했습니다

출판학교 학생들이 출판 상황을 이해하고 자신을 역할을

정하는 개인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비전 중심의 경영을

하는 회사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지만 개인 비전을 기업

비전으로 나아가 사회 비전으로 접목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과거에 안주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부분을

출판계에서는 SNS 등 인터넷 환경을 통한 마케팅으로

이해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SNS망 자체에서 무엇이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건 사람과

사람이 서로 소통하고 공감하는데 필요한 도구입니다

콘텐츠 중심의 사고가 중요하고 그것이 전제되지 않을 때

SNS는 착각에 불과하며 성공할 수 없습니다 필요한 콘텐츠

중심의 사고를 가지고 철저하게 진행하지 않으면 그 공간에서

허망하게 헤엄만 칠 뿐 입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SNS에서

맥없이 헤엄치다 익사하는 경우를 볼 수 있을 겁니다

콘텐츠와 마케팅의 영역을 하나로 보는 것과 따로

보는 것 어떤 것이 독자를 위하는 것일까요

출판 마케팅은 책을 기획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에서부터

개입돼야 하고 그 과정에 독자를 참여시키는 방식을

고민해야 합니다 미국 네브래스카주립대학의 이상문

교수는 lsquo밀실 안에서의 혁신은 끝났다rsquo고 얘기합니다

개방된 체제에서 독자 곧 소비자 사용자의 참여 하에 함께

만들어갈 때 혁신은 이뤄진다고 합니다 출판사의 비전이

브랜드로 연결될 때 독자는 자발적으로 의견을 주고받고

싶어 할 겁니다

마케터반 11기 이창환

디자

인 사

공예

Page 3: 서울출판예비학교 웹진 _5호 2015

3

일~이 쪽 홍rsquos피어 김홍민 대표님 인터뷰

삼~오 쪽 날보러와 교육발표회 준비취재

삼~오 쪽 설왕설래 릴레이 소설

삼~오 쪽 알고싶어 선생님 인터뷰

삼~오 쪽 기억에콕 수업후기

삼~오 쪽 1일일탈 견학후기

삼~오 쪽 화양연화 동아리후기

삼~오 쪽 책씹는맛 서평

삼~오 쪽 돋을세길 박세길 인터뷰

차례일

러스

트 _ 편

집자

반 김

지영

3

일~이 쪽 홍rsquos피어 김홍민 대표님 인터뷰

삼~오 쪽 날보러와 교육발표회 준비취재

삼~오 쪽 설왕설래 릴레이 소설

삼~오 쪽 알고싶어 선생님 인터뷰

삼~오 쪽 기억에콕 수업후기

삼~오 쪽 1일일탈 견학후기

삼~오 쪽 화양연화 동아리후기

삼~오 쪽 책씹는맛 서평

삼~오 쪽 돋을세길 박세길 인터뷰

차례일

러스

트 _ 편

집자

반 김

지영

4

가벼운 몸 풀기 질문부터 시작합니다 출판사 이름인 lsquo북스피어rsquo의

뜻은 무엇인가요

처음에는 lsquo정신rsquo을 뜻하는 lsquo누(noo)rsquo와 lsquo시공간rsquo의 의미를 담고 있는

lsquo스피어(sphere)rsquo를 합친 lsquo누스피어(noosphere)rsquo를 생각했어요

lsquo정신을 만드는 공간rsquo이라는 뜻이죠 철학적인 뜻인데 lsquo누rsquo 대신에

lsquo북rsquo을 넣었죠 책을 만드는 공간일 수도 있고 모아 놓은 공간일

수도 있어요 다른 의미로는 출판사를 차릴 때 lsquo망할지도 모른다rsquo는

두려움이 있었어요 책을 만든다는 행위 자체가 좀 무섭더라고요

책에 대한 두려움 책의 두려움 여러 해석을 할 수 있어요

보통은 표지 안쪽을 백면으로 두고 인쇄하지 않는데 『흔들리는

바위』에서 뒤표지 안쪽에 심리테스트를 넣으셨어요

책에 뭔가 장난을 해 보자 이게 시작이었죠 프로필 각 줄의 앞

글자를 연결하면 말이 되거나(『레벨7』 옮긴이 소개의 lsquo참한 애인

구함rsquo) 어떤 책은 1권과 2권의 표지가 똑같은데 자세히 보면

숨은그림찾기처럼 다른 부분이 있어요(『가모우 저택사건』) 각

책마다 특성을 살려서 이것저것 했죠 『외딴집』 앞쪽에 에도 시대

지도가 있는데 그 지도에 북스피어 이름을 넣기도 했어요 『흔들리는

바위』의 경우 특별히 심리테스트여야 할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표지 안쪽에 뭔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을까 하다가 생각해낸

거예요 나중에 심리테스트의 결과에 따라 책을 추천하는 lsquo책 추천rsquo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됐죠

일 잘하는 마포 김 사장

홍rsquos피어작은 사무실을 상상했는데 보통의 가정집 같은 모습에 한 번 놀라고 자리에 앉기도 전에 냉장고에서 주섬주섬 꺼내지는 캔 맥주에

또 놀랐습니다 곧이어 상 위에는 과자가 안주로 놓이고hellip 이거 참 인터뷰가 lsquo취중농담rsquo이 되어버리는 것은 아닐지 하지만 상대는

노련한 lsquo마포 김 사장rsquo입니다 맥주의 뚜껑을 따면서 lsquo이제 합시다rsquo라고 호탕하게 외치는 김홍민 대표 그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친히 맥주를 꺼내주는 김홍민 대표(좌) 숟가락으로 맥주병 뚜껑을 따는 김홍민 대표(우)

『흔들리는 바위』 뒤표지 안쪽의 심리테스트

재미있게 노는 것이 곧 일 잘하는 것 북스피어 김홍민 대표

북스피어 대표 인터뷰

5

3년 전에는 lsquo원기옥 이벤트rsquo로 모아진 돈으로 미야베 미유키 작가를

만나기 위해 혼자 일본에 다녀오셨는데 이번엔 독자 3분을 뽑아

일본에 다시 다녀오셨어요 두 번의 방문이 어떻게 달랐나요

3년 전에 내가 갔을 때는 답변이 되게 무미건조했어요 lsquo어떻게

생각하십니까rsquo lsquo좋다고 생각합니다rsquo lsquo이게 맞습니까rsquo lsquo네

맞습니다rsquo 가족 얘기 안하고 정치적인 질문 싫어하고 제약이

많 았 어 요 이 번 에 는 독 자 와 있 으 니 까 사 람 이 약 간 달 떴 다 고

할까요 가족 얘기 정치적인 얘기도 하더라고요 독자에게 직접

준비한 선물도 주고 사인도 일일이 해주고 사진도 같이 찍어주고

팬서비스가 남달랐죠 그도 그럴 것이 미야베 미유키가 만난 첫

번째 한국 독자인 거예요 미야베 작가는 한 번도 외국 여행을 해본

적이 없거든요 청각에 문제가 있어 비행기를 탈 수가 없대요 도쿄

밖을 안 나간다고 하니 당연히 해외 독자를 만나본 적이 없죠

세계 어느 나라에서 독자들이 인터뷰를 하러 왔겠어요 당초 한

시간 반 예상했는데 세 시간까지 걸렸어요 그때 「르 지라시」가

8면짜리였는데 인터뷰 내용이 좋기에 12면으로 증면해서 다 실었죠

독자들과 같이 가지 않았더라면 그런 내용이 못 나왔으리라고

생각해요

내가 만약 기자를 데리고 갔다면 기사 나오는 건 따 놓은 당상이고

비용도 훨씬 적게 들어요 이 이벤트를 한다고 했을 때 기자들이

전화를 걸어와서 lsquo자기도 가면 안 되겠냐rsquo lsquo회사 비용으로 가겠다rsquo고

하는데 나는 그랬죠 ldquo아닌데 독자랑 갈 건데rdquo

다른 출판사 사장님들은 lsquo말이 안 된다rsquo고 했어요 기자랑 가면

기사도 나오는데 왜 독자들을 몇 명씩 데리고 가겠어요 만우절에

올 렸 으 니 까 거 짓 말 이 라 고 들 하 더 라 고 요 하 지 만 결 과 적 으 로

이벤트도 재미있었고 일단 작가가 너무 좋아해 내후년이 자신의

데뷔 30주년인데 꼭 또 오라고 하더라고요

북스피어 10주년을 기념하여 900쪽짜리 『십자가와 반지의 초상』을

출간하셨죠 그 소설의 배경이 되는 호빗 마을에 다녀오는 lsquo반지의

제왕 촬영지 기행 원정대rsquo를 꾸리셨었어요 다녀오신 후기를

들려주시겠어요

나 와 편 집 장 과 독 자 세 명 이 렇 게 다 섯 이 갔 는 데 와 정 말

행복했어요 열흘 동안 캠핑카로 반지의 제왕 촬영지를 다 돌았어요

뉴질랜드 면적이 우리나라 면적의 25배래요 그리고 인구는 400만

명이 좀 넘는대요 사람이 없어요 마을이 있다 그 다음은 다

고속도로야 그리고 또 마을이 있고 바로 고속도로 상점들은 6시에

열고 5시에 닫으니까 밤에 차도 없고 사람도 없고

농경 목축을 하느라 상품을 생산하는 비율이 높지 않으니까

자급자족이에요 그런데 촬영지가 되니까 세계 각지에서 사람들이

오는 거죠 관광업이 활황이 되어서 뉴질랜드 곳곳에 캠핑카를 타고

묵을 수 있는 곳이 많더라고요 갔다 와서 독자가 그걸 후기로 남겼죠

최근 lsquo낭만독자열차교정rsquo을 크게 여셨어요 그동안 북스피어의

독자 교정 이벤트는 꾸준히 진화해왔는데 지금까지의 변화들을

말씀해주세요

교정을 권당 120만 원씩 주면 1000만 원이잖아요 그건 어려우니까

처음엔 출판사에 다니는 친구들에게 도움을 받으려고 했었죠 그런데

점점 연락이 안 돼 부탁하는 빈도가 늘어날수록 전화를 안 받아요

아 그러면 독자에게 놀이처럼 하게 해야겠다 싶었어요 처음에는

몇몇이 와서 교정을 보면 점심을 줬어요 점심 먹고 그냥 갔지 뭔가

재미가 없어 다음에 왔을 때는 점심도 주고 저녁도 줬어요 또 그

다음은 점심도 주고 저녁도 주고 술도 먹여 그랬더니 재미가 있는

거예요 이후로는 1차에서 끝나지 않고 4차까지 가고 밤새 마시고

홍대 일대를 막 돌아다니고 아침엔 해장국 먹고 헤어지고 전문

만우절 때 블로그에 장난으로 올렸다는 lsquo홀로 남겨져rsquo 앨범 이미지

하지만 독자들의 요청으로 직접 제작하기에 이른다 오른쪽은 박기영의 목소리로 재탄생한 『홀로 남겨져』(미야베 미유키 2011)의 북 OST lsquo홀로 남겨져rsquo

『흔들리는 바위』 뒤표지 안쪽의 심리테스트

6

교정을 맡기는 것보다 술값이 더 나가겠더라고요 하지만 그렇게

술 먹고 간 독자들이 홍보를 해준다고 할까 그래서 좀 더 발전시켜

보기로 했어요 밤샘독자교정 1박 2일 동안 교정을 보는 거죠

번역자가 아침고요수목원 근처에 있는 축령산 자락에 살기에 그 집을

빌렸어요 낮에는 교정을 보고 저녁에는 번역자와 함께 고기를 구워

먹으며 번역 뒷이야기도 듣는 거죠 그때부터 교정 MT가 시작이

됐어요 그러다가 지지난달에 한 것이 낭만독자열차교정이라고 열차

안에서 교정을 보고 밤에는 펜션에 도착해 놀다 오는 거였어요 마침

한겨레 기자도 독자 교정에 참여해 기사를 써주기도 했죠 앞으로요

인천에서 제주도로 가는 크루즈가 있대요 배 안에서 교정을 보고

제주도에 도착해서 노는 그런 독자 교정 이벤트를 구상하고 있어요

올해 4월에 lsquo북amp쿡 퍼포먼스 맏물이야기rsquo를 진행하셨어요 전문

성우가 소설을 읽어주고 푸드스타일리스트가 소설 속 음식을 직접

만들어 독자가 먹어볼 수 있게 한 신선한 기획이었죠

『맏물이야기』가 요리에 관한 책이어서 처음에는 독자들을 불러서

요리를 시켜야겠다고 생각했죠 늘 그렇듯 처음에는 소박했어요

이 책에 나오는 요리를 직접 하게 해서 독자에게 먹여야겠다 혹은

사진을 찍게 해야겠다 그런데 은근히 어려운 거야 에도 시대의

음식 맛이 나리라는 보장도 없고 그래서 푸드스타일리스트에게

의뢰를 했죠 의뢰하면 비싸다 보니 그냥 진행하기에는 아쉽고 판을

키우자 싶었죠 그러다 낭독할 성우까지 붙은 거고 선착순 200명

한정이었기에 오지 못한 독자들이 아쉬워하더라고요 텍스트에

머물지 않고 공연을 통해 시각 청각을 넘어서 후각으로도 독자들과

소통할 수 있었어요 책의 확장성을 보여준 신선한 행사였다는 평도

들었죠

북스피어는 장르문학만 출간하지만 그동안 진행해온 라디오

프 로 그 램 을 보 면 다 양 한 분 야 의 독 서 를 하 시 는 것 같 아 요

개인적으로는 어떤 분야의 책을 주로 읽으시나요

장르문학이요 내 분야에서 전문가 행세를 해야 해요 왜냐하면 내가

이 분야 책을 내니까 끊임없이 읽어야 해요 그래야 끊임없이 얘기할

수 있지 잘난 척하는 거 정말 중요해요

그렇다면 추천해 주실 만한 책이 있으신가요

최 근 에 『 마 션 ( M a r t i a n ) 』 을 재 미 있 게 읽 었 어 요 화 성 에

갔다가주인공만 빼고 다 귀향하게 되자 주인공 마크 와트니가

화성의 토양으로 감자를 재배해요 그걸 읽고 감자를 한 박스 샀죠

갑자기 먹고 싶어서요 10월 8일에 영화로도 개봉되는데 꽤나 흥행할

것 같아요 앤디 위어의 처녀작인데도 줄거리가 탄탄하거든요

작은 출판사가 출판계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방법이 있을까요

가급적이면 한 분야를 해야죠 김밥천국보다는 돈까스 전문점이

사람 모으기는 더 쉬워요 장사라는 것은 독특한 무언가가 있어야

해요 그동안 수많은 김밥천국이 사라져온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한

분야에서 독보적인 존재가 되는 것도 방법이에요 그런 존재가 되고

나면 독자들에게 알릴 lsquo채널rsquo이 있어야죠 그게 다일 것 같은데요

사실은 lsquo그 정도rsquo조차 정말 어렵죠

맏물 이야기 북amp쿡 퍼포먼스 포스터(좌)와 행사에서 재현된 소설 속에 나오는 음식(우) 김홍민 대표의 저서

7

마지막으로 서울출판예비학교 학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망설임 없이) 외국어를 해라 정말 강조하고 싶네요 외국어를 뭐든

하나는 확실하게 해야 해요 또 글을 잘 써야 해요 저자만큼 저자가

lsquo에이 편집자 주제에 뭘 그리 잘 써rsquo라고 할 정도로 잘 써야 해요

글쓰기 연습을 매일매일 하세요 요즘은 환경이 좋잖아요 페이스북에

매일 끼적이기만 해도 실력이 늘어요 글 잘 쓰고 외국어 잘한다

프리패스예요 어느 출판사든 들어간다 어디든

편집자반 11기 김수진

잠깐만 우리 새우치킨 하나 먹을까

(바로 전화한다) 두 마리요 새우치킨 한

마리랑 양념치킨으로요

(주소를 말하지 않는다) 주소가 저장되어

있으신가 봐요

그럼요 lsquo또 전화하셨군요 오늘은 어쩐

일로 두 마리세요rsquo 이렇게 받아요

마포 김 사장

웹진팀

마포 김 사장

웹진팀

마포 김 사장

기발한 와우북페스티벌 상품들

북스피어 출간 도서 저자 일러스트가 들어간 과자 패키지(좌)와 파본된 책을 한 장(章)씩 분권 해서

500원에 파는 상품(우)

2015 와우북페스티벌 르 지라시 특별판

8

7인 7色 분투기

20150921 월요일 d-25

교육발표회 TF팀 발족 시작이 좋다

9월 21일 월요일 401호에서 교육발표회 태스크포스(task

force)팀(이하 TF팀)의 첫 번째 회의를 시작했다 반 친구들의 투표로

얼떨결에 TF팀의 일원이 되어서 처음에는 부담감을 느꼈지만

한편으론 우리의 성과를 발표하는 자리를 직접 꾸려간다는 것이

기대되었다 첫 만남에는 마케터반 디자인반 사람들과 얼굴을

익히고 가벼운 농담과 함께 분위기를 즐겼다 아직은 어떻게 계획을

짜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지만 그만큼 긴장감을 갖고 열띤 토론을

했다

먼저 공간 구성을 토의했는데 각 반에 할당된 공간은 각 반에

일임하기로 했다 지하 1층은 편집자반과 마케터반이 사용하고

지하 로비부터 계단 외벽은 디자인반의 작품을 전시한다 1층에는

안내소를 설치하고 안내팀을 배치할 것이다 마케터반은 면접실로

사용할 예정이고 디자인반은 전시실로 편집자반은 대기실로

사용할 것이다

두 번째로 홍보에 관해 토의했는데 편집자반의 김종민을

팀장으로 하는 별도의 홍보팀을 꾸렸다 홍보 문구는 10월 2일까지

취합하기로 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포스터를 제작하면 된다 홍보

영상이나 카드 팸플릿을 만들기로 한 안건도 추후 논의하기로 했다

아이디어들이 모아져 하나의 그림이 완성되어가는 듯 했다 점차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던 틀이 잡히면서 그 공간을 하나씩 채워가는

우리를 보고 스스로 대견스러웠다 아직도 걱정되는 일들이 많지만

지금과 같은 패기와 열정으로 준비한다면 잘 마무리 해낼 수 있다고

믿는다 시작이 좋다

편집자반 11기 남민희

20150925 금요일 D-21

두 마리 토끼 잡기 교육발표회 자료집 만들기

9월 초 디자인반에서 세 명의 팀원으로 교육발표회 자료집

담당 팀이 꾸려졌다 교육발표회 자료집은 6개월 동안의 교육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책자로 편집자반 마케터반

학우들의 자기소개서와 디자인반 학우들의 작품이 실린다 디자인

반은 판면을 디자인하고 원고를 받아 책으로 묶는 작업을 맡았다

가장 먼저 수행한 일은 편집자반과 마케터반 학우들의 글이 담길

텍스트 위주의 판면을 잡는 일이었다 40명 이상 인원의 글이 실리는

만큼 반복적으로 보기에 부담이 없어야 하고 변화를 주어 지루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편집자반과 마케터반의 페이지를

마무리한 뒤에는 디자인반의 포트폴리오 작업으로 이어졌다

디자인반의 판면에서 중요한 것은 각자의 성향을 잘 담을 수 있도록

전집 위주 본문 위주 단행본 위주의 세 가지 사항에 따라 판면을

잡는 일이었다 이러한 큰 산을 넘고 나니 정해진 양식에 맞춰

축사와 연혁 교육과정 소개 페이지를 완성하고 각 반을 상징하는

색을 살린 간결한 표지를 만드는 것은 무리 없이 진행되었다

자료집 팀원들은 자신의 포트폴리오와 병행해야 하는 압박감과

6개월간 우리의 행로를 담아내는 작업인 만큼 실수가 없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으나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계획을

꼼꼼하게 세워 차근차근 진행해 나갔다 또한 다른 학우들이 시간

약속을 잘 지켜주었기 때문에 촉박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차질 없이

마무리할 수 있었다 자료집을 만든다는 것은 디자인반으로서는

작업을 정리함과 동시에 모든 학우들이 자신의 학교생활을 마무리

짓는 일로 소중한 경험이었다

디자인반 11기 홍기화

20151001 목 요일d-15

걱정도 병인 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오늘은 발표회 편집자반 공간을 꾸밀 물품을 사러 가는 날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추석 연휴를 보내서 그런지 등교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할 일은 산더미인데 그저 막막하기만 했다 그래도

오전부터 교육발표회 준비 팀장인 종민이가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것 같아 다행이다 종민이가 좀 힘들어 보이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난 그저 시키는 대로 따라가고 옆에서 도와주면 될 것 같다 뭐가

됐든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는 언제나 어렵고 외롭다

각 조의 콘셉트가 정해지고 필요한 물품의 목록이 정리됐다 10만

원 정도만 지원해준다고 한 것 같은데 다들 뭐가 이리 살 게 많은지

사무국에서 다 사줄지 모르겠다 (우리 조도 살 게 꽤 많은 것

날보러와

디자

인 사

공예

교육발표회 준비취재

9

같았는데hellip) 한 시간 동안 호미화방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필요한

물품을 샀다 그런 와중에 혹시 빼먹은 건 없는지 예산이 부족하진

않을지 걱정이 들었다

교육 과정 내내 걱정하고 고민하고 불안해한 것 같다 마음 편하게

생각하라는 말을 친구들에게 줄곧 들은 것 같은데 할 수 없다 내가

원체 이렇게 생겨 먹은 걸 이제 발표회까지 남은 시간은 정확히

보름 우리가 보낸 6개월을 4시간 동안 보여주는 행사다 이 행사가

전부는 아니지만 그래도 24명 모두에게 아니 11기 출판학교 교육생

모두에게 주어진 마지막 과제다 lsquo혼자 하는 것도 아닌데 걱정만

하지 말고 차근차근 준비하면 되겠지rsquo 하면서도 걱정이 앞선다 진짜

이것도 병이다

편집자반 11기 권오권

20151008 목요일 D-8

가을 나들이 같은 인터뷰

내가 인터뷰 팀이라니 게다가 팀장이라니 누구 마음대로 이건

음모라고 구시렁대며 일정을 짠다 수료 때까지 감투 안 쓰는 게

목표였는데 망했다고 말하며 멘트를 고민한다 그래 사실은 즐겼다

어차피 할 일 없으니 잡배마냥 학우들에게 치근대며 시간 보냈을

터였다 그럴 바에야 나들이 간다 치고 즐기는 편이 나았다 날씨는

또 얼마나 좋은가 투덜댔지만 가벼운 걸음이었다

지금까지 교육 과정 내에서 강의 또는 특강으로 만났던 많은 분들을

카메라로 담았다 대부분 직접 회사로 방문했기 때문에 다양한

사무실을 보는 것도 재미였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강의 때보다 더

진하고 선명하게 한분 한분을 볼 수 있었다 그들도 마찬가지였을까

본인에게는 일상인 세계를 동경한다면서 비집고 들어오려는 우리를

보는 우려와 격려 섞인 눈빛에서 ldquo너희도 이거 하려고 아이고 힘들

텐데 부디 잘 해나갔으면 좋겠네rdquo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아름답다

감사하다

시시덕거리며 돌아오는 길에 생각한다 앞으로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이 가을 이 마음의 우리가 그리울 건 알겠다 벌써부터

아릿하다 역시 인터뷰 괜히 했다 귀찮아 죽겠다 진짜

편집자반 11기 김상흔

20151009 금요일 D-7

교육발표회를 홍보하라 티저 포스터 만들기

드디어 6개월의 과정이 끝나가고 있었다 우리를 보여 줄 마지막

기회인 교육발표회를 앞두고 TF팀은 lsquo홍보rsquo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꼭 보러 와달라는 메시지를 어떻게 하면 잘 전달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 끝에 lsquo티저 광고rsquo를 제작하기로 결정했다 CF나 기타 광고에서

활발하게 활용되는 서서히 베일을 벗어가며 호기심을 자극하는

광고 기법 말이다 우리의 타깃은 대중이 아닌 출판계라 처음엔

lsquo이런 홍보를 과연 좋아하실까rsquo 하는 의구심이 앞섰다 하지만

회의를 거듭하며 아이디어를 잘 뽑아내고 두 반이 협력한다면

효과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케터반 편집자반 학생들의 문구들을 취합해 투표로 가장

적합한 것을 뽑았다 1등은 정혜림 학우의 lsquo북쪽으로 가라 귀인을

만난다 BOOK쪽으로 오라 귀인을 얻는다rsquo가 차지했다 lsquo북쪽rsquo이라는

방향표현을 lsquoBOOKrsquo으로 바꾼 게 참신하고 재밌어 모두의 공감을

얻었다 2등은 김수경 학우의 lsquo내가 동네북이니 응 SBI 동네북

페스티벌rsquo이 뽑혔다 평소에도 재미있는 말투로 늘 주변을 웃게

만드는데 그 재기발랄함이 묻어나는 문구였다 3등으로 뽑힌

유보미 학우의 lsquo날 떠난 후 너는 행복하니 내 인생 책임져 책책책

책임져rsquo는 아쉽게 광고에는 쓰이지 않았지만 시선을 끄는 기발한

문구였다 이 외에도 lsquo책 잡힐 일 하지마라 책 잡을 일 해라rsquo lsquo갈피를

못 잡을 땐 책갈피rsquo 등 재밌는 문구들이 많았다

전부 광고에 쓰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라 12등 문구를

멋지게 디자인하기로 했다 디자인에 대한 의견을 반 친구들과

나누며 포스터들을 직접 디자인했다 서로 의견이 맞지 않기도 하는

등 고단할 때도 있었지만 많은 분들이 우리를 보러 와주신다면 모든

고생이 잊힐 것이다 제발 그랬으면 한다

편집자반 11기 박혜원

10

20151012 월요일 D-4

수많은 이름들을 위하여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난리다 난리 우리 반이 이렇게 시끄럽고

활기찬 적이 있었던가 자타공인 조용하다던 편집자반 학우들은

어디로 가고 요 며칠 온통 돌아다니거나 무언가를 만드느라

고군분투하는 풍경들과 마주하고 있다 나쁘지 않은 아침이다

그 동안 우리는 직책의 기근()에 익숙해져 있었다 반장 부반장

조장의 휘하에서 맡은 바를 다하며 펠로우십을 뽐내고 있던

우리에게 갑자기 수많은 이름들이 떠맡겨졌다 누군가는 TF팀이

되고 누군가는 홍보 팀장이 되었으며 누군가는 인터뷰 팀장이라는

직책을 맡았다 그런가 하면 건축학을 전공한 학우는 공간 배치를

구상하는 역할을 맡고 누군가는 가을 단풍을 모티프로 해서

편집자반 전체의 부스를 꾸미고 있다 그뿐이랴 각 동아리의

장(長)들은 동아리 부스를 만들랴 그 동안의 활동을 책으로 만들기

위해 인디자인 작업에 몰두하랴 정신이 없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웅장하게 꾸며질 조별 부스를 살펴보면 아마도 입이

떡 벌어질 것이다 각 조는 워크숍으로 만든 자신들의 책에 맞춰

콘셉트를 잡았다

편집자반 lsquo윌비rsquo 조는 『창업 자금 날려먹지 않는 법』에 맞게

카페처럼 부스를 꾸미기로 했다 거대한 간판도 이미 완성되었고

맛있는 커피도 만든다고 하니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lsquo길목rsquo 조는 『서태후 비사』의 내용에 따라 서태후가 좋아했던

벚꽃으로 부스를 장식한다 게다가 한 켠에는 『서태후

비사』전자책과 예쁜 책갈피까지 마련되어 있을 것이다

lsquo달로rsquo 조는 『사이의 거리』의 표지에도 실 그림이 들어간 것에 맞춰

실을 이용하고 있다 특히 실로 lsquo사이의 거리rsquo 글자를 만들었을

때에는 학우들 모두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어떻게 실로 글자를

만들 수 있었는지 많은 분들이 와서 봐주시면 좋겠다

lsquo세모북스rsquo 조는 강명관 잡문집인 『허울 좋은 나라』를 만들었다

시대상과 일상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lsquo사진rsquo에 착안해 옛날

사진관처럼 부스를 꾸미고 있다 흑백 사진과 손글씨가 고즈넉한

멋을 더할 것이다 돌림판 이벤트도 있을 예정이다

편집자반 11기 이상화

2015101 목요일 D- 15

lsquo정rsquo이 있어 lsquo반rsquo을 찾아 lsquo합rsquo을 보니 마케터더라

lsquo차별성이 있어야 한다rsquo

책의 차별성을 찾았던 6개월 그리고 6개월 간의 경험을 토대로

lsquo차별성이 있는 마케터반의 발표회rsquo를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각

조의 조장들과 발표회 테스크포스 팀원이 머리를 맞댔다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lsquo책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그렇다고 너무 책에

집중하지 말자rsquo였다 마치 lsquo정rsquo과 lsquo반rsquo을 통해 lsquo합rsquo을 만들어내는

과정이었다 세상에 이마저 변증법적 접근이라니 그러나 우리가

누구인가 책이라는 물성에 가치의 효용을 불어넣는 우리가

아니던가 분명 발표회에도 그와 비등한 가치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전체 콘셉트은 lsquo북북 쓰는 마케팅rsquo으로 각 조를 하나의 챕터로

삼았다 즉 개성이 뚜렷한 5개의 챕터로 이루어진 lsquo마케팅 북rsquo인

것이다 그리고 각 챕터는 lsquo마케팅이란rsquo이라는 소주제를 부여하여

각 조의 교육과정과 보여주고 싶은 것들을 자유롭게 보여주기로

했다

이제 정이 끝났으니 반을 제시할 차례 lsquo반rsquo으로 lsquo소책자rsquo와 lsquo상품rsquo를

선택했다 소책자는 그저 소개하는 글만을 넣지 않고 lsquo스탬프

여행rsquo의 컨셉을 빌려 꾸미기로 했다 각 조의 부스를 돌아볼 수 있는

장치로 충분한 역할을 할 것이다 상품은 lsquo책rsquo에 대한 행운을 줄 수

있는 lsquo무언가rsquo를 준비하기로 했는데 지금 당장 밝히기는 쉽지 않은

lsquo무언가rsquo를 준비할 것이다 (기대되시지요)

이제 합이다 합은 발표회 당일 분명 lsquo정rsquo과 lsquo반rsquo의 효과가 나타날

것이며 어느 때의 발표회보다 멋질 것이다 (라고 근자감을

부려본다) 곧 시작될 발표회 기대하시라

마케터반 11기 이장열

11

1212

설왕설래

『호밀밭의 파수꾼』의 결말이

궁금해서 견딜 수 없다면

세 반 학우들의 상상력을 동원한 우리들의 릴레이 세

나에 대해 듣고 싶다면 내가 어디서 태어났는지 어린

시절이 얼마나 형편없었는지 내 부모님이 무슨 직업을

가지고 있는지 내가 태어나기 전에 무슨 일들이 있었는

지 같은 데이비드 코퍼필드 식의 헛소리가 듣고 싶겠지

하지만 난 그딴 이야기 하고 싶지 않아 (JD 샐린저 『호

밀밭의 파수꾼』

내 속으로 지나가지만 어쨌든 내 것이 아닌 섬광을 내

가 앉았던 내가 읽었던 생을 한순간에 으스러뜨리는

섬광을 이야기하고 싶어 이창환

아니 잠깐 내가 뭔 병신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

지 내일 서울출판예비학교 면접 있어서 빨리 자야 하

는데hellip 공태준

어서 잠에 들어야 한다는 조급함이 커질수록 허기 또

한 함께 치밀어 올랐다 결국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파

스타 면을 삶는 시간 8분 (그 동안엔 냉장고의 한 쪽

에 남아있던 산토리 한 캔을 단숨에 들이켜야 했다)

음악은 야나체크의 산포니에타 김사룡

맥주 한 캔으로 살짝 취기가 돌자 술이 더 마시고 싶었

다 결국 소주 한 병을 꺼내어 마시며 적당히 삶아진 파

스타 면을 올리브유에 볶았다 내일 입을 정장치마가

끼지 않을까 걱정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엎질러진 물

인걸 최다은

침대에 누워 억지로 잠을 청해본다 잡념이 사라지지

않는다 고민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된다 젠장 벌

써 새벽 3시 자긴 글렀네hellip 그렇게 뒤척이다 날은 밝았

다 이다혜

밝아진 창밖을 보며 어젯밤 나를 뒤척이게 한 면접을

떠올렸다 어제만 해도 중요한 일이라 생각했는데 날

이 밝으니 이미 그 중요성은 나와 멀어진 느낌이다 의

무감에 옷을 챙겨입고 집을 나섰다 양화대교를 건너는

버스 안 새로운 계획이 떠올랐다 황하정

새로운 계획으로 들뜬 나에게 창밖의 풍경이 눈에 들어

온다 수많은 사람과 차량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

어진다 다른 듯 보이지만 얼굴을 장식한 특유의 무표

정함과 발등에 불이 떨어진 듯 바삐 움직이는 모습 속

에 내가 겹쳐 보인다 그래 이번 계획은 나에게 얼마

동안의 기대감을 선사해 줄 수 있을까 뭐 어때 잠깐

이라도 좋다 쓸데없는 잡념보다는 시한부 희망이 차라

리 낫다며 애써 위로한다 유수지

순간 어렴풋한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니 내 또

래의 남자가 거북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김단희

그의 혐오에 가까운 시선과 마주쳤을 때 나는 순간 얼

어버렸다 면접 장소에 가기 위해선 이번 정류장에서 내

렸어야만 했다 그러나 나에게 다가오는 그 남자 때문

에 그러지 못했다 남자가 말했다 김선아

ldquo너였구나 그래 너였어 3년 전 3만원을 빌리고 도망

간 김말숙이 그래 너야rdquo

그 남자는 미친 게 분명했다 lsquo잠깐 이 관능적인 머스

크 향은 뭐지rsquo 순간 뇌리를 스치는 불가리 향수는

그 남자를 떠올리게 했다 지독하게 얼굴을 기억하지

못했던 그 남자를 말이다 이장열

대학교 1학년 설레는 마음으로 나간 첫 번째 미팅을

내 인생 최악의 시간으로 만들었던 lsquo불가리 그놈rsquo이었

lsquo젠장 이 안면 인식 장애놈이 내 얼굴을 어떻게 기억하

는 거지rsquo 내 이름이 김말숙이든 아니든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내 얼굴을 기억한다는 것이 의아할 뿐

양화대교 위에서 떠오른 새로운 계획 그래 지금부터

시작이다 오늘 하루는 lsquo나rsquo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 살

아보는 거야

난 매섭게 치뜬 눈으로 나를 응시하는 그를 뒤로하고

소설의 첫 문장으로 시작하는 릴레이 소설

13

무심히 다음 역에서 내렸다 아무런 동요 없이 발걸음

을 옮기는 나를 보고는 그도 무안한지 이내 제자리로

돌아가는 듯했다 이상한 사람 나는 계속해 나의 목적

지를 향해 걸어갔다

결국 지각했다 면접은 진행 중이었다 이게 다 불가리

때문이다 불가리 냄새가 몸에 밴 것 같다 아니 불가

리 냄새는 내 옆에서 나고 있었다 내 옆에는 불가리가

앉아 있었다 부처님의 손가락을 본 손오공의 심정이

이러했을까 강귀욱

끔찍했다 냄새도 면접도

lsquo젠장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야rsquo

담배에 불을 붙여 한 모금 깊게 빤다 lsquo후-rsquo 치미는 화

도 잡념도 불안도 이 연기처럼 쉬이 사라져버리면 좋

으련만 무의미한 푸념만이 입 안에 맴돈다

ldquo김말숙~ 여기 있었냐rdquo 그 말에 얼마나 놀랐냐면 떨

어진 담뱃불이 내 정장치마를 태우고 있는 줄도 몰랐을

정도였다 lsquo불가리 그놈을 피해 골목까지 들어왔는데

여긴 어떻게 찾은거야rsquo

ldquo밥 먹을래rdquo lsquo꺼져 꺼져 제발 꺼져helliprsquo 못 들은 척 고

개를 돌렸다

ldquo소달구지라고 괜찮은 식당 있는데 같이 가면 그 3만

원 없던 걸로 해줄게rdquo

우리는 눈이 마주쳤다 김영준

해질 무렵 서서히 불이 들어오는 보고 있어도 언제 밝

아졌는지 알 수 없는 양화대교 위 가로등처럼 우리는

천천히 그러나 깊게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새카

만 흑암의 공간 무저갱 같이 깊고 검은 눈동자 속에

숨겨 놓은 비밀을 알아내기라도 하려는 듯 그렇게 서

로의 눈을 망막 너머의 시신경을 시신경을 타고 올라

가 전두엽 어딘가에서 터지고 있을 스파크를 계속 들여

다보았다 이윽고 두 남녀의 입이 열렸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낮은 목소리가 화음을 내며 울려 퍼

졌다 ldquo몽마르뜨가 좋겠어rdquo 권오권

끔찍했던 면접과 기분 나쁜 불가리놈의 얼굴이 잊힐 정

도로 음식의 맛은 정말 좋았다 고작 음식 때문에 기분

이 나아지는 내 자신에게 정말 어이가 없었지만 어쨌

든 맛은 좋았다 된장국으로 숟가락을 옮기며 슬쩍 앞

의 녀석 얼굴을 쳐다보았을 때 그 녀석도 나를 쳐다보

고 있었다 김희연

3년 전의 얼굴과 꽤 변해있었다 그 당시 철없는 어린

애 같은 얼굴이었는데 지금은 사회인이 되려고 꾸며댄

듯한 모습 물론 3년 전보다 더 나아졌다거나 잘생겨진

것은 아니다 전보다 훨씬 평범한 얼굴이다 ()

그런 그는 어째서 날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어째서 날

기억하고 다가와서 말을 걸고 함께 식사까지 하려 하

는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이 텅 빈 머릿속을 메

운다 엄청나게 망쳐 버린 하루지만 이상하리만큼 멀

쩡한 내가 낯설다 김하얀

그러다 내가 집에 돌아가는 길 문득 미니스톱에 담배

를 사러 들렀다가 ldquo여기 국산담배밖에 없는helliprdquo 음hellip

없단다 가뜩이나 기분도 꿀꿀한데 없다니 빵만 사서

나왔다

빵을 사서 가는 길에 낯익은 얼굴에 걸음을 멈추었다

ldquo너 혼자 빵 먹냐 나도 같이 먹자rdquo 불가리 그놈이었

다 ldquo혹시 너 나 따라온 거야rdquo 기가 막혔다 백가은

어쩐지 불가리 향수 냄새가 난다 했다 ldquo왜 따라왔어rdquo

그랬더니 불가리 그놈이 하는 말

ldquo난 내 집 가는 건데rdquo 믿을 수 없다 수상쩍다 그놈은

나를 앞질러 가더니 우리 집 주인 아줌마네 집으로 들

어가 버렸다 아 저 놈이 집주인 아줌마 아들놈인가

월세 밀렸는데 망할

망할 이상한 하루였다 잊자 오늘 일은 전부 다 잊어

버려야지 방으로 들어오기 직전에 산 맥주 한 캔의 뚜

껑을 따고 들이킨다 캬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가는 듯

시원하다 씻고 자리에 눕는 순간 면접 결과가 나올 때

까지 무엇을 하고 있어야 할지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TO BE CONTINUEDhellip

은 익명 표시입니다

13

무심히 다음 역에서 내렸다 아무런 동요 없이 발걸음

을 옮기는 나를 보고는 그도 무안한지 이내 제자리로

돌아가는 듯했다 이상한 사람 나는 계속해 나의 목적

지를 향해 걸어갔다

결국 지각했다 면접은 진행 중이었다 이게 다 불가리

때문이다 불가리 냄새가 몸에 밴 것 같다 아니 불가

리 냄새는 내 옆에서 나고 있었다 내 옆에는 불가리가

앉아 있었다 부처님의 손가락을 본 손오공의 심정이

이러했을까 강귀욱

끔찍했다 냄새도 면접도

lsquo젠장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야rsquo

담배에 불을 붙여 한 모금 깊게 빤다 lsquo후-rsquo 치미는 화

도 잡념도 불안도 이 연기처럼 쉬이 사라져버리면 좋

으련만 무의미한 푸념만이 입 안에 맴돈다

ldquo김말숙~ 여기 있었냐rdquo 그 말에 얼마나 놀랐냐면 떨

어진 담뱃불이 내 정장치마를 태우고 있는 줄도 몰랐을

정도였다 lsquo불가리 그놈을 피해 골목까지 들어왔는데

여긴 어떻게 찾은거야rsquo

ldquo밥 먹을래rdquo lsquo꺼져 꺼져 제발 꺼져helliprsquo 못 들은 척 고

개를 돌렸다

ldquo소달구지라고 괜찮은 식당 있는데 같이 가면 그 3만

원 없던 걸로 해줄게rdquo

우리는 눈이 마주쳤다 김영준

해질 무렵 서서히 불이 들어오는 보고 있어도 언제 밝

아졌는지 알 수 없는 양화대교 위 가로등처럼 우리는

천천히 그러나 깊게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새카

만 흑암의 공간 무저갱 같이 깊고 검은 눈동자 속에

숨겨 놓은 비밀을 알아내기라도 하려는 듯 그렇게 서

로의 눈을 망막 너머의 시신경을 시신경을 타고 올라

가 전두엽 어딘가에서 터지고 있을 스파크를 계속 들여

다보았다 이윽고 두 남녀의 입이 열렸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낮은 목소리가 화음을 내며 울려 퍼

졌다 ldquo몽마르뜨가 좋겠어rdquo 권오권

끔찍했던 면접과 기분 나쁜 불가리놈의 얼굴이 잊힐 정

도로 음식의 맛은 정말 좋았다 고작 음식 때문에 기분

이 나아지는 내 자신에게 정말 어이가 없었지만 어쨌

든 맛은 좋았다 된장국으로 숟가락을 옮기며 슬쩍 앞

의 녀석 얼굴을 쳐다보았을 때 그 녀석도 나를 쳐다보

고 있었다 김희연

3년 전의 얼굴과 꽤 변해있었다 그 당시 철없는 어린

애 같은 얼굴이었는데 지금은 사회인이 되려고 꾸며댄

듯한 모습 물론 3년 전보다 더 나아졌다거나 잘생겨진

것은 아니다 전보다 훨씬 평범한 얼굴이다 ()

그런 그는 어째서 날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어째서 날

기억하고 다가와서 말을 걸고 함께 식사까지 하려 하

는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이 텅 빈 머릿속을 메

운다 엄청나게 망쳐 버린 하루지만 이상하리만큼 멀

쩡한 내가 낯설다 김하얀

그러다 내가 집에 돌아가는 길 문득 미니스톱에 담배

를 사러 들렀다가 ldquo여기 국산담배밖에 없는helliprdquo 음hellip

없단다 가뜩이나 기분도 꿀꿀한데 없다니 빵만 사서

나왔다

빵을 사서 가는 길에 낯익은 얼굴에 걸음을 멈추었다

ldquo너 혼자 빵 먹냐 나도 같이 먹자rdquo 불가리 그놈이었

다 ldquo혹시 너 나 따라온 거야rdquo 기가 막혔다 백가은

어쩐지 불가리 향수 냄새가 난다 했다 ldquo왜 따라왔어rdquo

그랬더니 불가리 그놈이 하는 말

ldquo난 내 집 가는 건데rdquo 믿을 수 없다 수상쩍다 그놈은

나를 앞질러 가더니 우리 집 주인 아줌마네 집으로 들

어가 버렸다 아 저 놈이 집주인 아줌마 아들놈인가

월세 밀렸는데 망할

망할 이상한 하루였다 잊자 오늘 일은 전부 다 잊어

버려야지 방으로 들어오기 직전에 산 맥주 한 캔의 뚜

껑을 따고 들이킨다 캬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가는 듯

시원하다 씻고 자리에 눕는 순간 면접 결과가 나올 때

까지 무엇을 하고 있어야 할지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TO BE CONTINUEDhellip

은 익명 표시입니다

14

이옥란 선생님

캡틴 오 마이 캡틴(captain oh my captain)선생님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

편집자반 학우들은 늘 이분의 얼굴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며

끝마친다 몇 번의 마주침은 덤이다 그분은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도 가깝지만은 않았던 편집자반의 담임 교수

이옥란 선생님 자신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우리를 위한

이야기를 풀어놓으시느라 매일 종례시간이 부족하신 이옥란

선생님께 이번엔 우리가 물었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 일상을 어떻게 보내고 계신가요 선생님의

주말이 취향이 추억이 삶이 궁금하다 편집자반 학생들에게

직접 받은 질문들로 lsquo한 사람rsquo에게 궁금한 것들을 물었다

이 인터뷰를 읽은 뒤 그녀를 한층 좋아하게 되리라고

확신한다

왜 디토 커피에 자주 가시나요

커피가 제일 맛있고 값이 싸고

넓은 창으로 햇빛이 많이 들어와

그리고 주인장들이 공간은 물론이고

손님들과도 잘 어우러지는 것 같아

옥란 선생님께 스카프란

어느 날 발견한 패션 아이템 몇 년 전인가

홍대 앞 가판대에서 우연히 마 레이온 합성의

보라색 스카프를 발견한 이후인 것 같아

왜 고양이를 좋아하시나요 고양이를 키우시나요

고양이가 나를 키웠다고 할 수 있지 시골집 막내였는데

고양이가 친구가 되어주었어 (선생님이 고양이를 닮아

가시는 것 같아요 혹시 키우세요) 둘 있는데 13년쯤 되었나

최근에 읽었거나 읽고 계신 책은

이익섭 저의 『국어학개설』 『말과 사물』 『좌파는

어디에 있었는가』 『논어』 『번역어의 성립』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등 여러 권 들고 다니면서 돌려본다

(국어학개설은 읽는다기보다 공부 아닐까요) 아니야

재미있어

인생의 책을 꼽자면

김훈의 『남한산성』 표지가 핫핑크 색이야 건조하고 힘

있는 남성적인 문체의 마초라고 불리기까지 하는 작가의

책이 핑크색이라니 크기도 아마 46판에 더스트 커버(dust

cover)는 질긴 천의 느낌이고 본문은 재생지인지 무겁지

않고 두께도 딱 손에 잡히는 정도 감각까지 장악한 책이야

몇 권 사서 주변 사람들에게 돌렸어

선생님의 멘토는

이런 질문에 답하게 될 줄은 몰랐네 글쎄 그러고 보면

존경스러운 사람은 있었지 대학 때 문학 동아리 선배였어

양상현 형 (어떤 점이 제일 존경스러우셨어요) 자유롭게

사는 사람이었던 것 얼마 전에 돌아가셨어 이제 조금

실감이 나네 그분은 건축 전공에 시를 쓰고 음악을

즐기고 노는 문화를 나누고hellip 어떤 사태도 회피하지 않고

자유로웠던 사람이었지 앞으로 할 일이 더 많았을 터인데

양상현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졸업 동대학원

박사학위 2002년 대한민국건축대전

초대작가 선정 순천향대 건축학과

교수 재직 민족건축인협의회

의장 설계 작품으로는 lsquo장암리

주택rsquo lsquo녹촌리 조각가의 집rsquo 등

대표 저서『거꾸로 읽는 도시

뒤집어 보는 건축』 2015년

8월 14일 별세

졸업 후 편집자로 일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우리 때는 노동운동이나 농민운동을

했던 대학생이 사회과학 출판사로

진출하는 경우가 많았고 내 친구도 졸업을 해서

출판사에 있었어 그 녀석이 나를 사무실로

초대했는데 반지하도 아니고 그냥 지하였던 것

같아 ldquo옥란이 이리와 봐 이게 뭔지 아니 바로

매킨토시라는 거야 이게 얼마짜린지 아니rdquo

매킨토시 컬러 클래식(Macintosh Color Classic)

웬만한 공책보다 좀 클까 본체가 화면에 같이

붙어 있는 하드웨어를 가진 컴퓨터였지 친구 말로는

300~400만 원 한다고 했어 20년 전이니 당시로는

큰돈이지 교정지를 보여주더니 마치 lsquo음 너는 아직 이런 거

모르지rsquo라고 하는 듯이 ldquo잠깐만 언니가 뭐 좀 할 테니까

잠깐 기다려봐 하hellip 이거 띄어쓰기 어떻게 해야 하려나 이게

전문용어라 통일을 해줘야 하는데helliprdquo 하던 잘난 척이 기억이

나네 그렇게 출판사를 접했지 문학 동아리를 하느라 알게

된 선생님들 선배님들도 여럿 출판사에들 계셨어

편집자로 일하셨을 때 어떤 분야를

편집하셨나요

하다 보니 주로 예술 서양 미술 분야였고

출판사는 학고재 예경 마로니에북스까지

그런 기회가 나한테 왔고 재미있었어

전공이 그쪽이 아니었기 때문에 공부를

해야 했지

지난 서울출판예비학교생활 중 특별히

기억나는 사람이나 사건이 있다면

8기 졸업식 날 남학생 셋이 ldquo저는 출판학교에

와서 모든 것을 얻었습니다rdquo 그러면서 흑흑 우는 거야

누군지 얘기하면 창피하겠지 남학생들이 울어서 애들이

알고싶어 편집자반

15

완전 눈물 바다였잖아 (우리 반 오빠들이 운다는 건 상상할

수 없네요) 다음 해에는 애들이 완전 유머 코드여서 웃다

끝났지

출판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된 계기나 동기는

무엇인가요

나는 8기부터 시작했는데 7기 담임이던 김장환 씨가 나를

불렀어 공동 담임을 해달라고 lsquo그러지 뭐rsquo 이렇게 시작했지

직장은 2008년도까지 다녔고 프리랜서로 활동하면서

여기저기서 강의를 하고 있었어 한겨레 문화센터에도

23년쯤 있었지 (편집자보다 이렇게 선생님으로 있는 게 더

즐거우세요) 지금은 진짜 만들고 싶은 책 함께 작업해보고

싶은 저자 그런 게 아닌 한 직업으로 신간을 꾸준히 내는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당신들은 눈이 반짝반짝해서 업계에 들어와야겠다고

준비해서 오잖아 그 친구들이 1년차 3년차 되는 것을

지켜보고 있으려니까 내가 그 나이쯤 사회생활을

시작해 고민했던 지점이 보이는 거지 그 때

이걸 알았더라면 하는 안타까움이 있어서

여러분들이 애틋해지지

요즘 최대의 관심사는 무엇인가요

저녁에 후배들에게 가르칠 강의를 하다

보니 국어 공부의 필요성을 여실히 느끼고

있어 출판 동네에서 20년 넘게 일한 사람이

공부해온 것을 한 번 정리해서 후배들한테 줄 필요도

있겠구나 싶고 (뭔가 일 얘기가 아닐 줄 알았는데요

하하)

은퇴 후에 무엇을 하고 싶으신가요

오늘은 말이 절로 나오는 걸 하하 마당 있는 시골집 텃밭을

일구며 역사에 길이 남을 인간과 세상을 통찰하는 대작

소설을 발표하겠다 (와)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이 되고 싶으신가요

다시 태어나고 싶지가 않아hellip(웃음) 지구에서는 내

대에서 멸종하기로 했다

저희들에게 속 시원하게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자신 있게 해라

생각해보면 다들 자기가 못났어 키도 좀 더 컸으면

좋겠고 외모도 마음에 안 들고 내가 저 때 저렇게

했으면 지금 달라졌을까 부럽기도 하고

그런데 사실 부질없는 거거든 세상 사는

힘이 실력에만 있는 게 아니고 태도의 문제가 더

클 때가 많아 내 것이 아닌 것에 목매고 있을

필요가 없어 신입사원으로 전혀 모르는 곳에

뚝 떨어졌을 때 저들의 세계 속에 혼자 쏙

들어간 기분이니까 일단은 주눅이 들지

하지만 거기서 살아가야 하지 않겠어

둘러보면서 아 저기가 화장실이구나 사람들은

이런 걸 이렇게 하는구나 파악하고 나면 좀

수월해지잖아

마지막으로 대망의 이상형 월드컵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정우 주원 김수현 유아인 이렇게

4강전으로 시작하겠습니다

(하정우와 주원 중에서는 누가 더 좋으세요) 하정우지

주원이 최근에 좋아지긴 했는데 아직도 하정우를 따라올 수

없어

(그럼 김수현유아인 중에서는요) 유아인이지

(너무 확고하셔요 드라마 lt밀회gt 보셨나요) 집에선 케이블

방송도 안 나오고 관심 갖게 되었을 땐 너무 유행이라

안보고 말았지 대신 영화 lt완득이gt는 봤다

(이제 결승인데요 마지막으로 하정우와 유아인은요)

아인이는hellip 나한테 좀 과분한 것 같아(웃음) 하정우가 삐질

것 같은데 그래서 둘 다 잃는 거야hellip

편집자반 11기 김수진 이상화

lt베테랑gt의 악랄한 재벌 2세유아인

lt프로듀사gt의 어리버리 신입PD

김수현

lt용팔이gt의 천재 외과의사

주원

lt 암 살 gt 의 순 정 마초

하와이 피스톨하정우

하정우

16

한대웅 선생님

『동백꽃』의 주인공 같은 그 남자착하디착한 순하디순한 한대웅 선생님의 속마음

좀처럼 화내시는 일도 없고 허허 웃기만 하시고hellip 하지 못한

말들을 땀으로 발산하듯 여름이면 온몸이 열정으로 흠뻑

젖으시는 분 세상 어디에도 없을 착한 남자 마케터반의

한대웅 선생님이다 그에게 던진 몇 가지 질문에 돌아온 것은

가장으로서의 고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 아직도 앳된

소년 같은 순수함이 묻어나는 답변들이었다 이제 그를 좀 더

깊게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평소에 칼라(collar) 티셔츠를 즐겨 입으시던데

좋아하시는 옷인가요

좋아한다기보다는 제 딴에는 편하게 입을 수 있는 듯해서

즐겨 입고 있습니다 또 아내가 이런 종류의 옷을 많이

사주기도 하고요

선생님께 lsquo출판rsquo이란 무엇인가요

출판은 lsquo꿈을 이루는 판도라의 상자rsquo lsquo내가 가진 능력에 가장

맞는 일rsquo입니다

출판을 업으로 삼지

않으셨다면 어떤 일을

선택하셨을까요

모르겠네요 아마도 운명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요 다만 다음과

같은 3가지 생각은 해보았습니다

첫째 고등학교 시절 성적이 조금

더 좋았다면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해서

지금쯤이면 텔레비전이나 영화에 나오는 큰 전투함의

함장이 되지 않았을까요

둘째 대학교에 입학하지 못했다면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로 이민을 가서 장사를 하거나 농부로 농장을

운영하면서 그곳 사람으로 국적을 바꾸고 살고 있지

않을까요 고등학교 3학년 때 대학교 입학 시험에

떨어지면 다른 나라로 가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다는

마음의 준비를 했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 모 일간지에 실린

해외에서 성공적인 삶을 사는 한국 사람들에 관한 기사를

꼼꼼하게 읽었었거든요

셋째 대학교 3학년이나 4학년 때 신춘문예까지는 아니라도

대학교 교내 문학상 정도를 받았다면 아마도 그 결과에

탄력을 받아 시나리오 작가나 연극 연출가의 길로 가려고

하지 않았을까요

ID와 블로그에 lsquo봄rsquo이라는 단어가 들어있는데 봄을

좋아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그 ID를 만들 무렵 저의 미래는 꽤나 불확실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바꿔 말하면 어떻게

돈을 벌어야 하고 어떻게 자아 성취를

해야 하는지가 불확실하고

힘들었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lsquo봄rsquo이라는

단어를 좋아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누구나

알다시피 봄은 겨우내

얼어 있던 것들이

새롭게 싹을 틔우고

새롭게 기지개를 펴는

계절이죠 물론 봄

자체가 주는 느낌도

좋고요 그래서 lsquo봄rsquo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던 것

같습니다

블로그는 서울출판예비학교에서

일을 시작한 후 만들었습니다

블로그에 lsquo봄바람rsquo이라는 의미를 부여한

것은 ID를 만들던 때의 생각이 이어진 것이겠지요 요즘에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이 많이 사라진 것 같습니다 만약

앞으로 블로그나 ID를 만든다면 아마도 lsquo여름rsquo 혹은 lsquo풍성함rsquo

아니면 lsquo내가 원하는 세상을 상징하는 어떤 것rsquo을 이름으로

사용할 것 같습니다

편집자로 첫 시작을 하셨는데 나중에 출판 마케터로

일하게 된 동기를 알고 싶어요

시장 상황을 분석하고 이에 맞게 마케팅 계획을 세우고

사람이나 집단을 만나고 힘을 합쳐 뭔가 새로운 결과를

만들어 내는 일이 재미있었습니다

은퇴 후에 꿈꾸시는 삶이 있으신가요

아직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20대와 30대

초반에 꿈꾸던 것들을 lsquo은퇴 후에 여유가 생긴다면 이것들을

해볼까rsquo라고 간혹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현재겠죠 출판에서 뭔가를 이루려고 열심히 계획하고

실행하다 보면 은퇴 후의 삶도 더 풍요로워지지 않을까요

알고싶어 마케터반

17

일하실 때 다뤘던 책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무엇인가요

입사 초기 편집을 하거나 시장조사를 하고 제가 출간 여부에

대한 판단을 내렸던 책들이 기억납니다 『펠레』 자서전은

제가 편집자로 있을 때 출간했던 책인데 주요 일간지의

서평란 메인을 장식했던 책입니다 출간 시점을 맞추기 위해

촉박한 기간 동안 밤새가며 책을 만들었습니다 출간 시점에

대한 판단이 정확히 맞았고 그 결과 기대 이상으로 많은

서평을 받았던 책입니다

서울예비출판학교 선생님으로 오신 계기를

알고 싶어요

전에 다니던 출판사를 그만둔 후

개인적으로 뭔가를 해보려고 고민

중이었습니다 그러나 능력이

부족하다 보니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았죠 그러던 중에

출판학교에서 일해 볼 것을

제안 받았고 저도 출판학교

학생들처럼 면접을 보고 이

학교에 오게 되었습니다

일을 하게 되었을 때 매우

즐거웠습니다

다시 출판사 마케터로 돌아갈

생각이 있으신가요

아니오 이유는 2가지인데 첫째는 제 나이가

48세입니다 다른 업종도 그렇지만 출판 산업에서도

48살에 마케터로 직장인의 생활을 이어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죠 정말 현실적인 고민이죠 게다가 출판학교에서

여러분과 소통하며 제 지식을 전수하는 일이 재미있습니다

물론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언젠가 저만의 꿈을

찾아갈 수 있겠죠

평소 몇 권의 책을 읽으시나요 최근 읽은 책 중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요

예전에 많이 읽을 때는 1주일에 2권 정도 읽었습니다

황석영의 『장길산』과 홍명희의 『임꺽정』 이문열의

『삼국지』를 읽을 때 짬짬이 쉬는 시간을 비롯해 지하철에서

보내는 시간까지 거의 모든 시간을 책을 읽으며 보냈습니다

요즘에는 1달에 1~2권 정도 읽는 것 같네요 최근 읽은

책 중에 기억에 남는 책은 『내 아이와 어떻게 대화할

것인가』(율리아 기펜레이테르 저 써네스트 2006)와 『내

아이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율리아 기펜레이테르

저 써네스트 2009)입니다 제목만으로도 왜 이 책을

추천하는지 금방 눈치 챌 수 있을 것입니다 아이가 둘

있는데 첫째는 15살 딸이고 둘째는 10살 아들입니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lsquo어떻게 하면 아이와 싸우지 않고

윽박지르지 않고 아이의 자존감을 높여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성실하고 삶의 열정과 꿈이 넘쳐나는 아이로

키울까rsquo 같은 고민을 항상 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단비처럼 다가왔습니다 위의 2권의 책을 읽고 몇

가지 중요한 것들을 배웠습니다 아이와 어떻게 소통하고

어떻게 대화해야 하는지 아이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등등 이전에 『부모와 아이 사이』(하임 G 기너트

등 저 양철북 2003)를 읽고 아이를 이해하는 법에 대해

큰 인상을 받았는데 이 책도 그 연장선에서 저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아들과 딸을 좀 더 이해하게 되고 그

결과 아이들에게 화를 내거나(저도 나약한 인간인데 화가

날 때가 심심치 않게 있거든요) 아이들의 긍정적인 싹을

본의 아니게 꺾어 버리는 경우가 줄었다고 할까요 게다가

이 책은 lsquo부모와 아이 사이rsquo만이 아니라 lsquo친구와 친구 사이rsquo

lsquo회사 내부 구성원 사이rsquo에서 소통하는 데도 많은 영감을

제공합니다 출판학교 학생들과 소통할 때도 이해의 폭을

넓혀주고 긍정적인 소통을 하는 방법을 제공해 줍니다

이제 수료를 앞둔 마케터반 학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으시다면

개인별로 처한 처지와 조건에 따라 다르겠지만 다음과 같은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 연인을 사랑하듯 출판에 대해서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보세

- 이 길이 나에게 최선의 길인가 생각해 보세요

- 목표를 세우고 지금부터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한 후 그것을 어떻게 이루어 나갈 것인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보세요

저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스스로의 내면을 단단하게 할 중요한

질문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앞으로도 끊임없이

새로운 답을 찾아나갈 질문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케터반 11기 이장열 이창환

18

선생님은 주말에 뭐하세요

무조건 가족과 함께hellip

만약 편집 디자인을 안 하셨다면 무슨 일을 하고

계실까 궁금해요

어찌 됐든 개인 사업자로 살았을 듯 윗사람 비위 맞추는

것을 너무 못하므로hellip

선생님 주량이 어떻게 되세요 주사가 있으세요

몸 상태 좋고 안주 많이 먹으면 1병(클래식으로)

좋은 출판 디자인을 생각한다

심우진middot안광욱 선생님

lsquo멋rsquo이라는 것이 폭발한다뼛속까지 디자이너스러운 심우진 선생님

멀리서도 눈에 띄는 큰 키에 멋들어진 베레모 디자인반의

심우진 선생님 되시겠다 서울출판예비학교에서 lsquo멋rsquo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가끔은 조금 키 큰 학생처럼 학생들

속에 잘 어우러지는 사람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모습은

여기까지다 그를 조금 더 알고 싶다 지금까지의 그를

만들어왔을 lsquo심우진의 생각들rsquo이 궁금했다

선생님은 무엇을 드시고 그리 멋지시나요

학생들의 사랑 밥 김치

일본 유학길에 오르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lsquo동아시아rsquo lsquo근대rsquo가 당시 나의 화두였으므로 그리고

스기우라 고헤이 선생을 뵈러

첫 직장을 다녔을때 일의 강도()나 다니는 동안

마음은 또 어떠셨는지

출판 쪽 첫 직장은 lsquo정디자인rsquo인데 lsquo나는 왜 이렇게 디자인을

못할까rsquo 답답해했던 기억이 있어요 그러나 매우 즐거웠고

술도 자주 마셨죠 아직도 당시의 OB들과 가깝게 지내요

lsquo둥지rsquo 같은 곳이죠

선생님께서 생각하는 완벽한 판면이란

디자이너의 삶의 방식과 콘텐츠의 삶의 방식이 녹아든 판면

선생님의 피로회복 방법은

알고싶어 디자인반

19

디자인반의 히어로좋은 출판 디자인을 생각한다 안광욱 선생님

여자 화장실 앞에 있어 인파로 북적대는 디자인반 교실을

학생들과 함께 굳건히 지켜온 분 디자인반 학생들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애정공세를 아끼지 않는 분 안광욱

선생님에게 물어본 4가지

디자이너로서 첫 직장을 다닐 때의 마음이

어떠셨나요

잘하고 싶었는데 못해서 힘들었지 사수에게 하루 서너

시간씩 야단맞으면서 했다오 매일 2호선 양화대교에서 뛰어

내리고 싶었는데hellip 이 부분은 내일 수업 때 얘기해줄게^^

선생님께서 생각하는 좋은 출판 디자인이란

세상을 향한 사랑과 희망이 듬뿍 담긴 디자인

출판 디자인을 안 했다면 지금 무슨 일을 하고

계실까요

모르겠네 그냥 선녀 옷 훔치는 나무꾼이 되어 있을 듯^^

어떤 주사가

있으신지 궁금해요

말이 조금 더 많아지고 장소 불문 쿨쿨 자 특별한 주사는

없는 듯

디자인반 11기 이소현 백가은 사공예원

디자

인 사

공예

20

편집자반 김영준 학우가 그린

『이 외로운 사람들아』 일러스트

기억에콕

수업 후기

ldquo우리에게는 lsquo일탈rsquo이 필요합니다rdquo

잠깐 딴 짓을 하는 사이에 귓가에 들려온

한 문장이 나를 사로잡았다 배는 부르고

따 사 로 운 햇 살 에 잠 이 쏟 아 지 는 시 간

오후 1시 30분 시간을 칼같이 맞춰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선 그는 딱 봐도 지루하고

고리타분해 보이는 첫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순간 눈으로 들어온 이미지는 뇌로 흘러갔고

뇌는 망설임 없는 확신으로 귀에 명령을

전달했다 그렇게 귀는 이미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내 들려올 그렇고 그런 뻔한

이야기에 대하여

눈의 판단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의 한마디

한마디는 파격이었다 아니 어쩌면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였지만 누구도 자신 있게

내던지지 못하는 말들을 서슴지 않고 내뱉는 그

거침없음에 신선함을 느낀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의 관심을 돌려놓았던 lsquo일탈rsquo에 대한 그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lsquo일탈을 하라rsquo는 말이

lsquo제멋대로 하라rsquo는 의미가 아니라 어떤 규칙을

벗어나는 행위를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다르게

생각하는 방식을 몸으로 익히게 된다는 것

새로운 것을 생각해내는 창의성이라는 힘은

당연히 새로운 경험에서 나온다는 것이었다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니 강의를 듣던

친구들의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때 보고 들었던 그의 말과 행동이 우리에게는

딱 딱 한 강 의 실 에 서 느 끼 는 새 로 운 경 험

lsquo일탈rsquo이었다

그 와 의 만 남 은 계 속 이 어 졌 다 이 곳

서 울 출 판 예 비 학 교 에 입 학 한 이 후 로 는 좀

더 완 벽 한 일 주 일 단 위 로 시 간 이 흐 르 기

시작했는데 매주 쌓여가는 새로운 배움 뒤에는

수많은 물음이 불쑥불쑥 솟아났고 그는 마치

예상을 했다는 듯이 일주일에 한 번씩 나타나

우리의 설익은 궁금증을 해소해주고 떠나갔다

첫 만남에서는 책이라는 대상과 책을 대하는

편집자의 자세에 대해 이야기하며 큰 그림을

그려주었고 다음엔 저자와의 관계 맺기 그

다음엔 스스로 만들어 가야할 편집자의 자기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담백하게 들려주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네 번째 만남이었다

누구도 쉽게 이야기하기 어려운 완벽하게

솔직해지기는 더더욱 어려운 자신의 좌절과

실패를 그는 담담하고 진솔하게 소개해주었다

모든 성공에는 대개 7할의 실패가 전제되어

있기 마련인데 성공에 이르기까지 거치는

우 리 가 lsquo실패rsquo라고 명 명하는 것들이 사실

진짜 실패가 아니라 성공의 다른 이름이라는

그의 말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성공도 실패도

어 느 한 지 점 에 서 내 리 는 판 단 인 것 이 고

결 국 성 장 하 고 성 숙 한 다 는 것 은 성 공 과

실패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lsquo차이rsquo를 얼마만큼

발견하느냐 하는 것에서 결정된다는 그의 말이

가슴을 뜨겁게 했다 비로소 lsquo편집자rsquo로서가

아닌 한 lsquo사람rsquo으로서의 그가 보이기 시작했다

담담하게 말을 하고 있지만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아프고 쓰린 기억을 후배들에게

들 려 주 는 그 에 게 서 진 심 이 전 해 져 왔 다

사랑하는 일에 대한 함께 걸어갈 동지들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 참 고마웠다

어느덧 마지막 만남이 찾아왔다 한 권의

책을 만들면서 진행했던 편집의 과정을 예로

실 제 적 인 이 야 기 를 우 리 에 게 마 지 막 으 로

들려주었다 편집의 능력은 지식과 정보에서

나온다는 것 그것은 단숨에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 꾸준히 쌓아가야 한다는 것 그래서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의 문제라는 것을 경험을

근거로 자신 있게 말해 주었다 이미 지나온

과거의 결과 대신 앞으로 걸어갈 길에 대한

희망을 들려주어서 그게 참 고마웠다

편집자반 일탈이 주는 파격 우리가 낳을 lsquo새로운 책rsquo과 편집자선완규 선생님과의 다섯 번의 만남이 키운 생각들

21

그 가 우 리 에 게 마 지 막 으 로 이 야 기 를

들려주었던 그날 이후 석 달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났다 나는 여전히 같은 강의실에 앉아

앞서 길을 걸어간 선배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고 조금씩 가까워지고 밝아져가는 내 앞에

놓인 길에 대해 생각한다 그러다 문득 마음이

무거워지고 막막해질 때면 종종 그의 말들을

떠올려 본다 그리고 그 생각의 끝에서 마음을

의지하며 함께 이 길을 걸어갈 따뜻한 선배가

하나 있다는 위로 한 줌을 발견한다

ps 선완규 선생님 고맙습니다 보고 싶어요

편집자반 11기 성준근

마케터반 강한 수면욕 환상과 환기

판형과 종이를 예술로 편입시키려는 영업자다빈치 출판사 박성식 대표 특강 후기

9월 23일 평소보다 점심을 많이 먹었던 날이다 잠을 며칠간 못 자 피곤했다

오후 1시 30분이 살짝 지나서 다빈치 출판사 박성식 대표의 특강이 시작됐다

다빈치 대표님은 처음 뵐 때부터 남다르셨다 서울출판예비학교 입학 면접에서

여자 술 담배를 각각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보셨다 lsquo솔직함을 어필해야

하는 순간인가rsquo하는 생각에 직설적으로 답했지만 lsquo더 문학적으로 얘기할 수

있었는데rsquo라는 후회를 안고 돌아왔다

마음과 다르게 첫 번째 시간은 정신없이 잠이 쏟아졌다 눈을 감고 귀 기울였지만

턱을 괸 채 버티는 동안 50분이 지났다 대표님께 캔 커피를 하나 드리고 맞이한 두

번째 시간 그 한 시간 동안 나는 현실 옆의 어떤 이상 내지는 환상을 본 것 같다 그동안

듣던 강의들을 놓고 lsquo이상적인 관점이다rsquo 혹은 lsquo현실적이다rsquo라고 구분했던 판단의 폭

자체가 좁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성식 대표님은 내 머리에 있던 lsquo책rsquo에 대한 인식을 전복시켰다 자본주의 출판의

몰락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시작됐다는 말 출판 기본 특성인 다품종 소량 생산은 돌아올

것이며 다품종 소량 생산을 넘어 다품종 소량 lsquo고급 생산rsquo을 추구하고 싶다는 말은 나를

달뜨게 했다 주류에 반하는 사고를 가진 중년의 개성과 내공에 교실 풍경이 환기됐다

교육 수단으로 책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지만 책은 그만큼 사회적 의무와 희생을

짊어져왔다 출세와 공부 앞에서 책이 가진 기호(嗜好)성은 변두리로 내몰렸다 책을

읽어야만 제대로 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분위기는 옳지 않다 독서는 성향의 범주지 성역이

돼선 안 된다 정보와 지식의 전달은 모바일 등에 넘겨주고 종이책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공동체로 돌아와야 한다 그게 원래 자리라는 대표님의 주장이 새롭고 강렬하다

자본주의 3대 원칙인 lsquo더 빨리 더 많이 더 싸게rsquo 체계는 표준화와 규격화를 동반하며

매우 효율적이다 현재 사용하는 종이는 자본주의 원칙에 최적화돼 있다 그러나 대표님은

인쇄기계로 소화하지 못하는 질감과 전혀 다른 발색을 지닌 lsquo종이rsquo에 주목했다 그 종이로

콘텐츠 종이 판형이 완벽하게 들어맞는 예술서를 만들고 시장을 설득한다면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책 판매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전했다 종이 자체가 책의 예술성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한지(韓紙)를 예로 들면서 훌륭한 텍스트와 이미지를 한 차원 끌어올리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많은 부수를 팔아야 성공한 출판 많은 부수를 파는 것을

목표로 하는 시대는 저물고 있다 기존 유통과 판매 방식

안에 갇혀서는 불황에 매몰될 뿐이다 소량의 고급화된

책을 꿈꾸는 것과 전시회를 책과 결합하는 것도 다른 길을

물색하는 과정이다

대표님은 10년 전부터 lsquo이 원고는 내가 누구보다 잘

만들겠다rsquo lsquo이 원고는 내가 못하면 누구도 못할 것 같다rsquo라는

생각이 든 책만 출간을 진행했다고 한다

강의 중간 자신의 독특한 철학을 전달하는 것에 대해 가벼운

염려를 하셨지만 이론적이고 실용적인 분야에 몸담더라도

예술적 사고의 유연성은 필요하다고 본다 돈과 인문정신을

구분하면서 필요할 때 양쪽에서 자극 받고 차용하는 것이 마케팅의 융통성과 힘을 기르는 길일 것이다

마케터반 11기 이창환

편집자반 김영준 학우가 그린

『이 외로운 사람들아』 일러스트

박성식 대표가 기획한 lsquo오름rsquo전

22

하늘

습탁은 농도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하늘

습탁은 농도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이 글은 심우진 선생님의 탁본 세미나 수업에 대한 우리들의 즐거운

기록이다 탁본은 습탁(濕拓)과 건탁(乾拓) 두 종류로 구별된다

습탁은 나타내고자 하는 물체 위에 물을 묻힌 후 종이를 그 위에

밀착시키고 먹물 묻은 솜방망이로 가볍게 두드려서 물체를 표현하는

방법이다 물체의 패인 부분을 제외하고 볼록한 부분의 모양대로

종이에 먹이 묻어 문자나 문양이 드러난다 건탁은 이름 그대로 물을

사용하지 않고 마른 상태의 먹인 고형묵(固形墨)을 사용한다 우리는

각자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사물과 자연을 이용해 탁본 작품을

만들고 서울출판예비학교 꼭대기 층에서 작품을 공유했다

디자인반 이 시간을 그대로 탁본할 수 있다면심우진 선생님의 탁본 세미나

저는 신문지를 구겨서 해봤어요

응 그런데 이건 방바닥 같은데

방바닥까지 묻어 나와 버렸네요

[학생들 하하하]

저는 일단 큰 나무 기둥을 떠봤고요

오솔길의 짚도 해보고 저희 집 바닥과

벽면도 신기해서 떠봤어요 집 벽면 중에

대리석도 있고 특이한 벽면이 많거든요

부잣집인가 보네

[학생들 깔깔깔]

승연

심우진 선생님

승연

승연

심우진 선생님

이건 파프리카인데 저희 집 개가 완성한 종이를 찢었어요

[학생들 하하하]

좀 작고 납작한 파프리카를 반으로 잘라서 습탁했어요 또

이건 철조망인데 용 비늘처럼 나와서 재밌었어요 아나콘다

같기도 하고 철조망이 날카로워서 습탁하니 종이가 자꾸

찢어져서 다시 하게 됐어요 근데 이거요hellip 남자친구

있으면 커플끼리 한 번 해보세요 한 명은 잡아주고 한 명은

습탁하고hellip 되게 로맨틱 성공적

자랑하는 거니

[학생들 깔깔깔]

수빈

수빈

심우진 선생님

혜민

정묵

처음에 나뭇잎이 세세하게 잘 나올 줄 몰랐는데 그

줄기의 질감이 잘 나왔고 버려진 타이어를 끌어서

생긴 모양으로도 습탁을 했는데 생각보다 잘 나와서

막상 찍어보면 생각과 다르다는 것을 느꼈어요

저도요 결과물이 뚜렷하게 안 나올 줄 알았는데

디테일이 잘 나타나 있었고 입체를 평면적으로

찍는 것 자체가 재밌었어요

수정

저는 빗자루를 해봤어요 너무 얇아서 안 나올

거라 생각했는데 빗자루 문양이 잘 나와서

재밌었고 머리카락도 해봤는데 머리카락은

끝 부분이 잘 나오는 편이에요 위쪽은 다

뭉쳐있는데 끝 부분은 펼칠 수 있으니까요

23

저는 결이 얇은 것들을 뜨는 것이 재밌었어요

머리카락처럼요 머리 긴 사람에게 부탁해서

눕히고 했어요 그리고 이건 얼굴인데요

처음에는 그냥 했는데 얼굴은 입체를 살리려면

스케치하듯 떠야 되요 결국 명암으로 입체감

조절을 해야 되죠 코가 너무 입체적이라 특히

힘들었어요

누구 얼굴이야

우리 언니hellip

[학생들 우와]

가은

심우진 선생님

가은

하얀

음각이 나왔을 때 너무 좋았고요하늘

습탁은 농도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소리

건 탁 보 다 는 습 탁 이 농 도 조 절 하 는 게

희 한 해 서 재 밌 었 어 요 농 도 조 절 이

관 건 이 거 든 요 먹 과 물 의 배 합 과

솜방망이가 먹물을 얼마나 흡수하는지 그

흡수량이 중요하고요

윤미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꽤 많은데 만져보면서 건탁을 뜨니까 좋았어요 전에

습탁할 때는 시멘트 벽 같은 걸 하다가 나뭇결을 하니까

살아있는 느낌이었어요 생각했던 것처럼 나와서

좋았고 솔방울이나 나뭇잎 같은 섬세한 것들은 제대로

나오지 않아서 아쉬웠어요 섬세한 것들은 습탁으로

해봐야겠어요 그래도 다양한 나무를 건탁해봐서

만족해요

소현

저는 일상적인 것들로 습탁을 해봤어요

처음에는 단순하게 오돌토돌한 느낌만

있 을 줄 알 았 는 데 색 다 른 느 낌 이 나 서

재밌었어요

탁본 세미나를 마치고 그 다음 주에 지하 강당에서 촬영하는 시간을

가졌다 촬영 후에 보정도 했다 나뭇잎의 결 무늬 타이어 자국

그리고 사람의 머리카락까지도 좋은 디자인의 재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보았고 나누었다 건탁과 습탁의 장단점을 이 수업으로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심우진 선생님의 이번 탁본 수업도 지난 활자

수업처럼 지식 습득은 물론이고 경험까지 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 시간들이 앞으로 출판 디자이너로서의 감각을 더 풍요롭게 해 주지

않을까

디자인반 11기 사공예원

하얀

음각이 나왔을 때 너무 좋았고요

습탁은 농도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솜방망이가 먹물을 얼마나 흡수하는지 그

흡수량이 중요하고요

윤미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꽤 많은데 만져보면서 건탁을 뜨니까 좋았어요 전에 꽤 많은데 만져보면서 건탁을 뜨니까 좋았어요 전에

이건 파프리카인데 저희 집 개가 완성한 종이를 찢었어요

[학생들 하하하]

좀 작고 납작한 파프리카를 반으로 잘라서 습탁했어요 또

이건 철조망인데 용 비늘처럼 나와서 재밌었어요 아나콘다

같기도 하고 철조망이 날카로워서 습탁하니 종이가 자꾸

찢어져서 다시 하게 됐어요 근데 이거요hellip 남자친구

있으면 커플끼리 한 번 해보세요 한 명은 잡아주고 한 명은

습탁하고hellip 되게 로맨틱 성공적

자랑하는 거니

[학생들 깔깔깔]

24

9시 30분 합정역 1번 출구 앞

ldquo누나rdquo 소리에 쳐다보니 반가운 공 총무의 얼굴이 보였다 정류장

앞으로 길게 늘어선 줄에 합류하여 파주로 날 데려다 줄 2200번

버스를 기다리고 있으니 반가운 얼굴들이 계속 나타났다 한 대의

버스를 보내고서야 겨우 2200번 버스에 탑승해 파주로 출발할 수

있었다

10시 15분 파주 lsquo다산교 앞rsquo 정류장 하차

4개의 정류장 총 57분이 걸린다고 알려준 N사 지도 어플의 정보와는

달리 30분 만에 파주에 도착했다 일찍 도착해 먹을 것을 찾아 헤맨

예비 마케터들은 편의점에서 주린 배를 채웠고 lsquo지혜의 숲rsquo을 살짝

염탐하며 11시까지 시간을 보냈다

11시 05분 보진재 2층

1912년 설립되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인쇄소인 보진재 관계자

분이 나와 간단히 인사 말씀을 하고 각 반의 인솔자를 소개해주셨다

마케터반의 인솔자는 서동관 과장님 디자인반 편집자반 마케터반

순으로 견학을 시작했다

11시 15분 보진재 견학 시작

제일 먼저 본 곳은 제판실이었다 필름 인쇄가 줄어들고 CTP로

대체되는 추세지만 어떤 분들은 여전히 필름 작업을 하고 계셨다

이유를 물어보니 서동관 과장님은 예전 필름이 남아 있기도 하고

출판사에 따라 필름을 고집하는 곳이 있다고 하셨다

한번에 5도 인쇄가 가능한 기계를 보는 중에 서 과장님이 말씀하셨다

ldquo한 유닛(unit)당 23억 정도 해요rdquo 그렇다면 유닛 다섯 개가

돌아가고 있으니 적어도 10억짜리 기계라고 내 눈에 보이는 건 그냥

낡고 큰 기계인데 10억이 넘는다니 놀랐다 또 과장님께서 자랑스레

말씀하신 한 가지 잉크 농도 조절을 자동으로 하는 기계가 보급된

곳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었다 원래는 사람이 눈으로 보고 수정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재판을 찍을 경우 초판과 동일한 색상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있지만 보진재는 기계가 자동으로 조정해주어 수월한

작업을 할 수 있다고 하셨다

매염실도 보고 제본실도 구경했다 인쇄된 종이를 접지하고 제본을

마친 후 마지막으로 제단을 하면 책이 완성되어 나왔다 그 모든

과정을 보고 난 후 서 과장님이 건넨 완성된 책의 무게는 보통의

그것보다 조금 더 무겁게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윤전실이었다 견학 당일은 작업이 없어서

비어있던 윤전실이지만 윤전실이 주는 무게감은 컸다 윤전실은

롤(roll)로 인쇄하는 곳으로 8개의 롤이 양면 인쇄를 하고 건조와

접지까지 한 번에 가능한 기계도 있었다 대량생산을 위한 곳으로

주로 교과서나 EBS 학습지를 인쇄한다고 하셨다

12시 20분 견학 끝

1시간을 조금 넘긴 견학을 끝내고 밖으로 나오니 코가 따갑고 목이

말랐다 기계가 먼지를 빨아들여준다고는 하지만 수없이 많은

종이가 존재하는 공간에서의 종이 냄새는 강력했던 것이다 책이

제작되는 과정은 실제로 보니 다양하고 복잡했다 자동화가 많이

되어있지만 사람의 손길 없이는 절대 완성될 수 없는 과정들을 보며

책이 완성되기까지의 노력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lsquo책이 어떻게

만들어진다rsquo를 배우다가 lsquo책이 이렇게 만들어진다rsquo를 보니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예비 출판 마케터의

길로 들어선 후에 새로운 것을 보고 배울 수 있었는데 보진재 견학은

그 중에서도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책을 완성시키기 위한 모든 과정이

저마다의 몫을 하고 있었다 서울출판예비학교 졸업 후 출판계에

들어섰을 때 나는 과연 어떤 몫을 할 수 있을까 남은 2개월을 조금은

더 열정적으로 보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마케터반 11기 최다은

1 일일탈

학교 밖 견학 후기

피부로 와 닿는 책의 감촉 책의 냄새 책의 소리 보진재에서 책이 인쇄되는 과정을 만나다

필름과 인쇄판이 만들어지는 과정

25

우리가 이제 각자 편집자 마케터 디자이너가 되어 책 만드는 일을

시작하면 우리의 책은 이곳에서부터 그 lsquo탄생rsquo을 시작할 것이다 책의

근간이 되는 종이가 만들어지는 곳 한솔제지 공장에 다녀왔다 학기

초에 책을 파는 서점을 견학한 뒤 그 다음으로 출판사 종이에 활자를

찍어내는 인쇄소 그리고 마지막으로 lsquo종이rsquo를 만드는 제지 공장을

찾은 것이다 책이 만들어지는 순서대로라면 우리가 다녀온 순서를

거꾸로 해서 다녀왔어야 했지만 우리는 반대로 실제 과정을 거슬러

올라간 것이다 이렇게 거슬러 올라가는 과정에서 오히려 편집자란

직업에 겸허해질 수 있었다 가끔은 편집자가 책을 만드는 모든

과정 위에 군림하는 것 같이 느껴지지만 책의 물성을 만들어내는

거대한 기계 앞에서 우린 한없이 작아지기도 한다 lsquo한 권의 책rsquo이

만들어지려면 이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함을 이해해야 했다 이렇게도

복잡하고 힘겹게 만들어지는 책의 가치를 한 번 더 깊이 생각하게 된

계기였다 책이라는 건 의미가 담긴 조각들의 집합체이자 종이를

보기 좋게 물성화한 것 이론적으로야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눈으로 보고 느끼는 것과는 천지차이다

날씨마저 좋았던 9월 11일 평소보다 한 시간이나 이른 8시

30분에 세 반 학우들은 눈도 제대로 못 뜬 채 집합했다 대전까지

간다니 마치 여행가는 것 같은 살짝 들뜬 기분까지 안고 아침도 못

챙겨먹고 나왔을 우리를 생각해서 빵과 우유까지 준비한 한솔제지

측의 세심한 배려에 감동했다 배도 채우고 부족한 잠도 보충해가며

2시간 넘게 달려 신탄진 공장에 도착했다 도착하자 보이는 우리를

환영하는 현수막에 2차로 감동했다 우리를 위해 정말 많은 준비를

하셨구나 느낀 순간이었다

신탄진 공장 강당에 들어가서 간단한 공장 소개를 먼저 들었다

그리고 뒤이어 종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경청했다 수업 때보다

학생들의 집중력이 더 높아 보였던 건 내 착각이었길 종이는

1퍼센트의 펄프와 99퍼센트의 물로 이루어진단다 그래서 전반적인

공 정 의 대 부 분 은 물 을 처 리 하 기 위 한 과 정 이 나 다 름 없 었 다

생각보다 종이는 순수한 물질이라고 생각했다 종이(paper)의

어원은 이집트의 파피루스(papyrus)에서 왔다고 한다 중국의

lsquo채륜(蔡倫)rsquo이라는 사람이 제일 먼저 발명했고 고려시대에

일본으로 넘어간다 일본에 가장 마지막으로 넘어갔지만 종이의

기술력은 현재 일본이 가장 좋다 원료rarr초지rarr코팅 등의 공정을 거쳐

종이가 완성되는데 마지막 코팅 공정을 여자의 화장에 비유한 것

역시 기억에 남는다 코팅이 그렇게나 대단한 과정이라니

공장 안으로 들어가서는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시끄러워서 설명을

제대로 듣진 못했지만 앞서 들었던 설명을 떠올리며 기계들을

관찰했다 인쇄소에서 본 광경들도 거대하고 박력 있었지만 여긴

그보다 더 거친 느낌이었다 책은 서점에 놓여있을 때는 그렇게

얌전하건만 태어날 땐 이렇게 시끄럽다 또한 막 태어난 종이는

거대하고 또 거대했다 다들 마치 거대한 두루마리 휴지 같다고들

했다

견학을 다 마치고 다시 대전 공장으로 이동해 다 같이 점심 식사를

했다 기대 이상으로 맛있는 밥에 또 감동 더 힘내서 견학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아쉽게도 대전 공장 안에는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라 그 힘()을 발휘하진 못했다 대전 공장은 신탄진 공장과

다르게 책에 쓰이는 것이 아닌 제품 포장용 박스 종이컵 등 다른

용도에 쓰이는 종이를 만드는 곳이었다 그 과정의 차이를 눈으로

비교하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마지막으로 좋은 선물까지 손에

받아들고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다시 서울로 향했다

언제나 시작은 중요하다 각자의 일에 빠져들게 되면 점점 잊게 될

그 시작을 눈에 담고 오래 기억하기 위해 다녀왔다고 생각한다 요즘

초심을 잃었다는 생각이 종종 드는데 책에게도 초심이 있다면 바로 이

곳일까 시작의 의미에 대해 다시 곱씹어보았다

편집자반 11기 박혜원

우리의 글과 그림이 펼쳐질 종이의 탄생 한솔제지 신탄진 공장 견학

거대한 롤(상) 한솔제지 공장 앞에서 (하)

26

화양연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삶과 문학에 취하다

편집자반 한국문학 동아리 lsquo공감rsquo 그 대담의 현장

훗날 서울출판예비학교를 떠올릴 때 가장 즐거운 시간으로 기

억되는 날들은 동아리 활동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들의

화양연화(花樣年華)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 중

의 하루를 소개한다 문예창작학과를 전공한 문학소녀 김한나

학우를 필두로 창단된 편집자반 내 한국문학 동아리 lsquo공감rsquo은

모임 전에 한국작가를 한 명 정해 단편 두 편을 함께 읽고 키워

드나 질문을 스스로 뽑아 글을 써왔다 모여서 때로는 소설의

플롯이나 주제 문체에 대한 열띤 토론을 하고 때로는 작가의

외모()와 같은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며 삼천포로 빠지기도 했

다 우리끼리만 듣기엔 아쉽다 이 즐거운 대화를 모두에게 들

려주고 싶었다 이날 모임에선 김영하 작가의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단편집 속의 두 단편 lsquo엘리베이

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이하 엘리베이터)rsquo와 lsquo사진

관 살인사건(이하 사진관)rsquo에 대해 이야기했다 여기서는 lsquo엘리

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rsquo를 읽고 토의한 내용을

실었다

한나 참고로 김영하는 사람의 욕망에 대해 천착하는 작가야

그런 특성이 엘리베이터에는 안 나와 있는데 사진관에서는

잘 드러나 있어

상화 백가흠 작가에게 소설창작론 강의를 들었는데 그분이

소설의 기법을 설명하면서 알레고리랑 아이러니를 얘기했어

알레고리가 인물이나 소재를 비유적으로 설명하는 거래 예를

들어 핸드폰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다른

것에 핸드폰을 빗댐으로써 소설을 풀어가는 거

야 아이러니는 속도감 있게 이야기를 전개함으

로써 부조리나 모순을 드러내는 건데 김영하가

아이러니의 대표적인 작가래 단편인데도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내면보다는 사건이 일어나는

걸로 소설을 끌어가는 작가 우리가 지난 모임

에서 성석제를 굉장한 이야기꾼이라고 했잖아

그런데 난 김영하가 훨씬 이야기꾼스럽게 느껴

졌어 속도감 있고 lsquo이렇게 몰입을 할 수 있나rsquo

싶고 지난 모임들에서 읽었던 손보미나 편혜영

소설의 경우는 분위기나 주인공의 심정 내면에

의미를 부여해 야 했는데 김영하의 소설은 덮

자마자 아이러니가 느껴지면서 lsquo아 세상은 왜

이래rsquo 말하게 만들었어

법열 나는 엘리베이터 읽고 딱 lsquo뫼비우스의 띠rsquo가 생각났거든

뫼비우스의 띠가 안하고 겉이 구분이 안 되잖아 끝과 시작이

어딘지도 모르고 lsquo나rsquo가 겪는 상황이 현실인지 아닌지 구분이

안 되는 느낌 마지막에 lsquo나rsquo가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가 존재

하기는 했는지 혼란스러운 느낌을 받잖아 그게 앞의 환상적

인 부분이랑 맞물리면서 하나가 되는 느낌이라 뫼비우스의 띠

가 생각났어

상화 lsquo나rsquo가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구해주려고 고분군투하

다가 나중에 자기가 엘리베이터에 갇히잖아

오권 낀 남자의 발을 보면서 느꼈던 감상이 사실은 자기를 구

하고 싶었던 마음인 거지

(일동 오~ 그렇게도 볼 수 있네)

오권 무한도전의 무한상사 특집도 생각났어 뜬금없이 휴지

사용하는 길이에 대해 회의하는 장면에서 엘리베이터는 갇힌

사회 서로를 돌아보지 않는 사회를 의미하는 것 같아

한나 나는 반대로 오히려 엘리베이터를 희망적인 존재로 봤

거든 아파트도 그렇고 회사도 그렇고 각자 자신의 공간 안에

서 살다가 서로 만날 수 있는 장소는 엘리베이터 밖에 없으니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김영하 지음

문학동네 20100216

동아리 후기

27

까 lsquo나rsquo가 회사 엘리베이터 안에 여자와 같이 갇히잖아 사실

은 갇히지 않았으면 대화도 안하고 지나쳐 갔을 텐데 남자는

자기가 아침부터 버스 사고도 나고 성추행범으로 몰렸다고 얘

기하고 또 남자의 담배 피워도 되냐는 말에 여자는 담배에 대

한 불평불만을 속사포처럼 얘기하고 엘리베이터라는 공간이

아니었다면 이런 대화 자체가 없었겠지

오권 엘리베이터 타면 사람들이 하나같이 층수 바뀌는 것만

쳐다보고 있잖아

상화 요즘은 스마트폰

오권 자기 얘기를 하고 싶은 것 같아 하지만 상대의 얘기는

안 들어 lsquo너의 얘기는 관심 밖이지만 내가 불편한 것에 대한

얘기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하겠어rsquo라는 느낌

한나 그리고 우스웠던 게 볼일 보고 휴지 몇 칸 쓰는지 회의에

서 얘기하는 건hellip 사실 굉장히 사적인 얘기잖아 (일동 하하

하) 서로에 대해 다른 얘기는 일절 하지 않으면서 회의 내용은

개인적이고 사적이라니 아이러니한 거지

수경 진짜 웃기지 않았어 lsquo나rsquo가 자원 재활용 문제에 대한 중

대 보고가 있다고 계속 빨리 가야한다고 했던 게 겨우 그거야

상화 겨우 이딴 회의하려고 지금 엘리베이터에 낀 사람 놔두

고hellip 생명이 더 중요한데 지금 휴지 구하려고hellip

(일동 하하하)

한나 lsquo나rsquo가 불쌍했던 이유가 자기한테 닥친 일들은 lsquo할 수 없

지 뭐rsquo 이런 식으로 넘기는데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 걱정하고

갇힌 여자 걱정하고hellip 정작 자기 걱정은 안 해

오권 영화 lt라이터를 켜라gt 봤어 조폭들한테 얻어맞으면서

도 주인공은 무조건 자기 라이터만 찾겠다고 그러거든 이 소

설의 lsquo나rsquo와 비슷한 느낌이 들더라고 그 영화에서는 라이터가

주인공의 존재를 투영하는 소재거든 lsquo나rsquo는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구해야만 자기가 산다는 느낌을 받은 거라 해석하면

너무 나간 건가

법열 아니요 형이 아까 지적해준 게 와 닿았어요 그 고군분

투가 결국 자기를 구하려는 노력이라는 지적이요

상화 그나마 lsquo나rsquo가 이 소설에서 제일 인간적이지

수경 어딘가 찌질한 느낌도 들어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와

lsquo내rsquo가 동류라고 자각하고 연민을 갖는 느낌이었거든 lsquo나rsquo가

인간적이고 윤리적이라는 생각은 나는 글쎄hellip 더 적극적으

로 할 수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 자기 사이클에서 벗어나

지 않는 한도 내에서 걱정만 하잖아 소설 안에서 비극과 희

극이 번갈아 가며 나타나는데 트럭과 버스가 충돌했을 때

lsquo나rsquo는 lsquo버스 카드 일로 충돌하지 않게 되어 적이 기뻤다rsquo고

생각해 버스 운전사는 트럭 백미러에 가슴이 받혀서 죽었는

지도 모르는데 lsquo다행히 나는 허리가 좀 뻐근한 것만 빼면 별

다른 상처가 없는 듯했다rsquo 이런 생각들을 하는 게 좀 섬뜩했

민희 사람은 다 이중성을 가지고 있잖아 나를 보는 듯했어

만약 학교 가는 길에 엘리베이터에 낀 사람을 봤다면 그렇

지만 나도 얼마나 바빠 몇 분 늦으면 지각 체크 당하고 출석

80퍼센트를 못 채울 수도(일동 웃음) 있는 상황이라면 내

가 그 남자를 구할 수 있을까 일단 지나치고 119에 전화하려

고 했으나 핸드폰이 없는 상황에 나도 처할 수 있는 거잖아 나

만 생각하는 잔인한 면도 내 안에 있고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

도 내 안에 있어 이런 찌질한 모습도 나고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정의롭게 구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상화 기준이 다른 것 같아 lsquo나rsquo 정도면 착하다고 생각했거든

수경 주변 사람들이 약간 마네킹 같지 않아 주인공 주변에

장치되어있던 다른 사람들이 너무 비인간적이기 때문에 lsquo나rsquo

가 돋보이는 거지 lsquo나rsquo는 지극히 평범한 우리 모습 같아 내가

어떻게 할 생각은 없고 궁금하기만 한 거야

민희 그 궁금함과 찜찜함도 죄책감이라 생각돼 아 내가 어떻

게 해줬어야 했나

한나 책임 회피일까

상화 그래서 나는 키워드 뽑은 것 중 하나가 119야 구해주고

싶으면 직접 내 손으로 잡아 빼주던가 엘리베이터를 들어 올

릴 사람을 모아야 했는데 신고 생각만 하잖아 이미 이건 누

가 대신 해결해줘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그나마 우리

사회에서 사고를 수습해주는 건 119밖에 없고 조선시대에는

119같은 거 없고 마을 사람들이 모여 구해줬을 텐데 어쩔 수

28

없는 현대인의 단상이긴 해 현대가 분업사회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들 바쁘고 삶이 개인화 파편화되어 있으니까 119 같

은 집단이 필요한 거지 그래서 난 119를 신의 영역이라고 썼

어 lsquo나rsquo는 119를 거의 신적인 존재처럼 생각하잖아 부르면 모

든 게 해결될 것처럼 핸드폰 빌리고 공중전화 찾고 그런데 막

상 교통사고 현장에서 119 대원에게 면대 면으로 얘기를 했더

니 그들은 무슨 그따위 장난을 하냐고 말해 구조도 실은 신이

아니라 사람이 하는 일이고 그 사람이 관심이 없으면 묻히는

거지

오권 전화를 거는 것과 직접 구해주는 것의 차이가 큰 것 같아

자기가 구해주는 건 적극적인 행동이고 119에 전화하는 건 스

스로 최소한 양심적이긴 하다고 여기는 행동

수경 그런데 엘리베이터에 낀 사람을 아무 것도 모르는 일반

인이 어떻게 했다가는 더 위험해질 수도 있잖아

오권 맞아 사회가 시스템화하고 고도화될수록 각자의 업무가

분업화되었고 전문분야가 생겨났으니까 옛날 같았으면 애 낳

으면 그냥 동네 아주머니가 애 받고 어미가 죽으면 젖동냥 다

녔는데hellip 이젠 사고가 나면 생각이 119에 먼저 미치는 시대가

된 거지

수경 그래서 어딘가에 널브러져 다친 인간이 아니라 엘리베이

터라는 공간에 낀 남자를 설정한 것 아닐까 엘리베이터는 현

대화의 상징이잖아

한나 lsquo나rsquo도 어쩔 수 없는 게 출근 시간에 쫓겨서 시계를 계속

봐 먹고 사는 일이니까

오권 출근했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다시 집으로 돌아가

낀 사람을 구해주면 굉장히 희망찬 소설로 바뀔 텐데hellip (일동

웃음)

수경 이 소설로 현대 사회의 폐단은 다 얘기할 수 있겠는데

상화 김영하는 천재인 것 같다

누군가 그리고 잘생겼잖아

누군가 잘생긴 거야

누군가 지적인 분위기가 있어서 좋아 (한참 얘기)

한나 또 인상 깊었던 게 구두에 집착하는 거 lsquo나는 날렵한 치

타처럼hellip 구두를 가지고 엘리베이터에서 빠져나오는 데 성공

했다 허탈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rsquo는 구절

오권 자살한 사람들이 구두를 가지런히 벗어놓는 이미지가 무

슨 상징처럼 있잖아

한나 신발 한 쪽 없이 다녀봤어 계속 기우뚱대서 내가 걷거

나 서 있을 때 내가 잘못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여기서 lsquo나rsquo가

그랬을 거야 사실 lsquo나rsquo처럼 사는 게 정상인데 세상이 잘못된

건데

상화 이 소설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감정표현이잖아 하루 종

일 얼마나 힘들었겠어 처음으로 감정표현을 하니까 불쌍했어

오권 휴머니즘 불쌍론 또 나왔네(일동 웃음) 그럼 이제 사진

관으로 넘어가볼까hellip

편집자반 11기 이상화

2929

책씹는맛 01 냄새라는 경이 lt감각의 박물학gt 후각편을 읽고

냄새에는 언어가 없다 어휘가 부족한 우리는 말문이 막힌

채 불명료한 쾌감과 자극의 바다에서 말을 찾을 수밖에

없다1

이 말은 다이앤 애커먼의 『감각의 박물학』 제 1장 후각에

나오는 구절이다 냄새를 글로 쓰고자 하는 나의 시도가 늘

실패로 귀결되는 이유를 이 구절에서 찾았다 작가의 말처

럼 냄새에 대해 쓴다는 건 언어 밖 세계로 나갔다가 다시

언어로 되돌아오는 길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길에서 헤매

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후각이라는 감각에서 길을

잃는 것은 낭만적인 일이기도 하다 lsquo냄새의 뇌관을 건드리

면 모든 추억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기rsquo2 때문이다 냄새 하

나에 수많은 추억들이 줄줄이 기억의 회로 위로 떠오른다

예를 들면 바다 냄새 하나만 상상해도 그와 관련된 수많

은 기억들이 머릿속에 뒤섞인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바닷가와 관련된 그 모든 추억들이 기억의 영사막에서 한

편의 옴니버스 영화 형태로 내게 다가온다 난 내 기억의

관객이 되어 그 영화를 보다가 견딜 수 없는 그리움에 젖는

다 이 영화에 대한 감상문을 적으려면 나는 말문이 막힌

다 그래서 몇 글자 적다가 결국 글을 쓰기를 멈춘다 굳이

언어로 표현하자면 쓸 수 없는 그리움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1 『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옮김 작가정신 20040720

A Natural History of the Senses(1991) 17쪽

2 같은 책 18쪽

결국 lsquo언어가 존재하는 세계에서 경이는 언어의 칼날 아래

서 쉽게 해부되고 냄새는 자주 혀끝에서 맴돈다rsquo3 냄새의

숭고함 앞에서 우리는 말을 멈춘다 이처럼 냄새는 말할 수

없는 자연의 경이로움과 닮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lsquo냄새가 우리의 마음을 그토록 강하게 움직이는 것은 부분

적으로 그 이름을 부를 수 없기 때문rsquo4이라고 한다 저자는

그렇기에 사람들이 냄새를 lsquo분 냄새 비슷한 펭귄 냄새가

나는 호화로운 화장실 냄새가 나는rsquo 같은 말로 표현할 뿐

이며 냄새에 대한 이름은 주어져 있지 않다고 말한다 또

한 종류는 같아도 강약과 농도가 다른 각각의 냄새에 이름

을 붙여줄 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우린 일상적으로 냄새를

맡으면서도 그 냄새와 멀리 떨어져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명명되지 않은 것은 결국 잊히는 게 아닐까 부를

수 없음에서 오는 경외감과 숭고함이 있을지라도 냄새는

말해져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말할 수 없는 것에 자꾸

만 침묵하기만 해야 할까

감각도 모험의 영역이 될 수 있다 세계 일주만이 세상을

아는 길일까 lsquo나rsquo를 온전히 아는 것이 역설적으로 세상과

가까워지는 일인지도 모른다 나를 알기 위한 길 중 하나가

내가 가지고 있는 감각을 이해하고 그걸 언어로 표현하는

일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어쩌면 우리와 제일 가깝지만 말

하기 낯선 감각 후각을 이해하는 일이 중요한지도 모른다

냄새라는 감각 속에서 우리 모두 길을 잃고 헤매고 모험해

보자 냄새에 나름의 이름을 지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

리고 농도에 따라 냄새를 구분하는 일도 해보자 냄새라는

경이는 우리를 더 이상 침묵으로 이끌지 않을 것이다

디자인반 11기 백가은

3 같은 책 22쪽

4 같은 책 22쪽

『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 옮김

작가정신 20040720

A Natural History of the Senses(1991)

3030

02 현실을 전복시키는 비현실

모호함이 주는 환상성

20세기 중반 중남미 소설은 전통적인 사실주의 서사 구조

를 깨고 현실과 환상을 혼합시키는 새로운 글쓰기 방식으

로 세계문학의 중심에 선다 이 시기에 주목 받은 일련의

중남미 작가들을 가리켜 lsquo붐 세대 작가rsquo라 칭하는데 아르

헨티나의 환상문학 작가 코르타사르는 이 붐 세대 작가군

의 선구자이자 대표 주자 격인 인물이다 그러나 그 문학적

성과와 명성이 무색하게도 국내 독자들에겐 그의 이름이

아직 생소한 것이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에서는 그

의 작품이 중남미 단편 선집에나 몇 편이 번역되었을 뿐 본

격적으로 소개된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중남미 문학을 공부했고 그의 몇 안 되는 번역 작품을 인

상 깊게 읽었던 독자 입장에서 이번에 출간된 코르타사르

의 단편집『드러누운 밤』은 가뭄의 단비처럼 반가운 신간

이다

환상 문학이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J R R 톨킨 류의 판타

지소설 혹은 쥘 베른이나 아이작 아시모프 류의 SF소설을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코르타사르의 환상문학은 이들 범

주에 들어가지 않는다 코르타사르 작품에서 나타나는 환

상이란 토도로프가 정의한 바 있는 환상 그러니까 자연적

인 것과 초자연적인 것 사이의 망설임에서 발생하는 환상

에 가깝다 따라서 판타지소설의 lsquo현실과 동떨어진 환상rsquo

혹은 SF소설의 lsquo설득력 있고 현실감 있는 환상rsquo을 기대하

는 독자라면 아마 십중팔구 그의 작품을 읽고 실망할 것

이다 어쩌면 이게 무슨 환상문학이냐는 푸념을 늘어놓을

지도 모르겠다 역시 가장 좋은 것은 선입관을 버리고 책을

읽는 것이다

코르타사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lsquo모호함rsquo이다 인물이나

배경 묘사에서 제시되는 기본적인 정보도 모호하고 사건의

전개 양상이 가진 당위성도 모호하다 작품 내에서 주요한

스토리 라인을 담당하는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경계도 모

호하며 심지어는 화자의 정체마저 모호한 작품도 있다 이

런 모호함의 향연은 짙게 깔린 안개와도 같아서 독자들은

그 속에서 한 치 앞도 제대로 내다볼 수 없음은 물론이요

이미 지나간 사실조차도 자신이 맞게 인식한 것인지 확신

할 수 없을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무엇이 진짜인지

독자들의 판단을 망설이게 만드는 이런 상태야말로 코르

타사르의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는 환상이란 개념이다 독

자들은 이 환상 속에서 그저 전방을 주시하며 천천히 나아

갈 수밖에 없다

다행스럽게도 코르타사르는 독자들의 시련을 헛되게 하지

않는다 작품의 시작점 일상 세계에 우연히 침투한 lsquo비현

실적인 것rsquo은 안개 속에서 알게 모르게 자신의 지분을 늘려

나간다 그리고 작품의 종점에 다다른 독자들은 비현실이

현실이 되고 현실이 비현실이 되는 이전과는 전혀 새로운

세계와 마주할 것이다 다시 말해 필연과 이성의 법칙이 지

배하는 세계가 우연과 환상이 지배하는 세계로 변하는 것

이다 이러한 세계의 전복은 마치 여기저기 단서를 흩뿌리

고 사람들을 알쏭달쏭하게 만들었다가 결말부에서 모든

것을 폭발시키는 추리소설 혹은 반전영화를 보는 듯한 재

미를 선사한다

그렇다면 코르타사르가 이 소설들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책을 다 읽고 난 독자라면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의문점이다 코르타사르는 자신이 환상문학을 쓰는

이유를 ldquo법칙이나 원칙 혹은 인과관계나 특정한 심리 또

는 잘 그려진 지리학과 같은 체계에 의해 세상이 지배되고

있다는 것에 반대rdquo하고 ldquo우리가 잘 모르며 우리에게 잘 다

가오지 않는 새로운 질서에 관해 생각해보기 위함rdquo이라고

설명한다 짧게 말해 이 세상에 필연이란 존재하지 않으

며 자신은 그것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말이다 이

게 전부다 순문학이라면 거장의 문학이라면 이보다 더 심

오한 통찰 혹은 비판이 있을 것이란 생각에 문장 속 숨겨진

의미를 발견하고자 머리를 싸맬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조

언을 하자면 독서는 독서 그 자체로 즐기면 된다 적어도 이

책에서는 그렇다 모호함과 예상외의 전개 속에서 재미를

느끼고 코르타사르가 묘사하는 세계의 불가지(不可知)성

을 어렴풋하게나마 인식할 수 있다면 이미 그것으로 충분

하다

편집자반 11기 강귀욱

『드러누운 밤』

훌리오 꼬르따사르 지음 박병규 옮김

창비 20141124

La noche boca arribaJulio Cortazar

31

03 얼어붙은 자의식의 바다를깨뜨리고 생명을 불어넣는 책 『데미안』

데미안을 읽고 나서야 그 동안 내가 두 발 딛고 서 있던 땅이

굳고 단단한 대지가 아니라 얼어붙은 바다에 불과했음을 알

았다 데미안은 도끼를 가져와 이 꽁꽁 언 바다를 가차 없이

내리 찍었다 그리고 말했다 얼어붙은 바다를 단단한 땅인

줄 알고 사느니 그 얼음을 깨부수고 그 속에 빠져 죽기 살기

로 허우적대라고 그러면 그 속에서 너는 너 자신을 똑바로 마

주하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성장할 것이라고

주인공 싱클레어도 그를 둘러싸고 있던 세계를 깨뜨려 나가

며 성장한다 그 모든 과정은 결국 진정한 자기 자신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가 깨뜨린 가장 큰 세계는 바로 자신의 사고 체계였다 세상

을 바라보는 기존의 이분법적이던 시각 고정되고 획일화된 시

각을 버렸다 주인공은 세계 안에 심지어는 자신 안에도 선하

고 악하며 밝고 어두운 양극단의 것들이 공존함을 이해하고

두 세계를 끌어안았다 주인공은 귀와 눈을 가리던 장막을 걷

어내 버리고 세상을 바로 보게 되었다 상극인 것들의 괴리로

이루어진 이 모순된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곧 자신 안의 부조

화 또한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스스로에게 다가서는 첫 걸음

이었다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양극단의 세계 사이에서 싱

클레어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며 흔들리기를 반복했다 이

때 그에게는 삶을 지탱할 중심축이 없었다 항상 내면이 아닌

외부 세계에서 자신이 속할 자리를 찾아 헤맸다 그가 비로소

온전한 자신을 만난 순간은 어느 편으로도 치우침 없이 스스

로의 기준으로 홀로 서게 되었을 때였다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 이 길은 당신이 내면에 있는 모

순되는 두 세계 한없이 나약하고 뒷걸음치는 비열한 모습들

과 정갈하고 깨끗한 곧은 힘들을 동시에 직시하는 순간에 시

작된다 그리고 이 길은 두 세계 속에 들어가 이리저리 휩쓸리

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세계를 밟고 우뚝 올라서서 스스로

가 중심이 됨으로써 앞으로 펼쳐진다

이제 lsquo자아를 찾으라rsquo는 지루하고 흔한 이야기가 더 이상 빤

하거나 우습지 않다 묵직한 울림이 되어 나를 흔든다 그냥

나만 붙잡고 흔드는 것이라면 손사래 쳐 뿌리치겠는데 내가

밟고 있던 땅 속해 있던 세계를 뿌리째 흔들어 버린다 읽는

내내 속이 답답하고 나에게 화가 난다 그런데 이렇게 마구

혼나면서 이상하게도 후련한 구석이 있다 호통을 치는 데미

안이 사실은 우리를 응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막연

하고 무기력한 안개에 휩싸여 있을 때 데미안은 그만의 방

식으로 우리에게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준다 물론 갈 방향을

정해준다거나 각자의 사정을 듣고 상담을 해주는 것은 아니

다 오로지 궁지로 몰아세울 뿐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사람들

은 잊고 있던 lsquo나 자신rsquo을 일깨운다 아 그동안 lsquo나rsquo에 대해 생

각해본 적이 있던가 라는 정도만이라도 좋다 이 물음이 바로

여정의 시작이니까

그렇게 스스로에게 묻고 나면 더 이상 전처럼 살 수는 없기 때

문이다 아니라면 자기 자신에게 면목이 없을 것이다 이 무서

운 책이 우리를 혼내고 몰아치면서도 여전히 영원한 고전이자

필독서로 사랑 받는 이유다

lsquo우리들 속에는 모든 것을 아는 한 사람이 있다rsquo고 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혼이 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혼

이 났다는 것은 자신 안에 있는 lsquo그 사람rsquo이 말을 하기 시작했

다는 뜻이니까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목소리가 희미하

고 멀리 있다 하여도 숨죽여 귀 기울이는 일 자체가 자신에게

로 가는 과정임을 잊지 말고

편집자반 11기 배예리

『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민음사 20001220

Demian Die Geschichte von Emil

Sinclairs Jugend(1919)

31

03 얼어붙은 자의식의 바다를깨뜨리고 생명을 불어넣는 책 『데미안』

데미안을 읽고 나서야 그 동안 내가 두 발 딛고 서 있던 땅이

굳고 단단한 대지가 아니라 얼어붙은 바다에 불과했음을 알

았다 데미안은 도끼를 가져와 이 꽁꽁 언 바다를 가차 없이

내리 찍었다 그리고 말했다 얼어붙은 바다를 단단한 땅인

줄 알고 사느니 그 얼음을 깨부수고 그 속에 빠져 죽기 살기

로 허우적대라고 그러면 그 속에서 너는 너 자신을 똑바로 마

주하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성장할 것이라고

주인공 싱클레어도 그를 둘러싸고 있던 세계를 깨뜨려 나가

며 성장한다 그 모든 과정은 결국 진정한 자기 자신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가 깨뜨린 가장 큰 세계는 바로 자신의 사고 체계였다 세상

을 바라보는 기존의 이분법적이던 시각 고정되고 획일화된 시

각을 버렸다 주인공은 세계 안에 심지어는 자신 안에도 선하

고 악하며 밝고 어두운 양극단의 것들이 공존함을 이해하고

두 세계를 끌어안았다 주인공은 귀와 눈을 가리던 장막을 걷

어내 버리고 세상을 바로 보게 되었다 상극인 것들의 괴리로

이루어진 이 모순된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곧 자신 안의 부조

화 또한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스스로에게 다가서는 첫 걸음

이었다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양극단의 세계 사이에서 싱

클레어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며 흔들리기를 반복했다 이

때 그에게는 삶을 지탱할 중심축이 없었다 항상 내면이 아닌

외부 세계에서 자신이 속할 자리를 찾아 헤맸다 그가 비로소

온전한 자신을 만난 순간은 어느 편으로도 치우침 없이 스스

로의 기준으로 홀로 서게 되었을 때였다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 이 길은 당신이 내면에 있는 모

순되는 두 세계 한없이 나약하고 뒷걸음치는 비열한 모습들

과 정갈하고 깨끗한 곧은 힘들을 동시에 직시하는 순간에 시

작된다 그리고 이 길은 두 세계 속에 들어가 이리저리 휩쓸리

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세계를 밟고 우뚝 올라서서 스스로

가 중심이 됨으로써 앞으로 펼쳐진다

이제 lsquo자아를 찾으라rsquo는 지루하고 흔한 이야기가 더 이상 빤

하거나 우습지 않다 묵직한 울림이 되어 나를 흔든다 그냥

나만 붙잡고 흔드는 것이라면 손사래 쳐 뿌리치겠는데 내가

밟고 있던 땅 속해 있던 세계를 뿌리째 흔들어 버린다 읽는

내내 속이 답답하고 나에게 화가 난다 그런데 이렇게 마구

혼나면서 이상하게도 후련한 구석이 있다 호통을 치는 데미

안이 사실은 우리를 응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막연

하고 무기력한 안개에 휩싸여 있을 때 데미안은 그만의 방

식으로 우리에게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준다 물론 갈 방향을

정해준다거나 각자의 사정을 듣고 상담을 해주는 것은 아니

다 오로지 궁지로 몰아세울 뿐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사람들

은 잊고 있던 lsquo나 자신rsquo을 일깨운다 아 그동안 lsquo나rsquo에 대해 생

각해본 적이 있던가 라는 정도만이라도 좋다 이 물음이 바로

여정의 시작이니까

그렇게 스스로에게 묻고 나면 더 이상 전처럼 살 수는 없기 때

문이다 아니라면 자기 자신에게 면목이 없을 것이다 이 무서

운 책이 우리를 혼내고 몰아치면서도 여전히 영원한 고전이자

필독서로 사랑 받는 이유다

lsquo우리들 속에는 모든 것을 아는 한 사람이 있다rsquo고 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혼이 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혼

이 났다는 것은 자신 안에 있는 lsquo그 사람rsquo이 말을 하기 시작했

다는 뜻이니까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목소리가 희미하

고 멀리 있다 하여도 숨죽여 귀 기울이는 일 자체가 자신에게

로 가는 과정임을 잊지 말고

편집자반 11기 배예리

『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민음사 20001220

Demian Die Geschichte von Emil

Sinclairs Jugend(1919)

32

박세길 인터뷰

진정한 역사가는 과거에 파묻히지 않는다옥(獄)에서 옥(玉)을 만든 작가 박세길 인터뷰

박세길 저자는 처녀작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로 80년대

대표 역사서 자리를 꿰찬 분입니다 1986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감되었을 때 감옥에서 역사책을 읽으며

사회 모순에 대해 고민했고 출소하자마자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집필했습니다 정권 탄압 속에서 왜곡된

현대사를 바로 잡았다는 의미를 지닌 이 대표작은 오랫동안

고시생과 대학생들의 필독서로 꼽혔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읽은 박세길 저자의 저서는 지난 6월 출간한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입니다 기사를 쓰고 편집할 때 청년 세대를

겨냥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박세길 저자는 역시나

청년들의 미래에 큰 관심을 갖고 계셨습니다 취업을

눈앞에 둔 서울출판예비학교 학생들이 가져야 할 자세를

여쭸습니다

출판학교에서 강의하신 한 선생님은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가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와

더불어 80년대 인문학의 양대

산맥이라고 하셨습니다

책의 성공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강의

요청이 많이 들어왔어요 먹고사는

경제적인 문제도 해결됐습니다

몇 부 팔렸는지는 잘 모릅니다

출판사에서 기밀 사항이라고

하더군요 요즘은 마케팅 차원으로도

몇 쇄 몇 부인지 밝히지만 그때는

세금 문제를 피해가기 위해서인지

쉬쉬하던 시절이었나 봅니다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는 대학

선후배끼리도 많이 물려주는 책이라고

들었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의 쉬운 설명이

좋았습니다 더불어 어떤 사명감을 안고 썼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완성하기에 앞서 어떤 목표를

두셨나요

청년 세대가 외환위기 이후 집중적인 희생양으로 전락하면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드러내면서 여기에

머물지 않고 청년 세대의 잠재력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들이 역사 무대 한복판에 진출해 자기 몫을 다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습니다

역사 분야는 시장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역사 혹은 현대사가 주목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통해 얘기하자면

80년대 후반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lsquo왜곡된

역사를 바로 알자rsquo는 시각 교정의 욕구가 있었던

차에 제 책이 나름 부응했는지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시기가 적절했던 셈이죠

2012년 대선 후 역사 분야가 잠시 반짝했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금세 시들었다고

하더군요 당시 역사 분야 책들이 일반 독자가

읽기에 다소 어렵거나 출간한 지 오래된 것들

위주였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돋을세길

출판학교에서 강의하신 한 선생님은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가 유홍준 교수의

책의 성공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강의

하더군요 요즘은 마케팅 차원으로도

선후배끼리도 많이 물려주는 책이라고

역사 분야는 시장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역사 혹은 현대사가 주목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통해 얘기하자면

80년대 후반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lsquo왜곡된

역사를 바로 알자rsquo는 시각 교정의 욕구가 있었던

차에 제 책이 나름 부응했는지 큰 반향을

읽기에 다소 어렵거나 출간한 지 오래된 것들

위주였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의 저자

33

2012년 대선 후 역사 분야가 관심을 받았던 것은

보수층의 재집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한

불안 때문일까요

맞습니다 그러나 마땅한 책이 없어서 그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역사 분야에서 베스트셀러를 내기

위해서는 시기가 맞아 떨어지고 내용 또한 대중이 원하는

것을 담고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를 편집한 lsquo생각정원rsquo

출판사의 정희용 편집자에게 감사 표시를 하셨습니다

어떤 편집자를 선호하시나요

간단합니다 편집자는 철저히 독자 입장에서 독자와 작가

사이의 간극을 줄여줘야 합니다 예를 들면 어려운 내용을

과감히 생략하고 다음 기회로 미루도록 설득한다거나 좌파

운동권 색채가 너무 강한 문장을 조금 순화하는 것 등입니다

어떤 내용이 이번 책에 꼭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선택을

도와줘야 합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을 작가님께서 직접

독자들에게 홍보하신다면 카피 문구를 짧게 제시할 수

있을까요

청년 세대 희망 찾기 갑갑한 현실을 어떻게 타개할 수

있을지 그 답을 찾아보는 길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취업 후 첫발을 내디딜 서울출판예비학교 11기

학생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출판 또한 돈을 벌어야한다는 기본 전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출판계를 지켜본 결과 뭔가 소명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오래

살아남았습니다 출판학교 역대 대표 중 일부는 나와 관계가

있는 사람들인데 모두 고유한 소명의식을 갖고 출판계에

뛰어들었습니다 때로는 상업주의 안에서 재주도 부리곤

했지만 어쨌든 분야 내에서 고유한 캐릭터를 구축했습니다

출판학교 학생들이 출판 상황을 이해하고 자신을 역할을

정하는 개인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비전 중심의 경영을

하는 회사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지만 개인 비전을 기업

비전으로 나아가 사회 비전으로 접목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과거에 안주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부분을

출판계에서는 SNS 등 인터넷 환경을 통한 마케팅으로

이해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SNS망 자체에서 무엇이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건 사람과

사람이 서로 소통하고 공감하는데 필요한 도구입니다

콘텐츠 중심의 사고가 중요하고 그것이 전제되지 않을 때

SNS는 착각에 불과하며 성공할 수 없습니다 필요한 콘텐츠

중심의 사고를 가지고 철저하게 진행하지 않으면 그 공간에서

허망하게 헤엄만 칠 뿐 입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SNS에서

맥없이 헤엄치다 익사하는 경우를 볼 수 있을 겁니다

콘텐츠와 마케팅의 영역을 하나로 보는 것과 따로

보는 것 어떤 것이 독자를 위하는 것일까요

출판 마케팅은 책을 기획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에서부터

개입돼야 하고 그 과정에 독자를 참여시키는 방식을

고민해야 합니다 미국 네브래스카주립대학의 이상문

교수는 lsquo밀실 안에서의 혁신은 끝났다rsquo고 얘기합니다

개방된 체제에서 독자 곧 소비자 사용자의 참여 하에 함께

만들어갈 때 혁신은 이뤄진다고 합니다 출판사의 비전이

브랜드로 연결될 때 독자는 자발적으로 의견을 주고받고

싶어 할 겁니다

마케터반 11기 이창환

디자

인 사

공예

Page 4: 서울출판예비학교 웹진 _5호 2015

4

가벼운 몸 풀기 질문부터 시작합니다 출판사 이름인 lsquo북스피어rsquo의

뜻은 무엇인가요

처음에는 lsquo정신rsquo을 뜻하는 lsquo누(noo)rsquo와 lsquo시공간rsquo의 의미를 담고 있는

lsquo스피어(sphere)rsquo를 합친 lsquo누스피어(noosphere)rsquo를 생각했어요

lsquo정신을 만드는 공간rsquo이라는 뜻이죠 철학적인 뜻인데 lsquo누rsquo 대신에

lsquo북rsquo을 넣었죠 책을 만드는 공간일 수도 있고 모아 놓은 공간일

수도 있어요 다른 의미로는 출판사를 차릴 때 lsquo망할지도 모른다rsquo는

두려움이 있었어요 책을 만든다는 행위 자체가 좀 무섭더라고요

책에 대한 두려움 책의 두려움 여러 해석을 할 수 있어요

보통은 표지 안쪽을 백면으로 두고 인쇄하지 않는데 『흔들리는

바위』에서 뒤표지 안쪽에 심리테스트를 넣으셨어요

책에 뭔가 장난을 해 보자 이게 시작이었죠 프로필 각 줄의 앞

글자를 연결하면 말이 되거나(『레벨7』 옮긴이 소개의 lsquo참한 애인

구함rsquo) 어떤 책은 1권과 2권의 표지가 똑같은데 자세히 보면

숨은그림찾기처럼 다른 부분이 있어요(『가모우 저택사건』) 각

책마다 특성을 살려서 이것저것 했죠 『외딴집』 앞쪽에 에도 시대

지도가 있는데 그 지도에 북스피어 이름을 넣기도 했어요 『흔들리는

바위』의 경우 특별히 심리테스트여야 할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표지 안쪽에 뭔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을까 하다가 생각해낸

거예요 나중에 심리테스트의 결과에 따라 책을 추천하는 lsquo책 추천rsquo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됐죠

일 잘하는 마포 김 사장

홍rsquos피어작은 사무실을 상상했는데 보통의 가정집 같은 모습에 한 번 놀라고 자리에 앉기도 전에 냉장고에서 주섬주섬 꺼내지는 캔 맥주에

또 놀랐습니다 곧이어 상 위에는 과자가 안주로 놓이고hellip 이거 참 인터뷰가 lsquo취중농담rsquo이 되어버리는 것은 아닐지 하지만 상대는

노련한 lsquo마포 김 사장rsquo입니다 맥주의 뚜껑을 따면서 lsquo이제 합시다rsquo라고 호탕하게 외치는 김홍민 대표 그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친히 맥주를 꺼내주는 김홍민 대표(좌) 숟가락으로 맥주병 뚜껑을 따는 김홍민 대표(우)

『흔들리는 바위』 뒤표지 안쪽의 심리테스트

재미있게 노는 것이 곧 일 잘하는 것 북스피어 김홍민 대표

북스피어 대표 인터뷰

5

3년 전에는 lsquo원기옥 이벤트rsquo로 모아진 돈으로 미야베 미유키 작가를

만나기 위해 혼자 일본에 다녀오셨는데 이번엔 독자 3분을 뽑아

일본에 다시 다녀오셨어요 두 번의 방문이 어떻게 달랐나요

3년 전에 내가 갔을 때는 답변이 되게 무미건조했어요 lsquo어떻게

생각하십니까rsquo lsquo좋다고 생각합니다rsquo lsquo이게 맞습니까rsquo lsquo네

맞습니다rsquo 가족 얘기 안하고 정치적인 질문 싫어하고 제약이

많 았 어 요 이 번 에 는 독 자 와 있 으 니 까 사 람 이 약 간 달 떴 다 고

할까요 가족 얘기 정치적인 얘기도 하더라고요 독자에게 직접

준비한 선물도 주고 사인도 일일이 해주고 사진도 같이 찍어주고

팬서비스가 남달랐죠 그도 그럴 것이 미야베 미유키가 만난 첫

번째 한국 독자인 거예요 미야베 작가는 한 번도 외국 여행을 해본

적이 없거든요 청각에 문제가 있어 비행기를 탈 수가 없대요 도쿄

밖을 안 나간다고 하니 당연히 해외 독자를 만나본 적이 없죠

세계 어느 나라에서 독자들이 인터뷰를 하러 왔겠어요 당초 한

시간 반 예상했는데 세 시간까지 걸렸어요 그때 「르 지라시」가

8면짜리였는데 인터뷰 내용이 좋기에 12면으로 증면해서 다 실었죠

독자들과 같이 가지 않았더라면 그런 내용이 못 나왔으리라고

생각해요

내가 만약 기자를 데리고 갔다면 기사 나오는 건 따 놓은 당상이고

비용도 훨씬 적게 들어요 이 이벤트를 한다고 했을 때 기자들이

전화를 걸어와서 lsquo자기도 가면 안 되겠냐rsquo lsquo회사 비용으로 가겠다rsquo고

하는데 나는 그랬죠 ldquo아닌데 독자랑 갈 건데rdquo

다른 출판사 사장님들은 lsquo말이 안 된다rsquo고 했어요 기자랑 가면

기사도 나오는데 왜 독자들을 몇 명씩 데리고 가겠어요 만우절에

올 렸 으 니 까 거 짓 말 이 라 고 들 하 더 라 고 요 하 지 만 결 과 적 으 로

이벤트도 재미있었고 일단 작가가 너무 좋아해 내후년이 자신의

데뷔 30주년인데 꼭 또 오라고 하더라고요

북스피어 10주년을 기념하여 900쪽짜리 『십자가와 반지의 초상』을

출간하셨죠 그 소설의 배경이 되는 호빗 마을에 다녀오는 lsquo반지의

제왕 촬영지 기행 원정대rsquo를 꾸리셨었어요 다녀오신 후기를

들려주시겠어요

나 와 편 집 장 과 독 자 세 명 이 렇 게 다 섯 이 갔 는 데 와 정 말

행복했어요 열흘 동안 캠핑카로 반지의 제왕 촬영지를 다 돌았어요

뉴질랜드 면적이 우리나라 면적의 25배래요 그리고 인구는 400만

명이 좀 넘는대요 사람이 없어요 마을이 있다 그 다음은 다

고속도로야 그리고 또 마을이 있고 바로 고속도로 상점들은 6시에

열고 5시에 닫으니까 밤에 차도 없고 사람도 없고

농경 목축을 하느라 상품을 생산하는 비율이 높지 않으니까

자급자족이에요 그런데 촬영지가 되니까 세계 각지에서 사람들이

오는 거죠 관광업이 활황이 되어서 뉴질랜드 곳곳에 캠핑카를 타고

묵을 수 있는 곳이 많더라고요 갔다 와서 독자가 그걸 후기로 남겼죠

최근 lsquo낭만독자열차교정rsquo을 크게 여셨어요 그동안 북스피어의

독자 교정 이벤트는 꾸준히 진화해왔는데 지금까지의 변화들을

말씀해주세요

교정을 권당 120만 원씩 주면 1000만 원이잖아요 그건 어려우니까

처음엔 출판사에 다니는 친구들에게 도움을 받으려고 했었죠 그런데

점점 연락이 안 돼 부탁하는 빈도가 늘어날수록 전화를 안 받아요

아 그러면 독자에게 놀이처럼 하게 해야겠다 싶었어요 처음에는

몇몇이 와서 교정을 보면 점심을 줬어요 점심 먹고 그냥 갔지 뭔가

재미가 없어 다음에 왔을 때는 점심도 주고 저녁도 줬어요 또 그

다음은 점심도 주고 저녁도 주고 술도 먹여 그랬더니 재미가 있는

거예요 이후로는 1차에서 끝나지 않고 4차까지 가고 밤새 마시고

홍대 일대를 막 돌아다니고 아침엔 해장국 먹고 헤어지고 전문

만우절 때 블로그에 장난으로 올렸다는 lsquo홀로 남겨져rsquo 앨범 이미지

하지만 독자들의 요청으로 직접 제작하기에 이른다 오른쪽은 박기영의 목소리로 재탄생한 『홀로 남겨져』(미야베 미유키 2011)의 북 OST lsquo홀로 남겨져rsquo

『흔들리는 바위』 뒤표지 안쪽의 심리테스트

6

교정을 맡기는 것보다 술값이 더 나가겠더라고요 하지만 그렇게

술 먹고 간 독자들이 홍보를 해준다고 할까 그래서 좀 더 발전시켜

보기로 했어요 밤샘독자교정 1박 2일 동안 교정을 보는 거죠

번역자가 아침고요수목원 근처에 있는 축령산 자락에 살기에 그 집을

빌렸어요 낮에는 교정을 보고 저녁에는 번역자와 함께 고기를 구워

먹으며 번역 뒷이야기도 듣는 거죠 그때부터 교정 MT가 시작이

됐어요 그러다가 지지난달에 한 것이 낭만독자열차교정이라고 열차

안에서 교정을 보고 밤에는 펜션에 도착해 놀다 오는 거였어요 마침

한겨레 기자도 독자 교정에 참여해 기사를 써주기도 했죠 앞으로요

인천에서 제주도로 가는 크루즈가 있대요 배 안에서 교정을 보고

제주도에 도착해서 노는 그런 독자 교정 이벤트를 구상하고 있어요

올해 4월에 lsquo북amp쿡 퍼포먼스 맏물이야기rsquo를 진행하셨어요 전문

성우가 소설을 읽어주고 푸드스타일리스트가 소설 속 음식을 직접

만들어 독자가 먹어볼 수 있게 한 신선한 기획이었죠

『맏물이야기』가 요리에 관한 책이어서 처음에는 독자들을 불러서

요리를 시켜야겠다고 생각했죠 늘 그렇듯 처음에는 소박했어요

이 책에 나오는 요리를 직접 하게 해서 독자에게 먹여야겠다 혹은

사진을 찍게 해야겠다 그런데 은근히 어려운 거야 에도 시대의

음식 맛이 나리라는 보장도 없고 그래서 푸드스타일리스트에게

의뢰를 했죠 의뢰하면 비싸다 보니 그냥 진행하기에는 아쉽고 판을

키우자 싶었죠 그러다 낭독할 성우까지 붙은 거고 선착순 200명

한정이었기에 오지 못한 독자들이 아쉬워하더라고요 텍스트에

머물지 않고 공연을 통해 시각 청각을 넘어서 후각으로도 독자들과

소통할 수 있었어요 책의 확장성을 보여준 신선한 행사였다는 평도

들었죠

북스피어는 장르문학만 출간하지만 그동안 진행해온 라디오

프 로 그 램 을 보 면 다 양 한 분 야 의 독 서 를 하 시 는 것 같 아 요

개인적으로는 어떤 분야의 책을 주로 읽으시나요

장르문학이요 내 분야에서 전문가 행세를 해야 해요 왜냐하면 내가

이 분야 책을 내니까 끊임없이 읽어야 해요 그래야 끊임없이 얘기할

수 있지 잘난 척하는 거 정말 중요해요

그렇다면 추천해 주실 만한 책이 있으신가요

최 근 에 『 마 션 ( M a r t i a n ) 』 을 재 미 있 게 읽 었 어 요 화 성 에

갔다가주인공만 빼고 다 귀향하게 되자 주인공 마크 와트니가

화성의 토양으로 감자를 재배해요 그걸 읽고 감자를 한 박스 샀죠

갑자기 먹고 싶어서요 10월 8일에 영화로도 개봉되는데 꽤나 흥행할

것 같아요 앤디 위어의 처녀작인데도 줄거리가 탄탄하거든요

작은 출판사가 출판계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방법이 있을까요

가급적이면 한 분야를 해야죠 김밥천국보다는 돈까스 전문점이

사람 모으기는 더 쉬워요 장사라는 것은 독특한 무언가가 있어야

해요 그동안 수많은 김밥천국이 사라져온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한

분야에서 독보적인 존재가 되는 것도 방법이에요 그런 존재가 되고

나면 독자들에게 알릴 lsquo채널rsquo이 있어야죠 그게 다일 것 같은데요

사실은 lsquo그 정도rsquo조차 정말 어렵죠

맏물 이야기 북amp쿡 퍼포먼스 포스터(좌)와 행사에서 재현된 소설 속에 나오는 음식(우) 김홍민 대표의 저서

7

마지막으로 서울출판예비학교 학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망설임 없이) 외국어를 해라 정말 강조하고 싶네요 외국어를 뭐든

하나는 확실하게 해야 해요 또 글을 잘 써야 해요 저자만큼 저자가

lsquo에이 편집자 주제에 뭘 그리 잘 써rsquo라고 할 정도로 잘 써야 해요

글쓰기 연습을 매일매일 하세요 요즘은 환경이 좋잖아요 페이스북에

매일 끼적이기만 해도 실력이 늘어요 글 잘 쓰고 외국어 잘한다

프리패스예요 어느 출판사든 들어간다 어디든

편집자반 11기 김수진

잠깐만 우리 새우치킨 하나 먹을까

(바로 전화한다) 두 마리요 새우치킨 한

마리랑 양념치킨으로요

(주소를 말하지 않는다) 주소가 저장되어

있으신가 봐요

그럼요 lsquo또 전화하셨군요 오늘은 어쩐

일로 두 마리세요rsquo 이렇게 받아요

마포 김 사장

웹진팀

마포 김 사장

웹진팀

마포 김 사장

기발한 와우북페스티벌 상품들

북스피어 출간 도서 저자 일러스트가 들어간 과자 패키지(좌)와 파본된 책을 한 장(章)씩 분권 해서

500원에 파는 상품(우)

2015 와우북페스티벌 르 지라시 특별판

8

7인 7色 분투기

20150921 월요일 d-25

교육발표회 TF팀 발족 시작이 좋다

9월 21일 월요일 401호에서 교육발표회 태스크포스(task

force)팀(이하 TF팀)의 첫 번째 회의를 시작했다 반 친구들의 투표로

얼떨결에 TF팀의 일원이 되어서 처음에는 부담감을 느꼈지만

한편으론 우리의 성과를 발표하는 자리를 직접 꾸려간다는 것이

기대되었다 첫 만남에는 마케터반 디자인반 사람들과 얼굴을

익히고 가벼운 농담과 함께 분위기를 즐겼다 아직은 어떻게 계획을

짜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지만 그만큼 긴장감을 갖고 열띤 토론을

했다

먼저 공간 구성을 토의했는데 각 반에 할당된 공간은 각 반에

일임하기로 했다 지하 1층은 편집자반과 마케터반이 사용하고

지하 로비부터 계단 외벽은 디자인반의 작품을 전시한다 1층에는

안내소를 설치하고 안내팀을 배치할 것이다 마케터반은 면접실로

사용할 예정이고 디자인반은 전시실로 편집자반은 대기실로

사용할 것이다

두 번째로 홍보에 관해 토의했는데 편집자반의 김종민을

팀장으로 하는 별도의 홍보팀을 꾸렸다 홍보 문구는 10월 2일까지

취합하기로 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포스터를 제작하면 된다 홍보

영상이나 카드 팸플릿을 만들기로 한 안건도 추후 논의하기로 했다

아이디어들이 모아져 하나의 그림이 완성되어가는 듯 했다 점차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던 틀이 잡히면서 그 공간을 하나씩 채워가는

우리를 보고 스스로 대견스러웠다 아직도 걱정되는 일들이 많지만

지금과 같은 패기와 열정으로 준비한다면 잘 마무리 해낼 수 있다고

믿는다 시작이 좋다

편집자반 11기 남민희

20150925 금요일 D-21

두 마리 토끼 잡기 교육발표회 자료집 만들기

9월 초 디자인반에서 세 명의 팀원으로 교육발표회 자료집

담당 팀이 꾸려졌다 교육발표회 자료집은 6개월 동안의 교육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책자로 편집자반 마케터반

학우들의 자기소개서와 디자인반 학우들의 작품이 실린다 디자인

반은 판면을 디자인하고 원고를 받아 책으로 묶는 작업을 맡았다

가장 먼저 수행한 일은 편집자반과 마케터반 학우들의 글이 담길

텍스트 위주의 판면을 잡는 일이었다 40명 이상 인원의 글이 실리는

만큼 반복적으로 보기에 부담이 없어야 하고 변화를 주어 지루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편집자반과 마케터반의 페이지를

마무리한 뒤에는 디자인반의 포트폴리오 작업으로 이어졌다

디자인반의 판면에서 중요한 것은 각자의 성향을 잘 담을 수 있도록

전집 위주 본문 위주 단행본 위주의 세 가지 사항에 따라 판면을

잡는 일이었다 이러한 큰 산을 넘고 나니 정해진 양식에 맞춰

축사와 연혁 교육과정 소개 페이지를 완성하고 각 반을 상징하는

색을 살린 간결한 표지를 만드는 것은 무리 없이 진행되었다

자료집 팀원들은 자신의 포트폴리오와 병행해야 하는 압박감과

6개월간 우리의 행로를 담아내는 작업인 만큼 실수가 없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으나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계획을

꼼꼼하게 세워 차근차근 진행해 나갔다 또한 다른 학우들이 시간

약속을 잘 지켜주었기 때문에 촉박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차질 없이

마무리할 수 있었다 자료집을 만든다는 것은 디자인반으로서는

작업을 정리함과 동시에 모든 학우들이 자신의 학교생활을 마무리

짓는 일로 소중한 경험이었다

디자인반 11기 홍기화

20151001 목 요일d-15

걱정도 병인 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오늘은 발표회 편집자반 공간을 꾸밀 물품을 사러 가는 날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추석 연휴를 보내서 그런지 등교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할 일은 산더미인데 그저 막막하기만 했다 그래도

오전부터 교육발표회 준비 팀장인 종민이가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것 같아 다행이다 종민이가 좀 힘들어 보이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난 그저 시키는 대로 따라가고 옆에서 도와주면 될 것 같다 뭐가

됐든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는 언제나 어렵고 외롭다

각 조의 콘셉트가 정해지고 필요한 물품의 목록이 정리됐다 10만

원 정도만 지원해준다고 한 것 같은데 다들 뭐가 이리 살 게 많은지

사무국에서 다 사줄지 모르겠다 (우리 조도 살 게 꽤 많은 것

날보러와

디자

인 사

공예

교육발표회 준비취재

9

같았는데hellip) 한 시간 동안 호미화방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필요한

물품을 샀다 그런 와중에 혹시 빼먹은 건 없는지 예산이 부족하진

않을지 걱정이 들었다

교육 과정 내내 걱정하고 고민하고 불안해한 것 같다 마음 편하게

생각하라는 말을 친구들에게 줄곧 들은 것 같은데 할 수 없다 내가

원체 이렇게 생겨 먹은 걸 이제 발표회까지 남은 시간은 정확히

보름 우리가 보낸 6개월을 4시간 동안 보여주는 행사다 이 행사가

전부는 아니지만 그래도 24명 모두에게 아니 11기 출판학교 교육생

모두에게 주어진 마지막 과제다 lsquo혼자 하는 것도 아닌데 걱정만

하지 말고 차근차근 준비하면 되겠지rsquo 하면서도 걱정이 앞선다 진짜

이것도 병이다

편집자반 11기 권오권

20151008 목요일 D-8

가을 나들이 같은 인터뷰

내가 인터뷰 팀이라니 게다가 팀장이라니 누구 마음대로 이건

음모라고 구시렁대며 일정을 짠다 수료 때까지 감투 안 쓰는 게

목표였는데 망했다고 말하며 멘트를 고민한다 그래 사실은 즐겼다

어차피 할 일 없으니 잡배마냥 학우들에게 치근대며 시간 보냈을

터였다 그럴 바에야 나들이 간다 치고 즐기는 편이 나았다 날씨는

또 얼마나 좋은가 투덜댔지만 가벼운 걸음이었다

지금까지 교육 과정 내에서 강의 또는 특강으로 만났던 많은 분들을

카메라로 담았다 대부분 직접 회사로 방문했기 때문에 다양한

사무실을 보는 것도 재미였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강의 때보다 더

진하고 선명하게 한분 한분을 볼 수 있었다 그들도 마찬가지였을까

본인에게는 일상인 세계를 동경한다면서 비집고 들어오려는 우리를

보는 우려와 격려 섞인 눈빛에서 ldquo너희도 이거 하려고 아이고 힘들

텐데 부디 잘 해나갔으면 좋겠네rdquo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아름답다

감사하다

시시덕거리며 돌아오는 길에 생각한다 앞으로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이 가을 이 마음의 우리가 그리울 건 알겠다 벌써부터

아릿하다 역시 인터뷰 괜히 했다 귀찮아 죽겠다 진짜

편집자반 11기 김상흔

20151009 금요일 D-7

교육발표회를 홍보하라 티저 포스터 만들기

드디어 6개월의 과정이 끝나가고 있었다 우리를 보여 줄 마지막

기회인 교육발표회를 앞두고 TF팀은 lsquo홍보rsquo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꼭 보러 와달라는 메시지를 어떻게 하면 잘 전달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 끝에 lsquo티저 광고rsquo를 제작하기로 결정했다 CF나 기타 광고에서

활발하게 활용되는 서서히 베일을 벗어가며 호기심을 자극하는

광고 기법 말이다 우리의 타깃은 대중이 아닌 출판계라 처음엔

lsquo이런 홍보를 과연 좋아하실까rsquo 하는 의구심이 앞섰다 하지만

회의를 거듭하며 아이디어를 잘 뽑아내고 두 반이 협력한다면

효과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케터반 편집자반 학생들의 문구들을 취합해 투표로 가장

적합한 것을 뽑았다 1등은 정혜림 학우의 lsquo북쪽으로 가라 귀인을

만난다 BOOK쪽으로 오라 귀인을 얻는다rsquo가 차지했다 lsquo북쪽rsquo이라는

방향표현을 lsquoBOOKrsquo으로 바꾼 게 참신하고 재밌어 모두의 공감을

얻었다 2등은 김수경 학우의 lsquo내가 동네북이니 응 SBI 동네북

페스티벌rsquo이 뽑혔다 평소에도 재미있는 말투로 늘 주변을 웃게

만드는데 그 재기발랄함이 묻어나는 문구였다 3등으로 뽑힌

유보미 학우의 lsquo날 떠난 후 너는 행복하니 내 인생 책임져 책책책

책임져rsquo는 아쉽게 광고에는 쓰이지 않았지만 시선을 끄는 기발한

문구였다 이 외에도 lsquo책 잡힐 일 하지마라 책 잡을 일 해라rsquo lsquo갈피를

못 잡을 땐 책갈피rsquo 등 재밌는 문구들이 많았다

전부 광고에 쓰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라 12등 문구를

멋지게 디자인하기로 했다 디자인에 대한 의견을 반 친구들과

나누며 포스터들을 직접 디자인했다 서로 의견이 맞지 않기도 하는

등 고단할 때도 있었지만 많은 분들이 우리를 보러 와주신다면 모든

고생이 잊힐 것이다 제발 그랬으면 한다

편집자반 11기 박혜원

10

20151012 월요일 D-4

수많은 이름들을 위하여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난리다 난리 우리 반이 이렇게 시끄럽고

활기찬 적이 있었던가 자타공인 조용하다던 편집자반 학우들은

어디로 가고 요 며칠 온통 돌아다니거나 무언가를 만드느라

고군분투하는 풍경들과 마주하고 있다 나쁘지 않은 아침이다

그 동안 우리는 직책의 기근()에 익숙해져 있었다 반장 부반장

조장의 휘하에서 맡은 바를 다하며 펠로우십을 뽐내고 있던

우리에게 갑자기 수많은 이름들이 떠맡겨졌다 누군가는 TF팀이

되고 누군가는 홍보 팀장이 되었으며 누군가는 인터뷰 팀장이라는

직책을 맡았다 그런가 하면 건축학을 전공한 학우는 공간 배치를

구상하는 역할을 맡고 누군가는 가을 단풍을 모티프로 해서

편집자반 전체의 부스를 꾸미고 있다 그뿐이랴 각 동아리의

장(長)들은 동아리 부스를 만들랴 그 동안의 활동을 책으로 만들기

위해 인디자인 작업에 몰두하랴 정신이 없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웅장하게 꾸며질 조별 부스를 살펴보면 아마도 입이

떡 벌어질 것이다 각 조는 워크숍으로 만든 자신들의 책에 맞춰

콘셉트를 잡았다

편집자반 lsquo윌비rsquo 조는 『창업 자금 날려먹지 않는 법』에 맞게

카페처럼 부스를 꾸미기로 했다 거대한 간판도 이미 완성되었고

맛있는 커피도 만든다고 하니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lsquo길목rsquo 조는 『서태후 비사』의 내용에 따라 서태후가 좋아했던

벚꽃으로 부스를 장식한다 게다가 한 켠에는 『서태후

비사』전자책과 예쁜 책갈피까지 마련되어 있을 것이다

lsquo달로rsquo 조는 『사이의 거리』의 표지에도 실 그림이 들어간 것에 맞춰

실을 이용하고 있다 특히 실로 lsquo사이의 거리rsquo 글자를 만들었을

때에는 학우들 모두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어떻게 실로 글자를

만들 수 있었는지 많은 분들이 와서 봐주시면 좋겠다

lsquo세모북스rsquo 조는 강명관 잡문집인 『허울 좋은 나라』를 만들었다

시대상과 일상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lsquo사진rsquo에 착안해 옛날

사진관처럼 부스를 꾸미고 있다 흑백 사진과 손글씨가 고즈넉한

멋을 더할 것이다 돌림판 이벤트도 있을 예정이다

편집자반 11기 이상화

2015101 목요일 D- 15

lsquo정rsquo이 있어 lsquo반rsquo을 찾아 lsquo합rsquo을 보니 마케터더라

lsquo차별성이 있어야 한다rsquo

책의 차별성을 찾았던 6개월 그리고 6개월 간의 경험을 토대로

lsquo차별성이 있는 마케터반의 발표회rsquo를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각

조의 조장들과 발표회 테스크포스 팀원이 머리를 맞댔다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lsquo책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그렇다고 너무 책에

집중하지 말자rsquo였다 마치 lsquo정rsquo과 lsquo반rsquo을 통해 lsquo합rsquo을 만들어내는

과정이었다 세상에 이마저 변증법적 접근이라니 그러나 우리가

누구인가 책이라는 물성에 가치의 효용을 불어넣는 우리가

아니던가 분명 발표회에도 그와 비등한 가치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전체 콘셉트은 lsquo북북 쓰는 마케팅rsquo으로 각 조를 하나의 챕터로

삼았다 즉 개성이 뚜렷한 5개의 챕터로 이루어진 lsquo마케팅 북rsquo인

것이다 그리고 각 챕터는 lsquo마케팅이란rsquo이라는 소주제를 부여하여

각 조의 교육과정과 보여주고 싶은 것들을 자유롭게 보여주기로

했다

이제 정이 끝났으니 반을 제시할 차례 lsquo반rsquo으로 lsquo소책자rsquo와 lsquo상품rsquo를

선택했다 소책자는 그저 소개하는 글만을 넣지 않고 lsquo스탬프

여행rsquo의 컨셉을 빌려 꾸미기로 했다 각 조의 부스를 돌아볼 수 있는

장치로 충분한 역할을 할 것이다 상품은 lsquo책rsquo에 대한 행운을 줄 수

있는 lsquo무언가rsquo를 준비하기로 했는데 지금 당장 밝히기는 쉽지 않은

lsquo무언가rsquo를 준비할 것이다 (기대되시지요)

이제 합이다 합은 발표회 당일 분명 lsquo정rsquo과 lsquo반rsquo의 효과가 나타날

것이며 어느 때의 발표회보다 멋질 것이다 (라고 근자감을

부려본다) 곧 시작될 발표회 기대하시라

마케터반 11기 이장열

11

1212

설왕설래

『호밀밭의 파수꾼』의 결말이

궁금해서 견딜 수 없다면

세 반 학우들의 상상력을 동원한 우리들의 릴레이 세

나에 대해 듣고 싶다면 내가 어디서 태어났는지 어린

시절이 얼마나 형편없었는지 내 부모님이 무슨 직업을

가지고 있는지 내가 태어나기 전에 무슨 일들이 있었는

지 같은 데이비드 코퍼필드 식의 헛소리가 듣고 싶겠지

하지만 난 그딴 이야기 하고 싶지 않아 (JD 샐린저 『호

밀밭의 파수꾼』

내 속으로 지나가지만 어쨌든 내 것이 아닌 섬광을 내

가 앉았던 내가 읽었던 생을 한순간에 으스러뜨리는

섬광을 이야기하고 싶어 이창환

아니 잠깐 내가 뭔 병신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

지 내일 서울출판예비학교 면접 있어서 빨리 자야 하

는데hellip 공태준

어서 잠에 들어야 한다는 조급함이 커질수록 허기 또

한 함께 치밀어 올랐다 결국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파

스타 면을 삶는 시간 8분 (그 동안엔 냉장고의 한 쪽

에 남아있던 산토리 한 캔을 단숨에 들이켜야 했다)

음악은 야나체크의 산포니에타 김사룡

맥주 한 캔으로 살짝 취기가 돌자 술이 더 마시고 싶었

다 결국 소주 한 병을 꺼내어 마시며 적당히 삶아진 파

스타 면을 올리브유에 볶았다 내일 입을 정장치마가

끼지 않을까 걱정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엎질러진 물

인걸 최다은

침대에 누워 억지로 잠을 청해본다 잡념이 사라지지

않는다 고민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된다 젠장 벌

써 새벽 3시 자긴 글렀네hellip 그렇게 뒤척이다 날은 밝았

다 이다혜

밝아진 창밖을 보며 어젯밤 나를 뒤척이게 한 면접을

떠올렸다 어제만 해도 중요한 일이라 생각했는데 날

이 밝으니 이미 그 중요성은 나와 멀어진 느낌이다 의

무감에 옷을 챙겨입고 집을 나섰다 양화대교를 건너는

버스 안 새로운 계획이 떠올랐다 황하정

새로운 계획으로 들뜬 나에게 창밖의 풍경이 눈에 들어

온다 수많은 사람과 차량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

어진다 다른 듯 보이지만 얼굴을 장식한 특유의 무표

정함과 발등에 불이 떨어진 듯 바삐 움직이는 모습 속

에 내가 겹쳐 보인다 그래 이번 계획은 나에게 얼마

동안의 기대감을 선사해 줄 수 있을까 뭐 어때 잠깐

이라도 좋다 쓸데없는 잡념보다는 시한부 희망이 차라

리 낫다며 애써 위로한다 유수지

순간 어렴풋한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니 내 또

래의 남자가 거북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김단희

그의 혐오에 가까운 시선과 마주쳤을 때 나는 순간 얼

어버렸다 면접 장소에 가기 위해선 이번 정류장에서 내

렸어야만 했다 그러나 나에게 다가오는 그 남자 때문

에 그러지 못했다 남자가 말했다 김선아

ldquo너였구나 그래 너였어 3년 전 3만원을 빌리고 도망

간 김말숙이 그래 너야rdquo

그 남자는 미친 게 분명했다 lsquo잠깐 이 관능적인 머스

크 향은 뭐지rsquo 순간 뇌리를 스치는 불가리 향수는

그 남자를 떠올리게 했다 지독하게 얼굴을 기억하지

못했던 그 남자를 말이다 이장열

대학교 1학년 설레는 마음으로 나간 첫 번째 미팅을

내 인생 최악의 시간으로 만들었던 lsquo불가리 그놈rsquo이었

lsquo젠장 이 안면 인식 장애놈이 내 얼굴을 어떻게 기억하

는 거지rsquo 내 이름이 김말숙이든 아니든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내 얼굴을 기억한다는 것이 의아할 뿐

양화대교 위에서 떠오른 새로운 계획 그래 지금부터

시작이다 오늘 하루는 lsquo나rsquo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 살

아보는 거야

난 매섭게 치뜬 눈으로 나를 응시하는 그를 뒤로하고

소설의 첫 문장으로 시작하는 릴레이 소설

13

무심히 다음 역에서 내렸다 아무런 동요 없이 발걸음

을 옮기는 나를 보고는 그도 무안한지 이내 제자리로

돌아가는 듯했다 이상한 사람 나는 계속해 나의 목적

지를 향해 걸어갔다

결국 지각했다 면접은 진행 중이었다 이게 다 불가리

때문이다 불가리 냄새가 몸에 밴 것 같다 아니 불가

리 냄새는 내 옆에서 나고 있었다 내 옆에는 불가리가

앉아 있었다 부처님의 손가락을 본 손오공의 심정이

이러했을까 강귀욱

끔찍했다 냄새도 면접도

lsquo젠장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야rsquo

담배에 불을 붙여 한 모금 깊게 빤다 lsquo후-rsquo 치미는 화

도 잡념도 불안도 이 연기처럼 쉬이 사라져버리면 좋

으련만 무의미한 푸념만이 입 안에 맴돈다

ldquo김말숙~ 여기 있었냐rdquo 그 말에 얼마나 놀랐냐면 떨

어진 담뱃불이 내 정장치마를 태우고 있는 줄도 몰랐을

정도였다 lsquo불가리 그놈을 피해 골목까지 들어왔는데

여긴 어떻게 찾은거야rsquo

ldquo밥 먹을래rdquo lsquo꺼져 꺼져 제발 꺼져helliprsquo 못 들은 척 고

개를 돌렸다

ldquo소달구지라고 괜찮은 식당 있는데 같이 가면 그 3만

원 없던 걸로 해줄게rdquo

우리는 눈이 마주쳤다 김영준

해질 무렵 서서히 불이 들어오는 보고 있어도 언제 밝

아졌는지 알 수 없는 양화대교 위 가로등처럼 우리는

천천히 그러나 깊게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새카

만 흑암의 공간 무저갱 같이 깊고 검은 눈동자 속에

숨겨 놓은 비밀을 알아내기라도 하려는 듯 그렇게 서

로의 눈을 망막 너머의 시신경을 시신경을 타고 올라

가 전두엽 어딘가에서 터지고 있을 스파크를 계속 들여

다보았다 이윽고 두 남녀의 입이 열렸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낮은 목소리가 화음을 내며 울려 퍼

졌다 ldquo몽마르뜨가 좋겠어rdquo 권오권

끔찍했던 면접과 기분 나쁜 불가리놈의 얼굴이 잊힐 정

도로 음식의 맛은 정말 좋았다 고작 음식 때문에 기분

이 나아지는 내 자신에게 정말 어이가 없었지만 어쨌

든 맛은 좋았다 된장국으로 숟가락을 옮기며 슬쩍 앞

의 녀석 얼굴을 쳐다보았을 때 그 녀석도 나를 쳐다보

고 있었다 김희연

3년 전의 얼굴과 꽤 변해있었다 그 당시 철없는 어린

애 같은 얼굴이었는데 지금은 사회인이 되려고 꾸며댄

듯한 모습 물론 3년 전보다 더 나아졌다거나 잘생겨진

것은 아니다 전보다 훨씬 평범한 얼굴이다 ()

그런 그는 어째서 날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어째서 날

기억하고 다가와서 말을 걸고 함께 식사까지 하려 하

는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이 텅 빈 머릿속을 메

운다 엄청나게 망쳐 버린 하루지만 이상하리만큼 멀

쩡한 내가 낯설다 김하얀

그러다 내가 집에 돌아가는 길 문득 미니스톱에 담배

를 사러 들렀다가 ldquo여기 국산담배밖에 없는helliprdquo 음hellip

없단다 가뜩이나 기분도 꿀꿀한데 없다니 빵만 사서

나왔다

빵을 사서 가는 길에 낯익은 얼굴에 걸음을 멈추었다

ldquo너 혼자 빵 먹냐 나도 같이 먹자rdquo 불가리 그놈이었

다 ldquo혹시 너 나 따라온 거야rdquo 기가 막혔다 백가은

어쩐지 불가리 향수 냄새가 난다 했다 ldquo왜 따라왔어rdquo

그랬더니 불가리 그놈이 하는 말

ldquo난 내 집 가는 건데rdquo 믿을 수 없다 수상쩍다 그놈은

나를 앞질러 가더니 우리 집 주인 아줌마네 집으로 들

어가 버렸다 아 저 놈이 집주인 아줌마 아들놈인가

월세 밀렸는데 망할

망할 이상한 하루였다 잊자 오늘 일은 전부 다 잊어

버려야지 방으로 들어오기 직전에 산 맥주 한 캔의 뚜

껑을 따고 들이킨다 캬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가는 듯

시원하다 씻고 자리에 눕는 순간 면접 결과가 나올 때

까지 무엇을 하고 있어야 할지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TO BE CONTINUEDhellip

은 익명 표시입니다

13

무심히 다음 역에서 내렸다 아무런 동요 없이 발걸음

을 옮기는 나를 보고는 그도 무안한지 이내 제자리로

돌아가는 듯했다 이상한 사람 나는 계속해 나의 목적

지를 향해 걸어갔다

결국 지각했다 면접은 진행 중이었다 이게 다 불가리

때문이다 불가리 냄새가 몸에 밴 것 같다 아니 불가

리 냄새는 내 옆에서 나고 있었다 내 옆에는 불가리가

앉아 있었다 부처님의 손가락을 본 손오공의 심정이

이러했을까 강귀욱

끔찍했다 냄새도 면접도

lsquo젠장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야rsquo

담배에 불을 붙여 한 모금 깊게 빤다 lsquo후-rsquo 치미는 화

도 잡념도 불안도 이 연기처럼 쉬이 사라져버리면 좋

으련만 무의미한 푸념만이 입 안에 맴돈다

ldquo김말숙~ 여기 있었냐rdquo 그 말에 얼마나 놀랐냐면 떨

어진 담뱃불이 내 정장치마를 태우고 있는 줄도 몰랐을

정도였다 lsquo불가리 그놈을 피해 골목까지 들어왔는데

여긴 어떻게 찾은거야rsquo

ldquo밥 먹을래rdquo lsquo꺼져 꺼져 제발 꺼져helliprsquo 못 들은 척 고

개를 돌렸다

ldquo소달구지라고 괜찮은 식당 있는데 같이 가면 그 3만

원 없던 걸로 해줄게rdquo

우리는 눈이 마주쳤다 김영준

해질 무렵 서서히 불이 들어오는 보고 있어도 언제 밝

아졌는지 알 수 없는 양화대교 위 가로등처럼 우리는

천천히 그러나 깊게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새카

만 흑암의 공간 무저갱 같이 깊고 검은 눈동자 속에

숨겨 놓은 비밀을 알아내기라도 하려는 듯 그렇게 서

로의 눈을 망막 너머의 시신경을 시신경을 타고 올라

가 전두엽 어딘가에서 터지고 있을 스파크를 계속 들여

다보았다 이윽고 두 남녀의 입이 열렸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낮은 목소리가 화음을 내며 울려 퍼

졌다 ldquo몽마르뜨가 좋겠어rdquo 권오권

끔찍했던 면접과 기분 나쁜 불가리놈의 얼굴이 잊힐 정

도로 음식의 맛은 정말 좋았다 고작 음식 때문에 기분

이 나아지는 내 자신에게 정말 어이가 없었지만 어쨌

든 맛은 좋았다 된장국으로 숟가락을 옮기며 슬쩍 앞

의 녀석 얼굴을 쳐다보았을 때 그 녀석도 나를 쳐다보

고 있었다 김희연

3년 전의 얼굴과 꽤 변해있었다 그 당시 철없는 어린

애 같은 얼굴이었는데 지금은 사회인이 되려고 꾸며댄

듯한 모습 물론 3년 전보다 더 나아졌다거나 잘생겨진

것은 아니다 전보다 훨씬 평범한 얼굴이다 ()

그런 그는 어째서 날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어째서 날

기억하고 다가와서 말을 걸고 함께 식사까지 하려 하

는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이 텅 빈 머릿속을 메

운다 엄청나게 망쳐 버린 하루지만 이상하리만큼 멀

쩡한 내가 낯설다 김하얀

그러다 내가 집에 돌아가는 길 문득 미니스톱에 담배

를 사러 들렀다가 ldquo여기 국산담배밖에 없는helliprdquo 음hellip

없단다 가뜩이나 기분도 꿀꿀한데 없다니 빵만 사서

나왔다

빵을 사서 가는 길에 낯익은 얼굴에 걸음을 멈추었다

ldquo너 혼자 빵 먹냐 나도 같이 먹자rdquo 불가리 그놈이었

다 ldquo혹시 너 나 따라온 거야rdquo 기가 막혔다 백가은

어쩐지 불가리 향수 냄새가 난다 했다 ldquo왜 따라왔어rdquo

그랬더니 불가리 그놈이 하는 말

ldquo난 내 집 가는 건데rdquo 믿을 수 없다 수상쩍다 그놈은

나를 앞질러 가더니 우리 집 주인 아줌마네 집으로 들

어가 버렸다 아 저 놈이 집주인 아줌마 아들놈인가

월세 밀렸는데 망할

망할 이상한 하루였다 잊자 오늘 일은 전부 다 잊어

버려야지 방으로 들어오기 직전에 산 맥주 한 캔의 뚜

껑을 따고 들이킨다 캬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가는 듯

시원하다 씻고 자리에 눕는 순간 면접 결과가 나올 때

까지 무엇을 하고 있어야 할지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TO BE CONTINUEDhellip

은 익명 표시입니다

14

이옥란 선생님

캡틴 오 마이 캡틴(captain oh my captain)선생님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

편집자반 학우들은 늘 이분의 얼굴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며

끝마친다 몇 번의 마주침은 덤이다 그분은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도 가깝지만은 않았던 편집자반의 담임 교수

이옥란 선생님 자신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우리를 위한

이야기를 풀어놓으시느라 매일 종례시간이 부족하신 이옥란

선생님께 이번엔 우리가 물었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 일상을 어떻게 보내고 계신가요 선생님의

주말이 취향이 추억이 삶이 궁금하다 편집자반 학생들에게

직접 받은 질문들로 lsquo한 사람rsquo에게 궁금한 것들을 물었다

이 인터뷰를 읽은 뒤 그녀를 한층 좋아하게 되리라고

확신한다

왜 디토 커피에 자주 가시나요

커피가 제일 맛있고 값이 싸고

넓은 창으로 햇빛이 많이 들어와

그리고 주인장들이 공간은 물론이고

손님들과도 잘 어우러지는 것 같아

옥란 선생님께 스카프란

어느 날 발견한 패션 아이템 몇 년 전인가

홍대 앞 가판대에서 우연히 마 레이온 합성의

보라색 스카프를 발견한 이후인 것 같아

왜 고양이를 좋아하시나요 고양이를 키우시나요

고양이가 나를 키웠다고 할 수 있지 시골집 막내였는데

고양이가 친구가 되어주었어 (선생님이 고양이를 닮아

가시는 것 같아요 혹시 키우세요) 둘 있는데 13년쯤 되었나

최근에 읽었거나 읽고 계신 책은

이익섭 저의 『국어학개설』 『말과 사물』 『좌파는

어디에 있었는가』 『논어』 『번역어의 성립』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등 여러 권 들고 다니면서 돌려본다

(국어학개설은 읽는다기보다 공부 아닐까요) 아니야

재미있어

인생의 책을 꼽자면

김훈의 『남한산성』 표지가 핫핑크 색이야 건조하고 힘

있는 남성적인 문체의 마초라고 불리기까지 하는 작가의

책이 핑크색이라니 크기도 아마 46판에 더스트 커버(dust

cover)는 질긴 천의 느낌이고 본문은 재생지인지 무겁지

않고 두께도 딱 손에 잡히는 정도 감각까지 장악한 책이야

몇 권 사서 주변 사람들에게 돌렸어

선생님의 멘토는

이런 질문에 답하게 될 줄은 몰랐네 글쎄 그러고 보면

존경스러운 사람은 있었지 대학 때 문학 동아리 선배였어

양상현 형 (어떤 점이 제일 존경스러우셨어요) 자유롭게

사는 사람이었던 것 얼마 전에 돌아가셨어 이제 조금

실감이 나네 그분은 건축 전공에 시를 쓰고 음악을

즐기고 노는 문화를 나누고hellip 어떤 사태도 회피하지 않고

자유로웠던 사람이었지 앞으로 할 일이 더 많았을 터인데

양상현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졸업 동대학원

박사학위 2002년 대한민국건축대전

초대작가 선정 순천향대 건축학과

교수 재직 민족건축인협의회

의장 설계 작품으로는 lsquo장암리

주택rsquo lsquo녹촌리 조각가의 집rsquo 등

대표 저서『거꾸로 읽는 도시

뒤집어 보는 건축』 2015년

8월 14일 별세

졸업 후 편집자로 일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우리 때는 노동운동이나 농민운동을

했던 대학생이 사회과학 출판사로

진출하는 경우가 많았고 내 친구도 졸업을 해서

출판사에 있었어 그 녀석이 나를 사무실로

초대했는데 반지하도 아니고 그냥 지하였던 것

같아 ldquo옥란이 이리와 봐 이게 뭔지 아니 바로

매킨토시라는 거야 이게 얼마짜린지 아니rdquo

매킨토시 컬러 클래식(Macintosh Color Classic)

웬만한 공책보다 좀 클까 본체가 화면에 같이

붙어 있는 하드웨어를 가진 컴퓨터였지 친구 말로는

300~400만 원 한다고 했어 20년 전이니 당시로는

큰돈이지 교정지를 보여주더니 마치 lsquo음 너는 아직 이런 거

모르지rsquo라고 하는 듯이 ldquo잠깐만 언니가 뭐 좀 할 테니까

잠깐 기다려봐 하hellip 이거 띄어쓰기 어떻게 해야 하려나 이게

전문용어라 통일을 해줘야 하는데helliprdquo 하던 잘난 척이 기억이

나네 그렇게 출판사를 접했지 문학 동아리를 하느라 알게

된 선생님들 선배님들도 여럿 출판사에들 계셨어

편집자로 일하셨을 때 어떤 분야를

편집하셨나요

하다 보니 주로 예술 서양 미술 분야였고

출판사는 학고재 예경 마로니에북스까지

그런 기회가 나한테 왔고 재미있었어

전공이 그쪽이 아니었기 때문에 공부를

해야 했지

지난 서울출판예비학교생활 중 특별히

기억나는 사람이나 사건이 있다면

8기 졸업식 날 남학생 셋이 ldquo저는 출판학교에

와서 모든 것을 얻었습니다rdquo 그러면서 흑흑 우는 거야

누군지 얘기하면 창피하겠지 남학생들이 울어서 애들이

알고싶어 편집자반

15

완전 눈물 바다였잖아 (우리 반 오빠들이 운다는 건 상상할

수 없네요) 다음 해에는 애들이 완전 유머 코드여서 웃다

끝났지

출판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된 계기나 동기는

무엇인가요

나는 8기부터 시작했는데 7기 담임이던 김장환 씨가 나를

불렀어 공동 담임을 해달라고 lsquo그러지 뭐rsquo 이렇게 시작했지

직장은 2008년도까지 다녔고 프리랜서로 활동하면서

여기저기서 강의를 하고 있었어 한겨레 문화센터에도

23년쯤 있었지 (편집자보다 이렇게 선생님으로 있는 게 더

즐거우세요) 지금은 진짜 만들고 싶은 책 함께 작업해보고

싶은 저자 그런 게 아닌 한 직업으로 신간을 꾸준히 내는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당신들은 눈이 반짝반짝해서 업계에 들어와야겠다고

준비해서 오잖아 그 친구들이 1년차 3년차 되는 것을

지켜보고 있으려니까 내가 그 나이쯤 사회생활을

시작해 고민했던 지점이 보이는 거지 그 때

이걸 알았더라면 하는 안타까움이 있어서

여러분들이 애틋해지지

요즘 최대의 관심사는 무엇인가요

저녁에 후배들에게 가르칠 강의를 하다

보니 국어 공부의 필요성을 여실히 느끼고

있어 출판 동네에서 20년 넘게 일한 사람이

공부해온 것을 한 번 정리해서 후배들한테 줄 필요도

있겠구나 싶고 (뭔가 일 얘기가 아닐 줄 알았는데요

하하)

은퇴 후에 무엇을 하고 싶으신가요

오늘은 말이 절로 나오는 걸 하하 마당 있는 시골집 텃밭을

일구며 역사에 길이 남을 인간과 세상을 통찰하는 대작

소설을 발표하겠다 (와)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이 되고 싶으신가요

다시 태어나고 싶지가 않아hellip(웃음) 지구에서는 내

대에서 멸종하기로 했다

저희들에게 속 시원하게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자신 있게 해라

생각해보면 다들 자기가 못났어 키도 좀 더 컸으면

좋겠고 외모도 마음에 안 들고 내가 저 때 저렇게

했으면 지금 달라졌을까 부럽기도 하고

그런데 사실 부질없는 거거든 세상 사는

힘이 실력에만 있는 게 아니고 태도의 문제가 더

클 때가 많아 내 것이 아닌 것에 목매고 있을

필요가 없어 신입사원으로 전혀 모르는 곳에

뚝 떨어졌을 때 저들의 세계 속에 혼자 쏙

들어간 기분이니까 일단은 주눅이 들지

하지만 거기서 살아가야 하지 않겠어

둘러보면서 아 저기가 화장실이구나 사람들은

이런 걸 이렇게 하는구나 파악하고 나면 좀

수월해지잖아

마지막으로 대망의 이상형 월드컵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정우 주원 김수현 유아인 이렇게

4강전으로 시작하겠습니다

(하정우와 주원 중에서는 누가 더 좋으세요) 하정우지

주원이 최근에 좋아지긴 했는데 아직도 하정우를 따라올 수

없어

(그럼 김수현유아인 중에서는요) 유아인이지

(너무 확고하셔요 드라마 lt밀회gt 보셨나요) 집에선 케이블

방송도 안 나오고 관심 갖게 되었을 땐 너무 유행이라

안보고 말았지 대신 영화 lt완득이gt는 봤다

(이제 결승인데요 마지막으로 하정우와 유아인은요)

아인이는hellip 나한테 좀 과분한 것 같아(웃음) 하정우가 삐질

것 같은데 그래서 둘 다 잃는 거야hellip

편집자반 11기 김수진 이상화

lt베테랑gt의 악랄한 재벌 2세유아인

lt프로듀사gt의 어리버리 신입PD

김수현

lt용팔이gt의 천재 외과의사

주원

lt 암 살 gt 의 순 정 마초

하와이 피스톨하정우

하정우

16

한대웅 선생님

『동백꽃』의 주인공 같은 그 남자착하디착한 순하디순한 한대웅 선생님의 속마음

좀처럼 화내시는 일도 없고 허허 웃기만 하시고hellip 하지 못한

말들을 땀으로 발산하듯 여름이면 온몸이 열정으로 흠뻑

젖으시는 분 세상 어디에도 없을 착한 남자 마케터반의

한대웅 선생님이다 그에게 던진 몇 가지 질문에 돌아온 것은

가장으로서의 고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 아직도 앳된

소년 같은 순수함이 묻어나는 답변들이었다 이제 그를 좀 더

깊게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평소에 칼라(collar) 티셔츠를 즐겨 입으시던데

좋아하시는 옷인가요

좋아한다기보다는 제 딴에는 편하게 입을 수 있는 듯해서

즐겨 입고 있습니다 또 아내가 이런 종류의 옷을 많이

사주기도 하고요

선생님께 lsquo출판rsquo이란 무엇인가요

출판은 lsquo꿈을 이루는 판도라의 상자rsquo lsquo내가 가진 능력에 가장

맞는 일rsquo입니다

출판을 업으로 삼지

않으셨다면 어떤 일을

선택하셨을까요

모르겠네요 아마도 운명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요 다만 다음과

같은 3가지 생각은 해보았습니다

첫째 고등학교 시절 성적이 조금

더 좋았다면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해서

지금쯤이면 텔레비전이나 영화에 나오는 큰 전투함의

함장이 되지 않았을까요

둘째 대학교에 입학하지 못했다면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로 이민을 가서 장사를 하거나 농부로 농장을

운영하면서 그곳 사람으로 국적을 바꾸고 살고 있지

않을까요 고등학교 3학년 때 대학교 입학 시험에

떨어지면 다른 나라로 가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다는

마음의 준비를 했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 모 일간지에 실린

해외에서 성공적인 삶을 사는 한국 사람들에 관한 기사를

꼼꼼하게 읽었었거든요

셋째 대학교 3학년이나 4학년 때 신춘문예까지는 아니라도

대학교 교내 문학상 정도를 받았다면 아마도 그 결과에

탄력을 받아 시나리오 작가나 연극 연출가의 길로 가려고

하지 않았을까요

ID와 블로그에 lsquo봄rsquo이라는 단어가 들어있는데 봄을

좋아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그 ID를 만들 무렵 저의 미래는 꽤나 불확실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바꿔 말하면 어떻게

돈을 벌어야 하고 어떻게 자아 성취를

해야 하는지가 불확실하고

힘들었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lsquo봄rsquo이라는

단어를 좋아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누구나

알다시피 봄은 겨우내

얼어 있던 것들이

새롭게 싹을 틔우고

새롭게 기지개를 펴는

계절이죠 물론 봄

자체가 주는 느낌도

좋고요 그래서 lsquo봄rsquo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던 것

같습니다

블로그는 서울출판예비학교에서

일을 시작한 후 만들었습니다

블로그에 lsquo봄바람rsquo이라는 의미를 부여한

것은 ID를 만들던 때의 생각이 이어진 것이겠지요 요즘에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이 많이 사라진 것 같습니다 만약

앞으로 블로그나 ID를 만든다면 아마도 lsquo여름rsquo 혹은 lsquo풍성함rsquo

아니면 lsquo내가 원하는 세상을 상징하는 어떤 것rsquo을 이름으로

사용할 것 같습니다

편집자로 첫 시작을 하셨는데 나중에 출판 마케터로

일하게 된 동기를 알고 싶어요

시장 상황을 분석하고 이에 맞게 마케팅 계획을 세우고

사람이나 집단을 만나고 힘을 합쳐 뭔가 새로운 결과를

만들어 내는 일이 재미있었습니다

은퇴 후에 꿈꾸시는 삶이 있으신가요

아직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20대와 30대

초반에 꿈꾸던 것들을 lsquo은퇴 후에 여유가 생긴다면 이것들을

해볼까rsquo라고 간혹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현재겠죠 출판에서 뭔가를 이루려고 열심히 계획하고

실행하다 보면 은퇴 후의 삶도 더 풍요로워지지 않을까요

알고싶어 마케터반

17

일하실 때 다뤘던 책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무엇인가요

입사 초기 편집을 하거나 시장조사를 하고 제가 출간 여부에

대한 판단을 내렸던 책들이 기억납니다 『펠레』 자서전은

제가 편집자로 있을 때 출간했던 책인데 주요 일간지의

서평란 메인을 장식했던 책입니다 출간 시점을 맞추기 위해

촉박한 기간 동안 밤새가며 책을 만들었습니다 출간 시점에

대한 판단이 정확히 맞았고 그 결과 기대 이상으로 많은

서평을 받았던 책입니다

서울예비출판학교 선생님으로 오신 계기를

알고 싶어요

전에 다니던 출판사를 그만둔 후

개인적으로 뭔가를 해보려고 고민

중이었습니다 그러나 능력이

부족하다 보니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았죠 그러던 중에

출판학교에서 일해 볼 것을

제안 받았고 저도 출판학교

학생들처럼 면접을 보고 이

학교에 오게 되었습니다

일을 하게 되었을 때 매우

즐거웠습니다

다시 출판사 마케터로 돌아갈

생각이 있으신가요

아니오 이유는 2가지인데 첫째는 제 나이가

48세입니다 다른 업종도 그렇지만 출판 산업에서도

48살에 마케터로 직장인의 생활을 이어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죠 정말 현실적인 고민이죠 게다가 출판학교에서

여러분과 소통하며 제 지식을 전수하는 일이 재미있습니다

물론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언젠가 저만의 꿈을

찾아갈 수 있겠죠

평소 몇 권의 책을 읽으시나요 최근 읽은 책 중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요

예전에 많이 읽을 때는 1주일에 2권 정도 읽었습니다

황석영의 『장길산』과 홍명희의 『임꺽정』 이문열의

『삼국지』를 읽을 때 짬짬이 쉬는 시간을 비롯해 지하철에서

보내는 시간까지 거의 모든 시간을 책을 읽으며 보냈습니다

요즘에는 1달에 1~2권 정도 읽는 것 같네요 최근 읽은

책 중에 기억에 남는 책은 『내 아이와 어떻게 대화할

것인가』(율리아 기펜레이테르 저 써네스트 2006)와 『내

아이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율리아 기펜레이테르

저 써네스트 2009)입니다 제목만으로도 왜 이 책을

추천하는지 금방 눈치 챌 수 있을 것입니다 아이가 둘

있는데 첫째는 15살 딸이고 둘째는 10살 아들입니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lsquo어떻게 하면 아이와 싸우지 않고

윽박지르지 않고 아이의 자존감을 높여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성실하고 삶의 열정과 꿈이 넘쳐나는 아이로

키울까rsquo 같은 고민을 항상 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단비처럼 다가왔습니다 위의 2권의 책을 읽고 몇

가지 중요한 것들을 배웠습니다 아이와 어떻게 소통하고

어떻게 대화해야 하는지 아이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등등 이전에 『부모와 아이 사이』(하임 G 기너트

등 저 양철북 2003)를 읽고 아이를 이해하는 법에 대해

큰 인상을 받았는데 이 책도 그 연장선에서 저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아들과 딸을 좀 더 이해하게 되고 그

결과 아이들에게 화를 내거나(저도 나약한 인간인데 화가

날 때가 심심치 않게 있거든요) 아이들의 긍정적인 싹을

본의 아니게 꺾어 버리는 경우가 줄었다고 할까요 게다가

이 책은 lsquo부모와 아이 사이rsquo만이 아니라 lsquo친구와 친구 사이rsquo

lsquo회사 내부 구성원 사이rsquo에서 소통하는 데도 많은 영감을

제공합니다 출판학교 학생들과 소통할 때도 이해의 폭을

넓혀주고 긍정적인 소통을 하는 방법을 제공해 줍니다

이제 수료를 앞둔 마케터반 학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으시다면

개인별로 처한 처지와 조건에 따라 다르겠지만 다음과 같은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 연인을 사랑하듯 출판에 대해서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보세

- 이 길이 나에게 최선의 길인가 생각해 보세요

- 목표를 세우고 지금부터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한 후 그것을 어떻게 이루어 나갈 것인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보세요

저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스스로의 내면을 단단하게 할 중요한

질문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앞으로도 끊임없이

새로운 답을 찾아나갈 질문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케터반 11기 이장열 이창환

18

선생님은 주말에 뭐하세요

무조건 가족과 함께hellip

만약 편집 디자인을 안 하셨다면 무슨 일을 하고

계실까 궁금해요

어찌 됐든 개인 사업자로 살았을 듯 윗사람 비위 맞추는

것을 너무 못하므로hellip

선생님 주량이 어떻게 되세요 주사가 있으세요

몸 상태 좋고 안주 많이 먹으면 1병(클래식으로)

좋은 출판 디자인을 생각한다

심우진middot안광욱 선생님

lsquo멋rsquo이라는 것이 폭발한다뼛속까지 디자이너스러운 심우진 선생님

멀리서도 눈에 띄는 큰 키에 멋들어진 베레모 디자인반의

심우진 선생님 되시겠다 서울출판예비학교에서 lsquo멋rsquo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가끔은 조금 키 큰 학생처럼 학생들

속에 잘 어우러지는 사람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모습은

여기까지다 그를 조금 더 알고 싶다 지금까지의 그를

만들어왔을 lsquo심우진의 생각들rsquo이 궁금했다

선생님은 무엇을 드시고 그리 멋지시나요

학생들의 사랑 밥 김치

일본 유학길에 오르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lsquo동아시아rsquo lsquo근대rsquo가 당시 나의 화두였으므로 그리고

스기우라 고헤이 선생을 뵈러

첫 직장을 다녔을때 일의 강도()나 다니는 동안

마음은 또 어떠셨는지

출판 쪽 첫 직장은 lsquo정디자인rsquo인데 lsquo나는 왜 이렇게 디자인을

못할까rsquo 답답해했던 기억이 있어요 그러나 매우 즐거웠고

술도 자주 마셨죠 아직도 당시의 OB들과 가깝게 지내요

lsquo둥지rsquo 같은 곳이죠

선생님께서 생각하는 완벽한 판면이란

디자이너의 삶의 방식과 콘텐츠의 삶의 방식이 녹아든 판면

선생님의 피로회복 방법은

알고싶어 디자인반

19

디자인반의 히어로좋은 출판 디자인을 생각한다 안광욱 선생님

여자 화장실 앞에 있어 인파로 북적대는 디자인반 교실을

학생들과 함께 굳건히 지켜온 분 디자인반 학생들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애정공세를 아끼지 않는 분 안광욱

선생님에게 물어본 4가지

디자이너로서 첫 직장을 다닐 때의 마음이

어떠셨나요

잘하고 싶었는데 못해서 힘들었지 사수에게 하루 서너

시간씩 야단맞으면서 했다오 매일 2호선 양화대교에서 뛰어

내리고 싶었는데hellip 이 부분은 내일 수업 때 얘기해줄게^^

선생님께서 생각하는 좋은 출판 디자인이란

세상을 향한 사랑과 희망이 듬뿍 담긴 디자인

출판 디자인을 안 했다면 지금 무슨 일을 하고

계실까요

모르겠네 그냥 선녀 옷 훔치는 나무꾼이 되어 있을 듯^^

어떤 주사가

있으신지 궁금해요

말이 조금 더 많아지고 장소 불문 쿨쿨 자 특별한 주사는

없는 듯

디자인반 11기 이소현 백가은 사공예원

디자

인 사

공예

20

편집자반 김영준 학우가 그린

『이 외로운 사람들아』 일러스트

기억에콕

수업 후기

ldquo우리에게는 lsquo일탈rsquo이 필요합니다rdquo

잠깐 딴 짓을 하는 사이에 귓가에 들려온

한 문장이 나를 사로잡았다 배는 부르고

따 사 로 운 햇 살 에 잠 이 쏟 아 지 는 시 간

오후 1시 30분 시간을 칼같이 맞춰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선 그는 딱 봐도 지루하고

고리타분해 보이는 첫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순간 눈으로 들어온 이미지는 뇌로 흘러갔고

뇌는 망설임 없는 확신으로 귀에 명령을

전달했다 그렇게 귀는 이미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내 들려올 그렇고 그런 뻔한

이야기에 대하여

눈의 판단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의 한마디

한마디는 파격이었다 아니 어쩌면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였지만 누구도 자신 있게

내던지지 못하는 말들을 서슴지 않고 내뱉는 그

거침없음에 신선함을 느낀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의 관심을 돌려놓았던 lsquo일탈rsquo에 대한 그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lsquo일탈을 하라rsquo는 말이

lsquo제멋대로 하라rsquo는 의미가 아니라 어떤 규칙을

벗어나는 행위를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다르게

생각하는 방식을 몸으로 익히게 된다는 것

새로운 것을 생각해내는 창의성이라는 힘은

당연히 새로운 경험에서 나온다는 것이었다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니 강의를 듣던

친구들의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때 보고 들었던 그의 말과 행동이 우리에게는

딱 딱 한 강 의 실 에 서 느 끼 는 새 로 운 경 험

lsquo일탈rsquo이었다

그 와 의 만 남 은 계 속 이 어 졌 다 이 곳

서 울 출 판 예 비 학 교 에 입 학 한 이 후 로 는 좀

더 완 벽 한 일 주 일 단 위 로 시 간 이 흐 르 기

시작했는데 매주 쌓여가는 새로운 배움 뒤에는

수많은 물음이 불쑥불쑥 솟아났고 그는 마치

예상을 했다는 듯이 일주일에 한 번씩 나타나

우리의 설익은 궁금증을 해소해주고 떠나갔다

첫 만남에서는 책이라는 대상과 책을 대하는

편집자의 자세에 대해 이야기하며 큰 그림을

그려주었고 다음엔 저자와의 관계 맺기 그

다음엔 스스로 만들어 가야할 편집자의 자기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담백하게 들려주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네 번째 만남이었다

누구도 쉽게 이야기하기 어려운 완벽하게

솔직해지기는 더더욱 어려운 자신의 좌절과

실패를 그는 담담하고 진솔하게 소개해주었다

모든 성공에는 대개 7할의 실패가 전제되어

있기 마련인데 성공에 이르기까지 거치는

우 리 가 lsquo실패rsquo라고 명 명하는 것들이 사실

진짜 실패가 아니라 성공의 다른 이름이라는

그의 말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성공도 실패도

어 느 한 지 점 에 서 내 리 는 판 단 인 것 이 고

결 국 성 장 하 고 성 숙 한 다 는 것 은 성 공 과

실패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lsquo차이rsquo를 얼마만큼

발견하느냐 하는 것에서 결정된다는 그의 말이

가슴을 뜨겁게 했다 비로소 lsquo편집자rsquo로서가

아닌 한 lsquo사람rsquo으로서의 그가 보이기 시작했다

담담하게 말을 하고 있지만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아프고 쓰린 기억을 후배들에게

들 려 주 는 그 에 게 서 진 심 이 전 해 져 왔 다

사랑하는 일에 대한 함께 걸어갈 동지들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 참 고마웠다

어느덧 마지막 만남이 찾아왔다 한 권의

책을 만들면서 진행했던 편집의 과정을 예로

실 제 적 인 이 야 기 를 우 리 에 게 마 지 막 으 로

들려주었다 편집의 능력은 지식과 정보에서

나온다는 것 그것은 단숨에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 꾸준히 쌓아가야 한다는 것 그래서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의 문제라는 것을 경험을

근거로 자신 있게 말해 주었다 이미 지나온

과거의 결과 대신 앞으로 걸어갈 길에 대한

희망을 들려주어서 그게 참 고마웠다

편집자반 일탈이 주는 파격 우리가 낳을 lsquo새로운 책rsquo과 편집자선완규 선생님과의 다섯 번의 만남이 키운 생각들

21

그 가 우 리 에 게 마 지 막 으 로 이 야 기 를

들려주었던 그날 이후 석 달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났다 나는 여전히 같은 강의실에 앉아

앞서 길을 걸어간 선배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고 조금씩 가까워지고 밝아져가는 내 앞에

놓인 길에 대해 생각한다 그러다 문득 마음이

무거워지고 막막해질 때면 종종 그의 말들을

떠올려 본다 그리고 그 생각의 끝에서 마음을

의지하며 함께 이 길을 걸어갈 따뜻한 선배가

하나 있다는 위로 한 줌을 발견한다

ps 선완규 선생님 고맙습니다 보고 싶어요

편집자반 11기 성준근

마케터반 강한 수면욕 환상과 환기

판형과 종이를 예술로 편입시키려는 영업자다빈치 출판사 박성식 대표 특강 후기

9월 23일 평소보다 점심을 많이 먹었던 날이다 잠을 며칠간 못 자 피곤했다

오후 1시 30분이 살짝 지나서 다빈치 출판사 박성식 대표의 특강이 시작됐다

다빈치 대표님은 처음 뵐 때부터 남다르셨다 서울출판예비학교 입학 면접에서

여자 술 담배를 각각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보셨다 lsquo솔직함을 어필해야

하는 순간인가rsquo하는 생각에 직설적으로 답했지만 lsquo더 문학적으로 얘기할 수

있었는데rsquo라는 후회를 안고 돌아왔다

마음과 다르게 첫 번째 시간은 정신없이 잠이 쏟아졌다 눈을 감고 귀 기울였지만

턱을 괸 채 버티는 동안 50분이 지났다 대표님께 캔 커피를 하나 드리고 맞이한 두

번째 시간 그 한 시간 동안 나는 현실 옆의 어떤 이상 내지는 환상을 본 것 같다 그동안

듣던 강의들을 놓고 lsquo이상적인 관점이다rsquo 혹은 lsquo현실적이다rsquo라고 구분했던 판단의 폭

자체가 좁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성식 대표님은 내 머리에 있던 lsquo책rsquo에 대한 인식을 전복시켰다 자본주의 출판의

몰락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시작됐다는 말 출판 기본 특성인 다품종 소량 생산은 돌아올

것이며 다품종 소량 생산을 넘어 다품종 소량 lsquo고급 생산rsquo을 추구하고 싶다는 말은 나를

달뜨게 했다 주류에 반하는 사고를 가진 중년의 개성과 내공에 교실 풍경이 환기됐다

교육 수단으로 책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지만 책은 그만큼 사회적 의무와 희생을

짊어져왔다 출세와 공부 앞에서 책이 가진 기호(嗜好)성은 변두리로 내몰렸다 책을

읽어야만 제대로 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분위기는 옳지 않다 독서는 성향의 범주지 성역이

돼선 안 된다 정보와 지식의 전달은 모바일 등에 넘겨주고 종이책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공동체로 돌아와야 한다 그게 원래 자리라는 대표님의 주장이 새롭고 강렬하다

자본주의 3대 원칙인 lsquo더 빨리 더 많이 더 싸게rsquo 체계는 표준화와 규격화를 동반하며

매우 효율적이다 현재 사용하는 종이는 자본주의 원칙에 최적화돼 있다 그러나 대표님은

인쇄기계로 소화하지 못하는 질감과 전혀 다른 발색을 지닌 lsquo종이rsquo에 주목했다 그 종이로

콘텐츠 종이 판형이 완벽하게 들어맞는 예술서를 만들고 시장을 설득한다면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책 판매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전했다 종이 자체가 책의 예술성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한지(韓紙)를 예로 들면서 훌륭한 텍스트와 이미지를 한 차원 끌어올리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많은 부수를 팔아야 성공한 출판 많은 부수를 파는 것을

목표로 하는 시대는 저물고 있다 기존 유통과 판매 방식

안에 갇혀서는 불황에 매몰될 뿐이다 소량의 고급화된

책을 꿈꾸는 것과 전시회를 책과 결합하는 것도 다른 길을

물색하는 과정이다

대표님은 10년 전부터 lsquo이 원고는 내가 누구보다 잘

만들겠다rsquo lsquo이 원고는 내가 못하면 누구도 못할 것 같다rsquo라는

생각이 든 책만 출간을 진행했다고 한다

강의 중간 자신의 독특한 철학을 전달하는 것에 대해 가벼운

염려를 하셨지만 이론적이고 실용적인 분야에 몸담더라도

예술적 사고의 유연성은 필요하다고 본다 돈과 인문정신을

구분하면서 필요할 때 양쪽에서 자극 받고 차용하는 것이 마케팅의 융통성과 힘을 기르는 길일 것이다

마케터반 11기 이창환

편집자반 김영준 학우가 그린

『이 외로운 사람들아』 일러스트

박성식 대표가 기획한 lsquo오름rsquo전

22

하늘

습탁은 농도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하늘

습탁은 농도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이 글은 심우진 선생님의 탁본 세미나 수업에 대한 우리들의 즐거운

기록이다 탁본은 습탁(濕拓)과 건탁(乾拓) 두 종류로 구별된다

습탁은 나타내고자 하는 물체 위에 물을 묻힌 후 종이를 그 위에

밀착시키고 먹물 묻은 솜방망이로 가볍게 두드려서 물체를 표현하는

방법이다 물체의 패인 부분을 제외하고 볼록한 부분의 모양대로

종이에 먹이 묻어 문자나 문양이 드러난다 건탁은 이름 그대로 물을

사용하지 않고 마른 상태의 먹인 고형묵(固形墨)을 사용한다 우리는

각자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사물과 자연을 이용해 탁본 작품을

만들고 서울출판예비학교 꼭대기 층에서 작품을 공유했다

디자인반 이 시간을 그대로 탁본할 수 있다면심우진 선생님의 탁본 세미나

저는 신문지를 구겨서 해봤어요

응 그런데 이건 방바닥 같은데

방바닥까지 묻어 나와 버렸네요

[학생들 하하하]

저는 일단 큰 나무 기둥을 떠봤고요

오솔길의 짚도 해보고 저희 집 바닥과

벽면도 신기해서 떠봤어요 집 벽면 중에

대리석도 있고 특이한 벽면이 많거든요

부잣집인가 보네

[학생들 깔깔깔]

승연

심우진 선생님

승연

승연

심우진 선생님

이건 파프리카인데 저희 집 개가 완성한 종이를 찢었어요

[학생들 하하하]

좀 작고 납작한 파프리카를 반으로 잘라서 습탁했어요 또

이건 철조망인데 용 비늘처럼 나와서 재밌었어요 아나콘다

같기도 하고 철조망이 날카로워서 습탁하니 종이가 자꾸

찢어져서 다시 하게 됐어요 근데 이거요hellip 남자친구

있으면 커플끼리 한 번 해보세요 한 명은 잡아주고 한 명은

습탁하고hellip 되게 로맨틱 성공적

자랑하는 거니

[학생들 깔깔깔]

수빈

수빈

심우진 선생님

혜민

정묵

처음에 나뭇잎이 세세하게 잘 나올 줄 몰랐는데 그

줄기의 질감이 잘 나왔고 버려진 타이어를 끌어서

생긴 모양으로도 습탁을 했는데 생각보다 잘 나와서

막상 찍어보면 생각과 다르다는 것을 느꼈어요

저도요 결과물이 뚜렷하게 안 나올 줄 알았는데

디테일이 잘 나타나 있었고 입체를 평면적으로

찍는 것 자체가 재밌었어요

수정

저는 빗자루를 해봤어요 너무 얇아서 안 나올

거라 생각했는데 빗자루 문양이 잘 나와서

재밌었고 머리카락도 해봤는데 머리카락은

끝 부분이 잘 나오는 편이에요 위쪽은 다

뭉쳐있는데 끝 부분은 펼칠 수 있으니까요

23

저는 결이 얇은 것들을 뜨는 것이 재밌었어요

머리카락처럼요 머리 긴 사람에게 부탁해서

눕히고 했어요 그리고 이건 얼굴인데요

처음에는 그냥 했는데 얼굴은 입체를 살리려면

스케치하듯 떠야 되요 결국 명암으로 입체감

조절을 해야 되죠 코가 너무 입체적이라 특히

힘들었어요

누구 얼굴이야

우리 언니hellip

[학생들 우와]

가은

심우진 선생님

가은

하얀

음각이 나왔을 때 너무 좋았고요하늘

습탁은 농도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소리

건 탁 보 다 는 습 탁 이 농 도 조 절 하 는 게

희 한 해 서 재 밌 었 어 요 농 도 조 절 이

관 건 이 거 든 요 먹 과 물 의 배 합 과

솜방망이가 먹물을 얼마나 흡수하는지 그

흡수량이 중요하고요

윤미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꽤 많은데 만져보면서 건탁을 뜨니까 좋았어요 전에

습탁할 때는 시멘트 벽 같은 걸 하다가 나뭇결을 하니까

살아있는 느낌이었어요 생각했던 것처럼 나와서

좋았고 솔방울이나 나뭇잎 같은 섬세한 것들은 제대로

나오지 않아서 아쉬웠어요 섬세한 것들은 습탁으로

해봐야겠어요 그래도 다양한 나무를 건탁해봐서

만족해요

소현

저는 일상적인 것들로 습탁을 해봤어요

처음에는 단순하게 오돌토돌한 느낌만

있 을 줄 알 았 는 데 색 다 른 느 낌 이 나 서

재밌었어요

탁본 세미나를 마치고 그 다음 주에 지하 강당에서 촬영하는 시간을

가졌다 촬영 후에 보정도 했다 나뭇잎의 결 무늬 타이어 자국

그리고 사람의 머리카락까지도 좋은 디자인의 재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보았고 나누었다 건탁과 습탁의 장단점을 이 수업으로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심우진 선생님의 이번 탁본 수업도 지난 활자

수업처럼 지식 습득은 물론이고 경험까지 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 시간들이 앞으로 출판 디자이너로서의 감각을 더 풍요롭게 해 주지

않을까

디자인반 11기 사공예원

하얀

음각이 나왔을 때 너무 좋았고요

습탁은 농도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솜방망이가 먹물을 얼마나 흡수하는지 그

흡수량이 중요하고요

윤미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꽤 많은데 만져보면서 건탁을 뜨니까 좋았어요 전에 꽤 많은데 만져보면서 건탁을 뜨니까 좋았어요 전에

이건 파프리카인데 저희 집 개가 완성한 종이를 찢었어요

[학생들 하하하]

좀 작고 납작한 파프리카를 반으로 잘라서 습탁했어요 또

이건 철조망인데 용 비늘처럼 나와서 재밌었어요 아나콘다

같기도 하고 철조망이 날카로워서 습탁하니 종이가 자꾸

찢어져서 다시 하게 됐어요 근데 이거요hellip 남자친구

있으면 커플끼리 한 번 해보세요 한 명은 잡아주고 한 명은

습탁하고hellip 되게 로맨틱 성공적

자랑하는 거니

[학생들 깔깔깔]

24

9시 30분 합정역 1번 출구 앞

ldquo누나rdquo 소리에 쳐다보니 반가운 공 총무의 얼굴이 보였다 정류장

앞으로 길게 늘어선 줄에 합류하여 파주로 날 데려다 줄 2200번

버스를 기다리고 있으니 반가운 얼굴들이 계속 나타났다 한 대의

버스를 보내고서야 겨우 2200번 버스에 탑승해 파주로 출발할 수

있었다

10시 15분 파주 lsquo다산교 앞rsquo 정류장 하차

4개의 정류장 총 57분이 걸린다고 알려준 N사 지도 어플의 정보와는

달리 30분 만에 파주에 도착했다 일찍 도착해 먹을 것을 찾아 헤맨

예비 마케터들은 편의점에서 주린 배를 채웠고 lsquo지혜의 숲rsquo을 살짝

염탐하며 11시까지 시간을 보냈다

11시 05분 보진재 2층

1912년 설립되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인쇄소인 보진재 관계자

분이 나와 간단히 인사 말씀을 하고 각 반의 인솔자를 소개해주셨다

마케터반의 인솔자는 서동관 과장님 디자인반 편집자반 마케터반

순으로 견학을 시작했다

11시 15분 보진재 견학 시작

제일 먼저 본 곳은 제판실이었다 필름 인쇄가 줄어들고 CTP로

대체되는 추세지만 어떤 분들은 여전히 필름 작업을 하고 계셨다

이유를 물어보니 서동관 과장님은 예전 필름이 남아 있기도 하고

출판사에 따라 필름을 고집하는 곳이 있다고 하셨다

한번에 5도 인쇄가 가능한 기계를 보는 중에 서 과장님이 말씀하셨다

ldquo한 유닛(unit)당 23억 정도 해요rdquo 그렇다면 유닛 다섯 개가

돌아가고 있으니 적어도 10억짜리 기계라고 내 눈에 보이는 건 그냥

낡고 큰 기계인데 10억이 넘는다니 놀랐다 또 과장님께서 자랑스레

말씀하신 한 가지 잉크 농도 조절을 자동으로 하는 기계가 보급된

곳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었다 원래는 사람이 눈으로 보고 수정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재판을 찍을 경우 초판과 동일한 색상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있지만 보진재는 기계가 자동으로 조정해주어 수월한

작업을 할 수 있다고 하셨다

매염실도 보고 제본실도 구경했다 인쇄된 종이를 접지하고 제본을

마친 후 마지막으로 제단을 하면 책이 완성되어 나왔다 그 모든

과정을 보고 난 후 서 과장님이 건넨 완성된 책의 무게는 보통의

그것보다 조금 더 무겁게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윤전실이었다 견학 당일은 작업이 없어서

비어있던 윤전실이지만 윤전실이 주는 무게감은 컸다 윤전실은

롤(roll)로 인쇄하는 곳으로 8개의 롤이 양면 인쇄를 하고 건조와

접지까지 한 번에 가능한 기계도 있었다 대량생산을 위한 곳으로

주로 교과서나 EBS 학습지를 인쇄한다고 하셨다

12시 20분 견학 끝

1시간을 조금 넘긴 견학을 끝내고 밖으로 나오니 코가 따갑고 목이

말랐다 기계가 먼지를 빨아들여준다고는 하지만 수없이 많은

종이가 존재하는 공간에서의 종이 냄새는 강력했던 것이다 책이

제작되는 과정은 실제로 보니 다양하고 복잡했다 자동화가 많이

되어있지만 사람의 손길 없이는 절대 완성될 수 없는 과정들을 보며

책이 완성되기까지의 노력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lsquo책이 어떻게

만들어진다rsquo를 배우다가 lsquo책이 이렇게 만들어진다rsquo를 보니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예비 출판 마케터의

길로 들어선 후에 새로운 것을 보고 배울 수 있었는데 보진재 견학은

그 중에서도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책을 완성시키기 위한 모든 과정이

저마다의 몫을 하고 있었다 서울출판예비학교 졸업 후 출판계에

들어섰을 때 나는 과연 어떤 몫을 할 수 있을까 남은 2개월을 조금은

더 열정적으로 보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마케터반 11기 최다은

1 일일탈

학교 밖 견학 후기

피부로 와 닿는 책의 감촉 책의 냄새 책의 소리 보진재에서 책이 인쇄되는 과정을 만나다

필름과 인쇄판이 만들어지는 과정

25

우리가 이제 각자 편집자 마케터 디자이너가 되어 책 만드는 일을

시작하면 우리의 책은 이곳에서부터 그 lsquo탄생rsquo을 시작할 것이다 책의

근간이 되는 종이가 만들어지는 곳 한솔제지 공장에 다녀왔다 학기

초에 책을 파는 서점을 견학한 뒤 그 다음으로 출판사 종이에 활자를

찍어내는 인쇄소 그리고 마지막으로 lsquo종이rsquo를 만드는 제지 공장을

찾은 것이다 책이 만들어지는 순서대로라면 우리가 다녀온 순서를

거꾸로 해서 다녀왔어야 했지만 우리는 반대로 실제 과정을 거슬러

올라간 것이다 이렇게 거슬러 올라가는 과정에서 오히려 편집자란

직업에 겸허해질 수 있었다 가끔은 편집자가 책을 만드는 모든

과정 위에 군림하는 것 같이 느껴지지만 책의 물성을 만들어내는

거대한 기계 앞에서 우린 한없이 작아지기도 한다 lsquo한 권의 책rsquo이

만들어지려면 이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함을 이해해야 했다 이렇게도

복잡하고 힘겹게 만들어지는 책의 가치를 한 번 더 깊이 생각하게 된

계기였다 책이라는 건 의미가 담긴 조각들의 집합체이자 종이를

보기 좋게 물성화한 것 이론적으로야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눈으로 보고 느끼는 것과는 천지차이다

날씨마저 좋았던 9월 11일 평소보다 한 시간이나 이른 8시

30분에 세 반 학우들은 눈도 제대로 못 뜬 채 집합했다 대전까지

간다니 마치 여행가는 것 같은 살짝 들뜬 기분까지 안고 아침도 못

챙겨먹고 나왔을 우리를 생각해서 빵과 우유까지 준비한 한솔제지

측의 세심한 배려에 감동했다 배도 채우고 부족한 잠도 보충해가며

2시간 넘게 달려 신탄진 공장에 도착했다 도착하자 보이는 우리를

환영하는 현수막에 2차로 감동했다 우리를 위해 정말 많은 준비를

하셨구나 느낀 순간이었다

신탄진 공장 강당에 들어가서 간단한 공장 소개를 먼저 들었다

그리고 뒤이어 종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경청했다 수업 때보다

학생들의 집중력이 더 높아 보였던 건 내 착각이었길 종이는

1퍼센트의 펄프와 99퍼센트의 물로 이루어진단다 그래서 전반적인

공 정 의 대 부 분 은 물 을 처 리 하 기 위 한 과 정 이 나 다 름 없 었 다

생각보다 종이는 순수한 물질이라고 생각했다 종이(paper)의

어원은 이집트의 파피루스(papyrus)에서 왔다고 한다 중국의

lsquo채륜(蔡倫)rsquo이라는 사람이 제일 먼저 발명했고 고려시대에

일본으로 넘어간다 일본에 가장 마지막으로 넘어갔지만 종이의

기술력은 현재 일본이 가장 좋다 원료rarr초지rarr코팅 등의 공정을 거쳐

종이가 완성되는데 마지막 코팅 공정을 여자의 화장에 비유한 것

역시 기억에 남는다 코팅이 그렇게나 대단한 과정이라니

공장 안으로 들어가서는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시끄러워서 설명을

제대로 듣진 못했지만 앞서 들었던 설명을 떠올리며 기계들을

관찰했다 인쇄소에서 본 광경들도 거대하고 박력 있었지만 여긴

그보다 더 거친 느낌이었다 책은 서점에 놓여있을 때는 그렇게

얌전하건만 태어날 땐 이렇게 시끄럽다 또한 막 태어난 종이는

거대하고 또 거대했다 다들 마치 거대한 두루마리 휴지 같다고들

했다

견학을 다 마치고 다시 대전 공장으로 이동해 다 같이 점심 식사를

했다 기대 이상으로 맛있는 밥에 또 감동 더 힘내서 견학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아쉽게도 대전 공장 안에는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라 그 힘()을 발휘하진 못했다 대전 공장은 신탄진 공장과

다르게 책에 쓰이는 것이 아닌 제품 포장용 박스 종이컵 등 다른

용도에 쓰이는 종이를 만드는 곳이었다 그 과정의 차이를 눈으로

비교하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마지막으로 좋은 선물까지 손에

받아들고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다시 서울로 향했다

언제나 시작은 중요하다 각자의 일에 빠져들게 되면 점점 잊게 될

그 시작을 눈에 담고 오래 기억하기 위해 다녀왔다고 생각한다 요즘

초심을 잃었다는 생각이 종종 드는데 책에게도 초심이 있다면 바로 이

곳일까 시작의 의미에 대해 다시 곱씹어보았다

편집자반 11기 박혜원

우리의 글과 그림이 펼쳐질 종이의 탄생 한솔제지 신탄진 공장 견학

거대한 롤(상) 한솔제지 공장 앞에서 (하)

26

화양연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삶과 문학에 취하다

편집자반 한국문학 동아리 lsquo공감rsquo 그 대담의 현장

훗날 서울출판예비학교를 떠올릴 때 가장 즐거운 시간으로 기

억되는 날들은 동아리 활동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들의

화양연화(花樣年華)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 중

의 하루를 소개한다 문예창작학과를 전공한 문학소녀 김한나

학우를 필두로 창단된 편집자반 내 한국문학 동아리 lsquo공감rsquo은

모임 전에 한국작가를 한 명 정해 단편 두 편을 함께 읽고 키워

드나 질문을 스스로 뽑아 글을 써왔다 모여서 때로는 소설의

플롯이나 주제 문체에 대한 열띤 토론을 하고 때로는 작가의

외모()와 같은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며 삼천포로 빠지기도 했

다 우리끼리만 듣기엔 아쉽다 이 즐거운 대화를 모두에게 들

려주고 싶었다 이날 모임에선 김영하 작가의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단편집 속의 두 단편 lsquo엘리베이

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이하 엘리베이터)rsquo와 lsquo사진

관 살인사건(이하 사진관)rsquo에 대해 이야기했다 여기서는 lsquo엘리

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rsquo를 읽고 토의한 내용을

실었다

한나 참고로 김영하는 사람의 욕망에 대해 천착하는 작가야

그런 특성이 엘리베이터에는 안 나와 있는데 사진관에서는

잘 드러나 있어

상화 백가흠 작가에게 소설창작론 강의를 들었는데 그분이

소설의 기법을 설명하면서 알레고리랑 아이러니를 얘기했어

알레고리가 인물이나 소재를 비유적으로 설명하는 거래 예를

들어 핸드폰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다른

것에 핸드폰을 빗댐으로써 소설을 풀어가는 거

야 아이러니는 속도감 있게 이야기를 전개함으

로써 부조리나 모순을 드러내는 건데 김영하가

아이러니의 대표적인 작가래 단편인데도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내면보다는 사건이 일어나는

걸로 소설을 끌어가는 작가 우리가 지난 모임

에서 성석제를 굉장한 이야기꾼이라고 했잖아

그런데 난 김영하가 훨씬 이야기꾼스럽게 느껴

졌어 속도감 있고 lsquo이렇게 몰입을 할 수 있나rsquo

싶고 지난 모임들에서 읽었던 손보미나 편혜영

소설의 경우는 분위기나 주인공의 심정 내면에

의미를 부여해 야 했는데 김영하의 소설은 덮

자마자 아이러니가 느껴지면서 lsquo아 세상은 왜

이래rsquo 말하게 만들었어

법열 나는 엘리베이터 읽고 딱 lsquo뫼비우스의 띠rsquo가 생각났거든

뫼비우스의 띠가 안하고 겉이 구분이 안 되잖아 끝과 시작이

어딘지도 모르고 lsquo나rsquo가 겪는 상황이 현실인지 아닌지 구분이

안 되는 느낌 마지막에 lsquo나rsquo가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가 존재

하기는 했는지 혼란스러운 느낌을 받잖아 그게 앞의 환상적

인 부분이랑 맞물리면서 하나가 되는 느낌이라 뫼비우스의 띠

가 생각났어

상화 lsquo나rsquo가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구해주려고 고분군투하

다가 나중에 자기가 엘리베이터에 갇히잖아

오권 낀 남자의 발을 보면서 느꼈던 감상이 사실은 자기를 구

하고 싶었던 마음인 거지

(일동 오~ 그렇게도 볼 수 있네)

오권 무한도전의 무한상사 특집도 생각났어 뜬금없이 휴지

사용하는 길이에 대해 회의하는 장면에서 엘리베이터는 갇힌

사회 서로를 돌아보지 않는 사회를 의미하는 것 같아

한나 나는 반대로 오히려 엘리베이터를 희망적인 존재로 봤

거든 아파트도 그렇고 회사도 그렇고 각자 자신의 공간 안에

서 살다가 서로 만날 수 있는 장소는 엘리베이터 밖에 없으니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김영하 지음

문학동네 20100216

동아리 후기

27

까 lsquo나rsquo가 회사 엘리베이터 안에 여자와 같이 갇히잖아 사실

은 갇히지 않았으면 대화도 안하고 지나쳐 갔을 텐데 남자는

자기가 아침부터 버스 사고도 나고 성추행범으로 몰렸다고 얘

기하고 또 남자의 담배 피워도 되냐는 말에 여자는 담배에 대

한 불평불만을 속사포처럼 얘기하고 엘리베이터라는 공간이

아니었다면 이런 대화 자체가 없었겠지

오권 엘리베이터 타면 사람들이 하나같이 층수 바뀌는 것만

쳐다보고 있잖아

상화 요즘은 스마트폰

오권 자기 얘기를 하고 싶은 것 같아 하지만 상대의 얘기는

안 들어 lsquo너의 얘기는 관심 밖이지만 내가 불편한 것에 대한

얘기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하겠어rsquo라는 느낌

한나 그리고 우스웠던 게 볼일 보고 휴지 몇 칸 쓰는지 회의에

서 얘기하는 건hellip 사실 굉장히 사적인 얘기잖아 (일동 하하

하) 서로에 대해 다른 얘기는 일절 하지 않으면서 회의 내용은

개인적이고 사적이라니 아이러니한 거지

수경 진짜 웃기지 않았어 lsquo나rsquo가 자원 재활용 문제에 대한 중

대 보고가 있다고 계속 빨리 가야한다고 했던 게 겨우 그거야

상화 겨우 이딴 회의하려고 지금 엘리베이터에 낀 사람 놔두

고hellip 생명이 더 중요한데 지금 휴지 구하려고hellip

(일동 하하하)

한나 lsquo나rsquo가 불쌍했던 이유가 자기한테 닥친 일들은 lsquo할 수 없

지 뭐rsquo 이런 식으로 넘기는데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 걱정하고

갇힌 여자 걱정하고hellip 정작 자기 걱정은 안 해

오권 영화 lt라이터를 켜라gt 봤어 조폭들한테 얻어맞으면서

도 주인공은 무조건 자기 라이터만 찾겠다고 그러거든 이 소

설의 lsquo나rsquo와 비슷한 느낌이 들더라고 그 영화에서는 라이터가

주인공의 존재를 투영하는 소재거든 lsquo나rsquo는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구해야만 자기가 산다는 느낌을 받은 거라 해석하면

너무 나간 건가

법열 아니요 형이 아까 지적해준 게 와 닿았어요 그 고군분

투가 결국 자기를 구하려는 노력이라는 지적이요

상화 그나마 lsquo나rsquo가 이 소설에서 제일 인간적이지

수경 어딘가 찌질한 느낌도 들어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와

lsquo내rsquo가 동류라고 자각하고 연민을 갖는 느낌이었거든 lsquo나rsquo가

인간적이고 윤리적이라는 생각은 나는 글쎄hellip 더 적극적으

로 할 수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 자기 사이클에서 벗어나

지 않는 한도 내에서 걱정만 하잖아 소설 안에서 비극과 희

극이 번갈아 가며 나타나는데 트럭과 버스가 충돌했을 때

lsquo나rsquo는 lsquo버스 카드 일로 충돌하지 않게 되어 적이 기뻤다rsquo고

생각해 버스 운전사는 트럭 백미러에 가슴이 받혀서 죽었는

지도 모르는데 lsquo다행히 나는 허리가 좀 뻐근한 것만 빼면 별

다른 상처가 없는 듯했다rsquo 이런 생각들을 하는 게 좀 섬뜩했

민희 사람은 다 이중성을 가지고 있잖아 나를 보는 듯했어

만약 학교 가는 길에 엘리베이터에 낀 사람을 봤다면 그렇

지만 나도 얼마나 바빠 몇 분 늦으면 지각 체크 당하고 출석

80퍼센트를 못 채울 수도(일동 웃음) 있는 상황이라면 내

가 그 남자를 구할 수 있을까 일단 지나치고 119에 전화하려

고 했으나 핸드폰이 없는 상황에 나도 처할 수 있는 거잖아 나

만 생각하는 잔인한 면도 내 안에 있고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

도 내 안에 있어 이런 찌질한 모습도 나고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정의롭게 구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상화 기준이 다른 것 같아 lsquo나rsquo 정도면 착하다고 생각했거든

수경 주변 사람들이 약간 마네킹 같지 않아 주인공 주변에

장치되어있던 다른 사람들이 너무 비인간적이기 때문에 lsquo나rsquo

가 돋보이는 거지 lsquo나rsquo는 지극히 평범한 우리 모습 같아 내가

어떻게 할 생각은 없고 궁금하기만 한 거야

민희 그 궁금함과 찜찜함도 죄책감이라 생각돼 아 내가 어떻

게 해줬어야 했나

한나 책임 회피일까

상화 그래서 나는 키워드 뽑은 것 중 하나가 119야 구해주고

싶으면 직접 내 손으로 잡아 빼주던가 엘리베이터를 들어 올

릴 사람을 모아야 했는데 신고 생각만 하잖아 이미 이건 누

가 대신 해결해줘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그나마 우리

사회에서 사고를 수습해주는 건 119밖에 없고 조선시대에는

119같은 거 없고 마을 사람들이 모여 구해줬을 텐데 어쩔 수

28

없는 현대인의 단상이긴 해 현대가 분업사회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들 바쁘고 삶이 개인화 파편화되어 있으니까 119 같

은 집단이 필요한 거지 그래서 난 119를 신의 영역이라고 썼

어 lsquo나rsquo는 119를 거의 신적인 존재처럼 생각하잖아 부르면 모

든 게 해결될 것처럼 핸드폰 빌리고 공중전화 찾고 그런데 막

상 교통사고 현장에서 119 대원에게 면대 면으로 얘기를 했더

니 그들은 무슨 그따위 장난을 하냐고 말해 구조도 실은 신이

아니라 사람이 하는 일이고 그 사람이 관심이 없으면 묻히는

거지

오권 전화를 거는 것과 직접 구해주는 것의 차이가 큰 것 같아

자기가 구해주는 건 적극적인 행동이고 119에 전화하는 건 스

스로 최소한 양심적이긴 하다고 여기는 행동

수경 그런데 엘리베이터에 낀 사람을 아무 것도 모르는 일반

인이 어떻게 했다가는 더 위험해질 수도 있잖아

오권 맞아 사회가 시스템화하고 고도화될수록 각자의 업무가

분업화되었고 전문분야가 생겨났으니까 옛날 같았으면 애 낳

으면 그냥 동네 아주머니가 애 받고 어미가 죽으면 젖동냥 다

녔는데hellip 이젠 사고가 나면 생각이 119에 먼저 미치는 시대가

된 거지

수경 그래서 어딘가에 널브러져 다친 인간이 아니라 엘리베이

터라는 공간에 낀 남자를 설정한 것 아닐까 엘리베이터는 현

대화의 상징이잖아

한나 lsquo나rsquo도 어쩔 수 없는 게 출근 시간에 쫓겨서 시계를 계속

봐 먹고 사는 일이니까

오권 출근했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다시 집으로 돌아가

낀 사람을 구해주면 굉장히 희망찬 소설로 바뀔 텐데hellip (일동

웃음)

수경 이 소설로 현대 사회의 폐단은 다 얘기할 수 있겠는데

상화 김영하는 천재인 것 같다

누군가 그리고 잘생겼잖아

누군가 잘생긴 거야

누군가 지적인 분위기가 있어서 좋아 (한참 얘기)

한나 또 인상 깊었던 게 구두에 집착하는 거 lsquo나는 날렵한 치

타처럼hellip 구두를 가지고 엘리베이터에서 빠져나오는 데 성공

했다 허탈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rsquo는 구절

오권 자살한 사람들이 구두를 가지런히 벗어놓는 이미지가 무

슨 상징처럼 있잖아

한나 신발 한 쪽 없이 다녀봤어 계속 기우뚱대서 내가 걷거

나 서 있을 때 내가 잘못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여기서 lsquo나rsquo가

그랬을 거야 사실 lsquo나rsquo처럼 사는 게 정상인데 세상이 잘못된

건데

상화 이 소설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감정표현이잖아 하루 종

일 얼마나 힘들었겠어 처음으로 감정표현을 하니까 불쌍했어

오권 휴머니즘 불쌍론 또 나왔네(일동 웃음) 그럼 이제 사진

관으로 넘어가볼까hellip

편집자반 11기 이상화

2929

책씹는맛 01 냄새라는 경이 lt감각의 박물학gt 후각편을 읽고

냄새에는 언어가 없다 어휘가 부족한 우리는 말문이 막힌

채 불명료한 쾌감과 자극의 바다에서 말을 찾을 수밖에

없다1

이 말은 다이앤 애커먼의 『감각의 박물학』 제 1장 후각에

나오는 구절이다 냄새를 글로 쓰고자 하는 나의 시도가 늘

실패로 귀결되는 이유를 이 구절에서 찾았다 작가의 말처

럼 냄새에 대해 쓴다는 건 언어 밖 세계로 나갔다가 다시

언어로 되돌아오는 길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길에서 헤매

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후각이라는 감각에서 길을

잃는 것은 낭만적인 일이기도 하다 lsquo냄새의 뇌관을 건드리

면 모든 추억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기rsquo2 때문이다 냄새 하

나에 수많은 추억들이 줄줄이 기억의 회로 위로 떠오른다

예를 들면 바다 냄새 하나만 상상해도 그와 관련된 수많

은 기억들이 머릿속에 뒤섞인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바닷가와 관련된 그 모든 추억들이 기억의 영사막에서 한

편의 옴니버스 영화 형태로 내게 다가온다 난 내 기억의

관객이 되어 그 영화를 보다가 견딜 수 없는 그리움에 젖는

다 이 영화에 대한 감상문을 적으려면 나는 말문이 막힌

다 그래서 몇 글자 적다가 결국 글을 쓰기를 멈춘다 굳이

언어로 표현하자면 쓸 수 없는 그리움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1 『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옮김 작가정신 20040720

A Natural History of the Senses(1991) 17쪽

2 같은 책 18쪽

결국 lsquo언어가 존재하는 세계에서 경이는 언어의 칼날 아래

서 쉽게 해부되고 냄새는 자주 혀끝에서 맴돈다rsquo3 냄새의

숭고함 앞에서 우리는 말을 멈춘다 이처럼 냄새는 말할 수

없는 자연의 경이로움과 닮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lsquo냄새가 우리의 마음을 그토록 강하게 움직이는 것은 부분

적으로 그 이름을 부를 수 없기 때문rsquo4이라고 한다 저자는

그렇기에 사람들이 냄새를 lsquo분 냄새 비슷한 펭귄 냄새가

나는 호화로운 화장실 냄새가 나는rsquo 같은 말로 표현할 뿐

이며 냄새에 대한 이름은 주어져 있지 않다고 말한다 또

한 종류는 같아도 강약과 농도가 다른 각각의 냄새에 이름

을 붙여줄 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우린 일상적으로 냄새를

맡으면서도 그 냄새와 멀리 떨어져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명명되지 않은 것은 결국 잊히는 게 아닐까 부를

수 없음에서 오는 경외감과 숭고함이 있을지라도 냄새는

말해져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말할 수 없는 것에 자꾸

만 침묵하기만 해야 할까

감각도 모험의 영역이 될 수 있다 세계 일주만이 세상을

아는 길일까 lsquo나rsquo를 온전히 아는 것이 역설적으로 세상과

가까워지는 일인지도 모른다 나를 알기 위한 길 중 하나가

내가 가지고 있는 감각을 이해하고 그걸 언어로 표현하는

일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어쩌면 우리와 제일 가깝지만 말

하기 낯선 감각 후각을 이해하는 일이 중요한지도 모른다

냄새라는 감각 속에서 우리 모두 길을 잃고 헤매고 모험해

보자 냄새에 나름의 이름을 지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

리고 농도에 따라 냄새를 구분하는 일도 해보자 냄새라는

경이는 우리를 더 이상 침묵으로 이끌지 않을 것이다

디자인반 11기 백가은

3 같은 책 22쪽

4 같은 책 22쪽

『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 옮김

작가정신 20040720

A Natural History of the Senses(1991)

3030

02 현실을 전복시키는 비현실

모호함이 주는 환상성

20세기 중반 중남미 소설은 전통적인 사실주의 서사 구조

를 깨고 현실과 환상을 혼합시키는 새로운 글쓰기 방식으

로 세계문학의 중심에 선다 이 시기에 주목 받은 일련의

중남미 작가들을 가리켜 lsquo붐 세대 작가rsquo라 칭하는데 아르

헨티나의 환상문학 작가 코르타사르는 이 붐 세대 작가군

의 선구자이자 대표 주자 격인 인물이다 그러나 그 문학적

성과와 명성이 무색하게도 국내 독자들에겐 그의 이름이

아직 생소한 것이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에서는 그

의 작품이 중남미 단편 선집에나 몇 편이 번역되었을 뿐 본

격적으로 소개된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중남미 문학을 공부했고 그의 몇 안 되는 번역 작품을 인

상 깊게 읽었던 독자 입장에서 이번에 출간된 코르타사르

의 단편집『드러누운 밤』은 가뭄의 단비처럼 반가운 신간

이다

환상 문학이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J R R 톨킨 류의 판타

지소설 혹은 쥘 베른이나 아이작 아시모프 류의 SF소설을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코르타사르의 환상문학은 이들 범

주에 들어가지 않는다 코르타사르 작품에서 나타나는 환

상이란 토도로프가 정의한 바 있는 환상 그러니까 자연적

인 것과 초자연적인 것 사이의 망설임에서 발생하는 환상

에 가깝다 따라서 판타지소설의 lsquo현실과 동떨어진 환상rsquo

혹은 SF소설의 lsquo설득력 있고 현실감 있는 환상rsquo을 기대하

는 독자라면 아마 십중팔구 그의 작품을 읽고 실망할 것

이다 어쩌면 이게 무슨 환상문학이냐는 푸념을 늘어놓을

지도 모르겠다 역시 가장 좋은 것은 선입관을 버리고 책을

읽는 것이다

코르타사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lsquo모호함rsquo이다 인물이나

배경 묘사에서 제시되는 기본적인 정보도 모호하고 사건의

전개 양상이 가진 당위성도 모호하다 작품 내에서 주요한

스토리 라인을 담당하는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경계도 모

호하며 심지어는 화자의 정체마저 모호한 작품도 있다 이

런 모호함의 향연은 짙게 깔린 안개와도 같아서 독자들은

그 속에서 한 치 앞도 제대로 내다볼 수 없음은 물론이요

이미 지나간 사실조차도 자신이 맞게 인식한 것인지 확신

할 수 없을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무엇이 진짜인지

독자들의 판단을 망설이게 만드는 이런 상태야말로 코르

타사르의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는 환상이란 개념이다 독

자들은 이 환상 속에서 그저 전방을 주시하며 천천히 나아

갈 수밖에 없다

다행스럽게도 코르타사르는 독자들의 시련을 헛되게 하지

않는다 작품의 시작점 일상 세계에 우연히 침투한 lsquo비현

실적인 것rsquo은 안개 속에서 알게 모르게 자신의 지분을 늘려

나간다 그리고 작품의 종점에 다다른 독자들은 비현실이

현실이 되고 현실이 비현실이 되는 이전과는 전혀 새로운

세계와 마주할 것이다 다시 말해 필연과 이성의 법칙이 지

배하는 세계가 우연과 환상이 지배하는 세계로 변하는 것

이다 이러한 세계의 전복은 마치 여기저기 단서를 흩뿌리

고 사람들을 알쏭달쏭하게 만들었다가 결말부에서 모든

것을 폭발시키는 추리소설 혹은 반전영화를 보는 듯한 재

미를 선사한다

그렇다면 코르타사르가 이 소설들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책을 다 읽고 난 독자라면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의문점이다 코르타사르는 자신이 환상문학을 쓰는

이유를 ldquo법칙이나 원칙 혹은 인과관계나 특정한 심리 또

는 잘 그려진 지리학과 같은 체계에 의해 세상이 지배되고

있다는 것에 반대rdquo하고 ldquo우리가 잘 모르며 우리에게 잘 다

가오지 않는 새로운 질서에 관해 생각해보기 위함rdquo이라고

설명한다 짧게 말해 이 세상에 필연이란 존재하지 않으

며 자신은 그것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말이다 이

게 전부다 순문학이라면 거장의 문학이라면 이보다 더 심

오한 통찰 혹은 비판이 있을 것이란 생각에 문장 속 숨겨진

의미를 발견하고자 머리를 싸맬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조

언을 하자면 독서는 독서 그 자체로 즐기면 된다 적어도 이

책에서는 그렇다 모호함과 예상외의 전개 속에서 재미를

느끼고 코르타사르가 묘사하는 세계의 불가지(不可知)성

을 어렴풋하게나마 인식할 수 있다면 이미 그것으로 충분

하다

편집자반 11기 강귀욱

『드러누운 밤』

훌리오 꼬르따사르 지음 박병규 옮김

창비 20141124

La noche boca arribaJulio Cortazar

31

03 얼어붙은 자의식의 바다를깨뜨리고 생명을 불어넣는 책 『데미안』

데미안을 읽고 나서야 그 동안 내가 두 발 딛고 서 있던 땅이

굳고 단단한 대지가 아니라 얼어붙은 바다에 불과했음을 알

았다 데미안은 도끼를 가져와 이 꽁꽁 언 바다를 가차 없이

내리 찍었다 그리고 말했다 얼어붙은 바다를 단단한 땅인

줄 알고 사느니 그 얼음을 깨부수고 그 속에 빠져 죽기 살기

로 허우적대라고 그러면 그 속에서 너는 너 자신을 똑바로 마

주하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성장할 것이라고

주인공 싱클레어도 그를 둘러싸고 있던 세계를 깨뜨려 나가

며 성장한다 그 모든 과정은 결국 진정한 자기 자신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가 깨뜨린 가장 큰 세계는 바로 자신의 사고 체계였다 세상

을 바라보는 기존의 이분법적이던 시각 고정되고 획일화된 시

각을 버렸다 주인공은 세계 안에 심지어는 자신 안에도 선하

고 악하며 밝고 어두운 양극단의 것들이 공존함을 이해하고

두 세계를 끌어안았다 주인공은 귀와 눈을 가리던 장막을 걷

어내 버리고 세상을 바로 보게 되었다 상극인 것들의 괴리로

이루어진 이 모순된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곧 자신 안의 부조

화 또한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스스로에게 다가서는 첫 걸음

이었다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양극단의 세계 사이에서 싱

클레어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며 흔들리기를 반복했다 이

때 그에게는 삶을 지탱할 중심축이 없었다 항상 내면이 아닌

외부 세계에서 자신이 속할 자리를 찾아 헤맸다 그가 비로소

온전한 자신을 만난 순간은 어느 편으로도 치우침 없이 스스

로의 기준으로 홀로 서게 되었을 때였다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 이 길은 당신이 내면에 있는 모

순되는 두 세계 한없이 나약하고 뒷걸음치는 비열한 모습들

과 정갈하고 깨끗한 곧은 힘들을 동시에 직시하는 순간에 시

작된다 그리고 이 길은 두 세계 속에 들어가 이리저리 휩쓸리

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세계를 밟고 우뚝 올라서서 스스로

가 중심이 됨으로써 앞으로 펼쳐진다

이제 lsquo자아를 찾으라rsquo는 지루하고 흔한 이야기가 더 이상 빤

하거나 우습지 않다 묵직한 울림이 되어 나를 흔든다 그냥

나만 붙잡고 흔드는 것이라면 손사래 쳐 뿌리치겠는데 내가

밟고 있던 땅 속해 있던 세계를 뿌리째 흔들어 버린다 읽는

내내 속이 답답하고 나에게 화가 난다 그런데 이렇게 마구

혼나면서 이상하게도 후련한 구석이 있다 호통을 치는 데미

안이 사실은 우리를 응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막연

하고 무기력한 안개에 휩싸여 있을 때 데미안은 그만의 방

식으로 우리에게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준다 물론 갈 방향을

정해준다거나 각자의 사정을 듣고 상담을 해주는 것은 아니

다 오로지 궁지로 몰아세울 뿐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사람들

은 잊고 있던 lsquo나 자신rsquo을 일깨운다 아 그동안 lsquo나rsquo에 대해 생

각해본 적이 있던가 라는 정도만이라도 좋다 이 물음이 바로

여정의 시작이니까

그렇게 스스로에게 묻고 나면 더 이상 전처럼 살 수는 없기 때

문이다 아니라면 자기 자신에게 면목이 없을 것이다 이 무서

운 책이 우리를 혼내고 몰아치면서도 여전히 영원한 고전이자

필독서로 사랑 받는 이유다

lsquo우리들 속에는 모든 것을 아는 한 사람이 있다rsquo고 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혼이 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혼

이 났다는 것은 자신 안에 있는 lsquo그 사람rsquo이 말을 하기 시작했

다는 뜻이니까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목소리가 희미하

고 멀리 있다 하여도 숨죽여 귀 기울이는 일 자체가 자신에게

로 가는 과정임을 잊지 말고

편집자반 11기 배예리

『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민음사 20001220

Demian Die Geschichte von Emil

Sinclairs Jugend(1919)

31

03 얼어붙은 자의식의 바다를깨뜨리고 생명을 불어넣는 책 『데미안』

데미안을 읽고 나서야 그 동안 내가 두 발 딛고 서 있던 땅이

굳고 단단한 대지가 아니라 얼어붙은 바다에 불과했음을 알

았다 데미안은 도끼를 가져와 이 꽁꽁 언 바다를 가차 없이

내리 찍었다 그리고 말했다 얼어붙은 바다를 단단한 땅인

줄 알고 사느니 그 얼음을 깨부수고 그 속에 빠져 죽기 살기

로 허우적대라고 그러면 그 속에서 너는 너 자신을 똑바로 마

주하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성장할 것이라고

주인공 싱클레어도 그를 둘러싸고 있던 세계를 깨뜨려 나가

며 성장한다 그 모든 과정은 결국 진정한 자기 자신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가 깨뜨린 가장 큰 세계는 바로 자신의 사고 체계였다 세상

을 바라보는 기존의 이분법적이던 시각 고정되고 획일화된 시

각을 버렸다 주인공은 세계 안에 심지어는 자신 안에도 선하

고 악하며 밝고 어두운 양극단의 것들이 공존함을 이해하고

두 세계를 끌어안았다 주인공은 귀와 눈을 가리던 장막을 걷

어내 버리고 세상을 바로 보게 되었다 상극인 것들의 괴리로

이루어진 이 모순된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곧 자신 안의 부조

화 또한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스스로에게 다가서는 첫 걸음

이었다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양극단의 세계 사이에서 싱

클레어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며 흔들리기를 반복했다 이

때 그에게는 삶을 지탱할 중심축이 없었다 항상 내면이 아닌

외부 세계에서 자신이 속할 자리를 찾아 헤맸다 그가 비로소

온전한 자신을 만난 순간은 어느 편으로도 치우침 없이 스스

로의 기준으로 홀로 서게 되었을 때였다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 이 길은 당신이 내면에 있는 모

순되는 두 세계 한없이 나약하고 뒷걸음치는 비열한 모습들

과 정갈하고 깨끗한 곧은 힘들을 동시에 직시하는 순간에 시

작된다 그리고 이 길은 두 세계 속에 들어가 이리저리 휩쓸리

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세계를 밟고 우뚝 올라서서 스스로

가 중심이 됨으로써 앞으로 펼쳐진다

이제 lsquo자아를 찾으라rsquo는 지루하고 흔한 이야기가 더 이상 빤

하거나 우습지 않다 묵직한 울림이 되어 나를 흔든다 그냥

나만 붙잡고 흔드는 것이라면 손사래 쳐 뿌리치겠는데 내가

밟고 있던 땅 속해 있던 세계를 뿌리째 흔들어 버린다 읽는

내내 속이 답답하고 나에게 화가 난다 그런데 이렇게 마구

혼나면서 이상하게도 후련한 구석이 있다 호통을 치는 데미

안이 사실은 우리를 응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막연

하고 무기력한 안개에 휩싸여 있을 때 데미안은 그만의 방

식으로 우리에게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준다 물론 갈 방향을

정해준다거나 각자의 사정을 듣고 상담을 해주는 것은 아니

다 오로지 궁지로 몰아세울 뿐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사람들

은 잊고 있던 lsquo나 자신rsquo을 일깨운다 아 그동안 lsquo나rsquo에 대해 생

각해본 적이 있던가 라는 정도만이라도 좋다 이 물음이 바로

여정의 시작이니까

그렇게 스스로에게 묻고 나면 더 이상 전처럼 살 수는 없기 때

문이다 아니라면 자기 자신에게 면목이 없을 것이다 이 무서

운 책이 우리를 혼내고 몰아치면서도 여전히 영원한 고전이자

필독서로 사랑 받는 이유다

lsquo우리들 속에는 모든 것을 아는 한 사람이 있다rsquo고 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혼이 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혼

이 났다는 것은 자신 안에 있는 lsquo그 사람rsquo이 말을 하기 시작했

다는 뜻이니까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목소리가 희미하

고 멀리 있다 하여도 숨죽여 귀 기울이는 일 자체가 자신에게

로 가는 과정임을 잊지 말고

편집자반 11기 배예리

『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민음사 20001220

Demian Die Geschichte von Emil

Sinclairs Jugend(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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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길 인터뷰

진정한 역사가는 과거에 파묻히지 않는다옥(獄)에서 옥(玉)을 만든 작가 박세길 인터뷰

박세길 저자는 처녀작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로 80년대

대표 역사서 자리를 꿰찬 분입니다 1986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감되었을 때 감옥에서 역사책을 읽으며

사회 모순에 대해 고민했고 출소하자마자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집필했습니다 정권 탄압 속에서 왜곡된

현대사를 바로 잡았다는 의미를 지닌 이 대표작은 오랫동안

고시생과 대학생들의 필독서로 꼽혔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읽은 박세길 저자의 저서는 지난 6월 출간한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입니다 기사를 쓰고 편집할 때 청년 세대를

겨냥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박세길 저자는 역시나

청년들의 미래에 큰 관심을 갖고 계셨습니다 취업을

눈앞에 둔 서울출판예비학교 학생들이 가져야 할 자세를

여쭸습니다

출판학교에서 강의하신 한 선생님은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가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와

더불어 80년대 인문학의 양대

산맥이라고 하셨습니다

책의 성공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강의

요청이 많이 들어왔어요 먹고사는

경제적인 문제도 해결됐습니다

몇 부 팔렸는지는 잘 모릅니다

출판사에서 기밀 사항이라고

하더군요 요즘은 마케팅 차원으로도

몇 쇄 몇 부인지 밝히지만 그때는

세금 문제를 피해가기 위해서인지

쉬쉬하던 시절이었나 봅니다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는 대학

선후배끼리도 많이 물려주는 책이라고

들었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의 쉬운 설명이

좋았습니다 더불어 어떤 사명감을 안고 썼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완성하기에 앞서 어떤 목표를

두셨나요

청년 세대가 외환위기 이후 집중적인 희생양으로 전락하면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드러내면서 여기에

머물지 않고 청년 세대의 잠재력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들이 역사 무대 한복판에 진출해 자기 몫을 다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습니다

역사 분야는 시장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역사 혹은 현대사가 주목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통해 얘기하자면

80년대 후반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lsquo왜곡된

역사를 바로 알자rsquo는 시각 교정의 욕구가 있었던

차에 제 책이 나름 부응했는지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시기가 적절했던 셈이죠

2012년 대선 후 역사 분야가 잠시 반짝했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금세 시들었다고

하더군요 당시 역사 분야 책들이 일반 독자가

읽기에 다소 어렵거나 출간한 지 오래된 것들

위주였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돋을세길

출판학교에서 강의하신 한 선생님은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가 유홍준 교수의

책의 성공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강의

하더군요 요즘은 마케팅 차원으로도

선후배끼리도 많이 물려주는 책이라고

역사 분야는 시장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역사 혹은 현대사가 주목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통해 얘기하자면

80년대 후반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lsquo왜곡된

역사를 바로 알자rsquo는 시각 교정의 욕구가 있었던

차에 제 책이 나름 부응했는지 큰 반향을

읽기에 다소 어렵거나 출간한 지 오래된 것들

위주였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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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대선 후 역사 분야가 관심을 받았던 것은

보수층의 재집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한

불안 때문일까요

맞습니다 그러나 마땅한 책이 없어서 그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역사 분야에서 베스트셀러를 내기

위해서는 시기가 맞아 떨어지고 내용 또한 대중이 원하는

것을 담고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를 편집한 lsquo생각정원rsquo

출판사의 정희용 편집자에게 감사 표시를 하셨습니다

어떤 편집자를 선호하시나요

간단합니다 편집자는 철저히 독자 입장에서 독자와 작가

사이의 간극을 줄여줘야 합니다 예를 들면 어려운 내용을

과감히 생략하고 다음 기회로 미루도록 설득한다거나 좌파

운동권 색채가 너무 강한 문장을 조금 순화하는 것 등입니다

어떤 내용이 이번 책에 꼭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선택을

도와줘야 합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을 작가님께서 직접

독자들에게 홍보하신다면 카피 문구를 짧게 제시할 수

있을까요

청년 세대 희망 찾기 갑갑한 현실을 어떻게 타개할 수

있을지 그 답을 찾아보는 길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취업 후 첫발을 내디딜 서울출판예비학교 11기

학생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출판 또한 돈을 벌어야한다는 기본 전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출판계를 지켜본 결과 뭔가 소명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오래

살아남았습니다 출판학교 역대 대표 중 일부는 나와 관계가

있는 사람들인데 모두 고유한 소명의식을 갖고 출판계에

뛰어들었습니다 때로는 상업주의 안에서 재주도 부리곤

했지만 어쨌든 분야 내에서 고유한 캐릭터를 구축했습니다

출판학교 학생들이 출판 상황을 이해하고 자신을 역할을

정하는 개인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비전 중심의 경영을

하는 회사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지만 개인 비전을 기업

비전으로 나아가 사회 비전으로 접목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과거에 안주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부분을

출판계에서는 SNS 등 인터넷 환경을 통한 마케팅으로

이해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SNS망 자체에서 무엇이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건 사람과

사람이 서로 소통하고 공감하는데 필요한 도구입니다

콘텐츠 중심의 사고가 중요하고 그것이 전제되지 않을 때

SNS는 착각에 불과하며 성공할 수 없습니다 필요한 콘텐츠

중심의 사고를 가지고 철저하게 진행하지 않으면 그 공간에서

허망하게 헤엄만 칠 뿐 입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SNS에서

맥없이 헤엄치다 익사하는 경우를 볼 수 있을 겁니다

콘텐츠와 마케팅의 영역을 하나로 보는 것과 따로

보는 것 어떤 것이 독자를 위하는 것일까요

출판 마케팅은 책을 기획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에서부터

개입돼야 하고 그 과정에 독자를 참여시키는 방식을

고민해야 합니다 미국 네브래스카주립대학의 이상문

교수는 lsquo밀실 안에서의 혁신은 끝났다rsquo고 얘기합니다

개방된 체제에서 독자 곧 소비자 사용자의 참여 하에 함께

만들어갈 때 혁신은 이뤄진다고 합니다 출판사의 비전이

브랜드로 연결될 때 독자는 자발적으로 의견을 주고받고

싶어 할 겁니다

마케터반 11기 이창환

디자

인 사

공예

Page 5: 서울출판예비학교 웹진 _5호 2015

5

3년 전에는 lsquo원기옥 이벤트rsquo로 모아진 돈으로 미야베 미유키 작가를

만나기 위해 혼자 일본에 다녀오셨는데 이번엔 독자 3분을 뽑아

일본에 다시 다녀오셨어요 두 번의 방문이 어떻게 달랐나요

3년 전에 내가 갔을 때는 답변이 되게 무미건조했어요 lsquo어떻게

생각하십니까rsquo lsquo좋다고 생각합니다rsquo lsquo이게 맞습니까rsquo lsquo네

맞습니다rsquo 가족 얘기 안하고 정치적인 질문 싫어하고 제약이

많 았 어 요 이 번 에 는 독 자 와 있 으 니 까 사 람 이 약 간 달 떴 다 고

할까요 가족 얘기 정치적인 얘기도 하더라고요 독자에게 직접

준비한 선물도 주고 사인도 일일이 해주고 사진도 같이 찍어주고

팬서비스가 남달랐죠 그도 그럴 것이 미야베 미유키가 만난 첫

번째 한국 독자인 거예요 미야베 작가는 한 번도 외국 여행을 해본

적이 없거든요 청각에 문제가 있어 비행기를 탈 수가 없대요 도쿄

밖을 안 나간다고 하니 당연히 해외 독자를 만나본 적이 없죠

세계 어느 나라에서 독자들이 인터뷰를 하러 왔겠어요 당초 한

시간 반 예상했는데 세 시간까지 걸렸어요 그때 「르 지라시」가

8면짜리였는데 인터뷰 내용이 좋기에 12면으로 증면해서 다 실었죠

독자들과 같이 가지 않았더라면 그런 내용이 못 나왔으리라고

생각해요

내가 만약 기자를 데리고 갔다면 기사 나오는 건 따 놓은 당상이고

비용도 훨씬 적게 들어요 이 이벤트를 한다고 했을 때 기자들이

전화를 걸어와서 lsquo자기도 가면 안 되겠냐rsquo lsquo회사 비용으로 가겠다rsquo고

하는데 나는 그랬죠 ldquo아닌데 독자랑 갈 건데rdquo

다른 출판사 사장님들은 lsquo말이 안 된다rsquo고 했어요 기자랑 가면

기사도 나오는데 왜 독자들을 몇 명씩 데리고 가겠어요 만우절에

올 렸 으 니 까 거 짓 말 이 라 고 들 하 더 라 고 요 하 지 만 결 과 적 으 로

이벤트도 재미있었고 일단 작가가 너무 좋아해 내후년이 자신의

데뷔 30주년인데 꼭 또 오라고 하더라고요

북스피어 10주년을 기념하여 900쪽짜리 『십자가와 반지의 초상』을

출간하셨죠 그 소설의 배경이 되는 호빗 마을에 다녀오는 lsquo반지의

제왕 촬영지 기행 원정대rsquo를 꾸리셨었어요 다녀오신 후기를

들려주시겠어요

나 와 편 집 장 과 독 자 세 명 이 렇 게 다 섯 이 갔 는 데 와 정 말

행복했어요 열흘 동안 캠핑카로 반지의 제왕 촬영지를 다 돌았어요

뉴질랜드 면적이 우리나라 면적의 25배래요 그리고 인구는 400만

명이 좀 넘는대요 사람이 없어요 마을이 있다 그 다음은 다

고속도로야 그리고 또 마을이 있고 바로 고속도로 상점들은 6시에

열고 5시에 닫으니까 밤에 차도 없고 사람도 없고

농경 목축을 하느라 상품을 생산하는 비율이 높지 않으니까

자급자족이에요 그런데 촬영지가 되니까 세계 각지에서 사람들이

오는 거죠 관광업이 활황이 되어서 뉴질랜드 곳곳에 캠핑카를 타고

묵을 수 있는 곳이 많더라고요 갔다 와서 독자가 그걸 후기로 남겼죠

최근 lsquo낭만독자열차교정rsquo을 크게 여셨어요 그동안 북스피어의

독자 교정 이벤트는 꾸준히 진화해왔는데 지금까지의 변화들을

말씀해주세요

교정을 권당 120만 원씩 주면 1000만 원이잖아요 그건 어려우니까

처음엔 출판사에 다니는 친구들에게 도움을 받으려고 했었죠 그런데

점점 연락이 안 돼 부탁하는 빈도가 늘어날수록 전화를 안 받아요

아 그러면 독자에게 놀이처럼 하게 해야겠다 싶었어요 처음에는

몇몇이 와서 교정을 보면 점심을 줬어요 점심 먹고 그냥 갔지 뭔가

재미가 없어 다음에 왔을 때는 점심도 주고 저녁도 줬어요 또 그

다음은 점심도 주고 저녁도 주고 술도 먹여 그랬더니 재미가 있는

거예요 이후로는 1차에서 끝나지 않고 4차까지 가고 밤새 마시고

홍대 일대를 막 돌아다니고 아침엔 해장국 먹고 헤어지고 전문

만우절 때 블로그에 장난으로 올렸다는 lsquo홀로 남겨져rsquo 앨범 이미지

하지만 독자들의 요청으로 직접 제작하기에 이른다 오른쪽은 박기영의 목소리로 재탄생한 『홀로 남겨져』(미야베 미유키 2011)의 북 OST lsquo홀로 남겨져rsquo

『흔들리는 바위』 뒤표지 안쪽의 심리테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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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을 맡기는 것보다 술값이 더 나가겠더라고요 하지만 그렇게

술 먹고 간 독자들이 홍보를 해준다고 할까 그래서 좀 더 발전시켜

보기로 했어요 밤샘독자교정 1박 2일 동안 교정을 보는 거죠

번역자가 아침고요수목원 근처에 있는 축령산 자락에 살기에 그 집을

빌렸어요 낮에는 교정을 보고 저녁에는 번역자와 함께 고기를 구워

먹으며 번역 뒷이야기도 듣는 거죠 그때부터 교정 MT가 시작이

됐어요 그러다가 지지난달에 한 것이 낭만독자열차교정이라고 열차

안에서 교정을 보고 밤에는 펜션에 도착해 놀다 오는 거였어요 마침

한겨레 기자도 독자 교정에 참여해 기사를 써주기도 했죠 앞으로요

인천에서 제주도로 가는 크루즈가 있대요 배 안에서 교정을 보고

제주도에 도착해서 노는 그런 독자 교정 이벤트를 구상하고 있어요

올해 4월에 lsquo북amp쿡 퍼포먼스 맏물이야기rsquo를 진행하셨어요 전문

성우가 소설을 읽어주고 푸드스타일리스트가 소설 속 음식을 직접

만들어 독자가 먹어볼 수 있게 한 신선한 기획이었죠

『맏물이야기』가 요리에 관한 책이어서 처음에는 독자들을 불러서

요리를 시켜야겠다고 생각했죠 늘 그렇듯 처음에는 소박했어요

이 책에 나오는 요리를 직접 하게 해서 독자에게 먹여야겠다 혹은

사진을 찍게 해야겠다 그런데 은근히 어려운 거야 에도 시대의

음식 맛이 나리라는 보장도 없고 그래서 푸드스타일리스트에게

의뢰를 했죠 의뢰하면 비싸다 보니 그냥 진행하기에는 아쉽고 판을

키우자 싶었죠 그러다 낭독할 성우까지 붙은 거고 선착순 200명

한정이었기에 오지 못한 독자들이 아쉬워하더라고요 텍스트에

머물지 않고 공연을 통해 시각 청각을 넘어서 후각으로도 독자들과

소통할 수 있었어요 책의 확장성을 보여준 신선한 행사였다는 평도

들었죠

북스피어는 장르문학만 출간하지만 그동안 진행해온 라디오

프 로 그 램 을 보 면 다 양 한 분 야 의 독 서 를 하 시 는 것 같 아 요

개인적으로는 어떤 분야의 책을 주로 읽으시나요

장르문학이요 내 분야에서 전문가 행세를 해야 해요 왜냐하면 내가

이 분야 책을 내니까 끊임없이 읽어야 해요 그래야 끊임없이 얘기할

수 있지 잘난 척하는 거 정말 중요해요

그렇다면 추천해 주실 만한 책이 있으신가요

최 근 에 『 마 션 ( M a r t i a n ) 』 을 재 미 있 게 읽 었 어 요 화 성 에

갔다가주인공만 빼고 다 귀향하게 되자 주인공 마크 와트니가

화성의 토양으로 감자를 재배해요 그걸 읽고 감자를 한 박스 샀죠

갑자기 먹고 싶어서요 10월 8일에 영화로도 개봉되는데 꽤나 흥행할

것 같아요 앤디 위어의 처녀작인데도 줄거리가 탄탄하거든요

작은 출판사가 출판계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방법이 있을까요

가급적이면 한 분야를 해야죠 김밥천국보다는 돈까스 전문점이

사람 모으기는 더 쉬워요 장사라는 것은 독특한 무언가가 있어야

해요 그동안 수많은 김밥천국이 사라져온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한

분야에서 독보적인 존재가 되는 것도 방법이에요 그런 존재가 되고

나면 독자들에게 알릴 lsquo채널rsquo이 있어야죠 그게 다일 것 같은데요

사실은 lsquo그 정도rsquo조차 정말 어렵죠

맏물 이야기 북amp쿡 퍼포먼스 포스터(좌)와 행사에서 재현된 소설 속에 나오는 음식(우) 김홍민 대표의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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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서울출판예비학교 학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망설임 없이) 외국어를 해라 정말 강조하고 싶네요 외국어를 뭐든

하나는 확실하게 해야 해요 또 글을 잘 써야 해요 저자만큼 저자가

lsquo에이 편집자 주제에 뭘 그리 잘 써rsquo라고 할 정도로 잘 써야 해요

글쓰기 연습을 매일매일 하세요 요즘은 환경이 좋잖아요 페이스북에

매일 끼적이기만 해도 실력이 늘어요 글 잘 쓰고 외국어 잘한다

프리패스예요 어느 출판사든 들어간다 어디든

편집자반 11기 김수진

잠깐만 우리 새우치킨 하나 먹을까

(바로 전화한다) 두 마리요 새우치킨 한

마리랑 양념치킨으로요

(주소를 말하지 않는다) 주소가 저장되어

있으신가 봐요

그럼요 lsquo또 전화하셨군요 오늘은 어쩐

일로 두 마리세요rsquo 이렇게 받아요

마포 김 사장

웹진팀

마포 김 사장

웹진팀

마포 김 사장

기발한 와우북페스티벌 상품들

북스피어 출간 도서 저자 일러스트가 들어간 과자 패키지(좌)와 파본된 책을 한 장(章)씩 분권 해서

500원에 파는 상품(우)

2015 와우북페스티벌 르 지라시 특별판

8

7인 7色 분투기

20150921 월요일 d-25

교육발표회 TF팀 발족 시작이 좋다

9월 21일 월요일 401호에서 교육발표회 태스크포스(task

force)팀(이하 TF팀)의 첫 번째 회의를 시작했다 반 친구들의 투표로

얼떨결에 TF팀의 일원이 되어서 처음에는 부담감을 느꼈지만

한편으론 우리의 성과를 발표하는 자리를 직접 꾸려간다는 것이

기대되었다 첫 만남에는 마케터반 디자인반 사람들과 얼굴을

익히고 가벼운 농담과 함께 분위기를 즐겼다 아직은 어떻게 계획을

짜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지만 그만큼 긴장감을 갖고 열띤 토론을

했다

먼저 공간 구성을 토의했는데 각 반에 할당된 공간은 각 반에

일임하기로 했다 지하 1층은 편집자반과 마케터반이 사용하고

지하 로비부터 계단 외벽은 디자인반의 작품을 전시한다 1층에는

안내소를 설치하고 안내팀을 배치할 것이다 마케터반은 면접실로

사용할 예정이고 디자인반은 전시실로 편집자반은 대기실로

사용할 것이다

두 번째로 홍보에 관해 토의했는데 편집자반의 김종민을

팀장으로 하는 별도의 홍보팀을 꾸렸다 홍보 문구는 10월 2일까지

취합하기로 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포스터를 제작하면 된다 홍보

영상이나 카드 팸플릿을 만들기로 한 안건도 추후 논의하기로 했다

아이디어들이 모아져 하나의 그림이 완성되어가는 듯 했다 점차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던 틀이 잡히면서 그 공간을 하나씩 채워가는

우리를 보고 스스로 대견스러웠다 아직도 걱정되는 일들이 많지만

지금과 같은 패기와 열정으로 준비한다면 잘 마무리 해낼 수 있다고

믿는다 시작이 좋다

편집자반 11기 남민희

20150925 금요일 D-21

두 마리 토끼 잡기 교육발표회 자료집 만들기

9월 초 디자인반에서 세 명의 팀원으로 교육발표회 자료집

담당 팀이 꾸려졌다 교육발표회 자료집은 6개월 동안의 교육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책자로 편집자반 마케터반

학우들의 자기소개서와 디자인반 학우들의 작품이 실린다 디자인

반은 판면을 디자인하고 원고를 받아 책으로 묶는 작업을 맡았다

가장 먼저 수행한 일은 편집자반과 마케터반 학우들의 글이 담길

텍스트 위주의 판면을 잡는 일이었다 40명 이상 인원의 글이 실리는

만큼 반복적으로 보기에 부담이 없어야 하고 변화를 주어 지루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편집자반과 마케터반의 페이지를

마무리한 뒤에는 디자인반의 포트폴리오 작업으로 이어졌다

디자인반의 판면에서 중요한 것은 각자의 성향을 잘 담을 수 있도록

전집 위주 본문 위주 단행본 위주의 세 가지 사항에 따라 판면을

잡는 일이었다 이러한 큰 산을 넘고 나니 정해진 양식에 맞춰

축사와 연혁 교육과정 소개 페이지를 완성하고 각 반을 상징하는

색을 살린 간결한 표지를 만드는 것은 무리 없이 진행되었다

자료집 팀원들은 자신의 포트폴리오와 병행해야 하는 압박감과

6개월간 우리의 행로를 담아내는 작업인 만큼 실수가 없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으나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계획을

꼼꼼하게 세워 차근차근 진행해 나갔다 또한 다른 학우들이 시간

약속을 잘 지켜주었기 때문에 촉박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차질 없이

마무리할 수 있었다 자료집을 만든다는 것은 디자인반으로서는

작업을 정리함과 동시에 모든 학우들이 자신의 학교생활을 마무리

짓는 일로 소중한 경험이었다

디자인반 11기 홍기화

20151001 목 요일d-15

걱정도 병인 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오늘은 발표회 편집자반 공간을 꾸밀 물품을 사러 가는 날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추석 연휴를 보내서 그런지 등교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할 일은 산더미인데 그저 막막하기만 했다 그래도

오전부터 교육발표회 준비 팀장인 종민이가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것 같아 다행이다 종민이가 좀 힘들어 보이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난 그저 시키는 대로 따라가고 옆에서 도와주면 될 것 같다 뭐가

됐든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는 언제나 어렵고 외롭다

각 조의 콘셉트가 정해지고 필요한 물품의 목록이 정리됐다 10만

원 정도만 지원해준다고 한 것 같은데 다들 뭐가 이리 살 게 많은지

사무국에서 다 사줄지 모르겠다 (우리 조도 살 게 꽤 많은 것

날보러와

디자

인 사

공예

교육발표회 준비취재

9

같았는데hellip) 한 시간 동안 호미화방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필요한

물품을 샀다 그런 와중에 혹시 빼먹은 건 없는지 예산이 부족하진

않을지 걱정이 들었다

교육 과정 내내 걱정하고 고민하고 불안해한 것 같다 마음 편하게

생각하라는 말을 친구들에게 줄곧 들은 것 같은데 할 수 없다 내가

원체 이렇게 생겨 먹은 걸 이제 발표회까지 남은 시간은 정확히

보름 우리가 보낸 6개월을 4시간 동안 보여주는 행사다 이 행사가

전부는 아니지만 그래도 24명 모두에게 아니 11기 출판학교 교육생

모두에게 주어진 마지막 과제다 lsquo혼자 하는 것도 아닌데 걱정만

하지 말고 차근차근 준비하면 되겠지rsquo 하면서도 걱정이 앞선다 진짜

이것도 병이다

편집자반 11기 권오권

20151008 목요일 D-8

가을 나들이 같은 인터뷰

내가 인터뷰 팀이라니 게다가 팀장이라니 누구 마음대로 이건

음모라고 구시렁대며 일정을 짠다 수료 때까지 감투 안 쓰는 게

목표였는데 망했다고 말하며 멘트를 고민한다 그래 사실은 즐겼다

어차피 할 일 없으니 잡배마냥 학우들에게 치근대며 시간 보냈을

터였다 그럴 바에야 나들이 간다 치고 즐기는 편이 나았다 날씨는

또 얼마나 좋은가 투덜댔지만 가벼운 걸음이었다

지금까지 교육 과정 내에서 강의 또는 특강으로 만났던 많은 분들을

카메라로 담았다 대부분 직접 회사로 방문했기 때문에 다양한

사무실을 보는 것도 재미였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강의 때보다 더

진하고 선명하게 한분 한분을 볼 수 있었다 그들도 마찬가지였을까

본인에게는 일상인 세계를 동경한다면서 비집고 들어오려는 우리를

보는 우려와 격려 섞인 눈빛에서 ldquo너희도 이거 하려고 아이고 힘들

텐데 부디 잘 해나갔으면 좋겠네rdquo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아름답다

감사하다

시시덕거리며 돌아오는 길에 생각한다 앞으로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이 가을 이 마음의 우리가 그리울 건 알겠다 벌써부터

아릿하다 역시 인터뷰 괜히 했다 귀찮아 죽겠다 진짜

편집자반 11기 김상흔

20151009 금요일 D-7

교육발표회를 홍보하라 티저 포스터 만들기

드디어 6개월의 과정이 끝나가고 있었다 우리를 보여 줄 마지막

기회인 교육발표회를 앞두고 TF팀은 lsquo홍보rsquo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꼭 보러 와달라는 메시지를 어떻게 하면 잘 전달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 끝에 lsquo티저 광고rsquo를 제작하기로 결정했다 CF나 기타 광고에서

활발하게 활용되는 서서히 베일을 벗어가며 호기심을 자극하는

광고 기법 말이다 우리의 타깃은 대중이 아닌 출판계라 처음엔

lsquo이런 홍보를 과연 좋아하실까rsquo 하는 의구심이 앞섰다 하지만

회의를 거듭하며 아이디어를 잘 뽑아내고 두 반이 협력한다면

효과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케터반 편집자반 학생들의 문구들을 취합해 투표로 가장

적합한 것을 뽑았다 1등은 정혜림 학우의 lsquo북쪽으로 가라 귀인을

만난다 BOOK쪽으로 오라 귀인을 얻는다rsquo가 차지했다 lsquo북쪽rsquo이라는

방향표현을 lsquoBOOKrsquo으로 바꾼 게 참신하고 재밌어 모두의 공감을

얻었다 2등은 김수경 학우의 lsquo내가 동네북이니 응 SBI 동네북

페스티벌rsquo이 뽑혔다 평소에도 재미있는 말투로 늘 주변을 웃게

만드는데 그 재기발랄함이 묻어나는 문구였다 3등으로 뽑힌

유보미 학우의 lsquo날 떠난 후 너는 행복하니 내 인생 책임져 책책책

책임져rsquo는 아쉽게 광고에는 쓰이지 않았지만 시선을 끄는 기발한

문구였다 이 외에도 lsquo책 잡힐 일 하지마라 책 잡을 일 해라rsquo lsquo갈피를

못 잡을 땐 책갈피rsquo 등 재밌는 문구들이 많았다

전부 광고에 쓰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라 12등 문구를

멋지게 디자인하기로 했다 디자인에 대한 의견을 반 친구들과

나누며 포스터들을 직접 디자인했다 서로 의견이 맞지 않기도 하는

등 고단할 때도 있었지만 많은 분들이 우리를 보러 와주신다면 모든

고생이 잊힐 것이다 제발 그랬으면 한다

편집자반 11기 박혜원

10

20151012 월요일 D-4

수많은 이름들을 위하여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난리다 난리 우리 반이 이렇게 시끄럽고

활기찬 적이 있었던가 자타공인 조용하다던 편집자반 학우들은

어디로 가고 요 며칠 온통 돌아다니거나 무언가를 만드느라

고군분투하는 풍경들과 마주하고 있다 나쁘지 않은 아침이다

그 동안 우리는 직책의 기근()에 익숙해져 있었다 반장 부반장

조장의 휘하에서 맡은 바를 다하며 펠로우십을 뽐내고 있던

우리에게 갑자기 수많은 이름들이 떠맡겨졌다 누군가는 TF팀이

되고 누군가는 홍보 팀장이 되었으며 누군가는 인터뷰 팀장이라는

직책을 맡았다 그런가 하면 건축학을 전공한 학우는 공간 배치를

구상하는 역할을 맡고 누군가는 가을 단풍을 모티프로 해서

편집자반 전체의 부스를 꾸미고 있다 그뿐이랴 각 동아리의

장(長)들은 동아리 부스를 만들랴 그 동안의 활동을 책으로 만들기

위해 인디자인 작업에 몰두하랴 정신이 없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웅장하게 꾸며질 조별 부스를 살펴보면 아마도 입이

떡 벌어질 것이다 각 조는 워크숍으로 만든 자신들의 책에 맞춰

콘셉트를 잡았다

편집자반 lsquo윌비rsquo 조는 『창업 자금 날려먹지 않는 법』에 맞게

카페처럼 부스를 꾸미기로 했다 거대한 간판도 이미 완성되었고

맛있는 커피도 만든다고 하니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lsquo길목rsquo 조는 『서태후 비사』의 내용에 따라 서태후가 좋아했던

벚꽃으로 부스를 장식한다 게다가 한 켠에는 『서태후

비사』전자책과 예쁜 책갈피까지 마련되어 있을 것이다

lsquo달로rsquo 조는 『사이의 거리』의 표지에도 실 그림이 들어간 것에 맞춰

실을 이용하고 있다 특히 실로 lsquo사이의 거리rsquo 글자를 만들었을

때에는 학우들 모두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어떻게 실로 글자를

만들 수 있었는지 많은 분들이 와서 봐주시면 좋겠다

lsquo세모북스rsquo 조는 강명관 잡문집인 『허울 좋은 나라』를 만들었다

시대상과 일상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lsquo사진rsquo에 착안해 옛날

사진관처럼 부스를 꾸미고 있다 흑백 사진과 손글씨가 고즈넉한

멋을 더할 것이다 돌림판 이벤트도 있을 예정이다

편집자반 11기 이상화

2015101 목요일 D- 15

lsquo정rsquo이 있어 lsquo반rsquo을 찾아 lsquo합rsquo을 보니 마케터더라

lsquo차별성이 있어야 한다rsquo

책의 차별성을 찾았던 6개월 그리고 6개월 간의 경험을 토대로

lsquo차별성이 있는 마케터반의 발표회rsquo를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각

조의 조장들과 발표회 테스크포스 팀원이 머리를 맞댔다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lsquo책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그렇다고 너무 책에

집중하지 말자rsquo였다 마치 lsquo정rsquo과 lsquo반rsquo을 통해 lsquo합rsquo을 만들어내는

과정이었다 세상에 이마저 변증법적 접근이라니 그러나 우리가

누구인가 책이라는 물성에 가치의 효용을 불어넣는 우리가

아니던가 분명 발표회에도 그와 비등한 가치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전체 콘셉트은 lsquo북북 쓰는 마케팅rsquo으로 각 조를 하나의 챕터로

삼았다 즉 개성이 뚜렷한 5개의 챕터로 이루어진 lsquo마케팅 북rsquo인

것이다 그리고 각 챕터는 lsquo마케팅이란rsquo이라는 소주제를 부여하여

각 조의 교육과정과 보여주고 싶은 것들을 자유롭게 보여주기로

했다

이제 정이 끝났으니 반을 제시할 차례 lsquo반rsquo으로 lsquo소책자rsquo와 lsquo상품rsquo를

선택했다 소책자는 그저 소개하는 글만을 넣지 않고 lsquo스탬프

여행rsquo의 컨셉을 빌려 꾸미기로 했다 각 조의 부스를 돌아볼 수 있는

장치로 충분한 역할을 할 것이다 상품은 lsquo책rsquo에 대한 행운을 줄 수

있는 lsquo무언가rsquo를 준비하기로 했는데 지금 당장 밝히기는 쉽지 않은

lsquo무언가rsquo를 준비할 것이다 (기대되시지요)

이제 합이다 합은 발표회 당일 분명 lsquo정rsquo과 lsquo반rsquo의 효과가 나타날

것이며 어느 때의 발표회보다 멋질 것이다 (라고 근자감을

부려본다) 곧 시작될 발표회 기대하시라

마케터반 11기 이장열

11

1212

설왕설래

『호밀밭의 파수꾼』의 결말이

궁금해서 견딜 수 없다면

세 반 학우들의 상상력을 동원한 우리들의 릴레이 세

나에 대해 듣고 싶다면 내가 어디서 태어났는지 어린

시절이 얼마나 형편없었는지 내 부모님이 무슨 직업을

가지고 있는지 내가 태어나기 전에 무슨 일들이 있었는

지 같은 데이비드 코퍼필드 식의 헛소리가 듣고 싶겠지

하지만 난 그딴 이야기 하고 싶지 않아 (JD 샐린저 『호

밀밭의 파수꾼』

내 속으로 지나가지만 어쨌든 내 것이 아닌 섬광을 내

가 앉았던 내가 읽었던 생을 한순간에 으스러뜨리는

섬광을 이야기하고 싶어 이창환

아니 잠깐 내가 뭔 병신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

지 내일 서울출판예비학교 면접 있어서 빨리 자야 하

는데hellip 공태준

어서 잠에 들어야 한다는 조급함이 커질수록 허기 또

한 함께 치밀어 올랐다 결국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파

스타 면을 삶는 시간 8분 (그 동안엔 냉장고의 한 쪽

에 남아있던 산토리 한 캔을 단숨에 들이켜야 했다)

음악은 야나체크의 산포니에타 김사룡

맥주 한 캔으로 살짝 취기가 돌자 술이 더 마시고 싶었

다 결국 소주 한 병을 꺼내어 마시며 적당히 삶아진 파

스타 면을 올리브유에 볶았다 내일 입을 정장치마가

끼지 않을까 걱정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엎질러진 물

인걸 최다은

침대에 누워 억지로 잠을 청해본다 잡념이 사라지지

않는다 고민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된다 젠장 벌

써 새벽 3시 자긴 글렀네hellip 그렇게 뒤척이다 날은 밝았

다 이다혜

밝아진 창밖을 보며 어젯밤 나를 뒤척이게 한 면접을

떠올렸다 어제만 해도 중요한 일이라 생각했는데 날

이 밝으니 이미 그 중요성은 나와 멀어진 느낌이다 의

무감에 옷을 챙겨입고 집을 나섰다 양화대교를 건너는

버스 안 새로운 계획이 떠올랐다 황하정

새로운 계획으로 들뜬 나에게 창밖의 풍경이 눈에 들어

온다 수많은 사람과 차량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

어진다 다른 듯 보이지만 얼굴을 장식한 특유의 무표

정함과 발등에 불이 떨어진 듯 바삐 움직이는 모습 속

에 내가 겹쳐 보인다 그래 이번 계획은 나에게 얼마

동안의 기대감을 선사해 줄 수 있을까 뭐 어때 잠깐

이라도 좋다 쓸데없는 잡념보다는 시한부 희망이 차라

리 낫다며 애써 위로한다 유수지

순간 어렴풋한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니 내 또

래의 남자가 거북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김단희

그의 혐오에 가까운 시선과 마주쳤을 때 나는 순간 얼

어버렸다 면접 장소에 가기 위해선 이번 정류장에서 내

렸어야만 했다 그러나 나에게 다가오는 그 남자 때문

에 그러지 못했다 남자가 말했다 김선아

ldquo너였구나 그래 너였어 3년 전 3만원을 빌리고 도망

간 김말숙이 그래 너야rdquo

그 남자는 미친 게 분명했다 lsquo잠깐 이 관능적인 머스

크 향은 뭐지rsquo 순간 뇌리를 스치는 불가리 향수는

그 남자를 떠올리게 했다 지독하게 얼굴을 기억하지

못했던 그 남자를 말이다 이장열

대학교 1학년 설레는 마음으로 나간 첫 번째 미팅을

내 인생 최악의 시간으로 만들었던 lsquo불가리 그놈rsquo이었

lsquo젠장 이 안면 인식 장애놈이 내 얼굴을 어떻게 기억하

는 거지rsquo 내 이름이 김말숙이든 아니든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내 얼굴을 기억한다는 것이 의아할 뿐

양화대교 위에서 떠오른 새로운 계획 그래 지금부터

시작이다 오늘 하루는 lsquo나rsquo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 살

아보는 거야

난 매섭게 치뜬 눈으로 나를 응시하는 그를 뒤로하고

소설의 첫 문장으로 시작하는 릴레이 소설

13

무심히 다음 역에서 내렸다 아무런 동요 없이 발걸음

을 옮기는 나를 보고는 그도 무안한지 이내 제자리로

돌아가는 듯했다 이상한 사람 나는 계속해 나의 목적

지를 향해 걸어갔다

결국 지각했다 면접은 진행 중이었다 이게 다 불가리

때문이다 불가리 냄새가 몸에 밴 것 같다 아니 불가

리 냄새는 내 옆에서 나고 있었다 내 옆에는 불가리가

앉아 있었다 부처님의 손가락을 본 손오공의 심정이

이러했을까 강귀욱

끔찍했다 냄새도 면접도

lsquo젠장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야rsquo

담배에 불을 붙여 한 모금 깊게 빤다 lsquo후-rsquo 치미는 화

도 잡념도 불안도 이 연기처럼 쉬이 사라져버리면 좋

으련만 무의미한 푸념만이 입 안에 맴돈다

ldquo김말숙~ 여기 있었냐rdquo 그 말에 얼마나 놀랐냐면 떨

어진 담뱃불이 내 정장치마를 태우고 있는 줄도 몰랐을

정도였다 lsquo불가리 그놈을 피해 골목까지 들어왔는데

여긴 어떻게 찾은거야rsquo

ldquo밥 먹을래rdquo lsquo꺼져 꺼져 제발 꺼져helliprsquo 못 들은 척 고

개를 돌렸다

ldquo소달구지라고 괜찮은 식당 있는데 같이 가면 그 3만

원 없던 걸로 해줄게rdquo

우리는 눈이 마주쳤다 김영준

해질 무렵 서서히 불이 들어오는 보고 있어도 언제 밝

아졌는지 알 수 없는 양화대교 위 가로등처럼 우리는

천천히 그러나 깊게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새카

만 흑암의 공간 무저갱 같이 깊고 검은 눈동자 속에

숨겨 놓은 비밀을 알아내기라도 하려는 듯 그렇게 서

로의 눈을 망막 너머의 시신경을 시신경을 타고 올라

가 전두엽 어딘가에서 터지고 있을 스파크를 계속 들여

다보았다 이윽고 두 남녀의 입이 열렸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낮은 목소리가 화음을 내며 울려 퍼

졌다 ldquo몽마르뜨가 좋겠어rdquo 권오권

끔찍했던 면접과 기분 나쁜 불가리놈의 얼굴이 잊힐 정

도로 음식의 맛은 정말 좋았다 고작 음식 때문에 기분

이 나아지는 내 자신에게 정말 어이가 없었지만 어쨌

든 맛은 좋았다 된장국으로 숟가락을 옮기며 슬쩍 앞

의 녀석 얼굴을 쳐다보았을 때 그 녀석도 나를 쳐다보

고 있었다 김희연

3년 전의 얼굴과 꽤 변해있었다 그 당시 철없는 어린

애 같은 얼굴이었는데 지금은 사회인이 되려고 꾸며댄

듯한 모습 물론 3년 전보다 더 나아졌다거나 잘생겨진

것은 아니다 전보다 훨씬 평범한 얼굴이다 ()

그런 그는 어째서 날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어째서 날

기억하고 다가와서 말을 걸고 함께 식사까지 하려 하

는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이 텅 빈 머릿속을 메

운다 엄청나게 망쳐 버린 하루지만 이상하리만큼 멀

쩡한 내가 낯설다 김하얀

그러다 내가 집에 돌아가는 길 문득 미니스톱에 담배

를 사러 들렀다가 ldquo여기 국산담배밖에 없는helliprdquo 음hellip

없단다 가뜩이나 기분도 꿀꿀한데 없다니 빵만 사서

나왔다

빵을 사서 가는 길에 낯익은 얼굴에 걸음을 멈추었다

ldquo너 혼자 빵 먹냐 나도 같이 먹자rdquo 불가리 그놈이었

다 ldquo혹시 너 나 따라온 거야rdquo 기가 막혔다 백가은

어쩐지 불가리 향수 냄새가 난다 했다 ldquo왜 따라왔어rdquo

그랬더니 불가리 그놈이 하는 말

ldquo난 내 집 가는 건데rdquo 믿을 수 없다 수상쩍다 그놈은

나를 앞질러 가더니 우리 집 주인 아줌마네 집으로 들

어가 버렸다 아 저 놈이 집주인 아줌마 아들놈인가

월세 밀렸는데 망할

망할 이상한 하루였다 잊자 오늘 일은 전부 다 잊어

버려야지 방으로 들어오기 직전에 산 맥주 한 캔의 뚜

껑을 따고 들이킨다 캬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가는 듯

시원하다 씻고 자리에 눕는 순간 면접 결과가 나올 때

까지 무엇을 하고 있어야 할지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TO BE CONTINUEDhellip

은 익명 표시입니다

13

무심히 다음 역에서 내렸다 아무런 동요 없이 발걸음

을 옮기는 나를 보고는 그도 무안한지 이내 제자리로

돌아가는 듯했다 이상한 사람 나는 계속해 나의 목적

지를 향해 걸어갔다

결국 지각했다 면접은 진행 중이었다 이게 다 불가리

때문이다 불가리 냄새가 몸에 밴 것 같다 아니 불가

리 냄새는 내 옆에서 나고 있었다 내 옆에는 불가리가

앉아 있었다 부처님의 손가락을 본 손오공의 심정이

이러했을까 강귀욱

끔찍했다 냄새도 면접도

lsquo젠장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야rsquo

담배에 불을 붙여 한 모금 깊게 빤다 lsquo후-rsquo 치미는 화

도 잡념도 불안도 이 연기처럼 쉬이 사라져버리면 좋

으련만 무의미한 푸념만이 입 안에 맴돈다

ldquo김말숙~ 여기 있었냐rdquo 그 말에 얼마나 놀랐냐면 떨

어진 담뱃불이 내 정장치마를 태우고 있는 줄도 몰랐을

정도였다 lsquo불가리 그놈을 피해 골목까지 들어왔는데

여긴 어떻게 찾은거야rsquo

ldquo밥 먹을래rdquo lsquo꺼져 꺼져 제발 꺼져helliprsquo 못 들은 척 고

개를 돌렸다

ldquo소달구지라고 괜찮은 식당 있는데 같이 가면 그 3만

원 없던 걸로 해줄게rdquo

우리는 눈이 마주쳤다 김영준

해질 무렵 서서히 불이 들어오는 보고 있어도 언제 밝

아졌는지 알 수 없는 양화대교 위 가로등처럼 우리는

천천히 그러나 깊게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새카

만 흑암의 공간 무저갱 같이 깊고 검은 눈동자 속에

숨겨 놓은 비밀을 알아내기라도 하려는 듯 그렇게 서

로의 눈을 망막 너머의 시신경을 시신경을 타고 올라

가 전두엽 어딘가에서 터지고 있을 스파크를 계속 들여

다보았다 이윽고 두 남녀의 입이 열렸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낮은 목소리가 화음을 내며 울려 퍼

졌다 ldquo몽마르뜨가 좋겠어rdquo 권오권

끔찍했던 면접과 기분 나쁜 불가리놈의 얼굴이 잊힐 정

도로 음식의 맛은 정말 좋았다 고작 음식 때문에 기분

이 나아지는 내 자신에게 정말 어이가 없었지만 어쨌

든 맛은 좋았다 된장국으로 숟가락을 옮기며 슬쩍 앞

의 녀석 얼굴을 쳐다보았을 때 그 녀석도 나를 쳐다보

고 있었다 김희연

3년 전의 얼굴과 꽤 변해있었다 그 당시 철없는 어린

애 같은 얼굴이었는데 지금은 사회인이 되려고 꾸며댄

듯한 모습 물론 3년 전보다 더 나아졌다거나 잘생겨진

것은 아니다 전보다 훨씬 평범한 얼굴이다 ()

그런 그는 어째서 날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어째서 날

기억하고 다가와서 말을 걸고 함께 식사까지 하려 하

는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이 텅 빈 머릿속을 메

운다 엄청나게 망쳐 버린 하루지만 이상하리만큼 멀

쩡한 내가 낯설다 김하얀

그러다 내가 집에 돌아가는 길 문득 미니스톱에 담배

를 사러 들렀다가 ldquo여기 국산담배밖에 없는helliprdquo 음hellip

없단다 가뜩이나 기분도 꿀꿀한데 없다니 빵만 사서

나왔다

빵을 사서 가는 길에 낯익은 얼굴에 걸음을 멈추었다

ldquo너 혼자 빵 먹냐 나도 같이 먹자rdquo 불가리 그놈이었

다 ldquo혹시 너 나 따라온 거야rdquo 기가 막혔다 백가은

어쩐지 불가리 향수 냄새가 난다 했다 ldquo왜 따라왔어rdquo

그랬더니 불가리 그놈이 하는 말

ldquo난 내 집 가는 건데rdquo 믿을 수 없다 수상쩍다 그놈은

나를 앞질러 가더니 우리 집 주인 아줌마네 집으로 들

어가 버렸다 아 저 놈이 집주인 아줌마 아들놈인가

월세 밀렸는데 망할

망할 이상한 하루였다 잊자 오늘 일은 전부 다 잊어

버려야지 방으로 들어오기 직전에 산 맥주 한 캔의 뚜

껑을 따고 들이킨다 캬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가는 듯

시원하다 씻고 자리에 눕는 순간 면접 결과가 나올 때

까지 무엇을 하고 있어야 할지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TO BE CONTINUEDhellip

은 익명 표시입니다

14

이옥란 선생님

캡틴 오 마이 캡틴(captain oh my captain)선생님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

편집자반 학우들은 늘 이분의 얼굴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며

끝마친다 몇 번의 마주침은 덤이다 그분은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도 가깝지만은 않았던 편집자반의 담임 교수

이옥란 선생님 자신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우리를 위한

이야기를 풀어놓으시느라 매일 종례시간이 부족하신 이옥란

선생님께 이번엔 우리가 물었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 일상을 어떻게 보내고 계신가요 선생님의

주말이 취향이 추억이 삶이 궁금하다 편집자반 학생들에게

직접 받은 질문들로 lsquo한 사람rsquo에게 궁금한 것들을 물었다

이 인터뷰를 읽은 뒤 그녀를 한층 좋아하게 되리라고

확신한다

왜 디토 커피에 자주 가시나요

커피가 제일 맛있고 값이 싸고

넓은 창으로 햇빛이 많이 들어와

그리고 주인장들이 공간은 물론이고

손님들과도 잘 어우러지는 것 같아

옥란 선생님께 스카프란

어느 날 발견한 패션 아이템 몇 년 전인가

홍대 앞 가판대에서 우연히 마 레이온 합성의

보라색 스카프를 발견한 이후인 것 같아

왜 고양이를 좋아하시나요 고양이를 키우시나요

고양이가 나를 키웠다고 할 수 있지 시골집 막내였는데

고양이가 친구가 되어주었어 (선생님이 고양이를 닮아

가시는 것 같아요 혹시 키우세요) 둘 있는데 13년쯤 되었나

최근에 읽었거나 읽고 계신 책은

이익섭 저의 『국어학개설』 『말과 사물』 『좌파는

어디에 있었는가』 『논어』 『번역어의 성립』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등 여러 권 들고 다니면서 돌려본다

(국어학개설은 읽는다기보다 공부 아닐까요) 아니야

재미있어

인생의 책을 꼽자면

김훈의 『남한산성』 표지가 핫핑크 색이야 건조하고 힘

있는 남성적인 문체의 마초라고 불리기까지 하는 작가의

책이 핑크색이라니 크기도 아마 46판에 더스트 커버(dust

cover)는 질긴 천의 느낌이고 본문은 재생지인지 무겁지

않고 두께도 딱 손에 잡히는 정도 감각까지 장악한 책이야

몇 권 사서 주변 사람들에게 돌렸어

선생님의 멘토는

이런 질문에 답하게 될 줄은 몰랐네 글쎄 그러고 보면

존경스러운 사람은 있었지 대학 때 문학 동아리 선배였어

양상현 형 (어떤 점이 제일 존경스러우셨어요) 자유롭게

사는 사람이었던 것 얼마 전에 돌아가셨어 이제 조금

실감이 나네 그분은 건축 전공에 시를 쓰고 음악을

즐기고 노는 문화를 나누고hellip 어떤 사태도 회피하지 않고

자유로웠던 사람이었지 앞으로 할 일이 더 많았을 터인데

양상현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졸업 동대학원

박사학위 2002년 대한민국건축대전

초대작가 선정 순천향대 건축학과

교수 재직 민족건축인협의회

의장 설계 작품으로는 lsquo장암리

주택rsquo lsquo녹촌리 조각가의 집rsquo 등

대표 저서『거꾸로 읽는 도시

뒤집어 보는 건축』 2015년

8월 14일 별세

졸업 후 편집자로 일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우리 때는 노동운동이나 농민운동을

했던 대학생이 사회과학 출판사로

진출하는 경우가 많았고 내 친구도 졸업을 해서

출판사에 있었어 그 녀석이 나를 사무실로

초대했는데 반지하도 아니고 그냥 지하였던 것

같아 ldquo옥란이 이리와 봐 이게 뭔지 아니 바로

매킨토시라는 거야 이게 얼마짜린지 아니rdquo

매킨토시 컬러 클래식(Macintosh Color Classic)

웬만한 공책보다 좀 클까 본체가 화면에 같이

붙어 있는 하드웨어를 가진 컴퓨터였지 친구 말로는

300~400만 원 한다고 했어 20년 전이니 당시로는

큰돈이지 교정지를 보여주더니 마치 lsquo음 너는 아직 이런 거

모르지rsquo라고 하는 듯이 ldquo잠깐만 언니가 뭐 좀 할 테니까

잠깐 기다려봐 하hellip 이거 띄어쓰기 어떻게 해야 하려나 이게

전문용어라 통일을 해줘야 하는데helliprdquo 하던 잘난 척이 기억이

나네 그렇게 출판사를 접했지 문학 동아리를 하느라 알게

된 선생님들 선배님들도 여럿 출판사에들 계셨어

편집자로 일하셨을 때 어떤 분야를

편집하셨나요

하다 보니 주로 예술 서양 미술 분야였고

출판사는 학고재 예경 마로니에북스까지

그런 기회가 나한테 왔고 재미있었어

전공이 그쪽이 아니었기 때문에 공부를

해야 했지

지난 서울출판예비학교생활 중 특별히

기억나는 사람이나 사건이 있다면

8기 졸업식 날 남학생 셋이 ldquo저는 출판학교에

와서 모든 것을 얻었습니다rdquo 그러면서 흑흑 우는 거야

누군지 얘기하면 창피하겠지 남학생들이 울어서 애들이

알고싶어 편집자반

15

완전 눈물 바다였잖아 (우리 반 오빠들이 운다는 건 상상할

수 없네요) 다음 해에는 애들이 완전 유머 코드여서 웃다

끝났지

출판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된 계기나 동기는

무엇인가요

나는 8기부터 시작했는데 7기 담임이던 김장환 씨가 나를

불렀어 공동 담임을 해달라고 lsquo그러지 뭐rsquo 이렇게 시작했지

직장은 2008년도까지 다녔고 프리랜서로 활동하면서

여기저기서 강의를 하고 있었어 한겨레 문화센터에도

23년쯤 있었지 (편집자보다 이렇게 선생님으로 있는 게 더

즐거우세요) 지금은 진짜 만들고 싶은 책 함께 작업해보고

싶은 저자 그런 게 아닌 한 직업으로 신간을 꾸준히 내는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당신들은 눈이 반짝반짝해서 업계에 들어와야겠다고

준비해서 오잖아 그 친구들이 1년차 3년차 되는 것을

지켜보고 있으려니까 내가 그 나이쯤 사회생활을

시작해 고민했던 지점이 보이는 거지 그 때

이걸 알았더라면 하는 안타까움이 있어서

여러분들이 애틋해지지

요즘 최대의 관심사는 무엇인가요

저녁에 후배들에게 가르칠 강의를 하다

보니 국어 공부의 필요성을 여실히 느끼고

있어 출판 동네에서 20년 넘게 일한 사람이

공부해온 것을 한 번 정리해서 후배들한테 줄 필요도

있겠구나 싶고 (뭔가 일 얘기가 아닐 줄 알았는데요

하하)

은퇴 후에 무엇을 하고 싶으신가요

오늘은 말이 절로 나오는 걸 하하 마당 있는 시골집 텃밭을

일구며 역사에 길이 남을 인간과 세상을 통찰하는 대작

소설을 발표하겠다 (와)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이 되고 싶으신가요

다시 태어나고 싶지가 않아hellip(웃음) 지구에서는 내

대에서 멸종하기로 했다

저희들에게 속 시원하게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자신 있게 해라

생각해보면 다들 자기가 못났어 키도 좀 더 컸으면

좋겠고 외모도 마음에 안 들고 내가 저 때 저렇게

했으면 지금 달라졌을까 부럽기도 하고

그런데 사실 부질없는 거거든 세상 사는

힘이 실력에만 있는 게 아니고 태도의 문제가 더

클 때가 많아 내 것이 아닌 것에 목매고 있을

필요가 없어 신입사원으로 전혀 모르는 곳에

뚝 떨어졌을 때 저들의 세계 속에 혼자 쏙

들어간 기분이니까 일단은 주눅이 들지

하지만 거기서 살아가야 하지 않겠어

둘러보면서 아 저기가 화장실이구나 사람들은

이런 걸 이렇게 하는구나 파악하고 나면 좀

수월해지잖아

마지막으로 대망의 이상형 월드컵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정우 주원 김수현 유아인 이렇게

4강전으로 시작하겠습니다

(하정우와 주원 중에서는 누가 더 좋으세요) 하정우지

주원이 최근에 좋아지긴 했는데 아직도 하정우를 따라올 수

없어

(그럼 김수현유아인 중에서는요) 유아인이지

(너무 확고하셔요 드라마 lt밀회gt 보셨나요) 집에선 케이블

방송도 안 나오고 관심 갖게 되었을 땐 너무 유행이라

안보고 말았지 대신 영화 lt완득이gt는 봤다

(이제 결승인데요 마지막으로 하정우와 유아인은요)

아인이는hellip 나한테 좀 과분한 것 같아(웃음) 하정우가 삐질

것 같은데 그래서 둘 다 잃는 거야hellip

편집자반 11기 김수진 이상화

lt베테랑gt의 악랄한 재벌 2세유아인

lt프로듀사gt의 어리버리 신입PD

김수현

lt용팔이gt의 천재 외과의사

주원

lt 암 살 gt 의 순 정 마초

하와이 피스톨하정우

하정우

16

한대웅 선생님

『동백꽃』의 주인공 같은 그 남자착하디착한 순하디순한 한대웅 선생님의 속마음

좀처럼 화내시는 일도 없고 허허 웃기만 하시고hellip 하지 못한

말들을 땀으로 발산하듯 여름이면 온몸이 열정으로 흠뻑

젖으시는 분 세상 어디에도 없을 착한 남자 마케터반의

한대웅 선생님이다 그에게 던진 몇 가지 질문에 돌아온 것은

가장으로서의 고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 아직도 앳된

소년 같은 순수함이 묻어나는 답변들이었다 이제 그를 좀 더

깊게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평소에 칼라(collar) 티셔츠를 즐겨 입으시던데

좋아하시는 옷인가요

좋아한다기보다는 제 딴에는 편하게 입을 수 있는 듯해서

즐겨 입고 있습니다 또 아내가 이런 종류의 옷을 많이

사주기도 하고요

선생님께 lsquo출판rsquo이란 무엇인가요

출판은 lsquo꿈을 이루는 판도라의 상자rsquo lsquo내가 가진 능력에 가장

맞는 일rsquo입니다

출판을 업으로 삼지

않으셨다면 어떤 일을

선택하셨을까요

모르겠네요 아마도 운명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요 다만 다음과

같은 3가지 생각은 해보았습니다

첫째 고등학교 시절 성적이 조금

더 좋았다면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해서

지금쯤이면 텔레비전이나 영화에 나오는 큰 전투함의

함장이 되지 않았을까요

둘째 대학교에 입학하지 못했다면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로 이민을 가서 장사를 하거나 농부로 농장을

운영하면서 그곳 사람으로 국적을 바꾸고 살고 있지

않을까요 고등학교 3학년 때 대학교 입학 시험에

떨어지면 다른 나라로 가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다는

마음의 준비를 했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 모 일간지에 실린

해외에서 성공적인 삶을 사는 한국 사람들에 관한 기사를

꼼꼼하게 읽었었거든요

셋째 대학교 3학년이나 4학년 때 신춘문예까지는 아니라도

대학교 교내 문학상 정도를 받았다면 아마도 그 결과에

탄력을 받아 시나리오 작가나 연극 연출가의 길로 가려고

하지 않았을까요

ID와 블로그에 lsquo봄rsquo이라는 단어가 들어있는데 봄을

좋아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그 ID를 만들 무렵 저의 미래는 꽤나 불확실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바꿔 말하면 어떻게

돈을 벌어야 하고 어떻게 자아 성취를

해야 하는지가 불확실하고

힘들었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lsquo봄rsquo이라는

단어를 좋아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누구나

알다시피 봄은 겨우내

얼어 있던 것들이

새롭게 싹을 틔우고

새롭게 기지개를 펴는

계절이죠 물론 봄

자체가 주는 느낌도

좋고요 그래서 lsquo봄rsquo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던 것

같습니다

블로그는 서울출판예비학교에서

일을 시작한 후 만들었습니다

블로그에 lsquo봄바람rsquo이라는 의미를 부여한

것은 ID를 만들던 때의 생각이 이어진 것이겠지요 요즘에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이 많이 사라진 것 같습니다 만약

앞으로 블로그나 ID를 만든다면 아마도 lsquo여름rsquo 혹은 lsquo풍성함rsquo

아니면 lsquo내가 원하는 세상을 상징하는 어떤 것rsquo을 이름으로

사용할 것 같습니다

편집자로 첫 시작을 하셨는데 나중에 출판 마케터로

일하게 된 동기를 알고 싶어요

시장 상황을 분석하고 이에 맞게 마케팅 계획을 세우고

사람이나 집단을 만나고 힘을 합쳐 뭔가 새로운 결과를

만들어 내는 일이 재미있었습니다

은퇴 후에 꿈꾸시는 삶이 있으신가요

아직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20대와 30대

초반에 꿈꾸던 것들을 lsquo은퇴 후에 여유가 생긴다면 이것들을

해볼까rsquo라고 간혹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현재겠죠 출판에서 뭔가를 이루려고 열심히 계획하고

실행하다 보면 은퇴 후의 삶도 더 풍요로워지지 않을까요

알고싶어 마케터반

17

일하실 때 다뤘던 책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무엇인가요

입사 초기 편집을 하거나 시장조사를 하고 제가 출간 여부에

대한 판단을 내렸던 책들이 기억납니다 『펠레』 자서전은

제가 편집자로 있을 때 출간했던 책인데 주요 일간지의

서평란 메인을 장식했던 책입니다 출간 시점을 맞추기 위해

촉박한 기간 동안 밤새가며 책을 만들었습니다 출간 시점에

대한 판단이 정확히 맞았고 그 결과 기대 이상으로 많은

서평을 받았던 책입니다

서울예비출판학교 선생님으로 오신 계기를

알고 싶어요

전에 다니던 출판사를 그만둔 후

개인적으로 뭔가를 해보려고 고민

중이었습니다 그러나 능력이

부족하다 보니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았죠 그러던 중에

출판학교에서 일해 볼 것을

제안 받았고 저도 출판학교

학생들처럼 면접을 보고 이

학교에 오게 되었습니다

일을 하게 되었을 때 매우

즐거웠습니다

다시 출판사 마케터로 돌아갈

생각이 있으신가요

아니오 이유는 2가지인데 첫째는 제 나이가

48세입니다 다른 업종도 그렇지만 출판 산업에서도

48살에 마케터로 직장인의 생활을 이어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죠 정말 현실적인 고민이죠 게다가 출판학교에서

여러분과 소통하며 제 지식을 전수하는 일이 재미있습니다

물론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언젠가 저만의 꿈을

찾아갈 수 있겠죠

평소 몇 권의 책을 읽으시나요 최근 읽은 책 중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요

예전에 많이 읽을 때는 1주일에 2권 정도 읽었습니다

황석영의 『장길산』과 홍명희의 『임꺽정』 이문열의

『삼국지』를 읽을 때 짬짬이 쉬는 시간을 비롯해 지하철에서

보내는 시간까지 거의 모든 시간을 책을 읽으며 보냈습니다

요즘에는 1달에 1~2권 정도 읽는 것 같네요 최근 읽은

책 중에 기억에 남는 책은 『내 아이와 어떻게 대화할

것인가』(율리아 기펜레이테르 저 써네스트 2006)와 『내

아이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율리아 기펜레이테르

저 써네스트 2009)입니다 제목만으로도 왜 이 책을

추천하는지 금방 눈치 챌 수 있을 것입니다 아이가 둘

있는데 첫째는 15살 딸이고 둘째는 10살 아들입니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lsquo어떻게 하면 아이와 싸우지 않고

윽박지르지 않고 아이의 자존감을 높여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성실하고 삶의 열정과 꿈이 넘쳐나는 아이로

키울까rsquo 같은 고민을 항상 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단비처럼 다가왔습니다 위의 2권의 책을 읽고 몇

가지 중요한 것들을 배웠습니다 아이와 어떻게 소통하고

어떻게 대화해야 하는지 아이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등등 이전에 『부모와 아이 사이』(하임 G 기너트

등 저 양철북 2003)를 읽고 아이를 이해하는 법에 대해

큰 인상을 받았는데 이 책도 그 연장선에서 저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아들과 딸을 좀 더 이해하게 되고 그

결과 아이들에게 화를 내거나(저도 나약한 인간인데 화가

날 때가 심심치 않게 있거든요) 아이들의 긍정적인 싹을

본의 아니게 꺾어 버리는 경우가 줄었다고 할까요 게다가

이 책은 lsquo부모와 아이 사이rsquo만이 아니라 lsquo친구와 친구 사이rsquo

lsquo회사 내부 구성원 사이rsquo에서 소통하는 데도 많은 영감을

제공합니다 출판학교 학생들과 소통할 때도 이해의 폭을

넓혀주고 긍정적인 소통을 하는 방법을 제공해 줍니다

이제 수료를 앞둔 마케터반 학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으시다면

개인별로 처한 처지와 조건에 따라 다르겠지만 다음과 같은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 연인을 사랑하듯 출판에 대해서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보세

- 이 길이 나에게 최선의 길인가 생각해 보세요

- 목표를 세우고 지금부터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한 후 그것을 어떻게 이루어 나갈 것인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보세요

저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스스로의 내면을 단단하게 할 중요한

질문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앞으로도 끊임없이

새로운 답을 찾아나갈 질문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케터반 11기 이장열 이창환

18

선생님은 주말에 뭐하세요

무조건 가족과 함께hellip

만약 편집 디자인을 안 하셨다면 무슨 일을 하고

계실까 궁금해요

어찌 됐든 개인 사업자로 살았을 듯 윗사람 비위 맞추는

것을 너무 못하므로hellip

선생님 주량이 어떻게 되세요 주사가 있으세요

몸 상태 좋고 안주 많이 먹으면 1병(클래식으로)

좋은 출판 디자인을 생각한다

심우진middot안광욱 선생님

lsquo멋rsquo이라는 것이 폭발한다뼛속까지 디자이너스러운 심우진 선생님

멀리서도 눈에 띄는 큰 키에 멋들어진 베레모 디자인반의

심우진 선생님 되시겠다 서울출판예비학교에서 lsquo멋rsquo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가끔은 조금 키 큰 학생처럼 학생들

속에 잘 어우러지는 사람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모습은

여기까지다 그를 조금 더 알고 싶다 지금까지의 그를

만들어왔을 lsquo심우진의 생각들rsquo이 궁금했다

선생님은 무엇을 드시고 그리 멋지시나요

학생들의 사랑 밥 김치

일본 유학길에 오르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lsquo동아시아rsquo lsquo근대rsquo가 당시 나의 화두였으므로 그리고

스기우라 고헤이 선생을 뵈러

첫 직장을 다녔을때 일의 강도()나 다니는 동안

마음은 또 어떠셨는지

출판 쪽 첫 직장은 lsquo정디자인rsquo인데 lsquo나는 왜 이렇게 디자인을

못할까rsquo 답답해했던 기억이 있어요 그러나 매우 즐거웠고

술도 자주 마셨죠 아직도 당시의 OB들과 가깝게 지내요

lsquo둥지rsquo 같은 곳이죠

선생님께서 생각하는 완벽한 판면이란

디자이너의 삶의 방식과 콘텐츠의 삶의 방식이 녹아든 판면

선생님의 피로회복 방법은

알고싶어 디자인반

19

디자인반의 히어로좋은 출판 디자인을 생각한다 안광욱 선생님

여자 화장실 앞에 있어 인파로 북적대는 디자인반 교실을

학생들과 함께 굳건히 지켜온 분 디자인반 학생들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애정공세를 아끼지 않는 분 안광욱

선생님에게 물어본 4가지

디자이너로서 첫 직장을 다닐 때의 마음이

어떠셨나요

잘하고 싶었는데 못해서 힘들었지 사수에게 하루 서너

시간씩 야단맞으면서 했다오 매일 2호선 양화대교에서 뛰어

내리고 싶었는데hellip 이 부분은 내일 수업 때 얘기해줄게^^

선생님께서 생각하는 좋은 출판 디자인이란

세상을 향한 사랑과 희망이 듬뿍 담긴 디자인

출판 디자인을 안 했다면 지금 무슨 일을 하고

계실까요

모르겠네 그냥 선녀 옷 훔치는 나무꾼이 되어 있을 듯^^

어떤 주사가

있으신지 궁금해요

말이 조금 더 많아지고 장소 불문 쿨쿨 자 특별한 주사는

없는 듯

디자인반 11기 이소현 백가은 사공예원

디자

인 사

공예

20

편집자반 김영준 학우가 그린

『이 외로운 사람들아』 일러스트

기억에콕

수업 후기

ldquo우리에게는 lsquo일탈rsquo이 필요합니다rdquo

잠깐 딴 짓을 하는 사이에 귓가에 들려온

한 문장이 나를 사로잡았다 배는 부르고

따 사 로 운 햇 살 에 잠 이 쏟 아 지 는 시 간

오후 1시 30분 시간을 칼같이 맞춰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선 그는 딱 봐도 지루하고

고리타분해 보이는 첫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순간 눈으로 들어온 이미지는 뇌로 흘러갔고

뇌는 망설임 없는 확신으로 귀에 명령을

전달했다 그렇게 귀는 이미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내 들려올 그렇고 그런 뻔한

이야기에 대하여

눈의 판단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의 한마디

한마디는 파격이었다 아니 어쩌면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였지만 누구도 자신 있게

내던지지 못하는 말들을 서슴지 않고 내뱉는 그

거침없음에 신선함을 느낀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의 관심을 돌려놓았던 lsquo일탈rsquo에 대한 그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lsquo일탈을 하라rsquo는 말이

lsquo제멋대로 하라rsquo는 의미가 아니라 어떤 규칙을

벗어나는 행위를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다르게

생각하는 방식을 몸으로 익히게 된다는 것

새로운 것을 생각해내는 창의성이라는 힘은

당연히 새로운 경험에서 나온다는 것이었다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니 강의를 듣던

친구들의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때 보고 들었던 그의 말과 행동이 우리에게는

딱 딱 한 강 의 실 에 서 느 끼 는 새 로 운 경 험

lsquo일탈rsquo이었다

그 와 의 만 남 은 계 속 이 어 졌 다 이 곳

서 울 출 판 예 비 학 교 에 입 학 한 이 후 로 는 좀

더 완 벽 한 일 주 일 단 위 로 시 간 이 흐 르 기

시작했는데 매주 쌓여가는 새로운 배움 뒤에는

수많은 물음이 불쑥불쑥 솟아났고 그는 마치

예상을 했다는 듯이 일주일에 한 번씩 나타나

우리의 설익은 궁금증을 해소해주고 떠나갔다

첫 만남에서는 책이라는 대상과 책을 대하는

편집자의 자세에 대해 이야기하며 큰 그림을

그려주었고 다음엔 저자와의 관계 맺기 그

다음엔 스스로 만들어 가야할 편집자의 자기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담백하게 들려주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네 번째 만남이었다

누구도 쉽게 이야기하기 어려운 완벽하게

솔직해지기는 더더욱 어려운 자신의 좌절과

실패를 그는 담담하고 진솔하게 소개해주었다

모든 성공에는 대개 7할의 실패가 전제되어

있기 마련인데 성공에 이르기까지 거치는

우 리 가 lsquo실패rsquo라고 명 명하는 것들이 사실

진짜 실패가 아니라 성공의 다른 이름이라는

그의 말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성공도 실패도

어 느 한 지 점 에 서 내 리 는 판 단 인 것 이 고

결 국 성 장 하 고 성 숙 한 다 는 것 은 성 공 과

실패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lsquo차이rsquo를 얼마만큼

발견하느냐 하는 것에서 결정된다는 그의 말이

가슴을 뜨겁게 했다 비로소 lsquo편집자rsquo로서가

아닌 한 lsquo사람rsquo으로서의 그가 보이기 시작했다

담담하게 말을 하고 있지만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아프고 쓰린 기억을 후배들에게

들 려 주 는 그 에 게 서 진 심 이 전 해 져 왔 다

사랑하는 일에 대한 함께 걸어갈 동지들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 참 고마웠다

어느덧 마지막 만남이 찾아왔다 한 권의

책을 만들면서 진행했던 편집의 과정을 예로

실 제 적 인 이 야 기 를 우 리 에 게 마 지 막 으 로

들려주었다 편집의 능력은 지식과 정보에서

나온다는 것 그것은 단숨에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 꾸준히 쌓아가야 한다는 것 그래서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의 문제라는 것을 경험을

근거로 자신 있게 말해 주었다 이미 지나온

과거의 결과 대신 앞으로 걸어갈 길에 대한

희망을 들려주어서 그게 참 고마웠다

편집자반 일탈이 주는 파격 우리가 낳을 lsquo새로운 책rsquo과 편집자선완규 선생님과의 다섯 번의 만남이 키운 생각들

21

그 가 우 리 에 게 마 지 막 으 로 이 야 기 를

들려주었던 그날 이후 석 달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났다 나는 여전히 같은 강의실에 앉아

앞서 길을 걸어간 선배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고 조금씩 가까워지고 밝아져가는 내 앞에

놓인 길에 대해 생각한다 그러다 문득 마음이

무거워지고 막막해질 때면 종종 그의 말들을

떠올려 본다 그리고 그 생각의 끝에서 마음을

의지하며 함께 이 길을 걸어갈 따뜻한 선배가

하나 있다는 위로 한 줌을 발견한다

ps 선완규 선생님 고맙습니다 보고 싶어요

편집자반 11기 성준근

마케터반 강한 수면욕 환상과 환기

판형과 종이를 예술로 편입시키려는 영업자다빈치 출판사 박성식 대표 특강 후기

9월 23일 평소보다 점심을 많이 먹었던 날이다 잠을 며칠간 못 자 피곤했다

오후 1시 30분이 살짝 지나서 다빈치 출판사 박성식 대표의 특강이 시작됐다

다빈치 대표님은 처음 뵐 때부터 남다르셨다 서울출판예비학교 입학 면접에서

여자 술 담배를 각각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보셨다 lsquo솔직함을 어필해야

하는 순간인가rsquo하는 생각에 직설적으로 답했지만 lsquo더 문학적으로 얘기할 수

있었는데rsquo라는 후회를 안고 돌아왔다

마음과 다르게 첫 번째 시간은 정신없이 잠이 쏟아졌다 눈을 감고 귀 기울였지만

턱을 괸 채 버티는 동안 50분이 지났다 대표님께 캔 커피를 하나 드리고 맞이한 두

번째 시간 그 한 시간 동안 나는 현실 옆의 어떤 이상 내지는 환상을 본 것 같다 그동안

듣던 강의들을 놓고 lsquo이상적인 관점이다rsquo 혹은 lsquo현실적이다rsquo라고 구분했던 판단의 폭

자체가 좁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성식 대표님은 내 머리에 있던 lsquo책rsquo에 대한 인식을 전복시켰다 자본주의 출판의

몰락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시작됐다는 말 출판 기본 특성인 다품종 소량 생산은 돌아올

것이며 다품종 소량 생산을 넘어 다품종 소량 lsquo고급 생산rsquo을 추구하고 싶다는 말은 나를

달뜨게 했다 주류에 반하는 사고를 가진 중년의 개성과 내공에 교실 풍경이 환기됐다

교육 수단으로 책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지만 책은 그만큼 사회적 의무와 희생을

짊어져왔다 출세와 공부 앞에서 책이 가진 기호(嗜好)성은 변두리로 내몰렸다 책을

읽어야만 제대로 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분위기는 옳지 않다 독서는 성향의 범주지 성역이

돼선 안 된다 정보와 지식의 전달은 모바일 등에 넘겨주고 종이책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공동체로 돌아와야 한다 그게 원래 자리라는 대표님의 주장이 새롭고 강렬하다

자본주의 3대 원칙인 lsquo더 빨리 더 많이 더 싸게rsquo 체계는 표준화와 규격화를 동반하며

매우 효율적이다 현재 사용하는 종이는 자본주의 원칙에 최적화돼 있다 그러나 대표님은

인쇄기계로 소화하지 못하는 질감과 전혀 다른 발색을 지닌 lsquo종이rsquo에 주목했다 그 종이로

콘텐츠 종이 판형이 완벽하게 들어맞는 예술서를 만들고 시장을 설득한다면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책 판매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전했다 종이 자체가 책의 예술성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한지(韓紙)를 예로 들면서 훌륭한 텍스트와 이미지를 한 차원 끌어올리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많은 부수를 팔아야 성공한 출판 많은 부수를 파는 것을

목표로 하는 시대는 저물고 있다 기존 유통과 판매 방식

안에 갇혀서는 불황에 매몰될 뿐이다 소량의 고급화된

책을 꿈꾸는 것과 전시회를 책과 결합하는 것도 다른 길을

물색하는 과정이다

대표님은 10년 전부터 lsquo이 원고는 내가 누구보다 잘

만들겠다rsquo lsquo이 원고는 내가 못하면 누구도 못할 것 같다rsquo라는

생각이 든 책만 출간을 진행했다고 한다

강의 중간 자신의 독특한 철학을 전달하는 것에 대해 가벼운

염려를 하셨지만 이론적이고 실용적인 분야에 몸담더라도

예술적 사고의 유연성은 필요하다고 본다 돈과 인문정신을

구분하면서 필요할 때 양쪽에서 자극 받고 차용하는 것이 마케팅의 융통성과 힘을 기르는 길일 것이다

마케터반 11기 이창환

편집자반 김영준 학우가 그린

『이 외로운 사람들아』 일러스트

박성식 대표가 기획한 lsquo오름rsquo전

22

하늘

습탁은 농도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하늘

습탁은 농도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이 글은 심우진 선생님의 탁본 세미나 수업에 대한 우리들의 즐거운

기록이다 탁본은 습탁(濕拓)과 건탁(乾拓) 두 종류로 구별된다

습탁은 나타내고자 하는 물체 위에 물을 묻힌 후 종이를 그 위에

밀착시키고 먹물 묻은 솜방망이로 가볍게 두드려서 물체를 표현하는

방법이다 물체의 패인 부분을 제외하고 볼록한 부분의 모양대로

종이에 먹이 묻어 문자나 문양이 드러난다 건탁은 이름 그대로 물을

사용하지 않고 마른 상태의 먹인 고형묵(固形墨)을 사용한다 우리는

각자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사물과 자연을 이용해 탁본 작품을

만들고 서울출판예비학교 꼭대기 층에서 작품을 공유했다

디자인반 이 시간을 그대로 탁본할 수 있다면심우진 선생님의 탁본 세미나

저는 신문지를 구겨서 해봤어요

응 그런데 이건 방바닥 같은데

방바닥까지 묻어 나와 버렸네요

[학생들 하하하]

저는 일단 큰 나무 기둥을 떠봤고요

오솔길의 짚도 해보고 저희 집 바닥과

벽면도 신기해서 떠봤어요 집 벽면 중에

대리석도 있고 특이한 벽면이 많거든요

부잣집인가 보네

[학생들 깔깔깔]

승연

심우진 선생님

승연

승연

심우진 선생님

이건 파프리카인데 저희 집 개가 완성한 종이를 찢었어요

[학생들 하하하]

좀 작고 납작한 파프리카를 반으로 잘라서 습탁했어요 또

이건 철조망인데 용 비늘처럼 나와서 재밌었어요 아나콘다

같기도 하고 철조망이 날카로워서 습탁하니 종이가 자꾸

찢어져서 다시 하게 됐어요 근데 이거요hellip 남자친구

있으면 커플끼리 한 번 해보세요 한 명은 잡아주고 한 명은

습탁하고hellip 되게 로맨틱 성공적

자랑하는 거니

[학생들 깔깔깔]

수빈

수빈

심우진 선생님

혜민

정묵

처음에 나뭇잎이 세세하게 잘 나올 줄 몰랐는데 그

줄기의 질감이 잘 나왔고 버려진 타이어를 끌어서

생긴 모양으로도 습탁을 했는데 생각보다 잘 나와서

막상 찍어보면 생각과 다르다는 것을 느꼈어요

저도요 결과물이 뚜렷하게 안 나올 줄 알았는데

디테일이 잘 나타나 있었고 입체를 평면적으로

찍는 것 자체가 재밌었어요

수정

저는 빗자루를 해봤어요 너무 얇아서 안 나올

거라 생각했는데 빗자루 문양이 잘 나와서

재밌었고 머리카락도 해봤는데 머리카락은

끝 부분이 잘 나오는 편이에요 위쪽은 다

뭉쳐있는데 끝 부분은 펼칠 수 있으니까요

23

저는 결이 얇은 것들을 뜨는 것이 재밌었어요

머리카락처럼요 머리 긴 사람에게 부탁해서

눕히고 했어요 그리고 이건 얼굴인데요

처음에는 그냥 했는데 얼굴은 입체를 살리려면

스케치하듯 떠야 되요 결국 명암으로 입체감

조절을 해야 되죠 코가 너무 입체적이라 특히

힘들었어요

누구 얼굴이야

우리 언니hellip

[학생들 우와]

가은

심우진 선생님

가은

하얀

음각이 나왔을 때 너무 좋았고요하늘

습탁은 농도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소리

건 탁 보 다 는 습 탁 이 농 도 조 절 하 는 게

희 한 해 서 재 밌 었 어 요 농 도 조 절 이

관 건 이 거 든 요 먹 과 물 의 배 합 과

솜방망이가 먹물을 얼마나 흡수하는지 그

흡수량이 중요하고요

윤미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꽤 많은데 만져보면서 건탁을 뜨니까 좋았어요 전에

습탁할 때는 시멘트 벽 같은 걸 하다가 나뭇결을 하니까

살아있는 느낌이었어요 생각했던 것처럼 나와서

좋았고 솔방울이나 나뭇잎 같은 섬세한 것들은 제대로

나오지 않아서 아쉬웠어요 섬세한 것들은 습탁으로

해봐야겠어요 그래도 다양한 나무를 건탁해봐서

만족해요

소현

저는 일상적인 것들로 습탁을 해봤어요

처음에는 단순하게 오돌토돌한 느낌만

있 을 줄 알 았 는 데 색 다 른 느 낌 이 나 서

재밌었어요

탁본 세미나를 마치고 그 다음 주에 지하 강당에서 촬영하는 시간을

가졌다 촬영 후에 보정도 했다 나뭇잎의 결 무늬 타이어 자국

그리고 사람의 머리카락까지도 좋은 디자인의 재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보았고 나누었다 건탁과 습탁의 장단점을 이 수업으로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심우진 선생님의 이번 탁본 수업도 지난 활자

수업처럼 지식 습득은 물론이고 경험까지 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 시간들이 앞으로 출판 디자이너로서의 감각을 더 풍요롭게 해 주지

않을까

디자인반 11기 사공예원

하얀

음각이 나왔을 때 너무 좋았고요

습탁은 농도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솜방망이가 먹물을 얼마나 흡수하는지 그

흡수량이 중요하고요

윤미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꽤 많은데 만져보면서 건탁을 뜨니까 좋았어요 전에 꽤 많은데 만져보면서 건탁을 뜨니까 좋았어요 전에

이건 파프리카인데 저희 집 개가 완성한 종이를 찢었어요

[학생들 하하하]

좀 작고 납작한 파프리카를 반으로 잘라서 습탁했어요 또

이건 철조망인데 용 비늘처럼 나와서 재밌었어요 아나콘다

같기도 하고 철조망이 날카로워서 습탁하니 종이가 자꾸

찢어져서 다시 하게 됐어요 근데 이거요hellip 남자친구

있으면 커플끼리 한 번 해보세요 한 명은 잡아주고 한 명은

습탁하고hellip 되게 로맨틱 성공적

자랑하는 거니

[학생들 깔깔깔]

24

9시 30분 합정역 1번 출구 앞

ldquo누나rdquo 소리에 쳐다보니 반가운 공 총무의 얼굴이 보였다 정류장

앞으로 길게 늘어선 줄에 합류하여 파주로 날 데려다 줄 2200번

버스를 기다리고 있으니 반가운 얼굴들이 계속 나타났다 한 대의

버스를 보내고서야 겨우 2200번 버스에 탑승해 파주로 출발할 수

있었다

10시 15분 파주 lsquo다산교 앞rsquo 정류장 하차

4개의 정류장 총 57분이 걸린다고 알려준 N사 지도 어플의 정보와는

달리 30분 만에 파주에 도착했다 일찍 도착해 먹을 것을 찾아 헤맨

예비 마케터들은 편의점에서 주린 배를 채웠고 lsquo지혜의 숲rsquo을 살짝

염탐하며 11시까지 시간을 보냈다

11시 05분 보진재 2층

1912년 설립되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인쇄소인 보진재 관계자

분이 나와 간단히 인사 말씀을 하고 각 반의 인솔자를 소개해주셨다

마케터반의 인솔자는 서동관 과장님 디자인반 편집자반 마케터반

순으로 견학을 시작했다

11시 15분 보진재 견학 시작

제일 먼저 본 곳은 제판실이었다 필름 인쇄가 줄어들고 CTP로

대체되는 추세지만 어떤 분들은 여전히 필름 작업을 하고 계셨다

이유를 물어보니 서동관 과장님은 예전 필름이 남아 있기도 하고

출판사에 따라 필름을 고집하는 곳이 있다고 하셨다

한번에 5도 인쇄가 가능한 기계를 보는 중에 서 과장님이 말씀하셨다

ldquo한 유닛(unit)당 23억 정도 해요rdquo 그렇다면 유닛 다섯 개가

돌아가고 있으니 적어도 10억짜리 기계라고 내 눈에 보이는 건 그냥

낡고 큰 기계인데 10억이 넘는다니 놀랐다 또 과장님께서 자랑스레

말씀하신 한 가지 잉크 농도 조절을 자동으로 하는 기계가 보급된

곳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었다 원래는 사람이 눈으로 보고 수정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재판을 찍을 경우 초판과 동일한 색상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있지만 보진재는 기계가 자동으로 조정해주어 수월한

작업을 할 수 있다고 하셨다

매염실도 보고 제본실도 구경했다 인쇄된 종이를 접지하고 제본을

마친 후 마지막으로 제단을 하면 책이 완성되어 나왔다 그 모든

과정을 보고 난 후 서 과장님이 건넨 완성된 책의 무게는 보통의

그것보다 조금 더 무겁게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윤전실이었다 견학 당일은 작업이 없어서

비어있던 윤전실이지만 윤전실이 주는 무게감은 컸다 윤전실은

롤(roll)로 인쇄하는 곳으로 8개의 롤이 양면 인쇄를 하고 건조와

접지까지 한 번에 가능한 기계도 있었다 대량생산을 위한 곳으로

주로 교과서나 EBS 학습지를 인쇄한다고 하셨다

12시 20분 견학 끝

1시간을 조금 넘긴 견학을 끝내고 밖으로 나오니 코가 따갑고 목이

말랐다 기계가 먼지를 빨아들여준다고는 하지만 수없이 많은

종이가 존재하는 공간에서의 종이 냄새는 강력했던 것이다 책이

제작되는 과정은 실제로 보니 다양하고 복잡했다 자동화가 많이

되어있지만 사람의 손길 없이는 절대 완성될 수 없는 과정들을 보며

책이 완성되기까지의 노력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lsquo책이 어떻게

만들어진다rsquo를 배우다가 lsquo책이 이렇게 만들어진다rsquo를 보니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예비 출판 마케터의

길로 들어선 후에 새로운 것을 보고 배울 수 있었는데 보진재 견학은

그 중에서도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책을 완성시키기 위한 모든 과정이

저마다의 몫을 하고 있었다 서울출판예비학교 졸업 후 출판계에

들어섰을 때 나는 과연 어떤 몫을 할 수 있을까 남은 2개월을 조금은

더 열정적으로 보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마케터반 11기 최다은

1 일일탈

학교 밖 견학 후기

피부로 와 닿는 책의 감촉 책의 냄새 책의 소리 보진재에서 책이 인쇄되는 과정을 만나다

필름과 인쇄판이 만들어지는 과정

25

우리가 이제 각자 편집자 마케터 디자이너가 되어 책 만드는 일을

시작하면 우리의 책은 이곳에서부터 그 lsquo탄생rsquo을 시작할 것이다 책의

근간이 되는 종이가 만들어지는 곳 한솔제지 공장에 다녀왔다 학기

초에 책을 파는 서점을 견학한 뒤 그 다음으로 출판사 종이에 활자를

찍어내는 인쇄소 그리고 마지막으로 lsquo종이rsquo를 만드는 제지 공장을

찾은 것이다 책이 만들어지는 순서대로라면 우리가 다녀온 순서를

거꾸로 해서 다녀왔어야 했지만 우리는 반대로 실제 과정을 거슬러

올라간 것이다 이렇게 거슬러 올라가는 과정에서 오히려 편집자란

직업에 겸허해질 수 있었다 가끔은 편집자가 책을 만드는 모든

과정 위에 군림하는 것 같이 느껴지지만 책의 물성을 만들어내는

거대한 기계 앞에서 우린 한없이 작아지기도 한다 lsquo한 권의 책rsquo이

만들어지려면 이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함을 이해해야 했다 이렇게도

복잡하고 힘겹게 만들어지는 책의 가치를 한 번 더 깊이 생각하게 된

계기였다 책이라는 건 의미가 담긴 조각들의 집합체이자 종이를

보기 좋게 물성화한 것 이론적으로야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눈으로 보고 느끼는 것과는 천지차이다

날씨마저 좋았던 9월 11일 평소보다 한 시간이나 이른 8시

30분에 세 반 학우들은 눈도 제대로 못 뜬 채 집합했다 대전까지

간다니 마치 여행가는 것 같은 살짝 들뜬 기분까지 안고 아침도 못

챙겨먹고 나왔을 우리를 생각해서 빵과 우유까지 준비한 한솔제지

측의 세심한 배려에 감동했다 배도 채우고 부족한 잠도 보충해가며

2시간 넘게 달려 신탄진 공장에 도착했다 도착하자 보이는 우리를

환영하는 현수막에 2차로 감동했다 우리를 위해 정말 많은 준비를

하셨구나 느낀 순간이었다

신탄진 공장 강당에 들어가서 간단한 공장 소개를 먼저 들었다

그리고 뒤이어 종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경청했다 수업 때보다

학생들의 집중력이 더 높아 보였던 건 내 착각이었길 종이는

1퍼센트의 펄프와 99퍼센트의 물로 이루어진단다 그래서 전반적인

공 정 의 대 부 분 은 물 을 처 리 하 기 위 한 과 정 이 나 다 름 없 었 다

생각보다 종이는 순수한 물질이라고 생각했다 종이(paper)의

어원은 이집트의 파피루스(papyrus)에서 왔다고 한다 중국의

lsquo채륜(蔡倫)rsquo이라는 사람이 제일 먼저 발명했고 고려시대에

일본으로 넘어간다 일본에 가장 마지막으로 넘어갔지만 종이의

기술력은 현재 일본이 가장 좋다 원료rarr초지rarr코팅 등의 공정을 거쳐

종이가 완성되는데 마지막 코팅 공정을 여자의 화장에 비유한 것

역시 기억에 남는다 코팅이 그렇게나 대단한 과정이라니

공장 안으로 들어가서는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시끄러워서 설명을

제대로 듣진 못했지만 앞서 들었던 설명을 떠올리며 기계들을

관찰했다 인쇄소에서 본 광경들도 거대하고 박력 있었지만 여긴

그보다 더 거친 느낌이었다 책은 서점에 놓여있을 때는 그렇게

얌전하건만 태어날 땐 이렇게 시끄럽다 또한 막 태어난 종이는

거대하고 또 거대했다 다들 마치 거대한 두루마리 휴지 같다고들

했다

견학을 다 마치고 다시 대전 공장으로 이동해 다 같이 점심 식사를

했다 기대 이상으로 맛있는 밥에 또 감동 더 힘내서 견학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아쉽게도 대전 공장 안에는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라 그 힘()을 발휘하진 못했다 대전 공장은 신탄진 공장과

다르게 책에 쓰이는 것이 아닌 제품 포장용 박스 종이컵 등 다른

용도에 쓰이는 종이를 만드는 곳이었다 그 과정의 차이를 눈으로

비교하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마지막으로 좋은 선물까지 손에

받아들고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다시 서울로 향했다

언제나 시작은 중요하다 각자의 일에 빠져들게 되면 점점 잊게 될

그 시작을 눈에 담고 오래 기억하기 위해 다녀왔다고 생각한다 요즘

초심을 잃었다는 생각이 종종 드는데 책에게도 초심이 있다면 바로 이

곳일까 시작의 의미에 대해 다시 곱씹어보았다

편집자반 11기 박혜원

우리의 글과 그림이 펼쳐질 종이의 탄생 한솔제지 신탄진 공장 견학

거대한 롤(상) 한솔제지 공장 앞에서 (하)

26

화양연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삶과 문학에 취하다

편집자반 한국문학 동아리 lsquo공감rsquo 그 대담의 현장

훗날 서울출판예비학교를 떠올릴 때 가장 즐거운 시간으로 기

억되는 날들은 동아리 활동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들의

화양연화(花樣年華)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 중

의 하루를 소개한다 문예창작학과를 전공한 문학소녀 김한나

학우를 필두로 창단된 편집자반 내 한국문학 동아리 lsquo공감rsquo은

모임 전에 한국작가를 한 명 정해 단편 두 편을 함께 읽고 키워

드나 질문을 스스로 뽑아 글을 써왔다 모여서 때로는 소설의

플롯이나 주제 문체에 대한 열띤 토론을 하고 때로는 작가의

외모()와 같은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며 삼천포로 빠지기도 했

다 우리끼리만 듣기엔 아쉽다 이 즐거운 대화를 모두에게 들

려주고 싶었다 이날 모임에선 김영하 작가의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단편집 속의 두 단편 lsquo엘리베이

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이하 엘리베이터)rsquo와 lsquo사진

관 살인사건(이하 사진관)rsquo에 대해 이야기했다 여기서는 lsquo엘리

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rsquo를 읽고 토의한 내용을

실었다

한나 참고로 김영하는 사람의 욕망에 대해 천착하는 작가야

그런 특성이 엘리베이터에는 안 나와 있는데 사진관에서는

잘 드러나 있어

상화 백가흠 작가에게 소설창작론 강의를 들었는데 그분이

소설의 기법을 설명하면서 알레고리랑 아이러니를 얘기했어

알레고리가 인물이나 소재를 비유적으로 설명하는 거래 예를

들어 핸드폰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다른

것에 핸드폰을 빗댐으로써 소설을 풀어가는 거

야 아이러니는 속도감 있게 이야기를 전개함으

로써 부조리나 모순을 드러내는 건데 김영하가

아이러니의 대표적인 작가래 단편인데도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내면보다는 사건이 일어나는

걸로 소설을 끌어가는 작가 우리가 지난 모임

에서 성석제를 굉장한 이야기꾼이라고 했잖아

그런데 난 김영하가 훨씬 이야기꾼스럽게 느껴

졌어 속도감 있고 lsquo이렇게 몰입을 할 수 있나rsquo

싶고 지난 모임들에서 읽었던 손보미나 편혜영

소설의 경우는 분위기나 주인공의 심정 내면에

의미를 부여해 야 했는데 김영하의 소설은 덮

자마자 아이러니가 느껴지면서 lsquo아 세상은 왜

이래rsquo 말하게 만들었어

법열 나는 엘리베이터 읽고 딱 lsquo뫼비우스의 띠rsquo가 생각났거든

뫼비우스의 띠가 안하고 겉이 구분이 안 되잖아 끝과 시작이

어딘지도 모르고 lsquo나rsquo가 겪는 상황이 현실인지 아닌지 구분이

안 되는 느낌 마지막에 lsquo나rsquo가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가 존재

하기는 했는지 혼란스러운 느낌을 받잖아 그게 앞의 환상적

인 부분이랑 맞물리면서 하나가 되는 느낌이라 뫼비우스의 띠

가 생각났어

상화 lsquo나rsquo가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구해주려고 고분군투하

다가 나중에 자기가 엘리베이터에 갇히잖아

오권 낀 남자의 발을 보면서 느꼈던 감상이 사실은 자기를 구

하고 싶었던 마음인 거지

(일동 오~ 그렇게도 볼 수 있네)

오권 무한도전의 무한상사 특집도 생각났어 뜬금없이 휴지

사용하는 길이에 대해 회의하는 장면에서 엘리베이터는 갇힌

사회 서로를 돌아보지 않는 사회를 의미하는 것 같아

한나 나는 반대로 오히려 엘리베이터를 희망적인 존재로 봤

거든 아파트도 그렇고 회사도 그렇고 각자 자신의 공간 안에

서 살다가 서로 만날 수 있는 장소는 엘리베이터 밖에 없으니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김영하 지음

문학동네 20100216

동아리 후기

27

까 lsquo나rsquo가 회사 엘리베이터 안에 여자와 같이 갇히잖아 사실

은 갇히지 않았으면 대화도 안하고 지나쳐 갔을 텐데 남자는

자기가 아침부터 버스 사고도 나고 성추행범으로 몰렸다고 얘

기하고 또 남자의 담배 피워도 되냐는 말에 여자는 담배에 대

한 불평불만을 속사포처럼 얘기하고 엘리베이터라는 공간이

아니었다면 이런 대화 자체가 없었겠지

오권 엘리베이터 타면 사람들이 하나같이 층수 바뀌는 것만

쳐다보고 있잖아

상화 요즘은 스마트폰

오권 자기 얘기를 하고 싶은 것 같아 하지만 상대의 얘기는

안 들어 lsquo너의 얘기는 관심 밖이지만 내가 불편한 것에 대한

얘기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하겠어rsquo라는 느낌

한나 그리고 우스웠던 게 볼일 보고 휴지 몇 칸 쓰는지 회의에

서 얘기하는 건hellip 사실 굉장히 사적인 얘기잖아 (일동 하하

하) 서로에 대해 다른 얘기는 일절 하지 않으면서 회의 내용은

개인적이고 사적이라니 아이러니한 거지

수경 진짜 웃기지 않았어 lsquo나rsquo가 자원 재활용 문제에 대한 중

대 보고가 있다고 계속 빨리 가야한다고 했던 게 겨우 그거야

상화 겨우 이딴 회의하려고 지금 엘리베이터에 낀 사람 놔두

고hellip 생명이 더 중요한데 지금 휴지 구하려고hellip

(일동 하하하)

한나 lsquo나rsquo가 불쌍했던 이유가 자기한테 닥친 일들은 lsquo할 수 없

지 뭐rsquo 이런 식으로 넘기는데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 걱정하고

갇힌 여자 걱정하고hellip 정작 자기 걱정은 안 해

오권 영화 lt라이터를 켜라gt 봤어 조폭들한테 얻어맞으면서

도 주인공은 무조건 자기 라이터만 찾겠다고 그러거든 이 소

설의 lsquo나rsquo와 비슷한 느낌이 들더라고 그 영화에서는 라이터가

주인공의 존재를 투영하는 소재거든 lsquo나rsquo는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구해야만 자기가 산다는 느낌을 받은 거라 해석하면

너무 나간 건가

법열 아니요 형이 아까 지적해준 게 와 닿았어요 그 고군분

투가 결국 자기를 구하려는 노력이라는 지적이요

상화 그나마 lsquo나rsquo가 이 소설에서 제일 인간적이지

수경 어딘가 찌질한 느낌도 들어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와

lsquo내rsquo가 동류라고 자각하고 연민을 갖는 느낌이었거든 lsquo나rsquo가

인간적이고 윤리적이라는 생각은 나는 글쎄hellip 더 적극적으

로 할 수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 자기 사이클에서 벗어나

지 않는 한도 내에서 걱정만 하잖아 소설 안에서 비극과 희

극이 번갈아 가며 나타나는데 트럭과 버스가 충돌했을 때

lsquo나rsquo는 lsquo버스 카드 일로 충돌하지 않게 되어 적이 기뻤다rsquo고

생각해 버스 운전사는 트럭 백미러에 가슴이 받혀서 죽었는

지도 모르는데 lsquo다행히 나는 허리가 좀 뻐근한 것만 빼면 별

다른 상처가 없는 듯했다rsquo 이런 생각들을 하는 게 좀 섬뜩했

민희 사람은 다 이중성을 가지고 있잖아 나를 보는 듯했어

만약 학교 가는 길에 엘리베이터에 낀 사람을 봤다면 그렇

지만 나도 얼마나 바빠 몇 분 늦으면 지각 체크 당하고 출석

80퍼센트를 못 채울 수도(일동 웃음) 있는 상황이라면 내

가 그 남자를 구할 수 있을까 일단 지나치고 119에 전화하려

고 했으나 핸드폰이 없는 상황에 나도 처할 수 있는 거잖아 나

만 생각하는 잔인한 면도 내 안에 있고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

도 내 안에 있어 이런 찌질한 모습도 나고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정의롭게 구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상화 기준이 다른 것 같아 lsquo나rsquo 정도면 착하다고 생각했거든

수경 주변 사람들이 약간 마네킹 같지 않아 주인공 주변에

장치되어있던 다른 사람들이 너무 비인간적이기 때문에 lsquo나rsquo

가 돋보이는 거지 lsquo나rsquo는 지극히 평범한 우리 모습 같아 내가

어떻게 할 생각은 없고 궁금하기만 한 거야

민희 그 궁금함과 찜찜함도 죄책감이라 생각돼 아 내가 어떻

게 해줬어야 했나

한나 책임 회피일까

상화 그래서 나는 키워드 뽑은 것 중 하나가 119야 구해주고

싶으면 직접 내 손으로 잡아 빼주던가 엘리베이터를 들어 올

릴 사람을 모아야 했는데 신고 생각만 하잖아 이미 이건 누

가 대신 해결해줘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그나마 우리

사회에서 사고를 수습해주는 건 119밖에 없고 조선시대에는

119같은 거 없고 마을 사람들이 모여 구해줬을 텐데 어쩔 수

28

없는 현대인의 단상이긴 해 현대가 분업사회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들 바쁘고 삶이 개인화 파편화되어 있으니까 119 같

은 집단이 필요한 거지 그래서 난 119를 신의 영역이라고 썼

어 lsquo나rsquo는 119를 거의 신적인 존재처럼 생각하잖아 부르면 모

든 게 해결될 것처럼 핸드폰 빌리고 공중전화 찾고 그런데 막

상 교통사고 현장에서 119 대원에게 면대 면으로 얘기를 했더

니 그들은 무슨 그따위 장난을 하냐고 말해 구조도 실은 신이

아니라 사람이 하는 일이고 그 사람이 관심이 없으면 묻히는

거지

오권 전화를 거는 것과 직접 구해주는 것의 차이가 큰 것 같아

자기가 구해주는 건 적극적인 행동이고 119에 전화하는 건 스

스로 최소한 양심적이긴 하다고 여기는 행동

수경 그런데 엘리베이터에 낀 사람을 아무 것도 모르는 일반

인이 어떻게 했다가는 더 위험해질 수도 있잖아

오권 맞아 사회가 시스템화하고 고도화될수록 각자의 업무가

분업화되었고 전문분야가 생겨났으니까 옛날 같았으면 애 낳

으면 그냥 동네 아주머니가 애 받고 어미가 죽으면 젖동냥 다

녔는데hellip 이젠 사고가 나면 생각이 119에 먼저 미치는 시대가

된 거지

수경 그래서 어딘가에 널브러져 다친 인간이 아니라 엘리베이

터라는 공간에 낀 남자를 설정한 것 아닐까 엘리베이터는 현

대화의 상징이잖아

한나 lsquo나rsquo도 어쩔 수 없는 게 출근 시간에 쫓겨서 시계를 계속

봐 먹고 사는 일이니까

오권 출근했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다시 집으로 돌아가

낀 사람을 구해주면 굉장히 희망찬 소설로 바뀔 텐데hellip (일동

웃음)

수경 이 소설로 현대 사회의 폐단은 다 얘기할 수 있겠는데

상화 김영하는 천재인 것 같다

누군가 그리고 잘생겼잖아

누군가 잘생긴 거야

누군가 지적인 분위기가 있어서 좋아 (한참 얘기)

한나 또 인상 깊었던 게 구두에 집착하는 거 lsquo나는 날렵한 치

타처럼hellip 구두를 가지고 엘리베이터에서 빠져나오는 데 성공

했다 허탈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rsquo는 구절

오권 자살한 사람들이 구두를 가지런히 벗어놓는 이미지가 무

슨 상징처럼 있잖아

한나 신발 한 쪽 없이 다녀봤어 계속 기우뚱대서 내가 걷거

나 서 있을 때 내가 잘못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여기서 lsquo나rsquo가

그랬을 거야 사실 lsquo나rsquo처럼 사는 게 정상인데 세상이 잘못된

건데

상화 이 소설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감정표현이잖아 하루 종

일 얼마나 힘들었겠어 처음으로 감정표현을 하니까 불쌍했어

오권 휴머니즘 불쌍론 또 나왔네(일동 웃음) 그럼 이제 사진

관으로 넘어가볼까hellip

편집자반 11기 이상화

2929

책씹는맛 01 냄새라는 경이 lt감각의 박물학gt 후각편을 읽고

냄새에는 언어가 없다 어휘가 부족한 우리는 말문이 막힌

채 불명료한 쾌감과 자극의 바다에서 말을 찾을 수밖에

없다1

이 말은 다이앤 애커먼의 『감각의 박물학』 제 1장 후각에

나오는 구절이다 냄새를 글로 쓰고자 하는 나의 시도가 늘

실패로 귀결되는 이유를 이 구절에서 찾았다 작가의 말처

럼 냄새에 대해 쓴다는 건 언어 밖 세계로 나갔다가 다시

언어로 되돌아오는 길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길에서 헤매

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후각이라는 감각에서 길을

잃는 것은 낭만적인 일이기도 하다 lsquo냄새의 뇌관을 건드리

면 모든 추억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기rsquo2 때문이다 냄새 하

나에 수많은 추억들이 줄줄이 기억의 회로 위로 떠오른다

예를 들면 바다 냄새 하나만 상상해도 그와 관련된 수많

은 기억들이 머릿속에 뒤섞인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바닷가와 관련된 그 모든 추억들이 기억의 영사막에서 한

편의 옴니버스 영화 형태로 내게 다가온다 난 내 기억의

관객이 되어 그 영화를 보다가 견딜 수 없는 그리움에 젖는

다 이 영화에 대한 감상문을 적으려면 나는 말문이 막힌

다 그래서 몇 글자 적다가 결국 글을 쓰기를 멈춘다 굳이

언어로 표현하자면 쓸 수 없는 그리움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1 『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옮김 작가정신 20040720

A Natural History of the Senses(1991) 17쪽

2 같은 책 18쪽

결국 lsquo언어가 존재하는 세계에서 경이는 언어의 칼날 아래

서 쉽게 해부되고 냄새는 자주 혀끝에서 맴돈다rsquo3 냄새의

숭고함 앞에서 우리는 말을 멈춘다 이처럼 냄새는 말할 수

없는 자연의 경이로움과 닮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lsquo냄새가 우리의 마음을 그토록 강하게 움직이는 것은 부분

적으로 그 이름을 부를 수 없기 때문rsquo4이라고 한다 저자는

그렇기에 사람들이 냄새를 lsquo분 냄새 비슷한 펭귄 냄새가

나는 호화로운 화장실 냄새가 나는rsquo 같은 말로 표현할 뿐

이며 냄새에 대한 이름은 주어져 있지 않다고 말한다 또

한 종류는 같아도 강약과 농도가 다른 각각의 냄새에 이름

을 붙여줄 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우린 일상적으로 냄새를

맡으면서도 그 냄새와 멀리 떨어져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명명되지 않은 것은 결국 잊히는 게 아닐까 부를

수 없음에서 오는 경외감과 숭고함이 있을지라도 냄새는

말해져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말할 수 없는 것에 자꾸

만 침묵하기만 해야 할까

감각도 모험의 영역이 될 수 있다 세계 일주만이 세상을

아는 길일까 lsquo나rsquo를 온전히 아는 것이 역설적으로 세상과

가까워지는 일인지도 모른다 나를 알기 위한 길 중 하나가

내가 가지고 있는 감각을 이해하고 그걸 언어로 표현하는

일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어쩌면 우리와 제일 가깝지만 말

하기 낯선 감각 후각을 이해하는 일이 중요한지도 모른다

냄새라는 감각 속에서 우리 모두 길을 잃고 헤매고 모험해

보자 냄새에 나름의 이름을 지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

리고 농도에 따라 냄새를 구분하는 일도 해보자 냄새라는

경이는 우리를 더 이상 침묵으로 이끌지 않을 것이다

디자인반 11기 백가은

3 같은 책 22쪽

4 같은 책 22쪽

『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 옮김

작가정신 20040720

A Natural History of the Senses(1991)

3030

02 현실을 전복시키는 비현실

모호함이 주는 환상성

20세기 중반 중남미 소설은 전통적인 사실주의 서사 구조

를 깨고 현실과 환상을 혼합시키는 새로운 글쓰기 방식으

로 세계문학의 중심에 선다 이 시기에 주목 받은 일련의

중남미 작가들을 가리켜 lsquo붐 세대 작가rsquo라 칭하는데 아르

헨티나의 환상문학 작가 코르타사르는 이 붐 세대 작가군

의 선구자이자 대표 주자 격인 인물이다 그러나 그 문학적

성과와 명성이 무색하게도 국내 독자들에겐 그의 이름이

아직 생소한 것이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에서는 그

의 작품이 중남미 단편 선집에나 몇 편이 번역되었을 뿐 본

격적으로 소개된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중남미 문학을 공부했고 그의 몇 안 되는 번역 작품을 인

상 깊게 읽었던 독자 입장에서 이번에 출간된 코르타사르

의 단편집『드러누운 밤』은 가뭄의 단비처럼 반가운 신간

이다

환상 문학이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J R R 톨킨 류의 판타

지소설 혹은 쥘 베른이나 아이작 아시모프 류의 SF소설을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코르타사르의 환상문학은 이들 범

주에 들어가지 않는다 코르타사르 작품에서 나타나는 환

상이란 토도로프가 정의한 바 있는 환상 그러니까 자연적

인 것과 초자연적인 것 사이의 망설임에서 발생하는 환상

에 가깝다 따라서 판타지소설의 lsquo현실과 동떨어진 환상rsquo

혹은 SF소설의 lsquo설득력 있고 현실감 있는 환상rsquo을 기대하

는 독자라면 아마 십중팔구 그의 작품을 읽고 실망할 것

이다 어쩌면 이게 무슨 환상문학이냐는 푸념을 늘어놓을

지도 모르겠다 역시 가장 좋은 것은 선입관을 버리고 책을

읽는 것이다

코르타사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lsquo모호함rsquo이다 인물이나

배경 묘사에서 제시되는 기본적인 정보도 모호하고 사건의

전개 양상이 가진 당위성도 모호하다 작품 내에서 주요한

스토리 라인을 담당하는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경계도 모

호하며 심지어는 화자의 정체마저 모호한 작품도 있다 이

런 모호함의 향연은 짙게 깔린 안개와도 같아서 독자들은

그 속에서 한 치 앞도 제대로 내다볼 수 없음은 물론이요

이미 지나간 사실조차도 자신이 맞게 인식한 것인지 확신

할 수 없을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무엇이 진짜인지

독자들의 판단을 망설이게 만드는 이런 상태야말로 코르

타사르의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는 환상이란 개념이다 독

자들은 이 환상 속에서 그저 전방을 주시하며 천천히 나아

갈 수밖에 없다

다행스럽게도 코르타사르는 독자들의 시련을 헛되게 하지

않는다 작품의 시작점 일상 세계에 우연히 침투한 lsquo비현

실적인 것rsquo은 안개 속에서 알게 모르게 자신의 지분을 늘려

나간다 그리고 작품의 종점에 다다른 독자들은 비현실이

현실이 되고 현실이 비현실이 되는 이전과는 전혀 새로운

세계와 마주할 것이다 다시 말해 필연과 이성의 법칙이 지

배하는 세계가 우연과 환상이 지배하는 세계로 변하는 것

이다 이러한 세계의 전복은 마치 여기저기 단서를 흩뿌리

고 사람들을 알쏭달쏭하게 만들었다가 결말부에서 모든

것을 폭발시키는 추리소설 혹은 반전영화를 보는 듯한 재

미를 선사한다

그렇다면 코르타사르가 이 소설들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책을 다 읽고 난 독자라면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의문점이다 코르타사르는 자신이 환상문학을 쓰는

이유를 ldquo법칙이나 원칙 혹은 인과관계나 특정한 심리 또

는 잘 그려진 지리학과 같은 체계에 의해 세상이 지배되고

있다는 것에 반대rdquo하고 ldquo우리가 잘 모르며 우리에게 잘 다

가오지 않는 새로운 질서에 관해 생각해보기 위함rdquo이라고

설명한다 짧게 말해 이 세상에 필연이란 존재하지 않으

며 자신은 그것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말이다 이

게 전부다 순문학이라면 거장의 문학이라면 이보다 더 심

오한 통찰 혹은 비판이 있을 것이란 생각에 문장 속 숨겨진

의미를 발견하고자 머리를 싸맬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조

언을 하자면 독서는 독서 그 자체로 즐기면 된다 적어도 이

책에서는 그렇다 모호함과 예상외의 전개 속에서 재미를

느끼고 코르타사르가 묘사하는 세계의 불가지(不可知)성

을 어렴풋하게나마 인식할 수 있다면 이미 그것으로 충분

하다

편집자반 11기 강귀욱

『드러누운 밤』

훌리오 꼬르따사르 지음 박병규 옮김

창비 20141124

La noche boca arribaJulio Cortazar

31

03 얼어붙은 자의식의 바다를깨뜨리고 생명을 불어넣는 책 『데미안』

데미안을 읽고 나서야 그 동안 내가 두 발 딛고 서 있던 땅이

굳고 단단한 대지가 아니라 얼어붙은 바다에 불과했음을 알

았다 데미안은 도끼를 가져와 이 꽁꽁 언 바다를 가차 없이

내리 찍었다 그리고 말했다 얼어붙은 바다를 단단한 땅인

줄 알고 사느니 그 얼음을 깨부수고 그 속에 빠져 죽기 살기

로 허우적대라고 그러면 그 속에서 너는 너 자신을 똑바로 마

주하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성장할 것이라고

주인공 싱클레어도 그를 둘러싸고 있던 세계를 깨뜨려 나가

며 성장한다 그 모든 과정은 결국 진정한 자기 자신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가 깨뜨린 가장 큰 세계는 바로 자신의 사고 체계였다 세상

을 바라보는 기존의 이분법적이던 시각 고정되고 획일화된 시

각을 버렸다 주인공은 세계 안에 심지어는 자신 안에도 선하

고 악하며 밝고 어두운 양극단의 것들이 공존함을 이해하고

두 세계를 끌어안았다 주인공은 귀와 눈을 가리던 장막을 걷

어내 버리고 세상을 바로 보게 되었다 상극인 것들의 괴리로

이루어진 이 모순된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곧 자신 안의 부조

화 또한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스스로에게 다가서는 첫 걸음

이었다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양극단의 세계 사이에서 싱

클레어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며 흔들리기를 반복했다 이

때 그에게는 삶을 지탱할 중심축이 없었다 항상 내면이 아닌

외부 세계에서 자신이 속할 자리를 찾아 헤맸다 그가 비로소

온전한 자신을 만난 순간은 어느 편으로도 치우침 없이 스스

로의 기준으로 홀로 서게 되었을 때였다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 이 길은 당신이 내면에 있는 모

순되는 두 세계 한없이 나약하고 뒷걸음치는 비열한 모습들

과 정갈하고 깨끗한 곧은 힘들을 동시에 직시하는 순간에 시

작된다 그리고 이 길은 두 세계 속에 들어가 이리저리 휩쓸리

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세계를 밟고 우뚝 올라서서 스스로

가 중심이 됨으로써 앞으로 펼쳐진다

이제 lsquo자아를 찾으라rsquo는 지루하고 흔한 이야기가 더 이상 빤

하거나 우습지 않다 묵직한 울림이 되어 나를 흔든다 그냥

나만 붙잡고 흔드는 것이라면 손사래 쳐 뿌리치겠는데 내가

밟고 있던 땅 속해 있던 세계를 뿌리째 흔들어 버린다 읽는

내내 속이 답답하고 나에게 화가 난다 그런데 이렇게 마구

혼나면서 이상하게도 후련한 구석이 있다 호통을 치는 데미

안이 사실은 우리를 응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막연

하고 무기력한 안개에 휩싸여 있을 때 데미안은 그만의 방

식으로 우리에게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준다 물론 갈 방향을

정해준다거나 각자의 사정을 듣고 상담을 해주는 것은 아니

다 오로지 궁지로 몰아세울 뿐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사람들

은 잊고 있던 lsquo나 자신rsquo을 일깨운다 아 그동안 lsquo나rsquo에 대해 생

각해본 적이 있던가 라는 정도만이라도 좋다 이 물음이 바로

여정의 시작이니까

그렇게 스스로에게 묻고 나면 더 이상 전처럼 살 수는 없기 때

문이다 아니라면 자기 자신에게 면목이 없을 것이다 이 무서

운 책이 우리를 혼내고 몰아치면서도 여전히 영원한 고전이자

필독서로 사랑 받는 이유다

lsquo우리들 속에는 모든 것을 아는 한 사람이 있다rsquo고 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혼이 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혼

이 났다는 것은 자신 안에 있는 lsquo그 사람rsquo이 말을 하기 시작했

다는 뜻이니까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목소리가 희미하

고 멀리 있다 하여도 숨죽여 귀 기울이는 일 자체가 자신에게

로 가는 과정임을 잊지 말고

편집자반 11기 배예리

『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민음사 20001220

Demian Die Geschichte von Emil

Sinclairs Jugend(1919)

31

03 얼어붙은 자의식의 바다를깨뜨리고 생명을 불어넣는 책 『데미안』

데미안을 읽고 나서야 그 동안 내가 두 발 딛고 서 있던 땅이

굳고 단단한 대지가 아니라 얼어붙은 바다에 불과했음을 알

았다 데미안은 도끼를 가져와 이 꽁꽁 언 바다를 가차 없이

내리 찍었다 그리고 말했다 얼어붙은 바다를 단단한 땅인

줄 알고 사느니 그 얼음을 깨부수고 그 속에 빠져 죽기 살기

로 허우적대라고 그러면 그 속에서 너는 너 자신을 똑바로 마

주하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성장할 것이라고

주인공 싱클레어도 그를 둘러싸고 있던 세계를 깨뜨려 나가

며 성장한다 그 모든 과정은 결국 진정한 자기 자신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가 깨뜨린 가장 큰 세계는 바로 자신의 사고 체계였다 세상

을 바라보는 기존의 이분법적이던 시각 고정되고 획일화된 시

각을 버렸다 주인공은 세계 안에 심지어는 자신 안에도 선하

고 악하며 밝고 어두운 양극단의 것들이 공존함을 이해하고

두 세계를 끌어안았다 주인공은 귀와 눈을 가리던 장막을 걷

어내 버리고 세상을 바로 보게 되었다 상극인 것들의 괴리로

이루어진 이 모순된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곧 자신 안의 부조

화 또한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스스로에게 다가서는 첫 걸음

이었다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양극단의 세계 사이에서 싱

클레어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며 흔들리기를 반복했다 이

때 그에게는 삶을 지탱할 중심축이 없었다 항상 내면이 아닌

외부 세계에서 자신이 속할 자리를 찾아 헤맸다 그가 비로소

온전한 자신을 만난 순간은 어느 편으로도 치우침 없이 스스

로의 기준으로 홀로 서게 되었을 때였다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 이 길은 당신이 내면에 있는 모

순되는 두 세계 한없이 나약하고 뒷걸음치는 비열한 모습들

과 정갈하고 깨끗한 곧은 힘들을 동시에 직시하는 순간에 시

작된다 그리고 이 길은 두 세계 속에 들어가 이리저리 휩쓸리

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세계를 밟고 우뚝 올라서서 스스로

가 중심이 됨으로써 앞으로 펼쳐진다

이제 lsquo자아를 찾으라rsquo는 지루하고 흔한 이야기가 더 이상 빤

하거나 우습지 않다 묵직한 울림이 되어 나를 흔든다 그냥

나만 붙잡고 흔드는 것이라면 손사래 쳐 뿌리치겠는데 내가

밟고 있던 땅 속해 있던 세계를 뿌리째 흔들어 버린다 읽는

내내 속이 답답하고 나에게 화가 난다 그런데 이렇게 마구

혼나면서 이상하게도 후련한 구석이 있다 호통을 치는 데미

안이 사실은 우리를 응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막연

하고 무기력한 안개에 휩싸여 있을 때 데미안은 그만의 방

식으로 우리에게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준다 물론 갈 방향을

정해준다거나 각자의 사정을 듣고 상담을 해주는 것은 아니

다 오로지 궁지로 몰아세울 뿐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사람들

은 잊고 있던 lsquo나 자신rsquo을 일깨운다 아 그동안 lsquo나rsquo에 대해 생

각해본 적이 있던가 라는 정도만이라도 좋다 이 물음이 바로

여정의 시작이니까

그렇게 스스로에게 묻고 나면 더 이상 전처럼 살 수는 없기 때

문이다 아니라면 자기 자신에게 면목이 없을 것이다 이 무서

운 책이 우리를 혼내고 몰아치면서도 여전히 영원한 고전이자

필독서로 사랑 받는 이유다

lsquo우리들 속에는 모든 것을 아는 한 사람이 있다rsquo고 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혼이 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혼

이 났다는 것은 자신 안에 있는 lsquo그 사람rsquo이 말을 하기 시작했

다는 뜻이니까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목소리가 희미하

고 멀리 있다 하여도 숨죽여 귀 기울이는 일 자체가 자신에게

로 가는 과정임을 잊지 말고

편집자반 11기 배예리

『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민음사 20001220

Demian Die Geschichte von Emil

Sinclairs Jugend(1919)

32

박세길 인터뷰

진정한 역사가는 과거에 파묻히지 않는다옥(獄)에서 옥(玉)을 만든 작가 박세길 인터뷰

박세길 저자는 처녀작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로 80년대

대표 역사서 자리를 꿰찬 분입니다 1986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감되었을 때 감옥에서 역사책을 읽으며

사회 모순에 대해 고민했고 출소하자마자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집필했습니다 정권 탄압 속에서 왜곡된

현대사를 바로 잡았다는 의미를 지닌 이 대표작은 오랫동안

고시생과 대학생들의 필독서로 꼽혔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읽은 박세길 저자의 저서는 지난 6월 출간한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입니다 기사를 쓰고 편집할 때 청년 세대를

겨냥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박세길 저자는 역시나

청년들의 미래에 큰 관심을 갖고 계셨습니다 취업을

눈앞에 둔 서울출판예비학교 학생들이 가져야 할 자세를

여쭸습니다

출판학교에서 강의하신 한 선생님은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가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와

더불어 80년대 인문학의 양대

산맥이라고 하셨습니다

책의 성공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강의

요청이 많이 들어왔어요 먹고사는

경제적인 문제도 해결됐습니다

몇 부 팔렸는지는 잘 모릅니다

출판사에서 기밀 사항이라고

하더군요 요즘은 마케팅 차원으로도

몇 쇄 몇 부인지 밝히지만 그때는

세금 문제를 피해가기 위해서인지

쉬쉬하던 시절이었나 봅니다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는 대학

선후배끼리도 많이 물려주는 책이라고

들었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의 쉬운 설명이

좋았습니다 더불어 어떤 사명감을 안고 썼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완성하기에 앞서 어떤 목표를

두셨나요

청년 세대가 외환위기 이후 집중적인 희생양으로 전락하면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드러내면서 여기에

머물지 않고 청년 세대의 잠재력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들이 역사 무대 한복판에 진출해 자기 몫을 다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습니다

역사 분야는 시장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역사 혹은 현대사가 주목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통해 얘기하자면

80년대 후반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lsquo왜곡된

역사를 바로 알자rsquo는 시각 교정의 욕구가 있었던

차에 제 책이 나름 부응했는지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시기가 적절했던 셈이죠

2012년 대선 후 역사 분야가 잠시 반짝했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금세 시들었다고

하더군요 당시 역사 분야 책들이 일반 독자가

읽기에 다소 어렵거나 출간한 지 오래된 것들

위주였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돋을세길

출판학교에서 강의하신 한 선생님은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가 유홍준 교수의

책의 성공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강의

하더군요 요즘은 마케팅 차원으로도

선후배끼리도 많이 물려주는 책이라고

역사 분야는 시장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역사 혹은 현대사가 주목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통해 얘기하자면

80년대 후반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lsquo왜곡된

역사를 바로 알자rsquo는 시각 교정의 욕구가 있었던

차에 제 책이 나름 부응했는지 큰 반향을

읽기에 다소 어렵거나 출간한 지 오래된 것들

위주였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의 저자

33

2012년 대선 후 역사 분야가 관심을 받았던 것은

보수층의 재집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한

불안 때문일까요

맞습니다 그러나 마땅한 책이 없어서 그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역사 분야에서 베스트셀러를 내기

위해서는 시기가 맞아 떨어지고 내용 또한 대중이 원하는

것을 담고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를 편집한 lsquo생각정원rsquo

출판사의 정희용 편집자에게 감사 표시를 하셨습니다

어떤 편집자를 선호하시나요

간단합니다 편집자는 철저히 독자 입장에서 독자와 작가

사이의 간극을 줄여줘야 합니다 예를 들면 어려운 내용을

과감히 생략하고 다음 기회로 미루도록 설득한다거나 좌파

운동권 색채가 너무 강한 문장을 조금 순화하는 것 등입니다

어떤 내용이 이번 책에 꼭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선택을

도와줘야 합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을 작가님께서 직접

독자들에게 홍보하신다면 카피 문구를 짧게 제시할 수

있을까요

청년 세대 희망 찾기 갑갑한 현실을 어떻게 타개할 수

있을지 그 답을 찾아보는 길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취업 후 첫발을 내디딜 서울출판예비학교 11기

학생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출판 또한 돈을 벌어야한다는 기본 전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출판계를 지켜본 결과 뭔가 소명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오래

살아남았습니다 출판학교 역대 대표 중 일부는 나와 관계가

있는 사람들인데 모두 고유한 소명의식을 갖고 출판계에

뛰어들었습니다 때로는 상업주의 안에서 재주도 부리곤

했지만 어쨌든 분야 내에서 고유한 캐릭터를 구축했습니다

출판학교 학생들이 출판 상황을 이해하고 자신을 역할을

정하는 개인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비전 중심의 경영을

하는 회사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지만 개인 비전을 기업

비전으로 나아가 사회 비전으로 접목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과거에 안주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부분을

출판계에서는 SNS 등 인터넷 환경을 통한 마케팅으로

이해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SNS망 자체에서 무엇이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건 사람과

사람이 서로 소통하고 공감하는데 필요한 도구입니다

콘텐츠 중심의 사고가 중요하고 그것이 전제되지 않을 때

SNS는 착각에 불과하며 성공할 수 없습니다 필요한 콘텐츠

중심의 사고를 가지고 철저하게 진행하지 않으면 그 공간에서

허망하게 헤엄만 칠 뿐 입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SNS에서

맥없이 헤엄치다 익사하는 경우를 볼 수 있을 겁니다

콘텐츠와 마케팅의 영역을 하나로 보는 것과 따로

보는 것 어떤 것이 독자를 위하는 것일까요

출판 마케팅은 책을 기획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에서부터

개입돼야 하고 그 과정에 독자를 참여시키는 방식을

고민해야 합니다 미국 네브래스카주립대학의 이상문

교수는 lsquo밀실 안에서의 혁신은 끝났다rsquo고 얘기합니다

개방된 체제에서 독자 곧 소비자 사용자의 참여 하에 함께

만들어갈 때 혁신은 이뤄진다고 합니다 출판사의 비전이

브랜드로 연결될 때 독자는 자발적으로 의견을 주고받고

싶어 할 겁니다

마케터반 11기 이창환

디자

인 사

공예

Page 6: 서울출판예비학교 웹진 _5호 2015

6

교정을 맡기는 것보다 술값이 더 나가겠더라고요 하지만 그렇게

술 먹고 간 독자들이 홍보를 해준다고 할까 그래서 좀 더 발전시켜

보기로 했어요 밤샘독자교정 1박 2일 동안 교정을 보는 거죠

번역자가 아침고요수목원 근처에 있는 축령산 자락에 살기에 그 집을

빌렸어요 낮에는 교정을 보고 저녁에는 번역자와 함께 고기를 구워

먹으며 번역 뒷이야기도 듣는 거죠 그때부터 교정 MT가 시작이

됐어요 그러다가 지지난달에 한 것이 낭만독자열차교정이라고 열차

안에서 교정을 보고 밤에는 펜션에 도착해 놀다 오는 거였어요 마침

한겨레 기자도 독자 교정에 참여해 기사를 써주기도 했죠 앞으로요

인천에서 제주도로 가는 크루즈가 있대요 배 안에서 교정을 보고

제주도에 도착해서 노는 그런 독자 교정 이벤트를 구상하고 있어요

올해 4월에 lsquo북amp쿡 퍼포먼스 맏물이야기rsquo를 진행하셨어요 전문

성우가 소설을 읽어주고 푸드스타일리스트가 소설 속 음식을 직접

만들어 독자가 먹어볼 수 있게 한 신선한 기획이었죠

『맏물이야기』가 요리에 관한 책이어서 처음에는 독자들을 불러서

요리를 시켜야겠다고 생각했죠 늘 그렇듯 처음에는 소박했어요

이 책에 나오는 요리를 직접 하게 해서 독자에게 먹여야겠다 혹은

사진을 찍게 해야겠다 그런데 은근히 어려운 거야 에도 시대의

음식 맛이 나리라는 보장도 없고 그래서 푸드스타일리스트에게

의뢰를 했죠 의뢰하면 비싸다 보니 그냥 진행하기에는 아쉽고 판을

키우자 싶었죠 그러다 낭독할 성우까지 붙은 거고 선착순 200명

한정이었기에 오지 못한 독자들이 아쉬워하더라고요 텍스트에

머물지 않고 공연을 통해 시각 청각을 넘어서 후각으로도 독자들과

소통할 수 있었어요 책의 확장성을 보여준 신선한 행사였다는 평도

들었죠

북스피어는 장르문학만 출간하지만 그동안 진행해온 라디오

프 로 그 램 을 보 면 다 양 한 분 야 의 독 서 를 하 시 는 것 같 아 요

개인적으로는 어떤 분야의 책을 주로 읽으시나요

장르문학이요 내 분야에서 전문가 행세를 해야 해요 왜냐하면 내가

이 분야 책을 내니까 끊임없이 읽어야 해요 그래야 끊임없이 얘기할

수 있지 잘난 척하는 거 정말 중요해요

그렇다면 추천해 주실 만한 책이 있으신가요

최 근 에 『 마 션 ( M a r t i a n ) 』 을 재 미 있 게 읽 었 어 요 화 성 에

갔다가주인공만 빼고 다 귀향하게 되자 주인공 마크 와트니가

화성의 토양으로 감자를 재배해요 그걸 읽고 감자를 한 박스 샀죠

갑자기 먹고 싶어서요 10월 8일에 영화로도 개봉되는데 꽤나 흥행할

것 같아요 앤디 위어의 처녀작인데도 줄거리가 탄탄하거든요

작은 출판사가 출판계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방법이 있을까요

가급적이면 한 분야를 해야죠 김밥천국보다는 돈까스 전문점이

사람 모으기는 더 쉬워요 장사라는 것은 독특한 무언가가 있어야

해요 그동안 수많은 김밥천국이 사라져온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한

분야에서 독보적인 존재가 되는 것도 방법이에요 그런 존재가 되고

나면 독자들에게 알릴 lsquo채널rsquo이 있어야죠 그게 다일 것 같은데요

사실은 lsquo그 정도rsquo조차 정말 어렵죠

맏물 이야기 북amp쿡 퍼포먼스 포스터(좌)와 행사에서 재현된 소설 속에 나오는 음식(우) 김홍민 대표의 저서

7

마지막으로 서울출판예비학교 학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망설임 없이) 외국어를 해라 정말 강조하고 싶네요 외국어를 뭐든

하나는 확실하게 해야 해요 또 글을 잘 써야 해요 저자만큼 저자가

lsquo에이 편집자 주제에 뭘 그리 잘 써rsquo라고 할 정도로 잘 써야 해요

글쓰기 연습을 매일매일 하세요 요즘은 환경이 좋잖아요 페이스북에

매일 끼적이기만 해도 실력이 늘어요 글 잘 쓰고 외국어 잘한다

프리패스예요 어느 출판사든 들어간다 어디든

편집자반 11기 김수진

잠깐만 우리 새우치킨 하나 먹을까

(바로 전화한다) 두 마리요 새우치킨 한

마리랑 양념치킨으로요

(주소를 말하지 않는다) 주소가 저장되어

있으신가 봐요

그럼요 lsquo또 전화하셨군요 오늘은 어쩐

일로 두 마리세요rsquo 이렇게 받아요

마포 김 사장

웹진팀

마포 김 사장

웹진팀

마포 김 사장

기발한 와우북페스티벌 상품들

북스피어 출간 도서 저자 일러스트가 들어간 과자 패키지(좌)와 파본된 책을 한 장(章)씩 분권 해서

500원에 파는 상품(우)

2015 와우북페스티벌 르 지라시 특별판

8

7인 7色 분투기

20150921 월요일 d-25

교육발표회 TF팀 발족 시작이 좋다

9월 21일 월요일 401호에서 교육발표회 태스크포스(task

force)팀(이하 TF팀)의 첫 번째 회의를 시작했다 반 친구들의 투표로

얼떨결에 TF팀의 일원이 되어서 처음에는 부담감을 느꼈지만

한편으론 우리의 성과를 발표하는 자리를 직접 꾸려간다는 것이

기대되었다 첫 만남에는 마케터반 디자인반 사람들과 얼굴을

익히고 가벼운 농담과 함께 분위기를 즐겼다 아직은 어떻게 계획을

짜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지만 그만큼 긴장감을 갖고 열띤 토론을

했다

먼저 공간 구성을 토의했는데 각 반에 할당된 공간은 각 반에

일임하기로 했다 지하 1층은 편집자반과 마케터반이 사용하고

지하 로비부터 계단 외벽은 디자인반의 작품을 전시한다 1층에는

안내소를 설치하고 안내팀을 배치할 것이다 마케터반은 면접실로

사용할 예정이고 디자인반은 전시실로 편집자반은 대기실로

사용할 것이다

두 번째로 홍보에 관해 토의했는데 편집자반의 김종민을

팀장으로 하는 별도의 홍보팀을 꾸렸다 홍보 문구는 10월 2일까지

취합하기로 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포스터를 제작하면 된다 홍보

영상이나 카드 팸플릿을 만들기로 한 안건도 추후 논의하기로 했다

아이디어들이 모아져 하나의 그림이 완성되어가는 듯 했다 점차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던 틀이 잡히면서 그 공간을 하나씩 채워가는

우리를 보고 스스로 대견스러웠다 아직도 걱정되는 일들이 많지만

지금과 같은 패기와 열정으로 준비한다면 잘 마무리 해낼 수 있다고

믿는다 시작이 좋다

편집자반 11기 남민희

20150925 금요일 D-21

두 마리 토끼 잡기 교육발표회 자료집 만들기

9월 초 디자인반에서 세 명의 팀원으로 교육발표회 자료집

담당 팀이 꾸려졌다 교육발표회 자료집은 6개월 동안의 교육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책자로 편집자반 마케터반

학우들의 자기소개서와 디자인반 학우들의 작품이 실린다 디자인

반은 판면을 디자인하고 원고를 받아 책으로 묶는 작업을 맡았다

가장 먼저 수행한 일은 편집자반과 마케터반 학우들의 글이 담길

텍스트 위주의 판면을 잡는 일이었다 40명 이상 인원의 글이 실리는

만큼 반복적으로 보기에 부담이 없어야 하고 변화를 주어 지루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편집자반과 마케터반의 페이지를

마무리한 뒤에는 디자인반의 포트폴리오 작업으로 이어졌다

디자인반의 판면에서 중요한 것은 각자의 성향을 잘 담을 수 있도록

전집 위주 본문 위주 단행본 위주의 세 가지 사항에 따라 판면을

잡는 일이었다 이러한 큰 산을 넘고 나니 정해진 양식에 맞춰

축사와 연혁 교육과정 소개 페이지를 완성하고 각 반을 상징하는

색을 살린 간결한 표지를 만드는 것은 무리 없이 진행되었다

자료집 팀원들은 자신의 포트폴리오와 병행해야 하는 압박감과

6개월간 우리의 행로를 담아내는 작업인 만큼 실수가 없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으나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계획을

꼼꼼하게 세워 차근차근 진행해 나갔다 또한 다른 학우들이 시간

약속을 잘 지켜주었기 때문에 촉박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차질 없이

마무리할 수 있었다 자료집을 만든다는 것은 디자인반으로서는

작업을 정리함과 동시에 모든 학우들이 자신의 학교생활을 마무리

짓는 일로 소중한 경험이었다

디자인반 11기 홍기화

20151001 목 요일d-15

걱정도 병인 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오늘은 발표회 편집자반 공간을 꾸밀 물품을 사러 가는 날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추석 연휴를 보내서 그런지 등교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할 일은 산더미인데 그저 막막하기만 했다 그래도

오전부터 교육발표회 준비 팀장인 종민이가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것 같아 다행이다 종민이가 좀 힘들어 보이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난 그저 시키는 대로 따라가고 옆에서 도와주면 될 것 같다 뭐가

됐든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는 언제나 어렵고 외롭다

각 조의 콘셉트가 정해지고 필요한 물품의 목록이 정리됐다 10만

원 정도만 지원해준다고 한 것 같은데 다들 뭐가 이리 살 게 많은지

사무국에서 다 사줄지 모르겠다 (우리 조도 살 게 꽤 많은 것

날보러와

디자

인 사

공예

교육발표회 준비취재

9

같았는데hellip) 한 시간 동안 호미화방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필요한

물품을 샀다 그런 와중에 혹시 빼먹은 건 없는지 예산이 부족하진

않을지 걱정이 들었다

교육 과정 내내 걱정하고 고민하고 불안해한 것 같다 마음 편하게

생각하라는 말을 친구들에게 줄곧 들은 것 같은데 할 수 없다 내가

원체 이렇게 생겨 먹은 걸 이제 발표회까지 남은 시간은 정확히

보름 우리가 보낸 6개월을 4시간 동안 보여주는 행사다 이 행사가

전부는 아니지만 그래도 24명 모두에게 아니 11기 출판학교 교육생

모두에게 주어진 마지막 과제다 lsquo혼자 하는 것도 아닌데 걱정만

하지 말고 차근차근 준비하면 되겠지rsquo 하면서도 걱정이 앞선다 진짜

이것도 병이다

편집자반 11기 권오권

20151008 목요일 D-8

가을 나들이 같은 인터뷰

내가 인터뷰 팀이라니 게다가 팀장이라니 누구 마음대로 이건

음모라고 구시렁대며 일정을 짠다 수료 때까지 감투 안 쓰는 게

목표였는데 망했다고 말하며 멘트를 고민한다 그래 사실은 즐겼다

어차피 할 일 없으니 잡배마냥 학우들에게 치근대며 시간 보냈을

터였다 그럴 바에야 나들이 간다 치고 즐기는 편이 나았다 날씨는

또 얼마나 좋은가 투덜댔지만 가벼운 걸음이었다

지금까지 교육 과정 내에서 강의 또는 특강으로 만났던 많은 분들을

카메라로 담았다 대부분 직접 회사로 방문했기 때문에 다양한

사무실을 보는 것도 재미였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강의 때보다 더

진하고 선명하게 한분 한분을 볼 수 있었다 그들도 마찬가지였을까

본인에게는 일상인 세계를 동경한다면서 비집고 들어오려는 우리를

보는 우려와 격려 섞인 눈빛에서 ldquo너희도 이거 하려고 아이고 힘들

텐데 부디 잘 해나갔으면 좋겠네rdquo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아름답다

감사하다

시시덕거리며 돌아오는 길에 생각한다 앞으로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이 가을 이 마음의 우리가 그리울 건 알겠다 벌써부터

아릿하다 역시 인터뷰 괜히 했다 귀찮아 죽겠다 진짜

편집자반 11기 김상흔

20151009 금요일 D-7

교육발표회를 홍보하라 티저 포스터 만들기

드디어 6개월의 과정이 끝나가고 있었다 우리를 보여 줄 마지막

기회인 교육발표회를 앞두고 TF팀은 lsquo홍보rsquo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꼭 보러 와달라는 메시지를 어떻게 하면 잘 전달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 끝에 lsquo티저 광고rsquo를 제작하기로 결정했다 CF나 기타 광고에서

활발하게 활용되는 서서히 베일을 벗어가며 호기심을 자극하는

광고 기법 말이다 우리의 타깃은 대중이 아닌 출판계라 처음엔

lsquo이런 홍보를 과연 좋아하실까rsquo 하는 의구심이 앞섰다 하지만

회의를 거듭하며 아이디어를 잘 뽑아내고 두 반이 협력한다면

효과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케터반 편집자반 학생들의 문구들을 취합해 투표로 가장

적합한 것을 뽑았다 1등은 정혜림 학우의 lsquo북쪽으로 가라 귀인을

만난다 BOOK쪽으로 오라 귀인을 얻는다rsquo가 차지했다 lsquo북쪽rsquo이라는

방향표현을 lsquoBOOKrsquo으로 바꾼 게 참신하고 재밌어 모두의 공감을

얻었다 2등은 김수경 학우의 lsquo내가 동네북이니 응 SBI 동네북

페스티벌rsquo이 뽑혔다 평소에도 재미있는 말투로 늘 주변을 웃게

만드는데 그 재기발랄함이 묻어나는 문구였다 3등으로 뽑힌

유보미 학우의 lsquo날 떠난 후 너는 행복하니 내 인생 책임져 책책책

책임져rsquo는 아쉽게 광고에는 쓰이지 않았지만 시선을 끄는 기발한

문구였다 이 외에도 lsquo책 잡힐 일 하지마라 책 잡을 일 해라rsquo lsquo갈피를

못 잡을 땐 책갈피rsquo 등 재밌는 문구들이 많았다

전부 광고에 쓰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라 12등 문구를

멋지게 디자인하기로 했다 디자인에 대한 의견을 반 친구들과

나누며 포스터들을 직접 디자인했다 서로 의견이 맞지 않기도 하는

등 고단할 때도 있었지만 많은 분들이 우리를 보러 와주신다면 모든

고생이 잊힐 것이다 제발 그랬으면 한다

편집자반 11기 박혜원

10

20151012 월요일 D-4

수많은 이름들을 위하여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난리다 난리 우리 반이 이렇게 시끄럽고

활기찬 적이 있었던가 자타공인 조용하다던 편집자반 학우들은

어디로 가고 요 며칠 온통 돌아다니거나 무언가를 만드느라

고군분투하는 풍경들과 마주하고 있다 나쁘지 않은 아침이다

그 동안 우리는 직책의 기근()에 익숙해져 있었다 반장 부반장

조장의 휘하에서 맡은 바를 다하며 펠로우십을 뽐내고 있던

우리에게 갑자기 수많은 이름들이 떠맡겨졌다 누군가는 TF팀이

되고 누군가는 홍보 팀장이 되었으며 누군가는 인터뷰 팀장이라는

직책을 맡았다 그런가 하면 건축학을 전공한 학우는 공간 배치를

구상하는 역할을 맡고 누군가는 가을 단풍을 모티프로 해서

편집자반 전체의 부스를 꾸미고 있다 그뿐이랴 각 동아리의

장(長)들은 동아리 부스를 만들랴 그 동안의 활동을 책으로 만들기

위해 인디자인 작업에 몰두하랴 정신이 없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웅장하게 꾸며질 조별 부스를 살펴보면 아마도 입이

떡 벌어질 것이다 각 조는 워크숍으로 만든 자신들의 책에 맞춰

콘셉트를 잡았다

편집자반 lsquo윌비rsquo 조는 『창업 자금 날려먹지 않는 법』에 맞게

카페처럼 부스를 꾸미기로 했다 거대한 간판도 이미 완성되었고

맛있는 커피도 만든다고 하니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lsquo길목rsquo 조는 『서태후 비사』의 내용에 따라 서태후가 좋아했던

벚꽃으로 부스를 장식한다 게다가 한 켠에는 『서태후

비사』전자책과 예쁜 책갈피까지 마련되어 있을 것이다

lsquo달로rsquo 조는 『사이의 거리』의 표지에도 실 그림이 들어간 것에 맞춰

실을 이용하고 있다 특히 실로 lsquo사이의 거리rsquo 글자를 만들었을

때에는 학우들 모두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어떻게 실로 글자를

만들 수 있었는지 많은 분들이 와서 봐주시면 좋겠다

lsquo세모북스rsquo 조는 강명관 잡문집인 『허울 좋은 나라』를 만들었다

시대상과 일상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lsquo사진rsquo에 착안해 옛날

사진관처럼 부스를 꾸미고 있다 흑백 사진과 손글씨가 고즈넉한

멋을 더할 것이다 돌림판 이벤트도 있을 예정이다

편집자반 11기 이상화

2015101 목요일 D- 15

lsquo정rsquo이 있어 lsquo반rsquo을 찾아 lsquo합rsquo을 보니 마케터더라

lsquo차별성이 있어야 한다rsquo

책의 차별성을 찾았던 6개월 그리고 6개월 간의 경험을 토대로

lsquo차별성이 있는 마케터반의 발표회rsquo를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각

조의 조장들과 발표회 테스크포스 팀원이 머리를 맞댔다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lsquo책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그렇다고 너무 책에

집중하지 말자rsquo였다 마치 lsquo정rsquo과 lsquo반rsquo을 통해 lsquo합rsquo을 만들어내는

과정이었다 세상에 이마저 변증법적 접근이라니 그러나 우리가

누구인가 책이라는 물성에 가치의 효용을 불어넣는 우리가

아니던가 분명 발표회에도 그와 비등한 가치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전체 콘셉트은 lsquo북북 쓰는 마케팅rsquo으로 각 조를 하나의 챕터로

삼았다 즉 개성이 뚜렷한 5개의 챕터로 이루어진 lsquo마케팅 북rsquo인

것이다 그리고 각 챕터는 lsquo마케팅이란rsquo이라는 소주제를 부여하여

각 조의 교육과정과 보여주고 싶은 것들을 자유롭게 보여주기로

했다

이제 정이 끝났으니 반을 제시할 차례 lsquo반rsquo으로 lsquo소책자rsquo와 lsquo상품rsquo를

선택했다 소책자는 그저 소개하는 글만을 넣지 않고 lsquo스탬프

여행rsquo의 컨셉을 빌려 꾸미기로 했다 각 조의 부스를 돌아볼 수 있는

장치로 충분한 역할을 할 것이다 상품은 lsquo책rsquo에 대한 행운을 줄 수

있는 lsquo무언가rsquo를 준비하기로 했는데 지금 당장 밝히기는 쉽지 않은

lsquo무언가rsquo를 준비할 것이다 (기대되시지요)

이제 합이다 합은 발표회 당일 분명 lsquo정rsquo과 lsquo반rsquo의 효과가 나타날

것이며 어느 때의 발표회보다 멋질 것이다 (라고 근자감을

부려본다) 곧 시작될 발표회 기대하시라

마케터반 11기 이장열

11

1212

설왕설래

『호밀밭의 파수꾼』의 결말이

궁금해서 견딜 수 없다면

세 반 학우들의 상상력을 동원한 우리들의 릴레이 세

나에 대해 듣고 싶다면 내가 어디서 태어났는지 어린

시절이 얼마나 형편없었는지 내 부모님이 무슨 직업을

가지고 있는지 내가 태어나기 전에 무슨 일들이 있었는

지 같은 데이비드 코퍼필드 식의 헛소리가 듣고 싶겠지

하지만 난 그딴 이야기 하고 싶지 않아 (JD 샐린저 『호

밀밭의 파수꾼』

내 속으로 지나가지만 어쨌든 내 것이 아닌 섬광을 내

가 앉았던 내가 읽었던 생을 한순간에 으스러뜨리는

섬광을 이야기하고 싶어 이창환

아니 잠깐 내가 뭔 병신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

지 내일 서울출판예비학교 면접 있어서 빨리 자야 하

는데hellip 공태준

어서 잠에 들어야 한다는 조급함이 커질수록 허기 또

한 함께 치밀어 올랐다 결국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파

스타 면을 삶는 시간 8분 (그 동안엔 냉장고의 한 쪽

에 남아있던 산토리 한 캔을 단숨에 들이켜야 했다)

음악은 야나체크의 산포니에타 김사룡

맥주 한 캔으로 살짝 취기가 돌자 술이 더 마시고 싶었

다 결국 소주 한 병을 꺼내어 마시며 적당히 삶아진 파

스타 면을 올리브유에 볶았다 내일 입을 정장치마가

끼지 않을까 걱정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엎질러진 물

인걸 최다은

침대에 누워 억지로 잠을 청해본다 잡념이 사라지지

않는다 고민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된다 젠장 벌

써 새벽 3시 자긴 글렀네hellip 그렇게 뒤척이다 날은 밝았

다 이다혜

밝아진 창밖을 보며 어젯밤 나를 뒤척이게 한 면접을

떠올렸다 어제만 해도 중요한 일이라 생각했는데 날

이 밝으니 이미 그 중요성은 나와 멀어진 느낌이다 의

무감에 옷을 챙겨입고 집을 나섰다 양화대교를 건너는

버스 안 새로운 계획이 떠올랐다 황하정

새로운 계획으로 들뜬 나에게 창밖의 풍경이 눈에 들어

온다 수많은 사람과 차량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

어진다 다른 듯 보이지만 얼굴을 장식한 특유의 무표

정함과 발등에 불이 떨어진 듯 바삐 움직이는 모습 속

에 내가 겹쳐 보인다 그래 이번 계획은 나에게 얼마

동안의 기대감을 선사해 줄 수 있을까 뭐 어때 잠깐

이라도 좋다 쓸데없는 잡념보다는 시한부 희망이 차라

리 낫다며 애써 위로한다 유수지

순간 어렴풋한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니 내 또

래의 남자가 거북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김단희

그의 혐오에 가까운 시선과 마주쳤을 때 나는 순간 얼

어버렸다 면접 장소에 가기 위해선 이번 정류장에서 내

렸어야만 했다 그러나 나에게 다가오는 그 남자 때문

에 그러지 못했다 남자가 말했다 김선아

ldquo너였구나 그래 너였어 3년 전 3만원을 빌리고 도망

간 김말숙이 그래 너야rdquo

그 남자는 미친 게 분명했다 lsquo잠깐 이 관능적인 머스

크 향은 뭐지rsquo 순간 뇌리를 스치는 불가리 향수는

그 남자를 떠올리게 했다 지독하게 얼굴을 기억하지

못했던 그 남자를 말이다 이장열

대학교 1학년 설레는 마음으로 나간 첫 번째 미팅을

내 인생 최악의 시간으로 만들었던 lsquo불가리 그놈rsquo이었

lsquo젠장 이 안면 인식 장애놈이 내 얼굴을 어떻게 기억하

는 거지rsquo 내 이름이 김말숙이든 아니든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내 얼굴을 기억한다는 것이 의아할 뿐

양화대교 위에서 떠오른 새로운 계획 그래 지금부터

시작이다 오늘 하루는 lsquo나rsquo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 살

아보는 거야

난 매섭게 치뜬 눈으로 나를 응시하는 그를 뒤로하고

소설의 첫 문장으로 시작하는 릴레이 소설

13

무심히 다음 역에서 내렸다 아무런 동요 없이 발걸음

을 옮기는 나를 보고는 그도 무안한지 이내 제자리로

돌아가는 듯했다 이상한 사람 나는 계속해 나의 목적

지를 향해 걸어갔다

결국 지각했다 면접은 진행 중이었다 이게 다 불가리

때문이다 불가리 냄새가 몸에 밴 것 같다 아니 불가

리 냄새는 내 옆에서 나고 있었다 내 옆에는 불가리가

앉아 있었다 부처님의 손가락을 본 손오공의 심정이

이러했을까 강귀욱

끔찍했다 냄새도 면접도

lsquo젠장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야rsquo

담배에 불을 붙여 한 모금 깊게 빤다 lsquo후-rsquo 치미는 화

도 잡념도 불안도 이 연기처럼 쉬이 사라져버리면 좋

으련만 무의미한 푸념만이 입 안에 맴돈다

ldquo김말숙~ 여기 있었냐rdquo 그 말에 얼마나 놀랐냐면 떨

어진 담뱃불이 내 정장치마를 태우고 있는 줄도 몰랐을

정도였다 lsquo불가리 그놈을 피해 골목까지 들어왔는데

여긴 어떻게 찾은거야rsquo

ldquo밥 먹을래rdquo lsquo꺼져 꺼져 제발 꺼져helliprsquo 못 들은 척 고

개를 돌렸다

ldquo소달구지라고 괜찮은 식당 있는데 같이 가면 그 3만

원 없던 걸로 해줄게rdquo

우리는 눈이 마주쳤다 김영준

해질 무렵 서서히 불이 들어오는 보고 있어도 언제 밝

아졌는지 알 수 없는 양화대교 위 가로등처럼 우리는

천천히 그러나 깊게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새카

만 흑암의 공간 무저갱 같이 깊고 검은 눈동자 속에

숨겨 놓은 비밀을 알아내기라도 하려는 듯 그렇게 서

로의 눈을 망막 너머의 시신경을 시신경을 타고 올라

가 전두엽 어딘가에서 터지고 있을 스파크를 계속 들여

다보았다 이윽고 두 남녀의 입이 열렸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낮은 목소리가 화음을 내며 울려 퍼

졌다 ldquo몽마르뜨가 좋겠어rdquo 권오권

끔찍했던 면접과 기분 나쁜 불가리놈의 얼굴이 잊힐 정

도로 음식의 맛은 정말 좋았다 고작 음식 때문에 기분

이 나아지는 내 자신에게 정말 어이가 없었지만 어쨌

든 맛은 좋았다 된장국으로 숟가락을 옮기며 슬쩍 앞

의 녀석 얼굴을 쳐다보았을 때 그 녀석도 나를 쳐다보

고 있었다 김희연

3년 전의 얼굴과 꽤 변해있었다 그 당시 철없는 어린

애 같은 얼굴이었는데 지금은 사회인이 되려고 꾸며댄

듯한 모습 물론 3년 전보다 더 나아졌다거나 잘생겨진

것은 아니다 전보다 훨씬 평범한 얼굴이다 ()

그런 그는 어째서 날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어째서 날

기억하고 다가와서 말을 걸고 함께 식사까지 하려 하

는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이 텅 빈 머릿속을 메

운다 엄청나게 망쳐 버린 하루지만 이상하리만큼 멀

쩡한 내가 낯설다 김하얀

그러다 내가 집에 돌아가는 길 문득 미니스톱에 담배

를 사러 들렀다가 ldquo여기 국산담배밖에 없는helliprdquo 음hellip

없단다 가뜩이나 기분도 꿀꿀한데 없다니 빵만 사서

나왔다

빵을 사서 가는 길에 낯익은 얼굴에 걸음을 멈추었다

ldquo너 혼자 빵 먹냐 나도 같이 먹자rdquo 불가리 그놈이었

다 ldquo혹시 너 나 따라온 거야rdquo 기가 막혔다 백가은

어쩐지 불가리 향수 냄새가 난다 했다 ldquo왜 따라왔어rdquo

그랬더니 불가리 그놈이 하는 말

ldquo난 내 집 가는 건데rdquo 믿을 수 없다 수상쩍다 그놈은

나를 앞질러 가더니 우리 집 주인 아줌마네 집으로 들

어가 버렸다 아 저 놈이 집주인 아줌마 아들놈인가

월세 밀렸는데 망할

망할 이상한 하루였다 잊자 오늘 일은 전부 다 잊어

버려야지 방으로 들어오기 직전에 산 맥주 한 캔의 뚜

껑을 따고 들이킨다 캬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가는 듯

시원하다 씻고 자리에 눕는 순간 면접 결과가 나올 때

까지 무엇을 하고 있어야 할지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TO BE CONTINUEDhellip

은 익명 표시입니다

13

무심히 다음 역에서 내렸다 아무런 동요 없이 발걸음

을 옮기는 나를 보고는 그도 무안한지 이내 제자리로

돌아가는 듯했다 이상한 사람 나는 계속해 나의 목적

지를 향해 걸어갔다

결국 지각했다 면접은 진행 중이었다 이게 다 불가리

때문이다 불가리 냄새가 몸에 밴 것 같다 아니 불가

리 냄새는 내 옆에서 나고 있었다 내 옆에는 불가리가

앉아 있었다 부처님의 손가락을 본 손오공의 심정이

이러했을까 강귀욱

끔찍했다 냄새도 면접도

lsquo젠장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야rsquo

담배에 불을 붙여 한 모금 깊게 빤다 lsquo후-rsquo 치미는 화

도 잡념도 불안도 이 연기처럼 쉬이 사라져버리면 좋

으련만 무의미한 푸념만이 입 안에 맴돈다

ldquo김말숙~ 여기 있었냐rdquo 그 말에 얼마나 놀랐냐면 떨

어진 담뱃불이 내 정장치마를 태우고 있는 줄도 몰랐을

정도였다 lsquo불가리 그놈을 피해 골목까지 들어왔는데

여긴 어떻게 찾은거야rsquo

ldquo밥 먹을래rdquo lsquo꺼져 꺼져 제발 꺼져helliprsquo 못 들은 척 고

개를 돌렸다

ldquo소달구지라고 괜찮은 식당 있는데 같이 가면 그 3만

원 없던 걸로 해줄게rdquo

우리는 눈이 마주쳤다 김영준

해질 무렵 서서히 불이 들어오는 보고 있어도 언제 밝

아졌는지 알 수 없는 양화대교 위 가로등처럼 우리는

천천히 그러나 깊게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새카

만 흑암의 공간 무저갱 같이 깊고 검은 눈동자 속에

숨겨 놓은 비밀을 알아내기라도 하려는 듯 그렇게 서

로의 눈을 망막 너머의 시신경을 시신경을 타고 올라

가 전두엽 어딘가에서 터지고 있을 스파크를 계속 들여

다보았다 이윽고 두 남녀의 입이 열렸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낮은 목소리가 화음을 내며 울려 퍼

졌다 ldquo몽마르뜨가 좋겠어rdquo 권오권

끔찍했던 면접과 기분 나쁜 불가리놈의 얼굴이 잊힐 정

도로 음식의 맛은 정말 좋았다 고작 음식 때문에 기분

이 나아지는 내 자신에게 정말 어이가 없었지만 어쨌

든 맛은 좋았다 된장국으로 숟가락을 옮기며 슬쩍 앞

의 녀석 얼굴을 쳐다보았을 때 그 녀석도 나를 쳐다보

고 있었다 김희연

3년 전의 얼굴과 꽤 변해있었다 그 당시 철없는 어린

애 같은 얼굴이었는데 지금은 사회인이 되려고 꾸며댄

듯한 모습 물론 3년 전보다 더 나아졌다거나 잘생겨진

것은 아니다 전보다 훨씬 평범한 얼굴이다 ()

그런 그는 어째서 날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어째서 날

기억하고 다가와서 말을 걸고 함께 식사까지 하려 하

는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이 텅 빈 머릿속을 메

운다 엄청나게 망쳐 버린 하루지만 이상하리만큼 멀

쩡한 내가 낯설다 김하얀

그러다 내가 집에 돌아가는 길 문득 미니스톱에 담배

를 사러 들렀다가 ldquo여기 국산담배밖에 없는helliprdquo 음hellip

없단다 가뜩이나 기분도 꿀꿀한데 없다니 빵만 사서

나왔다

빵을 사서 가는 길에 낯익은 얼굴에 걸음을 멈추었다

ldquo너 혼자 빵 먹냐 나도 같이 먹자rdquo 불가리 그놈이었

다 ldquo혹시 너 나 따라온 거야rdquo 기가 막혔다 백가은

어쩐지 불가리 향수 냄새가 난다 했다 ldquo왜 따라왔어rdquo

그랬더니 불가리 그놈이 하는 말

ldquo난 내 집 가는 건데rdquo 믿을 수 없다 수상쩍다 그놈은

나를 앞질러 가더니 우리 집 주인 아줌마네 집으로 들

어가 버렸다 아 저 놈이 집주인 아줌마 아들놈인가

월세 밀렸는데 망할

망할 이상한 하루였다 잊자 오늘 일은 전부 다 잊어

버려야지 방으로 들어오기 직전에 산 맥주 한 캔의 뚜

껑을 따고 들이킨다 캬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가는 듯

시원하다 씻고 자리에 눕는 순간 면접 결과가 나올 때

까지 무엇을 하고 있어야 할지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TO BE CONTINUEDhellip

은 익명 표시입니다

14

이옥란 선생님

캡틴 오 마이 캡틴(captain oh my captain)선생님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

편집자반 학우들은 늘 이분의 얼굴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며

끝마친다 몇 번의 마주침은 덤이다 그분은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도 가깝지만은 않았던 편집자반의 담임 교수

이옥란 선생님 자신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우리를 위한

이야기를 풀어놓으시느라 매일 종례시간이 부족하신 이옥란

선생님께 이번엔 우리가 물었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 일상을 어떻게 보내고 계신가요 선생님의

주말이 취향이 추억이 삶이 궁금하다 편집자반 학생들에게

직접 받은 질문들로 lsquo한 사람rsquo에게 궁금한 것들을 물었다

이 인터뷰를 읽은 뒤 그녀를 한층 좋아하게 되리라고

확신한다

왜 디토 커피에 자주 가시나요

커피가 제일 맛있고 값이 싸고

넓은 창으로 햇빛이 많이 들어와

그리고 주인장들이 공간은 물론이고

손님들과도 잘 어우러지는 것 같아

옥란 선생님께 스카프란

어느 날 발견한 패션 아이템 몇 년 전인가

홍대 앞 가판대에서 우연히 마 레이온 합성의

보라색 스카프를 발견한 이후인 것 같아

왜 고양이를 좋아하시나요 고양이를 키우시나요

고양이가 나를 키웠다고 할 수 있지 시골집 막내였는데

고양이가 친구가 되어주었어 (선생님이 고양이를 닮아

가시는 것 같아요 혹시 키우세요) 둘 있는데 13년쯤 되었나

최근에 읽었거나 읽고 계신 책은

이익섭 저의 『국어학개설』 『말과 사물』 『좌파는

어디에 있었는가』 『논어』 『번역어의 성립』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등 여러 권 들고 다니면서 돌려본다

(국어학개설은 읽는다기보다 공부 아닐까요) 아니야

재미있어

인생의 책을 꼽자면

김훈의 『남한산성』 표지가 핫핑크 색이야 건조하고 힘

있는 남성적인 문체의 마초라고 불리기까지 하는 작가의

책이 핑크색이라니 크기도 아마 46판에 더스트 커버(dust

cover)는 질긴 천의 느낌이고 본문은 재생지인지 무겁지

않고 두께도 딱 손에 잡히는 정도 감각까지 장악한 책이야

몇 권 사서 주변 사람들에게 돌렸어

선생님의 멘토는

이런 질문에 답하게 될 줄은 몰랐네 글쎄 그러고 보면

존경스러운 사람은 있었지 대학 때 문학 동아리 선배였어

양상현 형 (어떤 점이 제일 존경스러우셨어요) 자유롭게

사는 사람이었던 것 얼마 전에 돌아가셨어 이제 조금

실감이 나네 그분은 건축 전공에 시를 쓰고 음악을

즐기고 노는 문화를 나누고hellip 어떤 사태도 회피하지 않고

자유로웠던 사람이었지 앞으로 할 일이 더 많았을 터인데

양상현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졸업 동대학원

박사학위 2002년 대한민국건축대전

초대작가 선정 순천향대 건축학과

교수 재직 민족건축인협의회

의장 설계 작품으로는 lsquo장암리

주택rsquo lsquo녹촌리 조각가의 집rsquo 등

대표 저서『거꾸로 읽는 도시

뒤집어 보는 건축』 2015년

8월 14일 별세

졸업 후 편집자로 일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우리 때는 노동운동이나 농민운동을

했던 대학생이 사회과학 출판사로

진출하는 경우가 많았고 내 친구도 졸업을 해서

출판사에 있었어 그 녀석이 나를 사무실로

초대했는데 반지하도 아니고 그냥 지하였던 것

같아 ldquo옥란이 이리와 봐 이게 뭔지 아니 바로

매킨토시라는 거야 이게 얼마짜린지 아니rdquo

매킨토시 컬러 클래식(Macintosh Color Classic)

웬만한 공책보다 좀 클까 본체가 화면에 같이

붙어 있는 하드웨어를 가진 컴퓨터였지 친구 말로는

300~400만 원 한다고 했어 20년 전이니 당시로는

큰돈이지 교정지를 보여주더니 마치 lsquo음 너는 아직 이런 거

모르지rsquo라고 하는 듯이 ldquo잠깐만 언니가 뭐 좀 할 테니까

잠깐 기다려봐 하hellip 이거 띄어쓰기 어떻게 해야 하려나 이게

전문용어라 통일을 해줘야 하는데helliprdquo 하던 잘난 척이 기억이

나네 그렇게 출판사를 접했지 문학 동아리를 하느라 알게

된 선생님들 선배님들도 여럿 출판사에들 계셨어

편집자로 일하셨을 때 어떤 분야를

편집하셨나요

하다 보니 주로 예술 서양 미술 분야였고

출판사는 학고재 예경 마로니에북스까지

그런 기회가 나한테 왔고 재미있었어

전공이 그쪽이 아니었기 때문에 공부를

해야 했지

지난 서울출판예비학교생활 중 특별히

기억나는 사람이나 사건이 있다면

8기 졸업식 날 남학생 셋이 ldquo저는 출판학교에

와서 모든 것을 얻었습니다rdquo 그러면서 흑흑 우는 거야

누군지 얘기하면 창피하겠지 남학생들이 울어서 애들이

알고싶어 편집자반

15

완전 눈물 바다였잖아 (우리 반 오빠들이 운다는 건 상상할

수 없네요) 다음 해에는 애들이 완전 유머 코드여서 웃다

끝났지

출판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된 계기나 동기는

무엇인가요

나는 8기부터 시작했는데 7기 담임이던 김장환 씨가 나를

불렀어 공동 담임을 해달라고 lsquo그러지 뭐rsquo 이렇게 시작했지

직장은 2008년도까지 다녔고 프리랜서로 활동하면서

여기저기서 강의를 하고 있었어 한겨레 문화센터에도

23년쯤 있었지 (편집자보다 이렇게 선생님으로 있는 게 더

즐거우세요) 지금은 진짜 만들고 싶은 책 함께 작업해보고

싶은 저자 그런 게 아닌 한 직업으로 신간을 꾸준히 내는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당신들은 눈이 반짝반짝해서 업계에 들어와야겠다고

준비해서 오잖아 그 친구들이 1년차 3년차 되는 것을

지켜보고 있으려니까 내가 그 나이쯤 사회생활을

시작해 고민했던 지점이 보이는 거지 그 때

이걸 알았더라면 하는 안타까움이 있어서

여러분들이 애틋해지지

요즘 최대의 관심사는 무엇인가요

저녁에 후배들에게 가르칠 강의를 하다

보니 국어 공부의 필요성을 여실히 느끼고

있어 출판 동네에서 20년 넘게 일한 사람이

공부해온 것을 한 번 정리해서 후배들한테 줄 필요도

있겠구나 싶고 (뭔가 일 얘기가 아닐 줄 알았는데요

하하)

은퇴 후에 무엇을 하고 싶으신가요

오늘은 말이 절로 나오는 걸 하하 마당 있는 시골집 텃밭을

일구며 역사에 길이 남을 인간과 세상을 통찰하는 대작

소설을 발표하겠다 (와)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이 되고 싶으신가요

다시 태어나고 싶지가 않아hellip(웃음) 지구에서는 내

대에서 멸종하기로 했다

저희들에게 속 시원하게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자신 있게 해라

생각해보면 다들 자기가 못났어 키도 좀 더 컸으면

좋겠고 외모도 마음에 안 들고 내가 저 때 저렇게

했으면 지금 달라졌을까 부럽기도 하고

그런데 사실 부질없는 거거든 세상 사는

힘이 실력에만 있는 게 아니고 태도의 문제가 더

클 때가 많아 내 것이 아닌 것에 목매고 있을

필요가 없어 신입사원으로 전혀 모르는 곳에

뚝 떨어졌을 때 저들의 세계 속에 혼자 쏙

들어간 기분이니까 일단은 주눅이 들지

하지만 거기서 살아가야 하지 않겠어

둘러보면서 아 저기가 화장실이구나 사람들은

이런 걸 이렇게 하는구나 파악하고 나면 좀

수월해지잖아

마지막으로 대망의 이상형 월드컵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정우 주원 김수현 유아인 이렇게

4강전으로 시작하겠습니다

(하정우와 주원 중에서는 누가 더 좋으세요) 하정우지

주원이 최근에 좋아지긴 했는데 아직도 하정우를 따라올 수

없어

(그럼 김수현유아인 중에서는요) 유아인이지

(너무 확고하셔요 드라마 lt밀회gt 보셨나요) 집에선 케이블

방송도 안 나오고 관심 갖게 되었을 땐 너무 유행이라

안보고 말았지 대신 영화 lt완득이gt는 봤다

(이제 결승인데요 마지막으로 하정우와 유아인은요)

아인이는hellip 나한테 좀 과분한 것 같아(웃음) 하정우가 삐질

것 같은데 그래서 둘 다 잃는 거야hellip

편집자반 11기 김수진 이상화

lt베테랑gt의 악랄한 재벌 2세유아인

lt프로듀사gt의 어리버리 신입PD

김수현

lt용팔이gt의 천재 외과의사

주원

lt 암 살 gt 의 순 정 마초

하와이 피스톨하정우

하정우

16

한대웅 선생님

『동백꽃』의 주인공 같은 그 남자착하디착한 순하디순한 한대웅 선생님의 속마음

좀처럼 화내시는 일도 없고 허허 웃기만 하시고hellip 하지 못한

말들을 땀으로 발산하듯 여름이면 온몸이 열정으로 흠뻑

젖으시는 분 세상 어디에도 없을 착한 남자 마케터반의

한대웅 선생님이다 그에게 던진 몇 가지 질문에 돌아온 것은

가장으로서의 고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 아직도 앳된

소년 같은 순수함이 묻어나는 답변들이었다 이제 그를 좀 더

깊게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평소에 칼라(collar) 티셔츠를 즐겨 입으시던데

좋아하시는 옷인가요

좋아한다기보다는 제 딴에는 편하게 입을 수 있는 듯해서

즐겨 입고 있습니다 또 아내가 이런 종류의 옷을 많이

사주기도 하고요

선생님께 lsquo출판rsquo이란 무엇인가요

출판은 lsquo꿈을 이루는 판도라의 상자rsquo lsquo내가 가진 능력에 가장

맞는 일rsquo입니다

출판을 업으로 삼지

않으셨다면 어떤 일을

선택하셨을까요

모르겠네요 아마도 운명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요 다만 다음과

같은 3가지 생각은 해보았습니다

첫째 고등학교 시절 성적이 조금

더 좋았다면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해서

지금쯤이면 텔레비전이나 영화에 나오는 큰 전투함의

함장이 되지 않았을까요

둘째 대학교에 입학하지 못했다면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로 이민을 가서 장사를 하거나 농부로 농장을

운영하면서 그곳 사람으로 국적을 바꾸고 살고 있지

않을까요 고등학교 3학년 때 대학교 입학 시험에

떨어지면 다른 나라로 가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다는

마음의 준비를 했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 모 일간지에 실린

해외에서 성공적인 삶을 사는 한국 사람들에 관한 기사를

꼼꼼하게 읽었었거든요

셋째 대학교 3학년이나 4학년 때 신춘문예까지는 아니라도

대학교 교내 문학상 정도를 받았다면 아마도 그 결과에

탄력을 받아 시나리오 작가나 연극 연출가의 길로 가려고

하지 않았을까요

ID와 블로그에 lsquo봄rsquo이라는 단어가 들어있는데 봄을

좋아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그 ID를 만들 무렵 저의 미래는 꽤나 불확실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바꿔 말하면 어떻게

돈을 벌어야 하고 어떻게 자아 성취를

해야 하는지가 불확실하고

힘들었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lsquo봄rsquo이라는

단어를 좋아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누구나

알다시피 봄은 겨우내

얼어 있던 것들이

새롭게 싹을 틔우고

새롭게 기지개를 펴는

계절이죠 물론 봄

자체가 주는 느낌도

좋고요 그래서 lsquo봄rsquo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던 것

같습니다

블로그는 서울출판예비학교에서

일을 시작한 후 만들었습니다

블로그에 lsquo봄바람rsquo이라는 의미를 부여한

것은 ID를 만들던 때의 생각이 이어진 것이겠지요 요즘에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이 많이 사라진 것 같습니다 만약

앞으로 블로그나 ID를 만든다면 아마도 lsquo여름rsquo 혹은 lsquo풍성함rsquo

아니면 lsquo내가 원하는 세상을 상징하는 어떤 것rsquo을 이름으로

사용할 것 같습니다

편집자로 첫 시작을 하셨는데 나중에 출판 마케터로

일하게 된 동기를 알고 싶어요

시장 상황을 분석하고 이에 맞게 마케팅 계획을 세우고

사람이나 집단을 만나고 힘을 합쳐 뭔가 새로운 결과를

만들어 내는 일이 재미있었습니다

은퇴 후에 꿈꾸시는 삶이 있으신가요

아직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20대와 30대

초반에 꿈꾸던 것들을 lsquo은퇴 후에 여유가 생긴다면 이것들을

해볼까rsquo라고 간혹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현재겠죠 출판에서 뭔가를 이루려고 열심히 계획하고

실행하다 보면 은퇴 후의 삶도 더 풍요로워지지 않을까요

알고싶어 마케터반

17

일하실 때 다뤘던 책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무엇인가요

입사 초기 편집을 하거나 시장조사를 하고 제가 출간 여부에

대한 판단을 내렸던 책들이 기억납니다 『펠레』 자서전은

제가 편집자로 있을 때 출간했던 책인데 주요 일간지의

서평란 메인을 장식했던 책입니다 출간 시점을 맞추기 위해

촉박한 기간 동안 밤새가며 책을 만들었습니다 출간 시점에

대한 판단이 정확히 맞았고 그 결과 기대 이상으로 많은

서평을 받았던 책입니다

서울예비출판학교 선생님으로 오신 계기를

알고 싶어요

전에 다니던 출판사를 그만둔 후

개인적으로 뭔가를 해보려고 고민

중이었습니다 그러나 능력이

부족하다 보니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았죠 그러던 중에

출판학교에서 일해 볼 것을

제안 받았고 저도 출판학교

학생들처럼 면접을 보고 이

학교에 오게 되었습니다

일을 하게 되었을 때 매우

즐거웠습니다

다시 출판사 마케터로 돌아갈

생각이 있으신가요

아니오 이유는 2가지인데 첫째는 제 나이가

48세입니다 다른 업종도 그렇지만 출판 산업에서도

48살에 마케터로 직장인의 생활을 이어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죠 정말 현실적인 고민이죠 게다가 출판학교에서

여러분과 소통하며 제 지식을 전수하는 일이 재미있습니다

물론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언젠가 저만의 꿈을

찾아갈 수 있겠죠

평소 몇 권의 책을 읽으시나요 최근 읽은 책 중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요

예전에 많이 읽을 때는 1주일에 2권 정도 읽었습니다

황석영의 『장길산』과 홍명희의 『임꺽정』 이문열의

『삼국지』를 읽을 때 짬짬이 쉬는 시간을 비롯해 지하철에서

보내는 시간까지 거의 모든 시간을 책을 읽으며 보냈습니다

요즘에는 1달에 1~2권 정도 읽는 것 같네요 최근 읽은

책 중에 기억에 남는 책은 『내 아이와 어떻게 대화할

것인가』(율리아 기펜레이테르 저 써네스트 2006)와 『내

아이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율리아 기펜레이테르

저 써네스트 2009)입니다 제목만으로도 왜 이 책을

추천하는지 금방 눈치 챌 수 있을 것입니다 아이가 둘

있는데 첫째는 15살 딸이고 둘째는 10살 아들입니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lsquo어떻게 하면 아이와 싸우지 않고

윽박지르지 않고 아이의 자존감을 높여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성실하고 삶의 열정과 꿈이 넘쳐나는 아이로

키울까rsquo 같은 고민을 항상 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단비처럼 다가왔습니다 위의 2권의 책을 읽고 몇

가지 중요한 것들을 배웠습니다 아이와 어떻게 소통하고

어떻게 대화해야 하는지 아이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등등 이전에 『부모와 아이 사이』(하임 G 기너트

등 저 양철북 2003)를 읽고 아이를 이해하는 법에 대해

큰 인상을 받았는데 이 책도 그 연장선에서 저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아들과 딸을 좀 더 이해하게 되고 그

결과 아이들에게 화를 내거나(저도 나약한 인간인데 화가

날 때가 심심치 않게 있거든요) 아이들의 긍정적인 싹을

본의 아니게 꺾어 버리는 경우가 줄었다고 할까요 게다가

이 책은 lsquo부모와 아이 사이rsquo만이 아니라 lsquo친구와 친구 사이rsquo

lsquo회사 내부 구성원 사이rsquo에서 소통하는 데도 많은 영감을

제공합니다 출판학교 학생들과 소통할 때도 이해의 폭을

넓혀주고 긍정적인 소통을 하는 방법을 제공해 줍니다

이제 수료를 앞둔 마케터반 학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으시다면

개인별로 처한 처지와 조건에 따라 다르겠지만 다음과 같은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 연인을 사랑하듯 출판에 대해서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보세

- 이 길이 나에게 최선의 길인가 생각해 보세요

- 목표를 세우고 지금부터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한 후 그것을 어떻게 이루어 나갈 것인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보세요

저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스스로의 내면을 단단하게 할 중요한

질문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앞으로도 끊임없이

새로운 답을 찾아나갈 질문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케터반 11기 이장열 이창환

18

선생님은 주말에 뭐하세요

무조건 가족과 함께hellip

만약 편집 디자인을 안 하셨다면 무슨 일을 하고

계실까 궁금해요

어찌 됐든 개인 사업자로 살았을 듯 윗사람 비위 맞추는

것을 너무 못하므로hellip

선생님 주량이 어떻게 되세요 주사가 있으세요

몸 상태 좋고 안주 많이 먹으면 1병(클래식으로)

좋은 출판 디자인을 생각한다

심우진middot안광욱 선생님

lsquo멋rsquo이라는 것이 폭발한다뼛속까지 디자이너스러운 심우진 선생님

멀리서도 눈에 띄는 큰 키에 멋들어진 베레모 디자인반의

심우진 선생님 되시겠다 서울출판예비학교에서 lsquo멋rsquo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가끔은 조금 키 큰 학생처럼 학생들

속에 잘 어우러지는 사람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모습은

여기까지다 그를 조금 더 알고 싶다 지금까지의 그를

만들어왔을 lsquo심우진의 생각들rsquo이 궁금했다

선생님은 무엇을 드시고 그리 멋지시나요

학생들의 사랑 밥 김치

일본 유학길에 오르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lsquo동아시아rsquo lsquo근대rsquo가 당시 나의 화두였으므로 그리고

스기우라 고헤이 선생을 뵈러

첫 직장을 다녔을때 일의 강도()나 다니는 동안

마음은 또 어떠셨는지

출판 쪽 첫 직장은 lsquo정디자인rsquo인데 lsquo나는 왜 이렇게 디자인을

못할까rsquo 답답해했던 기억이 있어요 그러나 매우 즐거웠고

술도 자주 마셨죠 아직도 당시의 OB들과 가깝게 지내요

lsquo둥지rsquo 같은 곳이죠

선생님께서 생각하는 완벽한 판면이란

디자이너의 삶의 방식과 콘텐츠의 삶의 방식이 녹아든 판면

선생님의 피로회복 방법은

알고싶어 디자인반

19

디자인반의 히어로좋은 출판 디자인을 생각한다 안광욱 선생님

여자 화장실 앞에 있어 인파로 북적대는 디자인반 교실을

학생들과 함께 굳건히 지켜온 분 디자인반 학생들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애정공세를 아끼지 않는 분 안광욱

선생님에게 물어본 4가지

디자이너로서 첫 직장을 다닐 때의 마음이

어떠셨나요

잘하고 싶었는데 못해서 힘들었지 사수에게 하루 서너

시간씩 야단맞으면서 했다오 매일 2호선 양화대교에서 뛰어

내리고 싶었는데hellip 이 부분은 내일 수업 때 얘기해줄게^^

선생님께서 생각하는 좋은 출판 디자인이란

세상을 향한 사랑과 희망이 듬뿍 담긴 디자인

출판 디자인을 안 했다면 지금 무슨 일을 하고

계실까요

모르겠네 그냥 선녀 옷 훔치는 나무꾼이 되어 있을 듯^^

어떤 주사가

있으신지 궁금해요

말이 조금 더 많아지고 장소 불문 쿨쿨 자 특별한 주사는

없는 듯

디자인반 11기 이소현 백가은 사공예원

디자

인 사

공예

20

편집자반 김영준 학우가 그린

『이 외로운 사람들아』 일러스트

기억에콕

수업 후기

ldquo우리에게는 lsquo일탈rsquo이 필요합니다rdquo

잠깐 딴 짓을 하는 사이에 귓가에 들려온

한 문장이 나를 사로잡았다 배는 부르고

따 사 로 운 햇 살 에 잠 이 쏟 아 지 는 시 간

오후 1시 30분 시간을 칼같이 맞춰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선 그는 딱 봐도 지루하고

고리타분해 보이는 첫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순간 눈으로 들어온 이미지는 뇌로 흘러갔고

뇌는 망설임 없는 확신으로 귀에 명령을

전달했다 그렇게 귀는 이미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내 들려올 그렇고 그런 뻔한

이야기에 대하여

눈의 판단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의 한마디

한마디는 파격이었다 아니 어쩌면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였지만 누구도 자신 있게

내던지지 못하는 말들을 서슴지 않고 내뱉는 그

거침없음에 신선함을 느낀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의 관심을 돌려놓았던 lsquo일탈rsquo에 대한 그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lsquo일탈을 하라rsquo는 말이

lsquo제멋대로 하라rsquo는 의미가 아니라 어떤 규칙을

벗어나는 행위를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다르게

생각하는 방식을 몸으로 익히게 된다는 것

새로운 것을 생각해내는 창의성이라는 힘은

당연히 새로운 경험에서 나온다는 것이었다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니 강의를 듣던

친구들의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때 보고 들었던 그의 말과 행동이 우리에게는

딱 딱 한 강 의 실 에 서 느 끼 는 새 로 운 경 험

lsquo일탈rsquo이었다

그 와 의 만 남 은 계 속 이 어 졌 다 이 곳

서 울 출 판 예 비 학 교 에 입 학 한 이 후 로 는 좀

더 완 벽 한 일 주 일 단 위 로 시 간 이 흐 르 기

시작했는데 매주 쌓여가는 새로운 배움 뒤에는

수많은 물음이 불쑥불쑥 솟아났고 그는 마치

예상을 했다는 듯이 일주일에 한 번씩 나타나

우리의 설익은 궁금증을 해소해주고 떠나갔다

첫 만남에서는 책이라는 대상과 책을 대하는

편집자의 자세에 대해 이야기하며 큰 그림을

그려주었고 다음엔 저자와의 관계 맺기 그

다음엔 스스로 만들어 가야할 편집자의 자기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담백하게 들려주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네 번째 만남이었다

누구도 쉽게 이야기하기 어려운 완벽하게

솔직해지기는 더더욱 어려운 자신의 좌절과

실패를 그는 담담하고 진솔하게 소개해주었다

모든 성공에는 대개 7할의 실패가 전제되어

있기 마련인데 성공에 이르기까지 거치는

우 리 가 lsquo실패rsquo라고 명 명하는 것들이 사실

진짜 실패가 아니라 성공의 다른 이름이라는

그의 말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성공도 실패도

어 느 한 지 점 에 서 내 리 는 판 단 인 것 이 고

결 국 성 장 하 고 성 숙 한 다 는 것 은 성 공 과

실패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lsquo차이rsquo를 얼마만큼

발견하느냐 하는 것에서 결정된다는 그의 말이

가슴을 뜨겁게 했다 비로소 lsquo편집자rsquo로서가

아닌 한 lsquo사람rsquo으로서의 그가 보이기 시작했다

담담하게 말을 하고 있지만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아프고 쓰린 기억을 후배들에게

들 려 주 는 그 에 게 서 진 심 이 전 해 져 왔 다

사랑하는 일에 대한 함께 걸어갈 동지들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 참 고마웠다

어느덧 마지막 만남이 찾아왔다 한 권의

책을 만들면서 진행했던 편집의 과정을 예로

실 제 적 인 이 야 기 를 우 리 에 게 마 지 막 으 로

들려주었다 편집의 능력은 지식과 정보에서

나온다는 것 그것은 단숨에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 꾸준히 쌓아가야 한다는 것 그래서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의 문제라는 것을 경험을

근거로 자신 있게 말해 주었다 이미 지나온

과거의 결과 대신 앞으로 걸어갈 길에 대한

희망을 들려주어서 그게 참 고마웠다

편집자반 일탈이 주는 파격 우리가 낳을 lsquo새로운 책rsquo과 편집자선완규 선생님과의 다섯 번의 만남이 키운 생각들

21

그 가 우 리 에 게 마 지 막 으 로 이 야 기 를

들려주었던 그날 이후 석 달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났다 나는 여전히 같은 강의실에 앉아

앞서 길을 걸어간 선배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고 조금씩 가까워지고 밝아져가는 내 앞에

놓인 길에 대해 생각한다 그러다 문득 마음이

무거워지고 막막해질 때면 종종 그의 말들을

떠올려 본다 그리고 그 생각의 끝에서 마음을

의지하며 함께 이 길을 걸어갈 따뜻한 선배가

하나 있다는 위로 한 줌을 발견한다

ps 선완규 선생님 고맙습니다 보고 싶어요

편집자반 11기 성준근

마케터반 강한 수면욕 환상과 환기

판형과 종이를 예술로 편입시키려는 영업자다빈치 출판사 박성식 대표 특강 후기

9월 23일 평소보다 점심을 많이 먹었던 날이다 잠을 며칠간 못 자 피곤했다

오후 1시 30분이 살짝 지나서 다빈치 출판사 박성식 대표의 특강이 시작됐다

다빈치 대표님은 처음 뵐 때부터 남다르셨다 서울출판예비학교 입학 면접에서

여자 술 담배를 각각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보셨다 lsquo솔직함을 어필해야

하는 순간인가rsquo하는 생각에 직설적으로 답했지만 lsquo더 문학적으로 얘기할 수

있었는데rsquo라는 후회를 안고 돌아왔다

마음과 다르게 첫 번째 시간은 정신없이 잠이 쏟아졌다 눈을 감고 귀 기울였지만

턱을 괸 채 버티는 동안 50분이 지났다 대표님께 캔 커피를 하나 드리고 맞이한 두

번째 시간 그 한 시간 동안 나는 현실 옆의 어떤 이상 내지는 환상을 본 것 같다 그동안

듣던 강의들을 놓고 lsquo이상적인 관점이다rsquo 혹은 lsquo현실적이다rsquo라고 구분했던 판단의 폭

자체가 좁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성식 대표님은 내 머리에 있던 lsquo책rsquo에 대한 인식을 전복시켰다 자본주의 출판의

몰락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시작됐다는 말 출판 기본 특성인 다품종 소량 생산은 돌아올

것이며 다품종 소량 생산을 넘어 다품종 소량 lsquo고급 생산rsquo을 추구하고 싶다는 말은 나를

달뜨게 했다 주류에 반하는 사고를 가진 중년의 개성과 내공에 교실 풍경이 환기됐다

교육 수단으로 책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지만 책은 그만큼 사회적 의무와 희생을

짊어져왔다 출세와 공부 앞에서 책이 가진 기호(嗜好)성은 변두리로 내몰렸다 책을

읽어야만 제대로 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분위기는 옳지 않다 독서는 성향의 범주지 성역이

돼선 안 된다 정보와 지식의 전달은 모바일 등에 넘겨주고 종이책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공동체로 돌아와야 한다 그게 원래 자리라는 대표님의 주장이 새롭고 강렬하다

자본주의 3대 원칙인 lsquo더 빨리 더 많이 더 싸게rsquo 체계는 표준화와 규격화를 동반하며

매우 효율적이다 현재 사용하는 종이는 자본주의 원칙에 최적화돼 있다 그러나 대표님은

인쇄기계로 소화하지 못하는 질감과 전혀 다른 발색을 지닌 lsquo종이rsquo에 주목했다 그 종이로

콘텐츠 종이 판형이 완벽하게 들어맞는 예술서를 만들고 시장을 설득한다면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책 판매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전했다 종이 자체가 책의 예술성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한지(韓紙)를 예로 들면서 훌륭한 텍스트와 이미지를 한 차원 끌어올리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많은 부수를 팔아야 성공한 출판 많은 부수를 파는 것을

목표로 하는 시대는 저물고 있다 기존 유통과 판매 방식

안에 갇혀서는 불황에 매몰될 뿐이다 소량의 고급화된

책을 꿈꾸는 것과 전시회를 책과 결합하는 것도 다른 길을

물색하는 과정이다

대표님은 10년 전부터 lsquo이 원고는 내가 누구보다 잘

만들겠다rsquo lsquo이 원고는 내가 못하면 누구도 못할 것 같다rsquo라는

생각이 든 책만 출간을 진행했다고 한다

강의 중간 자신의 독특한 철학을 전달하는 것에 대해 가벼운

염려를 하셨지만 이론적이고 실용적인 분야에 몸담더라도

예술적 사고의 유연성은 필요하다고 본다 돈과 인문정신을

구분하면서 필요할 때 양쪽에서 자극 받고 차용하는 것이 마케팅의 융통성과 힘을 기르는 길일 것이다

마케터반 11기 이창환

편집자반 김영준 학우가 그린

『이 외로운 사람들아』 일러스트

박성식 대표가 기획한 lsquo오름rsquo전

22

하늘

습탁은 농도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하늘

습탁은 농도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이 글은 심우진 선생님의 탁본 세미나 수업에 대한 우리들의 즐거운

기록이다 탁본은 습탁(濕拓)과 건탁(乾拓) 두 종류로 구별된다

습탁은 나타내고자 하는 물체 위에 물을 묻힌 후 종이를 그 위에

밀착시키고 먹물 묻은 솜방망이로 가볍게 두드려서 물체를 표현하는

방법이다 물체의 패인 부분을 제외하고 볼록한 부분의 모양대로

종이에 먹이 묻어 문자나 문양이 드러난다 건탁은 이름 그대로 물을

사용하지 않고 마른 상태의 먹인 고형묵(固形墨)을 사용한다 우리는

각자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사물과 자연을 이용해 탁본 작품을

만들고 서울출판예비학교 꼭대기 층에서 작품을 공유했다

디자인반 이 시간을 그대로 탁본할 수 있다면심우진 선생님의 탁본 세미나

저는 신문지를 구겨서 해봤어요

응 그런데 이건 방바닥 같은데

방바닥까지 묻어 나와 버렸네요

[학생들 하하하]

저는 일단 큰 나무 기둥을 떠봤고요

오솔길의 짚도 해보고 저희 집 바닥과

벽면도 신기해서 떠봤어요 집 벽면 중에

대리석도 있고 특이한 벽면이 많거든요

부잣집인가 보네

[학생들 깔깔깔]

승연

심우진 선생님

승연

승연

심우진 선생님

이건 파프리카인데 저희 집 개가 완성한 종이를 찢었어요

[학생들 하하하]

좀 작고 납작한 파프리카를 반으로 잘라서 습탁했어요 또

이건 철조망인데 용 비늘처럼 나와서 재밌었어요 아나콘다

같기도 하고 철조망이 날카로워서 습탁하니 종이가 자꾸

찢어져서 다시 하게 됐어요 근데 이거요hellip 남자친구

있으면 커플끼리 한 번 해보세요 한 명은 잡아주고 한 명은

습탁하고hellip 되게 로맨틱 성공적

자랑하는 거니

[학생들 깔깔깔]

수빈

수빈

심우진 선생님

혜민

정묵

처음에 나뭇잎이 세세하게 잘 나올 줄 몰랐는데 그

줄기의 질감이 잘 나왔고 버려진 타이어를 끌어서

생긴 모양으로도 습탁을 했는데 생각보다 잘 나와서

막상 찍어보면 생각과 다르다는 것을 느꼈어요

저도요 결과물이 뚜렷하게 안 나올 줄 알았는데

디테일이 잘 나타나 있었고 입체를 평면적으로

찍는 것 자체가 재밌었어요

수정

저는 빗자루를 해봤어요 너무 얇아서 안 나올

거라 생각했는데 빗자루 문양이 잘 나와서

재밌었고 머리카락도 해봤는데 머리카락은

끝 부분이 잘 나오는 편이에요 위쪽은 다

뭉쳐있는데 끝 부분은 펼칠 수 있으니까요

23

저는 결이 얇은 것들을 뜨는 것이 재밌었어요

머리카락처럼요 머리 긴 사람에게 부탁해서

눕히고 했어요 그리고 이건 얼굴인데요

처음에는 그냥 했는데 얼굴은 입체를 살리려면

스케치하듯 떠야 되요 결국 명암으로 입체감

조절을 해야 되죠 코가 너무 입체적이라 특히

힘들었어요

누구 얼굴이야

우리 언니hellip

[학생들 우와]

가은

심우진 선생님

가은

하얀

음각이 나왔을 때 너무 좋았고요하늘

습탁은 농도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소리

건 탁 보 다 는 습 탁 이 농 도 조 절 하 는 게

희 한 해 서 재 밌 었 어 요 농 도 조 절 이

관 건 이 거 든 요 먹 과 물 의 배 합 과

솜방망이가 먹물을 얼마나 흡수하는지 그

흡수량이 중요하고요

윤미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꽤 많은데 만져보면서 건탁을 뜨니까 좋았어요 전에

습탁할 때는 시멘트 벽 같은 걸 하다가 나뭇결을 하니까

살아있는 느낌이었어요 생각했던 것처럼 나와서

좋았고 솔방울이나 나뭇잎 같은 섬세한 것들은 제대로

나오지 않아서 아쉬웠어요 섬세한 것들은 습탁으로

해봐야겠어요 그래도 다양한 나무를 건탁해봐서

만족해요

소현

저는 일상적인 것들로 습탁을 해봤어요

처음에는 단순하게 오돌토돌한 느낌만

있 을 줄 알 았 는 데 색 다 른 느 낌 이 나 서

재밌었어요

탁본 세미나를 마치고 그 다음 주에 지하 강당에서 촬영하는 시간을

가졌다 촬영 후에 보정도 했다 나뭇잎의 결 무늬 타이어 자국

그리고 사람의 머리카락까지도 좋은 디자인의 재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보았고 나누었다 건탁과 습탁의 장단점을 이 수업으로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심우진 선생님의 이번 탁본 수업도 지난 활자

수업처럼 지식 습득은 물론이고 경험까지 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 시간들이 앞으로 출판 디자이너로서의 감각을 더 풍요롭게 해 주지

않을까

디자인반 11기 사공예원

하얀

음각이 나왔을 때 너무 좋았고요

습탁은 농도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솜방망이가 먹물을 얼마나 흡수하는지 그

흡수량이 중요하고요

윤미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꽤 많은데 만져보면서 건탁을 뜨니까 좋았어요 전에 꽤 많은데 만져보면서 건탁을 뜨니까 좋았어요 전에

이건 파프리카인데 저희 집 개가 완성한 종이를 찢었어요

[학생들 하하하]

좀 작고 납작한 파프리카를 반으로 잘라서 습탁했어요 또

이건 철조망인데 용 비늘처럼 나와서 재밌었어요 아나콘다

같기도 하고 철조망이 날카로워서 습탁하니 종이가 자꾸

찢어져서 다시 하게 됐어요 근데 이거요hellip 남자친구

있으면 커플끼리 한 번 해보세요 한 명은 잡아주고 한 명은

습탁하고hellip 되게 로맨틱 성공적

자랑하는 거니

[학생들 깔깔깔]

24

9시 30분 합정역 1번 출구 앞

ldquo누나rdquo 소리에 쳐다보니 반가운 공 총무의 얼굴이 보였다 정류장

앞으로 길게 늘어선 줄에 합류하여 파주로 날 데려다 줄 2200번

버스를 기다리고 있으니 반가운 얼굴들이 계속 나타났다 한 대의

버스를 보내고서야 겨우 2200번 버스에 탑승해 파주로 출발할 수

있었다

10시 15분 파주 lsquo다산교 앞rsquo 정류장 하차

4개의 정류장 총 57분이 걸린다고 알려준 N사 지도 어플의 정보와는

달리 30분 만에 파주에 도착했다 일찍 도착해 먹을 것을 찾아 헤맨

예비 마케터들은 편의점에서 주린 배를 채웠고 lsquo지혜의 숲rsquo을 살짝

염탐하며 11시까지 시간을 보냈다

11시 05분 보진재 2층

1912년 설립되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인쇄소인 보진재 관계자

분이 나와 간단히 인사 말씀을 하고 각 반의 인솔자를 소개해주셨다

마케터반의 인솔자는 서동관 과장님 디자인반 편집자반 마케터반

순으로 견학을 시작했다

11시 15분 보진재 견학 시작

제일 먼저 본 곳은 제판실이었다 필름 인쇄가 줄어들고 CTP로

대체되는 추세지만 어떤 분들은 여전히 필름 작업을 하고 계셨다

이유를 물어보니 서동관 과장님은 예전 필름이 남아 있기도 하고

출판사에 따라 필름을 고집하는 곳이 있다고 하셨다

한번에 5도 인쇄가 가능한 기계를 보는 중에 서 과장님이 말씀하셨다

ldquo한 유닛(unit)당 23억 정도 해요rdquo 그렇다면 유닛 다섯 개가

돌아가고 있으니 적어도 10억짜리 기계라고 내 눈에 보이는 건 그냥

낡고 큰 기계인데 10억이 넘는다니 놀랐다 또 과장님께서 자랑스레

말씀하신 한 가지 잉크 농도 조절을 자동으로 하는 기계가 보급된

곳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었다 원래는 사람이 눈으로 보고 수정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재판을 찍을 경우 초판과 동일한 색상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있지만 보진재는 기계가 자동으로 조정해주어 수월한

작업을 할 수 있다고 하셨다

매염실도 보고 제본실도 구경했다 인쇄된 종이를 접지하고 제본을

마친 후 마지막으로 제단을 하면 책이 완성되어 나왔다 그 모든

과정을 보고 난 후 서 과장님이 건넨 완성된 책의 무게는 보통의

그것보다 조금 더 무겁게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윤전실이었다 견학 당일은 작업이 없어서

비어있던 윤전실이지만 윤전실이 주는 무게감은 컸다 윤전실은

롤(roll)로 인쇄하는 곳으로 8개의 롤이 양면 인쇄를 하고 건조와

접지까지 한 번에 가능한 기계도 있었다 대량생산을 위한 곳으로

주로 교과서나 EBS 학습지를 인쇄한다고 하셨다

12시 20분 견학 끝

1시간을 조금 넘긴 견학을 끝내고 밖으로 나오니 코가 따갑고 목이

말랐다 기계가 먼지를 빨아들여준다고는 하지만 수없이 많은

종이가 존재하는 공간에서의 종이 냄새는 강력했던 것이다 책이

제작되는 과정은 실제로 보니 다양하고 복잡했다 자동화가 많이

되어있지만 사람의 손길 없이는 절대 완성될 수 없는 과정들을 보며

책이 완성되기까지의 노력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lsquo책이 어떻게

만들어진다rsquo를 배우다가 lsquo책이 이렇게 만들어진다rsquo를 보니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예비 출판 마케터의

길로 들어선 후에 새로운 것을 보고 배울 수 있었는데 보진재 견학은

그 중에서도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책을 완성시키기 위한 모든 과정이

저마다의 몫을 하고 있었다 서울출판예비학교 졸업 후 출판계에

들어섰을 때 나는 과연 어떤 몫을 할 수 있을까 남은 2개월을 조금은

더 열정적으로 보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마케터반 11기 최다은

1 일일탈

학교 밖 견학 후기

피부로 와 닿는 책의 감촉 책의 냄새 책의 소리 보진재에서 책이 인쇄되는 과정을 만나다

필름과 인쇄판이 만들어지는 과정

25

우리가 이제 각자 편집자 마케터 디자이너가 되어 책 만드는 일을

시작하면 우리의 책은 이곳에서부터 그 lsquo탄생rsquo을 시작할 것이다 책의

근간이 되는 종이가 만들어지는 곳 한솔제지 공장에 다녀왔다 학기

초에 책을 파는 서점을 견학한 뒤 그 다음으로 출판사 종이에 활자를

찍어내는 인쇄소 그리고 마지막으로 lsquo종이rsquo를 만드는 제지 공장을

찾은 것이다 책이 만들어지는 순서대로라면 우리가 다녀온 순서를

거꾸로 해서 다녀왔어야 했지만 우리는 반대로 실제 과정을 거슬러

올라간 것이다 이렇게 거슬러 올라가는 과정에서 오히려 편집자란

직업에 겸허해질 수 있었다 가끔은 편집자가 책을 만드는 모든

과정 위에 군림하는 것 같이 느껴지지만 책의 물성을 만들어내는

거대한 기계 앞에서 우린 한없이 작아지기도 한다 lsquo한 권의 책rsquo이

만들어지려면 이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함을 이해해야 했다 이렇게도

복잡하고 힘겹게 만들어지는 책의 가치를 한 번 더 깊이 생각하게 된

계기였다 책이라는 건 의미가 담긴 조각들의 집합체이자 종이를

보기 좋게 물성화한 것 이론적으로야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눈으로 보고 느끼는 것과는 천지차이다

날씨마저 좋았던 9월 11일 평소보다 한 시간이나 이른 8시

30분에 세 반 학우들은 눈도 제대로 못 뜬 채 집합했다 대전까지

간다니 마치 여행가는 것 같은 살짝 들뜬 기분까지 안고 아침도 못

챙겨먹고 나왔을 우리를 생각해서 빵과 우유까지 준비한 한솔제지

측의 세심한 배려에 감동했다 배도 채우고 부족한 잠도 보충해가며

2시간 넘게 달려 신탄진 공장에 도착했다 도착하자 보이는 우리를

환영하는 현수막에 2차로 감동했다 우리를 위해 정말 많은 준비를

하셨구나 느낀 순간이었다

신탄진 공장 강당에 들어가서 간단한 공장 소개를 먼저 들었다

그리고 뒤이어 종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경청했다 수업 때보다

학생들의 집중력이 더 높아 보였던 건 내 착각이었길 종이는

1퍼센트의 펄프와 99퍼센트의 물로 이루어진단다 그래서 전반적인

공 정 의 대 부 분 은 물 을 처 리 하 기 위 한 과 정 이 나 다 름 없 었 다

생각보다 종이는 순수한 물질이라고 생각했다 종이(paper)의

어원은 이집트의 파피루스(papyrus)에서 왔다고 한다 중국의

lsquo채륜(蔡倫)rsquo이라는 사람이 제일 먼저 발명했고 고려시대에

일본으로 넘어간다 일본에 가장 마지막으로 넘어갔지만 종이의

기술력은 현재 일본이 가장 좋다 원료rarr초지rarr코팅 등의 공정을 거쳐

종이가 완성되는데 마지막 코팅 공정을 여자의 화장에 비유한 것

역시 기억에 남는다 코팅이 그렇게나 대단한 과정이라니

공장 안으로 들어가서는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시끄러워서 설명을

제대로 듣진 못했지만 앞서 들었던 설명을 떠올리며 기계들을

관찰했다 인쇄소에서 본 광경들도 거대하고 박력 있었지만 여긴

그보다 더 거친 느낌이었다 책은 서점에 놓여있을 때는 그렇게

얌전하건만 태어날 땐 이렇게 시끄럽다 또한 막 태어난 종이는

거대하고 또 거대했다 다들 마치 거대한 두루마리 휴지 같다고들

했다

견학을 다 마치고 다시 대전 공장으로 이동해 다 같이 점심 식사를

했다 기대 이상으로 맛있는 밥에 또 감동 더 힘내서 견학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아쉽게도 대전 공장 안에는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라 그 힘()을 발휘하진 못했다 대전 공장은 신탄진 공장과

다르게 책에 쓰이는 것이 아닌 제품 포장용 박스 종이컵 등 다른

용도에 쓰이는 종이를 만드는 곳이었다 그 과정의 차이를 눈으로

비교하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마지막으로 좋은 선물까지 손에

받아들고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다시 서울로 향했다

언제나 시작은 중요하다 각자의 일에 빠져들게 되면 점점 잊게 될

그 시작을 눈에 담고 오래 기억하기 위해 다녀왔다고 생각한다 요즘

초심을 잃었다는 생각이 종종 드는데 책에게도 초심이 있다면 바로 이

곳일까 시작의 의미에 대해 다시 곱씹어보았다

편집자반 11기 박혜원

우리의 글과 그림이 펼쳐질 종이의 탄생 한솔제지 신탄진 공장 견학

거대한 롤(상) 한솔제지 공장 앞에서 (하)

26

화양연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삶과 문학에 취하다

편집자반 한국문학 동아리 lsquo공감rsquo 그 대담의 현장

훗날 서울출판예비학교를 떠올릴 때 가장 즐거운 시간으로 기

억되는 날들은 동아리 활동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들의

화양연화(花樣年華)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 중

의 하루를 소개한다 문예창작학과를 전공한 문학소녀 김한나

학우를 필두로 창단된 편집자반 내 한국문학 동아리 lsquo공감rsquo은

모임 전에 한국작가를 한 명 정해 단편 두 편을 함께 읽고 키워

드나 질문을 스스로 뽑아 글을 써왔다 모여서 때로는 소설의

플롯이나 주제 문체에 대한 열띤 토론을 하고 때로는 작가의

외모()와 같은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며 삼천포로 빠지기도 했

다 우리끼리만 듣기엔 아쉽다 이 즐거운 대화를 모두에게 들

려주고 싶었다 이날 모임에선 김영하 작가의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단편집 속의 두 단편 lsquo엘리베이

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이하 엘리베이터)rsquo와 lsquo사진

관 살인사건(이하 사진관)rsquo에 대해 이야기했다 여기서는 lsquo엘리

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rsquo를 읽고 토의한 내용을

실었다

한나 참고로 김영하는 사람의 욕망에 대해 천착하는 작가야

그런 특성이 엘리베이터에는 안 나와 있는데 사진관에서는

잘 드러나 있어

상화 백가흠 작가에게 소설창작론 강의를 들었는데 그분이

소설의 기법을 설명하면서 알레고리랑 아이러니를 얘기했어

알레고리가 인물이나 소재를 비유적으로 설명하는 거래 예를

들어 핸드폰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다른

것에 핸드폰을 빗댐으로써 소설을 풀어가는 거

야 아이러니는 속도감 있게 이야기를 전개함으

로써 부조리나 모순을 드러내는 건데 김영하가

아이러니의 대표적인 작가래 단편인데도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내면보다는 사건이 일어나는

걸로 소설을 끌어가는 작가 우리가 지난 모임

에서 성석제를 굉장한 이야기꾼이라고 했잖아

그런데 난 김영하가 훨씬 이야기꾼스럽게 느껴

졌어 속도감 있고 lsquo이렇게 몰입을 할 수 있나rsquo

싶고 지난 모임들에서 읽었던 손보미나 편혜영

소설의 경우는 분위기나 주인공의 심정 내면에

의미를 부여해 야 했는데 김영하의 소설은 덮

자마자 아이러니가 느껴지면서 lsquo아 세상은 왜

이래rsquo 말하게 만들었어

법열 나는 엘리베이터 읽고 딱 lsquo뫼비우스의 띠rsquo가 생각났거든

뫼비우스의 띠가 안하고 겉이 구분이 안 되잖아 끝과 시작이

어딘지도 모르고 lsquo나rsquo가 겪는 상황이 현실인지 아닌지 구분이

안 되는 느낌 마지막에 lsquo나rsquo가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가 존재

하기는 했는지 혼란스러운 느낌을 받잖아 그게 앞의 환상적

인 부분이랑 맞물리면서 하나가 되는 느낌이라 뫼비우스의 띠

가 생각났어

상화 lsquo나rsquo가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구해주려고 고분군투하

다가 나중에 자기가 엘리베이터에 갇히잖아

오권 낀 남자의 발을 보면서 느꼈던 감상이 사실은 자기를 구

하고 싶었던 마음인 거지

(일동 오~ 그렇게도 볼 수 있네)

오권 무한도전의 무한상사 특집도 생각났어 뜬금없이 휴지

사용하는 길이에 대해 회의하는 장면에서 엘리베이터는 갇힌

사회 서로를 돌아보지 않는 사회를 의미하는 것 같아

한나 나는 반대로 오히려 엘리베이터를 희망적인 존재로 봤

거든 아파트도 그렇고 회사도 그렇고 각자 자신의 공간 안에

서 살다가 서로 만날 수 있는 장소는 엘리베이터 밖에 없으니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김영하 지음

문학동네 20100216

동아리 후기

27

까 lsquo나rsquo가 회사 엘리베이터 안에 여자와 같이 갇히잖아 사실

은 갇히지 않았으면 대화도 안하고 지나쳐 갔을 텐데 남자는

자기가 아침부터 버스 사고도 나고 성추행범으로 몰렸다고 얘

기하고 또 남자의 담배 피워도 되냐는 말에 여자는 담배에 대

한 불평불만을 속사포처럼 얘기하고 엘리베이터라는 공간이

아니었다면 이런 대화 자체가 없었겠지

오권 엘리베이터 타면 사람들이 하나같이 층수 바뀌는 것만

쳐다보고 있잖아

상화 요즘은 스마트폰

오권 자기 얘기를 하고 싶은 것 같아 하지만 상대의 얘기는

안 들어 lsquo너의 얘기는 관심 밖이지만 내가 불편한 것에 대한

얘기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하겠어rsquo라는 느낌

한나 그리고 우스웠던 게 볼일 보고 휴지 몇 칸 쓰는지 회의에

서 얘기하는 건hellip 사실 굉장히 사적인 얘기잖아 (일동 하하

하) 서로에 대해 다른 얘기는 일절 하지 않으면서 회의 내용은

개인적이고 사적이라니 아이러니한 거지

수경 진짜 웃기지 않았어 lsquo나rsquo가 자원 재활용 문제에 대한 중

대 보고가 있다고 계속 빨리 가야한다고 했던 게 겨우 그거야

상화 겨우 이딴 회의하려고 지금 엘리베이터에 낀 사람 놔두

고hellip 생명이 더 중요한데 지금 휴지 구하려고hellip

(일동 하하하)

한나 lsquo나rsquo가 불쌍했던 이유가 자기한테 닥친 일들은 lsquo할 수 없

지 뭐rsquo 이런 식으로 넘기는데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 걱정하고

갇힌 여자 걱정하고hellip 정작 자기 걱정은 안 해

오권 영화 lt라이터를 켜라gt 봤어 조폭들한테 얻어맞으면서

도 주인공은 무조건 자기 라이터만 찾겠다고 그러거든 이 소

설의 lsquo나rsquo와 비슷한 느낌이 들더라고 그 영화에서는 라이터가

주인공의 존재를 투영하는 소재거든 lsquo나rsquo는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구해야만 자기가 산다는 느낌을 받은 거라 해석하면

너무 나간 건가

법열 아니요 형이 아까 지적해준 게 와 닿았어요 그 고군분

투가 결국 자기를 구하려는 노력이라는 지적이요

상화 그나마 lsquo나rsquo가 이 소설에서 제일 인간적이지

수경 어딘가 찌질한 느낌도 들어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와

lsquo내rsquo가 동류라고 자각하고 연민을 갖는 느낌이었거든 lsquo나rsquo가

인간적이고 윤리적이라는 생각은 나는 글쎄hellip 더 적극적으

로 할 수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 자기 사이클에서 벗어나

지 않는 한도 내에서 걱정만 하잖아 소설 안에서 비극과 희

극이 번갈아 가며 나타나는데 트럭과 버스가 충돌했을 때

lsquo나rsquo는 lsquo버스 카드 일로 충돌하지 않게 되어 적이 기뻤다rsquo고

생각해 버스 운전사는 트럭 백미러에 가슴이 받혀서 죽었는

지도 모르는데 lsquo다행히 나는 허리가 좀 뻐근한 것만 빼면 별

다른 상처가 없는 듯했다rsquo 이런 생각들을 하는 게 좀 섬뜩했

민희 사람은 다 이중성을 가지고 있잖아 나를 보는 듯했어

만약 학교 가는 길에 엘리베이터에 낀 사람을 봤다면 그렇

지만 나도 얼마나 바빠 몇 분 늦으면 지각 체크 당하고 출석

80퍼센트를 못 채울 수도(일동 웃음) 있는 상황이라면 내

가 그 남자를 구할 수 있을까 일단 지나치고 119에 전화하려

고 했으나 핸드폰이 없는 상황에 나도 처할 수 있는 거잖아 나

만 생각하는 잔인한 면도 내 안에 있고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

도 내 안에 있어 이런 찌질한 모습도 나고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정의롭게 구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상화 기준이 다른 것 같아 lsquo나rsquo 정도면 착하다고 생각했거든

수경 주변 사람들이 약간 마네킹 같지 않아 주인공 주변에

장치되어있던 다른 사람들이 너무 비인간적이기 때문에 lsquo나rsquo

가 돋보이는 거지 lsquo나rsquo는 지극히 평범한 우리 모습 같아 내가

어떻게 할 생각은 없고 궁금하기만 한 거야

민희 그 궁금함과 찜찜함도 죄책감이라 생각돼 아 내가 어떻

게 해줬어야 했나

한나 책임 회피일까

상화 그래서 나는 키워드 뽑은 것 중 하나가 119야 구해주고

싶으면 직접 내 손으로 잡아 빼주던가 엘리베이터를 들어 올

릴 사람을 모아야 했는데 신고 생각만 하잖아 이미 이건 누

가 대신 해결해줘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그나마 우리

사회에서 사고를 수습해주는 건 119밖에 없고 조선시대에는

119같은 거 없고 마을 사람들이 모여 구해줬을 텐데 어쩔 수

28

없는 현대인의 단상이긴 해 현대가 분업사회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들 바쁘고 삶이 개인화 파편화되어 있으니까 119 같

은 집단이 필요한 거지 그래서 난 119를 신의 영역이라고 썼

어 lsquo나rsquo는 119를 거의 신적인 존재처럼 생각하잖아 부르면 모

든 게 해결될 것처럼 핸드폰 빌리고 공중전화 찾고 그런데 막

상 교통사고 현장에서 119 대원에게 면대 면으로 얘기를 했더

니 그들은 무슨 그따위 장난을 하냐고 말해 구조도 실은 신이

아니라 사람이 하는 일이고 그 사람이 관심이 없으면 묻히는

거지

오권 전화를 거는 것과 직접 구해주는 것의 차이가 큰 것 같아

자기가 구해주는 건 적극적인 행동이고 119에 전화하는 건 스

스로 최소한 양심적이긴 하다고 여기는 행동

수경 그런데 엘리베이터에 낀 사람을 아무 것도 모르는 일반

인이 어떻게 했다가는 더 위험해질 수도 있잖아

오권 맞아 사회가 시스템화하고 고도화될수록 각자의 업무가

분업화되었고 전문분야가 생겨났으니까 옛날 같았으면 애 낳

으면 그냥 동네 아주머니가 애 받고 어미가 죽으면 젖동냥 다

녔는데hellip 이젠 사고가 나면 생각이 119에 먼저 미치는 시대가

된 거지

수경 그래서 어딘가에 널브러져 다친 인간이 아니라 엘리베이

터라는 공간에 낀 남자를 설정한 것 아닐까 엘리베이터는 현

대화의 상징이잖아

한나 lsquo나rsquo도 어쩔 수 없는 게 출근 시간에 쫓겨서 시계를 계속

봐 먹고 사는 일이니까

오권 출근했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다시 집으로 돌아가

낀 사람을 구해주면 굉장히 희망찬 소설로 바뀔 텐데hellip (일동

웃음)

수경 이 소설로 현대 사회의 폐단은 다 얘기할 수 있겠는데

상화 김영하는 천재인 것 같다

누군가 그리고 잘생겼잖아

누군가 잘생긴 거야

누군가 지적인 분위기가 있어서 좋아 (한참 얘기)

한나 또 인상 깊었던 게 구두에 집착하는 거 lsquo나는 날렵한 치

타처럼hellip 구두를 가지고 엘리베이터에서 빠져나오는 데 성공

했다 허탈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rsquo는 구절

오권 자살한 사람들이 구두를 가지런히 벗어놓는 이미지가 무

슨 상징처럼 있잖아

한나 신발 한 쪽 없이 다녀봤어 계속 기우뚱대서 내가 걷거

나 서 있을 때 내가 잘못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여기서 lsquo나rsquo가

그랬을 거야 사실 lsquo나rsquo처럼 사는 게 정상인데 세상이 잘못된

건데

상화 이 소설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감정표현이잖아 하루 종

일 얼마나 힘들었겠어 처음으로 감정표현을 하니까 불쌍했어

오권 휴머니즘 불쌍론 또 나왔네(일동 웃음) 그럼 이제 사진

관으로 넘어가볼까hellip

편집자반 11기 이상화

2929

책씹는맛 01 냄새라는 경이 lt감각의 박물학gt 후각편을 읽고

냄새에는 언어가 없다 어휘가 부족한 우리는 말문이 막힌

채 불명료한 쾌감과 자극의 바다에서 말을 찾을 수밖에

없다1

이 말은 다이앤 애커먼의 『감각의 박물학』 제 1장 후각에

나오는 구절이다 냄새를 글로 쓰고자 하는 나의 시도가 늘

실패로 귀결되는 이유를 이 구절에서 찾았다 작가의 말처

럼 냄새에 대해 쓴다는 건 언어 밖 세계로 나갔다가 다시

언어로 되돌아오는 길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길에서 헤매

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후각이라는 감각에서 길을

잃는 것은 낭만적인 일이기도 하다 lsquo냄새의 뇌관을 건드리

면 모든 추억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기rsquo2 때문이다 냄새 하

나에 수많은 추억들이 줄줄이 기억의 회로 위로 떠오른다

예를 들면 바다 냄새 하나만 상상해도 그와 관련된 수많

은 기억들이 머릿속에 뒤섞인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바닷가와 관련된 그 모든 추억들이 기억의 영사막에서 한

편의 옴니버스 영화 형태로 내게 다가온다 난 내 기억의

관객이 되어 그 영화를 보다가 견딜 수 없는 그리움에 젖는

다 이 영화에 대한 감상문을 적으려면 나는 말문이 막힌

다 그래서 몇 글자 적다가 결국 글을 쓰기를 멈춘다 굳이

언어로 표현하자면 쓸 수 없는 그리움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1 『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옮김 작가정신 20040720

A Natural History of the Senses(1991) 17쪽

2 같은 책 18쪽

결국 lsquo언어가 존재하는 세계에서 경이는 언어의 칼날 아래

서 쉽게 해부되고 냄새는 자주 혀끝에서 맴돈다rsquo3 냄새의

숭고함 앞에서 우리는 말을 멈춘다 이처럼 냄새는 말할 수

없는 자연의 경이로움과 닮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lsquo냄새가 우리의 마음을 그토록 강하게 움직이는 것은 부분

적으로 그 이름을 부를 수 없기 때문rsquo4이라고 한다 저자는

그렇기에 사람들이 냄새를 lsquo분 냄새 비슷한 펭귄 냄새가

나는 호화로운 화장실 냄새가 나는rsquo 같은 말로 표현할 뿐

이며 냄새에 대한 이름은 주어져 있지 않다고 말한다 또

한 종류는 같아도 강약과 농도가 다른 각각의 냄새에 이름

을 붙여줄 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우린 일상적으로 냄새를

맡으면서도 그 냄새와 멀리 떨어져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명명되지 않은 것은 결국 잊히는 게 아닐까 부를

수 없음에서 오는 경외감과 숭고함이 있을지라도 냄새는

말해져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말할 수 없는 것에 자꾸

만 침묵하기만 해야 할까

감각도 모험의 영역이 될 수 있다 세계 일주만이 세상을

아는 길일까 lsquo나rsquo를 온전히 아는 것이 역설적으로 세상과

가까워지는 일인지도 모른다 나를 알기 위한 길 중 하나가

내가 가지고 있는 감각을 이해하고 그걸 언어로 표현하는

일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어쩌면 우리와 제일 가깝지만 말

하기 낯선 감각 후각을 이해하는 일이 중요한지도 모른다

냄새라는 감각 속에서 우리 모두 길을 잃고 헤매고 모험해

보자 냄새에 나름의 이름을 지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

리고 농도에 따라 냄새를 구분하는 일도 해보자 냄새라는

경이는 우리를 더 이상 침묵으로 이끌지 않을 것이다

디자인반 11기 백가은

3 같은 책 22쪽

4 같은 책 22쪽

『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 옮김

작가정신 20040720

A Natural History of the Senses(1991)

3030

02 현실을 전복시키는 비현실

모호함이 주는 환상성

20세기 중반 중남미 소설은 전통적인 사실주의 서사 구조

를 깨고 현실과 환상을 혼합시키는 새로운 글쓰기 방식으

로 세계문학의 중심에 선다 이 시기에 주목 받은 일련의

중남미 작가들을 가리켜 lsquo붐 세대 작가rsquo라 칭하는데 아르

헨티나의 환상문학 작가 코르타사르는 이 붐 세대 작가군

의 선구자이자 대표 주자 격인 인물이다 그러나 그 문학적

성과와 명성이 무색하게도 국내 독자들에겐 그의 이름이

아직 생소한 것이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에서는 그

의 작품이 중남미 단편 선집에나 몇 편이 번역되었을 뿐 본

격적으로 소개된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중남미 문학을 공부했고 그의 몇 안 되는 번역 작품을 인

상 깊게 읽었던 독자 입장에서 이번에 출간된 코르타사르

의 단편집『드러누운 밤』은 가뭄의 단비처럼 반가운 신간

이다

환상 문학이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J R R 톨킨 류의 판타

지소설 혹은 쥘 베른이나 아이작 아시모프 류의 SF소설을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코르타사르의 환상문학은 이들 범

주에 들어가지 않는다 코르타사르 작품에서 나타나는 환

상이란 토도로프가 정의한 바 있는 환상 그러니까 자연적

인 것과 초자연적인 것 사이의 망설임에서 발생하는 환상

에 가깝다 따라서 판타지소설의 lsquo현실과 동떨어진 환상rsquo

혹은 SF소설의 lsquo설득력 있고 현실감 있는 환상rsquo을 기대하

는 독자라면 아마 십중팔구 그의 작품을 읽고 실망할 것

이다 어쩌면 이게 무슨 환상문학이냐는 푸념을 늘어놓을

지도 모르겠다 역시 가장 좋은 것은 선입관을 버리고 책을

읽는 것이다

코르타사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lsquo모호함rsquo이다 인물이나

배경 묘사에서 제시되는 기본적인 정보도 모호하고 사건의

전개 양상이 가진 당위성도 모호하다 작품 내에서 주요한

스토리 라인을 담당하는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경계도 모

호하며 심지어는 화자의 정체마저 모호한 작품도 있다 이

런 모호함의 향연은 짙게 깔린 안개와도 같아서 독자들은

그 속에서 한 치 앞도 제대로 내다볼 수 없음은 물론이요

이미 지나간 사실조차도 자신이 맞게 인식한 것인지 확신

할 수 없을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무엇이 진짜인지

독자들의 판단을 망설이게 만드는 이런 상태야말로 코르

타사르의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는 환상이란 개념이다 독

자들은 이 환상 속에서 그저 전방을 주시하며 천천히 나아

갈 수밖에 없다

다행스럽게도 코르타사르는 독자들의 시련을 헛되게 하지

않는다 작품의 시작점 일상 세계에 우연히 침투한 lsquo비현

실적인 것rsquo은 안개 속에서 알게 모르게 자신의 지분을 늘려

나간다 그리고 작품의 종점에 다다른 독자들은 비현실이

현실이 되고 현실이 비현실이 되는 이전과는 전혀 새로운

세계와 마주할 것이다 다시 말해 필연과 이성의 법칙이 지

배하는 세계가 우연과 환상이 지배하는 세계로 변하는 것

이다 이러한 세계의 전복은 마치 여기저기 단서를 흩뿌리

고 사람들을 알쏭달쏭하게 만들었다가 결말부에서 모든

것을 폭발시키는 추리소설 혹은 반전영화를 보는 듯한 재

미를 선사한다

그렇다면 코르타사르가 이 소설들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책을 다 읽고 난 독자라면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의문점이다 코르타사르는 자신이 환상문학을 쓰는

이유를 ldquo법칙이나 원칙 혹은 인과관계나 특정한 심리 또

는 잘 그려진 지리학과 같은 체계에 의해 세상이 지배되고

있다는 것에 반대rdquo하고 ldquo우리가 잘 모르며 우리에게 잘 다

가오지 않는 새로운 질서에 관해 생각해보기 위함rdquo이라고

설명한다 짧게 말해 이 세상에 필연이란 존재하지 않으

며 자신은 그것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말이다 이

게 전부다 순문학이라면 거장의 문학이라면 이보다 더 심

오한 통찰 혹은 비판이 있을 것이란 생각에 문장 속 숨겨진

의미를 발견하고자 머리를 싸맬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조

언을 하자면 독서는 독서 그 자체로 즐기면 된다 적어도 이

책에서는 그렇다 모호함과 예상외의 전개 속에서 재미를

느끼고 코르타사르가 묘사하는 세계의 불가지(不可知)성

을 어렴풋하게나마 인식할 수 있다면 이미 그것으로 충분

하다

편집자반 11기 강귀욱

『드러누운 밤』

훌리오 꼬르따사르 지음 박병규 옮김

창비 20141124

La noche boca arribaJulio Cortazar

31

03 얼어붙은 자의식의 바다를깨뜨리고 생명을 불어넣는 책 『데미안』

데미안을 읽고 나서야 그 동안 내가 두 발 딛고 서 있던 땅이

굳고 단단한 대지가 아니라 얼어붙은 바다에 불과했음을 알

았다 데미안은 도끼를 가져와 이 꽁꽁 언 바다를 가차 없이

내리 찍었다 그리고 말했다 얼어붙은 바다를 단단한 땅인

줄 알고 사느니 그 얼음을 깨부수고 그 속에 빠져 죽기 살기

로 허우적대라고 그러면 그 속에서 너는 너 자신을 똑바로 마

주하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성장할 것이라고

주인공 싱클레어도 그를 둘러싸고 있던 세계를 깨뜨려 나가

며 성장한다 그 모든 과정은 결국 진정한 자기 자신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가 깨뜨린 가장 큰 세계는 바로 자신의 사고 체계였다 세상

을 바라보는 기존의 이분법적이던 시각 고정되고 획일화된 시

각을 버렸다 주인공은 세계 안에 심지어는 자신 안에도 선하

고 악하며 밝고 어두운 양극단의 것들이 공존함을 이해하고

두 세계를 끌어안았다 주인공은 귀와 눈을 가리던 장막을 걷

어내 버리고 세상을 바로 보게 되었다 상극인 것들의 괴리로

이루어진 이 모순된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곧 자신 안의 부조

화 또한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스스로에게 다가서는 첫 걸음

이었다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양극단의 세계 사이에서 싱

클레어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며 흔들리기를 반복했다 이

때 그에게는 삶을 지탱할 중심축이 없었다 항상 내면이 아닌

외부 세계에서 자신이 속할 자리를 찾아 헤맸다 그가 비로소

온전한 자신을 만난 순간은 어느 편으로도 치우침 없이 스스

로의 기준으로 홀로 서게 되었을 때였다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 이 길은 당신이 내면에 있는 모

순되는 두 세계 한없이 나약하고 뒷걸음치는 비열한 모습들

과 정갈하고 깨끗한 곧은 힘들을 동시에 직시하는 순간에 시

작된다 그리고 이 길은 두 세계 속에 들어가 이리저리 휩쓸리

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세계를 밟고 우뚝 올라서서 스스로

가 중심이 됨으로써 앞으로 펼쳐진다

이제 lsquo자아를 찾으라rsquo는 지루하고 흔한 이야기가 더 이상 빤

하거나 우습지 않다 묵직한 울림이 되어 나를 흔든다 그냥

나만 붙잡고 흔드는 것이라면 손사래 쳐 뿌리치겠는데 내가

밟고 있던 땅 속해 있던 세계를 뿌리째 흔들어 버린다 읽는

내내 속이 답답하고 나에게 화가 난다 그런데 이렇게 마구

혼나면서 이상하게도 후련한 구석이 있다 호통을 치는 데미

안이 사실은 우리를 응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막연

하고 무기력한 안개에 휩싸여 있을 때 데미안은 그만의 방

식으로 우리에게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준다 물론 갈 방향을

정해준다거나 각자의 사정을 듣고 상담을 해주는 것은 아니

다 오로지 궁지로 몰아세울 뿐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사람들

은 잊고 있던 lsquo나 자신rsquo을 일깨운다 아 그동안 lsquo나rsquo에 대해 생

각해본 적이 있던가 라는 정도만이라도 좋다 이 물음이 바로

여정의 시작이니까

그렇게 스스로에게 묻고 나면 더 이상 전처럼 살 수는 없기 때

문이다 아니라면 자기 자신에게 면목이 없을 것이다 이 무서

운 책이 우리를 혼내고 몰아치면서도 여전히 영원한 고전이자

필독서로 사랑 받는 이유다

lsquo우리들 속에는 모든 것을 아는 한 사람이 있다rsquo고 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혼이 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혼

이 났다는 것은 자신 안에 있는 lsquo그 사람rsquo이 말을 하기 시작했

다는 뜻이니까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목소리가 희미하

고 멀리 있다 하여도 숨죽여 귀 기울이는 일 자체가 자신에게

로 가는 과정임을 잊지 말고

편집자반 11기 배예리

『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민음사 20001220

Demian Die Geschichte von Emil

Sinclairs Jugend(1919)

31

03 얼어붙은 자의식의 바다를깨뜨리고 생명을 불어넣는 책 『데미안』

데미안을 읽고 나서야 그 동안 내가 두 발 딛고 서 있던 땅이

굳고 단단한 대지가 아니라 얼어붙은 바다에 불과했음을 알

았다 데미안은 도끼를 가져와 이 꽁꽁 언 바다를 가차 없이

내리 찍었다 그리고 말했다 얼어붙은 바다를 단단한 땅인

줄 알고 사느니 그 얼음을 깨부수고 그 속에 빠져 죽기 살기

로 허우적대라고 그러면 그 속에서 너는 너 자신을 똑바로 마

주하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성장할 것이라고

주인공 싱클레어도 그를 둘러싸고 있던 세계를 깨뜨려 나가

며 성장한다 그 모든 과정은 결국 진정한 자기 자신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가 깨뜨린 가장 큰 세계는 바로 자신의 사고 체계였다 세상

을 바라보는 기존의 이분법적이던 시각 고정되고 획일화된 시

각을 버렸다 주인공은 세계 안에 심지어는 자신 안에도 선하

고 악하며 밝고 어두운 양극단의 것들이 공존함을 이해하고

두 세계를 끌어안았다 주인공은 귀와 눈을 가리던 장막을 걷

어내 버리고 세상을 바로 보게 되었다 상극인 것들의 괴리로

이루어진 이 모순된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곧 자신 안의 부조

화 또한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스스로에게 다가서는 첫 걸음

이었다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양극단의 세계 사이에서 싱

클레어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며 흔들리기를 반복했다 이

때 그에게는 삶을 지탱할 중심축이 없었다 항상 내면이 아닌

외부 세계에서 자신이 속할 자리를 찾아 헤맸다 그가 비로소

온전한 자신을 만난 순간은 어느 편으로도 치우침 없이 스스

로의 기준으로 홀로 서게 되었을 때였다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 이 길은 당신이 내면에 있는 모

순되는 두 세계 한없이 나약하고 뒷걸음치는 비열한 모습들

과 정갈하고 깨끗한 곧은 힘들을 동시에 직시하는 순간에 시

작된다 그리고 이 길은 두 세계 속에 들어가 이리저리 휩쓸리

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세계를 밟고 우뚝 올라서서 스스로

가 중심이 됨으로써 앞으로 펼쳐진다

이제 lsquo자아를 찾으라rsquo는 지루하고 흔한 이야기가 더 이상 빤

하거나 우습지 않다 묵직한 울림이 되어 나를 흔든다 그냥

나만 붙잡고 흔드는 것이라면 손사래 쳐 뿌리치겠는데 내가

밟고 있던 땅 속해 있던 세계를 뿌리째 흔들어 버린다 읽는

내내 속이 답답하고 나에게 화가 난다 그런데 이렇게 마구

혼나면서 이상하게도 후련한 구석이 있다 호통을 치는 데미

안이 사실은 우리를 응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막연

하고 무기력한 안개에 휩싸여 있을 때 데미안은 그만의 방

식으로 우리에게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준다 물론 갈 방향을

정해준다거나 각자의 사정을 듣고 상담을 해주는 것은 아니

다 오로지 궁지로 몰아세울 뿐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사람들

은 잊고 있던 lsquo나 자신rsquo을 일깨운다 아 그동안 lsquo나rsquo에 대해 생

각해본 적이 있던가 라는 정도만이라도 좋다 이 물음이 바로

여정의 시작이니까

그렇게 스스로에게 묻고 나면 더 이상 전처럼 살 수는 없기 때

문이다 아니라면 자기 자신에게 면목이 없을 것이다 이 무서

운 책이 우리를 혼내고 몰아치면서도 여전히 영원한 고전이자

필독서로 사랑 받는 이유다

lsquo우리들 속에는 모든 것을 아는 한 사람이 있다rsquo고 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혼이 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혼

이 났다는 것은 자신 안에 있는 lsquo그 사람rsquo이 말을 하기 시작했

다는 뜻이니까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목소리가 희미하

고 멀리 있다 하여도 숨죽여 귀 기울이는 일 자체가 자신에게

로 가는 과정임을 잊지 말고

편집자반 11기 배예리

『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민음사 20001220

Demian Die Geschichte von Emil

Sinclairs Jugend(1919)

32

박세길 인터뷰

진정한 역사가는 과거에 파묻히지 않는다옥(獄)에서 옥(玉)을 만든 작가 박세길 인터뷰

박세길 저자는 처녀작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로 80년대

대표 역사서 자리를 꿰찬 분입니다 1986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감되었을 때 감옥에서 역사책을 읽으며

사회 모순에 대해 고민했고 출소하자마자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집필했습니다 정권 탄압 속에서 왜곡된

현대사를 바로 잡았다는 의미를 지닌 이 대표작은 오랫동안

고시생과 대학생들의 필독서로 꼽혔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읽은 박세길 저자의 저서는 지난 6월 출간한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입니다 기사를 쓰고 편집할 때 청년 세대를

겨냥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박세길 저자는 역시나

청년들의 미래에 큰 관심을 갖고 계셨습니다 취업을

눈앞에 둔 서울출판예비학교 학생들이 가져야 할 자세를

여쭸습니다

출판학교에서 강의하신 한 선생님은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가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와

더불어 80년대 인문학의 양대

산맥이라고 하셨습니다

책의 성공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강의

요청이 많이 들어왔어요 먹고사는

경제적인 문제도 해결됐습니다

몇 부 팔렸는지는 잘 모릅니다

출판사에서 기밀 사항이라고

하더군요 요즘은 마케팅 차원으로도

몇 쇄 몇 부인지 밝히지만 그때는

세금 문제를 피해가기 위해서인지

쉬쉬하던 시절이었나 봅니다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는 대학

선후배끼리도 많이 물려주는 책이라고

들었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의 쉬운 설명이

좋았습니다 더불어 어떤 사명감을 안고 썼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완성하기에 앞서 어떤 목표를

두셨나요

청년 세대가 외환위기 이후 집중적인 희생양으로 전락하면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드러내면서 여기에

머물지 않고 청년 세대의 잠재력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들이 역사 무대 한복판에 진출해 자기 몫을 다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습니다

역사 분야는 시장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역사 혹은 현대사가 주목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통해 얘기하자면

80년대 후반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lsquo왜곡된

역사를 바로 알자rsquo는 시각 교정의 욕구가 있었던

차에 제 책이 나름 부응했는지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시기가 적절했던 셈이죠

2012년 대선 후 역사 분야가 잠시 반짝했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금세 시들었다고

하더군요 당시 역사 분야 책들이 일반 독자가

읽기에 다소 어렵거나 출간한 지 오래된 것들

위주였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돋을세길

출판학교에서 강의하신 한 선생님은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가 유홍준 교수의

책의 성공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강의

하더군요 요즘은 마케팅 차원으로도

선후배끼리도 많이 물려주는 책이라고

역사 분야는 시장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역사 혹은 현대사가 주목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통해 얘기하자면

80년대 후반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lsquo왜곡된

역사를 바로 알자rsquo는 시각 교정의 욕구가 있었던

차에 제 책이 나름 부응했는지 큰 반향을

읽기에 다소 어렵거나 출간한 지 오래된 것들

위주였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의 저자

33

2012년 대선 후 역사 분야가 관심을 받았던 것은

보수층의 재집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한

불안 때문일까요

맞습니다 그러나 마땅한 책이 없어서 그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역사 분야에서 베스트셀러를 내기

위해서는 시기가 맞아 떨어지고 내용 또한 대중이 원하는

것을 담고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를 편집한 lsquo생각정원rsquo

출판사의 정희용 편집자에게 감사 표시를 하셨습니다

어떤 편집자를 선호하시나요

간단합니다 편집자는 철저히 독자 입장에서 독자와 작가

사이의 간극을 줄여줘야 합니다 예를 들면 어려운 내용을

과감히 생략하고 다음 기회로 미루도록 설득한다거나 좌파

운동권 색채가 너무 강한 문장을 조금 순화하는 것 등입니다

어떤 내용이 이번 책에 꼭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선택을

도와줘야 합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을 작가님께서 직접

독자들에게 홍보하신다면 카피 문구를 짧게 제시할 수

있을까요

청년 세대 희망 찾기 갑갑한 현실을 어떻게 타개할 수

있을지 그 답을 찾아보는 길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취업 후 첫발을 내디딜 서울출판예비학교 11기

학생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출판 또한 돈을 벌어야한다는 기본 전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출판계를 지켜본 결과 뭔가 소명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오래

살아남았습니다 출판학교 역대 대표 중 일부는 나와 관계가

있는 사람들인데 모두 고유한 소명의식을 갖고 출판계에

뛰어들었습니다 때로는 상업주의 안에서 재주도 부리곤

했지만 어쨌든 분야 내에서 고유한 캐릭터를 구축했습니다

출판학교 학생들이 출판 상황을 이해하고 자신을 역할을

정하는 개인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비전 중심의 경영을

하는 회사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지만 개인 비전을 기업

비전으로 나아가 사회 비전으로 접목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과거에 안주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부분을

출판계에서는 SNS 등 인터넷 환경을 통한 마케팅으로

이해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SNS망 자체에서 무엇이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건 사람과

사람이 서로 소통하고 공감하는데 필요한 도구입니다

콘텐츠 중심의 사고가 중요하고 그것이 전제되지 않을 때

SNS는 착각에 불과하며 성공할 수 없습니다 필요한 콘텐츠

중심의 사고를 가지고 철저하게 진행하지 않으면 그 공간에서

허망하게 헤엄만 칠 뿐 입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SNS에서

맥없이 헤엄치다 익사하는 경우를 볼 수 있을 겁니다

콘텐츠와 마케팅의 영역을 하나로 보는 것과 따로

보는 것 어떤 것이 독자를 위하는 것일까요

출판 마케팅은 책을 기획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에서부터

개입돼야 하고 그 과정에 독자를 참여시키는 방식을

고민해야 합니다 미국 네브래스카주립대학의 이상문

교수는 lsquo밀실 안에서의 혁신은 끝났다rsquo고 얘기합니다

개방된 체제에서 독자 곧 소비자 사용자의 참여 하에 함께

만들어갈 때 혁신은 이뤄진다고 합니다 출판사의 비전이

브랜드로 연결될 때 독자는 자발적으로 의견을 주고받고

싶어 할 겁니다

마케터반 11기 이창환

디자

인 사

공예

Page 7: 서울출판예비학교 웹진 _5호 2015

7

마지막으로 서울출판예비학교 학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망설임 없이) 외국어를 해라 정말 강조하고 싶네요 외국어를 뭐든

하나는 확실하게 해야 해요 또 글을 잘 써야 해요 저자만큼 저자가

lsquo에이 편집자 주제에 뭘 그리 잘 써rsquo라고 할 정도로 잘 써야 해요

글쓰기 연습을 매일매일 하세요 요즘은 환경이 좋잖아요 페이스북에

매일 끼적이기만 해도 실력이 늘어요 글 잘 쓰고 외국어 잘한다

프리패스예요 어느 출판사든 들어간다 어디든

편집자반 11기 김수진

잠깐만 우리 새우치킨 하나 먹을까

(바로 전화한다) 두 마리요 새우치킨 한

마리랑 양념치킨으로요

(주소를 말하지 않는다) 주소가 저장되어

있으신가 봐요

그럼요 lsquo또 전화하셨군요 오늘은 어쩐

일로 두 마리세요rsquo 이렇게 받아요

마포 김 사장

웹진팀

마포 김 사장

웹진팀

마포 김 사장

기발한 와우북페스티벌 상품들

북스피어 출간 도서 저자 일러스트가 들어간 과자 패키지(좌)와 파본된 책을 한 장(章)씩 분권 해서

500원에 파는 상품(우)

2015 와우북페스티벌 르 지라시 특별판

8

7인 7色 분투기

20150921 월요일 d-25

교육발표회 TF팀 발족 시작이 좋다

9월 21일 월요일 401호에서 교육발표회 태스크포스(task

force)팀(이하 TF팀)의 첫 번째 회의를 시작했다 반 친구들의 투표로

얼떨결에 TF팀의 일원이 되어서 처음에는 부담감을 느꼈지만

한편으론 우리의 성과를 발표하는 자리를 직접 꾸려간다는 것이

기대되었다 첫 만남에는 마케터반 디자인반 사람들과 얼굴을

익히고 가벼운 농담과 함께 분위기를 즐겼다 아직은 어떻게 계획을

짜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지만 그만큼 긴장감을 갖고 열띤 토론을

했다

먼저 공간 구성을 토의했는데 각 반에 할당된 공간은 각 반에

일임하기로 했다 지하 1층은 편집자반과 마케터반이 사용하고

지하 로비부터 계단 외벽은 디자인반의 작품을 전시한다 1층에는

안내소를 설치하고 안내팀을 배치할 것이다 마케터반은 면접실로

사용할 예정이고 디자인반은 전시실로 편집자반은 대기실로

사용할 것이다

두 번째로 홍보에 관해 토의했는데 편집자반의 김종민을

팀장으로 하는 별도의 홍보팀을 꾸렸다 홍보 문구는 10월 2일까지

취합하기로 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포스터를 제작하면 된다 홍보

영상이나 카드 팸플릿을 만들기로 한 안건도 추후 논의하기로 했다

아이디어들이 모아져 하나의 그림이 완성되어가는 듯 했다 점차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던 틀이 잡히면서 그 공간을 하나씩 채워가는

우리를 보고 스스로 대견스러웠다 아직도 걱정되는 일들이 많지만

지금과 같은 패기와 열정으로 준비한다면 잘 마무리 해낼 수 있다고

믿는다 시작이 좋다

편집자반 11기 남민희

20150925 금요일 D-21

두 마리 토끼 잡기 교육발표회 자료집 만들기

9월 초 디자인반에서 세 명의 팀원으로 교육발표회 자료집

담당 팀이 꾸려졌다 교육발표회 자료집은 6개월 동안의 교육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책자로 편집자반 마케터반

학우들의 자기소개서와 디자인반 학우들의 작품이 실린다 디자인

반은 판면을 디자인하고 원고를 받아 책으로 묶는 작업을 맡았다

가장 먼저 수행한 일은 편집자반과 마케터반 학우들의 글이 담길

텍스트 위주의 판면을 잡는 일이었다 40명 이상 인원의 글이 실리는

만큼 반복적으로 보기에 부담이 없어야 하고 변화를 주어 지루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편집자반과 마케터반의 페이지를

마무리한 뒤에는 디자인반의 포트폴리오 작업으로 이어졌다

디자인반의 판면에서 중요한 것은 각자의 성향을 잘 담을 수 있도록

전집 위주 본문 위주 단행본 위주의 세 가지 사항에 따라 판면을

잡는 일이었다 이러한 큰 산을 넘고 나니 정해진 양식에 맞춰

축사와 연혁 교육과정 소개 페이지를 완성하고 각 반을 상징하는

색을 살린 간결한 표지를 만드는 것은 무리 없이 진행되었다

자료집 팀원들은 자신의 포트폴리오와 병행해야 하는 압박감과

6개월간 우리의 행로를 담아내는 작업인 만큼 실수가 없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으나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계획을

꼼꼼하게 세워 차근차근 진행해 나갔다 또한 다른 학우들이 시간

약속을 잘 지켜주었기 때문에 촉박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차질 없이

마무리할 수 있었다 자료집을 만든다는 것은 디자인반으로서는

작업을 정리함과 동시에 모든 학우들이 자신의 학교생활을 마무리

짓는 일로 소중한 경험이었다

디자인반 11기 홍기화

20151001 목 요일d-15

걱정도 병인 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오늘은 발표회 편집자반 공간을 꾸밀 물품을 사러 가는 날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추석 연휴를 보내서 그런지 등교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할 일은 산더미인데 그저 막막하기만 했다 그래도

오전부터 교육발표회 준비 팀장인 종민이가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것 같아 다행이다 종민이가 좀 힘들어 보이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난 그저 시키는 대로 따라가고 옆에서 도와주면 될 것 같다 뭐가

됐든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는 언제나 어렵고 외롭다

각 조의 콘셉트가 정해지고 필요한 물품의 목록이 정리됐다 10만

원 정도만 지원해준다고 한 것 같은데 다들 뭐가 이리 살 게 많은지

사무국에서 다 사줄지 모르겠다 (우리 조도 살 게 꽤 많은 것

날보러와

디자

인 사

공예

교육발표회 준비취재

9

같았는데hellip) 한 시간 동안 호미화방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필요한

물품을 샀다 그런 와중에 혹시 빼먹은 건 없는지 예산이 부족하진

않을지 걱정이 들었다

교육 과정 내내 걱정하고 고민하고 불안해한 것 같다 마음 편하게

생각하라는 말을 친구들에게 줄곧 들은 것 같은데 할 수 없다 내가

원체 이렇게 생겨 먹은 걸 이제 발표회까지 남은 시간은 정확히

보름 우리가 보낸 6개월을 4시간 동안 보여주는 행사다 이 행사가

전부는 아니지만 그래도 24명 모두에게 아니 11기 출판학교 교육생

모두에게 주어진 마지막 과제다 lsquo혼자 하는 것도 아닌데 걱정만

하지 말고 차근차근 준비하면 되겠지rsquo 하면서도 걱정이 앞선다 진짜

이것도 병이다

편집자반 11기 권오권

20151008 목요일 D-8

가을 나들이 같은 인터뷰

내가 인터뷰 팀이라니 게다가 팀장이라니 누구 마음대로 이건

음모라고 구시렁대며 일정을 짠다 수료 때까지 감투 안 쓰는 게

목표였는데 망했다고 말하며 멘트를 고민한다 그래 사실은 즐겼다

어차피 할 일 없으니 잡배마냥 학우들에게 치근대며 시간 보냈을

터였다 그럴 바에야 나들이 간다 치고 즐기는 편이 나았다 날씨는

또 얼마나 좋은가 투덜댔지만 가벼운 걸음이었다

지금까지 교육 과정 내에서 강의 또는 특강으로 만났던 많은 분들을

카메라로 담았다 대부분 직접 회사로 방문했기 때문에 다양한

사무실을 보는 것도 재미였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강의 때보다 더

진하고 선명하게 한분 한분을 볼 수 있었다 그들도 마찬가지였을까

본인에게는 일상인 세계를 동경한다면서 비집고 들어오려는 우리를

보는 우려와 격려 섞인 눈빛에서 ldquo너희도 이거 하려고 아이고 힘들

텐데 부디 잘 해나갔으면 좋겠네rdquo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아름답다

감사하다

시시덕거리며 돌아오는 길에 생각한다 앞으로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이 가을 이 마음의 우리가 그리울 건 알겠다 벌써부터

아릿하다 역시 인터뷰 괜히 했다 귀찮아 죽겠다 진짜

편집자반 11기 김상흔

20151009 금요일 D-7

교육발표회를 홍보하라 티저 포스터 만들기

드디어 6개월의 과정이 끝나가고 있었다 우리를 보여 줄 마지막

기회인 교육발표회를 앞두고 TF팀은 lsquo홍보rsquo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꼭 보러 와달라는 메시지를 어떻게 하면 잘 전달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 끝에 lsquo티저 광고rsquo를 제작하기로 결정했다 CF나 기타 광고에서

활발하게 활용되는 서서히 베일을 벗어가며 호기심을 자극하는

광고 기법 말이다 우리의 타깃은 대중이 아닌 출판계라 처음엔

lsquo이런 홍보를 과연 좋아하실까rsquo 하는 의구심이 앞섰다 하지만

회의를 거듭하며 아이디어를 잘 뽑아내고 두 반이 협력한다면

효과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케터반 편집자반 학생들의 문구들을 취합해 투표로 가장

적합한 것을 뽑았다 1등은 정혜림 학우의 lsquo북쪽으로 가라 귀인을

만난다 BOOK쪽으로 오라 귀인을 얻는다rsquo가 차지했다 lsquo북쪽rsquo이라는

방향표현을 lsquoBOOKrsquo으로 바꾼 게 참신하고 재밌어 모두의 공감을

얻었다 2등은 김수경 학우의 lsquo내가 동네북이니 응 SBI 동네북

페스티벌rsquo이 뽑혔다 평소에도 재미있는 말투로 늘 주변을 웃게

만드는데 그 재기발랄함이 묻어나는 문구였다 3등으로 뽑힌

유보미 학우의 lsquo날 떠난 후 너는 행복하니 내 인생 책임져 책책책

책임져rsquo는 아쉽게 광고에는 쓰이지 않았지만 시선을 끄는 기발한

문구였다 이 외에도 lsquo책 잡힐 일 하지마라 책 잡을 일 해라rsquo lsquo갈피를

못 잡을 땐 책갈피rsquo 등 재밌는 문구들이 많았다

전부 광고에 쓰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라 12등 문구를

멋지게 디자인하기로 했다 디자인에 대한 의견을 반 친구들과

나누며 포스터들을 직접 디자인했다 서로 의견이 맞지 않기도 하는

등 고단할 때도 있었지만 많은 분들이 우리를 보러 와주신다면 모든

고생이 잊힐 것이다 제발 그랬으면 한다

편집자반 11기 박혜원

10

20151012 월요일 D-4

수많은 이름들을 위하여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난리다 난리 우리 반이 이렇게 시끄럽고

활기찬 적이 있었던가 자타공인 조용하다던 편집자반 학우들은

어디로 가고 요 며칠 온통 돌아다니거나 무언가를 만드느라

고군분투하는 풍경들과 마주하고 있다 나쁘지 않은 아침이다

그 동안 우리는 직책의 기근()에 익숙해져 있었다 반장 부반장

조장의 휘하에서 맡은 바를 다하며 펠로우십을 뽐내고 있던

우리에게 갑자기 수많은 이름들이 떠맡겨졌다 누군가는 TF팀이

되고 누군가는 홍보 팀장이 되었으며 누군가는 인터뷰 팀장이라는

직책을 맡았다 그런가 하면 건축학을 전공한 학우는 공간 배치를

구상하는 역할을 맡고 누군가는 가을 단풍을 모티프로 해서

편집자반 전체의 부스를 꾸미고 있다 그뿐이랴 각 동아리의

장(長)들은 동아리 부스를 만들랴 그 동안의 활동을 책으로 만들기

위해 인디자인 작업에 몰두하랴 정신이 없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웅장하게 꾸며질 조별 부스를 살펴보면 아마도 입이

떡 벌어질 것이다 각 조는 워크숍으로 만든 자신들의 책에 맞춰

콘셉트를 잡았다

편집자반 lsquo윌비rsquo 조는 『창업 자금 날려먹지 않는 법』에 맞게

카페처럼 부스를 꾸미기로 했다 거대한 간판도 이미 완성되었고

맛있는 커피도 만든다고 하니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lsquo길목rsquo 조는 『서태후 비사』의 내용에 따라 서태후가 좋아했던

벚꽃으로 부스를 장식한다 게다가 한 켠에는 『서태후

비사』전자책과 예쁜 책갈피까지 마련되어 있을 것이다

lsquo달로rsquo 조는 『사이의 거리』의 표지에도 실 그림이 들어간 것에 맞춰

실을 이용하고 있다 특히 실로 lsquo사이의 거리rsquo 글자를 만들었을

때에는 학우들 모두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어떻게 실로 글자를

만들 수 있었는지 많은 분들이 와서 봐주시면 좋겠다

lsquo세모북스rsquo 조는 강명관 잡문집인 『허울 좋은 나라』를 만들었다

시대상과 일상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lsquo사진rsquo에 착안해 옛날

사진관처럼 부스를 꾸미고 있다 흑백 사진과 손글씨가 고즈넉한

멋을 더할 것이다 돌림판 이벤트도 있을 예정이다

편집자반 11기 이상화

2015101 목요일 D- 15

lsquo정rsquo이 있어 lsquo반rsquo을 찾아 lsquo합rsquo을 보니 마케터더라

lsquo차별성이 있어야 한다rsquo

책의 차별성을 찾았던 6개월 그리고 6개월 간의 경험을 토대로

lsquo차별성이 있는 마케터반의 발표회rsquo를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각

조의 조장들과 발표회 테스크포스 팀원이 머리를 맞댔다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lsquo책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그렇다고 너무 책에

집중하지 말자rsquo였다 마치 lsquo정rsquo과 lsquo반rsquo을 통해 lsquo합rsquo을 만들어내는

과정이었다 세상에 이마저 변증법적 접근이라니 그러나 우리가

누구인가 책이라는 물성에 가치의 효용을 불어넣는 우리가

아니던가 분명 발표회에도 그와 비등한 가치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전체 콘셉트은 lsquo북북 쓰는 마케팅rsquo으로 각 조를 하나의 챕터로

삼았다 즉 개성이 뚜렷한 5개의 챕터로 이루어진 lsquo마케팅 북rsquo인

것이다 그리고 각 챕터는 lsquo마케팅이란rsquo이라는 소주제를 부여하여

각 조의 교육과정과 보여주고 싶은 것들을 자유롭게 보여주기로

했다

이제 정이 끝났으니 반을 제시할 차례 lsquo반rsquo으로 lsquo소책자rsquo와 lsquo상품rsquo를

선택했다 소책자는 그저 소개하는 글만을 넣지 않고 lsquo스탬프

여행rsquo의 컨셉을 빌려 꾸미기로 했다 각 조의 부스를 돌아볼 수 있는

장치로 충분한 역할을 할 것이다 상품은 lsquo책rsquo에 대한 행운을 줄 수

있는 lsquo무언가rsquo를 준비하기로 했는데 지금 당장 밝히기는 쉽지 않은

lsquo무언가rsquo를 준비할 것이다 (기대되시지요)

이제 합이다 합은 발표회 당일 분명 lsquo정rsquo과 lsquo반rsquo의 효과가 나타날

것이며 어느 때의 발표회보다 멋질 것이다 (라고 근자감을

부려본다) 곧 시작될 발표회 기대하시라

마케터반 11기 이장열

11

1212

설왕설래

『호밀밭의 파수꾼』의 결말이

궁금해서 견딜 수 없다면

세 반 학우들의 상상력을 동원한 우리들의 릴레이 세

나에 대해 듣고 싶다면 내가 어디서 태어났는지 어린

시절이 얼마나 형편없었는지 내 부모님이 무슨 직업을

가지고 있는지 내가 태어나기 전에 무슨 일들이 있었는

지 같은 데이비드 코퍼필드 식의 헛소리가 듣고 싶겠지

하지만 난 그딴 이야기 하고 싶지 않아 (JD 샐린저 『호

밀밭의 파수꾼』

내 속으로 지나가지만 어쨌든 내 것이 아닌 섬광을 내

가 앉았던 내가 읽었던 생을 한순간에 으스러뜨리는

섬광을 이야기하고 싶어 이창환

아니 잠깐 내가 뭔 병신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

지 내일 서울출판예비학교 면접 있어서 빨리 자야 하

는데hellip 공태준

어서 잠에 들어야 한다는 조급함이 커질수록 허기 또

한 함께 치밀어 올랐다 결국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파

스타 면을 삶는 시간 8분 (그 동안엔 냉장고의 한 쪽

에 남아있던 산토리 한 캔을 단숨에 들이켜야 했다)

음악은 야나체크의 산포니에타 김사룡

맥주 한 캔으로 살짝 취기가 돌자 술이 더 마시고 싶었

다 결국 소주 한 병을 꺼내어 마시며 적당히 삶아진 파

스타 면을 올리브유에 볶았다 내일 입을 정장치마가

끼지 않을까 걱정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엎질러진 물

인걸 최다은

침대에 누워 억지로 잠을 청해본다 잡념이 사라지지

않는다 고민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된다 젠장 벌

써 새벽 3시 자긴 글렀네hellip 그렇게 뒤척이다 날은 밝았

다 이다혜

밝아진 창밖을 보며 어젯밤 나를 뒤척이게 한 면접을

떠올렸다 어제만 해도 중요한 일이라 생각했는데 날

이 밝으니 이미 그 중요성은 나와 멀어진 느낌이다 의

무감에 옷을 챙겨입고 집을 나섰다 양화대교를 건너는

버스 안 새로운 계획이 떠올랐다 황하정

새로운 계획으로 들뜬 나에게 창밖의 풍경이 눈에 들어

온다 수많은 사람과 차량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

어진다 다른 듯 보이지만 얼굴을 장식한 특유의 무표

정함과 발등에 불이 떨어진 듯 바삐 움직이는 모습 속

에 내가 겹쳐 보인다 그래 이번 계획은 나에게 얼마

동안의 기대감을 선사해 줄 수 있을까 뭐 어때 잠깐

이라도 좋다 쓸데없는 잡념보다는 시한부 희망이 차라

리 낫다며 애써 위로한다 유수지

순간 어렴풋한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니 내 또

래의 남자가 거북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김단희

그의 혐오에 가까운 시선과 마주쳤을 때 나는 순간 얼

어버렸다 면접 장소에 가기 위해선 이번 정류장에서 내

렸어야만 했다 그러나 나에게 다가오는 그 남자 때문

에 그러지 못했다 남자가 말했다 김선아

ldquo너였구나 그래 너였어 3년 전 3만원을 빌리고 도망

간 김말숙이 그래 너야rdquo

그 남자는 미친 게 분명했다 lsquo잠깐 이 관능적인 머스

크 향은 뭐지rsquo 순간 뇌리를 스치는 불가리 향수는

그 남자를 떠올리게 했다 지독하게 얼굴을 기억하지

못했던 그 남자를 말이다 이장열

대학교 1학년 설레는 마음으로 나간 첫 번째 미팅을

내 인생 최악의 시간으로 만들었던 lsquo불가리 그놈rsquo이었

lsquo젠장 이 안면 인식 장애놈이 내 얼굴을 어떻게 기억하

는 거지rsquo 내 이름이 김말숙이든 아니든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내 얼굴을 기억한다는 것이 의아할 뿐

양화대교 위에서 떠오른 새로운 계획 그래 지금부터

시작이다 오늘 하루는 lsquo나rsquo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 살

아보는 거야

난 매섭게 치뜬 눈으로 나를 응시하는 그를 뒤로하고

소설의 첫 문장으로 시작하는 릴레이 소설

13

무심히 다음 역에서 내렸다 아무런 동요 없이 발걸음

을 옮기는 나를 보고는 그도 무안한지 이내 제자리로

돌아가는 듯했다 이상한 사람 나는 계속해 나의 목적

지를 향해 걸어갔다

결국 지각했다 면접은 진행 중이었다 이게 다 불가리

때문이다 불가리 냄새가 몸에 밴 것 같다 아니 불가

리 냄새는 내 옆에서 나고 있었다 내 옆에는 불가리가

앉아 있었다 부처님의 손가락을 본 손오공의 심정이

이러했을까 강귀욱

끔찍했다 냄새도 면접도

lsquo젠장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야rsquo

담배에 불을 붙여 한 모금 깊게 빤다 lsquo후-rsquo 치미는 화

도 잡념도 불안도 이 연기처럼 쉬이 사라져버리면 좋

으련만 무의미한 푸념만이 입 안에 맴돈다

ldquo김말숙~ 여기 있었냐rdquo 그 말에 얼마나 놀랐냐면 떨

어진 담뱃불이 내 정장치마를 태우고 있는 줄도 몰랐을

정도였다 lsquo불가리 그놈을 피해 골목까지 들어왔는데

여긴 어떻게 찾은거야rsquo

ldquo밥 먹을래rdquo lsquo꺼져 꺼져 제발 꺼져helliprsquo 못 들은 척 고

개를 돌렸다

ldquo소달구지라고 괜찮은 식당 있는데 같이 가면 그 3만

원 없던 걸로 해줄게rdquo

우리는 눈이 마주쳤다 김영준

해질 무렵 서서히 불이 들어오는 보고 있어도 언제 밝

아졌는지 알 수 없는 양화대교 위 가로등처럼 우리는

천천히 그러나 깊게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새카

만 흑암의 공간 무저갱 같이 깊고 검은 눈동자 속에

숨겨 놓은 비밀을 알아내기라도 하려는 듯 그렇게 서

로의 눈을 망막 너머의 시신경을 시신경을 타고 올라

가 전두엽 어딘가에서 터지고 있을 스파크를 계속 들여

다보았다 이윽고 두 남녀의 입이 열렸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낮은 목소리가 화음을 내며 울려 퍼

졌다 ldquo몽마르뜨가 좋겠어rdquo 권오권

끔찍했던 면접과 기분 나쁜 불가리놈의 얼굴이 잊힐 정

도로 음식의 맛은 정말 좋았다 고작 음식 때문에 기분

이 나아지는 내 자신에게 정말 어이가 없었지만 어쨌

든 맛은 좋았다 된장국으로 숟가락을 옮기며 슬쩍 앞

의 녀석 얼굴을 쳐다보았을 때 그 녀석도 나를 쳐다보

고 있었다 김희연

3년 전의 얼굴과 꽤 변해있었다 그 당시 철없는 어린

애 같은 얼굴이었는데 지금은 사회인이 되려고 꾸며댄

듯한 모습 물론 3년 전보다 더 나아졌다거나 잘생겨진

것은 아니다 전보다 훨씬 평범한 얼굴이다 ()

그런 그는 어째서 날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어째서 날

기억하고 다가와서 말을 걸고 함께 식사까지 하려 하

는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이 텅 빈 머릿속을 메

운다 엄청나게 망쳐 버린 하루지만 이상하리만큼 멀

쩡한 내가 낯설다 김하얀

그러다 내가 집에 돌아가는 길 문득 미니스톱에 담배

를 사러 들렀다가 ldquo여기 국산담배밖에 없는helliprdquo 음hellip

없단다 가뜩이나 기분도 꿀꿀한데 없다니 빵만 사서

나왔다

빵을 사서 가는 길에 낯익은 얼굴에 걸음을 멈추었다

ldquo너 혼자 빵 먹냐 나도 같이 먹자rdquo 불가리 그놈이었

다 ldquo혹시 너 나 따라온 거야rdquo 기가 막혔다 백가은

어쩐지 불가리 향수 냄새가 난다 했다 ldquo왜 따라왔어rdquo

그랬더니 불가리 그놈이 하는 말

ldquo난 내 집 가는 건데rdquo 믿을 수 없다 수상쩍다 그놈은

나를 앞질러 가더니 우리 집 주인 아줌마네 집으로 들

어가 버렸다 아 저 놈이 집주인 아줌마 아들놈인가

월세 밀렸는데 망할

망할 이상한 하루였다 잊자 오늘 일은 전부 다 잊어

버려야지 방으로 들어오기 직전에 산 맥주 한 캔의 뚜

껑을 따고 들이킨다 캬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가는 듯

시원하다 씻고 자리에 눕는 순간 면접 결과가 나올 때

까지 무엇을 하고 있어야 할지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TO BE CONTINUEDhellip

은 익명 표시입니다

13

무심히 다음 역에서 내렸다 아무런 동요 없이 발걸음

을 옮기는 나를 보고는 그도 무안한지 이내 제자리로

돌아가는 듯했다 이상한 사람 나는 계속해 나의 목적

지를 향해 걸어갔다

결국 지각했다 면접은 진행 중이었다 이게 다 불가리

때문이다 불가리 냄새가 몸에 밴 것 같다 아니 불가

리 냄새는 내 옆에서 나고 있었다 내 옆에는 불가리가

앉아 있었다 부처님의 손가락을 본 손오공의 심정이

이러했을까 강귀욱

끔찍했다 냄새도 면접도

lsquo젠장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야rsquo

담배에 불을 붙여 한 모금 깊게 빤다 lsquo후-rsquo 치미는 화

도 잡념도 불안도 이 연기처럼 쉬이 사라져버리면 좋

으련만 무의미한 푸념만이 입 안에 맴돈다

ldquo김말숙~ 여기 있었냐rdquo 그 말에 얼마나 놀랐냐면 떨

어진 담뱃불이 내 정장치마를 태우고 있는 줄도 몰랐을

정도였다 lsquo불가리 그놈을 피해 골목까지 들어왔는데

여긴 어떻게 찾은거야rsquo

ldquo밥 먹을래rdquo lsquo꺼져 꺼져 제발 꺼져helliprsquo 못 들은 척 고

개를 돌렸다

ldquo소달구지라고 괜찮은 식당 있는데 같이 가면 그 3만

원 없던 걸로 해줄게rdquo

우리는 눈이 마주쳤다 김영준

해질 무렵 서서히 불이 들어오는 보고 있어도 언제 밝

아졌는지 알 수 없는 양화대교 위 가로등처럼 우리는

천천히 그러나 깊게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새카

만 흑암의 공간 무저갱 같이 깊고 검은 눈동자 속에

숨겨 놓은 비밀을 알아내기라도 하려는 듯 그렇게 서

로의 눈을 망막 너머의 시신경을 시신경을 타고 올라

가 전두엽 어딘가에서 터지고 있을 스파크를 계속 들여

다보았다 이윽고 두 남녀의 입이 열렸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낮은 목소리가 화음을 내며 울려 퍼

졌다 ldquo몽마르뜨가 좋겠어rdquo 권오권

끔찍했던 면접과 기분 나쁜 불가리놈의 얼굴이 잊힐 정

도로 음식의 맛은 정말 좋았다 고작 음식 때문에 기분

이 나아지는 내 자신에게 정말 어이가 없었지만 어쨌

든 맛은 좋았다 된장국으로 숟가락을 옮기며 슬쩍 앞

의 녀석 얼굴을 쳐다보았을 때 그 녀석도 나를 쳐다보

고 있었다 김희연

3년 전의 얼굴과 꽤 변해있었다 그 당시 철없는 어린

애 같은 얼굴이었는데 지금은 사회인이 되려고 꾸며댄

듯한 모습 물론 3년 전보다 더 나아졌다거나 잘생겨진

것은 아니다 전보다 훨씬 평범한 얼굴이다 ()

그런 그는 어째서 날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어째서 날

기억하고 다가와서 말을 걸고 함께 식사까지 하려 하

는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이 텅 빈 머릿속을 메

운다 엄청나게 망쳐 버린 하루지만 이상하리만큼 멀

쩡한 내가 낯설다 김하얀

그러다 내가 집에 돌아가는 길 문득 미니스톱에 담배

를 사러 들렀다가 ldquo여기 국산담배밖에 없는helliprdquo 음hellip

없단다 가뜩이나 기분도 꿀꿀한데 없다니 빵만 사서

나왔다

빵을 사서 가는 길에 낯익은 얼굴에 걸음을 멈추었다

ldquo너 혼자 빵 먹냐 나도 같이 먹자rdquo 불가리 그놈이었

다 ldquo혹시 너 나 따라온 거야rdquo 기가 막혔다 백가은

어쩐지 불가리 향수 냄새가 난다 했다 ldquo왜 따라왔어rdquo

그랬더니 불가리 그놈이 하는 말

ldquo난 내 집 가는 건데rdquo 믿을 수 없다 수상쩍다 그놈은

나를 앞질러 가더니 우리 집 주인 아줌마네 집으로 들

어가 버렸다 아 저 놈이 집주인 아줌마 아들놈인가

월세 밀렸는데 망할

망할 이상한 하루였다 잊자 오늘 일은 전부 다 잊어

버려야지 방으로 들어오기 직전에 산 맥주 한 캔의 뚜

껑을 따고 들이킨다 캬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가는 듯

시원하다 씻고 자리에 눕는 순간 면접 결과가 나올 때

까지 무엇을 하고 있어야 할지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TO BE CONTINUEDhellip

은 익명 표시입니다

14

이옥란 선생님

캡틴 오 마이 캡틴(captain oh my captain)선생님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

편집자반 학우들은 늘 이분의 얼굴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며

끝마친다 몇 번의 마주침은 덤이다 그분은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도 가깝지만은 않았던 편집자반의 담임 교수

이옥란 선생님 자신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우리를 위한

이야기를 풀어놓으시느라 매일 종례시간이 부족하신 이옥란

선생님께 이번엔 우리가 물었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 일상을 어떻게 보내고 계신가요 선생님의

주말이 취향이 추억이 삶이 궁금하다 편집자반 학생들에게

직접 받은 질문들로 lsquo한 사람rsquo에게 궁금한 것들을 물었다

이 인터뷰를 읽은 뒤 그녀를 한층 좋아하게 되리라고

확신한다

왜 디토 커피에 자주 가시나요

커피가 제일 맛있고 값이 싸고

넓은 창으로 햇빛이 많이 들어와

그리고 주인장들이 공간은 물론이고

손님들과도 잘 어우러지는 것 같아

옥란 선생님께 스카프란

어느 날 발견한 패션 아이템 몇 년 전인가

홍대 앞 가판대에서 우연히 마 레이온 합성의

보라색 스카프를 발견한 이후인 것 같아

왜 고양이를 좋아하시나요 고양이를 키우시나요

고양이가 나를 키웠다고 할 수 있지 시골집 막내였는데

고양이가 친구가 되어주었어 (선생님이 고양이를 닮아

가시는 것 같아요 혹시 키우세요) 둘 있는데 13년쯤 되었나

최근에 읽었거나 읽고 계신 책은

이익섭 저의 『국어학개설』 『말과 사물』 『좌파는

어디에 있었는가』 『논어』 『번역어의 성립』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등 여러 권 들고 다니면서 돌려본다

(국어학개설은 읽는다기보다 공부 아닐까요) 아니야

재미있어

인생의 책을 꼽자면

김훈의 『남한산성』 표지가 핫핑크 색이야 건조하고 힘

있는 남성적인 문체의 마초라고 불리기까지 하는 작가의

책이 핑크색이라니 크기도 아마 46판에 더스트 커버(dust

cover)는 질긴 천의 느낌이고 본문은 재생지인지 무겁지

않고 두께도 딱 손에 잡히는 정도 감각까지 장악한 책이야

몇 권 사서 주변 사람들에게 돌렸어

선생님의 멘토는

이런 질문에 답하게 될 줄은 몰랐네 글쎄 그러고 보면

존경스러운 사람은 있었지 대학 때 문학 동아리 선배였어

양상현 형 (어떤 점이 제일 존경스러우셨어요) 자유롭게

사는 사람이었던 것 얼마 전에 돌아가셨어 이제 조금

실감이 나네 그분은 건축 전공에 시를 쓰고 음악을

즐기고 노는 문화를 나누고hellip 어떤 사태도 회피하지 않고

자유로웠던 사람이었지 앞으로 할 일이 더 많았을 터인데

양상현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졸업 동대학원

박사학위 2002년 대한민국건축대전

초대작가 선정 순천향대 건축학과

교수 재직 민족건축인협의회

의장 설계 작품으로는 lsquo장암리

주택rsquo lsquo녹촌리 조각가의 집rsquo 등

대표 저서『거꾸로 읽는 도시

뒤집어 보는 건축』 2015년

8월 14일 별세

졸업 후 편집자로 일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우리 때는 노동운동이나 농민운동을

했던 대학생이 사회과학 출판사로

진출하는 경우가 많았고 내 친구도 졸업을 해서

출판사에 있었어 그 녀석이 나를 사무실로

초대했는데 반지하도 아니고 그냥 지하였던 것

같아 ldquo옥란이 이리와 봐 이게 뭔지 아니 바로

매킨토시라는 거야 이게 얼마짜린지 아니rdquo

매킨토시 컬러 클래식(Macintosh Color Classic)

웬만한 공책보다 좀 클까 본체가 화면에 같이

붙어 있는 하드웨어를 가진 컴퓨터였지 친구 말로는

300~400만 원 한다고 했어 20년 전이니 당시로는

큰돈이지 교정지를 보여주더니 마치 lsquo음 너는 아직 이런 거

모르지rsquo라고 하는 듯이 ldquo잠깐만 언니가 뭐 좀 할 테니까

잠깐 기다려봐 하hellip 이거 띄어쓰기 어떻게 해야 하려나 이게

전문용어라 통일을 해줘야 하는데helliprdquo 하던 잘난 척이 기억이

나네 그렇게 출판사를 접했지 문학 동아리를 하느라 알게

된 선생님들 선배님들도 여럿 출판사에들 계셨어

편집자로 일하셨을 때 어떤 분야를

편집하셨나요

하다 보니 주로 예술 서양 미술 분야였고

출판사는 학고재 예경 마로니에북스까지

그런 기회가 나한테 왔고 재미있었어

전공이 그쪽이 아니었기 때문에 공부를

해야 했지

지난 서울출판예비학교생활 중 특별히

기억나는 사람이나 사건이 있다면

8기 졸업식 날 남학생 셋이 ldquo저는 출판학교에

와서 모든 것을 얻었습니다rdquo 그러면서 흑흑 우는 거야

누군지 얘기하면 창피하겠지 남학생들이 울어서 애들이

알고싶어 편집자반

15

완전 눈물 바다였잖아 (우리 반 오빠들이 운다는 건 상상할

수 없네요) 다음 해에는 애들이 완전 유머 코드여서 웃다

끝났지

출판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된 계기나 동기는

무엇인가요

나는 8기부터 시작했는데 7기 담임이던 김장환 씨가 나를

불렀어 공동 담임을 해달라고 lsquo그러지 뭐rsquo 이렇게 시작했지

직장은 2008년도까지 다녔고 프리랜서로 활동하면서

여기저기서 강의를 하고 있었어 한겨레 문화센터에도

23년쯤 있었지 (편집자보다 이렇게 선생님으로 있는 게 더

즐거우세요) 지금은 진짜 만들고 싶은 책 함께 작업해보고

싶은 저자 그런 게 아닌 한 직업으로 신간을 꾸준히 내는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당신들은 눈이 반짝반짝해서 업계에 들어와야겠다고

준비해서 오잖아 그 친구들이 1년차 3년차 되는 것을

지켜보고 있으려니까 내가 그 나이쯤 사회생활을

시작해 고민했던 지점이 보이는 거지 그 때

이걸 알았더라면 하는 안타까움이 있어서

여러분들이 애틋해지지

요즘 최대의 관심사는 무엇인가요

저녁에 후배들에게 가르칠 강의를 하다

보니 국어 공부의 필요성을 여실히 느끼고

있어 출판 동네에서 20년 넘게 일한 사람이

공부해온 것을 한 번 정리해서 후배들한테 줄 필요도

있겠구나 싶고 (뭔가 일 얘기가 아닐 줄 알았는데요

하하)

은퇴 후에 무엇을 하고 싶으신가요

오늘은 말이 절로 나오는 걸 하하 마당 있는 시골집 텃밭을

일구며 역사에 길이 남을 인간과 세상을 통찰하는 대작

소설을 발표하겠다 (와)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이 되고 싶으신가요

다시 태어나고 싶지가 않아hellip(웃음) 지구에서는 내

대에서 멸종하기로 했다

저희들에게 속 시원하게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자신 있게 해라

생각해보면 다들 자기가 못났어 키도 좀 더 컸으면

좋겠고 외모도 마음에 안 들고 내가 저 때 저렇게

했으면 지금 달라졌을까 부럽기도 하고

그런데 사실 부질없는 거거든 세상 사는

힘이 실력에만 있는 게 아니고 태도의 문제가 더

클 때가 많아 내 것이 아닌 것에 목매고 있을

필요가 없어 신입사원으로 전혀 모르는 곳에

뚝 떨어졌을 때 저들의 세계 속에 혼자 쏙

들어간 기분이니까 일단은 주눅이 들지

하지만 거기서 살아가야 하지 않겠어

둘러보면서 아 저기가 화장실이구나 사람들은

이런 걸 이렇게 하는구나 파악하고 나면 좀

수월해지잖아

마지막으로 대망의 이상형 월드컵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정우 주원 김수현 유아인 이렇게

4강전으로 시작하겠습니다

(하정우와 주원 중에서는 누가 더 좋으세요) 하정우지

주원이 최근에 좋아지긴 했는데 아직도 하정우를 따라올 수

없어

(그럼 김수현유아인 중에서는요) 유아인이지

(너무 확고하셔요 드라마 lt밀회gt 보셨나요) 집에선 케이블

방송도 안 나오고 관심 갖게 되었을 땐 너무 유행이라

안보고 말았지 대신 영화 lt완득이gt는 봤다

(이제 결승인데요 마지막으로 하정우와 유아인은요)

아인이는hellip 나한테 좀 과분한 것 같아(웃음) 하정우가 삐질

것 같은데 그래서 둘 다 잃는 거야hellip

편집자반 11기 김수진 이상화

lt베테랑gt의 악랄한 재벌 2세유아인

lt프로듀사gt의 어리버리 신입PD

김수현

lt용팔이gt의 천재 외과의사

주원

lt 암 살 gt 의 순 정 마초

하와이 피스톨하정우

하정우

16

한대웅 선생님

『동백꽃』의 주인공 같은 그 남자착하디착한 순하디순한 한대웅 선생님의 속마음

좀처럼 화내시는 일도 없고 허허 웃기만 하시고hellip 하지 못한

말들을 땀으로 발산하듯 여름이면 온몸이 열정으로 흠뻑

젖으시는 분 세상 어디에도 없을 착한 남자 마케터반의

한대웅 선생님이다 그에게 던진 몇 가지 질문에 돌아온 것은

가장으로서의 고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 아직도 앳된

소년 같은 순수함이 묻어나는 답변들이었다 이제 그를 좀 더

깊게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평소에 칼라(collar) 티셔츠를 즐겨 입으시던데

좋아하시는 옷인가요

좋아한다기보다는 제 딴에는 편하게 입을 수 있는 듯해서

즐겨 입고 있습니다 또 아내가 이런 종류의 옷을 많이

사주기도 하고요

선생님께 lsquo출판rsquo이란 무엇인가요

출판은 lsquo꿈을 이루는 판도라의 상자rsquo lsquo내가 가진 능력에 가장

맞는 일rsquo입니다

출판을 업으로 삼지

않으셨다면 어떤 일을

선택하셨을까요

모르겠네요 아마도 운명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요 다만 다음과

같은 3가지 생각은 해보았습니다

첫째 고등학교 시절 성적이 조금

더 좋았다면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해서

지금쯤이면 텔레비전이나 영화에 나오는 큰 전투함의

함장이 되지 않았을까요

둘째 대학교에 입학하지 못했다면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로 이민을 가서 장사를 하거나 농부로 농장을

운영하면서 그곳 사람으로 국적을 바꾸고 살고 있지

않을까요 고등학교 3학년 때 대학교 입학 시험에

떨어지면 다른 나라로 가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다는

마음의 준비를 했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 모 일간지에 실린

해외에서 성공적인 삶을 사는 한국 사람들에 관한 기사를

꼼꼼하게 읽었었거든요

셋째 대학교 3학년이나 4학년 때 신춘문예까지는 아니라도

대학교 교내 문학상 정도를 받았다면 아마도 그 결과에

탄력을 받아 시나리오 작가나 연극 연출가의 길로 가려고

하지 않았을까요

ID와 블로그에 lsquo봄rsquo이라는 단어가 들어있는데 봄을

좋아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그 ID를 만들 무렵 저의 미래는 꽤나 불확실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바꿔 말하면 어떻게

돈을 벌어야 하고 어떻게 자아 성취를

해야 하는지가 불확실하고

힘들었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lsquo봄rsquo이라는

단어를 좋아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누구나

알다시피 봄은 겨우내

얼어 있던 것들이

새롭게 싹을 틔우고

새롭게 기지개를 펴는

계절이죠 물론 봄

자체가 주는 느낌도

좋고요 그래서 lsquo봄rsquo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던 것

같습니다

블로그는 서울출판예비학교에서

일을 시작한 후 만들었습니다

블로그에 lsquo봄바람rsquo이라는 의미를 부여한

것은 ID를 만들던 때의 생각이 이어진 것이겠지요 요즘에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이 많이 사라진 것 같습니다 만약

앞으로 블로그나 ID를 만든다면 아마도 lsquo여름rsquo 혹은 lsquo풍성함rsquo

아니면 lsquo내가 원하는 세상을 상징하는 어떤 것rsquo을 이름으로

사용할 것 같습니다

편집자로 첫 시작을 하셨는데 나중에 출판 마케터로

일하게 된 동기를 알고 싶어요

시장 상황을 분석하고 이에 맞게 마케팅 계획을 세우고

사람이나 집단을 만나고 힘을 합쳐 뭔가 새로운 결과를

만들어 내는 일이 재미있었습니다

은퇴 후에 꿈꾸시는 삶이 있으신가요

아직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20대와 30대

초반에 꿈꾸던 것들을 lsquo은퇴 후에 여유가 생긴다면 이것들을

해볼까rsquo라고 간혹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현재겠죠 출판에서 뭔가를 이루려고 열심히 계획하고

실행하다 보면 은퇴 후의 삶도 더 풍요로워지지 않을까요

알고싶어 마케터반

17

일하실 때 다뤘던 책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무엇인가요

입사 초기 편집을 하거나 시장조사를 하고 제가 출간 여부에

대한 판단을 내렸던 책들이 기억납니다 『펠레』 자서전은

제가 편집자로 있을 때 출간했던 책인데 주요 일간지의

서평란 메인을 장식했던 책입니다 출간 시점을 맞추기 위해

촉박한 기간 동안 밤새가며 책을 만들었습니다 출간 시점에

대한 판단이 정확히 맞았고 그 결과 기대 이상으로 많은

서평을 받았던 책입니다

서울예비출판학교 선생님으로 오신 계기를

알고 싶어요

전에 다니던 출판사를 그만둔 후

개인적으로 뭔가를 해보려고 고민

중이었습니다 그러나 능력이

부족하다 보니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았죠 그러던 중에

출판학교에서 일해 볼 것을

제안 받았고 저도 출판학교

학생들처럼 면접을 보고 이

학교에 오게 되었습니다

일을 하게 되었을 때 매우

즐거웠습니다

다시 출판사 마케터로 돌아갈

생각이 있으신가요

아니오 이유는 2가지인데 첫째는 제 나이가

48세입니다 다른 업종도 그렇지만 출판 산업에서도

48살에 마케터로 직장인의 생활을 이어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죠 정말 현실적인 고민이죠 게다가 출판학교에서

여러분과 소통하며 제 지식을 전수하는 일이 재미있습니다

물론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언젠가 저만의 꿈을

찾아갈 수 있겠죠

평소 몇 권의 책을 읽으시나요 최근 읽은 책 중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요

예전에 많이 읽을 때는 1주일에 2권 정도 읽었습니다

황석영의 『장길산』과 홍명희의 『임꺽정』 이문열의

『삼국지』를 읽을 때 짬짬이 쉬는 시간을 비롯해 지하철에서

보내는 시간까지 거의 모든 시간을 책을 읽으며 보냈습니다

요즘에는 1달에 1~2권 정도 읽는 것 같네요 최근 읽은

책 중에 기억에 남는 책은 『내 아이와 어떻게 대화할

것인가』(율리아 기펜레이테르 저 써네스트 2006)와 『내

아이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율리아 기펜레이테르

저 써네스트 2009)입니다 제목만으로도 왜 이 책을

추천하는지 금방 눈치 챌 수 있을 것입니다 아이가 둘

있는데 첫째는 15살 딸이고 둘째는 10살 아들입니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lsquo어떻게 하면 아이와 싸우지 않고

윽박지르지 않고 아이의 자존감을 높여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성실하고 삶의 열정과 꿈이 넘쳐나는 아이로

키울까rsquo 같은 고민을 항상 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단비처럼 다가왔습니다 위의 2권의 책을 읽고 몇

가지 중요한 것들을 배웠습니다 아이와 어떻게 소통하고

어떻게 대화해야 하는지 아이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등등 이전에 『부모와 아이 사이』(하임 G 기너트

등 저 양철북 2003)를 읽고 아이를 이해하는 법에 대해

큰 인상을 받았는데 이 책도 그 연장선에서 저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아들과 딸을 좀 더 이해하게 되고 그

결과 아이들에게 화를 내거나(저도 나약한 인간인데 화가

날 때가 심심치 않게 있거든요) 아이들의 긍정적인 싹을

본의 아니게 꺾어 버리는 경우가 줄었다고 할까요 게다가

이 책은 lsquo부모와 아이 사이rsquo만이 아니라 lsquo친구와 친구 사이rsquo

lsquo회사 내부 구성원 사이rsquo에서 소통하는 데도 많은 영감을

제공합니다 출판학교 학생들과 소통할 때도 이해의 폭을

넓혀주고 긍정적인 소통을 하는 방법을 제공해 줍니다

이제 수료를 앞둔 마케터반 학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으시다면

개인별로 처한 처지와 조건에 따라 다르겠지만 다음과 같은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 연인을 사랑하듯 출판에 대해서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보세

- 이 길이 나에게 최선의 길인가 생각해 보세요

- 목표를 세우고 지금부터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한 후 그것을 어떻게 이루어 나갈 것인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보세요

저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스스로의 내면을 단단하게 할 중요한

질문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앞으로도 끊임없이

새로운 답을 찾아나갈 질문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케터반 11기 이장열 이창환

18

선생님은 주말에 뭐하세요

무조건 가족과 함께hellip

만약 편집 디자인을 안 하셨다면 무슨 일을 하고

계실까 궁금해요

어찌 됐든 개인 사업자로 살았을 듯 윗사람 비위 맞추는

것을 너무 못하므로hellip

선생님 주량이 어떻게 되세요 주사가 있으세요

몸 상태 좋고 안주 많이 먹으면 1병(클래식으로)

좋은 출판 디자인을 생각한다

심우진middot안광욱 선생님

lsquo멋rsquo이라는 것이 폭발한다뼛속까지 디자이너스러운 심우진 선생님

멀리서도 눈에 띄는 큰 키에 멋들어진 베레모 디자인반의

심우진 선생님 되시겠다 서울출판예비학교에서 lsquo멋rsquo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가끔은 조금 키 큰 학생처럼 학생들

속에 잘 어우러지는 사람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모습은

여기까지다 그를 조금 더 알고 싶다 지금까지의 그를

만들어왔을 lsquo심우진의 생각들rsquo이 궁금했다

선생님은 무엇을 드시고 그리 멋지시나요

학생들의 사랑 밥 김치

일본 유학길에 오르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lsquo동아시아rsquo lsquo근대rsquo가 당시 나의 화두였으므로 그리고

스기우라 고헤이 선생을 뵈러

첫 직장을 다녔을때 일의 강도()나 다니는 동안

마음은 또 어떠셨는지

출판 쪽 첫 직장은 lsquo정디자인rsquo인데 lsquo나는 왜 이렇게 디자인을

못할까rsquo 답답해했던 기억이 있어요 그러나 매우 즐거웠고

술도 자주 마셨죠 아직도 당시의 OB들과 가깝게 지내요

lsquo둥지rsquo 같은 곳이죠

선생님께서 생각하는 완벽한 판면이란

디자이너의 삶의 방식과 콘텐츠의 삶의 방식이 녹아든 판면

선생님의 피로회복 방법은

알고싶어 디자인반

19

디자인반의 히어로좋은 출판 디자인을 생각한다 안광욱 선생님

여자 화장실 앞에 있어 인파로 북적대는 디자인반 교실을

학생들과 함께 굳건히 지켜온 분 디자인반 학생들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애정공세를 아끼지 않는 분 안광욱

선생님에게 물어본 4가지

디자이너로서 첫 직장을 다닐 때의 마음이

어떠셨나요

잘하고 싶었는데 못해서 힘들었지 사수에게 하루 서너

시간씩 야단맞으면서 했다오 매일 2호선 양화대교에서 뛰어

내리고 싶었는데hellip 이 부분은 내일 수업 때 얘기해줄게^^

선생님께서 생각하는 좋은 출판 디자인이란

세상을 향한 사랑과 희망이 듬뿍 담긴 디자인

출판 디자인을 안 했다면 지금 무슨 일을 하고

계실까요

모르겠네 그냥 선녀 옷 훔치는 나무꾼이 되어 있을 듯^^

어떤 주사가

있으신지 궁금해요

말이 조금 더 많아지고 장소 불문 쿨쿨 자 특별한 주사는

없는 듯

디자인반 11기 이소현 백가은 사공예원

디자

인 사

공예

20

편집자반 김영준 학우가 그린

『이 외로운 사람들아』 일러스트

기억에콕

수업 후기

ldquo우리에게는 lsquo일탈rsquo이 필요합니다rdquo

잠깐 딴 짓을 하는 사이에 귓가에 들려온

한 문장이 나를 사로잡았다 배는 부르고

따 사 로 운 햇 살 에 잠 이 쏟 아 지 는 시 간

오후 1시 30분 시간을 칼같이 맞춰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선 그는 딱 봐도 지루하고

고리타분해 보이는 첫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순간 눈으로 들어온 이미지는 뇌로 흘러갔고

뇌는 망설임 없는 확신으로 귀에 명령을

전달했다 그렇게 귀는 이미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내 들려올 그렇고 그런 뻔한

이야기에 대하여

눈의 판단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의 한마디

한마디는 파격이었다 아니 어쩌면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였지만 누구도 자신 있게

내던지지 못하는 말들을 서슴지 않고 내뱉는 그

거침없음에 신선함을 느낀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의 관심을 돌려놓았던 lsquo일탈rsquo에 대한 그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lsquo일탈을 하라rsquo는 말이

lsquo제멋대로 하라rsquo는 의미가 아니라 어떤 규칙을

벗어나는 행위를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다르게

생각하는 방식을 몸으로 익히게 된다는 것

새로운 것을 생각해내는 창의성이라는 힘은

당연히 새로운 경험에서 나온다는 것이었다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니 강의를 듣던

친구들의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때 보고 들었던 그의 말과 행동이 우리에게는

딱 딱 한 강 의 실 에 서 느 끼 는 새 로 운 경 험

lsquo일탈rsquo이었다

그 와 의 만 남 은 계 속 이 어 졌 다 이 곳

서 울 출 판 예 비 학 교 에 입 학 한 이 후 로 는 좀

더 완 벽 한 일 주 일 단 위 로 시 간 이 흐 르 기

시작했는데 매주 쌓여가는 새로운 배움 뒤에는

수많은 물음이 불쑥불쑥 솟아났고 그는 마치

예상을 했다는 듯이 일주일에 한 번씩 나타나

우리의 설익은 궁금증을 해소해주고 떠나갔다

첫 만남에서는 책이라는 대상과 책을 대하는

편집자의 자세에 대해 이야기하며 큰 그림을

그려주었고 다음엔 저자와의 관계 맺기 그

다음엔 스스로 만들어 가야할 편집자의 자기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담백하게 들려주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네 번째 만남이었다

누구도 쉽게 이야기하기 어려운 완벽하게

솔직해지기는 더더욱 어려운 자신의 좌절과

실패를 그는 담담하고 진솔하게 소개해주었다

모든 성공에는 대개 7할의 실패가 전제되어

있기 마련인데 성공에 이르기까지 거치는

우 리 가 lsquo실패rsquo라고 명 명하는 것들이 사실

진짜 실패가 아니라 성공의 다른 이름이라는

그의 말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성공도 실패도

어 느 한 지 점 에 서 내 리 는 판 단 인 것 이 고

결 국 성 장 하 고 성 숙 한 다 는 것 은 성 공 과

실패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lsquo차이rsquo를 얼마만큼

발견하느냐 하는 것에서 결정된다는 그의 말이

가슴을 뜨겁게 했다 비로소 lsquo편집자rsquo로서가

아닌 한 lsquo사람rsquo으로서의 그가 보이기 시작했다

담담하게 말을 하고 있지만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아프고 쓰린 기억을 후배들에게

들 려 주 는 그 에 게 서 진 심 이 전 해 져 왔 다

사랑하는 일에 대한 함께 걸어갈 동지들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 참 고마웠다

어느덧 마지막 만남이 찾아왔다 한 권의

책을 만들면서 진행했던 편집의 과정을 예로

실 제 적 인 이 야 기 를 우 리 에 게 마 지 막 으 로

들려주었다 편집의 능력은 지식과 정보에서

나온다는 것 그것은 단숨에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 꾸준히 쌓아가야 한다는 것 그래서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의 문제라는 것을 경험을

근거로 자신 있게 말해 주었다 이미 지나온

과거의 결과 대신 앞으로 걸어갈 길에 대한

희망을 들려주어서 그게 참 고마웠다

편집자반 일탈이 주는 파격 우리가 낳을 lsquo새로운 책rsquo과 편집자선완규 선생님과의 다섯 번의 만남이 키운 생각들

21

그 가 우 리 에 게 마 지 막 으 로 이 야 기 를

들려주었던 그날 이후 석 달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났다 나는 여전히 같은 강의실에 앉아

앞서 길을 걸어간 선배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고 조금씩 가까워지고 밝아져가는 내 앞에

놓인 길에 대해 생각한다 그러다 문득 마음이

무거워지고 막막해질 때면 종종 그의 말들을

떠올려 본다 그리고 그 생각의 끝에서 마음을

의지하며 함께 이 길을 걸어갈 따뜻한 선배가

하나 있다는 위로 한 줌을 발견한다

ps 선완규 선생님 고맙습니다 보고 싶어요

편집자반 11기 성준근

마케터반 강한 수면욕 환상과 환기

판형과 종이를 예술로 편입시키려는 영업자다빈치 출판사 박성식 대표 특강 후기

9월 23일 평소보다 점심을 많이 먹었던 날이다 잠을 며칠간 못 자 피곤했다

오후 1시 30분이 살짝 지나서 다빈치 출판사 박성식 대표의 특강이 시작됐다

다빈치 대표님은 처음 뵐 때부터 남다르셨다 서울출판예비학교 입학 면접에서

여자 술 담배를 각각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보셨다 lsquo솔직함을 어필해야

하는 순간인가rsquo하는 생각에 직설적으로 답했지만 lsquo더 문학적으로 얘기할 수

있었는데rsquo라는 후회를 안고 돌아왔다

마음과 다르게 첫 번째 시간은 정신없이 잠이 쏟아졌다 눈을 감고 귀 기울였지만

턱을 괸 채 버티는 동안 50분이 지났다 대표님께 캔 커피를 하나 드리고 맞이한 두

번째 시간 그 한 시간 동안 나는 현실 옆의 어떤 이상 내지는 환상을 본 것 같다 그동안

듣던 강의들을 놓고 lsquo이상적인 관점이다rsquo 혹은 lsquo현실적이다rsquo라고 구분했던 판단의 폭

자체가 좁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성식 대표님은 내 머리에 있던 lsquo책rsquo에 대한 인식을 전복시켰다 자본주의 출판의

몰락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시작됐다는 말 출판 기본 특성인 다품종 소량 생산은 돌아올

것이며 다품종 소량 생산을 넘어 다품종 소량 lsquo고급 생산rsquo을 추구하고 싶다는 말은 나를

달뜨게 했다 주류에 반하는 사고를 가진 중년의 개성과 내공에 교실 풍경이 환기됐다

교육 수단으로 책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지만 책은 그만큼 사회적 의무와 희생을

짊어져왔다 출세와 공부 앞에서 책이 가진 기호(嗜好)성은 변두리로 내몰렸다 책을

읽어야만 제대로 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분위기는 옳지 않다 독서는 성향의 범주지 성역이

돼선 안 된다 정보와 지식의 전달은 모바일 등에 넘겨주고 종이책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공동체로 돌아와야 한다 그게 원래 자리라는 대표님의 주장이 새롭고 강렬하다

자본주의 3대 원칙인 lsquo더 빨리 더 많이 더 싸게rsquo 체계는 표준화와 규격화를 동반하며

매우 효율적이다 현재 사용하는 종이는 자본주의 원칙에 최적화돼 있다 그러나 대표님은

인쇄기계로 소화하지 못하는 질감과 전혀 다른 발색을 지닌 lsquo종이rsquo에 주목했다 그 종이로

콘텐츠 종이 판형이 완벽하게 들어맞는 예술서를 만들고 시장을 설득한다면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책 판매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전했다 종이 자체가 책의 예술성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한지(韓紙)를 예로 들면서 훌륭한 텍스트와 이미지를 한 차원 끌어올리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많은 부수를 팔아야 성공한 출판 많은 부수를 파는 것을

목표로 하는 시대는 저물고 있다 기존 유통과 판매 방식

안에 갇혀서는 불황에 매몰될 뿐이다 소량의 고급화된

책을 꿈꾸는 것과 전시회를 책과 결합하는 것도 다른 길을

물색하는 과정이다

대표님은 10년 전부터 lsquo이 원고는 내가 누구보다 잘

만들겠다rsquo lsquo이 원고는 내가 못하면 누구도 못할 것 같다rsquo라는

생각이 든 책만 출간을 진행했다고 한다

강의 중간 자신의 독특한 철학을 전달하는 것에 대해 가벼운

염려를 하셨지만 이론적이고 실용적인 분야에 몸담더라도

예술적 사고의 유연성은 필요하다고 본다 돈과 인문정신을

구분하면서 필요할 때 양쪽에서 자극 받고 차용하는 것이 마케팅의 융통성과 힘을 기르는 길일 것이다

마케터반 11기 이창환

편집자반 김영준 학우가 그린

『이 외로운 사람들아』 일러스트

박성식 대표가 기획한 lsquo오름rsquo전

22

하늘

습탁은 농도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하늘

습탁은 농도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이 글은 심우진 선생님의 탁본 세미나 수업에 대한 우리들의 즐거운

기록이다 탁본은 습탁(濕拓)과 건탁(乾拓) 두 종류로 구별된다

습탁은 나타내고자 하는 물체 위에 물을 묻힌 후 종이를 그 위에

밀착시키고 먹물 묻은 솜방망이로 가볍게 두드려서 물체를 표현하는

방법이다 물체의 패인 부분을 제외하고 볼록한 부분의 모양대로

종이에 먹이 묻어 문자나 문양이 드러난다 건탁은 이름 그대로 물을

사용하지 않고 마른 상태의 먹인 고형묵(固形墨)을 사용한다 우리는

각자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사물과 자연을 이용해 탁본 작품을

만들고 서울출판예비학교 꼭대기 층에서 작품을 공유했다

디자인반 이 시간을 그대로 탁본할 수 있다면심우진 선생님의 탁본 세미나

저는 신문지를 구겨서 해봤어요

응 그런데 이건 방바닥 같은데

방바닥까지 묻어 나와 버렸네요

[학생들 하하하]

저는 일단 큰 나무 기둥을 떠봤고요

오솔길의 짚도 해보고 저희 집 바닥과

벽면도 신기해서 떠봤어요 집 벽면 중에

대리석도 있고 특이한 벽면이 많거든요

부잣집인가 보네

[학생들 깔깔깔]

승연

심우진 선생님

승연

승연

심우진 선생님

이건 파프리카인데 저희 집 개가 완성한 종이를 찢었어요

[학생들 하하하]

좀 작고 납작한 파프리카를 반으로 잘라서 습탁했어요 또

이건 철조망인데 용 비늘처럼 나와서 재밌었어요 아나콘다

같기도 하고 철조망이 날카로워서 습탁하니 종이가 자꾸

찢어져서 다시 하게 됐어요 근데 이거요hellip 남자친구

있으면 커플끼리 한 번 해보세요 한 명은 잡아주고 한 명은

습탁하고hellip 되게 로맨틱 성공적

자랑하는 거니

[학생들 깔깔깔]

수빈

수빈

심우진 선생님

혜민

정묵

처음에 나뭇잎이 세세하게 잘 나올 줄 몰랐는데 그

줄기의 질감이 잘 나왔고 버려진 타이어를 끌어서

생긴 모양으로도 습탁을 했는데 생각보다 잘 나와서

막상 찍어보면 생각과 다르다는 것을 느꼈어요

저도요 결과물이 뚜렷하게 안 나올 줄 알았는데

디테일이 잘 나타나 있었고 입체를 평면적으로

찍는 것 자체가 재밌었어요

수정

저는 빗자루를 해봤어요 너무 얇아서 안 나올

거라 생각했는데 빗자루 문양이 잘 나와서

재밌었고 머리카락도 해봤는데 머리카락은

끝 부분이 잘 나오는 편이에요 위쪽은 다

뭉쳐있는데 끝 부분은 펼칠 수 있으니까요

23

저는 결이 얇은 것들을 뜨는 것이 재밌었어요

머리카락처럼요 머리 긴 사람에게 부탁해서

눕히고 했어요 그리고 이건 얼굴인데요

처음에는 그냥 했는데 얼굴은 입체를 살리려면

스케치하듯 떠야 되요 결국 명암으로 입체감

조절을 해야 되죠 코가 너무 입체적이라 특히

힘들었어요

누구 얼굴이야

우리 언니hellip

[학생들 우와]

가은

심우진 선생님

가은

하얀

음각이 나왔을 때 너무 좋았고요하늘

습탁은 농도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소리

건 탁 보 다 는 습 탁 이 농 도 조 절 하 는 게

희 한 해 서 재 밌 었 어 요 농 도 조 절 이

관 건 이 거 든 요 먹 과 물 의 배 합 과

솜방망이가 먹물을 얼마나 흡수하는지 그

흡수량이 중요하고요

윤미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꽤 많은데 만져보면서 건탁을 뜨니까 좋았어요 전에

습탁할 때는 시멘트 벽 같은 걸 하다가 나뭇결을 하니까

살아있는 느낌이었어요 생각했던 것처럼 나와서

좋았고 솔방울이나 나뭇잎 같은 섬세한 것들은 제대로

나오지 않아서 아쉬웠어요 섬세한 것들은 습탁으로

해봐야겠어요 그래도 다양한 나무를 건탁해봐서

만족해요

소현

저는 일상적인 것들로 습탁을 해봤어요

처음에는 단순하게 오돌토돌한 느낌만

있 을 줄 알 았 는 데 색 다 른 느 낌 이 나 서

재밌었어요

탁본 세미나를 마치고 그 다음 주에 지하 강당에서 촬영하는 시간을

가졌다 촬영 후에 보정도 했다 나뭇잎의 결 무늬 타이어 자국

그리고 사람의 머리카락까지도 좋은 디자인의 재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보았고 나누었다 건탁과 습탁의 장단점을 이 수업으로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심우진 선생님의 이번 탁본 수업도 지난 활자

수업처럼 지식 습득은 물론이고 경험까지 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 시간들이 앞으로 출판 디자이너로서의 감각을 더 풍요롭게 해 주지

않을까

디자인반 11기 사공예원

하얀

음각이 나왔을 때 너무 좋았고요

습탁은 농도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솜방망이가 먹물을 얼마나 흡수하는지 그

흡수량이 중요하고요

윤미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꽤 많은데 만져보면서 건탁을 뜨니까 좋았어요 전에 꽤 많은데 만져보면서 건탁을 뜨니까 좋았어요 전에

이건 파프리카인데 저희 집 개가 완성한 종이를 찢었어요

[학생들 하하하]

좀 작고 납작한 파프리카를 반으로 잘라서 습탁했어요 또

이건 철조망인데 용 비늘처럼 나와서 재밌었어요 아나콘다

같기도 하고 철조망이 날카로워서 습탁하니 종이가 자꾸

찢어져서 다시 하게 됐어요 근데 이거요hellip 남자친구

있으면 커플끼리 한 번 해보세요 한 명은 잡아주고 한 명은

습탁하고hellip 되게 로맨틱 성공적

자랑하는 거니

[학생들 깔깔깔]

24

9시 30분 합정역 1번 출구 앞

ldquo누나rdquo 소리에 쳐다보니 반가운 공 총무의 얼굴이 보였다 정류장

앞으로 길게 늘어선 줄에 합류하여 파주로 날 데려다 줄 2200번

버스를 기다리고 있으니 반가운 얼굴들이 계속 나타났다 한 대의

버스를 보내고서야 겨우 2200번 버스에 탑승해 파주로 출발할 수

있었다

10시 15분 파주 lsquo다산교 앞rsquo 정류장 하차

4개의 정류장 총 57분이 걸린다고 알려준 N사 지도 어플의 정보와는

달리 30분 만에 파주에 도착했다 일찍 도착해 먹을 것을 찾아 헤맨

예비 마케터들은 편의점에서 주린 배를 채웠고 lsquo지혜의 숲rsquo을 살짝

염탐하며 11시까지 시간을 보냈다

11시 05분 보진재 2층

1912년 설립되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인쇄소인 보진재 관계자

분이 나와 간단히 인사 말씀을 하고 각 반의 인솔자를 소개해주셨다

마케터반의 인솔자는 서동관 과장님 디자인반 편집자반 마케터반

순으로 견학을 시작했다

11시 15분 보진재 견학 시작

제일 먼저 본 곳은 제판실이었다 필름 인쇄가 줄어들고 CTP로

대체되는 추세지만 어떤 분들은 여전히 필름 작업을 하고 계셨다

이유를 물어보니 서동관 과장님은 예전 필름이 남아 있기도 하고

출판사에 따라 필름을 고집하는 곳이 있다고 하셨다

한번에 5도 인쇄가 가능한 기계를 보는 중에 서 과장님이 말씀하셨다

ldquo한 유닛(unit)당 23억 정도 해요rdquo 그렇다면 유닛 다섯 개가

돌아가고 있으니 적어도 10억짜리 기계라고 내 눈에 보이는 건 그냥

낡고 큰 기계인데 10억이 넘는다니 놀랐다 또 과장님께서 자랑스레

말씀하신 한 가지 잉크 농도 조절을 자동으로 하는 기계가 보급된

곳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었다 원래는 사람이 눈으로 보고 수정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재판을 찍을 경우 초판과 동일한 색상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있지만 보진재는 기계가 자동으로 조정해주어 수월한

작업을 할 수 있다고 하셨다

매염실도 보고 제본실도 구경했다 인쇄된 종이를 접지하고 제본을

마친 후 마지막으로 제단을 하면 책이 완성되어 나왔다 그 모든

과정을 보고 난 후 서 과장님이 건넨 완성된 책의 무게는 보통의

그것보다 조금 더 무겁게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윤전실이었다 견학 당일은 작업이 없어서

비어있던 윤전실이지만 윤전실이 주는 무게감은 컸다 윤전실은

롤(roll)로 인쇄하는 곳으로 8개의 롤이 양면 인쇄를 하고 건조와

접지까지 한 번에 가능한 기계도 있었다 대량생산을 위한 곳으로

주로 교과서나 EBS 학습지를 인쇄한다고 하셨다

12시 20분 견학 끝

1시간을 조금 넘긴 견학을 끝내고 밖으로 나오니 코가 따갑고 목이

말랐다 기계가 먼지를 빨아들여준다고는 하지만 수없이 많은

종이가 존재하는 공간에서의 종이 냄새는 강력했던 것이다 책이

제작되는 과정은 실제로 보니 다양하고 복잡했다 자동화가 많이

되어있지만 사람의 손길 없이는 절대 완성될 수 없는 과정들을 보며

책이 완성되기까지의 노력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lsquo책이 어떻게

만들어진다rsquo를 배우다가 lsquo책이 이렇게 만들어진다rsquo를 보니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예비 출판 마케터의

길로 들어선 후에 새로운 것을 보고 배울 수 있었는데 보진재 견학은

그 중에서도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책을 완성시키기 위한 모든 과정이

저마다의 몫을 하고 있었다 서울출판예비학교 졸업 후 출판계에

들어섰을 때 나는 과연 어떤 몫을 할 수 있을까 남은 2개월을 조금은

더 열정적으로 보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마케터반 11기 최다은

1 일일탈

학교 밖 견학 후기

피부로 와 닿는 책의 감촉 책의 냄새 책의 소리 보진재에서 책이 인쇄되는 과정을 만나다

필름과 인쇄판이 만들어지는 과정

25

우리가 이제 각자 편집자 마케터 디자이너가 되어 책 만드는 일을

시작하면 우리의 책은 이곳에서부터 그 lsquo탄생rsquo을 시작할 것이다 책의

근간이 되는 종이가 만들어지는 곳 한솔제지 공장에 다녀왔다 학기

초에 책을 파는 서점을 견학한 뒤 그 다음으로 출판사 종이에 활자를

찍어내는 인쇄소 그리고 마지막으로 lsquo종이rsquo를 만드는 제지 공장을

찾은 것이다 책이 만들어지는 순서대로라면 우리가 다녀온 순서를

거꾸로 해서 다녀왔어야 했지만 우리는 반대로 실제 과정을 거슬러

올라간 것이다 이렇게 거슬러 올라가는 과정에서 오히려 편집자란

직업에 겸허해질 수 있었다 가끔은 편집자가 책을 만드는 모든

과정 위에 군림하는 것 같이 느껴지지만 책의 물성을 만들어내는

거대한 기계 앞에서 우린 한없이 작아지기도 한다 lsquo한 권의 책rsquo이

만들어지려면 이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함을 이해해야 했다 이렇게도

복잡하고 힘겹게 만들어지는 책의 가치를 한 번 더 깊이 생각하게 된

계기였다 책이라는 건 의미가 담긴 조각들의 집합체이자 종이를

보기 좋게 물성화한 것 이론적으로야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눈으로 보고 느끼는 것과는 천지차이다

날씨마저 좋았던 9월 11일 평소보다 한 시간이나 이른 8시

30분에 세 반 학우들은 눈도 제대로 못 뜬 채 집합했다 대전까지

간다니 마치 여행가는 것 같은 살짝 들뜬 기분까지 안고 아침도 못

챙겨먹고 나왔을 우리를 생각해서 빵과 우유까지 준비한 한솔제지

측의 세심한 배려에 감동했다 배도 채우고 부족한 잠도 보충해가며

2시간 넘게 달려 신탄진 공장에 도착했다 도착하자 보이는 우리를

환영하는 현수막에 2차로 감동했다 우리를 위해 정말 많은 준비를

하셨구나 느낀 순간이었다

신탄진 공장 강당에 들어가서 간단한 공장 소개를 먼저 들었다

그리고 뒤이어 종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경청했다 수업 때보다

학생들의 집중력이 더 높아 보였던 건 내 착각이었길 종이는

1퍼센트의 펄프와 99퍼센트의 물로 이루어진단다 그래서 전반적인

공 정 의 대 부 분 은 물 을 처 리 하 기 위 한 과 정 이 나 다 름 없 었 다

생각보다 종이는 순수한 물질이라고 생각했다 종이(paper)의

어원은 이집트의 파피루스(papyrus)에서 왔다고 한다 중국의

lsquo채륜(蔡倫)rsquo이라는 사람이 제일 먼저 발명했고 고려시대에

일본으로 넘어간다 일본에 가장 마지막으로 넘어갔지만 종이의

기술력은 현재 일본이 가장 좋다 원료rarr초지rarr코팅 등의 공정을 거쳐

종이가 완성되는데 마지막 코팅 공정을 여자의 화장에 비유한 것

역시 기억에 남는다 코팅이 그렇게나 대단한 과정이라니

공장 안으로 들어가서는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시끄러워서 설명을

제대로 듣진 못했지만 앞서 들었던 설명을 떠올리며 기계들을

관찰했다 인쇄소에서 본 광경들도 거대하고 박력 있었지만 여긴

그보다 더 거친 느낌이었다 책은 서점에 놓여있을 때는 그렇게

얌전하건만 태어날 땐 이렇게 시끄럽다 또한 막 태어난 종이는

거대하고 또 거대했다 다들 마치 거대한 두루마리 휴지 같다고들

했다

견학을 다 마치고 다시 대전 공장으로 이동해 다 같이 점심 식사를

했다 기대 이상으로 맛있는 밥에 또 감동 더 힘내서 견학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아쉽게도 대전 공장 안에는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라 그 힘()을 발휘하진 못했다 대전 공장은 신탄진 공장과

다르게 책에 쓰이는 것이 아닌 제품 포장용 박스 종이컵 등 다른

용도에 쓰이는 종이를 만드는 곳이었다 그 과정의 차이를 눈으로

비교하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마지막으로 좋은 선물까지 손에

받아들고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다시 서울로 향했다

언제나 시작은 중요하다 각자의 일에 빠져들게 되면 점점 잊게 될

그 시작을 눈에 담고 오래 기억하기 위해 다녀왔다고 생각한다 요즘

초심을 잃었다는 생각이 종종 드는데 책에게도 초심이 있다면 바로 이

곳일까 시작의 의미에 대해 다시 곱씹어보았다

편집자반 11기 박혜원

우리의 글과 그림이 펼쳐질 종이의 탄생 한솔제지 신탄진 공장 견학

거대한 롤(상) 한솔제지 공장 앞에서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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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연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삶과 문학에 취하다

편집자반 한국문학 동아리 lsquo공감rsquo 그 대담의 현장

훗날 서울출판예비학교를 떠올릴 때 가장 즐거운 시간으로 기

억되는 날들은 동아리 활동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들의

화양연화(花樣年華)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 중

의 하루를 소개한다 문예창작학과를 전공한 문학소녀 김한나

학우를 필두로 창단된 편집자반 내 한국문학 동아리 lsquo공감rsquo은

모임 전에 한국작가를 한 명 정해 단편 두 편을 함께 읽고 키워

드나 질문을 스스로 뽑아 글을 써왔다 모여서 때로는 소설의

플롯이나 주제 문체에 대한 열띤 토론을 하고 때로는 작가의

외모()와 같은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며 삼천포로 빠지기도 했

다 우리끼리만 듣기엔 아쉽다 이 즐거운 대화를 모두에게 들

려주고 싶었다 이날 모임에선 김영하 작가의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단편집 속의 두 단편 lsquo엘리베이

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이하 엘리베이터)rsquo와 lsquo사진

관 살인사건(이하 사진관)rsquo에 대해 이야기했다 여기서는 lsquo엘리

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rsquo를 읽고 토의한 내용을

실었다

한나 참고로 김영하는 사람의 욕망에 대해 천착하는 작가야

그런 특성이 엘리베이터에는 안 나와 있는데 사진관에서는

잘 드러나 있어

상화 백가흠 작가에게 소설창작론 강의를 들었는데 그분이

소설의 기법을 설명하면서 알레고리랑 아이러니를 얘기했어

알레고리가 인물이나 소재를 비유적으로 설명하는 거래 예를

들어 핸드폰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다른

것에 핸드폰을 빗댐으로써 소설을 풀어가는 거

야 아이러니는 속도감 있게 이야기를 전개함으

로써 부조리나 모순을 드러내는 건데 김영하가

아이러니의 대표적인 작가래 단편인데도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내면보다는 사건이 일어나는

걸로 소설을 끌어가는 작가 우리가 지난 모임

에서 성석제를 굉장한 이야기꾼이라고 했잖아

그런데 난 김영하가 훨씬 이야기꾼스럽게 느껴

졌어 속도감 있고 lsquo이렇게 몰입을 할 수 있나rsquo

싶고 지난 모임들에서 읽었던 손보미나 편혜영

소설의 경우는 분위기나 주인공의 심정 내면에

의미를 부여해 야 했는데 김영하의 소설은 덮

자마자 아이러니가 느껴지면서 lsquo아 세상은 왜

이래rsquo 말하게 만들었어

법열 나는 엘리베이터 읽고 딱 lsquo뫼비우스의 띠rsquo가 생각났거든

뫼비우스의 띠가 안하고 겉이 구분이 안 되잖아 끝과 시작이

어딘지도 모르고 lsquo나rsquo가 겪는 상황이 현실인지 아닌지 구분이

안 되는 느낌 마지막에 lsquo나rsquo가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가 존재

하기는 했는지 혼란스러운 느낌을 받잖아 그게 앞의 환상적

인 부분이랑 맞물리면서 하나가 되는 느낌이라 뫼비우스의 띠

가 생각났어

상화 lsquo나rsquo가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구해주려고 고분군투하

다가 나중에 자기가 엘리베이터에 갇히잖아

오권 낀 남자의 발을 보면서 느꼈던 감상이 사실은 자기를 구

하고 싶었던 마음인 거지

(일동 오~ 그렇게도 볼 수 있네)

오권 무한도전의 무한상사 특집도 생각났어 뜬금없이 휴지

사용하는 길이에 대해 회의하는 장면에서 엘리베이터는 갇힌

사회 서로를 돌아보지 않는 사회를 의미하는 것 같아

한나 나는 반대로 오히려 엘리베이터를 희망적인 존재로 봤

거든 아파트도 그렇고 회사도 그렇고 각자 자신의 공간 안에

서 살다가 서로 만날 수 있는 장소는 엘리베이터 밖에 없으니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김영하 지음

문학동네 20100216

동아리 후기

27

까 lsquo나rsquo가 회사 엘리베이터 안에 여자와 같이 갇히잖아 사실

은 갇히지 않았으면 대화도 안하고 지나쳐 갔을 텐데 남자는

자기가 아침부터 버스 사고도 나고 성추행범으로 몰렸다고 얘

기하고 또 남자의 담배 피워도 되냐는 말에 여자는 담배에 대

한 불평불만을 속사포처럼 얘기하고 엘리베이터라는 공간이

아니었다면 이런 대화 자체가 없었겠지

오권 엘리베이터 타면 사람들이 하나같이 층수 바뀌는 것만

쳐다보고 있잖아

상화 요즘은 스마트폰

오권 자기 얘기를 하고 싶은 것 같아 하지만 상대의 얘기는

안 들어 lsquo너의 얘기는 관심 밖이지만 내가 불편한 것에 대한

얘기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하겠어rsquo라는 느낌

한나 그리고 우스웠던 게 볼일 보고 휴지 몇 칸 쓰는지 회의에

서 얘기하는 건hellip 사실 굉장히 사적인 얘기잖아 (일동 하하

하) 서로에 대해 다른 얘기는 일절 하지 않으면서 회의 내용은

개인적이고 사적이라니 아이러니한 거지

수경 진짜 웃기지 않았어 lsquo나rsquo가 자원 재활용 문제에 대한 중

대 보고가 있다고 계속 빨리 가야한다고 했던 게 겨우 그거야

상화 겨우 이딴 회의하려고 지금 엘리베이터에 낀 사람 놔두

고hellip 생명이 더 중요한데 지금 휴지 구하려고hellip

(일동 하하하)

한나 lsquo나rsquo가 불쌍했던 이유가 자기한테 닥친 일들은 lsquo할 수 없

지 뭐rsquo 이런 식으로 넘기는데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 걱정하고

갇힌 여자 걱정하고hellip 정작 자기 걱정은 안 해

오권 영화 lt라이터를 켜라gt 봤어 조폭들한테 얻어맞으면서

도 주인공은 무조건 자기 라이터만 찾겠다고 그러거든 이 소

설의 lsquo나rsquo와 비슷한 느낌이 들더라고 그 영화에서는 라이터가

주인공의 존재를 투영하는 소재거든 lsquo나rsquo는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구해야만 자기가 산다는 느낌을 받은 거라 해석하면

너무 나간 건가

법열 아니요 형이 아까 지적해준 게 와 닿았어요 그 고군분

투가 결국 자기를 구하려는 노력이라는 지적이요

상화 그나마 lsquo나rsquo가 이 소설에서 제일 인간적이지

수경 어딘가 찌질한 느낌도 들어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와

lsquo내rsquo가 동류라고 자각하고 연민을 갖는 느낌이었거든 lsquo나rsquo가

인간적이고 윤리적이라는 생각은 나는 글쎄hellip 더 적극적으

로 할 수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 자기 사이클에서 벗어나

지 않는 한도 내에서 걱정만 하잖아 소설 안에서 비극과 희

극이 번갈아 가며 나타나는데 트럭과 버스가 충돌했을 때

lsquo나rsquo는 lsquo버스 카드 일로 충돌하지 않게 되어 적이 기뻤다rsquo고

생각해 버스 운전사는 트럭 백미러에 가슴이 받혀서 죽었는

지도 모르는데 lsquo다행히 나는 허리가 좀 뻐근한 것만 빼면 별

다른 상처가 없는 듯했다rsquo 이런 생각들을 하는 게 좀 섬뜩했

민희 사람은 다 이중성을 가지고 있잖아 나를 보는 듯했어

만약 학교 가는 길에 엘리베이터에 낀 사람을 봤다면 그렇

지만 나도 얼마나 바빠 몇 분 늦으면 지각 체크 당하고 출석

80퍼센트를 못 채울 수도(일동 웃음) 있는 상황이라면 내

가 그 남자를 구할 수 있을까 일단 지나치고 119에 전화하려

고 했으나 핸드폰이 없는 상황에 나도 처할 수 있는 거잖아 나

만 생각하는 잔인한 면도 내 안에 있고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

도 내 안에 있어 이런 찌질한 모습도 나고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정의롭게 구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상화 기준이 다른 것 같아 lsquo나rsquo 정도면 착하다고 생각했거든

수경 주변 사람들이 약간 마네킹 같지 않아 주인공 주변에

장치되어있던 다른 사람들이 너무 비인간적이기 때문에 lsquo나rsquo

가 돋보이는 거지 lsquo나rsquo는 지극히 평범한 우리 모습 같아 내가

어떻게 할 생각은 없고 궁금하기만 한 거야

민희 그 궁금함과 찜찜함도 죄책감이라 생각돼 아 내가 어떻

게 해줬어야 했나

한나 책임 회피일까

상화 그래서 나는 키워드 뽑은 것 중 하나가 119야 구해주고

싶으면 직접 내 손으로 잡아 빼주던가 엘리베이터를 들어 올

릴 사람을 모아야 했는데 신고 생각만 하잖아 이미 이건 누

가 대신 해결해줘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그나마 우리

사회에서 사고를 수습해주는 건 119밖에 없고 조선시대에는

119같은 거 없고 마을 사람들이 모여 구해줬을 텐데 어쩔 수

28

없는 현대인의 단상이긴 해 현대가 분업사회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들 바쁘고 삶이 개인화 파편화되어 있으니까 119 같

은 집단이 필요한 거지 그래서 난 119를 신의 영역이라고 썼

어 lsquo나rsquo는 119를 거의 신적인 존재처럼 생각하잖아 부르면 모

든 게 해결될 것처럼 핸드폰 빌리고 공중전화 찾고 그런데 막

상 교통사고 현장에서 119 대원에게 면대 면으로 얘기를 했더

니 그들은 무슨 그따위 장난을 하냐고 말해 구조도 실은 신이

아니라 사람이 하는 일이고 그 사람이 관심이 없으면 묻히는

거지

오권 전화를 거는 것과 직접 구해주는 것의 차이가 큰 것 같아

자기가 구해주는 건 적극적인 행동이고 119에 전화하는 건 스

스로 최소한 양심적이긴 하다고 여기는 행동

수경 그런데 엘리베이터에 낀 사람을 아무 것도 모르는 일반

인이 어떻게 했다가는 더 위험해질 수도 있잖아

오권 맞아 사회가 시스템화하고 고도화될수록 각자의 업무가

분업화되었고 전문분야가 생겨났으니까 옛날 같았으면 애 낳

으면 그냥 동네 아주머니가 애 받고 어미가 죽으면 젖동냥 다

녔는데hellip 이젠 사고가 나면 생각이 119에 먼저 미치는 시대가

된 거지

수경 그래서 어딘가에 널브러져 다친 인간이 아니라 엘리베이

터라는 공간에 낀 남자를 설정한 것 아닐까 엘리베이터는 현

대화의 상징이잖아

한나 lsquo나rsquo도 어쩔 수 없는 게 출근 시간에 쫓겨서 시계를 계속

봐 먹고 사는 일이니까

오권 출근했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다시 집으로 돌아가

낀 사람을 구해주면 굉장히 희망찬 소설로 바뀔 텐데hellip (일동

웃음)

수경 이 소설로 현대 사회의 폐단은 다 얘기할 수 있겠는데

상화 김영하는 천재인 것 같다

누군가 그리고 잘생겼잖아

누군가 잘생긴 거야

누군가 지적인 분위기가 있어서 좋아 (한참 얘기)

한나 또 인상 깊었던 게 구두에 집착하는 거 lsquo나는 날렵한 치

타처럼hellip 구두를 가지고 엘리베이터에서 빠져나오는 데 성공

했다 허탈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rsquo는 구절

오권 자살한 사람들이 구두를 가지런히 벗어놓는 이미지가 무

슨 상징처럼 있잖아

한나 신발 한 쪽 없이 다녀봤어 계속 기우뚱대서 내가 걷거

나 서 있을 때 내가 잘못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여기서 lsquo나rsquo가

그랬을 거야 사실 lsquo나rsquo처럼 사는 게 정상인데 세상이 잘못된

건데

상화 이 소설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감정표현이잖아 하루 종

일 얼마나 힘들었겠어 처음으로 감정표현을 하니까 불쌍했어

오권 휴머니즘 불쌍론 또 나왔네(일동 웃음) 그럼 이제 사진

관으로 넘어가볼까hellip

편집자반 11기 이상화

2929

책씹는맛 01 냄새라는 경이 lt감각의 박물학gt 후각편을 읽고

냄새에는 언어가 없다 어휘가 부족한 우리는 말문이 막힌

채 불명료한 쾌감과 자극의 바다에서 말을 찾을 수밖에

없다1

이 말은 다이앤 애커먼의 『감각의 박물학』 제 1장 후각에

나오는 구절이다 냄새를 글로 쓰고자 하는 나의 시도가 늘

실패로 귀결되는 이유를 이 구절에서 찾았다 작가의 말처

럼 냄새에 대해 쓴다는 건 언어 밖 세계로 나갔다가 다시

언어로 되돌아오는 길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길에서 헤매

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후각이라는 감각에서 길을

잃는 것은 낭만적인 일이기도 하다 lsquo냄새의 뇌관을 건드리

면 모든 추억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기rsquo2 때문이다 냄새 하

나에 수많은 추억들이 줄줄이 기억의 회로 위로 떠오른다

예를 들면 바다 냄새 하나만 상상해도 그와 관련된 수많

은 기억들이 머릿속에 뒤섞인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바닷가와 관련된 그 모든 추억들이 기억의 영사막에서 한

편의 옴니버스 영화 형태로 내게 다가온다 난 내 기억의

관객이 되어 그 영화를 보다가 견딜 수 없는 그리움에 젖는

다 이 영화에 대한 감상문을 적으려면 나는 말문이 막힌

다 그래서 몇 글자 적다가 결국 글을 쓰기를 멈춘다 굳이

언어로 표현하자면 쓸 수 없는 그리움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1 『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옮김 작가정신 20040720

A Natural History of the Senses(1991) 17쪽

2 같은 책 18쪽

결국 lsquo언어가 존재하는 세계에서 경이는 언어의 칼날 아래

서 쉽게 해부되고 냄새는 자주 혀끝에서 맴돈다rsquo3 냄새의

숭고함 앞에서 우리는 말을 멈춘다 이처럼 냄새는 말할 수

없는 자연의 경이로움과 닮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lsquo냄새가 우리의 마음을 그토록 강하게 움직이는 것은 부분

적으로 그 이름을 부를 수 없기 때문rsquo4이라고 한다 저자는

그렇기에 사람들이 냄새를 lsquo분 냄새 비슷한 펭귄 냄새가

나는 호화로운 화장실 냄새가 나는rsquo 같은 말로 표현할 뿐

이며 냄새에 대한 이름은 주어져 있지 않다고 말한다 또

한 종류는 같아도 강약과 농도가 다른 각각의 냄새에 이름

을 붙여줄 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우린 일상적으로 냄새를

맡으면서도 그 냄새와 멀리 떨어져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명명되지 않은 것은 결국 잊히는 게 아닐까 부를

수 없음에서 오는 경외감과 숭고함이 있을지라도 냄새는

말해져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말할 수 없는 것에 자꾸

만 침묵하기만 해야 할까

감각도 모험의 영역이 될 수 있다 세계 일주만이 세상을

아는 길일까 lsquo나rsquo를 온전히 아는 것이 역설적으로 세상과

가까워지는 일인지도 모른다 나를 알기 위한 길 중 하나가

내가 가지고 있는 감각을 이해하고 그걸 언어로 표현하는

일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어쩌면 우리와 제일 가깝지만 말

하기 낯선 감각 후각을 이해하는 일이 중요한지도 모른다

냄새라는 감각 속에서 우리 모두 길을 잃고 헤매고 모험해

보자 냄새에 나름의 이름을 지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

리고 농도에 따라 냄새를 구분하는 일도 해보자 냄새라는

경이는 우리를 더 이상 침묵으로 이끌지 않을 것이다

디자인반 11기 백가은

3 같은 책 22쪽

4 같은 책 22쪽

『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 옮김

작가정신 20040720

A Natural History of the Senses(1991)

3030

02 현실을 전복시키는 비현실

모호함이 주는 환상성

20세기 중반 중남미 소설은 전통적인 사실주의 서사 구조

를 깨고 현실과 환상을 혼합시키는 새로운 글쓰기 방식으

로 세계문학의 중심에 선다 이 시기에 주목 받은 일련의

중남미 작가들을 가리켜 lsquo붐 세대 작가rsquo라 칭하는데 아르

헨티나의 환상문학 작가 코르타사르는 이 붐 세대 작가군

의 선구자이자 대표 주자 격인 인물이다 그러나 그 문학적

성과와 명성이 무색하게도 국내 독자들에겐 그의 이름이

아직 생소한 것이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에서는 그

의 작품이 중남미 단편 선집에나 몇 편이 번역되었을 뿐 본

격적으로 소개된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중남미 문학을 공부했고 그의 몇 안 되는 번역 작품을 인

상 깊게 읽었던 독자 입장에서 이번에 출간된 코르타사르

의 단편집『드러누운 밤』은 가뭄의 단비처럼 반가운 신간

이다

환상 문학이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J R R 톨킨 류의 판타

지소설 혹은 쥘 베른이나 아이작 아시모프 류의 SF소설을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코르타사르의 환상문학은 이들 범

주에 들어가지 않는다 코르타사르 작품에서 나타나는 환

상이란 토도로프가 정의한 바 있는 환상 그러니까 자연적

인 것과 초자연적인 것 사이의 망설임에서 발생하는 환상

에 가깝다 따라서 판타지소설의 lsquo현실과 동떨어진 환상rsquo

혹은 SF소설의 lsquo설득력 있고 현실감 있는 환상rsquo을 기대하

는 독자라면 아마 십중팔구 그의 작품을 읽고 실망할 것

이다 어쩌면 이게 무슨 환상문학이냐는 푸념을 늘어놓을

지도 모르겠다 역시 가장 좋은 것은 선입관을 버리고 책을

읽는 것이다

코르타사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lsquo모호함rsquo이다 인물이나

배경 묘사에서 제시되는 기본적인 정보도 모호하고 사건의

전개 양상이 가진 당위성도 모호하다 작품 내에서 주요한

스토리 라인을 담당하는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경계도 모

호하며 심지어는 화자의 정체마저 모호한 작품도 있다 이

런 모호함의 향연은 짙게 깔린 안개와도 같아서 독자들은

그 속에서 한 치 앞도 제대로 내다볼 수 없음은 물론이요

이미 지나간 사실조차도 자신이 맞게 인식한 것인지 확신

할 수 없을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무엇이 진짜인지

독자들의 판단을 망설이게 만드는 이런 상태야말로 코르

타사르의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는 환상이란 개념이다 독

자들은 이 환상 속에서 그저 전방을 주시하며 천천히 나아

갈 수밖에 없다

다행스럽게도 코르타사르는 독자들의 시련을 헛되게 하지

않는다 작품의 시작점 일상 세계에 우연히 침투한 lsquo비현

실적인 것rsquo은 안개 속에서 알게 모르게 자신의 지분을 늘려

나간다 그리고 작품의 종점에 다다른 독자들은 비현실이

현실이 되고 현실이 비현실이 되는 이전과는 전혀 새로운

세계와 마주할 것이다 다시 말해 필연과 이성의 법칙이 지

배하는 세계가 우연과 환상이 지배하는 세계로 변하는 것

이다 이러한 세계의 전복은 마치 여기저기 단서를 흩뿌리

고 사람들을 알쏭달쏭하게 만들었다가 결말부에서 모든

것을 폭발시키는 추리소설 혹은 반전영화를 보는 듯한 재

미를 선사한다

그렇다면 코르타사르가 이 소설들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책을 다 읽고 난 독자라면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의문점이다 코르타사르는 자신이 환상문학을 쓰는

이유를 ldquo법칙이나 원칙 혹은 인과관계나 특정한 심리 또

는 잘 그려진 지리학과 같은 체계에 의해 세상이 지배되고

있다는 것에 반대rdquo하고 ldquo우리가 잘 모르며 우리에게 잘 다

가오지 않는 새로운 질서에 관해 생각해보기 위함rdquo이라고

설명한다 짧게 말해 이 세상에 필연이란 존재하지 않으

며 자신은 그것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말이다 이

게 전부다 순문학이라면 거장의 문학이라면 이보다 더 심

오한 통찰 혹은 비판이 있을 것이란 생각에 문장 속 숨겨진

의미를 발견하고자 머리를 싸맬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조

언을 하자면 독서는 독서 그 자체로 즐기면 된다 적어도 이

책에서는 그렇다 모호함과 예상외의 전개 속에서 재미를

느끼고 코르타사르가 묘사하는 세계의 불가지(不可知)성

을 어렴풋하게나마 인식할 수 있다면 이미 그것으로 충분

하다

편집자반 11기 강귀욱

『드러누운 밤』

훌리오 꼬르따사르 지음 박병규 옮김

창비 20141124

La noche boca arribaJulio Cortazar

31

03 얼어붙은 자의식의 바다를깨뜨리고 생명을 불어넣는 책 『데미안』

데미안을 읽고 나서야 그 동안 내가 두 발 딛고 서 있던 땅이

굳고 단단한 대지가 아니라 얼어붙은 바다에 불과했음을 알

았다 데미안은 도끼를 가져와 이 꽁꽁 언 바다를 가차 없이

내리 찍었다 그리고 말했다 얼어붙은 바다를 단단한 땅인

줄 알고 사느니 그 얼음을 깨부수고 그 속에 빠져 죽기 살기

로 허우적대라고 그러면 그 속에서 너는 너 자신을 똑바로 마

주하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성장할 것이라고

주인공 싱클레어도 그를 둘러싸고 있던 세계를 깨뜨려 나가

며 성장한다 그 모든 과정은 결국 진정한 자기 자신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가 깨뜨린 가장 큰 세계는 바로 자신의 사고 체계였다 세상

을 바라보는 기존의 이분법적이던 시각 고정되고 획일화된 시

각을 버렸다 주인공은 세계 안에 심지어는 자신 안에도 선하

고 악하며 밝고 어두운 양극단의 것들이 공존함을 이해하고

두 세계를 끌어안았다 주인공은 귀와 눈을 가리던 장막을 걷

어내 버리고 세상을 바로 보게 되었다 상극인 것들의 괴리로

이루어진 이 모순된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곧 자신 안의 부조

화 또한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스스로에게 다가서는 첫 걸음

이었다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양극단의 세계 사이에서 싱

클레어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며 흔들리기를 반복했다 이

때 그에게는 삶을 지탱할 중심축이 없었다 항상 내면이 아닌

외부 세계에서 자신이 속할 자리를 찾아 헤맸다 그가 비로소

온전한 자신을 만난 순간은 어느 편으로도 치우침 없이 스스

로의 기준으로 홀로 서게 되었을 때였다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 이 길은 당신이 내면에 있는 모

순되는 두 세계 한없이 나약하고 뒷걸음치는 비열한 모습들

과 정갈하고 깨끗한 곧은 힘들을 동시에 직시하는 순간에 시

작된다 그리고 이 길은 두 세계 속에 들어가 이리저리 휩쓸리

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세계를 밟고 우뚝 올라서서 스스로

가 중심이 됨으로써 앞으로 펼쳐진다

이제 lsquo자아를 찾으라rsquo는 지루하고 흔한 이야기가 더 이상 빤

하거나 우습지 않다 묵직한 울림이 되어 나를 흔든다 그냥

나만 붙잡고 흔드는 것이라면 손사래 쳐 뿌리치겠는데 내가

밟고 있던 땅 속해 있던 세계를 뿌리째 흔들어 버린다 읽는

내내 속이 답답하고 나에게 화가 난다 그런데 이렇게 마구

혼나면서 이상하게도 후련한 구석이 있다 호통을 치는 데미

안이 사실은 우리를 응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막연

하고 무기력한 안개에 휩싸여 있을 때 데미안은 그만의 방

식으로 우리에게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준다 물론 갈 방향을

정해준다거나 각자의 사정을 듣고 상담을 해주는 것은 아니

다 오로지 궁지로 몰아세울 뿐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사람들

은 잊고 있던 lsquo나 자신rsquo을 일깨운다 아 그동안 lsquo나rsquo에 대해 생

각해본 적이 있던가 라는 정도만이라도 좋다 이 물음이 바로

여정의 시작이니까

그렇게 스스로에게 묻고 나면 더 이상 전처럼 살 수는 없기 때

문이다 아니라면 자기 자신에게 면목이 없을 것이다 이 무서

운 책이 우리를 혼내고 몰아치면서도 여전히 영원한 고전이자

필독서로 사랑 받는 이유다

lsquo우리들 속에는 모든 것을 아는 한 사람이 있다rsquo고 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혼이 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혼

이 났다는 것은 자신 안에 있는 lsquo그 사람rsquo이 말을 하기 시작했

다는 뜻이니까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목소리가 희미하

고 멀리 있다 하여도 숨죽여 귀 기울이는 일 자체가 자신에게

로 가는 과정임을 잊지 말고

편집자반 11기 배예리

『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민음사 20001220

Demian Die Geschichte von Emil

Sinclairs Jugend(1919)

31

03 얼어붙은 자의식의 바다를깨뜨리고 생명을 불어넣는 책 『데미안』

데미안을 읽고 나서야 그 동안 내가 두 발 딛고 서 있던 땅이

굳고 단단한 대지가 아니라 얼어붙은 바다에 불과했음을 알

았다 데미안은 도끼를 가져와 이 꽁꽁 언 바다를 가차 없이

내리 찍었다 그리고 말했다 얼어붙은 바다를 단단한 땅인

줄 알고 사느니 그 얼음을 깨부수고 그 속에 빠져 죽기 살기

로 허우적대라고 그러면 그 속에서 너는 너 자신을 똑바로 마

주하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성장할 것이라고

주인공 싱클레어도 그를 둘러싸고 있던 세계를 깨뜨려 나가

며 성장한다 그 모든 과정은 결국 진정한 자기 자신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가 깨뜨린 가장 큰 세계는 바로 자신의 사고 체계였다 세상

을 바라보는 기존의 이분법적이던 시각 고정되고 획일화된 시

각을 버렸다 주인공은 세계 안에 심지어는 자신 안에도 선하

고 악하며 밝고 어두운 양극단의 것들이 공존함을 이해하고

두 세계를 끌어안았다 주인공은 귀와 눈을 가리던 장막을 걷

어내 버리고 세상을 바로 보게 되었다 상극인 것들의 괴리로

이루어진 이 모순된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곧 자신 안의 부조

화 또한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스스로에게 다가서는 첫 걸음

이었다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양극단의 세계 사이에서 싱

클레어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며 흔들리기를 반복했다 이

때 그에게는 삶을 지탱할 중심축이 없었다 항상 내면이 아닌

외부 세계에서 자신이 속할 자리를 찾아 헤맸다 그가 비로소

온전한 자신을 만난 순간은 어느 편으로도 치우침 없이 스스

로의 기준으로 홀로 서게 되었을 때였다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 이 길은 당신이 내면에 있는 모

순되는 두 세계 한없이 나약하고 뒷걸음치는 비열한 모습들

과 정갈하고 깨끗한 곧은 힘들을 동시에 직시하는 순간에 시

작된다 그리고 이 길은 두 세계 속에 들어가 이리저리 휩쓸리

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세계를 밟고 우뚝 올라서서 스스로

가 중심이 됨으로써 앞으로 펼쳐진다

이제 lsquo자아를 찾으라rsquo는 지루하고 흔한 이야기가 더 이상 빤

하거나 우습지 않다 묵직한 울림이 되어 나를 흔든다 그냥

나만 붙잡고 흔드는 것이라면 손사래 쳐 뿌리치겠는데 내가

밟고 있던 땅 속해 있던 세계를 뿌리째 흔들어 버린다 읽는

내내 속이 답답하고 나에게 화가 난다 그런데 이렇게 마구

혼나면서 이상하게도 후련한 구석이 있다 호통을 치는 데미

안이 사실은 우리를 응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막연

하고 무기력한 안개에 휩싸여 있을 때 데미안은 그만의 방

식으로 우리에게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준다 물론 갈 방향을

정해준다거나 각자의 사정을 듣고 상담을 해주는 것은 아니

다 오로지 궁지로 몰아세울 뿐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사람들

은 잊고 있던 lsquo나 자신rsquo을 일깨운다 아 그동안 lsquo나rsquo에 대해 생

각해본 적이 있던가 라는 정도만이라도 좋다 이 물음이 바로

여정의 시작이니까

그렇게 스스로에게 묻고 나면 더 이상 전처럼 살 수는 없기 때

문이다 아니라면 자기 자신에게 면목이 없을 것이다 이 무서

운 책이 우리를 혼내고 몰아치면서도 여전히 영원한 고전이자

필독서로 사랑 받는 이유다

lsquo우리들 속에는 모든 것을 아는 한 사람이 있다rsquo고 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혼이 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혼

이 났다는 것은 자신 안에 있는 lsquo그 사람rsquo이 말을 하기 시작했

다는 뜻이니까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목소리가 희미하

고 멀리 있다 하여도 숨죽여 귀 기울이는 일 자체가 자신에게

로 가는 과정임을 잊지 말고

편집자반 11기 배예리

『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민음사 20001220

Demian Die Geschichte von Emil

Sinclairs Jugend(1919)

32

박세길 인터뷰

진정한 역사가는 과거에 파묻히지 않는다옥(獄)에서 옥(玉)을 만든 작가 박세길 인터뷰

박세길 저자는 처녀작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로 80년대

대표 역사서 자리를 꿰찬 분입니다 1986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감되었을 때 감옥에서 역사책을 읽으며

사회 모순에 대해 고민했고 출소하자마자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집필했습니다 정권 탄압 속에서 왜곡된

현대사를 바로 잡았다는 의미를 지닌 이 대표작은 오랫동안

고시생과 대학생들의 필독서로 꼽혔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읽은 박세길 저자의 저서는 지난 6월 출간한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입니다 기사를 쓰고 편집할 때 청년 세대를

겨냥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박세길 저자는 역시나

청년들의 미래에 큰 관심을 갖고 계셨습니다 취업을

눈앞에 둔 서울출판예비학교 학생들이 가져야 할 자세를

여쭸습니다

출판학교에서 강의하신 한 선생님은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가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와

더불어 80년대 인문학의 양대

산맥이라고 하셨습니다

책의 성공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강의

요청이 많이 들어왔어요 먹고사는

경제적인 문제도 해결됐습니다

몇 부 팔렸는지는 잘 모릅니다

출판사에서 기밀 사항이라고

하더군요 요즘은 마케팅 차원으로도

몇 쇄 몇 부인지 밝히지만 그때는

세금 문제를 피해가기 위해서인지

쉬쉬하던 시절이었나 봅니다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는 대학

선후배끼리도 많이 물려주는 책이라고

들었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의 쉬운 설명이

좋았습니다 더불어 어떤 사명감을 안고 썼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완성하기에 앞서 어떤 목표를

두셨나요

청년 세대가 외환위기 이후 집중적인 희생양으로 전락하면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드러내면서 여기에

머물지 않고 청년 세대의 잠재력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들이 역사 무대 한복판에 진출해 자기 몫을 다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습니다

역사 분야는 시장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역사 혹은 현대사가 주목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통해 얘기하자면

80년대 후반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lsquo왜곡된

역사를 바로 알자rsquo는 시각 교정의 욕구가 있었던

차에 제 책이 나름 부응했는지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시기가 적절했던 셈이죠

2012년 대선 후 역사 분야가 잠시 반짝했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금세 시들었다고

하더군요 당시 역사 분야 책들이 일반 독자가

읽기에 다소 어렵거나 출간한 지 오래된 것들

위주였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돋을세길

출판학교에서 강의하신 한 선생님은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가 유홍준 교수의

책의 성공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강의

하더군요 요즘은 마케팅 차원으로도

선후배끼리도 많이 물려주는 책이라고

역사 분야는 시장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역사 혹은 현대사가 주목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통해 얘기하자면

80년대 후반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lsquo왜곡된

역사를 바로 알자rsquo는 시각 교정의 욕구가 있었던

차에 제 책이 나름 부응했는지 큰 반향을

읽기에 다소 어렵거나 출간한 지 오래된 것들

위주였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의 저자

33

2012년 대선 후 역사 분야가 관심을 받았던 것은

보수층의 재집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한

불안 때문일까요

맞습니다 그러나 마땅한 책이 없어서 그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역사 분야에서 베스트셀러를 내기

위해서는 시기가 맞아 떨어지고 내용 또한 대중이 원하는

것을 담고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를 편집한 lsquo생각정원rsquo

출판사의 정희용 편집자에게 감사 표시를 하셨습니다

어떤 편집자를 선호하시나요

간단합니다 편집자는 철저히 독자 입장에서 독자와 작가

사이의 간극을 줄여줘야 합니다 예를 들면 어려운 내용을

과감히 생략하고 다음 기회로 미루도록 설득한다거나 좌파

운동권 색채가 너무 강한 문장을 조금 순화하는 것 등입니다

어떤 내용이 이번 책에 꼭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선택을

도와줘야 합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을 작가님께서 직접

독자들에게 홍보하신다면 카피 문구를 짧게 제시할 수

있을까요

청년 세대 희망 찾기 갑갑한 현실을 어떻게 타개할 수

있을지 그 답을 찾아보는 길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취업 후 첫발을 내디딜 서울출판예비학교 11기

학생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출판 또한 돈을 벌어야한다는 기본 전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출판계를 지켜본 결과 뭔가 소명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오래

살아남았습니다 출판학교 역대 대표 중 일부는 나와 관계가

있는 사람들인데 모두 고유한 소명의식을 갖고 출판계에

뛰어들었습니다 때로는 상업주의 안에서 재주도 부리곤

했지만 어쨌든 분야 내에서 고유한 캐릭터를 구축했습니다

출판학교 학생들이 출판 상황을 이해하고 자신을 역할을

정하는 개인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비전 중심의 경영을

하는 회사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지만 개인 비전을 기업

비전으로 나아가 사회 비전으로 접목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과거에 안주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부분을

출판계에서는 SNS 등 인터넷 환경을 통한 마케팅으로

이해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SNS망 자체에서 무엇이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건 사람과

사람이 서로 소통하고 공감하는데 필요한 도구입니다

콘텐츠 중심의 사고가 중요하고 그것이 전제되지 않을 때

SNS는 착각에 불과하며 성공할 수 없습니다 필요한 콘텐츠

중심의 사고를 가지고 철저하게 진행하지 않으면 그 공간에서

허망하게 헤엄만 칠 뿐 입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SNS에서

맥없이 헤엄치다 익사하는 경우를 볼 수 있을 겁니다

콘텐츠와 마케팅의 영역을 하나로 보는 것과 따로

보는 것 어떤 것이 독자를 위하는 것일까요

출판 마케팅은 책을 기획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에서부터

개입돼야 하고 그 과정에 독자를 참여시키는 방식을

고민해야 합니다 미국 네브래스카주립대학의 이상문

교수는 lsquo밀실 안에서의 혁신은 끝났다rsquo고 얘기합니다

개방된 체제에서 독자 곧 소비자 사용자의 참여 하에 함께

만들어갈 때 혁신은 이뤄진다고 합니다 출판사의 비전이

브랜드로 연결될 때 독자는 자발적으로 의견을 주고받고

싶어 할 겁니다

마케터반 11기 이창환

디자

인 사

공예

Page 8: 서울출판예비학교 웹진 _5호 2015

8

7인 7色 분투기

20150921 월요일 d-25

교육발표회 TF팀 발족 시작이 좋다

9월 21일 월요일 401호에서 교육발표회 태스크포스(task

force)팀(이하 TF팀)의 첫 번째 회의를 시작했다 반 친구들의 투표로

얼떨결에 TF팀의 일원이 되어서 처음에는 부담감을 느꼈지만

한편으론 우리의 성과를 발표하는 자리를 직접 꾸려간다는 것이

기대되었다 첫 만남에는 마케터반 디자인반 사람들과 얼굴을

익히고 가벼운 농담과 함께 분위기를 즐겼다 아직은 어떻게 계획을

짜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지만 그만큼 긴장감을 갖고 열띤 토론을

했다

먼저 공간 구성을 토의했는데 각 반에 할당된 공간은 각 반에

일임하기로 했다 지하 1층은 편집자반과 마케터반이 사용하고

지하 로비부터 계단 외벽은 디자인반의 작품을 전시한다 1층에는

안내소를 설치하고 안내팀을 배치할 것이다 마케터반은 면접실로

사용할 예정이고 디자인반은 전시실로 편집자반은 대기실로

사용할 것이다

두 번째로 홍보에 관해 토의했는데 편집자반의 김종민을

팀장으로 하는 별도의 홍보팀을 꾸렸다 홍보 문구는 10월 2일까지

취합하기로 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포스터를 제작하면 된다 홍보

영상이나 카드 팸플릿을 만들기로 한 안건도 추후 논의하기로 했다

아이디어들이 모아져 하나의 그림이 완성되어가는 듯 했다 점차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던 틀이 잡히면서 그 공간을 하나씩 채워가는

우리를 보고 스스로 대견스러웠다 아직도 걱정되는 일들이 많지만

지금과 같은 패기와 열정으로 준비한다면 잘 마무리 해낼 수 있다고

믿는다 시작이 좋다

편집자반 11기 남민희

20150925 금요일 D-21

두 마리 토끼 잡기 교육발표회 자료집 만들기

9월 초 디자인반에서 세 명의 팀원으로 교육발표회 자료집

담당 팀이 꾸려졌다 교육발표회 자료집은 6개월 동안의 교육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책자로 편집자반 마케터반

학우들의 자기소개서와 디자인반 학우들의 작품이 실린다 디자인

반은 판면을 디자인하고 원고를 받아 책으로 묶는 작업을 맡았다

가장 먼저 수행한 일은 편집자반과 마케터반 학우들의 글이 담길

텍스트 위주의 판면을 잡는 일이었다 40명 이상 인원의 글이 실리는

만큼 반복적으로 보기에 부담이 없어야 하고 변화를 주어 지루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편집자반과 마케터반의 페이지를

마무리한 뒤에는 디자인반의 포트폴리오 작업으로 이어졌다

디자인반의 판면에서 중요한 것은 각자의 성향을 잘 담을 수 있도록

전집 위주 본문 위주 단행본 위주의 세 가지 사항에 따라 판면을

잡는 일이었다 이러한 큰 산을 넘고 나니 정해진 양식에 맞춰

축사와 연혁 교육과정 소개 페이지를 완성하고 각 반을 상징하는

색을 살린 간결한 표지를 만드는 것은 무리 없이 진행되었다

자료집 팀원들은 자신의 포트폴리오와 병행해야 하는 압박감과

6개월간 우리의 행로를 담아내는 작업인 만큼 실수가 없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으나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계획을

꼼꼼하게 세워 차근차근 진행해 나갔다 또한 다른 학우들이 시간

약속을 잘 지켜주었기 때문에 촉박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차질 없이

마무리할 수 있었다 자료집을 만든다는 것은 디자인반으로서는

작업을 정리함과 동시에 모든 학우들이 자신의 학교생활을 마무리

짓는 일로 소중한 경험이었다

디자인반 11기 홍기화

20151001 목 요일d-15

걱정도 병인 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오늘은 발표회 편집자반 공간을 꾸밀 물품을 사러 가는 날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추석 연휴를 보내서 그런지 등교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할 일은 산더미인데 그저 막막하기만 했다 그래도

오전부터 교육발표회 준비 팀장인 종민이가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것 같아 다행이다 종민이가 좀 힘들어 보이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난 그저 시키는 대로 따라가고 옆에서 도와주면 될 것 같다 뭐가

됐든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는 언제나 어렵고 외롭다

각 조의 콘셉트가 정해지고 필요한 물품의 목록이 정리됐다 10만

원 정도만 지원해준다고 한 것 같은데 다들 뭐가 이리 살 게 많은지

사무국에서 다 사줄지 모르겠다 (우리 조도 살 게 꽤 많은 것

날보러와

디자

인 사

공예

교육발표회 준비취재

9

같았는데hellip) 한 시간 동안 호미화방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필요한

물품을 샀다 그런 와중에 혹시 빼먹은 건 없는지 예산이 부족하진

않을지 걱정이 들었다

교육 과정 내내 걱정하고 고민하고 불안해한 것 같다 마음 편하게

생각하라는 말을 친구들에게 줄곧 들은 것 같은데 할 수 없다 내가

원체 이렇게 생겨 먹은 걸 이제 발표회까지 남은 시간은 정확히

보름 우리가 보낸 6개월을 4시간 동안 보여주는 행사다 이 행사가

전부는 아니지만 그래도 24명 모두에게 아니 11기 출판학교 교육생

모두에게 주어진 마지막 과제다 lsquo혼자 하는 것도 아닌데 걱정만

하지 말고 차근차근 준비하면 되겠지rsquo 하면서도 걱정이 앞선다 진짜

이것도 병이다

편집자반 11기 권오권

20151008 목요일 D-8

가을 나들이 같은 인터뷰

내가 인터뷰 팀이라니 게다가 팀장이라니 누구 마음대로 이건

음모라고 구시렁대며 일정을 짠다 수료 때까지 감투 안 쓰는 게

목표였는데 망했다고 말하며 멘트를 고민한다 그래 사실은 즐겼다

어차피 할 일 없으니 잡배마냥 학우들에게 치근대며 시간 보냈을

터였다 그럴 바에야 나들이 간다 치고 즐기는 편이 나았다 날씨는

또 얼마나 좋은가 투덜댔지만 가벼운 걸음이었다

지금까지 교육 과정 내에서 강의 또는 특강으로 만났던 많은 분들을

카메라로 담았다 대부분 직접 회사로 방문했기 때문에 다양한

사무실을 보는 것도 재미였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강의 때보다 더

진하고 선명하게 한분 한분을 볼 수 있었다 그들도 마찬가지였을까

본인에게는 일상인 세계를 동경한다면서 비집고 들어오려는 우리를

보는 우려와 격려 섞인 눈빛에서 ldquo너희도 이거 하려고 아이고 힘들

텐데 부디 잘 해나갔으면 좋겠네rdquo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아름답다

감사하다

시시덕거리며 돌아오는 길에 생각한다 앞으로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이 가을 이 마음의 우리가 그리울 건 알겠다 벌써부터

아릿하다 역시 인터뷰 괜히 했다 귀찮아 죽겠다 진짜

편집자반 11기 김상흔

20151009 금요일 D-7

교육발표회를 홍보하라 티저 포스터 만들기

드디어 6개월의 과정이 끝나가고 있었다 우리를 보여 줄 마지막

기회인 교육발표회를 앞두고 TF팀은 lsquo홍보rsquo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꼭 보러 와달라는 메시지를 어떻게 하면 잘 전달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 끝에 lsquo티저 광고rsquo를 제작하기로 결정했다 CF나 기타 광고에서

활발하게 활용되는 서서히 베일을 벗어가며 호기심을 자극하는

광고 기법 말이다 우리의 타깃은 대중이 아닌 출판계라 처음엔

lsquo이런 홍보를 과연 좋아하실까rsquo 하는 의구심이 앞섰다 하지만

회의를 거듭하며 아이디어를 잘 뽑아내고 두 반이 협력한다면

효과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케터반 편집자반 학생들의 문구들을 취합해 투표로 가장

적합한 것을 뽑았다 1등은 정혜림 학우의 lsquo북쪽으로 가라 귀인을

만난다 BOOK쪽으로 오라 귀인을 얻는다rsquo가 차지했다 lsquo북쪽rsquo이라는

방향표현을 lsquoBOOKrsquo으로 바꾼 게 참신하고 재밌어 모두의 공감을

얻었다 2등은 김수경 학우의 lsquo내가 동네북이니 응 SBI 동네북

페스티벌rsquo이 뽑혔다 평소에도 재미있는 말투로 늘 주변을 웃게

만드는데 그 재기발랄함이 묻어나는 문구였다 3등으로 뽑힌

유보미 학우의 lsquo날 떠난 후 너는 행복하니 내 인생 책임져 책책책

책임져rsquo는 아쉽게 광고에는 쓰이지 않았지만 시선을 끄는 기발한

문구였다 이 외에도 lsquo책 잡힐 일 하지마라 책 잡을 일 해라rsquo lsquo갈피를

못 잡을 땐 책갈피rsquo 등 재밌는 문구들이 많았다

전부 광고에 쓰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라 12등 문구를

멋지게 디자인하기로 했다 디자인에 대한 의견을 반 친구들과

나누며 포스터들을 직접 디자인했다 서로 의견이 맞지 않기도 하는

등 고단할 때도 있었지만 많은 분들이 우리를 보러 와주신다면 모든

고생이 잊힐 것이다 제발 그랬으면 한다

편집자반 11기 박혜원

10

20151012 월요일 D-4

수많은 이름들을 위하여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난리다 난리 우리 반이 이렇게 시끄럽고

활기찬 적이 있었던가 자타공인 조용하다던 편집자반 학우들은

어디로 가고 요 며칠 온통 돌아다니거나 무언가를 만드느라

고군분투하는 풍경들과 마주하고 있다 나쁘지 않은 아침이다

그 동안 우리는 직책의 기근()에 익숙해져 있었다 반장 부반장

조장의 휘하에서 맡은 바를 다하며 펠로우십을 뽐내고 있던

우리에게 갑자기 수많은 이름들이 떠맡겨졌다 누군가는 TF팀이

되고 누군가는 홍보 팀장이 되었으며 누군가는 인터뷰 팀장이라는

직책을 맡았다 그런가 하면 건축학을 전공한 학우는 공간 배치를

구상하는 역할을 맡고 누군가는 가을 단풍을 모티프로 해서

편집자반 전체의 부스를 꾸미고 있다 그뿐이랴 각 동아리의

장(長)들은 동아리 부스를 만들랴 그 동안의 활동을 책으로 만들기

위해 인디자인 작업에 몰두하랴 정신이 없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웅장하게 꾸며질 조별 부스를 살펴보면 아마도 입이

떡 벌어질 것이다 각 조는 워크숍으로 만든 자신들의 책에 맞춰

콘셉트를 잡았다

편집자반 lsquo윌비rsquo 조는 『창업 자금 날려먹지 않는 법』에 맞게

카페처럼 부스를 꾸미기로 했다 거대한 간판도 이미 완성되었고

맛있는 커피도 만든다고 하니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lsquo길목rsquo 조는 『서태후 비사』의 내용에 따라 서태후가 좋아했던

벚꽃으로 부스를 장식한다 게다가 한 켠에는 『서태후

비사』전자책과 예쁜 책갈피까지 마련되어 있을 것이다

lsquo달로rsquo 조는 『사이의 거리』의 표지에도 실 그림이 들어간 것에 맞춰

실을 이용하고 있다 특히 실로 lsquo사이의 거리rsquo 글자를 만들었을

때에는 학우들 모두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어떻게 실로 글자를

만들 수 있었는지 많은 분들이 와서 봐주시면 좋겠다

lsquo세모북스rsquo 조는 강명관 잡문집인 『허울 좋은 나라』를 만들었다

시대상과 일상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lsquo사진rsquo에 착안해 옛날

사진관처럼 부스를 꾸미고 있다 흑백 사진과 손글씨가 고즈넉한

멋을 더할 것이다 돌림판 이벤트도 있을 예정이다

편집자반 11기 이상화

2015101 목요일 D- 15

lsquo정rsquo이 있어 lsquo반rsquo을 찾아 lsquo합rsquo을 보니 마케터더라

lsquo차별성이 있어야 한다rsquo

책의 차별성을 찾았던 6개월 그리고 6개월 간의 경험을 토대로

lsquo차별성이 있는 마케터반의 발표회rsquo를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각

조의 조장들과 발표회 테스크포스 팀원이 머리를 맞댔다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lsquo책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그렇다고 너무 책에

집중하지 말자rsquo였다 마치 lsquo정rsquo과 lsquo반rsquo을 통해 lsquo합rsquo을 만들어내는

과정이었다 세상에 이마저 변증법적 접근이라니 그러나 우리가

누구인가 책이라는 물성에 가치의 효용을 불어넣는 우리가

아니던가 분명 발표회에도 그와 비등한 가치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전체 콘셉트은 lsquo북북 쓰는 마케팅rsquo으로 각 조를 하나의 챕터로

삼았다 즉 개성이 뚜렷한 5개의 챕터로 이루어진 lsquo마케팅 북rsquo인

것이다 그리고 각 챕터는 lsquo마케팅이란rsquo이라는 소주제를 부여하여

각 조의 교육과정과 보여주고 싶은 것들을 자유롭게 보여주기로

했다

이제 정이 끝났으니 반을 제시할 차례 lsquo반rsquo으로 lsquo소책자rsquo와 lsquo상품rsquo를

선택했다 소책자는 그저 소개하는 글만을 넣지 않고 lsquo스탬프

여행rsquo의 컨셉을 빌려 꾸미기로 했다 각 조의 부스를 돌아볼 수 있는

장치로 충분한 역할을 할 것이다 상품은 lsquo책rsquo에 대한 행운을 줄 수

있는 lsquo무언가rsquo를 준비하기로 했는데 지금 당장 밝히기는 쉽지 않은

lsquo무언가rsquo를 준비할 것이다 (기대되시지요)

이제 합이다 합은 발표회 당일 분명 lsquo정rsquo과 lsquo반rsquo의 효과가 나타날

것이며 어느 때의 발표회보다 멋질 것이다 (라고 근자감을

부려본다) 곧 시작될 발표회 기대하시라

마케터반 11기 이장열

11

1212

설왕설래

『호밀밭의 파수꾼』의 결말이

궁금해서 견딜 수 없다면

세 반 학우들의 상상력을 동원한 우리들의 릴레이 세

나에 대해 듣고 싶다면 내가 어디서 태어났는지 어린

시절이 얼마나 형편없었는지 내 부모님이 무슨 직업을

가지고 있는지 내가 태어나기 전에 무슨 일들이 있었는

지 같은 데이비드 코퍼필드 식의 헛소리가 듣고 싶겠지

하지만 난 그딴 이야기 하고 싶지 않아 (JD 샐린저 『호

밀밭의 파수꾼』

내 속으로 지나가지만 어쨌든 내 것이 아닌 섬광을 내

가 앉았던 내가 읽었던 생을 한순간에 으스러뜨리는

섬광을 이야기하고 싶어 이창환

아니 잠깐 내가 뭔 병신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

지 내일 서울출판예비학교 면접 있어서 빨리 자야 하

는데hellip 공태준

어서 잠에 들어야 한다는 조급함이 커질수록 허기 또

한 함께 치밀어 올랐다 결국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파

스타 면을 삶는 시간 8분 (그 동안엔 냉장고의 한 쪽

에 남아있던 산토리 한 캔을 단숨에 들이켜야 했다)

음악은 야나체크의 산포니에타 김사룡

맥주 한 캔으로 살짝 취기가 돌자 술이 더 마시고 싶었

다 결국 소주 한 병을 꺼내어 마시며 적당히 삶아진 파

스타 면을 올리브유에 볶았다 내일 입을 정장치마가

끼지 않을까 걱정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엎질러진 물

인걸 최다은

침대에 누워 억지로 잠을 청해본다 잡념이 사라지지

않는다 고민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된다 젠장 벌

써 새벽 3시 자긴 글렀네hellip 그렇게 뒤척이다 날은 밝았

다 이다혜

밝아진 창밖을 보며 어젯밤 나를 뒤척이게 한 면접을

떠올렸다 어제만 해도 중요한 일이라 생각했는데 날

이 밝으니 이미 그 중요성은 나와 멀어진 느낌이다 의

무감에 옷을 챙겨입고 집을 나섰다 양화대교를 건너는

버스 안 새로운 계획이 떠올랐다 황하정

새로운 계획으로 들뜬 나에게 창밖의 풍경이 눈에 들어

온다 수많은 사람과 차량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

어진다 다른 듯 보이지만 얼굴을 장식한 특유의 무표

정함과 발등에 불이 떨어진 듯 바삐 움직이는 모습 속

에 내가 겹쳐 보인다 그래 이번 계획은 나에게 얼마

동안의 기대감을 선사해 줄 수 있을까 뭐 어때 잠깐

이라도 좋다 쓸데없는 잡념보다는 시한부 희망이 차라

리 낫다며 애써 위로한다 유수지

순간 어렴풋한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니 내 또

래의 남자가 거북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김단희

그의 혐오에 가까운 시선과 마주쳤을 때 나는 순간 얼

어버렸다 면접 장소에 가기 위해선 이번 정류장에서 내

렸어야만 했다 그러나 나에게 다가오는 그 남자 때문

에 그러지 못했다 남자가 말했다 김선아

ldquo너였구나 그래 너였어 3년 전 3만원을 빌리고 도망

간 김말숙이 그래 너야rdquo

그 남자는 미친 게 분명했다 lsquo잠깐 이 관능적인 머스

크 향은 뭐지rsquo 순간 뇌리를 스치는 불가리 향수는

그 남자를 떠올리게 했다 지독하게 얼굴을 기억하지

못했던 그 남자를 말이다 이장열

대학교 1학년 설레는 마음으로 나간 첫 번째 미팅을

내 인생 최악의 시간으로 만들었던 lsquo불가리 그놈rsquo이었

lsquo젠장 이 안면 인식 장애놈이 내 얼굴을 어떻게 기억하

는 거지rsquo 내 이름이 김말숙이든 아니든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내 얼굴을 기억한다는 것이 의아할 뿐

양화대교 위에서 떠오른 새로운 계획 그래 지금부터

시작이다 오늘 하루는 lsquo나rsquo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 살

아보는 거야

난 매섭게 치뜬 눈으로 나를 응시하는 그를 뒤로하고

소설의 첫 문장으로 시작하는 릴레이 소설

13

무심히 다음 역에서 내렸다 아무런 동요 없이 발걸음

을 옮기는 나를 보고는 그도 무안한지 이내 제자리로

돌아가는 듯했다 이상한 사람 나는 계속해 나의 목적

지를 향해 걸어갔다

결국 지각했다 면접은 진행 중이었다 이게 다 불가리

때문이다 불가리 냄새가 몸에 밴 것 같다 아니 불가

리 냄새는 내 옆에서 나고 있었다 내 옆에는 불가리가

앉아 있었다 부처님의 손가락을 본 손오공의 심정이

이러했을까 강귀욱

끔찍했다 냄새도 면접도

lsquo젠장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야rsquo

담배에 불을 붙여 한 모금 깊게 빤다 lsquo후-rsquo 치미는 화

도 잡념도 불안도 이 연기처럼 쉬이 사라져버리면 좋

으련만 무의미한 푸념만이 입 안에 맴돈다

ldquo김말숙~ 여기 있었냐rdquo 그 말에 얼마나 놀랐냐면 떨

어진 담뱃불이 내 정장치마를 태우고 있는 줄도 몰랐을

정도였다 lsquo불가리 그놈을 피해 골목까지 들어왔는데

여긴 어떻게 찾은거야rsquo

ldquo밥 먹을래rdquo lsquo꺼져 꺼져 제발 꺼져helliprsquo 못 들은 척 고

개를 돌렸다

ldquo소달구지라고 괜찮은 식당 있는데 같이 가면 그 3만

원 없던 걸로 해줄게rdquo

우리는 눈이 마주쳤다 김영준

해질 무렵 서서히 불이 들어오는 보고 있어도 언제 밝

아졌는지 알 수 없는 양화대교 위 가로등처럼 우리는

천천히 그러나 깊게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새카

만 흑암의 공간 무저갱 같이 깊고 검은 눈동자 속에

숨겨 놓은 비밀을 알아내기라도 하려는 듯 그렇게 서

로의 눈을 망막 너머의 시신경을 시신경을 타고 올라

가 전두엽 어딘가에서 터지고 있을 스파크를 계속 들여

다보았다 이윽고 두 남녀의 입이 열렸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낮은 목소리가 화음을 내며 울려 퍼

졌다 ldquo몽마르뜨가 좋겠어rdquo 권오권

끔찍했던 면접과 기분 나쁜 불가리놈의 얼굴이 잊힐 정

도로 음식의 맛은 정말 좋았다 고작 음식 때문에 기분

이 나아지는 내 자신에게 정말 어이가 없었지만 어쨌

든 맛은 좋았다 된장국으로 숟가락을 옮기며 슬쩍 앞

의 녀석 얼굴을 쳐다보았을 때 그 녀석도 나를 쳐다보

고 있었다 김희연

3년 전의 얼굴과 꽤 변해있었다 그 당시 철없는 어린

애 같은 얼굴이었는데 지금은 사회인이 되려고 꾸며댄

듯한 모습 물론 3년 전보다 더 나아졌다거나 잘생겨진

것은 아니다 전보다 훨씬 평범한 얼굴이다 ()

그런 그는 어째서 날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어째서 날

기억하고 다가와서 말을 걸고 함께 식사까지 하려 하

는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이 텅 빈 머릿속을 메

운다 엄청나게 망쳐 버린 하루지만 이상하리만큼 멀

쩡한 내가 낯설다 김하얀

그러다 내가 집에 돌아가는 길 문득 미니스톱에 담배

를 사러 들렀다가 ldquo여기 국산담배밖에 없는helliprdquo 음hellip

없단다 가뜩이나 기분도 꿀꿀한데 없다니 빵만 사서

나왔다

빵을 사서 가는 길에 낯익은 얼굴에 걸음을 멈추었다

ldquo너 혼자 빵 먹냐 나도 같이 먹자rdquo 불가리 그놈이었

다 ldquo혹시 너 나 따라온 거야rdquo 기가 막혔다 백가은

어쩐지 불가리 향수 냄새가 난다 했다 ldquo왜 따라왔어rdquo

그랬더니 불가리 그놈이 하는 말

ldquo난 내 집 가는 건데rdquo 믿을 수 없다 수상쩍다 그놈은

나를 앞질러 가더니 우리 집 주인 아줌마네 집으로 들

어가 버렸다 아 저 놈이 집주인 아줌마 아들놈인가

월세 밀렸는데 망할

망할 이상한 하루였다 잊자 오늘 일은 전부 다 잊어

버려야지 방으로 들어오기 직전에 산 맥주 한 캔의 뚜

껑을 따고 들이킨다 캬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가는 듯

시원하다 씻고 자리에 눕는 순간 면접 결과가 나올 때

까지 무엇을 하고 있어야 할지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TO BE CONTINUEDhellip

은 익명 표시입니다

13

무심히 다음 역에서 내렸다 아무런 동요 없이 발걸음

을 옮기는 나를 보고는 그도 무안한지 이내 제자리로

돌아가는 듯했다 이상한 사람 나는 계속해 나의 목적

지를 향해 걸어갔다

결국 지각했다 면접은 진행 중이었다 이게 다 불가리

때문이다 불가리 냄새가 몸에 밴 것 같다 아니 불가

리 냄새는 내 옆에서 나고 있었다 내 옆에는 불가리가

앉아 있었다 부처님의 손가락을 본 손오공의 심정이

이러했을까 강귀욱

끔찍했다 냄새도 면접도

lsquo젠장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야rsquo

담배에 불을 붙여 한 모금 깊게 빤다 lsquo후-rsquo 치미는 화

도 잡념도 불안도 이 연기처럼 쉬이 사라져버리면 좋

으련만 무의미한 푸념만이 입 안에 맴돈다

ldquo김말숙~ 여기 있었냐rdquo 그 말에 얼마나 놀랐냐면 떨

어진 담뱃불이 내 정장치마를 태우고 있는 줄도 몰랐을

정도였다 lsquo불가리 그놈을 피해 골목까지 들어왔는데

여긴 어떻게 찾은거야rsquo

ldquo밥 먹을래rdquo lsquo꺼져 꺼져 제발 꺼져helliprsquo 못 들은 척 고

개를 돌렸다

ldquo소달구지라고 괜찮은 식당 있는데 같이 가면 그 3만

원 없던 걸로 해줄게rdquo

우리는 눈이 마주쳤다 김영준

해질 무렵 서서히 불이 들어오는 보고 있어도 언제 밝

아졌는지 알 수 없는 양화대교 위 가로등처럼 우리는

천천히 그러나 깊게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새카

만 흑암의 공간 무저갱 같이 깊고 검은 눈동자 속에

숨겨 놓은 비밀을 알아내기라도 하려는 듯 그렇게 서

로의 눈을 망막 너머의 시신경을 시신경을 타고 올라

가 전두엽 어딘가에서 터지고 있을 스파크를 계속 들여

다보았다 이윽고 두 남녀의 입이 열렸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낮은 목소리가 화음을 내며 울려 퍼

졌다 ldquo몽마르뜨가 좋겠어rdquo 권오권

끔찍했던 면접과 기분 나쁜 불가리놈의 얼굴이 잊힐 정

도로 음식의 맛은 정말 좋았다 고작 음식 때문에 기분

이 나아지는 내 자신에게 정말 어이가 없었지만 어쨌

든 맛은 좋았다 된장국으로 숟가락을 옮기며 슬쩍 앞

의 녀석 얼굴을 쳐다보았을 때 그 녀석도 나를 쳐다보

고 있었다 김희연

3년 전의 얼굴과 꽤 변해있었다 그 당시 철없는 어린

애 같은 얼굴이었는데 지금은 사회인이 되려고 꾸며댄

듯한 모습 물론 3년 전보다 더 나아졌다거나 잘생겨진

것은 아니다 전보다 훨씬 평범한 얼굴이다 ()

그런 그는 어째서 날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어째서 날

기억하고 다가와서 말을 걸고 함께 식사까지 하려 하

는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이 텅 빈 머릿속을 메

운다 엄청나게 망쳐 버린 하루지만 이상하리만큼 멀

쩡한 내가 낯설다 김하얀

그러다 내가 집에 돌아가는 길 문득 미니스톱에 담배

를 사러 들렀다가 ldquo여기 국산담배밖에 없는helliprdquo 음hellip

없단다 가뜩이나 기분도 꿀꿀한데 없다니 빵만 사서

나왔다

빵을 사서 가는 길에 낯익은 얼굴에 걸음을 멈추었다

ldquo너 혼자 빵 먹냐 나도 같이 먹자rdquo 불가리 그놈이었

다 ldquo혹시 너 나 따라온 거야rdquo 기가 막혔다 백가은

어쩐지 불가리 향수 냄새가 난다 했다 ldquo왜 따라왔어rdquo

그랬더니 불가리 그놈이 하는 말

ldquo난 내 집 가는 건데rdquo 믿을 수 없다 수상쩍다 그놈은

나를 앞질러 가더니 우리 집 주인 아줌마네 집으로 들

어가 버렸다 아 저 놈이 집주인 아줌마 아들놈인가

월세 밀렸는데 망할

망할 이상한 하루였다 잊자 오늘 일은 전부 다 잊어

버려야지 방으로 들어오기 직전에 산 맥주 한 캔의 뚜

껑을 따고 들이킨다 캬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가는 듯

시원하다 씻고 자리에 눕는 순간 면접 결과가 나올 때

까지 무엇을 하고 있어야 할지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TO BE CONTINUEDhellip

은 익명 표시입니다

14

이옥란 선생님

캡틴 오 마이 캡틴(captain oh my captain)선생님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

편집자반 학우들은 늘 이분의 얼굴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며

끝마친다 몇 번의 마주침은 덤이다 그분은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도 가깝지만은 않았던 편집자반의 담임 교수

이옥란 선생님 자신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우리를 위한

이야기를 풀어놓으시느라 매일 종례시간이 부족하신 이옥란

선생님께 이번엔 우리가 물었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 일상을 어떻게 보내고 계신가요 선생님의

주말이 취향이 추억이 삶이 궁금하다 편집자반 학생들에게

직접 받은 질문들로 lsquo한 사람rsquo에게 궁금한 것들을 물었다

이 인터뷰를 읽은 뒤 그녀를 한층 좋아하게 되리라고

확신한다

왜 디토 커피에 자주 가시나요

커피가 제일 맛있고 값이 싸고

넓은 창으로 햇빛이 많이 들어와

그리고 주인장들이 공간은 물론이고

손님들과도 잘 어우러지는 것 같아

옥란 선생님께 스카프란

어느 날 발견한 패션 아이템 몇 년 전인가

홍대 앞 가판대에서 우연히 마 레이온 합성의

보라색 스카프를 발견한 이후인 것 같아

왜 고양이를 좋아하시나요 고양이를 키우시나요

고양이가 나를 키웠다고 할 수 있지 시골집 막내였는데

고양이가 친구가 되어주었어 (선생님이 고양이를 닮아

가시는 것 같아요 혹시 키우세요) 둘 있는데 13년쯤 되었나

최근에 읽었거나 읽고 계신 책은

이익섭 저의 『국어학개설』 『말과 사물』 『좌파는

어디에 있었는가』 『논어』 『번역어의 성립』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등 여러 권 들고 다니면서 돌려본다

(국어학개설은 읽는다기보다 공부 아닐까요) 아니야

재미있어

인생의 책을 꼽자면

김훈의 『남한산성』 표지가 핫핑크 색이야 건조하고 힘

있는 남성적인 문체의 마초라고 불리기까지 하는 작가의

책이 핑크색이라니 크기도 아마 46판에 더스트 커버(dust

cover)는 질긴 천의 느낌이고 본문은 재생지인지 무겁지

않고 두께도 딱 손에 잡히는 정도 감각까지 장악한 책이야

몇 권 사서 주변 사람들에게 돌렸어

선생님의 멘토는

이런 질문에 답하게 될 줄은 몰랐네 글쎄 그러고 보면

존경스러운 사람은 있었지 대학 때 문학 동아리 선배였어

양상현 형 (어떤 점이 제일 존경스러우셨어요) 자유롭게

사는 사람이었던 것 얼마 전에 돌아가셨어 이제 조금

실감이 나네 그분은 건축 전공에 시를 쓰고 음악을

즐기고 노는 문화를 나누고hellip 어떤 사태도 회피하지 않고

자유로웠던 사람이었지 앞으로 할 일이 더 많았을 터인데

양상현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졸업 동대학원

박사학위 2002년 대한민국건축대전

초대작가 선정 순천향대 건축학과

교수 재직 민족건축인협의회

의장 설계 작품으로는 lsquo장암리

주택rsquo lsquo녹촌리 조각가의 집rsquo 등

대표 저서『거꾸로 읽는 도시

뒤집어 보는 건축』 2015년

8월 14일 별세

졸업 후 편집자로 일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우리 때는 노동운동이나 농민운동을

했던 대학생이 사회과학 출판사로

진출하는 경우가 많았고 내 친구도 졸업을 해서

출판사에 있었어 그 녀석이 나를 사무실로

초대했는데 반지하도 아니고 그냥 지하였던 것

같아 ldquo옥란이 이리와 봐 이게 뭔지 아니 바로

매킨토시라는 거야 이게 얼마짜린지 아니rdquo

매킨토시 컬러 클래식(Macintosh Color Classic)

웬만한 공책보다 좀 클까 본체가 화면에 같이

붙어 있는 하드웨어를 가진 컴퓨터였지 친구 말로는

300~400만 원 한다고 했어 20년 전이니 당시로는

큰돈이지 교정지를 보여주더니 마치 lsquo음 너는 아직 이런 거

모르지rsquo라고 하는 듯이 ldquo잠깐만 언니가 뭐 좀 할 테니까

잠깐 기다려봐 하hellip 이거 띄어쓰기 어떻게 해야 하려나 이게

전문용어라 통일을 해줘야 하는데helliprdquo 하던 잘난 척이 기억이

나네 그렇게 출판사를 접했지 문학 동아리를 하느라 알게

된 선생님들 선배님들도 여럿 출판사에들 계셨어

편집자로 일하셨을 때 어떤 분야를

편집하셨나요

하다 보니 주로 예술 서양 미술 분야였고

출판사는 학고재 예경 마로니에북스까지

그런 기회가 나한테 왔고 재미있었어

전공이 그쪽이 아니었기 때문에 공부를

해야 했지

지난 서울출판예비학교생활 중 특별히

기억나는 사람이나 사건이 있다면

8기 졸업식 날 남학생 셋이 ldquo저는 출판학교에

와서 모든 것을 얻었습니다rdquo 그러면서 흑흑 우는 거야

누군지 얘기하면 창피하겠지 남학생들이 울어서 애들이

알고싶어 편집자반

15

완전 눈물 바다였잖아 (우리 반 오빠들이 운다는 건 상상할

수 없네요) 다음 해에는 애들이 완전 유머 코드여서 웃다

끝났지

출판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된 계기나 동기는

무엇인가요

나는 8기부터 시작했는데 7기 담임이던 김장환 씨가 나를

불렀어 공동 담임을 해달라고 lsquo그러지 뭐rsquo 이렇게 시작했지

직장은 2008년도까지 다녔고 프리랜서로 활동하면서

여기저기서 강의를 하고 있었어 한겨레 문화센터에도

23년쯤 있었지 (편집자보다 이렇게 선생님으로 있는 게 더

즐거우세요) 지금은 진짜 만들고 싶은 책 함께 작업해보고

싶은 저자 그런 게 아닌 한 직업으로 신간을 꾸준히 내는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당신들은 눈이 반짝반짝해서 업계에 들어와야겠다고

준비해서 오잖아 그 친구들이 1년차 3년차 되는 것을

지켜보고 있으려니까 내가 그 나이쯤 사회생활을

시작해 고민했던 지점이 보이는 거지 그 때

이걸 알았더라면 하는 안타까움이 있어서

여러분들이 애틋해지지

요즘 최대의 관심사는 무엇인가요

저녁에 후배들에게 가르칠 강의를 하다

보니 국어 공부의 필요성을 여실히 느끼고

있어 출판 동네에서 20년 넘게 일한 사람이

공부해온 것을 한 번 정리해서 후배들한테 줄 필요도

있겠구나 싶고 (뭔가 일 얘기가 아닐 줄 알았는데요

하하)

은퇴 후에 무엇을 하고 싶으신가요

오늘은 말이 절로 나오는 걸 하하 마당 있는 시골집 텃밭을

일구며 역사에 길이 남을 인간과 세상을 통찰하는 대작

소설을 발표하겠다 (와)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이 되고 싶으신가요

다시 태어나고 싶지가 않아hellip(웃음) 지구에서는 내

대에서 멸종하기로 했다

저희들에게 속 시원하게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자신 있게 해라

생각해보면 다들 자기가 못났어 키도 좀 더 컸으면

좋겠고 외모도 마음에 안 들고 내가 저 때 저렇게

했으면 지금 달라졌을까 부럽기도 하고

그런데 사실 부질없는 거거든 세상 사는

힘이 실력에만 있는 게 아니고 태도의 문제가 더

클 때가 많아 내 것이 아닌 것에 목매고 있을

필요가 없어 신입사원으로 전혀 모르는 곳에

뚝 떨어졌을 때 저들의 세계 속에 혼자 쏙

들어간 기분이니까 일단은 주눅이 들지

하지만 거기서 살아가야 하지 않겠어

둘러보면서 아 저기가 화장실이구나 사람들은

이런 걸 이렇게 하는구나 파악하고 나면 좀

수월해지잖아

마지막으로 대망의 이상형 월드컵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정우 주원 김수현 유아인 이렇게

4강전으로 시작하겠습니다

(하정우와 주원 중에서는 누가 더 좋으세요) 하정우지

주원이 최근에 좋아지긴 했는데 아직도 하정우를 따라올 수

없어

(그럼 김수현유아인 중에서는요) 유아인이지

(너무 확고하셔요 드라마 lt밀회gt 보셨나요) 집에선 케이블

방송도 안 나오고 관심 갖게 되었을 땐 너무 유행이라

안보고 말았지 대신 영화 lt완득이gt는 봤다

(이제 결승인데요 마지막으로 하정우와 유아인은요)

아인이는hellip 나한테 좀 과분한 것 같아(웃음) 하정우가 삐질

것 같은데 그래서 둘 다 잃는 거야hellip

편집자반 11기 김수진 이상화

lt베테랑gt의 악랄한 재벌 2세유아인

lt프로듀사gt의 어리버리 신입PD

김수현

lt용팔이gt의 천재 외과의사

주원

lt 암 살 gt 의 순 정 마초

하와이 피스톨하정우

하정우

16

한대웅 선생님

『동백꽃』의 주인공 같은 그 남자착하디착한 순하디순한 한대웅 선생님의 속마음

좀처럼 화내시는 일도 없고 허허 웃기만 하시고hellip 하지 못한

말들을 땀으로 발산하듯 여름이면 온몸이 열정으로 흠뻑

젖으시는 분 세상 어디에도 없을 착한 남자 마케터반의

한대웅 선생님이다 그에게 던진 몇 가지 질문에 돌아온 것은

가장으로서의 고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 아직도 앳된

소년 같은 순수함이 묻어나는 답변들이었다 이제 그를 좀 더

깊게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평소에 칼라(collar) 티셔츠를 즐겨 입으시던데

좋아하시는 옷인가요

좋아한다기보다는 제 딴에는 편하게 입을 수 있는 듯해서

즐겨 입고 있습니다 또 아내가 이런 종류의 옷을 많이

사주기도 하고요

선생님께 lsquo출판rsquo이란 무엇인가요

출판은 lsquo꿈을 이루는 판도라의 상자rsquo lsquo내가 가진 능력에 가장

맞는 일rsquo입니다

출판을 업으로 삼지

않으셨다면 어떤 일을

선택하셨을까요

모르겠네요 아마도 운명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요 다만 다음과

같은 3가지 생각은 해보았습니다

첫째 고등학교 시절 성적이 조금

더 좋았다면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해서

지금쯤이면 텔레비전이나 영화에 나오는 큰 전투함의

함장이 되지 않았을까요

둘째 대학교에 입학하지 못했다면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로 이민을 가서 장사를 하거나 농부로 농장을

운영하면서 그곳 사람으로 국적을 바꾸고 살고 있지

않을까요 고등학교 3학년 때 대학교 입학 시험에

떨어지면 다른 나라로 가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다는

마음의 준비를 했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 모 일간지에 실린

해외에서 성공적인 삶을 사는 한국 사람들에 관한 기사를

꼼꼼하게 읽었었거든요

셋째 대학교 3학년이나 4학년 때 신춘문예까지는 아니라도

대학교 교내 문학상 정도를 받았다면 아마도 그 결과에

탄력을 받아 시나리오 작가나 연극 연출가의 길로 가려고

하지 않았을까요

ID와 블로그에 lsquo봄rsquo이라는 단어가 들어있는데 봄을

좋아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그 ID를 만들 무렵 저의 미래는 꽤나 불확실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바꿔 말하면 어떻게

돈을 벌어야 하고 어떻게 자아 성취를

해야 하는지가 불확실하고

힘들었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lsquo봄rsquo이라는

단어를 좋아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누구나

알다시피 봄은 겨우내

얼어 있던 것들이

새롭게 싹을 틔우고

새롭게 기지개를 펴는

계절이죠 물론 봄

자체가 주는 느낌도

좋고요 그래서 lsquo봄rsquo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던 것

같습니다

블로그는 서울출판예비학교에서

일을 시작한 후 만들었습니다

블로그에 lsquo봄바람rsquo이라는 의미를 부여한

것은 ID를 만들던 때의 생각이 이어진 것이겠지요 요즘에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이 많이 사라진 것 같습니다 만약

앞으로 블로그나 ID를 만든다면 아마도 lsquo여름rsquo 혹은 lsquo풍성함rsquo

아니면 lsquo내가 원하는 세상을 상징하는 어떤 것rsquo을 이름으로

사용할 것 같습니다

편집자로 첫 시작을 하셨는데 나중에 출판 마케터로

일하게 된 동기를 알고 싶어요

시장 상황을 분석하고 이에 맞게 마케팅 계획을 세우고

사람이나 집단을 만나고 힘을 합쳐 뭔가 새로운 결과를

만들어 내는 일이 재미있었습니다

은퇴 후에 꿈꾸시는 삶이 있으신가요

아직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20대와 30대

초반에 꿈꾸던 것들을 lsquo은퇴 후에 여유가 생긴다면 이것들을

해볼까rsquo라고 간혹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현재겠죠 출판에서 뭔가를 이루려고 열심히 계획하고

실행하다 보면 은퇴 후의 삶도 더 풍요로워지지 않을까요

알고싶어 마케터반

17

일하실 때 다뤘던 책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무엇인가요

입사 초기 편집을 하거나 시장조사를 하고 제가 출간 여부에

대한 판단을 내렸던 책들이 기억납니다 『펠레』 자서전은

제가 편집자로 있을 때 출간했던 책인데 주요 일간지의

서평란 메인을 장식했던 책입니다 출간 시점을 맞추기 위해

촉박한 기간 동안 밤새가며 책을 만들었습니다 출간 시점에

대한 판단이 정확히 맞았고 그 결과 기대 이상으로 많은

서평을 받았던 책입니다

서울예비출판학교 선생님으로 오신 계기를

알고 싶어요

전에 다니던 출판사를 그만둔 후

개인적으로 뭔가를 해보려고 고민

중이었습니다 그러나 능력이

부족하다 보니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았죠 그러던 중에

출판학교에서 일해 볼 것을

제안 받았고 저도 출판학교

학생들처럼 면접을 보고 이

학교에 오게 되었습니다

일을 하게 되었을 때 매우

즐거웠습니다

다시 출판사 마케터로 돌아갈

생각이 있으신가요

아니오 이유는 2가지인데 첫째는 제 나이가

48세입니다 다른 업종도 그렇지만 출판 산업에서도

48살에 마케터로 직장인의 생활을 이어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죠 정말 현실적인 고민이죠 게다가 출판학교에서

여러분과 소통하며 제 지식을 전수하는 일이 재미있습니다

물론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언젠가 저만의 꿈을

찾아갈 수 있겠죠

평소 몇 권의 책을 읽으시나요 최근 읽은 책 중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요

예전에 많이 읽을 때는 1주일에 2권 정도 읽었습니다

황석영의 『장길산』과 홍명희의 『임꺽정』 이문열의

『삼국지』를 읽을 때 짬짬이 쉬는 시간을 비롯해 지하철에서

보내는 시간까지 거의 모든 시간을 책을 읽으며 보냈습니다

요즘에는 1달에 1~2권 정도 읽는 것 같네요 최근 읽은

책 중에 기억에 남는 책은 『내 아이와 어떻게 대화할

것인가』(율리아 기펜레이테르 저 써네스트 2006)와 『내

아이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율리아 기펜레이테르

저 써네스트 2009)입니다 제목만으로도 왜 이 책을

추천하는지 금방 눈치 챌 수 있을 것입니다 아이가 둘

있는데 첫째는 15살 딸이고 둘째는 10살 아들입니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lsquo어떻게 하면 아이와 싸우지 않고

윽박지르지 않고 아이의 자존감을 높여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성실하고 삶의 열정과 꿈이 넘쳐나는 아이로

키울까rsquo 같은 고민을 항상 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단비처럼 다가왔습니다 위의 2권의 책을 읽고 몇

가지 중요한 것들을 배웠습니다 아이와 어떻게 소통하고

어떻게 대화해야 하는지 아이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등등 이전에 『부모와 아이 사이』(하임 G 기너트

등 저 양철북 2003)를 읽고 아이를 이해하는 법에 대해

큰 인상을 받았는데 이 책도 그 연장선에서 저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아들과 딸을 좀 더 이해하게 되고 그

결과 아이들에게 화를 내거나(저도 나약한 인간인데 화가

날 때가 심심치 않게 있거든요) 아이들의 긍정적인 싹을

본의 아니게 꺾어 버리는 경우가 줄었다고 할까요 게다가

이 책은 lsquo부모와 아이 사이rsquo만이 아니라 lsquo친구와 친구 사이rsquo

lsquo회사 내부 구성원 사이rsquo에서 소통하는 데도 많은 영감을

제공합니다 출판학교 학생들과 소통할 때도 이해의 폭을

넓혀주고 긍정적인 소통을 하는 방법을 제공해 줍니다

이제 수료를 앞둔 마케터반 학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으시다면

개인별로 처한 처지와 조건에 따라 다르겠지만 다음과 같은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 연인을 사랑하듯 출판에 대해서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보세

- 이 길이 나에게 최선의 길인가 생각해 보세요

- 목표를 세우고 지금부터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한 후 그것을 어떻게 이루어 나갈 것인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보세요

저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스스로의 내면을 단단하게 할 중요한

질문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앞으로도 끊임없이

새로운 답을 찾아나갈 질문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케터반 11기 이장열 이창환

18

선생님은 주말에 뭐하세요

무조건 가족과 함께hellip

만약 편집 디자인을 안 하셨다면 무슨 일을 하고

계실까 궁금해요

어찌 됐든 개인 사업자로 살았을 듯 윗사람 비위 맞추는

것을 너무 못하므로hellip

선생님 주량이 어떻게 되세요 주사가 있으세요

몸 상태 좋고 안주 많이 먹으면 1병(클래식으로)

좋은 출판 디자인을 생각한다

심우진middot안광욱 선생님

lsquo멋rsquo이라는 것이 폭발한다뼛속까지 디자이너스러운 심우진 선생님

멀리서도 눈에 띄는 큰 키에 멋들어진 베레모 디자인반의

심우진 선생님 되시겠다 서울출판예비학교에서 lsquo멋rsquo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가끔은 조금 키 큰 학생처럼 학생들

속에 잘 어우러지는 사람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모습은

여기까지다 그를 조금 더 알고 싶다 지금까지의 그를

만들어왔을 lsquo심우진의 생각들rsquo이 궁금했다

선생님은 무엇을 드시고 그리 멋지시나요

학생들의 사랑 밥 김치

일본 유학길에 오르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lsquo동아시아rsquo lsquo근대rsquo가 당시 나의 화두였으므로 그리고

스기우라 고헤이 선생을 뵈러

첫 직장을 다녔을때 일의 강도()나 다니는 동안

마음은 또 어떠셨는지

출판 쪽 첫 직장은 lsquo정디자인rsquo인데 lsquo나는 왜 이렇게 디자인을

못할까rsquo 답답해했던 기억이 있어요 그러나 매우 즐거웠고

술도 자주 마셨죠 아직도 당시의 OB들과 가깝게 지내요

lsquo둥지rsquo 같은 곳이죠

선생님께서 생각하는 완벽한 판면이란

디자이너의 삶의 방식과 콘텐츠의 삶의 방식이 녹아든 판면

선생님의 피로회복 방법은

알고싶어 디자인반

19

디자인반의 히어로좋은 출판 디자인을 생각한다 안광욱 선생님

여자 화장실 앞에 있어 인파로 북적대는 디자인반 교실을

학생들과 함께 굳건히 지켜온 분 디자인반 학생들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애정공세를 아끼지 않는 분 안광욱

선생님에게 물어본 4가지

디자이너로서 첫 직장을 다닐 때의 마음이

어떠셨나요

잘하고 싶었는데 못해서 힘들었지 사수에게 하루 서너

시간씩 야단맞으면서 했다오 매일 2호선 양화대교에서 뛰어

내리고 싶었는데hellip 이 부분은 내일 수업 때 얘기해줄게^^

선생님께서 생각하는 좋은 출판 디자인이란

세상을 향한 사랑과 희망이 듬뿍 담긴 디자인

출판 디자인을 안 했다면 지금 무슨 일을 하고

계실까요

모르겠네 그냥 선녀 옷 훔치는 나무꾼이 되어 있을 듯^^

어떤 주사가

있으신지 궁금해요

말이 조금 더 많아지고 장소 불문 쿨쿨 자 특별한 주사는

없는 듯

디자인반 11기 이소현 백가은 사공예원

디자

인 사

공예

20

편집자반 김영준 학우가 그린

『이 외로운 사람들아』 일러스트

기억에콕

수업 후기

ldquo우리에게는 lsquo일탈rsquo이 필요합니다rdquo

잠깐 딴 짓을 하는 사이에 귓가에 들려온

한 문장이 나를 사로잡았다 배는 부르고

따 사 로 운 햇 살 에 잠 이 쏟 아 지 는 시 간

오후 1시 30분 시간을 칼같이 맞춰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선 그는 딱 봐도 지루하고

고리타분해 보이는 첫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순간 눈으로 들어온 이미지는 뇌로 흘러갔고

뇌는 망설임 없는 확신으로 귀에 명령을

전달했다 그렇게 귀는 이미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내 들려올 그렇고 그런 뻔한

이야기에 대하여

눈의 판단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의 한마디

한마디는 파격이었다 아니 어쩌면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였지만 누구도 자신 있게

내던지지 못하는 말들을 서슴지 않고 내뱉는 그

거침없음에 신선함을 느낀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의 관심을 돌려놓았던 lsquo일탈rsquo에 대한 그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lsquo일탈을 하라rsquo는 말이

lsquo제멋대로 하라rsquo는 의미가 아니라 어떤 규칙을

벗어나는 행위를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다르게

생각하는 방식을 몸으로 익히게 된다는 것

새로운 것을 생각해내는 창의성이라는 힘은

당연히 새로운 경험에서 나온다는 것이었다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니 강의를 듣던

친구들의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때 보고 들었던 그의 말과 행동이 우리에게는

딱 딱 한 강 의 실 에 서 느 끼 는 새 로 운 경 험

lsquo일탈rsquo이었다

그 와 의 만 남 은 계 속 이 어 졌 다 이 곳

서 울 출 판 예 비 학 교 에 입 학 한 이 후 로 는 좀

더 완 벽 한 일 주 일 단 위 로 시 간 이 흐 르 기

시작했는데 매주 쌓여가는 새로운 배움 뒤에는

수많은 물음이 불쑥불쑥 솟아났고 그는 마치

예상을 했다는 듯이 일주일에 한 번씩 나타나

우리의 설익은 궁금증을 해소해주고 떠나갔다

첫 만남에서는 책이라는 대상과 책을 대하는

편집자의 자세에 대해 이야기하며 큰 그림을

그려주었고 다음엔 저자와의 관계 맺기 그

다음엔 스스로 만들어 가야할 편집자의 자기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담백하게 들려주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네 번째 만남이었다

누구도 쉽게 이야기하기 어려운 완벽하게

솔직해지기는 더더욱 어려운 자신의 좌절과

실패를 그는 담담하고 진솔하게 소개해주었다

모든 성공에는 대개 7할의 실패가 전제되어

있기 마련인데 성공에 이르기까지 거치는

우 리 가 lsquo실패rsquo라고 명 명하는 것들이 사실

진짜 실패가 아니라 성공의 다른 이름이라는

그의 말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성공도 실패도

어 느 한 지 점 에 서 내 리 는 판 단 인 것 이 고

결 국 성 장 하 고 성 숙 한 다 는 것 은 성 공 과

실패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lsquo차이rsquo를 얼마만큼

발견하느냐 하는 것에서 결정된다는 그의 말이

가슴을 뜨겁게 했다 비로소 lsquo편집자rsquo로서가

아닌 한 lsquo사람rsquo으로서의 그가 보이기 시작했다

담담하게 말을 하고 있지만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아프고 쓰린 기억을 후배들에게

들 려 주 는 그 에 게 서 진 심 이 전 해 져 왔 다

사랑하는 일에 대한 함께 걸어갈 동지들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 참 고마웠다

어느덧 마지막 만남이 찾아왔다 한 권의

책을 만들면서 진행했던 편집의 과정을 예로

실 제 적 인 이 야 기 를 우 리 에 게 마 지 막 으 로

들려주었다 편집의 능력은 지식과 정보에서

나온다는 것 그것은 단숨에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 꾸준히 쌓아가야 한다는 것 그래서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의 문제라는 것을 경험을

근거로 자신 있게 말해 주었다 이미 지나온

과거의 결과 대신 앞으로 걸어갈 길에 대한

희망을 들려주어서 그게 참 고마웠다

편집자반 일탈이 주는 파격 우리가 낳을 lsquo새로운 책rsquo과 편집자선완규 선생님과의 다섯 번의 만남이 키운 생각들

21

그 가 우 리 에 게 마 지 막 으 로 이 야 기 를

들려주었던 그날 이후 석 달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났다 나는 여전히 같은 강의실에 앉아

앞서 길을 걸어간 선배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고 조금씩 가까워지고 밝아져가는 내 앞에

놓인 길에 대해 생각한다 그러다 문득 마음이

무거워지고 막막해질 때면 종종 그의 말들을

떠올려 본다 그리고 그 생각의 끝에서 마음을

의지하며 함께 이 길을 걸어갈 따뜻한 선배가

하나 있다는 위로 한 줌을 발견한다

ps 선완규 선생님 고맙습니다 보고 싶어요

편집자반 11기 성준근

마케터반 강한 수면욕 환상과 환기

판형과 종이를 예술로 편입시키려는 영업자다빈치 출판사 박성식 대표 특강 후기

9월 23일 평소보다 점심을 많이 먹었던 날이다 잠을 며칠간 못 자 피곤했다

오후 1시 30분이 살짝 지나서 다빈치 출판사 박성식 대표의 특강이 시작됐다

다빈치 대표님은 처음 뵐 때부터 남다르셨다 서울출판예비학교 입학 면접에서

여자 술 담배를 각각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보셨다 lsquo솔직함을 어필해야

하는 순간인가rsquo하는 생각에 직설적으로 답했지만 lsquo더 문학적으로 얘기할 수

있었는데rsquo라는 후회를 안고 돌아왔다

마음과 다르게 첫 번째 시간은 정신없이 잠이 쏟아졌다 눈을 감고 귀 기울였지만

턱을 괸 채 버티는 동안 50분이 지났다 대표님께 캔 커피를 하나 드리고 맞이한 두

번째 시간 그 한 시간 동안 나는 현실 옆의 어떤 이상 내지는 환상을 본 것 같다 그동안

듣던 강의들을 놓고 lsquo이상적인 관점이다rsquo 혹은 lsquo현실적이다rsquo라고 구분했던 판단의 폭

자체가 좁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성식 대표님은 내 머리에 있던 lsquo책rsquo에 대한 인식을 전복시켰다 자본주의 출판의

몰락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시작됐다는 말 출판 기본 특성인 다품종 소량 생산은 돌아올

것이며 다품종 소량 생산을 넘어 다품종 소량 lsquo고급 생산rsquo을 추구하고 싶다는 말은 나를

달뜨게 했다 주류에 반하는 사고를 가진 중년의 개성과 내공에 교실 풍경이 환기됐다

교육 수단으로 책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지만 책은 그만큼 사회적 의무와 희생을

짊어져왔다 출세와 공부 앞에서 책이 가진 기호(嗜好)성은 변두리로 내몰렸다 책을

읽어야만 제대로 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분위기는 옳지 않다 독서는 성향의 범주지 성역이

돼선 안 된다 정보와 지식의 전달은 모바일 등에 넘겨주고 종이책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공동체로 돌아와야 한다 그게 원래 자리라는 대표님의 주장이 새롭고 강렬하다

자본주의 3대 원칙인 lsquo더 빨리 더 많이 더 싸게rsquo 체계는 표준화와 규격화를 동반하며

매우 효율적이다 현재 사용하는 종이는 자본주의 원칙에 최적화돼 있다 그러나 대표님은

인쇄기계로 소화하지 못하는 질감과 전혀 다른 발색을 지닌 lsquo종이rsquo에 주목했다 그 종이로

콘텐츠 종이 판형이 완벽하게 들어맞는 예술서를 만들고 시장을 설득한다면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책 판매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전했다 종이 자체가 책의 예술성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한지(韓紙)를 예로 들면서 훌륭한 텍스트와 이미지를 한 차원 끌어올리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많은 부수를 팔아야 성공한 출판 많은 부수를 파는 것을

목표로 하는 시대는 저물고 있다 기존 유통과 판매 방식

안에 갇혀서는 불황에 매몰될 뿐이다 소량의 고급화된

책을 꿈꾸는 것과 전시회를 책과 결합하는 것도 다른 길을

물색하는 과정이다

대표님은 10년 전부터 lsquo이 원고는 내가 누구보다 잘

만들겠다rsquo lsquo이 원고는 내가 못하면 누구도 못할 것 같다rsquo라는

생각이 든 책만 출간을 진행했다고 한다

강의 중간 자신의 독특한 철학을 전달하는 것에 대해 가벼운

염려를 하셨지만 이론적이고 실용적인 분야에 몸담더라도

예술적 사고의 유연성은 필요하다고 본다 돈과 인문정신을

구분하면서 필요할 때 양쪽에서 자극 받고 차용하는 것이 마케팅의 융통성과 힘을 기르는 길일 것이다

마케터반 11기 이창환

편집자반 김영준 학우가 그린

『이 외로운 사람들아』 일러스트

박성식 대표가 기획한 lsquo오름rsquo전

22

하늘

습탁은 농도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하늘

습탁은 농도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이 글은 심우진 선생님의 탁본 세미나 수업에 대한 우리들의 즐거운

기록이다 탁본은 습탁(濕拓)과 건탁(乾拓) 두 종류로 구별된다

습탁은 나타내고자 하는 물체 위에 물을 묻힌 후 종이를 그 위에

밀착시키고 먹물 묻은 솜방망이로 가볍게 두드려서 물체를 표현하는

방법이다 물체의 패인 부분을 제외하고 볼록한 부분의 모양대로

종이에 먹이 묻어 문자나 문양이 드러난다 건탁은 이름 그대로 물을

사용하지 않고 마른 상태의 먹인 고형묵(固形墨)을 사용한다 우리는

각자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사물과 자연을 이용해 탁본 작품을

만들고 서울출판예비학교 꼭대기 층에서 작품을 공유했다

디자인반 이 시간을 그대로 탁본할 수 있다면심우진 선생님의 탁본 세미나

저는 신문지를 구겨서 해봤어요

응 그런데 이건 방바닥 같은데

방바닥까지 묻어 나와 버렸네요

[학생들 하하하]

저는 일단 큰 나무 기둥을 떠봤고요

오솔길의 짚도 해보고 저희 집 바닥과

벽면도 신기해서 떠봤어요 집 벽면 중에

대리석도 있고 특이한 벽면이 많거든요

부잣집인가 보네

[학생들 깔깔깔]

승연

심우진 선생님

승연

승연

심우진 선생님

이건 파프리카인데 저희 집 개가 완성한 종이를 찢었어요

[학생들 하하하]

좀 작고 납작한 파프리카를 반으로 잘라서 습탁했어요 또

이건 철조망인데 용 비늘처럼 나와서 재밌었어요 아나콘다

같기도 하고 철조망이 날카로워서 습탁하니 종이가 자꾸

찢어져서 다시 하게 됐어요 근데 이거요hellip 남자친구

있으면 커플끼리 한 번 해보세요 한 명은 잡아주고 한 명은

습탁하고hellip 되게 로맨틱 성공적

자랑하는 거니

[학생들 깔깔깔]

수빈

수빈

심우진 선생님

혜민

정묵

처음에 나뭇잎이 세세하게 잘 나올 줄 몰랐는데 그

줄기의 질감이 잘 나왔고 버려진 타이어를 끌어서

생긴 모양으로도 습탁을 했는데 생각보다 잘 나와서

막상 찍어보면 생각과 다르다는 것을 느꼈어요

저도요 결과물이 뚜렷하게 안 나올 줄 알았는데

디테일이 잘 나타나 있었고 입체를 평면적으로

찍는 것 자체가 재밌었어요

수정

저는 빗자루를 해봤어요 너무 얇아서 안 나올

거라 생각했는데 빗자루 문양이 잘 나와서

재밌었고 머리카락도 해봤는데 머리카락은

끝 부분이 잘 나오는 편이에요 위쪽은 다

뭉쳐있는데 끝 부분은 펼칠 수 있으니까요

23

저는 결이 얇은 것들을 뜨는 것이 재밌었어요

머리카락처럼요 머리 긴 사람에게 부탁해서

눕히고 했어요 그리고 이건 얼굴인데요

처음에는 그냥 했는데 얼굴은 입체를 살리려면

스케치하듯 떠야 되요 결국 명암으로 입체감

조절을 해야 되죠 코가 너무 입체적이라 특히

힘들었어요

누구 얼굴이야

우리 언니hellip

[학생들 우와]

가은

심우진 선생님

가은

하얀

음각이 나왔을 때 너무 좋았고요하늘

습탁은 농도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소리

건 탁 보 다 는 습 탁 이 농 도 조 절 하 는 게

희 한 해 서 재 밌 었 어 요 농 도 조 절 이

관 건 이 거 든 요 먹 과 물 의 배 합 과

솜방망이가 먹물을 얼마나 흡수하는지 그

흡수량이 중요하고요

윤미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꽤 많은데 만져보면서 건탁을 뜨니까 좋았어요 전에

습탁할 때는 시멘트 벽 같은 걸 하다가 나뭇결을 하니까

살아있는 느낌이었어요 생각했던 것처럼 나와서

좋았고 솔방울이나 나뭇잎 같은 섬세한 것들은 제대로

나오지 않아서 아쉬웠어요 섬세한 것들은 습탁으로

해봐야겠어요 그래도 다양한 나무를 건탁해봐서

만족해요

소현

저는 일상적인 것들로 습탁을 해봤어요

처음에는 단순하게 오돌토돌한 느낌만

있 을 줄 알 았 는 데 색 다 른 느 낌 이 나 서

재밌었어요

탁본 세미나를 마치고 그 다음 주에 지하 강당에서 촬영하는 시간을

가졌다 촬영 후에 보정도 했다 나뭇잎의 결 무늬 타이어 자국

그리고 사람의 머리카락까지도 좋은 디자인의 재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보았고 나누었다 건탁과 습탁의 장단점을 이 수업으로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심우진 선생님의 이번 탁본 수업도 지난 활자

수업처럼 지식 습득은 물론이고 경험까지 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 시간들이 앞으로 출판 디자이너로서의 감각을 더 풍요롭게 해 주지

않을까

디자인반 11기 사공예원

하얀

음각이 나왔을 때 너무 좋았고요

습탁은 농도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솜방망이가 먹물을 얼마나 흡수하는지 그

흡수량이 중요하고요

윤미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꽤 많은데 만져보면서 건탁을 뜨니까 좋았어요 전에 꽤 많은데 만져보면서 건탁을 뜨니까 좋았어요 전에

이건 파프리카인데 저희 집 개가 완성한 종이를 찢었어요

[학생들 하하하]

좀 작고 납작한 파프리카를 반으로 잘라서 습탁했어요 또

이건 철조망인데 용 비늘처럼 나와서 재밌었어요 아나콘다

같기도 하고 철조망이 날카로워서 습탁하니 종이가 자꾸

찢어져서 다시 하게 됐어요 근데 이거요hellip 남자친구

있으면 커플끼리 한 번 해보세요 한 명은 잡아주고 한 명은

습탁하고hellip 되게 로맨틱 성공적

자랑하는 거니

[학생들 깔깔깔]

24

9시 30분 합정역 1번 출구 앞

ldquo누나rdquo 소리에 쳐다보니 반가운 공 총무의 얼굴이 보였다 정류장

앞으로 길게 늘어선 줄에 합류하여 파주로 날 데려다 줄 2200번

버스를 기다리고 있으니 반가운 얼굴들이 계속 나타났다 한 대의

버스를 보내고서야 겨우 2200번 버스에 탑승해 파주로 출발할 수

있었다

10시 15분 파주 lsquo다산교 앞rsquo 정류장 하차

4개의 정류장 총 57분이 걸린다고 알려준 N사 지도 어플의 정보와는

달리 30분 만에 파주에 도착했다 일찍 도착해 먹을 것을 찾아 헤맨

예비 마케터들은 편의점에서 주린 배를 채웠고 lsquo지혜의 숲rsquo을 살짝

염탐하며 11시까지 시간을 보냈다

11시 05분 보진재 2층

1912년 설립되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인쇄소인 보진재 관계자

분이 나와 간단히 인사 말씀을 하고 각 반의 인솔자를 소개해주셨다

마케터반의 인솔자는 서동관 과장님 디자인반 편집자반 마케터반

순으로 견학을 시작했다

11시 15분 보진재 견학 시작

제일 먼저 본 곳은 제판실이었다 필름 인쇄가 줄어들고 CTP로

대체되는 추세지만 어떤 분들은 여전히 필름 작업을 하고 계셨다

이유를 물어보니 서동관 과장님은 예전 필름이 남아 있기도 하고

출판사에 따라 필름을 고집하는 곳이 있다고 하셨다

한번에 5도 인쇄가 가능한 기계를 보는 중에 서 과장님이 말씀하셨다

ldquo한 유닛(unit)당 23억 정도 해요rdquo 그렇다면 유닛 다섯 개가

돌아가고 있으니 적어도 10억짜리 기계라고 내 눈에 보이는 건 그냥

낡고 큰 기계인데 10억이 넘는다니 놀랐다 또 과장님께서 자랑스레

말씀하신 한 가지 잉크 농도 조절을 자동으로 하는 기계가 보급된

곳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었다 원래는 사람이 눈으로 보고 수정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재판을 찍을 경우 초판과 동일한 색상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있지만 보진재는 기계가 자동으로 조정해주어 수월한

작업을 할 수 있다고 하셨다

매염실도 보고 제본실도 구경했다 인쇄된 종이를 접지하고 제본을

마친 후 마지막으로 제단을 하면 책이 완성되어 나왔다 그 모든

과정을 보고 난 후 서 과장님이 건넨 완성된 책의 무게는 보통의

그것보다 조금 더 무겁게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윤전실이었다 견학 당일은 작업이 없어서

비어있던 윤전실이지만 윤전실이 주는 무게감은 컸다 윤전실은

롤(roll)로 인쇄하는 곳으로 8개의 롤이 양면 인쇄를 하고 건조와

접지까지 한 번에 가능한 기계도 있었다 대량생산을 위한 곳으로

주로 교과서나 EBS 학습지를 인쇄한다고 하셨다

12시 20분 견학 끝

1시간을 조금 넘긴 견학을 끝내고 밖으로 나오니 코가 따갑고 목이

말랐다 기계가 먼지를 빨아들여준다고는 하지만 수없이 많은

종이가 존재하는 공간에서의 종이 냄새는 강력했던 것이다 책이

제작되는 과정은 실제로 보니 다양하고 복잡했다 자동화가 많이

되어있지만 사람의 손길 없이는 절대 완성될 수 없는 과정들을 보며

책이 완성되기까지의 노력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lsquo책이 어떻게

만들어진다rsquo를 배우다가 lsquo책이 이렇게 만들어진다rsquo를 보니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예비 출판 마케터의

길로 들어선 후에 새로운 것을 보고 배울 수 있었는데 보진재 견학은

그 중에서도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책을 완성시키기 위한 모든 과정이

저마다의 몫을 하고 있었다 서울출판예비학교 졸업 후 출판계에

들어섰을 때 나는 과연 어떤 몫을 할 수 있을까 남은 2개월을 조금은

더 열정적으로 보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마케터반 11기 최다은

1 일일탈

학교 밖 견학 후기

피부로 와 닿는 책의 감촉 책의 냄새 책의 소리 보진재에서 책이 인쇄되는 과정을 만나다

필름과 인쇄판이 만들어지는 과정

25

우리가 이제 각자 편집자 마케터 디자이너가 되어 책 만드는 일을

시작하면 우리의 책은 이곳에서부터 그 lsquo탄생rsquo을 시작할 것이다 책의

근간이 되는 종이가 만들어지는 곳 한솔제지 공장에 다녀왔다 학기

초에 책을 파는 서점을 견학한 뒤 그 다음으로 출판사 종이에 활자를

찍어내는 인쇄소 그리고 마지막으로 lsquo종이rsquo를 만드는 제지 공장을

찾은 것이다 책이 만들어지는 순서대로라면 우리가 다녀온 순서를

거꾸로 해서 다녀왔어야 했지만 우리는 반대로 실제 과정을 거슬러

올라간 것이다 이렇게 거슬러 올라가는 과정에서 오히려 편집자란

직업에 겸허해질 수 있었다 가끔은 편집자가 책을 만드는 모든

과정 위에 군림하는 것 같이 느껴지지만 책의 물성을 만들어내는

거대한 기계 앞에서 우린 한없이 작아지기도 한다 lsquo한 권의 책rsquo이

만들어지려면 이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함을 이해해야 했다 이렇게도

복잡하고 힘겹게 만들어지는 책의 가치를 한 번 더 깊이 생각하게 된

계기였다 책이라는 건 의미가 담긴 조각들의 집합체이자 종이를

보기 좋게 물성화한 것 이론적으로야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눈으로 보고 느끼는 것과는 천지차이다

날씨마저 좋았던 9월 11일 평소보다 한 시간이나 이른 8시

30분에 세 반 학우들은 눈도 제대로 못 뜬 채 집합했다 대전까지

간다니 마치 여행가는 것 같은 살짝 들뜬 기분까지 안고 아침도 못

챙겨먹고 나왔을 우리를 생각해서 빵과 우유까지 준비한 한솔제지

측의 세심한 배려에 감동했다 배도 채우고 부족한 잠도 보충해가며

2시간 넘게 달려 신탄진 공장에 도착했다 도착하자 보이는 우리를

환영하는 현수막에 2차로 감동했다 우리를 위해 정말 많은 준비를

하셨구나 느낀 순간이었다

신탄진 공장 강당에 들어가서 간단한 공장 소개를 먼저 들었다

그리고 뒤이어 종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경청했다 수업 때보다

학생들의 집중력이 더 높아 보였던 건 내 착각이었길 종이는

1퍼센트의 펄프와 99퍼센트의 물로 이루어진단다 그래서 전반적인

공 정 의 대 부 분 은 물 을 처 리 하 기 위 한 과 정 이 나 다 름 없 었 다

생각보다 종이는 순수한 물질이라고 생각했다 종이(paper)의

어원은 이집트의 파피루스(papyrus)에서 왔다고 한다 중국의

lsquo채륜(蔡倫)rsquo이라는 사람이 제일 먼저 발명했고 고려시대에

일본으로 넘어간다 일본에 가장 마지막으로 넘어갔지만 종이의

기술력은 현재 일본이 가장 좋다 원료rarr초지rarr코팅 등의 공정을 거쳐

종이가 완성되는데 마지막 코팅 공정을 여자의 화장에 비유한 것

역시 기억에 남는다 코팅이 그렇게나 대단한 과정이라니

공장 안으로 들어가서는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시끄러워서 설명을

제대로 듣진 못했지만 앞서 들었던 설명을 떠올리며 기계들을

관찰했다 인쇄소에서 본 광경들도 거대하고 박력 있었지만 여긴

그보다 더 거친 느낌이었다 책은 서점에 놓여있을 때는 그렇게

얌전하건만 태어날 땐 이렇게 시끄럽다 또한 막 태어난 종이는

거대하고 또 거대했다 다들 마치 거대한 두루마리 휴지 같다고들

했다

견학을 다 마치고 다시 대전 공장으로 이동해 다 같이 점심 식사를

했다 기대 이상으로 맛있는 밥에 또 감동 더 힘내서 견학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아쉽게도 대전 공장 안에는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라 그 힘()을 발휘하진 못했다 대전 공장은 신탄진 공장과

다르게 책에 쓰이는 것이 아닌 제품 포장용 박스 종이컵 등 다른

용도에 쓰이는 종이를 만드는 곳이었다 그 과정의 차이를 눈으로

비교하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마지막으로 좋은 선물까지 손에

받아들고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다시 서울로 향했다

언제나 시작은 중요하다 각자의 일에 빠져들게 되면 점점 잊게 될

그 시작을 눈에 담고 오래 기억하기 위해 다녀왔다고 생각한다 요즘

초심을 잃었다는 생각이 종종 드는데 책에게도 초심이 있다면 바로 이

곳일까 시작의 의미에 대해 다시 곱씹어보았다

편집자반 11기 박혜원

우리의 글과 그림이 펼쳐질 종이의 탄생 한솔제지 신탄진 공장 견학

거대한 롤(상) 한솔제지 공장 앞에서 (하)

26

화양연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삶과 문학에 취하다

편집자반 한국문학 동아리 lsquo공감rsquo 그 대담의 현장

훗날 서울출판예비학교를 떠올릴 때 가장 즐거운 시간으로 기

억되는 날들은 동아리 활동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들의

화양연화(花樣年華)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 중

의 하루를 소개한다 문예창작학과를 전공한 문학소녀 김한나

학우를 필두로 창단된 편집자반 내 한국문학 동아리 lsquo공감rsquo은

모임 전에 한국작가를 한 명 정해 단편 두 편을 함께 읽고 키워

드나 질문을 스스로 뽑아 글을 써왔다 모여서 때로는 소설의

플롯이나 주제 문체에 대한 열띤 토론을 하고 때로는 작가의

외모()와 같은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며 삼천포로 빠지기도 했

다 우리끼리만 듣기엔 아쉽다 이 즐거운 대화를 모두에게 들

려주고 싶었다 이날 모임에선 김영하 작가의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단편집 속의 두 단편 lsquo엘리베이

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이하 엘리베이터)rsquo와 lsquo사진

관 살인사건(이하 사진관)rsquo에 대해 이야기했다 여기서는 lsquo엘리

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rsquo를 읽고 토의한 내용을

실었다

한나 참고로 김영하는 사람의 욕망에 대해 천착하는 작가야

그런 특성이 엘리베이터에는 안 나와 있는데 사진관에서는

잘 드러나 있어

상화 백가흠 작가에게 소설창작론 강의를 들었는데 그분이

소설의 기법을 설명하면서 알레고리랑 아이러니를 얘기했어

알레고리가 인물이나 소재를 비유적으로 설명하는 거래 예를

들어 핸드폰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다른

것에 핸드폰을 빗댐으로써 소설을 풀어가는 거

야 아이러니는 속도감 있게 이야기를 전개함으

로써 부조리나 모순을 드러내는 건데 김영하가

아이러니의 대표적인 작가래 단편인데도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내면보다는 사건이 일어나는

걸로 소설을 끌어가는 작가 우리가 지난 모임

에서 성석제를 굉장한 이야기꾼이라고 했잖아

그런데 난 김영하가 훨씬 이야기꾼스럽게 느껴

졌어 속도감 있고 lsquo이렇게 몰입을 할 수 있나rsquo

싶고 지난 모임들에서 읽었던 손보미나 편혜영

소설의 경우는 분위기나 주인공의 심정 내면에

의미를 부여해 야 했는데 김영하의 소설은 덮

자마자 아이러니가 느껴지면서 lsquo아 세상은 왜

이래rsquo 말하게 만들었어

법열 나는 엘리베이터 읽고 딱 lsquo뫼비우스의 띠rsquo가 생각났거든

뫼비우스의 띠가 안하고 겉이 구분이 안 되잖아 끝과 시작이

어딘지도 모르고 lsquo나rsquo가 겪는 상황이 현실인지 아닌지 구분이

안 되는 느낌 마지막에 lsquo나rsquo가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가 존재

하기는 했는지 혼란스러운 느낌을 받잖아 그게 앞의 환상적

인 부분이랑 맞물리면서 하나가 되는 느낌이라 뫼비우스의 띠

가 생각났어

상화 lsquo나rsquo가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구해주려고 고분군투하

다가 나중에 자기가 엘리베이터에 갇히잖아

오권 낀 남자의 발을 보면서 느꼈던 감상이 사실은 자기를 구

하고 싶었던 마음인 거지

(일동 오~ 그렇게도 볼 수 있네)

오권 무한도전의 무한상사 특집도 생각났어 뜬금없이 휴지

사용하는 길이에 대해 회의하는 장면에서 엘리베이터는 갇힌

사회 서로를 돌아보지 않는 사회를 의미하는 것 같아

한나 나는 반대로 오히려 엘리베이터를 희망적인 존재로 봤

거든 아파트도 그렇고 회사도 그렇고 각자 자신의 공간 안에

서 살다가 서로 만날 수 있는 장소는 엘리베이터 밖에 없으니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김영하 지음

문학동네 20100216

동아리 후기

27

까 lsquo나rsquo가 회사 엘리베이터 안에 여자와 같이 갇히잖아 사실

은 갇히지 않았으면 대화도 안하고 지나쳐 갔을 텐데 남자는

자기가 아침부터 버스 사고도 나고 성추행범으로 몰렸다고 얘

기하고 또 남자의 담배 피워도 되냐는 말에 여자는 담배에 대

한 불평불만을 속사포처럼 얘기하고 엘리베이터라는 공간이

아니었다면 이런 대화 자체가 없었겠지

오권 엘리베이터 타면 사람들이 하나같이 층수 바뀌는 것만

쳐다보고 있잖아

상화 요즘은 스마트폰

오권 자기 얘기를 하고 싶은 것 같아 하지만 상대의 얘기는

안 들어 lsquo너의 얘기는 관심 밖이지만 내가 불편한 것에 대한

얘기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하겠어rsquo라는 느낌

한나 그리고 우스웠던 게 볼일 보고 휴지 몇 칸 쓰는지 회의에

서 얘기하는 건hellip 사실 굉장히 사적인 얘기잖아 (일동 하하

하) 서로에 대해 다른 얘기는 일절 하지 않으면서 회의 내용은

개인적이고 사적이라니 아이러니한 거지

수경 진짜 웃기지 않았어 lsquo나rsquo가 자원 재활용 문제에 대한 중

대 보고가 있다고 계속 빨리 가야한다고 했던 게 겨우 그거야

상화 겨우 이딴 회의하려고 지금 엘리베이터에 낀 사람 놔두

고hellip 생명이 더 중요한데 지금 휴지 구하려고hellip

(일동 하하하)

한나 lsquo나rsquo가 불쌍했던 이유가 자기한테 닥친 일들은 lsquo할 수 없

지 뭐rsquo 이런 식으로 넘기는데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 걱정하고

갇힌 여자 걱정하고hellip 정작 자기 걱정은 안 해

오권 영화 lt라이터를 켜라gt 봤어 조폭들한테 얻어맞으면서

도 주인공은 무조건 자기 라이터만 찾겠다고 그러거든 이 소

설의 lsquo나rsquo와 비슷한 느낌이 들더라고 그 영화에서는 라이터가

주인공의 존재를 투영하는 소재거든 lsquo나rsquo는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구해야만 자기가 산다는 느낌을 받은 거라 해석하면

너무 나간 건가

법열 아니요 형이 아까 지적해준 게 와 닿았어요 그 고군분

투가 결국 자기를 구하려는 노력이라는 지적이요

상화 그나마 lsquo나rsquo가 이 소설에서 제일 인간적이지

수경 어딘가 찌질한 느낌도 들어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와

lsquo내rsquo가 동류라고 자각하고 연민을 갖는 느낌이었거든 lsquo나rsquo가

인간적이고 윤리적이라는 생각은 나는 글쎄hellip 더 적극적으

로 할 수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 자기 사이클에서 벗어나

지 않는 한도 내에서 걱정만 하잖아 소설 안에서 비극과 희

극이 번갈아 가며 나타나는데 트럭과 버스가 충돌했을 때

lsquo나rsquo는 lsquo버스 카드 일로 충돌하지 않게 되어 적이 기뻤다rsquo고

생각해 버스 운전사는 트럭 백미러에 가슴이 받혀서 죽었는

지도 모르는데 lsquo다행히 나는 허리가 좀 뻐근한 것만 빼면 별

다른 상처가 없는 듯했다rsquo 이런 생각들을 하는 게 좀 섬뜩했

민희 사람은 다 이중성을 가지고 있잖아 나를 보는 듯했어

만약 학교 가는 길에 엘리베이터에 낀 사람을 봤다면 그렇

지만 나도 얼마나 바빠 몇 분 늦으면 지각 체크 당하고 출석

80퍼센트를 못 채울 수도(일동 웃음) 있는 상황이라면 내

가 그 남자를 구할 수 있을까 일단 지나치고 119에 전화하려

고 했으나 핸드폰이 없는 상황에 나도 처할 수 있는 거잖아 나

만 생각하는 잔인한 면도 내 안에 있고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

도 내 안에 있어 이런 찌질한 모습도 나고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정의롭게 구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상화 기준이 다른 것 같아 lsquo나rsquo 정도면 착하다고 생각했거든

수경 주변 사람들이 약간 마네킹 같지 않아 주인공 주변에

장치되어있던 다른 사람들이 너무 비인간적이기 때문에 lsquo나rsquo

가 돋보이는 거지 lsquo나rsquo는 지극히 평범한 우리 모습 같아 내가

어떻게 할 생각은 없고 궁금하기만 한 거야

민희 그 궁금함과 찜찜함도 죄책감이라 생각돼 아 내가 어떻

게 해줬어야 했나

한나 책임 회피일까

상화 그래서 나는 키워드 뽑은 것 중 하나가 119야 구해주고

싶으면 직접 내 손으로 잡아 빼주던가 엘리베이터를 들어 올

릴 사람을 모아야 했는데 신고 생각만 하잖아 이미 이건 누

가 대신 해결해줘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그나마 우리

사회에서 사고를 수습해주는 건 119밖에 없고 조선시대에는

119같은 거 없고 마을 사람들이 모여 구해줬을 텐데 어쩔 수

28

없는 현대인의 단상이긴 해 현대가 분업사회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들 바쁘고 삶이 개인화 파편화되어 있으니까 119 같

은 집단이 필요한 거지 그래서 난 119를 신의 영역이라고 썼

어 lsquo나rsquo는 119를 거의 신적인 존재처럼 생각하잖아 부르면 모

든 게 해결될 것처럼 핸드폰 빌리고 공중전화 찾고 그런데 막

상 교통사고 현장에서 119 대원에게 면대 면으로 얘기를 했더

니 그들은 무슨 그따위 장난을 하냐고 말해 구조도 실은 신이

아니라 사람이 하는 일이고 그 사람이 관심이 없으면 묻히는

거지

오권 전화를 거는 것과 직접 구해주는 것의 차이가 큰 것 같아

자기가 구해주는 건 적극적인 행동이고 119에 전화하는 건 스

스로 최소한 양심적이긴 하다고 여기는 행동

수경 그런데 엘리베이터에 낀 사람을 아무 것도 모르는 일반

인이 어떻게 했다가는 더 위험해질 수도 있잖아

오권 맞아 사회가 시스템화하고 고도화될수록 각자의 업무가

분업화되었고 전문분야가 생겨났으니까 옛날 같았으면 애 낳

으면 그냥 동네 아주머니가 애 받고 어미가 죽으면 젖동냥 다

녔는데hellip 이젠 사고가 나면 생각이 119에 먼저 미치는 시대가

된 거지

수경 그래서 어딘가에 널브러져 다친 인간이 아니라 엘리베이

터라는 공간에 낀 남자를 설정한 것 아닐까 엘리베이터는 현

대화의 상징이잖아

한나 lsquo나rsquo도 어쩔 수 없는 게 출근 시간에 쫓겨서 시계를 계속

봐 먹고 사는 일이니까

오권 출근했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다시 집으로 돌아가

낀 사람을 구해주면 굉장히 희망찬 소설로 바뀔 텐데hellip (일동

웃음)

수경 이 소설로 현대 사회의 폐단은 다 얘기할 수 있겠는데

상화 김영하는 천재인 것 같다

누군가 그리고 잘생겼잖아

누군가 잘생긴 거야

누군가 지적인 분위기가 있어서 좋아 (한참 얘기)

한나 또 인상 깊었던 게 구두에 집착하는 거 lsquo나는 날렵한 치

타처럼hellip 구두를 가지고 엘리베이터에서 빠져나오는 데 성공

했다 허탈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rsquo는 구절

오권 자살한 사람들이 구두를 가지런히 벗어놓는 이미지가 무

슨 상징처럼 있잖아

한나 신발 한 쪽 없이 다녀봤어 계속 기우뚱대서 내가 걷거

나 서 있을 때 내가 잘못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여기서 lsquo나rsquo가

그랬을 거야 사실 lsquo나rsquo처럼 사는 게 정상인데 세상이 잘못된

건데

상화 이 소설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감정표현이잖아 하루 종

일 얼마나 힘들었겠어 처음으로 감정표현을 하니까 불쌍했어

오권 휴머니즘 불쌍론 또 나왔네(일동 웃음) 그럼 이제 사진

관으로 넘어가볼까hellip

편집자반 11기 이상화

2929

책씹는맛 01 냄새라는 경이 lt감각의 박물학gt 후각편을 읽고

냄새에는 언어가 없다 어휘가 부족한 우리는 말문이 막힌

채 불명료한 쾌감과 자극의 바다에서 말을 찾을 수밖에

없다1

이 말은 다이앤 애커먼의 『감각의 박물학』 제 1장 후각에

나오는 구절이다 냄새를 글로 쓰고자 하는 나의 시도가 늘

실패로 귀결되는 이유를 이 구절에서 찾았다 작가의 말처

럼 냄새에 대해 쓴다는 건 언어 밖 세계로 나갔다가 다시

언어로 되돌아오는 길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길에서 헤매

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후각이라는 감각에서 길을

잃는 것은 낭만적인 일이기도 하다 lsquo냄새의 뇌관을 건드리

면 모든 추억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기rsquo2 때문이다 냄새 하

나에 수많은 추억들이 줄줄이 기억의 회로 위로 떠오른다

예를 들면 바다 냄새 하나만 상상해도 그와 관련된 수많

은 기억들이 머릿속에 뒤섞인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바닷가와 관련된 그 모든 추억들이 기억의 영사막에서 한

편의 옴니버스 영화 형태로 내게 다가온다 난 내 기억의

관객이 되어 그 영화를 보다가 견딜 수 없는 그리움에 젖는

다 이 영화에 대한 감상문을 적으려면 나는 말문이 막힌

다 그래서 몇 글자 적다가 결국 글을 쓰기를 멈춘다 굳이

언어로 표현하자면 쓸 수 없는 그리움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1 『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옮김 작가정신 20040720

A Natural History of the Senses(1991) 17쪽

2 같은 책 18쪽

결국 lsquo언어가 존재하는 세계에서 경이는 언어의 칼날 아래

서 쉽게 해부되고 냄새는 자주 혀끝에서 맴돈다rsquo3 냄새의

숭고함 앞에서 우리는 말을 멈춘다 이처럼 냄새는 말할 수

없는 자연의 경이로움과 닮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lsquo냄새가 우리의 마음을 그토록 강하게 움직이는 것은 부분

적으로 그 이름을 부를 수 없기 때문rsquo4이라고 한다 저자는

그렇기에 사람들이 냄새를 lsquo분 냄새 비슷한 펭귄 냄새가

나는 호화로운 화장실 냄새가 나는rsquo 같은 말로 표현할 뿐

이며 냄새에 대한 이름은 주어져 있지 않다고 말한다 또

한 종류는 같아도 강약과 농도가 다른 각각의 냄새에 이름

을 붙여줄 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우린 일상적으로 냄새를

맡으면서도 그 냄새와 멀리 떨어져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명명되지 않은 것은 결국 잊히는 게 아닐까 부를

수 없음에서 오는 경외감과 숭고함이 있을지라도 냄새는

말해져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말할 수 없는 것에 자꾸

만 침묵하기만 해야 할까

감각도 모험의 영역이 될 수 있다 세계 일주만이 세상을

아는 길일까 lsquo나rsquo를 온전히 아는 것이 역설적으로 세상과

가까워지는 일인지도 모른다 나를 알기 위한 길 중 하나가

내가 가지고 있는 감각을 이해하고 그걸 언어로 표현하는

일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어쩌면 우리와 제일 가깝지만 말

하기 낯선 감각 후각을 이해하는 일이 중요한지도 모른다

냄새라는 감각 속에서 우리 모두 길을 잃고 헤매고 모험해

보자 냄새에 나름의 이름을 지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

리고 농도에 따라 냄새를 구분하는 일도 해보자 냄새라는

경이는 우리를 더 이상 침묵으로 이끌지 않을 것이다

디자인반 11기 백가은

3 같은 책 22쪽

4 같은 책 22쪽

『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 옮김

작가정신 20040720

A Natural History of the Senses(1991)

3030

02 현실을 전복시키는 비현실

모호함이 주는 환상성

20세기 중반 중남미 소설은 전통적인 사실주의 서사 구조

를 깨고 현실과 환상을 혼합시키는 새로운 글쓰기 방식으

로 세계문학의 중심에 선다 이 시기에 주목 받은 일련의

중남미 작가들을 가리켜 lsquo붐 세대 작가rsquo라 칭하는데 아르

헨티나의 환상문학 작가 코르타사르는 이 붐 세대 작가군

의 선구자이자 대표 주자 격인 인물이다 그러나 그 문학적

성과와 명성이 무색하게도 국내 독자들에겐 그의 이름이

아직 생소한 것이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에서는 그

의 작품이 중남미 단편 선집에나 몇 편이 번역되었을 뿐 본

격적으로 소개된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중남미 문학을 공부했고 그의 몇 안 되는 번역 작품을 인

상 깊게 읽었던 독자 입장에서 이번에 출간된 코르타사르

의 단편집『드러누운 밤』은 가뭄의 단비처럼 반가운 신간

이다

환상 문학이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J R R 톨킨 류의 판타

지소설 혹은 쥘 베른이나 아이작 아시모프 류의 SF소설을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코르타사르의 환상문학은 이들 범

주에 들어가지 않는다 코르타사르 작품에서 나타나는 환

상이란 토도로프가 정의한 바 있는 환상 그러니까 자연적

인 것과 초자연적인 것 사이의 망설임에서 발생하는 환상

에 가깝다 따라서 판타지소설의 lsquo현실과 동떨어진 환상rsquo

혹은 SF소설의 lsquo설득력 있고 현실감 있는 환상rsquo을 기대하

는 독자라면 아마 십중팔구 그의 작품을 읽고 실망할 것

이다 어쩌면 이게 무슨 환상문학이냐는 푸념을 늘어놓을

지도 모르겠다 역시 가장 좋은 것은 선입관을 버리고 책을

읽는 것이다

코르타사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lsquo모호함rsquo이다 인물이나

배경 묘사에서 제시되는 기본적인 정보도 모호하고 사건의

전개 양상이 가진 당위성도 모호하다 작품 내에서 주요한

스토리 라인을 담당하는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경계도 모

호하며 심지어는 화자의 정체마저 모호한 작품도 있다 이

런 모호함의 향연은 짙게 깔린 안개와도 같아서 독자들은

그 속에서 한 치 앞도 제대로 내다볼 수 없음은 물론이요

이미 지나간 사실조차도 자신이 맞게 인식한 것인지 확신

할 수 없을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무엇이 진짜인지

독자들의 판단을 망설이게 만드는 이런 상태야말로 코르

타사르의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는 환상이란 개념이다 독

자들은 이 환상 속에서 그저 전방을 주시하며 천천히 나아

갈 수밖에 없다

다행스럽게도 코르타사르는 독자들의 시련을 헛되게 하지

않는다 작품의 시작점 일상 세계에 우연히 침투한 lsquo비현

실적인 것rsquo은 안개 속에서 알게 모르게 자신의 지분을 늘려

나간다 그리고 작품의 종점에 다다른 독자들은 비현실이

현실이 되고 현실이 비현실이 되는 이전과는 전혀 새로운

세계와 마주할 것이다 다시 말해 필연과 이성의 법칙이 지

배하는 세계가 우연과 환상이 지배하는 세계로 변하는 것

이다 이러한 세계의 전복은 마치 여기저기 단서를 흩뿌리

고 사람들을 알쏭달쏭하게 만들었다가 결말부에서 모든

것을 폭발시키는 추리소설 혹은 반전영화를 보는 듯한 재

미를 선사한다

그렇다면 코르타사르가 이 소설들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책을 다 읽고 난 독자라면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의문점이다 코르타사르는 자신이 환상문학을 쓰는

이유를 ldquo법칙이나 원칙 혹은 인과관계나 특정한 심리 또

는 잘 그려진 지리학과 같은 체계에 의해 세상이 지배되고

있다는 것에 반대rdquo하고 ldquo우리가 잘 모르며 우리에게 잘 다

가오지 않는 새로운 질서에 관해 생각해보기 위함rdquo이라고

설명한다 짧게 말해 이 세상에 필연이란 존재하지 않으

며 자신은 그것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말이다 이

게 전부다 순문학이라면 거장의 문학이라면 이보다 더 심

오한 통찰 혹은 비판이 있을 것이란 생각에 문장 속 숨겨진

의미를 발견하고자 머리를 싸맬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조

언을 하자면 독서는 독서 그 자체로 즐기면 된다 적어도 이

책에서는 그렇다 모호함과 예상외의 전개 속에서 재미를

느끼고 코르타사르가 묘사하는 세계의 불가지(不可知)성

을 어렴풋하게나마 인식할 수 있다면 이미 그것으로 충분

하다

편집자반 11기 강귀욱

『드러누운 밤』

훌리오 꼬르따사르 지음 박병규 옮김

창비 20141124

La noche boca arribaJulio Cortazar

31

03 얼어붙은 자의식의 바다를깨뜨리고 생명을 불어넣는 책 『데미안』

데미안을 읽고 나서야 그 동안 내가 두 발 딛고 서 있던 땅이

굳고 단단한 대지가 아니라 얼어붙은 바다에 불과했음을 알

았다 데미안은 도끼를 가져와 이 꽁꽁 언 바다를 가차 없이

내리 찍었다 그리고 말했다 얼어붙은 바다를 단단한 땅인

줄 알고 사느니 그 얼음을 깨부수고 그 속에 빠져 죽기 살기

로 허우적대라고 그러면 그 속에서 너는 너 자신을 똑바로 마

주하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성장할 것이라고

주인공 싱클레어도 그를 둘러싸고 있던 세계를 깨뜨려 나가

며 성장한다 그 모든 과정은 결국 진정한 자기 자신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가 깨뜨린 가장 큰 세계는 바로 자신의 사고 체계였다 세상

을 바라보는 기존의 이분법적이던 시각 고정되고 획일화된 시

각을 버렸다 주인공은 세계 안에 심지어는 자신 안에도 선하

고 악하며 밝고 어두운 양극단의 것들이 공존함을 이해하고

두 세계를 끌어안았다 주인공은 귀와 눈을 가리던 장막을 걷

어내 버리고 세상을 바로 보게 되었다 상극인 것들의 괴리로

이루어진 이 모순된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곧 자신 안의 부조

화 또한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스스로에게 다가서는 첫 걸음

이었다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양극단의 세계 사이에서 싱

클레어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며 흔들리기를 반복했다 이

때 그에게는 삶을 지탱할 중심축이 없었다 항상 내면이 아닌

외부 세계에서 자신이 속할 자리를 찾아 헤맸다 그가 비로소

온전한 자신을 만난 순간은 어느 편으로도 치우침 없이 스스

로의 기준으로 홀로 서게 되었을 때였다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 이 길은 당신이 내면에 있는 모

순되는 두 세계 한없이 나약하고 뒷걸음치는 비열한 모습들

과 정갈하고 깨끗한 곧은 힘들을 동시에 직시하는 순간에 시

작된다 그리고 이 길은 두 세계 속에 들어가 이리저리 휩쓸리

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세계를 밟고 우뚝 올라서서 스스로

가 중심이 됨으로써 앞으로 펼쳐진다

이제 lsquo자아를 찾으라rsquo는 지루하고 흔한 이야기가 더 이상 빤

하거나 우습지 않다 묵직한 울림이 되어 나를 흔든다 그냥

나만 붙잡고 흔드는 것이라면 손사래 쳐 뿌리치겠는데 내가

밟고 있던 땅 속해 있던 세계를 뿌리째 흔들어 버린다 읽는

내내 속이 답답하고 나에게 화가 난다 그런데 이렇게 마구

혼나면서 이상하게도 후련한 구석이 있다 호통을 치는 데미

안이 사실은 우리를 응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막연

하고 무기력한 안개에 휩싸여 있을 때 데미안은 그만의 방

식으로 우리에게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준다 물론 갈 방향을

정해준다거나 각자의 사정을 듣고 상담을 해주는 것은 아니

다 오로지 궁지로 몰아세울 뿐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사람들

은 잊고 있던 lsquo나 자신rsquo을 일깨운다 아 그동안 lsquo나rsquo에 대해 생

각해본 적이 있던가 라는 정도만이라도 좋다 이 물음이 바로

여정의 시작이니까

그렇게 스스로에게 묻고 나면 더 이상 전처럼 살 수는 없기 때

문이다 아니라면 자기 자신에게 면목이 없을 것이다 이 무서

운 책이 우리를 혼내고 몰아치면서도 여전히 영원한 고전이자

필독서로 사랑 받는 이유다

lsquo우리들 속에는 모든 것을 아는 한 사람이 있다rsquo고 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혼이 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혼

이 났다는 것은 자신 안에 있는 lsquo그 사람rsquo이 말을 하기 시작했

다는 뜻이니까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목소리가 희미하

고 멀리 있다 하여도 숨죽여 귀 기울이는 일 자체가 자신에게

로 가는 과정임을 잊지 말고

편집자반 11기 배예리

『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민음사 20001220

Demian Die Geschichte von Emil

Sinclairs Jugend(1919)

31

03 얼어붙은 자의식의 바다를깨뜨리고 생명을 불어넣는 책 『데미안』

데미안을 읽고 나서야 그 동안 내가 두 발 딛고 서 있던 땅이

굳고 단단한 대지가 아니라 얼어붙은 바다에 불과했음을 알

았다 데미안은 도끼를 가져와 이 꽁꽁 언 바다를 가차 없이

내리 찍었다 그리고 말했다 얼어붙은 바다를 단단한 땅인

줄 알고 사느니 그 얼음을 깨부수고 그 속에 빠져 죽기 살기

로 허우적대라고 그러면 그 속에서 너는 너 자신을 똑바로 마

주하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성장할 것이라고

주인공 싱클레어도 그를 둘러싸고 있던 세계를 깨뜨려 나가

며 성장한다 그 모든 과정은 결국 진정한 자기 자신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가 깨뜨린 가장 큰 세계는 바로 자신의 사고 체계였다 세상

을 바라보는 기존의 이분법적이던 시각 고정되고 획일화된 시

각을 버렸다 주인공은 세계 안에 심지어는 자신 안에도 선하

고 악하며 밝고 어두운 양극단의 것들이 공존함을 이해하고

두 세계를 끌어안았다 주인공은 귀와 눈을 가리던 장막을 걷

어내 버리고 세상을 바로 보게 되었다 상극인 것들의 괴리로

이루어진 이 모순된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곧 자신 안의 부조

화 또한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스스로에게 다가서는 첫 걸음

이었다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양극단의 세계 사이에서 싱

클레어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며 흔들리기를 반복했다 이

때 그에게는 삶을 지탱할 중심축이 없었다 항상 내면이 아닌

외부 세계에서 자신이 속할 자리를 찾아 헤맸다 그가 비로소

온전한 자신을 만난 순간은 어느 편으로도 치우침 없이 스스

로의 기준으로 홀로 서게 되었을 때였다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 이 길은 당신이 내면에 있는 모

순되는 두 세계 한없이 나약하고 뒷걸음치는 비열한 모습들

과 정갈하고 깨끗한 곧은 힘들을 동시에 직시하는 순간에 시

작된다 그리고 이 길은 두 세계 속에 들어가 이리저리 휩쓸리

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세계를 밟고 우뚝 올라서서 스스로

가 중심이 됨으로써 앞으로 펼쳐진다

이제 lsquo자아를 찾으라rsquo는 지루하고 흔한 이야기가 더 이상 빤

하거나 우습지 않다 묵직한 울림이 되어 나를 흔든다 그냥

나만 붙잡고 흔드는 것이라면 손사래 쳐 뿌리치겠는데 내가

밟고 있던 땅 속해 있던 세계를 뿌리째 흔들어 버린다 읽는

내내 속이 답답하고 나에게 화가 난다 그런데 이렇게 마구

혼나면서 이상하게도 후련한 구석이 있다 호통을 치는 데미

안이 사실은 우리를 응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막연

하고 무기력한 안개에 휩싸여 있을 때 데미안은 그만의 방

식으로 우리에게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준다 물론 갈 방향을

정해준다거나 각자의 사정을 듣고 상담을 해주는 것은 아니

다 오로지 궁지로 몰아세울 뿐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사람들

은 잊고 있던 lsquo나 자신rsquo을 일깨운다 아 그동안 lsquo나rsquo에 대해 생

각해본 적이 있던가 라는 정도만이라도 좋다 이 물음이 바로

여정의 시작이니까

그렇게 스스로에게 묻고 나면 더 이상 전처럼 살 수는 없기 때

문이다 아니라면 자기 자신에게 면목이 없을 것이다 이 무서

운 책이 우리를 혼내고 몰아치면서도 여전히 영원한 고전이자

필독서로 사랑 받는 이유다

lsquo우리들 속에는 모든 것을 아는 한 사람이 있다rsquo고 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혼이 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혼

이 났다는 것은 자신 안에 있는 lsquo그 사람rsquo이 말을 하기 시작했

다는 뜻이니까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목소리가 희미하

고 멀리 있다 하여도 숨죽여 귀 기울이는 일 자체가 자신에게

로 가는 과정임을 잊지 말고

편집자반 11기 배예리

『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민음사 20001220

Demian Die Geschichte von Emil

Sinclairs Jugend(1919)

32

박세길 인터뷰

진정한 역사가는 과거에 파묻히지 않는다옥(獄)에서 옥(玉)을 만든 작가 박세길 인터뷰

박세길 저자는 처녀작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로 80년대

대표 역사서 자리를 꿰찬 분입니다 1986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감되었을 때 감옥에서 역사책을 읽으며

사회 모순에 대해 고민했고 출소하자마자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집필했습니다 정권 탄압 속에서 왜곡된

현대사를 바로 잡았다는 의미를 지닌 이 대표작은 오랫동안

고시생과 대학생들의 필독서로 꼽혔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읽은 박세길 저자의 저서는 지난 6월 출간한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입니다 기사를 쓰고 편집할 때 청년 세대를

겨냥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박세길 저자는 역시나

청년들의 미래에 큰 관심을 갖고 계셨습니다 취업을

눈앞에 둔 서울출판예비학교 학생들이 가져야 할 자세를

여쭸습니다

출판학교에서 강의하신 한 선생님은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가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와

더불어 80년대 인문학의 양대

산맥이라고 하셨습니다

책의 성공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강의

요청이 많이 들어왔어요 먹고사는

경제적인 문제도 해결됐습니다

몇 부 팔렸는지는 잘 모릅니다

출판사에서 기밀 사항이라고

하더군요 요즘은 마케팅 차원으로도

몇 쇄 몇 부인지 밝히지만 그때는

세금 문제를 피해가기 위해서인지

쉬쉬하던 시절이었나 봅니다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는 대학

선후배끼리도 많이 물려주는 책이라고

들었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의 쉬운 설명이

좋았습니다 더불어 어떤 사명감을 안고 썼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완성하기에 앞서 어떤 목표를

두셨나요

청년 세대가 외환위기 이후 집중적인 희생양으로 전락하면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드러내면서 여기에

머물지 않고 청년 세대의 잠재력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들이 역사 무대 한복판에 진출해 자기 몫을 다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습니다

역사 분야는 시장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역사 혹은 현대사가 주목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통해 얘기하자면

80년대 후반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lsquo왜곡된

역사를 바로 알자rsquo는 시각 교정의 욕구가 있었던

차에 제 책이 나름 부응했는지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시기가 적절했던 셈이죠

2012년 대선 후 역사 분야가 잠시 반짝했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금세 시들었다고

하더군요 당시 역사 분야 책들이 일반 독자가

읽기에 다소 어렵거나 출간한 지 오래된 것들

위주였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돋을세길

출판학교에서 강의하신 한 선생님은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가 유홍준 교수의

책의 성공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강의

하더군요 요즘은 마케팅 차원으로도

선후배끼리도 많이 물려주는 책이라고

역사 분야는 시장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역사 혹은 현대사가 주목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통해 얘기하자면

80년대 후반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lsquo왜곡된

역사를 바로 알자rsquo는 시각 교정의 욕구가 있었던

차에 제 책이 나름 부응했는지 큰 반향을

읽기에 다소 어렵거나 출간한 지 오래된 것들

위주였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의 저자

33

2012년 대선 후 역사 분야가 관심을 받았던 것은

보수층의 재집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한

불안 때문일까요

맞습니다 그러나 마땅한 책이 없어서 그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역사 분야에서 베스트셀러를 내기

위해서는 시기가 맞아 떨어지고 내용 또한 대중이 원하는

것을 담고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를 편집한 lsquo생각정원rsquo

출판사의 정희용 편집자에게 감사 표시를 하셨습니다

어떤 편집자를 선호하시나요

간단합니다 편집자는 철저히 독자 입장에서 독자와 작가

사이의 간극을 줄여줘야 합니다 예를 들면 어려운 내용을

과감히 생략하고 다음 기회로 미루도록 설득한다거나 좌파

운동권 색채가 너무 강한 문장을 조금 순화하는 것 등입니다

어떤 내용이 이번 책에 꼭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선택을

도와줘야 합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을 작가님께서 직접

독자들에게 홍보하신다면 카피 문구를 짧게 제시할 수

있을까요

청년 세대 희망 찾기 갑갑한 현실을 어떻게 타개할 수

있을지 그 답을 찾아보는 길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취업 후 첫발을 내디딜 서울출판예비학교 11기

학생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출판 또한 돈을 벌어야한다는 기본 전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출판계를 지켜본 결과 뭔가 소명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오래

살아남았습니다 출판학교 역대 대표 중 일부는 나와 관계가

있는 사람들인데 모두 고유한 소명의식을 갖고 출판계에

뛰어들었습니다 때로는 상업주의 안에서 재주도 부리곤

했지만 어쨌든 분야 내에서 고유한 캐릭터를 구축했습니다

출판학교 학생들이 출판 상황을 이해하고 자신을 역할을

정하는 개인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비전 중심의 경영을

하는 회사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지만 개인 비전을 기업

비전으로 나아가 사회 비전으로 접목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과거에 안주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부분을

출판계에서는 SNS 등 인터넷 환경을 통한 마케팅으로

이해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SNS망 자체에서 무엇이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건 사람과

사람이 서로 소통하고 공감하는데 필요한 도구입니다

콘텐츠 중심의 사고가 중요하고 그것이 전제되지 않을 때

SNS는 착각에 불과하며 성공할 수 없습니다 필요한 콘텐츠

중심의 사고를 가지고 철저하게 진행하지 않으면 그 공간에서

허망하게 헤엄만 칠 뿐 입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SNS에서

맥없이 헤엄치다 익사하는 경우를 볼 수 있을 겁니다

콘텐츠와 마케팅의 영역을 하나로 보는 것과 따로

보는 것 어떤 것이 독자를 위하는 것일까요

출판 마케팅은 책을 기획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에서부터

개입돼야 하고 그 과정에 독자를 참여시키는 방식을

고민해야 합니다 미국 네브래스카주립대학의 이상문

교수는 lsquo밀실 안에서의 혁신은 끝났다rsquo고 얘기합니다

개방된 체제에서 독자 곧 소비자 사용자의 참여 하에 함께

만들어갈 때 혁신은 이뤄진다고 합니다 출판사의 비전이

브랜드로 연결될 때 독자는 자발적으로 의견을 주고받고

싶어 할 겁니다

마케터반 11기 이창환

디자

인 사

공예

Page 9: 서울출판예비학교 웹진 _5호 2015

9

같았는데hellip) 한 시간 동안 호미화방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필요한

물품을 샀다 그런 와중에 혹시 빼먹은 건 없는지 예산이 부족하진

않을지 걱정이 들었다

교육 과정 내내 걱정하고 고민하고 불안해한 것 같다 마음 편하게

생각하라는 말을 친구들에게 줄곧 들은 것 같은데 할 수 없다 내가

원체 이렇게 생겨 먹은 걸 이제 발표회까지 남은 시간은 정확히

보름 우리가 보낸 6개월을 4시간 동안 보여주는 행사다 이 행사가

전부는 아니지만 그래도 24명 모두에게 아니 11기 출판학교 교육생

모두에게 주어진 마지막 과제다 lsquo혼자 하는 것도 아닌데 걱정만

하지 말고 차근차근 준비하면 되겠지rsquo 하면서도 걱정이 앞선다 진짜

이것도 병이다

편집자반 11기 권오권

20151008 목요일 D-8

가을 나들이 같은 인터뷰

내가 인터뷰 팀이라니 게다가 팀장이라니 누구 마음대로 이건

음모라고 구시렁대며 일정을 짠다 수료 때까지 감투 안 쓰는 게

목표였는데 망했다고 말하며 멘트를 고민한다 그래 사실은 즐겼다

어차피 할 일 없으니 잡배마냥 학우들에게 치근대며 시간 보냈을

터였다 그럴 바에야 나들이 간다 치고 즐기는 편이 나았다 날씨는

또 얼마나 좋은가 투덜댔지만 가벼운 걸음이었다

지금까지 교육 과정 내에서 강의 또는 특강으로 만났던 많은 분들을

카메라로 담았다 대부분 직접 회사로 방문했기 때문에 다양한

사무실을 보는 것도 재미였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강의 때보다 더

진하고 선명하게 한분 한분을 볼 수 있었다 그들도 마찬가지였을까

본인에게는 일상인 세계를 동경한다면서 비집고 들어오려는 우리를

보는 우려와 격려 섞인 눈빛에서 ldquo너희도 이거 하려고 아이고 힘들

텐데 부디 잘 해나갔으면 좋겠네rdquo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아름답다

감사하다

시시덕거리며 돌아오는 길에 생각한다 앞으로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이 가을 이 마음의 우리가 그리울 건 알겠다 벌써부터

아릿하다 역시 인터뷰 괜히 했다 귀찮아 죽겠다 진짜

편집자반 11기 김상흔

20151009 금요일 D-7

교육발표회를 홍보하라 티저 포스터 만들기

드디어 6개월의 과정이 끝나가고 있었다 우리를 보여 줄 마지막

기회인 교육발표회를 앞두고 TF팀은 lsquo홍보rsquo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꼭 보러 와달라는 메시지를 어떻게 하면 잘 전달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 끝에 lsquo티저 광고rsquo를 제작하기로 결정했다 CF나 기타 광고에서

활발하게 활용되는 서서히 베일을 벗어가며 호기심을 자극하는

광고 기법 말이다 우리의 타깃은 대중이 아닌 출판계라 처음엔

lsquo이런 홍보를 과연 좋아하실까rsquo 하는 의구심이 앞섰다 하지만

회의를 거듭하며 아이디어를 잘 뽑아내고 두 반이 협력한다면

효과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케터반 편집자반 학생들의 문구들을 취합해 투표로 가장

적합한 것을 뽑았다 1등은 정혜림 학우의 lsquo북쪽으로 가라 귀인을

만난다 BOOK쪽으로 오라 귀인을 얻는다rsquo가 차지했다 lsquo북쪽rsquo이라는

방향표현을 lsquoBOOKrsquo으로 바꾼 게 참신하고 재밌어 모두의 공감을

얻었다 2등은 김수경 학우의 lsquo내가 동네북이니 응 SBI 동네북

페스티벌rsquo이 뽑혔다 평소에도 재미있는 말투로 늘 주변을 웃게

만드는데 그 재기발랄함이 묻어나는 문구였다 3등으로 뽑힌

유보미 학우의 lsquo날 떠난 후 너는 행복하니 내 인생 책임져 책책책

책임져rsquo는 아쉽게 광고에는 쓰이지 않았지만 시선을 끄는 기발한

문구였다 이 외에도 lsquo책 잡힐 일 하지마라 책 잡을 일 해라rsquo lsquo갈피를

못 잡을 땐 책갈피rsquo 등 재밌는 문구들이 많았다

전부 광고에 쓰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라 12등 문구를

멋지게 디자인하기로 했다 디자인에 대한 의견을 반 친구들과

나누며 포스터들을 직접 디자인했다 서로 의견이 맞지 않기도 하는

등 고단할 때도 있었지만 많은 분들이 우리를 보러 와주신다면 모든

고생이 잊힐 것이다 제발 그랬으면 한다

편집자반 11기 박혜원

10

20151012 월요일 D-4

수많은 이름들을 위하여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난리다 난리 우리 반이 이렇게 시끄럽고

활기찬 적이 있었던가 자타공인 조용하다던 편집자반 학우들은

어디로 가고 요 며칠 온통 돌아다니거나 무언가를 만드느라

고군분투하는 풍경들과 마주하고 있다 나쁘지 않은 아침이다

그 동안 우리는 직책의 기근()에 익숙해져 있었다 반장 부반장

조장의 휘하에서 맡은 바를 다하며 펠로우십을 뽐내고 있던

우리에게 갑자기 수많은 이름들이 떠맡겨졌다 누군가는 TF팀이

되고 누군가는 홍보 팀장이 되었으며 누군가는 인터뷰 팀장이라는

직책을 맡았다 그런가 하면 건축학을 전공한 학우는 공간 배치를

구상하는 역할을 맡고 누군가는 가을 단풍을 모티프로 해서

편집자반 전체의 부스를 꾸미고 있다 그뿐이랴 각 동아리의

장(長)들은 동아리 부스를 만들랴 그 동안의 활동을 책으로 만들기

위해 인디자인 작업에 몰두하랴 정신이 없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웅장하게 꾸며질 조별 부스를 살펴보면 아마도 입이

떡 벌어질 것이다 각 조는 워크숍으로 만든 자신들의 책에 맞춰

콘셉트를 잡았다

편집자반 lsquo윌비rsquo 조는 『창업 자금 날려먹지 않는 법』에 맞게

카페처럼 부스를 꾸미기로 했다 거대한 간판도 이미 완성되었고

맛있는 커피도 만든다고 하니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lsquo길목rsquo 조는 『서태후 비사』의 내용에 따라 서태후가 좋아했던

벚꽃으로 부스를 장식한다 게다가 한 켠에는 『서태후

비사』전자책과 예쁜 책갈피까지 마련되어 있을 것이다

lsquo달로rsquo 조는 『사이의 거리』의 표지에도 실 그림이 들어간 것에 맞춰

실을 이용하고 있다 특히 실로 lsquo사이의 거리rsquo 글자를 만들었을

때에는 학우들 모두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어떻게 실로 글자를

만들 수 있었는지 많은 분들이 와서 봐주시면 좋겠다

lsquo세모북스rsquo 조는 강명관 잡문집인 『허울 좋은 나라』를 만들었다

시대상과 일상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lsquo사진rsquo에 착안해 옛날

사진관처럼 부스를 꾸미고 있다 흑백 사진과 손글씨가 고즈넉한

멋을 더할 것이다 돌림판 이벤트도 있을 예정이다

편집자반 11기 이상화

2015101 목요일 D- 15

lsquo정rsquo이 있어 lsquo반rsquo을 찾아 lsquo합rsquo을 보니 마케터더라

lsquo차별성이 있어야 한다rsquo

책의 차별성을 찾았던 6개월 그리고 6개월 간의 경험을 토대로

lsquo차별성이 있는 마케터반의 발표회rsquo를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각

조의 조장들과 발표회 테스크포스 팀원이 머리를 맞댔다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lsquo책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그렇다고 너무 책에

집중하지 말자rsquo였다 마치 lsquo정rsquo과 lsquo반rsquo을 통해 lsquo합rsquo을 만들어내는

과정이었다 세상에 이마저 변증법적 접근이라니 그러나 우리가

누구인가 책이라는 물성에 가치의 효용을 불어넣는 우리가

아니던가 분명 발표회에도 그와 비등한 가치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전체 콘셉트은 lsquo북북 쓰는 마케팅rsquo으로 각 조를 하나의 챕터로

삼았다 즉 개성이 뚜렷한 5개의 챕터로 이루어진 lsquo마케팅 북rsquo인

것이다 그리고 각 챕터는 lsquo마케팅이란rsquo이라는 소주제를 부여하여

각 조의 교육과정과 보여주고 싶은 것들을 자유롭게 보여주기로

했다

이제 정이 끝났으니 반을 제시할 차례 lsquo반rsquo으로 lsquo소책자rsquo와 lsquo상품rsquo를

선택했다 소책자는 그저 소개하는 글만을 넣지 않고 lsquo스탬프

여행rsquo의 컨셉을 빌려 꾸미기로 했다 각 조의 부스를 돌아볼 수 있는

장치로 충분한 역할을 할 것이다 상품은 lsquo책rsquo에 대한 행운을 줄 수

있는 lsquo무언가rsquo를 준비하기로 했는데 지금 당장 밝히기는 쉽지 않은

lsquo무언가rsquo를 준비할 것이다 (기대되시지요)

이제 합이다 합은 발표회 당일 분명 lsquo정rsquo과 lsquo반rsquo의 효과가 나타날

것이며 어느 때의 발표회보다 멋질 것이다 (라고 근자감을

부려본다) 곧 시작될 발표회 기대하시라

마케터반 11기 이장열

11

1212

설왕설래

『호밀밭의 파수꾼』의 결말이

궁금해서 견딜 수 없다면

세 반 학우들의 상상력을 동원한 우리들의 릴레이 세

나에 대해 듣고 싶다면 내가 어디서 태어났는지 어린

시절이 얼마나 형편없었는지 내 부모님이 무슨 직업을

가지고 있는지 내가 태어나기 전에 무슨 일들이 있었는

지 같은 데이비드 코퍼필드 식의 헛소리가 듣고 싶겠지

하지만 난 그딴 이야기 하고 싶지 않아 (JD 샐린저 『호

밀밭의 파수꾼』

내 속으로 지나가지만 어쨌든 내 것이 아닌 섬광을 내

가 앉았던 내가 읽었던 생을 한순간에 으스러뜨리는

섬광을 이야기하고 싶어 이창환

아니 잠깐 내가 뭔 병신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

지 내일 서울출판예비학교 면접 있어서 빨리 자야 하

는데hellip 공태준

어서 잠에 들어야 한다는 조급함이 커질수록 허기 또

한 함께 치밀어 올랐다 결국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파

스타 면을 삶는 시간 8분 (그 동안엔 냉장고의 한 쪽

에 남아있던 산토리 한 캔을 단숨에 들이켜야 했다)

음악은 야나체크의 산포니에타 김사룡

맥주 한 캔으로 살짝 취기가 돌자 술이 더 마시고 싶었

다 결국 소주 한 병을 꺼내어 마시며 적당히 삶아진 파

스타 면을 올리브유에 볶았다 내일 입을 정장치마가

끼지 않을까 걱정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엎질러진 물

인걸 최다은

침대에 누워 억지로 잠을 청해본다 잡념이 사라지지

않는다 고민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된다 젠장 벌

써 새벽 3시 자긴 글렀네hellip 그렇게 뒤척이다 날은 밝았

다 이다혜

밝아진 창밖을 보며 어젯밤 나를 뒤척이게 한 면접을

떠올렸다 어제만 해도 중요한 일이라 생각했는데 날

이 밝으니 이미 그 중요성은 나와 멀어진 느낌이다 의

무감에 옷을 챙겨입고 집을 나섰다 양화대교를 건너는

버스 안 새로운 계획이 떠올랐다 황하정

새로운 계획으로 들뜬 나에게 창밖의 풍경이 눈에 들어

온다 수많은 사람과 차량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

어진다 다른 듯 보이지만 얼굴을 장식한 특유의 무표

정함과 발등에 불이 떨어진 듯 바삐 움직이는 모습 속

에 내가 겹쳐 보인다 그래 이번 계획은 나에게 얼마

동안의 기대감을 선사해 줄 수 있을까 뭐 어때 잠깐

이라도 좋다 쓸데없는 잡념보다는 시한부 희망이 차라

리 낫다며 애써 위로한다 유수지

순간 어렴풋한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니 내 또

래의 남자가 거북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김단희

그의 혐오에 가까운 시선과 마주쳤을 때 나는 순간 얼

어버렸다 면접 장소에 가기 위해선 이번 정류장에서 내

렸어야만 했다 그러나 나에게 다가오는 그 남자 때문

에 그러지 못했다 남자가 말했다 김선아

ldquo너였구나 그래 너였어 3년 전 3만원을 빌리고 도망

간 김말숙이 그래 너야rdquo

그 남자는 미친 게 분명했다 lsquo잠깐 이 관능적인 머스

크 향은 뭐지rsquo 순간 뇌리를 스치는 불가리 향수는

그 남자를 떠올리게 했다 지독하게 얼굴을 기억하지

못했던 그 남자를 말이다 이장열

대학교 1학년 설레는 마음으로 나간 첫 번째 미팅을

내 인생 최악의 시간으로 만들었던 lsquo불가리 그놈rsquo이었

lsquo젠장 이 안면 인식 장애놈이 내 얼굴을 어떻게 기억하

는 거지rsquo 내 이름이 김말숙이든 아니든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내 얼굴을 기억한다는 것이 의아할 뿐

양화대교 위에서 떠오른 새로운 계획 그래 지금부터

시작이다 오늘 하루는 lsquo나rsquo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 살

아보는 거야

난 매섭게 치뜬 눈으로 나를 응시하는 그를 뒤로하고

소설의 첫 문장으로 시작하는 릴레이 소설

13

무심히 다음 역에서 내렸다 아무런 동요 없이 발걸음

을 옮기는 나를 보고는 그도 무안한지 이내 제자리로

돌아가는 듯했다 이상한 사람 나는 계속해 나의 목적

지를 향해 걸어갔다

결국 지각했다 면접은 진행 중이었다 이게 다 불가리

때문이다 불가리 냄새가 몸에 밴 것 같다 아니 불가

리 냄새는 내 옆에서 나고 있었다 내 옆에는 불가리가

앉아 있었다 부처님의 손가락을 본 손오공의 심정이

이러했을까 강귀욱

끔찍했다 냄새도 면접도

lsquo젠장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야rsquo

담배에 불을 붙여 한 모금 깊게 빤다 lsquo후-rsquo 치미는 화

도 잡념도 불안도 이 연기처럼 쉬이 사라져버리면 좋

으련만 무의미한 푸념만이 입 안에 맴돈다

ldquo김말숙~ 여기 있었냐rdquo 그 말에 얼마나 놀랐냐면 떨

어진 담뱃불이 내 정장치마를 태우고 있는 줄도 몰랐을

정도였다 lsquo불가리 그놈을 피해 골목까지 들어왔는데

여긴 어떻게 찾은거야rsquo

ldquo밥 먹을래rdquo lsquo꺼져 꺼져 제발 꺼져helliprsquo 못 들은 척 고

개를 돌렸다

ldquo소달구지라고 괜찮은 식당 있는데 같이 가면 그 3만

원 없던 걸로 해줄게rdquo

우리는 눈이 마주쳤다 김영준

해질 무렵 서서히 불이 들어오는 보고 있어도 언제 밝

아졌는지 알 수 없는 양화대교 위 가로등처럼 우리는

천천히 그러나 깊게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새카

만 흑암의 공간 무저갱 같이 깊고 검은 눈동자 속에

숨겨 놓은 비밀을 알아내기라도 하려는 듯 그렇게 서

로의 눈을 망막 너머의 시신경을 시신경을 타고 올라

가 전두엽 어딘가에서 터지고 있을 스파크를 계속 들여

다보았다 이윽고 두 남녀의 입이 열렸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낮은 목소리가 화음을 내며 울려 퍼

졌다 ldquo몽마르뜨가 좋겠어rdquo 권오권

끔찍했던 면접과 기분 나쁜 불가리놈의 얼굴이 잊힐 정

도로 음식의 맛은 정말 좋았다 고작 음식 때문에 기분

이 나아지는 내 자신에게 정말 어이가 없었지만 어쨌

든 맛은 좋았다 된장국으로 숟가락을 옮기며 슬쩍 앞

의 녀석 얼굴을 쳐다보았을 때 그 녀석도 나를 쳐다보

고 있었다 김희연

3년 전의 얼굴과 꽤 변해있었다 그 당시 철없는 어린

애 같은 얼굴이었는데 지금은 사회인이 되려고 꾸며댄

듯한 모습 물론 3년 전보다 더 나아졌다거나 잘생겨진

것은 아니다 전보다 훨씬 평범한 얼굴이다 ()

그런 그는 어째서 날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어째서 날

기억하고 다가와서 말을 걸고 함께 식사까지 하려 하

는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이 텅 빈 머릿속을 메

운다 엄청나게 망쳐 버린 하루지만 이상하리만큼 멀

쩡한 내가 낯설다 김하얀

그러다 내가 집에 돌아가는 길 문득 미니스톱에 담배

를 사러 들렀다가 ldquo여기 국산담배밖에 없는helliprdquo 음hellip

없단다 가뜩이나 기분도 꿀꿀한데 없다니 빵만 사서

나왔다

빵을 사서 가는 길에 낯익은 얼굴에 걸음을 멈추었다

ldquo너 혼자 빵 먹냐 나도 같이 먹자rdquo 불가리 그놈이었

다 ldquo혹시 너 나 따라온 거야rdquo 기가 막혔다 백가은

어쩐지 불가리 향수 냄새가 난다 했다 ldquo왜 따라왔어rdquo

그랬더니 불가리 그놈이 하는 말

ldquo난 내 집 가는 건데rdquo 믿을 수 없다 수상쩍다 그놈은

나를 앞질러 가더니 우리 집 주인 아줌마네 집으로 들

어가 버렸다 아 저 놈이 집주인 아줌마 아들놈인가

월세 밀렸는데 망할

망할 이상한 하루였다 잊자 오늘 일은 전부 다 잊어

버려야지 방으로 들어오기 직전에 산 맥주 한 캔의 뚜

껑을 따고 들이킨다 캬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가는 듯

시원하다 씻고 자리에 눕는 순간 면접 결과가 나올 때

까지 무엇을 하고 있어야 할지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TO BE CONTINUEDhellip

은 익명 표시입니다

13

무심히 다음 역에서 내렸다 아무런 동요 없이 발걸음

을 옮기는 나를 보고는 그도 무안한지 이내 제자리로

돌아가는 듯했다 이상한 사람 나는 계속해 나의 목적

지를 향해 걸어갔다

결국 지각했다 면접은 진행 중이었다 이게 다 불가리

때문이다 불가리 냄새가 몸에 밴 것 같다 아니 불가

리 냄새는 내 옆에서 나고 있었다 내 옆에는 불가리가

앉아 있었다 부처님의 손가락을 본 손오공의 심정이

이러했을까 강귀욱

끔찍했다 냄새도 면접도

lsquo젠장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야rsquo

담배에 불을 붙여 한 모금 깊게 빤다 lsquo후-rsquo 치미는 화

도 잡념도 불안도 이 연기처럼 쉬이 사라져버리면 좋

으련만 무의미한 푸념만이 입 안에 맴돈다

ldquo김말숙~ 여기 있었냐rdquo 그 말에 얼마나 놀랐냐면 떨

어진 담뱃불이 내 정장치마를 태우고 있는 줄도 몰랐을

정도였다 lsquo불가리 그놈을 피해 골목까지 들어왔는데

여긴 어떻게 찾은거야rsquo

ldquo밥 먹을래rdquo lsquo꺼져 꺼져 제발 꺼져helliprsquo 못 들은 척 고

개를 돌렸다

ldquo소달구지라고 괜찮은 식당 있는데 같이 가면 그 3만

원 없던 걸로 해줄게rdquo

우리는 눈이 마주쳤다 김영준

해질 무렵 서서히 불이 들어오는 보고 있어도 언제 밝

아졌는지 알 수 없는 양화대교 위 가로등처럼 우리는

천천히 그러나 깊게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새카

만 흑암의 공간 무저갱 같이 깊고 검은 눈동자 속에

숨겨 놓은 비밀을 알아내기라도 하려는 듯 그렇게 서

로의 눈을 망막 너머의 시신경을 시신경을 타고 올라

가 전두엽 어딘가에서 터지고 있을 스파크를 계속 들여

다보았다 이윽고 두 남녀의 입이 열렸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낮은 목소리가 화음을 내며 울려 퍼

졌다 ldquo몽마르뜨가 좋겠어rdquo 권오권

끔찍했던 면접과 기분 나쁜 불가리놈의 얼굴이 잊힐 정

도로 음식의 맛은 정말 좋았다 고작 음식 때문에 기분

이 나아지는 내 자신에게 정말 어이가 없었지만 어쨌

든 맛은 좋았다 된장국으로 숟가락을 옮기며 슬쩍 앞

의 녀석 얼굴을 쳐다보았을 때 그 녀석도 나를 쳐다보

고 있었다 김희연

3년 전의 얼굴과 꽤 변해있었다 그 당시 철없는 어린

애 같은 얼굴이었는데 지금은 사회인이 되려고 꾸며댄

듯한 모습 물론 3년 전보다 더 나아졌다거나 잘생겨진

것은 아니다 전보다 훨씬 평범한 얼굴이다 ()

그런 그는 어째서 날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어째서 날

기억하고 다가와서 말을 걸고 함께 식사까지 하려 하

는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이 텅 빈 머릿속을 메

운다 엄청나게 망쳐 버린 하루지만 이상하리만큼 멀

쩡한 내가 낯설다 김하얀

그러다 내가 집에 돌아가는 길 문득 미니스톱에 담배

를 사러 들렀다가 ldquo여기 국산담배밖에 없는helliprdquo 음hellip

없단다 가뜩이나 기분도 꿀꿀한데 없다니 빵만 사서

나왔다

빵을 사서 가는 길에 낯익은 얼굴에 걸음을 멈추었다

ldquo너 혼자 빵 먹냐 나도 같이 먹자rdquo 불가리 그놈이었

다 ldquo혹시 너 나 따라온 거야rdquo 기가 막혔다 백가은

어쩐지 불가리 향수 냄새가 난다 했다 ldquo왜 따라왔어rdquo

그랬더니 불가리 그놈이 하는 말

ldquo난 내 집 가는 건데rdquo 믿을 수 없다 수상쩍다 그놈은

나를 앞질러 가더니 우리 집 주인 아줌마네 집으로 들

어가 버렸다 아 저 놈이 집주인 아줌마 아들놈인가

월세 밀렸는데 망할

망할 이상한 하루였다 잊자 오늘 일은 전부 다 잊어

버려야지 방으로 들어오기 직전에 산 맥주 한 캔의 뚜

껑을 따고 들이킨다 캬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가는 듯

시원하다 씻고 자리에 눕는 순간 면접 결과가 나올 때

까지 무엇을 하고 있어야 할지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TO BE CONTINUEDhellip

은 익명 표시입니다

14

이옥란 선생님

캡틴 오 마이 캡틴(captain oh my captain)선생님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

편집자반 학우들은 늘 이분의 얼굴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며

끝마친다 몇 번의 마주침은 덤이다 그분은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도 가깝지만은 않았던 편집자반의 담임 교수

이옥란 선생님 자신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우리를 위한

이야기를 풀어놓으시느라 매일 종례시간이 부족하신 이옥란

선생님께 이번엔 우리가 물었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 일상을 어떻게 보내고 계신가요 선생님의

주말이 취향이 추억이 삶이 궁금하다 편집자반 학생들에게

직접 받은 질문들로 lsquo한 사람rsquo에게 궁금한 것들을 물었다

이 인터뷰를 읽은 뒤 그녀를 한층 좋아하게 되리라고

확신한다

왜 디토 커피에 자주 가시나요

커피가 제일 맛있고 값이 싸고

넓은 창으로 햇빛이 많이 들어와

그리고 주인장들이 공간은 물론이고

손님들과도 잘 어우러지는 것 같아

옥란 선생님께 스카프란

어느 날 발견한 패션 아이템 몇 년 전인가

홍대 앞 가판대에서 우연히 마 레이온 합성의

보라색 스카프를 발견한 이후인 것 같아

왜 고양이를 좋아하시나요 고양이를 키우시나요

고양이가 나를 키웠다고 할 수 있지 시골집 막내였는데

고양이가 친구가 되어주었어 (선생님이 고양이를 닮아

가시는 것 같아요 혹시 키우세요) 둘 있는데 13년쯤 되었나

최근에 읽었거나 읽고 계신 책은

이익섭 저의 『국어학개설』 『말과 사물』 『좌파는

어디에 있었는가』 『논어』 『번역어의 성립』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등 여러 권 들고 다니면서 돌려본다

(국어학개설은 읽는다기보다 공부 아닐까요) 아니야

재미있어

인생의 책을 꼽자면

김훈의 『남한산성』 표지가 핫핑크 색이야 건조하고 힘

있는 남성적인 문체의 마초라고 불리기까지 하는 작가의

책이 핑크색이라니 크기도 아마 46판에 더스트 커버(dust

cover)는 질긴 천의 느낌이고 본문은 재생지인지 무겁지

않고 두께도 딱 손에 잡히는 정도 감각까지 장악한 책이야

몇 권 사서 주변 사람들에게 돌렸어

선생님의 멘토는

이런 질문에 답하게 될 줄은 몰랐네 글쎄 그러고 보면

존경스러운 사람은 있었지 대학 때 문학 동아리 선배였어

양상현 형 (어떤 점이 제일 존경스러우셨어요) 자유롭게

사는 사람이었던 것 얼마 전에 돌아가셨어 이제 조금

실감이 나네 그분은 건축 전공에 시를 쓰고 음악을

즐기고 노는 문화를 나누고hellip 어떤 사태도 회피하지 않고

자유로웠던 사람이었지 앞으로 할 일이 더 많았을 터인데

양상현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졸업 동대학원

박사학위 2002년 대한민국건축대전

초대작가 선정 순천향대 건축학과

교수 재직 민족건축인협의회

의장 설계 작품으로는 lsquo장암리

주택rsquo lsquo녹촌리 조각가의 집rsquo 등

대표 저서『거꾸로 읽는 도시

뒤집어 보는 건축』 2015년

8월 14일 별세

졸업 후 편집자로 일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우리 때는 노동운동이나 농민운동을

했던 대학생이 사회과학 출판사로

진출하는 경우가 많았고 내 친구도 졸업을 해서

출판사에 있었어 그 녀석이 나를 사무실로

초대했는데 반지하도 아니고 그냥 지하였던 것

같아 ldquo옥란이 이리와 봐 이게 뭔지 아니 바로

매킨토시라는 거야 이게 얼마짜린지 아니rdquo

매킨토시 컬러 클래식(Macintosh Color Classic)

웬만한 공책보다 좀 클까 본체가 화면에 같이

붙어 있는 하드웨어를 가진 컴퓨터였지 친구 말로는

300~400만 원 한다고 했어 20년 전이니 당시로는

큰돈이지 교정지를 보여주더니 마치 lsquo음 너는 아직 이런 거

모르지rsquo라고 하는 듯이 ldquo잠깐만 언니가 뭐 좀 할 테니까

잠깐 기다려봐 하hellip 이거 띄어쓰기 어떻게 해야 하려나 이게

전문용어라 통일을 해줘야 하는데helliprdquo 하던 잘난 척이 기억이

나네 그렇게 출판사를 접했지 문학 동아리를 하느라 알게

된 선생님들 선배님들도 여럿 출판사에들 계셨어

편집자로 일하셨을 때 어떤 분야를

편집하셨나요

하다 보니 주로 예술 서양 미술 분야였고

출판사는 학고재 예경 마로니에북스까지

그런 기회가 나한테 왔고 재미있었어

전공이 그쪽이 아니었기 때문에 공부를

해야 했지

지난 서울출판예비학교생활 중 특별히

기억나는 사람이나 사건이 있다면

8기 졸업식 날 남학생 셋이 ldquo저는 출판학교에

와서 모든 것을 얻었습니다rdquo 그러면서 흑흑 우는 거야

누군지 얘기하면 창피하겠지 남학생들이 울어서 애들이

알고싶어 편집자반

15

완전 눈물 바다였잖아 (우리 반 오빠들이 운다는 건 상상할

수 없네요) 다음 해에는 애들이 완전 유머 코드여서 웃다

끝났지

출판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된 계기나 동기는

무엇인가요

나는 8기부터 시작했는데 7기 담임이던 김장환 씨가 나를

불렀어 공동 담임을 해달라고 lsquo그러지 뭐rsquo 이렇게 시작했지

직장은 2008년도까지 다녔고 프리랜서로 활동하면서

여기저기서 강의를 하고 있었어 한겨레 문화센터에도

23년쯤 있었지 (편집자보다 이렇게 선생님으로 있는 게 더

즐거우세요) 지금은 진짜 만들고 싶은 책 함께 작업해보고

싶은 저자 그런 게 아닌 한 직업으로 신간을 꾸준히 내는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당신들은 눈이 반짝반짝해서 업계에 들어와야겠다고

준비해서 오잖아 그 친구들이 1년차 3년차 되는 것을

지켜보고 있으려니까 내가 그 나이쯤 사회생활을

시작해 고민했던 지점이 보이는 거지 그 때

이걸 알았더라면 하는 안타까움이 있어서

여러분들이 애틋해지지

요즘 최대의 관심사는 무엇인가요

저녁에 후배들에게 가르칠 강의를 하다

보니 국어 공부의 필요성을 여실히 느끼고

있어 출판 동네에서 20년 넘게 일한 사람이

공부해온 것을 한 번 정리해서 후배들한테 줄 필요도

있겠구나 싶고 (뭔가 일 얘기가 아닐 줄 알았는데요

하하)

은퇴 후에 무엇을 하고 싶으신가요

오늘은 말이 절로 나오는 걸 하하 마당 있는 시골집 텃밭을

일구며 역사에 길이 남을 인간과 세상을 통찰하는 대작

소설을 발표하겠다 (와)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이 되고 싶으신가요

다시 태어나고 싶지가 않아hellip(웃음) 지구에서는 내

대에서 멸종하기로 했다

저희들에게 속 시원하게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자신 있게 해라

생각해보면 다들 자기가 못났어 키도 좀 더 컸으면

좋겠고 외모도 마음에 안 들고 내가 저 때 저렇게

했으면 지금 달라졌을까 부럽기도 하고

그런데 사실 부질없는 거거든 세상 사는

힘이 실력에만 있는 게 아니고 태도의 문제가 더

클 때가 많아 내 것이 아닌 것에 목매고 있을

필요가 없어 신입사원으로 전혀 모르는 곳에

뚝 떨어졌을 때 저들의 세계 속에 혼자 쏙

들어간 기분이니까 일단은 주눅이 들지

하지만 거기서 살아가야 하지 않겠어

둘러보면서 아 저기가 화장실이구나 사람들은

이런 걸 이렇게 하는구나 파악하고 나면 좀

수월해지잖아

마지막으로 대망의 이상형 월드컵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정우 주원 김수현 유아인 이렇게

4강전으로 시작하겠습니다

(하정우와 주원 중에서는 누가 더 좋으세요) 하정우지

주원이 최근에 좋아지긴 했는데 아직도 하정우를 따라올 수

없어

(그럼 김수현유아인 중에서는요) 유아인이지

(너무 확고하셔요 드라마 lt밀회gt 보셨나요) 집에선 케이블

방송도 안 나오고 관심 갖게 되었을 땐 너무 유행이라

안보고 말았지 대신 영화 lt완득이gt는 봤다

(이제 결승인데요 마지막으로 하정우와 유아인은요)

아인이는hellip 나한테 좀 과분한 것 같아(웃음) 하정우가 삐질

것 같은데 그래서 둘 다 잃는 거야hellip

편집자반 11기 김수진 이상화

lt베테랑gt의 악랄한 재벌 2세유아인

lt프로듀사gt의 어리버리 신입PD

김수현

lt용팔이gt의 천재 외과의사

주원

lt 암 살 gt 의 순 정 마초

하와이 피스톨하정우

하정우

16

한대웅 선생님

『동백꽃』의 주인공 같은 그 남자착하디착한 순하디순한 한대웅 선생님의 속마음

좀처럼 화내시는 일도 없고 허허 웃기만 하시고hellip 하지 못한

말들을 땀으로 발산하듯 여름이면 온몸이 열정으로 흠뻑

젖으시는 분 세상 어디에도 없을 착한 남자 마케터반의

한대웅 선생님이다 그에게 던진 몇 가지 질문에 돌아온 것은

가장으로서의 고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 아직도 앳된

소년 같은 순수함이 묻어나는 답변들이었다 이제 그를 좀 더

깊게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평소에 칼라(collar) 티셔츠를 즐겨 입으시던데

좋아하시는 옷인가요

좋아한다기보다는 제 딴에는 편하게 입을 수 있는 듯해서

즐겨 입고 있습니다 또 아내가 이런 종류의 옷을 많이

사주기도 하고요

선생님께 lsquo출판rsquo이란 무엇인가요

출판은 lsquo꿈을 이루는 판도라의 상자rsquo lsquo내가 가진 능력에 가장

맞는 일rsquo입니다

출판을 업으로 삼지

않으셨다면 어떤 일을

선택하셨을까요

모르겠네요 아마도 운명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요 다만 다음과

같은 3가지 생각은 해보았습니다

첫째 고등학교 시절 성적이 조금

더 좋았다면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해서

지금쯤이면 텔레비전이나 영화에 나오는 큰 전투함의

함장이 되지 않았을까요

둘째 대학교에 입학하지 못했다면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로 이민을 가서 장사를 하거나 농부로 농장을

운영하면서 그곳 사람으로 국적을 바꾸고 살고 있지

않을까요 고등학교 3학년 때 대학교 입학 시험에

떨어지면 다른 나라로 가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다는

마음의 준비를 했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 모 일간지에 실린

해외에서 성공적인 삶을 사는 한국 사람들에 관한 기사를

꼼꼼하게 읽었었거든요

셋째 대학교 3학년이나 4학년 때 신춘문예까지는 아니라도

대학교 교내 문학상 정도를 받았다면 아마도 그 결과에

탄력을 받아 시나리오 작가나 연극 연출가의 길로 가려고

하지 않았을까요

ID와 블로그에 lsquo봄rsquo이라는 단어가 들어있는데 봄을

좋아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그 ID를 만들 무렵 저의 미래는 꽤나 불확실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바꿔 말하면 어떻게

돈을 벌어야 하고 어떻게 자아 성취를

해야 하는지가 불확실하고

힘들었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lsquo봄rsquo이라는

단어를 좋아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누구나

알다시피 봄은 겨우내

얼어 있던 것들이

새롭게 싹을 틔우고

새롭게 기지개를 펴는

계절이죠 물론 봄

자체가 주는 느낌도

좋고요 그래서 lsquo봄rsquo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던 것

같습니다

블로그는 서울출판예비학교에서

일을 시작한 후 만들었습니다

블로그에 lsquo봄바람rsquo이라는 의미를 부여한

것은 ID를 만들던 때의 생각이 이어진 것이겠지요 요즘에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이 많이 사라진 것 같습니다 만약

앞으로 블로그나 ID를 만든다면 아마도 lsquo여름rsquo 혹은 lsquo풍성함rsquo

아니면 lsquo내가 원하는 세상을 상징하는 어떤 것rsquo을 이름으로

사용할 것 같습니다

편집자로 첫 시작을 하셨는데 나중에 출판 마케터로

일하게 된 동기를 알고 싶어요

시장 상황을 분석하고 이에 맞게 마케팅 계획을 세우고

사람이나 집단을 만나고 힘을 합쳐 뭔가 새로운 결과를

만들어 내는 일이 재미있었습니다

은퇴 후에 꿈꾸시는 삶이 있으신가요

아직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20대와 30대

초반에 꿈꾸던 것들을 lsquo은퇴 후에 여유가 생긴다면 이것들을

해볼까rsquo라고 간혹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현재겠죠 출판에서 뭔가를 이루려고 열심히 계획하고

실행하다 보면 은퇴 후의 삶도 더 풍요로워지지 않을까요

알고싶어 마케터반

17

일하실 때 다뤘던 책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무엇인가요

입사 초기 편집을 하거나 시장조사를 하고 제가 출간 여부에

대한 판단을 내렸던 책들이 기억납니다 『펠레』 자서전은

제가 편집자로 있을 때 출간했던 책인데 주요 일간지의

서평란 메인을 장식했던 책입니다 출간 시점을 맞추기 위해

촉박한 기간 동안 밤새가며 책을 만들었습니다 출간 시점에

대한 판단이 정확히 맞았고 그 결과 기대 이상으로 많은

서평을 받았던 책입니다

서울예비출판학교 선생님으로 오신 계기를

알고 싶어요

전에 다니던 출판사를 그만둔 후

개인적으로 뭔가를 해보려고 고민

중이었습니다 그러나 능력이

부족하다 보니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았죠 그러던 중에

출판학교에서 일해 볼 것을

제안 받았고 저도 출판학교

학생들처럼 면접을 보고 이

학교에 오게 되었습니다

일을 하게 되었을 때 매우

즐거웠습니다

다시 출판사 마케터로 돌아갈

생각이 있으신가요

아니오 이유는 2가지인데 첫째는 제 나이가

48세입니다 다른 업종도 그렇지만 출판 산업에서도

48살에 마케터로 직장인의 생활을 이어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죠 정말 현실적인 고민이죠 게다가 출판학교에서

여러분과 소통하며 제 지식을 전수하는 일이 재미있습니다

물론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언젠가 저만의 꿈을

찾아갈 수 있겠죠

평소 몇 권의 책을 읽으시나요 최근 읽은 책 중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요

예전에 많이 읽을 때는 1주일에 2권 정도 읽었습니다

황석영의 『장길산』과 홍명희의 『임꺽정』 이문열의

『삼국지』를 읽을 때 짬짬이 쉬는 시간을 비롯해 지하철에서

보내는 시간까지 거의 모든 시간을 책을 읽으며 보냈습니다

요즘에는 1달에 1~2권 정도 읽는 것 같네요 최근 읽은

책 중에 기억에 남는 책은 『내 아이와 어떻게 대화할

것인가』(율리아 기펜레이테르 저 써네스트 2006)와 『내

아이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율리아 기펜레이테르

저 써네스트 2009)입니다 제목만으로도 왜 이 책을

추천하는지 금방 눈치 챌 수 있을 것입니다 아이가 둘

있는데 첫째는 15살 딸이고 둘째는 10살 아들입니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lsquo어떻게 하면 아이와 싸우지 않고

윽박지르지 않고 아이의 자존감을 높여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성실하고 삶의 열정과 꿈이 넘쳐나는 아이로

키울까rsquo 같은 고민을 항상 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단비처럼 다가왔습니다 위의 2권의 책을 읽고 몇

가지 중요한 것들을 배웠습니다 아이와 어떻게 소통하고

어떻게 대화해야 하는지 아이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등등 이전에 『부모와 아이 사이』(하임 G 기너트

등 저 양철북 2003)를 읽고 아이를 이해하는 법에 대해

큰 인상을 받았는데 이 책도 그 연장선에서 저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아들과 딸을 좀 더 이해하게 되고 그

결과 아이들에게 화를 내거나(저도 나약한 인간인데 화가

날 때가 심심치 않게 있거든요) 아이들의 긍정적인 싹을

본의 아니게 꺾어 버리는 경우가 줄었다고 할까요 게다가

이 책은 lsquo부모와 아이 사이rsquo만이 아니라 lsquo친구와 친구 사이rsquo

lsquo회사 내부 구성원 사이rsquo에서 소통하는 데도 많은 영감을

제공합니다 출판학교 학생들과 소통할 때도 이해의 폭을

넓혀주고 긍정적인 소통을 하는 방법을 제공해 줍니다

이제 수료를 앞둔 마케터반 학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으시다면

개인별로 처한 처지와 조건에 따라 다르겠지만 다음과 같은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 연인을 사랑하듯 출판에 대해서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보세

- 이 길이 나에게 최선의 길인가 생각해 보세요

- 목표를 세우고 지금부터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한 후 그것을 어떻게 이루어 나갈 것인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보세요

저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스스로의 내면을 단단하게 할 중요한

질문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앞으로도 끊임없이

새로운 답을 찾아나갈 질문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케터반 11기 이장열 이창환

18

선생님은 주말에 뭐하세요

무조건 가족과 함께hellip

만약 편집 디자인을 안 하셨다면 무슨 일을 하고

계실까 궁금해요

어찌 됐든 개인 사업자로 살았을 듯 윗사람 비위 맞추는

것을 너무 못하므로hellip

선생님 주량이 어떻게 되세요 주사가 있으세요

몸 상태 좋고 안주 많이 먹으면 1병(클래식으로)

좋은 출판 디자인을 생각한다

심우진middot안광욱 선생님

lsquo멋rsquo이라는 것이 폭발한다뼛속까지 디자이너스러운 심우진 선생님

멀리서도 눈에 띄는 큰 키에 멋들어진 베레모 디자인반의

심우진 선생님 되시겠다 서울출판예비학교에서 lsquo멋rsquo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가끔은 조금 키 큰 학생처럼 학생들

속에 잘 어우러지는 사람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모습은

여기까지다 그를 조금 더 알고 싶다 지금까지의 그를

만들어왔을 lsquo심우진의 생각들rsquo이 궁금했다

선생님은 무엇을 드시고 그리 멋지시나요

학생들의 사랑 밥 김치

일본 유학길에 오르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lsquo동아시아rsquo lsquo근대rsquo가 당시 나의 화두였으므로 그리고

스기우라 고헤이 선생을 뵈러

첫 직장을 다녔을때 일의 강도()나 다니는 동안

마음은 또 어떠셨는지

출판 쪽 첫 직장은 lsquo정디자인rsquo인데 lsquo나는 왜 이렇게 디자인을

못할까rsquo 답답해했던 기억이 있어요 그러나 매우 즐거웠고

술도 자주 마셨죠 아직도 당시의 OB들과 가깝게 지내요

lsquo둥지rsquo 같은 곳이죠

선생님께서 생각하는 완벽한 판면이란

디자이너의 삶의 방식과 콘텐츠의 삶의 방식이 녹아든 판면

선생님의 피로회복 방법은

알고싶어 디자인반

19

디자인반의 히어로좋은 출판 디자인을 생각한다 안광욱 선생님

여자 화장실 앞에 있어 인파로 북적대는 디자인반 교실을

학생들과 함께 굳건히 지켜온 분 디자인반 학생들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애정공세를 아끼지 않는 분 안광욱

선생님에게 물어본 4가지

디자이너로서 첫 직장을 다닐 때의 마음이

어떠셨나요

잘하고 싶었는데 못해서 힘들었지 사수에게 하루 서너

시간씩 야단맞으면서 했다오 매일 2호선 양화대교에서 뛰어

내리고 싶었는데hellip 이 부분은 내일 수업 때 얘기해줄게^^

선생님께서 생각하는 좋은 출판 디자인이란

세상을 향한 사랑과 희망이 듬뿍 담긴 디자인

출판 디자인을 안 했다면 지금 무슨 일을 하고

계실까요

모르겠네 그냥 선녀 옷 훔치는 나무꾼이 되어 있을 듯^^

어떤 주사가

있으신지 궁금해요

말이 조금 더 많아지고 장소 불문 쿨쿨 자 특별한 주사는

없는 듯

디자인반 11기 이소현 백가은 사공예원

디자

인 사

공예

20

편집자반 김영준 학우가 그린

『이 외로운 사람들아』 일러스트

기억에콕

수업 후기

ldquo우리에게는 lsquo일탈rsquo이 필요합니다rdquo

잠깐 딴 짓을 하는 사이에 귓가에 들려온

한 문장이 나를 사로잡았다 배는 부르고

따 사 로 운 햇 살 에 잠 이 쏟 아 지 는 시 간

오후 1시 30분 시간을 칼같이 맞춰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선 그는 딱 봐도 지루하고

고리타분해 보이는 첫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순간 눈으로 들어온 이미지는 뇌로 흘러갔고

뇌는 망설임 없는 확신으로 귀에 명령을

전달했다 그렇게 귀는 이미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내 들려올 그렇고 그런 뻔한

이야기에 대하여

눈의 판단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의 한마디

한마디는 파격이었다 아니 어쩌면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였지만 누구도 자신 있게

내던지지 못하는 말들을 서슴지 않고 내뱉는 그

거침없음에 신선함을 느낀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의 관심을 돌려놓았던 lsquo일탈rsquo에 대한 그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lsquo일탈을 하라rsquo는 말이

lsquo제멋대로 하라rsquo는 의미가 아니라 어떤 규칙을

벗어나는 행위를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다르게

생각하는 방식을 몸으로 익히게 된다는 것

새로운 것을 생각해내는 창의성이라는 힘은

당연히 새로운 경험에서 나온다는 것이었다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니 강의를 듣던

친구들의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때 보고 들었던 그의 말과 행동이 우리에게는

딱 딱 한 강 의 실 에 서 느 끼 는 새 로 운 경 험

lsquo일탈rsquo이었다

그 와 의 만 남 은 계 속 이 어 졌 다 이 곳

서 울 출 판 예 비 학 교 에 입 학 한 이 후 로 는 좀

더 완 벽 한 일 주 일 단 위 로 시 간 이 흐 르 기

시작했는데 매주 쌓여가는 새로운 배움 뒤에는

수많은 물음이 불쑥불쑥 솟아났고 그는 마치

예상을 했다는 듯이 일주일에 한 번씩 나타나

우리의 설익은 궁금증을 해소해주고 떠나갔다

첫 만남에서는 책이라는 대상과 책을 대하는

편집자의 자세에 대해 이야기하며 큰 그림을

그려주었고 다음엔 저자와의 관계 맺기 그

다음엔 스스로 만들어 가야할 편집자의 자기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담백하게 들려주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네 번째 만남이었다

누구도 쉽게 이야기하기 어려운 완벽하게

솔직해지기는 더더욱 어려운 자신의 좌절과

실패를 그는 담담하고 진솔하게 소개해주었다

모든 성공에는 대개 7할의 실패가 전제되어

있기 마련인데 성공에 이르기까지 거치는

우 리 가 lsquo실패rsquo라고 명 명하는 것들이 사실

진짜 실패가 아니라 성공의 다른 이름이라는

그의 말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성공도 실패도

어 느 한 지 점 에 서 내 리 는 판 단 인 것 이 고

결 국 성 장 하 고 성 숙 한 다 는 것 은 성 공 과

실패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lsquo차이rsquo를 얼마만큼

발견하느냐 하는 것에서 결정된다는 그의 말이

가슴을 뜨겁게 했다 비로소 lsquo편집자rsquo로서가

아닌 한 lsquo사람rsquo으로서의 그가 보이기 시작했다

담담하게 말을 하고 있지만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아프고 쓰린 기억을 후배들에게

들 려 주 는 그 에 게 서 진 심 이 전 해 져 왔 다

사랑하는 일에 대한 함께 걸어갈 동지들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 참 고마웠다

어느덧 마지막 만남이 찾아왔다 한 권의

책을 만들면서 진행했던 편집의 과정을 예로

실 제 적 인 이 야 기 를 우 리 에 게 마 지 막 으 로

들려주었다 편집의 능력은 지식과 정보에서

나온다는 것 그것은 단숨에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 꾸준히 쌓아가야 한다는 것 그래서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의 문제라는 것을 경험을

근거로 자신 있게 말해 주었다 이미 지나온

과거의 결과 대신 앞으로 걸어갈 길에 대한

희망을 들려주어서 그게 참 고마웠다

편집자반 일탈이 주는 파격 우리가 낳을 lsquo새로운 책rsquo과 편집자선완규 선생님과의 다섯 번의 만남이 키운 생각들

21

그 가 우 리 에 게 마 지 막 으 로 이 야 기 를

들려주었던 그날 이후 석 달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났다 나는 여전히 같은 강의실에 앉아

앞서 길을 걸어간 선배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고 조금씩 가까워지고 밝아져가는 내 앞에

놓인 길에 대해 생각한다 그러다 문득 마음이

무거워지고 막막해질 때면 종종 그의 말들을

떠올려 본다 그리고 그 생각의 끝에서 마음을

의지하며 함께 이 길을 걸어갈 따뜻한 선배가

하나 있다는 위로 한 줌을 발견한다

ps 선완규 선생님 고맙습니다 보고 싶어요

편집자반 11기 성준근

마케터반 강한 수면욕 환상과 환기

판형과 종이를 예술로 편입시키려는 영업자다빈치 출판사 박성식 대표 특강 후기

9월 23일 평소보다 점심을 많이 먹었던 날이다 잠을 며칠간 못 자 피곤했다

오후 1시 30분이 살짝 지나서 다빈치 출판사 박성식 대표의 특강이 시작됐다

다빈치 대표님은 처음 뵐 때부터 남다르셨다 서울출판예비학교 입학 면접에서

여자 술 담배를 각각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보셨다 lsquo솔직함을 어필해야

하는 순간인가rsquo하는 생각에 직설적으로 답했지만 lsquo더 문학적으로 얘기할 수

있었는데rsquo라는 후회를 안고 돌아왔다

마음과 다르게 첫 번째 시간은 정신없이 잠이 쏟아졌다 눈을 감고 귀 기울였지만

턱을 괸 채 버티는 동안 50분이 지났다 대표님께 캔 커피를 하나 드리고 맞이한 두

번째 시간 그 한 시간 동안 나는 현실 옆의 어떤 이상 내지는 환상을 본 것 같다 그동안

듣던 강의들을 놓고 lsquo이상적인 관점이다rsquo 혹은 lsquo현실적이다rsquo라고 구분했던 판단의 폭

자체가 좁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성식 대표님은 내 머리에 있던 lsquo책rsquo에 대한 인식을 전복시켰다 자본주의 출판의

몰락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시작됐다는 말 출판 기본 특성인 다품종 소량 생산은 돌아올

것이며 다품종 소량 생산을 넘어 다품종 소량 lsquo고급 생산rsquo을 추구하고 싶다는 말은 나를

달뜨게 했다 주류에 반하는 사고를 가진 중년의 개성과 내공에 교실 풍경이 환기됐다

교육 수단으로 책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지만 책은 그만큼 사회적 의무와 희생을

짊어져왔다 출세와 공부 앞에서 책이 가진 기호(嗜好)성은 변두리로 내몰렸다 책을

읽어야만 제대로 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분위기는 옳지 않다 독서는 성향의 범주지 성역이

돼선 안 된다 정보와 지식의 전달은 모바일 등에 넘겨주고 종이책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공동체로 돌아와야 한다 그게 원래 자리라는 대표님의 주장이 새롭고 강렬하다

자본주의 3대 원칙인 lsquo더 빨리 더 많이 더 싸게rsquo 체계는 표준화와 규격화를 동반하며

매우 효율적이다 현재 사용하는 종이는 자본주의 원칙에 최적화돼 있다 그러나 대표님은

인쇄기계로 소화하지 못하는 질감과 전혀 다른 발색을 지닌 lsquo종이rsquo에 주목했다 그 종이로

콘텐츠 종이 판형이 완벽하게 들어맞는 예술서를 만들고 시장을 설득한다면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책 판매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전했다 종이 자체가 책의 예술성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한지(韓紙)를 예로 들면서 훌륭한 텍스트와 이미지를 한 차원 끌어올리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많은 부수를 팔아야 성공한 출판 많은 부수를 파는 것을

목표로 하는 시대는 저물고 있다 기존 유통과 판매 방식

안에 갇혀서는 불황에 매몰될 뿐이다 소량의 고급화된

책을 꿈꾸는 것과 전시회를 책과 결합하는 것도 다른 길을

물색하는 과정이다

대표님은 10년 전부터 lsquo이 원고는 내가 누구보다 잘

만들겠다rsquo lsquo이 원고는 내가 못하면 누구도 못할 것 같다rsquo라는

생각이 든 책만 출간을 진행했다고 한다

강의 중간 자신의 독특한 철학을 전달하는 것에 대해 가벼운

염려를 하셨지만 이론적이고 실용적인 분야에 몸담더라도

예술적 사고의 유연성은 필요하다고 본다 돈과 인문정신을

구분하면서 필요할 때 양쪽에서 자극 받고 차용하는 것이 마케팅의 융통성과 힘을 기르는 길일 것이다

마케터반 11기 이창환

편집자반 김영준 학우가 그린

『이 외로운 사람들아』 일러스트

박성식 대표가 기획한 lsquo오름rsquo전

22

하늘

습탁은 농도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하늘

습탁은 농도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이 글은 심우진 선생님의 탁본 세미나 수업에 대한 우리들의 즐거운

기록이다 탁본은 습탁(濕拓)과 건탁(乾拓) 두 종류로 구별된다

습탁은 나타내고자 하는 물체 위에 물을 묻힌 후 종이를 그 위에

밀착시키고 먹물 묻은 솜방망이로 가볍게 두드려서 물체를 표현하는

방법이다 물체의 패인 부분을 제외하고 볼록한 부분의 모양대로

종이에 먹이 묻어 문자나 문양이 드러난다 건탁은 이름 그대로 물을

사용하지 않고 마른 상태의 먹인 고형묵(固形墨)을 사용한다 우리는

각자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사물과 자연을 이용해 탁본 작품을

만들고 서울출판예비학교 꼭대기 층에서 작품을 공유했다

디자인반 이 시간을 그대로 탁본할 수 있다면심우진 선생님의 탁본 세미나

저는 신문지를 구겨서 해봤어요

응 그런데 이건 방바닥 같은데

방바닥까지 묻어 나와 버렸네요

[학생들 하하하]

저는 일단 큰 나무 기둥을 떠봤고요

오솔길의 짚도 해보고 저희 집 바닥과

벽면도 신기해서 떠봤어요 집 벽면 중에

대리석도 있고 특이한 벽면이 많거든요

부잣집인가 보네

[학생들 깔깔깔]

승연

심우진 선생님

승연

승연

심우진 선생님

이건 파프리카인데 저희 집 개가 완성한 종이를 찢었어요

[학생들 하하하]

좀 작고 납작한 파프리카를 반으로 잘라서 습탁했어요 또

이건 철조망인데 용 비늘처럼 나와서 재밌었어요 아나콘다

같기도 하고 철조망이 날카로워서 습탁하니 종이가 자꾸

찢어져서 다시 하게 됐어요 근데 이거요hellip 남자친구

있으면 커플끼리 한 번 해보세요 한 명은 잡아주고 한 명은

습탁하고hellip 되게 로맨틱 성공적

자랑하는 거니

[학생들 깔깔깔]

수빈

수빈

심우진 선생님

혜민

정묵

처음에 나뭇잎이 세세하게 잘 나올 줄 몰랐는데 그

줄기의 질감이 잘 나왔고 버려진 타이어를 끌어서

생긴 모양으로도 습탁을 했는데 생각보다 잘 나와서

막상 찍어보면 생각과 다르다는 것을 느꼈어요

저도요 결과물이 뚜렷하게 안 나올 줄 알았는데

디테일이 잘 나타나 있었고 입체를 평면적으로

찍는 것 자체가 재밌었어요

수정

저는 빗자루를 해봤어요 너무 얇아서 안 나올

거라 생각했는데 빗자루 문양이 잘 나와서

재밌었고 머리카락도 해봤는데 머리카락은

끝 부분이 잘 나오는 편이에요 위쪽은 다

뭉쳐있는데 끝 부분은 펼칠 수 있으니까요

23

저는 결이 얇은 것들을 뜨는 것이 재밌었어요

머리카락처럼요 머리 긴 사람에게 부탁해서

눕히고 했어요 그리고 이건 얼굴인데요

처음에는 그냥 했는데 얼굴은 입체를 살리려면

스케치하듯 떠야 되요 결국 명암으로 입체감

조절을 해야 되죠 코가 너무 입체적이라 특히

힘들었어요

누구 얼굴이야

우리 언니hellip

[학생들 우와]

가은

심우진 선생님

가은

하얀

음각이 나왔을 때 너무 좋았고요하늘

습탁은 농도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소리

건 탁 보 다 는 습 탁 이 농 도 조 절 하 는 게

희 한 해 서 재 밌 었 어 요 농 도 조 절 이

관 건 이 거 든 요 먹 과 물 의 배 합 과

솜방망이가 먹물을 얼마나 흡수하는지 그

흡수량이 중요하고요

윤미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꽤 많은데 만져보면서 건탁을 뜨니까 좋았어요 전에

습탁할 때는 시멘트 벽 같은 걸 하다가 나뭇결을 하니까

살아있는 느낌이었어요 생각했던 것처럼 나와서

좋았고 솔방울이나 나뭇잎 같은 섬세한 것들은 제대로

나오지 않아서 아쉬웠어요 섬세한 것들은 습탁으로

해봐야겠어요 그래도 다양한 나무를 건탁해봐서

만족해요

소현

저는 일상적인 것들로 습탁을 해봤어요

처음에는 단순하게 오돌토돌한 느낌만

있 을 줄 알 았 는 데 색 다 른 느 낌 이 나 서

재밌었어요

탁본 세미나를 마치고 그 다음 주에 지하 강당에서 촬영하는 시간을

가졌다 촬영 후에 보정도 했다 나뭇잎의 결 무늬 타이어 자국

그리고 사람의 머리카락까지도 좋은 디자인의 재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보았고 나누었다 건탁과 습탁의 장단점을 이 수업으로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심우진 선생님의 이번 탁본 수업도 지난 활자

수업처럼 지식 습득은 물론이고 경험까지 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 시간들이 앞으로 출판 디자이너로서의 감각을 더 풍요롭게 해 주지

않을까

디자인반 11기 사공예원

하얀

음각이 나왔을 때 너무 좋았고요

습탁은 농도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솜방망이가 먹물을 얼마나 흡수하는지 그

흡수량이 중요하고요

윤미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꽤 많은데 만져보면서 건탁을 뜨니까 좋았어요 전에 꽤 많은데 만져보면서 건탁을 뜨니까 좋았어요 전에

이건 파프리카인데 저희 집 개가 완성한 종이를 찢었어요

[학생들 하하하]

좀 작고 납작한 파프리카를 반으로 잘라서 습탁했어요 또

이건 철조망인데 용 비늘처럼 나와서 재밌었어요 아나콘다

같기도 하고 철조망이 날카로워서 습탁하니 종이가 자꾸

찢어져서 다시 하게 됐어요 근데 이거요hellip 남자친구

있으면 커플끼리 한 번 해보세요 한 명은 잡아주고 한 명은

습탁하고hellip 되게 로맨틱 성공적

자랑하는 거니

[학생들 깔깔깔]

24

9시 30분 합정역 1번 출구 앞

ldquo누나rdquo 소리에 쳐다보니 반가운 공 총무의 얼굴이 보였다 정류장

앞으로 길게 늘어선 줄에 합류하여 파주로 날 데려다 줄 2200번

버스를 기다리고 있으니 반가운 얼굴들이 계속 나타났다 한 대의

버스를 보내고서야 겨우 2200번 버스에 탑승해 파주로 출발할 수

있었다

10시 15분 파주 lsquo다산교 앞rsquo 정류장 하차

4개의 정류장 총 57분이 걸린다고 알려준 N사 지도 어플의 정보와는

달리 30분 만에 파주에 도착했다 일찍 도착해 먹을 것을 찾아 헤맨

예비 마케터들은 편의점에서 주린 배를 채웠고 lsquo지혜의 숲rsquo을 살짝

염탐하며 11시까지 시간을 보냈다

11시 05분 보진재 2층

1912년 설립되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인쇄소인 보진재 관계자

분이 나와 간단히 인사 말씀을 하고 각 반의 인솔자를 소개해주셨다

마케터반의 인솔자는 서동관 과장님 디자인반 편집자반 마케터반

순으로 견학을 시작했다

11시 15분 보진재 견학 시작

제일 먼저 본 곳은 제판실이었다 필름 인쇄가 줄어들고 CTP로

대체되는 추세지만 어떤 분들은 여전히 필름 작업을 하고 계셨다

이유를 물어보니 서동관 과장님은 예전 필름이 남아 있기도 하고

출판사에 따라 필름을 고집하는 곳이 있다고 하셨다

한번에 5도 인쇄가 가능한 기계를 보는 중에 서 과장님이 말씀하셨다

ldquo한 유닛(unit)당 23억 정도 해요rdquo 그렇다면 유닛 다섯 개가

돌아가고 있으니 적어도 10억짜리 기계라고 내 눈에 보이는 건 그냥

낡고 큰 기계인데 10억이 넘는다니 놀랐다 또 과장님께서 자랑스레

말씀하신 한 가지 잉크 농도 조절을 자동으로 하는 기계가 보급된

곳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었다 원래는 사람이 눈으로 보고 수정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재판을 찍을 경우 초판과 동일한 색상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있지만 보진재는 기계가 자동으로 조정해주어 수월한

작업을 할 수 있다고 하셨다

매염실도 보고 제본실도 구경했다 인쇄된 종이를 접지하고 제본을

마친 후 마지막으로 제단을 하면 책이 완성되어 나왔다 그 모든

과정을 보고 난 후 서 과장님이 건넨 완성된 책의 무게는 보통의

그것보다 조금 더 무겁게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윤전실이었다 견학 당일은 작업이 없어서

비어있던 윤전실이지만 윤전실이 주는 무게감은 컸다 윤전실은

롤(roll)로 인쇄하는 곳으로 8개의 롤이 양면 인쇄를 하고 건조와

접지까지 한 번에 가능한 기계도 있었다 대량생산을 위한 곳으로

주로 교과서나 EBS 학습지를 인쇄한다고 하셨다

12시 20분 견학 끝

1시간을 조금 넘긴 견학을 끝내고 밖으로 나오니 코가 따갑고 목이

말랐다 기계가 먼지를 빨아들여준다고는 하지만 수없이 많은

종이가 존재하는 공간에서의 종이 냄새는 강력했던 것이다 책이

제작되는 과정은 실제로 보니 다양하고 복잡했다 자동화가 많이

되어있지만 사람의 손길 없이는 절대 완성될 수 없는 과정들을 보며

책이 완성되기까지의 노력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lsquo책이 어떻게

만들어진다rsquo를 배우다가 lsquo책이 이렇게 만들어진다rsquo를 보니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예비 출판 마케터의

길로 들어선 후에 새로운 것을 보고 배울 수 있었는데 보진재 견학은

그 중에서도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책을 완성시키기 위한 모든 과정이

저마다의 몫을 하고 있었다 서울출판예비학교 졸업 후 출판계에

들어섰을 때 나는 과연 어떤 몫을 할 수 있을까 남은 2개월을 조금은

더 열정적으로 보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마케터반 11기 최다은

1 일일탈

학교 밖 견학 후기

피부로 와 닿는 책의 감촉 책의 냄새 책의 소리 보진재에서 책이 인쇄되는 과정을 만나다

필름과 인쇄판이 만들어지는 과정

25

우리가 이제 각자 편집자 마케터 디자이너가 되어 책 만드는 일을

시작하면 우리의 책은 이곳에서부터 그 lsquo탄생rsquo을 시작할 것이다 책의

근간이 되는 종이가 만들어지는 곳 한솔제지 공장에 다녀왔다 학기

초에 책을 파는 서점을 견학한 뒤 그 다음으로 출판사 종이에 활자를

찍어내는 인쇄소 그리고 마지막으로 lsquo종이rsquo를 만드는 제지 공장을

찾은 것이다 책이 만들어지는 순서대로라면 우리가 다녀온 순서를

거꾸로 해서 다녀왔어야 했지만 우리는 반대로 실제 과정을 거슬러

올라간 것이다 이렇게 거슬러 올라가는 과정에서 오히려 편집자란

직업에 겸허해질 수 있었다 가끔은 편집자가 책을 만드는 모든

과정 위에 군림하는 것 같이 느껴지지만 책의 물성을 만들어내는

거대한 기계 앞에서 우린 한없이 작아지기도 한다 lsquo한 권의 책rsquo이

만들어지려면 이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함을 이해해야 했다 이렇게도

복잡하고 힘겹게 만들어지는 책의 가치를 한 번 더 깊이 생각하게 된

계기였다 책이라는 건 의미가 담긴 조각들의 집합체이자 종이를

보기 좋게 물성화한 것 이론적으로야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눈으로 보고 느끼는 것과는 천지차이다

날씨마저 좋았던 9월 11일 평소보다 한 시간이나 이른 8시

30분에 세 반 학우들은 눈도 제대로 못 뜬 채 집합했다 대전까지

간다니 마치 여행가는 것 같은 살짝 들뜬 기분까지 안고 아침도 못

챙겨먹고 나왔을 우리를 생각해서 빵과 우유까지 준비한 한솔제지

측의 세심한 배려에 감동했다 배도 채우고 부족한 잠도 보충해가며

2시간 넘게 달려 신탄진 공장에 도착했다 도착하자 보이는 우리를

환영하는 현수막에 2차로 감동했다 우리를 위해 정말 많은 준비를

하셨구나 느낀 순간이었다

신탄진 공장 강당에 들어가서 간단한 공장 소개를 먼저 들었다

그리고 뒤이어 종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경청했다 수업 때보다

학생들의 집중력이 더 높아 보였던 건 내 착각이었길 종이는

1퍼센트의 펄프와 99퍼센트의 물로 이루어진단다 그래서 전반적인

공 정 의 대 부 분 은 물 을 처 리 하 기 위 한 과 정 이 나 다 름 없 었 다

생각보다 종이는 순수한 물질이라고 생각했다 종이(paper)의

어원은 이집트의 파피루스(papyrus)에서 왔다고 한다 중국의

lsquo채륜(蔡倫)rsquo이라는 사람이 제일 먼저 발명했고 고려시대에

일본으로 넘어간다 일본에 가장 마지막으로 넘어갔지만 종이의

기술력은 현재 일본이 가장 좋다 원료rarr초지rarr코팅 등의 공정을 거쳐

종이가 완성되는데 마지막 코팅 공정을 여자의 화장에 비유한 것

역시 기억에 남는다 코팅이 그렇게나 대단한 과정이라니

공장 안으로 들어가서는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시끄러워서 설명을

제대로 듣진 못했지만 앞서 들었던 설명을 떠올리며 기계들을

관찰했다 인쇄소에서 본 광경들도 거대하고 박력 있었지만 여긴

그보다 더 거친 느낌이었다 책은 서점에 놓여있을 때는 그렇게

얌전하건만 태어날 땐 이렇게 시끄럽다 또한 막 태어난 종이는

거대하고 또 거대했다 다들 마치 거대한 두루마리 휴지 같다고들

했다

견학을 다 마치고 다시 대전 공장으로 이동해 다 같이 점심 식사를

했다 기대 이상으로 맛있는 밥에 또 감동 더 힘내서 견학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아쉽게도 대전 공장 안에는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라 그 힘()을 발휘하진 못했다 대전 공장은 신탄진 공장과

다르게 책에 쓰이는 것이 아닌 제품 포장용 박스 종이컵 등 다른

용도에 쓰이는 종이를 만드는 곳이었다 그 과정의 차이를 눈으로

비교하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마지막으로 좋은 선물까지 손에

받아들고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다시 서울로 향했다

언제나 시작은 중요하다 각자의 일에 빠져들게 되면 점점 잊게 될

그 시작을 눈에 담고 오래 기억하기 위해 다녀왔다고 생각한다 요즘

초심을 잃었다는 생각이 종종 드는데 책에게도 초심이 있다면 바로 이

곳일까 시작의 의미에 대해 다시 곱씹어보았다

편집자반 11기 박혜원

우리의 글과 그림이 펼쳐질 종이의 탄생 한솔제지 신탄진 공장 견학

거대한 롤(상) 한솔제지 공장 앞에서 (하)

26

화양연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삶과 문학에 취하다

편집자반 한국문학 동아리 lsquo공감rsquo 그 대담의 현장

훗날 서울출판예비학교를 떠올릴 때 가장 즐거운 시간으로 기

억되는 날들은 동아리 활동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들의

화양연화(花樣年華)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 중

의 하루를 소개한다 문예창작학과를 전공한 문학소녀 김한나

학우를 필두로 창단된 편집자반 내 한국문학 동아리 lsquo공감rsquo은

모임 전에 한국작가를 한 명 정해 단편 두 편을 함께 읽고 키워

드나 질문을 스스로 뽑아 글을 써왔다 모여서 때로는 소설의

플롯이나 주제 문체에 대한 열띤 토론을 하고 때로는 작가의

외모()와 같은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며 삼천포로 빠지기도 했

다 우리끼리만 듣기엔 아쉽다 이 즐거운 대화를 모두에게 들

려주고 싶었다 이날 모임에선 김영하 작가의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단편집 속의 두 단편 lsquo엘리베이

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이하 엘리베이터)rsquo와 lsquo사진

관 살인사건(이하 사진관)rsquo에 대해 이야기했다 여기서는 lsquo엘리

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rsquo를 읽고 토의한 내용을

실었다

한나 참고로 김영하는 사람의 욕망에 대해 천착하는 작가야

그런 특성이 엘리베이터에는 안 나와 있는데 사진관에서는

잘 드러나 있어

상화 백가흠 작가에게 소설창작론 강의를 들었는데 그분이

소설의 기법을 설명하면서 알레고리랑 아이러니를 얘기했어

알레고리가 인물이나 소재를 비유적으로 설명하는 거래 예를

들어 핸드폰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다른

것에 핸드폰을 빗댐으로써 소설을 풀어가는 거

야 아이러니는 속도감 있게 이야기를 전개함으

로써 부조리나 모순을 드러내는 건데 김영하가

아이러니의 대표적인 작가래 단편인데도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내면보다는 사건이 일어나는

걸로 소설을 끌어가는 작가 우리가 지난 모임

에서 성석제를 굉장한 이야기꾼이라고 했잖아

그런데 난 김영하가 훨씬 이야기꾼스럽게 느껴

졌어 속도감 있고 lsquo이렇게 몰입을 할 수 있나rsquo

싶고 지난 모임들에서 읽었던 손보미나 편혜영

소설의 경우는 분위기나 주인공의 심정 내면에

의미를 부여해 야 했는데 김영하의 소설은 덮

자마자 아이러니가 느껴지면서 lsquo아 세상은 왜

이래rsquo 말하게 만들었어

법열 나는 엘리베이터 읽고 딱 lsquo뫼비우스의 띠rsquo가 생각났거든

뫼비우스의 띠가 안하고 겉이 구분이 안 되잖아 끝과 시작이

어딘지도 모르고 lsquo나rsquo가 겪는 상황이 현실인지 아닌지 구분이

안 되는 느낌 마지막에 lsquo나rsquo가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가 존재

하기는 했는지 혼란스러운 느낌을 받잖아 그게 앞의 환상적

인 부분이랑 맞물리면서 하나가 되는 느낌이라 뫼비우스의 띠

가 생각났어

상화 lsquo나rsquo가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구해주려고 고분군투하

다가 나중에 자기가 엘리베이터에 갇히잖아

오권 낀 남자의 발을 보면서 느꼈던 감상이 사실은 자기를 구

하고 싶었던 마음인 거지

(일동 오~ 그렇게도 볼 수 있네)

오권 무한도전의 무한상사 특집도 생각났어 뜬금없이 휴지

사용하는 길이에 대해 회의하는 장면에서 엘리베이터는 갇힌

사회 서로를 돌아보지 않는 사회를 의미하는 것 같아

한나 나는 반대로 오히려 엘리베이터를 희망적인 존재로 봤

거든 아파트도 그렇고 회사도 그렇고 각자 자신의 공간 안에

서 살다가 서로 만날 수 있는 장소는 엘리베이터 밖에 없으니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김영하 지음

문학동네 20100216

동아리 후기

27

까 lsquo나rsquo가 회사 엘리베이터 안에 여자와 같이 갇히잖아 사실

은 갇히지 않았으면 대화도 안하고 지나쳐 갔을 텐데 남자는

자기가 아침부터 버스 사고도 나고 성추행범으로 몰렸다고 얘

기하고 또 남자의 담배 피워도 되냐는 말에 여자는 담배에 대

한 불평불만을 속사포처럼 얘기하고 엘리베이터라는 공간이

아니었다면 이런 대화 자체가 없었겠지

오권 엘리베이터 타면 사람들이 하나같이 층수 바뀌는 것만

쳐다보고 있잖아

상화 요즘은 스마트폰

오권 자기 얘기를 하고 싶은 것 같아 하지만 상대의 얘기는

안 들어 lsquo너의 얘기는 관심 밖이지만 내가 불편한 것에 대한

얘기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하겠어rsquo라는 느낌

한나 그리고 우스웠던 게 볼일 보고 휴지 몇 칸 쓰는지 회의에

서 얘기하는 건hellip 사실 굉장히 사적인 얘기잖아 (일동 하하

하) 서로에 대해 다른 얘기는 일절 하지 않으면서 회의 내용은

개인적이고 사적이라니 아이러니한 거지

수경 진짜 웃기지 않았어 lsquo나rsquo가 자원 재활용 문제에 대한 중

대 보고가 있다고 계속 빨리 가야한다고 했던 게 겨우 그거야

상화 겨우 이딴 회의하려고 지금 엘리베이터에 낀 사람 놔두

고hellip 생명이 더 중요한데 지금 휴지 구하려고hellip

(일동 하하하)

한나 lsquo나rsquo가 불쌍했던 이유가 자기한테 닥친 일들은 lsquo할 수 없

지 뭐rsquo 이런 식으로 넘기는데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 걱정하고

갇힌 여자 걱정하고hellip 정작 자기 걱정은 안 해

오권 영화 lt라이터를 켜라gt 봤어 조폭들한테 얻어맞으면서

도 주인공은 무조건 자기 라이터만 찾겠다고 그러거든 이 소

설의 lsquo나rsquo와 비슷한 느낌이 들더라고 그 영화에서는 라이터가

주인공의 존재를 투영하는 소재거든 lsquo나rsquo는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구해야만 자기가 산다는 느낌을 받은 거라 해석하면

너무 나간 건가

법열 아니요 형이 아까 지적해준 게 와 닿았어요 그 고군분

투가 결국 자기를 구하려는 노력이라는 지적이요

상화 그나마 lsquo나rsquo가 이 소설에서 제일 인간적이지

수경 어딘가 찌질한 느낌도 들어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와

lsquo내rsquo가 동류라고 자각하고 연민을 갖는 느낌이었거든 lsquo나rsquo가

인간적이고 윤리적이라는 생각은 나는 글쎄hellip 더 적극적으

로 할 수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 자기 사이클에서 벗어나

지 않는 한도 내에서 걱정만 하잖아 소설 안에서 비극과 희

극이 번갈아 가며 나타나는데 트럭과 버스가 충돌했을 때

lsquo나rsquo는 lsquo버스 카드 일로 충돌하지 않게 되어 적이 기뻤다rsquo고

생각해 버스 운전사는 트럭 백미러에 가슴이 받혀서 죽었는

지도 모르는데 lsquo다행히 나는 허리가 좀 뻐근한 것만 빼면 별

다른 상처가 없는 듯했다rsquo 이런 생각들을 하는 게 좀 섬뜩했

민희 사람은 다 이중성을 가지고 있잖아 나를 보는 듯했어

만약 학교 가는 길에 엘리베이터에 낀 사람을 봤다면 그렇

지만 나도 얼마나 바빠 몇 분 늦으면 지각 체크 당하고 출석

80퍼센트를 못 채울 수도(일동 웃음) 있는 상황이라면 내

가 그 남자를 구할 수 있을까 일단 지나치고 119에 전화하려

고 했으나 핸드폰이 없는 상황에 나도 처할 수 있는 거잖아 나

만 생각하는 잔인한 면도 내 안에 있고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

도 내 안에 있어 이런 찌질한 모습도 나고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정의롭게 구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상화 기준이 다른 것 같아 lsquo나rsquo 정도면 착하다고 생각했거든

수경 주변 사람들이 약간 마네킹 같지 않아 주인공 주변에

장치되어있던 다른 사람들이 너무 비인간적이기 때문에 lsquo나rsquo

가 돋보이는 거지 lsquo나rsquo는 지극히 평범한 우리 모습 같아 내가

어떻게 할 생각은 없고 궁금하기만 한 거야

민희 그 궁금함과 찜찜함도 죄책감이라 생각돼 아 내가 어떻

게 해줬어야 했나

한나 책임 회피일까

상화 그래서 나는 키워드 뽑은 것 중 하나가 119야 구해주고

싶으면 직접 내 손으로 잡아 빼주던가 엘리베이터를 들어 올

릴 사람을 모아야 했는데 신고 생각만 하잖아 이미 이건 누

가 대신 해결해줘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그나마 우리

사회에서 사고를 수습해주는 건 119밖에 없고 조선시대에는

119같은 거 없고 마을 사람들이 모여 구해줬을 텐데 어쩔 수

28

없는 현대인의 단상이긴 해 현대가 분업사회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들 바쁘고 삶이 개인화 파편화되어 있으니까 119 같

은 집단이 필요한 거지 그래서 난 119를 신의 영역이라고 썼

어 lsquo나rsquo는 119를 거의 신적인 존재처럼 생각하잖아 부르면 모

든 게 해결될 것처럼 핸드폰 빌리고 공중전화 찾고 그런데 막

상 교통사고 현장에서 119 대원에게 면대 면으로 얘기를 했더

니 그들은 무슨 그따위 장난을 하냐고 말해 구조도 실은 신이

아니라 사람이 하는 일이고 그 사람이 관심이 없으면 묻히는

거지

오권 전화를 거는 것과 직접 구해주는 것의 차이가 큰 것 같아

자기가 구해주는 건 적극적인 행동이고 119에 전화하는 건 스

스로 최소한 양심적이긴 하다고 여기는 행동

수경 그런데 엘리베이터에 낀 사람을 아무 것도 모르는 일반

인이 어떻게 했다가는 더 위험해질 수도 있잖아

오권 맞아 사회가 시스템화하고 고도화될수록 각자의 업무가

분업화되었고 전문분야가 생겨났으니까 옛날 같았으면 애 낳

으면 그냥 동네 아주머니가 애 받고 어미가 죽으면 젖동냥 다

녔는데hellip 이젠 사고가 나면 생각이 119에 먼저 미치는 시대가

된 거지

수경 그래서 어딘가에 널브러져 다친 인간이 아니라 엘리베이

터라는 공간에 낀 남자를 설정한 것 아닐까 엘리베이터는 현

대화의 상징이잖아

한나 lsquo나rsquo도 어쩔 수 없는 게 출근 시간에 쫓겨서 시계를 계속

봐 먹고 사는 일이니까

오권 출근했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다시 집으로 돌아가

낀 사람을 구해주면 굉장히 희망찬 소설로 바뀔 텐데hellip (일동

웃음)

수경 이 소설로 현대 사회의 폐단은 다 얘기할 수 있겠는데

상화 김영하는 천재인 것 같다

누군가 그리고 잘생겼잖아

누군가 잘생긴 거야

누군가 지적인 분위기가 있어서 좋아 (한참 얘기)

한나 또 인상 깊었던 게 구두에 집착하는 거 lsquo나는 날렵한 치

타처럼hellip 구두를 가지고 엘리베이터에서 빠져나오는 데 성공

했다 허탈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rsquo는 구절

오권 자살한 사람들이 구두를 가지런히 벗어놓는 이미지가 무

슨 상징처럼 있잖아

한나 신발 한 쪽 없이 다녀봤어 계속 기우뚱대서 내가 걷거

나 서 있을 때 내가 잘못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여기서 lsquo나rsquo가

그랬을 거야 사실 lsquo나rsquo처럼 사는 게 정상인데 세상이 잘못된

건데

상화 이 소설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감정표현이잖아 하루 종

일 얼마나 힘들었겠어 처음으로 감정표현을 하니까 불쌍했어

오권 휴머니즘 불쌍론 또 나왔네(일동 웃음) 그럼 이제 사진

관으로 넘어가볼까hellip

편집자반 11기 이상화

2929

책씹는맛 01 냄새라는 경이 lt감각의 박물학gt 후각편을 읽고

냄새에는 언어가 없다 어휘가 부족한 우리는 말문이 막힌

채 불명료한 쾌감과 자극의 바다에서 말을 찾을 수밖에

없다1

이 말은 다이앤 애커먼의 『감각의 박물학』 제 1장 후각에

나오는 구절이다 냄새를 글로 쓰고자 하는 나의 시도가 늘

실패로 귀결되는 이유를 이 구절에서 찾았다 작가의 말처

럼 냄새에 대해 쓴다는 건 언어 밖 세계로 나갔다가 다시

언어로 되돌아오는 길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길에서 헤매

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후각이라는 감각에서 길을

잃는 것은 낭만적인 일이기도 하다 lsquo냄새의 뇌관을 건드리

면 모든 추억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기rsquo2 때문이다 냄새 하

나에 수많은 추억들이 줄줄이 기억의 회로 위로 떠오른다

예를 들면 바다 냄새 하나만 상상해도 그와 관련된 수많

은 기억들이 머릿속에 뒤섞인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바닷가와 관련된 그 모든 추억들이 기억의 영사막에서 한

편의 옴니버스 영화 형태로 내게 다가온다 난 내 기억의

관객이 되어 그 영화를 보다가 견딜 수 없는 그리움에 젖는

다 이 영화에 대한 감상문을 적으려면 나는 말문이 막힌

다 그래서 몇 글자 적다가 결국 글을 쓰기를 멈춘다 굳이

언어로 표현하자면 쓸 수 없는 그리움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1 『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옮김 작가정신 20040720

A Natural History of the Senses(1991) 17쪽

2 같은 책 18쪽

결국 lsquo언어가 존재하는 세계에서 경이는 언어의 칼날 아래

서 쉽게 해부되고 냄새는 자주 혀끝에서 맴돈다rsquo3 냄새의

숭고함 앞에서 우리는 말을 멈춘다 이처럼 냄새는 말할 수

없는 자연의 경이로움과 닮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lsquo냄새가 우리의 마음을 그토록 강하게 움직이는 것은 부분

적으로 그 이름을 부를 수 없기 때문rsquo4이라고 한다 저자는

그렇기에 사람들이 냄새를 lsquo분 냄새 비슷한 펭귄 냄새가

나는 호화로운 화장실 냄새가 나는rsquo 같은 말로 표현할 뿐

이며 냄새에 대한 이름은 주어져 있지 않다고 말한다 또

한 종류는 같아도 강약과 농도가 다른 각각의 냄새에 이름

을 붙여줄 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우린 일상적으로 냄새를

맡으면서도 그 냄새와 멀리 떨어져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명명되지 않은 것은 결국 잊히는 게 아닐까 부를

수 없음에서 오는 경외감과 숭고함이 있을지라도 냄새는

말해져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말할 수 없는 것에 자꾸

만 침묵하기만 해야 할까

감각도 모험의 영역이 될 수 있다 세계 일주만이 세상을

아는 길일까 lsquo나rsquo를 온전히 아는 것이 역설적으로 세상과

가까워지는 일인지도 모른다 나를 알기 위한 길 중 하나가

내가 가지고 있는 감각을 이해하고 그걸 언어로 표현하는

일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어쩌면 우리와 제일 가깝지만 말

하기 낯선 감각 후각을 이해하는 일이 중요한지도 모른다

냄새라는 감각 속에서 우리 모두 길을 잃고 헤매고 모험해

보자 냄새에 나름의 이름을 지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

리고 농도에 따라 냄새를 구분하는 일도 해보자 냄새라는

경이는 우리를 더 이상 침묵으로 이끌지 않을 것이다

디자인반 11기 백가은

3 같은 책 22쪽

4 같은 책 22쪽

『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 옮김

작가정신 20040720

A Natural History of the Senses(1991)

3030

02 현실을 전복시키는 비현실

모호함이 주는 환상성

20세기 중반 중남미 소설은 전통적인 사실주의 서사 구조

를 깨고 현실과 환상을 혼합시키는 새로운 글쓰기 방식으

로 세계문학의 중심에 선다 이 시기에 주목 받은 일련의

중남미 작가들을 가리켜 lsquo붐 세대 작가rsquo라 칭하는데 아르

헨티나의 환상문학 작가 코르타사르는 이 붐 세대 작가군

의 선구자이자 대표 주자 격인 인물이다 그러나 그 문학적

성과와 명성이 무색하게도 국내 독자들에겐 그의 이름이

아직 생소한 것이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에서는 그

의 작품이 중남미 단편 선집에나 몇 편이 번역되었을 뿐 본

격적으로 소개된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중남미 문학을 공부했고 그의 몇 안 되는 번역 작품을 인

상 깊게 읽었던 독자 입장에서 이번에 출간된 코르타사르

의 단편집『드러누운 밤』은 가뭄의 단비처럼 반가운 신간

이다

환상 문학이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J R R 톨킨 류의 판타

지소설 혹은 쥘 베른이나 아이작 아시모프 류의 SF소설을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코르타사르의 환상문학은 이들 범

주에 들어가지 않는다 코르타사르 작품에서 나타나는 환

상이란 토도로프가 정의한 바 있는 환상 그러니까 자연적

인 것과 초자연적인 것 사이의 망설임에서 발생하는 환상

에 가깝다 따라서 판타지소설의 lsquo현실과 동떨어진 환상rsquo

혹은 SF소설의 lsquo설득력 있고 현실감 있는 환상rsquo을 기대하

는 독자라면 아마 십중팔구 그의 작품을 읽고 실망할 것

이다 어쩌면 이게 무슨 환상문학이냐는 푸념을 늘어놓을

지도 모르겠다 역시 가장 좋은 것은 선입관을 버리고 책을

읽는 것이다

코르타사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lsquo모호함rsquo이다 인물이나

배경 묘사에서 제시되는 기본적인 정보도 모호하고 사건의

전개 양상이 가진 당위성도 모호하다 작품 내에서 주요한

스토리 라인을 담당하는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경계도 모

호하며 심지어는 화자의 정체마저 모호한 작품도 있다 이

런 모호함의 향연은 짙게 깔린 안개와도 같아서 독자들은

그 속에서 한 치 앞도 제대로 내다볼 수 없음은 물론이요

이미 지나간 사실조차도 자신이 맞게 인식한 것인지 확신

할 수 없을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무엇이 진짜인지

독자들의 판단을 망설이게 만드는 이런 상태야말로 코르

타사르의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는 환상이란 개념이다 독

자들은 이 환상 속에서 그저 전방을 주시하며 천천히 나아

갈 수밖에 없다

다행스럽게도 코르타사르는 독자들의 시련을 헛되게 하지

않는다 작품의 시작점 일상 세계에 우연히 침투한 lsquo비현

실적인 것rsquo은 안개 속에서 알게 모르게 자신의 지분을 늘려

나간다 그리고 작품의 종점에 다다른 독자들은 비현실이

현실이 되고 현실이 비현실이 되는 이전과는 전혀 새로운

세계와 마주할 것이다 다시 말해 필연과 이성의 법칙이 지

배하는 세계가 우연과 환상이 지배하는 세계로 변하는 것

이다 이러한 세계의 전복은 마치 여기저기 단서를 흩뿌리

고 사람들을 알쏭달쏭하게 만들었다가 결말부에서 모든

것을 폭발시키는 추리소설 혹은 반전영화를 보는 듯한 재

미를 선사한다

그렇다면 코르타사르가 이 소설들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책을 다 읽고 난 독자라면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의문점이다 코르타사르는 자신이 환상문학을 쓰는

이유를 ldquo법칙이나 원칙 혹은 인과관계나 특정한 심리 또

는 잘 그려진 지리학과 같은 체계에 의해 세상이 지배되고

있다는 것에 반대rdquo하고 ldquo우리가 잘 모르며 우리에게 잘 다

가오지 않는 새로운 질서에 관해 생각해보기 위함rdquo이라고

설명한다 짧게 말해 이 세상에 필연이란 존재하지 않으

며 자신은 그것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말이다 이

게 전부다 순문학이라면 거장의 문학이라면 이보다 더 심

오한 통찰 혹은 비판이 있을 것이란 생각에 문장 속 숨겨진

의미를 발견하고자 머리를 싸맬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조

언을 하자면 독서는 독서 그 자체로 즐기면 된다 적어도 이

책에서는 그렇다 모호함과 예상외의 전개 속에서 재미를

느끼고 코르타사르가 묘사하는 세계의 불가지(不可知)성

을 어렴풋하게나마 인식할 수 있다면 이미 그것으로 충분

하다

편집자반 11기 강귀욱

『드러누운 밤』

훌리오 꼬르따사르 지음 박병규 옮김

창비 20141124

La noche boca arribaJulio Cortazar

31

03 얼어붙은 자의식의 바다를깨뜨리고 생명을 불어넣는 책 『데미안』

데미안을 읽고 나서야 그 동안 내가 두 발 딛고 서 있던 땅이

굳고 단단한 대지가 아니라 얼어붙은 바다에 불과했음을 알

았다 데미안은 도끼를 가져와 이 꽁꽁 언 바다를 가차 없이

내리 찍었다 그리고 말했다 얼어붙은 바다를 단단한 땅인

줄 알고 사느니 그 얼음을 깨부수고 그 속에 빠져 죽기 살기

로 허우적대라고 그러면 그 속에서 너는 너 자신을 똑바로 마

주하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성장할 것이라고

주인공 싱클레어도 그를 둘러싸고 있던 세계를 깨뜨려 나가

며 성장한다 그 모든 과정은 결국 진정한 자기 자신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가 깨뜨린 가장 큰 세계는 바로 자신의 사고 체계였다 세상

을 바라보는 기존의 이분법적이던 시각 고정되고 획일화된 시

각을 버렸다 주인공은 세계 안에 심지어는 자신 안에도 선하

고 악하며 밝고 어두운 양극단의 것들이 공존함을 이해하고

두 세계를 끌어안았다 주인공은 귀와 눈을 가리던 장막을 걷

어내 버리고 세상을 바로 보게 되었다 상극인 것들의 괴리로

이루어진 이 모순된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곧 자신 안의 부조

화 또한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스스로에게 다가서는 첫 걸음

이었다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양극단의 세계 사이에서 싱

클레어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며 흔들리기를 반복했다 이

때 그에게는 삶을 지탱할 중심축이 없었다 항상 내면이 아닌

외부 세계에서 자신이 속할 자리를 찾아 헤맸다 그가 비로소

온전한 자신을 만난 순간은 어느 편으로도 치우침 없이 스스

로의 기준으로 홀로 서게 되었을 때였다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 이 길은 당신이 내면에 있는 모

순되는 두 세계 한없이 나약하고 뒷걸음치는 비열한 모습들

과 정갈하고 깨끗한 곧은 힘들을 동시에 직시하는 순간에 시

작된다 그리고 이 길은 두 세계 속에 들어가 이리저리 휩쓸리

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세계를 밟고 우뚝 올라서서 스스로

가 중심이 됨으로써 앞으로 펼쳐진다

이제 lsquo자아를 찾으라rsquo는 지루하고 흔한 이야기가 더 이상 빤

하거나 우습지 않다 묵직한 울림이 되어 나를 흔든다 그냥

나만 붙잡고 흔드는 것이라면 손사래 쳐 뿌리치겠는데 내가

밟고 있던 땅 속해 있던 세계를 뿌리째 흔들어 버린다 읽는

내내 속이 답답하고 나에게 화가 난다 그런데 이렇게 마구

혼나면서 이상하게도 후련한 구석이 있다 호통을 치는 데미

안이 사실은 우리를 응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막연

하고 무기력한 안개에 휩싸여 있을 때 데미안은 그만의 방

식으로 우리에게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준다 물론 갈 방향을

정해준다거나 각자의 사정을 듣고 상담을 해주는 것은 아니

다 오로지 궁지로 몰아세울 뿐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사람들

은 잊고 있던 lsquo나 자신rsquo을 일깨운다 아 그동안 lsquo나rsquo에 대해 생

각해본 적이 있던가 라는 정도만이라도 좋다 이 물음이 바로

여정의 시작이니까

그렇게 스스로에게 묻고 나면 더 이상 전처럼 살 수는 없기 때

문이다 아니라면 자기 자신에게 면목이 없을 것이다 이 무서

운 책이 우리를 혼내고 몰아치면서도 여전히 영원한 고전이자

필독서로 사랑 받는 이유다

lsquo우리들 속에는 모든 것을 아는 한 사람이 있다rsquo고 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혼이 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혼

이 났다는 것은 자신 안에 있는 lsquo그 사람rsquo이 말을 하기 시작했

다는 뜻이니까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목소리가 희미하

고 멀리 있다 하여도 숨죽여 귀 기울이는 일 자체가 자신에게

로 가는 과정임을 잊지 말고

편집자반 11기 배예리

『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민음사 20001220

Demian Die Geschichte von Emil

Sinclairs Jugend(1919)

31

03 얼어붙은 자의식의 바다를깨뜨리고 생명을 불어넣는 책 『데미안』

데미안을 읽고 나서야 그 동안 내가 두 발 딛고 서 있던 땅이

굳고 단단한 대지가 아니라 얼어붙은 바다에 불과했음을 알

았다 데미안은 도끼를 가져와 이 꽁꽁 언 바다를 가차 없이

내리 찍었다 그리고 말했다 얼어붙은 바다를 단단한 땅인

줄 알고 사느니 그 얼음을 깨부수고 그 속에 빠져 죽기 살기

로 허우적대라고 그러면 그 속에서 너는 너 자신을 똑바로 마

주하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성장할 것이라고

주인공 싱클레어도 그를 둘러싸고 있던 세계를 깨뜨려 나가

며 성장한다 그 모든 과정은 결국 진정한 자기 자신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가 깨뜨린 가장 큰 세계는 바로 자신의 사고 체계였다 세상

을 바라보는 기존의 이분법적이던 시각 고정되고 획일화된 시

각을 버렸다 주인공은 세계 안에 심지어는 자신 안에도 선하

고 악하며 밝고 어두운 양극단의 것들이 공존함을 이해하고

두 세계를 끌어안았다 주인공은 귀와 눈을 가리던 장막을 걷

어내 버리고 세상을 바로 보게 되었다 상극인 것들의 괴리로

이루어진 이 모순된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곧 자신 안의 부조

화 또한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스스로에게 다가서는 첫 걸음

이었다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양극단의 세계 사이에서 싱

클레어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며 흔들리기를 반복했다 이

때 그에게는 삶을 지탱할 중심축이 없었다 항상 내면이 아닌

외부 세계에서 자신이 속할 자리를 찾아 헤맸다 그가 비로소

온전한 자신을 만난 순간은 어느 편으로도 치우침 없이 스스

로의 기준으로 홀로 서게 되었을 때였다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 이 길은 당신이 내면에 있는 모

순되는 두 세계 한없이 나약하고 뒷걸음치는 비열한 모습들

과 정갈하고 깨끗한 곧은 힘들을 동시에 직시하는 순간에 시

작된다 그리고 이 길은 두 세계 속에 들어가 이리저리 휩쓸리

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세계를 밟고 우뚝 올라서서 스스로

가 중심이 됨으로써 앞으로 펼쳐진다

이제 lsquo자아를 찾으라rsquo는 지루하고 흔한 이야기가 더 이상 빤

하거나 우습지 않다 묵직한 울림이 되어 나를 흔든다 그냥

나만 붙잡고 흔드는 것이라면 손사래 쳐 뿌리치겠는데 내가

밟고 있던 땅 속해 있던 세계를 뿌리째 흔들어 버린다 읽는

내내 속이 답답하고 나에게 화가 난다 그런데 이렇게 마구

혼나면서 이상하게도 후련한 구석이 있다 호통을 치는 데미

안이 사실은 우리를 응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막연

하고 무기력한 안개에 휩싸여 있을 때 데미안은 그만의 방

식으로 우리에게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준다 물론 갈 방향을

정해준다거나 각자의 사정을 듣고 상담을 해주는 것은 아니

다 오로지 궁지로 몰아세울 뿐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사람들

은 잊고 있던 lsquo나 자신rsquo을 일깨운다 아 그동안 lsquo나rsquo에 대해 생

각해본 적이 있던가 라는 정도만이라도 좋다 이 물음이 바로

여정의 시작이니까

그렇게 스스로에게 묻고 나면 더 이상 전처럼 살 수는 없기 때

문이다 아니라면 자기 자신에게 면목이 없을 것이다 이 무서

운 책이 우리를 혼내고 몰아치면서도 여전히 영원한 고전이자

필독서로 사랑 받는 이유다

lsquo우리들 속에는 모든 것을 아는 한 사람이 있다rsquo고 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혼이 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혼

이 났다는 것은 자신 안에 있는 lsquo그 사람rsquo이 말을 하기 시작했

다는 뜻이니까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목소리가 희미하

고 멀리 있다 하여도 숨죽여 귀 기울이는 일 자체가 자신에게

로 가는 과정임을 잊지 말고

편집자반 11기 배예리

『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민음사 20001220

Demian Die Geschichte von Emil

Sinclairs Jugend(1919)

32

박세길 인터뷰

진정한 역사가는 과거에 파묻히지 않는다옥(獄)에서 옥(玉)을 만든 작가 박세길 인터뷰

박세길 저자는 처녀작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로 80년대

대표 역사서 자리를 꿰찬 분입니다 1986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감되었을 때 감옥에서 역사책을 읽으며

사회 모순에 대해 고민했고 출소하자마자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집필했습니다 정권 탄압 속에서 왜곡된

현대사를 바로 잡았다는 의미를 지닌 이 대표작은 오랫동안

고시생과 대학생들의 필독서로 꼽혔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읽은 박세길 저자의 저서는 지난 6월 출간한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입니다 기사를 쓰고 편집할 때 청년 세대를

겨냥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박세길 저자는 역시나

청년들의 미래에 큰 관심을 갖고 계셨습니다 취업을

눈앞에 둔 서울출판예비학교 학생들이 가져야 할 자세를

여쭸습니다

출판학교에서 강의하신 한 선생님은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가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와

더불어 80년대 인문학의 양대

산맥이라고 하셨습니다

책의 성공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강의

요청이 많이 들어왔어요 먹고사는

경제적인 문제도 해결됐습니다

몇 부 팔렸는지는 잘 모릅니다

출판사에서 기밀 사항이라고

하더군요 요즘은 마케팅 차원으로도

몇 쇄 몇 부인지 밝히지만 그때는

세금 문제를 피해가기 위해서인지

쉬쉬하던 시절이었나 봅니다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는 대학

선후배끼리도 많이 물려주는 책이라고

들었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의 쉬운 설명이

좋았습니다 더불어 어떤 사명감을 안고 썼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완성하기에 앞서 어떤 목표를

두셨나요

청년 세대가 외환위기 이후 집중적인 희생양으로 전락하면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드러내면서 여기에

머물지 않고 청년 세대의 잠재력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들이 역사 무대 한복판에 진출해 자기 몫을 다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습니다

역사 분야는 시장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역사 혹은 현대사가 주목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통해 얘기하자면

80년대 후반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lsquo왜곡된

역사를 바로 알자rsquo는 시각 교정의 욕구가 있었던

차에 제 책이 나름 부응했는지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시기가 적절했던 셈이죠

2012년 대선 후 역사 분야가 잠시 반짝했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금세 시들었다고

하더군요 당시 역사 분야 책들이 일반 독자가

읽기에 다소 어렵거나 출간한 지 오래된 것들

위주였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돋을세길

출판학교에서 강의하신 한 선생님은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가 유홍준 교수의

책의 성공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강의

하더군요 요즘은 마케팅 차원으로도

선후배끼리도 많이 물려주는 책이라고

역사 분야는 시장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역사 혹은 현대사가 주목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통해 얘기하자면

80년대 후반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lsquo왜곡된

역사를 바로 알자rsquo는 시각 교정의 욕구가 있었던

차에 제 책이 나름 부응했는지 큰 반향을

읽기에 다소 어렵거나 출간한 지 오래된 것들

위주였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의 저자

33

2012년 대선 후 역사 분야가 관심을 받았던 것은

보수층의 재집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한

불안 때문일까요

맞습니다 그러나 마땅한 책이 없어서 그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역사 분야에서 베스트셀러를 내기

위해서는 시기가 맞아 떨어지고 내용 또한 대중이 원하는

것을 담고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를 편집한 lsquo생각정원rsquo

출판사의 정희용 편집자에게 감사 표시를 하셨습니다

어떤 편집자를 선호하시나요

간단합니다 편집자는 철저히 독자 입장에서 독자와 작가

사이의 간극을 줄여줘야 합니다 예를 들면 어려운 내용을

과감히 생략하고 다음 기회로 미루도록 설득한다거나 좌파

운동권 색채가 너무 강한 문장을 조금 순화하는 것 등입니다

어떤 내용이 이번 책에 꼭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선택을

도와줘야 합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을 작가님께서 직접

독자들에게 홍보하신다면 카피 문구를 짧게 제시할 수

있을까요

청년 세대 희망 찾기 갑갑한 현실을 어떻게 타개할 수

있을지 그 답을 찾아보는 길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취업 후 첫발을 내디딜 서울출판예비학교 11기

학생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출판 또한 돈을 벌어야한다는 기본 전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출판계를 지켜본 결과 뭔가 소명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오래

살아남았습니다 출판학교 역대 대표 중 일부는 나와 관계가

있는 사람들인데 모두 고유한 소명의식을 갖고 출판계에

뛰어들었습니다 때로는 상업주의 안에서 재주도 부리곤

했지만 어쨌든 분야 내에서 고유한 캐릭터를 구축했습니다

출판학교 학생들이 출판 상황을 이해하고 자신을 역할을

정하는 개인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비전 중심의 경영을

하는 회사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지만 개인 비전을 기업

비전으로 나아가 사회 비전으로 접목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과거에 안주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부분을

출판계에서는 SNS 등 인터넷 환경을 통한 마케팅으로

이해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SNS망 자체에서 무엇이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건 사람과

사람이 서로 소통하고 공감하는데 필요한 도구입니다

콘텐츠 중심의 사고가 중요하고 그것이 전제되지 않을 때

SNS는 착각에 불과하며 성공할 수 없습니다 필요한 콘텐츠

중심의 사고를 가지고 철저하게 진행하지 않으면 그 공간에서

허망하게 헤엄만 칠 뿐 입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SNS에서

맥없이 헤엄치다 익사하는 경우를 볼 수 있을 겁니다

콘텐츠와 마케팅의 영역을 하나로 보는 것과 따로

보는 것 어떤 것이 독자를 위하는 것일까요

출판 마케팅은 책을 기획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에서부터

개입돼야 하고 그 과정에 독자를 참여시키는 방식을

고민해야 합니다 미국 네브래스카주립대학의 이상문

교수는 lsquo밀실 안에서의 혁신은 끝났다rsquo고 얘기합니다

개방된 체제에서 독자 곧 소비자 사용자의 참여 하에 함께

만들어갈 때 혁신은 이뤄진다고 합니다 출판사의 비전이

브랜드로 연결될 때 독자는 자발적으로 의견을 주고받고

싶어 할 겁니다

마케터반 11기 이창환

디자

인 사

공예

Page 10: 서울출판예비학교 웹진 _5호 2015

10

20151012 월요일 D-4

수많은 이름들을 위하여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난리다 난리 우리 반이 이렇게 시끄럽고

활기찬 적이 있었던가 자타공인 조용하다던 편집자반 학우들은

어디로 가고 요 며칠 온통 돌아다니거나 무언가를 만드느라

고군분투하는 풍경들과 마주하고 있다 나쁘지 않은 아침이다

그 동안 우리는 직책의 기근()에 익숙해져 있었다 반장 부반장

조장의 휘하에서 맡은 바를 다하며 펠로우십을 뽐내고 있던

우리에게 갑자기 수많은 이름들이 떠맡겨졌다 누군가는 TF팀이

되고 누군가는 홍보 팀장이 되었으며 누군가는 인터뷰 팀장이라는

직책을 맡았다 그런가 하면 건축학을 전공한 학우는 공간 배치를

구상하는 역할을 맡고 누군가는 가을 단풍을 모티프로 해서

편집자반 전체의 부스를 꾸미고 있다 그뿐이랴 각 동아리의

장(長)들은 동아리 부스를 만들랴 그 동안의 활동을 책으로 만들기

위해 인디자인 작업에 몰두하랴 정신이 없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웅장하게 꾸며질 조별 부스를 살펴보면 아마도 입이

떡 벌어질 것이다 각 조는 워크숍으로 만든 자신들의 책에 맞춰

콘셉트를 잡았다

편집자반 lsquo윌비rsquo 조는 『창업 자금 날려먹지 않는 법』에 맞게

카페처럼 부스를 꾸미기로 했다 거대한 간판도 이미 완성되었고

맛있는 커피도 만든다고 하니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lsquo길목rsquo 조는 『서태후 비사』의 내용에 따라 서태후가 좋아했던

벚꽃으로 부스를 장식한다 게다가 한 켠에는 『서태후

비사』전자책과 예쁜 책갈피까지 마련되어 있을 것이다

lsquo달로rsquo 조는 『사이의 거리』의 표지에도 실 그림이 들어간 것에 맞춰

실을 이용하고 있다 특히 실로 lsquo사이의 거리rsquo 글자를 만들었을

때에는 학우들 모두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어떻게 실로 글자를

만들 수 있었는지 많은 분들이 와서 봐주시면 좋겠다

lsquo세모북스rsquo 조는 강명관 잡문집인 『허울 좋은 나라』를 만들었다

시대상과 일상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lsquo사진rsquo에 착안해 옛날

사진관처럼 부스를 꾸미고 있다 흑백 사진과 손글씨가 고즈넉한

멋을 더할 것이다 돌림판 이벤트도 있을 예정이다

편집자반 11기 이상화

2015101 목요일 D- 15

lsquo정rsquo이 있어 lsquo반rsquo을 찾아 lsquo합rsquo을 보니 마케터더라

lsquo차별성이 있어야 한다rsquo

책의 차별성을 찾았던 6개월 그리고 6개월 간의 경험을 토대로

lsquo차별성이 있는 마케터반의 발표회rsquo를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각

조의 조장들과 발표회 테스크포스 팀원이 머리를 맞댔다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lsquo책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그렇다고 너무 책에

집중하지 말자rsquo였다 마치 lsquo정rsquo과 lsquo반rsquo을 통해 lsquo합rsquo을 만들어내는

과정이었다 세상에 이마저 변증법적 접근이라니 그러나 우리가

누구인가 책이라는 물성에 가치의 효용을 불어넣는 우리가

아니던가 분명 발표회에도 그와 비등한 가치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전체 콘셉트은 lsquo북북 쓰는 마케팅rsquo으로 각 조를 하나의 챕터로

삼았다 즉 개성이 뚜렷한 5개의 챕터로 이루어진 lsquo마케팅 북rsquo인

것이다 그리고 각 챕터는 lsquo마케팅이란rsquo이라는 소주제를 부여하여

각 조의 교육과정과 보여주고 싶은 것들을 자유롭게 보여주기로

했다

이제 정이 끝났으니 반을 제시할 차례 lsquo반rsquo으로 lsquo소책자rsquo와 lsquo상품rsquo를

선택했다 소책자는 그저 소개하는 글만을 넣지 않고 lsquo스탬프

여행rsquo의 컨셉을 빌려 꾸미기로 했다 각 조의 부스를 돌아볼 수 있는

장치로 충분한 역할을 할 것이다 상품은 lsquo책rsquo에 대한 행운을 줄 수

있는 lsquo무언가rsquo를 준비하기로 했는데 지금 당장 밝히기는 쉽지 않은

lsquo무언가rsquo를 준비할 것이다 (기대되시지요)

이제 합이다 합은 발표회 당일 분명 lsquo정rsquo과 lsquo반rsquo의 효과가 나타날

것이며 어느 때의 발표회보다 멋질 것이다 (라고 근자감을

부려본다) 곧 시작될 발표회 기대하시라

마케터반 11기 이장열

11

1212

설왕설래

『호밀밭의 파수꾼』의 결말이

궁금해서 견딜 수 없다면

세 반 학우들의 상상력을 동원한 우리들의 릴레이 세

나에 대해 듣고 싶다면 내가 어디서 태어났는지 어린

시절이 얼마나 형편없었는지 내 부모님이 무슨 직업을

가지고 있는지 내가 태어나기 전에 무슨 일들이 있었는

지 같은 데이비드 코퍼필드 식의 헛소리가 듣고 싶겠지

하지만 난 그딴 이야기 하고 싶지 않아 (JD 샐린저 『호

밀밭의 파수꾼』

내 속으로 지나가지만 어쨌든 내 것이 아닌 섬광을 내

가 앉았던 내가 읽었던 생을 한순간에 으스러뜨리는

섬광을 이야기하고 싶어 이창환

아니 잠깐 내가 뭔 병신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

지 내일 서울출판예비학교 면접 있어서 빨리 자야 하

는데hellip 공태준

어서 잠에 들어야 한다는 조급함이 커질수록 허기 또

한 함께 치밀어 올랐다 결국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파

스타 면을 삶는 시간 8분 (그 동안엔 냉장고의 한 쪽

에 남아있던 산토리 한 캔을 단숨에 들이켜야 했다)

음악은 야나체크의 산포니에타 김사룡

맥주 한 캔으로 살짝 취기가 돌자 술이 더 마시고 싶었

다 결국 소주 한 병을 꺼내어 마시며 적당히 삶아진 파

스타 면을 올리브유에 볶았다 내일 입을 정장치마가

끼지 않을까 걱정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엎질러진 물

인걸 최다은

침대에 누워 억지로 잠을 청해본다 잡념이 사라지지

않는다 고민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된다 젠장 벌

써 새벽 3시 자긴 글렀네hellip 그렇게 뒤척이다 날은 밝았

다 이다혜

밝아진 창밖을 보며 어젯밤 나를 뒤척이게 한 면접을

떠올렸다 어제만 해도 중요한 일이라 생각했는데 날

이 밝으니 이미 그 중요성은 나와 멀어진 느낌이다 의

무감에 옷을 챙겨입고 집을 나섰다 양화대교를 건너는

버스 안 새로운 계획이 떠올랐다 황하정

새로운 계획으로 들뜬 나에게 창밖의 풍경이 눈에 들어

온다 수많은 사람과 차량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

어진다 다른 듯 보이지만 얼굴을 장식한 특유의 무표

정함과 발등에 불이 떨어진 듯 바삐 움직이는 모습 속

에 내가 겹쳐 보인다 그래 이번 계획은 나에게 얼마

동안의 기대감을 선사해 줄 수 있을까 뭐 어때 잠깐

이라도 좋다 쓸데없는 잡념보다는 시한부 희망이 차라

리 낫다며 애써 위로한다 유수지

순간 어렴풋한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니 내 또

래의 남자가 거북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김단희

그의 혐오에 가까운 시선과 마주쳤을 때 나는 순간 얼

어버렸다 면접 장소에 가기 위해선 이번 정류장에서 내

렸어야만 했다 그러나 나에게 다가오는 그 남자 때문

에 그러지 못했다 남자가 말했다 김선아

ldquo너였구나 그래 너였어 3년 전 3만원을 빌리고 도망

간 김말숙이 그래 너야rdquo

그 남자는 미친 게 분명했다 lsquo잠깐 이 관능적인 머스

크 향은 뭐지rsquo 순간 뇌리를 스치는 불가리 향수는

그 남자를 떠올리게 했다 지독하게 얼굴을 기억하지

못했던 그 남자를 말이다 이장열

대학교 1학년 설레는 마음으로 나간 첫 번째 미팅을

내 인생 최악의 시간으로 만들었던 lsquo불가리 그놈rsquo이었

lsquo젠장 이 안면 인식 장애놈이 내 얼굴을 어떻게 기억하

는 거지rsquo 내 이름이 김말숙이든 아니든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내 얼굴을 기억한다는 것이 의아할 뿐

양화대교 위에서 떠오른 새로운 계획 그래 지금부터

시작이다 오늘 하루는 lsquo나rsquo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 살

아보는 거야

난 매섭게 치뜬 눈으로 나를 응시하는 그를 뒤로하고

소설의 첫 문장으로 시작하는 릴레이 소설

13

무심히 다음 역에서 내렸다 아무런 동요 없이 발걸음

을 옮기는 나를 보고는 그도 무안한지 이내 제자리로

돌아가는 듯했다 이상한 사람 나는 계속해 나의 목적

지를 향해 걸어갔다

결국 지각했다 면접은 진행 중이었다 이게 다 불가리

때문이다 불가리 냄새가 몸에 밴 것 같다 아니 불가

리 냄새는 내 옆에서 나고 있었다 내 옆에는 불가리가

앉아 있었다 부처님의 손가락을 본 손오공의 심정이

이러했을까 강귀욱

끔찍했다 냄새도 면접도

lsquo젠장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야rsquo

담배에 불을 붙여 한 모금 깊게 빤다 lsquo후-rsquo 치미는 화

도 잡념도 불안도 이 연기처럼 쉬이 사라져버리면 좋

으련만 무의미한 푸념만이 입 안에 맴돈다

ldquo김말숙~ 여기 있었냐rdquo 그 말에 얼마나 놀랐냐면 떨

어진 담뱃불이 내 정장치마를 태우고 있는 줄도 몰랐을

정도였다 lsquo불가리 그놈을 피해 골목까지 들어왔는데

여긴 어떻게 찾은거야rsquo

ldquo밥 먹을래rdquo lsquo꺼져 꺼져 제발 꺼져helliprsquo 못 들은 척 고

개를 돌렸다

ldquo소달구지라고 괜찮은 식당 있는데 같이 가면 그 3만

원 없던 걸로 해줄게rdquo

우리는 눈이 마주쳤다 김영준

해질 무렵 서서히 불이 들어오는 보고 있어도 언제 밝

아졌는지 알 수 없는 양화대교 위 가로등처럼 우리는

천천히 그러나 깊게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새카

만 흑암의 공간 무저갱 같이 깊고 검은 눈동자 속에

숨겨 놓은 비밀을 알아내기라도 하려는 듯 그렇게 서

로의 눈을 망막 너머의 시신경을 시신경을 타고 올라

가 전두엽 어딘가에서 터지고 있을 스파크를 계속 들여

다보았다 이윽고 두 남녀의 입이 열렸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낮은 목소리가 화음을 내며 울려 퍼

졌다 ldquo몽마르뜨가 좋겠어rdquo 권오권

끔찍했던 면접과 기분 나쁜 불가리놈의 얼굴이 잊힐 정

도로 음식의 맛은 정말 좋았다 고작 음식 때문에 기분

이 나아지는 내 자신에게 정말 어이가 없었지만 어쨌

든 맛은 좋았다 된장국으로 숟가락을 옮기며 슬쩍 앞

의 녀석 얼굴을 쳐다보았을 때 그 녀석도 나를 쳐다보

고 있었다 김희연

3년 전의 얼굴과 꽤 변해있었다 그 당시 철없는 어린

애 같은 얼굴이었는데 지금은 사회인이 되려고 꾸며댄

듯한 모습 물론 3년 전보다 더 나아졌다거나 잘생겨진

것은 아니다 전보다 훨씬 평범한 얼굴이다 ()

그런 그는 어째서 날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어째서 날

기억하고 다가와서 말을 걸고 함께 식사까지 하려 하

는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이 텅 빈 머릿속을 메

운다 엄청나게 망쳐 버린 하루지만 이상하리만큼 멀

쩡한 내가 낯설다 김하얀

그러다 내가 집에 돌아가는 길 문득 미니스톱에 담배

를 사러 들렀다가 ldquo여기 국산담배밖에 없는helliprdquo 음hellip

없단다 가뜩이나 기분도 꿀꿀한데 없다니 빵만 사서

나왔다

빵을 사서 가는 길에 낯익은 얼굴에 걸음을 멈추었다

ldquo너 혼자 빵 먹냐 나도 같이 먹자rdquo 불가리 그놈이었

다 ldquo혹시 너 나 따라온 거야rdquo 기가 막혔다 백가은

어쩐지 불가리 향수 냄새가 난다 했다 ldquo왜 따라왔어rdquo

그랬더니 불가리 그놈이 하는 말

ldquo난 내 집 가는 건데rdquo 믿을 수 없다 수상쩍다 그놈은

나를 앞질러 가더니 우리 집 주인 아줌마네 집으로 들

어가 버렸다 아 저 놈이 집주인 아줌마 아들놈인가

월세 밀렸는데 망할

망할 이상한 하루였다 잊자 오늘 일은 전부 다 잊어

버려야지 방으로 들어오기 직전에 산 맥주 한 캔의 뚜

껑을 따고 들이킨다 캬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가는 듯

시원하다 씻고 자리에 눕는 순간 면접 결과가 나올 때

까지 무엇을 하고 있어야 할지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TO BE CONTINUEDhellip

은 익명 표시입니다

13

무심히 다음 역에서 내렸다 아무런 동요 없이 발걸음

을 옮기는 나를 보고는 그도 무안한지 이내 제자리로

돌아가는 듯했다 이상한 사람 나는 계속해 나의 목적

지를 향해 걸어갔다

결국 지각했다 면접은 진행 중이었다 이게 다 불가리

때문이다 불가리 냄새가 몸에 밴 것 같다 아니 불가

리 냄새는 내 옆에서 나고 있었다 내 옆에는 불가리가

앉아 있었다 부처님의 손가락을 본 손오공의 심정이

이러했을까 강귀욱

끔찍했다 냄새도 면접도

lsquo젠장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야rsquo

담배에 불을 붙여 한 모금 깊게 빤다 lsquo후-rsquo 치미는 화

도 잡념도 불안도 이 연기처럼 쉬이 사라져버리면 좋

으련만 무의미한 푸념만이 입 안에 맴돈다

ldquo김말숙~ 여기 있었냐rdquo 그 말에 얼마나 놀랐냐면 떨

어진 담뱃불이 내 정장치마를 태우고 있는 줄도 몰랐을

정도였다 lsquo불가리 그놈을 피해 골목까지 들어왔는데

여긴 어떻게 찾은거야rsquo

ldquo밥 먹을래rdquo lsquo꺼져 꺼져 제발 꺼져helliprsquo 못 들은 척 고

개를 돌렸다

ldquo소달구지라고 괜찮은 식당 있는데 같이 가면 그 3만

원 없던 걸로 해줄게rdquo

우리는 눈이 마주쳤다 김영준

해질 무렵 서서히 불이 들어오는 보고 있어도 언제 밝

아졌는지 알 수 없는 양화대교 위 가로등처럼 우리는

천천히 그러나 깊게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새카

만 흑암의 공간 무저갱 같이 깊고 검은 눈동자 속에

숨겨 놓은 비밀을 알아내기라도 하려는 듯 그렇게 서

로의 눈을 망막 너머의 시신경을 시신경을 타고 올라

가 전두엽 어딘가에서 터지고 있을 스파크를 계속 들여

다보았다 이윽고 두 남녀의 입이 열렸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낮은 목소리가 화음을 내며 울려 퍼

졌다 ldquo몽마르뜨가 좋겠어rdquo 권오권

끔찍했던 면접과 기분 나쁜 불가리놈의 얼굴이 잊힐 정

도로 음식의 맛은 정말 좋았다 고작 음식 때문에 기분

이 나아지는 내 자신에게 정말 어이가 없었지만 어쨌

든 맛은 좋았다 된장국으로 숟가락을 옮기며 슬쩍 앞

의 녀석 얼굴을 쳐다보았을 때 그 녀석도 나를 쳐다보

고 있었다 김희연

3년 전의 얼굴과 꽤 변해있었다 그 당시 철없는 어린

애 같은 얼굴이었는데 지금은 사회인이 되려고 꾸며댄

듯한 모습 물론 3년 전보다 더 나아졌다거나 잘생겨진

것은 아니다 전보다 훨씬 평범한 얼굴이다 ()

그런 그는 어째서 날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어째서 날

기억하고 다가와서 말을 걸고 함께 식사까지 하려 하

는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이 텅 빈 머릿속을 메

운다 엄청나게 망쳐 버린 하루지만 이상하리만큼 멀

쩡한 내가 낯설다 김하얀

그러다 내가 집에 돌아가는 길 문득 미니스톱에 담배

를 사러 들렀다가 ldquo여기 국산담배밖에 없는helliprdquo 음hellip

없단다 가뜩이나 기분도 꿀꿀한데 없다니 빵만 사서

나왔다

빵을 사서 가는 길에 낯익은 얼굴에 걸음을 멈추었다

ldquo너 혼자 빵 먹냐 나도 같이 먹자rdquo 불가리 그놈이었

다 ldquo혹시 너 나 따라온 거야rdquo 기가 막혔다 백가은

어쩐지 불가리 향수 냄새가 난다 했다 ldquo왜 따라왔어rdquo

그랬더니 불가리 그놈이 하는 말

ldquo난 내 집 가는 건데rdquo 믿을 수 없다 수상쩍다 그놈은

나를 앞질러 가더니 우리 집 주인 아줌마네 집으로 들

어가 버렸다 아 저 놈이 집주인 아줌마 아들놈인가

월세 밀렸는데 망할

망할 이상한 하루였다 잊자 오늘 일은 전부 다 잊어

버려야지 방으로 들어오기 직전에 산 맥주 한 캔의 뚜

껑을 따고 들이킨다 캬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가는 듯

시원하다 씻고 자리에 눕는 순간 면접 결과가 나올 때

까지 무엇을 하고 있어야 할지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TO BE CONTINUEDhellip

은 익명 표시입니다

14

이옥란 선생님

캡틴 오 마이 캡틴(captain oh my captain)선생님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

편집자반 학우들은 늘 이분의 얼굴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며

끝마친다 몇 번의 마주침은 덤이다 그분은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도 가깝지만은 않았던 편집자반의 담임 교수

이옥란 선생님 자신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우리를 위한

이야기를 풀어놓으시느라 매일 종례시간이 부족하신 이옥란

선생님께 이번엔 우리가 물었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 일상을 어떻게 보내고 계신가요 선생님의

주말이 취향이 추억이 삶이 궁금하다 편집자반 학생들에게

직접 받은 질문들로 lsquo한 사람rsquo에게 궁금한 것들을 물었다

이 인터뷰를 읽은 뒤 그녀를 한층 좋아하게 되리라고

확신한다

왜 디토 커피에 자주 가시나요

커피가 제일 맛있고 값이 싸고

넓은 창으로 햇빛이 많이 들어와

그리고 주인장들이 공간은 물론이고

손님들과도 잘 어우러지는 것 같아

옥란 선생님께 스카프란

어느 날 발견한 패션 아이템 몇 년 전인가

홍대 앞 가판대에서 우연히 마 레이온 합성의

보라색 스카프를 발견한 이후인 것 같아

왜 고양이를 좋아하시나요 고양이를 키우시나요

고양이가 나를 키웠다고 할 수 있지 시골집 막내였는데

고양이가 친구가 되어주었어 (선생님이 고양이를 닮아

가시는 것 같아요 혹시 키우세요) 둘 있는데 13년쯤 되었나

최근에 읽었거나 읽고 계신 책은

이익섭 저의 『국어학개설』 『말과 사물』 『좌파는

어디에 있었는가』 『논어』 『번역어의 성립』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등 여러 권 들고 다니면서 돌려본다

(국어학개설은 읽는다기보다 공부 아닐까요) 아니야

재미있어

인생의 책을 꼽자면

김훈의 『남한산성』 표지가 핫핑크 색이야 건조하고 힘

있는 남성적인 문체의 마초라고 불리기까지 하는 작가의

책이 핑크색이라니 크기도 아마 46판에 더스트 커버(dust

cover)는 질긴 천의 느낌이고 본문은 재생지인지 무겁지

않고 두께도 딱 손에 잡히는 정도 감각까지 장악한 책이야

몇 권 사서 주변 사람들에게 돌렸어

선생님의 멘토는

이런 질문에 답하게 될 줄은 몰랐네 글쎄 그러고 보면

존경스러운 사람은 있었지 대학 때 문학 동아리 선배였어

양상현 형 (어떤 점이 제일 존경스러우셨어요) 자유롭게

사는 사람이었던 것 얼마 전에 돌아가셨어 이제 조금

실감이 나네 그분은 건축 전공에 시를 쓰고 음악을

즐기고 노는 문화를 나누고hellip 어떤 사태도 회피하지 않고

자유로웠던 사람이었지 앞으로 할 일이 더 많았을 터인데

양상현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졸업 동대학원

박사학위 2002년 대한민국건축대전

초대작가 선정 순천향대 건축학과

교수 재직 민족건축인협의회

의장 설계 작품으로는 lsquo장암리

주택rsquo lsquo녹촌리 조각가의 집rsquo 등

대표 저서『거꾸로 읽는 도시

뒤집어 보는 건축』 2015년

8월 14일 별세

졸업 후 편집자로 일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우리 때는 노동운동이나 농민운동을

했던 대학생이 사회과학 출판사로

진출하는 경우가 많았고 내 친구도 졸업을 해서

출판사에 있었어 그 녀석이 나를 사무실로

초대했는데 반지하도 아니고 그냥 지하였던 것

같아 ldquo옥란이 이리와 봐 이게 뭔지 아니 바로

매킨토시라는 거야 이게 얼마짜린지 아니rdquo

매킨토시 컬러 클래식(Macintosh Color Classic)

웬만한 공책보다 좀 클까 본체가 화면에 같이

붙어 있는 하드웨어를 가진 컴퓨터였지 친구 말로는

300~400만 원 한다고 했어 20년 전이니 당시로는

큰돈이지 교정지를 보여주더니 마치 lsquo음 너는 아직 이런 거

모르지rsquo라고 하는 듯이 ldquo잠깐만 언니가 뭐 좀 할 테니까

잠깐 기다려봐 하hellip 이거 띄어쓰기 어떻게 해야 하려나 이게

전문용어라 통일을 해줘야 하는데helliprdquo 하던 잘난 척이 기억이

나네 그렇게 출판사를 접했지 문학 동아리를 하느라 알게

된 선생님들 선배님들도 여럿 출판사에들 계셨어

편집자로 일하셨을 때 어떤 분야를

편집하셨나요

하다 보니 주로 예술 서양 미술 분야였고

출판사는 학고재 예경 마로니에북스까지

그런 기회가 나한테 왔고 재미있었어

전공이 그쪽이 아니었기 때문에 공부를

해야 했지

지난 서울출판예비학교생활 중 특별히

기억나는 사람이나 사건이 있다면

8기 졸업식 날 남학생 셋이 ldquo저는 출판학교에

와서 모든 것을 얻었습니다rdquo 그러면서 흑흑 우는 거야

누군지 얘기하면 창피하겠지 남학생들이 울어서 애들이

알고싶어 편집자반

15

완전 눈물 바다였잖아 (우리 반 오빠들이 운다는 건 상상할

수 없네요) 다음 해에는 애들이 완전 유머 코드여서 웃다

끝났지

출판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된 계기나 동기는

무엇인가요

나는 8기부터 시작했는데 7기 담임이던 김장환 씨가 나를

불렀어 공동 담임을 해달라고 lsquo그러지 뭐rsquo 이렇게 시작했지

직장은 2008년도까지 다녔고 프리랜서로 활동하면서

여기저기서 강의를 하고 있었어 한겨레 문화센터에도

23년쯤 있었지 (편집자보다 이렇게 선생님으로 있는 게 더

즐거우세요) 지금은 진짜 만들고 싶은 책 함께 작업해보고

싶은 저자 그런 게 아닌 한 직업으로 신간을 꾸준히 내는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당신들은 눈이 반짝반짝해서 업계에 들어와야겠다고

준비해서 오잖아 그 친구들이 1년차 3년차 되는 것을

지켜보고 있으려니까 내가 그 나이쯤 사회생활을

시작해 고민했던 지점이 보이는 거지 그 때

이걸 알았더라면 하는 안타까움이 있어서

여러분들이 애틋해지지

요즘 최대의 관심사는 무엇인가요

저녁에 후배들에게 가르칠 강의를 하다

보니 국어 공부의 필요성을 여실히 느끼고

있어 출판 동네에서 20년 넘게 일한 사람이

공부해온 것을 한 번 정리해서 후배들한테 줄 필요도

있겠구나 싶고 (뭔가 일 얘기가 아닐 줄 알았는데요

하하)

은퇴 후에 무엇을 하고 싶으신가요

오늘은 말이 절로 나오는 걸 하하 마당 있는 시골집 텃밭을

일구며 역사에 길이 남을 인간과 세상을 통찰하는 대작

소설을 발표하겠다 (와)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이 되고 싶으신가요

다시 태어나고 싶지가 않아hellip(웃음) 지구에서는 내

대에서 멸종하기로 했다

저희들에게 속 시원하게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자신 있게 해라

생각해보면 다들 자기가 못났어 키도 좀 더 컸으면

좋겠고 외모도 마음에 안 들고 내가 저 때 저렇게

했으면 지금 달라졌을까 부럽기도 하고

그런데 사실 부질없는 거거든 세상 사는

힘이 실력에만 있는 게 아니고 태도의 문제가 더

클 때가 많아 내 것이 아닌 것에 목매고 있을

필요가 없어 신입사원으로 전혀 모르는 곳에

뚝 떨어졌을 때 저들의 세계 속에 혼자 쏙

들어간 기분이니까 일단은 주눅이 들지

하지만 거기서 살아가야 하지 않겠어

둘러보면서 아 저기가 화장실이구나 사람들은

이런 걸 이렇게 하는구나 파악하고 나면 좀

수월해지잖아

마지막으로 대망의 이상형 월드컵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정우 주원 김수현 유아인 이렇게

4강전으로 시작하겠습니다

(하정우와 주원 중에서는 누가 더 좋으세요) 하정우지

주원이 최근에 좋아지긴 했는데 아직도 하정우를 따라올 수

없어

(그럼 김수현유아인 중에서는요) 유아인이지

(너무 확고하셔요 드라마 lt밀회gt 보셨나요) 집에선 케이블

방송도 안 나오고 관심 갖게 되었을 땐 너무 유행이라

안보고 말았지 대신 영화 lt완득이gt는 봤다

(이제 결승인데요 마지막으로 하정우와 유아인은요)

아인이는hellip 나한테 좀 과분한 것 같아(웃음) 하정우가 삐질

것 같은데 그래서 둘 다 잃는 거야hellip

편집자반 11기 김수진 이상화

lt베테랑gt의 악랄한 재벌 2세유아인

lt프로듀사gt의 어리버리 신입PD

김수현

lt용팔이gt의 천재 외과의사

주원

lt 암 살 gt 의 순 정 마초

하와이 피스톨하정우

하정우

16

한대웅 선생님

『동백꽃』의 주인공 같은 그 남자착하디착한 순하디순한 한대웅 선생님의 속마음

좀처럼 화내시는 일도 없고 허허 웃기만 하시고hellip 하지 못한

말들을 땀으로 발산하듯 여름이면 온몸이 열정으로 흠뻑

젖으시는 분 세상 어디에도 없을 착한 남자 마케터반의

한대웅 선생님이다 그에게 던진 몇 가지 질문에 돌아온 것은

가장으로서의 고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 아직도 앳된

소년 같은 순수함이 묻어나는 답변들이었다 이제 그를 좀 더

깊게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평소에 칼라(collar) 티셔츠를 즐겨 입으시던데

좋아하시는 옷인가요

좋아한다기보다는 제 딴에는 편하게 입을 수 있는 듯해서

즐겨 입고 있습니다 또 아내가 이런 종류의 옷을 많이

사주기도 하고요

선생님께 lsquo출판rsquo이란 무엇인가요

출판은 lsquo꿈을 이루는 판도라의 상자rsquo lsquo내가 가진 능력에 가장

맞는 일rsquo입니다

출판을 업으로 삼지

않으셨다면 어떤 일을

선택하셨을까요

모르겠네요 아마도 운명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요 다만 다음과

같은 3가지 생각은 해보았습니다

첫째 고등학교 시절 성적이 조금

더 좋았다면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해서

지금쯤이면 텔레비전이나 영화에 나오는 큰 전투함의

함장이 되지 않았을까요

둘째 대학교에 입학하지 못했다면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로 이민을 가서 장사를 하거나 농부로 농장을

운영하면서 그곳 사람으로 국적을 바꾸고 살고 있지

않을까요 고등학교 3학년 때 대학교 입학 시험에

떨어지면 다른 나라로 가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다는

마음의 준비를 했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 모 일간지에 실린

해외에서 성공적인 삶을 사는 한국 사람들에 관한 기사를

꼼꼼하게 읽었었거든요

셋째 대학교 3학년이나 4학년 때 신춘문예까지는 아니라도

대학교 교내 문학상 정도를 받았다면 아마도 그 결과에

탄력을 받아 시나리오 작가나 연극 연출가의 길로 가려고

하지 않았을까요

ID와 블로그에 lsquo봄rsquo이라는 단어가 들어있는데 봄을

좋아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그 ID를 만들 무렵 저의 미래는 꽤나 불확실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바꿔 말하면 어떻게

돈을 벌어야 하고 어떻게 자아 성취를

해야 하는지가 불확실하고

힘들었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lsquo봄rsquo이라는

단어를 좋아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누구나

알다시피 봄은 겨우내

얼어 있던 것들이

새롭게 싹을 틔우고

새롭게 기지개를 펴는

계절이죠 물론 봄

자체가 주는 느낌도

좋고요 그래서 lsquo봄rsquo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던 것

같습니다

블로그는 서울출판예비학교에서

일을 시작한 후 만들었습니다

블로그에 lsquo봄바람rsquo이라는 의미를 부여한

것은 ID를 만들던 때의 생각이 이어진 것이겠지요 요즘에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이 많이 사라진 것 같습니다 만약

앞으로 블로그나 ID를 만든다면 아마도 lsquo여름rsquo 혹은 lsquo풍성함rsquo

아니면 lsquo내가 원하는 세상을 상징하는 어떤 것rsquo을 이름으로

사용할 것 같습니다

편집자로 첫 시작을 하셨는데 나중에 출판 마케터로

일하게 된 동기를 알고 싶어요

시장 상황을 분석하고 이에 맞게 마케팅 계획을 세우고

사람이나 집단을 만나고 힘을 합쳐 뭔가 새로운 결과를

만들어 내는 일이 재미있었습니다

은퇴 후에 꿈꾸시는 삶이 있으신가요

아직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20대와 30대

초반에 꿈꾸던 것들을 lsquo은퇴 후에 여유가 생긴다면 이것들을

해볼까rsquo라고 간혹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현재겠죠 출판에서 뭔가를 이루려고 열심히 계획하고

실행하다 보면 은퇴 후의 삶도 더 풍요로워지지 않을까요

알고싶어 마케터반

17

일하실 때 다뤘던 책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무엇인가요

입사 초기 편집을 하거나 시장조사를 하고 제가 출간 여부에

대한 판단을 내렸던 책들이 기억납니다 『펠레』 자서전은

제가 편집자로 있을 때 출간했던 책인데 주요 일간지의

서평란 메인을 장식했던 책입니다 출간 시점을 맞추기 위해

촉박한 기간 동안 밤새가며 책을 만들었습니다 출간 시점에

대한 판단이 정확히 맞았고 그 결과 기대 이상으로 많은

서평을 받았던 책입니다

서울예비출판학교 선생님으로 오신 계기를

알고 싶어요

전에 다니던 출판사를 그만둔 후

개인적으로 뭔가를 해보려고 고민

중이었습니다 그러나 능력이

부족하다 보니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았죠 그러던 중에

출판학교에서 일해 볼 것을

제안 받았고 저도 출판학교

학생들처럼 면접을 보고 이

학교에 오게 되었습니다

일을 하게 되었을 때 매우

즐거웠습니다

다시 출판사 마케터로 돌아갈

생각이 있으신가요

아니오 이유는 2가지인데 첫째는 제 나이가

48세입니다 다른 업종도 그렇지만 출판 산업에서도

48살에 마케터로 직장인의 생활을 이어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죠 정말 현실적인 고민이죠 게다가 출판학교에서

여러분과 소통하며 제 지식을 전수하는 일이 재미있습니다

물론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언젠가 저만의 꿈을

찾아갈 수 있겠죠

평소 몇 권의 책을 읽으시나요 최근 읽은 책 중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요

예전에 많이 읽을 때는 1주일에 2권 정도 읽었습니다

황석영의 『장길산』과 홍명희의 『임꺽정』 이문열의

『삼국지』를 읽을 때 짬짬이 쉬는 시간을 비롯해 지하철에서

보내는 시간까지 거의 모든 시간을 책을 읽으며 보냈습니다

요즘에는 1달에 1~2권 정도 읽는 것 같네요 최근 읽은

책 중에 기억에 남는 책은 『내 아이와 어떻게 대화할

것인가』(율리아 기펜레이테르 저 써네스트 2006)와 『내

아이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율리아 기펜레이테르

저 써네스트 2009)입니다 제목만으로도 왜 이 책을

추천하는지 금방 눈치 챌 수 있을 것입니다 아이가 둘

있는데 첫째는 15살 딸이고 둘째는 10살 아들입니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lsquo어떻게 하면 아이와 싸우지 않고

윽박지르지 않고 아이의 자존감을 높여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성실하고 삶의 열정과 꿈이 넘쳐나는 아이로

키울까rsquo 같은 고민을 항상 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단비처럼 다가왔습니다 위의 2권의 책을 읽고 몇

가지 중요한 것들을 배웠습니다 아이와 어떻게 소통하고

어떻게 대화해야 하는지 아이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등등 이전에 『부모와 아이 사이』(하임 G 기너트

등 저 양철북 2003)를 읽고 아이를 이해하는 법에 대해

큰 인상을 받았는데 이 책도 그 연장선에서 저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아들과 딸을 좀 더 이해하게 되고 그

결과 아이들에게 화를 내거나(저도 나약한 인간인데 화가

날 때가 심심치 않게 있거든요) 아이들의 긍정적인 싹을

본의 아니게 꺾어 버리는 경우가 줄었다고 할까요 게다가

이 책은 lsquo부모와 아이 사이rsquo만이 아니라 lsquo친구와 친구 사이rsquo

lsquo회사 내부 구성원 사이rsquo에서 소통하는 데도 많은 영감을

제공합니다 출판학교 학생들과 소통할 때도 이해의 폭을

넓혀주고 긍정적인 소통을 하는 방법을 제공해 줍니다

이제 수료를 앞둔 마케터반 학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으시다면

개인별로 처한 처지와 조건에 따라 다르겠지만 다음과 같은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 연인을 사랑하듯 출판에 대해서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보세

- 이 길이 나에게 최선의 길인가 생각해 보세요

- 목표를 세우고 지금부터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한 후 그것을 어떻게 이루어 나갈 것인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보세요

저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스스로의 내면을 단단하게 할 중요한

질문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앞으로도 끊임없이

새로운 답을 찾아나갈 질문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케터반 11기 이장열 이창환

18

선생님은 주말에 뭐하세요

무조건 가족과 함께hellip

만약 편집 디자인을 안 하셨다면 무슨 일을 하고

계실까 궁금해요

어찌 됐든 개인 사업자로 살았을 듯 윗사람 비위 맞추는

것을 너무 못하므로hellip

선생님 주량이 어떻게 되세요 주사가 있으세요

몸 상태 좋고 안주 많이 먹으면 1병(클래식으로)

좋은 출판 디자인을 생각한다

심우진middot안광욱 선생님

lsquo멋rsquo이라는 것이 폭발한다뼛속까지 디자이너스러운 심우진 선생님

멀리서도 눈에 띄는 큰 키에 멋들어진 베레모 디자인반의

심우진 선생님 되시겠다 서울출판예비학교에서 lsquo멋rsquo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가끔은 조금 키 큰 학생처럼 학생들

속에 잘 어우러지는 사람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모습은

여기까지다 그를 조금 더 알고 싶다 지금까지의 그를

만들어왔을 lsquo심우진의 생각들rsquo이 궁금했다

선생님은 무엇을 드시고 그리 멋지시나요

학생들의 사랑 밥 김치

일본 유학길에 오르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lsquo동아시아rsquo lsquo근대rsquo가 당시 나의 화두였으므로 그리고

스기우라 고헤이 선생을 뵈러

첫 직장을 다녔을때 일의 강도()나 다니는 동안

마음은 또 어떠셨는지

출판 쪽 첫 직장은 lsquo정디자인rsquo인데 lsquo나는 왜 이렇게 디자인을

못할까rsquo 답답해했던 기억이 있어요 그러나 매우 즐거웠고

술도 자주 마셨죠 아직도 당시의 OB들과 가깝게 지내요

lsquo둥지rsquo 같은 곳이죠

선생님께서 생각하는 완벽한 판면이란

디자이너의 삶의 방식과 콘텐츠의 삶의 방식이 녹아든 판면

선생님의 피로회복 방법은

알고싶어 디자인반

19

디자인반의 히어로좋은 출판 디자인을 생각한다 안광욱 선생님

여자 화장실 앞에 있어 인파로 북적대는 디자인반 교실을

학생들과 함께 굳건히 지켜온 분 디자인반 학생들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애정공세를 아끼지 않는 분 안광욱

선생님에게 물어본 4가지

디자이너로서 첫 직장을 다닐 때의 마음이

어떠셨나요

잘하고 싶었는데 못해서 힘들었지 사수에게 하루 서너

시간씩 야단맞으면서 했다오 매일 2호선 양화대교에서 뛰어

내리고 싶었는데hellip 이 부분은 내일 수업 때 얘기해줄게^^

선생님께서 생각하는 좋은 출판 디자인이란

세상을 향한 사랑과 희망이 듬뿍 담긴 디자인

출판 디자인을 안 했다면 지금 무슨 일을 하고

계실까요

모르겠네 그냥 선녀 옷 훔치는 나무꾼이 되어 있을 듯^^

어떤 주사가

있으신지 궁금해요

말이 조금 더 많아지고 장소 불문 쿨쿨 자 특별한 주사는

없는 듯

디자인반 11기 이소현 백가은 사공예원

디자

인 사

공예

20

편집자반 김영준 학우가 그린

『이 외로운 사람들아』 일러스트

기억에콕

수업 후기

ldquo우리에게는 lsquo일탈rsquo이 필요합니다rdquo

잠깐 딴 짓을 하는 사이에 귓가에 들려온

한 문장이 나를 사로잡았다 배는 부르고

따 사 로 운 햇 살 에 잠 이 쏟 아 지 는 시 간

오후 1시 30분 시간을 칼같이 맞춰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선 그는 딱 봐도 지루하고

고리타분해 보이는 첫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순간 눈으로 들어온 이미지는 뇌로 흘러갔고

뇌는 망설임 없는 확신으로 귀에 명령을

전달했다 그렇게 귀는 이미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내 들려올 그렇고 그런 뻔한

이야기에 대하여

눈의 판단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의 한마디

한마디는 파격이었다 아니 어쩌면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였지만 누구도 자신 있게

내던지지 못하는 말들을 서슴지 않고 내뱉는 그

거침없음에 신선함을 느낀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의 관심을 돌려놓았던 lsquo일탈rsquo에 대한 그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lsquo일탈을 하라rsquo는 말이

lsquo제멋대로 하라rsquo는 의미가 아니라 어떤 규칙을

벗어나는 행위를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다르게

생각하는 방식을 몸으로 익히게 된다는 것

새로운 것을 생각해내는 창의성이라는 힘은

당연히 새로운 경험에서 나온다는 것이었다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니 강의를 듣던

친구들의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때 보고 들었던 그의 말과 행동이 우리에게는

딱 딱 한 강 의 실 에 서 느 끼 는 새 로 운 경 험

lsquo일탈rsquo이었다

그 와 의 만 남 은 계 속 이 어 졌 다 이 곳

서 울 출 판 예 비 학 교 에 입 학 한 이 후 로 는 좀

더 완 벽 한 일 주 일 단 위 로 시 간 이 흐 르 기

시작했는데 매주 쌓여가는 새로운 배움 뒤에는

수많은 물음이 불쑥불쑥 솟아났고 그는 마치

예상을 했다는 듯이 일주일에 한 번씩 나타나

우리의 설익은 궁금증을 해소해주고 떠나갔다

첫 만남에서는 책이라는 대상과 책을 대하는

편집자의 자세에 대해 이야기하며 큰 그림을

그려주었고 다음엔 저자와의 관계 맺기 그

다음엔 스스로 만들어 가야할 편집자의 자기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담백하게 들려주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네 번째 만남이었다

누구도 쉽게 이야기하기 어려운 완벽하게

솔직해지기는 더더욱 어려운 자신의 좌절과

실패를 그는 담담하고 진솔하게 소개해주었다

모든 성공에는 대개 7할의 실패가 전제되어

있기 마련인데 성공에 이르기까지 거치는

우 리 가 lsquo실패rsquo라고 명 명하는 것들이 사실

진짜 실패가 아니라 성공의 다른 이름이라는

그의 말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성공도 실패도

어 느 한 지 점 에 서 내 리 는 판 단 인 것 이 고

결 국 성 장 하 고 성 숙 한 다 는 것 은 성 공 과

실패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lsquo차이rsquo를 얼마만큼

발견하느냐 하는 것에서 결정된다는 그의 말이

가슴을 뜨겁게 했다 비로소 lsquo편집자rsquo로서가

아닌 한 lsquo사람rsquo으로서의 그가 보이기 시작했다

담담하게 말을 하고 있지만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아프고 쓰린 기억을 후배들에게

들 려 주 는 그 에 게 서 진 심 이 전 해 져 왔 다

사랑하는 일에 대한 함께 걸어갈 동지들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 참 고마웠다

어느덧 마지막 만남이 찾아왔다 한 권의

책을 만들면서 진행했던 편집의 과정을 예로

실 제 적 인 이 야 기 를 우 리 에 게 마 지 막 으 로

들려주었다 편집의 능력은 지식과 정보에서

나온다는 것 그것은 단숨에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 꾸준히 쌓아가야 한다는 것 그래서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의 문제라는 것을 경험을

근거로 자신 있게 말해 주었다 이미 지나온

과거의 결과 대신 앞으로 걸어갈 길에 대한

희망을 들려주어서 그게 참 고마웠다

편집자반 일탈이 주는 파격 우리가 낳을 lsquo새로운 책rsquo과 편집자선완규 선생님과의 다섯 번의 만남이 키운 생각들

21

그 가 우 리 에 게 마 지 막 으 로 이 야 기 를

들려주었던 그날 이후 석 달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났다 나는 여전히 같은 강의실에 앉아

앞서 길을 걸어간 선배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고 조금씩 가까워지고 밝아져가는 내 앞에

놓인 길에 대해 생각한다 그러다 문득 마음이

무거워지고 막막해질 때면 종종 그의 말들을

떠올려 본다 그리고 그 생각의 끝에서 마음을

의지하며 함께 이 길을 걸어갈 따뜻한 선배가

하나 있다는 위로 한 줌을 발견한다

ps 선완규 선생님 고맙습니다 보고 싶어요

편집자반 11기 성준근

마케터반 강한 수면욕 환상과 환기

판형과 종이를 예술로 편입시키려는 영업자다빈치 출판사 박성식 대표 특강 후기

9월 23일 평소보다 점심을 많이 먹었던 날이다 잠을 며칠간 못 자 피곤했다

오후 1시 30분이 살짝 지나서 다빈치 출판사 박성식 대표의 특강이 시작됐다

다빈치 대표님은 처음 뵐 때부터 남다르셨다 서울출판예비학교 입학 면접에서

여자 술 담배를 각각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보셨다 lsquo솔직함을 어필해야

하는 순간인가rsquo하는 생각에 직설적으로 답했지만 lsquo더 문학적으로 얘기할 수

있었는데rsquo라는 후회를 안고 돌아왔다

마음과 다르게 첫 번째 시간은 정신없이 잠이 쏟아졌다 눈을 감고 귀 기울였지만

턱을 괸 채 버티는 동안 50분이 지났다 대표님께 캔 커피를 하나 드리고 맞이한 두

번째 시간 그 한 시간 동안 나는 현실 옆의 어떤 이상 내지는 환상을 본 것 같다 그동안

듣던 강의들을 놓고 lsquo이상적인 관점이다rsquo 혹은 lsquo현실적이다rsquo라고 구분했던 판단의 폭

자체가 좁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성식 대표님은 내 머리에 있던 lsquo책rsquo에 대한 인식을 전복시켰다 자본주의 출판의

몰락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시작됐다는 말 출판 기본 특성인 다품종 소량 생산은 돌아올

것이며 다품종 소량 생산을 넘어 다품종 소량 lsquo고급 생산rsquo을 추구하고 싶다는 말은 나를

달뜨게 했다 주류에 반하는 사고를 가진 중년의 개성과 내공에 교실 풍경이 환기됐다

교육 수단으로 책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지만 책은 그만큼 사회적 의무와 희생을

짊어져왔다 출세와 공부 앞에서 책이 가진 기호(嗜好)성은 변두리로 내몰렸다 책을

읽어야만 제대로 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분위기는 옳지 않다 독서는 성향의 범주지 성역이

돼선 안 된다 정보와 지식의 전달은 모바일 등에 넘겨주고 종이책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공동체로 돌아와야 한다 그게 원래 자리라는 대표님의 주장이 새롭고 강렬하다

자본주의 3대 원칙인 lsquo더 빨리 더 많이 더 싸게rsquo 체계는 표준화와 규격화를 동반하며

매우 효율적이다 현재 사용하는 종이는 자본주의 원칙에 최적화돼 있다 그러나 대표님은

인쇄기계로 소화하지 못하는 질감과 전혀 다른 발색을 지닌 lsquo종이rsquo에 주목했다 그 종이로

콘텐츠 종이 판형이 완벽하게 들어맞는 예술서를 만들고 시장을 설득한다면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책 판매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전했다 종이 자체가 책의 예술성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한지(韓紙)를 예로 들면서 훌륭한 텍스트와 이미지를 한 차원 끌어올리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많은 부수를 팔아야 성공한 출판 많은 부수를 파는 것을

목표로 하는 시대는 저물고 있다 기존 유통과 판매 방식

안에 갇혀서는 불황에 매몰될 뿐이다 소량의 고급화된

책을 꿈꾸는 것과 전시회를 책과 결합하는 것도 다른 길을

물색하는 과정이다

대표님은 10년 전부터 lsquo이 원고는 내가 누구보다 잘

만들겠다rsquo lsquo이 원고는 내가 못하면 누구도 못할 것 같다rsquo라는

생각이 든 책만 출간을 진행했다고 한다

강의 중간 자신의 독특한 철학을 전달하는 것에 대해 가벼운

염려를 하셨지만 이론적이고 실용적인 분야에 몸담더라도

예술적 사고의 유연성은 필요하다고 본다 돈과 인문정신을

구분하면서 필요할 때 양쪽에서 자극 받고 차용하는 것이 마케팅의 융통성과 힘을 기르는 길일 것이다

마케터반 11기 이창환

편집자반 김영준 학우가 그린

『이 외로운 사람들아』 일러스트

박성식 대표가 기획한 lsquo오름rsquo전

22

하늘

습탁은 농도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하늘

습탁은 농도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이 글은 심우진 선생님의 탁본 세미나 수업에 대한 우리들의 즐거운

기록이다 탁본은 습탁(濕拓)과 건탁(乾拓) 두 종류로 구별된다

습탁은 나타내고자 하는 물체 위에 물을 묻힌 후 종이를 그 위에

밀착시키고 먹물 묻은 솜방망이로 가볍게 두드려서 물체를 표현하는

방법이다 물체의 패인 부분을 제외하고 볼록한 부분의 모양대로

종이에 먹이 묻어 문자나 문양이 드러난다 건탁은 이름 그대로 물을

사용하지 않고 마른 상태의 먹인 고형묵(固形墨)을 사용한다 우리는

각자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사물과 자연을 이용해 탁본 작품을

만들고 서울출판예비학교 꼭대기 층에서 작품을 공유했다

디자인반 이 시간을 그대로 탁본할 수 있다면심우진 선생님의 탁본 세미나

저는 신문지를 구겨서 해봤어요

응 그런데 이건 방바닥 같은데

방바닥까지 묻어 나와 버렸네요

[학생들 하하하]

저는 일단 큰 나무 기둥을 떠봤고요

오솔길의 짚도 해보고 저희 집 바닥과

벽면도 신기해서 떠봤어요 집 벽면 중에

대리석도 있고 특이한 벽면이 많거든요

부잣집인가 보네

[학생들 깔깔깔]

승연

심우진 선생님

승연

승연

심우진 선생님

이건 파프리카인데 저희 집 개가 완성한 종이를 찢었어요

[학생들 하하하]

좀 작고 납작한 파프리카를 반으로 잘라서 습탁했어요 또

이건 철조망인데 용 비늘처럼 나와서 재밌었어요 아나콘다

같기도 하고 철조망이 날카로워서 습탁하니 종이가 자꾸

찢어져서 다시 하게 됐어요 근데 이거요hellip 남자친구

있으면 커플끼리 한 번 해보세요 한 명은 잡아주고 한 명은

습탁하고hellip 되게 로맨틱 성공적

자랑하는 거니

[학생들 깔깔깔]

수빈

수빈

심우진 선생님

혜민

정묵

처음에 나뭇잎이 세세하게 잘 나올 줄 몰랐는데 그

줄기의 질감이 잘 나왔고 버려진 타이어를 끌어서

생긴 모양으로도 습탁을 했는데 생각보다 잘 나와서

막상 찍어보면 생각과 다르다는 것을 느꼈어요

저도요 결과물이 뚜렷하게 안 나올 줄 알았는데

디테일이 잘 나타나 있었고 입체를 평면적으로

찍는 것 자체가 재밌었어요

수정

저는 빗자루를 해봤어요 너무 얇아서 안 나올

거라 생각했는데 빗자루 문양이 잘 나와서

재밌었고 머리카락도 해봤는데 머리카락은

끝 부분이 잘 나오는 편이에요 위쪽은 다

뭉쳐있는데 끝 부분은 펼칠 수 있으니까요

23

저는 결이 얇은 것들을 뜨는 것이 재밌었어요

머리카락처럼요 머리 긴 사람에게 부탁해서

눕히고 했어요 그리고 이건 얼굴인데요

처음에는 그냥 했는데 얼굴은 입체를 살리려면

스케치하듯 떠야 되요 결국 명암으로 입체감

조절을 해야 되죠 코가 너무 입체적이라 특히

힘들었어요

누구 얼굴이야

우리 언니hellip

[학생들 우와]

가은

심우진 선생님

가은

하얀

음각이 나왔을 때 너무 좋았고요하늘

습탁은 농도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소리

건 탁 보 다 는 습 탁 이 농 도 조 절 하 는 게

희 한 해 서 재 밌 었 어 요 농 도 조 절 이

관 건 이 거 든 요 먹 과 물 의 배 합 과

솜방망이가 먹물을 얼마나 흡수하는지 그

흡수량이 중요하고요

윤미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꽤 많은데 만져보면서 건탁을 뜨니까 좋았어요 전에

습탁할 때는 시멘트 벽 같은 걸 하다가 나뭇결을 하니까

살아있는 느낌이었어요 생각했던 것처럼 나와서

좋았고 솔방울이나 나뭇잎 같은 섬세한 것들은 제대로

나오지 않아서 아쉬웠어요 섬세한 것들은 습탁으로

해봐야겠어요 그래도 다양한 나무를 건탁해봐서

만족해요

소현

저는 일상적인 것들로 습탁을 해봤어요

처음에는 단순하게 오돌토돌한 느낌만

있 을 줄 알 았 는 데 색 다 른 느 낌 이 나 서

재밌었어요

탁본 세미나를 마치고 그 다음 주에 지하 강당에서 촬영하는 시간을

가졌다 촬영 후에 보정도 했다 나뭇잎의 결 무늬 타이어 자국

그리고 사람의 머리카락까지도 좋은 디자인의 재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보았고 나누었다 건탁과 습탁의 장단점을 이 수업으로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심우진 선생님의 이번 탁본 수업도 지난 활자

수업처럼 지식 습득은 물론이고 경험까지 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 시간들이 앞으로 출판 디자이너로서의 감각을 더 풍요롭게 해 주지

않을까

디자인반 11기 사공예원

하얀

음각이 나왔을 때 너무 좋았고요

습탁은 농도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솜방망이가 먹물을 얼마나 흡수하는지 그

흡수량이 중요하고요

윤미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꽤 많은데 만져보면서 건탁을 뜨니까 좋았어요 전에 꽤 많은데 만져보면서 건탁을 뜨니까 좋았어요 전에

이건 파프리카인데 저희 집 개가 완성한 종이를 찢었어요

[학생들 하하하]

좀 작고 납작한 파프리카를 반으로 잘라서 습탁했어요 또

이건 철조망인데 용 비늘처럼 나와서 재밌었어요 아나콘다

같기도 하고 철조망이 날카로워서 습탁하니 종이가 자꾸

찢어져서 다시 하게 됐어요 근데 이거요hellip 남자친구

있으면 커플끼리 한 번 해보세요 한 명은 잡아주고 한 명은

습탁하고hellip 되게 로맨틱 성공적

자랑하는 거니

[학생들 깔깔깔]

24

9시 30분 합정역 1번 출구 앞

ldquo누나rdquo 소리에 쳐다보니 반가운 공 총무의 얼굴이 보였다 정류장

앞으로 길게 늘어선 줄에 합류하여 파주로 날 데려다 줄 2200번

버스를 기다리고 있으니 반가운 얼굴들이 계속 나타났다 한 대의

버스를 보내고서야 겨우 2200번 버스에 탑승해 파주로 출발할 수

있었다

10시 15분 파주 lsquo다산교 앞rsquo 정류장 하차

4개의 정류장 총 57분이 걸린다고 알려준 N사 지도 어플의 정보와는

달리 30분 만에 파주에 도착했다 일찍 도착해 먹을 것을 찾아 헤맨

예비 마케터들은 편의점에서 주린 배를 채웠고 lsquo지혜의 숲rsquo을 살짝

염탐하며 11시까지 시간을 보냈다

11시 05분 보진재 2층

1912년 설립되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인쇄소인 보진재 관계자

분이 나와 간단히 인사 말씀을 하고 각 반의 인솔자를 소개해주셨다

마케터반의 인솔자는 서동관 과장님 디자인반 편집자반 마케터반

순으로 견학을 시작했다

11시 15분 보진재 견학 시작

제일 먼저 본 곳은 제판실이었다 필름 인쇄가 줄어들고 CTP로

대체되는 추세지만 어떤 분들은 여전히 필름 작업을 하고 계셨다

이유를 물어보니 서동관 과장님은 예전 필름이 남아 있기도 하고

출판사에 따라 필름을 고집하는 곳이 있다고 하셨다

한번에 5도 인쇄가 가능한 기계를 보는 중에 서 과장님이 말씀하셨다

ldquo한 유닛(unit)당 23억 정도 해요rdquo 그렇다면 유닛 다섯 개가

돌아가고 있으니 적어도 10억짜리 기계라고 내 눈에 보이는 건 그냥

낡고 큰 기계인데 10억이 넘는다니 놀랐다 또 과장님께서 자랑스레

말씀하신 한 가지 잉크 농도 조절을 자동으로 하는 기계가 보급된

곳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었다 원래는 사람이 눈으로 보고 수정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재판을 찍을 경우 초판과 동일한 색상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있지만 보진재는 기계가 자동으로 조정해주어 수월한

작업을 할 수 있다고 하셨다

매염실도 보고 제본실도 구경했다 인쇄된 종이를 접지하고 제본을

마친 후 마지막으로 제단을 하면 책이 완성되어 나왔다 그 모든

과정을 보고 난 후 서 과장님이 건넨 완성된 책의 무게는 보통의

그것보다 조금 더 무겁게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윤전실이었다 견학 당일은 작업이 없어서

비어있던 윤전실이지만 윤전실이 주는 무게감은 컸다 윤전실은

롤(roll)로 인쇄하는 곳으로 8개의 롤이 양면 인쇄를 하고 건조와

접지까지 한 번에 가능한 기계도 있었다 대량생산을 위한 곳으로

주로 교과서나 EBS 학습지를 인쇄한다고 하셨다

12시 20분 견학 끝

1시간을 조금 넘긴 견학을 끝내고 밖으로 나오니 코가 따갑고 목이

말랐다 기계가 먼지를 빨아들여준다고는 하지만 수없이 많은

종이가 존재하는 공간에서의 종이 냄새는 강력했던 것이다 책이

제작되는 과정은 실제로 보니 다양하고 복잡했다 자동화가 많이

되어있지만 사람의 손길 없이는 절대 완성될 수 없는 과정들을 보며

책이 완성되기까지의 노력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lsquo책이 어떻게

만들어진다rsquo를 배우다가 lsquo책이 이렇게 만들어진다rsquo를 보니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예비 출판 마케터의

길로 들어선 후에 새로운 것을 보고 배울 수 있었는데 보진재 견학은

그 중에서도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책을 완성시키기 위한 모든 과정이

저마다의 몫을 하고 있었다 서울출판예비학교 졸업 후 출판계에

들어섰을 때 나는 과연 어떤 몫을 할 수 있을까 남은 2개월을 조금은

더 열정적으로 보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마케터반 11기 최다은

1 일일탈

학교 밖 견학 후기

피부로 와 닿는 책의 감촉 책의 냄새 책의 소리 보진재에서 책이 인쇄되는 과정을 만나다

필름과 인쇄판이 만들어지는 과정

25

우리가 이제 각자 편집자 마케터 디자이너가 되어 책 만드는 일을

시작하면 우리의 책은 이곳에서부터 그 lsquo탄생rsquo을 시작할 것이다 책의

근간이 되는 종이가 만들어지는 곳 한솔제지 공장에 다녀왔다 학기

초에 책을 파는 서점을 견학한 뒤 그 다음으로 출판사 종이에 활자를

찍어내는 인쇄소 그리고 마지막으로 lsquo종이rsquo를 만드는 제지 공장을

찾은 것이다 책이 만들어지는 순서대로라면 우리가 다녀온 순서를

거꾸로 해서 다녀왔어야 했지만 우리는 반대로 실제 과정을 거슬러

올라간 것이다 이렇게 거슬러 올라가는 과정에서 오히려 편집자란

직업에 겸허해질 수 있었다 가끔은 편집자가 책을 만드는 모든

과정 위에 군림하는 것 같이 느껴지지만 책의 물성을 만들어내는

거대한 기계 앞에서 우린 한없이 작아지기도 한다 lsquo한 권의 책rsquo이

만들어지려면 이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함을 이해해야 했다 이렇게도

복잡하고 힘겹게 만들어지는 책의 가치를 한 번 더 깊이 생각하게 된

계기였다 책이라는 건 의미가 담긴 조각들의 집합체이자 종이를

보기 좋게 물성화한 것 이론적으로야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눈으로 보고 느끼는 것과는 천지차이다

날씨마저 좋았던 9월 11일 평소보다 한 시간이나 이른 8시

30분에 세 반 학우들은 눈도 제대로 못 뜬 채 집합했다 대전까지

간다니 마치 여행가는 것 같은 살짝 들뜬 기분까지 안고 아침도 못

챙겨먹고 나왔을 우리를 생각해서 빵과 우유까지 준비한 한솔제지

측의 세심한 배려에 감동했다 배도 채우고 부족한 잠도 보충해가며

2시간 넘게 달려 신탄진 공장에 도착했다 도착하자 보이는 우리를

환영하는 현수막에 2차로 감동했다 우리를 위해 정말 많은 준비를

하셨구나 느낀 순간이었다

신탄진 공장 강당에 들어가서 간단한 공장 소개를 먼저 들었다

그리고 뒤이어 종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경청했다 수업 때보다

학생들의 집중력이 더 높아 보였던 건 내 착각이었길 종이는

1퍼센트의 펄프와 99퍼센트의 물로 이루어진단다 그래서 전반적인

공 정 의 대 부 분 은 물 을 처 리 하 기 위 한 과 정 이 나 다 름 없 었 다

생각보다 종이는 순수한 물질이라고 생각했다 종이(paper)의

어원은 이집트의 파피루스(papyrus)에서 왔다고 한다 중국의

lsquo채륜(蔡倫)rsquo이라는 사람이 제일 먼저 발명했고 고려시대에

일본으로 넘어간다 일본에 가장 마지막으로 넘어갔지만 종이의

기술력은 현재 일본이 가장 좋다 원료rarr초지rarr코팅 등의 공정을 거쳐

종이가 완성되는데 마지막 코팅 공정을 여자의 화장에 비유한 것

역시 기억에 남는다 코팅이 그렇게나 대단한 과정이라니

공장 안으로 들어가서는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시끄러워서 설명을

제대로 듣진 못했지만 앞서 들었던 설명을 떠올리며 기계들을

관찰했다 인쇄소에서 본 광경들도 거대하고 박력 있었지만 여긴

그보다 더 거친 느낌이었다 책은 서점에 놓여있을 때는 그렇게

얌전하건만 태어날 땐 이렇게 시끄럽다 또한 막 태어난 종이는

거대하고 또 거대했다 다들 마치 거대한 두루마리 휴지 같다고들

했다

견학을 다 마치고 다시 대전 공장으로 이동해 다 같이 점심 식사를

했다 기대 이상으로 맛있는 밥에 또 감동 더 힘내서 견학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아쉽게도 대전 공장 안에는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라 그 힘()을 발휘하진 못했다 대전 공장은 신탄진 공장과

다르게 책에 쓰이는 것이 아닌 제품 포장용 박스 종이컵 등 다른

용도에 쓰이는 종이를 만드는 곳이었다 그 과정의 차이를 눈으로

비교하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마지막으로 좋은 선물까지 손에

받아들고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다시 서울로 향했다

언제나 시작은 중요하다 각자의 일에 빠져들게 되면 점점 잊게 될

그 시작을 눈에 담고 오래 기억하기 위해 다녀왔다고 생각한다 요즘

초심을 잃었다는 생각이 종종 드는데 책에게도 초심이 있다면 바로 이

곳일까 시작의 의미에 대해 다시 곱씹어보았다

편집자반 11기 박혜원

우리의 글과 그림이 펼쳐질 종이의 탄생 한솔제지 신탄진 공장 견학

거대한 롤(상) 한솔제지 공장 앞에서 (하)

26

화양연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삶과 문학에 취하다

편집자반 한국문학 동아리 lsquo공감rsquo 그 대담의 현장

훗날 서울출판예비학교를 떠올릴 때 가장 즐거운 시간으로 기

억되는 날들은 동아리 활동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들의

화양연화(花樣年華)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 중

의 하루를 소개한다 문예창작학과를 전공한 문학소녀 김한나

학우를 필두로 창단된 편집자반 내 한국문학 동아리 lsquo공감rsquo은

모임 전에 한국작가를 한 명 정해 단편 두 편을 함께 읽고 키워

드나 질문을 스스로 뽑아 글을 써왔다 모여서 때로는 소설의

플롯이나 주제 문체에 대한 열띤 토론을 하고 때로는 작가의

외모()와 같은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며 삼천포로 빠지기도 했

다 우리끼리만 듣기엔 아쉽다 이 즐거운 대화를 모두에게 들

려주고 싶었다 이날 모임에선 김영하 작가의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단편집 속의 두 단편 lsquo엘리베이

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이하 엘리베이터)rsquo와 lsquo사진

관 살인사건(이하 사진관)rsquo에 대해 이야기했다 여기서는 lsquo엘리

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rsquo를 읽고 토의한 내용을

실었다

한나 참고로 김영하는 사람의 욕망에 대해 천착하는 작가야

그런 특성이 엘리베이터에는 안 나와 있는데 사진관에서는

잘 드러나 있어

상화 백가흠 작가에게 소설창작론 강의를 들었는데 그분이

소설의 기법을 설명하면서 알레고리랑 아이러니를 얘기했어

알레고리가 인물이나 소재를 비유적으로 설명하는 거래 예를

들어 핸드폰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다른

것에 핸드폰을 빗댐으로써 소설을 풀어가는 거

야 아이러니는 속도감 있게 이야기를 전개함으

로써 부조리나 모순을 드러내는 건데 김영하가

아이러니의 대표적인 작가래 단편인데도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내면보다는 사건이 일어나는

걸로 소설을 끌어가는 작가 우리가 지난 모임

에서 성석제를 굉장한 이야기꾼이라고 했잖아

그런데 난 김영하가 훨씬 이야기꾼스럽게 느껴

졌어 속도감 있고 lsquo이렇게 몰입을 할 수 있나rsquo

싶고 지난 모임들에서 읽었던 손보미나 편혜영

소설의 경우는 분위기나 주인공의 심정 내면에

의미를 부여해 야 했는데 김영하의 소설은 덮

자마자 아이러니가 느껴지면서 lsquo아 세상은 왜

이래rsquo 말하게 만들었어

법열 나는 엘리베이터 읽고 딱 lsquo뫼비우스의 띠rsquo가 생각났거든

뫼비우스의 띠가 안하고 겉이 구분이 안 되잖아 끝과 시작이

어딘지도 모르고 lsquo나rsquo가 겪는 상황이 현실인지 아닌지 구분이

안 되는 느낌 마지막에 lsquo나rsquo가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가 존재

하기는 했는지 혼란스러운 느낌을 받잖아 그게 앞의 환상적

인 부분이랑 맞물리면서 하나가 되는 느낌이라 뫼비우스의 띠

가 생각났어

상화 lsquo나rsquo가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구해주려고 고분군투하

다가 나중에 자기가 엘리베이터에 갇히잖아

오권 낀 남자의 발을 보면서 느꼈던 감상이 사실은 자기를 구

하고 싶었던 마음인 거지

(일동 오~ 그렇게도 볼 수 있네)

오권 무한도전의 무한상사 특집도 생각났어 뜬금없이 휴지

사용하는 길이에 대해 회의하는 장면에서 엘리베이터는 갇힌

사회 서로를 돌아보지 않는 사회를 의미하는 것 같아

한나 나는 반대로 오히려 엘리베이터를 희망적인 존재로 봤

거든 아파트도 그렇고 회사도 그렇고 각자 자신의 공간 안에

서 살다가 서로 만날 수 있는 장소는 엘리베이터 밖에 없으니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김영하 지음

문학동네 20100216

동아리 후기

27

까 lsquo나rsquo가 회사 엘리베이터 안에 여자와 같이 갇히잖아 사실

은 갇히지 않았으면 대화도 안하고 지나쳐 갔을 텐데 남자는

자기가 아침부터 버스 사고도 나고 성추행범으로 몰렸다고 얘

기하고 또 남자의 담배 피워도 되냐는 말에 여자는 담배에 대

한 불평불만을 속사포처럼 얘기하고 엘리베이터라는 공간이

아니었다면 이런 대화 자체가 없었겠지

오권 엘리베이터 타면 사람들이 하나같이 층수 바뀌는 것만

쳐다보고 있잖아

상화 요즘은 스마트폰

오권 자기 얘기를 하고 싶은 것 같아 하지만 상대의 얘기는

안 들어 lsquo너의 얘기는 관심 밖이지만 내가 불편한 것에 대한

얘기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하겠어rsquo라는 느낌

한나 그리고 우스웠던 게 볼일 보고 휴지 몇 칸 쓰는지 회의에

서 얘기하는 건hellip 사실 굉장히 사적인 얘기잖아 (일동 하하

하) 서로에 대해 다른 얘기는 일절 하지 않으면서 회의 내용은

개인적이고 사적이라니 아이러니한 거지

수경 진짜 웃기지 않았어 lsquo나rsquo가 자원 재활용 문제에 대한 중

대 보고가 있다고 계속 빨리 가야한다고 했던 게 겨우 그거야

상화 겨우 이딴 회의하려고 지금 엘리베이터에 낀 사람 놔두

고hellip 생명이 더 중요한데 지금 휴지 구하려고hellip

(일동 하하하)

한나 lsquo나rsquo가 불쌍했던 이유가 자기한테 닥친 일들은 lsquo할 수 없

지 뭐rsquo 이런 식으로 넘기는데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 걱정하고

갇힌 여자 걱정하고hellip 정작 자기 걱정은 안 해

오권 영화 lt라이터를 켜라gt 봤어 조폭들한테 얻어맞으면서

도 주인공은 무조건 자기 라이터만 찾겠다고 그러거든 이 소

설의 lsquo나rsquo와 비슷한 느낌이 들더라고 그 영화에서는 라이터가

주인공의 존재를 투영하는 소재거든 lsquo나rsquo는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구해야만 자기가 산다는 느낌을 받은 거라 해석하면

너무 나간 건가

법열 아니요 형이 아까 지적해준 게 와 닿았어요 그 고군분

투가 결국 자기를 구하려는 노력이라는 지적이요

상화 그나마 lsquo나rsquo가 이 소설에서 제일 인간적이지

수경 어딘가 찌질한 느낌도 들어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와

lsquo내rsquo가 동류라고 자각하고 연민을 갖는 느낌이었거든 lsquo나rsquo가

인간적이고 윤리적이라는 생각은 나는 글쎄hellip 더 적극적으

로 할 수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 자기 사이클에서 벗어나

지 않는 한도 내에서 걱정만 하잖아 소설 안에서 비극과 희

극이 번갈아 가며 나타나는데 트럭과 버스가 충돌했을 때

lsquo나rsquo는 lsquo버스 카드 일로 충돌하지 않게 되어 적이 기뻤다rsquo고

생각해 버스 운전사는 트럭 백미러에 가슴이 받혀서 죽었는

지도 모르는데 lsquo다행히 나는 허리가 좀 뻐근한 것만 빼면 별

다른 상처가 없는 듯했다rsquo 이런 생각들을 하는 게 좀 섬뜩했

민희 사람은 다 이중성을 가지고 있잖아 나를 보는 듯했어

만약 학교 가는 길에 엘리베이터에 낀 사람을 봤다면 그렇

지만 나도 얼마나 바빠 몇 분 늦으면 지각 체크 당하고 출석

80퍼센트를 못 채울 수도(일동 웃음) 있는 상황이라면 내

가 그 남자를 구할 수 있을까 일단 지나치고 119에 전화하려

고 했으나 핸드폰이 없는 상황에 나도 처할 수 있는 거잖아 나

만 생각하는 잔인한 면도 내 안에 있고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

도 내 안에 있어 이런 찌질한 모습도 나고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정의롭게 구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상화 기준이 다른 것 같아 lsquo나rsquo 정도면 착하다고 생각했거든

수경 주변 사람들이 약간 마네킹 같지 않아 주인공 주변에

장치되어있던 다른 사람들이 너무 비인간적이기 때문에 lsquo나rsquo

가 돋보이는 거지 lsquo나rsquo는 지극히 평범한 우리 모습 같아 내가

어떻게 할 생각은 없고 궁금하기만 한 거야

민희 그 궁금함과 찜찜함도 죄책감이라 생각돼 아 내가 어떻

게 해줬어야 했나

한나 책임 회피일까

상화 그래서 나는 키워드 뽑은 것 중 하나가 119야 구해주고

싶으면 직접 내 손으로 잡아 빼주던가 엘리베이터를 들어 올

릴 사람을 모아야 했는데 신고 생각만 하잖아 이미 이건 누

가 대신 해결해줘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그나마 우리

사회에서 사고를 수습해주는 건 119밖에 없고 조선시대에는

119같은 거 없고 마을 사람들이 모여 구해줬을 텐데 어쩔 수

28

없는 현대인의 단상이긴 해 현대가 분업사회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들 바쁘고 삶이 개인화 파편화되어 있으니까 119 같

은 집단이 필요한 거지 그래서 난 119를 신의 영역이라고 썼

어 lsquo나rsquo는 119를 거의 신적인 존재처럼 생각하잖아 부르면 모

든 게 해결될 것처럼 핸드폰 빌리고 공중전화 찾고 그런데 막

상 교통사고 현장에서 119 대원에게 면대 면으로 얘기를 했더

니 그들은 무슨 그따위 장난을 하냐고 말해 구조도 실은 신이

아니라 사람이 하는 일이고 그 사람이 관심이 없으면 묻히는

거지

오권 전화를 거는 것과 직접 구해주는 것의 차이가 큰 것 같아

자기가 구해주는 건 적극적인 행동이고 119에 전화하는 건 스

스로 최소한 양심적이긴 하다고 여기는 행동

수경 그런데 엘리베이터에 낀 사람을 아무 것도 모르는 일반

인이 어떻게 했다가는 더 위험해질 수도 있잖아

오권 맞아 사회가 시스템화하고 고도화될수록 각자의 업무가

분업화되었고 전문분야가 생겨났으니까 옛날 같았으면 애 낳

으면 그냥 동네 아주머니가 애 받고 어미가 죽으면 젖동냥 다

녔는데hellip 이젠 사고가 나면 생각이 119에 먼저 미치는 시대가

된 거지

수경 그래서 어딘가에 널브러져 다친 인간이 아니라 엘리베이

터라는 공간에 낀 남자를 설정한 것 아닐까 엘리베이터는 현

대화의 상징이잖아

한나 lsquo나rsquo도 어쩔 수 없는 게 출근 시간에 쫓겨서 시계를 계속

봐 먹고 사는 일이니까

오권 출근했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다시 집으로 돌아가

낀 사람을 구해주면 굉장히 희망찬 소설로 바뀔 텐데hellip (일동

웃음)

수경 이 소설로 현대 사회의 폐단은 다 얘기할 수 있겠는데

상화 김영하는 천재인 것 같다

누군가 그리고 잘생겼잖아

누군가 잘생긴 거야

누군가 지적인 분위기가 있어서 좋아 (한참 얘기)

한나 또 인상 깊었던 게 구두에 집착하는 거 lsquo나는 날렵한 치

타처럼hellip 구두를 가지고 엘리베이터에서 빠져나오는 데 성공

했다 허탈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rsquo는 구절

오권 자살한 사람들이 구두를 가지런히 벗어놓는 이미지가 무

슨 상징처럼 있잖아

한나 신발 한 쪽 없이 다녀봤어 계속 기우뚱대서 내가 걷거

나 서 있을 때 내가 잘못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여기서 lsquo나rsquo가

그랬을 거야 사실 lsquo나rsquo처럼 사는 게 정상인데 세상이 잘못된

건데

상화 이 소설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감정표현이잖아 하루 종

일 얼마나 힘들었겠어 처음으로 감정표현을 하니까 불쌍했어

오권 휴머니즘 불쌍론 또 나왔네(일동 웃음) 그럼 이제 사진

관으로 넘어가볼까hellip

편집자반 11기 이상화

2929

책씹는맛 01 냄새라는 경이 lt감각의 박물학gt 후각편을 읽고

냄새에는 언어가 없다 어휘가 부족한 우리는 말문이 막힌

채 불명료한 쾌감과 자극의 바다에서 말을 찾을 수밖에

없다1

이 말은 다이앤 애커먼의 『감각의 박물학』 제 1장 후각에

나오는 구절이다 냄새를 글로 쓰고자 하는 나의 시도가 늘

실패로 귀결되는 이유를 이 구절에서 찾았다 작가의 말처

럼 냄새에 대해 쓴다는 건 언어 밖 세계로 나갔다가 다시

언어로 되돌아오는 길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길에서 헤매

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후각이라는 감각에서 길을

잃는 것은 낭만적인 일이기도 하다 lsquo냄새의 뇌관을 건드리

면 모든 추억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기rsquo2 때문이다 냄새 하

나에 수많은 추억들이 줄줄이 기억의 회로 위로 떠오른다

예를 들면 바다 냄새 하나만 상상해도 그와 관련된 수많

은 기억들이 머릿속에 뒤섞인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바닷가와 관련된 그 모든 추억들이 기억의 영사막에서 한

편의 옴니버스 영화 형태로 내게 다가온다 난 내 기억의

관객이 되어 그 영화를 보다가 견딜 수 없는 그리움에 젖는

다 이 영화에 대한 감상문을 적으려면 나는 말문이 막힌

다 그래서 몇 글자 적다가 결국 글을 쓰기를 멈춘다 굳이

언어로 표현하자면 쓸 수 없는 그리움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1 『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옮김 작가정신 20040720

A Natural History of the Senses(1991) 17쪽

2 같은 책 18쪽

결국 lsquo언어가 존재하는 세계에서 경이는 언어의 칼날 아래

서 쉽게 해부되고 냄새는 자주 혀끝에서 맴돈다rsquo3 냄새의

숭고함 앞에서 우리는 말을 멈춘다 이처럼 냄새는 말할 수

없는 자연의 경이로움과 닮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lsquo냄새가 우리의 마음을 그토록 강하게 움직이는 것은 부분

적으로 그 이름을 부를 수 없기 때문rsquo4이라고 한다 저자는

그렇기에 사람들이 냄새를 lsquo분 냄새 비슷한 펭귄 냄새가

나는 호화로운 화장실 냄새가 나는rsquo 같은 말로 표현할 뿐

이며 냄새에 대한 이름은 주어져 있지 않다고 말한다 또

한 종류는 같아도 강약과 농도가 다른 각각의 냄새에 이름

을 붙여줄 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우린 일상적으로 냄새를

맡으면서도 그 냄새와 멀리 떨어져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명명되지 않은 것은 결국 잊히는 게 아닐까 부를

수 없음에서 오는 경외감과 숭고함이 있을지라도 냄새는

말해져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말할 수 없는 것에 자꾸

만 침묵하기만 해야 할까

감각도 모험의 영역이 될 수 있다 세계 일주만이 세상을

아는 길일까 lsquo나rsquo를 온전히 아는 것이 역설적으로 세상과

가까워지는 일인지도 모른다 나를 알기 위한 길 중 하나가

내가 가지고 있는 감각을 이해하고 그걸 언어로 표현하는

일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어쩌면 우리와 제일 가깝지만 말

하기 낯선 감각 후각을 이해하는 일이 중요한지도 모른다

냄새라는 감각 속에서 우리 모두 길을 잃고 헤매고 모험해

보자 냄새에 나름의 이름을 지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

리고 농도에 따라 냄새를 구분하는 일도 해보자 냄새라는

경이는 우리를 더 이상 침묵으로 이끌지 않을 것이다

디자인반 11기 백가은

3 같은 책 22쪽

4 같은 책 22쪽

『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 옮김

작가정신 20040720

A Natural History of the Senses(1991)

3030

02 현실을 전복시키는 비현실

모호함이 주는 환상성

20세기 중반 중남미 소설은 전통적인 사실주의 서사 구조

를 깨고 현실과 환상을 혼합시키는 새로운 글쓰기 방식으

로 세계문학의 중심에 선다 이 시기에 주목 받은 일련의

중남미 작가들을 가리켜 lsquo붐 세대 작가rsquo라 칭하는데 아르

헨티나의 환상문학 작가 코르타사르는 이 붐 세대 작가군

의 선구자이자 대표 주자 격인 인물이다 그러나 그 문학적

성과와 명성이 무색하게도 국내 독자들에겐 그의 이름이

아직 생소한 것이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에서는 그

의 작품이 중남미 단편 선집에나 몇 편이 번역되었을 뿐 본

격적으로 소개된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중남미 문학을 공부했고 그의 몇 안 되는 번역 작품을 인

상 깊게 읽었던 독자 입장에서 이번에 출간된 코르타사르

의 단편집『드러누운 밤』은 가뭄의 단비처럼 반가운 신간

이다

환상 문학이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J R R 톨킨 류의 판타

지소설 혹은 쥘 베른이나 아이작 아시모프 류의 SF소설을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코르타사르의 환상문학은 이들 범

주에 들어가지 않는다 코르타사르 작품에서 나타나는 환

상이란 토도로프가 정의한 바 있는 환상 그러니까 자연적

인 것과 초자연적인 것 사이의 망설임에서 발생하는 환상

에 가깝다 따라서 판타지소설의 lsquo현실과 동떨어진 환상rsquo

혹은 SF소설의 lsquo설득력 있고 현실감 있는 환상rsquo을 기대하

는 독자라면 아마 십중팔구 그의 작품을 읽고 실망할 것

이다 어쩌면 이게 무슨 환상문학이냐는 푸념을 늘어놓을

지도 모르겠다 역시 가장 좋은 것은 선입관을 버리고 책을

읽는 것이다

코르타사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lsquo모호함rsquo이다 인물이나

배경 묘사에서 제시되는 기본적인 정보도 모호하고 사건의

전개 양상이 가진 당위성도 모호하다 작품 내에서 주요한

스토리 라인을 담당하는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경계도 모

호하며 심지어는 화자의 정체마저 모호한 작품도 있다 이

런 모호함의 향연은 짙게 깔린 안개와도 같아서 독자들은

그 속에서 한 치 앞도 제대로 내다볼 수 없음은 물론이요

이미 지나간 사실조차도 자신이 맞게 인식한 것인지 확신

할 수 없을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무엇이 진짜인지

독자들의 판단을 망설이게 만드는 이런 상태야말로 코르

타사르의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는 환상이란 개념이다 독

자들은 이 환상 속에서 그저 전방을 주시하며 천천히 나아

갈 수밖에 없다

다행스럽게도 코르타사르는 독자들의 시련을 헛되게 하지

않는다 작품의 시작점 일상 세계에 우연히 침투한 lsquo비현

실적인 것rsquo은 안개 속에서 알게 모르게 자신의 지분을 늘려

나간다 그리고 작품의 종점에 다다른 독자들은 비현실이

현실이 되고 현실이 비현실이 되는 이전과는 전혀 새로운

세계와 마주할 것이다 다시 말해 필연과 이성의 법칙이 지

배하는 세계가 우연과 환상이 지배하는 세계로 변하는 것

이다 이러한 세계의 전복은 마치 여기저기 단서를 흩뿌리

고 사람들을 알쏭달쏭하게 만들었다가 결말부에서 모든

것을 폭발시키는 추리소설 혹은 반전영화를 보는 듯한 재

미를 선사한다

그렇다면 코르타사르가 이 소설들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책을 다 읽고 난 독자라면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의문점이다 코르타사르는 자신이 환상문학을 쓰는

이유를 ldquo법칙이나 원칙 혹은 인과관계나 특정한 심리 또

는 잘 그려진 지리학과 같은 체계에 의해 세상이 지배되고

있다는 것에 반대rdquo하고 ldquo우리가 잘 모르며 우리에게 잘 다

가오지 않는 새로운 질서에 관해 생각해보기 위함rdquo이라고

설명한다 짧게 말해 이 세상에 필연이란 존재하지 않으

며 자신은 그것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말이다 이

게 전부다 순문학이라면 거장의 문학이라면 이보다 더 심

오한 통찰 혹은 비판이 있을 것이란 생각에 문장 속 숨겨진

의미를 발견하고자 머리를 싸맬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조

언을 하자면 독서는 독서 그 자체로 즐기면 된다 적어도 이

책에서는 그렇다 모호함과 예상외의 전개 속에서 재미를

느끼고 코르타사르가 묘사하는 세계의 불가지(不可知)성

을 어렴풋하게나마 인식할 수 있다면 이미 그것으로 충분

하다

편집자반 11기 강귀욱

『드러누운 밤』

훌리오 꼬르따사르 지음 박병규 옮김

창비 20141124

La noche boca arribaJulio Cortazar

31

03 얼어붙은 자의식의 바다를깨뜨리고 생명을 불어넣는 책 『데미안』

데미안을 읽고 나서야 그 동안 내가 두 발 딛고 서 있던 땅이

굳고 단단한 대지가 아니라 얼어붙은 바다에 불과했음을 알

았다 데미안은 도끼를 가져와 이 꽁꽁 언 바다를 가차 없이

내리 찍었다 그리고 말했다 얼어붙은 바다를 단단한 땅인

줄 알고 사느니 그 얼음을 깨부수고 그 속에 빠져 죽기 살기

로 허우적대라고 그러면 그 속에서 너는 너 자신을 똑바로 마

주하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성장할 것이라고

주인공 싱클레어도 그를 둘러싸고 있던 세계를 깨뜨려 나가

며 성장한다 그 모든 과정은 결국 진정한 자기 자신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가 깨뜨린 가장 큰 세계는 바로 자신의 사고 체계였다 세상

을 바라보는 기존의 이분법적이던 시각 고정되고 획일화된 시

각을 버렸다 주인공은 세계 안에 심지어는 자신 안에도 선하

고 악하며 밝고 어두운 양극단의 것들이 공존함을 이해하고

두 세계를 끌어안았다 주인공은 귀와 눈을 가리던 장막을 걷

어내 버리고 세상을 바로 보게 되었다 상극인 것들의 괴리로

이루어진 이 모순된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곧 자신 안의 부조

화 또한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스스로에게 다가서는 첫 걸음

이었다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양극단의 세계 사이에서 싱

클레어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며 흔들리기를 반복했다 이

때 그에게는 삶을 지탱할 중심축이 없었다 항상 내면이 아닌

외부 세계에서 자신이 속할 자리를 찾아 헤맸다 그가 비로소

온전한 자신을 만난 순간은 어느 편으로도 치우침 없이 스스

로의 기준으로 홀로 서게 되었을 때였다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 이 길은 당신이 내면에 있는 모

순되는 두 세계 한없이 나약하고 뒷걸음치는 비열한 모습들

과 정갈하고 깨끗한 곧은 힘들을 동시에 직시하는 순간에 시

작된다 그리고 이 길은 두 세계 속에 들어가 이리저리 휩쓸리

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세계를 밟고 우뚝 올라서서 스스로

가 중심이 됨으로써 앞으로 펼쳐진다

이제 lsquo자아를 찾으라rsquo는 지루하고 흔한 이야기가 더 이상 빤

하거나 우습지 않다 묵직한 울림이 되어 나를 흔든다 그냥

나만 붙잡고 흔드는 것이라면 손사래 쳐 뿌리치겠는데 내가

밟고 있던 땅 속해 있던 세계를 뿌리째 흔들어 버린다 읽는

내내 속이 답답하고 나에게 화가 난다 그런데 이렇게 마구

혼나면서 이상하게도 후련한 구석이 있다 호통을 치는 데미

안이 사실은 우리를 응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막연

하고 무기력한 안개에 휩싸여 있을 때 데미안은 그만의 방

식으로 우리에게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준다 물론 갈 방향을

정해준다거나 각자의 사정을 듣고 상담을 해주는 것은 아니

다 오로지 궁지로 몰아세울 뿐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사람들

은 잊고 있던 lsquo나 자신rsquo을 일깨운다 아 그동안 lsquo나rsquo에 대해 생

각해본 적이 있던가 라는 정도만이라도 좋다 이 물음이 바로

여정의 시작이니까

그렇게 스스로에게 묻고 나면 더 이상 전처럼 살 수는 없기 때

문이다 아니라면 자기 자신에게 면목이 없을 것이다 이 무서

운 책이 우리를 혼내고 몰아치면서도 여전히 영원한 고전이자

필독서로 사랑 받는 이유다

lsquo우리들 속에는 모든 것을 아는 한 사람이 있다rsquo고 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혼이 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혼

이 났다는 것은 자신 안에 있는 lsquo그 사람rsquo이 말을 하기 시작했

다는 뜻이니까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목소리가 희미하

고 멀리 있다 하여도 숨죽여 귀 기울이는 일 자체가 자신에게

로 가는 과정임을 잊지 말고

편집자반 11기 배예리

『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민음사 20001220

Demian Die Geschichte von Emil

Sinclairs Jugend(1919)

31

03 얼어붙은 자의식의 바다를깨뜨리고 생명을 불어넣는 책 『데미안』

데미안을 읽고 나서야 그 동안 내가 두 발 딛고 서 있던 땅이

굳고 단단한 대지가 아니라 얼어붙은 바다에 불과했음을 알

았다 데미안은 도끼를 가져와 이 꽁꽁 언 바다를 가차 없이

내리 찍었다 그리고 말했다 얼어붙은 바다를 단단한 땅인

줄 알고 사느니 그 얼음을 깨부수고 그 속에 빠져 죽기 살기

로 허우적대라고 그러면 그 속에서 너는 너 자신을 똑바로 마

주하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성장할 것이라고

주인공 싱클레어도 그를 둘러싸고 있던 세계를 깨뜨려 나가

며 성장한다 그 모든 과정은 결국 진정한 자기 자신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가 깨뜨린 가장 큰 세계는 바로 자신의 사고 체계였다 세상

을 바라보는 기존의 이분법적이던 시각 고정되고 획일화된 시

각을 버렸다 주인공은 세계 안에 심지어는 자신 안에도 선하

고 악하며 밝고 어두운 양극단의 것들이 공존함을 이해하고

두 세계를 끌어안았다 주인공은 귀와 눈을 가리던 장막을 걷

어내 버리고 세상을 바로 보게 되었다 상극인 것들의 괴리로

이루어진 이 모순된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곧 자신 안의 부조

화 또한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스스로에게 다가서는 첫 걸음

이었다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양극단의 세계 사이에서 싱

클레어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며 흔들리기를 반복했다 이

때 그에게는 삶을 지탱할 중심축이 없었다 항상 내면이 아닌

외부 세계에서 자신이 속할 자리를 찾아 헤맸다 그가 비로소

온전한 자신을 만난 순간은 어느 편으로도 치우침 없이 스스

로의 기준으로 홀로 서게 되었을 때였다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 이 길은 당신이 내면에 있는 모

순되는 두 세계 한없이 나약하고 뒷걸음치는 비열한 모습들

과 정갈하고 깨끗한 곧은 힘들을 동시에 직시하는 순간에 시

작된다 그리고 이 길은 두 세계 속에 들어가 이리저리 휩쓸리

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세계를 밟고 우뚝 올라서서 스스로

가 중심이 됨으로써 앞으로 펼쳐진다

이제 lsquo자아를 찾으라rsquo는 지루하고 흔한 이야기가 더 이상 빤

하거나 우습지 않다 묵직한 울림이 되어 나를 흔든다 그냥

나만 붙잡고 흔드는 것이라면 손사래 쳐 뿌리치겠는데 내가

밟고 있던 땅 속해 있던 세계를 뿌리째 흔들어 버린다 읽는

내내 속이 답답하고 나에게 화가 난다 그런데 이렇게 마구

혼나면서 이상하게도 후련한 구석이 있다 호통을 치는 데미

안이 사실은 우리를 응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막연

하고 무기력한 안개에 휩싸여 있을 때 데미안은 그만의 방

식으로 우리에게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준다 물론 갈 방향을

정해준다거나 각자의 사정을 듣고 상담을 해주는 것은 아니

다 오로지 궁지로 몰아세울 뿐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사람들

은 잊고 있던 lsquo나 자신rsquo을 일깨운다 아 그동안 lsquo나rsquo에 대해 생

각해본 적이 있던가 라는 정도만이라도 좋다 이 물음이 바로

여정의 시작이니까

그렇게 스스로에게 묻고 나면 더 이상 전처럼 살 수는 없기 때

문이다 아니라면 자기 자신에게 면목이 없을 것이다 이 무서

운 책이 우리를 혼내고 몰아치면서도 여전히 영원한 고전이자

필독서로 사랑 받는 이유다

lsquo우리들 속에는 모든 것을 아는 한 사람이 있다rsquo고 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혼이 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혼

이 났다는 것은 자신 안에 있는 lsquo그 사람rsquo이 말을 하기 시작했

다는 뜻이니까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목소리가 희미하

고 멀리 있다 하여도 숨죽여 귀 기울이는 일 자체가 자신에게

로 가는 과정임을 잊지 말고

편집자반 11기 배예리

『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민음사 20001220

Demian Die Geschichte von Emil

Sinclairs Jugend(1919)

32

박세길 인터뷰

진정한 역사가는 과거에 파묻히지 않는다옥(獄)에서 옥(玉)을 만든 작가 박세길 인터뷰

박세길 저자는 처녀작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로 80년대

대표 역사서 자리를 꿰찬 분입니다 1986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감되었을 때 감옥에서 역사책을 읽으며

사회 모순에 대해 고민했고 출소하자마자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집필했습니다 정권 탄압 속에서 왜곡된

현대사를 바로 잡았다는 의미를 지닌 이 대표작은 오랫동안

고시생과 대학생들의 필독서로 꼽혔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읽은 박세길 저자의 저서는 지난 6월 출간한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입니다 기사를 쓰고 편집할 때 청년 세대를

겨냥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박세길 저자는 역시나

청년들의 미래에 큰 관심을 갖고 계셨습니다 취업을

눈앞에 둔 서울출판예비학교 학생들이 가져야 할 자세를

여쭸습니다

출판학교에서 강의하신 한 선생님은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가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와

더불어 80년대 인문학의 양대

산맥이라고 하셨습니다

책의 성공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강의

요청이 많이 들어왔어요 먹고사는

경제적인 문제도 해결됐습니다

몇 부 팔렸는지는 잘 모릅니다

출판사에서 기밀 사항이라고

하더군요 요즘은 마케팅 차원으로도

몇 쇄 몇 부인지 밝히지만 그때는

세금 문제를 피해가기 위해서인지

쉬쉬하던 시절이었나 봅니다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는 대학

선후배끼리도 많이 물려주는 책이라고

들었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의 쉬운 설명이

좋았습니다 더불어 어떤 사명감을 안고 썼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완성하기에 앞서 어떤 목표를

두셨나요

청년 세대가 외환위기 이후 집중적인 희생양으로 전락하면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드러내면서 여기에

머물지 않고 청년 세대의 잠재력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들이 역사 무대 한복판에 진출해 자기 몫을 다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습니다

역사 분야는 시장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역사 혹은 현대사가 주목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통해 얘기하자면

80년대 후반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lsquo왜곡된

역사를 바로 알자rsquo는 시각 교정의 욕구가 있었던

차에 제 책이 나름 부응했는지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시기가 적절했던 셈이죠

2012년 대선 후 역사 분야가 잠시 반짝했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금세 시들었다고

하더군요 당시 역사 분야 책들이 일반 독자가

읽기에 다소 어렵거나 출간한 지 오래된 것들

위주였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돋을세길

출판학교에서 강의하신 한 선생님은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가 유홍준 교수의

책의 성공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강의

하더군요 요즘은 마케팅 차원으로도

선후배끼리도 많이 물려주는 책이라고

역사 분야는 시장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역사 혹은 현대사가 주목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통해 얘기하자면

80년대 후반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lsquo왜곡된

역사를 바로 알자rsquo는 시각 교정의 욕구가 있었던

차에 제 책이 나름 부응했는지 큰 반향을

읽기에 다소 어렵거나 출간한 지 오래된 것들

위주였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의 저자

33

2012년 대선 후 역사 분야가 관심을 받았던 것은

보수층의 재집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한

불안 때문일까요

맞습니다 그러나 마땅한 책이 없어서 그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역사 분야에서 베스트셀러를 내기

위해서는 시기가 맞아 떨어지고 내용 또한 대중이 원하는

것을 담고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를 편집한 lsquo생각정원rsquo

출판사의 정희용 편집자에게 감사 표시를 하셨습니다

어떤 편집자를 선호하시나요

간단합니다 편집자는 철저히 독자 입장에서 독자와 작가

사이의 간극을 줄여줘야 합니다 예를 들면 어려운 내용을

과감히 생략하고 다음 기회로 미루도록 설득한다거나 좌파

운동권 색채가 너무 강한 문장을 조금 순화하는 것 등입니다

어떤 내용이 이번 책에 꼭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선택을

도와줘야 합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을 작가님께서 직접

독자들에게 홍보하신다면 카피 문구를 짧게 제시할 수

있을까요

청년 세대 희망 찾기 갑갑한 현실을 어떻게 타개할 수

있을지 그 답을 찾아보는 길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취업 후 첫발을 내디딜 서울출판예비학교 11기

학생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출판 또한 돈을 벌어야한다는 기본 전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출판계를 지켜본 결과 뭔가 소명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오래

살아남았습니다 출판학교 역대 대표 중 일부는 나와 관계가

있는 사람들인데 모두 고유한 소명의식을 갖고 출판계에

뛰어들었습니다 때로는 상업주의 안에서 재주도 부리곤

했지만 어쨌든 분야 내에서 고유한 캐릭터를 구축했습니다

출판학교 학생들이 출판 상황을 이해하고 자신을 역할을

정하는 개인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비전 중심의 경영을

하는 회사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지만 개인 비전을 기업

비전으로 나아가 사회 비전으로 접목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과거에 안주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부분을

출판계에서는 SNS 등 인터넷 환경을 통한 마케팅으로

이해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SNS망 자체에서 무엇이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건 사람과

사람이 서로 소통하고 공감하는데 필요한 도구입니다

콘텐츠 중심의 사고가 중요하고 그것이 전제되지 않을 때

SNS는 착각에 불과하며 성공할 수 없습니다 필요한 콘텐츠

중심의 사고를 가지고 철저하게 진행하지 않으면 그 공간에서

허망하게 헤엄만 칠 뿐 입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SNS에서

맥없이 헤엄치다 익사하는 경우를 볼 수 있을 겁니다

콘텐츠와 마케팅의 영역을 하나로 보는 것과 따로

보는 것 어떤 것이 독자를 위하는 것일까요

출판 마케팅은 책을 기획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에서부터

개입돼야 하고 그 과정에 독자를 참여시키는 방식을

고민해야 합니다 미국 네브래스카주립대학의 이상문

교수는 lsquo밀실 안에서의 혁신은 끝났다rsquo고 얘기합니다

개방된 체제에서 독자 곧 소비자 사용자의 참여 하에 함께

만들어갈 때 혁신은 이뤄진다고 합니다 출판사의 비전이

브랜드로 연결될 때 독자는 자발적으로 의견을 주고받고

싶어 할 겁니다

마케터반 11기 이창환

디자

인 사

공예

Page 11: 서울출판예비학교 웹진 _5호 2015

11

1212

설왕설래

『호밀밭의 파수꾼』의 결말이

궁금해서 견딜 수 없다면

세 반 학우들의 상상력을 동원한 우리들의 릴레이 세

나에 대해 듣고 싶다면 내가 어디서 태어났는지 어린

시절이 얼마나 형편없었는지 내 부모님이 무슨 직업을

가지고 있는지 내가 태어나기 전에 무슨 일들이 있었는

지 같은 데이비드 코퍼필드 식의 헛소리가 듣고 싶겠지

하지만 난 그딴 이야기 하고 싶지 않아 (JD 샐린저 『호

밀밭의 파수꾼』

내 속으로 지나가지만 어쨌든 내 것이 아닌 섬광을 내

가 앉았던 내가 읽었던 생을 한순간에 으스러뜨리는

섬광을 이야기하고 싶어 이창환

아니 잠깐 내가 뭔 병신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

지 내일 서울출판예비학교 면접 있어서 빨리 자야 하

는데hellip 공태준

어서 잠에 들어야 한다는 조급함이 커질수록 허기 또

한 함께 치밀어 올랐다 결국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파

스타 면을 삶는 시간 8분 (그 동안엔 냉장고의 한 쪽

에 남아있던 산토리 한 캔을 단숨에 들이켜야 했다)

음악은 야나체크의 산포니에타 김사룡

맥주 한 캔으로 살짝 취기가 돌자 술이 더 마시고 싶었

다 결국 소주 한 병을 꺼내어 마시며 적당히 삶아진 파

스타 면을 올리브유에 볶았다 내일 입을 정장치마가

끼지 않을까 걱정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엎질러진 물

인걸 최다은

침대에 누워 억지로 잠을 청해본다 잡념이 사라지지

않는다 고민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된다 젠장 벌

써 새벽 3시 자긴 글렀네hellip 그렇게 뒤척이다 날은 밝았

다 이다혜

밝아진 창밖을 보며 어젯밤 나를 뒤척이게 한 면접을

떠올렸다 어제만 해도 중요한 일이라 생각했는데 날

이 밝으니 이미 그 중요성은 나와 멀어진 느낌이다 의

무감에 옷을 챙겨입고 집을 나섰다 양화대교를 건너는

버스 안 새로운 계획이 떠올랐다 황하정

새로운 계획으로 들뜬 나에게 창밖의 풍경이 눈에 들어

온다 수많은 사람과 차량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

어진다 다른 듯 보이지만 얼굴을 장식한 특유의 무표

정함과 발등에 불이 떨어진 듯 바삐 움직이는 모습 속

에 내가 겹쳐 보인다 그래 이번 계획은 나에게 얼마

동안의 기대감을 선사해 줄 수 있을까 뭐 어때 잠깐

이라도 좋다 쓸데없는 잡념보다는 시한부 희망이 차라

리 낫다며 애써 위로한다 유수지

순간 어렴풋한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니 내 또

래의 남자가 거북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김단희

그의 혐오에 가까운 시선과 마주쳤을 때 나는 순간 얼

어버렸다 면접 장소에 가기 위해선 이번 정류장에서 내

렸어야만 했다 그러나 나에게 다가오는 그 남자 때문

에 그러지 못했다 남자가 말했다 김선아

ldquo너였구나 그래 너였어 3년 전 3만원을 빌리고 도망

간 김말숙이 그래 너야rdquo

그 남자는 미친 게 분명했다 lsquo잠깐 이 관능적인 머스

크 향은 뭐지rsquo 순간 뇌리를 스치는 불가리 향수는

그 남자를 떠올리게 했다 지독하게 얼굴을 기억하지

못했던 그 남자를 말이다 이장열

대학교 1학년 설레는 마음으로 나간 첫 번째 미팅을

내 인생 최악의 시간으로 만들었던 lsquo불가리 그놈rsquo이었

lsquo젠장 이 안면 인식 장애놈이 내 얼굴을 어떻게 기억하

는 거지rsquo 내 이름이 김말숙이든 아니든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내 얼굴을 기억한다는 것이 의아할 뿐

양화대교 위에서 떠오른 새로운 계획 그래 지금부터

시작이다 오늘 하루는 lsquo나rsquo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 살

아보는 거야

난 매섭게 치뜬 눈으로 나를 응시하는 그를 뒤로하고

소설의 첫 문장으로 시작하는 릴레이 소설

13

무심히 다음 역에서 내렸다 아무런 동요 없이 발걸음

을 옮기는 나를 보고는 그도 무안한지 이내 제자리로

돌아가는 듯했다 이상한 사람 나는 계속해 나의 목적

지를 향해 걸어갔다

결국 지각했다 면접은 진행 중이었다 이게 다 불가리

때문이다 불가리 냄새가 몸에 밴 것 같다 아니 불가

리 냄새는 내 옆에서 나고 있었다 내 옆에는 불가리가

앉아 있었다 부처님의 손가락을 본 손오공의 심정이

이러했을까 강귀욱

끔찍했다 냄새도 면접도

lsquo젠장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야rsquo

담배에 불을 붙여 한 모금 깊게 빤다 lsquo후-rsquo 치미는 화

도 잡념도 불안도 이 연기처럼 쉬이 사라져버리면 좋

으련만 무의미한 푸념만이 입 안에 맴돈다

ldquo김말숙~ 여기 있었냐rdquo 그 말에 얼마나 놀랐냐면 떨

어진 담뱃불이 내 정장치마를 태우고 있는 줄도 몰랐을

정도였다 lsquo불가리 그놈을 피해 골목까지 들어왔는데

여긴 어떻게 찾은거야rsquo

ldquo밥 먹을래rdquo lsquo꺼져 꺼져 제발 꺼져helliprsquo 못 들은 척 고

개를 돌렸다

ldquo소달구지라고 괜찮은 식당 있는데 같이 가면 그 3만

원 없던 걸로 해줄게rdquo

우리는 눈이 마주쳤다 김영준

해질 무렵 서서히 불이 들어오는 보고 있어도 언제 밝

아졌는지 알 수 없는 양화대교 위 가로등처럼 우리는

천천히 그러나 깊게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새카

만 흑암의 공간 무저갱 같이 깊고 검은 눈동자 속에

숨겨 놓은 비밀을 알아내기라도 하려는 듯 그렇게 서

로의 눈을 망막 너머의 시신경을 시신경을 타고 올라

가 전두엽 어딘가에서 터지고 있을 스파크를 계속 들여

다보았다 이윽고 두 남녀의 입이 열렸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낮은 목소리가 화음을 내며 울려 퍼

졌다 ldquo몽마르뜨가 좋겠어rdquo 권오권

끔찍했던 면접과 기분 나쁜 불가리놈의 얼굴이 잊힐 정

도로 음식의 맛은 정말 좋았다 고작 음식 때문에 기분

이 나아지는 내 자신에게 정말 어이가 없었지만 어쨌

든 맛은 좋았다 된장국으로 숟가락을 옮기며 슬쩍 앞

의 녀석 얼굴을 쳐다보았을 때 그 녀석도 나를 쳐다보

고 있었다 김희연

3년 전의 얼굴과 꽤 변해있었다 그 당시 철없는 어린

애 같은 얼굴이었는데 지금은 사회인이 되려고 꾸며댄

듯한 모습 물론 3년 전보다 더 나아졌다거나 잘생겨진

것은 아니다 전보다 훨씬 평범한 얼굴이다 ()

그런 그는 어째서 날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어째서 날

기억하고 다가와서 말을 걸고 함께 식사까지 하려 하

는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이 텅 빈 머릿속을 메

운다 엄청나게 망쳐 버린 하루지만 이상하리만큼 멀

쩡한 내가 낯설다 김하얀

그러다 내가 집에 돌아가는 길 문득 미니스톱에 담배

를 사러 들렀다가 ldquo여기 국산담배밖에 없는helliprdquo 음hellip

없단다 가뜩이나 기분도 꿀꿀한데 없다니 빵만 사서

나왔다

빵을 사서 가는 길에 낯익은 얼굴에 걸음을 멈추었다

ldquo너 혼자 빵 먹냐 나도 같이 먹자rdquo 불가리 그놈이었

다 ldquo혹시 너 나 따라온 거야rdquo 기가 막혔다 백가은

어쩐지 불가리 향수 냄새가 난다 했다 ldquo왜 따라왔어rdquo

그랬더니 불가리 그놈이 하는 말

ldquo난 내 집 가는 건데rdquo 믿을 수 없다 수상쩍다 그놈은

나를 앞질러 가더니 우리 집 주인 아줌마네 집으로 들

어가 버렸다 아 저 놈이 집주인 아줌마 아들놈인가

월세 밀렸는데 망할

망할 이상한 하루였다 잊자 오늘 일은 전부 다 잊어

버려야지 방으로 들어오기 직전에 산 맥주 한 캔의 뚜

껑을 따고 들이킨다 캬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가는 듯

시원하다 씻고 자리에 눕는 순간 면접 결과가 나올 때

까지 무엇을 하고 있어야 할지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TO BE CONTINUEDhellip

은 익명 표시입니다

13

무심히 다음 역에서 내렸다 아무런 동요 없이 발걸음

을 옮기는 나를 보고는 그도 무안한지 이내 제자리로

돌아가는 듯했다 이상한 사람 나는 계속해 나의 목적

지를 향해 걸어갔다

결국 지각했다 면접은 진행 중이었다 이게 다 불가리

때문이다 불가리 냄새가 몸에 밴 것 같다 아니 불가

리 냄새는 내 옆에서 나고 있었다 내 옆에는 불가리가

앉아 있었다 부처님의 손가락을 본 손오공의 심정이

이러했을까 강귀욱

끔찍했다 냄새도 면접도

lsquo젠장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야rsquo

담배에 불을 붙여 한 모금 깊게 빤다 lsquo후-rsquo 치미는 화

도 잡념도 불안도 이 연기처럼 쉬이 사라져버리면 좋

으련만 무의미한 푸념만이 입 안에 맴돈다

ldquo김말숙~ 여기 있었냐rdquo 그 말에 얼마나 놀랐냐면 떨

어진 담뱃불이 내 정장치마를 태우고 있는 줄도 몰랐을

정도였다 lsquo불가리 그놈을 피해 골목까지 들어왔는데

여긴 어떻게 찾은거야rsquo

ldquo밥 먹을래rdquo lsquo꺼져 꺼져 제발 꺼져helliprsquo 못 들은 척 고

개를 돌렸다

ldquo소달구지라고 괜찮은 식당 있는데 같이 가면 그 3만

원 없던 걸로 해줄게rdquo

우리는 눈이 마주쳤다 김영준

해질 무렵 서서히 불이 들어오는 보고 있어도 언제 밝

아졌는지 알 수 없는 양화대교 위 가로등처럼 우리는

천천히 그러나 깊게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새카

만 흑암의 공간 무저갱 같이 깊고 검은 눈동자 속에

숨겨 놓은 비밀을 알아내기라도 하려는 듯 그렇게 서

로의 눈을 망막 너머의 시신경을 시신경을 타고 올라

가 전두엽 어딘가에서 터지고 있을 스파크를 계속 들여

다보았다 이윽고 두 남녀의 입이 열렸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낮은 목소리가 화음을 내며 울려 퍼

졌다 ldquo몽마르뜨가 좋겠어rdquo 권오권

끔찍했던 면접과 기분 나쁜 불가리놈의 얼굴이 잊힐 정

도로 음식의 맛은 정말 좋았다 고작 음식 때문에 기분

이 나아지는 내 자신에게 정말 어이가 없었지만 어쨌

든 맛은 좋았다 된장국으로 숟가락을 옮기며 슬쩍 앞

의 녀석 얼굴을 쳐다보았을 때 그 녀석도 나를 쳐다보

고 있었다 김희연

3년 전의 얼굴과 꽤 변해있었다 그 당시 철없는 어린

애 같은 얼굴이었는데 지금은 사회인이 되려고 꾸며댄

듯한 모습 물론 3년 전보다 더 나아졌다거나 잘생겨진

것은 아니다 전보다 훨씬 평범한 얼굴이다 ()

그런 그는 어째서 날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어째서 날

기억하고 다가와서 말을 걸고 함께 식사까지 하려 하

는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이 텅 빈 머릿속을 메

운다 엄청나게 망쳐 버린 하루지만 이상하리만큼 멀

쩡한 내가 낯설다 김하얀

그러다 내가 집에 돌아가는 길 문득 미니스톱에 담배

를 사러 들렀다가 ldquo여기 국산담배밖에 없는helliprdquo 음hellip

없단다 가뜩이나 기분도 꿀꿀한데 없다니 빵만 사서

나왔다

빵을 사서 가는 길에 낯익은 얼굴에 걸음을 멈추었다

ldquo너 혼자 빵 먹냐 나도 같이 먹자rdquo 불가리 그놈이었

다 ldquo혹시 너 나 따라온 거야rdquo 기가 막혔다 백가은

어쩐지 불가리 향수 냄새가 난다 했다 ldquo왜 따라왔어rdquo

그랬더니 불가리 그놈이 하는 말

ldquo난 내 집 가는 건데rdquo 믿을 수 없다 수상쩍다 그놈은

나를 앞질러 가더니 우리 집 주인 아줌마네 집으로 들

어가 버렸다 아 저 놈이 집주인 아줌마 아들놈인가

월세 밀렸는데 망할

망할 이상한 하루였다 잊자 오늘 일은 전부 다 잊어

버려야지 방으로 들어오기 직전에 산 맥주 한 캔의 뚜

껑을 따고 들이킨다 캬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가는 듯

시원하다 씻고 자리에 눕는 순간 면접 결과가 나올 때

까지 무엇을 하고 있어야 할지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TO BE CONTINUEDhellip

은 익명 표시입니다

14

이옥란 선생님

캡틴 오 마이 캡틴(captain oh my captain)선생님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

편집자반 학우들은 늘 이분의 얼굴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며

끝마친다 몇 번의 마주침은 덤이다 그분은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도 가깝지만은 않았던 편집자반의 담임 교수

이옥란 선생님 자신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우리를 위한

이야기를 풀어놓으시느라 매일 종례시간이 부족하신 이옥란

선생님께 이번엔 우리가 물었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 일상을 어떻게 보내고 계신가요 선생님의

주말이 취향이 추억이 삶이 궁금하다 편집자반 학생들에게

직접 받은 질문들로 lsquo한 사람rsquo에게 궁금한 것들을 물었다

이 인터뷰를 읽은 뒤 그녀를 한층 좋아하게 되리라고

확신한다

왜 디토 커피에 자주 가시나요

커피가 제일 맛있고 값이 싸고

넓은 창으로 햇빛이 많이 들어와

그리고 주인장들이 공간은 물론이고

손님들과도 잘 어우러지는 것 같아

옥란 선생님께 스카프란

어느 날 발견한 패션 아이템 몇 년 전인가

홍대 앞 가판대에서 우연히 마 레이온 합성의

보라색 스카프를 발견한 이후인 것 같아

왜 고양이를 좋아하시나요 고양이를 키우시나요

고양이가 나를 키웠다고 할 수 있지 시골집 막내였는데

고양이가 친구가 되어주었어 (선생님이 고양이를 닮아

가시는 것 같아요 혹시 키우세요) 둘 있는데 13년쯤 되었나

최근에 읽었거나 읽고 계신 책은

이익섭 저의 『국어학개설』 『말과 사물』 『좌파는

어디에 있었는가』 『논어』 『번역어의 성립』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등 여러 권 들고 다니면서 돌려본다

(국어학개설은 읽는다기보다 공부 아닐까요) 아니야

재미있어

인생의 책을 꼽자면

김훈의 『남한산성』 표지가 핫핑크 색이야 건조하고 힘

있는 남성적인 문체의 마초라고 불리기까지 하는 작가의

책이 핑크색이라니 크기도 아마 46판에 더스트 커버(dust

cover)는 질긴 천의 느낌이고 본문은 재생지인지 무겁지

않고 두께도 딱 손에 잡히는 정도 감각까지 장악한 책이야

몇 권 사서 주변 사람들에게 돌렸어

선생님의 멘토는

이런 질문에 답하게 될 줄은 몰랐네 글쎄 그러고 보면

존경스러운 사람은 있었지 대학 때 문학 동아리 선배였어

양상현 형 (어떤 점이 제일 존경스러우셨어요) 자유롭게

사는 사람이었던 것 얼마 전에 돌아가셨어 이제 조금

실감이 나네 그분은 건축 전공에 시를 쓰고 음악을

즐기고 노는 문화를 나누고hellip 어떤 사태도 회피하지 않고

자유로웠던 사람이었지 앞으로 할 일이 더 많았을 터인데

양상현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졸업 동대학원

박사학위 2002년 대한민국건축대전

초대작가 선정 순천향대 건축학과

교수 재직 민족건축인협의회

의장 설계 작품으로는 lsquo장암리

주택rsquo lsquo녹촌리 조각가의 집rsquo 등

대표 저서『거꾸로 읽는 도시

뒤집어 보는 건축』 2015년

8월 14일 별세

졸업 후 편집자로 일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우리 때는 노동운동이나 농민운동을

했던 대학생이 사회과학 출판사로

진출하는 경우가 많았고 내 친구도 졸업을 해서

출판사에 있었어 그 녀석이 나를 사무실로

초대했는데 반지하도 아니고 그냥 지하였던 것

같아 ldquo옥란이 이리와 봐 이게 뭔지 아니 바로

매킨토시라는 거야 이게 얼마짜린지 아니rdquo

매킨토시 컬러 클래식(Macintosh Color Classic)

웬만한 공책보다 좀 클까 본체가 화면에 같이

붙어 있는 하드웨어를 가진 컴퓨터였지 친구 말로는

300~400만 원 한다고 했어 20년 전이니 당시로는

큰돈이지 교정지를 보여주더니 마치 lsquo음 너는 아직 이런 거

모르지rsquo라고 하는 듯이 ldquo잠깐만 언니가 뭐 좀 할 테니까

잠깐 기다려봐 하hellip 이거 띄어쓰기 어떻게 해야 하려나 이게

전문용어라 통일을 해줘야 하는데helliprdquo 하던 잘난 척이 기억이

나네 그렇게 출판사를 접했지 문학 동아리를 하느라 알게

된 선생님들 선배님들도 여럿 출판사에들 계셨어

편집자로 일하셨을 때 어떤 분야를

편집하셨나요

하다 보니 주로 예술 서양 미술 분야였고

출판사는 학고재 예경 마로니에북스까지

그런 기회가 나한테 왔고 재미있었어

전공이 그쪽이 아니었기 때문에 공부를

해야 했지

지난 서울출판예비학교생활 중 특별히

기억나는 사람이나 사건이 있다면

8기 졸업식 날 남학생 셋이 ldquo저는 출판학교에

와서 모든 것을 얻었습니다rdquo 그러면서 흑흑 우는 거야

누군지 얘기하면 창피하겠지 남학생들이 울어서 애들이

알고싶어 편집자반

15

완전 눈물 바다였잖아 (우리 반 오빠들이 운다는 건 상상할

수 없네요) 다음 해에는 애들이 완전 유머 코드여서 웃다

끝났지

출판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된 계기나 동기는

무엇인가요

나는 8기부터 시작했는데 7기 담임이던 김장환 씨가 나를

불렀어 공동 담임을 해달라고 lsquo그러지 뭐rsquo 이렇게 시작했지

직장은 2008년도까지 다녔고 프리랜서로 활동하면서

여기저기서 강의를 하고 있었어 한겨레 문화센터에도

23년쯤 있었지 (편집자보다 이렇게 선생님으로 있는 게 더

즐거우세요) 지금은 진짜 만들고 싶은 책 함께 작업해보고

싶은 저자 그런 게 아닌 한 직업으로 신간을 꾸준히 내는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당신들은 눈이 반짝반짝해서 업계에 들어와야겠다고

준비해서 오잖아 그 친구들이 1년차 3년차 되는 것을

지켜보고 있으려니까 내가 그 나이쯤 사회생활을

시작해 고민했던 지점이 보이는 거지 그 때

이걸 알았더라면 하는 안타까움이 있어서

여러분들이 애틋해지지

요즘 최대의 관심사는 무엇인가요

저녁에 후배들에게 가르칠 강의를 하다

보니 국어 공부의 필요성을 여실히 느끼고

있어 출판 동네에서 20년 넘게 일한 사람이

공부해온 것을 한 번 정리해서 후배들한테 줄 필요도

있겠구나 싶고 (뭔가 일 얘기가 아닐 줄 알았는데요

하하)

은퇴 후에 무엇을 하고 싶으신가요

오늘은 말이 절로 나오는 걸 하하 마당 있는 시골집 텃밭을

일구며 역사에 길이 남을 인간과 세상을 통찰하는 대작

소설을 발표하겠다 (와)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이 되고 싶으신가요

다시 태어나고 싶지가 않아hellip(웃음) 지구에서는 내

대에서 멸종하기로 했다

저희들에게 속 시원하게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자신 있게 해라

생각해보면 다들 자기가 못났어 키도 좀 더 컸으면

좋겠고 외모도 마음에 안 들고 내가 저 때 저렇게

했으면 지금 달라졌을까 부럽기도 하고

그런데 사실 부질없는 거거든 세상 사는

힘이 실력에만 있는 게 아니고 태도의 문제가 더

클 때가 많아 내 것이 아닌 것에 목매고 있을

필요가 없어 신입사원으로 전혀 모르는 곳에

뚝 떨어졌을 때 저들의 세계 속에 혼자 쏙

들어간 기분이니까 일단은 주눅이 들지

하지만 거기서 살아가야 하지 않겠어

둘러보면서 아 저기가 화장실이구나 사람들은

이런 걸 이렇게 하는구나 파악하고 나면 좀

수월해지잖아

마지막으로 대망의 이상형 월드컵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정우 주원 김수현 유아인 이렇게

4강전으로 시작하겠습니다

(하정우와 주원 중에서는 누가 더 좋으세요) 하정우지

주원이 최근에 좋아지긴 했는데 아직도 하정우를 따라올 수

없어

(그럼 김수현유아인 중에서는요) 유아인이지

(너무 확고하셔요 드라마 lt밀회gt 보셨나요) 집에선 케이블

방송도 안 나오고 관심 갖게 되었을 땐 너무 유행이라

안보고 말았지 대신 영화 lt완득이gt는 봤다

(이제 결승인데요 마지막으로 하정우와 유아인은요)

아인이는hellip 나한테 좀 과분한 것 같아(웃음) 하정우가 삐질

것 같은데 그래서 둘 다 잃는 거야hellip

편집자반 11기 김수진 이상화

lt베테랑gt의 악랄한 재벌 2세유아인

lt프로듀사gt의 어리버리 신입PD

김수현

lt용팔이gt의 천재 외과의사

주원

lt 암 살 gt 의 순 정 마초

하와이 피스톨하정우

하정우

16

한대웅 선생님

『동백꽃』의 주인공 같은 그 남자착하디착한 순하디순한 한대웅 선생님의 속마음

좀처럼 화내시는 일도 없고 허허 웃기만 하시고hellip 하지 못한

말들을 땀으로 발산하듯 여름이면 온몸이 열정으로 흠뻑

젖으시는 분 세상 어디에도 없을 착한 남자 마케터반의

한대웅 선생님이다 그에게 던진 몇 가지 질문에 돌아온 것은

가장으로서의 고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 아직도 앳된

소년 같은 순수함이 묻어나는 답변들이었다 이제 그를 좀 더

깊게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평소에 칼라(collar) 티셔츠를 즐겨 입으시던데

좋아하시는 옷인가요

좋아한다기보다는 제 딴에는 편하게 입을 수 있는 듯해서

즐겨 입고 있습니다 또 아내가 이런 종류의 옷을 많이

사주기도 하고요

선생님께 lsquo출판rsquo이란 무엇인가요

출판은 lsquo꿈을 이루는 판도라의 상자rsquo lsquo내가 가진 능력에 가장

맞는 일rsquo입니다

출판을 업으로 삼지

않으셨다면 어떤 일을

선택하셨을까요

모르겠네요 아마도 운명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요 다만 다음과

같은 3가지 생각은 해보았습니다

첫째 고등학교 시절 성적이 조금

더 좋았다면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해서

지금쯤이면 텔레비전이나 영화에 나오는 큰 전투함의

함장이 되지 않았을까요

둘째 대학교에 입학하지 못했다면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로 이민을 가서 장사를 하거나 농부로 농장을

운영하면서 그곳 사람으로 국적을 바꾸고 살고 있지

않을까요 고등학교 3학년 때 대학교 입학 시험에

떨어지면 다른 나라로 가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다는

마음의 준비를 했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 모 일간지에 실린

해외에서 성공적인 삶을 사는 한국 사람들에 관한 기사를

꼼꼼하게 읽었었거든요

셋째 대학교 3학년이나 4학년 때 신춘문예까지는 아니라도

대학교 교내 문학상 정도를 받았다면 아마도 그 결과에

탄력을 받아 시나리오 작가나 연극 연출가의 길로 가려고

하지 않았을까요

ID와 블로그에 lsquo봄rsquo이라는 단어가 들어있는데 봄을

좋아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그 ID를 만들 무렵 저의 미래는 꽤나 불확실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바꿔 말하면 어떻게

돈을 벌어야 하고 어떻게 자아 성취를

해야 하는지가 불확실하고

힘들었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lsquo봄rsquo이라는

단어를 좋아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누구나

알다시피 봄은 겨우내

얼어 있던 것들이

새롭게 싹을 틔우고

새롭게 기지개를 펴는

계절이죠 물론 봄

자체가 주는 느낌도

좋고요 그래서 lsquo봄rsquo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던 것

같습니다

블로그는 서울출판예비학교에서

일을 시작한 후 만들었습니다

블로그에 lsquo봄바람rsquo이라는 의미를 부여한

것은 ID를 만들던 때의 생각이 이어진 것이겠지요 요즘에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이 많이 사라진 것 같습니다 만약

앞으로 블로그나 ID를 만든다면 아마도 lsquo여름rsquo 혹은 lsquo풍성함rsquo

아니면 lsquo내가 원하는 세상을 상징하는 어떤 것rsquo을 이름으로

사용할 것 같습니다

편집자로 첫 시작을 하셨는데 나중에 출판 마케터로

일하게 된 동기를 알고 싶어요

시장 상황을 분석하고 이에 맞게 마케팅 계획을 세우고

사람이나 집단을 만나고 힘을 합쳐 뭔가 새로운 결과를

만들어 내는 일이 재미있었습니다

은퇴 후에 꿈꾸시는 삶이 있으신가요

아직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20대와 30대

초반에 꿈꾸던 것들을 lsquo은퇴 후에 여유가 생긴다면 이것들을

해볼까rsquo라고 간혹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현재겠죠 출판에서 뭔가를 이루려고 열심히 계획하고

실행하다 보면 은퇴 후의 삶도 더 풍요로워지지 않을까요

알고싶어 마케터반

17

일하실 때 다뤘던 책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무엇인가요

입사 초기 편집을 하거나 시장조사를 하고 제가 출간 여부에

대한 판단을 내렸던 책들이 기억납니다 『펠레』 자서전은

제가 편집자로 있을 때 출간했던 책인데 주요 일간지의

서평란 메인을 장식했던 책입니다 출간 시점을 맞추기 위해

촉박한 기간 동안 밤새가며 책을 만들었습니다 출간 시점에

대한 판단이 정확히 맞았고 그 결과 기대 이상으로 많은

서평을 받았던 책입니다

서울예비출판학교 선생님으로 오신 계기를

알고 싶어요

전에 다니던 출판사를 그만둔 후

개인적으로 뭔가를 해보려고 고민

중이었습니다 그러나 능력이

부족하다 보니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았죠 그러던 중에

출판학교에서 일해 볼 것을

제안 받았고 저도 출판학교

학생들처럼 면접을 보고 이

학교에 오게 되었습니다

일을 하게 되었을 때 매우

즐거웠습니다

다시 출판사 마케터로 돌아갈

생각이 있으신가요

아니오 이유는 2가지인데 첫째는 제 나이가

48세입니다 다른 업종도 그렇지만 출판 산업에서도

48살에 마케터로 직장인의 생활을 이어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죠 정말 현실적인 고민이죠 게다가 출판학교에서

여러분과 소통하며 제 지식을 전수하는 일이 재미있습니다

물론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언젠가 저만의 꿈을

찾아갈 수 있겠죠

평소 몇 권의 책을 읽으시나요 최근 읽은 책 중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요

예전에 많이 읽을 때는 1주일에 2권 정도 읽었습니다

황석영의 『장길산』과 홍명희의 『임꺽정』 이문열의

『삼국지』를 읽을 때 짬짬이 쉬는 시간을 비롯해 지하철에서

보내는 시간까지 거의 모든 시간을 책을 읽으며 보냈습니다

요즘에는 1달에 1~2권 정도 읽는 것 같네요 최근 읽은

책 중에 기억에 남는 책은 『내 아이와 어떻게 대화할

것인가』(율리아 기펜레이테르 저 써네스트 2006)와 『내

아이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율리아 기펜레이테르

저 써네스트 2009)입니다 제목만으로도 왜 이 책을

추천하는지 금방 눈치 챌 수 있을 것입니다 아이가 둘

있는데 첫째는 15살 딸이고 둘째는 10살 아들입니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lsquo어떻게 하면 아이와 싸우지 않고

윽박지르지 않고 아이의 자존감을 높여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성실하고 삶의 열정과 꿈이 넘쳐나는 아이로

키울까rsquo 같은 고민을 항상 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단비처럼 다가왔습니다 위의 2권의 책을 읽고 몇

가지 중요한 것들을 배웠습니다 아이와 어떻게 소통하고

어떻게 대화해야 하는지 아이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등등 이전에 『부모와 아이 사이』(하임 G 기너트

등 저 양철북 2003)를 읽고 아이를 이해하는 법에 대해

큰 인상을 받았는데 이 책도 그 연장선에서 저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아들과 딸을 좀 더 이해하게 되고 그

결과 아이들에게 화를 내거나(저도 나약한 인간인데 화가

날 때가 심심치 않게 있거든요) 아이들의 긍정적인 싹을

본의 아니게 꺾어 버리는 경우가 줄었다고 할까요 게다가

이 책은 lsquo부모와 아이 사이rsquo만이 아니라 lsquo친구와 친구 사이rsquo

lsquo회사 내부 구성원 사이rsquo에서 소통하는 데도 많은 영감을

제공합니다 출판학교 학생들과 소통할 때도 이해의 폭을

넓혀주고 긍정적인 소통을 하는 방법을 제공해 줍니다

이제 수료를 앞둔 마케터반 학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으시다면

개인별로 처한 처지와 조건에 따라 다르겠지만 다음과 같은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 연인을 사랑하듯 출판에 대해서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보세

- 이 길이 나에게 최선의 길인가 생각해 보세요

- 목표를 세우고 지금부터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한 후 그것을 어떻게 이루어 나갈 것인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보세요

저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스스로의 내면을 단단하게 할 중요한

질문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앞으로도 끊임없이

새로운 답을 찾아나갈 질문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케터반 11기 이장열 이창환

18

선생님은 주말에 뭐하세요

무조건 가족과 함께hellip

만약 편집 디자인을 안 하셨다면 무슨 일을 하고

계실까 궁금해요

어찌 됐든 개인 사업자로 살았을 듯 윗사람 비위 맞추는

것을 너무 못하므로hellip

선생님 주량이 어떻게 되세요 주사가 있으세요

몸 상태 좋고 안주 많이 먹으면 1병(클래식으로)

좋은 출판 디자인을 생각한다

심우진middot안광욱 선생님

lsquo멋rsquo이라는 것이 폭발한다뼛속까지 디자이너스러운 심우진 선생님

멀리서도 눈에 띄는 큰 키에 멋들어진 베레모 디자인반의

심우진 선생님 되시겠다 서울출판예비학교에서 lsquo멋rsquo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가끔은 조금 키 큰 학생처럼 학생들

속에 잘 어우러지는 사람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모습은

여기까지다 그를 조금 더 알고 싶다 지금까지의 그를

만들어왔을 lsquo심우진의 생각들rsquo이 궁금했다

선생님은 무엇을 드시고 그리 멋지시나요

학생들의 사랑 밥 김치

일본 유학길에 오르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lsquo동아시아rsquo lsquo근대rsquo가 당시 나의 화두였으므로 그리고

스기우라 고헤이 선생을 뵈러

첫 직장을 다녔을때 일의 강도()나 다니는 동안

마음은 또 어떠셨는지

출판 쪽 첫 직장은 lsquo정디자인rsquo인데 lsquo나는 왜 이렇게 디자인을

못할까rsquo 답답해했던 기억이 있어요 그러나 매우 즐거웠고

술도 자주 마셨죠 아직도 당시의 OB들과 가깝게 지내요

lsquo둥지rsquo 같은 곳이죠

선생님께서 생각하는 완벽한 판면이란

디자이너의 삶의 방식과 콘텐츠의 삶의 방식이 녹아든 판면

선생님의 피로회복 방법은

알고싶어 디자인반

19

디자인반의 히어로좋은 출판 디자인을 생각한다 안광욱 선생님

여자 화장실 앞에 있어 인파로 북적대는 디자인반 교실을

학생들과 함께 굳건히 지켜온 분 디자인반 학생들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애정공세를 아끼지 않는 분 안광욱

선생님에게 물어본 4가지

디자이너로서 첫 직장을 다닐 때의 마음이

어떠셨나요

잘하고 싶었는데 못해서 힘들었지 사수에게 하루 서너

시간씩 야단맞으면서 했다오 매일 2호선 양화대교에서 뛰어

내리고 싶었는데hellip 이 부분은 내일 수업 때 얘기해줄게^^

선생님께서 생각하는 좋은 출판 디자인이란

세상을 향한 사랑과 희망이 듬뿍 담긴 디자인

출판 디자인을 안 했다면 지금 무슨 일을 하고

계실까요

모르겠네 그냥 선녀 옷 훔치는 나무꾼이 되어 있을 듯^^

어떤 주사가

있으신지 궁금해요

말이 조금 더 많아지고 장소 불문 쿨쿨 자 특별한 주사는

없는 듯

디자인반 11기 이소현 백가은 사공예원

디자

인 사

공예

20

편집자반 김영준 학우가 그린

『이 외로운 사람들아』 일러스트

기억에콕

수업 후기

ldquo우리에게는 lsquo일탈rsquo이 필요합니다rdquo

잠깐 딴 짓을 하는 사이에 귓가에 들려온

한 문장이 나를 사로잡았다 배는 부르고

따 사 로 운 햇 살 에 잠 이 쏟 아 지 는 시 간

오후 1시 30분 시간을 칼같이 맞춰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선 그는 딱 봐도 지루하고

고리타분해 보이는 첫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순간 눈으로 들어온 이미지는 뇌로 흘러갔고

뇌는 망설임 없는 확신으로 귀에 명령을

전달했다 그렇게 귀는 이미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내 들려올 그렇고 그런 뻔한

이야기에 대하여

눈의 판단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의 한마디

한마디는 파격이었다 아니 어쩌면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였지만 누구도 자신 있게

내던지지 못하는 말들을 서슴지 않고 내뱉는 그

거침없음에 신선함을 느낀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의 관심을 돌려놓았던 lsquo일탈rsquo에 대한 그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lsquo일탈을 하라rsquo는 말이

lsquo제멋대로 하라rsquo는 의미가 아니라 어떤 규칙을

벗어나는 행위를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다르게

생각하는 방식을 몸으로 익히게 된다는 것

새로운 것을 생각해내는 창의성이라는 힘은

당연히 새로운 경험에서 나온다는 것이었다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니 강의를 듣던

친구들의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때 보고 들었던 그의 말과 행동이 우리에게는

딱 딱 한 강 의 실 에 서 느 끼 는 새 로 운 경 험

lsquo일탈rsquo이었다

그 와 의 만 남 은 계 속 이 어 졌 다 이 곳

서 울 출 판 예 비 학 교 에 입 학 한 이 후 로 는 좀

더 완 벽 한 일 주 일 단 위 로 시 간 이 흐 르 기

시작했는데 매주 쌓여가는 새로운 배움 뒤에는

수많은 물음이 불쑥불쑥 솟아났고 그는 마치

예상을 했다는 듯이 일주일에 한 번씩 나타나

우리의 설익은 궁금증을 해소해주고 떠나갔다

첫 만남에서는 책이라는 대상과 책을 대하는

편집자의 자세에 대해 이야기하며 큰 그림을

그려주었고 다음엔 저자와의 관계 맺기 그

다음엔 스스로 만들어 가야할 편집자의 자기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담백하게 들려주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네 번째 만남이었다

누구도 쉽게 이야기하기 어려운 완벽하게

솔직해지기는 더더욱 어려운 자신의 좌절과

실패를 그는 담담하고 진솔하게 소개해주었다

모든 성공에는 대개 7할의 실패가 전제되어

있기 마련인데 성공에 이르기까지 거치는

우 리 가 lsquo실패rsquo라고 명 명하는 것들이 사실

진짜 실패가 아니라 성공의 다른 이름이라는

그의 말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성공도 실패도

어 느 한 지 점 에 서 내 리 는 판 단 인 것 이 고

결 국 성 장 하 고 성 숙 한 다 는 것 은 성 공 과

실패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lsquo차이rsquo를 얼마만큼

발견하느냐 하는 것에서 결정된다는 그의 말이

가슴을 뜨겁게 했다 비로소 lsquo편집자rsquo로서가

아닌 한 lsquo사람rsquo으로서의 그가 보이기 시작했다

담담하게 말을 하고 있지만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아프고 쓰린 기억을 후배들에게

들 려 주 는 그 에 게 서 진 심 이 전 해 져 왔 다

사랑하는 일에 대한 함께 걸어갈 동지들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 참 고마웠다

어느덧 마지막 만남이 찾아왔다 한 권의

책을 만들면서 진행했던 편집의 과정을 예로

실 제 적 인 이 야 기 를 우 리 에 게 마 지 막 으 로

들려주었다 편집의 능력은 지식과 정보에서

나온다는 것 그것은 단숨에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 꾸준히 쌓아가야 한다는 것 그래서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의 문제라는 것을 경험을

근거로 자신 있게 말해 주었다 이미 지나온

과거의 결과 대신 앞으로 걸어갈 길에 대한

희망을 들려주어서 그게 참 고마웠다

편집자반 일탈이 주는 파격 우리가 낳을 lsquo새로운 책rsquo과 편집자선완규 선생님과의 다섯 번의 만남이 키운 생각들

21

그 가 우 리 에 게 마 지 막 으 로 이 야 기 를

들려주었던 그날 이후 석 달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났다 나는 여전히 같은 강의실에 앉아

앞서 길을 걸어간 선배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고 조금씩 가까워지고 밝아져가는 내 앞에

놓인 길에 대해 생각한다 그러다 문득 마음이

무거워지고 막막해질 때면 종종 그의 말들을

떠올려 본다 그리고 그 생각의 끝에서 마음을

의지하며 함께 이 길을 걸어갈 따뜻한 선배가

하나 있다는 위로 한 줌을 발견한다

ps 선완규 선생님 고맙습니다 보고 싶어요

편집자반 11기 성준근

마케터반 강한 수면욕 환상과 환기

판형과 종이를 예술로 편입시키려는 영업자다빈치 출판사 박성식 대표 특강 후기

9월 23일 평소보다 점심을 많이 먹었던 날이다 잠을 며칠간 못 자 피곤했다

오후 1시 30분이 살짝 지나서 다빈치 출판사 박성식 대표의 특강이 시작됐다

다빈치 대표님은 처음 뵐 때부터 남다르셨다 서울출판예비학교 입학 면접에서

여자 술 담배를 각각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보셨다 lsquo솔직함을 어필해야

하는 순간인가rsquo하는 생각에 직설적으로 답했지만 lsquo더 문학적으로 얘기할 수

있었는데rsquo라는 후회를 안고 돌아왔다

마음과 다르게 첫 번째 시간은 정신없이 잠이 쏟아졌다 눈을 감고 귀 기울였지만

턱을 괸 채 버티는 동안 50분이 지났다 대표님께 캔 커피를 하나 드리고 맞이한 두

번째 시간 그 한 시간 동안 나는 현실 옆의 어떤 이상 내지는 환상을 본 것 같다 그동안

듣던 강의들을 놓고 lsquo이상적인 관점이다rsquo 혹은 lsquo현실적이다rsquo라고 구분했던 판단의 폭

자체가 좁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성식 대표님은 내 머리에 있던 lsquo책rsquo에 대한 인식을 전복시켰다 자본주의 출판의

몰락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시작됐다는 말 출판 기본 특성인 다품종 소량 생산은 돌아올

것이며 다품종 소량 생산을 넘어 다품종 소량 lsquo고급 생산rsquo을 추구하고 싶다는 말은 나를

달뜨게 했다 주류에 반하는 사고를 가진 중년의 개성과 내공에 교실 풍경이 환기됐다

교육 수단으로 책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지만 책은 그만큼 사회적 의무와 희생을

짊어져왔다 출세와 공부 앞에서 책이 가진 기호(嗜好)성은 변두리로 내몰렸다 책을

읽어야만 제대로 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분위기는 옳지 않다 독서는 성향의 범주지 성역이

돼선 안 된다 정보와 지식의 전달은 모바일 등에 넘겨주고 종이책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공동체로 돌아와야 한다 그게 원래 자리라는 대표님의 주장이 새롭고 강렬하다

자본주의 3대 원칙인 lsquo더 빨리 더 많이 더 싸게rsquo 체계는 표준화와 규격화를 동반하며

매우 효율적이다 현재 사용하는 종이는 자본주의 원칙에 최적화돼 있다 그러나 대표님은

인쇄기계로 소화하지 못하는 질감과 전혀 다른 발색을 지닌 lsquo종이rsquo에 주목했다 그 종이로

콘텐츠 종이 판형이 완벽하게 들어맞는 예술서를 만들고 시장을 설득한다면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책 판매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전했다 종이 자체가 책의 예술성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한지(韓紙)를 예로 들면서 훌륭한 텍스트와 이미지를 한 차원 끌어올리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많은 부수를 팔아야 성공한 출판 많은 부수를 파는 것을

목표로 하는 시대는 저물고 있다 기존 유통과 판매 방식

안에 갇혀서는 불황에 매몰될 뿐이다 소량의 고급화된

책을 꿈꾸는 것과 전시회를 책과 결합하는 것도 다른 길을

물색하는 과정이다

대표님은 10년 전부터 lsquo이 원고는 내가 누구보다 잘

만들겠다rsquo lsquo이 원고는 내가 못하면 누구도 못할 것 같다rsquo라는

생각이 든 책만 출간을 진행했다고 한다

강의 중간 자신의 독특한 철학을 전달하는 것에 대해 가벼운

염려를 하셨지만 이론적이고 실용적인 분야에 몸담더라도

예술적 사고의 유연성은 필요하다고 본다 돈과 인문정신을

구분하면서 필요할 때 양쪽에서 자극 받고 차용하는 것이 마케팅의 융통성과 힘을 기르는 길일 것이다

마케터반 11기 이창환

편집자반 김영준 학우가 그린

『이 외로운 사람들아』 일러스트

박성식 대표가 기획한 lsquo오름rsquo전

22

하늘

습탁은 농도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하늘

습탁은 농도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이 글은 심우진 선생님의 탁본 세미나 수업에 대한 우리들의 즐거운

기록이다 탁본은 습탁(濕拓)과 건탁(乾拓) 두 종류로 구별된다

습탁은 나타내고자 하는 물체 위에 물을 묻힌 후 종이를 그 위에

밀착시키고 먹물 묻은 솜방망이로 가볍게 두드려서 물체를 표현하는

방법이다 물체의 패인 부분을 제외하고 볼록한 부분의 모양대로

종이에 먹이 묻어 문자나 문양이 드러난다 건탁은 이름 그대로 물을

사용하지 않고 마른 상태의 먹인 고형묵(固形墨)을 사용한다 우리는

각자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사물과 자연을 이용해 탁본 작품을

만들고 서울출판예비학교 꼭대기 층에서 작품을 공유했다

디자인반 이 시간을 그대로 탁본할 수 있다면심우진 선생님의 탁본 세미나

저는 신문지를 구겨서 해봤어요

응 그런데 이건 방바닥 같은데

방바닥까지 묻어 나와 버렸네요

[학생들 하하하]

저는 일단 큰 나무 기둥을 떠봤고요

오솔길의 짚도 해보고 저희 집 바닥과

벽면도 신기해서 떠봤어요 집 벽면 중에

대리석도 있고 특이한 벽면이 많거든요

부잣집인가 보네

[학생들 깔깔깔]

승연

심우진 선생님

승연

승연

심우진 선생님

이건 파프리카인데 저희 집 개가 완성한 종이를 찢었어요

[학생들 하하하]

좀 작고 납작한 파프리카를 반으로 잘라서 습탁했어요 또

이건 철조망인데 용 비늘처럼 나와서 재밌었어요 아나콘다

같기도 하고 철조망이 날카로워서 습탁하니 종이가 자꾸

찢어져서 다시 하게 됐어요 근데 이거요hellip 남자친구

있으면 커플끼리 한 번 해보세요 한 명은 잡아주고 한 명은

습탁하고hellip 되게 로맨틱 성공적

자랑하는 거니

[학생들 깔깔깔]

수빈

수빈

심우진 선생님

혜민

정묵

처음에 나뭇잎이 세세하게 잘 나올 줄 몰랐는데 그

줄기의 질감이 잘 나왔고 버려진 타이어를 끌어서

생긴 모양으로도 습탁을 했는데 생각보다 잘 나와서

막상 찍어보면 생각과 다르다는 것을 느꼈어요

저도요 결과물이 뚜렷하게 안 나올 줄 알았는데

디테일이 잘 나타나 있었고 입체를 평면적으로

찍는 것 자체가 재밌었어요

수정

저는 빗자루를 해봤어요 너무 얇아서 안 나올

거라 생각했는데 빗자루 문양이 잘 나와서

재밌었고 머리카락도 해봤는데 머리카락은

끝 부분이 잘 나오는 편이에요 위쪽은 다

뭉쳐있는데 끝 부분은 펼칠 수 있으니까요

23

저는 결이 얇은 것들을 뜨는 것이 재밌었어요

머리카락처럼요 머리 긴 사람에게 부탁해서

눕히고 했어요 그리고 이건 얼굴인데요

처음에는 그냥 했는데 얼굴은 입체를 살리려면

스케치하듯 떠야 되요 결국 명암으로 입체감

조절을 해야 되죠 코가 너무 입체적이라 특히

힘들었어요

누구 얼굴이야

우리 언니hellip

[학생들 우와]

가은

심우진 선생님

가은

하얀

음각이 나왔을 때 너무 좋았고요하늘

습탁은 농도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소리

건 탁 보 다 는 습 탁 이 농 도 조 절 하 는 게

희 한 해 서 재 밌 었 어 요 농 도 조 절 이

관 건 이 거 든 요 먹 과 물 의 배 합 과

솜방망이가 먹물을 얼마나 흡수하는지 그

흡수량이 중요하고요

윤미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꽤 많은데 만져보면서 건탁을 뜨니까 좋았어요 전에

습탁할 때는 시멘트 벽 같은 걸 하다가 나뭇결을 하니까

살아있는 느낌이었어요 생각했던 것처럼 나와서

좋았고 솔방울이나 나뭇잎 같은 섬세한 것들은 제대로

나오지 않아서 아쉬웠어요 섬세한 것들은 습탁으로

해봐야겠어요 그래도 다양한 나무를 건탁해봐서

만족해요

소현

저는 일상적인 것들로 습탁을 해봤어요

처음에는 단순하게 오돌토돌한 느낌만

있 을 줄 알 았 는 데 색 다 른 느 낌 이 나 서

재밌었어요

탁본 세미나를 마치고 그 다음 주에 지하 강당에서 촬영하는 시간을

가졌다 촬영 후에 보정도 했다 나뭇잎의 결 무늬 타이어 자국

그리고 사람의 머리카락까지도 좋은 디자인의 재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보았고 나누었다 건탁과 습탁의 장단점을 이 수업으로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심우진 선생님의 이번 탁본 수업도 지난 활자

수업처럼 지식 습득은 물론이고 경험까지 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 시간들이 앞으로 출판 디자이너로서의 감각을 더 풍요롭게 해 주지

않을까

디자인반 11기 사공예원

하얀

음각이 나왔을 때 너무 좋았고요

습탁은 농도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솜방망이가 먹물을 얼마나 흡수하는지 그

흡수량이 중요하고요

윤미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꽤 많은데 만져보면서 건탁을 뜨니까 좋았어요 전에 꽤 많은데 만져보면서 건탁을 뜨니까 좋았어요 전에

이건 파프리카인데 저희 집 개가 완성한 종이를 찢었어요

[학생들 하하하]

좀 작고 납작한 파프리카를 반으로 잘라서 습탁했어요 또

이건 철조망인데 용 비늘처럼 나와서 재밌었어요 아나콘다

같기도 하고 철조망이 날카로워서 습탁하니 종이가 자꾸

찢어져서 다시 하게 됐어요 근데 이거요hellip 남자친구

있으면 커플끼리 한 번 해보세요 한 명은 잡아주고 한 명은

습탁하고hellip 되게 로맨틱 성공적

자랑하는 거니

[학생들 깔깔깔]

24

9시 30분 합정역 1번 출구 앞

ldquo누나rdquo 소리에 쳐다보니 반가운 공 총무의 얼굴이 보였다 정류장

앞으로 길게 늘어선 줄에 합류하여 파주로 날 데려다 줄 2200번

버스를 기다리고 있으니 반가운 얼굴들이 계속 나타났다 한 대의

버스를 보내고서야 겨우 2200번 버스에 탑승해 파주로 출발할 수

있었다

10시 15분 파주 lsquo다산교 앞rsquo 정류장 하차

4개의 정류장 총 57분이 걸린다고 알려준 N사 지도 어플의 정보와는

달리 30분 만에 파주에 도착했다 일찍 도착해 먹을 것을 찾아 헤맨

예비 마케터들은 편의점에서 주린 배를 채웠고 lsquo지혜의 숲rsquo을 살짝

염탐하며 11시까지 시간을 보냈다

11시 05분 보진재 2층

1912년 설립되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인쇄소인 보진재 관계자

분이 나와 간단히 인사 말씀을 하고 각 반의 인솔자를 소개해주셨다

마케터반의 인솔자는 서동관 과장님 디자인반 편집자반 마케터반

순으로 견학을 시작했다

11시 15분 보진재 견학 시작

제일 먼저 본 곳은 제판실이었다 필름 인쇄가 줄어들고 CTP로

대체되는 추세지만 어떤 분들은 여전히 필름 작업을 하고 계셨다

이유를 물어보니 서동관 과장님은 예전 필름이 남아 있기도 하고

출판사에 따라 필름을 고집하는 곳이 있다고 하셨다

한번에 5도 인쇄가 가능한 기계를 보는 중에 서 과장님이 말씀하셨다

ldquo한 유닛(unit)당 23억 정도 해요rdquo 그렇다면 유닛 다섯 개가

돌아가고 있으니 적어도 10억짜리 기계라고 내 눈에 보이는 건 그냥

낡고 큰 기계인데 10억이 넘는다니 놀랐다 또 과장님께서 자랑스레

말씀하신 한 가지 잉크 농도 조절을 자동으로 하는 기계가 보급된

곳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었다 원래는 사람이 눈으로 보고 수정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재판을 찍을 경우 초판과 동일한 색상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있지만 보진재는 기계가 자동으로 조정해주어 수월한

작업을 할 수 있다고 하셨다

매염실도 보고 제본실도 구경했다 인쇄된 종이를 접지하고 제본을

마친 후 마지막으로 제단을 하면 책이 완성되어 나왔다 그 모든

과정을 보고 난 후 서 과장님이 건넨 완성된 책의 무게는 보통의

그것보다 조금 더 무겁게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윤전실이었다 견학 당일은 작업이 없어서

비어있던 윤전실이지만 윤전실이 주는 무게감은 컸다 윤전실은

롤(roll)로 인쇄하는 곳으로 8개의 롤이 양면 인쇄를 하고 건조와

접지까지 한 번에 가능한 기계도 있었다 대량생산을 위한 곳으로

주로 교과서나 EBS 학습지를 인쇄한다고 하셨다

12시 20분 견학 끝

1시간을 조금 넘긴 견학을 끝내고 밖으로 나오니 코가 따갑고 목이

말랐다 기계가 먼지를 빨아들여준다고는 하지만 수없이 많은

종이가 존재하는 공간에서의 종이 냄새는 강력했던 것이다 책이

제작되는 과정은 실제로 보니 다양하고 복잡했다 자동화가 많이

되어있지만 사람의 손길 없이는 절대 완성될 수 없는 과정들을 보며

책이 완성되기까지의 노력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lsquo책이 어떻게

만들어진다rsquo를 배우다가 lsquo책이 이렇게 만들어진다rsquo를 보니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예비 출판 마케터의

길로 들어선 후에 새로운 것을 보고 배울 수 있었는데 보진재 견학은

그 중에서도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책을 완성시키기 위한 모든 과정이

저마다의 몫을 하고 있었다 서울출판예비학교 졸업 후 출판계에

들어섰을 때 나는 과연 어떤 몫을 할 수 있을까 남은 2개월을 조금은

더 열정적으로 보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마케터반 11기 최다은

1 일일탈

학교 밖 견학 후기

피부로 와 닿는 책의 감촉 책의 냄새 책의 소리 보진재에서 책이 인쇄되는 과정을 만나다

필름과 인쇄판이 만들어지는 과정

25

우리가 이제 각자 편집자 마케터 디자이너가 되어 책 만드는 일을

시작하면 우리의 책은 이곳에서부터 그 lsquo탄생rsquo을 시작할 것이다 책의

근간이 되는 종이가 만들어지는 곳 한솔제지 공장에 다녀왔다 학기

초에 책을 파는 서점을 견학한 뒤 그 다음으로 출판사 종이에 활자를

찍어내는 인쇄소 그리고 마지막으로 lsquo종이rsquo를 만드는 제지 공장을

찾은 것이다 책이 만들어지는 순서대로라면 우리가 다녀온 순서를

거꾸로 해서 다녀왔어야 했지만 우리는 반대로 실제 과정을 거슬러

올라간 것이다 이렇게 거슬러 올라가는 과정에서 오히려 편집자란

직업에 겸허해질 수 있었다 가끔은 편집자가 책을 만드는 모든

과정 위에 군림하는 것 같이 느껴지지만 책의 물성을 만들어내는

거대한 기계 앞에서 우린 한없이 작아지기도 한다 lsquo한 권의 책rsquo이

만들어지려면 이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함을 이해해야 했다 이렇게도

복잡하고 힘겹게 만들어지는 책의 가치를 한 번 더 깊이 생각하게 된

계기였다 책이라는 건 의미가 담긴 조각들의 집합체이자 종이를

보기 좋게 물성화한 것 이론적으로야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눈으로 보고 느끼는 것과는 천지차이다

날씨마저 좋았던 9월 11일 평소보다 한 시간이나 이른 8시

30분에 세 반 학우들은 눈도 제대로 못 뜬 채 집합했다 대전까지

간다니 마치 여행가는 것 같은 살짝 들뜬 기분까지 안고 아침도 못

챙겨먹고 나왔을 우리를 생각해서 빵과 우유까지 준비한 한솔제지

측의 세심한 배려에 감동했다 배도 채우고 부족한 잠도 보충해가며

2시간 넘게 달려 신탄진 공장에 도착했다 도착하자 보이는 우리를

환영하는 현수막에 2차로 감동했다 우리를 위해 정말 많은 준비를

하셨구나 느낀 순간이었다

신탄진 공장 강당에 들어가서 간단한 공장 소개를 먼저 들었다

그리고 뒤이어 종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경청했다 수업 때보다

학생들의 집중력이 더 높아 보였던 건 내 착각이었길 종이는

1퍼센트의 펄프와 99퍼센트의 물로 이루어진단다 그래서 전반적인

공 정 의 대 부 분 은 물 을 처 리 하 기 위 한 과 정 이 나 다 름 없 었 다

생각보다 종이는 순수한 물질이라고 생각했다 종이(paper)의

어원은 이집트의 파피루스(papyrus)에서 왔다고 한다 중국의

lsquo채륜(蔡倫)rsquo이라는 사람이 제일 먼저 발명했고 고려시대에

일본으로 넘어간다 일본에 가장 마지막으로 넘어갔지만 종이의

기술력은 현재 일본이 가장 좋다 원료rarr초지rarr코팅 등의 공정을 거쳐

종이가 완성되는데 마지막 코팅 공정을 여자의 화장에 비유한 것

역시 기억에 남는다 코팅이 그렇게나 대단한 과정이라니

공장 안으로 들어가서는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시끄러워서 설명을

제대로 듣진 못했지만 앞서 들었던 설명을 떠올리며 기계들을

관찰했다 인쇄소에서 본 광경들도 거대하고 박력 있었지만 여긴

그보다 더 거친 느낌이었다 책은 서점에 놓여있을 때는 그렇게

얌전하건만 태어날 땐 이렇게 시끄럽다 또한 막 태어난 종이는

거대하고 또 거대했다 다들 마치 거대한 두루마리 휴지 같다고들

했다

견학을 다 마치고 다시 대전 공장으로 이동해 다 같이 점심 식사를

했다 기대 이상으로 맛있는 밥에 또 감동 더 힘내서 견학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아쉽게도 대전 공장 안에는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라 그 힘()을 발휘하진 못했다 대전 공장은 신탄진 공장과

다르게 책에 쓰이는 것이 아닌 제품 포장용 박스 종이컵 등 다른

용도에 쓰이는 종이를 만드는 곳이었다 그 과정의 차이를 눈으로

비교하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마지막으로 좋은 선물까지 손에

받아들고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다시 서울로 향했다

언제나 시작은 중요하다 각자의 일에 빠져들게 되면 점점 잊게 될

그 시작을 눈에 담고 오래 기억하기 위해 다녀왔다고 생각한다 요즘

초심을 잃었다는 생각이 종종 드는데 책에게도 초심이 있다면 바로 이

곳일까 시작의 의미에 대해 다시 곱씹어보았다

편집자반 11기 박혜원

우리의 글과 그림이 펼쳐질 종이의 탄생 한솔제지 신탄진 공장 견학

거대한 롤(상) 한솔제지 공장 앞에서 (하)

26

화양연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삶과 문학에 취하다

편집자반 한국문학 동아리 lsquo공감rsquo 그 대담의 현장

훗날 서울출판예비학교를 떠올릴 때 가장 즐거운 시간으로 기

억되는 날들은 동아리 활동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들의

화양연화(花樣年華)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 중

의 하루를 소개한다 문예창작학과를 전공한 문학소녀 김한나

학우를 필두로 창단된 편집자반 내 한국문학 동아리 lsquo공감rsquo은

모임 전에 한국작가를 한 명 정해 단편 두 편을 함께 읽고 키워

드나 질문을 스스로 뽑아 글을 써왔다 모여서 때로는 소설의

플롯이나 주제 문체에 대한 열띤 토론을 하고 때로는 작가의

외모()와 같은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며 삼천포로 빠지기도 했

다 우리끼리만 듣기엔 아쉽다 이 즐거운 대화를 모두에게 들

려주고 싶었다 이날 모임에선 김영하 작가의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단편집 속의 두 단편 lsquo엘리베이

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이하 엘리베이터)rsquo와 lsquo사진

관 살인사건(이하 사진관)rsquo에 대해 이야기했다 여기서는 lsquo엘리

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rsquo를 읽고 토의한 내용을

실었다

한나 참고로 김영하는 사람의 욕망에 대해 천착하는 작가야

그런 특성이 엘리베이터에는 안 나와 있는데 사진관에서는

잘 드러나 있어

상화 백가흠 작가에게 소설창작론 강의를 들었는데 그분이

소설의 기법을 설명하면서 알레고리랑 아이러니를 얘기했어

알레고리가 인물이나 소재를 비유적으로 설명하는 거래 예를

들어 핸드폰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다른

것에 핸드폰을 빗댐으로써 소설을 풀어가는 거

야 아이러니는 속도감 있게 이야기를 전개함으

로써 부조리나 모순을 드러내는 건데 김영하가

아이러니의 대표적인 작가래 단편인데도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내면보다는 사건이 일어나는

걸로 소설을 끌어가는 작가 우리가 지난 모임

에서 성석제를 굉장한 이야기꾼이라고 했잖아

그런데 난 김영하가 훨씬 이야기꾼스럽게 느껴

졌어 속도감 있고 lsquo이렇게 몰입을 할 수 있나rsquo

싶고 지난 모임들에서 읽었던 손보미나 편혜영

소설의 경우는 분위기나 주인공의 심정 내면에

의미를 부여해 야 했는데 김영하의 소설은 덮

자마자 아이러니가 느껴지면서 lsquo아 세상은 왜

이래rsquo 말하게 만들었어

법열 나는 엘리베이터 읽고 딱 lsquo뫼비우스의 띠rsquo가 생각났거든

뫼비우스의 띠가 안하고 겉이 구분이 안 되잖아 끝과 시작이

어딘지도 모르고 lsquo나rsquo가 겪는 상황이 현실인지 아닌지 구분이

안 되는 느낌 마지막에 lsquo나rsquo가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가 존재

하기는 했는지 혼란스러운 느낌을 받잖아 그게 앞의 환상적

인 부분이랑 맞물리면서 하나가 되는 느낌이라 뫼비우스의 띠

가 생각났어

상화 lsquo나rsquo가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구해주려고 고분군투하

다가 나중에 자기가 엘리베이터에 갇히잖아

오권 낀 남자의 발을 보면서 느꼈던 감상이 사실은 자기를 구

하고 싶었던 마음인 거지

(일동 오~ 그렇게도 볼 수 있네)

오권 무한도전의 무한상사 특집도 생각났어 뜬금없이 휴지

사용하는 길이에 대해 회의하는 장면에서 엘리베이터는 갇힌

사회 서로를 돌아보지 않는 사회를 의미하는 것 같아

한나 나는 반대로 오히려 엘리베이터를 희망적인 존재로 봤

거든 아파트도 그렇고 회사도 그렇고 각자 자신의 공간 안에

서 살다가 서로 만날 수 있는 장소는 엘리베이터 밖에 없으니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김영하 지음

문학동네 20100216

동아리 후기

27

까 lsquo나rsquo가 회사 엘리베이터 안에 여자와 같이 갇히잖아 사실

은 갇히지 않았으면 대화도 안하고 지나쳐 갔을 텐데 남자는

자기가 아침부터 버스 사고도 나고 성추행범으로 몰렸다고 얘

기하고 또 남자의 담배 피워도 되냐는 말에 여자는 담배에 대

한 불평불만을 속사포처럼 얘기하고 엘리베이터라는 공간이

아니었다면 이런 대화 자체가 없었겠지

오권 엘리베이터 타면 사람들이 하나같이 층수 바뀌는 것만

쳐다보고 있잖아

상화 요즘은 스마트폰

오권 자기 얘기를 하고 싶은 것 같아 하지만 상대의 얘기는

안 들어 lsquo너의 얘기는 관심 밖이지만 내가 불편한 것에 대한

얘기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하겠어rsquo라는 느낌

한나 그리고 우스웠던 게 볼일 보고 휴지 몇 칸 쓰는지 회의에

서 얘기하는 건hellip 사실 굉장히 사적인 얘기잖아 (일동 하하

하) 서로에 대해 다른 얘기는 일절 하지 않으면서 회의 내용은

개인적이고 사적이라니 아이러니한 거지

수경 진짜 웃기지 않았어 lsquo나rsquo가 자원 재활용 문제에 대한 중

대 보고가 있다고 계속 빨리 가야한다고 했던 게 겨우 그거야

상화 겨우 이딴 회의하려고 지금 엘리베이터에 낀 사람 놔두

고hellip 생명이 더 중요한데 지금 휴지 구하려고hellip

(일동 하하하)

한나 lsquo나rsquo가 불쌍했던 이유가 자기한테 닥친 일들은 lsquo할 수 없

지 뭐rsquo 이런 식으로 넘기는데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 걱정하고

갇힌 여자 걱정하고hellip 정작 자기 걱정은 안 해

오권 영화 lt라이터를 켜라gt 봤어 조폭들한테 얻어맞으면서

도 주인공은 무조건 자기 라이터만 찾겠다고 그러거든 이 소

설의 lsquo나rsquo와 비슷한 느낌이 들더라고 그 영화에서는 라이터가

주인공의 존재를 투영하는 소재거든 lsquo나rsquo는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구해야만 자기가 산다는 느낌을 받은 거라 해석하면

너무 나간 건가

법열 아니요 형이 아까 지적해준 게 와 닿았어요 그 고군분

투가 결국 자기를 구하려는 노력이라는 지적이요

상화 그나마 lsquo나rsquo가 이 소설에서 제일 인간적이지

수경 어딘가 찌질한 느낌도 들어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와

lsquo내rsquo가 동류라고 자각하고 연민을 갖는 느낌이었거든 lsquo나rsquo가

인간적이고 윤리적이라는 생각은 나는 글쎄hellip 더 적극적으

로 할 수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 자기 사이클에서 벗어나

지 않는 한도 내에서 걱정만 하잖아 소설 안에서 비극과 희

극이 번갈아 가며 나타나는데 트럭과 버스가 충돌했을 때

lsquo나rsquo는 lsquo버스 카드 일로 충돌하지 않게 되어 적이 기뻤다rsquo고

생각해 버스 운전사는 트럭 백미러에 가슴이 받혀서 죽었는

지도 모르는데 lsquo다행히 나는 허리가 좀 뻐근한 것만 빼면 별

다른 상처가 없는 듯했다rsquo 이런 생각들을 하는 게 좀 섬뜩했

민희 사람은 다 이중성을 가지고 있잖아 나를 보는 듯했어

만약 학교 가는 길에 엘리베이터에 낀 사람을 봤다면 그렇

지만 나도 얼마나 바빠 몇 분 늦으면 지각 체크 당하고 출석

80퍼센트를 못 채울 수도(일동 웃음) 있는 상황이라면 내

가 그 남자를 구할 수 있을까 일단 지나치고 119에 전화하려

고 했으나 핸드폰이 없는 상황에 나도 처할 수 있는 거잖아 나

만 생각하는 잔인한 면도 내 안에 있고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

도 내 안에 있어 이런 찌질한 모습도 나고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정의롭게 구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상화 기준이 다른 것 같아 lsquo나rsquo 정도면 착하다고 생각했거든

수경 주변 사람들이 약간 마네킹 같지 않아 주인공 주변에

장치되어있던 다른 사람들이 너무 비인간적이기 때문에 lsquo나rsquo

가 돋보이는 거지 lsquo나rsquo는 지극히 평범한 우리 모습 같아 내가

어떻게 할 생각은 없고 궁금하기만 한 거야

민희 그 궁금함과 찜찜함도 죄책감이라 생각돼 아 내가 어떻

게 해줬어야 했나

한나 책임 회피일까

상화 그래서 나는 키워드 뽑은 것 중 하나가 119야 구해주고

싶으면 직접 내 손으로 잡아 빼주던가 엘리베이터를 들어 올

릴 사람을 모아야 했는데 신고 생각만 하잖아 이미 이건 누

가 대신 해결해줘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그나마 우리

사회에서 사고를 수습해주는 건 119밖에 없고 조선시대에는

119같은 거 없고 마을 사람들이 모여 구해줬을 텐데 어쩔 수

28

없는 현대인의 단상이긴 해 현대가 분업사회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들 바쁘고 삶이 개인화 파편화되어 있으니까 119 같

은 집단이 필요한 거지 그래서 난 119를 신의 영역이라고 썼

어 lsquo나rsquo는 119를 거의 신적인 존재처럼 생각하잖아 부르면 모

든 게 해결될 것처럼 핸드폰 빌리고 공중전화 찾고 그런데 막

상 교통사고 현장에서 119 대원에게 면대 면으로 얘기를 했더

니 그들은 무슨 그따위 장난을 하냐고 말해 구조도 실은 신이

아니라 사람이 하는 일이고 그 사람이 관심이 없으면 묻히는

거지

오권 전화를 거는 것과 직접 구해주는 것의 차이가 큰 것 같아

자기가 구해주는 건 적극적인 행동이고 119에 전화하는 건 스

스로 최소한 양심적이긴 하다고 여기는 행동

수경 그런데 엘리베이터에 낀 사람을 아무 것도 모르는 일반

인이 어떻게 했다가는 더 위험해질 수도 있잖아

오권 맞아 사회가 시스템화하고 고도화될수록 각자의 업무가

분업화되었고 전문분야가 생겨났으니까 옛날 같았으면 애 낳

으면 그냥 동네 아주머니가 애 받고 어미가 죽으면 젖동냥 다

녔는데hellip 이젠 사고가 나면 생각이 119에 먼저 미치는 시대가

된 거지

수경 그래서 어딘가에 널브러져 다친 인간이 아니라 엘리베이

터라는 공간에 낀 남자를 설정한 것 아닐까 엘리베이터는 현

대화의 상징이잖아

한나 lsquo나rsquo도 어쩔 수 없는 게 출근 시간에 쫓겨서 시계를 계속

봐 먹고 사는 일이니까

오권 출근했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다시 집으로 돌아가

낀 사람을 구해주면 굉장히 희망찬 소설로 바뀔 텐데hellip (일동

웃음)

수경 이 소설로 현대 사회의 폐단은 다 얘기할 수 있겠는데

상화 김영하는 천재인 것 같다

누군가 그리고 잘생겼잖아

누군가 잘생긴 거야

누군가 지적인 분위기가 있어서 좋아 (한참 얘기)

한나 또 인상 깊었던 게 구두에 집착하는 거 lsquo나는 날렵한 치

타처럼hellip 구두를 가지고 엘리베이터에서 빠져나오는 데 성공

했다 허탈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rsquo는 구절

오권 자살한 사람들이 구두를 가지런히 벗어놓는 이미지가 무

슨 상징처럼 있잖아

한나 신발 한 쪽 없이 다녀봤어 계속 기우뚱대서 내가 걷거

나 서 있을 때 내가 잘못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여기서 lsquo나rsquo가

그랬을 거야 사실 lsquo나rsquo처럼 사는 게 정상인데 세상이 잘못된

건데

상화 이 소설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감정표현이잖아 하루 종

일 얼마나 힘들었겠어 처음으로 감정표현을 하니까 불쌍했어

오권 휴머니즘 불쌍론 또 나왔네(일동 웃음) 그럼 이제 사진

관으로 넘어가볼까hellip

편집자반 11기 이상화

2929

책씹는맛 01 냄새라는 경이 lt감각의 박물학gt 후각편을 읽고

냄새에는 언어가 없다 어휘가 부족한 우리는 말문이 막힌

채 불명료한 쾌감과 자극의 바다에서 말을 찾을 수밖에

없다1

이 말은 다이앤 애커먼의 『감각의 박물학』 제 1장 후각에

나오는 구절이다 냄새를 글로 쓰고자 하는 나의 시도가 늘

실패로 귀결되는 이유를 이 구절에서 찾았다 작가의 말처

럼 냄새에 대해 쓴다는 건 언어 밖 세계로 나갔다가 다시

언어로 되돌아오는 길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길에서 헤매

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후각이라는 감각에서 길을

잃는 것은 낭만적인 일이기도 하다 lsquo냄새의 뇌관을 건드리

면 모든 추억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기rsquo2 때문이다 냄새 하

나에 수많은 추억들이 줄줄이 기억의 회로 위로 떠오른다

예를 들면 바다 냄새 하나만 상상해도 그와 관련된 수많

은 기억들이 머릿속에 뒤섞인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바닷가와 관련된 그 모든 추억들이 기억의 영사막에서 한

편의 옴니버스 영화 형태로 내게 다가온다 난 내 기억의

관객이 되어 그 영화를 보다가 견딜 수 없는 그리움에 젖는

다 이 영화에 대한 감상문을 적으려면 나는 말문이 막힌

다 그래서 몇 글자 적다가 결국 글을 쓰기를 멈춘다 굳이

언어로 표현하자면 쓸 수 없는 그리움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1 『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옮김 작가정신 20040720

A Natural History of the Senses(1991) 17쪽

2 같은 책 18쪽

결국 lsquo언어가 존재하는 세계에서 경이는 언어의 칼날 아래

서 쉽게 해부되고 냄새는 자주 혀끝에서 맴돈다rsquo3 냄새의

숭고함 앞에서 우리는 말을 멈춘다 이처럼 냄새는 말할 수

없는 자연의 경이로움과 닮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lsquo냄새가 우리의 마음을 그토록 강하게 움직이는 것은 부분

적으로 그 이름을 부를 수 없기 때문rsquo4이라고 한다 저자는

그렇기에 사람들이 냄새를 lsquo분 냄새 비슷한 펭귄 냄새가

나는 호화로운 화장실 냄새가 나는rsquo 같은 말로 표현할 뿐

이며 냄새에 대한 이름은 주어져 있지 않다고 말한다 또

한 종류는 같아도 강약과 농도가 다른 각각의 냄새에 이름

을 붙여줄 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우린 일상적으로 냄새를

맡으면서도 그 냄새와 멀리 떨어져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명명되지 않은 것은 결국 잊히는 게 아닐까 부를

수 없음에서 오는 경외감과 숭고함이 있을지라도 냄새는

말해져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말할 수 없는 것에 자꾸

만 침묵하기만 해야 할까

감각도 모험의 영역이 될 수 있다 세계 일주만이 세상을

아는 길일까 lsquo나rsquo를 온전히 아는 것이 역설적으로 세상과

가까워지는 일인지도 모른다 나를 알기 위한 길 중 하나가

내가 가지고 있는 감각을 이해하고 그걸 언어로 표현하는

일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어쩌면 우리와 제일 가깝지만 말

하기 낯선 감각 후각을 이해하는 일이 중요한지도 모른다

냄새라는 감각 속에서 우리 모두 길을 잃고 헤매고 모험해

보자 냄새에 나름의 이름을 지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

리고 농도에 따라 냄새를 구분하는 일도 해보자 냄새라는

경이는 우리를 더 이상 침묵으로 이끌지 않을 것이다

디자인반 11기 백가은

3 같은 책 22쪽

4 같은 책 22쪽

『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 옮김

작가정신 20040720

A Natural History of the Senses(1991)

3030

02 현실을 전복시키는 비현실

모호함이 주는 환상성

20세기 중반 중남미 소설은 전통적인 사실주의 서사 구조

를 깨고 현실과 환상을 혼합시키는 새로운 글쓰기 방식으

로 세계문학의 중심에 선다 이 시기에 주목 받은 일련의

중남미 작가들을 가리켜 lsquo붐 세대 작가rsquo라 칭하는데 아르

헨티나의 환상문학 작가 코르타사르는 이 붐 세대 작가군

의 선구자이자 대표 주자 격인 인물이다 그러나 그 문학적

성과와 명성이 무색하게도 국내 독자들에겐 그의 이름이

아직 생소한 것이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에서는 그

의 작품이 중남미 단편 선집에나 몇 편이 번역되었을 뿐 본

격적으로 소개된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중남미 문학을 공부했고 그의 몇 안 되는 번역 작품을 인

상 깊게 읽었던 독자 입장에서 이번에 출간된 코르타사르

의 단편집『드러누운 밤』은 가뭄의 단비처럼 반가운 신간

이다

환상 문학이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J R R 톨킨 류의 판타

지소설 혹은 쥘 베른이나 아이작 아시모프 류의 SF소설을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코르타사르의 환상문학은 이들 범

주에 들어가지 않는다 코르타사르 작품에서 나타나는 환

상이란 토도로프가 정의한 바 있는 환상 그러니까 자연적

인 것과 초자연적인 것 사이의 망설임에서 발생하는 환상

에 가깝다 따라서 판타지소설의 lsquo현실과 동떨어진 환상rsquo

혹은 SF소설의 lsquo설득력 있고 현실감 있는 환상rsquo을 기대하

는 독자라면 아마 십중팔구 그의 작품을 읽고 실망할 것

이다 어쩌면 이게 무슨 환상문학이냐는 푸념을 늘어놓을

지도 모르겠다 역시 가장 좋은 것은 선입관을 버리고 책을

읽는 것이다

코르타사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lsquo모호함rsquo이다 인물이나

배경 묘사에서 제시되는 기본적인 정보도 모호하고 사건의

전개 양상이 가진 당위성도 모호하다 작품 내에서 주요한

스토리 라인을 담당하는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경계도 모

호하며 심지어는 화자의 정체마저 모호한 작품도 있다 이

런 모호함의 향연은 짙게 깔린 안개와도 같아서 독자들은

그 속에서 한 치 앞도 제대로 내다볼 수 없음은 물론이요

이미 지나간 사실조차도 자신이 맞게 인식한 것인지 확신

할 수 없을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무엇이 진짜인지

독자들의 판단을 망설이게 만드는 이런 상태야말로 코르

타사르의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는 환상이란 개념이다 독

자들은 이 환상 속에서 그저 전방을 주시하며 천천히 나아

갈 수밖에 없다

다행스럽게도 코르타사르는 독자들의 시련을 헛되게 하지

않는다 작품의 시작점 일상 세계에 우연히 침투한 lsquo비현

실적인 것rsquo은 안개 속에서 알게 모르게 자신의 지분을 늘려

나간다 그리고 작품의 종점에 다다른 독자들은 비현실이

현실이 되고 현실이 비현실이 되는 이전과는 전혀 새로운

세계와 마주할 것이다 다시 말해 필연과 이성의 법칙이 지

배하는 세계가 우연과 환상이 지배하는 세계로 변하는 것

이다 이러한 세계의 전복은 마치 여기저기 단서를 흩뿌리

고 사람들을 알쏭달쏭하게 만들었다가 결말부에서 모든

것을 폭발시키는 추리소설 혹은 반전영화를 보는 듯한 재

미를 선사한다

그렇다면 코르타사르가 이 소설들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책을 다 읽고 난 독자라면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의문점이다 코르타사르는 자신이 환상문학을 쓰는

이유를 ldquo법칙이나 원칙 혹은 인과관계나 특정한 심리 또

는 잘 그려진 지리학과 같은 체계에 의해 세상이 지배되고

있다는 것에 반대rdquo하고 ldquo우리가 잘 모르며 우리에게 잘 다

가오지 않는 새로운 질서에 관해 생각해보기 위함rdquo이라고

설명한다 짧게 말해 이 세상에 필연이란 존재하지 않으

며 자신은 그것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말이다 이

게 전부다 순문학이라면 거장의 문학이라면 이보다 더 심

오한 통찰 혹은 비판이 있을 것이란 생각에 문장 속 숨겨진

의미를 발견하고자 머리를 싸맬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조

언을 하자면 독서는 독서 그 자체로 즐기면 된다 적어도 이

책에서는 그렇다 모호함과 예상외의 전개 속에서 재미를

느끼고 코르타사르가 묘사하는 세계의 불가지(不可知)성

을 어렴풋하게나마 인식할 수 있다면 이미 그것으로 충분

하다

편집자반 11기 강귀욱

『드러누운 밤』

훌리오 꼬르따사르 지음 박병규 옮김

창비 20141124

La noche boca arribaJulio Cortazar

31

03 얼어붙은 자의식의 바다를깨뜨리고 생명을 불어넣는 책 『데미안』

데미안을 읽고 나서야 그 동안 내가 두 발 딛고 서 있던 땅이

굳고 단단한 대지가 아니라 얼어붙은 바다에 불과했음을 알

았다 데미안은 도끼를 가져와 이 꽁꽁 언 바다를 가차 없이

내리 찍었다 그리고 말했다 얼어붙은 바다를 단단한 땅인

줄 알고 사느니 그 얼음을 깨부수고 그 속에 빠져 죽기 살기

로 허우적대라고 그러면 그 속에서 너는 너 자신을 똑바로 마

주하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성장할 것이라고

주인공 싱클레어도 그를 둘러싸고 있던 세계를 깨뜨려 나가

며 성장한다 그 모든 과정은 결국 진정한 자기 자신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가 깨뜨린 가장 큰 세계는 바로 자신의 사고 체계였다 세상

을 바라보는 기존의 이분법적이던 시각 고정되고 획일화된 시

각을 버렸다 주인공은 세계 안에 심지어는 자신 안에도 선하

고 악하며 밝고 어두운 양극단의 것들이 공존함을 이해하고

두 세계를 끌어안았다 주인공은 귀와 눈을 가리던 장막을 걷

어내 버리고 세상을 바로 보게 되었다 상극인 것들의 괴리로

이루어진 이 모순된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곧 자신 안의 부조

화 또한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스스로에게 다가서는 첫 걸음

이었다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양극단의 세계 사이에서 싱

클레어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며 흔들리기를 반복했다 이

때 그에게는 삶을 지탱할 중심축이 없었다 항상 내면이 아닌

외부 세계에서 자신이 속할 자리를 찾아 헤맸다 그가 비로소

온전한 자신을 만난 순간은 어느 편으로도 치우침 없이 스스

로의 기준으로 홀로 서게 되었을 때였다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 이 길은 당신이 내면에 있는 모

순되는 두 세계 한없이 나약하고 뒷걸음치는 비열한 모습들

과 정갈하고 깨끗한 곧은 힘들을 동시에 직시하는 순간에 시

작된다 그리고 이 길은 두 세계 속에 들어가 이리저리 휩쓸리

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세계를 밟고 우뚝 올라서서 스스로

가 중심이 됨으로써 앞으로 펼쳐진다

이제 lsquo자아를 찾으라rsquo는 지루하고 흔한 이야기가 더 이상 빤

하거나 우습지 않다 묵직한 울림이 되어 나를 흔든다 그냥

나만 붙잡고 흔드는 것이라면 손사래 쳐 뿌리치겠는데 내가

밟고 있던 땅 속해 있던 세계를 뿌리째 흔들어 버린다 읽는

내내 속이 답답하고 나에게 화가 난다 그런데 이렇게 마구

혼나면서 이상하게도 후련한 구석이 있다 호통을 치는 데미

안이 사실은 우리를 응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막연

하고 무기력한 안개에 휩싸여 있을 때 데미안은 그만의 방

식으로 우리에게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준다 물론 갈 방향을

정해준다거나 각자의 사정을 듣고 상담을 해주는 것은 아니

다 오로지 궁지로 몰아세울 뿐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사람들

은 잊고 있던 lsquo나 자신rsquo을 일깨운다 아 그동안 lsquo나rsquo에 대해 생

각해본 적이 있던가 라는 정도만이라도 좋다 이 물음이 바로

여정의 시작이니까

그렇게 스스로에게 묻고 나면 더 이상 전처럼 살 수는 없기 때

문이다 아니라면 자기 자신에게 면목이 없을 것이다 이 무서

운 책이 우리를 혼내고 몰아치면서도 여전히 영원한 고전이자

필독서로 사랑 받는 이유다

lsquo우리들 속에는 모든 것을 아는 한 사람이 있다rsquo고 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혼이 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혼

이 났다는 것은 자신 안에 있는 lsquo그 사람rsquo이 말을 하기 시작했

다는 뜻이니까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목소리가 희미하

고 멀리 있다 하여도 숨죽여 귀 기울이는 일 자체가 자신에게

로 가는 과정임을 잊지 말고

편집자반 11기 배예리

『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민음사 20001220

Demian Die Geschichte von Emil

Sinclairs Jugend(1919)

31

03 얼어붙은 자의식의 바다를깨뜨리고 생명을 불어넣는 책 『데미안』

데미안을 읽고 나서야 그 동안 내가 두 발 딛고 서 있던 땅이

굳고 단단한 대지가 아니라 얼어붙은 바다에 불과했음을 알

았다 데미안은 도끼를 가져와 이 꽁꽁 언 바다를 가차 없이

내리 찍었다 그리고 말했다 얼어붙은 바다를 단단한 땅인

줄 알고 사느니 그 얼음을 깨부수고 그 속에 빠져 죽기 살기

로 허우적대라고 그러면 그 속에서 너는 너 자신을 똑바로 마

주하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성장할 것이라고

주인공 싱클레어도 그를 둘러싸고 있던 세계를 깨뜨려 나가

며 성장한다 그 모든 과정은 결국 진정한 자기 자신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가 깨뜨린 가장 큰 세계는 바로 자신의 사고 체계였다 세상

을 바라보는 기존의 이분법적이던 시각 고정되고 획일화된 시

각을 버렸다 주인공은 세계 안에 심지어는 자신 안에도 선하

고 악하며 밝고 어두운 양극단의 것들이 공존함을 이해하고

두 세계를 끌어안았다 주인공은 귀와 눈을 가리던 장막을 걷

어내 버리고 세상을 바로 보게 되었다 상극인 것들의 괴리로

이루어진 이 모순된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곧 자신 안의 부조

화 또한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스스로에게 다가서는 첫 걸음

이었다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양극단의 세계 사이에서 싱

클레어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며 흔들리기를 반복했다 이

때 그에게는 삶을 지탱할 중심축이 없었다 항상 내면이 아닌

외부 세계에서 자신이 속할 자리를 찾아 헤맸다 그가 비로소

온전한 자신을 만난 순간은 어느 편으로도 치우침 없이 스스

로의 기준으로 홀로 서게 되었을 때였다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 이 길은 당신이 내면에 있는 모

순되는 두 세계 한없이 나약하고 뒷걸음치는 비열한 모습들

과 정갈하고 깨끗한 곧은 힘들을 동시에 직시하는 순간에 시

작된다 그리고 이 길은 두 세계 속에 들어가 이리저리 휩쓸리

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세계를 밟고 우뚝 올라서서 스스로

가 중심이 됨으로써 앞으로 펼쳐진다

이제 lsquo자아를 찾으라rsquo는 지루하고 흔한 이야기가 더 이상 빤

하거나 우습지 않다 묵직한 울림이 되어 나를 흔든다 그냥

나만 붙잡고 흔드는 것이라면 손사래 쳐 뿌리치겠는데 내가

밟고 있던 땅 속해 있던 세계를 뿌리째 흔들어 버린다 읽는

내내 속이 답답하고 나에게 화가 난다 그런데 이렇게 마구

혼나면서 이상하게도 후련한 구석이 있다 호통을 치는 데미

안이 사실은 우리를 응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막연

하고 무기력한 안개에 휩싸여 있을 때 데미안은 그만의 방

식으로 우리에게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준다 물론 갈 방향을

정해준다거나 각자의 사정을 듣고 상담을 해주는 것은 아니

다 오로지 궁지로 몰아세울 뿐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사람들

은 잊고 있던 lsquo나 자신rsquo을 일깨운다 아 그동안 lsquo나rsquo에 대해 생

각해본 적이 있던가 라는 정도만이라도 좋다 이 물음이 바로

여정의 시작이니까

그렇게 스스로에게 묻고 나면 더 이상 전처럼 살 수는 없기 때

문이다 아니라면 자기 자신에게 면목이 없을 것이다 이 무서

운 책이 우리를 혼내고 몰아치면서도 여전히 영원한 고전이자

필독서로 사랑 받는 이유다

lsquo우리들 속에는 모든 것을 아는 한 사람이 있다rsquo고 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혼이 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혼

이 났다는 것은 자신 안에 있는 lsquo그 사람rsquo이 말을 하기 시작했

다는 뜻이니까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목소리가 희미하

고 멀리 있다 하여도 숨죽여 귀 기울이는 일 자체가 자신에게

로 가는 과정임을 잊지 말고

편집자반 11기 배예리

『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민음사 20001220

Demian Die Geschichte von Emil

Sinclairs Jugend(1919)

32

박세길 인터뷰

진정한 역사가는 과거에 파묻히지 않는다옥(獄)에서 옥(玉)을 만든 작가 박세길 인터뷰

박세길 저자는 처녀작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로 80년대

대표 역사서 자리를 꿰찬 분입니다 1986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감되었을 때 감옥에서 역사책을 읽으며

사회 모순에 대해 고민했고 출소하자마자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집필했습니다 정권 탄압 속에서 왜곡된

현대사를 바로 잡았다는 의미를 지닌 이 대표작은 오랫동안

고시생과 대학생들의 필독서로 꼽혔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읽은 박세길 저자의 저서는 지난 6월 출간한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입니다 기사를 쓰고 편집할 때 청년 세대를

겨냥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박세길 저자는 역시나

청년들의 미래에 큰 관심을 갖고 계셨습니다 취업을

눈앞에 둔 서울출판예비학교 학생들이 가져야 할 자세를

여쭸습니다

출판학교에서 강의하신 한 선생님은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가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와

더불어 80년대 인문학의 양대

산맥이라고 하셨습니다

책의 성공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강의

요청이 많이 들어왔어요 먹고사는

경제적인 문제도 해결됐습니다

몇 부 팔렸는지는 잘 모릅니다

출판사에서 기밀 사항이라고

하더군요 요즘은 마케팅 차원으로도

몇 쇄 몇 부인지 밝히지만 그때는

세금 문제를 피해가기 위해서인지

쉬쉬하던 시절이었나 봅니다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는 대학

선후배끼리도 많이 물려주는 책이라고

들었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의 쉬운 설명이

좋았습니다 더불어 어떤 사명감을 안고 썼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완성하기에 앞서 어떤 목표를

두셨나요

청년 세대가 외환위기 이후 집중적인 희생양으로 전락하면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드러내면서 여기에

머물지 않고 청년 세대의 잠재력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들이 역사 무대 한복판에 진출해 자기 몫을 다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습니다

역사 분야는 시장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역사 혹은 현대사가 주목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통해 얘기하자면

80년대 후반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lsquo왜곡된

역사를 바로 알자rsquo는 시각 교정의 욕구가 있었던

차에 제 책이 나름 부응했는지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시기가 적절했던 셈이죠

2012년 대선 후 역사 분야가 잠시 반짝했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금세 시들었다고

하더군요 당시 역사 분야 책들이 일반 독자가

읽기에 다소 어렵거나 출간한 지 오래된 것들

위주였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돋을세길

출판학교에서 강의하신 한 선생님은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가 유홍준 교수의

책의 성공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강의

하더군요 요즘은 마케팅 차원으로도

선후배끼리도 많이 물려주는 책이라고

역사 분야는 시장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역사 혹은 현대사가 주목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통해 얘기하자면

80년대 후반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lsquo왜곡된

역사를 바로 알자rsquo는 시각 교정의 욕구가 있었던

차에 제 책이 나름 부응했는지 큰 반향을

읽기에 다소 어렵거나 출간한 지 오래된 것들

위주였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의 저자

33

2012년 대선 후 역사 분야가 관심을 받았던 것은

보수층의 재집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한

불안 때문일까요

맞습니다 그러나 마땅한 책이 없어서 그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역사 분야에서 베스트셀러를 내기

위해서는 시기가 맞아 떨어지고 내용 또한 대중이 원하는

것을 담고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를 편집한 lsquo생각정원rsquo

출판사의 정희용 편집자에게 감사 표시를 하셨습니다

어떤 편집자를 선호하시나요

간단합니다 편집자는 철저히 독자 입장에서 독자와 작가

사이의 간극을 줄여줘야 합니다 예를 들면 어려운 내용을

과감히 생략하고 다음 기회로 미루도록 설득한다거나 좌파

운동권 색채가 너무 강한 문장을 조금 순화하는 것 등입니다

어떤 내용이 이번 책에 꼭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선택을

도와줘야 합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을 작가님께서 직접

독자들에게 홍보하신다면 카피 문구를 짧게 제시할 수

있을까요

청년 세대 희망 찾기 갑갑한 현실을 어떻게 타개할 수

있을지 그 답을 찾아보는 길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취업 후 첫발을 내디딜 서울출판예비학교 11기

학생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출판 또한 돈을 벌어야한다는 기본 전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출판계를 지켜본 결과 뭔가 소명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오래

살아남았습니다 출판학교 역대 대표 중 일부는 나와 관계가

있는 사람들인데 모두 고유한 소명의식을 갖고 출판계에

뛰어들었습니다 때로는 상업주의 안에서 재주도 부리곤

했지만 어쨌든 분야 내에서 고유한 캐릭터를 구축했습니다

출판학교 학생들이 출판 상황을 이해하고 자신을 역할을

정하는 개인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비전 중심의 경영을

하는 회사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지만 개인 비전을 기업

비전으로 나아가 사회 비전으로 접목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과거에 안주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부분을

출판계에서는 SNS 등 인터넷 환경을 통한 마케팅으로

이해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SNS망 자체에서 무엇이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건 사람과

사람이 서로 소통하고 공감하는데 필요한 도구입니다

콘텐츠 중심의 사고가 중요하고 그것이 전제되지 않을 때

SNS는 착각에 불과하며 성공할 수 없습니다 필요한 콘텐츠

중심의 사고를 가지고 철저하게 진행하지 않으면 그 공간에서

허망하게 헤엄만 칠 뿐 입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SNS에서

맥없이 헤엄치다 익사하는 경우를 볼 수 있을 겁니다

콘텐츠와 마케팅의 영역을 하나로 보는 것과 따로

보는 것 어떤 것이 독자를 위하는 것일까요

출판 마케팅은 책을 기획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에서부터

개입돼야 하고 그 과정에 독자를 참여시키는 방식을

고민해야 합니다 미국 네브래스카주립대학의 이상문

교수는 lsquo밀실 안에서의 혁신은 끝났다rsquo고 얘기합니다

개방된 체제에서 독자 곧 소비자 사용자의 참여 하에 함께

만들어갈 때 혁신은 이뤄진다고 합니다 출판사의 비전이

브랜드로 연결될 때 독자는 자발적으로 의견을 주고받고

싶어 할 겁니다

마케터반 11기 이창환

디자

인 사

공예

Page 12: 서울출판예비학교 웹진 _5호 2015

1212

설왕설래

『호밀밭의 파수꾼』의 결말이

궁금해서 견딜 수 없다면

세 반 학우들의 상상력을 동원한 우리들의 릴레이 세

나에 대해 듣고 싶다면 내가 어디서 태어났는지 어린

시절이 얼마나 형편없었는지 내 부모님이 무슨 직업을

가지고 있는지 내가 태어나기 전에 무슨 일들이 있었는

지 같은 데이비드 코퍼필드 식의 헛소리가 듣고 싶겠지

하지만 난 그딴 이야기 하고 싶지 않아 (JD 샐린저 『호

밀밭의 파수꾼』

내 속으로 지나가지만 어쨌든 내 것이 아닌 섬광을 내

가 앉았던 내가 읽었던 생을 한순간에 으스러뜨리는

섬광을 이야기하고 싶어 이창환

아니 잠깐 내가 뭔 병신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

지 내일 서울출판예비학교 면접 있어서 빨리 자야 하

는데hellip 공태준

어서 잠에 들어야 한다는 조급함이 커질수록 허기 또

한 함께 치밀어 올랐다 결국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파

스타 면을 삶는 시간 8분 (그 동안엔 냉장고의 한 쪽

에 남아있던 산토리 한 캔을 단숨에 들이켜야 했다)

음악은 야나체크의 산포니에타 김사룡

맥주 한 캔으로 살짝 취기가 돌자 술이 더 마시고 싶었

다 결국 소주 한 병을 꺼내어 마시며 적당히 삶아진 파

스타 면을 올리브유에 볶았다 내일 입을 정장치마가

끼지 않을까 걱정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엎질러진 물

인걸 최다은

침대에 누워 억지로 잠을 청해본다 잡념이 사라지지

않는다 고민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된다 젠장 벌

써 새벽 3시 자긴 글렀네hellip 그렇게 뒤척이다 날은 밝았

다 이다혜

밝아진 창밖을 보며 어젯밤 나를 뒤척이게 한 면접을

떠올렸다 어제만 해도 중요한 일이라 생각했는데 날

이 밝으니 이미 그 중요성은 나와 멀어진 느낌이다 의

무감에 옷을 챙겨입고 집을 나섰다 양화대교를 건너는

버스 안 새로운 계획이 떠올랐다 황하정

새로운 계획으로 들뜬 나에게 창밖의 풍경이 눈에 들어

온다 수많은 사람과 차량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

어진다 다른 듯 보이지만 얼굴을 장식한 특유의 무표

정함과 발등에 불이 떨어진 듯 바삐 움직이는 모습 속

에 내가 겹쳐 보인다 그래 이번 계획은 나에게 얼마

동안의 기대감을 선사해 줄 수 있을까 뭐 어때 잠깐

이라도 좋다 쓸데없는 잡념보다는 시한부 희망이 차라

리 낫다며 애써 위로한다 유수지

순간 어렴풋한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니 내 또

래의 남자가 거북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김단희

그의 혐오에 가까운 시선과 마주쳤을 때 나는 순간 얼

어버렸다 면접 장소에 가기 위해선 이번 정류장에서 내

렸어야만 했다 그러나 나에게 다가오는 그 남자 때문

에 그러지 못했다 남자가 말했다 김선아

ldquo너였구나 그래 너였어 3년 전 3만원을 빌리고 도망

간 김말숙이 그래 너야rdquo

그 남자는 미친 게 분명했다 lsquo잠깐 이 관능적인 머스

크 향은 뭐지rsquo 순간 뇌리를 스치는 불가리 향수는

그 남자를 떠올리게 했다 지독하게 얼굴을 기억하지

못했던 그 남자를 말이다 이장열

대학교 1학년 설레는 마음으로 나간 첫 번째 미팅을

내 인생 최악의 시간으로 만들었던 lsquo불가리 그놈rsquo이었

lsquo젠장 이 안면 인식 장애놈이 내 얼굴을 어떻게 기억하

는 거지rsquo 내 이름이 김말숙이든 아니든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내 얼굴을 기억한다는 것이 의아할 뿐

양화대교 위에서 떠오른 새로운 계획 그래 지금부터

시작이다 오늘 하루는 lsquo나rsquo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 살

아보는 거야

난 매섭게 치뜬 눈으로 나를 응시하는 그를 뒤로하고

소설의 첫 문장으로 시작하는 릴레이 소설

13

무심히 다음 역에서 내렸다 아무런 동요 없이 발걸음

을 옮기는 나를 보고는 그도 무안한지 이내 제자리로

돌아가는 듯했다 이상한 사람 나는 계속해 나의 목적

지를 향해 걸어갔다

결국 지각했다 면접은 진행 중이었다 이게 다 불가리

때문이다 불가리 냄새가 몸에 밴 것 같다 아니 불가

리 냄새는 내 옆에서 나고 있었다 내 옆에는 불가리가

앉아 있었다 부처님의 손가락을 본 손오공의 심정이

이러했을까 강귀욱

끔찍했다 냄새도 면접도

lsquo젠장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야rsquo

담배에 불을 붙여 한 모금 깊게 빤다 lsquo후-rsquo 치미는 화

도 잡념도 불안도 이 연기처럼 쉬이 사라져버리면 좋

으련만 무의미한 푸념만이 입 안에 맴돈다

ldquo김말숙~ 여기 있었냐rdquo 그 말에 얼마나 놀랐냐면 떨

어진 담뱃불이 내 정장치마를 태우고 있는 줄도 몰랐을

정도였다 lsquo불가리 그놈을 피해 골목까지 들어왔는데

여긴 어떻게 찾은거야rsquo

ldquo밥 먹을래rdquo lsquo꺼져 꺼져 제발 꺼져helliprsquo 못 들은 척 고

개를 돌렸다

ldquo소달구지라고 괜찮은 식당 있는데 같이 가면 그 3만

원 없던 걸로 해줄게rdquo

우리는 눈이 마주쳤다 김영준

해질 무렵 서서히 불이 들어오는 보고 있어도 언제 밝

아졌는지 알 수 없는 양화대교 위 가로등처럼 우리는

천천히 그러나 깊게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새카

만 흑암의 공간 무저갱 같이 깊고 검은 눈동자 속에

숨겨 놓은 비밀을 알아내기라도 하려는 듯 그렇게 서

로의 눈을 망막 너머의 시신경을 시신경을 타고 올라

가 전두엽 어딘가에서 터지고 있을 스파크를 계속 들여

다보았다 이윽고 두 남녀의 입이 열렸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낮은 목소리가 화음을 내며 울려 퍼

졌다 ldquo몽마르뜨가 좋겠어rdquo 권오권

끔찍했던 면접과 기분 나쁜 불가리놈의 얼굴이 잊힐 정

도로 음식의 맛은 정말 좋았다 고작 음식 때문에 기분

이 나아지는 내 자신에게 정말 어이가 없었지만 어쨌

든 맛은 좋았다 된장국으로 숟가락을 옮기며 슬쩍 앞

의 녀석 얼굴을 쳐다보았을 때 그 녀석도 나를 쳐다보

고 있었다 김희연

3년 전의 얼굴과 꽤 변해있었다 그 당시 철없는 어린

애 같은 얼굴이었는데 지금은 사회인이 되려고 꾸며댄

듯한 모습 물론 3년 전보다 더 나아졌다거나 잘생겨진

것은 아니다 전보다 훨씬 평범한 얼굴이다 ()

그런 그는 어째서 날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어째서 날

기억하고 다가와서 말을 걸고 함께 식사까지 하려 하

는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이 텅 빈 머릿속을 메

운다 엄청나게 망쳐 버린 하루지만 이상하리만큼 멀

쩡한 내가 낯설다 김하얀

그러다 내가 집에 돌아가는 길 문득 미니스톱에 담배

를 사러 들렀다가 ldquo여기 국산담배밖에 없는helliprdquo 음hellip

없단다 가뜩이나 기분도 꿀꿀한데 없다니 빵만 사서

나왔다

빵을 사서 가는 길에 낯익은 얼굴에 걸음을 멈추었다

ldquo너 혼자 빵 먹냐 나도 같이 먹자rdquo 불가리 그놈이었

다 ldquo혹시 너 나 따라온 거야rdquo 기가 막혔다 백가은

어쩐지 불가리 향수 냄새가 난다 했다 ldquo왜 따라왔어rdquo

그랬더니 불가리 그놈이 하는 말

ldquo난 내 집 가는 건데rdquo 믿을 수 없다 수상쩍다 그놈은

나를 앞질러 가더니 우리 집 주인 아줌마네 집으로 들

어가 버렸다 아 저 놈이 집주인 아줌마 아들놈인가

월세 밀렸는데 망할

망할 이상한 하루였다 잊자 오늘 일은 전부 다 잊어

버려야지 방으로 들어오기 직전에 산 맥주 한 캔의 뚜

껑을 따고 들이킨다 캬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가는 듯

시원하다 씻고 자리에 눕는 순간 면접 결과가 나올 때

까지 무엇을 하고 있어야 할지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TO BE CONTINUEDhellip

은 익명 표시입니다

13

무심히 다음 역에서 내렸다 아무런 동요 없이 발걸음

을 옮기는 나를 보고는 그도 무안한지 이내 제자리로

돌아가는 듯했다 이상한 사람 나는 계속해 나의 목적

지를 향해 걸어갔다

결국 지각했다 면접은 진행 중이었다 이게 다 불가리

때문이다 불가리 냄새가 몸에 밴 것 같다 아니 불가

리 냄새는 내 옆에서 나고 있었다 내 옆에는 불가리가

앉아 있었다 부처님의 손가락을 본 손오공의 심정이

이러했을까 강귀욱

끔찍했다 냄새도 면접도

lsquo젠장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야rsquo

담배에 불을 붙여 한 모금 깊게 빤다 lsquo후-rsquo 치미는 화

도 잡념도 불안도 이 연기처럼 쉬이 사라져버리면 좋

으련만 무의미한 푸념만이 입 안에 맴돈다

ldquo김말숙~ 여기 있었냐rdquo 그 말에 얼마나 놀랐냐면 떨

어진 담뱃불이 내 정장치마를 태우고 있는 줄도 몰랐을

정도였다 lsquo불가리 그놈을 피해 골목까지 들어왔는데

여긴 어떻게 찾은거야rsquo

ldquo밥 먹을래rdquo lsquo꺼져 꺼져 제발 꺼져helliprsquo 못 들은 척 고

개를 돌렸다

ldquo소달구지라고 괜찮은 식당 있는데 같이 가면 그 3만

원 없던 걸로 해줄게rdquo

우리는 눈이 마주쳤다 김영준

해질 무렵 서서히 불이 들어오는 보고 있어도 언제 밝

아졌는지 알 수 없는 양화대교 위 가로등처럼 우리는

천천히 그러나 깊게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새카

만 흑암의 공간 무저갱 같이 깊고 검은 눈동자 속에

숨겨 놓은 비밀을 알아내기라도 하려는 듯 그렇게 서

로의 눈을 망막 너머의 시신경을 시신경을 타고 올라

가 전두엽 어딘가에서 터지고 있을 스파크를 계속 들여

다보았다 이윽고 두 남녀의 입이 열렸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낮은 목소리가 화음을 내며 울려 퍼

졌다 ldquo몽마르뜨가 좋겠어rdquo 권오권

끔찍했던 면접과 기분 나쁜 불가리놈의 얼굴이 잊힐 정

도로 음식의 맛은 정말 좋았다 고작 음식 때문에 기분

이 나아지는 내 자신에게 정말 어이가 없었지만 어쨌

든 맛은 좋았다 된장국으로 숟가락을 옮기며 슬쩍 앞

의 녀석 얼굴을 쳐다보았을 때 그 녀석도 나를 쳐다보

고 있었다 김희연

3년 전의 얼굴과 꽤 변해있었다 그 당시 철없는 어린

애 같은 얼굴이었는데 지금은 사회인이 되려고 꾸며댄

듯한 모습 물론 3년 전보다 더 나아졌다거나 잘생겨진

것은 아니다 전보다 훨씬 평범한 얼굴이다 ()

그런 그는 어째서 날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어째서 날

기억하고 다가와서 말을 걸고 함께 식사까지 하려 하

는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이 텅 빈 머릿속을 메

운다 엄청나게 망쳐 버린 하루지만 이상하리만큼 멀

쩡한 내가 낯설다 김하얀

그러다 내가 집에 돌아가는 길 문득 미니스톱에 담배

를 사러 들렀다가 ldquo여기 국산담배밖에 없는helliprdquo 음hellip

없단다 가뜩이나 기분도 꿀꿀한데 없다니 빵만 사서

나왔다

빵을 사서 가는 길에 낯익은 얼굴에 걸음을 멈추었다

ldquo너 혼자 빵 먹냐 나도 같이 먹자rdquo 불가리 그놈이었

다 ldquo혹시 너 나 따라온 거야rdquo 기가 막혔다 백가은

어쩐지 불가리 향수 냄새가 난다 했다 ldquo왜 따라왔어rdquo

그랬더니 불가리 그놈이 하는 말

ldquo난 내 집 가는 건데rdquo 믿을 수 없다 수상쩍다 그놈은

나를 앞질러 가더니 우리 집 주인 아줌마네 집으로 들

어가 버렸다 아 저 놈이 집주인 아줌마 아들놈인가

월세 밀렸는데 망할

망할 이상한 하루였다 잊자 오늘 일은 전부 다 잊어

버려야지 방으로 들어오기 직전에 산 맥주 한 캔의 뚜

껑을 따고 들이킨다 캬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가는 듯

시원하다 씻고 자리에 눕는 순간 면접 결과가 나올 때

까지 무엇을 하고 있어야 할지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TO BE CONTINUEDhellip

은 익명 표시입니다

14

이옥란 선생님

캡틴 오 마이 캡틴(captain oh my captain)선생님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

편집자반 학우들은 늘 이분의 얼굴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며

끝마친다 몇 번의 마주침은 덤이다 그분은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도 가깝지만은 않았던 편집자반의 담임 교수

이옥란 선생님 자신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우리를 위한

이야기를 풀어놓으시느라 매일 종례시간이 부족하신 이옥란

선생님께 이번엔 우리가 물었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 일상을 어떻게 보내고 계신가요 선생님의

주말이 취향이 추억이 삶이 궁금하다 편집자반 학생들에게

직접 받은 질문들로 lsquo한 사람rsquo에게 궁금한 것들을 물었다

이 인터뷰를 읽은 뒤 그녀를 한층 좋아하게 되리라고

확신한다

왜 디토 커피에 자주 가시나요

커피가 제일 맛있고 값이 싸고

넓은 창으로 햇빛이 많이 들어와

그리고 주인장들이 공간은 물론이고

손님들과도 잘 어우러지는 것 같아

옥란 선생님께 스카프란

어느 날 발견한 패션 아이템 몇 년 전인가

홍대 앞 가판대에서 우연히 마 레이온 합성의

보라색 스카프를 발견한 이후인 것 같아

왜 고양이를 좋아하시나요 고양이를 키우시나요

고양이가 나를 키웠다고 할 수 있지 시골집 막내였는데

고양이가 친구가 되어주었어 (선생님이 고양이를 닮아

가시는 것 같아요 혹시 키우세요) 둘 있는데 13년쯤 되었나

최근에 읽었거나 읽고 계신 책은

이익섭 저의 『국어학개설』 『말과 사물』 『좌파는

어디에 있었는가』 『논어』 『번역어의 성립』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등 여러 권 들고 다니면서 돌려본다

(국어학개설은 읽는다기보다 공부 아닐까요) 아니야

재미있어

인생의 책을 꼽자면

김훈의 『남한산성』 표지가 핫핑크 색이야 건조하고 힘

있는 남성적인 문체의 마초라고 불리기까지 하는 작가의

책이 핑크색이라니 크기도 아마 46판에 더스트 커버(dust

cover)는 질긴 천의 느낌이고 본문은 재생지인지 무겁지

않고 두께도 딱 손에 잡히는 정도 감각까지 장악한 책이야

몇 권 사서 주변 사람들에게 돌렸어

선생님의 멘토는

이런 질문에 답하게 될 줄은 몰랐네 글쎄 그러고 보면

존경스러운 사람은 있었지 대학 때 문학 동아리 선배였어

양상현 형 (어떤 점이 제일 존경스러우셨어요) 자유롭게

사는 사람이었던 것 얼마 전에 돌아가셨어 이제 조금

실감이 나네 그분은 건축 전공에 시를 쓰고 음악을

즐기고 노는 문화를 나누고hellip 어떤 사태도 회피하지 않고

자유로웠던 사람이었지 앞으로 할 일이 더 많았을 터인데

양상현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졸업 동대학원

박사학위 2002년 대한민국건축대전

초대작가 선정 순천향대 건축학과

교수 재직 민족건축인협의회

의장 설계 작품으로는 lsquo장암리

주택rsquo lsquo녹촌리 조각가의 집rsquo 등

대표 저서『거꾸로 읽는 도시

뒤집어 보는 건축』 2015년

8월 14일 별세

졸업 후 편집자로 일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우리 때는 노동운동이나 농민운동을

했던 대학생이 사회과학 출판사로

진출하는 경우가 많았고 내 친구도 졸업을 해서

출판사에 있었어 그 녀석이 나를 사무실로

초대했는데 반지하도 아니고 그냥 지하였던 것

같아 ldquo옥란이 이리와 봐 이게 뭔지 아니 바로

매킨토시라는 거야 이게 얼마짜린지 아니rdquo

매킨토시 컬러 클래식(Macintosh Color Classic)

웬만한 공책보다 좀 클까 본체가 화면에 같이

붙어 있는 하드웨어를 가진 컴퓨터였지 친구 말로는

300~400만 원 한다고 했어 20년 전이니 당시로는

큰돈이지 교정지를 보여주더니 마치 lsquo음 너는 아직 이런 거

모르지rsquo라고 하는 듯이 ldquo잠깐만 언니가 뭐 좀 할 테니까

잠깐 기다려봐 하hellip 이거 띄어쓰기 어떻게 해야 하려나 이게

전문용어라 통일을 해줘야 하는데helliprdquo 하던 잘난 척이 기억이

나네 그렇게 출판사를 접했지 문학 동아리를 하느라 알게

된 선생님들 선배님들도 여럿 출판사에들 계셨어

편집자로 일하셨을 때 어떤 분야를

편집하셨나요

하다 보니 주로 예술 서양 미술 분야였고

출판사는 학고재 예경 마로니에북스까지

그런 기회가 나한테 왔고 재미있었어

전공이 그쪽이 아니었기 때문에 공부를

해야 했지

지난 서울출판예비학교생활 중 특별히

기억나는 사람이나 사건이 있다면

8기 졸업식 날 남학생 셋이 ldquo저는 출판학교에

와서 모든 것을 얻었습니다rdquo 그러면서 흑흑 우는 거야

누군지 얘기하면 창피하겠지 남학생들이 울어서 애들이

알고싶어 편집자반

15

완전 눈물 바다였잖아 (우리 반 오빠들이 운다는 건 상상할

수 없네요) 다음 해에는 애들이 완전 유머 코드여서 웃다

끝났지

출판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된 계기나 동기는

무엇인가요

나는 8기부터 시작했는데 7기 담임이던 김장환 씨가 나를

불렀어 공동 담임을 해달라고 lsquo그러지 뭐rsquo 이렇게 시작했지

직장은 2008년도까지 다녔고 프리랜서로 활동하면서

여기저기서 강의를 하고 있었어 한겨레 문화센터에도

23년쯤 있었지 (편집자보다 이렇게 선생님으로 있는 게 더

즐거우세요) 지금은 진짜 만들고 싶은 책 함께 작업해보고

싶은 저자 그런 게 아닌 한 직업으로 신간을 꾸준히 내는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당신들은 눈이 반짝반짝해서 업계에 들어와야겠다고

준비해서 오잖아 그 친구들이 1년차 3년차 되는 것을

지켜보고 있으려니까 내가 그 나이쯤 사회생활을

시작해 고민했던 지점이 보이는 거지 그 때

이걸 알았더라면 하는 안타까움이 있어서

여러분들이 애틋해지지

요즘 최대의 관심사는 무엇인가요

저녁에 후배들에게 가르칠 강의를 하다

보니 국어 공부의 필요성을 여실히 느끼고

있어 출판 동네에서 20년 넘게 일한 사람이

공부해온 것을 한 번 정리해서 후배들한테 줄 필요도

있겠구나 싶고 (뭔가 일 얘기가 아닐 줄 알았는데요

하하)

은퇴 후에 무엇을 하고 싶으신가요

오늘은 말이 절로 나오는 걸 하하 마당 있는 시골집 텃밭을

일구며 역사에 길이 남을 인간과 세상을 통찰하는 대작

소설을 발표하겠다 (와)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이 되고 싶으신가요

다시 태어나고 싶지가 않아hellip(웃음) 지구에서는 내

대에서 멸종하기로 했다

저희들에게 속 시원하게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자신 있게 해라

생각해보면 다들 자기가 못났어 키도 좀 더 컸으면

좋겠고 외모도 마음에 안 들고 내가 저 때 저렇게

했으면 지금 달라졌을까 부럽기도 하고

그런데 사실 부질없는 거거든 세상 사는

힘이 실력에만 있는 게 아니고 태도의 문제가 더

클 때가 많아 내 것이 아닌 것에 목매고 있을

필요가 없어 신입사원으로 전혀 모르는 곳에

뚝 떨어졌을 때 저들의 세계 속에 혼자 쏙

들어간 기분이니까 일단은 주눅이 들지

하지만 거기서 살아가야 하지 않겠어

둘러보면서 아 저기가 화장실이구나 사람들은

이런 걸 이렇게 하는구나 파악하고 나면 좀

수월해지잖아

마지막으로 대망의 이상형 월드컵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정우 주원 김수현 유아인 이렇게

4강전으로 시작하겠습니다

(하정우와 주원 중에서는 누가 더 좋으세요) 하정우지

주원이 최근에 좋아지긴 했는데 아직도 하정우를 따라올 수

없어

(그럼 김수현유아인 중에서는요) 유아인이지

(너무 확고하셔요 드라마 lt밀회gt 보셨나요) 집에선 케이블

방송도 안 나오고 관심 갖게 되었을 땐 너무 유행이라

안보고 말았지 대신 영화 lt완득이gt는 봤다

(이제 결승인데요 마지막으로 하정우와 유아인은요)

아인이는hellip 나한테 좀 과분한 것 같아(웃음) 하정우가 삐질

것 같은데 그래서 둘 다 잃는 거야hellip

편집자반 11기 김수진 이상화

lt베테랑gt의 악랄한 재벌 2세유아인

lt프로듀사gt의 어리버리 신입PD

김수현

lt용팔이gt의 천재 외과의사

주원

lt 암 살 gt 의 순 정 마초

하와이 피스톨하정우

하정우

16

한대웅 선생님

『동백꽃』의 주인공 같은 그 남자착하디착한 순하디순한 한대웅 선생님의 속마음

좀처럼 화내시는 일도 없고 허허 웃기만 하시고hellip 하지 못한

말들을 땀으로 발산하듯 여름이면 온몸이 열정으로 흠뻑

젖으시는 분 세상 어디에도 없을 착한 남자 마케터반의

한대웅 선생님이다 그에게 던진 몇 가지 질문에 돌아온 것은

가장으로서의 고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 아직도 앳된

소년 같은 순수함이 묻어나는 답변들이었다 이제 그를 좀 더

깊게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평소에 칼라(collar) 티셔츠를 즐겨 입으시던데

좋아하시는 옷인가요

좋아한다기보다는 제 딴에는 편하게 입을 수 있는 듯해서

즐겨 입고 있습니다 또 아내가 이런 종류의 옷을 많이

사주기도 하고요

선생님께 lsquo출판rsquo이란 무엇인가요

출판은 lsquo꿈을 이루는 판도라의 상자rsquo lsquo내가 가진 능력에 가장

맞는 일rsquo입니다

출판을 업으로 삼지

않으셨다면 어떤 일을

선택하셨을까요

모르겠네요 아마도 운명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요 다만 다음과

같은 3가지 생각은 해보았습니다

첫째 고등학교 시절 성적이 조금

더 좋았다면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해서

지금쯤이면 텔레비전이나 영화에 나오는 큰 전투함의

함장이 되지 않았을까요

둘째 대학교에 입학하지 못했다면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로 이민을 가서 장사를 하거나 농부로 농장을

운영하면서 그곳 사람으로 국적을 바꾸고 살고 있지

않을까요 고등학교 3학년 때 대학교 입학 시험에

떨어지면 다른 나라로 가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다는

마음의 준비를 했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 모 일간지에 실린

해외에서 성공적인 삶을 사는 한국 사람들에 관한 기사를

꼼꼼하게 읽었었거든요

셋째 대학교 3학년이나 4학년 때 신춘문예까지는 아니라도

대학교 교내 문학상 정도를 받았다면 아마도 그 결과에

탄력을 받아 시나리오 작가나 연극 연출가의 길로 가려고

하지 않았을까요

ID와 블로그에 lsquo봄rsquo이라는 단어가 들어있는데 봄을

좋아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그 ID를 만들 무렵 저의 미래는 꽤나 불확실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바꿔 말하면 어떻게

돈을 벌어야 하고 어떻게 자아 성취를

해야 하는지가 불확실하고

힘들었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lsquo봄rsquo이라는

단어를 좋아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누구나

알다시피 봄은 겨우내

얼어 있던 것들이

새롭게 싹을 틔우고

새롭게 기지개를 펴는

계절이죠 물론 봄

자체가 주는 느낌도

좋고요 그래서 lsquo봄rsquo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던 것

같습니다

블로그는 서울출판예비학교에서

일을 시작한 후 만들었습니다

블로그에 lsquo봄바람rsquo이라는 의미를 부여한

것은 ID를 만들던 때의 생각이 이어진 것이겠지요 요즘에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이 많이 사라진 것 같습니다 만약

앞으로 블로그나 ID를 만든다면 아마도 lsquo여름rsquo 혹은 lsquo풍성함rsquo

아니면 lsquo내가 원하는 세상을 상징하는 어떤 것rsquo을 이름으로

사용할 것 같습니다

편집자로 첫 시작을 하셨는데 나중에 출판 마케터로

일하게 된 동기를 알고 싶어요

시장 상황을 분석하고 이에 맞게 마케팅 계획을 세우고

사람이나 집단을 만나고 힘을 합쳐 뭔가 새로운 결과를

만들어 내는 일이 재미있었습니다

은퇴 후에 꿈꾸시는 삶이 있으신가요

아직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20대와 30대

초반에 꿈꾸던 것들을 lsquo은퇴 후에 여유가 생긴다면 이것들을

해볼까rsquo라고 간혹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현재겠죠 출판에서 뭔가를 이루려고 열심히 계획하고

실행하다 보면 은퇴 후의 삶도 더 풍요로워지지 않을까요

알고싶어 마케터반

17

일하실 때 다뤘던 책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무엇인가요

입사 초기 편집을 하거나 시장조사를 하고 제가 출간 여부에

대한 판단을 내렸던 책들이 기억납니다 『펠레』 자서전은

제가 편집자로 있을 때 출간했던 책인데 주요 일간지의

서평란 메인을 장식했던 책입니다 출간 시점을 맞추기 위해

촉박한 기간 동안 밤새가며 책을 만들었습니다 출간 시점에

대한 판단이 정확히 맞았고 그 결과 기대 이상으로 많은

서평을 받았던 책입니다

서울예비출판학교 선생님으로 오신 계기를

알고 싶어요

전에 다니던 출판사를 그만둔 후

개인적으로 뭔가를 해보려고 고민

중이었습니다 그러나 능력이

부족하다 보니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았죠 그러던 중에

출판학교에서 일해 볼 것을

제안 받았고 저도 출판학교

학생들처럼 면접을 보고 이

학교에 오게 되었습니다

일을 하게 되었을 때 매우

즐거웠습니다

다시 출판사 마케터로 돌아갈

생각이 있으신가요

아니오 이유는 2가지인데 첫째는 제 나이가

48세입니다 다른 업종도 그렇지만 출판 산업에서도

48살에 마케터로 직장인의 생활을 이어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죠 정말 현실적인 고민이죠 게다가 출판학교에서

여러분과 소통하며 제 지식을 전수하는 일이 재미있습니다

물론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언젠가 저만의 꿈을

찾아갈 수 있겠죠

평소 몇 권의 책을 읽으시나요 최근 읽은 책 중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요

예전에 많이 읽을 때는 1주일에 2권 정도 읽었습니다

황석영의 『장길산』과 홍명희의 『임꺽정』 이문열의

『삼국지』를 읽을 때 짬짬이 쉬는 시간을 비롯해 지하철에서

보내는 시간까지 거의 모든 시간을 책을 읽으며 보냈습니다

요즘에는 1달에 1~2권 정도 읽는 것 같네요 최근 읽은

책 중에 기억에 남는 책은 『내 아이와 어떻게 대화할

것인가』(율리아 기펜레이테르 저 써네스트 2006)와 『내

아이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율리아 기펜레이테르

저 써네스트 2009)입니다 제목만으로도 왜 이 책을

추천하는지 금방 눈치 챌 수 있을 것입니다 아이가 둘

있는데 첫째는 15살 딸이고 둘째는 10살 아들입니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lsquo어떻게 하면 아이와 싸우지 않고

윽박지르지 않고 아이의 자존감을 높여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성실하고 삶의 열정과 꿈이 넘쳐나는 아이로

키울까rsquo 같은 고민을 항상 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단비처럼 다가왔습니다 위의 2권의 책을 읽고 몇

가지 중요한 것들을 배웠습니다 아이와 어떻게 소통하고

어떻게 대화해야 하는지 아이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등등 이전에 『부모와 아이 사이』(하임 G 기너트

등 저 양철북 2003)를 읽고 아이를 이해하는 법에 대해

큰 인상을 받았는데 이 책도 그 연장선에서 저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아들과 딸을 좀 더 이해하게 되고 그

결과 아이들에게 화를 내거나(저도 나약한 인간인데 화가

날 때가 심심치 않게 있거든요) 아이들의 긍정적인 싹을

본의 아니게 꺾어 버리는 경우가 줄었다고 할까요 게다가

이 책은 lsquo부모와 아이 사이rsquo만이 아니라 lsquo친구와 친구 사이rsquo

lsquo회사 내부 구성원 사이rsquo에서 소통하는 데도 많은 영감을

제공합니다 출판학교 학생들과 소통할 때도 이해의 폭을

넓혀주고 긍정적인 소통을 하는 방법을 제공해 줍니다

이제 수료를 앞둔 마케터반 학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으시다면

개인별로 처한 처지와 조건에 따라 다르겠지만 다음과 같은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 연인을 사랑하듯 출판에 대해서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보세

- 이 길이 나에게 최선의 길인가 생각해 보세요

- 목표를 세우고 지금부터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한 후 그것을 어떻게 이루어 나갈 것인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보세요

저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스스로의 내면을 단단하게 할 중요한

질문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앞으로도 끊임없이

새로운 답을 찾아나갈 질문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케터반 11기 이장열 이창환

18

선생님은 주말에 뭐하세요

무조건 가족과 함께hellip

만약 편집 디자인을 안 하셨다면 무슨 일을 하고

계실까 궁금해요

어찌 됐든 개인 사업자로 살았을 듯 윗사람 비위 맞추는

것을 너무 못하므로hellip

선생님 주량이 어떻게 되세요 주사가 있으세요

몸 상태 좋고 안주 많이 먹으면 1병(클래식으로)

좋은 출판 디자인을 생각한다

심우진middot안광욱 선생님

lsquo멋rsquo이라는 것이 폭발한다뼛속까지 디자이너스러운 심우진 선생님

멀리서도 눈에 띄는 큰 키에 멋들어진 베레모 디자인반의

심우진 선생님 되시겠다 서울출판예비학교에서 lsquo멋rsquo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가끔은 조금 키 큰 학생처럼 학생들

속에 잘 어우러지는 사람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모습은

여기까지다 그를 조금 더 알고 싶다 지금까지의 그를

만들어왔을 lsquo심우진의 생각들rsquo이 궁금했다

선생님은 무엇을 드시고 그리 멋지시나요

학생들의 사랑 밥 김치

일본 유학길에 오르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lsquo동아시아rsquo lsquo근대rsquo가 당시 나의 화두였으므로 그리고

스기우라 고헤이 선생을 뵈러

첫 직장을 다녔을때 일의 강도()나 다니는 동안

마음은 또 어떠셨는지

출판 쪽 첫 직장은 lsquo정디자인rsquo인데 lsquo나는 왜 이렇게 디자인을

못할까rsquo 답답해했던 기억이 있어요 그러나 매우 즐거웠고

술도 자주 마셨죠 아직도 당시의 OB들과 가깝게 지내요

lsquo둥지rsquo 같은 곳이죠

선생님께서 생각하는 완벽한 판면이란

디자이너의 삶의 방식과 콘텐츠의 삶의 방식이 녹아든 판면

선생님의 피로회복 방법은

알고싶어 디자인반

19

디자인반의 히어로좋은 출판 디자인을 생각한다 안광욱 선생님

여자 화장실 앞에 있어 인파로 북적대는 디자인반 교실을

학생들과 함께 굳건히 지켜온 분 디자인반 학생들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애정공세를 아끼지 않는 분 안광욱

선생님에게 물어본 4가지

디자이너로서 첫 직장을 다닐 때의 마음이

어떠셨나요

잘하고 싶었는데 못해서 힘들었지 사수에게 하루 서너

시간씩 야단맞으면서 했다오 매일 2호선 양화대교에서 뛰어

내리고 싶었는데hellip 이 부분은 내일 수업 때 얘기해줄게^^

선생님께서 생각하는 좋은 출판 디자인이란

세상을 향한 사랑과 희망이 듬뿍 담긴 디자인

출판 디자인을 안 했다면 지금 무슨 일을 하고

계실까요

모르겠네 그냥 선녀 옷 훔치는 나무꾼이 되어 있을 듯^^

어떤 주사가

있으신지 궁금해요

말이 조금 더 많아지고 장소 불문 쿨쿨 자 특별한 주사는

없는 듯

디자인반 11기 이소현 백가은 사공예원

디자

인 사

공예

20

편집자반 김영준 학우가 그린

『이 외로운 사람들아』 일러스트

기억에콕

수업 후기

ldquo우리에게는 lsquo일탈rsquo이 필요합니다rdquo

잠깐 딴 짓을 하는 사이에 귓가에 들려온

한 문장이 나를 사로잡았다 배는 부르고

따 사 로 운 햇 살 에 잠 이 쏟 아 지 는 시 간

오후 1시 30분 시간을 칼같이 맞춰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선 그는 딱 봐도 지루하고

고리타분해 보이는 첫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순간 눈으로 들어온 이미지는 뇌로 흘러갔고

뇌는 망설임 없는 확신으로 귀에 명령을

전달했다 그렇게 귀는 이미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내 들려올 그렇고 그런 뻔한

이야기에 대하여

눈의 판단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의 한마디

한마디는 파격이었다 아니 어쩌면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였지만 누구도 자신 있게

내던지지 못하는 말들을 서슴지 않고 내뱉는 그

거침없음에 신선함을 느낀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의 관심을 돌려놓았던 lsquo일탈rsquo에 대한 그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lsquo일탈을 하라rsquo는 말이

lsquo제멋대로 하라rsquo는 의미가 아니라 어떤 규칙을

벗어나는 행위를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다르게

생각하는 방식을 몸으로 익히게 된다는 것

새로운 것을 생각해내는 창의성이라는 힘은

당연히 새로운 경험에서 나온다는 것이었다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니 강의를 듣던

친구들의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때 보고 들었던 그의 말과 행동이 우리에게는

딱 딱 한 강 의 실 에 서 느 끼 는 새 로 운 경 험

lsquo일탈rsquo이었다

그 와 의 만 남 은 계 속 이 어 졌 다 이 곳

서 울 출 판 예 비 학 교 에 입 학 한 이 후 로 는 좀

더 완 벽 한 일 주 일 단 위 로 시 간 이 흐 르 기

시작했는데 매주 쌓여가는 새로운 배움 뒤에는

수많은 물음이 불쑥불쑥 솟아났고 그는 마치

예상을 했다는 듯이 일주일에 한 번씩 나타나

우리의 설익은 궁금증을 해소해주고 떠나갔다

첫 만남에서는 책이라는 대상과 책을 대하는

편집자의 자세에 대해 이야기하며 큰 그림을

그려주었고 다음엔 저자와의 관계 맺기 그

다음엔 스스로 만들어 가야할 편집자의 자기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담백하게 들려주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네 번째 만남이었다

누구도 쉽게 이야기하기 어려운 완벽하게

솔직해지기는 더더욱 어려운 자신의 좌절과

실패를 그는 담담하고 진솔하게 소개해주었다

모든 성공에는 대개 7할의 실패가 전제되어

있기 마련인데 성공에 이르기까지 거치는

우 리 가 lsquo실패rsquo라고 명 명하는 것들이 사실

진짜 실패가 아니라 성공의 다른 이름이라는

그의 말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성공도 실패도

어 느 한 지 점 에 서 내 리 는 판 단 인 것 이 고

결 국 성 장 하 고 성 숙 한 다 는 것 은 성 공 과

실패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lsquo차이rsquo를 얼마만큼

발견하느냐 하는 것에서 결정된다는 그의 말이

가슴을 뜨겁게 했다 비로소 lsquo편집자rsquo로서가

아닌 한 lsquo사람rsquo으로서의 그가 보이기 시작했다

담담하게 말을 하고 있지만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아프고 쓰린 기억을 후배들에게

들 려 주 는 그 에 게 서 진 심 이 전 해 져 왔 다

사랑하는 일에 대한 함께 걸어갈 동지들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 참 고마웠다

어느덧 마지막 만남이 찾아왔다 한 권의

책을 만들면서 진행했던 편집의 과정을 예로

실 제 적 인 이 야 기 를 우 리 에 게 마 지 막 으 로

들려주었다 편집의 능력은 지식과 정보에서

나온다는 것 그것은 단숨에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 꾸준히 쌓아가야 한다는 것 그래서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의 문제라는 것을 경험을

근거로 자신 있게 말해 주었다 이미 지나온

과거의 결과 대신 앞으로 걸어갈 길에 대한

희망을 들려주어서 그게 참 고마웠다

편집자반 일탈이 주는 파격 우리가 낳을 lsquo새로운 책rsquo과 편집자선완규 선생님과의 다섯 번의 만남이 키운 생각들

21

그 가 우 리 에 게 마 지 막 으 로 이 야 기 를

들려주었던 그날 이후 석 달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났다 나는 여전히 같은 강의실에 앉아

앞서 길을 걸어간 선배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고 조금씩 가까워지고 밝아져가는 내 앞에

놓인 길에 대해 생각한다 그러다 문득 마음이

무거워지고 막막해질 때면 종종 그의 말들을

떠올려 본다 그리고 그 생각의 끝에서 마음을

의지하며 함께 이 길을 걸어갈 따뜻한 선배가

하나 있다는 위로 한 줌을 발견한다

ps 선완규 선생님 고맙습니다 보고 싶어요

편집자반 11기 성준근

마케터반 강한 수면욕 환상과 환기

판형과 종이를 예술로 편입시키려는 영업자다빈치 출판사 박성식 대표 특강 후기

9월 23일 평소보다 점심을 많이 먹었던 날이다 잠을 며칠간 못 자 피곤했다

오후 1시 30분이 살짝 지나서 다빈치 출판사 박성식 대표의 특강이 시작됐다

다빈치 대표님은 처음 뵐 때부터 남다르셨다 서울출판예비학교 입학 면접에서

여자 술 담배를 각각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보셨다 lsquo솔직함을 어필해야

하는 순간인가rsquo하는 생각에 직설적으로 답했지만 lsquo더 문학적으로 얘기할 수

있었는데rsquo라는 후회를 안고 돌아왔다

마음과 다르게 첫 번째 시간은 정신없이 잠이 쏟아졌다 눈을 감고 귀 기울였지만

턱을 괸 채 버티는 동안 50분이 지났다 대표님께 캔 커피를 하나 드리고 맞이한 두

번째 시간 그 한 시간 동안 나는 현실 옆의 어떤 이상 내지는 환상을 본 것 같다 그동안

듣던 강의들을 놓고 lsquo이상적인 관점이다rsquo 혹은 lsquo현실적이다rsquo라고 구분했던 판단의 폭

자체가 좁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성식 대표님은 내 머리에 있던 lsquo책rsquo에 대한 인식을 전복시켰다 자본주의 출판의

몰락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시작됐다는 말 출판 기본 특성인 다품종 소량 생산은 돌아올

것이며 다품종 소량 생산을 넘어 다품종 소량 lsquo고급 생산rsquo을 추구하고 싶다는 말은 나를

달뜨게 했다 주류에 반하는 사고를 가진 중년의 개성과 내공에 교실 풍경이 환기됐다

교육 수단으로 책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지만 책은 그만큼 사회적 의무와 희생을

짊어져왔다 출세와 공부 앞에서 책이 가진 기호(嗜好)성은 변두리로 내몰렸다 책을

읽어야만 제대로 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분위기는 옳지 않다 독서는 성향의 범주지 성역이

돼선 안 된다 정보와 지식의 전달은 모바일 등에 넘겨주고 종이책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공동체로 돌아와야 한다 그게 원래 자리라는 대표님의 주장이 새롭고 강렬하다

자본주의 3대 원칙인 lsquo더 빨리 더 많이 더 싸게rsquo 체계는 표준화와 규격화를 동반하며

매우 효율적이다 현재 사용하는 종이는 자본주의 원칙에 최적화돼 있다 그러나 대표님은

인쇄기계로 소화하지 못하는 질감과 전혀 다른 발색을 지닌 lsquo종이rsquo에 주목했다 그 종이로

콘텐츠 종이 판형이 완벽하게 들어맞는 예술서를 만들고 시장을 설득한다면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책 판매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전했다 종이 자체가 책의 예술성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한지(韓紙)를 예로 들면서 훌륭한 텍스트와 이미지를 한 차원 끌어올리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많은 부수를 팔아야 성공한 출판 많은 부수를 파는 것을

목표로 하는 시대는 저물고 있다 기존 유통과 판매 방식

안에 갇혀서는 불황에 매몰될 뿐이다 소량의 고급화된

책을 꿈꾸는 것과 전시회를 책과 결합하는 것도 다른 길을

물색하는 과정이다

대표님은 10년 전부터 lsquo이 원고는 내가 누구보다 잘

만들겠다rsquo lsquo이 원고는 내가 못하면 누구도 못할 것 같다rsquo라는

생각이 든 책만 출간을 진행했다고 한다

강의 중간 자신의 독특한 철학을 전달하는 것에 대해 가벼운

염려를 하셨지만 이론적이고 실용적인 분야에 몸담더라도

예술적 사고의 유연성은 필요하다고 본다 돈과 인문정신을

구분하면서 필요할 때 양쪽에서 자극 받고 차용하는 것이 마케팅의 융통성과 힘을 기르는 길일 것이다

마케터반 11기 이창환

편집자반 김영준 학우가 그린

『이 외로운 사람들아』 일러스트

박성식 대표가 기획한 lsquo오름rsquo전

22

하늘

습탁은 농도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하늘

습탁은 농도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이 글은 심우진 선생님의 탁본 세미나 수업에 대한 우리들의 즐거운

기록이다 탁본은 습탁(濕拓)과 건탁(乾拓) 두 종류로 구별된다

습탁은 나타내고자 하는 물체 위에 물을 묻힌 후 종이를 그 위에

밀착시키고 먹물 묻은 솜방망이로 가볍게 두드려서 물체를 표현하는

방법이다 물체의 패인 부분을 제외하고 볼록한 부분의 모양대로

종이에 먹이 묻어 문자나 문양이 드러난다 건탁은 이름 그대로 물을

사용하지 않고 마른 상태의 먹인 고형묵(固形墨)을 사용한다 우리는

각자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사물과 자연을 이용해 탁본 작품을

만들고 서울출판예비학교 꼭대기 층에서 작품을 공유했다

디자인반 이 시간을 그대로 탁본할 수 있다면심우진 선생님의 탁본 세미나

저는 신문지를 구겨서 해봤어요

응 그런데 이건 방바닥 같은데

방바닥까지 묻어 나와 버렸네요

[학생들 하하하]

저는 일단 큰 나무 기둥을 떠봤고요

오솔길의 짚도 해보고 저희 집 바닥과

벽면도 신기해서 떠봤어요 집 벽면 중에

대리석도 있고 특이한 벽면이 많거든요

부잣집인가 보네

[학생들 깔깔깔]

승연

심우진 선생님

승연

승연

심우진 선생님

이건 파프리카인데 저희 집 개가 완성한 종이를 찢었어요

[학생들 하하하]

좀 작고 납작한 파프리카를 반으로 잘라서 습탁했어요 또

이건 철조망인데 용 비늘처럼 나와서 재밌었어요 아나콘다

같기도 하고 철조망이 날카로워서 습탁하니 종이가 자꾸

찢어져서 다시 하게 됐어요 근데 이거요hellip 남자친구

있으면 커플끼리 한 번 해보세요 한 명은 잡아주고 한 명은

습탁하고hellip 되게 로맨틱 성공적

자랑하는 거니

[학생들 깔깔깔]

수빈

수빈

심우진 선생님

혜민

정묵

처음에 나뭇잎이 세세하게 잘 나올 줄 몰랐는데 그

줄기의 질감이 잘 나왔고 버려진 타이어를 끌어서

생긴 모양으로도 습탁을 했는데 생각보다 잘 나와서

막상 찍어보면 생각과 다르다는 것을 느꼈어요

저도요 결과물이 뚜렷하게 안 나올 줄 알았는데

디테일이 잘 나타나 있었고 입체를 평면적으로

찍는 것 자체가 재밌었어요

수정

저는 빗자루를 해봤어요 너무 얇아서 안 나올

거라 생각했는데 빗자루 문양이 잘 나와서

재밌었고 머리카락도 해봤는데 머리카락은

끝 부분이 잘 나오는 편이에요 위쪽은 다

뭉쳐있는데 끝 부분은 펼칠 수 있으니까요

23

저는 결이 얇은 것들을 뜨는 것이 재밌었어요

머리카락처럼요 머리 긴 사람에게 부탁해서

눕히고 했어요 그리고 이건 얼굴인데요

처음에는 그냥 했는데 얼굴은 입체를 살리려면

스케치하듯 떠야 되요 결국 명암으로 입체감

조절을 해야 되죠 코가 너무 입체적이라 특히

힘들었어요

누구 얼굴이야

우리 언니hellip

[학생들 우와]

가은

심우진 선생님

가은

하얀

음각이 나왔을 때 너무 좋았고요하늘

습탁은 농도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소리

건 탁 보 다 는 습 탁 이 농 도 조 절 하 는 게

희 한 해 서 재 밌 었 어 요 농 도 조 절 이

관 건 이 거 든 요 먹 과 물 의 배 합 과

솜방망이가 먹물을 얼마나 흡수하는지 그

흡수량이 중요하고요

윤미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꽤 많은데 만져보면서 건탁을 뜨니까 좋았어요 전에

습탁할 때는 시멘트 벽 같은 걸 하다가 나뭇결을 하니까

살아있는 느낌이었어요 생각했던 것처럼 나와서

좋았고 솔방울이나 나뭇잎 같은 섬세한 것들은 제대로

나오지 않아서 아쉬웠어요 섬세한 것들은 습탁으로

해봐야겠어요 그래도 다양한 나무를 건탁해봐서

만족해요

소현

저는 일상적인 것들로 습탁을 해봤어요

처음에는 단순하게 오돌토돌한 느낌만

있 을 줄 알 았 는 데 색 다 른 느 낌 이 나 서

재밌었어요

탁본 세미나를 마치고 그 다음 주에 지하 강당에서 촬영하는 시간을

가졌다 촬영 후에 보정도 했다 나뭇잎의 결 무늬 타이어 자국

그리고 사람의 머리카락까지도 좋은 디자인의 재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보았고 나누었다 건탁과 습탁의 장단점을 이 수업으로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심우진 선생님의 이번 탁본 수업도 지난 활자

수업처럼 지식 습득은 물론이고 경험까지 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 시간들이 앞으로 출판 디자이너로서의 감각을 더 풍요롭게 해 주지

않을까

디자인반 11기 사공예원

하얀

음각이 나왔을 때 너무 좋았고요

습탁은 농도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솜방망이가 먹물을 얼마나 흡수하는지 그

흡수량이 중요하고요

윤미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꽤 많은데 만져보면서 건탁을 뜨니까 좋았어요 전에 꽤 많은데 만져보면서 건탁을 뜨니까 좋았어요 전에

이건 파프리카인데 저희 집 개가 완성한 종이를 찢었어요

[학생들 하하하]

좀 작고 납작한 파프리카를 반으로 잘라서 습탁했어요 또

이건 철조망인데 용 비늘처럼 나와서 재밌었어요 아나콘다

같기도 하고 철조망이 날카로워서 습탁하니 종이가 자꾸

찢어져서 다시 하게 됐어요 근데 이거요hellip 남자친구

있으면 커플끼리 한 번 해보세요 한 명은 잡아주고 한 명은

습탁하고hellip 되게 로맨틱 성공적

자랑하는 거니

[학생들 깔깔깔]

24

9시 30분 합정역 1번 출구 앞

ldquo누나rdquo 소리에 쳐다보니 반가운 공 총무의 얼굴이 보였다 정류장

앞으로 길게 늘어선 줄에 합류하여 파주로 날 데려다 줄 2200번

버스를 기다리고 있으니 반가운 얼굴들이 계속 나타났다 한 대의

버스를 보내고서야 겨우 2200번 버스에 탑승해 파주로 출발할 수

있었다

10시 15분 파주 lsquo다산교 앞rsquo 정류장 하차

4개의 정류장 총 57분이 걸린다고 알려준 N사 지도 어플의 정보와는

달리 30분 만에 파주에 도착했다 일찍 도착해 먹을 것을 찾아 헤맨

예비 마케터들은 편의점에서 주린 배를 채웠고 lsquo지혜의 숲rsquo을 살짝

염탐하며 11시까지 시간을 보냈다

11시 05분 보진재 2층

1912년 설립되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인쇄소인 보진재 관계자

분이 나와 간단히 인사 말씀을 하고 각 반의 인솔자를 소개해주셨다

마케터반의 인솔자는 서동관 과장님 디자인반 편집자반 마케터반

순으로 견학을 시작했다

11시 15분 보진재 견학 시작

제일 먼저 본 곳은 제판실이었다 필름 인쇄가 줄어들고 CTP로

대체되는 추세지만 어떤 분들은 여전히 필름 작업을 하고 계셨다

이유를 물어보니 서동관 과장님은 예전 필름이 남아 있기도 하고

출판사에 따라 필름을 고집하는 곳이 있다고 하셨다

한번에 5도 인쇄가 가능한 기계를 보는 중에 서 과장님이 말씀하셨다

ldquo한 유닛(unit)당 23억 정도 해요rdquo 그렇다면 유닛 다섯 개가

돌아가고 있으니 적어도 10억짜리 기계라고 내 눈에 보이는 건 그냥

낡고 큰 기계인데 10억이 넘는다니 놀랐다 또 과장님께서 자랑스레

말씀하신 한 가지 잉크 농도 조절을 자동으로 하는 기계가 보급된

곳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었다 원래는 사람이 눈으로 보고 수정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재판을 찍을 경우 초판과 동일한 색상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있지만 보진재는 기계가 자동으로 조정해주어 수월한

작업을 할 수 있다고 하셨다

매염실도 보고 제본실도 구경했다 인쇄된 종이를 접지하고 제본을

마친 후 마지막으로 제단을 하면 책이 완성되어 나왔다 그 모든

과정을 보고 난 후 서 과장님이 건넨 완성된 책의 무게는 보통의

그것보다 조금 더 무겁게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윤전실이었다 견학 당일은 작업이 없어서

비어있던 윤전실이지만 윤전실이 주는 무게감은 컸다 윤전실은

롤(roll)로 인쇄하는 곳으로 8개의 롤이 양면 인쇄를 하고 건조와

접지까지 한 번에 가능한 기계도 있었다 대량생산을 위한 곳으로

주로 교과서나 EBS 학습지를 인쇄한다고 하셨다

12시 20분 견학 끝

1시간을 조금 넘긴 견학을 끝내고 밖으로 나오니 코가 따갑고 목이

말랐다 기계가 먼지를 빨아들여준다고는 하지만 수없이 많은

종이가 존재하는 공간에서의 종이 냄새는 강력했던 것이다 책이

제작되는 과정은 실제로 보니 다양하고 복잡했다 자동화가 많이

되어있지만 사람의 손길 없이는 절대 완성될 수 없는 과정들을 보며

책이 완성되기까지의 노력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lsquo책이 어떻게

만들어진다rsquo를 배우다가 lsquo책이 이렇게 만들어진다rsquo를 보니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예비 출판 마케터의

길로 들어선 후에 새로운 것을 보고 배울 수 있었는데 보진재 견학은

그 중에서도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책을 완성시키기 위한 모든 과정이

저마다의 몫을 하고 있었다 서울출판예비학교 졸업 후 출판계에

들어섰을 때 나는 과연 어떤 몫을 할 수 있을까 남은 2개월을 조금은

더 열정적으로 보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마케터반 11기 최다은

1 일일탈

학교 밖 견학 후기

피부로 와 닿는 책의 감촉 책의 냄새 책의 소리 보진재에서 책이 인쇄되는 과정을 만나다

필름과 인쇄판이 만들어지는 과정

25

우리가 이제 각자 편집자 마케터 디자이너가 되어 책 만드는 일을

시작하면 우리의 책은 이곳에서부터 그 lsquo탄생rsquo을 시작할 것이다 책의

근간이 되는 종이가 만들어지는 곳 한솔제지 공장에 다녀왔다 학기

초에 책을 파는 서점을 견학한 뒤 그 다음으로 출판사 종이에 활자를

찍어내는 인쇄소 그리고 마지막으로 lsquo종이rsquo를 만드는 제지 공장을

찾은 것이다 책이 만들어지는 순서대로라면 우리가 다녀온 순서를

거꾸로 해서 다녀왔어야 했지만 우리는 반대로 실제 과정을 거슬러

올라간 것이다 이렇게 거슬러 올라가는 과정에서 오히려 편집자란

직업에 겸허해질 수 있었다 가끔은 편집자가 책을 만드는 모든

과정 위에 군림하는 것 같이 느껴지지만 책의 물성을 만들어내는

거대한 기계 앞에서 우린 한없이 작아지기도 한다 lsquo한 권의 책rsquo이

만들어지려면 이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함을 이해해야 했다 이렇게도

복잡하고 힘겹게 만들어지는 책의 가치를 한 번 더 깊이 생각하게 된

계기였다 책이라는 건 의미가 담긴 조각들의 집합체이자 종이를

보기 좋게 물성화한 것 이론적으로야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눈으로 보고 느끼는 것과는 천지차이다

날씨마저 좋았던 9월 11일 평소보다 한 시간이나 이른 8시

30분에 세 반 학우들은 눈도 제대로 못 뜬 채 집합했다 대전까지

간다니 마치 여행가는 것 같은 살짝 들뜬 기분까지 안고 아침도 못

챙겨먹고 나왔을 우리를 생각해서 빵과 우유까지 준비한 한솔제지

측의 세심한 배려에 감동했다 배도 채우고 부족한 잠도 보충해가며

2시간 넘게 달려 신탄진 공장에 도착했다 도착하자 보이는 우리를

환영하는 현수막에 2차로 감동했다 우리를 위해 정말 많은 준비를

하셨구나 느낀 순간이었다

신탄진 공장 강당에 들어가서 간단한 공장 소개를 먼저 들었다

그리고 뒤이어 종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경청했다 수업 때보다

학생들의 집중력이 더 높아 보였던 건 내 착각이었길 종이는

1퍼센트의 펄프와 99퍼센트의 물로 이루어진단다 그래서 전반적인

공 정 의 대 부 분 은 물 을 처 리 하 기 위 한 과 정 이 나 다 름 없 었 다

생각보다 종이는 순수한 물질이라고 생각했다 종이(paper)의

어원은 이집트의 파피루스(papyrus)에서 왔다고 한다 중국의

lsquo채륜(蔡倫)rsquo이라는 사람이 제일 먼저 발명했고 고려시대에

일본으로 넘어간다 일본에 가장 마지막으로 넘어갔지만 종이의

기술력은 현재 일본이 가장 좋다 원료rarr초지rarr코팅 등의 공정을 거쳐

종이가 완성되는데 마지막 코팅 공정을 여자의 화장에 비유한 것

역시 기억에 남는다 코팅이 그렇게나 대단한 과정이라니

공장 안으로 들어가서는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시끄러워서 설명을

제대로 듣진 못했지만 앞서 들었던 설명을 떠올리며 기계들을

관찰했다 인쇄소에서 본 광경들도 거대하고 박력 있었지만 여긴

그보다 더 거친 느낌이었다 책은 서점에 놓여있을 때는 그렇게

얌전하건만 태어날 땐 이렇게 시끄럽다 또한 막 태어난 종이는

거대하고 또 거대했다 다들 마치 거대한 두루마리 휴지 같다고들

했다

견학을 다 마치고 다시 대전 공장으로 이동해 다 같이 점심 식사를

했다 기대 이상으로 맛있는 밥에 또 감동 더 힘내서 견학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아쉽게도 대전 공장 안에는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라 그 힘()을 발휘하진 못했다 대전 공장은 신탄진 공장과

다르게 책에 쓰이는 것이 아닌 제품 포장용 박스 종이컵 등 다른

용도에 쓰이는 종이를 만드는 곳이었다 그 과정의 차이를 눈으로

비교하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마지막으로 좋은 선물까지 손에

받아들고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다시 서울로 향했다

언제나 시작은 중요하다 각자의 일에 빠져들게 되면 점점 잊게 될

그 시작을 눈에 담고 오래 기억하기 위해 다녀왔다고 생각한다 요즘

초심을 잃었다는 생각이 종종 드는데 책에게도 초심이 있다면 바로 이

곳일까 시작의 의미에 대해 다시 곱씹어보았다

편집자반 11기 박혜원

우리의 글과 그림이 펼쳐질 종이의 탄생 한솔제지 신탄진 공장 견학

거대한 롤(상) 한솔제지 공장 앞에서 (하)

26

화양연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삶과 문학에 취하다

편집자반 한국문학 동아리 lsquo공감rsquo 그 대담의 현장

훗날 서울출판예비학교를 떠올릴 때 가장 즐거운 시간으로 기

억되는 날들은 동아리 활동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들의

화양연화(花樣年華)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 중

의 하루를 소개한다 문예창작학과를 전공한 문학소녀 김한나

학우를 필두로 창단된 편집자반 내 한국문학 동아리 lsquo공감rsquo은

모임 전에 한국작가를 한 명 정해 단편 두 편을 함께 읽고 키워

드나 질문을 스스로 뽑아 글을 써왔다 모여서 때로는 소설의

플롯이나 주제 문체에 대한 열띤 토론을 하고 때로는 작가의

외모()와 같은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며 삼천포로 빠지기도 했

다 우리끼리만 듣기엔 아쉽다 이 즐거운 대화를 모두에게 들

려주고 싶었다 이날 모임에선 김영하 작가의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단편집 속의 두 단편 lsquo엘리베이

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이하 엘리베이터)rsquo와 lsquo사진

관 살인사건(이하 사진관)rsquo에 대해 이야기했다 여기서는 lsquo엘리

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rsquo를 읽고 토의한 내용을

실었다

한나 참고로 김영하는 사람의 욕망에 대해 천착하는 작가야

그런 특성이 엘리베이터에는 안 나와 있는데 사진관에서는

잘 드러나 있어

상화 백가흠 작가에게 소설창작론 강의를 들었는데 그분이

소설의 기법을 설명하면서 알레고리랑 아이러니를 얘기했어

알레고리가 인물이나 소재를 비유적으로 설명하는 거래 예를

들어 핸드폰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다른

것에 핸드폰을 빗댐으로써 소설을 풀어가는 거

야 아이러니는 속도감 있게 이야기를 전개함으

로써 부조리나 모순을 드러내는 건데 김영하가

아이러니의 대표적인 작가래 단편인데도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내면보다는 사건이 일어나는

걸로 소설을 끌어가는 작가 우리가 지난 모임

에서 성석제를 굉장한 이야기꾼이라고 했잖아

그런데 난 김영하가 훨씬 이야기꾼스럽게 느껴

졌어 속도감 있고 lsquo이렇게 몰입을 할 수 있나rsquo

싶고 지난 모임들에서 읽었던 손보미나 편혜영

소설의 경우는 분위기나 주인공의 심정 내면에

의미를 부여해 야 했는데 김영하의 소설은 덮

자마자 아이러니가 느껴지면서 lsquo아 세상은 왜

이래rsquo 말하게 만들었어

법열 나는 엘리베이터 읽고 딱 lsquo뫼비우스의 띠rsquo가 생각났거든

뫼비우스의 띠가 안하고 겉이 구분이 안 되잖아 끝과 시작이

어딘지도 모르고 lsquo나rsquo가 겪는 상황이 현실인지 아닌지 구분이

안 되는 느낌 마지막에 lsquo나rsquo가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가 존재

하기는 했는지 혼란스러운 느낌을 받잖아 그게 앞의 환상적

인 부분이랑 맞물리면서 하나가 되는 느낌이라 뫼비우스의 띠

가 생각났어

상화 lsquo나rsquo가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구해주려고 고분군투하

다가 나중에 자기가 엘리베이터에 갇히잖아

오권 낀 남자의 발을 보면서 느꼈던 감상이 사실은 자기를 구

하고 싶었던 마음인 거지

(일동 오~ 그렇게도 볼 수 있네)

오권 무한도전의 무한상사 특집도 생각났어 뜬금없이 휴지

사용하는 길이에 대해 회의하는 장면에서 엘리베이터는 갇힌

사회 서로를 돌아보지 않는 사회를 의미하는 것 같아

한나 나는 반대로 오히려 엘리베이터를 희망적인 존재로 봤

거든 아파트도 그렇고 회사도 그렇고 각자 자신의 공간 안에

서 살다가 서로 만날 수 있는 장소는 엘리베이터 밖에 없으니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김영하 지음

문학동네 20100216

동아리 후기

27

까 lsquo나rsquo가 회사 엘리베이터 안에 여자와 같이 갇히잖아 사실

은 갇히지 않았으면 대화도 안하고 지나쳐 갔을 텐데 남자는

자기가 아침부터 버스 사고도 나고 성추행범으로 몰렸다고 얘

기하고 또 남자의 담배 피워도 되냐는 말에 여자는 담배에 대

한 불평불만을 속사포처럼 얘기하고 엘리베이터라는 공간이

아니었다면 이런 대화 자체가 없었겠지

오권 엘리베이터 타면 사람들이 하나같이 층수 바뀌는 것만

쳐다보고 있잖아

상화 요즘은 스마트폰

오권 자기 얘기를 하고 싶은 것 같아 하지만 상대의 얘기는

안 들어 lsquo너의 얘기는 관심 밖이지만 내가 불편한 것에 대한

얘기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하겠어rsquo라는 느낌

한나 그리고 우스웠던 게 볼일 보고 휴지 몇 칸 쓰는지 회의에

서 얘기하는 건hellip 사실 굉장히 사적인 얘기잖아 (일동 하하

하) 서로에 대해 다른 얘기는 일절 하지 않으면서 회의 내용은

개인적이고 사적이라니 아이러니한 거지

수경 진짜 웃기지 않았어 lsquo나rsquo가 자원 재활용 문제에 대한 중

대 보고가 있다고 계속 빨리 가야한다고 했던 게 겨우 그거야

상화 겨우 이딴 회의하려고 지금 엘리베이터에 낀 사람 놔두

고hellip 생명이 더 중요한데 지금 휴지 구하려고hellip

(일동 하하하)

한나 lsquo나rsquo가 불쌍했던 이유가 자기한테 닥친 일들은 lsquo할 수 없

지 뭐rsquo 이런 식으로 넘기는데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 걱정하고

갇힌 여자 걱정하고hellip 정작 자기 걱정은 안 해

오권 영화 lt라이터를 켜라gt 봤어 조폭들한테 얻어맞으면서

도 주인공은 무조건 자기 라이터만 찾겠다고 그러거든 이 소

설의 lsquo나rsquo와 비슷한 느낌이 들더라고 그 영화에서는 라이터가

주인공의 존재를 투영하는 소재거든 lsquo나rsquo는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구해야만 자기가 산다는 느낌을 받은 거라 해석하면

너무 나간 건가

법열 아니요 형이 아까 지적해준 게 와 닿았어요 그 고군분

투가 결국 자기를 구하려는 노력이라는 지적이요

상화 그나마 lsquo나rsquo가 이 소설에서 제일 인간적이지

수경 어딘가 찌질한 느낌도 들어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와

lsquo내rsquo가 동류라고 자각하고 연민을 갖는 느낌이었거든 lsquo나rsquo가

인간적이고 윤리적이라는 생각은 나는 글쎄hellip 더 적극적으

로 할 수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 자기 사이클에서 벗어나

지 않는 한도 내에서 걱정만 하잖아 소설 안에서 비극과 희

극이 번갈아 가며 나타나는데 트럭과 버스가 충돌했을 때

lsquo나rsquo는 lsquo버스 카드 일로 충돌하지 않게 되어 적이 기뻤다rsquo고

생각해 버스 운전사는 트럭 백미러에 가슴이 받혀서 죽었는

지도 모르는데 lsquo다행히 나는 허리가 좀 뻐근한 것만 빼면 별

다른 상처가 없는 듯했다rsquo 이런 생각들을 하는 게 좀 섬뜩했

민희 사람은 다 이중성을 가지고 있잖아 나를 보는 듯했어

만약 학교 가는 길에 엘리베이터에 낀 사람을 봤다면 그렇

지만 나도 얼마나 바빠 몇 분 늦으면 지각 체크 당하고 출석

80퍼센트를 못 채울 수도(일동 웃음) 있는 상황이라면 내

가 그 남자를 구할 수 있을까 일단 지나치고 119에 전화하려

고 했으나 핸드폰이 없는 상황에 나도 처할 수 있는 거잖아 나

만 생각하는 잔인한 면도 내 안에 있고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

도 내 안에 있어 이런 찌질한 모습도 나고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정의롭게 구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상화 기준이 다른 것 같아 lsquo나rsquo 정도면 착하다고 생각했거든

수경 주변 사람들이 약간 마네킹 같지 않아 주인공 주변에

장치되어있던 다른 사람들이 너무 비인간적이기 때문에 lsquo나rsquo

가 돋보이는 거지 lsquo나rsquo는 지극히 평범한 우리 모습 같아 내가

어떻게 할 생각은 없고 궁금하기만 한 거야

민희 그 궁금함과 찜찜함도 죄책감이라 생각돼 아 내가 어떻

게 해줬어야 했나

한나 책임 회피일까

상화 그래서 나는 키워드 뽑은 것 중 하나가 119야 구해주고

싶으면 직접 내 손으로 잡아 빼주던가 엘리베이터를 들어 올

릴 사람을 모아야 했는데 신고 생각만 하잖아 이미 이건 누

가 대신 해결해줘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그나마 우리

사회에서 사고를 수습해주는 건 119밖에 없고 조선시대에는

119같은 거 없고 마을 사람들이 모여 구해줬을 텐데 어쩔 수

28

없는 현대인의 단상이긴 해 현대가 분업사회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들 바쁘고 삶이 개인화 파편화되어 있으니까 119 같

은 집단이 필요한 거지 그래서 난 119를 신의 영역이라고 썼

어 lsquo나rsquo는 119를 거의 신적인 존재처럼 생각하잖아 부르면 모

든 게 해결될 것처럼 핸드폰 빌리고 공중전화 찾고 그런데 막

상 교통사고 현장에서 119 대원에게 면대 면으로 얘기를 했더

니 그들은 무슨 그따위 장난을 하냐고 말해 구조도 실은 신이

아니라 사람이 하는 일이고 그 사람이 관심이 없으면 묻히는

거지

오권 전화를 거는 것과 직접 구해주는 것의 차이가 큰 것 같아

자기가 구해주는 건 적극적인 행동이고 119에 전화하는 건 스

스로 최소한 양심적이긴 하다고 여기는 행동

수경 그런데 엘리베이터에 낀 사람을 아무 것도 모르는 일반

인이 어떻게 했다가는 더 위험해질 수도 있잖아

오권 맞아 사회가 시스템화하고 고도화될수록 각자의 업무가

분업화되었고 전문분야가 생겨났으니까 옛날 같았으면 애 낳

으면 그냥 동네 아주머니가 애 받고 어미가 죽으면 젖동냥 다

녔는데hellip 이젠 사고가 나면 생각이 119에 먼저 미치는 시대가

된 거지

수경 그래서 어딘가에 널브러져 다친 인간이 아니라 엘리베이

터라는 공간에 낀 남자를 설정한 것 아닐까 엘리베이터는 현

대화의 상징이잖아

한나 lsquo나rsquo도 어쩔 수 없는 게 출근 시간에 쫓겨서 시계를 계속

봐 먹고 사는 일이니까

오권 출근했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다시 집으로 돌아가

낀 사람을 구해주면 굉장히 희망찬 소설로 바뀔 텐데hellip (일동

웃음)

수경 이 소설로 현대 사회의 폐단은 다 얘기할 수 있겠는데

상화 김영하는 천재인 것 같다

누군가 그리고 잘생겼잖아

누군가 잘생긴 거야

누군가 지적인 분위기가 있어서 좋아 (한참 얘기)

한나 또 인상 깊었던 게 구두에 집착하는 거 lsquo나는 날렵한 치

타처럼hellip 구두를 가지고 엘리베이터에서 빠져나오는 데 성공

했다 허탈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rsquo는 구절

오권 자살한 사람들이 구두를 가지런히 벗어놓는 이미지가 무

슨 상징처럼 있잖아

한나 신발 한 쪽 없이 다녀봤어 계속 기우뚱대서 내가 걷거

나 서 있을 때 내가 잘못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여기서 lsquo나rsquo가

그랬을 거야 사실 lsquo나rsquo처럼 사는 게 정상인데 세상이 잘못된

건데

상화 이 소설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감정표현이잖아 하루 종

일 얼마나 힘들었겠어 처음으로 감정표현을 하니까 불쌍했어

오권 휴머니즘 불쌍론 또 나왔네(일동 웃음) 그럼 이제 사진

관으로 넘어가볼까hellip

편집자반 11기 이상화

2929

책씹는맛 01 냄새라는 경이 lt감각의 박물학gt 후각편을 읽고

냄새에는 언어가 없다 어휘가 부족한 우리는 말문이 막힌

채 불명료한 쾌감과 자극의 바다에서 말을 찾을 수밖에

없다1

이 말은 다이앤 애커먼의 『감각의 박물학』 제 1장 후각에

나오는 구절이다 냄새를 글로 쓰고자 하는 나의 시도가 늘

실패로 귀결되는 이유를 이 구절에서 찾았다 작가의 말처

럼 냄새에 대해 쓴다는 건 언어 밖 세계로 나갔다가 다시

언어로 되돌아오는 길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길에서 헤매

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후각이라는 감각에서 길을

잃는 것은 낭만적인 일이기도 하다 lsquo냄새의 뇌관을 건드리

면 모든 추억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기rsquo2 때문이다 냄새 하

나에 수많은 추억들이 줄줄이 기억의 회로 위로 떠오른다

예를 들면 바다 냄새 하나만 상상해도 그와 관련된 수많

은 기억들이 머릿속에 뒤섞인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바닷가와 관련된 그 모든 추억들이 기억의 영사막에서 한

편의 옴니버스 영화 형태로 내게 다가온다 난 내 기억의

관객이 되어 그 영화를 보다가 견딜 수 없는 그리움에 젖는

다 이 영화에 대한 감상문을 적으려면 나는 말문이 막힌

다 그래서 몇 글자 적다가 결국 글을 쓰기를 멈춘다 굳이

언어로 표현하자면 쓸 수 없는 그리움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1 『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옮김 작가정신 20040720

A Natural History of the Senses(1991) 17쪽

2 같은 책 18쪽

결국 lsquo언어가 존재하는 세계에서 경이는 언어의 칼날 아래

서 쉽게 해부되고 냄새는 자주 혀끝에서 맴돈다rsquo3 냄새의

숭고함 앞에서 우리는 말을 멈춘다 이처럼 냄새는 말할 수

없는 자연의 경이로움과 닮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lsquo냄새가 우리의 마음을 그토록 강하게 움직이는 것은 부분

적으로 그 이름을 부를 수 없기 때문rsquo4이라고 한다 저자는

그렇기에 사람들이 냄새를 lsquo분 냄새 비슷한 펭귄 냄새가

나는 호화로운 화장실 냄새가 나는rsquo 같은 말로 표현할 뿐

이며 냄새에 대한 이름은 주어져 있지 않다고 말한다 또

한 종류는 같아도 강약과 농도가 다른 각각의 냄새에 이름

을 붙여줄 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우린 일상적으로 냄새를

맡으면서도 그 냄새와 멀리 떨어져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명명되지 않은 것은 결국 잊히는 게 아닐까 부를

수 없음에서 오는 경외감과 숭고함이 있을지라도 냄새는

말해져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말할 수 없는 것에 자꾸

만 침묵하기만 해야 할까

감각도 모험의 영역이 될 수 있다 세계 일주만이 세상을

아는 길일까 lsquo나rsquo를 온전히 아는 것이 역설적으로 세상과

가까워지는 일인지도 모른다 나를 알기 위한 길 중 하나가

내가 가지고 있는 감각을 이해하고 그걸 언어로 표현하는

일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어쩌면 우리와 제일 가깝지만 말

하기 낯선 감각 후각을 이해하는 일이 중요한지도 모른다

냄새라는 감각 속에서 우리 모두 길을 잃고 헤매고 모험해

보자 냄새에 나름의 이름을 지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

리고 농도에 따라 냄새를 구분하는 일도 해보자 냄새라는

경이는 우리를 더 이상 침묵으로 이끌지 않을 것이다

디자인반 11기 백가은

3 같은 책 22쪽

4 같은 책 22쪽

『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 옮김

작가정신 20040720

A Natural History of the Senses(1991)

3030

02 현실을 전복시키는 비현실

모호함이 주는 환상성

20세기 중반 중남미 소설은 전통적인 사실주의 서사 구조

를 깨고 현실과 환상을 혼합시키는 새로운 글쓰기 방식으

로 세계문학의 중심에 선다 이 시기에 주목 받은 일련의

중남미 작가들을 가리켜 lsquo붐 세대 작가rsquo라 칭하는데 아르

헨티나의 환상문학 작가 코르타사르는 이 붐 세대 작가군

의 선구자이자 대표 주자 격인 인물이다 그러나 그 문학적

성과와 명성이 무색하게도 국내 독자들에겐 그의 이름이

아직 생소한 것이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에서는 그

의 작품이 중남미 단편 선집에나 몇 편이 번역되었을 뿐 본

격적으로 소개된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중남미 문학을 공부했고 그의 몇 안 되는 번역 작품을 인

상 깊게 읽었던 독자 입장에서 이번에 출간된 코르타사르

의 단편집『드러누운 밤』은 가뭄의 단비처럼 반가운 신간

이다

환상 문학이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J R R 톨킨 류의 판타

지소설 혹은 쥘 베른이나 아이작 아시모프 류의 SF소설을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코르타사르의 환상문학은 이들 범

주에 들어가지 않는다 코르타사르 작품에서 나타나는 환

상이란 토도로프가 정의한 바 있는 환상 그러니까 자연적

인 것과 초자연적인 것 사이의 망설임에서 발생하는 환상

에 가깝다 따라서 판타지소설의 lsquo현실과 동떨어진 환상rsquo

혹은 SF소설의 lsquo설득력 있고 현실감 있는 환상rsquo을 기대하

는 독자라면 아마 십중팔구 그의 작품을 읽고 실망할 것

이다 어쩌면 이게 무슨 환상문학이냐는 푸념을 늘어놓을

지도 모르겠다 역시 가장 좋은 것은 선입관을 버리고 책을

읽는 것이다

코르타사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lsquo모호함rsquo이다 인물이나

배경 묘사에서 제시되는 기본적인 정보도 모호하고 사건의

전개 양상이 가진 당위성도 모호하다 작품 내에서 주요한

스토리 라인을 담당하는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경계도 모

호하며 심지어는 화자의 정체마저 모호한 작품도 있다 이

런 모호함의 향연은 짙게 깔린 안개와도 같아서 독자들은

그 속에서 한 치 앞도 제대로 내다볼 수 없음은 물론이요

이미 지나간 사실조차도 자신이 맞게 인식한 것인지 확신

할 수 없을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무엇이 진짜인지

독자들의 판단을 망설이게 만드는 이런 상태야말로 코르

타사르의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는 환상이란 개념이다 독

자들은 이 환상 속에서 그저 전방을 주시하며 천천히 나아

갈 수밖에 없다

다행스럽게도 코르타사르는 독자들의 시련을 헛되게 하지

않는다 작품의 시작점 일상 세계에 우연히 침투한 lsquo비현

실적인 것rsquo은 안개 속에서 알게 모르게 자신의 지분을 늘려

나간다 그리고 작품의 종점에 다다른 독자들은 비현실이

현실이 되고 현실이 비현실이 되는 이전과는 전혀 새로운

세계와 마주할 것이다 다시 말해 필연과 이성의 법칙이 지

배하는 세계가 우연과 환상이 지배하는 세계로 변하는 것

이다 이러한 세계의 전복은 마치 여기저기 단서를 흩뿌리

고 사람들을 알쏭달쏭하게 만들었다가 결말부에서 모든

것을 폭발시키는 추리소설 혹은 반전영화를 보는 듯한 재

미를 선사한다

그렇다면 코르타사르가 이 소설들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책을 다 읽고 난 독자라면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의문점이다 코르타사르는 자신이 환상문학을 쓰는

이유를 ldquo법칙이나 원칙 혹은 인과관계나 특정한 심리 또

는 잘 그려진 지리학과 같은 체계에 의해 세상이 지배되고

있다는 것에 반대rdquo하고 ldquo우리가 잘 모르며 우리에게 잘 다

가오지 않는 새로운 질서에 관해 생각해보기 위함rdquo이라고

설명한다 짧게 말해 이 세상에 필연이란 존재하지 않으

며 자신은 그것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말이다 이

게 전부다 순문학이라면 거장의 문학이라면 이보다 더 심

오한 통찰 혹은 비판이 있을 것이란 생각에 문장 속 숨겨진

의미를 발견하고자 머리를 싸맬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조

언을 하자면 독서는 독서 그 자체로 즐기면 된다 적어도 이

책에서는 그렇다 모호함과 예상외의 전개 속에서 재미를

느끼고 코르타사르가 묘사하는 세계의 불가지(不可知)성

을 어렴풋하게나마 인식할 수 있다면 이미 그것으로 충분

하다

편집자반 11기 강귀욱

『드러누운 밤』

훌리오 꼬르따사르 지음 박병규 옮김

창비 20141124

La noche boca arribaJulio Cortazar

31

03 얼어붙은 자의식의 바다를깨뜨리고 생명을 불어넣는 책 『데미안』

데미안을 읽고 나서야 그 동안 내가 두 발 딛고 서 있던 땅이

굳고 단단한 대지가 아니라 얼어붙은 바다에 불과했음을 알

았다 데미안은 도끼를 가져와 이 꽁꽁 언 바다를 가차 없이

내리 찍었다 그리고 말했다 얼어붙은 바다를 단단한 땅인

줄 알고 사느니 그 얼음을 깨부수고 그 속에 빠져 죽기 살기

로 허우적대라고 그러면 그 속에서 너는 너 자신을 똑바로 마

주하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성장할 것이라고

주인공 싱클레어도 그를 둘러싸고 있던 세계를 깨뜨려 나가

며 성장한다 그 모든 과정은 결국 진정한 자기 자신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가 깨뜨린 가장 큰 세계는 바로 자신의 사고 체계였다 세상

을 바라보는 기존의 이분법적이던 시각 고정되고 획일화된 시

각을 버렸다 주인공은 세계 안에 심지어는 자신 안에도 선하

고 악하며 밝고 어두운 양극단의 것들이 공존함을 이해하고

두 세계를 끌어안았다 주인공은 귀와 눈을 가리던 장막을 걷

어내 버리고 세상을 바로 보게 되었다 상극인 것들의 괴리로

이루어진 이 모순된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곧 자신 안의 부조

화 또한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스스로에게 다가서는 첫 걸음

이었다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양극단의 세계 사이에서 싱

클레어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며 흔들리기를 반복했다 이

때 그에게는 삶을 지탱할 중심축이 없었다 항상 내면이 아닌

외부 세계에서 자신이 속할 자리를 찾아 헤맸다 그가 비로소

온전한 자신을 만난 순간은 어느 편으로도 치우침 없이 스스

로의 기준으로 홀로 서게 되었을 때였다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 이 길은 당신이 내면에 있는 모

순되는 두 세계 한없이 나약하고 뒷걸음치는 비열한 모습들

과 정갈하고 깨끗한 곧은 힘들을 동시에 직시하는 순간에 시

작된다 그리고 이 길은 두 세계 속에 들어가 이리저리 휩쓸리

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세계를 밟고 우뚝 올라서서 스스로

가 중심이 됨으로써 앞으로 펼쳐진다

이제 lsquo자아를 찾으라rsquo는 지루하고 흔한 이야기가 더 이상 빤

하거나 우습지 않다 묵직한 울림이 되어 나를 흔든다 그냥

나만 붙잡고 흔드는 것이라면 손사래 쳐 뿌리치겠는데 내가

밟고 있던 땅 속해 있던 세계를 뿌리째 흔들어 버린다 읽는

내내 속이 답답하고 나에게 화가 난다 그런데 이렇게 마구

혼나면서 이상하게도 후련한 구석이 있다 호통을 치는 데미

안이 사실은 우리를 응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막연

하고 무기력한 안개에 휩싸여 있을 때 데미안은 그만의 방

식으로 우리에게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준다 물론 갈 방향을

정해준다거나 각자의 사정을 듣고 상담을 해주는 것은 아니

다 오로지 궁지로 몰아세울 뿐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사람들

은 잊고 있던 lsquo나 자신rsquo을 일깨운다 아 그동안 lsquo나rsquo에 대해 생

각해본 적이 있던가 라는 정도만이라도 좋다 이 물음이 바로

여정의 시작이니까

그렇게 스스로에게 묻고 나면 더 이상 전처럼 살 수는 없기 때

문이다 아니라면 자기 자신에게 면목이 없을 것이다 이 무서

운 책이 우리를 혼내고 몰아치면서도 여전히 영원한 고전이자

필독서로 사랑 받는 이유다

lsquo우리들 속에는 모든 것을 아는 한 사람이 있다rsquo고 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혼이 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혼

이 났다는 것은 자신 안에 있는 lsquo그 사람rsquo이 말을 하기 시작했

다는 뜻이니까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목소리가 희미하

고 멀리 있다 하여도 숨죽여 귀 기울이는 일 자체가 자신에게

로 가는 과정임을 잊지 말고

편집자반 11기 배예리

『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민음사 20001220

Demian Die Geschichte von Emil

Sinclairs Jugend(1919)

31

03 얼어붙은 자의식의 바다를깨뜨리고 생명을 불어넣는 책 『데미안』

데미안을 읽고 나서야 그 동안 내가 두 발 딛고 서 있던 땅이

굳고 단단한 대지가 아니라 얼어붙은 바다에 불과했음을 알

았다 데미안은 도끼를 가져와 이 꽁꽁 언 바다를 가차 없이

내리 찍었다 그리고 말했다 얼어붙은 바다를 단단한 땅인

줄 알고 사느니 그 얼음을 깨부수고 그 속에 빠져 죽기 살기

로 허우적대라고 그러면 그 속에서 너는 너 자신을 똑바로 마

주하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성장할 것이라고

주인공 싱클레어도 그를 둘러싸고 있던 세계를 깨뜨려 나가

며 성장한다 그 모든 과정은 결국 진정한 자기 자신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가 깨뜨린 가장 큰 세계는 바로 자신의 사고 체계였다 세상

을 바라보는 기존의 이분법적이던 시각 고정되고 획일화된 시

각을 버렸다 주인공은 세계 안에 심지어는 자신 안에도 선하

고 악하며 밝고 어두운 양극단의 것들이 공존함을 이해하고

두 세계를 끌어안았다 주인공은 귀와 눈을 가리던 장막을 걷

어내 버리고 세상을 바로 보게 되었다 상극인 것들의 괴리로

이루어진 이 모순된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곧 자신 안의 부조

화 또한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스스로에게 다가서는 첫 걸음

이었다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양극단의 세계 사이에서 싱

클레어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며 흔들리기를 반복했다 이

때 그에게는 삶을 지탱할 중심축이 없었다 항상 내면이 아닌

외부 세계에서 자신이 속할 자리를 찾아 헤맸다 그가 비로소

온전한 자신을 만난 순간은 어느 편으로도 치우침 없이 스스

로의 기준으로 홀로 서게 되었을 때였다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 이 길은 당신이 내면에 있는 모

순되는 두 세계 한없이 나약하고 뒷걸음치는 비열한 모습들

과 정갈하고 깨끗한 곧은 힘들을 동시에 직시하는 순간에 시

작된다 그리고 이 길은 두 세계 속에 들어가 이리저리 휩쓸리

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세계를 밟고 우뚝 올라서서 스스로

가 중심이 됨으로써 앞으로 펼쳐진다

이제 lsquo자아를 찾으라rsquo는 지루하고 흔한 이야기가 더 이상 빤

하거나 우습지 않다 묵직한 울림이 되어 나를 흔든다 그냥

나만 붙잡고 흔드는 것이라면 손사래 쳐 뿌리치겠는데 내가

밟고 있던 땅 속해 있던 세계를 뿌리째 흔들어 버린다 읽는

내내 속이 답답하고 나에게 화가 난다 그런데 이렇게 마구

혼나면서 이상하게도 후련한 구석이 있다 호통을 치는 데미

안이 사실은 우리를 응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막연

하고 무기력한 안개에 휩싸여 있을 때 데미안은 그만의 방

식으로 우리에게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준다 물론 갈 방향을

정해준다거나 각자의 사정을 듣고 상담을 해주는 것은 아니

다 오로지 궁지로 몰아세울 뿐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사람들

은 잊고 있던 lsquo나 자신rsquo을 일깨운다 아 그동안 lsquo나rsquo에 대해 생

각해본 적이 있던가 라는 정도만이라도 좋다 이 물음이 바로

여정의 시작이니까

그렇게 스스로에게 묻고 나면 더 이상 전처럼 살 수는 없기 때

문이다 아니라면 자기 자신에게 면목이 없을 것이다 이 무서

운 책이 우리를 혼내고 몰아치면서도 여전히 영원한 고전이자

필독서로 사랑 받는 이유다

lsquo우리들 속에는 모든 것을 아는 한 사람이 있다rsquo고 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혼이 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혼

이 났다는 것은 자신 안에 있는 lsquo그 사람rsquo이 말을 하기 시작했

다는 뜻이니까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목소리가 희미하

고 멀리 있다 하여도 숨죽여 귀 기울이는 일 자체가 자신에게

로 가는 과정임을 잊지 말고

편집자반 11기 배예리

『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민음사 20001220

Demian Die Geschichte von Emil

Sinclairs Jugend(1919)

32

박세길 인터뷰

진정한 역사가는 과거에 파묻히지 않는다옥(獄)에서 옥(玉)을 만든 작가 박세길 인터뷰

박세길 저자는 처녀작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로 80년대

대표 역사서 자리를 꿰찬 분입니다 1986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감되었을 때 감옥에서 역사책을 읽으며

사회 모순에 대해 고민했고 출소하자마자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집필했습니다 정권 탄압 속에서 왜곡된

현대사를 바로 잡았다는 의미를 지닌 이 대표작은 오랫동안

고시생과 대학생들의 필독서로 꼽혔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읽은 박세길 저자의 저서는 지난 6월 출간한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입니다 기사를 쓰고 편집할 때 청년 세대를

겨냥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박세길 저자는 역시나

청년들의 미래에 큰 관심을 갖고 계셨습니다 취업을

눈앞에 둔 서울출판예비학교 학생들이 가져야 할 자세를

여쭸습니다

출판학교에서 강의하신 한 선생님은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가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와

더불어 80년대 인문학의 양대

산맥이라고 하셨습니다

책의 성공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강의

요청이 많이 들어왔어요 먹고사는

경제적인 문제도 해결됐습니다

몇 부 팔렸는지는 잘 모릅니다

출판사에서 기밀 사항이라고

하더군요 요즘은 마케팅 차원으로도

몇 쇄 몇 부인지 밝히지만 그때는

세금 문제를 피해가기 위해서인지

쉬쉬하던 시절이었나 봅니다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는 대학

선후배끼리도 많이 물려주는 책이라고

들었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의 쉬운 설명이

좋았습니다 더불어 어떤 사명감을 안고 썼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완성하기에 앞서 어떤 목표를

두셨나요

청년 세대가 외환위기 이후 집중적인 희생양으로 전락하면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드러내면서 여기에

머물지 않고 청년 세대의 잠재력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들이 역사 무대 한복판에 진출해 자기 몫을 다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습니다

역사 분야는 시장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역사 혹은 현대사가 주목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통해 얘기하자면

80년대 후반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lsquo왜곡된

역사를 바로 알자rsquo는 시각 교정의 욕구가 있었던

차에 제 책이 나름 부응했는지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시기가 적절했던 셈이죠

2012년 대선 후 역사 분야가 잠시 반짝했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금세 시들었다고

하더군요 당시 역사 분야 책들이 일반 독자가

읽기에 다소 어렵거나 출간한 지 오래된 것들

위주였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돋을세길

출판학교에서 강의하신 한 선생님은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가 유홍준 교수의

책의 성공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강의

하더군요 요즘은 마케팅 차원으로도

선후배끼리도 많이 물려주는 책이라고

역사 분야는 시장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역사 혹은 현대사가 주목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통해 얘기하자면

80년대 후반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lsquo왜곡된

역사를 바로 알자rsquo는 시각 교정의 욕구가 있었던

차에 제 책이 나름 부응했는지 큰 반향을

읽기에 다소 어렵거나 출간한 지 오래된 것들

위주였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의 저자

33

2012년 대선 후 역사 분야가 관심을 받았던 것은

보수층의 재집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한

불안 때문일까요

맞습니다 그러나 마땅한 책이 없어서 그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역사 분야에서 베스트셀러를 내기

위해서는 시기가 맞아 떨어지고 내용 또한 대중이 원하는

것을 담고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를 편집한 lsquo생각정원rsquo

출판사의 정희용 편집자에게 감사 표시를 하셨습니다

어떤 편집자를 선호하시나요

간단합니다 편집자는 철저히 독자 입장에서 독자와 작가

사이의 간극을 줄여줘야 합니다 예를 들면 어려운 내용을

과감히 생략하고 다음 기회로 미루도록 설득한다거나 좌파

운동권 색채가 너무 강한 문장을 조금 순화하는 것 등입니다

어떤 내용이 이번 책에 꼭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선택을

도와줘야 합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을 작가님께서 직접

독자들에게 홍보하신다면 카피 문구를 짧게 제시할 수

있을까요

청년 세대 희망 찾기 갑갑한 현실을 어떻게 타개할 수

있을지 그 답을 찾아보는 길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취업 후 첫발을 내디딜 서울출판예비학교 11기

학생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출판 또한 돈을 벌어야한다는 기본 전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출판계를 지켜본 결과 뭔가 소명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오래

살아남았습니다 출판학교 역대 대표 중 일부는 나와 관계가

있는 사람들인데 모두 고유한 소명의식을 갖고 출판계에

뛰어들었습니다 때로는 상업주의 안에서 재주도 부리곤

했지만 어쨌든 분야 내에서 고유한 캐릭터를 구축했습니다

출판학교 학생들이 출판 상황을 이해하고 자신을 역할을

정하는 개인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비전 중심의 경영을

하는 회사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지만 개인 비전을 기업

비전으로 나아가 사회 비전으로 접목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과거에 안주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부분을

출판계에서는 SNS 등 인터넷 환경을 통한 마케팅으로

이해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SNS망 자체에서 무엇이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건 사람과

사람이 서로 소통하고 공감하는데 필요한 도구입니다

콘텐츠 중심의 사고가 중요하고 그것이 전제되지 않을 때

SNS는 착각에 불과하며 성공할 수 없습니다 필요한 콘텐츠

중심의 사고를 가지고 철저하게 진행하지 않으면 그 공간에서

허망하게 헤엄만 칠 뿐 입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SNS에서

맥없이 헤엄치다 익사하는 경우를 볼 수 있을 겁니다

콘텐츠와 마케팅의 영역을 하나로 보는 것과 따로

보는 것 어떤 것이 독자를 위하는 것일까요

출판 마케팅은 책을 기획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에서부터

개입돼야 하고 그 과정에 독자를 참여시키는 방식을

고민해야 합니다 미국 네브래스카주립대학의 이상문

교수는 lsquo밀실 안에서의 혁신은 끝났다rsquo고 얘기합니다

개방된 체제에서 독자 곧 소비자 사용자의 참여 하에 함께

만들어갈 때 혁신은 이뤄진다고 합니다 출판사의 비전이

브랜드로 연결될 때 독자는 자발적으로 의견을 주고받고

싶어 할 겁니다

마케터반 11기 이창환

디자

인 사

공예

Page 13: 서울출판예비학교 웹진 _5호 2015

13

무심히 다음 역에서 내렸다 아무런 동요 없이 발걸음

을 옮기는 나를 보고는 그도 무안한지 이내 제자리로

돌아가는 듯했다 이상한 사람 나는 계속해 나의 목적

지를 향해 걸어갔다

결국 지각했다 면접은 진행 중이었다 이게 다 불가리

때문이다 불가리 냄새가 몸에 밴 것 같다 아니 불가

리 냄새는 내 옆에서 나고 있었다 내 옆에는 불가리가

앉아 있었다 부처님의 손가락을 본 손오공의 심정이

이러했을까 강귀욱

끔찍했다 냄새도 면접도

lsquo젠장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야rsquo

담배에 불을 붙여 한 모금 깊게 빤다 lsquo후-rsquo 치미는 화

도 잡념도 불안도 이 연기처럼 쉬이 사라져버리면 좋

으련만 무의미한 푸념만이 입 안에 맴돈다

ldquo김말숙~ 여기 있었냐rdquo 그 말에 얼마나 놀랐냐면 떨

어진 담뱃불이 내 정장치마를 태우고 있는 줄도 몰랐을

정도였다 lsquo불가리 그놈을 피해 골목까지 들어왔는데

여긴 어떻게 찾은거야rsquo

ldquo밥 먹을래rdquo lsquo꺼져 꺼져 제발 꺼져helliprsquo 못 들은 척 고

개를 돌렸다

ldquo소달구지라고 괜찮은 식당 있는데 같이 가면 그 3만

원 없던 걸로 해줄게rdquo

우리는 눈이 마주쳤다 김영준

해질 무렵 서서히 불이 들어오는 보고 있어도 언제 밝

아졌는지 알 수 없는 양화대교 위 가로등처럼 우리는

천천히 그러나 깊게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새카

만 흑암의 공간 무저갱 같이 깊고 검은 눈동자 속에

숨겨 놓은 비밀을 알아내기라도 하려는 듯 그렇게 서

로의 눈을 망막 너머의 시신경을 시신경을 타고 올라

가 전두엽 어딘가에서 터지고 있을 스파크를 계속 들여

다보았다 이윽고 두 남녀의 입이 열렸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낮은 목소리가 화음을 내며 울려 퍼

졌다 ldquo몽마르뜨가 좋겠어rdquo 권오권

끔찍했던 면접과 기분 나쁜 불가리놈의 얼굴이 잊힐 정

도로 음식의 맛은 정말 좋았다 고작 음식 때문에 기분

이 나아지는 내 자신에게 정말 어이가 없었지만 어쨌

든 맛은 좋았다 된장국으로 숟가락을 옮기며 슬쩍 앞

의 녀석 얼굴을 쳐다보았을 때 그 녀석도 나를 쳐다보

고 있었다 김희연

3년 전의 얼굴과 꽤 변해있었다 그 당시 철없는 어린

애 같은 얼굴이었는데 지금은 사회인이 되려고 꾸며댄

듯한 모습 물론 3년 전보다 더 나아졌다거나 잘생겨진

것은 아니다 전보다 훨씬 평범한 얼굴이다 ()

그런 그는 어째서 날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어째서 날

기억하고 다가와서 말을 걸고 함께 식사까지 하려 하

는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이 텅 빈 머릿속을 메

운다 엄청나게 망쳐 버린 하루지만 이상하리만큼 멀

쩡한 내가 낯설다 김하얀

그러다 내가 집에 돌아가는 길 문득 미니스톱에 담배

를 사러 들렀다가 ldquo여기 국산담배밖에 없는helliprdquo 음hellip

없단다 가뜩이나 기분도 꿀꿀한데 없다니 빵만 사서

나왔다

빵을 사서 가는 길에 낯익은 얼굴에 걸음을 멈추었다

ldquo너 혼자 빵 먹냐 나도 같이 먹자rdquo 불가리 그놈이었

다 ldquo혹시 너 나 따라온 거야rdquo 기가 막혔다 백가은

어쩐지 불가리 향수 냄새가 난다 했다 ldquo왜 따라왔어rdquo

그랬더니 불가리 그놈이 하는 말

ldquo난 내 집 가는 건데rdquo 믿을 수 없다 수상쩍다 그놈은

나를 앞질러 가더니 우리 집 주인 아줌마네 집으로 들

어가 버렸다 아 저 놈이 집주인 아줌마 아들놈인가

월세 밀렸는데 망할

망할 이상한 하루였다 잊자 오늘 일은 전부 다 잊어

버려야지 방으로 들어오기 직전에 산 맥주 한 캔의 뚜

껑을 따고 들이킨다 캬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가는 듯

시원하다 씻고 자리에 눕는 순간 면접 결과가 나올 때

까지 무엇을 하고 있어야 할지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TO BE CONTINUEDhellip

은 익명 표시입니다

13

무심히 다음 역에서 내렸다 아무런 동요 없이 발걸음

을 옮기는 나를 보고는 그도 무안한지 이내 제자리로

돌아가는 듯했다 이상한 사람 나는 계속해 나의 목적

지를 향해 걸어갔다

결국 지각했다 면접은 진행 중이었다 이게 다 불가리

때문이다 불가리 냄새가 몸에 밴 것 같다 아니 불가

리 냄새는 내 옆에서 나고 있었다 내 옆에는 불가리가

앉아 있었다 부처님의 손가락을 본 손오공의 심정이

이러했을까 강귀욱

끔찍했다 냄새도 면접도

lsquo젠장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야rsquo

담배에 불을 붙여 한 모금 깊게 빤다 lsquo후-rsquo 치미는 화

도 잡념도 불안도 이 연기처럼 쉬이 사라져버리면 좋

으련만 무의미한 푸념만이 입 안에 맴돈다

ldquo김말숙~ 여기 있었냐rdquo 그 말에 얼마나 놀랐냐면 떨

어진 담뱃불이 내 정장치마를 태우고 있는 줄도 몰랐을

정도였다 lsquo불가리 그놈을 피해 골목까지 들어왔는데

여긴 어떻게 찾은거야rsquo

ldquo밥 먹을래rdquo lsquo꺼져 꺼져 제발 꺼져helliprsquo 못 들은 척 고

개를 돌렸다

ldquo소달구지라고 괜찮은 식당 있는데 같이 가면 그 3만

원 없던 걸로 해줄게rdquo

우리는 눈이 마주쳤다 김영준

해질 무렵 서서히 불이 들어오는 보고 있어도 언제 밝

아졌는지 알 수 없는 양화대교 위 가로등처럼 우리는

천천히 그러나 깊게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새카

만 흑암의 공간 무저갱 같이 깊고 검은 눈동자 속에

숨겨 놓은 비밀을 알아내기라도 하려는 듯 그렇게 서

로의 눈을 망막 너머의 시신경을 시신경을 타고 올라

가 전두엽 어딘가에서 터지고 있을 스파크를 계속 들여

다보았다 이윽고 두 남녀의 입이 열렸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낮은 목소리가 화음을 내며 울려 퍼

졌다 ldquo몽마르뜨가 좋겠어rdquo 권오권

끔찍했던 면접과 기분 나쁜 불가리놈의 얼굴이 잊힐 정

도로 음식의 맛은 정말 좋았다 고작 음식 때문에 기분

이 나아지는 내 자신에게 정말 어이가 없었지만 어쨌

든 맛은 좋았다 된장국으로 숟가락을 옮기며 슬쩍 앞

의 녀석 얼굴을 쳐다보았을 때 그 녀석도 나를 쳐다보

고 있었다 김희연

3년 전의 얼굴과 꽤 변해있었다 그 당시 철없는 어린

애 같은 얼굴이었는데 지금은 사회인이 되려고 꾸며댄

듯한 모습 물론 3년 전보다 더 나아졌다거나 잘생겨진

것은 아니다 전보다 훨씬 평범한 얼굴이다 ()

그런 그는 어째서 날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어째서 날

기억하고 다가와서 말을 걸고 함께 식사까지 하려 하

는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이 텅 빈 머릿속을 메

운다 엄청나게 망쳐 버린 하루지만 이상하리만큼 멀

쩡한 내가 낯설다 김하얀

그러다 내가 집에 돌아가는 길 문득 미니스톱에 담배

를 사러 들렀다가 ldquo여기 국산담배밖에 없는helliprdquo 음hellip

없단다 가뜩이나 기분도 꿀꿀한데 없다니 빵만 사서

나왔다

빵을 사서 가는 길에 낯익은 얼굴에 걸음을 멈추었다

ldquo너 혼자 빵 먹냐 나도 같이 먹자rdquo 불가리 그놈이었

다 ldquo혹시 너 나 따라온 거야rdquo 기가 막혔다 백가은

어쩐지 불가리 향수 냄새가 난다 했다 ldquo왜 따라왔어rdquo

그랬더니 불가리 그놈이 하는 말

ldquo난 내 집 가는 건데rdquo 믿을 수 없다 수상쩍다 그놈은

나를 앞질러 가더니 우리 집 주인 아줌마네 집으로 들

어가 버렸다 아 저 놈이 집주인 아줌마 아들놈인가

월세 밀렸는데 망할

망할 이상한 하루였다 잊자 오늘 일은 전부 다 잊어

버려야지 방으로 들어오기 직전에 산 맥주 한 캔의 뚜

껑을 따고 들이킨다 캬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가는 듯

시원하다 씻고 자리에 눕는 순간 면접 결과가 나올 때

까지 무엇을 하고 있어야 할지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TO BE CONTINUEDhellip

은 익명 표시입니다

14

이옥란 선생님

캡틴 오 마이 캡틴(captain oh my captain)선생님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

편집자반 학우들은 늘 이분의 얼굴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며

끝마친다 몇 번의 마주침은 덤이다 그분은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도 가깝지만은 않았던 편집자반의 담임 교수

이옥란 선생님 자신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우리를 위한

이야기를 풀어놓으시느라 매일 종례시간이 부족하신 이옥란

선생님께 이번엔 우리가 물었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 일상을 어떻게 보내고 계신가요 선생님의

주말이 취향이 추억이 삶이 궁금하다 편집자반 학생들에게

직접 받은 질문들로 lsquo한 사람rsquo에게 궁금한 것들을 물었다

이 인터뷰를 읽은 뒤 그녀를 한층 좋아하게 되리라고

확신한다

왜 디토 커피에 자주 가시나요

커피가 제일 맛있고 값이 싸고

넓은 창으로 햇빛이 많이 들어와

그리고 주인장들이 공간은 물론이고

손님들과도 잘 어우러지는 것 같아

옥란 선생님께 스카프란

어느 날 발견한 패션 아이템 몇 년 전인가

홍대 앞 가판대에서 우연히 마 레이온 합성의

보라색 스카프를 발견한 이후인 것 같아

왜 고양이를 좋아하시나요 고양이를 키우시나요

고양이가 나를 키웠다고 할 수 있지 시골집 막내였는데

고양이가 친구가 되어주었어 (선생님이 고양이를 닮아

가시는 것 같아요 혹시 키우세요) 둘 있는데 13년쯤 되었나

최근에 읽었거나 읽고 계신 책은

이익섭 저의 『국어학개설』 『말과 사물』 『좌파는

어디에 있었는가』 『논어』 『번역어의 성립』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등 여러 권 들고 다니면서 돌려본다

(국어학개설은 읽는다기보다 공부 아닐까요) 아니야

재미있어

인생의 책을 꼽자면

김훈의 『남한산성』 표지가 핫핑크 색이야 건조하고 힘

있는 남성적인 문체의 마초라고 불리기까지 하는 작가의

책이 핑크색이라니 크기도 아마 46판에 더스트 커버(dust

cover)는 질긴 천의 느낌이고 본문은 재생지인지 무겁지

않고 두께도 딱 손에 잡히는 정도 감각까지 장악한 책이야

몇 권 사서 주변 사람들에게 돌렸어

선생님의 멘토는

이런 질문에 답하게 될 줄은 몰랐네 글쎄 그러고 보면

존경스러운 사람은 있었지 대학 때 문학 동아리 선배였어

양상현 형 (어떤 점이 제일 존경스러우셨어요) 자유롭게

사는 사람이었던 것 얼마 전에 돌아가셨어 이제 조금

실감이 나네 그분은 건축 전공에 시를 쓰고 음악을

즐기고 노는 문화를 나누고hellip 어떤 사태도 회피하지 않고

자유로웠던 사람이었지 앞으로 할 일이 더 많았을 터인데

양상현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졸업 동대학원

박사학위 2002년 대한민국건축대전

초대작가 선정 순천향대 건축학과

교수 재직 민족건축인협의회

의장 설계 작품으로는 lsquo장암리

주택rsquo lsquo녹촌리 조각가의 집rsquo 등

대표 저서『거꾸로 읽는 도시

뒤집어 보는 건축』 2015년

8월 14일 별세

졸업 후 편집자로 일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우리 때는 노동운동이나 농민운동을

했던 대학생이 사회과학 출판사로

진출하는 경우가 많았고 내 친구도 졸업을 해서

출판사에 있었어 그 녀석이 나를 사무실로

초대했는데 반지하도 아니고 그냥 지하였던 것

같아 ldquo옥란이 이리와 봐 이게 뭔지 아니 바로

매킨토시라는 거야 이게 얼마짜린지 아니rdquo

매킨토시 컬러 클래식(Macintosh Color Classic)

웬만한 공책보다 좀 클까 본체가 화면에 같이

붙어 있는 하드웨어를 가진 컴퓨터였지 친구 말로는

300~400만 원 한다고 했어 20년 전이니 당시로는

큰돈이지 교정지를 보여주더니 마치 lsquo음 너는 아직 이런 거

모르지rsquo라고 하는 듯이 ldquo잠깐만 언니가 뭐 좀 할 테니까

잠깐 기다려봐 하hellip 이거 띄어쓰기 어떻게 해야 하려나 이게

전문용어라 통일을 해줘야 하는데helliprdquo 하던 잘난 척이 기억이

나네 그렇게 출판사를 접했지 문학 동아리를 하느라 알게

된 선생님들 선배님들도 여럿 출판사에들 계셨어

편집자로 일하셨을 때 어떤 분야를

편집하셨나요

하다 보니 주로 예술 서양 미술 분야였고

출판사는 학고재 예경 마로니에북스까지

그런 기회가 나한테 왔고 재미있었어

전공이 그쪽이 아니었기 때문에 공부를

해야 했지

지난 서울출판예비학교생활 중 특별히

기억나는 사람이나 사건이 있다면

8기 졸업식 날 남학생 셋이 ldquo저는 출판학교에

와서 모든 것을 얻었습니다rdquo 그러면서 흑흑 우는 거야

누군지 얘기하면 창피하겠지 남학생들이 울어서 애들이

알고싶어 편집자반

15

완전 눈물 바다였잖아 (우리 반 오빠들이 운다는 건 상상할

수 없네요) 다음 해에는 애들이 완전 유머 코드여서 웃다

끝났지

출판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된 계기나 동기는

무엇인가요

나는 8기부터 시작했는데 7기 담임이던 김장환 씨가 나를

불렀어 공동 담임을 해달라고 lsquo그러지 뭐rsquo 이렇게 시작했지

직장은 2008년도까지 다녔고 프리랜서로 활동하면서

여기저기서 강의를 하고 있었어 한겨레 문화센터에도

23년쯤 있었지 (편집자보다 이렇게 선생님으로 있는 게 더

즐거우세요) 지금은 진짜 만들고 싶은 책 함께 작업해보고

싶은 저자 그런 게 아닌 한 직업으로 신간을 꾸준히 내는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당신들은 눈이 반짝반짝해서 업계에 들어와야겠다고

준비해서 오잖아 그 친구들이 1년차 3년차 되는 것을

지켜보고 있으려니까 내가 그 나이쯤 사회생활을

시작해 고민했던 지점이 보이는 거지 그 때

이걸 알았더라면 하는 안타까움이 있어서

여러분들이 애틋해지지

요즘 최대의 관심사는 무엇인가요

저녁에 후배들에게 가르칠 강의를 하다

보니 국어 공부의 필요성을 여실히 느끼고

있어 출판 동네에서 20년 넘게 일한 사람이

공부해온 것을 한 번 정리해서 후배들한테 줄 필요도

있겠구나 싶고 (뭔가 일 얘기가 아닐 줄 알았는데요

하하)

은퇴 후에 무엇을 하고 싶으신가요

오늘은 말이 절로 나오는 걸 하하 마당 있는 시골집 텃밭을

일구며 역사에 길이 남을 인간과 세상을 통찰하는 대작

소설을 발표하겠다 (와)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이 되고 싶으신가요

다시 태어나고 싶지가 않아hellip(웃음) 지구에서는 내

대에서 멸종하기로 했다

저희들에게 속 시원하게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자신 있게 해라

생각해보면 다들 자기가 못났어 키도 좀 더 컸으면

좋겠고 외모도 마음에 안 들고 내가 저 때 저렇게

했으면 지금 달라졌을까 부럽기도 하고

그런데 사실 부질없는 거거든 세상 사는

힘이 실력에만 있는 게 아니고 태도의 문제가 더

클 때가 많아 내 것이 아닌 것에 목매고 있을

필요가 없어 신입사원으로 전혀 모르는 곳에

뚝 떨어졌을 때 저들의 세계 속에 혼자 쏙

들어간 기분이니까 일단은 주눅이 들지

하지만 거기서 살아가야 하지 않겠어

둘러보면서 아 저기가 화장실이구나 사람들은

이런 걸 이렇게 하는구나 파악하고 나면 좀

수월해지잖아

마지막으로 대망의 이상형 월드컵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정우 주원 김수현 유아인 이렇게

4강전으로 시작하겠습니다

(하정우와 주원 중에서는 누가 더 좋으세요) 하정우지

주원이 최근에 좋아지긴 했는데 아직도 하정우를 따라올 수

없어

(그럼 김수현유아인 중에서는요) 유아인이지

(너무 확고하셔요 드라마 lt밀회gt 보셨나요) 집에선 케이블

방송도 안 나오고 관심 갖게 되었을 땐 너무 유행이라

안보고 말았지 대신 영화 lt완득이gt는 봤다

(이제 결승인데요 마지막으로 하정우와 유아인은요)

아인이는hellip 나한테 좀 과분한 것 같아(웃음) 하정우가 삐질

것 같은데 그래서 둘 다 잃는 거야hellip

편집자반 11기 김수진 이상화

lt베테랑gt의 악랄한 재벌 2세유아인

lt프로듀사gt의 어리버리 신입PD

김수현

lt용팔이gt의 천재 외과의사

주원

lt 암 살 gt 의 순 정 마초

하와이 피스톨하정우

하정우

16

한대웅 선생님

『동백꽃』의 주인공 같은 그 남자착하디착한 순하디순한 한대웅 선생님의 속마음

좀처럼 화내시는 일도 없고 허허 웃기만 하시고hellip 하지 못한

말들을 땀으로 발산하듯 여름이면 온몸이 열정으로 흠뻑

젖으시는 분 세상 어디에도 없을 착한 남자 마케터반의

한대웅 선생님이다 그에게 던진 몇 가지 질문에 돌아온 것은

가장으로서의 고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 아직도 앳된

소년 같은 순수함이 묻어나는 답변들이었다 이제 그를 좀 더

깊게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평소에 칼라(collar) 티셔츠를 즐겨 입으시던데

좋아하시는 옷인가요

좋아한다기보다는 제 딴에는 편하게 입을 수 있는 듯해서

즐겨 입고 있습니다 또 아내가 이런 종류의 옷을 많이

사주기도 하고요

선생님께 lsquo출판rsquo이란 무엇인가요

출판은 lsquo꿈을 이루는 판도라의 상자rsquo lsquo내가 가진 능력에 가장

맞는 일rsquo입니다

출판을 업으로 삼지

않으셨다면 어떤 일을

선택하셨을까요

모르겠네요 아마도 운명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요 다만 다음과

같은 3가지 생각은 해보았습니다

첫째 고등학교 시절 성적이 조금

더 좋았다면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해서

지금쯤이면 텔레비전이나 영화에 나오는 큰 전투함의

함장이 되지 않았을까요

둘째 대학교에 입학하지 못했다면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로 이민을 가서 장사를 하거나 농부로 농장을

운영하면서 그곳 사람으로 국적을 바꾸고 살고 있지

않을까요 고등학교 3학년 때 대학교 입학 시험에

떨어지면 다른 나라로 가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다는

마음의 준비를 했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 모 일간지에 실린

해외에서 성공적인 삶을 사는 한국 사람들에 관한 기사를

꼼꼼하게 읽었었거든요

셋째 대학교 3학년이나 4학년 때 신춘문예까지는 아니라도

대학교 교내 문학상 정도를 받았다면 아마도 그 결과에

탄력을 받아 시나리오 작가나 연극 연출가의 길로 가려고

하지 않았을까요

ID와 블로그에 lsquo봄rsquo이라는 단어가 들어있는데 봄을

좋아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그 ID를 만들 무렵 저의 미래는 꽤나 불확실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바꿔 말하면 어떻게

돈을 벌어야 하고 어떻게 자아 성취를

해야 하는지가 불확실하고

힘들었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lsquo봄rsquo이라는

단어를 좋아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누구나

알다시피 봄은 겨우내

얼어 있던 것들이

새롭게 싹을 틔우고

새롭게 기지개를 펴는

계절이죠 물론 봄

자체가 주는 느낌도

좋고요 그래서 lsquo봄rsquo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던 것

같습니다

블로그는 서울출판예비학교에서

일을 시작한 후 만들었습니다

블로그에 lsquo봄바람rsquo이라는 의미를 부여한

것은 ID를 만들던 때의 생각이 이어진 것이겠지요 요즘에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이 많이 사라진 것 같습니다 만약

앞으로 블로그나 ID를 만든다면 아마도 lsquo여름rsquo 혹은 lsquo풍성함rsquo

아니면 lsquo내가 원하는 세상을 상징하는 어떤 것rsquo을 이름으로

사용할 것 같습니다

편집자로 첫 시작을 하셨는데 나중에 출판 마케터로

일하게 된 동기를 알고 싶어요

시장 상황을 분석하고 이에 맞게 마케팅 계획을 세우고

사람이나 집단을 만나고 힘을 합쳐 뭔가 새로운 결과를

만들어 내는 일이 재미있었습니다

은퇴 후에 꿈꾸시는 삶이 있으신가요

아직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20대와 30대

초반에 꿈꾸던 것들을 lsquo은퇴 후에 여유가 생긴다면 이것들을

해볼까rsquo라고 간혹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현재겠죠 출판에서 뭔가를 이루려고 열심히 계획하고

실행하다 보면 은퇴 후의 삶도 더 풍요로워지지 않을까요

알고싶어 마케터반

17

일하실 때 다뤘던 책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무엇인가요

입사 초기 편집을 하거나 시장조사를 하고 제가 출간 여부에

대한 판단을 내렸던 책들이 기억납니다 『펠레』 자서전은

제가 편집자로 있을 때 출간했던 책인데 주요 일간지의

서평란 메인을 장식했던 책입니다 출간 시점을 맞추기 위해

촉박한 기간 동안 밤새가며 책을 만들었습니다 출간 시점에

대한 판단이 정확히 맞았고 그 결과 기대 이상으로 많은

서평을 받았던 책입니다

서울예비출판학교 선생님으로 오신 계기를

알고 싶어요

전에 다니던 출판사를 그만둔 후

개인적으로 뭔가를 해보려고 고민

중이었습니다 그러나 능력이

부족하다 보니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았죠 그러던 중에

출판학교에서 일해 볼 것을

제안 받았고 저도 출판학교

학생들처럼 면접을 보고 이

학교에 오게 되었습니다

일을 하게 되었을 때 매우

즐거웠습니다

다시 출판사 마케터로 돌아갈

생각이 있으신가요

아니오 이유는 2가지인데 첫째는 제 나이가

48세입니다 다른 업종도 그렇지만 출판 산업에서도

48살에 마케터로 직장인의 생활을 이어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죠 정말 현실적인 고민이죠 게다가 출판학교에서

여러분과 소통하며 제 지식을 전수하는 일이 재미있습니다

물론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언젠가 저만의 꿈을

찾아갈 수 있겠죠

평소 몇 권의 책을 읽으시나요 최근 읽은 책 중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요

예전에 많이 읽을 때는 1주일에 2권 정도 읽었습니다

황석영의 『장길산』과 홍명희의 『임꺽정』 이문열의

『삼국지』를 읽을 때 짬짬이 쉬는 시간을 비롯해 지하철에서

보내는 시간까지 거의 모든 시간을 책을 읽으며 보냈습니다

요즘에는 1달에 1~2권 정도 읽는 것 같네요 최근 읽은

책 중에 기억에 남는 책은 『내 아이와 어떻게 대화할

것인가』(율리아 기펜레이테르 저 써네스트 2006)와 『내

아이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율리아 기펜레이테르

저 써네스트 2009)입니다 제목만으로도 왜 이 책을

추천하는지 금방 눈치 챌 수 있을 것입니다 아이가 둘

있는데 첫째는 15살 딸이고 둘째는 10살 아들입니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lsquo어떻게 하면 아이와 싸우지 않고

윽박지르지 않고 아이의 자존감을 높여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성실하고 삶의 열정과 꿈이 넘쳐나는 아이로

키울까rsquo 같은 고민을 항상 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단비처럼 다가왔습니다 위의 2권의 책을 읽고 몇

가지 중요한 것들을 배웠습니다 아이와 어떻게 소통하고

어떻게 대화해야 하는지 아이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등등 이전에 『부모와 아이 사이』(하임 G 기너트

등 저 양철북 2003)를 읽고 아이를 이해하는 법에 대해

큰 인상을 받았는데 이 책도 그 연장선에서 저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아들과 딸을 좀 더 이해하게 되고 그

결과 아이들에게 화를 내거나(저도 나약한 인간인데 화가

날 때가 심심치 않게 있거든요) 아이들의 긍정적인 싹을

본의 아니게 꺾어 버리는 경우가 줄었다고 할까요 게다가

이 책은 lsquo부모와 아이 사이rsquo만이 아니라 lsquo친구와 친구 사이rsquo

lsquo회사 내부 구성원 사이rsquo에서 소통하는 데도 많은 영감을

제공합니다 출판학교 학생들과 소통할 때도 이해의 폭을

넓혀주고 긍정적인 소통을 하는 방법을 제공해 줍니다

이제 수료를 앞둔 마케터반 학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으시다면

개인별로 처한 처지와 조건에 따라 다르겠지만 다음과 같은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 연인을 사랑하듯 출판에 대해서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보세

- 이 길이 나에게 최선의 길인가 생각해 보세요

- 목표를 세우고 지금부터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한 후 그것을 어떻게 이루어 나갈 것인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보세요

저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스스로의 내면을 단단하게 할 중요한

질문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앞으로도 끊임없이

새로운 답을 찾아나갈 질문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케터반 11기 이장열 이창환

18

선생님은 주말에 뭐하세요

무조건 가족과 함께hellip

만약 편집 디자인을 안 하셨다면 무슨 일을 하고

계실까 궁금해요

어찌 됐든 개인 사업자로 살았을 듯 윗사람 비위 맞추는

것을 너무 못하므로hellip

선생님 주량이 어떻게 되세요 주사가 있으세요

몸 상태 좋고 안주 많이 먹으면 1병(클래식으로)

좋은 출판 디자인을 생각한다

심우진middot안광욱 선생님

lsquo멋rsquo이라는 것이 폭발한다뼛속까지 디자이너스러운 심우진 선생님

멀리서도 눈에 띄는 큰 키에 멋들어진 베레모 디자인반의

심우진 선생님 되시겠다 서울출판예비학교에서 lsquo멋rsquo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가끔은 조금 키 큰 학생처럼 학생들

속에 잘 어우러지는 사람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모습은

여기까지다 그를 조금 더 알고 싶다 지금까지의 그를

만들어왔을 lsquo심우진의 생각들rsquo이 궁금했다

선생님은 무엇을 드시고 그리 멋지시나요

학생들의 사랑 밥 김치

일본 유학길에 오르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lsquo동아시아rsquo lsquo근대rsquo가 당시 나의 화두였으므로 그리고

스기우라 고헤이 선생을 뵈러

첫 직장을 다녔을때 일의 강도()나 다니는 동안

마음은 또 어떠셨는지

출판 쪽 첫 직장은 lsquo정디자인rsquo인데 lsquo나는 왜 이렇게 디자인을

못할까rsquo 답답해했던 기억이 있어요 그러나 매우 즐거웠고

술도 자주 마셨죠 아직도 당시의 OB들과 가깝게 지내요

lsquo둥지rsquo 같은 곳이죠

선생님께서 생각하는 완벽한 판면이란

디자이너의 삶의 방식과 콘텐츠의 삶의 방식이 녹아든 판면

선생님의 피로회복 방법은

알고싶어 디자인반

19

디자인반의 히어로좋은 출판 디자인을 생각한다 안광욱 선생님

여자 화장실 앞에 있어 인파로 북적대는 디자인반 교실을

학생들과 함께 굳건히 지켜온 분 디자인반 학생들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애정공세를 아끼지 않는 분 안광욱

선생님에게 물어본 4가지

디자이너로서 첫 직장을 다닐 때의 마음이

어떠셨나요

잘하고 싶었는데 못해서 힘들었지 사수에게 하루 서너

시간씩 야단맞으면서 했다오 매일 2호선 양화대교에서 뛰어

내리고 싶었는데hellip 이 부분은 내일 수업 때 얘기해줄게^^

선생님께서 생각하는 좋은 출판 디자인이란

세상을 향한 사랑과 희망이 듬뿍 담긴 디자인

출판 디자인을 안 했다면 지금 무슨 일을 하고

계실까요

모르겠네 그냥 선녀 옷 훔치는 나무꾼이 되어 있을 듯^^

어떤 주사가

있으신지 궁금해요

말이 조금 더 많아지고 장소 불문 쿨쿨 자 특별한 주사는

없는 듯

디자인반 11기 이소현 백가은 사공예원

디자

인 사

공예

20

편집자반 김영준 학우가 그린

『이 외로운 사람들아』 일러스트

기억에콕

수업 후기

ldquo우리에게는 lsquo일탈rsquo이 필요합니다rdquo

잠깐 딴 짓을 하는 사이에 귓가에 들려온

한 문장이 나를 사로잡았다 배는 부르고

따 사 로 운 햇 살 에 잠 이 쏟 아 지 는 시 간

오후 1시 30분 시간을 칼같이 맞춰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선 그는 딱 봐도 지루하고

고리타분해 보이는 첫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순간 눈으로 들어온 이미지는 뇌로 흘러갔고

뇌는 망설임 없는 확신으로 귀에 명령을

전달했다 그렇게 귀는 이미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내 들려올 그렇고 그런 뻔한

이야기에 대하여

눈의 판단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의 한마디

한마디는 파격이었다 아니 어쩌면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였지만 누구도 자신 있게

내던지지 못하는 말들을 서슴지 않고 내뱉는 그

거침없음에 신선함을 느낀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의 관심을 돌려놓았던 lsquo일탈rsquo에 대한 그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lsquo일탈을 하라rsquo는 말이

lsquo제멋대로 하라rsquo는 의미가 아니라 어떤 규칙을

벗어나는 행위를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다르게

생각하는 방식을 몸으로 익히게 된다는 것

새로운 것을 생각해내는 창의성이라는 힘은

당연히 새로운 경험에서 나온다는 것이었다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니 강의를 듣던

친구들의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때 보고 들었던 그의 말과 행동이 우리에게는

딱 딱 한 강 의 실 에 서 느 끼 는 새 로 운 경 험

lsquo일탈rsquo이었다

그 와 의 만 남 은 계 속 이 어 졌 다 이 곳

서 울 출 판 예 비 학 교 에 입 학 한 이 후 로 는 좀

더 완 벽 한 일 주 일 단 위 로 시 간 이 흐 르 기

시작했는데 매주 쌓여가는 새로운 배움 뒤에는

수많은 물음이 불쑥불쑥 솟아났고 그는 마치

예상을 했다는 듯이 일주일에 한 번씩 나타나

우리의 설익은 궁금증을 해소해주고 떠나갔다

첫 만남에서는 책이라는 대상과 책을 대하는

편집자의 자세에 대해 이야기하며 큰 그림을

그려주었고 다음엔 저자와의 관계 맺기 그

다음엔 스스로 만들어 가야할 편집자의 자기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담백하게 들려주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네 번째 만남이었다

누구도 쉽게 이야기하기 어려운 완벽하게

솔직해지기는 더더욱 어려운 자신의 좌절과

실패를 그는 담담하고 진솔하게 소개해주었다

모든 성공에는 대개 7할의 실패가 전제되어

있기 마련인데 성공에 이르기까지 거치는

우 리 가 lsquo실패rsquo라고 명 명하는 것들이 사실

진짜 실패가 아니라 성공의 다른 이름이라는

그의 말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성공도 실패도

어 느 한 지 점 에 서 내 리 는 판 단 인 것 이 고

결 국 성 장 하 고 성 숙 한 다 는 것 은 성 공 과

실패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lsquo차이rsquo를 얼마만큼

발견하느냐 하는 것에서 결정된다는 그의 말이

가슴을 뜨겁게 했다 비로소 lsquo편집자rsquo로서가

아닌 한 lsquo사람rsquo으로서의 그가 보이기 시작했다

담담하게 말을 하고 있지만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아프고 쓰린 기억을 후배들에게

들 려 주 는 그 에 게 서 진 심 이 전 해 져 왔 다

사랑하는 일에 대한 함께 걸어갈 동지들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 참 고마웠다

어느덧 마지막 만남이 찾아왔다 한 권의

책을 만들면서 진행했던 편집의 과정을 예로

실 제 적 인 이 야 기 를 우 리 에 게 마 지 막 으 로

들려주었다 편집의 능력은 지식과 정보에서

나온다는 것 그것은 단숨에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 꾸준히 쌓아가야 한다는 것 그래서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의 문제라는 것을 경험을

근거로 자신 있게 말해 주었다 이미 지나온

과거의 결과 대신 앞으로 걸어갈 길에 대한

희망을 들려주어서 그게 참 고마웠다

편집자반 일탈이 주는 파격 우리가 낳을 lsquo새로운 책rsquo과 편집자선완규 선생님과의 다섯 번의 만남이 키운 생각들

21

그 가 우 리 에 게 마 지 막 으 로 이 야 기 를

들려주었던 그날 이후 석 달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났다 나는 여전히 같은 강의실에 앉아

앞서 길을 걸어간 선배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고 조금씩 가까워지고 밝아져가는 내 앞에

놓인 길에 대해 생각한다 그러다 문득 마음이

무거워지고 막막해질 때면 종종 그의 말들을

떠올려 본다 그리고 그 생각의 끝에서 마음을

의지하며 함께 이 길을 걸어갈 따뜻한 선배가

하나 있다는 위로 한 줌을 발견한다

ps 선완규 선생님 고맙습니다 보고 싶어요

편집자반 11기 성준근

마케터반 강한 수면욕 환상과 환기

판형과 종이를 예술로 편입시키려는 영업자다빈치 출판사 박성식 대표 특강 후기

9월 23일 평소보다 점심을 많이 먹었던 날이다 잠을 며칠간 못 자 피곤했다

오후 1시 30분이 살짝 지나서 다빈치 출판사 박성식 대표의 특강이 시작됐다

다빈치 대표님은 처음 뵐 때부터 남다르셨다 서울출판예비학교 입학 면접에서

여자 술 담배를 각각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보셨다 lsquo솔직함을 어필해야

하는 순간인가rsquo하는 생각에 직설적으로 답했지만 lsquo더 문학적으로 얘기할 수

있었는데rsquo라는 후회를 안고 돌아왔다

마음과 다르게 첫 번째 시간은 정신없이 잠이 쏟아졌다 눈을 감고 귀 기울였지만

턱을 괸 채 버티는 동안 50분이 지났다 대표님께 캔 커피를 하나 드리고 맞이한 두

번째 시간 그 한 시간 동안 나는 현실 옆의 어떤 이상 내지는 환상을 본 것 같다 그동안

듣던 강의들을 놓고 lsquo이상적인 관점이다rsquo 혹은 lsquo현실적이다rsquo라고 구분했던 판단의 폭

자체가 좁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성식 대표님은 내 머리에 있던 lsquo책rsquo에 대한 인식을 전복시켰다 자본주의 출판의

몰락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시작됐다는 말 출판 기본 특성인 다품종 소량 생산은 돌아올

것이며 다품종 소량 생산을 넘어 다품종 소량 lsquo고급 생산rsquo을 추구하고 싶다는 말은 나를

달뜨게 했다 주류에 반하는 사고를 가진 중년의 개성과 내공에 교실 풍경이 환기됐다

교육 수단으로 책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지만 책은 그만큼 사회적 의무와 희생을

짊어져왔다 출세와 공부 앞에서 책이 가진 기호(嗜好)성은 변두리로 내몰렸다 책을

읽어야만 제대로 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분위기는 옳지 않다 독서는 성향의 범주지 성역이

돼선 안 된다 정보와 지식의 전달은 모바일 등에 넘겨주고 종이책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공동체로 돌아와야 한다 그게 원래 자리라는 대표님의 주장이 새롭고 강렬하다

자본주의 3대 원칙인 lsquo더 빨리 더 많이 더 싸게rsquo 체계는 표준화와 규격화를 동반하며

매우 효율적이다 현재 사용하는 종이는 자본주의 원칙에 최적화돼 있다 그러나 대표님은

인쇄기계로 소화하지 못하는 질감과 전혀 다른 발색을 지닌 lsquo종이rsquo에 주목했다 그 종이로

콘텐츠 종이 판형이 완벽하게 들어맞는 예술서를 만들고 시장을 설득한다면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책 판매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전했다 종이 자체가 책의 예술성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한지(韓紙)를 예로 들면서 훌륭한 텍스트와 이미지를 한 차원 끌어올리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많은 부수를 팔아야 성공한 출판 많은 부수를 파는 것을

목표로 하는 시대는 저물고 있다 기존 유통과 판매 방식

안에 갇혀서는 불황에 매몰될 뿐이다 소량의 고급화된

책을 꿈꾸는 것과 전시회를 책과 결합하는 것도 다른 길을

물색하는 과정이다

대표님은 10년 전부터 lsquo이 원고는 내가 누구보다 잘

만들겠다rsquo lsquo이 원고는 내가 못하면 누구도 못할 것 같다rsquo라는

생각이 든 책만 출간을 진행했다고 한다

강의 중간 자신의 독특한 철학을 전달하는 것에 대해 가벼운

염려를 하셨지만 이론적이고 실용적인 분야에 몸담더라도

예술적 사고의 유연성은 필요하다고 본다 돈과 인문정신을

구분하면서 필요할 때 양쪽에서 자극 받고 차용하는 것이 마케팅의 융통성과 힘을 기르는 길일 것이다

마케터반 11기 이창환

편집자반 김영준 학우가 그린

『이 외로운 사람들아』 일러스트

박성식 대표가 기획한 lsquo오름rsquo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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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습탁은 농도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하늘

습탁은 농도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이 글은 심우진 선생님의 탁본 세미나 수업에 대한 우리들의 즐거운

기록이다 탁본은 습탁(濕拓)과 건탁(乾拓) 두 종류로 구별된다

습탁은 나타내고자 하는 물체 위에 물을 묻힌 후 종이를 그 위에

밀착시키고 먹물 묻은 솜방망이로 가볍게 두드려서 물체를 표현하는

방법이다 물체의 패인 부분을 제외하고 볼록한 부분의 모양대로

종이에 먹이 묻어 문자나 문양이 드러난다 건탁은 이름 그대로 물을

사용하지 않고 마른 상태의 먹인 고형묵(固形墨)을 사용한다 우리는

각자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사물과 자연을 이용해 탁본 작품을

만들고 서울출판예비학교 꼭대기 층에서 작품을 공유했다

디자인반 이 시간을 그대로 탁본할 수 있다면심우진 선생님의 탁본 세미나

저는 신문지를 구겨서 해봤어요

응 그런데 이건 방바닥 같은데

방바닥까지 묻어 나와 버렸네요

[학생들 하하하]

저는 일단 큰 나무 기둥을 떠봤고요

오솔길의 짚도 해보고 저희 집 바닥과

벽면도 신기해서 떠봤어요 집 벽면 중에

대리석도 있고 특이한 벽면이 많거든요

부잣집인가 보네

[학생들 깔깔깔]

승연

심우진 선생님

승연

승연

심우진 선생님

이건 파프리카인데 저희 집 개가 완성한 종이를 찢었어요

[학생들 하하하]

좀 작고 납작한 파프리카를 반으로 잘라서 습탁했어요 또

이건 철조망인데 용 비늘처럼 나와서 재밌었어요 아나콘다

같기도 하고 철조망이 날카로워서 습탁하니 종이가 자꾸

찢어져서 다시 하게 됐어요 근데 이거요hellip 남자친구

있으면 커플끼리 한 번 해보세요 한 명은 잡아주고 한 명은

습탁하고hellip 되게 로맨틱 성공적

자랑하는 거니

[학생들 깔깔깔]

수빈

수빈

심우진 선생님

혜민

정묵

처음에 나뭇잎이 세세하게 잘 나올 줄 몰랐는데 그

줄기의 질감이 잘 나왔고 버려진 타이어를 끌어서

생긴 모양으로도 습탁을 했는데 생각보다 잘 나와서

막상 찍어보면 생각과 다르다는 것을 느꼈어요

저도요 결과물이 뚜렷하게 안 나올 줄 알았는데

디테일이 잘 나타나 있었고 입체를 평면적으로

찍는 것 자체가 재밌었어요

수정

저는 빗자루를 해봤어요 너무 얇아서 안 나올

거라 생각했는데 빗자루 문양이 잘 나와서

재밌었고 머리카락도 해봤는데 머리카락은

끝 부분이 잘 나오는 편이에요 위쪽은 다

뭉쳐있는데 끝 부분은 펼칠 수 있으니까요

23

저는 결이 얇은 것들을 뜨는 것이 재밌었어요

머리카락처럼요 머리 긴 사람에게 부탁해서

눕히고 했어요 그리고 이건 얼굴인데요

처음에는 그냥 했는데 얼굴은 입체를 살리려면

스케치하듯 떠야 되요 결국 명암으로 입체감

조절을 해야 되죠 코가 너무 입체적이라 특히

힘들었어요

누구 얼굴이야

우리 언니hellip

[학생들 우와]

가은

심우진 선생님

가은

하얀

음각이 나왔을 때 너무 좋았고요하늘

습탁은 농도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소리

건 탁 보 다 는 습 탁 이 농 도 조 절 하 는 게

희 한 해 서 재 밌 었 어 요 농 도 조 절 이

관 건 이 거 든 요 먹 과 물 의 배 합 과

솜방망이가 먹물을 얼마나 흡수하는지 그

흡수량이 중요하고요

윤미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꽤 많은데 만져보면서 건탁을 뜨니까 좋았어요 전에

습탁할 때는 시멘트 벽 같은 걸 하다가 나뭇결을 하니까

살아있는 느낌이었어요 생각했던 것처럼 나와서

좋았고 솔방울이나 나뭇잎 같은 섬세한 것들은 제대로

나오지 않아서 아쉬웠어요 섬세한 것들은 습탁으로

해봐야겠어요 그래도 다양한 나무를 건탁해봐서

만족해요

소현

저는 일상적인 것들로 습탁을 해봤어요

처음에는 단순하게 오돌토돌한 느낌만

있 을 줄 알 았 는 데 색 다 른 느 낌 이 나 서

재밌었어요

탁본 세미나를 마치고 그 다음 주에 지하 강당에서 촬영하는 시간을

가졌다 촬영 후에 보정도 했다 나뭇잎의 결 무늬 타이어 자국

그리고 사람의 머리카락까지도 좋은 디자인의 재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보았고 나누었다 건탁과 습탁의 장단점을 이 수업으로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심우진 선생님의 이번 탁본 수업도 지난 활자

수업처럼 지식 습득은 물론이고 경험까지 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 시간들이 앞으로 출판 디자이너로서의 감각을 더 풍요롭게 해 주지

않을까

디자인반 11기 사공예원

하얀

음각이 나왔을 때 너무 좋았고요

습탁은 농도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솜방망이가 먹물을 얼마나 흡수하는지 그

흡수량이 중요하고요

윤미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꽤 많은데 만져보면서 건탁을 뜨니까 좋았어요 전에 꽤 많은데 만져보면서 건탁을 뜨니까 좋았어요 전에

이건 파프리카인데 저희 집 개가 완성한 종이를 찢었어요

[학생들 하하하]

좀 작고 납작한 파프리카를 반으로 잘라서 습탁했어요 또

이건 철조망인데 용 비늘처럼 나와서 재밌었어요 아나콘다

같기도 하고 철조망이 날카로워서 습탁하니 종이가 자꾸

찢어져서 다시 하게 됐어요 근데 이거요hellip 남자친구

있으면 커플끼리 한 번 해보세요 한 명은 잡아주고 한 명은

습탁하고hellip 되게 로맨틱 성공적

자랑하는 거니

[학생들 깔깔깔]

24

9시 30분 합정역 1번 출구 앞

ldquo누나rdquo 소리에 쳐다보니 반가운 공 총무의 얼굴이 보였다 정류장

앞으로 길게 늘어선 줄에 합류하여 파주로 날 데려다 줄 2200번

버스를 기다리고 있으니 반가운 얼굴들이 계속 나타났다 한 대의

버스를 보내고서야 겨우 2200번 버스에 탑승해 파주로 출발할 수

있었다

10시 15분 파주 lsquo다산교 앞rsquo 정류장 하차

4개의 정류장 총 57분이 걸린다고 알려준 N사 지도 어플의 정보와는

달리 30분 만에 파주에 도착했다 일찍 도착해 먹을 것을 찾아 헤맨

예비 마케터들은 편의점에서 주린 배를 채웠고 lsquo지혜의 숲rsquo을 살짝

염탐하며 11시까지 시간을 보냈다

11시 05분 보진재 2층

1912년 설립되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인쇄소인 보진재 관계자

분이 나와 간단히 인사 말씀을 하고 각 반의 인솔자를 소개해주셨다

마케터반의 인솔자는 서동관 과장님 디자인반 편집자반 마케터반

순으로 견학을 시작했다

11시 15분 보진재 견학 시작

제일 먼저 본 곳은 제판실이었다 필름 인쇄가 줄어들고 CTP로

대체되는 추세지만 어떤 분들은 여전히 필름 작업을 하고 계셨다

이유를 물어보니 서동관 과장님은 예전 필름이 남아 있기도 하고

출판사에 따라 필름을 고집하는 곳이 있다고 하셨다

한번에 5도 인쇄가 가능한 기계를 보는 중에 서 과장님이 말씀하셨다

ldquo한 유닛(unit)당 23억 정도 해요rdquo 그렇다면 유닛 다섯 개가

돌아가고 있으니 적어도 10억짜리 기계라고 내 눈에 보이는 건 그냥

낡고 큰 기계인데 10억이 넘는다니 놀랐다 또 과장님께서 자랑스레

말씀하신 한 가지 잉크 농도 조절을 자동으로 하는 기계가 보급된

곳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었다 원래는 사람이 눈으로 보고 수정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재판을 찍을 경우 초판과 동일한 색상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있지만 보진재는 기계가 자동으로 조정해주어 수월한

작업을 할 수 있다고 하셨다

매염실도 보고 제본실도 구경했다 인쇄된 종이를 접지하고 제본을

마친 후 마지막으로 제단을 하면 책이 완성되어 나왔다 그 모든

과정을 보고 난 후 서 과장님이 건넨 완성된 책의 무게는 보통의

그것보다 조금 더 무겁게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윤전실이었다 견학 당일은 작업이 없어서

비어있던 윤전실이지만 윤전실이 주는 무게감은 컸다 윤전실은

롤(roll)로 인쇄하는 곳으로 8개의 롤이 양면 인쇄를 하고 건조와

접지까지 한 번에 가능한 기계도 있었다 대량생산을 위한 곳으로

주로 교과서나 EBS 학습지를 인쇄한다고 하셨다

12시 20분 견학 끝

1시간을 조금 넘긴 견학을 끝내고 밖으로 나오니 코가 따갑고 목이

말랐다 기계가 먼지를 빨아들여준다고는 하지만 수없이 많은

종이가 존재하는 공간에서의 종이 냄새는 강력했던 것이다 책이

제작되는 과정은 실제로 보니 다양하고 복잡했다 자동화가 많이

되어있지만 사람의 손길 없이는 절대 완성될 수 없는 과정들을 보며

책이 완성되기까지의 노력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lsquo책이 어떻게

만들어진다rsquo를 배우다가 lsquo책이 이렇게 만들어진다rsquo를 보니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예비 출판 마케터의

길로 들어선 후에 새로운 것을 보고 배울 수 있었는데 보진재 견학은

그 중에서도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책을 완성시키기 위한 모든 과정이

저마다의 몫을 하고 있었다 서울출판예비학교 졸업 후 출판계에

들어섰을 때 나는 과연 어떤 몫을 할 수 있을까 남은 2개월을 조금은

더 열정적으로 보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마케터반 11기 최다은

1 일일탈

학교 밖 견학 후기

피부로 와 닿는 책의 감촉 책의 냄새 책의 소리 보진재에서 책이 인쇄되는 과정을 만나다

필름과 인쇄판이 만들어지는 과정

25

우리가 이제 각자 편집자 마케터 디자이너가 되어 책 만드는 일을

시작하면 우리의 책은 이곳에서부터 그 lsquo탄생rsquo을 시작할 것이다 책의

근간이 되는 종이가 만들어지는 곳 한솔제지 공장에 다녀왔다 학기

초에 책을 파는 서점을 견학한 뒤 그 다음으로 출판사 종이에 활자를

찍어내는 인쇄소 그리고 마지막으로 lsquo종이rsquo를 만드는 제지 공장을

찾은 것이다 책이 만들어지는 순서대로라면 우리가 다녀온 순서를

거꾸로 해서 다녀왔어야 했지만 우리는 반대로 실제 과정을 거슬러

올라간 것이다 이렇게 거슬러 올라가는 과정에서 오히려 편집자란

직업에 겸허해질 수 있었다 가끔은 편집자가 책을 만드는 모든

과정 위에 군림하는 것 같이 느껴지지만 책의 물성을 만들어내는

거대한 기계 앞에서 우린 한없이 작아지기도 한다 lsquo한 권의 책rsquo이

만들어지려면 이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함을 이해해야 했다 이렇게도

복잡하고 힘겹게 만들어지는 책의 가치를 한 번 더 깊이 생각하게 된

계기였다 책이라는 건 의미가 담긴 조각들의 집합체이자 종이를

보기 좋게 물성화한 것 이론적으로야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눈으로 보고 느끼는 것과는 천지차이다

날씨마저 좋았던 9월 11일 평소보다 한 시간이나 이른 8시

30분에 세 반 학우들은 눈도 제대로 못 뜬 채 집합했다 대전까지

간다니 마치 여행가는 것 같은 살짝 들뜬 기분까지 안고 아침도 못

챙겨먹고 나왔을 우리를 생각해서 빵과 우유까지 준비한 한솔제지

측의 세심한 배려에 감동했다 배도 채우고 부족한 잠도 보충해가며

2시간 넘게 달려 신탄진 공장에 도착했다 도착하자 보이는 우리를

환영하는 현수막에 2차로 감동했다 우리를 위해 정말 많은 준비를

하셨구나 느낀 순간이었다

신탄진 공장 강당에 들어가서 간단한 공장 소개를 먼저 들었다

그리고 뒤이어 종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경청했다 수업 때보다

학생들의 집중력이 더 높아 보였던 건 내 착각이었길 종이는

1퍼센트의 펄프와 99퍼센트의 물로 이루어진단다 그래서 전반적인

공 정 의 대 부 분 은 물 을 처 리 하 기 위 한 과 정 이 나 다 름 없 었 다

생각보다 종이는 순수한 물질이라고 생각했다 종이(paper)의

어원은 이집트의 파피루스(papyrus)에서 왔다고 한다 중국의

lsquo채륜(蔡倫)rsquo이라는 사람이 제일 먼저 발명했고 고려시대에

일본으로 넘어간다 일본에 가장 마지막으로 넘어갔지만 종이의

기술력은 현재 일본이 가장 좋다 원료rarr초지rarr코팅 등의 공정을 거쳐

종이가 완성되는데 마지막 코팅 공정을 여자의 화장에 비유한 것

역시 기억에 남는다 코팅이 그렇게나 대단한 과정이라니

공장 안으로 들어가서는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시끄러워서 설명을

제대로 듣진 못했지만 앞서 들었던 설명을 떠올리며 기계들을

관찰했다 인쇄소에서 본 광경들도 거대하고 박력 있었지만 여긴

그보다 더 거친 느낌이었다 책은 서점에 놓여있을 때는 그렇게

얌전하건만 태어날 땐 이렇게 시끄럽다 또한 막 태어난 종이는

거대하고 또 거대했다 다들 마치 거대한 두루마리 휴지 같다고들

했다

견학을 다 마치고 다시 대전 공장으로 이동해 다 같이 점심 식사를

했다 기대 이상으로 맛있는 밥에 또 감동 더 힘내서 견학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아쉽게도 대전 공장 안에는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라 그 힘()을 발휘하진 못했다 대전 공장은 신탄진 공장과

다르게 책에 쓰이는 것이 아닌 제품 포장용 박스 종이컵 등 다른

용도에 쓰이는 종이를 만드는 곳이었다 그 과정의 차이를 눈으로

비교하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마지막으로 좋은 선물까지 손에

받아들고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다시 서울로 향했다

언제나 시작은 중요하다 각자의 일에 빠져들게 되면 점점 잊게 될

그 시작을 눈에 담고 오래 기억하기 위해 다녀왔다고 생각한다 요즘

초심을 잃었다는 생각이 종종 드는데 책에게도 초심이 있다면 바로 이

곳일까 시작의 의미에 대해 다시 곱씹어보았다

편집자반 11기 박혜원

우리의 글과 그림이 펼쳐질 종이의 탄생 한솔제지 신탄진 공장 견학

거대한 롤(상) 한솔제지 공장 앞에서 (하)

26

화양연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삶과 문학에 취하다

편집자반 한국문학 동아리 lsquo공감rsquo 그 대담의 현장

훗날 서울출판예비학교를 떠올릴 때 가장 즐거운 시간으로 기

억되는 날들은 동아리 활동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들의

화양연화(花樣年華)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 중

의 하루를 소개한다 문예창작학과를 전공한 문학소녀 김한나

학우를 필두로 창단된 편집자반 내 한국문학 동아리 lsquo공감rsquo은

모임 전에 한국작가를 한 명 정해 단편 두 편을 함께 읽고 키워

드나 질문을 스스로 뽑아 글을 써왔다 모여서 때로는 소설의

플롯이나 주제 문체에 대한 열띤 토론을 하고 때로는 작가의

외모()와 같은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며 삼천포로 빠지기도 했

다 우리끼리만 듣기엔 아쉽다 이 즐거운 대화를 모두에게 들

려주고 싶었다 이날 모임에선 김영하 작가의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단편집 속의 두 단편 lsquo엘리베이

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이하 엘리베이터)rsquo와 lsquo사진

관 살인사건(이하 사진관)rsquo에 대해 이야기했다 여기서는 lsquo엘리

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rsquo를 읽고 토의한 내용을

실었다

한나 참고로 김영하는 사람의 욕망에 대해 천착하는 작가야

그런 특성이 엘리베이터에는 안 나와 있는데 사진관에서는

잘 드러나 있어

상화 백가흠 작가에게 소설창작론 강의를 들었는데 그분이

소설의 기법을 설명하면서 알레고리랑 아이러니를 얘기했어

알레고리가 인물이나 소재를 비유적으로 설명하는 거래 예를

들어 핸드폰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다른

것에 핸드폰을 빗댐으로써 소설을 풀어가는 거

야 아이러니는 속도감 있게 이야기를 전개함으

로써 부조리나 모순을 드러내는 건데 김영하가

아이러니의 대표적인 작가래 단편인데도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내면보다는 사건이 일어나는

걸로 소설을 끌어가는 작가 우리가 지난 모임

에서 성석제를 굉장한 이야기꾼이라고 했잖아

그런데 난 김영하가 훨씬 이야기꾼스럽게 느껴

졌어 속도감 있고 lsquo이렇게 몰입을 할 수 있나rsquo

싶고 지난 모임들에서 읽었던 손보미나 편혜영

소설의 경우는 분위기나 주인공의 심정 내면에

의미를 부여해 야 했는데 김영하의 소설은 덮

자마자 아이러니가 느껴지면서 lsquo아 세상은 왜

이래rsquo 말하게 만들었어

법열 나는 엘리베이터 읽고 딱 lsquo뫼비우스의 띠rsquo가 생각났거든

뫼비우스의 띠가 안하고 겉이 구분이 안 되잖아 끝과 시작이

어딘지도 모르고 lsquo나rsquo가 겪는 상황이 현실인지 아닌지 구분이

안 되는 느낌 마지막에 lsquo나rsquo가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가 존재

하기는 했는지 혼란스러운 느낌을 받잖아 그게 앞의 환상적

인 부분이랑 맞물리면서 하나가 되는 느낌이라 뫼비우스의 띠

가 생각났어

상화 lsquo나rsquo가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구해주려고 고분군투하

다가 나중에 자기가 엘리베이터에 갇히잖아

오권 낀 남자의 발을 보면서 느꼈던 감상이 사실은 자기를 구

하고 싶었던 마음인 거지

(일동 오~ 그렇게도 볼 수 있네)

오권 무한도전의 무한상사 특집도 생각났어 뜬금없이 휴지

사용하는 길이에 대해 회의하는 장면에서 엘리베이터는 갇힌

사회 서로를 돌아보지 않는 사회를 의미하는 것 같아

한나 나는 반대로 오히려 엘리베이터를 희망적인 존재로 봤

거든 아파트도 그렇고 회사도 그렇고 각자 자신의 공간 안에

서 살다가 서로 만날 수 있는 장소는 엘리베이터 밖에 없으니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김영하 지음

문학동네 20100216

동아리 후기

27

까 lsquo나rsquo가 회사 엘리베이터 안에 여자와 같이 갇히잖아 사실

은 갇히지 않았으면 대화도 안하고 지나쳐 갔을 텐데 남자는

자기가 아침부터 버스 사고도 나고 성추행범으로 몰렸다고 얘

기하고 또 남자의 담배 피워도 되냐는 말에 여자는 담배에 대

한 불평불만을 속사포처럼 얘기하고 엘리베이터라는 공간이

아니었다면 이런 대화 자체가 없었겠지

오권 엘리베이터 타면 사람들이 하나같이 층수 바뀌는 것만

쳐다보고 있잖아

상화 요즘은 스마트폰

오권 자기 얘기를 하고 싶은 것 같아 하지만 상대의 얘기는

안 들어 lsquo너의 얘기는 관심 밖이지만 내가 불편한 것에 대한

얘기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하겠어rsquo라는 느낌

한나 그리고 우스웠던 게 볼일 보고 휴지 몇 칸 쓰는지 회의에

서 얘기하는 건hellip 사실 굉장히 사적인 얘기잖아 (일동 하하

하) 서로에 대해 다른 얘기는 일절 하지 않으면서 회의 내용은

개인적이고 사적이라니 아이러니한 거지

수경 진짜 웃기지 않았어 lsquo나rsquo가 자원 재활용 문제에 대한 중

대 보고가 있다고 계속 빨리 가야한다고 했던 게 겨우 그거야

상화 겨우 이딴 회의하려고 지금 엘리베이터에 낀 사람 놔두

고hellip 생명이 더 중요한데 지금 휴지 구하려고hellip

(일동 하하하)

한나 lsquo나rsquo가 불쌍했던 이유가 자기한테 닥친 일들은 lsquo할 수 없

지 뭐rsquo 이런 식으로 넘기는데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 걱정하고

갇힌 여자 걱정하고hellip 정작 자기 걱정은 안 해

오권 영화 lt라이터를 켜라gt 봤어 조폭들한테 얻어맞으면서

도 주인공은 무조건 자기 라이터만 찾겠다고 그러거든 이 소

설의 lsquo나rsquo와 비슷한 느낌이 들더라고 그 영화에서는 라이터가

주인공의 존재를 투영하는 소재거든 lsquo나rsquo는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구해야만 자기가 산다는 느낌을 받은 거라 해석하면

너무 나간 건가

법열 아니요 형이 아까 지적해준 게 와 닿았어요 그 고군분

투가 결국 자기를 구하려는 노력이라는 지적이요

상화 그나마 lsquo나rsquo가 이 소설에서 제일 인간적이지

수경 어딘가 찌질한 느낌도 들어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와

lsquo내rsquo가 동류라고 자각하고 연민을 갖는 느낌이었거든 lsquo나rsquo가

인간적이고 윤리적이라는 생각은 나는 글쎄hellip 더 적극적으

로 할 수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 자기 사이클에서 벗어나

지 않는 한도 내에서 걱정만 하잖아 소설 안에서 비극과 희

극이 번갈아 가며 나타나는데 트럭과 버스가 충돌했을 때

lsquo나rsquo는 lsquo버스 카드 일로 충돌하지 않게 되어 적이 기뻤다rsquo고

생각해 버스 운전사는 트럭 백미러에 가슴이 받혀서 죽었는

지도 모르는데 lsquo다행히 나는 허리가 좀 뻐근한 것만 빼면 별

다른 상처가 없는 듯했다rsquo 이런 생각들을 하는 게 좀 섬뜩했

민희 사람은 다 이중성을 가지고 있잖아 나를 보는 듯했어

만약 학교 가는 길에 엘리베이터에 낀 사람을 봤다면 그렇

지만 나도 얼마나 바빠 몇 분 늦으면 지각 체크 당하고 출석

80퍼센트를 못 채울 수도(일동 웃음) 있는 상황이라면 내

가 그 남자를 구할 수 있을까 일단 지나치고 119에 전화하려

고 했으나 핸드폰이 없는 상황에 나도 처할 수 있는 거잖아 나

만 생각하는 잔인한 면도 내 안에 있고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

도 내 안에 있어 이런 찌질한 모습도 나고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정의롭게 구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상화 기준이 다른 것 같아 lsquo나rsquo 정도면 착하다고 생각했거든

수경 주변 사람들이 약간 마네킹 같지 않아 주인공 주변에

장치되어있던 다른 사람들이 너무 비인간적이기 때문에 lsquo나rsquo

가 돋보이는 거지 lsquo나rsquo는 지극히 평범한 우리 모습 같아 내가

어떻게 할 생각은 없고 궁금하기만 한 거야

민희 그 궁금함과 찜찜함도 죄책감이라 생각돼 아 내가 어떻

게 해줬어야 했나

한나 책임 회피일까

상화 그래서 나는 키워드 뽑은 것 중 하나가 119야 구해주고

싶으면 직접 내 손으로 잡아 빼주던가 엘리베이터를 들어 올

릴 사람을 모아야 했는데 신고 생각만 하잖아 이미 이건 누

가 대신 해결해줘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그나마 우리

사회에서 사고를 수습해주는 건 119밖에 없고 조선시대에는

119같은 거 없고 마을 사람들이 모여 구해줬을 텐데 어쩔 수

28

없는 현대인의 단상이긴 해 현대가 분업사회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들 바쁘고 삶이 개인화 파편화되어 있으니까 119 같

은 집단이 필요한 거지 그래서 난 119를 신의 영역이라고 썼

어 lsquo나rsquo는 119를 거의 신적인 존재처럼 생각하잖아 부르면 모

든 게 해결될 것처럼 핸드폰 빌리고 공중전화 찾고 그런데 막

상 교통사고 현장에서 119 대원에게 면대 면으로 얘기를 했더

니 그들은 무슨 그따위 장난을 하냐고 말해 구조도 실은 신이

아니라 사람이 하는 일이고 그 사람이 관심이 없으면 묻히는

거지

오권 전화를 거는 것과 직접 구해주는 것의 차이가 큰 것 같아

자기가 구해주는 건 적극적인 행동이고 119에 전화하는 건 스

스로 최소한 양심적이긴 하다고 여기는 행동

수경 그런데 엘리베이터에 낀 사람을 아무 것도 모르는 일반

인이 어떻게 했다가는 더 위험해질 수도 있잖아

오권 맞아 사회가 시스템화하고 고도화될수록 각자의 업무가

분업화되었고 전문분야가 생겨났으니까 옛날 같았으면 애 낳

으면 그냥 동네 아주머니가 애 받고 어미가 죽으면 젖동냥 다

녔는데hellip 이젠 사고가 나면 생각이 119에 먼저 미치는 시대가

된 거지

수경 그래서 어딘가에 널브러져 다친 인간이 아니라 엘리베이

터라는 공간에 낀 남자를 설정한 것 아닐까 엘리베이터는 현

대화의 상징이잖아

한나 lsquo나rsquo도 어쩔 수 없는 게 출근 시간에 쫓겨서 시계를 계속

봐 먹고 사는 일이니까

오권 출근했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다시 집으로 돌아가

낀 사람을 구해주면 굉장히 희망찬 소설로 바뀔 텐데hellip (일동

웃음)

수경 이 소설로 현대 사회의 폐단은 다 얘기할 수 있겠는데

상화 김영하는 천재인 것 같다

누군가 그리고 잘생겼잖아

누군가 잘생긴 거야

누군가 지적인 분위기가 있어서 좋아 (한참 얘기)

한나 또 인상 깊었던 게 구두에 집착하는 거 lsquo나는 날렵한 치

타처럼hellip 구두를 가지고 엘리베이터에서 빠져나오는 데 성공

했다 허탈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rsquo는 구절

오권 자살한 사람들이 구두를 가지런히 벗어놓는 이미지가 무

슨 상징처럼 있잖아

한나 신발 한 쪽 없이 다녀봤어 계속 기우뚱대서 내가 걷거

나 서 있을 때 내가 잘못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여기서 lsquo나rsquo가

그랬을 거야 사실 lsquo나rsquo처럼 사는 게 정상인데 세상이 잘못된

건데

상화 이 소설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감정표현이잖아 하루 종

일 얼마나 힘들었겠어 처음으로 감정표현을 하니까 불쌍했어

오권 휴머니즘 불쌍론 또 나왔네(일동 웃음) 그럼 이제 사진

관으로 넘어가볼까hellip

편집자반 11기 이상화

2929

책씹는맛 01 냄새라는 경이 lt감각의 박물학gt 후각편을 읽고

냄새에는 언어가 없다 어휘가 부족한 우리는 말문이 막힌

채 불명료한 쾌감과 자극의 바다에서 말을 찾을 수밖에

없다1

이 말은 다이앤 애커먼의 『감각의 박물학』 제 1장 후각에

나오는 구절이다 냄새를 글로 쓰고자 하는 나의 시도가 늘

실패로 귀결되는 이유를 이 구절에서 찾았다 작가의 말처

럼 냄새에 대해 쓴다는 건 언어 밖 세계로 나갔다가 다시

언어로 되돌아오는 길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길에서 헤매

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후각이라는 감각에서 길을

잃는 것은 낭만적인 일이기도 하다 lsquo냄새의 뇌관을 건드리

면 모든 추억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기rsquo2 때문이다 냄새 하

나에 수많은 추억들이 줄줄이 기억의 회로 위로 떠오른다

예를 들면 바다 냄새 하나만 상상해도 그와 관련된 수많

은 기억들이 머릿속에 뒤섞인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바닷가와 관련된 그 모든 추억들이 기억의 영사막에서 한

편의 옴니버스 영화 형태로 내게 다가온다 난 내 기억의

관객이 되어 그 영화를 보다가 견딜 수 없는 그리움에 젖는

다 이 영화에 대한 감상문을 적으려면 나는 말문이 막힌

다 그래서 몇 글자 적다가 결국 글을 쓰기를 멈춘다 굳이

언어로 표현하자면 쓸 수 없는 그리움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1 『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옮김 작가정신 20040720

A Natural History of the Senses(1991) 17쪽

2 같은 책 18쪽

결국 lsquo언어가 존재하는 세계에서 경이는 언어의 칼날 아래

서 쉽게 해부되고 냄새는 자주 혀끝에서 맴돈다rsquo3 냄새의

숭고함 앞에서 우리는 말을 멈춘다 이처럼 냄새는 말할 수

없는 자연의 경이로움과 닮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lsquo냄새가 우리의 마음을 그토록 강하게 움직이는 것은 부분

적으로 그 이름을 부를 수 없기 때문rsquo4이라고 한다 저자는

그렇기에 사람들이 냄새를 lsquo분 냄새 비슷한 펭귄 냄새가

나는 호화로운 화장실 냄새가 나는rsquo 같은 말로 표현할 뿐

이며 냄새에 대한 이름은 주어져 있지 않다고 말한다 또

한 종류는 같아도 강약과 농도가 다른 각각의 냄새에 이름

을 붙여줄 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우린 일상적으로 냄새를

맡으면서도 그 냄새와 멀리 떨어져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명명되지 않은 것은 결국 잊히는 게 아닐까 부를

수 없음에서 오는 경외감과 숭고함이 있을지라도 냄새는

말해져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말할 수 없는 것에 자꾸

만 침묵하기만 해야 할까

감각도 모험의 영역이 될 수 있다 세계 일주만이 세상을

아는 길일까 lsquo나rsquo를 온전히 아는 것이 역설적으로 세상과

가까워지는 일인지도 모른다 나를 알기 위한 길 중 하나가

내가 가지고 있는 감각을 이해하고 그걸 언어로 표현하는

일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어쩌면 우리와 제일 가깝지만 말

하기 낯선 감각 후각을 이해하는 일이 중요한지도 모른다

냄새라는 감각 속에서 우리 모두 길을 잃고 헤매고 모험해

보자 냄새에 나름의 이름을 지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

리고 농도에 따라 냄새를 구분하는 일도 해보자 냄새라는

경이는 우리를 더 이상 침묵으로 이끌지 않을 것이다

디자인반 11기 백가은

3 같은 책 22쪽

4 같은 책 22쪽

『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 옮김

작가정신 20040720

A Natural History of the Senses(1991)

3030

02 현실을 전복시키는 비현실

모호함이 주는 환상성

20세기 중반 중남미 소설은 전통적인 사실주의 서사 구조

를 깨고 현실과 환상을 혼합시키는 새로운 글쓰기 방식으

로 세계문학의 중심에 선다 이 시기에 주목 받은 일련의

중남미 작가들을 가리켜 lsquo붐 세대 작가rsquo라 칭하는데 아르

헨티나의 환상문학 작가 코르타사르는 이 붐 세대 작가군

의 선구자이자 대표 주자 격인 인물이다 그러나 그 문학적

성과와 명성이 무색하게도 국내 독자들에겐 그의 이름이

아직 생소한 것이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에서는 그

의 작품이 중남미 단편 선집에나 몇 편이 번역되었을 뿐 본

격적으로 소개된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중남미 문학을 공부했고 그의 몇 안 되는 번역 작품을 인

상 깊게 읽었던 독자 입장에서 이번에 출간된 코르타사르

의 단편집『드러누운 밤』은 가뭄의 단비처럼 반가운 신간

이다

환상 문학이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J R R 톨킨 류의 판타

지소설 혹은 쥘 베른이나 아이작 아시모프 류의 SF소설을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코르타사르의 환상문학은 이들 범

주에 들어가지 않는다 코르타사르 작품에서 나타나는 환

상이란 토도로프가 정의한 바 있는 환상 그러니까 자연적

인 것과 초자연적인 것 사이의 망설임에서 발생하는 환상

에 가깝다 따라서 판타지소설의 lsquo현실과 동떨어진 환상rsquo

혹은 SF소설의 lsquo설득력 있고 현실감 있는 환상rsquo을 기대하

는 독자라면 아마 십중팔구 그의 작품을 읽고 실망할 것

이다 어쩌면 이게 무슨 환상문학이냐는 푸념을 늘어놓을

지도 모르겠다 역시 가장 좋은 것은 선입관을 버리고 책을

읽는 것이다

코르타사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lsquo모호함rsquo이다 인물이나

배경 묘사에서 제시되는 기본적인 정보도 모호하고 사건의

전개 양상이 가진 당위성도 모호하다 작품 내에서 주요한

스토리 라인을 담당하는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경계도 모

호하며 심지어는 화자의 정체마저 모호한 작품도 있다 이

런 모호함의 향연은 짙게 깔린 안개와도 같아서 독자들은

그 속에서 한 치 앞도 제대로 내다볼 수 없음은 물론이요

이미 지나간 사실조차도 자신이 맞게 인식한 것인지 확신

할 수 없을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무엇이 진짜인지

독자들의 판단을 망설이게 만드는 이런 상태야말로 코르

타사르의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는 환상이란 개념이다 독

자들은 이 환상 속에서 그저 전방을 주시하며 천천히 나아

갈 수밖에 없다

다행스럽게도 코르타사르는 독자들의 시련을 헛되게 하지

않는다 작품의 시작점 일상 세계에 우연히 침투한 lsquo비현

실적인 것rsquo은 안개 속에서 알게 모르게 자신의 지분을 늘려

나간다 그리고 작품의 종점에 다다른 독자들은 비현실이

현실이 되고 현실이 비현실이 되는 이전과는 전혀 새로운

세계와 마주할 것이다 다시 말해 필연과 이성의 법칙이 지

배하는 세계가 우연과 환상이 지배하는 세계로 변하는 것

이다 이러한 세계의 전복은 마치 여기저기 단서를 흩뿌리

고 사람들을 알쏭달쏭하게 만들었다가 결말부에서 모든

것을 폭발시키는 추리소설 혹은 반전영화를 보는 듯한 재

미를 선사한다

그렇다면 코르타사르가 이 소설들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책을 다 읽고 난 독자라면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의문점이다 코르타사르는 자신이 환상문학을 쓰는

이유를 ldquo법칙이나 원칙 혹은 인과관계나 특정한 심리 또

는 잘 그려진 지리학과 같은 체계에 의해 세상이 지배되고

있다는 것에 반대rdquo하고 ldquo우리가 잘 모르며 우리에게 잘 다

가오지 않는 새로운 질서에 관해 생각해보기 위함rdquo이라고

설명한다 짧게 말해 이 세상에 필연이란 존재하지 않으

며 자신은 그것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말이다 이

게 전부다 순문학이라면 거장의 문학이라면 이보다 더 심

오한 통찰 혹은 비판이 있을 것이란 생각에 문장 속 숨겨진

의미를 발견하고자 머리를 싸맬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조

언을 하자면 독서는 독서 그 자체로 즐기면 된다 적어도 이

책에서는 그렇다 모호함과 예상외의 전개 속에서 재미를

느끼고 코르타사르가 묘사하는 세계의 불가지(不可知)성

을 어렴풋하게나마 인식할 수 있다면 이미 그것으로 충분

하다

편집자반 11기 강귀욱

『드러누운 밤』

훌리오 꼬르따사르 지음 박병규 옮김

창비 20141124

La noche boca arribaJulio Cortazar

31

03 얼어붙은 자의식의 바다를깨뜨리고 생명을 불어넣는 책 『데미안』

데미안을 읽고 나서야 그 동안 내가 두 발 딛고 서 있던 땅이

굳고 단단한 대지가 아니라 얼어붙은 바다에 불과했음을 알

았다 데미안은 도끼를 가져와 이 꽁꽁 언 바다를 가차 없이

내리 찍었다 그리고 말했다 얼어붙은 바다를 단단한 땅인

줄 알고 사느니 그 얼음을 깨부수고 그 속에 빠져 죽기 살기

로 허우적대라고 그러면 그 속에서 너는 너 자신을 똑바로 마

주하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성장할 것이라고

주인공 싱클레어도 그를 둘러싸고 있던 세계를 깨뜨려 나가

며 성장한다 그 모든 과정은 결국 진정한 자기 자신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가 깨뜨린 가장 큰 세계는 바로 자신의 사고 체계였다 세상

을 바라보는 기존의 이분법적이던 시각 고정되고 획일화된 시

각을 버렸다 주인공은 세계 안에 심지어는 자신 안에도 선하

고 악하며 밝고 어두운 양극단의 것들이 공존함을 이해하고

두 세계를 끌어안았다 주인공은 귀와 눈을 가리던 장막을 걷

어내 버리고 세상을 바로 보게 되었다 상극인 것들의 괴리로

이루어진 이 모순된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곧 자신 안의 부조

화 또한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스스로에게 다가서는 첫 걸음

이었다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양극단의 세계 사이에서 싱

클레어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며 흔들리기를 반복했다 이

때 그에게는 삶을 지탱할 중심축이 없었다 항상 내면이 아닌

외부 세계에서 자신이 속할 자리를 찾아 헤맸다 그가 비로소

온전한 자신을 만난 순간은 어느 편으로도 치우침 없이 스스

로의 기준으로 홀로 서게 되었을 때였다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 이 길은 당신이 내면에 있는 모

순되는 두 세계 한없이 나약하고 뒷걸음치는 비열한 모습들

과 정갈하고 깨끗한 곧은 힘들을 동시에 직시하는 순간에 시

작된다 그리고 이 길은 두 세계 속에 들어가 이리저리 휩쓸리

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세계를 밟고 우뚝 올라서서 스스로

가 중심이 됨으로써 앞으로 펼쳐진다

이제 lsquo자아를 찾으라rsquo는 지루하고 흔한 이야기가 더 이상 빤

하거나 우습지 않다 묵직한 울림이 되어 나를 흔든다 그냥

나만 붙잡고 흔드는 것이라면 손사래 쳐 뿌리치겠는데 내가

밟고 있던 땅 속해 있던 세계를 뿌리째 흔들어 버린다 읽는

내내 속이 답답하고 나에게 화가 난다 그런데 이렇게 마구

혼나면서 이상하게도 후련한 구석이 있다 호통을 치는 데미

안이 사실은 우리를 응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막연

하고 무기력한 안개에 휩싸여 있을 때 데미안은 그만의 방

식으로 우리에게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준다 물론 갈 방향을

정해준다거나 각자의 사정을 듣고 상담을 해주는 것은 아니

다 오로지 궁지로 몰아세울 뿐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사람들

은 잊고 있던 lsquo나 자신rsquo을 일깨운다 아 그동안 lsquo나rsquo에 대해 생

각해본 적이 있던가 라는 정도만이라도 좋다 이 물음이 바로

여정의 시작이니까

그렇게 스스로에게 묻고 나면 더 이상 전처럼 살 수는 없기 때

문이다 아니라면 자기 자신에게 면목이 없을 것이다 이 무서

운 책이 우리를 혼내고 몰아치면서도 여전히 영원한 고전이자

필독서로 사랑 받는 이유다

lsquo우리들 속에는 모든 것을 아는 한 사람이 있다rsquo고 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혼이 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혼

이 났다는 것은 자신 안에 있는 lsquo그 사람rsquo이 말을 하기 시작했

다는 뜻이니까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목소리가 희미하

고 멀리 있다 하여도 숨죽여 귀 기울이는 일 자체가 자신에게

로 가는 과정임을 잊지 말고

편집자반 11기 배예리

『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민음사 20001220

Demian Die Geschichte von Emil

Sinclairs Jugend(1919)

31

03 얼어붙은 자의식의 바다를깨뜨리고 생명을 불어넣는 책 『데미안』

데미안을 읽고 나서야 그 동안 내가 두 발 딛고 서 있던 땅이

굳고 단단한 대지가 아니라 얼어붙은 바다에 불과했음을 알

았다 데미안은 도끼를 가져와 이 꽁꽁 언 바다를 가차 없이

내리 찍었다 그리고 말했다 얼어붙은 바다를 단단한 땅인

줄 알고 사느니 그 얼음을 깨부수고 그 속에 빠져 죽기 살기

로 허우적대라고 그러면 그 속에서 너는 너 자신을 똑바로 마

주하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성장할 것이라고

주인공 싱클레어도 그를 둘러싸고 있던 세계를 깨뜨려 나가

며 성장한다 그 모든 과정은 결국 진정한 자기 자신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가 깨뜨린 가장 큰 세계는 바로 자신의 사고 체계였다 세상

을 바라보는 기존의 이분법적이던 시각 고정되고 획일화된 시

각을 버렸다 주인공은 세계 안에 심지어는 자신 안에도 선하

고 악하며 밝고 어두운 양극단의 것들이 공존함을 이해하고

두 세계를 끌어안았다 주인공은 귀와 눈을 가리던 장막을 걷

어내 버리고 세상을 바로 보게 되었다 상극인 것들의 괴리로

이루어진 이 모순된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곧 자신 안의 부조

화 또한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스스로에게 다가서는 첫 걸음

이었다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양극단의 세계 사이에서 싱

클레어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며 흔들리기를 반복했다 이

때 그에게는 삶을 지탱할 중심축이 없었다 항상 내면이 아닌

외부 세계에서 자신이 속할 자리를 찾아 헤맸다 그가 비로소

온전한 자신을 만난 순간은 어느 편으로도 치우침 없이 스스

로의 기준으로 홀로 서게 되었을 때였다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 이 길은 당신이 내면에 있는 모

순되는 두 세계 한없이 나약하고 뒷걸음치는 비열한 모습들

과 정갈하고 깨끗한 곧은 힘들을 동시에 직시하는 순간에 시

작된다 그리고 이 길은 두 세계 속에 들어가 이리저리 휩쓸리

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세계를 밟고 우뚝 올라서서 스스로

가 중심이 됨으로써 앞으로 펼쳐진다

이제 lsquo자아를 찾으라rsquo는 지루하고 흔한 이야기가 더 이상 빤

하거나 우습지 않다 묵직한 울림이 되어 나를 흔든다 그냥

나만 붙잡고 흔드는 것이라면 손사래 쳐 뿌리치겠는데 내가

밟고 있던 땅 속해 있던 세계를 뿌리째 흔들어 버린다 읽는

내내 속이 답답하고 나에게 화가 난다 그런데 이렇게 마구

혼나면서 이상하게도 후련한 구석이 있다 호통을 치는 데미

안이 사실은 우리를 응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막연

하고 무기력한 안개에 휩싸여 있을 때 데미안은 그만의 방

식으로 우리에게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준다 물론 갈 방향을

정해준다거나 각자의 사정을 듣고 상담을 해주는 것은 아니

다 오로지 궁지로 몰아세울 뿐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사람들

은 잊고 있던 lsquo나 자신rsquo을 일깨운다 아 그동안 lsquo나rsquo에 대해 생

각해본 적이 있던가 라는 정도만이라도 좋다 이 물음이 바로

여정의 시작이니까

그렇게 스스로에게 묻고 나면 더 이상 전처럼 살 수는 없기 때

문이다 아니라면 자기 자신에게 면목이 없을 것이다 이 무서

운 책이 우리를 혼내고 몰아치면서도 여전히 영원한 고전이자

필독서로 사랑 받는 이유다

lsquo우리들 속에는 모든 것을 아는 한 사람이 있다rsquo고 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혼이 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혼

이 났다는 것은 자신 안에 있는 lsquo그 사람rsquo이 말을 하기 시작했

다는 뜻이니까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목소리가 희미하

고 멀리 있다 하여도 숨죽여 귀 기울이는 일 자체가 자신에게

로 가는 과정임을 잊지 말고

편집자반 11기 배예리

『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민음사 20001220

Demian Die Geschichte von Emil

Sinclairs Jugend(1919)

32

박세길 인터뷰

진정한 역사가는 과거에 파묻히지 않는다옥(獄)에서 옥(玉)을 만든 작가 박세길 인터뷰

박세길 저자는 처녀작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로 80년대

대표 역사서 자리를 꿰찬 분입니다 1986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감되었을 때 감옥에서 역사책을 읽으며

사회 모순에 대해 고민했고 출소하자마자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집필했습니다 정권 탄압 속에서 왜곡된

현대사를 바로 잡았다는 의미를 지닌 이 대표작은 오랫동안

고시생과 대학생들의 필독서로 꼽혔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읽은 박세길 저자의 저서는 지난 6월 출간한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입니다 기사를 쓰고 편집할 때 청년 세대를

겨냥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박세길 저자는 역시나

청년들의 미래에 큰 관심을 갖고 계셨습니다 취업을

눈앞에 둔 서울출판예비학교 학생들이 가져야 할 자세를

여쭸습니다

출판학교에서 강의하신 한 선생님은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가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와

더불어 80년대 인문학의 양대

산맥이라고 하셨습니다

책의 성공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강의

요청이 많이 들어왔어요 먹고사는

경제적인 문제도 해결됐습니다

몇 부 팔렸는지는 잘 모릅니다

출판사에서 기밀 사항이라고

하더군요 요즘은 마케팅 차원으로도

몇 쇄 몇 부인지 밝히지만 그때는

세금 문제를 피해가기 위해서인지

쉬쉬하던 시절이었나 봅니다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는 대학

선후배끼리도 많이 물려주는 책이라고

들었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의 쉬운 설명이

좋았습니다 더불어 어떤 사명감을 안고 썼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완성하기에 앞서 어떤 목표를

두셨나요

청년 세대가 외환위기 이후 집중적인 희생양으로 전락하면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드러내면서 여기에

머물지 않고 청년 세대의 잠재력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들이 역사 무대 한복판에 진출해 자기 몫을 다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습니다

역사 분야는 시장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역사 혹은 현대사가 주목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통해 얘기하자면

80년대 후반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lsquo왜곡된

역사를 바로 알자rsquo는 시각 교정의 욕구가 있었던

차에 제 책이 나름 부응했는지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시기가 적절했던 셈이죠

2012년 대선 후 역사 분야가 잠시 반짝했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금세 시들었다고

하더군요 당시 역사 분야 책들이 일반 독자가

읽기에 다소 어렵거나 출간한 지 오래된 것들

위주였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돋을세길

출판학교에서 강의하신 한 선생님은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가 유홍준 교수의

책의 성공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강의

하더군요 요즘은 마케팅 차원으로도

선후배끼리도 많이 물려주는 책이라고

역사 분야는 시장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역사 혹은 현대사가 주목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통해 얘기하자면

80년대 후반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lsquo왜곡된

역사를 바로 알자rsquo는 시각 교정의 욕구가 있었던

차에 제 책이 나름 부응했는지 큰 반향을

읽기에 다소 어렵거나 출간한 지 오래된 것들

위주였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의 저자

33

2012년 대선 후 역사 분야가 관심을 받았던 것은

보수층의 재집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한

불안 때문일까요

맞습니다 그러나 마땅한 책이 없어서 그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역사 분야에서 베스트셀러를 내기

위해서는 시기가 맞아 떨어지고 내용 또한 대중이 원하는

것을 담고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를 편집한 lsquo생각정원rsquo

출판사의 정희용 편집자에게 감사 표시를 하셨습니다

어떤 편집자를 선호하시나요

간단합니다 편집자는 철저히 독자 입장에서 독자와 작가

사이의 간극을 줄여줘야 합니다 예를 들면 어려운 내용을

과감히 생략하고 다음 기회로 미루도록 설득한다거나 좌파

운동권 색채가 너무 강한 문장을 조금 순화하는 것 등입니다

어떤 내용이 이번 책에 꼭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선택을

도와줘야 합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을 작가님께서 직접

독자들에게 홍보하신다면 카피 문구를 짧게 제시할 수

있을까요

청년 세대 희망 찾기 갑갑한 현실을 어떻게 타개할 수

있을지 그 답을 찾아보는 길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취업 후 첫발을 내디딜 서울출판예비학교 11기

학생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출판 또한 돈을 벌어야한다는 기본 전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출판계를 지켜본 결과 뭔가 소명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오래

살아남았습니다 출판학교 역대 대표 중 일부는 나와 관계가

있는 사람들인데 모두 고유한 소명의식을 갖고 출판계에

뛰어들었습니다 때로는 상업주의 안에서 재주도 부리곤

했지만 어쨌든 분야 내에서 고유한 캐릭터를 구축했습니다

출판학교 학생들이 출판 상황을 이해하고 자신을 역할을

정하는 개인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비전 중심의 경영을

하는 회사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지만 개인 비전을 기업

비전으로 나아가 사회 비전으로 접목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과거에 안주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부분을

출판계에서는 SNS 등 인터넷 환경을 통한 마케팅으로

이해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SNS망 자체에서 무엇이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건 사람과

사람이 서로 소통하고 공감하는데 필요한 도구입니다

콘텐츠 중심의 사고가 중요하고 그것이 전제되지 않을 때

SNS는 착각에 불과하며 성공할 수 없습니다 필요한 콘텐츠

중심의 사고를 가지고 철저하게 진행하지 않으면 그 공간에서

허망하게 헤엄만 칠 뿐 입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SNS에서

맥없이 헤엄치다 익사하는 경우를 볼 수 있을 겁니다

콘텐츠와 마케팅의 영역을 하나로 보는 것과 따로

보는 것 어떤 것이 독자를 위하는 것일까요

출판 마케팅은 책을 기획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에서부터

개입돼야 하고 그 과정에 독자를 참여시키는 방식을

고민해야 합니다 미국 네브래스카주립대학의 이상문

교수는 lsquo밀실 안에서의 혁신은 끝났다rsquo고 얘기합니다

개방된 체제에서 독자 곧 소비자 사용자의 참여 하에 함께

만들어갈 때 혁신은 이뤄진다고 합니다 출판사의 비전이

브랜드로 연결될 때 독자는 자발적으로 의견을 주고받고

싶어 할 겁니다

마케터반 11기 이창환

디자

인 사

공예

Page 14: 서울출판예비학교 웹진 _5호 2015

14

이옥란 선생님

캡틴 오 마이 캡틴(captain oh my captain)선생님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

편집자반 학우들은 늘 이분의 얼굴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며

끝마친다 몇 번의 마주침은 덤이다 그분은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도 가깝지만은 않았던 편집자반의 담임 교수

이옥란 선생님 자신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우리를 위한

이야기를 풀어놓으시느라 매일 종례시간이 부족하신 이옥란

선생님께 이번엔 우리가 물었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 일상을 어떻게 보내고 계신가요 선생님의

주말이 취향이 추억이 삶이 궁금하다 편집자반 학생들에게

직접 받은 질문들로 lsquo한 사람rsquo에게 궁금한 것들을 물었다

이 인터뷰를 읽은 뒤 그녀를 한층 좋아하게 되리라고

확신한다

왜 디토 커피에 자주 가시나요

커피가 제일 맛있고 값이 싸고

넓은 창으로 햇빛이 많이 들어와

그리고 주인장들이 공간은 물론이고

손님들과도 잘 어우러지는 것 같아

옥란 선생님께 스카프란

어느 날 발견한 패션 아이템 몇 년 전인가

홍대 앞 가판대에서 우연히 마 레이온 합성의

보라색 스카프를 발견한 이후인 것 같아

왜 고양이를 좋아하시나요 고양이를 키우시나요

고양이가 나를 키웠다고 할 수 있지 시골집 막내였는데

고양이가 친구가 되어주었어 (선생님이 고양이를 닮아

가시는 것 같아요 혹시 키우세요) 둘 있는데 13년쯤 되었나

최근에 읽었거나 읽고 계신 책은

이익섭 저의 『국어학개설』 『말과 사물』 『좌파는

어디에 있었는가』 『논어』 『번역어의 성립』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등 여러 권 들고 다니면서 돌려본다

(국어학개설은 읽는다기보다 공부 아닐까요) 아니야

재미있어

인생의 책을 꼽자면

김훈의 『남한산성』 표지가 핫핑크 색이야 건조하고 힘

있는 남성적인 문체의 마초라고 불리기까지 하는 작가의

책이 핑크색이라니 크기도 아마 46판에 더스트 커버(dust

cover)는 질긴 천의 느낌이고 본문은 재생지인지 무겁지

않고 두께도 딱 손에 잡히는 정도 감각까지 장악한 책이야

몇 권 사서 주변 사람들에게 돌렸어

선생님의 멘토는

이런 질문에 답하게 될 줄은 몰랐네 글쎄 그러고 보면

존경스러운 사람은 있었지 대학 때 문학 동아리 선배였어

양상현 형 (어떤 점이 제일 존경스러우셨어요) 자유롭게

사는 사람이었던 것 얼마 전에 돌아가셨어 이제 조금

실감이 나네 그분은 건축 전공에 시를 쓰고 음악을

즐기고 노는 문화를 나누고hellip 어떤 사태도 회피하지 않고

자유로웠던 사람이었지 앞으로 할 일이 더 많았을 터인데

양상현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졸업 동대학원

박사학위 2002년 대한민국건축대전

초대작가 선정 순천향대 건축학과

교수 재직 민족건축인협의회

의장 설계 작품으로는 lsquo장암리

주택rsquo lsquo녹촌리 조각가의 집rsquo 등

대표 저서『거꾸로 읽는 도시

뒤집어 보는 건축』 2015년

8월 14일 별세

졸업 후 편집자로 일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우리 때는 노동운동이나 농민운동을

했던 대학생이 사회과학 출판사로

진출하는 경우가 많았고 내 친구도 졸업을 해서

출판사에 있었어 그 녀석이 나를 사무실로

초대했는데 반지하도 아니고 그냥 지하였던 것

같아 ldquo옥란이 이리와 봐 이게 뭔지 아니 바로

매킨토시라는 거야 이게 얼마짜린지 아니rdquo

매킨토시 컬러 클래식(Macintosh Color Classic)

웬만한 공책보다 좀 클까 본체가 화면에 같이

붙어 있는 하드웨어를 가진 컴퓨터였지 친구 말로는

300~400만 원 한다고 했어 20년 전이니 당시로는

큰돈이지 교정지를 보여주더니 마치 lsquo음 너는 아직 이런 거

모르지rsquo라고 하는 듯이 ldquo잠깐만 언니가 뭐 좀 할 테니까

잠깐 기다려봐 하hellip 이거 띄어쓰기 어떻게 해야 하려나 이게

전문용어라 통일을 해줘야 하는데helliprdquo 하던 잘난 척이 기억이

나네 그렇게 출판사를 접했지 문학 동아리를 하느라 알게

된 선생님들 선배님들도 여럿 출판사에들 계셨어

편집자로 일하셨을 때 어떤 분야를

편집하셨나요

하다 보니 주로 예술 서양 미술 분야였고

출판사는 학고재 예경 마로니에북스까지

그런 기회가 나한테 왔고 재미있었어

전공이 그쪽이 아니었기 때문에 공부를

해야 했지

지난 서울출판예비학교생활 중 특별히

기억나는 사람이나 사건이 있다면

8기 졸업식 날 남학생 셋이 ldquo저는 출판학교에

와서 모든 것을 얻었습니다rdquo 그러면서 흑흑 우는 거야

누군지 얘기하면 창피하겠지 남학생들이 울어서 애들이

알고싶어 편집자반

15

완전 눈물 바다였잖아 (우리 반 오빠들이 운다는 건 상상할

수 없네요) 다음 해에는 애들이 완전 유머 코드여서 웃다

끝났지

출판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된 계기나 동기는

무엇인가요

나는 8기부터 시작했는데 7기 담임이던 김장환 씨가 나를

불렀어 공동 담임을 해달라고 lsquo그러지 뭐rsquo 이렇게 시작했지

직장은 2008년도까지 다녔고 프리랜서로 활동하면서

여기저기서 강의를 하고 있었어 한겨레 문화센터에도

23년쯤 있었지 (편집자보다 이렇게 선생님으로 있는 게 더

즐거우세요) 지금은 진짜 만들고 싶은 책 함께 작업해보고

싶은 저자 그런 게 아닌 한 직업으로 신간을 꾸준히 내는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당신들은 눈이 반짝반짝해서 업계에 들어와야겠다고

준비해서 오잖아 그 친구들이 1년차 3년차 되는 것을

지켜보고 있으려니까 내가 그 나이쯤 사회생활을

시작해 고민했던 지점이 보이는 거지 그 때

이걸 알았더라면 하는 안타까움이 있어서

여러분들이 애틋해지지

요즘 최대의 관심사는 무엇인가요

저녁에 후배들에게 가르칠 강의를 하다

보니 국어 공부의 필요성을 여실히 느끼고

있어 출판 동네에서 20년 넘게 일한 사람이

공부해온 것을 한 번 정리해서 후배들한테 줄 필요도

있겠구나 싶고 (뭔가 일 얘기가 아닐 줄 알았는데요

하하)

은퇴 후에 무엇을 하고 싶으신가요

오늘은 말이 절로 나오는 걸 하하 마당 있는 시골집 텃밭을

일구며 역사에 길이 남을 인간과 세상을 통찰하는 대작

소설을 발표하겠다 (와)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이 되고 싶으신가요

다시 태어나고 싶지가 않아hellip(웃음) 지구에서는 내

대에서 멸종하기로 했다

저희들에게 속 시원하게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자신 있게 해라

생각해보면 다들 자기가 못났어 키도 좀 더 컸으면

좋겠고 외모도 마음에 안 들고 내가 저 때 저렇게

했으면 지금 달라졌을까 부럽기도 하고

그런데 사실 부질없는 거거든 세상 사는

힘이 실력에만 있는 게 아니고 태도의 문제가 더

클 때가 많아 내 것이 아닌 것에 목매고 있을

필요가 없어 신입사원으로 전혀 모르는 곳에

뚝 떨어졌을 때 저들의 세계 속에 혼자 쏙

들어간 기분이니까 일단은 주눅이 들지

하지만 거기서 살아가야 하지 않겠어

둘러보면서 아 저기가 화장실이구나 사람들은

이런 걸 이렇게 하는구나 파악하고 나면 좀

수월해지잖아

마지막으로 대망의 이상형 월드컵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정우 주원 김수현 유아인 이렇게

4강전으로 시작하겠습니다

(하정우와 주원 중에서는 누가 더 좋으세요) 하정우지

주원이 최근에 좋아지긴 했는데 아직도 하정우를 따라올 수

없어

(그럼 김수현유아인 중에서는요) 유아인이지

(너무 확고하셔요 드라마 lt밀회gt 보셨나요) 집에선 케이블

방송도 안 나오고 관심 갖게 되었을 땐 너무 유행이라

안보고 말았지 대신 영화 lt완득이gt는 봤다

(이제 결승인데요 마지막으로 하정우와 유아인은요)

아인이는hellip 나한테 좀 과분한 것 같아(웃음) 하정우가 삐질

것 같은데 그래서 둘 다 잃는 거야hellip

편집자반 11기 김수진 이상화

lt베테랑gt의 악랄한 재벌 2세유아인

lt프로듀사gt의 어리버리 신입PD

김수현

lt용팔이gt의 천재 외과의사

주원

lt 암 살 gt 의 순 정 마초

하와이 피스톨하정우

하정우

16

한대웅 선생님

『동백꽃』의 주인공 같은 그 남자착하디착한 순하디순한 한대웅 선생님의 속마음

좀처럼 화내시는 일도 없고 허허 웃기만 하시고hellip 하지 못한

말들을 땀으로 발산하듯 여름이면 온몸이 열정으로 흠뻑

젖으시는 분 세상 어디에도 없을 착한 남자 마케터반의

한대웅 선생님이다 그에게 던진 몇 가지 질문에 돌아온 것은

가장으로서의 고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 아직도 앳된

소년 같은 순수함이 묻어나는 답변들이었다 이제 그를 좀 더

깊게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평소에 칼라(collar) 티셔츠를 즐겨 입으시던데

좋아하시는 옷인가요

좋아한다기보다는 제 딴에는 편하게 입을 수 있는 듯해서

즐겨 입고 있습니다 또 아내가 이런 종류의 옷을 많이

사주기도 하고요

선생님께 lsquo출판rsquo이란 무엇인가요

출판은 lsquo꿈을 이루는 판도라의 상자rsquo lsquo내가 가진 능력에 가장

맞는 일rsquo입니다

출판을 업으로 삼지

않으셨다면 어떤 일을

선택하셨을까요

모르겠네요 아마도 운명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요 다만 다음과

같은 3가지 생각은 해보았습니다

첫째 고등학교 시절 성적이 조금

더 좋았다면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해서

지금쯤이면 텔레비전이나 영화에 나오는 큰 전투함의

함장이 되지 않았을까요

둘째 대학교에 입학하지 못했다면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로 이민을 가서 장사를 하거나 농부로 농장을

운영하면서 그곳 사람으로 국적을 바꾸고 살고 있지

않을까요 고등학교 3학년 때 대학교 입학 시험에

떨어지면 다른 나라로 가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다는

마음의 준비를 했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 모 일간지에 실린

해외에서 성공적인 삶을 사는 한국 사람들에 관한 기사를

꼼꼼하게 읽었었거든요

셋째 대학교 3학년이나 4학년 때 신춘문예까지는 아니라도

대학교 교내 문학상 정도를 받았다면 아마도 그 결과에

탄력을 받아 시나리오 작가나 연극 연출가의 길로 가려고

하지 않았을까요

ID와 블로그에 lsquo봄rsquo이라는 단어가 들어있는데 봄을

좋아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그 ID를 만들 무렵 저의 미래는 꽤나 불확실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바꿔 말하면 어떻게

돈을 벌어야 하고 어떻게 자아 성취를

해야 하는지가 불확실하고

힘들었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lsquo봄rsquo이라는

단어를 좋아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누구나

알다시피 봄은 겨우내

얼어 있던 것들이

새롭게 싹을 틔우고

새롭게 기지개를 펴는

계절이죠 물론 봄

자체가 주는 느낌도

좋고요 그래서 lsquo봄rsquo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던 것

같습니다

블로그는 서울출판예비학교에서

일을 시작한 후 만들었습니다

블로그에 lsquo봄바람rsquo이라는 의미를 부여한

것은 ID를 만들던 때의 생각이 이어진 것이겠지요 요즘에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이 많이 사라진 것 같습니다 만약

앞으로 블로그나 ID를 만든다면 아마도 lsquo여름rsquo 혹은 lsquo풍성함rsquo

아니면 lsquo내가 원하는 세상을 상징하는 어떤 것rsquo을 이름으로

사용할 것 같습니다

편집자로 첫 시작을 하셨는데 나중에 출판 마케터로

일하게 된 동기를 알고 싶어요

시장 상황을 분석하고 이에 맞게 마케팅 계획을 세우고

사람이나 집단을 만나고 힘을 합쳐 뭔가 새로운 결과를

만들어 내는 일이 재미있었습니다

은퇴 후에 꿈꾸시는 삶이 있으신가요

아직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20대와 30대

초반에 꿈꾸던 것들을 lsquo은퇴 후에 여유가 생긴다면 이것들을

해볼까rsquo라고 간혹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현재겠죠 출판에서 뭔가를 이루려고 열심히 계획하고

실행하다 보면 은퇴 후의 삶도 더 풍요로워지지 않을까요

알고싶어 마케터반

17

일하실 때 다뤘던 책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무엇인가요

입사 초기 편집을 하거나 시장조사를 하고 제가 출간 여부에

대한 판단을 내렸던 책들이 기억납니다 『펠레』 자서전은

제가 편집자로 있을 때 출간했던 책인데 주요 일간지의

서평란 메인을 장식했던 책입니다 출간 시점을 맞추기 위해

촉박한 기간 동안 밤새가며 책을 만들었습니다 출간 시점에

대한 판단이 정확히 맞았고 그 결과 기대 이상으로 많은

서평을 받았던 책입니다

서울예비출판학교 선생님으로 오신 계기를

알고 싶어요

전에 다니던 출판사를 그만둔 후

개인적으로 뭔가를 해보려고 고민

중이었습니다 그러나 능력이

부족하다 보니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았죠 그러던 중에

출판학교에서 일해 볼 것을

제안 받았고 저도 출판학교

학생들처럼 면접을 보고 이

학교에 오게 되었습니다

일을 하게 되었을 때 매우

즐거웠습니다

다시 출판사 마케터로 돌아갈

생각이 있으신가요

아니오 이유는 2가지인데 첫째는 제 나이가

48세입니다 다른 업종도 그렇지만 출판 산업에서도

48살에 마케터로 직장인의 생활을 이어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죠 정말 현실적인 고민이죠 게다가 출판학교에서

여러분과 소통하며 제 지식을 전수하는 일이 재미있습니다

물론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언젠가 저만의 꿈을

찾아갈 수 있겠죠

평소 몇 권의 책을 읽으시나요 최근 읽은 책 중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요

예전에 많이 읽을 때는 1주일에 2권 정도 읽었습니다

황석영의 『장길산』과 홍명희의 『임꺽정』 이문열의

『삼국지』를 읽을 때 짬짬이 쉬는 시간을 비롯해 지하철에서

보내는 시간까지 거의 모든 시간을 책을 읽으며 보냈습니다

요즘에는 1달에 1~2권 정도 읽는 것 같네요 최근 읽은

책 중에 기억에 남는 책은 『내 아이와 어떻게 대화할

것인가』(율리아 기펜레이테르 저 써네스트 2006)와 『내

아이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율리아 기펜레이테르

저 써네스트 2009)입니다 제목만으로도 왜 이 책을

추천하는지 금방 눈치 챌 수 있을 것입니다 아이가 둘

있는데 첫째는 15살 딸이고 둘째는 10살 아들입니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lsquo어떻게 하면 아이와 싸우지 않고

윽박지르지 않고 아이의 자존감을 높여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성실하고 삶의 열정과 꿈이 넘쳐나는 아이로

키울까rsquo 같은 고민을 항상 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단비처럼 다가왔습니다 위의 2권의 책을 읽고 몇

가지 중요한 것들을 배웠습니다 아이와 어떻게 소통하고

어떻게 대화해야 하는지 아이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등등 이전에 『부모와 아이 사이』(하임 G 기너트

등 저 양철북 2003)를 읽고 아이를 이해하는 법에 대해

큰 인상을 받았는데 이 책도 그 연장선에서 저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아들과 딸을 좀 더 이해하게 되고 그

결과 아이들에게 화를 내거나(저도 나약한 인간인데 화가

날 때가 심심치 않게 있거든요) 아이들의 긍정적인 싹을

본의 아니게 꺾어 버리는 경우가 줄었다고 할까요 게다가

이 책은 lsquo부모와 아이 사이rsquo만이 아니라 lsquo친구와 친구 사이rsquo

lsquo회사 내부 구성원 사이rsquo에서 소통하는 데도 많은 영감을

제공합니다 출판학교 학생들과 소통할 때도 이해의 폭을

넓혀주고 긍정적인 소통을 하는 방법을 제공해 줍니다

이제 수료를 앞둔 마케터반 학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으시다면

개인별로 처한 처지와 조건에 따라 다르겠지만 다음과 같은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 연인을 사랑하듯 출판에 대해서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보세

- 이 길이 나에게 최선의 길인가 생각해 보세요

- 목표를 세우고 지금부터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한 후 그것을 어떻게 이루어 나갈 것인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보세요

저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스스로의 내면을 단단하게 할 중요한

질문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앞으로도 끊임없이

새로운 답을 찾아나갈 질문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케터반 11기 이장열 이창환

18

선생님은 주말에 뭐하세요

무조건 가족과 함께hellip

만약 편집 디자인을 안 하셨다면 무슨 일을 하고

계실까 궁금해요

어찌 됐든 개인 사업자로 살았을 듯 윗사람 비위 맞추는

것을 너무 못하므로hellip

선생님 주량이 어떻게 되세요 주사가 있으세요

몸 상태 좋고 안주 많이 먹으면 1병(클래식으로)

좋은 출판 디자인을 생각한다

심우진middot안광욱 선생님

lsquo멋rsquo이라는 것이 폭발한다뼛속까지 디자이너스러운 심우진 선생님

멀리서도 눈에 띄는 큰 키에 멋들어진 베레모 디자인반의

심우진 선생님 되시겠다 서울출판예비학교에서 lsquo멋rsquo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가끔은 조금 키 큰 학생처럼 학생들

속에 잘 어우러지는 사람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모습은

여기까지다 그를 조금 더 알고 싶다 지금까지의 그를

만들어왔을 lsquo심우진의 생각들rsquo이 궁금했다

선생님은 무엇을 드시고 그리 멋지시나요

학생들의 사랑 밥 김치

일본 유학길에 오르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lsquo동아시아rsquo lsquo근대rsquo가 당시 나의 화두였으므로 그리고

스기우라 고헤이 선생을 뵈러

첫 직장을 다녔을때 일의 강도()나 다니는 동안

마음은 또 어떠셨는지

출판 쪽 첫 직장은 lsquo정디자인rsquo인데 lsquo나는 왜 이렇게 디자인을

못할까rsquo 답답해했던 기억이 있어요 그러나 매우 즐거웠고

술도 자주 마셨죠 아직도 당시의 OB들과 가깝게 지내요

lsquo둥지rsquo 같은 곳이죠

선생님께서 생각하는 완벽한 판면이란

디자이너의 삶의 방식과 콘텐츠의 삶의 방식이 녹아든 판면

선생님의 피로회복 방법은

알고싶어 디자인반

19

디자인반의 히어로좋은 출판 디자인을 생각한다 안광욱 선생님

여자 화장실 앞에 있어 인파로 북적대는 디자인반 교실을

학생들과 함께 굳건히 지켜온 분 디자인반 학생들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애정공세를 아끼지 않는 분 안광욱

선생님에게 물어본 4가지

디자이너로서 첫 직장을 다닐 때의 마음이

어떠셨나요

잘하고 싶었는데 못해서 힘들었지 사수에게 하루 서너

시간씩 야단맞으면서 했다오 매일 2호선 양화대교에서 뛰어

내리고 싶었는데hellip 이 부분은 내일 수업 때 얘기해줄게^^

선생님께서 생각하는 좋은 출판 디자인이란

세상을 향한 사랑과 희망이 듬뿍 담긴 디자인

출판 디자인을 안 했다면 지금 무슨 일을 하고

계실까요

모르겠네 그냥 선녀 옷 훔치는 나무꾼이 되어 있을 듯^^

어떤 주사가

있으신지 궁금해요

말이 조금 더 많아지고 장소 불문 쿨쿨 자 특별한 주사는

없는 듯

디자인반 11기 이소현 백가은 사공예원

디자

인 사

공예

20

편집자반 김영준 학우가 그린

『이 외로운 사람들아』 일러스트

기억에콕

수업 후기

ldquo우리에게는 lsquo일탈rsquo이 필요합니다rdquo

잠깐 딴 짓을 하는 사이에 귓가에 들려온

한 문장이 나를 사로잡았다 배는 부르고

따 사 로 운 햇 살 에 잠 이 쏟 아 지 는 시 간

오후 1시 30분 시간을 칼같이 맞춰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선 그는 딱 봐도 지루하고

고리타분해 보이는 첫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순간 눈으로 들어온 이미지는 뇌로 흘러갔고

뇌는 망설임 없는 확신으로 귀에 명령을

전달했다 그렇게 귀는 이미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내 들려올 그렇고 그런 뻔한

이야기에 대하여

눈의 판단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의 한마디

한마디는 파격이었다 아니 어쩌면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였지만 누구도 자신 있게

내던지지 못하는 말들을 서슴지 않고 내뱉는 그

거침없음에 신선함을 느낀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의 관심을 돌려놓았던 lsquo일탈rsquo에 대한 그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lsquo일탈을 하라rsquo는 말이

lsquo제멋대로 하라rsquo는 의미가 아니라 어떤 규칙을

벗어나는 행위를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다르게

생각하는 방식을 몸으로 익히게 된다는 것

새로운 것을 생각해내는 창의성이라는 힘은

당연히 새로운 경험에서 나온다는 것이었다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니 강의를 듣던

친구들의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때 보고 들었던 그의 말과 행동이 우리에게는

딱 딱 한 강 의 실 에 서 느 끼 는 새 로 운 경 험

lsquo일탈rsquo이었다

그 와 의 만 남 은 계 속 이 어 졌 다 이 곳

서 울 출 판 예 비 학 교 에 입 학 한 이 후 로 는 좀

더 완 벽 한 일 주 일 단 위 로 시 간 이 흐 르 기

시작했는데 매주 쌓여가는 새로운 배움 뒤에는

수많은 물음이 불쑥불쑥 솟아났고 그는 마치

예상을 했다는 듯이 일주일에 한 번씩 나타나

우리의 설익은 궁금증을 해소해주고 떠나갔다

첫 만남에서는 책이라는 대상과 책을 대하는

편집자의 자세에 대해 이야기하며 큰 그림을

그려주었고 다음엔 저자와의 관계 맺기 그

다음엔 스스로 만들어 가야할 편집자의 자기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담백하게 들려주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네 번째 만남이었다

누구도 쉽게 이야기하기 어려운 완벽하게

솔직해지기는 더더욱 어려운 자신의 좌절과

실패를 그는 담담하고 진솔하게 소개해주었다

모든 성공에는 대개 7할의 실패가 전제되어

있기 마련인데 성공에 이르기까지 거치는

우 리 가 lsquo실패rsquo라고 명 명하는 것들이 사실

진짜 실패가 아니라 성공의 다른 이름이라는

그의 말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성공도 실패도

어 느 한 지 점 에 서 내 리 는 판 단 인 것 이 고

결 국 성 장 하 고 성 숙 한 다 는 것 은 성 공 과

실패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lsquo차이rsquo를 얼마만큼

발견하느냐 하는 것에서 결정된다는 그의 말이

가슴을 뜨겁게 했다 비로소 lsquo편집자rsquo로서가

아닌 한 lsquo사람rsquo으로서의 그가 보이기 시작했다

담담하게 말을 하고 있지만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아프고 쓰린 기억을 후배들에게

들 려 주 는 그 에 게 서 진 심 이 전 해 져 왔 다

사랑하는 일에 대한 함께 걸어갈 동지들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 참 고마웠다

어느덧 마지막 만남이 찾아왔다 한 권의

책을 만들면서 진행했던 편집의 과정을 예로

실 제 적 인 이 야 기 를 우 리 에 게 마 지 막 으 로

들려주었다 편집의 능력은 지식과 정보에서

나온다는 것 그것은 단숨에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 꾸준히 쌓아가야 한다는 것 그래서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의 문제라는 것을 경험을

근거로 자신 있게 말해 주었다 이미 지나온

과거의 결과 대신 앞으로 걸어갈 길에 대한

희망을 들려주어서 그게 참 고마웠다

편집자반 일탈이 주는 파격 우리가 낳을 lsquo새로운 책rsquo과 편집자선완규 선생님과의 다섯 번의 만남이 키운 생각들

21

그 가 우 리 에 게 마 지 막 으 로 이 야 기 를

들려주었던 그날 이후 석 달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났다 나는 여전히 같은 강의실에 앉아

앞서 길을 걸어간 선배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고 조금씩 가까워지고 밝아져가는 내 앞에

놓인 길에 대해 생각한다 그러다 문득 마음이

무거워지고 막막해질 때면 종종 그의 말들을

떠올려 본다 그리고 그 생각의 끝에서 마음을

의지하며 함께 이 길을 걸어갈 따뜻한 선배가

하나 있다는 위로 한 줌을 발견한다

ps 선완규 선생님 고맙습니다 보고 싶어요

편집자반 11기 성준근

마케터반 강한 수면욕 환상과 환기

판형과 종이를 예술로 편입시키려는 영업자다빈치 출판사 박성식 대표 특강 후기

9월 23일 평소보다 점심을 많이 먹었던 날이다 잠을 며칠간 못 자 피곤했다

오후 1시 30분이 살짝 지나서 다빈치 출판사 박성식 대표의 특강이 시작됐다

다빈치 대표님은 처음 뵐 때부터 남다르셨다 서울출판예비학교 입학 면접에서

여자 술 담배를 각각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보셨다 lsquo솔직함을 어필해야

하는 순간인가rsquo하는 생각에 직설적으로 답했지만 lsquo더 문학적으로 얘기할 수

있었는데rsquo라는 후회를 안고 돌아왔다

마음과 다르게 첫 번째 시간은 정신없이 잠이 쏟아졌다 눈을 감고 귀 기울였지만

턱을 괸 채 버티는 동안 50분이 지났다 대표님께 캔 커피를 하나 드리고 맞이한 두

번째 시간 그 한 시간 동안 나는 현실 옆의 어떤 이상 내지는 환상을 본 것 같다 그동안

듣던 강의들을 놓고 lsquo이상적인 관점이다rsquo 혹은 lsquo현실적이다rsquo라고 구분했던 판단의 폭

자체가 좁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성식 대표님은 내 머리에 있던 lsquo책rsquo에 대한 인식을 전복시켰다 자본주의 출판의

몰락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시작됐다는 말 출판 기본 특성인 다품종 소량 생산은 돌아올

것이며 다품종 소량 생산을 넘어 다품종 소량 lsquo고급 생산rsquo을 추구하고 싶다는 말은 나를

달뜨게 했다 주류에 반하는 사고를 가진 중년의 개성과 내공에 교실 풍경이 환기됐다

교육 수단으로 책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지만 책은 그만큼 사회적 의무와 희생을

짊어져왔다 출세와 공부 앞에서 책이 가진 기호(嗜好)성은 변두리로 내몰렸다 책을

읽어야만 제대로 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분위기는 옳지 않다 독서는 성향의 범주지 성역이

돼선 안 된다 정보와 지식의 전달은 모바일 등에 넘겨주고 종이책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공동체로 돌아와야 한다 그게 원래 자리라는 대표님의 주장이 새롭고 강렬하다

자본주의 3대 원칙인 lsquo더 빨리 더 많이 더 싸게rsquo 체계는 표준화와 규격화를 동반하며

매우 효율적이다 현재 사용하는 종이는 자본주의 원칙에 최적화돼 있다 그러나 대표님은

인쇄기계로 소화하지 못하는 질감과 전혀 다른 발색을 지닌 lsquo종이rsquo에 주목했다 그 종이로

콘텐츠 종이 판형이 완벽하게 들어맞는 예술서를 만들고 시장을 설득한다면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책 판매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전했다 종이 자체가 책의 예술성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한지(韓紙)를 예로 들면서 훌륭한 텍스트와 이미지를 한 차원 끌어올리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많은 부수를 팔아야 성공한 출판 많은 부수를 파는 것을

목표로 하는 시대는 저물고 있다 기존 유통과 판매 방식

안에 갇혀서는 불황에 매몰될 뿐이다 소량의 고급화된

책을 꿈꾸는 것과 전시회를 책과 결합하는 것도 다른 길을

물색하는 과정이다

대표님은 10년 전부터 lsquo이 원고는 내가 누구보다 잘

만들겠다rsquo lsquo이 원고는 내가 못하면 누구도 못할 것 같다rsquo라는

생각이 든 책만 출간을 진행했다고 한다

강의 중간 자신의 독특한 철학을 전달하는 것에 대해 가벼운

염려를 하셨지만 이론적이고 실용적인 분야에 몸담더라도

예술적 사고의 유연성은 필요하다고 본다 돈과 인문정신을

구분하면서 필요할 때 양쪽에서 자극 받고 차용하는 것이 마케팅의 융통성과 힘을 기르는 길일 것이다

마케터반 11기 이창환

편집자반 김영준 학우가 그린

『이 외로운 사람들아』 일러스트

박성식 대표가 기획한 lsquo오름rsquo전

22

하늘

습탁은 농도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하늘

습탁은 농도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이 글은 심우진 선생님의 탁본 세미나 수업에 대한 우리들의 즐거운

기록이다 탁본은 습탁(濕拓)과 건탁(乾拓) 두 종류로 구별된다

습탁은 나타내고자 하는 물체 위에 물을 묻힌 후 종이를 그 위에

밀착시키고 먹물 묻은 솜방망이로 가볍게 두드려서 물체를 표현하는

방법이다 물체의 패인 부분을 제외하고 볼록한 부분의 모양대로

종이에 먹이 묻어 문자나 문양이 드러난다 건탁은 이름 그대로 물을

사용하지 않고 마른 상태의 먹인 고형묵(固形墨)을 사용한다 우리는

각자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사물과 자연을 이용해 탁본 작품을

만들고 서울출판예비학교 꼭대기 층에서 작품을 공유했다

디자인반 이 시간을 그대로 탁본할 수 있다면심우진 선생님의 탁본 세미나

저는 신문지를 구겨서 해봤어요

응 그런데 이건 방바닥 같은데

방바닥까지 묻어 나와 버렸네요

[학생들 하하하]

저는 일단 큰 나무 기둥을 떠봤고요

오솔길의 짚도 해보고 저희 집 바닥과

벽면도 신기해서 떠봤어요 집 벽면 중에

대리석도 있고 특이한 벽면이 많거든요

부잣집인가 보네

[학생들 깔깔깔]

승연

심우진 선생님

승연

승연

심우진 선생님

이건 파프리카인데 저희 집 개가 완성한 종이를 찢었어요

[학생들 하하하]

좀 작고 납작한 파프리카를 반으로 잘라서 습탁했어요 또

이건 철조망인데 용 비늘처럼 나와서 재밌었어요 아나콘다

같기도 하고 철조망이 날카로워서 습탁하니 종이가 자꾸

찢어져서 다시 하게 됐어요 근데 이거요hellip 남자친구

있으면 커플끼리 한 번 해보세요 한 명은 잡아주고 한 명은

습탁하고hellip 되게 로맨틱 성공적

자랑하는 거니

[학생들 깔깔깔]

수빈

수빈

심우진 선생님

혜민

정묵

처음에 나뭇잎이 세세하게 잘 나올 줄 몰랐는데 그

줄기의 질감이 잘 나왔고 버려진 타이어를 끌어서

생긴 모양으로도 습탁을 했는데 생각보다 잘 나와서

막상 찍어보면 생각과 다르다는 것을 느꼈어요

저도요 결과물이 뚜렷하게 안 나올 줄 알았는데

디테일이 잘 나타나 있었고 입체를 평면적으로

찍는 것 자체가 재밌었어요

수정

저는 빗자루를 해봤어요 너무 얇아서 안 나올

거라 생각했는데 빗자루 문양이 잘 나와서

재밌었고 머리카락도 해봤는데 머리카락은

끝 부분이 잘 나오는 편이에요 위쪽은 다

뭉쳐있는데 끝 부분은 펼칠 수 있으니까요

23

저는 결이 얇은 것들을 뜨는 것이 재밌었어요

머리카락처럼요 머리 긴 사람에게 부탁해서

눕히고 했어요 그리고 이건 얼굴인데요

처음에는 그냥 했는데 얼굴은 입체를 살리려면

스케치하듯 떠야 되요 결국 명암으로 입체감

조절을 해야 되죠 코가 너무 입체적이라 특히

힘들었어요

누구 얼굴이야

우리 언니hellip

[학생들 우와]

가은

심우진 선생님

가은

하얀

음각이 나왔을 때 너무 좋았고요하늘

습탁은 농도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소리

건 탁 보 다 는 습 탁 이 농 도 조 절 하 는 게

희 한 해 서 재 밌 었 어 요 농 도 조 절 이

관 건 이 거 든 요 먹 과 물 의 배 합 과

솜방망이가 먹물을 얼마나 흡수하는지 그

흡수량이 중요하고요

윤미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꽤 많은데 만져보면서 건탁을 뜨니까 좋았어요 전에

습탁할 때는 시멘트 벽 같은 걸 하다가 나뭇결을 하니까

살아있는 느낌이었어요 생각했던 것처럼 나와서

좋았고 솔방울이나 나뭇잎 같은 섬세한 것들은 제대로

나오지 않아서 아쉬웠어요 섬세한 것들은 습탁으로

해봐야겠어요 그래도 다양한 나무를 건탁해봐서

만족해요

소현

저는 일상적인 것들로 습탁을 해봤어요

처음에는 단순하게 오돌토돌한 느낌만

있 을 줄 알 았 는 데 색 다 른 느 낌 이 나 서

재밌었어요

탁본 세미나를 마치고 그 다음 주에 지하 강당에서 촬영하는 시간을

가졌다 촬영 후에 보정도 했다 나뭇잎의 결 무늬 타이어 자국

그리고 사람의 머리카락까지도 좋은 디자인의 재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보았고 나누었다 건탁과 습탁의 장단점을 이 수업으로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심우진 선생님의 이번 탁본 수업도 지난 활자

수업처럼 지식 습득은 물론이고 경험까지 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 시간들이 앞으로 출판 디자이너로서의 감각을 더 풍요롭게 해 주지

않을까

디자인반 11기 사공예원

하얀

음각이 나왔을 때 너무 좋았고요

습탁은 농도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솜방망이가 먹물을 얼마나 흡수하는지 그

흡수량이 중요하고요

윤미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꽤 많은데 만져보면서 건탁을 뜨니까 좋았어요 전에 꽤 많은데 만져보면서 건탁을 뜨니까 좋았어요 전에

이건 파프리카인데 저희 집 개가 완성한 종이를 찢었어요

[학생들 하하하]

좀 작고 납작한 파프리카를 반으로 잘라서 습탁했어요 또

이건 철조망인데 용 비늘처럼 나와서 재밌었어요 아나콘다

같기도 하고 철조망이 날카로워서 습탁하니 종이가 자꾸

찢어져서 다시 하게 됐어요 근데 이거요hellip 남자친구

있으면 커플끼리 한 번 해보세요 한 명은 잡아주고 한 명은

습탁하고hellip 되게 로맨틱 성공적

자랑하는 거니

[학생들 깔깔깔]

24

9시 30분 합정역 1번 출구 앞

ldquo누나rdquo 소리에 쳐다보니 반가운 공 총무의 얼굴이 보였다 정류장

앞으로 길게 늘어선 줄에 합류하여 파주로 날 데려다 줄 2200번

버스를 기다리고 있으니 반가운 얼굴들이 계속 나타났다 한 대의

버스를 보내고서야 겨우 2200번 버스에 탑승해 파주로 출발할 수

있었다

10시 15분 파주 lsquo다산교 앞rsquo 정류장 하차

4개의 정류장 총 57분이 걸린다고 알려준 N사 지도 어플의 정보와는

달리 30분 만에 파주에 도착했다 일찍 도착해 먹을 것을 찾아 헤맨

예비 마케터들은 편의점에서 주린 배를 채웠고 lsquo지혜의 숲rsquo을 살짝

염탐하며 11시까지 시간을 보냈다

11시 05분 보진재 2층

1912년 설립되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인쇄소인 보진재 관계자

분이 나와 간단히 인사 말씀을 하고 각 반의 인솔자를 소개해주셨다

마케터반의 인솔자는 서동관 과장님 디자인반 편집자반 마케터반

순으로 견학을 시작했다

11시 15분 보진재 견학 시작

제일 먼저 본 곳은 제판실이었다 필름 인쇄가 줄어들고 CTP로

대체되는 추세지만 어떤 분들은 여전히 필름 작업을 하고 계셨다

이유를 물어보니 서동관 과장님은 예전 필름이 남아 있기도 하고

출판사에 따라 필름을 고집하는 곳이 있다고 하셨다

한번에 5도 인쇄가 가능한 기계를 보는 중에 서 과장님이 말씀하셨다

ldquo한 유닛(unit)당 23억 정도 해요rdquo 그렇다면 유닛 다섯 개가

돌아가고 있으니 적어도 10억짜리 기계라고 내 눈에 보이는 건 그냥

낡고 큰 기계인데 10억이 넘는다니 놀랐다 또 과장님께서 자랑스레

말씀하신 한 가지 잉크 농도 조절을 자동으로 하는 기계가 보급된

곳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었다 원래는 사람이 눈으로 보고 수정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재판을 찍을 경우 초판과 동일한 색상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있지만 보진재는 기계가 자동으로 조정해주어 수월한

작업을 할 수 있다고 하셨다

매염실도 보고 제본실도 구경했다 인쇄된 종이를 접지하고 제본을

마친 후 마지막으로 제단을 하면 책이 완성되어 나왔다 그 모든

과정을 보고 난 후 서 과장님이 건넨 완성된 책의 무게는 보통의

그것보다 조금 더 무겁게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윤전실이었다 견학 당일은 작업이 없어서

비어있던 윤전실이지만 윤전실이 주는 무게감은 컸다 윤전실은

롤(roll)로 인쇄하는 곳으로 8개의 롤이 양면 인쇄를 하고 건조와

접지까지 한 번에 가능한 기계도 있었다 대량생산을 위한 곳으로

주로 교과서나 EBS 학습지를 인쇄한다고 하셨다

12시 20분 견학 끝

1시간을 조금 넘긴 견학을 끝내고 밖으로 나오니 코가 따갑고 목이

말랐다 기계가 먼지를 빨아들여준다고는 하지만 수없이 많은

종이가 존재하는 공간에서의 종이 냄새는 강력했던 것이다 책이

제작되는 과정은 실제로 보니 다양하고 복잡했다 자동화가 많이

되어있지만 사람의 손길 없이는 절대 완성될 수 없는 과정들을 보며

책이 완성되기까지의 노력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lsquo책이 어떻게

만들어진다rsquo를 배우다가 lsquo책이 이렇게 만들어진다rsquo를 보니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예비 출판 마케터의

길로 들어선 후에 새로운 것을 보고 배울 수 있었는데 보진재 견학은

그 중에서도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책을 완성시키기 위한 모든 과정이

저마다의 몫을 하고 있었다 서울출판예비학교 졸업 후 출판계에

들어섰을 때 나는 과연 어떤 몫을 할 수 있을까 남은 2개월을 조금은

더 열정적으로 보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마케터반 11기 최다은

1 일일탈

학교 밖 견학 후기

피부로 와 닿는 책의 감촉 책의 냄새 책의 소리 보진재에서 책이 인쇄되는 과정을 만나다

필름과 인쇄판이 만들어지는 과정

25

우리가 이제 각자 편집자 마케터 디자이너가 되어 책 만드는 일을

시작하면 우리의 책은 이곳에서부터 그 lsquo탄생rsquo을 시작할 것이다 책의

근간이 되는 종이가 만들어지는 곳 한솔제지 공장에 다녀왔다 학기

초에 책을 파는 서점을 견학한 뒤 그 다음으로 출판사 종이에 활자를

찍어내는 인쇄소 그리고 마지막으로 lsquo종이rsquo를 만드는 제지 공장을

찾은 것이다 책이 만들어지는 순서대로라면 우리가 다녀온 순서를

거꾸로 해서 다녀왔어야 했지만 우리는 반대로 실제 과정을 거슬러

올라간 것이다 이렇게 거슬러 올라가는 과정에서 오히려 편집자란

직업에 겸허해질 수 있었다 가끔은 편집자가 책을 만드는 모든

과정 위에 군림하는 것 같이 느껴지지만 책의 물성을 만들어내는

거대한 기계 앞에서 우린 한없이 작아지기도 한다 lsquo한 권의 책rsquo이

만들어지려면 이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함을 이해해야 했다 이렇게도

복잡하고 힘겹게 만들어지는 책의 가치를 한 번 더 깊이 생각하게 된

계기였다 책이라는 건 의미가 담긴 조각들의 집합체이자 종이를

보기 좋게 물성화한 것 이론적으로야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눈으로 보고 느끼는 것과는 천지차이다

날씨마저 좋았던 9월 11일 평소보다 한 시간이나 이른 8시

30분에 세 반 학우들은 눈도 제대로 못 뜬 채 집합했다 대전까지

간다니 마치 여행가는 것 같은 살짝 들뜬 기분까지 안고 아침도 못

챙겨먹고 나왔을 우리를 생각해서 빵과 우유까지 준비한 한솔제지

측의 세심한 배려에 감동했다 배도 채우고 부족한 잠도 보충해가며

2시간 넘게 달려 신탄진 공장에 도착했다 도착하자 보이는 우리를

환영하는 현수막에 2차로 감동했다 우리를 위해 정말 많은 준비를

하셨구나 느낀 순간이었다

신탄진 공장 강당에 들어가서 간단한 공장 소개를 먼저 들었다

그리고 뒤이어 종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경청했다 수업 때보다

학생들의 집중력이 더 높아 보였던 건 내 착각이었길 종이는

1퍼센트의 펄프와 99퍼센트의 물로 이루어진단다 그래서 전반적인

공 정 의 대 부 분 은 물 을 처 리 하 기 위 한 과 정 이 나 다 름 없 었 다

생각보다 종이는 순수한 물질이라고 생각했다 종이(paper)의

어원은 이집트의 파피루스(papyrus)에서 왔다고 한다 중국의

lsquo채륜(蔡倫)rsquo이라는 사람이 제일 먼저 발명했고 고려시대에

일본으로 넘어간다 일본에 가장 마지막으로 넘어갔지만 종이의

기술력은 현재 일본이 가장 좋다 원료rarr초지rarr코팅 등의 공정을 거쳐

종이가 완성되는데 마지막 코팅 공정을 여자의 화장에 비유한 것

역시 기억에 남는다 코팅이 그렇게나 대단한 과정이라니

공장 안으로 들어가서는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시끄러워서 설명을

제대로 듣진 못했지만 앞서 들었던 설명을 떠올리며 기계들을

관찰했다 인쇄소에서 본 광경들도 거대하고 박력 있었지만 여긴

그보다 더 거친 느낌이었다 책은 서점에 놓여있을 때는 그렇게

얌전하건만 태어날 땐 이렇게 시끄럽다 또한 막 태어난 종이는

거대하고 또 거대했다 다들 마치 거대한 두루마리 휴지 같다고들

했다

견학을 다 마치고 다시 대전 공장으로 이동해 다 같이 점심 식사를

했다 기대 이상으로 맛있는 밥에 또 감동 더 힘내서 견학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아쉽게도 대전 공장 안에는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라 그 힘()을 발휘하진 못했다 대전 공장은 신탄진 공장과

다르게 책에 쓰이는 것이 아닌 제품 포장용 박스 종이컵 등 다른

용도에 쓰이는 종이를 만드는 곳이었다 그 과정의 차이를 눈으로

비교하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마지막으로 좋은 선물까지 손에

받아들고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다시 서울로 향했다

언제나 시작은 중요하다 각자의 일에 빠져들게 되면 점점 잊게 될

그 시작을 눈에 담고 오래 기억하기 위해 다녀왔다고 생각한다 요즘

초심을 잃었다는 생각이 종종 드는데 책에게도 초심이 있다면 바로 이

곳일까 시작의 의미에 대해 다시 곱씹어보았다

편집자반 11기 박혜원

우리의 글과 그림이 펼쳐질 종이의 탄생 한솔제지 신탄진 공장 견학

거대한 롤(상) 한솔제지 공장 앞에서 (하)

26

화양연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삶과 문학에 취하다

편집자반 한국문학 동아리 lsquo공감rsquo 그 대담의 현장

훗날 서울출판예비학교를 떠올릴 때 가장 즐거운 시간으로 기

억되는 날들은 동아리 활동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들의

화양연화(花樣年華)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 중

의 하루를 소개한다 문예창작학과를 전공한 문학소녀 김한나

학우를 필두로 창단된 편집자반 내 한국문학 동아리 lsquo공감rsquo은

모임 전에 한국작가를 한 명 정해 단편 두 편을 함께 읽고 키워

드나 질문을 스스로 뽑아 글을 써왔다 모여서 때로는 소설의

플롯이나 주제 문체에 대한 열띤 토론을 하고 때로는 작가의

외모()와 같은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며 삼천포로 빠지기도 했

다 우리끼리만 듣기엔 아쉽다 이 즐거운 대화를 모두에게 들

려주고 싶었다 이날 모임에선 김영하 작가의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단편집 속의 두 단편 lsquo엘리베이

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이하 엘리베이터)rsquo와 lsquo사진

관 살인사건(이하 사진관)rsquo에 대해 이야기했다 여기서는 lsquo엘리

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rsquo를 읽고 토의한 내용을

실었다

한나 참고로 김영하는 사람의 욕망에 대해 천착하는 작가야

그런 특성이 엘리베이터에는 안 나와 있는데 사진관에서는

잘 드러나 있어

상화 백가흠 작가에게 소설창작론 강의를 들었는데 그분이

소설의 기법을 설명하면서 알레고리랑 아이러니를 얘기했어

알레고리가 인물이나 소재를 비유적으로 설명하는 거래 예를

들어 핸드폰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다른

것에 핸드폰을 빗댐으로써 소설을 풀어가는 거

야 아이러니는 속도감 있게 이야기를 전개함으

로써 부조리나 모순을 드러내는 건데 김영하가

아이러니의 대표적인 작가래 단편인데도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내면보다는 사건이 일어나는

걸로 소설을 끌어가는 작가 우리가 지난 모임

에서 성석제를 굉장한 이야기꾼이라고 했잖아

그런데 난 김영하가 훨씬 이야기꾼스럽게 느껴

졌어 속도감 있고 lsquo이렇게 몰입을 할 수 있나rsquo

싶고 지난 모임들에서 읽었던 손보미나 편혜영

소설의 경우는 분위기나 주인공의 심정 내면에

의미를 부여해 야 했는데 김영하의 소설은 덮

자마자 아이러니가 느껴지면서 lsquo아 세상은 왜

이래rsquo 말하게 만들었어

법열 나는 엘리베이터 읽고 딱 lsquo뫼비우스의 띠rsquo가 생각났거든

뫼비우스의 띠가 안하고 겉이 구분이 안 되잖아 끝과 시작이

어딘지도 모르고 lsquo나rsquo가 겪는 상황이 현실인지 아닌지 구분이

안 되는 느낌 마지막에 lsquo나rsquo가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가 존재

하기는 했는지 혼란스러운 느낌을 받잖아 그게 앞의 환상적

인 부분이랑 맞물리면서 하나가 되는 느낌이라 뫼비우스의 띠

가 생각났어

상화 lsquo나rsquo가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구해주려고 고분군투하

다가 나중에 자기가 엘리베이터에 갇히잖아

오권 낀 남자의 발을 보면서 느꼈던 감상이 사실은 자기를 구

하고 싶었던 마음인 거지

(일동 오~ 그렇게도 볼 수 있네)

오권 무한도전의 무한상사 특집도 생각났어 뜬금없이 휴지

사용하는 길이에 대해 회의하는 장면에서 엘리베이터는 갇힌

사회 서로를 돌아보지 않는 사회를 의미하는 것 같아

한나 나는 반대로 오히려 엘리베이터를 희망적인 존재로 봤

거든 아파트도 그렇고 회사도 그렇고 각자 자신의 공간 안에

서 살다가 서로 만날 수 있는 장소는 엘리베이터 밖에 없으니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김영하 지음

문학동네 20100216

동아리 후기

27

까 lsquo나rsquo가 회사 엘리베이터 안에 여자와 같이 갇히잖아 사실

은 갇히지 않았으면 대화도 안하고 지나쳐 갔을 텐데 남자는

자기가 아침부터 버스 사고도 나고 성추행범으로 몰렸다고 얘

기하고 또 남자의 담배 피워도 되냐는 말에 여자는 담배에 대

한 불평불만을 속사포처럼 얘기하고 엘리베이터라는 공간이

아니었다면 이런 대화 자체가 없었겠지

오권 엘리베이터 타면 사람들이 하나같이 층수 바뀌는 것만

쳐다보고 있잖아

상화 요즘은 스마트폰

오권 자기 얘기를 하고 싶은 것 같아 하지만 상대의 얘기는

안 들어 lsquo너의 얘기는 관심 밖이지만 내가 불편한 것에 대한

얘기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하겠어rsquo라는 느낌

한나 그리고 우스웠던 게 볼일 보고 휴지 몇 칸 쓰는지 회의에

서 얘기하는 건hellip 사실 굉장히 사적인 얘기잖아 (일동 하하

하) 서로에 대해 다른 얘기는 일절 하지 않으면서 회의 내용은

개인적이고 사적이라니 아이러니한 거지

수경 진짜 웃기지 않았어 lsquo나rsquo가 자원 재활용 문제에 대한 중

대 보고가 있다고 계속 빨리 가야한다고 했던 게 겨우 그거야

상화 겨우 이딴 회의하려고 지금 엘리베이터에 낀 사람 놔두

고hellip 생명이 더 중요한데 지금 휴지 구하려고hellip

(일동 하하하)

한나 lsquo나rsquo가 불쌍했던 이유가 자기한테 닥친 일들은 lsquo할 수 없

지 뭐rsquo 이런 식으로 넘기는데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 걱정하고

갇힌 여자 걱정하고hellip 정작 자기 걱정은 안 해

오권 영화 lt라이터를 켜라gt 봤어 조폭들한테 얻어맞으면서

도 주인공은 무조건 자기 라이터만 찾겠다고 그러거든 이 소

설의 lsquo나rsquo와 비슷한 느낌이 들더라고 그 영화에서는 라이터가

주인공의 존재를 투영하는 소재거든 lsquo나rsquo는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구해야만 자기가 산다는 느낌을 받은 거라 해석하면

너무 나간 건가

법열 아니요 형이 아까 지적해준 게 와 닿았어요 그 고군분

투가 결국 자기를 구하려는 노력이라는 지적이요

상화 그나마 lsquo나rsquo가 이 소설에서 제일 인간적이지

수경 어딘가 찌질한 느낌도 들어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와

lsquo내rsquo가 동류라고 자각하고 연민을 갖는 느낌이었거든 lsquo나rsquo가

인간적이고 윤리적이라는 생각은 나는 글쎄hellip 더 적극적으

로 할 수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 자기 사이클에서 벗어나

지 않는 한도 내에서 걱정만 하잖아 소설 안에서 비극과 희

극이 번갈아 가며 나타나는데 트럭과 버스가 충돌했을 때

lsquo나rsquo는 lsquo버스 카드 일로 충돌하지 않게 되어 적이 기뻤다rsquo고

생각해 버스 운전사는 트럭 백미러에 가슴이 받혀서 죽었는

지도 모르는데 lsquo다행히 나는 허리가 좀 뻐근한 것만 빼면 별

다른 상처가 없는 듯했다rsquo 이런 생각들을 하는 게 좀 섬뜩했

민희 사람은 다 이중성을 가지고 있잖아 나를 보는 듯했어

만약 학교 가는 길에 엘리베이터에 낀 사람을 봤다면 그렇

지만 나도 얼마나 바빠 몇 분 늦으면 지각 체크 당하고 출석

80퍼센트를 못 채울 수도(일동 웃음) 있는 상황이라면 내

가 그 남자를 구할 수 있을까 일단 지나치고 119에 전화하려

고 했으나 핸드폰이 없는 상황에 나도 처할 수 있는 거잖아 나

만 생각하는 잔인한 면도 내 안에 있고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

도 내 안에 있어 이런 찌질한 모습도 나고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정의롭게 구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상화 기준이 다른 것 같아 lsquo나rsquo 정도면 착하다고 생각했거든

수경 주변 사람들이 약간 마네킹 같지 않아 주인공 주변에

장치되어있던 다른 사람들이 너무 비인간적이기 때문에 lsquo나rsquo

가 돋보이는 거지 lsquo나rsquo는 지극히 평범한 우리 모습 같아 내가

어떻게 할 생각은 없고 궁금하기만 한 거야

민희 그 궁금함과 찜찜함도 죄책감이라 생각돼 아 내가 어떻

게 해줬어야 했나

한나 책임 회피일까

상화 그래서 나는 키워드 뽑은 것 중 하나가 119야 구해주고

싶으면 직접 내 손으로 잡아 빼주던가 엘리베이터를 들어 올

릴 사람을 모아야 했는데 신고 생각만 하잖아 이미 이건 누

가 대신 해결해줘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그나마 우리

사회에서 사고를 수습해주는 건 119밖에 없고 조선시대에는

119같은 거 없고 마을 사람들이 모여 구해줬을 텐데 어쩔 수

28

없는 현대인의 단상이긴 해 현대가 분업사회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들 바쁘고 삶이 개인화 파편화되어 있으니까 119 같

은 집단이 필요한 거지 그래서 난 119를 신의 영역이라고 썼

어 lsquo나rsquo는 119를 거의 신적인 존재처럼 생각하잖아 부르면 모

든 게 해결될 것처럼 핸드폰 빌리고 공중전화 찾고 그런데 막

상 교통사고 현장에서 119 대원에게 면대 면으로 얘기를 했더

니 그들은 무슨 그따위 장난을 하냐고 말해 구조도 실은 신이

아니라 사람이 하는 일이고 그 사람이 관심이 없으면 묻히는

거지

오권 전화를 거는 것과 직접 구해주는 것의 차이가 큰 것 같아

자기가 구해주는 건 적극적인 행동이고 119에 전화하는 건 스

스로 최소한 양심적이긴 하다고 여기는 행동

수경 그런데 엘리베이터에 낀 사람을 아무 것도 모르는 일반

인이 어떻게 했다가는 더 위험해질 수도 있잖아

오권 맞아 사회가 시스템화하고 고도화될수록 각자의 업무가

분업화되었고 전문분야가 생겨났으니까 옛날 같았으면 애 낳

으면 그냥 동네 아주머니가 애 받고 어미가 죽으면 젖동냥 다

녔는데hellip 이젠 사고가 나면 생각이 119에 먼저 미치는 시대가

된 거지

수경 그래서 어딘가에 널브러져 다친 인간이 아니라 엘리베이

터라는 공간에 낀 남자를 설정한 것 아닐까 엘리베이터는 현

대화의 상징이잖아

한나 lsquo나rsquo도 어쩔 수 없는 게 출근 시간에 쫓겨서 시계를 계속

봐 먹고 사는 일이니까

오권 출근했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다시 집으로 돌아가

낀 사람을 구해주면 굉장히 희망찬 소설로 바뀔 텐데hellip (일동

웃음)

수경 이 소설로 현대 사회의 폐단은 다 얘기할 수 있겠는데

상화 김영하는 천재인 것 같다

누군가 그리고 잘생겼잖아

누군가 잘생긴 거야

누군가 지적인 분위기가 있어서 좋아 (한참 얘기)

한나 또 인상 깊었던 게 구두에 집착하는 거 lsquo나는 날렵한 치

타처럼hellip 구두를 가지고 엘리베이터에서 빠져나오는 데 성공

했다 허탈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rsquo는 구절

오권 자살한 사람들이 구두를 가지런히 벗어놓는 이미지가 무

슨 상징처럼 있잖아

한나 신발 한 쪽 없이 다녀봤어 계속 기우뚱대서 내가 걷거

나 서 있을 때 내가 잘못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여기서 lsquo나rsquo가

그랬을 거야 사실 lsquo나rsquo처럼 사는 게 정상인데 세상이 잘못된

건데

상화 이 소설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감정표현이잖아 하루 종

일 얼마나 힘들었겠어 처음으로 감정표현을 하니까 불쌍했어

오권 휴머니즘 불쌍론 또 나왔네(일동 웃음) 그럼 이제 사진

관으로 넘어가볼까hellip

편집자반 11기 이상화

2929

책씹는맛 01 냄새라는 경이 lt감각의 박물학gt 후각편을 읽고

냄새에는 언어가 없다 어휘가 부족한 우리는 말문이 막힌

채 불명료한 쾌감과 자극의 바다에서 말을 찾을 수밖에

없다1

이 말은 다이앤 애커먼의 『감각의 박물학』 제 1장 후각에

나오는 구절이다 냄새를 글로 쓰고자 하는 나의 시도가 늘

실패로 귀결되는 이유를 이 구절에서 찾았다 작가의 말처

럼 냄새에 대해 쓴다는 건 언어 밖 세계로 나갔다가 다시

언어로 되돌아오는 길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길에서 헤매

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후각이라는 감각에서 길을

잃는 것은 낭만적인 일이기도 하다 lsquo냄새의 뇌관을 건드리

면 모든 추억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기rsquo2 때문이다 냄새 하

나에 수많은 추억들이 줄줄이 기억의 회로 위로 떠오른다

예를 들면 바다 냄새 하나만 상상해도 그와 관련된 수많

은 기억들이 머릿속에 뒤섞인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바닷가와 관련된 그 모든 추억들이 기억의 영사막에서 한

편의 옴니버스 영화 형태로 내게 다가온다 난 내 기억의

관객이 되어 그 영화를 보다가 견딜 수 없는 그리움에 젖는

다 이 영화에 대한 감상문을 적으려면 나는 말문이 막힌

다 그래서 몇 글자 적다가 결국 글을 쓰기를 멈춘다 굳이

언어로 표현하자면 쓸 수 없는 그리움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1 『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옮김 작가정신 20040720

A Natural History of the Senses(1991) 17쪽

2 같은 책 18쪽

결국 lsquo언어가 존재하는 세계에서 경이는 언어의 칼날 아래

서 쉽게 해부되고 냄새는 자주 혀끝에서 맴돈다rsquo3 냄새의

숭고함 앞에서 우리는 말을 멈춘다 이처럼 냄새는 말할 수

없는 자연의 경이로움과 닮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lsquo냄새가 우리의 마음을 그토록 강하게 움직이는 것은 부분

적으로 그 이름을 부를 수 없기 때문rsquo4이라고 한다 저자는

그렇기에 사람들이 냄새를 lsquo분 냄새 비슷한 펭귄 냄새가

나는 호화로운 화장실 냄새가 나는rsquo 같은 말로 표현할 뿐

이며 냄새에 대한 이름은 주어져 있지 않다고 말한다 또

한 종류는 같아도 강약과 농도가 다른 각각의 냄새에 이름

을 붙여줄 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우린 일상적으로 냄새를

맡으면서도 그 냄새와 멀리 떨어져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명명되지 않은 것은 결국 잊히는 게 아닐까 부를

수 없음에서 오는 경외감과 숭고함이 있을지라도 냄새는

말해져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말할 수 없는 것에 자꾸

만 침묵하기만 해야 할까

감각도 모험의 영역이 될 수 있다 세계 일주만이 세상을

아는 길일까 lsquo나rsquo를 온전히 아는 것이 역설적으로 세상과

가까워지는 일인지도 모른다 나를 알기 위한 길 중 하나가

내가 가지고 있는 감각을 이해하고 그걸 언어로 표현하는

일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어쩌면 우리와 제일 가깝지만 말

하기 낯선 감각 후각을 이해하는 일이 중요한지도 모른다

냄새라는 감각 속에서 우리 모두 길을 잃고 헤매고 모험해

보자 냄새에 나름의 이름을 지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

리고 농도에 따라 냄새를 구분하는 일도 해보자 냄새라는

경이는 우리를 더 이상 침묵으로 이끌지 않을 것이다

디자인반 11기 백가은

3 같은 책 22쪽

4 같은 책 22쪽

『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 옮김

작가정신 20040720

A Natural History of the Senses(1991)

3030

02 현실을 전복시키는 비현실

모호함이 주는 환상성

20세기 중반 중남미 소설은 전통적인 사실주의 서사 구조

를 깨고 현실과 환상을 혼합시키는 새로운 글쓰기 방식으

로 세계문학의 중심에 선다 이 시기에 주목 받은 일련의

중남미 작가들을 가리켜 lsquo붐 세대 작가rsquo라 칭하는데 아르

헨티나의 환상문학 작가 코르타사르는 이 붐 세대 작가군

의 선구자이자 대표 주자 격인 인물이다 그러나 그 문학적

성과와 명성이 무색하게도 국내 독자들에겐 그의 이름이

아직 생소한 것이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에서는 그

의 작품이 중남미 단편 선집에나 몇 편이 번역되었을 뿐 본

격적으로 소개된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중남미 문학을 공부했고 그의 몇 안 되는 번역 작품을 인

상 깊게 읽었던 독자 입장에서 이번에 출간된 코르타사르

의 단편집『드러누운 밤』은 가뭄의 단비처럼 반가운 신간

이다

환상 문학이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J R R 톨킨 류의 판타

지소설 혹은 쥘 베른이나 아이작 아시모프 류의 SF소설을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코르타사르의 환상문학은 이들 범

주에 들어가지 않는다 코르타사르 작품에서 나타나는 환

상이란 토도로프가 정의한 바 있는 환상 그러니까 자연적

인 것과 초자연적인 것 사이의 망설임에서 발생하는 환상

에 가깝다 따라서 판타지소설의 lsquo현실과 동떨어진 환상rsquo

혹은 SF소설의 lsquo설득력 있고 현실감 있는 환상rsquo을 기대하

는 독자라면 아마 십중팔구 그의 작품을 읽고 실망할 것

이다 어쩌면 이게 무슨 환상문학이냐는 푸념을 늘어놓을

지도 모르겠다 역시 가장 좋은 것은 선입관을 버리고 책을

읽는 것이다

코르타사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lsquo모호함rsquo이다 인물이나

배경 묘사에서 제시되는 기본적인 정보도 모호하고 사건의

전개 양상이 가진 당위성도 모호하다 작품 내에서 주요한

스토리 라인을 담당하는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경계도 모

호하며 심지어는 화자의 정체마저 모호한 작품도 있다 이

런 모호함의 향연은 짙게 깔린 안개와도 같아서 독자들은

그 속에서 한 치 앞도 제대로 내다볼 수 없음은 물론이요

이미 지나간 사실조차도 자신이 맞게 인식한 것인지 확신

할 수 없을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무엇이 진짜인지

독자들의 판단을 망설이게 만드는 이런 상태야말로 코르

타사르의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는 환상이란 개념이다 독

자들은 이 환상 속에서 그저 전방을 주시하며 천천히 나아

갈 수밖에 없다

다행스럽게도 코르타사르는 독자들의 시련을 헛되게 하지

않는다 작품의 시작점 일상 세계에 우연히 침투한 lsquo비현

실적인 것rsquo은 안개 속에서 알게 모르게 자신의 지분을 늘려

나간다 그리고 작품의 종점에 다다른 독자들은 비현실이

현실이 되고 현실이 비현실이 되는 이전과는 전혀 새로운

세계와 마주할 것이다 다시 말해 필연과 이성의 법칙이 지

배하는 세계가 우연과 환상이 지배하는 세계로 변하는 것

이다 이러한 세계의 전복은 마치 여기저기 단서를 흩뿌리

고 사람들을 알쏭달쏭하게 만들었다가 결말부에서 모든

것을 폭발시키는 추리소설 혹은 반전영화를 보는 듯한 재

미를 선사한다

그렇다면 코르타사르가 이 소설들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책을 다 읽고 난 독자라면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의문점이다 코르타사르는 자신이 환상문학을 쓰는

이유를 ldquo법칙이나 원칙 혹은 인과관계나 특정한 심리 또

는 잘 그려진 지리학과 같은 체계에 의해 세상이 지배되고

있다는 것에 반대rdquo하고 ldquo우리가 잘 모르며 우리에게 잘 다

가오지 않는 새로운 질서에 관해 생각해보기 위함rdquo이라고

설명한다 짧게 말해 이 세상에 필연이란 존재하지 않으

며 자신은 그것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말이다 이

게 전부다 순문학이라면 거장의 문학이라면 이보다 더 심

오한 통찰 혹은 비판이 있을 것이란 생각에 문장 속 숨겨진

의미를 발견하고자 머리를 싸맬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조

언을 하자면 독서는 독서 그 자체로 즐기면 된다 적어도 이

책에서는 그렇다 모호함과 예상외의 전개 속에서 재미를

느끼고 코르타사르가 묘사하는 세계의 불가지(不可知)성

을 어렴풋하게나마 인식할 수 있다면 이미 그것으로 충분

하다

편집자반 11기 강귀욱

『드러누운 밤』

훌리오 꼬르따사르 지음 박병규 옮김

창비 20141124

La noche boca arribaJulio Cortazar

31

03 얼어붙은 자의식의 바다를깨뜨리고 생명을 불어넣는 책 『데미안』

데미안을 읽고 나서야 그 동안 내가 두 발 딛고 서 있던 땅이

굳고 단단한 대지가 아니라 얼어붙은 바다에 불과했음을 알

았다 데미안은 도끼를 가져와 이 꽁꽁 언 바다를 가차 없이

내리 찍었다 그리고 말했다 얼어붙은 바다를 단단한 땅인

줄 알고 사느니 그 얼음을 깨부수고 그 속에 빠져 죽기 살기

로 허우적대라고 그러면 그 속에서 너는 너 자신을 똑바로 마

주하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성장할 것이라고

주인공 싱클레어도 그를 둘러싸고 있던 세계를 깨뜨려 나가

며 성장한다 그 모든 과정은 결국 진정한 자기 자신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가 깨뜨린 가장 큰 세계는 바로 자신의 사고 체계였다 세상

을 바라보는 기존의 이분법적이던 시각 고정되고 획일화된 시

각을 버렸다 주인공은 세계 안에 심지어는 자신 안에도 선하

고 악하며 밝고 어두운 양극단의 것들이 공존함을 이해하고

두 세계를 끌어안았다 주인공은 귀와 눈을 가리던 장막을 걷

어내 버리고 세상을 바로 보게 되었다 상극인 것들의 괴리로

이루어진 이 모순된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곧 자신 안의 부조

화 또한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스스로에게 다가서는 첫 걸음

이었다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양극단의 세계 사이에서 싱

클레어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며 흔들리기를 반복했다 이

때 그에게는 삶을 지탱할 중심축이 없었다 항상 내면이 아닌

외부 세계에서 자신이 속할 자리를 찾아 헤맸다 그가 비로소

온전한 자신을 만난 순간은 어느 편으로도 치우침 없이 스스

로의 기준으로 홀로 서게 되었을 때였다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 이 길은 당신이 내면에 있는 모

순되는 두 세계 한없이 나약하고 뒷걸음치는 비열한 모습들

과 정갈하고 깨끗한 곧은 힘들을 동시에 직시하는 순간에 시

작된다 그리고 이 길은 두 세계 속에 들어가 이리저리 휩쓸리

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세계를 밟고 우뚝 올라서서 스스로

가 중심이 됨으로써 앞으로 펼쳐진다

이제 lsquo자아를 찾으라rsquo는 지루하고 흔한 이야기가 더 이상 빤

하거나 우습지 않다 묵직한 울림이 되어 나를 흔든다 그냥

나만 붙잡고 흔드는 것이라면 손사래 쳐 뿌리치겠는데 내가

밟고 있던 땅 속해 있던 세계를 뿌리째 흔들어 버린다 읽는

내내 속이 답답하고 나에게 화가 난다 그런데 이렇게 마구

혼나면서 이상하게도 후련한 구석이 있다 호통을 치는 데미

안이 사실은 우리를 응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막연

하고 무기력한 안개에 휩싸여 있을 때 데미안은 그만의 방

식으로 우리에게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준다 물론 갈 방향을

정해준다거나 각자의 사정을 듣고 상담을 해주는 것은 아니

다 오로지 궁지로 몰아세울 뿐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사람들

은 잊고 있던 lsquo나 자신rsquo을 일깨운다 아 그동안 lsquo나rsquo에 대해 생

각해본 적이 있던가 라는 정도만이라도 좋다 이 물음이 바로

여정의 시작이니까

그렇게 스스로에게 묻고 나면 더 이상 전처럼 살 수는 없기 때

문이다 아니라면 자기 자신에게 면목이 없을 것이다 이 무서

운 책이 우리를 혼내고 몰아치면서도 여전히 영원한 고전이자

필독서로 사랑 받는 이유다

lsquo우리들 속에는 모든 것을 아는 한 사람이 있다rsquo고 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혼이 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혼

이 났다는 것은 자신 안에 있는 lsquo그 사람rsquo이 말을 하기 시작했

다는 뜻이니까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목소리가 희미하

고 멀리 있다 하여도 숨죽여 귀 기울이는 일 자체가 자신에게

로 가는 과정임을 잊지 말고

편집자반 11기 배예리

『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민음사 20001220

Demian Die Geschichte von Emil

Sinclairs Jugend(1919)

31

03 얼어붙은 자의식의 바다를깨뜨리고 생명을 불어넣는 책 『데미안』

데미안을 읽고 나서야 그 동안 내가 두 발 딛고 서 있던 땅이

굳고 단단한 대지가 아니라 얼어붙은 바다에 불과했음을 알

았다 데미안은 도끼를 가져와 이 꽁꽁 언 바다를 가차 없이

내리 찍었다 그리고 말했다 얼어붙은 바다를 단단한 땅인

줄 알고 사느니 그 얼음을 깨부수고 그 속에 빠져 죽기 살기

로 허우적대라고 그러면 그 속에서 너는 너 자신을 똑바로 마

주하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성장할 것이라고

주인공 싱클레어도 그를 둘러싸고 있던 세계를 깨뜨려 나가

며 성장한다 그 모든 과정은 결국 진정한 자기 자신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가 깨뜨린 가장 큰 세계는 바로 자신의 사고 체계였다 세상

을 바라보는 기존의 이분법적이던 시각 고정되고 획일화된 시

각을 버렸다 주인공은 세계 안에 심지어는 자신 안에도 선하

고 악하며 밝고 어두운 양극단의 것들이 공존함을 이해하고

두 세계를 끌어안았다 주인공은 귀와 눈을 가리던 장막을 걷

어내 버리고 세상을 바로 보게 되었다 상극인 것들의 괴리로

이루어진 이 모순된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곧 자신 안의 부조

화 또한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스스로에게 다가서는 첫 걸음

이었다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양극단의 세계 사이에서 싱

클레어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며 흔들리기를 반복했다 이

때 그에게는 삶을 지탱할 중심축이 없었다 항상 내면이 아닌

외부 세계에서 자신이 속할 자리를 찾아 헤맸다 그가 비로소

온전한 자신을 만난 순간은 어느 편으로도 치우침 없이 스스

로의 기준으로 홀로 서게 되었을 때였다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 이 길은 당신이 내면에 있는 모

순되는 두 세계 한없이 나약하고 뒷걸음치는 비열한 모습들

과 정갈하고 깨끗한 곧은 힘들을 동시에 직시하는 순간에 시

작된다 그리고 이 길은 두 세계 속에 들어가 이리저리 휩쓸리

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세계를 밟고 우뚝 올라서서 스스로

가 중심이 됨으로써 앞으로 펼쳐진다

이제 lsquo자아를 찾으라rsquo는 지루하고 흔한 이야기가 더 이상 빤

하거나 우습지 않다 묵직한 울림이 되어 나를 흔든다 그냥

나만 붙잡고 흔드는 것이라면 손사래 쳐 뿌리치겠는데 내가

밟고 있던 땅 속해 있던 세계를 뿌리째 흔들어 버린다 읽는

내내 속이 답답하고 나에게 화가 난다 그런데 이렇게 마구

혼나면서 이상하게도 후련한 구석이 있다 호통을 치는 데미

안이 사실은 우리를 응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막연

하고 무기력한 안개에 휩싸여 있을 때 데미안은 그만의 방

식으로 우리에게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준다 물론 갈 방향을

정해준다거나 각자의 사정을 듣고 상담을 해주는 것은 아니

다 오로지 궁지로 몰아세울 뿐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사람들

은 잊고 있던 lsquo나 자신rsquo을 일깨운다 아 그동안 lsquo나rsquo에 대해 생

각해본 적이 있던가 라는 정도만이라도 좋다 이 물음이 바로

여정의 시작이니까

그렇게 스스로에게 묻고 나면 더 이상 전처럼 살 수는 없기 때

문이다 아니라면 자기 자신에게 면목이 없을 것이다 이 무서

운 책이 우리를 혼내고 몰아치면서도 여전히 영원한 고전이자

필독서로 사랑 받는 이유다

lsquo우리들 속에는 모든 것을 아는 한 사람이 있다rsquo고 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혼이 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혼

이 났다는 것은 자신 안에 있는 lsquo그 사람rsquo이 말을 하기 시작했

다는 뜻이니까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목소리가 희미하

고 멀리 있다 하여도 숨죽여 귀 기울이는 일 자체가 자신에게

로 가는 과정임을 잊지 말고

편집자반 11기 배예리

『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민음사 20001220

Demian Die Geschichte von Emil

Sinclairs Jugend(1919)

32

박세길 인터뷰

진정한 역사가는 과거에 파묻히지 않는다옥(獄)에서 옥(玉)을 만든 작가 박세길 인터뷰

박세길 저자는 처녀작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로 80년대

대표 역사서 자리를 꿰찬 분입니다 1986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감되었을 때 감옥에서 역사책을 읽으며

사회 모순에 대해 고민했고 출소하자마자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집필했습니다 정권 탄압 속에서 왜곡된

현대사를 바로 잡았다는 의미를 지닌 이 대표작은 오랫동안

고시생과 대학생들의 필독서로 꼽혔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읽은 박세길 저자의 저서는 지난 6월 출간한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입니다 기사를 쓰고 편집할 때 청년 세대를

겨냥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박세길 저자는 역시나

청년들의 미래에 큰 관심을 갖고 계셨습니다 취업을

눈앞에 둔 서울출판예비학교 학생들이 가져야 할 자세를

여쭸습니다

출판학교에서 강의하신 한 선생님은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가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와

더불어 80년대 인문학의 양대

산맥이라고 하셨습니다

책의 성공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강의

요청이 많이 들어왔어요 먹고사는

경제적인 문제도 해결됐습니다

몇 부 팔렸는지는 잘 모릅니다

출판사에서 기밀 사항이라고

하더군요 요즘은 마케팅 차원으로도

몇 쇄 몇 부인지 밝히지만 그때는

세금 문제를 피해가기 위해서인지

쉬쉬하던 시절이었나 봅니다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는 대학

선후배끼리도 많이 물려주는 책이라고

들었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의 쉬운 설명이

좋았습니다 더불어 어떤 사명감을 안고 썼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완성하기에 앞서 어떤 목표를

두셨나요

청년 세대가 외환위기 이후 집중적인 희생양으로 전락하면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드러내면서 여기에

머물지 않고 청년 세대의 잠재력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들이 역사 무대 한복판에 진출해 자기 몫을 다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습니다

역사 분야는 시장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역사 혹은 현대사가 주목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통해 얘기하자면

80년대 후반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lsquo왜곡된

역사를 바로 알자rsquo는 시각 교정의 욕구가 있었던

차에 제 책이 나름 부응했는지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시기가 적절했던 셈이죠

2012년 대선 후 역사 분야가 잠시 반짝했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금세 시들었다고

하더군요 당시 역사 분야 책들이 일반 독자가

읽기에 다소 어렵거나 출간한 지 오래된 것들

위주였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돋을세길

출판학교에서 강의하신 한 선생님은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가 유홍준 교수의

책의 성공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강의

하더군요 요즘은 마케팅 차원으로도

선후배끼리도 많이 물려주는 책이라고

역사 분야는 시장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역사 혹은 현대사가 주목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통해 얘기하자면

80년대 후반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lsquo왜곡된

역사를 바로 알자rsquo는 시각 교정의 욕구가 있었던

차에 제 책이 나름 부응했는지 큰 반향을

읽기에 다소 어렵거나 출간한 지 오래된 것들

위주였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의 저자

33

2012년 대선 후 역사 분야가 관심을 받았던 것은

보수층의 재집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한

불안 때문일까요

맞습니다 그러나 마땅한 책이 없어서 그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역사 분야에서 베스트셀러를 내기

위해서는 시기가 맞아 떨어지고 내용 또한 대중이 원하는

것을 담고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를 편집한 lsquo생각정원rsquo

출판사의 정희용 편집자에게 감사 표시를 하셨습니다

어떤 편집자를 선호하시나요

간단합니다 편집자는 철저히 독자 입장에서 독자와 작가

사이의 간극을 줄여줘야 합니다 예를 들면 어려운 내용을

과감히 생략하고 다음 기회로 미루도록 설득한다거나 좌파

운동권 색채가 너무 강한 문장을 조금 순화하는 것 등입니다

어떤 내용이 이번 책에 꼭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선택을

도와줘야 합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을 작가님께서 직접

독자들에게 홍보하신다면 카피 문구를 짧게 제시할 수

있을까요

청년 세대 희망 찾기 갑갑한 현실을 어떻게 타개할 수

있을지 그 답을 찾아보는 길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취업 후 첫발을 내디딜 서울출판예비학교 11기

학생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출판 또한 돈을 벌어야한다는 기본 전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출판계를 지켜본 결과 뭔가 소명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오래

살아남았습니다 출판학교 역대 대표 중 일부는 나와 관계가

있는 사람들인데 모두 고유한 소명의식을 갖고 출판계에

뛰어들었습니다 때로는 상업주의 안에서 재주도 부리곤

했지만 어쨌든 분야 내에서 고유한 캐릭터를 구축했습니다

출판학교 학생들이 출판 상황을 이해하고 자신을 역할을

정하는 개인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비전 중심의 경영을

하는 회사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지만 개인 비전을 기업

비전으로 나아가 사회 비전으로 접목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과거에 안주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부분을

출판계에서는 SNS 등 인터넷 환경을 통한 마케팅으로

이해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SNS망 자체에서 무엇이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건 사람과

사람이 서로 소통하고 공감하는데 필요한 도구입니다

콘텐츠 중심의 사고가 중요하고 그것이 전제되지 않을 때

SNS는 착각에 불과하며 성공할 수 없습니다 필요한 콘텐츠

중심의 사고를 가지고 철저하게 진행하지 않으면 그 공간에서

허망하게 헤엄만 칠 뿐 입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SNS에서

맥없이 헤엄치다 익사하는 경우를 볼 수 있을 겁니다

콘텐츠와 마케팅의 영역을 하나로 보는 것과 따로

보는 것 어떤 것이 독자를 위하는 것일까요

출판 마케팅은 책을 기획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에서부터

개입돼야 하고 그 과정에 독자를 참여시키는 방식을

고민해야 합니다 미국 네브래스카주립대학의 이상문

교수는 lsquo밀실 안에서의 혁신은 끝났다rsquo고 얘기합니다

개방된 체제에서 독자 곧 소비자 사용자의 참여 하에 함께

만들어갈 때 혁신은 이뤄진다고 합니다 출판사의 비전이

브랜드로 연결될 때 독자는 자발적으로 의견을 주고받고

싶어 할 겁니다

마케터반 11기 이창환

디자

인 사

공예

Page 15: 서울출판예비학교 웹진 _5호 2015

15

완전 눈물 바다였잖아 (우리 반 오빠들이 운다는 건 상상할

수 없네요) 다음 해에는 애들이 완전 유머 코드여서 웃다

끝났지

출판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된 계기나 동기는

무엇인가요

나는 8기부터 시작했는데 7기 담임이던 김장환 씨가 나를

불렀어 공동 담임을 해달라고 lsquo그러지 뭐rsquo 이렇게 시작했지

직장은 2008년도까지 다녔고 프리랜서로 활동하면서

여기저기서 강의를 하고 있었어 한겨레 문화센터에도

23년쯤 있었지 (편집자보다 이렇게 선생님으로 있는 게 더

즐거우세요) 지금은 진짜 만들고 싶은 책 함께 작업해보고

싶은 저자 그런 게 아닌 한 직업으로 신간을 꾸준히 내는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당신들은 눈이 반짝반짝해서 업계에 들어와야겠다고

준비해서 오잖아 그 친구들이 1년차 3년차 되는 것을

지켜보고 있으려니까 내가 그 나이쯤 사회생활을

시작해 고민했던 지점이 보이는 거지 그 때

이걸 알았더라면 하는 안타까움이 있어서

여러분들이 애틋해지지

요즘 최대의 관심사는 무엇인가요

저녁에 후배들에게 가르칠 강의를 하다

보니 국어 공부의 필요성을 여실히 느끼고

있어 출판 동네에서 20년 넘게 일한 사람이

공부해온 것을 한 번 정리해서 후배들한테 줄 필요도

있겠구나 싶고 (뭔가 일 얘기가 아닐 줄 알았는데요

하하)

은퇴 후에 무엇을 하고 싶으신가요

오늘은 말이 절로 나오는 걸 하하 마당 있는 시골집 텃밭을

일구며 역사에 길이 남을 인간과 세상을 통찰하는 대작

소설을 발표하겠다 (와)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이 되고 싶으신가요

다시 태어나고 싶지가 않아hellip(웃음) 지구에서는 내

대에서 멸종하기로 했다

저희들에게 속 시원하게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자신 있게 해라

생각해보면 다들 자기가 못났어 키도 좀 더 컸으면

좋겠고 외모도 마음에 안 들고 내가 저 때 저렇게

했으면 지금 달라졌을까 부럽기도 하고

그런데 사실 부질없는 거거든 세상 사는

힘이 실력에만 있는 게 아니고 태도의 문제가 더

클 때가 많아 내 것이 아닌 것에 목매고 있을

필요가 없어 신입사원으로 전혀 모르는 곳에

뚝 떨어졌을 때 저들의 세계 속에 혼자 쏙

들어간 기분이니까 일단은 주눅이 들지

하지만 거기서 살아가야 하지 않겠어

둘러보면서 아 저기가 화장실이구나 사람들은

이런 걸 이렇게 하는구나 파악하고 나면 좀

수월해지잖아

마지막으로 대망의 이상형 월드컵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정우 주원 김수현 유아인 이렇게

4강전으로 시작하겠습니다

(하정우와 주원 중에서는 누가 더 좋으세요) 하정우지

주원이 최근에 좋아지긴 했는데 아직도 하정우를 따라올 수

없어

(그럼 김수현유아인 중에서는요) 유아인이지

(너무 확고하셔요 드라마 lt밀회gt 보셨나요) 집에선 케이블

방송도 안 나오고 관심 갖게 되었을 땐 너무 유행이라

안보고 말았지 대신 영화 lt완득이gt는 봤다

(이제 결승인데요 마지막으로 하정우와 유아인은요)

아인이는hellip 나한테 좀 과분한 것 같아(웃음) 하정우가 삐질

것 같은데 그래서 둘 다 잃는 거야hellip

편집자반 11기 김수진 이상화

lt베테랑gt의 악랄한 재벌 2세유아인

lt프로듀사gt의 어리버리 신입PD

김수현

lt용팔이gt의 천재 외과의사

주원

lt 암 살 gt 의 순 정 마초

하와이 피스톨하정우

하정우

16

한대웅 선생님

『동백꽃』의 주인공 같은 그 남자착하디착한 순하디순한 한대웅 선생님의 속마음

좀처럼 화내시는 일도 없고 허허 웃기만 하시고hellip 하지 못한

말들을 땀으로 발산하듯 여름이면 온몸이 열정으로 흠뻑

젖으시는 분 세상 어디에도 없을 착한 남자 마케터반의

한대웅 선생님이다 그에게 던진 몇 가지 질문에 돌아온 것은

가장으로서의 고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 아직도 앳된

소년 같은 순수함이 묻어나는 답변들이었다 이제 그를 좀 더

깊게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평소에 칼라(collar) 티셔츠를 즐겨 입으시던데

좋아하시는 옷인가요

좋아한다기보다는 제 딴에는 편하게 입을 수 있는 듯해서

즐겨 입고 있습니다 또 아내가 이런 종류의 옷을 많이

사주기도 하고요

선생님께 lsquo출판rsquo이란 무엇인가요

출판은 lsquo꿈을 이루는 판도라의 상자rsquo lsquo내가 가진 능력에 가장

맞는 일rsquo입니다

출판을 업으로 삼지

않으셨다면 어떤 일을

선택하셨을까요

모르겠네요 아마도 운명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요 다만 다음과

같은 3가지 생각은 해보았습니다

첫째 고등학교 시절 성적이 조금

더 좋았다면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해서

지금쯤이면 텔레비전이나 영화에 나오는 큰 전투함의

함장이 되지 않았을까요

둘째 대학교에 입학하지 못했다면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로 이민을 가서 장사를 하거나 농부로 농장을

운영하면서 그곳 사람으로 국적을 바꾸고 살고 있지

않을까요 고등학교 3학년 때 대학교 입학 시험에

떨어지면 다른 나라로 가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다는

마음의 준비를 했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 모 일간지에 실린

해외에서 성공적인 삶을 사는 한국 사람들에 관한 기사를

꼼꼼하게 읽었었거든요

셋째 대학교 3학년이나 4학년 때 신춘문예까지는 아니라도

대학교 교내 문학상 정도를 받았다면 아마도 그 결과에

탄력을 받아 시나리오 작가나 연극 연출가의 길로 가려고

하지 않았을까요

ID와 블로그에 lsquo봄rsquo이라는 단어가 들어있는데 봄을

좋아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그 ID를 만들 무렵 저의 미래는 꽤나 불확실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바꿔 말하면 어떻게

돈을 벌어야 하고 어떻게 자아 성취를

해야 하는지가 불확실하고

힘들었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lsquo봄rsquo이라는

단어를 좋아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누구나

알다시피 봄은 겨우내

얼어 있던 것들이

새롭게 싹을 틔우고

새롭게 기지개를 펴는

계절이죠 물론 봄

자체가 주는 느낌도

좋고요 그래서 lsquo봄rsquo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던 것

같습니다

블로그는 서울출판예비학교에서

일을 시작한 후 만들었습니다

블로그에 lsquo봄바람rsquo이라는 의미를 부여한

것은 ID를 만들던 때의 생각이 이어진 것이겠지요 요즘에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이 많이 사라진 것 같습니다 만약

앞으로 블로그나 ID를 만든다면 아마도 lsquo여름rsquo 혹은 lsquo풍성함rsquo

아니면 lsquo내가 원하는 세상을 상징하는 어떤 것rsquo을 이름으로

사용할 것 같습니다

편집자로 첫 시작을 하셨는데 나중에 출판 마케터로

일하게 된 동기를 알고 싶어요

시장 상황을 분석하고 이에 맞게 마케팅 계획을 세우고

사람이나 집단을 만나고 힘을 합쳐 뭔가 새로운 결과를

만들어 내는 일이 재미있었습니다

은퇴 후에 꿈꾸시는 삶이 있으신가요

아직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20대와 30대

초반에 꿈꾸던 것들을 lsquo은퇴 후에 여유가 생긴다면 이것들을

해볼까rsquo라고 간혹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현재겠죠 출판에서 뭔가를 이루려고 열심히 계획하고

실행하다 보면 은퇴 후의 삶도 더 풍요로워지지 않을까요

알고싶어 마케터반

17

일하실 때 다뤘던 책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무엇인가요

입사 초기 편집을 하거나 시장조사를 하고 제가 출간 여부에

대한 판단을 내렸던 책들이 기억납니다 『펠레』 자서전은

제가 편집자로 있을 때 출간했던 책인데 주요 일간지의

서평란 메인을 장식했던 책입니다 출간 시점을 맞추기 위해

촉박한 기간 동안 밤새가며 책을 만들었습니다 출간 시점에

대한 판단이 정확히 맞았고 그 결과 기대 이상으로 많은

서평을 받았던 책입니다

서울예비출판학교 선생님으로 오신 계기를

알고 싶어요

전에 다니던 출판사를 그만둔 후

개인적으로 뭔가를 해보려고 고민

중이었습니다 그러나 능력이

부족하다 보니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았죠 그러던 중에

출판학교에서 일해 볼 것을

제안 받았고 저도 출판학교

학생들처럼 면접을 보고 이

학교에 오게 되었습니다

일을 하게 되었을 때 매우

즐거웠습니다

다시 출판사 마케터로 돌아갈

생각이 있으신가요

아니오 이유는 2가지인데 첫째는 제 나이가

48세입니다 다른 업종도 그렇지만 출판 산업에서도

48살에 마케터로 직장인의 생활을 이어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죠 정말 현실적인 고민이죠 게다가 출판학교에서

여러분과 소통하며 제 지식을 전수하는 일이 재미있습니다

물론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언젠가 저만의 꿈을

찾아갈 수 있겠죠

평소 몇 권의 책을 읽으시나요 최근 읽은 책 중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요

예전에 많이 읽을 때는 1주일에 2권 정도 읽었습니다

황석영의 『장길산』과 홍명희의 『임꺽정』 이문열의

『삼국지』를 읽을 때 짬짬이 쉬는 시간을 비롯해 지하철에서

보내는 시간까지 거의 모든 시간을 책을 읽으며 보냈습니다

요즘에는 1달에 1~2권 정도 읽는 것 같네요 최근 읽은

책 중에 기억에 남는 책은 『내 아이와 어떻게 대화할

것인가』(율리아 기펜레이테르 저 써네스트 2006)와 『내

아이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율리아 기펜레이테르

저 써네스트 2009)입니다 제목만으로도 왜 이 책을

추천하는지 금방 눈치 챌 수 있을 것입니다 아이가 둘

있는데 첫째는 15살 딸이고 둘째는 10살 아들입니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lsquo어떻게 하면 아이와 싸우지 않고

윽박지르지 않고 아이의 자존감을 높여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성실하고 삶의 열정과 꿈이 넘쳐나는 아이로

키울까rsquo 같은 고민을 항상 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단비처럼 다가왔습니다 위의 2권의 책을 읽고 몇

가지 중요한 것들을 배웠습니다 아이와 어떻게 소통하고

어떻게 대화해야 하는지 아이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등등 이전에 『부모와 아이 사이』(하임 G 기너트

등 저 양철북 2003)를 읽고 아이를 이해하는 법에 대해

큰 인상을 받았는데 이 책도 그 연장선에서 저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아들과 딸을 좀 더 이해하게 되고 그

결과 아이들에게 화를 내거나(저도 나약한 인간인데 화가

날 때가 심심치 않게 있거든요) 아이들의 긍정적인 싹을

본의 아니게 꺾어 버리는 경우가 줄었다고 할까요 게다가

이 책은 lsquo부모와 아이 사이rsquo만이 아니라 lsquo친구와 친구 사이rsquo

lsquo회사 내부 구성원 사이rsquo에서 소통하는 데도 많은 영감을

제공합니다 출판학교 학생들과 소통할 때도 이해의 폭을

넓혀주고 긍정적인 소통을 하는 방법을 제공해 줍니다

이제 수료를 앞둔 마케터반 학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으시다면

개인별로 처한 처지와 조건에 따라 다르겠지만 다음과 같은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 연인을 사랑하듯 출판에 대해서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보세

- 이 길이 나에게 최선의 길인가 생각해 보세요

- 목표를 세우고 지금부터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한 후 그것을 어떻게 이루어 나갈 것인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보세요

저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스스로의 내면을 단단하게 할 중요한

질문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앞으로도 끊임없이

새로운 답을 찾아나갈 질문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케터반 11기 이장열 이창환

18

선생님은 주말에 뭐하세요

무조건 가족과 함께hellip

만약 편집 디자인을 안 하셨다면 무슨 일을 하고

계실까 궁금해요

어찌 됐든 개인 사업자로 살았을 듯 윗사람 비위 맞추는

것을 너무 못하므로hellip

선생님 주량이 어떻게 되세요 주사가 있으세요

몸 상태 좋고 안주 많이 먹으면 1병(클래식으로)

좋은 출판 디자인을 생각한다

심우진middot안광욱 선생님

lsquo멋rsquo이라는 것이 폭발한다뼛속까지 디자이너스러운 심우진 선생님

멀리서도 눈에 띄는 큰 키에 멋들어진 베레모 디자인반의

심우진 선생님 되시겠다 서울출판예비학교에서 lsquo멋rsquo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가끔은 조금 키 큰 학생처럼 학생들

속에 잘 어우러지는 사람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모습은

여기까지다 그를 조금 더 알고 싶다 지금까지의 그를

만들어왔을 lsquo심우진의 생각들rsquo이 궁금했다

선생님은 무엇을 드시고 그리 멋지시나요

학생들의 사랑 밥 김치

일본 유학길에 오르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lsquo동아시아rsquo lsquo근대rsquo가 당시 나의 화두였으므로 그리고

스기우라 고헤이 선생을 뵈러

첫 직장을 다녔을때 일의 강도()나 다니는 동안

마음은 또 어떠셨는지

출판 쪽 첫 직장은 lsquo정디자인rsquo인데 lsquo나는 왜 이렇게 디자인을

못할까rsquo 답답해했던 기억이 있어요 그러나 매우 즐거웠고

술도 자주 마셨죠 아직도 당시의 OB들과 가깝게 지내요

lsquo둥지rsquo 같은 곳이죠

선생님께서 생각하는 완벽한 판면이란

디자이너의 삶의 방식과 콘텐츠의 삶의 방식이 녹아든 판면

선생님의 피로회복 방법은

알고싶어 디자인반

19

디자인반의 히어로좋은 출판 디자인을 생각한다 안광욱 선생님

여자 화장실 앞에 있어 인파로 북적대는 디자인반 교실을

학생들과 함께 굳건히 지켜온 분 디자인반 학생들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애정공세를 아끼지 않는 분 안광욱

선생님에게 물어본 4가지

디자이너로서 첫 직장을 다닐 때의 마음이

어떠셨나요

잘하고 싶었는데 못해서 힘들었지 사수에게 하루 서너

시간씩 야단맞으면서 했다오 매일 2호선 양화대교에서 뛰어

내리고 싶었는데hellip 이 부분은 내일 수업 때 얘기해줄게^^

선생님께서 생각하는 좋은 출판 디자인이란

세상을 향한 사랑과 희망이 듬뿍 담긴 디자인

출판 디자인을 안 했다면 지금 무슨 일을 하고

계실까요

모르겠네 그냥 선녀 옷 훔치는 나무꾼이 되어 있을 듯^^

어떤 주사가

있으신지 궁금해요

말이 조금 더 많아지고 장소 불문 쿨쿨 자 특별한 주사는

없는 듯

디자인반 11기 이소현 백가은 사공예원

디자

인 사

공예

20

편집자반 김영준 학우가 그린

『이 외로운 사람들아』 일러스트

기억에콕

수업 후기

ldquo우리에게는 lsquo일탈rsquo이 필요합니다rdquo

잠깐 딴 짓을 하는 사이에 귓가에 들려온

한 문장이 나를 사로잡았다 배는 부르고

따 사 로 운 햇 살 에 잠 이 쏟 아 지 는 시 간

오후 1시 30분 시간을 칼같이 맞춰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선 그는 딱 봐도 지루하고

고리타분해 보이는 첫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순간 눈으로 들어온 이미지는 뇌로 흘러갔고

뇌는 망설임 없는 확신으로 귀에 명령을

전달했다 그렇게 귀는 이미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내 들려올 그렇고 그런 뻔한

이야기에 대하여

눈의 판단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의 한마디

한마디는 파격이었다 아니 어쩌면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였지만 누구도 자신 있게

내던지지 못하는 말들을 서슴지 않고 내뱉는 그

거침없음에 신선함을 느낀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의 관심을 돌려놓았던 lsquo일탈rsquo에 대한 그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lsquo일탈을 하라rsquo는 말이

lsquo제멋대로 하라rsquo는 의미가 아니라 어떤 규칙을

벗어나는 행위를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다르게

생각하는 방식을 몸으로 익히게 된다는 것

새로운 것을 생각해내는 창의성이라는 힘은

당연히 새로운 경험에서 나온다는 것이었다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니 강의를 듣던

친구들의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때 보고 들었던 그의 말과 행동이 우리에게는

딱 딱 한 강 의 실 에 서 느 끼 는 새 로 운 경 험

lsquo일탈rsquo이었다

그 와 의 만 남 은 계 속 이 어 졌 다 이 곳

서 울 출 판 예 비 학 교 에 입 학 한 이 후 로 는 좀

더 완 벽 한 일 주 일 단 위 로 시 간 이 흐 르 기

시작했는데 매주 쌓여가는 새로운 배움 뒤에는

수많은 물음이 불쑥불쑥 솟아났고 그는 마치

예상을 했다는 듯이 일주일에 한 번씩 나타나

우리의 설익은 궁금증을 해소해주고 떠나갔다

첫 만남에서는 책이라는 대상과 책을 대하는

편집자의 자세에 대해 이야기하며 큰 그림을

그려주었고 다음엔 저자와의 관계 맺기 그

다음엔 스스로 만들어 가야할 편집자의 자기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담백하게 들려주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네 번째 만남이었다

누구도 쉽게 이야기하기 어려운 완벽하게

솔직해지기는 더더욱 어려운 자신의 좌절과

실패를 그는 담담하고 진솔하게 소개해주었다

모든 성공에는 대개 7할의 실패가 전제되어

있기 마련인데 성공에 이르기까지 거치는

우 리 가 lsquo실패rsquo라고 명 명하는 것들이 사실

진짜 실패가 아니라 성공의 다른 이름이라는

그의 말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성공도 실패도

어 느 한 지 점 에 서 내 리 는 판 단 인 것 이 고

결 국 성 장 하 고 성 숙 한 다 는 것 은 성 공 과

실패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lsquo차이rsquo를 얼마만큼

발견하느냐 하는 것에서 결정된다는 그의 말이

가슴을 뜨겁게 했다 비로소 lsquo편집자rsquo로서가

아닌 한 lsquo사람rsquo으로서의 그가 보이기 시작했다

담담하게 말을 하고 있지만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아프고 쓰린 기억을 후배들에게

들 려 주 는 그 에 게 서 진 심 이 전 해 져 왔 다

사랑하는 일에 대한 함께 걸어갈 동지들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 참 고마웠다

어느덧 마지막 만남이 찾아왔다 한 권의

책을 만들면서 진행했던 편집의 과정을 예로

실 제 적 인 이 야 기 를 우 리 에 게 마 지 막 으 로

들려주었다 편집의 능력은 지식과 정보에서

나온다는 것 그것은 단숨에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 꾸준히 쌓아가야 한다는 것 그래서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의 문제라는 것을 경험을

근거로 자신 있게 말해 주었다 이미 지나온

과거의 결과 대신 앞으로 걸어갈 길에 대한

희망을 들려주어서 그게 참 고마웠다

편집자반 일탈이 주는 파격 우리가 낳을 lsquo새로운 책rsquo과 편집자선완규 선생님과의 다섯 번의 만남이 키운 생각들

21

그 가 우 리 에 게 마 지 막 으 로 이 야 기 를

들려주었던 그날 이후 석 달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났다 나는 여전히 같은 강의실에 앉아

앞서 길을 걸어간 선배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고 조금씩 가까워지고 밝아져가는 내 앞에

놓인 길에 대해 생각한다 그러다 문득 마음이

무거워지고 막막해질 때면 종종 그의 말들을

떠올려 본다 그리고 그 생각의 끝에서 마음을

의지하며 함께 이 길을 걸어갈 따뜻한 선배가

하나 있다는 위로 한 줌을 발견한다

ps 선완규 선생님 고맙습니다 보고 싶어요

편집자반 11기 성준근

마케터반 강한 수면욕 환상과 환기

판형과 종이를 예술로 편입시키려는 영업자다빈치 출판사 박성식 대표 특강 후기

9월 23일 평소보다 점심을 많이 먹었던 날이다 잠을 며칠간 못 자 피곤했다

오후 1시 30분이 살짝 지나서 다빈치 출판사 박성식 대표의 특강이 시작됐다

다빈치 대표님은 처음 뵐 때부터 남다르셨다 서울출판예비학교 입학 면접에서

여자 술 담배를 각각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보셨다 lsquo솔직함을 어필해야

하는 순간인가rsquo하는 생각에 직설적으로 답했지만 lsquo더 문학적으로 얘기할 수

있었는데rsquo라는 후회를 안고 돌아왔다

마음과 다르게 첫 번째 시간은 정신없이 잠이 쏟아졌다 눈을 감고 귀 기울였지만

턱을 괸 채 버티는 동안 50분이 지났다 대표님께 캔 커피를 하나 드리고 맞이한 두

번째 시간 그 한 시간 동안 나는 현실 옆의 어떤 이상 내지는 환상을 본 것 같다 그동안

듣던 강의들을 놓고 lsquo이상적인 관점이다rsquo 혹은 lsquo현실적이다rsquo라고 구분했던 판단의 폭

자체가 좁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성식 대표님은 내 머리에 있던 lsquo책rsquo에 대한 인식을 전복시켰다 자본주의 출판의

몰락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시작됐다는 말 출판 기본 특성인 다품종 소량 생산은 돌아올

것이며 다품종 소량 생산을 넘어 다품종 소량 lsquo고급 생산rsquo을 추구하고 싶다는 말은 나를

달뜨게 했다 주류에 반하는 사고를 가진 중년의 개성과 내공에 교실 풍경이 환기됐다

교육 수단으로 책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지만 책은 그만큼 사회적 의무와 희생을

짊어져왔다 출세와 공부 앞에서 책이 가진 기호(嗜好)성은 변두리로 내몰렸다 책을

읽어야만 제대로 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분위기는 옳지 않다 독서는 성향의 범주지 성역이

돼선 안 된다 정보와 지식의 전달은 모바일 등에 넘겨주고 종이책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공동체로 돌아와야 한다 그게 원래 자리라는 대표님의 주장이 새롭고 강렬하다

자본주의 3대 원칙인 lsquo더 빨리 더 많이 더 싸게rsquo 체계는 표준화와 규격화를 동반하며

매우 효율적이다 현재 사용하는 종이는 자본주의 원칙에 최적화돼 있다 그러나 대표님은

인쇄기계로 소화하지 못하는 질감과 전혀 다른 발색을 지닌 lsquo종이rsquo에 주목했다 그 종이로

콘텐츠 종이 판형이 완벽하게 들어맞는 예술서를 만들고 시장을 설득한다면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책 판매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전했다 종이 자체가 책의 예술성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한지(韓紙)를 예로 들면서 훌륭한 텍스트와 이미지를 한 차원 끌어올리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많은 부수를 팔아야 성공한 출판 많은 부수를 파는 것을

목표로 하는 시대는 저물고 있다 기존 유통과 판매 방식

안에 갇혀서는 불황에 매몰될 뿐이다 소량의 고급화된

책을 꿈꾸는 것과 전시회를 책과 결합하는 것도 다른 길을

물색하는 과정이다

대표님은 10년 전부터 lsquo이 원고는 내가 누구보다 잘

만들겠다rsquo lsquo이 원고는 내가 못하면 누구도 못할 것 같다rsquo라는

생각이 든 책만 출간을 진행했다고 한다

강의 중간 자신의 독특한 철학을 전달하는 것에 대해 가벼운

염려를 하셨지만 이론적이고 실용적인 분야에 몸담더라도

예술적 사고의 유연성은 필요하다고 본다 돈과 인문정신을

구분하면서 필요할 때 양쪽에서 자극 받고 차용하는 것이 마케팅의 융통성과 힘을 기르는 길일 것이다

마케터반 11기 이창환

편집자반 김영준 학우가 그린

『이 외로운 사람들아』 일러스트

박성식 대표가 기획한 lsquo오름rsquo전

22

하늘

습탁은 농도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하늘

습탁은 농도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이 글은 심우진 선생님의 탁본 세미나 수업에 대한 우리들의 즐거운

기록이다 탁본은 습탁(濕拓)과 건탁(乾拓) 두 종류로 구별된다

습탁은 나타내고자 하는 물체 위에 물을 묻힌 후 종이를 그 위에

밀착시키고 먹물 묻은 솜방망이로 가볍게 두드려서 물체를 표현하는

방법이다 물체의 패인 부분을 제외하고 볼록한 부분의 모양대로

종이에 먹이 묻어 문자나 문양이 드러난다 건탁은 이름 그대로 물을

사용하지 않고 마른 상태의 먹인 고형묵(固形墨)을 사용한다 우리는

각자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사물과 자연을 이용해 탁본 작품을

만들고 서울출판예비학교 꼭대기 층에서 작품을 공유했다

디자인반 이 시간을 그대로 탁본할 수 있다면심우진 선생님의 탁본 세미나

저는 신문지를 구겨서 해봤어요

응 그런데 이건 방바닥 같은데

방바닥까지 묻어 나와 버렸네요

[학생들 하하하]

저는 일단 큰 나무 기둥을 떠봤고요

오솔길의 짚도 해보고 저희 집 바닥과

벽면도 신기해서 떠봤어요 집 벽면 중에

대리석도 있고 특이한 벽면이 많거든요

부잣집인가 보네

[학생들 깔깔깔]

승연

심우진 선생님

승연

승연

심우진 선생님

이건 파프리카인데 저희 집 개가 완성한 종이를 찢었어요

[학생들 하하하]

좀 작고 납작한 파프리카를 반으로 잘라서 습탁했어요 또

이건 철조망인데 용 비늘처럼 나와서 재밌었어요 아나콘다

같기도 하고 철조망이 날카로워서 습탁하니 종이가 자꾸

찢어져서 다시 하게 됐어요 근데 이거요hellip 남자친구

있으면 커플끼리 한 번 해보세요 한 명은 잡아주고 한 명은

습탁하고hellip 되게 로맨틱 성공적

자랑하는 거니

[학생들 깔깔깔]

수빈

수빈

심우진 선생님

혜민

정묵

처음에 나뭇잎이 세세하게 잘 나올 줄 몰랐는데 그

줄기의 질감이 잘 나왔고 버려진 타이어를 끌어서

생긴 모양으로도 습탁을 했는데 생각보다 잘 나와서

막상 찍어보면 생각과 다르다는 것을 느꼈어요

저도요 결과물이 뚜렷하게 안 나올 줄 알았는데

디테일이 잘 나타나 있었고 입체를 평면적으로

찍는 것 자체가 재밌었어요

수정

저는 빗자루를 해봤어요 너무 얇아서 안 나올

거라 생각했는데 빗자루 문양이 잘 나와서

재밌었고 머리카락도 해봤는데 머리카락은

끝 부분이 잘 나오는 편이에요 위쪽은 다

뭉쳐있는데 끝 부분은 펼칠 수 있으니까요

23

저는 결이 얇은 것들을 뜨는 것이 재밌었어요

머리카락처럼요 머리 긴 사람에게 부탁해서

눕히고 했어요 그리고 이건 얼굴인데요

처음에는 그냥 했는데 얼굴은 입체를 살리려면

스케치하듯 떠야 되요 결국 명암으로 입체감

조절을 해야 되죠 코가 너무 입체적이라 특히

힘들었어요

누구 얼굴이야

우리 언니hellip

[학생들 우와]

가은

심우진 선생님

가은

하얀

음각이 나왔을 때 너무 좋았고요하늘

습탁은 농도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소리

건 탁 보 다 는 습 탁 이 농 도 조 절 하 는 게

희 한 해 서 재 밌 었 어 요 농 도 조 절 이

관 건 이 거 든 요 먹 과 물 의 배 합 과

솜방망이가 먹물을 얼마나 흡수하는지 그

흡수량이 중요하고요

윤미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꽤 많은데 만져보면서 건탁을 뜨니까 좋았어요 전에

습탁할 때는 시멘트 벽 같은 걸 하다가 나뭇결을 하니까

살아있는 느낌이었어요 생각했던 것처럼 나와서

좋았고 솔방울이나 나뭇잎 같은 섬세한 것들은 제대로

나오지 않아서 아쉬웠어요 섬세한 것들은 습탁으로

해봐야겠어요 그래도 다양한 나무를 건탁해봐서

만족해요

소현

저는 일상적인 것들로 습탁을 해봤어요

처음에는 단순하게 오돌토돌한 느낌만

있 을 줄 알 았 는 데 색 다 른 느 낌 이 나 서

재밌었어요

탁본 세미나를 마치고 그 다음 주에 지하 강당에서 촬영하는 시간을

가졌다 촬영 후에 보정도 했다 나뭇잎의 결 무늬 타이어 자국

그리고 사람의 머리카락까지도 좋은 디자인의 재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보았고 나누었다 건탁과 습탁의 장단점을 이 수업으로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심우진 선생님의 이번 탁본 수업도 지난 활자

수업처럼 지식 습득은 물론이고 경험까지 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 시간들이 앞으로 출판 디자이너로서의 감각을 더 풍요롭게 해 주지

않을까

디자인반 11기 사공예원

하얀

음각이 나왔을 때 너무 좋았고요

습탁은 농도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솜방망이가 먹물을 얼마나 흡수하는지 그

흡수량이 중요하고요

윤미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꽤 많은데 만져보면서 건탁을 뜨니까 좋았어요 전에 꽤 많은데 만져보면서 건탁을 뜨니까 좋았어요 전에

이건 파프리카인데 저희 집 개가 완성한 종이를 찢었어요

[학생들 하하하]

좀 작고 납작한 파프리카를 반으로 잘라서 습탁했어요 또

이건 철조망인데 용 비늘처럼 나와서 재밌었어요 아나콘다

같기도 하고 철조망이 날카로워서 습탁하니 종이가 자꾸

찢어져서 다시 하게 됐어요 근데 이거요hellip 남자친구

있으면 커플끼리 한 번 해보세요 한 명은 잡아주고 한 명은

습탁하고hellip 되게 로맨틱 성공적

자랑하는 거니

[학생들 깔깔깔]

24

9시 30분 합정역 1번 출구 앞

ldquo누나rdquo 소리에 쳐다보니 반가운 공 총무의 얼굴이 보였다 정류장

앞으로 길게 늘어선 줄에 합류하여 파주로 날 데려다 줄 2200번

버스를 기다리고 있으니 반가운 얼굴들이 계속 나타났다 한 대의

버스를 보내고서야 겨우 2200번 버스에 탑승해 파주로 출발할 수

있었다

10시 15분 파주 lsquo다산교 앞rsquo 정류장 하차

4개의 정류장 총 57분이 걸린다고 알려준 N사 지도 어플의 정보와는

달리 30분 만에 파주에 도착했다 일찍 도착해 먹을 것을 찾아 헤맨

예비 마케터들은 편의점에서 주린 배를 채웠고 lsquo지혜의 숲rsquo을 살짝

염탐하며 11시까지 시간을 보냈다

11시 05분 보진재 2층

1912년 설립되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인쇄소인 보진재 관계자

분이 나와 간단히 인사 말씀을 하고 각 반의 인솔자를 소개해주셨다

마케터반의 인솔자는 서동관 과장님 디자인반 편집자반 마케터반

순으로 견학을 시작했다

11시 15분 보진재 견학 시작

제일 먼저 본 곳은 제판실이었다 필름 인쇄가 줄어들고 CTP로

대체되는 추세지만 어떤 분들은 여전히 필름 작업을 하고 계셨다

이유를 물어보니 서동관 과장님은 예전 필름이 남아 있기도 하고

출판사에 따라 필름을 고집하는 곳이 있다고 하셨다

한번에 5도 인쇄가 가능한 기계를 보는 중에 서 과장님이 말씀하셨다

ldquo한 유닛(unit)당 23억 정도 해요rdquo 그렇다면 유닛 다섯 개가

돌아가고 있으니 적어도 10억짜리 기계라고 내 눈에 보이는 건 그냥

낡고 큰 기계인데 10억이 넘는다니 놀랐다 또 과장님께서 자랑스레

말씀하신 한 가지 잉크 농도 조절을 자동으로 하는 기계가 보급된

곳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었다 원래는 사람이 눈으로 보고 수정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재판을 찍을 경우 초판과 동일한 색상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있지만 보진재는 기계가 자동으로 조정해주어 수월한

작업을 할 수 있다고 하셨다

매염실도 보고 제본실도 구경했다 인쇄된 종이를 접지하고 제본을

마친 후 마지막으로 제단을 하면 책이 완성되어 나왔다 그 모든

과정을 보고 난 후 서 과장님이 건넨 완성된 책의 무게는 보통의

그것보다 조금 더 무겁게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윤전실이었다 견학 당일은 작업이 없어서

비어있던 윤전실이지만 윤전실이 주는 무게감은 컸다 윤전실은

롤(roll)로 인쇄하는 곳으로 8개의 롤이 양면 인쇄를 하고 건조와

접지까지 한 번에 가능한 기계도 있었다 대량생산을 위한 곳으로

주로 교과서나 EBS 학습지를 인쇄한다고 하셨다

12시 20분 견학 끝

1시간을 조금 넘긴 견학을 끝내고 밖으로 나오니 코가 따갑고 목이

말랐다 기계가 먼지를 빨아들여준다고는 하지만 수없이 많은

종이가 존재하는 공간에서의 종이 냄새는 강력했던 것이다 책이

제작되는 과정은 실제로 보니 다양하고 복잡했다 자동화가 많이

되어있지만 사람의 손길 없이는 절대 완성될 수 없는 과정들을 보며

책이 완성되기까지의 노력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lsquo책이 어떻게

만들어진다rsquo를 배우다가 lsquo책이 이렇게 만들어진다rsquo를 보니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예비 출판 마케터의

길로 들어선 후에 새로운 것을 보고 배울 수 있었는데 보진재 견학은

그 중에서도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책을 완성시키기 위한 모든 과정이

저마다의 몫을 하고 있었다 서울출판예비학교 졸업 후 출판계에

들어섰을 때 나는 과연 어떤 몫을 할 수 있을까 남은 2개월을 조금은

더 열정적으로 보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마케터반 11기 최다은

1 일일탈

학교 밖 견학 후기

피부로 와 닿는 책의 감촉 책의 냄새 책의 소리 보진재에서 책이 인쇄되는 과정을 만나다

필름과 인쇄판이 만들어지는 과정

25

우리가 이제 각자 편집자 마케터 디자이너가 되어 책 만드는 일을

시작하면 우리의 책은 이곳에서부터 그 lsquo탄생rsquo을 시작할 것이다 책의

근간이 되는 종이가 만들어지는 곳 한솔제지 공장에 다녀왔다 학기

초에 책을 파는 서점을 견학한 뒤 그 다음으로 출판사 종이에 활자를

찍어내는 인쇄소 그리고 마지막으로 lsquo종이rsquo를 만드는 제지 공장을

찾은 것이다 책이 만들어지는 순서대로라면 우리가 다녀온 순서를

거꾸로 해서 다녀왔어야 했지만 우리는 반대로 실제 과정을 거슬러

올라간 것이다 이렇게 거슬러 올라가는 과정에서 오히려 편집자란

직업에 겸허해질 수 있었다 가끔은 편집자가 책을 만드는 모든

과정 위에 군림하는 것 같이 느껴지지만 책의 물성을 만들어내는

거대한 기계 앞에서 우린 한없이 작아지기도 한다 lsquo한 권의 책rsquo이

만들어지려면 이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함을 이해해야 했다 이렇게도

복잡하고 힘겹게 만들어지는 책의 가치를 한 번 더 깊이 생각하게 된

계기였다 책이라는 건 의미가 담긴 조각들의 집합체이자 종이를

보기 좋게 물성화한 것 이론적으로야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눈으로 보고 느끼는 것과는 천지차이다

날씨마저 좋았던 9월 11일 평소보다 한 시간이나 이른 8시

30분에 세 반 학우들은 눈도 제대로 못 뜬 채 집합했다 대전까지

간다니 마치 여행가는 것 같은 살짝 들뜬 기분까지 안고 아침도 못

챙겨먹고 나왔을 우리를 생각해서 빵과 우유까지 준비한 한솔제지

측의 세심한 배려에 감동했다 배도 채우고 부족한 잠도 보충해가며

2시간 넘게 달려 신탄진 공장에 도착했다 도착하자 보이는 우리를

환영하는 현수막에 2차로 감동했다 우리를 위해 정말 많은 준비를

하셨구나 느낀 순간이었다

신탄진 공장 강당에 들어가서 간단한 공장 소개를 먼저 들었다

그리고 뒤이어 종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경청했다 수업 때보다

학생들의 집중력이 더 높아 보였던 건 내 착각이었길 종이는

1퍼센트의 펄프와 99퍼센트의 물로 이루어진단다 그래서 전반적인

공 정 의 대 부 분 은 물 을 처 리 하 기 위 한 과 정 이 나 다 름 없 었 다

생각보다 종이는 순수한 물질이라고 생각했다 종이(paper)의

어원은 이집트의 파피루스(papyrus)에서 왔다고 한다 중국의

lsquo채륜(蔡倫)rsquo이라는 사람이 제일 먼저 발명했고 고려시대에

일본으로 넘어간다 일본에 가장 마지막으로 넘어갔지만 종이의

기술력은 현재 일본이 가장 좋다 원료rarr초지rarr코팅 등의 공정을 거쳐

종이가 완성되는데 마지막 코팅 공정을 여자의 화장에 비유한 것

역시 기억에 남는다 코팅이 그렇게나 대단한 과정이라니

공장 안으로 들어가서는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시끄러워서 설명을

제대로 듣진 못했지만 앞서 들었던 설명을 떠올리며 기계들을

관찰했다 인쇄소에서 본 광경들도 거대하고 박력 있었지만 여긴

그보다 더 거친 느낌이었다 책은 서점에 놓여있을 때는 그렇게

얌전하건만 태어날 땐 이렇게 시끄럽다 또한 막 태어난 종이는

거대하고 또 거대했다 다들 마치 거대한 두루마리 휴지 같다고들

했다

견학을 다 마치고 다시 대전 공장으로 이동해 다 같이 점심 식사를

했다 기대 이상으로 맛있는 밥에 또 감동 더 힘내서 견학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아쉽게도 대전 공장 안에는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라 그 힘()을 발휘하진 못했다 대전 공장은 신탄진 공장과

다르게 책에 쓰이는 것이 아닌 제품 포장용 박스 종이컵 등 다른

용도에 쓰이는 종이를 만드는 곳이었다 그 과정의 차이를 눈으로

비교하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마지막으로 좋은 선물까지 손에

받아들고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다시 서울로 향했다

언제나 시작은 중요하다 각자의 일에 빠져들게 되면 점점 잊게 될

그 시작을 눈에 담고 오래 기억하기 위해 다녀왔다고 생각한다 요즘

초심을 잃었다는 생각이 종종 드는데 책에게도 초심이 있다면 바로 이

곳일까 시작의 의미에 대해 다시 곱씹어보았다

편집자반 11기 박혜원

우리의 글과 그림이 펼쳐질 종이의 탄생 한솔제지 신탄진 공장 견학

거대한 롤(상) 한솔제지 공장 앞에서 (하)

26

화양연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삶과 문학에 취하다

편집자반 한국문학 동아리 lsquo공감rsquo 그 대담의 현장

훗날 서울출판예비학교를 떠올릴 때 가장 즐거운 시간으로 기

억되는 날들은 동아리 활동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들의

화양연화(花樣年華)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 중

의 하루를 소개한다 문예창작학과를 전공한 문학소녀 김한나

학우를 필두로 창단된 편집자반 내 한국문학 동아리 lsquo공감rsquo은

모임 전에 한국작가를 한 명 정해 단편 두 편을 함께 읽고 키워

드나 질문을 스스로 뽑아 글을 써왔다 모여서 때로는 소설의

플롯이나 주제 문체에 대한 열띤 토론을 하고 때로는 작가의

외모()와 같은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며 삼천포로 빠지기도 했

다 우리끼리만 듣기엔 아쉽다 이 즐거운 대화를 모두에게 들

려주고 싶었다 이날 모임에선 김영하 작가의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단편집 속의 두 단편 lsquo엘리베이

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이하 엘리베이터)rsquo와 lsquo사진

관 살인사건(이하 사진관)rsquo에 대해 이야기했다 여기서는 lsquo엘리

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rsquo를 읽고 토의한 내용을

실었다

한나 참고로 김영하는 사람의 욕망에 대해 천착하는 작가야

그런 특성이 엘리베이터에는 안 나와 있는데 사진관에서는

잘 드러나 있어

상화 백가흠 작가에게 소설창작론 강의를 들었는데 그분이

소설의 기법을 설명하면서 알레고리랑 아이러니를 얘기했어

알레고리가 인물이나 소재를 비유적으로 설명하는 거래 예를

들어 핸드폰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다른

것에 핸드폰을 빗댐으로써 소설을 풀어가는 거

야 아이러니는 속도감 있게 이야기를 전개함으

로써 부조리나 모순을 드러내는 건데 김영하가

아이러니의 대표적인 작가래 단편인데도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내면보다는 사건이 일어나는

걸로 소설을 끌어가는 작가 우리가 지난 모임

에서 성석제를 굉장한 이야기꾼이라고 했잖아

그런데 난 김영하가 훨씬 이야기꾼스럽게 느껴

졌어 속도감 있고 lsquo이렇게 몰입을 할 수 있나rsquo

싶고 지난 모임들에서 읽었던 손보미나 편혜영

소설의 경우는 분위기나 주인공의 심정 내면에

의미를 부여해 야 했는데 김영하의 소설은 덮

자마자 아이러니가 느껴지면서 lsquo아 세상은 왜

이래rsquo 말하게 만들었어

법열 나는 엘리베이터 읽고 딱 lsquo뫼비우스의 띠rsquo가 생각났거든

뫼비우스의 띠가 안하고 겉이 구분이 안 되잖아 끝과 시작이

어딘지도 모르고 lsquo나rsquo가 겪는 상황이 현실인지 아닌지 구분이

안 되는 느낌 마지막에 lsquo나rsquo가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가 존재

하기는 했는지 혼란스러운 느낌을 받잖아 그게 앞의 환상적

인 부분이랑 맞물리면서 하나가 되는 느낌이라 뫼비우스의 띠

가 생각났어

상화 lsquo나rsquo가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구해주려고 고분군투하

다가 나중에 자기가 엘리베이터에 갇히잖아

오권 낀 남자의 발을 보면서 느꼈던 감상이 사실은 자기를 구

하고 싶었던 마음인 거지

(일동 오~ 그렇게도 볼 수 있네)

오권 무한도전의 무한상사 특집도 생각났어 뜬금없이 휴지

사용하는 길이에 대해 회의하는 장면에서 엘리베이터는 갇힌

사회 서로를 돌아보지 않는 사회를 의미하는 것 같아

한나 나는 반대로 오히려 엘리베이터를 희망적인 존재로 봤

거든 아파트도 그렇고 회사도 그렇고 각자 자신의 공간 안에

서 살다가 서로 만날 수 있는 장소는 엘리베이터 밖에 없으니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김영하 지음

문학동네 20100216

동아리 후기

27

까 lsquo나rsquo가 회사 엘리베이터 안에 여자와 같이 갇히잖아 사실

은 갇히지 않았으면 대화도 안하고 지나쳐 갔을 텐데 남자는

자기가 아침부터 버스 사고도 나고 성추행범으로 몰렸다고 얘

기하고 또 남자의 담배 피워도 되냐는 말에 여자는 담배에 대

한 불평불만을 속사포처럼 얘기하고 엘리베이터라는 공간이

아니었다면 이런 대화 자체가 없었겠지

오권 엘리베이터 타면 사람들이 하나같이 층수 바뀌는 것만

쳐다보고 있잖아

상화 요즘은 스마트폰

오권 자기 얘기를 하고 싶은 것 같아 하지만 상대의 얘기는

안 들어 lsquo너의 얘기는 관심 밖이지만 내가 불편한 것에 대한

얘기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하겠어rsquo라는 느낌

한나 그리고 우스웠던 게 볼일 보고 휴지 몇 칸 쓰는지 회의에

서 얘기하는 건hellip 사실 굉장히 사적인 얘기잖아 (일동 하하

하) 서로에 대해 다른 얘기는 일절 하지 않으면서 회의 내용은

개인적이고 사적이라니 아이러니한 거지

수경 진짜 웃기지 않았어 lsquo나rsquo가 자원 재활용 문제에 대한 중

대 보고가 있다고 계속 빨리 가야한다고 했던 게 겨우 그거야

상화 겨우 이딴 회의하려고 지금 엘리베이터에 낀 사람 놔두

고hellip 생명이 더 중요한데 지금 휴지 구하려고hellip

(일동 하하하)

한나 lsquo나rsquo가 불쌍했던 이유가 자기한테 닥친 일들은 lsquo할 수 없

지 뭐rsquo 이런 식으로 넘기는데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 걱정하고

갇힌 여자 걱정하고hellip 정작 자기 걱정은 안 해

오권 영화 lt라이터를 켜라gt 봤어 조폭들한테 얻어맞으면서

도 주인공은 무조건 자기 라이터만 찾겠다고 그러거든 이 소

설의 lsquo나rsquo와 비슷한 느낌이 들더라고 그 영화에서는 라이터가

주인공의 존재를 투영하는 소재거든 lsquo나rsquo는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구해야만 자기가 산다는 느낌을 받은 거라 해석하면

너무 나간 건가

법열 아니요 형이 아까 지적해준 게 와 닿았어요 그 고군분

투가 결국 자기를 구하려는 노력이라는 지적이요

상화 그나마 lsquo나rsquo가 이 소설에서 제일 인간적이지

수경 어딘가 찌질한 느낌도 들어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와

lsquo내rsquo가 동류라고 자각하고 연민을 갖는 느낌이었거든 lsquo나rsquo가

인간적이고 윤리적이라는 생각은 나는 글쎄hellip 더 적극적으

로 할 수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 자기 사이클에서 벗어나

지 않는 한도 내에서 걱정만 하잖아 소설 안에서 비극과 희

극이 번갈아 가며 나타나는데 트럭과 버스가 충돌했을 때

lsquo나rsquo는 lsquo버스 카드 일로 충돌하지 않게 되어 적이 기뻤다rsquo고

생각해 버스 운전사는 트럭 백미러에 가슴이 받혀서 죽었는

지도 모르는데 lsquo다행히 나는 허리가 좀 뻐근한 것만 빼면 별

다른 상처가 없는 듯했다rsquo 이런 생각들을 하는 게 좀 섬뜩했

민희 사람은 다 이중성을 가지고 있잖아 나를 보는 듯했어

만약 학교 가는 길에 엘리베이터에 낀 사람을 봤다면 그렇

지만 나도 얼마나 바빠 몇 분 늦으면 지각 체크 당하고 출석

80퍼센트를 못 채울 수도(일동 웃음) 있는 상황이라면 내

가 그 남자를 구할 수 있을까 일단 지나치고 119에 전화하려

고 했으나 핸드폰이 없는 상황에 나도 처할 수 있는 거잖아 나

만 생각하는 잔인한 면도 내 안에 있고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

도 내 안에 있어 이런 찌질한 모습도 나고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정의롭게 구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상화 기준이 다른 것 같아 lsquo나rsquo 정도면 착하다고 생각했거든

수경 주변 사람들이 약간 마네킹 같지 않아 주인공 주변에

장치되어있던 다른 사람들이 너무 비인간적이기 때문에 lsquo나rsquo

가 돋보이는 거지 lsquo나rsquo는 지극히 평범한 우리 모습 같아 내가

어떻게 할 생각은 없고 궁금하기만 한 거야

민희 그 궁금함과 찜찜함도 죄책감이라 생각돼 아 내가 어떻

게 해줬어야 했나

한나 책임 회피일까

상화 그래서 나는 키워드 뽑은 것 중 하나가 119야 구해주고

싶으면 직접 내 손으로 잡아 빼주던가 엘리베이터를 들어 올

릴 사람을 모아야 했는데 신고 생각만 하잖아 이미 이건 누

가 대신 해결해줘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그나마 우리

사회에서 사고를 수습해주는 건 119밖에 없고 조선시대에는

119같은 거 없고 마을 사람들이 모여 구해줬을 텐데 어쩔 수

28

없는 현대인의 단상이긴 해 현대가 분업사회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들 바쁘고 삶이 개인화 파편화되어 있으니까 119 같

은 집단이 필요한 거지 그래서 난 119를 신의 영역이라고 썼

어 lsquo나rsquo는 119를 거의 신적인 존재처럼 생각하잖아 부르면 모

든 게 해결될 것처럼 핸드폰 빌리고 공중전화 찾고 그런데 막

상 교통사고 현장에서 119 대원에게 면대 면으로 얘기를 했더

니 그들은 무슨 그따위 장난을 하냐고 말해 구조도 실은 신이

아니라 사람이 하는 일이고 그 사람이 관심이 없으면 묻히는

거지

오권 전화를 거는 것과 직접 구해주는 것의 차이가 큰 것 같아

자기가 구해주는 건 적극적인 행동이고 119에 전화하는 건 스

스로 최소한 양심적이긴 하다고 여기는 행동

수경 그런데 엘리베이터에 낀 사람을 아무 것도 모르는 일반

인이 어떻게 했다가는 더 위험해질 수도 있잖아

오권 맞아 사회가 시스템화하고 고도화될수록 각자의 업무가

분업화되었고 전문분야가 생겨났으니까 옛날 같았으면 애 낳

으면 그냥 동네 아주머니가 애 받고 어미가 죽으면 젖동냥 다

녔는데hellip 이젠 사고가 나면 생각이 119에 먼저 미치는 시대가

된 거지

수경 그래서 어딘가에 널브러져 다친 인간이 아니라 엘리베이

터라는 공간에 낀 남자를 설정한 것 아닐까 엘리베이터는 현

대화의 상징이잖아

한나 lsquo나rsquo도 어쩔 수 없는 게 출근 시간에 쫓겨서 시계를 계속

봐 먹고 사는 일이니까

오권 출근했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다시 집으로 돌아가

낀 사람을 구해주면 굉장히 희망찬 소설로 바뀔 텐데hellip (일동

웃음)

수경 이 소설로 현대 사회의 폐단은 다 얘기할 수 있겠는데

상화 김영하는 천재인 것 같다

누군가 그리고 잘생겼잖아

누군가 잘생긴 거야

누군가 지적인 분위기가 있어서 좋아 (한참 얘기)

한나 또 인상 깊었던 게 구두에 집착하는 거 lsquo나는 날렵한 치

타처럼hellip 구두를 가지고 엘리베이터에서 빠져나오는 데 성공

했다 허탈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rsquo는 구절

오권 자살한 사람들이 구두를 가지런히 벗어놓는 이미지가 무

슨 상징처럼 있잖아

한나 신발 한 쪽 없이 다녀봤어 계속 기우뚱대서 내가 걷거

나 서 있을 때 내가 잘못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여기서 lsquo나rsquo가

그랬을 거야 사실 lsquo나rsquo처럼 사는 게 정상인데 세상이 잘못된

건데

상화 이 소설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감정표현이잖아 하루 종

일 얼마나 힘들었겠어 처음으로 감정표현을 하니까 불쌍했어

오권 휴머니즘 불쌍론 또 나왔네(일동 웃음) 그럼 이제 사진

관으로 넘어가볼까hellip

편집자반 11기 이상화

2929

책씹는맛 01 냄새라는 경이 lt감각의 박물학gt 후각편을 읽고

냄새에는 언어가 없다 어휘가 부족한 우리는 말문이 막힌

채 불명료한 쾌감과 자극의 바다에서 말을 찾을 수밖에

없다1

이 말은 다이앤 애커먼의 『감각의 박물학』 제 1장 후각에

나오는 구절이다 냄새를 글로 쓰고자 하는 나의 시도가 늘

실패로 귀결되는 이유를 이 구절에서 찾았다 작가의 말처

럼 냄새에 대해 쓴다는 건 언어 밖 세계로 나갔다가 다시

언어로 되돌아오는 길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길에서 헤매

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후각이라는 감각에서 길을

잃는 것은 낭만적인 일이기도 하다 lsquo냄새의 뇌관을 건드리

면 모든 추억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기rsquo2 때문이다 냄새 하

나에 수많은 추억들이 줄줄이 기억의 회로 위로 떠오른다

예를 들면 바다 냄새 하나만 상상해도 그와 관련된 수많

은 기억들이 머릿속에 뒤섞인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바닷가와 관련된 그 모든 추억들이 기억의 영사막에서 한

편의 옴니버스 영화 형태로 내게 다가온다 난 내 기억의

관객이 되어 그 영화를 보다가 견딜 수 없는 그리움에 젖는

다 이 영화에 대한 감상문을 적으려면 나는 말문이 막힌

다 그래서 몇 글자 적다가 결국 글을 쓰기를 멈춘다 굳이

언어로 표현하자면 쓸 수 없는 그리움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1 『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옮김 작가정신 20040720

A Natural History of the Senses(1991) 17쪽

2 같은 책 18쪽

결국 lsquo언어가 존재하는 세계에서 경이는 언어의 칼날 아래

서 쉽게 해부되고 냄새는 자주 혀끝에서 맴돈다rsquo3 냄새의

숭고함 앞에서 우리는 말을 멈춘다 이처럼 냄새는 말할 수

없는 자연의 경이로움과 닮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lsquo냄새가 우리의 마음을 그토록 강하게 움직이는 것은 부분

적으로 그 이름을 부를 수 없기 때문rsquo4이라고 한다 저자는

그렇기에 사람들이 냄새를 lsquo분 냄새 비슷한 펭귄 냄새가

나는 호화로운 화장실 냄새가 나는rsquo 같은 말로 표현할 뿐

이며 냄새에 대한 이름은 주어져 있지 않다고 말한다 또

한 종류는 같아도 강약과 농도가 다른 각각의 냄새에 이름

을 붙여줄 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우린 일상적으로 냄새를

맡으면서도 그 냄새와 멀리 떨어져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명명되지 않은 것은 결국 잊히는 게 아닐까 부를

수 없음에서 오는 경외감과 숭고함이 있을지라도 냄새는

말해져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말할 수 없는 것에 자꾸

만 침묵하기만 해야 할까

감각도 모험의 영역이 될 수 있다 세계 일주만이 세상을

아는 길일까 lsquo나rsquo를 온전히 아는 것이 역설적으로 세상과

가까워지는 일인지도 모른다 나를 알기 위한 길 중 하나가

내가 가지고 있는 감각을 이해하고 그걸 언어로 표현하는

일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어쩌면 우리와 제일 가깝지만 말

하기 낯선 감각 후각을 이해하는 일이 중요한지도 모른다

냄새라는 감각 속에서 우리 모두 길을 잃고 헤매고 모험해

보자 냄새에 나름의 이름을 지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

리고 농도에 따라 냄새를 구분하는 일도 해보자 냄새라는

경이는 우리를 더 이상 침묵으로 이끌지 않을 것이다

디자인반 11기 백가은

3 같은 책 22쪽

4 같은 책 22쪽

『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 옮김

작가정신 20040720

A Natural History of the Senses(1991)

3030

02 현실을 전복시키는 비현실

모호함이 주는 환상성

20세기 중반 중남미 소설은 전통적인 사실주의 서사 구조

를 깨고 현실과 환상을 혼합시키는 새로운 글쓰기 방식으

로 세계문학의 중심에 선다 이 시기에 주목 받은 일련의

중남미 작가들을 가리켜 lsquo붐 세대 작가rsquo라 칭하는데 아르

헨티나의 환상문학 작가 코르타사르는 이 붐 세대 작가군

의 선구자이자 대표 주자 격인 인물이다 그러나 그 문학적

성과와 명성이 무색하게도 국내 독자들에겐 그의 이름이

아직 생소한 것이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에서는 그

의 작품이 중남미 단편 선집에나 몇 편이 번역되었을 뿐 본

격적으로 소개된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중남미 문학을 공부했고 그의 몇 안 되는 번역 작품을 인

상 깊게 읽었던 독자 입장에서 이번에 출간된 코르타사르

의 단편집『드러누운 밤』은 가뭄의 단비처럼 반가운 신간

이다

환상 문학이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J R R 톨킨 류의 판타

지소설 혹은 쥘 베른이나 아이작 아시모프 류의 SF소설을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코르타사르의 환상문학은 이들 범

주에 들어가지 않는다 코르타사르 작품에서 나타나는 환

상이란 토도로프가 정의한 바 있는 환상 그러니까 자연적

인 것과 초자연적인 것 사이의 망설임에서 발생하는 환상

에 가깝다 따라서 판타지소설의 lsquo현실과 동떨어진 환상rsquo

혹은 SF소설의 lsquo설득력 있고 현실감 있는 환상rsquo을 기대하

는 독자라면 아마 십중팔구 그의 작품을 읽고 실망할 것

이다 어쩌면 이게 무슨 환상문학이냐는 푸념을 늘어놓을

지도 모르겠다 역시 가장 좋은 것은 선입관을 버리고 책을

읽는 것이다

코르타사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lsquo모호함rsquo이다 인물이나

배경 묘사에서 제시되는 기본적인 정보도 모호하고 사건의

전개 양상이 가진 당위성도 모호하다 작품 내에서 주요한

스토리 라인을 담당하는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경계도 모

호하며 심지어는 화자의 정체마저 모호한 작품도 있다 이

런 모호함의 향연은 짙게 깔린 안개와도 같아서 독자들은

그 속에서 한 치 앞도 제대로 내다볼 수 없음은 물론이요

이미 지나간 사실조차도 자신이 맞게 인식한 것인지 확신

할 수 없을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무엇이 진짜인지

독자들의 판단을 망설이게 만드는 이런 상태야말로 코르

타사르의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는 환상이란 개념이다 독

자들은 이 환상 속에서 그저 전방을 주시하며 천천히 나아

갈 수밖에 없다

다행스럽게도 코르타사르는 독자들의 시련을 헛되게 하지

않는다 작품의 시작점 일상 세계에 우연히 침투한 lsquo비현

실적인 것rsquo은 안개 속에서 알게 모르게 자신의 지분을 늘려

나간다 그리고 작품의 종점에 다다른 독자들은 비현실이

현실이 되고 현실이 비현실이 되는 이전과는 전혀 새로운

세계와 마주할 것이다 다시 말해 필연과 이성의 법칙이 지

배하는 세계가 우연과 환상이 지배하는 세계로 변하는 것

이다 이러한 세계의 전복은 마치 여기저기 단서를 흩뿌리

고 사람들을 알쏭달쏭하게 만들었다가 결말부에서 모든

것을 폭발시키는 추리소설 혹은 반전영화를 보는 듯한 재

미를 선사한다

그렇다면 코르타사르가 이 소설들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책을 다 읽고 난 독자라면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의문점이다 코르타사르는 자신이 환상문학을 쓰는

이유를 ldquo법칙이나 원칙 혹은 인과관계나 특정한 심리 또

는 잘 그려진 지리학과 같은 체계에 의해 세상이 지배되고

있다는 것에 반대rdquo하고 ldquo우리가 잘 모르며 우리에게 잘 다

가오지 않는 새로운 질서에 관해 생각해보기 위함rdquo이라고

설명한다 짧게 말해 이 세상에 필연이란 존재하지 않으

며 자신은 그것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말이다 이

게 전부다 순문학이라면 거장의 문학이라면 이보다 더 심

오한 통찰 혹은 비판이 있을 것이란 생각에 문장 속 숨겨진

의미를 발견하고자 머리를 싸맬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조

언을 하자면 독서는 독서 그 자체로 즐기면 된다 적어도 이

책에서는 그렇다 모호함과 예상외의 전개 속에서 재미를

느끼고 코르타사르가 묘사하는 세계의 불가지(不可知)성

을 어렴풋하게나마 인식할 수 있다면 이미 그것으로 충분

하다

편집자반 11기 강귀욱

『드러누운 밤』

훌리오 꼬르따사르 지음 박병규 옮김

창비 20141124

La noche boca arribaJulio Cortazar

31

03 얼어붙은 자의식의 바다를깨뜨리고 생명을 불어넣는 책 『데미안』

데미안을 읽고 나서야 그 동안 내가 두 발 딛고 서 있던 땅이

굳고 단단한 대지가 아니라 얼어붙은 바다에 불과했음을 알

았다 데미안은 도끼를 가져와 이 꽁꽁 언 바다를 가차 없이

내리 찍었다 그리고 말했다 얼어붙은 바다를 단단한 땅인

줄 알고 사느니 그 얼음을 깨부수고 그 속에 빠져 죽기 살기

로 허우적대라고 그러면 그 속에서 너는 너 자신을 똑바로 마

주하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성장할 것이라고

주인공 싱클레어도 그를 둘러싸고 있던 세계를 깨뜨려 나가

며 성장한다 그 모든 과정은 결국 진정한 자기 자신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가 깨뜨린 가장 큰 세계는 바로 자신의 사고 체계였다 세상

을 바라보는 기존의 이분법적이던 시각 고정되고 획일화된 시

각을 버렸다 주인공은 세계 안에 심지어는 자신 안에도 선하

고 악하며 밝고 어두운 양극단의 것들이 공존함을 이해하고

두 세계를 끌어안았다 주인공은 귀와 눈을 가리던 장막을 걷

어내 버리고 세상을 바로 보게 되었다 상극인 것들의 괴리로

이루어진 이 모순된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곧 자신 안의 부조

화 또한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스스로에게 다가서는 첫 걸음

이었다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양극단의 세계 사이에서 싱

클레어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며 흔들리기를 반복했다 이

때 그에게는 삶을 지탱할 중심축이 없었다 항상 내면이 아닌

외부 세계에서 자신이 속할 자리를 찾아 헤맸다 그가 비로소

온전한 자신을 만난 순간은 어느 편으로도 치우침 없이 스스

로의 기준으로 홀로 서게 되었을 때였다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 이 길은 당신이 내면에 있는 모

순되는 두 세계 한없이 나약하고 뒷걸음치는 비열한 모습들

과 정갈하고 깨끗한 곧은 힘들을 동시에 직시하는 순간에 시

작된다 그리고 이 길은 두 세계 속에 들어가 이리저리 휩쓸리

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세계를 밟고 우뚝 올라서서 스스로

가 중심이 됨으로써 앞으로 펼쳐진다

이제 lsquo자아를 찾으라rsquo는 지루하고 흔한 이야기가 더 이상 빤

하거나 우습지 않다 묵직한 울림이 되어 나를 흔든다 그냥

나만 붙잡고 흔드는 것이라면 손사래 쳐 뿌리치겠는데 내가

밟고 있던 땅 속해 있던 세계를 뿌리째 흔들어 버린다 읽는

내내 속이 답답하고 나에게 화가 난다 그런데 이렇게 마구

혼나면서 이상하게도 후련한 구석이 있다 호통을 치는 데미

안이 사실은 우리를 응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막연

하고 무기력한 안개에 휩싸여 있을 때 데미안은 그만의 방

식으로 우리에게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준다 물론 갈 방향을

정해준다거나 각자의 사정을 듣고 상담을 해주는 것은 아니

다 오로지 궁지로 몰아세울 뿐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사람들

은 잊고 있던 lsquo나 자신rsquo을 일깨운다 아 그동안 lsquo나rsquo에 대해 생

각해본 적이 있던가 라는 정도만이라도 좋다 이 물음이 바로

여정의 시작이니까

그렇게 스스로에게 묻고 나면 더 이상 전처럼 살 수는 없기 때

문이다 아니라면 자기 자신에게 면목이 없을 것이다 이 무서

운 책이 우리를 혼내고 몰아치면서도 여전히 영원한 고전이자

필독서로 사랑 받는 이유다

lsquo우리들 속에는 모든 것을 아는 한 사람이 있다rsquo고 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혼이 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혼

이 났다는 것은 자신 안에 있는 lsquo그 사람rsquo이 말을 하기 시작했

다는 뜻이니까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목소리가 희미하

고 멀리 있다 하여도 숨죽여 귀 기울이는 일 자체가 자신에게

로 가는 과정임을 잊지 말고

편집자반 11기 배예리

『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민음사 20001220

Demian Die Geschichte von Emil

Sinclairs Jugend(1919)

31

03 얼어붙은 자의식의 바다를깨뜨리고 생명을 불어넣는 책 『데미안』

데미안을 읽고 나서야 그 동안 내가 두 발 딛고 서 있던 땅이

굳고 단단한 대지가 아니라 얼어붙은 바다에 불과했음을 알

았다 데미안은 도끼를 가져와 이 꽁꽁 언 바다를 가차 없이

내리 찍었다 그리고 말했다 얼어붙은 바다를 단단한 땅인

줄 알고 사느니 그 얼음을 깨부수고 그 속에 빠져 죽기 살기

로 허우적대라고 그러면 그 속에서 너는 너 자신을 똑바로 마

주하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성장할 것이라고

주인공 싱클레어도 그를 둘러싸고 있던 세계를 깨뜨려 나가

며 성장한다 그 모든 과정은 결국 진정한 자기 자신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가 깨뜨린 가장 큰 세계는 바로 자신의 사고 체계였다 세상

을 바라보는 기존의 이분법적이던 시각 고정되고 획일화된 시

각을 버렸다 주인공은 세계 안에 심지어는 자신 안에도 선하

고 악하며 밝고 어두운 양극단의 것들이 공존함을 이해하고

두 세계를 끌어안았다 주인공은 귀와 눈을 가리던 장막을 걷

어내 버리고 세상을 바로 보게 되었다 상극인 것들의 괴리로

이루어진 이 모순된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곧 자신 안의 부조

화 또한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스스로에게 다가서는 첫 걸음

이었다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양극단의 세계 사이에서 싱

클레어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며 흔들리기를 반복했다 이

때 그에게는 삶을 지탱할 중심축이 없었다 항상 내면이 아닌

외부 세계에서 자신이 속할 자리를 찾아 헤맸다 그가 비로소

온전한 자신을 만난 순간은 어느 편으로도 치우침 없이 스스

로의 기준으로 홀로 서게 되었을 때였다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 이 길은 당신이 내면에 있는 모

순되는 두 세계 한없이 나약하고 뒷걸음치는 비열한 모습들

과 정갈하고 깨끗한 곧은 힘들을 동시에 직시하는 순간에 시

작된다 그리고 이 길은 두 세계 속에 들어가 이리저리 휩쓸리

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세계를 밟고 우뚝 올라서서 스스로

가 중심이 됨으로써 앞으로 펼쳐진다

이제 lsquo자아를 찾으라rsquo는 지루하고 흔한 이야기가 더 이상 빤

하거나 우습지 않다 묵직한 울림이 되어 나를 흔든다 그냥

나만 붙잡고 흔드는 것이라면 손사래 쳐 뿌리치겠는데 내가

밟고 있던 땅 속해 있던 세계를 뿌리째 흔들어 버린다 읽는

내내 속이 답답하고 나에게 화가 난다 그런데 이렇게 마구

혼나면서 이상하게도 후련한 구석이 있다 호통을 치는 데미

안이 사실은 우리를 응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막연

하고 무기력한 안개에 휩싸여 있을 때 데미안은 그만의 방

식으로 우리에게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준다 물론 갈 방향을

정해준다거나 각자의 사정을 듣고 상담을 해주는 것은 아니

다 오로지 궁지로 몰아세울 뿐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사람들

은 잊고 있던 lsquo나 자신rsquo을 일깨운다 아 그동안 lsquo나rsquo에 대해 생

각해본 적이 있던가 라는 정도만이라도 좋다 이 물음이 바로

여정의 시작이니까

그렇게 스스로에게 묻고 나면 더 이상 전처럼 살 수는 없기 때

문이다 아니라면 자기 자신에게 면목이 없을 것이다 이 무서

운 책이 우리를 혼내고 몰아치면서도 여전히 영원한 고전이자

필독서로 사랑 받는 이유다

lsquo우리들 속에는 모든 것을 아는 한 사람이 있다rsquo고 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혼이 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혼

이 났다는 것은 자신 안에 있는 lsquo그 사람rsquo이 말을 하기 시작했

다는 뜻이니까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목소리가 희미하

고 멀리 있다 하여도 숨죽여 귀 기울이는 일 자체가 자신에게

로 가는 과정임을 잊지 말고

편집자반 11기 배예리

『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민음사 20001220

Demian Die Geschichte von Emil

Sinclairs Jugend(1919)

32

박세길 인터뷰

진정한 역사가는 과거에 파묻히지 않는다옥(獄)에서 옥(玉)을 만든 작가 박세길 인터뷰

박세길 저자는 처녀작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로 80년대

대표 역사서 자리를 꿰찬 분입니다 1986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감되었을 때 감옥에서 역사책을 읽으며

사회 모순에 대해 고민했고 출소하자마자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집필했습니다 정권 탄압 속에서 왜곡된

현대사를 바로 잡았다는 의미를 지닌 이 대표작은 오랫동안

고시생과 대학생들의 필독서로 꼽혔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읽은 박세길 저자의 저서는 지난 6월 출간한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입니다 기사를 쓰고 편집할 때 청년 세대를

겨냥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박세길 저자는 역시나

청년들의 미래에 큰 관심을 갖고 계셨습니다 취업을

눈앞에 둔 서울출판예비학교 학생들이 가져야 할 자세를

여쭸습니다

출판학교에서 강의하신 한 선생님은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가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와

더불어 80년대 인문학의 양대

산맥이라고 하셨습니다

책의 성공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강의

요청이 많이 들어왔어요 먹고사는

경제적인 문제도 해결됐습니다

몇 부 팔렸는지는 잘 모릅니다

출판사에서 기밀 사항이라고

하더군요 요즘은 마케팅 차원으로도

몇 쇄 몇 부인지 밝히지만 그때는

세금 문제를 피해가기 위해서인지

쉬쉬하던 시절이었나 봅니다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는 대학

선후배끼리도 많이 물려주는 책이라고

들었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의 쉬운 설명이

좋았습니다 더불어 어떤 사명감을 안고 썼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완성하기에 앞서 어떤 목표를

두셨나요

청년 세대가 외환위기 이후 집중적인 희생양으로 전락하면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드러내면서 여기에

머물지 않고 청년 세대의 잠재력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들이 역사 무대 한복판에 진출해 자기 몫을 다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습니다

역사 분야는 시장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역사 혹은 현대사가 주목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통해 얘기하자면

80년대 후반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lsquo왜곡된

역사를 바로 알자rsquo는 시각 교정의 욕구가 있었던

차에 제 책이 나름 부응했는지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시기가 적절했던 셈이죠

2012년 대선 후 역사 분야가 잠시 반짝했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금세 시들었다고

하더군요 당시 역사 분야 책들이 일반 독자가

읽기에 다소 어렵거나 출간한 지 오래된 것들

위주였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돋을세길

출판학교에서 강의하신 한 선생님은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가 유홍준 교수의

책의 성공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강의

하더군요 요즘은 마케팅 차원으로도

선후배끼리도 많이 물려주는 책이라고

역사 분야는 시장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역사 혹은 현대사가 주목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통해 얘기하자면

80년대 후반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lsquo왜곡된

역사를 바로 알자rsquo는 시각 교정의 욕구가 있었던

차에 제 책이 나름 부응했는지 큰 반향을

읽기에 다소 어렵거나 출간한 지 오래된 것들

위주였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의 저자

33

2012년 대선 후 역사 분야가 관심을 받았던 것은

보수층의 재집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한

불안 때문일까요

맞습니다 그러나 마땅한 책이 없어서 그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역사 분야에서 베스트셀러를 내기

위해서는 시기가 맞아 떨어지고 내용 또한 대중이 원하는

것을 담고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를 편집한 lsquo생각정원rsquo

출판사의 정희용 편집자에게 감사 표시를 하셨습니다

어떤 편집자를 선호하시나요

간단합니다 편집자는 철저히 독자 입장에서 독자와 작가

사이의 간극을 줄여줘야 합니다 예를 들면 어려운 내용을

과감히 생략하고 다음 기회로 미루도록 설득한다거나 좌파

운동권 색채가 너무 강한 문장을 조금 순화하는 것 등입니다

어떤 내용이 이번 책에 꼭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선택을

도와줘야 합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을 작가님께서 직접

독자들에게 홍보하신다면 카피 문구를 짧게 제시할 수

있을까요

청년 세대 희망 찾기 갑갑한 현실을 어떻게 타개할 수

있을지 그 답을 찾아보는 길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취업 후 첫발을 내디딜 서울출판예비학교 11기

학생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출판 또한 돈을 벌어야한다는 기본 전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출판계를 지켜본 결과 뭔가 소명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오래

살아남았습니다 출판학교 역대 대표 중 일부는 나와 관계가

있는 사람들인데 모두 고유한 소명의식을 갖고 출판계에

뛰어들었습니다 때로는 상업주의 안에서 재주도 부리곤

했지만 어쨌든 분야 내에서 고유한 캐릭터를 구축했습니다

출판학교 학생들이 출판 상황을 이해하고 자신을 역할을

정하는 개인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비전 중심의 경영을

하는 회사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지만 개인 비전을 기업

비전으로 나아가 사회 비전으로 접목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과거에 안주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부분을

출판계에서는 SNS 등 인터넷 환경을 통한 마케팅으로

이해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SNS망 자체에서 무엇이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건 사람과

사람이 서로 소통하고 공감하는데 필요한 도구입니다

콘텐츠 중심의 사고가 중요하고 그것이 전제되지 않을 때

SNS는 착각에 불과하며 성공할 수 없습니다 필요한 콘텐츠

중심의 사고를 가지고 철저하게 진행하지 않으면 그 공간에서

허망하게 헤엄만 칠 뿐 입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SNS에서

맥없이 헤엄치다 익사하는 경우를 볼 수 있을 겁니다

콘텐츠와 마케팅의 영역을 하나로 보는 것과 따로

보는 것 어떤 것이 독자를 위하는 것일까요

출판 마케팅은 책을 기획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에서부터

개입돼야 하고 그 과정에 독자를 참여시키는 방식을

고민해야 합니다 미국 네브래스카주립대학의 이상문

교수는 lsquo밀실 안에서의 혁신은 끝났다rsquo고 얘기합니다

개방된 체제에서 독자 곧 소비자 사용자의 참여 하에 함께

만들어갈 때 혁신은 이뤄진다고 합니다 출판사의 비전이

브랜드로 연결될 때 독자는 자발적으로 의견을 주고받고

싶어 할 겁니다

마케터반 11기 이창환

디자

인 사

공예

Page 16: 서울출판예비학교 웹진 _5호 2015

16

한대웅 선생님

『동백꽃』의 주인공 같은 그 남자착하디착한 순하디순한 한대웅 선생님의 속마음

좀처럼 화내시는 일도 없고 허허 웃기만 하시고hellip 하지 못한

말들을 땀으로 발산하듯 여름이면 온몸이 열정으로 흠뻑

젖으시는 분 세상 어디에도 없을 착한 남자 마케터반의

한대웅 선생님이다 그에게 던진 몇 가지 질문에 돌아온 것은

가장으로서의 고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 아직도 앳된

소년 같은 순수함이 묻어나는 답변들이었다 이제 그를 좀 더

깊게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평소에 칼라(collar) 티셔츠를 즐겨 입으시던데

좋아하시는 옷인가요

좋아한다기보다는 제 딴에는 편하게 입을 수 있는 듯해서

즐겨 입고 있습니다 또 아내가 이런 종류의 옷을 많이

사주기도 하고요

선생님께 lsquo출판rsquo이란 무엇인가요

출판은 lsquo꿈을 이루는 판도라의 상자rsquo lsquo내가 가진 능력에 가장

맞는 일rsquo입니다

출판을 업으로 삼지

않으셨다면 어떤 일을

선택하셨을까요

모르겠네요 아마도 운명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요 다만 다음과

같은 3가지 생각은 해보았습니다

첫째 고등학교 시절 성적이 조금

더 좋았다면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해서

지금쯤이면 텔레비전이나 영화에 나오는 큰 전투함의

함장이 되지 않았을까요

둘째 대학교에 입학하지 못했다면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로 이민을 가서 장사를 하거나 농부로 농장을

운영하면서 그곳 사람으로 국적을 바꾸고 살고 있지

않을까요 고등학교 3학년 때 대학교 입학 시험에

떨어지면 다른 나라로 가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다는

마음의 준비를 했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 모 일간지에 실린

해외에서 성공적인 삶을 사는 한국 사람들에 관한 기사를

꼼꼼하게 읽었었거든요

셋째 대학교 3학년이나 4학년 때 신춘문예까지는 아니라도

대학교 교내 문학상 정도를 받았다면 아마도 그 결과에

탄력을 받아 시나리오 작가나 연극 연출가의 길로 가려고

하지 않았을까요

ID와 블로그에 lsquo봄rsquo이라는 단어가 들어있는데 봄을

좋아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그 ID를 만들 무렵 저의 미래는 꽤나 불확실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바꿔 말하면 어떻게

돈을 벌어야 하고 어떻게 자아 성취를

해야 하는지가 불확실하고

힘들었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lsquo봄rsquo이라는

단어를 좋아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누구나

알다시피 봄은 겨우내

얼어 있던 것들이

새롭게 싹을 틔우고

새롭게 기지개를 펴는

계절이죠 물론 봄

자체가 주는 느낌도

좋고요 그래서 lsquo봄rsquo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던 것

같습니다

블로그는 서울출판예비학교에서

일을 시작한 후 만들었습니다

블로그에 lsquo봄바람rsquo이라는 의미를 부여한

것은 ID를 만들던 때의 생각이 이어진 것이겠지요 요즘에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이 많이 사라진 것 같습니다 만약

앞으로 블로그나 ID를 만든다면 아마도 lsquo여름rsquo 혹은 lsquo풍성함rsquo

아니면 lsquo내가 원하는 세상을 상징하는 어떤 것rsquo을 이름으로

사용할 것 같습니다

편집자로 첫 시작을 하셨는데 나중에 출판 마케터로

일하게 된 동기를 알고 싶어요

시장 상황을 분석하고 이에 맞게 마케팅 계획을 세우고

사람이나 집단을 만나고 힘을 합쳐 뭔가 새로운 결과를

만들어 내는 일이 재미있었습니다

은퇴 후에 꿈꾸시는 삶이 있으신가요

아직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20대와 30대

초반에 꿈꾸던 것들을 lsquo은퇴 후에 여유가 생긴다면 이것들을

해볼까rsquo라고 간혹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현재겠죠 출판에서 뭔가를 이루려고 열심히 계획하고

실행하다 보면 은퇴 후의 삶도 더 풍요로워지지 않을까요

알고싶어 마케터반

17

일하실 때 다뤘던 책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무엇인가요

입사 초기 편집을 하거나 시장조사를 하고 제가 출간 여부에

대한 판단을 내렸던 책들이 기억납니다 『펠레』 자서전은

제가 편집자로 있을 때 출간했던 책인데 주요 일간지의

서평란 메인을 장식했던 책입니다 출간 시점을 맞추기 위해

촉박한 기간 동안 밤새가며 책을 만들었습니다 출간 시점에

대한 판단이 정확히 맞았고 그 결과 기대 이상으로 많은

서평을 받았던 책입니다

서울예비출판학교 선생님으로 오신 계기를

알고 싶어요

전에 다니던 출판사를 그만둔 후

개인적으로 뭔가를 해보려고 고민

중이었습니다 그러나 능력이

부족하다 보니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았죠 그러던 중에

출판학교에서 일해 볼 것을

제안 받았고 저도 출판학교

학생들처럼 면접을 보고 이

학교에 오게 되었습니다

일을 하게 되었을 때 매우

즐거웠습니다

다시 출판사 마케터로 돌아갈

생각이 있으신가요

아니오 이유는 2가지인데 첫째는 제 나이가

48세입니다 다른 업종도 그렇지만 출판 산업에서도

48살에 마케터로 직장인의 생활을 이어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죠 정말 현실적인 고민이죠 게다가 출판학교에서

여러분과 소통하며 제 지식을 전수하는 일이 재미있습니다

물론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언젠가 저만의 꿈을

찾아갈 수 있겠죠

평소 몇 권의 책을 읽으시나요 최근 읽은 책 중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요

예전에 많이 읽을 때는 1주일에 2권 정도 읽었습니다

황석영의 『장길산』과 홍명희의 『임꺽정』 이문열의

『삼국지』를 읽을 때 짬짬이 쉬는 시간을 비롯해 지하철에서

보내는 시간까지 거의 모든 시간을 책을 읽으며 보냈습니다

요즘에는 1달에 1~2권 정도 읽는 것 같네요 최근 읽은

책 중에 기억에 남는 책은 『내 아이와 어떻게 대화할

것인가』(율리아 기펜레이테르 저 써네스트 2006)와 『내

아이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율리아 기펜레이테르

저 써네스트 2009)입니다 제목만으로도 왜 이 책을

추천하는지 금방 눈치 챌 수 있을 것입니다 아이가 둘

있는데 첫째는 15살 딸이고 둘째는 10살 아들입니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lsquo어떻게 하면 아이와 싸우지 않고

윽박지르지 않고 아이의 자존감을 높여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성실하고 삶의 열정과 꿈이 넘쳐나는 아이로

키울까rsquo 같은 고민을 항상 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단비처럼 다가왔습니다 위의 2권의 책을 읽고 몇

가지 중요한 것들을 배웠습니다 아이와 어떻게 소통하고

어떻게 대화해야 하는지 아이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등등 이전에 『부모와 아이 사이』(하임 G 기너트

등 저 양철북 2003)를 읽고 아이를 이해하는 법에 대해

큰 인상을 받았는데 이 책도 그 연장선에서 저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아들과 딸을 좀 더 이해하게 되고 그

결과 아이들에게 화를 내거나(저도 나약한 인간인데 화가

날 때가 심심치 않게 있거든요) 아이들의 긍정적인 싹을

본의 아니게 꺾어 버리는 경우가 줄었다고 할까요 게다가

이 책은 lsquo부모와 아이 사이rsquo만이 아니라 lsquo친구와 친구 사이rsquo

lsquo회사 내부 구성원 사이rsquo에서 소통하는 데도 많은 영감을

제공합니다 출판학교 학생들과 소통할 때도 이해의 폭을

넓혀주고 긍정적인 소통을 하는 방법을 제공해 줍니다

이제 수료를 앞둔 마케터반 학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으시다면

개인별로 처한 처지와 조건에 따라 다르겠지만 다음과 같은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 연인을 사랑하듯 출판에 대해서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보세

- 이 길이 나에게 최선의 길인가 생각해 보세요

- 목표를 세우고 지금부터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한 후 그것을 어떻게 이루어 나갈 것인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보세요

저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스스로의 내면을 단단하게 할 중요한

질문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앞으로도 끊임없이

새로운 답을 찾아나갈 질문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케터반 11기 이장열 이창환

18

선생님은 주말에 뭐하세요

무조건 가족과 함께hellip

만약 편집 디자인을 안 하셨다면 무슨 일을 하고

계실까 궁금해요

어찌 됐든 개인 사업자로 살았을 듯 윗사람 비위 맞추는

것을 너무 못하므로hellip

선생님 주량이 어떻게 되세요 주사가 있으세요

몸 상태 좋고 안주 많이 먹으면 1병(클래식으로)

좋은 출판 디자인을 생각한다

심우진middot안광욱 선생님

lsquo멋rsquo이라는 것이 폭발한다뼛속까지 디자이너스러운 심우진 선생님

멀리서도 눈에 띄는 큰 키에 멋들어진 베레모 디자인반의

심우진 선생님 되시겠다 서울출판예비학교에서 lsquo멋rsquo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가끔은 조금 키 큰 학생처럼 학생들

속에 잘 어우러지는 사람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모습은

여기까지다 그를 조금 더 알고 싶다 지금까지의 그를

만들어왔을 lsquo심우진의 생각들rsquo이 궁금했다

선생님은 무엇을 드시고 그리 멋지시나요

학생들의 사랑 밥 김치

일본 유학길에 오르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lsquo동아시아rsquo lsquo근대rsquo가 당시 나의 화두였으므로 그리고

스기우라 고헤이 선생을 뵈러

첫 직장을 다녔을때 일의 강도()나 다니는 동안

마음은 또 어떠셨는지

출판 쪽 첫 직장은 lsquo정디자인rsquo인데 lsquo나는 왜 이렇게 디자인을

못할까rsquo 답답해했던 기억이 있어요 그러나 매우 즐거웠고

술도 자주 마셨죠 아직도 당시의 OB들과 가깝게 지내요

lsquo둥지rsquo 같은 곳이죠

선생님께서 생각하는 완벽한 판면이란

디자이너의 삶의 방식과 콘텐츠의 삶의 방식이 녹아든 판면

선생님의 피로회복 방법은

알고싶어 디자인반

19

디자인반의 히어로좋은 출판 디자인을 생각한다 안광욱 선생님

여자 화장실 앞에 있어 인파로 북적대는 디자인반 교실을

학생들과 함께 굳건히 지켜온 분 디자인반 학생들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애정공세를 아끼지 않는 분 안광욱

선생님에게 물어본 4가지

디자이너로서 첫 직장을 다닐 때의 마음이

어떠셨나요

잘하고 싶었는데 못해서 힘들었지 사수에게 하루 서너

시간씩 야단맞으면서 했다오 매일 2호선 양화대교에서 뛰어

내리고 싶었는데hellip 이 부분은 내일 수업 때 얘기해줄게^^

선생님께서 생각하는 좋은 출판 디자인이란

세상을 향한 사랑과 희망이 듬뿍 담긴 디자인

출판 디자인을 안 했다면 지금 무슨 일을 하고

계실까요

모르겠네 그냥 선녀 옷 훔치는 나무꾼이 되어 있을 듯^^

어떤 주사가

있으신지 궁금해요

말이 조금 더 많아지고 장소 불문 쿨쿨 자 특별한 주사는

없는 듯

디자인반 11기 이소현 백가은 사공예원

디자

인 사

공예

20

편집자반 김영준 학우가 그린

『이 외로운 사람들아』 일러스트

기억에콕

수업 후기

ldquo우리에게는 lsquo일탈rsquo이 필요합니다rdquo

잠깐 딴 짓을 하는 사이에 귓가에 들려온

한 문장이 나를 사로잡았다 배는 부르고

따 사 로 운 햇 살 에 잠 이 쏟 아 지 는 시 간

오후 1시 30분 시간을 칼같이 맞춰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선 그는 딱 봐도 지루하고

고리타분해 보이는 첫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순간 눈으로 들어온 이미지는 뇌로 흘러갔고

뇌는 망설임 없는 확신으로 귀에 명령을

전달했다 그렇게 귀는 이미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내 들려올 그렇고 그런 뻔한

이야기에 대하여

눈의 판단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의 한마디

한마디는 파격이었다 아니 어쩌면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였지만 누구도 자신 있게

내던지지 못하는 말들을 서슴지 않고 내뱉는 그

거침없음에 신선함을 느낀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의 관심을 돌려놓았던 lsquo일탈rsquo에 대한 그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lsquo일탈을 하라rsquo는 말이

lsquo제멋대로 하라rsquo는 의미가 아니라 어떤 규칙을

벗어나는 행위를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다르게

생각하는 방식을 몸으로 익히게 된다는 것

새로운 것을 생각해내는 창의성이라는 힘은

당연히 새로운 경험에서 나온다는 것이었다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니 강의를 듣던

친구들의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때 보고 들었던 그의 말과 행동이 우리에게는

딱 딱 한 강 의 실 에 서 느 끼 는 새 로 운 경 험

lsquo일탈rsquo이었다

그 와 의 만 남 은 계 속 이 어 졌 다 이 곳

서 울 출 판 예 비 학 교 에 입 학 한 이 후 로 는 좀

더 완 벽 한 일 주 일 단 위 로 시 간 이 흐 르 기

시작했는데 매주 쌓여가는 새로운 배움 뒤에는

수많은 물음이 불쑥불쑥 솟아났고 그는 마치

예상을 했다는 듯이 일주일에 한 번씩 나타나

우리의 설익은 궁금증을 해소해주고 떠나갔다

첫 만남에서는 책이라는 대상과 책을 대하는

편집자의 자세에 대해 이야기하며 큰 그림을

그려주었고 다음엔 저자와의 관계 맺기 그

다음엔 스스로 만들어 가야할 편집자의 자기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담백하게 들려주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네 번째 만남이었다

누구도 쉽게 이야기하기 어려운 완벽하게

솔직해지기는 더더욱 어려운 자신의 좌절과

실패를 그는 담담하고 진솔하게 소개해주었다

모든 성공에는 대개 7할의 실패가 전제되어

있기 마련인데 성공에 이르기까지 거치는

우 리 가 lsquo실패rsquo라고 명 명하는 것들이 사실

진짜 실패가 아니라 성공의 다른 이름이라는

그의 말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성공도 실패도

어 느 한 지 점 에 서 내 리 는 판 단 인 것 이 고

결 국 성 장 하 고 성 숙 한 다 는 것 은 성 공 과

실패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lsquo차이rsquo를 얼마만큼

발견하느냐 하는 것에서 결정된다는 그의 말이

가슴을 뜨겁게 했다 비로소 lsquo편집자rsquo로서가

아닌 한 lsquo사람rsquo으로서의 그가 보이기 시작했다

담담하게 말을 하고 있지만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아프고 쓰린 기억을 후배들에게

들 려 주 는 그 에 게 서 진 심 이 전 해 져 왔 다

사랑하는 일에 대한 함께 걸어갈 동지들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 참 고마웠다

어느덧 마지막 만남이 찾아왔다 한 권의

책을 만들면서 진행했던 편집의 과정을 예로

실 제 적 인 이 야 기 를 우 리 에 게 마 지 막 으 로

들려주었다 편집의 능력은 지식과 정보에서

나온다는 것 그것은 단숨에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 꾸준히 쌓아가야 한다는 것 그래서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의 문제라는 것을 경험을

근거로 자신 있게 말해 주었다 이미 지나온

과거의 결과 대신 앞으로 걸어갈 길에 대한

희망을 들려주어서 그게 참 고마웠다

편집자반 일탈이 주는 파격 우리가 낳을 lsquo새로운 책rsquo과 편집자선완규 선생님과의 다섯 번의 만남이 키운 생각들

21

그 가 우 리 에 게 마 지 막 으 로 이 야 기 를

들려주었던 그날 이후 석 달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났다 나는 여전히 같은 강의실에 앉아

앞서 길을 걸어간 선배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고 조금씩 가까워지고 밝아져가는 내 앞에

놓인 길에 대해 생각한다 그러다 문득 마음이

무거워지고 막막해질 때면 종종 그의 말들을

떠올려 본다 그리고 그 생각의 끝에서 마음을

의지하며 함께 이 길을 걸어갈 따뜻한 선배가

하나 있다는 위로 한 줌을 발견한다

ps 선완규 선생님 고맙습니다 보고 싶어요

편집자반 11기 성준근

마케터반 강한 수면욕 환상과 환기

판형과 종이를 예술로 편입시키려는 영업자다빈치 출판사 박성식 대표 특강 후기

9월 23일 평소보다 점심을 많이 먹었던 날이다 잠을 며칠간 못 자 피곤했다

오후 1시 30분이 살짝 지나서 다빈치 출판사 박성식 대표의 특강이 시작됐다

다빈치 대표님은 처음 뵐 때부터 남다르셨다 서울출판예비학교 입학 면접에서

여자 술 담배를 각각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보셨다 lsquo솔직함을 어필해야

하는 순간인가rsquo하는 생각에 직설적으로 답했지만 lsquo더 문학적으로 얘기할 수

있었는데rsquo라는 후회를 안고 돌아왔다

마음과 다르게 첫 번째 시간은 정신없이 잠이 쏟아졌다 눈을 감고 귀 기울였지만

턱을 괸 채 버티는 동안 50분이 지났다 대표님께 캔 커피를 하나 드리고 맞이한 두

번째 시간 그 한 시간 동안 나는 현실 옆의 어떤 이상 내지는 환상을 본 것 같다 그동안

듣던 강의들을 놓고 lsquo이상적인 관점이다rsquo 혹은 lsquo현실적이다rsquo라고 구분했던 판단의 폭

자체가 좁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성식 대표님은 내 머리에 있던 lsquo책rsquo에 대한 인식을 전복시켰다 자본주의 출판의

몰락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시작됐다는 말 출판 기본 특성인 다품종 소량 생산은 돌아올

것이며 다품종 소량 생산을 넘어 다품종 소량 lsquo고급 생산rsquo을 추구하고 싶다는 말은 나를

달뜨게 했다 주류에 반하는 사고를 가진 중년의 개성과 내공에 교실 풍경이 환기됐다

교육 수단으로 책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지만 책은 그만큼 사회적 의무와 희생을

짊어져왔다 출세와 공부 앞에서 책이 가진 기호(嗜好)성은 변두리로 내몰렸다 책을

읽어야만 제대로 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분위기는 옳지 않다 독서는 성향의 범주지 성역이

돼선 안 된다 정보와 지식의 전달은 모바일 등에 넘겨주고 종이책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공동체로 돌아와야 한다 그게 원래 자리라는 대표님의 주장이 새롭고 강렬하다

자본주의 3대 원칙인 lsquo더 빨리 더 많이 더 싸게rsquo 체계는 표준화와 규격화를 동반하며

매우 효율적이다 현재 사용하는 종이는 자본주의 원칙에 최적화돼 있다 그러나 대표님은

인쇄기계로 소화하지 못하는 질감과 전혀 다른 발색을 지닌 lsquo종이rsquo에 주목했다 그 종이로

콘텐츠 종이 판형이 완벽하게 들어맞는 예술서를 만들고 시장을 설득한다면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책 판매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전했다 종이 자체가 책의 예술성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한지(韓紙)를 예로 들면서 훌륭한 텍스트와 이미지를 한 차원 끌어올리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많은 부수를 팔아야 성공한 출판 많은 부수를 파는 것을

목표로 하는 시대는 저물고 있다 기존 유통과 판매 방식

안에 갇혀서는 불황에 매몰될 뿐이다 소량의 고급화된

책을 꿈꾸는 것과 전시회를 책과 결합하는 것도 다른 길을

물색하는 과정이다

대표님은 10년 전부터 lsquo이 원고는 내가 누구보다 잘

만들겠다rsquo lsquo이 원고는 내가 못하면 누구도 못할 것 같다rsquo라는

생각이 든 책만 출간을 진행했다고 한다

강의 중간 자신의 독특한 철학을 전달하는 것에 대해 가벼운

염려를 하셨지만 이론적이고 실용적인 분야에 몸담더라도

예술적 사고의 유연성은 필요하다고 본다 돈과 인문정신을

구분하면서 필요할 때 양쪽에서 자극 받고 차용하는 것이 마케팅의 융통성과 힘을 기르는 길일 것이다

마케터반 11기 이창환

편집자반 김영준 학우가 그린

『이 외로운 사람들아』 일러스트

박성식 대표가 기획한 lsquo오름rsquo전

22

하늘

습탁은 농도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하늘

습탁은 농도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이 글은 심우진 선생님의 탁본 세미나 수업에 대한 우리들의 즐거운

기록이다 탁본은 습탁(濕拓)과 건탁(乾拓) 두 종류로 구별된다

습탁은 나타내고자 하는 물체 위에 물을 묻힌 후 종이를 그 위에

밀착시키고 먹물 묻은 솜방망이로 가볍게 두드려서 물체를 표현하는

방법이다 물체의 패인 부분을 제외하고 볼록한 부분의 모양대로

종이에 먹이 묻어 문자나 문양이 드러난다 건탁은 이름 그대로 물을

사용하지 않고 마른 상태의 먹인 고형묵(固形墨)을 사용한다 우리는

각자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사물과 자연을 이용해 탁본 작품을

만들고 서울출판예비학교 꼭대기 층에서 작품을 공유했다

디자인반 이 시간을 그대로 탁본할 수 있다면심우진 선생님의 탁본 세미나

저는 신문지를 구겨서 해봤어요

응 그런데 이건 방바닥 같은데

방바닥까지 묻어 나와 버렸네요

[학생들 하하하]

저는 일단 큰 나무 기둥을 떠봤고요

오솔길의 짚도 해보고 저희 집 바닥과

벽면도 신기해서 떠봤어요 집 벽면 중에

대리석도 있고 특이한 벽면이 많거든요

부잣집인가 보네

[학생들 깔깔깔]

승연

심우진 선생님

승연

승연

심우진 선생님

이건 파프리카인데 저희 집 개가 완성한 종이를 찢었어요

[학생들 하하하]

좀 작고 납작한 파프리카를 반으로 잘라서 습탁했어요 또

이건 철조망인데 용 비늘처럼 나와서 재밌었어요 아나콘다

같기도 하고 철조망이 날카로워서 습탁하니 종이가 자꾸

찢어져서 다시 하게 됐어요 근데 이거요hellip 남자친구

있으면 커플끼리 한 번 해보세요 한 명은 잡아주고 한 명은

습탁하고hellip 되게 로맨틱 성공적

자랑하는 거니

[학생들 깔깔깔]

수빈

수빈

심우진 선생님

혜민

정묵

처음에 나뭇잎이 세세하게 잘 나올 줄 몰랐는데 그

줄기의 질감이 잘 나왔고 버려진 타이어를 끌어서

생긴 모양으로도 습탁을 했는데 생각보다 잘 나와서

막상 찍어보면 생각과 다르다는 것을 느꼈어요

저도요 결과물이 뚜렷하게 안 나올 줄 알았는데

디테일이 잘 나타나 있었고 입체를 평면적으로

찍는 것 자체가 재밌었어요

수정

저는 빗자루를 해봤어요 너무 얇아서 안 나올

거라 생각했는데 빗자루 문양이 잘 나와서

재밌었고 머리카락도 해봤는데 머리카락은

끝 부분이 잘 나오는 편이에요 위쪽은 다

뭉쳐있는데 끝 부분은 펼칠 수 있으니까요

23

저는 결이 얇은 것들을 뜨는 것이 재밌었어요

머리카락처럼요 머리 긴 사람에게 부탁해서

눕히고 했어요 그리고 이건 얼굴인데요

처음에는 그냥 했는데 얼굴은 입체를 살리려면

스케치하듯 떠야 되요 결국 명암으로 입체감

조절을 해야 되죠 코가 너무 입체적이라 특히

힘들었어요

누구 얼굴이야

우리 언니hellip

[학생들 우와]

가은

심우진 선생님

가은

하얀

음각이 나왔을 때 너무 좋았고요하늘

습탁은 농도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소리

건 탁 보 다 는 습 탁 이 농 도 조 절 하 는 게

희 한 해 서 재 밌 었 어 요 농 도 조 절 이

관 건 이 거 든 요 먹 과 물 의 배 합 과

솜방망이가 먹물을 얼마나 흡수하는지 그

흡수량이 중요하고요

윤미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꽤 많은데 만져보면서 건탁을 뜨니까 좋았어요 전에

습탁할 때는 시멘트 벽 같은 걸 하다가 나뭇결을 하니까

살아있는 느낌이었어요 생각했던 것처럼 나와서

좋았고 솔방울이나 나뭇잎 같은 섬세한 것들은 제대로

나오지 않아서 아쉬웠어요 섬세한 것들은 습탁으로

해봐야겠어요 그래도 다양한 나무를 건탁해봐서

만족해요

소현

저는 일상적인 것들로 습탁을 해봤어요

처음에는 단순하게 오돌토돌한 느낌만

있 을 줄 알 았 는 데 색 다 른 느 낌 이 나 서

재밌었어요

탁본 세미나를 마치고 그 다음 주에 지하 강당에서 촬영하는 시간을

가졌다 촬영 후에 보정도 했다 나뭇잎의 결 무늬 타이어 자국

그리고 사람의 머리카락까지도 좋은 디자인의 재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보았고 나누었다 건탁과 습탁의 장단점을 이 수업으로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심우진 선생님의 이번 탁본 수업도 지난 활자

수업처럼 지식 습득은 물론이고 경험까지 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 시간들이 앞으로 출판 디자이너로서의 감각을 더 풍요롭게 해 주지

않을까

디자인반 11기 사공예원

하얀

음각이 나왔을 때 너무 좋았고요

습탁은 농도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솜방망이가 먹물을 얼마나 흡수하는지 그

흡수량이 중요하고요

윤미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꽤 많은데 만져보면서 건탁을 뜨니까 좋았어요 전에 꽤 많은데 만져보면서 건탁을 뜨니까 좋았어요 전에

이건 파프리카인데 저희 집 개가 완성한 종이를 찢었어요

[학생들 하하하]

좀 작고 납작한 파프리카를 반으로 잘라서 습탁했어요 또

이건 철조망인데 용 비늘처럼 나와서 재밌었어요 아나콘다

같기도 하고 철조망이 날카로워서 습탁하니 종이가 자꾸

찢어져서 다시 하게 됐어요 근데 이거요hellip 남자친구

있으면 커플끼리 한 번 해보세요 한 명은 잡아주고 한 명은

습탁하고hellip 되게 로맨틱 성공적

자랑하는 거니

[학생들 깔깔깔]

24

9시 30분 합정역 1번 출구 앞

ldquo누나rdquo 소리에 쳐다보니 반가운 공 총무의 얼굴이 보였다 정류장

앞으로 길게 늘어선 줄에 합류하여 파주로 날 데려다 줄 2200번

버스를 기다리고 있으니 반가운 얼굴들이 계속 나타났다 한 대의

버스를 보내고서야 겨우 2200번 버스에 탑승해 파주로 출발할 수

있었다

10시 15분 파주 lsquo다산교 앞rsquo 정류장 하차

4개의 정류장 총 57분이 걸린다고 알려준 N사 지도 어플의 정보와는

달리 30분 만에 파주에 도착했다 일찍 도착해 먹을 것을 찾아 헤맨

예비 마케터들은 편의점에서 주린 배를 채웠고 lsquo지혜의 숲rsquo을 살짝

염탐하며 11시까지 시간을 보냈다

11시 05분 보진재 2층

1912년 설립되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인쇄소인 보진재 관계자

분이 나와 간단히 인사 말씀을 하고 각 반의 인솔자를 소개해주셨다

마케터반의 인솔자는 서동관 과장님 디자인반 편집자반 마케터반

순으로 견학을 시작했다

11시 15분 보진재 견학 시작

제일 먼저 본 곳은 제판실이었다 필름 인쇄가 줄어들고 CTP로

대체되는 추세지만 어떤 분들은 여전히 필름 작업을 하고 계셨다

이유를 물어보니 서동관 과장님은 예전 필름이 남아 있기도 하고

출판사에 따라 필름을 고집하는 곳이 있다고 하셨다

한번에 5도 인쇄가 가능한 기계를 보는 중에 서 과장님이 말씀하셨다

ldquo한 유닛(unit)당 23억 정도 해요rdquo 그렇다면 유닛 다섯 개가

돌아가고 있으니 적어도 10억짜리 기계라고 내 눈에 보이는 건 그냥

낡고 큰 기계인데 10억이 넘는다니 놀랐다 또 과장님께서 자랑스레

말씀하신 한 가지 잉크 농도 조절을 자동으로 하는 기계가 보급된

곳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었다 원래는 사람이 눈으로 보고 수정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재판을 찍을 경우 초판과 동일한 색상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있지만 보진재는 기계가 자동으로 조정해주어 수월한

작업을 할 수 있다고 하셨다

매염실도 보고 제본실도 구경했다 인쇄된 종이를 접지하고 제본을

마친 후 마지막으로 제단을 하면 책이 완성되어 나왔다 그 모든

과정을 보고 난 후 서 과장님이 건넨 완성된 책의 무게는 보통의

그것보다 조금 더 무겁게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윤전실이었다 견학 당일은 작업이 없어서

비어있던 윤전실이지만 윤전실이 주는 무게감은 컸다 윤전실은

롤(roll)로 인쇄하는 곳으로 8개의 롤이 양면 인쇄를 하고 건조와

접지까지 한 번에 가능한 기계도 있었다 대량생산을 위한 곳으로

주로 교과서나 EBS 학습지를 인쇄한다고 하셨다

12시 20분 견학 끝

1시간을 조금 넘긴 견학을 끝내고 밖으로 나오니 코가 따갑고 목이

말랐다 기계가 먼지를 빨아들여준다고는 하지만 수없이 많은

종이가 존재하는 공간에서의 종이 냄새는 강력했던 것이다 책이

제작되는 과정은 실제로 보니 다양하고 복잡했다 자동화가 많이

되어있지만 사람의 손길 없이는 절대 완성될 수 없는 과정들을 보며

책이 완성되기까지의 노력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lsquo책이 어떻게

만들어진다rsquo를 배우다가 lsquo책이 이렇게 만들어진다rsquo를 보니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예비 출판 마케터의

길로 들어선 후에 새로운 것을 보고 배울 수 있었는데 보진재 견학은

그 중에서도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책을 완성시키기 위한 모든 과정이

저마다의 몫을 하고 있었다 서울출판예비학교 졸업 후 출판계에

들어섰을 때 나는 과연 어떤 몫을 할 수 있을까 남은 2개월을 조금은

더 열정적으로 보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마케터반 11기 최다은

1 일일탈

학교 밖 견학 후기

피부로 와 닿는 책의 감촉 책의 냄새 책의 소리 보진재에서 책이 인쇄되는 과정을 만나다

필름과 인쇄판이 만들어지는 과정

25

우리가 이제 각자 편집자 마케터 디자이너가 되어 책 만드는 일을

시작하면 우리의 책은 이곳에서부터 그 lsquo탄생rsquo을 시작할 것이다 책의

근간이 되는 종이가 만들어지는 곳 한솔제지 공장에 다녀왔다 학기

초에 책을 파는 서점을 견학한 뒤 그 다음으로 출판사 종이에 활자를

찍어내는 인쇄소 그리고 마지막으로 lsquo종이rsquo를 만드는 제지 공장을

찾은 것이다 책이 만들어지는 순서대로라면 우리가 다녀온 순서를

거꾸로 해서 다녀왔어야 했지만 우리는 반대로 실제 과정을 거슬러

올라간 것이다 이렇게 거슬러 올라가는 과정에서 오히려 편집자란

직업에 겸허해질 수 있었다 가끔은 편집자가 책을 만드는 모든

과정 위에 군림하는 것 같이 느껴지지만 책의 물성을 만들어내는

거대한 기계 앞에서 우린 한없이 작아지기도 한다 lsquo한 권의 책rsquo이

만들어지려면 이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함을 이해해야 했다 이렇게도

복잡하고 힘겹게 만들어지는 책의 가치를 한 번 더 깊이 생각하게 된

계기였다 책이라는 건 의미가 담긴 조각들의 집합체이자 종이를

보기 좋게 물성화한 것 이론적으로야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눈으로 보고 느끼는 것과는 천지차이다

날씨마저 좋았던 9월 11일 평소보다 한 시간이나 이른 8시

30분에 세 반 학우들은 눈도 제대로 못 뜬 채 집합했다 대전까지

간다니 마치 여행가는 것 같은 살짝 들뜬 기분까지 안고 아침도 못

챙겨먹고 나왔을 우리를 생각해서 빵과 우유까지 준비한 한솔제지

측의 세심한 배려에 감동했다 배도 채우고 부족한 잠도 보충해가며

2시간 넘게 달려 신탄진 공장에 도착했다 도착하자 보이는 우리를

환영하는 현수막에 2차로 감동했다 우리를 위해 정말 많은 준비를

하셨구나 느낀 순간이었다

신탄진 공장 강당에 들어가서 간단한 공장 소개를 먼저 들었다

그리고 뒤이어 종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경청했다 수업 때보다

학생들의 집중력이 더 높아 보였던 건 내 착각이었길 종이는

1퍼센트의 펄프와 99퍼센트의 물로 이루어진단다 그래서 전반적인

공 정 의 대 부 분 은 물 을 처 리 하 기 위 한 과 정 이 나 다 름 없 었 다

생각보다 종이는 순수한 물질이라고 생각했다 종이(paper)의

어원은 이집트의 파피루스(papyrus)에서 왔다고 한다 중국의

lsquo채륜(蔡倫)rsquo이라는 사람이 제일 먼저 발명했고 고려시대에

일본으로 넘어간다 일본에 가장 마지막으로 넘어갔지만 종이의

기술력은 현재 일본이 가장 좋다 원료rarr초지rarr코팅 등의 공정을 거쳐

종이가 완성되는데 마지막 코팅 공정을 여자의 화장에 비유한 것

역시 기억에 남는다 코팅이 그렇게나 대단한 과정이라니

공장 안으로 들어가서는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시끄러워서 설명을

제대로 듣진 못했지만 앞서 들었던 설명을 떠올리며 기계들을

관찰했다 인쇄소에서 본 광경들도 거대하고 박력 있었지만 여긴

그보다 더 거친 느낌이었다 책은 서점에 놓여있을 때는 그렇게

얌전하건만 태어날 땐 이렇게 시끄럽다 또한 막 태어난 종이는

거대하고 또 거대했다 다들 마치 거대한 두루마리 휴지 같다고들

했다

견학을 다 마치고 다시 대전 공장으로 이동해 다 같이 점심 식사를

했다 기대 이상으로 맛있는 밥에 또 감동 더 힘내서 견학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아쉽게도 대전 공장 안에는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라 그 힘()을 발휘하진 못했다 대전 공장은 신탄진 공장과

다르게 책에 쓰이는 것이 아닌 제품 포장용 박스 종이컵 등 다른

용도에 쓰이는 종이를 만드는 곳이었다 그 과정의 차이를 눈으로

비교하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마지막으로 좋은 선물까지 손에

받아들고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다시 서울로 향했다

언제나 시작은 중요하다 각자의 일에 빠져들게 되면 점점 잊게 될

그 시작을 눈에 담고 오래 기억하기 위해 다녀왔다고 생각한다 요즘

초심을 잃었다는 생각이 종종 드는데 책에게도 초심이 있다면 바로 이

곳일까 시작의 의미에 대해 다시 곱씹어보았다

편집자반 11기 박혜원

우리의 글과 그림이 펼쳐질 종이의 탄생 한솔제지 신탄진 공장 견학

거대한 롤(상) 한솔제지 공장 앞에서 (하)

26

화양연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삶과 문학에 취하다

편집자반 한국문학 동아리 lsquo공감rsquo 그 대담의 현장

훗날 서울출판예비학교를 떠올릴 때 가장 즐거운 시간으로 기

억되는 날들은 동아리 활동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들의

화양연화(花樣年華)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 중

의 하루를 소개한다 문예창작학과를 전공한 문학소녀 김한나

학우를 필두로 창단된 편집자반 내 한국문학 동아리 lsquo공감rsquo은

모임 전에 한국작가를 한 명 정해 단편 두 편을 함께 읽고 키워

드나 질문을 스스로 뽑아 글을 써왔다 모여서 때로는 소설의

플롯이나 주제 문체에 대한 열띤 토론을 하고 때로는 작가의

외모()와 같은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며 삼천포로 빠지기도 했

다 우리끼리만 듣기엔 아쉽다 이 즐거운 대화를 모두에게 들

려주고 싶었다 이날 모임에선 김영하 작가의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단편집 속의 두 단편 lsquo엘리베이

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이하 엘리베이터)rsquo와 lsquo사진

관 살인사건(이하 사진관)rsquo에 대해 이야기했다 여기서는 lsquo엘리

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rsquo를 읽고 토의한 내용을

실었다

한나 참고로 김영하는 사람의 욕망에 대해 천착하는 작가야

그런 특성이 엘리베이터에는 안 나와 있는데 사진관에서는

잘 드러나 있어

상화 백가흠 작가에게 소설창작론 강의를 들었는데 그분이

소설의 기법을 설명하면서 알레고리랑 아이러니를 얘기했어

알레고리가 인물이나 소재를 비유적으로 설명하는 거래 예를

들어 핸드폰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다른

것에 핸드폰을 빗댐으로써 소설을 풀어가는 거

야 아이러니는 속도감 있게 이야기를 전개함으

로써 부조리나 모순을 드러내는 건데 김영하가

아이러니의 대표적인 작가래 단편인데도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내면보다는 사건이 일어나는

걸로 소설을 끌어가는 작가 우리가 지난 모임

에서 성석제를 굉장한 이야기꾼이라고 했잖아

그런데 난 김영하가 훨씬 이야기꾼스럽게 느껴

졌어 속도감 있고 lsquo이렇게 몰입을 할 수 있나rsquo

싶고 지난 모임들에서 읽었던 손보미나 편혜영

소설의 경우는 분위기나 주인공의 심정 내면에

의미를 부여해 야 했는데 김영하의 소설은 덮

자마자 아이러니가 느껴지면서 lsquo아 세상은 왜

이래rsquo 말하게 만들었어

법열 나는 엘리베이터 읽고 딱 lsquo뫼비우스의 띠rsquo가 생각났거든

뫼비우스의 띠가 안하고 겉이 구분이 안 되잖아 끝과 시작이

어딘지도 모르고 lsquo나rsquo가 겪는 상황이 현실인지 아닌지 구분이

안 되는 느낌 마지막에 lsquo나rsquo가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가 존재

하기는 했는지 혼란스러운 느낌을 받잖아 그게 앞의 환상적

인 부분이랑 맞물리면서 하나가 되는 느낌이라 뫼비우스의 띠

가 생각났어

상화 lsquo나rsquo가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구해주려고 고분군투하

다가 나중에 자기가 엘리베이터에 갇히잖아

오권 낀 남자의 발을 보면서 느꼈던 감상이 사실은 자기를 구

하고 싶었던 마음인 거지

(일동 오~ 그렇게도 볼 수 있네)

오권 무한도전의 무한상사 특집도 생각났어 뜬금없이 휴지

사용하는 길이에 대해 회의하는 장면에서 엘리베이터는 갇힌

사회 서로를 돌아보지 않는 사회를 의미하는 것 같아

한나 나는 반대로 오히려 엘리베이터를 희망적인 존재로 봤

거든 아파트도 그렇고 회사도 그렇고 각자 자신의 공간 안에

서 살다가 서로 만날 수 있는 장소는 엘리베이터 밖에 없으니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김영하 지음

문학동네 20100216

동아리 후기

27

까 lsquo나rsquo가 회사 엘리베이터 안에 여자와 같이 갇히잖아 사실

은 갇히지 않았으면 대화도 안하고 지나쳐 갔을 텐데 남자는

자기가 아침부터 버스 사고도 나고 성추행범으로 몰렸다고 얘

기하고 또 남자의 담배 피워도 되냐는 말에 여자는 담배에 대

한 불평불만을 속사포처럼 얘기하고 엘리베이터라는 공간이

아니었다면 이런 대화 자체가 없었겠지

오권 엘리베이터 타면 사람들이 하나같이 층수 바뀌는 것만

쳐다보고 있잖아

상화 요즘은 스마트폰

오권 자기 얘기를 하고 싶은 것 같아 하지만 상대의 얘기는

안 들어 lsquo너의 얘기는 관심 밖이지만 내가 불편한 것에 대한

얘기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하겠어rsquo라는 느낌

한나 그리고 우스웠던 게 볼일 보고 휴지 몇 칸 쓰는지 회의에

서 얘기하는 건hellip 사실 굉장히 사적인 얘기잖아 (일동 하하

하) 서로에 대해 다른 얘기는 일절 하지 않으면서 회의 내용은

개인적이고 사적이라니 아이러니한 거지

수경 진짜 웃기지 않았어 lsquo나rsquo가 자원 재활용 문제에 대한 중

대 보고가 있다고 계속 빨리 가야한다고 했던 게 겨우 그거야

상화 겨우 이딴 회의하려고 지금 엘리베이터에 낀 사람 놔두

고hellip 생명이 더 중요한데 지금 휴지 구하려고hellip

(일동 하하하)

한나 lsquo나rsquo가 불쌍했던 이유가 자기한테 닥친 일들은 lsquo할 수 없

지 뭐rsquo 이런 식으로 넘기는데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 걱정하고

갇힌 여자 걱정하고hellip 정작 자기 걱정은 안 해

오권 영화 lt라이터를 켜라gt 봤어 조폭들한테 얻어맞으면서

도 주인공은 무조건 자기 라이터만 찾겠다고 그러거든 이 소

설의 lsquo나rsquo와 비슷한 느낌이 들더라고 그 영화에서는 라이터가

주인공의 존재를 투영하는 소재거든 lsquo나rsquo는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구해야만 자기가 산다는 느낌을 받은 거라 해석하면

너무 나간 건가

법열 아니요 형이 아까 지적해준 게 와 닿았어요 그 고군분

투가 결국 자기를 구하려는 노력이라는 지적이요

상화 그나마 lsquo나rsquo가 이 소설에서 제일 인간적이지

수경 어딘가 찌질한 느낌도 들어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와

lsquo내rsquo가 동류라고 자각하고 연민을 갖는 느낌이었거든 lsquo나rsquo가

인간적이고 윤리적이라는 생각은 나는 글쎄hellip 더 적극적으

로 할 수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 자기 사이클에서 벗어나

지 않는 한도 내에서 걱정만 하잖아 소설 안에서 비극과 희

극이 번갈아 가며 나타나는데 트럭과 버스가 충돌했을 때

lsquo나rsquo는 lsquo버스 카드 일로 충돌하지 않게 되어 적이 기뻤다rsquo고

생각해 버스 운전사는 트럭 백미러에 가슴이 받혀서 죽었는

지도 모르는데 lsquo다행히 나는 허리가 좀 뻐근한 것만 빼면 별

다른 상처가 없는 듯했다rsquo 이런 생각들을 하는 게 좀 섬뜩했

민희 사람은 다 이중성을 가지고 있잖아 나를 보는 듯했어

만약 학교 가는 길에 엘리베이터에 낀 사람을 봤다면 그렇

지만 나도 얼마나 바빠 몇 분 늦으면 지각 체크 당하고 출석

80퍼센트를 못 채울 수도(일동 웃음) 있는 상황이라면 내

가 그 남자를 구할 수 있을까 일단 지나치고 119에 전화하려

고 했으나 핸드폰이 없는 상황에 나도 처할 수 있는 거잖아 나

만 생각하는 잔인한 면도 내 안에 있고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

도 내 안에 있어 이런 찌질한 모습도 나고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정의롭게 구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상화 기준이 다른 것 같아 lsquo나rsquo 정도면 착하다고 생각했거든

수경 주변 사람들이 약간 마네킹 같지 않아 주인공 주변에

장치되어있던 다른 사람들이 너무 비인간적이기 때문에 lsquo나rsquo

가 돋보이는 거지 lsquo나rsquo는 지극히 평범한 우리 모습 같아 내가

어떻게 할 생각은 없고 궁금하기만 한 거야

민희 그 궁금함과 찜찜함도 죄책감이라 생각돼 아 내가 어떻

게 해줬어야 했나

한나 책임 회피일까

상화 그래서 나는 키워드 뽑은 것 중 하나가 119야 구해주고

싶으면 직접 내 손으로 잡아 빼주던가 엘리베이터를 들어 올

릴 사람을 모아야 했는데 신고 생각만 하잖아 이미 이건 누

가 대신 해결해줘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그나마 우리

사회에서 사고를 수습해주는 건 119밖에 없고 조선시대에는

119같은 거 없고 마을 사람들이 모여 구해줬을 텐데 어쩔 수

28

없는 현대인의 단상이긴 해 현대가 분업사회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들 바쁘고 삶이 개인화 파편화되어 있으니까 119 같

은 집단이 필요한 거지 그래서 난 119를 신의 영역이라고 썼

어 lsquo나rsquo는 119를 거의 신적인 존재처럼 생각하잖아 부르면 모

든 게 해결될 것처럼 핸드폰 빌리고 공중전화 찾고 그런데 막

상 교통사고 현장에서 119 대원에게 면대 면으로 얘기를 했더

니 그들은 무슨 그따위 장난을 하냐고 말해 구조도 실은 신이

아니라 사람이 하는 일이고 그 사람이 관심이 없으면 묻히는

거지

오권 전화를 거는 것과 직접 구해주는 것의 차이가 큰 것 같아

자기가 구해주는 건 적극적인 행동이고 119에 전화하는 건 스

스로 최소한 양심적이긴 하다고 여기는 행동

수경 그런데 엘리베이터에 낀 사람을 아무 것도 모르는 일반

인이 어떻게 했다가는 더 위험해질 수도 있잖아

오권 맞아 사회가 시스템화하고 고도화될수록 각자의 업무가

분업화되었고 전문분야가 생겨났으니까 옛날 같았으면 애 낳

으면 그냥 동네 아주머니가 애 받고 어미가 죽으면 젖동냥 다

녔는데hellip 이젠 사고가 나면 생각이 119에 먼저 미치는 시대가

된 거지

수경 그래서 어딘가에 널브러져 다친 인간이 아니라 엘리베이

터라는 공간에 낀 남자를 설정한 것 아닐까 엘리베이터는 현

대화의 상징이잖아

한나 lsquo나rsquo도 어쩔 수 없는 게 출근 시간에 쫓겨서 시계를 계속

봐 먹고 사는 일이니까

오권 출근했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다시 집으로 돌아가

낀 사람을 구해주면 굉장히 희망찬 소설로 바뀔 텐데hellip (일동

웃음)

수경 이 소설로 현대 사회의 폐단은 다 얘기할 수 있겠는데

상화 김영하는 천재인 것 같다

누군가 그리고 잘생겼잖아

누군가 잘생긴 거야

누군가 지적인 분위기가 있어서 좋아 (한참 얘기)

한나 또 인상 깊었던 게 구두에 집착하는 거 lsquo나는 날렵한 치

타처럼hellip 구두를 가지고 엘리베이터에서 빠져나오는 데 성공

했다 허탈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rsquo는 구절

오권 자살한 사람들이 구두를 가지런히 벗어놓는 이미지가 무

슨 상징처럼 있잖아

한나 신발 한 쪽 없이 다녀봤어 계속 기우뚱대서 내가 걷거

나 서 있을 때 내가 잘못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여기서 lsquo나rsquo가

그랬을 거야 사실 lsquo나rsquo처럼 사는 게 정상인데 세상이 잘못된

건데

상화 이 소설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감정표현이잖아 하루 종

일 얼마나 힘들었겠어 처음으로 감정표현을 하니까 불쌍했어

오권 휴머니즘 불쌍론 또 나왔네(일동 웃음) 그럼 이제 사진

관으로 넘어가볼까hellip

편집자반 11기 이상화

2929

책씹는맛 01 냄새라는 경이 lt감각의 박물학gt 후각편을 읽고

냄새에는 언어가 없다 어휘가 부족한 우리는 말문이 막힌

채 불명료한 쾌감과 자극의 바다에서 말을 찾을 수밖에

없다1

이 말은 다이앤 애커먼의 『감각의 박물학』 제 1장 후각에

나오는 구절이다 냄새를 글로 쓰고자 하는 나의 시도가 늘

실패로 귀결되는 이유를 이 구절에서 찾았다 작가의 말처

럼 냄새에 대해 쓴다는 건 언어 밖 세계로 나갔다가 다시

언어로 되돌아오는 길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길에서 헤매

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후각이라는 감각에서 길을

잃는 것은 낭만적인 일이기도 하다 lsquo냄새의 뇌관을 건드리

면 모든 추억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기rsquo2 때문이다 냄새 하

나에 수많은 추억들이 줄줄이 기억의 회로 위로 떠오른다

예를 들면 바다 냄새 하나만 상상해도 그와 관련된 수많

은 기억들이 머릿속에 뒤섞인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바닷가와 관련된 그 모든 추억들이 기억의 영사막에서 한

편의 옴니버스 영화 형태로 내게 다가온다 난 내 기억의

관객이 되어 그 영화를 보다가 견딜 수 없는 그리움에 젖는

다 이 영화에 대한 감상문을 적으려면 나는 말문이 막힌

다 그래서 몇 글자 적다가 결국 글을 쓰기를 멈춘다 굳이

언어로 표현하자면 쓸 수 없는 그리움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1 『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옮김 작가정신 20040720

A Natural History of the Senses(1991) 17쪽

2 같은 책 18쪽

결국 lsquo언어가 존재하는 세계에서 경이는 언어의 칼날 아래

서 쉽게 해부되고 냄새는 자주 혀끝에서 맴돈다rsquo3 냄새의

숭고함 앞에서 우리는 말을 멈춘다 이처럼 냄새는 말할 수

없는 자연의 경이로움과 닮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lsquo냄새가 우리의 마음을 그토록 강하게 움직이는 것은 부분

적으로 그 이름을 부를 수 없기 때문rsquo4이라고 한다 저자는

그렇기에 사람들이 냄새를 lsquo분 냄새 비슷한 펭귄 냄새가

나는 호화로운 화장실 냄새가 나는rsquo 같은 말로 표현할 뿐

이며 냄새에 대한 이름은 주어져 있지 않다고 말한다 또

한 종류는 같아도 강약과 농도가 다른 각각의 냄새에 이름

을 붙여줄 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우린 일상적으로 냄새를

맡으면서도 그 냄새와 멀리 떨어져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명명되지 않은 것은 결국 잊히는 게 아닐까 부를

수 없음에서 오는 경외감과 숭고함이 있을지라도 냄새는

말해져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말할 수 없는 것에 자꾸

만 침묵하기만 해야 할까

감각도 모험의 영역이 될 수 있다 세계 일주만이 세상을

아는 길일까 lsquo나rsquo를 온전히 아는 것이 역설적으로 세상과

가까워지는 일인지도 모른다 나를 알기 위한 길 중 하나가

내가 가지고 있는 감각을 이해하고 그걸 언어로 표현하는

일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어쩌면 우리와 제일 가깝지만 말

하기 낯선 감각 후각을 이해하는 일이 중요한지도 모른다

냄새라는 감각 속에서 우리 모두 길을 잃고 헤매고 모험해

보자 냄새에 나름의 이름을 지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

리고 농도에 따라 냄새를 구분하는 일도 해보자 냄새라는

경이는 우리를 더 이상 침묵으로 이끌지 않을 것이다

디자인반 11기 백가은

3 같은 책 22쪽

4 같은 책 22쪽

『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 옮김

작가정신 20040720

A Natural History of the Senses(1991)

3030

02 현실을 전복시키는 비현실

모호함이 주는 환상성

20세기 중반 중남미 소설은 전통적인 사실주의 서사 구조

를 깨고 현실과 환상을 혼합시키는 새로운 글쓰기 방식으

로 세계문학의 중심에 선다 이 시기에 주목 받은 일련의

중남미 작가들을 가리켜 lsquo붐 세대 작가rsquo라 칭하는데 아르

헨티나의 환상문학 작가 코르타사르는 이 붐 세대 작가군

의 선구자이자 대표 주자 격인 인물이다 그러나 그 문학적

성과와 명성이 무색하게도 국내 독자들에겐 그의 이름이

아직 생소한 것이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에서는 그

의 작품이 중남미 단편 선집에나 몇 편이 번역되었을 뿐 본

격적으로 소개된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중남미 문학을 공부했고 그의 몇 안 되는 번역 작품을 인

상 깊게 읽었던 독자 입장에서 이번에 출간된 코르타사르

의 단편집『드러누운 밤』은 가뭄의 단비처럼 반가운 신간

이다

환상 문학이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J R R 톨킨 류의 판타

지소설 혹은 쥘 베른이나 아이작 아시모프 류의 SF소설을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코르타사르의 환상문학은 이들 범

주에 들어가지 않는다 코르타사르 작품에서 나타나는 환

상이란 토도로프가 정의한 바 있는 환상 그러니까 자연적

인 것과 초자연적인 것 사이의 망설임에서 발생하는 환상

에 가깝다 따라서 판타지소설의 lsquo현실과 동떨어진 환상rsquo

혹은 SF소설의 lsquo설득력 있고 현실감 있는 환상rsquo을 기대하

는 독자라면 아마 십중팔구 그의 작품을 읽고 실망할 것

이다 어쩌면 이게 무슨 환상문학이냐는 푸념을 늘어놓을

지도 모르겠다 역시 가장 좋은 것은 선입관을 버리고 책을

읽는 것이다

코르타사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lsquo모호함rsquo이다 인물이나

배경 묘사에서 제시되는 기본적인 정보도 모호하고 사건의

전개 양상이 가진 당위성도 모호하다 작품 내에서 주요한

스토리 라인을 담당하는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경계도 모

호하며 심지어는 화자의 정체마저 모호한 작품도 있다 이

런 모호함의 향연은 짙게 깔린 안개와도 같아서 독자들은

그 속에서 한 치 앞도 제대로 내다볼 수 없음은 물론이요

이미 지나간 사실조차도 자신이 맞게 인식한 것인지 확신

할 수 없을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무엇이 진짜인지

독자들의 판단을 망설이게 만드는 이런 상태야말로 코르

타사르의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는 환상이란 개념이다 독

자들은 이 환상 속에서 그저 전방을 주시하며 천천히 나아

갈 수밖에 없다

다행스럽게도 코르타사르는 독자들의 시련을 헛되게 하지

않는다 작품의 시작점 일상 세계에 우연히 침투한 lsquo비현

실적인 것rsquo은 안개 속에서 알게 모르게 자신의 지분을 늘려

나간다 그리고 작품의 종점에 다다른 독자들은 비현실이

현실이 되고 현실이 비현실이 되는 이전과는 전혀 새로운

세계와 마주할 것이다 다시 말해 필연과 이성의 법칙이 지

배하는 세계가 우연과 환상이 지배하는 세계로 변하는 것

이다 이러한 세계의 전복은 마치 여기저기 단서를 흩뿌리

고 사람들을 알쏭달쏭하게 만들었다가 결말부에서 모든

것을 폭발시키는 추리소설 혹은 반전영화를 보는 듯한 재

미를 선사한다

그렇다면 코르타사르가 이 소설들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책을 다 읽고 난 독자라면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의문점이다 코르타사르는 자신이 환상문학을 쓰는

이유를 ldquo법칙이나 원칙 혹은 인과관계나 특정한 심리 또

는 잘 그려진 지리학과 같은 체계에 의해 세상이 지배되고

있다는 것에 반대rdquo하고 ldquo우리가 잘 모르며 우리에게 잘 다

가오지 않는 새로운 질서에 관해 생각해보기 위함rdquo이라고

설명한다 짧게 말해 이 세상에 필연이란 존재하지 않으

며 자신은 그것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말이다 이

게 전부다 순문학이라면 거장의 문학이라면 이보다 더 심

오한 통찰 혹은 비판이 있을 것이란 생각에 문장 속 숨겨진

의미를 발견하고자 머리를 싸맬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조

언을 하자면 독서는 독서 그 자체로 즐기면 된다 적어도 이

책에서는 그렇다 모호함과 예상외의 전개 속에서 재미를

느끼고 코르타사르가 묘사하는 세계의 불가지(不可知)성

을 어렴풋하게나마 인식할 수 있다면 이미 그것으로 충분

하다

편집자반 11기 강귀욱

『드러누운 밤』

훌리오 꼬르따사르 지음 박병규 옮김

창비 20141124

La noche boca arribaJulio Cortazar

31

03 얼어붙은 자의식의 바다를깨뜨리고 생명을 불어넣는 책 『데미안』

데미안을 읽고 나서야 그 동안 내가 두 발 딛고 서 있던 땅이

굳고 단단한 대지가 아니라 얼어붙은 바다에 불과했음을 알

았다 데미안은 도끼를 가져와 이 꽁꽁 언 바다를 가차 없이

내리 찍었다 그리고 말했다 얼어붙은 바다를 단단한 땅인

줄 알고 사느니 그 얼음을 깨부수고 그 속에 빠져 죽기 살기

로 허우적대라고 그러면 그 속에서 너는 너 자신을 똑바로 마

주하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성장할 것이라고

주인공 싱클레어도 그를 둘러싸고 있던 세계를 깨뜨려 나가

며 성장한다 그 모든 과정은 결국 진정한 자기 자신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가 깨뜨린 가장 큰 세계는 바로 자신의 사고 체계였다 세상

을 바라보는 기존의 이분법적이던 시각 고정되고 획일화된 시

각을 버렸다 주인공은 세계 안에 심지어는 자신 안에도 선하

고 악하며 밝고 어두운 양극단의 것들이 공존함을 이해하고

두 세계를 끌어안았다 주인공은 귀와 눈을 가리던 장막을 걷

어내 버리고 세상을 바로 보게 되었다 상극인 것들의 괴리로

이루어진 이 모순된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곧 자신 안의 부조

화 또한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스스로에게 다가서는 첫 걸음

이었다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양극단의 세계 사이에서 싱

클레어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며 흔들리기를 반복했다 이

때 그에게는 삶을 지탱할 중심축이 없었다 항상 내면이 아닌

외부 세계에서 자신이 속할 자리를 찾아 헤맸다 그가 비로소

온전한 자신을 만난 순간은 어느 편으로도 치우침 없이 스스

로의 기준으로 홀로 서게 되었을 때였다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 이 길은 당신이 내면에 있는 모

순되는 두 세계 한없이 나약하고 뒷걸음치는 비열한 모습들

과 정갈하고 깨끗한 곧은 힘들을 동시에 직시하는 순간에 시

작된다 그리고 이 길은 두 세계 속에 들어가 이리저리 휩쓸리

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세계를 밟고 우뚝 올라서서 스스로

가 중심이 됨으로써 앞으로 펼쳐진다

이제 lsquo자아를 찾으라rsquo는 지루하고 흔한 이야기가 더 이상 빤

하거나 우습지 않다 묵직한 울림이 되어 나를 흔든다 그냥

나만 붙잡고 흔드는 것이라면 손사래 쳐 뿌리치겠는데 내가

밟고 있던 땅 속해 있던 세계를 뿌리째 흔들어 버린다 읽는

내내 속이 답답하고 나에게 화가 난다 그런데 이렇게 마구

혼나면서 이상하게도 후련한 구석이 있다 호통을 치는 데미

안이 사실은 우리를 응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막연

하고 무기력한 안개에 휩싸여 있을 때 데미안은 그만의 방

식으로 우리에게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준다 물론 갈 방향을

정해준다거나 각자의 사정을 듣고 상담을 해주는 것은 아니

다 오로지 궁지로 몰아세울 뿐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사람들

은 잊고 있던 lsquo나 자신rsquo을 일깨운다 아 그동안 lsquo나rsquo에 대해 생

각해본 적이 있던가 라는 정도만이라도 좋다 이 물음이 바로

여정의 시작이니까

그렇게 스스로에게 묻고 나면 더 이상 전처럼 살 수는 없기 때

문이다 아니라면 자기 자신에게 면목이 없을 것이다 이 무서

운 책이 우리를 혼내고 몰아치면서도 여전히 영원한 고전이자

필독서로 사랑 받는 이유다

lsquo우리들 속에는 모든 것을 아는 한 사람이 있다rsquo고 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혼이 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혼

이 났다는 것은 자신 안에 있는 lsquo그 사람rsquo이 말을 하기 시작했

다는 뜻이니까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목소리가 희미하

고 멀리 있다 하여도 숨죽여 귀 기울이는 일 자체가 자신에게

로 가는 과정임을 잊지 말고

편집자반 11기 배예리

『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민음사 20001220

Demian Die Geschichte von Emil

Sinclairs Jugend(1919)

31

03 얼어붙은 자의식의 바다를깨뜨리고 생명을 불어넣는 책 『데미안』

데미안을 읽고 나서야 그 동안 내가 두 발 딛고 서 있던 땅이

굳고 단단한 대지가 아니라 얼어붙은 바다에 불과했음을 알

았다 데미안은 도끼를 가져와 이 꽁꽁 언 바다를 가차 없이

내리 찍었다 그리고 말했다 얼어붙은 바다를 단단한 땅인

줄 알고 사느니 그 얼음을 깨부수고 그 속에 빠져 죽기 살기

로 허우적대라고 그러면 그 속에서 너는 너 자신을 똑바로 마

주하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성장할 것이라고

주인공 싱클레어도 그를 둘러싸고 있던 세계를 깨뜨려 나가

며 성장한다 그 모든 과정은 결국 진정한 자기 자신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가 깨뜨린 가장 큰 세계는 바로 자신의 사고 체계였다 세상

을 바라보는 기존의 이분법적이던 시각 고정되고 획일화된 시

각을 버렸다 주인공은 세계 안에 심지어는 자신 안에도 선하

고 악하며 밝고 어두운 양극단의 것들이 공존함을 이해하고

두 세계를 끌어안았다 주인공은 귀와 눈을 가리던 장막을 걷

어내 버리고 세상을 바로 보게 되었다 상극인 것들의 괴리로

이루어진 이 모순된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곧 자신 안의 부조

화 또한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스스로에게 다가서는 첫 걸음

이었다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양극단의 세계 사이에서 싱

클레어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며 흔들리기를 반복했다 이

때 그에게는 삶을 지탱할 중심축이 없었다 항상 내면이 아닌

외부 세계에서 자신이 속할 자리를 찾아 헤맸다 그가 비로소

온전한 자신을 만난 순간은 어느 편으로도 치우침 없이 스스

로의 기준으로 홀로 서게 되었을 때였다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 이 길은 당신이 내면에 있는 모

순되는 두 세계 한없이 나약하고 뒷걸음치는 비열한 모습들

과 정갈하고 깨끗한 곧은 힘들을 동시에 직시하는 순간에 시

작된다 그리고 이 길은 두 세계 속에 들어가 이리저리 휩쓸리

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세계를 밟고 우뚝 올라서서 스스로

가 중심이 됨으로써 앞으로 펼쳐진다

이제 lsquo자아를 찾으라rsquo는 지루하고 흔한 이야기가 더 이상 빤

하거나 우습지 않다 묵직한 울림이 되어 나를 흔든다 그냥

나만 붙잡고 흔드는 것이라면 손사래 쳐 뿌리치겠는데 내가

밟고 있던 땅 속해 있던 세계를 뿌리째 흔들어 버린다 읽는

내내 속이 답답하고 나에게 화가 난다 그런데 이렇게 마구

혼나면서 이상하게도 후련한 구석이 있다 호통을 치는 데미

안이 사실은 우리를 응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막연

하고 무기력한 안개에 휩싸여 있을 때 데미안은 그만의 방

식으로 우리에게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준다 물론 갈 방향을

정해준다거나 각자의 사정을 듣고 상담을 해주는 것은 아니

다 오로지 궁지로 몰아세울 뿐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사람들

은 잊고 있던 lsquo나 자신rsquo을 일깨운다 아 그동안 lsquo나rsquo에 대해 생

각해본 적이 있던가 라는 정도만이라도 좋다 이 물음이 바로

여정의 시작이니까

그렇게 스스로에게 묻고 나면 더 이상 전처럼 살 수는 없기 때

문이다 아니라면 자기 자신에게 면목이 없을 것이다 이 무서

운 책이 우리를 혼내고 몰아치면서도 여전히 영원한 고전이자

필독서로 사랑 받는 이유다

lsquo우리들 속에는 모든 것을 아는 한 사람이 있다rsquo고 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혼이 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혼

이 났다는 것은 자신 안에 있는 lsquo그 사람rsquo이 말을 하기 시작했

다는 뜻이니까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목소리가 희미하

고 멀리 있다 하여도 숨죽여 귀 기울이는 일 자체가 자신에게

로 가는 과정임을 잊지 말고

편집자반 11기 배예리

『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민음사 20001220

Demian Die Geschichte von Emil

Sinclairs Jugend(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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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길 인터뷰

진정한 역사가는 과거에 파묻히지 않는다옥(獄)에서 옥(玉)을 만든 작가 박세길 인터뷰

박세길 저자는 처녀작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로 80년대

대표 역사서 자리를 꿰찬 분입니다 1986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감되었을 때 감옥에서 역사책을 읽으며

사회 모순에 대해 고민했고 출소하자마자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집필했습니다 정권 탄압 속에서 왜곡된

현대사를 바로 잡았다는 의미를 지닌 이 대표작은 오랫동안

고시생과 대학생들의 필독서로 꼽혔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읽은 박세길 저자의 저서는 지난 6월 출간한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입니다 기사를 쓰고 편집할 때 청년 세대를

겨냥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박세길 저자는 역시나

청년들의 미래에 큰 관심을 갖고 계셨습니다 취업을

눈앞에 둔 서울출판예비학교 학생들이 가져야 할 자세를

여쭸습니다

출판학교에서 강의하신 한 선생님은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가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와

더불어 80년대 인문학의 양대

산맥이라고 하셨습니다

책의 성공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강의

요청이 많이 들어왔어요 먹고사는

경제적인 문제도 해결됐습니다

몇 부 팔렸는지는 잘 모릅니다

출판사에서 기밀 사항이라고

하더군요 요즘은 마케팅 차원으로도

몇 쇄 몇 부인지 밝히지만 그때는

세금 문제를 피해가기 위해서인지

쉬쉬하던 시절이었나 봅니다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는 대학

선후배끼리도 많이 물려주는 책이라고

들었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의 쉬운 설명이

좋았습니다 더불어 어떤 사명감을 안고 썼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완성하기에 앞서 어떤 목표를

두셨나요

청년 세대가 외환위기 이후 집중적인 희생양으로 전락하면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드러내면서 여기에

머물지 않고 청년 세대의 잠재력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들이 역사 무대 한복판에 진출해 자기 몫을 다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습니다

역사 분야는 시장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역사 혹은 현대사가 주목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통해 얘기하자면

80년대 후반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lsquo왜곡된

역사를 바로 알자rsquo는 시각 교정의 욕구가 있었던

차에 제 책이 나름 부응했는지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시기가 적절했던 셈이죠

2012년 대선 후 역사 분야가 잠시 반짝했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금세 시들었다고

하더군요 당시 역사 분야 책들이 일반 독자가

읽기에 다소 어렵거나 출간한 지 오래된 것들

위주였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돋을세길

출판학교에서 강의하신 한 선생님은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가 유홍준 교수의

책의 성공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강의

하더군요 요즘은 마케팅 차원으로도

선후배끼리도 많이 물려주는 책이라고

역사 분야는 시장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역사 혹은 현대사가 주목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통해 얘기하자면

80년대 후반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lsquo왜곡된

역사를 바로 알자rsquo는 시각 교정의 욕구가 있었던

차에 제 책이 나름 부응했는지 큰 반향을

읽기에 다소 어렵거나 출간한 지 오래된 것들

위주였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의 저자

33

2012년 대선 후 역사 분야가 관심을 받았던 것은

보수층의 재집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한

불안 때문일까요

맞습니다 그러나 마땅한 책이 없어서 그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역사 분야에서 베스트셀러를 내기

위해서는 시기가 맞아 떨어지고 내용 또한 대중이 원하는

것을 담고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를 편집한 lsquo생각정원rsquo

출판사의 정희용 편집자에게 감사 표시를 하셨습니다

어떤 편집자를 선호하시나요

간단합니다 편집자는 철저히 독자 입장에서 독자와 작가

사이의 간극을 줄여줘야 합니다 예를 들면 어려운 내용을

과감히 생략하고 다음 기회로 미루도록 설득한다거나 좌파

운동권 색채가 너무 강한 문장을 조금 순화하는 것 등입니다

어떤 내용이 이번 책에 꼭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선택을

도와줘야 합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을 작가님께서 직접

독자들에게 홍보하신다면 카피 문구를 짧게 제시할 수

있을까요

청년 세대 희망 찾기 갑갑한 현실을 어떻게 타개할 수

있을지 그 답을 찾아보는 길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취업 후 첫발을 내디딜 서울출판예비학교 11기

학생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출판 또한 돈을 벌어야한다는 기본 전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출판계를 지켜본 결과 뭔가 소명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오래

살아남았습니다 출판학교 역대 대표 중 일부는 나와 관계가

있는 사람들인데 모두 고유한 소명의식을 갖고 출판계에

뛰어들었습니다 때로는 상업주의 안에서 재주도 부리곤

했지만 어쨌든 분야 내에서 고유한 캐릭터를 구축했습니다

출판학교 학생들이 출판 상황을 이해하고 자신을 역할을

정하는 개인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비전 중심의 경영을

하는 회사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지만 개인 비전을 기업

비전으로 나아가 사회 비전으로 접목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과거에 안주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부분을

출판계에서는 SNS 등 인터넷 환경을 통한 마케팅으로

이해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SNS망 자체에서 무엇이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건 사람과

사람이 서로 소통하고 공감하는데 필요한 도구입니다

콘텐츠 중심의 사고가 중요하고 그것이 전제되지 않을 때

SNS는 착각에 불과하며 성공할 수 없습니다 필요한 콘텐츠

중심의 사고를 가지고 철저하게 진행하지 않으면 그 공간에서

허망하게 헤엄만 칠 뿐 입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SNS에서

맥없이 헤엄치다 익사하는 경우를 볼 수 있을 겁니다

콘텐츠와 마케팅의 영역을 하나로 보는 것과 따로

보는 것 어떤 것이 독자를 위하는 것일까요

출판 마케팅은 책을 기획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에서부터

개입돼야 하고 그 과정에 독자를 참여시키는 방식을

고민해야 합니다 미국 네브래스카주립대학의 이상문

교수는 lsquo밀실 안에서의 혁신은 끝났다rsquo고 얘기합니다

개방된 체제에서 독자 곧 소비자 사용자의 참여 하에 함께

만들어갈 때 혁신은 이뤄진다고 합니다 출판사의 비전이

브랜드로 연결될 때 독자는 자발적으로 의견을 주고받고

싶어 할 겁니다

마케터반 11기 이창환

디자

인 사

공예

Page 17: 서울출판예비학교 웹진 _5호 2015

17

일하실 때 다뤘던 책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무엇인가요

입사 초기 편집을 하거나 시장조사를 하고 제가 출간 여부에

대한 판단을 내렸던 책들이 기억납니다 『펠레』 자서전은

제가 편집자로 있을 때 출간했던 책인데 주요 일간지의

서평란 메인을 장식했던 책입니다 출간 시점을 맞추기 위해

촉박한 기간 동안 밤새가며 책을 만들었습니다 출간 시점에

대한 판단이 정확히 맞았고 그 결과 기대 이상으로 많은

서평을 받았던 책입니다

서울예비출판학교 선생님으로 오신 계기를

알고 싶어요

전에 다니던 출판사를 그만둔 후

개인적으로 뭔가를 해보려고 고민

중이었습니다 그러나 능력이

부족하다 보니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았죠 그러던 중에

출판학교에서 일해 볼 것을

제안 받았고 저도 출판학교

학생들처럼 면접을 보고 이

학교에 오게 되었습니다

일을 하게 되었을 때 매우

즐거웠습니다

다시 출판사 마케터로 돌아갈

생각이 있으신가요

아니오 이유는 2가지인데 첫째는 제 나이가

48세입니다 다른 업종도 그렇지만 출판 산업에서도

48살에 마케터로 직장인의 생활을 이어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죠 정말 현실적인 고민이죠 게다가 출판학교에서

여러분과 소통하며 제 지식을 전수하는 일이 재미있습니다

물론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언젠가 저만의 꿈을

찾아갈 수 있겠죠

평소 몇 권의 책을 읽으시나요 최근 읽은 책 중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요

예전에 많이 읽을 때는 1주일에 2권 정도 읽었습니다

황석영의 『장길산』과 홍명희의 『임꺽정』 이문열의

『삼국지』를 읽을 때 짬짬이 쉬는 시간을 비롯해 지하철에서

보내는 시간까지 거의 모든 시간을 책을 읽으며 보냈습니다

요즘에는 1달에 1~2권 정도 읽는 것 같네요 최근 읽은

책 중에 기억에 남는 책은 『내 아이와 어떻게 대화할

것인가』(율리아 기펜레이테르 저 써네스트 2006)와 『내

아이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율리아 기펜레이테르

저 써네스트 2009)입니다 제목만으로도 왜 이 책을

추천하는지 금방 눈치 챌 수 있을 것입니다 아이가 둘

있는데 첫째는 15살 딸이고 둘째는 10살 아들입니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lsquo어떻게 하면 아이와 싸우지 않고

윽박지르지 않고 아이의 자존감을 높여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성실하고 삶의 열정과 꿈이 넘쳐나는 아이로

키울까rsquo 같은 고민을 항상 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단비처럼 다가왔습니다 위의 2권의 책을 읽고 몇

가지 중요한 것들을 배웠습니다 아이와 어떻게 소통하고

어떻게 대화해야 하는지 아이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등등 이전에 『부모와 아이 사이』(하임 G 기너트

등 저 양철북 2003)를 읽고 아이를 이해하는 법에 대해

큰 인상을 받았는데 이 책도 그 연장선에서 저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아들과 딸을 좀 더 이해하게 되고 그

결과 아이들에게 화를 내거나(저도 나약한 인간인데 화가

날 때가 심심치 않게 있거든요) 아이들의 긍정적인 싹을

본의 아니게 꺾어 버리는 경우가 줄었다고 할까요 게다가

이 책은 lsquo부모와 아이 사이rsquo만이 아니라 lsquo친구와 친구 사이rsquo

lsquo회사 내부 구성원 사이rsquo에서 소통하는 데도 많은 영감을

제공합니다 출판학교 학생들과 소통할 때도 이해의 폭을

넓혀주고 긍정적인 소통을 하는 방법을 제공해 줍니다

이제 수료를 앞둔 마케터반 학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으시다면

개인별로 처한 처지와 조건에 따라 다르겠지만 다음과 같은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 연인을 사랑하듯 출판에 대해서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보세

- 이 길이 나에게 최선의 길인가 생각해 보세요

- 목표를 세우고 지금부터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한 후 그것을 어떻게 이루어 나갈 것인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보세요

저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스스로의 내면을 단단하게 할 중요한

질문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앞으로도 끊임없이

새로운 답을 찾아나갈 질문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케터반 11기 이장열 이창환

18

선생님은 주말에 뭐하세요

무조건 가족과 함께hellip

만약 편집 디자인을 안 하셨다면 무슨 일을 하고

계실까 궁금해요

어찌 됐든 개인 사업자로 살았을 듯 윗사람 비위 맞추는

것을 너무 못하므로hellip

선생님 주량이 어떻게 되세요 주사가 있으세요

몸 상태 좋고 안주 많이 먹으면 1병(클래식으로)

좋은 출판 디자인을 생각한다

심우진middot안광욱 선생님

lsquo멋rsquo이라는 것이 폭발한다뼛속까지 디자이너스러운 심우진 선생님

멀리서도 눈에 띄는 큰 키에 멋들어진 베레모 디자인반의

심우진 선생님 되시겠다 서울출판예비학교에서 lsquo멋rsquo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가끔은 조금 키 큰 학생처럼 학생들

속에 잘 어우러지는 사람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모습은

여기까지다 그를 조금 더 알고 싶다 지금까지의 그를

만들어왔을 lsquo심우진의 생각들rsquo이 궁금했다

선생님은 무엇을 드시고 그리 멋지시나요

학생들의 사랑 밥 김치

일본 유학길에 오르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lsquo동아시아rsquo lsquo근대rsquo가 당시 나의 화두였으므로 그리고

스기우라 고헤이 선생을 뵈러

첫 직장을 다녔을때 일의 강도()나 다니는 동안

마음은 또 어떠셨는지

출판 쪽 첫 직장은 lsquo정디자인rsquo인데 lsquo나는 왜 이렇게 디자인을

못할까rsquo 답답해했던 기억이 있어요 그러나 매우 즐거웠고

술도 자주 마셨죠 아직도 당시의 OB들과 가깝게 지내요

lsquo둥지rsquo 같은 곳이죠

선생님께서 생각하는 완벽한 판면이란

디자이너의 삶의 방식과 콘텐츠의 삶의 방식이 녹아든 판면

선생님의 피로회복 방법은

알고싶어 디자인반

19

디자인반의 히어로좋은 출판 디자인을 생각한다 안광욱 선생님

여자 화장실 앞에 있어 인파로 북적대는 디자인반 교실을

학생들과 함께 굳건히 지켜온 분 디자인반 학생들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애정공세를 아끼지 않는 분 안광욱

선생님에게 물어본 4가지

디자이너로서 첫 직장을 다닐 때의 마음이

어떠셨나요

잘하고 싶었는데 못해서 힘들었지 사수에게 하루 서너

시간씩 야단맞으면서 했다오 매일 2호선 양화대교에서 뛰어

내리고 싶었는데hellip 이 부분은 내일 수업 때 얘기해줄게^^

선생님께서 생각하는 좋은 출판 디자인이란

세상을 향한 사랑과 희망이 듬뿍 담긴 디자인

출판 디자인을 안 했다면 지금 무슨 일을 하고

계실까요

모르겠네 그냥 선녀 옷 훔치는 나무꾼이 되어 있을 듯^^

어떤 주사가

있으신지 궁금해요

말이 조금 더 많아지고 장소 불문 쿨쿨 자 특별한 주사는

없는 듯

디자인반 11기 이소현 백가은 사공예원

디자

인 사

공예

20

편집자반 김영준 학우가 그린

『이 외로운 사람들아』 일러스트

기억에콕

수업 후기

ldquo우리에게는 lsquo일탈rsquo이 필요합니다rdquo

잠깐 딴 짓을 하는 사이에 귓가에 들려온

한 문장이 나를 사로잡았다 배는 부르고

따 사 로 운 햇 살 에 잠 이 쏟 아 지 는 시 간

오후 1시 30분 시간을 칼같이 맞춰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선 그는 딱 봐도 지루하고

고리타분해 보이는 첫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순간 눈으로 들어온 이미지는 뇌로 흘러갔고

뇌는 망설임 없는 확신으로 귀에 명령을

전달했다 그렇게 귀는 이미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내 들려올 그렇고 그런 뻔한

이야기에 대하여

눈의 판단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의 한마디

한마디는 파격이었다 아니 어쩌면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였지만 누구도 자신 있게

내던지지 못하는 말들을 서슴지 않고 내뱉는 그

거침없음에 신선함을 느낀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의 관심을 돌려놓았던 lsquo일탈rsquo에 대한 그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lsquo일탈을 하라rsquo는 말이

lsquo제멋대로 하라rsquo는 의미가 아니라 어떤 규칙을

벗어나는 행위를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다르게

생각하는 방식을 몸으로 익히게 된다는 것

새로운 것을 생각해내는 창의성이라는 힘은

당연히 새로운 경험에서 나온다는 것이었다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니 강의를 듣던

친구들의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때 보고 들었던 그의 말과 행동이 우리에게는

딱 딱 한 강 의 실 에 서 느 끼 는 새 로 운 경 험

lsquo일탈rsquo이었다

그 와 의 만 남 은 계 속 이 어 졌 다 이 곳

서 울 출 판 예 비 학 교 에 입 학 한 이 후 로 는 좀

더 완 벽 한 일 주 일 단 위 로 시 간 이 흐 르 기

시작했는데 매주 쌓여가는 새로운 배움 뒤에는

수많은 물음이 불쑥불쑥 솟아났고 그는 마치

예상을 했다는 듯이 일주일에 한 번씩 나타나

우리의 설익은 궁금증을 해소해주고 떠나갔다

첫 만남에서는 책이라는 대상과 책을 대하는

편집자의 자세에 대해 이야기하며 큰 그림을

그려주었고 다음엔 저자와의 관계 맺기 그

다음엔 스스로 만들어 가야할 편집자의 자기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담백하게 들려주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네 번째 만남이었다

누구도 쉽게 이야기하기 어려운 완벽하게

솔직해지기는 더더욱 어려운 자신의 좌절과

실패를 그는 담담하고 진솔하게 소개해주었다

모든 성공에는 대개 7할의 실패가 전제되어

있기 마련인데 성공에 이르기까지 거치는

우 리 가 lsquo실패rsquo라고 명 명하는 것들이 사실

진짜 실패가 아니라 성공의 다른 이름이라는

그의 말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성공도 실패도

어 느 한 지 점 에 서 내 리 는 판 단 인 것 이 고

결 국 성 장 하 고 성 숙 한 다 는 것 은 성 공 과

실패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lsquo차이rsquo를 얼마만큼

발견하느냐 하는 것에서 결정된다는 그의 말이

가슴을 뜨겁게 했다 비로소 lsquo편집자rsquo로서가

아닌 한 lsquo사람rsquo으로서의 그가 보이기 시작했다

담담하게 말을 하고 있지만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아프고 쓰린 기억을 후배들에게

들 려 주 는 그 에 게 서 진 심 이 전 해 져 왔 다

사랑하는 일에 대한 함께 걸어갈 동지들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 참 고마웠다

어느덧 마지막 만남이 찾아왔다 한 권의

책을 만들면서 진행했던 편집의 과정을 예로

실 제 적 인 이 야 기 를 우 리 에 게 마 지 막 으 로

들려주었다 편집의 능력은 지식과 정보에서

나온다는 것 그것은 단숨에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 꾸준히 쌓아가야 한다는 것 그래서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의 문제라는 것을 경험을

근거로 자신 있게 말해 주었다 이미 지나온

과거의 결과 대신 앞으로 걸어갈 길에 대한

희망을 들려주어서 그게 참 고마웠다

편집자반 일탈이 주는 파격 우리가 낳을 lsquo새로운 책rsquo과 편집자선완규 선생님과의 다섯 번의 만남이 키운 생각들

21

그 가 우 리 에 게 마 지 막 으 로 이 야 기 를

들려주었던 그날 이후 석 달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났다 나는 여전히 같은 강의실에 앉아

앞서 길을 걸어간 선배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고 조금씩 가까워지고 밝아져가는 내 앞에

놓인 길에 대해 생각한다 그러다 문득 마음이

무거워지고 막막해질 때면 종종 그의 말들을

떠올려 본다 그리고 그 생각의 끝에서 마음을

의지하며 함께 이 길을 걸어갈 따뜻한 선배가

하나 있다는 위로 한 줌을 발견한다

ps 선완규 선생님 고맙습니다 보고 싶어요

편집자반 11기 성준근

마케터반 강한 수면욕 환상과 환기

판형과 종이를 예술로 편입시키려는 영업자다빈치 출판사 박성식 대표 특강 후기

9월 23일 평소보다 점심을 많이 먹었던 날이다 잠을 며칠간 못 자 피곤했다

오후 1시 30분이 살짝 지나서 다빈치 출판사 박성식 대표의 특강이 시작됐다

다빈치 대표님은 처음 뵐 때부터 남다르셨다 서울출판예비학교 입학 면접에서

여자 술 담배를 각각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보셨다 lsquo솔직함을 어필해야

하는 순간인가rsquo하는 생각에 직설적으로 답했지만 lsquo더 문학적으로 얘기할 수

있었는데rsquo라는 후회를 안고 돌아왔다

마음과 다르게 첫 번째 시간은 정신없이 잠이 쏟아졌다 눈을 감고 귀 기울였지만

턱을 괸 채 버티는 동안 50분이 지났다 대표님께 캔 커피를 하나 드리고 맞이한 두

번째 시간 그 한 시간 동안 나는 현실 옆의 어떤 이상 내지는 환상을 본 것 같다 그동안

듣던 강의들을 놓고 lsquo이상적인 관점이다rsquo 혹은 lsquo현실적이다rsquo라고 구분했던 판단의 폭

자체가 좁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성식 대표님은 내 머리에 있던 lsquo책rsquo에 대한 인식을 전복시켰다 자본주의 출판의

몰락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시작됐다는 말 출판 기본 특성인 다품종 소량 생산은 돌아올

것이며 다품종 소량 생산을 넘어 다품종 소량 lsquo고급 생산rsquo을 추구하고 싶다는 말은 나를

달뜨게 했다 주류에 반하는 사고를 가진 중년의 개성과 내공에 교실 풍경이 환기됐다

교육 수단으로 책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지만 책은 그만큼 사회적 의무와 희생을

짊어져왔다 출세와 공부 앞에서 책이 가진 기호(嗜好)성은 변두리로 내몰렸다 책을

읽어야만 제대로 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분위기는 옳지 않다 독서는 성향의 범주지 성역이

돼선 안 된다 정보와 지식의 전달은 모바일 등에 넘겨주고 종이책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공동체로 돌아와야 한다 그게 원래 자리라는 대표님의 주장이 새롭고 강렬하다

자본주의 3대 원칙인 lsquo더 빨리 더 많이 더 싸게rsquo 체계는 표준화와 규격화를 동반하며

매우 효율적이다 현재 사용하는 종이는 자본주의 원칙에 최적화돼 있다 그러나 대표님은

인쇄기계로 소화하지 못하는 질감과 전혀 다른 발색을 지닌 lsquo종이rsquo에 주목했다 그 종이로

콘텐츠 종이 판형이 완벽하게 들어맞는 예술서를 만들고 시장을 설득한다면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책 판매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전했다 종이 자체가 책의 예술성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한지(韓紙)를 예로 들면서 훌륭한 텍스트와 이미지를 한 차원 끌어올리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많은 부수를 팔아야 성공한 출판 많은 부수를 파는 것을

목표로 하는 시대는 저물고 있다 기존 유통과 판매 방식

안에 갇혀서는 불황에 매몰될 뿐이다 소량의 고급화된

책을 꿈꾸는 것과 전시회를 책과 결합하는 것도 다른 길을

물색하는 과정이다

대표님은 10년 전부터 lsquo이 원고는 내가 누구보다 잘

만들겠다rsquo lsquo이 원고는 내가 못하면 누구도 못할 것 같다rsquo라는

생각이 든 책만 출간을 진행했다고 한다

강의 중간 자신의 독특한 철학을 전달하는 것에 대해 가벼운

염려를 하셨지만 이론적이고 실용적인 분야에 몸담더라도

예술적 사고의 유연성은 필요하다고 본다 돈과 인문정신을

구분하면서 필요할 때 양쪽에서 자극 받고 차용하는 것이 마케팅의 융통성과 힘을 기르는 길일 것이다

마케터반 11기 이창환

편집자반 김영준 학우가 그린

『이 외로운 사람들아』 일러스트

박성식 대표가 기획한 lsquo오름rsquo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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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습탁은 농도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하늘

습탁은 농도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이 글은 심우진 선생님의 탁본 세미나 수업에 대한 우리들의 즐거운

기록이다 탁본은 습탁(濕拓)과 건탁(乾拓) 두 종류로 구별된다

습탁은 나타내고자 하는 물체 위에 물을 묻힌 후 종이를 그 위에

밀착시키고 먹물 묻은 솜방망이로 가볍게 두드려서 물체를 표현하는

방법이다 물체의 패인 부분을 제외하고 볼록한 부분의 모양대로

종이에 먹이 묻어 문자나 문양이 드러난다 건탁은 이름 그대로 물을

사용하지 않고 마른 상태의 먹인 고형묵(固形墨)을 사용한다 우리는

각자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사물과 자연을 이용해 탁본 작품을

만들고 서울출판예비학교 꼭대기 층에서 작품을 공유했다

디자인반 이 시간을 그대로 탁본할 수 있다면심우진 선생님의 탁본 세미나

저는 신문지를 구겨서 해봤어요

응 그런데 이건 방바닥 같은데

방바닥까지 묻어 나와 버렸네요

[학생들 하하하]

저는 일단 큰 나무 기둥을 떠봤고요

오솔길의 짚도 해보고 저희 집 바닥과

벽면도 신기해서 떠봤어요 집 벽면 중에

대리석도 있고 특이한 벽면이 많거든요

부잣집인가 보네

[학생들 깔깔깔]

승연

심우진 선생님

승연

승연

심우진 선생님

이건 파프리카인데 저희 집 개가 완성한 종이를 찢었어요

[학생들 하하하]

좀 작고 납작한 파프리카를 반으로 잘라서 습탁했어요 또

이건 철조망인데 용 비늘처럼 나와서 재밌었어요 아나콘다

같기도 하고 철조망이 날카로워서 습탁하니 종이가 자꾸

찢어져서 다시 하게 됐어요 근데 이거요hellip 남자친구

있으면 커플끼리 한 번 해보세요 한 명은 잡아주고 한 명은

습탁하고hellip 되게 로맨틱 성공적

자랑하는 거니

[학생들 깔깔깔]

수빈

수빈

심우진 선생님

혜민

정묵

처음에 나뭇잎이 세세하게 잘 나올 줄 몰랐는데 그

줄기의 질감이 잘 나왔고 버려진 타이어를 끌어서

생긴 모양으로도 습탁을 했는데 생각보다 잘 나와서

막상 찍어보면 생각과 다르다는 것을 느꼈어요

저도요 결과물이 뚜렷하게 안 나올 줄 알았는데

디테일이 잘 나타나 있었고 입체를 평면적으로

찍는 것 자체가 재밌었어요

수정

저는 빗자루를 해봤어요 너무 얇아서 안 나올

거라 생각했는데 빗자루 문양이 잘 나와서

재밌었고 머리카락도 해봤는데 머리카락은

끝 부분이 잘 나오는 편이에요 위쪽은 다

뭉쳐있는데 끝 부분은 펼칠 수 있으니까요

23

저는 결이 얇은 것들을 뜨는 것이 재밌었어요

머리카락처럼요 머리 긴 사람에게 부탁해서

눕히고 했어요 그리고 이건 얼굴인데요

처음에는 그냥 했는데 얼굴은 입체를 살리려면

스케치하듯 떠야 되요 결국 명암으로 입체감

조절을 해야 되죠 코가 너무 입체적이라 특히

힘들었어요

누구 얼굴이야

우리 언니hellip

[학생들 우와]

가은

심우진 선생님

가은

하얀

음각이 나왔을 때 너무 좋았고요하늘

습탁은 농도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소리

건 탁 보 다 는 습 탁 이 농 도 조 절 하 는 게

희 한 해 서 재 밌 었 어 요 농 도 조 절 이

관 건 이 거 든 요 먹 과 물 의 배 합 과

솜방망이가 먹물을 얼마나 흡수하는지 그

흡수량이 중요하고요

윤미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꽤 많은데 만져보면서 건탁을 뜨니까 좋았어요 전에

습탁할 때는 시멘트 벽 같은 걸 하다가 나뭇결을 하니까

살아있는 느낌이었어요 생각했던 것처럼 나와서

좋았고 솔방울이나 나뭇잎 같은 섬세한 것들은 제대로

나오지 않아서 아쉬웠어요 섬세한 것들은 습탁으로

해봐야겠어요 그래도 다양한 나무를 건탁해봐서

만족해요

소현

저는 일상적인 것들로 습탁을 해봤어요

처음에는 단순하게 오돌토돌한 느낌만

있 을 줄 알 았 는 데 색 다 른 느 낌 이 나 서

재밌었어요

탁본 세미나를 마치고 그 다음 주에 지하 강당에서 촬영하는 시간을

가졌다 촬영 후에 보정도 했다 나뭇잎의 결 무늬 타이어 자국

그리고 사람의 머리카락까지도 좋은 디자인의 재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보았고 나누었다 건탁과 습탁의 장단점을 이 수업으로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심우진 선생님의 이번 탁본 수업도 지난 활자

수업처럼 지식 습득은 물론이고 경험까지 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 시간들이 앞으로 출판 디자이너로서의 감각을 더 풍요롭게 해 주지

않을까

디자인반 11기 사공예원

하얀

음각이 나왔을 때 너무 좋았고요

습탁은 농도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솜방망이가 먹물을 얼마나 흡수하는지 그

흡수량이 중요하고요

윤미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꽤 많은데 만져보면서 건탁을 뜨니까 좋았어요 전에 꽤 많은데 만져보면서 건탁을 뜨니까 좋았어요 전에

이건 파프리카인데 저희 집 개가 완성한 종이를 찢었어요

[학생들 하하하]

좀 작고 납작한 파프리카를 반으로 잘라서 습탁했어요 또

이건 철조망인데 용 비늘처럼 나와서 재밌었어요 아나콘다

같기도 하고 철조망이 날카로워서 습탁하니 종이가 자꾸

찢어져서 다시 하게 됐어요 근데 이거요hellip 남자친구

있으면 커플끼리 한 번 해보세요 한 명은 잡아주고 한 명은

습탁하고hellip 되게 로맨틱 성공적

자랑하는 거니

[학생들 깔깔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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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 30분 합정역 1번 출구 앞

ldquo누나rdquo 소리에 쳐다보니 반가운 공 총무의 얼굴이 보였다 정류장

앞으로 길게 늘어선 줄에 합류하여 파주로 날 데려다 줄 2200번

버스를 기다리고 있으니 반가운 얼굴들이 계속 나타났다 한 대의

버스를 보내고서야 겨우 2200번 버스에 탑승해 파주로 출발할 수

있었다

10시 15분 파주 lsquo다산교 앞rsquo 정류장 하차

4개의 정류장 총 57분이 걸린다고 알려준 N사 지도 어플의 정보와는

달리 30분 만에 파주에 도착했다 일찍 도착해 먹을 것을 찾아 헤맨

예비 마케터들은 편의점에서 주린 배를 채웠고 lsquo지혜의 숲rsquo을 살짝

염탐하며 11시까지 시간을 보냈다

11시 05분 보진재 2층

1912년 설립되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인쇄소인 보진재 관계자

분이 나와 간단히 인사 말씀을 하고 각 반의 인솔자를 소개해주셨다

마케터반의 인솔자는 서동관 과장님 디자인반 편집자반 마케터반

순으로 견학을 시작했다

11시 15분 보진재 견학 시작

제일 먼저 본 곳은 제판실이었다 필름 인쇄가 줄어들고 CTP로

대체되는 추세지만 어떤 분들은 여전히 필름 작업을 하고 계셨다

이유를 물어보니 서동관 과장님은 예전 필름이 남아 있기도 하고

출판사에 따라 필름을 고집하는 곳이 있다고 하셨다

한번에 5도 인쇄가 가능한 기계를 보는 중에 서 과장님이 말씀하셨다

ldquo한 유닛(unit)당 23억 정도 해요rdquo 그렇다면 유닛 다섯 개가

돌아가고 있으니 적어도 10억짜리 기계라고 내 눈에 보이는 건 그냥

낡고 큰 기계인데 10억이 넘는다니 놀랐다 또 과장님께서 자랑스레

말씀하신 한 가지 잉크 농도 조절을 자동으로 하는 기계가 보급된

곳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었다 원래는 사람이 눈으로 보고 수정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재판을 찍을 경우 초판과 동일한 색상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있지만 보진재는 기계가 자동으로 조정해주어 수월한

작업을 할 수 있다고 하셨다

매염실도 보고 제본실도 구경했다 인쇄된 종이를 접지하고 제본을

마친 후 마지막으로 제단을 하면 책이 완성되어 나왔다 그 모든

과정을 보고 난 후 서 과장님이 건넨 완성된 책의 무게는 보통의

그것보다 조금 더 무겁게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윤전실이었다 견학 당일은 작업이 없어서

비어있던 윤전실이지만 윤전실이 주는 무게감은 컸다 윤전실은

롤(roll)로 인쇄하는 곳으로 8개의 롤이 양면 인쇄를 하고 건조와

접지까지 한 번에 가능한 기계도 있었다 대량생산을 위한 곳으로

주로 교과서나 EBS 학습지를 인쇄한다고 하셨다

12시 20분 견학 끝

1시간을 조금 넘긴 견학을 끝내고 밖으로 나오니 코가 따갑고 목이

말랐다 기계가 먼지를 빨아들여준다고는 하지만 수없이 많은

종이가 존재하는 공간에서의 종이 냄새는 강력했던 것이다 책이

제작되는 과정은 실제로 보니 다양하고 복잡했다 자동화가 많이

되어있지만 사람의 손길 없이는 절대 완성될 수 없는 과정들을 보며

책이 완성되기까지의 노력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lsquo책이 어떻게

만들어진다rsquo를 배우다가 lsquo책이 이렇게 만들어진다rsquo를 보니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예비 출판 마케터의

길로 들어선 후에 새로운 것을 보고 배울 수 있었는데 보진재 견학은

그 중에서도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책을 완성시키기 위한 모든 과정이

저마다의 몫을 하고 있었다 서울출판예비학교 졸업 후 출판계에

들어섰을 때 나는 과연 어떤 몫을 할 수 있을까 남은 2개월을 조금은

더 열정적으로 보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마케터반 11기 최다은

1 일일탈

학교 밖 견학 후기

피부로 와 닿는 책의 감촉 책의 냄새 책의 소리 보진재에서 책이 인쇄되는 과정을 만나다

필름과 인쇄판이 만들어지는 과정

25

우리가 이제 각자 편집자 마케터 디자이너가 되어 책 만드는 일을

시작하면 우리의 책은 이곳에서부터 그 lsquo탄생rsquo을 시작할 것이다 책의

근간이 되는 종이가 만들어지는 곳 한솔제지 공장에 다녀왔다 학기

초에 책을 파는 서점을 견학한 뒤 그 다음으로 출판사 종이에 활자를

찍어내는 인쇄소 그리고 마지막으로 lsquo종이rsquo를 만드는 제지 공장을

찾은 것이다 책이 만들어지는 순서대로라면 우리가 다녀온 순서를

거꾸로 해서 다녀왔어야 했지만 우리는 반대로 실제 과정을 거슬러

올라간 것이다 이렇게 거슬러 올라가는 과정에서 오히려 편집자란

직업에 겸허해질 수 있었다 가끔은 편집자가 책을 만드는 모든

과정 위에 군림하는 것 같이 느껴지지만 책의 물성을 만들어내는

거대한 기계 앞에서 우린 한없이 작아지기도 한다 lsquo한 권의 책rsquo이

만들어지려면 이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함을 이해해야 했다 이렇게도

복잡하고 힘겹게 만들어지는 책의 가치를 한 번 더 깊이 생각하게 된

계기였다 책이라는 건 의미가 담긴 조각들의 집합체이자 종이를

보기 좋게 물성화한 것 이론적으로야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눈으로 보고 느끼는 것과는 천지차이다

날씨마저 좋았던 9월 11일 평소보다 한 시간이나 이른 8시

30분에 세 반 학우들은 눈도 제대로 못 뜬 채 집합했다 대전까지

간다니 마치 여행가는 것 같은 살짝 들뜬 기분까지 안고 아침도 못

챙겨먹고 나왔을 우리를 생각해서 빵과 우유까지 준비한 한솔제지

측의 세심한 배려에 감동했다 배도 채우고 부족한 잠도 보충해가며

2시간 넘게 달려 신탄진 공장에 도착했다 도착하자 보이는 우리를

환영하는 현수막에 2차로 감동했다 우리를 위해 정말 많은 준비를

하셨구나 느낀 순간이었다

신탄진 공장 강당에 들어가서 간단한 공장 소개를 먼저 들었다

그리고 뒤이어 종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경청했다 수업 때보다

학생들의 집중력이 더 높아 보였던 건 내 착각이었길 종이는

1퍼센트의 펄프와 99퍼센트의 물로 이루어진단다 그래서 전반적인

공 정 의 대 부 분 은 물 을 처 리 하 기 위 한 과 정 이 나 다 름 없 었 다

생각보다 종이는 순수한 물질이라고 생각했다 종이(paper)의

어원은 이집트의 파피루스(papyrus)에서 왔다고 한다 중국의

lsquo채륜(蔡倫)rsquo이라는 사람이 제일 먼저 발명했고 고려시대에

일본으로 넘어간다 일본에 가장 마지막으로 넘어갔지만 종이의

기술력은 현재 일본이 가장 좋다 원료rarr초지rarr코팅 등의 공정을 거쳐

종이가 완성되는데 마지막 코팅 공정을 여자의 화장에 비유한 것

역시 기억에 남는다 코팅이 그렇게나 대단한 과정이라니

공장 안으로 들어가서는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시끄러워서 설명을

제대로 듣진 못했지만 앞서 들었던 설명을 떠올리며 기계들을

관찰했다 인쇄소에서 본 광경들도 거대하고 박력 있었지만 여긴

그보다 더 거친 느낌이었다 책은 서점에 놓여있을 때는 그렇게

얌전하건만 태어날 땐 이렇게 시끄럽다 또한 막 태어난 종이는

거대하고 또 거대했다 다들 마치 거대한 두루마리 휴지 같다고들

했다

견학을 다 마치고 다시 대전 공장으로 이동해 다 같이 점심 식사를

했다 기대 이상으로 맛있는 밥에 또 감동 더 힘내서 견학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아쉽게도 대전 공장 안에는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라 그 힘()을 발휘하진 못했다 대전 공장은 신탄진 공장과

다르게 책에 쓰이는 것이 아닌 제품 포장용 박스 종이컵 등 다른

용도에 쓰이는 종이를 만드는 곳이었다 그 과정의 차이를 눈으로

비교하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마지막으로 좋은 선물까지 손에

받아들고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다시 서울로 향했다

언제나 시작은 중요하다 각자의 일에 빠져들게 되면 점점 잊게 될

그 시작을 눈에 담고 오래 기억하기 위해 다녀왔다고 생각한다 요즘

초심을 잃었다는 생각이 종종 드는데 책에게도 초심이 있다면 바로 이

곳일까 시작의 의미에 대해 다시 곱씹어보았다

편집자반 11기 박혜원

우리의 글과 그림이 펼쳐질 종이의 탄생 한솔제지 신탄진 공장 견학

거대한 롤(상) 한솔제지 공장 앞에서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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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연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삶과 문학에 취하다

편집자반 한국문학 동아리 lsquo공감rsquo 그 대담의 현장

훗날 서울출판예비학교를 떠올릴 때 가장 즐거운 시간으로 기

억되는 날들은 동아리 활동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들의

화양연화(花樣年華)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 중

의 하루를 소개한다 문예창작학과를 전공한 문학소녀 김한나

학우를 필두로 창단된 편집자반 내 한국문학 동아리 lsquo공감rsquo은

모임 전에 한국작가를 한 명 정해 단편 두 편을 함께 읽고 키워

드나 질문을 스스로 뽑아 글을 써왔다 모여서 때로는 소설의

플롯이나 주제 문체에 대한 열띤 토론을 하고 때로는 작가의

외모()와 같은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며 삼천포로 빠지기도 했

다 우리끼리만 듣기엔 아쉽다 이 즐거운 대화를 모두에게 들

려주고 싶었다 이날 모임에선 김영하 작가의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단편집 속의 두 단편 lsquo엘리베이

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이하 엘리베이터)rsquo와 lsquo사진

관 살인사건(이하 사진관)rsquo에 대해 이야기했다 여기서는 lsquo엘리

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rsquo를 읽고 토의한 내용을

실었다

한나 참고로 김영하는 사람의 욕망에 대해 천착하는 작가야

그런 특성이 엘리베이터에는 안 나와 있는데 사진관에서는

잘 드러나 있어

상화 백가흠 작가에게 소설창작론 강의를 들었는데 그분이

소설의 기법을 설명하면서 알레고리랑 아이러니를 얘기했어

알레고리가 인물이나 소재를 비유적으로 설명하는 거래 예를

들어 핸드폰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다른

것에 핸드폰을 빗댐으로써 소설을 풀어가는 거

야 아이러니는 속도감 있게 이야기를 전개함으

로써 부조리나 모순을 드러내는 건데 김영하가

아이러니의 대표적인 작가래 단편인데도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내면보다는 사건이 일어나는

걸로 소설을 끌어가는 작가 우리가 지난 모임

에서 성석제를 굉장한 이야기꾼이라고 했잖아

그런데 난 김영하가 훨씬 이야기꾼스럽게 느껴

졌어 속도감 있고 lsquo이렇게 몰입을 할 수 있나rsquo

싶고 지난 모임들에서 읽었던 손보미나 편혜영

소설의 경우는 분위기나 주인공의 심정 내면에

의미를 부여해 야 했는데 김영하의 소설은 덮

자마자 아이러니가 느껴지면서 lsquo아 세상은 왜

이래rsquo 말하게 만들었어

법열 나는 엘리베이터 읽고 딱 lsquo뫼비우스의 띠rsquo가 생각났거든

뫼비우스의 띠가 안하고 겉이 구분이 안 되잖아 끝과 시작이

어딘지도 모르고 lsquo나rsquo가 겪는 상황이 현실인지 아닌지 구분이

안 되는 느낌 마지막에 lsquo나rsquo가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가 존재

하기는 했는지 혼란스러운 느낌을 받잖아 그게 앞의 환상적

인 부분이랑 맞물리면서 하나가 되는 느낌이라 뫼비우스의 띠

가 생각났어

상화 lsquo나rsquo가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구해주려고 고분군투하

다가 나중에 자기가 엘리베이터에 갇히잖아

오권 낀 남자의 발을 보면서 느꼈던 감상이 사실은 자기를 구

하고 싶었던 마음인 거지

(일동 오~ 그렇게도 볼 수 있네)

오권 무한도전의 무한상사 특집도 생각났어 뜬금없이 휴지

사용하는 길이에 대해 회의하는 장면에서 엘리베이터는 갇힌

사회 서로를 돌아보지 않는 사회를 의미하는 것 같아

한나 나는 반대로 오히려 엘리베이터를 희망적인 존재로 봤

거든 아파트도 그렇고 회사도 그렇고 각자 자신의 공간 안에

서 살다가 서로 만날 수 있는 장소는 엘리베이터 밖에 없으니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김영하 지음

문학동네 20100216

동아리 후기

27

까 lsquo나rsquo가 회사 엘리베이터 안에 여자와 같이 갇히잖아 사실

은 갇히지 않았으면 대화도 안하고 지나쳐 갔을 텐데 남자는

자기가 아침부터 버스 사고도 나고 성추행범으로 몰렸다고 얘

기하고 또 남자의 담배 피워도 되냐는 말에 여자는 담배에 대

한 불평불만을 속사포처럼 얘기하고 엘리베이터라는 공간이

아니었다면 이런 대화 자체가 없었겠지

오권 엘리베이터 타면 사람들이 하나같이 층수 바뀌는 것만

쳐다보고 있잖아

상화 요즘은 스마트폰

오권 자기 얘기를 하고 싶은 것 같아 하지만 상대의 얘기는

안 들어 lsquo너의 얘기는 관심 밖이지만 내가 불편한 것에 대한

얘기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하겠어rsquo라는 느낌

한나 그리고 우스웠던 게 볼일 보고 휴지 몇 칸 쓰는지 회의에

서 얘기하는 건hellip 사실 굉장히 사적인 얘기잖아 (일동 하하

하) 서로에 대해 다른 얘기는 일절 하지 않으면서 회의 내용은

개인적이고 사적이라니 아이러니한 거지

수경 진짜 웃기지 않았어 lsquo나rsquo가 자원 재활용 문제에 대한 중

대 보고가 있다고 계속 빨리 가야한다고 했던 게 겨우 그거야

상화 겨우 이딴 회의하려고 지금 엘리베이터에 낀 사람 놔두

고hellip 생명이 더 중요한데 지금 휴지 구하려고hellip

(일동 하하하)

한나 lsquo나rsquo가 불쌍했던 이유가 자기한테 닥친 일들은 lsquo할 수 없

지 뭐rsquo 이런 식으로 넘기는데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 걱정하고

갇힌 여자 걱정하고hellip 정작 자기 걱정은 안 해

오권 영화 lt라이터를 켜라gt 봤어 조폭들한테 얻어맞으면서

도 주인공은 무조건 자기 라이터만 찾겠다고 그러거든 이 소

설의 lsquo나rsquo와 비슷한 느낌이 들더라고 그 영화에서는 라이터가

주인공의 존재를 투영하는 소재거든 lsquo나rsquo는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구해야만 자기가 산다는 느낌을 받은 거라 해석하면

너무 나간 건가

법열 아니요 형이 아까 지적해준 게 와 닿았어요 그 고군분

투가 결국 자기를 구하려는 노력이라는 지적이요

상화 그나마 lsquo나rsquo가 이 소설에서 제일 인간적이지

수경 어딘가 찌질한 느낌도 들어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와

lsquo내rsquo가 동류라고 자각하고 연민을 갖는 느낌이었거든 lsquo나rsquo가

인간적이고 윤리적이라는 생각은 나는 글쎄hellip 더 적극적으

로 할 수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 자기 사이클에서 벗어나

지 않는 한도 내에서 걱정만 하잖아 소설 안에서 비극과 희

극이 번갈아 가며 나타나는데 트럭과 버스가 충돌했을 때

lsquo나rsquo는 lsquo버스 카드 일로 충돌하지 않게 되어 적이 기뻤다rsquo고

생각해 버스 운전사는 트럭 백미러에 가슴이 받혀서 죽었는

지도 모르는데 lsquo다행히 나는 허리가 좀 뻐근한 것만 빼면 별

다른 상처가 없는 듯했다rsquo 이런 생각들을 하는 게 좀 섬뜩했

민희 사람은 다 이중성을 가지고 있잖아 나를 보는 듯했어

만약 학교 가는 길에 엘리베이터에 낀 사람을 봤다면 그렇

지만 나도 얼마나 바빠 몇 분 늦으면 지각 체크 당하고 출석

80퍼센트를 못 채울 수도(일동 웃음) 있는 상황이라면 내

가 그 남자를 구할 수 있을까 일단 지나치고 119에 전화하려

고 했으나 핸드폰이 없는 상황에 나도 처할 수 있는 거잖아 나

만 생각하는 잔인한 면도 내 안에 있고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

도 내 안에 있어 이런 찌질한 모습도 나고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정의롭게 구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상화 기준이 다른 것 같아 lsquo나rsquo 정도면 착하다고 생각했거든

수경 주변 사람들이 약간 마네킹 같지 않아 주인공 주변에

장치되어있던 다른 사람들이 너무 비인간적이기 때문에 lsquo나rsquo

가 돋보이는 거지 lsquo나rsquo는 지극히 평범한 우리 모습 같아 내가

어떻게 할 생각은 없고 궁금하기만 한 거야

민희 그 궁금함과 찜찜함도 죄책감이라 생각돼 아 내가 어떻

게 해줬어야 했나

한나 책임 회피일까

상화 그래서 나는 키워드 뽑은 것 중 하나가 119야 구해주고

싶으면 직접 내 손으로 잡아 빼주던가 엘리베이터를 들어 올

릴 사람을 모아야 했는데 신고 생각만 하잖아 이미 이건 누

가 대신 해결해줘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그나마 우리

사회에서 사고를 수습해주는 건 119밖에 없고 조선시대에는

119같은 거 없고 마을 사람들이 모여 구해줬을 텐데 어쩔 수

28

없는 현대인의 단상이긴 해 현대가 분업사회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들 바쁘고 삶이 개인화 파편화되어 있으니까 119 같

은 집단이 필요한 거지 그래서 난 119를 신의 영역이라고 썼

어 lsquo나rsquo는 119를 거의 신적인 존재처럼 생각하잖아 부르면 모

든 게 해결될 것처럼 핸드폰 빌리고 공중전화 찾고 그런데 막

상 교통사고 현장에서 119 대원에게 면대 면으로 얘기를 했더

니 그들은 무슨 그따위 장난을 하냐고 말해 구조도 실은 신이

아니라 사람이 하는 일이고 그 사람이 관심이 없으면 묻히는

거지

오권 전화를 거는 것과 직접 구해주는 것의 차이가 큰 것 같아

자기가 구해주는 건 적극적인 행동이고 119에 전화하는 건 스

스로 최소한 양심적이긴 하다고 여기는 행동

수경 그런데 엘리베이터에 낀 사람을 아무 것도 모르는 일반

인이 어떻게 했다가는 더 위험해질 수도 있잖아

오권 맞아 사회가 시스템화하고 고도화될수록 각자의 업무가

분업화되었고 전문분야가 생겨났으니까 옛날 같았으면 애 낳

으면 그냥 동네 아주머니가 애 받고 어미가 죽으면 젖동냥 다

녔는데hellip 이젠 사고가 나면 생각이 119에 먼저 미치는 시대가

된 거지

수경 그래서 어딘가에 널브러져 다친 인간이 아니라 엘리베이

터라는 공간에 낀 남자를 설정한 것 아닐까 엘리베이터는 현

대화의 상징이잖아

한나 lsquo나rsquo도 어쩔 수 없는 게 출근 시간에 쫓겨서 시계를 계속

봐 먹고 사는 일이니까

오권 출근했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다시 집으로 돌아가

낀 사람을 구해주면 굉장히 희망찬 소설로 바뀔 텐데hellip (일동

웃음)

수경 이 소설로 현대 사회의 폐단은 다 얘기할 수 있겠는데

상화 김영하는 천재인 것 같다

누군가 그리고 잘생겼잖아

누군가 잘생긴 거야

누군가 지적인 분위기가 있어서 좋아 (한참 얘기)

한나 또 인상 깊었던 게 구두에 집착하는 거 lsquo나는 날렵한 치

타처럼hellip 구두를 가지고 엘리베이터에서 빠져나오는 데 성공

했다 허탈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rsquo는 구절

오권 자살한 사람들이 구두를 가지런히 벗어놓는 이미지가 무

슨 상징처럼 있잖아

한나 신발 한 쪽 없이 다녀봤어 계속 기우뚱대서 내가 걷거

나 서 있을 때 내가 잘못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여기서 lsquo나rsquo가

그랬을 거야 사실 lsquo나rsquo처럼 사는 게 정상인데 세상이 잘못된

건데

상화 이 소설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감정표현이잖아 하루 종

일 얼마나 힘들었겠어 처음으로 감정표현을 하니까 불쌍했어

오권 휴머니즘 불쌍론 또 나왔네(일동 웃음) 그럼 이제 사진

관으로 넘어가볼까hellip

편집자반 11기 이상화

2929

책씹는맛 01 냄새라는 경이 lt감각의 박물학gt 후각편을 읽고

냄새에는 언어가 없다 어휘가 부족한 우리는 말문이 막힌

채 불명료한 쾌감과 자극의 바다에서 말을 찾을 수밖에

없다1

이 말은 다이앤 애커먼의 『감각의 박물학』 제 1장 후각에

나오는 구절이다 냄새를 글로 쓰고자 하는 나의 시도가 늘

실패로 귀결되는 이유를 이 구절에서 찾았다 작가의 말처

럼 냄새에 대해 쓴다는 건 언어 밖 세계로 나갔다가 다시

언어로 되돌아오는 길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길에서 헤매

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후각이라는 감각에서 길을

잃는 것은 낭만적인 일이기도 하다 lsquo냄새의 뇌관을 건드리

면 모든 추억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기rsquo2 때문이다 냄새 하

나에 수많은 추억들이 줄줄이 기억의 회로 위로 떠오른다

예를 들면 바다 냄새 하나만 상상해도 그와 관련된 수많

은 기억들이 머릿속에 뒤섞인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바닷가와 관련된 그 모든 추억들이 기억의 영사막에서 한

편의 옴니버스 영화 형태로 내게 다가온다 난 내 기억의

관객이 되어 그 영화를 보다가 견딜 수 없는 그리움에 젖는

다 이 영화에 대한 감상문을 적으려면 나는 말문이 막힌

다 그래서 몇 글자 적다가 결국 글을 쓰기를 멈춘다 굳이

언어로 표현하자면 쓸 수 없는 그리움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1 『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옮김 작가정신 20040720

A Natural History of the Senses(1991) 17쪽

2 같은 책 18쪽

결국 lsquo언어가 존재하는 세계에서 경이는 언어의 칼날 아래

서 쉽게 해부되고 냄새는 자주 혀끝에서 맴돈다rsquo3 냄새의

숭고함 앞에서 우리는 말을 멈춘다 이처럼 냄새는 말할 수

없는 자연의 경이로움과 닮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lsquo냄새가 우리의 마음을 그토록 강하게 움직이는 것은 부분

적으로 그 이름을 부를 수 없기 때문rsquo4이라고 한다 저자는

그렇기에 사람들이 냄새를 lsquo분 냄새 비슷한 펭귄 냄새가

나는 호화로운 화장실 냄새가 나는rsquo 같은 말로 표현할 뿐

이며 냄새에 대한 이름은 주어져 있지 않다고 말한다 또

한 종류는 같아도 강약과 농도가 다른 각각의 냄새에 이름

을 붙여줄 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우린 일상적으로 냄새를

맡으면서도 그 냄새와 멀리 떨어져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명명되지 않은 것은 결국 잊히는 게 아닐까 부를

수 없음에서 오는 경외감과 숭고함이 있을지라도 냄새는

말해져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말할 수 없는 것에 자꾸

만 침묵하기만 해야 할까

감각도 모험의 영역이 될 수 있다 세계 일주만이 세상을

아는 길일까 lsquo나rsquo를 온전히 아는 것이 역설적으로 세상과

가까워지는 일인지도 모른다 나를 알기 위한 길 중 하나가

내가 가지고 있는 감각을 이해하고 그걸 언어로 표현하는

일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어쩌면 우리와 제일 가깝지만 말

하기 낯선 감각 후각을 이해하는 일이 중요한지도 모른다

냄새라는 감각 속에서 우리 모두 길을 잃고 헤매고 모험해

보자 냄새에 나름의 이름을 지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

리고 농도에 따라 냄새를 구분하는 일도 해보자 냄새라는

경이는 우리를 더 이상 침묵으로 이끌지 않을 것이다

디자인반 11기 백가은

3 같은 책 22쪽

4 같은 책 22쪽

『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 옮김

작가정신 20040720

A Natural History of the Senses(1991)

3030

02 현실을 전복시키는 비현실

모호함이 주는 환상성

20세기 중반 중남미 소설은 전통적인 사실주의 서사 구조

를 깨고 현실과 환상을 혼합시키는 새로운 글쓰기 방식으

로 세계문학의 중심에 선다 이 시기에 주목 받은 일련의

중남미 작가들을 가리켜 lsquo붐 세대 작가rsquo라 칭하는데 아르

헨티나의 환상문학 작가 코르타사르는 이 붐 세대 작가군

의 선구자이자 대표 주자 격인 인물이다 그러나 그 문학적

성과와 명성이 무색하게도 국내 독자들에겐 그의 이름이

아직 생소한 것이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에서는 그

의 작품이 중남미 단편 선집에나 몇 편이 번역되었을 뿐 본

격적으로 소개된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중남미 문학을 공부했고 그의 몇 안 되는 번역 작품을 인

상 깊게 읽었던 독자 입장에서 이번에 출간된 코르타사르

의 단편집『드러누운 밤』은 가뭄의 단비처럼 반가운 신간

이다

환상 문학이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J R R 톨킨 류의 판타

지소설 혹은 쥘 베른이나 아이작 아시모프 류의 SF소설을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코르타사르의 환상문학은 이들 범

주에 들어가지 않는다 코르타사르 작품에서 나타나는 환

상이란 토도로프가 정의한 바 있는 환상 그러니까 자연적

인 것과 초자연적인 것 사이의 망설임에서 발생하는 환상

에 가깝다 따라서 판타지소설의 lsquo현실과 동떨어진 환상rsquo

혹은 SF소설의 lsquo설득력 있고 현실감 있는 환상rsquo을 기대하

는 독자라면 아마 십중팔구 그의 작품을 읽고 실망할 것

이다 어쩌면 이게 무슨 환상문학이냐는 푸념을 늘어놓을

지도 모르겠다 역시 가장 좋은 것은 선입관을 버리고 책을

읽는 것이다

코르타사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lsquo모호함rsquo이다 인물이나

배경 묘사에서 제시되는 기본적인 정보도 모호하고 사건의

전개 양상이 가진 당위성도 모호하다 작품 내에서 주요한

스토리 라인을 담당하는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경계도 모

호하며 심지어는 화자의 정체마저 모호한 작품도 있다 이

런 모호함의 향연은 짙게 깔린 안개와도 같아서 독자들은

그 속에서 한 치 앞도 제대로 내다볼 수 없음은 물론이요

이미 지나간 사실조차도 자신이 맞게 인식한 것인지 확신

할 수 없을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무엇이 진짜인지

독자들의 판단을 망설이게 만드는 이런 상태야말로 코르

타사르의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는 환상이란 개념이다 독

자들은 이 환상 속에서 그저 전방을 주시하며 천천히 나아

갈 수밖에 없다

다행스럽게도 코르타사르는 독자들의 시련을 헛되게 하지

않는다 작품의 시작점 일상 세계에 우연히 침투한 lsquo비현

실적인 것rsquo은 안개 속에서 알게 모르게 자신의 지분을 늘려

나간다 그리고 작품의 종점에 다다른 독자들은 비현실이

현실이 되고 현실이 비현실이 되는 이전과는 전혀 새로운

세계와 마주할 것이다 다시 말해 필연과 이성의 법칙이 지

배하는 세계가 우연과 환상이 지배하는 세계로 변하는 것

이다 이러한 세계의 전복은 마치 여기저기 단서를 흩뿌리

고 사람들을 알쏭달쏭하게 만들었다가 결말부에서 모든

것을 폭발시키는 추리소설 혹은 반전영화를 보는 듯한 재

미를 선사한다

그렇다면 코르타사르가 이 소설들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책을 다 읽고 난 독자라면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의문점이다 코르타사르는 자신이 환상문학을 쓰는

이유를 ldquo법칙이나 원칙 혹은 인과관계나 특정한 심리 또

는 잘 그려진 지리학과 같은 체계에 의해 세상이 지배되고

있다는 것에 반대rdquo하고 ldquo우리가 잘 모르며 우리에게 잘 다

가오지 않는 새로운 질서에 관해 생각해보기 위함rdquo이라고

설명한다 짧게 말해 이 세상에 필연이란 존재하지 않으

며 자신은 그것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말이다 이

게 전부다 순문학이라면 거장의 문학이라면 이보다 더 심

오한 통찰 혹은 비판이 있을 것이란 생각에 문장 속 숨겨진

의미를 발견하고자 머리를 싸맬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조

언을 하자면 독서는 독서 그 자체로 즐기면 된다 적어도 이

책에서는 그렇다 모호함과 예상외의 전개 속에서 재미를

느끼고 코르타사르가 묘사하는 세계의 불가지(不可知)성

을 어렴풋하게나마 인식할 수 있다면 이미 그것으로 충분

하다

편집자반 11기 강귀욱

『드러누운 밤』

훌리오 꼬르따사르 지음 박병규 옮김

창비 20141124

La noche boca arribaJulio Cortazar

31

03 얼어붙은 자의식의 바다를깨뜨리고 생명을 불어넣는 책 『데미안』

데미안을 읽고 나서야 그 동안 내가 두 발 딛고 서 있던 땅이

굳고 단단한 대지가 아니라 얼어붙은 바다에 불과했음을 알

았다 데미안은 도끼를 가져와 이 꽁꽁 언 바다를 가차 없이

내리 찍었다 그리고 말했다 얼어붙은 바다를 단단한 땅인

줄 알고 사느니 그 얼음을 깨부수고 그 속에 빠져 죽기 살기

로 허우적대라고 그러면 그 속에서 너는 너 자신을 똑바로 마

주하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성장할 것이라고

주인공 싱클레어도 그를 둘러싸고 있던 세계를 깨뜨려 나가

며 성장한다 그 모든 과정은 결국 진정한 자기 자신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가 깨뜨린 가장 큰 세계는 바로 자신의 사고 체계였다 세상

을 바라보는 기존의 이분법적이던 시각 고정되고 획일화된 시

각을 버렸다 주인공은 세계 안에 심지어는 자신 안에도 선하

고 악하며 밝고 어두운 양극단의 것들이 공존함을 이해하고

두 세계를 끌어안았다 주인공은 귀와 눈을 가리던 장막을 걷

어내 버리고 세상을 바로 보게 되었다 상극인 것들의 괴리로

이루어진 이 모순된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곧 자신 안의 부조

화 또한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스스로에게 다가서는 첫 걸음

이었다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양극단의 세계 사이에서 싱

클레어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며 흔들리기를 반복했다 이

때 그에게는 삶을 지탱할 중심축이 없었다 항상 내면이 아닌

외부 세계에서 자신이 속할 자리를 찾아 헤맸다 그가 비로소

온전한 자신을 만난 순간은 어느 편으로도 치우침 없이 스스

로의 기준으로 홀로 서게 되었을 때였다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 이 길은 당신이 내면에 있는 모

순되는 두 세계 한없이 나약하고 뒷걸음치는 비열한 모습들

과 정갈하고 깨끗한 곧은 힘들을 동시에 직시하는 순간에 시

작된다 그리고 이 길은 두 세계 속에 들어가 이리저리 휩쓸리

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세계를 밟고 우뚝 올라서서 스스로

가 중심이 됨으로써 앞으로 펼쳐진다

이제 lsquo자아를 찾으라rsquo는 지루하고 흔한 이야기가 더 이상 빤

하거나 우습지 않다 묵직한 울림이 되어 나를 흔든다 그냥

나만 붙잡고 흔드는 것이라면 손사래 쳐 뿌리치겠는데 내가

밟고 있던 땅 속해 있던 세계를 뿌리째 흔들어 버린다 읽는

내내 속이 답답하고 나에게 화가 난다 그런데 이렇게 마구

혼나면서 이상하게도 후련한 구석이 있다 호통을 치는 데미

안이 사실은 우리를 응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막연

하고 무기력한 안개에 휩싸여 있을 때 데미안은 그만의 방

식으로 우리에게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준다 물론 갈 방향을

정해준다거나 각자의 사정을 듣고 상담을 해주는 것은 아니

다 오로지 궁지로 몰아세울 뿐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사람들

은 잊고 있던 lsquo나 자신rsquo을 일깨운다 아 그동안 lsquo나rsquo에 대해 생

각해본 적이 있던가 라는 정도만이라도 좋다 이 물음이 바로

여정의 시작이니까

그렇게 스스로에게 묻고 나면 더 이상 전처럼 살 수는 없기 때

문이다 아니라면 자기 자신에게 면목이 없을 것이다 이 무서

운 책이 우리를 혼내고 몰아치면서도 여전히 영원한 고전이자

필독서로 사랑 받는 이유다

lsquo우리들 속에는 모든 것을 아는 한 사람이 있다rsquo고 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혼이 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혼

이 났다는 것은 자신 안에 있는 lsquo그 사람rsquo이 말을 하기 시작했

다는 뜻이니까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목소리가 희미하

고 멀리 있다 하여도 숨죽여 귀 기울이는 일 자체가 자신에게

로 가는 과정임을 잊지 말고

편집자반 11기 배예리

『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민음사 20001220

Demian Die Geschichte von Emil

Sinclairs Jugend(1919)

31

03 얼어붙은 자의식의 바다를깨뜨리고 생명을 불어넣는 책 『데미안』

데미안을 읽고 나서야 그 동안 내가 두 발 딛고 서 있던 땅이

굳고 단단한 대지가 아니라 얼어붙은 바다에 불과했음을 알

았다 데미안은 도끼를 가져와 이 꽁꽁 언 바다를 가차 없이

내리 찍었다 그리고 말했다 얼어붙은 바다를 단단한 땅인

줄 알고 사느니 그 얼음을 깨부수고 그 속에 빠져 죽기 살기

로 허우적대라고 그러면 그 속에서 너는 너 자신을 똑바로 마

주하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성장할 것이라고

주인공 싱클레어도 그를 둘러싸고 있던 세계를 깨뜨려 나가

며 성장한다 그 모든 과정은 결국 진정한 자기 자신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가 깨뜨린 가장 큰 세계는 바로 자신의 사고 체계였다 세상

을 바라보는 기존의 이분법적이던 시각 고정되고 획일화된 시

각을 버렸다 주인공은 세계 안에 심지어는 자신 안에도 선하

고 악하며 밝고 어두운 양극단의 것들이 공존함을 이해하고

두 세계를 끌어안았다 주인공은 귀와 눈을 가리던 장막을 걷

어내 버리고 세상을 바로 보게 되었다 상극인 것들의 괴리로

이루어진 이 모순된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곧 자신 안의 부조

화 또한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스스로에게 다가서는 첫 걸음

이었다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양극단의 세계 사이에서 싱

클레어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며 흔들리기를 반복했다 이

때 그에게는 삶을 지탱할 중심축이 없었다 항상 내면이 아닌

외부 세계에서 자신이 속할 자리를 찾아 헤맸다 그가 비로소

온전한 자신을 만난 순간은 어느 편으로도 치우침 없이 스스

로의 기준으로 홀로 서게 되었을 때였다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 이 길은 당신이 내면에 있는 모

순되는 두 세계 한없이 나약하고 뒷걸음치는 비열한 모습들

과 정갈하고 깨끗한 곧은 힘들을 동시에 직시하는 순간에 시

작된다 그리고 이 길은 두 세계 속에 들어가 이리저리 휩쓸리

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세계를 밟고 우뚝 올라서서 스스로

가 중심이 됨으로써 앞으로 펼쳐진다

이제 lsquo자아를 찾으라rsquo는 지루하고 흔한 이야기가 더 이상 빤

하거나 우습지 않다 묵직한 울림이 되어 나를 흔든다 그냥

나만 붙잡고 흔드는 것이라면 손사래 쳐 뿌리치겠는데 내가

밟고 있던 땅 속해 있던 세계를 뿌리째 흔들어 버린다 읽는

내내 속이 답답하고 나에게 화가 난다 그런데 이렇게 마구

혼나면서 이상하게도 후련한 구석이 있다 호통을 치는 데미

안이 사실은 우리를 응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막연

하고 무기력한 안개에 휩싸여 있을 때 데미안은 그만의 방

식으로 우리에게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준다 물론 갈 방향을

정해준다거나 각자의 사정을 듣고 상담을 해주는 것은 아니

다 오로지 궁지로 몰아세울 뿐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사람들

은 잊고 있던 lsquo나 자신rsquo을 일깨운다 아 그동안 lsquo나rsquo에 대해 생

각해본 적이 있던가 라는 정도만이라도 좋다 이 물음이 바로

여정의 시작이니까

그렇게 스스로에게 묻고 나면 더 이상 전처럼 살 수는 없기 때

문이다 아니라면 자기 자신에게 면목이 없을 것이다 이 무서

운 책이 우리를 혼내고 몰아치면서도 여전히 영원한 고전이자

필독서로 사랑 받는 이유다

lsquo우리들 속에는 모든 것을 아는 한 사람이 있다rsquo고 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혼이 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혼

이 났다는 것은 자신 안에 있는 lsquo그 사람rsquo이 말을 하기 시작했

다는 뜻이니까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목소리가 희미하

고 멀리 있다 하여도 숨죽여 귀 기울이는 일 자체가 자신에게

로 가는 과정임을 잊지 말고

편집자반 11기 배예리

『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민음사 20001220

Demian Die Geschichte von Emil

Sinclairs Jugend(1919)

32

박세길 인터뷰

진정한 역사가는 과거에 파묻히지 않는다옥(獄)에서 옥(玉)을 만든 작가 박세길 인터뷰

박세길 저자는 처녀작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로 80년대

대표 역사서 자리를 꿰찬 분입니다 1986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감되었을 때 감옥에서 역사책을 읽으며

사회 모순에 대해 고민했고 출소하자마자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집필했습니다 정권 탄압 속에서 왜곡된

현대사를 바로 잡았다는 의미를 지닌 이 대표작은 오랫동안

고시생과 대학생들의 필독서로 꼽혔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읽은 박세길 저자의 저서는 지난 6월 출간한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입니다 기사를 쓰고 편집할 때 청년 세대를

겨냥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박세길 저자는 역시나

청년들의 미래에 큰 관심을 갖고 계셨습니다 취업을

눈앞에 둔 서울출판예비학교 학생들이 가져야 할 자세를

여쭸습니다

출판학교에서 강의하신 한 선생님은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가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와

더불어 80년대 인문학의 양대

산맥이라고 하셨습니다

책의 성공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강의

요청이 많이 들어왔어요 먹고사는

경제적인 문제도 해결됐습니다

몇 부 팔렸는지는 잘 모릅니다

출판사에서 기밀 사항이라고

하더군요 요즘은 마케팅 차원으로도

몇 쇄 몇 부인지 밝히지만 그때는

세금 문제를 피해가기 위해서인지

쉬쉬하던 시절이었나 봅니다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는 대학

선후배끼리도 많이 물려주는 책이라고

들었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의 쉬운 설명이

좋았습니다 더불어 어떤 사명감을 안고 썼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완성하기에 앞서 어떤 목표를

두셨나요

청년 세대가 외환위기 이후 집중적인 희생양으로 전락하면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드러내면서 여기에

머물지 않고 청년 세대의 잠재력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들이 역사 무대 한복판에 진출해 자기 몫을 다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습니다

역사 분야는 시장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역사 혹은 현대사가 주목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통해 얘기하자면

80년대 후반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lsquo왜곡된

역사를 바로 알자rsquo는 시각 교정의 욕구가 있었던

차에 제 책이 나름 부응했는지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시기가 적절했던 셈이죠

2012년 대선 후 역사 분야가 잠시 반짝했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금세 시들었다고

하더군요 당시 역사 분야 책들이 일반 독자가

읽기에 다소 어렵거나 출간한 지 오래된 것들

위주였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돋을세길

출판학교에서 강의하신 한 선생님은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가 유홍준 교수의

책의 성공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강의

하더군요 요즘은 마케팅 차원으로도

선후배끼리도 많이 물려주는 책이라고

역사 분야는 시장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역사 혹은 현대사가 주목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통해 얘기하자면

80년대 후반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lsquo왜곡된

역사를 바로 알자rsquo는 시각 교정의 욕구가 있었던

차에 제 책이 나름 부응했는지 큰 반향을

읽기에 다소 어렵거나 출간한 지 오래된 것들

위주였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의 저자

33

2012년 대선 후 역사 분야가 관심을 받았던 것은

보수층의 재집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한

불안 때문일까요

맞습니다 그러나 마땅한 책이 없어서 그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역사 분야에서 베스트셀러를 내기

위해서는 시기가 맞아 떨어지고 내용 또한 대중이 원하는

것을 담고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를 편집한 lsquo생각정원rsquo

출판사의 정희용 편집자에게 감사 표시를 하셨습니다

어떤 편집자를 선호하시나요

간단합니다 편집자는 철저히 독자 입장에서 독자와 작가

사이의 간극을 줄여줘야 합니다 예를 들면 어려운 내용을

과감히 생략하고 다음 기회로 미루도록 설득한다거나 좌파

운동권 색채가 너무 강한 문장을 조금 순화하는 것 등입니다

어떤 내용이 이번 책에 꼭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선택을

도와줘야 합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을 작가님께서 직접

독자들에게 홍보하신다면 카피 문구를 짧게 제시할 수

있을까요

청년 세대 희망 찾기 갑갑한 현실을 어떻게 타개할 수

있을지 그 답을 찾아보는 길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취업 후 첫발을 내디딜 서울출판예비학교 11기

학생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출판 또한 돈을 벌어야한다는 기본 전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출판계를 지켜본 결과 뭔가 소명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오래

살아남았습니다 출판학교 역대 대표 중 일부는 나와 관계가

있는 사람들인데 모두 고유한 소명의식을 갖고 출판계에

뛰어들었습니다 때로는 상업주의 안에서 재주도 부리곤

했지만 어쨌든 분야 내에서 고유한 캐릭터를 구축했습니다

출판학교 학생들이 출판 상황을 이해하고 자신을 역할을

정하는 개인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비전 중심의 경영을

하는 회사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지만 개인 비전을 기업

비전으로 나아가 사회 비전으로 접목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과거에 안주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부분을

출판계에서는 SNS 등 인터넷 환경을 통한 마케팅으로

이해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SNS망 자체에서 무엇이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건 사람과

사람이 서로 소통하고 공감하는데 필요한 도구입니다

콘텐츠 중심의 사고가 중요하고 그것이 전제되지 않을 때

SNS는 착각에 불과하며 성공할 수 없습니다 필요한 콘텐츠

중심의 사고를 가지고 철저하게 진행하지 않으면 그 공간에서

허망하게 헤엄만 칠 뿐 입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SNS에서

맥없이 헤엄치다 익사하는 경우를 볼 수 있을 겁니다

콘텐츠와 마케팅의 영역을 하나로 보는 것과 따로

보는 것 어떤 것이 독자를 위하는 것일까요

출판 마케팅은 책을 기획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에서부터

개입돼야 하고 그 과정에 독자를 참여시키는 방식을

고민해야 합니다 미국 네브래스카주립대학의 이상문

교수는 lsquo밀실 안에서의 혁신은 끝났다rsquo고 얘기합니다

개방된 체제에서 독자 곧 소비자 사용자의 참여 하에 함께

만들어갈 때 혁신은 이뤄진다고 합니다 출판사의 비전이

브랜드로 연결될 때 독자는 자발적으로 의견을 주고받고

싶어 할 겁니다

마케터반 11기 이창환

디자

인 사

공예

Page 18: 서울출판예비학교 웹진 _5호 2015

18

선생님은 주말에 뭐하세요

무조건 가족과 함께hellip

만약 편집 디자인을 안 하셨다면 무슨 일을 하고

계실까 궁금해요

어찌 됐든 개인 사업자로 살았을 듯 윗사람 비위 맞추는

것을 너무 못하므로hellip

선생님 주량이 어떻게 되세요 주사가 있으세요

몸 상태 좋고 안주 많이 먹으면 1병(클래식으로)

좋은 출판 디자인을 생각한다

심우진middot안광욱 선생님

lsquo멋rsquo이라는 것이 폭발한다뼛속까지 디자이너스러운 심우진 선생님

멀리서도 눈에 띄는 큰 키에 멋들어진 베레모 디자인반의

심우진 선생님 되시겠다 서울출판예비학교에서 lsquo멋rsquo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가끔은 조금 키 큰 학생처럼 학생들

속에 잘 어우러지는 사람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모습은

여기까지다 그를 조금 더 알고 싶다 지금까지의 그를

만들어왔을 lsquo심우진의 생각들rsquo이 궁금했다

선생님은 무엇을 드시고 그리 멋지시나요

학생들의 사랑 밥 김치

일본 유학길에 오르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lsquo동아시아rsquo lsquo근대rsquo가 당시 나의 화두였으므로 그리고

스기우라 고헤이 선생을 뵈러

첫 직장을 다녔을때 일의 강도()나 다니는 동안

마음은 또 어떠셨는지

출판 쪽 첫 직장은 lsquo정디자인rsquo인데 lsquo나는 왜 이렇게 디자인을

못할까rsquo 답답해했던 기억이 있어요 그러나 매우 즐거웠고

술도 자주 마셨죠 아직도 당시의 OB들과 가깝게 지내요

lsquo둥지rsquo 같은 곳이죠

선생님께서 생각하는 완벽한 판면이란

디자이너의 삶의 방식과 콘텐츠의 삶의 방식이 녹아든 판면

선생님의 피로회복 방법은

알고싶어 디자인반

19

디자인반의 히어로좋은 출판 디자인을 생각한다 안광욱 선생님

여자 화장실 앞에 있어 인파로 북적대는 디자인반 교실을

학생들과 함께 굳건히 지켜온 분 디자인반 학생들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애정공세를 아끼지 않는 분 안광욱

선생님에게 물어본 4가지

디자이너로서 첫 직장을 다닐 때의 마음이

어떠셨나요

잘하고 싶었는데 못해서 힘들었지 사수에게 하루 서너

시간씩 야단맞으면서 했다오 매일 2호선 양화대교에서 뛰어

내리고 싶었는데hellip 이 부분은 내일 수업 때 얘기해줄게^^

선생님께서 생각하는 좋은 출판 디자인이란

세상을 향한 사랑과 희망이 듬뿍 담긴 디자인

출판 디자인을 안 했다면 지금 무슨 일을 하고

계실까요

모르겠네 그냥 선녀 옷 훔치는 나무꾼이 되어 있을 듯^^

어떤 주사가

있으신지 궁금해요

말이 조금 더 많아지고 장소 불문 쿨쿨 자 특별한 주사는

없는 듯

디자인반 11기 이소현 백가은 사공예원

디자

인 사

공예

20

편집자반 김영준 학우가 그린

『이 외로운 사람들아』 일러스트

기억에콕

수업 후기

ldquo우리에게는 lsquo일탈rsquo이 필요합니다rdquo

잠깐 딴 짓을 하는 사이에 귓가에 들려온

한 문장이 나를 사로잡았다 배는 부르고

따 사 로 운 햇 살 에 잠 이 쏟 아 지 는 시 간

오후 1시 30분 시간을 칼같이 맞춰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선 그는 딱 봐도 지루하고

고리타분해 보이는 첫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순간 눈으로 들어온 이미지는 뇌로 흘러갔고

뇌는 망설임 없는 확신으로 귀에 명령을

전달했다 그렇게 귀는 이미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내 들려올 그렇고 그런 뻔한

이야기에 대하여

눈의 판단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의 한마디

한마디는 파격이었다 아니 어쩌면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였지만 누구도 자신 있게

내던지지 못하는 말들을 서슴지 않고 내뱉는 그

거침없음에 신선함을 느낀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의 관심을 돌려놓았던 lsquo일탈rsquo에 대한 그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lsquo일탈을 하라rsquo는 말이

lsquo제멋대로 하라rsquo는 의미가 아니라 어떤 규칙을

벗어나는 행위를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다르게

생각하는 방식을 몸으로 익히게 된다는 것

새로운 것을 생각해내는 창의성이라는 힘은

당연히 새로운 경험에서 나온다는 것이었다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니 강의를 듣던

친구들의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때 보고 들었던 그의 말과 행동이 우리에게는

딱 딱 한 강 의 실 에 서 느 끼 는 새 로 운 경 험

lsquo일탈rsquo이었다

그 와 의 만 남 은 계 속 이 어 졌 다 이 곳

서 울 출 판 예 비 학 교 에 입 학 한 이 후 로 는 좀

더 완 벽 한 일 주 일 단 위 로 시 간 이 흐 르 기

시작했는데 매주 쌓여가는 새로운 배움 뒤에는

수많은 물음이 불쑥불쑥 솟아났고 그는 마치

예상을 했다는 듯이 일주일에 한 번씩 나타나

우리의 설익은 궁금증을 해소해주고 떠나갔다

첫 만남에서는 책이라는 대상과 책을 대하는

편집자의 자세에 대해 이야기하며 큰 그림을

그려주었고 다음엔 저자와의 관계 맺기 그

다음엔 스스로 만들어 가야할 편집자의 자기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담백하게 들려주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네 번째 만남이었다

누구도 쉽게 이야기하기 어려운 완벽하게

솔직해지기는 더더욱 어려운 자신의 좌절과

실패를 그는 담담하고 진솔하게 소개해주었다

모든 성공에는 대개 7할의 실패가 전제되어

있기 마련인데 성공에 이르기까지 거치는

우 리 가 lsquo실패rsquo라고 명 명하는 것들이 사실

진짜 실패가 아니라 성공의 다른 이름이라는

그의 말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성공도 실패도

어 느 한 지 점 에 서 내 리 는 판 단 인 것 이 고

결 국 성 장 하 고 성 숙 한 다 는 것 은 성 공 과

실패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lsquo차이rsquo를 얼마만큼

발견하느냐 하는 것에서 결정된다는 그의 말이

가슴을 뜨겁게 했다 비로소 lsquo편집자rsquo로서가

아닌 한 lsquo사람rsquo으로서의 그가 보이기 시작했다

담담하게 말을 하고 있지만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아프고 쓰린 기억을 후배들에게

들 려 주 는 그 에 게 서 진 심 이 전 해 져 왔 다

사랑하는 일에 대한 함께 걸어갈 동지들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 참 고마웠다

어느덧 마지막 만남이 찾아왔다 한 권의

책을 만들면서 진행했던 편집의 과정을 예로

실 제 적 인 이 야 기 를 우 리 에 게 마 지 막 으 로

들려주었다 편집의 능력은 지식과 정보에서

나온다는 것 그것은 단숨에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 꾸준히 쌓아가야 한다는 것 그래서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의 문제라는 것을 경험을

근거로 자신 있게 말해 주었다 이미 지나온

과거의 결과 대신 앞으로 걸어갈 길에 대한

희망을 들려주어서 그게 참 고마웠다

편집자반 일탈이 주는 파격 우리가 낳을 lsquo새로운 책rsquo과 편집자선완규 선생님과의 다섯 번의 만남이 키운 생각들

21

그 가 우 리 에 게 마 지 막 으 로 이 야 기 를

들려주었던 그날 이후 석 달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났다 나는 여전히 같은 강의실에 앉아

앞서 길을 걸어간 선배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고 조금씩 가까워지고 밝아져가는 내 앞에

놓인 길에 대해 생각한다 그러다 문득 마음이

무거워지고 막막해질 때면 종종 그의 말들을

떠올려 본다 그리고 그 생각의 끝에서 마음을

의지하며 함께 이 길을 걸어갈 따뜻한 선배가

하나 있다는 위로 한 줌을 발견한다

ps 선완규 선생님 고맙습니다 보고 싶어요

편집자반 11기 성준근

마케터반 강한 수면욕 환상과 환기

판형과 종이를 예술로 편입시키려는 영업자다빈치 출판사 박성식 대표 특강 후기

9월 23일 평소보다 점심을 많이 먹었던 날이다 잠을 며칠간 못 자 피곤했다

오후 1시 30분이 살짝 지나서 다빈치 출판사 박성식 대표의 특강이 시작됐다

다빈치 대표님은 처음 뵐 때부터 남다르셨다 서울출판예비학교 입학 면접에서

여자 술 담배를 각각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보셨다 lsquo솔직함을 어필해야

하는 순간인가rsquo하는 생각에 직설적으로 답했지만 lsquo더 문학적으로 얘기할 수

있었는데rsquo라는 후회를 안고 돌아왔다

마음과 다르게 첫 번째 시간은 정신없이 잠이 쏟아졌다 눈을 감고 귀 기울였지만

턱을 괸 채 버티는 동안 50분이 지났다 대표님께 캔 커피를 하나 드리고 맞이한 두

번째 시간 그 한 시간 동안 나는 현실 옆의 어떤 이상 내지는 환상을 본 것 같다 그동안

듣던 강의들을 놓고 lsquo이상적인 관점이다rsquo 혹은 lsquo현실적이다rsquo라고 구분했던 판단의 폭

자체가 좁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성식 대표님은 내 머리에 있던 lsquo책rsquo에 대한 인식을 전복시켰다 자본주의 출판의

몰락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시작됐다는 말 출판 기본 특성인 다품종 소량 생산은 돌아올

것이며 다품종 소량 생산을 넘어 다품종 소량 lsquo고급 생산rsquo을 추구하고 싶다는 말은 나를

달뜨게 했다 주류에 반하는 사고를 가진 중년의 개성과 내공에 교실 풍경이 환기됐다

교육 수단으로 책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지만 책은 그만큼 사회적 의무와 희생을

짊어져왔다 출세와 공부 앞에서 책이 가진 기호(嗜好)성은 변두리로 내몰렸다 책을

읽어야만 제대로 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분위기는 옳지 않다 독서는 성향의 범주지 성역이

돼선 안 된다 정보와 지식의 전달은 모바일 등에 넘겨주고 종이책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공동체로 돌아와야 한다 그게 원래 자리라는 대표님의 주장이 새롭고 강렬하다

자본주의 3대 원칙인 lsquo더 빨리 더 많이 더 싸게rsquo 체계는 표준화와 규격화를 동반하며

매우 효율적이다 현재 사용하는 종이는 자본주의 원칙에 최적화돼 있다 그러나 대표님은

인쇄기계로 소화하지 못하는 질감과 전혀 다른 발색을 지닌 lsquo종이rsquo에 주목했다 그 종이로

콘텐츠 종이 판형이 완벽하게 들어맞는 예술서를 만들고 시장을 설득한다면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책 판매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전했다 종이 자체가 책의 예술성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한지(韓紙)를 예로 들면서 훌륭한 텍스트와 이미지를 한 차원 끌어올리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많은 부수를 팔아야 성공한 출판 많은 부수를 파는 것을

목표로 하는 시대는 저물고 있다 기존 유통과 판매 방식

안에 갇혀서는 불황에 매몰될 뿐이다 소량의 고급화된

책을 꿈꾸는 것과 전시회를 책과 결합하는 것도 다른 길을

물색하는 과정이다

대표님은 10년 전부터 lsquo이 원고는 내가 누구보다 잘

만들겠다rsquo lsquo이 원고는 내가 못하면 누구도 못할 것 같다rsquo라는

생각이 든 책만 출간을 진행했다고 한다

강의 중간 자신의 독특한 철학을 전달하는 것에 대해 가벼운

염려를 하셨지만 이론적이고 실용적인 분야에 몸담더라도

예술적 사고의 유연성은 필요하다고 본다 돈과 인문정신을

구분하면서 필요할 때 양쪽에서 자극 받고 차용하는 것이 마케팅의 융통성과 힘을 기르는 길일 것이다

마케터반 11기 이창환

편집자반 김영준 학우가 그린

『이 외로운 사람들아』 일러스트

박성식 대표가 기획한 lsquo오름rsquo전

22

하늘

습탁은 농도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하늘

습탁은 농도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이 글은 심우진 선생님의 탁본 세미나 수업에 대한 우리들의 즐거운

기록이다 탁본은 습탁(濕拓)과 건탁(乾拓) 두 종류로 구별된다

습탁은 나타내고자 하는 물체 위에 물을 묻힌 후 종이를 그 위에

밀착시키고 먹물 묻은 솜방망이로 가볍게 두드려서 물체를 표현하는

방법이다 물체의 패인 부분을 제외하고 볼록한 부분의 모양대로

종이에 먹이 묻어 문자나 문양이 드러난다 건탁은 이름 그대로 물을

사용하지 않고 마른 상태의 먹인 고형묵(固形墨)을 사용한다 우리는

각자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사물과 자연을 이용해 탁본 작품을

만들고 서울출판예비학교 꼭대기 층에서 작품을 공유했다

디자인반 이 시간을 그대로 탁본할 수 있다면심우진 선생님의 탁본 세미나

저는 신문지를 구겨서 해봤어요

응 그런데 이건 방바닥 같은데

방바닥까지 묻어 나와 버렸네요

[학생들 하하하]

저는 일단 큰 나무 기둥을 떠봤고요

오솔길의 짚도 해보고 저희 집 바닥과

벽면도 신기해서 떠봤어요 집 벽면 중에

대리석도 있고 특이한 벽면이 많거든요

부잣집인가 보네

[학생들 깔깔깔]

승연

심우진 선생님

승연

승연

심우진 선생님

이건 파프리카인데 저희 집 개가 완성한 종이를 찢었어요

[학생들 하하하]

좀 작고 납작한 파프리카를 반으로 잘라서 습탁했어요 또

이건 철조망인데 용 비늘처럼 나와서 재밌었어요 아나콘다

같기도 하고 철조망이 날카로워서 습탁하니 종이가 자꾸

찢어져서 다시 하게 됐어요 근데 이거요hellip 남자친구

있으면 커플끼리 한 번 해보세요 한 명은 잡아주고 한 명은

습탁하고hellip 되게 로맨틱 성공적

자랑하는 거니

[학생들 깔깔깔]

수빈

수빈

심우진 선생님

혜민

정묵

처음에 나뭇잎이 세세하게 잘 나올 줄 몰랐는데 그

줄기의 질감이 잘 나왔고 버려진 타이어를 끌어서

생긴 모양으로도 습탁을 했는데 생각보다 잘 나와서

막상 찍어보면 생각과 다르다는 것을 느꼈어요

저도요 결과물이 뚜렷하게 안 나올 줄 알았는데

디테일이 잘 나타나 있었고 입체를 평면적으로

찍는 것 자체가 재밌었어요

수정

저는 빗자루를 해봤어요 너무 얇아서 안 나올

거라 생각했는데 빗자루 문양이 잘 나와서

재밌었고 머리카락도 해봤는데 머리카락은

끝 부분이 잘 나오는 편이에요 위쪽은 다

뭉쳐있는데 끝 부분은 펼칠 수 있으니까요

23

저는 결이 얇은 것들을 뜨는 것이 재밌었어요

머리카락처럼요 머리 긴 사람에게 부탁해서

눕히고 했어요 그리고 이건 얼굴인데요

처음에는 그냥 했는데 얼굴은 입체를 살리려면

스케치하듯 떠야 되요 결국 명암으로 입체감

조절을 해야 되죠 코가 너무 입체적이라 특히

힘들었어요

누구 얼굴이야

우리 언니hellip

[학생들 우와]

가은

심우진 선생님

가은

하얀

음각이 나왔을 때 너무 좋았고요하늘

습탁은 농도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소리

건 탁 보 다 는 습 탁 이 농 도 조 절 하 는 게

희 한 해 서 재 밌 었 어 요 농 도 조 절 이

관 건 이 거 든 요 먹 과 물 의 배 합 과

솜방망이가 먹물을 얼마나 흡수하는지 그

흡수량이 중요하고요

윤미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꽤 많은데 만져보면서 건탁을 뜨니까 좋았어요 전에

습탁할 때는 시멘트 벽 같은 걸 하다가 나뭇결을 하니까

살아있는 느낌이었어요 생각했던 것처럼 나와서

좋았고 솔방울이나 나뭇잎 같은 섬세한 것들은 제대로

나오지 않아서 아쉬웠어요 섬세한 것들은 습탁으로

해봐야겠어요 그래도 다양한 나무를 건탁해봐서

만족해요

소현

저는 일상적인 것들로 습탁을 해봤어요

처음에는 단순하게 오돌토돌한 느낌만

있 을 줄 알 았 는 데 색 다 른 느 낌 이 나 서

재밌었어요

탁본 세미나를 마치고 그 다음 주에 지하 강당에서 촬영하는 시간을

가졌다 촬영 후에 보정도 했다 나뭇잎의 결 무늬 타이어 자국

그리고 사람의 머리카락까지도 좋은 디자인의 재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보았고 나누었다 건탁과 습탁의 장단점을 이 수업으로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심우진 선생님의 이번 탁본 수업도 지난 활자

수업처럼 지식 습득은 물론이고 경험까지 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 시간들이 앞으로 출판 디자이너로서의 감각을 더 풍요롭게 해 주지

않을까

디자인반 11기 사공예원

하얀

음각이 나왔을 때 너무 좋았고요

습탁은 농도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솜방망이가 먹물을 얼마나 흡수하는지 그

흡수량이 중요하고요

윤미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꽤 많은데 만져보면서 건탁을 뜨니까 좋았어요 전에 꽤 많은데 만져보면서 건탁을 뜨니까 좋았어요 전에

이건 파프리카인데 저희 집 개가 완성한 종이를 찢었어요

[학생들 하하하]

좀 작고 납작한 파프리카를 반으로 잘라서 습탁했어요 또

이건 철조망인데 용 비늘처럼 나와서 재밌었어요 아나콘다

같기도 하고 철조망이 날카로워서 습탁하니 종이가 자꾸

찢어져서 다시 하게 됐어요 근데 이거요hellip 남자친구

있으면 커플끼리 한 번 해보세요 한 명은 잡아주고 한 명은

습탁하고hellip 되게 로맨틱 성공적

자랑하는 거니

[학생들 깔깔깔]

24

9시 30분 합정역 1번 출구 앞

ldquo누나rdquo 소리에 쳐다보니 반가운 공 총무의 얼굴이 보였다 정류장

앞으로 길게 늘어선 줄에 합류하여 파주로 날 데려다 줄 2200번

버스를 기다리고 있으니 반가운 얼굴들이 계속 나타났다 한 대의

버스를 보내고서야 겨우 2200번 버스에 탑승해 파주로 출발할 수

있었다

10시 15분 파주 lsquo다산교 앞rsquo 정류장 하차

4개의 정류장 총 57분이 걸린다고 알려준 N사 지도 어플의 정보와는

달리 30분 만에 파주에 도착했다 일찍 도착해 먹을 것을 찾아 헤맨

예비 마케터들은 편의점에서 주린 배를 채웠고 lsquo지혜의 숲rsquo을 살짝

염탐하며 11시까지 시간을 보냈다

11시 05분 보진재 2층

1912년 설립되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인쇄소인 보진재 관계자

분이 나와 간단히 인사 말씀을 하고 각 반의 인솔자를 소개해주셨다

마케터반의 인솔자는 서동관 과장님 디자인반 편집자반 마케터반

순으로 견학을 시작했다

11시 15분 보진재 견학 시작

제일 먼저 본 곳은 제판실이었다 필름 인쇄가 줄어들고 CTP로

대체되는 추세지만 어떤 분들은 여전히 필름 작업을 하고 계셨다

이유를 물어보니 서동관 과장님은 예전 필름이 남아 있기도 하고

출판사에 따라 필름을 고집하는 곳이 있다고 하셨다

한번에 5도 인쇄가 가능한 기계를 보는 중에 서 과장님이 말씀하셨다

ldquo한 유닛(unit)당 23억 정도 해요rdquo 그렇다면 유닛 다섯 개가

돌아가고 있으니 적어도 10억짜리 기계라고 내 눈에 보이는 건 그냥

낡고 큰 기계인데 10억이 넘는다니 놀랐다 또 과장님께서 자랑스레

말씀하신 한 가지 잉크 농도 조절을 자동으로 하는 기계가 보급된

곳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었다 원래는 사람이 눈으로 보고 수정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재판을 찍을 경우 초판과 동일한 색상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있지만 보진재는 기계가 자동으로 조정해주어 수월한

작업을 할 수 있다고 하셨다

매염실도 보고 제본실도 구경했다 인쇄된 종이를 접지하고 제본을

마친 후 마지막으로 제단을 하면 책이 완성되어 나왔다 그 모든

과정을 보고 난 후 서 과장님이 건넨 완성된 책의 무게는 보통의

그것보다 조금 더 무겁게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윤전실이었다 견학 당일은 작업이 없어서

비어있던 윤전실이지만 윤전실이 주는 무게감은 컸다 윤전실은

롤(roll)로 인쇄하는 곳으로 8개의 롤이 양면 인쇄를 하고 건조와

접지까지 한 번에 가능한 기계도 있었다 대량생산을 위한 곳으로

주로 교과서나 EBS 학습지를 인쇄한다고 하셨다

12시 20분 견학 끝

1시간을 조금 넘긴 견학을 끝내고 밖으로 나오니 코가 따갑고 목이

말랐다 기계가 먼지를 빨아들여준다고는 하지만 수없이 많은

종이가 존재하는 공간에서의 종이 냄새는 강력했던 것이다 책이

제작되는 과정은 실제로 보니 다양하고 복잡했다 자동화가 많이

되어있지만 사람의 손길 없이는 절대 완성될 수 없는 과정들을 보며

책이 완성되기까지의 노력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lsquo책이 어떻게

만들어진다rsquo를 배우다가 lsquo책이 이렇게 만들어진다rsquo를 보니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예비 출판 마케터의

길로 들어선 후에 새로운 것을 보고 배울 수 있었는데 보진재 견학은

그 중에서도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책을 완성시키기 위한 모든 과정이

저마다의 몫을 하고 있었다 서울출판예비학교 졸업 후 출판계에

들어섰을 때 나는 과연 어떤 몫을 할 수 있을까 남은 2개월을 조금은

더 열정적으로 보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마케터반 11기 최다은

1 일일탈

학교 밖 견학 후기

피부로 와 닿는 책의 감촉 책의 냄새 책의 소리 보진재에서 책이 인쇄되는 과정을 만나다

필름과 인쇄판이 만들어지는 과정

25

우리가 이제 각자 편집자 마케터 디자이너가 되어 책 만드는 일을

시작하면 우리의 책은 이곳에서부터 그 lsquo탄생rsquo을 시작할 것이다 책의

근간이 되는 종이가 만들어지는 곳 한솔제지 공장에 다녀왔다 학기

초에 책을 파는 서점을 견학한 뒤 그 다음으로 출판사 종이에 활자를

찍어내는 인쇄소 그리고 마지막으로 lsquo종이rsquo를 만드는 제지 공장을

찾은 것이다 책이 만들어지는 순서대로라면 우리가 다녀온 순서를

거꾸로 해서 다녀왔어야 했지만 우리는 반대로 실제 과정을 거슬러

올라간 것이다 이렇게 거슬러 올라가는 과정에서 오히려 편집자란

직업에 겸허해질 수 있었다 가끔은 편집자가 책을 만드는 모든

과정 위에 군림하는 것 같이 느껴지지만 책의 물성을 만들어내는

거대한 기계 앞에서 우린 한없이 작아지기도 한다 lsquo한 권의 책rsquo이

만들어지려면 이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함을 이해해야 했다 이렇게도

복잡하고 힘겹게 만들어지는 책의 가치를 한 번 더 깊이 생각하게 된

계기였다 책이라는 건 의미가 담긴 조각들의 집합체이자 종이를

보기 좋게 물성화한 것 이론적으로야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눈으로 보고 느끼는 것과는 천지차이다

날씨마저 좋았던 9월 11일 평소보다 한 시간이나 이른 8시

30분에 세 반 학우들은 눈도 제대로 못 뜬 채 집합했다 대전까지

간다니 마치 여행가는 것 같은 살짝 들뜬 기분까지 안고 아침도 못

챙겨먹고 나왔을 우리를 생각해서 빵과 우유까지 준비한 한솔제지

측의 세심한 배려에 감동했다 배도 채우고 부족한 잠도 보충해가며

2시간 넘게 달려 신탄진 공장에 도착했다 도착하자 보이는 우리를

환영하는 현수막에 2차로 감동했다 우리를 위해 정말 많은 준비를

하셨구나 느낀 순간이었다

신탄진 공장 강당에 들어가서 간단한 공장 소개를 먼저 들었다

그리고 뒤이어 종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경청했다 수업 때보다

학생들의 집중력이 더 높아 보였던 건 내 착각이었길 종이는

1퍼센트의 펄프와 99퍼센트의 물로 이루어진단다 그래서 전반적인

공 정 의 대 부 분 은 물 을 처 리 하 기 위 한 과 정 이 나 다 름 없 었 다

생각보다 종이는 순수한 물질이라고 생각했다 종이(paper)의

어원은 이집트의 파피루스(papyrus)에서 왔다고 한다 중국의

lsquo채륜(蔡倫)rsquo이라는 사람이 제일 먼저 발명했고 고려시대에

일본으로 넘어간다 일본에 가장 마지막으로 넘어갔지만 종이의

기술력은 현재 일본이 가장 좋다 원료rarr초지rarr코팅 등의 공정을 거쳐

종이가 완성되는데 마지막 코팅 공정을 여자의 화장에 비유한 것

역시 기억에 남는다 코팅이 그렇게나 대단한 과정이라니

공장 안으로 들어가서는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시끄러워서 설명을

제대로 듣진 못했지만 앞서 들었던 설명을 떠올리며 기계들을

관찰했다 인쇄소에서 본 광경들도 거대하고 박력 있었지만 여긴

그보다 더 거친 느낌이었다 책은 서점에 놓여있을 때는 그렇게

얌전하건만 태어날 땐 이렇게 시끄럽다 또한 막 태어난 종이는

거대하고 또 거대했다 다들 마치 거대한 두루마리 휴지 같다고들

했다

견학을 다 마치고 다시 대전 공장으로 이동해 다 같이 점심 식사를

했다 기대 이상으로 맛있는 밥에 또 감동 더 힘내서 견학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아쉽게도 대전 공장 안에는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라 그 힘()을 발휘하진 못했다 대전 공장은 신탄진 공장과

다르게 책에 쓰이는 것이 아닌 제품 포장용 박스 종이컵 등 다른

용도에 쓰이는 종이를 만드는 곳이었다 그 과정의 차이를 눈으로

비교하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마지막으로 좋은 선물까지 손에

받아들고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다시 서울로 향했다

언제나 시작은 중요하다 각자의 일에 빠져들게 되면 점점 잊게 될

그 시작을 눈에 담고 오래 기억하기 위해 다녀왔다고 생각한다 요즘

초심을 잃었다는 생각이 종종 드는데 책에게도 초심이 있다면 바로 이

곳일까 시작의 의미에 대해 다시 곱씹어보았다

편집자반 11기 박혜원

우리의 글과 그림이 펼쳐질 종이의 탄생 한솔제지 신탄진 공장 견학

거대한 롤(상) 한솔제지 공장 앞에서 (하)

26

화양연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삶과 문학에 취하다

편집자반 한국문학 동아리 lsquo공감rsquo 그 대담의 현장

훗날 서울출판예비학교를 떠올릴 때 가장 즐거운 시간으로 기

억되는 날들은 동아리 활동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들의

화양연화(花樣年華)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 중

의 하루를 소개한다 문예창작학과를 전공한 문학소녀 김한나

학우를 필두로 창단된 편집자반 내 한국문학 동아리 lsquo공감rsquo은

모임 전에 한국작가를 한 명 정해 단편 두 편을 함께 읽고 키워

드나 질문을 스스로 뽑아 글을 써왔다 모여서 때로는 소설의

플롯이나 주제 문체에 대한 열띤 토론을 하고 때로는 작가의

외모()와 같은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며 삼천포로 빠지기도 했

다 우리끼리만 듣기엔 아쉽다 이 즐거운 대화를 모두에게 들

려주고 싶었다 이날 모임에선 김영하 작가의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단편집 속의 두 단편 lsquo엘리베이

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이하 엘리베이터)rsquo와 lsquo사진

관 살인사건(이하 사진관)rsquo에 대해 이야기했다 여기서는 lsquo엘리

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rsquo를 읽고 토의한 내용을

실었다

한나 참고로 김영하는 사람의 욕망에 대해 천착하는 작가야

그런 특성이 엘리베이터에는 안 나와 있는데 사진관에서는

잘 드러나 있어

상화 백가흠 작가에게 소설창작론 강의를 들었는데 그분이

소설의 기법을 설명하면서 알레고리랑 아이러니를 얘기했어

알레고리가 인물이나 소재를 비유적으로 설명하는 거래 예를

들어 핸드폰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다른

것에 핸드폰을 빗댐으로써 소설을 풀어가는 거

야 아이러니는 속도감 있게 이야기를 전개함으

로써 부조리나 모순을 드러내는 건데 김영하가

아이러니의 대표적인 작가래 단편인데도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내면보다는 사건이 일어나는

걸로 소설을 끌어가는 작가 우리가 지난 모임

에서 성석제를 굉장한 이야기꾼이라고 했잖아

그런데 난 김영하가 훨씬 이야기꾼스럽게 느껴

졌어 속도감 있고 lsquo이렇게 몰입을 할 수 있나rsquo

싶고 지난 모임들에서 읽었던 손보미나 편혜영

소설의 경우는 분위기나 주인공의 심정 내면에

의미를 부여해 야 했는데 김영하의 소설은 덮

자마자 아이러니가 느껴지면서 lsquo아 세상은 왜

이래rsquo 말하게 만들었어

법열 나는 엘리베이터 읽고 딱 lsquo뫼비우스의 띠rsquo가 생각났거든

뫼비우스의 띠가 안하고 겉이 구분이 안 되잖아 끝과 시작이

어딘지도 모르고 lsquo나rsquo가 겪는 상황이 현실인지 아닌지 구분이

안 되는 느낌 마지막에 lsquo나rsquo가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가 존재

하기는 했는지 혼란스러운 느낌을 받잖아 그게 앞의 환상적

인 부분이랑 맞물리면서 하나가 되는 느낌이라 뫼비우스의 띠

가 생각났어

상화 lsquo나rsquo가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구해주려고 고분군투하

다가 나중에 자기가 엘리베이터에 갇히잖아

오권 낀 남자의 발을 보면서 느꼈던 감상이 사실은 자기를 구

하고 싶었던 마음인 거지

(일동 오~ 그렇게도 볼 수 있네)

오권 무한도전의 무한상사 특집도 생각났어 뜬금없이 휴지

사용하는 길이에 대해 회의하는 장면에서 엘리베이터는 갇힌

사회 서로를 돌아보지 않는 사회를 의미하는 것 같아

한나 나는 반대로 오히려 엘리베이터를 희망적인 존재로 봤

거든 아파트도 그렇고 회사도 그렇고 각자 자신의 공간 안에

서 살다가 서로 만날 수 있는 장소는 엘리베이터 밖에 없으니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김영하 지음

문학동네 20100216

동아리 후기

27

까 lsquo나rsquo가 회사 엘리베이터 안에 여자와 같이 갇히잖아 사실

은 갇히지 않았으면 대화도 안하고 지나쳐 갔을 텐데 남자는

자기가 아침부터 버스 사고도 나고 성추행범으로 몰렸다고 얘

기하고 또 남자의 담배 피워도 되냐는 말에 여자는 담배에 대

한 불평불만을 속사포처럼 얘기하고 엘리베이터라는 공간이

아니었다면 이런 대화 자체가 없었겠지

오권 엘리베이터 타면 사람들이 하나같이 층수 바뀌는 것만

쳐다보고 있잖아

상화 요즘은 스마트폰

오권 자기 얘기를 하고 싶은 것 같아 하지만 상대의 얘기는

안 들어 lsquo너의 얘기는 관심 밖이지만 내가 불편한 것에 대한

얘기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하겠어rsquo라는 느낌

한나 그리고 우스웠던 게 볼일 보고 휴지 몇 칸 쓰는지 회의에

서 얘기하는 건hellip 사실 굉장히 사적인 얘기잖아 (일동 하하

하) 서로에 대해 다른 얘기는 일절 하지 않으면서 회의 내용은

개인적이고 사적이라니 아이러니한 거지

수경 진짜 웃기지 않았어 lsquo나rsquo가 자원 재활용 문제에 대한 중

대 보고가 있다고 계속 빨리 가야한다고 했던 게 겨우 그거야

상화 겨우 이딴 회의하려고 지금 엘리베이터에 낀 사람 놔두

고hellip 생명이 더 중요한데 지금 휴지 구하려고hellip

(일동 하하하)

한나 lsquo나rsquo가 불쌍했던 이유가 자기한테 닥친 일들은 lsquo할 수 없

지 뭐rsquo 이런 식으로 넘기는데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 걱정하고

갇힌 여자 걱정하고hellip 정작 자기 걱정은 안 해

오권 영화 lt라이터를 켜라gt 봤어 조폭들한테 얻어맞으면서

도 주인공은 무조건 자기 라이터만 찾겠다고 그러거든 이 소

설의 lsquo나rsquo와 비슷한 느낌이 들더라고 그 영화에서는 라이터가

주인공의 존재를 투영하는 소재거든 lsquo나rsquo는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구해야만 자기가 산다는 느낌을 받은 거라 해석하면

너무 나간 건가

법열 아니요 형이 아까 지적해준 게 와 닿았어요 그 고군분

투가 결국 자기를 구하려는 노력이라는 지적이요

상화 그나마 lsquo나rsquo가 이 소설에서 제일 인간적이지

수경 어딘가 찌질한 느낌도 들어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와

lsquo내rsquo가 동류라고 자각하고 연민을 갖는 느낌이었거든 lsquo나rsquo가

인간적이고 윤리적이라는 생각은 나는 글쎄hellip 더 적극적으

로 할 수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 자기 사이클에서 벗어나

지 않는 한도 내에서 걱정만 하잖아 소설 안에서 비극과 희

극이 번갈아 가며 나타나는데 트럭과 버스가 충돌했을 때

lsquo나rsquo는 lsquo버스 카드 일로 충돌하지 않게 되어 적이 기뻤다rsquo고

생각해 버스 운전사는 트럭 백미러에 가슴이 받혀서 죽었는

지도 모르는데 lsquo다행히 나는 허리가 좀 뻐근한 것만 빼면 별

다른 상처가 없는 듯했다rsquo 이런 생각들을 하는 게 좀 섬뜩했

민희 사람은 다 이중성을 가지고 있잖아 나를 보는 듯했어

만약 학교 가는 길에 엘리베이터에 낀 사람을 봤다면 그렇

지만 나도 얼마나 바빠 몇 분 늦으면 지각 체크 당하고 출석

80퍼센트를 못 채울 수도(일동 웃음) 있는 상황이라면 내

가 그 남자를 구할 수 있을까 일단 지나치고 119에 전화하려

고 했으나 핸드폰이 없는 상황에 나도 처할 수 있는 거잖아 나

만 생각하는 잔인한 면도 내 안에 있고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

도 내 안에 있어 이런 찌질한 모습도 나고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정의롭게 구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상화 기준이 다른 것 같아 lsquo나rsquo 정도면 착하다고 생각했거든

수경 주변 사람들이 약간 마네킹 같지 않아 주인공 주변에

장치되어있던 다른 사람들이 너무 비인간적이기 때문에 lsquo나rsquo

가 돋보이는 거지 lsquo나rsquo는 지극히 평범한 우리 모습 같아 내가

어떻게 할 생각은 없고 궁금하기만 한 거야

민희 그 궁금함과 찜찜함도 죄책감이라 생각돼 아 내가 어떻

게 해줬어야 했나

한나 책임 회피일까

상화 그래서 나는 키워드 뽑은 것 중 하나가 119야 구해주고

싶으면 직접 내 손으로 잡아 빼주던가 엘리베이터를 들어 올

릴 사람을 모아야 했는데 신고 생각만 하잖아 이미 이건 누

가 대신 해결해줘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그나마 우리

사회에서 사고를 수습해주는 건 119밖에 없고 조선시대에는

119같은 거 없고 마을 사람들이 모여 구해줬을 텐데 어쩔 수

28

없는 현대인의 단상이긴 해 현대가 분업사회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들 바쁘고 삶이 개인화 파편화되어 있으니까 119 같

은 집단이 필요한 거지 그래서 난 119를 신의 영역이라고 썼

어 lsquo나rsquo는 119를 거의 신적인 존재처럼 생각하잖아 부르면 모

든 게 해결될 것처럼 핸드폰 빌리고 공중전화 찾고 그런데 막

상 교통사고 현장에서 119 대원에게 면대 면으로 얘기를 했더

니 그들은 무슨 그따위 장난을 하냐고 말해 구조도 실은 신이

아니라 사람이 하는 일이고 그 사람이 관심이 없으면 묻히는

거지

오권 전화를 거는 것과 직접 구해주는 것의 차이가 큰 것 같아

자기가 구해주는 건 적극적인 행동이고 119에 전화하는 건 스

스로 최소한 양심적이긴 하다고 여기는 행동

수경 그런데 엘리베이터에 낀 사람을 아무 것도 모르는 일반

인이 어떻게 했다가는 더 위험해질 수도 있잖아

오권 맞아 사회가 시스템화하고 고도화될수록 각자의 업무가

분업화되었고 전문분야가 생겨났으니까 옛날 같았으면 애 낳

으면 그냥 동네 아주머니가 애 받고 어미가 죽으면 젖동냥 다

녔는데hellip 이젠 사고가 나면 생각이 119에 먼저 미치는 시대가

된 거지

수경 그래서 어딘가에 널브러져 다친 인간이 아니라 엘리베이

터라는 공간에 낀 남자를 설정한 것 아닐까 엘리베이터는 현

대화의 상징이잖아

한나 lsquo나rsquo도 어쩔 수 없는 게 출근 시간에 쫓겨서 시계를 계속

봐 먹고 사는 일이니까

오권 출근했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다시 집으로 돌아가

낀 사람을 구해주면 굉장히 희망찬 소설로 바뀔 텐데hellip (일동

웃음)

수경 이 소설로 현대 사회의 폐단은 다 얘기할 수 있겠는데

상화 김영하는 천재인 것 같다

누군가 그리고 잘생겼잖아

누군가 잘생긴 거야

누군가 지적인 분위기가 있어서 좋아 (한참 얘기)

한나 또 인상 깊었던 게 구두에 집착하는 거 lsquo나는 날렵한 치

타처럼hellip 구두를 가지고 엘리베이터에서 빠져나오는 데 성공

했다 허탈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rsquo는 구절

오권 자살한 사람들이 구두를 가지런히 벗어놓는 이미지가 무

슨 상징처럼 있잖아

한나 신발 한 쪽 없이 다녀봤어 계속 기우뚱대서 내가 걷거

나 서 있을 때 내가 잘못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여기서 lsquo나rsquo가

그랬을 거야 사실 lsquo나rsquo처럼 사는 게 정상인데 세상이 잘못된

건데

상화 이 소설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감정표현이잖아 하루 종

일 얼마나 힘들었겠어 처음으로 감정표현을 하니까 불쌍했어

오권 휴머니즘 불쌍론 또 나왔네(일동 웃음) 그럼 이제 사진

관으로 넘어가볼까hellip

편집자반 11기 이상화

2929

책씹는맛 01 냄새라는 경이 lt감각의 박물학gt 후각편을 읽고

냄새에는 언어가 없다 어휘가 부족한 우리는 말문이 막힌

채 불명료한 쾌감과 자극의 바다에서 말을 찾을 수밖에

없다1

이 말은 다이앤 애커먼의 『감각의 박물학』 제 1장 후각에

나오는 구절이다 냄새를 글로 쓰고자 하는 나의 시도가 늘

실패로 귀결되는 이유를 이 구절에서 찾았다 작가의 말처

럼 냄새에 대해 쓴다는 건 언어 밖 세계로 나갔다가 다시

언어로 되돌아오는 길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길에서 헤매

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후각이라는 감각에서 길을

잃는 것은 낭만적인 일이기도 하다 lsquo냄새의 뇌관을 건드리

면 모든 추억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기rsquo2 때문이다 냄새 하

나에 수많은 추억들이 줄줄이 기억의 회로 위로 떠오른다

예를 들면 바다 냄새 하나만 상상해도 그와 관련된 수많

은 기억들이 머릿속에 뒤섞인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바닷가와 관련된 그 모든 추억들이 기억의 영사막에서 한

편의 옴니버스 영화 형태로 내게 다가온다 난 내 기억의

관객이 되어 그 영화를 보다가 견딜 수 없는 그리움에 젖는

다 이 영화에 대한 감상문을 적으려면 나는 말문이 막힌

다 그래서 몇 글자 적다가 결국 글을 쓰기를 멈춘다 굳이

언어로 표현하자면 쓸 수 없는 그리움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1 『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옮김 작가정신 20040720

A Natural History of the Senses(1991) 17쪽

2 같은 책 18쪽

결국 lsquo언어가 존재하는 세계에서 경이는 언어의 칼날 아래

서 쉽게 해부되고 냄새는 자주 혀끝에서 맴돈다rsquo3 냄새의

숭고함 앞에서 우리는 말을 멈춘다 이처럼 냄새는 말할 수

없는 자연의 경이로움과 닮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lsquo냄새가 우리의 마음을 그토록 강하게 움직이는 것은 부분

적으로 그 이름을 부를 수 없기 때문rsquo4이라고 한다 저자는

그렇기에 사람들이 냄새를 lsquo분 냄새 비슷한 펭귄 냄새가

나는 호화로운 화장실 냄새가 나는rsquo 같은 말로 표현할 뿐

이며 냄새에 대한 이름은 주어져 있지 않다고 말한다 또

한 종류는 같아도 강약과 농도가 다른 각각의 냄새에 이름

을 붙여줄 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우린 일상적으로 냄새를

맡으면서도 그 냄새와 멀리 떨어져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명명되지 않은 것은 결국 잊히는 게 아닐까 부를

수 없음에서 오는 경외감과 숭고함이 있을지라도 냄새는

말해져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말할 수 없는 것에 자꾸

만 침묵하기만 해야 할까

감각도 모험의 영역이 될 수 있다 세계 일주만이 세상을

아는 길일까 lsquo나rsquo를 온전히 아는 것이 역설적으로 세상과

가까워지는 일인지도 모른다 나를 알기 위한 길 중 하나가

내가 가지고 있는 감각을 이해하고 그걸 언어로 표현하는

일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어쩌면 우리와 제일 가깝지만 말

하기 낯선 감각 후각을 이해하는 일이 중요한지도 모른다

냄새라는 감각 속에서 우리 모두 길을 잃고 헤매고 모험해

보자 냄새에 나름의 이름을 지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

리고 농도에 따라 냄새를 구분하는 일도 해보자 냄새라는

경이는 우리를 더 이상 침묵으로 이끌지 않을 것이다

디자인반 11기 백가은

3 같은 책 22쪽

4 같은 책 22쪽

『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 옮김

작가정신 20040720

A Natural History of the Senses(1991)

3030

02 현실을 전복시키는 비현실

모호함이 주는 환상성

20세기 중반 중남미 소설은 전통적인 사실주의 서사 구조

를 깨고 현실과 환상을 혼합시키는 새로운 글쓰기 방식으

로 세계문학의 중심에 선다 이 시기에 주목 받은 일련의

중남미 작가들을 가리켜 lsquo붐 세대 작가rsquo라 칭하는데 아르

헨티나의 환상문학 작가 코르타사르는 이 붐 세대 작가군

의 선구자이자 대표 주자 격인 인물이다 그러나 그 문학적

성과와 명성이 무색하게도 국내 독자들에겐 그의 이름이

아직 생소한 것이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에서는 그

의 작품이 중남미 단편 선집에나 몇 편이 번역되었을 뿐 본

격적으로 소개된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중남미 문학을 공부했고 그의 몇 안 되는 번역 작품을 인

상 깊게 읽었던 독자 입장에서 이번에 출간된 코르타사르

의 단편집『드러누운 밤』은 가뭄의 단비처럼 반가운 신간

이다

환상 문학이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J R R 톨킨 류의 판타

지소설 혹은 쥘 베른이나 아이작 아시모프 류의 SF소설을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코르타사르의 환상문학은 이들 범

주에 들어가지 않는다 코르타사르 작품에서 나타나는 환

상이란 토도로프가 정의한 바 있는 환상 그러니까 자연적

인 것과 초자연적인 것 사이의 망설임에서 발생하는 환상

에 가깝다 따라서 판타지소설의 lsquo현실과 동떨어진 환상rsquo

혹은 SF소설의 lsquo설득력 있고 현실감 있는 환상rsquo을 기대하

는 독자라면 아마 십중팔구 그의 작품을 읽고 실망할 것

이다 어쩌면 이게 무슨 환상문학이냐는 푸념을 늘어놓을

지도 모르겠다 역시 가장 좋은 것은 선입관을 버리고 책을

읽는 것이다

코르타사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lsquo모호함rsquo이다 인물이나

배경 묘사에서 제시되는 기본적인 정보도 모호하고 사건의

전개 양상이 가진 당위성도 모호하다 작품 내에서 주요한

스토리 라인을 담당하는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경계도 모

호하며 심지어는 화자의 정체마저 모호한 작품도 있다 이

런 모호함의 향연은 짙게 깔린 안개와도 같아서 독자들은

그 속에서 한 치 앞도 제대로 내다볼 수 없음은 물론이요

이미 지나간 사실조차도 자신이 맞게 인식한 것인지 확신

할 수 없을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무엇이 진짜인지

독자들의 판단을 망설이게 만드는 이런 상태야말로 코르

타사르의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는 환상이란 개념이다 독

자들은 이 환상 속에서 그저 전방을 주시하며 천천히 나아

갈 수밖에 없다

다행스럽게도 코르타사르는 독자들의 시련을 헛되게 하지

않는다 작품의 시작점 일상 세계에 우연히 침투한 lsquo비현

실적인 것rsquo은 안개 속에서 알게 모르게 자신의 지분을 늘려

나간다 그리고 작품의 종점에 다다른 독자들은 비현실이

현실이 되고 현실이 비현실이 되는 이전과는 전혀 새로운

세계와 마주할 것이다 다시 말해 필연과 이성의 법칙이 지

배하는 세계가 우연과 환상이 지배하는 세계로 변하는 것

이다 이러한 세계의 전복은 마치 여기저기 단서를 흩뿌리

고 사람들을 알쏭달쏭하게 만들었다가 결말부에서 모든

것을 폭발시키는 추리소설 혹은 반전영화를 보는 듯한 재

미를 선사한다

그렇다면 코르타사르가 이 소설들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책을 다 읽고 난 독자라면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의문점이다 코르타사르는 자신이 환상문학을 쓰는

이유를 ldquo법칙이나 원칙 혹은 인과관계나 특정한 심리 또

는 잘 그려진 지리학과 같은 체계에 의해 세상이 지배되고

있다는 것에 반대rdquo하고 ldquo우리가 잘 모르며 우리에게 잘 다

가오지 않는 새로운 질서에 관해 생각해보기 위함rdquo이라고

설명한다 짧게 말해 이 세상에 필연이란 존재하지 않으

며 자신은 그것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말이다 이

게 전부다 순문학이라면 거장의 문학이라면 이보다 더 심

오한 통찰 혹은 비판이 있을 것이란 생각에 문장 속 숨겨진

의미를 발견하고자 머리를 싸맬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조

언을 하자면 독서는 독서 그 자체로 즐기면 된다 적어도 이

책에서는 그렇다 모호함과 예상외의 전개 속에서 재미를

느끼고 코르타사르가 묘사하는 세계의 불가지(不可知)성

을 어렴풋하게나마 인식할 수 있다면 이미 그것으로 충분

하다

편집자반 11기 강귀욱

『드러누운 밤』

훌리오 꼬르따사르 지음 박병규 옮김

창비 20141124

La noche boca arribaJulio Cortazar

31

03 얼어붙은 자의식의 바다를깨뜨리고 생명을 불어넣는 책 『데미안』

데미안을 읽고 나서야 그 동안 내가 두 발 딛고 서 있던 땅이

굳고 단단한 대지가 아니라 얼어붙은 바다에 불과했음을 알

았다 데미안은 도끼를 가져와 이 꽁꽁 언 바다를 가차 없이

내리 찍었다 그리고 말했다 얼어붙은 바다를 단단한 땅인

줄 알고 사느니 그 얼음을 깨부수고 그 속에 빠져 죽기 살기

로 허우적대라고 그러면 그 속에서 너는 너 자신을 똑바로 마

주하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성장할 것이라고

주인공 싱클레어도 그를 둘러싸고 있던 세계를 깨뜨려 나가

며 성장한다 그 모든 과정은 결국 진정한 자기 자신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가 깨뜨린 가장 큰 세계는 바로 자신의 사고 체계였다 세상

을 바라보는 기존의 이분법적이던 시각 고정되고 획일화된 시

각을 버렸다 주인공은 세계 안에 심지어는 자신 안에도 선하

고 악하며 밝고 어두운 양극단의 것들이 공존함을 이해하고

두 세계를 끌어안았다 주인공은 귀와 눈을 가리던 장막을 걷

어내 버리고 세상을 바로 보게 되었다 상극인 것들의 괴리로

이루어진 이 모순된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곧 자신 안의 부조

화 또한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스스로에게 다가서는 첫 걸음

이었다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양극단의 세계 사이에서 싱

클레어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며 흔들리기를 반복했다 이

때 그에게는 삶을 지탱할 중심축이 없었다 항상 내면이 아닌

외부 세계에서 자신이 속할 자리를 찾아 헤맸다 그가 비로소

온전한 자신을 만난 순간은 어느 편으로도 치우침 없이 스스

로의 기준으로 홀로 서게 되었을 때였다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 이 길은 당신이 내면에 있는 모

순되는 두 세계 한없이 나약하고 뒷걸음치는 비열한 모습들

과 정갈하고 깨끗한 곧은 힘들을 동시에 직시하는 순간에 시

작된다 그리고 이 길은 두 세계 속에 들어가 이리저리 휩쓸리

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세계를 밟고 우뚝 올라서서 스스로

가 중심이 됨으로써 앞으로 펼쳐진다

이제 lsquo자아를 찾으라rsquo는 지루하고 흔한 이야기가 더 이상 빤

하거나 우습지 않다 묵직한 울림이 되어 나를 흔든다 그냥

나만 붙잡고 흔드는 것이라면 손사래 쳐 뿌리치겠는데 내가

밟고 있던 땅 속해 있던 세계를 뿌리째 흔들어 버린다 읽는

내내 속이 답답하고 나에게 화가 난다 그런데 이렇게 마구

혼나면서 이상하게도 후련한 구석이 있다 호통을 치는 데미

안이 사실은 우리를 응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막연

하고 무기력한 안개에 휩싸여 있을 때 데미안은 그만의 방

식으로 우리에게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준다 물론 갈 방향을

정해준다거나 각자의 사정을 듣고 상담을 해주는 것은 아니

다 오로지 궁지로 몰아세울 뿐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사람들

은 잊고 있던 lsquo나 자신rsquo을 일깨운다 아 그동안 lsquo나rsquo에 대해 생

각해본 적이 있던가 라는 정도만이라도 좋다 이 물음이 바로

여정의 시작이니까

그렇게 스스로에게 묻고 나면 더 이상 전처럼 살 수는 없기 때

문이다 아니라면 자기 자신에게 면목이 없을 것이다 이 무서

운 책이 우리를 혼내고 몰아치면서도 여전히 영원한 고전이자

필독서로 사랑 받는 이유다

lsquo우리들 속에는 모든 것을 아는 한 사람이 있다rsquo고 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혼이 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혼

이 났다는 것은 자신 안에 있는 lsquo그 사람rsquo이 말을 하기 시작했

다는 뜻이니까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목소리가 희미하

고 멀리 있다 하여도 숨죽여 귀 기울이는 일 자체가 자신에게

로 가는 과정임을 잊지 말고

편집자반 11기 배예리

『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민음사 20001220

Demian Die Geschichte von Emil

Sinclairs Jugend(1919)

31

03 얼어붙은 자의식의 바다를깨뜨리고 생명을 불어넣는 책 『데미안』

데미안을 읽고 나서야 그 동안 내가 두 발 딛고 서 있던 땅이

굳고 단단한 대지가 아니라 얼어붙은 바다에 불과했음을 알

았다 데미안은 도끼를 가져와 이 꽁꽁 언 바다를 가차 없이

내리 찍었다 그리고 말했다 얼어붙은 바다를 단단한 땅인

줄 알고 사느니 그 얼음을 깨부수고 그 속에 빠져 죽기 살기

로 허우적대라고 그러면 그 속에서 너는 너 자신을 똑바로 마

주하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성장할 것이라고

주인공 싱클레어도 그를 둘러싸고 있던 세계를 깨뜨려 나가

며 성장한다 그 모든 과정은 결국 진정한 자기 자신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가 깨뜨린 가장 큰 세계는 바로 자신의 사고 체계였다 세상

을 바라보는 기존의 이분법적이던 시각 고정되고 획일화된 시

각을 버렸다 주인공은 세계 안에 심지어는 자신 안에도 선하

고 악하며 밝고 어두운 양극단의 것들이 공존함을 이해하고

두 세계를 끌어안았다 주인공은 귀와 눈을 가리던 장막을 걷

어내 버리고 세상을 바로 보게 되었다 상극인 것들의 괴리로

이루어진 이 모순된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곧 자신 안의 부조

화 또한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스스로에게 다가서는 첫 걸음

이었다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양극단의 세계 사이에서 싱

클레어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며 흔들리기를 반복했다 이

때 그에게는 삶을 지탱할 중심축이 없었다 항상 내면이 아닌

외부 세계에서 자신이 속할 자리를 찾아 헤맸다 그가 비로소

온전한 자신을 만난 순간은 어느 편으로도 치우침 없이 스스

로의 기준으로 홀로 서게 되었을 때였다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 이 길은 당신이 내면에 있는 모

순되는 두 세계 한없이 나약하고 뒷걸음치는 비열한 모습들

과 정갈하고 깨끗한 곧은 힘들을 동시에 직시하는 순간에 시

작된다 그리고 이 길은 두 세계 속에 들어가 이리저리 휩쓸리

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세계를 밟고 우뚝 올라서서 스스로

가 중심이 됨으로써 앞으로 펼쳐진다

이제 lsquo자아를 찾으라rsquo는 지루하고 흔한 이야기가 더 이상 빤

하거나 우습지 않다 묵직한 울림이 되어 나를 흔든다 그냥

나만 붙잡고 흔드는 것이라면 손사래 쳐 뿌리치겠는데 내가

밟고 있던 땅 속해 있던 세계를 뿌리째 흔들어 버린다 읽는

내내 속이 답답하고 나에게 화가 난다 그런데 이렇게 마구

혼나면서 이상하게도 후련한 구석이 있다 호통을 치는 데미

안이 사실은 우리를 응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막연

하고 무기력한 안개에 휩싸여 있을 때 데미안은 그만의 방

식으로 우리에게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준다 물론 갈 방향을

정해준다거나 각자의 사정을 듣고 상담을 해주는 것은 아니

다 오로지 궁지로 몰아세울 뿐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사람들

은 잊고 있던 lsquo나 자신rsquo을 일깨운다 아 그동안 lsquo나rsquo에 대해 생

각해본 적이 있던가 라는 정도만이라도 좋다 이 물음이 바로

여정의 시작이니까

그렇게 스스로에게 묻고 나면 더 이상 전처럼 살 수는 없기 때

문이다 아니라면 자기 자신에게 면목이 없을 것이다 이 무서

운 책이 우리를 혼내고 몰아치면서도 여전히 영원한 고전이자

필독서로 사랑 받는 이유다

lsquo우리들 속에는 모든 것을 아는 한 사람이 있다rsquo고 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혼이 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혼

이 났다는 것은 자신 안에 있는 lsquo그 사람rsquo이 말을 하기 시작했

다는 뜻이니까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목소리가 희미하

고 멀리 있다 하여도 숨죽여 귀 기울이는 일 자체가 자신에게

로 가는 과정임을 잊지 말고

편집자반 11기 배예리

『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민음사 20001220

Demian Die Geschichte von Emil

Sinclairs Jugend(1919)

32

박세길 인터뷰

진정한 역사가는 과거에 파묻히지 않는다옥(獄)에서 옥(玉)을 만든 작가 박세길 인터뷰

박세길 저자는 처녀작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로 80년대

대표 역사서 자리를 꿰찬 분입니다 1986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감되었을 때 감옥에서 역사책을 읽으며

사회 모순에 대해 고민했고 출소하자마자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집필했습니다 정권 탄압 속에서 왜곡된

현대사를 바로 잡았다는 의미를 지닌 이 대표작은 오랫동안

고시생과 대학생들의 필독서로 꼽혔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읽은 박세길 저자의 저서는 지난 6월 출간한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입니다 기사를 쓰고 편집할 때 청년 세대를

겨냥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박세길 저자는 역시나

청년들의 미래에 큰 관심을 갖고 계셨습니다 취업을

눈앞에 둔 서울출판예비학교 학생들이 가져야 할 자세를

여쭸습니다

출판학교에서 강의하신 한 선생님은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가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와

더불어 80년대 인문학의 양대

산맥이라고 하셨습니다

책의 성공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강의

요청이 많이 들어왔어요 먹고사는

경제적인 문제도 해결됐습니다

몇 부 팔렸는지는 잘 모릅니다

출판사에서 기밀 사항이라고

하더군요 요즘은 마케팅 차원으로도

몇 쇄 몇 부인지 밝히지만 그때는

세금 문제를 피해가기 위해서인지

쉬쉬하던 시절이었나 봅니다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는 대학

선후배끼리도 많이 물려주는 책이라고

들었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의 쉬운 설명이

좋았습니다 더불어 어떤 사명감을 안고 썼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완성하기에 앞서 어떤 목표를

두셨나요

청년 세대가 외환위기 이후 집중적인 희생양으로 전락하면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드러내면서 여기에

머물지 않고 청년 세대의 잠재력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들이 역사 무대 한복판에 진출해 자기 몫을 다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습니다

역사 분야는 시장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역사 혹은 현대사가 주목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통해 얘기하자면

80년대 후반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lsquo왜곡된

역사를 바로 알자rsquo는 시각 교정의 욕구가 있었던

차에 제 책이 나름 부응했는지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시기가 적절했던 셈이죠

2012년 대선 후 역사 분야가 잠시 반짝했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금세 시들었다고

하더군요 당시 역사 분야 책들이 일반 독자가

읽기에 다소 어렵거나 출간한 지 오래된 것들

위주였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돋을세길

출판학교에서 강의하신 한 선생님은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가 유홍준 교수의

책의 성공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강의

하더군요 요즘은 마케팅 차원으로도

선후배끼리도 많이 물려주는 책이라고

역사 분야는 시장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역사 혹은 현대사가 주목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통해 얘기하자면

80년대 후반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lsquo왜곡된

역사를 바로 알자rsquo는 시각 교정의 욕구가 있었던

차에 제 책이 나름 부응했는지 큰 반향을

읽기에 다소 어렵거나 출간한 지 오래된 것들

위주였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의 저자

33

2012년 대선 후 역사 분야가 관심을 받았던 것은

보수층의 재집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한

불안 때문일까요

맞습니다 그러나 마땅한 책이 없어서 그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역사 분야에서 베스트셀러를 내기

위해서는 시기가 맞아 떨어지고 내용 또한 대중이 원하는

것을 담고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를 편집한 lsquo생각정원rsquo

출판사의 정희용 편집자에게 감사 표시를 하셨습니다

어떤 편집자를 선호하시나요

간단합니다 편집자는 철저히 독자 입장에서 독자와 작가

사이의 간극을 줄여줘야 합니다 예를 들면 어려운 내용을

과감히 생략하고 다음 기회로 미루도록 설득한다거나 좌파

운동권 색채가 너무 강한 문장을 조금 순화하는 것 등입니다

어떤 내용이 이번 책에 꼭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선택을

도와줘야 합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을 작가님께서 직접

독자들에게 홍보하신다면 카피 문구를 짧게 제시할 수

있을까요

청년 세대 희망 찾기 갑갑한 현실을 어떻게 타개할 수

있을지 그 답을 찾아보는 길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취업 후 첫발을 내디딜 서울출판예비학교 11기

학생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출판 또한 돈을 벌어야한다는 기본 전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출판계를 지켜본 결과 뭔가 소명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오래

살아남았습니다 출판학교 역대 대표 중 일부는 나와 관계가

있는 사람들인데 모두 고유한 소명의식을 갖고 출판계에

뛰어들었습니다 때로는 상업주의 안에서 재주도 부리곤

했지만 어쨌든 분야 내에서 고유한 캐릭터를 구축했습니다

출판학교 학생들이 출판 상황을 이해하고 자신을 역할을

정하는 개인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비전 중심의 경영을

하는 회사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지만 개인 비전을 기업

비전으로 나아가 사회 비전으로 접목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과거에 안주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부분을

출판계에서는 SNS 등 인터넷 환경을 통한 마케팅으로

이해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SNS망 자체에서 무엇이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건 사람과

사람이 서로 소통하고 공감하는데 필요한 도구입니다

콘텐츠 중심의 사고가 중요하고 그것이 전제되지 않을 때

SNS는 착각에 불과하며 성공할 수 없습니다 필요한 콘텐츠

중심의 사고를 가지고 철저하게 진행하지 않으면 그 공간에서

허망하게 헤엄만 칠 뿐 입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SNS에서

맥없이 헤엄치다 익사하는 경우를 볼 수 있을 겁니다

콘텐츠와 마케팅의 영역을 하나로 보는 것과 따로

보는 것 어떤 것이 독자를 위하는 것일까요

출판 마케팅은 책을 기획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에서부터

개입돼야 하고 그 과정에 독자를 참여시키는 방식을

고민해야 합니다 미국 네브래스카주립대학의 이상문

교수는 lsquo밀실 안에서의 혁신은 끝났다rsquo고 얘기합니다

개방된 체제에서 독자 곧 소비자 사용자의 참여 하에 함께

만들어갈 때 혁신은 이뤄진다고 합니다 출판사의 비전이

브랜드로 연결될 때 독자는 자발적으로 의견을 주고받고

싶어 할 겁니다

마케터반 11기 이창환

디자

인 사

공예

Page 19: 서울출판예비학교 웹진 _5호 2015

19

디자인반의 히어로좋은 출판 디자인을 생각한다 안광욱 선생님

여자 화장실 앞에 있어 인파로 북적대는 디자인반 교실을

학생들과 함께 굳건히 지켜온 분 디자인반 학생들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애정공세를 아끼지 않는 분 안광욱

선생님에게 물어본 4가지

디자이너로서 첫 직장을 다닐 때의 마음이

어떠셨나요

잘하고 싶었는데 못해서 힘들었지 사수에게 하루 서너

시간씩 야단맞으면서 했다오 매일 2호선 양화대교에서 뛰어

내리고 싶었는데hellip 이 부분은 내일 수업 때 얘기해줄게^^

선생님께서 생각하는 좋은 출판 디자인이란

세상을 향한 사랑과 희망이 듬뿍 담긴 디자인

출판 디자인을 안 했다면 지금 무슨 일을 하고

계실까요

모르겠네 그냥 선녀 옷 훔치는 나무꾼이 되어 있을 듯^^

어떤 주사가

있으신지 궁금해요

말이 조금 더 많아지고 장소 불문 쿨쿨 자 특별한 주사는

없는 듯

디자인반 11기 이소현 백가은 사공예원

디자

인 사

공예

20

편집자반 김영준 학우가 그린

『이 외로운 사람들아』 일러스트

기억에콕

수업 후기

ldquo우리에게는 lsquo일탈rsquo이 필요합니다rdquo

잠깐 딴 짓을 하는 사이에 귓가에 들려온

한 문장이 나를 사로잡았다 배는 부르고

따 사 로 운 햇 살 에 잠 이 쏟 아 지 는 시 간

오후 1시 30분 시간을 칼같이 맞춰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선 그는 딱 봐도 지루하고

고리타분해 보이는 첫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순간 눈으로 들어온 이미지는 뇌로 흘러갔고

뇌는 망설임 없는 확신으로 귀에 명령을

전달했다 그렇게 귀는 이미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내 들려올 그렇고 그런 뻔한

이야기에 대하여

눈의 판단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의 한마디

한마디는 파격이었다 아니 어쩌면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였지만 누구도 자신 있게

내던지지 못하는 말들을 서슴지 않고 내뱉는 그

거침없음에 신선함을 느낀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의 관심을 돌려놓았던 lsquo일탈rsquo에 대한 그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lsquo일탈을 하라rsquo는 말이

lsquo제멋대로 하라rsquo는 의미가 아니라 어떤 규칙을

벗어나는 행위를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다르게

생각하는 방식을 몸으로 익히게 된다는 것

새로운 것을 생각해내는 창의성이라는 힘은

당연히 새로운 경험에서 나온다는 것이었다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니 강의를 듣던

친구들의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때 보고 들었던 그의 말과 행동이 우리에게는

딱 딱 한 강 의 실 에 서 느 끼 는 새 로 운 경 험

lsquo일탈rsquo이었다

그 와 의 만 남 은 계 속 이 어 졌 다 이 곳

서 울 출 판 예 비 학 교 에 입 학 한 이 후 로 는 좀

더 완 벽 한 일 주 일 단 위 로 시 간 이 흐 르 기

시작했는데 매주 쌓여가는 새로운 배움 뒤에는

수많은 물음이 불쑥불쑥 솟아났고 그는 마치

예상을 했다는 듯이 일주일에 한 번씩 나타나

우리의 설익은 궁금증을 해소해주고 떠나갔다

첫 만남에서는 책이라는 대상과 책을 대하는

편집자의 자세에 대해 이야기하며 큰 그림을

그려주었고 다음엔 저자와의 관계 맺기 그

다음엔 스스로 만들어 가야할 편집자의 자기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담백하게 들려주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네 번째 만남이었다

누구도 쉽게 이야기하기 어려운 완벽하게

솔직해지기는 더더욱 어려운 자신의 좌절과

실패를 그는 담담하고 진솔하게 소개해주었다

모든 성공에는 대개 7할의 실패가 전제되어

있기 마련인데 성공에 이르기까지 거치는

우 리 가 lsquo실패rsquo라고 명 명하는 것들이 사실

진짜 실패가 아니라 성공의 다른 이름이라는

그의 말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성공도 실패도

어 느 한 지 점 에 서 내 리 는 판 단 인 것 이 고

결 국 성 장 하 고 성 숙 한 다 는 것 은 성 공 과

실패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lsquo차이rsquo를 얼마만큼

발견하느냐 하는 것에서 결정된다는 그의 말이

가슴을 뜨겁게 했다 비로소 lsquo편집자rsquo로서가

아닌 한 lsquo사람rsquo으로서의 그가 보이기 시작했다

담담하게 말을 하고 있지만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아프고 쓰린 기억을 후배들에게

들 려 주 는 그 에 게 서 진 심 이 전 해 져 왔 다

사랑하는 일에 대한 함께 걸어갈 동지들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 참 고마웠다

어느덧 마지막 만남이 찾아왔다 한 권의

책을 만들면서 진행했던 편집의 과정을 예로

실 제 적 인 이 야 기 를 우 리 에 게 마 지 막 으 로

들려주었다 편집의 능력은 지식과 정보에서

나온다는 것 그것은 단숨에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 꾸준히 쌓아가야 한다는 것 그래서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의 문제라는 것을 경험을

근거로 자신 있게 말해 주었다 이미 지나온

과거의 결과 대신 앞으로 걸어갈 길에 대한

희망을 들려주어서 그게 참 고마웠다

편집자반 일탈이 주는 파격 우리가 낳을 lsquo새로운 책rsquo과 편집자선완규 선생님과의 다섯 번의 만남이 키운 생각들

21

그 가 우 리 에 게 마 지 막 으 로 이 야 기 를

들려주었던 그날 이후 석 달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났다 나는 여전히 같은 강의실에 앉아

앞서 길을 걸어간 선배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고 조금씩 가까워지고 밝아져가는 내 앞에

놓인 길에 대해 생각한다 그러다 문득 마음이

무거워지고 막막해질 때면 종종 그의 말들을

떠올려 본다 그리고 그 생각의 끝에서 마음을

의지하며 함께 이 길을 걸어갈 따뜻한 선배가

하나 있다는 위로 한 줌을 발견한다

ps 선완규 선생님 고맙습니다 보고 싶어요

편집자반 11기 성준근

마케터반 강한 수면욕 환상과 환기

판형과 종이를 예술로 편입시키려는 영업자다빈치 출판사 박성식 대표 특강 후기

9월 23일 평소보다 점심을 많이 먹었던 날이다 잠을 며칠간 못 자 피곤했다

오후 1시 30분이 살짝 지나서 다빈치 출판사 박성식 대표의 특강이 시작됐다

다빈치 대표님은 처음 뵐 때부터 남다르셨다 서울출판예비학교 입학 면접에서

여자 술 담배를 각각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보셨다 lsquo솔직함을 어필해야

하는 순간인가rsquo하는 생각에 직설적으로 답했지만 lsquo더 문학적으로 얘기할 수

있었는데rsquo라는 후회를 안고 돌아왔다

마음과 다르게 첫 번째 시간은 정신없이 잠이 쏟아졌다 눈을 감고 귀 기울였지만

턱을 괸 채 버티는 동안 50분이 지났다 대표님께 캔 커피를 하나 드리고 맞이한 두

번째 시간 그 한 시간 동안 나는 현실 옆의 어떤 이상 내지는 환상을 본 것 같다 그동안

듣던 강의들을 놓고 lsquo이상적인 관점이다rsquo 혹은 lsquo현실적이다rsquo라고 구분했던 판단의 폭

자체가 좁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성식 대표님은 내 머리에 있던 lsquo책rsquo에 대한 인식을 전복시켰다 자본주의 출판의

몰락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시작됐다는 말 출판 기본 특성인 다품종 소량 생산은 돌아올

것이며 다품종 소량 생산을 넘어 다품종 소량 lsquo고급 생산rsquo을 추구하고 싶다는 말은 나를

달뜨게 했다 주류에 반하는 사고를 가진 중년의 개성과 내공에 교실 풍경이 환기됐다

교육 수단으로 책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지만 책은 그만큼 사회적 의무와 희생을

짊어져왔다 출세와 공부 앞에서 책이 가진 기호(嗜好)성은 변두리로 내몰렸다 책을

읽어야만 제대로 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분위기는 옳지 않다 독서는 성향의 범주지 성역이

돼선 안 된다 정보와 지식의 전달은 모바일 등에 넘겨주고 종이책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공동체로 돌아와야 한다 그게 원래 자리라는 대표님의 주장이 새롭고 강렬하다

자본주의 3대 원칙인 lsquo더 빨리 더 많이 더 싸게rsquo 체계는 표준화와 규격화를 동반하며

매우 효율적이다 현재 사용하는 종이는 자본주의 원칙에 최적화돼 있다 그러나 대표님은

인쇄기계로 소화하지 못하는 질감과 전혀 다른 발색을 지닌 lsquo종이rsquo에 주목했다 그 종이로

콘텐츠 종이 판형이 완벽하게 들어맞는 예술서를 만들고 시장을 설득한다면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책 판매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전했다 종이 자체가 책의 예술성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한지(韓紙)를 예로 들면서 훌륭한 텍스트와 이미지를 한 차원 끌어올리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많은 부수를 팔아야 성공한 출판 많은 부수를 파는 것을

목표로 하는 시대는 저물고 있다 기존 유통과 판매 방식

안에 갇혀서는 불황에 매몰될 뿐이다 소량의 고급화된

책을 꿈꾸는 것과 전시회를 책과 결합하는 것도 다른 길을

물색하는 과정이다

대표님은 10년 전부터 lsquo이 원고는 내가 누구보다 잘

만들겠다rsquo lsquo이 원고는 내가 못하면 누구도 못할 것 같다rsquo라는

생각이 든 책만 출간을 진행했다고 한다

강의 중간 자신의 독특한 철학을 전달하는 것에 대해 가벼운

염려를 하셨지만 이론적이고 실용적인 분야에 몸담더라도

예술적 사고의 유연성은 필요하다고 본다 돈과 인문정신을

구분하면서 필요할 때 양쪽에서 자극 받고 차용하는 것이 마케팅의 융통성과 힘을 기르는 길일 것이다

마케터반 11기 이창환

편집자반 김영준 학우가 그린

『이 외로운 사람들아』 일러스트

박성식 대표가 기획한 lsquo오름rsquo전

22

하늘

습탁은 농도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하늘

습탁은 농도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이 글은 심우진 선생님의 탁본 세미나 수업에 대한 우리들의 즐거운

기록이다 탁본은 습탁(濕拓)과 건탁(乾拓) 두 종류로 구별된다

습탁은 나타내고자 하는 물체 위에 물을 묻힌 후 종이를 그 위에

밀착시키고 먹물 묻은 솜방망이로 가볍게 두드려서 물체를 표현하는

방법이다 물체의 패인 부분을 제외하고 볼록한 부분의 모양대로

종이에 먹이 묻어 문자나 문양이 드러난다 건탁은 이름 그대로 물을

사용하지 않고 마른 상태의 먹인 고형묵(固形墨)을 사용한다 우리는

각자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사물과 자연을 이용해 탁본 작품을

만들고 서울출판예비학교 꼭대기 층에서 작품을 공유했다

디자인반 이 시간을 그대로 탁본할 수 있다면심우진 선생님의 탁본 세미나

저는 신문지를 구겨서 해봤어요

응 그런데 이건 방바닥 같은데

방바닥까지 묻어 나와 버렸네요

[학생들 하하하]

저는 일단 큰 나무 기둥을 떠봤고요

오솔길의 짚도 해보고 저희 집 바닥과

벽면도 신기해서 떠봤어요 집 벽면 중에

대리석도 있고 특이한 벽면이 많거든요

부잣집인가 보네

[학생들 깔깔깔]

승연

심우진 선생님

승연

승연

심우진 선생님

이건 파프리카인데 저희 집 개가 완성한 종이를 찢었어요

[학생들 하하하]

좀 작고 납작한 파프리카를 반으로 잘라서 습탁했어요 또

이건 철조망인데 용 비늘처럼 나와서 재밌었어요 아나콘다

같기도 하고 철조망이 날카로워서 습탁하니 종이가 자꾸

찢어져서 다시 하게 됐어요 근데 이거요hellip 남자친구

있으면 커플끼리 한 번 해보세요 한 명은 잡아주고 한 명은

습탁하고hellip 되게 로맨틱 성공적

자랑하는 거니

[학생들 깔깔깔]

수빈

수빈

심우진 선생님

혜민

정묵

처음에 나뭇잎이 세세하게 잘 나올 줄 몰랐는데 그

줄기의 질감이 잘 나왔고 버려진 타이어를 끌어서

생긴 모양으로도 습탁을 했는데 생각보다 잘 나와서

막상 찍어보면 생각과 다르다는 것을 느꼈어요

저도요 결과물이 뚜렷하게 안 나올 줄 알았는데

디테일이 잘 나타나 있었고 입체를 평면적으로

찍는 것 자체가 재밌었어요

수정

저는 빗자루를 해봤어요 너무 얇아서 안 나올

거라 생각했는데 빗자루 문양이 잘 나와서

재밌었고 머리카락도 해봤는데 머리카락은

끝 부분이 잘 나오는 편이에요 위쪽은 다

뭉쳐있는데 끝 부분은 펼칠 수 있으니까요

23

저는 결이 얇은 것들을 뜨는 것이 재밌었어요

머리카락처럼요 머리 긴 사람에게 부탁해서

눕히고 했어요 그리고 이건 얼굴인데요

처음에는 그냥 했는데 얼굴은 입체를 살리려면

스케치하듯 떠야 되요 결국 명암으로 입체감

조절을 해야 되죠 코가 너무 입체적이라 특히

힘들었어요

누구 얼굴이야

우리 언니hellip

[학생들 우와]

가은

심우진 선생님

가은

하얀

음각이 나왔을 때 너무 좋았고요하늘

습탁은 농도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소리

건 탁 보 다 는 습 탁 이 농 도 조 절 하 는 게

희 한 해 서 재 밌 었 어 요 농 도 조 절 이

관 건 이 거 든 요 먹 과 물 의 배 합 과

솜방망이가 먹물을 얼마나 흡수하는지 그

흡수량이 중요하고요

윤미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꽤 많은데 만져보면서 건탁을 뜨니까 좋았어요 전에

습탁할 때는 시멘트 벽 같은 걸 하다가 나뭇결을 하니까

살아있는 느낌이었어요 생각했던 것처럼 나와서

좋았고 솔방울이나 나뭇잎 같은 섬세한 것들은 제대로

나오지 않아서 아쉬웠어요 섬세한 것들은 습탁으로

해봐야겠어요 그래도 다양한 나무를 건탁해봐서

만족해요

소현

저는 일상적인 것들로 습탁을 해봤어요

처음에는 단순하게 오돌토돌한 느낌만

있 을 줄 알 았 는 데 색 다 른 느 낌 이 나 서

재밌었어요

탁본 세미나를 마치고 그 다음 주에 지하 강당에서 촬영하는 시간을

가졌다 촬영 후에 보정도 했다 나뭇잎의 결 무늬 타이어 자국

그리고 사람의 머리카락까지도 좋은 디자인의 재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보았고 나누었다 건탁과 습탁의 장단점을 이 수업으로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심우진 선생님의 이번 탁본 수업도 지난 활자

수업처럼 지식 습득은 물론이고 경험까지 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 시간들이 앞으로 출판 디자이너로서의 감각을 더 풍요롭게 해 주지

않을까

디자인반 11기 사공예원

하얀

음각이 나왔을 때 너무 좋았고요

습탁은 농도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솜방망이가 먹물을 얼마나 흡수하는지 그

흡수량이 중요하고요

윤미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꽤 많은데 만져보면서 건탁을 뜨니까 좋았어요 전에 꽤 많은데 만져보면서 건탁을 뜨니까 좋았어요 전에

이건 파프리카인데 저희 집 개가 완성한 종이를 찢었어요

[학생들 하하하]

좀 작고 납작한 파프리카를 반으로 잘라서 습탁했어요 또

이건 철조망인데 용 비늘처럼 나와서 재밌었어요 아나콘다

같기도 하고 철조망이 날카로워서 습탁하니 종이가 자꾸

찢어져서 다시 하게 됐어요 근데 이거요hellip 남자친구

있으면 커플끼리 한 번 해보세요 한 명은 잡아주고 한 명은

습탁하고hellip 되게 로맨틱 성공적

자랑하는 거니

[학생들 깔깔깔]

24

9시 30분 합정역 1번 출구 앞

ldquo누나rdquo 소리에 쳐다보니 반가운 공 총무의 얼굴이 보였다 정류장

앞으로 길게 늘어선 줄에 합류하여 파주로 날 데려다 줄 2200번

버스를 기다리고 있으니 반가운 얼굴들이 계속 나타났다 한 대의

버스를 보내고서야 겨우 2200번 버스에 탑승해 파주로 출발할 수

있었다

10시 15분 파주 lsquo다산교 앞rsquo 정류장 하차

4개의 정류장 총 57분이 걸린다고 알려준 N사 지도 어플의 정보와는

달리 30분 만에 파주에 도착했다 일찍 도착해 먹을 것을 찾아 헤맨

예비 마케터들은 편의점에서 주린 배를 채웠고 lsquo지혜의 숲rsquo을 살짝

염탐하며 11시까지 시간을 보냈다

11시 05분 보진재 2층

1912년 설립되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인쇄소인 보진재 관계자

분이 나와 간단히 인사 말씀을 하고 각 반의 인솔자를 소개해주셨다

마케터반의 인솔자는 서동관 과장님 디자인반 편집자반 마케터반

순으로 견학을 시작했다

11시 15분 보진재 견학 시작

제일 먼저 본 곳은 제판실이었다 필름 인쇄가 줄어들고 CTP로

대체되는 추세지만 어떤 분들은 여전히 필름 작업을 하고 계셨다

이유를 물어보니 서동관 과장님은 예전 필름이 남아 있기도 하고

출판사에 따라 필름을 고집하는 곳이 있다고 하셨다

한번에 5도 인쇄가 가능한 기계를 보는 중에 서 과장님이 말씀하셨다

ldquo한 유닛(unit)당 23억 정도 해요rdquo 그렇다면 유닛 다섯 개가

돌아가고 있으니 적어도 10억짜리 기계라고 내 눈에 보이는 건 그냥

낡고 큰 기계인데 10억이 넘는다니 놀랐다 또 과장님께서 자랑스레

말씀하신 한 가지 잉크 농도 조절을 자동으로 하는 기계가 보급된

곳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었다 원래는 사람이 눈으로 보고 수정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재판을 찍을 경우 초판과 동일한 색상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있지만 보진재는 기계가 자동으로 조정해주어 수월한

작업을 할 수 있다고 하셨다

매염실도 보고 제본실도 구경했다 인쇄된 종이를 접지하고 제본을

마친 후 마지막으로 제단을 하면 책이 완성되어 나왔다 그 모든

과정을 보고 난 후 서 과장님이 건넨 완성된 책의 무게는 보통의

그것보다 조금 더 무겁게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윤전실이었다 견학 당일은 작업이 없어서

비어있던 윤전실이지만 윤전실이 주는 무게감은 컸다 윤전실은

롤(roll)로 인쇄하는 곳으로 8개의 롤이 양면 인쇄를 하고 건조와

접지까지 한 번에 가능한 기계도 있었다 대량생산을 위한 곳으로

주로 교과서나 EBS 학습지를 인쇄한다고 하셨다

12시 20분 견학 끝

1시간을 조금 넘긴 견학을 끝내고 밖으로 나오니 코가 따갑고 목이

말랐다 기계가 먼지를 빨아들여준다고는 하지만 수없이 많은

종이가 존재하는 공간에서의 종이 냄새는 강력했던 것이다 책이

제작되는 과정은 실제로 보니 다양하고 복잡했다 자동화가 많이

되어있지만 사람의 손길 없이는 절대 완성될 수 없는 과정들을 보며

책이 완성되기까지의 노력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lsquo책이 어떻게

만들어진다rsquo를 배우다가 lsquo책이 이렇게 만들어진다rsquo를 보니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예비 출판 마케터의

길로 들어선 후에 새로운 것을 보고 배울 수 있었는데 보진재 견학은

그 중에서도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책을 완성시키기 위한 모든 과정이

저마다의 몫을 하고 있었다 서울출판예비학교 졸업 후 출판계에

들어섰을 때 나는 과연 어떤 몫을 할 수 있을까 남은 2개월을 조금은

더 열정적으로 보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마케터반 11기 최다은

1 일일탈

학교 밖 견학 후기

피부로 와 닿는 책의 감촉 책의 냄새 책의 소리 보진재에서 책이 인쇄되는 과정을 만나다

필름과 인쇄판이 만들어지는 과정

25

우리가 이제 각자 편집자 마케터 디자이너가 되어 책 만드는 일을

시작하면 우리의 책은 이곳에서부터 그 lsquo탄생rsquo을 시작할 것이다 책의

근간이 되는 종이가 만들어지는 곳 한솔제지 공장에 다녀왔다 학기

초에 책을 파는 서점을 견학한 뒤 그 다음으로 출판사 종이에 활자를

찍어내는 인쇄소 그리고 마지막으로 lsquo종이rsquo를 만드는 제지 공장을

찾은 것이다 책이 만들어지는 순서대로라면 우리가 다녀온 순서를

거꾸로 해서 다녀왔어야 했지만 우리는 반대로 실제 과정을 거슬러

올라간 것이다 이렇게 거슬러 올라가는 과정에서 오히려 편집자란

직업에 겸허해질 수 있었다 가끔은 편집자가 책을 만드는 모든

과정 위에 군림하는 것 같이 느껴지지만 책의 물성을 만들어내는

거대한 기계 앞에서 우린 한없이 작아지기도 한다 lsquo한 권의 책rsquo이

만들어지려면 이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함을 이해해야 했다 이렇게도

복잡하고 힘겹게 만들어지는 책의 가치를 한 번 더 깊이 생각하게 된

계기였다 책이라는 건 의미가 담긴 조각들의 집합체이자 종이를

보기 좋게 물성화한 것 이론적으로야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눈으로 보고 느끼는 것과는 천지차이다

날씨마저 좋았던 9월 11일 평소보다 한 시간이나 이른 8시

30분에 세 반 학우들은 눈도 제대로 못 뜬 채 집합했다 대전까지

간다니 마치 여행가는 것 같은 살짝 들뜬 기분까지 안고 아침도 못

챙겨먹고 나왔을 우리를 생각해서 빵과 우유까지 준비한 한솔제지

측의 세심한 배려에 감동했다 배도 채우고 부족한 잠도 보충해가며

2시간 넘게 달려 신탄진 공장에 도착했다 도착하자 보이는 우리를

환영하는 현수막에 2차로 감동했다 우리를 위해 정말 많은 준비를

하셨구나 느낀 순간이었다

신탄진 공장 강당에 들어가서 간단한 공장 소개를 먼저 들었다

그리고 뒤이어 종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경청했다 수업 때보다

학생들의 집중력이 더 높아 보였던 건 내 착각이었길 종이는

1퍼센트의 펄프와 99퍼센트의 물로 이루어진단다 그래서 전반적인

공 정 의 대 부 분 은 물 을 처 리 하 기 위 한 과 정 이 나 다 름 없 었 다

생각보다 종이는 순수한 물질이라고 생각했다 종이(paper)의

어원은 이집트의 파피루스(papyrus)에서 왔다고 한다 중국의

lsquo채륜(蔡倫)rsquo이라는 사람이 제일 먼저 발명했고 고려시대에

일본으로 넘어간다 일본에 가장 마지막으로 넘어갔지만 종이의

기술력은 현재 일본이 가장 좋다 원료rarr초지rarr코팅 등의 공정을 거쳐

종이가 완성되는데 마지막 코팅 공정을 여자의 화장에 비유한 것

역시 기억에 남는다 코팅이 그렇게나 대단한 과정이라니

공장 안으로 들어가서는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시끄러워서 설명을

제대로 듣진 못했지만 앞서 들었던 설명을 떠올리며 기계들을

관찰했다 인쇄소에서 본 광경들도 거대하고 박력 있었지만 여긴

그보다 더 거친 느낌이었다 책은 서점에 놓여있을 때는 그렇게

얌전하건만 태어날 땐 이렇게 시끄럽다 또한 막 태어난 종이는

거대하고 또 거대했다 다들 마치 거대한 두루마리 휴지 같다고들

했다

견학을 다 마치고 다시 대전 공장으로 이동해 다 같이 점심 식사를

했다 기대 이상으로 맛있는 밥에 또 감동 더 힘내서 견학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아쉽게도 대전 공장 안에는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라 그 힘()을 발휘하진 못했다 대전 공장은 신탄진 공장과

다르게 책에 쓰이는 것이 아닌 제품 포장용 박스 종이컵 등 다른

용도에 쓰이는 종이를 만드는 곳이었다 그 과정의 차이를 눈으로

비교하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마지막으로 좋은 선물까지 손에

받아들고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다시 서울로 향했다

언제나 시작은 중요하다 각자의 일에 빠져들게 되면 점점 잊게 될

그 시작을 눈에 담고 오래 기억하기 위해 다녀왔다고 생각한다 요즘

초심을 잃었다는 생각이 종종 드는데 책에게도 초심이 있다면 바로 이

곳일까 시작의 의미에 대해 다시 곱씹어보았다

편집자반 11기 박혜원

우리의 글과 그림이 펼쳐질 종이의 탄생 한솔제지 신탄진 공장 견학

거대한 롤(상) 한솔제지 공장 앞에서 (하)

26

화양연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삶과 문학에 취하다

편집자반 한국문학 동아리 lsquo공감rsquo 그 대담의 현장

훗날 서울출판예비학교를 떠올릴 때 가장 즐거운 시간으로 기

억되는 날들은 동아리 활동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들의

화양연화(花樣年華)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 중

의 하루를 소개한다 문예창작학과를 전공한 문학소녀 김한나

학우를 필두로 창단된 편집자반 내 한국문학 동아리 lsquo공감rsquo은

모임 전에 한국작가를 한 명 정해 단편 두 편을 함께 읽고 키워

드나 질문을 스스로 뽑아 글을 써왔다 모여서 때로는 소설의

플롯이나 주제 문체에 대한 열띤 토론을 하고 때로는 작가의

외모()와 같은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며 삼천포로 빠지기도 했

다 우리끼리만 듣기엔 아쉽다 이 즐거운 대화를 모두에게 들

려주고 싶었다 이날 모임에선 김영하 작가의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단편집 속의 두 단편 lsquo엘리베이

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이하 엘리베이터)rsquo와 lsquo사진

관 살인사건(이하 사진관)rsquo에 대해 이야기했다 여기서는 lsquo엘리

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rsquo를 읽고 토의한 내용을

실었다

한나 참고로 김영하는 사람의 욕망에 대해 천착하는 작가야

그런 특성이 엘리베이터에는 안 나와 있는데 사진관에서는

잘 드러나 있어

상화 백가흠 작가에게 소설창작론 강의를 들었는데 그분이

소설의 기법을 설명하면서 알레고리랑 아이러니를 얘기했어

알레고리가 인물이나 소재를 비유적으로 설명하는 거래 예를

들어 핸드폰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다른

것에 핸드폰을 빗댐으로써 소설을 풀어가는 거

야 아이러니는 속도감 있게 이야기를 전개함으

로써 부조리나 모순을 드러내는 건데 김영하가

아이러니의 대표적인 작가래 단편인데도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내면보다는 사건이 일어나는

걸로 소설을 끌어가는 작가 우리가 지난 모임

에서 성석제를 굉장한 이야기꾼이라고 했잖아

그런데 난 김영하가 훨씬 이야기꾼스럽게 느껴

졌어 속도감 있고 lsquo이렇게 몰입을 할 수 있나rsquo

싶고 지난 모임들에서 읽었던 손보미나 편혜영

소설의 경우는 분위기나 주인공의 심정 내면에

의미를 부여해 야 했는데 김영하의 소설은 덮

자마자 아이러니가 느껴지면서 lsquo아 세상은 왜

이래rsquo 말하게 만들었어

법열 나는 엘리베이터 읽고 딱 lsquo뫼비우스의 띠rsquo가 생각났거든

뫼비우스의 띠가 안하고 겉이 구분이 안 되잖아 끝과 시작이

어딘지도 모르고 lsquo나rsquo가 겪는 상황이 현실인지 아닌지 구분이

안 되는 느낌 마지막에 lsquo나rsquo가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가 존재

하기는 했는지 혼란스러운 느낌을 받잖아 그게 앞의 환상적

인 부분이랑 맞물리면서 하나가 되는 느낌이라 뫼비우스의 띠

가 생각났어

상화 lsquo나rsquo가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구해주려고 고분군투하

다가 나중에 자기가 엘리베이터에 갇히잖아

오권 낀 남자의 발을 보면서 느꼈던 감상이 사실은 자기를 구

하고 싶었던 마음인 거지

(일동 오~ 그렇게도 볼 수 있네)

오권 무한도전의 무한상사 특집도 생각났어 뜬금없이 휴지

사용하는 길이에 대해 회의하는 장면에서 엘리베이터는 갇힌

사회 서로를 돌아보지 않는 사회를 의미하는 것 같아

한나 나는 반대로 오히려 엘리베이터를 희망적인 존재로 봤

거든 아파트도 그렇고 회사도 그렇고 각자 자신의 공간 안에

서 살다가 서로 만날 수 있는 장소는 엘리베이터 밖에 없으니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김영하 지음

문학동네 20100216

동아리 후기

27

까 lsquo나rsquo가 회사 엘리베이터 안에 여자와 같이 갇히잖아 사실

은 갇히지 않았으면 대화도 안하고 지나쳐 갔을 텐데 남자는

자기가 아침부터 버스 사고도 나고 성추행범으로 몰렸다고 얘

기하고 또 남자의 담배 피워도 되냐는 말에 여자는 담배에 대

한 불평불만을 속사포처럼 얘기하고 엘리베이터라는 공간이

아니었다면 이런 대화 자체가 없었겠지

오권 엘리베이터 타면 사람들이 하나같이 층수 바뀌는 것만

쳐다보고 있잖아

상화 요즘은 스마트폰

오권 자기 얘기를 하고 싶은 것 같아 하지만 상대의 얘기는

안 들어 lsquo너의 얘기는 관심 밖이지만 내가 불편한 것에 대한

얘기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하겠어rsquo라는 느낌

한나 그리고 우스웠던 게 볼일 보고 휴지 몇 칸 쓰는지 회의에

서 얘기하는 건hellip 사실 굉장히 사적인 얘기잖아 (일동 하하

하) 서로에 대해 다른 얘기는 일절 하지 않으면서 회의 내용은

개인적이고 사적이라니 아이러니한 거지

수경 진짜 웃기지 않았어 lsquo나rsquo가 자원 재활용 문제에 대한 중

대 보고가 있다고 계속 빨리 가야한다고 했던 게 겨우 그거야

상화 겨우 이딴 회의하려고 지금 엘리베이터에 낀 사람 놔두

고hellip 생명이 더 중요한데 지금 휴지 구하려고hellip

(일동 하하하)

한나 lsquo나rsquo가 불쌍했던 이유가 자기한테 닥친 일들은 lsquo할 수 없

지 뭐rsquo 이런 식으로 넘기는데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 걱정하고

갇힌 여자 걱정하고hellip 정작 자기 걱정은 안 해

오권 영화 lt라이터를 켜라gt 봤어 조폭들한테 얻어맞으면서

도 주인공은 무조건 자기 라이터만 찾겠다고 그러거든 이 소

설의 lsquo나rsquo와 비슷한 느낌이 들더라고 그 영화에서는 라이터가

주인공의 존재를 투영하는 소재거든 lsquo나rsquo는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구해야만 자기가 산다는 느낌을 받은 거라 해석하면

너무 나간 건가

법열 아니요 형이 아까 지적해준 게 와 닿았어요 그 고군분

투가 결국 자기를 구하려는 노력이라는 지적이요

상화 그나마 lsquo나rsquo가 이 소설에서 제일 인간적이지

수경 어딘가 찌질한 느낌도 들어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와

lsquo내rsquo가 동류라고 자각하고 연민을 갖는 느낌이었거든 lsquo나rsquo가

인간적이고 윤리적이라는 생각은 나는 글쎄hellip 더 적극적으

로 할 수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 자기 사이클에서 벗어나

지 않는 한도 내에서 걱정만 하잖아 소설 안에서 비극과 희

극이 번갈아 가며 나타나는데 트럭과 버스가 충돌했을 때

lsquo나rsquo는 lsquo버스 카드 일로 충돌하지 않게 되어 적이 기뻤다rsquo고

생각해 버스 운전사는 트럭 백미러에 가슴이 받혀서 죽었는

지도 모르는데 lsquo다행히 나는 허리가 좀 뻐근한 것만 빼면 별

다른 상처가 없는 듯했다rsquo 이런 생각들을 하는 게 좀 섬뜩했

민희 사람은 다 이중성을 가지고 있잖아 나를 보는 듯했어

만약 학교 가는 길에 엘리베이터에 낀 사람을 봤다면 그렇

지만 나도 얼마나 바빠 몇 분 늦으면 지각 체크 당하고 출석

80퍼센트를 못 채울 수도(일동 웃음) 있는 상황이라면 내

가 그 남자를 구할 수 있을까 일단 지나치고 119에 전화하려

고 했으나 핸드폰이 없는 상황에 나도 처할 수 있는 거잖아 나

만 생각하는 잔인한 면도 내 안에 있고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

도 내 안에 있어 이런 찌질한 모습도 나고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정의롭게 구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상화 기준이 다른 것 같아 lsquo나rsquo 정도면 착하다고 생각했거든

수경 주변 사람들이 약간 마네킹 같지 않아 주인공 주변에

장치되어있던 다른 사람들이 너무 비인간적이기 때문에 lsquo나rsquo

가 돋보이는 거지 lsquo나rsquo는 지극히 평범한 우리 모습 같아 내가

어떻게 할 생각은 없고 궁금하기만 한 거야

민희 그 궁금함과 찜찜함도 죄책감이라 생각돼 아 내가 어떻

게 해줬어야 했나

한나 책임 회피일까

상화 그래서 나는 키워드 뽑은 것 중 하나가 119야 구해주고

싶으면 직접 내 손으로 잡아 빼주던가 엘리베이터를 들어 올

릴 사람을 모아야 했는데 신고 생각만 하잖아 이미 이건 누

가 대신 해결해줘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그나마 우리

사회에서 사고를 수습해주는 건 119밖에 없고 조선시대에는

119같은 거 없고 마을 사람들이 모여 구해줬을 텐데 어쩔 수

28

없는 현대인의 단상이긴 해 현대가 분업사회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들 바쁘고 삶이 개인화 파편화되어 있으니까 119 같

은 집단이 필요한 거지 그래서 난 119를 신의 영역이라고 썼

어 lsquo나rsquo는 119를 거의 신적인 존재처럼 생각하잖아 부르면 모

든 게 해결될 것처럼 핸드폰 빌리고 공중전화 찾고 그런데 막

상 교통사고 현장에서 119 대원에게 면대 면으로 얘기를 했더

니 그들은 무슨 그따위 장난을 하냐고 말해 구조도 실은 신이

아니라 사람이 하는 일이고 그 사람이 관심이 없으면 묻히는

거지

오권 전화를 거는 것과 직접 구해주는 것의 차이가 큰 것 같아

자기가 구해주는 건 적극적인 행동이고 119에 전화하는 건 스

스로 최소한 양심적이긴 하다고 여기는 행동

수경 그런데 엘리베이터에 낀 사람을 아무 것도 모르는 일반

인이 어떻게 했다가는 더 위험해질 수도 있잖아

오권 맞아 사회가 시스템화하고 고도화될수록 각자의 업무가

분업화되었고 전문분야가 생겨났으니까 옛날 같았으면 애 낳

으면 그냥 동네 아주머니가 애 받고 어미가 죽으면 젖동냥 다

녔는데hellip 이젠 사고가 나면 생각이 119에 먼저 미치는 시대가

된 거지

수경 그래서 어딘가에 널브러져 다친 인간이 아니라 엘리베이

터라는 공간에 낀 남자를 설정한 것 아닐까 엘리베이터는 현

대화의 상징이잖아

한나 lsquo나rsquo도 어쩔 수 없는 게 출근 시간에 쫓겨서 시계를 계속

봐 먹고 사는 일이니까

오권 출근했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다시 집으로 돌아가

낀 사람을 구해주면 굉장히 희망찬 소설로 바뀔 텐데hellip (일동

웃음)

수경 이 소설로 현대 사회의 폐단은 다 얘기할 수 있겠는데

상화 김영하는 천재인 것 같다

누군가 그리고 잘생겼잖아

누군가 잘생긴 거야

누군가 지적인 분위기가 있어서 좋아 (한참 얘기)

한나 또 인상 깊었던 게 구두에 집착하는 거 lsquo나는 날렵한 치

타처럼hellip 구두를 가지고 엘리베이터에서 빠져나오는 데 성공

했다 허탈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rsquo는 구절

오권 자살한 사람들이 구두를 가지런히 벗어놓는 이미지가 무

슨 상징처럼 있잖아

한나 신발 한 쪽 없이 다녀봤어 계속 기우뚱대서 내가 걷거

나 서 있을 때 내가 잘못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여기서 lsquo나rsquo가

그랬을 거야 사실 lsquo나rsquo처럼 사는 게 정상인데 세상이 잘못된

건데

상화 이 소설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감정표현이잖아 하루 종

일 얼마나 힘들었겠어 처음으로 감정표현을 하니까 불쌍했어

오권 휴머니즘 불쌍론 또 나왔네(일동 웃음) 그럼 이제 사진

관으로 넘어가볼까hellip

편집자반 11기 이상화

2929

책씹는맛 01 냄새라는 경이 lt감각의 박물학gt 후각편을 읽고

냄새에는 언어가 없다 어휘가 부족한 우리는 말문이 막힌

채 불명료한 쾌감과 자극의 바다에서 말을 찾을 수밖에

없다1

이 말은 다이앤 애커먼의 『감각의 박물학』 제 1장 후각에

나오는 구절이다 냄새를 글로 쓰고자 하는 나의 시도가 늘

실패로 귀결되는 이유를 이 구절에서 찾았다 작가의 말처

럼 냄새에 대해 쓴다는 건 언어 밖 세계로 나갔다가 다시

언어로 되돌아오는 길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길에서 헤매

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후각이라는 감각에서 길을

잃는 것은 낭만적인 일이기도 하다 lsquo냄새의 뇌관을 건드리

면 모든 추억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기rsquo2 때문이다 냄새 하

나에 수많은 추억들이 줄줄이 기억의 회로 위로 떠오른다

예를 들면 바다 냄새 하나만 상상해도 그와 관련된 수많

은 기억들이 머릿속에 뒤섞인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바닷가와 관련된 그 모든 추억들이 기억의 영사막에서 한

편의 옴니버스 영화 형태로 내게 다가온다 난 내 기억의

관객이 되어 그 영화를 보다가 견딜 수 없는 그리움에 젖는

다 이 영화에 대한 감상문을 적으려면 나는 말문이 막힌

다 그래서 몇 글자 적다가 결국 글을 쓰기를 멈춘다 굳이

언어로 표현하자면 쓸 수 없는 그리움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1 『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옮김 작가정신 20040720

A Natural History of the Senses(1991) 17쪽

2 같은 책 18쪽

결국 lsquo언어가 존재하는 세계에서 경이는 언어의 칼날 아래

서 쉽게 해부되고 냄새는 자주 혀끝에서 맴돈다rsquo3 냄새의

숭고함 앞에서 우리는 말을 멈춘다 이처럼 냄새는 말할 수

없는 자연의 경이로움과 닮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lsquo냄새가 우리의 마음을 그토록 강하게 움직이는 것은 부분

적으로 그 이름을 부를 수 없기 때문rsquo4이라고 한다 저자는

그렇기에 사람들이 냄새를 lsquo분 냄새 비슷한 펭귄 냄새가

나는 호화로운 화장실 냄새가 나는rsquo 같은 말로 표현할 뿐

이며 냄새에 대한 이름은 주어져 있지 않다고 말한다 또

한 종류는 같아도 강약과 농도가 다른 각각의 냄새에 이름

을 붙여줄 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우린 일상적으로 냄새를

맡으면서도 그 냄새와 멀리 떨어져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명명되지 않은 것은 결국 잊히는 게 아닐까 부를

수 없음에서 오는 경외감과 숭고함이 있을지라도 냄새는

말해져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말할 수 없는 것에 자꾸

만 침묵하기만 해야 할까

감각도 모험의 영역이 될 수 있다 세계 일주만이 세상을

아는 길일까 lsquo나rsquo를 온전히 아는 것이 역설적으로 세상과

가까워지는 일인지도 모른다 나를 알기 위한 길 중 하나가

내가 가지고 있는 감각을 이해하고 그걸 언어로 표현하는

일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어쩌면 우리와 제일 가깝지만 말

하기 낯선 감각 후각을 이해하는 일이 중요한지도 모른다

냄새라는 감각 속에서 우리 모두 길을 잃고 헤매고 모험해

보자 냄새에 나름의 이름을 지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

리고 농도에 따라 냄새를 구분하는 일도 해보자 냄새라는

경이는 우리를 더 이상 침묵으로 이끌지 않을 것이다

디자인반 11기 백가은

3 같은 책 22쪽

4 같은 책 22쪽

『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 옮김

작가정신 20040720

A Natural History of the Senses(1991)

3030

02 현실을 전복시키는 비현실

모호함이 주는 환상성

20세기 중반 중남미 소설은 전통적인 사실주의 서사 구조

를 깨고 현실과 환상을 혼합시키는 새로운 글쓰기 방식으

로 세계문학의 중심에 선다 이 시기에 주목 받은 일련의

중남미 작가들을 가리켜 lsquo붐 세대 작가rsquo라 칭하는데 아르

헨티나의 환상문학 작가 코르타사르는 이 붐 세대 작가군

의 선구자이자 대표 주자 격인 인물이다 그러나 그 문학적

성과와 명성이 무색하게도 국내 독자들에겐 그의 이름이

아직 생소한 것이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에서는 그

의 작품이 중남미 단편 선집에나 몇 편이 번역되었을 뿐 본

격적으로 소개된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중남미 문학을 공부했고 그의 몇 안 되는 번역 작품을 인

상 깊게 읽었던 독자 입장에서 이번에 출간된 코르타사르

의 단편집『드러누운 밤』은 가뭄의 단비처럼 반가운 신간

이다

환상 문학이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J R R 톨킨 류의 판타

지소설 혹은 쥘 베른이나 아이작 아시모프 류의 SF소설을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코르타사르의 환상문학은 이들 범

주에 들어가지 않는다 코르타사르 작품에서 나타나는 환

상이란 토도로프가 정의한 바 있는 환상 그러니까 자연적

인 것과 초자연적인 것 사이의 망설임에서 발생하는 환상

에 가깝다 따라서 판타지소설의 lsquo현실과 동떨어진 환상rsquo

혹은 SF소설의 lsquo설득력 있고 현실감 있는 환상rsquo을 기대하

는 독자라면 아마 십중팔구 그의 작품을 읽고 실망할 것

이다 어쩌면 이게 무슨 환상문학이냐는 푸념을 늘어놓을

지도 모르겠다 역시 가장 좋은 것은 선입관을 버리고 책을

읽는 것이다

코르타사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lsquo모호함rsquo이다 인물이나

배경 묘사에서 제시되는 기본적인 정보도 모호하고 사건의

전개 양상이 가진 당위성도 모호하다 작품 내에서 주요한

스토리 라인을 담당하는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경계도 모

호하며 심지어는 화자의 정체마저 모호한 작품도 있다 이

런 모호함의 향연은 짙게 깔린 안개와도 같아서 독자들은

그 속에서 한 치 앞도 제대로 내다볼 수 없음은 물론이요

이미 지나간 사실조차도 자신이 맞게 인식한 것인지 확신

할 수 없을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무엇이 진짜인지

독자들의 판단을 망설이게 만드는 이런 상태야말로 코르

타사르의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는 환상이란 개념이다 독

자들은 이 환상 속에서 그저 전방을 주시하며 천천히 나아

갈 수밖에 없다

다행스럽게도 코르타사르는 독자들의 시련을 헛되게 하지

않는다 작품의 시작점 일상 세계에 우연히 침투한 lsquo비현

실적인 것rsquo은 안개 속에서 알게 모르게 자신의 지분을 늘려

나간다 그리고 작품의 종점에 다다른 독자들은 비현실이

현실이 되고 현실이 비현실이 되는 이전과는 전혀 새로운

세계와 마주할 것이다 다시 말해 필연과 이성의 법칙이 지

배하는 세계가 우연과 환상이 지배하는 세계로 변하는 것

이다 이러한 세계의 전복은 마치 여기저기 단서를 흩뿌리

고 사람들을 알쏭달쏭하게 만들었다가 결말부에서 모든

것을 폭발시키는 추리소설 혹은 반전영화를 보는 듯한 재

미를 선사한다

그렇다면 코르타사르가 이 소설들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책을 다 읽고 난 독자라면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의문점이다 코르타사르는 자신이 환상문학을 쓰는

이유를 ldquo법칙이나 원칙 혹은 인과관계나 특정한 심리 또

는 잘 그려진 지리학과 같은 체계에 의해 세상이 지배되고

있다는 것에 반대rdquo하고 ldquo우리가 잘 모르며 우리에게 잘 다

가오지 않는 새로운 질서에 관해 생각해보기 위함rdquo이라고

설명한다 짧게 말해 이 세상에 필연이란 존재하지 않으

며 자신은 그것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말이다 이

게 전부다 순문학이라면 거장의 문학이라면 이보다 더 심

오한 통찰 혹은 비판이 있을 것이란 생각에 문장 속 숨겨진

의미를 발견하고자 머리를 싸맬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조

언을 하자면 독서는 독서 그 자체로 즐기면 된다 적어도 이

책에서는 그렇다 모호함과 예상외의 전개 속에서 재미를

느끼고 코르타사르가 묘사하는 세계의 불가지(不可知)성

을 어렴풋하게나마 인식할 수 있다면 이미 그것으로 충분

하다

편집자반 11기 강귀욱

『드러누운 밤』

훌리오 꼬르따사르 지음 박병규 옮김

창비 20141124

La noche boca arribaJulio Cortazar

31

03 얼어붙은 자의식의 바다를깨뜨리고 생명을 불어넣는 책 『데미안』

데미안을 읽고 나서야 그 동안 내가 두 발 딛고 서 있던 땅이

굳고 단단한 대지가 아니라 얼어붙은 바다에 불과했음을 알

았다 데미안은 도끼를 가져와 이 꽁꽁 언 바다를 가차 없이

내리 찍었다 그리고 말했다 얼어붙은 바다를 단단한 땅인

줄 알고 사느니 그 얼음을 깨부수고 그 속에 빠져 죽기 살기

로 허우적대라고 그러면 그 속에서 너는 너 자신을 똑바로 마

주하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성장할 것이라고

주인공 싱클레어도 그를 둘러싸고 있던 세계를 깨뜨려 나가

며 성장한다 그 모든 과정은 결국 진정한 자기 자신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가 깨뜨린 가장 큰 세계는 바로 자신의 사고 체계였다 세상

을 바라보는 기존의 이분법적이던 시각 고정되고 획일화된 시

각을 버렸다 주인공은 세계 안에 심지어는 자신 안에도 선하

고 악하며 밝고 어두운 양극단의 것들이 공존함을 이해하고

두 세계를 끌어안았다 주인공은 귀와 눈을 가리던 장막을 걷

어내 버리고 세상을 바로 보게 되었다 상극인 것들의 괴리로

이루어진 이 모순된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곧 자신 안의 부조

화 또한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스스로에게 다가서는 첫 걸음

이었다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양극단의 세계 사이에서 싱

클레어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며 흔들리기를 반복했다 이

때 그에게는 삶을 지탱할 중심축이 없었다 항상 내면이 아닌

외부 세계에서 자신이 속할 자리를 찾아 헤맸다 그가 비로소

온전한 자신을 만난 순간은 어느 편으로도 치우침 없이 스스

로의 기준으로 홀로 서게 되었을 때였다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 이 길은 당신이 내면에 있는 모

순되는 두 세계 한없이 나약하고 뒷걸음치는 비열한 모습들

과 정갈하고 깨끗한 곧은 힘들을 동시에 직시하는 순간에 시

작된다 그리고 이 길은 두 세계 속에 들어가 이리저리 휩쓸리

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세계를 밟고 우뚝 올라서서 스스로

가 중심이 됨으로써 앞으로 펼쳐진다

이제 lsquo자아를 찾으라rsquo는 지루하고 흔한 이야기가 더 이상 빤

하거나 우습지 않다 묵직한 울림이 되어 나를 흔든다 그냥

나만 붙잡고 흔드는 것이라면 손사래 쳐 뿌리치겠는데 내가

밟고 있던 땅 속해 있던 세계를 뿌리째 흔들어 버린다 읽는

내내 속이 답답하고 나에게 화가 난다 그런데 이렇게 마구

혼나면서 이상하게도 후련한 구석이 있다 호통을 치는 데미

안이 사실은 우리를 응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막연

하고 무기력한 안개에 휩싸여 있을 때 데미안은 그만의 방

식으로 우리에게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준다 물론 갈 방향을

정해준다거나 각자의 사정을 듣고 상담을 해주는 것은 아니

다 오로지 궁지로 몰아세울 뿐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사람들

은 잊고 있던 lsquo나 자신rsquo을 일깨운다 아 그동안 lsquo나rsquo에 대해 생

각해본 적이 있던가 라는 정도만이라도 좋다 이 물음이 바로

여정의 시작이니까

그렇게 스스로에게 묻고 나면 더 이상 전처럼 살 수는 없기 때

문이다 아니라면 자기 자신에게 면목이 없을 것이다 이 무서

운 책이 우리를 혼내고 몰아치면서도 여전히 영원한 고전이자

필독서로 사랑 받는 이유다

lsquo우리들 속에는 모든 것을 아는 한 사람이 있다rsquo고 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혼이 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혼

이 났다는 것은 자신 안에 있는 lsquo그 사람rsquo이 말을 하기 시작했

다는 뜻이니까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목소리가 희미하

고 멀리 있다 하여도 숨죽여 귀 기울이는 일 자체가 자신에게

로 가는 과정임을 잊지 말고

편집자반 11기 배예리

『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민음사 20001220

Demian Die Geschichte von Emil

Sinclairs Jugend(1919)

31

03 얼어붙은 자의식의 바다를깨뜨리고 생명을 불어넣는 책 『데미안』

데미안을 읽고 나서야 그 동안 내가 두 발 딛고 서 있던 땅이

굳고 단단한 대지가 아니라 얼어붙은 바다에 불과했음을 알

았다 데미안은 도끼를 가져와 이 꽁꽁 언 바다를 가차 없이

내리 찍었다 그리고 말했다 얼어붙은 바다를 단단한 땅인

줄 알고 사느니 그 얼음을 깨부수고 그 속에 빠져 죽기 살기

로 허우적대라고 그러면 그 속에서 너는 너 자신을 똑바로 마

주하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성장할 것이라고

주인공 싱클레어도 그를 둘러싸고 있던 세계를 깨뜨려 나가

며 성장한다 그 모든 과정은 결국 진정한 자기 자신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가 깨뜨린 가장 큰 세계는 바로 자신의 사고 체계였다 세상

을 바라보는 기존의 이분법적이던 시각 고정되고 획일화된 시

각을 버렸다 주인공은 세계 안에 심지어는 자신 안에도 선하

고 악하며 밝고 어두운 양극단의 것들이 공존함을 이해하고

두 세계를 끌어안았다 주인공은 귀와 눈을 가리던 장막을 걷

어내 버리고 세상을 바로 보게 되었다 상극인 것들의 괴리로

이루어진 이 모순된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곧 자신 안의 부조

화 또한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스스로에게 다가서는 첫 걸음

이었다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양극단의 세계 사이에서 싱

클레어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며 흔들리기를 반복했다 이

때 그에게는 삶을 지탱할 중심축이 없었다 항상 내면이 아닌

외부 세계에서 자신이 속할 자리를 찾아 헤맸다 그가 비로소

온전한 자신을 만난 순간은 어느 편으로도 치우침 없이 스스

로의 기준으로 홀로 서게 되었을 때였다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 이 길은 당신이 내면에 있는 모

순되는 두 세계 한없이 나약하고 뒷걸음치는 비열한 모습들

과 정갈하고 깨끗한 곧은 힘들을 동시에 직시하는 순간에 시

작된다 그리고 이 길은 두 세계 속에 들어가 이리저리 휩쓸리

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세계를 밟고 우뚝 올라서서 스스로

가 중심이 됨으로써 앞으로 펼쳐진다

이제 lsquo자아를 찾으라rsquo는 지루하고 흔한 이야기가 더 이상 빤

하거나 우습지 않다 묵직한 울림이 되어 나를 흔든다 그냥

나만 붙잡고 흔드는 것이라면 손사래 쳐 뿌리치겠는데 내가

밟고 있던 땅 속해 있던 세계를 뿌리째 흔들어 버린다 읽는

내내 속이 답답하고 나에게 화가 난다 그런데 이렇게 마구

혼나면서 이상하게도 후련한 구석이 있다 호통을 치는 데미

안이 사실은 우리를 응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막연

하고 무기력한 안개에 휩싸여 있을 때 데미안은 그만의 방

식으로 우리에게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준다 물론 갈 방향을

정해준다거나 각자의 사정을 듣고 상담을 해주는 것은 아니

다 오로지 궁지로 몰아세울 뿐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사람들

은 잊고 있던 lsquo나 자신rsquo을 일깨운다 아 그동안 lsquo나rsquo에 대해 생

각해본 적이 있던가 라는 정도만이라도 좋다 이 물음이 바로

여정의 시작이니까

그렇게 스스로에게 묻고 나면 더 이상 전처럼 살 수는 없기 때

문이다 아니라면 자기 자신에게 면목이 없을 것이다 이 무서

운 책이 우리를 혼내고 몰아치면서도 여전히 영원한 고전이자

필독서로 사랑 받는 이유다

lsquo우리들 속에는 모든 것을 아는 한 사람이 있다rsquo고 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혼이 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혼

이 났다는 것은 자신 안에 있는 lsquo그 사람rsquo이 말을 하기 시작했

다는 뜻이니까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목소리가 희미하

고 멀리 있다 하여도 숨죽여 귀 기울이는 일 자체가 자신에게

로 가는 과정임을 잊지 말고

편집자반 11기 배예리

『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민음사 20001220

Demian Die Geschichte von Emil

Sinclairs Jugend(1919)

32

박세길 인터뷰

진정한 역사가는 과거에 파묻히지 않는다옥(獄)에서 옥(玉)을 만든 작가 박세길 인터뷰

박세길 저자는 처녀작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로 80년대

대표 역사서 자리를 꿰찬 분입니다 1986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감되었을 때 감옥에서 역사책을 읽으며

사회 모순에 대해 고민했고 출소하자마자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집필했습니다 정권 탄압 속에서 왜곡된

현대사를 바로 잡았다는 의미를 지닌 이 대표작은 오랫동안

고시생과 대학생들의 필독서로 꼽혔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읽은 박세길 저자의 저서는 지난 6월 출간한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입니다 기사를 쓰고 편집할 때 청년 세대를

겨냥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박세길 저자는 역시나

청년들의 미래에 큰 관심을 갖고 계셨습니다 취업을

눈앞에 둔 서울출판예비학교 학생들이 가져야 할 자세를

여쭸습니다

출판학교에서 강의하신 한 선생님은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가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와

더불어 80년대 인문학의 양대

산맥이라고 하셨습니다

책의 성공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강의

요청이 많이 들어왔어요 먹고사는

경제적인 문제도 해결됐습니다

몇 부 팔렸는지는 잘 모릅니다

출판사에서 기밀 사항이라고

하더군요 요즘은 마케팅 차원으로도

몇 쇄 몇 부인지 밝히지만 그때는

세금 문제를 피해가기 위해서인지

쉬쉬하던 시절이었나 봅니다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는 대학

선후배끼리도 많이 물려주는 책이라고

들었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의 쉬운 설명이

좋았습니다 더불어 어떤 사명감을 안고 썼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완성하기에 앞서 어떤 목표를

두셨나요

청년 세대가 외환위기 이후 집중적인 희생양으로 전락하면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드러내면서 여기에

머물지 않고 청년 세대의 잠재력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들이 역사 무대 한복판에 진출해 자기 몫을 다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습니다

역사 분야는 시장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역사 혹은 현대사가 주목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통해 얘기하자면

80년대 후반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lsquo왜곡된

역사를 바로 알자rsquo는 시각 교정의 욕구가 있었던

차에 제 책이 나름 부응했는지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시기가 적절했던 셈이죠

2012년 대선 후 역사 분야가 잠시 반짝했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금세 시들었다고

하더군요 당시 역사 분야 책들이 일반 독자가

읽기에 다소 어렵거나 출간한 지 오래된 것들

위주였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돋을세길

출판학교에서 강의하신 한 선생님은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가 유홍준 교수의

책의 성공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강의

하더군요 요즘은 마케팅 차원으로도

선후배끼리도 많이 물려주는 책이라고

역사 분야는 시장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역사 혹은 현대사가 주목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통해 얘기하자면

80년대 후반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lsquo왜곡된

역사를 바로 알자rsquo는 시각 교정의 욕구가 있었던

차에 제 책이 나름 부응했는지 큰 반향을

읽기에 다소 어렵거나 출간한 지 오래된 것들

위주였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의 저자

33

2012년 대선 후 역사 분야가 관심을 받았던 것은

보수층의 재집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한

불안 때문일까요

맞습니다 그러나 마땅한 책이 없어서 그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역사 분야에서 베스트셀러를 내기

위해서는 시기가 맞아 떨어지고 내용 또한 대중이 원하는

것을 담고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를 편집한 lsquo생각정원rsquo

출판사의 정희용 편집자에게 감사 표시를 하셨습니다

어떤 편집자를 선호하시나요

간단합니다 편집자는 철저히 독자 입장에서 독자와 작가

사이의 간극을 줄여줘야 합니다 예를 들면 어려운 내용을

과감히 생략하고 다음 기회로 미루도록 설득한다거나 좌파

운동권 색채가 너무 강한 문장을 조금 순화하는 것 등입니다

어떤 내용이 이번 책에 꼭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선택을

도와줘야 합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을 작가님께서 직접

독자들에게 홍보하신다면 카피 문구를 짧게 제시할 수

있을까요

청년 세대 희망 찾기 갑갑한 현실을 어떻게 타개할 수

있을지 그 답을 찾아보는 길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취업 후 첫발을 내디딜 서울출판예비학교 11기

학생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출판 또한 돈을 벌어야한다는 기본 전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출판계를 지켜본 결과 뭔가 소명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오래

살아남았습니다 출판학교 역대 대표 중 일부는 나와 관계가

있는 사람들인데 모두 고유한 소명의식을 갖고 출판계에

뛰어들었습니다 때로는 상업주의 안에서 재주도 부리곤

했지만 어쨌든 분야 내에서 고유한 캐릭터를 구축했습니다

출판학교 학생들이 출판 상황을 이해하고 자신을 역할을

정하는 개인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비전 중심의 경영을

하는 회사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지만 개인 비전을 기업

비전으로 나아가 사회 비전으로 접목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과거에 안주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부분을

출판계에서는 SNS 등 인터넷 환경을 통한 마케팅으로

이해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SNS망 자체에서 무엇이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건 사람과

사람이 서로 소통하고 공감하는데 필요한 도구입니다

콘텐츠 중심의 사고가 중요하고 그것이 전제되지 않을 때

SNS는 착각에 불과하며 성공할 수 없습니다 필요한 콘텐츠

중심의 사고를 가지고 철저하게 진행하지 않으면 그 공간에서

허망하게 헤엄만 칠 뿐 입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SNS에서

맥없이 헤엄치다 익사하는 경우를 볼 수 있을 겁니다

콘텐츠와 마케팅의 영역을 하나로 보는 것과 따로

보는 것 어떤 것이 독자를 위하는 것일까요

출판 마케팅은 책을 기획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에서부터

개입돼야 하고 그 과정에 독자를 참여시키는 방식을

고민해야 합니다 미국 네브래스카주립대학의 이상문

교수는 lsquo밀실 안에서의 혁신은 끝났다rsquo고 얘기합니다

개방된 체제에서 독자 곧 소비자 사용자의 참여 하에 함께

만들어갈 때 혁신은 이뤄진다고 합니다 출판사의 비전이

브랜드로 연결될 때 독자는 자발적으로 의견을 주고받고

싶어 할 겁니다

마케터반 11기 이창환

디자

인 사

공예

Page 20: 서울출판예비학교 웹진 _5호 2015

20

편집자반 김영준 학우가 그린

『이 외로운 사람들아』 일러스트

기억에콕

수업 후기

ldquo우리에게는 lsquo일탈rsquo이 필요합니다rdquo

잠깐 딴 짓을 하는 사이에 귓가에 들려온

한 문장이 나를 사로잡았다 배는 부르고

따 사 로 운 햇 살 에 잠 이 쏟 아 지 는 시 간

오후 1시 30분 시간을 칼같이 맞춰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선 그는 딱 봐도 지루하고

고리타분해 보이는 첫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순간 눈으로 들어온 이미지는 뇌로 흘러갔고

뇌는 망설임 없는 확신으로 귀에 명령을

전달했다 그렇게 귀는 이미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내 들려올 그렇고 그런 뻔한

이야기에 대하여

눈의 판단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의 한마디

한마디는 파격이었다 아니 어쩌면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였지만 누구도 자신 있게

내던지지 못하는 말들을 서슴지 않고 내뱉는 그

거침없음에 신선함을 느낀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의 관심을 돌려놓았던 lsquo일탈rsquo에 대한 그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lsquo일탈을 하라rsquo는 말이

lsquo제멋대로 하라rsquo는 의미가 아니라 어떤 규칙을

벗어나는 행위를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다르게

생각하는 방식을 몸으로 익히게 된다는 것

새로운 것을 생각해내는 창의성이라는 힘은

당연히 새로운 경험에서 나온다는 것이었다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니 강의를 듣던

친구들의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때 보고 들었던 그의 말과 행동이 우리에게는

딱 딱 한 강 의 실 에 서 느 끼 는 새 로 운 경 험

lsquo일탈rsquo이었다

그 와 의 만 남 은 계 속 이 어 졌 다 이 곳

서 울 출 판 예 비 학 교 에 입 학 한 이 후 로 는 좀

더 완 벽 한 일 주 일 단 위 로 시 간 이 흐 르 기

시작했는데 매주 쌓여가는 새로운 배움 뒤에는

수많은 물음이 불쑥불쑥 솟아났고 그는 마치

예상을 했다는 듯이 일주일에 한 번씩 나타나

우리의 설익은 궁금증을 해소해주고 떠나갔다

첫 만남에서는 책이라는 대상과 책을 대하는

편집자의 자세에 대해 이야기하며 큰 그림을

그려주었고 다음엔 저자와의 관계 맺기 그

다음엔 스스로 만들어 가야할 편집자의 자기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담백하게 들려주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네 번째 만남이었다

누구도 쉽게 이야기하기 어려운 완벽하게

솔직해지기는 더더욱 어려운 자신의 좌절과

실패를 그는 담담하고 진솔하게 소개해주었다

모든 성공에는 대개 7할의 실패가 전제되어

있기 마련인데 성공에 이르기까지 거치는

우 리 가 lsquo실패rsquo라고 명 명하는 것들이 사실

진짜 실패가 아니라 성공의 다른 이름이라는

그의 말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성공도 실패도

어 느 한 지 점 에 서 내 리 는 판 단 인 것 이 고

결 국 성 장 하 고 성 숙 한 다 는 것 은 성 공 과

실패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lsquo차이rsquo를 얼마만큼

발견하느냐 하는 것에서 결정된다는 그의 말이

가슴을 뜨겁게 했다 비로소 lsquo편집자rsquo로서가

아닌 한 lsquo사람rsquo으로서의 그가 보이기 시작했다

담담하게 말을 하고 있지만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아프고 쓰린 기억을 후배들에게

들 려 주 는 그 에 게 서 진 심 이 전 해 져 왔 다

사랑하는 일에 대한 함께 걸어갈 동지들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 참 고마웠다

어느덧 마지막 만남이 찾아왔다 한 권의

책을 만들면서 진행했던 편집의 과정을 예로

실 제 적 인 이 야 기 를 우 리 에 게 마 지 막 으 로

들려주었다 편집의 능력은 지식과 정보에서

나온다는 것 그것은 단숨에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 꾸준히 쌓아가야 한다는 것 그래서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의 문제라는 것을 경험을

근거로 자신 있게 말해 주었다 이미 지나온

과거의 결과 대신 앞으로 걸어갈 길에 대한

희망을 들려주어서 그게 참 고마웠다

편집자반 일탈이 주는 파격 우리가 낳을 lsquo새로운 책rsquo과 편집자선완규 선생님과의 다섯 번의 만남이 키운 생각들

21

그 가 우 리 에 게 마 지 막 으 로 이 야 기 를

들려주었던 그날 이후 석 달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났다 나는 여전히 같은 강의실에 앉아

앞서 길을 걸어간 선배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고 조금씩 가까워지고 밝아져가는 내 앞에

놓인 길에 대해 생각한다 그러다 문득 마음이

무거워지고 막막해질 때면 종종 그의 말들을

떠올려 본다 그리고 그 생각의 끝에서 마음을

의지하며 함께 이 길을 걸어갈 따뜻한 선배가

하나 있다는 위로 한 줌을 발견한다

ps 선완규 선생님 고맙습니다 보고 싶어요

편집자반 11기 성준근

마케터반 강한 수면욕 환상과 환기

판형과 종이를 예술로 편입시키려는 영업자다빈치 출판사 박성식 대표 특강 후기

9월 23일 평소보다 점심을 많이 먹었던 날이다 잠을 며칠간 못 자 피곤했다

오후 1시 30분이 살짝 지나서 다빈치 출판사 박성식 대표의 특강이 시작됐다

다빈치 대표님은 처음 뵐 때부터 남다르셨다 서울출판예비학교 입학 면접에서

여자 술 담배를 각각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보셨다 lsquo솔직함을 어필해야

하는 순간인가rsquo하는 생각에 직설적으로 답했지만 lsquo더 문학적으로 얘기할 수

있었는데rsquo라는 후회를 안고 돌아왔다

마음과 다르게 첫 번째 시간은 정신없이 잠이 쏟아졌다 눈을 감고 귀 기울였지만

턱을 괸 채 버티는 동안 50분이 지났다 대표님께 캔 커피를 하나 드리고 맞이한 두

번째 시간 그 한 시간 동안 나는 현실 옆의 어떤 이상 내지는 환상을 본 것 같다 그동안

듣던 강의들을 놓고 lsquo이상적인 관점이다rsquo 혹은 lsquo현실적이다rsquo라고 구분했던 판단의 폭

자체가 좁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성식 대표님은 내 머리에 있던 lsquo책rsquo에 대한 인식을 전복시켰다 자본주의 출판의

몰락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시작됐다는 말 출판 기본 특성인 다품종 소량 생산은 돌아올

것이며 다품종 소량 생산을 넘어 다품종 소량 lsquo고급 생산rsquo을 추구하고 싶다는 말은 나를

달뜨게 했다 주류에 반하는 사고를 가진 중년의 개성과 내공에 교실 풍경이 환기됐다

교육 수단으로 책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지만 책은 그만큼 사회적 의무와 희생을

짊어져왔다 출세와 공부 앞에서 책이 가진 기호(嗜好)성은 변두리로 내몰렸다 책을

읽어야만 제대로 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분위기는 옳지 않다 독서는 성향의 범주지 성역이

돼선 안 된다 정보와 지식의 전달은 모바일 등에 넘겨주고 종이책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공동체로 돌아와야 한다 그게 원래 자리라는 대표님의 주장이 새롭고 강렬하다

자본주의 3대 원칙인 lsquo더 빨리 더 많이 더 싸게rsquo 체계는 표준화와 규격화를 동반하며

매우 효율적이다 현재 사용하는 종이는 자본주의 원칙에 최적화돼 있다 그러나 대표님은

인쇄기계로 소화하지 못하는 질감과 전혀 다른 발색을 지닌 lsquo종이rsquo에 주목했다 그 종이로

콘텐츠 종이 판형이 완벽하게 들어맞는 예술서를 만들고 시장을 설득한다면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책 판매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전했다 종이 자체가 책의 예술성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한지(韓紙)를 예로 들면서 훌륭한 텍스트와 이미지를 한 차원 끌어올리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많은 부수를 팔아야 성공한 출판 많은 부수를 파는 것을

목표로 하는 시대는 저물고 있다 기존 유통과 판매 방식

안에 갇혀서는 불황에 매몰될 뿐이다 소량의 고급화된

책을 꿈꾸는 것과 전시회를 책과 결합하는 것도 다른 길을

물색하는 과정이다

대표님은 10년 전부터 lsquo이 원고는 내가 누구보다 잘

만들겠다rsquo lsquo이 원고는 내가 못하면 누구도 못할 것 같다rsquo라는

생각이 든 책만 출간을 진행했다고 한다

강의 중간 자신의 독특한 철학을 전달하는 것에 대해 가벼운

염려를 하셨지만 이론적이고 실용적인 분야에 몸담더라도

예술적 사고의 유연성은 필요하다고 본다 돈과 인문정신을

구분하면서 필요할 때 양쪽에서 자극 받고 차용하는 것이 마케팅의 융통성과 힘을 기르는 길일 것이다

마케터반 11기 이창환

편집자반 김영준 학우가 그린

『이 외로운 사람들아』 일러스트

박성식 대표가 기획한 lsquo오름rsquo전

22

하늘

습탁은 농도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하늘

습탁은 농도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이 글은 심우진 선생님의 탁본 세미나 수업에 대한 우리들의 즐거운

기록이다 탁본은 습탁(濕拓)과 건탁(乾拓) 두 종류로 구별된다

습탁은 나타내고자 하는 물체 위에 물을 묻힌 후 종이를 그 위에

밀착시키고 먹물 묻은 솜방망이로 가볍게 두드려서 물체를 표현하는

방법이다 물체의 패인 부분을 제외하고 볼록한 부분의 모양대로

종이에 먹이 묻어 문자나 문양이 드러난다 건탁은 이름 그대로 물을

사용하지 않고 마른 상태의 먹인 고형묵(固形墨)을 사용한다 우리는

각자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사물과 자연을 이용해 탁본 작품을

만들고 서울출판예비학교 꼭대기 층에서 작품을 공유했다

디자인반 이 시간을 그대로 탁본할 수 있다면심우진 선생님의 탁본 세미나

저는 신문지를 구겨서 해봤어요

응 그런데 이건 방바닥 같은데

방바닥까지 묻어 나와 버렸네요

[학생들 하하하]

저는 일단 큰 나무 기둥을 떠봤고요

오솔길의 짚도 해보고 저희 집 바닥과

벽면도 신기해서 떠봤어요 집 벽면 중에

대리석도 있고 특이한 벽면이 많거든요

부잣집인가 보네

[학생들 깔깔깔]

승연

심우진 선생님

승연

승연

심우진 선생님

이건 파프리카인데 저희 집 개가 완성한 종이를 찢었어요

[학생들 하하하]

좀 작고 납작한 파프리카를 반으로 잘라서 습탁했어요 또

이건 철조망인데 용 비늘처럼 나와서 재밌었어요 아나콘다

같기도 하고 철조망이 날카로워서 습탁하니 종이가 자꾸

찢어져서 다시 하게 됐어요 근데 이거요hellip 남자친구

있으면 커플끼리 한 번 해보세요 한 명은 잡아주고 한 명은

습탁하고hellip 되게 로맨틱 성공적

자랑하는 거니

[학생들 깔깔깔]

수빈

수빈

심우진 선생님

혜민

정묵

처음에 나뭇잎이 세세하게 잘 나올 줄 몰랐는데 그

줄기의 질감이 잘 나왔고 버려진 타이어를 끌어서

생긴 모양으로도 습탁을 했는데 생각보다 잘 나와서

막상 찍어보면 생각과 다르다는 것을 느꼈어요

저도요 결과물이 뚜렷하게 안 나올 줄 알았는데

디테일이 잘 나타나 있었고 입체를 평면적으로

찍는 것 자체가 재밌었어요

수정

저는 빗자루를 해봤어요 너무 얇아서 안 나올

거라 생각했는데 빗자루 문양이 잘 나와서

재밌었고 머리카락도 해봤는데 머리카락은

끝 부분이 잘 나오는 편이에요 위쪽은 다

뭉쳐있는데 끝 부분은 펼칠 수 있으니까요

23

저는 결이 얇은 것들을 뜨는 것이 재밌었어요

머리카락처럼요 머리 긴 사람에게 부탁해서

눕히고 했어요 그리고 이건 얼굴인데요

처음에는 그냥 했는데 얼굴은 입체를 살리려면

스케치하듯 떠야 되요 결국 명암으로 입체감

조절을 해야 되죠 코가 너무 입체적이라 특히

힘들었어요

누구 얼굴이야

우리 언니hellip

[학생들 우와]

가은

심우진 선생님

가은

하얀

음각이 나왔을 때 너무 좋았고요하늘

습탁은 농도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소리

건 탁 보 다 는 습 탁 이 농 도 조 절 하 는 게

희 한 해 서 재 밌 었 어 요 농 도 조 절 이

관 건 이 거 든 요 먹 과 물 의 배 합 과

솜방망이가 먹물을 얼마나 흡수하는지 그

흡수량이 중요하고요

윤미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꽤 많은데 만져보면서 건탁을 뜨니까 좋았어요 전에

습탁할 때는 시멘트 벽 같은 걸 하다가 나뭇결을 하니까

살아있는 느낌이었어요 생각했던 것처럼 나와서

좋았고 솔방울이나 나뭇잎 같은 섬세한 것들은 제대로

나오지 않아서 아쉬웠어요 섬세한 것들은 습탁으로

해봐야겠어요 그래도 다양한 나무를 건탁해봐서

만족해요

소현

저는 일상적인 것들로 습탁을 해봤어요

처음에는 단순하게 오돌토돌한 느낌만

있 을 줄 알 았 는 데 색 다 른 느 낌 이 나 서

재밌었어요

탁본 세미나를 마치고 그 다음 주에 지하 강당에서 촬영하는 시간을

가졌다 촬영 후에 보정도 했다 나뭇잎의 결 무늬 타이어 자국

그리고 사람의 머리카락까지도 좋은 디자인의 재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보았고 나누었다 건탁과 습탁의 장단점을 이 수업으로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심우진 선생님의 이번 탁본 수업도 지난 활자

수업처럼 지식 습득은 물론이고 경험까지 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 시간들이 앞으로 출판 디자이너로서의 감각을 더 풍요롭게 해 주지

않을까

디자인반 11기 사공예원

하얀

음각이 나왔을 때 너무 좋았고요

습탁은 농도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솜방망이가 먹물을 얼마나 흡수하는지 그

흡수량이 중요하고요

윤미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꽤 많은데 만져보면서 건탁을 뜨니까 좋았어요 전에 꽤 많은데 만져보면서 건탁을 뜨니까 좋았어요 전에

이건 파프리카인데 저희 집 개가 완성한 종이를 찢었어요

[학생들 하하하]

좀 작고 납작한 파프리카를 반으로 잘라서 습탁했어요 또

이건 철조망인데 용 비늘처럼 나와서 재밌었어요 아나콘다

같기도 하고 철조망이 날카로워서 습탁하니 종이가 자꾸

찢어져서 다시 하게 됐어요 근데 이거요hellip 남자친구

있으면 커플끼리 한 번 해보세요 한 명은 잡아주고 한 명은

습탁하고hellip 되게 로맨틱 성공적

자랑하는 거니

[학생들 깔깔깔]

24

9시 30분 합정역 1번 출구 앞

ldquo누나rdquo 소리에 쳐다보니 반가운 공 총무의 얼굴이 보였다 정류장

앞으로 길게 늘어선 줄에 합류하여 파주로 날 데려다 줄 2200번

버스를 기다리고 있으니 반가운 얼굴들이 계속 나타났다 한 대의

버스를 보내고서야 겨우 2200번 버스에 탑승해 파주로 출발할 수

있었다

10시 15분 파주 lsquo다산교 앞rsquo 정류장 하차

4개의 정류장 총 57분이 걸린다고 알려준 N사 지도 어플의 정보와는

달리 30분 만에 파주에 도착했다 일찍 도착해 먹을 것을 찾아 헤맨

예비 마케터들은 편의점에서 주린 배를 채웠고 lsquo지혜의 숲rsquo을 살짝

염탐하며 11시까지 시간을 보냈다

11시 05분 보진재 2층

1912년 설립되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인쇄소인 보진재 관계자

분이 나와 간단히 인사 말씀을 하고 각 반의 인솔자를 소개해주셨다

마케터반의 인솔자는 서동관 과장님 디자인반 편집자반 마케터반

순으로 견학을 시작했다

11시 15분 보진재 견학 시작

제일 먼저 본 곳은 제판실이었다 필름 인쇄가 줄어들고 CTP로

대체되는 추세지만 어떤 분들은 여전히 필름 작업을 하고 계셨다

이유를 물어보니 서동관 과장님은 예전 필름이 남아 있기도 하고

출판사에 따라 필름을 고집하는 곳이 있다고 하셨다

한번에 5도 인쇄가 가능한 기계를 보는 중에 서 과장님이 말씀하셨다

ldquo한 유닛(unit)당 23억 정도 해요rdquo 그렇다면 유닛 다섯 개가

돌아가고 있으니 적어도 10억짜리 기계라고 내 눈에 보이는 건 그냥

낡고 큰 기계인데 10억이 넘는다니 놀랐다 또 과장님께서 자랑스레

말씀하신 한 가지 잉크 농도 조절을 자동으로 하는 기계가 보급된

곳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었다 원래는 사람이 눈으로 보고 수정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재판을 찍을 경우 초판과 동일한 색상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있지만 보진재는 기계가 자동으로 조정해주어 수월한

작업을 할 수 있다고 하셨다

매염실도 보고 제본실도 구경했다 인쇄된 종이를 접지하고 제본을

마친 후 마지막으로 제단을 하면 책이 완성되어 나왔다 그 모든

과정을 보고 난 후 서 과장님이 건넨 완성된 책의 무게는 보통의

그것보다 조금 더 무겁게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윤전실이었다 견학 당일은 작업이 없어서

비어있던 윤전실이지만 윤전실이 주는 무게감은 컸다 윤전실은

롤(roll)로 인쇄하는 곳으로 8개의 롤이 양면 인쇄를 하고 건조와

접지까지 한 번에 가능한 기계도 있었다 대량생산을 위한 곳으로

주로 교과서나 EBS 학습지를 인쇄한다고 하셨다

12시 20분 견학 끝

1시간을 조금 넘긴 견학을 끝내고 밖으로 나오니 코가 따갑고 목이

말랐다 기계가 먼지를 빨아들여준다고는 하지만 수없이 많은

종이가 존재하는 공간에서의 종이 냄새는 강력했던 것이다 책이

제작되는 과정은 실제로 보니 다양하고 복잡했다 자동화가 많이

되어있지만 사람의 손길 없이는 절대 완성될 수 없는 과정들을 보며

책이 완성되기까지의 노력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lsquo책이 어떻게

만들어진다rsquo를 배우다가 lsquo책이 이렇게 만들어진다rsquo를 보니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예비 출판 마케터의

길로 들어선 후에 새로운 것을 보고 배울 수 있었는데 보진재 견학은

그 중에서도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책을 완성시키기 위한 모든 과정이

저마다의 몫을 하고 있었다 서울출판예비학교 졸업 후 출판계에

들어섰을 때 나는 과연 어떤 몫을 할 수 있을까 남은 2개월을 조금은

더 열정적으로 보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마케터반 11기 최다은

1 일일탈

학교 밖 견학 후기

피부로 와 닿는 책의 감촉 책의 냄새 책의 소리 보진재에서 책이 인쇄되는 과정을 만나다

필름과 인쇄판이 만들어지는 과정

25

우리가 이제 각자 편집자 마케터 디자이너가 되어 책 만드는 일을

시작하면 우리의 책은 이곳에서부터 그 lsquo탄생rsquo을 시작할 것이다 책의

근간이 되는 종이가 만들어지는 곳 한솔제지 공장에 다녀왔다 학기

초에 책을 파는 서점을 견학한 뒤 그 다음으로 출판사 종이에 활자를

찍어내는 인쇄소 그리고 마지막으로 lsquo종이rsquo를 만드는 제지 공장을

찾은 것이다 책이 만들어지는 순서대로라면 우리가 다녀온 순서를

거꾸로 해서 다녀왔어야 했지만 우리는 반대로 실제 과정을 거슬러

올라간 것이다 이렇게 거슬러 올라가는 과정에서 오히려 편집자란

직업에 겸허해질 수 있었다 가끔은 편집자가 책을 만드는 모든

과정 위에 군림하는 것 같이 느껴지지만 책의 물성을 만들어내는

거대한 기계 앞에서 우린 한없이 작아지기도 한다 lsquo한 권의 책rsquo이

만들어지려면 이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함을 이해해야 했다 이렇게도

복잡하고 힘겹게 만들어지는 책의 가치를 한 번 더 깊이 생각하게 된

계기였다 책이라는 건 의미가 담긴 조각들의 집합체이자 종이를

보기 좋게 물성화한 것 이론적으로야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눈으로 보고 느끼는 것과는 천지차이다

날씨마저 좋았던 9월 11일 평소보다 한 시간이나 이른 8시

30분에 세 반 학우들은 눈도 제대로 못 뜬 채 집합했다 대전까지

간다니 마치 여행가는 것 같은 살짝 들뜬 기분까지 안고 아침도 못

챙겨먹고 나왔을 우리를 생각해서 빵과 우유까지 준비한 한솔제지

측의 세심한 배려에 감동했다 배도 채우고 부족한 잠도 보충해가며

2시간 넘게 달려 신탄진 공장에 도착했다 도착하자 보이는 우리를

환영하는 현수막에 2차로 감동했다 우리를 위해 정말 많은 준비를

하셨구나 느낀 순간이었다

신탄진 공장 강당에 들어가서 간단한 공장 소개를 먼저 들었다

그리고 뒤이어 종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경청했다 수업 때보다

학생들의 집중력이 더 높아 보였던 건 내 착각이었길 종이는

1퍼센트의 펄프와 99퍼센트의 물로 이루어진단다 그래서 전반적인

공 정 의 대 부 분 은 물 을 처 리 하 기 위 한 과 정 이 나 다 름 없 었 다

생각보다 종이는 순수한 물질이라고 생각했다 종이(paper)의

어원은 이집트의 파피루스(papyrus)에서 왔다고 한다 중국의

lsquo채륜(蔡倫)rsquo이라는 사람이 제일 먼저 발명했고 고려시대에

일본으로 넘어간다 일본에 가장 마지막으로 넘어갔지만 종이의

기술력은 현재 일본이 가장 좋다 원료rarr초지rarr코팅 등의 공정을 거쳐

종이가 완성되는데 마지막 코팅 공정을 여자의 화장에 비유한 것

역시 기억에 남는다 코팅이 그렇게나 대단한 과정이라니

공장 안으로 들어가서는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시끄러워서 설명을

제대로 듣진 못했지만 앞서 들었던 설명을 떠올리며 기계들을

관찰했다 인쇄소에서 본 광경들도 거대하고 박력 있었지만 여긴

그보다 더 거친 느낌이었다 책은 서점에 놓여있을 때는 그렇게

얌전하건만 태어날 땐 이렇게 시끄럽다 또한 막 태어난 종이는

거대하고 또 거대했다 다들 마치 거대한 두루마리 휴지 같다고들

했다

견학을 다 마치고 다시 대전 공장으로 이동해 다 같이 점심 식사를

했다 기대 이상으로 맛있는 밥에 또 감동 더 힘내서 견학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아쉽게도 대전 공장 안에는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라 그 힘()을 발휘하진 못했다 대전 공장은 신탄진 공장과

다르게 책에 쓰이는 것이 아닌 제품 포장용 박스 종이컵 등 다른

용도에 쓰이는 종이를 만드는 곳이었다 그 과정의 차이를 눈으로

비교하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마지막으로 좋은 선물까지 손에

받아들고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다시 서울로 향했다

언제나 시작은 중요하다 각자의 일에 빠져들게 되면 점점 잊게 될

그 시작을 눈에 담고 오래 기억하기 위해 다녀왔다고 생각한다 요즘

초심을 잃었다는 생각이 종종 드는데 책에게도 초심이 있다면 바로 이

곳일까 시작의 의미에 대해 다시 곱씹어보았다

편집자반 11기 박혜원

우리의 글과 그림이 펼쳐질 종이의 탄생 한솔제지 신탄진 공장 견학

거대한 롤(상) 한솔제지 공장 앞에서 (하)

26

화양연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삶과 문학에 취하다

편집자반 한국문학 동아리 lsquo공감rsquo 그 대담의 현장

훗날 서울출판예비학교를 떠올릴 때 가장 즐거운 시간으로 기

억되는 날들은 동아리 활동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들의

화양연화(花樣年華)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 중

의 하루를 소개한다 문예창작학과를 전공한 문학소녀 김한나

학우를 필두로 창단된 편집자반 내 한국문학 동아리 lsquo공감rsquo은

모임 전에 한국작가를 한 명 정해 단편 두 편을 함께 읽고 키워

드나 질문을 스스로 뽑아 글을 써왔다 모여서 때로는 소설의

플롯이나 주제 문체에 대한 열띤 토론을 하고 때로는 작가의

외모()와 같은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며 삼천포로 빠지기도 했

다 우리끼리만 듣기엔 아쉽다 이 즐거운 대화를 모두에게 들

려주고 싶었다 이날 모임에선 김영하 작가의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단편집 속의 두 단편 lsquo엘리베이

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이하 엘리베이터)rsquo와 lsquo사진

관 살인사건(이하 사진관)rsquo에 대해 이야기했다 여기서는 lsquo엘리

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rsquo를 읽고 토의한 내용을

실었다

한나 참고로 김영하는 사람의 욕망에 대해 천착하는 작가야

그런 특성이 엘리베이터에는 안 나와 있는데 사진관에서는

잘 드러나 있어

상화 백가흠 작가에게 소설창작론 강의를 들었는데 그분이

소설의 기법을 설명하면서 알레고리랑 아이러니를 얘기했어

알레고리가 인물이나 소재를 비유적으로 설명하는 거래 예를

들어 핸드폰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다른

것에 핸드폰을 빗댐으로써 소설을 풀어가는 거

야 아이러니는 속도감 있게 이야기를 전개함으

로써 부조리나 모순을 드러내는 건데 김영하가

아이러니의 대표적인 작가래 단편인데도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내면보다는 사건이 일어나는

걸로 소설을 끌어가는 작가 우리가 지난 모임

에서 성석제를 굉장한 이야기꾼이라고 했잖아

그런데 난 김영하가 훨씬 이야기꾼스럽게 느껴

졌어 속도감 있고 lsquo이렇게 몰입을 할 수 있나rsquo

싶고 지난 모임들에서 읽었던 손보미나 편혜영

소설의 경우는 분위기나 주인공의 심정 내면에

의미를 부여해 야 했는데 김영하의 소설은 덮

자마자 아이러니가 느껴지면서 lsquo아 세상은 왜

이래rsquo 말하게 만들었어

법열 나는 엘리베이터 읽고 딱 lsquo뫼비우스의 띠rsquo가 생각났거든

뫼비우스의 띠가 안하고 겉이 구분이 안 되잖아 끝과 시작이

어딘지도 모르고 lsquo나rsquo가 겪는 상황이 현실인지 아닌지 구분이

안 되는 느낌 마지막에 lsquo나rsquo가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가 존재

하기는 했는지 혼란스러운 느낌을 받잖아 그게 앞의 환상적

인 부분이랑 맞물리면서 하나가 되는 느낌이라 뫼비우스의 띠

가 생각났어

상화 lsquo나rsquo가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구해주려고 고분군투하

다가 나중에 자기가 엘리베이터에 갇히잖아

오권 낀 남자의 발을 보면서 느꼈던 감상이 사실은 자기를 구

하고 싶었던 마음인 거지

(일동 오~ 그렇게도 볼 수 있네)

오권 무한도전의 무한상사 특집도 생각났어 뜬금없이 휴지

사용하는 길이에 대해 회의하는 장면에서 엘리베이터는 갇힌

사회 서로를 돌아보지 않는 사회를 의미하는 것 같아

한나 나는 반대로 오히려 엘리베이터를 희망적인 존재로 봤

거든 아파트도 그렇고 회사도 그렇고 각자 자신의 공간 안에

서 살다가 서로 만날 수 있는 장소는 엘리베이터 밖에 없으니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김영하 지음

문학동네 20100216

동아리 후기

27

까 lsquo나rsquo가 회사 엘리베이터 안에 여자와 같이 갇히잖아 사실

은 갇히지 않았으면 대화도 안하고 지나쳐 갔을 텐데 남자는

자기가 아침부터 버스 사고도 나고 성추행범으로 몰렸다고 얘

기하고 또 남자의 담배 피워도 되냐는 말에 여자는 담배에 대

한 불평불만을 속사포처럼 얘기하고 엘리베이터라는 공간이

아니었다면 이런 대화 자체가 없었겠지

오권 엘리베이터 타면 사람들이 하나같이 층수 바뀌는 것만

쳐다보고 있잖아

상화 요즘은 스마트폰

오권 자기 얘기를 하고 싶은 것 같아 하지만 상대의 얘기는

안 들어 lsquo너의 얘기는 관심 밖이지만 내가 불편한 것에 대한

얘기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하겠어rsquo라는 느낌

한나 그리고 우스웠던 게 볼일 보고 휴지 몇 칸 쓰는지 회의에

서 얘기하는 건hellip 사실 굉장히 사적인 얘기잖아 (일동 하하

하) 서로에 대해 다른 얘기는 일절 하지 않으면서 회의 내용은

개인적이고 사적이라니 아이러니한 거지

수경 진짜 웃기지 않았어 lsquo나rsquo가 자원 재활용 문제에 대한 중

대 보고가 있다고 계속 빨리 가야한다고 했던 게 겨우 그거야

상화 겨우 이딴 회의하려고 지금 엘리베이터에 낀 사람 놔두

고hellip 생명이 더 중요한데 지금 휴지 구하려고hellip

(일동 하하하)

한나 lsquo나rsquo가 불쌍했던 이유가 자기한테 닥친 일들은 lsquo할 수 없

지 뭐rsquo 이런 식으로 넘기는데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 걱정하고

갇힌 여자 걱정하고hellip 정작 자기 걱정은 안 해

오권 영화 lt라이터를 켜라gt 봤어 조폭들한테 얻어맞으면서

도 주인공은 무조건 자기 라이터만 찾겠다고 그러거든 이 소

설의 lsquo나rsquo와 비슷한 느낌이 들더라고 그 영화에서는 라이터가

주인공의 존재를 투영하는 소재거든 lsquo나rsquo는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구해야만 자기가 산다는 느낌을 받은 거라 해석하면

너무 나간 건가

법열 아니요 형이 아까 지적해준 게 와 닿았어요 그 고군분

투가 결국 자기를 구하려는 노력이라는 지적이요

상화 그나마 lsquo나rsquo가 이 소설에서 제일 인간적이지

수경 어딘가 찌질한 느낌도 들어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와

lsquo내rsquo가 동류라고 자각하고 연민을 갖는 느낌이었거든 lsquo나rsquo가

인간적이고 윤리적이라는 생각은 나는 글쎄hellip 더 적극적으

로 할 수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 자기 사이클에서 벗어나

지 않는 한도 내에서 걱정만 하잖아 소설 안에서 비극과 희

극이 번갈아 가며 나타나는데 트럭과 버스가 충돌했을 때

lsquo나rsquo는 lsquo버스 카드 일로 충돌하지 않게 되어 적이 기뻤다rsquo고

생각해 버스 운전사는 트럭 백미러에 가슴이 받혀서 죽었는

지도 모르는데 lsquo다행히 나는 허리가 좀 뻐근한 것만 빼면 별

다른 상처가 없는 듯했다rsquo 이런 생각들을 하는 게 좀 섬뜩했

민희 사람은 다 이중성을 가지고 있잖아 나를 보는 듯했어

만약 학교 가는 길에 엘리베이터에 낀 사람을 봤다면 그렇

지만 나도 얼마나 바빠 몇 분 늦으면 지각 체크 당하고 출석

80퍼센트를 못 채울 수도(일동 웃음) 있는 상황이라면 내

가 그 남자를 구할 수 있을까 일단 지나치고 119에 전화하려

고 했으나 핸드폰이 없는 상황에 나도 처할 수 있는 거잖아 나

만 생각하는 잔인한 면도 내 안에 있고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

도 내 안에 있어 이런 찌질한 모습도 나고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정의롭게 구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상화 기준이 다른 것 같아 lsquo나rsquo 정도면 착하다고 생각했거든

수경 주변 사람들이 약간 마네킹 같지 않아 주인공 주변에

장치되어있던 다른 사람들이 너무 비인간적이기 때문에 lsquo나rsquo

가 돋보이는 거지 lsquo나rsquo는 지극히 평범한 우리 모습 같아 내가

어떻게 할 생각은 없고 궁금하기만 한 거야

민희 그 궁금함과 찜찜함도 죄책감이라 생각돼 아 내가 어떻

게 해줬어야 했나

한나 책임 회피일까

상화 그래서 나는 키워드 뽑은 것 중 하나가 119야 구해주고

싶으면 직접 내 손으로 잡아 빼주던가 엘리베이터를 들어 올

릴 사람을 모아야 했는데 신고 생각만 하잖아 이미 이건 누

가 대신 해결해줘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그나마 우리

사회에서 사고를 수습해주는 건 119밖에 없고 조선시대에는

119같은 거 없고 마을 사람들이 모여 구해줬을 텐데 어쩔 수

28

없는 현대인의 단상이긴 해 현대가 분업사회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들 바쁘고 삶이 개인화 파편화되어 있으니까 119 같

은 집단이 필요한 거지 그래서 난 119를 신의 영역이라고 썼

어 lsquo나rsquo는 119를 거의 신적인 존재처럼 생각하잖아 부르면 모

든 게 해결될 것처럼 핸드폰 빌리고 공중전화 찾고 그런데 막

상 교통사고 현장에서 119 대원에게 면대 면으로 얘기를 했더

니 그들은 무슨 그따위 장난을 하냐고 말해 구조도 실은 신이

아니라 사람이 하는 일이고 그 사람이 관심이 없으면 묻히는

거지

오권 전화를 거는 것과 직접 구해주는 것의 차이가 큰 것 같아

자기가 구해주는 건 적극적인 행동이고 119에 전화하는 건 스

스로 최소한 양심적이긴 하다고 여기는 행동

수경 그런데 엘리베이터에 낀 사람을 아무 것도 모르는 일반

인이 어떻게 했다가는 더 위험해질 수도 있잖아

오권 맞아 사회가 시스템화하고 고도화될수록 각자의 업무가

분업화되었고 전문분야가 생겨났으니까 옛날 같았으면 애 낳

으면 그냥 동네 아주머니가 애 받고 어미가 죽으면 젖동냥 다

녔는데hellip 이젠 사고가 나면 생각이 119에 먼저 미치는 시대가

된 거지

수경 그래서 어딘가에 널브러져 다친 인간이 아니라 엘리베이

터라는 공간에 낀 남자를 설정한 것 아닐까 엘리베이터는 현

대화의 상징이잖아

한나 lsquo나rsquo도 어쩔 수 없는 게 출근 시간에 쫓겨서 시계를 계속

봐 먹고 사는 일이니까

오권 출근했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다시 집으로 돌아가

낀 사람을 구해주면 굉장히 희망찬 소설로 바뀔 텐데hellip (일동

웃음)

수경 이 소설로 현대 사회의 폐단은 다 얘기할 수 있겠는데

상화 김영하는 천재인 것 같다

누군가 그리고 잘생겼잖아

누군가 잘생긴 거야

누군가 지적인 분위기가 있어서 좋아 (한참 얘기)

한나 또 인상 깊었던 게 구두에 집착하는 거 lsquo나는 날렵한 치

타처럼hellip 구두를 가지고 엘리베이터에서 빠져나오는 데 성공

했다 허탈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rsquo는 구절

오권 자살한 사람들이 구두를 가지런히 벗어놓는 이미지가 무

슨 상징처럼 있잖아

한나 신발 한 쪽 없이 다녀봤어 계속 기우뚱대서 내가 걷거

나 서 있을 때 내가 잘못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여기서 lsquo나rsquo가

그랬을 거야 사실 lsquo나rsquo처럼 사는 게 정상인데 세상이 잘못된

건데

상화 이 소설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감정표현이잖아 하루 종

일 얼마나 힘들었겠어 처음으로 감정표현을 하니까 불쌍했어

오권 휴머니즘 불쌍론 또 나왔네(일동 웃음) 그럼 이제 사진

관으로 넘어가볼까hellip

편집자반 11기 이상화

2929

책씹는맛 01 냄새라는 경이 lt감각의 박물학gt 후각편을 읽고

냄새에는 언어가 없다 어휘가 부족한 우리는 말문이 막힌

채 불명료한 쾌감과 자극의 바다에서 말을 찾을 수밖에

없다1

이 말은 다이앤 애커먼의 『감각의 박물학』 제 1장 후각에

나오는 구절이다 냄새를 글로 쓰고자 하는 나의 시도가 늘

실패로 귀결되는 이유를 이 구절에서 찾았다 작가의 말처

럼 냄새에 대해 쓴다는 건 언어 밖 세계로 나갔다가 다시

언어로 되돌아오는 길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길에서 헤매

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후각이라는 감각에서 길을

잃는 것은 낭만적인 일이기도 하다 lsquo냄새의 뇌관을 건드리

면 모든 추억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기rsquo2 때문이다 냄새 하

나에 수많은 추억들이 줄줄이 기억의 회로 위로 떠오른다

예를 들면 바다 냄새 하나만 상상해도 그와 관련된 수많

은 기억들이 머릿속에 뒤섞인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바닷가와 관련된 그 모든 추억들이 기억의 영사막에서 한

편의 옴니버스 영화 형태로 내게 다가온다 난 내 기억의

관객이 되어 그 영화를 보다가 견딜 수 없는 그리움에 젖는

다 이 영화에 대한 감상문을 적으려면 나는 말문이 막힌

다 그래서 몇 글자 적다가 결국 글을 쓰기를 멈춘다 굳이

언어로 표현하자면 쓸 수 없는 그리움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1 『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옮김 작가정신 20040720

A Natural History of the Senses(1991) 17쪽

2 같은 책 18쪽

결국 lsquo언어가 존재하는 세계에서 경이는 언어의 칼날 아래

서 쉽게 해부되고 냄새는 자주 혀끝에서 맴돈다rsquo3 냄새의

숭고함 앞에서 우리는 말을 멈춘다 이처럼 냄새는 말할 수

없는 자연의 경이로움과 닮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lsquo냄새가 우리의 마음을 그토록 강하게 움직이는 것은 부분

적으로 그 이름을 부를 수 없기 때문rsquo4이라고 한다 저자는

그렇기에 사람들이 냄새를 lsquo분 냄새 비슷한 펭귄 냄새가

나는 호화로운 화장실 냄새가 나는rsquo 같은 말로 표현할 뿐

이며 냄새에 대한 이름은 주어져 있지 않다고 말한다 또

한 종류는 같아도 강약과 농도가 다른 각각의 냄새에 이름

을 붙여줄 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우린 일상적으로 냄새를

맡으면서도 그 냄새와 멀리 떨어져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명명되지 않은 것은 결국 잊히는 게 아닐까 부를

수 없음에서 오는 경외감과 숭고함이 있을지라도 냄새는

말해져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말할 수 없는 것에 자꾸

만 침묵하기만 해야 할까

감각도 모험의 영역이 될 수 있다 세계 일주만이 세상을

아는 길일까 lsquo나rsquo를 온전히 아는 것이 역설적으로 세상과

가까워지는 일인지도 모른다 나를 알기 위한 길 중 하나가

내가 가지고 있는 감각을 이해하고 그걸 언어로 표현하는

일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어쩌면 우리와 제일 가깝지만 말

하기 낯선 감각 후각을 이해하는 일이 중요한지도 모른다

냄새라는 감각 속에서 우리 모두 길을 잃고 헤매고 모험해

보자 냄새에 나름의 이름을 지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

리고 농도에 따라 냄새를 구분하는 일도 해보자 냄새라는

경이는 우리를 더 이상 침묵으로 이끌지 않을 것이다

디자인반 11기 백가은

3 같은 책 22쪽

4 같은 책 22쪽

『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 옮김

작가정신 20040720

A Natural History of the Senses(1991)

3030

02 현실을 전복시키는 비현실

모호함이 주는 환상성

20세기 중반 중남미 소설은 전통적인 사실주의 서사 구조

를 깨고 현실과 환상을 혼합시키는 새로운 글쓰기 방식으

로 세계문학의 중심에 선다 이 시기에 주목 받은 일련의

중남미 작가들을 가리켜 lsquo붐 세대 작가rsquo라 칭하는데 아르

헨티나의 환상문학 작가 코르타사르는 이 붐 세대 작가군

의 선구자이자 대표 주자 격인 인물이다 그러나 그 문학적

성과와 명성이 무색하게도 국내 독자들에겐 그의 이름이

아직 생소한 것이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에서는 그

의 작품이 중남미 단편 선집에나 몇 편이 번역되었을 뿐 본

격적으로 소개된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중남미 문학을 공부했고 그의 몇 안 되는 번역 작품을 인

상 깊게 읽었던 독자 입장에서 이번에 출간된 코르타사르

의 단편집『드러누운 밤』은 가뭄의 단비처럼 반가운 신간

이다

환상 문학이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J R R 톨킨 류의 판타

지소설 혹은 쥘 베른이나 아이작 아시모프 류의 SF소설을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코르타사르의 환상문학은 이들 범

주에 들어가지 않는다 코르타사르 작품에서 나타나는 환

상이란 토도로프가 정의한 바 있는 환상 그러니까 자연적

인 것과 초자연적인 것 사이의 망설임에서 발생하는 환상

에 가깝다 따라서 판타지소설의 lsquo현실과 동떨어진 환상rsquo

혹은 SF소설의 lsquo설득력 있고 현실감 있는 환상rsquo을 기대하

는 독자라면 아마 십중팔구 그의 작품을 읽고 실망할 것

이다 어쩌면 이게 무슨 환상문학이냐는 푸념을 늘어놓을

지도 모르겠다 역시 가장 좋은 것은 선입관을 버리고 책을

읽는 것이다

코르타사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lsquo모호함rsquo이다 인물이나

배경 묘사에서 제시되는 기본적인 정보도 모호하고 사건의

전개 양상이 가진 당위성도 모호하다 작품 내에서 주요한

스토리 라인을 담당하는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경계도 모

호하며 심지어는 화자의 정체마저 모호한 작품도 있다 이

런 모호함의 향연은 짙게 깔린 안개와도 같아서 독자들은

그 속에서 한 치 앞도 제대로 내다볼 수 없음은 물론이요

이미 지나간 사실조차도 자신이 맞게 인식한 것인지 확신

할 수 없을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무엇이 진짜인지

독자들의 판단을 망설이게 만드는 이런 상태야말로 코르

타사르의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는 환상이란 개념이다 독

자들은 이 환상 속에서 그저 전방을 주시하며 천천히 나아

갈 수밖에 없다

다행스럽게도 코르타사르는 독자들의 시련을 헛되게 하지

않는다 작품의 시작점 일상 세계에 우연히 침투한 lsquo비현

실적인 것rsquo은 안개 속에서 알게 모르게 자신의 지분을 늘려

나간다 그리고 작품의 종점에 다다른 독자들은 비현실이

현실이 되고 현실이 비현실이 되는 이전과는 전혀 새로운

세계와 마주할 것이다 다시 말해 필연과 이성의 법칙이 지

배하는 세계가 우연과 환상이 지배하는 세계로 변하는 것

이다 이러한 세계의 전복은 마치 여기저기 단서를 흩뿌리

고 사람들을 알쏭달쏭하게 만들었다가 결말부에서 모든

것을 폭발시키는 추리소설 혹은 반전영화를 보는 듯한 재

미를 선사한다

그렇다면 코르타사르가 이 소설들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책을 다 읽고 난 독자라면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의문점이다 코르타사르는 자신이 환상문학을 쓰는

이유를 ldquo법칙이나 원칙 혹은 인과관계나 특정한 심리 또

는 잘 그려진 지리학과 같은 체계에 의해 세상이 지배되고

있다는 것에 반대rdquo하고 ldquo우리가 잘 모르며 우리에게 잘 다

가오지 않는 새로운 질서에 관해 생각해보기 위함rdquo이라고

설명한다 짧게 말해 이 세상에 필연이란 존재하지 않으

며 자신은 그것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말이다 이

게 전부다 순문학이라면 거장의 문학이라면 이보다 더 심

오한 통찰 혹은 비판이 있을 것이란 생각에 문장 속 숨겨진

의미를 발견하고자 머리를 싸맬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조

언을 하자면 독서는 독서 그 자체로 즐기면 된다 적어도 이

책에서는 그렇다 모호함과 예상외의 전개 속에서 재미를

느끼고 코르타사르가 묘사하는 세계의 불가지(不可知)성

을 어렴풋하게나마 인식할 수 있다면 이미 그것으로 충분

하다

편집자반 11기 강귀욱

『드러누운 밤』

훌리오 꼬르따사르 지음 박병규 옮김

창비 20141124

La noche boca arribaJulio Cortazar

31

03 얼어붙은 자의식의 바다를깨뜨리고 생명을 불어넣는 책 『데미안』

데미안을 읽고 나서야 그 동안 내가 두 발 딛고 서 있던 땅이

굳고 단단한 대지가 아니라 얼어붙은 바다에 불과했음을 알

았다 데미안은 도끼를 가져와 이 꽁꽁 언 바다를 가차 없이

내리 찍었다 그리고 말했다 얼어붙은 바다를 단단한 땅인

줄 알고 사느니 그 얼음을 깨부수고 그 속에 빠져 죽기 살기

로 허우적대라고 그러면 그 속에서 너는 너 자신을 똑바로 마

주하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성장할 것이라고

주인공 싱클레어도 그를 둘러싸고 있던 세계를 깨뜨려 나가

며 성장한다 그 모든 과정은 결국 진정한 자기 자신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가 깨뜨린 가장 큰 세계는 바로 자신의 사고 체계였다 세상

을 바라보는 기존의 이분법적이던 시각 고정되고 획일화된 시

각을 버렸다 주인공은 세계 안에 심지어는 자신 안에도 선하

고 악하며 밝고 어두운 양극단의 것들이 공존함을 이해하고

두 세계를 끌어안았다 주인공은 귀와 눈을 가리던 장막을 걷

어내 버리고 세상을 바로 보게 되었다 상극인 것들의 괴리로

이루어진 이 모순된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곧 자신 안의 부조

화 또한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스스로에게 다가서는 첫 걸음

이었다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양극단의 세계 사이에서 싱

클레어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며 흔들리기를 반복했다 이

때 그에게는 삶을 지탱할 중심축이 없었다 항상 내면이 아닌

외부 세계에서 자신이 속할 자리를 찾아 헤맸다 그가 비로소

온전한 자신을 만난 순간은 어느 편으로도 치우침 없이 스스

로의 기준으로 홀로 서게 되었을 때였다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 이 길은 당신이 내면에 있는 모

순되는 두 세계 한없이 나약하고 뒷걸음치는 비열한 모습들

과 정갈하고 깨끗한 곧은 힘들을 동시에 직시하는 순간에 시

작된다 그리고 이 길은 두 세계 속에 들어가 이리저리 휩쓸리

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세계를 밟고 우뚝 올라서서 스스로

가 중심이 됨으로써 앞으로 펼쳐진다

이제 lsquo자아를 찾으라rsquo는 지루하고 흔한 이야기가 더 이상 빤

하거나 우습지 않다 묵직한 울림이 되어 나를 흔든다 그냥

나만 붙잡고 흔드는 것이라면 손사래 쳐 뿌리치겠는데 내가

밟고 있던 땅 속해 있던 세계를 뿌리째 흔들어 버린다 읽는

내내 속이 답답하고 나에게 화가 난다 그런데 이렇게 마구

혼나면서 이상하게도 후련한 구석이 있다 호통을 치는 데미

안이 사실은 우리를 응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막연

하고 무기력한 안개에 휩싸여 있을 때 데미안은 그만의 방

식으로 우리에게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준다 물론 갈 방향을

정해준다거나 각자의 사정을 듣고 상담을 해주는 것은 아니

다 오로지 궁지로 몰아세울 뿐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사람들

은 잊고 있던 lsquo나 자신rsquo을 일깨운다 아 그동안 lsquo나rsquo에 대해 생

각해본 적이 있던가 라는 정도만이라도 좋다 이 물음이 바로

여정의 시작이니까

그렇게 스스로에게 묻고 나면 더 이상 전처럼 살 수는 없기 때

문이다 아니라면 자기 자신에게 면목이 없을 것이다 이 무서

운 책이 우리를 혼내고 몰아치면서도 여전히 영원한 고전이자

필독서로 사랑 받는 이유다

lsquo우리들 속에는 모든 것을 아는 한 사람이 있다rsquo고 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혼이 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혼

이 났다는 것은 자신 안에 있는 lsquo그 사람rsquo이 말을 하기 시작했

다는 뜻이니까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목소리가 희미하

고 멀리 있다 하여도 숨죽여 귀 기울이는 일 자체가 자신에게

로 가는 과정임을 잊지 말고

편집자반 11기 배예리

『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민음사 20001220

Demian Die Geschichte von Emil

Sinclairs Jugend(1919)

31

03 얼어붙은 자의식의 바다를깨뜨리고 생명을 불어넣는 책 『데미안』

데미안을 읽고 나서야 그 동안 내가 두 발 딛고 서 있던 땅이

굳고 단단한 대지가 아니라 얼어붙은 바다에 불과했음을 알

았다 데미안은 도끼를 가져와 이 꽁꽁 언 바다를 가차 없이

내리 찍었다 그리고 말했다 얼어붙은 바다를 단단한 땅인

줄 알고 사느니 그 얼음을 깨부수고 그 속에 빠져 죽기 살기

로 허우적대라고 그러면 그 속에서 너는 너 자신을 똑바로 마

주하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성장할 것이라고

주인공 싱클레어도 그를 둘러싸고 있던 세계를 깨뜨려 나가

며 성장한다 그 모든 과정은 결국 진정한 자기 자신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가 깨뜨린 가장 큰 세계는 바로 자신의 사고 체계였다 세상

을 바라보는 기존의 이분법적이던 시각 고정되고 획일화된 시

각을 버렸다 주인공은 세계 안에 심지어는 자신 안에도 선하

고 악하며 밝고 어두운 양극단의 것들이 공존함을 이해하고

두 세계를 끌어안았다 주인공은 귀와 눈을 가리던 장막을 걷

어내 버리고 세상을 바로 보게 되었다 상극인 것들의 괴리로

이루어진 이 모순된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곧 자신 안의 부조

화 또한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스스로에게 다가서는 첫 걸음

이었다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양극단의 세계 사이에서 싱

클레어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며 흔들리기를 반복했다 이

때 그에게는 삶을 지탱할 중심축이 없었다 항상 내면이 아닌

외부 세계에서 자신이 속할 자리를 찾아 헤맸다 그가 비로소

온전한 자신을 만난 순간은 어느 편으로도 치우침 없이 스스

로의 기준으로 홀로 서게 되었을 때였다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 이 길은 당신이 내면에 있는 모

순되는 두 세계 한없이 나약하고 뒷걸음치는 비열한 모습들

과 정갈하고 깨끗한 곧은 힘들을 동시에 직시하는 순간에 시

작된다 그리고 이 길은 두 세계 속에 들어가 이리저리 휩쓸리

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세계를 밟고 우뚝 올라서서 스스로

가 중심이 됨으로써 앞으로 펼쳐진다

이제 lsquo자아를 찾으라rsquo는 지루하고 흔한 이야기가 더 이상 빤

하거나 우습지 않다 묵직한 울림이 되어 나를 흔든다 그냥

나만 붙잡고 흔드는 것이라면 손사래 쳐 뿌리치겠는데 내가

밟고 있던 땅 속해 있던 세계를 뿌리째 흔들어 버린다 읽는

내내 속이 답답하고 나에게 화가 난다 그런데 이렇게 마구

혼나면서 이상하게도 후련한 구석이 있다 호통을 치는 데미

안이 사실은 우리를 응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막연

하고 무기력한 안개에 휩싸여 있을 때 데미안은 그만의 방

식으로 우리에게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준다 물론 갈 방향을

정해준다거나 각자의 사정을 듣고 상담을 해주는 것은 아니

다 오로지 궁지로 몰아세울 뿐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사람들

은 잊고 있던 lsquo나 자신rsquo을 일깨운다 아 그동안 lsquo나rsquo에 대해 생

각해본 적이 있던가 라는 정도만이라도 좋다 이 물음이 바로

여정의 시작이니까

그렇게 스스로에게 묻고 나면 더 이상 전처럼 살 수는 없기 때

문이다 아니라면 자기 자신에게 면목이 없을 것이다 이 무서

운 책이 우리를 혼내고 몰아치면서도 여전히 영원한 고전이자

필독서로 사랑 받는 이유다

lsquo우리들 속에는 모든 것을 아는 한 사람이 있다rsquo고 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혼이 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혼

이 났다는 것은 자신 안에 있는 lsquo그 사람rsquo이 말을 하기 시작했

다는 뜻이니까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목소리가 희미하

고 멀리 있다 하여도 숨죽여 귀 기울이는 일 자체가 자신에게

로 가는 과정임을 잊지 말고

편집자반 11기 배예리

『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민음사 20001220

Demian Die Geschichte von Emil

Sinclairs Jugend(1919)

32

박세길 인터뷰

진정한 역사가는 과거에 파묻히지 않는다옥(獄)에서 옥(玉)을 만든 작가 박세길 인터뷰

박세길 저자는 처녀작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로 80년대

대표 역사서 자리를 꿰찬 분입니다 1986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감되었을 때 감옥에서 역사책을 읽으며

사회 모순에 대해 고민했고 출소하자마자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집필했습니다 정권 탄압 속에서 왜곡된

현대사를 바로 잡았다는 의미를 지닌 이 대표작은 오랫동안

고시생과 대학생들의 필독서로 꼽혔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읽은 박세길 저자의 저서는 지난 6월 출간한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입니다 기사를 쓰고 편집할 때 청년 세대를

겨냥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박세길 저자는 역시나

청년들의 미래에 큰 관심을 갖고 계셨습니다 취업을

눈앞에 둔 서울출판예비학교 학생들이 가져야 할 자세를

여쭸습니다

출판학교에서 강의하신 한 선생님은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가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와

더불어 80년대 인문학의 양대

산맥이라고 하셨습니다

책의 성공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강의

요청이 많이 들어왔어요 먹고사는

경제적인 문제도 해결됐습니다

몇 부 팔렸는지는 잘 모릅니다

출판사에서 기밀 사항이라고

하더군요 요즘은 마케팅 차원으로도

몇 쇄 몇 부인지 밝히지만 그때는

세금 문제를 피해가기 위해서인지

쉬쉬하던 시절이었나 봅니다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는 대학

선후배끼리도 많이 물려주는 책이라고

들었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의 쉬운 설명이

좋았습니다 더불어 어떤 사명감을 안고 썼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완성하기에 앞서 어떤 목표를

두셨나요

청년 세대가 외환위기 이후 집중적인 희생양으로 전락하면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드러내면서 여기에

머물지 않고 청년 세대의 잠재력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들이 역사 무대 한복판에 진출해 자기 몫을 다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습니다

역사 분야는 시장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역사 혹은 현대사가 주목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통해 얘기하자면

80년대 후반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lsquo왜곡된

역사를 바로 알자rsquo는 시각 교정의 욕구가 있었던

차에 제 책이 나름 부응했는지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시기가 적절했던 셈이죠

2012년 대선 후 역사 분야가 잠시 반짝했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금세 시들었다고

하더군요 당시 역사 분야 책들이 일반 독자가

읽기에 다소 어렵거나 출간한 지 오래된 것들

위주였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돋을세길

출판학교에서 강의하신 한 선생님은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가 유홍준 교수의

책의 성공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강의

하더군요 요즘은 마케팅 차원으로도

선후배끼리도 많이 물려주는 책이라고

역사 분야는 시장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역사 혹은 현대사가 주목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통해 얘기하자면

80년대 후반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lsquo왜곡된

역사를 바로 알자rsquo는 시각 교정의 욕구가 있었던

차에 제 책이 나름 부응했는지 큰 반향을

읽기에 다소 어렵거나 출간한 지 오래된 것들

위주였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의 저자

33

2012년 대선 후 역사 분야가 관심을 받았던 것은

보수층의 재집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한

불안 때문일까요

맞습니다 그러나 마땅한 책이 없어서 그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역사 분야에서 베스트셀러를 내기

위해서는 시기가 맞아 떨어지고 내용 또한 대중이 원하는

것을 담고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를 편집한 lsquo생각정원rsquo

출판사의 정희용 편집자에게 감사 표시를 하셨습니다

어떤 편집자를 선호하시나요

간단합니다 편집자는 철저히 독자 입장에서 독자와 작가

사이의 간극을 줄여줘야 합니다 예를 들면 어려운 내용을

과감히 생략하고 다음 기회로 미루도록 설득한다거나 좌파

운동권 색채가 너무 강한 문장을 조금 순화하는 것 등입니다

어떤 내용이 이번 책에 꼭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선택을

도와줘야 합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을 작가님께서 직접

독자들에게 홍보하신다면 카피 문구를 짧게 제시할 수

있을까요

청년 세대 희망 찾기 갑갑한 현실을 어떻게 타개할 수

있을지 그 답을 찾아보는 길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취업 후 첫발을 내디딜 서울출판예비학교 11기

학생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출판 또한 돈을 벌어야한다는 기본 전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출판계를 지켜본 결과 뭔가 소명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오래

살아남았습니다 출판학교 역대 대표 중 일부는 나와 관계가

있는 사람들인데 모두 고유한 소명의식을 갖고 출판계에

뛰어들었습니다 때로는 상업주의 안에서 재주도 부리곤

했지만 어쨌든 분야 내에서 고유한 캐릭터를 구축했습니다

출판학교 학생들이 출판 상황을 이해하고 자신을 역할을

정하는 개인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비전 중심의 경영을

하는 회사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지만 개인 비전을 기업

비전으로 나아가 사회 비전으로 접목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과거에 안주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부분을

출판계에서는 SNS 등 인터넷 환경을 통한 마케팅으로

이해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SNS망 자체에서 무엇이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건 사람과

사람이 서로 소통하고 공감하는데 필요한 도구입니다

콘텐츠 중심의 사고가 중요하고 그것이 전제되지 않을 때

SNS는 착각에 불과하며 성공할 수 없습니다 필요한 콘텐츠

중심의 사고를 가지고 철저하게 진행하지 않으면 그 공간에서

허망하게 헤엄만 칠 뿐 입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SNS에서

맥없이 헤엄치다 익사하는 경우를 볼 수 있을 겁니다

콘텐츠와 마케팅의 영역을 하나로 보는 것과 따로

보는 것 어떤 것이 독자를 위하는 것일까요

출판 마케팅은 책을 기획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에서부터

개입돼야 하고 그 과정에 독자를 참여시키는 방식을

고민해야 합니다 미국 네브래스카주립대학의 이상문

교수는 lsquo밀실 안에서의 혁신은 끝났다rsquo고 얘기합니다

개방된 체제에서 독자 곧 소비자 사용자의 참여 하에 함께

만들어갈 때 혁신은 이뤄진다고 합니다 출판사의 비전이

브랜드로 연결될 때 독자는 자발적으로 의견을 주고받고

싶어 할 겁니다

마케터반 11기 이창환

디자

인 사

공예

Page 21: 서울출판예비학교 웹진 _5호 2015

21

그 가 우 리 에 게 마 지 막 으 로 이 야 기 를

들려주었던 그날 이후 석 달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났다 나는 여전히 같은 강의실에 앉아

앞서 길을 걸어간 선배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고 조금씩 가까워지고 밝아져가는 내 앞에

놓인 길에 대해 생각한다 그러다 문득 마음이

무거워지고 막막해질 때면 종종 그의 말들을

떠올려 본다 그리고 그 생각의 끝에서 마음을

의지하며 함께 이 길을 걸어갈 따뜻한 선배가

하나 있다는 위로 한 줌을 발견한다

ps 선완규 선생님 고맙습니다 보고 싶어요

편집자반 11기 성준근

마케터반 강한 수면욕 환상과 환기

판형과 종이를 예술로 편입시키려는 영업자다빈치 출판사 박성식 대표 특강 후기

9월 23일 평소보다 점심을 많이 먹었던 날이다 잠을 며칠간 못 자 피곤했다

오후 1시 30분이 살짝 지나서 다빈치 출판사 박성식 대표의 특강이 시작됐다

다빈치 대표님은 처음 뵐 때부터 남다르셨다 서울출판예비학교 입학 면접에서

여자 술 담배를 각각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보셨다 lsquo솔직함을 어필해야

하는 순간인가rsquo하는 생각에 직설적으로 답했지만 lsquo더 문학적으로 얘기할 수

있었는데rsquo라는 후회를 안고 돌아왔다

마음과 다르게 첫 번째 시간은 정신없이 잠이 쏟아졌다 눈을 감고 귀 기울였지만

턱을 괸 채 버티는 동안 50분이 지났다 대표님께 캔 커피를 하나 드리고 맞이한 두

번째 시간 그 한 시간 동안 나는 현실 옆의 어떤 이상 내지는 환상을 본 것 같다 그동안

듣던 강의들을 놓고 lsquo이상적인 관점이다rsquo 혹은 lsquo현실적이다rsquo라고 구분했던 판단의 폭

자체가 좁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성식 대표님은 내 머리에 있던 lsquo책rsquo에 대한 인식을 전복시켰다 자본주의 출판의

몰락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시작됐다는 말 출판 기본 특성인 다품종 소량 생산은 돌아올

것이며 다품종 소량 생산을 넘어 다품종 소량 lsquo고급 생산rsquo을 추구하고 싶다는 말은 나를

달뜨게 했다 주류에 반하는 사고를 가진 중년의 개성과 내공에 교실 풍경이 환기됐다

교육 수단으로 책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지만 책은 그만큼 사회적 의무와 희생을

짊어져왔다 출세와 공부 앞에서 책이 가진 기호(嗜好)성은 변두리로 내몰렸다 책을

읽어야만 제대로 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분위기는 옳지 않다 독서는 성향의 범주지 성역이

돼선 안 된다 정보와 지식의 전달은 모바일 등에 넘겨주고 종이책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공동체로 돌아와야 한다 그게 원래 자리라는 대표님의 주장이 새롭고 강렬하다

자본주의 3대 원칙인 lsquo더 빨리 더 많이 더 싸게rsquo 체계는 표준화와 규격화를 동반하며

매우 효율적이다 현재 사용하는 종이는 자본주의 원칙에 최적화돼 있다 그러나 대표님은

인쇄기계로 소화하지 못하는 질감과 전혀 다른 발색을 지닌 lsquo종이rsquo에 주목했다 그 종이로

콘텐츠 종이 판형이 완벽하게 들어맞는 예술서를 만들고 시장을 설득한다면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책 판매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전했다 종이 자체가 책의 예술성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한지(韓紙)를 예로 들면서 훌륭한 텍스트와 이미지를 한 차원 끌어올리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많은 부수를 팔아야 성공한 출판 많은 부수를 파는 것을

목표로 하는 시대는 저물고 있다 기존 유통과 판매 방식

안에 갇혀서는 불황에 매몰될 뿐이다 소량의 고급화된

책을 꿈꾸는 것과 전시회를 책과 결합하는 것도 다른 길을

물색하는 과정이다

대표님은 10년 전부터 lsquo이 원고는 내가 누구보다 잘

만들겠다rsquo lsquo이 원고는 내가 못하면 누구도 못할 것 같다rsquo라는

생각이 든 책만 출간을 진행했다고 한다

강의 중간 자신의 독특한 철학을 전달하는 것에 대해 가벼운

염려를 하셨지만 이론적이고 실용적인 분야에 몸담더라도

예술적 사고의 유연성은 필요하다고 본다 돈과 인문정신을

구분하면서 필요할 때 양쪽에서 자극 받고 차용하는 것이 마케팅의 융통성과 힘을 기르는 길일 것이다

마케터반 11기 이창환

편집자반 김영준 학우가 그린

『이 외로운 사람들아』 일러스트

박성식 대표가 기획한 lsquo오름rsquo전

22

하늘

습탁은 농도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하늘

습탁은 농도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이 글은 심우진 선생님의 탁본 세미나 수업에 대한 우리들의 즐거운

기록이다 탁본은 습탁(濕拓)과 건탁(乾拓) 두 종류로 구별된다

습탁은 나타내고자 하는 물체 위에 물을 묻힌 후 종이를 그 위에

밀착시키고 먹물 묻은 솜방망이로 가볍게 두드려서 물체를 표현하는

방법이다 물체의 패인 부분을 제외하고 볼록한 부분의 모양대로

종이에 먹이 묻어 문자나 문양이 드러난다 건탁은 이름 그대로 물을

사용하지 않고 마른 상태의 먹인 고형묵(固形墨)을 사용한다 우리는

각자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사물과 자연을 이용해 탁본 작품을

만들고 서울출판예비학교 꼭대기 층에서 작품을 공유했다

디자인반 이 시간을 그대로 탁본할 수 있다면심우진 선생님의 탁본 세미나

저는 신문지를 구겨서 해봤어요

응 그런데 이건 방바닥 같은데

방바닥까지 묻어 나와 버렸네요

[학생들 하하하]

저는 일단 큰 나무 기둥을 떠봤고요

오솔길의 짚도 해보고 저희 집 바닥과

벽면도 신기해서 떠봤어요 집 벽면 중에

대리석도 있고 특이한 벽면이 많거든요

부잣집인가 보네

[학생들 깔깔깔]

승연

심우진 선생님

승연

승연

심우진 선생님

이건 파프리카인데 저희 집 개가 완성한 종이를 찢었어요

[학생들 하하하]

좀 작고 납작한 파프리카를 반으로 잘라서 습탁했어요 또

이건 철조망인데 용 비늘처럼 나와서 재밌었어요 아나콘다

같기도 하고 철조망이 날카로워서 습탁하니 종이가 자꾸

찢어져서 다시 하게 됐어요 근데 이거요hellip 남자친구

있으면 커플끼리 한 번 해보세요 한 명은 잡아주고 한 명은

습탁하고hellip 되게 로맨틱 성공적

자랑하는 거니

[학생들 깔깔깔]

수빈

수빈

심우진 선생님

혜민

정묵

처음에 나뭇잎이 세세하게 잘 나올 줄 몰랐는데 그

줄기의 질감이 잘 나왔고 버려진 타이어를 끌어서

생긴 모양으로도 습탁을 했는데 생각보다 잘 나와서

막상 찍어보면 생각과 다르다는 것을 느꼈어요

저도요 결과물이 뚜렷하게 안 나올 줄 알았는데

디테일이 잘 나타나 있었고 입체를 평면적으로

찍는 것 자체가 재밌었어요

수정

저는 빗자루를 해봤어요 너무 얇아서 안 나올

거라 생각했는데 빗자루 문양이 잘 나와서

재밌었고 머리카락도 해봤는데 머리카락은

끝 부분이 잘 나오는 편이에요 위쪽은 다

뭉쳐있는데 끝 부분은 펼칠 수 있으니까요

23

저는 결이 얇은 것들을 뜨는 것이 재밌었어요

머리카락처럼요 머리 긴 사람에게 부탁해서

눕히고 했어요 그리고 이건 얼굴인데요

처음에는 그냥 했는데 얼굴은 입체를 살리려면

스케치하듯 떠야 되요 결국 명암으로 입체감

조절을 해야 되죠 코가 너무 입체적이라 특히

힘들었어요

누구 얼굴이야

우리 언니hellip

[학생들 우와]

가은

심우진 선생님

가은

하얀

음각이 나왔을 때 너무 좋았고요하늘

습탁은 농도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소리

건 탁 보 다 는 습 탁 이 농 도 조 절 하 는 게

희 한 해 서 재 밌 었 어 요 농 도 조 절 이

관 건 이 거 든 요 먹 과 물 의 배 합 과

솜방망이가 먹물을 얼마나 흡수하는지 그

흡수량이 중요하고요

윤미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꽤 많은데 만져보면서 건탁을 뜨니까 좋았어요 전에

습탁할 때는 시멘트 벽 같은 걸 하다가 나뭇결을 하니까

살아있는 느낌이었어요 생각했던 것처럼 나와서

좋았고 솔방울이나 나뭇잎 같은 섬세한 것들은 제대로

나오지 않아서 아쉬웠어요 섬세한 것들은 습탁으로

해봐야겠어요 그래도 다양한 나무를 건탁해봐서

만족해요

소현

저는 일상적인 것들로 습탁을 해봤어요

처음에는 단순하게 오돌토돌한 느낌만

있 을 줄 알 았 는 데 색 다 른 느 낌 이 나 서

재밌었어요

탁본 세미나를 마치고 그 다음 주에 지하 강당에서 촬영하는 시간을

가졌다 촬영 후에 보정도 했다 나뭇잎의 결 무늬 타이어 자국

그리고 사람의 머리카락까지도 좋은 디자인의 재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보았고 나누었다 건탁과 습탁의 장단점을 이 수업으로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심우진 선생님의 이번 탁본 수업도 지난 활자

수업처럼 지식 습득은 물론이고 경험까지 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 시간들이 앞으로 출판 디자이너로서의 감각을 더 풍요롭게 해 주지

않을까

디자인반 11기 사공예원

하얀

음각이 나왔을 때 너무 좋았고요

습탁은 농도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솜방망이가 먹물을 얼마나 흡수하는지 그

흡수량이 중요하고요

윤미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꽤 많은데 만져보면서 건탁을 뜨니까 좋았어요 전에 꽤 많은데 만져보면서 건탁을 뜨니까 좋았어요 전에

이건 파프리카인데 저희 집 개가 완성한 종이를 찢었어요

[학생들 하하하]

좀 작고 납작한 파프리카를 반으로 잘라서 습탁했어요 또

이건 철조망인데 용 비늘처럼 나와서 재밌었어요 아나콘다

같기도 하고 철조망이 날카로워서 습탁하니 종이가 자꾸

찢어져서 다시 하게 됐어요 근데 이거요hellip 남자친구

있으면 커플끼리 한 번 해보세요 한 명은 잡아주고 한 명은

습탁하고hellip 되게 로맨틱 성공적

자랑하는 거니

[학생들 깔깔깔]

24

9시 30분 합정역 1번 출구 앞

ldquo누나rdquo 소리에 쳐다보니 반가운 공 총무의 얼굴이 보였다 정류장

앞으로 길게 늘어선 줄에 합류하여 파주로 날 데려다 줄 2200번

버스를 기다리고 있으니 반가운 얼굴들이 계속 나타났다 한 대의

버스를 보내고서야 겨우 2200번 버스에 탑승해 파주로 출발할 수

있었다

10시 15분 파주 lsquo다산교 앞rsquo 정류장 하차

4개의 정류장 총 57분이 걸린다고 알려준 N사 지도 어플의 정보와는

달리 30분 만에 파주에 도착했다 일찍 도착해 먹을 것을 찾아 헤맨

예비 마케터들은 편의점에서 주린 배를 채웠고 lsquo지혜의 숲rsquo을 살짝

염탐하며 11시까지 시간을 보냈다

11시 05분 보진재 2층

1912년 설립되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인쇄소인 보진재 관계자

분이 나와 간단히 인사 말씀을 하고 각 반의 인솔자를 소개해주셨다

마케터반의 인솔자는 서동관 과장님 디자인반 편집자반 마케터반

순으로 견학을 시작했다

11시 15분 보진재 견학 시작

제일 먼저 본 곳은 제판실이었다 필름 인쇄가 줄어들고 CTP로

대체되는 추세지만 어떤 분들은 여전히 필름 작업을 하고 계셨다

이유를 물어보니 서동관 과장님은 예전 필름이 남아 있기도 하고

출판사에 따라 필름을 고집하는 곳이 있다고 하셨다

한번에 5도 인쇄가 가능한 기계를 보는 중에 서 과장님이 말씀하셨다

ldquo한 유닛(unit)당 23억 정도 해요rdquo 그렇다면 유닛 다섯 개가

돌아가고 있으니 적어도 10억짜리 기계라고 내 눈에 보이는 건 그냥

낡고 큰 기계인데 10억이 넘는다니 놀랐다 또 과장님께서 자랑스레

말씀하신 한 가지 잉크 농도 조절을 자동으로 하는 기계가 보급된

곳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었다 원래는 사람이 눈으로 보고 수정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재판을 찍을 경우 초판과 동일한 색상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있지만 보진재는 기계가 자동으로 조정해주어 수월한

작업을 할 수 있다고 하셨다

매염실도 보고 제본실도 구경했다 인쇄된 종이를 접지하고 제본을

마친 후 마지막으로 제단을 하면 책이 완성되어 나왔다 그 모든

과정을 보고 난 후 서 과장님이 건넨 완성된 책의 무게는 보통의

그것보다 조금 더 무겁게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윤전실이었다 견학 당일은 작업이 없어서

비어있던 윤전실이지만 윤전실이 주는 무게감은 컸다 윤전실은

롤(roll)로 인쇄하는 곳으로 8개의 롤이 양면 인쇄를 하고 건조와

접지까지 한 번에 가능한 기계도 있었다 대량생산을 위한 곳으로

주로 교과서나 EBS 학습지를 인쇄한다고 하셨다

12시 20분 견학 끝

1시간을 조금 넘긴 견학을 끝내고 밖으로 나오니 코가 따갑고 목이

말랐다 기계가 먼지를 빨아들여준다고는 하지만 수없이 많은

종이가 존재하는 공간에서의 종이 냄새는 강력했던 것이다 책이

제작되는 과정은 실제로 보니 다양하고 복잡했다 자동화가 많이

되어있지만 사람의 손길 없이는 절대 완성될 수 없는 과정들을 보며

책이 완성되기까지의 노력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lsquo책이 어떻게

만들어진다rsquo를 배우다가 lsquo책이 이렇게 만들어진다rsquo를 보니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예비 출판 마케터의

길로 들어선 후에 새로운 것을 보고 배울 수 있었는데 보진재 견학은

그 중에서도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책을 완성시키기 위한 모든 과정이

저마다의 몫을 하고 있었다 서울출판예비학교 졸업 후 출판계에

들어섰을 때 나는 과연 어떤 몫을 할 수 있을까 남은 2개월을 조금은

더 열정적으로 보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마케터반 11기 최다은

1 일일탈

학교 밖 견학 후기

피부로 와 닿는 책의 감촉 책의 냄새 책의 소리 보진재에서 책이 인쇄되는 과정을 만나다

필름과 인쇄판이 만들어지는 과정

25

우리가 이제 각자 편집자 마케터 디자이너가 되어 책 만드는 일을

시작하면 우리의 책은 이곳에서부터 그 lsquo탄생rsquo을 시작할 것이다 책의

근간이 되는 종이가 만들어지는 곳 한솔제지 공장에 다녀왔다 학기

초에 책을 파는 서점을 견학한 뒤 그 다음으로 출판사 종이에 활자를

찍어내는 인쇄소 그리고 마지막으로 lsquo종이rsquo를 만드는 제지 공장을

찾은 것이다 책이 만들어지는 순서대로라면 우리가 다녀온 순서를

거꾸로 해서 다녀왔어야 했지만 우리는 반대로 실제 과정을 거슬러

올라간 것이다 이렇게 거슬러 올라가는 과정에서 오히려 편집자란

직업에 겸허해질 수 있었다 가끔은 편집자가 책을 만드는 모든

과정 위에 군림하는 것 같이 느껴지지만 책의 물성을 만들어내는

거대한 기계 앞에서 우린 한없이 작아지기도 한다 lsquo한 권의 책rsquo이

만들어지려면 이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함을 이해해야 했다 이렇게도

복잡하고 힘겹게 만들어지는 책의 가치를 한 번 더 깊이 생각하게 된

계기였다 책이라는 건 의미가 담긴 조각들의 집합체이자 종이를

보기 좋게 물성화한 것 이론적으로야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눈으로 보고 느끼는 것과는 천지차이다

날씨마저 좋았던 9월 11일 평소보다 한 시간이나 이른 8시

30분에 세 반 학우들은 눈도 제대로 못 뜬 채 집합했다 대전까지

간다니 마치 여행가는 것 같은 살짝 들뜬 기분까지 안고 아침도 못

챙겨먹고 나왔을 우리를 생각해서 빵과 우유까지 준비한 한솔제지

측의 세심한 배려에 감동했다 배도 채우고 부족한 잠도 보충해가며

2시간 넘게 달려 신탄진 공장에 도착했다 도착하자 보이는 우리를

환영하는 현수막에 2차로 감동했다 우리를 위해 정말 많은 준비를

하셨구나 느낀 순간이었다

신탄진 공장 강당에 들어가서 간단한 공장 소개를 먼저 들었다

그리고 뒤이어 종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경청했다 수업 때보다

학생들의 집중력이 더 높아 보였던 건 내 착각이었길 종이는

1퍼센트의 펄프와 99퍼센트의 물로 이루어진단다 그래서 전반적인

공 정 의 대 부 분 은 물 을 처 리 하 기 위 한 과 정 이 나 다 름 없 었 다

생각보다 종이는 순수한 물질이라고 생각했다 종이(paper)의

어원은 이집트의 파피루스(papyrus)에서 왔다고 한다 중국의

lsquo채륜(蔡倫)rsquo이라는 사람이 제일 먼저 발명했고 고려시대에

일본으로 넘어간다 일본에 가장 마지막으로 넘어갔지만 종이의

기술력은 현재 일본이 가장 좋다 원료rarr초지rarr코팅 등의 공정을 거쳐

종이가 완성되는데 마지막 코팅 공정을 여자의 화장에 비유한 것

역시 기억에 남는다 코팅이 그렇게나 대단한 과정이라니

공장 안으로 들어가서는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시끄러워서 설명을

제대로 듣진 못했지만 앞서 들었던 설명을 떠올리며 기계들을

관찰했다 인쇄소에서 본 광경들도 거대하고 박력 있었지만 여긴

그보다 더 거친 느낌이었다 책은 서점에 놓여있을 때는 그렇게

얌전하건만 태어날 땐 이렇게 시끄럽다 또한 막 태어난 종이는

거대하고 또 거대했다 다들 마치 거대한 두루마리 휴지 같다고들

했다

견학을 다 마치고 다시 대전 공장으로 이동해 다 같이 점심 식사를

했다 기대 이상으로 맛있는 밥에 또 감동 더 힘내서 견학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아쉽게도 대전 공장 안에는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라 그 힘()을 발휘하진 못했다 대전 공장은 신탄진 공장과

다르게 책에 쓰이는 것이 아닌 제품 포장용 박스 종이컵 등 다른

용도에 쓰이는 종이를 만드는 곳이었다 그 과정의 차이를 눈으로

비교하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마지막으로 좋은 선물까지 손에

받아들고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다시 서울로 향했다

언제나 시작은 중요하다 각자의 일에 빠져들게 되면 점점 잊게 될

그 시작을 눈에 담고 오래 기억하기 위해 다녀왔다고 생각한다 요즘

초심을 잃었다는 생각이 종종 드는데 책에게도 초심이 있다면 바로 이

곳일까 시작의 의미에 대해 다시 곱씹어보았다

편집자반 11기 박혜원

우리의 글과 그림이 펼쳐질 종이의 탄생 한솔제지 신탄진 공장 견학

거대한 롤(상) 한솔제지 공장 앞에서 (하)

26

화양연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삶과 문학에 취하다

편집자반 한국문학 동아리 lsquo공감rsquo 그 대담의 현장

훗날 서울출판예비학교를 떠올릴 때 가장 즐거운 시간으로 기

억되는 날들은 동아리 활동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들의

화양연화(花樣年華)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 중

의 하루를 소개한다 문예창작학과를 전공한 문학소녀 김한나

학우를 필두로 창단된 편집자반 내 한국문학 동아리 lsquo공감rsquo은

모임 전에 한국작가를 한 명 정해 단편 두 편을 함께 읽고 키워

드나 질문을 스스로 뽑아 글을 써왔다 모여서 때로는 소설의

플롯이나 주제 문체에 대한 열띤 토론을 하고 때로는 작가의

외모()와 같은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며 삼천포로 빠지기도 했

다 우리끼리만 듣기엔 아쉽다 이 즐거운 대화를 모두에게 들

려주고 싶었다 이날 모임에선 김영하 작가의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단편집 속의 두 단편 lsquo엘리베이

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이하 엘리베이터)rsquo와 lsquo사진

관 살인사건(이하 사진관)rsquo에 대해 이야기했다 여기서는 lsquo엘리

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rsquo를 읽고 토의한 내용을

실었다

한나 참고로 김영하는 사람의 욕망에 대해 천착하는 작가야

그런 특성이 엘리베이터에는 안 나와 있는데 사진관에서는

잘 드러나 있어

상화 백가흠 작가에게 소설창작론 강의를 들었는데 그분이

소설의 기법을 설명하면서 알레고리랑 아이러니를 얘기했어

알레고리가 인물이나 소재를 비유적으로 설명하는 거래 예를

들어 핸드폰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다른

것에 핸드폰을 빗댐으로써 소설을 풀어가는 거

야 아이러니는 속도감 있게 이야기를 전개함으

로써 부조리나 모순을 드러내는 건데 김영하가

아이러니의 대표적인 작가래 단편인데도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내면보다는 사건이 일어나는

걸로 소설을 끌어가는 작가 우리가 지난 모임

에서 성석제를 굉장한 이야기꾼이라고 했잖아

그런데 난 김영하가 훨씬 이야기꾼스럽게 느껴

졌어 속도감 있고 lsquo이렇게 몰입을 할 수 있나rsquo

싶고 지난 모임들에서 읽었던 손보미나 편혜영

소설의 경우는 분위기나 주인공의 심정 내면에

의미를 부여해 야 했는데 김영하의 소설은 덮

자마자 아이러니가 느껴지면서 lsquo아 세상은 왜

이래rsquo 말하게 만들었어

법열 나는 엘리베이터 읽고 딱 lsquo뫼비우스의 띠rsquo가 생각났거든

뫼비우스의 띠가 안하고 겉이 구분이 안 되잖아 끝과 시작이

어딘지도 모르고 lsquo나rsquo가 겪는 상황이 현실인지 아닌지 구분이

안 되는 느낌 마지막에 lsquo나rsquo가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가 존재

하기는 했는지 혼란스러운 느낌을 받잖아 그게 앞의 환상적

인 부분이랑 맞물리면서 하나가 되는 느낌이라 뫼비우스의 띠

가 생각났어

상화 lsquo나rsquo가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구해주려고 고분군투하

다가 나중에 자기가 엘리베이터에 갇히잖아

오권 낀 남자의 발을 보면서 느꼈던 감상이 사실은 자기를 구

하고 싶었던 마음인 거지

(일동 오~ 그렇게도 볼 수 있네)

오권 무한도전의 무한상사 특집도 생각났어 뜬금없이 휴지

사용하는 길이에 대해 회의하는 장면에서 엘리베이터는 갇힌

사회 서로를 돌아보지 않는 사회를 의미하는 것 같아

한나 나는 반대로 오히려 엘리베이터를 희망적인 존재로 봤

거든 아파트도 그렇고 회사도 그렇고 각자 자신의 공간 안에

서 살다가 서로 만날 수 있는 장소는 엘리베이터 밖에 없으니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김영하 지음

문학동네 20100216

동아리 후기

27

까 lsquo나rsquo가 회사 엘리베이터 안에 여자와 같이 갇히잖아 사실

은 갇히지 않았으면 대화도 안하고 지나쳐 갔을 텐데 남자는

자기가 아침부터 버스 사고도 나고 성추행범으로 몰렸다고 얘

기하고 또 남자의 담배 피워도 되냐는 말에 여자는 담배에 대

한 불평불만을 속사포처럼 얘기하고 엘리베이터라는 공간이

아니었다면 이런 대화 자체가 없었겠지

오권 엘리베이터 타면 사람들이 하나같이 층수 바뀌는 것만

쳐다보고 있잖아

상화 요즘은 스마트폰

오권 자기 얘기를 하고 싶은 것 같아 하지만 상대의 얘기는

안 들어 lsquo너의 얘기는 관심 밖이지만 내가 불편한 것에 대한

얘기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하겠어rsquo라는 느낌

한나 그리고 우스웠던 게 볼일 보고 휴지 몇 칸 쓰는지 회의에

서 얘기하는 건hellip 사실 굉장히 사적인 얘기잖아 (일동 하하

하) 서로에 대해 다른 얘기는 일절 하지 않으면서 회의 내용은

개인적이고 사적이라니 아이러니한 거지

수경 진짜 웃기지 않았어 lsquo나rsquo가 자원 재활용 문제에 대한 중

대 보고가 있다고 계속 빨리 가야한다고 했던 게 겨우 그거야

상화 겨우 이딴 회의하려고 지금 엘리베이터에 낀 사람 놔두

고hellip 생명이 더 중요한데 지금 휴지 구하려고hellip

(일동 하하하)

한나 lsquo나rsquo가 불쌍했던 이유가 자기한테 닥친 일들은 lsquo할 수 없

지 뭐rsquo 이런 식으로 넘기는데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 걱정하고

갇힌 여자 걱정하고hellip 정작 자기 걱정은 안 해

오권 영화 lt라이터를 켜라gt 봤어 조폭들한테 얻어맞으면서

도 주인공은 무조건 자기 라이터만 찾겠다고 그러거든 이 소

설의 lsquo나rsquo와 비슷한 느낌이 들더라고 그 영화에서는 라이터가

주인공의 존재를 투영하는 소재거든 lsquo나rsquo는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구해야만 자기가 산다는 느낌을 받은 거라 해석하면

너무 나간 건가

법열 아니요 형이 아까 지적해준 게 와 닿았어요 그 고군분

투가 결국 자기를 구하려는 노력이라는 지적이요

상화 그나마 lsquo나rsquo가 이 소설에서 제일 인간적이지

수경 어딘가 찌질한 느낌도 들어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와

lsquo내rsquo가 동류라고 자각하고 연민을 갖는 느낌이었거든 lsquo나rsquo가

인간적이고 윤리적이라는 생각은 나는 글쎄hellip 더 적극적으

로 할 수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 자기 사이클에서 벗어나

지 않는 한도 내에서 걱정만 하잖아 소설 안에서 비극과 희

극이 번갈아 가며 나타나는데 트럭과 버스가 충돌했을 때

lsquo나rsquo는 lsquo버스 카드 일로 충돌하지 않게 되어 적이 기뻤다rsquo고

생각해 버스 운전사는 트럭 백미러에 가슴이 받혀서 죽었는

지도 모르는데 lsquo다행히 나는 허리가 좀 뻐근한 것만 빼면 별

다른 상처가 없는 듯했다rsquo 이런 생각들을 하는 게 좀 섬뜩했

민희 사람은 다 이중성을 가지고 있잖아 나를 보는 듯했어

만약 학교 가는 길에 엘리베이터에 낀 사람을 봤다면 그렇

지만 나도 얼마나 바빠 몇 분 늦으면 지각 체크 당하고 출석

80퍼센트를 못 채울 수도(일동 웃음) 있는 상황이라면 내

가 그 남자를 구할 수 있을까 일단 지나치고 119에 전화하려

고 했으나 핸드폰이 없는 상황에 나도 처할 수 있는 거잖아 나

만 생각하는 잔인한 면도 내 안에 있고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

도 내 안에 있어 이런 찌질한 모습도 나고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정의롭게 구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상화 기준이 다른 것 같아 lsquo나rsquo 정도면 착하다고 생각했거든

수경 주변 사람들이 약간 마네킹 같지 않아 주인공 주변에

장치되어있던 다른 사람들이 너무 비인간적이기 때문에 lsquo나rsquo

가 돋보이는 거지 lsquo나rsquo는 지극히 평범한 우리 모습 같아 내가

어떻게 할 생각은 없고 궁금하기만 한 거야

민희 그 궁금함과 찜찜함도 죄책감이라 생각돼 아 내가 어떻

게 해줬어야 했나

한나 책임 회피일까

상화 그래서 나는 키워드 뽑은 것 중 하나가 119야 구해주고

싶으면 직접 내 손으로 잡아 빼주던가 엘리베이터를 들어 올

릴 사람을 모아야 했는데 신고 생각만 하잖아 이미 이건 누

가 대신 해결해줘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그나마 우리

사회에서 사고를 수습해주는 건 119밖에 없고 조선시대에는

119같은 거 없고 마을 사람들이 모여 구해줬을 텐데 어쩔 수

28

없는 현대인의 단상이긴 해 현대가 분업사회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들 바쁘고 삶이 개인화 파편화되어 있으니까 119 같

은 집단이 필요한 거지 그래서 난 119를 신의 영역이라고 썼

어 lsquo나rsquo는 119를 거의 신적인 존재처럼 생각하잖아 부르면 모

든 게 해결될 것처럼 핸드폰 빌리고 공중전화 찾고 그런데 막

상 교통사고 현장에서 119 대원에게 면대 면으로 얘기를 했더

니 그들은 무슨 그따위 장난을 하냐고 말해 구조도 실은 신이

아니라 사람이 하는 일이고 그 사람이 관심이 없으면 묻히는

거지

오권 전화를 거는 것과 직접 구해주는 것의 차이가 큰 것 같아

자기가 구해주는 건 적극적인 행동이고 119에 전화하는 건 스

스로 최소한 양심적이긴 하다고 여기는 행동

수경 그런데 엘리베이터에 낀 사람을 아무 것도 모르는 일반

인이 어떻게 했다가는 더 위험해질 수도 있잖아

오권 맞아 사회가 시스템화하고 고도화될수록 각자의 업무가

분업화되었고 전문분야가 생겨났으니까 옛날 같았으면 애 낳

으면 그냥 동네 아주머니가 애 받고 어미가 죽으면 젖동냥 다

녔는데hellip 이젠 사고가 나면 생각이 119에 먼저 미치는 시대가

된 거지

수경 그래서 어딘가에 널브러져 다친 인간이 아니라 엘리베이

터라는 공간에 낀 남자를 설정한 것 아닐까 엘리베이터는 현

대화의 상징이잖아

한나 lsquo나rsquo도 어쩔 수 없는 게 출근 시간에 쫓겨서 시계를 계속

봐 먹고 사는 일이니까

오권 출근했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다시 집으로 돌아가

낀 사람을 구해주면 굉장히 희망찬 소설로 바뀔 텐데hellip (일동

웃음)

수경 이 소설로 현대 사회의 폐단은 다 얘기할 수 있겠는데

상화 김영하는 천재인 것 같다

누군가 그리고 잘생겼잖아

누군가 잘생긴 거야

누군가 지적인 분위기가 있어서 좋아 (한참 얘기)

한나 또 인상 깊었던 게 구두에 집착하는 거 lsquo나는 날렵한 치

타처럼hellip 구두를 가지고 엘리베이터에서 빠져나오는 데 성공

했다 허탈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rsquo는 구절

오권 자살한 사람들이 구두를 가지런히 벗어놓는 이미지가 무

슨 상징처럼 있잖아

한나 신발 한 쪽 없이 다녀봤어 계속 기우뚱대서 내가 걷거

나 서 있을 때 내가 잘못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여기서 lsquo나rsquo가

그랬을 거야 사실 lsquo나rsquo처럼 사는 게 정상인데 세상이 잘못된

건데

상화 이 소설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감정표현이잖아 하루 종

일 얼마나 힘들었겠어 처음으로 감정표현을 하니까 불쌍했어

오권 휴머니즘 불쌍론 또 나왔네(일동 웃음) 그럼 이제 사진

관으로 넘어가볼까hellip

편집자반 11기 이상화

2929

책씹는맛 01 냄새라는 경이 lt감각의 박물학gt 후각편을 읽고

냄새에는 언어가 없다 어휘가 부족한 우리는 말문이 막힌

채 불명료한 쾌감과 자극의 바다에서 말을 찾을 수밖에

없다1

이 말은 다이앤 애커먼의 『감각의 박물학』 제 1장 후각에

나오는 구절이다 냄새를 글로 쓰고자 하는 나의 시도가 늘

실패로 귀결되는 이유를 이 구절에서 찾았다 작가의 말처

럼 냄새에 대해 쓴다는 건 언어 밖 세계로 나갔다가 다시

언어로 되돌아오는 길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길에서 헤매

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후각이라는 감각에서 길을

잃는 것은 낭만적인 일이기도 하다 lsquo냄새의 뇌관을 건드리

면 모든 추억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기rsquo2 때문이다 냄새 하

나에 수많은 추억들이 줄줄이 기억의 회로 위로 떠오른다

예를 들면 바다 냄새 하나만 상상해도 그와 관련된 수많

은 기억들이 머릿속에 뒤섞인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바닷가와 관련된 그 모든 추억들이 기억의 영사막에서 한

편의 옴니버스 영화 형태로 내게 다가온다 난 내 기억의

관객이 되어 그 영화를 보다가 견딜 수 없는 그리움에 젖는

다 이 영화에 대한 감상문을 적으려면 나는 말문이 막힌

다 그래서 몇 글자 적다가 결국 글을 쓰기를 멈춘다 굳이

언어로 표현하자면 쓸 수 없는 그리움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1 『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옮김 작가정신 20040720

A Natural History of the Senses(1991) 17쪽

2 같은 책 18쪽

결국 lsquo언어가 존재하는 세계에서 경이는 언어의 칼날 아래

서 쉽게 해부되고 냄새는 자주 혀끝에서 맴돈다rsquo3 냄새의

숭고함 앞에서 우리는 말을 멈춘다 이처럼 냄새는 말할 수

없는 자연의 경이로움과 닮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lsquo냄새가 우리의 마음을 그토록 강하게 움직이는 것은 부분

적으로 그 이름을 부를 수 없기 때문rsquo4이라고 한다 저자는

그렇기에 사람들이 냄새를 lsquo분 냄새 비슷한 펭귄 냄새가

나는 호화로운 화장실 냄새가 나는rsquo 같은 말로 표현할 뿐

이며 냄새에 대한 이름은 주어져 있지 않다고 말한다 또

한 종류는 같아도 강약과 농도가 다른 각각의 냄새에 이름

을 붙여줄 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우린 일상적으로 냄새를

맡으면서도 그 냄새와 멀리 떨어져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명명되지 않은 것은 결국 잊히는 게 아닐까 부를

수 없음에서 오는 경외감과 숭고함이 있을지라도 냄새는

말해져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말할 수 없는 것에 자꾸

만 침묵하기만 해야 할까

감각도 모험의 영역이 될 수 있다 세계 일주만이 세상을

아는 길일까 lsquo나rsquo를 온전히 아는 것이 역설적으로 세상과

가까워지는 일인지도 모른다 나를 알기 위한 길 중 하나가

내가 가지고 있는 감각을 이해하고 그걸 언어로 표현하는

일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어쩌면 우리와 제일 가깝지만 말

하기 낯선 감각 후각을 이해하는 일이 중요한지도 모른다

냄새라는 감각 속에서 우리 모두 길을 잃고 헤매고 모험해

보자 냄새에 나름의 이름을 지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

리고 농도에 따라 냄새를 구분하는 일도 해보자 냄새라는

경이는 우리를 더 이상 침묵으로 이끌지 않을 것이다

디자인반 11기 백가은

3 같은 책 22쪽

4 같은 책 22쪽

『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 옮김

작가정신 20040720

A Natural History of the Senses(1991)

3030

02 현실을 전복시키는 비현실

모호함이 주는 환상성

20세기 중반 중남미 소설은 전통적인 사실주의 서사 구조

를 깨고 현실과 환상을 혼합시키는 새로운 글쓰기 방식으

로 세계문학의 중심에 선다 이 시기에 주목 받은 일련의

중남미 작가들을 가리켜 lsquo붐 세대 작가rsquo라 칭하는데 아르

헨티나의 환상문학 작가 코르타사르는 이 붐 세대 작가군

의 선구자이자 대표 주자 격인 인물이다 그러나 그 문학적

성과와 명성이 무색하게도 국내 독자들에겐 그의 이름이

아직 생소한 것이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에서는 그

의 작품이 중남미 단편 선집에나 몇 편이 번역되었을 뿐 본

격적으로 소개된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중남미 문학을 공부했고 그의 몇 안 되는 번역 작품을 인

상 깊게 읽었던 독자 입장에서 이번에 출간된 코르타사르

의 단편집『드러누운 밤』은 가뭄의 단비처럼 반가운 신간

이다

환상 문학이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J R R 톨킨 류의 판타

지소설 혹은 쥘 베른이나 아이작 아시모프 류의 SF소설을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코르타사르의 환상문학은 이들 범

주에 들어가지 않는다 코르타사르 작품에서 나타나는 환

상이란 토도로프가 정의한 바 있는 환상 그러니까 자연적

인 것과 초자연적인 것 사이의 망설임에서 발생하는 환상

에 가깝다 따라서 판타지소설의 lsquo현실과 동떨어진 환상rsquo

혹은 SF소설의 lsquo설득력 있고 현실감 있는 환상rsquo을 기대하

는 독자라면 아마 십중팔구 그의 작품을 읽고 실망할 것

이다 어쩌면 이게 무슨 환상문학이냐는 푸념을 늘어놓을

지도 모르겠다 역시 가장 좋은 것은 선입관을 버리고 책을

읽는 것이다

코르타사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lsquo모호함rsquo이다 인물이나

배경 묘사에서 제시되는 기본적인 정보도 모호하고 사건의

전개 양상이 가진 당위성도 모호하다 작품 내에서 주요한

스토리 라인을 담당하는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경계도 모

호하며 심지어는 화자의 정체마저 모호한 작품도 있다 이

런 모호함의 향연은 짙게 깔린 안개와도 같아서 독자들은

그 속에서 한 치 앞도 제대로 내다볼 수 없음은 물론이요

이미 지나간 사실조차도 자신이 맞게 인식한 것인지 확신

할 수 없을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무엇이 진짜인지

독자들의 판단을 망설이게 만드는 이런 상태야말로 코르

타사르의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는 환상이란 개념이다 독

자들은 이 환상 속에서 그저 전방을 주시하며 천천히 나아

갈 수밖에 없다

다행스럽게도 코르타사르는 독자들의 시련을 헛되게 하지

않는다 작품의 시작점 일상 세계에 우연히 침투한 lsquo비현

실적인 것rsquo은 안개 속에서 알게 모르게 자신의 지분을 늘려

나간다 그리고 작품의 종점에 다다른 독자들은 비현실이

현실이 되고 현실이 비현실이 되는 이전과는 전혀 새로운

세계와 마주할 것이다 다시 말해 필연과 이성의 법칙이 지

배하는 세계가 우연과 환상이 지배하는 세계로 변하는 것

이다 이러한 세계의 전복은 마치 여기저기 단서를 흩뿌리

고 사람들을 알쏭달쏭하게 만들었다가 결말부에서 모든

것을 폭발시키는 추리소설 혹은 반전영화를 보는 듯한 재

미를 선사한다

그렇다면 코르타사르가 이 소설들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책을 다 읽고 난 독자라면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의문점이다 코르타사르는 자신이 환상문학을 쓰는

이유를 ldquo법칙이나 원칙 혹은 인과관계나 특정한 심리 또

는 잘 그려진 지리학과 같은 체계에 의해 세상이 지배되고

있다는 것에 반대rdquo하고 ldquo우리가 잘 모르며 우리에게 잘 다

가오지 않는 새로운 질서에 관해 생각해보기 위함rdquo이라고

설명한다 짧게 말해 이 세상에 필연이란 존재하지 않으

며 자신은 그것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말이다 이

게 전부다 순문학이라면 거장의 문학이라면 이보다 더 심

오한 통찰 혹은 비판이 있을 것이란 생각에 문장 속 숨겨진

의미를 발견하고자 머리를 싸맬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조

언을 하자면 독서는 독서 그 자체로 즐기면 된다 적어도 이

책에서는 그렇다 모호함과 예상외의 전개 속에서 재미를

느끼고 코르타사르가 묘사하는 세계의 불가지(不可知)성

을 어렴풋하게나마 인식할 수 있다면 이미 그것으로 충분

하다

편집자반 11기 강귀욱

『드러누운 밤』

훌리오 꼬르따사르 지음 박병규 옮김

창비 20141124

La noche boca arribaJulio Cortazar

31

03 얼어붙은 자의식의 바다를깨뜨리고 생명을 불어넣는 책 『데미안』

데미안을 읽고 나서야 그 동안 내가 두 발 딛고 서 있던 땅이

굳고 단단한 대지가 아니라 얼어붙은 바다에 불과했음을 알

았다 데미안은 도끼를 가져와 이 꽁꽁 언 바다를 가차 없이

내리 찍었다 그리고 말했다 얼어붙은 바다를 단단한 땅인

줄 알고 사느니 그 얼음을 깨부수고 그 속에 빠져 죽기 살기

로 허우적대라고 그러면 그 속에서 너는 너 자신을 똑바로 마

주하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성장할 것이라고

주인공 싱클레어도 그를 둘러싸고 있던 세계를 깨뜨려 나가

며 성장한다 그 모든 과정은 결국 진정한 자기 자신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가 깨뜨린 가장 큰 세계는 바로 자신의 사고 체계였다 세상

을 바라보는 기존의 이분법적이던 시각 고정되고 획일화된 시

각을 버렸다 주인공은 세계 안에 심지어는 자신 안에도 선하

고 악하며 밝고 어두운 양극단의 것들이 공존함을 이해하고

두 세계를 끌어안았다 주인공은 귀와 눈을 가리던 장막을 걷

어내 버리고 세상을 바로 보게 되었다 상극인 것들의 괴리로

이루어진 이 모순된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곧 자신 안의 부조

화 또한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스스로에게 다가서는 첫 걸음

이었다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양극단의 세계 사이에서 싱

클레어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며 흔들리기를 반복했다 이

때 그에게는 삶을 지탱할 중심축이 없었다 항상 내면이 아닌

외부 세계에서 자신이 속할 자리를 찾아 헤맸다 그가 비로소

온전한 자신을 만난 순간은 어느 편으로도 치우침 없이 스스

로의 기준으로 홀로 서게 되었을 때였다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 이 길은 당신이 내면에 있는 모

순되는 두 세계 한없이 나약하고 뒷걸음치는 비열한 모습들

과 정갈하고 깨끗한 곧은 힘들을 동시에 직시하는 순간에 시

작된다 그리고 이 길은 두 세계 속에 들어가 이리저리 휩쓸리

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세계를 밟고 우뚝 올라서서 스스로

가 중심이 됨으로써 앞으로 펼쳐진다

이제 lsquo자아를 찾으라rsquo는 지루하고 흔한 이야기가 더 이상 빤

하거나 우습지 않다 묵직한 울림이 되어 나를 흔든다 그냥

나만 붙잡고 흔드는 것이라면 손사래 쳐 뿌리치겠는데 내가

밟고 있던 땅 속해 있던 세계를 뿌리째 흔들어 버린다 읽는

내내 속이 답답하고 나에게 화가 난다 그런데 이렇게 마구

혼나면서 이상하게도 후련한 구석이 있다 호통을 치는 데미

안이 사실은 우리를 응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막연

하고 무기력한 안개에 휩싸여 있을 때 데미안은 그만의 방

식으로 우리에게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준다 물론 갈 방향을

정해준다거나 각자의 사정을 듣고 상담을 해주는 것은 아니

다 오로지 궁지로 몰아세울 뿐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사람들

은 잊고 있던 lsquo나 자신rsquo을 일깨운다 아 그동안 lsquo나rsquo에 대해 생

각해본 적이 있던가 라는 정도만이라도 좋다 이 물음이 바로

여정의 시작이니까

그렇게 스스로에게 묻고 나면 더 이상 전처럼 살 수는 없기 때

문이다 아니라면 자기 자신에게 면목이 없을 것이다 이 무서

운 책이 우리를 혼내고 몰아치면서도 여전히 영원한 고전이자

필독서로 사랑 받는 이유다

lsquo우리들 속에는 모든 것을 아는 한 사람이 있다rsquo고 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혼이 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혼

이 났다는 것은 자신 안에 있는 lsquo그 사람rsquo이 말을 하기 시작했

다는 뜻이니까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목소리가 희미하

고 멀리 있다 하여도 숨죽여 귀 기울이는 일 자체가 자신에게

로 가는 과정임을 잊지 말고

편집자반 11기 배예리

『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민음사 20001220

Demian Die Geschichte von Emil

Sinclairs Jugend(1919)

31

03 얼어붙은 자의식의 바다를깨뜨리고 생명을 불어넣는 책 『데미안』

데미안을 읽고 나서야 그 동안 내가 두 발 딛고 서 있던 땅이

굳고 단단한 대지가 아니라 얼어붙은 바다에 불과했음을 알

았다 데미안은 도끼를 가져와 이 꽁꽁 언 바다를 가차 없이

내리 찍었다 그리고 말했다 얼어붙은 바다를 단단한 땅인

줄 알고 사느니 그 얼음을 깨부수고 그 속에 빠져 죽기 살기

로 허우적대라고 그러면 그 속에서 너는 너 자신을 똑바로 마

주하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성장할 것이라고

주인공 싱클레어도 그를 둘러싸고 있던 세계를 깨뜨려 나가

며 성장한다 그 모든 과정은 결국 진정한 자기 자신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가 깨뜨린 가장 큰 세계는 바로 자신의 사고 체계였다 세상

을 바라보는 기존의 이분법적이던 시각 고정되고 획일화된 시

각을 버렸다 주인공은 세계 안에 심지어는 자신 안에도 선하

고 악하며 밝고 어두운 양극단의 것들이 공존함을 이해하고

두 세계를 끌어안았다 주인공은 귀와 눈을 가리던 장막을 걷

어내 버리고 세상을 바로 보게 되었다 상극인 것들의 괴리로

이루어진 이 모순된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곧 자신 안의 부조

화 또한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스스로에게 다가서는 첫 걸음

이었다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양극단의 세계 사이에서 싱

클레어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며 흔들리기를 반복했다 이

때 그에게는 삶을 지탱할 중심축이 없었다 항상 내면이 아닌

외부 세계에서 자신이 속할 자리를 찾아 헤맸다 그가 비로소

온전한 자신을 만난 순간은 어느 편으로도 치우침 없이 스스

로의 기준으로 홀로 서게 되었을 때였다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 이 길은 당신이 내면에 있는 모

순되는 두 세계 한없이 나약하고 뒷걸음치는 비열한 모습들

과 정갈하고 깨끗한 곧은 힘들을 동시에 직시하는 순간에 시

작된다 그리고 이 길은 두 세계 속에 들어가 이리저리 휩쓸리

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세계를 밟고 우뚝 올라서서 스스로

가 중심이 됨으로써 앞으로 펼쳐진다

이제 lsquo자아를 찾으라rsquo는 지루하고 흔한 이야기가 더 이상 빤

하거나 우습지 않다 묵직한 울림이 되어 나를 흔든다 그냥

나만 붙잡고 흔드는 것이라면 손사래 쳐 뿌리치겠는데 내가

밟고 있던 땅 속해 있던 세계를 뿌리째 흔들어 버린다 읽는

내내 속이 답답하고 나에게 화가 난다 그런데 이렇게 마구

혼나면서 이상하게도 후련한 구석이 있다 호통을 치는 데미

안이 사실은 우리를 응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막연

하고 무기력한 안개에 휩싸여 있을 때 데미안은 그만의 방

식으로 우리에게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준다 물론 갈 방향을

정해준다거나 각자의 사정을 듣고 상담을 해주는 것은 아니

다 오로지 궁지로 몰아세울 뿐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사람들

은 잊고 있던 lsquo나 자신rsquo을 일깨운다 아 그동안 lsquo나rsquo에 대해 생

각해본 적이 있던가 라는 정도만이라도 좋다 이 물음이 바로

여정의 시작이니까

그렇게 스스로에게 묻고 나면 더 이상 전처럼 살 수는 없기 때

문이다 아니라면 자기 자신에게 면목이 없을 것이다 이 무서

운 책이 우리를 혼내고 몰아치면서도 여전히 영원한 고전이자

필독서로 사랑 받는 이유다

lsquo우리들 속에는 모든 것을 아는 한 사람이 있다rsquo고 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혼이 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혼

이 났다는 것은 자신 안에 있는 lsquo그 사람rsquo이 말을 하기 시작했

다는 뜻이니까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목소리가 희미하

고 멀리 있다 하여도 숨죽여 귀 기울이는 일 자체가 자신에게

로 가는 과정임을 잊지 말고

편집자반 11기 배예리

『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민음사 20001220

Demian Die Geschichte von Emil

Sinclairs Jugend(1919)

32

박세길 인터뷰

진정한 역사가는 과거에 파묻히지 않는다옥(獄)에서 옥(玉)을 만든 작가 박세길 인터뷰

박세길 저자는 처녀작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로 80년대

대표 역사서 자리를 꿰찬 분입니다 1986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감되었을 때 감옥에서 역사책을 읽으며

사회 모순에 대해 고민했고 출소하자마자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집필했습니다 정권 탄압 속에서 왜곡된

현대사를 바로 잡았다는 의미를 지닌 이 대표작은 오랫동안

고시생과 대학생들의 필독서로 꼽혔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읽은 박세길 저자의 저서는 지난 6월 출간한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입니다 기사를 쓰고 편집할 때 청년 세대를

겨냥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박세길 저자는 역시나

청년들의 미래에 큰 관심을 갖고 계셨습니다 취업을

눈앞에 둔 서울출판예비학교 학생들이 가져야 할 자세를

여쭸습니다

출판학교에서 강의하신 한 선생님은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가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와

더불어 80년대 인문학의 양대

산맥이라고 하셨습니다

책의 성공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강의

요청이 많이 들어왔어요 먹고사는

경제적인 문제도 해결됐습니다

몇 부 팔렸는지는 잘 모릅니다

출판사에서 기밀 사항이라고

하더군요 요즘은 마케팅 차원으로도

몇 쇄 몇 부인지 밝히지만 그때는

세금 문제를 피해가기 위해서인지

쉬쉬하던 시절이었나 봅니다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는 대학

선후배끼리도 많이 물려주는 책이라고

들었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의 쉬운 설명이

좋았습니다 더불어 어떤 사명감을 안고 썼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완성하기에 앞서 어떤 목표를

두셨나요

청년 세대가 외환위기 이후 집중적인 희생양으로 전락하면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드러내면서 여기에

머물지 않고 청년 세대의 잠재력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들이 역사 무대 한복판에 진출해 자기 몫을 다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습니다

역사 분야는 시장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역사 혹은 현대사가 주목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통해 얘기하자면

80년대 후반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lsquo왜곡된

역사를 바로 알자rsquo는 시각 교정의 욕구가 있었던

차에 제 책이 나름 부응했는지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시기가 적절했던 셈이죠

2012년 대선 후 역사 분야가 잠시 반짝했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금세 시들었다고

하더군요 당시 역사 분야 책들이 일반 독자가

읽기에 다소 어렵거나 출간한 지 오래된 것들

위주였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돋을세길

출판학교에서 강의하신 한 선생님은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가 유홍준 교수의

책의 성공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강의

하더군요 요즘은 마케팅 차원으로도

선후배끼리도 많이 물려주는 책이라고

역사 분야는 시장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역사 혹은 현대사가 주목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통해 얘기하자면

80년대 후반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lsquo왜곡된

역사를 바로 알자rsquo는 시각 교정의 욕구가 있었던

차에 제 책이 나름 부응했는지 큰 반향을

읽기에 다소 어렵거나 출간한 지 오래된 것들

위주였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의 저자

33

2012년 대선 후 역사 분야가 관심을 받았던 것은

보수층의 재집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한

불안 때문일까요

맞습니다 그러나 마땅한 책이 없어서 그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역사 분야에서 베스트셀러를 내기

위해서는 시기가 맞아 떨어지고 내용 또한 대중이 원하는

것을 담고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를 편집한 lsquo생각정원rsquo

출판사의 정희용 편집자에게 감사 표시를 하셨습니다

어떤 편집자를 선호하시나요

간단합니다 편집자는 철저히 독자 입장에서 독자와 작가

사이의 간극을 줄여줘야 합니다 예를 들면 어려운 내용을

과감히 생략하고 다음 기회로 미루도록 설득한다거나 좌파

운동권 색채가 너무 강한 문장을 조금 순화하는 것 등입니다

어떤 내용이 이번 책에 꼭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선택을

도와줘야 합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을 작가님께서 직접

독자들에게 홍보하신다면 카피 문구를 짧게 제시할 수

있을까요

청년 세대 희망 찾기 갑갑한 현실을 어떻게 타개할 수

있을지 그 답을 찾아보는 길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취업 후 첫발을 내디딜 서울출판예비학교 11기

학생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출판 또한 돈을 벌어야한다는 기본 전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출판계를 지켜본 결과 뭔가 소명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오래

살아남았습니다 출판학교 역대 대표 중 일부는 나와 관계가

있는 사람들인데 모두 고유한 소명의식을 갖고 출판계에

뛰어들었습니다 때로는 상업주의 안에서 재주도 부리곤

했지만 어쨌든 분야 내에서 고유한 캐릭터를 구축했습니다

출판학교 학생들이 출판 상황을 이해하고 자신을 역할을

정하는 개인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비전 중심의 경영을

하는 회사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지만 개인 비전을 기업

비전으로 나아가 사회 비전으로 접목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과거에 안주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부분을

출판계에서는 SNS 등 인터넷 환경을 통한 마케팅으로

이해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SNS망 자체에서 무엇이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건 사람과

사람이 서로 소통하고 공감하는데 필요한 도구입니다

콘텐츠 중심의 사고가 중요하고 그것이 전제되지 않을 때

SNS는 착각에 불과하며 성공할 수 없습니다 필요한 콘텐츠

중심의 사고를 가지고 철저하게 진행하지 않으면 그 공간에서

허망하게 헤엄만 칠 뿐 입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SNS에서

맥없이 헤엄치다 익사하는 경우를 볼 수 있을 겁니다

콘텐츠와 마케팅의 영역을 하나로 보는 것과 따로

보는 것 어떤 것이 독자를 위하는 것일까요

출판 마케팅은 책을 기획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에서부터

개입돼야 하고 그 과정에 독자를 참여시키는 방식을

고민해야 합니다 미국 네브래스카주립대학의 이상문

교수는 lsquo밀실 안에서의 혁신은 끝났다rsquo고 얘기합니다

개방된 체제에서 독자 곧 소비자 사용자의 참여 하에 함께

만들어갈 때 혁신은 이뤄진다고 합니다 출판사의 비전이

브랜드로 연결될 때 독자는 자발적으로 의견을 주고받고

싶어 할 겁니다

마케터반 11기 이창환

디자

인 사

공예

Page 22: 서울출판예비학교 웹진 _5호 2015

22

하늘

습탁은 농도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하늘

습탁은 농도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이 글은 심우진 선생님의 탁본 세미나 수업에 대한 우리들의 즐거운

기록이다 탁본은 습탁(濕拓)과 건탁(乾拓) 두 종류로 구별된다

습탁은 나타내고자 하는 물체 위에 물을 묻힌 후 종이를 그 위에

밀착시키고 먹물 묻은 솜방망이로 가볍게 두드려서 물체를 표현하는

방법이다 물체의 패인 부분을 제외하고 볼록한 부분의 모양대로

종이에 먹이 묻어 문자나 문양이 드러난다 건탁은 이름 그대로 물을

사용하지 않고 마른 상태의 먹인 고형묵(固形墨)을 사용한다 우리는

각자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사물과 자연을 이용해 탁본 작품을

만들고 서울출판예비학교 꼭대기 층에서 작품을 공유했다

디자인반 이 시간을 그대로 탁본할 수 있다면심우진 선생님의 탁본 세미나

저는 신문지를 구겨서 해봤어요

응 그런데 이건 방바닥 같은데

방바닥까지 묻어 나와 버렸네요

[학생들 하하하]

저는 일단 큰 나무 기둥을 떠봤고요

오솔길의 짚도 해보고 저희 집 바닥과

벽면도 신기해서 떠봤어요 집 벽면 중에

대리석도 있고 특이한 벽면이 많거든요

부잣집인가 보네

[학생들 깔깔깔]

승연

심우진 선생님

승연

승연

심우진 선생님

이건 파프리카인데 저희 집 개가 완성한 종이를 찢었어요

[학생들 하하하]

좀 작고 납작한 파프리카를 반으로 잘라서 습탁했어요 또

이건 철조망인데 용 비늘처럼 나와서 재밌었어요 아나콘다

같기도 하고 철조망이 날카로워서 습탁하니 종이가 자꾸

찢어져서 다시 하게 됐어요 근데 이거요hellip 남자친구

있으면 커플끼리 한 번 해보세요 한 명은 잡아주고 한 명은

습탁하고hellip 되게 로맨틱 성공적

자랑하는 거니

[학생들 깔깔깔]

수빈

수빈

심우진 선생님

혜민

정묵

처음에 나뭇잎이 세세하게 잘 나올 줄 몰랐는데 그

줄기의 질감이 잘 나왔고 버려진 타이어를 끌어서

생긴 모양으로도 습탁을 했는데 생각보다 잘 나와서

막상 찍어보면 생각과 다르다는 것을 느꼈어요

저도요 결과물이 뚜렷하게 안 나올 줄 알았는데

디테일이 잘 나타나 있었고 입체를 평면적으로

찍는 것 자체가 재밌었어요

수정

저는 빗자루를 해봤어요 너무 얇아서 안 나올

거라 생각했는데 빗자루 문양이 잘 나와서

재밌었고 머리카락도 해봤는데 머리카락은

끝 부분이 잘 나오는 편이에요 위쪽은 다

뭉쳐있는데 끝 부분은 펼칠 수 있으니까요

23

저는 결이 얇은 것들을 뜨는 것이 재밌었어요

머리카락처럼요 머리 긴 사람에게 부탁해서

눕히고 했어요 그리고 이건 얼굴인데요

처음에는 그냥 했는데 얼굴은 입체를 살리려면

스케치하듯 떠야 되요 결국 명암으로 입체감

조절을 해야 되죠 코가 너무 입체적이라 특히

힘들었어요

누구 얼굴이야

우리 언니hellip

[학생들 우와]

가은

심우진 선생님

가은

하얀

음각이 나왔을 때 너무 좋았고요하늘

습탁은 농도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소리

건 탁 보 다 는 습 탁 이 농 도 조 절 하 는 게

희 한 해 서 재 밌 었 어 요 농 도 조 절 이

관 건 이 거 든 요 먹 과 물 의 배 합 과

솜방망이가 먹물을 얼마나 흡수하는지 그

흡수량이 중요하고요

윤미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꽤 많은데 만져보면서 건탁을 뜨니까 좋았어요 전에

습탁할 때는 시멘트 벽 같은 걸 하다가 나뭇결을 하니까

살아있는 느낌이었어요 생각했던 것처럼 나와서

좋았고 솔방울이나 나뭇잎 같은 섬세한 것들은 제대로

나오지 않아서 아쉬웠어요 섬세한 것들은 습탁으로

해봐야겠어요 그래도 다양한 나무를 건탁해봐서

만족해요

소현

저는 일상적인 것들로 습탁을 해봤어요

처음에는 단순하게 오돌토돌한 느낌만

있 을 줄 알 았 는 데 색 다 른 느 낌 이 나 서

재밌었어요

탁본 세미나를 마치고 그 다음 주에 지하 강당에서 촬영하는 시간을

가졌다 촬영 후에 보정도 했다 나뭇잎의 결 무늬 타이어 자국

그리고 사람의 머리카락까지도 좋은 디자인의 재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보았고 나누었다 건탁과 습탁의 장단점을 이 수업으로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심우진 선생님의 이번 탁본 수업도 지난 활자

수업처럼 지식 습득은 물론이고 경험까지 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 시간들이 앞으로 출판 디자이너로서의 감각을 더 풍요롭게 해 주지

않을까

디자인반 11기 사공예원

하얀

음각이 나왔을 때 너무 좋았고요

습탁은 농도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솜방망이가 먹물을 얼마나 흡수하는지 그

흡수량이 중요하고요

윤미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꽤 많은데 만져보면서 건탁을 뜨니까 좋았어요 전에 꽤 많은데 만져보면서 건탁을 뜨니까 좋았어요 전에

이건 파프리카인데 저희 집 개가 완성한 종이를 찢었어요

[학생들 하하하]

좀 작고 납작한 파프리카를 반으로 잘라서 습탁했어요 또

이건 철조망인데 용 비늘처럼 나와서 재밌었어요 아나콘다

같기도 하고 철조망이 날카로워서 습탁하니 종이가 자꾸

찢어져서 다시 하게 됐어요 근데 이거요hellip 남자친구

있으면 커플끼리 한 번 해보세요 한 명은 잡아주고 한 명은

습탁하고hellip 되게 로맨틱 성공적

자랑하는 거니

[학생들 깔깔깔]

24

9시 30분 합정역 1번 출구 앞

ldquo누나rdquo 소리에 쳐다보니 반가운 공 총무의 얼굴이 보였다 정류장

앞으로 길게 늘어선 줄에 합류하여 파주로 날 데려다 줄 2200번

버스를 기다리고 있으니 반가운 얼굴들이 계속 나타났다 한 대의

버스를 보내고서야 겨우 2200번 버스에 탑승해 파주로 출발할 수

있었다

10시 15분 파주 lsquo다산교 앞rsquo 정류장 하차

4개의 정류장 총 57분이 걸린다고 알려준 N사 지도 어플의 정보와는

달리 30분 만에 파주에 도착했다 일찍 도착해 먹을 것을 찾아 헤맨

예비 마케터들은 편의점에서 주린 배를 채웠고 lsquo지혜의 숲rsquo을 살짝

염탐하며 11시까지 시간을 보냈다

11시 05분 보진재 2층

1912년 설립되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인쇄소인 보진재 관계자

분이 나와 간단히 인사 말씀을 하고 각 반의 인솔자를 소개해주셨다

마케터반의 인솔자는 서동관 과장님 디자인반 편집자반 마케터반

순으로 견학을 시작했다

11시 15분 보진재 견학 시작

제일 먼저 본 곳은 제판실이었다 필름 인쇄가 줄어들고 CTP로

대체되는 추세지만 어떤 분들은 여전히 필름 작업을 하고 계셨다

이유를 물어보니 서동관 과장님은 예전 필름이 남아 있기도 하고

출판사에 따라 필름을 고집하는 곳이 있다고 하셨다

한번에 5도 인쇄가 가능한 기계를 보는 중에 서 과장님이 말씀하셨다

ldquo한 유닛(unit)당 23억 정도 해요rdquo 그렇다면 유닛 다섯 개가

돌아가고 있으니 적어도 10억짜리 기계라고 내 눈에 보이는 건 그냥

낡고 큰 기계인데 10억이 넘는다니 놀랐다 또 과장님께서 자랑스레

말씀하신 한 가지 잉크 농도 조절을 자동으로 하는 기계가 보급된

곳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었다 원래는 사람이 눈으로 보고 수정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재판을 찍을 경우 초판과 동일한 색상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있지만 보진재는 기계가 자동으로 조정해주어 수월한

작업을 할 수 있다고 하셨다

매염실도 보고 제본실도 구경했다 인쇄된 종이를 접지하고 제본을

마친 후 마지막으로 제단을 하면 책이 완성되어 나왔다 그 모든

과정을 보고 난 후 서 과장님이 건넨 완성된 책의 무게는 보통의

그것보다 조금 더 무겁게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윤전실이었다 견학 당일은 작업이 없어서

비어있던 윤전실이지만 윤전실이 주는 무게감은 컸다 윤전실은

롤(roll)로 인쇄하는 곳으로 8개의 롤이 양면 인쇄를 하고 건조와

접지까지 한 번에 가능한 기계도 있었다 대량생산을 위한 곳으로

주로 교과서나 EBS 학습지를 인쇄한다고 하셨다

12시 20분 견학 끝

1시간을 조금 넘긴 견학을 끝내고 밖으로 나오니 코가 따갑고 목이

말랐다 기계가 먼지를 빨아들여준다고는 하지만 수없이 많은

종이가 존재하는 공간에서의 종이 냄새는 강력했던 것이다 책이

제작되는 과정은 실제로 보니 다양하고 복잡했다 자동화가 많이

되어있지만 사람의 손길 없이는 절대 완성될 수 없는 과정들을 보며

책이 완성되기까지의 노력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lsquo책이 어떻게

만들어진다rsquo를 배우다가 lsquo책이 이렇게 만들어진다rsquo를 보니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예비 출판 마케터의

길로 들어선 후에 새로운 것을 보고 배울 수 있었는데 보진재 견학은

그 중에서도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책을 완성시키기 위한 모든 과정이

저마다의 몫을 하고 있었다 서울출판예비학교 졸업 후 출판계에

들어섰을 때 나는 과연 어떤 몫을 할 수 있을까 남은 2개월을 조금은

더 열정적으로 보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마케터반 11기 최다은

1 일일탈

학교 밖 견학 후기

피부로 와 닿는 책의 감촉 책의 냄새 책의 소리 보진재에서 책이 인쇄되는 과정을 만나다

필름과 인쇄판이 만들어지는 과정

25

우리가 이제 각자 편집자 마케터 디자이너가 되어 책 만드는 일을

시작하면 우리의 책은 이곳에서부터 그 lsquo탄생rsquo을 시작할 것이다 책의

근간이 되는 종이가 만들어지는 곳 한솔제지 공장에 다녀왔다 학기

초에 책을 파는 서점을 견학한 뒤 그 다음으로 출판사 종이에 활자를

찍어내는 인쇄소 그리고 마지막으로 lsquo종이rsquo를 만드는 제지 공장을

찾은 것이다 책이 만들어지는 순서대로라면 우리가 다녀온 순서를

거꾸로 해서 다녀왔어야 했지만 우리는 반대로 실제 과정을 거슬러

올라간 것이다 이렇게 거슬러 올라가는 과정에서 오히려 편집자란

직업에 겸허해질 수 있었다 가끔은 편집자가 책을 만드는 모든

과정 위에 군림하는 것 같이 느껴지지만 책의 물성을 만들어내는

거대한 기계 앞에서 우린 한없이 작아지기도 한다 lsquo한 권의 책rsquo이

만들어지려면 이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함을 이해해야 했다 이렇게도

복잡하고 힘겹게 만들어지는 책의 가치를 한 번 더 깊이 생각하게 된

계기였다 책이라는 건 의미가 담긴 조각들의 집합체이자 종이를

보기 좋게 물성화한 것 이론적으로야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눈으로 보고 느끼는 것과는 천지차이다

날씨마저 좋았던 9월 11일 평소보다 한 시간이나 이른 8시

30분에 세 반 학우들은 눈도 제대로 못 뜬 채 집합했다 대전까지

간다니 마치 여행가는 것 같은 살짝 들뜬 기분까지 안고 아침도 못

챙겨먹고 나왔을 우리를 생각해서 빵과 우유까지 준비한 한솔제지

측의 세심한 배려에 감동했다 배도 채우고 부족한 잠도 보충해가며

2시간 넘게 달려 신탄진 공장에 도착했다 도착하자 보이는 우리를

환영하는 현수막에 2차로 감동했다 우리를 위해 정말 많은 준비를

하셨구나 느낀 순간이었다

신탄진 공장 강당에 들어가서 간단한 공장 소개를 먼저 들었다

그리고 뒤이어 종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경청했다 수업 때보다

학생들의 집중력이 더 높아 보였던 건 내 착각이었길 종이는

1퍼센트의 펄프와 99퍼센트의 물로 이루어진단다 그래서 전반적인

공 정 의 대 부 분 은 물 을 처 리 하 기 위 한 과 정 이 나 다 름 없 었 다

생각보다 종이는 순수한 물질이라고 생각했다 종이(paper)의

어원은 이집트의 파피루스(papyrus)에서 왔다고 한다 중국의

lsquo채륜(蔡倫)rsquo이라는 사람이 제일 먼저 발명했고 고려시대에

일본으로 넘어간다 일본에 가장 마지막으로 넘어갔지만 종이의

기술력은 현재 일본이 가장 좋다 원료rarr초지rarr코팅 등의 공정을 거쳐

종이가 완성되는데 마지막 코팅 공정을 여자의 화장에 비유한 것

역시 기억에 남는다 코팅이 그렇게나 대단한 과정이라니

공장 안으로 들어가서는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시끄러워서 설명을

제대로 듣진 못했지만 앞서 들었던 설명을 떠올리며 기계들을

관찰했다 인쇄소에서 본 광경들도 거대하고 박력 있었지만 여긴

그보다 더 거친 느낌이었다 책은 서점에 놓여있을 때는 그렇게

얌전하건만 태어날 땐 이렇게 시끄럽다 또한 막 태어난 종이는

거대하고 또 거대했다 다들 마치 거대한 두루마리 휴지 같다고들

했다

견학을 다 마치고 다시 대전 공장으로 이동해 다 같이 점심 식사를

했다 기대 이상으로 맛있는 밥에 또 감동 더 힘내서 견학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아쉽게도 대전 공장 안에는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라 그 힘()을 발휘하진 못했다 대전 공장은 신탄진 공장과

다르게 책에 쓰이는 것이 아닌 제품 포장용 박스 종이컵 등 다른

용도에 쓰이는 종이를 만드는 곳이었다 그 과정의 차이를 눈으로

비교하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마지막으로 좋은 선물까지 손에

받아들고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다시 서울로 향했다

언제나 시작은 중요하다 각자의 일에 빠져들게 되면 점점 잊게 될

그 시작을 눈에 담고 오래 기억하기 위해 다녀왔다고 생각한다 요즘

초심을 잃었다는 생각이 종종 드는데 책에게도 초심이 있다면 바로 이

곳일까 시작의 의미에 대해 다시 곱씹어보았다

편집자반 11기 박혜원

우리의 글과 그림이 펼쳐질 종이의 탄생 한솔제지 신탄진 공장 견학

거대한 롤(상) 한솔제지 공장 앞에서 (하)

26

화양연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삶과 문학에 취하다

편집자반 한국문학 동아리 lsquo공감rsquo 그 대담의 현장

훗날 서울출판예비학교를 떠올릴 때 가장 즐거운 시간으로 기

억되는 날들은 동아리 활동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들의

화양연화(花樣年華)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 중

의 하루를 소개한다 문예창작학과를 전공한 문학소녀 김한나

학우를 필두로 창단된 편집자반 내 한국문학 동아리 lsquo공감rsquo은

모임 전에 한국작가를 한 명 정해 단편 두 편을 함께 읽고 키워

드나 질문을 스스로 뽑아 글을 써왔다 모여서 때로는 소설의

플롯이나 주제 문체에 대한 열띤 토론을 하고 때로는 작가의

외모()와 같은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며 삼천포로 빠지기도 했

다 우리끼리만 듣기엔 아쉽다 이 즐거운 대화를 모두에게 들

려주고 싶었다 이날 모임에선 김영하 작가의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단편집 속의 두 단편 lsquo엘리베이

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이하 엘리베이터)rsquo와 lsquo사진

관 살인사건(이하 사진관)rsquo에 대해 이야기했다 여기서는 lsquo엘리

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rsquo를 읽고 토의한 내용을

실었다

한나 참고로 김영하는 사람의 욕망에 대해 천착하는 작가야

그런 특성이 엘리베이터에는 안 나와 있는데 사진관에서는

잘 드러나 있어

상화 백가흠 작가에게 소설창작론 강의를 들었는데 그분이

소설의 기법을 설명하면서 알레고리랑 아이러니를 얘기했어

알레고리가 인물이나 소재를 비유적으로 설명하는 거래 예를

들어 핸드폰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다른

것에 핸드폰을 빗댐으로써 소설을 풀어가는 거

야 아이러니는 속도감 있게 이야기를 전개함으

로써 부조리나 모순을 드러내는 건데 김영하가

아이러니의 대표적인 작가래 단편인데도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내면보다는 사건이 일어나는

걸로 소설을 끌어가는 작가 우리가 지난 모임

에서 성석제를 굉장한 이야기꾼이라고 했잖아

그런데 난 김영하가 훨씬 이야기꾼스럽게 느껴

졌어 속도감 있고 lsquo이렇게 몰입을 할 수 있나rsquo

싶고 지난 모임들에서 읽었던 손보미나 편혜영

소설의 경우는 분위기나 주인공의 심정 내면에

의미를 부여해 야 했는데 김영하의 소설은 덮

자마자 아이러니가 느껴지면서 lsquo아 세상은 왜

이래rsquo 말하게 만들었어

법열 나는 엘리베이터 읽고 딱 lsquo뫼비우스의 띠rsquo가 생각났거든

뫼비우스의 띠가 안하고 겉이 구분이 안 되잖아 끝과 시작이

어딘지도 모르고 lsquo나rsquo가 겪는 상황이 현실인지 아닌지 구분이

안 되는 느낌 마지막에 lsquo나rsquo가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가 존재

하기는 했는지 혼란스러운 느낌을 받잖아 그게 앞의 환상적

인 부분이랑 맞물리면서 하나가 되는 느낌이라 뫼비우스의 띠

가 생각났어

상화 lsquo나rsquo가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구해주려고 고분군투하

다가 나중에 자기가 엘리베이터에 갇히잖아

오권 낀 남자의 발을 보면서 느꼈던 감상이 사실은 자기를 구

하고 싶었던 마음인 거지

(일동 오~ 그렇게도 볼 수 있네)

오권 무한도전의 무한상사 특집도 생각났어 뜬금없이 휴지

사용하는 길이에 대해 회의하는 장면에서 엘리베이터는 갇힌

사회 서로를 돌아보지 않는 사회를 의미하는 것 같아

한나 나는 반대로 오히려 엘리베이터를 희망적인 존재로 봤

거든 아파트도 그렇고 회사도 그렇고 각자 자신의 공간 안에

서 살다가 서로 만날 수 있는 장소는 엘리베이터 밖에 없으니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김영하 지음

문학동네 20100216

동아리 후기

27

까 lsquo나rsquo가 회사 엘리베이터 안에 여자와 같이 갇히잖아 사실

은 갇히지 않았으면 대화도 안하고 지나쳐 갔을 텐데 남자는

자기가 아침부터 버스 사고도 나고 성추행범으로 몰렸다고 얘

기하고 또 남자의 담배 피워도 되냐는 말에 여자는 담배에 대

한 불평불만을 속사포처럼 얘기하고 엘리베이터라는 공간이

아니었다면 이런 대화 자체가 없었겠지

오권 엘리베이터 타면 사람들이 하나같이 층수 바뀌는 것만

쳐다보고 있잖아

상화 요즘은 스마트폰

오권 자기 얘기를 하고 싶은 것 같아 하지만 상대의 얘기는

안 들어 lsquo너의 얘기는 관심 밖이지만 내가 불편한 것에 대한

얘기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하겠어rsquo라는 느낌

한나 그리고 우스웠던 게 볼일 보고 휴지 몇 칸 쓰는지 회의에

서 얘기하는 건hellip 사실 굉장히 사적인 얘기잖아 (일동 하하

하) 서로에 대해 다른 얘기는 일절 하지 않으면서 회의 내용은

개인적이고 사적이라니 아이러니한 거지

수경 진짜 웃기지 않았어 lsquo나rsquo가 자원 재활용 문제에 대한 중

대 보고가 있다고 계속 빨리 가야한다고 했던 게 겨우 그거야

상화 겨우 이딴 회의하려고 지금 엘리베이터에 낀 사람 놔두

고hellip 생명이 더 중요한데 지금 휴지 구하려고hellip

(일동 하하하)

한나 lsquo나rsquo가 불쌍했던 이유가 자기한테 닥친 일들은 lsquo할 수 없

지 뭐rsquo 이런 식으로 넘기는데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 걱정하고

갇힌 여자 걱정하고hellip 정작 자기 걱정은 안 해

오권 영화 lt라이터를 켜라gt 봤어 조폭들한테 얻어맞으면서

도 주인공은 무조건 자기 라이터만 찾겠다고 그러거든 이 소

설의 lsquo나rsquo와 비슷한 느낌이 들더라고 그 영화에서는 라이터가

주인공의 존재를 투영하는 소재거든 lsquo나rsquo는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구해야만 자기가 산다는 느낌을 받은 거라 해석하면

너무 나간 건가

법열 아니요 형이 아까 지적해준 게 와 닿았어요 그 고군분

투가 결국 자기를 구하려는 노력이라는 지적이요

상화 그나마 lsquo나rsquo가 이 소설에서 제일 인간적이지

수경 어딘가 찌질한 느낌도 들어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와

lsquo내rsquo가 동류라고 자각하고 연민을 갖는 느낌이었거든 lsquo나rsquo가

인간적이고 윤리적이라는 생각은 나는 글쎄hellip 더 적극적으

로 할 수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 자기 사이클에서 벗어나

지 않는 한도 내에서 걱정만 하잖아 소설 안에서 비극과 희

극이 번갈아 가며 나타나는데 트럭과 버스가 충돌했을 때

lsquo나rsquo는 lsquo버스 카드 일로 충돌하지 않게 되어 적이 기뻤다rsquo고

생각해 버스 운전사는 트럭 백미러에 가슴이 받혀서 죽었는

지도 모르는데 lsquo다행히 나는 허리가 좀 뻐근한 것만 빼면 별

다른 상처가 없는 듯했다rsquo 이런 생각들을 하는 게 좀 섬뜩했

민희 사람은 다 이중성을 가지고 있잖아 나를 보는 듯했어

만약 학교 가는 길에 엘리베이터에 낀 사람을 봤다면 그렇

지만 나도 얼마나 바빠 몇 분 늦으면 지각 체크 당하고 출석

80퍼센트를 못 채울 수도(일동 웃음) 있는 상황이라면 내

가 그 남자를 구할 수 있을까 일단 지나치고 119에 전화하려

고 했으나 핸드폰이 없는 상황에 나도 처할 수 있는 거잖아 나

만 생각하는 잔인한 면도 내 안에 있고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

도 내 안에 있어 이런 찌질한 모습도 나고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정의롭게 구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상화 기준이 다른 것 같아 lsquo나rsquo 정도면 착하다고 생각했거든

수경 주변 사람들이 약간 마네킹 같지 않아 주인공 주변에

장치되어있던 다른 사람들이 너무 비인간적이기 때문에 lsquo나rsquo

가 돋보이는 거지 lsquo나rsquo는 지극히 평범한 우리 모습 같아 내가

어떻게 할 생각은 없고 궁금하기만 한 거야

민희 그 궁금함과 찜찜함도 죄책감이라 생각돼 아 내가 어떻

게 해줬어야 했나

한나 책임 회피일까

상화 그래서 나는 키워드 뽑은 것 중 하나가 119야 구해주고

싶으면 직접 내 손으로 잡아 빼주던가 엘리베이터를 들어 올

릴 사람을 모아야 했는데 신고 생각만 하잖아 이미 이건 누

가 대신 해결해줘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그나마 우리

사회에서 사고를 수습해주는 건 119밖에 없고 조선시대에는

119같은 거 없고 마을 사람들이 모여 구해줬을 텐데 어쩔 수

28

없는 현대인의 단상이긴 해 현대가 분업사회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들 바쁘고 삶이 개인화 파편화되어 있으니까 119 같

은 집단이 필요한 거지 그래서 난 119를 신의 영역이라고 썼

어 lsquo나rsquo는 119를 거의 신적인 존재처럼 생각하잖아 부르면 모

든 게 해결될 것처럼 핸드폰 빌리고 공중전화 찾고 그런데 막

상 교통사고 현장에서 119 대원에게 면대 면으로 얘기를 했더

니 그들은 무슨 그따위 장난을 하냐고 말해 구조도 실은 신이

아니라 사람이 하는 일이고 그 사람이 관심이 없으면 묻히는

거지

오권 전화를 거는 것과 직접 구해주는 것의 차이가 큰 것 같아

자기가 구해주는 건 적극적인 행동이고 119에 전화하는 건 스

스로 최소한 양심적이긴 하다고 여기는 행동

수경 그런데 엘리베이터에 낀 사람을 아무 것도 모르는 일반

인이 어떻게 했다가는 더 위험해질 수도 있잖아

오권 맞아 사회가 시스템화하고 고도화될수록 각자의 업무가

분업화되었고 전문분야가 생겨났으니까 옛날 같았으면 애 낳

으면 그냥 동네 아주머니가 애 받고 어미가 죽으면 젖동냥 다

녔는데hellip 이젠 사고가 나면 생각이 119에 먼저 미치는 시대가

된 거지

수경 그래서 어딘가에 널브러져 다친 인간이 아니라 엘리베이

터라는 공간에 낀 남자를 설정한 것 아닐까 엘리베이터는 현

대화의 상징이잖아

한나 lsquo나rsquo도 어쩔 수 없는 게 출근 시간에 쫓겨서 시계를 계속

봐 먹고 사는 일이니까

오권 출근했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다시 집으로 돌아가

낀 사람을 구해주면 굉장히 희망찬 소설로 바뀔 텐데hellip (일동

웃음)

수경 이 소설로 현대 사회의 폐단은 다 얘기할 수 있겠는데

상화 김영하는 천재인 것 같다

누군가 그리고 잘생겼잖아

누군가 잘생긴 거야

누군가 지적인 분위기가 있어서 좋아 (한참 얘기)

한나 또 인상 깊었던 게 구두에 집착하는 거 lsquo나는 날렵한 치

타처럼hellip 구두를 가지고 엘리베이터에서 빠져나오는 데 성공

했다 허탈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rsquo는 구절

오권 자살한 사람들이 구두를 가지런히 벗어놓는 이미지가 무

슨 상징처럼 있잖아

한나 신발 한 쪽 없이 다녀봤어 계속 기우뚱대서 내가 걷거

나 서 있을 때 내가 잘못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여기서 lsquo나rsquo가

그랬을 거야 사실 lsquo나rsquo처럼 사는 게 정상인데 세상이 잘못된

건데

상화 이 소설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감정표현이잖아 하루 종

일 얼마나 힘들었겠어 처음으로 감정표현을 하니까 불쌍했어

오권 휴머니즘 불쌍론 또 나왔네(일동 웃음) 그럼 이제 사진

관으로 넘어가볼까hellip

편집자반 11기 이상화

2929

책씹는맛 01 냄새라는 경이 lt감각의 박물학gt 후각편을 읽고

냄새에는 언어가 없다 어휘가 부족한 우리는 말문이 막힌

채 불명료한 쾌감과 자극의 바다에서 말을 찾을 수밖에

없다1

이 말은 다이앤 애커먼의 『감각의 박물학』 제 1장 후각에

나오는 구절이다 냄새를 글로 쓰고자 하는 나의 시도가 늘

실패로 귀결되는 이유를 이 구절에서 찾았다 작가의 말처

럼 냄새에 대해 쓴다는 건 언어 밖 세계로 나갔다가 다시

언어로 되돌아오는 길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길에서 헤매

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후각이라는 감각에서 길을

잃는 것은 낭만적인 일이기도 하다 lsquo냄새의 뇌관을 건드리

면 모든 추억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기rsquo2 때문이다 냄새 하

나에 수많은 추억들이 줄줄이 기억의 회로 위로 떠오른다

예를 들면 바다 냄새 하나만 상상해도 그와 관련된 수많

은 기억들이 머릿속에 뒤섞인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바닷가와 관련된 그 모든 추억들이 기억의 영사막에서 한

편의 옴니버스 영화 형태로 내게 다가온다 난 내 기억의

관객이 되어 그 영화를 보다가 견딜 수 없는 그리움에 젖는

다 이 영화에 대한 감상문을 적으려면 나는 말문이 막힌

다 그래서 몇 글자 적다가 결국 글을 쓰기를 멈춘다 굳이

언어로 표현하자면 쓸 수 없는 그리움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1 『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옮김 작가정신 20040720

A Natural History of the Senses(1991) 17쪽

2 같은 책 18쪽

결국 lsquo언어가 존재하는 세계에서 경이는 언어의 칼날 아래

서 쉽게 해부되고 냄새는 자주 혀끝에서 맴돈다rsquo3 냄새의

숭고함 앞에서 우리는 말을 멈춘다 이처럼 냄새는 말할 수

없는 자연의 경이로움과 닮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lsquo냄새가 우리의 마음을 그토록 강하게 움직이는 것은 부분

적으로 그 이름을 부를 수 없기 때문rsquo4이라고 한다 저자는

그렇기에 사람들이 냄새를 lsquo분 냄새 비슷한 펭귄 냄새가

나는 호화로운 화장실 냄새가 나는rsquo 같은 말로 표현할 뿐

이며 냄새에 대한 이름은 주어져 있지 않다고 말한다 또

한 종류는 같아도 강약과 농도가 다른 각각의 냄새에 이름

을 붙여줄 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우린 일상적으로 냄새를

맡으면서도 그 냄새와 멀리 떨어져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명명되지 않은 것은 결국 잊히는 게 아닐까 부를

수 없음에서 오는 경외감과 숭고함이 있을지라도 냄새는

말해져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말할 수 없는 것에 자꾸

만 침묵하기만 해야 할까

감각도 모험의 영역이 될 수 있다 세계 일주만이 세상을

아는 길일까 lsquo나rsquo를 온전히 아는 것이 역설적으로 세상과

가까워지는 일인지도 모른다 나를 알기 위한 길 중 하나가

내가 가지고 있는 감각을 이해하고 그걸 언어로 표현하는

일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어쩌면 우리와 제일 가깝지만 말

하기 낯선 감각 후각을 이해하는 일이 중요한지도 모른다

냄새라는 감각 속에서 우리 모두 길을 잃고 헤매고 모험해

보자 냄새에 나름의 이름을 지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

리고 농도에 따라 냄새를 구분하는 일도 해보자 냄새라는

경이는 우리를 더 이상 침묵으로 이끌지 않을 것이다

디자인반 11기 백가은

3 같은 책 22쪽

4 같은 책 22쪽

『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 옮김

작가정신 20040720

A Natural History of the Senses(1991)

3030

02 현실을 전복시키는 비현실

모호함이 주는 환상성

20세기 중반 중남미 소설은 전통적인 사실주의 서사 구조

를 깨고 현실과 환상을 혼합시키는 새로운 글쓰기 방식으

로 세계문학의 중심에 선다 이 시기에 주목 받은 일련의

중남미 작가들을 가리켜 lsquo붐 세대 작가rsquo라 칭하는데 아르

헨티나의 환상문학 작가 코르타사르는 이 붐 세대 작가군

의 선구자이자 대표 주자 격인 인물이다 그러나 그 문학적

성과와 명성이 무색하게도 국내 독자들에겐 그의 이름이

아직 생소한 것이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에서는 그

의 작품이 중남미 단편 선집에나 몇 편이 번역되었을 뿐 본

격적으로 소개된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중남미 문학을 공부했고 그의 몇 안 되는 번역 작품을 인

상 깊게 읽었던 독자 입장에서 이번에 출간된 코르타사르

의 단편집『드러누운 밤』은 가뭄의 단비처럼 반가운 신간

이다

환상 문학이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J R R 톨킨 류의 판타

지소설 혹은 쥘 베른이나 아이작 아시모프 류의 SF소설을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코르타사르의 환상문학은 이들 범

주에 들어가지 않는다 코르타사르 작품에서 나타나는 환

상이란 토도로프가 정의한 바 있는 환상 그러니까 자연적

인 것과 초자연적인 것 사이의 망설임에서 발생하는 환상

에 가깝다 따라서 판타지소설의 lsquo현실과 동떨어진 환상rsquo

혹은 SF소설의 lsquo설득력 있고 현실감 있는 환상rsquo을 기대하

는 독자라면 아마 십중팔구 그의 작품을 읽고 실망할 것

이다 어쩌면 이게 무슨 환상문학이냐는 푸념을 늘어놓을

지도 모르겠다 역시 가장 좋은 것은 선입관을 버리고 책을

읽는 것이다

코르타사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lsquo모호함rsquo이다 인물이나

배경 묘사에서 제시되는 기본적인 정보도 모호하고 사건의

전개 양상이 가진 당위성도 모호하다 작품 내에서 주요한

스토리 라인을 담당하는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경계도 모

호하며 심지어는 화자의 정체마저 모호한 작품도 있다 이

런 모호함의 향연은 짙게 깔린 안개와도 같아서 독자들은

그 속에서 한 치 앞도 제대로 내다볼 수 없음은 물론이요

이미 지나간 사실조차도 자신이 맞게 인식한 것인지 확신

할 수 없을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무엇이 진짜인지

독자들의 판단을 망설이게 만드는 이런 상태야말로 코르

타사르의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는 환상이란 개념이다 독

자들은 이 환상 속에서 그저 전방을 주시하며 천천히 나아

갈 수밖에 없다

다행스럽게도 코르타사르는 독자들의 시련을 헛되게 하지

않는다 작품의 시작점 일상 세계에 우연히 침투한 lsquo비현

실적인 것rsquo은 안개 속에서 알게 모르게 자신의 지분을 늘려

나간다 그리고 작품의 종점에 다다른 독자들은 비현실이

현실이 되고 현실이 비현실이 되는 이전과는 전혀 새로운

세계와 마주할 것이다 다시 말해 필연과 이성의 법칙이 지

배하는 세계가 우연과 환상이 지배하는 세계로 변하는 것

이다 이러한 세계의 전복은 마치 여기저기 단서를 흩뿌리

고 사람들을 알쏭달쏭하게 만들었다가 결말부에서 모든

것을 폭발시키는 추리소설 혹은 반전영화를 보는 듯한 재

미를 선사한다

그렇다면 코르타사르가 이 소설들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책을 다 읽고 난 독자라면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의문점이다 코르타사르는 자신이 환상문학을 쓰는

이유를 ldquo법칙이나 원칙 혹은 인과관계나 특정한 심리 또

는 잘 그려진 지리학과 같은 체계에 의해 세상이 지배되고

있다는 것에 반대rdquo하고 ldquo우리가 잘 모르며 우리에게 잘 다

가오지 않는 새로운 질서에 관해 생각해보기 위함rdquo이라고

설명한다 짧게 말해 이 세상에 필연이란 존재하지 않으

며 자신은 그것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말이다 이

게 전부다 순문학이라면 거장의 문학이라면 이보다 더 심

오한 통찰 혹은 비판이 있을 것이란 생각에 문장 속 숨겨진

의미를 발견하고자 머리를 싸맬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조

언을 하자면 독서는 독서 그 자체로 즐기면 된다 적어도 이

책에서는 그렇다 모호함과 예상외의 전개 속에서 재미를

느끼고 코르타사르가 묘사하는 세계의 불가지(不可知)성

을 어렴풋하게나마 인식할 수 있다면 이미 그것으로 충분

하다

편집자반 11기 강귀욱

『드러누운 밤』

훌리오 꼬르따사르 지음 박병규 옮김

창비 20141124

La noche boca arribaJulio Cortazar

31

03 얼어붙은 자의식의 바다를깨뜨리고 생명을 불어넣는 책 『데미안』

데미안을 읽고 나서야 그 동안 내가 두 발 딛고 서 있던 땅이

굳고 단단한 대지가 아니라 얼어붙은 바다에 불과했음을 알

았다 데미안은 도끼를 가져와 이 꽁꽁 언 바다를 가차 없이

내리 찍었다 그리고 말했다 얼어붙은 바다를 단단한 땅인

줄 알고 사느니 그 얼음을 깨부수고 그 속에 빠져 죽기 살기

로 허우적대라고 그러면 그 속에서 너는 너 자신을 똑바로 마

주하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성장할 것이라고

주인공 싱클레어도 그를 둘러싸고 있던 세계를 깨뜨려 나가

며 성장한다 그 모든 과정은 결국 진정한 자기 자신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가 깨뜨린 가장 큰 세계는 바로 자신의 사고 체계였다 세상

을 바라보는 기존의 이분법적이던 시각 고정되고 획일화된 시

각을 버렸다 주인공은 세계 안에 심지어는 자신 안에도 선하

고 악하며 밝고 어두운 양극단의 것들이 공존함을 이해하고

두 세계를 끌어안았다 주인공은 귀와 눈을 가리던 장막을 걷

어내 버리고 세상을 바로 보게 되었다 상극인 것들의 괴리로

이루어진 이 모순된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곧 자신 안의 부조

화 또한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스스로에게 다가서는 첫 걸음

이었다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양극단의 세계 사이에서 싱

클레어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며 흔들리기를 반복했다 이

때 그에게는 삶을 지탱할 중심축이 없었다 항상 내면이 아닌

외부 세계에서 자신이 속할 자리를 찾아 헤맸다 그가 비로소

온전한 자신을 만난 순간은 어느 편으로도 치우침 없이 스스

로의 기준으로 홀로 서게 되었을 때였다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 이 길은 당신이 내면에 있는 모

순되는 두 세계 한없이 나약하고 뒷걸음치는 비열한 모습들

과 정갈하고 깨끗한 곧은 힘들을 동시에 직시하는 순간에 시

작된다 그리고 이 길은 두 세계 속에 들어가 이리저리 휩쓸리

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세계를 밟고 우뚝 올라서서 스스로

가 중심이 됨으로써 앞으로 펼쳐진다

이제 lsquo자아를 찾으라rsquo는 지루하고 흔한 이야기가 더 이상 빤

하거나 우습지 않다 묵직한 울림이 되어 나를 흔든다 그냥

나만 붙잡고 흔드는 것이라면 손사래 쳐 뿌리치겠는데 내가

밟고 있던 땅 속해 있던 세계를 뿌리째 흔들어 버린다 읽는

내내 속이 답답하고 나에게 화가 난다 그런데 이렇게 마구

혼나면서 이상하게도 후련한 구석이 있다 호통을 치는 데미

안이 사실은 우리를 응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막연

하고 무기력한 안개에 휩싸여 있을 때 데미안은 그만의 방

식으로 우리에게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준다 물론 갈 방향을

정해준다거나 각자의 사정을 듣고 상담을 해주는 것은 아니

다 오로지 궁지로 몰아세울 뿐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사람들

은 잊고 있던 lsquo나 자신rsquo을 일깨운다 아 그동안 lsquo나rsquo에 대해 생

각해본 적이 있던가 라는 정도만이라도 좋다 이 물음이 바로

여정의 시작이니까

그렇게 스스로에게 묻고 나면 더 이상 전처럼 살 수는 없기 때

문이다 아니라면 자기 자신에게 면목이 없을 것이다 이 무서

운 책이 우리를 혼내고 몰아치면서도 여전히 영원한 고전이자

필독서로 사랑 받는 이유다

lsquo우리들 속에는 모든 것을 아는 한 사람이 있다rsquo고 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혼이 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혼

이 났다는 것은 자신 안에 있는 lsquo그 사람rsquo이 말을 하기 시작했

다는 뜻이니까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목소리가 희미하

고 멀리 있다 하여도 숨죽여 귀 기울이는 일 자체가 자신에게

로 가는 과정임을 잊지 말고

편집자반 11기 배예리

『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민음사 20001220

Demian Die Geschichte von Emil

Sinclairs Jugend(1919)

31

03 얼어붙은 자의식의 바다를깨뜨리고 생명을 불어넣는 책 『데미안』

데미안을 읽고 나서야 그 동안 내가 두 발 딛고 서 있던 땅이

굳고 단단한 대지가 아니라 얼어붙은 바다에 불과했음을 알

았다 데미안은 도끼를 가져와 이 꽁꽁 언 바다를 가차 없이

내리 찍었다 그리고 말했다 얼어붙은 바다를 단단한 땅인

줄 알고 사느니 그 얼음을 깨부수고 그 속에 빠져 죽기 살기

로 허우적대라고 그러면 그 속에서 너는 너 자신을 똑바로 마

주하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성장할 것이라고

주인공 싱클레어도 그를 둘러싸고 있던 세계를 깨뜨려 나가

며 성장한다 그 모든 과정은 결국 진정한 자기 자신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가 깨뜨린 가장 큰 세계는 바로 자신의 사고 체계였다 세상

을 바라보는 기존의 이분법적이던 시각 고정되고 획일화된 시

각을 버렸다 주인공은 세계 안에 심지어는 자신 안에도 선하

고 악하며 밝고 어두운 양극단의 것들이 공존함을 이해하고

두 세계를 끌어안았다 주인공은 귀와 눈을 가리던 장막을 걷

어내 버리고 세상을 바로 보게 되었다 상극인 것들의 괴리로

이루어진 이 모순된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곧 자신 안의 부조

화 또한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스스로에게 다가서는 첫 걸음

이었다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양극단의 세계 사이에서 싱

클레어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며 흔들리기를 반복했다 이

때 그에게는 삶을 지탱할 중심축이 없었다 항상 내면이 아닌

외부 세계에서 자신이 속할 자리를 찾아 헤맸다 그가 비로소

온전한 자신을 만난 순간은 어느 편으로도 치우침 없이 스스

로의 기준으로 홀로 서게 되었을 때였다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 이 길은 당신이 내면에 있는 모

순되는 두 세계 한없이 나약하고 뒷걸음치는 비열한 모습들

과 정갈하고 깨끗한 곧은 힘들을 동시에 직시하는 순간에 시

작된다 그리고 이 길은 두 세계 속에 들어가 이리저리 휩쓸리

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세계를 밟고 우뚝 올라서서 스스로

가 중심이 됨으로써 앞으로 펼쳐진다

이제 lsquo자아를 찾으라rsquo는 지루하고 흔한 이야기가 더 이상 빤

하거나 우습지 않다 묵직한 울림이 되어 나를 흔든다 그냥

나만 붙잡고 흔드는 것이라면 손사래 쳐 뿌리치겠는데 내가

밟고 있던 땅 속해 있던 세계를 뿌리째 흔들어 버린다 읽는

내내 속이 답답하고 나에게 화가 난다 그런데 이렇게 마구

혼나면서 이상하게도 후련한 구석이 있다 호통을 치는 데미

안이 사실은 우리를 응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막연

하고 무기력한 안개에 휩싸여 있을 때 데미안은 그만의 방

식으로 우리에게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준다 물론 갈 방향을

정해준다거나 각자의 사정을 듣고 상담을 해주는 것은 아니

다 오로지 궁지로 몰아세울 뿐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사람들

은 잊고 있던 lsquo나 자신rsquo을 일깨운다 아 그동안 lsquo나rsquo에 대해 생

각해본 적이 있던가 라는 정도만이라도 좋다 이 물음이 바로

여정의 시작이니까

그렇게 스스로에게 묻고 나면 더 이상 전처럼 살 수는 없기 때

문이다 아니라면 자기 자신에게 면목이 없을 것이다 이 무서

운 책이 우리를 혼내고 몰아치면서도 여전히 영원한 고전이자

필독서로 사랑 받는 이유다

lsquo우리들 속에는 모든 것을 아는 한 사람이 있다rsquo고 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혼이 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혼

이 났다는 것은 자신 안에 있는 lsquo그 사람rsquo이 말을 하기 시작했

다는 뜻이니까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목소리가 희미하

고 멀리 있다 하여도 숨죽여 귀 기울이는 일 자체가 자신에게

로 가는 과정임을 잊지 말고

편집자반 11기 배예리

『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민음사 20001220

Demian Die Geschichte von Emil

Sinclairs Jugend(1919)

32

박세길 인터뷰

진정한 역사가는 과거에 파묻히지 않는다옥(獄)에서 옥(玉)을 만든 작가 박세길 인터뷰

박세길 저자는 처녀작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로 80년대

대표 역사서 자리를 꿰찬 분입니다 1986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감되었을 때 감옥에서 역사책을 읽으며

사회 모순에 대해 고민했고 출소하자마자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집필했습니다 정권 탄압 속에서 왜곡된

현대사를 바로 잡았다는 의미를 지닌 이 대표작은 오랫동안

고시생과 대학생들의 필독서로 꼽혔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읽은 박세길 저자의 저서는 지난 6월 출간한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입니다 기사를 쓰고 편집할 때 청년 세대를

겨냥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박세길 저자는 역시나

청년들의 미래에 큰 관심을 갖고 계셨습니다 취업을

눈앞에 둔 서울출판예비학교 학생들이 가져야 할 자세를

여쭸습니다

출판학교에서 강의하신 한 선생님은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가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와

더불어 80년대 인문학의 양대

산맥이라고 하셨습니다

책의 성공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강의

요청이 많이 들어왔어요 먹고사는

경제적인 문제도 해결됐습니다

몇 부 팔렸는지는 잘 모릅니다

출판사에서 기밀 사항이라고

하더군요 요즘은 마케팅 차원으로도

몇 쇄 몇 부인지 밝히지만 그때는

세금 문제를 피해가기 위해서인지

쉬쉬하던 시절이었나 봅니다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는 대학

선후배끼리도 많이 물려주는 책이라고

들었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의 쉬운 설명이

좋았습니다 더불어 어떤 사명감을 안고 썼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완성하기에 앞서 어떤 목표를

두셨나요

청년 세대가 외환위기 이후 집중적인 희생양으로 전락하면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드러내면서 여기에

머물지 않고 청년 세대의 잠재력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들이 역사 무대 한복판에 진출해 자기 몫을 다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습니다

역사 분야는 시장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역사 혹은 현대사가 주목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통해 얘기하자면

80년대 후반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lsquo왜곡된

역사를 바로 알자rsquo는 시각 교정의 욕구가 있었던

차에 제 책이 나름 부응했는지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시기가 적절했던 셈이죠

2012년 대선 후 역사 분야가 잠시 반짝했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금세 시들었다고

하더군요 당시 역사 분야 책들이 일반 독자가

읽기에 다소 어렵거나 출간한 지 오래된 것들

위주였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돋을세길

출판학교에서 강의하신 한 선생님은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가 유홍준 교수의

책의 성공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강의

하더군요 요즘은 마케팅 차원으로도

선후배끼리도 많이 물려주는 책이라고

역사 분야는 시장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역사 혹은 현대사가 주목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통해 얘기하자면

80년대 후반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lsquo왜곡된

역사를 바로 알자rsquo는 시각 교정의 욕구가 있었던

차에 제 책이 나름 부응했는지 큰 반향을

읽기에 다소 어렵거나 출간한 지 오래된 것들

위주였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의 저자

33

2012년 대선 후 역사 분야가 관심을 받았던 것은

보수층의 재집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한

불안 때문일까요

맞습니다 그러나 마땅한 책이 없어서 그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역사 분야에서 베스트셀러를 내기

위해서는 시기가 맞아 떨어지고 내용 또한 대중이 원하는

것을 담고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를 편집한 lsquo생각정원rsquo

출판사의 정희용 편집자에게 감사 표시를 하셨습니다

어떤 편집자를 선호하시나요

간단합니다 편집자는 철저히 독자 입장에서 독자와 작가

사이의 간극을 줄여줘야 합니다 예를 들면 어려운 내용을

과감히 생략하고 다음 기회로 미루도록 설득한다거나 좌파

운동권 색채가 너무 강한 문장을 조금 순화하는 것 등입니다

어떤 내용이 이번 책에 꼭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선택을

도와줘야 합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을 작가님께서 직접

독자들에게 홍보하신다면 카피 문구를 짧게 제시할 수

있을까요

청년 세대 희망 찾기 갑갑한 현실을 어떻게 타개할 수

있을지 그 답을 찾아보는 길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취업 후 첫발을 내디딜 서울출판예비학교 11기

학생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출판 또한 돈을 벌어야한다는 기본 전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출판계를 지켜본 결과 뭔가 소명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오래

살아남았습니다 출판학교 역대 대표 중 일부는 나와 관계가

있는 사람들인데 모두 고유한 소명의식을 갖고 출판계에

뛰어들었습니다 때로는 상업주의 안에서 재주도 부리곤

했지만 어쨌든 분야 내에서 고유한 캐릭터를 구축했습니다

출판학교 학생들이 출판 상황을 이해하고 자신을 역할을

정하는 개인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비전 중심의 경영을

하는 회사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지만 개인 비전을 기업

비전으로 나아가 사회 비전으로 접목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과거에 안주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부분을

출판계에서는 SNS 등 인터넷 환경을 통한 마케팅으로

이해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SNS망 자체에서 무엇이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건 사람과

사람이 서로 소통하고 공감하는데 필요한 도구입니다

콘텐츠 중심의 사고가 중요하고 그것이 전제되지 않을 때

SNS는 착각에 불과하며 성공할 수 없습니다 필요한 콘텐츠

중심의 사고를 가지고 철저하게 진행하지 않으면 그 공간에서

허망하게 헤엄만 칠 뿐 입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SNS에서

맥없이 헤엄치다 익사하는 경우를 볼 수 있을 겁니다

콘텐츠와 마케팅의 영역을 하나로 보는 것과 따로

보는 것 어떤 것이 독자를 위하는 것일까요

출판 마케팅은 책을 기획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에서부터

개입돼야 하고 그 과정에 독자를 참여시키는 방식을

고민해야 합니다 미국 네브래스카주립대학의 이상문

교수는 lsquo밀실 안에서의 혁신은 끝났다rsquo고 얘기합니다

개방된 체제에서 독자 곧 소비자 사용자의 참여 하에 함께

만들어갈 때 혁신은 이뤄진다고 합니다 출판사의 비전이

브랜드로 연결될 때 독자는 자발적으로 의견을 주고받고

싶어 할 겁니다

마케터반 11기 이창환

디자

인 사

공예

Page 23: 서울출판예비학교 웹진 _5호 2015

23

저는 결이 얇은 것들을 뜨는 것이 재밌었어요

머리카락처럼요 머리 긴 사람에게 부탁해서

눕히고 했어요 그리고 이건 얼굴인데요

처음에는 그냥 했는데 얼굴은 입체를 살리려면

스케치하듯 떠야 되요 결국 명암으로 입체감

조절을 해야 되죠 코가 너무 입체적이라 특히

힘들었어요

누구 얼굴이야

우리 언니hellip

[학생들 우와]

가은

심우진 선생님

가은

하얀

음각이 나왔을 때 너무 좋았고요하늘

습탁은 농도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소리

건 탁 보 다 는 습 탁 이 농 도 조 절 하 는 게

희 한 해 서 재 밌 었 어 요 농 도 조 절 이

관 건 이 거 든 요 먹 과 물 의 배 합 과

솜방망이가 먹물을 얼마나 흡수하는지 그

흡수량이 중요하고요

윤미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꽤 많은데 만져보면서 건탁을 뜨니까 좋았어요 전에

습탁할 때는 시멘트 벽 같은 걸 하다가 나뭇결을 하니까

살아있는 느낌이었어요 생각했던 것처럼 나와서

좋았고 솔방울이나 나뭇잎 같은 섬세한 것들은 제대로

나오지 않아서 아쉬웠어요 섬세한 것들은 습탁으로

해봐야겠어요 그래도 다양한 나무를 건탁해봐서

만족해요

소현

저는 일상적인 것들로 습탁을 해봤어요

처음에는 단순하게 오돌토돌한 느낌만

있 을 줄 알 았 는 데 색 다 른 느 낌 이 나 서

재밌었어요

탁본 세미나를 마치고 그 다음 주에 지하 강당에서 촬영하는 시간을

가졌다 촬영 후에 보정도 했다 나뭇잎의 결 무늬 타이어 자국

그리고 사람의 머리카락까지도 좋은 디자인의 재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보았고 나누었다 건탁과 습탁의 장단점을 이 수업으로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심우진 선생님의 이번 탁본 수업도 지난 활자

수업처럼 지식 습득은 물론이고 경험까지 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 시간들이 앞으로 출판 디자이너로서의 감각을 더 풍요롭게 해 주지

않을까

디자인반 11기 사공예원

하얀

음각이 나왔을 때 너무 좋았고요

습탁은 농도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솜방망이가 먹물을 얼마나 흡수하는지 그

흡수량이 중요하고요

윤미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주말에 놀러가서 나무로 건탁을 했어요 나무의 종류가

꽤 많은데 만져보면서 건탁을 뜨니까 좋았어요 전에 꽤 많은데 만져보면서 건탁을 뜨니까 좋았어요 전에

이건 파프리카인데 저희 집 개가 완성한 종이를 찢었어요

[학생들 하하하]

좀 작고 납작한 파프리카를 반으로 잘라서 습탁했어요 또

이건 철조망인데 용 비늘처럼 나와서 재밌었어요 아나콘다

같기도 하고 철조망이 날카로워서 습탁하니 종이가 자꾸

찢어져서 다시 하게 됐어요 근데 이거요hellip 남자친구

있으면 커플끼리 한 번 해보세요 한 명은 잡아주고 한 명은

습탁하고hellip 되게 로맨틱 성공적

자랑하는 거니

[학생들 깔깔깔]

24

9시 30분 합정역 1번 출구 앞

ldquo누나rdquo 소리에 쳐다보니 반가운 공 총무의 얼굴이 보였다 정류장

앞으로 길게 늘어선 줄에 합류하여 파주로 날 데려다 줄 2200번

버스를 기다리고 있으니 반가운 얼굴들이 계속 나타났다 한 대의

버스를 보내고서야 겨우 2200번 버스에 탑승해 파주로 출발할 수

있었다

10시 15분 파주 lsquo다산교 앞rsquo 정류장 하차

4개의 정류장 총 57분이 걸린다고 알려준 N사 지도 어플의 정보와는

달리 30분 만에 파주에 도착했다 일찍 도착해 먹을 것을 찾아 헤맨

예비 마케터들은 편의점에서 주린 배를 채웠고 lsquo지혜의 숲rsquo을 살짝

염탐하며 11시까지 시간을 보냈다

11시 05분 보진재 2층

1912년 설립되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인쇄소인 보진재 관계자

분이 나와 간단히 인사 말씀을 하고 각 반의 인솔자를 소개해주셨다

마케터반의 인솔자는 서동관 과장님 디자인반 편집자반 마케터반

순으로 견학을 시작했다

11시 15분 보진재 견학 시작

제일 먼저 본 곳은 제판실이었다 필름 인쇄가 줄어들고 CTP로

대체되는 추세지만 어떤 분들은 여전히 필름 작업을 하고 계셨다

이유를 물어보니 서동관 과장님은 예전 필름이 남아 있기도 하고

출판사에 따라 필름을 고집하는 곳이 있다고 하셨다

한번에 5도 인쇄가 가능한 기계를 보는 중에 서 과장님이 말씀하셨다

ldquo한 유닛(unit)당 23억 정도 해요rdquo 그렇다면 유닛 다섯 개가

돌아가고 있으니 적어도 10억짜리 기계라고 내 눈에 보이는 건 그냥

낡고 큰 기계인데 10억이 넘는다니 놀랐다 또 과장님께서 자랑스레

말씀하신 한 가지 잉크 농도 조절을 자동으로 하는 기계가 보급된

곳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었다 원래는 사람이 눈으로 보고 수정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재판을 찍을 경우 초판과 동일한 색상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있지만 보진재는 기계가 자동으로 조정해주어 수월한

작업을 할 수 있다고 하셨다

매염실도 보고 제본실도 구경했다 인쇄된 종이를 접지하고 제본을

마친 후 마지막으로 제단을 하면 책이 완성되어 나왔다 그 모든

과정을 보고 난 후 서 과장님이 건넨 완성된 책의 무게는 보통의

그것보다 조금 더 무겁게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윤전실이었다 견학 당일은 작업이 없어서

비어있던 윤전실이지만 윤전실이 주는 무게감은 컸다 윤전실은

롤(roll)로 인쇄하는 곳으로 8개의 롤이 양면 인쇄를 하고 건조와

접지까지 한 번에 가능한 기계도 있었다 대량생산을 위한 곳으로

주로 교과서나 EBS 학습지를 인쇄한다고 하셨다

12시 20분 견학 끝

1시간을 조금 넘긴 견학을 끝내고 밖으로 나오니 코가 따갑고 목이

말랐다 기계가 먼지를 빨아들여준다고는 하지만 수없이 많은

종이가 존재하는 공간에서의 종이 냄새는 강력했던 것이다 책이

제작되는 과정은 실제로 보니 다양하고 복잡했다 자동화가 많이

되어있지만 사람의 손길 없이는 절대 완성될 수 없는 과정들을 보며

책이 완성되기까지의 노력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lsquo책이 어떻게

만들어진다rsquo를 배우다가 lsquo책이 이렇게 만들어진다rsquo를 보니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예비 출판 마케터의

길로 들어선 후에 새로운 것을 보고 배울 수 있었는데 보진재 견학은

그 중에서도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책을 완성시키기 위한 모든 과정이

저마다의 몫을 하고 있었다 서울출판예비학교 졸업 후 출판계에

들어섰을 때 나는 과연 어떤 몫을 할 수 있을까 남은 2개월을 조금은

더 열정적으로 보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마케터반 11기 최다은

1 일일탈

학교 밖 견학 후기

피부로 와 닿는 책의 감촉 책의 냄새 책의 소리 보진재에서 책이 인쇄되는 과정을 만나다

필름과 인쇄판이 만들어지는 과정

25

우리가 이제 각자 편집자 마케터 디자이너가 되어 책 만드는 일을

시작하면 우리의 책은 이곳에서부터 그 lsquo탄생rsquo을 시작할 것이다 책의

근간이 되는 종이가 만들어지는 곳 한솔제지 공장에 다녀왔다 학기

초에 책을 파는 서점을 견학한 뒤 그 다음으로 출판사 종이에 활자를

찍어내는 인쇄소 그리고 마지막으로 lsquo종이rsquo를 만드는 제지 공장을

찾은 것이다 책이 만들어지는 순서대로라면 우리가 다녀온 순서를

거꾸로 해서 다녀왔어야 했지만 우리는 반대로 실제 과정을 거슬러

올라간 것이다 이렇게 거슬러 올라가는 과정에서 오히려 편집자란

직업에 겸허해질 수 있었다 가끔은 편집자가 책을 만드는 모든

과정 위에 군림하는 것 같이 느껴지지만 책의 물성을 만들어내는

거대한 기계 앞에서 우린 한없이 작아지기도 한다 lsquo한 권의 책rsquo이

만들어지려면 이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함을 이해해야 했다 이렇게도

복잡하고 힘겹게 만들어지는 책의 가치를 한 번 더 깊이 생각하게 된

계기였다 책이라는 건 의미가 담긴 조각들의 집합체이자 종이를

보기 좋게 물성화한 것 이론적으로야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눈으로 보고 느끼는 것과는 천지차이다

날씨마저 좋았던 9월 11일 평소보다 한 시간이나 이른 8시

30분에 세 반 학우들은 눈도 제대로 못 뜬 채 집합했다 대전까지

간다니 마치 여행가는 것 같은 살짝 들뜬 기분까지 안고 아침도 못

챙겨먹고 나왔을 우리를 생각해서 빵과 우유까지 준비한 한솔제지

측의 세심한 배려에 감동했다 배도 채우고 부족한 잠도 보충해가며

2시간 넘게 달려 신탄진 공장에 도착했다 도착하자 보이는 우리를

환영하는 현수막에 2차로 감동했다 우리를 위해 정말 많은 준비를

하셨구나 느낀 순간이었다

신탄진 공장 강당에 들어가서 간단한 공장 소개를 먼저 들었다

그리고 뒤이어 종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경청했다 수업 때보다

학생들의 집중력이 더 높아 보였던 건 내 착각이었길 종이는

1퍼센트의 펄프와 99퍼센트의 물로 이루어진단다 그래서 전반적인

공 정 의 대 부 분 은 물 을 처 리 하 기 위 한 과 정 이 나 다 름 없 었 다

생각보다 종이는 순수한 물질이라고 생각했다 종이(paper)의

어원은 이집트의 파피루스(papyrus)에서 왔다고 한다 중국의

lsquo채륜(蔡倫)rsquo이라는 사람이 제일 먼저 발명했고 고려시대에

일본으로 넘어간다 일본에 가장 마지막으로 넘어갔지만 종이의

기술력은 현재 일본이 가장 좋다 원료rarr초지rarr코팅 등의 공정을 거쳐

종이가 완성되는데 마지막 코팅 공정을 여자의 화장에 비유한 것

역시 기억에 남는다 코팅이 그렇게나 대단한 과정이라니

공장 안으로 들어가서는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시끄러워서 설명을

제대로 듣진 못했지만 앞서 들었던 설명을 떠올리며 기계들을

관찰했다 인쇄소에서 본 광경들도 거대하고 박력 있었지만 여긴

그보다 더 거친 느낌이었다 책은 서점에 놓여있을 때는 그렇게

얌전하건만 태어날 땐 이렇게 시끄럽다 또한 막 태어난 종이는

거대하고 또 거대했다 다들 마치 거대한 두루마리 휴지 같다고들

했다

견학을 다 마치고 다시 대전 공장으로 이동해 다 같이 점심 식사를

했다 기대 이상으로 맛있는 밥에 또 감동 더 힘내서 견학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아쉽게도 대전 공장 안에는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라 그 힘()을 발휘하진 못했다 대전 공장은 신탄진 공장과

다르게 책에 쓰이는 것이 아닌 제품 포장용 박스 종이컵 등 다른

용도에 쓰이는 종이를 만드는 곳이었다 그 과정의 차이를 눈으로

비교하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마지막으로 좋은 선물까지 손에

받아들고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다시 서울로 향했다

언제나 시작은 중요하다 각자의 일에 빠져들게 되면 점점 잊게 될

그 시작을 눈에 담고 오래 기억하기 위해 다녀왔다고 생각한다 요즘

초심을 잃었다는 생각이 종종 드는데 책에게도 초심이 있다면 바로 이

곳일까 시작의 의미에 대해 다시 곱씹어보았다

편집자반 11기 박혜원

우리의 글과 그림이 펼쳐질 종이의 탄생 한솔제지 신탄진 공장 견학

거대한 롤(상) 한솔제지 공장 앞에서 (하)

26

화양연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삶과 문학에 취하다

편집자반 한국문학 동아리 lsquo공감rsquo 그 대담의 현장

훗날 서울출판예비학교를 떠올릴 때 가장 즐거운 시간으로 기

억되는 날들은 동아리 활동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들의

화양연화(花樣年華)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 중

의 하루를 소개한다 문예창작학과를 전공한 문학소녀 김한나

학우를 필두로 창단된 편집자반 내 한국문학 동아리 lsquo공감rsquo은

모임 전에 한국작가를 한 명 정해 단편 두 편을 함께 읽고 키워

드나 질문을 스스로 뽑아 글을 써왔다 모여서 때로는 소설의

플롯이나 주제 문체에 대한 열띤 토론을 하고 때로는 작가의

외모()와 같은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며 삼천포로 빠지기도 했

다 우리끼리만 듣기엔 아쉽다 이 즐거운 대화를 모두에게 들

려주고 싶었다 이날 모임에선 김영하 작가의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단편집 속의 두 단편 lsquo엘리베이

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이하 엘리베이터)rsquo와 lsquo사진

관 살인사건(이하 사진관)rsquo에 대해 이야기했다 여기서는 lsquo엘리

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rsquo를 읽고 토의한 내용을

실었다

한나 참고로 김영하는 사람의 욕망에 대해 천착하는 작가야

그런 특성이 엘리베이터에는 안 나와 있는데 사진관에서는

잘 드러나 있어

상화 백가흠 작가에게 소설창작론 강의를 들었는데 그분이

소설의 기법을 설명하면서 알레고리랑 아이러니를 얘기했어

알레고리가 인물이나 소재를 비유적으로 설명하는 거래 예를

들어 핸드폰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다른

것에 핸드폰을 빗댐으로써 소설을 풀어가는 거

야 아이러니는 속도감 있게 이야기를 전개함으

로써 부조리나 모순을 드러내는 건데 김영하가

아이러니의 대표적인 작가래 단편인데도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내면보다는 사건이 일어나는

걸로 소설을 끌어가는 작가 우리가 지난 모임

에서 성석제를 굉장한 이야기꾼이라고 했잖아

그런데 난 김영하가 훨씬 이야기꾼스럽게 느껴

졌어 속도감 있고 lsquo이렇게 몰입을 할 수 있나rsquo

싶고 지난 모임들에서 읽었던 손보미나 편혜영

소설의 경우는 분위기나 주인공의 심정 내면에

의미를 부여해 야 했는데 김영하의 소설은 덮

자마자 아이러니가 느껴지면서 lsquo아 세상은 왜

이래rsquo 말하게 만들었어

법열 나는 엘리베이터 읽고 딱 lsquo뫼비우스의 띠rsquo가 생각났거든

뫼비우스의 띠가 안하고 겉이 구분이 안 되잖아 끝과 시작이

어딘지도 모르고 lsquo나rsquo가 겪는 상황이 현실인지 아닌지 구분이

안 되는 느낌 마지막에 lsquo나rsquo가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가 존재

하기는 했는지 혼란스러운 느낌을 받잖아 그게 앞의 환상적

인 부분이랑 맞물리면서 하나가 되는 느낌이라 뫼비우스의 띠

가 생각났어

상화 lsquo나rsquo가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구해주려고 고분군투하

다가 나중에 자기가 엘리베이터에 갇히잖아

오권 낀 남자의 발을 보면서 느꼈던 감상이 사실은 자기를 구

하고 싶었던 마음인 거지

(일동 오~ 그렇게도 볼 수 있네)

오권 무한도전의 무한상사 특집도 생각났어 뜬금없이 휴지

사용하는 길이에 대해 회의하는 장면에서 엘리베이터는 갇힌

사회 서로를 돌아보지 않는 사회를 의미하는 것 같아

한나 나는 반대로 오히려 엘리베이터를 희망적인 존재로 봤

거든 아파트도 그렇고 회사도 그렇고 각자 자신의 공간 안에

서 살다가 서로 만날 수 있는 장소는 엘리베이터 밖에 없으니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김영하 지음

문학동네 20100216

동아리 후기

27

까 lsquo나rsquo가 회사 엘리베이터 안에 여자와 같이 갇히잖아 사실

은 갇히지 않았으면 대화도 안하고 지나쳐 갔을 텐데 남자는

자기가 아침부터 버스 사고도 나고 성추행범으로 몰렸다고 얘

기하고 또 남자의 담배 피워도 되냐는 말에 여자는 담배에 대

한 불평불만을 속사포처럼 얘기하고 엘리베이터라는 공간이

아니었다면 이런 대화 자체가 없었겠지

오권 엘리베이터 타면 사람들이 하나같이 층수 바뀌는 것만

쳐다보고 있잖아

상화 요즘은 스마트폰

오권 자기 얘기를 하고 싶은 것 같아 하지만 상대의 얘기는

안 들어 lsquo너의 얘기는 관심 밖이지만 내가 불편한 것에 대한

얘기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하겠어rsquo라는 느낌

한나 그리고 우스웠던 게 볼일 보고 휴지 몇 칸 쓰는지 회의에

서 얘기하는 건hellip 사실 굉장히 사적인 얘기잖아 (일동 하하

하) 서로에 대해 다른 얘기는 일절 하지 않으면서 회의 내용은

개인적이고 사적이라니 아이러니한 거지

수경 진짜 웃기지 않았어 lsquo나rsquo가 자원 재활용 문제에 대한 중

대 보고가 있다고 계속 빨리 가야한다고 했던 게 겨우 그거야

상화 겨우 이딴 회의하려고 지금 엘리베이터에 낀 사람 놔두

고hellip 생명이 더 중요한데 지금 휴지 구하려고hellip

(일동 하하하)

한나 lsquo나rsquo가 불쌍했던 이유가 자기한테 닥친 일들은 lsquo할 수 없

지 뭐rsquo 이런 식으로 넘기는데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 걱정하고

갇힌 여자 걱정하고hellip 정작 자기 걱정은 안 해

오권 영화 lt라이터를 켜라gt 봤어 조폭들한테 얻어맞으면서

도 주인공은 무조건 자기 라이터만 찾겠다고 그러거든 이 소

설의 lsquo나rsquo와 비슷한 느낌이 들더라고 그 영화에서는 라이터가

주인공의 존재를 투영하는 소재거든 lsquo나rsquo는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구해야만 자기가 산다는 느낌을 받은 거라 해석하면

너무 나간 건가

법열 아니요 형이 아까 지적해준 게 와 닿았어요 그 고군분

투가 결국 자기를 구하려는 노력이라는 지적이요

상화 그나마 lsquo나rsquo가 이 소설에서 제일 인간적이지

수경 어딘가 찌질한 느낌도 들어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와

lsquo내rsquo가 동류라고 자각하고 연민을 갖는 느낌이었거든 lsquo나rsquo가

인간적이고 윤리적이라는 생각은 나는 글쎄hellip 더 적극적으

로 할 수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 자기 사이클에서 벗어나

지 않는 한도 내에서 걱정만 하잖아 소설 안에서 비극과 희

극이 번갈아 가며 나타나는데 트럭과 버스가 충돌했을 때

lsquo나rsquo는 lsquo버스 카드 일로 충돌하지 않게 되어 적이 기뻤다rsquo고

생각해 버스 운전사는 트럭 백미러에 가슴이 받혀서 죽었는

지도 모르는데 lsquo다행히 나는 허리가 좀 뻐근한 것만 빼면 별

다른 상처가 없는 듯했다rsquo 이런 생각들을 하는 게 좀 섬뜩했

민희 사람은 다 이중성을 가지고 있잖아 나를 보는 듯했어

만약 학교 가는 길에 엘리베이터에 낀 사람을 봤다면 그렇

지만 나도 얼마나 바빠 몇 분 늦으면 지각 체크 당하고 출석

80퍼센트를 못 채울 수도(일동 웃음) 있는 상황이라면 내

가 그 남자를 구할 수 있을까 일단 지나치고 119에 전화하려

고 했으나 핸드폰이 없는 상황에 나도 처할 수 있는 거잖아 나

만 생각하는 잔인한 면도 내 안에 있고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

도 내 안에 있어 이런 찌질한 모습도 나고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정의롭게 구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상화 기준이 다른 것 같아 lsquo나rsquo 정도면 착하다고 생각했거든

수경 주변 사람들이 약간 마네킹 같지 않아 주인공 주변에

장치되어있던 다른 사람들이 너무 비인간적이기 때문에 lsquo나rsquo

가 돋보이는 거지 lsquo나rsquo는 지극히 평범한 우리 모습 같아 내가

어떻게 할 생각은 없고 궁금하기만 한 거야

민희 그 궁금함과 찜찜함도 죄책감이라 생각돼 아 내가 어떻

게 해줬어야 했나

한나 책임 회피일까

상화 그래서 나는 키워드 뽑은 것 중 하나가 119야 구해주고

싶으면 직접 내 손으로 잡아 빼주던가 엘리베이터를 들어 올

릴 사람을 모아야 했는데 신고 생각만 하잖아 이미 이건 누

가 대신 해결해줘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그나마 우리

사회에서 사고를 수습해주는 건 119밖에 없고 조선시대에는

119같은 거 없고 마을 사람들이 모여 구해줬을 텐데 어쩔 수

28

없는 현대인의 단상이긴 해 현대가 분업사회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들 바쁘고 삶이 개인화 파편화되어 있으니까 119 같

은 집단이 필요한 거지 그래서 난 119를 신의 영역이라고 썼

어 lsquo나rsquo는 119를 거의 신적인 존재처럼 생각하잖아 부르면 모

든 게 해결될 것처럼 핸드폰 빌리고 공중전화 찾고 그런데 막

상 교통사고 현장에서 119 대원에게 면대 면으로 얘기를 했더

니 그들은 무슨 그따위 장난을 하냐고 말해 구조도 실은 신이

아니라 사람이 하는 일이고 그 사람이 관심이 없으면 묻히는

거지

오권 전화를 거는 것과 직접 구해주는 것의 차이가 큰 것 같아

자기가 구해주는 건 적극적인 행동이고 119에 전화하는 건 스

스로 최소한 양심적이긴 하다고 여기는 행동

수경 그런데 엘리베이터에 낀 사람을 아무 것도 모르는 일반

인이 어떻게 했다가는 더 위험해질 수도 있잖아

오권 맞아 사회가 시스템화하고 고도화될수록 각자의 업무가

분업화되었고 전문분야가 생겨났으니까 옛날 같았으면 애 낳

으면 그냥 동네 아주머니가 애 받고 어미가 죽으면 젖동냥 다

녔는데hellip 이젠 사고가 나면 생각이 119에 먼저 미치는 시대가

된 거지

수경 그래서 어딘가에 널브러져 다친 인간이 아니라 엘리베이

터라는 공간에 낀 남자를 설정한 것 아닐까 엘리베이터는 현

대화의 상징이잖아

한나 lsquo나rsquo도 어쩔 수 없는 게 출근 시간에 쫓겨서 시계를 계속

봐 먹고 사는 일이니까

오권 출근했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다시 집으로 돌아가

낀 사람을 구해주면 굉장히 희망찬 소설로 바뀔 텐데hellip (일동

웃음)

수경 이 소설로 현대 사회의 폐단은 다 얘기할 수 있겠는데

상화 김영하는 천재인 것 같다

누군가 그리고 잘생겼잖아

누군가 잘생긴 거야

누군가 지적인 분위기가 있어서 좋아 (한참 얘기)

한나 또 인상 깊었던 게 구두에 집착하는 거 lsquo나는 날렵한 치

타처럼hellip 구두를 가지고 엘리베이터에서 빠져나오는 데 성공

했다 허탈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rsquo는 구절

오권 자살한 사람들이 구두를 가지런히 벗어놓는 이미지가 무

슨 상징처럼 있잖아

한나 신발 한 쪽 없이 다녀봤어 계속 기우뚱대서 내가 걷거

나 서 있을 때 내가 잘못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여기서 lsquo나rsquo가

그랬을 거야 사실 lsquo나rsquo처럼 사는 게 정상인데 세상이 잘못된

건데

상화 이 소설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감정표현이잖아 하루 종

일 얼마나 힘들었겠어 처음으로 감정표현을 하니까 불쌍했어

오권 휴머니즘 불쌍론 또 나왔네(일동 웃음) 그럼 이제 사진

관으로 넘어가볼까hellip

편집자반 11기 이상화

2929

책씹는맛 01 냄새라는 경이 lt감각의 박물학gt 후각편을 읽고

냄새에는 언어가 없다 어휘가 부족한 우리는 말문이 막힌

채 불명료한 쾌감과 자극의 바다에서 말을 찾을 수밖에

없다1

이 말은 다이앤 애커먼의 『감각의 박물학』 제 1장 후각에

나오는 구절이다 냄새를 글로 쓰고자 하는 나의 시도가 늘

실패로 귀결되는 이유를 이 구절에서 찾았다 작가의 말처

럼 냄새에 대해 쓴다는 건 언어 밖 세계로 나갔다가 다시

언어로 되돌아오는 길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길에서 헤매

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후각이라는 감각에서 길을

잃는 것은 낭만적인 일이기도 하다 lsquo냄새의 뇌관을 건드리

면 모든 추억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기rsquo2 때문이다 냄새 하

나에 수많은 추억들이 줄줄이 기억의 회로 위로 떠오른다

예를 들면 바다 냄새 하나만 상상해도 그와 관련된 수많

은 기억들이 머릿속에 뒤섞인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바닷가와 관련된 그 모든 추억들이 기억의 영사막에서 한

편의 옴니버스 영화 형태로 내게 다가온다 난 내 기억의

관객이 되어 그 영화를 보다가 견딜 수 없는 그리움에 젖는

다 이 영화에 대한 감상문을 적으려면 나는 말문이 막힌

다 그래서 몇 글자 적다가 결국 글을 쓰기를 멈춘다 굳이

언어로 표현하자면 쓸 수 없는 그리움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1 『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옮김 작가정신 20040720

A Natural History of the Senses(1991) 17쪽

2 같은 책 18쪽

결국 lsquo언어가 존재하는 세계에서 경이는 언어의 칼날 아래

서 쉽게 해부되고 냄새는 자주 혀끝에서 맴돈다rsquo3 냄새의

숭고함 앞에서 우리는 말을 멈춘다 이처럼 냄새는 말할 수

없는 자연의 경이로움과 닮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lsquo냄새가 우리의 마음을 그토록 강하게 움직이는 것은 부분

적으로 그 이름을 부를 수 없기 때문rsquo4이라고 한다 저자는

그렇기에 사람들이 냄새를 lsquo분 냄새 비슷한 펭귄 냄새가

나는 호화로운 화장실 냄새가 나는rsquo 같은 말로 표현할 뿐

이며 냄새에 대한 이름은 주어져 있지 않다고 말한다 또

한 종류는 같아도 강약과 농도가 다른 각각의 냄새에 이름

을 붙여줄 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우린 일상적으로 냄새를

맡으면서도 그 냄새와 멀리 떨어져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명명되지 않은 것은 결국 잊히는 게 아닐까 부를

수 없음에서 오는 경외감과 숭고함이 있을지라도 냄새는

말해져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말할 수 없는 것에 자꾸

만 침묵하기만 해야 할까

감각도 모험의 영역이 될 수 있다 세계 일주만이 세상을

아는 길일까 lsquo나rsquo를 온전히 아는 것이 역설적으로 세상과

가까워지는 일인지도 모른다 나를 알기 위한 길 중 하나가

내가 가지고 있는 감각을 이해하고 그걸 언어로 표현하는

일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어쩌면 우리와 제일 가깝지만 말

하기 낯선 감각 후각을 이해하는 일이 중요한지도 모른다

냄새라는 감각 속에서 우리 모두 길을 잃고 헤매고 모험해

보자 냄새에 나름의 이름을 지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

리고 농도에 따라 냄새를 구분하는 일도 해보자 냄새라는

경이는 우리를 더 이상 침묵으로 이끌지 않을 것이다

디자인반 11기 백가은

3 같은 책 22쪽

4 같은 책 22쪽

『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 옮김

작가정신 20040720

A Natural History of the Senses(1991)

3030

02 현실을 전복시키는 비현실

모호함이 주는 환상성

20세기 중반 중남미 소설은 전통적인 사실주의 서사 구조

를 깨고 현실과 환상을 혼합시키는 새로운 글쓰기 방식으

로 세계문학의 중심에 선다 이 시기에 주목 받은 일련의

중남미 작가들을 가리켜 lsquo붐 세대 작가rsquo라 칭하는데 아르

헨티나의 환상문학 작가 코르타사르는 이 붐 세대 작가군

의 선구자이자 대표 주자 격인 인물이다 그러나 그 문학적

성과와 명성이 무색하게도 국내 독자들에겐 그의 이름이

아직 생소한 것이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에서는 그

의 작품이 중남미 단편 선집에나 몇 편이 번역되었을 뿐 본

격적으로 소개된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중남미 문학을 공부했고 그의 몇 안 되는 번역 작품을 인

상 깊게 읽었던 독자 입장에서 이번에 출간된 코르타사르

의 단편집『드러누운 밤』은 가뭄의 단비처럼 반가운 신간

이다

환상 문학이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J R R 톨킨 류의 판타

지소설 혹은 쥘 베른이나 아이작 아시모프 류의 SF소설을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코르타사르의 환상문학은 이들 범

주에 들어가지 않는다 코르타사르 작품에서 나타나는 환

상이란 토도로프가 정의한 바 있는 환상 그러니까 자연적

인 것과 초자연적인 것 사이의 망설임에서 발생하는 환상

에 가깝다 따라서 판타지소설의 lsquo현실과 동떨어진 환상rsquo

혹은 SF소설의 lsquo설득력 있고 현실감 있는 환상rsquo을 기대하

는 독자라면 아마 십중팔구 그의 작품을 읽고 실망할 것

이다 어쩌면 이게 무슨 환상문학이냐는 푸념을 늘어놓을

지도 모르겠다 역시 가장 좋은 것은 선입관을 버리고 책을

읽는 것이다

코르타사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lsquo모호함rsquo이다 인물이나

배경 묘사에서 제시되는 기본적인 정보도 모호하고 사건의

전개 양상이 가진 당위성도 모호하다 작품 내에서 주요한

스토리 라인을 담당하는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경계도 모

호하며 심지어는 화자의 정체마저 모호한 작품도 있다 이

런 모호함의 향연은 짙게 깔린 안개와도 같아서 독자들은

그 속에서 한 치 앞도 제대로 내다볼 수 없음은 물론이요

이미 지나간 사실조차도 자신이 맞게 인식한 것인지 확신

할 수 없을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무엇이 진짜인지

독자들의 판단을 망설이게 만드는 이런 상태야말로 코르

타사르의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는 환상이란 개념이다 독

자들은 이 환상 속에서 그저 전방을 주시하며 천천히 나아

갈 수밖에 없다

다행스럽게도 코르타사르는 독자들의 시련을 헛되게 하지

않는다 작품의 시작점 일상 세계에 우연히 침투한 lsquo비현

실적인 것rsquo은 안개 속에서 알게 모르게 자신의 지분을 늘려

나간다 그리고 작품의 종점에 다다른 독자들은 비현실이

현실이 되고 현실이 비현실이 되는 이전과는 전혀 새로운

세계와 마주할 것이다 다시 말해 필연과 이성의 법칙이 지

배하는 세계가 우연과 환상이 지배하는 세계로 변하는 것

이다 이러한 세계의 전복은 마치 여기저기 단서를 흩뿌리

고 사람들을 알쏭달쏭하게 만들었다가 결말부에서 모든

것을 폭발시키는 추리소설 혹은 반전영화를 보는 듯한 재

미를 선사한다

그렇다면 코르타사르가 이 소설들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책을 다 읽고 난 독자라면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의문점이다 코르타사르는 자신이 환상문학을 쓰는

이유를 ldquo법칙이나 원칙 혹은 인과관계나 특정한 심리 또

는 잘 그려진 지리학과 같은 체계에 의해 세상이 지배되고

있다는 것에 반대rdquo하고 ldquo우리가 잘 모르며 우리에게 잘 다

가오지 않는 새로운 질서에 관해 생각해보기 위함rdquo이라고

설명한다 짧게 말해 이 세상에 필연이란 존재하지 않으

며 자신은 그것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말이다 이

게 전부다 순문학이라면 거장의 문학이라면 이보다 더 심

오한 통찰 혹은 비판이 있을 것이란 생각에 문장 속 숨겨진

의미를 발견하고자 머리를 싸맬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조

언을 하자면 독서는 독서 그 자체로 즐기면 된다 적어도 이

책에서는 그렇다 모호함과 예상외의 전개 속에서 재미를

느끼고 코르타사르가 묘사하는 세계의 불가지(不可知)성

을 어렴풋하게나마 인식할 수 있다면 이미 그것으로 충분

하다

편집자반 11기 강귀욱

『드러누운 밤』

훌리오 꼬르따사르 지음 박병규 옮김

창비 20141124

La noche boca arribaJulio Cortazar

31

03 얼어붙은 자의식의 바다를깨뜨리고 생명을 불어넣는 책 『데미안』

데미안을 읽고 나서야 그 동안 내가 두 발 딛고 서 있던 땅이

굳고 단단한 대지가 아니라 얼어붙은 바다에 불과했음을 알

았다 데미안은 도끼를 가져와 이 꽁꽁 언 바다를 가차 없이

내리 찍었다 그리고 말했다 얼어붙은 바다를 단단한 땅인

줄 알고 사느니 그 얼음을 깨부수고 그 속에 빠져 죽기 살기

로 허우적대라고 그러면 그 속에서 너는 너 자신을 똑바로 마

주하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성장할 것이라고

주인공 싱클레어도 그를 둘러싸고 있던 세계를 깨뜨려 나가

며 성장한다 그 모든 과정은 결국 진정한 자기 자신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가 깨뜨린 가장 큰 세계는 바로 자신의 사고 체계였다 세상

을 바라보는 기존의 이분법적이던 시각 고정되고 획일화된 시

각을 버렸다 주인공은 세계 안에 심지어는 자신 안에도 선하

고 악하며 밝고 어두운 양극단의 것들이 공존함을 이해하고

두 세계를 끌어안았다 주인공은 귀와 눈을 가리던 장막을 걷

어내 버리고 세상을 바로 보게 되었다 상극인 것들의 괴리로

이루어진 이 모순된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곧 자신 안의 부조

화 또한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스스로에게 다가서는 첫 걸음

이었다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양극단의 세계 사이에서 싱

클레어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며 흔들리기를 반복했다 이

때 그에게는 삶을 지탱할 중심축이 없었다 항상 내면이 아닌

외부 세계에서 자신이 속할 자리를 찾아 헤맸다 그가 비로소

온전한 자신을 만난 순간은 어느 편으로도 치우침 없이 스스

로의 기준으로 홀로 서게 되었을 때였다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 이 길은 당신이 내면에 있는 모

순되는 두 세계 한없이 나약하고 뒷걸음치는 비열한 모습들

과 정갈하고 깨끗한 곧은 힘들을 동시에 직시하는 순간에 시

작된다 그리고 이 길은 두 세계 속에 들어가 이리저리 휩쓸리

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세계를 밟고 우뚝 올라서서 스스로

가 중심이 됨으로써 앞으로 펼쳐진다

이제 lsquo자아를 찾으라rsquo는 지루하고 흔한 이야기가 더 이상 빤

하거나 우습지 않다 묵직한 울림이 되어 나를 흔든다 그냥

나만 붙잡고 흔드는 것이라면 손사래 쳐 뿌리치겠는데 내가

밟고 있던 땅 속해 있던 세계를 뿌리째 흔들어 버린다 읽는

내내 속이 답답하고 나에게 화가 난다 그런데 이렇게 마구

혼나면서 이상하게도 후련한 구석이 있다 호통을 치는 데미

안이 사실은 우리를 응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막연

하고 무기력한 안개에 휩싸여 있을 때 데미안은 그만의 방

식으로 우리에게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준다 물론 갈 방향을

정해준다거나 각자의 사정을 듣고 상담을 해주는 것은 아니

다 오로지 궁지로 몰아세울 뿐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사람들

은 잊고 있던 lsquo나 자신rsquo을 일깨운다 아 그동안 lsquo나rsquo에 대해 생

각해본 적이 있던가 라는 정도만이라도 좋다 이 물음이 바로

여정의 시작이니까

그렇게 스스로에게 묻고 나면 더 이상 전처럼 살 수는 없기 때

문이다 아니라면 자기 자신에게 면목이 없을 것이다 이 무서

운 책이 우리를 혼내고 몰아치면서도 여전히 영원한 고전이자

필독서로 사랑 받는 이유다

lsquo우리들 속에는 모든 것을 아는 한 사람이 있다rsquo고 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혼이 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혼

이 났다는 것은 자신 안에 있는 lsquo그 사람rsquo이 말을 하기 시작했

다는 뜻이니까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목소리가 희미하

고 멀리 있다 하여도 숨죽여 귀 기울이는 일 자체가 자신에게

로 가는 과정임을 잊지 말고

편집자반 11기 배예리

『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민음사 20001220

Demian Die Geschichte von Emil

Sinclairs Jugend(1919)

31

03 얼어붙은 자의식의 바다를깨뜨리고 생명을 불어넣는 책 『데미안』

데미안을 읽고 나서야 그 동안 내가 두 발 딛고 서 있던 땅이

굳고 단단한 대지가 아니라 얼어붙은 바다에 불과했음을 알

았다 데미안은 도끼를 가져와 이 꽁꽁 언 바다를 가차 없이

내리 찍었다 그리고 말했다 얼어붙은 바다를 단단한 땅인

줄 알고 사느니 그 얼음을 깨부수고 그 속에 빠져 죽기 살기

로 허우적대라고 그러면 그 속에서 너는 너 자신을 똑바로 마

주하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성장할 것이라고

주인공 싱클레어도 그를 둘러싸고 있던 세계를 깨뜨려 나가

며 성장한다 그 모든 과정은 결국 진정한 자기 자신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가 깨뜨린 가장 큰 세계는 바로 자신의 사고 체계였다 세상

을 바라보는 기존의 이분법적이던 시각 고정되고 획일화된 시

각을 버렸다 주인공은 세계 안에 심지어는 자신 안에도 선하

고 악하며 밝고 어두운 양극단의 것들이 공존함을 이해하고

두 세계를 끌어안았다 주인공은 귀와 눈을 가리던 장막을 걷

어내 버리고 세상을 바로 보게 되었다 상극인 것들의 괴리로

이루어진 이 모순된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곧 자신 안의 부조

화 또한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스스로에게 다가서는 첫 걸음

이었다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양극단의 세계 사이에서 싱

클레어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며 흔들리기를 반복했다 이

때 그에게는 삶을 지탱할 중심축이 없었다 항상 내면이 아닌

외부 세계에서 자신이 속할 자리를 찾아 헤맸다 그가 비로소

온전한 자신을 만난 순간은 어느 편으로도 치우침 없이 스스

로의 기준으로 홀로 서게 되었을 때였다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 이 길은 당신이 내면에 있는 모

순되는 두 세계 한없이 나약하고 뒷걸음치는 비열한 모습들

과 정갈하고 깨끗한 곧은 힘들을 동시에 직시하는 순간에 시

작된다 그리고 이 길은 두 세계 속에 들어가 이리저리 휩쓸리

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세계를 밟고 우뚝 올라서서 스스로

가 중심이 됨으로써 앞으로 펼쳐진다

이제 lsquo자아를 찾으라rsquo는 지루하고 흔한 이야기가 더 이상 빤

하거나 우습지 않다 묵직한 울림이 되어 나를 흔든다 그냥

나만 붙잡고 흔드는 것이라면 손사래 쳐 뿌리치겠는데 내가

밟고 있던 땅 속해 있던 세계를 뿌리째 흔들어 버린다 읽는

내내 속이 답답하고 나에게 화가 난다 그런데 이렇게 마구

혼나면서 이상하게도 후련한 구석이 있다 호통을 치는 데미

안이 사실은 우리를 응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막연

하고 무기력한 안개에 휩싸여 있을 때 데미안은 그만의 방

식으로 우리에게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준다 물론 갈 방향을

정해준다거나 각자의 사정을 듣고 상담을 해주는 것은 아니

다 오로지 궁지로 몰아세울 뿐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사람들

은 잊고 있던 lsquo나 자신rsquo을 일깨운다 아 그동안 lsquo나rsquo에 대해 생

각해본 적이 있던가 라는 정도만이라도 좋다 이 물음이 바로

여정의 시작이니까

그렇게 스스로에게 묻고 나면 더 이상 전처럼 살 수는 없기 때

문이다 아니라면 자기 자신에게 면목이 없을 것이다 이 무서

운 책이 우리를 혼내고 몰아치면서도 여전히 영원한 고전이자

필독서로 사랑 받는 이유다

lsquo우리들 속에는 모든 것을 아는 한 사람이 있다rsquo고 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혼이 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혼

이 났다는 것은 자신 안에 있는 lsquo그 사람rsquo이 말을 하기 시작했

다는 뜻이니까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목소리가 희미하

고 멀리 있다 하여도 숨죽여 귀 기울이는 일 자체가 자신에게

로 가는 과정임을 잊지 말고

편집자반 11기 배예리

『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민음사 20001220

Demian Die Geschichte von Emil

Sinclairs Jugend(1919)

32

박세길 인터뷰

진정한 역사가는 과거에 파묻히지 않는다옥(獄)에서 옥(玉)을 만든 작가 박세길 인터뷰

박세길 저자는 처녀작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로 80년대

대표 역사서 자리를 꿰찬 분입니다 1986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감되었을 때 감옥에서 역사책을 읽으며

사회 모순에 대해 고민했고 출소하자마자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집필했습니다 정권 탄압 속에서 왜곡된

현대사를 바로 잡았다는 의미를 지닌 이 대표작은 오랫동안

고시생과 대학생들의 필독서로 꼽혔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읽은 박세길 저자의 저서는 지난 6월 출간한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입니다 기사를 쓰고 편집할 때 청년 세대를

겨냥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박세길 저자는 역시나

청년들의 미래에 큰 관심을 갖고 계셨습니다 취업을

눈앞에 둔 서울출판예비학교 학생들이 가져야 할 자세를

여쭸습니다

출판학교에서 강의하신 한 선생님은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가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와

더불어 80년대 인문학의 양대

산맥이라고 하셨습니다

책의 성공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강의

요청이 많이 들어왔어요 먹고사는

경제적인 문제도 해결됐습니다

몇 부 팔렸는지는 잘 모릅니다

출판사에서 기밀 사항이라고

하더군요 요즘은 마케팅 차원으로도

몇 쇄 몇 부인지 밝히지만 그때는

세금 문제를 피해가기 위해서인지

쉬쉬하던 시절이었나 봅니다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는 대학

선후배끼리도 많이 물려주는 책이라고

들었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의 쉬운 설명이

좋았습니다 더불어 어떤 사명감을 안고 썼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완성하기에 앞서 어떤 목표를

두셨나요

청년 세대가 외환위기 이후 집중적인 희생양으로 전락하면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드러내면서 여기에

머물지 않고 청년 세대의 잠재력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들이 역사 무대 한복판에 진출해 자기 몫을 다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습니다

역사 분야는 시장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역사 혹은 현대사가 주목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통해 얘기하자면

80년대 후반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lsquo왜곡된

역사를 바로 알자rsquo는 시각 교정의 욕구가 있었던

차에 제 책이 나름 부응했는지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시기가 적절했던 셈이죠

2012년 대선 후 역사 분야가 잠시 반짝했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금세 시들었다고

하더군요 당시 역사 분야 책들이 일반 독자가

읽기에 다소 어렵거나 출간한 지 오래된 것들

위주였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돋을세길

출판학교에서 강의하신 한 선생님은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가 유홍준 교수의

책의 성공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강의

하더군요 요즘은 마케팅 차원으로도

선후배끼리도 많이 물려주는 책이라고

역사 분야는 시장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역사 혹은 현대사가 주목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통해 얘기하자면

80년대 후반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lsquo왜곡된

역사를 바로 알자rsquo는 시각 교정의 욕구가 있었던

차에 제 책이 나름 부응했는지 큰 반향을

읽기에 다소 어렵거나 출간한 지 오래된 것들

위주였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의 저자

33

2012년 대선 후 역사 분야가 관심을 받았던 것은

보수층의 재집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한

불안 때문일까요

맞습니다 그러나 마땅한 책이 없어서 그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역사 분야에서 베스트셀러를 내기

위해서는 시기가 맞아 떨어지고 내용 또한 대중이 원하는

것을 담고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를 편집한 lsquo생각정원rsquo

출판사의 정희용 편집자에게 감사 표시를 하셨습니다

어떤 편집자를 선호하시나요

간단합니다 편집자는 철저히 독자 입장에서 독자와 작가

사이의 간극을 줄여줘야 합니다 예를 들면 어려운 내용을

과감히 생략하고 다음 기회로 미루도록 설득한다거나 좌파

운동권 색채가 너무 강한 문장을 조금 순화하는 것 등입니다

어떤 내용이 이번 책에 꼭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선택을

도와줘야 합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을 작가님께서 직접

독자들에게 홍보하신다면 카피 문구를 짧게 제시할 수

있을까요

청년 세대 희망 찾기 갑갑한 현실을 어떻게 타개할 수

있을지 그 답을 찾아보는 길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취업 후 첫발을 내디딜 서울출판예비학교 11기

학생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출판 또한 돈을 벌어야한다는 기본 전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출판계를 지켜본 결과 뭔가 소명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오래

살아남았습니다 출판학교 역대 대표 중 일부는 나와 관계가

있는 사람들인데 모두 고유한 소명의식을 갖고 출판계에

뛰어들었습니다 때로는 상업주의 안에서 재주도 부리곤

했지만 어쨌든 분야 내에서 고유한 캐릭터를 구축했습니다

출판학교 학생들이 출판 상황을 이해하고 자신을 역할을

정하는 개인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비전 중심의 경영을

하는 회사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지만 개인 비전을 기업

비전으로 나아가 사회 비전으로 접목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과거에 안주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부분을

출판계에서는 SNS 등 인터넷 환경을 통한 마케팅으로

이해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SNS망 자체에서 무엇이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건 사람과

사람이 서로 소통하고 공감하는데 필요한 도구입니다

콘텐츠 중심의 사고가 중요하고 그것이 전제되지 않을 때

SNS는 착각에 불과하며 성공할 수 없습니다 필요한 콘텐츠

중심의 사고를 가지고 철저하게 진행하지 않으면 그 공간에서

허망하게 헤엄만 칠 뿐 입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SNS에서

맥없이 헤엄치다 익사하는 경우를 볼 수 있을 겁니다

콘텐츠와 마케팅의 영역을 하나로 보는 것과 따로

보는 것 어떤 것이 독자를 위하는 것일까요

출판 마케팅은 책을 기획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에서부터

개입돼야 하고 그 과정에 독자를 참여시키는 방식을

고민해야 합니다 미국 네브래스카주립대학의 이상문

교수는 lsquo밀실 안에서의 혁신은 끝났다rsquo고 얘기합니다

개방된 체제에서 독자 곧 소비자 사용자의 참여 하에 함께

만들어갈 때 혁신은 이뤄진다고 합니다 출판사의 비전이

브랜드로 연결될 때 독자는 자발적으로 의견을 주고받고

싶어 할 겁니다

마케터반 11기 이창환

디자

인 사

공예

Page 24: 서울출판예비학교 웹진 _5호 2015

24

9시 30분 합정역 1번 출구 앞

ldquo누나rdquo 소리에 쳐다보니 반가운 공 총무의 얼굴이 보였다 정류장

앞으로 길게 늘어선 줄에 합류하여 파주로 날 데려다 줄 2200번

버스를 기다리고 있으니 반가운 얼굴들이 계속 나타났다 한 대의

버스를 보내고서야 겨우 2200번 버스에 탑승해 파주로 출발할 수

있었다

10시 15분 파주 lsquo다산교 앞rsquo 정류장 하차

4개의 정류장 총 57분이 걸린다고 알려준 N사 지도 어플의 정보와는

달리 30분 만에 파주에 도착했다 일찍 도착해 먹을 것을 찾아 헤맨

예비 마케터들은 편의점에서 주린 배를 채웠고 lsquo지혜의 숲rsquo을 살짝

염탐하며 11시까지 시간을 보냈다

11시 05분 보진재 2층

1912년 설립되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인쇄소인 보진재 관계자

분이 나와 간단히 인사 말씀을 하고 각 반의 인솔자를 소개해주셨다

마케터반의 인솔자는 서동관 과장님 디자인반 편집자반 마케터반

순으로 견학을 시작했다

11시 15분 보진재 견학 시작

제일 먼저 본 곳은 제판실이었다 필름 인쇄가 줄어들고 CTP로

대체되는 추세지만 어떤 분들은 여전히 필름 작업을 하고 계셨다

이유를 물어보니 서동관 과장님은 예전 필름이 남아 있기도 하고

출판사에 따라 필름을 고집하는 곳이 있다고 하셨다

한번에 5도 인쇄가 가능한 기계를 보는 중에 서 과장님이 말씀하셨다

ldquo한 유닛(unit)당 23억 정도 해요rdquo 그렇다면 유닛 다섯 개가

돌아가고 있으니 적어도 10억짜리 기계라고 내 눈에 보이는 건 그냥

낡고 큰 기계인데 10억이 넘는다니 놀랐다 또 과장님께서 자랑스레

말씀하신 한 가지 잉크 농도 조절을 자동으로 하는 기계가 보급된

곳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었다 원래는 사람이 눈으로 보고 수정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재판을 찍을 경우 초판과 동일한 색상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있지만 보진재는 기계가 자동으로 조정해주어 수월한

작업을 할 수 있다고 하셨다

매염실도 보고 제본실도 구경했다 인쇄된 종이를 접지하고 제본을

마친 후 마지막으로 제단을 하면 책이 완성되어 나왔다 그 모든

과정을 보고 난 후 서 과장님이 건넨 완성된 책의 무게는 보통의

그것보다 조금 더 무겁게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윤전실이었다 견학 당일은 작업이 없어서

비어있던 윤전실이지만 윤전실이 주는 무게감은 컸다 윤전실은

롤(roll)로 인쇄하는 곳으로 8개의 롤이 양면 인쇄를 하고 건조와

접지까지 한 번에 가능한 기계도 있었다 대량생산을 위한 곳으로

주로 교과서나 EBS 학습지를 인쇄한다고 하셨다

12시 20분 견학 끝

1시간을 조금 넘긴 견학을 끝내고 밖으로 나오니 코가 따갑고 목이

말랐다 기계가 먼지를 빨아들여준다고는 하지만 수없이 많은

종이가 존재하는 공간에서의 종이 냄새는 강력했던 것이다 책이

제작되는 과정은 실제로 보니 다양하고 복잡했다 자동화가 많이

되어있지만 사람의 손길 없이는 절대 완성될 수 없는 과정들을 보며

책이 완성되기까지의 노력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lsquo책이 어떻게

만들어진다rsquo를 배우다가 lsquo책이 이렇게 만들어진다rsquo를 보니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예비 출판 마케터의

길로 들어선 후에 새로운 것을 보고 배울 수 있었는데 보진재 견학은

그 중에서도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책을 완성시키기 위한 모든 과정이

저마다의 몫을 하고 있었다 서울출판예비학교 졸업 후 출판계에

들어섰을 때 나는 과연 어떤 몫을 할 수 있을까 남은 2개월을 조금은

더 열정적으로 보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마케터반 11기 최다은

1 일일탈

학교 밖 견학 후기

피부로 와 닿는 책의 감촉 책의 냄새 책의 소리 보진재에서 책이 인쇄되는 과정을 만나다

필름과 인쇄판이 만들어지는 과정

25

우리가 이제 각자 편집자 마케터 디자이너가 되어 책 만드는 일을

시작하면 우리의 책은 이곳에서부터 그 lsquo탄생rsquo을 시작할 것이다 책의

근간이 되는 종이가 만들어지는 곳 한솔제지 공장에 다녀왔다 학기

초에 책을 파는 서점을 견학한 뒤 그 다음으로 출판사 종이에 활자를

찍어내는 인쇄소 그리고 마지막으로 lsquo종이rsquo를 만드는 제지 공장을

찾은 것이다 책이 만들어지는 순서대로라면 우리가 다녀온 순서를

거꾸로 해서 다녀왔어야 했지만 우리는 반대로 실제 과정을 거슬러

올라간 것이다 이렇게 거슬러 올라가는 과정에서 오히려 편집자란

직업에 겸허해질 수 있었다 가끔은 편집자가 책을 만드는 모든

과정 위에 군림하는 것 같이 느껴지지만 책의 물성을 만들어내는

거대한 기계 앞에서 우린 한없이 작아지기도 한다 lsquo한 권의 책rsquo이

만들어지려면 이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함을 이해해야 했다 이렇게도

복잡하고 힘겹게 만들어지는 책의 가치를 한 번 더 깊이 생각하게 된

계기였다 책이라는 건 의미가 담긴 조각들의 집합체이자 종이를

보기 좋게 물성화한 것 이론적으로야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눈으로 보고 느끼는 것과는 천지차이다

날씨마저 좋았던 9월 11일 평소보다 한 시간이나 이른 8시

30분에 세 반 학우들은 눈도 제대로 못 뜬 채 집합했다 대전까지

간다니 마치 여행가는 것 같은 살짝 들뜬 기분까지 안고 아침도 못

챙겨먹고 나왔을 우리를 생각해서 빵과 우유까지 준비한 한솔제지

측의 세심한 배려에 감동했다 배도 채우고 부족한 잠도 보충해가며

2시간 넘게 달려 신탄진 공장에 도착했다 도착하자 보이는 우리를

환영하는 현수막에 2차로 감동했다 우리를 위해 정말 많은 준비를

하셨구나 느낀 순간이었다

신탄진 공장 강당에 들어가서 간단한 공장 소개를 먼저 들었다

그리고 뒤이어 종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경청했다 수업 때보다

학생들의 집중력이 더 높아 보였던 건 내 착각이었길 종이는

1퍼센트의 펄프와 99퍼센트의 물로 이루어진단다 그래서 전반적인

공 정 의 대 부 분 은 물 을 처 리 하 기 위 한 과 정 이 나 다 름 없 었 다

생각보다 종이는 순수한 물질이라고 생각했다 종이(paper)의

어원은 이집트의 파피루스(papyrus)에서 왔다고 한다 중국의

lsquo채륜(蔡倫)rsquo이라는 사람이 제일 먼저 발명했고 고려시대에

일본으로 넘어간다 일본에 가장 마지막으로 넘어갔지만 종이의

기술력은 현재 일본이 가장 좋다 원료rarr초지rarr코팅 등의 공정을 거쳐

종이가 완성되는데 마지막 코팅 공정을 여자의 화장에 비유한 것

역시 기억에 남는다 코팅이 그렇게나 대단한 과정이라니

공장 안으로 들어가서는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시끄러워서 설명을

제대로 듣진 못했지만 앞서 들었던 설명을 떠올리며 기계들을

관찰했다 인쇄소에서 본 광경들도 거대하고 박력 있었지만 여긴

그보다 더 거친 느낌이었다 책은 서점에 놓여있을 때는 그렇게

얌전하건만 태어날 땐 이렇게 시끄럽다 또한 막 태어난 종이는

거대하고 또 거대했다 다들 마치 거대한 두루마리 휴지 같다고들

했다

견학을 다 마치고 다시 대전 공장으로 이동해 다 같이 점심 식사를

했다 기대 이상으로 맛있는 밥에 또 감동 더 힘내서 견학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아쉽게도 대전 공장 안에는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라 그 힘()을 발휘하진 못했다 대전 공장은 신탄진 공장과

다르게 책에 쓰이는 것이 아닌 제품 포장용 박스 종이컵 등 다른

용도에 쓰이는 종이를 만드는 곳이었다 그 과정의 차이를 눈으로

비교하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마지막으로 좋은 선물까지 손에

받아들고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다시 서울로 향했다

언제나 시작은 중요하다 각자의 일에 빠져들게 되면 점점 잊게 될

그 시작을 눈에 담고 오래 기억하기 위해 다녀왔다고 생각한다 요즘

초심을 잃었다는 생각이 종종 드는데 책에게도 초심이 있다면 바로 이

곳일까 시작의 의미에 대해 다시 곱씹어보았다

편집자반 11기 박혜원

우리의 글과 그림이 펼쳐질 종이의 탄생 한솔제지 신탄진 공장 견학

거대한 롤(상) 한솔제지 공장 앞에서 (하)

26

화양연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삶과 문학에 취하다

편집자반 한국문학 동아리 lsquo공감rsquo 그 대담의 현장

훗날 서울출판예비학교를 떠올릴 때 가장 즐거운 시간으로 기

억되는 날들은 동아리 활동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들의

화양연화(花樣年華)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 중

의 하루를 소개한다 문예창작학과를 전공한 문학소녀 김한나

학우를 필두로 창단된 편집자반 내 한국문학 동아리 lsquo공감rsquo은

모임 전에 한국작가를 한 명 정해 단편 두 편을 함께 읽고 키워

드나 질문을 스스로 뽑아 글을 써왔다 모여서 때로는 소설의

플롯이나 주제 문체에 대한 열띤 토론을 하고 때로는 작가의

외모()와 같은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며 삼천포로 빠지기도 했

다 우리끼리만 듣기엔 아쉽다 이 즐거운 대화를 모두에게 들

려주고 싶었다 이날 모임에선 김영하 작가의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단편집 속의 두 단편 lsquo엘리베이

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이하 엘리베이터)rsquo와 lsquo사진

관 살인사건(이하 사진관)rsquo에 대해 이야기했다 여기서는 lsquo엘리

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rsquo를 읽고 토의한 내용을

실었다

한나 참고로 김영하는 사람의 욕망에 대해 천착하는 작가야

그런 특성이 엘리베이터에는 안 나와 있는데 사진관에서는

잘 드러나 있어

상화 백가흠 작가에게 소설창작론 강의를 들었는데 그분이

소설의 기법을 설명하면서 알레고리랑 아이러니를 얘기했어

알레고리가 인물이나 소재를 비유적으로 설명하는 거래 예를

들어 핸드폰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다른

것에 핸드폰을 빗댐으로써 소설을 풀어가는 거

야 아이러니는 속도감 있게 이야기를 전개함으

로써 부조리나 모순을 드러내는 건데 김영하가

아이러니의 대표적인 작가래 단편인데도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내면보다는 사건이 일어나는

걸로 소설을 끌어가는 작가 우리가 지난 모임

에서 성석제를 굉장한 이야기꾼이라고 했잖아

그런데 난 김영하가 훨씬 이야기꾼스럽게 느껴

졌어 속도감 있고 lsquo이렇게 몰입을 할 수 있나rsquo

싶고 지난 모임들에서 읽었던 손보미나 편혜영

소설의 경우는 분위기나 주인공의 심정 내면에

의미를 부여해 야 했는데 김영하의 소설은 덮

자마자 아이러니가 느껴지면서 lsquo아 세상은 왜

이래rsquo 말하게 만들었어

법열 나는 엘리베이터 읽고 딱 lsquo뫼비우스의 띠rsquo가 생각났거든

뫼비우스의 띠가 안하고 겉이 구분이 안 되잖아 끝과 시작이

어딘지도 모르고 lsquo나rsquo가 겪는 상황이 현실인지 아닌지 구분이

안 되는 느낌 마지막에 lsquo나rsquo가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가 존재

하기는 했는지 혼란스러운 느낌을 받잖아 그게 앞의 환상적

인 부분이랑 맞물리면서 하나가 되는 느낌이라 뫼비우스의 띠

가 생각났어

상화 lsquo나rsquo가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구해주려고 고분군투하

다가 나중에 자기가 엘리베이터에 갇히잖아

오권 낀 남자의 발을 보면서 느꼈던 감상이 사실은 자기를 구

하고 싶었던 마음인 거지

(일동 오~ 그렇게도 볼 수 있네)

오권 무한도전의 무한상사 특집도 생각났어 뜬금없이 휴지

사용하는 길이에 대해 회의하는 장면에서 엘리베이터는 갇힌

사회 서로를 돌아보지 않는 사회를 의미하는 것 같아

한나 나는 반대로 오히려 엘리베이터를 희망적인 존재로 봤

거든 아파트도 그렇고 회사도 그렇고 각자 자신의 공간 안에

서 살다가 서로 만날 수 있는 장소는 엘리베이터 밖에 없으니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김영하 지음

문학동네 20100216

동아리 후기

27

까 lsquo나rsquo가 회사 엘리베이터 안에 여자와 같이 갇히잖아 사실

은 갇히지 않았으면 대화도 안하고 지나쳐 갔을 텐데 남자는

자기가 아침부터 버스 사고도 나고 성추행범으로 몰렸다고 얘

기하고 또 남자의 담배 피워도 되냐는 말에 여자는 담배에 대

한 불평불만을 속사포처럼 얘기하고 엘리베이터라는 공간이

아니었다면 이런 대화 자체가 없었겠지

오권 엘리베이터 타면 사람들이 하나같이 층수 바뀌는 것만

쳐다보고 있잖아

상화 요즘은 스마트폰

오권 자기 얘기를 하고 싶은 것 같아 하지만 상대의 얘기는

안 들어 lsquo너의 얘기는 관심 밖이지만 내가 불편한 것에 대한

얘기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하겠어rsquo라는 느낌

한나 그리고 우스웠던 게 볼일 보고 휴지 몇 칸 쓰는지 회의에

서 얘기하는 건hellip 사실 굉장히 사적인 얘기잖아 (일동 하하

하) 서로에 대해 다른 얘기는 일절 하지 않으면서 회의 내용은

개인적이고 사적이라니 아이러니한 거지

수경 진짜 웃기지 않았어 lsquo나rsquo가 자원 재활용 문제에 대한 중

대 보고가 있다고 계속 빨리 가야한다고 했던 게 겨우 그거야

상화 겨우 이딴 회의하려고 지금 엘리베이터에 낀 사람 놔두

고hellip 생명이 더 중요한데 지금 휴지 구하려고hellip

(일동 하하하)

한나 lsquo나rsquo가 불쌍했던 이유가 자기한테 닥친 일들은 lsquo할 수 없

지 뭐rsquo 이런 식으로 넘기는데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 걱정하고

갇힌 여자 걱정하고hellip 정작 자기 걱정은 안 해

오권 영화 lt라이터를 켜라gt 봤어 조폭들한테 얻어맞으면서

도 주인공은 무조건 자기 라이터만 찾겠다고 그러거든 이 소

설의 lsquo나rsquo와 비슷한 느낌이 들더라고 그 영화에서는 라이터가

주인공의 존재를 투영하는 소재거든 lsquo나rsquo는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구해야만 자기가 산다는 느낌을 받은 거라 해석하면

너무 나간 건가

법열 아니요 형이 아까 지적해준 게 와 닿았어요 그 고군분

투가 결국 자기를 구하려는 노력이라는 지적이요

상화 그나마 lsquo나rsquo가 이 소설에서 제일 인간적이지

수경 어딘가 찌질한 느낌도 들어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와

lsquo내rsquo가 동류라고 자각하고 연민을 갖는 느낌이었거든 lsquo나rsquo가

인간적이고 윤리적이라는 생각은 나는 글쎄hellip 더 적극적으

로 할 수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 자기 사이클에서 벗어나

지 않는 한도 내에서 걱정만 하잖아 소설 안에서 비극과 희

극이 번갈아 가며 나타나는데 트럭과 버스가 충돌했을 때

lsquo나rsquo는 lsquo버스 카드 일로 충돌하지 않게 되어 적이 기뻤다rsquo고

생각해 버스 운전사는 트럭 백미러에 가슴이 받혀서 죽었는

지도 모르는데 lsquo다행히 나는 허리가 좀 뻐근한 것만 빼면 별

다른 상처가 없는 듯했다rsquo 이런 생각들을 하는 게 좀 섬뜩했

민희 사람은 다 이중성을 가지고 있잖아 나를 보는 듯했어

만약 학교 가는 길에 엘리베이터에 낀 사람을 봤다면 그렇

지만 나도 얼마나 바빠 몇 분 늦으면 지각 체크 당하고 출석

80퍼센트를 못 채울 수도(일동 웃음) 있는 상황이라면 내

가 그 남자를 구할 수 있을까 일단 지나치고 119에 전화하려

고 했으나 핸드폰이 없는 상황에 나도 처할 수 있는 거잖아 나

만 생각하는 잔인한 면도 내 안에 있고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

도 내 안에 있어 이런 찌질한 모습도 나고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정의롭게 구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상화 기준이 다른 것 같아 lsquo나rsquo 정도면 착하다고 생각했거든

수경 주변 사람들이 약간 마네킹 같지 않아 주인공 주변에

장치되어있던 다른 사람들이 너무 비인간적이기 때문에 lsquo나rsquo

가 돋보이는 거지 lsquo나rsquo는 지극히 평범한 우리 모습 같아 내가

어떻게 할 생각은 없고 궁금하기만 한 거야

민희 그 궁금함과 찜찜함도 죄책감이라 생각돼 아 내가 어떻

게 해줬어야 했나

한나 책임 회피일까

상화 그래서 나는 키워드 뽑은 것 중 하나가 119야 구해주고

싶으면 직접 내 손으로 잡아 빼주던가 엘리베이터를 들어 올

릴 사람을 모아야 했는데 신고 생각만 하잖아 이미 이건 누

가 대신 해결해줘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그나마 우리

사회에서 사고를 수습해주는 건 119밖에 없고 조선시대에는

119같은 거 없고 마을 사람들이 모여 구해줬을 텐데 어쩔 수

28

없는 현대인의 단상이긴 해 현대가 분업사회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들 바쁘고 삶이 개인화 파편화되어 있으니까 119 같

은 집단이 필요한 거지 그래서 난 119를 신의 영역이라고 썼

어 lsquo나rsquo는 119를 거의 신적인 존재처럼 생각하잖아 부르면 모

든 게 해결될 것처럼 핸드폰 빌리고 공중전화 찾고 그런데 막

상 교통사고 현장에서 119 대원에게 면대 면으로 얘기를 했더

니 그들은 무슨 그따위 장난을 하냐고 말해 구조도 실은 신이

아니라 사람이 하는 일이고 그 사람이 관심이 없으면 묻히는

거지

오권 전화를 거는 것과 직접 구해주는 것의 차이가 큰 것 같아

자기가 구해주는 건 적극적인 행동이고 119에 전화하는 건 스

스로 최소한 양심적이긴 하다고 여기는 행동

수경 그런데 엘리베이터에 낀 사람을 아무 것도 모르는 일반

인이 어떻게 했다가는 더 위험해질 수도 있잖아

오권 맞아 사회가 시스템화하고 고도화될수록 각자의 업무가

분업화되었고 전문분야가 생겨났으니까 옛날 같았으면 애 낳

으면 그냥 동네 아주머니가 애 받고 어미가 죽으면 젖동냥 다

녔는데hellip 이젠 사고가 나면 생각이 119에 먼저 미치는 시대가

된 거지

수경 그래서 어딘가에 널브러져 다친 인간이 아니라 엘리베이

터라는 공간에 낀 남자를 설정한 것 아닐까 엘리베이터는 현

대화의 상징이잖아

한나 lsquo나rsquo도 어쩔 수 없는 게 출근 시간에 쫓겨서 시계를 계속

봐 먹고 사는 일이니까

오권 출근했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다시 집으로 돌아가

낀 사람을 구해주면 굉장히 희망찬 소설로 바뀔 텐데hellip (일동

웃음)

수경 이 소설로 현대 사회의 폐단은 다 얘기할 수 있겠는데

상화 김영하는 천재인 것 같다

누군가 그리고 잘생겼잖아

누군가 잘생긴 거야

누군가 지적인 분위기가 있어서 좋아 (한참 얘기)

한나 또 인상 깊었던 게 구두에 집착하는 거 lsquo나는 날렵한 치

타처럼hellip 구두를 가지고 엘리베이터에서 빠져나오는 데 성공

했다 허탈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rsquo는 구절

오권 자살한 사람들이 구두를 가지런히 벗어놓는 이미지가 무

슨 상징처럼 있잖아

한나 신발 한 쪽 없이 다녀봤어 계속 기우뚱대서 내가 걷거

나 서 있을 때 내가 잘못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여기서 lsquo나rsquo가

그랬을 거야 사실 lsquo나rsquo처럼 사는 게 정상인데 세상이 잘못된

건데

상화 이 소설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감정표현이잖아 하루 종

일 얼마나 힘들었겠어 처음으로 감정표현을 하니까 불쌍했어

오권 휴머니즘 불쌍론 또 나왔네(일동 웃음) 그럼 이제 사진

관으로 넘어가볼까hellip

편집자반 11기 이상화

2929

책씹는맛 01 냄새라는 경이 lt감각의 박물학gt 후각편을 읽고

냄새에는 언어가 없다 어휘가 부족한 우리는 말문이 막힌

채 불명료한 쾌감과 자극의 바다에서 말을 찾을 수밖에

없다1

이 말은 다이앤 애커먼의 『감각의 박물학』 제 1장 후각에

나오는 구절이다 냄새를 글로 쓰고자 하는 나의 시도가 늘

실패로 귀결되는 이유를 이 구절에서 찾았다 작가의 말처

럼 냄새에 대해 쓴다는 건 언어 밖 세계로 나갔다가 다시

언어로 되돌아오는 길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길에서 헤매

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후각이라는 감각에서 길을

잃는 것은 낭만적인 일이기도 하다 lsquo냄새의 뇌관을 건드리

면 모든 추억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기rsquo2 때문이다 냄새 하

나에 수많은 추억들이 줄줄이 기억의 회로 위로 떠오른다

예를 들면 바다 냄새 하나만 상상해도 그와 관련된 수많

은 기억들이 머릿속에 뒤섞인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바닷가와 관련된 그 모든 추억들이 기억의 영사막에서 한

편의 옴니버스 영화 형태로 내게 다가온다 난 내 기억의

관객이 되어 그 영화를 보다가 견딜 수 없는 그리움에 젖는

다 이 영화에 대한 감상문을 적으려면 나는 말문이 막힌

다 그래서 몇 글자 적다가 결국 글을 쓰기를 멈춘다 굳이

언어로 표현하자면 쓸 수 없는 그리움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1 『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옮김 작가정신 20040720

A Natural History of the Senses(1991) 17쪽

2 같은 책 18쪽

결국 lsquo언어가 존재하는 세계에서 경이는 언어의 칼날 아래

서 쉽게 해부되고 냄새는 자주 혀끝에서 맴돈다rsquo3 냄새의

숭고함 앞에서 우리는 말을 멈춘다 이처럼 냄새는 말할 수

없는 자연의 경이로움과 닮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lsquo냄새가 우리의 마음을 그토록 강하게 움직이는 것은 부분

적으로 그 이름을 부를 수 없기 때문rsquo4이라고 한다 저자는

그렇기에 사람들이 냄새를 lsquo분 냄새 비슷한 펭귄 냄새가

나는 호화로운 화장실 냄새가 나는rsquo 같은 말로 표현할 뿐

이며 냄새에 대한 이름은 주어져 있지 않다고 말한다 또

한 종류는 같아도 강약과 농도가 다른 각각의 냄새에 이름

을 붙여줄 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우린 일상적으로 냄새를

맡으면서도 그 냄새와 멀리 떨어져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명명되지 않은 것은 결국 잊히는 게 아닐까 부를

수 없음에서 오는 경외감과 숭고함이 있을지라도 냄새는

말해져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말할 수 없는 것에 자꾸

만 침묵하기만 해야 할까

감각도 모험의 영역이 될 수 있다 세계 일주만이 세상을

아는 길일까 lsquo나rsquo를 온전히 아는 것이 역설적으로 세상과

가까워지는 일인지도 모른다 나를 알기 위한 길 중 하나가

내가 가지고 있는 감각을 이해하고 그걸 언어로 표현하는

일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어쩌면 우리와 제일 가깝지만 말

하기 낯선 감각 후각을 이해하는 일이 중요한지도 모른다

냄새라는 감각 속에서 우리 모두 길을 잃고 헤매고 모험해

보자 냄새에 나름의 이름을 지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

리고 농도에 따라 냄새를 구분하는 일도 해보자 냄새라는

경이는 우리를 더 이상 침묵으로 이끌지 않을 것이다

디자인반 11기 백가은

3 같은 책 22쪽

4 같은 책 22쪽

『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 옮김

작가정신 20040720

A Natural History of the Senses(1991)

3030

02 현실을 전복시키는 비현실

모호함이 주는 환상성

20세기 중반 중남미 소설은 전통적인 사실주의 서사 구조

를 깨고 현실과 환상을 혼합시키는 새로운 글쓰기 방식으

로 세계문학의 중심에 선다 이 시기에 주목 받은 일련의

중남미 작가들을 가리켜 lsquo붐 세대 작가rsquo라 칭하는데 아르

헨티나의 환상문학 작가 코르타사르는 이 붐 세대 작가군

의 선구자이자 대표 주자 격인 인물이다 그러나 그 문학적

성과와 명성이 무색하게도 국내 독자들에겐 그의 이름이

아직 생소한 것이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에서는 그

의 작품이 중남미 단편 선집에나 몇 편이 번역되었을 뿐 본

격적으로 소개된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중남미 문학을 공부했고 그의 몇 안 되는 번역 작품을 인

상 깊게 읽었던 독자 입장에서 이번에 출간된 코르타사르

의 단편집『드러누운 밤』은 가뭄의 단비처럼 반가운 신간

이다

환상 문학이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J R R 톨킨 류의 판타

지소설 혹은 쥘 베른이나 아이작 아시모프 류의 SF소설을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코르타사르의 환상문학은 이들 범

주에 들어가지 않는다 코르타사르 작품에서 나타나는 환

상이란 토도로프가 정의한 바 있는 환상 그러니까 자연적

인 것과 초자연적인 것 사이의 망설임에서 발생하는 환상

에 가깝다 따라서 판타지소설의 lsquo현실과 동떨어진 환상rsquo

혹은 SF소설의 lsquo설득력 있고 현실감 있는 환상rsquo을 기대하

는 독자라면 아마 십중팔구 그의 작품을 읽고 실망할 것

이다 어쩌면 이게 무슨 환상문학이냐는 푸념을 늘어놓을

지도 모르겠다 역시 가장 좋은 것은 선입관을 버리고 책을

읽는 것이다

코르타사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lsquo모호함rsquo이다 인물이나

배경 묘사에서 제시되는 기본적인 정보도 모호하고 사건의

전개 양상이 가진 당위성도 모호하다 작품 내에서 주요한

스토리 라인을 담당하는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경계도 모

호하며 심지어는 화자의 정체마저 모호한 작품도 있다 이

런 모호함의 향연은 짙게 깔린 안개와도 같아서 독자들은

그 속에서 한 치 앞도 제대로 내다볼 수 없음은 물론이요

이미 지나간 사실조차도 자신이 맞게 인식한 것인지 확신

할 수 없을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무엇이 진짜인지

독자들의 판단을 망설이게 만드는 이런 상태야말로 코르

타사르의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는 환상이란 개념이다 독

자들은 이 환상 속에서 그저 전방을 주시하며 천천히 나아

갈 수밖에 없다

다행스럽게도 코르타사르는 독자들의 시련을 헛되게 하지

않는다 작품의 시작점 일상 세계에 우연히 침투한 lsquo비현

실적인 것rsquo은 안개 속에서 알게 모르게 자신의 지분을 늘려

나간다 그리고 작품의 종점에 다다른 독자들은 비현실이

현실이 되고 현실이 비현실이 되는 이전과는 전혀 새로운

세계와 마주할 것이다 다시 말해 필연과 이성의 법칙이 지

배하는 세계가 우연과 환상이 지배하는 세계로 변하는 것

이다 이러한 세계의 전복은 마치 여기저기 단서를 흩뿌리

고 사람들을 알쏭달쏭하게 만들었다가 결말부에서 모든

것을 폭발시키는 추리소설 혹은 반전영화를 보는 듯한 재

미를 선사한다

그렇다면 코르타사르가 이 소설들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책을 다 읽고 난 독자라면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의문점이다 코르타사르는 자신이 환상문학을 쓰는

이유를 ldquo법칙이나 원칙 혹은 인과관계나 특정한 심리 또

는 잘 그려진 지리학과 같은 체계에 의해 세상이 지배되고

있다는 것에 반대rdquo하고 ldquo우리가 잘 모르며 우리에게 잘 다

가오지 않는 새로운 질서에 관해 생각해보기 위함rdquo이라고

설명한다 짧게 말해 이 세상에 필연이란 존재하지 않으

며 자신은 그것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말이다 이

게 전부다 순문학이라면 거장의 문학이라면 이보다 더 심

오한 통찰 혹은 비판이 있을 것이란 생각에 문장 속 숨겨진

의미를 발견하고자 머리를 싸맬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조

언을 하자면 독서는 독서 그 자체로 즐기면 된다 적어도 이

책에서는 그렇다 모호함과 예상외의 전개 속에서 재미를

느끼고 코르타사르가 묘사하는 세계의 불가지(不可知)성

을 어렴풋하게나마 인식할 수 있다면 이미 그것으로 충분

하다

편집자반 11기 강귀욱

『드러누운 밤』

훌리오 꼬르따사르 지음 박병규 옮김

창비 20141124

La noche boca arribaJulio Cortazar

31

03 얼어붙은 자의식의 바다를깨뜨리고 생명을 불어넣는 책 『데미안』

데미안을 읽고 나서야 그 동안 내가 두 발 딛고 서 있던 땅이

굳고 단단한 대지가 아니라 얼어붙은 바다에 불과했음을 알

았다 데미안은 도끼를 가져와 이 꽁꽁 언 바다를 가차 없이

내리 찍었다 그리고 말했다 얼어붙은 바다를 단단한 땅인

줄 알고 사느니 그 얼음을 깨부수고 그 속에 빠져 죽기 살기

로 허우적대라고 그러면 그 속에서 너는 너 자신을 똑바로 마

주하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성장할 것이라고

주인공 싱클레어도 그를 둘러싸고 있던 세계를 깨뜨려 나가

며 성장한다 그 모든 과정은 결국 진정한 자기 자신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가 깨뜨린 가장 큰 세계는 바로 자신의 사고 체계였다 세상

을 바라보는 기존의 이분법적이던 시각 고정되고 획일화된 시

각을 버렸다 주인공은 세계 안에 심지어는 자신 안에도 선하

고 악하며 밝고 어두운 양극단의 것들이 공존함을 이해하고

두 세계를 끌어안았다 주인공은 귀와 눈을 가리던 장막을 걷

어내 버리고 세상을 바로 보게 되었다 상극인 것들의 괴리로

이루어진 이 모순된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곧 자신 안의 부조

화 또한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스스로에게 다가서는 첫 걸음

이었다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양극단의 세계 사이에서 싱

클레어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며 흔들리기를 반복했다 이

때 그에게는 삶을 지탱할 중심축이 없었다 항상 내면이 아닌

외부 세계에서 자신이 속할 자리를 찾아 헤맸다 그가 비로소

온전한 자신을 만난 순간은 어느 편으로도 치우침 없이 스스

로의 기준으로 홀로 서게 되었을 때였다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 이 길은 당신이 내면에 있는 모

순되는 두 세계 한없이 나약하고 뒷걸음치는 비열한 모습들

과 정갈하고 깨끗한 곧은 힘들을 동시에 직시하는 순간에 시

작된다 그리고 이 길은 두 세계 속에 들어가 이리저리 휩쓸리

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세계를 밟고 우뚝 올라서서 스스로

가 중심이 됨으로써 앞으로 펼쳐진다

이제 lsquo자아를 찾으라rsquo는 지루하고 흔한 이야기가 더 이상 빤

하거나 우습지 않다 묵직한 울림이 되어 나를 흔든다 그냥

나만 붙잡고 흔드는 것이라면 손사래 쳐 뿌리치겠는데 내가

밟고 있던 땅 속해 있던 세계를 뿌리째 흔들어 버린다 읽는

내내 속이 답답하고 나에게 화가 난다 그런데 이렇게 마구

혼나면서 이상하게도 후련한 구석이 있다 호통을 치는 데미

안이 사실은 우리를 응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막연

하고 무기력한 안개에 휩싸여 있을 때 데미안은 그만의 방

식으로 우리에게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준다 물론 갈 방향을

정해준다거나 각자의 사정을 듣고 상담을 해주는 것은 아니

다 오로지 궁지로 몰아세울 뿐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사람들

은 잊고 있던 lsquo나 자신rsquo을 일깨운다 아 그동안 lsquo나rsquo에 대해 생

각해본 적이 있던가 라는 정도만이라도 좋다 이 물음이 바로

여정의 시작이니까

그렇게 스스로에게 묻고 나면 더 이상 전처럼 살 수는 없기 때

문이다 아니라면 자기 자신에게 면목이 없을 것이다 이 무서

운 책이 우리를 혼내고 몰아치면서도 여전히 영원한 고전이자

필독서로 사랑 받는 이유다

lsquo우리들 속에는 모든 것을 아는 한 사람이 있다rsquo고 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혼이 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혼

이 났다는 것은 자신 안에 있는 lsquo그 사람rsquo이 말을 하기 시작했

다는 뜻이니까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목소리가 희미하

고 멀리 있다 하여도 숨죽여 귀 기울이는 일 자체가 자신에게

로 가는 과정임을 잊지 말고

편집자반 11기 배예리

『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민음사 20001220

Demian Die Geschichte von Emil

Sinclairs Jugend(1919)

31

03 얼어붙은 자의식의 바다를깨뜨리고 생명을 불어넣는 책 『데미안』

데미안을 읽고 나서야 그 동안 내가 두 발 딛고 서 있던 땅이

굳고 단단한 대지가 아니라 얼어붙은 바다에 불과했음을 알

았다 데미안은 도끼를 가져와 이 꽁꽁 언 바다를 가차 없이

내리 찍었다 그리고 말했다 얼어붙은 바다를 단단한 땅인

줄 알고 사느니 그 얼음을 깨부수고 그 속에 빠져 죽기 살기

로 허우적대라고 그러면 그 속에서 너는 너 자신을 똑바로 마

주하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성장할 것이라고

주인공 싱클레어도 그를 둘러싸고 있던 세계를 깨뜨려 나가

며 성장한다 그 모든 과정은 결국 진정한 자기 자신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가 깨뜨린 가장 큰 세계는 바로 자신의 사고 체계였다 세상

을 바라보는 기존의 이분법적이던 시각 고정되고 획일화된 시

각을 버렸다 주인공은 세계 안에 심지어는 자신 안에도 선하

고 악하며 밝고 어두운 양극단의 것들이 공존함을 이해하고

두 세계를 끌어안았다 주인공은 귀와 눈을 가리던 장막을 걷

어내 버리고 세상을 바로 보게 되었다 상극인 것들의 괴리로

이루어진 이 모순된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곧 자신 안의 부조

화 또한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스스로에게 다가서는 첫 걸음

이었다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양극단의 세계 사이에서 싱

클레어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며 흔들리기를 반복했다 이

때 그에게는 삶을 지탱할 중심축이 없었다 항상 내면이 아닌

외부 세계에서 자신이 속할 자리를 찾아 헤맸다 그가 비로소

온전한 자신을 만난 순간은 어느 편으로도 치우침 없이 스스

로의 기준으로 홀로 서게 되었을 때였다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 이 길은 당신이 내면에 있는 모

순되는 두 세계 한없이 나약하고 뒷걸음치는 비열한 모습들

과 정갈하고 깨끗한 곧은 힘들을 동시에 직시하는 순간에 시

작된다 그리고 이 길은 두 세계 속에 들어가 이리저리 휩쓸리

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세계를 밟고 우뚝 올라서서 스스로

가 중심이 됨으로써 앞으로 펼쳐진다

이제 lsquo자아를 찾으라rsquo는 지루하고 흔한 이야기가 더 이상 빤

하거나 우습지 않다 묵직한 울림이 되어 나를 흔든다 그냥

나만 붙잡고 흔드는 것이라면 손사래 쳐 뿌리치겠는데 내가

밟고 있던 땅 속해 있던 세계를 뿌리째 흔들어 버린다 읽는

내내 속이 답답하고 나에게 화가 난다 그런데 이렇게 마구

혼나면서 이상하게도 후련한 구석이 있다 호통을 치는 데미

안이 사실은 우리를 응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막연

하고 무기력한 안개에 휩싸여 있을 때 데미안은 그만의 방

식으로 우리에게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준다 물론 갈 방향을

정해준다거나 각자의 사정을 듣고 상담을 해주는 것은 아니

다 오로지 궁지로 몰아세울 뿐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사람들

은 잊고 있던 lsquo나 자신rsquo을 일깨운다 아 그동안 lsquo나rsquo에 대해 생

각해본 적이 있던가 라는 정도만이라도 좋다 이 물음이 바로

여정의 시작이니까

그렇게 스스로에게 묻고 나면 더 이상 전처럼 살 수는 없기 때

문이다 아니라면 자기 자신에게 면목이 없을 것이다 이 무서

운 책이 우리를 혼내고 몰아치면서도 여전히 영원한 고전이자

필독서로 사랑 받는 이유다

lsquo우리들 속에는 모든 것을 아는 한 사람이 있다rsquo고 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혼이 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혼

이 났다는 것은 자신 안에 있는 lsquo그 사람rsquo이 말을 하기 시작했

다는 뜻이니까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목소리가 희미하

고 멀리 있다 하여도 숨죽여 귀 기울이는 일 자체가 자신에게

로 가는 과정임을 잊지 말고

편집자반 11기 배예리

『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민음사 20001220

Demian Die Geschichte von Emil

Sinclairs Jugend(1919)

32

박세길 인터뷰

진정한 역사가는 과거에 파묻히지 않는다옥(獄)에서 옥(玉)을 만든 작가 박세길 인터뷰

박세길 저자는 처녀작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로 80년대

대표 역사서 자리를 꿰찬 분입니다 1986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감되었을 때 감옥에서 역사책을 읽으며

사회 모순에 대해 고민했고 출소하자마자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집필했습니다 정권 탄압 속에서 왜곡된

현대사를 바로 잡았다는 의미를 지닌 이 대표작은 오랫동안

고시생과 대학생들의 필독서로 꼽혔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읽은 박세길 저자의 저서는 지난 6월 출간한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입니다 기사를 쓰고 편집할 때 청년 세대를

겨냥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박세길 저자는 역시나

청년들의 미래에 큰 관심을 갖고 계셨습니다 취업을

눈앞에 둔 서울출판예비학교 학생들이 가져야 할 자세를

여쭸습니다

출판학교에서 강의하신 한 선생님은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가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와

더불어 80년대 인문학의 양대

산맥이라고 하셨습니다

책의 성공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강의

요청이 많이 들어왔어요 먹고사는

경제적인 문제도 해결됐습니다

몇 부 팔렸는지는 잘 모릅니다

출판사에서 기밀 사항이라고

하더군요 요즘은 마케팅 차원으로도

몇 쇄 몇 부인지 밝히지만 그때는

세금 문제를 피해가기 위해서인지

쉬쉬하던 시절이었나 봅니다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는 대학

선후배끼리도 많이 물려주는 책이라고

들었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의 쉬운 설명이

좋았습니다 더불어 어떤 사명감을 안고 썼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완성하기에 앞서 어떤 목표를

두셨나요

청년 세대가 외환위기 이후 집중적인 희생양으로 전락하면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드러내면서 여기에

머물지 않고 청년 세대의 잠재력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들이 역사 무대 한복판에 진출해 자기 몫을 다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습니다

역사 분야는 시장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역사 혹은 현대사가 주목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통해 얘기하자면

80년대 후반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lsquo왜곡된

역사를 바로 알자rsquo는 시각 교정의 욕구가 있었던

차에 제 책이 나름 부응했는지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시기가 적절했던 셈이죠

2012년 대선 후 역사 분야가 잠시 반짝했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금세 시들었다고

하더군요 당시 역사 분야 책들이 일반 독자가

읽기에 다소 어렵거나 출간한 지 오래된 것들

위주였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돋을세길

출판학교에서 강의하신 한 선생님은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가 유홍준 교수의

책의 성공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강의

하더군요 요즘은 마케팅 차원으로도

선후배끼리도 많이 물려주는 책이라고

역사 분야는 시장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역사 혹은 현대사가 주목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통해 얘기하자면

80년대 후반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lsquo왜곡된

역사를 바로 알자rsquo는 시각 교정의 욕구가 있었던

차에 제 책이 나름 부응했는지 큰 반향을

읽기에 다소 어렵거나 출간한 지 오래된 것들

위주였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의 저자

33

2012년 대선 후 역사 분야가 관심을 받았던 것은

보수층의 재집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한

불안 때문일까요

맞습니다 그러나 마땅한 책이 없어서 그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역사 분야에서 베스트셀러를 내기

위해서는 시기가 맞아 떨어지고 내용 또한 대중이 원하는

것을 담고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를 편집한 lsquo생각정원rsquo

출판사의 정희용 편집자에게 감사 표시를 하셨습니다

어떤 편집자를 선호하시나요

간단합니다 편집자는 철저히 독자 입장에서 독자와 작가

사이의 간극을 줄여줘야 합니다 예를 들면 어려운 내용을

과감히 생략하고 다음 기회로 미루도록 설득한다거나 좌파

운동권 색채가 너무 강한 문장을 조금 순화하는 것 등입니다

어떤 내용이 이번 책에 꼭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선택을

도와줘야 합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을 작가님께서 직접

독자들에게 홍보하신다면 카피 문구를 짧게 제시할 수

있을까요

청년 세대 희망 찾기 갑갑한 현실을 어떻게 타개할 수

있을지 그 답을 찾아보는 길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취업 후 첫발을 내디딜 서울출판예비학교 11기

학생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출판 또한 돈을 벌어야한다는 기본 전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출판계를 지켜본 결과 뭔가 소명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오래

살아남았습니다 출판학교 역대 대표 중 일부는 나와 관계가

있는 사람들인데 모두 고유한 소명의식을 갖고 출판계에

뛰어들었습니다 때로는 상업주의 안에서 재주도 부리곤

했지만 어쨌든 분야 내에서 고유한 캐릭터를 구축했습니다

출판학교 학생들이 출판 상황을 이해하고 자신을 역할을

정하는 개인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비전 중심의 경영을

하는 회사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지만 개인 비전을 기업

비전으로 나아가 사회 비전으로 접목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과거에 안주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부분을

출판계에서는 SNS 등 인터넷 환경을 통한 마케팅으로

이해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SNS망 자체에서 무엇이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건 사람과

사람이 서로 소통하고 공감하는데 필요한 도구입니다

콘텐츠 중심의 사고가 중요하고 그것이 전제되지 않을 때

SNS는 착각에 불과하며 성공할 수 없습니다 필요한 콘텐츠

중심의 사고를 가지고 철저하게 진행하지 않으면 그 공간에서

허망하게 헤엄만 칠 뿐 입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SNS에서

맥없이 헤엄치다 익사하는 경우를 볼 수 있을 겁니다

콘텐츠와 마케팅의 영역을 하나로 보는 것과 따로

보는 것 어떤 것이 독자를 위하는 것일까요

출판 마케팅은 책을 기획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에서부터

개입돼야 하고 그 과정에 독자를 참여시키는 방식을

고민해야 합니다 미국 네브래스카주립대학의 이상문

교수는 lsquo밀실 안에서의 혁신은 끝났다rsquo고 얘기합니다

개방된 체제에서 독자 곧 소비자 사용자의 참여 하에 함께

만들어갈 때 혁신은 이뤄진다고 합니다 출판사의 비전이

브랜드로 연결될 때 독자는 자발적으로 의견을 주고받고

싶어 할 겁니다

마케터반 11기 이창환

디자

인 사

공예

Page 25: 서울출판예비학교 웹진 _5호 2015

25

우리가 이제 각자 편집자 마케터 디자이너가 되어 책 만드는 일을

시작하면 우리의 책은 이곳에서부터 그 lsquo탄생rsquo을 시작할 것이다 책의

근간이 되는 종이가 만들어지는 곳 한솔제지 공장에 다녀왔다 학기

초에 책을 파는 서점을 견학한 뒤 그 다음으로 출판사 종이에 활자를

찍어내는 인쇄소 그리고 마지막으로 lsquo종이rsquo를 만드는 제지 공장을

찾은 것이다 책이 만들어지는 순서대로라면 우리가 다녀온 순서를

거꾸로 해서 다녀왔어야 했지만 우리는 반대로 실제 과정을 거슬러

올라간 것이다 이렇게 거슬러 올라가는 과정에서 오히려 편집자란

직업에 겸허해질 수 있었다 가끔은 편집자가 책을 만드는 모든

과정 위에 군림하는 것 같이 느껴지지만 책의 물성을 만들어내는

거대한 기계 앞에서 우린 한없이 작아지기도 한다 lsquo한 권의 책rsquo이

만들어지려면 이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함을 이해해야 했다 이렇게도

복잡하고 힘겹게 만들어지는 책의 가치를 한 번 더 깊이 생각하게 된

계기였다 책이라는 건 의미가 담긴 조각들의 집합체이자 종이를

보기 좋게 물성화한 것 이론적으로야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눈으로 보고 느끼는 것과는 천지차이다

날씨마저 좋았던 9월 11일 평소보다 한 시간이나 이른 8시

30분에 세 반 학우들은 눈도 제대로 못 뜬 채 집합했다 대전까지

간다니 마치 여행가는 것 같은 살짝 들뜬 기분까지 안고 아침도 못

챙겨먹고 나왔을 우리를 생각해서 빵과 우유까지 준비한 한솔제지

측의 세심한 배려에 감동했다 배도 채우고 부족한 잠도 보충해가며

2시간 넘게 달려 신탄진 공장에 도착했다 도착하자 보이는 우리를

환영하는 현수막에 2차로 감동했다 우리를 위해 정말 많은 준비를

하셨구나 느낀 순간이었다

신탄진 공장 강당에 들어가서 간단한 공장 소개를 먼저 들었다

그리고 뒤이어 종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경청했다 수업 때보다

학생들의 집중력이 더 높아 보였던 건 내 착각이었길 종이는

1퍼센트의 펄프와 99퍼센트의 물로 이루어진단다 그래서 전반적인

공 정 의 대 부 분 은 물 을 처 리 하 기 위 한 과 정 이 나 다 름 없 었 다

생각보다 종이는 순수한 물질이라고 생각했다 종이(paper)의

어원은 이집트의 파피루스(papyrus)에서 왔다고 한다 중국의

lsquo채륜(蔡倫)rsquo이라는 사람이 제일 먼저 발명했고 고려시대에

일본으로 넘어간다 일본에 가장 마지막으로 넘어갔지만 종이의

기술력은 현재 일본이 가장 좋다 원료rarr초지rarr코팅 등의 공정을 거쳐

종이가 완성되는데 마지막 코팅 공정을 여자의 화장에 비유한 것

역시 기억에 남는다 코팅이 그렇게나 대단한 과정이라니

공장 안으로 들어가서는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시끄러워서 설명을

제대로 듣진 못했지만 앞서 들었던 설명을 떠올리며 기계들을

관찰했다 인쇄소에서 본 광경들도 거대하고 박력 있었지만 여긴

그보다 더 거친 느낌이었다 책은 서점에 놓여있을 때는 그렇게

얌전하건만 태어날 땐 이렇게 시끄럽다 또한 막 태어난 종이는

거대하고 또 거대했다 다들 마치 거대한 두루마리 휴지 같다고들

했다

견학을 다 마치고 다시 대전 공장으로 이동해 다 같이 점심 식사를

했다 기대 이상으로 맛있는 밥에 또 감동 더 힘내서 견학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아쉽게도 대전 공장 안에는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라 그 힘()을 발휘하진 못했다 대전 공장은 신탄진 공장과

다르게 책에 쓰이는 것이 아닌 제품 포장용 박스 종이컵 등 다른

용도에 쓰이는 종이를 만드는 곳이었다 그 과정의 차이를 눈으로

비교하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마지막으로 좋은 선물까지 손에

받아들고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다시 서울로 향했다

언제나 시작은 중요하다 각자의 일에 빠져들게 되면 점점 잊게 될

그 시작을 눈에 담고 오래 기억하기 위해 다녀왔다고 생각한다 요즘

초심을 잃었다는 생각이 종종 드는데 책에게도 초심이 있다면 바로 이

곳일까 시작의 의미에 대해 다시 곱씹어보았다

편집자반 11기 박혜원

우리의 글과 그림이 펼쳐질 종이의 탄생 한솔제지 신탄진 공장 견학

거대한 롤(상) 한솔제지 공장 앞에서 (하)

26

화양연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삶과 문학에 취하다

편집자반 한국문학 동아리 lsquo공감rsquo 그 대담의 현장

훗날 서울출판예비학교를 떠올릴 때 가장 즐거운 시간으로 기

억되는 날들은 동아리 활동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들의

화양연화(花樣年華)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 중

의 하루를 소개한다 문예창작학과를 전공한 문학소녀 김한나

학우를 필두로 창단된 편집자반 내 한국문학 동아리 lsquo공감rsquo은

모임 전에 한국작가를 한 명 정해 단편 두 편을 함께 읽고 키워

드나 질문을 스스로 뽑아 글을 써왔다 모여서 때로는 소설의

플롯이나 주제 문체에 대한 열띤 토론을 하고 때로는 작가의

외모()와 같은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며 삼천포로 빠지기도 했

다 우리끼리만 듣기엔 아쉽다 이 즐거운 대화를 모두에게 들

려주고 싶었다 이날 모임에선 김영하 작가의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단편집 속의 두 단편 lsquo엘리베이

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이하 엘리베이터)rsquo와 lsquo사진

관 살인사건(이하 사진관)rsquo에 대해 이야기했다 여기서는 lsquo엘리

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rsquo를 읽고 토의한 내용을

실었다

한나 참고로 김영하는 사람의 욕망에 대해 천착하는 작가야

그런 특성이 엘리베이터에는 안 나와 있는데 사진관에서는

잘 드러나 있어

상화 백가흠 작가에게 소설창작론 강의를 들었는데 그분이

소설의 기법을 설명하면서 알레고리랑 아이러니를 얘기했어

알레고리가 인물이나 소재를 비유적으로 설명하는 거래 예를

들어 핸드폰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다른

것에 핸드폰을 빗댐으로써 소설을 풀어가는 거

야 아이러니는 속도감 있게 이야기를 전개함으

로써 부조리나 모순을 드러내는 건데 김영하가

아이러니의 대표적인 작가래 단편인데도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내면보다는 사건이 일어나는

걸로 소설을 끌어가는 작가 우리가 지난 모임

에서 성석제를 굉장한 이야기꾼이라고 했잖아

그런데 난 김영하가 훨씬 이야기꾼스럽게 느껴

졌어 속도감 있고 lsquo이렇게 몰입을 할 수 있나rsquo

싶고 지난 모임들에서 읽었던 손보미나 편혜영

소설의 경우는 분위기나 주인공의 심정 내면에

의미를 부여해 야 했는데 김영하의 소설은 덮

자마자 아이러니가 느껴지면서 lsquo아 세상은 왜

이래rsquo 말하게 만들었어

법열 나는 엘리베이터 읽고 딱 lsquo뫼비우스의 띠rsquo가 생각났거든

뫼비우스의 띠가 안하고 겉이 구분이 안 되잖아 끝과 시작이

어딘지도 모르고 lsquo나rsquo가 겪는 상황이 현실인지 아닌지 구분이

안 되는 느낌 마지막에 lsquo나rsquo가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가 존재

하기는 했는지 혼란스러운 느낌을 받잖아 그게 앞의 환상적

인 부분이랑 맞물리면서 하나가 되는 느낌이라 뫼비우스의 띠

가 생각났어

상화 lsquo나rsquo가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구해주려고 고분군투하

다가 나중에 자기가 엘리베이터에 갇히잖아

오권 낀 남자의 발을 보면서 느꼈던 감상이 사실은 자기를 구

하고 싶었던 마음인 거지

(일동 오~ 그렇게도 볼 수 있네)

오권 무한도전의 무한상사 특집도 생각났어 뜬금없이 휴지

사용하는 길이에 대해 회의하는 장면에서 엘리베이터는 갇힌

사회 서로를 돌아보지 않는 사회를 의미하는 것 같아

한나 나는 반대로 오히려 엘리베이터를 희망적인 존재로 봤

거든 아파트도 그렇고 회사도 그렇고 각자 자신의 공간 안에

서 살다가 서로 만날 수 있는 장소는 엘리베이터 밖에 없으니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김영하 지음

문학동네 20100216

동아리 후기

27

까 lsquo나rsquo가 회사 엘리베이터 안에 여자와 같이 갇히잖아 사실

은 갇히지 않았으면 대화도 안하고 지나쳐 갔을 텐데 남자는

자기가 아침부터 버스 사고도 나고 성추행범으로 몰렸다고 얘

기하고 또 남자의 담배 피워도 되냐는 말에 여자는 담배에 대

한 불평불만을 속사포처럼 얘기하고 엘리베이터라는 공간이

아니었다면 이런 대화 자체가 없었겠지

오권 엘리베이터 타면 사람들이 하나같이 층수 바뀌는 것만

쳐다보고 있잖아

상화 요즘은 스마트폰

오권 자기 얘기를 하고 싶은 것 같아 하지만 상대의 얘기는

안 들어 lsquo너의 얘기는 관심 밖이지만 내가 불편한 것에 대한

얘기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하겠어rsquo라는 느낌

한나 그리고 우스웠던 게 볼일 보고 휴지 몇 칸 쓰는지 회의에

서 얘기하는 건hellip 사실 굉장히 사적인 얘기잖아 (일동 하하

하) 서로에 대해 다른 얘기는 일절 하지 않으면서 회의 내용은

개인적이고 사적이라니 아이러니한 거지

수경 진짜 웃기지 않았어 lsquo나rsquo가 자원 재활용 문제에 대한 중

대 보고가 있다고 계속 빨리 가야한다고 했던 게 겨우 그거야

상화 겨우 이딴 회의하려고 지금 엘리베이터에 낀 사람 놔두

고hellip 생명이 더 중요한데 지금 휴지 구하려고hellip

(일동 하하하)

한나 lsquo나rsquo가 불쌍했던 이유가 자기한테 닥친 일들은 lsquo할 수 없

지 뭐rsquo 이런 식으로 넘기는데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 걱정하고

갇힌 여자 걱정하고hellip 정작 자기 걱정은 안 해

오권 영화 lt라이터를 켜라gt 봤어 조폭들한테 얻어맞으면서

도 주인공은 무조건 자기 라이터만 찾겠다고 그러거든 이 소

설의 lsquo나rsquo와 비슷한 느낌이 들더라고 그 영화에서는 라이터가

주인공의 존재를 투영하는 소재거든 lsquo나rsquo는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구해야만 자기가 산다는 느낌을 받은 거라 해석하면

너무 나간 건가

법열 아니요 형이 아까 지적해준 게 와 닿았어요 그 고군분

투가 결국 자기를 구하려는 노력이라는 지적이요

상화 그나마 lsquo나rsquo가 이 소설에서 제일 인간적이지

수경 어딘가 찌질한 느낌도 들어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와

lsquo내rsquo가 동류라고 자각하고 연민을 갖는 느낌이었거든 lsquo나rsquo가

인간적이고 윤리적이라는 생각은 나는 글쎄hellip 더 적극적으

로 할 수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 자기 사이클에서 벗어나

지 않는 한도 내에서 걱정만 하잖아 소설 안에서 비극과 희

극이 번갈아 가며 나타나는데 트럭과 버스가 충돌했을 때

lsquo나rsquo는 lsquo버스 카드 일로 충돌하지 않게 되어 적이 기뻤다rsquo고

생각해 버스 운전사는 트럭 백미러에 가슴이 받혀서 죽었는

지도 모르는데 lsquo다행히 나는 허리가 좀 뻐근한 것만 빼면 별

다른 상처가 없는 듯했다rsquo 이런 생각들을 하는 게 좀 섬뜩했

민희 사람은 다 이중성을 가지고 있잖아 나를 보는 듯했어

만약 학교 가는 길에 엘리베이터에 낀 사람을 봤다면 그렇

지만 나도 얼마나 바빠 몇 분 늦으면 지각 체크 당하고 출석

80퍼센트를 못 채울 수도(일동 웃음) 있는 상황이라면 내

가 그 남자를 구할 수 있을까 일단 지나치고 119에 전화하려

고 했으나 핸드폰이 없는 상황에 나도 처할 수 있는 거잖아 나

만 생각하는 잔인한 면도 내 안에 있고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

도 내 안에 있어 이런 찌질한 모습도 나고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정의롭게 구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상화 기준이 다른 것 같아 lsquo나rsquo 정도면 착하다고 생각했거든

수경 주변 사람들이 약간 마네킹 같지 않아 주인공 주변에

장치되어있던 다른 사람들이 너무 비인간적이기 때문에 lsquo나rsquo

가 돋보이는 거지 lsquo나rsquo는 지극히 평범한 우리 모습 같아 내가

어떻게 할 생각은 없고 궁금하기만 한 거야

민희 그 궁금함과 찜찜함도 죄책감이라 생각돼 아 내가 어떻

게 해줬어야 했나

한나 책임 회피일까

상화 그래서 나는 키워드 뽑은 것 중 하나가 119야 구해주고

싶으면 직접 내 손으로 잡아 빼주던가 엘리베이터를 들어 올

릴 사람을 모아야 했는데 신고 생각만 하잖아 이미 이건 누

가 대신 해결해줘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그나마 우리

사회에서 사고를 수습해주는 건 119밖에 없고 조선시대에는

119같은 거 없고 마을 사람들이 모여 구해줬을 텐데 어쩔 수

28

없는 현대인의 단상이긴 해 현대가 분업사회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들 바쁘고 삶이 개인화 파편화되어 있으니까 119 같

은 집단이 필요한 거지 그래서 난 119를 신의 영역이라고 썼

어 lsquo나rsquo는 119를 거의 신적인 존재처럼 생각하잖아 부르면 모

든 게 해결될 것처럼 핸드폰 빌리고 공중전화 찾고 그런데 막

상 교통사고 현장에서 119 대원에게 면대 면으로 얘기를 했더

니 그들은 무슨 그따위 장난을 하냐고 말해 구조도 실은 신이

아니라 사람이 하는 일이고 그 사람이 관심이 없으면 묻히는

거지

오권 전화를 거는 것과 직접 구해주는 것의 차이가 큰 것 같아

자기가 구해주는 건 적극적인 행동이고 119에 전화하는 건 스

스로 최소한 양심적이긴 하다고 여기는 행동

수경 그런데 엘리베이터에 낀 사람을 아무 것도 모르는 일반

인이 어떻게 했다가는 더 위험해질 수도 있잖아

오권 맞아 사회가 시스템화하고 고도화될수록 각자의 업무가

분업화되었고 전문분야가 생겨났으니까 옛날 같았으면 애 낳

으면 그냥 동네 아주머니가 애 받고 어미가 죽으면 젖동냥 다

녔는데hellip 이젠 사고가 나면 생각이 119에 먼저 미치는 시대가

된 거지

수경 그래서 어딘가에 널브러져 다친 인간이 아니라 엘리베이

터라는 공간에 낀 남자를 설정한 것 아닐까 엘리베이터는 현

대화의 상징이잖아

한나 lsquo나rsquo도 어쩔 수 없는 게 출근 시간에 쫓겨서 시계를 계속

봐 먹고 사는 일이니까

오권 출근했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다시 집으로 돌아가

낀 사람을 구해주면 굉장히 희망찬 소설로 바뀔 텐데hellip (일동

웃음)

수경 이 소설로 현대 사회의 폐단은 다 얘기할 수 있겠는데

상화 김영하는 천재인 것 같다

누군가 그리고 잘생겼잖아

누군가 잘생긴 거야

누군가 지적인 분위기가 있어서 좋아 (한참 얘기)

한나 또 인상 깊었던 게 구두에 집착하는 거 lsquo나는 날렵한 치

타처럼hellip 구두를 가지고 엘리베이터에서 빠져나오는 데 성공

했다 허탈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rsquo는 구절

오권 자살한 사람들이 구두를 가지런히 벗어놓는 이미지가 무

슨 상징처럼 있잖아

한나 신발 한 쪽 없이 다녀봤어 계속 기우뚱대서 내가 걷거

나 서 있을 때 내가 잘못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여기서 lsquo나rsquo가

그랬을 거야 사실 lsquo나rsquo처럼 사는 게 정상인데 세상이 잘못된

건데

상화 이 소설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감정표현이잖아 하루 종

일 얼마나 힘들었겠어 처음으로 감정표현을 하니까 불쌍했어

오권 휴머니즘 불쌍론 또 나왔네(일동 웃음) 그럼 이제 사진

관으로 넘어가볼까hellip

편집자반 11기 이상화

2929

책씹는맛 01 냄새라는 경이 lt감각의 박물학gt 후각편을 읽고

냄새에는 언어가 없다 어휘가 부족한 우리는 말문이 막힌

채 불명료한 쾌감과 자극의 바다에서 말을 찾을 수밖에

없다1

이 말은 다이앤 애커먼의 『감각의 박물학』 제 1장 후각에

나오는 구절이다 냄새를 글로 쓰고자 하는 나의 시도가 늘

실패로 귀결되는 이유를 이 구절에서 찾았다 작가의 말처

럼 냄새에 대해 쓴다는 건 언어 밖 세계로 나갔다가 다시

언어로 되돌아오는 길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길에서 헤매

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후각이라는 감각에서 길을

잃는 것은 낭만적인 일이기도 하다 lsquo냄새의 뇌관을 건드리

면 모든 추억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기rsquo2 때문이다 냄새 하

나에 수많은 추억들이 줄줄이 기억의 회로 위로 떠오른다

예를 들면 바다 냄새 하나만 상상해도 그와 관련된 수많

은 기억들이 머릿속에 뒤섞인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바닷가와 관련된 그 모든 추억들이 기억의 영사막에서 한

편의 옴니버스 영화 형태로 내게 다가온다 난 내 기억의

관객이 되어 그 영화를 보다가 견딜 수 없는 그리움에 젖는

다 이 영화에 대한 감상문을 적으려면 나는 말문이 막힌

다 그래서 몇 글자 적다가 결국 글을 쓰기를 멈춘다 굳이

언어로 표현하자면 쓸 수 없는 그리움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1 『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옮김 작가정신 20040720

A Natural History of the Senses(1991) 17쪽

2 같은 책 18쪽

결국 lsquo언어가 존재하는 세계에서 경이는 언어의 칼날 아래

서 쉽게 해부되고 냄새는 자주 혀끝에서 맴돈다rsquo3 냄새의

숭고함 앞에서 우리는 말을 멈춘다 이처럼 냄새는 말할 수

없는 자연의 경이로움과 닮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lsquo냄새가 우리의 마음을 그토록 강하게 움직이는 것은 부분

적으로 그 이름을 부를 수 없기 때문rsquo4이라고 한다 저자는

그렇기에 사람들이 냄새를 lsquo분 냄새 비슷한 펭귄 냄새가

나는 호화로운 화장실 냄새가 나는rsquo 같은 말로 표현할 뿐

이며 냄새에 대한 이름은 주어져 있지 않다고 말한다 또

한 종류는 같아도 강약과 농도가 다른 각각의 냄새에 이름

을 붙여줄 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우린 일상적으로 냄새를

맡으면서도 그 냄새와 멀리 떨어져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명명되지 않은 것은 결국 잊히는 게 아닐까 부를

수 없음에서 오는 경외감과 숭고함이 있을지라도 냄새는

말해져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말할 수 없는 것에 자꾸

만 침묵하기만 해야 할까

감각도 모험의 영역이 될 수 있다 세계 일주만이 세상을

아는 길일까 lsquo나rsquo를 온전히 아는 것이 역설적으로 세상과

가까워지는 일인지도 모른다 나를 알기 위한 길 중 하나가

내가 가지고 있는 감각을 이해하고 그걸 언어로 표현하는

일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어쩌면 우리와 제일 가깝지만 말

하기 낯선 감각 후각을 이해하는 일이 중요한지도 모른다

냄새라는 감각 속에서 우리 모두 길을 잃고 헤매고 모험해

보자 냄새에 나름의 이름을 지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

리고 농도에 따라 냄새를 구분하는 일도 해보자 냄새라는

경이는 우리를 더 이상 침묵으로 이끌지 않을 것이다

디자인반 11기 백가은

3 같은 책 22쪽

4 같은 책 22쪽

『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 옮김

작가정신 20040720

A Natural History of the Senses(1991)

3030

02 현실을 전복시키는 비현실

모호함이 주는 환상성

20세기 중반 중남미 소설은 전통적인 사실주의 서사 구조

를 깨고 현실과 환상을 혼합시키는 새로운 글쓰기 방식으

로 세계문학의 중심에 선다 이 시기에 주목 받은 일련의

중남미 작가들을 가리켜 lsquo붐 세대 작가rsquo라 칭하는데 아르

헨티나의 환상문학 작가 코르타사르는 이 붐 세대 작가군

의 선구자이자 대표 주자 격인 인물이다 그러나 그 문학적

성과와 명성이 무색하게도 국내 독자들에겐 그의 이름이

아직 생소한 것이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에서는 그

의 작품이 중남미 단편 선집에나 몇 편이 번역되었을 뿐 본

격적으로 소개된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중남미 문학을 공부했고 그의 몇 안 되는 번역 작품을 인

상 깊게 읽었던 독자 입장에서 이번에 출간된 코르타사르

의 단편집『드러누운 밤』은 가뭄의 단비처럼 반가운 신간

이다

환상 문학이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J R R 톨킨 류의 판타

지소설 혹은 쥘 베른이나 아이작 아시모프 류의 SF소설을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코르타사르의 환상문학은 이들 범

주에 들어가지 않는다 코르타사르 작품에서 나타나는 환

상이란 토도로프가 정의한 바 있는 환상 그러니까 자연적

인 것과 초자연적인 것 사이의 망설임에서 발생하는 환상

에 가깝다 따라서 판타지소설의 lsquo현실과 동떨어진 환상rsquo

혹은 SF소설의 lsquo설득력 있고 현실감 있는 환상rsquo을 기대하

는 독자라면 아마 십중팔구 그의 작품을 읽고 실망할 것

이다 어쩌면 이게 무슨 환상문학이냐는 푸념을 늘어놓을

지도 모르겠다 역시 가장 좋은 것은 선입관을 버리고 책을

읽는 것이다

코르타사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lsquo모호함rsquo이다 인물이나

배경 묘사에서 제시되는 기본적인 정보도 모호하고 사건의

전개 양상이 가진 당위성도 모호하다 작품 내에서 주요한

스토리 라인을 담당하는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경계도 모

호하며 심지어는 화자의 정체마저 모호한 작품도 있다 이

런 모호함의 향연은 짙게 깔린 안개와도 같아서 독자들은

그 속에서 한 치 앞도 제대로 내다볼 수 없음은 물론이요

이미 지나간 사실조차도 자신이 맞게 인식한 것인지 확신

할 수 없을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무엇이 진짜인지

독자들의 판단을 망설이게 만드는 이런 상태야말로 코르

타사르의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는 환상이란 개념이다 독

자들은 이 환상 속에서 그저 전방을 주시하며 천천히 나아

갈 수밖에 없다

다행스럽게도 코르타사르는 독자들의 시련을 헛되게 하지

않는다 작품의 시작점 일상 세계에 우연히 침투한 lsquo비현

실적인 것rsquo은 안개 속에서 알게 모르게 자신의 지분을 늘려

나간다 그리고 작품의 종점에 다다른 독자들은 비현실이

현실이 되고 현실이 비현실이 되는 이전과는 전혀 새로운

세계와 마주할 것이다 다시 말해 필연과 이성의 법칙이 지

배하는 세계가 우연과 환상이 지배하는 세계로 변하는 것

이다 이러한 세계의 전복은 마치 여기저기 단서를 흩뿌리

고 사람들을 알쏭달쏭하게 만들었다가 결말부에서 모든

것을 폭발시키는 추리소설 혹은 반전영화를 보는 듯한 재

미를 선사한다

그렇다면 코르타사르가 이 소설들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책을 다 읽고 난 독자라면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의문점이다 코르타사르는 자신이 환상문학을 쓰는

이유를 ldquo법칙이나 원칙 혹은 인과관계나 특정한 심리 또

는 잘 그려진 지리학과 같은 체계에 의해 세상이 지배되고

있다는 것에 반대rdquo하고 ldquo우리가 잘 모르며 우리에게 잘 다

가오지 않는 새로운 질서에 관해 생각해보기 위함rdquo이라고

설명한다 짧게 말해 이 세상에 필연이란 존재하지 않으

며 자신은 그것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말이다 이

게 전부다 순문학이라면 거장의 문학이라면 이보다 더 심

오한 통찰 혹은 비판이 있을 것이란 생각에 문장 속 숨겨진

의미를 발견하고자 머리를 싸맬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조

언을 하자면 독서는 독서 그 자체로 즐기면 된다 적어도 이

책에서는 그렇다 모호함과 예상외의 전개 속에서 재미를

느끼고 코르타사르가 묘사하는 세계의 불가지(不可知)성

을 어렴풋하게나마 인식할 수 있다면 이미 그것으로 충분

하다

편집자반 11기 강귀욱

『드러누운 밤』

훌리오 꼬르따사르 지음 박병규 옮김

창비 20141124

La noche boca arribaJulio Cortazar

31

03 얼어붙은 자의식의 바다를깨뜨리고 생명을 불어넣는 책 『데미안』

데미안을 읽고 나서야 그 동안 내가 두 발 딛고 서 있던 땅이

굳고 단단한 대지가 아니라 얼어붙은 바다에 불과했음을 알

았다 데미안은 도끼를 가져와 이 꽁꽁 언 바다를 가차 없이

내리 찍었다 그리고 말했다 얼어붙은 바다를 단단한 땅인

줄 알고 사느니 그 얼음을 깨부수고 그 속에 빠져 죽기 살기

로 허우적대라고 그러면 그 속에서 너는 너 자신을 똑바로 마

주하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성장할 것이라고

주인공 싱클레어도 그를 둘러싸고 있던 세계를 깨뜨려 나가

며 성장한다 그 모든 과정은 결국 진정한 자기 자신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가 깨뜨린 가장 큰 세계는 바로 자신의 사고 체계였다 세상

을 바라보는 기존의 이분법적이던 시각 고정되고 획일화된 시

각을 버렸다 주인공은 세계 안에 심지어는 자신 안에도 선하

고 악하며 밝고 어두운 양극단의 것들이 공존함을 이해하고

두 세계를 끌어안았다 주인공은 귀와 눈을 가리던 장막을 걷

어내 버리고 세상을 바로 보게 되었다 상극인 것들의 괴리로

이루어진 이 모순된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곧 자신 안의 부조

화 또한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스스로에게 다가서는 첫 걸음

이었다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양극단의 세계 사이에서 싱

클레어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며 흔들리기를 반복했다 이

때 그에게는 삶을 지탱할 중심축이 없었다 항상 내면이 아닌

외부 세계에서 자신이 속할 자리를 찾아 헤맸다 그가 비로소

온전한 자신을 만난 순간은 어느 편으로도 치우침 없이 스스

로의 기준으로 홀로 서게 되었을 때였다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 이 길은 당신이 내면에 있는 모

순되는 두 세계 한없이 나약하고 뒷걸음치는 비열한 모습들

과 정갈하고 깨끗한 곧은 힘들을 동시에 직시하는 순간에 시

작된다 그리고 이 길은 두 세계 속에 들어가 이리저리 휩쓸리

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세계를 밟고 우뚝 올라서서 스스로

가 중심이 됨으로써 앞으로 펼쳐진다

이제 lsquo자아를 찾으라rsquo는 지루하고 흔한 이야기가 더 이상 빤

하거나 우습지 않다 묵직한 울림이 되어 나를 흔든다 그냥

나만 붙잡고 흔드는 것이라면 손사래 쳐 뿌리치겠는데 내가

밟고 있던 땅 속해 있던 세계를 뿌리째 흔들어 버린다 읽는

내내 속이 답답하고 나에게 화가 난다 그런데 이렇게 마구

혼나면서 이상하게도 후련한 구석이 있다 호통을 치는 데미

안이 사실은 우리를 응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막연

하고 무기력한 안개에 휩싸여 있을 때 데미안은 그만의 방

식으로 우리에게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준다 물론 갈 방향을

정해준다거나 각자의 사정을 듣고 상담을 해주는 것은 아니

다 오로지 궁지로 몰아세울 뿐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사람들

은 잊고 있던 lsquo나 자신rsquo을 일깨운다 아 그동안 lsquo나rsquo에 대해 생

각해본 적이 있던가 라는 정도만이라도 좋다 이 물음이 바로

여정의 시작이니까

그렇게 스스로에게 묻고 나면 더 이상 전처럼 살 수는 없기 때

문이다 아니라면 자기 자신에게 면목이 없을 것이다 이 무서

운 책이 우리를 혼내고 몰아치면서도 여전히 영원한 고전이자

필독서로 사랑 받는 이유다

lsquo우리들 속에는 모든 것을 아는 한 사람이 있다rsquo고 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혼이 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혼

이 났다는 것은 자신 안에 있는 lsquo그 사람rsquo이 말을 하기 시작했

다는 뜻이니까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목소리가 희미하

고 멀리 있다 하여도 숨죽여 귀 기울이는 일 자체가 자신에게

로 가는 과정임을 잊지 말고

편집자반 11기 배예리

『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민음사 20001220

Demian Die Geschichte von Emil

Sinclairs Jugend(1919)

31

03 얼어붙은 자의식의 바다를깨뜨리고 생명을 불어넣는 책 『데미안』

데미안을 읽고 나서야 그 동안 내가 두 발 딛고 서 있던 땅이

굳고 단단한 대지가 아니라 얼어붙은 바다에 불과했음을 알

았다 데미안은 도끼를 가져와 이 꽁꽁 언 바다를 가차 없이

내리 찍었다 그리고 말했다 얼어붙은 바다를 단단한 땅인

줄 알고 사느니 그 얼음을 깨부수고 그 속에 빠져 죽기 살기

로 허우적대라고 그러면 그 속에서 너는 너 자신을 똑바로 마

주하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성장할 것이라고

주인공 싱클레어도 그를 둘러싸고 있던 세계를 깨뜨려 나가

며 성장한다 그 모든 과정은 결국 진정한 자기 자신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가 깨뜨린 가장 큰 세계는 바로 자신의 사고 체계였다 세상

을 바라보는 기존의 이분법적이던 시각 고정되고 획일화된 시

각을 버렸다 주인공은 세계 안에 심지어는 자신 안에도 선하

고 악하며 밝고 어두운 양극단의 것들이 공존함을 이해하고

두 세계를 끌어안았다 주인공은 귀와 눈을 가리던 장막을 걷

어내 버리고 세상을 바로 보게 되었다 상극인 것들의 괴리로

이루어진 이 모순된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곧 자신 안의 부조

화 또한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스스로에게 다가서는 첫 걸음

이었다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양극단의 세계 사이에서 싱

클레어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며 흔들리기를 반복했다 이

때 그에게는 삶을 지탱할 중심축이 없었다 항상 내면이 아닌

외부 세계에서 자신이 속할 자리를 찾아 헤맸다 그가 비로소

온전한 자신을 만난 순간은 어느 편으로도 치우침 없이 스스

로의 기준으로 홀로 서게 되었을 때였다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 이 길은 당신이 내면에 있는 모

순되는 두 세계 한없이 나약하고 뒷걸음치는 비열한 모습들

과 정갈하고 깨끗한 곧은 힘들을 동시에 직시하는 순간에 시

작된다 그리고 이 길은 두 세계 속에 들어가 이리저리 휩쓸리

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세계를 밟고 우뚝 올라서서 스스로

가 중심이 됨으로써 앞으로 펼쳐진다

이제 lsquo자아를 찾으라rsquo는 지루하고 흔한 이야기가 더 이상 빤

하거나 우습지 않다 묵직한 울림이 되어 나를 흔든다 그냥

나만 붙잡고 흔드는 것이라면 손사래 쳐 뿌리치겠는데 내가

밟고 있던 땅 속해 있던 세계를 뿌리째 흔들어 버린다 읽는

내내 속이 답답하고 나에게 화가 난다 그런데 이렇게 마구

혼나면서 이상하게도 후련한 구석이 있다 호통을 치는 데미

안이 사실은 우리를 응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막연

하고 무기력한 안개에 휩싸여 있을 때 데미안은 그만의 방

식으로 우리에게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준다 물론 갈 방향을

정해준다거나 각자의 사정을 듣고 상담을 해주는 것은 아니

다 오로지 궁지로 몰아세울 뿐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사람들

은 잊고 있던 lsquo나 자신rsquo을 일깨운다 아 그동안 lsquo나rsquo에 대해 생

각해본 적이 있던가 라는 정도만이라도 좋다 이 물음이 바로

여정의 시작이니까

그렇게 스스로에게 묻고 나면 더 이상 전처럼 살 수는 없기 때

문이다 아니라면 자기 자신에게 면목이 없을 것이다 이 무서

운 책이 우리를 혼내고 몰아치면서도 여전히 영원한 고전이자

필독서로 사랑 받는 이유다

lsquo우리들 속에는 모든 것을 아는 한 사람이 있다rsquo고 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혼이 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혼

이 났다는 것은 자신 안에 있는 lsquo그 사람rsquo이 말을 하기 시작했

다는 뜻이니까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목소리가 희미하

고 멀리 있다 하여도 숨죽여 귀 기울이는 일 자체가 자신에게

로 가는 과정임을 잊지 말고

편집자반 11기 배예리

『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민음사 20001220

Demian Die Geschichte von Emil

Sinclairs Jugend(1919)

32

박세길 인터뷰

진정한 역사가는 과거에 파묻히지 않는다옥(獄)에서 옥(玉)을 만든 작가 박세길 인터뷰

박세길 저자는 처녀작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로 80년대

대표 역사서 자리를 꿰찬 분입니다 1986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감되었을 때 감옥에서 역사책을 읽으며

사회 모순에 대해 고민했고 출소하자마자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집필했습니다 정권 탄압 속에서 왜곡된

현대사를 바로 잡았다는 의미를 지닌 이 대표작은 오랫동안

고시생과 대학생들의 필독서로 꼽혔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읽은 박세길 저자의 저서는 지난 6월 출간한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입니다 기사를 쓰고 편집할 때 청년 세대를

겨냥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박세길 저자는 역시나

청년들의 미래에 큰 관심을 갖고 계셨습니다 취업을

눈앞에 둔 서울출판예비학교 학생들이 가져야 할 자세를

여쭸습니다

출판학교에서 강의하신 한 선생님은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가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와

더불어 80년대 인문학의 양대

산맥이라고 하셨습니다

책의 성공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강의

요청이 많이 들어왔어요 먹고사는

경제적인 문제도 해결됐습니다

몇 부 팔렸는지는 잘 모릅니다

출판사에서 기밀 사항이라고

하더군요 요즘은 마케팅 차원으로도

몇 쇄 몇 부인지 밝히지만 그때는

세금 문제를 피해가기 위해서인지

쉬쉬하던 시절이었나 봅니다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는 대학

선후배끼리도 많이 물려주는 책이라고

들었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의 쉬운 설명이

좋았습니다 더불어 어떤 사명감을 안고 썼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완성하기에 앞서 어떤 목표를

두셨나요

청년 세대가 외환위기 이후 집중적인 희생양으로 전락하면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드러내면서 여기에

머물지 않고 청년 세대의 잠재력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들이 역사 무대 한복판에 진출해 자기 몫을 다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습니다

역사 분야는 시장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역사 혹은 현대사가 주목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통해 얘기하자면

80년대 후반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lsquo왜곡된

역사를 바로 알자rsquo는 시각 교정의 욕구가 있었던

차에 제 책이 나름 부응했는지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시기가 적절했던 셈이죠

2012년 대선 후 역사 분야가 잠시 반짝했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금세 시들었다고

하더군요 당시 역사 분야 책들이 일반 독자가

읽기에 다소 어렵거나 출간한 지 오래된 것들

위주였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돋을세길

출판학교에서 강의하신 한 선생님은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가 유홍준 교수의

책의 성공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강의

하더군요 요즘은 마케팅 차원으로도

선후배끼리도 많이 물려주는 책이라고

역사 분야는 시장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역사 혹은 현대사가 주목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통해 얘기하자면

80년대 후반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lsquo왜곡된

역사를 바로 알자rsquo는 시각 교정의 욕구가 있었던

차에 제 책이 나름 부응했는지 큰 반향을

읽기에 다소 어렵거나 출간한 지 오래된 것들

위주였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의 저자

33

2012년 대선 후 역사 분야가 관심을 받았던 것은

보수층의 재집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한

불안 때문일까요

맞습니다 그러나 마땅한 책이 없어서 그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역사 분야에서 베스트셀러를 내기

위해서는 시기가 맞아 떨어지고 내용 또한 대중이 원하는

것을 담고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를 편집한 lsquo생각정원rsquo

출판사의 정희용 편집자에게 감사 표시를 하셨습니다

어떤 편집자를 선호하시나요

간단합니다 편집자는 철저히 독자 입장에서 독자와 작가

사이의 간극을 줄여줘야 합니다 예를 들면 어려운 내용을

과감히 생략하고 다음 기회로 미루도록 설득한다거나 좌파

운동권 색채가 너무 강한 문장을 조금 순화하는 것 등입니다

어떤 내용이 이번 책에 꼭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선택을

도와줘야 합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을 작가님께서 직접

독자들에게 홍보하신다면 카피 문구를 짧게 제시할 수

있을까요

청년 세대 희망 찾기 갑갑한 현실을 어떻게 타개할 수

있을지 그 답을 찾아보는 길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취업 후 첫발을 내디딜 서울출판예비학교 11기

학생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출판 또한 돈을 벌어야한다는 기본 전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출판계를 지켜본 결과 뭔가 소명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오래

살아남았습니다 출판학교 역대 대표 중 일부는 나와 관계가

있는 사람들인데 모두 고유한 소명의식을 갖고 출판계에

뛰어들었습니다 때로는 상업주의 안에서 재주도 부리곤

했지만 어쨌든 분야 내에서 고유한 캐릭터를 구축했습니다

출판학교 학생들이 출판 상황을 이해하고 자신을 역할을

정하는 개인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비전 중심의 경영을

하는 회사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지만 개인 비전을 기업

비전으로 나아가 사회 비전으로 접목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과거에 안주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부분을

출판계에서는 SNS 등 인터넷 환경을 통한 마케팅으로

이해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SNS망 자체에서 무엇이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건 사람과

사람이 서로 소통하고 공감하는데 필요한 도구입니다

콘텐츠 중심의 사고가 중요하고 그것이 전제되지 않을 때

SNS는 착각에 불과하며 성공할 수 없습니다 필요한 콘텐츠

중심의 사고를 가지고 철저하게 진행하지 않으면 그 공간에서

허망하게 헤엄만 칠 뿐 입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SNS에서

맥없이 헤엄치다 익사하는 경우를 볼 수 있을 겁니다

콘텐츠와 마케팅의 영역을 하나로 보는 것과 따로

보는 것 어떤 것이 독자를 위하는 것일까요

출판 마케팅은 책을 기획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에서부터

개입돼야 하고 그 과정에 독자를 참여시키는 방식을

고민해야 합니다 미국 네브래스카주립대학의 이상문

교수는 lsquo밀실 안에서의 혁신은 끝났다rsquo고 얘기합니다

개방된 체제에서 독자 곧 소비자 사용자의 참여 하에 함께

만들어갈 때 혁신은 이뤄진다고 합니다 출판사의 비전이

브랜드로 연결될 때 독자는 자발적으로 의견을 주고받고

싶어 할 겁니다

마케터반 11기 이창환

디자

인 사

공예

Page 26: 서울출판예비학교 웹진 _5호 2015

26

화양연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삶과 문학에 취하다

편집자반 한국문학 동아리 lsquo공감rsquo 그 대담의 현장

훗날 서울출판예비학교를 떠올릴 때 가장 즐거운 시간으로 기

억되는 날들은 동아리 활동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들의

화양연화(花樣年華)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 중

의 하루를 소개한다 문예창작학과를 전공한 문학소녀 김한나

학우를 필두로 창단된 편집자반 내 한국문학 동아리 lsquo공감rsquo은

모임 전에 한국작가를 한 명 정해 단편 두 편을 함께 읽고 키워

드나 질문을 스스로 뽑아 글을 써왔다 모여서 때로는 소설의

플롯이나 주제 문체에 대한 열띤 토론을 하고 때로는 작가의

외모()와 같은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며 삼천포로 빠지기도 했

다 우리끼리만 듣기엔 아쉽다 이 즐거운 대화를 모두에게 들

려주고 싶었다 이날 모임에선 김영하 작가의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단편집 속의 두 단편 lsquo엘리베이

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이하 엘리베이터)rsquo와 lsquo사진

관 살인사건(이하 사진관)rsquo에 대해 이야기했다 여기서는 lsquo엘리

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rsquo를 읽고 토의한 내용을

실었다

한나 참고로 김영하는 사람의 욕망에 대해 천착하는 작가야

그런 특성이 엘리베이터에는 안 나와 있는데 사진관에서는

잘 드러나 있어

상화 백가흠 작가에게 소설창작론 강의를 들었는데 그분이

소설의 기법을 설명하면서 알레고리랑 아이러니를 얘기했어

알레고리가 인물이나 소재를 비유적으로 설명하는 거래 예를

들어 핸드폰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다른

것에 핸드폰을 빗댐으로써 소설을 풀어가는 거

야 아이러니는 속도감 있게 이야기를 전개함으

로써 부조리나 모순을 드러내는 건데 김영하가

아이러니의 대표적인 작가래 단편인데도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내면보다는 사건이 일어나는

걸로 소설을 끌어가는 작가 우리가 지난 모임

에서 성석제를 굉장한 이야기꾼이라고 했잖아

그런데 난 김영하가 훨씬 이야기꾼스럽게 느껴

졌어 속도감 있고 lsquo이렇게 몰입을 할 수 있나rsquo

싶고 지난 모임들에서 읽었던 손보미나 편혜영

소설의 경우는 분위기나 주인공의 심정 내면에

의미를 부여해 야 했는데 김영하의 소설은 덮

자마자 아이러니가 느껴지면서 lsquo아 세상은 왜

이래rsquo 말하게 만들었어

법열 나는 엘리베이터 읽고 딱 lsquo뫼비우스의 띠rsquo가 생각났거든

뫼비우스의 띠가 안하고 겉이 구분이 안 되잖아 끝과 시작이

어딘지도 모르고 lsquo나rsquo가 겪는 상황이 현실인지 아닌지 구분이

안 되는 느낌 마지막에 lsquo나rsquo가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가 존재

하기는 했는지 혼란스러운 느낌을 받잖아 그게 앞의 환상적

인 부분이랑 맞물리면서 하나가 되는 느낌이라 뫼비우스의 띠

가 생각났어

상화 lsquo나rsquo가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구해주려고 고분군투하

다가 나중에 자기가 엘리베이터에 갇히잖아

오권 낀 남자의 발을 보면서 느꼈던 감상이 사실은 자기를 구

하고 싶었던 마음인 거지

(일동 오~ 그렇게도 볼 수 있네)

오권 무한도전의 무한상사 특집도 생각났어 뜬금없이 휴지

사용하는 길이에 대해 회의하는 장면에서 엘리베이터는 갇힌

사회 서로를 돌아보지 않는 사회를 의미하는 것 같아

한나 나는 반대로 오히려 엘리베이터를 희망적인 존재로 봤

거든 아파트도 그렇고 회사도 그렇고 각자 자신의 공간 안에

서 살다가 서로 만날 수 있는 장소는 엘리베이터 밖에 없으니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김영하 지음

문학동네 20100216

동아리 후기

27

까 lsquo나rsquo가 회사 엘리베이터 안에 여자와 같이 갇히잖아 사실

은 갇히지 않았으면 대화도 안하고 지나쳐 갔을 텐데 남자는

자기가 아침부터 버스 사고도 나고 성추행범으로 몰렸다고 얘

기하고 또 남자의 담배 피워도 되냐는 말에 여자는 담배에 대

한 불평불만을 속사포처럼 얘기하고 엘리베이터라는 공간이

아니었다면 이런 대화 자체가 없었겠지

오권 엘리베이터 타면 사람들이 하나같이 층수 바뀌는 것만

쳐다보고 있잖아

상화 요즘은 스마트폰

오권 자기 얘기를 하고 싶은 것 같아 하지만 상대의 얘기는

안 들어 lsquo너의 얘기는 관심 밖이지만 내가 불편한 것에 대한

얘기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하겠어rsquo라는 느낌

한나 그리고 우스웠던 게 볼일 보고 휴지 몇 칸 쓰는지 회의에

서 얘기하는 건hellip 사실 굉장히 사적인 얘기잖아 (일동 하하

하) 서로에 대해 다른 얘기는 일절 하지 않으면서 회의 내용은

개인적이고 사적이라니 아이러니한 거지

수경 진짜 웃기지 않았어 lsquo나rsquo가 자원 재활용 문제에 대한 중

대 보고가 있다고 계속 빨리 가야한다고 했던 게 겨우 그거야

상화 겨우 이딴 회의하려고 지금 엘리베이터에 낀 사람 놔두

고hellip 생명이 더 중요한데 지금 휴지 구하려고hellip

(일동 하하하)

한나 lsquo나rsquo가 불쌍했던 이유가 자기한테 닥친 일들은 lsquo할 수 없

지 뭐rsquo 이런 식으로 넘기는데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 걱정하고

갇힌 여자 걱정하고hellip 정작 자기 걱정은 안 해

오권 영화 lt라이터를 켜라gt 봤어 조폭들한테 얻어맞으면서

도 주인공은 무조건 자기 라이터만 찾겠다고 그러거든 이 소

설의 lsquo나rsquo와 비슷한 느낌이 들더라고 그 영화에서는 라이터가

주인공의 존재를 투영하는 소재거든 lsquo나rsquo는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구해야만 자기가 산다는 느낌을 받은 거라 해석하면

너무 나간 건가

법열 아니요 형이 아까 지적해준 게 와 닿았어요 그 고군분

투가 결국 자기를 구하려는 노력이라는 지적이요

상화 그나마 lsquo나rsquo가 이 소설에서 제일 인간적이지

수경 어딘가 찌질한 느낌도 들어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와

lsquo내rsquo가 동류라고 자각하고 연민을 갖는 느낌이었거든 lsquo나rsquo가

인간적이고 윤리적이라는 생각은 나는 글쎄hellip 더 적극적으

로 할 수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 자기 사이클에서 벗어나

지 않는 한도 내에서 걱정만 하잖아 소설 안에서 비극과 희

극이 번갈아 가며 나타나는데 트럭과 버스가 충돌했을 때

lsquo나rsquo는 lsquo버스 카드 일로 충돌하지 않게 되어 적이 기뻤다rsquo고

생각해 버스 운전사는 트럭 백미러에 가슴이 받혀서 죽었는

지도 모르는데 lsquo다행히 나는 허리가 좀 뻐근한 것만 빼면 별

다른 상처가 없는 듯했다rsquo 이런 생각들을 하는 게 좀 섬뜩했

민희 사람은 다 이중성을 가지고 있잖아 나를 보는 듯했어

만약 학교 가는 길에 엘리베이터에 낀 사람을 봤다면 그렇

지만 나도 얼마나 바빠 몇 분 늦으면 지각 체크 당하고 출석

80퍼센트를 못 채울 수도(일동 웃음) 있는 상황이라면 내

가 그 남자를 구할 수 있을까 일단 지나치고 119에 전화하려

고 했으나 핸드폰이 없는 상황에 나도 처할 수 있는 거잖아 나

만 생각하는 잔인한 면도 내 안에 있고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

도 내 안에 있어 이런 찌질한 모습도 나고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정의롭게 구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상화 기준이 다른 것 같아 lsquo나rsquo 정도면 착하다고 생각했거든

수경 주변 사람들이 약간 마네킹 같지 않아 주인공 주변에

장치되어있던 다른 사람들이 너무 비인간적이기 때문에 lsquo나rsquo

가 돋보이는 거지 lsquo나rsquo는 지극히 평범한 우리 모습 같아 내가

어떻게 할 생각은 없고 궁금하기만 한 거야

민희 그 궁금함과 찜찜함도 죄책감이라 생각돼 아 내가 어떻

게 해줬어야 했나

한나 책임 회피일까

상화 그래서 나는 키워드 뽑은 것 중 하나가 119야 구해주고

싶으면 직접 내 손으로 잡아 빼주던가 엘리베이터를 들어 올

릴 사람을 모아야 했는데 신고 생각만 하잖아 이미 이건 누

가 대신 해결해줘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그나마 우리

사회에서 사고를 수습해주는 건 119밖에 없고 조선시대에는

119같은 거 없고 마을 사람들이 모여 구해줬을 텐데 어쩔 수

28

없는 현대인의 단상이긴 해 현대가 분업사회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들 바쁘고 삶이 개인화 파편화되어 있으니까 119 같

은 집단이 필요한 거지 그래서 난 119를 신의 영역이라고 썼

어 lsquo나rsquo는 119를 거의 신적인 존재처럼 생각하잖아 부르면 모

든 게 해결될 것처럼 핸드폰 빌리고 공중전화 찾고 그런데 막

상 교통사고 현장에서 119 대원에게 면대 면으로 얘기를 했더

니 그들은 무슨 그따위 장난을 하냐고 말해 구조도 실은 신이

아니라 사람이 하는 일이고 그 사람이 관심이 없으면 묻히는

거지

오권 전화를 거는 것과 직접 구해주는 것의 차이가 큰 것 같아

자기가 구해주는 건 적극적인 행동이고 119에 전화하는 건 스

스로 최소한 양심적이긴 하다고 여기는 행동

수경 그런데 엘리베이터에 낀 사람을 아무 것도 모르는 일반

인이 어떻게 했다가는 더 위험해질 수도 있잖아

오권 맞아 사회가 시스템화하고 고도화될수록 각자의 업무가

분업화되었고 전문분야가 생겨났으니까 옛날 같았으면 애 낳

으면 그냥 동네 아주머니가 애 받고 어미가 죽으면 젖동냥 다

녔는데hellip 이젠 사고가 나면 생각이 119에 먼저 미치는 시대가

된 거지

수경 그래서 어딘가에 널브러져 다친 인간이 아니라 엘리베이

터라는 공간에 낀 남자를 설정한 것 아닐까 엘리베이터는 현

대화의 상징이잖아

한나 lsquo나rsquo도 어쩔 수 없는 게 출근 시간에 쫓겨서 시계를 계속

봐 먹고 사는 일이니까

오권 출근했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다시 집으로 돌아가

낀 사람을 구해주면 굉장히 희망찬 소설로 바뀔 텐데hellip (일동

웃음)

수경 이 소설로 현대 사회의 폐단은 다 얘기할 수 있겠는데

상화 김영하는 천재인 것 같다

누군가 그리고 잘생겼잖아

누군가 잘생긴 거야

누군가 지적인 분위기가 있어서 좋아 (한참 얘기)

한나 또 인상 깊었던 게 구두에 집착하는 거 lsquo나는 날렵한 치

타처럼hellip 구두를 가지고 엘리베이터에서 빠져나오는 데 성공

했다 허탈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rsquo는 구절

오권 자살한 사람들이 구두를 가지런히 벗어놓는 이미지가 무

슨 상징처럼 있잖아

한나 신발 한 쪽 없이 다녀봤어 계속 기우뚱대서 내가 걷거

나 서 있을 때 내가 잘못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여기서 lsquo나rsquo가

그랬을 거야 사실 lsquo나rsquo처럼 사는 게 정상인데 세상이 잘못된

건데

상화 이 소설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감정표현이잖아 하루 종

일 얼마나 힘들었겠어 처음으로 감정표현을 하니까 불쌍했어

오권 휴머니즘 불쌍론 또 나왔네(일동 웃음) 그럼 이제 사진

관으로 넘어가볼까hellip

편집자반 11기 이상화

2929

책씹는맛 01 냄새라는 경이 lt감각의 박물학gt 후각편을 읽고

냄새에는 언어가 없다 어휘가 부족한 우리는 말문이 막힌

채 불명료한 쾌감과 자극의 바다에서 말을 찾을 수밖에

없다1

이 말은 다이앤 애커먼의 『감각의 박물학』 제 1장 후각에

나오는 구절이다 냄새를 글로 쓰고자 하는 나의 시도가 늘

실패로 귀결되는 이유를 이 구절에서 찾았다 작가의 말처

럼 냄새에 대해 쓴다는 건 언어 밖 세계로 나갔다가 다시

언어로 되돌아오는 길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길에서 헤매

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후각이라는 감각에서 길을

잃는 것은 낭만적인 일이기도 하다 lsquo냄새의 뇌관을 건드리

면 모든 추억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기rsquo2 때문이다 냄새 하

나에 수많은 추억들이 줄줄이 기억의 회로 위로 떠오른다

예를 들면 바다 냄새 하나만 상상해도 그와 관련된 수많

은 기억들이 머릿속에 뒤섞인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바닷가와 관련된 그 모든 추억들이 기억의 영사막에서 한

편의 옴니버스 영화 형태로 내게 다가온다 난 내 기억의

관객이 되어 그 영화를 보다가 견딜 수 없는 그리움에 젖는

다 이 영화에 대한 감상문을 적으려면 나는 말문이 막힌

다 그래서 몇 글자 적다가 결국 글을 쓰기를 멈춘다 굳이

언어로 표현하자면 쓸 수 없는 그리움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1 『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옮김 작가정신 20040720

A Natural History of the Senses(1991) 17쪽

2 같은 책 18쪽

결국 lsquo언어가 존재하는 세계에서 경이는 언어의 칼날 아래

서 쉽게 해부되고 냄새는 자주 혀끝에서 맴돈다rsquo3 냄새의

숭고함 앞에서 우리는 말을 멈춘다 이처럼 냄새는 말할 수

없는 자연의 경이로움과 닮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lsquo냄새가 우리의 마음을 그토록 강하게 움직이는 것은 부분

적으로 그 이름을 부를 수 없기 때문rsquo4이라고 한다 저자는

그렇기에 사람들이 냄새를 lsquo분 냄새 비슷한 펭귄 냄새가

나는 호화로운 화장실 냄새가 나는rsquo 같은 말로 표현할 뿐

이며 냄새에 대한 이름은 주어져 있지 않다고 말한다 또

한 종류는 같아도 강약과 농도가 다른 각각의 냄새에 이름

을 붙여줄 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우린 일상적으로 냄새를

맡으면서도 그 냄새와 멀리 떨어져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명명되지 않은 것은 결국 잊히는 게 아닐까 부를

수 없음에서 오는 경외감과 숭고함이 있을지라도 냄새는

말해져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말할 수 없는 것에 자꾸

만 침묵하기만 해야 할까

감각도 모험의 영역이 될 수 있다 세계 일주만이 세상을

아는 길일까 lsquo나rsquo를 온전히 아는 것이 역설적으로 세상과

가까워지는 일인지도 모른다 나를 알기 위한 길 중 하나가

내가 가지고 있는 감각을 이해하고 그걸 언어로 표현하는

일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어쩌면 우리와 제일 가깝지만 말

하기 낯선 감각 후각을 이해하는 일이 중요한지도 모른다

냄새라는 감각 속에서 우리 모두 길을 잃고 헤매고 모험해

보자 냄새에 나름의 이름을 지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

리고 농도에 따라 냄새를 구분하는 일도 해보자 냄새라는

경이는 우리를 더 이상 침묵으로 이끌지 않을 것이다

디자인반 11기 백가은

3 같은 책 22쪽

4 같은 책 22쪽

『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 옮김

작가정신 20040720

A Natural History of the Senses(1991)

3030

02 현실을 전복시키는 비현실

모호함이 주는 환상성

20세기 중반 중남미 소설은 전통적인 사실주의 서사 구조

를 깨고 현실과 환상을 혼합시키는 새로운 글쓰기 방식으

로 세계문학의 중심에 선다 이 시기에 주목 받은 일련의

중남미 작가들을 가리켜 lsquo붐 세대 작가rsquo라 칭하는데 아르

헨티나의 환상문학 작가 코르타사르는 이 붐 세대 작가군

의 선구자이자 대표 주자 격인 인물이다 그러나 그 문학적

성과와 명성이 무색하게도 국내 독자들에겐 그의 이름이

아직 생소한 것이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에서는 그

의 작품이 중남미 단편 선집에나 몇 편이 번역되었을 뿐 본

격적으로 소개된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중남미 문학을 공부했고 그의 몇 안 되는 번역 작품을 인

상 깊게 읽었던 독자 입장에서 이번에 출간된 코르타사르

의 단편집『드러누운 밤』은 가뭄의 단비처럼 반가운 신간

이다

환상 문학이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J R R 톨킨 류의 판타

지소설 혹은 쥘 베른이나 아이작 아시모프 류의 SF소설을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코르타사르의 환상문학은 이들 범

주에 들어가지 않는다 코르타사르 작품에서 나타나는 환

상이란 토도로프가 정의한 바 있는 환상 그러니까 자연적

인 것과 초자연적인 것 사이의 망설임에서 발생하는 환상

에 가깝다 따라서 판타지소설의 lsquo현실과 동떨어진 환상rsquo

혹은 SF소설의 lsquo설득력 있고 현실감 있는 환상rsquo을 기대하

는 독자라면 아마 십중팔구 그의 작품을 읽고 실망할 것

이다 어쩌면 이게 무슨 환상문학이냐는 푸념을 늘어놓을

지도 모르겠다 역시 가장 좋은 것은 선입관을 버리고 책을

읽는 것이다

코르타사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lsquo모호함rsquo이다 인물이나

배경 묘사에서 제시되는 기본적인 정보도 모호하고 사건의

전개 양상이 가진 당위성도 모호하다 작품 내에서 주요한

스토리 라인을 담당하는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경계도 모

호하며 심지어는 화자의 정체마저 모호한 작품도 있다 이

런 모호함의 향연은 짙게 깔린 안개와도 같아서 독자들은

그 속에서 한 치 앞도 제대로 내다볼 수 없음은 물론이요

이미 지나간 사실조차도 자신이 맞게 인식한 것인지 확신

할 수 없을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무엇이 진짜인지

독자들의 판단을 망설이게 만드는 이런 상태야말로 코르

타사르의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는 환상이란 개념이다 독

자들은 이 환상 속에서 그저 전방을 주시하며 천천히 나아

갈 수밖에 없다

다행스럽게도 코르타사르는 독자들의 시련을 헛되게 하지

않는다 작품의 시작점 일상 세계에 우연히 침투한 lsquo비현

실적인 것rsquo은 안개 속에서 알게 모르게 자신의 지분을 늘려

나간다 그리고 작품의 종점에 다다른 독자들은 비현실이

현실이 되고 현실이 비현실이 되는 이전과는 전혀 새로운

세계와 마주할 것이다 다시 말해 필연과 이성의 법칙이 지

배하는 세계가 우연과 환상이 지배하는 세계로 변하는 것

이다 이러한 세계의 전복은 마치 여기저기 단서를 흩뿌리

고 사람들을 알쏭달쏭하게 만들었다가 결말부에서 모든

것을 폭발시키는 추리소설 혹은 반전영화를 보는 듯한 재

미를 선사한다

그렇다면 코르타사르가 이 소설들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책을 다 읽고 난 독자라면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의문점이다 코르타사르는 자신이 환상문학을 쓰는

이유를 ldquo법칙이나 원칙 혹은 인과관계나 특정한 심리 또

는 잘 그려진 지리학과 같은 체계에 의해 세상이 지배되고

있다는 것에 반대rdquo하고 ldquo우리가 잘 모르며 우리에게 잘 다

가오지 않는 새로운 질서에 관해 생각해보기 위함rdquo이라고

설명한다 짧게 말해 이 세상에 필연이란 존재하지 않으

며 자신은 그것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말이다 이

게 전부다 순문학이라면 거장의 문학이라면 이보다 더 심

오한 통찰 혹은 비판이 있을 것이란 생각에 문장 속 숨겨진

의미를 발견하고자 머리를 싸맬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조

언을 하자면 독서는 독서 그 자체로 즐기면 된다 적어도 이

책에서는 그렇다 모호함과 예상외의 전개 속에서 재미를

느끼고 코르타사르가 묘사하는 세계의 불가지(不可知)성

을 어렴풋하게나마 인식할 수 있다면 이미 그것으로 충분

하다

편집자반 11기 강귀욱

『드러누운 밤』

훌리오 꼬르따사르 지음 박병규 옮김

창비 20141124

La noche boca arribaJulio Cortazar

31

03 얼어붙은 자의식의 바다를깨뜨리고 생명을 불어넣는 책 『데미안』

데미안을 읽고 나서야 그 동안 내가 두 발 딛고 서 있던 땅이

굳고 단단한 대지가 아니라 얼어붙은 바다에 불과했음을 알

았다 데미안은 도끼를 가져와 이 꽁꽁 언 바다를 가차 없이

내리 찍었다 그리고 말했다 얼어붙은 바다를 단단한 땅인

줄 알고 사느니 그 얼음을 깨부수고 그 속에 빠져 죽기 살기

로 허우적대라고 그러면 그 속에서 너는 너 자신을 똑바로 마

주하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성장할 것이라고

주인공 싱클레어도 그를 둘러싸고 있던 세계를 깨뜨려 나가

며 성장한다 그 모든 과정은 결국 진정한 자기 자신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가 깨뜨린 가장 큰 세계는 바로 자신의 사고 체계였다 세상

을 바라보는 기존의 이분법적이던 시각 고정되고 획일화된 시

각을 버렸다 주인공은 세계 안에 심지어는 자신 안에도 선하

고 악하며 밝고 어두운 양극단의 것들이 공존함을 이해하고

두 세계를 끌어안았다 주인공은 귀와 눈을 가리던 장막을 걷

어내 버리고 세상을 바로 보게 되었다 상극인 것들의 괴리로

이루어진 이 모순된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곧 자신 안의 부조

화 또한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스스로에게 다가서는 첫 걸음

이었다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양극단의 세계 사이에서 싱

클레어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며 흔들리기를 반복했다 이

때 그에게는 삶을 지탱할 중심축이 없었다 항상 내면이 아닌

외부 세계에서 자신이 속할 자리를 찾아 헤맸다 그가 비로소

온전한 자신을 만난 순간은 어느 편으로도 치우침 없이 스스

로의 기준으로 홀로 서게 되었을 때였다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 이 길은 당신이 내면에 있는 모

순되는 두 세계 한없이 나약하고 뒷걸음치는 비열한 모습들

과 정갈하고 깨끗한 곧은 힘들을 동시에 직시하는 순간에 시

작된다 그리고 이 길은 두 세계 속에 들어가 이리저리 휩쓸리

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세계를 밟고 우뚝 올라서서 스스로

가 중심이 됨으로써 앞으로 펼쳐진다

이제 lsquo자아를 찾으라rsquo는 지루하고 흔한 이야기가 더 이상 빤

하거나 우습지 않다 묵직한 울림이 되어 나를 흔든다 그냥

나만 붙잡고 흔드는 것이라면 손사래 쳐 뿌리치겠는데 내가

밟고 있던 땅 속해 있던 세계를 뿌리째 흔들어 버린다 읽는

내내 속이 답답하고 나에게 화가 난다 그런데 이렇게 마구

혼나면서 이상하게도 후련한 구석이 있다 호통을 치는 데미

안이 사실은 우리를 응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막연

하고 무기력한 안개에 휩싸여 있을 때 데미안은 그만의 방

식으로 우리에게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준다 물론 갈 방향을

정해준다거나 각자의 사정을 듣고 상담을 해주는 것은 아니

다 오로지 궁지로 몰아세울 뿐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사람들

은 잊고 있던 lsquo나 자신rsquo을 일깨운다 아 그동안 lsquo나rsquo에 대해 생

각해본 적이 있던가 라는 정도만이라도 좋다 이 물음이 바로

여정의 시작이니까

그렇게 스스로에게 묻고 나면 더 이상 전처럼 살 수는 없기 때

문이다 아니라면 자기 자신에게 면목이 없을 것이다 이 무서

운 책이 우리를 혼내고 몰아치면서도 여전히 영원한 고전이자

필독서로 사랑 받는 이유다

lsquo우리들 속에는 모든 것을 아는 한 사람이 있다rsquo고 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혼이 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혼

이 났다는 것은 자신 안에 있는 lsquo그 사람rsquo이 말을 하기 시작했

다는 뜻이니까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목소리가 희미하

고 멀리 있다 하여도 숨죽여 귀 기울이는 일 자체가 자신에게

로 가는 과정임을 잊지 말고

편집자반 11기 배예리

『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민음사 20001220

Demian Die Geschichte von Emil

Sinclairs Jugend(1919)

31

03 얼어붙은 자의식의 바다를깨뜨리고 생명을 불어넣는 책 『데미안』

데미안을 읽고 나서야 그 동안 내가 두 발 딛고 서 있던 땅이

굳고 단단한 대지가 아니라 얼어붙은 바다에 불과했음을 알

았다 데미안은 도끼를 가져와 이 꽁꽁 언 바다를 가차 없이

내리 찍었다 그리고 말했다 얼어붙은 바다를 단단한 땅인

줄 알고 사느니 그 얼음을 깨부수고 그 속에 빠져 죽기 살기

로 허우적대라고 그러면 그 속에서 너는 너 자신을 똑바로 마

주하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성장할 것이라고

주인공 싱클레어도 그를 둘러싸고 있던 세계를 깨뜨려 나가

며 성장한다 그 모든 과정은 결국 진정한 자기 자신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가 깨뜨린 가장 큰 세계는 바로 자신의 사고 체계였다 세상

을 바라보는 기존의 이분법적이던 시각 고정되고 획일화된 시

각을 버렸다 주인공은 세계 안에 심지어는 자신 안에도 선하

고 악하며 밝고 어두운 양극단의 것들이 공존함을 이해하고

두 세계를 끌어안았다 주인공은 귀와 눈을 가리던 장막을 걷

어내 버리고 세상을 바로 보게 되었다 상극인 것들의 괴리로

이루어진 이 모순된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곧 자신 안의 부조

화 또한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스스로에게 다가서는 첫 걸음

이었다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양극단의 세계 사이에서 싱

클레어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며 흔들리기를 반복했다 이

때 그에게는 삶을 지탱할 중심축이 없었다 항상 내면이 아닌

외부 세계에서 자신이 속할 자리를 찾아 헤맸다 그가 비로소

온전한 자신을 만난 순간은 어느 편으로도 치우침 없이 스스

로의 기준으로 홀로 서게 되었을 때였다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 이 길은 당신이 내면에 있는 모

순되는 두 세계 한없이 나약하고 뒷걸음치는 비열한 모습들

과 정갈하고 깨끗한 곧은 힘들을 동시에 직시하는 순간에 시

작된다 그리고 이 길은 두 세계 속에 들어가 이리저리 휩쓸리

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세계를 밟고 우뚝 올라서서 스스로

가 중심이 됨으로써 앞으로 펼쳐진다

이제 lsquo자아를 찾으라rsquo는 지루하고 흔한 이야기가 더 이상 빤

하거나 우습지 않다 묵직한 울림이 되어 나를 흔든다 그냥

나만 붙잡고 흔드는 것이라면 손사래 쳐 뿌리치겠는데 내가

밟고 있던 땅 속해 있던 세계를 뿌리째 흔들어 버린다 읽는

내내 속이 답답하고 나에게 화가 난다 그런데 이렇게 마구

혼나면서 이상하게도 후련한 구석이 있다 호통을 치는 데미

안이 사실은 우리를 응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막연

하고 무기력한 안개에 휩싸여 있을 때 데미안은 그만의 방

식으로 우리에게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준다 물론 갈 방향을

정해준다거나 각자의 사정을 듣고 상담을 해주는 것은 아니

다 오로지 궁지로 몰아세울 뿐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사람들

은 잊고 있던 lsquo나 자신rsquo을 일깨운다 아 그동안 lsquo나rsquo에 대해 생

각해본 적이 있던가 라는 정도만이라도 좋다 이 물음이 바로

여정의 시작이니까

그렇게 스스로에게 묻고 나면 더 이상 전처럼 살 수는 없기 때

문이다 아니라면 자기 자신에게 면목이 없을 것이다 이 무서

운 책이 우리를 혼내고 몰아치면서도 여전히 영원한 고전이자

필독서로 사랑 받는 이유다

lsquo우리들 속에는 모든 것을 아는 한 사람이 있다rsquo고 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혼이 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혼

이 났다는 것은 자신 안에 있는 lsquo그 사람rsquo이 말을 하기 시작했

다는 뜻이니까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목소리가 희미하

고 멀리 있다 하여도 숨죽여 귀 기울이는 일 자체가 자신에게

로 가는 과정임을 잊지 말고

편집자반 11기 배예리

『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민음사 20001220

Demian Die Geschichte von Emil

Sinclairs Jugend(1919)

32

박세길 인터뷰

진정한 역사가는 과거에 파묻히지 않는다옥(獄)에서 옥(玉)을 만든 작가 박세길 인터뷰

박세길 저자는 처녀작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로 80년대

대표 역사서 자리를 꿰찬 분입니다 1986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감되었을 때 감옥에서 역사책을 읽으며

사회 모순에 대해 고민했고 출소하자마자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집필했습니다 정권 탄압 속에서 왜곡된

현대사를 바로 잡았다는 의미를 지닌 이 대표작은 오랫동안

고시생과 대학생들의 필독서로 꼽혔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읽은 박세길 저자의 저서는 지난 6월 출간한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입니다 기사를 쓰고 편집할 때 청년 세대를

겨냥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박세길 저자는 역시나

청년들의 미래에 큰 관심을 갖고 계셨습니다 취업을

눈앞에 둔 서울출판예비학교 학생들이 가져야 할 자세를

여쭸습니다

출판학교에서 강의하신 한 선생님은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가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와

더불어 80년대 인문학의 양대

산맥이라고 하셨습니다

책의 성공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강의

요청이 많이 들어왔어요 먹고사는

경제적인 문제도 해결됐습니다

몇 부 팔렸는지는 잘 모릅니다

출판사에서 기밀 사항이라고

하더군요 요즘은 마케팅 차원으로도

몇 쇄 몇 부인지 밝히지만 그때는

세금 문제를 피해가기 위해서인지

쉬쉬하던 시절이었나 봅니다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는 대학

선후배끼리도 많이 물려주는 책이라고

들었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의 쉬운 설명이

좋았습니다 더불어 어떤 사명감을 안고 썼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완성하기에 앞서 어떤 목표를

두셨나요

청년 세대가 외환위기 이후 집중적인 희생양으로 전락하면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드러내면서 여기에

머물지 않고 청년 세대의 잠재력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들이 역사 무대 한복판에 진출해 자기 몫을 다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습니다

역사 분야는 시장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역사 혹은 현대사가 주목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통해 얘기하자면

80년대 후반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lsquo왜곡된

역사를 바로 알자rsquo는 시각 교정의 욕구가 있었던

차에 제 책이 나름 부응했는지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시기가 적절했던 셈이죠

2012년 대선 후 역사 분야가 잠시 반짝했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금세 시들었다고

하더군요 당시 역사 분야 책들이 일반 독자가

읽기에 다소 어렵거나 출간한 지 오래된 것들

위주였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돋을세길

출판학교에서 강의하신 한 선생님은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가 유홍준 교수의

책의 성공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강의

하더군요 요즘은 마케팅 차원으로도

선후배끼리도 많이 물려주는 책이라고

역사 분야는 시장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역사 혹은 현대사가 주목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통해 얘기하자면

80년대 후반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lsquo왜곡된

역사를 바로 알자rsquo는 시각 교정의 욕구가 있었던

차에 제 책이 나름 부응했는지 큰 반향을

읽기에 다소 어렵거나 출간한 지 오래된 것들

위주였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의 저자

33

2012년 대선 후 역사 분야가 관심을 받았던 것은

보수층의 재집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한

불안 때문일까요

맞습니다 그러나 마땅한 책이 없어서 그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역사 분야에서 베스트셀러를 내기

위해서는 시기가 맞아 떨어지고 내용 또한 대중이 원하는

것을 담고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를 편집한 lsquo생각정원rsquo

출판사의 정희용 편집자에게 감사 표시를 하셨습니다

어떤 편집자를 선호하시나요

간단합니다 편집자는 철저히 독자 입장에서 독자와 작가

사이의 간극을 줄여줘야 합니다 예를 들면 어려운 내용을

과감히 생략하고 다음 기회로 미루도록 설득한다거나 좌파

운동권 색채가 너무 강한 문장을 조금 순화하는 것 등입니다

어떤 내용이 이번 책에 꼭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선택을

도와줘야 합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을 작가님께서 직접

독자들에게 홍보하신다면 카피 문구를 짧게 제시할 수

있을까요

청년 세대 희망 찾기 갑갑한 현실을 어떻게 타개할 수

있을지 그 답을 찾아보는 길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취업 후 첫발을 내디딜 서울출판예비학교 11기

학생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출판 또한 돈을 벌어야한다는 기본 전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출판계를 지켜본 결과 뭔가 소명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오래

살아남았습니다 출판학교 역대 대표 중 일부는 나와 관계가

있는 사람들인데 모두 고유한 소명의식을 갖고 출판계에

뛰어들었습니다 때로는 상업주의 안에서 재주도 부리곤

했지만 어쨌든 분야 내에서 고유한 캐릭터를 구축했습니다

출판학교 학생들이 출판 상황을 이해하고 자신을 역할을

정하는 개인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비전 중심의 경영을

하는 회사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지만 개인 비전을 기업

비전으로 나아가 사회 비전으로 접목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과거에 안주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부분을

출판계에서는 SNS 등 인터넷 환경을 통한 마케팅으로

이해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SNS망 자체에서 무엇이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건 사람과

사람이 서로 소통하고 공감하는데 필요한 도구입니다

콘텐츠 중심의 사고가 중요하고 그것이 전제되지 않을 때

SNS는 착각에 불과하며 성공할 수 없습니다 필요한 콘텐츠

중심의 사고를 가지고 철저하게 진행하지 않으면 그 공간에서

허망하게 헤엄만 칠 뿐 입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SNS에서

맥없이 헤엄치다 익사하는 경우를 볼 수 있을 겁니다

콘텐츠와 마케팅의 영역을 하나로 보는 것과 따로

보는 것 어떤 것이 독자를 위하는 것일까요

출판 마케팅은 책을 기획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에서부터

개입돼야 하고 그 과정에 독자를 참여시키는 방식을

고민해야 합니다 미국 네브래스카주립대학의 이상문

교수는 lsquo밀실 안에서의 혁신은 끝났다rsquo고 얘기합니다

개방된 체제에서 독자 곧 소비자 사용자의 참여 하에 함께

만들어갈 때 혁신은 이뤄진다고 합니다 출판사의 비전이

브랜드로 연결될 때 독자는 자발적으로 의견을 주고받고

싶어 할 겁니다

마케터반 11기 이창환

디자

인 사

공예

Page 27: 서울출판예비학교 웹진 _5호 2015

27

까 lsquo나rsquo가 회사 엘리베이터 안에 여자와 같이 갇히잖아 사실

은 갇히지 않았으면 대화도 안하고 지나쳐 갔을 텐데 남자는

자기가 아침부터 버스 사고도 나고 성추행범으로 몰렸다고 얘

기하고 또 남자의 담배 피워도 되냐는 말에 여자는 담배에 대

한 불평불만을 속사포처럼 얘기하고 엘리베이터라는 공간이

아니었다면 이런 대화 자체가 없었겠지

오권 엘리베이터 타면 사람들이 하나같이 층수 바뀌는 것만

쳐다보고 있잖아

상화 요즘은 스마트폰

오권 자기 얘기를 하고 싶은 것 같아 하지만 상대의 얘기는

안 들어 lsquo너의 얘기는 관심 밖이지만 내가 불편한 것에 대한

얘기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하겠어rsquo라는 느낌

한나 그리고 우스웠던 게 볼일 보고 휴지 몇 칸 쓰는지 회의에

서 얘기하는 건hellip 사실 굉장히 사적인 얘기잖아 (일동 하하

하) 서로에 대해 다른 얘기는 일절 하지 않으면서 회의 내용은

개인적이고 사적이라니 아이러니한 거지

수경 진짜 웃기지 않았어 lsquo나rsquo가 자원 재활용 문제에 대한 중

대 보고가 있다고 계속 빨리 가야한다고 했던 게 겨우 그거야

상화 겨우 이딴 회의하려고 지금 엘리베이터에 낀 사람 놔두

고hellip 생명이 더 중요한데 지금 휴지 구하려고hellip

(일동 하하하)

한나 lsquo나rsquo가 불쌍했던 이유가 자기한테 닥친 일들은 lsquo할 수 없

지 뭐rsquo 이런 식으로 넘기는데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 걱정하고

갇힌 여자 걱정하고hellip 정작 자기 걱정은 안 해

오권 영화 lt라이터를 켜라gt 봤어 조폭들한테 얻어맞으면서

도 주인공은 무조건 자기 라이터만 찾겠다고 그러거든 이 소

설의 lsquo나rsquo와 비슷한 느낌이 들더라고 그 영화에서는 라이터가

주인공의 존재를 투영하는 소재거든 lsquo나rsquo는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구해야만 자기가 산다는 느낌을 받은 거라 해석하면

너무 나간 건가

법열 아니요 형이 아까 지적해준 게 와 닿았어요 그 고군분

투가 결국 자기를 구하려는 노력이라는 지적이요

상화 그나마 lsquo나rsquo가 이 소설에서 제일 인간적이지

수경 어딘가 찌질한 느낌도 들어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와

lsquo내rsquo가 동류라고 자각하고 연민을 갖는 느낌이었거든 lsquo나rsquo가

인간적이고 윤리적이라는 생각은 나는 글쎄hellip 더 적극적으

로 할 수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 자기 사이클에서 벗어나

지 않는 한도 내에서 걱정만 하잖아 소설 안에서 비극과 희

극이 번갈아 가며 나타나는데 트럭과 버스가 충돌했을 때

lsquo나rsquo는 lsquo버스 카드 일로 충돌하지 않게 되어 적이 기뻤다rsquo고

생각해 버스 운전사는 트럭 백미러에 가슴이 받혀서 죽었는

지도 모르는데 lsquo다행히 나는 허리가 좀 뻐근한 것만 빼면 별

다른 상처가 없는 듯했다rsquo 이런 생각들을 하는 게 좀 섬뜩했

민희 사람은 다 이중성을 가지고 있잖아 나를 보는 듯했어

만약 학교 가는 길에 엘리베이터에 낀 사람을 봤다면 그렇

지만 나도 얼마나 바빠 몇 분 늦으면 지각 체크 당하고 출석

80퍼센트를 못 채울 수도(일동 웃음) 있는 상황이라면 내

가 그 남자를 구할 수 있을까 일단 지나치고 119에 전화하려

고 했으나 핸드폰이 없는 상황에 나도 처할 수 있는 거잖아 나

만 생각하는 잔인한 면도 내 안에 있고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

도 내 안에 있어 이런 찌질한 모습도 나고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정의롭게 구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상화 기준이 다른 것 같아 lsquo나rsquo 정도면 착하다고 생각했거든

수경 주변 사람들이 약간 마네킹 같지 않아 주인공 주변에

장치되어있던 다른 사람들이 너무 비인간적이기 때문에 lsquo나rsquo

가 돋보이는 거지 lsquo나rsquo는 지극히 평범한 우리 모습 같아 내가

어떻게 할 생각은 없고 궁금하기만 한 거야

민희 그 궁금함과 찜찜함도 죄책감이라 생각돼 아 내가 어떻

게 해줬어야 했나

한나 책임 회피일까

상화 그래서 나는 키워드 뽑은 것 중 하나가 119야 구해주고

싶으면 직접 내 손으로 잡아 빼주던가 엘리베이터를 들어 올

릴 사람을 모아야 했는데 신고 생각만 하잖아 이미 이건 누

가 대신 해결해줘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그나마 우리

사회에서 사고를 수습해주는 건 119밖에 없고 조선시대에는

119같은 거 없고 마을 사람들이 모여 구해줬을 텐데 어쩔 수

28

없는 현대인의 단상이긴 해 현대가 분업사회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들 바쁘고 삶이 개인화 파편화되어 있으니까 119 같

은 집단이 필요한 거지 그래서 난 119를 신의 영역이라고 썼

어 lsquo나rsquo는 119를 거의 신적인 존재처럼 생각하잖아 부르면 모

든 게 해결될 것처럼 핸드폰 빌리고 공중전화 찾고 그런데 막

상 교통사고 현장에서 119 대원에게 면대 면으로 얘기를 했더

니 그들은 무슨 그따위 장난을 하냐고 말해 구조도 실은 신이

아니라 사람이 하는 일이고 그 사람이 관심이 없으면 묻히는

거지

오권 전화를 거는 것과 직접 구해주는 것의 차이가 큰 것 같아

자기가 구해주는 건 적극적인 행동이고 119에 전화하는 건 스

스로 최소한 양심적이긴 하다고 여기는 행동

수경 그런데 엘리베이터에 낀 사람을 아무 것도 모르는 일반

인이 어떻게 했다가는 더 위험해질 수도 있잖아

오권 맞아 사회가 시스템화하고 고도화될수록 각자의 업무가

분업화되었고 전문분야가 생겨났으니까 옛날 같았으면 애 낳

으면 그냥 동네 아주머니가 애 받고 어미가 죽으면 젖동냥 다

녔는데hellip 이젠 사고가 나면 생각이 119에 먼저 미치는 시대가

된 거지

수경 그래서 어딘가에 널브러져 다친 인간이 아니라 엘리베이

터라는 공간에 낀 남자를 설정한 것 아닐까 엘리베이터는 현

대화의 상징이잖아

한나 lsquo나rsquo도 어쩔 수 없는 게 출근 시간에 쫓겨서 시계를 계속

봐 먹고 사는 일이니까

오권 출근했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다시 집으로 돌아가

낀 사람을 구해주면 굉장히 희망찬 소설로 바뀔 텐데hellip (일동

웃음)

수경 이 소설로 현대 사회의 폐단은 다 얘기할 수 있겠는데

상화 김영하는 천재인 것 같다

누군가 그리고 잘생겼잖아

누군가 잘생긴 거야

누군가 지적인 분위기가 있어서 좋아 (한참 얘기)

한나 또 인상 깊었던 게 구두에 집착하는 거 lsquo나는 날렵한 치

타처럼hellip 구두를 가지고 엘리베이터에서 빠져나오는 데 성공

했다 허탈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rsquo는 구절

오권 자살한 사람들이 구두를 가지런히 벗어놓는 이미지가 무

슨 상징처럼 있잖아

한나 신발 한 쪽 없이 다녀봤어 계속 기우뚱대서 내가 걷거

나 서 있을 때 내가 잘못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여기서 lsquo나rsquo가

그랬을 거야 사실 lsquo나rsquo처럼 사는 게 정상인데 세상이 잘못된

건데

상화 이 소설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감정표현이잖아 하루 종

일 얼마나 힘들었겠어 처음으로 감정표현을 하니까 불쌍했어

오권 휴머니즘 불쌍론 또 나왔네(일동 웃음) 그럼 이제 사진

관으로 넘어가볼까hellip

편집자반 11기 이상화

2929

책씹는맛 01 냄새라는 경이 lt감각의 박물학gt 후각편을 읽고

냄새에는 언어가 없다 어휘가 부족한 우리는 말문이 막힌

채 불명료한 쾌감과 자극의 바다에서 말을 찾을 수밖에

없다1

이 말은 다이앤 애커먼의 『감각의 박물학』 제 1장 후각에

나오는 구절이다 냄새를 글로 쓰고자 하는 나의 시도가 늘

실패로 귀결되는 이유를 이 구절에서 찾았다 작가의 말처

럼 냄새에 대해 쓴다는 건 언어 밖 세계로 나갔다가 다시

언어로 되돌아오는 길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길에서 헤매

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후각이라는 감각에서 길을

잃는 것은 낭만적인 일이기도 하다 lsquo냄새의 뇌관을 건드리

면 모든 추억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기rsquo2 때문이다 냄새 하

나에 수많은 추억들이 줄줄이 기억의 회로 위로 떠오른다

예를 들면 바다 냄새 하나만 상상해도 그와 관련된 수많

은 기억들이 머릿속에 뒤섞인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바닷가와 관련된 그 모든 추억들이 기억의 영사막에서 한

편의 옴니버스 영화 형태로 내게 다가온다 난 내 기억의

관객이 되어 그 영화를 보다가 견딜 수 없는 그리움에 젖는

다 이 영화에 대한 감상문을 적으려면 나는 말문이 막힌

다 그래서 몇 글자 적다가 결국 글을 쓰기를 멈춘다 굳이

언어로 표현하자면 쓸 수 없는 그리움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1 『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옮김 작가정신 20040720

A Natural History of the Senses(1991) 17쪽

2 같은 책 18쪽

결국 lsquo언어가 존재하는 세계에서 경이는 언어의 칼날 아래

서 쉽게 해부되고 냄새는 자주 혀끝에서 맴돈다rsquo3 냄새의

숭고함 앞에서 우리는 말을 멈춘다 이처럼 냄새는 말할 수

없는 자연의 경이로움과 닮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lsquo냄새가 우리의 마음을 그토록 강하게 움직이는 것은 부분

적으로 그 이름을 부를 수 없기 때문rsquo4이라고 한다 저자는

그렇기에 사람들이 냄새를 lsquo분 냄새 비슷한 펭귄 냄새가

나는 호화로운 화장실 냄새가 나는rsquo 같은 말로 표현할 뿐

이며 냄새에 대한 이름은 주어져 있지 않다고 말한다 또

한 종류는 같아도 강약과 농도가 다른 각각의 냄새에 이름

을 붙여줄 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우린 일상적으로 냄새를

맡으면서도 그 냄새와 멀리 떨어져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명명되지 않은 것은 결국 잊히는 게 아닐까 부를

수 없음에서 오는 경외감과 숭고함이 있을지라도 냄새는

말해져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말할 수 없는 것에 자꾸

만 침묵하기만 해야 할까

감각도 모험의 영역이 될 수 있다 세계 일주만이 세상을

아는 길일까 lsquo나rsquo를 온전히 아는 것이 역설적으로 세상과

가까워지는 일인지도 모른다 나를 알기 위한 길 중 하나가

내가 가지고 있는 감각을 이해하고 그걸 언어로 표현하는

일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어쩌면 우리와 제일 가깝지만 말

하기 낯선 감각 후각을 이해하는 일이 중요한지도 모른다

냄새라는 감각 속에서 우리 모두 길을 잃고 헤매고 모험해

보자 냄새에 나름의 이름을 지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

리고 농도에 따라 냄새를 구분하는 일도 해보자 냄새라는

경이는 우리를 더 이상 침묵으로 이끌지 않을 것이다

디자인반 11기 백가은

3 같은 책 22쪽

4 같은 책 22쪽

『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 옮김

작가정신 20040720

A Natural History of the Senses(1991)

3030

02 현실을 전복시키는 비현실

모호함이 주는 환상성

20세기 중반 중남미 소설은 전통적인 사실주의 서사 구조

를 깨고 현실과 환상을 혼합시키는 새로운 글쓰기 방식으

로 세계문학의 중심에 선다 이 시기에 주목 받은 일련의

중남미 작가들을 가리켜 lsquo붐 세대 작가rsquo라 칭하는데 아르

헨티나의 환상문학 작가 코르타사르는 이 붐 세대 작가군

의 선구자이자 대표 주자 격인 인물이다 그러나 그 문학적

성과와 명성이 무색하게도 국내 독자들에겐 그의 이름이

아직 생소한 것이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에서는 그

의 작품이 중남미 단편 선집에나 몇 편이 번역되었을 뿐 본

격적으로 소개된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중남미 문학을 공부했고 그의 몇 안 되는 번역 작품을 인

상 깊게 읽었던 독자 입장에서 이번에 출간된 코르타사르

의 단편집『드러누운 밤』은 가뭄의 단비처럼 반가운 신간

이다

환상 문학이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J R R 톨킨 류의 판타

지소설 혹은 쥘 베른이나 아이작 아시모프 류의 SF소설을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코르타사르의 환상문학은 이들 범

주에 들어가지 않는다 코르타사르 작품에서 나타나는 환

상이란 토도로프가 정의한 바 있는 환상 그러니까 자연적

인 것과 초자연적인 것 사이의 망설임에서 발생하는 환상

에 가깝다 따라서 판타지소설의 lsquo현실과 동떨어진 환상rsquo

혹은 SF소설의 lsquo설득력 있고 현실감 있는 환상rsquo을 기대하

는 독자라면 아마 십중팔구 그의 작품을 읽고 실망할 것

이다 어쩌면 이게 무슨 환상문학이냐는 푸념을 늘어놓을

지도 모르겠다 역시 가장 좋은 것은 선입관을 버리고 책을

읽는 것이다

코르타사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lsquo모호함rsquo이다 인물이나

배경 묘사에서 제시되는 기본적인 정보도 모호하고 사건의

전개 양상이 가진 당위성도 모호하다 작품 내에서 주요한

스토리 라인을 담당하는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경계도 모

호하며 심지어는 화자의 정체마저 모호한 작품도 있다 이

런 모호함의 향연은 짙게 깔린 안개와도 같아서 독자들은

그 속에서 한 치 앞도 제대로 내다볼 수 없음은 물론이요

이미 지나간 사실조차도 자신이 맞게 인식한 것인지 확신

할 수 없을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무엇이 진짜인지

독자들의 판단을 망설이게 만드는 이런 상태야말로 코르

타사르의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는 환상이란 개념이다 독

자들은 이 환상 속에서 그저 전방을 주시하며 천천히 나아

갈 수밖에 없다

다행스럽게도 코르타사르는 독자들의 시련을 헛되게 하지

않는다 작품의 시작점 일상 세계에 우연히 침투한 lsquo비현

실적인 것rsquo은 안개 속에서 알게 모르게 자신의 지분을 늘려

나간다 그리고 작품의 종점에 다다른 독자들은 비현실이

현실이 되고 현실이 비현실이 되는 이전과는 전혀 새로운

세계와 마주할 것이다 다시 말해 필연과 이성의 법칙이 지

배하는 세계가 우연과 환상이 지배하는 세계로 변하는 것

이다 이러한 세계의 전복은 마치 여기저기 단서를 흩뿌리

고 사람들을 알쏭달쏭하게 만들었다가 결말부에서 모든

것을 폭발시키는 추리소설 혹은 반전영화를 보는 듯한 재

미를 선사한다

그렇다면 코르타사르가 이 소설들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책을 다 읽고 난 독자라면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의문점이다 코르타사르는 자신이 환상문학을 쓰는

이유를 ldquo법칙이나 원칙 혹은 인과관계나 특정한 심리 또

는 잘 그려진 지리학과 같은 체계에 의해 세상이 지배되고

있다는 것에 반대rdquo하고 ldquo우리가 잘 모르며 우리에게 잘 다

가오지 않는 새로운 질서에 관해 생각해보기 위함rdquo이라고

설명한다 짧게 말해 이 세상에 필연이란 존재하지 않으

며 자신은 그것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말이다 이

게 전부다 순문학이라면 거장의 문학이라면 이보다 더 심

오한 통찰 혹은 비판이 있을 것이란 생각에 문장 속 숨겨진

의미를 발견하고자 머리를 싸맬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조

언을 하자면 독서는 독서 그 자체로 즐기면 된다 적어도 이

책에서는 그렇다 모호함과 예상외의 전개 속에서 재미를

느끼고 코르타사르가 묘사하는 세계의 불가지(不可知)성

을 어렴풋하게나마 인식할 수 있다면 이미 그것으로 충분

하다

편집자반 11기 강귀욱

『드러누운 밤』

훌리오 꼬르따사르 지음 박병규 옮김

창비 20141124

La noche boca arribaJulio Cortazar

31

03 얼어붙은 자의식의 바다를깨뜨리고 생명을 불어넣는 책 『데미안』

데미안을 읽고 나서야 그 동안 내가 두 발 딛고 서 있던 땅이

굳고 단단한 대지가 아니라 얼어붙은 바다에 불과했음을 알

았다 데미안은 도끼를 가져와 이 꽁꽁 언 바다를 가차 없이

내리 찍었다 그리고 말했다 얼어붙은 바다를 단단한 땅인

줄 알고 사느니 그 얼음을 깨부수고 그 속에 빠져 죽기 살기

로 허우적대라고 그러면 그 속에서 너는 너 자신을 똑바로 마

주하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성장할 것이라고

주인공 싱클레어도 그를 둘러싸고 있던 세계를 깨뜨려 나가

며 성장한다 그 모든 과정은 결국 진정한 자기 자신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가 깨뜨린 가장 큰 세계는 바로 자신의 사고 체계였다 세상

을 바라보는 기존의 이분법적이던 시각 고정되고 획일화된 시

각을 버렸다 주인공은 세계 안에 심지어는 자신 안에도 선하

고 악하며 밝고 어두운 양극단의 것들이 공존함을 이해하고

두 세계를 끌어안았다 주인공은 귀와 눈을 가리던 장막을 걷

어내 버리고 세상을 바로 보게 되었다 상극인 것들의 괴리로

이루어진 이 모순된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곧 자신 안의 부조

화 또한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스스로에게 다가서는 첫 걸음

이었다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양극단의 세계 사이에서 싱

클레어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며 흔들리기를 반복했다 이

때 그에게는 삶을 지탱할 중심축이 없었다 항상 내면이 아닌

외부 세계에서 자신이 속할 자리를 찾아 헤맸다 그가 비로소

온전한 자신을 만난 순간은 어느 편으로도 치우침 없이 스스

로의 기준으로 홀로 서게 되었을 때였다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 이 길은 당신이 내면에 있는 모

순되는 두 세계 한없이 나약하고 뒷걸음치는 비열한 모습들

과 정갈하고 깨끗한 곧은 힘들을 동시에 직시하는 순간에 시

작된다 그리고 이 길은 두 세계 속에 들어가 이리저리 휩쓸리

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세계를 밟고 우뚝 올라서서 스스로

가 중심이 됨으로써 앞으로 펼쳐진다

이제 lsquo자아를 찾으라rsquo는 지루하고 흔한 이야기가 더 이상 빤

하거나 우습지 않다 묵직한 울림이 되어 나를 흔든다 그냥

나만 붙잡고 흔드는 것이라면 손사래 쳐 뿌리치겠는데 내가

밟고 있던 땅 속해 있던 세계를 뿌리째 흔들어 버린다 읽는

내내 속이 답답하고 나에게 화가 난다 그런데 이렇게 마구

혼나면서 이상하게도 후련한 구석이 있다 호통을 치는 데미

안이 사실은 우리를 응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막연

하고 무기력한 안개에 휩싸여 있을 때 데미안은 그만의 방

식으로 우리에게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준다 물론 갈 방향을

정해준다거나 각자의 사정을 듣고 상담을 해주는 것은 아니

다 오로지 궁지로 몰아세울 뿐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사람들

은 잊고 있던 lsquo나 자신rsquo을 일깨운다 아 그동안 lsquo나rsquo에 대해 생

각해본 적이 있던가 라는 정도만이라도 좋다 이 물음이 바로

여정의 시작이니까

그렇게 스스로에게 묻고 나면 더 이상 전처럼 살 수는 없기 때

문이다 아니라면 자기 자신에게 면목이 없을 것이다 이 무서

운 책이 우리를 혼내고 몰아치면서도 여전히 영원한 고전이자

필독서로 사랑 받는 이유다

lsquo우리들 속에는 모든 것을 아는 한 사람이 있다rsquo고 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혼이 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혼

이 났다는 것은 자신 안에 있는 lsquo그 사람rsquo이 말을 하기 시작했

다는 뜻이니까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목소리가 희미하

고 멀리 있다 하여도 숨죽여 귀 기울이는 일 자체가 자신에게

로 가는 과정임을 잊지 말고

편집자반 11기 배예리

『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민음사 20001220

Demian Die Geschichte von Emil

Sinclairs Jugend(1919)

31

03 얼어붙은 자의식의 바다를깨뜨리고 생명을 불어넣는 책 『데미안』

데미안을 읽고 나서야 그 동안 내가 두 발 딛고 서 있던 땅이

굳고 단단한 대지가 아니라 얼어붙은 바다에 불과했음을 알

았다 데미안은 도끼를 가져와 이 꽁꽁 언 바다를 가차 없이

내리 찍었다 그리고 말했다 얼어붙은 바다를 단단한 땅인

줄 알고 사느니 그 얼음을 깨부수고 그 속에 빠져 죽기 살기

로 허우적대라고 그러면 그 속에서 너는 너 자신을 똑바로 마

주하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성장할 것이라고

주인공 싱클레어도 그를 둘러싸고 있던 세계를 깨뜨려 나가

며 성장한다 그 모든 과정은 결국 진정한 자기 자신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가 깨뜨린 가장 큰 세계는 바로 자신의 사고 체계였다 세상

을 바라보는 기존의 이분법적이던 시각 고정되고 획일화된 시

각을 버렸다 주인공은 세계 안에 심지어는 자신 안에도 선하

고 악하며 밝고 어두운 양극단의 것들이 공존함을 이해하고

두 세계를 끌어안았다 주인공은 귀와 눈을 가리던 장막을 걷

어내 버리고 세상을 바로 보게 되었다 상극인 것들의 괴리로

이루어진 이 모순된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곧 자신 안의 부조

화 또한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스스로에게 다가서는 첫 걸음

이었다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양극단의 세계 사이에서 싱

클레어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며 흔들리기를 반복했다 이

때 그에게는 삶을 지탱할 중심축이 없었다 항상 내면이 아닌

외부 세계에서 자신이 속할 자리를 찾아 헤맸다 그가 비로소

온전한 자신을 만난 순간은 어느 편으로도 치우침 없이 스스

로의 기준으로 홀로 서게 되었을 때였다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 이 길은 당신이 내면에 있는 모

순되는 두 세계 한없이 나약하고 뒷걸음치는 비열한 모습들

과 정갈하고 깨끗한 곧은 힘들을 동시에 직시하는 순간에 시

작된다 그리고 이 길은 두 세계 속에 들어가 이리저리 휩쓸리

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세계를 밟고 우뚝 올라서서 스스로

가 중심이 됨으로써 앞으로 펼쳐진다

이제 lsquo자아를 찾으라rsquo는 지루하고 흔한 이야기가 더 이상 빤

하거나 우습지 않다 묵직한 울림이 되어 나를 흔든다 그냥

나만 붙잡고 흔드는 것이라면 손사래 쳐 뿌리치겠는데 내가

밟고 있던 땅 속해 있던 세계를 뿌리째 흔들어 버린다 읽는

내내 속이 답답하고 나에게 화가 난다 그런데 이렇게 마구

혼나면서 이상하게도 후련한 구석이 있다 호통을 치는 데미

안이 사실은 우리를 응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막연

하고 무기력한 안개에 휩싸여 있을 때 데미안은 그만의 방

식으로 우리에게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준다 물론 갈 방향을

정해준다거나 각자의 사정을 듣고 상담을 해주는 것은 아니

다 오로지 궁지로 몰아세울 뿐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사람들

은 잊고 있던 lsquo나 자신rsquo을 일깨운다 아 그동안 lsquo나rsquo에 대해 생

각해본 적이 있던가 라는 정도만이라도 좋다 이 물음이 바로

여정의 시작이니까

그렇게 스스로에게 묻고 나면 더 이상 전처럼 살 수는 없기 때

문이다 아니라면 자기 자신에게 면목이 없을 것이다 이 무서

운 책이 우리를 혼내고 몰아치면서도 여전히 영원한 고전이자

필독서로 사랑 받는 이유다

lsquo우리들 속에는 모든 것을 아는 한 사람이 있다rsquo고 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혼이 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혼

이 났다는 것은 자신 안에 있는 lsquo그 사람rsquo이 말을 하기 시작했

다는 뜻이니까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목소리가 희미하

고 멀리 있다 하여도 숨죽여 귀 기울이는 일 자체가 자신에게

로 가는 과정임을 잊지 말고

편집자반 11기 배예리

『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민음사 20001220

Demian Die Geschichte von Emil

Sinclairs Jugend(1919)

32

박세길 인터뷰

진정한 역사가는 과거에 파묻히지 않는다옥(獄)에서 옥(玉)을 만든 작가 박세길 인터뷰

박세길 저자는 처녀작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로 80년대

대표 역사서 자리를 꿰찬 분입니다 1986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감되었을 때 감옥에서 역사책을 읽으며

사회 모순에 대해 고민했고 출소하자마자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집필했습니다 정권 탄압 속에서 왜곡된

현대사를 바로 잡았다는 의미를 지닌 이 대표작은 오랫동안

고시생과 대학생들의 필독서로 꼽혔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읽은 박세길 저자의 저서는 지난 6월 출간한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입니다 기사를 쓰고 편집할 때 청년 세대를

겨냥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박세길 저자는 역시나

청년들의 미래에 큰 관심을 갖고 계셨습니다 취업을

눈앞에 둔 서울출판예비학교 학생들이 가져야 할 자세를

여쭸습니다

출판학교에서 강의하신 한 선생님은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가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와

더불어 80년대 인문학의 양대

산맥이라고 하셨습니다

책의 성공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강의

요청이 많이 들어왔어요 먹고사는

경제적인 문제도 해결됐습니다

몇 부 팔렸는지는 잘 모릅니다

출판사에서 기밀 사항이라고

하더군요 요즘은 마케팅 차원으로도

몇 쇄 몇 부인지 밝히지만 그때는

세금 문제를 피해가기 위해서인지

쉬쉬하던 시절이었나 봅니다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는 대학

선후배끼리도 많이 물려주는 책이라고

들었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의 쉬운 설명이

좋았습니다 더불어 어떤 사명감을 안고 썼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완성하기에 앞서 어떤 목표를

두셨나요

청년 세대가 외환위기 이후 집중적인 희생양으로 전락하면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드러내면서 여기에

머물지 않고 청년 세대의 잠재력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들이 역사 무대 한복판에 진출해 자기 몫을 다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습니다

역사 분야는 시장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역사 혹은 현대사가 주목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통해 얘기하자면

80년대 후반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lsquo왜곡된

역사를 바로 알자rsquo는 시각 교정의 욕구가 있었던

차에 제 책이 나름 부응했는지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시기가 적절했던 셈이죠

2012년 대선 후 역사 분야가 잠시 반짝했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금세 시들었다고

하더군요 당시 역사 분야 책들이 일반 독자가

읽기에 다소 어렵거나 출간한 지 오래된 것들

위주였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돋을세길

출판학교에서 강의하신 한 선생님은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가 유홍준 교수의

책의 성공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강의

하더군요 요즘은 마케팅 차원으로도

선후배끼리도 많이 물려주는 책이라고

역사 분야는 시장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역사 혹은 현대사가 주목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통해 얘기하자면

80년대 후반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lsquo왜곡된

역사를 바로 알자rsquo는 시각 교정의 욕구가 있었던

차에 제 책이 나름 부응했는지 큰 반향을

읽기에 다소 어렵거나 출간한 지 오래된 것들

위주였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의 저자

33

2012년 대선 후 역사 분야가 관심을 받았던 것은

보수층의 재집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한

불안 때문일까요

맞습니다 그러나 마땅한 책이 없어서 그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역사 분야에서 베스트셀러를 내기

위해서는 시기가 맞아 떨어지고 내용 또한 대중이 원하는

것을 담고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를 편집한 lsquo생각정원rsquo

출판사의 정희용 편집자에게 감사 표시를 하셨습니다

어떤 편집자를 선호하시나요

간단합니다 편집자는 철저히 독자 입장에서 독자와 작가

사이의 간극을 줄여줘야 합니다 예를 들면 어려운 내용을

과감히 생략하고 다음 기회로 미루도록 설득한다거나 좌파

운동권 색채가 너무 강한 문장을 조금 순화하는 것 등입니다

어떤 내용이 이번 책에 꼭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선택을

도와줘야 합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을 작가님께서 직접

독자들에게 홍보하신다면 카피 문구를 짧게 제시할 수

있을까요

청년 세대 희망 찾기 갑갑한 현실을 어떻게 타개할 수

있을지 그 답을 찾아보는 길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취업 후 첫발을 내디딜 서울출판예비학교 11기

학생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출판 또한 돈을 벌어야한다는 기본 전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출판계를 지켜본 결과 뭔가 소명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오래

살아남았습니다 출판학교 역대 대표 중 일부는 나와 관계가

있는 사람들인데 모두 고유한 소명의식을 갖고 출판계에

뛰어들었습니다 때로는 상업주의 안에서 재주도 부리곤

했지만 어쨌든 분야 내에서 고유한 캐릭터를 구축했습니다

출판학교 학생들이 출판 상황을 이해하고 자신을 역할을

정하는 개인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비전 중심의 경영을

하는 회사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지만 개인 비전을 기업

비전으로 나아가 사회 비전으로 접목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과거에 안주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부분을

출판계에서는 SNS 등 인터넷 환경을 통한 마케팅으로

이해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SNS망 자체에서 무엇이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건 사람과

사람이 서로 소통하고 공감하는데 필요한 도구입니다

콘텐츠 중심의 사고가 중요하고 그것이 전제되지 않을 때

SNS는 착각에 불과하며 성공할 수 없습니다 필요한 콘텐츠

중심의 사고를 가지고 철저하게 진행하지 않으면 그 공간에서

허망하게 헤엄만 칠 뿐 입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SNS에서

맥없이 헤엄치다 익사하는 경우를 볼 수 있을 겁니다

콘텐츠와 마케팅의 영역을 하나로 보는 것과 따로

보는 것 어떤 것이 독자를 위하는 것일까요

출판 마케팅은 책을 기획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에서부터

개입돼야 하고 그 과정에 독자를 참여시키는 방식을

고민해야 합니다 미국 네브래스카주립대학의 이상문

교수는 lsquo밀실 안에서의 혁신은 끝났다rsquo고 얘기합니다

개방된 체제에서 독자 곧 소비자 사용자의 참여 하에 함께

만들어갈 때 혁신은 이뤄진다고 합니다 출판사의 비전이

브랜드로 연결될 때 독자는 자발적으로 의견을 주고받고

싶어 할 겁니다

마케터반 11기 이창환

디자

인 사

공예

Page 28: 서울출판예비학교 웹진 _5호 2015

28

없는 현대인의 단상이긴 해 현대가 분업사회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들 바쁘고 삶이 개인화 파편화되어 있으니까 119 같

은 집단이 필요한 거지 그래서 난 119를 신의 영역이라고 썼

어 lsquo나rsquo는 119를 거의 신적인 존재처럼 생각하잖아 부르면 모

든 게 해결될 것처럼 핸드폰 빌리고 공중전화 찾고 그런데 막

상 교통사고 현장에서 119 대원에게 면대 면으로 얘기를 했더

니 그들은 무슨 그따위 장난을 하냐고 말해 구조도 실은 신이

아니라 사람이 하는 일이고 그 사람이 관심이 없으면 묻히는

거지

오권 전화를 거는 것과 직접 구해주는 것의 차이가 큰 것 같아

자기가 구해주는 건 적극적인 행동이고 119에 전화하는 건 스

스로 최소한 양심적이긴 하다고 여기는 행동

수경 그런데 엘리베이터에 낀 사람을 아무 것도 모르는 일반

인이 어떻게 했다가는 더 위험해질 수도 있잖아

오권 맞아 사회가 시스템화하고 고도화될수록 각자의 업무가

분업화되었고 전문분야가 생겨났으니까 옛날 같았으면 애 낳

으면 그냥 동네 아주머니가 애 받고 어미가 죽으면 젖동냥 다

녔는데hellip 이젠 사고가 나면 생각이 119에 먼저 미치는 시대가

된 거지

수경 그래서 어딘가에 널브러져 다친 인간이 아니라 엘리베이

터라는 공간에 낀 남자를 설정한 것 아닐까 엘리베이터는 현

대화의 상징이잖아

한나 lsquo나rsquo도 어쩔 수 없는 게 출근 시간에 쫓겨서 시계를 계속

봐 먹고 사는 일이니까

오권 출근했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다시 집으로 돌아가

낀 사람을 구해주면 굉장히 희망찬 소설로 바뀔 텐데hellip (일동

웃음)

수경 이 소설로 현대 사회의 폐단은 다 얘기할 수 있겠는데

상화 김영하는 천재인 것 같다

누군가 그리고 잘생겼잖아

누군가 잘생긴 거야

누군가 지적인 분위기가 있어서 좋아 (한참 얘기)

한나 또 인상 깊었던 게 구두에 집착하는 거 lsquo나는 날렵한 치

타처럼hellip 구두를 가지고 엘리베이터에서 빠져나오는 데 성공

했다 허탈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rsquo는 구절

오권 자살한 사람들이 구두를 가지런히 벗어놓는 이미지가 무

슨 상징처럼 있잖아

한나 신발 한 쪽 없이 다녀봤어 계속 기우뚱대서 내가 걷거

나 서 있을 때 내가 잘못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여기서 lsquo나rsquo가

그랬을 거야 사실 lsquo나rsquo처럼 사는 게 정상인데 세상이 잘못된

건데

상화 이 소설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감정표현이잖아 하루 종

일 얼마나 힘들었겠어 처음으로 감정표현을 하니까 불쌍했어

오권 휴머니즘 불쌍론 또 나왔네(일동 웃음) 그럼 이제 사진

관으로 넘어가볼까hellip

편집자반 11기 이상화

2929

책씹는맛 01 냄새라는 경이 lt감각의 박물학gt 후각편을 읽고

냄새에는 언어가 없다 어휘가 부족한 우리는 말문이 막힌

채 불명료한 쾌감과 자극의 바다에서 말을 찾을 수밖에

없다1

이 말은 다이앤 애커먼의 『감각의 박물학』 제 1장 후각에

나오는 구절이다 냄새를 글로 쓰고자 하는 나의 시도가 늘

실패로 귀결되는 이유를 이 구절에서 찾았다 작가의 말처

럼 냄새에 대해 쓴다는 건 언어 밖 세계로 나갔다가 다시

언어로 되돌아오는 길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길에서 헤매

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후각이라는 감각에서 길을

잃는 것은 낭만적인 일이기도 하다 lsquo냄새의 뇌관을 건드리

면 모든 추억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기rsquo2 때문이다 냄새 하

나에 수많은 추억들이 줄줄이 기억의 회로 위로 떠오른다

예를 들면 바다 냄새 하나만 상상해도 그와 관련된 수많

은 기억들이 머릿속에 뒤섞인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바닷가와 관련된 그 모든 추억들이 기억의 영사막에서 한

편의 옴니버스 영화 형태로 내게 다가온다 난 내 기억의

관객이 되어 그 영화를 보다가 견딜 수 없는 그리움에 젖는

다 이 영화에 대한 감상문을 적으려면 나는 말문이 막힌

다 그래서 몇 글자 적다가 결국 글을 쓰기를 멈춘다 굳이

언어로 표현하자면 쓸 수 없는 그리움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1 『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옮김 작가정신 20040720

A Natural History of the Senses(1991) 17쪽

2 같은 책 18쪽

결국 lsquo언어가 존재하는 세계에서 경이는 언어의 칼날 아래

서 쉽게 해부되고 냄새는 자주 혀끝에서 맴돈다rsquo3 냄새의

숭고함 앞에서 우리는 말을 멈춘다 이처럼 냄새는 말할 수

없는 자연의 경이로움과 닮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lsquo냄새가 우리의 마음을 그토록 강하게 움직이는 것은 부분

적으로 그 이름을 부를 수 없기 때문rsquo4이라고 한다 저자는

그렇기에 사람들이 냄새를 lsquo분 냄새 비슷한 펭귄 냄새가

나는 호화로운 화장실 냄새가 나는rsquo 같은 말로 표현할 뿐

이며 냄새에 대한 이름은 주어져 있지 않다고 말한다 또

한 종류는 같아도 강약과 농도가 다른 각각의 냄새에 이름

을 붙여줄 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우린 일상적으로 냄새를

맡으면서도 그 냄새와 멀리 떨어져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명명되지 않은 것은 결국 잊히는 게 아닐까 부를

수 없음에서 오는 경외감과 숭고함이 있을지라도 냄새는

말해져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말할 수 없는 것에 자꾸

만 침묵하기만 해야 할까

감각도 모험의 영역이 될 수 있다 세계 일주만이 세상을

아는 길일까 lsquo나rsquo를 온전히 아는 것이 역설적으로 세상과

가까워지는 일인지도 모른다 나를 알기 위한 길 중 하나가

내가 가지고 있는 감각을 이해하고 그걸 언어로 표현하는

일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어쩌면 우리와 제일 가깝지만 말

하기 낯선 감각 후각을 이해하는 일이 중요한지도 모른다

냄새라는 감각 속에서 우리 모두 길을 잃고 헤매고 모험해

보자 냄새에 나름의 이름을 지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

리고 농도에 따라 냄새를 구분하는 일도 해보자 냄새라는

경이는 우리를 더 이상 침묵으로 이끌지 않을 것이다

디자인반 11기 백가은

3 같은 책 22쪽

4 같은 책 22쪽

『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 옮김

작가정신 20040720

A Natural History of the Senses(1991)

3030

02 현실을 전복시키는 비현실

모호함이 주는 환상성

20세기 중반 중남미 소설은 전통적인 사실주의 서사 구조

를 깨고 현실과 환상을 혼합시키는 새로운 글쓰기 방식으

로 세계문학의 중심에 선다 이 시기에 주목 받은 일련의

중남미 작가들을 가리켜 lsquo붐 세대 작가rsquo라 칭하는데 아르

헨티나의 환상문학 작가 코르타사르는 이 붐 세대 작가군

의 선구자이자 대표 주자 격인 인물이다 그러나 그 문학적

성과와 명성이 무색하게도 국내 독자들에겐 그의 이름이

아직 생소한 것이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에서는 그

의 작품이 중남미 단편 선집에나 몇 편이 번역되었을 뿐 본

격적으로 소개된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중남미 문학을 공부했고 그의 몇 안 되는 번역 작품을 인

상 깊게 읽었던 독자 입장에서 이번에 출간된 코르타사르

의 단편집『드러누운 밤』은 가뭄의 단비처럼 반가운 신간

이다

환상 문학이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J R R 톨킨 류의 판타

지소설 혹은 쥘 베른이나 아이작 아시모프 류의 SF소설을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코르타사르의 환상문학은 이들 범

주에 들어가지 않는다 코르타사르 작품에서 나타나는 환

상이란 토도로프가 정의한 바 있는 환상 그러니까 자연적

인 것과 초자연적인 것 사이의 망설임에서 발생하는 환상

에 가깝다 따라서 판타지소설의 lsquo현실과 동떨어진 환상rsquo

혹은 SF소설의 lsquo설득력 있고 현실감 있는 환상rsquo을 기대하

는 독자라면 아마 십중팔구 그의 작품을 읽고 실망할 것

이다 어쩌면 이게 무슨 환상문학이냐는 푸념을 늘어놓을

지도 모르겠다 역시 가장 좋은 것은 선입관을 버리고 책을

읽는 것이다

코르타사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lsquo모호함rsquo이다 인물이나

배경 묘사에서 제시되는 기본적인 정보도 모호하고 사건의

전개 양상이 가진 당위성도 모호하다 작품 내에서 주요한

스토리 라인을 담당하는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경계도 모

호하며 심지어는 화자의 정체마저 모호한 작품도 있다 이

런 모호함의 향연은 짙게 깔린 안개와도 같아서 독자들은

그 속에서 한 치 앞도 제대로 내다볼 수 없음은 물론이요

이미 지나간 사실조차도 자신이 맞게 인식한 것인지 확신

할 수 없을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무엇이 진짜인지

독자들의 판단을 망설이게 만드는 이런 상태야말로 코르

타사르의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는 환상이란 개념이다 독

자들은 이 환상 속에서 그저 전방을 주시하며 천천히 나아

갈 수밖에 없다

다행스럽게도 코르타사르는 독자들의 시련을 헛되게 하지

않는다 작품의 시작점 일상 세계에 우연히 침투한 lsquo비현

실적인 것rsquo은 안개 속에서 알게 모르게 자신의 지분을 늘려

나간다 그리고 작품의 종점에 다다른 독자들은 비현실이

현실이 되고 현실이 비현실이 되는 이전과는 전혀 새로운

세계와 마주할 것이다 다시 말해 필연과 이성의 법칙이 지

배하는 세계가 우연과 환상이 지배하는 세계로 변하는 것

이다 이러한 세계의 전복은 마치 여기저기 단서를 흩뿌리

고 사람들을 알쏭달쏭하게 만들었다가 결말부에서 모든

것을 폭발시키는 추리소설 혹은 반전영화를 보는 듯한 재

미를 선사한다

그렇다면 코르타사르가 이 소설들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책을 다 읽고 난 독자라면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의문점이다 코르타사르는 자신이 환상문학을 쓰는

이유를 ldquo법칙이나 원칙 혹은 인과관계나 특정한 심리 또

는 잘 그려진 지리학과 같은 체계에 의해 세상이 지배되고

있다는 것에 반대rdquo하고 ldquo우리가 잘 모르며 우리에게 잘 다

가오지 않는 새로운 질서에 관해 생각해보기 위함rdquo이라고

설명한다 짧게 말해 이 세상에 필연이란 존재하지 않으

며 자신은 그것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말이다 이

게 전부다 순문학이라면 거장의 문학이라면 이보다 더 심

오한 통찰 혹은 비판이 있을 것이란 생각에 문장 속 숨겨진

의미를 발견하고자 머리를 싸맬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조

언을 하자면 독서는 독서 그 자체로 즐기면 된다 적어도 이

책에서는 그렇다 모호함과 예상외의 전개 속에서 재미를

느끼고 코르타사르가 묘사하는 세계의 불가지(不可知)성

을 어렴풋하게나마 인식할 수 있다면 이미 그것으로 충분

하다

편집자반 11기 강귀욱

『드러누운 밤』

훌리오 꼬르따사르 지음 박병규 옮김

창비 20141124

La noche boca arribaJulio Cortazar

31

03 얼어붙은 자의식의 바다를깨뜨리고 생명을 불어넣는 책 『데미안』

데미안을 읽고 나서야 그 동안 내가 두 발 딛고 서 있던 땅이

굳고 단단한 대지가 아니라 얼어붙은 바다에 불과했음을 알

았다 데미안은 도끼를 가져와 이 꽁꽁 언 바다를 가차 없이

내리 찍었다 그리고 말했다 얼어붙은 바다를 단단한 땅인

줄 알고 사느니 그 얼음을 깨부수고 그 속에 빠져 죽기 살기

로 허우적대라고 그러면 그 속에서 너는 너 자신을 똑바로 마

주하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성장할 것이라고

주인공 싱클레어도 그를 둘러싸고 있던 세계를 깨뜨려 나가

며 성장한다 그 모든 과정은 결국 진정한 자기 자신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가 깨뜨린 가장 큰 세계는 바로 자신의 사고 체계였다 세상

을 바라보는 기존의 이분법적이던 시각 고정되고 획일화된 시

각을 버렸다 주인공은 세계 안에 심지어는 자신 안에도 선하

고 악하며 밝고 어두운 양극단의 것들이 공존함을 이해하고

두 세계를 끌어안았다 주인공은 귀와 눈을 가리던 장막을 걷

어내 버리고 세상을 바로 보게 되었다 상극인 것들의 괴리로

이루어진 이 모순된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곧 자신 안의 부조

화 또한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스스로에게 다가서는 첫 걸음

이었다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양극단의 세계 사이에서 싱

클레어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며 흔들리기를 반복했다 이

때 그에게는 삶을 지탱할 중심축이 없었다 항상 내면이 아닌

외부 세계에서 자신이 속할 자리를 찾아 헤맸다 그가 비로소

온전한 자신을 만난 순간은 어느 편으로도 치우침 없이 스스

로의 기준으로 홀로 서게 되었을 때였다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 이 길은 당신이 내면에 있는 모

순되는 두 세계 한없이 나약하고 뒷걸음치는 비열한 모습들

과 정갈하고 깨끗한 곧은 힘들을 동시에 직시하는 순간에 시

작된다 그리고 이 길은 두 세계 속에 들어가 이리저리 휩쓸리

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세계를 밟고 우뚝 올라서서 스스로

가 중심이 됨으로써 앞으로 펼쳐진다

이제 lsquo자아를 찾으라rsquo는 지루하고 흔한 이야기가 더 이상 빤

하거나 우습지 않다 묵직한 울림이 되어 나를 흔든다 그냥

나만 붙잡고 흔드는 것이라면 손사래 쳐 뿌리치겠는데 내가

밟고 있던 땅 속해 있던 세계를 뿌리째 흔들어 버린다 읽는

내내 속이 답답하고 나에게 화가 난다 그런데 이렇게 마구

혼나면서 이상하게도 후련한 구석이 있다 호통을 치는 데미

안이 사실은 우리를 응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막연

하고 무기력한 안개에 휩싸여 있을 때 데미안은 그만의 방

식으로 우리에게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준다 물론 갈 방향을

정해준다거나 각자의 사정을 듣고 상담을 해주는 것은 아니

다 오로지 궁지로 몰아세울 뿐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사람들

은 잊고 있던 lsquo나 자신rsquo을 일깨운다 아 그동안 lsquo나rsquo에 대해 생

각해본 적이 있던가 라는 정도만이라도 좋다 이 물음이 바로

여정의 시작이니까

그렇게 스스로에게 묻고 나면 더 이상 전처럼 살 수는 없기 때

문이다 아니라면 자기 자신에게 면목이 없을 것이다 이 무서

운 책이 우리를 혼내고 몰아치면서도 여전히 영원한 고전이자

필독서로 사랑 받는 이유다

lsquo우리들 속에는 모든 것을 아는 한 사람이 있다rsquo고 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혼이 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혼

이 났다는 것은 자신 안에 있는 lsquo그 사람rsquo이 말을 하기 시작했

다는 뜻이니까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목소리가 희미하

고 멀리 있다 하여도 숨죽여 귀 기울이는 일 자체가 자신에게

로 가는 과정임을 잊지 말고

편집자반 11기 배예리

『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민음사 20001220

Demian Die Geschichte von Emil

Sinclairs Jugend(1919)

31

03 얼어붙은 자의식의 바다를깨뜨리고 생명을 불어넣는 책 『데미안』

데미안을 읽고 나서야 그 동안 내가 두 발 딛고 서 있던 땅이

굳고 단단한 대지가 아니라 얼어붙은 바다에 불과했음을 알

았다 데미안은 도끼를 가져와 이 꽁꽁 언 바다를 가차 없이

내리 찍었다 그리고 말했다 얼어붙은 바다를 단단한 땅인

줄 알고 사느니 그 얼음을 깨부수고 그 속에 빠져 죽기 살기

로 허우적대라고 그러면 그 속에서 너는 너 자신을 똑바로 마

주하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성장할 것이라고

주인공 싱클레어도 그를 둘러싸고 있던 세계를 깨뜨려 나가

며 성장한다 그 모든 과정은 결국 진정한 자기 자신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가 깨뜨린 가장 큰 세계는 바로 자신의 사고 체계였다 세상

을 바라보는 기존의 이분법적이던 시각 고정되고 획일화된 시

각을 버렸다 주인공은 세계 안에 심지어는 자신 안에도 선하

고 악하며 밝고 어두운 양극단의 것들이 공존함을 이해하고

두 세계를 끌어안았다 주인공은 귀와 눈을 가리던 장막을 걷

어내 버리고 세상을 바로 보게 되었다 상극인 것들의 괴리로

이루어진 이 모순된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곧 자신 안의 부조

화 또한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스스로에게 다가서는 첫 걸음

이었다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양극단의 세계 사이에서 싱

클레어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며 흔들리기를 반복했다 이

때 그에게는 삶을 지탱할 중심축이 없었다 항상 내면이 아닌

외부 세계에서 자신이 속할 자리를 찾아 헤맸다 그가 비로소

온전한 자신을 만난 순간은 어느 편으로도 치우침 없이 스스

로의 기준으로 홀로 서게 되었을 때였다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 이 길은 당신이 내면에 있는 모

순되는 두 세계 한없이 나약하고 뒷걸음치는 비열한 모습들

과 정갈하고 깨끗한 곧은 힘들을 동시에 직시하는 순간에 시

작된다 그리고 이 길은 두 세계 속에 들어가 이리저리 휩쓸리

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세계를 밟고 우뚝 올라서서 스스로

가 중심이 됨으로써 앞으로 펼쳐진다

이제 lsquo자아를 찾으라rsquo는 지루하고 흔한 이야기가 더 이상 빤

하거나 우습지 않다 묵직한 울림이 되어 나를 흔든다 그냥

나만 붙잡고 흔드는 것이라면 손사래 쳐 뿌리치겠는데 내가

밟고 있던 땅 속해 있던 세계를 뿌리째 흔들어 버린다 읽는

내내 속이 답답하고 나에게 화가 난다 그런데 이렇게 마구

혼나면서 이상하게도 후련한 구석이 있다 호통을 치는 데미

안이 사실은 우리를 응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막연

하고 무기력한 안개에 휩싸여 있을 때 데미안은 그만의 방

식으로 우리에게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준다 물론 갈 방향을

정해준다거나 각자의 사정을 듣고 상담을 해주는 것은 아니

다 오로지 궁지로 몰아세울 뿐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사람들

은 잊고 있던 lsquo나 자신rsquo을 일깨운다 아 그동안 lsquo나rsquo에 대해 생

각해본 적이 있던가 라는 정도만이라도 좋다 이 물음이 바로

여정의 시작이니까

그렇게 스스로에게 묻고 나면 더 이상 전처럼 살 수는 없기 때

문이다 아니라면 자기 자신에게 면목이 없을 것이다 이 무서

운 책이 우리를 혼내고 몰아치면서도 여전히 영원한 고전이자

필독서로 사랑 받는 이유다

lsquo우리들 속에는 모든 것을 아는 한 사람이 있다rsquo고 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혼이 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혼

이 났다는 것은 자신 안에 있는 lsquo그 사람rsquo이 말을 하기 시작했

다는 뜻이니까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목소리가 희미하

고 멀리 있다 하여도 숨죽여 귀 기울이는 일 자체가 자신에게

로 가는 과정임을 잊지 말고

편집자반 11기 배예리

『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민음사 20001220

Demian Die Geschichte von Emil

Sinclairs Jugend(1919)

32

박세길 인터뷰

진정한 역사가는 과거에 파묻히지 않는다옥(獄)에서 옥(玉)을 만든 작가 박세길 인터뷰

박세길 저자는 처녀작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로 80년대

대표 역사서 자리를 꿰찬 분입니다 1986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감되었을 때 감옥에서 역사책을 읽으며

사회 모순에 대해 고민했고 출소하자마자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집필했습니다 정권 탄압 속에서 왜곡된

현대사를 바로 잡았다는 의미를 지닌 이 대표작은 오랫동안

고시생과 대학생들의 필독서로 꼽혔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읽은 박세길 저자의 저서는 지난 6월 출간한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입니다 기사를 쓰고 편집할 때 청년 세대를

겨냥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박세길 저자는 역시나

청년들의 미래에 큰 관심을 갖고 계셨습니다 취업을

눈앞에 둔 서울출판예비학교 학생들이 가져야 할 자세를

여쭸습니다

출판학교에서 강의하신 한 선생님은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가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와

더불어 80년대 인문학의 양대

산맥이라고 하셨습니다

책의 성공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강의

요청이 많이 들어왔어요 먹고사는

경제적인 문제도 해결됐습니다

몇 부 팔렸는지는 잘 모릅니다

출판사에서 기밀 사항이라고

하더군요 요즘은 마케팅 차원으로도

몇 쇄 몇 부인지 밝히지만 그때는

세금 문제를 피해가기 위해서인지

쉬쉬하던 시절이었나 봅니다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는 대학

선후배끼리도 많이 물려주는 책이라고

들었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의 쉬운 설명이

좋았습니다 더불어 어떤 사명감을 안고 썼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완성하기에 앞서 어떤 목표를

두셨나요

청년 세대가 외환위기 이후 집중적인 희생양으로 전락하면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드러내면서 여기에

머물지 않고 청년 세대의 잠재력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들이 역사 무대 한복판에 진출해 자기 몫을 다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습니다

역사 분야는 시장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역사 혹은 현대사가 주목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통해 얘기하자면

80년대 후반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lsquo왜곡된

역사를 바로 알자rsquo는 시각 교정의 욕구가 있었던

차에 제 책이 나름 부응했는지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시기가 적절했던 셈이죠

2012년 대선 후 역사 분야가 잠시 반짝했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금세 시들었다고

하더군요 당시 역사 분야 책들이 일반 독자가

읽기에 다소 어렵거나 출간한 지 오래된 것들

위주였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돋을세길

출판학교에서 강의하신 한 선생님은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가 유홍준 교수의

책의 성공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강의

하더군요 요즘은 마케팅 차원으로도

선후배끼리도 많이 물려주는 책이라고

역사 분야는 시장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역사 혹은 현대사가 주목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통해 얘기하자면

80년대 후반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lsquo왜곡된

역사를 바로 알자rsquo는 시각 교정의 욕구가 있었던

차에 제 책이 나름 부응했는지 큰 반향을

읽기에 다소 어렵거나 출간한 지 오래된 것들

위주였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의 저자

33

2012년 대선 후 역사 분야가 관심을 받았던 것은

보수층의 재집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한

불안 때문일까요

맞습니다 그러나 마땅한 책이 없어서 그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역사 분야에서 베스트셀러를 내기

위해서는 시기가 맞아 떨어지고 내용 또한 대중이 원하는

것을 담고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를 편집한 lsquo생각정원rsquo

출판사의 정희용 편집자에게 감사 표시를 하셨습니다

어떤 편집자를 선호하시나요

간단합니다 편집자는 철저히 독자 입장에서 독자와 작가

사이의 간극을 줄여줘야 합니다 예를 들면 어려운 내용을

과감히 생략하고 다음 기회로 미루도록 설득한다거나 좌파

운동권 색채가 너무 강한 문장을 조금 순화하는 것 등입니다

어떤 내용이 이번 책에 꼭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선택을

도와줘야 합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을 작가님께서 직접

독자들에게 홍보하신다면 카피 문구를 짧게 제시할 수

있을까요

청년 세대 희망 찾기 갑갑한 현실을 어떻게 타개할 수

있을지 그 답을 찾아보는 길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취업 후 첫발을 내디딜 서울출판예비학교 11기

학생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출판 또한 돈을 벌어야한다는 기본 전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출판계를 지켜본 결과 뭔가 소명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오래

살아남았습니다 출판학교 역대 대표 중 일부는 나와 관계가

있는 사람들인데 모두 고유한 소명의식을 갖고 출판계에

뛰어들었습니다 때로는 상업주의 안에서 재주도 부리곤

했지만 어쨌든 분야 내에서 고유한 캐릭터를 구축했습니다

출판학교 학생들이 출판 상황을 이해하고 자신을 역할을

정하는 개인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비전 중심의 경영을

하는 회사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지만 개인 비전을 기업

비전으로 나아가 사회 비전으로 접목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과거에 안주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부분을

출판계에서는 SNS 등 인터넷 환경을 통한 마케팅으로

이해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SNS망 자체에서 무엇이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건 사람과

사람이 서로 소통하고 공감하는데 필요한 도구입니다

콘텐츠 중심의 사고가 중요하고 그것이 전제되지 않을 때

SNS는 착각에 불과하며 성공할 수 없습니다 필요한 콘텐츠

중심의 사고를 가지고 철저하게 진행하지 않으면 그 공간에서

허망하게 헤엄만 칠 뿐 입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SNS에서

맥없이 헤엄치다 익사하는 경우를 볼 수 있을 겁니다

콘텐츠와 마케팅의 영역을 하나로 보는 것과 따로

보는 것 어떤 것이 독자를 위하는 것일까요

출판 마케팅은 책을 기획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에서부터

개입돼야 하고 그 과정에 독자를 참여시키는 방식을

고민해야 합니다 미국 네브래스카주립대학의 이상문

교수는 lsquo밀실 안에서의 혁신은 끝났다rsquo고 얘기합니다

개방된 체제에서 독자 곧 소비자 사용자의 참여 하에 함께

만들어갈 때 혁신은 이뤄진다고 합니다 출판사의 비전이

브랜드로 연결될 때 독자는 자발적으로 의견을 주고받고

싶어 할 겁니다

마케터반 11기 이창환

디자

인 사

공예

Page 29: 서울출판예비학교 웹진 _5호 2015

2929

책씹는맛 01 냄새라는 경이 lt감각의 박물학gt 후각편을 읽고

냄새에는 언어가 없다 어휘가 부족한 우리는 말문이 막힌

채 불명료한 쾌감과 자극의 바다에서 말을 찾을 수밖에

없다1

이 말은 다이앤 애커먼의 『감각의 박물학』 제 1장 후각에

나오는 구절이다 냄새를 글로 쓰고자 하는 나의 시도가 늘

실패로 귀결되는 이유를 이 구절에서 찾았다 작가의 말처

럼 냄새에 대해 쓴다는 건 언어 밖 세계로 나갔다가 다시

언어로 되돌아오는 길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길에서 헤매

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후각이라는 감각에서 길을

잃는 것은 낭만적인 일이기도 하다 lsquo냄새의 뇌관을 건드리

면 모든 추억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기rsquo2 때문이다 냄새 하

나에 수많은 추억들이 줄줄이 기억의 회로 위로 떠오른다

예를 들면 바다 냄새 하나만 상상해도 그와 관련된 수많

은 기억들이 머릿속에 뒤섞인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바닷가와 관련된 그 모든 추억들이 기억의 영사막에서 한

편의 옴니버스 영화 형태로 내게 다가온다 난 내 기억의

관객이 되어 그 영화를 보다가 견딜 수 없는 그리움에 젖는

다 이 영화에 대한 감상문을 적으려면 나는 말문이 막힌

다 그래서 몇 글자 적다가 결국 글을 쓰기를 멈춘다 굳이

언어로 표현하자면 쓸 수 없는 그리움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1 『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옮김 작가정신 20040720

A Natural History of the Senses(1991) 17쪽

2 같은 책 18쪽

결국 lsquo언어가 존재하는 세계에서 경이는 언어의 칼날 아래

서 쉽게 해부되고 냄새는 자주 혀끝에서 맴돈다rsquo3 냄새의

숭고함 앞에서 우리는 말을 멈춘다 이처럼 냄새는 말할 수

없는 자연의 경이로움과 닮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lsquo냄새가 우리의 마음을 그토록 강하게 움직이는 것은 부분

적으로 그 이름을 부를 수 없기 때문rsquo4이라고 한다 저자는

그렇기에 사람들이 냄새를 lsquo분 냄새 비슷한 펭귄 냄새가

나는 호화로운 화장실 냄새가 나는rsquo 같은 말로 표현할 뿐

이며 냄새에 대한 이름은 주어져 있지 않다고 말한다 또

한 종류는 같아도 강약과 농도가 다른 각각의 냄새에 이름

을 붙여줄 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우린 일상적으로 냄새를

맡으면서도 그 냄새와 멀리 떨어져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명명되지 않은 것은 결국 잊히는 게 아닐까 부를

수 없음에서 오는 경외감과 숭고함이 있을지라도 냄새는

말해져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말할 수 없는 것에 자꾸

만 침묵하기만 해야 할까

감각도 모험의 영역이 될 수 있다 세계 일주만이 세상을

아는 길일까 lsquo나rsquo를 온전히 아는 것이 역설적으로 세상과

가까워지는 일인지도 모른다 나를 알기 위한 길 중 하나가

내가 가지고 있는 감각을 이해하고 그걸 언어로 표현하는

일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어쩌면 우리와 제일 가깝지만 말

하기 낯선 감각 후각을 이해하는 일이 중요한지도 모른다

냄새라는 감각 속에서 우리 모두 길을 잃고 헤매고 모험해

보자 냄새에 나름의 이름을 지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

리고 농도에 따라 냄새를 구분하는 일도 해보자 냄새라는

경이는 우리를 더 이상 침묵으로 이끌지 않을 것이다

디자인반 11기 백가은

3 같은 책 22쪽

4 같은 책 22쪽

『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 옮김

작가정신 20040720

A Natural History of the Senses(1991)

3030

02 현실을 전복시키는 비현실

모호함이 주는 환상성

20세기 중반 중남미 소설은 전통적인 사실주의 서사 구조

를 깨고 현실과 환상을 혼합시키는 새로운 글쓰기 방식으

로 세계문학의 중심에 선다 이 시기에 주목 받은 일련의

중남미 작가들을 가리켜 lsquo붐 세대 작가rsquo라 칭하는데 아르

헨티나의 환상문학 작가 코르타사르는 이 붐 세대 작가군

의 선구자이자 대표 주자 격인 인물이다 그러나 그 문학적

성과와 명성이 무색하게도 국내 독자들에겐 그의 이름이

아직 생소한 것이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에서는 그

의 작품이 중남미 단편 선집에나 몇 편이 번역되었을 뿐 본

격적으로 소개된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중남미 문학을 공부했고 그의 몇 안 되는 번역 작품을 인

상 깊게 읽었던 독자 입장에서 이번에 출간된 코르타사르

의 단편집『드러누운 밤』은 가뭄의 단비처럼 반가운 신간

이다

환상 문학이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J R R 톨킨 류의 판타

지소설 혹은 쥘 베른이나 아이작 아시모프 류의 SF소설을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코르타사르의 환상문학은 이들 범

주에 들어가지 않는다 코르타사르 작품에서 나타나는 환

상이란 토도로프가 정의한 바 있는 환상 그러니까 자연적

인 것과 초자연적인 것 사이의 망설임에서 발생하는 환상

에 가깝다 따라서 판타지소설의 lsquo현실과 동떨어진 환상rsquo

혹은 SF소설의 lsquo설득력 있고 현실감 있는 환상rsquo을 기대하

는 독자라면 아마 십중팔구 그의 작품을 읽고 실망할 것

이다 어쩌면 이게 무슨 환상문학이냐는 푸념을 늘어놓을

지도 모르겠다 역시 가장 좋은 것은 선입관을 버리고 책을

읽는 것이다

코르타사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lsquo모호함rsquo이다 인물이나

배경 묘사에서 제시되는 기본적인 정보도 모호하고 사건의

전개 양상이 가진 당위성도 모호하다 작품 내에서 주요한

스토리 라인을 담당하는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경계도 모

호하며 심지어는 화자의 정체마저 모호한 작품도 있다 이

런 모호함의 향연은 짙게 깔린 안개와도 같아서 독자들은

그 속에서 한 치 앞도 제대로 내다볼 수 없음은 물론이요

이미 지나간 사실조차도 자신이 맞게 인식한 것인지 확신

할 수 없을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무엇이 진짜인지

독자들의 판단을 망설이게 만드는 이런 상태야말로 코르

타사르의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는 환상이란 개념이다 독

자들은 이 환상 속에서 그저 전방을 주시하며 천천히 나아

갈 수밖에 없다

다행스럽게도 코르타사르는 독자들의 시련을 헛되게 하지

않는다 작품의 시작점 일상 세계에 우연히 침투한 lsquo비현

실적인 것rsquo은 안개 속에서 알게 모르게 자신의 지분을 늘려

나간다 그리고 작품의 종점에 다다른 독자들은 비현실이

현실이 되고 현실이 비현실이 되는 이전과는 전혀 새로운

세계와 마주할 것이다 다시 말해 필연과 이성의 법칙이 지

배하는 세계가 우연과 환상이 지배하는 세계로 변하는 것

이다 이러한 세계의 전복은 마치 여기저기 단서를 흩뿌리

고 사람들을 알쏭달쏭하게 만들었다가 결말부에서 모든

것을 폭발시키는 추리소설 혹은 반전영화를 보는 듯한 재

미를 선사한다

그렇다면 코르타사르가 이 소설들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책을 다 읽고 난 독자라면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의문점이다 코르타사르는 자신이 환상문학을 쓰는

이유를 ldquo법칙이나 원칙 혹은 인과관계나 특정한 심리 또

는 잘 그려진 지리학과 같은 체계에 의해 세상이 지배되고

있다는 것에 반대rdquo하고 ldquo우리가 잘 모르며 우리에게 잘 다

가오지 않는 새로운 질서에 관해 생각해보기 위함rdquo이라고

설명한다 짧게 말해 이 세상에 필연이란 존재하지 않으

며 자신은 그것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말이다 이

게 전부다 순문학이라면 거장의 문학이라면 이보다 더 심

오한 통찰 혹은 비판이 있을 것이란 생각에 문장 속 숨겨진

의미를 발견하고자 머리를 싸맬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조

언을 하자면 독서는 독서 그 자체로 즐기면 된다 적어도 이

책에서는 그렇다 모호함과 예상외의 전개 속에서 재미를

느끼고 코르타사르가 묘사하는 세계의 불가지(不可知)성

을 어렴풋하게나마 인식할 수 있다면 이미 그것으로 충분

하다

편집자반 11기 강귀욱

『드러누운 밤』

훌리오 꼬르따사르 지음 박병규 옮김

창비 20141124

La noche boca arribaJulio Cortazar

31

03 얼어붙은 자의식의 바다를깨뜨리고 생명을 불어넣는 책 『데미안』

데미안을 읽고 나서야 그 동안 내가 두 발 딛고 서 있던 땅이

굳고 단단한 대지가 아니라 얼어붙은 바다에 불과했음을 알

았다 데미안은 도끼를 가져와 이 꽁꽁 언 바다를 가차 없이

내리 찍었다 그리고 말했다 얼어붙은 바다를 단단한 땅인

줄 알고 사느니 그 얼음을 깨부수고 그 속에 빠져 죽기 살기

로 허우적대라고 그러면 그 속에서 너는 너 자신을 똑바로 마

주하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성장할 것이라고

주인공 싱클레어도 그를 둘러싸고 있던 세계를 깨뜨려 나가

며 성장한다 그 모든 과정은 결국 진정한 자기 자신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가 깨뜨린 가장 큰 세계는 바로 자신의 사고 체계였다 세상

을 바라보는 기존의 이분법적이던 시각 고정되고 획일화된 시

각을 버렸다 주인공은 세계 안에 심지어는 자신 안에도 선하

고 악하며 밝고 어두운 양극단의 것들이 공존함을 이해하고

두 세계를 끌어안았다 주인공은 귀와 눈을 가리던 장막을 걷

어내 버리고 세상을 바로 보게 되었다 상극인 것들의 괴리로

이루어진 이 모순된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곧 자신 안의 부조

화 또한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스스로에게 다가서는 첫 걸음

이었다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양극단의 세계 사이에서 싱

클레어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며 흔들리기를 반복했다 이

때 그에게는 삶을 지탱할 중심축이 없었다 항상 내면이 아닌

외부 세계에서 자신이 속할 자리를 찾아 헤맸다 그가 비로소

온전한 자신을 만난 순간은 어느 편으로도 치우침 없이 스스

로의 기준으로 홀로 서게 되었을 때였다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 이 길은 당신이 내면에 있는 모

순되는 두 세계 한없이 나약하고 뒷걸음치는 비열한 모습들

과 정갈하고 깨끗한 곧은 힘들을 동시에 직시하는 순간에 시

작된다 그리고 이 길은 두 세계 속에 들어가 이리저리 휩쓸리

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세계를 밟고 우뚝 올라서서 스스로

가 중심이 됨으로써 앞으로 펼쳐진다

이제 lsquo자아를 찾으라rsquo는 지루하고 흔한 이야기가 더 이상 빤

하거나 우습지 않다 묵직한 울림이 되어 나를 흔든다 그냥

나만 붙잡고 흔드는 것이라면 손사래 쳐 뿌리치겠는데 내가

밟고 있던 땅 속해 있던 세계를 뿌리째 흔들어 버린다 읽는

내내 속이 답답하고 나에게 화가 난다 그런데 이렇게 마구

혼나면서 이상하게도 후련한 구석이 있다 호통을 치는 데미

안이 사실은 우리를 응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막연

하고 무기력한 안개에 휩싸여 있을 때 데미안은 그만의 방

식으로 우리에게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준다 물론 갈 방향을

정해준다거나 각자의 사정을 듣고 상담을 해주는 것은 아니

다 오로지 궁지로 몰아세울 뿐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사람들

은 잊고 있던 lsquo나 자신rsquo을 일깨운다 아 그동안 lsquo나rsquo에 대해 생

각해본 적이 있던가 라는 정도만이라도 좋다 이 물음이 바로

여정의 시작이니까

그렇게 스스로에게 묻고 나면 더 이상 전처럼 살 수는 없기 때

문이다 아니라면 자기 자신에게 면목이 없을 것이다 이 무서

운 책이 우리를 혼내고 몰아치면서도 여전히 영원한 고전이자

필독서로 사랑 받는 이유다

lsquo우리들 속에는 모든 것을 아는 한 사람이 있다rsquo고 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혼이 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혼

이 났다는 것은 자신 안에 있는 lsquo그 사람rsquo이 말을 하기 시작했

다는 뜻이니까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목소리가 희미하

고 멀리 있다 하여도 숨죽여 귀 기울이는 일 자체가 자신에게

로 가는 과정임을 잊지 말고

편집자반 11기 배예리

『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민음사 20001220

Demian Die Geschichte von Emil

Sinclairs Jugend(1919)

31

03 얼어붙은 자의식의 바다를깨뜨리고 생명을 불어넣는 책 『데미안』

데미안을 읽고 나서야 그 동안 내가 두 발 딛고 서 있던 땅이

굳고 단단한 대지가 아니라 얼어붙은 바다에 불과했음을 알

았다 데미안은 도끼를 가져와 이 꽁꽁 언 바다를 가차 없이

내리 찍었다 그리고 말했다 얼어붙은 바다를 단단한 땅인

줄 알고 사느니 그 얼음을 깨부수고 그 속에 빠져 죽기 살기

로 허우적대라고 그러면 그 속에서 너는 너 자신을 똑바로 마

주하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성장할 것이라고

주인공 싱클레어도 그를 둘러싸고 있던 세계를 깨뜨려 나가

며 성장한다 그 모든 과정은 결국 진정한 자기 자신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가 깨뜨린 가장 큰 세계는 바로 자신의 사고 체계였다 세상

을 바라보는 기존의 이분법적이던 시각 고정되고 획일화된 시

각을 버렸다 주인공은 세계 안에 심지어는 자신 안에도 선하

고 악하며 밝고 어두운 양극단의 것들이 공존함을 이해하고

두 세계를 끌어안았다 주인공은 귀와 눈을 가리던 장막을 걷

어내 버리고 세상을 바로 보게 되었다 상극인 것들의 괴리로

이루어진 이 모순된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곧 자신 안의 부조

화 또한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스스로에게 다가서는 첫 걸음

이었다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양극단의 세계 사이에서 싱

클레어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며 흔들리기를 반복했다 이

때 그에게는 삶을 지탱할 중심축이 없었다 항상 내면이 아닌

외부 세계에서 자신이 속할 자리를 찾아 헤맸다 그가 비로소

온전한 자신을 만난 순간은 어느 편으로도 치우침 없이 스스

로의 기준으로 홀로 서게 되었을 때였다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 이 길은 당신이 내면에 있는 모

순되는 두 세계 한없이 나약하고 뒷걸음치는 비열한 모습들

과 정갈하고 깨끗한 곧은 힘들을 동시에 직시하는 순간에 시

작된다 그리고 이 길은 두 세계 속에 들어가 이리저리 휩쓸리

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세계를 밟고 우뚝 올라서서 스스로

가 중심이 됨으로써 앞으로 펼쳐진다

이제 lsquo자아를 찾으라rsquo는 지루하고 흔한 이야기가 더 이상 빤

하거나 우습지 않다 묵직한 울림이 되어 나를 흔든다 그냥

나만 붙잡고 흔드는 것이라면 손사래 쳐 뿌리치겠는데 내가

밟고 있던 땅 속해 있던 세계를 뿌리째 흔들어 버린다 읽는

내내 속이 답답하고 나에게 화가 난다 그런데 이렇게 마구

혼나면서 이상하게도 후련한 구석이 있다 호통을 치는 데미

안이 사실은 우리를 응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막연

하고 무기력한 안개에 휩싸여 있을 때 데미안은 그만의 방

식으로 우리에게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준다 물론 갈 방향을

정해준다거나 각자의 사정을 듣고 상담을 해주는 것은 아니

다 오로지 궁지로 몰아세울 뿐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사람들

은 잊고 있던 lsquo나 자신rsquo을 일깨운다 아 그동안 lsquo나rsquo에 대해 생

각해본 적이 있던가 라는 정도만이라도 좋다 이 물음이 바로

여정의 시작이니까

그렇게 스스로에게 묻고 나면 더 이상 전처럼 살 수는 없기 때

문이다 아니라면 자기 자신에게 면목이 없을 것이다 이 무서

운 책이 우리를 혼내고 몰아치면서도 여전히 영원한 고전이자

필독서로 사랑 받는 이유다

lsquo우리들 속에는 모든 것을 아는 한 사람이 있다rsquo고 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혼이 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혼

이 났다는 것은 자신 안에 있는 lsquo그 사람rsquo이 말을 하기 시작했

다는 뜻이니까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목소리가 희미하

고 멀리 있다 하여도 숨죽여 귀 기울이는 일 자체가 자신에게

로 가는 과정임을 잊지 말고

편집자반 11기 배예리

『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민음사 20001220

Demian Die Geschichte von Emil

Sinclairs Jugend(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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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길 인터뷰

진정한 역사가는 과거에 파묻히지 않는다옥(獄)에서 옥(玉)을 만든 작가 박세길 인터뷰

박세길 저자는 처녀작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로 80년대

대표 역사서 자리를 꿰찬 분입니다 1986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감되었을 때 감옥에서 역사책을 읽으며

사회 모순에 대해 고민했고 출소하자마자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집필했습니다 정권 탄압 속에서 왜곡된

현대사를 바로 잡았다는 의미를 지닌 이 대표작은 오랫동안

고시생과 대학생들의 필독서로 꼽혔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읽은 박세길 저자의 저서는 지난 6월 출간한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입니다 기사를 쓰고 편집할 때 청년 세대를

겨냥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박세길 저자는 역시나

청년들의 미래에 큰 관심을 갖고 계셨습니다 취업을

눈앞에 둔 서울출판예비학교 학생들이 가져야 할 자세를

여쭸습니다

출판학교에서 강의하신 한 선생님은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가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와

더불어 80년대 인문학의 양대

산맥이라고 하셨습니다

책의 성공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강의

요청이 많이 들어왔어요 먹고사는

경제적인 문제도 해결됐습니다

몇 부 팔렸는지는 잘 모릅니다

출판사에서 기밀 사항이라고

하더군요 요즘은 마케팅 차원으로도

몇 쇄 몇 부인지 밝히지만 그때는

세금 문제를 피해가기 위해서인지

쉬쉬하던 시절이었나 봅니다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는 대학

선후배끼리도 많이 물려주는 책이라고

들었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의 쉬운 설명이

좋았습니다 더불어 어떤 사명감을 안고 썼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완성하기에 앞서 어떤 목표를

두셨나요

청년 세대가 외환위기 이후 집중적인 희생양으로 전락하면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드러내면서 여기에

머물지 않고 청년 세대의 잠재력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들이 역사 무대 한복판에 진출해 자기 몫을 다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습니다

역사 분야는 시장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역사 혹은 현대사가 주목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통해 얘기하자면

80년대 후반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lsquo왜곡된

역사를 바로 알자rsquo는 시각 교정의 욕구가 있었던

차에 제 책이 나름 부응했는지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시기가 적절했던 셈이죠

2012년 대선 후 역사 분야가 잠시 반짝했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금세 시들었다고

하더군요 당시 역사 분야 책들이 일반 독자가

읽기에 다소 어렵거나 출간한 지 오래된 것들

위주였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돋을세길

출판학교에서 강의하신 한 선생님은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가 유홍준 교수의

책의 성공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강의

하더군요 요즘은 마케팅 차원으로도

선후배끼리도 많이 물려주는 책이라고

역사 분야는 시장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역사 혹은 현대사가 주목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통해 얘기하자면

80년대 후반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lsquo왜곡된

역사를 바로 알자rsquo는 시각 교정의 욕구가 있었던

차에 제 책이 나름 부응했는지 큰 반향을

읽기에 다소 어렵거나 출간한 지 오래된 것들

위주였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의 저자

33

2012년 대선 후 역사 분야가 관심을 받았던 것은

보수층의 재집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한

불안 때문일까요

맞습니다 그러나 마땅한 책이 없어서 그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역사 분야에서 베스트셀러를 내기

위해서는 시기가 맞아 떨어지고 내용 또한 대중이 원하는

것을 담고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를 편집한 lsquo생각정원rsquo

출판사의 정희용 편집자에게 감사 표시를 하셨습니다

어떤 편집자를 선호하시나요

간단합니다 편집자는 철저히 독자 입장에서 독자와 작가

사이의 간극을 줄여줘야 합니다 예를 들면 어려운 내용을

과감히 생략하고 다음 기회로 미루도록 설득한다거나 좌파

운동권 색채가 너무 강한 문장을 조금 순화하는 것 등입니다

어떤 내용이 이번 책에 꼭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선택을

도와줘야 합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을 작가님께서 직접

독자들에게 홍보하신다면 카피 문구를 짧게 제시할 수

있을까요

청년 세대 희망 찾기 갑갑한 현실을 어떻게 타개할 수

있을지 그 답을 찾아보는 길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취업 후 첫발을 내디딜 서울출판예비학교 11기

학생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출판 또한 돈을 벌어야한다는 기본 전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출판계를 지켜본 결과 뭔가 소명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오래

살아남았습니다 출판학교 역대 대표 중 일부는 나와 관계가

있는 사람들인데 모두 고유한 소명의식을 갖고 출판계에

뛰어들었습니다 때로는 상업주의 안에서 재주도 부리곤

했지만 어쨌든 분야 내에서 고유한 캐릭터를 구축했습니다

출판학교 학생들이 출판 상황을 이해하고 자신을 역할을

정하는 개인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비전 중심의 경영을

하는 회사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지만 개인 비전을 기업

비전으로 나아가 사회 비전으로 접목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과거에 안주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부분을

출판계에서는 SNS 등 인터넷 환경을 통한 마케팅으로

이해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SNS망 자체에서 무엇이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건 사람과

사람이 서로 소통하고 공감하는데 필요한 도구입니다

콘텐츠 중심의 사고가 중요하고 그것이 전제되지 않을 때

SNS는 착각에 불과하며 성공할 수 없습니다 필요한 콘텐츠

중심의 사고를 가지고 철저하게 진행하지 않으면 그 공간에서

허망하게 헤엄만 칠 뿐 입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SNS에서

맥없이 헤엄치다 익사하는 경우를 볼 수 있을 겁니다

콘텐츠와 마케팅의 영역을 하나로 보는 것과 따로

보는 것 어떤 것이 독자를 위하는 것일까요

출판 마케팅은 책을 기획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에서부터

개입돼야 하고 그 과정에 독자를 참여시키는 방식을

고민해야 합니다 미국 네브래스카주립대학의 이상문

교수는 lsquo밀실 안에서의 혁신은 끝났다rsquo고 얘기합니다

개방된 체제에서 독자 곧 소비자 사용자의 참여 하에 함께

만들어갈 때 혁신은 이뤄진다고 합니다 출판사의 비전이

브랜드로 연결될 때 독자는 자발적으로 의견을 주고받고

싶어 할 겁니다

마케터반 11기 이창환

디자

인 사

공예

Page 30: 서울출판예비학교 웹진 _5호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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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현실을 전복시키는 비현실

모호함이 주는 환상성

20세기 중반 중남미 소설은 전통적인 사실주의 서사 구조

를 깨고 현실과 환상을 혼합시키는 새로운 글쓰기 방식으

로 세계문학의 중심에 선다 이 시기에 주목 받은 일련의

중남미 작가들을 가리켜 lsquo붐 세대 작가rsquo라 칭하는데 아르

헨티나의 환상문학 작가 코르타사르는 이 붐 세대 작가군

의 선구자이자 대표 주자 격인 인물이다 그러나 그 문학적

성과와 명성이 무색하게도 국내 독자들에겐 그의 이름이

아직 생소한 것이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에서는 그

의 작품이 중남미 단편 선집에나 몇 편이 번역되었을 뿐 본

격적으로 소개된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중남미 문학을 공부했고 그의 몇 안 되는 번역 작품을 인

상 깊게 읽었던 독자 입장에서 이번에 출간된 코르타사르

의 단편집『드러누운 밤』은 가뭄의 단비처럼 반가운 신간

이다

환상 문학이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J R R 톨킨 류의 판타

지소설 혹은 쥘 베른이나 아이작 아시모프 류의 SF소설을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코르타사르의 환상문학은 이들 범

주에 들어가지 않는다 코르타사르 작품에서 나타나는 환

상이란 토도로프가 정의한 바 있는 환상 그러니까 자연적

인 것과 초자연적인 것 사이의 망설임에서 발생하는 환상

에 가깝다 따라서 판타지소설의 lsquo현실과 동떨어진 환상rsquo

혹은 SF소설의 lsquo설득력 있고 현실감 있는 환상rsquo을 기대하

는 독자라면 아마 십중팔구 그의 작품을 읽고 실망할 것

이다 어쩌면 이게 무슨 환상문학이냐는 푸념을 늘어놓을

지도 모르겠다 역시 가장 좋은 것은 선입관을 버리고 책을

읽는 것이다

코르타사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lsquo모호함rsquo이다 인물이나

배경 묘사에서 제시되는 기본적인 정보도 모호하고 사건의

전개 양상이 가진 당위성도 모호하다 작품 내에서 주요한

스토리 라인을 담당하는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경계도 모

호하며 심지어는 화자의 정체마저 모호한 작품도 있다 이

런 모호함의 향연은 짙게 깔린 안개와도 같아서 독자들은

그 속에서 한 치 앞도 제대로 내다볼 수 없음은 물론이요

이미 지나간 사실조차도 자신이 맞게 인식한 것인지 확신

할 수 없을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무엇이 진짜인지

독자들의 판단을 망설이게 만드는 이런 상태야말로 코르

타사르의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는 환상이란 개념이다 독

자들은 이 환상 속에서 그저 전방을 주시하며 천천히 나아

갈 수밖에 없다

다행스럽게도 코르타사르는 독자들의 시련을 헛되게 하지

않는다 작품의 시작점 일상 세계에 우연히 침투한 lsquo비현

실적인 것rsquo은 안개 속에서 알게 모르게 자신의 지분을 늘려

나간다 그리고 작품의 종점에 다다른 독자들은 비현실이

현실이 되고 현실이 비현실이 되는 이전과는 전혀 새로운

세계와 마주할 것이다 다시 말해 필연과 이성의 법칙이 지

배하는 세계가 우연과 환상이 지배하는 세계로 변하는 것

이다 이러한 세계의 전복은 마치 여기저기 단서를 흩뿌리

고 사람들을 알쏭달쏭하게 만들었다가 결말부에서 모든

것을 폭발시키는 추리소설 혹은 반전영화를 보는 듯한 재

미를 선사한다

그렇다면 코르타사르가 이 소설들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책을 다 읽고 난 독자라면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의문점이다 코르타사르는 자신이 환상문학을 쓰는

이유를 ldquo법칙이나 원칙 혹은 인과관계나 특정한 심리 또

는 잘 그려진 지리학과 같은 체계에 의해 세상이 지배되고

있다는 것에 반대rdquo하고 ldquo우리가 잘 모르며 우리에게 잘 다

가오지 않는 새로운 질서에 관해 생각해보기 위함rdquo이라고

설명한다 짧게 말해 이 세상에 필연이란 존재하지 않으

며 자신은 그것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말이다 이

게 전부다 순문학이라면 거장의 문학이라면 이보다 더 심

오한 통찰 혹은 비판이 있을 것이란 생각에 문장 속 숨겨진

의미를 발견하고자 머리를 싸맬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조

언을 하자면 독서는 독서 그 자체로 즐기면 된다 적어도 이

책에서는 그렇다 모호함과 예상외의 전개 속에서 재미를

느끼고 코르타사르가 묘사하는 세계의 불가지(不可知)성

을 어렴풋하게나마 인식할 수 있다면 이미 그것으로 충분

하다

편집자반 11기 강귀욱

『드러누운 밤』

훌리오 꼬르따사르 지음 박병규 옮김

창비 20141124

La noche boca arribaJulio Cortazar

31

03 얼어붙은 자의식의 바다를깨뜨리고 생명을 불어넣는 책 『데미안』

데미안을 읽고 나서야 그 동안 내가 두 발 딛고 서 있던 땅이

굳고 단단한 대지가 아니라 얼어붙은 바다에 불과했음을 알

았다 데미안은 도끼를 가져와 이 꽁꽁 언 바다를 가차 없이

내리 찍었다 그리고 말했다 얼어붙은 바다를 단단한 땅인

줄 알고 사느니 그 얼음을 깨부수고 그 속에 빠져 죽기 살기

로 허우적대라고 그러면 그 속에서 너는 너 자신을 똑바로 마

주하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성장할 것이라고

주인공 싱클레어도 그를 둘러싸고 있던 세계를 깨뜨려 나가

며 성장한다 그 모든 과정은 결국 진정한 자기 자신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가 깨뜨린 가장 큰 세계는 바로 자신의 사고 체계였다 세상

을 바라보는 기존의 이분법적이던 시각 고정되고 획일화된 시

각을 버렸다 주인공은 세계 안에 심지어는 자신 안에도 선하

고 악하며 밝고 어두운 양극단의 것들이 공존함을 이해하고

두 세계를 끌어안았다 주인공은 귀와 눈을 가리던 장막을 걷

어내 버리고 세상을 바로 보게 되었다 상극인 것들의 괴리로

이루어진 이 모순된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곧 자신 안의 부조

화 또한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스스로에게 다가서는 첫 걸음

이었다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양극단의 세계 사이에서 싱

클레어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며 흔들리기를 반복했다 이

때 그에게는 삶을 지탱할 중심축이 없었다 항상 내면이 아닌

외부 세계에서 자신이 속할 자리를 찾아 헤맸다 그가 비로소

온전한 자신을 만난 순간은 어느 편으로도 치우침 없이 스스

로의 기준으로 홀로 서게 되었을 때였다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 이 길은 당신이 내면에 있는 모

순되는 두 세계 한없이 나약하고 뒷걸음치는 비열한 모습들

과 정갈하고 깨끗한 곧은 힘들을 동시에 직시하는 순간에 시

작된다 그리고 이 길은 두 세계 속에 들어가 이리저리 휩쓸리

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세계를 밟고 우뚝 올라서서 스스로

가 중심이 됨으로써 앞으로 펼쳐진다

이제 lsquo자아를 찾으라rsquo는 지루하고 흔한 이야기가 더 이상 빤

하거나 우습지 않다 묵직한 울림이 되어 나를 흔든다 그냥

나만 붙잡고 흔드는 것이라면 손사래 쳐 뿌리치겠는데 내가

밟고 있던 땅 속해 있던 세계를 뿌리째 흔들어 버린다 읽는

내내 속이 답답하고 나에게 화가 난다 그런데 이렇게 마구

혼나면서 이상하게도 후련한 구석이 있다 호통을 치는 데미

안이 사실은 우리를 응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막연

하고 무기력한 안개에 휩싸여 있을 때 데미안은 그만의 방

식으로 우리에게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준다 물론 갈 방향을

정해준다거나 각자의 사정을 듣고 상담을 해주는 것은 아니

다 오로지 궁지로 몰아세울 뿐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사람들

은 잊고 있던 lsquo나 자신rsquo을 일깨운다 아 그동안 lsquo나rsquo에 대해 생

각해본 적이 있던가 라는 정도만이라도 좋다 이 물음이 바로

여정의 시작이니까

그렇게 스스로에게 묻고 나면 더 이상 전처럼 살 수는 없기 때

문이다 아니라면 자기 자신에게 면목이 없을 것이다 이 무서

운 책이 우리를 혼내고 몰아치면서도 여전히 영원한 고전이자

필독서로 사랑 받는 이유다

lsquo우리들 속에는 모든 것을 아는 한 사람이 있다rsquo고 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혼이 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혼

이 났다는 것은 자신 안에 있는 lsquo그 사람rsquo이 말을 하기 시작했

다는 뜻이니까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목소리가 희미하

고 멀리 있다 하여도 숨죽여 귀 기울이는 일 자체가 자신에게

로 가는 과정임을 잊지 말고

편집자반 11기 배예리

『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민음사 20001220

Demian Die Geschichte von Emil

Sinclairs Jugend(1919)

31

03 얼어붙은 자의식의 바다를깨뜨리고 생명을 불어넣는 책 『데미안』

데미안을 읽고 나서야 그 동안 내가 두 발 딛고 서 있던 땅이

굳고 단단한 대지가 아니라 얼어붙은 바다에 불과했음을 알

았다 데미안은 도끼를 가져와 이 꽁꽁 언 바다를 가차 없이

내리 찍었다 그리고 말했다 얼어붙은 바다를 단단한 땅인

줄 알고 사느니 그 얼음을 깨부수고 그 속에 빠져 죽기 살기

로 허우적대라고 그러면 그 속에서 너는 너 자신을 똑바로 마

주하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성장할 것이라고

주인공 싱클레어도 그를 둘러싸고 있던 세계를 깨뜨려 나가

며 성장한다 그 모든 과정은 결국 진정한 자기 자신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가 깨뜨린 가장 큰 세계는 바로 자신의 사고 체계였다 세상

을 바라보는 기존의 이분법적이던 시각 고정되고 획일화된 시

각을 버렸다 주인공은 세계 안에 심지어는 자신 안에도 선하

고 악하며 밝고 어두운 양극단의 것들이 공존함을 이해하고

두 세계를 끌어안았다 주인공은 귀와 눈을 가리던 장막을 걷

어내 버리고 세상을 바로 보게 되었다 상극인 것들의 괴리로

이루어진 이 모순된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곧 자신 안의 부조

화 또한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스스로에게 다가서는 첫 걸음

이었다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양극단의 세계 사이에서 싱

클레어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며 흔들리기를 반복했다 이

때 그에게는 삶을 지탱할 중심축이 없었다 항상 내면이 아닌

외부 세계에서 자신이 속할 자리를 찾아 헤맸다 그가 비로소

온전한 자신을 만난 순간은 어느 편으로도 치우침 없이 스스

로의 기준으로 홀로 서게 되었을 때였다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 이 길은 당신이 내면에 있는 모

순되는 두 세계 한없이 나약하고 뒷걸음치는 비열한 모습들

과 정갈하고 깨끗한 곧은 힘들을 동시에 직시하는 순간에 시

작된다 그리고 이 길은 두 세계 속에 들어가 이리저리 휩쓸리

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세계를 밟고 우뚝 올라서서 스스로

가 중심이 됨으로써 앞으로 펼쳐진다

이제 lsquo자아를 찾으라rsquo는 지루하고 흔한 이야기가 더 이상 빤

하거나 우습지 않다 묵직한 울림이 되어 나를 흔든다 그냥

나만 붙잡고 흔드는 것이라면 손사래 쳐 뿌리치겠는데 내가

밟고 있던 땅 속해 있던 세계를 뿌리째 흔들어 버린다 읽는

내내 속이 답답하고 나에게 화가 난다 그런데 이렇게 마구

혼나면서 이상하게도 후련한 구석이 있다 호통을 치는 데미

안이 사실은 우리를 응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막연

하고 무기력한 안개에 휩싸여 있을 때 데미안은 그만의 방

식으로 우리에게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준다 물론 갈 방향을

정해준다거나 각자의 사정을 듣고 상담을 해주는 것은 아니

다 오로지 궁지로 몰아세울 뿐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사람들

은 잊고 있던 lsquo나 자신rsquo을 일깨운다 아 그동안 lsquo나rsquo에 대해 생

각해본 적이 있던가 라는 정도만이라도 좋다 이 물음이 바로

여정의 시작이니까

그렇게 스스로에게 묻고 나면 더 이상 전처럼 살 수는 없기 때

문이다 아니라면 자기 자신에게 면목이 없을 것이다 이 무서

운 책이 우리를 혼내고 몰아치면서도 여전히 영원한 고전이자

필독서로 사랑 받는 이유다

lsquo우리들 속에는 모든 것을 아는 한 사람이 있다rsquo고 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혼이 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혼

이 났다는 것은 자신 안에 있는 lsquo그 사람rsquo이 말을 하기 시작했

다는 뜻이니까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목소리가 희미하

고 멀리 있다 하여도 숨죽여 귀 기울이는 일 자체가 자신에게

로 가는 과정임을 잊지 말고

편집자반 11기 배예리

『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민음사 20001220

Demian Die Geschichte von Emil

Sinclairs Jugend(1919)

32

박세길 인터뷰

진정한 역사가는 과거에 파묻히지 않는다옥(獄)에서 옥(玉)을 만든 작가 박세길 인터뷰

박세길 저자는 처녀작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로 80년대

대표 역사서 자리를 꿰찬 분입니다 1986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감되었을 때 감옥에서 역사책을 읽으며

사회 모순에 대해 고민했고 출소하자마자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집필했습니다 정권 탄압 속에서 왜곡된

현대사를 바로 잡았다는 의미를 지닌 이 대표작은 오랫동안

고시생과 대학생들의 필독서로 꼽혔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읽은 박세길 저자의 저서는 지난 6월 출간한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입니다 기사를 쓰고 편집할 때 청년 세대를

겨냥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박세길 저자는 역시나

청년들의 미래에 큰 관심을 갖고 계셨습니다 취업을

눈앞에 둔 서울출판예비학교 학생들이 가져야 할 자세를

여쭸습니다

출판학교에서 강의하신 한 선생님은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가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와

더불어 80년대 인문학의 양대

산맥이라고 하셨습니다

책의 성공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강의

요청이 많이 들어왔어요 먹고사는

경제적인 문제도 해결됐습니다

몇 부 팔렸는지는 잘 모릅니다

출판사에서 기밀 사항이라고

하더군요 요즘은 마케팅 차원으로도

몇 쇄 몇 부인지 밝히지만 그때는

세금 문제를 피해가기 위해서인지

쉬쉬하던 시절이었나 봅니다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는 대학

선후배끼리도 많이 물려주는 책이라고

들었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의 쉬운 설명이

좋았습니다 더불어 어떤 사명감을 안고 썼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완성하기에 앞서 어떤 목표를

두셨나요

청년 세대가 외환위기 이후 집중적인 희생양으로 전락하면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드러내면서 여기에

머물지 않고 청년 세대의 잠재력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들이 역사 무대 한복판에 진출해 자기 몫을 다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습니다

역사 분야는 시장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역사 혹은 현대사가 주목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통해 얘기하자면

80년대 후반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lsquo왜곡된

역사를 바로 알자rsquo는 시각 교정의 욕구가 있었던

차에 제 책이 나름 부응했는지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시기가 적절했던 셈이죠

2012년 대선 후 역사 분야가 잠시 반짝했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금세 시들었다고

하더군요 당시 역사 분야 책들이 일반 독자가

읽기에 다소 어렵거나 출간한 지 오래된 것들

위주였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돋을세길

출판학교에서 강의하신 한 선생님은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가 유홍준 교수의

책의 성공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강의

하더군요 요즘은 마케팅 차원으로도

선후배끼리도 많이 물려주는 책이라고

역사 분야는 시장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역사 혹은 현대사가 주목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통해 얘기하자면

80년대 후반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lsquo왜곡된

역사를 바로 알자rsquo는 시각 교정의 욕구가 있었던

차에 제 책이 나름 부응했는지 큰 반향을

읽기에 다소 어렵거나 출간한 지 오래된 것들

위주였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의 저자

33

2012년 대선 후 역사 분야가 관심을 받았던 것은

보수층의 재집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한

불안 때문일까요

맞습니다 그러나 마땅한 책이 없어서 그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역사 분야에서 베스트셀러를 내기

위해서는 시기가 맞아 떨어지고 내용 또한 대중이 원하는

것을 담고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를 편집한 lsquo생각정원rsquo

출판사의 정희용 편집자에게 감사 표시를 하셨습니다

어떤 편집자를 선호하시나요

간단합니다 편집자는 철저히 독자 입장에서 독자와 작가

사이의 간극을 줄여줘야 합니다 예를 들면 어려운 내용을

과감히 생략하고 다음 기회로 미루도록 설득한다거나 좌파

운동권 색채가 너무 강한 문장을 조금 순화하는 것 등입니다

어떤 내용이 이번 책에 꼭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선택을

도와줘야 합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을 작가님께서 직접

독자들에게 홍보하신다면 카피 문구를 짧게 제시할 수

있을까요

청년 세대 희망 찾기 갑갑한 현실을 어떻게 타개할 수

있을지 그 답을 찾아보는 길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취업 후 첫발을 내디딜 서울출판예비학교 11기

학생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출판 또한 돈을 벌어야한다는 기본 전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출판계를 지켜본 결과 뭔가 소명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오래

살아남았습니다 출판학교 역대 대표 중 일부는 나와 관계가

있는 사람들인데 모두 고유한 소명의식을 갖고 출판계에

뛰어들었습니다 때로는 상업주의 안에서 재주도 부리곤

했지만 어쨌든 분야 내에서 고유한 캐릭터를 구축했습니다

출판학교 학생들이 출판 상황을 이해하고 자신을 역할을

정하는 개인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비전 중심의 경영을

하는 회사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지만 개인 비전을 기업

비전으로 나아가 사회 비전으로 접목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과거에 안주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부분을

출판계에서는 SNS 등 인터넷 환경을 통한 마케팅으로

이해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SNS망 자체에서 무엇이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건 사람과

사람이 서로 소통하고 공감하는데 필요한 도구입니다

콘텐츠 중심의 사고가 중요하고 그것이 전제되지 않을 때

SNS는 착각에 불과하며 성공할 수 없습니다 필요한 콘텐츠

중심의 사고를 가지고 철저하게 진행하지 않으면 그 공간에서

허망하게 헤엄만 칠 뿐 입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SNS에서

맥없이 헤엄치다 익사하는 경우를 볼 수 있을 겁니다

콘텐츠와 마케팅의 영역을 하나로 보는 것과 따로

보는 것 어떤 것이 독자를 위하는 것일까요

출판 마케팅은 책을 기획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에서부터

개입돼야 하고 그 과정에 독자를 참여시키는 방식을

고민해야 합니다 미국 네브래스카주립대학의 이상문

교수는 lsquo밀실 안에서의 혁신은 끝났다rsquo고 얘기합니다

개방된 체제에서 독자 곧 소비자 사용자의 참여 하에 함께

만들어갈 때 혁신은 이뤄진다고 합니다 출판사의 비전이

브랜드로 연결될 때 독자는 자발적으로 의견을 주고받고

싶어 할 겁니다

마케터반 11기 이창환

디자

인 사

공예

Page 31: 서울출판예비학교 웹진 _5호 2015

31

03 얼어붙은 자의식의 바다를깨뜨리고 생명을 불어넣는 책 『데미안』

데미안을 읽고 나서야 그 동안 내가 두 발 딛고 서 있던 땅이

굳고 단단한 대지가 아니라 얼어붙은 바다에 불과했음을 알

았다 데미안은 도끼를 가져와 이 꽁꽁 언 바다를 가차 없이

내리 찍었다 그리고 말했다 얼어붙은 바다를 단단한 땅인

줄 알고 사느니 그 얼음을 깨부수고 그 속에 빠져 죽기 살기

로 허우적대라고 그러면 그 속에서 너는 너 자신을 똑바로 마

주하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성장할 것이라고

주인공 싱클레어도 그를 둘러싸고 있던 세계를 깨뜨려 나가

며 성장한다 그 모든 과정은 결국 진정한 자기 자신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가 깨뜨린 가장 큰 세계는 바로 자신의 사고 체계였다 세상

을 바라보는 기존의 이분법적이던 시각 고정되고 획일화된 시

각을 버렸다 주인공은 세계 안에 심지어는 자신 안에도 선하

고 악하며 밝고 어두운 양극단의 것들이 공존함을 이해하고

두 세계를 끌어안았다 주인공은 귀와 눈을 가리던 장막을 걷

어내 버리고 세상을 바로 보게 되었다 상극인 것들의 괴리로

이루어진 이 모순된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곧 자신 안의 부조

화 또한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스스로에게 다가서는 첫 걸음

이었다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양극단의 세계 사이에서 싱

클레어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며 흔들리기를 반복했다 이

때 그에게는 삶을 지탱할 중심축이 없었다 항상 내면이 아닌

외부 세계에서 자신이 속할 자리를 찾아 헤맸다 그가 비로소

온전한 자신을 만난 순간은 어느 편으로도 치우침 없이 스스

로의 기준으로 홀로 서게 되었을 때였다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 이 길은 당신이 내면에 있는 모

순되는 두 세계 한없이 나약하고 뒷걸음치는 비열한 모습들

과 정갈하고 깨끗한 곧은 힘들을 동시에 직시하는 순간에 시

작된다 그리고 이 길은 두 세계 속에 들어가 이리저리 휩쓸리

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세계를 밟고 우뚝 올라서서 스스로

가 중심이 됨으로써 앞으로 펼쳐진다

이제 lsquo자아를 찾으라rsquo는 지루하고 흔한 이야기가 더 이상 빤

하거나 우습지 않다 묵직한 울림이 되어 나를 흔든다 그냥

나만 붙잡고 흔드는 것이라면 손사래 쳐 뿌리치겠는데 내가

밟고 있던 땅 속해 있던 세계를 뿌리째 흔들어 버린다 읽는

내내 속이 답답하고 나에게 화가 난다 그런데 이렇게 마구

혼나면서 이상하게도 후련한 구석이 있다 호통을 치는 데미

안이 사실은 우리를 응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막연

하고 무기력한 안개에 휩싸여 있을 때 데미안은 그만의 방

식으로 우리에게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준다 물론 갈 방향을

정해준다거나 각자의 사정을 듣고 상담을 해주는 것은 아니

다 오로지 궁지로 몰아세울 뿐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사람들

은 잊고 있던 lsquo나 자신rsquo을 일깨운다 아 그동안 lsquo나rsquo에 대해 생

각해본 적이 있던가 라는 정도만이라도 좋다 이 물음이 바로

여정의 시작이니까

그렇게 스스로에게 묻고 나면 더 이상 전처럼 살 수는 없기 때

문이다 아니라면 자기 자신에게 면목이 없을 것이다 이 무서

운 책이 우리를 혼내고 몰아치면서도 여전히 영원한 고전이자

필독서로 사랑 받는 이유다

lsquo우리들 속에는 모든 것을 아는 한 사람이 있다rsquo고 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혼이 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혼

이 났다는 것은 자신 안에 있는 lsquo그 사람rsquo이 말을 하기 시작했

다는 뜻이니까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목소리가 희미하

고 멀리 있다 하여도 숨죽여 귀 기울이는 일 자체가 자신에게

로 가는 과정임을 잊지 말고

편집자반 11기 배예리

『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민음사 20001220

Demian Die Geschichte von Emil

Sinclairs Jugend(1919)

31

03 얼어붙은 자의식의 바다를깨뜨리고 생명을 불어넣는 책 『데미안』

데미안을 읽고 나서야 그 동안 내가 두 발 딛고 서 있던 땅이

굳고 단단한 대지가 아니라 얼어붙은 바다에 불과했음을 알

았다 데미안은 도끼를 가져와 이 꽁꽁 언 바다를 가차 없이

내리 찍었다 그리고 말했다 얼어붙은 바다를 단단한 땅인

줄 알고 사느니 그 얼음을 깨부수고 그 속에 빠져 죽기 살기

로 허우적대라고 그러면 그 속에서 너는 너 자신을 똑바로 마

주하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성장할 것이라고

주인공 싱클레어도 그를 둘러싸고 있던 세계를 깨뜨려 나가

며 성장한다 그 모든 과정은 결국 진정한 자기 자신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가 깨뜨린 가장 큰 세계는 바로 자신의 사고 체계였다 세상

을 바라보는 기존의 이분법적이던 시각 고정되고 획일화된 시

각을 버렸다 주인공은 세계 안에 심지어는 자신 안에도 선하

고 악하며 밝고 어두운 양극단의 것들이 공존함을 이해하고

두 세계를 끌어안았다 주인공은 귀와 눈을 가리던 장막을 걷

어내 버리고 세상을 바로 보게 되었다 상극인 것들의 괴리로

이루어진 이 모순된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곧 자신 안의 부조

화 또한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스스로에게 다가서는 첫 걸음

이었다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양극단의 세계 사이에서 싱

클레어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며 흔들리기를 반복했다 이

때 그에게는 삶을 지탱할 중심축이 없었다 항상 내면이 아닌

외부 세계에서 자신이 속할 자리를 찾아 헤맸다 그가 비로소

온전한 자신을 만난 순간은 어느 편으로도 치우침 없이 스스

로의 기준으로 홀로 서게 되었을 때였다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 이 길은 당신이 내면에 있는 모

순되는 두 세계 한없이 나약하고 뒷걸음치는 비열한 모습들

과 정갈하고 깨끗한 곧은 힘들을 동시에 직시하는 순간에 시

작된다 그리고 이 길은 두 세계 속에 들어가 이리저리 휩쓸리

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세계를 밟고 우뚝 올라서서 스스로

가 중심이 됨으로써 앞으로 펼쳐진다

이제 lsquo자아를 찾으라rsquo는 지루하고 흔한 이야기가 더 이상 빤

하거나 우습지 않다 묵직한 울림이 되어 나를 흔든다 그냥

나만 붙잡고 흔드는 것이라면 손사래 쳐 뿌리치겠는데 내가

밟고 있던 땅 속해 있던 세계를 뿌리째 흔들어 버린다 읽는

내내 속이 답답하고 나에게 화가 난다 그런데 이렇게 마구

혼나면서 이상하게도 후련한 구석이 있다 호통을 치는 데미

안이 사실은 우리를 응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막연

하고 무기력한 안개에 휩싸여 있을 때 데미안은 그만의 방

식으로 우리에게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준다 물론 갈 방향을

정해준다거나 각자의 사정을 듣고 상담을 해주는 것은 아니

다 오로지 궁지로 몰아세울 뿐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사람들

은 잊고 있던 lsquo나 자신rsquo을 일깨운다 아 그동안 lsquo나rsquo에 대해 생

각해본 적이 있던가 라는 정도만이라도 좋다 이 물음이 바로

여정의 시작이니까

그렇게 스스로에게 묻고 나면 더 이상 전처럼 살 수는 없기 때

문이다 아니라면 자기 자신에게 면목이 없을 것이다 이 무서

운 책이 우리를 혼내고 몰아치면서도 여전히 영원한 고전이자

필독서로 사랑 받는 이유다

lsquo우리들 속에는 모든 것을 아는 한 사람이 있다rsquo고 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혼이 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혼

이 났다는 것은 자신 안에 있는 lsquo그 사람rsquo이 말을 하기 시작했

다는 뜻이니까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목소리가 희미하

고 멀리 있다 하여도 숨죽여 귀 기울이는 일 자체가 자신에게

로 가는 과정임을 잊지 말고

편집자반 11기 배예리

『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민음사 20001220

Demian Die Geschichte von Emil

Sinclairs Jugend(1919)

32

박세길 인터뷰

진정한 역사가는 과거에 파묻히지 않는다옥(獄)에서 옥(玉)을 만든 작가 박세길 인터뷰

박세길 저자는 처녀작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로 80년대

대표 역사서 자리를 꿰찬 분입니다 1986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감되었을 때 감옥에서 역사책을 읽으며

사회 모순에 대해 고민했고 출소하자마자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집필했습니다 정권 탄압 속에서 왜곡된

현대사를 바로 잡았다는 의미를 지닌 이 대표작은 오랫동안

고시생과 대학생들의 필독서로 꼽혔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읽은 박세길 저자의 저서는 지난 6월 출간한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입니다 기사를 쓰고 편집할 때 청년 세대를

겨냥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박세길 저자는 역시나

청년들의 미래에 큰 관심을 갖고 계셨습니다 취업을

눈앞에 둔 서울출판예비학교 학생들이 가져야 할 자세를

여쭸습니다

출판학교에서 강의하신 한 선생님은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가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와

더불어 80년대 인문학의 양대

산맥이라고 하셨습니다

책의 성공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강의

요청이 많이 들어왔어요 먹고사는

경제적인 문제도 해결됐습니다

몇 부 팔렸는지는 잘 모릅니다

출판사에서 기밀 사항이라고

하더군요 요즘은 마케팅 차원으로도

몇 쇄 몇 부인지 밝히지만 그때는

세금 문제를 피해가기 위해서인지

쉬쉬하던 시절이었나 봅니다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는 대학

선후배끼리도 많이 물려주는 책이라고

들었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의 쉬운 설명이

좋았습니다 더불어 어떤 사명감을 안고 썼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완성하기에 앞서 어떤 목표를

두셨나요

청년 세대가 외환위기 이후 집중적인 희생양으로 전락하면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드러내면서 여기에

머물지 않고 청년 세대의 잠재력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들이 역사 무대 한복판에 진출해 자기 몫을 다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습니다

역사 분야는 시장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역사 혹은 현대사가 주목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통해 얘기하자면

80년대 후반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lsquo왜곡된

역사를 바로 알자rsquo는 시각 교정의 욕구가 있었던

차에 제 책이 나름 부응했는지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시기가 적절했던 셈이죠

2012년 대선 후 역사 분야가 잠시 반짝했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금세 시들었다고

하더군요 당시 역사 분야 책들이 일반 독자가

읽기에 다소 어렵거나 출간한 지 오래된 것들

위주였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돋을세길

출판학교에서 강의하신 한 선생님은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가 유홍준 교수의

책의 성공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강의

하더군요 요즘은 마케팅 차원으로도

선후배끼리도 많이 물려주는 책이라고

역사 분야는 시장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역사 혹은 현대사가 주목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통해 얘기하자면

80년대 후반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lsquo왜곡된

역사를 바로 알자rsquo는 시각 교정의 욕구가 있었던

차에 제 책이 나름 부응했는지 큰 반향을

읽기에 다소 어렵거나 출간한 지 오래된 것들

위주였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의 저자

33

2012년 대선 후 역사 분야가 관심을 받았던 것은

보수층의 재집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한

불안 때문일까요

맞습니다 그러나 마땅한 책이 없어서 그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역사 분야에서 베스트셀러를 내기

위해서는 시기가 맞아 떨어지고 내용 또한 대중이 원하는

것을 담고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를 편집한 lsquo생각정원rsquo

출판사의 정희용 편집자에게 감사 표시를 하셨습니다

어떤 편집자를 선호하시나요

간단합니다 편집자는 철저히 독자 입장에서 독자와 작가

사이의 간극을 줄여줘야 합니다 예를 들면 어려운 내용을

과감히 생략하고 다음 기회로 미루도록 설득한다거나 좌파

운동권 색채가 너무 강한 문장을 조금 순화하는 것 등입니다

어떤 내용이 이번 책에 꼭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선택을

도와줘야 합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을 작가님께서 직접

독자들에게 홍보하신다면 카피 문구를 짧게 제시할 수

있을까요

청년 세대 희망 찾기 갑갑한 현실을 어떻게 타개할 수

있을지 그 답을 찾아보는 길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취업 후 첫발을 내디딜 서울출판예비학교 11기

학생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출판 또한 돈을 벌어야한다는 기본 전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출판계를 지켜본 결과 뭔가 소명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오래

살아남았습니다 출판학교 역대 대표 중 일부는 나와 관계가

있는 사람들인데 모두 고유한 소명의식을 갖고 출판계에

뛰어들었습니다 때로는 상업주의 안에서 재주도 부리곤

했지만 어쨌든 분야 내에서 고유한 캐릭터를 구축했습니다

출판학교 학생들이 출판 상황을 이해하고 자신을 역할을

정하는 개인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비전 중심의 경영을

하는 회사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지만 개인 비전을 기업

비전으로 나아가 사회 비전으로 접목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과거에 안주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부분을

출판계에서는 SNS 등 인터넷 환경을 통한 마케팅으로

이해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SNS망 자체에서 무엇이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건 사람과

사람이 서로 소통하고 공감하는데 필요한 도구입니다

콘텐츠 중심의 사고가 중요하고 그것이 전제되지 않을 때

SNS는 착각에 불과하며 성공할 수 없습니다 필요한 콘텐츠

중심의 사고를 가지고 철저하게 진행하지 않으면 그 공간에서

허망하게 헤엄만 칠 뿐 입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SNS에서

맥없이 헤엄치다 익사하는 경우를 볼 수 있을 겁니다

콘텐츠와 마케팅의 영역을 하나로 보는 것과 따로

보는 것 어떤 것이 독자를 위하는 것일까요

출판 마케팅은 책을 기획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에서부터

개입돼야 하고 그 과정에 독자를 참여시키는 방식을

고민해야 합니다 미국 네브래스카주립대학의 이상문

교수는 lsquo밀실 안에서의 혁신은 끝났다rsquo고 얘기합니다

개방된 체제에서 독자 곧 소비자 사용자의 참여 하에 함께

만들어갈 때 혁신은 이뤄진다고 합니다 출판사의 비전이

브랜드로 연결될 때 독자는 자발적으로 의견을 주고받고

싶어 할 겁니다

마케터반 11기 이창환

디자

인 사

공예

Page 32: 서울출판예비학교 웹진 _5호 2015

32

박세길 인터뷰

진정한 역사가는 과거에 파묻히지 않는다옥(獄)에서 옥(玉)을 만든 작가 박세길 인터뷰

박세길 저자는 처녀작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로 80년대

대표 역사서 자리를 꿰찬 분입니다 1986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감되었을 때 감옥에서 역사책을 읽으며

사회 모순에 대해 고민했고 출소하자마자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집필했습니다 정권 탄압 속에서 왜곡된

현대사를 바로 잡았다는 의미를 지닌 이 대표작은 오랫동안

고시생과 대학생들의 필독서로 꼽혔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읽은 박세길 저자의 저서는 지난 6월 출간한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입니다 기사를 쓰고 편집할 때 청년 세대를

겨냥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박세길 저자는 역시나

청년들의 미래에 큰 관심을 갖고 계셨습니다 취업을

눈앞에 둔 서울출판예비학교 학생들이 가져야 할 자세를

여쭸습니다

출판학교에서 강의하신 한 선생님은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가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와

더불어 80년대 인문학의 양대

산맥이라고 하셨습니다

책의 성공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강의

요청이 많이 들어왔어요 먹고사는

경제적인 문제도 해결됐습니다

몇 부 팔렸는지는 잘 모릅니다

출판사에서 기밀 사항이라고

하더군요 요즘은 마케팅 차원으로도

몇 쇄 몇 부인지 밝히지만 그때는

세금 문제를 피해가기 위해서인지

쉬쉬하던 시절이었나 봅니다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는 대학

선후배끼리도 많이 물려주는 책이라고

들었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의 쉬운 설명이

좋았습니다 더불어 어떤 사명감을 안고 썼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완성하기에 앞서 어떤 목표를

두셨나요

청년 세대가 외환위기 이후 집중적인 희생양으로 전락하면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드러내면서 여기에

머물지 않고 청년 세대의 잠재력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들이 역사 무대 한복판에 진출해 자기 몫을 다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습니다

역사 분야는 시장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역사 혹은 현대사가 주목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통해 얘기하자면

80년대 후반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lsquo왜곡된

역사를 바로 알자rsquo는 시각 교정의 욕구가 있었던

차에 제 책이 나름 부응했는지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시기가 적절했던 셈이죠

2012년 대선 후 역사 분야가 잠시 반짝했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금세 시들었다고

하더군요 당시 역사 분야 책들이 일반 독자가

읽기에 다소 어렵거나 출간한 지 오래된 것들

위주였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돋을세길

출판학교에서 강의하신 한 선생님은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가 유홍준 교수의

책의 성공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강의

하더군요 요즘은 마케팅 차원으로도

선후배끼리도 많이 물려주는 책이라고

역사 분야는 시장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역사 혹은 현대사가 주목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통해 얘기하자면

80년대 후반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lsquo왜곡된

역사를 바로 알자rsquo는 시각 교정의 욕구가 있었던

차에 제 책이 나름 부응했는지 큰 반향을

읽기에 다소 어렵거나 출간한 지 오래된 것들

위주였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의 저자

33

2012년 대선 후 역사 분야가 관심을 받았던 것은

보수층의 재집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한

불안 때문일까요

맞습니다 그러나 마땅한 책이 없어서 그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역사 분야에서 베스트셀러를 내기

위해서는 시기가 맞아 떨어지고 내용 또한 대중이 원하는

것을 담고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를 편집한 lsquo생각정원rsquo

출판사의 정희용 편집자에게 감사 표시를 하셨습니다

어떤 편집자를 선호하시나요

간단합니다 편집자는 철저히 독자 입장에서 독자와 작가

사이의 간극을 줄여줘야 합니다 예를 들면 어려운 내용을

과감히 생략하고 다음 기회로 미루도록 설득한다거나 좌파

운동권 색채가 너무 강한 문장을 조금 순화하는 것 등입니다

어떤 내용이 이번 책에 꼭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선택을

도와줘야 합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을 작가님께서 직접

독자들에게 홍보하신다면 카피 문구를 짧게 제시할 수

있을까요

청년 세대 희망 찾기 갑갑한 현실을 어떻게 타개할 수

있을지 그 답을 찾아보는 길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취업 후 첫발을 내디딜 서울출판예비학교 11기

학생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출판 또한 돈을 벌어야한다는 기본 전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출판계를 지켜본 결과 뭔가 소명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오래

살아남았습니다 출판학교 역대 대표 중 일부는 나와 관계가

있는 사람들인데 모두 고유한 소명의식을 갖고 출판계에

뛰어들었습니다 때로는 상업주의 안에서 재주도 부리곤

했지만 어쨌든 분야 내에서 고유한 캐릭터를 구축했습니다

출판학교 학생들이 출판 상황을 이해하고 자신을 역할을

정하는 개인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비전 중심의 경영을

하는 회사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지만 개인 비전을 기업

비전으로 나아가 사회 비전으로 접목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과거에 안주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부분을

출판계에서는 SNS 등 인터넷 환경을 통한 마케팅으로

이해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SNS망 자체에서 무엇이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건 사람과

사람이 서로 소통하고 공감하는데 필요한 도구입니다

콘텐츠 중심의 사고가 중요하고 그것이 전제되지 않을 때

SNS는 착각에 불과하며 성공할 수 없습니다 필요한 콘텐츠

중심의 사고를 가지고 철저하게 진행하지 않으면 그 공간에서

허망하게 헤엄만 칠 뿐 입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SNS에서

맥없이 헤엄치다 익사하는 경우를 볼 수 있을 겁니다

콘텐츠와 마케팅의 영역을 하나로 보는 것과 따로

보는 것 어떤 것이 독자를 위하는 것일까요

출판 마케팅은 책을 기획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에서부터

개입돼야 하고 그 과정에 독자를 참여시키는 방식을

고민해야 합니다 미국 네브래스카주립대학의 이상문

교수는 lsquo밀실 안에서의 혁신은 끝났다rsquo고 얘기합니다

개방된 체제에서 독자 곧 소비자 사용자의 참여 하에 함께

만들어갈 때 혁신은 이뤄진다고 합니다 출판사의 비전이

브랜드로 연결될 때 독자는 자발적으로 의견을 주고받고

싶어 할 겁니다

마케터반 11기 이창환

디자

인 사

공예

Page 33: 서울출판예비학교 웹진 _5호 2015

33

2012년 대선 후 역사 분야가 관심을 받았던 것은

보수층의 재집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한

불안 때문일까요

맞습니다 그러나 마땅한 책이 없어서 그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역사 분야에서 베스트셀러를 내기

위해서는 시기가 맞아 떨어지고 내용 또한 대중이 원하는

것을 담고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를 편집한 lsquo생각정원rsquo

출판사의 정희용 편집자에게 감사 표시를 하셨습니다

어떤 편집자를 선호하시나요

간단합니다 편집자는 철저히 독자 입장에서 독자와 작가

사이의 간극을 줄여줘야 합니다 예를 들면 어려운 내용을

과감히 생략하고 다음 기회로 미루도록 설득한다거나 좌파

운동권 색채가 너무 강한 문장을 조금 순화하는 것 등입니다

어떤 내용이 이번 책에 꼭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선택을

도와줘야 합니다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을 작가님께서 직접

독자들에게 홍보하신다면 카피 문구를 짧게 제시할 수

있을까요

청년 세대 희망 찾기 갑갑한 현실을 어떻게 타개할 수

있을지 그 답을 찾아보는 길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취업 후 첫발을 내디딜 서울출판예비학교 11기

학생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출판 또한 돈을 벌어야한다는 기본 전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출판계를 지켜본 결과 뭔가 소명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오래

살아남았습니다 출판학교 역대 대표 중 일부는 나와 관계가

있는 사람들인데 모두 고유한 소명의식을 갖고 출판계에

뛰어들었습니다 때로는 상업주의 안에서 재주도 부리곤

했지만 어쨌든 분야 내에서 고유한 캐릭터를 구축했습니다

출판학교 학생들이 출판 상황을 이해하고 자신을 역할을

정하는 개인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비전 중심의 경영을

하는 회사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지만 개인 비전을 기업

비전으로 나아가 사회 비전으로 접목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과거에 안주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부분을

출판계에서는 SNS 등 인터넷 환경을 통한 마케팅으로

이해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SNS망 자체에서 무엇이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건 사람과

사람이 서로 소통하고 공감하는데 필요한 도구입니다

콘텐츠 중심의 사고가 중요하고 그것이 전제되지 않을 때

SNS는 착각에 불과하며 성공할 수 없습니다 필요한 콘텐츠

중심의 사고를 가지고 철저하게 진행하지 않으면 그 공간에서

허망하게 헤엄만 칠 뿐 입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SNS에서

맥없이 헤엄치다 익사하는 경우를 볼 수 있을 겁니다

콘텐츠와 마케팅의 영역을 하나로 보는 것과 따로

보는 것 어떤 것이 독자를 위하는 것일까요

출판 마케팅은 책을 기획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에서부터

개입돼야 하고 그 과정에 독자를 참여시키는 방식을

고민해야 합니다 미국 네브래스카주립대학의 이상문

교수는 lsquo밀실 안에서의 혁신은 끝났다rsquo고 얘기합니다

개방된 체제에서 독자 곧 소비자 사용자의 참여 하에 함께

만들어갈 때 혁신은 이뤄진다고 합니다 출판사의 비전이

브랜드로 연결될 때 독자는 자발적으로 의견을 주고받고

싶어 할 겁니다

마케터반 11기 이창환

디자

인 사

공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