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 · 최고 · 최대 · 최소 · 최장 · 2016. 12. 7. · Namwon Guinness Namwon Guin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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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won Guinness 유일 · 최고 · 최대 · 최소 · 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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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amwon Guinness

    Namwon Guinness

    유일 · 최고 · 최대 · 최소 · 최장

  • 남원은 지리산과 섬진강의 청정자원과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품격 높은 문화자원을

    보유한 맛과 멋이 살아 숨 쉬는 풍류의 고장입니다. 역사와 전통이 살아 숨 쉬는

    우리시에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각종 기록들을 발굴 · 기록함으로써 지역을 알리고

    시민에게 자긍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남원 기네스를 발간하였습니다.

    『남원 기네스』는 우리시가 갖고 있는 ‘1% 최고’를 찾는다는 주제를 가지고 최초,

    최고, 최대, 최소, 최다, 최장 등 분야별 으뜸 및 희귀기록을 인물, 지리, 자연환경,

    문화역사, 행정, 산업경제, 기타로 세분화하여 시민들에게 공모절차와 각종 자료를

    수집하여 정리 하였습니다.

    남원 기네스는 우리의 역사이자 소중한 발자취입니다. 선조들의 부단한 노력이 만들어낸 작품일 수도

    있고 개인이 일생을 바쳐 이룩한 업적일 수도 있습니다. 작은 노력이 쌓이고 쌓여 이루어낸 성과일 수도

    있고 자연스럽게 주어진 기록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작은 기록이든 큰 기록이든 우리시에게 너무나도

    소중한 기록이자 자산입니다.

    여기에 실린 기록들은 우리의 과거 혹은 현재의 기록입니다. 이 기록은 언젠가는 깨어지고 혹은 영원히

    보존될 수도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기록을 만들어 가고 있고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는 시민

    여러분도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러한 노력이 모여 풍요롭고 사랑이 가득한 건강한 남원을 만들어 가는

    초석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이번 기네스 발간으로 시민 여러분이 새로운 기록을 써 내려가는데 새로운 동기부여가 되기를 바라며,

    다음 기네스 발간에는 더욱 더 새롭고 희귀한 기록들이 풍성하게 만들어져 남원발전에 디딤돌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2014. 7.

    남 원 시 장

    발 간 사

  • Contents

    인물1 최초 ‘가왕’ 칭호를 받은 명창 송흥록_ 2 최고위급 장군 무민공 황진_ 3 고려 예조판서 김충한_ 4 최다 임금을 모신 남원의

    관료 유자광_ 5 여류 시인 김삼의당_ 6 남원농악 예능 보유자 류명철_ 7 최초 국제해양법재판소 재판관 박춘호_ 8 최초

    대법관 배석_ 9 최초 미국 예일대 정치학 박사 이종률_ 10 최초 민주 열사 김주열_ 11 최초 미스춘향 김삼선_12 최초

    서예국전 여성 초대작가 류영근_ 13 최초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신준섭_ 14 전국 아마추어 테니스대회 최다 우승자 이종우

    15 최초 궁도 공인 8단 남광우, 여궁도 공인 3단 이남윤_ 16 최초 복싱 국제심판(지도자) 김재봉_ 17 최초 검도사범 조병용

    18 최연소 게이트볼 1급 심판 및 선수 김태우_ 19 최초 고아원 설립자 김봉룡_ 20 최초 기독교 순교자 윤종현, 최다

    전도왕 백남선_ 21 최초 여성 택시기사 조혜숙_ 22 최다 헌혈자 정정호_ 23 초밥왕 안효주_ 24 발명왕 허정만

    지리25 제1호 국립공원 지리산_ 26 가장 높은 산 반야봉_ 27 3개도를 가르는 분기점 삼도봉_ 28 가장 높고 웅장한 폭포

    구룡폭포_ 29 가장 긴 계곡 뱀사골계곡_ 30 가장 긴 하천 요천_ 31 가장 큰 저수지 금풍저수지_ 32 동서남북 끝 마을

    상황, 생사, 하도, 계월_ 33 가장 오래된 산수유 나무_ 34 지리산둘레길 1코스 주천 ~ 운봉구간_ 35 백두대간이 마을을

    통과하는 전국유일의 노치마을_ 36 미로형 돌담마을 용궁마을

    자연환경37 가장 더웠던 날 1990년 7월 29일_ 38 가장 비가 많이 온 날 2004년 8월 18일_ 39 가장 추웠던 날 1994년 1월 24일_ 40 가장

    눈이 많이 온 날 1978년 11월 28일

    문화역사41 가장 오래된 축제 춘향제_ 42 문화재를 가장 많이 보유한 사찰 실상사_ 43 최초 지정 국보 제10호 백장암 삼층석탑_ 44 최초

    지정 사적 104호 황산대첩비지_ 45 가장 오래된 정원 광한루원_ 46 만인애국 충혼을 모신 만인의총_ 47 가장 큰 불상 용담사지 석조

    여래입상_ 48 가장 오래된 종 대복사 동종_ 49 가장 오래된 철불상 실상사 철조여래좌상_ 50 최대 불상군 개령암지 마애

    불상군_ 51 가장 오래된 사찰 귀정사_ 52 가장 오래된 암각화 대산면 대곡리 암각화_ 53 외침을 막고 도둑을 지켜왔다는 장승

    방어대장군, 진서대장군_ 54 가장 크고 오래된 장승 만복사지 석인상_ 55 집단 고분군 초촌리 고분군, 두락리 고분군

    56 최초 귀화인을 모신 사당 환봉서원_ 57 최초 사회단체 기로회_ 58 최초 여성 예술단체 권번_ 59 최초 중요무형문화재

    제65호 백동연죽장 황영보_ 60 최초 기독교회 남원읍교회_ 61 가장 오래된 소나무 지리산 천년송_ 62 최초 국가지정 천연기념물

    제281호 진기리 느티나무_ 63 남원 고전문학 춘향전, 흥부전, 최척전, 만복사저포기_ 64 남원 최초 대하소설 혼불_ 65 오래된

    민속놀이 용마놀이, 삼동굿놀이, 줄싸움_ 66 남원 고대건물 3걸 광한루, 관왕묘, 용성관_ 67 최초 3.1만세운동 발생지역

    덕과면_ 68 최초 남원에 설치된 남원역_ 69 가장 오래된 목조 기차역 서도역_ 70 최초의 방송국 남원 KBS_ 71 최초의

    국립교육기관 남원향교_ 72 최초 서원 용장서원_ 73 최초 사학 용북중학교_ 74 최초 유치원 남원유치원_ 75 최초 목기

    생산학교 산내 전라공업기술학교_ 76 가장 오래된 초 · 중 · 고등학교 용성초, 남원중, 용성고_ 77 가장 학생 수가 많은

    초 · 중학교 도통초, 남원중_ 78 최대 학교 숲 주생초등학교 소나무 숲_ 79 최초 노래탑 오늘이 오늘이소서_ 80 물고기를

    잡기 위해 설치한 가장 오래된 독살_ 81 거북바위에 새겨진 북두칠성_ 82 가장 큰 지석묘 사석리 지석묘_ 83 최초 나루터 순자진

  • 행정84 최초 군수 시장_ 85 최초 국회의원 이정기_ 86 최초 도의원ㆍ시의원ㆍ군의원_ 87 통합 남원시 최초 자치법규 남원시의회

    회의규칙 및 위원회 조례_ 88 최초 군민의장ㆍ시민의장 수상자_ 89 최고령 시민의장 수상자 오재승_ 90 최고 춘향장학

    재단 현금 기탁자 심재명_ 91 최고 춘향장학재단 현물 기탁자 김성복_ 92 최다 도서 기증자 장영태_ 93 최고령 어르신,

    이름이 긴 사람, 다산부부_ 94 최고령 통장 죽항동 유문옥_ 95 최연소 이장 아영면 일대마을 임한수_ 96 인구가 가장

    많았던 해 1965년_ 97 인구 최대, 최소 읍면동 도통동, 덕과면_ 98 세대당 인구비율 최고, 최저 연도 1964년, 2013년

    99 관광객이 가장 많이 방문한 해 2005년_ 100 가장 비싼 건물 서남대학교_ 101 가장 오래된 아파트 한남아파트

    102 가장 높은 건물 현대아파트_ 103 공시지가 최고가, 최저가_ 104 최초 국제 자매결연 도시 중국 염성시

    산업경제105 최초 특구 지리산 웰빙 허브산업특구_ 106 최초 관광지 남원관광지_ 107 최대 전통시장 공설시장_ 108 가장

    오래된 은행 스탠다드차타드은행_109 가장 오래된 약국 위생약국_ 110 최초 제재소 선송제재소_ 111 최초 병원

    남원의료원_ 112 가장 오래된 중화요리 음식점 경방루_ 113 가장 오래된 추어음식점 새집_ 114 가축을 가장 많이

    사육하는 농가_ 115 원예작물을 가장 많이 재배하는 농가_ 116 최다 귀농귀촌 마을 백일전원마을

    기타117 최초 가설 교량 승사교_ 118 최초 비행장 주생비행장_ 119 최초 발행 신문 서남신보_ 120 최장 가족신문 우리둥지

  • Namwon Guinness

    Namwon Guinness

    인 물1 최초 '가왕' 칭호를 받은 명창 송흥록 / 2 최고위급 장군 무민공 황 진

    3 고려 예조판서 김충한 / 4 최다 임금을 모신 남원의 관료 유자광

    5 여류 시인 김삼의당 / 6 남원농악 예능 보유자 류명철

    7 최초 국제해양법재판소 재판관 박춘호 / 8 최초 대법관 배 석

    9 최초 미국 예일대 정치학 박사 이종률 / 10 최초 민주 열사 김주열

    11 최초 미스춘향 김삼선 / 12 최초 서예국전 여성 초대작가 류영근

    13 최초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신준섭 / 14 전국 아마추어 테니스대회 최다 우승자 이종우

    15 최초 궁도 공인 8단 남광우, 여궁도 공인 3단 이남윤 / 16 최초 복싱 국제심판(지도자) 김재봉

    17 최초 검도사범 조병용 / 18 최연소 게이트볼 1급 심판 및 선수 김태우

    19 최초 고아원 설립자 김봉룡 / 20 최초 기독교 순교자 윤종현, 최다 전도왕 백남선

    21 최초 여성 택시기사 조혜숙 / 22 최다 헌혈자 정정호

    23 초밥왕 안효주 / 24 발명왕 허정만

  • 1

    사랑

    의 도

    시 건

    강한

    남원

    최초 ‘가왕’ 칭호를 받은

    명창 송흥록

    01 운봉읍 화수리 비전마을에서 태어난 송흥록 선생(1780년경 ~ 1863년 추정)은 민속

    음악 장단에 가장 느린 진양조를 판소리에 응용함으로써 판소리의 음악표현 영역을

    확대하는 한편 판소리의 긴 이야기 줄거리를 느리고 빠른 여러 가지의 장단과 음악의

    조(調), 다양한 음악기교 등을 곁들여 표현함으로써 오늘날의 극적이면서도 예술적인

    판소리 틀을 완성시켜 동편제 판소리의 시조 또는 판소리의 중시조로 추앙받으며 동료

    소리꾼들로부터 가왕(歌王) 칭호를 얻었다.

    송흥록 명창은 1859년(철종10) 의정부좌찬성 김병기의 부름을 받고 왕 앞에서 여러

    차례 소리를 하였다. 이에 철종은 정3품 통정대부 벼슬을 제수하였다. 춘향가, 적벽가,

    변강쇠가 등을 잘 하였으며, 특히 춘향가 중 옥중가의 귀곡성(귀신울음소리)은 선생이

    창작한 독창적인 창법으로 지금까지 유명한 판소리 대목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가 완성한

    동편제는 운봉, 구례, 순창, 흥덕 지역을 기반으로 웅장하고 씩씩하며 기교를 부리지

    않고 선천적인 음량을 소박하게 그대로 드러내어 소리 내는 것이 특징이다.

    남원은 동편제 소리의 발상지로써 운봉에 국악의 성지를 조성하여 국악선인묘역에

    가왕(歌王) 송흥록 명창을 모시고 인근 비전마을에는 생가를 복원하여 관리하고 있다.

    국악의 성지 전경 가왕 송흥록 묘 송흥록 생가

  • 2남

    원기

    네스

      인

    물 1

    최고위급장군무민공황진

    02 무민공(武愍公) 황진(黃進)은 명종 5년(1550년)에 남원부의 주포방(지금의 주생면

    영천리)에서 태어났으며, 선조9년 27세 때 별시의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이 되었다.

    그 후 선조 23년(1590) 동복현감을 거쳐 선조 26년(1593) 충청병마절도사(지금의 사단

    장급)에 이르렀다. 1593년 6월 28일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 싸움에서 순절 하였으며,

    현재 주생면 정송리 정충 마을에 황진장군을 모신 정충사와 묘소가 있고 대산면 대곡리에

    부조묘, 주생면 반송마을에 장군의 정려비가 있다. 황진가고문서(黃進家古文書)는

    보물 제942호로 지정되었다.

    무민공 황진 무민공 황진 묘 무민공 황진 부조묘

  • 3

    사랑

    의 도

    시 건

    강한

    남원

    무령부원군 유자광(柳子光)은 남원 고죽동에서 1439년에 태어나 조선왕조의

    최고의 권력자로서 ‘세조, 예종, 성종, 연산군, 중종’ 다섯 왕을 모신 인물이다.

    고죽동은 유자광이 태어나면서 마을의 정기를 다 뽑아 대나무들이 누렇게 말라

    죽었다 하여 누른대, 황죽(黃竹), 고죽이라는 지명이 전해지고 있다. 유자광은

    중추부지사 유규(柳規)의 서자(庶子)로 태어나 건춘문(建春門) 갑사로 봉직하다

    1467년(세조 13) 이시애의 난에 출전하여 공을 세우고 병조정랑이 되었다.

    1468년 남이의 역모사건을 계기로 남이 · 강순 등을 처형한 뒤 익대공신(翊戴功臣)

    1등에 책록되고 무령군(武靈君)에 봉해졌다. 1498년(연산군4) 유자광은「성종실록」을

    편찬할 때 김일손(金馹孫)이 사초(史草)에 김종직이 지은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실은 것을 빌미삼아 무오사화(戊午史禍)를 일으킴으로써 수많은 충신이 죽거나

    축출되었다.

    그 후 중종반정이 일어나자 의거에 참여하여 이번에는 정국공신(靖國功臣)

    1등에 무령부원군으로 봉해졌다. 그러나 다음해 대간 · 홍문관 · 예문관 등이

    들고일어나 탄핵을 계속하여 훈작이 취소되었다.

    두남사 수은당 신도비

    고려예조판서 김충한

    03

    04

    수은당(樹隱堂) 김충한(金沖漢:생존연도 미상)은 남원에서 태어나 고려 때 예조판서를

    지냈고, 조선이 건국되자 충신은 불사이군이라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하여 송경

    만수산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았던 두문동(杜門洞) 72현(七十二賢) 중 한 분이다.

    송동면 두신리 두곡마을에 김충한을 배향한 두곡서원은 1766년(영조 43) 창건되어

    100여 년간 유지되어왔으나 1864년(고종 5) 서원철폐령으로 사라지고 1945년 두곡

    서원지에서 약 300m 떨어진 곳에 두남사라는 사당을 세워 수은당 김충한을 모셨다.

    현재 두곡마을에 수은당 신도비(神道碑)와 세거비(世居碑)가 있다.

    최다 임금을 모신남원의 관료

    유자광

  • 4남

    원기

    네스

      인

    물 1

    삼의당 김씨의 생애와 문학을 엿볼 수 있는 자료는 삼의당이 세상을 떠난 지 100년이 지난 1930년에 광주에서

    가 출간됨으로써 비로소 세상에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남원문화원에서는 그녀의 문학세계와 생애를 더듬어 더욱 높이 빛내기 위하여 1991년 11월 15일 그가 태어났던

    서봉방 부근의 교룡산 기슭 교룡산국민관광지에 시비(詩碑)를 세웠다. 또한 그녀가 살았던 마을로 추정되는

    향교동 유천마을 주민들은 김삼의당을 기리기 위해 마을회관 옆에 시비를 세웠다.

    유천마을 시비 교룡산국민관광지 시비

    花 滿 枝 (활짝 핀 꽃가지)

    帶方城上月如眉 대방성 위의 달은 눈썹 같고

    帶方城下花滿枝 대방성 아래 꽃은 흐드러졌네

    生憎花開芳易歇 피었다 시드는 꽃 나는야 싫어

    每羨月來長有期 기약하고 오는 달 부러워하지

    여류 시인김삼의당

    05 김삼의당(金三宜堂)(1769년∼1823년)은 남원이 낳은 여류시인 중 한사람이다. 신사임당이나 허난설헌 같은 사대부가의 여인도 아니요, 황진이나 이매창 같은 기녀도

    아니다. 가난한 살림을 꾸리는 여염집 여인으로서 일상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일과

    전원의 풍치를 생애 동안 260여 편의 많은 한시와 산문으로 남겨 놓았다.

    김삼의당은 남원의 서봉방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알려지지 않고 삼의당이란 당호

    (堂號)로만 전해져 오고 있으며 나이 18세에 같은 마을에서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날에

    태어난 담락당 하립과 결혼했다.

    김삼의당은 한 집안의 며느리로서, 한 남자의 부인으로서 가정에 묻혀 살았던 여인으로

    살면서 부부의 애절한 정과 농촌의 어려운 가정생활, 규방 안의 예절과 우리 고장 남원의

    인정과 산수의 아름다움을 주옥같은 언어로 표현하였다.

  • 5

    사랑

    의 도

    시 건

    강한

    남원

    남원농악예능 보유자

    류명철

    06 호남 좌도농악의 지류인 남원농악의 상쇠 류명철은 1942년 금지면 상귀리에서 출생

    하여 부친인 류한준, 강태문으로 이어지는 남원농악 상쇠의 맥을 잇고 있는 남원농악의

    명인으로 1998년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7-4호로 지정되었다.

    부친인 류한준은 1946년 전국농악경연대회에서 최고상을 수상한 전라북도 대표 팀의

    상쇠였다. 1952년 부친이 사망하자 부쇠였던 강태문이 상쇠를 맡게 되면서 1957년

    정월부터 강태문 상쇠가 이끄는 남원시 금지면 '독우물 농악단'의 마당밟이에 농구로

    참가하면서 농악에 입문하였다.

    농구를 통해 쇠잽이의 기능을 익힌 후에 18살인 1959년 남원춘향제의 농악경연대회

    소년농악단 상쇠로 출전하여 우승하였고 1970년대 초 독우물 · 조산 · 천거리 농악단을

    규합하여 남원농악단을 창단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으나 1970년대 후반에 은퇴를

    결심하고 가사에 전념하다 1994년에 활동을 재개하였다.

    남원농악은 가락이 다채롭고 놀이 동작이 세련되고 섬세하여 그 예술성이 높게 평가

    받고 있다. 남원농악은 모든 치배가 상모를 쓰는 것이 특징인데 상쇠 이하 징, 장고잽이

    까지는 부포를 단 부들상모를 쓰고 소고잽이는 창호지를 길게 오려 단 채상모를 쓰고

    꼬지에 흰 새털이나 종이 오리를 꾸며 돌리는 상모를 머리에 쓰는 것이 특징이다.

    류명철 선생은 1999년에는 남원시립농악단 부단장에 임명되었다. 또한 한국예술

    종합학교 강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목포 세한대학교 전통연희학과 겸임 교수로 있다.

    류명철씨는 남원농악 발전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1999년 남원시로부터 시민의 장

    문화장을 받았다.

  • 6남

    원기

    네스

      인

    물 1

    최초 국제해양법재판소 재판관박춘호

    남원 금지 출신으로 최초 대법관이 된 배석(1933~1991)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재학 중 1956년 제8회 고등고시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군법무관 생활을 마친 뒤

    1960년 광주지방법원 판사로 임관되어 광주지역에서 법관생활을 하였다.

    1981년 전주지방 법원장, 1982년 광주지방법원장, 1986년 사법연수원장으로

    재직하였다.

    1987년 대법원 판사로 임명되었고, 1988년 헌법개정으로 대법원이 구성될 때

    대법관으로 임명 · 근무하며, 민사판례 정립에 많은 공적을 남겼다.

    07 대강면 출신 故 박춘호 교수(1930 ~ 2008)는 해양관련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1995년 독일

    함부르크에 설립된 국제해양법재판소의 초대 재판관으로 1996년 당선된 입지전적의 인물이다.

    故 박춘호 교수는 서울 문리대 재학시절 한 · 일간 어업분쟁이 격화되는 것을 보고 미개척 분야

    였던 해양법과 인연을 맺고, 1972∼80년 미국 하버드대 동아시아법률연구소 연구원 시절

    ‘중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 해양 분쟁 및 대륙붕 해저자원 등의 연구’로 국제 해양법 분야의

    학자로 인정받았다. 20여 년 동안 유엔 해양법회의에 40여 회 참석하였고 국가 간 해양 관련 분쟁

    해결을 위해 독일 함부르크에 설립된 유엔 국제 해양법재판소 출범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그 결과 1996년 임기 9년의 국제해양법재판소 초대 재판관에 당선됐고, ‘유엔 고위직 첫 진출

    한국인’이란 기록도 세웠다. 2005년엔 재판관에 재선됐다. 1997년엔 한국인 최초세계 최고

    권위의 국제법단체인 ‘국제법학회(Institut de Droit International)’ 회원으로 등재됐다.

    특히 독도 문제에 대해 냉정하고 전략적인 대응을 해 온 독도 전문가였다. 1999년

    신한일어업협정 체결 당시 정부 자문역으로 해양 정책 입안에 기여했고 고려대 교수 및

    석좌교수, 건국대 석좌교수를 지내며 후학 양성에도 힘썼다.

    최초 대법관 배 석08

  • 7

    사랑

    의 도

    시 건

    강한

    남원

    이종률(李鍾律)박사(1941~2008)는 대강 출신으로 최초 미국 예일대학교

    정치학 박사를 취득했다. 이종률박사는 1978년 유신정우회 의원(10대)으로

    정계에 입문한 뒤 1980년 국가보위입법회의에 유정회 대표 격으로 참여했다.

    이후 민주정의당 전국구 의원(12대)을 지내고 제5공화국 말기 정무 제1장관과

    14대 국회 사무총장을 역임했다.

    최초 미국 예일대 정치학 박사 이종률09

    최초 민주 열사 김주열10

    남원에서 최초로 민주 열사라는 칭호를 받은 인물은 금지면의 김주열(1943 ~

    1960) 열사이다.

    금지중학(金池中學)을 졸업하고, 1960년 3월 마산상고 (馬山商高)에 입학

    하였다. 그해 3 · 15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에 참가하여 실종하였다가,

    한 달 후인 4월 10일 최루탄(催淚彈)이 눈에 박힌 채 유기(遺棄)되어 마산

    앞바다에 떠오른 것이 발견되고, 이것이 경찰의 소행으로 밝혀지자 학생과

    시민의 분노가 또다시 폭발하여 4 · 19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김주열열사 추모 사업회와 남원시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금지면 옹정리 김주열 열사 묘역앞에 김주열기념관을 건립 하였으며. 2001년 4월 19일 개관

    하였다. 이 기념관에는 약 50㎡ 규모로 김주열 열사 학적부와 유품 등 93점의 전시물이 있다. 이 전시품들은

    유족과 3·15의거기념 사업회, 김주열 열사 친구, 모교인 마산상업고등학교 등에서 기증받은 것들이다.

    이 밖에도 3·15의거기념 사업회가 마산상업고등학교 교정에 세운 김주열 열사 동상을 복원한 흉상, 마산

    상업고등학교 명예졸업장, 김주열 열사에 대한 기사가 실린 각종 신문과 잡지 등이 전시되어 있다.

  • 8남

    원기

    네스

      인

    물 1

    남원 출신 여류 서예가 류영근 작가는 서예 국전 초대작가이다.

    한국미술관에서 열린 ‘2012년 한 · 중 수교 20주년 기념 제16회

    세계서법문화예술대전’에서 종합 국제대상인 대통령 상을 받았다.

    남원 이은서예관 원장이자 40여 년 간 서예활동에 전념한 작가는

    호 · 영남 지역에서 첫 번째로 이 같은 상을 수상해 명실상부한

    명필의 반열에 올랐다. 아석 소병순 선생과 철견 곽노봉 교수에게

    한문서예를 사사받은 작가는 늘샘 권오실 선생의 문하에서 한글

    서예 가르침도 받았다.

    11 제27회 춘향제(1957년)에 최초로 실시한 춘향선발대회에서 김삼선씨가 미스춘향으로

    선발되었다. 당시에는 칸막이 포장을 치고 후보의 사진을 걸어놓은 후 입장권으로

    인기를 측정하였다.

    한편 춘향선발대회에서 배출된 미스 춘향은 한국최고의 전통여인상을 대변해 왔다.

    이 대회에서 배출된 미스춘향으로 오정해, 이다해, 윤손하, 장신영 등의 유명 연예인

    등이 있으며, 최근에는 춘향선발대회를 통해 배출된 미스춘향이 배우를 포함해 아나운서,

    리포터 등 여러 방면에서 폭 넓은 활동하고 있다.

    12최초 서예국전 여성 초대작가 류영근

    최초미스춘향김삼선

  • 9

    사랑

    의 도

    시 건

    강한

    남원

    최초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신준섭

    13

    1984년 제23회 LA올림픽에서 복싱 75kg급 금메달을 딴 신준섭(1963~)씨는 국내

    최초 올림픽 복싱 금메달 리스트이다. 비교적 늦은 시기인 고등학교 때 부터 복싱을

    시작하여 1983년 로마에서 열린 복싱 월드컵에서 홈링의 노에 쿠루치아니를 이기며

    세계 톱 수준의 아마추어 미들급 선수로 올라섰다.

    LA올림픽 당시 동양인으론 힘든 미들급에서 캐나다 릭 더프를 일방적으로 두들겨 승리

    하며 승승장구하여 결승전까지 진출한다. 결승 상대는 미국의 버질 힐이었다. 전국민이

    지켜보는 신준섭과 버질 힐은 치열한 공방전 끝에 시합을 마쳤다. 그러나 당시 분위기상 비슷한

    시합 양상이면 미국 선수의 손을 들어주었기에 신준섭 선수가 패배했을 것 같은 느낌도

    들었지만 판정 결과는 3-2로 신준섭 선수의 손이 올라가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LA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후 국내 최고 스타로 등극한 신준섭씨는 은퇴 선언하였지만

    복귀해 1986년 아시안 게임에 출전하여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선수로선 모든 것을 누린 신준섭씨는

    은퇴 후 한국 국가대표 복싱팀 코치로 활동 했으며 현재 미국에서 개인사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향교동 출신 이종우씨는 전국 아마추어 테니스대회 최다 우승자이다.

    한국아마추어테니스연합회(KATO), 국민생활체육 전국테니스연합회(KTFS)에서

    주관하는 전국대회에서 100회 이상 우승을 거두었고, 2007년에는 한해에만

    아마추어 대회 17회 우승을 하였으며 꾸준한 몸 관리와 훈련으로 KATO,

    KTFS 배테랑부 종합랭킹 1위를 수년간 유지하며 코트를 누비고 있다.

    이종우씨는 국토해양부 국토관리사무소에 근무하고 있으며 2005년 건설교통부

    기네스인(테니스)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매년 전국 시도에서 개최되는 대회에

    참가하여 동호인과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남원지역을 알리는데 앞장서고 있다.

    전국 아마추어 테니스대회 최다 우승자 이종우14

  • 10남

    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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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

    물 1 김재봉씨는 1989년 복싱 국제심판자격(세계복싱연맹)을 최초로 취득하여, 아시아선수권대회 3회(2002 쿠알라룸프르,

    2004 마닐라, 2007 울란바토르), 아시안게임 2회(2002 부산, 2006 도하), 월드컵대회 2회(2004 아테네,

    2008 모스크바), 세계선수권대회 2회(2003 방콕, 2007 시카고), 2008 베이징 올림픽 등 30여회 국제경기

    심판으로 활동하였다.

    84년 LA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신준섭 선수를 발굴 육성하였으며, 이후 황인도, 장종규, 한정남, 진명돌,

    황의선 등을 국가대표로 선발되도록 지도하여 복싱인재들을 육성하는데 탁월한 지도력을 발휘한 지도자

                      이기도 하다.

                       1996년 남원시청 복싱부를 창단 남원시청 소속 국가대표 공두환,

                      이광호, 유지원, 최준욱, 송학성, 박관수, 심명훈을 배출하였고,

                      전국 · 국제대회에서 우수한 실적을 올려 남원시 체육발전에 기여했다.

                       또 대한복싱연맹이사, 수석부회장, 배심위원장, 전북복싱연맹

                      이사 등을 역임하고 현재는 남원복싱연맹 회장, 신준섭 체육관

                      관장을 맡아 후배양성에 전념하고 있다.

    최초 궁도공인 8단남광우여궁도 공인 3단이남윤

    15

    주천면에 사는 남광우(1969년생)궁사는 남원 최초 궁도 공인 8단이다. 토목 및 건축업에

    종사하다 2007년 7월 궁도를 처음 시작하였다. 남광우 궁사는 궁도를 늦게 시작하였지만

    5년만에 공인 8단 명궁이 되었다. 남원 최초로 궁도 실업팀 선수(서울체육회), 최초 궁도

    전국체전 참가 등 남원의 명궁으로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또한 남원시 최초 여궁사로는 공인 3단의 이남윤(1962년생)씨이다. 이남윤씨는

    2006년부터 궁도를 시작하여 5년만인 2011년에 전라북도 최초로 공인 3단에 합격

    하였으며, 전국대회에 참가하여 우승하는 등 남원을 대표하는 여궁사로 활동하고 있다.

    16최초 복싱 국제심판(지도자) 김재봉

  • 11

    사랑

    의 도

    시 건

    강한

    남원

    최초검도사범 조병용

    17

    남원지역의 검도는 교사 8단인 故 조병용(1901.3.18.~1984.6.21)선생이 광복 이전

    남원경찰서와 남원농업고등학교의 검도사범으로 최초 검도를 지도하면서부터 보급되었다.

    1960년 이후 새벽시간 노암동 소재 금암봉으로 찾아오는 제자들을 무상으로 지도하며 남원 검도

    발전에 공헌을 하였고, 전국체전 종목으로 선정된 후 전라북도 검도선수단 합숙훈련 지도사범

    으로 활동, 전라북도 검도회 부회장, 대한검도회 중앙이사를 역임하는 등 명성을 떨쳤다.

    故 조병용 선생은 전북 검도선수단 지도사범으로 인정받아 1975년 전라북도 도민의장 체육상을

    수상하였고 1984년 조병용 선생이 돌아가신 후 1993년부터 지도를 받았던 제자들이 주축이

    되어 조병용 선생을 추모하는 검도대회를 개최하기 시작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조병용 선생 추모 검도대회’는 첫 대회를 전라북도 대회로 시작하였으나, 2011년 19회

    대회부터 ‘국민생활체육 남원시장배 전국검도대회’로 격상되어 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게이트볼은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스포츠로 특히, 노년층에 인기를 끌고

    있는 종목이다. 이런 종목에서 1급 심판원 자격을 최연소로 취득한 사람이 조산동에

    김태우(1973년생)씨이다. 김태우씨는 2012년 3월에 게이트볼 1급 심판원 자격을

    취득하여 전북에서 최연소 1급 심판이 되었다. 게이트볼 선수로도 활동하여 남원

    대통령배 전국게이트볼대회(2007) 2위, 장수 전국 대회(2008) 3위에 입상하였다.

    김씨는 2001년에 남원시체육회에 입사해서 지금까지 게이트볼, 댄스 스포츠

    등을 지도하고 즐기면서 일하고 있다.

    하루에도 5통 이상 어르신들로부터 게이트볼 관련 연락을 받는다고 한다.

    60~70대 어르신들이 즐겨하는 스포츠이다보니 게임 중에 말다툼이 일어나기도

    하고 규칙에 대해 문의가 오면 해결사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최연소 게이트볼 1급 심판 및 선수 김태우18

  • 12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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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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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21

    최초 기독교 순교자 윤종현, 최다 전도왕 백남선

    최초 여성 택시기사 조혜숙

    故 김봉룡(金鳳龍) 선생(1911.4.12~1996.7.20)은 1951년 5월 쌍교동에

    전쟁고아들을 위한 ‘지산향육원’을 설립해 고아 415명을 양육하여

    사회에 진출시켰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기도 한 김봉룡 원장은 유치장을 찾아가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선교활동을 벌이고 이들이 출소하면

    학비를 보태거나 직장을 구해주는 등 청소년 선도에 앞장서 왔다.

    1990년 2월에 40년간의 원장직 은퇴 후 1996년 7월 평소 앓아오던

    지병으로 별세 하였다. 죽어서도 병든 자들을 위해 시신을 병원에

    기증하였고 유족들은 고인의 전 재산을 춘향장학재단에 기증했다.

    故 윤종현(1890) 선생은 운봉출신으로 운봉교회와 운봉매요교회 설립자이다.

    일제시대 독립운동단체인 운봉 기독청년단원으로 많은 독립운동 자금을

    김구 선생을 통하여 중국에 있는 윤봉길 의사에게 전달하였다. 제2대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한 경력이 있고 만석군으로 농지를 소유하고 많은

    소작 농가를 거느렸던 연고로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에게 체포 되어 북한군이

    후퇴하면서 순교하였다.

    故 백남선(1923~2012) 장로는 1923년 1월 19일 태어나 어려서 남원읍

    교회에 입교하여 1972년 9월 7일 남원동북교회 장로 임직하고 2012년

    4월 11일 전주예수병원에서 별세하였다.

    그는 남원의료원에서 병마에 시달리는 환자들을 위로하고 전도하면서

    50년간 전도한 사람이 무려 41,567명이나 되었다.

    남원시 최초 여성 택시기사는 조혜숙씨이다. 1990년 9월 이화교통에서 당시 나이 30세에 택시 운전을

    시작하였다. 현재 조혜숙씨는 렌트카 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최초 고아원 설립자 김봉룡19

  • 13

    사랑

    의 도

    시 건

    강한

    남원

    2012년 7월까지 182회(대한적십자사 조회기록) 헌혈을 한 정정호씨는

    남원 최다 헌혈자이다. 현재 남원수화통역센터에서 근무하고 있는 정정호씨는

    고등학교 때 처음으로 헌혈을 시작 했으며, TV광고에서 혈액이 부족해

    수입하고 있다는 사실에 안타까운 마음에 적극적으로 헌혈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정정호씨는 청각언어장애인을 위해 수화로 통역해주는 일을 하면서 특별한

    일이 없으면 2달에 1회 이상 헌혈을 통해 생명존중을 실천하고 있다.

    국민 모두가 한 번씩 헌혈하면 혈액을 수입하지 않아도 필요한 사람에게

    충분히 공급할 수 있다며 작지만 소중한 관심을 부탁했다.

    초밥왕 안효주(1958년생)씨는 남원시 이백면 출신으로 일식 요리사들

    사이에서 살아있는 전설로 통하는 사람이다. 초밥의 나라 일본에서

    15년간 베스트셀러를 기록하면서 1000만부 이상 판매된 만화 ‘미스터

    초밥왕’에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소개되어 더욱 유명하다.

    그는 전국체전 준우승을 할 정도로 촉망받는 권투선수였으나,

    냄비와 수세미를 잡는 요리사로 인생을 전환하고 최고의 초밥왕이

    된 별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신라호텔 일식당 아리아케에서 일식

    최고의 쉐프로 1985년부터 2003년까지 근무했고 지금은 스시효라는

    초밥 전문점을 운영하고 있다.

    남원 향교동에 평범하지 않은 농사꾼 허정만 씨 그는 못말리는 발명왕이다.

    그의 생활 곳곳에는 온통 그가 발명한 발명품들로 가득하다. 예를 들어 소여물

    주는 기계, 자동커튼개폐장치, 화장실 발명품 등 100여 가지가 넘는다.

    최다 헌혈자 정정호

    발명왕 허정만

    22

    24

    초밥왕 안효주23

  • 지 리25 제1호 국립공원 지리산 / 26 가장 높은 산 반야봉

    27 3개도를 가르는 분기점 삼도봉 / 28 가장 높고 웅장한 폭포 구룡폭포

    29 가장 긴 계곡 뱀사골계곡 / 30 가장 긴 하천 요천

    31 가장 큰 저수지 금풍저수지 / 32 동서남북 끝 마을 상황, 생사, 하도, 계월

    33 가장 오래된 산수유 나무 / 34 지리산둘레길 1코스 주천 ~ 운봉구간

    35 백두대간이 마을을 통과하는 전국유일의 노치마을

    36 미로형 돌담마을 용궁마을

    Namwon Guinness

    Namwon Guinness

  • 14

    사랑

    의 도

    시 건

    강한

    남원

    제1호국립공원 지리산

    25 지리산은 1967년 12월 29일 국립공원 제1호 지정되었다. 높이 1915m로 신라 5악의

    남악으로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으로 달라진다.’하여 지리산(智異山)이라

    불렀고, ‘멀리 백두대간이 흘러왔다’하여 두류산(頭流山)이라고도 하며, 옛 삼신산의 하나인

    방장산(方丈山)으로도 알려져 있다.

    남한 내륙의 최고봉인 천왕봉(1915m)을 주봉으로 하여 서쪽 끝의 노고단(1507m),

    서쪽 중앙의 반야봉(1732m) 등 3봉을 중심으로 하여 동서로 100여리 3개도 7개 시군에

    걸쳐있는 우리 민족의 명산이다.

    지리산은 많은 문화자원이 숨 쉬는 문화재의 보고이자 반달가슴곰을 비롯한 5,000여종의

    동식물이 살아가는 자연의 보고이다. 최근 지리산 둘레길이 개통되어 의미를 더하고 있다.

  • 15남

    원기

    네스

      지

    리 2

    가장높은 산반야봉

    3개도를 가르는 분기점 삼도봉

    26

    27

    지리산의 제2봉 반야봉(높이 1,732m)은 남원시 산내면과 전라남도 구례군 산동면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소백산맥에서 갈라진 지리산 줄기에 솟아 있으며, 주위에 삼도봉·토끼봉

    등이 있다. 기반암은 화강편마암으로 급경사의 바위산을 이루어 산세가 비교적 험하다.

    남사면에서는 섬진강의 지류가 발원하며, 북사면에서는 산내천이 발원해 남강으로

    흘러든다. 월귤·만병초 등의 고산식물이 자라며, 식물의 수직적 분포가 나타난다.

    지리산 봉우리 중 하나로, 높이 1,550m이다. 남원시 산내면, 전남 구례군 산동면, 경남 하동군 화개면에

    걸쳐 있어 삼도봉(三道峰)이라 부른다. 원래 이름은 낫날봉이었는데 정상의 바위 봉우리가 낫의 날을 닮았다

    하여 붙은 이름이었다. 또 낫날봉이 변형되어 날라리봉, 늴리리봉(닐리리봉)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1998년 10월 8일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삼각뿔 형태의 표지석(각 면에 전북, 전남, 경남이라 쓰여 있음)을

    세우면서 삼도봉으로 불리기 시작하였다.

  • 16

    사랑

    의 도

    시 건

    강한

    남원

    가장 높고웅장한 폭포구룡폭포

    28 길이 약 30m인 구룡폭포는 구룡계곡의 가장 위쪽에 있는 폭포이다. 구룡계곡의

    9가지 절경을 구룡구곡(九龍九曲)이라고 하며 구룡폭포는 그 증 백미로 꼽힌다. 폭포

    위쪽 석벽에 ‘방장 제일동천(方丈第一洞天)’이란 글귀가 새겨져 있는데, 방장은 ‘지리산’의

    다른 이름으로 예로부터 지리산에 아름다운 계곡이 12곳이 있다 하여 12동천이라

    했으며 그 중 제일동천은 구룡계곡이라는 뜻이다.

    가파른 절벽에서 급하게 낙하하는 폭포가 아니라 비교적 완만한 경사의 바위를 타고

    미끄러지듯 떨어지는 두 갈래의 폭포이며, 폭포 아래쪽에 형성된 작은 소(沼)에서 올려다

    보면 마치 용 두 마리가 하늘로 승천하는 듯 한 모습이라 하여 교룡담이라고도 한다.

    구룡폭포 바위 구룡폭포 구룡폭포

  • 17남

    원기

    네스

      지

    리 2

    가장 긴계곡뱀사골계곡

    29 뱀사골 계곡은 토끼봉과 삼도봉 사이의 화개재에서 산내면 반선리 집단시설지구까지

    12km, 장장 39여리를 흐르는 물줄기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화려한 소(沼)와 담(潭)이

    가장 큰 자랑이다. 대표적인 것만 하더라도 요룡대, 뱀소, 병소, 병풍소, 제승대, 간장소가

    그림같이 펼쳐져 있다.

    6.25 전쟁을 전후해 빨치산의 전북도당 사령부가 있었던 곳으로 빨치산의 은신처로

    사용 되었다. 이후 뱀사골에서는 토벌대와 빨치산의 쫓고 쫓기는 전투가 계속되었고,

    이 과정에서 무고한 양민들까지 피해를 보는 역사의 현장이 되었다. 현재 탐방안내소에

    빨치산과 토벌대 이야기가 전시되어 있고 민·경·군 희생자7,283명의 영령을 모신

    충혼탑이 있다.

  • 18

    사랑

    의 도

    시 건

    강한

    남원

    가장 긴하천요천

    30 요천(蓼川)은 남원시 중심부를 흐르는 국가하천으로 길이 60.030㎞, 유역면적

    485.70㎢이다. 요천의 물줄기는 장수군과 함양군 사이에 솟은 장안산(1,236.9m)에서

    시작되어 장수군과 남원시의 여러 지류의 물을 더하면서 흘러내린다. 요천은 남원시

    중앙부를 북동 - 남서 방향으로 관통하면서 대체로 직류 하다가 금지면 입암리와 송동면

    신평리 부근에서 남쪽으로 크게 꺾여 섬진강 본류로 흘러든다.

    요천 주변에는 교룡낙조(蛟龍落照), 축천모설(丑川募雪), 금암어화(錦巖漁火), 비정낙안

    (費亭落雁), 선원모종(禪院暮鐘), 광한추월(廣寒秋月), 원천폭포(源川瀑布), 순강귀범

    (鶉江歸帆) 남원의 8경 모두가 가시권에 들어 있다. 뿐만 아니라 대가야 세력이 아막성,

    장교산성, 준향산성, 노치산성 등을 넘어 섬진강 상류까지 내려와 배를 이용하여 남해로

    빠져나갔다는 이야기는 소금배가 남원까지 들어 왔다는 이야기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또한 요천은 양안에 비옥한 충적지를 만들어 예부터 남원의 성장과 발달에 젖줄과

    같은 역할을 해오고 있다. 4월초에는 아름다운 벚꽃이 요천 제방길을 수놓은 경관도

    볼 수 있다.

    또한 요천(蓼川)은 여뀌풀이 많다고 해서 요(蓼:여뀌요)천이라 불리어졌다고 한다.

    여뀌는 개천이나 논둑 기타 습지가 있는 곳이면 흔하게 있었으며, 수질 정화능력이

    아주 우수하다고 한다.

  • 19남

    원기

    네스

      지

    리 2

    동쪽 끝 마을은 산내면 중황리 상황마을이다. 이 마을은 백운산 기슭에 황강사(黃岡寺)란 절이 있었고 복치혈

    (伏雉穴) 굴이 있어 황강사의 ‘황(黃)’자와 복치혈의 ‘치(雉)’자를 따서 황치(黃雉)라 하였다. 3개 자연 마을 중

    위쪽에 있어 웃황치라 하다가 한자로 바꾸어 상황(上黃)이라 하였다.

    서쪽 끝 마을은 대강면 생암리 생사마을이다. 매년 마을 앞 섬진강 홍수로 넓은 백사장이 새로 생겨나곤

    했기 때문에 ‘날 생(生)’자에 ‘사(沙)’자를 써 생사(生沙)’라 하였다.

                    남쪽 끝 마을은 금지면 하도리 하도마을이다.

                    이 마을은 폭우만 내리면 사면이 침수되어 마을이

                    섬처럼 우뚝 솟아 보이고 남원에서 제일 남단에

                    위치한 마을이라 하여 아래 하(下)자와 섬 도(島)자를

                    합하여 하도라 칭하였다.

                    북쪽 끝 마을은 보절면 성시리 계월마을이다.

                    계월리는 마을 뒷산이 달 속의 계수나무 형국이라

                    하여 계월(桂月)이라 하였다.

    가장 큰저수지금풍저수지

    31 남원에서 가장 큰 저수지는 주생면 도산리에 있는 금풍저수지이다.

    이 저수지는 식량 생산을 목적으로 축조된 농업용 저수지로 1971년 1월 1일 준공

    되었다. 2012년 둑 높이기 사업으로 댐의 길이 315m 높이 16.6m, 저수량 421만㎥,

    수혜면적 460ha에 이른다. 요천(蓼川)의 지류인 풍촌천(楓村川, 9km)이 저수지로

    유입되었다가 빠져나간다. 산책로도 이번에 정비되어 주변 아름다운 자연을 느끼며

    걸을 수 있다.

    동서남북 끝 마을 상황, 생사, 하도, 계월 32

    남원시청여백면

    산동면덕과면

    보절면사매면

    대산면

    주생면

    순창군

    임실군

    곡성군

    구례군

    장수군

    함양군

    하동군

    대강면 금지면송동면

    수지면

    주천면산내면

    운봉읍

    아영면

    인월면

    지리산국립공원

    광한루원

    산내면상황마을

    보절면계월마을

    금지면하도마을

    대강면생사마을

  • 20

    사랑

    의 도

    시 건

    강한

    남원

    가장 오래된산수유

    나무

    33 주천면 용궁마을에는 남원에서 가장 오래된 산수유나무가 있다. 이 나무는 신라 진성

    여왕때(890년경) 심어진 것으로 알려져 수령이 1,100년이 넘어 마을에서는 할매, 할배

    산수유나무로 불리며 마을의 상징이 되고 있다.

    또 주천면 내기마을 인가 뒷담에서 둘레가 3m가 넘는 초대형 산수유나무가 발견되어

    산수유나무로서는 보기 드문 크기를 자랑하고 있다. 이 나무는 현재 이백면 척문리로

    옮겨져 관리되고 있다.

    산수유나무는 이른 봄에 향이 없이 별처럼 화사하게 꽃이 피지만 열매는 8 ~10월

    붉게 익는다.

    내기마을 산수유나무주천 산수유나무용궁마을 산수유나무

  • 21남

    원기

    네스

      지

    리 2

    지리산 둘레길 1코스주천 ~운봉구간

    34

    남원시 주천면 장안리 외평마을과 남원시

    운봉읍 서천리를 잇는 14km의 지리산 둘레길.

    본 구간은 지리산 서북 능선을 조망하면서,

    해발 500m 운봉고원의 너른 들과 6개의

    마을을 잇는 옛길과 제방길로 구성된다.

    이 구간은 옛 운봉현과 남원부를 잇던

    옛길이 지금도 잘 남아 있는 구간이다. 회덕

    에서 남원으로 가는 길은 남원장으로, 노치

    에서 운봉으로 가는 길은 운봉장을 보러

    다녔던 길이다. 특히 10km의 옛길 중

    구룡치와 솔정지를 잇는 회덕~내송까지의

    옛길(4.2km)은 길 폭도 넉넉하고 노면이

    잘 정비되어 있으며 경사도가 완만하여

    아이를 동반한 가족들이 솔숲을 즐기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운 봉 읍이 백 면

    덕 산 리

    산 덕 리

    가장마을

    보건진료소

    노치마을회관

    회덕마을회관

    정자나무쉼터

    구룡폭포P

    구룡치

    구룡치

    개미정지

    육모정

    파출소

    행정교주천

    면사무소

    마을회관

    덕 치 리

    호 경 리

    은 송 리

    행정마을

    덕산마을

    가장교

    행정교

    양묘사업장

    엄계마을읍사무소

    서림공원

    서 천 리

    삼산마을 쉼터

  • 22

    사랑

    의 도

    시 건

    강한

    남원

    백두대간이마을을

    통과하는전국유일의노치마을

    35 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계곡이나 강을 건너지 않고 산줄기만으로 지리산

    천왕봉까지 이어지는 큰 산줄기를 말한다. 주천면 노치마을은 수정봉에서 고리봉으로

    이어진 백두대간 마루금에 위치한 전국 유일의 마을이다. 백두대간이 마을 한 가운데로

    지나가는 곳이며 빗물이 오른쪽으로 흐르면 섬진강으로 왼쪽으로 흐르면 낙동강 수계인

    남강으로 흘러간다.

    이 마을에서 목돌( )이 세 개 발견 되었는데 이는 일제가 백두대간의 맥을 끊어

    민족성을 말살하려고 설치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리산 둘레길 1코스를 걷다보면 만날 수 있는 이 마을에는 등산객들에게 오아시스

    같은 노치샘과 마을 뒷산에 있는 수령 500여년 된 아름다운 소나무 4그루의 멋진

    풍광을 볼 수 있다.

    이곳에서 주민들은 매년 당산제를 지낸다.

  • 23남

    원기

    네스

      지

    리 2

    미로형돌담마을용궁마을

    36 신라 진성여왕 때(서기890년경) 주천면 용궁마을 동쪽, 해발 1050m의 높은 산

    영제봉아래 부흥사라는 큰절이 세워졌다. 그 절은 고승과 선사들이 자주 드나들면서

    휴양한 곳으로 지상 낙원이며 마치바닷속의 용궁과 같아 땅위의 용궁이라 했다고

    하는데 이로 인해 마을 이름이 용궁(龍宮)으로 되었다고 한다.

    용궁마을에는 남원지역에서 보기 드물게 많은 돌들로 인하여 농작물재배가 힘들어

    버려진 토지였으나 돌담을 쌓아 오랜 세월 세워진 돌담 사이로 이끼, 나무덩굴 등이

    어울려 마을 골목골목을 미로처럼 이루고 있다. 마을의 위치가 경사진 구릉 지대이기

    때문에 주천면 전 지역이 내려다보일 정도로 전망이 좋고 실개천이 마을을 휘감아

    도는 보기 드문 마을이다. 특히 용궁 산수유는 100년 이상 수령을 자랑하고 있어 꽃이

    크고 우람하며 빛깔이 진하여 매년 이곳에서 4월초에 산수유 축제가 열린다. 1960년대

    전경이 그대로 살아있는 곳으로 도둑과 대문, 담장이 없는 마을로 유명하고 켜켜이

    쌓아올린 돌담이 어릴 적 추억을 되새기게 한다.

  • 자연환경37 가장 더웠던 날 1990년 7월 29일 / 38 가장 비가 많이 온 날 2004년 8월 18일

    39 가장 추웠던 날 1994년 1월 24일 / 40 가장 눈이 많이 온 날 1978년 11월 28일

    Namwon Guinness

    Namwon Guinness

  • 24 가장 비가 많이 온 날 Best 5순위 연월일 최대강수량 순위 연월일 최대강수량1 2004.08.18 218.0㎜ 4 2013.07.05 178.0㎜2 1978.08.19 183.5㎜ 5 2002.08.31 170.5㎜3 1984.07.07 181.2㎜

    가장 더웠던 날 Best 5

    순위 연월일 최고기온

    1 1990.07.29 37.5

    2 1983.08.05 37.0

    3 2005.07.21 37.0

    4 2005.07.22 37.0

    5 2005.07.23 37.0

    사랑

    의 도

    시 건

    강한

    남원

    가장더웠던 날1990년

    7월 29일

    가장 비가 많이 온 날 2004년 8월 18일

    37

    38

    남원기상대에서 기상관측이 시작된 1973년 이래 현재까지 가장 더웠던 날은 1990년

    7월 29일 기록한 37.5℃ 이다.

    38

    36

    34

    32

    301973 1975 1980 1985 1990 1995 2000 2005 2010 2012

    남원에서 기상관측이 시작된 1973년 이래 일 강수량이 가장 많은 날은 2004년 8월 18일 218mm를 기록하였다.

    하지만 1961년 7월 11일 경향신문 기사에 의하면 이날 내린 폭우는 한밤중 4시간동안 495mm가 내려

    남원 전체 143명의 사망자를 내고 7,800명의 이재민을 발생시켰다고 보도했다.

    37.5℃

    250

    200

    150

    100

    50

    01973 1975 1980 1985 1990 1995 2000 2004~5 2010~12

    연도별 일 최대 강수량 218㎜

  • 25가장 눈이 많이 온 날 Best 5

    순위 연월일 최대적설량 순위 연월일 최대적설량

    1 1978.11.28 35.6㎝ 4 1980.12.12 19.6㎝

    2 1978.01.21 22.1㎝ 5 1980.12.23 18.0㎝3 2007.01.06 21.0㎝

    남원

    기네

    스 

    연환

    경 3

    가장 추웠던 날 Best 5순위 연월일 최저기온1 1994.01.24 -21.92 2001.01.15 -19.73 2001.01.16 -19.44 1997.01.07 -19.45 2005.12.18 -19.3

    가장 추웠던 날1994년1월 24일

    39 남원기상대에서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래 가장 추웠던 날은 1994년 1월 24일 기록한

    -21.9℃ 이다.

    남원기상대에서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래 눈이 가장 많이

    내린 날은 1978년 11월 28일 기록한 35.6㎝ 이다.

    가장 눈이 많이 온 날 1978년 11월 28일40

    -5

    -10

    -15

    -20

    -25-21.9℃

    1973 1975 1980 1985 1990 1994~5  2000 2005 2010~12

    40

    30

    20

    10

    0

    35.6㎝

    1973 1975 1978 1980  1985 1995 2000 2005 2010 2012

    연도별 최저기온

  • 문화역사41 가장 오래된 축제 춘향제 / 42 문화재를 가장 많이 보유한 사찰 실상사

    43 최초 지정 국보 제10호 백장암 삼층석탑 / 44 최초 지정 사적 104호 황상대첩비지

    45 가장 오래된 정원 광한루원 / 46 만인애국 충혼을 모신 만인의총

    47 가장 큰 불상 용담사지 석조여래입상 / 48 가장 오래된 종 대복사 동종

    49 가장 오래된 철불상 실상사 철조여래좌상 / 50 최대 불상군 개령암지 마애불상군

    51 가장 오래된 사찰 귀정사 / 52 가장 오래된 암각화 대산면 대곡리 암각화

    53 외침을 막고 도둑을 지켜왔다는 장승 방어대장군, 진서대장군

    54 가장 크고 오래된 장승 만복사지 석인상 / 55 집단 고분군 초촌리 고분군, 두락리 고분군

    56 최초 귀화인을 모신 사당 환봉서원 / 57 최초 사회단체 기로회 / 58 최초 여성 예술단체 권번

    59 최초 중요무형문화재 제65호 백동연죽장 황영보 / 60 최초 기독교회 남원읍교회

    61 가장 오래된 소나무 지리산 천년송 / 62 최초 국가지정 천연기념물 제281호 진기리 느티나무

    63 남원 고전문학 춘향전, 흥부전, 최척전, 만복사저포기 / 64 남원 최초 대하소설 혼불

    65 오래된 민속놀이 용마놀이, 삼동굿놀이, 줄싸움

    66 남원 고대건물 3걸 광한루, 관왕묘, 용성관 / 67 최초 3.1만세운동 발생지역 덕과면

    68 최초 남원에 설치된 남원역 / 69 가장 오래된 목조 기차역 서도역

    70 최초의 방송국 남원 KBS / 71 최초의 국립교육기관 남원향교 / 72 최초 서원 용장서원

    73 최초 사학 용북중학교 / 74 최초 유치원 남원유치원

    75 최초 목기생산학교 산내 전라공업기술학교

    76 가장 오래된 초 · 중 · 고등학교 용성초, 남원중, 용성고

    77 가장 학생 수가 많은 초 · 중학교 도통초, 남원중 / 78 최대 학교 숲 주생초등학교 소나무 숲

    79 최초 노래탑 오늘이 오늘이소서 / 80 물고기를 잡기 위해 설치한 가장 오래된 독살

    81 거북바위에 새겨진 북두칠성 / 82 가장 큰 지석묘 사석리 지석묘 / 83 최초 나루터 순자진

    Namwon Guinness

    Namwon Guinness

  • 26

    사랑

    의 도

    시 건

    강한

    남원

    가장오래된 축제

    춘향제

    41 춘향제는 1931년 6월 20일(음력 5월 5일, 단오) 남원의 지방 유지를 중심으로 남원

    사람들이 뜻을 모아 광한루원 동편에 춘향사를 준공하고 권번의 기생들이 사당에서

    춘향 제사를 지냄으로써 시작되었으며 2013년 제83회 춘향제가 개최 되어 명실상부한

    우리나라 최고의 전통문화 축제로 자리매김 해왔다.

    춘향전(春香傳)의 주인공인 ‘춘향’의 정절과 사랑을 주제로 열리며, 춘향묘 참배, 춘향제향,

    전통길놀이, 신관사또부임행차, 춘향선발대회, 창극 춘향전 등 다채로운 행사가 광한루

    일원에서 펼쳐지며, 2014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선정 대표 전통문화예술축제로 선정

    되었다.

  • 남원

    기네

    스 

    문화역사

    427

    남원

    기네

    스 

    화역

    사 4

    문화재를가장 많이보유한 사찰실상사

    42 산내면 입석리에 위치한 실상사는 단일사찰로는 가장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실상사와 백장암, 약수암을 포함한 일원은 사적 제309호로 지정되어 있고 보유하고 있는

    문화재는 총16점으로 국보 1점, 보물 11점, 중요민속자료 1점, 지방유형문화재 3점이

    이곳 실상사에 있다.

    주요 문화재로는 국보 제10호인 백장암삼층석탑을 비롯하여 수철화상 능가보월탑과

    탑비(보물 제33호, 제34호), 석등과 승탑(보물 제35호, 제36호), 동서삼층석탑(보물

    제37호), 증각대사탑과 탑비(보물 제38호, 제39호), 백장암 석등(보물 제40호), 철조

    여래좌상(보물 제41호), 백장암 청동은입사향로(보물 420호), 약수암 목조탱화(보물

    제421호), 석장승 3기(중요민속자료 제15호)가 있다. 지방유형문화재로는 극락전,

    위토개량성책(조선시대 토지대장), 보광전 범종이 지정되어 있다.

    천년사찰, 호국사찰로 잘 알려진 실상사는 통일신라 흥덕왕(興德王) 3년(828년)에

    증각대사 홍척(洪陟)이 창건하였으며 지리산 북쪽 기슭에 위치하고 있는 신라 말 교학

    보다 참선을 중시한 구산선종(九山禪宗) 최초의 가람이자 호국사찰이다.

  • 28

    사랑

    의 도

    시 건

    강한

    남원

    최초지정 국보

    제10호백장암

    삼층석탑

    43 실상사 백장암 삼층석탑은 1963년 1월 21일 국보 제10호로 지정된 남원 유일의 국보이다.

    높이 5m에 이르는 이 석탑은 낮은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으로,

    각 부의 구조와 조각에서 특이한 양식과 수법을 보이고 있다. 일반적인 탑은 위로 올라

    갈수록 너비와 높이가 줄어드는데 비해 이 탑은 너비가 거의 일정하며, 2층과 3층은

    높이도 비슷하다. 층을 이루지 않고 두툼한 한 단으로 표현된 지붕돌의 받침도 당시의

    수법에서 벗어나 있다.

    또한 탑 전체에 조각이 가득하여 기단은 물론 탑신에서 지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조각이 나타난다. 기단과 탑신 괴임에는 난간모양을 새겨 멋을 내었고, 탑신의 1층에는

    보살상 (菩薩像)과 신장상(神將像)을, 2층에는 음악을 연주하는 천인상(天人像)을,

    3층에는 천인좌상(天人坐像)을 새겼다. 지붕돌 밑면에는 연꽃무늬를 새겼는데 3층만은

    삼존상(三尊像)이 새겨져 있다.

    통일신라시대 후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측되는 이 탑은 갖가지 모습들의 조각으로

    화려하게 장식하는 등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구조가 돋보이고 있어, 당시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석탑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 남원

    기네

    스 

    문화역사

    429

    남원

    기네

    스 

    화역

    사 4

    44

    어휘각

    대첩비각

    피바위

    삼문 파비각

    최초지정 사적104호황산대첩비지

    운봉읍 화수리에 위치한 황산대첩비지(사적104호)는 고려말 우왕 6년(1380년) 이성계가

    황산에서 왜구를 물리친 업적을 기린 승전비가 있는 곳이다.

    선조 10년(1577년)에 왕명에 따라 황산대첩비를 세웠는데 일제강점기인 1943년

    일제에 의해 파괴되었다. 지금의 비석은 1977년 새로 복원하여 세운것이다. 파손된

    비석은 따로 모아 파비각(破碑閣)에 보관되고 있다.

    고려 3대 대첩의 하나로 기록하고 있는 황산대첩은 당시 이성계가 왜장 아지발도가

    이끄는 3천여 명의 왜구를 맞아 대승을 거두었는데, 이때 왜구들이 흘린 피가 내를

    이루었고 6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바위에 붉은 흔적으로 남아있는 ‘피바위’가 인근에

    있다. 또한 이성계가 황산대첩에 참가했던 8원수 4종사관의 명단을 석벽에 새겼는데

    ‘어휘각’은 이 글을 새긴 바위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비각의 이름이다.

  • 30

    사랑

    의 도

    시 건

    강한

    남원

    가장오래된 정원광한루원

    45 광한루원(명승 제33호)은 신선의 세계관과 천상의 우주관을 표현한 우리나라 제일의

    누원이다.

    원래 이곳은 조선 세종 원년(1419)에 황희가 광통루라는 누각을 짓고, 산수를 즐기던

    곳이었다. 1444년 전라도 관찰사 정인지가 광통루를 거닐다가 아름다운 경치에 취하여

    이곳을 달나라 미인 항아가 사는 월궁속의 광한청허부라 칭한 후 '광한루'라 이름을

    부르게 되었다.

    1582년 부사 장의국은 요천의 맑은 물을 끌어다가 하늘나라 은하수를 상징하는

    연못을 만들었다. 호수에는 지상의 낙원을 상징하는 연꽃을 심고, 견우와 직녀가 은하수에

    가로막혀 만나지 못하다가 칠월칠석날 단 한번 만난다는 사랑의 다리 '오작교'를 연못

    위에 설치하였다.

    청허부(정문) 춘향사당

  • 남원

    기네

    스 

    문화역사

    431

    이 돌다리는 4개의 반원형의 수구를 두어 양쪽의 물

    이 통하게 되어 있으며, 한국식정원의 대표적인 다리

    이다.1582년 전라도 관찰사로 부임한 정철은 은하수

    연못 가운데에 신선이 살고 있다는 전설의 삼신산을 상

    징하는 봉래·방장·영주섬을 만들어 봉래섬에는 백일

    홍, 방장섬에는 대나무를 심고, 영주섬에는 '영주각'이

    란 정자를 세웠다. 그러나 정유재란 때 왜구들의 방화

    로 모두 불타버렸다.

    현재의 광한루는 1626년 남원부사 신감이 복원하였

    다. 1794년에는 영주각이 복원되고 1964년에 방장섬

    에 방장정이 세워졌다. 이 광한루원은 소설 『춘향전』

    에서 이도령과 춘향이 인연을 맺은 장소로도 유명하여,

    1931년에 경내에 춘향사를 건립하고 김은호 화백이 그

    린 춘향의 영정을 모셔 놓았다. 해마다 춘향제가 이곳

    광한루를 무대로 열린다.

    완월정

  • 32

    만인의총(萬人義塚)은 조선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 때 남원성을 지키기 위하여

    왜군과 맞서 싸우다가 순절한 군·관·민 1만여 명의 충혼을 합장하여 모신 곳으로

    사적 제272호로 지정되어 있다.

    왜군은 임진왜란 때 전라도지방을 차지하지 못해서 결국 패했다고 생각하여, 정유재란

    때는 전라도 지역을 점령한 뒤 북상할 계획을 세웠다. 1597년 7월말 왜군 56,000명이

    남원을 공격하였다. 이때 전라병사 이복남(李福男)이 이끄는 1천여 명의 병사와 명나라

    원군 3천여 명 병사, 성민 6천여 명 등 1만여 명은 8월 13일 ~ 16일까지 나흘간 왜군과

    혈전을 펼쳤으나 중과부적으로 남원성 함락과 함께 장렬하게 순절하였다. 임진왜란이후

    전사한 사람들의 시신을 한곳에 합장 하였으며 광해군 4년(1612) 충렬사를 세워 8충신을

    제향 하였다. 이후 46명을 추가하여 총 53명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처음 이 무덤은

    남원역 부근에 있었으나 민가에 둘러싸이게 되어 1964년 현 위치로 이전하였다.

    만인애국충혼을 모신만인의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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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원

    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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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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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오래된 종 대복사 동종48

    용담사지 석조여래입상은 불상과 광배(光背)를 하나의 돌에 도드라지게 새긴 높이가

    6m의 거불로 보물 제42호로 지정되어 있다.

    정수리 상투 모양 머리(육계)가 높고 크며, 얼굴은 손상으로 분명하지 않고 목은 형식상

    새긴 3줄 주름인 삼도(三道)가 있다. 어깨 · 가슴이 벌어져 있고, 다리는 돌기둥 처럼 강해 보인다.

    몸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광배(光背)는 깨진 곳이 많아 분명하지 않지만 불꽃무늬의 조각

    흔적이 남아있다. 서 있는 대좌(臺座)는 타원형 자연석 그대로 이용하였다. 이 불상은 고려

    초기에 거구의 불상계통을 따르고 있으며, 그 시대 가장 우수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용담사는 백제가 융성할 때 창건되었다고 전해오는 사찰로, 전설에는 용담천 깊은

    물에 이무기가 살며 온갖 행패를 부려 이를 막기 위해 신라 말 도선국사가 절을 창건하여

    용담사라 지으니, 그 뒤 이무기의 나쁜 행동이 없어졌다고 한다. 전설을 뒷받침하듯

    절 안의 대웅전은 북쪽을 향하여 용담천 쪽을 바라보고 있다.

    왕정동 대복사 동종은 남원에서 가장 오래된 종으로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4호이다.

    인조 13년(1635)에 제작된 이 종은 신라 진성여왕 7년(893)에 창건된 대복사

    극락전에 봉안되어 있고 높이 1.1m, 종신 높이 79㎝, 입지름 85㎝이다. 천판은

    반구형으로 쌍용이 조각된 용뉴의 높이는 24㎝이다.

    종 어깨에 꽃잎을 세워 장식하는 고려 모습을 보이며, 55개의 각 꽃잎마다

    소형 좌상인 화불(化佛)을 조각한 모습을 하고 있다. 사각 무늬를 빽빽히 돌린

    어깨 띠 바로 아래엔 사각형 유곽을 4곳에 배치하였고, 각 유곽안엔 가운데가

    돌출된 연꽃모양의 유두를 9개씩 두었다.

    유곽 옆 윗부분에는 2단 원을 만들어 범자를 1자씩 새겼다. 유곽 아래로는 높이

    17.5㎝의 판비(板碑)가 하나씩 새겨 있는데, 비 면에는 16자의 글이 새겨 있다. 종

    아랫부분인 입구에 있는 너비 6.0㎝의 입구 띠에는 연꽃과 덩굴무늬로 장식하였다.

    47가장 큰 불상용담사지석조여래입상

  • 34 지리산 정령치 북쪽 고리봉 밑 개령암터 뒤 암벽에 새긴 마애불상군으로

    크고 작은 12구의 불상. 규모가 큰 불상군으로 보물 제1123호로 지정되어 있다.

    자연암벽이어서 조각의 양각도 고르지 못하고 훼손도 심한 편이나 3구는

    비교적 잘 남아 있다. 이 중 가장 거대한 불상은 4m이며, 조각솜씨도 제일 뛰어나

    본존불로 여긴다. 얼굴은 돋을새김이나 신체 옷 주름은 선으로 처리를 하고 있어

    고려 마애불 수법을 따르고 있다. 1∼2m의 작은 불상들도 조각 수법이 같으며,

    각 부분 양식이 비슷한 것으로 보아 같은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규모가 큰 불상군은 희귀한 예로서 그 가치가 인정되며, ‘세전(世田)’,

    ‘명월지불(明月智佛)’등의 글이 새겨 있어 그 중요성을 더해주고 있다.

    최대 불상군 개령암지 마애불상군50

    실상사 창건 당시부터 지금까지 보존되어 오고 있는 통일신라 후기의 대표적인 철불

    (鐵佛)로 보물 제41호이다.

    높이 2.66m, 무게 4,000근에 이르며 결가부좌(結跏趺坐)한 우리나라 철불 가운데

    9세기 중엽에 제작된 초기 철불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머리엔 소라 모양 머리칼을 기교 있게 붙여 놓았고, 정수리 위엔 상투 모양 머리(육계)가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귀는 그런대로 긴 편이고, 목에 3줄의 주름인 삼도(三道)는

    겨우 표현 되고 있다. 좁아진 이마, 초생달 모양의 바로 뜬 눈, 다문 입 등의 근엄한 묘사는

    이전 활기차고 부드러운 모습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어깨선이 부드럽고 가슴도 볼륨 있게

    처리되었지만 전반적으로 둔중한 느낌을 주며, 양 어깨에 모두 걸쳐 입은 옷 역시 아래로

    내려올수록 무거운 느낌을 준다. 옷 주름은 U자형으로 짧게 표현되고 있는데 이것은

    당시 유행하던 옷 주름 표현기법으로 비교적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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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오래된 철불상

    실상사철조

    여래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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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오래된 암각화 대산면 대곡리 암각화52

    귀정사는 백제 무령왕 15년(515)에 현오국사가 지은 사찰로 우리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이다.

    원래 만행사라 불렀던 것을 후에 귀정사라 고쳐 불렀다고 한다. 이름을 바꾼 유래에

    대하여는 백제왕이 3일간 승려의 설법을 들으며 귀정사에서 국정을 살폈기 때문이라고

    전한다. 고려 목종 5년(1002)과 세조 14년(1468) 두 차례에 걸쳐 크게 고쳐지었는데,

    이때가 귀정사의 전성시대였다. 그 후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파손된 것을 현종 5년

    (1664) 설제대사가 비교적 옛 모습대로 고쳐 짓고, 순조 4년(1804) 현일대사가 다시

    보수하였으나, 한국전쟁 이후 공비토벌 작전상의 이유로 모두 불태워 버렸다고 한다.

    기록에 의하면 옛 귀정사에는 법당, 정루, 만월당, 승당, 연화당, 삼광전, 문수전, 상실, 명월당이

    있었으며, 부속암자로는 남암, 대은암, 영당, 낙은암이 있었다 하나 모두 소실되고, 1968년

    유정동 스님의 노력으로 가람을 재정비하여 대웅전, 승당, 산신각, 2동의 요사채가 있다.

    대산면 대곡리에 암각화는 봉황대로 불리는 구릉의 정상부근 암벽에

    새긴 것으로 호남지방에선 드물게 보이는 선사시대의 암각화이다.

    암각화는 두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크기는 1~2m 내외이며, 상하 혹은

    좌우 대칭으로 기하학적인 문양을 새겼다. 마모가 심하여 자세하지

    않지만 사람이나 짐승의 얼굴을 묘사한 듯하다. 이 암각화는 1991년

    처음으로 학계에 보고되었으며, 호남지방의 선사시대 문화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자료로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63호 지정되었다.

    51가장오래된 사찰귀정사

  • 36

    외침을 막고도둑을 지켜왔다는 장승방어대장군(防禦大將軍) 진서대장군(鎭西大將軍)

    가장 크고 오래된 장승 만복사지 석인상(石人像)

    53

    54

    운봉초등학교 서쪽 500m지점에 서로 마주보고 있는 남녀 한 쌍의 석장승이 있다.

    풍수 지리설에 의하여 배의 형국을 한 운봉마을의 허한 곳을 방어하고 서쪽 진압을

    위해 세워졌다고 한다. 남자 돌장승인 방어대장군(중요민속문화재 제20-1호)은 머리에

    모자를 쓰고 튀어나온 두 눈에 주먹코와 아래로 쭉 뻗은 송곳니가 있다. 가슴에 수염이

    있으며 귀가 없는 것이 특이하다.

    여자 돌장승인 진서대장군(중요민속문화재 제20-2호)은 벙거지 모양의

    돌 모자를 쓰고 둥근 눈에 주먹코와 귀가 있다. 다른 여자 돌장승에서는 찾아보기 드물게

    속눈썹이 깊이 새겨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석장승들은 만든 이가 다른 듯 벙거지의

    제작형식이나 표현기법이 서로 다르다.

    구전에는 장승이 부부싸움을 하다 진서대장군의 목이 부러져 마을 사람들이 붙였다 한다.

    만복사지 석인상은 550cm, 머리에서 다리 끝까지의 길이는 370cm 내외이다.

    본래 만복사지 당간지주에서 남쪽으로 400cm 떨어진 곳에 2기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었는데, 도로에 노출되어 있어 사고위험이 높은 1기의 석인상을

    이곳으로 옮겼다. 석인상 형태는 사각형 돌기둥에 3개의 면만을 사용하여 사람

    형상을 조각하고 나머지 한 면은 편평하게 다듬었다.

    다듬은 면엔 두개의 구멍이 확인되는데, 위쪽 구멍은 정상부에서 아래로 122cm,

    두 번째 구멍은 318cm 내려온 곳에 있다. 머리는 정상부가 둥글고 볼록하게 솟아있으며,

    안구를 돌출시켜 분노의 모습을 띠고 있다. 상반신에 옷을 걸치지 않은 반나체이며,

    오른손은 완전히 구부려 불분명한 물건을 쥐고 있다. 군의는 허리에서 묶어 상단부

    옷자락이 밖으로 뒤집혀 늘어뜨렸으며, 옷주름은 굵은 물결무늬로 선명하게 돌출시켰다.

    하반신은 수직으로 늘어뜨린 옷주름에 가려졌고 다리는 간략하게 표현되었다.

    다리 아래쪽은 대좌를 사용하지 않고 사각형의 돌기둥을 뾰족하게 다듬었다.

    방어대장군 진서대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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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백면 초촌리에 있는 고분군은 1981. 4. 1일 전라북도 기념물 제47호로 지정되었다. 오촌(鰲村)

    마을 동쪽의 야산과 무동산(舞童山) 남서쪽에 몰려 있다. 1978년에 발굴 조사에 의하면 삼국

    시대 것으로 백제 석실분 총211기와 옹관묘 1기를 확인하였는데 거의 파괴된 상태로

    발견되었다. 고분의 개석(蓋石)은 지표면보다 50~80㎝ 밑에 있으며, 봉토(封土)는 없다.

    돌방은 서남쪽을 향해 있으며, 규모는 길이 2.74m, 너비 1.26m의 장방형으로 5매의

    뚜껑 돌판자를 맞추어 얹었고, 바닥 위편에서 천정까지의 석실 높이는 95.5cm이다.

    아영면 두락리 고분은 전라북도기념물 제10호로 돌덧널무덤(석곽묘)과 돌무덤(옹관묘)이

    흩어져 있다. 돌덧널무덤 길이 1.8m, 폭 60cm내외의 4면 벽을 돌로 쌓은 것으로 내부엔 5,6

    세기경 가야계 토기 철재로 만든 낫, 창, 말재갈, 갑옷조각 등이 출토되었다. 이 일대에서 가야계

    경질토기(硬質土器)가 다량 출토되어 가야시대 중요 공동체 거주지가 있었음을 보여줄 뿐

    아니라 삼국시대 남원지역 문화와 사회상을 고찰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천만리는 조선 선조때 귀화한 명나라 무신으로 영양천씨(潁陽千氏)의

    중시조(中始祖). 자 원지(遠地). 호 사암(思庵). 시호 충장(忠莊)이다.

    임진왜란 때 이여송 휘하로 조선에 출정하여 여러 대승을 거두었고,정유재란

    때 전공을 세우고 조선에 귀화했다. 숙종 때 조정에서는 그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대보단(大報壇)’을 설치하여 종향(從享)하였고, 남원(南原)의

    환봉서원(環峰祠) 등에 배향되었다. 매년 4월 셋째주에 전국 천씨 후손들이

    모여 제사를 지내고 있으며, 천장군묘라고 알려진 묘소는 서원 뒷산마루

    고리봉 등산로에 봉안되어 있고 우리나라 8대 명당이라 일컫는다.

    집단 고분군.초촌리. 고분군,두락리.고분군.

    최초 귀화인을 모신 사당 환봉서원

  • 38

    최초사회단체기로회

    57 임진왜란 후인 1602년(선조 35)년에 설립된 기로회는 남원의 관료들과 유학자 중에서도

    선각향로(先覺鄕老)들에 의하여 조직된 순수민간 자생단체로서 사회봉사와 정화를

    목적으로 한 이념적 자생단체이다.

    1936년 이후에는 일제의 집회 단속을 피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경로당이란 명칭을 사용하다가

    1988년에 본래 조직의 뜻을 살려 남원기로회로 개칭하게 되었다. 나이에 따라 노계소,

    소계소로 이원조직으로 운영되기도 하였는데 기로회 경내에 유허비(遺墟碑)에는 노계소

    (老契所)는 선원사, 관왕묘, 유애묘, 금수정 등을 건립, 관리하였으며, 소계소(小契所)에서는

    요천의 제방, 산림 감시·감독, 농업용수에 필요한 보 관리 등을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1921년 이현순에 의해 남원권번(남원국악원 전신)이 창립되었고, 광한루(廣寒樓)

    경내에 설치되었으며, 이백삼이 초대 조합장직을 맡았다. 일제강점기인

    1931년 광한루 안에 춘향사당 건립 시 기금마련에 힘썼으며 권번 출신

    국악인들에 의해 춘향제(春香祭)가 봉행되어 현재 시발점이 되었다. 권번은

    조합제도로 운영되었으며 시문, 음악, 습자, 가무, 예의, 시조 등을 가르쳤으며

    권위 있는 국악인을 많이 배출하였다.

    대표적인 권번출신 예술인으로는 조갑녀(1923~) 명무가 있다. 당시 남원

    권번에서 악기 연주를 가르치던 부친 조기환씨의 영향으로 7세에 권번에

    들어가 예인 교육을 받았으며. 제1회(8세) 때는 춘향제향시 헌화를 하고,

    2회와 3회에는 선배들과 검무와 화무, 4회(12살)에는 혼자 승무를 춰 명무라는

    칭호를 받게 된다. 이후 1941년까지 해마다 춘향제 행사 시 승무와 검무,

    민살풀이 춤을 선 보였고 전국의 행사에 초청공연을 통해 벌어들인 수익금으로

    남원 권번의 재정에 도움을 주었다.

    최초 여성 예술단체 권번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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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9 황영보 선생은 남원 최초로 1993년 7월 5일 중요무형문화재 제65호 백동연죽장 기능

    보유자로 지정되었다.

    황영보 선생은 1932년 11월 21일 왕정리에서 태어나 15세 때부터 부친의 손에 이끌려

    도제생활을 시작 후 25살 무렵부터 고향을 떠나 전라도 일대를 돌아다니면서 각 지역의

    백동연죽 제작기법을 익혔다.

    선생이 주로 만드는 담뱃대는 민담뱃대 · 오동상감 · 송학죽이다. 송학죽은 소나무와

    학을 문양으로 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그 주요 기술이 바로 오동상감기법이다.

    선생은 아들인 황기조 선생(현 전수교육조교)에게 기술전수 하여 4대째 가업을 잇는 한편,

    1997년 남원시 관광단지 내에 전수회관을 마련하여 꾸준히 담뱃대 전승에 관한 노력을

    펼쳐 오고 있다.

    최초 중요무형문화재제65호백동연죽장황영보

    60

    남원의 최초 기독교회는 1904년 조원집이 광한루에서 전도하기

    시작하여 1905년 동충동에 초가 4칸을 매입하고 모임처를 설립한 후

    1908년 동충동 254번지에 세워진 남원읍교회이다. (구)토지대장에는

    ‘윤성만, 박관보, 황인원’ 세 사람 소유로 교회 명칭은 조선야소교 남원

    장로회(朝鮮耶蘇敎 南原長老會)로 되어있다. 남원읍교회 최초목사는

    김종대 목사로 평양에 장로회신학교 졸업 후 1939년 6월 남원읍교회의

    청빙으로 전북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남원의 최초 위임 목사가

    되었다. 최초 기독교 장로는 남원기독교장로회에 최극재(1921.11.26

    임직)와 남원예수교 장로회에 윤성만(1936.06.07 임직)이 있다.

    해방 후 남원읍교회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소속 남원동북교회와

    기독교 장로회 소속 제일교회로 분리되었다.

    최초 기독교회 남원읍교회

  • 40

    가장 오래된 소나무 지리산 천년송

    61 지리산 천년송(천연기념물 제424호)은 나이가 약 500여 살로 추정되는 소나무로 산내면

    부운리에 있으며 높이가 대략 20m, 가슴높이 둘레 6m, 사방으로 뻗은 가지의 폭은

    18m에 달한다.

    와운(臥雲)마을 뒷산에서 임진왜란 전부터 자생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20m의 간격을 두고

    한아시(할아버지)송과 할매(할머니)송이 자생하고 있는데, 이중 더 크고 오래된 할매송을

    마을주민들은 「천년송」이라 불러오며 매년 정월 초사흘에 당산제를 지내오고 있다.

    보절면 진기리에 느티나무는 1982년 11월 4일 천연기념물

    제281호로 등록되었다.

    진기마을의 정자나무 구실을 하는 이 나무는 나이가 약 630살

    정도 추정되며, 크기는 높이 23m, 가슴높이의 둘레 8.25m이다.

    단양 우씨가 처음 이 마을에 들어올 때 심은 것이라고 전해진다.

    조선 세조 때 힘이 장사인 우공(禹貢)이란 무관(武官)이 뒷산에서

    나무를 뽑아 마을 앞에 심고 마을을 떠나며 나무를 잘 보호하라고

    했다고 한다. 그는 세조 때 함경도에서 일어난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는데 큰 공을 세워 적개공신 3등의 녹훈을 받았으며 그 후

    경상좌도수군절도사를 지냈다고 한다. 진기리의 느티나무는

    단양 우씨가 마을을 이룬 유래를 알 수 있는 자료로서 문화적

    가치가 있고, 오래된 나무로서 생물학적 보존가치도 크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 · 보호 하고 있다.

    최초 국가지정 천연기념물 제281호 진기리 느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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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원 고전문학 춘향전, 흥부전, 최척전, 만복사저포기

    63● 춘향전 춘향전은 조선 후기에 남원을 배경으로 쓰여진 작자 미상의 판소리계 소설로 《춘향전》은

    처음 판소리로 생성되어 나중에 소설로 정착되었고, 창극(唱劇), 희곡, 영화, 시나리오,

    뮤지컬, 오페라 등 다양한 장르를 거쳐 국민들의 사랑을 받아온 고대소설의 대표작이다.

    남원부사의 아들 이도령과 기생의 딸 춘향이 광한루에서 만나 정을 나누다가, 남원부사가

    임기를 끝내고 서울로 돌아가자 두 사람은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고 이별한다. 새로 부임한

    남원부사 변학도가 춘향의 미모에 반하여 수청을 강요하나 춘향은 일부종사(一夫從事)를

    앞세워 거절하다 옥에 갇혀 죽을 지경에 이른다.

    한편, 이도령은 과거에 급제하여 어사가 되어 신관 부사를 탐관오리로 몰아 봉고파직

    (封庫罷職)시키고 춘향을 구출한다. 이도령은 춘향을 정실부인으로 맞이하여 백년해로를

    한다는 이야기이다.

    ● 흥부전 흥부전은 판소리로 불리다가 소설로 정착된

    것으로 여겨지는 판소리계 소설이다. 대체로

    형제간의 우애를 강조한 윤리 소설로서 인과

    응보적 권선징악의 주제와 사상을 갖고 있는

    작품이다.

    충청 · 전라 · 경상 삼도의 어름에 악하고

    사나운 형 놀부와 순하고 착한 아우 흥부가

    살았는데, 놀부는 부모의 유산을 독차지하고

    흥부를 내쫓았다.

  • 42

    아내와 많은 자식과 함께 쫓겨난 흥부는 할 수 없이 언덕에 움집을 짓고 살지만 먹을 것이 없었다. 하루는

    놀부의 집으로 쌀을 구하러 갔으나 매만 맞고 돌아왔다. 여러 가지 품팔이를 다해 보아도 먹고 살길이 없어

    대신 매를 맞아 주는 매품팔이를 하나 그것도 안 되었다.

    어느 해 봄 제비가 돌아와 집을 짓고 사는데 새끼 한 마리가 땅에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다. 흥부가 불쌍히

    여겨 다리를 매어 주니 고맙다고 날아가 그 이듬해 봄에 돌아올 때 박씨 하나를 물어다 주었다. 흥부는 그 박씨를

    심어 가을에 큰 박을 많이 땄는데 그 속에서 금은보화가 나와 큰 부자가 되었다. 놀부가 이 소식을 듣고 제비

    새끼의 다리를 일부러 부러뜨려 날려 보냈다. 이듬해 봄에 제비가 가져다 준 박씨를 심어 많은 박을 땄는데

    그 속에서 온갖 몹쓸 것이 나와 집안이 망하게 되었다. 흥부는 이 소식을 듣고 놀부에게 재물을 주어 살게 하고,

    그 뒤 놀부도 잘못을 뉘우치고 착한 사람이 되었으며 형제가 화목하게 살게 되었다.

    ● 최척전

    최척전은 조선 중기의 문신 조위한(趙緯韓)이 한문으로 쓴 고대 소설이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호족의 명나라 침입 등의 전쟁을 겪는 동안 주인공 최척

    일가와 주변 사람들이 겪는 기구한 삶의 역정을 감동적으로 그리고 있다. 포로가 된

    주인공의 행적을 중심으로 피로 문학(被虜文學)이라는 새 장르의 가능성을 제기해

    볼 수 있다.

    ● 만복사저포기 조선 전기 김시습(金時習)이 지은 한문소설 《금오신화 金鰲新話》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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