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CL182 kr 72 · 스토브 또는 다른 열을 내는 기구 가까이에서 사용하 ... 그렇지 않으면 공구에서 분리되어 작업 자나 주변 사람에게 상해를
공부하는 사람에게 세상 모든 일들은 교재요, 스승이다. 책은 읽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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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 사람에게 세상 모든 일들은 교재요, 스승이다. 책은 읽되 세상을 읽지 못하는 자 어찌 선비라 일컬
을 수 있으랴. 몸과 마음이 따로 존재하지 않듯이, 독서와 출사(出仕) 역시 둘이 아니다. 백면서생의 공부가 장
쾌한 기상을 기르고, 시골 방 안에서의 공부가 천하를 돌아보는 것이라면, 어찌 선비의 삶을 보잘것없는 것이라
하겠는가. 백성을 위한 호랑이 사냥은 어느새 북방 오랑캐로 옮겨가면서 그의 넘치는 기상은 천하를 덮고 있다.
_본문에서
●여는 글 호랑이 사냥에서 돌아오며
●1부 기획 연재 : 평전의 과거와 미래
●2부 미리 보는 ●3부 연보 읽기
부산대학교점필재연구소 엮음
제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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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쇄 2009년 12월 30일
발행 2009년 12월 31일
펴낸이 부산대학교 점필재연구소
편집ㆍ제작 한겨레출판
디자인 DesignZoo
펴낸곳 부산대학교 점필재연구소
주소 627-705 경남 밀양시 삼량진읍 청학동 50번지
전화 055-350-5885
*이 책자는 2007년 정부(교육과학기술부)의 재원으로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발간한 것임을 밝혀둡니다(KRF-2007-361-AM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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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시로읽는옛사람의내면풍경
-호랑이사냥에서돌아오며• 김풍기 ……………………………… 04
●1부 기획연재:평전의과거와미래
-한국의평전과평전작가❷:평전의주인공• 김현미 ……………… 10
-인물과전기_서양고대그리스·로마편❷• 안재원 ………………… 18
-더공감어린인간바자리를희구하며: 롤랑르몰레의『바자리평전』
에대해• 곽차섭 …………………………………………………………… 30
●2부 미리보는
-조광조의꿈과좌절_개혁정치가인가,이상주의자인가?• 신병주 38
-최송설당(崔松雪堂),전통과근대의경계에선여성• 백순철 …… 45
-안중근을기억하기위하여• 황재문 ……………………………………… 51
-최남선‘연구’와‘평전’의간극_평전쓰기의어려움• 류시현 ……… 59
●3부 연보읽기
-성인전(聖人傳)과소인전(小人傳)• 강명관 ……………………………… 68
-조선의연보❸:역사속에묻힌문인이기원(李箕元)• 김영봉 … 75
-퇴계연보이야기❸:퇴계와일기• 정석태 …………………………… 82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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長圍簇簇繞重巒 길게포위하여빽빽하게첩첩산봉둘렀다가
落日頑雲卷 還 지는해험한구름에깃발걷고돌아온다.
未把忘歸穿白額 돌아가는걸잊고다녀도사나운호랑이잡지못하고
忽驚回祿絳玄顔 불때문에온통하늘붉은것에홀연놀란다.
孤兒寡婦讐將報 고아와과부원수갚으려는데
偃月長蛇勢自閑 칼들고진을친기세절로막혔다.
莫謂書生無用處 서생들쓸모없다말을마오,
壯心終欲服侯 장한마음은끝내후산(侯 )굴복시킬듯하다오.
(정월초닷새안강현동산에서사냥을끝내다〔正月初五日安康縣東山罷獵〕,『점
필재』「시집」권3)
깊은산길을가다가이따금씩범을만났다는할머니의말씀을들은적이있다.
지금처럼길이정비되지않았던시절,장을보러30여리가넘는산길을다니셨던할머니
는언제나밤을도와집으로돌아오곤하셨다.언제나달이밝은것은아니어서,어둠이
짙은날이면두려움에두근거리는가슴으로발길을재촉하셨으리라.길을걷다보면어
호랑이사냥에서돌아오며_
김풍기 강원대 국어교육과 교수
여 는 글
4 • 연 보 와 평 전
시로 읽는 옛사람의 내면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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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는 글 • 5
느순간주위에산짐승이따라오고있다는느낌을완연히받을때가있다.머리카락은
쭈뼛거리고온몸에소름이돋는다.그렇다고해서어둡고험한산길에서얼어붙은듯서
있을수는없는노릇이다.발길을빠르게옮겨보지만마음만급할뿐길은좁혀지지않
는다.
할머니의이경험은아마도시골살이를했던어른들에게는그리낯설지만은
않은경험일것이다.대부분은그산짐승이할머니를지켜주기위해산신령이보낸호위
짐승으로결말이나기는했지만,어찌모든짐승이그러했겠는가.어쩌면산신령의심부
름꾼으로믿고싶은어른들의마음이밤길에서만나는산짐승을그렇게생각했을지도
모를일이다.
호환(虎患)에관한설화가전국곳곳에서조사보고되는것을보면호랑이에게
피해를입은사람들이꽤있었던것같다.경상도지역도깊고험한산이많은곳이라호
랑이피해가상당했던것으로보인다.한고을에호환이일어나면백성들의두려움을덜
어주기위해군사를모아호랑이사냥을한다.많은군사를동원하여큰산을포위한뒤
산꼭대기를향해올라가면,사람들에게쫓긴호랑이는위쪽으로도망한다.그때미리기
다리고있던노련한사냥꾼들이그물과무기를이용하여호랑이를잡는것이다.
점필재는경주부(慶州府)의속현이었던안강현(安康縣)에서호랑이사냥을한
일을소재로위의작품을지었다.이무렵그는호랑이사냥에몇차례참여했던것으로
보인다.그의문집에는‘눈온뒤에범을쏘아잡다〔雪後射虎〕2수’(권2),‘예천귀모현에서
호랑이사냥을하는데,산속에는두견화가만발했다〔醴泉歸毛峴獵虎山中杜鵑花盛開〕’
(권2)등의작품이수록되어있다.모두호랑이사냥을소재로한작품들이다.
군사들이첩첩산봉을완전히포위하고산속을돌아다녀도결국잡으려던백
액호(白額虎,백호,사나운호랑이)는종적이없다.호랑이에게해를입어가장(家長)을
잃은아이들과부인네들의원한을풀어주기위해나섰지만느닷없는산불에놀라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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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의사기와기세는막힌것이다.그행렬에따라나선점필재로서는더이상호랑이사냥
에기여할것은없다.그러나백면서생이라해도쓸모없는존재이기만한것일까.그의시
적상상력은문득사냥을통해자신의드높은기상을드러내는방향으로나아간다.
사냥은단순히놀이로만기능하거나재앙을막기위한일로간주되지않는다.
고대부터사냥은군사조련의의미를가지는것이었다.점필재는바로그점에주목한다.
사냥의첫걸음은불쌍한백성들의복수를해주는것이었지만,그것의끝자락에는북방
오랑캐를물리칠수있는장쾌한마음을기르는데있다.책상앞에앉아글만읽는선비
의모습은당시에도무용지물처럼비춰졌던모양이다.사람들의일반적인식을뒤집으며
자신의호쾌한심사를드러내는이작품에서우리는점필재의공부가단순히책을읽으
며집안에앉아서이루어진것만은아니라는점을짐작할수있다.
공부하는사람에게세상모든일들은교재요,스승이다.책은읽되세상을읽
지못하는자어찌선비라일컬을수있으랴.몸과마음이따로존재하지않듯이,독서와
출사(出仕)역시둘이아니다.백면서생의공부가장쾌한기상을기르고,시골방안에서
의공부가천하를돌아보는것이라면,어찌선비의삶을보잘것없는것이라하겠는가.백
성을위한호랑이사냥은어느새북방오랑캐로옮겨가면서그의넘치는기상은천하를
덮고있다.
6 • 연 보 와 평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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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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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 연 보 와 평 전
한국에서평전문학이활성화되기위해‘위인전’을뛰어넘어야하는이유를
세가지로정리해보자.
첫째,위인전은굳이앞에‘아동’이라는수식을붙이지않아도이미아동
물이라는인식이굳어져있다.중학생만되어도독후감숙제가아니라면더이상
위인전을읽지않는다.위인전의목적은역사적으로남다른공적을세웠거나인격
적으로훌륭한사람들의삶을소개하여‘교훈’을전하려는데있다.이러한위인전
의교훈적속성에다‘교과과정’이연결되면서‘교과서를만든사람들’,‘교과서에나
오는위대한인물’,‘교과서와함께하는위인전’,‘초등학생이꼭알아야할위인’,‘역
한국의평전과평전작가❷_평전의주인공
김현미 동아일보사 출판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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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기획연재:평전의과거와미래• 11
사공부가되는위인전’,‘역사논술교과서’등과같이위인전이학습물로둔갑하는
것은지극히한국적인현실이다.
위인전에대한나의인식도여기에서크게벗어나지않았다.그러나2008
년윤봉길의사탄생100주년을맞아『매헌윤봉길평전』(김학준지음,1992년)을청
소년용으로개정하는작업을하면서윤봉길의사를재발견했다.먼저스물넷의짧
은생애에그가이루어놓은너무많은일들(야학과농촌부흥운동,항일독립투쟁)에
입을다물수가없었다.윤의사의삶은심훈소설『상록수』의주인공박동혁보다더
극적이고,쿠바혁명의영웅체게바라만큼이나치열했다.상하이,물통폭탄,죽음
으로얻은‘의사(義士)’라는호칭만으로그를설명하기에는너무부족했던것이다.
2008년이윤봉길의사의해였다면,2009년은안중근의사의해였다.하얼
빈에서이토히로부미를쓰러뜨린안의사의의거100주년을기념하여이문열씨가
『소설안중근-불멸』을쓰기시작했고,창작오페라‘대한국인안중근’과뮤지컬‘영
웅’이무대에올려졌다.출판계도이수광의『안중근불멸의기억』(추수밭),김삼웅의
『안중근평전』(시대의창),이청의『대한국인안중근』(경덕출판사),신운용의『안중근
과한국근대사』(채륜)등소설과평전,역사연구서등다양한기획물로어린이위
인동화일색의안중근목록을풍성하게했다.
하지만이런재조명작업이마냥반갑기만한것은아니다.마치국경일이
면당연히걸리는태극기처럼기념일에맞춰떠들썩하게재조명되다이내잊혀지는
‘기념일용위인’이되기십상이다.안중근,윤봉길,이봉창,김구,안창호…….대한
민국국민이라면누구나아는이름이지만그들의삶을통해가슴뛰는감동과교훈
을느끼는이들이몇명이나될까?닥터노먼베쑨과체게바라를읽으면피가끓는
데안중근과윤봉길을읽으면지루하다못해촌스럽게느껴지는이유는무엇일까?
이것이기념일과교과서속에서박제가된위인들의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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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 연 보 와 평 전
둘째,위인전은삶의교훈이라는목적성에충실하다보면영웅주의에빠
지기쉽다.즉,위인의삶을완벽하게그리기위해남다른,위대한면모만강조하고
어두운측면은드러내지않음으로서사실을왜곡하게되는것이다.한예로시중에
는골프황제타이거우즈와관련된책이십수종이나와있다.우즈는역사적위인
은아니지만현실의영웅이다.이책들은세계최고의골퍼일뿐만아니라‘인종차
별을극복한영웅’,‘승부욕과집중력을갖춘연습벌레’,‘성공한자녀교육의사례’등
의이미지로우즈를포장하고있다.하지만최근터져나온추문들은우즈가‘영웅’
이아니라‘인격적인결함을지닌인간’이라는점을드러냈다.앞으로누군가새로
우즈의평전을쓴다면이런약점까지도반영해야할것이다.
위인전의단골주인공이자,그로인해오히려박제가된영웅의대표적인
사례가이순신이다. 23전23승,임진왜란의위기에서나라를구한성웅이순신.1970
년대에는정권차원에서이순신을‘충(忠)’의화신으로숭배할것을강요했다.이에대
해서강대사학과의정두희교수는“체제유지를위해이순신을과도하게비인간적
으로성웅시하면서오히려사람들은이순신에대해일종의혐오감을가지게되었다”
고말한다.그렇다.우리는정권유지를위한이순신신격화에넌더리가났다.
그러나2000년대중반이순신은출판계최고의키워드로재등장했다.김
훈의『칼의노래』,김탁환의『불멸의이순신』등이순신의삶을재해석한소설과이
를토대로한대하드라마가제작되어일반인들도새삼이순신이라는인물의매력에
빠져들었다.이어『이순신의두얼굴』(김태훈지음)처럼성웅이순신이아니라평범에
서비범으로나아간한인간을그린평전이나오고,『임진왜란동아시아삼국전쟁』
(정두희,이경순공편)과『임진왜란해전사』(이민웅지음)등전쟁사적관점에서임진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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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기획연재:평전의과거와미래• 13
란과이순신의업적을다룬책들이잇따라출간되었다.이순신은더이상광화문네
거리의동상이아니라,21세기에도재해석되고재평가받는인물로부활했다.
21세기‘이순신열풍’은평전문학이나아갈길을제시한다.‘평전(評傳)’의
‘평(評)’은어떤대상이나현상을해석하고평가하는일을가리킨다.평전은한인물
의업적을부각시켜교훈을주는것에그치지않고,그의삶과주변인물,시대적
상황을해석하고평가하는내용이담겨있어야한다.그러려면기존위인전들의한
계,즉영웅중심의인물선정과그들의삶을미화하는서술방식에서벗어나야한
다.또한평전의저자는비평의주체로서대상에대한이해와그것을해석하고평가
하는자신의가치판단기준을가지고있어야한다.이부분은‘평전작가’부분에서
다시언급하기로한다.
셋째,위인전식의인물선정방식에서벗어나야한다.국내위인전들은애
국지사와장군을편애한다.반면예술가나과학자,기업인들에게는인색한편이다.
그래서출판사만다를뿐위인전시리즈마다인물구성이대동소이하다.이것은이
미검증된인물만을대상으로삼으려는경향때문이다.다소논란이되더라도저자
와출판사는새로운인물을발굴하려는노력이필요하다.그점에서사마천의『사기
열전』(김원중번역,을유문화사)은오늘날에도시사하는바가크다.
사마천의『사기』는본기(本紀)12편,세가(世家)30편,표(表)10편,서(書)8
편,열전(列傳)70편으로구성되어있다.본기와세가,열전에실려있다.본기에서는
왕과군주들,세가에서는왕의아래단계인봉건제후들,열전에서는왕과제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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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 연 보 와 평 전
변의다양한인간들을소개한다.
예를들어『사기열전』의「편작·창공열전」은춘추전국시대의전설적인명
의(名醫)에대한이야기다.사마천은단순히“편작이있었다”,“창공이이런일을했
다”에그치지않고이들의삶을통해한의학의원류를소개하고,처방기록까지제
시하고있어열전자체가당대의의학수준을가늠케하는귀중한자료가되고있
다.「화식(貨殖)열전」에서는춘추말기부터한나라초기까지상공업으로치부한사
람들을소개한다.그러면서사마천은“물건과돈은흐르는것처럼유통시켜야한
다”는경제원리를설명할뿐만아니라“창고가가득차야예절을알고,먹고입을
것이넉넉해야영욕을안다”는말로써‘중농억상(重農抑商)’의전통적가치관을부
정하는자신의생각을드러낸다.
『사기열전』을번역한김원중교수(건양대중어중문학)는“「열전」에등장하는
인물들을살펴보면,모사,은둔자,장수,반역자,점술가,의사등으로본기나세가
등에서다루어진인물들에비해정치적위상은떨어진다.그들은일반서민들과도
상당한거리가있으며,그들이처세하는모습에서우리는비정한현실에내던져져
이성과비이성,객관과주관등이혼재된대립적세계관을보게된다”고평했다.
꾸준히평전을출간하고있는출판사가운데눈에띄는것은‘시대의창’과
‘실천문학’이다.‘시대의창’의평전시리즈는『단재신채호』,『장준하』,『백범김구』,『안
중근』,『임종국』,『약산김원봉』,『씨알함석헌』,『만해한용운』,『녹두전봉준』,『심
산김창숙』등이다.『닥터노먼베쑨』으로시작하는실천문학사의‘역사인물찾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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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기획연재:평전의과거와미래• 15
리즈는『체게바라』,『스콧니어링』등외국인물과『여운형』,『김산』,『김원봉』,『김학
철』,『문익환』,『박헌영』등국내인물을적절히섞어서출간하고있다.‘시대의창’과
‘실천문학’모두역사적위인보다는근현대사에서재조명이필요한정치·사회활동
을한인물위주로평전을엮어나가는것이특징이나,출판사의평전기획의도나
인물선정기준이제시되어있지않은점이아쉽다.
예술분야에서는‘재원미술작가론’(재원출판사)과문학분야의‘새미작가
론총서’(새미출판사),건국대출판부의‘문학의이해와감상시리즈’등이있다.‘재원
미술작가론’은한국최초의조각가김복진,문인화가김환기,한국현대미술사거
목박서보,한국인이가장사랑하는화가박수근과클림트,워홀등국내외미술인
을소개하고있다.‘새미작가론총서’에서는이기원,박태원,백석,정지용,홍명희,
박경리,조명희,황순원,김수영등문학인16명을대상으로한다.‘문학의이해와
감상시리즈’에는김동인,최서해,김소월,윤동주,채만식,신동엽외에도마크트
웨인,스타인벡등외국작가까지무려110명이나등장하는방대한작업이다.그러
나이시리즈들은예술가의전기라기보다작품해설을중심으로한연구논문형식
이어서본격적인평전이라고하기에는미흡할뿐만아니라대중성도떨어지는한계
를드러낸다.
문학인가운데에평전의주인공으로인기있는인물이시인윤동주다.송
우혜,이건청,권영민,고운기가각각『윤동주』평전을썼고,최인수가쓴『소설윤동
주』외에아동물도2~3종출간되어있다.이는그동안윤동주에대한연구가활발
히진행되었고문학사적평가도어느정도정리되었기때문에가능한일이다.
논란의여지를두면서다각도로평전작업이이루어지고있는인물이박
정희대통령이다.2006년출간된전인권의『박정희평전:박정희의정치사상과행동
에관한전기적연구』(이학사)외에조갑제의13권짜리『박정희전기』(조갑제닷컴),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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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 연 보 와 평 전
상천의『알몸박정희』(사람나라)등수십권의박정희평전이출간되어있고,올해만
해도조우석의『박정희,한국의탄생』(살림출판사)과조갑제의『박정희의결정적순
간들:62년생애의62개장면』(기파랑)이목록에추가됐다.저자의관점에따라인물
에대한평가는극과극으로갈리지만,이러한책들의출간은사후30년이지나도
록역사적평가가계속될만큼‘문제적인물’이라는사실과,그에대한국민적‘애증’
의깊이를확인시켜준다.
국내에서출간된평전을조사하면서흥미로웠던것은,1999년에출간된
윤덕한의『이완용평전-애국과매국의두얼굴』이다.을사오적의한사람인이완용
은1894년갑오경장으로부터민비시해,아관파천,독립협회활동,을사조약,한일
합방,식민통치에이르기까지우리근현대사의중요고비마다관련되지않은곳이
없을만큼중요한인물이다.저자는한때대단히애국적인인물이왜,어떻게만고
의매국자로전락하게되었는지그과정과변신의논리를밝히고자했다고집필의
도를밝혔다.저자가말하듯이완용이‘대세순응형현실주의자’라해서그의친일
매국의행위가용서되는것은아니지만,이미역사적평가가끝났다고생각되는인
물을발굴하여재해석을시도하는점은높이평가할수있다.
2010년경술국치(한일병합)100년을앞두고이시기에대한재조명작업이
활발한가운데,이종각의『자객고영근의명성황후복수기』(동아일보사)또한눈길
을끄는책이다.명성황후와관련된책은소설,논픽션,아동위인전등으로이미
30여종이출간되어있으나,‘명성황후시해사건’과관련된주변인물들을집중적
으로다룬것은처음이다.특히명성황후시해에적극앞장선우범선(우장춘박사의
아버지)과우범선을죽여국모의원수를갚은자객고영근의엇갈린삶을충실하게
기록하고있다.사건의흐름을좇는형식이라평전으로보기는어려우나새로운자
료가발굴되고보완된다면우범선과우장춘,고영근의평전이새롭게쓰이는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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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기획연재:평전의과거와미래• 17
가될것이다.
끝으로지금,왜평전인가라는물음에답해보자.이대목에서1983년에출
간된『어느청년노동자의삶과죽음』(돌베개)이떠오른다.1982년청계피복노조의
전간부였던민종덕씨가대학노트에깨알같은글씨로쓰인원고복사물을들고
출판사에찾아왔을때에는군부독재로살기등등하던시절이라평전의주인공이
름도,저자의이름도드러내기어려웠다.그래서책제목은‘전태일’대신‘어느청년
노동자’가되었고‘전태일기념관건립위원회엮음’으로출간되었다.1990년개정판을
내면서비로소『전태일평전』이라는제목을되찾고,저자가이미고인이된조영래
변호사라는사실이세상에알려졌다.
『전태일평전』은구두닦이,신문팔이,재단사로살다가스물두살에분신
한무명의청년이평전의주인공이된점도놀랍지만,이책이나오자출판사는정
부로부터‘시판중지종용’을받고,출판기념회가원천봉쇄되는등책의발간자체가
하나의사건이되었다.또이평전을쓴조영래변호사는안경환의『조영래평전』으
로되살아났다.『전태일평전』은평전문학의모범으로우리에게평전의힘을발견하
게해준기념비적작품이다.다음호에서는평전의힘은어디서나오는지살펴보기
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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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 연 보 와 평 전
앞글에서전기를하나의문학장르로자리매김할수있는텍스트구조를
가진작품으로나는로마의전기작가인코르넬리우스네포스(CorneliusNepos,기
원전99년~24년)가기원전36년에서35년사이에저술한『유명한사람들의삶에대
해서Devirisillustribus』라고소개했다.이번호에서는소위전기텍스트장르가
어떠한역사적배경에서시작되었는지를소개하고자한다.
단적으로,전기텍스트가역사의지평에본격적으로등장하기시작한것
은포에니전쟁부터이다.이전쟁이후로마의장군들은자신의전공을과시하기위
해서원정길에글잘쓰는전기작가를대동하였다.이를통해서자신이치른전쟁
의어려움과승리에대한기록을책으로출판하여많은로마시민들로하여금읽게
함으로써자신의정치적기반을확대하거나공고하게만들고자시도했기때문이다.
인물과전기_서양고대그리스·로마편❷
안재원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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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기획연재:평전의과거와미래• 19
그런데,글쓰는능력이탁월한장군의경우,자신이텍스트를직접짓기도했다.율
리우스카이사르(IuliusCaesar,기원전100~44년)가대표적인경우이다.그의작품
『갈리아전쟁기DebelloGallico』는,카이사르의정치적라이벌이었던키케로(기원전
106년~43년)가『연설가에대하여Deoratore』라는작품을기원전55년에출판하자,
이에대응하기위해기원전52년혹은50년에서둘러출판한작품이다.혹자는카이
사르가알프스를넘어로마로돌아오면서출판했다고전한다.어찌되었든,대부분
의경우로마의장군들은원정길에나서면서글잘쓰는작가들을대동하였다.이
와관련해서나는아테네출신의한해방노예의이야기를소개하고자한다.
“레나이우스(Lenaeus,기원전1세기활약)는대(大)폼페이우스의해방노예출신
이었다.〔주인의〕원정에대부분동행하였으며,주인이죽고그의자식들도불귀
의객이되자학교를열어근근이목숨을연명했다.폼페이우스일가가거주했
던카리나의텔루스(地母)사당(社堂)인근에서학생들을가르쳤다.”(수에토니우
스,『문법학자들과수사학자들의생애에대해서』제15장)
설명을조금덧붙이자면,레나이우스는아테네출신으로폼페이우스의
노예였다가나중에해방된문법학자였다.수에토니우스는레나이우스가폼페이우
스의모든원정을동행했다고전하는데,아마도그는폼페이우스의전공을기리는
전기작가로수행했을것이다.그런데흥미로운점은기원전66년에폼페이우스가
미트리다테스전투에서패배하고말았다는점이다.그러자레나이우스는전기저
술대신에약재식물에대한서적을라틴어로번역했다고한다.이번역은나중에
대(大)플리니우스가『자연학NaturalesHistoriae』을저술할때에참고서적으로
활용되었다.어찌되었든레나이우스는자신을보호해주던폼페이우스가카이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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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게패배하자,생존을위해서주인의집근처에학교를열었고그곳에서주인에대
한변치않은충성심을보였다고수에토니우스는전한다.
위의이야기에서우리는기원전1세기에로마에전기작가들이활약했
음을분명하게확인할수있겠다.하지만아쉽게도그들의저술가운데오늘날까
지전승된작품은거의없다.이가운데에서가장오래된작품이앞에서말한네
포스의『유명한사람들의삶에대해서』이다.작가네포스를소개하자면,그는알
프스남쪽의키살피나골지방,그러니까오늘날의이탈리아북부지역인파비아
(Pavia)에서태어났다.서정시인카툴루스,서사시인베르길리우스,역사가리비우
스그리고후대의자연학자플리니우스가이지역출신이다.학자들은네포스의
생몰연대를대략기원전99년에서기원전24년으로추정한다.생애의대부분을로
마에서보냈고,로마에서그가친교를맺은인사들로는대표적으로키케로와앗
티쿠스(Atticus,기원전110년~32년)를들수있겠다.네포스는생애의대부분을저
술작업으로보냈다.그가저술한작품들을소개하면다음과같다.『연애시』,『연
대기』,『카토의생애에대해서』,『재미있는일화모음집』,『키케로의생애에대해서』,
『지리학』등인데,모두전해지지않고,단편으로일부분전승된반면,『유명한사
람들의삶에대해서』는전승되었다.이작품은,서기4세기에활약한문법학자카
리시우스(Charisius)의전언에따르면,총16권으로구성된대작인것으로추정된
다(참조,『문법arsgrammatica』제1권141장13절).하지만현재우리에게전승된문
헌은약25명의당대에유명했던사람들의전기를담고있는텍스트들이다.이전
기텍스트들을저자네포스는『로마밖의종족들의위대한지도자들에대해서De
ExcellentibusDucibusExterarumGentium』라는제목과『라틴역사가에대해서
Dehistoricislatinis』의제목으로편집출판한다.전자에서소개되는위대한지도자
들의예는,한편으로밀티아데스,테미스토클레스,키몬,알키비아데스,파우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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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기획연재:평전의과거와미래• 21
아스와같은그리스의장군들과다른한편으로하밀카르와한니발과같은카르타
고의장군들이다.후자에서다루어진로마유명인사들은아마도많았겠지만,아
쉽게도전해지는전기텍스트는카토와앗티쿠스에대한문헌뿐이다.
이대목에서전기나평전을저술하고자하는사람들이주목해야할점은
아마도전기작가네포스의“열린마음”일것이다.그러니까네포스는심지어로마
의적대국인카르타고의지도자들을아주공정하고객관적인시각에서기술하고
있기때문이다.이와관련해서한니발장군에대한네포스의마지막문장을읽어보
도록하자.
“이렇게숱한전투와전쟁을수행했던가장용맹스러웠던장군은70세의(*실
제로한니발은63세에죽었음)삶에휴식을주었다”.(Sicvirfortissimos,multis
variisqueperfunctuslaboribus,annoadqievitseptuagessimo,네포스“한니발”
제13장)
로마인에게카르타고의한니발은,우리식으로치면,임진왜란을일으켰
던도요토미히데요시(豊臣秀吉)에해당하는인물이다.그럼에도네포스가바로이
와같은인물에게도지면을할애하고심지어그를아주객관적으로또한공정하게
그를묘사하고있다는것은어쩌면우리의정서로는도저히이해하기어려운일이
라하겠다.만약우리의전기작가중에누군가가도요토미히데요시의생애를네
포스의공정하고객관적인시각으로기술한다면우리한국인독자들은어떤반응
을보일지자못궁금하다.그렇다면네포스의소위“열린마음”은어떤특징을가지
고있고,이러한열린마음은어디에서유래했는가에대해서묻지않을수없을것
이다.전자와관련해서나는네포스의『로마밖의종족들의위대한지도자들에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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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서문의초입부를소개하고자한다.
“앗티쿠스여,예를들자면누가에파미논다스(그리스의테베의장군)의음악교사
이었는지,아니다른말로하면,에파미논다스가얼마나춤을잘추었고피리연
주에맞추어노래를얼마나잘불렀는지따위의것들을그의덕성가운데에하
나로기억되도록나는썼는데,이에대해서이책을읽을독자들이내가최고의
위대한사람들에게걸맞지않은가볍고사소한이야기라고비판할것이라는점
을나도잘알고있소이다.하지만이렇게판단하는사람들은대개는그리스의
문예(文藝)에대해서문외한이오.그들은대개자신들의상식과전통의입장에서
만생각하는이들로,그들은대개자신들의기준에맞지않은것들은모조리잘
못된것으로보는사람들이오.그러나이사람들이만약명예롭고추한것들에
대한판단기준이어느종족에게나모두똑같은것이아니고오히려그기준은
자신들의조상들로내려오는전통의관점에서유래했다는것을알게된다면,그
들은내가그리스인들의덕성과뛰어남을저술함에있어서그리스인들의시각과
기준에서그것들을다루고있다는점에대해서과히놀랄일이아님을깨우쳐볼
것이오.예컨대,아테네의뛰어난시민키몬의경우,그에게는그가자신의누이
를아내로취했다는점이결코부끄러운일이아닐것이오.왜냐하면,키몬은자
신의나라사람들이따르는풍습을따랐을뿐이기때문이요.물론우리의기준
에따르면,이런종류의결혼은당연히불경죄에해당하지만말이오.”
흥미로운서문이다.전기텍스트를저술함에있어서네포스의시각이거
의현대적인의미에서개방적다원론자의그것이고문화적상대주의자의그것이기
때문이다.네포스는,예를들면그리스사람을묘사할때에는로마의시각이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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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이아닌그리스인의그것에입각해서기술해야한다고주장한다.이와같은네포
스의주장은,소위종족과국가의이익의관점에서역사를보려는시각을넘어서
있다는점에서우리의관심을끄는대목이라하겠다.이대목에서우리는이미서
양고대로마시대에사관(史觀)문제가이미논의되었는지여부를묻지않을수없
을것이다.결론부터이야기하자면,고대로마에서현대적의미의사관에대한의식
(Bewußtsein)을가지고있었다고말할수는없지만,적어도역사를어떤방식으로
써야하고,어떤입장에서역사를바라보아야하는지에대한논의는분명히있었다
는점이다.
이와관련해서나는기원전 1세기에벌어진로마의소위“역사”논쟁을간
략하게소개하고자한다.로마에서벌어진역사논쟁가운데에주목해야할문제
는소위로마의원천과뿌리를다루는상고사(上古史)에대한논의였다.예컨대역
사문제는,리비우스와살루스티우스와같은역사가들사이에놓여있던정치적인
긴장을굳이언급하지않더라도,당대로마인은물론디오니시오스할리카르나소
스와같은그리스수사학자들의주요관심사였고,또한그들의대표적인저술이“상
고사(DeAntiquitatibus)”였다.상고사문제가로마지식인의관심을사로잡은이유
는,그것이근본적으로로마의정체성규정과맞닿아있는물음이었기때문이었다.
다시말해서,상고사문제는,그러니까역사기술문제는,로마가공화정에서제정
으로넘어갈때에로마제정의합리화,곧아우구스투스의황제등극과그의통치
의정당화를위해서베르길리우스나호라티우스와같은시인들을중심으로로마
역사를조작하고합리화하는시도가노골적으로시도되었을때에,로마지식인세
계의주요화두중의하나였기에그렇다.대표적으로시인베르길리우스는로마의
기원및발전과정에대해서자신의서사시『아이네이스』를통해서트로이를로마의
기원으로잡았고,아우구스투스가아이네아스의직계후손이라는기술을통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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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말해서궁극적으로아우구스투스는제우스의후손이라는주장을통해서아
우구스투스가천상의세계를대리하는황제임을정당화하려고시도했다.물론표
현상으로는제일시민(princeps)이었지만,실질적으로황제였다.하지만베르길리우
스의“아이네아스”이야기는역사적으로근거가매우박약한이야기에불과했다.
그것이실은엔니우스의『연대기』에처음나오는전설과주장에불과했기때문이다.
따라서“아이네아스”이야기는사실근거가박약한신화에불과한주장임이분명
하다.물론이것이후대에가서는정사로혹은역사로자리잡았지만말이다.물론
역사가리비우스는베르길리우스처럼문학적기법을이용해서신화를역사로직접
바꾸는방식은취하지는않았다.그는“아이네아스”전설을다룸에있어서신화적
인접근이아니라사실중심의접근을시도하고있기때문이다.하지만리비우스가
근본적으로로마가트로이를계승했고,로마인들이트로이인들의후손이라는이야
기를,그것이신화이든사실이든,그이야기자체를거부하지는않는다는점은베
르길리우스의입장과큰차이가없어보인다.아마도어떤면에서는리비우스가베
르길리우스보다수사학적으로훨씬더세련된접근을했다고보는것도가능하겠
다.왜냐하면로마인이트로이왕족출신인아이네아스의혈통이라는소위전설에
불과한이야기를역사로교묘하게바꾸어놓은역사가가리비우스였기때문이다.이
와관련해서키케로는『국가론』편에서리비우스와는다른입장을취한다.물론키
케로가로마공화국의시작과로물루스이후의왕정을다루기는하지만,키케로는
로마공화정이이왕정을계승하는국가로인정하는것은아닌것으로여기기때
문이다.사실국가-계승문제는매우현대적인논의임에는틀림없다.그러나이러
한논의가반드시현대적인것만은아니다.왜냐하면폴리비우스(Polybius)나바로
(Varro)와같은학자들이국가의시작과끝을어떻게규정해야하는지,시대는어떠
한기준에서분류해야하는지,역사기술은어떠한관점에서서술해야하는지에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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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제를이미다루었기때문이다.이상의진술을종합해볼때,결론적으로상고
사기술문제는공화정에서제정으로소위정체(政體)및국체(國體)의성격변화와
전환에직결된문제였고,특히기원전1세기말에이르러로마의지식인세계의최
대논쟁점이었음이분명하다하겠다.
이와관련해서우리는오비디우스(Ovidius,기원전43년~서기17년)의스승
인휘기누스(Hyginus,기원전64년~서기17년)라는문법학자도주목해야한다.휘기
누스는베르길리우스의시풍(詩風)에정반대의오비디우스의시풍을선호했던학
자였다.휘기누스도당연히“상고사”논쟁에참여했는데,그는역사논쟁에있어서
도마찬가지로베르길리우스가취한태도와는다른노선을취했다.곧학문이나문
학이정치적인목적에봉사하는수단이되어서는안된다는것이그의기본입장
이었다.이러한입장은역사를어떻게기술하느냐의문제에서그가취한입장에서
잘드러난다.그는있는그대로의사실기술에치중하였다.사실오비디우스의『변
신이야기』의지역과인물들에대한연기(緣起)이야기도휘기누스의서술양식노
선을따른것이다.어찌되었든상고사를다룸에있어서도휘기누스는『이탈리아도
시들의기원과그지역에대해서』와같은작품을통해서객관적이고사실적인이
야기를우리에게전하고있다.휘기누스의이와같은객관적서술방식은타키투스
(Taicitus,서기56년~120년)의『게르만족의기원과그지역에대해서』와도비교되는
데,아마도타키투스가그의역사서술방식을참조했을가능성이높다.
내가이렇게기원전 1세기에로마의지식인들사이에서벌어졌던역사논
쟁을장황하게소개하는이유는이글에서소개하고자하는전기작가네포스도
이와같은역사논쟁에영향을받은것이분명하고,하나의문학장르로서전기텍
스트가성립할수있었던것도앞에서언급한역사논쟁에토대를두고있기때문
이다.이는자신의작품이역사(historia)가아니라전기(biographia)라고선언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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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포스의주장에서명백하게드러난다.
“왜냐하면내가펠로피다스의행장(行狀)을기술하려함에있어서내가전기
(vitameiusennarare)를쓰는사람이아닌역사(historia)를쓰는사람으로보일까
두렵기때문이다.”(『로마밖의종족들의위대한지도자들에대해서』,16.‘펠로피다스’편)
인용에서읽을수있듯이,물론전기라는전문용어biographia를사용하
지는않지만,네포스는과감하게역사를버리고전기를쓰겠다고선언한다.문학
장르로서전기텍스트가성립하는순간이다.예를들면,펠로피다스의경우,그는
그리스테베사람이다.그런데,이사람을로마라는국가나이탈리아종족의관점
에서접근하게되면,이사람에대해서할수있는이야기가아무래도제한될수밖
에없다.바로이런이유에서네포스는소위국가나집단의기억을기술하는작업
인역사를포기한다.대신에그는국가나종족의이해와관점으로부터해방되어개
인을개인으로보고개인에대한삶을기술하는작업을수행한다.이작업의결과
가집단의공동기억이아닌개인에대한고유한기억을기록하는그릇이라는점에
서전기텍스트는역사서술과는다른새로운글쓰기의한방식임이분명하다.그리
고이와같은과정을통해서전기텍스트도하나의문학장르로성립하게된다.
결론적으로이대목에서적어도전기텍스트를글쓰기의한장르로구분
해야하는이유는다음과같다.예를들어역사는공동의기억을다루지만,개인을
다루기에는그접근구조가거시적이다.적어도네포스의시각에서보면그렇다.하
지만개인을다룸에있어서국가나종족으로부터자유로운접근통로를제공할뿐
만아니라개인에게접근함에있어서소소하기는하지만고유한특성들을포착해
내는미시적접근통로를제공한다는점에서전기는역사와의차별성을갖는다.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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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소설역시도개인의이야기를다루지만,그것은허구이다.그러나전기는개인의
이야기를다루지만,실제에토대를두고있다는점에서독자적인고유성을확보한
다.아울러서정시도개인의느낌이나겪음을노래한다.그러나그것은운문이다.
반면에전기도얼마든지개인의느낌이나경험을다룬다.하지만전기는산문이다.
운문과산문의형식적인구별이가능하다는점에서볼때에도전기는하나의글쓰
기종류이고더나아가서는하나의문학장르로자리매김이가능하다하겠다.덧붙
여전기가하나의문학장르일수있는것은,그것이개인을다룬다는점에서,전기
고유의목적에봉사하기에그렇다.전기는여타정치나경제와같은전기이외의외
적목적에봉사하지않는다.이와관련해서우리는네포스가보여주는“열린마음”
혹은“개방적인태도”에주목해야할것이다.예컨대,그리스사람키몬을다룸에
있어서그는로마라는국가적이해와이탈리아종족중심의고정된관점을버렸다.
개인을개인으로접근하고이해하자고제안하기때문이다.이러한접근태도와시
각은분명새로운것이다.이새로운시각이새로운글쓰기종류를발견했는데,그
것이바로전기텍스트이다.이런의미에서나는전기텍스트도하나의독자적문학
장르라고주장한다.
지금까지우리는전기텍스트가하나의문학장르로서탄생하기까지의역
사적배경을살피었다.그런데이문제와관련해서반드시언급해야할사람이앗
티쿠스다.네포스가하나의문학장르로서전기텍스트를탄생시킴에있어서결정
적인지원을해주었던후원자가바로앗티쿠스였기때문이다.이는네포스가자신
의저서『유명한사람들의삶에대해서』를앗티쿠스에게헌정했다는사실에서분명
하게확인된다하겠다.그렇다면,네포스가자신의책을헌정했고,심지어그의전
기를써줄정도의인물이었던앗티쿠스는도대체어떤사람이었을까?지면관계
상간략하게소개하도록하겠다.앗티쿠스는키케로의후원자이자친구로서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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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문화와사상을사랑하고로마에적극적으로소개하기위해서노력했던재력가
였다.앗티쿠스라는이름도그가아테네를사랑했고생애대부분의시간을그리스
의앗티카지방에서보냈다는데에서유래한다.에피쿠루스사상을추종했던그는
현실정치에적극적으로참여했던키케로와는달리은둔과여유의삶을,곧에피쿠
루스학파의정신에따라“숨어사는삶(lathebiosas)”을즐겼다.친구키케로가네
번이나경제적파산을겪었을때,그가정치활동은물론학문활동을자유롭게할
수있었던것은모두앗티쿠스의절대적후원덕분이었다.이대목에서우리는인문
학의대표적인후원자문제를잠시언급하고자한다.대개우리는인문학의대표적
인후원자로르네상스시대의메디치가문을든다.그런데이메디치가문이모델로
삼았던이가실은마이케나스라는사람이다.마이케나스는아우구스투스의정치
적동지로도유명하지만,그가더유명한것은그가바로베르길리우스,바루스,호
라티우스의절대적후원자라는점때문이었다.결론적으로로마의문학과사상이
꽃피울수있었던것도그배경에앗티쿠스나마이케나스와같은경제적후원자들
이있었기가능했다하겠다.그런데흥미로운점은앗티쿠스가주로키케로와같은
사상가와정치가를후원했다면,마이케나스는주로시인을중심으로하는문인을
적극적으로후원했다는사실이다.이와같은후원성격의차이는실은정치적입장
차이에서비롯한다.앗티쿠스가비록에피쿠루스학파에속하는경제인이었지만
정치적으로공화정파에속하는사람인반면,마이케나스는아우구스투스의황제
정을적극적으로옹호하고이를위한이데올로기작업을시인과문인을통해서적
극적으로실천했던사람이었다.이와같은후원의배경에서탄생한작가들이호라
티우스이고베르길리우스이다.앞에서도소개했듯이,『아이네이스』같은작품은전
형적인로마의용비어천가이다.이렇게마이케나스가아우구스투스시대에공화정
으로의회복을주장하는연설가보다는시인들을후원하게된배경은로마의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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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xRomana)를위해서아우구스투스의황제통치가하늘의뜻이라고홍보하고
설득하기위함때문이었다.반면에앗티쿠스는학문이나문학이그자체의목적이
외의다른목적에봉사하는것을좋아하지않았고,그야말로학문자체의목적에
봉사하고인문학의본령인자유로운정신을기르고가꾸는일을중시했다.이는그
가심지어에피로타(Epirota)와같은그리스출신의노예들까지도후원했다는점,
다시말해서키케로와같은중요인사에게만후원한것이아니라가능성이있어보
이는소장학자들까지도적극적으로신분과출신에관계없이후원했다는사실에서
분명하게확인된다.그런데이렇게앗티쿠스의후원을받은사람가운데한사람이
바로네포스이다.이러한사실로부터미루어보건대,국가의시각이나종족의관점
에서해방되어개인의문제를다루어야한다고주장하는전기작가네포스의입장
이앗티쿠스의지지를받았음은당연한일이라하겠다.바로이런후원을바탕으로
탄생한문학장르가전기텍스트이다.이대목에서내가앗티쿠스를장황하게설명
하는이유가해명된다하겠다.적어도전기텍스트가탄생하기위해서는국가의시
선혹은공동체의관점에서해방될때가능한데,특히하나의문학장르로서전기
텍스트가탄생하는시점이공화정에서제정기로넘어가는시점이라는점을감안한
다면,이런일은네포스가혼자서감당하기에어려운일이었고,아마도경제적지원
자로서그리고정신적지지자로서앗티쿠스와같은인문학후원자가없었으면불가
능한일이었기에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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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 연 보 와 평 전
피렌체를방문하는사람이라면누구나산타마리아델피오레대성당의
아름다운돔을보게된다.그리고는저렇게큰규모의돔이저토록아름다운모습
을하고두오모천장위에우뚝솟아있는모습은정말……하면서감탄하게마련
이다.이돔이건축된15세기초에는그처럼대규모의돔을지붕에얹는다는것자
체가거의기적적인일이었다.오랜시간동안그일을자신있게해내겠다는사람
이없었던이유도그때문이었다.설왕설래가계속되던중,브루넬레스키는수많은
건축가와공사당국자들이모인자리에서평평한대리석위에달걀을똑바로세울
수있는사람이돔을건설할수있을것이라고말한다.여러사람이그렇게해보려
더공감어린인간바자리를희구하며_
롤랑르몰레의『바자리평전』에대해1
곽차섭 부산대학교 사학과 교수
1. 롤랑 르 몰레·임호경 옮김, 『조르조 바사리: 메디치가의 연출가』(미메시스, 2006), 683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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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기획연재:평전의과거와미래• 31
했지만모두실패했다.그러자브루넬레스키는달걀한쪽끝을약간깨고는그쪽으
로달걀을세웠다.다른사람들이자기들도그렇게세울수는있다고불평하자,그
는웃으면서“당신들도내가만든모형과디자인을본다음에는돔을만들수있지
않겠는가”라고응수하였다.바자리의『예술가열전』“필리포브루넬레스키전(傳)”에
나오는일화이다.어디서많이들어본이야기가아닌가.
예술가―특히천재나거장이라고불리는오래전의인물일경우―에게는
필시수많은전설과일화들이따라다니게마련이다.자세히고구해보면그러한전
설과일화들이단지그로부터나온것도,그에게만있는것도아님을알게된다.그
것은하나의모티브가되어옛날로옛날로거슬러올라간다.“예술가의전설”은유
구한세월속에서고대의거장에얽힌일화속에그원형을가지는것이다.여기에
는대개두가지패턴이있다.그하나는유년기의일화인데,어린조토가양을치며
흙에다가그림을그렸다는이야기가그예이다.천재성은어릴적부터나타난다는
것이다.다른하나는작품에대한것인데,너무진짜와똑같아서구분할수없을정
도였다는것이다.신라의화가솔거가벽에그린소나무에참새가날아들었다는일
화가그런것이다.미켈란젤로가자신이만든아모르상을고대의것이라며팔아먹
은실제의이야기도이러한전설적일화와겹친다.
예술가를따라다니는전설과일화는그의전기를쓰려는작가에게는축
복이자동시에저주일수있다.그것은자칫하면딱딱해질수있는글에풍부한감
성과재미를제공해준다.하지만계속경계하지않으면전설과일화때문에그전기
는성인전으로전락하기십상이다.어린시절나타나는재능의발현은예술가의생
애에서대단히중요하다.하지만그것은무슨“운명적만남”이라는작위성을초래할
수도있다.거장의작품은진정그것자체가하나의기적이라아니할수없겠지만,
작가가쓰려는인물은신이나영웅이아닌,비범하지만그럼에도불구하고그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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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 연 보 와 평 전
인간의한사람이니어쩌겠는가.성인전이나위인전이아닌인간누구누구의생애
를쓴다는것.결코녹록치않다.
바자리―역자는바사리라옮겼는데,유성음이니바자리로표기하는쪽이
더낫겠다.물론실제발음상으로는그중간쯤이된다―전문학자인롤랑르몰레가
쓴바자리평전에서도그런고민이묻어난다.우선전기작가는어떤식으로서두
를열어야할지고심하게된다.르몰레는일단“운명적만남”과그것이던지는“예시
(豫示)”라는전통적방식으로전기를시작한다.첫번째만남은8세의어린나이였
던바자리와사돈댁어른으로당시78세의노인이었던루카시뇨렐리사이의조우
이다.1519년의일이다.루카는피에로델라프란체스카의제자로미켈란젤로를예
기케한다는오르비에토대성당산브리치오예배실의연작프레스코로유명한화
가이다.그가바자리에게열심히그림공부하라는당부와함께벽옥목걸이를걸어
주었다는것이다.두번째는1524년메디치가의측근으로바자리가의먼친척인추
기경실비오파세리니와의만남이다.13세의소년바자리는그앞에서아이네아스
몇구절을암송하였다.아이에게문재(文才)가있다고본추기경이그를피렌체로데
려가게되는데,바로그곳에서일생을거쳐봉직하게될메디치가군주들을만난다
는것이다.르몰레는이두만남에큰의미를부여한다.루카와의만남으로화가의
길로들어서게되었고,추기경과의만남으로메디치가와인연을맺게되었다는것이
다.하지만저자는여기서한걸음더나아간다.첫번째조우에서등장한그림과돌
(벽옥)은“후에바자리가걷게될회화와건축이라는두길을너무나도분명한언어
로암시했다”는것이다.게다가아에네아스의암송은『예술가열전』이라는문학으로
의길을암시한다는것이다.약간은과장적인인상을줄수도있는대목들이다(더욱
이이두만남에대해의미를부여한사람은원래바자리자신이었다).
하지만이전기에서르몰레를시종따라다닌망령은“예술가의전설”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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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기획연재:평전의과거와미래• 33
다는『예술가열전』과바자리의작품들에대한해설이었다.저자가워낙에그쪽전
문가다보니그랬겠지만,그는번역본으로거의700페이지에이르는방대한지면의
상당량을바자리의인생보다는그의저작과작품에대한학술적논의로가득채워
놓았다.바자리가무엇보다화가이자그유명한『예술가열전』을쓴인물이니이두
측면에대한이야기를빼고그의생애를논할수는없다.하지만그러한주제들을
둘러싸고계속되는논의는,때때로좀번잡하다는느낌까지도주지않을수없게
되어있다.예컨대『예술가열전』의태동에얽힌일화에서시작하여(p.132),그시발
점이되는모임의시기,28년에걸친작업,정보출처및수집방법,내용및서술상
의특징과문제점,매너리즘적요소,미학,유년기(조토),청년기(마사초),장년기(미
켈란젤로)로이어지는주기이론,1550년초판본과1568년재간본의공통점과차이
점,이야기꾼으로서의저자,언어분석,독자들의반응,미술가-작가의전통에관
한개관,향토주의등등무려150페이지가『예술가열전』에관련된논의로일관되어
있다.메디치가와의관계를다룬6장도거의둘사이의관계라기보다는코지모(코시
모가아니라)1세와그의시대에대한이야기로채워져있다.“화가바자리”를주제로
내세운8장역시16세기미술시장,여러동시대예술가들의걸작품해설,매너리즘
등예술사조의흐름과같은미술사적주제에많은지면이할애되어있다.사실250
페이지이상을줄이고압축했더라면인간바자리에대한평전으로의면모가더살
아나지않았을까하는―물론지극히주관적인생각일수있겠지만―아쉬움이남
는다.
독자가원하는바자리의인간적면모란어떤것일까.가족과친구관계,성
격,직업상의능력,처세술,인생관,삶의여정속에서드러나는갖가지생의이야기
들…….때로는(에로틱한)사생활까지.르몰레는이런측면들을책의곳곳에분산
배치해놓았다.그에따르면,바자리는경직성과관용,약함과집요함,너그러움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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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 연 보 와 평 전
색함,졸부적사고및행동과중요한인물에서보이는고귀한권위가공존하는인
물이었다(좀모호하다).또한다양한생각에열려있었고,다른사람의말을경청했
고,한번도악하게행동하지않았고,우정에충실한사람이었다.체구는왜소한편
이고체질도허약했지만,만사를집요하리만큼꼼꼼하게,그리고놀랄만한속도로
처리하는보기드문능력의소유자이기도했다.바로이러한점들이야말로16세기
중후반의격변기에서―반종교개혁과메디치절대주의라는―그를누구보다도뛰어
난예술가-정신(廷臣)으로만든요인이었다.바자리는중하층의부르주아출신으
로일찍부터아버지를여의고가장으로서의막중한책무―가족부양,누이들의지
참금마련등―를짊어지지않으면안되었다.그것이일생동안메디치가군주라
는후원자를간절히바라게된배경이었을것이다.피렌체의오랜공화주의망령을
떨쳐버리고군주로서의절대권력을확립하고자했던메디치가로서도바자리같은
인물이절실히필요했다.16세기후반바자리가관장의임무를맡았던관제(官制)피
렌체아카데미들은1세기전“비타악티바”의망령을걷어내기위해메디치군주들
이후원했던플라톤아카데미의“매너리즘”판이었다고하면,적절한비유일까.
평전으로서이책이지닌가장큰장점은저자르몰레의박학에서오는
다양한정보이다.이책을주의깊게숙독하면넓게는16세기르네상스미술사전
반,좁게는바자리를둘러싼피렌체의예술과정치에대해자세히알수있다.번역
도이런류의책으로는보기드물게전반적으로대단히유려하고정확하다.행문도
좋다.다만르네상스에대한번역서에서공통적으로나타나곤하는몇가지오류를
지적할필요는있겠다.15세기말까지살았던로렌초데메디치일마뉘피코를“위
대공(偉大公)로렌초”이라옮겨놓았는데,“대인(大人)”이정확한역어이다.그것은“우
르비노공”과같은귀족칭호도“미남왕”필립과같은별명도아니었고,공화국도
시에서아무런칭호도없는부르주아유력자를가리키는존칭일뿐이었다.비(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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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기획연재:평전의과거와미래• 35
한자세대가흔히범하는오류적표현중에20세를뜻하는“약관(弱冠)”이있는데,
역자역시“19세의약관”이니“25세밖에되지않았던약관”이니하는말들을하고
있다.약관이란말에는물론젊은나이라는넓은뜻도들어있다.하지만구별없이
아무나이에나이런식으로사용하는것은적절치못하다.헌양(獻揚)이라는말도
종종보이는데,한자뜻상으로말이안되는것은아니지만현양(顯揚)으로충분하
니굳이그렇게쓸필요는없다고본다(일문과오경환교수의자문에의하면이는일본
식표현이라한다).이모든비판에도불구하고나는이평전을즐겁게읽었다.그속
에는원하는사람에게만제공되는지적충만함이있다.가로로좀더길쭉해서좌
우여백이풍부한판형도읽으며떠오르는이런저런단상들을메모하기에아쉬움
이없어지적유희를즐기는데일조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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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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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 연 보 와 평 전
조광조의꿈과좌절_개혁정치가인가,이상주의자인가?
신병주 건국대 사학과 교수
16세기중종재위기간,비범한카리스마를무기로혜성처럼등장한인물.
조선의국시인성리학이념이사회곳곳에구현되는이상사회의건설을부르짖었던
인물이바로조광조(趙光祖,1482~1519)였다.16세기초반화려하게정계에등장했
다가5년만에좌절된정치행적.그의좌절은보수와현실정치의벽이당시에도얼
마나두터웠던가를여실히보여주기도했다.그의개혁정치추진과그실패가가져
다준역사적교훈은과연무엇일까?본평전에서는조광조가중종의주목을받아
중앙정계에진출하여수행한개혁정치의주요내용과이것이좌초될수밖에없었
던사화(士禍)라는시대적배경에대해살펴보고자한다.그리고비록그는처형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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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미리보는• 39
로생애를마감했지만,개혁정치의불씨는살아나이황·조식·이이등뒷시기사림
(士林)들의모델로자리를잡은요인들을검토해볼것이다.
조광조는서울출생으로전형적인조선관리의아들로태어났다.개국공
신조온(趙溫,1347~1417)의5대손으로훈구가문출신이지만그의인생은사림파
와의인연으로시작된다.조광조는17세되던해에어천찰방에부임하는아버지조
원강을따라가평안도희천에귀양와있던김굉필에게수학(受學)할기회를얻었다.
김굉필은고려말정몽주와길재를거쳐김종직을계승한영남사림파의핵심인물
로서1498년무오사화로유배길에있었다.영남과서울을기반으로하여전혀이
루어지지못할것같았던만남,그러나무오사화라는정치적사건은이둘의만남
을가능하게하였고,이만남은조광조의운명을바꾸어놓았다.영남사림파의학맥
이기호사림파에게접목되는순간이기도했다.
조광조는어려서부터행실이바르고아이답지않게근엄하며남의실수를
용서하지않는엄격성을보였다.보통사람과비교할수없을정도로뜻을높이세
우고학문에열중하는그를가리켜사람들은‘미친사람〔狂人〕’이라거나‘화의태반
(禍胎)’이라고할정도였다.어린시절보였던자신에대한철저함은훗날정치적으로
도엄격한원칙주의자의길을걸어가는바탕이되었다.
조광조는1510년과거초시에응시하여장원으로합격하고,1515년성균
관에서치룬알성시에도2등으로급제하여중종의주목을받았다.반정공신들의
득세속에서아직제자리를찾지못하던중종은성균관을찾아새로운인재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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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 연 보 와 평 전
하려했다.이때중종은‘오늘날과같이어려운시대를당하여옛성인의이상적인
정치를다시이룩하기위해서는무엇을어떻게해야할것인가’라는책문(策問)을던
졌고,조광조는‘성실하게도를밝히고(明道)항상삼가는태도(謹獨)로나라를다스
리는마음의요체로삼을것’을핵심요지로하는답안을냈다.이책문을계기로
가능성만있었던학자조광조는중종의파격적인신임을얻게된다.중종은조광조
를정언,대사헌등언관의핵심직책에임명하면서국왕의든든한후원군으로삼
았다.왕의총애를한몸에받은조광조는신진세력의최선두에서서성리학의이
상을정치현실에실천하기위한개혁정책들을시도하게된다.자신의시대를‘개혁
의시대’로냉철히인식한조광조는시대의부정과모순을극복해가는다양한정책
들을강력하고급진적으로추진해갔다.
조광조의개혁정치를한마디로말하면유교적이상정치,도덕정치의실현
이다.왕이왕도정치를수행하고성리학이념에입각한교화가백성들에게두루미
치는사회의실현,이것이개혁정치의요체였다.조광조는자신과뜻을같이하는
신진세력들과함께왕에게도덕적으로완벽할것을요청하고,언론과경연(經筵)의
기능을강화시켜나갔다.토지제도에서는균전제를추구하고,도교의제천행사를
주관하던관청인소격서를폐지하여성리학이아닌이단사상이보급될수있는길
을차단하였다.
조광조일파는『소학(小學)』과향약의보급에도전력을다했다.지방구석
구석까지성리학의이념을담은『소학』과같은책자를보급하고사림들이향촌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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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미리보는• 41
도할수있는자치규약인향약(鄕約)을실시하게함으로써향촌에서사림파의입지
를강화하는한편사림파가주도하는유교질서의확산에힘을쏟았다.『소학』은수
신(修身)과위기지학(爲己之學)을강조한다는점에서권력의부정과비리에서비교
적자유로웠던사림파학자들의정치,사상성향에부합하는점이많았다.『삼강행
실』,『이륜행실』,『주자가례』와같은책을널리보급한것도유교적도덕이념을확산
시키려한조처로서『소학』의보급과그맥락을같이하였다.
조광조일파는민생을위한개혁에도적극착수하였다.당시농민을가장
괴롭힌공물(貢物)의폐단을시정하였으며,균전제를실시하여토지의집중을완화
하고토지소유의상한선을정하여부유층의재산확대를막으려하였다.조광조
일파의개혁정책은백성들의상당한지지를받았다.그러나그의인기가올라가면
올라갈수록그에게큰부담을느꼈던기득권세력의반발또한보다조직화되고확
산되어나갔다.
누구보다조광조의정책에반대노선을취한것은기성의정치세력인훈
구파였다.성종대이후기득권세력으로특권을누리고있던훈구세력은연산군대
에두차례에걸친사화를통해사림파를축출하고보다보수화되어갔다.그러다
가중종이파격적으로등용한조광조일파에의해자신들의입지가좁아지자서서
히위기의식을가지게되었다.특히조광조일파가위훈삭제(僞勳削除)까지들고나
오자이들의불만은최고조에달했다.공신의친인척이나연줄을이용하여훈작을
받은사람들의토지나관직을몰수함으로써구세력을제거하고신진세력중심으로
정치판을재편하려한조치였다.중종반정때박원종등의추천으로확정된공신
은무려126명으로이숫자는조선의개국공신(45명)이나이후에있게되는인조반
정때의공신(53명)숫자를훨씬뛰어넘었다.공신에대한재조사에들어가자위훈
을받은숫자가70명이넘었다.조광조일파는가짜로훈작을받은자들을조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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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 연 보 와 평 전
여이들에게준관직,토지,노비와저택등을몰수할것을구체적으로준비하고있
었다.정치세력의전면적인물갈이를구상했던것이다.
자신들의목을서서히죄어오는조광조일파의움직임에훈구세력들도더
이상방관하지않았다.왕실이나정치권에심어둔정치세력을적극활용해총반격
의기회를엿보고있었다.우선조광조는왕권까지넘보는야심차고위험한인물
임을유포시켰다.홍경주·남곤·심정등훈구파들은기회가되는대로조광조일파
의‘위험한’동향을중종에게알렸다.궁중나인을시켜나뭇잎에‘주초위왕(走肖爲
王:走와肖를합하면趙가되므로조씨가왕이된다는뜻)’이라는글씨를쓰고,꿀을발
라벌레가갉아먹게하여궁중과민심을흉흉하게했다.조광조일파의지나친유
교적이상정치주장과왕권의견제,경연의활성화에점차스트레스를받고있던
중종도각종보고를통해들어오는조광조의전횡을그저바라만보고있을수없
는상황이었다.
조광조의참신한개혁정책의최초후원자였던중종은자신을왕위에올
린훈구파를과격하게공격하는조광조일파의급진성에점차불안해하고있었다.
끊임없는수기(修己)를통하여국왕자신이성인(聖人)이될것을요구하면서왕권
에제약을가하는것은특히부담이되었다.중종은서서히조광조를중심으로하
는사림파세력들의급진적인이상정치요구와개혁정책에염증을내고있었다.그
렇지만조광조는개혁의고삐를늦추지않았고이것은중종을비롯한지지세력을
이탈시키고훈구세력을중심으로한반대세력의힘을강고하게결집시켜주는역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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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미리보는• 43
과를내고말았다.
모든상황은조광조일파에게불리하게돌아가고있었다.그리고마침내
1519년(중종 14)11월훈구세력들은밤에신무문(神武門)을통하여왕궁에잠입,중
종을만나조광조일파가당파를만들어조정을문란하게한다고비방하였다.중
종은드디어조광조를비롯하여그와함께개혁정책을추진하던김식·기준등신진
세력들에대한전격적인체포령을내렸다.이에조광조를비롯하여김정·김식·김
구·윤자임·박세의등대부분의개혁세력은투옥되어사약을받거나유배되었다.
조광조는결국능주에유배되었다가기묘년12월중종이내린사약을받았다.조광
조의숙청은한개인의죽음으로끝나지않았다.그의개혁노선을지지하고실천에
옮기려했던많은선비들이죽음을당하거나귀양을가는등큰화를당하였다.이
것이조선의4대사화중세번째인1519년의기묘사화로서젊고참신한정치세력들
이개혁정책을실천하려하다가좌초한사건으로평가를받고있다.
愛君如愛父 임금을어버이처럼사랑하고
憂國如憂家 나라걱정을내집걱정하듯하였네
白日臨下土 밝은해가이세상을내려다보니
昭昭照丹衷 나의붉은마음환히비추리
1519년12월조광조는자신을그토록총애했던국왕중종이내린사약앞
에서마지막시를읊었다.거칠것없는개혁정책을진두지휘한사림파엘리트조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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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 연 보 와 평 전
조는조선시대를통틀어가장개혁성향이짙었고이를실천한인물로평가받고있
다.그러나그를중심으로추진되었던개혁정책은기묘사화의참극을불러왔고개혁
파정치세력들은허망하게정치권에서숙청되었다.비범한카리스마를무기로등장
하여성리학이념을바탕으로도덕정치가구현되는이상사회의건설을부르짖었던
인물조광조.16세기초반화려하게정계에등장했다가5년만에좌절된그의정치
행적은보수와현실정치의벽이당시에도얼마나두터웠던가를여실히보여주었다.
조광조는성리학이념으로무장한사림파가주체가되어모든백성이고
르게혜택을받는사회,성리학적이념이온나라에두루미치는이상적인사회의
건설이라는미래의비전을제시했다.그리고그사회의실현을위해다양한개혁정
책들을추진하였다.조광조가추진한개혁은어쩌면우리역사발전단계에서가장
개혁적인조처들이었지만,그것이지닌급진성과과격함,그리고개혁지지기반의
상실등으로말미암아개혁의완성에는이르지못했던것이다.
역사에는언제나보수와개혁의진통이따르는시대가있다.조광조가등장
한16세기초반의조선사회도보수와개혁의흐름이서로충돌한바로그러한시대였
다.조광조는시대를돌파하기위하여성리학이념으로무장하고원칙에충실하면서
급진적인개혁을추진하였다.그러나개혁의급진성과과격성은이에반발하는보수
세력들을결집시켜주었고,개혁은미완인채로역사속에묻히고말았다.그의개혁
정치와그실패가주는역사적교훈을반면교사로삼아야할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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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미리보는• 45
우리의역사에서여성은어떻게기억되는가?혹은우리의역사에서기억
되는여성은어떤존재들인가?이질문은남성보다여성에대해서역사가선택과
배제의원리를더욱엄격하게적용하고있음을전제하고있다.여성의육성이담긴
일기와편지,시문이나문집을제외하면많은경우여성에대한기억의주체는여성
자신이기보다남성인경우가많기때문이다.이러한사정때문인지여성은현모양
처나열녀등현실적표상으로이상화되거나신화나전설속의인물처럼과도하게
신비화된다.이과정에서다양한모습으로실존했던많은여성들은역사의저편으
로사라지기도한다.
최송설당(崔松雪堂),전통과근대의경계에선여성
백순철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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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 연 보 와 평 전
우리에게는비교적낯선여성인물인최송설당(1855~1939)에대한기록
역시예외가아니다.한국정신문화연구원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최송설
당은민족적육영사업가로소개되어있다.1931년전재산을희사하여김천고등보
통학교를설립하여민족교육의기틀을마련한그녀의업적이역사에기록되는중요
한이유가되고있는것이다.물론그녀의말년에이루어진지역과사회에대한헌
신은평가받아마땅하다.그러나이러한사회적평가에경도된나머지그녀의삶을
과도하게신비화하고있는측면은없는지생각해볼일이다.
최송설당은19세기말에서20세기초에자기주도적삶의경영을통해부
를이루고사회적성공을거둔대표적여성인물이다.그녀는또한스스로의노력을
통해영친왕의보모라는상당한지위를획득한여성이기도하다.이러한그녀의생
애와학교설립을통한인재양성이라는사회적실천이어떻게현실적맥락으로이
어지는지를섬세하게설명할필요가있는것이다.
그녀가경제적으로부를이루는과정이나영친왕의보모가되어사회적으
로성공하는과정을구체적으로복원하는것은그래서더욱필요하다.그녀의삶은
자신의운명과현실에대응하는방식에있어서매우흥미롭고드라마틱한모습을
보여주기때문이다.따라서필자의평전작업역시최송설당의생애의평가보다과
정의복원에주력하고자한다.이를통해전통과근대의경계에서서스스로자신
의운명을개척해가는여성주체의다채로운면모를발견할수있기를기대한다.
최송설당은젊은시절증조부와조부가홍경래의난에연루되어죽은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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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한누명을벗겨가문의명예를회복하기위해결혼보다재산구축에주력한다.그
녀가40년간의김천생활을청산하고서울에올라가엄비와인연을맺게되는과정
역시가문회복에대한강한의지에서비롯된다.그녀가삶의중요한선택의국면에
서‘남편만들기’와‘자식만들기’의보조자가되기를거부한것은매우각별한의미를
지닌다.그녀가여성으로서의삶을희생한것은국가나사회같은추상적공동체를
위한헌신때문이아니다.오히려가문과지역에대한애정에서출발한것이다.
최송설당은지역과가문에서성장하면서유교적규범을내면화했으면서
도일정하게근대문물의세례를받은여성이다.신식학교교육을받은것은아니
지만영친왕의보모로활동하면서개화의흐름에빠르게적응해갔을것이다.자신
앞에닥친고난을누구에게도의존하지않은채스스로의주체적의지와능력으로
돌파하는모습은다분히근대적여성의모습에가깝다.
한국일보에‘잊지못할여류명인들’을연재한최은희기자의기록에의하
면그녀가궁에들어가게된과정이나입궁한이후의행적에서그녀가보여준태도
는매우철저하고주도면밀한모습을보여주고있다.이러한그녀의행동에는분명
한동기가있다.그것은몰락한가문의회복과번성에대한의지이다.이러한그녀
의소망은결국입궁한지4년만에고종의명으로이루어지게된다.다만여기서도
축재(蓄財)의과정은여전히의문으로남는다.이에대해서는두가지가능성을생
각해볼수있다.즉엄비를비롯한왕실의재정적후원의가능성이그하나이고,경
남지역의군수를역임한남편을통한축재의가능성이다른하나이다.그녀가상
업적능력을발휘하여부를축적했다는기록이나권력이나지위를이용해부를축
적했다는기록은발견되지않는다.그렇다면갑작스럽게형성된많은재산은결국
누군가의상속또는증여에의해형성된것으로볼수밖에없다.위두상황은그런
점에서다분히추측가능하다고할수있다.여기서특히주목할부분은최송설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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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엄비와의관계이다.최송설당이그녀의가사에서엄비에대한회고적정서를드
러내는대목을보면생전에둘사이의친밀감이단순한주종관계(主從關係)를넘어
서는것이었음을알수있다.
최송설당은또한한시와가사창작에뛰어난문화예술가이기도하다.시
문에능하여 200여수의한시와49편의규방가사를남기고있다.저서로는『최송설
당집』3권(1922년)이있다.
송설당은어려서부터총명하여이미2,3세에글자를익히고6,7세에아버
지로부터한글과한문을배워글귀를맞추었고,시인으로서의자질을이미갖추었
다고한다.나이들어서는또한『구운몽』,『옥루몽』,『삼국지』등고대소설을많이준
비하여놓았다가시자(侍者)들로하여금읽도록하였다고한다.가사작가로서의그
녀의문예적능력은가학(家學)의배경과독서취향등으로볼때충분히짐작하고
도남음이있다.일찍이김윤식은『송설당집서』에서그녀의가사창작능력에대해
상당히높게평가한바있다.
국문가사의경우에는더욱더장점이있어서곡조의품격이깊고담박하고,가사
의뜻이온화하고고와서마치푸른바다에사는늙은용이이를갖고노는데턱
아래여의주의영롱하고멋진채색이파도사이에은은하게비쳐빛나는듯하
다.모르겠다.무릇사람이배우지않고도이와같을수가있는가?갈고다듬지
않고도이럴수가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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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문학창작에있어서전통적문법과표현을중시하면서도새로운
시대의수사와표현법의차용에과감했다.또한견고한윤리적태도와규범성을견
지하면서도평등의문제나문물의발달등에대해서적극적으로수용하는모습을
보이기도하였다.또한그안에계몽담론에대한동조와비판의시선으로식민지시
대의여성이겪은다양한경험과의식들을표현하고있다.
20세기초는신문매체의등장으로말미암아계몽담론이집중적으로쏟아
졌고,창가·신체시·신소설·개화가사등새롭게개척된문학양식들의출현이급속
하게진행된시기이다.문화전반에걸쳐서진행된이러한급격한정신적·미적변화
는전통적양식과근대적양식의자연스런교체보다는갈등과교섭의이중적진행
을드러내는결과를가져왔다.규방가사는바로이러한징후를보여주는대표적인
텍스트라고할수있다.즉미적으로는여전히전통적양식을고수하면서도내용적
으로는근대의변화를수용하고있기때문이다.
최송설당은근대이후신식교육의세례를밟지않은존재이면서도누구보
다강한의지를가지고학교교육을실천했다.전통적윤리의식과질서를충실하게
따르면서도문명화된근대를매우긍정적인시선으로바라보았다.
그렇다면송설당은어떤존재로해석해야하는가?국가와가문으로부터
자신을분리하는기회를얻지못하고여성고유의목소리를드러내지못한존재인
가?아니면자기자신의내면적욕망을철저히통어하면서여성의사회적지위를
새롭게개척한존재인가?송설당의자아실현은궁극적으로국가와사회,가문의
유지발전에기여하는것이었을뿐인가?아니면새로운여성의자아실현의모습을
보여준것인가?등등다양한해석과논의가있을수있다.
그러나송설당이라는인물에있어서무엇보다주목할점은여성주체로서
자신의역할에대한자각,자기점검을통한정체성의확립이훨씬더강화된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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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나타난인물이라는점이다.즉현실주의적인그녀의의식은전통적여성의삶
에갇히기를거부하고보다역동적인실천으로나아가는에너지가되었다고할수
있다.그녀의삶에서근대성을읽어낼수있는부분이다.
전통여성들이근대의진행을더디게하거나힘들게했다고생각하는것은
사실우리의오해일지모른다.혹은왜곡된일부의모습을지나치게일반화한시각
일수도있다.어쩌면근대는두드러진개성과목소리를보여주는신여성들보다는
이러한구여성들이이끌어온것은아닌지반문해볼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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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미리보는• 51
2009년은안중근이하얼빈에서이토히로부미를저격한지100년이되는
해이다.또2010년은그가세상을떠난지 100년이되는해이다.100주년의상징성
때문인지올해는안중근을기념하는많은행사가열리고있다.소설과드라마,뮤
지컬이발표되고,학술대회가개최되고연구서가간행되고있다.이를통해우리는
많은감동을받을수있다.더나아가많은정보,새로운사실,그리고때로는문학
사나지성사를풍성하게할만한자료들을제공받을수있다.안중근에관해새로
운정보를내놓을만한여지가있는지의심스럽기도하다.
그렇지만한편으로는이런의문이든다.이를통해‘우리’는무엇을기억하
안중근을기억하기위하여
황재문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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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될것인가?만약‘안중근은위대하다’는한문장의결론만을기억하게된다면,‘기
념사업’의목적은달성될수있을지몰라도많은행사를연보람을얻을수는없을것
이다.평전또한이와마찬가지가아닐까한다.책을읽고‘독자자신’의시각으로그
인물을이해하고기억할수있을때,평전의역할을다할수있는것이아닌가한다.
그렇다면어떻게할것인가?사실을정밀하게밝힌연구성과들을최대한
반영한다는것은기본이다.그위에무엇을더해야하는가?
연해주에서의병활동을하던안중근은만주하얼빈에서한국침략의원흉인
이토히로부미를사살하였다(1909).안중근은자신의행위를한국의독립주권
을침탈하고동양평화를교란시킨자를처형한것이라고밝혔다(김한종외,『고등
학교한국근·현대사』,금성출판사,2003,p.95).
인용문은고등학교교과서에서안중근을서술한대목이다.1909년10월
26일아침의극적인장면을묘사하면서,교과서는‘원흉’을‘사살’하는‘처형’의행위
로기술하고있다.물론그이유가함께서술된것은사실이지만,가장인상적인대
목은당일아침의안중근의행위와그에대한의미부여임을부정하기는어렵다.
이미많은사람들이언급한바이지만,안중근을‘이토사살’에만한정시켜
서는진면목이드러나지않는다.독자의기억을하나의사실이나결론으로환원시
키지않기위해서는,당연히인물의다양한면모를제시해야할것이다.이를위해
서는안중근의삶을최대한당대의맥락속에서살필수있도록묘사해야할것이
다.황해도의천주교가문에서태어나천주교신자로서적극적으로활동한점,동
학군과맞서는의병활동을한점,교육·언론등의계몽운동에힘을쓴점,망명이
후의병운동을주도한점등을당대적맥락에서기술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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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함께안중근에대한당대인들의다양한시각과관점을제시할필요
가있다.이때주의해야할것은자료의맥락일것이다.예컨대일본측의수사또는
재판기록의경우,그성격상다양한소문이끼어들수있고기록자의관점이반영
되기마련이다.이때문에사실과다른정보가포함될수있다.일차적으로는자료
에서정확한사실을가려내어야하겠지만,평전에서는왜잘못된정보가포함되었
는지연원과이유를따져서함께기술할필요가있다.이를통해인물에대한다양
한시각을교류하고논쟁하며공존하게할수있을것이기때문이다.독자는이러
한논쟁적이며다양한시각을비교함으로써,어떤인물에대해스스로생각을열어
갈수있을것이다.
안중근에대한당대의시각,또는당대인의반응은최근여러차례의학
술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