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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논총 제56(2010. 12) 243~291김춘수의 시와 세계관 1) * 1. 머리말 2. 앤티노미적 세계와 불가지(不可 知)3. 도스토예프스키와 심리적 진실 4. 역사를 넘어 시로 5. 맺음말 국문초록 이 논문은 김춘수의 시가 세계관과 연관되어 있으며, 이 연관은 시집 들림, 도스토예프스키에서 찾을 수 있음을 밝히고자 하였다. 김춘수의 시와 산문에는 나는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가라는 존재론적 물음과 사는 전신이 눈으로 되어 있다라는 초월적인 말, 그리고 인간이 역사를 심판해야 한다라는 세 개의 화두가 있다. 이 세 개의 화두가 천사와 도 스토예프스키 작품, 그리고 아내와 연관이 있으며, 그 연관을 김춘수의 시와 세계관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보았다. 김춘수의 시에서 천사는 순수지속의 성격을 지닌 유년기 천사 체험 이 존재론적인 물음에 의해 릴케의 천사와 도스토예프스키의 소냐를 만 나면서 창조적인 변화를 한 것이다. 존재론적인 화두에 천착한 것은 김 * 인제대학교한국문화와 문화전략연구소 전임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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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논총 제56집(2010. 12) 243~291쪽

김춘수의 시와 세계관

1)김 성 리*

차 례

1. 머리말

2. 앤티노미적 세계와 불가지(不可

知)론

3. 도스토예프스키와 심리적 진실

4. 역사를 넘어 시로

5. 맺음말

국문초록

이 논문은 김춘수의 시가 세계관과 연관되어 있으며, 이 연관은 시집

들림, 도스토예프스키에서 찾을 수 있음을 밝히고자 하였다. 김춘수의

시와 산문에는 ‘나는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가’라는 존재론적 물음과 ‘천

사는 전신이 눈으로 되어 있다’라는 초월적인 말, 그리고 ‘인간이 역사를

심판해야 한다’라는 세 개의 화두가 있다. 이 세 개의 화두가 천사와 도

스토예프스키 작품, 그리고 아내와 연관이 있으며, 그 연관을 김춘수의

시와 세계관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보았다.

김춘수의 시에서 ‘천사’는 순수지속의 성격을 지닌 유년기 천사 체험

이 존재론적인 물음에 의해 릴케의 천사와 도스토예프스키의 소냐를 만

나면서 창조적인 변화를 한 것이다. 존재론적인 화두에 천착한 것은 김

* 인제대학교․한국문화와 문화전략연구소 전임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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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수의 내면적인 특성이었으며, 이 내면적 특성에 의해 유년기의 천사는

현존하면서도 부재하는 앤티노미적인 존재로 인식되고, 이 천사 인식은

불가지론의 세계관을 형성하는 근원이 된다. 천사에 의해 존재의 비극

성, 즉 앤티노미를 경험한 김춘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작중 인물들을 만

나면서 ‘인간이 역사를 심판해야한다’는 심리적인 진실을 추구한다. 그리

고 ‘천사는 전신이 눈으로 되어 있다’라는 반성적인 인식을 거쳐 시에서

완전한 자유를 구현한다.

김춘수가 심리적인 진실을 추구하는 것은 경험에 의해 실제 현실과

김춘수가 느끼는 심적 상태가 달랐기 때문이다. 심리적 진실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김춘수는 아내에게서 천사를 보고, 생활 속에서 본래성을 찾게

된다. 아내를 통하여 생활 속에서 자신의 본래성을 찾은 김춘수는 비로

소 역사를 시간 바깥에 두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완전한 자유를 얻는

다. ‘인간이 역사를 심판해야한다’라는 화두의 의미는 인간의 완전한 자

유에 있었다. 김춘수는 완전한 자유를 시를 통해 구현하고자 했으므로,

김춘수에게 “시작은 체험의 총화요 종합이며” 삶이었다.

주제어 : 김춘수, 화두, 천사, 앤티노미, 역사, 불가지의 세계관, 도스토예

프스키, 심리적 진실, 시.

1. 머리말

김춘수의 시와 산문을 살펴보면 세 개의 화두가 있다. 가장 먼저 나타

나는 것이 ‘나는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가’1)라는 존재에 대한 물음이다.

이 물음은 김춘수가 평생의 화두라고 밝히고 있는 것처럼 그의 삶과 문

학에 연결되어 있다. 이후의 화두는 일본 유학 시절에 접한 러시아 문학

1) 김춘수, 꽃과 여우, 민음사, 1997, 13-15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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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비롯된 레온 셰스토프의 ‘천사는 전신이 눈으로 되어 있다’라는 말

과 베르쟈예프가 현대에 있어서의 인간의 운명이라는 책에서 접한 ‘여

태까지는 역사가 인간을 심판했지만 이제부터는 인간이 역사를 심판해

야 한다’라는 말이다. 김춘수는 이러한 화두 끝에 “내 속에도 천사가 있

다”라는 고백을 한다.2)

“내 속에도 천사가 있다”라는 말은 ‘천사’가 그의 내면세계를 형성하

는 중요한 체험3)이었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김춘수는 시집 거울 속의

천사 후기에 천사가 유치원에 다니면서 만난 천사, 릴케의 천사 그리고

아내로 세 번 변용 한다4)고 밝힌 바 있다. 이 외에도 그의 시에서 소냐

가 ‘전신이 눈으로 되어 있는 천사’와 동일시된다. 그렇다면 김춘수의 평

생 화두였던 존재론적인 물음과 천사, 그리고 도스토예프스키의 문학은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 세 개의 물음이 서로 교직하며 김춘수의 시

와 세계관을 연결하는 하나의 줄을 형성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천사가

그의 무의식에 내재되어 있다가 의식화되는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의 실마리는 다음의 글에서 찾을 수 있다.

도스토예프스키를 읽으면 들리게 된다. 프로이트를 읽을 때처럼 단지

논리적 수긍만 하고 있을 수가 없다. 그것이 문학과 과학의 차이라고 한

다면 너무 단순한 도식적 해석이 되지 않을까? 도스토예프스키는 인간

의 존재 양식이 비극적(신학적 용어를 쓰면 앤티노미의 상태)이라는 것

을 여실히 그려 보인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의 계시를 받게 된다. 인간

존재의 이 비극성은 역사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그 계시 말이다. 이미

인간의 존재 양식은 한 패턴으로 굳어 있다. 역사는 늘 이 점을 잊어서

는 안 된다. 역사주의의 낙천주의는 도스토예프스키에게서 좌절을 경험

해야 한다. 그래야만 역사주의는 겸손해질 수 있다.5)

2) 앞의 책, 104쪽.

3) 김성리, 「김춘수 무의미시의 지향적 체험 연구」, 인제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

문, 2009 참조.

4) 김춘수, 「거울 속의 천사 후기」, 김춘수 시 전집, 현대문학, 2004, 1043쪽.

5) 김춘수, 김춘수 시전집, 현대문학, 2004, 886-8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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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모든 작품을 낱낱이 다 읽었다. 그 중에서도

죄와 벌 악령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등은 몇 번이고 되풀이 읽

고 또 읽었다. 너무도 벅찬 감동이었다. 그 감동은 되풀이 읽고 또 읽어

도 줄어들지 않았다. 그것은 소설이라기보다는 나에게는 하나의 계시였

다. 도스토예프스키를 읽으면 우리가 얼마나 왜소한 삶을 살았는가를

절감하게 된다. 왜소하다 함은 천박하다는 말과도 통한다. (중략) 복녀

는 육체가 무너지자 영혼도 함께 무너진다. 그러나 소냐는 육체가 무너

졌는데도 영혼은 말짱하다. 소냐는 우리에게는 수수께끼와 같은 인물이

다.6)

김춘수는 러시아 문학 중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에 ‘들렸으며’ 그 작

품을 통하여 인간과 역사의 관계에 대한 ‘계시’를 받는다. 특히 도스토예

프스키의 작품 속 인물인 소냐에게서 인간이면서 천사적인 면모를 발견

하고, 소냐를 시집 들림, 도스토예프스키에서 천사로 표상한다. 김춘수

는 ‘천사’를 기독교적인 대상만이 아니라 천사적인 인간으로도 본 것이

다.7)

김춘수의 시적 노정을 볼 때 평생의 화두였던 존재 의미에 대한 탐색

이 무의미시였다면, 그 끝자락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 시집 들림, 도스

토예프스키이다. 이 시집은 김춘수가 도도스토예프스키 작품 속의 인

물들을 불러 와 자신의 정신세계를 드러냄으로써 도스토예프스키에게

‘들렸음’을 고백하는 장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의미시에서 보이던 불가지

론적인 세계인식이 선과 악의 이중성, 인간의 자유를 규제하는 이성적인

질서에 대한 부정을 거쳐 인간 구원의 문제로 나아가는 것을 보여준다.8)

6) 김춘수, 꽃과 여우, 민음사, 1997, 104쪽.

7) 고바야시 야스오․후나비키 다케오 엮음, 知의 윤리, 경당, 1997, 51쪽, 185-

186쪽 참조. 천사는 단순히 기독교 전통 속의 도상학이나 교리학의 대상이 아니

라, 천사적일 수 있는 인간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8) “나의 무의미시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게 되었다. 나는 여기서 또 의미의 세계로

발을 되돌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러나 물론 무의미시 이전의 세계로 후퇴할 수

는 없다.(<전집을 내면서>)”라며 자신의 문학세계가 변모하고 있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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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관념적인 시에서 출발하여 무의미시, 그리고 후기시에 이르기까

지의 그의 시세계를 구축하는 어떤 줄이 시집 들림, 도스토예프스키를

통하여 모습을 드러낸 것으로 본다.

지금까지 시집 들림,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한 연구는 세 가지로 나누

어진다. 시집에 수록된 작품을 도스토예프스키 작품의 변용으로 보는 연

구9)와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에 대한 패러디로 보는 연구10), 그리고 릴

케와의 영향사적 측면에서 천사와의 연관성을 중심으로 보는 연구11)가

그것이다. 최라영과 배대화는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의 인물들이 서로 편

지를 주고받는 형식의 다성성에 주목하여 김춘수가 도스토예프스키의

문학을 자기화하면서 변용한 것으로 본다. 그러나 최라영과 배대화가 주

목한 편지 형식의 대화는 시집 수록 작품 49편 중 19편에 불과하다는 결

점이 있다. 시집 들림, 도스토예프스키를 지나치게 도스토예프스키와의

연관성이라는 측면에서 본 결과 이 시집을 도스토예프스키의 문학이 정

전이 된 바를 사유하는 적극적인 패러디로 보거나(김정란), 김춘수가 허

무의지를 드러내기 위해 도스토예프스키의 작중 인물을 주관적으로 변형

한 가면(최현식)으로 보기도 한다. 그리고 릴케의 영향론이라는 관점에서

9) 배대화, 「김춘수의 들림,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한 시론적 연구, 세계문학비교

연구 24집, 세계문학비교학회, 2008.

최라영, 「도스토예프스키의 시적 변용에 관한 연구-김춘수론, 비교문학 34

권, 한국비교문학회, 2004.

10) 김정란, 「이승, 빈 자리에 서다」, 영혼의 역사, 새움, 2001.

최현식, 「‘들린’ 영혼의 자기관찰과 시적 표현」, 말 속의 침묵, 문학과 지성사,

2002.

이형권, 「김춘수 시의 작품 패러디 연구」, 한국언어문학 41권, 한국언어문학

회, 1998.

11) 권 온, 「김춘수의 시와 산문에 출현하는 ‘천사’의 양상」, 한국시학연구 26권,

한국시학회, 2009.

류 신, 「천사의 변용, 변용의 천사-김춘수와 릴케」, 비교문학 36권, 한국비교

문학회, 2005.

조영복, 「꽃․여우․처용․도스토예프스키 문학적 연대기 : 여우, 장미를 찾아

가다-김춘수의 문학적 연대기」, 작가세계 제 9권 제 2호, 세계사, 199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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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속에 나타나는 천사에만 주목하여 봄으로써(권온, 류신) 김춘수의 시

와 천사 체험, 그리고 도스토예프스키 문학의 연결고리를 찾지 못한다.

시집 들림, 도스토예프스키를 간단하게 김춘수의 연작시 중 하나로

보거나 도스토예프스키나 릴케와의 연관성에서만 본다면, 이 시집에 수

록된 49편의 시는 김춘수 시의 언어가 지닌 상징을 상실하게 된다.12) 작

가에게 세계관은 자신이 속해 있는 세계의 깊은 본질에 대한 통찰을 통

하여 자신과 삶이 우주 속에서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 가를 독창적으로

바라보는 사유 체계이며, 이 사유체계를 우리는 작가의 시를 통하여 알

수 있다. 시의 언어는 상징을 지니고, 그 언어를 통해 시인과 연관된 세

계를 볼 수 있으며, 시인이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를 알 수 있는데,13) 선

행 연구들의 관점에서 본다면 시집 들림, 도스토예프스키는 지극히 미

시적이며 김춘수 시가 지닌 고유의 상징을 놓치게 된다.

본고의 주제와 유사한 연구로는 김유중의 논문14)이 있다. 김유중은

김춘수의 시작 활동을 실존적 의문과 고민, 언어의 긴장과 해방, 심리적

인 것의 중요성에 대한 관심 등으로 요약하며, 김춘수가 시작에서 추구

한 구원은 심리적인 차원의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들을 시 분

석 없이 김춘수의 산문에 의존하여 살펴봄으로써 기존의 논의를 벗어나

지 못한 아쉬움과 시세계와의 연관성을 해명하지 못했다는 한계가 있다.

이 논문의 목적은 김춘수의 시와 세계관의 연관성을 해명하는 것이며,

그러기 위하여 먼저 시와 세계관을 형성하는 줄이 ‘천사-도스토예프스

키의 작중 인물-아내’임을 밝히고자 한다. 연구의 목적이 김춘수의 시와

12) “나의 시작은 나의 생활에서의 체험이 언어를 불러 언어의 질서 속으로 자기를

변용케 하려는 노력이 되고 있다는 것을 의식한다. 시작하면서 나는 나의 인격

을 본다.(중략)그리고 언어 하나에 인류의 유구한 꿈이 서려 있다는 것도 아울

러 절실히 느끼게 된다.” 김춘수 시론전집 Ⅰ, 현대문학, 2004, 634-635쪽. 김

춘수 시의 언어가 지닌 상징은 일반적인 문학 상징보다는 개인 상징에 가깝다.

13) Karl Simms, 김창환 옮김, 해석의 영혼, 폴 리쾨르, 앨피, 2009, 74쪽 참조.

14) 김유중, 「김춘수 문학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한국현대문학연구 제 30집,

한국현대문학회, 2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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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관의 연관성을 해명하는 것이므로 시집 들림, 도스토예프스키를

중심으로 하되 초기 시에서 마지막 시까지도 함께 살펴볼 것이다.

2. 앤티노미적 세계와 불가지(不可知)론

김춘수가 ‘천사’라는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호주 선교사가 경영하

던 미션 계통의 유치원에 다닐 때였다. 그림 속의 천사는 어린 김춘수에

게 신비감과 즐거움을 주었지만, 천사로 생각했던 선교사의 아이들을 실

제 생활 속에서 만나게 되자 실망과 함께 자신과는 아득히 먼 곳에 있다

는 서글픔을 느낀다.15) 이후 새롭게 다가온 천사는 릴케의 작품 「사랑하

는 하느님의 이야기」에 나오는 천사이다.16) 작품 속에서 천사는 거짓말

15) “그들이 왜 우리와 같아야 할까? 천사도 그럼 별것 아니지 않은가? 이런 따위의

의문은 나를 한 없이 맥빠지게 했다.” “어떤 것은 그림이 몹시 서툴러서 마치

코 밑에 수염이 달린 듯이 보이기도 했다. 그런 그림을 보고 있자니 왠지 웃음

이 나오기도 하고 한편 왠지 슬픈 마음이 되기도 했다. (중략) 현실에서의 나는

천사와는 아득히 먼 곳에 있었다. 그것이 또한 서글펐다.” 김춘수, 꽃과 여우,

27-29쪽.

16) 김춘수는 자전적 소설인 꽃과 여우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릴케의 초

기부터 만년에 이르기까지의 시집과 소설을 구해 읽었고, 루 안드레아스 사로메

의 릴케 전기를 구해 읽었다. 그의 만년의 시, 이를테면 「두이노비가」는 나에게

는 너무 난해했다. (중략) 나는 릴케의 시집들을 되풀이 읽으면서 한편 「말테의

수기」와 「사랑하는 하느님의 이야기」를 충격을 받아가며 읽었다. 「말테의 수기」에 나오는 개의 이야기, 「사랑하는 하느님의 이야기」에 나오는 천사의 이야기는

특히 충격적이었다. (중략) 50년대 말에 나는 릴케가 새삼 무서워지면서 그에

경도한 내 처지를 청산하고 그로부터 등을 돌렸다. 나는 릴케가 간 길을 도저히

따라갈 수는 없었다.” 김춘수, 위의 책, 103-104쪽. “그러나 나는 사로메의 릴케

를 읽고, 또 나이 40에 가까워지자 릴케로부터 떠날 수밖에는 없게 되었다. 나는

릴케와 같은 기질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특히 그의 觀念過剩의 後期

詩는 납득이 잘 안 가기도 하였지만, 나는 너무나 신비스러워서 접근조차 두려

웠다.” 김춘수, 意味와 無意味, 문학과 지성사, 1976, 25-26쪽. 김춘수가 릴케

로부터 거리감을 느낀 이유는 릴케의 시세계가 자신과는 다르다는 것과 릴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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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했기 때문에 목소리를 잃었지만, 신의 주위를 돌며 들리지 않는 찬가

를 부르거나 새들에게 날개를 달아달라고 신에게 청원함으로써 신의 분

노를 산다. 신은 감정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천사의 눈을 거울처럼 앞

에 놓고 자신의 표정을 모델로 하여 최초의 인간을 만든다.17) 어린 시절

의 김춘수에게 모호한 이미지를 주었던 천사는 릴케의 작품 속에서도

신을 찬양하는 천사이자 인간을 창조하는 눈으로 나타난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 속 인물들은 인간 성격의 이중성과 모순성을

드러내며 선과 악이 대립하면서 공존하는 특성이 있다.18) 김춘수가 도

스토예프스키의 작품 중에서도 죄와 벌, 악령, 카라마조프가의 형

제들을 몇 번씩 되풀이하여 읽으며 벅찬 감동을 느꼈을 뿐만 아니라,

소설이라기보다 하나의 계시로 받아들였다19)는 사실은 김춘수가 종교적

인 선과 악의 대립을 넘어서 죄와 벌, 인간과 신의 관계 등과 같은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음을 뜻한다. 인간의 본질에

대한 추구는 자연적으로 비루한 육체와는 다른 영혼을 지닌 ‘소냐’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소냐’에게서 죄를 투명하게 비춰주는 거울과

같은 천사의 눈(“천사는 온몸이 눈인데/온몸으로 나를 바라보는/네가 바

로 천사라고,<소냐에게>”)을 읽어낸다.

처자를 버리고 죽을 때까지 방랑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17) “신은 그 천사의 부탁으로 새들이 천사처럼 날아다닐 수 있도록 날개를 달아주

었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그 상황이 신을 더욱 더 불쾌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러

한 감정 상태를 치료하는 데 일만큼 효과적인 것은 없습니다. 사람을 만드는 일

에 몰두하면서 신은 곧 즐거움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그는 천사의 눈을 거울처

럼 앞에 놓고, 그 속에서 자신의 표정을 요모조모 뜯어본 다음, 무릎 위에 올려

놓은 공으로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최초의 얼굴을 만들었습니다.”, Rainer

Maria Rilke, 권세훈 옮김, 「사랑하는 신 이야기 - 신의 두 손에 관한 동화」, 삶의 저편으로, 두 편의 프라하 이야기, 마지막 사람들, 사랑하는 신 이야기, 책세

상, 2000, 315-317쪽.

18) 조유선, 「도스또예프스키 소설 구성의 시학 -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을 중심

으로」, 도스또예프스키 소설 연구, 러시아 시학 연구회 편, 1998, 열린 책들,

288쪽 참조.

19) 김춘수, 꽃과 여우, 1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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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수의 시와 세계관 251

김춘수가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도스토예프스키를 만나기 이전부터 김춘수는 인간 존재

의 본질적인 문제, 즉 ‘나는 누구인가’라는 데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산문을 잘 살펴보면 ‘나는 누구인가’라는 의문에 앞서 ‘~는

누구일까?’라는 존재론적인 의문이 어린 시절부터 있었다.20) 호주 선교

사를 통해 알게 된 천사를 신비한 존재로만 지나치지 않고 호주 선교사

의 아이들과 연관시켜서 보는 것이라든가 그 아이들이 개구리 참외를

먹는 것을 보고 “행주치마를 두른 천사(<유년시詩 1>의 부분)”라는 상

상을 통해 ‘~는 누구일까?’라는 의문에 대한 답을 나름 찾고 있었다. 보

이지 않는 것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보고자 하는 성향은 김춘수가 릴케와

도스토예프스키를 만나기 이전부터 그의 내면에 내재되어 있던 것이라

할 수 있다.

너도 아니고 그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라는데......

꽃인 듯 눈물인 듯 어쩌면 이야기인 듯 누가 그런 얼굴을 하고,

간다 지나간다. 환한 햇빛 속을 손을 흔들며......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라는데, 온통 풀냄새

를 널어놓고 복사꽃을 울려만 놓고,

환한 햇빛 속을 꽃인 듯 눈물인 듯 어쩌면 이야기인 듯 누가 그런 얼

굴을 하고......

<서풍부> 전문21)

이것이 무엇인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그 또 할아버지의 천년 아

니 만년, 눈시울에 눈시울에 실낱같이 돌던 것. 지금은 무덤가에 다소곳

이 돋아나는 이것은 무엇인가?

내가 잠든 머리맡에 실낱 같은 실낱 같은 것. 바람 속에 구름 속에 실

낱 같은 것. 천년 아니 만년, 아버지의 아저씨의 눈시울에 눈시울에 어

느 아침 스며든 실낱 같은 것. 네가 커서 바라보면, 내가 누운 무덤가에

20) 김춘수, 앞의 책, 13-15쪽 참조.

21) 김춘수, 김춘수 시전집, 이후 시는 모두 같은 책에서 인용하며 출처는 생략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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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 한국문학논총 제56집

실낱 같은 것. 죽어서는 무덤가에 다소곳이 돋아나는 몇 포기 들꽃……

이것이 무엇인가? 이것이 무엇인가?

<눈물> 전문

시 <서풍부>는 어린 시절의 김춘수가 천사라는 말에서 느꼈던 모호

함에 의한 신비감이 그대로 묘사되어 있다. “너도 아니고 그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닌 것은 존재하지도 않으면서 부재하지도 않는 것이다. 그

래서 “꽃인 듯도 하고 눈물인 듯”도 하고 그것도 아니라면 어쩌면 실체

없는 허구인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환한 햇빛 속을 손을 흔들며” 간

다. “환한 햇빛 속”을 간다는 것은 그것의 실체가 확연하게 보이는 것

(“손을 흔들며”)을 의미한다. 이것은 보이지 않으면서도 존재하는 어떤

것을 추구하는 김춘수의 수수께끼적인 시작 기법22)으로서 가시적인 대

상과 비가시적인 대상이 결국은 하나일 수 있다는 허무를 나타낸다.23)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면서 풀냄새와 복사꽃 속에서 자신을 변

용하기 때문에 실체를 확인할 수 없다.

시 <눈물>에서 김춘수가 그 실체를 알고자 하는 것은 “실낱 같은 것”

이다. 그것은 시간을 초월하여 무덤가에, 시적 화자가 잠든 머리맡에, 바

람 속에 구름 속에 있다. 무덤은 할아버지의 무덤이자 아버지의 무덤이

며 시적 화자의 무덤이다. “실낱 같은 것”은 죽어서는 무덤가에 몇 포기

들꽃으로 돋아나므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존재한다. 그렇다면 “실낱

같은 것”은 어디에나 있으면서 어디에도 없는 것이 된다. 이러한 허무의

느낌은 김춘수가 어린 시절 천사로부터 받았던 느낌과 같다고 할 수 있

22) 김성리, 앞의 논문 Ⅱ장 1절 참조.

23) “가시는 비가시에 내재하고 비가시는 가시에 내재한다. 서로는 서로 속에 있으

면서 서로 변화한다.” Francois Jullien 지음, 유병태 옮김, 운행과 창조, 케이

시 아카데미, 2003, 119-125쪽. 김춘수 시에서 허무는 텅 빈 정지된 상태가 아니

라 언어로 명료화되기 이전의 상태이자 역동적인 상태이다. 즉 기성관념이나 관

습이 없는 상태로, 시에서만 가능하고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 김준오, 한국현

대쟝르비평론, 문학과 지성사, 1990, 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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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수의 시와 세계관 253

다. 천사라는 존재 양식의 모호성에서 받았던 막연한 느낌은 위의 시에

서 “~인 듯”하기도 하고 “실낱 같은 것”으로 표상되는데,24) 이러한 느

낌은 앤티노미적이다.

어린 시절의 기독교적인 천사에서 릴케의 천사, 그리고 도스토예프스

키의 작품 속에서 발견하는 천사에 이르기까지 일관적으로 공통된 요소

는 앤티노미25)이다. 앤티노미는 모순적이며 이율배반적이어서 비극성을

지님과 동시에 서로 다른 것이 공존하므로 창조성도 지니고 있다.26) 김

춘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을 읽으면서 인간 존재의 양식이 비극적

이라는 것, 다른 말로 앤티노미 상태라는 것을 알고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에서 계시를 받았다고 말한 바 있다. 시인은 현상을 통해 사물을 알

수 있고, 언어로 사물을 명료화하지만 그 본질은 알 수 없다. 어떤 사물

의 존재성을 느낌에도 불구하고 언어로 명료화할 수 없을 때(“~인 듯”,

“실낱 같은 것”) 그 사물의 존재양식은 앤티노미적인 비극성을 띠고 불

가지(不可知)의 대상(“얼굴을 가리운 나의 신부여<꽃을 위한 서시>”)이

24) “모호성을 공식과 정의로는 표현해 낼 수 없고, 형식화하거나 인간이 검증할 수

없는 것이다.” 장파(張法) 지음, 유중하 외 옮김, 동양과 서양, 그리고 미학, 푸른 숲, 2006, 77쪽.

25) “칸트에 따르면 이율배반(Antinomy)이란 이성이 현상을 넘어서 절대에 접근하

려고 할 때 부딪치는 모순을 의미한다.” Elisbeth Clement 외, 이정우 옮김, 철학사전-인물들과 개념들, 동녘, 1996, 238쪽. 칸트는 서로 용납될 수 없는 것이

일치하는 특이한 경우를 이율배반(Antinomy)이라고 말한다. 칸트는 순수이성

비판에서 세계의 시간과 공간, 물질, 인과법칙, 필연적 원인이라는 네 개의 테

마로 이율배반론을 펼친다. 칸트는 이를 통해 이성의 실천적 관심을 위해서는

현상과 자연세계를 넘어서야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율배반의 모순이라고

표현되었던 것은 사실은 모순이 아니라 한 쪽을 위해 다른 한 쪽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을 말하는 것이다. 진은영, 순수이성비판, 이성을 법정에 세우다, 그린비, 2004, 179-186쪽 참조. 김춘수의 시에 나타나는 천사는 기독교적인 천사에

서 시작하여 릴케의 인간적인 천사, 그리고 천사적인 아내로 변용하며 그의 시

세계에서 지향적 체험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변용을 단순하게 이율배반적이라

거나 모순이라는 용어로 단정할 수 없으며, 김춘수가 역사를 초월한 인간존재의

양식을 ‘앤티노미’라고 표현하므로 그대로 차용한다.

26) 고바야시 야스오․후나비키 다케오, 185-187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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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4 한국문학논총 제56집

된다.

세계관은 인간이 세계 속에서 경험하고 느끼는 것에 의해 형성되며,

반대로 그 세계관을 통해 세계를 보고 창조한다. 세계관은 세계 속에서

자신의 삶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반성하게 한다. 따라서 세계관은 근본적으로 인생관과 관련되어 있으며

사고와 행동의 근본 전제이자 삶의 방향을 제시한다. 김춘수가 지닌 내

면적인 특성에 의해 천사는 세계 속에서 그가 처음으로 구체적인 의문

을 가진 대상이었으며, 이 첫 경험이 그가 불가지(不可知)의 세계관27)을

지니게 되는 계기이다. 실제로 보고자 하는 사물의 진리는 숨어 있으며,

구체적으로 아무 것도 드러나지 않는 현실의 허무를 느낀 것이다.28)

김춘수의 불가지론(不可知論)적인 세계관을 형성하는 허무는 텅 빈

것이 아니라 예술을 개념의 지배 아래 복속시킬 수 없음을 의미한다. 개

념의 지배 아래에 있지 않는 예술은 자율성을 가지며 비개념적이므로

인식판단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이때의 예술 작품은 미적 규범이나 그

밖의 규범에 반응하며 자기의 세계를 형성해 나간다.29) 김춘수는 허무

란 자기가 말하고 싶은 대상을 잃게 되는 것이지만 그 대신 보다 넓은

시야가 펼쳐진다고 말한 바 있다. 그리하여 의미가 새로 소생하고 대상

이 새로 소생한다는 것이다.30) 불가지론적인 세계관이 김춘수의 시세계

전체를 가로지르는 일관성을 지니고 창조의 요인이 될 수 있는 것은 기

억이 지닌 순수지속의 힘 때문이다.

지속은 변화함에도 불구하고 자기 동일성을 잃지 않는 것이다. 자기

27) 김춘수가 사물을 인식하는 기본적인 인식론적 입장이 不可知論적이며 이러한

세계관과 그의 시작법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은 엄국현의 논문(시에 있어서의

사물인식-이데올로기와의 관련성을 중심으로, 부산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

문, 1990)과 김성리, 앞의 논문 참조.

28) 진은영, 앞의 책, 86-89쪽 참조.

29) Peter V. Zima, 김태환 편역, 비판적 문학 이론과 미학, 문학과 지성사, 2000,

20쪽, 36쪽 참조.

30) 김춘수, 김춘수 시론전집 Ⅰ, 5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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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수의 시와 세계관 255

동일성을 잃지 않는다는 것은 불변한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이 명제 자

체가 모순임에도 불구하고 변화 속에서 자기 동일성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기억이다. 기억은 타자화하는 운동을 거슬러 올라가 자기 동

일성을 확보하는 본성을 지니고 있다. 타자화하는 과정에서도 변하지 않

는 어떤 지점, 즉 주변의 사물과 혼합되지 않은 그 지점이 순수지속인데

기억은 생명이 지닌 역동성과 창조성에 의해 순수지속을 현재 속으로

끌고 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는 기억에 의해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잠식할 수 있다.31) 김춘수에게 천사에 대한 기억은 순수지속의 한 점으

로서 무의식 속에 내재되어 있다가 릴케와 도스토예프스키의 천사를 만

났을 때 기억의 지평을 넓히면서 앤티노미적인 존재로 다가온다.

릴케의 천사는 풀잎이고

바람이다.

언젠가 그때

밥상다리를 타고 어디론가 가버린 그

바퀴벌레다

겨울에는 봄이고

봄에는 여름이다.

서기 1959년

세모,

릴케의 그 천사가

자음과 모음

서너 개의 음절로 왠지 느닷없이

분해하는 것을 나는 보았다.

<처용단장 3-42> 전문

31) Henri Bergson, 박종원 옮김, 물질과 기억, 아카넷, 2007, 233-242쪽, 310-311

쪽 참조.

Henri Bergson, 최화 옮김, 의식에 직접 주어진 것들에 관한 시론, 아카넷,

2006, 130-132쪽 참조.

최화, 「생명의 능동적 운동-베르크손에게 영혼은 어떻게 움직이는가」, 박찬욱

기획, 김종욱 편집, 마음, 어떻게 움직이는가, 운주사, 2009, 196-221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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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6 한국문학논총 제56집

H2O는 화학용어,

수소와 산소로 분해된다.

다섯 살 나던 해

주님 생일날 아침 나는

교회의 첨탑을 보았다. 첨탑에 꽂힌

은빛 커다란 십자가를 보았다.

거꾸로 매달린

종이 천사를 보았다.

천사의 날개를 보고

천사의 오동통한 허벅지를 보았다.

<제 6번 悲歌> 부분

위의 시에서 천사는 객관적으로 파악되는 대상이 아니다. 시 <처용단

장 3-42>에서 릴케의 천사는 바람이나 풀잎처럼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존재이지만, 어디론가 가 버린 바퀴벌레 같기도 하고 자음과 모음으로

분해되어 사라져 어디에서도 볼 수 없으므로 앤티노미적이다. 이 시에서

천사는 안주하지 못하고 방랑에 가까운 여행을 즐겼던 릴케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지만32) 현존하면서 “보이지 않는 세계의 대변자”33)를 상징

하는 것이기도 하다. 종이 천사는 오동통한 허벅지를 드러낸 채 거꾸로

매달려 있지만 날개를 가진 천사인 것처럼 H2O는 순수한 화학 용어이지

만 현실에서는 물을 의미한다. H2O가 수소와 산소로 분해되는 것은 화

학용어이지 현실에서의 물은 그대로 물인 것이다.34)

앤티노미적인 천사는 시 <천사>에서 ‘처음에는 한 줄기의 빛과 같았

으나 수만 수천만의 빛줄기로 흩어져 바다를 덮고 내 눈에 아지랭이를

끼게 하지만 내 귀는 봄바다가 기슭을 치는 소리를 자주 듣게’ 하는 존

재로 표상된다. 이후 김춘수가 만난 천사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 속

32) Wolfgang Leppmann, 김재혁 옮김, 라이너 마리아 릴케-영혼의 모험가, 책세

상, 1997 참조.

33) 위의 책, 683쪽 참조.

34) 김춘수, 김춘수 전집 3, 문장사, 1983, 88쪽, 154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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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수의 시와 세계관 257

소냐이다.

가도 가도 2월은

2월이다.

제철인가 하여

풀꽃 하나 봉오리를 맺다가

움찔한다.

한번 꿈틀하다가도

제물에 까무러치는

옴스크는 그런 도시다.

지난해 가을에는 낙엽 한 잎

내 발등에 떨어져

내 발을 절게 했다.

누가 제 몸을 가볍다 하는가,

내 친구 셰스토프가 말하더라.

천사는 온몸이 눈인데

온몸으로 나를 바라보는

네가 바로 천사라고,

오늘 낮에는 멧송장개구리 한 마리가

눈을 떴다.

무릎 꿇고

리자 할머니처럼 나도 또 한 번

입맞췄다.

소태 같은 땅, 쓰디쓰다.

시방도 어디서 온몸으로 나를 보는

내 눈인 너,

달이 진다.

그럼,

1871년 2월

아직도 간간이 눈보라치는 옴스크에서

라스코리니코프.

<소냐에게>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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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8 한국문학논총 제56집

시 <소냐에게>서 소냐는 ‘온몸이 눈으로 된 천사’와 동일시된다. 천사

의 온 몸이 눈으로 되어 있다는 것은 천사가 양심이자 빛이라는 것을 의

미하는데, 이는 라스코리니코프의 양심을 비추는 것이 소냐라는 뜻이다.

옴스크는 가도 가도 봄은 오지 않고 2월만 있는 도시이지만 그 도시에

사는 그 어느 누구도 가벼운 존재는 아니다. 인간은 낙엽 한 잎에도 발

을 절룩거릴 정도로 우주 안에서 미약하지만, 영혼은 결코 가볍지 않다.

소태 같은 땅에 입 맞추고, 풀꽃 하나 봉오리 맺지 못하던 옴스크에 봄

이(“오늘 낮에는 멧송장개구리 한 마리가/눈을 떴다.”) 오게 하는 생명력

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힘은 언제나 어느 곳에서나 온몸으로

라스코리니코프를 보는 소냐가 있기에 가능하다. 김춘수는 소냐에게서

새로운 영혼의 생명을 탄생시키는 창조성을 본 것이다.

김춘수에게 천사는 비가시적인 존재이면서 가시적이기도 하고, 서로

융합될 수 없는 것들이 일치하는 특이한 앤티노미적인 대상이었다. 천사

가 지닌 모호성은 김춘수의 존재론적인 물음과 만나 사물의 진리는 숨

어 있으며 보이는 현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불가지(不可知)의 세계관을

형성하는 근원이 된다. 이 세계관이 초기에는 이데아를 추구하는 관념적

인 면을 보인다. 하지만 천상의 존재이면서 인성을 지닌 릴케의 천사와

도스토예프스키 작품 속의 소냐, 그리고 어린 시절 느꼈던 천사에 대한

기억이 융합되어 천사는 지향적 체험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도스토예프

스키의 작품에서 등장인물들이 지니고 있는 앤티노미적인 성격을 접하

면서 인간 존재 양식의 비극성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다음 장에서는 김

춘수의 시와 도스토예프스키 작품과의 연관을 살펴보고, 이 만남이 그의

시와 세계관에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해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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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수의 시와 세계관 259

3. 도스토예프스키와 심리적 진실

어떤 상황이나 대상은 나의 삶과 어떻게 관계 맺는 가에 따라 독특한

힘과 빛깔을 가지게 된다. 김춘수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에서 인간 존

재 양식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은 어린 시절의 천사 기억과 청년기의

감옥 경험 그리고 언제나 존재의 본질을 추구하는 그의 내면적인 특성

이 결합되었기 때문이다. 자기 개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진행되는 자신의

삶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역사와 개인의 관계에 천착하게 된다. 이때 문

제가 되는 것은 역사가 지닌 폭력성에 의해 겪게 되는 개인의 고통이며,

그 고통을 견디는 인간의 한계가 어디까지인가 하는 것이다.

김춘수는 청년기 일본의 감옥 경험에서 육체가 쉽게 한계를 드러낸

상황을 수치로 기억한다.35) 그런데도 김춘수가 어떤 폭력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그 한계를 넘고자 하는 대상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그의 시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36) 이것은 그의 내면세계에서 있었던 갈

등과 고뇌로부터 작품의 모티프들이 나왔음을 말해준다.

불에 달군 인두로

옆구리를 지져 봅니다.

칼로 손톱을 따고

발톱을 따봅니다.

얼마나 견딜까,

저는 저의 상상력의 키를 재봅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그것은

35) “감방이란 희한한 곳이다.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고 자신감을 죽이는 이상으로

재기불능의 상처를 남긴다.” “또 왜떡 하나다. 왜떡은 거의 매일 밤 나타났다.”

김춘수, 꽃과 여우, 190쪽 및 200쪽.

36) 시집 들림, 도스토예프스키 이전의 시인 <집․1>, <우계>, <부다페스트에서

의 소녀의 죽음>, <그 이야기를…>, <처용>, <베꼬니아의 꽃잎처럼이나>,

<성성이>, <못>, <동지 피그넬>, <처용단장 1-10>, <처용단장 3-5> 등과 다

른 시에도 삶을 위태롭게 하는 것에 대한 묘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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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 한국문학논총 제56집

바벨탑의 형이상학,

저는 흔들립니다.

무너져라 무너져라 하고

무너질 때까지,

그러나 어느 한 시인에게 했듯이

늦봄의 퍼런 가시 하나가

저를 찌릅니다. 마침내 저를 죽입니다.

그게 현실입니다.

7할이 물로 된 형이하의 몸뚱어리

이 창피를 어이하오리까

스승님,

자살 직전에

미욱한 제자 키리로프 올림.

<존경하는 스타브로긴 스승님께> 전문

죽음은 형이상학입니다.

형이상학은 형이상학으로 흔듭니다만

죽음을 단 1분도 더 견디지 못합니다.

심장이 터집니다.

저의 심장은 생화학입니다.

억울합니다.

키리로프 다시 올림, 이제

죽음이 주검으로 보입니다.

<추신, 스승님께> 전문

위의 시에서 키리로프는 육체의 고통과 영혼의 극단을 오가며 고뇌한

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악령에서 키리로프는 자신의 의지로 권총

을 머리에 대고 자살한다. 선택의 길목에서 “행동하는 인간은 자신의 의

지를 최후적으로 긍정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절대적으로 인종하는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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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수의 시와 세계관 261

간은 궁극적 단계를 초월한 곳에서 자신의 의지를 주장한다.”37) 만일 인

간에게 바벨탑을 쌓도록 강요한 신이 없다면, 또 인간의 한계인 죽음을

이길 수 있다면 형이상학으로 대변되는 신과 형이하의 육체를 지닌 인

간의 경계를 초월하여 자신이 신이 될 수 있다. 죽음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이 지닌 육체의 고통과 “늦봄의 퍼런 가시”같은 죽음의 공포

38)를 정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춘수와 도스토예프스키는 역사의 시간 속에서 내던져진 자신의 운

명에 복종할 수밖에 없었던 경험이 있다. 이 경험에 의해 “도스토예프스

키는 자신의 창작력 전체를 인간과 그 운명에 바쳤다.”39) 여기에 김춘수

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인물에게 ‘들림’을 경험하는 이유가 있다.

나는 눈부신 태양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금빛 도금을 한 돔이 있는 교

회를 바라다보고 있었다. 그러자 나는 갑자기 그 영롱한 빛들이 내 자신

이 오 분 후면 가게 될 그곳으로부터 나온 것처럼 느껴졌다.

갑자기 한 관리가 손수건을 흔들며 광장을 가로질러 급히 말을 타고

와서 니콜라스 Ⅰ황제의 「황공한 자비」를 발표했다. 그리하여 사형수들

은 사형에서 시베리아 유형으로 감형되었다. 이 몸서리치는 사령집행에

대한 기억은 「결코 잊어버릴 수 없는 하나의 교훈」으로 간주되어진다.

그것은 사실 도스토예프스키에게 있어서는 지울 수 없는 영향을 미쳤

37) John Middleton Murry, 이경식 옮김, 도스토예프스키의 문학과 사상, 서문당,

1980, 145쪽.

38) “어떤 사람들은 「비가」의 테마, 즉 신과 내세에 대한 믿음이 상실된 시대에 인

간 실존의 의미를 찾으려는 릴케의 시도에 매료되었다.” Wolfgang Leppmann,

앞의 책, 561쪽. “전체 10편으로 이루어진 두이노의 비가는 각기 거의 비슷한

주제를 맴도는 연작시 형태이다. 처음 3개의 비가는 사랑의 문제를 제기하면서

천사상과 죽음관을 규명하고자 한다.” 조두환, 라이너 마리아 릴케-고독의 정

원에서 키운 시와 장미, 건국대학교 출판부, 2003, 97쪽. 백혈병을 앓던 릴케가

장미 가시에 찔려 죽었다는 일설이 있지만 정확한 것은 아니다. “어느 한 시인”

과 “늦봄의 퍼런 가시 하나”는 이러한 일설에 의한 묘사로 볼 수도 있겠으나,

필자는 릴케의 시세계에서 느낄 수 있는 인간 실존관과 죽음관에 대한 김춘수

의 경도로 본다.

39) N. Berdyaev, 이경식 역, 도스토예프스키의 세계관, 현대사상사, 1979, 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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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 한국문학논총 제56집

다.40)

나는 아주 초보의 고문에도 견뎌내지 못했다. (중략) 사람에 따라 그

한계의 넓이에 차이가 있겠지만 그 한계를 끝내 뛰어넘을 수는 없을 듯

하다. 한계에 다다르면 육체는 내가 했듯이 손을 번쩍 들어버리거나(실

은 내 경우에는 민감한 상상력 때문에 지레 겁을 먹고 말았지만)까무러

치고 만다.41)

김춘수와 도스토예프스키는 역사가 지닌 시간의 두께 속에서 인간이

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를 인식하는 공통의 경험을 지니고 있지만,

그것을 체화한 문학작품은 다르게 나타난다. 죽음을 눈앞에 둔 도스토예

프스키는 영원의 시간에서 나오는 영롱한 구원의 빛을 보았다. 이 순간

의 경험은 도스토예프스키가 시베리아 옴스크 감옥에서 4년의 유배생활

동안 경험한 절망과 고통과 죽음의 공포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재발견하는 계기가 된다.42) 그리고 그 믿음은 죄와 벌, 악령, 카라

마조프가의 형제들 등의 작품에서 ‘신이 없다면 모든 것이 올바르다’43)

라는 논리를 증명하고자 애쓰는 인물들을 창조하는 원동력이 된다. 신을

부정함으로써 인간의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인물들과 그들의 운명

을 통하여 역으로 신의 존재를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김춘수는 감옥 경험에서 인간의 나약함과 역사를 초월한 인간 존재의

비극성을 인식한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현실과 그 현실을 받아들일 수

40) William Hubben, 장종홍 옮김, 자유로운 영혼을 위하여-우리 시대의 네 예언

자 도스토예프스키, 니이체, 카프카, 키에르케고르, 영학, 1983, 10쪽.

41) 김춘수, 꽃과 여우, 189쪽.

42) William Hubben, 위의 책, 10-14쪽.

“족쇄가 떨어졌다. 나는 그것을 들어올렸다.…나는 그것을 손에 들어올려 마지

막으로 한번 보고 싶었다. 지금까지 그것들이 내 발에 있었다는 것이 새삼 놀라

웠다. (…) 그렇다. 하느님의 은총과 함께! 자유, 새로운 생활, 죽음으로부터의

부활….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순간인가?” 이덕형, 도스토예프스키 판타스마고

리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산책자, 2009, 209쪽에서 재인용.

43) John Middleton Murry, 앞의 책, 47-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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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수의 시와 세계관 263

없는 내적 갈등은 분명 비극이다. 비극적인 시간 속에서 이미 정해진 인

간의 한계를 수용할 수 없을 때 끝없는 회의가 밀려오며 갈등이 극대화

되는데, 이 지점에서 김춘수는 인간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음을 고백하

는 키리로프에게서 상징적인 짐을 지고 있는 인간의 모습을 본다. 소설

악령에서 키리로프는 신이 있다면 모든 것은 신의 의지이지 결코 인

간의 자유의지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신은 죽음에 대한 공

포 때문에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므로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자유의지를

실행한다. 이러한 키리로프에게서 김춘수는 인간과 신의 경계 자체가 무

의미함을 알게 된다.

김춘수가 관심을 가진 또 다른 인물은 스타브로긴이다. 소설 속에서

스타브로긴은 베르호벤스키로 하여금 샤토프를 죽이게 하고 키리로프를

자살로 이끄는 인물이다.44) 샤토프에게는 종교적이며 민족적인 성격의

메시아 사상을 전파하고, 키리로프에게는 반종교적이며 개인주의 사상

의 극점인 ‘인신사상’을 심어준다. 신이 없음을 증명하기 위하여 자살한

키리로프와 달리 스타브로긴은 인간의 한계를 알기 위하여 자신에게도

무차별적인 실험을 한다. 김춘수는 이러한 스타브로긴에게서 자신의 내

면에 잠재해 있는 선을 부정하고 완벽한 악을 구현하고자 하는 위악성

44) 이들이 등장하는 작품 악령은 러시아의 역사적인 사실을 기초로 하여 창작되

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자신을 스텐카 라진이나 푸가초라고 생각한 잔인한 혁

명가 네차예프를 모델로 악령을 집필한다. 네차예프가 살해한 이바노프는 자

신의 처남과 같은 학교의 학생이며 처남도 잘 알고 있던 사이라 처남이 들려주

는 학생들의 일반적인 생활과 정서 등을 귀담아 들었다. 특히 처남도 잘 알고

있던 이바노프에 대해서도. 결국 이바노프는 베르호벤스키에게 살해되는 신학

생 샤토프로 분장한다. 네차예프는 포트르 베르호벤스키로.” 이덕형 앞의 책,

340쪽.

도스토예프스키의 서신에 의하면 악령을 집필할 당시에는 베르호벤스키를 주

인공으로 생각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스타브로긴에게 스스로 매료되어 작품

전체를 다시 고쳐 쓰게 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John Middleton Murry, 앞의 책,

173-176쪽 참조. 작품 속에서 그 도시의 사람들은 이유 없는 불안을 느끼며 스

타브로긴을 미워하며 두려워하고 증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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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4 한국문학논총 제56집

을 본다.

샤토프는 네가 죽이지 않았다.

죽일 수도 없었다.

샤토프는 너로부터

너무 멀리 가 있었다.

샤토프는 말하자면 공자 다음가는

아성亞聖이다.

너는 겨우 네 발등에다

불을 놨을 뿐이다.

너는 개똥을 수집, 약을 쑨다 했지만

개똥은 개똥이다. 온 거리에

구린내만 분분하다.

너는 타고난 넙치눈이,

나를 보지 못한다.

말해 줄까,

날개에 산홋빛 발톱을 단

archaeopteryx라고 하는

나는 쥐라기의 새, 유라시안들은 나를 악령이라고도 한다.

내가 누군지 알고 싶어

거웃 한 올 채 나지 않은

나는

내 누이를 범했다. 그

산홋빛 발톱으로,

흑해 바닷가 별장에서

스타브로긴 백작.

<소치小癡 베르호벤스키에게> 전문.

베르호벤스키가 샤토프를 죽이지만 그건 육체의 죽음일 뿐이다. 샤토

프의 정신은 이미 공자 다음가는 아성(亞聖)이기 때문에 넙치눈이 베르

호벤스키가 샤토프를 죽여도 변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정신을 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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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수의 시와 세계관 265

이지 못하는 변화는 오히려 삶을 구차하게 만들 뿐이다.(“너는 겨우 네

발등에다/불을 놨을 뿐이다.)” 이러한 사실을 스타브로긴은 알고 있었지

만, 베르호벤스키는 몰랐다. 왜냐하면 김춘수가 보는 베르호벤스키는 이

상과 현실을 정확하게 볼 수 없는 타고난 넙치눈이기 때문이다. 베르호

벤스키가 꿈꾸었던 혁명은 “세상은 하얗게 얼룩이 지고/무릎이 시(<혁

명>)”리게 하는 것이므로 현실을 바꿀 수 없는데도 개똥을 수집하여 약

으로 쓰겠다는 이상만을 쫓는다.(“너는 너 혼자 너무 멀리 달아났구나,/

베르호벤스키, 너/넙치눈이”<혁명>)

김춘수는 시에서 스타브로긴을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한 양가성을 지

닌 인물로 묘사한다. 왜냐하면 단지 자신이 누군지 알고 싶어 산홋빛 발

톱으로 누이를 범하는 스타브로긴은 선이 상실된 악의 근원이지만, “나

는 번데기일까, 키리로프/ 그는/나를 잘못 보았다. (<악령>)”라며 자기

의 정체성에 의문을 가지기 때문이다. “Besy,/유라시안인들은 나를 그렇

게 부른다./얼마나 사랑스러운가,/물오리 이름 같다.(<악령>)”라며 자기

애를 드러내기도 하고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없어(“나는 지금 후설의

그/귀가 쭈뼛한 괄호 안에 있다./지금은 눈앞이 훤한 어둠이다.<악령>”)

고뇌하기도 한다. 스타브로긴의 고뇌는 그의 내면에 아직도 인간의 선함

이 남아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고뇌한다는 것은 윤리적인 문

제이며, 그것은 곧 선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 중에서 유독 김춘수가 역사의 폭력성에 관심

을 가지는 것은 그 폭력 앞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인간 정신의 나약함을

경험했기 때문이다.45) 특히 배고픔 앞에서 무너지는 자존심은 존재 본능

의 내밀한 곳을 건드리므로 비열하고 비굴한 기억으로 남는다. 이러한 과

거 경험을 기억하고 있는 한, 그 경험은 여전히 자신 스스로에게 대항하

45) 김춘수에게 악은 선과 함께 윤리적인 문제였다. 김춘수는 경험에 의해 역사가 상

대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데올로기라는 탈을 쓰고 인간 존엄성을 훼손하는 폭력

적인 것, 즉 악으로 본다. 김춘수, 김춘수 시론전집 Ⅱ, 현대문학, 2004, 149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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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6 한국문학논총 제56집

여 나타난다. 왜냐하면 일생 동안 잊혀지지 않는 기억은 그 자체가 어떤

지향을 지니고 있는 것이며, 그 지향은 의식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나는 아주 간단한 초보적인 고문에도 견뎌내지 못했다. 나의 상상력

때문이다. 지레 겁을 먹곤 했다. 결국은 하지 않은 일도 한 것처럼 불고

말았다. 나는 거의 절망적인 굴욕감을 안게 됐다. 내가 가지고 있는 내

머리 속의 어줍잖은 생각 같은 것은 아무 것도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절실해졌고 이념이 어떤 절박한 현실을 감당해 낼 수 없다는 것을 뼈저

리게 느끼게 됐다. 아니 실지로 체험하게 됐다.46)

내 담당 형사는 나와 노인을 거기 둔 채로 한동안 자리를 비워줬다.

무슨 뜻인지 나는 헤아리지 못했으나 무슨 뜻이 있지 않았나 싶었다. 나

는 이쪽에서 저만치 앉은 노인을 정면으로 마주 쏘아보게 됐다. 눈이 그

쪽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굶주린 내 창자는 내 후각과 함께 자동적으로

그쪽으로 쏠리고 있었다. 나는 뚫어져라 노인을 쏘아보고 있었으리라.

그러나 그는 나로부터 의식적으로 시선을 피하면서 빵 두 개를 다 먹어

치웠다. 끝내 나를 바로 보지 않았다.47)

도스토예프스키는 프로이트의 몰가치의 세계, 즉 과학적 허무의 세계

와는 전연 다른 위치에 있다. 그는 선과 악을 가치관의 차원에서 보고

있다. 선과 악은 갈등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 악을 압도해야 한다

고 그는 가치관, 즉 이념의 차원에서 말하려고 한다. (중략) 도스토예프

스키에게는 고뇌하는 자의 복잡 미묘한 정서적 뉘앙스가 도처에 배어

있다.48)

김춘수가 절망하는 이유는 현실 앞에서 인간은 너무나 나약한 존재라

는 데에 있다. 인간이 나약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념이 현실(역사)을

견뎌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김춘수는 자신의 경험에서 현실에 반응하여

46) 김춘수, 김춘수 시전집, 1100쪽.

47) 김춘수, 꽃과 여우, 191쪽.

48) 김춘수 시전집, 8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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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수의 시와 세계관 267

인간을 움직이는 것은 이념이 아니라 감성이라는 사실을 절실하게 느낀

다. 감성은 나의 이성적인 의지와는 관계없이 현재의 고통스러운 상황에

서 벗어나고자 한다. 이러한 굴욕적이고 부끄러운 경험에 의해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자신의 육체를 속박하고 정신을 억압하는 근원이 역

사이며 악이라는 사상은 그의 문학으로 현현한다.49) 이때 그의 “문학의

대상은 인식의 대상으로 있는 따위의 현실이 아니고, 삶에서 어떤 관계

를 맺고 성립되는 나 자신과 사물들의 존재다.”50)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자신의 심리변화, 자신의 의지로는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던 상황, 일본인 교수, 자신의 자존심을 굴복시켰던 왜떡

한 조각 같은 경험들과 도스토예프스키 작품 속 인물들에 의한 ‘들림’으

로 김춘수는 삶의 가치를 새롭게 정립하게 된다.51) 즉 실제 현실과 김춘

수가 심리적으로 느끼는 상태가 달랐기 때문에 심리적 진실52)을 추구하

49) “예술은 그 자신의 현실 부정성과 고통스런 현실을 동일시함으로써 구체적이고

체험적으로 고통을 표현할 수 있다.” 이종하, 아도르노 고통의 해석학, 살림,

2007, 69쪽.

50) Wilhelm Dilthey, 한일섭 역, 체험과 문학, 중앙일보, 1979, 15쪽.

51) 최라영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시적 변용에 관한 연구」에서 김춘수는 “들림, 도스

토예프스키”라는 제목의 의미를 도스토예프스키 작품 속 인물들의 말을 김춘수

가 엿듣는 것으로 해석하고 다성성에 주목한다. 그러나 필자는 “들림”의 의미를

엿듣는다는 청각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김춘수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 속 인

물들에게 무당처럼 사로잡혀 있으며, 마치 도스토예프스키 작품 속의 인물들이

하는 말을 무당처럼 대신하는 형식을 취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해석

한다. 즉, 도스토예프스키의 작중 인물들은 김춘수의 가면인 셈이다.

52) 김춘수는 체감은 되지 않으나 심적으로 느낄 수 있고, 드러나지 않으나 은폐된

채 존재하는 것을 <心情>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김춘수, 김춘수 전집 3 수필, 문장, 1983, 109쪽. 또 역사 그 자체를 심판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보지 않고 영

원을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일월의 교체에서 춘하추동의 이동에서 자연의 명암

을 보고, 우리의 심리 상태는 언제나 식물의 생리를 닮고 있어야 새봄에는 새로

운 힘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같은 책, 162쪽. 실제 현실에서 일어나는 여러 사

건이나 현상은 김춘수가 느끼는 내면적인 상황과 일치되지 않았다. 즉 말로 표

현할 수 없지만 현실의 상황과는 다르게 느껴지는 정신적인 체험은 절대 자유

를 누리려고 하는 시인에게 이성과 감성의 틈을 절감하게 한다. 이러한 틈을 메

우기 위하여 김춘수는 새봄에는 새로운 힘을 찾듯이 현실에 가려져 은폐된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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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8 한국문학논총 제56집

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김춘수가 생각하는 “역사”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며 무엇을 의미할까. ‘인간이 역사를 심판해야 한다’라는 말을 어떻

게 해석해야 할까.

즈메르자코프는

네 속에도 있었다.

아버지는 내가 죽였다고

너는 외쳐댔다.

얼마나 후련했나,

그것이 역사다.

소냐와 같은 천사를 누가 낳았나,

구르센카, 그 화냥년은 또 누가 낳았나,

아료샤는 밤을 모른다.

해만 쫓는 삼사월 꽃밭이다.

저만치

얼룩암소가 새끼를 낳는다.

올해 겨울은 그 언저리에만

눈이 온다.

그것이 역사다.

너는 드미트리가 아닌가, 아직도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는

네 나날은 신명나는

배뱅이굿이다. 그리고

즈메르자코프,

그는 이제 네 속에서 죽고 멀지 않아

너는 구원된다.

변두리 작은 승원에서

조시마 장로.

<드미트리에게> 전문

실을 시를 통하여 추구했는데, 본고에서는 이것을 ‘심리적 진실’로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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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수의 시와 세계관 269

구름은 딸기밭에 가서 딸기를 몇 따 먹고

흰 보자기를 펴더니

양털 같기도 하고 무슨 헝겊쪽 같기도 한

그런 것들을 풀어놓고

히죽이 웃어보기도 하고 혼자서 깔깔깔 웃어보기도 하고

목욕이나 할까 화장이나 할까 하며

제가 진짜 구름이나 될 듯이

멀리 우스리 강으로 내려간다.

무릎 꿇고 요즘도

땅에 입맞추는 리자 할머니는

올해 나이 몇 살이나 됐을까.

<역사> 전문

역사는 인간의 삶의 방식에 관심이 없다. 드미트리가 즈메르자코프의

죄를 대신하여 감옥으로 가는 것도 역사이며, 천사 같은 소냐가 있는가

하면,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서 살부 의식을 부추기는 구르센카 같은 화

냥년도 있는 게 역사이다. 인간사의 이면을 알지 못하고 신의 말씀만 쫓

는 아료사도 있으며, 인간과 더불어 얼룩 암소가 생명을 이어가는 것도

역사이다. 이 모든 것이 시간(역사)의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지지만, “올

해 겨울은 그 언저리에만 눈이 오”듯이 “저만치 한데서 비가 비에 젖

(<변두리 작은 승원僧院>)”듯이 역사는 인간사 가운데에 결코 들어오지

않는다. 역사는 인간사에 관심이 없으면서도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인간

사를 헝클어 놓기도 하고 헤집기도 하면서 인간들의 삶의 터전 위에서

놀고 있다. 그리고 실제 없으면서 마치 있는 것처럼 위선적인 행동을 한

다.

김춘수가 보는 “역사란 극단적으로 말하면 아무 데도 없다. 그러나 있

는 것처럼 대접해야 현실이 유지된다. 랑케는 역사를 사실이라고 했지만

사실의 온전한 모습은 인간의 능력으로는 파악이 안 된다.”53) 아무 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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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 한국문학논총 제56집

없지만 있는 것처럼 대접해야 한다는 것은 ‘반드시 그러한 것이 있음을

의미한다. 이를 존재론적인 차원에서 본다면 필연이라고 말할 수 있

다.54) 김춘수는 시 <드미트리>와 <역사>에서 역사를 부정할 수 없는

사실로 받아들이지만, 인간의 능력으로는 증명할 수 없기에 역사 속의

인간은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며 배뱅이굿 판 같은 삶을 산다고 말

한다. 역사의 필연 속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며 살아야하는 개별적인 인간

의 삶은 역사와 융화될 수 없는 우연의 연속이기 때문이다.55) 따라서 인

간의 입장에서 역사는 불가지(不可知)한 차원에 속하는데, 개인에게 동

일(同一)할 것을 요구하므로 역사는 폭력이며 위선이다.56)

김춘수는 시 <드미트리에게>와 <역사>에서 역사의 위선을 비틀고

나서 “우연은 아직 한 번도 없었다. 고,(<티모파이 노인이 노래하며 이

승을 떠났다>)” 말하면서 인간의 세계에서 신의 세계로 나아갔던 예수

에게 “왜 또 오셨소?/이미 당신은/역사에 말뚝을 박지 않았소?(<대심문

관>)”라는 질문을 던진다. 김춘수는 “이승에는/이승의 저울이 있소(<대

심문관>)”라는 대심문관의 말을 통하여 이제 역사가 더 이상 인간을 심

판할 수 없음을 강조한다. “엘리엘리라마사막다니,/그건/당신이 하느님

을 찬미한 이승에서의/당신의 마지막 소리였소./내 울대에서는 그런 소

리가 나오지 않아요.(<대심문관>)”라는 대심문관의 마지막 말에 예수는

사동의 꿈에서 ‘산홋빛 나는 애벌레 한 마리가 되어 날개도 없이 하늘로

날아오른다.’ 이 부분을 김춘수는 “사동의 이 부분은 슬라이드로 보여주

면 되리라.(<대심문관>)”라는 지문으로 자세하게 설명한다.

이러한 설명은 인간의 “죄는/피와 살을 소금에 절인/그 어떤 젓갈

53) 김춘수, 김춘수 시전집, 1101쪽.

54) “존재적인 차원에서 본다면 필연은 반드시 그러한 것이 있음을 의미한다. 우연

이란 우연히 그러한 것이 있다는 뜻이다.” 쿠키슈우조우(九鬼周造), 김성룡 옮

김, 우연이란 무엇인가, 이회, 2000, 163쪽.

55) Slavoj zizek, 박정수 옮김,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 인간사

랑, 2007, 316-322쪽 참조.

56) 위의 책, 10-15쪽 및 160-164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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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수의 시와 세계관 271

(<나타샤에게>)”처럼 오랜 시간 동안 인간의 내면에서 곰삭으며 형성되

지만, 그것은 인간의 문제일 뿐 “역사는 처음부터 있지도 않았다고/한

번 더 알려주려고(<대심문관>)” 예수가 왔음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즉

인간이 역사를 심판해야 한다는 김춘수의 사상은 인간은 역사가 지닌

필연적인 규범으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춘수는 시간과 공

간을 초월하여 인간 정신의 완전한 자유를 꿈꾸고 영원을 꿈꾸었던 것

이다. 그가 절대 자유, 완전한 자유를 추구하는 것은 그가 시인이기 때문

이다. “시인이란 절대 자유를 누리려고 하는 존재다. 그리고 그런 자유

는 현실에는 없다고 깨닫고 있으면서도 심리적으로 추구한다. 그런 상태

를 깊이깊이 의식으로 간직하고”57) 있기 때문에 시를 통하여 절대 자유

를 표상하는데, 그것이 심리적 진실이다.

작가의 세계관이란 세계의 깊은 본질에 대한 직관적인 통찰, 생(生)과

우주 속에서 독창적으로 발견한 그 어떤 것58)이므로 심적 대상과 연관

된다. “심적 대상에 대한 모든 앎은 체험에 기초하고 있다. 일단 체험은

‘태도방식’과 ‘내용’들의 구조적 통일체다.”59) 감옥경험에서 얻게 된 김춘

수의 내면 갈등은 하나의 체험으로 작용하여 천사의 모호성에서 비롯된

불가지론적 세계관을 시를 통하여 극복하고자 하는 계기가 된다. 김춘수

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에서 ‘들림’을 경험하는 것은 역사의 폭력을

공유했기 때문이다. 이때 중요하게 작용한 것은 주체인 김춘수의 내밀한

정신세계이다. 즉 같은 경험을 공유하더라도 도스토예프스키와 달리 김

춘수는 역사의 폭력을 신의 뜻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김춘수는 역사와 인간의 문제를 전체 삶의 연관이라는 측면에서 보고

자 했다. 어떤 시각, 어떤 지점에 있었던 개별적인 존재가 우연히 경험하

57) 김춘수, 「왜 나는 시인인가」, 남진우 엮음, 왜 나는 시인인가, 현대문학, 2005,

418쪽.

58) N. Berdyaev, 앞의 책, 11쪽.

59) Wilhelm Dilthey, 김창래 옮김, 정신과학에서의 역사적 세계의 건립, 아카넷,

2009, 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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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2 한국문학논총 제56집

게 되는 사건이 전체 삶에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경험했기 때문에 심리

적 진실을 추구함으로써 자신의 현존재성을 탐색했다. 이러한 현존재 탐

색은 끊임없는 반성을 통해 가능하다. 다음 장에서는 김춘수가 자신의

현존재성을 정립하는 반성의 과정을 해명할 것이다.

4. 역사를 넘어 시로

김춘수가 역사라는 실체를 정면으로 주시한 것은 처용단장이후로

보인다. 그 이전에는 역사자체보다 그 역사의 목적을 수행했던 개인에게

서 위악성(“식민지반도출신고학생헌병 보補야스다ヤスタ모의뒤통수에

박힌눈 개라고부르는인간의두개의 눈(<처용단장 3부 5>”)을 찾고자 했

다. 이후 자신의 삶을 반추하며 그 삶을 시로 현현하고자 했던 김춘수가

불가지의 실체를 역사로 보게 된 것은 체험에 의해 진실은 은폐되어 있

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김춘수가 어린 시절이나 감옥 경험에 대하여

많은 산문을 남기고 있으며, 그 산문의 내용들이 시의 모티프가 되고 있

다는 것이 이를 말해 준다.

현실에서는 논리적으로 안 되는 것을 되는 것처럼 처신해야 할 때가

있다. 그래야 사회가 유지된다. 이를테면 역사가 그런 것이다. 나의 논리

와 나의 내면은 오랫동안 갈등 상태에 있었다. 이 상태를 나는 인간 존

재의 비극성이라고 인식하게 됐다. 그러나 거듭 말하지만 현실을 이런

모양으로 살 수는 없다. 역사도 진보도 때로 있는 것처럼 살아야 한다.

이 또한 모순이요 비극이다. 나의 문학(시)은 나의 내면의 기록이기 때

문에 이런 상태를 무시하지 못한다.60)

“논리적으로 안 되는 것을 되는 것처럼 처신”하는 것에서 논리와 내면

60) 김춘수, 김춘수 시전집, 11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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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수의 시와 세계관 273

이 갈등했다는 것은 이성과 감성이 모순의 관계에 있다는 뜻이다. 김춘

수는 갈등 끝에 비록 모순이고 비극일지라도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살

아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한다.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하기 위해서는 일

종의 유토피아를 생성해야 하는데, 시가 그것이었다. 김춘수에게 시는

현실적 존재와는 무관하면서 현실이 현현할 수 있는 것으로써 자신의

삶을 나타내는 기표가 된다. 그렇다면 김춘수가 이성과 감성의 갈등 끝

에 도달한 시는 어떤 것일까?

개는 개집을 나와 저잣거리에서 흘레붙고

이성은

방문 처닫고 이불 쓰고 소리 새지 않게

베개를 함께한다.

이성은

갓끈을 아무 데서나 매지 않고

남의 앵두 밭에는 가지도 않는다.

이성은

22의 4는 사死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러나

어디서 누가 죽건 살건 그건 다 남의 일

나와는 상관없다.

오늘 내 하루는

볕 바른 툇마루에 의자를 내놓고

아내가 달인 따끈한 차 한 잔

맛있게 먹고 싶은 생각뿐,

<수기手記의 사족> 전문

이성은 인간을 동물과 구분하는 하나의 척도이다. 개는 이성이 없기에

남의 시선에 상관없이 본능의 자유를 즐기지만, 이성은 타인의 시선을

경계하여 생각과 행동에 규율과 질서를 부여한다. 이성이 “22의 사는 사

死라고 말하”는 것은 “이성에 대한 신념의 붕괴”61)를 뜻한다. 도스토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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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4 한국문학논총 제56집

프스키는 지하생활자의 수기에서 ‘2×2 =4’를 합리적인 이성의 상징으

로 표현한다. 김춘수는 이 대목을 패러디하여 22의 사는 사死, 즉 죽은

것이므로 틀렸다고 표현한 것이다. 이성은 규범이나 질서에서 벗어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성을 믿는 것은 인간의 내밀한 욕구마저 부정

하거나 감추어야 하는 것이므로 감성적으로는 죽은 것이나 같다는 의미

로도 해석할 수 있다.

‘2×2=4’라는 도식은 수학적이나 과학적으로는 맞는 도식이지만, 인간

의 삶이나 세계는 이와 같이 딱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 이성의 합리성

뒤에 도사린 불합리성은 역사의 위악성과 같다. 그러나 김춘수에게 개가

저자거리에서 흘레붙건 인간이 자신의 삶을 규제하든 그건 이제 자신과

는 상관없는 일이다. 김춘수가 이성과 감성의 대립에서 벗어나 도달한

곳은 “아내가 달인 따끈한 차 한 잔”이 있는 생활의 여유이다. 김춘수가

원하는 차 한 잔의 여유는 규율과 질서로부터 초월하는 자유이다. 자신

의 삶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삶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어디서 누가 죽건 살건 그건 다 남의 일”이라서 “나와는

상관없다”는 말은 역사와 개인, 이성과 감성 같은 대립에서 벗어나 자신

의 삶을 오롯이 돌아보는 것이다.

이러한 관조적인 삶의 자세가 이성과 감성의 치열한 갈등 끝에 온 것

이지만, 자신의 경험에 의해 “저승에도 이처럼 구원은 없다./없는 것이

차라리 구원이다.(<처용단장 제 4부17>)”라는 깨달음 뒤에 온 것이기도

하다. 시 <사족-직설적으로 간략하게>에서 스스로 “의식도 영혼도 다

61) Edmund Husseerl 지음, 이종훈 옮김, 유럽학문의 위기와 선험적 현상학, 한길

사, 2007, 74쪽.

철학 일부에서는 근대인에게서 비롯된 형이상학 가능성에 대한 신념의 붕괴가

이성에 대한 신념의 붕괴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성에 대한 신념이 상실

한다면 자기 자신에 대한 신념도 상실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철학에 의해

이성에 대한 회의론도 나타나는데, 이 회의론은 이성과 이성의 신념에 대해 아

무 것도 발견할 수 없다는 사실적으로 체험된 세계 즉 현실적 경험세계의 권리

를 부단히 주장한다. 같은 책, 72-76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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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수의 시와 세계관 275

비우고/나는 돼지가 될 수 있”으며 “죽음을 이길 수 있”지만 “스승이 없

다”는 말로 자신의 한계를 나타낸다. 김춘수가 감옥에서 굶주림으로 인

하여 경험한 것은 의식도 영혼도 없는 비굴함과 부끄러움이었으므로 현

존재의 한계인 죽음마저 초월할 수 있지만,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길을

찾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스승이 없다”는 고백은 한계에 대한 인정

이자 또 다른 가능성으로 나아가는 길목이 된다. 그것은 존재의 본래성

을 되찾고자 하는 시도에서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현존재의 존재를 규정하기 위해서는 현존재의 전체성을 획득해야 하

는데, 전체성은 한계를 통해 규정된다.62) 죽음이 그 한계이지만, 김춘수

에게는 불가지(不可知)로 다가온 역사의 공리성도 한계였다. “인간은 공

리성에 갇혀 있으므로 해방되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데, 거기에 시가 있

다. 따라서 시는 심리적으로 해방이 되어야 하는데, 이것이 인간의 한계

성 때문에 현실로는 불가능하므로 하나의 동경이 된다.”63) 그래서 이성

도 감성도 인간의 한계인 죽음도 없는 것이 구원이라는 자각에 도달하

게 되고, “사상과 역사를 믿지 않(<말의 날갯짓>)”게 된다. 비로소 자신

의 삶의 현현인 “시는 침묵으로 가는 울림이요 그 자국이(<폼을 줄이

게>)” 되는 것이다. “침묵”은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텅 빈 공간이다.

그 공간으로 가는 울림이자 자국이라는 것은 그의 삶에서 시가 존재의

의미라는 뜻이다.

그가 시를 통하여 볕바른 툇마루에 앉아 따끈한 차 한 잔 마시는 여유

를 찾는 데에 아내는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

아시겠지만 이 땅에는

교회의 종소리에도 아낙들 물동이에도

식탁보를 젖히면 거기에도

62) Martin Heidegger, 김재철 옮김, 빌헬름 딜타이의 탐구작업과 역사적 세계관, 누멘, 2010, 63쪽 참조.

63) 김춘수, 김춘수 시전집, 11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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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6 한국문학논총 제56집

천사가 있습니다. 서열에는 끼지 않는

천사가 있습니다.

<치혼 승정僧正님께> 부분

고양이가 햇살을 깔고 눕듯이

취설吹雪이 지나가야

인동잎이 인동잎이 되듯이

천사란 말 대신 나에게는

여보란 말이 있었구나,

<두 개의 정물 Ⅰ> 부분

여보, 하는 소리에는

서열이 없다.

서열보다 더 아련하고 더 그윽한

구배가 있다. 조심조심

나는 발을 디딘다, 아니

발을 놓는다.

( … )

여보, 하는 그 소리

그 소리 들으면 어디서

낯선 천사 한 분이 나에게로 오는 듯한

<제 1번 비가悲歌> 부분

위의 시들에서 아내와 동일시 된 천사는 서열이 없다. 서열이 없다는

말은 질서와 규범에서 벗어난 자유로움이자 정서적인 친밀감을 나타낸

다. 김춘수의 삶 가운데에는 아내가 있듯이 서열이 없는 천사는 일정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인간들의 삶 가운데에 있다. 그래서 천사 대신 부르

는 ‘여보’ 소리에는 더 아련하고 더 그윽하면서도 신선한 정감이 있다.

인간화 된 ‘천사’와 천사화 된 ‘여보’는 인간의 삶 가운데에 있다는 공통

점을 지니고 있는데, 그것은 김춘수가 오랜 시간 찾고자 했던 것이 ‘인간

적 삶의 의미’였음을 말해준다. “인간적 삶의 의미에 대한 물음은 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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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수의 시와 세계관 277

아닌 존재의 본래적인 의미와 ‘인간적 삶의 현실성’에 대한 물음이다.”64)

김춘수는 이러한 물음을 통하여 자신이 경험했던 일과 일상과의 관계

에서 삶의 가치를 찾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현실에서 경험했던 것들의

가치는 원래 지니고 있던 가치와 다르게 나타난다. 그 이유는 김춘수가

언제나 자신의 화두에 대한 답을 찾고자 했으며 이러한 내면의식을 자

신의 삶의 뜻으로서 시에 나타냈기 때문이다.65) 김춘수가 시에서 제시

한 것은 자신의 경험, 즉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삶

의 뜻으로서 자신의 존재와 연관한 것이다. 현존재로서 자신의 본래성을

찾고자 하는 정신은 아내가 천사였음을 인식하기 이전에 도스토예프스

키의 죄와 벌에 나오는 소냐를 “천사는 온몸이 눈인데/온몸으로 나를

바라보는/네가 바로 천사라고(<소냐에게>)” 인식한다.

시 <나타샤에게>에서 김춘수는 “몸을 팔고도 왜 소냐는/천사가 됐는

가”라는 물음에 “치통에도 쾌락이 있다”는 것을 “마차바퀴에 몸을 던져

보니 알겠더라”라는 말로 답을 대신한다. 삶의 한가운데에 들어와 보니

이 세상에는 고통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새로운 사실을 소냐를 통해 알

게 된 것이다. 소냐는 몸을 팔아야 하는 고통을 승화시켜 영혼을 구원하

는 불빛이 되었기 때문이다. 김춘수는 자신의 내면에 천사가 있어서 자

신을 보고 있다고 말한다.66) 자신을 스스로 들여다보는 것은 자기 자신

이 내면의 타자로서 거울과 같은 양심67)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김춘수

가 현존재로서 자신의 본래성을 찾기 위하여 언제나 깨어 있었음을 의

64) Martin Heidegger, 앞의 책, 95쪽.

65) “나 자신과 나의 상황, 내 주변의 인간과 사물에서의 이런 삶의 내용은 그것들

의 삶의 가치를 형성하고, 이 가치는 그것들이 작용을 해서 지니게 되는 가치와

는 다르다. 그리고 다름 아닌 바로 이것이 문학이 제일 먼저 보여주는 것이다.”

Wilhelm Dilthey, 체험과 문학, 15쪽. 시인은 자신이 삶의 과정에서 체험했던

것을 시작과정에서 다시 체험하게 된다. 이때 삶의 의미는 삶 자체에서 성립되

는 여러 관계들의 연관에 의해 새로운 의미가 부여되는데, 그 새로운 의미는 시

인의 시에서 찾을 수 있다.

66) 김춘수, 꽃과 여우, 104쪽.

67) 이에 관하여서는 김성리, 앞의 논문, Ⅳ장 2절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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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8 한국문학논총 제56집

미한다. 그러므로 소냐가 온몸이 눈인 천사이듯 아내는 날개를 내려놓은

천사(“돌벤치 위/그가 놓고 간 두 쪽의 희디흰 날개를 본다.<명일동 천

사의 시>”)로 다가온 것이다.

자신의 본래성을 생활 속에서 찾은 김춘수는 역사의 바깥에서 자신을

정면으로 바라본다.

겨울이 다 가고 새봄에 춘니春泥가 오면

울고 싶도록 그는 발이 젖는다.

역사가 어디 있나,

정몽주는 거기 있는데

송화강 건너간 그날의 그는

왜 아직도 소식이 없나,

너무 오래됐구나,

말 타고 칼 찬 사람들 보자 옥사한

금자문자金子文子가 생각났던 그 시절, 어느새

그의 등마루는 으깨지고

그는 시방 계절 밖에 나가 있다.

거기는 피고 지는 꽃도 없다.

<어떤 자화상> 전문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면 땅이 녹아서 진창이 되듯이 역사는 그 형체가

분명하지 않다. 그때 온 마음을 다해 그 변화의 느낌을 받아들이면 역사

를 거부하거나 부정했던 사람들이 생각난다. 그 시점에서 “그”는 “그의

등마루가 으깨지”는 아픔 끝에 계절 밖에 나가 있다. 계절 밖은 시간이

멈춘 곳이다. 시간이 멈춘 곳에 역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 시

에서 시간은 춘니春泥에 발이 흠뻑 젖는 현실에서 과거로, 그리고 무시

간으로 이어진다. 현재의 시간에서 무시간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김춘수

의 경험적 시간이 물리적 시간을 초월하여 시간 밖에 있다는 것을 의미

한다.68) 자신의 존재를 의식으로, 사유로, 언어로 완전히 통제하거나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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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수의 시와 세계관 279

정할 수 있는 인간은 없다. 그렇지 않다면 인간은 완전한 내재적 존재이

며 이성에 종속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69) 따라서 인간에게는 언제나

바깥이 열려 있지만, 이 시에서 그 바깥은 피고 지는 꽃도 없는 곳이다.

김춘수의 의식은 역사를 현재 속의 과거로 두는 것이 아니라 시간 바깥

에 두고 있는 것이다.

누군 인생을

커피 스푼으로 되질했다고 한다.

누군 또 인생을

위대한 요리사가 친

한술의 소금이라고 한다.

라디오는 오늘 아침

상해上海는 쾌청

레닌그라드는 눈보라가

으루나무가지를 분질렀다고 한다.

한 시인은 조찬朝餐의 수저를 놓고

장미나무 가시에 찔린

피가 안 멎는 자기의 별난 죽음을

저만치 유심히 바라본다.

<어느 날 아침> 전문

3할은 알아듣게

아니 7할은 알아듣게 그렇게

말을 해가다가 어딘가

얼른 눈치 채지 못하게

살짝 묶어두게

(…)

절대로 잊지 말 것

68) Hans Meyerhoff, 김준오 옮김, 문학과 시간현상학, 삼영사, 1987, 80쪽 참조.

69) 박준상, 바깥에서-모리스 블랑쇼의 문학과 철학, 인간사랑, 2006, 128-130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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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0 한국문학논총 제56집

넌 지금 거울 앞에 있다는

인식

거울이 널 보고 있다는 그

인식

나를 예까지 오게 한 것은

어쩜 어머니가 어릴 때 가끔 들려준

무말랭이 같은 오이지 같은

그 속담 몇 쪽일는지도 모른다.

그럭저럭 내 시에는 아무것도 다 없어지고

말의 날갯짓만 남게 됐다.

왠지 시원하고 왠지 서운하다.

<시인> 부분

시에는 눈이 있다.

언제나 이쪽은 보지 않고 저쪽

보이지 않는 그쪽만 본다.

가고 있는 사람의 발자국은 보지 않고

돌에 박힌

가지 않는 사람의 발자국만 본다.

바람에 슬리며 바람을 달래며

한 송이 꽃이 피어난다.

루오 할아버지가 그린 예수의 얼굴처럼

윤곽만 있고 이목구비가 없다.

그걸 바라보는 조금 갈색진 눈,

슬프디 슬픈 시의 눈

<시안詩眼> 전문

역사가 시간 바깥으로 나간 후 김춘수는 인생을 “커피 스푼으로 되질”

하거나, “위대한 요리사가 친/한술의 소금”으로 묘사한다. 인생을 ‘~고

한다’라는 투로 서술하는 것은 시인이 보는 세계가 불확실하여 알 수 없

기 때문이다. 불가지(不可知)의 세계에서 자신의 죽음을 그 자체로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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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수의 시와 세계관 281

만치” 거리를 두고 바라봄으로써 내면의 성숙이 가능해진다. ‘저만치 유

심히 바라보’는 방법이 3할은 묶어 두는 것이다. 시인이 3할은 묶어두고

7할만 알아들을 때 시의 눈은 묶어 둔 3할을 본다. 시의 눈은 ‘돌에 박힌

발자국’과 “윤곽만 있고 이목구비가 없는” 불확실한 저쪽을 보지만, 여

전히 저쪽을 알 수 없으므로 시의 눈은 슬픔을 띤다.70)

현재의 시인을 있게 한 것은 보이지 않는 3할이 아니라 알아들었던 7

할의 말이지만, 그 말은 무말랭이 같고 오이지 같은 속담이다. 그렇게 3

할을 판단중지의 상태에 두면 시인의 시에는 아무 것도 다 없어지고 말

의 날갯짓만 남게 되어 오랜 시간의 화두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게 된다.

노숙자의 종이 백에는

칫솔과 치약

소주가 한 병,

이 잘 닦고

소주 한 잔 하고 신문지 깔고

잠이 든다.

잠이 들면 거기가 내 집,

이 잘 닦고

애몽더라드 한잔 하고 옛날

장 피에르 시몽도 거기서 잠든 곳,

<장 피에르 시몽> 전문

누가 보았다 하는가

길을 가면 또 길이 있다고,

머리의 뒤쪽

뒤통수

70) “시의 눈은 역사의 저편을 보고 있다. 역사는 끝이 없지만 시는 이미 끝이 나 있

는 세계를 본다. 아니 보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어디서나 시와 함께 있

는 것도 아니고 언제나 어디서나 시일 수만은 없다. 나는 현실에서는 역사의 시

간에 얽매여 있다. 역사와 함께 언제나 쉬임없이 가고 있다고 믿고(?) 있다.” 「역사의 눈 시의 눈」, 왜 나는 시인인가, 4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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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2 한국문학논총 제56집

그쪽에도 길이 있다고,

뒷걸음으로 가면

구름은 내 발밑에 깔리고

아득히 깔리고

내 눈시울은 눈물에 젖고

나는 어느새

보이지 않는 사람의 손을 잡는다고

그 작은 손을,

<손을 잡는다고>71) 전문

자신과 오랜 시간 함께 했던 화두에서 벗어난 시인에게 죽음은 지금

까지와는 다른 집이 된다. 죽음을 바라보는 시인에게 삶은 더 이상 구속

이 아니며 “장 피에르 시몽도 거기서 잠든 곳”이 노숙자가 잠이 드는 곳

이며 거기가 시인의 집이다.72) 삶의 예속에서 벗어나 다른 세상으로 떠

나고자 하는 시인(“노숙자”)에게 필요한 것은 치약, 칫솔, 소주 한 병 그

리고 깔고 잠들 수 있는 신문지뿐이다. 삶을 구속하던 것들을 다 버리고

죽음과 마주하고 있지만, 김춘수가 찾고자 하는 길은 여전히 보이지 않

고 알 수 없다. 보이지 않는 곳, 볼 수 없는 곳에도 길이 있다고 말하지

만, 구름만 발밑에 아득히 깔려서 길은 보이지 않고 눈시울만 눈물에 젖

는다.

71) 김춘수, 달개비꽃, 현대문학, 2004. 이 두 시는 세계의 문학, 2004, 가을호에

게재되었다. 김춘수 시인의 마지막 작품으로 추측된다. 김춘수 시인은 이 두 시

를 2004년 7월 22일 탈고하여 2004년 8월 3일 투고를 확인하고 다음 날인 2004

년 8월 4일 쓰러졌으며, 더 이상의 시는 발표된 바 없다.

72) “죽음이 나에게 나를 비롯한 존재자 전체의 유일무이의 고유한 존재를 내 앞에

드러내주는 사건으로서 이해될 때, 나는 더 이상 나의 존재를 짐으로 생각하지

않고 선물로서 생각하게 된다.” 박찬국, 하이데거와 윤리학, 철학과 현실사,

2002, 73쪽. 죽음을 삶속에서 보게 될 때 삶과 대화가 가능하다. 죽음을 삶의 끝

이나 한계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 그 자체로서 깨닫게 되면, 자신을 아끼

고 사랑하게 되며, 순수한 삶 그 자체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나를 지배하던

일상의 많은 것들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게 되고 자신이 머무는 곳이 곧 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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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수의 시와 세계관 283

그러나 김춘수는 삶의 과정에서 끊임없이 추구했던 진실에 어느 사이

엔가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 김춘수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진실에 다

가갈 수 있도록 그를 잡아준 작은 손이 있었다. 김춘수를 잡아준 “그 작

은 손”은 시였다.

5. 맺음말

한 작가의 문학세계를 조명하기 위해서는 창작을 결정하는 체험과 삶

의 이해가 어떻게 그의 내면을 형성하는지를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김

춘수의 시에서 ‘천사’는 천상의 존재와 인간이라는 이중적 모순을 지니

고 있다. 김춘수의 유년기 천사에 대한 체험이 순수지속의 성격을 지니

고 릴케의 천사와 도스토예프스키의 소냐를 만나면서 창조적인 변화를

한 것이다. 그 결과 김춘수가 릴케의 천사에서 어느 정도의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릴케와 달리 김춘수의 시에서 천사는 삶의 가운데에

존재한다. ‘천사’라는 같은 모티프이면서도 두 시인의 길이 다른 것은 김

춘수가 릴케를 만나기 이전부터 존재론적인 화두에 천착했기 때문이다.

존재론적인 화두에 천착한 것은 김춘수의 내면적인 문제였으며, 이 내

면적 특성에 의해 유년기의 천사는 현존하면서도 부재하는 앤티노미적

인 존재로 인식되고, 천사가 지닌 모호성은 불가지론의 세계관을 형성하

는 근원이 된다. 천사에 의해 존재의 비극성, 즉 앤티노미를 경험한 김춘

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작중 인물들이 지닌 이중적인 모순성을 발견하

고 인간 존재의 비극성에 천착하게 된다. 김춘수는 자신이 경험했던 역

사의 폭력은 역사가 지닌 규범적인 질서에 의해 인간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결과라고 인식한다. 이러한 인식에 의해 불가지론적인 세계관을 거

쳐 역사에 의해 가려진 진실은 인간의 순수한 영혼에 의해 드러날 것이

라는 심리적 진실을 추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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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4 한국문학논총 제56집

그러나 김춘수의 세계관은 역사가 지닌 이성을 비판적으로 보기 때문

에 감성과 대립한다. 김춘수의 시에서 이성은 인간의 본래성을 매장하지

만 감성은 인간에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자유를 주는 것으로 표상

된다. 감성은 현존재로서 자신의 본래성을 찾고자 하는 정신이며, 감성

에 의해 소냐와 아내가 천사와 동일시된다. 천사화 된 아내를 보면서 생

활 속에서 자신의 본래성을 찾은 김춘수는 비로소 역사를 시간 바깥에

두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완전한 자유를 얻는다. 인간과 역사, 이성과

감성이라는 대립적인 요소들을 서로 겨루지 않고 개별성을 인정하는 화

해의 길을 감으로써 새로운 창조의 장을 펼친 것이다.

김춘수가 평생 지녔던 세 개의 화두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묻는 존재

탐색에서 시작하여 불가지론적인 세계관을 거쳐 보이지 않는 진실을 추

구한 끝에 역사를 넘어 시에서 자유를 찾음으로써 시적 노정이 완성된

다. ‘인간이 역사를 심판해야 한다’라는 화두는 시간에서 벗어나 인간적

인 삶 즉 완전한 자유를 획득하는 것이다. 이 모든 여정은 그의 시를 통

하여 시도되었고, 시 안에서 이루어졌다. 그에게 시는 곧 삶이었던 것이

다. 따라서 김춘수의 시는 자신의 삶의 양식에 관한 탐구로서 그의 생애

전부였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시작 초기 관념주의에 입각하여 ‘얼

굴을 가리운 신부’의 모습으로 나타났던 이데아가 시공간을 초월한 자유

로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김춘수의 시와 세계관을 형성하는 하나의 줄은 ‘천사-도스토예프스키

의 작중 인물-아내’라는 연관을 지니고 있다. 천사는 릴케에서 그 모티

프가 시작되었지만, 릴케를 만나기 이전부터 순수지속의 기억으로 내면

화 되어 있었으며, 도스토예프스키의 작중인물은 김춘수에 의해 그의 말

을 대신하는 또 다른 자아로 재창조된 것이다. 시집 들림, 도스토예프

스키는 일부 논자들이 말하는 도스토예프스키 작품의 패러디나 릴케

또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영향 하에서 창작 된 것이 아니라 그의 시와 세

계관의 연관성을 알 수 있는 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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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수의 시와 세계관 285

요약하면, 김춘수의 불가지론(不可知論)적인 세계관은 유년기 천사 체

험에서 시작되어 그의 시에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김춘수가 경험하는 실

제적인 현상인 역사와 그가 느끼는 심리적 현상이 달랐기 때문에 도스

토예프스키의 작품에서 역사를 초월한 인간존재의 비극적인 양식을 접

하게 되자 ‘들림’을 경험하고 심리적인 진실을 추구한다. 심리적인 진실

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천사화 된 아내를 만나고 역사를 넘어서는 시에

도달하게 된다.

다시 말하지만, 가장 넓은 의미에 있어서 김춘수의 작품은 그의 삶을

표현한다. 그 자신의 삶을 떠받치는 체험이 그의 시와 세계관을 형성하

는 근원이기 때문이다. 역사적인 상황과는 다르게 인식되는 심리적인 체

험에 의해 현실의 모순과 부조리를 경험한 김춘수에게 시는 인생의 길

을 탐구하는 정신의 기록이자 온전한 삶을 획득하고자 하는 투쟁과 같

은 것이었다. 김춘수는 자신의 어두웠던 체험을 자신만의 것으로 개인화

하지 않고 역사와 인간의 문제로까지 나아가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인

간적인지를 탐구하고, 본래성을 찾아가는 삶의 길을 시를 통하여 제시하

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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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The Study of Kim-Choon soo′s Poems and

Outlook on the world

Kim, Seong-Lee

If you study Kim choon su's poetry and prose, you will find three

topics. The first thing is “What am I doing in here”. The second

thing is “The angel has eyes all parts of their body”. And the last

thing is “It is the human that should judge the history”. After he

thought about these three topics, he finally confessed that the angel is

in his mine. The purpose of this thesis is studying these relationship

with his collection of poems as the center. The purpose is based on

the assumption that three topis are related with his literature world

and affect the formulating his outlook on the world.

In literature of Kim choon soo, the angel has purity to angel of

childhood and go through creative changes by meeting an angel of

both Rainer Maria and Sonya of Dostoyevsky. Concentrating on

ontology topics is psychological problem of Kim choon soo. Under the

his problem, angel of childhood is recognized as antinomic exist which

is existent and nonexist. Ambiguity of angel is source of building an

outlook on the world of agnosticism. Ego of Kim choon soo went

through a tragedy of existence, after that he found contradictoriness

of Dostoyevsky's characters. That's why he concentrated in the

tragedy of existence. By these awareness, he started to seek

psychological truth, “It is the human that should judge the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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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수의 시와 세계관 291

He seeks psychological truth because he assumed a critical attitude

about rationality in the history by experience. In poetry of Kim choon

soo, rationality ignored the authenticity of human. But sensitivity is

written that sensitivity gives huamn the freedom. Sensitivity means

the spirit that seeks the himself. Through his wife, he found the

himself in his ordinary life. Afterthat, he finally left the history

outside the time and gave entire freedom beyond space and time. The

solution to the topic, “It is human that should judge the history” is

entire freedom of mankind.

Key Words : Kim-Choon soo, Topic, Angel, Antinomy, An outlook on

the world, Dostoevskii, Psychological truth, Poem

❙논문접수 : 2010년 10월 30일

❙심사완료 : 2010년 12월 6일

❙게재확정 : 2010년 12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