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편집 인쇄 업로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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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노동자가 만드는 통권 14720163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사회 안전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노조파괴가 또 사람을 죽였다 직업에 따른 사망의 불평등 나쁜 노동시간 단축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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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Jul-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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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가 만드는 통권 147호 2016년 3월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사회 안전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노조파괴가 또 사람을 죽였다

직업에 따른 사망의 불평등

나쁜 노동시간 단축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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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유일 노동안전보건잡지 <일터>에서 독

자 모임을 진행합니다. 일터 독자 및 연구소

후원회원 모두에게 열려있는 자리입니다.

앞으로 보다 더 좋은 잡지가 될 수 있도록

독자 여러분들의 ‘사이다’ 같은 조언과 응원

을 부탁드리는 자리로 마련했습니다.

일시 및 장소 2016년 6월 중 평일 저녁,

사당동 연구소 사무실

지원 방법 연구소 이메일 ([email protected])

문자 메시지 접수 (010.3782.18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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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를 지나거나 지하철을 타고 이동할 때면 종종 제 가방이 사람들의 시선을 끕니다.가방 끝에 걸려 있는 노란 리본 때문이죠. 사람들은 제게 어떤한 말도 건네지 않지만역설적이게도 찰나의 눈빛은 제게 많은 말을 전합니다.

“아직도 세월호냐 지겹다...”“보상 받았다면서 언제까지 자식 팔아서...”“수학여행 가다가 죽은 걸 가지고...”

일에 치여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게 살고 있는데요.어느 날 교육이 있어 방문한 공장 주변 들녘에 피어있는 분홍빛 벚꽃과 노란빛의 산수유를 보니 어느새 봄이 왔나 싶더군요. 그런데 정말 봄이 오기는 했나요? 어쩌면 우린 2014년 4월 16일 이후 아직도 이 봄의 이름을 찾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 제목 : 시인 김선우, ‘이 봄의 이름을 찾지 못하고 있다’

독자에게

이 봄의 이름을 찾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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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특집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사회 안전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이후

이제는 정말 한국 사회가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에서도 각종 안

전 정책들을 쏟아내며 안전한 사회

를 만들겠다고 선포했다. 2년이 지

난 지금 정부가 추진하는 안전의 문

제가 어떠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현장과 지역에서 안전 사회로 나아

가기 위해 우리는 어떠한 싸움들을

하고 있는지 짚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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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사회 안전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안전? 얼마면 살 수 있는데?

산업안전 없는 국가의 안전계획이 시사하는 점

지역주민의 요구로 만들어진 양산지역 화학물질 안전관리 조례의 의미

세월호 참사를 인권으로 말하다

[부록] 존엄과 안전에 관한 416 인권 선언

시민의 안전 VS 자본의 안정?

출처_ 416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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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이야기우리 사업장이 변할까요?

지키고 되살리자, 작업중지권위험 상황을 인지했을 때 작업중지 절차 (1)

시간의 재발견_노동시간 에세이나쁜 노동시간 단축도 있다?

문화읽기‘뽑기’가 고단해

유노무사의 상담일기 더불어 與하이브리드카 개발지연에 자책하던 현대차 연구원의 자살

일터 다시 보기여성이라는 곤란함

이러쿵저러쿵꿈을 일구는 공감의원에 출근하다

독자에게

차례

노동안전건강뉴스

지금 지역에서는노조파괴가 또 사람을 죽였다

달려라 건강권, 날아라 노동자정신건강 문제, 묵묵히 참으면 언제가 터진다!

안전보건활동 참고서몸과 마음을 함께 들여다보기

현장의 목소리그녀가 강의실이 아닌 천막 농성장에 있는 이유

A-Z까지 다양한 노동이야기“오늘 뭐 먹지?” 말고 “오늘 뭐 먹이지” 고민하는 이들

연구소 리포트직업에 따른 사망의 불평등

사진으로 보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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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안전건강뉴스 정리 장영우 선전위원

백화점·마트 판매원 등이 폭언, 폭행 등 ‘고객 갑질’로 우울

증이 생기면 산재 보상을 받게 된다. 총 11만여 명에 달하

는 대출모집인, 카드모집인, 대리운전기사 등도 산재보험

을 적용받는다. 고용노동부(장관 이기권)는 이 같은 내용

의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 및 ‘고용보험·산업재해보

상보험의 보험료 징수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이

지난 3월 15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고 밝혔다.

산재보험의 업무상 질병 인정기준에는 고객 등의 폭언, 폭

력 등으로 인한 ‘적응장애’와 ‘우울병’이 추가된다. 적응장

애는 사회심리적 스트레스를 경험한 개인에게 일어나는

무질서한 행동 등을 말한다.

지금까지는 업무상 질병 인정기준에 ‘외상후 스트레스장

애’만 있어 감정노동자의 산재 인정이 어려웠다. 이번 개정

으로 텔레마케터·판매원·승무원 등 감정노동자가 장시간

폭언을 듣거나 무릎을 꿇고 사과해야 하는 등 ‘고객 갑질’

로 정신적 충격과 스트레스를 받아 우울증이 생기면 산재

로 인정받는다.

또한 개정안에 따르면 노동자와 자영업자의 중간 영역에

속해 노동자성를 인정받지 못 하는 ‘특수형태업무종사자’

의 산재보험 적용도 확대된다.

감정노동자 우울증도 산재 인정

지금까지 보험설계사, 학습지 교사, 골프장 캐디, 레미콘기

사, 택배기사, 전속 퀵서비스 기사 등 6개 직종만 산재보험

이 적용됐다. 앞으로는 대출모집인, 카드모집인, 전속 대리

운전기사 등 3개 직종이 추가된다. 보험료는 사업주와 종

사자가 절반씩 부담한다. 보험료는 기준보수액 고시 후 산

정할 예정이다. 대출모집인은 월 1만원, 신용카드모집인은

7000원, 대리운전기사는 1만7000원 정도로 예상된다.

여러 업체의 호출을 받아 일하는 ‘비전속 대리운전기사’는

보험료를 본인이 부담해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게 된다.

이로써 대출·신용카드모집인 5만여 명, 대리운전기사 6만

여 명 등 총 11만여 명이 산재보험 혜택을 받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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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 격무에 시달리던 끝에 죽음에 이르러도 업무상 재

해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논란이 일고 있다. 평

소 아무런 지병도 없었던 은행원 박모씨(32)는 지난 3월1

일 직장 야유회에 참석해 산행을 하던 중 심장마비로 숨

졌다. 박씨의 동료들은 그가 전날 자정 무렵까지 야근을

했으며, 과도한 실적 압박으로 인한 부담감과 과로가 쌓인

상태에서 강제로 야유회에 참가해 과로사한 것이란 의혹

을 제기했다.

그러나 은행 측은 사망 원인을 과로로 단정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유족은 정확한 사인을 밝히고자 국과수에 부검

을 의뢰한 상태다. 지난해 말에는 한 달간 쉬지 못하고 일

을 하다가 뇌출혈로 쓰러져 사망한 건축사무소 직원 A씨

(29·여)의 사망 원인을 업무상 스트레스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A씨가 비록 한 달간 하루도 쉬지 못

했지만 보통 오후 8시 전에는 퇴근해 쉴 수 있었기에 과로

사로 보기 어렵다는 판단이었다.

근로복지공단 규정상 뇌혈관 질환과 업무 사이에 연관성

이 있다고 보기 위해서는 발병 전 12주 동안 1주일 평균

60시간 이상 근로했거나, 4주 동안 1주일 평균 64시간 이

상 일했어야 한다. 근로기준법상 1주당 법정근로시간 연장

한도인 12시간을 합하고도 8시간 이상을 더 일했어야만

산재로 인정받을 수 있는 셈이다.

심지어 과로로 산재 인정을 받으려면 노동자가 이처럼 장

시간 노동, 정신적 스트레스, 열악한 작업 환경 등에 시달

렸음을 본인 혹은 가족이 직접 입증해야 한다. 현행 근로

기준법상 사용자가 노동자의 노동시간이나 환경 등을 기

록할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노동자가 사망했을 경우

유족들이 휴대전화나 출퇴근 교통 기록 등을 통해 과로사

의 근거를 찾아내는 수밖에 없어 어려움이 따른다는 지적

이다.

실제로 16일 근로복지공단에 따르면 지난 2011년부터 4

년간 과로사(뇌심혈관계 질병으로 인한 사망) 산재 승인율

은 23.8%에 불과했다. 이 가운데 절반가량은 노동시간이

입증되지 않은 것이 원인으로 꼽혔다.

유성규 노동건강연대 노무사는 “노동 시간이 같아도 업

무 강도에 따라 노동자가 받는 스트레스가 다른 것이 당연

한데, 수치만 갖고 획일적으로 과로 여부를 판단하는 것도

문제”라며 “법의 취지를 생각하면 이 기준을 조금 더 유연

하게 해석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산재는

사회보험인데, 과로 사실을 일상생활조차 힘든 노동자나

가족들에게 입증하라며 책임을 전가하는 시스템 자체에

문제가 있다”며 “예산과 인력을 확대해 국가 차원에서 직

접 나서 과로 여부에 대해 조사해야 할 것”이라고 대안을

제시했다.

과로로 쓰러져도 직접 원인 입증해야…어불성설 산재 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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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7일 오전 8시경 금속노조 유성기업 영동

조합원인 고 한광호 조합원이 숨진 채 발견되었다.

2011년 원청인 현대자동차를 등에 업고 5년 가까이

노조파괴를 자행하고 가학적인 노무관리로 현장을

탄압한 유성기업이 결국 살인을 저지른 것이다. 지

금 현재도 유성기업 유시영 회장은 검찰의 부실, 편

파 판정으로 인해 처벌받지 않고 있으며, 검찰수사

자료가 공개되면서 현대자동차가 유성기업 노조파

괴에 개입했다는 구체적인 증거와 정황이 밝혀졌지

만 검찰은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했다.

노조파괴로 병들어 가는 유성기업 조합원

법 보다 주먹이 앞선 5년의 세월동안 유성기업 조합

원에 대한 자본의 탄압과 차별은 더욱 심화되면서

조합원들 마음의 병은 계속 커지고 있다. 두리공감

이 2012년~2015년 유성기업 아산, 영동지회 조합

원 정신건강실태조사를 분석한 결과 우울증, 사회

심리 스트레스, 외상후 스트레스 등이 정상치보다

현저히 높게 나타났다.

그 결과 작년에는 조합원이 정신적 스트레스를 견디

지 못하고 자살을 시도하거나, 우울증 등으로 산재

승인을 받은 노동자가 4명이나 될 정도로 조합원들

의 건강 상태가 심각한 상황이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노동부는 줄곧 수수

방관했다. 노동조합은 노동부에게 유성기업 사업장

전체 노동자에 대한 정신질환 임시건강진단, 고위험

군 질환자에 대한 긴급 치료 지원을 요구 할 계획이

다. 고 한광호 열사 관련해서는 열사를 비롯해 현재

신청 중인 유성기업 노동자의 산재 판정을 제대로

조사하여 신속하게 판정 할 것을 요구하기로 했다.

지금 지역에서는

재현 선전위원장

노조파괴가 또 사람을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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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쉴 구멍이라도 달라!’

고 한광호 조합원 죽음 이후 금속노조는 열사대책

위를, 시민사회 단체는 ‘노조파괴 범죄자 유성·현대

자본 처벌!한광호 열사 투쟁승리!범시민대책위원

회(이하 범대위)를 구성하여 제2의, 제3의 한광호

열사가 나오지 않기 위해 유성기업과 현대자동차의

노조탄압 중단 범국민서명운동을 비롯해 책임자 처

벌을 촉구하는 운동을 펼칠 계획이다. 또한, 조합

원들에게 가해진 노조탄압의 실태를 제대로 조사하

기 위해 범사회적 진상조사단을 구성하여 활동 할

계획이다.

한편, 고 한광호 열사의 죽음을 사회적으로 알리고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 서울분향소 설치를 위해 모

인 조합원들과 범대위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경찰 병

력의 가방검사, 방한도구 탈취 등 폭력으로 몸살을

앓다 지난 1일 서울시청 광장 한 켠에 분향소를 차

렸다.

함께 투쟁했던 조합원들에게 ‘미안하다, 사랑한

다.’는 마지막 말을 남기며 세상을 떠난 고 한광호

열사가 마음 편히 눈을 감을 수 있도록, 열사의 뜻

을 이어받아 ‘숨 쉴 구멍이라도 달라!’고 절규하며

투쟁하는 조합원들이 외롭지 않도록 <일터> 독자들

도 유성 노동자들의 싸움에 함께 할 것을 결의했으

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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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건강권 날아라 노동자

노동자가 건강하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생활습관의

개선도 필요하지만, 작업환경과 노동조건을 개선하

는 것이 무엇보다 필수적이다. 정신건강도 마찬가지

다. 경직된 조직문화로 인해 지지구조는 없고 스트

레스가 가중되는 환경이라면, 혹은 살인적인 교대

제나 노동 강도로 인해 육체적/심적으로 느끼는 업

무부담이 크다면, 결국 정신건강에도 악영향을 받

을 것이다.

5678 서울도시철도 노동조합은 2003년 두 명의 기

관사가 자살한 사고 이후로 정신건강 의제를 조합

이 적극적으로 제기하며 근무조건 개선을 위해 싸

워왔다. 조합원 정신건강 실태조사와 산재인정 투

쟁, 근무조건 및 작업환경 개선 투쟁에 이르기까지

의 이야기를 도시철도노동조합 승무본부의 윤성호

정책부장으로부터 들어보았다.

정하나 선전위원

도시철도 노동조합이 정신건강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2003년 여름, 기관사 두 분이 한 달 간격으로 자살

하는 충격적인 일이 있었다. 두 기관사는 모두 승객

사상 사고를 경험했던 노동자들이었다. 이후 열차

를 운전할 때마다 공포감과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

달렸다. 가령 운행하려고 차를 타면 갑자기 혈압이

치솟고 눈앞이 깜깜해지고... 이런 것이 공황 장애

증상인데 일하기 힘들 정도로 아파도 말도 못하고

끙끙대다가 결국 한달 사이에 그렇게 두 명의 노동

자가 세상을 떠난 것이다. 당시 노동조합은 어용 집

행부에서 민주파 집행부들로 막 바뀐 때였다. 이 두

조합원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묻고 원인을 밝히는

투쟁으로부터 노동조합 임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업무상 질병 중 정신질환은 특히 재해노동자 개인

정신건강 문제, 묵묵히 참으면 언젠가 터진다!5678서울도시철도 노동조합 승무본부 윤성호 정책부장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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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갑자기 올라간다는 조합원, 운전을 하면 갑자기

눈앞이 깜깜해 지고 정신을 잃는 등의 공황장애 증

세를 호소하는 조합원 등 다양했다. 제보와 실태조

사, 그리고 임시건강검진을 통한 전수조사를 통해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고위험군으로 분류되는 조합

원들은 따로 모아 집단산재 신청을 냈다.

한편, 재발방지와 예방을 위해 ‘근무형태 개선 요

구 투쟁’을 전개했다. 8조5교대의 교대근무를 서울

메트로처럼 교번근무제로 바꿀 것, 휴가 일수를 늘

릴 것, 2인 승무, 스크린 도어 설치 등을 요구했다.

조합원들의 생명을 위해, 그리고 정신건강 보호를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노동조건을 바꾸어야 했기 때

문에, ‘정신건강 투쟁’은 곧 ‘근무형태 개선 투쟁’

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도시철도 노동조합의 투쟁으로 어떤 것이 변화되었나?파업과 해고 등 지난한 과정이 있었지만, 어쨌든 많

은 것이 변화되었다. 무엇보다, 투쟁을 통해 가학

적 노무관리의 관행이 만연하던 도시철도 현장이

노동자들이 좀 더 주체가 되는 곳으로 변하게 되었

다. 세부적으로는 역마다 차선 사상 사고를 방지하

기 위한 스크린 도어가 설치되었고, 교번제로 근무

형태도 바뀌었다. (하지만 2인 승무제는 아직도 받

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박원순 시장이 되고 나서

는 서울시 산하 공공기관 노동자들의 정신건강 실

태조사를 지속적으로 진행했고, 그래서 도시철도

도 2012년부터 최근까지의 현황을 파악하고 있다.

또한 2013년 정신건강 전담기구인 ‘도시철도 힐링

센터’가 생겼다. 비용이나 사회적 시선에 대한 구애

없이 정신건강에 대한 도움을 쉽게 받을 수 있는 장

점이 있다.

(성격)의 문제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다. 도시철도의 분위기는 어땠나?도시철도 노동자들의 경우엔 그렇지 않았다. 지하

철 승무 업무 즉, 기관사들이 전동차 운행 업무의

업무환경과 조건이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많이 유

발할 것이라는 공감대가 널리 형성되어 있었다. 일

단 서울지하철의 5~8호선까지를 담당하고 있는 ‘서

울도시철도공사(도시철도)’는 94년도에 설립되었는

데, 1~4호선 서울메트로보다 일하기 힘든 곳으로

소문이 나 있었다. 처음 설립 시부터 소위 강성노조

가 있는 서울메트로처럼 되지 않도록, 조합도 어용

으로 선제적으로 만들고 노무관리도 좀 더 강하게

하고자 계획되었다는 얘기를 들은 바 있고, 실제로

매일 조회와 점오 같은 시간이 매우 군대식으로 마

치 집단 체벌하듯 진행되었다.

연차 일수도 1~4호선 서울메트로 기관사들보다 훨

씬 적었고, 당시에는 교대근무 제도도 기관사들의

업무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형태이었기에, 전동차 운

행을 마치고 나서도 퇴근을 할 수 없었다. 게다가

스크린 도어도 없을 때라 사상사고 가능성도 지금

보다 훨씬 컸고 1인 승무였기 때문에 긴 노선을 운

행하는 동안 늘 예민하고 긴장된 상태에 있을 수밖

에 없었다. 이렇듯 조직문화에서부터 노동조건까

지,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일 할 수 있는 노동환경이

아니라는 것에 조합원 대부분이 인식하고 있었다.

정신질환 직업병 인정을 위해, 그리고 재발방지를 위해 조합이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해나갔나?실태조사부터 시작했다. 먼저 제보창구를 열었고,

본부별로 제보자, 질환자의 명단을 입수해 조합원

과 면담을 시작했다. 그 결과 생각보다 많은 조합원

들이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같은 직업성 정신질환으

로 힘들어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살한 두 분뿐

아니라, 전동차 운전을 하려고 차를 딱 타면 혈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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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보건활동 참고서

정신건강도 중요하다

세계보건기구는 건강을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

로 안녕한 상태라고 정의한다. 노동자들의 정신 건

강 문제도 당연히 중요하게 다뤄야 할 주제다. 세계

에서 가장 높은 자살률을 보이는 한국 사회에서 그

중요성은 더 크다. 2014년 통계에서 자살은 전체 사

망 원인 중 4위이다, 젊은 세대에서는 문제가 더 심

각하다. 30대에서는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다. 40

대와 50대에서도 자살은 사망 원인 2위다. 이들 중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일 혹은 일터 때문에 죽음을

선택한 것인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지 못해 살고

있는지도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문제가 있다면 드러내기

어느 일터나 스트레스가 없는 곳은 없지만, 우리 일

터는 유독 스트레스가 심하다든지, 특정한 종류의

스트레스가 문제가 되거나, 여러 명의 조합원·노동

자들이 정신적인 괴로움을 호소하는 경우, 문제를

인정하고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

집단적으로 정신적 문제를 호소해 사회적으로 이슈

가 되었던 대표적인 원인을 몇 가지 들어보면 다음

과 같다. 노조 활동 탄압, 심한 감시와 성과 관리,

감정노동, 구조조정 등 급격한 변화와 극심한 스트

레스, 물리적/언어적 폭력, 소방관·경찰·응급구조

사·기관사 등 충격적인 사건을 겪을 수 있는 직업,

개인적 관계에서 발생하는 성적 괴롭힘이나 인격 모

독. 우리 사업장에는 이런 일이 없는지 돌아보고,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드러내기 위한 전략을

찾아봐야 한다. 무엇보다 노동자가 즐겁게, 편하게

일할 수 있는 노동조건이 노동자의 정신 건강을 보

장하는 첫 번째 열쇠다.

정신 질환도 산재 신청이 가능하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은, 외상후 스트레스장

애나 폭력, 폭언 등에 의한 적응장애 또는 우울병

에피소드를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한다고 하지만,

그 외에도 급성 스트레스 장애, 불안장애, 적응장

최민 집행위원장

몸과 마음을 함께 들여다보기노동자의 정신건강 증진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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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수면장애 등은 모두 산재로 승인을 받은 적이

있는 주요한 질병들이다.

정신질환으로 산재보상을 신청하기 위해서는, 정확

한 진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예를 들어 수면장애

의 경우, 다른 질환에 의해 이차적으로 발생한 수면

장애가 아니라는 진단이 정확해야, 그 원인이 교대

근무인지를 판단하는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질병과 관련된 정보는 중요한 개인 정보

업무 관련성 여부와 관계없이, 정신질환이 있는 노

동자의 비밀은 보장돼야 한다. 노동조합 활동가로

서 알게 된 경우에도, 비밀을 지켜야 한다.

단, 질환으로 인해 업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거

나, 특히 자기 자신이나 주변 동료에게 해를 끼칠 위

험이 있다는 우려가 드는 경우에는 직업환경의학전

문의와 업무적합성 평가를 함께 해 볼 수 있다. 업

무적합성 평가는 ‘현재 상태로 현재의 업무를 할 수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다. 업

무를 어떻게, 얼마나 조정하면 현재 상태로도 업무

를 수행할 수 있을지, 어떤 치료와 조건 하에서 업

무를 지속할 수 있을지를 함께 판단하는 역동적인

과정이다. 당사자와 담당 활동가(동료), 의사 사이

에 충분한 소통을 통해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평가

를 할 수 있다.

스트레스를 이길 힘은 키우고

스트레스 자체를 줄이는 것이 가장 좋고 근본적인

대책이다. 이를 위해 조직 진단, 유사한 어려움을

겪는 사례 발굴 등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와

더불어, 스트레스의 부정적인 영향을 줄이기 위한

개인의 힘을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 같은 일을 겪어

도 얼마나, 어떻게 영향을 받는지는 사람마다 천차

만별이다. 외적인 요인인 스트레스를 사람마다 다

르게 받아들이게 하는 중간 요인을 중재요인이라고

하는데, 긍정적인 중재요인이 많으면, 스트레스에

강한 사람이 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중재요인은

가족이나 친구 등 가까운 사회적 관계다. 노동조합

이나 동료 간의 관계 역시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도

록 서로 힘을 기울여야 한다.

심리상담실 운영하기

직무스트레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여러 대기

업에서는 회사나 노동조합이 나서 심리상담실을 운

영하기도 한다. 상담실을 사내에 두면 비밀 보장에

대한 우려가 있을 수 있지만, 접근성이 높아진다.

독립적인 업체와 계약을 맺어 상담을 받을 수도 있

고, 상담사를 직접 고용하여 지속적으로 역할을 담

당하게 할 수도 있다. 어느 하나가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다. 대신, 어떤 경우에도 상담 내용은 철저

히 비밀이 보장돼야 하고, 가능하다면 개별 상담 외

에 전체 조합원에 대한 직무스트레스 조사, 우울증

선별검사 등도 시행하고 분석하는 역할을 요청할

수 있겠다.

근로자건강센터 활용

회사 내에 상담이나 치료 관련된 지원이 당장 어려

운 경우 근로자건강센터도 활용할 수 있다. 근로자

건강센터를 찾으면 의사 상담을 받을 수 있어, 약물

치료나 정신과 전문의의 진료가 필요한 상태인지 평

가할 수 있다. 근로자건강센터의 경우, 직무 스트레

스 요인에 대해 전문가들과 상담을 함께 진행할 수

있고, 근골격계질환 예방을 위한 스트레칭 교육 등

몸을 쓰는 프로그램과 함께 할 수 있다는 점도 일

반 정신과 개인 의원이나 심리상담센터에 비해 좋은

점이다. 경제적 부담이 없는 것도 큰 장점이다.

14

지난해 12월 흔히 시간강사법이라 불리는 ‘고등교

육법 개정안’ 통과를 앞두고 서울대 음대 시간강사

113명의 선생님들이 하루 아침에 강의실에서 쫓겨났

다. 2011년 12월 국회를 통과한 시간강사법은 시간

강사에게 법으로 교원 지위를 부여하고, 1년 이상의

임용 기간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문제는 시행령 9조

에 의해 대학의 교원은 매주 9시간 이상의 강의 시

간을 가져야 한다. 대개 학교에서 3, 6학점 (3,6시

간)을 강의하는 상황에서 주 9시간 이상으로 바뀌

게 되면 현재 약 8만 명의 시간 강사 중 누군가는 해

고된다. 대학이 비용을 아끼기 위해 시간 강사를 채

용하는데 법이 통과되었다고 해서 강의 자체를 늘리

거나 강의 시간을 늘릴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한편, 현재 이 법은 앞서 언급한 쟁점으로 인해

2018년까지 유예된 상황인데, 서울대는 신규 강사

채용을 강행했다. 113명의 선생님들 가운데 성악과

선생님들을 주축으로 학교 본관 앞에 천막 농성장

을 치고 지금까지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가장 선두

에 서서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전유진 선생님을 만

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안녕하세요. 저는 이 학교 성악과를 졸업했고 미

국에서 석·박사 마치고 한국에서 강의를 한지 10여

년 만에 시간강사법과 학교의 갑질에 의해 싸우고

있는 전유진이에요.”

이런 일을 겪을 거라고 생각도 못했을 것 같은데 당시 어떤 심경이었나요?“11월 말에 후배 선생님들한테 전화가 와서 “성악과

강사채용을 다시한대요” 그러더라고요. 대체 그게

무슨 소리냐 우리 임기가 5년인데 그랬더니 믿을 만

한 곳에게서 들은 거라고 했는데 정말 사실이었죠.”

현장의 목소리

재현 선전위원장

그녀가 강의실이 아닌 천막 농성장에 있는 이유부당 해고에 맞서 싸우는 서울대 음대 시간강사 전유진 선생님 인터뷰

15

보통 시간 강사 임기가 5년은 아니지 않나요? 특이한 경우인 것 같아요?“전국의 모든 대학 강사 위촉 계약서는 3/1 ~ 8/31

까지 9/1 ~ 2/28까지 6개월 단위로 되어있어요. 그

러나 대부분의 학교는 2년에서 5년 정도의 임기가

있고, 어느 학과는 공개채용 없이 수십 년간 강의하

시는 분들도 있는데 서울대학교 성악과는 30년간 5

년 단위로 강사를 채용했어요. 요즘은 학교가 1년

단위로 채용했다고 우기고 있고요. 5년 임기가 단

순히 관례 문제는 아니기도 해요. 93년도에 이미 성

악과 내규로 정했고요. 음대 관련 선생님들에게는

상식적인 이야기죠. 다른 학교들도 한번 채용하면 3

년 4년 강의를 하거든요.”

5년 임기가 중요한 이유가 있나요? “성악을 가르칠 때 4년, 5년 이렇게 하는 이유가 있어

요. 1년은 선생님이랑 학생이 서로 익숙해지다가 끝

나요. 강사마다 발성법이 다르니까 적응하는데 시간

이 필요하죠. 그래서 시간강사라고 해도 4년을 지속

해서 배우게 하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 상황을 보세

요. 이제 학생들은 1년마다 선생님이 바뀔 거예요.”

채용 공고 소식을 듣고 어떻게 대응을 했나요?“12월1일에 아름아름 친한 선생님 10명이 광화문에

모여서 회의를 했어요. 강사들이 탄원서를 쓰자, 서

명을 받자 논의를 했는데, 그때만 해도 선생님들이

소극적이었어요. 아직 학교가 공고를 낸 것도 아닌

데 미리 움직여서 찍히면 어떻게 하냐, 그런 의견도

있었죠. 그런데 저희가 모인지 12시간 만에 학교에

서 이 사실을 알았더라고요. 내부 고발자가 있었던

거죠. 그리고 12월3일 음대 홈페이지에 신규 채용

공고가 났어요.”

탄원서는 어떻게 했나요?“채용 공고 보니까 다 끝났구나 생각했는데 12월5

일에 시간강사법이 유예된 거예요. 그래서 선생님들

한테 전화하고, 단체 카카오톡 채팅방으로 사람들

모아서 총 41명의 서명과 탄원서를 12월7일 총장,

교무처장, 교육부총장, 음대학장한테 이메일로 보

냈어요. 지금까지 아무 답은 없었고요.”

다른 학과에 비해 시간 강사 비중이 많은 것 같아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성악과는 음대 공통필수 전공과목 말고도 성악전

공과목만 20개가 넘어요. 다른 과와 비교하면 2~3

배 많죠. 저만해도 4학년 영어 딕션 과목 2학점 강

의를 했어요. 딕션이라는게 노래를 부를 때와 말할

때 발음이 다르거든요 그걸 가르치는 수업인데 이렇

게 딕션으로 배우는 언어가 이태리, 불어, 독어, 노

어, 영어 5가지에요. 그러니 각각 그 나라에서 유학

하고 오신 선생님들이 수업을 하죠. 특히 성악이 다

른 악기와 가장 큰 차이는 언어가 있다는 점이고,

정확한 단어를 사용해서 가사로 전달한다는 거예

요. 악기의 경우 멜로디를 어떻게 표현하고 전달할

것인가가 중요하잖아요.”

16

딕션 수업이 끝이 아니다. 장르에 따라 오페라, 합

창, 종교가곡 등으로 과목이 나뉘고, 오페라도 역

사, 이해를 배우는 강의가 따로 있다.

해야 할 전공 수업도 많고 가르쳐야 할 과목들 특성이 다르네요?“저희는 그래서 시간강사법이 적용되면 교육의 질을

담보할 수가 없어요. 다른 학과에 비해 음대, 미대,

인문대의 경우가 시간 강사에 대한 수업 의존도가

높은데 만일 시간강사법이 통과되면 그 나라로 유

학가지 않은 사람이 여러 과목을 강의하게 되겠죠.

물론 가르칠 수는 있겠지만, 미국을 다녀온 제가 독

일, 프랑스에서 공부하고 온 선생님의 뉘앙스를 따

라갈 수 있을까요? 인문학도 마찬가지죠. 중국 문

학을 공부한 선생님이 러시아 문학, 영어 문학을 가

르치면 결국 그 피해는 학생들이 받는 거죠.”

강사 신규 채용 과정에서는 별일 없었나요?“보도자료에는 공정하고 투명하게 선발한다고 강조

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저희는 서류 심사때

연주 실적을 내요. 독창회를 했으면 100점, 2인이

했으면 70점 이렇게 점수가 있는데 작년에는 200

점이상 이었던 커트라인이 올해는 100점으로 낮췄

어요. 작곡과는 커트라인을 넘으면 서류 심사를 다

통과시켰는데, 성악과는 약 100여명이 넣어서 33명

이 통과했어요. 이번에 해고된 성악과 50여 명 중

엔 11명만 올라갔어요. 이전에 커트라인이 200점일

때도 채용되었던 분들이 서류심사를 통과 못한 게

말이 되나요. 작곡과인 부학장님하고 면담하는데

평가 기준이 우리와 생각하는 것도 다른 방식이라

그렇다고 해명하더라고요. 그래서 심사위원 명단과

점수를 공개하라니까 못한대요. 그게 공정하고 투

명한 건가요?

서류 심사 통과하면 저희는 면접이 아니라 2차로 오

출처_ 한국비정규교수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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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션을 봐요. 강의를 어떻게 진행할지 5분 내로 ppt

발표하고 질문에 답을 하고, 성악실기를 가르칠 선

생님들은 학생들이 입학시험 보듯이 노래를 하죠.

교수님 5명이 배석해서 평가하는데 이번엔 교수님이

2명만 들어오고 외부 전문가가 들어왔어요. 또 확

인해보니까 명예교수 한분이 제자들에게 일일이 전

화해서 이번에 꼭 서울대 넣으라고 했데요. 그럼 10

년 보장한다고요. 그분들 중 11명이 올라갔어요.

이런 일이 학교에서 그것도 최고의 학부라는 서울대

에서 일어나다니 정말 창피한줄 모르는 것 같아요.”

오늘로 천막농성 며칠 째죠? 건강은 어떠신가요?“94일차에요. 건강은 좀 피곤하죠. 집에 있어도 오

늘은 별일 없나 이런 저런 걱정도 되고요. 그래도

올해 1월에 한국비정규교수노조랑 대학노조, 기전

노조, 총학생회, 변혁당 서울대분회 등이 공대위를

결성해서 든든하게 싸우고 있어요. 이분들 말씀처

럼 울지 말고 재밌게, 즐겁게, 오래 버티자는 마음

으로 싸워보려고요.”

얼마 전엔 계고장도 날아왔다고 하던데요? 급한 불은 끈 건가요?“3월 4일에 1차로 계고장이 왔어요. 3월 11일 철거

하겠다고요. 그래서 이날 삼겹살 20근 사다가 공대

위 분들과 파티하면서 난장을 펼쳤어요. 그렇게 넘

어갔나 싶었는데, 14일에 2차 계고장이 날아와서

18일에 정리한다고 했는데 또 한 번 넘어갔네요.”

지금 상황도 열악하지만 이전에도 시간강사 처우는 워낙에 열악하다고 알려져 있는데 어떠했나요?“저희는 시간당 강사비로 8만원을 받은 지 오래됐

어요. 대부분 국립대들도 비슷하고요. 다른 대학은

3,4만 원대에요. 4대 보험 가입도 안 되고, 강의 준

비할 공간도 없죠. 강사 휴게실이 있다는 건 이번에

싸우면서 알았어요. 참 이건 임기가 끝난 다른 대학

교 케이스인데 이번에 실업급여를 받으려고 알아보

니까, 글쎄 제가 12/21부로 해고 된 걸로 돼있는 거

예요. 계약 기간은 2/28까지인데요. 대학들이 행정

적인 것도 엉터리죠.”

이후 싸움 계획이 있나요?“사실 서울대 시간강사가 지방대 교수보다 사람들

이 더 알아줘요. 시간강사만 해서 먹고 살기 힘드

니까 대부분 개인 레슨 하면서 생활비를 버는데 그

럴 때 서울대 강의 나간다고 하면 시간강사라고 해

도 특수가 있거든요. 그래서 다들 학교가 불합리해

도 참고, 밟아도 꿈틀거리지 않는 지렁이였죠. 투쟁

을 하면서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은 생각도 있었는데

칼을 한번 뽑았으니까 휘둘러는 봐야죠. 다음 일정

으로는 성악을 하는 사람들이니까 우리 문제도 알

리면서 음악회를 하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어

요. 또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 신청도 준

비하고 있고요.”

전유진 선생님은 본인이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했

다. 유학에서 돌아오자마자 강의를 하게 되었고,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보람을 많은 보람을 느꼈다고

했다. 남편을 비롯해 가족들의 지지와 응원 또한

큰 힘이 되고 있다. 무엇보다 싸움을 시작하면서 세

월호 참사 유족,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이해하게 되

었고 앞으로 편견 없이 세상을 사람을 바라봐야겠

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여전히 두렵고 앞날에 대한 걱정으로 이 싸움에 전

유진 선생님만큼 적극적이지는 못하지만 그들의 손

을 놓지 않고 함께 어울러서 싸우고자 애쓰고 있는

전유진 선생님이 하루 빨리 천막 농성장이 아닌 제

자들과 강의실에서 음악으로 만날 수 있는 날을 기

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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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부터 Z까지 다양한 노동이야기

평일, 직장인의 로망은 모름지기 점심시간이다. “오늘 뭐 먹지?” 매일 점심 시간마다 김치찌

개와 된장찌개 중에, 아니면 짜장과 짬뽕 중에 무얼 고를지 고민한다. 하지만, 구내식당이

있는 회사라면 민생고는 살짝 줄어든다. 식판에 오늘의 메뉴 반찬을 얼마만큼 담을지만 정

하면 되니까.

오늘 찾아간 천안에 있는 OO공장에도 구내식당이 있다. 직원이 500여 명인 이 공장은 2교

대 근무를 하는 곳이라 식당이 점심식사 외 아침 일찍 출근하는 사람들과 오후 야간조 근무

하는 이들을 위해 아침과 저녁식사도 제공한다. 삼시 세끼 동료 노동자들의 식사를 만드는

이들은 어떻게 일하고 있을까?

새벽 3시부터 공장의 구내식당은 돌아간다

식당을 찾은 시간은 아침 9시가 조금 넘은 시각. 이미 아침 7시에 출근한 직원 150명의 아

침식사가 끝나고 설거지와 홀 정리가 한창이었다. 공장의 식당 일에 배치된 인원은 총 9명이

다. 하지만 1일 주방에서 같이 일하는 인원은 6명이다. 1명은 공장 밖에 있는 직원 기숙사를

담당하고, 1명은 홀 정리만 담당한다. 남은 7명은 모두 주방을 담당하는 인원이지만 그중 1

명은 전날 야간당직을 하기 때문에 다음날은 오프이다. 구내식당 식사 담당이 웬 야간 당직

이냐 싶지만, 이유가 분명히 있다. OO공장이 바로 교대제 사업장이기 때문이다. 사무직이

대부분인 회사의 구내식당과는 달리, 이곳은 아침 7시 40분에서 16시까지는 오전 근무조

가, 16시에서 24시까지 오후(야간) 근무조가 번갈아가면서 공장을 돌리는 2교대 사업장이

라, 식당도 그에 맞춰 돌아가야 한다. 오전조 노동자들이 본격적으로 업무를 시작하기 전,

정하나 선전위원

마흔 힌 번째 이야기

“오늘 뭐먹지?” 말고, “오늘 뭐 먹이지”를 고민하는 이들

천안 소재 공장 구내식당 노동자들 이야기

19

아침 7시에 식당을 문을 연다.

“아침식사는 7시부터 시작하지만, 그 전에 밥이랑 반찬이랑 다 만들고 배식대에 올려놓는

작업이 필요하지 않겠어요? 최소한 2~3시간 전에는 일어나서 해야 하는데, 아침 조리와 배

식을 다 같이 하려면 근무시간이 어마어마하게 늘어나겠죠. 그래서 당번을 정해서 한 명씩

돌아가면서 회사에서 자는 거죠. 저기 주방 안쪽에 보면 숙직실이 있어요. 거기서 자고 새벽

에 일찍 일어나서 그날 아침 메뉴 다 조리하고 배식대에 차려놓는 거까지 담당을 해요. 재료

손질이 많이 필요하거나, 전처럼 손이 많이 가는 반찬이 있으면 새벽 3시에는 일어나야 해

요. 아침 당번은 그거까지 하고 퇴근 한답니다.” OO공장 구내식당 반장 A 씨

아침 당번이 식사를 다 차리고 나면 나머지 6명 인원이 7시 20분까지 출근을 한다. 출근하

자마자 20~30분 정도 당일 할 일에 대한 역할 분담을 하고, 곧바로 아침 설거지를 하고 주

방을 정리한다. 무거운 스테인리스 식판을 20여 개씩 들고 옮겨서 한번 헹구고 식기세척기에

넣는다. 아침 조리와 설거지로 지저분해진 주방의 가재도구와 조리대, 바닥도 한번 싹 치운

다. 40~60세의 여성들이 무거운 식판을 나르고,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꿇고 주방 여기저기

를 누비는 모습을 보며, ‘누가 밥 해 먹이는 일이 쉽다고 했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나

마 아침에는 식당 이용자가 적어서 수월한 편이라고 했다.

체계적으로 움직이는 주방 시스템, 쉴 틈·앉을 틈은 제로

각자 맡은 곳의 청소를 마치면, 바로 12시 점심식사 준비에 들어가야 한다. 꽤나 신체를 많

이 쓰는 일인데 점심식사와 정리시간이 끝날 때까지는 전혀 쉴 틈이 없다. 500인분의 식사를

준비하고 뒷처리해야 하는 이 시간은 대략 오전 10시부터 14시까지. 이 4시간은 OO공장 식

당노동자들이 하는 노동의 가장 절정에 이르는 시간이다. 이때는 옆에 가서 말 붙이는 것뿐

만 아니라, 분주하게 돌아가는 주방 안에서 일도 안 하면서 같이 있는 게 매우 송구스러울

정도였다.

“다리 많이 아프죠. 집에서 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을 준비해야 하고, 큰 조리도구 써가면

서 해야 하고. 근데 보시다시피 쉴 틈이 전혀 없어요. 무조건 12시까지는 (점심밥 먹을) 모

든 준비가 완료되어 있어야 하니까요. 비빔밥 같이 재료가 다양하게 들어가고 손질을 많이

해야 하는 메뉴가 있거나, 오늘처럼 철판에 내도록 부쳐내야 하는 동그랑땡 같은 게 있으면

아주 죽음이에요. 특히 전 요리 같은 건 여름에는 최악이겠죠. 재료 다듬어서는 것도 압권

이지만, 철판이 너무 뜨거운데 주방에 달리 냉방시설을 달기 어려우니... 정말 힘들지요.”

OO공장 구내식당 노동자 B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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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에서 하는 일이 단순할 거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조리’ 부문만 해도 모든 메뉴의

재료 전(前)처리는 별도의 공정이며, 큰 솥을 쓰는 밥과 국은 따로, 반찬 3~4종류의 조리도

다 각각 다른 조리법이 다르기 때문에 이 또한 각각 별도의 공정이라 할 수 있다. 6명의 인원

이 제한된 시간에 식사(점심) 500인분을 만들어야 하고, 재료손질과 조리의 난이도가 매일

매 끼니 상이하기 때문에 누구 한사람에게 어럽고 힘든 일이 몰리지 않도록 손질/조리/보조

당번이 매일매일 다르게 짜여진다. 게다가 저녁식사 당번 2인, 숙직하고 다음 날 아침식사

준비하는 당번 1인도 매번 돌아가면서 담당해야 하니 순서를 잘 맞춰야 한다. 이처럼 주방은

생각보다 훨씬 더 체계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제일 피크 시간인 점심시간은, 주방에서 조리하는 것뿐 만 아니라 홀 청소도 싹 해놓고, 식

판이랑 수저들, 음식들까지 배식구도 잘 올려놔야겠죠. 12시에 배식 시작하고 직원들이 밥

먹을 때 떨어진 반찬이랑 식기 채워 넣어놓고 계속 해야죠. 그렇게 500명 식사가 마치고 1시

반 쯤부터 저희도 점심 먹어요. 점심 먹기 전까지는, 아침 7시 쯤 출근해서 7시간 정도는 꼬

빡 서서 분주하게 일하는 셈이죠.” OO공장 구내식당 노동자 B 씨

그래도 노동조합이 있어서 주방 시설과 환경이 좋아졌다

이른 시간 출근했기는 하지만 그래도 오전 시간에는 비교적 안색도 좋고, 표정도 밝은 편이

었던 구내식당 노동자들은 점심식사 시간이 마칠 때쯤 되니, 그야말로 기진맥진한 얼굴이 되

어 있었다. 20년 넘게 이곳에서 일해 온 반장 A 씨도, 오전에는 웃는 낯으로 주방 전체 돌아

가는 상황을 상세하게 일러 주었는데, 고된 일을 몇 시간 하고 난 오후가 되니 어느 순간부

터는 마치 몸 어딘가에 통증이 있는 듯, 미간을 찌뿌린 채로 일을 하고 계셨다. 소위 건설현

장 같은 곳처럼 육체 하중이 많은 노동을 하는 분들이 처음 몇 주는 힘들어도 나중에는 ‘인

이 박여서’ 보통사람보다 몇 배가 되는 일을 해낸다는 말이 있다. 정말 인이 배였다 할지라

도 왜 그 등짐이 무겁지 않겠는가! 이곳의 식당 노동자들도 적게는 2-3년부터 20여 년 씩

일했기 때문에 인은 충분히 배겼을 테지만, 하루 약 1천 명의 끼니를 정해진 시간 안에 만들

어 내고 치우는 일은 해내며 생기는 몸의 부담은 점점 늘어가고 있다.

“저는 여기 온 지 3년 조금 안 되었어요. 그 전에는 어린이집 주방일 했었는데, 거기하고는

차원이 다르더라고요. 아무래도 애들 먹는 양이랑 성인들 먹는 양이 다르니까 더 그렇겠죠.

저는 아직 크게 다치거나 아픈 적은 없어요. 물론, 파스는 노상 붙이고 다니긴 하지만요. 근

데 오랫동안 일한 언니들 보니까 다치기도 하고 몸이 아파서 쉬기도 하고 그러시더라고요.

사고야 뭐... 주방이 밥 하는 데라 안전할 거 같지만 그렇지가 않아요. 불도 쓰고, 물도 쓰

21

고 하니 말이죠. 우리 주방 바닥은 처리를 잘 해놓긴 했지만 그래도 저쪽에 계신 언

니는 한번 미끄러져서 팔 부러지고 3개월 쉬셨어요. 그리고 아까 전 부치던 철판 같

은데... 거기에서 일하다 보면 얼굴이나 팔에 기름 튀는 건 뭐... 사고도 아니죠. 칼

질도 많이 하고 무거운 식자재들 솥단지에 옮기고 주걱으로 젓고 하다 보니 손목 염

증이나 어깨에도 문제가 많이 생겨서 몇 개월씩 쉬시는 경우도 많아요.”

OO공장 구내식당 노동자 C 씨

그래도 OO공장은 노동조합이 영향력이 있어서 공장 노동자들 작업환경뿐 만 아니

라, 몇 명 되지 않는 식당노동자들의 처우와 노동환경도 많이 개선되었다고 한다. 최

근 많은 학교와 회사의 구내식당들이 외주/위탁을 주고 있어서, 노동조합이 있다 하

더라도 식당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을 고려하기가 쉽지 않은데, 이 공장의 경우 노동조

합에서 꼼꼼하게 조합원들의 상황을 살피고 있다니 다행이었다.

“그래도 우리 공장은 계속 작업환경을 몸에 무리가 안 가게 바꿔줬어요. 여기 노동

조합이 잘 되어 있어서, 조합에서 나와서 식당/주방에서 어떻게 일하는지 자주 물어

보고, 사진도 찍어가고 그러더라고요. 무거운 식기류나 쓰레기 버릴 때 편리하게 경

사로도 곳곳에 잘 되어 있고, 수레도 높낮이까지 조절되는 걸로 바꿨고. 주방 안에

서 물을 많이 쓰니까 사실 예전엔 미끄러지기도 많이 했는데, 장화도 좋은 걸로 지급

하고 바닥도 특수 처리를 해서 이제는 살짝 ‘미끌’ 할 때는 있어도 넘어지거나 하는

일은 없어요." OO공장 구내식당 반장 A씨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4~50대의 식당 노동자들이 몸의 나이에 맞게 적

절한 노동량으로,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으려면 인력의 보충이 필요해 보였

다. 구내식당 언니 노동자들은 “일하면서 뭐 이만큼도 안 힘들면 어떡해~ 이만하면

많이 좋아진 거야”라고는 하셨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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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리포트

직업에 따른 사망의 불평등

죽음은 평등한가?

모든 사람은 죽는다. 역사 속의 많은 사람들이 불

로장생을 꿈꿨으나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인간은 없

다. 벤자민 프랭클린이 남긴 ‘죽음과 세금 이외에

확실한 것은 없다’ 도 같은 맥락이리라. 그렇지만

언제 어떻게 죽는가는 사람마다 다르다. 그러한 차

이는 여러 원인에서 비롯되겠지만 학력, 소득, 직

업으로 대표되는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라 나타

나는 사망의 차이, 즉 사망의 불평등을 드러내고

자 했던 많은 연구들이 있다. 이런 사망불평등 연

구의 아버지라고 볼 수 있는 것이 영국의 “블랙리포

트 (Black report)" 이다. 1980년 영국의 보건사회

복지부에서 발간한 것으로 사회계층과 지역에 따른

사망률의 차이를 보고했다. 이 보고서는 직업에 따

라 사회계층을 5군으로 분류하였다. 1군 ‘전문가

(Professional)’에 비해 5군 ‘비기술자(Unskilled)'

의 사망률은 남성에서 2.5배 높았다. 여성의 경우

결혼한 여성을 대상으로 남편의 직업에 따라 분류했

고 역시 2.5배의 차이를 보였다. 건강불평등에 관한

가장 선도적인 보고서로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켰으

나 보수당 정권에 의해 오랫동안 묻혀있다가 1997

년 토니 블레어의 노동당 집권 이후 구체적인 정부

과제로 채택되었다. 이 연구 이후로 많은 학자들이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른 사망의 불평등을 연구하였

고 한국에서도 소득과 학력, 직업, 지역 등을 이용

하여 비교한 연구들이 상당수 발표되었다. 이번에

소개하고자 하는 연구는 기존의 연구들보다 대규모

의 데이터를 사용함으로써 좀 더 다양한 9개 직업분

류에 따른 사망률의 차이를 보여줄 수 있었다.

연구는 어떤 방법으로 수행되었나

1995년부터 2000년까지 고용보험에 가입된 적이 있

는 국내 노동자를 대상으로 코호트(연구대상)를 구

축하고 통계청의 사망원인 자료와 연계하여 1995부

이혜은 회원,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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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 2009년까지 대상 노동자들의 사망 여부 및 사망

원인을 추적하였다. 한국표준직업분류에 따라 직종

을 9개로 분류하였다.

직종별로 사망률(10만명당)을 구하고 집단 간의 연

령과 성별을 고려한 비교를 위해 2000년의 주민등

록연앙인구(매년 7월 1일 기준 주민등록상 인구)에

서 15세부터 74세의 인구를 표준인구로 한 연령표

준화 사망률을 구했다. 사망률이 가장 낮았던 ‘전

문가’ 집단과 사망률이 두 번째로 높았던 ‘단순노무

직 근로자’ 집단을 비교하여 사망률의 차이(10만명

당)와 사망률의 비를 제시하였다. 가장 사망률이 높

았던 집단은 ‘농업 및 어업 숙련근로자’ 이었지만 대

상자의 수가 적은 편으로 연구의 대표성을 위해 비

교집단은 ‘단순노무직 근로자’로 선택하였다. ‘전문

가’는 의사, 변호사, 간호사 등 가장 고도의 전문적

인 기술이 필요한 직종이고 ‘단순노무직 근로자’는

청소, 경비, 생산보조 등 특별한 기술을 요하지 않

고 단순, 반복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직종이다.

표 1. 한국표준직업분류 (대분류)

직종 1: 입법자, 고위임직원 및 관리자

직종 2: 전문가

직종 3: 기술공 및 준전문가

직종 4: 사무직원

직종 5: 서비스 근로자 및 상점과 시장판매 근로자

직종 6: 농업 및 어업 숙련근로자

직종 7: 기능원및 관련 기능근로자

직종 8: 장치, 기계조작원및 조립원

직종 9: 단순노무직근로자

직종별, 사망원인별 사망률의 차이

연령구조를 맞춘 후 직종별, 사망원인별 사망률은

다음 표2, 표3과 같다.

연령표준화사망률이 가장 높은 직업군은 "농업 및

어업 숙련근로자"로 10만명당 남성은 563.0명, 여

성은 206.0명 사망하였으며 그 다음으로 높은 직업

군은 "단순노무종사자"로 10만명당 남성은 499.0

명, 여성은 163.4명 사망하였고 그 다음으로는

"장치·기계조작 및 조립 종사자"로 10만명당 남성은

380.3명, 여성은 157.8명 사망하였다. 연령표준화

사망률이 가장 낮은 직업군은 "전문가 및 관련 종사

자"로 10만명당 남성은 209.1명, 여성은 93.3명 사

망하였다. "단순노무종사자"는 "전문가"보다 10만명

당 남성 289.9명, 여성 70.1명 더 사망하였고 남성

2.39배, 여성 1.75배 사망률이 높았다. 두 직업군

간 가장 사망률의 차이가 컸던 사망원인은 사고와

자살을 포함하는 "손상, 중독 및 외인에 의한 결과"

로 10만명당 남성 96.9명, 여성 21.6명이 "단순노무

종사자"에서 더 사망하였으며 남성의 간질환 사망도

10만명당 38.3명이 높아 큰 차이를 보였다. 정신질

환의 경우 사망자 수 자체가 높지 않아 사망자 수의

차이가 크게 드러나지 않았으나 "전문가"에 비해 "

단순노무종사자"에서 남성 6.31배, 여성 13.11배 사

망률이 높았다.

사망 불평등에 기여한 사망원인

이번 연구에서 가장 눈여겨 볼 점은 한국의 사망불

평등 양상은 다른 나라와 사뭇 다르다는 점이다.

사망불평등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었던 유럽의 몇몇

나라들의 예를 보면 주요 사망원인을 심혈관계질환

으로 꼽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번 노동자 데이

터의 경우 운수사고, 자살을 포함하는 외인에 의한

사망이 불평등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한국의 산재사망률은 유럽, 미국에 비해 상당히 높

기 때문에 일정 부분 영향을 주었을 수 있다. 직업

적 위험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어 보이지만 교통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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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큰 부분을 차지하였는데 좀더 안전한 교통수

단을 구매할 능력, 주거환경의 안전수준, 음주운전

이나 안전벨트와 같은 행동적 요인의 차이가 관여할

것으로 보이며 이는 전반적인 사회발전과 관련성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례로 노르웨이의 한 연구

에서는 1960년대에 보여졌던 교통사고 사망의 불평

등이 2000년 이후 크게 줄어들었다고 밝혔다. 자살

이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직업군에서 높은 이유는

사회적, 경제적 자원의 부족으로 중요한 자살 위험

요인의 노출이 높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남성의 간질환 사망과 간암 사망도 큰 차이를 보였

다. 가장 쉽게 추정할 수 있는 원인은 음주와의 관

련성이다. 사회경제적지위가 낮은 직업군일수록 건

강과 관련된 생활습관이 좋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생활습관은 마치 개인적인 문제로 여겨질 수 있지만

낮은 사회계층에서 생활습관이 나쁜 데에는 지식과

여유가 부족하기에 그럴 수밖에 없는 사회적 배경이

존재하고 이러한 차이를 줄이는 것은 사회적 책임이

될 것이다.

암 중에서는 폐암이 사망률의 차이를 보여 직업적

발암물질의 노출과의 관련성과 흡연의 영향을 추정

할 수 있다.

사망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 이번 연구결과는 특히 사고와 자살 예방의 중요성을 강

조할 수 있다. 단순노무직과 같은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

은 계층은 사고와 자살의 고위험군이므로 이들의 안전

의 확보, 자원의 확보가 필요하다. 결국, 사회경제적 평

등을 이룰 때 건강의 평등도 가능하게 될 것이다.

직종1 직종2 직종3 직종4 직종5 직종6 직종7 직종8 직종9사망률비

사 망 률차이

모든 사망원인 252.8 209.1 285.6 249.7 362.0 563.0 365.1 380.3 499.0 2.39 289.9

특정 감염성 및 기생충성 질환 (A00-B99) 3.6 5.5 6.1 5.3 8.1 10.5 7.1 8.5 12.6 2.29 7.1

신생물 (C00-D48) 92.1 93.2 107.7 103.2 123.4 117.3 120.8 117.2 146.4 1.57 53.2

- 간 및 간내쓸개관(담관)의 악성신생물 (C22) 23.2 21.8 25.6 24.6 30.3 31.6 29.2 28.7 34.5 1.58 12.7

- 기관, 기관지 및 폐의 악성신생물 (C33-C34) 15.6 15.2 23.6 21.0 26.0 22.3 26.7 25.5 32.4 2.13 17.2

정신 및 행동장애 (F01-F99) 0.7 1.3 2.2 1.5 3.7 8.9 4.0 3.6 8.2 6.31 6.9

신경계통의 질환 (G00-G98) 2.5 1.7 2.7 3.1 3.7 2.0 3.4 3.4 4.9 2.88 3.2

순환기계통의 질환 (I00-I99) 36.5 39.3 43.5 41.9 64.4 87.9 56.2 67.8 80.0 2.04 40.7

- 허혈성 심장 질환 (I20-I25) 11.6 14.7 14.6 13.2 19 25.8 17.4 23.9 21.0 1.43 6.3

- 뇌혈관 질환 (I60-I69) 15.9 14.8 19.6 19.5 31.9 42.9 26.2 28.5 40.9 2.76 26.1

호흡기계통의 질환 (J00-J98) 4.5 5.2 6.1 6.3 12.8 14.8 10.7 9.9 15.1 2.90 9.9

소화기계통의 질환 (K00-K92) 9.2 10.8 17.3 12.9 23.2 40.4 25.4 19.5 52.2 4.83 41.4

- 간 질환 (K70-K76) 7.7 8.3 15.3 10.6 19.8 32.6 22.5 16.4 46.6 5.61 38.3

근육골격계통 및 결합 조직의 질환 (M00-M99)  0.5 0.2 0.3 1 0.7 3.3 0.8 0.9 1.1 5.50 0.9

비뇨생식기계통의 질환 (N00-N98) 2.5 1.6 3.2 3.7 4.3 7.0 3.0 4.0 4.3 2.69 2.7

질병이환 및 사망의 외인 (V01-Y89) 86.2 36.2 78.1 54.5 86.2 235.1 108.7 117.4 133.1 3.68 96.9

- 운수사고 (V01-V99) 55.9 12.7 31.6 23 34.5 87.5 43.6 43.8 49.2 3.87 36.5

- 고의적 자해(자살) (X60-X84) 14.0 11.7 22.6 16.9 30 54.3 31.6 43.8 44.2 3.78 32.5

표 2 직종별, 사망원인별 사망률 (남성, 10만명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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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종1 직종2 직종3 직종4 직종5 직종6 직종7 직종8 직종9사망률비

사 망 률차이

모든 사망원인 122.3 93.3 136.4 115.7 149.7 206.0 158.1 157.8 163.4 1.75 70.1특정 감염성 및 기생충성 질환 (A00-B99)

1.1 3.1 2.1 2.2 3.2 0.0 3.8 6.8 3.7 1.19 0.6신생물 (C00-D48) 41.0 46.9 64.1 63.0 62.3 57.1 62.8 65.4 63.1 1.35 16.2- 간 및 간내쓸개관(담관)의 악성신생물 (C22)

4.8 5.7 5.3 4.5 7.1 8.5 7.1 12.6 7.2 1.26 1.5- 기관, 기관지 및 폐의 악성신생물 (C33-C34)

6.1 8.3 10.6 8.7 7.4 7.2 8.5 6.2 8.2 0.99 -0.1정신 및 행동장애 (F01-F99)

0.0 0.1 0.2 0.3 1.5 0.0 0.9 0.2 1.3 13.00 1.2신경계통의 질환 (G00-G98)

0.5 2.2 1.0 3.6 1.6 0.0 2.5 1.5 3.0 1.36 0.8순환기계통의 질환 (I00-I99)

20 9.7 19.4 17.3 21.8 22.6 29.9 26.1 30.9 3.19 21.2- 허혈성 심장 질환 (I20-I25)

3.3 1.2 2.1 4.7 4.7 7.1 6.7 6.4 6.2 5.17 5.0- 뇌혈관 질환 (I60-I69)

13.1 7.7 9.2 10.5 13.1 13.1 17 13.1 17.3 2.25 9.6호흡기계통의 질환 (J00-J98)

12.5 5.8 5.9 1.8 5 32.0 5.1 3.1 3.3 0.57 -2.5소화기계통의 질환 (K00-K92)

2.5 1.8 3.0 2.2 3.5 4.4 5.3 7.2 4.7 2.61 2.9- 간 질환 (K70-K76)

1.6 1.7 2.7 1.6 2.5 4.4 4.6 3.0 3.5 2.06 1.8근육골격계통 및 결합 조직의 질환 (M00-M99)  0.3 0.1 0.6 0.4 1.4 0.0 1.1 0.7 1.3 13.00 1.2비뇨생식기계통의 질환 (N00-N98)

0.2 0.8 0.6 1.2 2.6 0.0 3.4 1.6 2.5 3.13 1.7질병이환 및 사망의 외인 (V01-Y89) 40.2 15.1 20.8 18.5 33.5 74.7 33.9 34.6 36.7 2.43 21.6

- 운수사고 (V01-V99) 9.5 5.0 7.0 8.6 10 45.0 11.0 11.3 13.4 2.68 8.4

- 고의적 자해(자살) (X60-X84) 22.8 7.5 7.9 6.8 14.9 14.6 14.5 12.3 14.7 1.96 7.2

최고사망률 직종 최저사망률 직종

직종 1: 입법자, 고위임직원 및 관리자, 직종 2: 전문가, 직종 3: 기술공 및 준전문가, 직종 4: 사무직원, 직종 5: 서비스 근로자 및 상점과 시장판매 근로자, 직종6: 농업 및 어업 숙련근로자, 직종 7: 기능원 및 관련 기능근로자, 직종 8: 장치, 기계조작원 및 조립원, 직종 9: 단순노무직근로자

사망률비=직종9 사망률/직종 2 사망률, 사망률 차이= 직종9 사망률-직종2 사망률 (10만명당)

표 3 직종별, 사망원인별 사망률 (여성, 10만명당)

* 본 연구결과는 국제저널 Occupational and Environmental Medicine [직업환경의학] 온라인버전에 2016. 2. 26에 등재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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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4월16일 멈춰버린 세월호의 진실

기억하자 그리고 행동으로 함께하자

글/사진 쌀집아재

사진으로 보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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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 얼마면 살 수 있는데?정부의 안전 대책은 산업화, 시장화

최민 집행위원장

특집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사회 안전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세월호 참사 직후인, 2014년 8월 대통령은 “국가 안

전대진단과 안전투자 확대, 안전산업 육성을 통해

안전한 대한민국, 안전과 성장이 선 순환하는 대한

민국을 구현해야 한다.”면서 세월호 참사로 형성된

국민들의 불안감과 안전에 대한 욕구를 안전산업

육성으로 해소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에 따

라 정부는 2015년 3월 안전산업 활성화 방안을 발

표했고, 이는 여전히 정부 안전 정책의 가장 주요한

줄기가 되고 있다.

위험한 곳을 찾아라! 안전산업이 지켜줄 거야

정부가 2015년부터 매년 시행하는 국가안전대진단

결과도 안전산업과 적극 연결시키려 시도하고 있다.

올해도 ‘국가안전대진단’이라는 이름으로 2월 15일

부터 4월 30일까지 사회 전 분야에 대해 안전 점검

을 실시한다. 그런데, 이런 대진단의 주요 목적 중

하나는 대진단을 통해 발굴된 보수·보강 수요를 빨

리 안전 투자로 이어지도록 하고, 첨단 기술을 활

용한 진단장비가 필요하다면 R&D 사업과 연계하

여 신산업을 창출하겠다고 한다. 작년에도 약 1조

6000억 원 규모의 안전투자 수요를 발굴, 재정 투

자를 확대했다고 한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 판교 테크노밸리 환풍구 붕괴

사고, 의정부 아파트 화재 사고 등이 안전 투자가

부족하거나, 첨단 장비를 사용한 위험 진단이 안 돼

서 발생했었는지 되물을 수밖에 없다. 참사의 주요

원인은 눈에 보이는 위험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고,

규제하지 않은 것이었다. 정말 원인을 못 찾는 것인

지, 모르는 척 하는 것인지 묻고 싶다.

안전은 첨단 기술이 지켜주나요?

안전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안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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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 기술을 연결시키는 기사가 최근 부쩍 자주 등

장한다. 이런 첨단 기술의 사례는 매우 다양하다.

소방 웨어러블 기기, 국민안전 로봇, 안전 감지센

서, 재난대응현장 무인기, 드론을 활용한 산업단지

재난 대응, 인공지능(AI) 등이 모두 입길에 오르내

린다. 각 지자체는 서로 관련 산업 공단을 유치하기

위해 경쟁한다. 마치 이런 기술이 안전하고 행복한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는 듯 국민을 현혹시킨다.

그러나 단언컨대 안전문제는 기술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자동화로 인적오류를 없애 사고를 줄이겠다

는 전통적인 안전 패러다임은 실패했다.(박상은,『대

형사고 는 어떻게 반복되는가』) 복잡하고 거대한 규

모의 체계에서 발생하는 사고일수록, 사고의 원인

을 개인에서 찾고 그 돌파구를 기술에서 발견하려

는 시도로는 안전을 획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새로

운 기술은 새로운 위험을 내포한다.

국민 생활안전 인프라는 CCTV?

국민안전처의 2016년 예산은 3조 2천억 원에 달한

다. 예산을 발표할 당시, 국민안전처는 국민 생활안

전 인프라 확충 및 안전관리시스템 구축에 역점을

두었다고 자랑했다. 대표적으로 어린이보호구역・도시공원 등 전국 3,306개소에 CCTV설치를 지원하

는 데, 346억 원을 사용하겠단다. CCTV 산업 지

원은 이런 직접 투자뿐 아니라 간접적인 방식으로도

이루어진다. 2015년 12월, 정부는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칙」 일부 개정안을 마련했다. 300세대

이상이거나, 150세대 이상으로서 승강기가 설치된

공동주택의 경우에는 현재 41만 화소 이상의 폐쇄

회로 텔레비전을 설치토록 하고 있으나, 앞으로 화

소수를 130만 화소로 상향하도록 하는 것이다.

지난 2015년 국정감사에서 이미, 450만대의 민간

CCTV와 700만대의 차량용 블랙박스가 정부의 관

리·감독 밖 사각지대에서 운영되고 있어 개인 정보

유출 등의 우려가 제기된 바 있다. 정부의 CCTV

산업 지원은 ‘안전한 사회’ 대신 ‘감시와 치안 사회’

를 만드는 데 활용될 뿐 아니라, 대기업 배불리기에

이용된다. 2013년 기준으로 CCTV 등 물리보안 산

업은 국내 시장이 1.2조원이 넘고, 이 중 85%를 에

스원, KT텔레캅 등 3대 기업이 점유하고 있다.

점점 더 커지는 민간 보험 시장

정부는 또 ‘재난의무보험 가입 확대’도 추진한다.

위험부담을 사전에 잘게 쪼개 대비하는 ‘보험’ 방식

자체를 반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예전에는 정부

나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이던 재난을 예방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 재난으로 인한 손실을 평가하고 배상

하는 것이 이제는 모두 민간 보험업계의 먹잇감이

되고 있다.

보험업계는 당연히 환영한다. 정부는 '재난 및 안전

관리 기본법'을 개정해 2016년 12월부터는 재난의

무보험 가입을 확대하도록 했는데, 법 개정 과정과

포괄적 재난보험 상품 개발을 보험업계와 함께 해

왔다. 국민안전처는 2015년부터 보험업계와 업무협

약을 맺어 보험요율·위험률 산출 및 통계 관리, 보

험 대상물건의 안전 진단, 위험분산 연구 등을 함께

하고 그 결과 경마장, 박물관, 미술관, 전시시설 등

까지 의무 보험 가입 대상을 늘리는 법 개정에 성공

했다.

안전산업활성화방안 발표 초기부터 정부는 ‘주요

선진국은 민간의 자율 규제가 중심이 되나, 국내의

경우 재난·안전이 공공의 역할로 인식되고 있어, 정

부에 대한 시장 의존성이 높다’고 지적해왔다. 재난

과 안전이 공공의 역할이 아니라면 대체 공공의 역

할에는 무엇이 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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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안전관리 기본계획>이라는 것이 있다. 이 계획

은 헌법 제34조 제6항,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 제

22조 및 시행령 제26조에 따라, 각종 재난 및 사고

로부터 국민의 생명·신체·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국

가의 재난 및 안전관리의 기본방향을 설정하는 최

상위 계획이다.

<국가안전관리 기본계획>을 수립하기 이전 1970년대

는 산업화·도시화가 시작되면서 정부는 재난으로부

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풍수, 가뭄

등 자연재난 중심의 <방재계획>을 세워왔다. 1990

년대 들어서는 <국가재난 관리계획>이라는 이름으로

화재, 폭발, 붕괴 등 재난예방 계획을 세웠다.

2004년엔 고령화·기후변화·신종감염병 등으로부터

예방하기 위해 종전의 안전대책을 <국가안전관리 기

본계획>으로 통합하여 2005년부터 5개년 계획을

세웠다. 여기에 지난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는 재난안전체계를 근본적으로 혁신하겠

다면서 “안전혁신 마스터플랜”을 마련하고 이를 반

영한 제3차 국가안전관리 기본계획을 수립했다.

국가안전관리 기본계획은 앙꼬 없는 찐빵

제3차 국가안전관리 기본계획은 국민 대다수가 하

루 중 절대적인 시간을 보내는 산업현장, 그리고 그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안전보건에 대한 진단

과 대책이 비어있다. 한국은 OECD 산재 사망 1위

국가이다. 계속되는 국가와 정부의 솜방망이 처벌

은 반도체 전자산업에서 일하던 노동자, 조선소/건

설업 하청 노동자 죽음의 행렬을 막지 못하고 있다.

지하철 청소 노동자가 임시 비계가 없어 3m 사다리

에서 떨어져 죽거나, 스티로폼 파쇄기에 노동자가

빨려 들어가 사망하고 이주노동자가 프레스에 손가

산업안전 없는 국가의안전 계획이 시사하는 점제3차 국가안전관리기본계획을 중심으로

재현 선전위원장

특집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사회 안전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31

락이 잘리는 등 아직도 기본이 지켜지지 않아 일어

난 후진국형 산재 사고들이 곳곳에 널려있다.

그러나 정부는 여전히 국가의 안전대책에 있어 자

연재해/재난으로부터 국가 기반시설과 재산을 지키

고, 안전불감증인 국민의 안전의식을 재고하겠다는

것 이상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최근엔 세월호 참사 이후 재난/안전의 문제를 산업

화하면서 일자리 창출, 경제적 이익 창출을 기대하

며 시장화하고 있다. 이는 국민안전처가 제출한 제

3차 국가안전관리 기본계획 (2015~2019)에서 밝힌

현실인식과는 정 반대의 대책이다.

국가안전관리 기본계획에 따르면 한국 시설물의 노

후화·고층화·대형화는 유해·위험요인을 증가시키

고 있다. (50년 이상 노후 시설 다수 (교량 27%,

터널 30%, 옹벽 37%, 승강장 17%) 또한,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안전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노

인과 이주 노동자가 증가하는 등 안전으로부터 배

제된 노동자가 많다. (65세 이상 인구비율 (’13년

12%→’50년 37%), 국내체류 외국인 약 160만 명

(’13년)) 또한, 원자력, 가스 등 에너지 기반 시설,

화학물질 사용량 증가 등에 따른 안전사고의 위험

도 높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런데 대책은 재난안전 컨트롤타워 강화, 부족한

재난담당 인력의 전문성 역량 강화다. 산업현장의

안전에 관해서는 관계 부처와 협업을 통해 산업단지

내 안전 관련 시설 등을 설치하고 노동자를 위한 산

재예방시설을 만듦으로서 창조적인 안전관리를 하

겠다고 한다.

영국의 사례가 시사하는 점

2016년 1월 영국 안전보건청(HSE)은 지금까지 괄목

할만한 성과를 이룬 국가의 안전보건이 한 걸음 더

나아가 모든 노동자가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

도록 6가지 전략 주례를 발표했다. 주목할 건 전략

수립에 있어서 사업주는 물론 노동자 중앙정부기관,

지자체, 노동조합 등의 의견을 수렴했다는 점이다.

① 작업장 안전보건에 대한 폭넓은 주인의식 장려

② 업무상 질환에 대한 우려 탐색 및 해결

③ 소규모 업체 지원

④ 위험관리 단순화 및 사업 성장 장려

⑤ 새로운 기술 및 업무 방식에 따른 문제 예상 및 해결

⑥ 영국의 접근법에 따른 혜택 공유

* 영국은 유럽국가 중 가장 낮은 업무상 사망사고율 기록

하고 있다.

(2014/2015년 업무상 사망사고 142건, 중대사고로 인한

재해피해 노동자 611,000명)

지금도 유럽 내 국가 중 영국은 노동자의 안전보건

을 모범적으로 관리하는 국가이다. 그런데 지금보다

더 나아지기 위해 계획을 세우겠다고 안전보건청이

나서는 것이다.

유해·위험 작업을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에게 외주화

하고, 삼성 반도체 하청 노동자 메탄올 중독 사건에

서처럼 중·소규모 노동자의 안전보건이 무방비 상태

에 놓여있는 한국의 상황에서 정부의 국가안전관리

기본계획과 영국의 사례를 대조해보면 안전혁신을

위해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시사하는

바가 크다.

32

2015년 12월 양산시의회에서 <양산시 화학물질 안

전관리 조례>가 제정되었다. 양산시의원의 발의로

통과된 이번 조례는 보수적인 시의회의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해서 처음 제안된 조례안의 내용을 축

소시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소박한 내용의 조

례가 갖는 의미는 주민의 알권리 보장과 참여를 위

해 통과해야하는 1차 관문의 입장권을 확보한 것이

아닐까 싶다. 조례의 내용은 참으로 단순하나 그

배경은 간단치 않기에 짧지 않은 시간들을 돌아보

지 않을 수 없다.

2010년 민주노총화학섬유노조, 민주노총양산시지

부, 외국인노동자의 집, 양산노동민원상담소, 웅상

노동상담소 등 여러 노동단체로 구성된 <웅상지역

노동자의 더 나은 복지를 위한 사업본부>(이하 웅

상사업단)가 웅상지역노동자의 노동조건, 건강권

및 복지실태 조사를 위한 설문조사 및 캠페인을 전

개한 결과 무방비상태에 놓여있는 영세사업장노동

자들의 건강권과 복지의 열악함을 확인하게 되었고

보고대회 등을 통해 지역사회에 알리기 시작했다.

2011년에는 ‘유해물질 정보제공 사업’을 통해 작업

현장에서 취급하는 화학물질 시료를 채취하여 분석

하였다. 미조직영세사업장이나 조직된 노동자들이

나 모두 자기가 취급하는 화학물질의 유해성을 알

지 못하고 있었으며, 유해물질에 대한 노출도 심각

했다. 채취된 30개의 시료 중 44%에서 발암성물질

또는 생식독성 등 기타독성이 함유된 것으로 분석

되었다. 그해 5월에 양산시의회 심경숙 의원이 주최

하고 웅상사업단이 주관하여 “발암물질 없는 안전

한 일터와 양산만들기”라는 주제의 토론회를 진행

하면서 ‘생산에서부터 소비까지 발암물질 없는 사

회’를 위해 양산시가 발암물질이 함유된 세척제를

사용하는 사업장에서 대체물질을 사용하도록 조례

지역주민의 요구로 만들어진 양산지역 화학물질 안전관리

조례의 의미

이보은 안전하고 행복한 양산만들기 주민모임

특집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사회 안전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33

를 제정하라고 강력하게 요구하기도 하였다. 또한

노동조합과 지역주민이 조례제정을 위한 캠페인이

나 서명운동을 전개하는 등 ‘안전한 일터와 지역사

회 만들기’ 운동을 하였으며, 그 일환으로 10월에 <

웅상노동문화한마당>을 개최하여 주민들과 공유하

고자 하였다.

2012년, 2013년에도 꾸준히 이어진 이러한 활동은

지역 주민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 지역사회 생활운

동과 연계하여 문제를 해결해보려는 시도였으며 그

속에서 노동조합의 역할과 위상을 높여가며 노동조

합의 조직화도 꾀하고자 하였다.

민주노총화섬노조간부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지역노

동단체들의 연대에도 불구하고 지역주체를 제대로

세우지 못하는 문제로 집중력이 떨어질 즈음 <웅상

지역단체연대> 대표자들과 유해화학물질관련 논의

가 시작되었고 곧이어 세월호 사건이 터졌다. 세월

호의 아이들은 우리에게 삶과 활동의 태도를 바꾸

게 하였다. 세월호와 같은 사고의 위험이 곳곳에 널

려있는 한국의 현실을 직시하며 유해화학물질에 대

한 주민의 알권리를 우리의 문제로 놓고 토론하게

되었다.

당시 <유해화학물질 감시활동>을 하고 있었던 현재

순(일과건강 기획국장, 화섬노조 노안국장)님의 도

움을 받아 공부하고 토론하며 뜻있는 지역주민들이

모여 수차례의 지역간담회와 다양한 주민들과의 간

담회를 거쳐 2014년 11월에 <안전하고 행복한 양산

만들기 주민모임>(이하 주민모임)이 만들어졌다.

당시 우리지역의 주요현안이었던 <고리1호기재가동

중단>대책위에 함께하며 지역제단체와의 연대활동

이 섬세하고도 줄기차게 이어지는 속에서도, 2015

년 5월부터 박대조시의원과 협의를 시작하였다. 안

행주 주민모임에서 화학물질관련 학습도 진행하는

등 부단한 노력을 이어 담당부서공무원간담회, 공

무원노조 및 관련부서 공무원 확대간담회, 낙동강

유역환경청간담회 등을 거쳐 조례안을 만들고 시의

회에 발의하게 되었다.

주민모임이라는 지역주체가 마련되면서, 전통적으

로 보수여당일색의 시의회에 세월호사건의 반향으

로 당선된 야당 소속 4명의 시의원의 역할과, 웅상

사업단의 5년여간의 활동의 성과, <알권리 보장을

위한 화학물질감시네트워크>의 활동의 확산, 불편

한 몸을 이끌고 장거리를 오가며 해주신 화섬노조

노안국장의 헌신적인 노력,,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

전국의 화학사고의 문제점과 이러한 화학물질사고

가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는

지역주민으로써의 안전보장에 대한 필요성이 함께

어울리게 되면서 화학물질안전관리조례안 제정 활

동이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올 수 있게 되었고, 그 결

과물의 하나가 지역조례이다.

향후 조례를 근거로 한 ‘양산시 화학물질 안전관리

위원회’ 구성과 ‘위해관리계획서 지역사회고지’, 더

나아가서는 <알권리 보장을 위한 조례개정> 등 실질

적 활동을 위한 용기와 능력을 준비하는 것이 지금

주민모임의 숙제이다.

해본 적도 없고 아는 것도 어설펐기에 조례제정까지

주민모임 구성원들은 나름 긴장하고 고단했었다.

그런데 조례 만드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제부터가 시작이라는 상황을 인지하게 되면서, 앞

으로 갈수록 태산일 것 같고, 할수록 늘 것 같은 미

지(未知)의 과제들이 넘겨다봐지기에 이 여정이 결

코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함께 뜻을 나누고

도모할 수 있는 이들이 있기에 우리는 서로를 북돋

우며 또다시 엄두를 낼 것 같다.

34

2주기

설레는 마음으로 수학여행을 떠났던 학생들, 그들

을 인솔한 교사들, 배에서 조리 일을 하거나 아르

바이트를 하던 사람들, 저마다의 이유로 제주를 향

했던 사람들, 화물을 실어나르던 사람들……. 예고

없이 찾아온 세월호 참사로 인해 발생한 희생자들

의 죽음을 마주한 4월이 다시 다가오고 있다. 벌써

2주기이다. 2년 전 4월 16일 진도 앞바다에서 304

인의 안타까운 죽음을 가져온 세월호 참사는, 그것

을 지켜본 많은 이들에게 고통으로 각인됐다. 살아

남은 자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세월호 참사 이전과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희생자들 앞에서 ‘미안합

니다’라며 고개를 떨궜고, ‘잊지않겠습니다’라고 되

뇌였다. ‘존엄과 안전에 관한 4.16인권선언’ (이하

416인권선언)은 세월호 참사를 경험한 우리들의 이

야기를 담아냈다. 권리를 빼앗기고, 인간의 존엄성

과 인권이 파괴당하는 현실을 마주한 사람들이 세

월호 참사 이후의 ‘안전사회’를 바라며 꺼내놓은 말

들이다.

달라져야 한다는 호소에서 시작된 운동

‘4.16인권선언’은 참사가 발행한 2014년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의 날’에 416인권선언제정운동의 필요

성을 제안한 세월호 유가족 당사자들의 호소로부

터 출발했다. 그들 곁에는 제안자로 삼성반도체 백

혈병 피해자가, 마우나리조트 붕괴, 태안 해병대 캠

프 사고, 대구지하철 사고, 씨랜드화재, 인천인현동

호프집 화재 희생자 유가족이 구성한 재난가족협의

회가 함께 했다.

세월호 참사를 인권으로 말하다‘존엄과 안전에 관한 4.16인권선언’

제정 운동의 의의

푸우씨 416인권선언제정특위 위원, 상임활동가

특집 여성 노동자 건강권의 현주소와 대안은?

35

이들의 제안에 함께 하겠다는 전국의 수많은 노동

시민사회 성원들이 모여, 인권선언추진단을 구성하

고, 몇 차례의 전국추진단 전체회의 등을 진행하

며, 당사자들의 호소에 가장 먼저 손을 내밀었다.

풀뿌리 토론을 통해 세월호 참사에 대해 입을 떼기 시작하다

416인권선언제정운동은 전국 각지에서 진행된 풀뿌

리토론으로 번졌다. 1,100여명이 각자의 공간에서

진행한 풀뿌리토론은 각자가 마주한 세월호 참사의

경험을 각자의 말로, 생각으로 표현하는 시간이었

다. 그동안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말, 머릿

속에서만 맴돌던 세월호 참사에 대한 이야기를 용

기내어 말할 수 있는 자리였다. 토론을 시작하면서

이내 울음을 터트리는 토론참여자들도 있었다. 수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참사의 무게가 각자를 짓눌

러 왔기 때문이다. 풀뿌리 토론은 그 무게를 내려놓

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 시간을 함께 겪으며 그동안

어디에서도 쉽게 말하지 못했던 세월호 참사가 남겨

놓은 상흔을 서로 보듬고, 같이 아파하고, 눈물을

닦아주는 시간이었다.

흩어져 있던 권리가 선언으로 구성되다

그렇게 각자의 공간에서 꺼내놓은 이야기가 쌓이

고, 쌓였다. 전국 100여개의 공간에서 풀뿌리 토론

이 진행되었고, 860여개의 권리들이 제출되었다.

‘재난과 참사를 막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권리가

무엇일까요?’라는 질문에 답하기 어려워하는 참가

자들이 상당했다. 그들은 “이제껏 살면서, 내가 ‘권

리’를 가진 사람으로 불려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

요.”라고 말하며, 풀뿌리토론의 소중함을 다시금

강조했다.

그렇게 모아진 860여개의 권리가 선언문으로 구성

되었다. 풀뿌리토론 과정에서 존엄과 안전을 지키

기 위해 필요한 권리로 제출된 것에는 ‘노란리본을

달고 학교에 갈 권리’, ‘유가족이 혐오와 조롱을 받

지 않을 권리’ 같은 내용이 있다. “아직도 세월호

냐? 지겹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에 의해 ‘애도’ 조

차 억압되는 현실이 여실히 확인되는 대목이다. 존

엄과 안전이 저절로 주어지거나, 보장되지 않는 지

금의 사회에서 이를 스스로 쟁취하고 지켜내기 위해

‘연대할 권리’, ‘저항할 권리’처럼 권리침해에 맞선

행동과 연대가 진행되어야 한다는 의견들도 상당했

다. 이렇게 제기된 권리의 낱말들이 모여 문장이 되

었고, 지금 형태의 선언으로 재탄생했다. 선언문은

전문-13개의 권리항목-후문으로 구성되었다.

선언에 숨을 불어넣자

4.16인권선언은 다가오는 세월호 2주기 추모가 진행

되는 전국의 곳곳에서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행

동으로, 연대로 번져나갈 것이다. 단지 종잇장 위에

쓰여진 권리가 아니라, 선언이 살아숨쉬기 위해서는

연대로, 행동으로 숨을 불어넣는 과정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인간의 존엄과 안전이 보장되기를 바라

는 절절한 호소이기도 한 선언문의 마지막 문장을

이제 우리가 행동으로 옮기자.

“이 선언은 선언문으로 완결되는 것이 아니라 수많

은 우리가 다시 말하고 외치고 행동하는 과정 속에

서 완성되어 갈 것이다. 함께 손을 잡자. 함께 행동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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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과 안전에 관한

416 인권 선언

부록

누구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세월호 침몰은 한국 사회가 이미 가라앉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으며, 수많은 세월호들의 침몰 속에서 다시 닥쳐온 재난이다. 이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참혹하게 드러낸 참사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정의를 짓밟고 언론은 진실을 왜곡하고 있다. 인간의 존엄에 침을 뱉고 참사의 진실을 덮으며 여전히 가만히 있으라 한다. 그러나 가만히 있으면 이 땅에 아무도 남지 않게 될 것이다.우리는 인간으로 다시 살기 위해 저항과 연대를 멈출 수 없었다. 팽목항에서, 안산에서, 광화문에서, 애통함이 뒤덮인 또 다른 거리에서 우리는 함께 마음을 졸이고 아파했다. 눈물을 흘렸고, 이야기를 했고, 광장에 나섰고, 길을 걸었다. 흔들리면서도, 박해받으면서도 우리는 함께 싸우며 우리의 존엄을 회복하고 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고 모욕은 존엄을 밀어낼 수 없다.모든 사람은 그 자체로 자유롭고 평등하다. 안전한 삶은 모든 사람이 누려야할 권리다. 안전은 통제와 억압으로 보장될 수 없으며,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자유, 평등, 연대 속에서 구현되는 인간의 존엄성이야말로 안전의 기초이다. 우리의 존재가 오직 이윤 취득과 특권 유지의 수단으로만 취급되고 부당한 힘이 우리의 권리와 삶의 안전을 위협할 때 우리는 이에 맞서 싸울 것이다.권리는 저절로 주어지지 않으며 우리가 협력하여 싸울 때 쟁취하고 지킬 수 있다. 권리를 위한 실천이 우리가 주권자임을 확인하는 길이며, 곧 민주주의 투쟁이다. 우리는 존엄과 안전을 위협하고 박탈하는 세력들에 맞서 노란 리본을 달고 촛불을 들겠다. 세월호의 아픔으로 시작한 이 싸움은, 모든 이들의 존엄을 해하는 그 어떤 장애물도 넘어설 것이다. 그리하여 함께 살고 함께 나누는 세상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이 다짐을 담아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1.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은 최우선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돈이나 권력은 인간의 생명과 존엄보다 앞설 수 없다.

2. (자유와 평등) 모든 사람은 자유롭고 평등하다. 어떠한 이유로도 억압당하거나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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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_ 사회변혁노동자당

3. (연대와 협력) 모든 사람은 연대할 권리를 가진다. 누구도 혼자 살 수 없으며, 인간의 존엄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협력하며 살아갈 때 지켜질 수 있다.

4. (안전을 위한 시민의 권리와 정부의 책임) 모든 사람은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를 가지며,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참여할 권리를 가진다. 모든 사람은 위험을 알고, 줄이고, 피할 권리가 있으며 이를 보장할 일차적 책임은 정부에 있다.

5. (구조의 의무) 정부는 모든 역량을 동원하여 재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구조하고 이들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 구조에 있어서 그 어떤 차별도 있어서는 안 된다.

6. (진실에 대한 권리) 모든 사람은 재난을 초래한 환경과 이유를 포함한 진실을 알 권리를 가진다. 진상조사를 위한 기구에는 충분한 권한이 주어져야 하며 공정성과 독립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진실에 대한 어떠한 은폐와 왜곡도 용납될 수 없다.

7. (책임과 재발방지) 재난의 해결은 정의로운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책임자를 엄정하고 공정하게 처벌해야 하며, 유사한 재난의 발생을 막기 위해 정부와 사회는 철저한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8. (피해자의 권리) 피해자는 부당한 해를 입었고 고통을 겪는다는 사실을 인정받고, 존중 받을 권리가 있다. 특히, 정부와 책임 있는 대표자로부터 공식적인 사과와 배상을 받을 권리가 있다. 또한 피해자는 사건 해결의 전 과정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

9. (치유와 회복) 피해자는 재난 발생 즉시 필요한 구제와 지원을 평등하게 받을 권리가 있다. 또한 치유와 회복을 위해 적극적이고 충분한 조치를 취할 일차적 책임은 정부에 있다.

10. (공감과 행동) 모든 사람은 재난으로 생명을 잃은 이들을 충분히 애도할 권리를 가진다. 모든 사람은 재난 피해자의 아픔에 동참하고 정의를 실현하기 위하여 말하고, 모이고, 행동할 권리를 가진다.

11. (기억과 기록) 공동체는 피해자를 기억하고, 재난과 그 해결의 전 과정을 기록하여야 한다.

12. (저항할 권리) 정부, 기업, 언론 등 권력기관이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을 침해하고 안전을 위협할 경우, 모든 사람은 스스로 방어하고 연대하여 투쟁할 권리를 가진다.

13. (존엄에 기초한 사회를 만들 권리) 모든 사람은 돈과 권력이 중심이 되는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꿔 자유와 평등, 연대와 협력, 인간의 생명과 존엄에 기초한 사회를 만들 권리를 가진다.

우리는 상실과 애통, 그리고 들끓는 분노로 존엄과 안전에 관한 권리를 선언한다. 우리는 약속한다.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진실을 밝히고 정의를 세우기 위한 실천을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또한 우리는 다짐한다. 이 세계에서 벌어지는 각종 재난과 참사, 그리고 비참에 관심을 기울이고 연대할 것임을. 우리는 존엄과 안전을 해치는 구조와 권력에 맞서 가려진 것을 들추어내고 목소리를 내는데 주저하지 않겠다. 이 선언은 선언문으로 완결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우리가 다시 말하고 외치고 행동하는 과정 속에서 완성되어 갈 것이다. 함께 손을 잡자. 함께 행동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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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안전! vs 자본의 안정?지하철 경정비 부분 외주화를 반대한다

유성권 지하철비정규지부 지부장 인터뷰

정하나 선전위원

현재 서울 지하철 시청역에서는 천막이 하나 쳐 있다. 그곳은 1~4호선 서울메트로와 5~8호선 서울도시철도 두 지하철 공사에서 전동차 경정비 업무를 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서울시를 상대로 농성을 벌이는 현장이다. 이 노동자들은 “지하철 안전을 위해, 서울시민의 안전을 위해 경정비 업무를 직영화(혹은 정규직화)해야 한다”고 서울시에 요구하고 있다. 지하철 전동차의 경정비 업무란 무엇이기에 시민의 안전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 서울시는 어떤 철학을 가지고 이를 외주화 하는 것일까? 서울지하철비정규지부의 유성권 지부장의 이야기를 통해 살펴보자.

Q. 농성을 하고 있는 지하철 정비 노동자들이 소속 회사도, 노동조합도 한군데가 아니라고 들었다. 이 농성을 하고 있는 단위에 대해 설명해 달라서울메트로(1~4호선)와 서울도시철도(5~8호선)의 차량부문에서 일하고 있는 정규직노조와 비정규직노조로 구성된 차량4노조연대에서 지난 2월 23일부터 천막 농성을 하고 있다. 즉, 서울지하철비정규지부, 서울도시철도ENG노조 전동차정비본부, 서울지하철노조 차량지부, 서울도시철도노조 차량본부이다. 이 중 제가 속한 서울지하철비정규지부와 서울도시철도ENG지부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이다. 2008년 오세훈 시장 시절 안전 보다 무조건적으로 비용을 절감을 해야 한다는 철학과 기조아래, 자회사를 설립해 경정비 업무를 아웃소싱(외주화)하면서 정비업무를 직영 정규직과 외주 비정규직으로 나누면서 차량정비 노동자들이 나뉘게 되었다.

Q. 2008년부터 서울시는 정비업무를 외주화하면서 그 근거로 경정비는 ‘비핵심 업무’ 다는 것 같다. 최근 한국능률협회에서 도“지하철 양 공사의 전동차 정비 업무가 비핵심 업무”가 아니라는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냈다고 하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한국능률협회에서 컨설팅 한 보고서 결과인데 기가 막힌다. 현장에 한번 와보지도 않고 경정비 업무를 비핵심 업무로 말한다는 게 일단, 그 보고서의 전문성, 객관성에 의심이 간

특집 여성 노동자 건강권의 현주소와 대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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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경정비 업무란, 지하철 전동차가 안전하고 깨끗한 상태로 운행될 수 있도록 유지/보수 하는 업무를 뜻한다. 먼저 육안으로 3-5일마다 하는 검수 업무가 있다. 검수는 잠시 기지로 들어와서 쉬는 전동차들의 실내 위주의 검사로, 냉방기 필터나 객실손잡이, 각종 커버류, 형광등 등을 확인한다. 경정비는 3개월, 6개월 등 개월 수를 나눠 전동차의 중요 소모품을 교환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브레이크슈 교체작업이라고 해서 주행 중인 전동차를 멈추게 할 때 필요한 브레이크 패드를 시기에 맞게 갈아주는 것이다. 또, 전동차 출입문이나 브레이크 등 각종기기들의 작동에 필요한 공기압을 생성하는 장치인 CM(주공기 압축기)를 정비하는 작업 등과 같은 것이다. 모두 전동차가 탈선하지 않고, 안전하게 달리고 제때 멈추고, 승객들이 타고내릴 때 위험하거나 불편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필수’적인 일이다.

Q. 그래도 최근 서울시가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 노조와 양공사 통합을 위한 합의안을 도출하면서, 외주화된 정비 부문와 스크린도어 관리 부문을 순차적으로 직영화 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이런 합의가 있었는데 차량4노조연대가 농성을 지속하는 이유는?이번 발표는 2012년 12월 박원순 시장이 2차 비정규직 고용개선 대책을 발표하면서 경정비 노동자를 직접고용하면서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당시 2015년까지 직접고용/정규직화를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는데,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똑같은 사안을 가지고 약속을 지키라며 농성을 하고 있다. 이번 발표를 보니까 서울시가 2017년까지 순차적으로 직영화 하겠다고 하는데 그간의 경과를 보더라도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을 뿐 더러, 2017년 시장이 누구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는 2012년에 했던 약속을 즉각 이행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안전을 위해서는 단일화 된 정비시스템이 필요하고, 경정비 노동자들이 충분한 인력/합리적인 근로조건 속에서 꼼꼼히 검수/정비 업무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처럼 경영효율화를 위시하며 안전 핵심 업무를 하는 노동자들을 외주화하고 직접고용/정규직화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 행태는 결국 서울시가 ‘안전보다 이윤’을 중시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과 다름없다.

사진 출처_ 사회변혁노동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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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관리위탁기관 의사의 사업장 방문 횟수는 100

인 이상 사업장인 경우 3개월에 1회, 50인 이상인

사업장인 경우 6개월에 1회이다. 일본은 규모에 상

관없이 2개월에 1회라고 들었는데, 한국은 특이하

게 필수적이고 중요한 안전보건도 작은 기업일수록

더 비중이 작다. 오히려 작은 사업장일수록 작업환

경이나 노동조건이 열악한데도 규제라는 측면에서

경제성을 따져서 그렇다.

그렇게 가끔 의사가 사업장을 방문하면 매달 방문

하는 사업장의 터줏대감인 보건관리 간호사로부터

많은 정보를 얻게 되고, 그동안 간호사가 귀에 따갑

도록 말해도 변화가 없던 노동자나 관리자, 사장님

에게 갖은 방법을 동원하여 설득작업에 들어간다.

“누가 법 다 지키고 사업하나?” 라는 말을 들어도,

“선생님은 그냥 서류만 써주시고 가세요.” 라고 해

도, 내가 해야 할 일과 내가 해야 할 말을 할 수 밖

에 없다.

가끔 가는 사업장이니 현장순회와 산업안전보건위

원회 참석과 근로자건강진단 사후관리를 비롯해서

보건교육 등 할 일은 많은데, 짧은 시간에 많은 것

을 하기는 어렵다. 이 사업장 노동자가 안전하고 건

강하게 일할 수 있는 일터인가?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사실 일할 맛 난다는 것은 무엇일까?

고민을 하게 된다. 예전에 SNS에서 “직원들은 사장

의 현란한 철학보다 사무실, 식당, 화장실, 처우를

통해 회사를 평가한다.”라는 글을 본 이후로, 회사

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 사실 회사의 분위기, 즉 조

직문화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다만 그런 분위기에

서 사측의 대리자로 선임된 보건관리위탁기관의 의

료인들이 사업장에서 조금 더 건강하게 일할 수 있

도록 어떤 보탬이 될 수 있을까? 의 관점이 바뀐 것

이다.

첫 번째는 노동자와의 건강상담 환경개선이다. 그

회사가 좋은 회사인지는 노동자분들과의 만남의 자

리를 보면 알 수 있다. 감정노동으로 인한 고통, 직

장 내에서의 어려운 관계, B형간염이나 수술, 개인

적으로 민감한 건강문제를 이야기해야 하는 경우도

많은데, 노동자들이 안심하고 누군가와 대화할 수

있는 면담실을 제공하는가가 매우 중요하다.

실제로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더라도 모든 길이 막

힌 상황에서 의료진을 만나서 숨 쉴 공간을 얻는 경

우도 많다. 가장 최악이 관리나자 사장님이 옆에서

다 듣고 거드는 경우다. 본인은 남을 생각한다고 하

고, 가끔 정말 치료가 필요한데 치료안하고 있는 분

들에게는 적극적인 동기부여가 될 수도 있지만, 노

동자의 입장에서는 불가한 일이다. 정말 면담이 필

요한 분들이 의료진을 멀리하고 면담 시 짜증을 내

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우리 사업장이 변할까요?

강충원 후원회원, 직업환경의학전문의

41

거나, 불편해 하는 것은 개인의 성격이라기보다는

회사가 건강의 문제에 대해서 함께 배려하고 공감하

는 문화인지 아니면 통제하고 핀잔을 주는 문화인지

에 따라서 다른 것이다. 산업안전보건법에서도 건강

진단의 결과를 활용하여 건강보호를 위한 목적 외에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면 과태료가 300만원이다.

두 번째는 휴게실 환경개선이다. 산업안전보건기준

제9장에는 “사업주는 근로자들이 신체적 피로와 정

신적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도록 휴식시간에 이

용할 수 있는 휴게시설을 갖추어야 한다.”라는 조항

부터, 세척시설, 수면시설, 장시간 서서 일하는 경

우 의자의 비치까지 규정하고 있다. 보건관리계약

을 맺고 처음 방문하는 사업장에서 내가 제일 많이

보는 것은 휴게실이다. 냉난방은 되는지, 천장에서

가루는 안 떨어지는지, 혹시 석면은 아닌지, 물이나

화장실, 목욕탕 사용, 개인 락커는 있는지, 등받이

가 있는 의자인지, 누워서 쉴 수 있는지, 파라핀욕

조, 안마기, 발마사지기 등의 시설이 있는지, 휴게

시간은 적절한지 등을 본다. 내가 이것을 더 중요하

게 생각하는 이유는 “사람다움”에 대한 것이기 때

문이다. 어쩔 수 없이 기계처럼 일하더라도 “사람처

럼” 쉬면 좋겠다는 작은 타협이다.

세 번째는 산업안전보건위원회에서 개선의견을 내

는 것이다.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100인 이상, 일

부 위험업종은 50인 이상, 일부는 300인 이상 사업

장에서 분기별로 산업안전보건위원회라는 회의체를

운영하게 되어있다. 여기에는 노사동수로 위원들이

구성되고 책임자가 참석하게 된다. 실제로 운영되는

경우는 10%내외, 나머지는 매년 반복되는 서류작

업이다.

그런데 요즈음은 분위기가 바뀌어서 실제로 회의를

개최하고 의견을 반영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사업장에서 노동자와 면담을 통해서 들었던 불편한

사항에 대한 것이나, 건강검진이나 작업환경측정,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의 개선의견 등 관리자 차원

에서 차단되거나 관리자가 깜빡한 내용들을 책임자

에게 바로 건의할 수 있는 중요한 통로이다. 실제로

회사 내부회의에 참여하면 산재보험을 거치지 않고

회사차원에서 처리되는 수많은 사고와 질병들을 만

날 수 있다. 진짜 문제를 발견해야지 제대로 된 해

결을 할 수 있기에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참석은 점점

중요해질 것 같다.

무엇보다 현장순회를 할 때나, 노동자와 면담을 할

때나 사업장에 오는 의사나 간호사가 과연 내편인

지 확인이 되어야 진짜 이야기가 가능할 텐데, 그런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첫 번째 과제이다. 병원에

서는 아플수록 의사와 환자의 관계가 더 기밀하게

지속되지만, 노동자와 보건관리의사의 만남은 더

많이 아플수록 만나기 힘들어진다. 건강과 고용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산업안전보건위원회에서도 회

사측 위원이고, 사측의 관리비를 받는 입장에서 보

건관리의사가 100% 노동자편이다 말하긴 힘들다.

다만 자신을 도와주는 의료인과의 신뢰관계가 치료

에 좋은 영향을 주듯, 현장에서 만나는 의사들과

노동자들이 잘 만나가는 것이 사업장을 변하게 하

는 시작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42

당장멈춰 팀에서는 2년에 걸쳐, 실태조사와 토론을 함께 했던 금속노동자를 중심으로, 어떤 때 작업중지권을 써야 하며, 그 절차는 어때야 하는지 소개하는 매뉴얼을 작성 중이다. 그 주요 내용을 세 차례에 걸쳐 싣는다.

작업중지는 부상이나 사망, 질병 등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작업자가 현장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예방 조치이다. 현장에서 위험 상황을 느

꼈을 때 작업중지를 어떻게 하면 될까?

현장에서 조합원이 가져야 할 태도

나는 존엄한 존재이다.

작업자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작업중지를 내가 해도 되

나?’, ‘설비 가동을 중단하고 대피해도 되나’에 있다. 당장

위험 상황에 직면해도 나중에 닥칠지 모르는 불이익이 두

렵기도 하다. 또한, 현장마다 노동조합의 유무, 노조의 조

직력 수준, 사측과의 일상적인 관계 등이 있어 위축되기

도 한다. 그러나 ‘조직력이 있고 튼튼한’, ‘힘 있는’ 노동조

합의 노동자만 건강이나 생명이 귀하고 소중한 것은 아니

다. 나의 생명과 건강이 가장 소중하며, 나는 존엄한 존재

라는 것을 잊지 말자!

이 공정의 전문가는 바로 나!

‘급박한 위험’에 대한 판단은 어느 누구보다 해당 공정의

작업자가 가장 정확하다. 평소와 다른 상태의 기계, 기구,

설비의 트러블과 오작동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것도 해당

작업자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급박한 위험’ 여부에 대해

일차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작업자 스스로이다. 내가 잘

안다는 자신감을 갖자!

조합원의 역할

Step 1. 위험 징후를 감지했다면 바로 작업중지!위험징후를 감지했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작

업중지를 즉각적으로 실시하는 것이다. 이것은 두

번 생각할 일이 아니다. 기계, 기구, 설비의 가동이

평소와 다른 상태를 보이거나, 감지센서가 작동하

지 않을 때, 흄이나 가스가 분출될 때, 안전보건 조

치가 실행되지 않은 상태로 작업에 투입되어야 할

때 등 위험징후는 다양할 수 있다. 노동현장의 재해

는 대부분 ‘설마 별일 없겠지?’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길 때 발생한다. 위험징후를 감지했다면, 일단 작

업을 중지해야 한다.

작업중지 실시를 이유로 관리자가 작업재개를 종용

하거나 사후적 불이익으로 압박하는 경우도 있다.

지키고 살려내자, 작업중지권

위험 상황을 인지했을 때 작업중지 절차 1

중대재해 예방과 작업중지권 실현을 위한

‘당장멈춰’ 팀

43

하지만, 이런 경우는 대부분 작업자가 실시한 작업

중지 자체에 대한 것보다는 사후적 조치를 위한 개

선과 대책 마련, 작업재개 시점을 둘러싼 마찰이 대

다수였고, 작업자가 실시한 작업중지 자체에 대해

문제 삼는 경우가 크지 않았다.

Step 2. 작업중지 후 무조건 알린다!현행법은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을

때 작업자가 위험을 피하기 위해 작업중지를 하거

나, 대피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다. 그리고 작업

자가 실행한 조치에 대해 상급자에게 보고하고, 이

를 알려 적절한 조치를 마련하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작업중지 후 즉각적으로 해야 할 작업자의

조치는 상황을 알리는 것이다. 흄이나 가스가 새어

나오거나, 폭발의 위험이 있을 때는 본인뿐만 아니

라 작업공간에 있는 다른 이들에게 고함을 쳐서 안

전한 곳으로 대피하도록 알려야 한다. 또한, 작업공

간의 여건에 따라 모든 작업자의 긴급 대피가 가능

하도록 대피 경보 작동 등의 적절한 조치를 관리자

에게 요구하도록 하자.

Step 3. 상급자와 노동조합에 즉각 통보하기 작업중지를 했다면 상황에 대해 회사 측의 상급자

(직반장, 조장)에게 보고하고 즉각적인 조치를 할

수 있도록 요구해야 한다. 동시에 노동조합에 이를

알려야 한다. (위험을 감지했으나, 작업중지를 해

야 할 사안인지에 대한 판단이 서지 않았다면, 이

를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상급자와 노동조합에 이를

확인하기 위해 즉각 통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작업

중지를 실시한 당사자가 여력이 없다면, 해당 구역

의 대의원을 통해서 상황이 노조에 전달될 수 있도

록 하거나, 주변 동료를 통해 노동조합에 상황이 통

보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상황을 적극적으로 알리

고 전파해야 예방 차원의 작업중지가 사후에 별문

제가 아닌 것으로 판명되더라도 작업중지를 실시한

개인에게 가해지는 불이익에 집단적으로 맞설 수 있

다. 개인이 직면하는 현장의 유해위험은 전체 조합

원의 문제이며 현장 모든 노동자의 문제이기 때문에

집단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대의원이나 노동조합 간부가 가져야 할 태도

나는 조합원의 대표이다.

대의원과 노동조합 간부가 조합원의 이해와 요구, 뜻과 의

지를 대표한다는 것은 백번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작

업중지 상황에서 대의원과 노동조합 간부는 해당 문제가

발생한 개인 혹은 몇몇 조합원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

체 노동자의 관점에서 조합원의 생명과 건강, 목숨을 지

킨다는 태도로 이 문제를 바라보고 접근해야 한다.

나는 사측의 보호와 예방의 의무를 이행하도록 강제하

고, 노동자의 권리 실현을 위해 앞장서는 노동자의 대표

이다.

작업중지는 노동자를 노동과정에서 발생하는 유해위험

에서 보호하고 예방해야 할 기본적인 사업주와 정부의 의

무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서 초래한 결과이다. 따라서

이러한 사측의 기본적인 의무를 책임 있게 이행할 수 있

도록 강제하고, 노동자의 권리로 이를 실현할 수 있도록

앞장서야 하는 노동자의 대표이다.

대의원이나 노동조합 간부의 역할

대의원이나 노조 간부가 작업자의 작업중지 상황을

확인하거나, 단행되지 않고 있는 조치에 개입하여

직접 작업중지를 실시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럴 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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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p 1. 상황을 인식했다면, 즉각적인 작업중지 실시작업자의 연락으로 위험 상황을 인지했다면, 바로

현장대응에 나서야 한다. 위험 상황을 확인했다면

즉각 작업중지를 실시하도록 한다.

Step 2. 작업중지의 책임이 사측에게 있음을 똑똑히 주지시킨다.

작업중지가 필요한 상황은 다양하다. 다양한 각종

유해위험이 현장에 존재한다. 이러한 유해위험을

예방하기 위한 기본적인 책무는 사측에게 있다. 고

용노동부는 사측이 이러한 책무를 다하도록 관리감

독을 해야 할 책임을 지고 있다. 따라서 대의원이나

노조간부가 작업중지를 직접 단행하거나, 현장 작

업자의 연락을 받고 작업중지 조치에 개입하게 될

때, 이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 사측에게 있음을 똑

똑히 주지시키고 단호한 태도로 맞서야 한다.

Step 3. 전 공장에 작업중지 상황이 발생했음을 알린다 작업장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 아니라면, 작

업중지는 제한된 기계, 기구나 설비, 라인, 생산공

장/구역 등에서 발생한다. 이럴 경우 그 범위에 포

함되지 않은 작업자들은 무슨 일이 있는지조차 모

르고 지나치는 경우가 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작

업중지가 발생한 유해위험요인을 제거하고, 관련 대

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상황에서 왜 작

업중지가 발생했는지를 적극적으로 조합원에게 알

려야 한다. 또한, 작업중지가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

을 지키기 위한 적극적인 실천으로 확장되기 위해서

는, 사소한 작업중지 상황이 있더라도 이를 타산지

석으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유사

공정이나 동종 기계, 기구 설비 등에 대한 노사합

동 안전점검의 계기로 삼는 것이 중요하다. 회사 측

의 입장에서도 장기적인 안목에서 본다면, 재해 예

방과 관리에 노동자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효과적

인 시스템을 갖추는 계기가 될 수 있으므로 당장의

손실만을 따질 문제가 아니다.

일상적인 보호와 예방을 위한 현장 안전보건 활동의

중요성, 노동자의 안전보건 당사자로서의 참여, ‘예

방적 차원의 작업중지’의 필요성은 고용노동부가 발

간한 <2015무재해우수사례집>에 담긴 ‘한국동서발

전 울산화력본부 사례’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아주 작은 유해 · 위험요인이라도 발생할 경우는 전 현장

의 동종 및 유사작업 모두에 작업중지 명령이 떨어지게

돼 있다. 그리고 ‘원인분석 및 재발방지 대책’이 수립돼야

만 작업재개가 가능토록 하고 있다.

만약 타 산업현장에서 중대재해 사고가 발생했다면 이때

는 Safety Alarm이 발령된다. 그리고 동종·유사작업에

대한 집중 안전점검을 시행한다. ‘강 건너 불’의 경우라도

타산지석으로 삼고자 함이다. … 또 직원들은 누구든 안

전위해요소 및 위험작업을 발견했을 때 안전지적서를 발

행할 수 있다. 발행일로부터 7일 이내에 조치결과를 알리

고 팀 및 개인평가에 반영한다. …

먼저 위험요인을 발굴하고 사고위험을 제거하며 잠재위

험을 통제하고 사고가 나더라도 실시간으로 신속히 대응

함으로써 최선의 안전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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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노동부 【2015무재해우수사례집】

한국동서발전 울산화력본부 사례 중

Step 4. 예방대책 수립을 위한 노사협의 요구

작업중지가 실시됐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관련 조

치의 이행과 재발방지 예방대책 수립이다. 작업중지

의 범위에 따라 해당 구역 대의원과의 노사협의나

임시 산보위 등으로 노사공동 논의를 정식화하여

문제를 풀어갈 수 있도록 요구하자.

Step 5. 조합원 요구 수렴 작업중지 사안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당사자가 바

로 조합원이다. 따라서 예방대책 마련에 있어서도

가장 적극적인 요구는 물론, 개선 방법 등의 의견을

구할 수 있는 대상도 바로 해당 작업자와 작업중지

범위에 속해있는 작업자들이다. 노동조합 활동에

조합원의 참여가 힘이 된다는 것은 작업중지가 발생

해도 기본적이다. 또한, 이 과정에서 당장의 작업중

지 사안만이 아니라, 기존에 발생했던 유사사고 사

례를 파악하고, 관련 조치와 이행 여부 등을 파악

하도록 하자.

Step 6. 대책 마련을 위한 사측과의 논의사측은 당장의 작업재개 여부에 더 관심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안전조치가 기본이 되어야 작업재개가

진행될 수 있음을 분명히 해야 한다. 따라서 조합원

의 건강과 생명을 지킨다는 태도로 단호하게 논의

에 임하도록 하자. 그리고 논의결과는 반드시 문서

화하여 기록을 남겨야 한다. 이를 통해 관련 조치

의 이행 여부 등을 꾸준히 점검해 가야 한다. 또한,

이러한 논의결과에 대한 조합원 보고와 안전보건

교육을 꼭 명시하도록 하자.

Step 7. 결과에 대한 조합원 보고 및 안전보건 교육대책 마련 논의가 마무리됐다면, 결과를 조합원과

공유할 수 있도록 보고대회를 진행하고 해당 사안

에 대한 안전보건 교육을 실시한다.

46

하루 8시간 노동을 부르짖던 노동자들의 노동시간

단축 투쟁은 노동운동 역사의 핵심 주제였고, 현재

도 가장 중요한 과제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에는 보수정당들도, 심지어 경총에서도 노동시간

단축을 이야기한다. 여전히 우리는 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다. 우리는 노동시간 단축을 원하는가? 어

떤 노동시간 단축을 말하고 있는가?

여전히 장시간노동, 하지만 노동시간은 줄어들고 있다

2014년 기준 OECD 회원국 평균 노동시간은 연

1,770시간인데 한국인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이보

다 300시간가량 많은 2,057시간을 기록했다. 멕시

코(2,327시간), 칠레(2,067시간)에 이어 세 번째로

길다. 독일(1,302시간), 네덜란드(1,347시간), 프

랑스(1,387시간)와 비교하면 무려 절반을 더 일한

다. 우리가 12개월 일하는 사이, 유럽 노동자는 8

개월만 일한다는 이야기다.

이렇듯 한국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은 전 세계에서

손꼽히게 길지만, 노동시간이 줄어드는 속도 역시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2000년에 1년 평균 노동시

간이 2,512시간이었으니, 14년 동안 500시간 가까

이 감소한 것이다. 주5일 근무제가 상당히 보편화

된 것이 그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또한, 노동시간

을 줄여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있는 것도 어느

정도의 역할을 했으리라 본다. 지난 대선 때 나왔던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슬로건은 많은 사람들의 머

릿속에 남아있다.

그러나 정확한 통계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주 40

시간보다 짧은 노동을 하는 단시간 근무 노동자의

증가추세로 인해 평균노동시간이 단축되었을 가능

성도 크다. 장시간 근무 노동자의 줄어든 노동시간

뿐만 아니라, 늘어난 단시간 근무 노동자들의 비율

도 OECD에서 이야기하는 연평균 노동시간에 영향

을 미칠 수 있다. 유럽 국가들처럼 고용이 안정화되

어 있고, 사회보장이 잘 된 상태에서 일하는 단시간

노동과는 사뭇 다른 단시간 노동자의 확대는 우리

가 바라는 노동시간 단축이 될 수는 없다. 우리는

노동시간 단축을 원한다. 하지만 노동시간 단축과

연동되는 다음의 문제들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우리

가 원하는 노동시간 단축이 아닐 수 있다.

시간의 재발견_ 노동시간 에세이

나쁜 노동시간 단축도 있다?

김형렬 노동시간센터 회원, 직업환경의학전문의

47

노동강도 문제, 노동시간은 줄어들었는데 일을 끝내고 나면 녹초가 된다

자동차 공장에서 노동시간이 줄어들면 생산되는 자

동차 대수가 줄어들 것이다. 당연히 둘 중 하나의

선택을 해야 한다. 동일한 생산량을 유지하기 위해

생산 속도를 높이거나, 줄어든 물량만큼 임금을 줄

이려 할 것이다. 노동자 입장에선 임금이 줄어드는

선택을 하지는 않을 것이므로, 결국 생산량 유지를

선택하게 되고 생산 속도는 이전보다 빨라질 것이

다. 노동시간은 줄었는데 이전보다 훨씬 힘들게 일

해야 한다면 이건 우리가 원하는 노동시간 단축이

아니다.

노동시간 배치의 문제, 교대제

야간에 일하면 1시간 적게 일할 수 있거나 하루 적

게 일해도 된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까? 하

루 24시간 생산을 유지하기 위해 교대제를 운영하

고 있는 회사에서 야간노동을 하려는 노동자가 없

다면, 야간노동을 하면 높은 임금을 주거나 노동시

간을 줄여주어 야간노동을 하도록 만들 것이다. 야

간노동은 우리 몸의 생체시계의 혼란을 가져와 호

르몬 불균형을 가져오고, 이로 인해 수면장애, 심

장질환, 위장장애 등을 발생시키며 유방암을 일으

키기도 하는 발암물질과 같다고 알려져 있다. 노동

시간이 줄어든다 하더라도 야간노동을 해야만 한다

면 그것은 우리가 원하는 노동시간 단축이 아니다.

비공식적 노동시간의 연장, 집에서도 일하는 사람 늘어

“오늘 회사에 안 나와도 돼. 그 일만 끝내서 내일

보고해.” “차라리 하루 10시간 일해서 회사에서 일

끝내고 나머지 시간을 마음 편하게 보내고 싶어요.”

집에 와서도, 친구를 만나고 있을 때도 해야 하는

회사 일 걱정. 쉬고 있을 때도 울리는 카톡, 문자,

이메일. 쉬어도 쉬는 것 같지 않은 우리의 휴식 시

간. 집에 와서도 끝나지 않은, 회사에 있는 시간만

단축되는 노동시간 단축은 우리가 원하는 노동시간

단축이 아니다.

임금과 연동되어 있는 노동시간 문제, 돈을 벌기 위해 노동시간 단축에 반대하는 현실

노동시간 단축에 대한 사회적 의제가 만들어지고

노동조합과 여러 사회단체에서 노동시간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하지만, 막상 이를 가장 반대하는 것은

현장의 노동자들이다. 시간제 임금을 받는 대다수

의 제조업 노동자들은 노동시간 감소가 결국 임금

의 감소를 의미하기 때문에 노동시간 단축은 생활

임금의 위협이 될 수도 있는 문제이다. 기본급이 매

우 낮거나 없는 임금구조는 장시간 노동을 해야만

생활임금이 유지되는 구조이다. 생활임금이 위협받

는 노동시간 단축은 우리가 원하는 노동시간 단축

이 아니다.

업무시간 종료 후 상사가 휴대전화 메시지로 황급히 업무지시를 하는 한 통신사의 광고 장면이다. 한편, 최근 프랑스에서는 '연결되지 않을 권리'라는 생소한 개념이 입법 예고돼 화제가 되었다. (사진출처: 올레광고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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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력확보가 먼저다노동시간을 줄일 수 없는 노동자

운전노동자는 이들의 건강이 시민의 안전과 직접적

으로 연결되므로 대부분의 나라에서 법적으로 장시

간 운전을 금지하고 있다(유럽, ILO, 일본 등 하루

9시간 이상 운전금지). 하지만 우리나라는 하루 운

전시간을 제한하는 법이 없다. 그래서 경기도 버스

를 운전하는 노동자들은 하루 17시간씩 운전을 한

다. 그리고 다음 날 하루를 쉬고, 그 다음 날 또 하

루 17시간을 운전한다.

만약 이 회사 차량이 30대라면 이런 방식의 교대를

하려면 최소 60명의 운전노동자가 필요하다(아무도

개인 경조사가 없어야 하고, 아프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회사에서 50명 정도만 고용한다.

그러면 휴일 없이 3일 연속 17시간씩 운전해야 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10명의 노동자를, 실제로는 20명

정도의 노동자를 더 뽑아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

는다. 시민의 세금으로 준공영제를 시행하고 있는

서울의 버스는 그렇게 하고 있다. 더 많은 운전기사

를 채용해서 하루에 9시간씩만 운전한다. 경기도

버스를 타고 다니는 우리는 3일 연속 하루 3시간만

자며 17시간씩 운전하고 있는 운전노동자들의 버스

를 타고 있다. 인력확보가 없는 노동시간단축은 우

리가 원하는 노동시간 단축이 아니다. 아니, 노동시

간 단축은 불가능하다.

노동시간단축은 근본적인 사회변화를 만들어 내는 과정

노동시간 단축의 문제는 여러 복잡한 고려 요인들이

얽혀 있어서 이것만을 주장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노동시간 단축을 주장하는 정책은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우리사회의 임

금구조, 퇴근 후 문화, 작업현장의 노동 구조, 우

리 사회의 사회보장체계, 소비와 생산 그리고 고용

으로 이어지는 자본주의 성장논리에 대한 반성과

대안, 교육과 복지의 사회적 책임 등. 끊임없이 이어

지는 문제 제기에 대한 답을 해야 한다.

그래도 이렇게 연동되는 문제들에 대해 고민하고 정

책을 만드는 곳들이 있다. 기본소득의 문제를 이야

기하고(정의당은 연봉 3천만 원 보장, 노동당은 월

30만원 기본소득 보장), 교육, 복지의 확장을 노동

시간단축과 연동하여 설명하고 대안을 논의하는 사

람들이다. 좀 더 나아가면 근본적인 우리 사회의 변

화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

임금삭감도 없고(혹은 조금 벌어도 기본소득이 보

장되는), 교대·야간 근무도 안 하고, 노동시간을 줄

일 만큼 인력도 충분하고, 집에서는 진짜 푹 쉴 수

있고, 내 몸과 마음이 감당할 만큼의 일을 하는, 그

러면서도 짧은 시간 일하는 것이 진짜 내가 원하는

노동시간 단축이다.

제조업 노동자들이 잔업과 특근을 하는 이유(출처: K전기/I콘트럴스 장시간노동의 주요원인 조사결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노동시간센터. 2015)

49

퇴근인 듯, 퇴근 아닌출근한 것 같은 시간들이여!

연결되지 않을 권리도 필요하다

근로기준법 제50조 3항

“근로시간을 산정함에 있어 작업을 위하여 근로자가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에 있는 대기시간 등은 근로시간”

Q. “그럼 퇴근길에 상사가 갑자기 문자로 지시한 업무 때문에 스마트패드

로 문서쓰고 메일 보내는 일 한 시간은 ‘근로시간’에 들어가나요?”

“근로자가 여가시간(소정근로시간 외 또는 휴일)에 스마트기기를 활용하

여 행한 업무가 근로자가 임의로 제공한 것이 아니라 사용자에 의한 명시

적 지시 또는 묵시적 수인 하에 제공된 것으로 인정되는 한 근로시간으로

판단되어야”

스마트기기의 업무시간외 업무활용의 노동법적 쟁점과 과제

(김기선, 한국노동연구원 월간 노동리뷰 2016년 2월호)

모바일메신저 메시지 수신 후 일부러 확인하지 않음

일부러 전화를 받지 않거나 부재중 전화를 무시

문자메시지(모바일메신저 포함) 확인 후 답문자를 하지 않거나 미룸

72.7

73.8

74.9

50

어린 시절 이맘때 쯤 이면 참 흔하던 ‘공터’에서는

달콤한 향기가 동네 개구쟁이들을 유혹하곤 했다.

바로 ‘달고나’이다. 내용물은 단순하고 별것 없는데

만드는 과정이 신기하기도 하고, 맛도 참 좋았다.

그런데 개구쟁이들도 연령대에 따라 등급이 있어,

그냥 단맛을 즐기는 ‘꼬마’들이 있는가 하면, 동그

란 달고나에 별 모양을 찍어 침을 묻혀가며 아주 안

주 신중하게 나머지 부분을 발라내고 별모양만 남

게 완성하는 ‘타자 형’들이 있었다. 나이에 맞지 않

게 이렇게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는 이유는 별모

양을 만드는 보람 자체보다는 이렇게 함으로써 드

디어 ‘뽑기’를 할 자격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연유로 달고나는 바로 뽑기가 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숱한 꼬마들은 별모양을 제대로 만들지 못

해 뽑기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타자 형들의 본게임

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아야만 했다. 뽑기 역시 단

순해서 형들은 몇 개의 번호를 선택하고 뽑기 아저

씨가 자체 제작한 통에서 젓가락 같은 것을 빼서 자

신이 선택한 번호와 맞으면 경품을 타는 식이다. 더

좋은 경품을 타기 위해서는 선택 번호의 개수가 제

한되는 나름 과학적인 게임이었다. 경품이라고 해봤

자 설탕 덩어리 칼, 붕어였는데, 그 당시에 어찌나

가지고 싶었는지 동네 형이 경품에 당선되면, 아저

씨의 표정은 아랑곳 하지 않고, 동네 개구쟁이들은

모두 좋아 자기 일처럼 좋아했다. 유년의 뽑기는 참

아슬아슬하지만 참 정겹고, 즐거운 것이었다.

세월이 흘러 길거리 뽑기 상자가 유행한 적도 있었

지만, 그런 것에 재주도 없으려니와 그 경품이라는

것에도 별다른 미련이 없어 관심도, 열의도. 그리고

별다른 생각도 없이 지냈다. 그런데 요즘 몇몇의 뽑

기가 나를 불편하게 하거나 심지어 고단하게 만들고

있다.

문화읽기

‘뽑기’가 고단해

김재광 회원

51

Pick me, Pick me, Pick me up ~~ 을 불러대는

소녀 무리는 지금까지 오디션프로에서 감추고 있었

던 인간의 상품화를 대놓고 주장한다. 이걸 솔직하

다고 해야 할지, 대담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

데, 시청자가 심사위원이라는 참 멋져 보이는 방식

은 더 비인간적이다. 이미 여러 매체 비판적으로 언

급했듯이, 이 프로그램은 별 다른 생각 없이 지나친

뽑기 상자 속의 인형이 아니라, 사람인 소녀를 보는

것 같아 너무 불편하다. 나의 불편함과 무관하게

해당 프로그램은 인기가 좋다니 별달리 할 말을 찾

기가 쉽지 않다. 이럼에도 대담한 뽑기 프로그램이

직접적으로 나의 삶을 고단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정말 힘들고 고단한 뽑기는 4월 13일 총선이다.

총선 전 각 당의 막나가는 공천, 탈당과 분당, 명분

을 찾기 힘든 이합집산 등을 보면서 대한민국의 정

치 공동체의 수준을 푸념하지만, 정작 고단함의 주

요 이유는 여기에 있지 않다. 현재의 선거제도 자체

가 뽑기의 고단함을 필연적으로 내포하고 있다. 현

재의 소선거구제 (선거구 당 1명만 뽑을 수 있는 제

도)와 비례대표의 축소는 선택의 폭을 심각하게 좁

힐 뿐 아니라 정당의 정책이니 이념이니, 국민 대표

성을 극단적으로 훼손하고 있다. 이것이 각 당의 공

천 파동, 명분 없는 이합집산, 맹목적 줄서기를 만

드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나라를 수도권, 영남권,

호남권으로 조각내어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것이다.

작대기만 꽂아도 당선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이것이 바로 정치냉소와 무력감을 만연하게 하는 것

이다. 이것이 상당수의 국민의 의사를 휴지조작으

로 만드는 원흉인 것이다. 중대선거구와 비례대표의

확대는 공천 파동, 명분 없는 이합집산, 맹목적 줄

서기를 완화하는 중요한 경로다. 정당의 정책과 이

념이 부각되고, 국민 대표성을 회복하는 방향이다.

지난 선거구 결정은 기존 기득권에 눌려 어느 것 하

나 개선된 것이 없었다. 현 제도는 의미 있는 제3

당, 제4당을 만들어 낼 수 없는 사실상 양당제 유

도 제도다. 이러니 생존과 생활 그리고 행복을 크게

좌지우지하는 정치적 뽑기가 고단하고 재미있을 리

가 없다. 다양성은 생명에서부터 사회, 정치, 문화

모든 것에서 중요한 것일 진데 양자택일만 강요한

다. 지금의 선거제도는 어린 시절 달고나 뽑기나 오

디션 소녀 뽑기보다 실상 더 선택의 기회를 박탈하

고, 비인간적이다. 참으로 뽑기가 고단하다.

52

유노무사의 상담일기 더불어 與

잊고 있었던 사건의 유족에게 전화가 왔다. 근로복지공단 불승인 판정 후 행정소송

이 진행되던 사건이었다. 이미 선고 기일이 지났던 사건이라 내심 포기하고 있었다.

그 사이 변론기일을 연기하고 의학적 소견을 추가하면서 선고 기일이 연기되었던 것

을 몰랐다. 유족은 흐느끼며 서울행정법원에서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

2014년 5월에 발생한 일이다. 망인은 2004년 5월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에 연구

원으로 입사하여 2013년 1월 책임연구원으로 승진하였다. 2014년 2월 남양연구소

는 대대적인 조직개편을 모든 연구원이 반대하지만 단행하였다. 조직개편이었지만

기존 팀을 신설・분리하는 방식으로 조직을 개편하였다. 망인은 책임연구원으로 승

진한지 불과 2년 만에 신규 조직의 팀장을 맡았다. 게다가 경영진의 전폭적인 관심

을 받는 하이브리드 시험차량의 각 시스템별 필요한 부품과 금형을 개발하는 부품개

발업무와 신차 개발 시 차량의 모든 시스템 개발 작업을 총괄하는 차종PM(Project

Manager)을 맡았다. 현대차 차원에서 도요타의 프리우스에 버금가는 하이브리드

차량을 선보여야 한다는 사명이 걸린 상황이었다. 망인의 책임연구원 근무 경력을

고려할 때 업무상 부담과 중압감이 상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전 직원이 반대

하는 조직개편을 밀어붙였던 남양연구소 차원에서는 가장 성실하고 묵묵하게 시키

는 일을 할 사람을 찾았고 아마도 망인을 적임자로 선택한 것 같다.

망인은 2014년 2월부터 5월까지 12주 동안 1주 평균 61.6시간을 일했고, 사망 전 4

주간 1주 평균 57.5시간, 사망 직전 3일 동안 각각 15시간, 16시간, 12시간을 일했

다. 2014년 2월 조직개편 후 연차휴가도 사용하지 못했다. 약 3개월 동안 망인이 주

하이브리드카 개발지연에 자책하던

현대차 연구원의 자살

유상철 노무사(노무법인 필)

53

간・수시・ 긴급보고 등의 형태로 83건의 보고서를 상급자에게 제출하였다. 부품부터 모두

자체 개발을 하는 상황이라 하이브리드 신차 개발은 쉽지 않았다. 2014년 3월경부터 시

동불량, 부품조립 어려움 등으로 인하여 연습용 차량(T-CAR)의 제작이 계속 지연됨에

따라 시험차량의 성능검사 자체가 지연되는 일이 자주 발생하였고 이로 인해 하이브리드

신차 양산 일정이 모두 순차적으로 지연되는 상황이 초래되었다. 연구소의 타 부서 뿐 아

니라 협력업체에 이르기까지 일정 지연에 따른 질책과 갈등이 이어졌다. 조직적으로 해결

해야 할 문제였지만 조직은 개인에게 책임을 떠넘기는데 급급하였다.

망인은 자책하기 시작했다. 사망 직전 4월경부터 “자신의 업무를 제대로 못해서 동료들에

게 폐를 끼치는 것 아닌가?”라고 자책하며 안절부절 못하는 등 업무에 집중하지 못하였

다. 식사도 거의 하지 않았고, 제대로 잠도 못자면서 초조, 피로감이 엄습하였다. 급기야

체중이 5㎏ 이상 줄었고 허리둘레도 상당히 줄어 바지가 헐렁거릴 정도였다. 이러한 극도

의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 지속되었지만 망인은 쉴 수 없었다. 이러는 사이 망인에게 손

을 내밀어주는 이는 하나도 없었다. 평상시 내성적인 성격이었던 망인은 더욱 홀로 고립되

어 갔다. 사망 전날 망인은 동료에게 “너무 힘들다. 너무 힘들어서 죽어버릴 것 같다. 우

리 책임자는 누구 하나 잘못되어야 상황이 심각한 것을 느낄 사람이다”라며 극도의 흥분

상태를 보였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망인의 자긍심이었던 현대자동차 로고가 새겨진 잠바

를 입은 채 연구소 인근 공원의 나무에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하이브리드 신차를 개발하는 업무는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조직적으로 해결되

어야 할 문제였다. 그러나 개발 지연에 따른 문책과 질책, 부서 간 갈등이 발생할 때마다

개인의 책임으로 내몰렸고 망인은 자책하였다. 이렇게 성과를 중시하고 개인의 업적을 중

시하였던 회사의 분위기는 결국 한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가혹한 결과를 초래하였

다. 망인의 사망 후 조직개편은 없었던 일이 되고 원래의 조직으로 되돌아갔다. 망인을

그토록 괴롭게 만들었던 하이브리드 신차는 시판되어 도로를 달리고 있다.

이런 자살 사건을 진행하다 보면 항상 안타까움을 느낀다. 누군가 함께 문제를 해결하자

고 손 한번 잡아주었다면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조직 전체의 책임이니 함께 풀어보자고 했

다면 참혹한 결과는 막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정신적 이상 증세를 보여 정신과적 치료

가 필요한 상황인 것을 누구보다 본인이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일 때문에 바빠서 진료

받을 시간조차 낼 수 없었고 이러한 악순환의 결과는 참혹하기만 하다. 성과 중심의 조직

체계, 개인 업적 중심의 인사관리 체계가 한몫을 하였다. 불안정한 삶을 살아가는 노동

자는 늘 자신을 돌아보지 못한다. 스스로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지 못한 채 하루하루 일

에 종속되어 가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사람이 살아가는 세계는 약육강식의 동물의 왕국

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지 못해 사는 것이 아니라 행복하기 위해 살아가야 하는 것이

다. 내가 웃을 수 있어야 진정 행복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하는 사람들의 권리와

인권이 중요한 것이다. 고인의 넋을 기리면서 이러한 사건이 재발되지 않길 소망한다.

54

여성이라는 곤란함

일터 다시보기

몇 년 전 여성의 날을 기념하는 영상을 만드는 일에 참여한 적이 있다. 인터뷰를 위

해 백화점에서 일하는 한 노동조합 활동가를 만났다. 어디는 안 그러겠냐만은 특별

히 백화점은 노조에 대한 탄압이 노골적인 곳이다. 그분은 그런 와중에서도 굉장히

열정적으로 노조 활동을 하고 계셨다. 나는 "백화점에서 일하시면서 노동자로서 어

떤 경험을 하셨나요?"라고 물었고, 그분은 막힘 없이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셨다. 그

러나 그다음 내가 더듬거리며 "그렇다면 여성으로서는 어떤 경험을 하셨나요?"라고

묻자, "여성으로서의 경험이요?"라 되물으면서 처음으로 말문이 막히셨다. 여성으로

서의 경험이라니, 그것은 도대체 무엇일 것인가? 그러나 이를 또 어떻게 다르게 물

을 수 있단 말인가?

내가 질문을 하면서 더듬거렸던 까닭은 저 질문이 그분에게 너무나 곤란하게 들릴 것

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걸 알면서도 그렇게 물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여성은 남

성이라는 일반의 예외이며, 여성이라는 전형이다. 여성의 곤란함은 여기서 출발한

다. 남성이 정의한 세계에서 여성은 그 무엇보다 여성이 된다. 어떤 이들이 각자의 다

양한 이름으로 불릴 때 어떤 이들은 단지 ‘(그) 여자’로 불린다. 그러나 남성들이 정

의한 세계에서, (그) 여성을 설명하고 이해할 수 있는 고유의 언어는 충분하지 않다.

누구는 모든 지배적인 사상은 지배계급의 사상이라 했고 누구는 역사책에는 왕들의

이름만 적혀 있다고 썼다. 그러나 그 역사책에조차 이름이 적히지 않은 남성들이 무

엇을 만들고 파괴하고 일구고 사라졌는지는 적혔을지언정 여성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약간의 예외를 제외하면 ‘고전’이라는 소설들, 극장에 걸리는 영화들, 회자되

는 담론들의 주인 역시 여전히 남성이다. 물론 그 이야기에는 여성도 등장한다. 그러

나 그 여성들은 남성들의 꿈이고 불안이고 공포고 구원일 뿐이다. 남성이 세계를 정

의한다는 말의 의미는 바로 이것이다.

다른 이가 정의한 세계에서 여성들은 줄곧 낯설고 이상한, 곤란한 존재로 살게 된

다. 여기서 여성이란 화장실 픽토그램이나 만화 캐릭터에 그려진 볼록한 가슴과 분

홍색 리본과 빨간 하이힐 같은 것이다. 남성 중심 사회는 자신의 표준으로 일단 남성

을 그린 후 위에 치마를 덧그리고는 모든 곤란함을 치워버렸다는 듯이 군다. 여성들

의 수많은 차이, 다양한 꿈과 불안과 이해와 갈등은 텅 빈 기호 속으로 빨려 들어간

영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1

노동자가 만드는 통권 146호 2016년 3월

한국

노동

안전

보건

연구

ww

w.kilsh.or.kr

여성 노동자의

건강권

실태와 과제나쁜정치는 ‘폐지당’

작업중지권을 써야 할 때

은퇴 좀 하자!!

55

다. 기호는 설명하지 않는다. 단지 구별할 뿐이다. 그리고 단지 그 임의의 구별이 차

별과 혐오를 낳는다. 그들은 ‘여성’이라는 것 안에 한 없이 많은 것, 그리하여 필연

적으로 모순이 될 수 밖에 없는 관념들 (“숭배에서 강간까지”)을 꾸역꾸역 넣는다.

그리고 그 상상된 그림자에 실제의 여성을 끼워넣고 여기가 너의 자리라 명령하며 그

러한 권력에 저항하는 이들을 처벌한다.

여성을 낯설고 이상한 존재로 만드는 세계에서 여성의 세계를 드러내는 일은 세계를

낯선 방식으로 다시 세우는 일이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세계 너머, 그 모든 감춰

진 장소를 드러내는 일이다. 여성과 관련된 모든 것을 가치 없다하고 가치 없다하는

모든 것에 여성을 연관시키는 세계의 논리를 버리를 일이다. 그리하여 여성과 연루된

것들의 가치를 새롭게 셈하는 일이다. 공백이라고 여길 수 조차 없었던 빈 시간을 채

우기 위해 풍부하고 다양한 개인의 생생한 체험의 목소리를 길어올리는 일이며, 그

이야기들을 개별 사례로 흩어지지 않는 어떤 역사로 기우는 일이다.

그러나 슬프거나 기쁘거나 화가 나거나 지루하거나 즐거웠던, 기억하거나 기억할 수

없는 그 수많은 날 중 무엇이 여성의 경험으로서 말할 수 있는 사건이 되는 것일까?

혐오와 차별의 대상이 되는 존재들의 곤란함은 여기에 있다. 우리는 그렇게 매도되

는 자신의 의미을 채워가고 이를 자긍심의 원천으로 삼는 것과 동시에, 우리를 그 박

제된 상상과 강요된 자리에 붙박는 것에 저항해야 하는 과제를 갖게 된다. 나는 나

로서 존재하기 위해 내가 여성임을 받아들여야한다. 그리고 동시에 같은 이유로 나

를 여성이게'만' 하는, 나의 모든 것을 '여성'이라는 무엇으로 환원하는 힘에 저항해

야 한다. 이 '여성'이 무엇인지 영원히 모호함에도 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성의 경험을 말하는 일은 엉망으로 만들어진 지도를 들고 이미

함정이 알려진 길을 따라 걸으며 새로운 지도를 만드는 일과 같다. 여성 노동자 건강

권을 말하는 일도 그렇다. 여성을 남성이 표준인 특정한 '노동자' 형상으로 환원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여성을 남성에 '여성적'이라고 정의되는 것, 예컨대 모성, 생식, 감

정(노동), 돌봄(노동), '성'을 더한 어떤 존재라고 상상하지 않는 일은 어떻게 가능한

가? 남성이 만든 언어의 세계에서 여성의 경험은 어떻게 그 낯선 생생함을 유지하면

서도 집단적인 경험으로 엮인 공통된 이상의 근거가 될 수 있을까? 여성에게 붙은

그 오래된 농담과 폭력과 좌절과 곤란함을 끌어안고 그 안에 숨겨진 빛나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순간으로 여성의 자리를 다시 탐색하되 그 자리에 머물지 않는 것은

얼마나 고된 과정일 것인가.

이런 곤란함으로 인해, 더듬거리며 질문하고 또 어떤 질문에는 말문이 막히는 그 몸짓

이 바로 여기의 진실이다. 그 곤란함의 책임을 함께 지는 방법은 먼저 우리의 세계, 우

리가 세계를 해석하는 관점, 지식, 그리고 신념이 어떤 존재들을 지움으로써 그 무수

한 곤란함을 외면하고 완전한 척 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꺼이 인정하는 일이다.

56

이러쿵저러쿵

#1 “수정아 엘리베이터 잡았니~~?” “네! 24층에서 내려오고 있어요.~~” “어 그래. 엄마 금방 나갈게.~~ 지민아 어서 신발 신자!”

개학 이후 우리 집 아침 풍경이다. 두 아이는 꿈을 찾으러 학교에 가고, 엄마는 꿈

을 일구는 병원으로 출근한다. 오래전, 가족의 건강에 대해 믿고 상담할 수 있는 병

원, 힘없는 약자에게 정직하게 소견을 말해주는 병원, 일하는 구성원들이 민주적으

로 의사결정을 하는 살아있는 병원을 꿈꾼 적이 있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는 두려움으로 언제 그런 생각을 했는지조차 망각하고 있을 때쯤, 그 꿈을 준

비하는 논의가 진행 중이니 함께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이 들어왔다. 두-근 두-근.

2년 반의 준비 기간 동안 비슷한 꿈이 이루어지길 원하는 이들이 모이고, 그것을 바

라는 이들이 뜻을 모아 자금과 공간을 만들었다. 드디어 병원이 실물로 나타나는

날, 그 가슴 벅참이란 이루 형용할 수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많은 사람의 소망을 현

실화시켜야 한다는 무거움도 한켠에 자리했다.

#2 “저희 병원은 정말 혁신적인 병원인 것 같아요. 원장님께 화장실 청소하시라고 말하는 것을 보고 느꼈어요.”

기존 병원들의 위계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조직문화에 익숙했던 선생님들은 전체회의

에서 남자화장실 청소에 대해 남자인 원장님과 부장님이 하셨으면 한다는 발언이 조

금은 새로웠나 보다. 개원초에는 환자가 많지 않아서 아침마다 전체회의를 했다. 병

원 재정부터 소소한 물품 구매, 심지어 화장실 청소까지 공유하고 함께 결정했다. 처

음에는 이런 과정이 익숙지 않았으나 서로의 생각을 알아가는 사이 기존 병원과 차

별성을 조금씩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나 환자가 늘고 병원 업무가 점차 많아지면서

꿈을 일구는 공감의원에 출근하다

경희쌤 선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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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두 번 정기적인 전체회의를 하고 일상적으로는 SNS로 소통하고 있다. 공유

는 단지 실무뿐 아니라 병원의 설립취지와 방향에 대해서도 함께 되어야 한다. 그래

서 이번 달부터 가치 공유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4 “물리치료실도 늦게까지 하나요?”

향남 주변에는 아직도 주야 맞교대근무를 하는 영세사업장들의 분포도가 높다. 그

래서 장시간 노동자들의 진료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일주일에 이틀은 야간진료를 한

다. 그런데 물리치료사 충원이 안 돼서 물리치료실은 야간에 아직 못하고 있다. 문의

가 있을 때마다 죄송한 마음뿐이다.

#5 “누가 결과 보면 노동감사 할 때 머리 위에 감시카메라라도 달아놨다고 생각하겠네.”

공감의원에서는 일하는 사람이 행복한 병원을 만들기 위해 노동 감사를 진행했다. 개

방적인 조직문화에 만족도가 높았지만, 개원초 최소인원으로 부수적인 업무도 맡다

보니 업무분장에 대한 요구가 있었다. 그러나 동료들 간의 단결력, 병원에 대한 자긍

심, 평생직장으로의 생각은 전원이 그렇게 생각한다고 나와서 우리 스스로도 놀라움

을 금치 못했다. 이제 6개월. 향남에서 공감의원을 알아가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지금은 재정적 안정과 함께 구체적인 사업을 모색하고 준비하는

시기다. 막연함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과정은 결코 녹록치 않다. 그러나 함께 고민하

고 논의하는 이들을 믿고 의지하며 열심히 일구다 보면 언젠가는 향남지역주민과 노

동자들이 건강권의 필요성을 공감하고 방법을 함께 찾아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6 “엄마 오늘은 물리치료 받으러 몇 명 왔어요? ”

언제부턴가 퇴근해서 저녁을 먹으러 앉으면 수정이가 꼭 질문한다.

“어~ 어~ 오늘은 날씨가 좋아서 다들 꽃구경 가셨나 봐^ ;̂; 열다섯 명 정도 오셔서 엄마가 너희들 생각 많이 할 수 있었어~^ ”̂“엄마~ 아픈 사람들이 많이 와도 엄마가 아프면 안 되니까 쉬어가면서 하세요~”“고마워 지민아~에구 환자도 많이 없었는데 어깨가 무겁네. 여보~ 있다가 어깨 좀 두드려줘요~” “알겠수 -.-”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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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안전보건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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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돌 강정주 강찬구 곽진 권기한 권동희 권영국 김경도 김경민 김규연 김대광 김동환 김부욱 김선미 김선수 김설민 김성균 김수현1 김순진 김승섭 김영수 김옥헌 김정신 김정원2 김지원 김진철 김창헌 남원철 류현석 박병선 박상우 박채원 박태옥 방복현 배정란 백남운 변영철 변진경 삼식이 선종현 소메이준쪼 손석기 송영석 안성민 안태은 양호철 양화진 예병진 오병창 오진석 오진환 유기훈 유상철 유준 윤정식 은상준 이나래 이명준 이백윤 이선웅 이세영 이승복 이승운 이승주 이영애 이영호 이윤덕희 이은주 이인규 이자호 이재중 이한진 이현석 이희영 임재우 장동준 정규전 정라영 정병권 정성욱 정영민 정윤경 정종혁 정현섭 정홍조 조명심 조종완 지영훈 진선우 채수용 최원영 최주호 추승현 한윤종 함승호 허경 현대차남양 황진철

노동자 건강권 쟁취를 향한 걸음에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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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가 만드는 일터 통권146호 2016년 4월

발행인 김형렬 선전위원 경희, 승종, 영우, 재천, 종호, 하나, 재현 만평 박원종 편집 영 인쇄 동광문화사 발행기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발행일 2016년 4월 7일 주소 서울특별시 동작구 남부순환로 2019 경신빌딩 501호 (우 156-827) 전화 (서울) 02-324-8633 (수원) 031-247-8633 (부산) 051-816-8633 홈페이지 www.kilsh.or.kr 이메일 [email protected] 팩스 (서울) 02-324-8632 (수원) 031-247-8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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