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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c 다른동네 해방촌 S e p . 2011 2011 지역문화발굴 워크숍 <서울을 큐레이팅 하다> 해방촌 . 그 다른 매력의 발견 1 st 이 잡지는 서울문화포럼이 지역관찰과 기록작업을 통해 지역의 다양한 가치를 발굴하고자 진행하고 있는 2011 서울문화포럼 지역문화발굴 워크숍 ‘서울을 큐 레이팅 하다’에서 해방촌을 관찰한 ‘책임있는 제안가’ 팀의 결과물입니다. Contact 배영욱 [email protected] 김유리 [email protected] 강유진 [email protected] Mentor 김일현 [email protected] 서울문화포럼 http://www.scf21.org 객원기자 유인희 [email protected] _소담한 공방 ,열두가지>를가다 김형진 [email protected]_더하기+가 아닌 쉼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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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c다른동네 해방촌

S e p . 2011 2011 지역문화발굴 워크숍 <서울을 큐레이팅 하다>

해방촌 . 그 다른 매력의 발견

1st

이 잡지는 서울문화포럼이 지역관찰과 기록작업을 통해 지역의 다양한 가치를 발굴하고자 진행하고 있는 2011 서울문화포럼 지역문화발굴 워크숍 ‘서울을 큐레이팅 하다’에서 해방촌을 관찰한 ‘책임있는 제안가’ 팀의 결과물입니다.

Contact배영욱 [email protected] 김유리 [email protected]강유진 [email protected]

Mentor 김일현 [email protected]

서울문화포럼 http://www.scf21.org

객원기자 유인희 [email protected] _소담한 공방 ,열두가지>를가다김형진 [email protected]_더하기+가 아닌 쉼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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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c해방촌 거주 5년째 건축과 도시설계를 공부하고 이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필자에게 해방촌은 정말 신기한 매력덩어리다. 나만 알고 즐기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이 곳을 알고 찾아 오고 각광 받아 개발하는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곳을 살고 있는 임대 주민으로써 이 곳의 집값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 좋아하는 이 곳을 떠나기도 싫은 것이다.

하지만, 나만 알고 있고, 해방촌이 변하지 않기를 바리기엔 이미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해방촌의 가치를 알고, 또 너무 많은 개발 호재가 있다. 서울의 한 중심이라는 좋은 입지 여건과 도심 접근성, 남산과 한강, 용산미군기지 이전이라는 외지인들의 눈에 보이는 개발 호재 이 외에 이들이 미쳐 알지 못하는, 알지 못해서 간과하기 쉽고, 그러나 그냥 사라지기엔 너무 안타까운 해방촌의 매력의 실체를 밝히고 이를 알릴 필요가 있는 것. 그것이 해방촌에 사는 건축·도시 전문가로써의 책임이고 사명이라고 생각된다.

해방촌은 변할 것이다.

다만 해방촌이 제2, 제3의 조각미남이 아니라 매력 자체가 고유의 Style을 창조하고 그 매력이 배가되는 ‘멋스러운 해방촌’이 되길 바란다.

개발을 위한 변화가 아닌 가진 매력을 잘 가꾸며 살기 위한 변화를 꿈꾸고 있다.

2011년 마침 서울문화포럼에서 준비한 지역관찰과 기록작업을 통해 지역의 다양한 가치를 발굴하는 <서울을 큐레이팅하다>는 워크샵을 통해 유리와 유진, 영욱이가 ‘책임있는 제안가’로써, 유쾌한 Mentor 경희대 김일현 교수님과 해방촌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며, 그동안 미쳐 알지 못했던‘2011년 해방촌의 현재 모습을 관찰하고, 지금의 해방촌을 만들었고, 또 미래 변화의 에너지가 될 해방촌을 이루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다.

2011년 9월해방촌에서 배영욱

다른동네 해방촌

해방촌 . 그 다른 매력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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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사람들에겐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숨어 있는 마을,

촌(村)이니까 서울 변두리 어디쯤이라 생각되는 마을이지만

사실은 서울의 한가운데, 강남과 강북을 바로 연결하는 남산3호터널을 지나갈 때

옆으로 보이는

남산타워를 배경으로 산자락을 따라 2~3층의 단독주택들이 빼곡 들어찬 마을,

그곳이 해방촌이다.

해방후 월남한 38따라지들을 비롯한 빈민들이 자리잡기 시작했고,

요샌 콕찝어 달동네라고 말하진 않지만 남산아래 첫동네라고 불리며

여전히 가난한 산동네가 연상되는 곳이다.

택시타고 ‘해방촌 가자’고 하면

'어휴 검둥이 많이 사는 그 곳, 무섭지 않아요?' 하고 걱정하시는 택시기사 분도

계시지만, 요즘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외국인과 이국적 음식점과 pub이

한달에 3~4개씩 들어서는

다국적인 풍경이 가득한 Hot place로 급부상 중인 곳.

이 곳을 기억하는 한국인에겐 못 사는 달동네 해방촌이지만 한국 안에서 이국의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대로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곳,

각자의 꿈을 시도해 나가는 곳.

Cover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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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서울 그 변화 속의 해방촌

서울의 경계변화

해방촌을 이야기 할 때 한국과 서울의 역사와 변화를 이야기 하지 않을수 없다

해방과 6.25전쟁 이후 1946년 월남인들은 도심, 남대문과 가까우면서도 당시에 비어 있던 해방촌으로 이주해 일본

신사가 있던 자리와 보성여고 주변을 시작으로 무허가 판자촌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특히 기독교인들이 많이 이주해

보성교회라는 종교시설을 중심으로 성장하였으며 북한에서 설립되었던 보성여고, 숭실여고 등의 학교들이 남한

해방촌에 자리를 잡았다,

주요시설들이 서서히 입지하고 도시조직이 형성되면서 해방촌은 주거지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고 해방촌 오거리가

중심이 되어 골격을 형성하였다 1962년 도시계획법과 건축법이 제정 공포되면서 1960년대 중반, 무허가 판자촌이었던

해방촌에서 토지불하가 이루어져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무허가의 도시조직이 필지로 구획되었다. 남산순환도로(1963

년)의 건설, 남산제2호터널(1970년)과 3호터널(1978년)의 건설로 인해 해방촌의 물리적인 경계가 형성되었고 인구가

집중되면서 용암초등학교, 용산2가동사무소가 설립되는 등 어엿한 도시주거지가 되기 시작하였다. 한편 불량주거지에

대한 정부의 정책으로 처음으로 공공에 의한 재개발 사업이 시작되었다. 불규칙적이었던 블록은 정형화되었고 유기적인

가로망은 가로확폭 및 가로개설 등을 통해 연결성을 높이면서 변형된 격자망의 형상을 띄게 되었다. 1990년경에는

주거환경개선사업이 착수되어 사업지구에서는 기존 도로를 최대한 활용하여 가로폭을 4~6m으로 확폭하고 필지의

합필로 이루어졌지만 과소필지2~3개가 합쳐지는 정도였기 떄문에 블록 내 필지구조에서의 큰 변화는 없었다

학술해방촌의 지속가능한 물리적 요소에 관한 연구 2010년 서선영

10’87

615.16

45

50

62

61

897372 75

02

80

69

8870

9170

72 97

72 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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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남산3호터널입구

(명동방향)

보성여고입구

(남대문방향)

(강남방향)

용산한신아파트 앞

(강남 고속터미널방향)

설문 대자보 붙인 곳

21 , 13%

1~5 , 23%

5 ~10 , 23%

10 ~20 , 21%

20 ~30 ,

4

5

6

, 6%, 2%

, 30%

, 35%

, 28%

(2 ), 72%

, 10%

, 7%, 2%

, 10%

, 20%

4%

8

9

36%

11

122011년 8월17일 밤11시 비가 부슬 부슬 내리는 정류장에 < 해방촌주민에게 묻습니다>라는 제목의 벽보를 붙이기 시작했다. 설문보드였지만 분분석하기위한 구체적인 data를 얻기 위해서라기 보다 해방촌 주민의 지역 관심도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또한 해방촌을 매력적이라고 하는 나의 일방적인 주장에 객관성을 더하고 지역주민의 지역 만족도를 확인하고자 하였다.

해방촌을 들어오는 입구의 정류장(보성여고 정류장 2군데, 용산 한신아파트 정류장, 남산3호터널 입구 정류장)에 보드를 붙였다. 혹여 내일 이 보드를 확인하러 왔을 때 이 보드가 없어졌거나 혹은 2~3분만 응답하더라도 절대 실망하지 말자, 그것도 현재 해방촌의 주민 참여도의 지표인거다.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걱정은 기우였다. 정확히 24시간 후에 이 보드를 수거했을때 각 보드마다 뺴곡히 의견이 적혀있었고 총 74분이 마킹해 주셨다 물론 총 74분 전부다 각 질문에 응답해 주시진 않았고, 또 버스 정류장에서 설문했기에 주차문제를 비롯해 특정 성향의 분들이 응답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비교군이 없기에 이수치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도 아직은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해방촌 주민들은 지역문제와 주변 현상에 대해 적극적인 관심과 행동을 해주신다는 것이다.

다짜고짜 해방촌 주민께 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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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여고 남대문 방향 남산 3호터널 앞

보성여고 강남방향 한신아파트 앞

+

+

+

+

남산3호터널입구

(명동방향)

보성여고입구

(남대문방향)

(강남방향)

용산한신아파트 앞

(강남 고속터미널방향)

설문 대자보 붙인 곳 곳 곳

개발no 약간의 불편한 지금이 좋아요 남산이 있어서 너무 좋아요 남산이 있어서 너무 좋아요

7마트, 먹을 곳이 없어요 마트가없어서 불편이 커요 마트가 없어서 불편찬성

10

외국인 공공질서 지키기맥주 아무데서나 먹고 꽁초버린다

12

없슈발전 좀.. 유네스코 지점장 와서서울에 이런 곳도 있냐는 소리들음 그래도 그리운 해방촌

멀리가는 거 10

같은 사람인데 굳이 묻는 이유는 뭐죠?

12

쓰레기 분리수거를 잘합시다 분리수거 해도 처리가 안됌(동사무소 몇번이나 민원제기함)버스 배차 시간 좀 (특히 아침)고산지대 교통이 불편(주차문제)고산지대

걸을수 있다 남산에 걸어갈수 있다 남산 산책다리두꺼워짐

10

밤길에 위험(흑형들이 말 걸고 따라오고)말검 ㅆㅂ

12

엄슈 엄슈 어린이 영어 학원이전하고 그 위치에 할인마트같은게 다시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구청에 얘기해서 해방촌 축제를 좀더 특화시켰으면... 아무곳이나 주차해서 도로가 좁아요 주차 , 동절기 제설작업주차, 길거리 청소no more cafe, ↑ yesgood apts, foreigners 도로 넓혀주삼 markets are close축제때 굉장히 시끄럽고 길거리가 지저분해집니다. 주차

니다. 니다.니니

e마트 가기, 마트가기 장보기 주민센터 이태원에서 술마시고 놀수있음 마을버스 있어서 신경 안써요

10

외국인 거주분들이 무단투기를 좀 안하셨으면 좋겠습니다

12

7

7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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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의 남쪽자락에 위치한 동네, 남산을 북쪽으로 보는 동네, 해방촌. 언제 어디서나 남산과 남산타워를 볼 수 있다. 해방촌 사람들은 남산이 있어 내 동네가 정말 좋다고 했다. 남산이 만드는 경관, 그리고 남산에서 혹은 남산 가까이에서 내 동네의 경관을 볼 수 있다는 점 때문일까? 어느 마을 사람들 보다 자기 동네의 모습을 잘 알 수 있다는 점. 마음 속에 우리 동네를 그려낼 수 있다는 점. 해방촌오거리를 그리고 길죽한 내리막길과 남산, 남산타워 하나만 있으면 “이것이 해방촌!!”(디스 이즈 헤이취.비.씨.) 이라고 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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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사진 도로를 따라 방축이, 방축 위에는 화분이 놓입니다.계단참이 누군가의 집의 지붕이요,

어느 집 지붕은 우리 집 마당!

윗길에서 보면2층, 아랫길에서보면3층

남산자락을 따라 올라간/내려간 집들

오르막내리막이 있어 아기자기한 해방촌 모습올라갈 때는 뒷 무릎을 단단히 펴고, 내려갈 때는 무릎을 조금 굽혀

안정감 있게 걷습니다.

해방촌 경사에 익숙해 졌다면(껄떡고개 등은 제외), 헐떡이지 않고

걸을 수 있게 되었다면 고개를 들어 주변을 관찰해봅시다.

내리막길에선 무엇이, 오르막길에선 무엇이 보이는지.

남산고도제한에 따라 사면에서 고도20미터

이상으로 건축을 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 지금의 높은 건폐율과 함께 산으로

건물들이기어올라간 형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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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 주차공간이 없어서...

77%77%77%%%%77

차없이 사는 나는 해방촌의 주차문제를 잘 인식하지 못한다, 사실 주차 문제로 다투는 모습도 본적이 없다, 내가 살고

있는 빌라도 최소 8가구 이상이 살고 있을 텐데 주차할 수 있는 곳은 3대 정도, 그래도 항상 비워져있는 내 집앞

차가 많지 않아서, 주차공간이 많지 않아서 해방촌이 이 모습과 이 분위기를 만든 것은 아닐까?도시계획가 주창하는 보행자 중심 동네, 걷는 동네의 모델, 멀리서 찾을게 아니라 바로 여기 있다!

골목길이

신기할 뿐이었다. 어디든 쉽게 갈 수 있는 입지니까, 해방촌이야 말로 차 없이 살만한 곳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었다. 단지

서울역 부근의 대형마트에서 잔뜩 장을 보고 버스에서 부대낄 때 차가 없는 것이 또는 차있는 남친이 없음이 아쉬울

뿐이었다. 그래서 인터넷 장보기 서비스를 이용하거나 동네 마트 우수고객이 되는 길을 선택했다.

그래서, '다짜고짜 해방촌 주민께 묻습니다' 설문을 통해 나온 압도적인 숫자 77%의 ‘주차문제가 심각하다’는 data를

보고 사람들이 내맘같지 않구나 싶어서 놀랬다.

창하는 보행자 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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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촌의 골목을 걷는 것은 꽤나 기분 좋은 일이다. 뭘까? 해방촌의 물리적으로 낙후된 골목길을 걷는 것이 왜 사당동의 혹은 구의동의 다세대 주택 골목길을 걷는 것과 다른 기분이 드는건 무엇때 문일까? 가파른 계단길 혹은 급한 경사길. 구불구불 골목길, 다닥다닥 붙은 단독주택. 초라한 해방촌에서 여전히 묵묵히 그들의 화분을 손보는 사람들이 남아있었다.

마당 없는 해방촌에 정원 만들기

Wall RemovalProject담장허물기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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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영욱 ([wooky] 남산골 배선생) 님의 말 : 뭐든 물으면 답해 줄것 같은 정식!! 김정식 님의 말 :ㅋㅋ 배영욱

([wooky] 남산골 배선생) 님의 말 : 사람들이 화분을 가꾸는 행위에 대해서 의미를 굳이 찾는 찾는다면? 김정식 님의 말 : ? 배영욱 ([wooky] 남산골 배선생) 님의 말 :좀 다르게 질문하면, 해방촌은 이미

뺵빽해서 정원은 고사하고 화단도 만들기 어려운데 참 열심히 화분으로 화단을 만들어서 키우거덩~ 왜 해방촌 사람들은

화분을 열심히 키울까...? 김정식 님의 말 :소득수준? 배영욱 ([wooky] 남산골 배선생) 님의 말 : 소득수준이 낮으면

화분을 키우나....? 김정식 님의 말 :대개 농촌에서 상경해서 소득수준이 높지 않은 분들이 주로 집에서 채소나 야채 등을

재배하려고 화분을 많이 가꾸시지 않나요? 배영욱 ([wooky] 남산골 배선생) 님의 말 :난 소득수준이 낮아도 화분

안키우는데.. ㅋ 김정식 님의 말 : 관상용 식물은 아니죠?배영욱 ([wooky] 남산골 배선생) 님의 말 : 관상용도 많아

김정식 님의 말 : 팀장님은 농경과 섭취의 경험이 없으시잖아요 아

그래요?그러면 다시제일 큰 이유는1. 다 마당있는 집이니까 2. 비경제인구가

많으니까 배영욱 ([wooky] 남산골 배선생) 님의 말 :마당이 없어서~ 화단이

아니라 화분을 키우는것 같고 비경제인구는 공감가고 김정식 님의 말 :마당이

없나요?배영욱 ([wooky] 남산골 배선생) 님의 말 :여기 얼마나 고밀인데~

김정식 님의 말 :오 그러네요근데 워낙 녹지가 없네요배영욱 ([wooky] 남산골

배선생) 님의 말 :집마다 약간이 빈터가 있긴하지 바로 옆에 남산이 있는거랑~

관계가 있을라나 김정식 님의 말 :음....근데 이정도 화분은 보통 아닌가요?

배영욱 ([wooky] 남산골 배선생) 님의 말 :보통인가..? 김정식 님의 말 :

남사면이라 볕이 잘 들어서 뭘 키우도 잘크나?배영욱 ([wooky] 남산골

배선생) 님의 말 :내가 사당동 구의동~ 서울 여기 저기 많이 살아 봤거덩~

김정식 님의 말 : 네 배영욱 ([wooky] 남산골 배선생) 님의 말 :그 동네에서는 이렇게 화분 열심히 키우는거

본적이 없거덩......뭐 오래된 양옥집에는 보통 화분들이 있었던거 같기는 한데~ 사당동 구의동은 아예 이런

양옥집이 없긴하지. 해방촌에 들어와서~ 가장 인상깊었던 점이 화분키우는 모습이어서

김정식 님의 말 :그러네요 많은 편이네요 다른 골목에 비해서 .....조금 전문적인 관점에서 보면

해방촌의 공간구조가 좀더 개방적인 것 아닐까요?

김정식 님의 말 :집 안에 화분은 몰라도

골목에 저렇게 화분이 많다는 건 어쨌든

대개 폐쇄적인 동네들은 바깥에 저런거 잘

안하잖아요.

배영욱 ([wooky] 남산골 배선생) 님의 말 : 개방적이긴

해~ 골목을 사유화 해서쓰지~ 실내 공간도 넉넉하지 않으

니, 빨래 너는 것도 곧 잘 길가변에 나와 있기도 하고

그러고 보니 그 길가에 유독 담장 허물기 한 집이 많기도

하군~방음벽있는쪽 사람들은 그 골목을 양쪽집이 쓰는게 아니고 자기네만 쓰니까

건너편까지 화분을 진열하지.. 배영욱 ([wooky] 남산골 배선생) 님의 말 : 전에 우리팀

사람들끼리 이야기 하면서~ 이사 갈려는 사람들은 화분 잘 안키운다~ 뿌리내리고 살겠다는

그런 생각이 발현되는거 아닌가 이런 이야기 했었거덩~

김정식 님의 말 :정주기간이 길어서 그럴 수도 있겠네요, 다 아는 이웃이고 ....비슷한 느낌이 나던 곳 성균관대 위쪽 동네

명륜동 쪽도 골목이 엄청 복잡하고 왠지 화초를 기르고 싶은 짜투리 공간이 엄청 많이서 그런지 화분같은 게 엄청

많았거든요 녹지가 거의 없어서 정말 구석구석 다 화초를 키우더라구요 배영욱 ([wooky] 남산골 배선생) 님의 말 :

그러니까 동네는 마을 입구 외부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폐쇄적인 구조이고 마을

사람들은 오래 살기도 해서 서로를 잘 아는, 견고한 커뮤니티를 가지고 있고, 굳이

외부사람들이 마을을 돌아 다닐 일이 없으니까 마을이 점차 개방적인 공간 구조로

바뀌었구나 거기에 주로 가드닝을 하시는 노인 계층의 분들이 역할이 주요했고 ....

아무튼, 출근할때 마다 기분 좋은 길이야~ .. 역시, 느닷없이 어떤 질문을 해도

준비한 것 처럼 1,2,3. 조목 조목 답하는 정식! 참 너 답다 ^^

이만 일하시게~ ㅋㅋ

골목길정원Street Gardening을 가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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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산 곰팡이

2011년 비가 샜어요

오래된 집, 밖으로 나온 활동 80년대 해방촌 재개발로 인해 해방촌도 드디어 번듯한 양옥마을이 되었지만, 그 이후에 높이 규제와 이미 고도로

밀집되 있는 밀도 등으로 인해 뽀죡한 사업성 제고 방안이 없었던 탓이 었는지, 오랫동안 이 마을을 지켜왔던 주민

들이 특별히 동네의 변화를 싫어했던 탓이었는지 불편한 문제를 조금씩 고쳐쓰는 정도의 변화만 있을 뿐, 오랜 주

택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물론 요즘 지어진 1층에 주차장이 완비된 다세대 주택이 여기에도 조금씩 생기고

있다,

집이 오래됐다고 살기 안 좋은 것은 아니다~

경사지에 집이 있어서, 비록 집의 한귀퉁이가 땅에 뭍혀 있고, 그나마 일부 방의 창이 북쪽으로 나있어 빛이 거의 들어

오지 않고 여름되면 통풍이 잘 안되서 꿉꿉한 느낌의 습한 기운이 만연해서 햇볕 좋은 여름엔 옷을 다 내어 말리는 것이

연례행사지만, 햇볕드는 집… 기미밖에 더 생기겠어!! 같은 값에 널찍한 집, 내가 맘대로 꾸미는 밝은 거실이 있잖아~

또 땅에 파뭍혀서 겨울되면 따뜻하고 햇볕 안들어 여름엔 시원하잖아.

하지만 30년된 내가 살고 있는 우리집, 이번 엄청나게 내린 장마비에 천장에서 벽을 타고 빗물이 새기 시작하더니 그

자국을 따라 어마어마한 곰팡이들이 창궐하기 시작했다. 이번 기회에 간만에 집주인이랑 연락해서 집수리 일정을 정하고

있다~ 오랜 나의 집은 다시 산뜻한 도배한 집으로 태어날 것이다~ 그래서 지금 난 곰팡이 냄새 나는 집을 피해

노트북과 책을 싸들고 동네 카페에 나와 있다 .

간만에 해가 반짝 나왔다

동네사람들이 이불과 옷들을 들고 집밖으로 나온다. 나도 미룬 빨래와 이불을 말리고, 나무 도마를 살균할 장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다, 도마는 그냥 두기로 했다.

거실 소파에서 작업을 하다가 기분 전환이 필요하다. 집에만 있으니 집중이 안되고 자꾸 인터넷만 하게 된다~ 생각이

정리할 새로운 장소가 필요해~ 시원한 원두커피가 먹고 싶다. 일요일 오후 3시, 집을 나가자.

해방촌의 중앙접근로 신흥로를 따라 즐비한 cafe와 pub.

집안에서 티비보는 것, 학교친구와 직장동료와의 술자리가 여가활동의 대부분인 한국인들과는 달리 외부에서 활동하는

것이 익숙한 외국인들의 생활습관 때문인지, 아니면 그들이 집안에서 즐길 티비시청 같은 여가 문화가 한국에서는 많지

않아서인지, 쾌적하게 누리기엔 집의 실내환경이 좋지 않아서 인지 여기 사는 외국인들은 다들 카페와 pub에 나와있다.

동네 지역 커뮤니티 외에 달리 인맥관계가 형성되어 있지 특수 상황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금요일 밤열두시~ 동네 pub

의 야외 테라스에서는 Friday night 를 즐기려는 동네 외국인들의 수다소리가 온 골목길을 가득 채운다. 이들은

이렇게라도 편하게 자기네 말을 말할수 있는 친구와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창의적 야외공간 활용

뺵빽한 집과 집사이에 계단과 계단사이 외국인 한분이 계단참에서 책상을 펼치고 공부하고 계신다 그늘지고시원한

명당자리를 찾으신거다~ 또 다른 외국인은 계단참에 편한 복장으로 퍼질러 앉아서 통화하고 있다. 풋~ 어쩜 저렇게

밖에서 생할하는것이 자연스러울까?

국적을 알수 없는 맛집

해방촌을 검색하면 검색페이지 가득히 맛집이 잔뜩 나온다. 나라별 정통요리를 하는 레스토랑이기 보다는

샐러드부터 샌드위치, 치킨 데리야키,파스타에서 중동지역 음식인 hummus이르기까지, 종류도 다양하고 양도 푸짐하고

가격도 시내의 식당보다 저렴하다. 동네의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이 분식집 오듯이 .. 외국인에겐 이 식당들이 그들의

가정식 백반집이다. 나도 이 국적불명의 브런치를 종종 즐긴다~ 이제 Indigo가게주인 아저씨가 눈인사를 해주신다~.

나의 주말 브런치가 너무 잦았나 보다. 이렇게 해방촌의 주말이 또 지나간다.

현관 밖으로 나온 빨래

주말밥집

옥상에서의 하룻밤 아니 며칠밤

집안보다 집밖이 시원해

들어

는 것이

잖아~

집안보다 집밖이 시원해계단참은 작업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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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1960년대 해방과 함께 월남한 사람들이 일본인들이 버리고 간 적산가옥을 차지하거나 판잣집을 지어 살기 시작함

1970-1980년대 상경한 농촌민들이 남대문시장을 터로 하여 담배말이 산업 → 5.16이후 스웨터 공장 위주

용산 미군기지 외 한남동, 이태원동 일대 대사관, 낮은 집값 등으로 인한 외국인 유입

용산 미군기지 이전에 따라 군관련 외국인 인구는 줄어들고 그 곳을 영어권 원어민교사들이 채우고 있다.

“내래 북에서 왔어.”

“가자!가자!고향으로 돌아가자!”

해방촌은 8.15 해방 이후 아픔의

역사가 만들어낸 서울의 새 동네다.

6.25 전쟁이 끝난 뒤 서울 주둔

미군기지로서 군사지역의 면모가

강화되고 미군들을 위한 상점과

가건물 주점, 기지촌 등이 들어서면서

이 부근은 미군위락지대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전쟁통에 북에서

남으로 피난 내려온 사람들이

헐거워진 보따리를 풀고 한쪽에 터를

잡으면서 해방촌 사람들의 삶이

시작됐다. '절망 끝에서 목놓아 부르는

희망 <오발탄>' 中 by 멀리있는 빛

월남민들에 이어 60년대에 농촌을 떠나

서울로 올라온 사람들은 해방촌 2세대가

됐다. 이들이 용산 일대에 몰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 중 하나는 그나마 날품이라도

팔아 생계를 유지하기에는 서울역과

남대문이 가까운 이곳이 안성맞춤이었기

떄문이다.

▲지난 5일 미국 민주당 한국지부 주최로

서울 이태원 '해방촌'의 한 카페에서 열린

대선 축하 파티에서 참석자들이 버락

오바마 후보의 당선을 축하하며 환호하고

있다.ⓒ 권우성

해방촌 주민 김디온씨 인터뷰

Q. 당신은 언제, 어디서 왔나요? 제가 살고

있는 ‘빈집 공동체’(이하 빈집)는 2008

년에 생겼고, 저는 작년부터 여기에 살아요.

그 전에는 평택 ‘대추리 마을(미군기지

반대하는 마을)’에 살다가 나와서,

해방촌에서 혼자 살고 있었어요. 집도 싸고,

‘이태원 사람들을 만나다, 퇴근길 기자’

中 by 이해린

대안적인 삶을 추구하는 젊은이들

피난민에서 부터 외국인, 대안적인 삶을 추구하는 젊은이들까지 해방직후 피난민에서 부터 외국인, 대안적인 삶을 추구하는 젊은 이들 까지 HBC

사람들의 출신, 나이, 기반, 삶의 형식은 매우 다양하다. 해방촌은 1946년부터

현재까지 인구 전출입이 매우 활발하며 내외국인 할 것 없이 뜨내기들에게, 새것에

익숙하고 개방적이다. 뜨내기 문화, 이것은 아마도 해방촌의 태생적 요인에 기반하는

것으로 지금의 동네의 모습을 만들게 한 동력인 것 같다.

해방촌은 관대함 혹은 무관심으로 뜨내기들을 받아들이고 소화하고 또 떠나보내기도

하며 여전히 쿨하게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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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글로벌빌리지 해방촌!!해방촌을 처음 찾은 사람들은 외국인의 밀도에 깜짝 놀랄 지도 모른다. 마을

이름만으로는 도시 노동자들이 사는 못사는 동네를 연상하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해방촌 마을버스 종점이 있는 해방촌 입구에서부터는 서울의 다른 지역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이국적인 분위기의 가게들은 미국, 캐나다는 물론 인도, 나이지리아,

필리핀 등 동서양의 다양한 국적을 가진 외국인 손님들로 가득 차 있다. 이제는

외부인에게 외국음식점들이 더 유명해지고 있으며, 물 건너온 문화(?)도 이곳을 통해

전파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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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살아요 그런데 어떻게 해방촌을 아셨어요?

이 방쓸 사람을 찾습니다.

대구고향 대학로 연극관련일

부안고향 영화과 졸업후 영화관련 알바생

부산고향 건축설계사무소

Step1

Step2

2011년 길고 긴 여름장마가 계속되던 어느날 같이 살던 친구가 이사를 나가기로 했단다.

방이 셋인 우리집엔 3명의 타인이 같이 살아왔다. 처음엔 갑자기 넓어진 집의 겨울난방비 부담을 줄이고자

하우스쉐어를 시작했다. 가족적인 분위기의 대안적 주거형태라기 보다는 서로의 삶을 터치하지 않는 예의 바른 현대

젊은이들이 삶의 방법이다. 나름 난 임대인인 거다. 그래서 다시 같이 살 친구 한명을 더 구하기로 했다.

인터넷 방을구하는 홈페이지에 집의 위치와 임대조건,

공용으로 사용하는 것의 범위 등을 자세히 적고 집

구석구석을 찍어서 연락처와 함께 올린다.

그러고 기다린다

비가 계속와서 그런지 사람들이 이사할 엄두가 안나나

보다 연락이 없다.

이 방쓸 사람을 찾이 방이 방

지원자 1: 미국에 사는 아줌마

지원자 2: 대학로에서 일하는 아가씨

기존 house mate인 지은이와의 대화

하우스매이트 구하는 글 보고

전화했는데요

여기 미국인데 제가 6개월 정도 한국에

나가 있을 계획이예요. 근데 미국은 sub

let이 일반적인데 한국에 마땅한 숙소를

못찾다가 한국에도 sublet이 있다는

지인의 말을 듣고 찾아서 연락드렸어요

제가 사진으로 보니 집이 깔끔하고

괜찮은데 들어가 살수 있을까요?

또 제가 나이가 좀 있는 중년인데 같이

살기 불편하지 않을까요?

하우스매이트 구하는 글 보고

전화했는데요 지금 방 들어갈수 있나요?

전 대구에서 올라온 24살된 김00라고

하고 대학로에서 연극 올리는 일을 하고

있구요

언제 방문해도 될까요?

엊그제 새 뮤지컬을 올려서 제 퇴근이

11시 너머일 것 같아서요

숭의여고 나와서 그 일대는 잘 알아요

제가 9월에 들어갈텐데

그때가지 방이 비어 있을까요?

들어오기전에 연락주세요

혹시 그때까지 housemate 못 찾으면

방 한번 보러 오시죠

다른 조건들은 크게 문제 안될 것 같은데

해방촌 주변이 좀 특이해서

직접 보고 정하셔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게~ 내가 특별히 그런 분만 찾는건

아닌데 이쪽 종사자 분들이 많네~

네 다음에

연락드릴께요

오늘 오시죠

전 11시 너머도 되는데

어떻게 집에 돌아 가실려구요?

근데 무슨 연극 올리신 거예요?

새로오는 친구는 연극쪽 일 하는

친구래요?

어쩜 이 해방촌에는 그런 문화 관련된

일에 종사하거나 비슷한 일 하는

사람들만 들어오나봐요 예전에 있던

언니도 영화공부하는 언니였잖아요

원태연씨 시로 뮤지컬을 만든 <넌 가끔 내

생각을 하지, 난 가끔 딴생각을 해>라는

연극이구요

같이 일하는 언니가 해방촌에 살아서 그

언니집에 가면 되요

해방촌을 찾는 사람들_1

지방에서 올라온 도시이주민 문화·창작 관련된 일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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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 사는 유진이 해방촌을 찾는 사람들_2

우리 동네엔 ‘빈집’이 있다. 동생이 쓰지 않는 가구와 책들을 어디론가 부지런히 실어 나르면서 그 존재를 알게 되었다. guest house. 저렴하게 숙박을 해경하는 것,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는 듯하긴 한데, ‘좀 다르게 사네’, 실은 ‘좀 복잡하게 사네’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이 집이 아랫집, 윗집,한채 두채 늘어 나더니 빈마을을 이루었댄다. 인터뷰해 보기로 했다. 내가 사는 집이랑 아주 가깝다.

인터뷰를 요청하는 빈집 홈페이지 게시판의 글에 대한 답이나, 직접 빈가게를 찾아 갔을때의 반응은 그리 따뜻하지만은 않았다. 아마 이미 여러 매체에 노출되면서 그저 개인들의 일상을 오픈해 달라고 하는, 나 같은 지나가는 사람의 요청이 피곤했을 지도 모르겠다. 혹은 인터뷰를 요청하는 나의 자세에서 그들의, 조금은 다르게 사는 방식에 대해 신기하게 보는 시선이 은연 중에 나왔는지도 모르겠다.8월의 어느 선선한 저녁. 집에서 멀지 않은 '빈가게'를 찾았다. 빈집사람들을 만나려면 여기를 찾아가면 된다는 정보를 듣고서, 어느덧 가을로 접어 든 해방촌 골목길엔 동네 할머니들이 집 모퉁이에 앉아서 이야기하고 계신다. 밖은 선선하고 시원한데 가게 안은 바람이 안통해서 덥다. 밀크티를 주문하고 해방촌에 관심이 많은 주민인데 해방촌을 찾는 젊은 사람들이 궁금하니 인터뷰를 해 달라고 요청했더니 곤란한 표정을 지으시더니 '봉봉'씨를 불러주셨다. 자신을 봉봉으로 소개하는 유진씨, 왜 닉네임을 쓰냐는 질문에 그냥 별명이라고, 친구들이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근데 왠지 봉봉이라는 별명이 왠지 어울리는 동글동글한 느낌의 귀여운 22살의 휴학생이다.

해방촌을 어떻게 알고 들어 왔는지?2년전에 인터넷에서 빈집에 대한 글을 읽고 흥미로운 곳이라 생각되고 살아 보고 싶어서 1달간 살다가 이후에 다른 곳에 살다 2달전에 다시 '빈집'에 살고 있고 한달후엔 문경의 정토수련원으로 갈 예정이다.고향이 지방인지?부모님은 서울 중량구에 사시는데, 두분 다 강원도가 고향이시라, 해방촌의 동네 같은 느낌이 정겹고 익숙하다. 대학에 들어가면서 독립하고 싶어서 나와서 살게 되었다. 부모님이랑 사는 것이 편할텐데 왜 굳이 나와서 사는지?특별히 다른 선택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람사는 모습이 다 조금씩 다르고 그 안에 맞고 틀린거는 없는거 같다. 그리고 사는 모습이 달라보이긴해도 뭐 사람 사는거 비슷하다. 문경에서 2월에서 5월까지 100일 출가라는 경험을 했다. 그때 인생의 괴로움의 절반은 해소한것 같다인생의 괴로움 어떤것들이 있는지?타인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신경쓰는 것, 하기 싫은 것은 너무 빨리 포기하는것 같은 것들.

부분의 사람이 하기 싫은 것은 빨리 포기한다. 대신 정말 좋아하는 것을 아는 것과 그것을 힘들어도 해나갈수 있는 것이 중요한 것 같은데, 정말 좋아하는 것은 찾았는지?좋아하고 하고 싶은게 너무 많다. 그 것들을 다 할수 있는게 아니고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데 아직 잘 모르겠다. 불교활동은 좋아한다.그 22살의 소녀같은 아가씨는 정말 세상을 해탈한 것 같은 편안한 눈으로 나와의 대화를 이어 나갔다. 요즘의 일상은?오전에는 에코붓다라는 불교환경단체에 나가고 있고 오후엔 해방촌 동네 파리바게트에서 아르바이트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비정규직이다.빈집에 살아서 좋은 점도 있고 불편한 점도 있겠지만, 오늘은 좋은점을 이야기 해 달라복작복작. 사람들이랑 부대끼며 사는 것, 새로운 사람들이 왔다가 가는 것을 지켜 보고 경험하는 것, 그리고 너무 잘해 먹는 것, 또 고양이 키우는 것이 너무 좋다, 그러면서 나도 떠날 준비를 한다 정착하지 않고 떠돌아 다니는 듯하다. 미래에 뭘하고 있을것 같나? 이 비슷하지 않을까? 지금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여행가고 하는 것에 별 어려움이 없다. 미래에도 소박하게 살고 소박하게 즐기며 살것 같다. 10년 후도 삶이 지금과 같다면 심심하지 않을까? 목표를 정하고 준비하고 성취하는 일반적인 삶을 살아 가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도 10년후엔 시집가고 살림 살고 일하고... 그 들의 일상이 일상이지 뭐 특별하겠는가. 모든게 마음의 문제인 듯하다. 빈집사람들과 동네와의 관계는?빈집사람들이 지역의 일원으로 이 주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마을분들도 가끔 와서 식사 같이 하시고 하신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공동체 안에서 벌어지는 일에는 관심이 많지만, 사실 동네에 특별히 관심이 있는 것 같지 않다. 짧게 짧게 지내다 가는 체류의 특징때문인 듯하다.그러고 해방촌에 관해 내가 아는 지식과 의견을 조금 나누다. 결정적인 마지막 질문을 하려던 찰나에 금요일 밤마다 '빈가게'에서 한다는 "금요 영화보기" 행사를 위해서 이야기를 급히 마무리 지었다.

그녀가 왜 해방촌, 혹은 빈집에 왔는지가 궁금했고, 대안적 주거형태를 구성하는 그네들의 삶의 방식이 궁금해서 시작한 인터뷰였지만,인터뷰를 마친후의 내 머릿속은 처음과 사뭇 다르다.모든 사람들이 가라고 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고 사소한 일상 하나하나에 의문을 품고, 원칙을 세우고, "진짜" 실천하며 살고 있는 그녀의 용기 있는 삶에, 우선은 단순한 '공순이'인 나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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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화의 주인공을 찾아라

해방촌 초입에 보면 올해 봄 누군가가 그려 놓은 벽화가 있다. 처음엔 화목한 가정을 표현한 것인가 보다 하고 지나갔었는데, 어느날 무심코 보고 있자니 가족의 구성이 특이하다, 엄마 아빠 아이가 한가족인 집, 엄마랑 아이가 한가족인 집, 아빠와 아이가 한가족인 집, 엄마가 둘인 집, 아빠가 둘인 집. 이 모두가 우리 가족이란다. 마을 입에 하나쯤 있을 법한 소심한 벽화지만 해발촌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그냥 받아 들이는 모습을 보여주는 단편을 발견한 것 같아 기분좋다 . 다양하다. “누가 그렸을까?”한국 사람은 아닌듯한데,한국사람이라면 한글 우리가족'을 저렇게 정자로 또박 또박 쓰지 않았을 텐데

Hp sauz 그림 밑에 있는 싸인으로 작가를 추적해 보기로 했다.추적의 결과 laughing tree라는 갤러리 홈페이지에서 이 친구의 이름이 나타난다. 홍대에서 활동을 하는 여자 외국인 작가인지, 뮤지션인지 모호하다. 지난 해방촌 축제 혹은 laughing gallery opening때 기념하기 위해 그려 놓은 듯하다. face book에서 그녀의 이름이 검색이 된다, 친구 paul에게 추적과 인터뷰, 기사를 부탁했다. 답이 없단다. 해방촌에서 최초의 갤러리 laughing tree 를 운영하고 있다는 외국인 부부를 공략하기로 핶다. 그러고 보니 그 갤러리는 가까운 편의점 옆, 매일 문닫혀 있어서 무엇인지 궁금증을 유발했던 그 곳이다. 아직 특별한 응답이 없다. 바쁜가보다.하지만 이번 추적을 통해 외국인 생활편의시설 위주의 해방촌거리에 문화코드가 발견되었다는 수확이 있다 경리단쪽과 해방촌쪽에 거주하는 예술 관련 외국인들끼리의 연대도 있는 듯하다, 이들이 한국에서, 해방촌에서 자신들의 문화,예술적인 역량을 확대하고 싶은 것인지, 단지 그들만의 아지트가 필요했던 것인지는 알수 없지만, 어떠한 방법이든 문화코드가 해방촌에 상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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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하기+ 가 아닌 쉼표 ,이 페이지는 남산골 배선생님의 부탁으로 외국인 아티스트를 인터뷰해보고자 하다가

실패하는 과정에서 가지게 된 해방촌이란 동네에 대한 나의 시각을 적어보는 기회로 남용 될 작정이다.

뭐, 난 사실 해방촌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기억을 더듬어보자면, 해방촌을 처음 접했던 건 국민학교 3학년때. 전학 와서 처음으로 방문한 수현이란 친구네 집이 해방촌이란 동네에 있었다. 변두리에 살다가 서울 한가운데 있는 학교로 와서 집안형편에 대한 자격지심이 있었던 나는, 그 친구 집에 갔다 와서부터 마음을 풀고 다른 친구들과도 곧잘 어울리게 되었던 것 같다. 그 친구 집이 반 지하 셋방이었고 좁았었기 때문에 ‘우리 집이 못사는 게 아니구나’ 하는, 어린 나이에 비해 속물스런 안도도 물론 있었겠지만, 그 이외의 무언가가, 여리고 어렸던 내가 타인에게 다가갈 수 있는 용기를 주었던 것도 사실이다. 아마도 그 무언가란 자신의 배경에 대한 당당함. 뭐 환경이 사람의 성격이나 성향에 영향을 끼친다는 전제하에 생각하고 역추 해보건데,

해방촌은, 누구든, 그의 배경에 대한 당당함을 포용하는 동네가 아닐까?

예술인, 외국인, 외국인 예술인이 각자의 성격을 가지고 공존하는 지금의 해방촌, 그리고 내게 자신의 배경에 대한 당당함을 가르쳐준 옛 친구가 살던 해방촌은, 뭐 대략 정리해보자면 이런 동네인 것 같다.이질 적인 여럿이 서로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딱히 서로 합쳐지거나 섞이려는 억지 없이, 편안하고 어우러져서, 자기자신의 배경에 대한 당당함을 가지고 사는,

뭐, 뭐, 뭐, 뭐, 뭐가 같이 어울려 사는 쉼표의 골짜기.

외국인들. 생긴 것도 다르고 말하는 것도 다른 그들이 너무나 편안하게 계단에 주저 앉아 외국말로 신나게 떠든다.3 이건 뭐, 한국 아줌마들이 노란물 염색하고 수다한판 하는 거랑 다를 바 없다. 해방촌의 어떤 부분이 이방인들이 이토록 편하고 자연스럽게 떠들도록 내버려 두는가. 특이한 건, 이들의 의한, 그리고 이들을 위한 이들의 사회가 있다는 것이고, 이들은 Expat Community라 는건 해방촌의 또 다른 당당한 이종이다.

3

외국인예술인들. 생긴 것과 말하는 것이 다름은 물론이고 그들 중에서도 남다른 외국인 예술인들! 한국에 아직까지 이들만큼 이질적인 존재들이 있었던가? 그들은 해방촌에 살며, 해방촌 담벼락에 그림을 그리며, 그들만의 의뭉스러운 커뮤니티를 가지고 있다. 사실, 이 지면은 옆 그림4의 주인공과의 대화와 그가 가진 해방촌의 다양한 가족형태에 대해 적어볼까 했던 것이었지만, 이런, 답이 오질 않는다. Good Luck이란 말 하나 듣긴했다. 뭐, 그래서 황급히 내 포인트로 가자면, 그토록 이질적인 사람들이 해방촌에선, Laughing Tree란 겔러리도 내고, 낙서도 하고, 이런저런 모임도 가지면서 나름 멋지게 살고 있다는 것.

4

사실 해방촌엔 당당한 이종(?)들이 많다. 지금은 원주민이겠지만, 사실 해방촌도 거슬러 올라가면 이북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눌러앉은 곳이 아니었던가. 아마도 함경도사람 평안도사람 황해도사람 모두 모여서 살다보니 서로 자기배경에 대한 당당함과 함께 살고,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것이 이 동네의 성격을 만든 같기도 하다.

이제 현재로 타임리프. 간략하게나마 해방촌에 거주하는 이종들을 나열해 보자.

예술인들. 해방촌에 공방이 생겼다. 그리고 그 공방은 여느 일상의 해방촌과 자연스레 어우러진다!1 그뿐만이 아니다. 여기저기 낙서도 보이고, 게스트 하우스 벽돌도 알록달록하다.2 뭐, 확실한 건 아니지만, 그게 아트이건 키치이건, 뭔가 남다름에 대한 욕구가 느껴진다. 요즘 소위 뜨고 있는 해방촌의 이면엔 뉴욕의 소호, 또는 런던의 브릭레인에서 보았던 예술인의 자유롭고 이질적인 당당함이 자리잡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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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담한 공방<열두가지>를 가다

아침은 굶어도, 바쁜 출근길에 아메리카노 한잔은 사들고 출근하는 나를 보며 스스로 ‘내가 커피의 노예요’하고 읊조리고 있다. 나뿐만 아니렸다. 지난 달, 판교의 단독주택지를 구경갔을 땐, 아직 빈땅도 많은 주택지 안에 카페만 무려 12개가 나란히 줄지어 있었다. 그래, 바야흐로 커피의 시대이다.이러한 대세에 부응하듯, 많은 회사원들의 꿈은 ‘커피전문점이나 하나 차렸으면...’이고,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 이들은 본인들의 취미와 특기를 살려 독특한 카페들을 하나씩 오픈하고 있다. 가령, 예쁜 소품들을 모아놓은 카페, 사진 작가가 직접찍은 사진을 전시하면서 운영하는 카페, 고양이들을 잔뜩 풀어놓고 고양이랑 놀으라며 만들어 놓은 카페 등, 다양해지는 우리의 욕망처럼 카페들도 점점 진화하고 있다. <열두가지>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접했을 땐, ‘아, 이젠 수예나 핸드크래프트를 접목시킨 카페도 생겼구나’였다.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여자들이 많이 모이는 모 포탈의 모 커뮤니티에 가보면 빠지지 않는 항목은 인테리어, DIY, 홈패브릭, 소품이기 때문에, 또 서점에 가도 취미섹션의 한칸은 손바느질 책이 잔뜩 메우고 있기 때문에, ‘취미활동의 측면에서 보자면 자연스러운 결과 일지도...’라고 생각했다.

<열두가지는 해방촌에 있다>

이곳 해방촌에 공방을 열기로 결심한 것은 남산 때문이었다. 인근 한남동에 거주한지 수년이 넘었지만, 작년가을에서야 처음 해방촌에 왔었고, 그때 해방촌 길에서 보이는 붉은가을 남산에 한눈에 반해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남산을 보고 지른 것이 큰 이유이기도 했지만, 외국인이 많은 곳이라는 것도 이곳을 선택한 이유였다. 유럽이나 서구권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에 비해 핸드메이드제품에 익숙하므로, 나름 그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현재 외국인들이 열두가지를 자주 찾는 것 같지는 않다.) 아마 그녀가 남산을 그토록 좋아하지 않았더라면 열두가지는 지금쯤 해방촌이 아닌 다른 곳에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녀의 과감한 결단덕에 우리는 해방촌 골목 한켠에서 너무나 예쁜 카페, 열두가지를 만날 수 있다.

해방촌에서 새롭운 시도를 하는 사람들

<열두가지는 공방이다>

열두가지의 시작은 공방이었다. 카페의 주인인‘댕이’님은 편집샵의 디자인 컨설팅과 비주얼 아트 등을 작업하시다가, 작년즈음 자신만의 공방을 만들기로 결심하고 이곳저곳 장소를 물색하다 터를 잡은 곳이‘해방촌’이었다.사실, 현재 자리의 1/4정도의 면적만이 공방 공간으로 필요 했지만, 딱! 마음에 들던 이 가게는 4배나 컸기 때문에 월세를 내기 위해서라도 커피를 팔아야 했다.그렇기 때문에, 그녀에게 이곳은 작품을 만드는 공간, 그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공간, 그리고 같은 작업을 하는 사람들과 교류하는『공방』이다. 이러한 이곳의 특색 때문에, 낮에 이곳을 찾는 대부분의 손님은 핸드크래프트에 관심이 많고 전시를 보거나 손바느질 수업을 듣기 위해 오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열두가지는 카페다>

그녀의 마음에 열두가지는 공방이지만, 이곳 운영의 수익은 온전히 카페에서 나온다. 아직, 핸드메이드 제품이라는 것이 대중적이지 못해 전시가 판매로 이어지지 못하고, 이곳을 알고 멀리서 찾아오시는 분들은 직접 수예작업을 할 수 있어서 구매하지 않고 직접 만들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마지못해(?) 팔고 있는 커피가 그녀가 공방을 계속 하게 할 수 있는 원동력이되 는 전세역전의 형국이랄까? 그렇지만, 그녀가 의도했건 아니건 간에 이곳은 카페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핸드크래프트의 취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예쁜 물건이 너무나도 많은 보물창고이고, 관심사가 같은 사람들이 모이는 마실터이다. 또한, 저녁에 휘적휘적 거리를 걷다가 가게의 모습에 반해 들어온 동내 주민들과, 이곳에 꽤나 많이 살고 있는 그녀의 지인들의 아지트 이기도 하다. 모이고, 수다떨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카페라는 장소는 본래 그런 곳이기에, 열두가지는 멋진『카페』다.

<열두가지와 해방촌 사이>

열두가지와 해방촌 사이에는 무슨일이 일어날까? 애초의 목적과 현재상황이 어찌 어찌 흘러왔던지간에, 열두가지는 이제 해방촌의 일원이자 HBC의 풍경이 되었다.아직, 해방촌의 일원으로서 열두가지가 갈길은 멀어보인다. 핸드메이드에 관심있는 사람들과 몇몇 지인들에게 공방과 아지트로서 역할은 잘 수행하고 있지만, 좀 더 많은 사람들, 혹은 해방촌 주민들에게는 ‘좀 장사 안되는 카페’혹은 ‘들어 가기 힘든 바느질 교실’일지도 모르겠다. 핸드크래프트라는 새로운 문화의 코드를 가지고 해방촌에 녹아드는 것은 아직 시기 상조인 것일 것일까? 게다가, 해방촌과의 거리는‘이정도가 딱좋다’는 그녀의 쿨한 성격도 한몫 하고 있는 듯 하다.러나, 해방촌의 새로운 모습을 만들고 있는 것은 열두가지를 포함한 하나하나의 새로운 시도들이다. 열두가지는 해방촌에 둥지를 틀었고, 의도했건 의도치 안았건, 열두가지가 있음으로 해서 가로의 면면이 다양해지고, 활동은 풍성해 지기 때문이다.조금씩 바뀌어 가고 있는 해방촌, 그곳에 용기내어 새로운 문화코드를 가지고 들어온<열두가지>,STARTER로서의 첫발을 내딛다. 그리고, 열두가지를 시작으로 더 다양한 것들이 해방촌 곳곳을 채워나갔으면 하는 바램이다.

남산타워가 보여요! 한 다스, 12ea..무언가 가득 있는 곳

주소: 용산구 용산동 2가 45-5연락처 : 010 - 6613 - 4208

휴일 : 월요일블로그 : http://serarn.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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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ㅏㅇ업스 집에서 ㅘ부 마ㅡ기 wookybiny

Taeman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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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촌, 그리고 빈민]

어디에 사셨어요?실은 해방촌이 아니라 해방촌 옆 남산터널 건너편의 대림아파트에 살았RH, 해방촌의 여느 조직과 성격이 달랐지 하지만 해방촌 사람들과 해방촌 생활을 같이 했다고 할수 있지, 재래시장, 김밥집, 부동산, 미용실, 동사무소, 그리고 해방촌 성당.

싱글, 임대인, 보행자, 해방촌 커뮤니티에 소속되있지 않은 저와는 달리, 가족과 함께, 차량 운전자이며, 자가주택에, 해방촌 성당 커뮤니티에 소속되어 있는 김태만 소장님의 해방촌의 기억을 말씀해 주세요내가 인지하는 해방촌은 해방촌5거리에서 성당일대의 동네 정상에서 능선부에 이르는 곳까지이고,거기가 해방촌의 중심이야, 달동네의 정수는 항상 정상에서 시작하지, 거기를 지나면서 느끼는 것도, 들리는 봐도 그렇고, 실제로 성당에 나오는 사람을 봐도 정말 해방촌엔 도시빈민이 많이 사는구나 라고 생각했지 가내 수공업하는 사람도 많고.. 특히 해방촌 성당은 다른 교구에 비해 빈민에 봉사하는 사람이 많았어, 그만큼 도시 빈민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고, 빈민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진, 옛날에 학생운동을 하고 빈민운동을 하던 중장년층이 아직도 남산을 떠나지 않고 남아 있었어

왜 거기 남아 있을까요?지역 연고가 해방촌인 사람도 있는 것 같고, 이들은 보모세대와는 다르게 충분한 지위와 교육수준을 받은 사람들, 소위 말해 서울대 출신의 사람들도 있었음에도 해방촌을 떠나지 않고 남아서 그곳에서 청년들의 관심을 갖게 하거나 그런 움직임을 이끌어 내는 사람들이 있었어. 지금도 청년들을 이끌고 인문, 사회분야를 연구하는 수유너머와 젊은 청년들이 모여서 공부하며 공동체 생활을 하는 게스트하우스 <빈집>이라는 단체가 있는데 비슷한 분들인가 보네요. 동일인인가?그런 맥락에서 은빛자리 였던가, 오갈데 없는 독거 노인들 모셔서 살림을 하는 해방촌 성당 후원 공동체가 있었어.

[해방촌과 또 다른 맥락 HBC]

신흥로는 해방촌을 위한 길이 아니고. 남산과 밑에 동네를 연결하는 by pass하는 차량이 이용하는 길이야. 외지인이 통과하는 거리이지.

그러나 외지인이 차로 통과하고 보행자로도 없지만 항상 번잡하고 사람들이 그 길로 쏟아져 나온다. 통행량이 많은 곳에 서비스들이 따라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인거고, 그러나 신흥로 주변의 이랫동네는 빈민, 산동네의 해방촌 웃동네와는 약간 다른 관점에서 봐야 할 것 같아. 주한미군 부대와 이태원에서 확장되어 오는 돈없는 중저가 외국인의 집결지, 그 흐름이 경리단과 해방촌쪽으로 성장을 하고 있지. 내가 예전에 만난 영어 강사도 거기 살고 있어, 단기체류하는 외국인을 위한 생활 서비스와 저렴한 렌트할 곳을 찾는 요구가 해방촌 아랫동네에서 해방촌의 성격과 만나고 있는 것 같다.

두 지역의 다른 성격이 인지되어 우리도 아랫동네를 관찰하는데 있어 해방촌이라 이야기 하지 않고 HBC라고 칭하고 있는것 같다. 외국인이 해방촌을 부르는 이름이 HBC이다

전문가 인터뷰

김태만 소장님께 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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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촌 그리고 개발]

해방촌의 매력을 말해달라고 Twitter에서 여쭤봤을 때 "이태원 사람들에게 느껴지는 은근한 자신감, 국제적 네트웍, 도심 근접성, 바로 이웃한 부촌? 언제든 중심지일 수 있는 가능성, 억척스런 사람들. 남산자락의 고급 호텔, 식당 편의시설들과 저렴한 시장골목, 무엇보다 소월길의 아름다움과 풍부한 녹지, 터널만 지나면 명동, 강만 건너면 고속터미널..."이라고 이야기 하셨는데, 그 답변을 보고 개발자의 입장에서 이야기 하는것 같다, 말씀하신 해방촌의 입지적 장점은 해방촌이 보존되든, 개발이 되든 변하기 않는 장점이다. 해방촌의 활기. 에너지, 해방촌 사람들이 뿌리 내리며 살아가는 모습, 이런 보이지 않는 가치는 눈에 안 들어 오시나' 하고 서운한 맘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해방촌은 그대로가 좋아, 자생적으로 변하는 이 모습이 좋아. 개발하게 되면 집주인도 마찬가지고 임대인도 마찬가지고 재정착을 못하게 되지, 여기 있는 사람들이 다 사라지게 돼. 이태원에서 시작되는 국제적인 문화로 거리가 매력적으로 바뀌는 것도 좋고, 재래시장이 있는것도 좋아. 싼 시장, 싼 밥집, 골목길이 좋아. 사람사는 것 같은 느낌, 입지적으로 너무 좋아. 어디서 이런 산과 시내 접근성을 가진 곳을 어디서 찾겠나.

그래서 사람들이 해방촌을 가만두려 하질 않는다.그러나 타당성 측면에서 남산고도 제한이 있어서 재개발해도 용적율 100% 초반으로 깔아야 하는데 밀어서 개발한다 해도 수익이 남지 않아

2030년 해방촌의 모습을 상상한다면?20년 후면 고도제한 법이 완화되려나? 개발압력이 높아지면 녹지축 만들어지고 개발이 될 수도 있겠지만 여기 살아본 사람으로썬 개발이 어려울 듯해.

누구를 위한 개발인가? 누가 밀어서 개발하길 원하나요?여기 살고 계신 집주인들은 개발하길 원하시는 분이 계시겠죠?개발되길 원하지 않는 분들이 훨씬 많을꺼라 생각해. 추리를 해보면 여기서 2세대를 지낸 사람은 여기를 탈출하기를 원하는 사람도 있겠지. 하지만 여긴 노령인구가 많아서, 노인을 포함한 가족들은 움직이지 않아. 20년후에 그 분들은 다 돌아가셨을 텐데요. 세대가 바뀌어도 여전히 노령인구가 많을 꺼야 여기에 정주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여기 부동산이 재산가치로 환원되는 걸 반대할 이유는 없겠지, 하지만 해방촌에 연고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라면 여기가 재산가치로 환원하기에는 접근성, 남산이라는 자연환경과 임대수익이라는 직접 수입이 있는 것을 알테고, 재산가치로 환원해서 더 나은 집을 남길지는 몰라도 이 입지에, 이 자연이 주는 매력, 임대 수익까지, 매력을 다 잃어, 그만한 입지와 조건의 집은 해방촌을 포기하면 서울 시내에서는 또 얻을 수 없지. 눈 깜찍할 사이에 강북, 강남 다 가지, 한강, 남산 사이에 끼어 있지, 그리고 적당히 싸지. 그런거 따지면 녹녹하게 찬성하기는 힘 들것이야. 아마 해방촌 웃동네는 경사가 너무 급해서 최후까지 남아 있을꺼라고 보는데 아랫 동네는 외국인 임대 수요가 계속 늘어나면서 임대하기 좋은 형태로 재건축 수요가 계속 생기면서 개발하고자 하는 요구가 생길지도 모르지. 하지만 해방촌 윗동네는 원주민 비율이 높아서 어려울 것 같아.

[ HBC, 전문가가 보는 변화의 원인 그리고 방향]

최근에 활발하게 변하고 있는 HBC해방촌 아랫동네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면, 이런 자생적인 변화 의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요?

광장히 시내에 가깝지만 일종의 게토 ghetto잖아 그런데서 만들어진 독특한 분위기_해방촌의 골목길과 시장문화를 만들어 낸 사람들-원주민과 그의 후손들, 그리고 도시를 서비스 하는 사람들이 살아 가던 문화였다면, 이랫 동네의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외국인’이야 이태원이라는 특성을 받아서 외국인들이, 임대료 싼 외국인들이 밀려들기 시작했지 이태원에서 확산되는 젋은 외국인, 영어권 원어민 교사들이지, 홍대, 이태원에서 놀고 강남으로 출퇴근하기 쉽고, 자기네들 끼리의 정보 공유도 쉽고, 이들이 단기 체류의, 이왕이면 안전하고 깔끔한 집을 원하니 아랫동네는 자꾸 임대하기 용이한 임대형 다가구 주택으로 신축되는 거고, 그렇게 바꾼 복합적인 분위기, 옛날 동네 매력과 외국인들이 만들어 내는 이종교합적인 문화가 생기면서, 유사 홍대, 다중적 문화의 분위기를 누리고자 하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차차 따라 들어 오게 된거지. 여긴 싸고_싸다는 말은 뭔가를 시도해 볼 수 있는 여건이 되고 자기 비즈니스를 작게, 독특하게 해보고 싶은 사람에게 굉장히 좋지, 싸지, 입지 좋지, 다양한 소비 계층이 있지, 외국인 문화 들어오고 있지, 또 은근히 좋은 게 뭐냐면 하이클라스의 문화가 굉장히 근접해 있다는 것. 한남동 문화도 그렇고, 언덕 하나만 넘어가면 이건희 회장집, 리움있지 하이얏트 호텔있지, 그 주변으로 고급 레스토랑이 밀려 내려 오고, 밑에서 값싼 식당 문화가 만나고 있지. 남산 자체도 소월길 주변으로 고급 한식당, 고급 중국집들이 있지. 이렇게 스타일은 고급취향이면서 임대료가 싼 비즈니스를 하기에 적합한 매력이 있는 위치야

이러한 문화적으로 자생적인 변화가 가능한 해방촌에 대해 기대를 하게 되면서도 기존에 살고 있는 우리 이웃들이 앞으로 계속 여기에 살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든다. 다른 달동네와는 다르게 여기는 자생적으로 바뀌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드는게, 다른 달동네는 구원의 손길이 없잖아 난곡도 그렇게 삼양동도 그렇고 뭘 기대할 수 있겠어, 아파트 새로 짓는거 말고는, 여기는 달라 여긴 남산과 이태원, 부촌과 도심의 틈바구니에 끼어서 자생적으로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고 우리 나라가 외국인 원어민 교사를 계속 쓰는 한 도심권 외국인이 선택할 수 있는 드문 입지여서, 이러한 변화의 모습은 이면 도로까지 계속 확대해 갈 것이라 생각해 하지만 이는 보행의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까지 확대될 텐데, 보행이 어려운 경사가 급한 윗동네는 아마도 끝까지 남아 있을 꺼라고 생각해 .

그러면 다시 한번 여쭤보면 2030년도의 해방촌은? 이 비슷한 모습으로 남아 있는다에 한표!

김태만 (주)해안건축 대표이사 사장 (CDO) / 공학박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건축학과 박사서울시 용산구 도시계획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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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2011년 해방촌과 그 변화'에 대한 관찰을 통해 해방촌은 특별히 뭔가를 제안하지 않아도 스스로 잘 변화하며 살아갈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해방촌을 지금의 이 모습으로, 이렇게 살아가도록 만든 것들은 ①남산(남산의 경사, 남산의 경관, 그리고 남산경관보호를 위한 고도제한, 산지형떄문에 생기는 한정된 마을 입구, 마을 중심을 관통하는 2차선의 좁은 차량 중심도로, 그리고 그 이면의 보행자 도로) ②그로 인한 소소한 불편 (주차장 부족으로 인한 보행 중심의 구조,밀집한 낡은 집으로 인해 밖으로 나온 생활들) 그리고 ③마을을 가꾸고 지켜나가시는 기존의 주민들과 ④새로운 에너지를 만드는 뜨내기들(외국인과 가난하지만 열정많은 젊은이들,

그리고 여기서 새롭게 자기만의 것들을 시도하려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앞으로도 잘 변할거라고 믿지만 굳이 몇가지 제안을 해 본다면 조화롭게 살기위한 1차적인 제안은 인간적인 삶을 위해서 아주 낡은 집(비가 새는 집, 혹은 곰팡이가 창궐하는 집은 고쳐서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은 용도와 needs에 맞게 고쳐 쓰는 것이 필요하다. 이때 차량으로 가득찬 골목길이 아닌 걷기 좋은 길이 되기 위해 땅에 면한 지층의 전면부의 세심한 설계가 필요하디 (골목길 정원을 강화하고, 길변 테라스나 공방의 창이 길을 향한다도록 한다), 주민들이 실질적으로 심각하게 문제라고 생각하는 주차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을 입구의 공용주차장의 효율을 높이는 등의 방안이 반드시 재고되어야 하며, 이를 간과할 때는 점차 늘어나는 외지인의 방문차량으로 인해 지역 주민과의 마찰이 예상된다. 그리고 해방촌을 구성하는 각각의 그룹들은 해방촌 자체에 대한 관심도는 아주 높고 생활방식은 open된 구조라고 생각되나, 기존의 지역주민 커뮤니티, 외국인 커뮤니티, 특별하게 사는 젊은이들의 커뮤니티 등 그들만의 커뮤니티의 색깔과 성격이 너무도 견고하여 다른이와 다른그룹에게 열려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인위적으로 서로 소통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겠지만 서로에 대한 예의와 존중의 자세를 가진다면 금요일 밤 pub에서의 소음때문에 경찰 신고가 들어 간다든지, 외국인들 무단 쓰레기 방치에 대해 불평과 불만에 대한 문제, 해방촌 축제에 끼고 싶지만 기존의 상권 연대에 끼지

못한, 새로운 시도를 하는 컨테츠의 가게 문제는 없어 질 것이다.

나는 해방촌이 홍대처럼, 이태원처럼 변할 것이다 라고 하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상한다. 그곳과는 다른, 해방촌만의 정체성Identity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지만 그 정체성이 마을의 분위기, 특별한 성격의 커뮤니티가 복합되어 나오는 인지하기 어려운 특성이어서 해방촌의 아이덴티티를 강화할 물리적인 장치가 떄로는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예를 들면 해방촌의 산토리니 같이 남산을 따라 올려다 볼때 전체가 동일한 느낌의 칼라가 칠해진다든지, 이 마을 주민의 장기인 가드닝을 입체화 해서 옥상녹화를 지원해서 '녹색을 머리에 이고 있는 마을'이라는 이미지를 준다든지, 이는 남산에서 해방촌을, 혹은 서울 상공에서 해방촌을 봤을때 서울시가 그렇게 만들고 싶어하는 또다른 의미의 녹지축을 만들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접근하기 어려운 산등성이에 세우고자 했던 녹지축보다는 사람들이 접근하기 좋은, 좋은 가로 환경과 입체 연계 방안 마련을 통해 접근가능하고 새로운 녹지축이 될수 있을꺼라고

생각한다. 녹지축 조성에 쓰고자 했던 비용을 해방촌 옥상녹화에 썼으면 좋겠다

해방촌, 다른 동네를 위한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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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집에 색깔을 칠한 해방촌 집

지면에 주차장을 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용도에 맞게 고쳐쓴 부암동집

옥상녹화해서 옆 건물과 연결한 시애틀에 nbbj사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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