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명관료 開明官僚 로서의근대교원s-space.snu.ac.kr/bitstream/10371/88959/1/04-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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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명관료(開明官僚)로서의 근대교원*

    임후남(林後男) ** 1)

    대한제국기 소학교를 근간으로 하는 국가교육체제의 성립은 그 담당자로서 새로운 교원의 양성을 필요

    로 하였고, 이러한 필요에 따라 이제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던 별도의 교원양성교육기관이 설립되었다. 다

    수의 교원들이 양성교육기관에서 단기의 양성교육을 받은 후 교원으로 임용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들

    과 함께 지방의 유생들이 지역사회의 공천을 거쳐 소학교의 교원이 될 수 있었다. 이들 두 부류의 교원들

    은 교직을 관직 진출의 한 방편으로 삼았고, 실제 하급 관료에 불과하였으나 사회경제적 변화를 인식하고

    그것을 주도할 수 있는 지도적 인물들이었다. 그들의 사회경제적 배경과 교육경력이 이를 잘 말해주고 있

    다. 그들은 매우 다양한 신분층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유학적 소양과 함께 근대적 신지식을 겸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당시 교원들은 양성과정과 임용 및 전출과정 등이 국가에 의해 관리되었고, 새로이

    도입된 서구의 지식을 긍정적으로 수용한 집단이었다는 점에서 이전의 전통교원들과는 다른 집단이었다.

    주요어 : 소학교, 한성사범학교, 근대교원, 국가교육체제, 개명관료, 유학(儒學)

    Ⅰ. 서 론

    한국교육사에 있어서 대한제국기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새로운 교육체제가 등장하

    * 오늘날 '가르치는자 일반 을 일컫는 가장 일반적인 용어는 교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논문에서는 '교

    원'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자 한다. 당시 교사라는 용어보다는 교원이라는 용어가 보다 일반적으로 사용되

    었고, 특히 초등교육기관인 소학교에서 가르치는 자는 교원으로 불리웠기 때문이다. 당시 교원은 가르치는

    자 일반의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나 대체로 초등교사를 지칭하는 용어였다. 초기에는 교관과 교원의 용어가

    혼용되었으나 점차 각종 외국어학교와 사범학교 등의 전문학교의 교사는 교관 으로, 소학교 교사는 교원

    으로 구분되었던 것이다.

    ** 서울대학교 교육연구소 객원연구원

    아시아교육연구 4권 1호

    Asia n Journa l of Ed uc a t io n

    2003, Vol. 4, No . 1, pp . 105-132.

    논문 요약

  • 106 아시아교육연구 4권 1호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여 한국교육의 기틀을 형성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개항 이후 조선 사회는 국내외적 위기로 인

    하여 극심한 혼란 속에서 많은 변화를 겪게 되었다. 일본은 물론 미국을 비롯한 서양 열강과의

    수교가 체결되어 점차 정치경제적, 문화적 교류가 늘어나면서 정치적, 경제적 위기 또한 고조

    되었고, 국내적으로는 조선 후기이래 계속된 민란이 동학농민전쟁으로 폭발하였다. 이러한 상

    황 속에서 기존의 교육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교육에 대한 새로운 요구들이 생겨났고, 그것을

    충족시키기 위해 새로운 교육기관들이 설립, 운영되었다. 1880년대 동문학, 육영공원, 원산학사

    등과 같은 신식학교의 설립이나 1894년 갑오교육개혁의 단행은 조선 사회가 직면한 사회적 변

    화 혹은 위기에 대한 교육적 대응이었다. 당시 사회가 요청하는 새로운 지식을 가르칠 수 있는

    새로운 교육은, 정부를 포함한 대다수 조선인들의 관심사였다.

    조선 정부의 교육개혁은 교육전반을 포괄하고 있었지만, 특히 소학교의 설립을 중심으로 하

    는 초등교육의 개혁에 가장 중점을 두었다. 갑오년 이후 국가관리 하의 소학교가 설립, 운영된

    것은 전통적 초등교육체제의 커다란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소학교는 전통적 교육체제에

    서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교육기관이었다. 소학교의 설립은 그 동안 민간에 맡겨두었던

    초등교육을 국가교육체제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하였다(류방란, 1995 : 72). 대한제국기 교육개

    혁에 있어서 또 하나의 커다란 변화는 교원 양성기관의 설립이었다. 1894년 가을 조선 정부는

    서둘러 사범학교를 설립하였고, 이듬해인 1895년에는 한성사범학교를 정식으로 출범시켰던 것

    이다. 1894년 이전에 교원을 양성하는 교육기관은 존재하지 않았다. 전통적으로 교원은 별도의

    양성기관에서 양성되는 존재가 아니었다. 상당한 수준에 도달한 학자가 곧 교원이 되었다. 교

    원을 양성하기 위한 별도의 교육기관이 설립되었다는 것은 교원에 대한 관점의 변화를 함의하

    는 것이며, 또 새로운 학교교육의 주체로서 교원의 출현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한성사범학교의

    설립은 한국 교원사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기도 하였다.

    이 연구에서는 한국 근대 교원사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규명하는 데 목적이 있다. 개항

    이후 급변한 사회적 상황 하에서 교육에 대한 새로운 요구는 무엇이었고, 그것은 어떤 형식과

    내용의 교육체제로 나타났는지, 그러한 교육체제 하에서 교원의 자격과 지위는 어떻게 규정되

    었는지, 그리고 실제 어떠한 인물들이 교원으로 임용되었는지 등을 고찰하고자 한다. 이것은

    한국 근대교원이 왜, 어떻게 등장하였는가를 설명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 연구는 한국 교육사

    에서 전통교육에서 근대교육에로의 이행과정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보다 역동적으로 규명

    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 연구에서 주로 사용된 자료는 교육법제, 정책 등의 내용을 담고 있는 당시의 정부 문서

    들과 한성사범학교 학적부 자료, 관리들의 이력서 자료, 당시 발간된 신문이나 잡지, 개인의

    자서전 등이다. 특히 한성사범학교 학적부 자료는 처음으로 발굴, 사용되었다. 이 자료는 이력

    서 자료와 더불어 교원들의 사회경제적 배경을 분석하는 데에 매우 유용한 자료로 생각된다.

  • 개명관료(開明官僚 )로서의 근대교원 107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서울 소재 경기고등학교에는 1896년부터 1913년까지 총 1,297부에 달하는 한성사범학교 학적

    부가 소장되어 있다. 이 학적부 자료는 크게 두 가지 종류로 구분될 수 있다. 1906년 관립한성

    사범학교로의 개편을 기준으로 1896년에서 1905년까지의 것과 1906년에서 1913년까지의 것으

    로 구분될 수 있다. 전자는 학생의 성명, 부친, 조부, 외조부, 처부(妻父), 보증인 등의 성명과

    직업, 관향(貫鄕), 주소, 입록일(入錄日) 등을 주로 기록하고 있다. 학업성적이나 학생의 소속

    등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없다. 그리고 입학일이나 졸업일에 대한 기록도 없고, 그것을 기준으

    로 나뉘어져 있지도 않으며, 1권으로 되어 있다. 후자의 자료는 연도별, 과별(科別)로 나뉘어져

    있고, 이전 시기의 학적부 자료에는 없는 종전교육과 보증인의 직업 및 주소, 학업성적에 관한

    자세한 기록이 있다. 그 기록방식 또한 바뀌어 오늘날의 학적부 형식과 유사한 방식으로 되어

    있다. 이 논문에서는 주로 1896년에서 1905년까지의 자료를 사용하였다.

    Ⅱ. 새로운 교원양성의 요구

    1. 소학교 교육체제의 성립

    1894년 6월 25일 교육행정을 전담하는 정부기구로서 학무아문(學務衙門)이 설치되었고, 그

    해 가을 학무아문은 고시(告示)1)를 발표하여 소학교와 사범학교의 설립 의지를 천명하고 곧바

    로 설립에 착수하여 사범학교와 그 부속소학교가 설립되었다( 통서일기(統署日記) , 1894. 9.

    14, 18.). 이로써 한국 교육사상 최초의 국가초등교육기관이 등장한 것이다. 소학교의 설립이

    본격화된 것은 1895년 7월 19일 소학교령 이 마련된 이후였다. 이 법령에 근거하여 한성에 관

    립소학교가 설립되는 것을 시작으로 각 지방에 다수의 공립 및 사립소학교가 설립되었다. 재

    정적 어려움 속에서도 소학교 설립은 꾸준히 계속되어 1905년 무렵 한성에 관립소학교가 10개

    설립되어 있었고, 전국에 걸쳐 약 90개교의 공립소학교가 설립되어 있었다2). 전국적으로 소학

    교가 설립되고, 소학교 입학에 대한 신분적 제한이나 규정을 두지 않음으로써 소학교 교육의

    기회는 지역적으로 또 계층적으로 매우 확대되는 결과를 보였다(류방란, 1995: 80-88).

    이 시기 설립된 소학교는 법제상 학교 조직이나 교육내용의 면에서 기존의 서당과는 일정한

    차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