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알파고와 이세돌, 세기의 바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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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l 2016년 초점 인공지능 알파고와 이세돌, 세기의 바둑 대국 ‘바둑이란 영역까지 정복’ AI 스타의 탄생 구글이 개발한 인공지능(AI) ‘알파고’가 2016년 3월 세계 최 정상급 바둑기사인 이세돌 9단을 꺾으며 기계의 한계를 한 단 계 더 뛰어넘었다. 대국은 국내 TV와 인터넷으로 생중계되며 ‘월드컵급’ 열기를 불러왔다. 바둑은 가능한 경우의 수가 우주 전체의 원자 수보다 많아, 애초 AI가 사람보다 절대 잘 둘 수 없다고 여겨진 영역이었다. 그러나 구글의 AI 전문 자회사 ‘딥마인드’는 예술로 불리는 이 바둑의 복잡성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알파고는 최고라는 뜻 의 ‘알파’와 서양에서 흔히 바둑을 지칭하는 일본어 단어인 ‘고’ 의 합성어다. 사람이 뒀던 기보를 기초로 끊임없이 홀로 바둑을 두며 실 력을 ‘압축성장’시킨 알파고는 2015년 10월 유럽 바둑 챔피언 출신인 중국계 프로기사 판후이 2단을 5대0으로 완패시키고 이세돌 9단에게 ‘세기의 대국’을 제안했다. 애초 알파고의 우세를 점친 이는 적었다. 예측불허의 기발 함이 특기인 이세돌 9단을 ‘뻣뻣한’ 기계가 못 버틸 것이라는 관측이었다. 이세돌 9단도 ‘전체 5국 중 한판 질까 말까일 것’ 이라고 장담했다. 결과는 바둑판을 뒤엎는 수준의 충격이었다. 알파고는 1∼3 국에서 이세돌 9단에게 내리 승리를 거뒀다. 바둑계와 세계는 충격에 빠졌다. 인간이 인공지능 앞에 무기력하게 주저앉고 있 다는 비관론과 공포심이 퍼져나갔다. 알파고는 날카로운 수읽 기에 기존 인간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바둑을 선보였다. 심 리적으로 흔들리지 않고 시간을 지체하지 않는 ‘기계다움’도 강력한 무기가 됐다. 대국 양상은 ‘알파고의 도전’이 아닌 ‘이세돌의 도전’으로 급 전했다. 이세돌 9단의 진가는 여기에서 드러났다. 포기하지 않고 조 용히 알파고의 약점을 연구했다. 그는 알파고가 중앙과 복잡한 상황을 싫어한다는 감을 잡았다. 이세돌은 제4국에서 경이로운 1승을 따냈다. 복잡한 판을 만들어나간 뒤 중앙의 허점을 노린 ‘신의 한 수’(백78수)를 던 져 알파고의 허점을 찔렀다. ‘버그’라도 난 듯 알파고는 무력하 게 무너졌다. 세계는 환호했다. 1천202개 중앙처리장치(CPU) 분산시스템을 활용한 슈퍼컴퓨터도 예측하지 못한 수를 놓은 것이다. 결과는 4승 1패를 거둔 알파고의 승리로 끝났지만, 대국은 이세돌 9단의 1승 덕에 인간의 값어치에 대한 희망도 남겨준 명대국으로 남게 됐다. 동시에 대국은 우리 사회에 AI의 실체와 의미를 일깨워준 ‘강연장’으로서 의미가 컸다. 사람보다 더 똑똑한 기계에 대한 관심이 치솟으며 AI는 초등학생부터 과학 석학까지 다들 얘기 하고 고민하는 화두가 됐다. 이세돌 9단은 “이번 대국은 이세 돌 개인의 패배이지 인간의 패배는 아니다”라고 했다. 알파고 대국 당시 국내 신문·방송은 연일 AI의 현황·전망 기사와 관련 전문가 대담으로 채워졌다. AI가 신문 과학면의 비주류 소재로 언급되던 예전과 비교하면 ‘상전벽해’였다. 전문가들은 알파고 이변의 배경으로 자율학습 기술의 발전 을 꼽는다. 사람이 입력한 지시 사항에 따라 단순 정보 처리만 하던 AI가 2000년대 후반 ‘딥러닝’(deep-learning : 심층학습) 기술이 개발되면서 급속 진화의 기회를 잡은 것이다. ▲ 이세돌 9단이 3월 13일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5번기 제4국에서 180수 만에 알파고에 불계승 한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활짝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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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l 2016년 초점

인공지능 알파고와 이세돌,

세기의 바둑 대국

■ ‘바둑이란 영역까지 정복’ AI 스타의 탄생

구글이 개발한 인공지능(AI) ‘알파고’가 2016년 3월 세계 최

정상급 바둑기사인 이세돌 9단을 꺾으며 기계의 한계를 한 단

계 더 뛰어넘었다. 대국은 국내 TV와 인터넷으로 생중계되며

‘월드컵급’ 열기를 불러왔다.

바둑은 가능한 경우의 수가 우주 전체의 원자 수보다 많아,

애초 AI가 사람보다 절대 잘 둘 수 없다고 여겨진 영역이었다.

그러나 구글의 AI 전문 자회사 ‘딥마인드’는 예술로 불리는

이 바둑의 복잡성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알파고는 최고라는 뜻

의 ‘알파’와 서양에서 흔히 바둑을 지칭하는 일본어 단어인 ‘고’

의 합성어다.

사람이 뒀던 기보를 기초로 끊임없이 홀로 바둑을 두며 실

력을 ‘압축성장’시킨 알파고는 2015년 10월 유럽 바둑 챔피언

출신인 중국계 프로기사 판후이 2단을 5대0으로 완패시키고

이세돌 9단에게 ‘세기의 대국’을 제안했다.

애초 알파고의 우세를 점친 이는 적었다. 예측불허의 기발

함이 특기인 이세돌 9단을 ‘뻣뻣한’ 기계가 못 버틸 것이라는

관측이었다. 이세돌 9단도 ‘전체 5국 중 한판 질까 말까일 것’

이라고 장담했다.

결과는 바둑판을 뒤엎는 수준의 충격이었다. 알파고는 1∼3

국에서 이세돌 9단에게 내리 승리를 거뒀다. 바둑계와 세계는

충격에 빠졌다. 인간이 인공지능 앞에 무기력하게 주저앉고 있

다는 비관론과 공포심이 퍼져나갔다. 알파고는 날카로운 수읽

기에 기존 인간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바둑을 선보였다. 심

리적으로 흔들리지 않고 시간을 지체하지 않는 ‘기계다움’도

강력한 무기가 됐다.

대국 양상은 ‘알파고의 도전’이 아닌 ‘이세돌의 도전’으로 급

전했다.

이세돌 9단의 진가는 여기에서 드러났다. 포기하지 않고 조

용히 알파고의 약점을 연구했다. 그는 알파고가 중앙과 복잡한

상황을 싫어한다는 감을 잡았다.

이세돌은 제4국에서 경이로운 1승을 따냈다. 복잡한 판을

만들어나간 뒤 중앙의 허점을 노린 ‘신의 한 수’(백78수)를 던

져 알파고의 허점을 찔렀다. ‘버그’라도 난 듯 알파고는 무력하

게 무너졌다. 세계는 환호했다. 1천202개 중앙처리장치(CPU)

분산시스템을 활용한 슈퍼컴퓨터도 예측하지 못한 수를 놓은

것이다.

결과는 4승 1패를 거둔 알파고의 승리로 끝났지만, 대국은

이세돌 9단의 1승 덕에 인간의 값어치에 대한 희망도 남겨준

명대국으로 남게 됐다.

동시에 대국은 우리 사회에 AI의 실체와 의미를 일깨워준

‘강연장’으로서 의미가 컸다. 사람보다 더 똑똑한 기계에 대한

관심이 치솟으며 AI는 초등학생부터 과학 석학까지 다들 얘기

하고 고민하는 화두가 됐다. 이세돌 9단은 “이번 대국은 이세

돌 개인의 패배이지 인간의 패배는 아니다”라고 했다.

알파고 대국 당시 국내 신문·방송은 연일 AI의 현황·전망

기사와 관련 전문가 대담으로 채워졌다. AI가 신문 과학면의

비주류 소재로 언급되던 예전과 비교하면 ‘상전벽해’였다.

전문가들은 알파고 이변의 배경으로 자율학습 기술의 발전

을 꼽는다. 사람이 입력한 지시 사항에 따라 단순 정보 처리만

하던 AI가 2000년대 후반 ‘딥러닝’(deep-learning : 심층학습)

기술이 개발되면서 급속 진화의 기회를 잡은 것이다.

▲ 이세돌 9단이 3월 13일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5번기 제4국에서 180수 만에 알파고에 불계승한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활짝 웃고 있다.

Page 2: 인공지능 알파고와 이세돌, 세기의 바둑 대국cdnvod.yonhapnews.co.kr/yonhapnewsvod/public/yearbook/...인공지능 알파고와 이세돌, 세기의 바둑 대국 ‘바둑이란

2016년 초점 l 73

알파고 등 딥러닝 기반 AI는 자율적으로 자료를 분석해 패턴

을 알아내고 체계적인 지식을 쌓는다. 사람보다 훨씬 더 빨리,

그리고 많이 배울 수 있고 자연스러운 직관과 창의력도 구현

할 수 있다.

■ “더 놀라운 도약 계속된다”

2011년 설립된 딥마인드는 애초 영국 런던에 틀어박힌 괴짜

과학자들의 연구실 정도로 알려진 무명 스타트업이었지만, AI

에 대한 남다른 열정과 역량을 눈치 챈 구글 창업자 레리 페이

지의 제안으로 2014년 구글 자회사가 됐다.

1976년생인 딥마인드 창업자 데미스 허사비스는 배경부터

특이하다. 어릴 적에는 체스 신동이었고 컴퓨터과학으로 학사

를 마치고 게임 스튜디오를 차려 유명 게임을 만든 베테랑 개

발자였다. 그가 지향한 목표는 사람처럼 생각하고 자발적으로

배우는 ‘범용 인공지능’(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AGI)의 개

발로, 2010년대 들어서도 기술적으로 구현할 수 없다는 비관론

이 많았던 분야였다.

알파고로 세계적 스타 기업이 된 딥마인드는 범용 AI 개발을

선도하고 있다. AI가 실명을 일으키는 중증 안과 질환을 조기

진단하고, 사람의 입술을 보고 발언 내용을 추정하는 ‘독순술’

을 익히는 등 도전의 범위가 사실상 무한대다.

이세돌 9단과의 대국 때보다 훨씬 더 강력해진 알파고의 개

선 버전을 선보이고, 실시간으로 복잡한 판단을 해야 하는 온

라인 전략 게임 ‘스타크래프트’용 AI도 선보일 계획이다.

2016년은 알파고 사례 외에도 여러 AI 기술의 도입이 본격화

한 ‘AI 원년’이었다.

특히 세계 스마트폰 시장의 ‘빅3’인 삼성전자·애플·구글

은 AI 비서 분야를 선점해 프리미엄폰(고가폰) 브랜드의 위상

을 차지하려는 본격 경쟁에 돌입했다. 삼성은 2017년 출시하는

간판 모델인 ‘갤럭시 S8’에 첨단 AI 비서를 넣기로 하고 2016년

10월 미국 실리콘밸리의 유명 AI 개발사인 ‘비브’를 깜짝 인수

했다.

금융권에서는 자산투자·관리를 효율적으로 해주는 AI인

‘로보어드바이저’가 자리를 잡고 있다. 국내에서는 쿼터백투

자자문·디셈버앤컴퍼니 등 전문 업체들이 로보어드바이저를

이용한 ‘로봇 펀드’들을 내놓았다.

자동차 업계는 AI 기반의 자율주행차를 미래 먹거리로 낙점

했다. AI가 도로 교통 상황과 지형지물 정보를 분석해 안전 운

행을 돕고, 사용자가 필요할 때는 스스로 운전을 해주는 차량

이다. 현대차·메르세데스-벤츠·GM·테슬라 등 쟁쟁한 업

체들이 연구개발(R&D)에 공격적 투자를 하고 있다.

AI를 이용한 자동 통번역도 빠르게 발전했다. 맥락까

지 살려줘 가독성이 뛰어나고 자율학습으로 실력이 꾸준

히 좋아지는 AI 통번역의 장점 때문에 업체들의 R&D 경쟁

이 치열하다. 2016년 9월 ‘신경망 기계번역’(Neural Machine

Translation·NMT)이란 AI 신기술을 도입한 구글 번역은 한국

어 시(詩)까지 매끄럽게 영어로 옮기는 실력을 과시했다. 조만

간 외국어 학습이 필요 없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관측이 나올

정도다.

AI 의료도 현실이 됐다. 가천대 길병원은 12월 5일 한국 최초

로 미국 IBM사의 암 진단 AI ‘왓슨’(Watson for Oncology)을 써

서 암 환자를 진료했다. 환자의 나이·몸무게·종전 치료법·

조직검사 결과 등을 입력하면 왓슨이 가장 적합한 암 치료법

을 제안하는 것이 골자다.

사상 최악의 AI 확산…

정부 부실대응 논란

■ 빠르고 독한 AI로 닭 농가 초토화…피해규모 1조원

2016년 겨울에는 사상 최악의 피해를 낸 고병원성 조류인플

루엔자(AI)가 축산업계를 강타했다.

11월 16일 전남 해남 농가에서 처음 발생한 AI는 ‘최순실 사

태’로 인한 국정공백 사태와 겹치면서 초동대응에 실패, 3천

300만 마리(2017. 2월 중순 기준)가 넘는 가금류가 살처분되는

피해를 초래했다. 이는 국내 전체 사육 가금류 1억6천525만 마

리의 20%에 달하는 규모다.

▲ 닭 200여 마리가 집단폐사해 AI 의심축 신고가 접수된 경기도 화성시의 한 종계 농장에서 11월 30일 오후 방역 관계자들이 닭을 살처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