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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밀 확률주의: 현황과 전망 *† 본 논문의 목표는 비정밀 확률주의라는 확률주의의 새로운 흐름의 주요 주장들을 분 석하고 향후 연구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1장에서는 비정밀 확률주의 출현 배경과 형식적인 측면을 주로 다룬다. 이를 바탕으로, 2장과 3장에서는 비정밀 확률주의의 주 요 구성요소들에 대해서 최근 제기된 문제들을 다룬다. 특히 2장은 비정밀 확률주의 의 믿음 갱신 문제를, 3장은 비정밀 확률주의와 의사결정 이론 사이의 관계를 다룬다. 4장과 5장은 비정밀 확률주의가 여러 인식론적 문제들을 어떻게 보완하는지, 혹은 그 런 문제들과 어떻게 긴장하는지를 설명한다. 4장은 비정밀 확률주의와 전통 인식론 사이의 관계를, 5장은 비정밀 확률주의와 정확성 기반 확률주의 사이의 관계를 다룬다. 주 제 인식론, 과학철학, 베이즈주의, 비정밀 확률주의 주요어 비정밀 확률주의, 조건화, 희석, 의사결정, E-허용가능성, 독단주의, 역동적 케 인즈주의, 정확성, 허용주의 * : 2018. 03. 27 : 2018. 05. 28 : 2018. 05. 29 . . 2015 (NRF-2015S1A5A2A03048814). ** 1 *** 39 (2018) pp.9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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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밀 확률주의:

현황과 전망*†

박 일 호**

정 재 민***

김 남 중***

31)

본 논문의 목표는 비정밀 확률주의라는 확률주의의 새로운 흐름의 주요 주장들을 분

석하고 향후 연구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1장에서는 비정밀 확률주의 출현 배경과

형식적인 측면을 주로 다룬다. 이를 바탕으로, 2장과 3장에서는 비정밀 확률주의의 주

요 구성요소들에 대해서 최근 제기된 문제들을 다룬다. 특히 2장은 비정밀 확률주의

의 믿음 갱신 문제를, 3장은 비정밀 확률주의와 의사결정 이론 사이의 관계를 다룬다.

4장과 5장은 비정밀 확률주의가 여러 인식론적 문제들을 어떻게 보완하는지, 혹은 그

런 문제들과 어떻게 긴장하는지를 설명한다. 4장은 비정밀 확률주의와 전통 인식론

사이의 관계를, 5장은 비정밀 확률주의와 정확성 기반 확률주의 사이의 관계를 다룬다.

주 제 인식론, 과학철학, 베이즈주의, 비정밀 확률주의

주요어 비정밀 확률주의, 조건화, 희석, 의사결정, E-허용가능성, 독단주의, 역동적 케

인즈주의, 정확성, 허용주의

* 투고일: 2018. 03. 27 심사 및 수정완료일: 2018. 05. 28 게재확정일: 2018. 05. 29† 본 논문을 읽고 여러 제안을 해 주신 심사위원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심사위원의 여러 지적과 격려가 본 논문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이 논문또는 저서는 2015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NRF-2015S1A5A2A03048814).

** 제1저자*** 교신저자

철학적 분석 39 (2018) pp.9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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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비정밀 확률주의: 표상, 갱신, 의사결정

우리는 세계에 대한 여러 믿음들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겪은 경험을 바

탕으로 믿음을 형성하고, 경험이 추가됨에 따라서 기존 믿음을 새로운 믿음

으로 갱신 혹은 대체한다. 훌륭한 믿음이라면, 획득한 증거, 혹은 경험 자료

를 충분히 반영해야 할 것이며, 획득한 증거 이상의 것을 임의로 추가하여

믿음을 형성해선 안 될 것이다. 이런 점들은 진리를 추구하고 실수를 최소

화하려는 인식론의 기본 목표를 성취하는 데 있어 필수적이다. 또한 훌륭한

믿음이라면 세계 속에서 우리가 직면한 여러 선택에 적절한 안내자의 역할

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믿음에 따라 행동했지만 언제나 좋지 않은 결과

에 직면하게 된다면, 그 믿음은 훌륭하다고 할 수 없다.

이러한 믿음의 역할과 지위를 생각해 볼 때, 믿음에 대한 탐구는 인식론

은 물론 철학 전체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럼 믿음에

대한 철학적 탐구는 어떤 문제를 다루어야 하는가? 여러 문제들을 생각해볼

수 있지만, 본 논문에서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 증거가 주어졌을 때 우리의 믿음 상태는 어떻게 표상되어야 하는가?

∙ 새로운 증거가 주어졌을 때 믿음 상태는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가?

∙ 믿음 상태가 주어졌을 때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위 질문에 대한 답들은 주어진 명제에 대해 우리는 어떤 종류의 믿음 태도

를 취할 수 있는가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 가령, 어떤 이는 우리가 한 명제

에 대해서 취할 수 있는 태도는 확신, 불신, 보류(suspension) 세 가지 밖에

없다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또 다른 이는 우리의 믿음 태도는 ‘...를∼보다

더 강하게 믿음’과 같은 관계를 통해서 나타낼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할 것

이다. 더 나아가, 어떤 이론가들은 우리의 믿음 태도는 수를 이용해서 정량화

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런 이론가들에 따르면 주어진 명제에 대한

믿음 태도는 그 명제에 할당된 특정한 하나의 수에 의해서 나타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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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밀 확률주의1) 93

방금 언급된 믿음 태도에 대한 여러 입장들 중에서 우리가 본 논문에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세 번째 입장이다. 이 입장에 따르면, 믿음은 정도

의 문제이며 그 믿음의 정도는 하나의 수로 나타낼 수 있다. 이런 ‘특정 명

제에 대한 믿음의 정도를 하나의 수로 나타낼 수 있다’는 주장은 ‘각 명제에

하나의 수를 할당하는, 명제들의 집합으로부터 실수로의 함수가 있다’고 다

시 표현할 수 있다. 그럼, 이제 우리는 위에서 언급된 함수가 무엇인지, 혹은

어떤 특징을 갖추고 있는지 결정해야 한다.

위와 같은 특징을 가진 함수로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것은 이른바 ‘확률

함수(probability function)’라고 불리는 것이다. 이 함수는 명제들의 집합으

로부터 0부터 1 사이의 수로의 함수이며, 표준적인 확률 공리를 만족한다.

이런 확률 함수가 우리의 믿음의 정도를 표상한다고 주장하는 철학적 입장

은 ‘확률주의(probabilism)’, 혹은 ‘베이즈주의(Bayesianism)’라고 불린다.

물론, 확률 함수가 아닌 다른 함수들이 우리의 믿음의 정도를 나타낸다는

입장들도 있다. 그러한 입장들은 확률 공리 중 소위 ‘합 공리(Additivity)’라

불리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1) 이런 입장은 확률 공리에서 이탈했다는

점 때문에, 확률주의, 혹은 베이즈주의라고 불릴 수 없다.

확률주의를 포함해 각 입장들의 특징을 파악하고 서로 비교 평가하는 것

은 분명 의미 있는 작업일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런 다양한 입장들의 한가지 공통점에 주목하고자 한다. 그들은 모두 한 명제에 하나의 수를 할당한다. 물론 각 입장은 명제에 수를 할당하는 방법에 대해서 상이한 의견을가진다. 하지만 그들 모두 각 명제에 하나의 수가 할당되지, 수가 아닌 것들

1) 거칠게 설명하자면, 합 공리의 대안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Halpern 2003): ∙ Dampster-Shafer belief function: A∨B에 할당된 수는 A에 할당된 수와 B에 할

당된 수의 합에 A&B에 할당된 수를 뺀 것보다 크거나 같다. ∙ Possibility measure: A∨B에 할당된 수는 A에 할당된 수와 B에 할당된 수 중 최

댓값과 같다. ∙ Ranking function: A∨B에 할당된 수는 A에 할당된 수와 B에 할당된 수 중 최솟

값과 같다. ∙ Plausibility measure: A가 B를 논리적으로 함축한다면 A에 할당된 수는 B에 할당

된 수보다 작거나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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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할당되지는 않는다. 정말 주어진 명제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하나의 수로 나타낼 수 있을까?

여러 함수들을 논외로 치고, 확률 함수만을 생각해보자. 주어진 명제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하나의 확률 값으로 나타낼 수 있을까? 예를 들어, 소위 ‘엘

스버그 문제 (Ellsberg Problem)’라고 불리는 다음 사례를 생각해보자

(Halpern 2003 p, 264, p.339, p.659; Binmore et al. 2012; Camerer 1992):

엘스버그 문제: 90개의 구슬이 잘 섞여 담겨 있는 항아리가 하나 있다.

이 항아리의 구슬 중 붉은 구슬은 30개이다. 그리고 나머지 60개는 검은

구슬이거나 노란 구슬이다. 하지만 검은 구슬과 노란 구슬의 정확한 수에

대해서는 어떤 정보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다음 내기들이 제안되었다.

(R과 B 각각은 ‘항아리에서 뽑힌 구슬은 붉은 색이다’, ‘항아리에서 뽑힌

구슬은 검은 색이다’는 것을 나타낸다.)

E1: R이면 만원을 얻고, 그렇지 않으면 아무 것도 얻지 않는다.

E2: B이면 만원을 얻고, 그렇지 않으면 아무 것도 얻지 않는다.

당신은 이 내기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이

런 선택 상황을 ‘선택1’이라고 부르자. 한편, 당신에게 다음 내기들도 제

시되었다.

E3:∼B이면 만원을 얻고, 그렇지 않으면 아무 것도 얻지 않는다.

E4:∼R이면 만원을 얻고, 그렇지 않으면 아무 것도 얻지 않는다.

이번에도 당신은 E3와 E4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무엇을 선택하겠는

가? 이 선택 상황을 ‘선택2’라고 하자.

일반적인 확률 추론 방법을 따랐을 때, R의 확률은 1/3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확률주의에 따르면, R에 대한 믿음의 정도 역시 1/3이라고

해야 한다. 그럼, B에 대한 믿음의 정도는 얼마인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B의 확률 값은 구간 [0,2/3]에 있다는 것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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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CISE. B에 대한 믿음의 정도는 구간 [0,2/3]에 있는 실수이다.

하지만 위 선택 상황과 관련해 PRECISE은 문제를 야기한다. 즉 이를 받

아들이게 되면, 표준적인 의사결정 이론에 의해서 우리의 선호를 설명할 수

없게 된다. 예를 들어, 우리는 불분명한 확률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것보다는

분명한 확률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것을 더 선호한다고 생각해보자. 그럼 우

리는 E1을 E2보다 선호하고, E4를 E3보다 선호하게 된다. 이런 선호는 표

준적인 의사 결정 이론에 의해서 설명될 수 있는가? 표준적인 의사결정이론

에 따르면, 당신이 어떤 두 선택지 중 한 선택지를 더 선호한다면, 선호된

선택지의 기댓값이 그렇지 않은 선택지보다 더 커야 한다. 따라서, 당신이

위와 같은 선호를 가지고 있다면, E1의 기댓값은 E2의 기댓값보다 커야 하

며, E4의 기댓값은 E3의 기댓값보다 더 커야 한다.

하지만 PRECISE를 받아들이는 경우, 기댓값 사이에 이런 관계가 성립하

지 않는다. 일단 PRECISE가 참이라고 해보자. 그럼, B에 대한 믿음의 정도

는 [0,2/3]에 있는 어떤 실수가 된다. 그 실수를 b라고 해보자. 이제, 각 내기

의 기댓값은 다음과 같이 계산된다.

E1의 기댓값: 1/3만원; E2의 기댓값: b만원;

E3의 기댓값: (1-b)만원; E4의 기댓값: 2/3만원.

하지만, 각 기댓값을 이렇게 계산했을 때, E1의 기댓값이 E2의 기댓값보

다 큼과 동시에, E4의 기댓값이 E3의 기댓값보다 더 클 수 없다.

그렇다면, 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여러 방법

이 있겠지만, 엘스버그 문제에 직면한 몇몇 이론가들은 PRECISE를 부정하

는 방식으로 해당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PRECISE는 당신의 믿음의 정

도가 무엇인지는 정확하게 모르지만, 그 값은 [0,2/3] 사이에 있는 하나의

실수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 실수의 값이 무엇이든 (앞에서 언급한 것

과 같은 선호를 가지고 있으면) 언제나 모순이 발생한다. 따라서 PREC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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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부정한다면, 관련 모순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2)

믿음의 정도를 하나의 수로 표상하는 것에는 또 다른 문제가 있다. 특정

명제의 진위에 대한 아무런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을 때 우리는 그 명제를

어느 정도 믿어야 하는가? 가령, 여기 동전이 하나 있다고 해보자. 우리는

이 동전의 물리적 특징, 지금껏 동전을 던져 본 결과 등등에 대해서 아무런

정보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럼 이 동전을 던졌을 때 앞면이 나온다는 것에

대한 우리의 믿음의 정도에 어떤 수를 할당해야 하는가? 이런 물음에 대해

서 한 가지 널리 알려진 해결책은 무차별 원리(indifference principle)를 이

용하는 것이다. 이 원리에 따르면, 명제 A와 B 중 어느 하나를 더 믿게 만드

는 어떤 정보도 없을 때 각각에 대한 믿음의 정도는 서로 같아야 한다. 그럼

위와 같은 상황에서 앞면이 나온다는 것에 대한 당신의 믿음의 정도에는

1/2의 값이 할당되어야 한다. 이런 무차별 원리는 주어진 명제에 대한 아무

런 정보가 없을 때, 그 명제에 대한 믿음의 정도에 어떻게 하나의 확률 값을

할당해야 하는지 말해주는 원리라고 할 수 있다.

이 무차별 원리에 따라 결정된 우리의 믿음은 획득한 정보를 제대로 반영

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동전의 물리적 특징에 대한 정보가

획득되었다고 가정해보자. 이 정보에 의해 이 동전은 어느 쪽으로도 치우지

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런 경우 앞면이 나온다는 것에 대한 당신

의 믿음의 정도는 얼마가 되어야 하는가? 일반적인 확률 추론 방식을 채택

하면, 이는 당연히 1/2이 되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 획득된 정보는 분명 무

척 유의미한 정보이다. 하지만 정보를 획득하기 전과 정보를 획득한 이후에

우리의 믿음의 정도는 변함이 없다. 무차별 원리를 받아들여 하나의 수로

명제에 대한 믿음을 나타내는 경우, 정보가 부재한 상황과 적절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상황을 구분할 수 없다. 결국, 이런 문제는 우리의 믿음의 정도

2) 물론, 이런 식으로 믿음의 정도를 표상한다고 해서 논의가 마무리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위 엘스버그 문제와 관련해서 비정밀 확률주의자들은 새로운 의사결정 이론을제시해야 한다. 이런 의사 결정 이론은 흔히 애매성-회피(ambiguity–aversion) 의사 결정 이론이라고 불리며, 여러 방식으로 발전되어 왔다. 우리는 3절에서 이런 종류의 의사 결정 이론 몇 가지를 소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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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하나의 수로 표상된다는 입장에서 비롯된 문제이다.

위에서 몇 가지 문제점이 지적된 입장, 즉 우리의 믿음의 정도는 하나의

확률 함수에 의해서 할당된 하나의 수로 표상될 수 있다는 입장을 ‘정밀 확

률주의(precise probabilism)’라고 부르자. 앞에서 설명되었듯이 이 정밀 확

률주의는 몇 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그럼 이 정밀 확률주의의 대안은

무엇인가? 우리가 본 논문에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바로 그 대안들 중 하나

인 ‘비정밀 확률주의(imprecise probabilism)’이다. 이 입장이 ‘확률주의’라

고 불리는 것은 여전히 확률 함수에 의존해서 우리의 믿음의 정도를 표상하

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정밀’이라고 불리는 것은 믿음의 정도가 하나의 수

가 아니라 수들의 집합에 의해서 표상되기 때문이다.

이 입장에 따르면, 위 엘스버그 문제에서 B에 대한 믿음의 정도는 [0,2/3]

사이에 있는 하나의 실수가 아니라, [0,2/3] 그 자체, 즉 실수들의 집합이 된

다. 따라서 PRECISE는 부정되며 모순은 발생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비

정밀 확률주의에 따르면, 동전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없을 때 앞면이 나온

다는 것에 대한 믿음의 정도는 0과 1 사이에 있는 모든 실수들의 집합, 즉

[0,1]이며, 동전이 공평하다는 정보가 있을 때 앞면이 나온다는 것에 대한

믿음의 정도는 1/2만을 원소로 가지는 한원소집합, 즉 {1/2}가 된다. 이에

아무 정보도 없는 상황과 공평하다는 정보가 있는 상황이 다르게 표상될 수

있게 된다.

비정밀 확률주의의 세부 사항을 설명하기에 앞서 언급할만한 것이 몇 가

지 있다. 첫째, 이 비정밀 확률주의는 “우리의 믿음의 정도가 정밀하지 않은

것은 우리가 자신의 마음을 모르기 때문이며, 자신의 마음을 보다 정확하게

알 수 있다면 믿음의 정도가 정밀해질 수 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이 입

장은 “우리가 우리 마음을 아주 정확하고 투명하게 알 수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믿음의 정도는 비정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둘째, 비정밀 확률주

의자들이 “주어진 정보 상황에서 우리의 합리적 믿음의 정도가 여럿일 수

있다.”는 주장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일견, 비정밀 확률주의는 우리의

믿음의 정도가 특정 구간에 있으면 그것이 무엇이든 합리적일 수 있다는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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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으로 들릴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비정밀 확률주의자들은 우리가

가질 수 있는 합리적 믿음의 정도는 수들의 집합이고, 그 집합은 유일하다

고 주장할 수 있다. 물론, 그들은 합리적 믿음의 정도로 나타낼 수 있는 수

들의 집합이 여럿일 수 있다고도 주장할 수 있다. 즉 비정밀 확률주의라고

해서, 소위 ‘유일성 논제(uniqueness thesis)’라 불리는 것을 받아들일 수도

있고, ‘허용주의(permissivism)’라 불리는 입장을 수용할 수도 있다.

그럼 이제 비정밀 확률주의가 어떻게 믿음의 정도를 표상하는지 살펴보

자. 그 기본 아이디어는 우리의 믿음의 정도, 혹은 신념도를 집합으로 표상

하는 것이다.3) 우선, 우리 믿음 체계에 우리가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는 명

제들이 있다고 하자. 그럼, 이 명제들 전체에 대한 우리의 전반적인 믿음 상

태(overall belief state)는 각 명제들에 특정한 수를 할당하는 함수들의 집합

에 의해서 표상된다. 이 함수들은 모두 확률 계산 규칙을 만족하는 확률 함

수들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우리의 믿음을 집합으로 표상하려는 이 입장

도 ‘확률주의’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이다.

물론 우리의 전반적인 믿음 상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증거 혹은 정보에

따라서 달라질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특정 증거 혹은 정보를 가지고 있을

때, 우리의 전반적인 믿음 상태는 해당 증거 혹은 정보와 충돌하지 않는 확

률 함수들의 집합으로 표상된다. 가령, 던지려는 동전이 앞면이 더 잘 나오

게 편향되어 있다는 정보가 주어졌다면, 우리의 전반적인 믿음 상태는 다음

과 같은 확률함수들의 집합 P에 의해서 표상된다: P={p∈P0:p(H)>p(T)}.

여기서 P0는 모든 확률 함수들의 집합이며, p는 확률 함수를 나타내는 일종

의 변수이다. 이런 확률 함수들의 집합 P는 ‘표상자(representor)’, ‘신념 위

원회(credal committee)’, ‘신념 집합(credal set)’이라고 불린다. (우리는 이

글에서 신념 집합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것이다.)

물론, 비정밀 확률주의자들이 우리의 전반적인 믿음 상태만을 표상하는

3) 이 접근법은 “구간주의(intervalism)”, “볼록 베이즈주의(convex Bayesianism)”, “집합기반 확률주의(set-based probabilism)”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부린다. 카이버그와 피타렐리의 논문(Kyberg and Pittarelli 1996)을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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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은 아니다. 당연하게도 그들은 개별적인 명제에 대한 믿음 상태, 즉 국소

적 믿음 상태(local belief state)도 집합으로 표상한다. 위 전반적인 믿음 상

태가 (관련 증거나 정보와 충돌하지 않는) 신념 집합으로 표상되었다면, 국

소적 믿음 상태는 그 신념 집합의 각 원소들이 해당 명제에 할당하는 실수

들의 집합으로 표상된다. 가령, 던지려는 동전이 앞면이 더 잘 나오게 편향

되어 있다는 정보가 주어졌다고 해보자. 그럼 위에서 말했듯이 신념 집합

P는 {p∈P0:p(H)>p(T)}가 된다. 여기서 p(H)>p(T)를 만족하는 함수들 중에

는 H에 1/2보다 작은 값을 할당하는 함수는 없다는 사실에 주목하자. 따라

서 해당 정보가 주어져 있을 때, H에 대한 국소적 믿음 상태는 실수들의 집

합 (1/2,1]로 표상될 것이다. 우리는 이를 ‘P(H)=(1/2,1]’로 나타낼 것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우리의 신념도는 주어진 증거에 따라서 바뀔 수 있다.

이런 점은 비정밀 신념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표준적인 베이즈주의에 따

르면, 증거에 의한 정밀 신념도의 갱신은 (제프리) 조건화라는 믿음 갱신 규

칙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럼 비정밀 확률주의는 어떤가? 비정밀 확

률주의의 표준적인 믿음 갱신 규칙, 역시 조건화 규칙을 이용해서 제시된다.

E라는 증거를 획득하기 전 신념 집합, 즉 선행 신념 집합을 P라고 하자. 그

리고 E라는 (전체) 증거를 획득한 이후 신념 집합, 즉 후행 신념 집합을 PE

라고 하자. 일반적인 비정밀 확률주의자들은 P에 속한 각 개별 확률 함수들

을 E를 이용해 조건화하여 획득된 새로운 확률 함수들의 집합이 바로 PE라

고 말한다. 형식적으로 표현하자면, P와 PE 사이에는 다음 관계가 성립한다:

PE={p(-|E)|p∈P}.

그리고개별명제에대한비정밀신념도의변화역시위식을이용해서나타

낼 수 있다. 즉 X에 대한 후행 비정밀 신념도는 다음과 같이 나타낼 수 있다:

비정밀 조건화: PE(X)={p(X|E)|p∈P}.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PE는 확률 함수들의 집합이고 PE(X)는 실수들의

집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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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수학적 구조를 가진 비정밀 확률주의는 흥미로운 방식으로 여러 인

식론적 문제들을 해결한다. 이후 우리는 비정밀 확률주의와 관련된 몇 가지

철학적 문제들을 분석하고, 그 문제들과 그에 대한 철학적 분석의 전망을

제시할 것이다. 아래에서 우리가 다루는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는 비정밀 확률주의의 내적 문제라고 할 수 있으며, 둘째는 비정

밀 확률주의의 확장이라고 할 수 있다. 비정밀 확률주의의 내적 문제로 우

리가 다루고자 하는 것은 비정밀 확률주의 속 믿음의 변화와 의사 결정이다.

특히, 우리는 믿음 갱신과 관련해서는 비정밀 확률주의 특유의 ‘희석

(dilation)의 문제(2절)’, 의사 결정과 관련해서는 ‘엘가의 문제(3절)’를 다룰

것이다. 3절과 4절에서 다루어지는 비정밀 확률주의의 확장에서는 비정밀

확률주의가 전통 인식론과 베이즈주의 사이의 충돌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3절), 그리고 ‘정확성 기반 확률주의’라는 확률주의의 새로운 흐름

속에서 비정밀 확률주의가 어떻게 옹호되고, 어떤 연구 방향을 제시하는지

살펴볼 것이다(4절).

위에서 설명한대로, 본 논문은 일종의 종설 논문(review article)이다. 이에

우리는 비정밀 확률주의에 대한 최근 논의들을 개괄하고 그 연구 방향을 소

개하는 것을 주요 목표로 하고 있다. 사실 비정밀 확률주의를 소개하고, 그

전개 양상을 소개하는 논문은 몇 가지가 있다 (Bradley 2014; Cozman 2015;

Weisberg 2015). 하지만 우리는 이 기존 논문들의 설명 방식을 그대로 답습

하지 않을 것이다.4) 앞에서 언급했듯이 우리는 관련 주제들을 비정밀 확률주

의의 내적 문제와 비정밀 확률주의의 확장으로 구분하여, 관련 연구 분야의

핵심 연구 성과들을 보다 엄밀하게 정식화하고 자세히 논의할 것이다. 더불

어, 본 논문은 기존 종설 논문에서는 다루어지지 않았던 내용도 포함하고 있

다. 특히, 3절과 4절에서 다루게 될 전통 인식론과의 관계와 정확성 기반 확

률주의와의 관계에 대한 논의는 기존 논문에서는 소개되지 않은 내용이다.

4) 언급된 논문들 중에서 Bradley (2015)가 가장 포괄적이다. 이 논문에 비해 Cozman (2015)와 Weisberg (2015)는 다소 단편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Cozman (2015)는수학적인 내용에 대한 소개만을 담고 있으며, Weisberg (2015)는 의사결정 문제를다루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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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밀 확률주의1) 101

2. 비정밀 확률주의와 신념도 갱신: 희석(dilation)

앞에서 설명한대로 비정밀 확률주의에서 신념도 갱신은 특정 집합이 다

른 집합으로 변경되는 것으로 나타낸다. 이런 비정밀 신념도 갱신에서 해당

집합의 크기는 더 커질 수도 있고, 더 작아질 수도 있다. 이런 비정밀 신념

도의 변화들 중 철학자들이 관심을 끈 변화는 이른바 ‘희석(dilation)’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희석이란 어떤 명제 X가 특정한 경험의 결과로 덜 정밀해지

는 현상을 말한다. 즉, X의 선행 신념도가 그 후행 신념도의 진부분집합인

경우, 그리고 그 경우에만, 우리는 X의 신념도가 희석되었다고 말한다.

사실, 경험적 증거 E를 획득한 이후 신념도가 희석되는 것, 즉 P(X)⊂

PE(X) 자체는 별 문제가 아니다. 예를 들어, 어느 쪽으로 편향되었는가에 대

한 어떤 정보도 가지고 있지 않은 동전을 생각해보자. 비정밀 확률주의에

따르면, 이 동전을 던졌을 때 앞면이 나온다는 것(H)에 대한 신념도는 [0,1]

이 된다. 그런데 이러저러한 실험을 거쳐, 동전이 앞면 쪽으로 편향되었다는

것이 밝혀졌다고 하자. 그럼 H에 대한 신념도는 (1/2,1]이 되어야 할 것이

다. 그런데, 추후에 해당 실험의 문제가 발견되어, 그 실험이 동전의 편향성

에 대해서 아무런 정보도 제공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고 하자. 그럼,

H에 대한 신념도는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 당연히 원래의 신념도 [0,1]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즉 H에 대한 신념도가 (1/2,1]에서 [0,1]로 희석되어야

한다. 이런 신념도의 변화는 합리적이다. 왜냐하면 H와 유관한 증거가 주어

졌고, 그에 따라 H에 대한 신념도가 변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유관한 증거가 획득되지 않았거나, 심지어 어떤 새로운 증거

도 획득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신념도가 희석된다면 어떨까? 이런 경우

는 확실히 문제일 것이다. (사실 이러한 경우에는 X의 신념도가 날카로워지

거나 다른 방식으로 바뀐다고 하더라도 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경우

가 과연 가능할까? 다음 경우를 생각해 보자(Bradley and Steele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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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박 일 호⋅정 재 민⋅김 남 중

브래들리 사례

10개의 흰 공과 10개의 검은 공이 있다. 이 20개의 공 중에서 10개의 공을

뽑아 항아리1에 넣었다. 그리고 나머지 10개는 항아리2에 넣었다. 당신은

이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항아리1에 정확히 몇 개의 흰 공이 있는지에

대해선 아무런 정보도 가지고 있지 않다. 이제 당신은 두 항아리 중 하나

에서 공을 하나 꺼낼 것이다. 이 때, 뽑힌 공이 어떤 항아리에서 나왔는가

에 대한 어떤 정보도 당신에게 제공되지 않는다. 이 순간 흰 공이 뽑혔다

는 것에 대한 당신의 신념도는 무엇인가? 잠시 후, 당신에게 방금 공을 꺼

낸 항아리가 항아리1이라는 정보가 제시되었다. 그럼 이 정보가 주어진 이

후, 흰 공이 뽑혔다는 것에 대한 당신의 신념도는 어떻게 변하는가?

W를 흰 공을 꺼냈다는 명제, B를 검은 공을 꺼냈다는 명제라고 하자. 또

U1을 항아리1에서 공을 꺼냈다는 명제, U2를 항아리2에서 공을 꺼냈다는

명제라고 하자. 그럼 비정밀 확률주의를 따르면, P(W)={0.5}, P(U1)=[0,1],

그리고 P(W|U1)={0,0.1,⋯,0.9,1.0}이 성립한다. 왜냐하면 당신은 다음과 같

은 증거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a) 당신은 항아리1과 항아리2 중 하나에서 공을 꺼냈다는 것과 두 항아

리들에 들어있는 20개의 공들 중 정확히 10개는 희고 나머지 10개는

검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두 항아리 중에서 어느 곳에서 공을 꺼냈

는지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지하다.

(b) 당신은 항아리1에 들어 있는 10개의 공 중 흰 공의 비율은 0, 0.1, ⋯,

0.9, 1.0 중에 하나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당신은 이 항아리에 들어 있

는 흰 공들의 정확한 개수에 대한 다른 어떤 정보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럼, 공을 꺼낸 항아리가 항아리1이라는 것(U1)을 알게 되었을 때 W에

대한 당신의 신념도는 어떻게 수정되는가? 이때의 신념 집합을 PU1라고 하자.

그럼 PU1(W)는 얼마인가? 비정밀 확률주의자들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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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밀 확률주의1) 103

앞 절에서 설명된 비정밀 조건화를 이용할 것이다. 그럼 다음이 성립한다:

PU1(W)={p(W|U1)|p∈P}={0,0.1,⋯,1.0}.

이런 신념도 갱신은 전형적인 희석 사례다. 흥미로운 것은 U1은 W와 무

관해 보인다는 점이다. 다음 사실을 생각해 보라. U1를 획득하고 난 뒤, 당

신은 여전히 10개는 희고 나머지 10개는 검은 공들 가운데서 하나를 꺼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따라서, 당신이 {0.5}를 W에 부여하는 것은 여전히 정

당한 것처럼 보이며, U1은 그 신념도의 할당을 바꾸게 만드는 어떤 정보도

제공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로저 화이트(Roger White)에 의하면 브래들리 사례 및 그것과 유사한 사

례들은 비정밀 확률주의에 대해 심각한 도전을 제기한다 (White 2010). 그

는 다음과 같이 논변한다:

무관한 증거에 의한 희석

P1. 비정밀 확률주의가 맞다면, 비정밀 조건화는 합리적인 갱신규칙이다.

P2. P는 합리적인 선행 신념 집합이다.

P3. U1은 W와 유관한 정보가 아니다.

P4. U1이라는 (전체) 증거를 획득한 이후 비정밀 조건화를 이용해 신념도

를 갱신하는 경우 W의 신념도는 희석된다.

P5. P2, P3, P4이 모두 참이라면, 비정밀 조건화는 합리적인 갱신규칙이

아니다.

C. 그러므로 비정밀 확률주의는 틀렸다.

위 논변은 타당하다. 따라서 당신이 비정밀 확률주의를 받아들인다면,

P1-P5 중 하나를 거부하여야 한다. 이 다섯 개의 전제들 중 P4와 P5는 거부

하기 힘들다. 따라서 우리는 P1-P3 중 무엇을 거부할 수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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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박 일 호⋅정 재 민⋅김 남 중

그럼 P1-P3 각각이 어떻게 비판 받을 수 있는지 검토해 보자(Bradley and

Steele 2014). 우선 P1을 거부하는 전략을 생각해 보자. 이 전략은 비정밀

조건화가 합리적 갱신 규칙이라는 것을 부정하고, 새로운 갱신 규칙을 제시

하려는 것이다. 가령, 다음 수정된 비정밀 조건화를 생각해보자:

수정된 비정밀 조건화. PE(X)={p(X|E)|p∈U(P,E)}.

이 규칙에 따르면, 비정밀 신념도를 갱신하는 데 있어 해당 신념 집합에

있는 모든 확률 함수들이 조건화되는 것은 아니다. 대신 신념 집합 P의 확

률 함수들 가운데 어떤 특별한 제약 조건을 만족하는 것들만 조건화를 통해

갱신된다. 여기서 U(P,E)는 P의 부분집합으로서 해당 제약 조건을 만족하

는 확률함수들의 집합니다. 그럼 이런 조건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다음

U(P,E)를 생각해 보자:

U(P,E)={p∈P|임의의 명제 Y에 대해서, E가 Y와 무관하다면

p(Y|E)∈P(Y)이다.}

이것은 위와 같은 희석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모든 확률 함수들을

모두 미리 제거한 후에 나머지 확률함수들만 조건화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

조건을 도입한 수정된 비정밀 조건화를 브래들리 사례에 적용해보자. 그럼,

U1은 W와 무관하기 때문에 p(W|U1)가 P(W)의 원소가 아닌 p들은 조건화

되지 않는다.5) 그리고 조건화되는 것은 모두 p(W|U1)가 P(W)의 원소인 p

들 뿐이다. 따라서 조건화되더라도 여전히 W의 신념도는 변하지 않아,

PU1(W)=P(W)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전략은 명백히 대증 처방적(ad

hoc)이다.

5) 만약 p(W|U1)가 P(W)의 원소가 아닌 p들이 조건화되어 수정된다면 그런 조건화를통해 만들어진 PU1(W)는 P(W)와 달라질 수 있다. 위 제약 조건은 이런 가능성을차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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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밀 확률주의1) 105

다음으로, P2를 거부하는 전략을 생각해 보자. 이 전략은 P가 합리적 선

행 신념 집합이 아니라는 것으로, 특별한 조건을 추가하여 선행 신념 집합

을 제약하려는 시도이다. 이 전략과 앞에서 설명한 전략의 차이점은 특별한

조건을 언제 부과하느냐에 있다. P1을 거부하는 전략은 U(P,E)를 이용해서

증거 E를 획득하고 나서 조건화될 확률 함수들을 제한하는 것이라면, P2를

거부하는 전략은 해당 증거가 획득되기 전 선행 신념 집합에 포함된 확률

함수들의 일부를 제거하는 것이다. 그럼 P2를 거부하는 전략을 위해서는 어

떤 조건이 부과될 수 있을까? 다음 조건을 생각해 보자:

선행 신념 집합 P의 모든 원소 p, 임의의 명제 Y, 앞으로 획득될 수 있는

임의의 증거 E에 대해서, E가 Y와 무관한 정보라면 p(Y|E)∈P(Y)이다.

이 조건 역시 대증 처방적이다. 더군다나, 위 조건은 이미 주어진 증거뿐

만 아니라 앞으로 주어질 수도 있는 모든 증거에 대한 것이라는 점을 생각

해 보자. 이것은 매우 엄격한 조건이다. 더군다나, 브래들리 사례에 이 조건

을 적용하면, U1를 조건으로 W에 할당되는 조건부 신념도는 애초부터

{0.5}라는 결과가 나온다. 이는 매우 반직관적이다. 항아리1에 몇 개의 흰

공들이 들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왜 정확히 0.5를 해당 조건부 신념도에

할당해야 하는가?

마지막으로, P3를 거부하는 전략, 즉 U1이 H와 유관하다는 것을 보이는

전략을 생각해 보자 얼핏 이것은 말이 안 되는 전략처럼 보일 수 있다. 왜냐

하면, 이미 언급한 대로, U1은 항아리1과 항아리2 중 어느 쪽에서 당신이

공을 꺼냈는지에 대한 정보만 담고 있을 뿐, 해당 항아리에 있는 흰 공의

수에 대한 어떤 정보도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 이런 점은 유관성에 대한 확률주의의 정의와 일치하는가? 흔히 확률

주의자들은 두 명제 사이의 확률적 독립성을 이용하여 그 명제들 사이의 유

관성을 규정한다. 여기서 확률적 독립성은 특정 확률 함수에 상대적으로 결

정된다. 즉 확률주의에서는 “p(A|B)=p(A)일 때 그리고 그런 경우에만 확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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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박 일 호⋅정 재 민⋅김 남 중

함수 p 상대적으로 A는 B와 확률적으로 독립적이다”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확률주의자들은 두 명제 사이에 이런 확률적 독립성 관계가 성립할 때, 해

당 두 명제가 무관하다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이런 유관성에 대한 확률주

의적 정의는 비정밀 확률주의에 바로 적용될 수 없다. 비정밀 확률주의에

의하면 우리의 (전반적) 신념도는 하나의 확률 함수가 아니라 확률 함수들

의 집합, 즉 신념 집합으로 표상된다. 이에, 비정밀 확률주의에서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두 명제 사이의 유관성, 혹은 확률적 독립성을 정의할 수 있

을 것이다.

비정밀 확률주의의 확률적 독립성. 다음과 같은 경우 그리고 그런 경우에만 신념 집합 P에 상대적으로 명제 A와 B는 확률적으로 독립적이다:

모든 p∈P에 대해서 p(A|B)=p(A).

그럼 이 확률적 독립성 정의를 브래들리 사례에 적용해보자. 앞에서 설명

했듯이 P(W)={0.5}이기 때문에, P의 원소인 모든 확률 함수는 W에 0.5를

할당한다. 하지만 P(W|U1)={0,0.1,...,1.0}이기 때문에, P에 있는 몇몇 확률

함수 p에 대해서 p(W|U1)≠0.5가 성립한다. 따라서 위 독립성 기준을 받아

들이는 경우, U1은 H와 독립적이지 않은, 즉 유관한 증거라고 결론 내려야

한다.

이것은 적어도 브래들리 사례와 관련해 P3를 거부하는 전략이 성공적이

라는 것을 뜻한다. 더불어 이 전략은 직관적인 방식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당신이 공을 꺼낸 항아리가 항아리1이라는 정보를 획득했을 때, 얼핏 공의

색깔에 대한 어떤 정보도 획득하지 못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사실

(i) 당신은 만일 항아리1에서 공을 꺼낸다면 그 안에 들어있던 흰 공의 개수

에 따라 당신이 꺼낸 공의 색깔에 대해 부여할 합리적 확률이 좌우될 것이

라는 점을 미리 알고 있는 상태에서, 당신이 공을 꺼낸 항아리는 항아리1이

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ii) 당신은 항아리1과 항아리 2를 합쳐서

두 항아리들에 몇 개의 흰 공들과 몇 개의 검은 공들이 들어있는지는 알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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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밀 확률주의1) 107

어도, 항아리1에만은 정확히 몇 개의 흰 공들과 몇 개의 검은 공들이 들어있

는지는 몰랐다. 결과적으로, (i)은 당신이 W에 부여하는 신념도가 왜 변해

야 하는지 설명해 준다. 즉, 언뜻 W와 무관해 보였던 U1은 알고 보면 유관

한 정보이다. 또 (ii)는 당신이 W에 부여하는 신념도가 왜 희석되어야 하는

지를 설명해 준다. 즉, U1이 증거로서 획득되기 전에는 두 항아리들 전체의

색깔별 개수가 W와 연관되었지만, 그것이 획득되고 난 후에는 항아리1에

든 공들의 색깔별 개수만이 W와 연관된다. 이때, 전자는 당신이 아는 반면

후자는 당신이 모르는 정보다.

하지만, 세 번째 전략이 모든 형태의 희석 문제들을 해결하는지는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김남중(2016)은 비정밀 확률주의는 비정밀 증거를 포괄하

는 방식으로 확장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비정밀 증거란 경험에 의해

서 비정밀 신념도가 (직접적으로) 할당된 명제를 말한다. 그럼 이런 증거가

획득되었을 때 우리의 신념도는 어떻게 갱신되어야 하는가? 가령, 경험에

의해서 명제 E에 [x,y]라는 비정밀 신념도가 할당되었을 때, 다른 명제들에

대한 신념도는 어떻게 갱신되어야 하는가? 이와 관련해 김남중은 다음 믿음

갱신 규칙을 제시한다.

비정밀 제프리 조건화. PE(X)={p(X|E)r+p(X|∼E)(1-r)|p∈P&x≤r≤y}

여기서 P는 선행 신념 집합이며, PE는 경험에 의해서 명제 E에 [x,y]가

할당된 이후 관련 행위자가 가지게 될 후행 신념 집합이다. 이 비정밀 제프

리 조건화는 정밀한 확률 함수에 대한 제프리 조건화를 비정밀 증거에 대해

서 확장한 것으로 생각될 수 있다.

그러나, 김남중(2016)은 이런 식의 비정밀 신념도 갱신 규칙이 보다 심각

한 형태의 희석 문제를 야기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E에 대해서

비정밀 신념도 [1/2,3/4]를 가지고 있었던 행위자를 생각해보자. 그런데, 새

로운 경험의 결과로 그 행위자가 E에 비정밀신념도 [1/2,3/4]를 다시금 할당

하게 되었다고 하자. (즉, 새로운 경험에도 불구하고 E의 신념도는 그대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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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박 일 호⋅정 재 민⋅김 남 중

다.) 이런 경우 다른 명제들의 신념도는 어떻게 갱신되어야 하는가? 일견,

다른 명제들에 대한 신념도 역시 바뀌지 말아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위 비

정밀 제프리 조건화를 통해서 신념도를 갱신하는 경우 몇몇 명제들의 신념

도는 희석되는 결과가 발생한다. 이 문제는 비정밀 증거에 의해서 발생하는

독특한 종류의 희석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것이 위 브래들리 사례와 비슷

한 방식으로 답해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 추가적 연구가 필요하다.

3. 비정밀 신념도와 의사 결정

우리 신념도는 합리적 행위에 대한 안내자의 역할을 하곤 한다. 정밀한

신념도를 바탕으로 한 표준적인 의사결정 이론에 따르면, 기대 효용이 가장

큰 행위를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하지만 우리의 신념도가 정밀하지 않

을 때, 우리는 기대 효용의 정확한 값을 계산할 수 없다. 우리가 계산할 수

있는 것은 정밀하지 않은 신념도에 따라 계산된 가능한 기대 효용들의 집

합뿐이다. 그럼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행위를 선택해야 할까? 우리는

이 절에서 이와 관련된 몇 가지 의사결정 원리들을 살펴볼 것이다. 이와 더

불어, 최근 비정밀 신념도 관련 의사 결정 문제에 큰 관심을 불러일으킨 엘

가(Elga 2010)의 논증과 그에 대한 답변을 검토할 것이다.

3.1. 비정밀 신념도를 가진 행위자들의 위한 의사 결정 원리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어떤 행위자의 H에 대한 신념도가 [0.2,0.8]이라고

하자. 그리고 다음 네 개의 내기, A1∼A4를 생각해보자.

A1: H가 참이면 효용 4를 얻고 H가 거짓이면 효용 4를 잃는 내기.

A2: H가 참이든 거짓이든 효용 0를 얻는 내기.

A3: H가 참이면 효용 1을 얻고, H가 거짓이면 효용 2를 잃는 내기

A4: H가 참이면 효용 3를 얻고, H가 거짓이면 효용 5을 잃는 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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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밀 확률주의1) 109

위 네 개의 내기 중 A1의 기대 효용, Exp[A1]은 얼마인가? 이 질문에 답

하는 한 가지 방식은 구간 [0.2,0.8] 사이에 있는 각 확률 값들을 이용해서

기대 효용을 결정하는 것이다. p를 [0.2,0.8]에 속한 임의의 실수 값, 즉 (정

밀한) H에 대한 확률 값이라고 하자. 그럼 이 p에 따라 결정된 A1의 기대

효용은 4p+(-4)(1-p)이 된다. 그럼 이 기대 효용의 값은 구간 [-2.4,2.4]에 있

게 되며, 최대기대효용은 2.4, 최소기대효용은 –2.4가 된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나머지 3개의 내기의 기대 효용의 최대값과 최소값을 나타내고, 그

기대 효용의 구간을 결정할 수 있다. 아래 <그림 1>은 위 네 개의 내기의

기대 효용을 도식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그림에서 흰 색 부분은 H에 대

한 신념도, 즉 구간 [0.2,0.8]을 표현하며, 각 진한 선은 각 내기의 기대 효용

의 변화를 그리고 있다.

<그림 1> A1-A4 사이의 선택

그럼 이런 내기들 중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즉 위와 같이 비정밀

신념도를 가지고 있는 경우, 우리는 어떤 의사결정규칙을 이용해 내기를 선

택해야 하는가? 아래는 현재 많이 논의되고 있는 비정밀 신념도를 가진 행

위자를 위한 의사 결정 규칙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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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박 일 호⋅정 재 민⋅김 남 중

최소기대효용 최대화 (-maximin). 다음의 경우, 그리고 그런 경우에만 행위 A는 합리적으로 허용될 수 있다:

행위 A의최소기대효용은다른어떤행위의최소기대효용보다크거나같다.

최대기대효용 최대화 (-maximax). 다음의 경우, 그리고 그런 경우에만 행위 A는 합리적으로 허용될 수 있다:

행위 A의최대기대효용은다른어떤행위의최대기대효용보다크거나같다.

E-허용가능성(E-Admissibility). 다음의 경우, 그리고 그런 경우에만 행위 A는 합리적으로 허용될 수 있다:

다음과 같은 확률 함수 p가 존재한다: p에 따르면 A의 기대 효용은 어떤

다른 행위의 기대 효용보다 크거나 같다.

최대성(Maximality)다음과 같은 경우, 그리고 그런 경우에만 행위 A는 합리적으로 허용될 수

있다:

다음과 같은 행위 X가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확률 함수를 따르든 상관없

이, A의 기대 효용은 X의 기대 효용보다 작다.

비정밀 신념도를 가지고 있는 행위자들 중에서 다소 안전한 선택을 선호

하는 행위자들은 최소기대효용 최대화를, 다소 모험적인 선택을 선호하는 행

위자들은 최대기대효용 최대화를 택할 것이다. 하지만 이 두 의사 결정 원칙

들은 다소 엄격해 보인다. 정밀한 신념도를 가지고 있는 행위자와 그렇지 않

은 행위자를 비교해보자. 아마도 정밀한 신념도를 가진 행위자들에게 허용되

는 행위보다 그렇지 않은 행위자들에게 허용되는 행위가 더 많을 것이다. 하

지만 위 두 원칙은 비정밀 행위자들에게 허용되는 행위를 다소 강하게 제약

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위 두 원칙보다 더 느슨한 방식으로 합리적으로 허용

가능한 행위를 제약하는 의사결정 원칙이 바로 E-허용가능성과 최대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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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밀 확률주의1) 111

이 네 원칙을 <그림 1>이 나타내는 의사결정 상황에 적용했을 때, 합리적

으로 허용되는 행위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의사 결정 원칙 합리적으로 허용가능한 행위

최소기대효용 최대화 A2최대기대효용 최대화 A1E-허용가능성 A1, A2최대성 A1, A2, A3

위 결과들이 시사하듯이 위에서 제시된 네 개의 의사 결정 원칙들 중에서

최대성이 가장 느슨하며, 최대기대효용 최대화와 최소기대효용 최대화가 가

장 엄격한 원칙이다. 더 나아가, 다음은 여러 관련 문헌을 통해 위 네 원칙

사이의 관계를 아래 <그림 2>와 같이 표현할 수 있다.6)

<그림 2> 비정밀 신념도 아래 의사 결정 원리들

<그림 2>에서 화살표는 함축관계를 나타낸다. 가령, 어떤 행위가 E-허용

가능성에 따라 합리적으로 허용될 수 있는 행위라면 그것은 최대성에 따라

서도 합리적으로 허용될 수 있는 행위이다. 위 그림이 잘 드러내듯이 최대

6) 이 <그림 2>는 Chandler (2014)에서 일부 가져온 것이다. 해당 논문에는 이 네 가지의사 결정 원리 이외에도 Interval Dominance도 소개되어 있다. 이 의사 결정 원리는 최대성보다 약한 원리로, 최대성에 의해서 합리적으로 허용가능한 모든 행위는Interval Dominance에 의해서도 합리적으로 허용가능한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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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박 일 호⋅정 재 민⋅김 남 중

기대효용 최대화와 최소기대효용 최대화에 의해서 합리적으로 허용될 수

있는 행위는 모두 최대성에 의해서도 합리적으로 허용될 수 있는 행위이다.

3.2. 엘가, “주관적 확률은 예리해야 한다”

위에서 설명한 비정밀 신념도 관련 의사결정 이론들이 아주 최근에 제시

된 것은 아니다 (Kyberg and Pittarelli 1996). 하지만 최근에 엘가는 이런

종류의 의사결정을 이용해서 비정밀 신념도 모형을 비판하는 논증을 제시

하였다 (Elga, 2010). 아래에서 우리는 이 엘가의 논증을 제시하고, 이에 대

한 주요 분석을 제시할 것이다. 흥미롭게도 엘가 스스로 자신의 논증의 핵

심 부분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Elga 2012). 하지만 그의 논

증을 다시 한 번 살펴보는 것은 비정밀 신념도 기반 의사 결정의 중요한 특

징들을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엘가의 논증은 간단하다. 그 진위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임의의 명제 H를

생각해보자. 당신은 이 명제에 대해서 정밀한 신념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 대신 당신은 이 명제에 대해서 비정밀 신념도를 가지고 있다. 당신이 가

지고 있는 증거에 비추어 보았을 때 이 명제에 대한 비정밀 신념도는 구간

[0.1,0.8]과 같다고 하자. 그럼 다음 두 내기를 생각해보자.

내기1: H가 참이면 효용 10을 잃고, 그렇지 않으면 효용 15를 얻는다.

내기2: H가 참이면 효용 15를 얻고, 그렇지 않으면 효용 10을 잃는다.

시점1에 내기1이 제안되며, 시점2에 내기2가 제안된다. 이 두 시점 사이

에 당신은 H에 대한 믿음에 영향을 주는 어떤 추가 경험도 하지 않는다. 즉

시점1과 시점2에 당신이 처한 인식적 상황은 동일하며, 이에 당신이 가진

H에 대한 (비정밀) 신념도는 두 시점에 모두 [0.1,0.8]이다. 그럼 각 시점에

당신은 위 내기를 받아들일 것인가, 말 것인가? T1을 내기1을 받아들이는

행위라고 하자. 그리고 R1을 내기1을 거부하는 행위라고 하자. 마찬가지로

T2를 내기2를 받아들이는 행위라고 하자. 그리고 R2를 내기2를 거부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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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밀 확률주의1) 113

행위라고 하자. 그럼 시점1과 시점2에 어떤 행위를 선택해야 하는가?

이런 두 내기를 제시한 엘가는 두 내기를 모두 거부하는 것, 즉 R1-R2는

불합리하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X-Y는 X를 선택한 이후 Y를 선택하는 연

속적 의사 결정을 나타낸다.) 그리고 이에 덧붙여 비정밀 신념도를 가진 행

위자들의 의사결정을 위한 어떤 원리도 R1-R2를 배제하지 못한다고 주장한

다. 그리고 이런 주장을 바탕으로, 엘가는 합리적인 행위자의 신념도는 정밀

해야 한다고 결론 내린다.

R1-R2이 불합리하다는 것은 일견 그럴듯해 보인다. 왜냐하면 분명

R1-R2보다 H에 대한 정밀 확률 값이 무엇이든 언제나 더 큰 기대 효용을

가지는 행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각 가능한 선택의

기대 효용을 계산해보자. p를 H에 대한 (정밀한) 확률 값이라고 하자. 물론

p는 구간 [0.1,0.8] 사이에 있는 실수이다. 그럼 다음이 성립한다.

T1-T2의 기대 효용: 5

T1-R2의 기대 효용: -10p+15(1-p)=15-25p

R1-T2의 기대 효용: 15p+(-10)(1-p)=25p-10

R1-R2의 기대 효용: 0

T1과 T2를 선택하게 되면 당신은 언제나 효용 5를 획득하게 된다. 하지

만 T1-R2, R1-T2는 그렇지 않다. 만약 H에 대한 (정밀한) 확률 값이 0.4보

다 작으면 T1-R2의 기대 효용 T1-T2보다 크게 되고, 0.6보다 크게 되면

R1-T2의 기대 효용이 T1-T2보다 더 크게 된다.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R1-R2는 가장 좋지 않아 보이는 선택인 것 같다.

그럼, 정말로 앞 절에서 설명한 비정밀 신념도를 가진 행위자들을 위한

의사결정 원리들은 모두 R1-R2를 배제하지 못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전

에 유념해야 하는 사실이 있다. 그것은 위 선택 상황이 공시적(synchronic)

이지 않고, 통시적(diachronic)이라는 점이다. 즉 내기1과 내기2가 동시에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7) 그보다, 위 선택 상황에서는 T1과 R1 중에 하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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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박 일 호⋅정 재 민⋅김 남 중

선택하고, 그 다음 T2와 R2 중에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이제 다시 엘가의 문제로 돌아가자. 이 통시적 의사 결정 상황에서 최종

적으로 R1-R2가 선택되는 경우를 배제할 수 있는가? 우선 E-허용가능성을

생각해보자. 시점1에 당신은 T1과 R1 중에 하나를 선택할 것이다. H에 대

한 (정밀한) 확률 값이 0.6보다 작다면 T1의 기대 효용은 R1의 기대 효용보

다 크게 된다.8) 그리고 H에 대한 (정밀한) 확률 값이 0.6보다 크다면 T1의

기대 효용은 R1의 기대 효용보다 작게 된다. 따라서 E-허용가능성에 따라

의사 결정을 하는 경우, T1과 R1 모두 합리적으로 허용가능하다. 그럼 시점

1에 당신이 특정한 선택을 한 뒤, 시점2에 내기2가 주어진 경우를 생각해보

자. 관련된 어떤 추가 정보도 획득하지 못한 당신은 시점2에도 시점1과 비

슷한 선택을 할 것이다. 즉 시점2에도 E-허용가능성에 따르면 T2와 R2모두

합리적으로 허용가능하다. 따라서 E-허용가능성은 R1을 선택한 이후 R2를

선택하는 것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우리는 E-허용가능성은 가장 좋지 않

아 보이는 선택 R1과 R2를 배제할 수 없다.

그럼 이런 논증을 앞 절에서 제시된 최소기대효용 최대화, 최대기대효용

최대화, 최대성에도 적용할 수 있는가? 위 <그림2>를 참조할 때, 최대성 역

시 R1-R2를 배제하지 못한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왜냐하면 E-허용가능

성에 따라서 허용가능한 행위들은 모두 최대성에 따라서도 허용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최소(대)기대효용 최대화는 어떤가? 엘가는 2010년 논

문에서 특별한 증명 없이 최소기대효용 최대화 역시 동일한 결론을 내린다

고 주장하고 있다 (Elga 2010, p.5, 주석 21).

하지만 엘가는 추후에 이런 결론은 잘못이라고 인정한다 (Elga 2012). 엘

가의 2010년 논문이 출판된 이후에 몇몇 학자들은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7) 만약 내기1과 내기2가 동시에 주어지는 공시적인 상황을 고려한다면, 앞 절에서 언급한 네 가지 의사결정 원리 중 무엇을 따르던지 간에 둘 모두 거부하는 경우는 배제된다. 하지만 엘가의 사례에 등장하는 의사 결정 상황은 T1-T2, T1-R2, R1-T2, R1-R2 중 무엇을 선택할지 어떤 주어진 한 시점에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8) 시점1에 T1의 기대 효용은 15-25p가 된다. (여기서 p는 [0.1,0.8]에 있는 한 실수이다.) 따라서 p가 0.6보다 작게 되면 15-25p는 R1의 기대 효용인 0보다 크게 된다. 그리고 p가 0.6보다 크게 되면 15-25p는 0보다 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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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밀 확률주의1) 115

‘최소기대효용 최대화에 따르면 R1-R2가 배제될 수 있다’는 것을 논증하였

다 (Sahlin & Weirich 2014; Chandler 2014). 이들은 엘가의 사례를 연속

의사 결정 사례로 보고, 시점1에 선택된 결과가 R1-R2를 배제한다는 것, 더

나아가 최소기대효용 최대화를 따르는 행위자는 시점1에서 T1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다음은 해당 증명의 개괄적인 스케치다.

당신은 시점1에 T1과 R1 중 무엇을 선택할지 고민하고 있다. 이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서 당신은 시점1에 T1을 선택하는 경우와 R1을 선택하는

경우, 시점2에 무엇을 선택하게 될지 따져보려고 한다. 각각에 대한 당신

의 추론은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1) T1의 최소기대효용: 이를 계산하기 위해, 시점1에 T1을 선택했다는

가정에서 출발해보자. 그럼 다음 두 가지 경우가 가능할 것이다.

1) 시점2에 T2를 선택하는 경우: 이 경우, 나는 최종적으로 T1-T2를

선택하게 되며, 따라서 H의 진위와 상관없이 효용 5를 획득한다.

2) 시점2에 R2를선택하는경우: 이경우, 나는최종적으로 T1-R2를선

택하게되며, 기대효용은 15-25p가된다. (여기서 p는 [0.1,0.8] 사이

에 있는 실수다.) 따라서 이런 경우 최소기대효용은 –5가 된다.

그럼, 시점2에 최소기대효용 최대화를 사용한다면 나는 T2를 선택할

것이다. 물론, 나는 시점2에 내가 최소기대효용 최대화를 사용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따라서 내가 시점1에 T1을 선택하는 경우, 내가 시점

2에 T2를 선택한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므로, 시점1에 T1을 선택하

는 것의 기대 효용은 H가 무엇이든 상관없이 5가 될 것이다. 결과적

으로, 시점1에 T1을 선택하는 것의 최소기대효용은 5이다.

(2) R1의 최소기대효용: 이를 계산하기 위해서, 시점1에 R1을 선택했다

는 가정에서 출발해보자. 그럼 다음 두 가지 경우가 가능할 것이다.

1) 시점2에 T2를선택하는경우: 이경우, 나는최종적으로 R1-T2를선

택하게되며, 기대효용은 25p-10이된다. (여기서 p는 [0.1,0.8] 사이

에 있는 실수다.) 따라서 이런 경우 최소기대효용은 –7.5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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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박 일 호⋅정 재 민⋅김 남 중

2) 시점2에 R2를 선택하는 경우: 이 경우, 나는 최종적으로 R1-R2를

선택하게 되며, 따라서 H의 진위와 상관없이 효용 0를 획득한다.

그럼, 시점2에 최소기대효용 최대화를 사용한다면 나는 R2를 선택할

것이다. 물론, 나는 시점2에 내가 최소기대효용 최대화를 사용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따라서 내가 시점1에 R1을 선택하는 경우, 내가 시

점2에 R2를 선택한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므로, 시점1에 R1을 선

택하는 것의 기대 효용은 H가 무엇이든 상관없이 0이 될 것이다. 결

과적으로, 시점1에 R1을 선택하는 것의 최소기대효용은 0이다.

(3) T1과 R1 사이의 선택: 이제 최종적으로 시점1에 T1을 선택하는 것과

R1을 선택하는 것의 최소기대효용을 비교해야 한다. 위 두 단계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듯이 T1의 (최소)기대효용은 5이며, R1의 (최소)기

대효용은 0이다. 따라서 최소기대효용 최대화를 사용해서 의사 결정

하는 나는 시점1에 R1이 아니라 T1을 선택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최소기대효용 최대화를 사용해서 의사 결정한다면 당신은 T1

을 선택할 수밖에 없으며, 결국 두 내기를 모두 거부하는 것은 합리적으로

허용될 수 있는 행위가 아니다. 따라서 엘가의 주장, 즉 비정밀 신념도를 가

진 행위자들의 의사결정을 위한 어떤 원리도 R1-R2를 배제하지 못한다는

주장은 거짓이다.

엄격하게 말하자면, 위 논증 (1)-(3)은 몇 가지 전제에 의존하고 있다. 일

례로, 명시적으로 표현되어 있듯이 위 논증에서는 행위자가 앞으로 어떤 의

사결정 원리를 사용하게 될지 미리 알고 있다는 것이 가정된다. 그리고 현

재 나의 신념도와 미래 나의 신념도가 어떻게 될지 알고 있다는 것도 암묵

적으로 가정되어 있다. 물론, 이런 가정들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은 철학적으

로 중요한 작업일 것이다. 하지만 그 세부적인 내용을 파악하는 것은 이 글

의 범위를 넘어선다.

하지만 엘가의 주장과 그에 대한 답변과 관련하여 몇 가지 언급할만한 것

이 있다. 우선, 최소기대효용 최대화가 R1-R2를 배제한다는 사실이 엘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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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밀 확률주의1) 117

게 얼마나 강한 비판일 수 있을지 검토해야 한다.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최소기대효용 최대화와 최대기대효용 최대화는 너무 강한 의사결정 원리이

다. 왜냐하면 비정밀 신념도를 가진 행위자에게 합리적으로 허용될 수 있는

행위는 충분히 많아야 할 것 같지만, 최소기대효용 최대화와 최대기대효용

최대화에 따라 허용되는 행위는 단 한 가지만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받

아들인다면, 최소기대효용 최대화보다는 E-허용가능성이 더 훌륭한 의사결

정 원리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하는 경우, 엘가의 논증은

여전히 유효하게 된다.

그럼, 최소기대효용 최대화와 같이 너무 강한 의사결정 원리를 이용하지

않고, 어떻게 엘가의 논증에 답할 수 있을까? 한 가지 방법은 엘가의 주장,

즉 R1-R2를 배제하지 못한다는 것이 별 다른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보이는

것이다 (Bradley and Steele 2014). 또 다른 방법은 E-허용가능성을 이용하

여 R1-R2를 배제하지만 그리 엄격하지 않은 의사 결정 원리를 제시하는 것

이다 (Sud 2014). 또한 다소 색다른 방법으로 의사 결정 이론을 수정하여

엘가의 문제에 답할 수도 있다. 가령, 리나드(Susanna Rinard 2015)는 어떤

행위의 합리적 허용가능성을 결정적인 경우와 비결정적인 경우로 나눈다.

그리고 그녀는 이런 구분을 바탕으로 R1-R2가 합리적으로 허용될 수 있다

는 것이 비결정적이라고 논증하여 R1-R2가 의사 결정 이론에 의해서 합리

적으로 허용된다는 결론을 피하려고 한다. 어떤 방법이 그럴듯한가? 아직

논쟁은 끝나지 않았으며, 비정밀 신념도와 관련된 의사 결정은 여전히 여러

연구 주제를 제공하고 있다.

4. 비정밀 확률주의와 전통 인식론: 독단주의와 베이즈주의

이 절에서는 전통 인식론과 베이즈주의 사이의 관계가 비정밀 확률주의

를 받아들였을 때 어떻게 바뀔 수 있을지 검토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 우리

는 전통 인식론의 여러 주장 중 독단주의라고 알려진 주장과 베이즈주의,

특히 정밀 확률주의 사이의 관계를 살펴볼 것이다. 화이트는 독단주의가 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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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박 일 호⋅정 재 민⋅김 남 중

이즈주의, 특히 정밀 확률주의와 충돌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브라이언 웨

더슨(Weatherson 2007)에 따르면, 비정밀 확률주의를 이용하여 해당 충돌

을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독단주의’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론들은 몇 가지가 존재한다 (Huemer

2001, Pryor 2000, Tucker 2013). 그 이론들은 결코 동일하지 않지만, 그들

모두 무어(Moore)의 다음 논변에 영향을 받았다.

Hand. 내 손이 존재한다.

Cond. 내 손이 존재한다면, 외부세계는 존재한다.

World. 그러므로, 외부세계는 존재한다.

이 논변은 분명히 타당하며, 그 전제들은 아마 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

구하고, 대부분의 철학자들은 이 논변이 외부세계의 존재여부에 대한 논쟁

에 기여하는 바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이렇게 생각하는 데에는 아마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World가 논란이 되는 맥락에서는, 다른 믿음에 의해 정당화되지 않고

Hand를 받아들일 수 없다.

왜 그러한가? Hand에 대한 믿음은 아마도

Look. 내게 손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라고 표현될 이른바 현상적 믿음(phenomenal belief)에 의하여 정당화될 것

이다. 반면 Hand는 이른바 물체 믿음(objectual belief)이다. 하지만

Stump. 사실 내 손처럼 보였던 것은 정교하게 제작된 의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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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밀 확률주의1) 119

가 성립한다면, Look은 성립하더라도 Hand는 성립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데 World가 논란이 되는 상황에서는, 하물며 Stump가 참일 가능성을 배제

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일단 World가 논란이 되기 시작한 상황에서는,

Look에 의거해서 Hand를 정당화할 수도 없고, 따라서 Hand에 의거해서

World를 정당화할 수도 없다.

이것은 그럴 듯하게 들리지만, 의심스러운 측면들도 있다. 논리적으로,

Hand에 대한 정당화된 믿음은 다른 믿음에 의해 정당화되었거나 그 자체로

정당화된 믿음의 위상을 차지해야 한다. 둘째 경우에, 나중에 Stump가 성립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결과적으로 Hand의 믿음에 대한 정당화가 파기

(undermining)되는 상황을 상상할 수 있기 때문에, Hand에 대한 믿음은 그

자체로 정당화되고, 즉 비매개적(immediate)이고 파기가능(underminable)

한 방식으로 정당화된 믿음일 것이다. 첫째 경우에, Hand에 대한 나의 믿음

은 다른 믿음, 예를 들어, Look의 믿음에 의해서 정당화된다. 그 경우 나의

Hand에 대한 믿음은 매개적(mediate)으로 정당화될 것이다. 그렇더라도, 나

중에 Stump가 증거로 획득된다면, 그것은 Hand에 대한 파기자가 될 것이

다. 그러나 매개적이든 비매개적이든, 어떤 명제에 대한 믿음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꼭 그것을 지지하는 증거에 대한 파기자를 미리 배제해야만 하는 것

은 아니다. 이런 논의는 무어의 입장을 방어하는 한 가지 일반적 전략을 암

시한다(Huemer 2001, Pryor 2000)9):

독단주의(dogmatism). 비매개적이고 파기가능한 방식으로 정당화된 믿음이 존재한다.

흥미롭게도, 몇몇 철학자들은 독단주의와 베이즈주의가 양립불가능하다

고 주장한다(White 2006). 그런데, 베이즈주의는 신념도, 혹은 정량적 믿음

9) 독단주의 이외에도 순진주의(credulism)라는 입장이 가능하다. 이 입장은 “파기자를미리 배제하지 않고도 파기가능한 방식으로 정당화된 믿음이 존재한다(Pryor 2013)”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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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박 일 호⋅정 재 민⋅김 남 중

(quantitative belief)에 대한 이론인데 반해서 독단주의는 일차적으로 범주

적 믿음(categorical belief)에 적용되도록 고안된 이론이기 때문에, 이들이

서로 충돌한다는 주장은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정확히 말하면, 그 철

학자들의 주장은 독단주의의 핵심 원리들을 확률적 언어로 번역해 보면 베

이즈주의 원리들과 충돌한다는 것이다. 이때 “베이즈주의”라는 용어는 정밀

확률주의를 가리킨다.

그럼, 해당 충돌이 어떻게 발생하는지 파악하기 위해서는 ‘비매개적이고

파기가능한 방식으로 정당화된 믿음’이 베이즈주의 이론틀에서 어떻게 등

장하는지 확인해야 한다. 정밀 확률주의 속 특정 명제의 정당화는 해당 명

제에 대한 신념도의 증가로 표현되곤 한다. 여기서 신념도의 증가는 두 가

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첫 번째는 경험에 의해서 증거를 획득하는 것이다.

이 경우, 증거에 대한 신념도는 1로 증가하게 된다. 두 번째는 증거를 기반

으로 다른 명제의 신념도를 바꾸는 것이다. 이런 신념도 변화는 정밀 조건

화에 의해서 진행된다. 그렇다면 베이즈주의에서 ‘비매개적이고 파기가능한

방식으로 정당화된 믿음’은 두 가지 중에 하나일 것이다.

B1: 경험에의해서신념도가 1보다작은값에서 1로증가한증거에대한믿음

B2: 증거에 의해서 신념도가 증가한 명제에 대한 믿음

여기서우리는 B1이베이즈주의이론틀내에서파기가능하지않다는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즉 베이즈주의 이론틀에서 1의 신념도가 할당된 명제의 경우,

이후 어떤 경험을 하더라도 그 명제에 1보다 작은 신념도가 할당될 수 없다.

따라서 베이즈주의자들은 획득된 증거가 파기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할 것이며,

B1이 ‘비매개적이고 파기가능한 방식으로 정당화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렇다면 B2는 어떤가? B2에서 말하는 증거에 의해서 신념도가 증가한

명제를 X 라고 하자. 그리고 증거를 E라고 하자. 그럼 이 명제 X에 대한

믿음이 정당화되었다고 말하기 위해서 p(X)<p(X|E)라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와 더불어 X에 대한 믿음이 비매개적이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E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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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밀 확률주의1) 121

대한 조건화를 통한 믿음 갱신 결과 X에 대한 신념도가 증가했음에도 불구

하고 X에 대한 믿음이 E에 의하여 정당화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해야 한다.

얼핏 보면 반직관적이지만, 여기에는 그럴 듯하게 해석할만한 여지도 있다.

독단주의자들은 일반적으로 물체믿음(예:Hand)이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종

종 현상믿음(예:Look)이 먼저 정당화되어야 한다는 점을 인정한다. 다만, 그

경우 E라는 현상믿음이 X라는 물체믿음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며, 단지

전자는 후자의 선결조건(prerequisite condition)일 뿐이다. 비슷하게, X에

대한 신념도가 조건화에 의해 증가하기 위해서는 먼저 E가 확신되어야 하

겠지만, 이것이 곧 X에 대한 강한 믿음이 E에 의해 정당화된다는 것을 뜻하

는 것은 아니다.

일단 이런 변명을 받아들이자. 그럼 우리는 다음과 같이 정밀 확률주의와

독단주의 사이의 충돌을 논증할 수 있다.

독단주의와 정밀 확률주의의 충돌

P1. 만일 독단주의가 옳다면, 파기가능하며 비매개적으로 정당화되어 믿

어지는 명제 X가 존재한다.

P2. 만일 정밀 확률주의가 옳다면, 모든 X에 대해서 어떤 증거 E에 대해

정밀 조건화가 실시될 것이며,

(i) 만일 X에 대한 믿음이 정당화된다면, p(X|E)>p(X)이고 p(∼

E)>0이며,

(ii) 만일 X에 대한 정당화가 파기가능하다면, p(∼X|E)>0이다.

P3. 모든 X, E에 대해서, p(∼X|E)>0<p(∼E)라면 p(X|E)<p(E⊃X)이다.

P4. 모든 X, E에 대해서, E에 대해 정밀 조건화가 실시되고 p(X|E)<p(E

⊃X)라면, X에 대한 믿음이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E⊃X에 대한 믿음

이 먼저 정당화되어야 한다.

P5. 모든 X, Y에 대해서, X의 믿음이 정당화되기 위해서 Y의 믿음이 먼

저 정당화되어야 한다면, X의 믿음에 대한 정당화는 매개적이다.

C. 그러므로, 독단주의와 정밀 확률주의는 양립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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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박 일 호⋅정 재 민⋅김 남 중

이 논변은 타당하다. P1은 분석적으로 참이다. P2는 매우 그럴 듯하다. 왜

냐하면 정밀 확률주의가 옳다면 조건화에 의해 X의 신념도가 증가하여야만

X에 대한 믿음이 정당화될 것이고, p(∼X|E)=0이라면 X가 확신되어 파기

불가능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P3는 확률 계산 규칙의 귀결이다. (여기

서 E⊃X는 실질 함축이다.)

이 P3에 따르면, E에 대한 정밀 조건화를 통해 X에 대한 신념도가 갱신

될 때에는 pE(X)=p(X|E)<p(E⊃X)가 성립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E⊃X의

선행 신념도가 X의 후행 신념도보다 높았어야만, X의 후행 신념도가 높아

질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다른 말로, E⊃X에 대한 믿음이 이미 충분히 정

당화되어 있어야만, E에 의해서 X에 대한 믿음이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이

다. 따라서 P4도 참일 것처럼 보인다. 마지막으로, P5도 상당히 그럴 듯하게

들린다. 만일 X에 대한 믿음이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Y에 대한 믿음이 이미

정당화되었어야 한다면, X의 믿음은 Y에 의해 정당화되었거나 Y의 증거에

의해서 정당화되었을 것이므로, 매개적일 것이다. 그렇다면, 위 논변은 건전

하고, 그 결론은 참일 것이다.

그럼, 두 가지 시도가 가능하다. 첫째, 당신은 위 논변의 전제들 가운데서,

이미 제시한 옹호에도 불구하고, 틀린 것들을 찾아내려고 시도할 수 있다.

P1이나 P3는 논란의 여지가 전무하지만, 다른 전제들, 예를 들어 P5에는 공

략할 틈이 없지 않다. 앞에서 우리는 B2가 ‘비매개적이고 파기가능한 방식

으로 정당화된 믿음’일 수 있는 가능성을 논하면서 X의 믿음의 정당화를 위

해서 Y의 믿음이 이미 정당화되었어야 했더라도, 이것이 X에 대한 믿음이

매개적이라는 주장을 함축한다고 꼭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고려하였다. 이것은 분명히 한 가지 가능한 접근이다. 하지만, 이

논문의 목적은 비정밀 신념도 이론틀의 장점을 논하는데 있으므로, 여기서

그 접근의 장단점을 자세히 논하지는 않을 것이다.

둘째, 당신은 정밀 확률주의가 아닌 다른 형태의 확률주의가 존재하며, 그

것은 독단주의와 양립가능하다는 사실을 지적할 수 있다.10) 여기서 우리는

10) 사실 이 전략 말고, 앞의 주석에서 설명한 독단주의를 거부하고 순진주의를 받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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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밀 확률주의1) 123

정밀 확률주의의 대안으로 비정밀 확률주의에 주목하고자 한다. 특히, 2절

에서 논의된 수정된 비정밀 조건화 규칙을 통해 믿음을 갱신하는 경우 확률

주의는 독단주의와 양립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자 한다. 2절에서 언급

한 수정된 비정밀 조건화는 다음 식을 이용해 믿음을 갱신하는 것이다:

PE(X)={p(X|E)|p∈U(P,E)}.

결국 이 수정된 비정밀 조건화는 다음 두 단계를 거쳐 작동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단계1: 현재의 증거 E를 놓고 볼 때 부적합한 p(∈P)를 제거한다.

단계2: 나머지 확률함수들, 즉 p(∈U(P,E))로부터 E를 가지고 조건화를

실시한다.

이 모형을 제안한 웨더슨(Weatherson 2007)을 쫒아, 위의 형태의 비정밀

확률주의를 ‘역동적 케인즈주의(dynamic Keynesianism)’라고 부르자.

정밀 확률주의와 역동적 케인즈주의의 차이는 어디에 있을까? 예를 들어

생각해보자. 가령, P(X)={0.2}라고 하자. 즉 P의 모든 원소들이 X에 0.2를

할당한다. P의 원소들 중에는 다음 확률 함수들 p1, p2, p3가 있다고 해보자.

(여기서 ‘X|E’아래에 있는 수는 각 확률함수에 의해서 할당된 조건부 확률

의 값을 나타낸다.)

X&E X&∼E ∼X&E ∼X&∼E X|E E⊃Xp1 0.1 0.1 0.05 0.75 0.67 0.95p2 0.05 0.15 0.01 0.79 0.83 0.99p3 0.1 0.1 0.75 0.05 0.12 0.25

이는 전략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순진주의를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독단주의와 비슷한 방식으로 정밀 확률주의와의 충돌을 논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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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 박 일 호⋅정 재 민⋅김 남 중

그럼 증거 E를 획득하였다고 하자. 그럼 단계1을 통해서 증거 E를 고려하

여, P의 원소들 중 부적합한 확률 함수들이 제거된다. 그 결과, p3이 제거되

었다고 하자. 그럼 p3는 U(P,E)의 원소가 아니지만 p1과 p2는 U(P,E)의 원소

가 된다. 이제 단계 2를 통해서 U(P,E)의 각 원소들을 E를 가지고 조건화한

다. 그런 경우 PE(X)는 특정 실수들의 집합이 될 것이며, 그 집합의 각 원소

들은 X의 사전 신념도, 즉 0.2보다 큰 실수로 이루어져 있을 것이다. 이에

X에 대한 신념도가 증가하였기 때문에 X는 정당화되었다고 말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런 정당화를 위해서 P(E⊃X)가 비교적 큰 실수로 이루어진

집합이어야 한다는 것, 즉 E⊃X가 이미 정당화 되어야 한다는 것이 성립하

지 않는다. 왜냐하면 위 표의 p3가 보여주듯이 P(E⊃X)의 원소 중에는 비교

적 작은 값인 0.25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역동적 케인즈주의에서는 P4와 유사한 주장들, 가령 다음과 같은

주장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P4’. 모든 X, E에 대해서, 만일 E에 대해 수정된 비정밀 조건화가 실시되

고 p∈U(P,E)⊂P인 모든 p에 대해서 p(X|E)<p(E⊃X)였다면, X에

대한 믿음이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E⊃X에 대한 믿음이 먼저 정당화

되었어야 했다.

왜냐하면, p∈U(P,E)⊂P인 모든 p에 대해서 p(X|E)<p(E⊃X)였다고 하

더라도, 모든 p∈P에 대해서 p(X|E)<p(E⊃X)일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따

라서, 역동적 케인즈주의는 독단주의와 양립가능하다. 이것은, 독단주의가

전통 인식론에서 그럴 듯한 이론으로 여겨지는 한, 비정밀 확률주의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는 역동적 케인즈주의 역시 매력적인 이론이라는 것을 뜻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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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확률주의의 새로운 경향과 비정밀 확률주의: 정확성 기반 확률주의

제임스 조이스(Joyce 1998)의 선도적인 작업을 통해 많은 철학자들이 관

심을 가지게 된 ‘정확성 기반 확률주의(accuracy-based probabilism)’는

2010년대에 접어들어 상당한 양의 연구 성과들을 만들어내고 있으며, 현재

도 여러 신진 연구자들이 참여하고 있는 확률주의의 첨단 분야라고 할 수 있

다. 이 정확성 기반 확률주의의 기본 아이디어는 ‘정확성(accuracy)’이라는

인식적 가치를 이용해서 우리의 신념도의 인식적 효용을 측정하고, 그 효용

을 이용한 의사 결정을 통해 확률주의를 옹호하는 것이다. 인식적 효용을 이

용한다는 의미에서 이런 연구 프로그램은 ‘인식적 결정 이론(Epistemic

Decision Theory 혹은 Cognitive Decision Theory)’라고 불린다. 이 절에서

우리는 이 정확성 기반 확률주의가 비정밀 확률주의에 대해서 어떤 입장을

취할 수 있는지 살펴 볼 것이다.

많은 인식적 결정 이론가들은 믿음 상태가 지니는 다양한 인식적 가치 중

에서 특히 정확성을 중요하게 고려한다. 어떤 가능 세계에서 어떤 믿음 상태

가 얼마나 정확한지는 그 믿음 상태가 그 가능 세계에 얼마나 가까운 지에

따라 결정된다. 가령, “보고타에 비가 온다.”라는 명제 R에 대해 수정과 혜원

이 각각 0.8과 0.5의 신념도를 지닌다고 가정해 보자. 만약 실제로 보고타에

비가 온다면 실제 세계에서 수정의 믿음은 혜원의 믿음보다 더 정확할 것이

다. 반면 만약 비가 오지 않는다면 실제 세계에서 혜원의 믿음이 수정의 믿음

보다 더 정확할 것이다. 정보성, 설명력 등 다양한 인식적 가치 중 정확성이

가장 근본적인 인식적 가치라고 보는 입장을 ‘정확성 제일주의’라고 한다. 정

확성 제일주의에 따르면 인식적 합리성은 오직 정확성에만 의존한다.

이런 정확성 제일주의와 비정밀 확률주의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 만약 정

확성만 반영된 인식적 효용을 이용해 의사 결정하는 경우, 우리는 비정밀 확

률주의를 택해야 하는가, 아니면 정밀 확률주의를 택해야 하는가? 이에 대해

서 제이슨 코넥 (Konek, forthcoming), 벤자민 레빈스타인 (Levinstein, ms)

과 같은 몇몇 철학자들은 비정밀 확률주의를 택해야 한다고 논증한다.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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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박 일 호⋅정 재 민⋅김 남 중

이들의 논증은 성공적인가?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 코넥의 논증을 살펴보자.

코넥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표준적인 방식으로 이해된 비정밀 신념도다.

여기서 표준적인 방식이란 위 1절에서 설명된 비정밀 확률주의를 말한다.

그는 행위자가 충분한 증거를 지니지 못한 상황에서는 비정밀 신념도를 지

니는 것이 정밀 신념도를 지니는 것보다 더 정확하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

을 이해하기 위해, 정확성에도 서로 다른 인식적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이해

할 필요가 있다. 가령 윌리엄 제임스(James, 1987)가 지적하듯이, 정확성과

관련해서도 ‘참인 것을 믿으며 진리를 추구하는 것’과 ‘거짓인 것을 믿지 않

으며 실수를 피하는 것’은 서로 다른 인식적 가치를 나타낸다. 가령, 행위자

A는 모든 명제를 믿고, 행위자 B는 어떠한 명제도 믿지 않는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A의 믿음 상태는 ‘진리를 추구하는 것’과 관련해 B의 믿음

상태보다 더 큰 인식적 가치를 지닐 것이다. 왜냐하면 A는 거짓된 것도 믿

지만 참인 것도 믿는 반면 B는 어떠한 참된 것도 믿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

나 A의 믿음 상태는 ‘실수를 피하는 것’과 관련해서는 B의 믿음 상태보다

작은 인식적 가치를 지니게 된다. 왜냐하면 A는 거짓된 것을 믿으며 실수를

범하고 있지만, B는 어떠한 것도 믿지 않으며 실수를 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정확성에도 서로 다른 인식적 가치들이 있을 수 있으며, 그 인식

적 가치들의 경중을 매기는 방식에 따라 믿음 상태의 정확성을 측정하는 다

양한 방식들이 있을 수 있다. 코넥은 이러한 점을 착안하여, 특정 세계 w에

서 신념 집합 P가 가지는 부정확도(inaccuarcy), I(P,w)를 다음과 같은 방식

으로 측정한다:

코넥 함수. I(P,w) = α⋅minx∈PB(x,w) + (1-α)⋅maxx∈PB(x,w)

여기서 B(x,w)는 특정 세계 w에서 확률 함수 x(∈P)가 가지는 부정확도

를 나타내는 함수이다. 그리고 α는 0에서 1 사이의 임의의 실수이다. 앞으

로 위 측정 함수의 값을 코넥 부정확도라고 부르자.

이 코넥 정확도 측정 함수와 관련해 세 가지 점에 주목해야 한다. 첫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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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밀 확률주의1) 127

코넥 정확도 함수는 세계 w에서 비정밀 신념도가 가지는 정확도에 항상 정

밀한 값을 부여한다. 정밀 신념도는 정밀한 정확도를 갖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러나 비정밀 신념도가 정밀한 정확도를 가진다는 것은 부자연스

러워 보일 수 있다. 왜냐하면 정확도 측정 대상이 되는 믿음 상태가 비정밀

하기 때문이다. 둘째, 코넥 함수는 ‘minx∈PB(x,w)’ 항을 통해 실수를 피하는

것의 가치를 반영하고, ‘maxx∈PB(x,w)’ 항을 통해 진리를 추구하는 것의 가

치를 반영한다. 왜 그러한가? 이를 보이기 위해, 가령 minx∈PB(x,w)<minx’∈

P’B(x’,w)라고 해 보자. 그렇다면 P는 P’의 어떠한 신념도 함수보다 정확한

확률 함수를 포함하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 P의 원소들인 확률 함수들이 w

에서 지니는 부정확도의 최솟값이 P’의 원소들인 확률 함수들이 w에서 지

니는 부정확도의 최솟값보다 작기 때문이다. 코넥에 따라, 실수를 피하는 것

을 보다 정확한 신념도 함수를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P는 P’보다 실

수를 피하는 것에 있어서 더 큰 가치를 지닌다. 비슷한 방식으로 ‘maxx∈

PB(x,w)’가 진리를 추구하는 것의 가치는 반영하고 있다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셋째, 코넥 함수에서 α의 값에 따라 ‘실수를 피하는 것의 가치’와 ‘진

리를 추구하는 것의 가치’들의 가중치가 결정된다. 즉 α이 1에 가까울수록

실수를 피하는 것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고, α이 0에 가까울수록 진

리를 추구하는 것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된다.

이렇게 신념 집합의 부정확도 측정 함수를 제시한 코넥은 의사결정 이론

을 이용해서 비정밀 확률주의를 옹호하는 논변을 제시한다. 그의 결론은, 다

음이 성립한다면 정밀 신념도가 아니라 비정밀 신념도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1) 실수를 피하는 것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하는, 즉 α>1/2인 코넥 함수

를 이용해 부정확도를 측정한다;

(2) 최악의 인식적 결과를 피하도록 만드는 의사결정 규칙을 이용해 우리

의 신념도를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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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 박 일 호⋅정 재 민⋅김 남 중

우리는 (2)에서 말하는 의사결정 규칙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설명하지 않

았다. 하지만 앞으로의 논의를 위해서는 그 세부 사항을 설명할 필요는 없

다. 그럼 이런 정확성 제일주의에 기반을 둔 코넥의 논증은 성공적일까?

그러나, 레빈스타인(Levinstein, ms)이 지적하듯, 인식적 상황에 따라 α값

이 적절하게 변하지 않는 한 코넥의 논증은 성공적이지 않다. 이 점을 보이

기 위해 다음 두 상황을 고려해 보자.

상황1: 지우에게는 동전이 하나 있다. 지우는 그 동전을 던졌을 때 앞면

이 나올 경향도(chance)가 1/2이라는 것을 안다.

상황2: 지우에게는 동전이 하나 있다. 지우는 그 동전을 던졌을 때 앞면

이 나올 경향도(chance)가 1/10에서 9/10 사이라는 것을 안다.

상황1에서 지우가 정밀 신념도, 특히 1/2라는 신념도를 가지는 것은 자연

스러워 보인다. 반면 상황2 속 지우는 [1/10,9/10]라는 신념도를 가지는 것,

즉 비정밀 신념도를 가지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적어도 이 상황에서

지우가 그런 신념도를 가지는 것이 허용될 수 있는 것 같다.) 이와 관련해

코넥은 상황2의 지우는 비정밀 신념도를 지녀야만 한고 주장할 것이다. 특

히, (1)과 (2)가 성립할 때, 상황2에서 그 동전이 앞면이 나올 것이라는 것에

대해 비정밀 신념도를 지녀야 한다는 것이 증명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2)를 가정한 상황에서) 코넥 함수의 α값이 (인식적)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변하지 않는다면, 상황1에서도 지우는 비정밀 신념도를 지녀야 한다는 결론

이 따라 나온다는 것이다. 즉 여전히 α가 1/2보다 크고 (2)를 가정한다면,

상황1에서도 그 동전이 앞면이 나올 것이라는 것에 대해 비정밀 신념도를

지니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것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분명 받아들이

기 힘든 결론이다. 이러한 결과를 피하기 위해서는 (인식적) 상황에 따라 α

값이 적절하게 변하거나 (2)가 성립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위 문제를 해

결하려는 목적만으로 이렇게 결론짓는 것은 만족스러운 해결책이 아니다.

한편, 미리암 쉔필드(Miriam Schoenfield, 2015)는 정확성 제일주의에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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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밀 확률주의1) 129

반을 두고 비정밀 신념도 정당화하려는 시도에 대해 심각한 문제를 제기한

다. 그녀는 표준적인 방식으로 이해된 비정밀 신념도의 정확성을 어떠한 적

절한 방식으로 측정하든, 정확성 제일주의를 가정하면 비정밀 확률주의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녀의 논증 얼개는 다음과 같다.

정확성 제일주의의 비정밀 신념도 비판

P1. 비정밀 신념도의 정확성은 정밀한 값을 가지거나 비정밀한 값을 가

진다.

P2. 그 측정 방식이 무엇이든, 비정밀 신념도의 정확성이 정밀한 값을 가

진다면 최소한 해당 비정밀 신념도만큼 정확한 정밀 신념도가 있다.

P3. 그 측정 방식이 무엇이든, 비정밀 신념도의 정확성이 비정밀한 값을

가진다면 최소한 해당 비정밀 신념도만큼 정확한 정밀 신념도가 있다.

C. 따라서, 정확성 제일주의를 받아들인다면 행위자가 비정밀 신념도를

가져야 할 인식적 이유가 없다.

위 쉔필드의 논변은 그 자체로 강력해 보인다. 하지만 쉔필드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비정밀 신념도는 허용조차 되어선 안 된다고 말한다. 이

를 위해서 쉔필드는 위 P3의 역을 증명한다. 즉 그녀는 다음을 증명한다:

P3’. 그 측정 방식이 무엇이든, 정밀 신념도의 정확성이 비정밀한 값을 가

진다면 최소한 해당 정밀 신념도만큼 정확한 비정밀 신념도가 있다.

그리고 이 결과는 받아들일 수 없는 힘든 결과를 야기한다. 상황1을 다시

생각해보자. P3’에 따르면, 상황1에서 주어진 정밀 신념도의 정확성이 어떠

한 것이든, 정밀 신념도만큼 정확한 비정밀한 신념도가 있다. 따라서 정확성

제일주의를 가정했을 때, 상황1의 지우가 정밀 신념도를 지녀야만 할 인식

적 이유가 없게 된다. 하지만 이는 받아들이기 힘들다. 주요 원리와 같은 표

준적인 확률 추론 방법을 염두에 둘 때, 지우의 신념도가 1/2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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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 박 일 호⋅정 재 민⋅김 남 중

는 것은 무척 자연스럽다. 결국, 쉔필드의 논증에 따르면, 정확성 제일주의

에 기반을 두고 비정밀 신념도를 정당화하는 것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비정밀 신념도의 정확성을 비정밀한 방식으로 측정할 경우 비정밀 신념도

가 허용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그럼, 비정밀 확률주의를 정확성 제일주의

를 통해 옹호하려는 시도는 단념해야 하는가? 아직 한 가지 길이 더 있다.

벤자민 레빈스타인(Benjamin Levinstein, ms)은 비정밀 신념도를 표준적

인 모형과 다른 비표준적인 방식으로 이해한다면 정확성 제일주의 하에서

비정밀 신념도가 허용될 수는 있다고 주장한다. 그가 말하는 비정밀 신념도

에 대한 비표준적인 모형은 무엇인가? 간단히 말해 그것은 비정밀 신념도를

비결정적 신념도로 이해하는 것이다. 가령, 행위자의 신념 상태를 P라고 했

을 때, 비정밀 신념도에 대한 표준적인 모형에 따르면 P={p1,⋯,pn}이다.

(각각의 pi는 확률 함수를 나타낸다.) 반면 레빈스타인이 염두에 두는 비정

밀 신념도에 대한 비표준적인 모형에 따르면, 우리의 신념 상태는 ‘P∈

{p1,⋯,pn}이지만, P가 무엇인지는 결정되어있지 않은 것’으로 표상된다.

그리고 레빈스타인은 이런 비표준적 비정밀 신념도 모형을 통해 정확성 제

일주의 하에서도 비정밀 신념도가 허용된다는 것을 논증한다.

레빈스타인의 논증은 성공적인가? 이에 대해서 몇 가지 검토해보아야 할

것이다. 우선 그의 비표준적 비정밀 신념도 모형의 이론적 가치와 기존 철

학 이론과의 조화 가능성 등을 검토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 레빈스타

인의 논증과 소위 ‘허용주의(permissivism)’ 사이의 관계는 주목할 만하다.

레빈스타인 논증에서 핵심적 가정 중에 하나는 ‘엄격 적절성 조건(strict

propriety condition)’이라 불리는 것이다. 대략적으로 말해, 이 조건은 ‘합리

적 행위자라면 자신의 현재의 믿음이 가장 정확하다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

이다. 하지만 우리가 정확성 제일주의를 택하게 되면, 이 조건은 ‘나에겐 여

러 믿음 상태가 허용될 수 있다’는 허용주의의 한 주장과 충돌하게 된다.11)

11) 허용주의는 여러 방식으로 나뉠 수 있다. 가령, 동일한 증거 상황에 있는 모든 행위자에게 허용되는 믿음 상태는 동일하지만 각 행위자가 가질 수 있는 믿음 상태는여럿일 수 있다는 입장, 동일한 증거 상황에 있는 모든 행위자에게 허용되는 믿음상태는 동일하지 않을 수 있고 각 행위자가 가질 수 있는 믿음 상태도 여럿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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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위 레빈스타인의 논증은 위와 같은 입장을 가진 허용주의자들에게

는 설득력이 없을 것이다.

지금껏 정리한 논의들에 비추어 볼 때, 정확성 기반 확률주의, 혹은 정확성

제일주의와 비정밀 확률주의는 다소 긴장 관계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정확

성 제일주의자들은 표준적 비정밀 확률주의는 옹호될 수 없다는 것을 지속적

으로 논증해오고 있으며, 만약 그것이 가능하려면 표준적 비정밀 확률주의

모형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주장한다. 아마도 바로 이곳에 대안이 있을

수도 있다. 비표준적인 비정밀 확률모형을 이용한 레빈스타인의 논증은 아마

도 출발점일 것이며, 우리에겐 아직 가지 않은 길이 충분히 남아 있다.

6. 나가며

지금껏 우리는 비정밀 확률주의라는 확률주의의 새로운 흐름의 주요 주

장들을 분석하고 소개하였다. 1장에서는 비정밀 확률주의 출현 배경과 형식

적인 측면을 주로 다루었다면, 2장과 3장에서는 비정밀 확률주의의 주요 구

성요소들에 대해서 최근 제기된 문제들을 다루었다. 우리는 이를 비정밀 확

률주의의 내적 문제라고 불렀다. 더불어 4장과 5장은 비정밀 확률주의가 여

러 인식론적 문제를 어떻게 보완하는지, 혹은 어떻게 긴장하는지를 설명하

였다. 우리는 이를 비정밀 확률주의의 확장이라고 불렀다. 각 분석과 설명을

통해 향후 해당 주제들에 대한 철학적 논의가 어떻게 진행될 수 있는지도

덧붙였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 논문은 일종의 종설 논문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비정밀 확률주의를 개괄적으로 소개하는 몇몇 논문이 영문으로 출판되었다.

하지만 본 논문은 그러한 논문들과 몇 가지 점에서 다르다. 아마도 가장 눈

에 띄는 차이점은 비정밀 확률주의가 국문으로 소개되었다는 점일 것이다.

있다는 입장, 동일한 증거 상황에서 모든 행위자가 동일한 믿음 상태를 가질 필요는없지만 각 행위자가 가질 수 있는 믿음 상태는 하나라는 입장이 있다. 이에 대한 자세한 구분 은 Meacham (2014), Jung (ms)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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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 박 일 호⋅정 재 민⋅김 남 중

하지만 이런 형식적인 차이점 이외에도, 기존 종설 논문에서 다루지 않았던

내용들이 추가되었다는 점, 더불어 보다 세부적으로 논증을 소개하고 나름

의 방식으로 해당 논증의 향후 발전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 등 내용적

인 차이점도 있다. 우리는 본 논문을 통해서 확률 철학에 대한 국내 연구자

들의 관심이 더 다양해지고 활발해지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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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호

전북대학교 철학과

Email: [email protected]

정재민

원광대학교 철학과

Email: [email protected]

김남중

경상대학교 철학과

Email: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