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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옥 * Ⅰ 서론. Ⅱ 법(dharma)에 대한 관념들. Ⅲ 법과 법성의 구분. Ⅳ 법과 법성의 . Ⅴ 결론. 요약문 [주요어: ] * 동국대학교 다르마칼리지 조교수. [email protected] 인도불교에서 그 어떤 용어도 다르마(dharma)만큼 집중적으로 연구된 것이 없다. 하지만, 그만큼 일치하지 않는 것도 없다. 무엇보다 이 용어의 의미는 너무 포괄적이어서 한 가지로 확정하기가 쉽지 않다. 여러 가지 문 헌들 가운데 다양한 맥락 속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불교에서 법의 의미 역 시 붓다의 교설이나 궁극적인 진리, 개별적인 사물이나 현상에 이르기까지 실로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있다. 불교 문헌 가운데 법과 법성을 직접적으로 논의하고 그것을 논서의 제목 으로 삼은 법법성분별론이 있다. 이 논서에서 법의 특징은 소취능취와 소전능전이라는 비존재의 현현, 이른바 허망분별로 정의된다. 반면에 법성 의 특징은 그러한 현현이 사라진 진여로서 정의된다. 법성은 여러 가지 현 상계의 법들과 구분되지만, 인식되는 그 대상을 달리하는 것은 아니다. 대 승경전에서 법성이라는 개념은 개개의 사물을 넘어서는 보편적인 관념, 즉 공상(共相)으로서 무상무아 등을 표현하는 데 점차 유력하게 되었던 것 으로 보인다. 법법성분별론에 나타나는 법성의 개념이 중변분별론공성이나 유식삼십송의 원성실성과 동의어로 사용되는 것은 유식학파와 의 깊은 영향 관계를 보여준다. 법과 윤회, 법성과 열반을 연결 짓는 논리 중론의 구도와 일치한다는 점에서는 중관 논서와의 영향 관계도 간과 할 수 없다. 법과 법성을 분별하는 이 논서의 궁극적 의도가 법과 법성의 구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양자의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음으로 귀결된다는 것 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더불어 법법성분별론의 교학적 위상은 중관과 유 식의 영향 관계를 모두 고려할 때, 보다 온전하게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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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ttp://doi.org/10.32761/kjip.2020..58.003 인도철학 제58집(2020.04), 67~95쪽

    법법성분별론의 법(dharma)과 법성(dharmatā)김성옥*1)

    Ⅰ 서론. Ⅱ 법(dharma)에 대한 관념들. Ⅲ 법과 법성의 구분. Ⅳ 법과 법성의 不一不異. Ⅴ 결론.

    요약문 [주요어: 법, 법성, 진여, 법법성분별론, 중관, 유식]

    * 동국대학교 다르마칼리지 조교수. [email protected]

    인도불교에서 그 어떤 용어도 다르마(dharma)만큼 집중적으로 연구된 것이 없다. 하지만, 그만큼 일치하지 않는 것도 없다. 무엇보다 이 용어의 의미는 너무 포괄적이어서 한 가지로 확정하기가 쉽지 않다. 여러 가지 문헌들 가운데 다양한 맥락 속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불교에서 법의 의미 역시 붓다의 교설이나 궁극적인 진리, 개별적인 사물이나 현상에 이르기까지 실로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있다.

    불교 문헌 가운데 법과 법성을 직접적으로 논의하고 그것을 논서의 제목으로 삼은 법법성분별론이 있다. 이 논서에서 법의 특징은 소취‧능취와 소전‧능전이라는 비존재의 현현, 이른바 허망분별로 정의된다. 반면에 법성의 특징은 그러한 현현이 사라진 진여로서 정의된다. 법성은 여러 가지 현상계의 법들과 구분되지만, 인식되는 그 대상을 달리하는 것은 아니다. 대승경전에서 법성이라는 개념은 개개의 사물을 넘어서는 보편적인 관념, 즉 공상(共相)으로서 무상‧고‧무아 등을 표현하는 데 점차 유력하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법법성분별론에 나타나는 법성의 개념이 중변분별론의 공성이나 유식삼십송의 원성실성과 동의어로 사용되는 것은 유식학파와의 깊은 영향 관계를 보여준다. 법과 윤회, 법성과 열반을 연결 짓는 논리가 중론의 구도와 일치한다는 점에서는 중관 논서와의 영향 관계도 간과할 수 없다.

    법과 법성을 분별하는 이 논서의 궁극적 의도가 법과 법성의 구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양자의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음으로 귀결된다는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더불어 법법성분별론의 교학적 위상은 중관과 유식의 영향 관계를 모두 고려할 때, 보다 온전하게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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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Ⅰ. 서론

    불교사상을 논의하는 가운데 ‘법(法)’이라는 용어만큼 자주 등장하는 것이 없다. ‘법’으로 한역된 담마(dhamma) 혹은 다르마(dharma)1)는 사실 고대 인도에서부터 이미 ‘질서’, ‘원칙’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동시에 ‘속성’, ‘특질’, ‘본성’, ‘구성요소’, ‘교설’ 등의 다양한 의미를 갖는다. 불교에서 법의 의미 역시 붓다의 교설이나 궁극적인 진리, 개별적인 사물이나 현상에 이르기까지 실로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있다. 법은 불교의 가장 핵심적인 개념이며, 무엇이 법의 본성인가를 탐구해왔던 것이 불교학의 역사이기도 하다. 불교 문헌 가운데 법과 법성을 직접적으로 논의하고 그것을 논

    서의 제목으로 삼은 법법성분별론2)이 있다. 이 논서는 미륵의 저술로 간주되는데, 미륵이 게송으로 읊은 것에 무착이 논을 지은 것으로 보기도 한다. 세친의 주석이 남아 있는 점을 고려한다면, 미륵-무착-세친으로 이어지는 초기 유식사상의 체계 위에서 법과 법성에 관한 논의가 전개되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3)

    1) 팔리어 담마(dhamma)와 산스크리트어 다르마(dharma)는 이 논문에서 인용문헌에 따라 법과 함께 혼용하여 사용될 것이다.

    2) 법법성분별론의 산스크리트어 이름은 Dharmadharmatāvibhaṅga, 티벳어 이름은 Chos dang chos nyid rnam par 'byed pa이다. 산스크리트 단간이 일부 발견되었고, 한역은 없으며, 티벳역이 세친의 주석과 함께 남아 있다. 티벳본에 대한 교정본이 1955년 J. Nozawa에 의해 발표되었는데, 본 논문에서 제시되는 미륵과 세친의 인용문은 그의 교정본을 따랐음을 밝힌다.

    3) 법법성분별론의 저술 연대가 상당히 후대에 속한다는 주장이 袴谷憲昭, 勝呂信静, 松田和信 등에 의해 제시되었다. 이 논서가 이미 완성된 유식사상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법법성분별론의 작자는 여러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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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법과 법성은 어떤 점에서 구분되는가. 대체로 법은 phenomena로 번역하고, 법성은 pure being 혹은 intrinsic na-ture로 번역하는 경향이 있다.4) 이러한 이해는 현상적 존재들과 그것에 내재하는 순수한 본질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를 보여준다. 법법성분별론자체가 법과 법성을 대립적으로 배치하고 있는 이상, 이러한 구도가 이상스러울 것은 없다. 하지만 법이라는 용어 자체에 이미 원칙‧본성이라는 의미가 포함되는데, 법성이라는 개념을 따로 구분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본 논문에서는 먼저 법에 대한

    관념들을 검토하고, 법성의 개념이 등장하는 맥락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무엇보다도 법과 법성을 구분하는 방식에 주목할 것이며, 이 두 가지가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다는 논리적 귀결은 어떻게

    도출되는지 검토할 것이다. 여타의 문헌 비교를 통해 초기 유식문헌은 물론 중관 논서와의 영향관계도 주목하고자 한다. 이러한 작업은 법법성분별론의 교학적 위상을 보다 깊이 있게 살펴보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경전의 설명을 취합하여, 법과 법성이라는 관점에 따라 일종의 강요서를 저술하고, 미륵-무착-세친의 전승에 가탁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 논서의 저술 연대는 티벳에서 미륵의 5법에 관한 전승이 성립했던 것과 그다지 멀리 떨어지지 않은 시대일 것이다.

    4) 법법성분별론에 대한 티벳 승려 Mi pham(1846-1912)의 주석을 영역하는 가운데, Scott은 Maitreya's Distinguishing Phenomena and Pure Being with commentary by Mipham으로 번역하고 있다. 또한 Dharmachakra 번역팀은 Distinguishing Phenomena from Their Intrinsic Nature로 번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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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Ⅱ. 법(dharma)에 대한 관념들

    ‘법’으로 한역되는 담마 혹은 다르마는 고대 인도에서부터 사용되었다. 가장 오래된 문헌들에서 이 용어는 이미 질서‧원칙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자연의 질서가 신의 의도나 우주의 원칙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되는 경우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 의미는 경우에 따라 속성, 본질, 요소, 현상, 실재, 진리 등으로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인도불교에서 이 용어만큼 집중적으로 연구된 것이 없지만, 그만큼 일치되지 않는 것도 없다. 무엇보다도 이 용어의 의미는 너무 포괄적이어서 한 가지로 확정하기가 쉽지

    않다. 인도의 여러 가지 문헌들 가운데 다양한 맥락 속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콕스(Cox)는 “모든 종교적 개념과 마찬가지로, 다르마는 역사적 구성물이고, 그 의미와 기능은 변화하는 요구에 맞추기 위해 끊임없이 재편되고 조정되어 왔다”5)고 지적한다. 우선 초기 베다에서 다르마의 용례에 관한 연구는 이 용어가 제

    의와 관련된 우주론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보여준다. 제의는 우주를 지탱하고 삶을 유지하는 힘과 원칙을 상징했을 것이다. ‘지탱하다’, ‘유지하다’의 의미를 지닌 어근 √dhṛ에서 이 용어가 유래한다는 핼파스(Halbfass)의 주장은 이러한 입장을 뒷받침한다. 동시에 그는 이 용어가 고대로부터 ‘속성’, ‘특질’, ‘본성’, 보다 일반적으로는 ‘구성요소’, ‘교설’의 의미를 지닌다고 설명한다.6)

    5) Cox(2004) p. 543.6) Halbfass(1988:334)에 따르면, 고전적인 힌두철학에서(니야야와

    바이쉐시카에서 가장 분명하다) 다르마의 기능은 가장 넓은 의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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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C 800-400년 중후기 베다시대에 속하는 브라흐마나와 초기 우파니샤드 문헌을 검토한 올리벨르(Olivelle)는 이 용어가 왕을 언급할 때 빈번하게 사용된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에 따르면, 다르마는 왕족과 관련된 전문적 어휘의 한 부분인 것으로 보인다. 왕실에 대한 봉헌과 관련하여 자주 사용되며, 왕이 통치하는 사회적 질서와 법들에 관계되어 사용되기 때문이다. 그 후 다르마는 추상적 개념과 실체, 왕위에 서 있는 우주적 힘을 상징하게 되고, 드물게는 브라만의 삶의 방식에 대한 핵심으로 정의되기도 한다. 여기에서 그는 붓다가 그의 새로운 종교를 자리잡게 하는데 왕의 많은

    상징들을 빌려왔듯이, 다르마라는 개념을 차용해왔다는 가설을 제시한다. 이 용어의 차용은 깨달은 자가 발견한 새로운 제도, 새로운 진리를 정의하는 데 있어서 자연스러운 선택이었을 것이다.7)

    히라카와 아키라(平川彰)는 다르마가 ‘유지하는 것(√dhṛ에서 유래)’에서 비롯한다는 기본적인 입장을 지지한다. 이것으로부터 ‘변하지 않는 것’이라는 의미가 파생하고, 인륜적인 질서를 유지하는 것, 전통적인 관례, 의무, 사회질서, 선이나 덕, 진리 등의 의미로 확장된다고 밝힌다.8) 다르마에 함축된 의미가 정확히 무엇이든 간에, 초기 용법 가운

    데 우주적 질서나 사회적 질서를 유지하고 지탱하는 것으로서의

    어떤 원리, 법칙, 관습의 의미를 지녔던 것은 분명한 듯하다. 그러한 우주적‧사회적 질서를 유지하고 지탱하는 것에 부합하는 것은

    ‘속성(attribute, property)’으로 기능하고 있다. 또한 내부에 있는 어떤 것이나 교설하는 어떤 것, 다르마를 지닌 어떤 것(dharmin)을 특징짓는 데 사용되고 있다.

    7) Olivelle(2004:503-504)에 따르면, 불교에서 왕의 상징을 차용한 사례는 전법륜경이 대표적이다. 여기에서는 붓다의 가르침을 법의 바퀴를 굴리는 것에 비유한다. 바퀴, 전쟁용 마차는 세계를 다스리는 왕의 상징에 해당한다. 새로운 종교의 창시자를 당시에 지나(jina)라고 부르던 것과 달리, 전륜성왕(cakravartin)이라 부른 것도 그러하다.

    8) 平川彰(1994) p.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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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일’ 혹은 ‘선한 일’로 설명하는 윤리적 의미가 생겨난다. 종교적으로는 보편적 의미의 ‘진리’와 동일시하고, 진리를 담고 있는 ‘가르침’이나 ‘경전’을 지칭하기도 한다. 다르마에 대한 해석은 후대에 이르러 집중적인 논의의 대상이

    된다. 무엇이 붓다의 법인가를 판별하고, 그것의 목록을 만드는 일이 전개되었던 것이다. 이에 대하여 브론코스트(Bronkhost)는 아비달마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목록들에서 수집된 항목들이 다르

    마라는 용어로 쓰이기 시작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불교학파들이 전수받은 가르침에 어떤 체계를 부여하기로 결정하였을 때, 수집된 항목들인 다르마는 궁극적인 존재의 상태, 존재하는 모든 것의 구성요소로 승격되었다는 것이다.9) 이른바 아비달마의 시대, 다르마의 의미에 대한 이러한 변화에 대하여 가나쿠라 엔쇼(金倉圓照)는 “불교에서는 현상계의 사물이 모두 생멸의 법칙에 따른다고 생각하였고, 법칙에 의하여 나타나는 것을 법칙을 나타내는 다르마라는 말로 표시하기 시작했던 것”10)이라고 해석한다. ‘제법실상’ 혹은 ‘만법일여’라고 말하는 경우가 그러하다. 다르마의 불교적 의미를 분석한 연구 가운데 주목해야 할 한 가

    지가 있다. 일찍이 가이거(Geiger) 부부는 붓다고사의 주석서에 보이는 담마의 의미를 1)법칙(law), 2)가르침(teaching), 3)진리(truth), 4)사물(thing)로 나누어 분석하고, 마지막 것은 불교문헌의 독특한 용법과 관련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11) ‘사물’의 의미가 불

    9) Bronkhost(2004) p. 732.10) 金倉圓照(1973:168)에 따르면, 설일체유부의 ‘5위75법’은 아비달마 시대의 법

    에 대한 해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된다. 아비달마 시대가 되면, 법은 현상계의 사물을 나타내는 의미로부터, 우리들의 생존과 그 환경세계를 형성하는 요소로서의 의미를 점차 짙게 부각시키게 된다. 그러한 요소로서 법의 수를 가능한 한 한정하고, 그것을 일정한 원리에 의해 조직화했던 것이 아비달마 철학의 중요한 임무 가운데 하나였다.

    11) Geiger, M. & Geiger W.(1920) p. 8; Gethin(2004) p. 514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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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에서 새롭게 첨가된 것이라는 견해는 히라카와 아키라, 가나쿠라 엔쇼 등에 의해서도 지지되었다.12) 이 대목에서 게틴(Gethin)의 해석은 다르마의 의미를 조금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그는 이 용어의 기본적인 의미를 1)붓다의 가르침, 2)선한 행동이나 행위, 3)불교수행으로 체험되는 진리, 4)개별적인 본성이나 속성, 5)붓다가 숙고한 사물들의 본래적인 법칙이나 원칙, 6)정신적‧물질적인 상태나 사물 등 모두 6가지로 분석한 뒤,13) 담마라는 말은 니까야에서 ‘정신적이거나 물질적인 것의 속성’이라는 의미로 꽤 분명하게 사용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복수형태의 그것들은 ‘경험’ 혹은 ‘실재’를 구성하는 것의 의미로 쓰인다. “연기를 보는 자는 법을 보고, 법을 보는 자는 연기를 본다”14)고 말하듯이, 연기에 대한 이해 없이는 법에 대한 이해가 가능하지 않다. 따라서 게틴은 “법에 대한 이해는 상호의존적인 발생의 원리와 법칙을 아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또한 연기적 관계의 조건과 결과들을 바르게 아는 것을 의미한

    다. 그렇다면, 담마는 연기적 관계의 조건과 결과로서 생겨나는 어떤 것 혹은 상태로서 충분히 이해될 수 있다”15)고 말한다.몇몇 학자들의 견해는 불교의 독자적 용법으로 추가된 ‘사물’의

    의미가 결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실체를 의미하지 않는다

    12) 平川彰(1994:66)는 ‘사물’의 의미가 불교에서 새롭게 첨가한 것이라고 설명하는데, 이것에 해당하는 팔리어 nissatta가 단순히 ‘생명이 없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그에 따르면, 붓다가 깨달음을 얻었을 때, 그가 깨달은 것은 열반이지만, 이것은 진리이며 실재이고, 이런 점에서 열반도 ‘사물’의 의미에 포함된다. 金倉圓照(1973: 168) 역시 생멸의 법칙에 따르는 모든 현상계의 사물을 다르마로 표시하기 시작한 것은 불교에서 완전히

    새롭게 첨가한 것이라고 강조한다.13) Gethin(2004) pp. 515-516. 14) MN Ⅰ pp. 190-191: yo paṭiccasamuppādaṁ passati so dhammaṁ passati,

    yo dhammaṁ passati so paṭiccasamuppādaṁ passati.15) Gethin(2004) p. 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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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는 점에서 일치한다. 그것은 연기적 인과관계 속에 놓여 있으며, 경험하는 실재와 관계되는 어떤 것을 의미하고 있다. 예를 들어 명상하는 수행자는 마음속에 생겨났다 사라지는 여러 가지 법들

    을 보게 될 것이다. 생겨난 어떤 것은 지속시키려 할 것이고, 어떤 것은 제거하려 할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마음속에 일어난 정신적‧물질적인 것의 속성을 올바르게 아는 것은 수행자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 된다. 불교도들은 이와 같이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것들을 법이라 부르고,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를 집중적으로 논의했던 것으로 보인다. 연기적 관계의 흐름 속에서 제법을 올바르게 파악하는 것은 불교도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

    였던 것이다.지금까지의 검토에서 법의 의미가 실로 광범위하다는 것을 다

    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불교의 독자적인 용법으로 생겨난 법의 의미는 불교 수행과 관계되는 중요한 의미의 확장이라고 생각한

    다. 이후 법에 대한 관념은 불교도의 주된 관심에 따라 경험하는 세계와 실재를 구성하는 요소, 사물이나 존재의 의미 등으로 강조점을 달리했던 것으로 보인다. 실로 불교학의 역사는 법에 대한 해석의 역사라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법이 지닌 다양한 의미 가운데, 법법성분별론의 법은 어떤 의미에 비교적 가까운 것일까. 법이라는 개념 속에 이미 원칙‧본성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이상, ‘법성’이라는 개념을 따로 구분하여 제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제 그 문제를 살펴볼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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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Ⅲ. 법과 법성의 구분

    붓다의 사후에는 그의 가르침을 수집하여 분류하고, 간단한 술어로 정리하거나 자세하게 해석하는 작업이 이뤄진다. 교법을 분석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분별(分別, vibhaṅga)’이라고 한다. 법법성분별론, 이 논서의 제목에 보이는 분별에도 마찬가지의 의미가 있다. 즉 법과 법성이라는 술어를 통해 붓다의 교설을 분석하고자 함이다. 그것을 직접적으로 논서의 제목으로 삼았다는 것에 법법성분별론의 독특함이 있다. 법성(法性, dharmatā)이라는 말은 법을 의미하는 dharma에 추

    상적 관념이나 본질을 나타내는 접미사 tā가 덧붙여진 형태이다. 이 개념에 대하여, 스구로 신죠(勝呂信静)는 대승사상의 출현과 함께 빈번하게 사용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사실 법성은 대승불교 이전부터 사용되었던 용어이고, 진리‧규범이라고 하는 이 용어의 의미도 법과 다르지 않아서, 의미상 양자의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그러나 대승경전에서는 ‘제법의 법성(dharmānām dharmatā)’이라는 용례도 나타나기 때문에 양자를 구분하고자 했던 사상이 대승에서 점차 유력하게 되었던 것이 사

    실일 것이다. 따라서 그는 “대승불교에서는 종전에 불교에서 사용되던 법의 관념을 넘어서는 의미가 있다고 이해했던 것이리라. 이 점에서 법성의 관념은 대승불교의 특징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보

    는 것이 타당하다”16)는 자신의 견해를 피력한다. 이러한 특징을 보여주는 대승불교의 대표적인 사례는 유식삼

    16) 勝呂信静(1975) p. 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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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송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여기에서는 법성이라는 용어가 일체법의 승의로서, 진여(tathatā), 유식성(vijñaptimātratā)과 동일한 의미로 언급된다.17) 허망분별의 제법과 달리, 완전하게 성취된 원성실성의 동의어로 법성을 사용하는 것이다. 법법성분별론저술의 시대적 배경에는 이와 같은 대승경전, 특히 유식학파의 입장에서 법성의 개념을 법과 구분하여 설명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던 것을

    말해주고 있다.18) 그렇다면 법법성분별론에서는 법과 법성을 어떻게 구분하는

    가. 본격적인 서술에 앞서 이 논서의 서두에는 다음과 같은 귀경게가 제시된다.

    어떤 것은 인식하고 나서 제거되어야 하고, 어떤 것은 현증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그것들을 특징(mtshan nyid)의 측면에서 분별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이 논서를 짓는다.19)

    위에 제시된 미륵의 귀경게는 법법성분별론의 전체적인 구도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제거되어야 할 어떤 것과 현증되어야 할 어떤 것, 그것의 특징을 분별하기 위하여 이 논서가 저술된다는 것이다. 미륵은 ‘제거되어야 할 것’과 ‘현증되어야 할 것’에 대하여 더 이상의 설명을 남겨놓지 않았지만, 세친은 ‘잡염으로서 특징

    17) 유식삼십송에서 법성이라는 용어는 삼성설 가운데 원성실성을 설명하는 22송에서 처음 등장한다. 승의무자성을 설명하는 25송에서는 진여와 유식성의 동의어로 간주되고 있다.

    18) 유식과 법성의 연관관계에 대한 연구는 勝呂信静의 「唯識と法性」, 袴谷憲昭의 「唯識說における法と法性」, 北野新太郎의 「唯識思想におけるdharmaとdharmatāについて」 등이 있다.

    19) DDV 11, 5-6: gang phyir shes nas 'ga' zhig spang bya zhing/ gzhan dag 'ga' zhig mngon sum bya ba'i phyi/ des na de dag mtshan nyid las rnam dbye/ byed par 'dod nas bstan bcos 'di mdzad do/

  • 법법성분별론의 법(dharma)과 법성(dharmatā) ∙ 77

    지워지는 법’과 ‘청정으로서 특징 지워지며, 전의(轉依)에 의해 특징 지워지는 법성’을 주제로 한 것이라고 주석한다.20) 모든 법은 잡염을 특징으로 하며, 법성은 청정을 특징으로 한다. 이러한 법의 특징이 사라져 법성의 상태로 변화하는 것이 전의이며, 이것을 통해 법성은 성취될 것이다. 이 때 세친은 ‘그것들을 특징(mtshan nyid)의 측면에서 분별한

    다’는 것은 대상영역(yul)이 구별되는 측면에서 말한 것이 아니라고 덧붙인다.21) 이 말의 의미를 면밀히 살펴본다면, 이후에 전개될 법과 법성의 분별은 대상의 측면을 나누고 분석하는 존재론적

    관점이 아니라, 그것의 특징에 대한 분석을 통해 전개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법과 법성은 그 특징이 다른 것이지, 그 인식영역이 다른 것은 아니다.

    법법성분별론에 따르면, 일체법은 법과 법성에 의하여 모두 포섭된다. 붓다의 교설인 온(蘊)‧처(處)‧계(界) 일체의 모든 것을 법과 법성이라는 술어를 통해 설명하겠다는 의미이다. 초기경전에 등장하는 오온설의 경우, 자아라는 존재를 색‧수‧상‧행‧식의 5가지 법으로 환원하고, 이것에 근거하여 자아의 실체가 없음을 주장한 것이 된다. 십이처‧십팔계의 경우도 일체법을 여러 가지 법으로 환원하고, 그것들의 실체가 없음을 주장한 것이 된다. 자아의 실체 없음이나 일체법의 실체 없음은 곧 법성의 특징으로 설명될 수 있

    다. 그런데 여기에서 미륵은 다음과 같은 진술을 남겨놓고 있다.

    【미륵】 법에 의하여 암시된 것은 윤회이고, 법성에 의하여 암시된 것은 삼승의 열반이다.22)

    20) DDVv 20, 3-5: rim pa ji lta ba bzhin du kun nas nyon mongs pa'i mtshan nyid kyi chos dang/ rnam par byang ba'i mtshan nyid kyi gnas yongs su gyur pas rab tu phye ba'i chos nyid kyi dbang du byas te gsungs pa'o/

    21) DDVv 20, 5-6: de dag mtshan nyid kyi sgo nas rnam par dbye zhes bya ba ni yul tha dad pa'i sgo nas ni ma yin no zhes bya ba'i don to/

  • 78 ∙ 印度哲學 제58집

    귀경게에서 말한 ‘제거되어야 할 것’과 ‘현증되어야 할 것’은 세친의 주석에 의하여 ‘잡염’과 ‘청정’, ‘법’과 ‘법성’으로 각각 설명되었다. 그런데 무엇을 매개로 하여 법과 법성은 ‘윤회’와 ‘열반’을 암시하는 것일까. ‘법성=열반’을 의미하는 이 문장은 법법성분별론의 궁극적 의도를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열반은 초기불교 이래로 불교가 지향하는 가장 이상적인 경지로 논의되어온 것이지

    만, 그것이 진여라든가 법성과 동일시 되는 것은 대승불교 이후의 사상적 전환에 해당할 것이다. 티벳의 주석가 미팜(Mi pham)은 “생겨남도 없고 사라짐도 없으

    니 법성은 열반과 상응한다”23)는 경전적 근거를 제시하고 있지만, 이들의 관계를 바로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세친 역시 이들의 관계를 바로 알 수 없을 것이므로, 우선 법과 법성 각각의 특징이 논의된다고 말하면서 다음 논의를 이어간다. 그렇다면 법과 법성의 특징에 대한 미륵의 설명을 먼저 들어보자.

    【미륵】 ‘두 가지’와 ‘언설대로’ 현현하는 허망한 분별이 법의 특징이다. 비존재가 현현하는 것이 ‘허망’이다. ‘분별’이란 모든 경우에 대상이 없이 인식된 것일 뿐[이라는 의미]이다. 소취(所取)와 능취(能取), 능전(能詮)과 소전(所詮)의 구분이 없는 진여(眞如, de bzhin nyid)가 법성의 특징이다.”24)

    22) DDV 11, 8-9: chos kyis nye bar mtshon pa ni 'khor ba'o/ chos nyid kyis nye bar mtshon pa ni theg pa gsum gyi mya ngan las 'das pa'o/

    23) DDVm 106, 2-3: ma skyes pa dang mi 'gag pa, chos nyid mya ngan 'das dang mtshungs/ 미팜은 “인무아 법무아를 보는 것에 의하여 전의되는 열반의 획득은 청정한 존재의 방식에 잘 들어가는 것이므로, 존재하는 것과 현현하는 것에 상응하지 않음이 없기 때문이다”(DDVm 72, 6-8)라고 말한다. 열반은 두 가지 무아를 보는 것에 의해 획득되며, 청정한 존재의 방식인 진여의 상태 즉 법성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24) DDV 11, 10-14: gnyis dang brjod pa ji ltar snang ba yang dag pa ma yin pa'i kun tu rtog pa ni chos kyi mtshan nyid de/ med pa snang ba ni yang dag pa ma yin pa'o/ kun tu rtog pa ni thams cad du don med par

  • 법법성분별론의 법(dharma)과 법성(dharmatā) ∙ 79

    인용문에서 ‘두 가지’란 소취와 능취이며, ‘언설대로’ 현현하는 것은 능전과 소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의 특징은 모두 허망한 분별이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 현현하기 때문이다. 그 대상이 존재하지 않아도 현현하는, 진실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분별일 뿐이다. 그렇다면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구상한 것이 되고 만다. 그것은 곧 착란이며, 잡염의 원인이 된다. 세친은 “여기에서 소취와 능취는 안[근]과 색[경] 등의 두 가지

    로 현현하는 것, 그리고 그것에 의지하여 언설대로 현현하는 것”25)이라고 설명한다. 6가지 감각기관(=눈‧귀‧코‧혀‧몸‧마음)을 통해 대상영역(=색‧성‧향‧미‧촉‧법)을 인식하는 과정에서 능취와 소취의 구분이 현현하고, 이 두 가지에 의지한 언어적 개념을 통해 언설하는 것과 언설되는 것, 즉 능전과 소전의 구분이 생겨난다. 이러한 현현들은 대상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아도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허망한 분별이라고 말한 것이다. 여기에서 세친은 ‘비존재가 현현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물

    음을 제기하며, 다음과 같이 답한다.

    【세친】 예를 들면 환영으로 만들어진 큰 코끼리 등과 재물과 곡식 등이 현현하는 대로 그와 같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현현하는 것과 같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허망한 분별이며, 없는 것이 그와 같이 현현한 것이다. 게다가 [논에서] “또한 존재하는 것이 현현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착란’이라는 말이 따라 들어간다. 여기에서 “또한 존재하는 것이 현현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한 것은 두 가

    rtog pa tsam mo/ gzung ba dang 'dzin pa dang/ rjod pa dang brjod par bya ba'i khyad par med pa'i de bzhin nyid ni chos nyid kyi mtshan nyid do/

    25) DDVv 21, 16-22, 1: de la gzung ba dang/ 'dzin pa'i dngos po mig dang gzugs la sogs pa'i gnyis su snang ba gang yin pa dang/ de la brten pa ji ltar mngon par brjod par snang ba gang yin pa ste/

  • 80 ∙ 印度哲學 제58집

    지 무아(無我, bdag med pa)가 현현하지 않기 때문에, 또한 착란인 것이다.26)

    세친의 답변에 따른다면, ‘존재하지 않는 것의 현현’을 허망분별로 간주하는 것과 함께 ‘존재하는 것이 현현하지 않는 것’도 착란으로 간주된다. 전자가 환영으로 나타나는 코끼리와 같다면, 후자는 두 가지 무아가 현현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두 가지 무아란 인무아‧법무아를 의미할 터인데, 현현해야 할 진실 혹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현현하지 않는 것도 착란이라는 뜻이다. 무아의 현현은 허망분별이 사라진 후에 비로소 성취될 것이다. 이와 같은 법의 특징과 달리, 법성의 특징은 ‘소취와 능취, 능전

    과 소전의 구분이 없는 진여’로서 정의된다. ‘진여’는 소취‧능취와 소전‧능전의 구분이 없는, 허망분별이 사라진 상태를 가리키고 있다. 이러한 표현은 소취‧능취가 없는 두 가지의 공(空)으로서 오직 식(識)일 뿐임을 주장하는 유식학파의 대표적인 정형구에 해당한다. 예를 들면, 세친의 중변분별론「상품」에서는 허망분별과 공성

    이라는 개념을 통해, “허망분별이란 소취와 능취의 분별이다. (중략) 공성이란 그 허망분별에 소취와 능취가 없는 것이다”27)라고 진술된다. 허망분별과 공성은 법법성분별론에서 말하는 허망분별(=법의 특징)과 진여(=법성의 특징)에 각각 상응한다.

    26) DDVv 23, 8-12: dper na sgyu mar byas pa'i glang po che la sogs pa dang/ nor dang 'bru la sogs pa ni ji ltar snang ba de ltar med la/ snang ba yang yin pa de bzhin du yang dag pa ma yin pa'i kun tu rtog pa yang med pa bzhin du snang ba yin no// gzhan yang yod pa yang mi snang ba'i phyir ro// 'khrul pa zhes rjes su 'jug go/ de la yod pa yang mi snang ba'i phyir ro/ zhes bya ba ni bdag med pa rnam pa gnyis yod pa mi snang ba'i phyir yang 'khrul pa yin no//

    27) MVBh Ⅰ, 1: tatrābhūtaparikalpo grāhyagrahakavikalpaḥ/ (중략) śūnyatā tasyābhūtaparikalpasya grāhyagrahakabhāvena virahitatā/

  • 법법성분별론의 법(dharma)과 법성(dharmatā) ∙ 81

    유식삼십송에 대한 안혜의 주석에서는 “의타기에 항상 어느 때든 그 소취와 능취가 완전히 없는 것, 그것이 원성실의 자성”28)

    이라고 설명된다. 소취와 능취가 없다는 것은 허망한 분별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 때 법성이라는 용어가 다음과 같이 직접적으로 언급된다. “[변계소집의 자성이] 없다는 것은 법성을 말한다.”29) “유식성이라 이름 붙여진 마음의 법성에 식이 머물지 않는 한, 소취와 능취의 지각이 일어난다.”30) 여기에서 소취와 능취의 구분이 사라진 원성실성, 변계소집이 사라진 법성에 대한 기술은 법법성분별론에서 말하는 법성의 특징과 일치한다. 따라서 하카마야 노리아키(袴谷憲昭)는 법법성분별론의 형태

    가 이분법이기 때문에, “이 논에는 유식설의 근본사상으로 말해지는 삼성설이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거기에는 분명하게 삼성설을 답습하고 있음이 읽혀진다”31)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삼성설 가운데 변계소집성과 의타기성은 법법성분별론의 법에 해당하면서 윤회와 잡염의 특징을 갖는다. 원성실성은 법법성분별론의 법성에 해당하며 열반과 전의를 특징으로 갖는다.32)

    28) TrBh 40, 4-5: tena grāhyagrāhakeṇa paratantrasya sadā sarvakālam atyantarahitatā yā sa pariniṣpannasvabhāvaḥ //

    29) TrBh 40, 8: rahitatā ca dharmatā/ 30) TrBh 42, 16-18: yāvac cittadharmatāyāṃ vijñaptimātrasaṃśabditāyāṃ

    vijñānaṃ nāvatiṣṭhate kiṃ tarhi grāhyagrāhakopalambhe carati/ 31) 袴谷憲昭(1974) p. 183. 32) 袴谷憲昭(1974:181)는 “허망분별은 의타기성에 해당하며, 의타기성은 다른 것

    에 의존하여 생겨나는 연기를 의미한다”고 지적한다. 무명에서 시작하여 생-노사로 전변하는 연기는 바로 생사이며, 잡염의 법이다. 반면에 생-노사의 각 지분을 관통하고 있는 연기의 법칙성, 이법으로서의 연기는 법성에 해당한다. 그런데 법법성분별론의 허망분별을 이와 같이 의타기성의 연기로 이해하는 것은 미묘한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안혜는 유식삼십송에 대한 주석에서, “그 분별에서 존재하지 않는 소취와 능취가 분별되기 때문에, 변계소집이라고 말한다. 의타기성에 항상 어느 때든 그 소취와 능취가 완전히 없는 것, 그것이 원성실의 자성이다”(TrBh 40, 2-5)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법법성분별론에서 소취와 능취의 현현으로 정의된 법의 특징은 의타기

  • 82 ∙ 印度哲學 제58집

    하카마야 노리아키가 지적한 대로, 법법성분별론에서 법의 특징은 허망한 분별이라고 표현되어 변계소집성을 암시하지만, 이 맥락 속에 원성실이라는 용어가 등장하지는 않는다. 다만 ‘진여’ 혹은 ‘법성’이라 부르고 있다. 허망분별이 현현할 때 법성은 현현하지 않는 이분법적 구도를 취할 뿐이다. 법법성분별론의 이러한 구도는 오히려 중론의 「관법품」을 통해 보다 잘 이해될 수 있다. “마음이 작용하는 영역이 사라지면 언어의 대상이 사라진다. 실로 발생하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는 법성은 열반과 같다.”33) 여기에서 ‘법성=열반’이라는 직접적인 언급을 확인할 수 있다. 마음이 작용하는 영역이 사라진다는 것은 대상을 인식하는 분별작용이 사라지는 것, 능취와 소취의 구분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법법성분별론에서 말하는 진여 혹은 법성의 개념에 부합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유사성을 고려해보면, 법법성분별론의 구도에서는 의

    타기성을 매개로 하여 제법의 현상을 다룰 필요성을 느끼고 있지

    않은 듯하다. 미륵에 의해 제시된 법과 법성의 특징은 열반과 법성을 동일시 하는 중론의 사유방식을 통해서 충분히 해석될 수 있다. 제거되어야 할 생사의 윤회가 잡염의 법을 통해 암시된다면, 현증되어야 할 열반은 청정의 법성을 통해 암시되는 것이다. 소취‧능취의 사라짐이라는 유식의 정형구는 변계소집이 사라진,

    완전한 성취로서 원성실의 의미를 갖는다. 이것은 법법성분별론에서 말하는 법성의 특징, 즉 진여에 해당한다. 이러한 두 가지 분별의 사라짐은 수행자가 직접 체험한 진리 혹은 실재에 관한 진술

    을 담고 있다. 그것은 앞에서 살펴본 법의 의미 가운데, 게틴이 마지막으로 제시한 ‘정신적‧물질적인 상태나 사물’의 의미에 비교적

    성에 현현하는 변계소집까지 포함하는 개념이어야 타당할 것이다.33) MMK 18, 7: nivṛttamabhidhātavyaṁ nivṛtte cittagocarḥ/

    anutpannāniruddhā hi nirvāṇam iva dharmatā//

  • 법법성분별론의 법(dharma)과 법성(dharmatā) ∙ 83

    가까운 것으로 판단된다. 수행자는 자신의 경험 속에서 생겨나는 정신적이거나 물질적인 것의 특징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잡염으로 이루어진 어떤 법은 생겨나지 않도록 제거해야 할 것이

    다. 청정한 어떤 법은 반드시 직접적으로 경험되어야 할 것이다. 이 논서는 바로 그것을 분별하고자 저술된다고 미륵은 밝히고 있

    다. 마음에 의해 파악된 여러 가지 현상들, 이러한 법의 특징을 분석함으로써 그것을 직접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진여의 세계는 소

    취와 능취의 구분이 사라진 불이(不二)의 법성을 보는 일에 다름 아니었을 것이다.

    Ⅳ. 법과 법성의 不一不異

    법법성분별론에서 법은 소취‧능취와 소전‧능전이라는 비존재의 현현으로 정의되고, 법성은 그러한 현현이 사라진 진여로서 정의된다. 비존재와 현현, 두 가지 항목을 통해 법을 법성과 구분한 것이다. 여기에서 미륵은 “비존재와 현현하는 것 중 어느 하나가 없다면, 착란인 것과 착란이 아닌 것, 잡염과 청정에 들어갈 수 없을 것”34)이라고 말한다. 존재하지 않는 것이 현현하는 것은 당연히 착란에 해당한다. 반면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 현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이미 착란이 아니다. 그렇다면 잡염 또한 없게 될 것이다. 잡염은 착란을 원인으로 갖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상으로서 존재하지 않는 소취와 능취의 구분이 현현하지 않

    34) DDV 11, 17-12,1: med pa dang snang ba dag las gang yang rung ba zhig med na 'khrul pa dang ma 'khrul pa dang/ kun nas nyon mongs pa dang rnam par byang ba rjes su 'jug par mi 'gyur ro/

  • 84 ∙ 印度哲學 제58집

    는다면, 착란이 생겨나지 않겠지만, 잡염의 토대도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그것을 제거한 청정도 없게 될 것이다. 존재하지 않는 잡염을 제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지 않는다고 바르게 알 때, 착란이 사라진 진여의 현현이 있고, 청정한 열반의 성취도 가능하게 된다.법과 법성의 특징을 대립적으로 구분했던 미륵은 이제 법과 법

    성이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음을 집중적으로 논의한다. 이에 대한 세친의 주석도 함께 살펴보기로 하자.

    【미륵】 두 가지는 같은 것도 다른 것도 아니다. ‘있음’과 ‘없음’의 차이가 [있기도] 하고, 차이가 없기도 하기 때문이다.35)

    【세친】 ‘두 가지’라고 말한 법과 법성이 같다는 것도 다르다는 것도 타당하지 않다. 그것은 무엇 때문인가. ‘있음’과 ‘없음’의 차이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선 법과 법성이 같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그것은 무엇 때문인가. ‘있음’과 ‘없음’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법성이 존재하는 것에 법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있음’과 ‘없음’의 차이를 갖는 것이 어떻게 같은 것이 되겠는가. 하지만 다른 것도 아니다. 무엇 때문인가. ‘있음’과 ‘없음’의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어떻게 차이가 없는가. 법성은 다만 법이 존재하지 않는 것에 의해서 구분되는 것일 뿐이고, 파악되는 것(gzung ba) 등에는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36)

    35) DDV 12, 2-3: gnyis po dag gcig pa dang tha dad pa ma yin te/ yod pa dang med pa'i khyad par dang khyad par med pa'i phyir ro/

    36) DDVv 24, 13-25, 3: gnyis po dag ces bya ba chos dang chos nyid dag ni gcig pa nyid dang tha dad pa nyid du mi 'dod do// de ci'i phyir zhe na/ yod pa dang med pa dag khyad par yod pa dang khyad par med pa'i phyir ro// re zhig chos dang chos nyid gcig pa nyid du ni 'thad pa ma yin te/ de ci'i phyir zhe na/ yod pa dang med pa dag khyad par yod pa'i phyir ro// chos nyid ni yod pa yin la chos ni med pa yin pas yod pa dang med pa khyad par can dag ji ltar gcig nyid du 'gyur/ tha dad pa nyid kyang ma yin no// ci'i phyir zhe na/ yod pa dang med pa dag khyad par med pa'i phyir ro// ji ltar khyad par med ce na/ chos nyid ni chos med pa tsam gyis rab tu phye ba yin pa'i phyir te/ gzung ba la

  • 법법성분별론의 법(dharma)과 법성(dharmatā) ∙ 85

    먼저 법과 법성은 허망분별의 ‘있음’과 ‘없음’으로 구분된다. 비존재의 현현이 사라질 때, 즉 허망분별의 법이 현현하지 않을 때, 법성은 현현한다. 그러므로 양자는 다른 것이다. 하지만, 양자의 ‘있음’과 ‘없음’에는 차이가 없다. 세친은 ‘파악되는 것 등에는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한다. 파악되는 대상이 다른 것은 아니므로, 이 둘은 서로 다른 것도 아니다. 법법성분별론의 귀경게에서 제거되어야 할 것과 현증되어야 할 것, 그것을 특징의 측면에서 분별하는 것이지, 대상영역이 구분된다고 말한 것은 아니라는 세친의 주석을 기억해 볼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법과 법성의 차이는 각각의 특징이 다른 것이지, 그 인식영역이 다른 것은 아니다. 법과 법성의 불일불이(不一不異)는 중변분별론이나 유식삼십

    송에서도 마찬가지로 확인된다. 먼저 중변분별론에서는 허망분별과 공성의 양자의 관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만약 다른 것이라면, 법성은 법과 다른 것이 된다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무상성(無常性) 혹은 고성(苦性)과 같이. 만약 같은 것이라면, 소연이 청정한 지(知)도 없게 되고 공상(共相)도 없게 될 것이다.”37) 다시 말해 허망분별과 공성이 다른 것이라면, 법과 구분되는 법성, 이를테면 무상성이나 고성과 같은 것은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허망분별과 공성이 같은 것이라면, 청정한 것을 대상으로 하는 인식도 없게 될 것이며, 무상성이나 고성과 같은 공상에 대한 인식도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허망분별과 공성을 통해, 양자의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음을 주장하는 중변분별론의 논리는 법법성분별론에 보이는 법과 법성의 불일불이에 관한 설명과 동

    sogs pa'i khyad par med pa'i phyir ro// 37) MVbh Ⅰ, 13: pṛthaktve sati dharmmād anyā dharmmateti na yujyate/

    anityatāduḥkhatāvat/ ekatve sati viśuddhyālambanaṁ jñānaṁ na syāt sāmānyalakṣaṇañ ca/

  • 86 ∙ 印度哲學 제58집

    일한 형태를 취한다. 이와 같이 허망분별에 기반한 중변분별론과 법법성분별론의 단계는 법에서 법성으로의 사상적 전환을 시사하고 있다.38)

    유식삼십송에 대한 안혜의 주석에서도 “법성은 법과 다른 것이 아니고 다르지 않은 것도 아니라는 것이 타당하다”39)고 말한다. 이러한 진술은 원성실이 의타기와 다른 것이 아니고 다르지 않은 것도 아님을 설명하는 맥락에서 다음과 같이 등장한다. “만일 원성실이 의타기와 다른 것이라면, 의타기는 변계소집이 공한 것이 아닐 것이다. 만일 다르지 않은 것이라면, 원성실은 소연이 청정한 것이 아닐 것이다. 의타기와 같이 잡염으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의타기도 번뇌로 이루어진 것이 아닐 것이다. 원성실성과 다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원성실과 같이 [소연이 청정한 것이 될 것이다].”40) 소연이 청정하다는 것은 인식대상에 대한 허망분별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 때 유식삼십송에서는 “무상(無常) 등과 같다고 말해야 한다”41)고 덧붙이는데, 안혜는 “다른 것이 아니고 다르지 않은 것도 아니라는 말이 보충되어야 한다”42)고 주석한다. 말하자면, 무상‧고 등은 현상계의 여러 가지 법들과 구분되는 것이지

    38) 김재권(2017:78)은 중변분별론‧법법성분별론이 법에서 법성으로의 사상적 전환을 보여주는 것과 달리, 유가사지론「진실의품」과 「승의제상품」의 단계는 연기사상과 관련하여 법성에서 법으로의 사상적 전환을 꾀하고 있다

    고 설명한다.39) TrBh 40, 8: dharmatā dharmān nānyā nānanyā yujyate/40) TrBh 40, 10-13: yadi hi pariniṣpannaḥ paratantrād anyaḥ syād evaṃ na

    parikalpitena paratantraḥ śūnyaḥ syāt/ athānanya evam api pariniṣpanno na viśuddhālambanaḥ syāt paratantravat saṃkleśātmakatvāt/ evaṃ paratantraś ca na kleśātmakaḥ syāt/ pariniṣpannād ananyatvāt pariniṣpannavat/

    41) TrBh 40, 14: anityatādivad vācyo/42) TrBh 40, 15: nānyo nānanya iti vākyaśeṣaḥ/

  • 법법성분별론의 법(dharma)과 법성(dharmatā) ∙ 87

    만, 그 대상을 달리하는 것은 아니다. 개개의 사물을 넘어서는 보편적인 관념, 즉 공상(共相, sāmānyalakṣaṇa)으로 표현되는 무상성‧고성 등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법성이라는 용어가 매우 적합한 개념으로 등장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렇다면 법법성분별론에 대한 세친의 주석에서 현증되어야

    할 두 가지 ‘무아’의 현현도 이 맥락과 연관지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무아의 비현현도 착란의 경우로 간주했던 것을 말한다. 법법성분별론에서 현현해야 할 법성의 특징으로 제시된 무아의 의미는 중변분별론의 ‘무상성 혹은 고성’, 유식삼십송의 ‘무상성’과 동일한 내용임을 알 수 있다. 이들 문헌에 보이는 공성이나 원성실은 그 이름이 다를 뿐, 법성이 성취된 진여의 상태를 가리키고 있는 점은 동일하다. 법의 개념 역시 허망분별이나 변계소집으로 다르게 불리지만, 존재하지 않는 소취와 능취의 현현을 가리키고 있는 점은 마찬가지이다. 양자가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다는 주장도 이들 문헌에 나타나는 공통점이다. 이와 같은 논리에 따른다면, “법에 의하여 암시된 것은 윤회이

    고, 법성에 의하여 암시된 것은 삼승의 열반이다”라는 미륵의 주장도, 법과 법성이 서로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듯이, 윤회와 열반도 그러하다는 것을 궁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윤회와 열반의 불일불이에 대하여 섭대승론에서는 “생사는 곧 열반이다”43)라고 직접적으로 언급되기도 하지만, 반야경이나 중론에서도 동일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먼저 반야경에서는 일체법을 부정의 방식에 의하여 무자성임

    을 드러내지만, 그러한 일체법은 “진여를 자성으로 삼고, 법계를 자성으로 삼고, 법성을 자성으로 삼고, 허망하지 않음을 자성으로

    43) 섭대승론(TD 31) p. 129b: “生死卽涅槃.” 이 논서에서는 생사의 윤회와 열반의 평등함에 대한 智가 생겨날 때, 윤회를 버리지 않고 열반에도 머물지 않는 대승 보살의 수승한 전의가 이루어진다고 설명된다.

  • 88 ∙ 印度哲學 제58집

    삼는다”44)는 긍정의 방식을 취하고, 일체법은 생겨나는 것도 사라지는 것도 없으며 “본래 적정하여 열반의 자성을 지닌다”45)고 설명된다. 또한 중론의 「관법품」에서는 마음작용이 사라지는 상태에 대하여 “실로 발생하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는 법성은 열반과 같다”46)라고 명시된다. 「열반품」에서는 “윤회가 열반과 구분되는 점은 그 어떤 것도 없다. 열반이 윤회와 구분되는 점은 그 어떤 것도 없다”47)라고 강조된다. 중론의 논리에 따르면, 열반으로 표현되는 법성은 생사의 윤회로 암시되는 법의 세계를 떠나 있는 것

    이 아니다. 즉 윤회와 열반은 같은 것이 아니지만, 서로 다른 것도 아니다.지금까지 법법성분별론에서 말하는 법성이 공성이나 원성실

    성의 동의어로 사용되고 있으며, 개별적 사물을 넘어선 보편적 관념(=공상)을 나타내는 용어로서 유력하게 등장하는 양상을 살펴보았다. 여기에는 중변분별론‧유식삼십송과 같은 유식 논서와의 영향관계가 뚜렷하다. 이 논서가 법과 법성의 개념을 토대로 하여 유식학파의 체계를 세우고 있다는 주장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듯하다. 더불어 법과 윤회, 법성과 열반을 연결 짓는 방식에 있어서는 중론의 이분법적 구도와 매우 유사한 형태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법법성분별론과 중관 논서의 영향 관계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나가오 가진은 일찍이 “유식학파의 개조인 무착과 세친은 반야

    경과 중관철학을 전면적으로 수용하면서 유식론이라고 불리는 특

    징적인 전개방식을 발전시켰다고 인정해야 한다”48)고 말한 바 있

    44) 반야경(TD 6) p. 880a: “一切法皆以真如為自性 一切法皆以法界為自性 一切法皆以法性為自性 一切法皆以不虛妄性為自性.”

    45) 반야경(TD 6) p. 1038b: “本來寂靜 自性涅槃.”46) MMK 18, 7: anutpannāniruddhā hi nirvāṇam iva dharmatā//47) MMK 25, 19, na saṃsārasya nirvāṇāt kiṁ cid asti viśeṣaṇam/ na

    nirvāṇasya saṃsārāt kiṁ cid asti viśeṣaṇam//

  • 법법성분별론의 법(dharma)과 법성(dharmatā) ∙ 89

    다. 중관적 사유도 유식적 논리도 동등한 대승불교의 사상운동이고, 해탈이나 열반과 같은 궁극의 목표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유식사상의 성립을 법과 법성의 관계를 중심으로 검토한 김재

    권은 “허망분별로 제시된 삼성의 핵심구조가 초기유가행파의 독특한 진리관이나 실재관을 반영하여 ‘법과 법성’의 맥락에서 초기불교 이래의 연기사상을 더욱 진전된 형태로 계승하였다”49)고 적고 있다. 그에 따르면, 초기 유식사상의 가장 대표적인 교설인 삼성설의 내적구조는 반야의 공사상을 토대로 아비달마불교의 존재

    론과 용수의 이제설을 비판적으로 지양하고 계승하는 양상을 보

    여준다. 유식사상의 성립과 관련된 이러한 사정을 고려한다면, 법법성

    분별론을 바라보는 교학적 관점도 달라질 필요가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논서는 허망분별의 있음과 없음을 통해 법과 법성

    을 비교적 간결하게 특징 짓고 있다. 하지만 양자는 서로 같은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50) 이러한 논리적 귀결에는 미륵-무착-세친의 계열로 이어지는 유식사상과 함께, 전통적인 중관적 사유방식의 계승 역시 엿보인다. 후대의 주석가 미팜이 미륵의 5법에 대한 교학적 이견을 다루면서, 법법성분별론과 중변분별론이 유식의 문헌으로 간주될 만하지만, “중관의 의취 또한 이들 법문의 방식으로 안립하는 것에 모순은 없다”51)고 주장하

    48) 長尾雅人(2005) p. 268.49) 김재권(2017) p. 62.50) 金倉圓照(1973:174)는 이 논서에서 처음으로 법과 법성이 서로 대립하는 관념

    으로 순수하게 추출되지만, 양자의 대립으로 그치지 않았다는 점에 이 논서의 중요한 존재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법이라 불리는 현상적 세계를 분별하고, 법성의 개념을 빌어 진여의 상태를 표현한 이 논서는 불교철학의 역사, 특히 법에 대한 관념의 발달사에 있어서 한 시기를 긋는 매우 중요한 저술이라고 결론 짓는다.

    51) DDVm 60, 7-8: dbu ma'i dgongs pa yang chos skad de dag gi tshul gyis bzhag pa tsam la 'gal ba med pa ni/ 미팜의 이러한 주장은 법법성분별론

  • 90 ∙ 印度哲學 제58집

    는 것에는 법과 법성의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음을 주장하는 논

    리적 방식과도 관련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Ⅴ. 결론

    법법성분별론은 소취와 능취, 능전과 소전의 구분이 없는 상태를 법성의 현현이라 부른다. 귀경게에 제시된 법성의 현증이란 허망분별이 사라진, 진여의 현현을 가리키고 있다. 그런데 법과 법성의 다름이 파악되는 대상이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

    는다. 그것의 특징이 다를 뿐이다. 문제의 초점은 결국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에 놓여 있는 셈이다. 이 점에서 법법성분별론에 보이는 법의 의미는, 물론 그것의 포괄적 의미를 충분히 감안하더라도, 마음에 의해 파악된 정신적‧물질적인 것의 속성이라는 의미에 비교적 부합하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법의 특징과 법성의 특징을 구분하는 이 논서의 입장은 양자가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양자의 불일불이는 여타의 유식문헌이나 중관논서에서도 공통적으로 확인되는 내

    용이다. 법법성분별론에 나타나는 법성의 개념이 중변분별론의 공성이나 유식삼십송의 원성실성과 동의어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은 유식학파와의 깊은 영향 관계를 보여준다. 법성이라는 개념은 특히 개개의 사물을 넘어서는 보편적인 관념, 즉 공상으로서의 무상‧고‧무아 등을 표현하는 데 점차 유력하게 되었던 것으로

    과 중변분별론이 대승의 무분별지를 밝힌다는 점에서 유식과 중관은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양립 가능하다는 입장을 제시하기 위해 설명되고 있다.

  • 법법성분별론의 법(dharma)과 법성(dharmatā) ∙ 91

    보인다. 더불어 법법성분별론에서 법과 윤회, 법성과 열반을 연결 짓는 방식에는 중론과 같은 중관논서와의 영향 관계도 간과할 수 없다. 법법성분별론의 교학적 위상은 중관과 유식의 영향관계를 모두 고려할 때, 보다 온전하게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 92 ∙ 印度哲學 제58집

    약호 및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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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harmadharmatāvibhaṅga and the Dharmadharmatā-vibhaṅgavṛtti, Tibetan Texts, Edited and Collated, Based upon the Peking and Derge Editions”, 印度學佛敎學論叢. 京都: 法藏館, 1955.

    DDVm : Chos dang chos nyid rnam par 'byed pa'i tshig leur byas pa'i 'grel pa ye shes snang ba rnam 'byed, trans. Jim Scott, Maitreya's Distinguishing Phenomena and Pure Being with commentary by Mipham. Ithaca: Snow Lion, 2004.

    DDVv : Dharmadharmatā-vibhaṅgavṛtti, ed. Josho Nozawa, “The Dharmadharmatāvibhaṅga and the Dharmadharmatā-vibhaṅgavṛtti, Tibetan Texts, Edited and Collated, Based upon the Peking and Derge Editions”, 印度學佛敎學論叢. 京都: 法藏館,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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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법성분별론의 법(dharma)과 법성(dharmatā) ∙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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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4 ∙ 印度哲學 제58집

    Abstract

    Dharma & Dharmatā in the Dharmadharmatāvibhaṅga

    Kim, Seong Ock(Assistant Professor, Dharma College, Dongguk University)

    In Indian Buddhism no term has been more extensively studied, but has generated a inconsistency than dharma. Above all the meaning of this term is so comprehensive that it is not easy to confirm it as one thing. Because it appears in different contexts among various literature. The meaning of dharma in Buddhism also spans a wide range from Buddha's doctrine to ultimate truth and individual objects and phenomena.

    Among the Buddhist literature there is Dharmadharmatāvibhaṅga, which directly discusses dharma & dharmatā, and makes it the title of the text. In this text the dharma is defined as the manifestation of the non-ex-istence, namely untrue discrimination. On the other hand the dharmatā is defined as the disappearance of such a manifestation.

    The dharmatā is different from the dharmas in various phenomena, but it is not different on the object which is perceived. It seems that the concept of dharmatā gradually became more prevalent in the Mahāyāna scriptures for the expression of universal ideas, namely sāmānyalakṣaṇa be-yond individual objects, in expressing anityatā, duḥkhatā, nairātmyatā. The use of the concept of dharmatā in the

  • 법법성분별론의 법(dharma)과 법성(dharmatā) ∙ 95

    Dharmadharmatāvibhaṅga as a synonym for the sūnyatā in the Madhyāntavibhāgabhāṣya and the pariniṣpan-na-svabhāva in the Triṃśikāvijñaptibhāsya shows a deep in-fluence with the Vijñānavāda. And the relationship between dharma and saṃsāra, dharmatā and nirvāṇa is consistent with the composition in the Mūlamadhyamakakārikā, so the relationship of influence with the Madhyamaka cannot be overlooked.

    It should not be overlooked that the ultimate intention of this text to distinguish between dharma & dharmatā does not end with the distinction between dharma & dharmatā. Both are neither the same nor the different. The doctrinal status of Dharmadharmatāvibhaṅga would be able to establish itself more fully when considering both the relationship of Madhyamaka and Vijñānavāda.

    Key words: dharma, dharmatā, tathatā,Dharmadharmatāvibhaṅga, Vijñānavāda,Madhyamaka

    투고 일자: 2020년 4월 5일심사 기간: 2020년 4월 14일~22일게재 확정일: 2020년 4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