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UMENT vol.4
description
Transcript of DOCUMENT vol.4
한때 예술이 사치스럽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길을 지나며 거리에 앉아 야채를 파는
할머니들을 보면 내 스스로가 왠지 모르게 너무나
부끄럽게 느껴졌다. 내면의 치열함은 있을지
몰라도 소위 예술가들의 작품이라는 게 현실의
치열한 삶에서 무슨 소용이 있는 것일까,
회의가 많이 들었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네 집 옥상에서 다 같이
술을 마셨다. 한껏 취기가 오르고 화장실에 가기
위해 잠시 3층 친구 집으로 내려가 문을 열었는데
친구네 어머니께서 불이 꺼진 깜깜한 거실에서
혼자 티비에 나오는 영화를 보고 계셨다.
늦은 밤, 외로운 나이 든 한 여자에게 티비에서
나오는 영화는 비루하지만 심심한 위로를 해주고
단상
5
있었다. 순간, 예술이란 어떤 위대한 것이 아니라
이렇게 공감하고 위로해 주는 것, 어떤 시간을
어떤 식으로든 비루할지언정 잠시나마 함께 해
주는 것, 그런 것이 아닌가 싶었다. 이런저런
노래들도 해결책을 제시해주는 실질적인 도구는
아니지만 위안과 위로를 해주고 성찰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아름다운 것이 아닌가. 이번 여름
내린 잠정적 결론의 예술은 그냥 ‘이런 거’였다.
4번째 DOCUMENT는 스물일곱의 여름과
가을 사이 느꼈던 이런 감정들을 모아 가상의
앨범으로 구성했다.
DOCUMENT시리즈를 처음에 구상했을
때 이것은 뮤지션들이 앨범을 내는 것과 비슷한
개념의 것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느 기간
동안 만든 노래를 모아 앨범을 만들거나 혹은
6
하나의 주제나 이슈를 가진 기획된 앨범을
내놓거나 하는 식의 뮤지션들의 비정기적인
행보처럼 말이다. 그래서 4번째 DOCUMENT는
앞선 생각들의 연결고리로써 실제 포맷도 앨범의
형태를 최대한 가져와 보자고 생각했다.
다소 냉소적이고 불안에 가득 찬
모습의 그림들은 처절한 현실에 마냥 밝고
희망적이지만은 않지만 그렇다고 그냥 저버릴
생각도 없다고 말하길 원한다.
2012년 9월
7
그는
수수하게
차려입고
수수방관중
몇
차례
옷을
갈아입어
보지만
그
수수함은
갈아입을 수
없다
옷을
벗고
목욕탕에
들어가
수수함의
옆에
알몸으로
누워본다
이쪽에서
보이는
수수함과
저쪽에서
보이는
알몸은
서로가
어색해
보이는
것도
같다
그
수수함
11
비오는
날
산을
오르며
소리를
꽥!
비오는
날 헤엄을
치며
소리를
꽥!
비오는
날
술을
마시며
소리를
꽥!
꽥!
꽥!
꽥!
꽥!
꽥!
꽥!
꽥!
꽥!
꽥!
꽥!
가벼운
마음으로
무거운
몸을
이끌며
소리에
소리를
더한다
빗소리에
목소리를
섞는다
뒹군다
데굴데굴
꺄르르르
21
방
한가운데
놓인
마음 하나
덩그러니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본다
굳는다
녹는다
팽창한다
터진다
소리낸다
사라진다
살아있다는
것은
변한다는
것
살아있는
동안
변하지 않는
것은
다만
살아있다는
것
23
오-
예-
오-
예-
오-
예-
오-
예-
오-
예-
오-
예-
오-
예-
오-
예-
오-
예-
오-
오-
오-
예-
이-
예-
오-
오-
오-
예-
이-
예-
오-
오-
오-
예-
이-
예-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