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소농학교 개별주제 보고서_수행하는 삶에 대해서(16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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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하는 삶에 대해서 2016 소농학교 개별 주제 보고서 7기 이헌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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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하는 삶에 대해서

2016 소농학교개별 주제 보고서

7기 이헌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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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네시의 드로잉(이파람, 16/5/27)

여는 말 3p

1. 농사에 이르기까지 5p

2. 소농학교와 귀농 9p

3. 비우는 과정 11p

4. 알아차림 13p

5. 자연농 14p

6. 노래와 연주 15p

7. 수행하는 삶 그리고 16p

참고: 읽어온 책 1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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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말

1. 소농학교 참가 동기와 농사에 관심 갖게 된 계기를 나누던 지난 3월의 첫 조모임, 제가 정직하게 살고 싶은 마음에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고 대답을 했던 것과 젊은 사람이 정직하지 못하게 살아보기나 했느냐,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 물으셨던 홍철님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그 이후로도 홍철님과 종종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는데, 편하게 대해주시고 관계에 있어 불편하지 않도록 배려해주셔서 저로서는 정말 즐거운 대화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홍철님!)

홍철님 뿐만이 아니라 여러 소농학교 동기 분들께서, 이 건방지고 말 안 듣고 거리를 두는 것 같은 청년을 엇나가고 가르쳐야 할 대상으로 보기보다는 흥미롭게 그리고 너른 마음으로 봐주셨던 것 같습니다. 때로는 제 생각과 걸어온 길에 대해 물어보기도 하셨고 도움이 될 만한 생각과 조언들을 주시기도 했으며 끊임없이 자신들의 무언가를 많이 내어주려고 하셨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저라는 존재 때문에 본인들의 일상 속에서는 신경 쓰지 않았던 것들에 좀 더 마음을 써 불편하셨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배려해주시고 아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저는 스스로를 특이하다거나 별나다고 여기지는 않는데, 우리 모두가 평범하고 특이하다죠, 소농학교에 와서 동기 분들을 만나 그러한 젊은이로 인식이 된 점이 재미있기도 했습니다. 영준님께서 한 번은, “헌국이에 대해 어떤 판단도 내릴 수 없다, 내가 살아온 삶에서 헌국이를 바라볼 어떤 근거도 없다, 전혀 보지 못 했던 분류의 사람이다.”라는 말씀도 기억이 납니다. 그런 점에서 어쩌면 제 이야기가 동기 분들께 재미있는 이야기로 다가갈 수도 있겠고, 상대적으로 가진 것 없이 지내는 걸 지향하는 형편이다 보니 드릴 수 있는 것이 결국 제 자신과 삶뿐인데, 그걸로도 좋겠구나 감히 생각해 봅니다.

2. 개인 주제 보고서를 구상하면서, 특정 공간을 퍼머컬처로 설계하는 것과 집 짓기 기획서 작성 등 내년 활동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는 내용을 다루고 싶었고, 과제를 위한 과제로써 제출하고 끝나면 꺼내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일상으로 이어져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는 작업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몇 가지 안들이 조건상 실행되기 어렵게 되어, 물론 이번에 작성해두면 언젠가는 활용할 수 있겠지만, 그저 이번 해 소농학교를 중심으로 일상을 살아내 온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오게 된 것들을 들여다보기로 했습니다.

3. 소농학교에 오게 된 경위와 걸어온 길에 대해서 돌아보고 이번 한 해 동안 생각하고 시도했던 내용들을 짚어보면, 부족했던 제 이야기를 조금이나마 전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한 어떤 흐름으로 생각이 바뀌었고 지금 마주한 고민이 무엇인지를 나누며, 소농학교 이후 제가 어떤 그림을 그려나갈 수 있을지도 전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처음인 것 같은데, 이 글이 다리가 되어 소농학교 이후에도 공통된 관심사로 인연이 닿을 수 있을 거라 또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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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1. 보고서는 issue.com에 업로드 할 계획으로 자료나 이미지 등에 링크를 달면서 작성했습니다. 때문에 인쇄 해 종이 문서로 읽을 경우 닿을 수 없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참고2. 과거의 제 생각이나 기록들은 펜시브 역할을 하고 있는 heonkook.com에서, 사진 자료들은 facebook에서 불편하지만 자세히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참고3. 작성한 보고서 내용을 기반으로 12월 초 서울에서 ‘2016 이헌국 보고회(가칭)’를 진행하려고 합니다. 출국 전 지인들과 인사차 모이는 자리에서 재미로 조금 발전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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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농사에 이르기까지

소농학교 동기들 모두가 각자의 이유로 생태적이고 자립하는 농農적인 삶 혹은 귀농에 관심을 갖고 소농학교까지 오셨고 종종 그 과정에 대해 들을 기회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송구하게도 출근과 다른 활동들을 핑계로 저의 이유나 경로에 대해서는 말씀드린 적이 없었던 것 같고, 때문에 이번 기회에 몇 가지 흐름으로 분류하고 설명을 더하며 이야기를 풀어보겠습니다.

흐름들의 각 시기들이 겹치거나 상통/관통하는 부분들이 있어, 동일한 번호로 함께 묶었고 이미 지나온 길이기 때문에 간단히 정리합니다. 사실 제가 보다 쉽게 말로 설명하기 위해서 분류한 것이지, 실제로는 정확히 칼로 무 자르듯 나눌 수 없는 정신인 것을 말씀드립니다.

- 중심 활동의 흐름 1) 대학 생활 (2011. 3 ~ 2012. 12) 2) 스타트업/기업가정신 (2012. 8 ~ 2014. 2) 3) 철학/전위예술 (2014. 2 ~ 2014. 11) 4) 생태/퍼머컬처/전환마을/ (2014. 11 ~ 2015. 9) 5) 농사/영성/소리와 음악 6) 자연농/알아차림/노래와 연주

- 중심 가치들의 흐름 1) 취직, 안정, 명예, 효율, 경쟁, 성장, 정답 2) 도전, 주인의식, 열정, 사명감, 호기심, 돈, 브랜드 3) 기성/기존 질서/관습/상식에 대한 저항과 부정, 다양성, 개성, 나, 자유 4) 생태, 평화, 비폭력, 생명, 자급, 신비, 자연, 전복, 생명 5) 진심, 몰입, 정직, 초월, 참나 6) 청정, 헌신, 바침, 바름, 비움, 해방, 순간

- 의식 성장의 흐름 1) 자아도 생각도 없이 주변 따라 흘러갔던 시간들 (~ 2011) 2) 외부 세계와 무관하게 존재할 수 있는 '나'라는 개체/존재 발견 (2011. 6) 3) 다양한 삶의 방식들의 존재와 그 가능성 확인 (2012. 8, 2012. 12) 4) 존재와 삶의 총체성/전일성, 유기적 연결성 등을 체감 (2014. 11) 5) '나, 세상, 존재' 너머의 무언가에 대한 자각 (2015. 4) 6) 무상하고 '나', ‘실체’란 없다는 견해 마주하고 갈팡질팡 하는 중 (2016. 9)

- 의식의 지평을 확장시키는데 도움을 준 사람들존 케 이 지 , 파 울 로 코 엘 료 , 류 시 화 , 스 콧 과 헬 렌 니 어 링 부 부 , 마크 트 웨 인 , 지 두 크 리 슈 나 무 르 티 , 에크하르트 톨레, 체 게바라, 하즈랏 이나야트 칸, 헨리 데이비드 소로, 랄프 왈도 에머슨, 린위탕, 니코스 카잔차키스, 피에르 라비, 켄 윌버, 후쿠오카 마사노부, 실비아 나카쉬, 고타마 싯다르타, 바바 하리 다스, 페터 노이야르, 잘랄라딘 무하마드 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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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합하고 정리 해보면,

1) 그저 '내가 없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어떤 생각이나 행동도 나로부터 비롯된 것들은 없었고 오직 타인들로부터 비롯된 외부의 것들이 그 빈자리를 채우던 시기였습니다. 물론 그러한 것들이 나인가에 대한 의문도 전혀 없이 그냥 그렇게 흘러가던 시절이었기도 합니다.

그러다 가장 처음 내 스스로 생각/사고를 했다고 기억하는 것은, 이대로 대학 생활을 하다간 나는 아무것도 되지 못하겠다는 불안감과 두려움을 마주하고 소위 ‘스펙’을 쌓아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곤 IBM과 같은 외국계 IT 회사에 멋지게 취직하는 것을 목표로 둔 성실한 20살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주위 많은 친구들이 게임과 여자 그리고 술과 당구 등에 빠져있던 것에 염증을 느낄 무렵 여름방학에 시작한 대외활동을 계기로, 소위 스펙이란 세계에 눈을 떠 닥치는 대로 쌓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전공에도 흥미를 넘어 재미를 느꼈기 때문에 학점도 잘 받았고 학내 활동들도 열심히 참여했으며, 시애틀로 해외연수도 다녀오는 등 온통 취업시장에서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비장의 무기라고 생각되었던 것들을 확보해나가던 시기였습니다. 실제로 즐겼고 꽤나 잘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취직이라는 목표 자체가 나에 대한 의문은 전혀 없이 대학이라는 시스템으로부터 요구받았던 것이었기 때문에 내가 있던 시기는 아니었습니다. 그놈의 고작 종이 한 장 인증서 받아볼 요량으로 얼마나 스펙업을 뒤지고 지원서를 작성하며 면접을 보러 다녔던지요.

2) 그러던 중에 대학 생활 중 어울려 지냈던 한 친구가 창업을 준비하게 되고 그 과정을 옆에서 조금이나마 도우며 관심사가 취업에서 창업으로 옮겨갔습니다. 처음엔 창업을 단순히 취업의 대안이자 대학 생활의 목적으로 바라보았는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수익화 하는 과정/도구라는 시각으로 창업을 바라보게 되어 ‘창업 관련 활동’에 관심을 두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전국학생창업네트워크(Student Startup Network)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고, 각자의 바람과 목적을 위한 도구로써 창업을 활용하는 각기 다른 분야의 창업가들을 자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다양한 이유를 실현하기 위한 방편으로써 창업의 길을 선택하고 주인의식과 열정 그리고 사명감을 가지고 자신의 삶에 도전하고 개척해 나가는 모습에 반했던 것 같습니다. 창업 그 속에 담겨 있는 ‘Entrepreneurship’에 초점을 두고 제 삶을 바라보기 시작했고, 내가 주인의식과 열정 그리고 사명감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스스로를 탐험하기 시작했습니다.

3) Entrepreneurship 문화를 향유하며 그 당시 저에겐 정말 이상했던 사람들의 여러 종류의 삶을 접하고, 또한 프랑스 파리에서 한 달 생활하고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일주일 머물렀던 경험들이 ‘다양성’이라는 가치에 눈을 뜨게 해주었습니다. 세상은 넓고 사람은 다양하고 할 수 있는 일은 끝없이 많구나. '아, 정답이란 없구나. 이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장 큰 자유와 해방을 맛보았고, 그 덕분인지 두려움과 불안감 없이 무슨 일이던 해도 되는구나'라는 생각에 닿았습니다.

동시에 이렇게도 드넓은 세상에서 나는 무엇인가, 왜 태어났는가, 어떻게 살아야만 하는가와 같은 스스로를 향한 실존적인 물음들로 이어졌고, 누가 강요하지도 않았음에도 지루해보이던 철학의 세계로 입문했습니다. 때마침 군 복무 시기로 이어졌는데, 시의 적절하게도 남는 시간을 활용해 얕지만 여러 사상과 철학의 바다를 누빌 수 있었고, 다양성으로 풍요로운 세상 속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나름의 답을 찾기 위한 여정을 임했습니다. 휴가를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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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났던 친구가 책을 선물하고 싶다 하여, 근처 교보문고로 향해 눈에 들어오는 대로 집었던 책인 《케이지아의 대화》가 제 삶을 온통 뒤흔든 순간을 여전히 기억합니다.

그래서인지 끊임없이 ‘나의 가치’, ‘나의 세상’, ‘나의 철학’, ‘나의 중심’ 등과 같이 ‘나’만을 탐험했고, 그 과정에서 나를 규정하고 억압하며 방해하는 하는 모든 외부의 것들을 거부하고 깨부수려는 시도를 했습니다. 대부분 기성/기존의 관습/질서/개념들이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존재해오며 제가 태어난 순간부터 사회화라는 명목으로 그 가치들을 내재화하기를 강요했기에, 계속 의심하고 부딪혔습니다. 그 작업을 하는 데 가장 즐겁고 또한 외부에서도 그럴듯하게 인정해주던 것이 예술이었고, 더 나아가 전위예술이란 것으로 이름 붙이고 또 열심히 해나갔습니다. 이헌국 공모전이니 전신누드조각상이니 만들던 것도 이때였습니다. 또한 타인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한 의식적인 노력들을 해오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 당시 지인이 인터뷰 형식을 통해 사람들의 생각을 정리해주곤 했는데, 그 도움을 받았던 첫 번째 기록이 ‘[개똥같은 인터뷰] 나의 다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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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다양한 영역을 탐사하고 억압하는 것은 깨부수며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고심하던 중, 이전의 관심사들을 대부분 포괄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명확히 제시하며 또한 건강하고 올바르며 스스로 만족하고 즐길 수 있는 길을 만난 것이 바로 ‘생태적인 삶/지속가능한 삶’이었습니다. 농사, 자급, 생명, 평화, 자연 등의 주제로 조금씩 영역을 넓혀가다 보니 ‘퍼머컬처’를 만났고, 그 지점에서 확신과 자유의 꽃이 피어났기에 전역 후 곧바로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복무를 마치자마자 지체하지 않고 퍼머컬처학교와 소란을 만났고 서울 은평구로 이사가 전환마을은평에서 지냈습니다.

외부와 사회 활동에 적극적인 동시에, 내면을 돌아보는 일들에도 관심을 두었습니다. 이전에는 책을 통해 머리로만 접해왔다면, World Culture Open과 Meetup을 통해 오쇼동적명상과 5 Rhythms 그리고 즉흥잼과 같이 움직임을 통해 들여다보는 방법과 소리를 내고 악기를 연주하며 들여다보는 방법 그리고 많이 쓰는 단어로써 명상과 같은 방법으로 들여다보는 시도들을 했습니다. 또한 분명히 켄 윌버님의 사상과 저작들 덕분에 한 차례 의식이 또다시 성장했던 순간도 마주했습니다. 의식이 성장할수록 문제가 줄어든다는 오쇼님의 말씀을 수차례나 겪어왔기 때문에, 명확히 그 자유가 트이는 순간을 기억합니다.

이 시기 역시 도움 받았던 두 번째 기록이 ‘[개똥같은 인터뷰] 굴러다니는 돌’이었습니다.

* 5), 6)번은 자연스럽게 다음 부분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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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소농학교와 귀농

2015년 퍼머컬처학교 수업을 듣고 전환마을은평 생활을 하며, 지속가능성과 생태적인 삶 그리고 공동체 등의 분야를 최대한 얕지만 넓게라도 경험하고자 이곳저곳 다녔습니다. 특히나 퍼머컬처와 전환마을은평 활동 모두, 삶과 사회를 파편이자 부분만으로 그리고 제가 관심을 두던 부분으로만 또한 좁은 제 시야로만 바라보던 저에게, 전일적인(Holistic) 관점/철학/세계관으로 삶을 통합하며 바라볼 수 있게 도와주었기 때문에 더더욱 다양한 영역들을 탐색해보고자 노력했습니다. 또한 이전에 접했던 활동들 속에서는 구체적인 언어들로 표현되지 못 했던 제 관심사들이, 드디어 적합하고 어울리는 단어들을 찾아 제 머릿속에서 현실 세계 밖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도시에서 지내며 생태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작은 관계들부터 만들어나가고 연대하며, 밖으로는 지역 중심으로 안으로는 스스로부터 조금씩 변화를 이루어내는 것에 즐거웠습니다.

Holistic한 시각/관점을 배울 수 있었던 Permaculture Flower

그 탐색 과정 속에서, 농사라는 행위와 흙 위에서의 생활이 삶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퍼머컬처이든 그 어떤 시각과 관점이든 우리 삶을 지탱하는 근본 중 하나라는 생각에 닿았고 무엇보다 농사를 직접 지어보고 싶었습니다. 또한 의존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정직하지 못 했던 지난 삶을 되돌아보며, 농사와 정직한 삶이 맞닿아 더더욱 삶의 전환을 이뤄내야만 당면 과제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 구체적인 내용이 시간이 지나고 귀농통문 ‘여름호에 실었던 글’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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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이번 해 초 퍼머컬처학교 2기 동기였던 하혁과 만나 서로의 화두에 대해 나누었고, 이내 봉소골 비닐하우스에서 지내며 농사를 경험해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농사와 농사를 중심으로 한 일상생활에 대해 배우길 원했으며, 봉소골 지역에서 더 활발하고 즐겁게 지내고파 소농학교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결국 여기까지의 생각들이 모여, 정직한 삶을 살고파 소농학교까지 오게 되었고 귀농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말로 정리되어 표현된 것입니다.

소농학교 학생이 되기 전까지 귀농본부와 귀농 그리고 귀농운동은 저에겐, 전환의 취지와 지향점에는 공감하나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 제시하는 방법들과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형식들이 청년인 저에겐, 선입견 혹은 편견일 수 있습니다만, 너무나 오래되고 무거우며 기성/기존의 형식들이 묻어 있다는 인상이 강해 쉽고 편하게 다가가지는 않았던 영역이었습니다. 권력관계, 위계질서, 남성 중심, 소수를 향한 시선, 획일성에 대한 부분, 언어의 폭력성, 기존 관습으로의 관성 등이 저에겐 타파해야 할 대상들이었던지라, 대의를 위해서라면 그런 것들은 안고 갈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식의 운동에는 굳이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이름, 나이, 성별, 학벌, 출신 등 외적인 형식에 의해 관계가 형성되고 지속되는 것을 지양하는 활동을 하고 있었던지라, 오히려 제 쪽에서 먼저 선을 그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난 8개월 동안 소농학교를 듣고 사람들을 마주하며, 걷지 않고 떠오른 것을 믿지 말라는 것과 같이, 가져왔던 인상들이 허구였던 부분도 있고 또 실제로 있는 경향이나 흐름도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마 동기 분들과 가깝게 지내지 못했거나 거리감을 느끼셨다면, 이 부분에서 느끼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봅니다.

농사와 농적인 가치를 중심에 두고 이루어지는 삶에 대해서는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끊임없이 제 생각과 경험을 쌓고 무너뜨리는 과정의 연속이었고, 도움이나 조언을 구할 때면 언제든 눈앞에 나타나곤 했습니다. 무엇을 배웠느냐 적는다면 너무나 분량이 길어지겠고, 다른 분들처럼 며칠은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때문에 그중에서 가장 영향이 컸던 것은, 개인과 모임/그룹들이 어떤 삶을 궤적을 그려오다가 농적인 가치에 눈을 뜨고 실행에 옮긴 후 어떤 가치를 지키고자 농사를 짓고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그 다양한 사례를 접할 수 있었던 것이 가장 큰 배움이었던 것 같습니다. 소농학교 동기 분들, 교사 분들, 찾아온 강사 분들, 방문했던 곳의 강사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시야가 넓어지고 더 많은 가능성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애초에 가진 것 없고 가볍기 때문에 무엇이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저에게 큰 무제와 부담은 아니었으나, 방법과 그 가능성에 대해선 판단과 확신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습니다. 금창영, 전세철, 이재관 선생님의 삶과 이야기가 저는 정말 흥미로웠고, 덕분에 제 자신을 깨버릴 수 있었습니다.

또한 그런 연장선상에서 농사와 삶을 구상하고 실천할 때 남겨야만 하고 버릴 수 있는 것들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효율과 편의에 초점을 둔다면 생태, 전통 농업에서도 얼마든지 과학기술로 무장한 현대 문명의 힘을 빌려 끝없이 나아가고 복잡해질 수 있고,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는 한 그 흐름에 쉽게 빨려 들어갈 자신이란 것을 보았습니다. 자급 책 세미나 때 등장했던 한음장인과 공자의 제자 자공 이야기의 ‘기심機心’을 자주 상기했던 것 같습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제가 보다 더 적극적으로 느슨한 공동체 생활에 참여하지 못 했던 것이 있겠습니다. 제가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가려고 노력했다면 어떤 관계가 되었을까, 지나고 나서 상상만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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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비우는 과정

그렇게 소농학교와 함께 시작한 비닐하우스 생활 또한, 지난 3월부터 11월인 지금까지 이르렀습니다. 주에 며칠씩 덥고 추운 곳에서 지내며 도대체 무얼 하나 궁금하셨던 분들도 계셨습니다. 항상 온도를 체크하시며 오늘도 거기서 자느냐, 도대체 왜? 라는 질문을 셀 수 없이 것 같습니다. 그런 의문들에 카페에 한 번 ‘퍼머컬처로 내 삶 디자인하기’라는 글을 올렸던 적이 있습니다만, 역시나 실험과 실천을 하며 시간을 보내니 더욱 깊어진 것인지 아니면 다른 길로 샌 것인지 알 수는 없으나, 그때와는 다른 양상으로 흘러갔던 것 같습니다.

이번 해 비닐하우스에서 지낸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농사보다는, 그저 그렇게 살아보는 것 자체였습니다. 다시 말해 비워내는 삶을 실천해보는 것이 가장 집중했던 일이었고, 무엇이든 없이도 살 수 있는지와 내 삶은 얼마나 단순해질 수 있을지 그리고 그렇게 존재할 수 있는지 확인해보는 것이었습니다. 일상을 살아내며 무언가의 결핍과 부재인 상황에 마주할 수 있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했고, 그때 없는 것이 진정 필요한 것인지 아니면 사실은 필요하지는 않았던 것인지, 스스로 그 질문을 끊임없이 해댔습니다. 불필요한 것이었다면 쉽게 내려놓으며 그 없는 상황과 비롯되는 불편을 받아들이고, 필요한 것이었다면 첫째로 스스로 창조하거나 획득할 수 있는 방안을, 둘째로 관계를 통해 획득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했습니다. 그중에 기억 남는 몇 가지는 아래와 같고, 자연요소라고 하는 흙, 불, 물과 음식을 획득하고 자급하는 순환 사이클을 만드는 부분에 가장 고심했던 것 같습니다.

- 비누, 치약, 샴푸, 선크림 등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생활 용품들 안 사고 안 쓰기- 일회용품 사용하지 않고 식기나 컵 등을 항시 지참하기- 식재료를 기름으로 조리하지 않고 식사하기, 음식 생으로 먹기- 배부르게 먹지 않도록 식사량을 조절하고 남은 음식은 챙겨 두기- 배고픈데 먹을 것이 없을 땐 사먹는 것이 아니라 굶기- 쓰레기 자체를 만들지 않기- 소유한 의류, 신발 등 대부분 헌옷 수거함으로 보내고 남은 옷만으로 돌려가며 입기- 손으로 애벌빨래만 하고 햇빛에 말려서 옷 입기 - 무슨 풀이던 향을 맡아보고 맛보고 먹을 수 있는 것인지 확인하기- 어두워지면 잠에 들기- 새벽에 강제로 소변보기 위해 일어날 수 있게 물 가득 마시고 잠에 들기- 새벽에 강제로 발이 시려 일어날 수 있도록 맨 발로 잠에 들기- 더우면 옷 벗고 추우면 무거운 짐을 들고 다니며 땀내기- 수도, 전기, 냉방, 인터넷 등이 필요할 때면 지하철, 도서관, 교육장 등 공공기관 활용하기- 누울 곳의 습기를 막고 푹신하게 만들어 어디서든 잘 수 있기- 빗물이나 계곡물을 우선적으로 활용하고 안 되면 지하수 활용하기- 찬물로 샤워하기- 청결에 대한 강박과 고정관념 버리기- 할 일 없음을 받아들이고 즐기기- 덜 벌고 안 쓰기- 그 무엇보다 이 내용들을 먼저 내세우거나 드러내지 않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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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것들로 대변되는 실험과 시도 속에서 저는, 존재 자체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생존하기 위해 그다지 많은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많은 것들로 우리 존재를 겹겹이 뒤덮어 존재라는 꽃이 피어나지 못하게 가리고 있다, 존재는 특별히 대의를 외치거나 의미를 차지 않고도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하고 충만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연속이었습니다. 물론 연금술사에 등장하는 ‘초심자의 행운’이 아직 기능하고 있기 때문에 즐거운 것이었고, 이내 운이 다할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러나 이렇게 겉으로 드러나는 물질적인 것들을 비우고 내려놓는 과정과 그 속에서 느끼고 배운 것들을 주변에 나누면서, 개성, 브랜드, 아이덴티티, 명예 등과 같은 이미지적인 것들이 나의 자산으로 쌓여가는 착각이 일어나고 동시에 실체가 없는 허구인 그것들에 기대고 나와 동일시하며 물질적인 것들을 비우며 생긴 결핍들을 대신하려고 하는 스스로를 보았습니다. 그로 인해 스스로 할 줄 아는 것도 실제로 해낸 것도 없지만 거만하고 오만해졌으며, 나태하고 게으르며 방일하기에 부끄러워해야 함에도 스스로의 부족한 모습을 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이미지적인 것들이 쌓이면 쌓일수록 스스로의 경계를 짓고 한계를 설정하는 등 끊임없이 좁은 영역 속으로 나를 밀어붙이는 모습이었습니다. 이 부분은 전혀 지향하는 바가 아니었기 때문에, 잘못을 바로잡고 역시나 전환해야만 했습니다.

조금은 다른 맥락일 수도 있으나, 귀농운동본부를 설립하신 이병철 선생님께서도 종종 ‘귀농’과 ‘수행’의 병행을 말씀하셨습니다. 소농학교 생활과 귀농의 개념에 대한 고민 그리고 비우는 삶의 지향들이 이병철 선생님 말씀해서 통합되는 듯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교육 프로그램에서 보강되었으면 하는 두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는 생태적인 인간이라고 할까, 새로운 문명을 위한 우리의 역할, 이런 원론적인 부분이 보강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또 하나는, 이런 위기에서의 귀농운동은 생태적 각성을 통해 삶을 전환하는 것인데, 우리가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명상'이라는 말을 쓰자면, 귀농과 명상, 귀농과 마음 닦음, 귀농과 자기수행이 중요한 축으로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귀농을 통해 삶을 전환시키고 본질적으로 생태적인 인간으로 거듭난다는 것은 근본적인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흔히 말해지는 귀농 귀촌은 주로 직업적인 전망에 초점을 맞추는데, 귀농본부에서 그런 것까지 관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이병철. <2016년 가을 통권 79호 귀농통문>

“우리는 보다 근본적인 것, 문명 전환, 아까 말한 것처럼 귀농과 수행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새로운 가치를 받아들이려는 수행 없이는 귀농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 두가지를 교육 부분에서 중요하게 포함시켜줬으면 좋겠습니다.” 이병철. <2016년 가을 통권 79호 귀농통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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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알아차림

고맙게도 주변의 조언과 가르침 덕분에 ‘알아차림(mindfulness, sati)’을 알게 되어, 위험한 착각과 끝없는 오만을 경계해야 하고 이것들도 무너질 것을 알기에 집착하지 않고 내려놓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었고, 또한 단순히 외적이고 물질적인 것들뿐만 아니라 내면과 이미지/관념적인 것들까지 비우고 내려놓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위빠사나 Vipassana라는 수행방법을 만나게 되어, 지금은 매 순간의 생각과 말 그리고 행동을 끊임없이 알아차리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게임(그저 비유)으로 접어들었습니다.

덕분에 의심 없이 소비하고 소유하며 필요가 당연하다고 누려왔던 무언가의 부재가 일으키는 불편함이 사실, 여백이고 자유이자 해방으로 가는 길 혹은 그 자체일 수 있겠다는 것을 체감했습니다. 거리 위의 부랑자처럼 청결하지 못하고 비루하며 불쌍하고 빈곤해 보일 수 있고 그렇게 생각해도 부인하지 않을 테지만, 단순하고 고요하며 가벼우면서도 충만한 이 거지 Super Tramp의 방식에 지금 자족합니다.

크리스토퍼 맥캔들리스와 영화 Into the wild의 Supertra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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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자연농

구체적인 농사의 행위들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자본과 시장의 논리 안에서 수확량과 가격 그리고 효율 등이 기준이 되어 ‘농사는 어떠해야 한다’는 상 아래, 무언가를 더 넣고 뿌리고 보호하는 등 끊임없이 더하거나 해줘야만 하는 농사 방법과는 자연스레 멀어지게 되었고, 당연했던 것들을 덜어내면 어떨까, 없으면 어떨까, 해보지 않으면 어떨까와 같은 사고에 기반을 둔 농사 방법에 닿게 되었습니다. 유기농도 아니었고 생명역동농도 아닌 자연농이었습니다. 물론 기존에 있는 개념으로 설명하기 위해 자연농이라 칭한 것이니, 텍스트에 너무 얽매이지 않았으면 합니다. (연상준 선생님께서 농부 100명이 모이면 101가지의 농법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농법에 정답과 최고란 없고, 농사에 작동하는 근본 원리를 익힌 후 자신이 처한 상황과 본인의 철학에 맞게 선택해나가는 것이라는 말씀에 동의하고, 그런 점에서 자연농이 우수하다는 것이 아니라 저에게는 자연농이 맞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소농학교 수업 중에서도 종종 자연농/자연재배에 관련해 보고 듣고 배우는 시간들이 있었고 각자가 받아들이는 내용들은 모두 달랐겠으나, 단순히 농법 혹은 농사 기술의 하나쯤으로 소개된 것 같아 저는 아쉬웠습니다. 제가 정답을 알고 자연농을 향한 고정된 하나의 정의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자연농이 단순하고 근본적인 방식을 추구하는, 농사와 비우는 것이 닿을 수 있는 삶의 방식에 관한 철학이자 세계관이라는 부분을 언젠가 나누고 싶었습니다. 이번 해 종종 찾아갔던 홍천의 자연농 학교인 지구학교의 안내자 개구리(최성현)님도 이 비움에 대해서 말씀해주셨고, 2016년 가을호 귀농통문에 등장하는 아카메 농장 방문기에서 금창영 선생님의 고민도 이 부분과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작년에 이곳을 다녀오고 올해 다시 방문하는 귀농본부 금창영 이사)는 전업농으로 자연농이 지속가능한지, 고전하고 있는 지금의 자연재배를 개선할 여지가 있는지에 대해 알아보고자 올해 다시 방문을 결심했다고 한다. 작년 그곳을 다녀온 금 이사가 내린 결론은 의외다. 가능은 하지만 수확량이나 고가전략보다는 농부 자신의 비움과 뺄셈의 해결방식이 먼저라고 고백한다. 이는 시오미 나오키가 그의 저서 《반농반X의 삶》에서 말한 '덧셈의 시대, 뺄셈의 사상'을 떠올리게 한다. 이번에는 귀농본부의 가치로 내세우는 '생태가치'와 '자립하는 삶'이 왜 이렇게 어려운지에 관심을 기울이고 구조문제로 치부할 수 없는 인간 본성의 문제를 아카메농장은 어떻게 이해하고, 풀어나가는지를 보겠다고 한다.” 이수형. 121p. <2016년 가을 통권 79호 귀농통문>

그리고 자연농법 자체가 목적은 아니라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는 농사를 통해 ‘더 높은 영성에 이르는 삶’이 열린다고 보기 때문에 그렇게 농사를 짓는다는(‘퇴비도 안 썼지만 땅은 끝내 생명을 틔우더라’), 부안의 전세철 농부님께서도 지난 방문 때 영성과 삶과 농사에 있어서 아무것도 애써서 할 필요 없음에 대해서 이야기를 길게 해주셨습니다. 후쿠오카 마사노부님과 가와구치 요시카즈님의 저작들에 대해서는 더 말하지 않아도 이미 잘 아실 것 같습니다.

농사가 단순히 논과 밭을 일구는 것이 아닌 일상과 삶의 토대가 되는 공간, 아나스타시아식 표현으로 ‘가원’을 일구고 가꾸는 행위이고, 먹거리 자급의 길이기도 하지만 더 나아가 존재가 더욱 충만해질 수 있는 알아차림과 수행의 길이며, 생산성과 효율성을 고려해 경작만 하는 개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닌 밭과 숲밭 그리고 숲의 생태계를 함께 이루고 그 속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태도라 할 때, 저에게는 자연농이 바로 그 행위이고 길이자 태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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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노래와 연주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저는 소리와 음악을 통해 제 자신을 들여다보곤 했습니다. 물론 이전에는 대중가요를 들으며 오락/감정 욕구를 충족하거나 연주를 하며 드러내는/퍼포먼스에 대한 욕구도 충족시키는데 관심을 두었습니다. 그러나 연주를 하는 와중에 소리와 음악을 통해 자신과 세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전혀 다른 세계가 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 이후로는 소리와 음악 그리고 노래와 연주에 진심으로 몰입하며 순간에 깨어있고 스스로를 해방하는 작업/명상/수행을 해왔습니다. 소농학교 중간중간 가지고 다니고 연주했던 악기들은 그런 과정 속에서 다루던 상태를 그저 드러낸 것이었습니다. 물론 스스로 미숙한 부분들을 보고 나아지려고 노력은 하지만, 예술성이나 공연 같은 것에 관심을 두고 해온 것은 아니며, 예술성은 그저 등산길에 지나가다 보여서 줍는 도토리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까지는 소리와 음악 그리고 노래와 연주를 통한 작업들이 제 머릿속에만 존재하고 제 개인의 경험으로만 존재해왔었는데, 보다 보편적인 경험이고 구체적인 경로로써 제시되는 곳들이 있음을 알게 되어 한 단계 더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명상 음악, 종교 음악, 뉴 에이지 등의 제시하는 목적과 분위기 그리고 감성과는 달리, 하즈랏 이나야트 칸과 실비아 나카쉬를 통해 알게 된 목소리 요가(the voice of yoga)와 인도고전음악(Indian classical music)의 세계는 탄생과 목적 자체가 헌신이자 해방인 영역이었습니다. 물론 장르와 경계 없이 어떻게 대하는지의 태도에 따라서 글쓰기, 춤추기, 노래하기, 요가 등 어떤 분야든 해방의 길이 될 수 있겠고, 음악의 세부적인 장르 또한 마찬가지겠지만, 저에게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다가온 것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뿐입니다. 여기까지 생각이 닿아 국내에서 자료들을 여러 방편으로 찾아보았지만 닿을 수 없는 곳이 없어, 며칠 전부터 제가 자료들을 정리해 놓고자 공간(spiritualsound)을 만들고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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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수행하는 삶 그리고

결국 그간 관심사와 활동들을 관통하는 요지는 비우는/해방하는 삶이었고, 그것을 풀어낼 수행의 방편들로써 지난해와 이번 해 농사/영성/소리와음악에 관심을 두었던 것이 얼마 전부터 자연농/알아차림/노래와연주로 발전하며 보다 구체적인 주제로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자연스레 소농학교 이후에는 이 주제들과 수행에 집중하는 생활을 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12월에 예정하고 있는 인도 여행도 이 주제들에 대한 탐방입니다. 언제나 저는 제 내면을 다루고 그것을 일상으로 실천해내는 것 외에 다른 관심사들을 나누기 위해서는 생활권 밖으로 다녔습니다. 그나마 은평에서 지낼 때는 바로 옆과 근처에 있어서 편하긴 했으나, 여전히 일상생활에서 해소가 되지 않아 밖으로 나가야 하는 부분에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그런 아쉬움을 한번 해결해볼 수 없을까, 내가 가진 관심사들을 편히 나누고 누릴 수 있는 곳에서 생활해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지점에서 인도 여행을 오랫동안 염원 해왔습니다. 물론 내가 지금 있는 곳에서 해내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와 기대와 환상으로 가득 찬 경험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에 동의를 하지만, 결국 직접 보고 들어야 결론이 나지 않겠습니까, 생태/공동체/농사/숲/명상/영성/수행/소리/음악 등이 자연스러운 일상이자 존중받을 수 있는 삶의 방식인 문화권에서의 생활을 하려 합니다.

오로빌 공동체 Auroville 안의 사다나 포레스트 Sadhana Forest에서 활동을 함께 하던 친구들과 일하고 배우며 지낼 예정이고, 개인적으로는 수행처/아쉬람과 인도 음악을 배울 수 있는 공간들 위주로 다닐 예정입니다. 페이스북으로 친구들과 정보를 나누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안고 있는 고민들이 있는데, 첫 번째는 토지에 대한 부분입니다. 수행 공간 혹은 가원을 제약 없이 꾸리고자 한다면 토지를 소유하는 것이 당장 제 눈앞에 보이는 확실하고 쉬운 기존의 방법인데, 이를 위해서 수년간 돈을 버는 과정을 거친 후에 구매하고 본격적으로 공간을 꾸려갈 것인지 아니면 돈을 쌓는 과정을 거쳐 공간을 확보한다는, 앞날을 상상하고 조건을 달며 현재를 구속하는 사고에서 벗어나, 시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존재하는 자리에서 수행하고 가원을 만드는 태도로, 그 공간이 앞날을 기약할 수 없더라도 그저 살아가면 되는 것인지, 마음으로 와 닿는 판단이 서질 않습니다. 봄과 앎이 동시에 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개인과 사회의 균형, 구원과 혁명에 대한 부분입니다. 여전히 저는 그 균형 지점을 찾기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제 자신을 들여다보고 확장해나가며 집중할 때면 주변 관계와 사회에 무관심하고 무책임한 것 같아 시선을 돌려 참여하게 되고, 그렇게 외적인 활동에 집중할 때면 내 본연의 일에 소홀하고 나태하고 있지는 않은가 돌아보게 됩니다. 홀로 구원의 길을 걸어갈 것인지, 다 함께 혁명의 깃발을 들 것인지, 상충하는 것 같이 보이면서도 공존할 수 있다고 말하는 두 길 사이에서 헤매고 있습니다. 사실 끊임없이 줄타기 하면서 갈 수밖에 없는 것일까요?

수료식을 앞둔 소농학교와 추운 겨울을 앞두고 마무리하는 비닐하우스이 중심이었던 이번 해를 마무리하며, 비워가는 삶을 향한 구체적인 수행 방법들이, 자연농/알아차림/노래와연주, 나타나고 몇 가지 고민을 안고 갑니다. 이후에도 관심사를 나누며 인연을 이어갈 수 있기를 바라고, 서로가 가진 고민을 해결할 단서를 주고받을 수 있기를 희망하며, ‘수행하는 삶에 대해서’라고 이름 붙이는 것으로 보고서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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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읽어온 책

2013. 5. 8 ~ 2015. 2. 15, 군 복무 기간- 핀드혼 농장 이야기(Findhorn Foundation)- 행위 미술 이야기. 윤진섭과의 대화(이혁발)- 한국퍼포먼스아트 40년 40인(한국실험예술정신)- 한국의 행위예술가들(이혁발)- 창업국가 START UP NATION : 21세기 이스라엘 경제성장의 비밀(댄 세노르 & 사울 싱어)- 인생수업 : 잘 물든 단풍은 봄 꽃보다 아름답다(법륜스님)- 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칼 필레머)- 웰컴투 오로빌 : 살고 싶은 마을, 남인도 오로빌 이야기(오로빌 투데이)- 아랍 파워(비제이 마하잔)- 프로젝트 뉴욕 : 디자이너와 예술가 20인의 서바이벌 스토리(이민기 & 이정민)- 예술가여 무엇이 두려운가: Art and Fear(데이비드 베일즈 & 테드 올랜드)- On becoming an artist 예술가가 되려면: 심리학의 눈으로 바라본 예술가 이야기(엘렌)- 미디어아트 : 예술의 최전선(진중권)- 파우스트(괴테)- 젊은 페르테르의 슬픔(괴테)- 한 달쯤, 라다크, LADAKH Holiday(김재은 & 허지혜)- 인문학으로 떠나는 인도여행(허경희)- 이스라엘, 평화가 사라져버린 5,000년의 나라- 세계 실험예술의 메카 홍대 앞- 철학의 책(윌 버킹엄 외)- 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서양음악사(오카다 아케오)- 인도 음악(윤혜진)- 케이지와의 대화 Conversing with Cage(리처드 코스텔라네츠)- 연금술사 The Alchemist(파울로 코엘료)- 바디칸의 금서 군주론(니콜로 마키아벨리)- 죽음이란 무엇인가(셸리 케이건)- 알레프 Aleph(파울로 코엘료)- 파이 이야기 Life of Pie(얀 마텔)- 앵무새 죽이기 To kill a mockingbird(하퍼 리)- 파라다이스(베르나르 베르베르)- 아크라 문서 Manuscript found in Accra(파울로 코엘료)-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아잔 브라흐마)- 다른 길(박노해)- 내가 사랑한 유럽 Top 10(정여울)- 알랭 드 보통의 영혼의 미술관(알랭 드 보통 & 존 암스트롱)- 위험한 생각들 What is your dangerous idea?(존 브록만)- 지극히 적게 L'infiniment peu(도미니크 로르)- 이방인, 전락(알베르 카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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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르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무라카미 하루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류시화 엮음)- 셰익스피어 4대 비극: 햄릿, 맥베스, 리어왕, 오셀로(윌리엄 셰익스피어, 이태주 옮김)-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The sun also rises.(어니스트 헤밍웨이)- 마을의 귀환(오마이뉴스 특별취재팀)- 노인과 바다 The old man and the sea (어니스트 헤밍웨이)- 조화로운 삶 Leaving the good life(헬렌 니어링, 스코트 니어링)- 게으름에 대한 찬양 In praise of idleness(버트런드 러셀)- 브리다 Brida(파울로 코엘료)- 흐르는 강물처럼 Like the flowing river(파울로 코엘료)-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Loving and Leaving the Good Life(헬렌 니어링)- 우리집, 구경할래? Theselby is in your place(토드 셀비)- 소리와 음악의 신비 The mysticism of sound and music (하즈랏 이나야트 칸)- 신화의 힘 The power of myth(조셉 캠벨 Joseph Campbell·빌 모이어스 대담)- 실마릴리온 The Silmarillion(J. R. R. 톨)-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우주이야기 L'Univers expliqué à mes petits-enfant(위베르 리브)- Now: 행성의 미래를 상상하는 사람들에게 A New Earth (에크하르트 톨레)- 냉정과 열정 사이 Blu & Rosso (츠지 히토나리 Hitonari Tsuji, 에쿠리 가오리)- 클린 Clean(알렉한드로 융거)- 파리에서 달까지 Paris to the moon (애덤 고프닉) - 스콧 니어링 자서전 The making of a Radical (스콧 니어링)- 체 게바라 자서전 Self Portrait CHE GUEVARA (체 게바라, 빅토르 카사우스)- 에콜로지카 Écologica (앙드레 고르)- 간헐적 단식법 THE FAST DIET (마이클 모슬리 & 미미 스펜서)- 월든 Walden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녹색당 선언 The Green Party Manifesto (김종철 외 지음, 녹색당 기획, 2012)- 녹색 희망 Vert Esperance (알랭 리피에츠)- 마이어스의 심리학개론[8판] Psychology, 8th Edition (데이비드 마이어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World of Warcraft 아서스: 리치왕의 탄생 ARTHAS: RISE OF THE LICH KING(크리스티 골든)-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 (에크하르트 톨레, 류시화 옮김)- 생활의 발견 (린위탕)- 끌림 (이병률)- 나를 바꾸는 심리학의 지혜 프레임 (최인철)- 뉴욕 아티스트 (손보미)- 불륜 adultério (파울로 코엘료)- 안나 카레니나 (톨스토이)- 마음의 힘 The power of the heart (밥티스트 드 파프)- 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탈무드 - 꾸뻬 씨의 행복 여행 (프랑수아 를로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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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퍼머컬처 Permaculture (데이비드 홈그렌)- 당신이 알아야 할 한국사 10 (서경덕, 한국사 분야별 전문가)- 미 비포 유 Me before you (조조 모예스)- 1cm+ 일 센티 플러스(글 김은주, 그림 양현정)-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히가시노 게이고)- 메이즈 러너 3부작 Maze Runner Trilogy (제임스 대시너)- 농부 철학자 피에르 라비 PIERRE RABHI, LE CHANT DE LA TERRE (장 피에르 카르티에 · 라셀 카르티에)- 열려라 클래식 (이헌석)- 굿바이 스바루 Farewell, My Subaru (덕 파인)- 잘 생긴 녹색물건 (김연희)- 리빙 그린: 먹을거리와 에너지 위기 시대에 살아남는 친환경 생활 지침 Living Green: A practical guide to simple sustainability (그레그 혼)- 농, 살림으로 디자인하다 (임경수)- 뉴스의 시대 THE NEWS (알랭 드 보통)- 플라멩코 원초적 에너지를 품은 집시의 예술 (최명호)- 사람에게 가는 길 (김병수)

2015. 2. 15 ~ 2015. 5. 22, 전역 후 전환마을은평 활동 하기 전-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 (요시다 타로)- 농촌의 역습 (소네하라 히사시)-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류시화)- 랄프 왈도 에머슨 19세기 미국명시 2 (랄프 왈도 에머슨, 김천봉)- 궁합이 맞는 과일·야채 생주스 (마루모 유키코)- 쉽게 찾는 우리 약초 민간 편 (김태정)- 자급자족 농 길라잡이 (나카시마 다다시)- 라이니시스 전기 (곽건민)- 녹색평론 2015년 3-4월 통권 제 141호- 데미안 외 (헤르만 헤세)- 켄 윌버의 통합비전 The Integral Vision (켄 윌버)-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가? (강신주)- 켄 윌버의 일기 One Taste (켄 윌버)- 노자의 도덕경 (최태웅 옮김)- 읽어보시집 (최대호)- 24절기와 농부의 달력 (안철환)- 우리들의 파리가 생각나요 (정현주)- 기적의 자연재배 (송광일)- 뜻밖의 미술 (제니 무사 스프링 엮음)- 죽은 시인의 사회 (N. H. 클라인바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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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5. 22 ~ 2016. 3, 전환마을은평 활동- 이케아 옷장에 갇힌 인도 고행자의 신기한 여행 L'extraordinaire voyage du fakir qui etait reste coince dans une armoire Ikea: Roman (로맹 퓌에르톨라)- 향기가 묻어나는 세계명시 150 (문영 엮음)- 해변의 카프카 (무라카미 하루키)- 禪으로 읽는 반야심경 (김태완 번역 및 설법)- 아들러의 격려 (W. 베란 울프)- 내 손으로 받는 우리종자 (안완식)- 모든 것의 역사 (켄 윌버)- 이것이 불교의 핵심이다 (곽철환)

2016. 3 ~ 현재- 헨리 데이비드 소로 - 월든 호숫가의 고요한 혁명가(막시밀리앙 르 루아)- 기적의 채소 - 비료도 농약도 쓰지 않는 먹거리 혁명, 자연재배 (송광일)- 자급을 다시 생각한다 (야마자키농업연구소)- 빗물과 당신 (한무영, 강창래)- 짚 한 오라기의 혁명 후쿠오카 (마사노부 지음 최성현 옮김)- 파빌리온, 도시에 감정을 채우다 - 천막부터 팝업 스토어까지 (함성호 등 11명)- 무경계 (켄 윌버)- 당신의 목소리를 해방하라 Free Your Voice (실비아 나카쉬)- 세계 명상음악 순례 (김진묵)- 성자가 된 청소부 (바바 하리 다스)- 구름 속의 외딴 집 (틱낫한)- 윤회의 본질 (크리스토퍼 M. 베이치)- 자유에 대하여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동서양의 윤회관 (고요한 소리)- 팔정도 (고요한 소리)- 인도 오지 기행 (조현)- 현대인을 위한 붓다의 가르침 (안양규)- 될 일은 된다 (마이클 A. 싱어)- 위빳사나 수행 28일 (찬몌 사야도 아쉰 자나까비왐사)- 거지 성자 (전재성)- 불교, 이웃종교로 읽다 (오강남)- 위빳사나 백문백답 (마하시 사야도 우 소바나)- 인도 아쉬람 기행 (김동관)- 루미와 우화 모음집 (루미, 아서 숄리, 이현주)- 예언자 (칼릴 지브란)- 법구경 (빠알리성전협회)- 인도음악(윤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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