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 『바보상자의 역습』 , 대중문화가 어떻게 우리를 더 …이미 복잡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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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상자의 역습』 , 대중문화가 어떻게 우리를 더 똑똑하게 만드는가 장근영 /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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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상자의 역습』 , 대중문화가 어떻게 우리를 더 똑똑하게 만드는가장근영 /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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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 게임산업저널 2007년 2호 [통권 18호]|

대중문화가 어떻게 우리를 더 똑똑하게 만드는가

장 근 영*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차가워지는 TV

캐나다의 유명한 미디어 학자 마샬 맥루한(Herbert Marshall McLuhan)은 미디어를 구

분하면서 신문이나 책과 같은 활자매체나 라디오 같은 음성매체는 수용자의 적극적인 정보

처리를 필요로 하는 차가운 매체(Cool media)인 반면, TV는 자기가 알아서 모든 것을 보여

주기 때문에 수용자가 수동적으로 그냥 앉아서 보기만 하면 되는 뜨거운 매체(Hot media)

라고 설명했다. 그의 이런 구분은 이후에 TV에 대한 하나의 고정관념이 되었다. 그 이후

TV는 공식적으로 ‘바보상자’ 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그 화면만 들여다보고 있다가는 아무

생각도 못하는 멍청이가 되고 말 것이라는 우려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그러나 과연 TV에

대한 이 오래된 고정관념이 옳은 것일까? 혹시 우리는 TV에 대해서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

은 아닐까?

이미 복잡계 과학과 창발현상이라는 떠오르는 연구 분야를 흥미진진하고도 알기 쉽게 다

룬 책 <이머젼스>로 잘 알려진 재기 넘치는 신세대 저술가인 스티븐 존슨(Steven Johnson)

이 던진 질문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새 책 <바보상자의 역습>에서 TV에 대한 이 오래된

고정관념이 옳지 않으며 이제 우리는 TV뿐만 아니라 우리를 바보 혹은 미친 사람으로 만드

는 원흉으로 지목되어 오던 매체들, 특히 영화나 인터넷, 그리고 컴퓨터게임에 대한 태도를

* 연세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하였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연세대학교 인간행동연구소 선임연구원, 연세대학교

사이버교육지원센터 컨설턴트를 역임하였고, 현재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부연구위원으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팝콘심리학』, 『너,

싸이코지?』, 『그림과 함께 보는 EQ바로알기』 등이 있다. [email protected]

『바보상자의 역습』스티븐 존슨 저, 윤명지 역. 비즈앤비즈, 2006

서평 대중문화가 어떻게 우리를 더 똑똑하게 만드는가 - 『바보상자의 역습』 157|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의 원 제목 ‘나쁜 것들은 알고 보면 모두 좋은 것들이

다’(Everything Bad is Good for You)는 그의 주장을 더욱 뚜렷하게 대변한다.

플린 효과(Flynn Effect)와 대중매체의 변화

나는 그가 책에 담은 이야기의 내용을 요약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왜냐하면 내 글을 읽

은 독자들이 내가 쓴 요약문만 읽고 정작 원래의 책은 넘겨버리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대신 그의 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개념인 플린 효과(Flynn Effect)에 대해서

만 간단히 설명하고자 한다.

플린 효과는 뉴질랜드의 사회운동가이자 정치학자 제임스 플린(James Flynn)이 발견한

현상으로 세대가 반복될수록 지능검사 점수가 높아지는 현상을 말한다. 플린은 미국 군입대

지원자들의 IQ 검사결과를 분석해 신병들의 평균 IQ가 10년마다 약 3점씩 올라간다는 사실

을 발견했으며, 1987년 14개국으로 대상을 확대 실시한 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를 얻었다.

벨기에, 네덜란드, 이스라엘에서는 한 세대, 즉 30년 만에 평균 IQ가 20점이 올랐고, 13개

국 이상의 개발도상국에서도 5~25점 증가했다는 보고서가 발표된 바 있다.

원래 플린은 백인과 흑인의 지능점수 간의 차이가 유전적인 필연이라고 주장하는 아더

젠센(Arthur Jensen)의 저서 <The Bell Curve>를 반박하기 위한 근거를 찾다가 이런 현상

을 발견했다. 젠센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세계 최초로 미군이 징집자들을 대상으로 집단지

능검사를 실시했던 1차 세계대전 시절, 흑인징집자들의 IQ는 백인징집자들의 그것보다 평균

15점정도 낮았다. 그리고 이 점수 차이는 최근까지 별로 줄어들지 않고 유지되고 있다. 젠

센은 이런 사실을 근거로 흑인은 애초부터 머리가 나쁜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물론 젠센은 모든 흑인이 백인보다 지능이 낮다는 뜻은 아님을 부연하긴 했다. 그러나 그

정도의 개인차는 분산(distribution)이라는 자연계에 존재하는 모든 분포의 기본적인 특성

때문에 나타난 것일 뿐, 결국 지능의 유전자는 피부색 유전자와 결합되어 있다는 주장이었

다. 하지만 플린은 흑인이든 백인이든 모두 세대를 거치면서 지능이 높아졌다는 사실을 보

여줌으로써 젠센의 주장을 반박했다. 만약 흑인이 애초부터 머리가 나쁘게 태어난다면, 시

간이 지나고 세대가 바뀌더라도 흑인의 지능점수는 그대로 있어야 한다. 하지만 플린 효과

는 그렇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실제로 현대 흑인의 지능점수 평균은 30년 전 백인들의

평균 지능점수를 넘어섰다. 따라서 지능검사 점수의 차이는 유전이 아니라 환경의 문제임이

증명된 것이었다. 이러한 내용은 유릭 나이서(Uric Neisser)의 책 <Rising Curve>의 주된

내용인데, 나이서 역시 위와 같은 근거로 젠센의 <Bell Curve>를 반박했다.

그렇다면 플린 효과의 원인은 뭘까? 물론 IQ 검사지 자체의 한계 때문일 수도 있다. 많

이들 알려져 있듯 IQ 검사는 인간의 지적인 능력 전부를 측정하기 위한 검사가 아니라 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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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수행에 필요한 능력을 측정하기 위한 검사이기 때문이다. 심리학 연구결과는 IQ 점수가

높은 학생이 학교에서 공부를 잘 할 가능성은 매우 높지만 IQ가 높다고 해서 학교를 졸업

하고 나간 사회에서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즉, IQ는 학업성취도만을

예측할 뿐이다. 그러나 이후 연구에 따르면 이와 같은 단순한 학업성취도 예측용 IQ 검사뿐

만 아니라 보통 G-점수라 불리는 전반적인 지능에서도 플린 효과는 나타난다. 즉 실제로

현대인들은 이전 세대보다 지능이 높다는 것이다. 어째서 그럴까? 그 이유는 스티븐 존슨이

인용한 카미 스쿨러(Carmi Schooler)의 다음 글로 대답할 수 있다.

다양한 자극에 노출될수록 결정해야 할 일이 많아지고,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 고려해야 할 사항도

많아진다. 모순되고 분명히 정의되지 않아 불확실성이 커지면, 환경은 더욱 복잡해진다. 이런 환경

에서는 고도의 인지활동이 더 많은 보상을 받게 되며 인간의 지능이 발달하기 마련이다. (<바보상자

의 역습> p.141에서 일부 인용)

환경의 복잡성이 얼마나 바뀌었는지는 수십 년 전과 현대를 비교해 보면 쉽게 알 수 있

다. 1950년대만 해도 우리는 농경사회에서 살고 있었다. 그리고 농경사회에서 아이들은 뛰

고 수영하고 뒹굴면서 놀았다. 이때는 읽고 쓰고 셈하기는 학교에 가서나 배우는 아주 드문

활동일 뿐이었다. 그러다가 도시화가 되면서 점점 주변에 책이 늘어나고 TV 같은 대중매체

를 통한 놀이가 늘어나게 되었는데, TV는 다양한 정보와 이야기들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농경사회에서 들을 수 있는 이야기는 동네의 어른이나 선배가 전해주는 것이 거의 전부였

다. 그러나 지금은 책과 TV와 신문을 통해서 수많은 이야기와 정보를 접한다. 또한 그 이

야기와 정보는 크건 작건 쓰고 읽고 셈하는 과제를 요구한다. 결국 도시 아이들은 그냥 돌

아다니며 놀면서도 저절로 학교에서 가르치려는 능력을 미리 습득하고, 지적인 훈련을 하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최근 들어 TV는 질적 ․ 양적으로 급속하게 더 복잡해졌다. 일단 채널

숫자가 3개에서 수십 개로 늘어났다. 게다가 그 수많은 채널에서 담아내는 이야기들의 복잡

도도 꾸준히 증가해왔다. 소위 말하는 교육적인 프로그램들, 즉 다큐멘터리나 정보제공 프

로그램 이야기가 아니다. TV에게 바보상자라는 명칭을 가져다준, 쇼프로나 드라마들도 갈

수록 복잡해진다는 말이다. 책의 저자는 <24>나 <소프라노스> 혹은 <ER> 같은 드라마를

예로 든다. 이런 드라마의 이야기 구조는 너무 복잡한데다 시청자들에게 최소한의 단서만을

던져주고 빠르게 진행되기 때문에 현대인들조차도 단 한 번에 이해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만약 이런 드라마를 1960년대 시청자들에게 보여주었다면, 아마 대부분은 너무 머릿속이 복

잡해서 그냥 TV를 꺼버렸을 것이다.

인터넷이 가져다준 변화는 더더욱 극적이다. 인터넷에서 읽고 쓰기는 오프라인 공간에서

서평 대중문화가 어떻게 우리를 더 똑똑하게 만드는가 - 『바보상자의 역습』 159|

최근 들어 TV는 질적 ․ 양적으로 급속하게 더

복잡해졌다. 게다가 담아내는 이야기들의 복

잡도도 꾸준히 증가해왔다. 소위 말하는 교육

적인 프로그램들, 즉 다큐멘터리나 정보제공

프로그램 이야기가 아니다. TV에게 바보상자

라는 명칭을 가져다준, 쇼프로나 드라마들도

갈수록 복잡해진다는 말이다.

숨 쉬고 말하는 것만큼이나 필수적인 활동이다. 읽고 쓰는 것을 빼면 인터넷에서 할 수 있

는 일은 거의 없다. 또한 인터넷을 통해서 우리는 텍스트뿐만 아니라 수많은 이미지도 접한

다. 그 결과 인터넷을 통해 우리는 텍스트뿐만 아니라 이미지에 대한 독해력을 습득한다.

인터넷 이전 세대들이 얼마나 자주 글을 읽거나 써야 하는 상황에 처했었는지 생각해보면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의 특수성을 분명히 실감할 수 있다. 인터넷 이전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읽은 글은 신문이다. 2005년 통계청이 발표한 국민생활시간조사 결과에 따르면 하루

에 사람들이 신문을 읽는 시간은 20분 내외였다. 그런데 요즘 웹서핑을 한다는 건 결국 웹

을 돌아다니며 계속 글을 읽어댄다는 뜻이다. 독자 여러분은 웹서핑을 하루에 몇 시간이나

하는가? 글쓰기의 변화는 더욱 더 극적이다. 인터넷 이전에는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들

을 제외하고는 회사에서 보고서를 쓰거나 누구에게 편지를 보낼 때

를 제외하고는 글을 쓸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이전 세대들이

한 달에 한번이나 쓸까말까 했던 글을 요즘 세대는 거의 매일 쓴

다. 리플을 달고 게시물을 만들어 올리기 위해서 말이다.

컴퓨터게임이 가져다 준 복잡성의 변화도 획기적이긴 마찬가지

다. 모든 컴퓨터게임은 문제를 던져주고 그것을 해결하기를 요구한

다. 올바른 선택을 하기 위해서 게이머는 끊임없이 정보를 찾아서

분석하고 비교하고 가설을 세워 검증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물론

그 와중에 읽기와 셈하기는 기본이다. 게임을 하기 위해서도 역시

지시문을 읽어야 하고, 결과를 셈해야 하며, 더 잘하려면 게임 사

이트에 들어가서 유저 팁 같은 내용을 찾아서 읽어봐야 하지 않던가. 또한 게임을 하려면

민첩해야 하고 제한된 시간 안에 손을 움직여서 문제를 해결하는 일도 잘 해야 하는데, 이

것은 바로 ‘동작성 지능’의 핵심요소이다.

물론 대중매체의 발전과 함께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의 숫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는 점

도 중요하다. 농경사회에서 알아야 하는 사람은 자신이 살아가는 마을 주민들이 거의 전부

였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도시에서 수많은 사람을 면대면으로 마주친다. TV를 켜거나 인

터넷에 들어가면 만남의 범위는 전지구 범위로 확장된다. 내가 즐기는 <배틀필드>라는 FPS

게임에서 만나는 게임 동료들은 한국인인 경우도 있지만 중국이나 일본에서 접속한 경우가

더 많다. 비록 그들과는 오로지 서로 호흡을 맞춰 상대팀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도모할 뿐이

지만, 그 과정 역시 상대방과의 끊임없는 머리싸움이다. 우리는 예전 세대가 1개월간 해냈

을 만큼의 선택과 판단을 거의 매일 하고 있으며, 예전 세대가 평생 동안 사귀는 사람들보

다 최소 몇배는 많은 사람들과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 이러니 우리의 지능이 높아지지 않고

배겨날 수 있겠는가.

160 게임산업저널 2007년 2호 [통권 18호]|

컴퓨터게임, 세상과 자신을 알아가는 훈련

나는 앞서 이 책의 요약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서툰 요약을 통해서 날아가 버릴 재치와

즐거움이 책 속에 너무 많다는 것도 직접 책을 읽기를 바라는 이유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

는 지금 우리나라에서 이런 주장을 이 정도로 체계적으로 풀어 쓴 글 자체가 너무 희귀하기

때문이다. 컴퓨터게임에 대한 강의를 하고 다닐 때마다 느끼는 것은 청소년의 90% 이상이

컴퓨터게임을 즐기는 이 나라에서 부모나 어른들은 컴퓨터게임의 해악성에 대한 담론밖에는

듣지 못한다는 점이다. 나는 컴퓨터게임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게임을 즐기는 게이머이기도

하다. 그리고 스티븐 존슨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도 컴퓨터게임이 인류가 역사를 통해 발전

시켜온 세상과 자신을 알아가는 훈련 방법의 최신 버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컴퓨터게임

에 대한 강의를 할 때 이런 관점에서 설명을 하는데, 그와 같은 강의를 시작한 지 3년이 넘

었지만 여전히 그런 이야기는 처음 들었다는 청중들이 대부분이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나라 청소년의 90% 이상은 컴퓨터게임을 일주일에 1회 이상 즐긴다.

2006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초등학생의 46%, 중학생 중에서는 40%, 고

등학생은 37%가 하루에 한 시간 이상 컴퓨터게임을 즐긴다고 응답했으며 하루에 2시간씩

컴퓨터게임을 즐긴다는 15% 남짓한 초중고생을 포함하면 과반수의 청소년들이 꼬박꼬박 매

일같이 컴퓨터 앞에서 게임을 즐기고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대부분의 부모는 컴퓨터게임을

즐기는 자녀를 눈앞에 두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그런 부모가 듣는 이야기라고는 컴퓨터게

임의 위험성, 컴퓨터게임이 아이를 ‘중독’시키고, 폭력적으로 만들고, 사교성도 잃게 하고,

공부도 못하게 해서 결국에는 사회 낙오자로 만들 것이라는 학설들뿐이다. 이건 일종의 협

박이고 공포다. 물론 그 학설들이 타당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면 널리 알려질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청소년들이 게임을 즐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PISA(국제비

교 학업성취도) 점수는 전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수준이다. 또 컴퓨터게임과 관련된 극단적

으로 불행한 사례들도 많이 있다. 하지만 그런 극단적인 사례의 원인을 반드시 컴퓨터게임

으로 국한시키려는 학자는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

사건의 범인 조승희나 GOP에서 총기를 난사한 김일병의 경우, 최근에 총기 탈취사건을 일

으킨 범인도 모두 1인칭 슈팅게임(FPS)을 즐겼다는 이유로 게임을 원흉으로 지목하지만, 그

들은 단지 컴퓨터게임을 즐겼다는 것 이외에도 많은 다른 특징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고유한 성격이나 장애나 사회경제적인 여건 등으로 인해 사회로부터 소외된 부적응자

였다. 현재도 우리나라에만 FPS게임을 즐기는 수백만 명의 청소년이 있지만 그들이 과연

조승희나 김일병이 될 가능성이 있을까. 조승희는 TV방송국에 보낸 마지막 메시지에서 구

약성서에서 선지자들이 쓰던 어투로 세태를 꾸짖었다. 그는 실제로 어린 시절부터 기독교

신자였다. 만약 조승희가 컴퓨터게임을 즐겼다는 이유로 그 파괴적인 행동을 컴퓨터게임과

서평 대중문화가 어떻게 우리를 더 똑똑하게 만드는가 - 『바보상자의 역습』 161|

연관 짓는다면, 같은 이유로 성경책이나 종교를 가져다 붙일 수도 있지 않은가.

물론 나는 내 의견(혹은 스티븐 존슨이나 그 외에 컴퓨터게임의 긍정적인 가치를 주장하

는 모든 의견)이 반드시 옳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컴퓨터게임의 부정적인 측면에 대한 수많

은 의견들과 마찬가지로, 긍정적인 측면에 대한 의견도 하나의 가능성일 뿐이다. 사실 스티

븐 존슨도 지적했듯, 게임을 즐기는 세대는 그 이전 세대에게는 없었던 무엇인가를 얻었지

만, 이전 세대가 누리던 중요한 가치들을 잃어버리기도 했다. 예를 들어, 300페이지가 넘는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야 얻을 수 있는 지적인 발견과 미학적인 놀라움, 정서적인 감동

같은 것들 말이다. 같은 이유로 나는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직접 읽어보

길 바란다. 이 책은 지적으로 풍성할 뿐만 아니라 게임이나 TV 앞에서 느꼈던 즐거움의 추

억으로 가득 차 있다. 덧붙여 이런 책을 계기로 우리나라에서 컴퓨터게임에 대한 담론이 일

방적인 세몰이가 아닌 합리적인 논쟁으로 발전하기를 바란다. 그것이 긍정이든 부정이든,

어떤 결론을 내리기엔 컴퓨터게임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우리는 아직 충분히 알지 못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