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신문 vol. 4. PDF 다운로드

20
에피소드 몇 년 전의 일이다. 서울시건축상에 응모하려고 요강을 보니 “응모하여 수상하면 저작권은 서울시에 귀속된다”라는 구절이 있었다. 기가 막히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여 시청에 전화를 걸어 서울시의 공식입장인지 물었다. 담당 공무원은 수상하게 되었을 때 각종 홍보나 전시, 출판 등의 일에 동의를 구하는 절차의 간소화라고 설명했다. 그런 내용이라면 ‘제출한 자료에 대하여 각종 홍보, 전시, 출판 등에 대한 사전 동의를 구한 것으로 한다’ 정도의 문구로 충분하지 않을까? 저작권은 이런 경우 적절한 용어가 아니다. 물론 나 말고도 다른 분들의 항의가 있었을 것이므로 적어도 서울시건축상과 관련해서 이후 이러한 구절은 사라졌다. 그러나 나는 이 일을 계기로 두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우선 저작권의 의미를 완전히 잘못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 그 다음으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서는 문서로서의 효력을 갖지 않을까’ 라는 것이다. 극단적인 가정이지만, 그 문구가 살아있을 시절에 수상한 작품들에 대한 저작권은 과연 지금 누구의 것일까라는 질문을 던져보면 이것이 그리 간단치 않은 문제임을 알 수 있다. 상황은 끝나지 않았다 물론 이러한 문제와 관련, 공정거래위원회가 2009년 건축설계경기에서 입상작의 저작권이 설계자에게 있음을 확인하고 이를 위배한 국가기관 및 지자체의 시정을 요구하는 등 상황이 분명히 점차로 개선되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눈을 돌려 주변을 둘러보면 아직도 갈 길은 멀다. 세상은 그리 쉽게 바뀌지 않는다. 아직도 건축설계 의뢰를 마치 물품구매 정도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 이 글을 쓰기 불과 3일 전에도 이런 신문기사가 나왔다: “실제로 외국은 설계가 당선되더라도 저작권은 설계사가 가져가지만, 우리나라는 저작권이 발주청으로 귀속된다. 이 때문에 용산공원사업 당시에도 국토해양부와 WEST8이 마찰을 빚었다.” (《건설경제신문》, “초대형 건축프로젝트 설계, 외국업계 독식 문제는”, 2012. 10. 30일자) 한편 인접 분야로서 디자인 관련 저작권 이슈는 더욱 복잡하다. 디자인 공모전이 알고 보니 자체의 디자인 개발 노력 없이 적은 비용으로 타인의 디자인을 소유, 활용하려는 얕은 속셈의 산물로 드러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안타까운 것은 불법 소프트웨어나 음원, 도서 등의 저작권 보호는 사법기관인 검사의 영장까지 동원하며 앞장서서 보호해주는 대한민국 정부가, 유독 건축이나 디자인 분야의 저작권 보호에 대해서는 매우 다른 모습을 보인다는 점이다. 이것은 아무리 봐도 지식문화산업을 중요한 미래 전략으로 삼고 있는 나라의 모습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저작권 침해는 물론, 이를 방조하는 행위 또한 미래의 비전에 크게 어긋나는 것이다. 역사의 이면 몇 년 전 슈투트가르트의 바이센호프 집합주거 단지Weissenhofsiedlung를 찾아갔을 때 흥미로운 것을 보았다.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주택을 복원해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트레이드마크인 수평창의 특허를 받기 위해 그가 기울인 노력에 대한 내용이 안내판에 적혀 있었다. 한편 그와 동시대인인 미스 반 데어 로에 Mies van der Rohe는 건축가로서는 궁핍했으나 가구 디자인의 로열티 수입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갔다는 이야기를 미스의 제자인 김종성 교수로부터 들은 바 있다. 이런 이야기들은 유감스럽게도 건축사책 어디에서도 읽어본 적이 없다. 근대건축의 거장들은 알고 보니 제도판에서만 치열히 작업한 것이 아니었다. 뒤로 돌아서서는 자기들의 권리를 보호받기 위해 또 치열하게 싸웠다. 근대건축의 역사는 저작권 전쟁의 역사이기도 했던 것이다. 만약 한국이었으면 두 가지 모두 거의 불가능한 이야기들이다. 사회 전체가 저작권 문제에 그리 민감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만약 누군가 가구 디자인을 했다고 해도 생산자가 그냥 적당히 변형해서 모조품을 만들거나, 설사 대가를 지불한다고 해도 장기적 로열티보다는 한 번에 모든 권리를 다 사들이는 소위 매절 계약을 하려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건축가나 디자이너가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한다고 해도 결코 ‘누적의 효과’는 기대할 수 없다. 왜 저작권인가 이유는 간단하다. 우선 창작인인 건축가의 너무도 당연한 권리이기 때문이고, 궁극적으로 건축이 세상에 좀 더 풍성하게 기여할 수 있는 토대이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건축계에는 물리적으로 건물을 짓는 것 못지않게 지어진 건물을 가지고 각종 다양한 2차, 3차 저작물을 만들어내는 활동이 확산될 것이다. 이것은 다시 말해서 지금까지의 건축가들은 오직 건축물을 통해서만 사회에 기여했으나 앞으로는 전통적인 도서출판은 물론이고 각종 게임, 장난감, 스마트폰 앱 등 무궁무진한 파생상품을 생산할 수 있으며 또 그래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측면으로는 ‘건축가의 고객=건축주=민간과 공공의 대규모 자본가’라는 해묵은 등식에서 벗어나 건축가가 특정 계층이 아닌 일반 대중을 상대로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와 재화의 종류가 급격히 증가한다는 것 또한 의미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저작권이 과연 어떤 의미를 갖으며 또 어떤 역할을 할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우리들이 설계한 공공과 민간의 건물들이 등장하는 3차원 증강현실 도시 안내 프로그램의 개발 주체는 과연 누구여야 하는가? 카피레프트, 오픈소스, CCL (Creative Commons License *) 정보통신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라면 위의 세 단어와 아주 친숙할 것이다. 부분적인 의미는 다르지만 이들은 모두 창작물의 저작권을 너무 좁게 제한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오히려 이를 적절한 방식과 과정을 통해 서로 공유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세상이 더욱 다양해질 것이라는믿음을 전제로 한다. 그렇다면 이런 개념들이 세상에 엄연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저작권을 사수하고자 한다면 시대에 뒤떨어진 것일까? 나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저작권 개념을 확립하고 이에 대한 정당한 제도적 보호를 요구하는 것과 저작물을 세상과 널리 크리에이티브 커먼즈Creative Commons란 자발적 공유의 표시방식CCL을 통해 창작자에게 자동으로 부여되는 저작자의 권리를 최소화하여, 자신의 창작물을 공동자산화하는 개념. http://www.cckorea.org 건축신문 Architecture Newspaper 발행인: 김형국 발행처: 정림건축문화재단 발행일자: 2012. 12. 14 주소: 110-776, 서울시 종로구 경운동 89-4 에스케이허브 102-625 ISSN: 2287-2620 신고번호: 종로 바00136 공간의 빈곤, 빈곤의 공간 묻는 자를 묻고 연구하는 자를 연구하며 완성된 <사당동 더하기 22> 황금나침반은 돌고 있다 25시 세일링을 따라 항해하는 황금시간의 을지로 재앙을 위한 레시피 현대문명의 지배적 삶의 방식과 시스템에 기인해 발생하는 재난의 시대상과 그 대안에 대한 고찰 page 2~5 나누고 늘리는 채 나눔 / 미래의 무늬와 비밀의 언어 건축가 이일훈 / 디자이너 김영나, 컴퍼니 개념 건축주와 현실 건축가의 동상이몽 넷제로 에너지 하우스 <소솔집>의 건축가와 건축주 www.junglimfoundation.org 건축가에게 저작권이란 한국 건축계의 저작권 사수에 대한 입장은 항상 미지근했다. 저작권은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에 대한 독점적 권리를 말하는데, 우리 건축은 그 지점을 피해왔다. 건축가 황두진은 한국 건축의 건강한 다양성을 위해서라도 저작권은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작권 개념을 확립하고 이에 대한 정당한 제도적 보호를 요구하는 것과, 저작물을 세상과 널리 공유하고자 하는 노력은 완벽하게 상보적이다.” 황두진건축사사무소가 제니텀과의 협업으로 개발한 건축 전문 증강현실 어플리케이션 ‘건축산책Architecture Walks’을 북촌에 위치한 <무무헌> 앞에서 실행하는 모습. 3면에 계속 >> © 정림건축문화재단

Transcript of 건축신문 vol. 4. PDF 다운로드

Page 1: 건축신문 vol. 4. PDF 다운로드

에피소드

몇 년 전의 일이다. 서울시건축상에 응모하려고

요강을 보니 “응모하여 수상하면 저작권은

서울시에 귀속된다 ” 라는 구절이 있었다. 기가

막히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여 시청에 전화를

걸어 서울시의 공식입장인지 물었다. 담당

공무원은 수상하게 되었을 때 각종 홍보나 전시,

출판 등의 일에 동의를 구하는 절차의 간소화라고

설명했다. 그런 내용이라면 ‘제출한 자료에 대하여

각종 홍보, 전시, 출판 등에 대한 사전 동의를 구한

것으로 한다 ’ 정도의 문구로 충분하지 않을까?

저작권은 이런 경우 적절한 용어가 아니다.

물론 나 말고도 다른 분들의 항의가 있었을

것이므로 적어도 서울시건축상과 관련해서 이후

이러한 구절은 사라졌다. 그러나 나는 이 일을

계기로 두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우선

저작권의 의미를 완전히 잘못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 그 다음으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서는 문서로서의 효력을 갖지 않을까’ 라는

것이다. 극단적인 가정이지만, 그 문구가 살아있을

시절에 수상한 작품들에 대한 저작권은 과연 지금

누구의 것일까라는 질문을 던져보면 이것이 그리

간단치 않은 문제임을 알 수 있다.

상황은 끝나지 않았다

물론 이러한 문제와 관련, 공정거래위원회가

2009년 건축설계경기에서 입상작의 저작권이

설계자에게 있음을 확인하고 이를 위배한

국가기관 및 지자체의 시정을 요구하는 등 상황이

분명히 점차로 개선되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눈을 돌려 주변을 둘러보면 아직도 갈 길은

멀다. 세상은 그리 쉽게 바뀌지 않는다. 아직도

건축설계 의뢰를 마치 물품구매 정도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 이 글을 쓰기 불과 3일 전에도 이런

신문기사가 나왔다:

“실제로 외국은 설계가 당선되더라도 저작권은

설계사가 가져가지만, 우리나라는 저작권이

발주청으로 귀속된다. 이 때문에 용산공원사업

당시에도 국토해양부와 WEST8이 마찰을

빚었다.” (《건설경제신문》, “초대형 건축프로젝트

설계, 외국업계 독식 문제는”, 2012. 10. 30일자)

한편 인접 분야로서 디자인 관련 저작권 이슈는

더욱 복잡하다. 디자인 공모전이 알고 보니 자체의

디자인 개발 노력 없이 적은 비용으로 타인의

디자인을 소유, 활용하려는 얕은 속셈의 산물로

드러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안타까운 것은

불법 소프트웨어나 음원, 도서 등의 저작권 보호는

사법기관인 검사의 영장까지 동원하며 앞장서서

보호해주는 대한민국 정부가, 유독 건축이나

디자인 분야의 저작권 보호에 대해서는 매우 다른

모습을 보인다는 점이다. 이것은 아무리 봐도

지식문화산업을 중요한 미래 전략으로 삼고 있는

나라의 모습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저작권 침해는

물론, 이를 방조하는 행위 또한 미래의 비전에

크게 어긋나는 것이다.

역사의 이면

몇 년 전 슈투트가르트의 바이센호프 집합주거

단지Weissenhofsiedlung를 찾아갔을 때 흥미로운

것을 보았다.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의

주택을 복원해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트레이드마크인 수평창의 특허를 받기 위해

그가 기울인 노력에 대한 내용이 안내판에 적혀

있었다. 한편 그와 동시대인인 미스 반 데어 로에

Mies van der Rohe는 건축가로서는 궁핍했으나

가구 디자인의 로열티 수입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갔다는 이야기를 미스의 제자인 김종성

교수로부터 들은 바 있다. 이런 이야기들은

유감스럽게도 건축사책 어디에서도 읽어본

적이 없다. 근대건축의 거장들은 알고 보니

제도판에서만 치열히 작업한 것이 아니었다.

뒤로 돌아서서는 자기들의 권리를 보호받기 위해

또 치열하게 싸웠다. 근대건축의 역사는 저작권

전쟁의 역사이기도 했던 것이다.

만약 한국이었으면 두 가지 모두 거의 불가능한

이야기들이다. 사회 전체가 저작권 문제에 그리

민감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만약 누군가 가구

디자인을 했다고 해도 생산자가 그냥 적당히

변형해서 모조품을 만들거나, 설사 대가를

지불한다고 해도 장기적 로열티보다는 한 번에

모든 권리를 다 사들이는 소위 매절 계약을 하려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건축가나

디자이너가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한다고 해도 결코

‘누적의 효과’는 기대할 수 없다.

왜 저작권인가

이유는 간단하다. 우선 창작인인 건축가의

너무도 당연한 권리이기 때문이고, 궁극적으로

건축이 세상에 좀 더 풍성하게 기여할 수 있는

토대이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건축계에는

물리적으로 건물을 짓는 것 못지않게 지어진

건물을 가지고 각종 다양한 2차, 3차 저작물을

만들어내는 활동이 확산될 것이다. 이것은 다시

말해서 지금까지의 건축가들은 오직 건축물을

통해서만 사회에 기여했으나 앞으로는 전통적인

도서출판은 물론이고 각종 게임, 장난감, 스마트폰

앱 등 무궁무진한 파생상품을 생산할 수 있으며 또

그래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측면으로는

‘건축가의 고객=건축주=민간과 공공의 대규모

자본가 ’ 라는 해묵은 등식에서 벗어나 건축가가

특정 계층이 아닌 일반 대중을 상대로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와 재화의 종류가 급격히 증가한다는

것 또한 의미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저작권이

과연 어떤 의미를 갖으며 또 어떤 역할을 할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우리들이 설계한 공공과

민간의 건물들이 등장하는 3차원 증강현실 도시

안내 프로그램의 개발 주체는 과연 누구여야

하는가?

카피레프트, 오픈소스, CCL

( Creative Commons License *)

정보통신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라면

위의 세 단어와 아주 친숙할 것이다. 부분적인

의미는 다르지만 이들은 모두 창작물의

저작권을 너무 좁게 제한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오히려 이를 적절한 방식과 과정을 통해 서로

공유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세상이 더욱 다양해질

것이라는믿음을 전제로 한다. 그렇다면 이런

개념들이 세상에 엄연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저작권을 사수하고자 한다면 시대에 뒤떨어진

것일까? 나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저작권 개념을 확립하고 이에 대한 정당한 제도적

보호를 요구하는 것과 저작물을 세상과 널리

크리에이티브 커먼즈Creative Commons란

자발적 공유의 표시방식CCL을 통해 창작자에게

자동으로 부여되는 저작자의 권리를 최소화하여,

자신의 창작물을 공동자산화하는 개념.

http://www.cckorea.org

건축신문 Architecture Newspaper 발행인: 김형국 발행처: 정림건축문화재단 발행일자: 2012. 12. 14 주소: 110-776, 서울시 종로구 경운동 89-4 에스케이허브 102-625 ISSN: 2287-2620 신고번호: 종로 바00136

공간의 빈곤, 빈곤의 공간

묻는 자를 묻고 연구하는 자를 연구하며 완성된

<사당동 더하기 22>

황금나침반은 돌고 있다

25시 세일링을 따라 항해하는 황금시간의 을지로

재앙을 위한 레시피

현대문명의 지배적 삶의 방식과 시스템에 기인해

발생하는 재난의 시대상과 그 대안에 대한 고찰

page 2~5

나누고 늘리는 채 나눔 / 미래의 무늬와 비밀의 언어

건축가 이일훈 / 디자이너 김영나, 컴퍼니

개념 건축주와 현실 건축가의 동상이몽

넷제로 에너지 하우스 <소솔집>의 건축가와 건축주

www.junglimfoundation.org

건축가에게 저작권이란 한국 건축계의 저작권 사수에 대한 입장은 항상 미지근했다. 저작권은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에 대한

독점적 권리를 말하는데, 우리 건축은 그 지점을 피해왔다. 건축가 황두진은 한국 건축의 건강한 다양성을 위해서라도

저작권은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작권 개념을 확립하고 이에 대한 정당한 제도적 보호를 요구하는 것과, 저작물을 세상과 널리 공유하고자 하는 노력은 완벽하게 상보적이다.” 황두진건축사사무소가 제니텀과의 협업으로 개발한 건축 전문 증강현실 어플리케이션 ‘건축산책Architecture Walks’을 북촌에 위치한 <무무헌> 앞에서 실행하는 모습.

3면에 계속 >>

© 정

림건

축문

화재

Page 2: 건축신문 vol. 4. PDF 다운로드

현실

‘ 재난 ’ 은 우리에게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이 원고를

쓰기 직전인 2012년 10월 말에는 허리케인

샌디가 카리브해 연안과 북미 동부를 강타하며 약

185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지난 7월 30~31일에는

인도에서 역사상 최악으로 기록된 전력공급

중단이 발생해 인구 절반인 6억 2천만 명이 암흑

속에서 시간을 보냈다. 2011년 일본의 연쇄적

지진과 쓰나미는 15,840여 명의 생명을 빼앗는

동시에 후쿠시마의 원전을 파괴하면서 방사능

유출사고를 일으켰으며, 2005년에는 미국 남부를

휩쓴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인해 1,836명이, 또 한

해 전에는 인도양의 지진, 쓰나미로 인해 23만

명이 사망한 바 있다. 한국에서도 지난 9월 말

구미공단 내의 한 화학제품 제조공장에서 불산

유출사고가 발생해 5명의 노동자가 죽고, 주변

노동자와 주민 등 800여 명이 병원 진료를

받았으며, 현재까지도 사고 발생지 주변의

농작물과 가축물이 말라 죽거나 이상현상을

보이고 있다.

현실적 재난의 빈번함과 강도는 현대 문명 자체에

대한 묵시록적 상상력과 결합하여 재난

서사disaster narrative를 만들어내고 있다.

2000년대 이후 할리우드에서는 재난 후의

상황을 그리는 영화들이 꾸준히 제작되었으며,

최근에는 좀비 재난(<워킹데드>(TV시리즈,

2010), <월드 워 Z>(영화, 2013)), 행성의

충돌(<멜랑콜리아>(2011)), 전염병의

창궐(<컨테이전>(2011)) 등으로 그 상상력과

강도가 더욱 확장되고 있다. 문학에서도 소위

‘포스트-아포칼립스’ 장르로 불리는 소설들이

급증하고 있으며, 이를 분석하기 위한 비평적

시도들이 등장하는 중이다. 한국에서도

<해운대>(2009), <연가시>(2012) 등의 영화,

『큰 늑대 파랑』 (윤이형, 창비, 2011),

『물속 골리앗』 (김애란, 문학동네, 2011),

『옹기전』 ( 황정은, 창비, 2012 ) 등의 문학

텍스트들이 출현하면서, 하위 장르였던 재난

서사는 오늘날 문화적 우세종으로 떠오르고 있다.

현실적 재난과 상상적 재난 서사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명백해 보인다. ‘재난이란

무엇인가? ’ 이 질문에 대답하기란, 보이는 것처럼,

그리 간단치만은 않다.

시각전환

재난은 ‘상당한 물리적 상해나 파괴, 생명의 상실,

혹은 환경의 급격한 변화를 야기하는 자연적 혹은

인공적 위해 危害 ’로 정의된다. 그것은 지진,

쓰나미, 가뭄, 홍수, 전염병 등의 자연재해와

방사능 유출, 기름 유출, 전력마비, 전쟁, 테러리즘

등의 인공재해로 분류할 수 있다. 어떤 형태이든

재난이라 불릴 수 있는 것은 인간의 생명과 사회에

막대한 위해를 끼치는 큰 사고인 경우다. 쉽게

말해 재난은 ‘거대한 사고’ 이다. 한자문화권에서

쓰이는 ‘재난災難’ 이란 말 속에는 물난리川와

불난리火 로 인한 고통 難 의 의미가 들어 있으며,

이와 유사어인 ‘재앙災殃’ 에는 ‘하늘이 내린 벌’ 의

뜻이 담겨있다. ‘나쁜 별자리 bad star’ 라는

그리스어를 어원으로 하는 영어 ‘disaster ’ 역시

마찬가지다. 고대 동서양인들은 땅의 문제로서의

재난을 하늘의 소관으로, 즉 일종의 ‘천운’ 비슷한

것으로 바라보았던 것이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재난에 대해 더 이상

‘하늘의 벌 ’ 이나 ‘운명의 장난 ’ 이라는 방식으로

접근할 수 없다. 여전히 재난은 ‘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사고’로 인식되기도 하지만, 그럴 경우

우리는 오늘날 재난의 문제에 얽혀있는 사회적

원인들을 무시하는 치명적 과오를 범하게 된다.

현대의 재난은 그저 운 없이 닥치고 지나가는

단발성 사고인 것이 아니라, 인류의 지배적 삶의

방식과 시스템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는 문제다.

오늘날 빈번히 막대한 피해를 가져오는 지진이나

쓰나미는 자연현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환경의

급격한 악화로 생긴 전 지구적 기후변동에서

발생하는 ‘인공적’ 현상이기도 하다. 나아가

2004년 동남아 쓰나미가 보여주듯, 오늘날의

재난은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훨씬

위협적이다. 한 환경비용평가보고서에 따르면

1960년대 이후 선진국이 지구 환경에 끼친

악영향은 43%인데 비해, 그들이 치르는 비용은

3%에 불과하다고 한다. 재난의 문제를

현대사회의 근본적 모순과 연관시켜 사고하는

이론적 시각전환이 요청되는 이유다.

계열

이를 위해서는 재난을 독립적 사건이 아닌

계열적인 관계 속에서 파악할 필요가 있다. 가령

‘위험- 재난- 위기- 파국’ 이라는 계열은 어떨까? 이

단어들의 계열은 어떤 ‘강도’의 측면에서 구성된

것이다. ‘위험risk’이란 ‘미래에 올 재난의 가능성’을

뜻한다. 울리히 벡Ulich Beck의

『위험사회Risikogesellschaft 』 (1986) 개념에

따르면, 위험은 현대사회에 사는 인류 전체가

공통으로 안고 있는 미래의 가능성이자 현재적

불안요소다. 벡이 생태적 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테러 위기라는 차원에서 도사리고 있다고

판단하는 우리 시대의 위험은 역설적이게도

현대문명의 실패가 아닌 ‘성공’으로 인해 발생한다.

‘재난’은 이 위험의 가능성이 현실화되어 발생한

격변과 사고들을 의미한다. ‘위기crisis’는 재난이

단발적 사고로 끝나지 않고, 연쇄적으로

이어지면서 점점 더 악화되는 상황을 지칭한다.

마지막으로 ‘파국catastrophe’은 위기의 강도가

깊어지면서 결국 인류 문명의 총체적 파멸이

도래하는 단계를 가리킨다. 예컨대, 인간과 자연을

끊임없이 이용하고 전유하면서 가동되는 자본주의

시스템은 환경파괴로 인한 기후변동, 자원소진,

사회적 동요라는 ‘위험’을 안고 있다 (실제로 현대

자본주의는 파생상품, 주식, 벤처기업, 보험 등을

통해 위험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이윤도 클 수

있음을 보여준다. 자본주의는 위험과 친숙하다).

이 위험이 현실화되면 다양한 방식의 재난이

발생한다. 그것은 쓰나미, 지진, 허리케인 등

생태적 차원에서부터 빈부격차, 폭동, 범죄, 자살

등 사회적 차원까지 아우른다. 이 재난들은

세계화된 환경 속에서 언제나 복합적이고

연쇄적으로 결합될 수 있으며, 이것이 테러, 전쟁,

방사능의 대량 유출, 난민 발생 등 국가 간

분쟁거리로 비화할 때 ‘위기’가 무르익는다. 이

위기가 정점으로 치달아 핵전쟁이 일어난다거나,

문명 자체가 절멸될 때가 ‘파국’ 상황이다. 재난을

이러한 계열 속에서 파악할 때, 우리는 재난의

파괴적 성격을 넘어 새로운 창조를 가능케 할

새로운 기회의 순간 역시 포착할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crisis’와 ‘catastrophe’라는

단어에는 이미 각각 ‘갈림길’, ‘서사의 역전’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는 것이다. 재난이라는 사건이

그동안 익숙해있던 일상의 실제 질서를

드러낸다면, 그것의 심화인 위기와 파국은 그

질서가 ‘갈림길’을 맞아 새로이 ‘역전’할 수 있는

계기를 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역전의 계기는 재난의 원인 혹은

‘위험’ 요소를 사회의 모순과 연결시켜 적극적으로

사고할 때 비로소 가능해질 것이다. 예컨대 제임스

러브록James Lovelock의 ‘가이아 가설Gaia

hypothesis’ * 은 인류 문명이 지구에 끼친 피해를

환기하고 인류의 멸종을 예상함으로써 우리의

각성을 촉구하지만, ‘인류 문명’이라는 추상적 개념

속에 머무르는 한계를 가진다. ‘장기 비상시대Long

Emergency’라는 이론을 통해 석유의 소멸 이후

닥칠 재난과 위기를 생생히 그리는 제임스 하워드

쿤슬러James Howard Kunstler 역시 ‘산업

문명’이라는 모호한 용어로 재난의 원인을

구체화하지 못한다. 반면, 제이슨 W. 무어Jason

W. Moore 같은 생태학자는 인류의 생태적·사회적

재난과 위기를 자본주의 체제와 적극적으로

연결시킨다. 그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그 역사적

발생의 순간부터 토지, 물, 삼림, 석탄, 석유 등

자원의 무한한 추출과 함께 인간의 노동력의

무한한 전유를 통해서만 유지될 수 있었다. 우리는

흔히 자본주의의 자연파괴가 소위 산업자본주의

시기인 19세기 중반 이후에 가서야 시작했다고

알고 있지만, 무어에 따르면 이미 16세기

네덜란드의 자본주의는 곡물 수입을 발트해

연안에 의존함으로써 동유럽의 토지 사막화가

발생했고, 목재의 수요로 인해 폴란드 삼림의

광범위한 벌채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20세기 이후

현재 자본주의의 수요가 만들어낸 환경파괴의

결과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자연과 인간 모두를 동시에 포획하는 자본주의

세계체제world system는 그 자체로 인류의

세계생태world ecology이다. 따라서 세계생태의

재난과 위기의 원인은 세계체제, 즉 자본주의에

있으며, 세계생태의 파국은 곧 자본주의의 파국을

낳을 수밖에 없게 된다. 자본주의 세계체제론과

생태론의 결합을 시도하는 무어의 이론은 당연히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생태적 재난과 위기,

파국의 문제를 ‘환경보호’라든가 ‘지속 가능한

개발’이라는 단어에 담긴 수동적이고 비정치적인

(그러나 그로 인해 매우 정치적이기도 한)

관점에서 파악하지 않고, 우리 시대의 가장

총체적인 경제-사회-문화 시스템인 자본주의의

역사와 생산력, 전망이라는 문제와 결합시킨다는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 자연자원에서부터 인간의

지식, 언어, 정동, 취향, 관계 등에 이르는

사회적이고 공통적인 모든 것들을 거침없이

사유화하는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의 새로운

자본주의 모델로 인해 다양한 위험과 재난이

발생하고 있는 작금의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요구

많은 재난 서사가 그려내듯이, 재난과 위기,

파국의 가능성은 인류가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지옥’을 호출할 수도 있다. 인류에게

기술적 진보는 가능해도 윤리적 진보는

재난의 질문, 재난의 요구

인간의 생명과 사회에 막대한 위해를 끼치는 재난은 점차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다. 가장 튼튼해 보이는 도시마저도 예외가 아니다. 오늘날의

재난은 역설적이게도 현대문명의 실패가 아닌 성공 즉, 현재의 지배적 삶의

방식과 시스템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문화평론가 문강형준, 문지문화원

사이 주일우 실장, 영화평론가 김소영이 재난의 시대상과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해 고찰했다.

재앙을 위한 레시피

(위) 배영환, <후쿠시마의 바람The Sigh of Fukoshima>, 3채널 비디오, 사운드, 00:09:30, 2012

<후쿠시마의 바람>은 3.11 동일본 대지진 이후 후쿠시마를 영상에 담은 작품으로 일본인 사회학자와 작가가 재난 앞에서 예술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과 상처를 기반으로 하는 연대를 텍스트로 기록했다. 위의 작품에는 종교건물과 어린이집만이 완전 폐허 속에서도 덩그러니 남아있다.

(아래)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해원解寃의 의미로 추는 몸짓이자 대화인 <추상동사>는 글이나 언어가 아닌 오직 마음으로 도道를 깨우친다는

불교의 개념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건축신문> 4호 “ISSUE: 재앙의 레시피”의 이해를 돕고자 배영환 작가의 협조로 구성되었습니다.)

“현대는 그 완성의 과도함으로 인해 다른 세상이 되었다.”

― 장 보드리야르

문강형준 문화평론가

배영환, <추상동사-댄스 포 고스트 댄스Abstract Verb-A Dance for Ghost Dance>, 2채널 비디오 중 4개의 컷, 00:04:53, 2012

ⓒ배

영환

ⓒ배

영환

2 December 2012. Vol.4 Architecture Newspaper

Page 3: 건축신문 vol. 4. PDF 다운로드

불가능하다는 존 그레이John Gray의 통찰에

따르면, 현재 우리가 누리는 친절, 온정, 존엄,

인권, 연대 등은 재난과 위기의 상황 앞에서 곧장

무력해질 수 있는 것이다. 당장 경제적 불황만

닥쳐도 인심은 얼마나 흉흉해지는가!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미래가 묵시록의 암흑 속에 사로잡혀

있다고 볼 수만은 없다. 실제로 레베카

솔닛Rebecca Solnit은 『이 폐허를 응시하라

A Paradise Built in Hell: The Extraordinary

Communities That Arise in Disaster』 (2010)를

통해 역사적 대재난들 속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서로 돕고, 연대하고, 구호하고, 공동체를

창조해냈는지를 자세히 보고하기도 했다. 기존의

제도와 권력과 틀이 허물어지는 순간, 오히려

평범한 이들은 가장 빛나는 인간애를 발휘한다는

것이다. 솔닛은 이를 “지옥 속에서 빚어진

천국”이라 표현했다.

문제는 우리의 문명 앞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은 재난과 위기, 파국의

상황 속에서 우리가 ‘인간애에 대한 믿음’만을

그리며 살 수는 없다는 데 있다. 핵무기의 사용과

방사능 유출이라는 가장 현대적이고, 가장

절멸적인 파국의 위험은 그러한 순진함과

안일함을 허락하지는 않을 것이기에 그렇다.

위험과 재난과 위기와 파국의 상황은 우리에게

이토록 난해하고 모순적이며 다양한 질문들을

던진다. 자본주의 체제, 삶의 방식, 일상의 습관,

인간에 대한 믿음 등 모든 익숙한 것들은 재난과

파국의 가능성 앞에서 뒤틀리고 흔들린다. 이러한

묵시록적 뒤틀림과 흔들림 속에서 비로소 재난은

사고와 사건이 아닌, 정치적 기회로 변환될 수

있다. 매우 역설적인 방식으로, 재난의 문제의식은

새로운 질서에 대한 정치적 상상력을 우리에게

요구한다. 이 요구는 피할 수 없으며, 그런 점에서

절대적이다.

1.

화학반응에서 반응 전의 물질들과 반응 후의

물질들의 에너지 상태를 비교해서 전자가 높으면

발열반응(그림1), 후자가 높으면 흡열반응(그림2)

이라고 한다. 어느 쪽이든 반응 전의 물질들은

상당한 에너지를 흡수해서 반응할 수 있는 상태에

이르러야 실제로 반응이 이루어진다. 이때 필요한

에너지를 활성화 에너지(Ea)라고 부른다. 활성화

에너지가 높으면 이 반응은 일어나기 어렵다.

대개의 물질들은 자연 상태에서 에너지 상태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가려는 경향이 있지만

반응물을 활성화 시키는 데 큰 에너지가 들어서

장벽이 높으면 반응물은 높은 에너지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비교적 안정적이 된다. 이 활성화

에너지를 낮추는 것을 촉매라고 하는데, 촉매를

쓰면 작은 에너지로도 안정된 반응물들이 반응을

시작할 수 있도록 한다.

우리가 구가하고 있는 현대문명을 반응물, 그리고

그 파국을 생성물이라고 했을 때, 현대 문명의

에너지 상태는 아주 높다. 생성물과 반응물 사이의

거리는 점점 더 커져서 둘 사이의 차이를 의미하는

반응열(∆E)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파국으로

치닫는 반응이 시작되면 격렬할 것이라는

의미이다. 이런 상태는 사고가 빈발하는

우리나라나 비교적 안정되어 보이는 유럽을

막론하고 똑같다. 다만, 차이는 활성화 에너지를

높게 만들어 관리하는 기술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세련되었는지 정도일 뿐이다. 현대문명의

위험도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다.

자연과 직접 맞서던 시절보다 나은 것처럼 보이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관리술의 문제일 뿐이다.

관리술에 구멍이 난다면 걷잡을 수 없는 결과를

예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과학기술이 현대문명에 촘촘히 박혀있고 그것이

사회의 위험도(반응열)을 점점 더 높이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과학기술이 잘 작동할 때,

우리는 그 위험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안락함을

느낀다. 하지만, 우리가 의존하고 있는 시스템에

‘고장 ’ 이 일어나서 일이 틀어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는 경우가 많다. 동일본 대지진의 경우

시작은 자연재해인 지진해일에서 시작했지만

수년이 지난 지금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원자로의 붕괴는 우리가 얼마나 위험한

사회에서 살고 있는지를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2.

우리가 개인적으로든, 사회 전체적으로든 얼마나

위험한 사회에 살고 있는지를 깨닫는 것이 이젠

그리 어렵지 않다. 빈번하게 일어나는 각종

‘고장 ’ 을 통해서 우리가 어떤 위험에 처해 있는지

가늠해 볼 수 있다.

생명체는 오랜 세월 동안 자연에 적응해 왔기

때문에 오랜 동반자들과는 대체로 사이가 좋다.

하지만 인간이 새롭게 만들어 더한 물질들에는

더없이 취약하다. 많은 경우 이것들은 우리에게

독이다. 수없이 새로 만들어지는 물질들과

비정상적인 이들의 농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독소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고 이야기해도

지나치지 않다. 대기, 물, 토양, 음식들이 갖고 있는

오염물질이나 화학적 독소에 시달린다. 자동차와

공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연, 산성비와

중금속으로 오염된 토양과 바다에서 거둬들인

농수산물, 방부제 표백제 등 가공식품 첨가물,

인스턴트식품에 덕지덕지 들어있는 트랜스지방과

콜레스테롤, 술과 담배, 주방세제, 청결제, 전자파,

방사선 물질, 중금속 환경호르몬 등에 포위되어

있다.

각종 바이러스와 세균, 중금속, 화학물질이 코를

통해 호흡기로 들어온다. 수은, 카드뮴, 납, 비소

등의 중금속은 매연가스와 농약 등을 통해

호흡기나 음식을 거쳐 들어온다. 페인트, 세척제,

유기용매, 염색제, 접착제로 만든 가구와 공산품이

실내공기를 매캐하게 만든다. 농약, 항생제에

오염됐거나, 세제나 표백제가 잔류했거나,

인공첨가물이 많이 들어있거나, 부패했거나

기생충이 든 식품이 입을 통해 몸에 들어오면 몸이

상하게 된다. 화학 물질로 만든 화장품, 목욕 용품,

머리 염색약, 스테로이드연고 등을 사용하면

독소가 피부를 뚫고 들어온다. 이들은 면역 기능

저하, 만성 피로, 신경 질환, 호르몬 기능 저하,

정신 질환, 암 등의 원인이다.

3.

우리가 낯선 물질들에 둘러싸여 위협을 받고

있지만 이들을 걷어내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브루노 라투르Bruno Latour는 개코원숭이,

외치Ötzi *, 그리고 현대인을 빗대 이 상황을 재치

있게 설명한다. 인간들보다 2,500만 년 앞서

등장한 영장류인 개코원숭이들의 사회적 관계는

아주 복잡하다. 하지만, 그들의 관계에 어떤

물질적 기술도 동원되지 않는다. 우리가

개코원숭이와 비슷한 상황이 되려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물질들을 벗어던져야 한다. 컴퓨터,

공책, 휴대전화, 책상, 의자, 교실 등을 벗겨내면

대략 ‘벌거벗은 원숭이’와 유사한 도구해제 상태에

이르게 된다. 다 벗은 인간은 복잡한 사회 관계를

가진 개코원숭이와 비슷한 상태일 테지만, 그

상태의 어떤 동물을 우리는 인간이라 부를 수

있을까?

5,000년 전, 청동기 시대에 살았던 설인 외치가

알프스 산맥의 얼음 속에서 원형 그대로의

시신으로 발견된 것은 1991년. 이 사건은 의복과

도구를 갖춘 온전한 시신이 처음 발견된 것이었기

때문에 고고학자들을 흥분시켰다. 무기, 신발,

불을 피우는 데 쓰는 도구 주머니, 구급상자,

식량이 발견되었고 완벽한 미라를 통해서 그가

무엇을 먹었고 어떻게 부상을 입고 죽음에

이르렀는지까지 알 수 있었다. 청동도끼는 몰라도

정성스럽게 안을 대고 꼼꼼하게 바느질한 가죽

장화에서 부터 식량 주머니까지 스스로 만들 수

있는 것들을 외치가 지니고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우리는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는

물론이거니와 볼펜, 공책, 가방, 양말, 구두 같은

주변의 물건들을 스스로 만들지 못한다.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의 도움으로 만들어진 것들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외치와 똑같은 신체,

뇌, 그리고 유사한 능력을 가졌지만 스스로를

인위적인 거품 속에 가두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다.

우리와 물질 사이의 결합은 놀랍도록 단단하고

주일우 문지문화원 사이 기획실장

골키퍼의 운명

“골키퍼가 공도 없이, 그러나 공을 기다리면서 이리저리

뛰는 모습을 본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지요.”

― 페터 한트케,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

CONTENTS

3December 2012. Vol.4 Architecture Newspaper

<< 1면으로부터 계속

공유하고자 하는 노력은 완벽하게 상보적이다.

그 중 어느 한 쪽이 결여되면 다른 것도

성립하기 어렵다. 게다가 건축이야말로

역사적으로 볼 때 카피레프트, 오픈소스,

크리에이티브커먼즈 라이센스의 정신을 가장

충실하게 실천한 분야가 아닌가. 팔라디오

Andrea Palladio가 있었기 때문에 이니고 존스

Inigo Jones가 있었고 토마스 제퍼슨Thomas

Jefferson이 있었다. 러시아 구성주의가

아니었더라면 베르나르 추미Bernard Tschumi

나 렘 쿨하스Rem Koolhaas도 없었을 것이다.

인류의 문화는 이렇게 서로 주고받으며

만들어져 온 것이다. 다만 21세기 대한민국

건축계는 한쪽 바퀴가 워낙 부실하여 이를 대폭

보강하지 않으면 나머지 바퀴도 제 구실을 할

수 없을 정도다.

마침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으니 이런

문제들에 대해 각각의 후보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건축계, 아니 나아가 문화계의

이름으로 답변을 요구하는 것은 어떨까?

나는 이런 광경을 상상한다. 후보가 뒤에 서고

그 앞에 미술, 음악, 건축, 디자인, 소프트웨어,

게임, 영화, 연극, 무용, 사진 등 다양한

창작분야를 공부하는 학생들이 나란히 선다.

그들이 한 구절씩 읽어나간다. 우리 사회의

밝은 미래를 위해 앞으로 이 학생들이 만들어낼

수많은 창작물들의 정당한 권리는 국가가

책임지고 보호해 주겠노라고.

저작권을 사수하자, 그래야 건축이, 문화가,

그리고 우리 사회가 좀 더 풍성하고

다양해진다.

황두진 황두진건축사사무소

발열반응 Reaction Coordinate 흡열반응 Reaction Pathway

대기과학자 제임스 러브록은 지구의

탄생과정에서부터 시작해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대기의 변화를 연구하던 중 1979년 Gaia: A New

Look at Life on Earth 를 통해 가이아 가설을

발표했다. 그는 지구를 그리스의 여신인 가이아로

표현하여 지구상의 생물계가 생명체가 살기

알맞도록 무생물계와 상호 작용을 함으로써,

지구의 생물들, 대기, 대양, 지표면은 모두 함께

작용하는 시스템을 형성한다고 보았다.

Comment 01 - 02 건축가에게 저작권이란 : 황두진

Issue 02 - 05 재앙을 위한 레시피

재난의 질문, 재난의 요구 : 문강형준

골키퍼의 운명 : 주일우

재난 사회에 던진 영화적 질문 : 김소영

Versus 06 - 07 개념 건축주와 현실 건축가의 동상이몽

정소익, 양수인

Interview 08 - 11 나쁜 건축이 판치는 세상에 나누고 늘리는 ‘ 채 나눔’

건축가 이일훈 _ 인터뷰 정귀원

미래의 무늬, 그리고 비밀의 언어

디자이너 김영나 _ 인터뷰 조형석

디자이너 컴퍼니 COMPANY _ 인터뷰 이상윤

Critic 12 - 13 비엔날레에 대한 생산적인 담론을 기대하며

2012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이 남긴 것

: 임진영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비엔날레에

무엇을 기대하는가 : 호경윤

Roundtable 14 - 15 지역성은 정치적 혹은 문화적 용어이다

Focus 16 - 17 공간의 빈곤, 빈곤의 공간

: 조은 _ 인터뷰 장호진

현장의 목소리를 이끌어내기 위한 방법적 침묵

: 김홍중

Foundation 18

Borderless 19 황금나침반은 돌고 있다 : 25시 세일링

배영환, <추상동사-댄스 포 고스트 댄스Abstract Verb-A Dance for Ghost Dance>, 2채널 비디오 중 4개의 컷, 00:04:53, 2012

Page 4: 건축신문 vol. 4. PDF 다운로드

재난 이후 : 동일본 대지진과 일본 영화의 질문

자연적, 사회적 재난의 파고가 높은 시대, ‘수퍼

스톰’ 샌디가 미국 맨해튼과 월스트리트를

강타하고 전기와 인터넷을 끊어버린다. 트위터의

새처럼 지저귀면서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 을 살던

사람들은 재난의 고독에 빠진다. 페이스북에서

사회적 네트워크를 만들던 사람들은 이 자연의

재난 앞에서 다시 아날로그라는 원치 않는 상황에

처한다. 우리는 이미 재난 이후, 즉 포스트 -

아포칼립스를 상상하는 것이 어렵지 않은 시대를

살고 있다.

최근 일본 영화는 3.11 동일본 대지진에 관해

집중적으로 성찰한다. <차가운 열대어Cold

Fish>(2010) 등으로 일본 사회의 파시즘적 단면을

잔혹하게 도려내던 감독, 소노 시온Sion Sono은

작년에 <두더지ヒミズ, Himizu>에서 3.11의

여파를 다루더니, 이번에는 <희망의 나라

希望の國, The Land of Hope>로 그 사건을

정면으로 다룬다. 3.11 이후 일본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여기서 집중적으로 살펴볼 또 다른 주목할 만한

영화는 부산영화제 아시아시네마펀드의 지원을

받아 완성된 일본의 후나하시 아츠시Atsushi

Funahashi의 <만개한 벚꽃 나무 아래서 Cold

Bloom>(2012)이다. 3.11 이후 쓰나미와 원전

사고로 한 지역의 작은 공장의 숙련 노동자들의

일상적, 심리적 붕괴와 회복이 천천히 드러난다.

영화의 후반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이해하기 힘든

용서의 멜로드라마로 볼 수도 있으나, 전반부 상황

설정이 뛰어나다. 하이브리드 부속품을 만들 수

있는 공장이 처한 위기는 일본의 자본주의와

사회관계가 어떠한 가치들을 생산하면서 유지되어

왔는가를 매우 정확하게 보여준다. 영화에서

일본의 전통적 윤리라고 하는 의리 등의 가치가,

사실은 근현대 일본의 자본주의와 산업, 사회적

관계를 유착시켜 온 것이라는 점이다. 대재앙 이후

소위 ‘전통적’ 가치는 무너지고, 생산과 재생산을

위한 사회관계는 이 영화 후반에서 심리극이라는

가면을 쓰고 진행되는 억지 화해와 용서, 유사

사랑을 통해서만 간신히 지속될 수 있는 듯이

보인다. 즉, 이 영화는 재난 이후 자각된 미래라는

시제의 불가능성이 전반에 깔려있지만,

후반부에는 멜로드라마의 어법을 빌려와 다시

시작하는 것이 가능한 듯 그 불가능성을 괄호 속에

넣는다. 그 어법 속에 재앙 이후의 진정한

그로테스크 증후가 자리 잡고 있다. 사고이긴

하지만 자신의 남편을 죽인 직장 동료와 친밀한

남녀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를 망설이는 여자

주인공 시오리의 심리를 지배하는 것은, 개인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지극히 사회적인 것이다.

멜로드라마의 애련한 주인공처럼 보이는 시오리는

그래서 일본국, 일본 사회의 복화술사의 역할을

하고 있다. 시오리의 이러한 선택은 영화의 첫

장면에서 제기되었던 질문 “도대체 3.11 이후 일본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에

대한, 모호하나 수용 가능해야 할 대답인 것이다.

<희망의 나라>는 자본, 사회관계, 가치, 재앙의

연쇄에 대한 냉철한 전반부 분석과, 그 분석을

‘인간화’하는 후반부의 멜로드라마가 기묘한

조합을 이루고 있는 ‘재난 이후’의 영화다.

나는 쓰나미, 원전 재난 이후 일본 사회를 다르게

이해하게 되었다. 일본 근대를 추동했던 사회적

테크놀로지의 급속한 건설에 대지진이나 재난에

대한 공포가 있었음을 새삼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국 영화에서 ‘술잔의 흔들림’이 전쟁이

임박했음을 나타내지만(<최종병기 활>(2011)),

일본 영화에서는 지진이 오고 있다는 신호다.

자연의 긴급 상황이 사회적 비상사태로 옮겨가는

것이 재앙, 재난 영화의 공식이다. 최근의

일본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재난 영화들이

만들어진다. SF와 만나기도 하고 액션과

결합하기도 하면서 가족, 공동체와 같은 집합체의

결속을 재확인하게 한다. 반면 <미스트The

Mist>(2007)는 공동체는 파괴되고 가족 중

일부가 남는 형식을 취하며, <더 로드The

Road>(2009)에서는 가족과 공동체는 물론

인류가 최상위 포식자가 되는 것을 택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2011년 3.11 이전은 어떠했는가?

2010년 아이티 지진 뒤 100만 가구의 이재민이

발생하고 환경 재해로 인한 지구온난화를

근심하는 사이, 겨울 북반구에는 폭설이라는

이상기후가 창궐했다. 그리고 미니 빙하기가

왔다는 예보가 터져 나왔다. 지구가 막바지에

이르렀는데도 자본의 공격적이고도 ‘암울한

축적’은 멈출 줄 모른다. 한국은 4대강을 뒤집고,

원전 수출을 찬양한다. 생태 파괴가 모든 사람,

그 몸과 목의 가늘고 가는 핏줄과 힘줄들을 조이고

막고 끊어놓을 때까지, 이 음울한 자본의 광란은

지속될 것인가?

<더 로드>가 정면으로 대응하는 재난

코맥 매카시Cormac McCarthy의 소설 『더

로드THE ROAD』(2008)는 바이오스피어가

사라진 지구 위 생존의 양태를 담아냄으로써 가장

강력하게 환경문제를 제기하는 작품이라고

평가된다. 소설 『더 로드』 를 ‘현대의 성서’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작가를 두고 헤밍웨이에

비유하기도 한다. 필자도 굳이 반대 의사를 표명할

이유를 느끼지 않는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No Country For Old

Men』 (2005)의 저자이기도 한 코맥 매카시의

문학적 비전과 글쓰기 스타일은 독보적이다.

오프라 윈프리Oprah Winfrey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이 평서문을 선호한다고 하면서 대문자,

마침표, 쉼표, 그리고 설명구를 위해 구두점의

콜론을 사용하지만 절대 세미콜론은 넣지

않는다고 말한다. 세미콜론은 마침표보다는

가볍고 쉼표보다 무거운 구두점이다. 경중의 사이,

사이공간은 쓰지 않겠다는 것인가? 예컨대 죽음과

탄생을 제외한 일상의 수많은 경계들은 다루지

않겠다는 말인가? 인물들의 대화에도 인용부호가

빠져 있다. 세미콜론이 없는 영화 언어란 어떻게

만들 수 있는 걸까?

세미콜론과 대화의 인용부호가 배제된 그의

문학에서 영화로의 번역과 이동은

<프로포지션The Proposition>(2005)의 감독인

호주 웨스턴 출신의 존 힐콧John Hillcoat이

맡았고 아버지 역을 비고 모텐슨Viggo

Mortensen이 맡았다. 이 작품은 소설과 영화의

우위를 비교한다거나 하지 않고 서로가 서로에게

말을 거는 방식으로 읽는 편이 좋을 것 같다.

<더 로드>가 정면으로 대결하고 있는 설정 중

하나는 식인문제다. 인간의 육체, 살점만이 유일한

자원이며 먹을거리가 되고 인간 사냥꾼이

횡행하는 사회.

<더 로드>에서 대재난 이후 나무나 풀은 사라지고

동물도 보이지 않는다. 대지는 지진으로 시도 때도

없이 흔들린다. 비가 오고 겨울은 다가온다. 모든

생기와 활기가 사라진 자리. 여기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자원은 인간의 몸이다. 그래서 인간이

먹이사슬의 최고점이자 최저점이 된다. 타자들이

친밀성을 잃고 적대적 타자로 거리를 배회하고

당신의 몸을 먹이로 취하고자 할 때, 바로 이것이

<더 로드>의 아버지와 아들이 처해 있는 국면이다.

아버지와 아들 쌍은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강자

쪽에 든다. 아이와 함께 남겨진 여자, 모자는 한

무리의 남자들에게 추격당해 도망치다가 잡혀

먹잇감이 된다. 이런 장면들은 좀비들이 수백만

등장하는 어떤 공포영화보다도 무섭다. 소수자가

물리적으로, 육체적으로 폭력을 감당하지 못할

사회의 도래에 대한 절대적 공포를 일견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비고 모텐슨은 <반지의

제왕The Lord Of The Rings>(2001~2003)의

아라곤과는 전혀 다른 역을 수행한다. 창백하고

병들어 죽어가면서 아들을 지킨다. 하지만

일촉즉발 다음 상황을 예견하지 못하는 지구

최후의 생존자 중 한 사람을 연기한다. 또 이들이

길을 걷는 도중 만나게 되는, 시력을 상실해가는

한 노인은 로버트 듀발 Robert Duvall 이 연기한다.

그도 한때 <지옥의 묵시록 Apocalypse Now>

(1979)에서 바그너의 <발퀴레Die Walküre>에

맞춰 포탄을 퍼붓는 전쟁광 킬고어 대령 역을 맡은

바 있어 아이러니는 증폭된다. 그는 말한다.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았다”, “ 많은 예고들이 있었다”고.

그러나 영화는 <2012>(2009)나 <터미네이터

The Terminator>(1984) 같은 다른 재앙 영화와

달리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히 말하지

않는다. 우리 모두가 그 원인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전제하는 것이다. 우리가 선택하지

않는 이상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 정확히

예측된다는 전제다.

대재앙과 함께 태어나 인간 문명의 가까운 과거도

전혀 알지 못하는 아이(코디 스미스-맥피Kodi

Smit-McPhee)의 등장이 흥미롭다. 자신을 낳고

자살을 선택한 어머니나 문명에 대한 어떠한

참조점도 없는 아이는 아버지와 길을 걸으며

마주치는 세상에서 모든 것을 익힌다. 특히

아버지가 요행히 찾아낸 코카콜라를 처음으로

마셔보는 장면은 미묘하다. 우리가 아는 톡 쏘는

맛을 아이는 대번에 좋아한다. 아이가 길 위에서

보는 것이라곤 조각난 인간의 살점이나 흩뿌려진

피, 사냥 당하는 사람들, 다음 먹이로 지하실에

갇혀 있는 마르고 무기력한 육체들이기 때문에,

이 톡 쏘는 맛이 영화에 돌연히 삽입되는 순간은

이질적이다. 그러나 영화엔 이런 이질적 순간이

많지 않다. 번역이란 근본적으로 배신행위이기

때문에 문학 원전에 대한 충실한 해석을 시도하는

영화란 시차적 관점을 만들어내지 못함으로써 좀

맹맹해진다. 그럼에도 난 이 리뷰를 쓰는 것이

매우 어렵다고 느낀다. 어머니는 자살하고 여자와

아이들은 사냥당하는 포스트 인간사회를

영화적으로 목격하는 것은 참혹하다. 작금 우리는

현실의 재앙과 영화 속 재앙들에 포위되어 있다.

“사람 살려! ”

예술과 우정과 와인이 요구되는 시대

시대가 수상하고 기괴하며 위협적이어서 대안적

미래를 상상하고 계획하는 예술 작품이 절절히

필요하다. 케인즈John M. Keynes의 말대로

지금은 자본의 암울한 축적에 대항하는 예술,

아름다움, 우정, 와인이 요구된다. 한 존경할 만한

친구는 우리가 자본이 요구하는 바와 다른

방식으로 행복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재앙을 위한 레시피Recipes For Disaster>

(2008)라는 환경 영화는 일상적 차원에서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고 그린 에너지를 사용하는

레시피를 제공하는 착하고 도움이 되는 유용한

영화다. <아바타Avatar>(2009) 역시 이 대재앙의

시대에 판도라와 같은 유토피아 행성의 존재를

3D로 보여준다. SF의 미래 디스토피아에 우리가

포획된 순간 뛰쳐나온 패럴랙스 뷰parallax

view(시차적 관점)인 것이다.

4

그것은 인간, 혹은 인간다움의 일부를 이룬다.

우리 주변의 물질들은 과학적 지식이나 기술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생소한

물질들이 우리를 위험에 처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들을 벗겨내면 인간일 수 없는 상황. 이것은

어쩌면, 우리가 결국에는 죽을 것이라는

것만큼이나 자명한 사실이 되었다.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인간임을 포기하거나 다른

인간으로 진화해야 하는가? 인류가 지구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인류세 anthropocene, 人類世 * 가

시작되었다. 인류세의 인간은 벌거벗은 원숭이는

결코 아니다.

4.

사회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의 수준, 위험의 수준이

점점 높아지고 있을 때 취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모든 것을 던지고 벗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혼자서 벗어버린다면 해결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이 해법의 약점이다.

물론, 먼저 벗고 도덕적 강제를 요구할 수도

있겠으나 그것도 인간의 역사에서 실현된 적이

없는 이상론이다. 위험의 수준이 높다고 꼭 사단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불안하기는 마찬가지.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활성화

에너지의 벽을 높이고 그 벽에 구멍이 뚫리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방비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불안하다. 사고가 나면 걷잡을

수 없는 반응이 일어나고 파국은 예고되어 있다.

우리가 에너지의 수준을 통제하는 데 필요한 과학

지식과 기술들이 근본적으로 모든 가능성을

대비하는 데는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불안은

근원적이다. 최근, 2009년 이탈리아 중부 도시

아퀼라 지방에서 일어난 대지진을 사전에

경고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6명의 지질학자들이

징역 6년 형을 받았다. 피해자들은 분통을

터뜨렸고 검찰은 과학자들을 살인 혐의로

기소했다. 피고 중 한 명은 “나는 신과 인류 앞에

무죄임을 확신한다”고 했지만 피해자 가족들은

“정의가 실현되었다”고 했다.

골키퍼는 공격수들과 공의 움직임을 보면서

최선의 판단을 해서 골문을 지킨다. 관객들은 공을

쫓느라 온갖 노력을 다하는 골키퍼의 움직임을

놓치기 일쑤이지만 골키퍼는 최선의 방어를 위한

위치에 몸을 놓으려고 갖가지 몸짓을 해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골은 터진다. 인간의 노력으로

막거나 예측할 수 없는 자연 재난이 일어난다.

체르노빌에서, 후쿠시마에서 원자력 발전소는

파국을 맞이하고 곳곳에 숨어있는 공장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유해물들이 흘러나온다. 구미의 불산

가스보다는 작은 규모이지만 불산 누출 사고는 늘

있었다. 충청북도에서만 2010년에 불산이 대기에

뿌려진 양은 29,000kg. 청주, 음성, 증평 등에

공장이 7개 있다. 울산 지역에서 불산을 취급하는

업체는 6개이고 연간 사용량은 구미 사고

누출량의 1,900배에 달한다. 산·염소·암모니아 등

유독물을 취급하는 업체는 전국 5,985개다.

사고가 어디서 일어날지 가늠하는 것이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5.

물질과 인간, 지식과 인간을 구분하는 일은 이제

의미가 없다. 인간과 인간이 만들어낸 것들이

인간을 이룬다. 그것이 우리가 만들어 낸 물건들과

함께 살고 죽어야 하는 것이 인간의 운명.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일 뿐이다. 우리의 지식에 한계가 있고

그것이 페널티킥을 앞에 둔 골키퍼의 그것처럼

가련한 몸짓이라도 할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큰 문제는 우리의 지식이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가를 분명히 알려주지

않을 때, 어떻게 결정을 할 것인가이다.

알프스 산맥의 빙하 속에 5,300년간 묻혀 있던

이 미라는 얼음이 녹으면서 1991년에 발견됐다.

파울 크뤼천Paul Crutzen이 2000년에 처음

제안한 용어로서, 새로운 지질시대 개념이다.

인류의 자연환경 파괴로 인해 지구의 환경체계는

급격하게 변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지구환경과

맞서 싸우게 된 시대를 뜻한다.

김소영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재난 사회에 던진 영화적 질문

December 2012. Vol.4 Architecture Newspaper

(왼쪽 상단부터 시계 방향으로) 존 웹스터의 <재앙을 위한 레시피>, 2008 / 후나하시 아츠시의 <만개한 벚꽃나무 아래서>, 2012 / 존 힐코트의 <더 로드>, 2009 / 소노 시온, <희망의 나라>, 2012

Page 5: 건축신문 vol. 4. PDF 다운로드

December 2012. Vol.4 Architecture Newspaper

동일본 대지진 이후 삶은 다각도에서 변화를 가지게 되었다. 대지진, 원전 사고 그리고 또 다른 재난으로서 신자유주의 이후 경제는 현재

진행형이다. 그러나 언제나 문제가 생기고 나서야, 비로소 몸과 마음을 앓고 나서야 진정으로 배우게 된다. 본 지면에서는 너무 빠르지

않게 우리의 일상에서 재난에 대한 사고가 증발되지 않도록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대답하는 과정들을 가진 건축가, 예술가들의 작업들을

모았다. 해체된 커뮤니티를 다시 회복시키고, 건축가 또는 예술가로서 재난 이후 변화한 환경에서 어떤 실천들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인지

고민한다. 이러한 질문들은 오늘날 미디어를 통해 변화된 재난에 반응하는 감각체계에 주목하는 것까지 연장되었다. 여전히 재난을

바라보고 읽는 것은 고통을 동반한다. 그러나 이들을 포함한 많은 건축가와 예술가들은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의식적으로 직시하려

노력하고 있다. 역사적, 문화적 문맥 안에서 충실한 이들의 작업 이후 역시 계속해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대답하는 과정들

ART & CATASTROPHE

3

제13회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 일본관 «여기서 건축은 가능한가Architecture, Possible Here?»

전준호, 문경원 <뉴스 프롬 노웨어>, 2채널 풀 HD 비디오, 사운드, 00:13:45, 2012

쓰나미로 고사한 삼나무를 기둥으로 사용한 <모두의 집>

대지진 이후 쓰나미에 씻겨나간 스즈키 양조장 <하트마크 프로젝트>

ⓒ광

주비

엔날

레재

1 < 와와 프로젝트わわ Project >

기회를 위한 사회 크리에이티브 플랫폼 <와와 프로젝트>는 지난 해 도호쿠 지역에서 지진

이후 지역의 재생과 복구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연결, 지원하기 위해 조직되었다.

‘와와’라는 말은 ‘나는’이라는 말로 번역되는데 이 말을 한 번 할 때마다 사람들에게 소원이

전달된다.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는 데 더 많은 힘을 생성하는 개인들은 ‘우리’가 되는 것이다.

스즈키 양조장은 일본에서 바다와 가장 가까운 양조장이다. 지진 이후 이곳은 쓰나미에

씻겨 나갔고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근처에 위치하기 때문에 접근마저 거부되었다. 그러나

다이스케 스즈키는 지역에 남아 술을 통해 여러 곳으로 흩어진 지역 사람들을 연결하기

위해서 양조장을 재건하기 시작했다.

이시노마키 지역의 모모우라에서는 쓰나미로 집을 잃은 사람들에게 <유이노하마

프로젝트>를 통해 바다 앞에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을 구축했다. 지난 해 12월에는 이

프로젝트의 지원으로 오기하마 초등학교 근처에 커뮤니티 공간 건설을 축하하기 위한

행사가 진행되었다. <하트마크 프로젝트>는 재난 이후 각 지역이 지닌 어려움을

공감하고자 하트 마크를 사용해 폐허로 가득한 풍경을 밝게 바꾸고자 했다. 하트 모양으로

자른 천 조각을 접착제로 붙이고 찍은 사진을 3331 아트치요다3331 Arts Chiyoda에

보냄으로써 멀리 있는 사람들도 이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게 했다.

2

< 뉴스 프롬 노웨어News from Nowhere >

<뉴스 프롬 노웨어>는 문학, 과학, 인문, 종교 등으로 경계를 넓혀 각 분야의 석학들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구성된 비디오 작품이다. 전준호와 문경원은 이 작업을 통해서 100년

뒤의 세계의 모습을 상상하고 현재를 성찰한다. 급격한 기후변화로 변해버린 미래의

환경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에 관한 이야기로 , 종말을 전제로 했을 때 예술가가 자기 존재를

어떻게 스스로 증명하고 실천하는지 또한 질문한다.

4

«카타스트로폴로지 Catastrophology»전

현대 사회의 재난은 단 한 번에 우리의 삶 전체를 바꾸어버리는 총체적 충격이라기보다는

우리가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에 삶 속으로 스며들고 삶 자체와 공존하는 그 무엇이 되었다.

재난이 이토록 자주, 이토록 가깝게 경험되는 것은 아마도 우리가 마주치는 미디어의

생생한 이미지들과 인터넷을 통해 퍼지는 소식들이 우리의 육체를 재난의 현장으로 시차

없이 옮겨놓기 때문일 것이다. 상당수의 사건들이 우리 바로 옆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은 피부로 느껴지는 재난의 생생한 감각성을 제거하지 못한다.

‘재난학’이라는 신조어를 제목으로 삼은 «카타스트로폴로지» 전은 재난의 대책을

제시하거나 정치적 책임소재를 묻고자 기획된 것이 아니다. 이 전시의 초점은 일상과

공존하는 현대의 재난이 어떻게 우리의 감각을 미시적 차원에서 바꾸어놓았는가를 동시대

미술작품을 통해 보여주고자 기획되었다. (전시 서문 발췌 )

«카타스트로폴로지 Catastrophology»전, 아르코미술관, 2012. 11. 16 ~ 12. 26

(독립큐레이터 조선령 기획)

송진희, <Eat_Into>, single channel video, 00:08:00, dimension variable, 2011 Ryoichi Kurokawa, <Ground>, 3.1 channel video installation, 00:12:00, 2011

Herman Kolgen, <DUST RESTRICTION>, video sound installation, 2011

지난해 동일본 대지진 이후 지역 재건을 위해 이와테현 리쿠젠다카다시에 건설 중인

<모두의 집Home-for-All> 프로젝트. <모두의 집>은 2층으로 된 목조건물로 면적은

약 30㎡, 높이는 10m 규모다. 자재는 쓰나미의 염해 피해로 선 채 고사한 삼나무 19그루가

기둥으로 사용됐다.

5

Page 6: 건축신문 vol. 4. PDF 다운로드

양수인 소장은 <소솔집>의 공사 전 과정을 블로그 sosoljip.blogspot.com에 기록했다.

건축을 잘 아는 건축주를 만난 건축가와 건축가의 속마음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건축주. 이들은 서로를 잘 알기 때문에 보다 쉽게 집을 지었을까, 아니

그 반대였을까? 지난 가을 남해에 완공한 ‘넷제로 에너지 하우스’ <소솔집>

의 건축주 정소익과 건축가 양수인의 긴 수다를 정리했다.

개념 건축주와

현실 건축가의

동상이몽

양수인

저와 정소익 소장은 같이 건축을 공부했지만

그것을 다루고 관여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차이를

갖고 있어요. 각자가 생각하는 건축에 대한 믿음과

불신에서부터 시작해, ‘건축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까지 근본적이고 큰

이야기를 하다보면 두 사람이 갖는 입장의 근거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그리고

<소솔집>을 짓는 과정 중에도 분명 그런 것들이

많이 반영되었을 겁니다. 정 소장께서, “나는 이제

디자인 같은 거 안 할 거야” 라고 말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 이유는 디자인을 열심히 하더라도

실질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그보다 위에서 일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으로 알고 있어요.

이 생각의 배경에 대해서 여쭙는 것으로 대화를

시작해보고 싶습니다.

정소익

말씀하신 대로 양수인 소장과는 생각의 온도 차가

있어요. 제가 알기로 양 소장은 어렸을 때부터

건축가가 꿈이었고 디자인을 중시했지만,

제 경우에 디자인은 취미였던 것 같아요.

제 성향이 좀 더 사회적인, 공동작업에 더 흥미를

가지는 것 같아요. 졸업 이후 무엇을 해야 하나,

건축을 할까 말까 하는 고민으로 많이 헤맸고,

그 고민은 박사과정을 시작할 때까지 이어졌어요.

실제 박사 과정에 가보니 내용은 건축, 보존,

도시디자인이 결합하여 나중에 그중 한 가지를

고르는 시스템이었는데, 공부를 하다보니 저랑

도시디자인이 잘 맞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특히 정책이나 거버넌스와 같은 사회적이고,

디자인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과 교차점을

가지면서 액션플랜action plan이 들어가고 철학이

드러나는 것들이요. 그림만 예쁘게 그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를 질문하던 중에 또 다른 길을

발견하게 된 거죠. 학위를 받고 나서는 거버넌스,

프로그래밍, 교육, 공공예술을 하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제가 양 소장에게 더 이상 디자인하지

않겠다고 말을 한 것 같아요.

사람마다 방법이 다르겠죠. 같은 주제를 가지고

누군가는 디자인으로 풀려 하고, 누군가는

정책만을 가지고 하려 할 테니. 저처럼 디자인이

들어가되 그것에 정책이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양수인

연역법과 귀납법적 사고를 하는 사람의 차이인 것

같아요. 저는 사무실 이름을 지을 때부터 그랬지만,

건물을 짓는 것, 휴대전화 어플리케이션을

만드는 것, 정책을 만드는 것 모두가 디자인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생각해야 이 업계가

발전할 수 있다고도 보고요. 재미있게도 어떻게

보면 정 소장과 제 생각이 동일한 것이지만,

다시 보면 한 명은 모든 것이 디자인이고 그것을

더 넓혀 나가겠다고 생각하고, 다른 한 명은

디자인만으로는 안 되니까 더 넓혀나가겠다고

하기 때문에 전혀 달라요. 흥미로운 것은 <소솔집>

건축 과정에서도 그런 부분들이 극명하게

드러나거든요. 한 사람은 건축주, 다른 한 사람은

건축가의 입장이었지만, 능동적으로 디자인하는

사람과 먼발치에서 디자인을 보는 사람을

구분하자면 갑과 을이 뒤바뀌는데, 그런 것들이

재미있는 요소인 것 같아요.

정소익

다 친한 선후배들이지만, 친한 것과 여러 생각을

공유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기 때문에 제가 생각할

때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무엇이 주제인가’

를 생각하는 면에서는 서로가 잘 맞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면에서 저에게도 여러 가지로

행운이었고요. 고집부리지 않고 해달라는 것 다

해주고.

양수인

저는 건축이 서비스업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정소익

제 사무실 이름이 ‘도시매개프로젝트’인데, 저는

<소솔집>을 매개로 도시적이고 건축적인

무언가를 하고 싶었어요. 양 소장과 제가 공유한

생각은 있는데 저는 그것을 ‘실천하는 방법’

으로 이 집을 짓고 싶었어요. 하나의 플랫폼이나

미디어로서 (제가 항상 이야기하던) 소모적인 삶이

아닌 천천히 줄여가는 것을 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는데, 양 소장이 잘 이해해주었어요. 만약

건축가가 다른 사람이었다면 결과는 분명 달랐을

것 같아요.

양 소장이 설계를 맡아서 진행했고, 저는

(굳이 이야기하자면) ‘빨간펜’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죠. 양 소장이 구조나 모양에 관해서 이야기를

했다면, 저는 사는 사람의 입장에서 인테리어와

같은 것들을 이야기했어요.

양수인

주방 쪽으로 가면 빨간펜이 정말 많았어요.

정소익

어떻게 보면 까다롭고 짜증나는 건축주일 수

있는데, 잘 진행해 주셨어요.

양수인

‘제로 에너지 하우스’를 생각한 근본적인 이유를

다시 여쭤볼게요.

정소익

제가 밀라노에 있을 때 석유 값이 배럴 당 100불

이상으로 막 오를 때가 있었거든요. 당시

트럭기사들이 3일 정도 파업을 했어요. 그러고

나니 밀라노 시내에 신선한 먹을거리라고는

하나도 없는 거예요. 처음에는 막연하게

‘우편물이 안 들어오겠구나’ 정도였는데 그게 아닌

거예요. 슈퍼마켓에 신선한 음식은 하나도 없고

깡통만 남고, 식당들이 문을 닫고 … 그 시간을

회복하는 데 1주일이라는 시간이 걸렸어요.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이 시스템이 너무 취약하다. 내가

여기에 너무 의존하면 안 되겠구나.’ 그래서

독립적인 시스템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저는 100% 도시 사람이지만 귀농을

꿈꾸기 시작했어요. 귀농이 하나의 방법일 거라

생각한 거죠. 그래서 내가 집을 지으면

기존의 시스템에 의존하지 않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어요. 그래서 제주도는

제외했어요. 좋은 곳이지만 수영으로는 갈 수

없고, 비행기를 타야만 갈 수 있잖아요.

양수인

처음에는 ‘제로 에너지’가 아니라 “한전에 의존하고

싶지 않다”고 해서 구체적으로 그 방법을 조사하기

시작했어요. 넷제로Net-Zero 에너지 하우스를

조사했는데 관련 학회의 연구논문을 보면,

넷제로 에너지 하우스를 위해서 필요한 요건들이

제시되어 있어요. 예를 들어, 친환경적이거나

에너지 효율적인 집을 지으려면 단열이 중요한데,

100% 가운데 단열이 30~40%를 차지해요.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이야기죠. 그런데 무엇보다

흥미로운 건 그 집에 사는 사람의 의식변화인데

그게 15%를 차지해요. 가령 여름에 에어컨으로

추워서 긴팔 입고, 겨울엔 난방으로 집안에서 반팔

입으려는 사람이라면 절대 살 수 없다는 거죠.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렇지!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이 이야기를 정 소장께도 드렸고요.

정소익

네, 저는 에어컨을 달 생각이 없어요. 태양광이

비싼 거 저도 다 알고, 사람들도 딴죽을 걸어요.

심지어 건축하는 사람들도 효율 안 나온다고 다

뭐라고 하거든요. 그런데 말씀하신 대로 여름엔

덥게 살고 겨울엔 춥게 사는 거지, 하고 생각했던

것들이 있었어요.

정소익은 서울, 뉴욕, 밀라노 등지에서 건축, 실내건축

및 도시설계 프로젝트들을 수행하였다. 최근에는

도시재생을 주제로 하는 지역 연구, 거버넌스 / 마을만들기

프로젝트, 전시 큐레이팅, 공공예술, 그리고 건축 / 도시

교육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지속가능한 슬로우라이프

slow life를 실천함과 동시에 건축교육의 장으로 활용할

넷제로 에너지 하우스 <소솔집>을 경상남도 남해군에

건축했다.

정소익 도시매개프로젝트

양수인 Lifethings 삶것

<소솔집>의 전경 <소솔집>의 입단면

ⓒ신

경섭

6 December 2012. Vol.4 Architecture Newspaper

양수인의 작업은 도시와 건축, 공공예술과 손바닥만한

전자기기까지 다양한 스케일을 넘나든다. 2011년

국립현대미술관의 첫 번째 공공예술프로젝트 작가로

선정되어 청계광장에 <있잖아요>라는 2평짜리

시민자유발언대를 선보였으며, 현재 국내에서 7,000평

규모의 복합문화시설 건축설계와 미국 산호세 시청의

발주로 대규모 공공예술 설치 작업을 진행 중이다.

ⓒ 신

경섭

Page 7: 건축신문 vol. 4. PDF 다운로드

양수인

그래서 <소솔집>의 창을 만들 때 서로 맞바람이

칠 수 있는 구조를 생각했어요. 단열이 최우선이기

때문에 단열재, 옥상정원의 40cm 흙, 뒤의

벽이 중요했는데, 모양도 중요하니 의외로

복잡하더라고요. 사실 웬만한 집은 외단열을

많이 해도 어딘가는 내단열이 조금씩 섞이기

마련이거든요.

정소익

단열 마감할 때 고민이 많으셨죠.

양수인

외장재는 제 사비를 털어서 할 정도였어요.

코팅업자, 시공사 사장님과 같이 모여 의논도 많이

했고요. 콘크리트-스티로폼-코팅으로 마감을

해야만 단열층이 하나도 안 깨지고 완벽하게

감쌌다고 할 수 있고 그래야만 열 손실이 없을

테니까요. 그래서 워터파크에서 쓰는 고무 재질의

코팅을 하기로 했는데 해놓고 보니까 샘플로 보던

것보다 너무나 민감한 재료였던 거예요. 방수는

되지만 미관상 문제가 있는 재료라 조금만 틈이

있어도 그걸 메우는 것이 아니라 그걸 그대로

드러내는 재료였던 거죠.

정소익

그래서 이건 안 되겠다고 했었죠.

양수인

그래서 그걸 커버할 방법으로 코팅을 한 번 더

했죠. 아무도 안 해본 것을 꼭 해보자고 했을 때

생각했던 것이 코팅을 이용한 단열이었기 때문에

다른 것은 안전하게 하려고 노력했죠. 그리고

보통은 지붕이나 패널을 씌우잖아요. 그러면

못질이 필요한데 쌓은 단열재를 파내고 나무로

작업을 다시 해야 해요. 나무도 단열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어딘가는 단열이 깨질 수 있기 때문에

완벽해질 수가 없죠. 그게 싫어서 그 위에 뭔가를

뿌려서 마감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정소익

중간에 다른 재료도 보여주셨는데 원래의

아이디어가 좋아서 그대로 하자고 이야기 했던

기억이 나네요. 완벽하게 다 감싸는 아이디어가

좋았어요.

양수인

설계를 위해 조사하면서 본 넷제로 에너지 하우스

중에는 진짜 전력을 하나도 안 끌어 쓰는 것도

있고, 끌어 쓰기는 하지만 잉여발전이 있으면

거꾸로 보내서 결국 값으로 따지면 연료비가 0원

혹은 0원 이하인 집도 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법적으로 한전에 반드시 연결해야 하기 때문에

전자는 불가능해요. 그래서 가장 적절한 것은

넷제로 가운데에서도 1년에 전기료가 0원이

나오는 방법만이 가능하고 제일 좋겠더라고요.

오랫동안 풍력이나 지열도 고민해보고 친한

아티스트와 협력해서 DIY로 에너지를 만들자는

이야기도 하다가, 결론적으로는 어느 정도 증명이

된 태양열, 태양광이 가장 좋겠다고 판단했죠.

이 집은 무엇보다도 정 소장의 명분이 가장

중요하니까 첫 달에는 전기료가 많이 나오더라도

1~2년이 지나면 분명히 제로 에너지가 될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이 집에 오면 여분으로 켜져

있는 조명만 보여도 명분을 위한 실천이 어려워질

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저에게도 이런 영향을

주는데 하물며 이 집에 사는 사람은 어떻겠어요.

정소익

다른 건축주에게도 권하고 싶은지, 넷제로 에너지

하우스가 앞으로 주거생활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요?

양수인

만약 제가 집을 짓는다면 <소솔집>처럼 제로

에너지 하우스를 짓는 방향으로 노력을 할 것

같은데, 다음 건축주가 관심이 없다면 권유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왜냐면 그 건축주도 나름의

살아온 철학과 입장에 근거해서 원하는 것이 있을

거예요. 그런 것이 먼저 충족되고 나서 물어볼

수는 있겠죠. 원하는 것만 해주는 것은 업자이고,

원하는 것을 해주되 그 안에 건축가의 색깔이

있다면 작가의 성향이 크죠. 하지만 다 안 해주고

건축가 색깔만 있는 것은 나쁜 것 같아요.

물론 추천을 할 수 있죠. 저는 근본적으로 건축이

서비스업이라고 생각해요. 집을 짓는 과정에서

정 소장의 어머님께서 직접 그려주신 스케치가

있어요. 어머니 나름의 설계와 평면도에요. 그

스케치를 가지고 어머니와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했는데 그 과정이 매우 좋았어요. 왜 B & B 방

두 개를 본채 옆에 그려 오셨는지 파악하기

위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러면서 무엇이 왜

필요한지를 훨씬 더 잘 알 수 있겠더라고요. 그려

오신 스케치를 반으로 접어서 B&B 방을 지하에

두면 그려주신 것과 똑같다고 이야기하면서

설득도 쉽게 할 수 있었고요. 굉장히 구체적인

제약조건과 요구사항이 많았기 때문에 작업하기도

훨씬 편하고 좋았어요.

넷제로 에너지 하우스는 한국에서는 아직 시작

단계이니 잘 해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어요.

한 번도 안 해본 것이면서 독특한 것이기 때문에

최대한 안전하게 하려고 노력했어요. 예산을

많이 들이지 않기 위해 제가 잘 하는 재료 범위

안에서 안전하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해서

콘크리트를 썼고요. 그래서 감리도 철저히 할 수

있었고요.

정소익

같이 건축 공부를 한 사람이 건축주였기 때문에

양 소장이 어려운 점도 있었을 거예요.

양수인

업에 따라 구분을 하기보단 사람에 따라 다른 것

같아요. 근본적으로 상식적이고 서로의 영역을

존중해줄 줄 알면 좋고요.

초반에 예산 때문에 조금 혼돈스러웠어요.

처음에는 30~40평 정도를 생각하고 디자인을

했잖아요. 그런데 진행을 하다 보니 필요한 것이

계속 추가되는데, 그렇게 하면 정해진 예산을

초과하니까 안 된다고 말했었죠. 그래도 괜찮으니

요구한 것을 모두 그려보라고 하셔서 60평이

되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내심 예산 안에서

가능할까 우려하고 있었거든요. 그렇게 하다

보니 70평이 되었어요. 정해진 예산이 있는데

왜 계속해서 공간을 늘리려고 하는지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더라고요.

정소익

제일 처음 이야기했던 숫자들은 막연한

것들이었어요. 예를 들어서 어머니가 그리신

스케치 대로 하면 거의 100평 가까이 되거든요.

거기에서 줄이더라도 반드시 필요한 것들을

지키다보니 예산이 늘어날 수밖에 없었어요.

그렇지만 그 이상으로 더 늘리지 않기 위해서 많이

노력했어요. 모든 요구를 단 1초도 생각 안 하고

단호하게 거절한 적도 많아요. 창문도 비용을 좀

더 들이면 지금 한 것보다 좋은 브랜드로 할 수

있을 거라고 하셨지만 그런 건 상관없었어요. 작은

것들을 하나씩 늘리다보면 끝이 없는 거니까요.

그래서 제 입장에서 봤을 때 추가된 예산은 거의

없는 편이에요.

양수인

<소솔집>을 찾는 사람들과 가꾸어나가겠다고

하셔서 조경을 생략했기 때문에 거기에서도

예산이 절감됐어요. 1층 B&B 앞에 바비큐를 할 수

있는 현관 바닥을 타일로 더 그럴 듯하게 꾸밀 수

있었지만, 시멘트로 마감하는 것도 상관없다고

하셨고요. 선택과 집중을 하면 가능한 이야기가

되는 거죠.

정 소장은 저와 의견 조율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어떤 것이었고 건축하는 과정에서 어디에

신경을 많이 쓰셨나요?

정소익

아까 창문틀과 같은 경우만 보더라도 제가

물질적인 것에 그렇게 집착하는 편은 아니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분명 신경을 쓰는 것들이

있어요. 저는 인테리어 실무를 오래 해서인지

디테일에 굉장히 신경이 많이 쓰이거든요. 어떻게

보면 전혀 문제되거나, 중요하지 않은 일이지만 제

눈에는 그런 것들이 보이니까요. 가령 창문의 선이

맞아야 한다거나 그런 거죠.

양수인

아, 그러고 보니 바다가 보이는 창이 원래 하려던

것과 다르게 저렴한 것으로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가운데 바bar가 있어야 했어요. 저는 그게

싫어도 어느 정도 포기하려고 했는데, 정 소장은

절대 안 된다고 했었죠. 사실 업계에서 보기에는

살짝 큰 거였고, 정 소장이 보기에는 너무 옹색한

거죠. 왜 그러셨던 거예요?

정소익

가운데 선이 있는 걸 죽어도 참을 수가 없었어요.

양수인

저는 미학적으로 굉장히 관대하거든요. 사실

지금에서야 이야기하지만 불편했던 것 중에

하나가 그런 작은 것에 집착하실 때였어요. 그럴

때마다 동의를 구하시는 표현 중 “디자인이 그런

것이다”, “나는 디자이너이기 때문에 그런 게

중요해”라고 하셨는데 저에게는 그런 것들이

디자이너로서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거든요.

큰 아이디어만 충족되면 선이 있건, 바가 있건

중요하지 않아요. 성실성과 완성도의 문제에 있는

디테일은 중요한데 그거 외에, 제 경우는 디테일에

집착하는 것을 의식적으로 싫어하거든요.

그것보다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이 있다는

생각 때문이에요. 물론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디자인이라는 미명 하에 별로 가치가 없음에도

집착하는 경우가 너무 많거든요.

정소익

그게 선이 있어서 싫다는 것보다는 정확히 말하면,

선이 있어서 바깥 풍경이 반으로 잘리는 것이

싫었던 거예요. 그렇게 몇 번을 우겼더니

양 소장이 답을 찾아오셨어요.

양수인

이 집을 처음에 생각하실 때 가장 첫 번째로

염두에 두었던 것은 무엇이었나요?

정소익

먼저 지속 가능하고, 과하지 않고, 소박하며,

주변을 해치지 않는 것이었어요. 그런 것을

꿈꾸었던 거죠. 두 번째는 위층, 아래층을

효율적으로 쓰는 활용도였어요. 원래 이 집 모양이

박스 형태였잖아요. 그런데 준비하는 과정에서

저도 집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생각도 바뀌고

프로그램들을 생각하다보니 구체적으로 또 바뀐

것 같아요.

양수인

여러 사람이 써야 하는 면에서 가변성도 추가할 수

있어요. 제 표현으로 말씀드리면, <소솔집>은

‘상식적인 건축’이라고 할 수 있어요. 예산이나

집의 퍼포먼스나 여러 면에서요. 건축학교

워크숍을 해야 하니 본인의 침실을 별도로

마련하기 보다, 그냥 위에 올려달라고 하셨거든요.

정소익

어린이 건축교육을 하고자 했을 때에도

아이들에게 디자인 교육을 한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결국은 집, 공간, 도시처럼 우리가

사는 곳을 어떤 관점으로 볼 것인가. 즉, ‘실제

스케일에서 구체적인 생각을 가지고 봤으면

좋겠다’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제가 하는 작업들은 도시디자인의 스펙트럼에서

최종 결과물 쪽에 위치하는 것이 아니라 시작점에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전시를 하고 교육을 하고,

커뮤니티와 작업을 하는 모든 것이 마스터플랜의

그림을 그리는 제일 ‘시작점’에 있는 것이고,

그와 관련해서 이 집도 하나의 실천이고요. 제가

시작점에 있다면 양 소장은 끝은 맺는 쪽에 있다고

생각해요.

양수인

그렇네요.

정소익

처음부터 의견의 차이가 있고 그래야 건축가와

건축주로서 대립각이 나올 것 같은데 그런 게

없었던 것 같아요.

양수인

그런데 방금 하신 말씀들을 생각해 보니, 저는

나중에 뭔가를 하기 위해서 먼저 씨앗을 뿌리는

스타일은 아닌가봐요. 지금 꽃을 피워야 마음에

드나봐요. 교육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 저는

학생이 대학원 3학년이라면 그 시간에 걸맞은

꽃을 피우기 위한 교육을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정 소장님과 제가 큰 갈등은

없었지만, 자세히 보면 근본적으로 다른 생각과

입장을 가지고 있는 듯 해요.

정소익

<소솔집>을 짓는 과정으로 다시 되돌아가서,

건축을 하려고 땅을 파다보니 건축이라는 것이

너무나도 환경파괴적인 거예요. 집 주변에 있는

고사리들을 다 죽여가면서 땅을 파헤치고 건물을

짓는 게 무서운 일이더라고요.

양수인

저도 그 부분에서 건축이 가진 근본적인 딜레마를

느껴요. 제 친구들이랑 하는 이야기가, 건축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환경을 생각하는 일을 할 수가

없는 업계라는 거예요.

요즘은 건축보다 공공예술에 대해 더 고민을 많이

하고 있어요. 워낙 그 분야에 대해 문외한이기

때문에 상징성, 조형성이 무엇이고 거기에 내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거죠.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참여적 공공예술을

앞으로도 하고 싶은 이유에는 즉각적인 반응이

있어서예요. 제일 인상 깊었던 프로젝트는 요제프

보이스Joseph Beuys의 <7천 그루의 떡갈나무>

퍼포먼스였어요. 즉각적으로 이해도 되고 나무를

심음으로써 얻는 이익도 즉각적으로 얻을 수 있는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관객과 작품과의 유대감을 만드는 데에

예술성과 조형성이 가장 주요한 요인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정소익

수잔 레이시Suzanne Lacy와 안양에서 같이

작업을 했는데, 다른 작가들과 확연하게

차이를 만드는 것이 바로 작업에서의 강도와

밀도였습니다. 참여를 통해 유의미를 만드는

포맷은 다른 작가들과 같지만 수잔 레이시는

작업을 만드는 진폭이 훨씬 크더라고요.

프로그램에의 집중도가 월등히 높아요. 미술에서

다른 분야로 확장을 해서 뭔가를 하려고 하고,

결과적으로는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그 지반을

흔드는 것만이 공공예술에서 오랫동안 이야기할

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양수인

제가 최근에 정한 4가지의 지표 중 하나가

‘개인적인 것을 만들자’인데요. 무엇이 되었건

간에 특히 불특정 다수를 위한 공공예술은 작가의

이야기로만 만들어지면 절대 안 되는 거 같아요.

내가 무엇을 하건 그 과정에 참여를 하게 된다면

내 이야기, 나만의 경험으로 만들어 줄 수 있어야

하는 거죠. 예를 들어서, 5살 난 딸을 데리고 산책

나온 엄마가 딸과 함께 참여할 수 있고, 바로

피드백을 받을 수 있어야 해요. 그리고 사람들이

뭔가를 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 곳에서

시작해야 하는데 이건 <있잖아요>를 통해서 얻은

경험이에요.

양수인 소장은 <소솔집>의 공사 전 과정을 블로그 sosoljip.blogspot.com에 기록했다.

<소솔집>

경상남도 남해군 창선면 대벽

리에 다락 포함 70평 규모로

태양열난방과 태양광발전 설

비, 보조용 화목보일러를 포함

하여 평당 430만 원의 시공비

용으로 완공되었다. 건축주 공

간, 부모님 공간, B&B 공간으

로 구성되었다. 건물의 주공간

은 부모님의 생활공간으로 침

실, 거실, 주방 및 식당으로 이

루어져 있다. 지역적 특성인 다

랭이논의 흔적이 바다를 향해

남아있는 대지조건을 활용하

였으며 두 건물의 남쪽 지붕 경

사는 연간 태양을 가장 잘 받을

수 있는 평균 각도로 기울어 있

다. 지붕에는 3KW 태양광 발

전설비와 난방을 위한 태양광

집열관이 설치되어 있다. 비상

용 보조 보일러도 화목보일러

를 사용해 화석연료 사용을 자

제했다.

넷제로 에너지 하우스

넷제로 에너지 하우스에서 에

너지를 생산하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효율적으로 관리

하고 사용하는 것이다. 이를 위

해서는 단열효과가 단연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소솔집>에

는 외부에 단열재를 부착한 외

단열시스템을 사용했다. <소솔

집>의 구조체는 20cm 두께의

단열재로 둘러싸여 있다.

시공사: 임현철 (채헌건축)

구조: 박병순 (터구조)

전기: 한길엔지니어링

설비: 주성MEC

7December 2012. Vol.4 Architecture Newspaper

Page 8: 건축신문 vol. 4. PDF 다운로드

『제가 살고 싶은 집은』이 화제입니다. 처음부터

책을 염두에 두고 기록 작업을 하신 건가요?

그건 아니에요. 2년 전부터 집주인인 송승훈

선생이 진효숙 사진가에게 부탁하여 집을

기록하기 시작했죠. 송 선생은 집을 기록하는 것이

건축가에게 큰 선물일 거라고 생각했던 거예요.

너무나 고맙죠.

책에서 사계절을 담은 <잔서완석루>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이유겠네요.

단, 집을 온전히 담기 위해 송 선생은 사진가에게

하룻밤이라도 그 집에서 꼭 자 봐야 한다는 걸

전제로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보지 않고 어떻게

집을 기록할 수 있느냐는 거죠.

책에 대한 반응은 어떤가요?

책과 관련해서 강의 요청이 많이 들어옵니다.

중고등학교 혹은 소통과 연관 있는 연구소나

단체에서요. 저는 그게 무지 반갑습니다. 내일도

한 고등학교에서 송 선생과 함께하는 북토크쇼가

있어요.

두 저자의 토크쇼라…. 책 내용만큼 재미있고

따뜻한 시간일 것 같은데요?

집을 함께 지었으니 송 선생과는 잘 맞을 수밖에

없어요. 강연 내용을 미리 의논할 필요도 없고요.

있는 대로 얘기하면 되니까.

집 짓는 과정에서 건축가와 건축주가 주고받은

이메일을 간추려 엮었습니다. 삶의 방식에 대한

고민부터 집을 지을 때 살펴야 하는 것들까지,

진솔한 이야기들이 읽는 이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데요, 특히 첫 물음 “어떤 집을 꿈꾸고 있는지,

어떻게 살기를 원하는지”가 참으로 유별납니다.

저는 집을 지을 때 살기의 방식을 먼저 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짓는가보다 어떻게

사는가를 먼저 물어야 하는 거지요. 책이 나온

후에야 안 사실이지만, 어떻게 살고 싶냐는 질문에

송 선생도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고 해요.

다른 프로젝트에서도 이와 같은 방법으로

건축주와 대화를 한 적이 있나요?

이메일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요. 사실 이메일에

매우 서툴러요. 미팅이나 전화 통화 등으로

의뢰인과 긴밀하게 대화를 나눕니다. 저는 설계를

할 때 건축 용도와 상관없이 의뢰인과의 소통을

원칙적으로 합니다. 거의 이해가 됐다 싶을 때까지

소통합니다. 그래서 의뢰인의 생각이 바뀔 것

같으면 연필을 잡지 않습니다. 또 제 아이디어를

권하지도 않고요. 건축주의 확신이 없으면 그림은

언제든 바뀌게 될 테니까요. 혹자는 그러다가

일감을 잃을 수도 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걸 겁내서 아무렇게나 설계하는 건 더 안 되는

거죠. 젊었을 때는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움직여도 봤는데, 결과가 좋지

않더라고요. 저는 나쁜 건축이 세상에 활개를 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소통의 부재라고 봐요.

어떤 건축가든 기본적으로 건축주와 소통하지

않나요?

소통의 ‘ 결과 ’ 가 중요하겠죠. 결과가 없으면 소통이

아니에요.

소통의 과정에서 건축가로서 자신만의 건축

언어를 건축주에게 은연중 내비치게 되지는

않습니까?

전혀요. 저는 건축주에게 건축가의 설계 작법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기능이나 건축 공간 안에서

일어나는 물리적인 현상 혹은 작용, 그리고 그것이

사는 사람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 설명하는 것으로

제 생각을 전달하지요. 그런데, <잔서완석루>

의 송 선생은 이미 『모형 속을 걷다』 를 읽고 저에

대해 알고 오셨어요.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바람이

잘 통하는 집이면 좋겠다”는 그의 소망을 제가

알게 됐고, “바람이 잘 통하려면 채를 나눠야 한다,

건축가 이일훈은 불편하게 살기, 밖에 살기, 늘려 살기를 근간으로 하는 ‘채 나눔’ * 을 주장하며, <가가불이>, <소행주>

등의 주거 건축, <도피안사 향적당>, <자비의 침묵 수도원>, <하늘 담은 성당>, <성 안드레아 성당> 등의 종교 건축,

<문학과 지성사>, <청년사>, <세계사> 등의 출판사 사옥, <기찻길옆 공부방>, <민들레 희망지원센터>, <부평 노동자

인성센터>, <우리안의 미래 연수원> 등의 착한 건축을 작업해 왔다. 얼마 전 그는 주택 <잔서완석루殘書頑石樓>의

건축주와 주고받은 이메일로 책을 엮어냈다. 새삼 ‘소통’의 중요성과 ‘일상’의 가치를 일깨우고, 건축 작업에서 정작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는 이 책을 빌미삼아 2012년 겨울의 문턱, 글맛과 입담 좋기로 소문난 그를 만났다.

나쁜 건축이 판치는 세상에

나누고 늘리는 ‘채 나눔’

8 December 2012. Vol.4 Architecture Newspaper

‘밖에 살기’를 보여주는 <잔서완석루> (2005~2007)의 마당과 툇마루

© 진

효숙

이일훈

바깥에서 지내는 곳을 다채롭게 만들고, 공간을 큰 덩어리로

만들기보다 쪼개고 나누어 늘리면, 사람이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채 나눔’ 건축론을 편다. 설계뿐만 아니라 글쓰기로도 활발한 그는

일간지에 매주 칼럼을 쓰고 있으며, 단행본으로 환경산문집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 『뒷산이 하하하』 , 건축백서 『불편을 위하여』 ,

건축산문집 『모형 속을 걷다』를 펴냈다.

Page 9: 건축신문 vol. 4. PDF 다운로드

반갑다” 그랬더니 또 건축주는 “내가 반갑다”, 그런

식으로 얘기가 잘 풀린 경우죠. 아마 앞으로도

그와 같은 건축주를 만나기는 어려울 듯해요.

개인 주택은 물론 수도원, 성당 등의 종교

건축이나 출판사 사옥 등의 작업을 해 오셨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제가 주목했던 선생님의

프로젝트들은 대부분 건축주와의 관계가 긴밀했던

것 같아요. 혹시 얘기가 잘 통하는 특별한

건축주들만 만나신 것은 아닌가요?

보통의 의뢰인들이었어요. 보통의 의뢰인이 저의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특별한 분이 된 거죠. ‘ 집을

짓기 위해서는 건축주의 의견을 정확히 줘야

하는구나 ’ 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송 선생도 처음에는 물리적인 대답을 많이

하셨어요. 그것 말고, “ 어렸을 때부터의 꿈이 있지

않나”, “살던 집이 있었지 않나” 하고 물었고, 그런

물음에 예민한 분이니까 금방 감을 잡은 거고,

그 다음에 정리가 쭉 된 거죠.

불통은 한 번도 없었나요?

왜 없겠어요. 늘 좋기만 한 것은 위선이죠. 소통은

불통 과정을 포함한다는 게 중요합니다. 다만 저

분이 모르시기 때문에 그랬던 거라고 이해하는

거예요. 조곤조곤 설명을 하면 그런 문제는 금방

해결이 되고요.

솔직히 건축가로서의 욕심이 전혀 없지는

않았을 텐데요.

제 건축을 실현하고 싶은 욕구가 왜 없겠습니까.

대학 은사인 박학재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 100가지 중 한 가지에 건축가의 자율성이

보장된다면 99가지를 다 잃을 수 있다.” 건축가로

성장하려면 이 말을 꼭 기억하라고 당부하셨어요.

그런데 젊었을 때는 선생님의 말씀이 잘 이해되지

않더라고요. 10가지, 50가지 다 내 맘대로

하고 싶었죠. 하지만 나이가 드니까 정말 맞는

말씀이라고 생각해요. 99가지를 양보하더라도

한 가지를 통해서 정신을 구현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의뢰 받은 일에 먼저 그림을 그리지

않아요. 먼저 그려 놓은 그림이 나를 구현했다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그러면 어느 단계에서 그림을 그리세요?

전 우선 두 가지를 보는데, 첫째가 의뢰인이 갖고

있는 생각이 확고한가, 그에게 의사소통으로

이해된 것을 실천할 의지가 확고하게 있는가

입니다. 그것이 확인돼야 그림을 그리고 구상에

몰두하지요. 둘째는 건축주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

세상에 유익한가 하는 겁니다. 물론 그렇다고

사회 운동가의 자질을 건축주에게 요구하는

것은 아니고요. 건축가 몰래 불법으로 건물을

증축한다든지, 겉으로는 명분이 근사하지만

치졸한 잡꾀를 부린다든지. 뭐, 그런 걸 많이

목격하거든요.

건물이 완성되기까지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시간과 노력을 요하는 일이죠. 하지만 소통을 이룬

후에는 일사천리에요. 시간을 끌 필요가 없는 거죠.

조금 다른 이야긴데요, 요즘 동네 건축가, 일상의

건축 등을 내세워 잠재적 건축주인 일반 대중과

소통하려는 시도들이 더러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동네 건축이 따로 있고 도시 건축이 따로 있나요?

건축의 본령을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하면 도시

건축, 동네 건축, 나라 건축, 다 잘하겠죠. 그런데,

이 세상은 말 만들기를 참 좋아하는 것 같아요.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아주 나쁘게 얘기하면, 일로

연결하기 위해 말로 포장하는 행위 자체는 건축의

본령으로 비춰볼 때 바람직하지 않아요.

마치 새로 발견한 것처럼! 그건 웃기는 일이죠.

일상의 건축이란 것도, 건축에서 일상성 또는

일상에서 발견되는 위대함이 안 보이니까

안타까운 마음에서 자꾸만 일상 이야기를 하는

거겠죠. 그런데, 건축은 그야말로 일상적인 것

아닌가요? 아무리 특별한 기념관이라고 하더라도

늘 일상적으로 쓰입니다. 건축이야말로 일상의

가치를 온전히, 늘 지니고 있어야 된다는 말이죠.

그것이 안 보인다는 것은 흡사 리얼리즘을

앞세우면서 리얼리티가 없는 예술과 똑같은

거예요. 이건 건축인들이 반성을 해야 합니다.

(동석한 박성태 국장 왈) 맞는 말씀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2013 정림학생건축상>의 주제 ‘일상의

건축: 삶과 공간의 회복을 위한 건축’은 우리가

반성을 해 보자는 의미가 깔려 있어요. 사실 대형

사무소에서는 클라이언트를 한 번도 만나 보지

않은 상태에서, 심지어 건축주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프로젝트를 할당받은 팀장이 설계를

진행한다고도 해요.

일상의 의미를 존중하는 뜻에서 보면 그 말씀이

백번 맞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냉소적인

분석을 해보면, 그들은 클라이언트를 늘 만나고

있지요. 자본이라고 하는 클라이언트를! 아무튼

건축은 빨리 일상의 가치가 소중하다는 것을

알고 실천해야 합니다. 더군다나 인구가 줄어들고

있는데, 인구가 준다는 것은 건설량이 줄어드는

것을 의미하고, 그러다 보면 자연히 양질의

건축이 귀해집니다. 이젠 사고방식을,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해요. 건축의 본령인 일상성, 일상의

발견이 그것에 좋은 단서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요즘 건축판에서 뵙기가 힘듭니다. 건축 작업은

여전히 하고 계신 거지요?

물론이죠. 건축은 내게 신앙과도 같아요. 하지만

건축판은 재미가 없어요. 어쩌다 접하는 건축

소식들도 흥미를 자극하지 않고, 흥미를 느끼지

않는 게 어쩌면 다행이란 생각마저 듭니다.

건축판이 왜 재미가 없나요?

건축판 이야기가 여전히 자기 위안용이죠. 이

나이에 자위하러 다닐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더구나 이야기들이 나를 감동으로 이끄는 게

아니라 오히려 피폐하게 하더란 말이지요. 그게

싫은 겁니다. 왜 세상 사람들이 건축가들의

이야기에 별로 귀를 기울이지 않을까요?

건축가들의 제안이나 제언 중에 별로 귀담아들을

게 없다고 여기는 것은 아닌가 해요. 이를테면

환경에 별로 유익하지도 않은데 유익하다고

그러잖아요? 요즘은 전문가 뺨치는 일반인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음악 평론가와 미술 평론가를

뺨치는 음악, 미술 애호가가 많은 것처럼, 건축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일반인들이 많을 거라고요.

그들이 볼 때 신통하지 않은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되는 거죠.

그래도 건축 바깥에서의 활동은 열의를 갖고

하시는 것으로 압니다. «경향신문»에 칼럼도

여전히 쓰시고 있고요.

네. 요란한 사회적 성취는 없지만 나름대로 보람

있는 일들입니다. «경향신문» 에는 ‘사물과

사람 사이 ’ 라는 타이틀로 제 이름이 걸린 란인데,

일주일에 한 번 독자들과의 약속을 지키느라

바빠요. 칼럼니스트가 아닌 데다가 또 제 일도

해야 하고, 글과 사진을 함께 게재하는 란이어서

더 바쁘지요. 하지만 즐거운 일입니다. 사물을

관찰하면서, 보이지 않는 독자들과 내 이야기를

하면서 스스로도 많이 배우고 있고요.

글을 쓰고 강연으로 대중들과 만나고, 또 건축주와

긴밀하게 소통하려면 아는 게 많아야 할 것 같아요.

언젠가 선생님 사무실에 들렀을 때 양도 양이지만

다양한 종류의 책에 놀랐습니다. 독특한 사전 같은

것도 눈에 띄었고요.

개인적으로 지도와 사전에 관심이 많아요. 저는

건축이란 게 ‘새로 그리는 지도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옛날에 도시를 만들었던 황제는

땅 위에 새로운 지도를 그린 사람이지요. 근대

건축가들도 도시를 그렸고요. 새로운 근대의

지도죠. 현대의 건축가들은 건물이라고 하는

파편화된 흔적에 몰두하지만, 하나의 점이 잘

그려지면 세상을 유익하게 만드는 물리적 지도가

되는 거예요. 정확히 말하면, 저는 지도가 세상을

어떻게 그리고 있느냐에 관심이 있어요. 이를테면

고古지도에 관심이 있는 게 아니라 고지도에

나타난 세상에 관심이 있는 거죠. 지도를 통해서

보이는 세상을 공부하고 싶은 겁니다.

또, ‘사전이란 죽은 지식의 창고다’라는 정의가

있잖아요? 그런데 어느 날 가만히 생각해

봤더니 나는 죽은 지식도 모르고 있더라고요.

혼자 어찌나 창피하던지. 옛날에 우리 선조들은

지도책과 총람 류의 책을 좌우에 두고 공부를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공부를 하다가 모르는 게

나오면 재빨리 찾아보는 거죠. 찾아보는 지식이기

때문에 죽은 지식이라고 말하는 거고요. 그처럼

저도 더 빨리 알기 위해서 사전을 보는데, 모든

사전을 다 찾아보는 것이 아니라 사전이 아니면

그렇게 빠르게 많은 걸 파악하기 어려운 분야에만

한정해요.

이를 테면, 꽃말 사전 같은 거지요? 아무튼

건축가들은 공부를 많이 해야겠어요.

건축가들은 기본적으로 공부를 많이 합니다. 다만

어떻게 써먹느냐가 문제겠지요.

건축 일이 적을 때는 그만큼 읽고 쓰는 시간이

많아지겠죠?

그건 상관없어요. 저는 일이 많을 때도 읽고

쓰는 시간은 똑같아요. 별로 좋아하지 않는

부류의 사람들 중 하나가 일 없어서 책 내는

사람들이에요. 일이 있거나 말거나 읽고 쓰는 일은

늘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걸 안 하면 저는 좀

답답하거든요.

1990년대 초부터 설계 방법론으로 ‘채 나눔’ 을

주장하셨습니다. 여전히 선생님 건축에서 유효한

개념이겠지요?

한 20년 동안 계속 떠드는 데도 아직 국어사전에

올라가 있지 않아요. 지금도 하는 얘기들이고 멈출

수 없는 얘기들이죠. 학교나 공동체, 시민 문화

강좌 등에서 강연 요청이 종종 있기도 하고요.

워낙 오래전부터 설파해 오신 거라서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아무리 들어도 넘치지 않는

얘기니만큼 다시 한 번 소개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채 나눔’은 불편하게 살기, 밖에 살기, 늘려 살기를

근간으로 합니다. 불편하게 살기는 우리 삶의

태도에 대한 질문이에요. 맹목적으로 편리함을

추구하는 것을 반성하고 싶어서 얘기하기

시작했는데, 근원적인 인간의 의식을 건드리는

문제예요. 사람이 불편하게 살면 환경 문제가

일단 없어지고 인간이 건강해집니다. 근본적으로

오염된 공기를 마시는 것은 실내에서 편하게

살고자 한 데서 오고, 폐수 문제는 빨래를 편하게

하려는 데서 발생하죠. 빨래를 불편하게 하면,

빨래하는 나는 힘들지만 환경은 깨끗해집니다.

‘ 밖에 살기’ 는 공간의 사용 방식에 대한

질문이에요. 내부 지향적 공간 사용의 사고방식을

바꾸자는 거죠. 전통 건축의 특징은 내부 공간이

아닌 마당과 마루 중심의 외부 공간에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내부로 들어와 있죠.

외부를 중요하게 보자는 건 인간의 삶에서 자연을

회복하자는 것과 다르지 않아요.

마지막으로 ‘늘려 살기 ’ 는 시간에 대한 겁니다.

짧은 동선이 합리적이라는 근대 건축의 슬로건에

반대하는 거죠. 최단거리에 위치해야 직성이

풀리는 현대식 건물의 구조를 거부하고, 좀

불편하더라도 좁은 집일수록 이동 거리를 길게

하여 움직이는 시간을 늘려 보자는 겁니다. 그렇게

하면 사는 모습이 달라지지 않을까요? 집요하게

분석을 해서 얻은 이 세 가지 방식은 결국 인간,

공간, 시간이라는 건축의 중요한 명제와 맞물려

있어요.

인간, 공간, 시간의 ‘3간’은 인간이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세 가지 명제라고 하죠. 종교와 철학

역시 이 명제들을 크게 벗어나지 않고요.

그렇다면 ‘채 나눔’은 건축 설계 방법론을 넘어,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한 우리 삶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네. 미래의 우리 삶을 위해 그렇게 살자는 거지요.

저는 그것을 사람이 회복해야 할 가치라고 보는

겁니다. 건축만의 가치라고 보지 말자고요.

정귀원 『와이드 AR 』 편집장

December 2012. Vol.4 Architecture Newspaper

© 진

효숙

© 진

효숙

<자비의 침묵 수도원>, 경기도 화성

저는 설계를 할 때 건축 용도와 상관없이 의뢰인과의 소통을

원칙적으로 합니다. 거의 이해가 됐다 싶을 때까지 소통합니다.

그래서 의뢰인의 생각이 바뀔 것 같으면 연필을 잡지 않습니다.

제 아이디어를 권하지도 않고요. 건축주의 확신이 없으면 그림은

언제든 바뀌게 될 테니까요. 혹자는 그러다가 일감을 잃을 수도

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걸 겁내서 아무렇게나 설계하는 건

더 안 되는 거죠.

한 공간에 모든 것이 집약되어 있는 건축 구조는

편리하지만 건강하지 않다. 햇빛이 1년 내내

들지 않는 방이 많고 바람이 통하지 않아 어둡고

답답하다. 짧은 동선과 편리함은 있지만 건강과

쾌적성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잔서완석루>의 여름 전경 (위) / 서북쪽 길에서 본 주출입구 모습 (아래)

9

Page 10: 건축신문 vol. 4. PDF 다운로드

네덜란드에 있다가 한국에 들어오게 된 결정적인

이유라고 할까요, 그런 것이 있나요?

네덜란드에서 타이포공방이란 학교를 선택한

이유는 졸업 이후에 계속 일을 할 수 있을 만한

조건이 갖춰질 수 있을 것 같아서였죠. 단지

교육만 받고 돌아오기보다는 거기서 생활하면서

문화를 이해하고 익힐 목적이 좀 더 있던 거죠.

졸업 후 제게 주어진 약간의 기회들이 있었는데

또 그런 기회들은 제가 그곳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GRAPHIC』 작업이 그런

예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졸업 후 4년을 지내면서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막연하게 거점을

옮겨보는 게 어떨까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한 1~2년 전부터는 서울에 돌아가서 작업해 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새로운

경험을 하고서 과거의 공간으로 돌아갔을 때

맞닥뜨리게 될 두려움도 조금 있었어요. 그래서

졸업 후에 얼마간은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는

내부적인 에너지를 쌓는 데에 노력을 기울였어요.

그리고 좀 시간이 지나서 어떤 계기였는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지금은 좀 싸워볼만하다’,

혹은 ‘예전보다는 조금 단단해졌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어디든 움직여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고요.

요즘에는 디자인을 할 때 어딜 가나 똑같은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웹을 통해 작업들이 쉽게

공유되면서 디자인 환경 자체는 평준화되었다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네덜란드에서

『GRAPHIC』 디자인 작업이 가능했고요. 때문에,

한국에 오신 것은 제작 환경 변화가 아닌 사회적

환경의 변화를 원하셨던 것으로 봐도 될까요?

그런 것도 있지만 제작 환경 역시 많이 바뀌었죠.

네덜란드에서 같이 일했던 인쇄소나 제작에

관련된 분들은 자신의 일에 자부심이 강하고

저도 그 분들을 훌륭한 협업자로 생각해요.

반면 한국에선 프로젝트를 다룰 때 디자이너와

클라이언트와의 관계만 집중 조명이 되는 거

같아요. 저는 사실 제작자와 디자이너와의 관계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생각해요. 프로젝트의

과정도 과정이지만 결국 결과물로 보이는 것은

클라이언트, 디자이너, 제작자가 원활하게

소통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거 같아요.

아까 말씀하셨듯이 장거리로 진행되는 프로젝트

과정은 최근에 들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아요.

『GRAPHIC』은 편집장님을 실제로 처음 한 번

뵙고 나서 몇 년 간 계속 교정이나 후반 작업을

네덜란드에서 이메일이나 스카이프Skype 등으로

해결했으니까요. 그리고 요즘에는 워낙 디자인을

다들 잘해서 시각적인 이미지를 생산하는 것은

큰 과제가 아닌 것 같아요. 젊은 디자이너들은

물론이고 더 어린 학생들도 이미지를 이해하는

폭이 넓어졌어요. 그런데 사실 그게 문제가 아니라

자신에 대해 계속 고민을 해보는 것이 필요한 것

같아요. 단순히 시각적으로 좋아 보이는 디자인은

점점 매력이 없어지기도 하고 . 얼마나 오랫동안

작업을 해 왔는지 , 자신이 어디에 관심이 있는지에

따라서 무엇을 주목하게 되는지는 계속해서

달라지겠죠.

『GRAPHIC』에는 김영나 디자이너의 편집자로서,

기획자로서, 디자이너로서의 다층적인 면모가

들어있어요. 그만큼 애착도 컸을 것 같은데 24호를

끝으로 작업을 마치는 이유가 있나요?

작업과정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들을 인터뷰하고

그 작업들을 받아보면서 많은 경험을 했어요.

『GRAPHIC』은 9호부터 함께 했는데, 제가

참여했던 기간이 그 이전보다 더 길어지는

순간부터 심리적으로 주인의식 같은 걸 갖게 된

것 같아요. 이 잡지를 3년 이상 진행하면서 관심

있었던 주제를 다양하게 다뤘으니 아쉬움이

크게 남지도 않을 것 같았고요. 또 새로운 방향의

작업과 프로젝트를 하면서 저에게도 작업실을

옮기 듯 새로운 공간을 심리적으로 주고 싶었어요.

만약 잡지를 만든다고 하면 어떤 잡지를 만들고

싶으신가요?

예전에 친구들이랑 ‘음식’에 관련된 잡지에 대해

이야기 했어요. 디테일한 작은 키워드나 이슈들이

음식이라는 큰 그림, 카테고리를 형성할 수 있는

개념의 음식 잡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음식 잡지 자체도 재밌을 수 있겠지만 어떤

추상적인 주제를 풀어나가는 게 흥미로울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리고 음식을 만드는

일, 먹는 일 모두 직접 할 수 있는 일이고, 내

생활을 지배하는 것과 밀접하게 관련이 되어

있으니까 관심이 생기는 거 같아요.

한국에서 꼭 해야겠다고 계획하는 프로젝트든

워크숍이든, 구체적인 활동 같은 게 있나요?

항상 공간에서 오는 힘을 믿는 편이에요. 공간은

어떤 생각과 행위를 모이게 하는 구심점으로

작용하죠. 그래서 어떤 생각들과 물리적인

공간들이 공유될 수 있는 상황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특정 네트워크나 공동체를

만들어야겠다는 것보다는, 간혹 사람들이 그렇게

모여서 목소리를 내고 작업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사람이 아닌 공간 자체를 협업자라고

생각할 수 있을지 등의 여러 가지 생각들을 좀 더

고민해 보고 싶어요. 작업실, 스튜디오, 개더링

플레이스 gathering place, 아틀리에 그리고

(관념적인 의미의) 디자인 스튜디오, 개인 작업실,

협업 공동체, 워크숍 등의 여러 가지 혼재된

플랫폼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어요. 하지만 그런

관념의 구조와 물리적인 공간이 서로 영향을

줄 수 있는 뭔가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즉흥적이기보다는 하나하나 단계를 들여다보고

반추하는 스타일이신 것 같아요.

그런가요? 그럴 수도 있죠. 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제 경험과 일상인 것 같아요.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그것이 지시하는 방향들. 사실

이게 가장 중요한 생각의 재료, 작업의 재료인 것

같아요. 그래서 수집이나, 기억에 대해 집착하는

거일 수도 있죠.

그럼, 생각들을 정리하거나 모으는 데

있어서 일기를 쓴다든가 컴퓨터 파일에다가

정리한다든가, 개인적인 의식이 있나요?

어떻게 아카이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많이 했어요. 그러니까 날마다 뭘 하고 있기는

한데, 이걸 누가 봐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구조를 갖춘다는 게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그런데

생각해보면 웃기잖아요. 누가 볼 것을 염두에

두고 일기를 쓰는데 서체나 레이아웃에 신경을

쓴다거나 하는 것. 근데 한창 학창 시절에는

그랬던 거 같아요. ‘ 하루하루가 굉장히 중요하다.

모든 걸 기록해야겠다.’ 그래서 굉장히 강박적으로

아카이브를 하고, 날마다 일상과 관련된 이미지

하나씩을 만들어내려는 야심찬 목표도 있었죠.

요즘엔 오히려 강박적인 아카이브는 억지스럽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특별한 의도를 갖고 있지

않는 한 ‘범-일상 ’이 흘러가는 것을 지켜보는 게

가장 와 닿죠.

요즘 예술과 디자인 간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는데, 한 인터뷰에서 보니까 김영나 디자이너는

스스로를 항상 디자이너로 소개한다고

하시더라고요. 자신의 직업군을 그렇게 명확하게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요.

제가 생각하는 ‘작가’는 굉장한 용기를 지닌

사람들이거든요. 그리고 제가 생각하는 작가상에

제가 해당되지는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답하곤 합니다. 그리고 어떤 종류의 작업이든

‘나의’ 작업이라고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굳이

스스로를 디자이너로 보려는 관점에는 아마

이런 이유일 것 같아요. 전 아무런 제약이 없으면

어려움을 느껴요. 그래서 뭔가 과제가 주어지고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주어지는 상황에서 더

자유로움을 느끼는 것 같아요. 가끔 주어진

문제 자체가 잘못되었다 판단하고 그 문제를

전복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뭔가 그 이전의

외부적인 개입이 있는 것이 즐거운 것 같아요.

작가의 경우에는 계속 생각의 끈을 스스로

발생시키고 그것을 끌고 나가는 사람들이죠.

어쩌면 그것은 숭고한 차원이라 생각하거든요.

저는 ‘문제해결사’ 같은 맥락이 더 편한 것 같아요.

아카이빙이 곧 죽음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물론 아카이브가 죽음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저장이라는 측면에서 내세와 현세를

이어주기도 하는 것 같아요 . 그래서 저에게

아카이빙은, 다른 작업을 할 때 다시 기억하기

위해 들춰보는 저장소이기도 하죠.

이 질문을 드린 이유는 매년 <기억의 선언

Announce of Recollection>이라는 주제로

역사 속에 있는 사건들을 다시 불러내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체르노빌, 5.18 민주항쟁, 의문의

죽음을 맞은 어느 조각가처럼 모두 ‘죽음’이라는

큰 이슈를 공통적으로 갖고 있어요.

어, 그건 생각지도 못했는데 재미있네요. 사실

<Chernobyl 20>은 그 시리즈 작업에 포함되는

작업이 아니었지만 같이 연결을 지을 수 있겠네요.

러시아에서 체르노빌과 관련된 공모전이

있었어요. 여행을 가서 만난 두 마리의 개 사진이

있었는데 과거와 현재에 관한 느낌이 들어서 그

이미지를 이용해서 만들었죠. 그 공모전의 주제가

과거의 불행한 일을 상기시키면서 앞으로 계속

해나갈 미래의 일들이었어요. 어쨌든 제가 그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은 제 고향이 광주인데 5.18

민주항쟁을 정치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아도 그쪽

지역에서 자라오다 보면 그날은 특별한 날이 되죠.

어릴 때를 떠올려보면, 최루탄으로 뒤덮인 5월은

숨을 제대로 쉴 수 있는 때가 아니었어요. 그래서

그냥 뭐 아무 생각 없이 살아오다가도 ‘ 아, 어제가

5월 18일 이었구나! ’ 이렇게 느끼죠.

그래서 한번은 이렇게 과거가 밟히는 날에

개인적으로 뭔가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생각했어요. 포스터는 보통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선언을 하는 건데, 과거에 일어났던 일을

선언하는 것은 어떨까. 그러니까 맥락을 다르게

보는 거죠. 날짜 같은 특정 정보를 그래픽 요소로

처리해서 언뜻 보면 앞으로 일어날 일인 거처럼

보이는 거죠. 디자인을 하면서 생기는 포스터에

대한 애착이나 포스터의 순수한 기능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었지만, 오히려 포스터에 담길 콘텐츠에

주목해서 우리가 의례 생각하는 앞으로의 일어날

일을 선언하는 목적을 뒤틀어 다른 형식으로 표현

해보자는 생각들을 했죠. 그래서 과거를 기념하고

선언하고자 하는 날을 찾아 2009년부터 매년

작업하고 있어요.

그 다음 해의 작업의 경우, 제가 그 즈음에

『이플럭스 저널 e-flux journal 』 한국판의

뒤표지를 만들게 되서 관련된 리서치를 하다,

때마침 재밌는 이야기들을 발견하게 되어 그때

상황을 선언하는 포스터를 만들었어요. 그리고 세

번째 작업의 경우는 제가 어느 날 듣게 된 강의를

통해 만프레드 그내딩거Manfred Gnädinger 라는

작가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그의 의문의 죽음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그 후로 한 동안 그

사람에 대해 계속 생각을 해보았는데 너무 슬프고

안타까운 거예요. 독일 출신으로 문명을 등지고

스페인 가르시아 지방에서 혼자 지냈던 사람인데,

그내딩거의 작업은 조각과 자연이 어우러져 삶의

터전 자체가 작업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어느 날 그 지방 해안가에 유조선이 침몰하는

사건이 생기고 작업과 삶이 완전히 다 엉망이

돼요. 유조선 침몰 사고 두 달이 지나고 나서 죽은

채로 발견되고요. 사람들에 의하면 ‘슬픔이 그

사람을 죽였다 ’는데, 너무 안타깝더라고요. 그래서

그 사람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만들었어요. 당시에

그 사람이 죽은 날짜가 다가오고 있었거든요.

앞으로도 계속 진행을 하시겠네요?

네, 물론이죠. 매년 365일이 반복되는데 어떤

특정한 날이 왜 나에게 특별한 기억으로 남을 수

있는가 혹은 그날에 관련된 어떤 인물이 어떤

계기로 나한테 특별한 사건이 될 수 있는가, 그런

것을 생각해보는 것도 저에게 굉장히 중요한

의식과 같은 일이죠.

조형석 그래픽디자이너

충실한 기록과 리서치로 구성된 작품은 비밀의

장소에서 보내는 미래의 신호처럼 다가온다.

디자인에서 사람과 도시를 마주하게 하는

디자이너 김영나와 컴퍼니COMPANY를

인터뷰했다. 그들의 디자인은 기억과 기록을

망각의 공간으로 옮기는 대신, 새로운 작업의

출발점으로 기능하며, 상상력을 촉진시키는

중요한 매개체가 된다.

미래의 무늬,

그리고

비밀의 언어

김영나

네덜란드 타이포공방Werkplaats Typografie을 졸업한 뒤

암스테르담을 근거지 삼아 활동하였으며, 최근 귀국해 서울에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계간 『GRAPHIC 』의 아트디렉터 겸 편집자로

일해왔고, 2004년부터 『umool umool 』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기억과 기록이 동행하는 디자인

10 December 2012. Vol.4 Architecture Newspaper

<Announce of Recollection 01>, silk screen,

84.1x118.9cm, 2009. 5

© N

a K

im

<Chernobyl 20>, offset print, 68x95cm, 2006

© N

a K

im

© N

a K

im

<Group Portrait>, collaboration with Anu Vahtra, printing on adhesive plastic sheet, 500x335cm

과거 작업들을 의인화시켜 컴포지션하고 한 공간에 모아 찍은 기념사진. 밀라노의 트리엔날레 디자인 뮤지엄

Triennale Design Museum에서 열린 «그래픽 디자인의 세계들Graphic Design Worlds» 전시, 서울 갤러리팩토리

«Found Abstracts» 전시에서 소개되었다.

© C

hrist

ian R

oth

e, W

iem

ar

Page 11: 건축신문 vol. 4. PDF 다운로드

2000년에 컴퍼니가 만들어졌는데 전시나

프로젝트를 통해서 컴퍼니를 보기 시작한 건

2004년 정도부터입니다. 비교적 초기 활동이

잘 안 알려진 거 같아요.

아무: 그런가요? 처음부터 거창하게 시작한 건

아니에요. 2000년에는 학생이었고, 공모전에

참여하면서 팀 이름을 ‘ 회사 COMPANY ’ 라고

만든 걸로 기억해요. 그 후 2004년경에 홈페이지

(www.com-pa-ny.com) 를 만들면서 기록을

남기기 시작한 것 같아요. 그 전에는 의외로 많은

커머셜 인테리어 그래픽 작업을 했죠.

요한: 제가 그 시절을 떠올려보면 인테리어 작업,

상업용 그래픽 작업, 여러 개의 공모전 등을

하면서 보낸 거 같아요. 개인적으로 당시에 발간된

몇 개의 잡지에 관여하기도 했고요.

작업을 진행할 때 리서치의 중요성을 얼마나

느끼는지, 리서치의 방식을 어떻게 일에

적용시키는지, 또 본인들만의 방식이 있는지

궁금해요.

아무: 리서치란 밥 먹기 전 메뉴를 보는 것처럼

상상력과 하고 싶은 욕구를 자극해줘요. 그래서

리서치를 좋아해요. 리서치는 꿈에서 단서를

본다던지 텔레비전이나 소설에서 본 무언가를

통해서 시작하죠. 그런데 요즘은 구글 때문에

도서관에 가서 우연하게 엉뚱한 실마리를 찾는

일들을 많이 놓치고 있는 것 같아 아쉬워요.

요한: 리서치는 물론이고, 누구를 위해, 누구와

일하고 있는지를 인지하고 있는 것이 중요해요.

배우는 것은 결국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의

한계와 가능성으로 결정될 수 있다고 봐요. 저희의

경우에는 제품 생산자, 혹은 제작자와 만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볼 수 있어요.

컴퍼니의 작업은 북유럽과 한국적 디자인이

묘하게 어우러지는 고유의 느낌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개인적으로는 핀란드와 한국의 디자인적

성향이 어떻게 다른 점을 갖는지 궁금하네요.

아무: 컴퍼니의 반인 저는 100% 한국인이고 또

다른 반인 요한은 100% 핀란드인이니까 그게 좀

묘한 느낌은 느낌이겠죠. 다른 두 개가 만들어낸

한 제품이 ‘스윗 앤 사우어 Sweet & Sour ’ 처럼 맛도

있고 자연스런 맛을 내는 것이 저에겐 이상적인

상태라고 봅니다. 저에겐 핀란드의 먼지 쌓인

물건들이 신대륙의 발견이고, 요한에겐 한국의

좀 꿀꿀한 것들이 신선하기 그지없듯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것을 새롭게 보는 것이 저희가

가진 장점이죠. 그런데 세월이 가다 보니 좀

희박해졌어요.

요한: 두 문화나 디자인 성향이 완전히 다르죠.

그래서 정말 좋아요! 개인적으로는 핀란드처럼

작고 조용하고 평화롭고 조금은 심심한 나라에서

일하는 게 무척이나 좋지만, 다양하고 정신없는

한국을 방문하는 것도 매우 사랑스럽죠.

‘거절된 작업들rejected works’ 섹션을

홈페이지에 공개하는 이유가 있나요?

버려진 작업의 폴더 안에서 다시 되살아난 경우가

있나요?

아무: 아카이브의 개념으로 홈페이지에 다

업데이트하는 편이죠.

요한: 홈페이지는 저희가 했거나 또는 어떤

이유로든 할 수 없었던, 수정을 거치지 않은

작업들의 저장소죠. 잘 안 됐던 일들도 기억하는

것이 좋다고 봐요. 사실 ‘rejected works’에 더

많은 작업들이 들어갈 수 있지만, 작업들을 업로드

하는데 조금 게을러졌네요. 한편으로는 어쩔

수 없이 잘 된 작업들을 드러내는 게 더 즐겁기

때문이죠.

프로토타입을 만들 때, 상품화될 것들을 어떻게

결정하나요? 컴퍼니만의 선별 기준이나 검증

방법이 있는지요?

아무: 프로토타입, 스케치 후에 그것이 스스로

생명력을 가지게 될 때 눈과 마음에 띄는 것이

들어오기 마련이죠. 그렇게 제품이 되곤 해요.

아니면 다른 프로젝트의 재료가 되기도 하고요.

우선 떠오르면 그리거나 만들어 놓는 편이죠.

요한: 프로토타입이 스스로 만들어지는 건

아니죠. 저희가 만드는 프로토타입은 이벤트나

영감을 주는 제품생산자를 통해서 나오기도 해요.

근원이 없는 프로토타입을 만드는 건 아니에요.

저희 웹사이트를 보시면 특별한 의도, 주제, 또는

이벤트를 위해 창조된 프로토타입들과 전시물들을

볼 수 있어요.

홈페이지 내 ‘프로젝트projects’ 섹션에 게재된

대부분이 것들이 실용적입니다. 수익을 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레 그렇게 연결된 건가요? 혹시

실용성은 철저히 배제하고 실험적 작업을

수행하는 게 있는지 궁금하네요.

요한: 저희의 모든 제품들이 매우 실용적이라고

봐요. 다시 말해 모든 것들이 기능을 가지고 있죠.

기능이 얼마나 실용적일 수 있는지는 항상 보는

사람의 입장에 달렸지만요.

아무: 아마 환경디자인인 경우는 클라이언트의

필요한 조건들, 예를 들면 ‘어린애가 놀 수

있어야 한다’가 있어서 그런 것 같고, <비밀가게

Salakauppa> 경우에는 그걸 만드는 공장과

그걸 사는 사용자가 많이 관여되어서 그런 것

같아요. 사실 <비밀가게>의 시작은 KIASMA

박물관에서의 전시 요청으로 만들어졌어요.

실용성을 철저히 배제했는데 결과는 가게가

되었어요. 그때 전시된 가게에서 판매 허용을 위해

큐레이터가 우리의 판매행위를 뮤지엄 기록상

퍼포먼스로 분류했죠.

요한: 홈페이지의 ‘projects’ 섹션 안에 있는

대부분의 작업들은 커미션을 받은 작업들이죠.

그런데 이 작업들이 수익에 기반을 둔 작업으로

보이지 않았으면 해요. <비밀가게>의 제품들은

저희 스스로 커미션과 기금 마련을 해서

준비했어요. 그 제품들이 덜 실용적이거나 이익에

기반을 둔 제품이었다면 저희를 사업가 같다거나

사업 수완이 좋다고 말하겠죠.

현재 주요 프로젝트는 <Secrets of (PLACE)>로

보이는데 이 프로젝트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아무: 세계 정복이요.

요한: 예, 세계의 비밀들이요.

디자인이 세상을 지배할 수 있다고 믿나요?

있다면 어떤 방식으로 가능할까요?

아무: 이제는 디자인을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경쟁력으로 보고 모든 것에 ‘디자인’을 붙여보는

거 같아요. 도시도 ‘디자인 도시’가 되고, ‘메이드 인

made-in’에서 안 되니까 ‘Designed in 노르웨이’,

‘Designed in 핀란드’와 같은 말들이 생기죠. 그런

말장난 같은 디자인 말고. 디자인이 ‘도안’, ‘생각을

짓다’ 정도이면 세상을 좀 더 단순하게 청소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사냥하려면 돌도끼를 만들자’

까지만. 그러면 부탄은 돈이 없는데 왜 행복한

걸까, 라는 어리석은 질문은 쓸모없어지겠죠.

요한: 공감합니다.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이

디자인이니까요.

두 분이 일하시는 영역으로 보자면 직함이

‘디자이너’, ‘예술가’, ‘큐레이터’ 등 여러 가지로

불릴 수 있겠는데요. 어떤 타이틀이 컴퍼니를 가장

잘 드러낸다고 보나요?

아무: 디자이너요.

요한: 계획가Suunnittelija. 또는 ‘도안’을 하는

사람? 예술가는 아닌 거 같고. 산업디자이너,

시스템디자이너, 그래픽디자이너, 헤어디자이너

등. 우리 모두가 디자이너죠.

요즘 예술이나 사회분야에서 관심 있는 이슈가

있나요?

아무: 돈과 권력이요. 그것보다 더 세지만 눈치를

못 채게 하는 걸 생각하느라 관심이 많은 거죠.

돈으로 살 수 없는 걸 적당한 가격의 상품으로

만들어 파는 것에서 ‘거의 완벽한 아름다움’이

있다고 생각하죠.

요한: 저는 지역 전통local traditions이요. 대대로

전수된 지혜와 기술, 그리고 곧 사라질 것들과

그것이 가진 정체성에 관심이 있어요. 한편으로는

밀수와 블랙마켓에도 관심이 있어요.

<레드드레스 REDDRESS>는 2004년 처음

진행된 이후 7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데 이렇게 오랫동안 유지되리라

기대했었나요?

아무: 처음부터 오랫동안 진행될 투어를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앞으로도 1년에 한 번 정도는 투어를

예상하고 있어요.

요한: <레드드레스>는 예외적인 경우인 것

같아요. 그리고 일반적으로는 저희가 만드는

작품이 어떻게 살아나갈지, 얼마나 생명력을

가질지는 전혀 알 수 없죠. 단지 저희가 운영하는

작은 가게에서 파는 아이템들의 일부가 자손

대대로 물려지기를 바랄 뿐이죠.

<레드드레스> 프로젝트가 실행되었던 장소

중에 가장 좋았던 곳이 있다면 어디였나요? 또

공연 장소를 섭외할 때 어떤 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나요?

아무: 드레스 자체가 연주자의 의상이면서

누구나 밟고 지나가고 또 모든 사람이 눕고 덮는

것이 되거든요. 공연장 자체를 교회 같으면서도

바삭바삭 소리가 날 것 같은 호텔방처럼 관리하는

방법들을 꾸준히 발전시켰어요. 레드드레스는

이제 하나의 악기가 되었고 그걸 잘 연주하는

음악가가 생겼고요.

그동안의 공연 장소를 그때의 음악, 날씨, 스태프,

점심 메뉴들을 다 조합해서 기억해요. 영국 요크홀

York Hall에서의 공연(2011)은 아주 유명한 권투

경기장을 공연장으로 만들었는데 붉은 피에서

붉은 드레스로 그 상징적 내용이 바뀌는 것이

좋았어요. 관객은 한술 더 떠서 모두 붉은 옷을

입고 오기까지 했죠. 뚜술라Tuusulanj rvi에서의

공연(2008)은 음악감독이었던 페카 쿠시스토

Pekka Kuusisto의 <레드드레스>에 대한 잘

이해가 잘 드러난 공연이었어요. 지휘자가

드레스를 입고, 300여 명의 합창단이 관객 속에

흩어져있었죠.

덴마크 루이지아나 미술관에서의 공연은 드레스를

마당에 펼치느라 헨리 무어, 칼더의 작품을 큰

비용을 들여서 옮겨야 했는데 3년을 준비한

<레드드레스> 프로젝트가 처음으로 선보인 해

(2004)였어요. 그런데 갑자기 내린 비로 공연이

취소되었고 1년을 연기해서 시연했어요. 이후

공연 장소를 섭외할 때 덴마크에서의 힘들고 아픈

기억으로 야외공연은 하지 않아요. 그렇게

첫 번째로 장소가 해결되면 음악에 대해 회의하고

준비를 하죠. 음악가들은 1~2년 후까지 계획이

잡혀있어서 이 부분도 아주 스릴 있어요.

요한: 무엇보다도 <레드드레스>가 지름이 20m에

달하기 때문에 공간 안에 온전히 들어가느냐가

가장 중요한 관건이죠. 그다음에 음악 프로그램을

포함해서 수만 가지 것들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해요. 매번 새로운 페스티벌을 시작하는 것

같이요. 드레스 세팅은 몇 시간 만에 완성되지만,

준비 기간이 족히 1년은 걸리죠.

컴퍼니의 제품들이 대량생산되어 평범한

일상용품이 된다면 어떨까요? 여기서

일상용품이라 함은 개성을 잃어버린

제품이라기보다는 일반인들의 생각을 바꿀 수

있는 것들? 예를 들면 아이폰이나 아이팟 같은.

아무: 뭔가 하나만 반복적으로 오랜 시간 만들

공장직원이 눈에 밟히네요. 그게 하물며 기계라고

하더라도. 그럴 때 그 일이 그 정도로 가치 있는

일일지 많이 의심할 것 같아요.

제품디자인이란 먼저 누군가의 꿈과 삶에 알맞은

물리적인 물건을 공급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많은 사람에게 보편적인 꿈이 생긴다는 건 좀

시시하고, 누군가 지겹게 그 물건만 만들어야

하며, 그 중간과정에서 말 잘하고 계약서를

잘 쓰는 사람들에 의해 가치 없이 쓰일, 혹은

그들에게만 집중되어 쌓일 이익구조를 생각하면

지루해져요. 지금 컴퍼니가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스케일의 좋은 일과 계획들을 돈 주고 산 아이폰을

써가며 재밌게 해가는 것에 만족하고 있어요.

요한: 전 뭐 개인적으로 대량 생산에 대해 거부감은

없어요. 생산 방식이 즐겁기만 하다면요.

이상윤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 교수

스윗 앤 사우어

컴퍼니

컴퍼니COMPANY는 아무 송Aamu Song 과 요한 올린Johan Olin

이 주축이 되어 활동하는 디자인 팀이다. 2000년부터 핀란드를

기반으로 예술가, 디자이너, 프로듀서로 활동하는 그들은

세계 각국의 다양한 전통을 바탕으로 ‘비밀스러운’ 제품들을 만들어

<비밀가게Salakauppa>와 온라인을 통해 선보인다.

December 2012. Vol.4 Architecture Newspaper

요크 홀에서 열린 2011 런던 디자인 페스티벌에서의 <레드드레스 REDDRESS>

© K

ate

Elli

ot

© E

mm

anuel

Cro

oy

헬싱키에 위치한 <비밀가게Salakauppa>

© C

OM

PA

NY

헬싱키 현대미술관의 «Camouflage»전시에 참여했던

<Secrets of Russia> 시리즈 중 마트로슈카 인형을

사용해 만든 <Matryoshka Stool>, 2012

© C

OM

PA

NY

<Secrets of Russia> 시리즈 중 <Sumka Aunt>, 2012

© C

OM

PA

NY

세계디자인수도2012 프로그램으로 진행된

<Secrets of Finland> 시리즈 중 <Pinguadult>, 2007

© C

OM

PA

NY

11

Page 12: 건축신문 vol. 4. PDF 다운로드

균열된 토대 위에서의 건축

건축전시는 이미 지어진 건축물을 가져올

수도 없고 이를 그대로 재현할 수도 없다.

베니스비엔날레 조직위원장인 파올로 바라타

Paolo Baratta가 2008년에 지적했듯, 오로지

도면과 모형, 그리고 다양한 표현방식으로

건축의 프로세스와 개념을 전달할 뿐이다. 작품을

통해 작가의 세계관을 드러내고 이를 세상에

직접적으로 던져내는 비엔날레 미술전과 달리,

비엔날레 건축전은 언제나 건축에 대한 아이디어,

건물을 짓는 행위, 실제 건물에 대해 간접적인

이야기를 할 뿐이다. 그렇다면 일종의 재현일 뿐인

전시가 우리에게 왜 필요할까.

건축전시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가장

큰 규모이기도 한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을 통해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단순한 정보 수집이 아닐

것이다. 건축적인 사색과 사고를 촉진해 확장하고

공유하는 것, 어쩌면 베니스비엔날레는 그동안

짓는 것에 몰두해온 건축 행위를 잠시 돌아보고

그 의미를 함께 이야기하며 성찰할 수 있는 드문

반성의 기회 중 하나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2008년 아론 베츠키Aaron

Betsky의 『 저기, 건설 너머의 건축 Out there,

Architecture Beyond Building 』이나 2010년

세지마 가즈요Sejima Kazuyo의 『건축 안에서

만나다People Meet in Architecture』가 그랬듯,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은 언제나 사회적 의미를

고찰하는 주제를 제시해왔다. 그럼에도 유독

올해의 비엔날레 건축 주제가 부각되는 이유는

스타건축가의 이름으로 대변되던 지난 10년의

기념비가 미국발 금융위기로 명확한 균열이

생겼으며, 스타건축가로 대변되는 건축가의

역할에 대한 한계와 위기가 강하게 제기되기

때문일 것이다. 자본에 의해 초대된 스타건축가가

“도시 개발의 한복판에서 선풍적인 오브젝트를

만드는 사이, 도시나 개별적인 삶의 조직에는 어떤

것도 하지 않았음을 주목하고 건축과 시민사회

사이의 균열을 바로잡는 것” (파올로 바라타)

이야말로 올해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의 중요한

배경 중 하나이다. 총감독 데이비드 치퍼필드

David Chipperfield가 제시한 주제 《공통의 토대

Common Ground》 역시 “지속성, 콘텍스트

그리고 기억에 관심을 두고 그 영향력과 기대를

나누며, 전문가와 사회 사이에 존재하는 명백한

이해의 결여를 다루고자” 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도시는 건축가뿐만 아니라 시민과

이해관계자, 건설 종사자의 협업을 통해 만들어질

뿐 아니라 그 공동의 기반을 회복할 때에 비로소

건축의 사회적 역할을 회복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비엔날레의 타이포그래프는

베니스의 골목마다 표시된 표지판과 같은 서체로

표현되었다. 매회 주제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강력한 도구 중 하나였던 타이포그래프의 강렬한

개성을 드러내는 대신에, 도시의 일상을 대변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비엔날레의 입구는 여느

골목길의 한 방향으로 들어가는 듯 평범한 인상을

준다. 전시의 시작 역시 베니스 곳곳에 놓인

작은 광장의 공동우물을 놓아, 우리가 공유하는

공동의 영역을 은유한다. 여러 국가관의 흥미로운

제안에도 불구하고 폭넓은 주제를 일관되고

집요하게 제안하는 것은 역시 주제관의 몫이다.

주로 영국과 스위스 건축가로 포진된 주제관의

전시는 이 ‘공통의 토대’에서 건축(가)의 역할에

대해 직접적인 질문을 던진다.

주제관의 첫인상을 주는 것은 주제관 곳곳에

배치된 토마스 스트루스Thomas Struth의

사진이다. 1978년부터 2010년까지 여러

도시의 거리 풍경을 담담하게 담은 이 작품에는

즉물적인 건물로 채워진 거리가 가득하다. 특히

고층아파트가 지어지고 있는 평양과 서울의

풍경은 전혀 다른 체제에 놓인 한 민족의 다른 듯

닮은 모습을 보여주며 전시장의 한 면을 채우고

있다. 거리의 풍경은 익명성을 담고 있지만

우리는 그것이 가장 보편적인 도시의 풍경임을

깨닫게 된다.

익명의 거리 풍경을 지나 어둡고 거대한 홀로

들어서면 노만 포스터Norman Foster가 기획한

<게이트 웨이Gateway>가 펼쳐진다. 건축 역사에

등장했던 모든 건축가, 디자이너, 조경가와

구조디자이너의 이름이 도면처럼 흐르며

끝없이 도시를 확장하듯 만들어내고 그 위로는

공공공간의 다양한 풍경과 사건이 펼쳐진다.

이름이 만들어내는 것은 선과 면으로 된 도시지만,

정작 그 공간에서는 시위, 재난을 피해 모인

피신처, 종교공간, 휴식과 정치공간 등 공공공간의

다양한 활동이 펼쳐지며, 분노, 불안, 신앙과

평화, 재미와 축제의 열정 같은 다양한 감정을

분출해낸다. 희로애락이 분출되는 공공공간과

건축가의 이름으로 바닥과 기둥을 타고 그려내는

도시의 지도는 서로 분리되어 개입할 수 없는 듯

보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영 관계가 없는 것도

아니다. 도시 공간에 대한 이 이중적인 표현은

아마도 우리 도시의 현실이면서 건축가의 한계를

보여주는지도 모른다.

협력의 과정에서부터 현대건축을 이해하는 일

올해 비엔날레의 태도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은 바로 자하 하디드Zaha Hadid의 작업과

구조디자이너의 리서치들일 것이다. 유독

스타건축가의 이름이 보이지 않는 이번

비엔날레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형태적인 구조물을

설치한 자하 하디드는 파라매트릭parametric

디자인 연구에 기초한 주름진 금속패널을 이용해

장력구조로 아룸나무Arum를 연상케 하는

구조물 <Arum>을 현장에 설치했다. 그러나 자하

하디드의 유려한 곡면과 주름 잡힌 셸 구조물

Pleated Shell Structures과 함께 전시된 것은

펠릭스 칸델라Felix Candela, 하인즈 이슬러

Heinz Isler, 필립 블록Philippe Block과 같은

구조디자이너 및 엔지니어의 리서치들이다. 이를

통해 데이비드 치퍼필드는 개개인의 창조로

여겨지는 많은 작업이 실은 집단적인 리서치의

역사적인 계보에 기초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거장으로 대변되던 건축가 상相 에서 사회, 사용자,

시공자, 구조설계 등 다양한 분야의 협력관계에

놓인 건축가의 역할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보는

것이다. 형태 이면의 구조 실험, 연구와 역사적

맥락을 함께 보았을 때 비로소 현대건축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가능해진다.

무엇보다 주제관에서 강렬한 전시는 바로

헤르조그 드 뮈론Herzog & de Meuron의

<엘프필하모니 콘서트홀Elbe Philharmonic Hall>

이다. 2003년 당선으로 설계를 시작해 잦은

설계 변경 요구와 그에 따른 기하급수적인

예산 상승, 여러 차례에 걸친 완공 일정의 연기,

결국 2011년 건축주인 함부르크시와 시공사의

갈등으로 공사가 중단되며 다시 2014년 완공을

목표로 제기되기까지, 하나의 건물이 지어지는

10여 년의 과정은 거대한 홀의 양면을 가득 채운

신문지면을 통해 생생하게 중계된다. 하나의

공공건축물을 기록해내고 이를 시민과 공유하는

독일 사회의 교양이 부럽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대중매체인 신문을 통해 중계되는 과정은 사회

각 분야와 긴밀하게 관계를 맺고 있는 건축을

보여준다. 정치, 예술, 건설 분야의 각기 다른

이해관계와 팽팽한 힘겨루기 사이에 놓여있는

것이다. 완공작의 사진과 도면을 중심으로

건축가의 개념과 프로세스, 기술적인 혁신만을

이야기하던 건축물 이면에는 사회의 모든 분야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작동하고 있는 건축 행위가

있는 것이다.

공통의 토대 위에 그리는 도시

이 같은 시선은 노먼 포스터의 홍콩 상하이은행에

관한 다큐멘터리에서도 볼 수 있다. 하이테크의

대표적인 건축물로 꼽히는 이 건축물에 노만

포스터는 유리로 덮여 도시의 흐름을 잇는

공공공간을 만들어냈다. 활발한 움직임을

보여주는 이 공간에는 일요일마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흥미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홍콩에

살고 있는 필리핀 가정부들이 고향에 돈을 부치기

위해 찾는 상하이은행은 그들이 교류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장소가 된 것이다. 일요일이 되면

필리핀 가정부들은 상하이은행의 지하공간과

아트리움을 점유하며 하루 종일 놀이를 하거나

휴식을 취하며 커뮤니티 공간으로 활용하고,

박스로 만든 임시 공간이 되면서 그들의

영토가 된다. 쉴 곳이 없는 그들에게 이 은행의

공공공간은 일요일마다 일시적인 공통의 토대가

되는 것이다.

도시계획에 완벽하게 개입하지 않는 방식과는

반대로 도시 계획에 더 큰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려는 시도도 있다. 피터 아이젠만Peter

Eisenman이 주도한 <피라네시 변주The Piranesi

Variations>는 우리 도시에 결핍된 건축적인

상상을 통해 더 풍요로운 도시를 제안한다. 피터

아이젠만의 주도로 아이젠만 아키텍츠, 제프리

킵니스와 오하이오대학 학생들, 예일대학 학생들,

그리고 벨기에 건축집단 도그마 등의 네 팀이

참여한 <피라네시 변주>는 1762년의 피라네시의

캄포 마르지오Campo Marzio에 응답하는

제안이다. 예일대학 학생들은 먼저 로마를

고전주의의 원형으로 삼아 로마 건축 기념물을

상상으로 재복원한 캄포 마르지오를 도시

모형으로 재현하고, 여기에 아이젠만 아키텍츠는

고대 로마의 도시 공간을 일부 지워내고 현대적인

도시 계획을 끼워 넣음으로써 로마와 현대 사이에

공간적이고 세속적인 가치가 공존하게 한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오하이오 대학생들이

참여해 만들어낸 도시 <다이어그램의 필드A Field

of Diagrams>로, 이것은 각각 다양한 꿈의 형상을

가진 아이콘으로 구성된다. 이는 현대건축을

위한 일종의 도덕극을 통해 고대 로마의 열정,

도착, 스펙터클을 되살려내는 제안이지만, 여러

상징물로 채운 도시 공간이 가진 초현실적인

생동감은 건조한 도시 환경에 결핍된 상상을

불러일으키기엔 충분하다.

여기에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다윗의 탑

The Tower of David>에 대한 기록인 <토르

다비드The Torre David>는 방치된 수직타워를

점유하며 가장 열악한 환경에서 자발적인 수직

도시를 만들어내는 하나의 공동체를 주목하며

여러 질문을 던진다. 건축가가 개입하지 않은

자발적인 도시 건설, 공동의 협력으로 만들어낸

공동체, 건축가의 사회적 개입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주는 이 프로젝트야말로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건축 사회에 던지는 질문에 가장

근접한 사례일 것이다.

우리 건축계의 ‘공통의 토대’는 어디에

지난 11월 25일 막을 내린 2012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은 기존의 어느 때보다 도발적이고 예민한

주제를 던진 전시임은 분명하지만 한편으로

우리에게 또 다른 질문을 남긴다. 그들만의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을 재해석하고

끊임없이 역사적인 맥락을 재생산하는 과정이

과연 우리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아시아의

거대한 도시들이 당면한 무차별 개발과 부동산

거품 문제, 사회적 건축 행위에 대한 가능성에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땅콩주택으로 대변되는

집에 대한 열망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한국의

현실과 공공건축에 대해 높아진 시민들의 관심,

갈수록 떨어지는 대형건축물의 공간 퀄리티,

구조적인 리서치를 무시한 형태의 과용이

난무하는 와중에, ‘과연 좋은 건축물은 무엇인가’

를 두고 우리는 충분히 숙고했을까. 어쩌면 서양

건축 담론의 한계가 이야기되는 지금이 자신만의

관점과 시각을 가지고 우리 도시와 사회에 관한

연구를 펼쳐낼 수 있는 적기인지도 모른다. 올해

한국관의 실망스러운 전시나 그에 대비되는

일본관의 약진도 자신의 도시와 사회를 통찰하는

시각의 존재 여부에 있을 것이다. 비엔날레의

의미는 우리의 도시와 사회, 건축 행위를 돌아보고

성찰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12 December 2012. Vol.4 Architecture Newspaper

자하 하디드와 패트릭 슈마허, <Arum> (위) / <The Torre David>, 2012 (아래 왼쪽) / 피터 아이젠만이 주도하고 예일대학교 학생들이 참여한 <The Piranesi Variations> 중 <The Project of Campo Marzio> (아래 오른쪽)

©Ji

nyo

ung L

im©

Jinyo

ung L

im

2012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이 남긴 것

임진영 건축전문 기자

Page 13: 건축신문 vol. 4. PDF 다운로드

비엔날레, 불평과 불만의 영토

올해도 어김없이 비엔날레에 대한 비평과

비판이 쏟아졌다. 나 역시 지난 10여 년 동안

비엔날레를 보고 나면 좋은 점보다는 나쁜 점을

더 많이 이야기했던 것 같다. 마치 ‘투견꾼’처럼

비엔날레들이 서로 경쟁하고 비교하는 것을

지켜봤다. 돌이켜 보면 마시밀리아노 지오니

Massimiliano Gioni가 감독을 맡았던 2010년

광주비엔날레만 예외였을 뿐, 대부분의

비엔날레들은 개막하기가 무섭게 욕을 먹었다.

내가 기억하는 한, 가장 욕을 많이 먹은

비엔날레는 개막까지 작품 설치가 끝나지 않았던

2002년 광주비엔날레였다. 예술성의 높음과

낮음을 떠나 대규모 국제 행사를 책임지는

예술감독이 기본적 요건을 채우지 못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단일 감독이면

전시의 스펙트럼이 좁다고, 또 공동 감독제면

산만하다고 지적한다. 전시 주제가 명확하면 너무

쉽다고, 그 반대의 경우면 모호하다고 비판한다.

비엔날레 전시장 역시 넓으면 넓다고 또 좁으면

좁다고, 전시 예산도 많으면 많은 대로 또 적으면

적은 대로 불만이 나온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전 세계의 동시대 미술

현장에서 비슷하게 나타난다. 어디 비엔날레에

누가 예술감독으로 선임됐다, 어느 작가가 초청을

받았다는 등의 이야기에만 열을 올릴 뿐 막상

전시에 대한 반응은 싸늘하다. 전 세계 150개

이상의 비엔날레가 존재하는 지금, 이미 몇 해

전부터 비엔날레 제도에 대한 무용론과 회의론도

나올 만큼 나왔다. 사실 이제는 비엔날레에

대해 무어라 말하기도 지쳤다. 실제로 매회

베니스비엔날레를 다녀온 사람치고, “전시가 정말

좋았다”고 말하는 걸 들은 적이 없다. 그럼에도

전 세계의 주요 거물급 인사들이 바쁜 시간을

쪼개어 교통도 불편하고 물가도 높은 베니스에

모여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젠 비엔날레라면

지긋지긋하다던 당신 역시 지난 가을 KTX를 타고

광주로, 부산으로 향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비엔날레 강국, 코리아!

아마도 ‘의무감’ 때문일 것이다. 비엔날레를 보지

않으면 미술계라는 거대한 생태계에서 도태되는

듯한 기분에서 오는 의무감. 그러나 그 뒤에는

늘 ‘실망감’이 따른다. 이러한 굴레 속에서 한국

비엔날레의 역사는 어느덧 20년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동안 한국 미술계는 비엔날레를

중심으로 여러 가지 담론과 다양한 전시 방식들이

새롭게 등장하게 되었고, 더욱 풍요로운 문화예술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었다.

1995년 광주비엔날레를 시작으로 1998년

부산비엔날레(부산국제아트페스티발 PICAF),

2000년 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가

연이어 출범했다. 이로써 ‘한국 3대 비엔날레’

라는 경쟁 구도를 갖추게 되었다. 그 이후 지자체

문화 사업의 부흥에 힘입어 금강자연비엔날레,

대구사진비엔날레, 인천여성비엔날레 그리고

올해 새롭게 출범한 프로젝트대전까지 국내 주요

도시마다 비엔날레가 열리게 되었다. 특히 지난

10월 말 광주비엔날레에서 첫 세계비엔날레대회를

열어 전 세계 비엔날레 관계자 70여 명을 한자리에

모으고, 비공개 비엔날레대표자회의에서는

세계비엔날레협회IBA까지 창설하기에 이르렀으니

한국은 그야말로 ‘비엔날레 강국’이 된 셈이다.

그 사이 비엔날레는 일종의 ‘업계’로 구조화되었고,

미술 동네의 성수기를 결정짓는 새로운 제도로

특화되었다. 외국인 관계자의 방한 일정을 고려해,

최근 국내 비엔날레들은 짝수해 9월에 몰아서

개막하는 추세다. 이렇게 해서 VIP오프닝에 모인

국내외 인사들은 전시보다는 사람을 본다.

새로운 사람을 소개하고 소개받는다. 그렇게 해서

생겨난 그룹들은 함께 전시를 스윽 둘러보고

비엔날레에 대한 몇몇 단상을 주고받고는,

이내 다음 일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편 서울의

주요 미술관과 갤러리 역시 비엔날레 시즌에

열리는 전시에 특별히 신경 쓰는 눈치다. 그 중

몇몇 메이저 갤러리에서는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계자를 위한 만찬 자리를 만들기도 한다. 이윽고

10월에는 각종 미술 월간지들이 비엔날레 현장을

스케치한 화보와 그럴싸한 글을 동어반복적으로

쏟아 내고 있다.

어느새 ‘비즈니스의 공간’이 되어버린

비엔날레에서, 그 구조를 이루는 구성 요소들을

살펴보면 ‘갑’과 ‘을’의 입장이 분명하게 갈린다.

여기서 재밌는 점은 갑과 을의 역할은 상대적으로

뒤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재단(지자체) 과

예술감독 사이는 당연히 재단이 갑이고,

예술감독이 을이다. 재단 직원은 대부분 비엔날레

출범부터 지금까지 그대로이고, 예술감독은

매회 외부에서 선임하고 행사가 끝나면

내보내기 때문이다. 또한 예술감독과 참여작가의

관계에서는 참여작가를 결정하는 예술감독이

갑이 된다. 그러나 이 관계에 관객이 들어오면,

예술감독과 참여작가는 같은 갑의 입장이 된다.

그렇다면 관객은 어디까지나 을이고, 재단(지자체)

은 갑인 것일까. 지방선거 때 그 둘의 관계는

극명하게 뒤바뀐다.

비엔날레, 비즈니스와 정치의 공간으로

결국 예술과 정치의 기묘한 공생 관계로

귀결되는데, 이러한 진풍경이 올해 광주비엔날레의

개막식에서 그려졌다. 지난 9월 6일 오후 7시에

열린 개막식에는 광주비엔날레재단 이사장인

강운태 광주 시장, 광주비엔날레 홍보대사 배우

임수정과 이병헌, 최광식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비롯해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와 당시

민주통합당 경선 후보였던 문재인, 손학규가 모두

참석해 엄청난 경호팀과 취재진이 몰렸다. 이들의

출현은 이날 개막 축하 행사로 진행되었던 뮤지션

어어부프로젝트, 달파란 & 병준의 공연보다 더욱

임팩트 강한 퍼포먼스였다.

자신의 홈그라운드에서 시민들을 앞에 둔 채

차기 대선주자들의 손을 잡고 인사하는 장면

하나로, 광주비엔날레재단 이사장직을 겸하고

있는 광주 시장은 큰 보람을 느꼈을 것이다. 다른

지자체장들이 지역 예산을 들여 비엔날레를

운영하는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강운태 광주 시장은 3명의 대선 후보에게 개막식

현장에서 함께 손을 잡아보라고 권하며

“이번 광주비엔날레의 주제 ‘라운드테이블’ 처럼

둥글게 힘을 뭉쳐 국민에게 이로운 리더십을

발휘해 달라”는 언급을 했다. 순식간에 비엔날레가

‘정치적 공간’으로 뒤바뀐 것이다.

비슷한 이유로 전 세계적으로 비엔날레는 해당

국가의 수도보다는 제2의 도시에서 열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지방자치제 이후 각 도시별 지역 문화

마케팅의 한 방편으로 설립된 배경이다. 이것을

도시가 아닌 국가 단위로 확대시켜 살펴보면,

비슷한 이유로 최근 20년간 설립된 비엔날레의

대다수는 아시아 등 개발도상국이 차지한다.

100년이 넘는 긴 역사와 인지도로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베니스비엔날레와 달리, 최근 30년간

새롭게 출범한 후발주자들은 미술 자체보다는

외부의 지정학적 맥락 속에서 합당한 정체성과

존재 이유를 만들어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이 중 대다수를 차지하는 아시아의

비엔날레는 제3세계가 가진 한계성을 예술적

화두로 내세운다.

특히 한국의 경우는 중복 편성에 대한 차별성

전략으로서 ‘장르’ 중심의 특수성을 설정하고

있다. 현대미술 전반을 다루는 광주비엔날레와

부산비엔날레 외에 다른 지역의 비엔날레

대부분은 미디어(서울), 사진(대구), 도자(이천),

자연미술(금강) 등 장르를 강화시키는 성격을

갖고 출범했다. 비슷한 작가, 비슷한 작품으로

채워진 대형 전시들을 반복적으로 생산해내는

것에 대한 대안적 선택일 것이다. 또한 비교적

소외된 장르를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러나 장르의 프레임 안에 예술을

가두는 것은 비엔날레가 가지고 있는 애초의

목적과는 상이한 결과를 가져오게 한다. 올해

열린 대구사진비엔날레는 이러한 장르적 한계를

뛰어넘고자, 사진이 아닌 ‘사진다움’이라는 주제

아래 매체의 확장성에 주목하면서 지난 회보다

7억 원이 증액된 16억 원의 예산으로 진행됐다.

그러나 재단 측의 역부족한 행정 능력과 일부

구태의연한 기획자에 의해 성공적인 성과를 내진

못했다. 또한 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는

지난 2010년 전시에서 ‘미디어아트’를 탈피하려고

했다가, 올해는 다시 장르 중심적인 전시로

되돌아왔는데 관객들의 반응은 오히려 이번이 더

좋았던 것 같다.

‘지역’의 프레임에 갇힌 비엔날레

한편 부산비엔날레는 해양도시라는 정체성을

살리기 위해 초창기부터 유지해 왔던

바다미술제를 이제 홀수해로 옮겨 개최하기로

바꿨다. 대중을 모으는 데 효과적이었을지는

좋았을지 모르나, 본전시와 상이한 수준으로

오히려 비엔날레 전체의 격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했기에 이번 부산비엔날레 측의

결정은 옳았다고 본다. ‘축제’라는 형식이

태생적으로 안고 있는 ‘대중성’이라는 과제

때문에 비엔날레의 성패는 예술성보다는 관객

수와 지역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로 환원되곤

한다. 광주비엔날레재단의 대표를 맡고 있는

이용우는 “이제 예술은 정신적 가치라기보다는

물질적 가치가 점유하는 거래 중심의 질서가

완성되어 가고 있으며, 시장이 문화적 재미를

첨가시킨 새로운 프로그램까지 등장시킴으로써

예술의 공공성이나 공동체적 가치 등을 제어하는

슬로건들을 만들어 낸다”는 다소 현실적인 진단을

내리고 있다. 이처럼 수많은 모순과 한계, 그것에

대한 대안과 실천을 동시에 안고 가는 것이 오늘날

비엔날레의 현실이다. 비엔날레에 대한 의무감과

실망감.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고, 어쩔 수 없이

인정하는 분위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비엔날레에 무엇을 기대하는가.

앞서 언급했듯이 비엔날레가 ‘갑 ’과 ‘을’의 관계로

둘러싸인 비즈니스와 정치의 무대가 되면서,

가장 중요한 전시는 최종의 ‘을’의 존재로 남는다.

여전히 우리가 기대를 놓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이 ‘전시’다. (로저 M. 브뤼겔Roger M. Buergel

감독이 이번 부산비엔날레에서 ‘ 배움의 정원 ’

이라는 테마 뒤로 진정으로 하고자 했던 것은

‘ 갑 ’과 ‘을’의 관계를 비틀고, 다시 ‘전시’라는

마당으로 모두를 초대한 것이 아닐까 싶다.)

최근 2010년 부산비엔날레의 예술감독을

맡았던 일본 큐레이터 아주마야 다카시Azumaya

Takashi가 죽음을 선택한 소식을 들었을 때,

혹자의 말대로 어쩌면 현대미술은 이미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끝으로 향하는 중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 끝이 언제든 간에

여전히 비엔날레에 기대하는 바가 크다. 수없이

질문하고 싶다. 학습하기보다는 감동하고 싶다.

꼭 새로운 작품이 아니더라도, 새로운 이야기를

들었으면 한다. 전시의 단위, 즉 작가-작품-개념-

기표의 배치 속에서 그 행간을 읽는 기쁨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정말이지 끝이 아니기를

바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비엔날레에

무엇을 기대하는가

13December 2012. Vol.4 Architecture Newspaper

2012 부산비엔날레 <배움의 정원>의 배움위원회를 진행하는 메리 앨렌 캐롤과(왼쪽), 이모겐 스티드월시(오른쪽)

광주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세계비엔날레대회 광경

호경윤 월간 『아트인컬처』 편집장

©광

주비

엔날

레재

단©

부산

비엔

날레

Page 14: 건축신문 vol. 4. PDF 다운로드

김광수

‘지역성’은 대단히 광범위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서 심지어 지리적인 의미에 국한되는 것인가

그렇지 않은가에 대한 논의만으로도 간단하지

않을 겁니다. 로컬리티locality를 국지성局地性

이라는 단어로 해석한다면 ‘지역’보다는 어떤

국면에 놓인 ‘개인’의 차원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세계 건축계에서는 80년대에서

90년대 초까지 ‘비판적 지역주의’라는 주제로

많은 논의가 있어 왔고, 한국 건축계에서는

특히 4.3그룹 ** 과 같은 건축가들이 장소성

담론과 함께 그러한 논의를 많이 해왔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은 그들이 한국 내

중추적인 건축가로서 나름의 건축 철학을 공고히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난 한 · 중 · 일

건축가의 김옥길기념강좌에서도 그런 점을 많이

느꼈습니다.

김일현

지역성에 대한 이야기는 새로운 것이 전혀 아닌

것 같습니다. 1980년대에 케네스 프램톤 Kenneth

Frampton이 『비판적 지역주의 Towards a Critical

Regionalism 』 라는 책을 냈을 때 본격적으로

거론된 것 같지만 사실 많은 경우에 건축가들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신념을 강조하는 담론에

지속적으로 환멸을 느낀 것이 종종 드러났다고

봅니다. 버나드 루도프스키Bernard Rudofsky 의

『건축가 없는 건축 Architecture without

Architects 』 부터 시작해서 혹은 이탈리아의

신사실주의 Neo-realismo 운동과 같은 시도들을

통해 제2차 세계대전 전후에 모더니즘과 병행하여

불연속적이지만 지속적인 그에 관한 성찰이

진행되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지역성이라는

주제는 우리나라에서도 한국성 혹은 그 이전부터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거론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제 생각에는 ‘전통’이나 ‘한국성’ 혹은 한때

유행했던 ‘현대적 재해석’과 같은 표현은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상실된 실체에 대한 향수와

분노까지 포함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심지어는

논의의 본질보다는 그 행위 자체에서 의미를

찾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돌을 굴리는

시지프스처럼, 구체적인 논제보다는 논의의 반복

자체에 존재 의의를 부여하고 있지 않을까요.

이러한 탈시간적인 본질에 대한 동경의 반복

속에서 담론은 누적되지 않고 항상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 이러한 현상은

1960년대부터 최근까지도 이어져 온 것으로

보입니다.

배형민

그런 점이 지역성이나 장소성이라는

개념이 가지고 있는 위험한 요소입니다.

김옥길기념강좌에 초대된 한 · 중 ·일 3명의

건축가에게 스스로가 지역적인 건축가인가,

본인의 건축에 지역성이 있는가를 묻는다면

별로 답변하고 싶어 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도

지역성의 문제가 너무 규정적이고 단정적이기

때문입니다. 단순하게 정의된 이 개념이 굉장히

지배적인 힘을 갖고 있습니다. 건축에 대해

한국적이냐 아니냐를 물었을 때도 그에 따라

담론이 움직였기 때문에 문제가 된 것입니다.

한편으로 쉽게 풀어보면, 지역성을 ‘실천’이라고

규정하면 됩니다. 개념적으로 정의하기 어려우니,

지역성을 하나의 실천양식이며 계속 움직이는

개념으로 보는 것입니다. 지역성에 대한 담론은

서구 중심으로 진행되었고, 많은 경우 우리가

가진 담론의 범주가 서구적인 틀 속에서 진행되어

왔습니다. 김광수 교수께서 이미 제시했지만 대개

지역성과 장소성은 보편성에 반反하는 개념으로

설정됩니다. 국제적인 경향, 그리고 모더니즘이

보편적인 것으로 설정되었을 때 거기에 반하는

개념으로 지역성과 장소성이 등장하게 됩니다.

그 틀 안에서 이야기한다면 먼저 ‘보편성’이라는

것이 어떻게 설정되었기에 ‘지역성’이 대응하게

되었는지를 봐야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분명

서구적인 틀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제기되었던

한국성과 지역성의 문제가 어려웠던 이유 중

하나는 ‘지역성에 반했던 보편성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이 모호했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무슨

보편성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성을 그렇게 강하게

이야기했는가에 대해 되짚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임근준

그런데 지금 말씀하신 지역성 논의를 두 가지로

구분해서 바라보면 좋겠습니다. 산업화와

근대화를 전개하는 과정에서 파생됐던 지역성

논쟁과, 포스트모더니즘의 대두 이후 근대화를

극복하기 위한 어떤 담론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이야기했던 건축의 지역성 논의는 상당히

동떨어진 이야기입니다. 오늘 우리가 산업화 시대,

모더니즘 시대의 지역성을 논하게 된다면 토의의

방향이 크게 달라지고 말 겁니다. 모더니즘 시절의

지역성을 따지다보면 아무래도 한국에서는 어쩔

수 없이 ‘대체 나는 누구(무엇)인가? ’라는

정체성에 관련된 질문이 빠지지 않기 때문에,

‘한국적 디자인, 한국적 건축이란 무엇인가?’라는

무지막지하게 폭력적인 폐쇄 회로에 갇혀버리기

십상입니다.

배형민

모더니즘의 유입과 한국의 상황을 감안했을 때

문제의 기점을 1990년대로 보는 것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중요한 논의의 갈래를 제시한다고는

생각합니다. 제가 궁금한 것은 그 후의 지역성의

속성을 어떻게 보느냐는 것입니다. 여전히

모더니즘에 대해 더 이야기할 부분은 있지만

탈산업시대의 상황에 집중하는 것도 유익할 것

같습니다.

임근준

물론 좀 더 모더니즘에 관해 이야기할 부분은

있습니다. 모더니스트 건축가에게 중요했던

지역성 혹은 정체성과 관련된 질문의 배경에는

더 큰 질문이 잠복해있습니다. 현대성의 추구는

전통성의 문제와 동전의 앞뒤처럼 서로 맞물려

있기 때문에, 이 조선 땅에서 현대성을 추구했던

모든 지식인은, ‘나는 전통을 어떻게 규정하고

해석하는가’라는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한때, 전통의 재해석은

현대성을 합리화하기 위한 통과의례처럼

느껴지기도 했죠. 그래서 ‘한국적 건축은

무엇인가?’라는 갑갑한 질문보다는, ‘각각의

건축가들이 자신들의 현대성을 정의 내리기

위해서 전통을 어떻게 타자화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보는 쪽이 훨씬 더 생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질문의 방향을 바꾸면, 이후에 대두된

지역성 담론에서 시기별로 건축가들이 어떻게

‘지역’이라는 타자를 각기 다르게 해석해왔는지

비교 고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쪽으로

논의를 이끌면 이야기가 너무 복잡하고

길어지니까, 오늘은 포스트모더니즘 대두 이후의

지역성 논의에 국한하자고 제안한 것입니다.

김광수

우리나라에서는 한국성에 대한 논의 이후

장소성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었습니다.

4.3그룹에 속하는 분들이 그런 논의에 대해

공감하는 부분들이 있다고 보며, 이 이야기는

실무와 이론 모두에서 현재진행형이라고

보입니다. 한국에서 이런 상황이 생기는 특별한

계기가 있었을까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형민

‘방법론’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건축가가 어떻게

설계하는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건축가가

어떻게든 창작의 힘을 가져야 하는 상황에서

4.3그룹 세대는 창작의 원천을 경험에서 찾았다고

생각합니다. 체험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장소에

기반을 두게 됩니다.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의 <롱샹 교회Ronchamp Pilgrim Church>나 <라

투레트 수도원The Monastery of Sainte-Marie de

La Tourette>에서의 체험이 건축의 동력원이 되는

것입니다. 지역적으로 한정되지 않은 체험이지만

자신의 건축은 장소성에 기반을 두겠다는

생각입니다. 개념적으로 (모더니즘의 이슈를 계속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데) 장소가

중요했지만 막상 설계 할 때의 방법론은 또 다른

종류의 문제였다고 생각합니다. 체험의 언어가

장소로 이어졌지만 그것은 담론의 표면상에

일어나는 것이지요. 여기에 건축의 방법론, 건축

기율discipline의 문제가 함께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광수

이러한 맥락에서 4.3그룹 세대보다 후학이신

황두진 소장은 어떠한 고민을 하시나요?

황두진

저는 80년대 초반 학번입니다. 제가 학교를

다닐 때 한국성이나 정체성과 같은 지역성

-그때는 지역성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지만- 과

관련된 논의가 당시 기성 건축가들 세대에서

활발했습니다. 저희는 그 논의가 가지고 있던

무게감을 상당히 느끼면서 자랄 수밖에 없었던

세대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때 상황을

보자면, 지역성이나 한국성이라는 논의가 건축가

커뮤니티에서 자생적으로,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건축가 자신이 자신의 작품세계를 좀 더 풍성하게

해주는 요소로 사용했던 측면보다는, 어떤

정치적이고 비건축적인 이유 때문에 강요되었던

시기였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건으로,

국립민속박물관의 현상설계지침을 보면, “유명한

전통건축물의 각 부분을 조합해서 설계할 것”

이라는, 지금은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내용이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이런 상황에서 그분들이

그런 문제에 대해 나름대로 저항을 하면서 또 다른

논의들을 시작하게 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제는 막상 제가 기성 건축가가 되고 보니

외부에서 강요되는 ‘한국성’ 논의의 압박은

많이 약해졌습니다. 오히려 ‘개인, 일상의 삶과

방식, 일상적인 삶의 스타일, 아니면 어떤 작은

동네에서 벌어지는 동네 단위의 이야기들로

건축을 풍요롭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논의가

있습니다. 지역이라는 개념이 특정 지역에

한정해서 쓰이는 어휘가 아니라 비교적 열린

개념이라고 보았을 때, 이것은 한국 건축계 내지는

아시아 건축계에서 시작해 결국 개인이 자기의

세계를 찾아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한데,

저는 그런 것에 관심이 있습니다.

김일현

저도 그 부분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우선

지역성에 대한 논의를 할 때 가장 위험한 것은

‘이것이 지역성이다’, ‘이것이 한국성이다’와 같은

어떤 정의를 내리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이 주제에 대해서 고민한 것은 ‘사람이 배제된

상태에서 과연 지역성을 논의할 수 있는가’ 입니다.

많은 경우에 사람과 지역의 관계를 이야기하지

않고 건축물만 가지고 이야기 합니다. 이런 부분에

있어서 저는 ‘터무니’와 그와 유사한 수구적인

논의로 회귀할 생각은 없습니다. 한시적인 개인의

인생이 결국은 인류사와 접점이 있다고 보고,

어차피 더 위로 올라가면 신념에 따라 원숭이나

최초의 인간과 그 계보가 연결됩니다. 이러한

면에서 구체적인 개인사, 그리고 사물, 상황들을

가지고 논해야 지역성에 대한 논의가 힘을 가질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 보편성에 대립되는 구도로

지역성을 논의하면 마치 양파껍질을 벗기듯 그

중심과 변방 속에 또 다른 변방이 있는 형국이

되어 그 자체에서 아무런 실효성을 가지지 못하고

끝날 것 같습니다.

배형민

그런데 저는 보편성과 지역성의 논의를 폐기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는 방법론

discipline의 이슈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근대적인 건축의 보편적 시스템, 그리고 건축

내부의 시스템을 생각한다면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서양을 대표하는 보편적 건축이라는 것은

고전건축이고, 이것은 인터내셔널 스타일입니다.

대단히 넓은 시기에 다양한 장소, 지역, 문화에

걸쳐서 고전 건축이라는 매우 보편적인 건축

체계가 수천 년간 눌러앉았는데, 우리가 그런 고전

건축이 지배하는 장소들이 보편적이라고 결코

생각하지 않습니다. 팔라디오Andrea Palladio

의 베니스, 베르니니Giovanni Lorenzo Bernini 의

로마, 랜Christopher Wren의 런던, 18세기의

에딘버러, 라브르스트Henri Labrouste의

파리 등 각기 독특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편적인 건축 시스템이 지역과

장소를 죽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동아시아의

경우에는 중국의 목조시스템이 오랜 기간 동안

넓은 지역에 걸쳐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옛 건축을 보고 보편적 목조시스템이 장소성과

지역성을 죽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보편성을 아주 구체적으로

정의하고, 더불어 모더니즘도 구체적으로 정의를

함으로써, 우리가 어떤 특정한 종류의 차이를

짚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모더니즘의 지역과 시기, 그리고 그 이후의 대응

방식을 자세히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임근준

보편성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면 논의가 상식

차원으로 환원되고 마는 것 같습니다. 단순화한

논리로 부연하자면, 모더니즘 건축을 비판하는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이 등장했을 때, 각 지역별로

정치적 입장이 달랐지만, 어쨌든 기본적으로

포스트모던 세대의 건축가들은 모더니즘 건축의

위대한 바벨탑을 무너뜨림으로써 붕괴의 힘을

제 자산으로 삼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것도 다 옛말입니다. 모더니스트의

유산을 무너뜨리는 방법론 차원에서 어찌 각기

다른 지역성이 논의됐는지, 그게 정말로 합당한

주장이었는지 좀 따져봐야 옳습니다.

예를 들면, 지난 포럼에서 왕슈 선생이나 승효상

선생이 이야기했던 지역성 담론에서, 원천으로

전유專有된 버내큘러vernacular는 죄다 과거의

것입니다. 반면, 사나SANAA의 니시자와 류

선생이 말한 지역성이라고 하는 것은 동시대의

특수 지역에 존재하는 컨템포러리 버내큘러에

국한됐습니다. 이렇게, 두 명의 연사와 한 명의

연사가 말한 지역성이 굉장히 이질적입니다.

그저 동일한 단어로 이질적 요소를 통칭하는

바람에, 같은 주제라고 오인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왜 니시자와 류 선생은 지역성을

이야기할 때 동시대의 지역적 특색에 초점을

맞추고, 승효상, 왕슈 선생은 과거에서 문화적

원형을 찾으려 들까요?

역으로 아주 구체적인 질문을 던져볼 필요도

있습니다. 한국에서 전통 혹은 과거의 버내큘러

요소를 전유해서 새로운 조형을 구축해낸

성공적인 사례가 있나요? 지역의 과거에서 문화적

원형을 추출해낸 걸작 건축이 있다면, 그게 뭔지

궁금합니다. 만약 없다면, 왜 없을까요? 아니면,

한국에서 동시대의 버내큘러 요소를 전유하고

그 데이터를 유형학적으로 과대평가함으로써

성공적인 건축물을 도출해낸 사례가 있습니까?

동시대의 지역성에 성공적으로 화답한 걸작

건축은 무엇입니까? 만약 없다면, 이 또한 왜

없을까요?

황두진

제가 모더니즘에 관심 갖는 이유는 과학적

합리성을 전제로 했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비판

받았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적 합리성은 여전히 강력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건축가들이 어떻게 지역성이라고 하는 것을

자신의 건축을 풍요롭게 만들고 새로운 시도를

가능케 하는 기반으로 사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

저는 당연히 개인적으로 흥미를 갖고 있습니다.

오늘의 지역성에 대한 논의가 저와 같은 사람에게

유의미 할 수 있는 것은 이를 통해서 담론을

정리하는 지적인 측면 이상의 문제입니다. 즉

모더니즘 논의와 지역성 논의는 서로 상반된

것도 아니고, 오히려 모더니즘의 합리적인 면을

사회 김광수 이화여자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패널 김일현 경희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배형민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임근준 (aka 이정우) 미술 · 디자인 평론가

황두진 황두진건축사사무소 소장

한국 건축에서 ‘지역성’ 논의는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시대에 따라

의미가 다르게 사용되기도 했고, 입장에 따라 그 해석도 달랐다.

이 시점에서 다시 지역성을 이야기한다면, 개인이 중심이 된 열린

개념일 것이다. 10월 8일 이화여대에서 김광수, 황두진, 배형민,

김일현, 임근준 씨가 모여 “건축의 지역성을 다시 생각한다”란 주제로

열띠고 사방으로 튄 토론회를 가졌다.

지역성은 정치적

혹은 문화적 용어이다*

14 December 2012. Vol.4 Architecture Newspaper

‘정체성’ 문제로 연결되는

모더니즘의 지역성을 넘어

보편성의 대응, 한국성 혹은

전통이라는 이름의 지역성

외부의 압박에서 자유로운 개인과

일상의 경험을 전제로 하는 지역성

건축에서의 보편성은 컨템포러리

버내큘러와 어떻게 관계하나

배형민.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임근준(aka 이정우). 미술 · 디자인 평론가

Page 15: 건축신문 vol. 4. PDF 다운로드

배제하지 않으면서 지역성 논의와 결합이 되면서

작업이 더욱 풍성해지고, 사람들에게 훨씬 쉽게

다가갈 수 있고, 결과적으로 좋은 건축이 되는

예들이 많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론적으로 두 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한 가지는

이념으로서의 모더니즘과 근대적 태도 사이에는

간극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지역성

논의가 저에게 흥미롭게 다가오는 것은 건축가

개인이 자신의 건축을 풍요롭게 하는데 어떻게

이것을 사용하는가라는 측면이라는 것입니다.

김광수

지역성이 갖는 사회적 의미 혹은 현상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고 싶습니다. 저는 지역성 논의에

대한 필요성을 지방을 돌아다니면서 많이

느꼈습니다. 지난 주말에도 제가 우연히 안성의

세계민속축제를 갔다가 각 지역의 토속물들이

장사진을 이룬 것을 보았습니다. 또한 그 공간

자체가 일시적이지만 테마파크와 같은 논리로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이는 정체성 문제와 당연히

결부가 되었습니다만, 결과적으로 지역성 시도가

오히려 지역민을 타자화하고 대상화했습니다.

여기에 건축가와 예술가들도 문화기획의 형태로

많이 가세했습니다. 언제부터인가는 탑다운top-

down이 아니라 바텀업bottom-up의 시도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지역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나름의 지역성을 기반으로 전문가들과 소통하고

문화 및 생산 활동을 하며 광역적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좀 더 두고 보아야 하겠지만 이 모든

것은 마구잡이로 뒤섞여있습니다. 또한 글로벌

논의의 ‘지역’과 지역의 ‘지역’도 마구잡이로 섞여

있습니다. 각종 비엔날레 및 국제행사가 이를

반증합니다.

황두진

제가 아까 정치적인 이유 또는 비건축적인

이유에서 한국성이 강요되는 것을 제 피부로

많이 느끼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에 부연 설명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즉

용어가 바뀌었을 뿐, 건축계 밖에서 이런저런

개념들을 억압처럼 저희에게 강요하는 현상이

강도 측면에서 심해지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양적으로는 늘어났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각 지역에서 축제를 할 때 지역의 특색이라고

하는 것을 지나치게 전근대적인 것으로 보고

대부분 농경사회의 특징을 통해 고착화 시킨

다음, 그 안에서 일하는 건축가나 디자이너 등

관련된 사람들에게 그 틀 안에서 무엇인가를

만들어 주기를 바라는 경우가 늘어났습니다. 지난

포럼에서 질문을 했던 것처럼, 지역성이라는 것이

사람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다가오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전근대적인 것, 세습적인

것, 관습적인 것 등이 -우리가 무진 애를 써서

벗어나려고 했던 것들- 이런 저런 사탕발림의

형태로 우리에게 다시 오고 있고, 또 그런

문맥에서 지역성이라는 용어가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까 말씀 드렸듯이 어떠한 거대

담론으로서 지역성을 이야기할 때는 저는 드릴

말씀이 별로 없고, 다만 근대적 사고가 여전히

유효한 시대에 그것이 획일화된 결과로 가지 않고,

오히려 풍성하고 다양하게 갈 수 있게 해주는

개념으로서 지역성이라는 논의가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말씀 드립니다.

임근준

지역성에 대한 논의로 ‘담론’이 더욱 풍성해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역성이라고

하는 키워드가 건축뿐만 아니라 다른

조형예술분야에서 대두된 때는, 모더니즘 이후의

포스트모더니즘 시기였고, 이제 그 문제의식은

시대적 소명을 다하고 소멸됐습니다. 게다가

포스트모더니즘 시기에 지역성을 내세웠던

건축가들은, 다들 모더니즘 시기 주류 건축계가

아니었던 지역에 속해있었습니다.

상대적으로 타자의 위치에 서있던 건축가들이

지역성을 열쇠말로 내세워 각각의 지역과

공동체에서 찾아낸 특질은, 과연 민족적 특성과

얼마나 달랐을까요? 저는 포스트모던 건축가들이

찾아낸 지역성이 이론의 차원에서 탐구한

민족지적 특성에 다름 아니었다고 봅니다.

따라서 건축에서의 지역성 담론은 초기의 비평적

힘을 오래 유지하지 못했고, 1990년대 후반에

이르면 제 작업의 모자란 부분을 (타 지역에서 온

건축가의 디자인안과의 비교로부터) 방어하는,

소위 ‘까방권’으로 활용되는 퇴행적 경향을 띠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지역성을 장소성으로 전치해 고찰해도

결론은 대동소이합니다. 장소성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장소 특정성’입니다. 건축에서의 장소 특정성

담론은 1970년대에 미술계에서 미니멀리즘이

추상 미술의 정점을 장식한 이후, 장소 특정성을

추구하는 제도 비평 미술이나 대지 미술이

등장하게 되자, 그 논의를 건축계 내부로 포용하는

과정에서 대두된 것입니다. 건축에 있어서의 장소

특정성이라고 하면 말은 그럴듯합니다만, 실상은

브랜드 이미지로서의 건축, 제 스스로 로고가 되는

랜드마크 건축과 맞물려 대두된 주제죠. 그런데,

농반진반으로 이런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세상에

장소 특정적이지 않은 건축도 있나?’

승효상 선생의 강연에서 드러났듯, 지역성이라고

하는 주제는 과거 전통의 버내큘러 디자인의

어떤 요소/차원과 서양건축사에서 주류 건축으로

제시됐던 서양의 버내큘러 건축(의 아키타입)

을 대치시켜 놓고, 그 대립 갈등 구조에서

발견되는 새로운 비평적 논점을 조형 과정에

도입한 나 자신의 건축(물), 이렇게 3가지를 교차

비교하면서 자신의 건축 문법을 합리화해내는

담론 기제입니다.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정치적 합리화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과거 세대의 모더니스트

건축가와 나와의 관계에서 나 자신의 건축 문법을

합리화해내는 일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내가

속한 지역에서 건축적 헤게모니를 사수하기 위해

국외 건축가들과의 수주경쟁에서 나 자신의 건축

문법을 합리화해내는 일입니다. 이 2가지 이외에

더는 긍정적인 기능을 찾기 어렵다고 확신합니다.

황두진

저는 임근준 선생의 말씀에 선뜻 동의하기

힘듭니다. 지역성에 대한 논의는 자연스럽게

시작된 측면도 있지만, 그것보다 좀 더 첨예하게

우리에게 다가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임근준

선생도 언급하셨지만 우리나라가 많은 해외

건축가들의 수주경쟁터가 되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국내 건축가들이 불리한 입장에 놓이는

것을 많이 보게 되는데, 이 때 마음속에서 느끼는

것은 2가지입니다. 한 가지는 물론 내가 저 일을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고, 또 한 가지는

다른 누군가가 그 건물을 지었을 때 그 건물이

뉴욕에 세워지는 것과 서울에 세워질 때 분명히

기후, 지형, 여러 가지 사회적 구도, 사람들의

생활방식에서 아무래도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같은 문법이 반복되는 것에 대한

공허함입니다.

서로 논의가 빗겨나가지 않기 위해 제가

제안하고 싶은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도시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사실 글로벌한

보편성을 이야기하기가 더 쉬워지고, 전원이나

자연으로 갈수록 다른 방향의 이야기를 하기에

좋은 점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리고 자본의 크기

-렘 쿨하스가 자기 책의 제목에도 썼던 것처럼-

에 따라서 자본의 속성도 바뀝니다. 저는 현재

상황으로 보았을 때 당장 대규모 자본이 지역성

논의를 받아들이는 것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다만

여기에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그 정도의 대규모

자본은 아니라 하더라도 중소규모 자본이 매개가

되어, 건축계의 헤게모니를 잡는다는 식의 측면이

아니라 진심으로 자기의 생활 문화와 패턴이 잘

반영된 건축물을 원하는 수요가 분명히 있는데,

이러한 상황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는 차원의

이야기는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배형민

앞서 임근준 선생이 세 건축가를 단칼로

지워버렸지만 실제로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세 건축가 중 어느 한 사람도 강연

중에 ‘지역성’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습니다.

대신 동시에 썼던 말은 ‘풍경’ 또는 ‘landscape’

입니다. 그 이유는 지역성이라는 말이 다루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이 자리에 참여하게

된 동기는 지역성이 과거에 가지고 있던 많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지금 전 세계가 변하는 상황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황두진 소장은 건축가로서 ‘지역성’이나 ‘장소성’이

가지고 있는 생산성을 믿기 때문에 함께 했다고

생각합니다. 세 건축가가 모두 기성이고

그 지역성이 의심받더라도, 방법론적으로 그들의

건축을 보고 이를 통해 새로운 지역 이슈와 담론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 중 · 일에서

중심과 변방의 논리가 바뀌고 있습니다.

글로벌리즘의 논리와 대자본이 횡행하면서

지방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다 알고 있습니다.

특히 ‘관광’ 과 ‘자본’의 논리가 명백합니다.

심지어는 글로벌리즘이 끝났다는 주장들이

서양학계에서 진행되고 또 다시 자기중심적으로

글로벌라이제이션에 대한 새로운 논리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것은 여전히 서구중심적 담론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중심이 바뀌고 있는 상황에서

한 · 중 · 일의 건축가를 택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광수

한 · 중 · 일 건축가의 강연에 대한 패널 분들의

개인적인 생각을 들어보며 논의를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황두진

그 때 강연장에서 짧게 질문했던 것처럼,

전근대성이라는 것이 이러한 논의에 포장되어

들어오는 것인지에 대한 우려가 분명히

있었습니다. 니시자와 류 선생은 조금 달랐던

것 같지만, 나머지 두 분이 머릿속에 제시하는

비전은 단순한 농촌풍경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바람직한 현상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시아 각 지역에서 도시화가

굉장히 빨리 진행되고 있고, 우리나라의 경우는

인류역사상 도시화 진행 속도가 가장 빠른 나라로

기록이 될 것 같습니다. 도시라고 하는 것은

결국 밀도와 다양성입니다. 그런데 그에 관한

이야기들이 과연 그 날의 프레젠테이션 어디에

담겨있는지 의문스럽고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과연 우리가 계속 나아간다고 했을 때, 도시화를

그만 두고 전원형 프로토타입의 건축을 만드는

시대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인가를

생각하며 강연을 들었습니다.

김일현

세 분의 건축가는 각각 한 · 중 · 일 국적을 가지고

있고 그 구도에서 초청이 된 것 같은데 어떻게

보면 그것을 가로 질러 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작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이

선택할 수 없는 몇 가지 -성별, 국적, 나이 등- 가

있지만, 반면에 국적을 넘어서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안젤름 키퍼Anselm Kiefer는 “내가

영감을 얻을 수 있는 모든 곳은 나의 조국이다”

라는 나름 공감할 수 있는 말을 했습니다. 자신이

세상의 중심에 있다는 지극히 서구적인 사고이긴

하지만, 배타적인 것을 넘어서서 그런 배경에서

자신의 작업을 하는데 풍부하게 하는 원천을 찾을

수 있다는 말에는 공감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왕슈 선생은 집요하게 자신이

살았던 도시를 이야기했고, 니시자와 류 선생은

각각의 프로젝트가 다루었던 상황들을, 승효상

선생 같은 경우에는 굉장히 고유한 본질과 가치에

대해서 이야기 했는데, 이 3가지 방식이

직간접적으로 지역성에 대해서 논하지만 굉장히

다른 방식의 사고를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무엇이 옳고 그른가는 참 논의하기 힘들

것입니다. 좀 전에 임근준 선생께서 말씀하신

역사의 전개에 대해서는 저도 동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유는 여전히 선형적인, 모더니즘적인

시각을 전제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공감하는 단어는 컨템포러리contemporary,

즉 동시대성이라는 단어입니다.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지금까지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시대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단어를 그대로

차용한다면 이전과 지금의 차이는 시간에 대한

태도라고 봅니다. 이전에는 쭉 이어져 와서 지금

여기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지금은 모든 것이

펼쳐져 있는 시점에서 보고 있다는 태도이고

이것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그런

면에서 지역성에 있어서도 굉장히 자유롭게 대할

수도 있고, 과거의 유산과 더불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도 그렇고 미래에 벌어질 일에 대해서도

규정되기보다는 선택과 조합이라는 작업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임근준

저는 한 · 중 · 일 세 분의 강연을 듣고 나서

‘건축가가 머리가 좋다고 해서 건축을 잘 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절감했습니다.

어쩌면 그날 얻은 가장 큰 교훈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세 건축가의 시각뇌를 동시대

차원에서 비교해보면 왕슈 선생의 뇌가 가장

구식입니다. 그야말로 가슴이 뜨거운, 21세기의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입니다.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의 옛 정취가 망가진 현실을 개탄하면서

과거의 송나라 시대의 그림에서 유토피아를 찾고,

그 아름다움을 제 건축 프로젝트에서 구현하고자

하는, 말도 안 되는 욕망을 지녔죠. 건축사 공부를

조금 더 열심히 했거나, 직관력이 조금이라도 더

좋았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말씀을 정말 끝도 없이

늘어놓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건물은

몹시 아름답습니다. ‘건축가가 과대망상을 품을

때야 비로소, 결과는 논리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아이러니를 새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관점과 그를 기동시키는

시각뇌가 가장 현대적인 인물은 니시자와 류

선생이었습니다. 그 분의 방법론은 아주 정교하고,

동시대 경쟁자들의 그것에 견주어 뒤처지는 바가

없도록 잘 다듬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결과물들이

대단히 ‘스마트’함에도 불구하고, 결과물이 대단히

흥미롭거나 위대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더군요.

반면, 승효상 선생의 논의를 듣고 있자면, 아주

강하게 자신이 동시대인이라고 웅변함에도

불구하고, 그 관점은 아직까지 모더니스트의

그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음을 수차례

재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대표 건축물의 조형을

봐도 모더니스트의 시각뇌로 만들었다는 의심을

거두기 어려운 모양이죠. 지속적으로 과거의

전통에서 하나의 건축적 원형을 찾아서 어떤

차원을 이론적으로 해석해내고, 또 그것을

서구의 건축적 원형과 비교해가며 자신의 건축적

알리바이로 제시합니다만, 그 숱한 논의 전개가

결과물과 아무 상관이 없어 뵈니 참으로 괴이한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역성이라고 하는 방법론

차원의 개념도 최종적으론 결과물에 어떤 영향을

미쳤느냐, 성과 자체로만 평가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김일현

제 생각에는, 지금 말씀하시는 바에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은, 지난 한 · 중 · 일의 건축가가 각자 다른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그 사람의

자유이지 않을까요. 그것을 동의하는가, 하지

않는가가 우리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본 좌담은 이화여자대학교의 제12회

김옥길기념강좌, “건축의 지역성을 다시 생각한다

Rethinking Locality in Architecture”의 일환으로

열린 연계 포럼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2012년

10월 8일에 열린 본 좌담에 앞서 9월 20일에는

한국(승효상, 이로재), 중국(왕슈, Amateur

Architecture Studio), 일본(니시자와 류, SANAA)

의 주요 건축가를 초청하여 ‘지역성’에 대해 논하는

컨퍼런스가 있었다.

1990년대 초반 활동한 30~40대 건축가들의

모임으로, 학연, 지연, 경향을 초월해 작품 토론,

심포지엄, 건축여행과 전시회를 통해 미숙한

한국의 건축문화 및 제도에 문제의식을 가졌다.

곽재환, 김병윤, 김인철, 도창환, 동정근, 민현식,

방철린, 백문기, 승효상, 우경국, 이성관, 이일훈,

이종상, 그리고 조성룡이 회원으로 활동했다.

15December 2012. Vol.4 Architecture Newspaper

지역성 담론에 무엇을 기대하고

어떤 가능성이 잠재되어 있나

동시대 건축에서 지역성을

생각한다

제12회 김옥길기념강좌의 일환으로 열린 연계 포럼의 전경. 2012. 10. 8

황두진. 황두진건축사사무소 소장

김일현. 경희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본 좌담은 지면상 편집을 가한 것으로, 전문은

정림건축문화재단 홈페이지에서 열람할 수 있습니다.

http://www.junglimfoundation.org

Page 16: 건축신문 vol. 4. PDF 다운로드

최근 출간하신 『사당동 더하기 25』* 는 가난의

대물림과 구조적 조건에 무게중심을 둔 시선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통해 말씀하신

“구조에 나타나는 문화”에 대한 입장을 좀 더 듣고

싶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문화, 생활양식이 나타나는

방식은 아시다시피 여러 가지죠. 공간에다 초점을

맞춰서 풀어보면 오히려 쉽게 보인다고 할까요.

사당동 철거 재개발 현장에 들어갔을 때, 그 현장

(공간)이 그들의 삶의 조건을 강하게 규정짓고

있었죠. ‘사실은 공간이 전부다’, 그렇게 말하고

싶을 정도였어요. 예를 들어, 방이 좁아 식구들이

반듯이 눕지를 못하고 칼잠을 자거나, 또는

청소년들이 부모와 같이 자는 단칸방을 피해

나와서 돌아다니고, 그 공간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찍 가출하고,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을 만나

동거에 들어간 건데, 이를 향해 사회는 혼전동거나

성적문란이라는 이름을 붙이죠. 빈곤을

재생산하는 ‘빈곤문화’로 규정하지요. 그러나 다시

보면 그것은 ‘가난함’이라는 삶의 방식인 거예요.

가난함이 그들의 주거를 조건 짓고, 그 조건이

다시 삶의 양식을 규정해서 그들은 일찍 가출하고

동거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일찍 가난한 부모가

되고 가난은 또 재생산되고. 그게 바로 빈곤

재생산 구조가 계속될 수밖에 없는 것이죠.

1998년 보고서인 「재개발사업이 지역주민에

미친 영향: 서울 사당동 재개발 지역 사례연구」를

보면, 주거 공간의 탈상품화 문제를 집중 거론하고

대안으로 영구임대아파트와 순환 재개발 등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당시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관련 세미나도 하고

보고서도 내면서 직설적으로 정책 제안을 하게

되었죠. “순환 재개발을 해라”, “영구임대를

확대하고 세입자에게도 이주권을 보장해라”

와 같은 제안들이 포함되어 있었으니까요.

현장연구를 하던 1986~90년에는 철거 재개발

지역이 곧 부동산 투기로 떼돈을 벌 수 있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 같은 곳이었어요. 자고

나면 아파트 딱지 값이 치솟는 때였기 때문에

괜찮은 아파트가 서는 것, 중산층 주거지 확대

gentrification에만 관심이 있었지, 거기 사는

사람들이 쫓겨난다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어요.

그럴 때 저희가 빈곤층을 위한 공간의 탈상품화를

이야기한 것은 시류에 조금 앞섰던 셈이죠. 그때

공간에 대한 자본주의적 재구조화 방식의 하나가

‘철거 재개발 ’이라는 것을 너무나 뼈저리게 보게

되었어요. 시유지나 공유지를 불하해서 시장

기제에 맞추는 방식이 건설회사와 가옥주들이

합동으로 개발하는 ‘합동 재개발 ’이라는 이름을

얻은 건데, 합법적으로 강제 철거를 가능하게 한

정책이기도 하죠.

말씀하신 합동 재개발 방식에 동반하는 합법성

논의가 항상 빈민 철거지역에서 문제가 되고,

또 그것이 공유지에 대한 인식과 연관되는 것은

주목할 만한 지점이겠는데요.

용산 참사가 터졌을 때 자연스레 사당동을

떠올리게 되었죠. 사당동 철거 현장에서 나온

지 20년 뒤 거의 똑같은 방식의 공간을 둘러싼

폭력적인 철거의 ‘합법성’과 마주쳐야 하는….

용산은 주로 세를 들어 장사하던 영세 상인의 생계

터가 강제 철거되었다는 점에서 주거지가 철거된

사당동과 사정이 좀 다르지만, 실거주자 또는

사용자로 인한 공간의 가치 창출에 대한 무시와

권한 박탈이라는 점에서 보면 비슷한 거죠.

사람이 살 수 없는 산등성이였던 사당동에 1965

년에 들어와 철거가 시작되는 1986년이 될 때까지

살아온 사람들의 거주 자체가 그 지역이 값이

나가게 하는 일종의 노동이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그런 공간을 소유 또는 사유의 개념으로만

생각하니까. 재산권 개념 자체가 분명 다르게

정의되어야 하는 영역이 있는데, 철거나 재개발

에서 사회적 약자의 재산권이 ‘ 합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한 일이 생긴 거죠.

우리 사회에서 공간을 어떻게 개념화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전문직이 해야 하는 굉장히 중요한

책무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건축, 건설에

종사하는 분들, 사회학을 하는 분들 모두가 자기

전문성을 통해 그 문제에 대해 발언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빈곤 연구에 있어 전문직이나 학자들이 실제

속해있지 (혹은 경험하지) 않은 계급이나 지역에

관해 연구하는 것을 두고 한계를 언급하지는

않는지요.

『사당동 더하기 25』는 연구 자체보다도 이를 어떤

형식으로 어떻게 쓸 것인가를 많이 고민하며 쓴

책입니다. 문화기술지ethnography를 한다는

것이 무얼까, 이런 고민을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가끔 기자들이 저에게 가난하지 않으면서 가난을

공부해서 언론의 주목을 받으니까, 가난 연구가

역설적으로 값나가는 액세서리가 된 듯한

질문도 하거든요. 저는 오히려 그렇게 해서라도

가난 연구자가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어요.

학자로서의 노블레스 오블리제로 이해하면 더

좋고요. 학자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제는 발언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대신 발언해주는 것이

책무가 아닐까요.

임대아파트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듣고 싶습니다.

빈곤 공간 정책에서 보통 제시되는 선택 중의

하나인데, 어떻게 보시는지요?

일단, 현실적으로 임대아파트는 필요한 정책인

건 맞아요. 그런데 임대아파트를 갔다 나올

때마다 또 다른 우울함 같은 게 있어요. 왜냐하면,

임대아파트가 노동빈민working poor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노동조차 할 수 없는 초 취약계층에

한정되어 있고, 임대아파트를 얻을 수 있는

조건에서 노동할 수 있는 가구원은 신청에서

제외되지요. 노동빈민, 즉 노동을 하지만 생계가

힘들고 주거 해결이 불가능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정책에서 묵과되는 거죠. 노동빈민을 위한

임대 주택의 확장이 이루어져야 해요.

또 하나는 이들을 위한 임대아파트는 좀 다른

방식으로 설계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요. 제가

사당동 필드조사를 할 때 사당동은 일터이기도

했고 놀이터이기도 했어요. 집들은 다 불량이라

하더라도, ‘마을’ 과 ‘동네’ 의 정서가 있거든요.

그런데 임대아파트에는 이런 게 없어요. ‘공간’

을 만든다는 것은 곧 ‘삶의 양식’을 만드는 건데,

공간을 정책화하고 건물을 지을 때 가급적

사회학적, 인문학적 접근이 적극 필요하다고 봐요.

최근 한 다세대주택 프로젝트를 보니까 주민들의

동의를 얻어 주차장 공간을 차 대신 벤치 몇

개를 두었을 뿐인데, 거기 거주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이웃 사람들이 그곳에 마실도 오고

편하게 소통하는 공간이 되는 걸 보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바로 그런 거예요. 임대아파트를 지을 때 오히려

건축하시는 분들의 상상력이 발휘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해요. 영세민 주거정책에서

공간의 소유와 사용 방식에 대해서 좀 전향적인

생각을 해봤으면 좋겠어요.

예술도 마찬가지로, 공공미술이 주목을 받으면서

많은 작가들이 도시 공간에 대한 프로젝트를

하는 게 매우 고무적인 일이긴 하지만, 문제는

프로젝트의 양보다 새로운 담화 형성을

이루어내는 일에 전문가의 헌신이 얼마나

밑바탕이 되는가 하는 점일 겁니다. 정책적

측면에서 영구 임대아파트와 순환 재개발에 대해

여쭤보고 싶습니다.

1986년에서 1991년 즈음에는 순환 재개발에 대한

생각이 없었어요. 그때 우리가 선례를 외국에서

찾아보고 제안한 거죠. 세입자에게도 이주권을

보장하라는 요구는 철거민 운동 쪽에서 이미

나왔고요. 우리의 그런 정책 제안은 당시 서울시

공무원들에게는 세입자 편에만 선, 너무 뭘 모르는

사회학자와 인류학자의 제안으로 치부되었지요.

다큐멘터리 영화 < 사당동 더하기 22 > 에는

문화기술지 형태로 한 가족의 일생이 묘사되고

있습니다. 특히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회가

한 가족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를

섬뜩할 정도로 잘 보여주고 있고요. 연구에 담긴

구조가 개인과의 연관 관계를 어떻게 설명하길

원하셨나요.

사회학 하는 사람이니 ‘구조가 영향을 미친다’

는 것에 암묵적인 관심이 있었겠지만, 저도 놀랄

정도로 생생하게 구조와 개인의 연결고리를 그

속에서 보았어요. 예를 들어, IMF가 터지면 바로

다음 순간 이 사람들은 직장을 잃어버리는 거예요.

또 세계화라는 구호가 이후에 “농촌총각 (외국

처녀에) 장가보내기”로 나오자 “누가 나 같은

가난한 사람한테 시집을 오겠나. 돈 조금 들이면

연변에서 데려 올 수 있다니 데려와야지” 하고

이야기 하는 거예요. 자본주의 구조와 가난한

사람들 간에는 완충지대buffer zone가 없는

듯해요. 자본주의 구조와 기제에 맨 몸으로 노출된

사람들이 바로 돈 없는 사람들인 거죠. 자본주의

사회에서 잘 산다는 것은 구조의 영향을 흡수하는

어떤 막 (어쩌면 돈) 이 있어서, 흡수하고 그

충격을 지연시키는 힘이 있는 거구나, 하는 생각을

공간은 가난한 삶을 가장 강하게 구조화, 재구조화한다. 빈곤층의

아이들은 그 공간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찍 가출하고, 일찍 동거한다.

그리고 가난은 재생산된다. <건축신문> 4호에서는 지난 25년간

사당동 재개발 지역에서 만난 가족의 삶을 통해 우리 사회의 공간의

빈곤성을 주목해온 사회학자 조은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았다.

이어서 김홍중 교수가 사회학자로서 조은의 소명의식을 조명했다.

공간의 빈곤, 빈곤의 공간

조은

서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신문대학원에서 신문학 석사, 미국 하와이대학에서

사회학 박사를 취득한 후, 1983년부터 2012년 정년 때까지 동국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소설 『침묵으로 지은 집』 (2003)을 썼으며, 다큐멘터리 영화

<사당동 더하기 22>(2009) 를 제작하고, 최근에는 『사당동 더하기 25』 를 출간했다.

1998년 보고서인 「재개발사업이 지역주민에 미친 영향: 서울 사당동 재개발 지역 사례연구」 를 위해 사당동 일대를

직접 다니며 그린 지도 중 부분

사당동의 철거 전의 모습과 (위), 철거 후에도 떠나지 못하고 남아있는 '불량주택'들 (아래)

© 조

16 December 2012. Vol.4 Architecture Newspaper

Page 17: 건축신문 vol. 4. PDF 다운로드

했지요. 예를 들어보면, 우리가 금융 자본주의에

대해 말하는데, 그 맨 끝에는 급전이 필요해서

주민등록증을 잡힌 빈곤층이 대포 통장, 대포 폰,

대포 차의 먹이가 되어 매달려 있더라고요.

오스카 루이스Oscar Lewis의 『산체스의 아이들』

에 등장한 ‘빈곤문화’ 개념을 원용하시면서 그러한

문화를 가져오는 조건과 구조에 주목하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사람들이 빈곤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체현’한다고 말씀하셨는데, 가난의 구조적

조건을 다큐멘터리로 보여주고자 한 의도가 제작

전에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다큐를 만들 때는 사회학적 논문 쓰듯이

구조를 보여줘야 된다던가, 빈곤문화 논쟁이

들어가야 된다는 걸 계획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다른 양식으로 사회학적 글쓰기를 하고

싶었다고 할까요? 어떤 주장을 위해 카메라를

들었다기보다는, 가난한 삶에 대한 사회학적

시선을 더 잘 드러내는 한 방식이나 도구에 대한

고민이 있었던 것 같아요.

오늘날 서울이라는 공간과 그 개발을 둘러싼

논의들에 대한 의견이 있으면 더 듣고 싶습니다.

빈곤의 공간, 공간의 빈곤들이 특히 서울이라는

특정 장소와 연관해서 갖는 특징이 있다고 보세요?

글쎄, 서울이라는 공간의 특수성에 빈곤의

공간을 끌어오는 게 쉽지는 않아요. 많이 이야기

하듯이 서울이라는 공간의 혼종성hybrid은 그

자체가 가진 특수성이죠. 서울은 압축 발전한

한국 사회와 도시의 온갖 특징을 모두 보여주죠.

철거 재개발지역 그리고 빈민들의 공간이 그런

문제들을 집약해서 드러내주는 어떤 공간 중의

하나라고 생각해요. 그런 문제적 공간들을 어떻게

정리해 갈 것인가가 큰 숙제죠. 또 공간을 어떻게

구조화해야 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겠죠.

마지막으로 문화기술지로서의 방법론에 있어

자료에 대한 해석상의 지난함이 많으셨으리라

짐작되는데요. 연구자로서 입장 수정이나 생각의

변화를 겪으신 부분이 있으셨는지요.

객관적, 과학적이라는 패러다임과 같은

인식론에서 벗어나야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좀 했어요. 오랫동안 한 주제에 매달리면서

좋았던 점으로 주눅 들지 않으면서 ‘학술서적’

글쓰기에 있어서도 더 자유로웠던 것이라고나

할까요. 많은 분들이 제 작업에 대해 22년이나 25

년이라는 시간에 방점을 찍어서 과거의 가난을

잘 관찰하고 기록한 점을 주목하시는데요. 제

이야기를 하자면, 저는 이 작업을 통해서 과거의

가난이 아니라 미래의 가난, 또는 가난의 미래에

대한 상상력을 주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제가

25년 전, 이들의 가난이 어떻게 될까 궁금했을

때는 빈곤의 재생산이나 세습이라는 결과는

예측했지만, 빈곤의 양식이나 형태에 대해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다문화 가족, 중학생이

된 사례 가족의 아이가 사귀는 애가 탈북자라는

것도 그렇고, 돈을 더 잘 벌기 위해 가발이나

성형에 ‘투자’하는 것도 그렇고 말이죠.

장호진 MAAPS (공공미디어 네트워크) 대표

사회학자를 부정하는 사회학자의 소명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면, 나의 문제는, 그러니까 나의 지적인

문제는 언제나 ‘사회학 ’이라는 것을 중심으로 회전해 온

것 같다. 사실 제도가 인정하는 ‘사회학자’ 가 되기 이전에

나는 이미 신념을 갖고 있는 사회학자였다. 사회학의 힘과

가능성을 믿었고 사회학에 열정을 품었으며 사회학이

좋았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헌데 그건 그렇게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말하자면, 내가 사회학자라는 사실을 의심한 적이

없지만, 왠지 현존하는 사회학으로는, 지배적 힘을 발휘하는

현행 사회학의 형식으로는, 제대로 된 사회학자가 되지

못하리라는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사회는 움직이는,

거대하고 무한한, 예민하며 무상한 수수께끼였기 때문이다.

몇 개의 개념이나 도식이나 방법으로는 그것을 이해하지도

설명하지도 포착하지도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두려웠기

때문이다. 취권을 하는 사람처럼, 사회학자 그 자신이

인식의 대상 앞에서, 흔들려줘야, 오염되어줘야, 쓰러져줘야

사회가 스스로를 드러낼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비단

나만의 체험이 아니었을 것이다. 사회학을 공부한 많은

학자들의 왼쪽 가슴은 문학적으로, 예술적으로, 도덕적으로,

정치적으로 뛰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 역시, 사회학이라는

형식에 저항하면서 사회학을 사랑했다. 그것은 어쩌면

사회학 본연의 운명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대승불교의 역설을 닮아 있는 어떤 운명.

『금강경』의 논리를 빌려 말하자면, 사회학은 사회학이

아니기 때문에 사회학이라 불리는 것이다. 사회학의

부처를 만나면, 참된 사회학자는 아니 참된 사회학자가

되고자 시도하는 사회학자는 그를 죽여야 한다. 부처의

상相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부처의 상태 즉, 자유(해탈)

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회학은 사회학의 자기부정이다.

사회학자들에게 특징적으로 발견되는 ‘반골의식’은

부분으로서 학문의 이와 같은 특이성에서 비롯된다. 시를

읽으면서, 완성되자마자 찢어버릴 소설을 쓰면서, 텍스트와

현실을 ‘비평’하면서, 인문학과 생물학 사이 어딘가에서

방황하면서, 도시의 피로와 도시의 비참과, 생명의 모든

목소리와 신음 소리에 자신을 개방하면서 나는 사회학을,

사회학이 아닌 방식으로, 추구하고 있었다. 생각의 변화는

나중에 내가 비로소 ‘선생’이 되면서 일어났다. 선생이

된다는 것은 학생, 제자와 더불어 탐구한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주어야 하는가? 사회학의 실체

없음을? 다양성을? 무한한 자유를? 아니면 방황과 방랑을?

물론, 그러하다. 불가능을 가르칠 수밖에는 없다. 배운 것이

불가능이기 때문에. 그러나 거기에 어떤 ‘새로운 형식’이

있어야만 했다. 방랑하되 새로운 형식을 창조하면서 방랑할

것. 문학과 예술을 통해 사회의 진면목을 간파해 낼 수 있는

통찰력을 기르되, 그것을 ‘새로운 사회학적 형식’으로 포섭할

것. 글쓰기의 중요성을 잊지 않되, 그 글쓰기가 소설가나

평론가의 그것이 아닌 연구자의 그것으로서의 자의식 위에

기초할 것. 사회학과 사회학의 외부를 넘나들되, 그 분열성에

엄격한 윤리를 부여할 것. 즉 사회학자로서 자신의 지적

분열을 막스 베버가 말하는 하나의 소명Beruf으로 삼을 것.

연구자인 동시에 작가일 것.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연구자와 작가 사이에 찢어진 영혼으로 괴로워하는

연구자일 것.

다큐멘터리로 재서술된 도시 빈민의 삶

조은의 <사당동 더하기 22>에서 나는 이런 고민에 대한

하나의 가능한 해답을 읽는다. 사실 조은 사회학의 전체

시스템은 가족, 계급, 여성(젠더)라는 세 축으로 이루어진

실증적 연구성과들의 집적물이다. 2000년대 접어들면서

그러나 조은은 사회학을 통해서 할 수 있는 일의 경계를

실험적으로 넘어서기 시작한다. 2003년에 자전적 소설

『침묵으로 지은 집』을 펴냄으로써, 조은의 사회학은

사회학의 제도적 글쓰기 외부에서 사회학의 제도적

방법으로는 잡히기 어려운,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더욱 더

중요한 어떤 문제를 제기하고, 언급하고, 포착해 내고 있다.

그 문제란 다름 아닌, 인간의 삶이 역사와 사회의 거대한

변동을 어떻게 체험하며 그 체험의 결정력과 싸우는가라는

질문에 집약된다. 『침묵으로 지은 집』의 경우, 가족, 계급,

젠더(여성)의 사회학적 삼각형이 분단을 축으로 하는 한국의

역사와 만나는 ‘현장’이 문학적 ‘풍경’으로 재구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요컨대 조은의 사회학은 ‘현장’에서 시작하여

‘풍경’으로 끝난다. 그 시작점은 사회학(연구)이고, 그

귀결점은 문학(작품)이다. 가히 새로운 사회학의 성공적인

한 시도라 하지 않을 수 없는 성과였다.

몇 년이 더 지나서 조은은 영상의 영역으로 자리를 옮겨,

사회학의 고전적 문제의식으로 충만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여 발표한다. 그것이 <사당동 더하기 22>이다. 이

작품은 2010년 제11회 전주국제영화제에 출품되었고,

여러 기회를 통해 상영됨으로써 사회학계를 넘어선 대중의

호응을 불러일으킨다. 80년대 말에 시도했던 사당동

재개발지역 연구에서 만난 한 가족을 22년 동안 연구하여

만들어낸 이 작품은, 그 시작부터 완성까지 22년의 세월이

소요된 역작이다. 『침묵으로 지은 집』이 기억과 내면에

각인된 사회구조의 힘을 섬세하게 드러내는 작품이라면, 이

작품은 한 도시 빈민 가족의 삶을 조형한 사회구조의 운동을

긴 시간 속에서 추적하고 있다. <사당동 더하기 22>의 가장

중요한 주제는 ‘왜 빈곤은 세대를 이어 되풀이 되는가’ 라는

질문이라 할 수 있겠다.

수수께끼를 이어가는 침묵의 복화술

이 다큐멘터리가 집중적으로 탐구하는 가족은 정금선

할머니(1922~2007), 그의 아들 이수일 씨(1948~ ),

그의 자녀인 영주(1973~ ), 은주(1976~ ), 덕주(1979~ )

모두 다섯 식구로 이루어져 있다. 이 가족의 가난은 정금선

할머니가 월남하면서 시작되었다. 남편 없이 생을 타개해야

하는 절박한 생존의 시련은 할머니의 아들 이수일 씨에게

고스란히 이전된다. 이수일 씨의 삶은 전형적인 도시

빈민의 궤적을 따라 형성된다. 직업적으로 숙련이 필요하지

않은 다양한 노무직을 전전하고, 결혼 생활에서 실패하여

재혼하지만 다시 한 번 상처를 입게 된다. 이수일 씨의

세 자녀들의 삶은 할머니나 아버지의 그것보다 물론 더

물질적으로 개선된 것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영주 씨는 직업적 미래가 불투명하며,

필리핀 아내와 결혼을 한다. 은주 씨의 결혼생활은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으며, 덕주 씨는 많은 방황 끝에 작은 헬스클럽을

운영하고 있지만, 그에게 삶은 이미 가난에 의해 규정된

것으로서 인식되고 있다. 조은의 카메라가 침묵 속에서

탐색하고 있는 것은 가난이 반복되는 이 현상의 배후에

존재하는 어떤 원인이다.

무엇이 가난의 재생산을 만들어내는가? 그들이 삶을

영위하는 기본적 공간은 어떻게 변화해갔는가? 달동네에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빈곤 속에 있는 사람들은 무엇을

꿈꾸고 있는가? 무엇을 희망하는가? 그들은 어떻게

스스로의 고통을 극복하는가? 어떻게 사랑하는가? 어떻게

살아가는가? 조은의 카메라는 침묵을 유지한다. 쉬운

해답으로 관객을 유도하는 대신 기다린다. 22년 동안을

묻고, 인사하고, 대화하고, 되돌아온다. 카메라는 켜지고,

꺼질 뿐이다. 그 사이 민주화와 정권교체와 IMF 외환위기와

월드컵과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 있었다. 한국사회는

22년 동안 참으로 많은 변화를 체험했다. 그 변화들이

어떻게 이 가족의 삶에 영향을 주었을까? 카메라는

비추어준다. 사당동 달동네에서 유년을 보낸 세 아이들이

성장하여 어른이 되는 과정을, 어른이 되어 다시 자신들의

아이들을 낳고 기르는 과정을, 정금선 할머니가 늙어 운명을

다하는 순간을 보여준다. 빈곤은 빈곤한 사람들과의 끊을

수 없는 밀착된 일체성으로부터 분리되어 관객들의 사고

대상으로 나타난다. 해답이 아니라 질문들이 생산된다.

질문들은 생각을 촉발한다. 이런 점에서 또한 흥미로운

것은, 조은 감독은 여러 차례 자신이 규정하는 카메라 속에

피사체로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조은은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듣는다. ‘나’라는 주어로서 영화의 내레이션의

주체로 등장한다. 이때 감독은 현실을 객관적으로 탐구해

들어가는 연구자 고유의 주체성을 포기한 듯이 보인다.

관찰자가 관찰되고 있다. 관찰자가 대상에 개입하여, 대상을

변화시킬지도 모르는 어떤 행위 속에서 도리어 관찰되고

있다. 관찰자가 관찰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관찰되는 존재의 계급성이 관찰하는 존재의 계급성과

충돌하는 지점이 관찰되고 있다는 것이다. 중산층 인텔리

연구자의 몸과 언어와 취향과 의식이 도시 빈민들의 그것과

만나는 순간들이 노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섞일 수 없는 것’

이 접촉하는 순간들이 포착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당동

더하기 22>는 이런 점에서 지독하게 성찰적이다. 영화는

묻는 자를 묻고 있고, 연구하는 자를 연구하며, 성찰하는

자를 성찰한다. 이 영화는 한편으로는 빈곤의 정체를

묻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학자를 사회학적으로

객관화하고 있다. 사회학적 연구가 무엇을 하는 행위인가를

묻고 있다. 이런 물음과 연구와 성찰이 없었다면 일방적으로

연구자의 담론에 의해 구성되었을 관찰 대상들이,

이 성찰공간 속에서 도리어 수동적 객체성을 뚫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발언한다. 그들은 말하기 어려운 과거사를 서슴지

않고 털어놓으며 (특히 정금선 할머니의 경우), 자신들의

빈곤이 운명처럼 ‘돌고 또 돌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음을 토로하기도 한다. 그들의 비밀도, 곤란도, 기쁨도

그들의 입으로부터 발설된다. 화면 속의 구중중한 빈곤

가정의 살림살이 전체가 침묵 속에 커다란 입을 열어 말하고

있다. 영화 중간에 흘러나오는 싸구려 유행가가 그들의 미적

취향을 토설하고 있다. 공간의 구조, 공간의 짜임, 공간의

소품들, 공간의 때와 먼지, 이미지들 전체, 모든 디테일들이

말한다. 카메라의 침묵은 이들의 말을 이끌어내기 위한

방법적 침묵이다. 요컨대 <사당동 더하기 22>를 통해서

우리가 도시 빈민을 보는 것이 아니라, 도시 빈민이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 다큐멘터리의 최종 발언자는

모호한 상태로 남는다.

감독이 대상으로부터 획득한 진실 혹은 사실을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감독의 그런 연구를 하나의 기회로

활용하면서 그 가족이 말하는 것인가? 어떻게 보아도

좋겠다. 규정적 해답은 불가능하다. 양자의 복화술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사회적 현실은 어쩌면 그런 것이다. 앞서의

표현을 다시 가져오면, 그것은 “움직이는, 거대하고 무한한,

예민하며 무상한 수수께끼”이다.

김홍중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현장의 목소리를 이끌어내기 위한

방법적 침묵

1990년대 후반 사당동 재개발지역에 거주하던 주민 중 조은 교수가 직접 기록한 심층 조사대상 가족 목록

부제: “가난에 대한 스물다섯 해의 기록”

(도서출판 또하나의 문화, 2012) 이 책은 한국

근대화, 신자유주의 세계화 과정에서 재생산되고

있는 도시빈민 가족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빈곤을 겪어 보지 않은 사회학자가 연구 대상일

뿐이던 한 빈곤 가족을 4세대에 걸쳐 지속적으로

만나는 과정에서 빈곤을 연구한다는 것이 지니는

의미를 자문하는 작업으로, 25년간 가난이라는

‘현실의 재현’과 ‘두꺼운 기술’을 구체적으로

고민하고 실험한 궤적을 보여 주는 문화기술지다.

여기엔 “한국 사회의 가난을 들여다보는

사회학자의 입장, 연구 과정의 변화, 연구자와

연구 대상 간의 관계와 움직임, 그리고 연구자의

자기 성찰 지점”이 담겨 있다. (출판사 서평 중)

17December 2012. Vol.4 Architecture Newspaper

Page 18: 건축신문 vol. 4. PDF 다운로드

2013 정림학생건축상, ‘일상의 건축:

삶과 공간의 관계 회복을 위한 건축’

의 주제설명회가 11월 3일 정림건축

정림홀에서 열렸다. 심사위원 (건축가

유걸, 김정임, 신승현) 과 멘토 (문화

인류학 교수 조한혜정) 는 이번

설명회를 통해 공모전을 수행하며

“생활과 직결”된 건축 과정을 직접

체득해보는 기회가 되기를 바랬다. 또한

조한혜정 교수는 “누가 둘러 앉는가?

왜 마을인가? ”라는 주제로 공동작업의

의의에 대해 강의했다. 이날의 내용과

청중의 질의응답은 공모전 전용

홈페이지 내 블로그에서 전문을 열람할

수 있다. http://www.junglimaward.com

정림학생건축상

심사위원과 멘토의 주제설명회 및 연계 포럼 개최

포럼앤포럼

건축의 일상성, 일상성의 건축

올해의 마지막 포럼앤포럼은

정림학생건축상의 키워드인 ‘일상’을

심화하는 취지에서 ‘건축의 일상성,

일상성의 건축’ 이라는 주제로 연사를

초청했다. 먼저 건축에서는 동네의

소소한 일상을 관찰하고 주민들과 일상

언어로 소통하는 신아키텍츠의 신호섭과

신경미 건축가를 초청했고, 디자인에서는

『인터페이스 연대기: 인간, 디자인,

테크놀로지』 , 『콘크리트 유토피아』 등을

통해 시각 디자인 일반과 도시 주거

디자인과 삶의 연계성을 연구하는 디자인

연구자 박해천을, 마지막으로 예술에서는

커뮤니티와 생활 속에서 예술의 지점을

발견하고 실천하는 <무늬만 커뮤니티>

디렉터이자 계원예술대 겸임교수인

김월식 아트디렉터의 실제 프로젝트들을

사례로, 예술/디자인/건축이 일상에

어떻게 침투하여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나는지 살펴보았다.

2012. 12. 14. Vol. 4

2012년 4월 창간

등록번호: 종로 바 00136

ISSN: 2287 - 2620

발행처: 정림건축문화재단

발행인: 김형국

취재 및 편집: 박성태, 이경희, 임국화

디자인: studio fnt 이재민, 조형석, 임은지

주소: 110-776, 서울시 종로구 경운동 89-4 에스케이허브 102-625

홈페이지: www.junglimfoundation.org / 이메일: [email protected]

트위터: @junglimfd / 페이스북: www.facebook.com/junglimfoundation1/

전화: 070-4365-7816 / 팩스: 02-737-7732 / 광고문의: 070-4365-7818

인쇄: 청산인쇄

저작권자가 표시되어 있지 않은 사진, 글, 그림 등의 저작권은 정림건축문화재단에서 발행하는

건축신문Architecture Newspaper에 있으며 사전 동의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Copyright ⓒ 2012 Architecture Newspaper. All Right Reserved

무료배포를 원하시는 곳은 아래의 메일로

공간에 대한 간략한 성격 및 소개와 연락처를 남겨주시면

검토 후 배포해 드립니다.

[email protected]

아르코미술관, 정림건축문화재단,

K12건축학교가 공동주최한

어린이건축학교가 2012년 한 해 동안 총

4회의 정규과정과 1회의 소외계층 대상

교육과정을 끝으로 지난 12월 1일 마무리

되었다. ‘ 내가 살고 싶은 집 ’과 ‘ 내가

살고 싶은 도시 ’ 라는 주제로 진행된 본

어린이 교육은, 세 기관의 협력으로 관련

교육을 꾸준하게 진행했다는 점과 실제로

참가한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그간의 교육 효과 및 성과를 공유하고

더 나은 프로그램의 초석을 다지기 위해

2013년 상반기에는 관련 자료집을

출간할 예정이다. 본 자료집에는 각

프로그램 소개 및 참여자들의 리뷰는

물론, 국내외 건축교육 분석 및 전문가

칼럼을 통해 건축교육이 갖는 가능성과

필요성을 역설하고자 한다. 뿐만 아니라

2012년의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한층

나아진 앞으로의 건축학교의 방향을

제시할 예정이다.

2013년의 건축학교는 그 대상을

초등학교 어린이에서 중학생으로도

확대해 건축교육을 다양한 관점과

연령에서 접근하고 건축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며, 또한 소외계층을 위한

교육도 확대할 예정이다.

어린이건축학교

새로운 건축교육을 준비하며

건축신문 무료배포처

강원 원주시 카페베레 (Cafe Beret)

경기 안산시 경기창작센터

경기 안양시 보충대리공간 스톤앤워터

경기 의왕시 갤러리27

경기 안산시 DOBA

경기 파주시 북카페 눈

대전 중구 네스트791

부산 금정구 샵메이커즈

부산 기장군 오픈스페이스배

부산 수영구 인디고서원

부산 연제구 프롬더북스

서울 종로구 MMMG (안국)

서울 종로구 더북스 (아트선재 1층)

서울 용산구 루프 (RUFXXX)

서울 종로구 아르코미술관 아카이브

서울 용산구 테이크아웃드로잉

서울 종로구 가가린

서울 금천구 금천예술공장

서울 마포구 대안영상문화발전소 아이공

서울 마포구 더북소사이어티

서울 마포구 땡스북스

서울 종로구 레드북스

서울 종로구 문지문화원 사이

서울 마포구 아카이브 안녕

서울 종로구 아트센터나비 아카이브

서울 용산구 워크스

서울 마포구 유어마인드

서울 종로구 이음책방

서울 마포구 제비다방

서울 서대문구 옐로우다쿠안

서울 종로구 아트스페이스풀

서울 종로구 토탈미술관

서울 성북구 PIKA COFFEE

인천 동구 스페이스빔

인천 중구 인천아트플랫폼

전남 순천시 예술공간 돈키호테

어린이건축학교와 함께 일반인을

대상으로 건축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는 ‘건축가와 함께하는 토요일

11시’는 첫 번째 프로그램의 긍정적인

평가에 힘입어 11, 12월에 걸쳐 두 번째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모두 5주로

구성된 이번 시간에서, 건축가 황두진은

그간의 삶과 프로젝트들을 돌아보며

‘건축가로서 사는 것’에 솔직한 이야기를

관객과 나누었으며, 건축가 문훈은

그림에서 출발한 다양한 프로젝트들을

통한 놀이와 건축의 관계, 그리고

건축과 그림간에 끊임없이 발생하는

에너지를 어떻게 구체화하는지 소개했다.

건축가 양수인은 그가 수행하는 다양한

프로젝트의 근간이 서비스업이라는

자세에서 출발해, 클라이언트와의

문제해결을 충실하게 풀어가는 과정을

소개했다. 그리고 건축의 스펙트럼을

넓히고자 초청한 조경가 김아연은 조경이

공간환경을 다루는 다른 분야와 공유하는

공통점은 무엇이며, 조경 디자인만의

차별화된 특성은 무엇인지 논하였다.

마지막으로 부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건축가 윤재민은 현대 사회의 가속화가

가져온 ‘ 일상의 무감각화 ’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가지고 설계 및 실제 프로젝트에서

마주치는 예측 불가한 제약과 변수라는

퍼즐들을 어떻게 맞추어왔는지

이야기하였다.

일반인건축학교

건축가와 함께하는 토요일 11시

배포처인 헌책방 가가린Gagarin, 서울 종로구 창성동

아르코미술관 2층에서의 수업 전경, Lifethis 삶것의 양수인 소장

18 December 2012. Vol.4 Architecture Newspaper

정림학생건축상의 주제설명을 듣기 위해 모인 청중들, 2012. 11. 3

심사위원과 멘토의 주제설명회 사전미팅 모습, 2012. 10.18

시간과 공간 모두에서 건축을 하는

사람이 사회와 유리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맨 처음 새롭게 시작하는

정림학생건축상의 주제 선정을 위해

처음 이야기 할 때 우리가 문제로

삼을 것도 구체적인 현실 속의

문제를 발견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가치 있게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상을 대상, 최우수상, 우수상 등으로

나누지 않는 이유도, 건축에서 가치

있는 생각은 있을 수 있지만 1등은

없기 때문입니다. - 유걸

아이들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만날 줄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제가

수업에서 강조하는 것은 친구들끼리

싸우지 말고 적어도 서로 할 이야기

하나를 건지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팀으로 하는 것이 굉장히

좋은 것 같습니다. - 조한혜정

사람이 빠진 건축은 없죠. 그런데

학교에서는 주인 없는 작업을 많이

합니다. (중략) 학생들이 건축주와의

인터뷰를 거쳐 구체적인 디자인

프로세스와 결과물을 보여주었으면

합니다. 이것이 이번 건축상의 가장

중요한 점이 아닐까 합니다. - 김정임

사실은 좋은 시점에서 작가주의나

자신의 작업상에서 ‘건축가’라는 말이

나오는 것인데, 그 때에 매력적인

작업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건물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 신승현

건축과를 나오면 모두들 설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공모전의)

이러한 프로세스를 거치면 모두

다양한 것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유독 한국의 건축과만 프로덕션으로

업무가 한정된 경향이 있습니다.

- 박성태

Page 19: 건축신문 vol. 4. PDF 다운로드

©25hr

saili

ng

Page 20: 건축신문 vol. 4. PDF 다운로드

20 December 2012. Vol.4 Architecture Newspap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