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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 부부 선교사 보고서 서울 성전 2009 년 10 월 5 일부터 2011 년 4 월 14 일까지 봉사함 박정빈 형제 박영미 자매 Email :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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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 부부 선교사 보고서

서울 성전

2009 년 10 월 5 일부터 2011 년 4 월 14 일까지 봉사함

박정빈 형제

박영미 자매

Email :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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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년 8 월 27 일 교회 본부로부터 선교사

부름 장을 받음.

2009 년 9 월 27 일 스테이크

회장단으로부터 선교사 성별을 받음.

2009 년 10 월 5 일 서울 성전 선교사

숙소에 들어옴

선교사 부름 장

2009 년 10 월 20 일 성전 선교사로서 첫 임무를 시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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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 선교사들과 성전 직원들

성전봉사를 통해서 얻은 간증

1)성전 의식 봉사는 선교사업이다.

성전에서 선교사로 봉사를 시작 하면서 조금 이해 하기 힘들었던 일은 교회

본부에서 내게 지시한 선교사의 임무와 성전에서 부여 받은 선교사의 임무가

다르다는 것이었다.

부름 장은 복음을 전해야 하는 임무가 적혀 있었으나 정작 성전에서 해야 할 일은

돌아가신 분들을 위한 대리 의식과 산 자를 위한

성전의식을 도와 주는 일 곧 성전 의식 봉사자와

다를 바 없는 일이었다. 이를 고민하던 중 성전에서

행하는 모든 일들이 바로 선교 사업이라는 영의

느낌을 받게 되었다. 나는 이 영적인 느낌을 받은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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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소 교회의 모든 부름이 바로 선교사의 부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으며 교리와

성약 31 장 5 절 곧 “그러므로 네 온 영혼을 다하여 낫을 휘두르라 그리 하면 네 죄가

사함 받고 네 등에 곡식 단을 지게 되리라 이는 일꾼이 자기의 삯을 받음이

합당함이니 그런즉 네 가족이 살리라” 는 약속이 교회의 모든 부름에 대한 약속임을

알게 되었다.

선교사업이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선교사의 부름을 보면 알 수 있다. 왜냐 하면

선교사가 하는 일은 무슨 일이든 선교사업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선교사는

복음을 전하는 복음 선교사외에 복지, 노동, 미술, 계보, 성전봉사, 지부장, 건축 등

교회의 모든 일에 부름을 받는다. 그러므로 교회의 모든 부름은 바로 선교사업이라

할 수 있으며 이를 수행하는 교회의 모든 회원 역시 선교사의 일을 수행한다고 할 수

있다. .

2) 제단 (Altar)

구약의 제단은 무엇이었으며 오늘날 성전에 있는 제단은 무엇인가

성전에 참석하기 시작한 이래로 오늘날 성전에 왜 제단이라 부르는 단이 있는지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었다.

그러나 선교사가 되어 매일 성전의식을 성전 제단 앞에서

행하는 동안 하나님께서 아담과 이브에게 명하신 제사 의식이

오늘날 성전에서 구원의식으로 재현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제단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쓰이는 단을 말한다.

구약시대에서 제단은 돌이나 흙으로 만들었으며 동물을

잡아서 그 위에서 죽이거나 불로 태워 하나님께 바쳤다.

그런데 오늘날 성전에도 제단으로 부르는 것이 있으며 이 앞에서 인간의 영혼을

구하는 구원의식을 행하고 있다 이는 무엇을 의미 하는가 이는 하나님께 바치는

제사 의식에서 바쳐졌던 동물의 희생은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더 이상 필요 없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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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자 인간의 구원의식이 동물 대신 하나님께 바쳐지고 있음을 의미 한다. (모세서

5 장 6-7 절 : 너는 어찌하여 주께 희생을 드리느냐 ?

……이 일은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독생자의 희생하실 모형이니라 )

이 같은 사실은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상식일지

모르지만 시드니 성전에서 성전 봉사자로서 6 년간을 일했고 20 년이 넘도록 성전을

다녔으면서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구약에서의 제사 의식은 죄의 용서와 하나님의 축복을 기원하는 의식이었으며 이

의식을 통해 하나님은 인간의 죄를 용서하고 축복을 약속하셨다.

(출애굽기 20 장 24 절 : “너는 땅의 제단을 만들어서 그 위에 너의 양들과 너의

소들로 번제와 화목제물을 바치라 내가 나의 이름을 기억하는 모든 곳에서 네게

내려와 너에게 복을 주리라.” 레위기 5 장 6 절: “양떼에서 암컷으로 어린양이나 염소

새끼를 속죄 제물로 드릴지니 제사장은 그의 죄에 관해 그를 위하여 속죄 할지니라.”

오늘날 성전의 제단 앞에서 행해지는 구원 의식 역시 죄의 용서와 축복이 약속되어

있다. 교리와 성약 31 편 5 절 : “네 영혼을 다하여 낫을 휘두르라 .그리하면 네 죄가

사함 받고 네 등에 곡식 단을 지게 되리라 .일꾼이 삯을 받음이 합당함이니 그런즉

네 가족이 살리라.”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도 옛 신앙의 선조들처럼 제단을 통해 하나님께 사랑과 감사를

직접 전할 수도 있고 또 죄의 용서를 빌 수도 있어 하나님께 말로써 드리는 기도와는

다른 차원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3) 기도의 집

왜 우리는 성전을 기도의 집이라 부르는가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기도의 집은 글자 그대로 기도 만을 할

수 있는 집으로서 금식과 기도 그리고 찬송 만을 위해 지어진

집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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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성전은 기도보다 의식을 목적으로 지어진 집이다. 의식이 끝난 후 잠시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이 있으나 그곳에서는 소리 내어 기도하거나 무릎을 꿇고

기도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성전을 기도의 집이라 부르는 것일까?

이사야서 58 장에 보면. “ 우리가 금식하되 주께서 보지 아니하심은 어쩜이오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주께서 알아 주지 않으심은 어쩜이나이까 “ 하며

사람들이 불평을 하자. 하나님은 “ 나의 기뻐 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한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누어 주며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라고 답하심으로 선한 일에 참여 하는 그 자체가 금식 곧 기도임을 말씀하셨다.

죠셉 에프 스미스 회장님께서는 성전에서 우리가 하는 일을 이렇게

말씀 하셨다. “ 우리가 그들을 위해 수고 할 때 그들을 속박하는

사슬이 풀리고, 그들을 뒤덮는 암흑이 깨끗이 사라져 그들에게 빛이

드리울 것입니다” (Teachings of Presidents of the Church: Joseph F.

Smith (1998), 247)

그러므로 성전을 기도의 집이라 하는 것은 사람에게 불멸과 영생을 주고자 하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곳이기 때문이며 그곳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간절한 기도는

마음과 정성을 다해 성전의식을 받는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4)마음을 돌이키다.

“그가 아비들의 마음을 자식들에게로, 자식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들에게 돌이켜,

내가 와서 땅을 저주로 치지 않게 하리라.” (말라기 4 장 6 절))

무엇이 조상과 후손의 마음을 돌이키는 일인가?

조상과 후손 관계의 시작은 부모와 자식관계다. 자식의

마음을 부모에게 돌이키고 부모의 마음이 자식에게

돌이킨다 함은 가족간의 사랑을 회복시킨다는 말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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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조상에 대한 후손의 효(孝道)를 그리고 후손에 대한 조상의 사랑을 회복한다는

말이다.

우린 부모님께 갚지 못할 큰 사랑의 빚을 지고 있으며 그

빚은 우리 부모의 부모에게 연결되어 조상에 이르게 된다.

우리가 어떻게 그분들에게 우리의 사랑과 감사를 보여

드릴 수 있겠는가? 우리가 그분들을 위해 구원의식을

대신해 준다면 그것은 우리의 사랑과 감사함을 그분들에게 전하는 일이며

그분들에게는 이 일이 후손들로부터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로 여겨지게 될

것이다.

5)잊혀진 이름을 다시 부름.

이 땅에서 살 동안 태어나면서부터 수 없이 불려지던

사람들의 이름은 이 땅을 떠나는 순간부터 잊혀지기

마련이다. 더욱이 수 십 년 수 백 년이 지나게 되면 특별히

뛰어난 업적을 남긴 사람들 외에는 아무도 그 이름들을

기억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지금 성전에서는 그

잊혀진 이름들을 성전 의식을 위해 다시 부르고 있다.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닌, 아주

여러 차례에 걸쳐 불려지며, 그분들을 찾기 위한 계보 사업을 포함하면 훨씬 더 많은

횟수로 불리어 진다.

성전 의식을 행하던 한 자매 선교사는 자신의 잊혀진 이름이 다시 거론되는 것을

기뻐할 조상들을 생각하고 이분들을 기억하게 하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에 감동되어

의식 도중 주저 앉아 많은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이는 이사야 서 49 장 15-16 절

“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어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그들의 어미는) 혹시 잊을 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요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일이라 할 수 있다.

6)한 사람을 돕는 것은 그 사람이 속한 부족 전체를 돕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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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성전에서 모르는 사람의 조상을 구원하는 일은 그 조상이 속한 계보의 모든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일이 됨을 알았다.

하루는 성전 데스크를 지키면서 한 자매님이 데스크를 지나는 한

젊은 형제를 따라가며 연신 고개 숙여 감사하는 모습을 보았다.

내가 그 이유를 물으니 그녀는 차 사고로 세상을 떠난 시동생을

대리 침례 한 사람이어서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고 했다. 난 그

자매님의 말을 들으며 실로 작은 성전에서 전 인류를 사랑의 끈으로 묶는 거대한

일이 일어 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 자매가 그 형제에게 감사 한다면

분명 그녀의 남편 곧 죽은 사람의 형님은 물론이고 그녀와 그녀의 남편이 속한

가계의 모든 사람들도 그 형제에게 감사를 할 것이 아닌가. 그리고 이러한 관계는

혈족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모든 자녀로 나아 갈 것이니 결국은 전 인류를 서로

사랑의 빚을 주고 받는 관계로 묶게 할 것이다.

7) 제 11 시

마태 복음 20 장에 일꾼을 찾는 포도원 주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른 아침부터 일꾼을 찾아 포도원에

보내던 포도원 주인은 하루 종일 불러 주는 사람이

없어 기다리고만 있는 사람을 제 11 시 곧 일이 끝나기

1 시간 전에 불러서 포도원에 보낸다. 그리고 셈을

계산할 때 이른 새벽부터 일하던 사람과 같은 임금을 지불한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성전에서 일하던 어느 날 하루는 갑자기 이 비유가 마음에 깊은 감동으로

다가와 많은 눈물을 쏟게 했다. 하루 종일 일거리를 찾아 헤맸으나 일거리를 찾지

못해 낙담하고 있는 사람을 하루 일이 마감되기 불과 한 시간을 남겨두고 그를

불러서 일을 시키고 하루 종일 일한 다른 사람과 같은 임금을 받게 하는 일이 바로

성전 봉사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같은 임금을 받게 된 것은

주인의 선함 때문이었다. 그러나 마지막 한 시간을 일을 한 일꾼은 과연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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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한 시간 동안 하는 일만큼 만 했을 까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같은 한

시간이라도 다른 사람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어부가 그물을 던져 한꺼번에 많은 물고기들을 잡듯이 성전의 하루는 실로 많은

영혼을 구원할 수 있는 시간이다. 전임 선교사가 수십

년을 수고해서 침례를 줄 수 있는 사람들의 숫자가

성전에서는 단 며칠 만에 달성된다. 내가 아는 한

자매는 1 년 반 동안 무려 3000 명을 위한 대리 침례를

받았는데 침례가 산 자가 받거나 죽은 자가 받거나 같은 권능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구원의식이 분명하다면 그녀는 전임선교사 두 사람이 수 십 년 아니 수 백 년 동안

할 일을 불과 1 년 반 동안 한 셈이니 어찌 놀라운 일이 아닌가?

그러므로 성전은 자신과 자신의 가족의 구원에

자신감을 갖지 못 하는 사람들 곧 침례는

받았으나 교회 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한 사람들과

최근에 개종을 해서 복음 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마지막 한 시간을 제공하는

하나님의 포도원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나와 내 아내는 25 년 이상을 외국에서 살았기 때문에 그 동안 한국 사람들을 위해

봉사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없었다. 그래서 한국 성전은 마지막 한 시간 전 곧

11 시에 우리를 일꾼으로 받아들인 하나님의 포도원이었다.

8)죽음을 극복함

죽음을 극복한 사람이 있는가? 죽음이 두렵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성전 봉사자들 가운데는 성전에서 봉사 하다가 그대로

세상을 떠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소망을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이유는 성전 봉사야 말로 자신들의 생애에서

가장 보람된 일이라고 믿기 때문이요 성전은 날마다 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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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위해 일하는 곳이기 때문에 영의 세계에 대한 친근함이 있기 때문이다.

요한 복음 11 장 25 절에서 26 절에 “ 예수께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다시 살 것이며 또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누구나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신 내용이 나온다.

그러나 누가 죽지 않고 산 사람이 있는가? 물론 성경에는 하늘로 올라간 에녹의

도시 사람들과 불 마차를 타고 하늘로 올라간 엘리야, 그리고 사도 요한과 몰몬경의

세 제자들은 죽음을 겪지 않았다고 되어 있다. 그렇지만 그들이 몇 명인가 대부분의

성도들은 죽음을 피하지 못한다. 아니 성도들뿐만 아니라 예수님 본인도 죽음을

피하지 못하고 돌아 가셨다.

그런데 교리와 성약에는 죽지 않는 다는 표현 대신 죽음을 맛보지 않는다. 란

표현이 있다. 교리와 성약 42 편 46 절에는 “내 안에서 죽은 자들은 죽음을 맛보지

아니 하리니 이는 죽음이 그들에게 달 것 임이니라” 하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한다. 왜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일까?

죽음의 고통이 크기 때문인가? 물론 그것도 한 이유일 수 있다. 그러나 주된 이유는

죽음의 뜻을 모르고 또 죽음 이후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를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전에서 봉사 하는 사람들은 죽음의 뜻도 알고 죽음 이후에 다가올 일이

무엇인지를 안다. 그것은 성전 일이 바로 죽은 사람들을 위해서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예수님과 우리가 베푼 구원의식을 받은 많은 조상들이

우리를 환영해 주리라는 기대감도 있다.

그러므로 죽음이 쓰지 않고 달게 느껴지는 사람은 이미 죽음을 극복한 사람들이라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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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말씀

안녕 하십니까?

저는 21년 전 호주로 이민을 가서 살다가 이번에 성전 선교사로 나온

박영미 자매입니다.

제가 이렇게 여러분들 앞에 성전 선교사로 설 수 있도록, 축복해 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말씀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감독단

여러분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은 성전 선교사로 방문을 온 것임으로 제 개인적인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 성전에 대한 말씀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신약 성경에, 우리가 하고 있는 성전 의식을, 이해 할 수 있는, 좋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5장에, 예루살렘에 있는, 베데스다라고 불리는, 한 신기한 연못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연못은 하늘의 천사가 가끔 내려와, 연못 물을 움직이게

만드는데, 어떤 병을 가진 사람이든, 그 물이 움직일 때 들어가면, 병이 낫게 되는

신기한 연못입니다.

그래서 많은 병자들이, 그 연못주위에서 물이 움직일 때를 기다리다, 물이 움직이면

재빨리 들어가 병을 치료합니다. 그런데 한 병자는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물이

움직이는 것을 뻔히 들여다보고도, 들어 갈 수 없어, 그곳에서

기다리고만 있었습니다. 성경에는 병이 든지 38년이란 말은

나왔지만, 얼마나 기다렸다는 말이 없습니다. 아마도 많은 세월을

기다리지 않았나 생각 합니다.

예수님이 그곳에 들려, 그 병자에게 다가 가서 ‘ 병을 낫기를

바라는가라고 묻자 병자는 대답합니다.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분명 누군가 움직이지 못하는 그 병자를, 그곳 연못에 까지 데려다 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병자는 물이 움직일 때, 그 물에 들어가야 병이 나을 수

있는데,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 안타깝게도, 그 병자는,

자신을 앞서가서, 병을 고치는 사람들을 쳐다보고만 있었던

것입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운 시간 이었겠습니까

움직이지 못하는 병자를, 연못까지 데려다 주는 일은 영의 세계에서

복음을 전하는 일과, 지상에서의 계보 사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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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병든 사람을 연못까지, 데려다 준 것만으로 치유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아직 고통스러운, 영의 옥, 상태를 벗어난 상태가 아닙니다. 그를 치유 할 수 있는

연못으로 넣어주는 일, 곧 그를 고통스러운 영의 옥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주는 일은

성전에서 행해지는 모든 대리 의식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전 의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하는 것은, 우리의 희생과 봉사가 아니면, 몸이

없는 분들은 아무 것도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성전에서 의식을 기다리는 분들은

오래 전에 돌아가신 분들이므로 그 분들은 우리가 성전으로 가는 발자국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일로, 수십 년에서 수백 년을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성전에서, 돌아가신 분들을 위해서, 행한 의식을, 영의 세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받아들이지 않는 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왜냐 하면, 복음을 받아들이고, 안 받아 들이고를,

결정하는 인간의 자유 의지는, 이 세상에서나, 영의 세계

에서나, 똑같이 행사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성전의식을 거절하는 죽은 사람들을 위한

우리의 수고는, 의미가 없는 것일까요?

우리는 과연 그분들을 위해 헛수고를 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에 대해 선지자이신 “토마스 에스 몬슨” 회장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대부분의 우리는, 누구를 위해 그 의식을 행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감사를

바라지도 않고, 우리가 행하는 의식을, 그분들이 받아들일지, 확신

하지도 못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봉사하며, 그 과정에서 다른 여타

노력으로는 얻을 수 없는 것을 얻습니다. 말 그대로 우리는 시온 산의,

구세주들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구주께서 우리를 위해 희생하셨듯이,

이 지상에 있는 우리에 의해, 뭔가가 행해 지지 않는 한, 결코 앞으로

전진 할 수 없는 분들을 위해, 성전에서 대리 의식을 행할 때, 우리도

(구세주)와 똑같은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골든 비 힝클리” 회장님도 이와 비슷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죽은 자를 위한 대리 성전 사업보다 구세주의 대리 희생에, 더 가까이

나아가게 하는 일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그분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십자가의 고통을 감수 하셨듯이 우리는 감히

그분의 희생에 견줄 수는 없지만, 적어도 우리가 행한 의식을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서도, 우리가 희생함으로써, 구세주와

같은 일을 하는 것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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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어려운 사람을 사랑하고 돕는 일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고 돕는 일이라 하였습니다.

35절부터 46절에 예수님께서 한 비유를 들어 하신 말씀이 나오는데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 하였고

……하니.

그 때 의인들이 묻기를 주여! 우리가 언제 그렇게 하였나이까 하니, 너희가 여기 네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바로 나에게 한 것이니라.” 라고 말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저는 돌아가신 분들이, 복음을 받아 들였든 안 받아 들였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분명 이렇게 말씀을 하시리라 생각 합니다.

내가 육체가 없어, 구원에 필요한 의식을 받지 못해, 고통스러운 영의 옥에서 벗어 날

수 없었을 때, 너희는 시간을 내고 정성을 다해, 나를 그곳에서 벗어나 영생을 얻게

하였느니라

바로 이런 이유로, 우리는 대리 의식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기쁨과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이러한 간증이 우리를 계속해서 성전을 찾게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저는 이 교회가 참되며, 성전에서 우리가 받은 모든

축복이,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습니다.

저와 저의 형제님은, 1984년 저희들의 생활이 가장 어려울 때, 불과 1년 후면 이

한국에 성전이 세워 진다는 소식을 들었으면서도, 그 시간을

기다릴 수 없어, 우리가 가진 모든 돈을 들여서, 하와이에 가서

부부 인봉을 받았습니다.

그 때 우리를 감동시켜, 하와이까지 가서 부부인봉을 받게 한,

경전 구절은 교리와 성약 132편 19절의 내용이었습니다.

요약을 해서 읽겠습니다.

그리고 또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어느 남자가 나의 말 곧 율법으로

말미암아 그리고 새롭고도 영원한 성약으로 말미암아 아내를 맞이하고 그것이 내가

지명하여 이 권능과 이 신권의 열쇠를 지니게 한 기름 부은 자로 말미암아 약속의

성령에 의해 그들에게 인봉되면 ...그 때 그들은 신이 되리니 이는 그들이 모든 권능을

가졌고 또 천사들이 그들에게 복종함이라

이 축복이, 사실로 이루어진다면, 얼마나 큰 축복이며, 얼마나 위대한 일이 우리에게

약속 되어 있습니까? 저는 이 축복의 말씀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으며, 이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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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인생을 걸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간증으로 전합니다.

저는 이 교회가 참되며,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성전을, 우리 생활의 중심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을, 저의 간증으로 전해드립니다

모든 것을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말씀 드립니다 아멘

영적인 말씀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성전에 관해 말씀드릴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감독단과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성전이 우리 성도들의 생활에 얼마나 중요한가는

역사적으로 성전이 지어진 시기와 환경을 살펴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성경에서 처음 성전이 언급되고 지어진 시기는

출애굽기 때입니다. 당시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집트에서

그야말로 천신 만고 끝에 무사히 탈출했으나 아직 정착지를

정하지 못하고 광야에서 떠도는 시기였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가장 좋은 재료를 써서 성전을 지으라는 명령을 하십니다. (출애굽기;. 25 장

8 절) 물론 그때는 정착지를 찾지 못한 시기라 고정된 건물은 아니고 언제든 움직일 수

있는 장막성전이었지만 성도들이 이 무겁고 거대한 성전을 이리 저리 옮기며 광야

생활을 했다는 것은 참으로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현대에 와서도 성전이 지어진 시기는 성도들이 가장 힘든 생활을 하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그때 세워진 성전은 커틀랜드 성전이었는데

해롯 성전이 AD 70 년에 로마군 티투스 장군 ( 후에 로마

황제가 됨)에 의해 파괴된 후 대략 1800 년 (1766 년) 후

1836 년에 세워진 현대의 첫 성전이었습니다. 성도들은

폭도들의 위협 속에 낮에는 힘들게 노동하고 또 밤에는

폭도들의 공격을 대비해 경비를 서야 하는 힘든 상황이 3 년동안이니 지속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완성이 되었는데 성전이 완성된 후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을 크게

축복하셔서 많은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할 수 없는 놀랍도록 특별한 영적인 경험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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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었습니다. 일부 성도들은 구세주를 보았다고 증언 했으며 어떤 성도는

천사들이 성전 안에 가득 찬 것을 보았으며 그리고 어떤 성도는 천사들이 성전 지붕

위에서 맴돌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증언 하였습니다. (교회사 167 페이지)

그리고 이때 죠셉 스미스와 올리버 카우드리는 예수그리스도의

방문을 받았으며 “내 백성이 나의 계명을 지키고 이 거룩한 집을

더럽히지 않으면 성전에 친히 나타내 보이겠다”는 약속도

받았습니다. (교리와 성약 110:8) 그리고 이 시현 후 모세가

나타나 이스라엘의 집합 열쇠를 회복시켰으며 일라이어스가

나타나 아브라함의 복음의 경륜의 시대가 맡겨졌으며 마지막으로 엘리야가 나타나

말라기가 말한 자녀의 마음을 조상에게 조상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이킬 수 있는 인봉의

열쇠가 두 사람에게 주어졌습니다. 이 영화로운 경험들은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전달

되어 성전에 대한 보다 확고한 이해와 신념을 갖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려

3 년동안이나 성도들의 혼신을 다해 지었던 커틀랜드 성전은 불과 2 년여 만을

사용하고 또 이주를 했어야 했습니다. 다음 정착지인

나부에서도 역시 많은 고생을 하면서 지었지만 이것 역시

2 년도 사용 못하고 그 지역을 떠나야 했으니 그 시절의

성도들의 삶이 어떤 것이었는지 충분히 짐작을 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의 마음속에 성지처럼 새겨진 쏠트레이크 성전 역시 성도들의

이주가 계속 되는 가운데 그 기초가 세워졌으며 일부 이주가 끝난 성도들이라 하더라도

풀도 잘 자라지 못하는 황 무한 땅에서 새로운 삶을 일으켜야 하는 고단한 삶을 살고

있던 때라서 성전을 짓는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과제였을 것입니다.

저는 1984 년에 연차 대회 참석을 하기 위해서 한국 교회 지도자들과

함께 쏠트레이크를 방문했는데 그때 This is the Place! 라는 말이

새겨진 기념탑에 가 보았습니다 그곳은 쏠트레이크 전경이 보이는

언덕에 있었는데 브리감영 선지자님이 그곳을 내려다보며 자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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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현으로 본 바로 그 장소라며 이 곳이 바로 그곳이다! 라고 외친 곳이라고 했습니다.

그곳은 쏠트레이크 시티 전경을 볼 수 있는 그리 높지 않은 언덕이었는데 탑 주변을

살펴보니 거름기가 없어 누렇게 된 풀들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저는 농사를 지어본

사람이라 그 같이 영양이 없는 척박한 땅에서는 풀이든 나무든 잘 자랄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그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에는 유리관에 보관된 잘려진 작은 나무 한 그루가

있었는데. 그 나무의 크기는 불과 2 미터 정도 밖에 되지 않은

작은 나무였습니다. 그런데 그 죽은 나무가 성도들이 처음

이주할 당시에 쏠트레이크에서 가장 큰 나무였다고 하니 그

땅의 척박함이 어느 정도인가를 짐작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척박하고 황 무한 곳에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하는가가 무엇보다 절박한 과제였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은 주어진 지시대로 먼저 성전을 건축하고 그 성전을 도시의

중심으로 삼아 참으로 아름답고 훌륭한 대 솔트레이크 시티를 건설한 것입니다.

이는 참으로 불가사의한 기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입니다.

성경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말이 있습니다.:

“나의 성소가 그들 곧 이스라엘 가운데 영원히 있을 때에 이방인들은 나 주가

이스라엘을 거룩하게 하는 것을 알리라” (에스겔서 37:28) 하였고 “성전에서 물이

흘러나오고 그 물이 점점 많아져 결국엔 사람이 건널 수 없는 강이 되고 바다로 흘러

들어 가는데 그 강물이 흘러가는 강 양안에는 양식이 될 모든 나무들이 자라고 그

잎사귀들은 시들지 않으며 그 과실도 다하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로운 과실을 낸다”

(에스겔 47:1-12)고 하였습니다. 또한 “그 강이 이르는 곳

마다 살아있고 움직이는 것들이 살며 고기 떼가 심히

많다”고 했습니다.

과연 쏠트레이크 성전은 이스라엘 가운데 영원히

있겠다는 말 그대로 성도들이 살고 있는 쏠트레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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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중심부에 세워져 도로 번호의 1 번지가 되어 있었으며 이곳으로부터 도로의

번호가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또한 성전에서 흘러나온다는 물은 무엇을 의미 하겠습니까? 니파이 전서 11 장 25 절에

보면 리하이가 본 생수 곧 물을 하나님 사랑의 표현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에스겔이 본 성전 밑에서 흘러나오는 물 역시 하나님의 사랑이요 하나님의 축복으로

정의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1984 년에 그곳을 방문했을 때 한가지 의문을 가진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도시 규모에 비해 너무 넓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넓은 도로 폭이었습니다. 그 때도 넓게 보였다면

처음 시작했을 때는 아마 작은 도시에 턱없이 넓은 도로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2006 년에 다시 그곳을 방문했을 때 도로 옆에 가득 찬 고층 건물들로 인해

도로 폭은 그렇게 넓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는 쏠트레이크 시티가 처음

건설되었을 때 이미 수 백 년 후를 대비하고 기초 공사를 한 미래를 위한 도시였음을

알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저를 감탄케 하는 것은 그러한 도시의 외면적인 발전이 아니라 그 도시로

인한 영적인 발전이었습니다. 오늘날 전 세계에 복음이 전파되고 140 여 개가 넘는

아름다운 성전을 건립한 배경에는 바로 그 도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회복된 복음은

그 도시로부터 나왔으며 오늘날 전 세계에 걸쳐 세워진 무려 140 여개에 달하는 성전도

그 시작은 쏠트레이크 시티였습니다.

저는 성전 선교사로 일하면서 하루에 성전 선교사와 봉사자들에 의해

얼마나 많은 영혼들이 구원에 필요한 의식을 받을 수 있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성전의 하루는 실로 많은 영혼을 위한 하루 입니다.

하루가 그렇다면 한 달은 어떻게 되며 전 세계 성전의 1 년은 과연 몇

명을 위한 구원의식이 베풀어지겠습니까? 저는 이 거대하고 위대한

사업을 생각 할 때 이 일이 미국 서부 작은 도시 쏠트레이크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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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감동을 받습니다. . 이 일은 분명 인간이 이 세상에서 이룰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입니다. 세상에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는 일보다 더 위대한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전은 실로 마치 어부가 고기 떼를 만나 그물을 던져 한꺼번에 많은 고기를 잡아

올리듯이 수많은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는 곳입니다. 특히 예비 의식과 침례 그리고

안수와 가족 인봉에서 짧은 시간에 수많은 사람들을 위한 구원의식에 참여 할 수

있다는 사실에 큰 기쁨과 보람을 느꼈습니다. 제가 이렇게 느낄진대 이 같은 기초를

마련한 초기 성도들의 기쁨과 보람은 얼마나 크겠습니까? 누가 감히 그들의 영광을

따르며 누가 감히 그들이 받을 하늘의 보상을 헤아리겠습니까? 초기성도들이 그렇게

어려운 가운데 성전을 세우기 위해 노력했던 그들의 수고와 헌신은 이제 측량을 할 수

없는 거대한 축복으로 보상이 되고 있으며 이 축복은 세대에서 세대로 끝없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그들이 누릴 수 있는 그 축복에 참여 할 수 있는 성전이 우리 가까이에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조상과 우리 이웃의 조상을 위해 최선을 다해 구원의식을

베풀 때 과연 그 결과는 어디까지 가겠습니까?

우리 역시 우리가 봉사하는 성전 밑에서 흘러나오는 물 곧

성전에서 비롯된 하나님의 사랑이 사람이 건널 수 없는 큰

강물이 되어 그 강물이 흐른 곳에는 모든 초목들이 자라고 많은

고기들이 뛰놀듯이 세상적인 축복과 영적인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영혼들이 영의 세계에서 복음의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제게 성전에서 봉사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에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제가 젊었을 때 복음을 전한 사람들과 함께 성전에서 봉사 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가졌었습니다. 우린 서로 큰 기쁨과 감사 함으로 만났으며 이 같은

기쁨과 감사는 저희들이 성전에서 행한 대리의식을 받은 사람들과 영의 세계에서

만났을 때도 느끼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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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성전 봉사를 통해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생활이 가장 궁핍할 때 가장 값지고

아름다운 것을 들여 지으라고 명하신 것은 자신을 높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 곧

우리의 가치를 높여서 가장 아름다운 곳과 가장 값진 곳에서 구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사랑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

여러분이 알다시피 성전은 거룩한 하나님의 집입니다. 그 곳은 거룩한 곳이므로

거룩하지 않는 것은 그 안에 거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합당한 성전 추천서를 가진

사람들은 거룩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의 가치를

높게 생각하여 자신처럼 거룩하게 여기시기 때문에

성전에서 우리 자신과 우리 조상을 위한 구원 의식을 할

수 있게 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거룩한 하나님의 집에서 거룩하지 않는 인간을

위해 구원의식이 행해 질 수가 있겠습니까?

저는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성전은 어느 누구든 충실한 사람이라면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구할 수 있도록 마련된 하나님의 포도원이며

이곳에서 힘을 다해 일한 다면 교회에 들어온 시기와 상관

없이 그리고 지난날 하나님의 왕국을 위해 얼마나 공헌을

했느냐 와 관계 없이 열 한시에 들어온 마지막 일꾼처럼

우리 가족 그리고 우리를 존재 하게한 우리의 조상과 영생할 수 있는 길을 열 수 있다는

것을 온 마음을 다해 간증합니다. 예수그리스도 도 이름으로 말씀 드렸습니다, 아멘

성전에 대한 간증

저의 어머님인 조경심 자매님은 제게 이런 간증을 하셨습니다.

“내가 성전 대기실에서 의식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내 앞에 흰옷을

입은 많은 자매들이 줄을 서서 있는 것을 보았으며 나는 그들이

자신들을 위한 성전 의식을 기다리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고

하셨습니다 어머님은 그날 이 후 날씨가 궂을 지라도 그리고 몸이 아픈 날이라도

정신을 놓으시기 전까지 성전참석을 계속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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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브리즈번 성전 봉사자로 일하고 있는 죠셉 멕그리프 형제는

가정복음 동반자인 제게 다음과 같은 증언을 하였습니다. “내가

지부장으로 봉사할 때 쏠트레이크로부터 한 쌍의 부부선교사가

왔는데 허스트 형제와 허스트 자매였습니다. 이들은 제게 자신의

조상 Frederick William Hurst 의 일기를 보여 주었습니다.

Frederick William Hurst 형제는 몇 개 나라에서 선교사로 봉사 했던 형제이며

당시는 쏠트레이크 성전에서 페인트공으로 봉사했던 분이었습니다. 다음은 그분의

일기 가운데 일부를 발췌한 것입니다.”

“1893 년 3 월 1 일 함께 일하던 사람들은 모두 잠 자리에 들고 나는 식당서 홀로

있었다. 내가 식당 테이블에 앉아 있는데 놀랍게도 형이 걸어 들어 오더니 내 앉은

테이블 맞은편에 가서 앉았다. 그리고 내게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렇게 하는 그의

모습이 자연스러워 언제 유타에 왔느냐고 물었다. 그는 말하기를 난 방금 영의

세계에서 왔다. 지금 네가 보고 있는 내 몸은 실재 몸이 아니고 내 실재 몸은 지금

무덤에 누워있다”. 그리고 또 말하기를 “너 한테 말해 주고 싶은 것이 있는데 네가

선교사업을 하고 있을 때 너는 내게 복음에 관련된 많은 이야기를 해 주었지, 죽음

이후 그리고 지구에서 처럼 실제적인 느낌이 가능한 영의 세계가 있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해 주었었지 그러나 난 그 때 네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죽어서 그

곳에 가보고 네가 말한 것이 사실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몰몬인들이 갖는

모임에 참석을 했다.” 그는 손을 들어 올리며 다정스럽게 말했다. “나는 나의 온

마음을 다해 예수그리스도를 믿으며 신앙, 회개, 죄 사유함을 위한 침례를 믿는다.

그러나 여기까지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나는 네가 성전에서 하는일을 가까이서

지켜보고 있다. 그리고 네게 말하고 싶은 것은 아주 훌륭한 많은 영들이 자기

친족들이 교회 안에 있으면서도 자신들을 위해 관심을 가지지 않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에 슬퍼하고 안타까워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Diary of Frederick William Hurst,

Ida Hurst (1961).204 page).

성전 의식을 다시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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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제가 시드니 성전에서 성전 봉사자로 일 할 때

그곳 성전 봉사자들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입니다. 그 곳

성전에서 한 회원이 엔다우먼트 의식을 받고 나오는데

성전 복도에서 한 형제를 보았다고 했습니다. 그 형제는

다가 와서 자신이 오늘 그 형제로부터 대리 엔다우먼트 의식을 받은 당사자라고

말하면서 그 의식을 얼마나 간절히 그리고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려서 받은 의식인데

그렇게 무성의 하게 받을 수 있느냐고 항의를 했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들은 그

형제는 크게 당황을 했고 그 사실을 성전 회장에게 보고 했으며 성전 회장은 그

형제를 위한 엔다우먼트 의식을 다시 받게 했다고 했습니다.

“나는 여러분들께 성전에 자주 참석할수록 성전에서 여러분 생을

축복할 계시를 더 받게 된다는 것을 약속 드립니다.” (1987 년

4 월 연차대회 보고서 Page 108) 2006 년 3 월 19 일 Greenwich

Stake 신권 대회에서 스테이크 회장단 중 한명인 Grant Owen

형제는 이 같은 에즈라 테프트 밴슨 회장님의 말씀을 인용하며

성전에서 받은 계시에 관련된 여러 사례를 들었는데 내가 요청을 하자 그 사례들을

이 메일로 보내 주었습니다. 그 중 몇 가지를 번역해서 소개 합니다.

미국 아리조나 주에 있는 한 스테이크 선교 회장인

Herschel Pederson 형제는 스테이크 선교사들과 함께 한

가정에 복음을 전하고 있었는데 복음이 잘 전달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분은 1 주일에 걸쳐 자기 일생에 최고의 공과를

준비 한 후 모든 스테이크 선교사들과 함께 성전에 가서 성전 제단 위에 그 구도자와

가족의 이름을 올리고 제단을 둘러싼 원형기도에 3 번이나 둘러서서 (엔다우먼트

의식에 3 번을 참석했다는 뜻임) 자신의 구도자 가족을 위해 정성을 다해 기도했다.

그렇게 준비를 마친 그 분은 선교사들과 그 가정을 방문해서 특별히 준비한 공과를

가르쳤지만 아무런 영의 느낌을 받을 수 없었고 크게 실망한 채로 집에 돌아 올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다음날 아침 그 가정의 부인인 Gloria 자매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는데 그 자매님은 “ 피더슨 형제님! 형제님이 우리 집을 떠난 후 성령이 우리 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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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습니다. 우리는 저녁 8 시부터 다음날 새벽 2 시까지 거실에 앉아 있었는데 당신이 말

한대로 성신의 따뜻함이 우리를 감쌌으며 이제 우리는 침례를 받을 준비가

되었습니다.”

복음을 떠난 자식을 위한 기도의 응답: 어느 한 아버지는

불안한 10 대를 보내고 있는 자식들이 염려가 되어 성전을

찾았다. 그 분은 기도하기를 자식들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희생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고 했다. 그분은 자식들을

위해 어떤 큰 희생을 치르라고 할 줄 알았으나 주님의 영은 그에게 부드럽게

속삭이기를 이 성전에 자주, 끊임없이 찾아 온다면 자녀는 보호될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한국의 미군 부대에서 근무하는 옛 선교사 동반자 Smith 중령 부부와 함께

식사를 하면서 이 이야기를 전 하자 뜻밖에 그의 부인은 자신도 교회를 떠난 자신의

아들을 염려해서 성전에 와서 기도를 드리던 중 같은 내용의 영적인 메시지를

받았다고 내게 증언했다.

출산 중 죽은 아이를 인봉함 Laurie Day 형제님은 뉴질랜드 성전의 인봉 자로 봉사

하는 분이다. 어느 날 그는 한 가족을 인봉하는데 제단 주위에 모여있는 가족 중

인봉되어야 할 자녀 한 명이 빠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그

가족에게 인봉을 받을 자녀가 더 있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다 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로리데이 형제님은 인봉을 진행하지 않고 다시 물었다. 가족의 대답은 같았다.

그러자 그는 그 가족에게 말하기를 이 가족에 꼭 인봉되어야 할 아이가 있는데 혹

아이 한 명을 잃어 버린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때야 비로소 아이들의 어머니는

눈물을 터트리며 출산하다가 죽은 딸 아이가 있다고 말했다. 그들은 곧 그 딸의 대리

인봉 자를 찾아서 가족을 인봉했다. 인봉이 끝나고 그 형제에게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느냐고 물었을 때 그 형제는 말했다. “내가 그 아이 없이 인봉을 하려고 했을 때

인봉 실 구석에서 한 여자가 울기 시작 했습니다. - The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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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은 우리 교회의 심장과 같다.

우리의 피가 심장을 통해 정화 되어 힘을 얻듯이

우리의 신앙 역시 성전을 통해 정화 되고 강화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