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 정보가 지역 이미지 형성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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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행 정보가 지역 이미지 형성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 류재명 (서울대학교 지리교육학과 교수), 이동민 (서울대학교 지리교육학과 박사과정) 말을 듣거나, 또는 글을 읽고 그 메시지를 이해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먼저 듣거나 읽 은 정보가 후속하는 정보의 내용을 해석하는데 영향을 줄 수 있다. 주어진 시간 내에 말 또는 글의 형태로 제시되는 정보를 모으면 일련의 말과 글로 구성된 한 덩어리의 정보가 될 수 있는데, 이렇 게 구성된 한 덩어리의 말 혹은 글을 전체적인 내용 요소들의 총합적인 측면에서 동일한 내용 요소 들을 담고 있는 콘텐츠라고 생각해 보자. 이와 같이 전체적으로 보면 내용의 구성 요소들은 동일한 경우에도, 그 각각의 내용 요소들을 어떤 순서로 제시하느냐에 따라 정보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최 종적으로 그 정보를 해석하여 받아들이는 의미에는 차이가 생길 수 있다. 애쉬(Asch, 1946, 270-273)는 어떤 한 사람의 성격을 묘사한 6개의 형용사를 순서만 바꾸어 제 시한 실험을 통하여 형용사의 제시 순서 차이가 그 사람의 이미지 형성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는 한 사람의 성격 특성들을 묘사한 ‘지적이다’, ‘부지런하다’, ‘고집이 세다’ 등 6개로 이루어진 단어의 리스트를 제시한 다음, 피실험자로 하여금 제시된 리스트를 보고, 어떤 사람일 것 같은지에 대한 인상을 말해보라고 하였는데, 한 집단에게는 ‘지적이다’와 같이 성격 을 긍정적으로 묘사한 단어를 먼저 제시하고, ‘고집이 세다’와 같이 성격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단어 를 맨 뒤로 배열한 리스트를 주고, 나머지 다른 한 집단에게는 단어의 배열 순서를 그와는 정 반대 로, 즉 ‘고집이 세다’와 같이 성격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단어를 가장 먼저 제시하고, 성격을 긍정적 으로 묘사한 단어를 맨 뒤로 배열한 리스트를 주었다. 그 결과 긍정적인 단어가 먼저 제시된 리스 트를 본 집단은 리스트가 묘사한 사람을 긍정적으로 인식한 반면에, 부정적인 단어가 먼저 제시된 리스트를 본 집단은 리스트가 묘사한 사람을 부정적으로 인식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전체적으 로 보면 두 개의 리스트는 동일한 6개의 단어를 나열하고 있으며 차이는 단지 배열순서 뿐이지만, 독자들이 리스트의 정보를 읽고 해석하여 의미를 형성하는 과정은 ‘배열순서’에 따라 커다란 영향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 최인철(2007, 59)은 시간상으로 앞서 제시된 정보들이 뒤따라오는 정보를 해석하는데 영향을 주었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아이젠버그와 배리(Eisenberg & Barry, 1988)도 순서 효과(order effect)에 관한 실험적 연구를 진행한 바 있다. 여기에서 연구자들은 대학생과 대학원생들로 구성된 2개 군의 피실험자들에게 사 전에 동일한 내용의 질문지(query)을 읽게 한 다음, 질문지와 관계있는 문서의 요약문(document description) 15개를 순차적으로 제시하고 이들이 질문지와 얼마나 높은 관련성을 가지는가를 7급 간 척도로 평가(rating)하게 하였다. 이 2개의 피실험집단 중에서 1개 집단은 관련성이 높은 내용을 담고 있는 문서 요약문부터 제시한 다음 낮은 요약문을 제시하였고, 다른 1개 집단은 그 역의 순서 로 문서 요약문을 제시하여 각각의 요약문에 대한 관련성 지수를 부여하게 하였다. 이 두 집단이 내린 평가결과를 통계학적으로 비교 분석한 결과, 질문지와의 관련성이 낮은 것부터 높은 요약문 - 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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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행 정보가 지역 이미지 형성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

류재명 (서울대학교 지리교육학과 교수), 이동민 (서울대학교 지리교육학과 박사과정)

말을 듣거나, 또는 글을 읽고 그 메시지를 이해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먼저 듣거나 읽

은 정보가 후속하는 정보의 내용을 해석하는데 영향을 줄 수 있다. 주어진 시간 내에 말 또는 글의

형태로 제시되는 정보를 모으면 일련의 말과 글로 구성된 한 덩어리의 정보가 될 수 있는데, 이렇

게 구성된 한 덩어리의 말 혹은 글을 전체적인 내용 요소들의 총합적인 측면에서 동일한 내용 요소

들을 담고 있는 콘텐츠라고 생각해 보자. 이와 같이 전체적으로 보면 내용의 구성 요소들은 동일한

경우에도, 그 각각의 내용 요소들을 어떤 순서로 제시하느냐에 따라 정보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최

종적으로 그 정보를 해석하여 받아들이는 의미에는 차이가 생길 수 있다.

애쉬(Asch, 1946, 270-273)는 어떤 한 사람의 성격을 묘사한 6개의 형용사를 순서만 바꾸어 제

시한 실험을 통하여 형용사의 제시 순서 차이가 그 사람의 이미지 형성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는 한 사람의 성격 특성들을 묘사한 ‘지적이다’, ‘부지런하다’, ‘고집이

세다’ 등 6개로 이루어진 단어의 리스트를 제시한 다음, 피실험자로 하여금 제시된 리스트를 보고,

어떤 사람일 것 같은지에 대한 인상을 말해보라고 하였는데, 한 집단에게는 ‘지적이다’와 같이 성격

을 긍정적으로 묘사한 단어를 먼저 제시하고, ‘고집이 세다’와 같이 성격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단어

를 맨 뒤로 배열한 리스트를 주고, 나머지 다른 한 집단에게는 단어의 배열 순서를 그와는 정 반대

로, 즉 ‘고집이 세다’와 같이 성격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단어를 가장 먼저 제시하고, 성격을 긍정적

으로 묘사한 단어를 맨 뒤로 배열한 리스트를 주었다. 그 결과 긍정적인 단어가 먼저 제시된 리스

트를 본 집단은 리스트가 묘사한 사람을 긍정적으로 인식한 반면에, 부정적인 단어가 먼저 제시된

리스트를 본 집단은 리스트가 묘사한 사람을 부정적으로 인식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전체적으

로 보면 두 개의 리스트는 동일한 6개의 단어를 나열하고 있으며 차이는 단지 배열순서 뿐이지만,

독자들이 리스트의 정보를 읽고 해석하여 의미를 형성하는 과정은 ‘배열순서’에 따라 커다란 영향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 최인철(2007, 59)은 시간상으로 앞서 제시된 정보들이

뒤따라오는 정보를 해석하는데 영향을 주었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아이젠버그와 배리(Eisenberg & Barry, 1988)도 순서 효과(order effect)에 관한 실험적 연구를

진행한 바 있다. 여기에서 연구자들은 대학생과 대학원생들로 구성된 2개 군의 피실험자들에게 사

전에 동일한 내용의 질문지(query)을 읽게 한 다음, 질문지와 관계있는 문서의 요약문(document

description) 15개를 순차적으로 제시하고 이들이 질문지와 얼마나 높은 관련성을 가지는가를 7급

간 척도로 평가(rating)하게 하였다. 이 2개의 피실험집단 중에서 1개 집단은 관련성이 높은 내용을

담고 있는 문서 요약문부터 제시한 다음 낮은 요약문을 제시하였고, 다른 1개 집단은 그 역의 순서

로 문서 요약문을 제시하여 각각의 요약문에 대한 관련성 지수를 부여하게 하였다. 이 두 집단이

내린 평가결과를 통계학적으로 비교 분석한 결과, 질문지와의 관련성이 낮은 것부터 높은 요약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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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으로 제시한 집단이 관련성이 높은 요약문부터 제시한 집단에 비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높은

등급을 부여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러한 실험결과를 저자들은 피실험자가 관련성이 낮은 요약문

을 먼저 보게 되는 경우에는 질문내용과 문서 간의 관련성을 과대평가하게 되는 경향을 갖는 반면

에, 역의 순서, 즉 관련성이 높은 요약문을 먼저 보게 되는 경우에는 피실험자들이 질문내용과 문서

간의 관련성을 과소평가하게 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하였다(Eisenberg&Berry, 1988,

296).

러시아 감독 세르게이 아이젠슈타인(Sergei Eisenstein)은 “서로 관련 없는 두 개의 이미지가 차

례로 제시되면 관객은 두 이미지 사이의 인과적인 혹은 내용적인 연결을 추론하게 된다.”고 하였다.

예를 들어 “마스크를 쓴 살인마가 칼을 들고 있는 장면이 나오고 뒤이어 입을 벌리고 있는 여자가

화면에 비치면, 우리는 그 여자가 겁에 질려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자가 입을 벌리고 있는 똑

같은 장면이라도 시계가 새벽 3시를 가리키고 있는 장면이 먼저 나왔다면, 그녀는 하품을 하고 있

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칩 히스, 댄 히스, 2007, 103-104).

이와 같이 우리가 정보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먼저 받아들인 정보가 후속하는 정보의 의미를 해석

하는 데 영향을 준다는 사실은 지리교육에서도 검토해 볼 가치가 있을 것이다. 지리교육자들은 수

많은 지역 정보 중에서 학습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선택하고, 선택한 이들 지역정보들을 재

구성하여 학습자에게 제공하게 되는데, 우리들이 제공하는 정보가 학습자의 지역이미지 형성에 어

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학습대상 지역에 대한 정보의 제시 순서가 학습자의 지역 이미지 형성에 어

떤 영향을 주는지 알아보고자 하였다.

구체적인 방법은 다음과 같다. 2010년도 하계 1급 정교사 연수에 참여한 경기도지역 지리교사

84명을 대상으로 두 종류의 읽기자료를 무작위로 나누어주고, 교사가 그 자료를 읽고 난 다음 답변

한 설문 자료를 분석하였다. 실험에 사용한 두 종류의 읽기 자료란 아프리카 케냐에 관한 정보로

구성된 두 장의 자료를 페이지 순서만 바꾼 것이다. 한 장은 케냐에 관한 긍정적인 정보를 담고 있

고, 나머지 한 장은 부정적인 정보를 담고 있는 데, 두 종류의 읽기 자료란 바로 이 두 장의 페이지

순서를 달리한 것이다.

긍정적인 정보란 케냐 시골의 고즈넉한 경관, 케냐 주민들의 순박한 인심, 해안 지역의 아름다운

경관, 쾌적한 기후, 다양하고 신기한 야생동물 등에 관한 대화 형태로 작성된 글이다. 다시 말하면

케냐가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가졌을 뿐 아니라 현지인들의 심성도 선하여 여행하기에도 좋고, 살기

에도 좋은 곳이라는 이미지를 줄 수 있는 글로 된 것이다.

부정적인 정보란 관광객을 노리는 현지인 무장 강도의 잔악한 범행과 치명적인 말라리아라는 부

정적인 요소로 인하여 다수의 관광객들이 케냐 대신 스페인으로 행선지를 변경했다는 내용의 글이다.

실험에 참여한 교사들은 읽기 자료를 읽고 난 후에는 곧 바로 3개 문항(리커트 5점 척도)으로 구

성된 설문지에 답하였다. 설문 문항은 각각 “케냐로 여행을 가보고 싶다.”, “케냐 여행을 친구에게

추천하고 싶다.”, “읽은 내용이 재미있고 배울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로 이루어져 있다.

실험에 참여한 교사는 한 교실에 있었으며, 두 종류의 읽기 자료를 임의적으로 나누어주었다. 수

집 결과 긍정적인 정보가 앞 장에 먼저 제시된 읽기자료에 응답한 사람의 수는 45명이었고, 부정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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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정보가 먼저 제시된 읽기 자료에 응답한 사람의 수는 39명이었다.

설문 응답 자료를 분석한 결과 ‘케냐로 여행을 가보고 싶다.’ 라는 문항에서는 두 집단 간에 의미

있는 차이가 나타났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긍정적인 정보를 먼저 접한 집단의 평균점수가

3.98점으로 부정적인 정보를 먼저 접한 집단의 평균점수인 3.54점보다 0.44점 높았으며, 그 차이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하다는 결과가 나왔다(p<.05).

나머지 두 개의 문항에서는 두 집단 간에 의미 있는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학습 대

상 지역에 대한 긍정적인 정보를 먼저 접하느냐, 부정적인 정보를 먼저 접하느냐 하는 시간적 순서

의 차이가 그 지역에 대한 학습자 개인의 이미지 형성에는 의미 있는 차이의 영향을 미친다고 하여

도, 타인에게 여행을 추천할 정도에서까지 차이를 유발할 정도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라고 해

석할 수 있다. 그리고 학습 정보 제공의 순서를 달리 하는 문제가 학습자의 학습내용에 대한 흥미

도나 학습 가치 인식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본 논문의 연구결과를 요약하면, 긍정적인 지역정보의 제시 순서가 학습자의 학습 대상지역에 대

한 이미지 형성에 일정한 정도의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러한 발견은 오늘날 주요 관심사로 부

각되는 다문화교육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할 수 있다고 본다. 지리교육학자가 ‘열등’으로 차별받

는 나라나 지역에 대하여, 그 지역 사람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는 긍정적인 정보를 적극적으

로 발굴하여, 어린이와 청소년 교육에 활용하면, 지역 갈등을 줄이고, 서로 화목하게 지낼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데 일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감사의 글>

본 논문의 실험에 참여해주신 2010년 하기 지리과 1급 정교사 자격 연수반 선생님들에게 감사드

립니다.

■ 참고문헌

최인철, 2007, 프레임, 21세기북스.

칩 히스, 댄 히스 저, 안진환, 박슬라 역, 2007, 스틱, 웅진윙스.

Asch, 1946, Forming Impressions of Personality, Journal of Abnormal and Social

Psychology, 41, 258-290.

Eisenberg, M., Barry, C., 1988, Order effects: A Study of the Possible Influence of

Presentation Order on User Judgments of Document Relevance, Journal of American

Society for Information Science, 39(5), 29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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