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창조산업 정책의 부상: 개념사적 고찰

14
1 영국 창조산업 정책의 부상: 개념사적 고찰 정종은 (서울대 강사) 영국에서 창조성에 관한 담론은 지난 년간 정부가 개발해 왔으며, 현재는 ‘창조경제’라는 개념화로 연결되고 있다. ()적인 사유는 그것이 점증적으로 일관성을 향해 추동되고 있는 자기지속적인 조망이라는 의미에서 담론적이다. 그것은 주창자들에 의해 끊임없는 옹호의 대상이 됨으로써 하나의 독트린이 되었다. 이제 그것은 정책입안자와 대화에 돌입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의무적인 출발점이라고 하겠다. (Schlesinger, 2007: 378) 최근까지 문화정책 담론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문화산업, 문화경제, 문화도시란 주제와 관련하여 가장 적극적인 정책적 개입을 보여온 국가로 영국을 꼽는 것은 크게 무리한 일이 아니다. 1997신노동당(New Labour)정권을 잡은 이후, 영국 정부는 ‘국가유산부’(Department of National Heritage)‘문화매체스포츠부’(Department for Culture, Media and Sport)확대 개편하면서, 영국 문화정책사에서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적극적인 개입과 진흥 정책을 펼쳐왔다. 이러한 변화는 슐레징어가 지적하고 있듯이 ‘창조성’과 ‘창조산업’이란 개념들을 중심으로 추진되어왔다. 한편 이와 같은 영국적 ‘독트린’이나 ‘신조’가, 프랑스의 그것과 대비되면서, 국제 무대에서 점차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는 사실도 어렵지 않게 확인된다(Wang, 2004; Lee, 2004; Hartley, 2005; O'Connor & Xin, 2006; Cunningham, 2009a; 2009b). 창조성, 창조산업, 창조도시, 창조경제 등에 관한 논변들은 타이완, 중국, 싱가포르 그리고 홍콩과 같은 나라들에서 부상하고 있는 문화정책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점한다. 물론 이는 WTO 멤버십이라는 상품과 지구적 경쟁력이라는 약속에 따라서 추동되고 있다. 국가의 창조산업이 지구적 창조경제 속으로 흡수되면서, 신자유주의적 가정이 과거의 이데올로기들을 몰아내기 시작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프랑스의 ‘문화적 예외’(exception culturelle)집결되고 있는 합의에 위협받고 있는 시대착오적인 반항으로 간주되는 듯하다 (Bilton, 2007: 169). 이러한 견지에서 본고는 최근 창조적 전환(creative turn)이라는 표제 아래 엄청난 기세로 성장 확산되고 있는 창조산업 정책의 ‘영국식 모델’에 대한 개념사적 고찰을 시도하고자 한다. 우리는 ‘창조산업’(creative industries)이란 개념이 탈산업화된, 정보화된, 또는 지식경제가 이끄는 사회의 서비스 산업을 지칭하기 위해서, 기존의 ‘창조’예술 개념과 문화‘산업’ 개념을 새롭게 조합한 것이라는 커닝햄(2002)하틀리(2005)분석에 어렵지 않게 동의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개념이 19세기 영국에서 처음으로 두드러진 대중문화의 발흥, 또는 ‘문화와 산업의 ()결합’이라는 현상이 낳은 특정한 ‘개념 가족’의 구성원이라는 사실도

description

영국에서 창조성에 관한 담론은 지난 십 년간 정부가 개발해 왔으며, 현재는 ‘창조경제’라는 개념화로 연결되고 있다. 관(官)적인 사유는 그것이 점증적으로 일관성을 향해 추동되고 있는 자기지속적인 조망이라는 의미에서 담론적이다. 그것은 주창자들에 의해 끊임없는 옹호의 대상이 됨으로써 하나의 독트린이 되었다. 이제 그것은 정책입안자와 대화에 돌입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의무적인 출발점이라고 하겠다. (Schlesinger, 2007: 378)

Transcript of 영국 창조산업 정책의 부상: 개념사적 고찰

Page 1: 영국 창조산업 정책의 부상: 개념사적 고찰

1

영국 창조산업 정책의 부상: 개념사적 고찰

정종은 (서울대 강사)

영국에서 창조성에 관한 담론은 지난 십 년간 정부가 개발해 왔으며, 현재는

‘창조경제’라는 개념화로 연결되고 있다. 관(官)적인 사유는 그것이 점증적으로

일관성을 향해 추동되고 있는 자기지속적인 조망이라는 의미에서 담론적이다.

그것은 주창자들에 의해 끊임없는 옹호의 대상이 됨으로써 하나의 독트린이

되었다. 이제 그것은 정책입안자와 대화에 돌입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의무적인 출발점이라고 하겠다. (Schlesinger, 2007: 378)

최근까지 문화정책 담론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문화산업, 문화경제, 문화도시란 주제와 관련하여

가장 적극적인 정책적 개입을 보여온 국가로 영국을 꼽는 것은 크게 무리한 일이 아니다. 1997년

신노동당(New Labour)이 정권을 잡은 이후, 영국 정부는 ‘국가유산부’(Department of National

Heritage)를 ‘문화매체스포츠부’(Department for Culture, Media and Sport)로 확대 개편하면서,

영국 문화정책사에서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적극적인 개입과 진흥 정책을 펼쳐왔다. 이러한

변화는 슐레징어가 지적하고 있듯이 ‘창조성’과 ‘창조산업’이란 개념들을 중심으로 추진되어왔다.

한편 이와 같은 영국적 ‘독트린’이나 ‘신조’가, 프랑스의 그것과 대비되면서, 국제 무대에서

점차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는 사실도 어렵지 않게 확인된다(Wang, 2004; Lee, 2004; Hartley,

2005; O'Connor & Xin, 2006; Cunningham, 2009a; 2009b). 즉 창조성, 창조산업, 창조도시,

창조경제 등에 관한 논변들은

타이완, 중국, 싱가포르 그리고 홍콩과 같은 나라들에서 부상하고 있는 문화정책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점한다. 물론 이는 WTO 멤버십이라는 상품과 전 지구적 경쟁력이라는 약속에 따라서 추동되고 있다.

국가의 창조산업이 전 지구적 창조경제 속으로 흡수되면서, 신자유주의적 가정이 과거의

이데올로기들을 몰아내기 시작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프랑스의 ‘문화적 예외’(exception

culturelle)는 집결되고 있는 합의에 위협받고 있는 시대착오적인 반항으로 간주되는 듯하다 (Bilton,

2007: 169).

이러한 견지에서 본고는 최근 창조적 전환(creative turn)이라는 표제 아래 엄청난 기세로

성장 및 확산되고 있는 창조산업 정책의 ‘영국식 모델’에 대한 개념사적 고찰을 시도하고자 한다.

우리는 ‘창조산업’(creative industries)이란 개념이 탈산업화된, 정보화된, 또는 지식경제가

이끄는 사회의 서비스 산업을 지칭하기 위해서, 기존의 ‘창조’예술 개념과 문화‘산업’ 개념을

새롭게 조합한 것이라는 커닝햄(2002)과 하틀리(2005)의 분석에 어렵지 않게 동의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그 개념이 19세기 영국에서 처음으로 두드러진 대중문화의 발흥, 또는

‘문화와 산업의 (재)결합’이라는 현상이 낳은 특정한 ‘개념 가족’의 한 구성원이라는 사실도

Page 2: 영국 창조산업 정책의 부상: 개념사적 고찰

2

기억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문화와 산업의 ‘재’결합이나 ‘재’혼이라는 표현은 다분히 미학사의 첫

페이지를 장식하는 테크네(techne) 개념을 염두에 두고 채택된 것이다. 예술(fine arts)이 여타의

기술(art)로부터 독립해온 또는 결별해 온 역사가 고대 그리스 이후 19세기까지 서양 미학사의

가장 핵심적인 기조의 하나에 해당한다고 한다면, 산업혁명 이후 대중사회의 등장과 특별히

1970년대 이후 급속화된 세계화 및 정보통신기술의 혁명은 예술을 그 본래의 자리, 즉 여타의

기술들과 다시금 접합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낳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러한 돌아감이

르네상스와 근대의 예술관의 핵심에 자리하고 있었던, 예술가의 지성 및 독창성을 강조하는

의미의 ‘창조성’ 개념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앞으로 확인하게 될 것처럼, 오히려 그

개념은 일련의 주요한 변형을 거쳐 이제 산업 전 영역에 적용될 수 있는, 더 정확히는

적용되어야만 하는, 핵심적인 가치로 격상되고 있다.

1.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문화산업’(Culture industry)

전술하였듯이, 창조산업에서 ‘창조’(creative)라는 개념은 다분히 근대적인 예술관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반드시, 이른바 낭만주의나 유미주의와 종종 연관되는, 일군의 신비적인

개념들과 연관 지을 필요는 없다. 오히려 우리가 현재 주목할 것은 18세기 프랑스에서 탄생한

근대적인 ‘예술’(fine arts) 개념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으면서, 같은 시기 영국에서 열정적으로

추구되었던 ‘시민적 휴머니즘’(civic humanism)의 예술 이해라고 할 수 있다. 이 입장은 취미론의

대표적인 주창자인 샤프츠베리나 숭고와 미에 대한 고찰의 인식론적 전환을 이끈 에드먼드 버크,

그리고 그 자신 당대의 대표적인 화가일 뿐만 아니라 미학자였던 조슈아 레이놀즈 등에 의해

개진되었는바, 이들은 ‘fine’의 개념을 보다 확장하여 공적으로 후원 및 보조할 가치가 있는

공공예술(public arts)의 개념을 발전시키는 데 관심을 가졌다(Hartley, 2005: 6-9). 물론 이러한

흐름은 우선적으로 도구적이고 기계적인 숙련(artisanship)과 성숙한 인간들을 위한

교양학·인문학(liberal arts)이라는 고전적인 구분을 당대의 영국 상황에서 새롭게 자리매김하려는

시도로 평가될 수 있다. 이는 훗날 아놀드, 리비스, 엘리어트 등과 같은 문화적 보수주의자들의

‘문명(civilization)에 반대되는 문화(culture)’라는 테제의 기초가 되기도 했지만, 시민적

휴머니즘이라는 새로운 프레임을 통해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근대사회의 맥락 속에서 예술의

의미와 가치를 파악하고자 한 선구적인 시도이기도 했다. 그 프레임 속에서 교양 있는(liberal)

기술은 시민사회의 발전을 위한 공공적인(public) 기술로도 이해되었는바, 창조적인

기술/예술(creative arts)이란 개념이 양자를 연결하는 고리로서의 구실을 했던 것이다(Barrell,

1986; Hartley, 2005 참조).

Page 3: 영국 창조산업 정책의 부상: 개념사적 고찰

3

그러나 이처럼 시민적 휴머니즘에 바탕을 두고 있는 ‘창조예술’ 개념은 산업화가 진행됨에

따라서 상당한 위협을 받게 된다. 이러한 위협에 대한 대다수 비평가들의 반응은 무척이나

냉담하고 보수적이었다. 예컨대 19세기 중엽, 대량문화(mass culture) 또는 대중문화(popular

culture)가 강렬한 기세로 수면 위로 떠올랐을 때, 영국의 많은 비평가들은 그것을 교양, 창조성,

공공선 등의 개념과 대비시키면서 ‘쓰레기’나 ‘마약’과 같은 것으로 폄하하곤 했다. 20세기가 한참

진행된 이후, 이러한 보수적인 관점을 넘어서서 보다 철저한 이론적 틀을 가지고 위의 현상에

접근한 학자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그 대표적인 사람들이 바로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두

거두인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였다.

그들은 이러한 대량문화가 세를 획득해가는 것을 ‘문화’와 ‘산업’의 바람직하지 못한

결합이라고 파악하고, 이를 비난하기 위한 역설적인 표제어로 ‘문화산업’(Culture industry)이라는

용어를 고안해냈다. 속된 말로 하자면, ‘문화’의 대변자가 되어야 할 ‘창조적 예술’이 바람을

피워서 낳은 사생아라고나 할까? 그들에 따르면, 이 사생아는 서구적인 계몽의 한 단계로서

후기자본주의 사회의 대중기만 매체이며, 더 구체적으로는 부드러운 파시즘, 사이비개성화,

유아언어, 사회적 시멘트 등등의 수단으로서 기능해왔다(Adorno & Horkheimer, 1947; Adorno,

1991). 단적으로 말해서, 독일의 나치 파시즘에 따른 국민들의 조작 및 동원은 보다 부드러운

형태이기는 하지만, 미국의 자본주의적 대중문화에 의해서 그대로 되풀이된다. 따라서 그들은

‘신화는 이미 계몽이었고 계몽은 신화로 되돌아간다’는 테제 아래서, 문화의 정수로서 예술은

(톱니바퀴와 같이 돌아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용한 것이 되어야만 오직 유용한 것이 된다는

매력적인 통찰을 제시하기에 이른다. 유용한 것들에 의한, 유용한 것들을 위한, 유용한 것들의

도구적인 시스템의 일부가 되는 것을 거부해야만, 문화와 예술이 순응적인 도구적 이성과

구별되는 비판적이고 반성적인 이성의 함양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문화산업’

내부에서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실제로 발생하고 있는 것은 정확히 그 반대로 상정된다.

오코너(2007: 18)가 올바르게 지적하고 있듯이, 문화산업에 대한 아도르노의 설명은 대중화된,

산업적인, 또는 미국화된 문화에 대한 양차대전 이후의 불안과 공명하는 것이며, 특별히 그

자신의 진정한(authentic) 문화적 전통을 보호해야 한다는 유럽적인 문화정책의 목표와 깊이

연결된다. 형식논리와 모순율의 층위에 초점을 맞추면서, 독특한 모더니스트적인 사회미학을

구성하고 있는 아도르노의 입장은 이후 이 주제와 관련한 다양한 지적 전통들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그러한 선지자적 논조가 담보하고 있는 분명한 미덕에도 불구하고, 그의

입장에 대해 여러 종류의 비판이 제기되어온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특별히

영국에서는 ‘문화산업’이라는 용어에 직접적인 관심을 두고 있는 두 가지 이론적 전통으로부터

그러한 비판이 제기되어 왔는데, 영국 문화연구(British Cultural Studies)와 문화의

정치경제학파(The Political Economy of Culture School)가 바로 그것이다.

첫째로, 1960년대 이후 버밍엄 현대문화연구소를 모태로 형성된 영국 문화연구 전통은

Page 4: 영국 창조산업 정책의 부상: 개념사적 고찰

4

윌리엄스, 호가트, 톰슨 등으로 대표되는 영국 문화주의(culturalism)와 레비스트로스, 알튀세,

바르트 등이 이끌었던 프랑스 구조주의(structuralism)의 변증법이라는 좌표를 통해서 그 주된

이론적 근거를 마련해왔다(Hall, 1980b). 이러한 모색의 결과로, 문화연구는 아도르노가 제시했던

전체화하는 조작적 메커니즘으로서 문화산업, 즉 실제 대중들의 삶 속에서 문화산업이 발휘하는

‘상징적’ 기능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자 했다. 아도르노의 테제들에 대한 영국

문화연구의 초기 비판을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차원에서 요약해볼 수 있을 것이다.

우선 ‘피할 수 없는 조작적인 메커니즘’(Hall, 1980a)이란 것이 과연 존재하는가에 대해서

의문을 품을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약호화된 메시지들이 언제나 그 수용자들에게 애초에 고안된,

선호적인 방식으로 해독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그들 자신의 도전적인 해석을

실행함으로써 단순하게 조작 당하는 대신 타협적이거나 심지어는 대항적인 위치에 스스로를

세우기도 한다.1

또한, 문화산업의 상층부에서 사람들을 통제 및 조작하기 위해 그 전체적인 생산·유통·재생산

방식을 관리하는 분명한 지배 집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람시가 보여주었듯이, ‘동의를 통한

지배’라는 헤게모니를 추구하는 그룹은 그 자체로 이미 파편화되어 있으며, 특정한 ‘국면’에서

특정한 이해관계를 따라서 변화하는 ‘역사적 블록’으로서만 존재한다. 그러므로 문화산업의

소비라는 구체적인 국면에서 대항 헤게모니를 생산하는 것은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며,

문화산업이라는 실체 전체를 단순한 지배의 도구로 싸잡아 비판하는 것은 유일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아마도 관념론과 마르크시즘이라는 독일의 위대한 두 철학 전통에서 말미암는 것으로 보이는,

진정한 문화에 대한 아도르노의 집착 역시 문제적이다. 영국 문화연구자들이 후기구조주의나

포스트모더니즘의 논의를 전적으로 수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본질주의적∙토대주의적

거대서사에 대한 비판이라는 차원에서 서로 많은 것을 공유해왔다. 물론 아도르노의 설명은

단순한 변증법에 의존하는 것도 아니고, 쉽게 상투적인 유토피아 이론으로 빠져들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모더니스트 미학에 기초하면서 극도로 섬세한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종국적으로는 스스로를 하나의 (난해한) 거대서사로 제시했다. 이 대목에서 ‘취미 판단에 대한

사회적 비판’(1984)이라는 부르디외의 기획을 떠올려 본다면, 우리는 아도르노의 ‘문화산업론’을

구성하고 있는 문제의식과 해결방식의 구성은 철저하게 독일 출신 유태계, 마르크시스트,

1하버마스(1987: 391)는 일세대 비판이론가들은 자신들이 제기했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음을 인정하면서,

홀의 이러한 비판을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하버마스(1984)에 따르면, 자신의 선배들이 물신화하는

메커니즘을 인식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전체화하는 통제시스템을 극복하는 방법을 보여줄 수 없었던 이유는

사회적이고 상징적인 상호작용으로부터가 아니라 '선험적인 자아'라는 개념에서 시작했기 때문이다.

Page 5: 영국 창조산업 정책의 부상: 개념사적 고찰

5

사회미학자로서 아도르노 자신의 ‘하비투스’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2

둘째로, 영국 문화연구 전통과 함께 문화산업에 관심을 기울여온 또 다른 전통은 '문화에 관한

정치경제학파'라고 부를 수 있는 것으로, 간햄(Nicholas Garnham), 머독(Graham Murdock),

커란(James Curran) 등의 학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입장은 문화적인 산물을 상품이 아니라

‘텍스트’로 여기면서 그것이 발휘하는 이데올로기적인 효과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에 강력히

반대해왔다. 이에 기초하여, 그들은 문화연구자들이 텍스트 분석을 편애한 나머지 실질적인

경제적 분석을 포기했으며, 결국 모호한 문화정치를 낳는 것으로 귀결되고 말았다고

비판한다(Garnham, 1990). 이는 결국 아도르노의 문화산업 테제를 전혀 다른 방향에서 재고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자본주의 아래에서 문화는 점차 상품으로서 생산되고 있으며 따라서 생산 시스템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면서, 정치경제학파의 학자들은 크게 다음과 같은 네 가지 논점으로

아도르노의 테제를 비판했다(O'Connor, 2007: 19-22).

ⓛ 문화산업은 부분적으로 의미와 유흥이라는 인간의 몇 가지 근본적인 욕구에 부응하는 것이다.

② 관객 반응을 예측하거나 미리 프로그래밍하는 것은 전혀 불가능하다.

③ ‘문화산업’ 개념은 교환가치가 수집되는 메커니즘으로부터 유도되는, 서로 다른 종류의 문화상품들

사이의 구별점을 포착하지 못한다.

④ 문화적 재앙의 핵심적인 지표로서 예술가들이 문화산업 속으로 완전히 흡수되는 현상은 발생하지

않고 있다.

요컨대, 현실경제(real economy) 분석을 통해서도, 문화산업 안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화생산과

문화소비가 문화상품을 둘러싸고 있는 이미 결정된, 총체화하는 시스템의 재생산에 봉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비록 그 주된 방법론에서 차이를 보이기는 하지만, 위의 두 영국적 전통이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문화산업론’에 관해서 서로 대체재가 아니라 보완재의 관계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무엇보다 양자의 가장 두드러지는 공통점은 두 입장 모두 선험적으로 부가된 총체화하는

시스템을 과대평가하는 것을 거부하면서, 수세적인 ‘문화의 민주화’를 넘어서서 보다 공세적인

‘문화 민주주의’를 위한 공간을 확보하려고 노력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비판들은 결국 1968년

5월 이후의 신사회 운동, 문화산업 자체의 비약적인 성장, 자본주의의 성공이 점점 공고해지는

현실 등과 맞물리면서 아도르노의 ‘문화산업’ 테제에 대한 전반적인 재고의 필요성을

불러일으켰다. 철저하게 비관적인 사색적 전망이 과연 '신 시대'(Hall & Jacques, 1989)의

2왜 베토벤, 쇤베르크, 베케트는 진실하며 진정하고, 스트라빈스키와 재즈는 그렇지 않은가? 왜 아도르노가

제시하는 대부분의 좋은 사례들은 아프리카나 아시아나 아메리카가 아니라 유럽에서 나온 것들뿐인가?

Page 6: 영국 창조산업 정책의 부상: 개념사적 고찰

6

구체적인 현실에서도 온전하게 적합성을 담보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이 제기된

것이다. 그 직접적인 결과는 첫 번째 자녀와 꼭 닮아있으면서도 자세히 보면 상당히 다른 두

번째 자녀의 탄생이었다. 한국어로는 동일하게 문화산업으로 번역될 수도 있겠지만, 영어로는

분명하게 구별되는 ‘Culture industry’에서 ‘cultural industries’로의 이행이 시작된 것이다.

2. 런던시의회의 ‘문화(적) 산업’(cultural industries)

영국에서는 런던시의회(Greater London Council: 이하 GLC)가 이러한 새로운 문화산업 개념의

용법을 세우고 활성화하는 주요한 행위자였다(Hesmondhalgh & Pratt, 2005: 3).3 그런데 GLC의

정치적 입장과 의의를 이해하려면 양차대전 이후 영국의 정치사에 대한 선이해가 필수적이다.

거칠게 말해서, 전후 영국 정치사는 정부 정책의 기본적인 방향 전환에 따라 크게 세 시기로

구분될 수 있다(Budge et al., 2004).

첫째로, 1945년에서 1979년까지는 여러 정당들이 번갈아 정권을 잡았을지라도, 기본적으로는

전후 노동당 정부가 설정했던 복지국가의 이념을 지향했다. 모든 정당들은 일종의 사민주의적

합의에 충실하면서, ‘건강 서비스를 비롯한 각종 복지혜택’, ‘기간 산업들의 정부 소유’, ‘적극적인

정부 지출을 통한 실업 방지’ 등을 공통적으로 추진했다. 그러나 이러한 합의는 1973년 오일쇼크

이후 급격한 경기후퇴와 함께 위기를 맞는데, 이른바 대처리즘의 시대(1979-1997)가 열린

것이다.

영국에서 이 시기는 ‘복지 국가’라는 기존의 합의를 ‘경쟁력 있는 국가’로 대체하면서, 19세기

자유시장의 논리를 사회 각 부문의 구조조정을 위한 핵심원리로 삼았다. 따라서 대처 정부는

‘작지만 강한 정부’라는 기치를 내걸고, ‘복지 혜택’에서 ‘자기 책임’으로, ‘국가 소유’에서

‘민영화’와 ‘탈규제’로, ‘정부의 기획’에서 철저한 ‘시장 메커니즘’으로 정부 정책의 기본 방향을

급선회시켰다. 문화정책 또한 이러한 논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는데, 지방 정부의 문화정책

문건에서 ‘전략적 파트너십’, ‘투자 대비 수익’, ‘돈에 대한 가치’ 등의 개념이 속속 도입되기

시작한 것이 이를 증거한다. 물론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정부 정책은 지속적인 ‘경쟁’을 자극하여

성장의 핵심동력인 ‘혁신’을 추동한다는 장점을 보였다. 모두의 소유는 누구의 소유도 아니라는

말이 시사하듯이, 개인의 소유권을 강조하면서 일종의 ‘기업가주의’를 사회의 토대로 삼는 것은

실제로 ‘경쟁력 있는 사회’를 위한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수많은 통계들이

3국제적인 층위에서 이 개념을 널리 퍼뜨린 행위자로는 단연 유네스코를 꼽을 수 있다. 1980년대 초반, 유

네스코는 문화정책 필드에서 ‘문화산업’의 중요성을 촉진시키기 위해서 Cultural Industries: A Challenge for

the Future of Culture (1982)를 포함한 일련의 획기적인 리포트들을 출간했다.

Page 7: 영국 창조산업 정책의 부상: 개념사적 고찰

7

보여주듯이, 이 시기에 영국 사회의 빈부 격차는 물론이고, 런던을 중심으로 한 잉글랜드

남동부와 여타의 지역들 사이의 격차가 눈에 띄게 벌어졌다는 사실이다. 극심한 ‘양극화’는

자연스레 여러 갈래의 사회적 갈등을 심화시켰다. 따라서 1997년 토니 블레어의 신노동당이

들어섰을 때, 영국인들의 관심은 거세게 몰아친 신자유주의 열풍을 과연 새 정부가 어떤 식으로

조정할 수 있을지에 쏠리게 된다.

기든스의 『제3의 길』(1998)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인데, 결과적으로 이는

구노동당의 노선과 대처리즘을 혼합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특히 문화부(DCMS)의 신설과

함께 ‘창조산업’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추진된 강력한 문화정책은 사회적 효과와 경제적 효과의

통합을 목표로 하면서, 그 형식은 ‘국가의 개입’이라는 좌파적 의제를, 그 내용은 ‘경쟁의

자극’이라는 우파적 의제를 취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신노동당의 문화정책에서 특별히

두드러지는 것은 크고 작은 문화적 기획들을 국가·도시·국민들의 ‘문화 정체성을 고양하는’

수단으로 적극 개발·활용해왔다는 점이다. 21세기의 국가 브랜드로 ‘Cool Britannia’를 설정한

것으로부터, 각 도시들이 ‘창조도시’(creative city)로 거듭나는 방식에 대한 문화부의 천착, 이와

더불어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집단과 개인을 ‘창조적인 조직 및 인재’로 거듭나게 한다는 방향성

등은 나름의 성과를 이룩했다. 이 과정에서 ‘문화’적 섹터가 더 이상 국가정책에서 변방이 아니라

중심을 차지하게 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세 시기에서 GLC는 두 번째 시기, 즉 대처리즘 시대의 중앙정부 정책에 맞서 지방정부

차원에서 대안적인 문화정책을 모색하고자 한 흐름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GLC의 작업이

영국에서 지방적인 층위에서 제기된 최초의 체계적인 ‘문화산업 전략’으로 기록되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우리는 그것이 단순히 지방적인 기획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음을 기억해야만 한다. 그것은

동시대적인 민주주의적 문화정책을 향한 보다 커다란 야심을 품고 있었는바, 이와 관련하여

적어도 세 가지 요점이 강조될 필요가 있다.

첫째, GLC의 정책입안자들은 기존의 ‘문화산업’(Culture industry)보다 훨씬 덜

이데올로기적인, 따라서 훨씬 더 실용적인 의도를 가지고 ‘문화(적) 산업’(cultural

industries)이라는 개념을 문화정책 영역에 도입했다. 이 과정에서 아도르노의 ‘전체화하는

메커니즘의 존재와 기능’에 대한 앞의 두 전통의 비판들이 상당 부분 수용되었다. 그 결과

GLC는 공공정책은 생산자나 정책입안자들의 야심보다는 수용자들의 필요와 수요에 봉사하기

위해서, 문화적 상품과 서비스를 분배하는 방식으로 시장을 사용할 수 있으며 또 그래야만

한다는 관점을 수립할 수 있었다(Garnham, 1990).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것(GLC)은 ‘예술’에 중심을 두고 있는 문화정책으로부터 -그리고 그 정책의 토대로서 예술가 및

생산 제도에 대한 보조에 중심을 두고 있는 문화정책으로부터- 결별하려는 시도를 표상했다. 그들은

경제학적이고 통계적인 수단들을 사용하고[예를 들어, 고용 지도나 가치 사슬], 주요한 부수 활동과

비창조적 활동을 포함하여 그 섹터 전반이 작동하는 방식에 초점을 맞추면서, 상업적인 문화생산의

조건들을 다루기 시작했다. 그러한 방식으로 문화적 (그리고 경제적) 목표들을 성취하기 위해 경제적

Page 8: 영국 창조산업 정책의 부상: 개념사적 고찰

8

수단을 사용하면서, 문화정책에 대한 산업적인 접근을 표상했던 것이다(O’Connor, 2007, 24).

둘째, 이러한 방식으로 GLC가 문화와 산업의 수렴이라는 새로운 추세를 쫓은 것은

사실일지라도, 이것을 GLC의 좌파(left-wing) 정책가들이 대처 정부의 강력한 힘에 굴복한

것으로 보는 것은 잘못이다. 분명히 GLC의 문화산업 개념은 대처 정부가 문화정책계에 이식한

두 흐름, 즉 사회적∙정치적 관심이라는 1970년대의 경향으로부터 ‘경제적 개발’(economic

development)이라는 목표로의 전환(Bianchini, 1993: 2), 그리고 유가 위기 속에서 비상체제로

도입된 긴축재정이 상시화되면서 초래된 문화관련 예산의 삭감(Hesmondhalgh, 2007: 86)에 대한

대응으로 이해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이 공공 자금의 낭비를 막고 수용자의 필요에

봉사하고자 채택한 보다 실용적인 문화산업 정책은 오히려, 새로운 사회-경제적 조건들을 더

적확하게 이해하고 새로운 정책결정 도식을 도입하여, 대처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도전하고자 한 것이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들의 입장은 실용주의적 또는 반이상주의적

평등주의(egalitarianism)로 요약될 수 있다(Hesmondhalgh, 2007: 139-140 참조).

이러한 까닭에 GLC는 얼마 지나지 않아 대처 정부에 의해 폐지되고 말았지만, 그것은 단지

지방정책에서만이 아니라 일반적인 문화정책에서도 하나의 이정표가 되기에 충분한 업적을

남겼다(O’Connor, 2007: 24). 우선 GLC가 수립한 입장 및 정책들은 향후 런던을 넘어

대도시들을 중심으로 한 여러 지방정부들에 의해 계승되었으며, 따라서 GLC가 제시한 새로운

‘문화산업’ 개념은 이들 정부가 중앙정부와 상대하면서 자신들의 경제적·문화적 전략을 수립하는

데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1986년, 세계 최초로 설립된 쉐필드 시의 문화산업쿼터가 이에 관한

가장 직접적인 증거로 꼽힐 수 있을 것이다(Moss, 2002). 더 나아가, GLC의 정책입안자들이

‘문화산업’을 새로운 종류의 민주적 문화정책의 목록에 삽입함으로써, 문화·경제·정치의

상호관계를 새로운 맥락에서 고민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는 점은 특별히 언급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1980년대의 급변하는 사회-경제적 조건들과 대면하면서, 아직까지도 여전히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이 쟁점을 매우 구체적인 방식으로 점화하고 배태했던 것이다.

3. DCMS의 창조산업(creative industries)

그렇다면 18년 동안의 보수당 지배를 거쳐, 1997년 신노동당이 정권 재창출에 성공한 이후

어떠한 일이 벌어졌을까? 이제 드디어 GLC로 대표되는 구노동당의 문화정책이 빛을 발하는

시점이 온 것일까? 대답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신노동당은 구노동당과

대처 정부의 입장을 ‘제3의 길’이라는 새로운 시각으로 계승 및 지양하고자 했다. 이는 비록 선거

Page 9: 영국 창조산업 정책의 부상: 개념사적 고찰

9

기간 동안 노동당이 GLC의 ‘문화산업’(cultural industries) 개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는

했지만(Schlesinger, 2007), 당선 이후 문화정책의 기저를 이루는 핵심어로 ‘창조산업’(creative

industries)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낸 것에서 잘 드러난다. 사실 창조산업 개념은 호주에서

수입된 것인데, 호주정부는 이 용어를 이미 1994년에 발간한 Creative Nation (1994)이라는

주요한 정책선언에서 사용한 바 있다(Throsby, 2008). 그러나 이 개념이 전 세계에 널리

유포되고 ‘유행’하게 된 것은 영국 정부가 이 용어를 채택하고 보다 체계적인 의미화를 실행한

이후였다는 점에서, 많은 연구자들은 이 개념의 지적재산권을 호주정부보다는 영국정부에게

귀속시키고 있다.4

여기서 문제는 ‘왜 1997년 신노동당 정부가 용어 상의 변화를 채택했던 것일까?’로 집약될 수

있다. 이에 답하려면 우선 새 정부의 출현과 함께 기존의 관련 기관들을 흡수하여 새롭게

문화매체체육부(Department for Culture, Media and Sport)가 발족한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이

새로운 부서가 야심차게 실행한 최초의 기획들 가운데 하나는 향후 문화적 섹터가 발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총망라하고, 스스로의 정책적 지향을 가늠하는 지표로 삼을 만한 ‘진정성

있는’(authentic) 문서를 생산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 DCMS의 초대 장관인 크리스 스미스는

토니 블레어의 직접적인 요청에 따라, 여러 부처의 고위 공무원들, 베테랑 학자들과 정책전문가들,

마지막으로 데이비드 퍼트남과 리차드 브랜슨 등 영화, 음악, 패션, 게임 등에서 영국을 대표하는

산업계의 인사들을 망라하는 태스크포스를 구성했다. 문화부 장관이 직접 의장을 맡은 이 ‘거물급’

태스크포스(Creative Industries Task Force: 이하 CITF)가 바로 문화산업을 대체하는 새로운

개념으로서 창조산업 개념을 정교화하고 널리 유통시키는 총본산의 역할을 하게 된다.

따라서 CITF의 기능과 의의에 관하여 몇 가지 지적할 것들이 있다. 우선 이런 식의 유명인

태스크포스는 우연히 형성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블레어가 당선 직후에 행한 일들 중에서

가장 많은 언론의 주목을 끈 일은 1997년 7월에 다우닝 스트리트의 총리관저에서 개최된 화려한

유명인사 리셉션이었다. 그리고서 몇 달 뒤에 CITF가 설립되었고, 1998년 봄에는 ‘새로운’

영국을 진흥한다는 명목 아래 ‘Panel 2000’이라는 또 다른 유명인 태스크포스가 설립되었다.

다시 말해서, 이러한 흐름은 당시 신노동당이 강력하게 주창했던 표제어, 즉 ‘쿨 브리타니아’라는

우산 아래서, 쇠락하고 있는 대영제국이라는 ‘신화’에 대응하고자 한 국가적인 기획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둘째로, CITF의 과제는 다름이 아니라 정부정책의 견지에서 ‘국내와 해외에서 영국

창조산업의 경제적 효과(impact)를 극대화하기 위한 단계들을 장려하는 것’(DCMS, 2001)이었다.

4 물론 새롭게 제기된 ‘창조산업’ 개념을 채택하지 않고 더 오래된 ‘문화산업’ 개념을 고수하고 있는

정부들도 여전히 상당수 존재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그 중 하나인데, 이창동 장관에 의해 한국문화정책의

‘전화번호부’로 기획되고 생산된 ‘창의한국’(2004) 보고서의 출간 이래로, ‘창조산업’ 개념을 공식적인

정책용어로 사용하자는 의견들도 끊임없이 제기되어 오고 있다.

Page 10: 영국 창조산업 정책의 부상: 개념사적 고찰

10

이를 염두에 둔다면, 과거의 관료제 방식을 넘어서 산업계의 영향력 있는 인사들을 태스크포스에

불러들인 것은 업계의 시급한 문제들을 파악하는 데 효율적인 방식이었고, 새로운 정책 담론을

퍼트리는 데 효과적인 방식이었다고 평가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위의 목표를 추구함에서

CITF가 이룩한 최고의 공헌을 꼽으라면, 그것은 2000년 6월에 해체되기까지 쉼 없이 생산해낸

여러 종류의 획기적인(seminal) 보고서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cf. UK Parliament, 1999).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보고서는 1997년 10월부터 1998년 10월까지 6번의 회합을 통해

생산된 Creative Industries Mapping Document (1998, 이하 CIMD)이다. 이 문건은 ‘창조산업’의

정의(definition)와 범위(scope)를 명확하게 제시함으로써 단 시일 내에 영국 내에서 만이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가장 인기 있는 문화정책 문건 중 하나가 되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창조산업은

‘개인의 창조성, 솜씨(skill), 재능(talent)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지적 재산의 발생(generation)

및 이용(exploitation)을 통해 일자리와 부를 창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활동들(activities)’을

의미한다. 또한 해당 문건은 창조성을 발휘함으로써 지적 재산의 발생과 이용을 통해 일자리와

부를 창출해내는 활동들로, ‘광고, 건축, 미술 및 골동품 시장, 공예, 디자인, 디자이너 패션, 영화,

쌍방향 레저 소프트웨어, 음악, 공연예술, 출판, 소프트웨어, 그리고 텔레비전 및 라디오’라는

13가지 핵심 영역을 구체적으로 지정하고 있다. 비록 이 정의와 분류가 그 기준의 자의성과

모호성 때문에 필연성을 획득하기 어려워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역으로 이러한 간단명료한

진술들이 구체적인 정책활동을 계획하고 실현하는 데 생산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음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창조산업의 정의와 범위를 명료화함으로써, CIMD 문건은 이후 일련의 정책

문건들과 연구보고서들이 일관성을 갖고 담론적 실천을 전개해나갈 수 있는 개념적인 토대를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정책적인 작업이 현실경제와 유리되지 않고 상호작용할 수 있게 하는

실천적이고도 실용성 있는 도구를 제공했던 것이다.

2001년에 개정된 CIMD 보고서에 따르면,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창조산업은 변방에서 주류로

이동하게 되었다’(DCMS, 2001: 3). 그와 더불어, 위의 명료한, 간편한 또는 과감한 개념화를

기초로 해서, ‘창조산업’ 개념도 ‘문화산업’ 개념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자리를 확고히 하게 된다.

자, 이제 우리의 애초의 질문, 곧 ‘무엇이 이와 같은 용어상의 급격한 변화를 가능하게 만든

것일까’로 돌아가 보자. 무엇보다도, 새로 선출된 노동당 정부의 복잡한 이데올로기적 입장이

먼저 고려되어야 한다. 보수당 정부들(1979-1997) 아래서 진행된 장구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은 신노동당 정부가 들어섰을 때 이미 무시할 수 없는 상수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달리

말해서,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출발점이었던 것이다. 허나 이는 신노동당이 노동당의 오랜

전통들과 무조건 결별해야만 했다는 말은 아니다. 대신에 새 정부는 두 블록의 사이 어딘가에

스스로를 위치 짓고자 했다. 그렇다면, 이 전략은 창조산업 정책을 통해서 어떻게 드러나는가?

영국의 초대 문화부 장관인 크리스 스미스는 자신의 연설문 모음집인 Creative Britain (1998:

142)에서, 신노동당 정부가 새로운 문화정책의 방향을 설정할 때 정책입안자들 사이에 크게 네

Page 11: 영국 창조산업 정책의 부상: 개념사적 고찰

11

가지 합의된 주제가 있었음을 밝혔다. ‘접근(access), 탁월성(excellence), 교육(education),

그리고 창조경제(creative economy)’가 그것들인데, 그는 이러한 원칙들이 신노동당 문화정책의

주요한 목표들을 잘 드러내고 있으며, 그 핵심에 자리하고 있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창조성이라고 단언한다.

창조성은 파괴보다 창조가, 그리고 현학적인 규칙에 얽매어 생기를 잃는 것보다 상상력을 가지고

도약하는 것이 더 나은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자체로 주요한 가치를 갖는다. 창조성은 자아를

실현하고 스스로의 가능성을 완성해나간다는 차원에서 개성적이고, 민감하고, 지적인 인간 존재로서

우리들 각각에게 혜택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 또한 창조성은 본래적으로 사회적이고 상호적인

과정이며, 우리들을 인간으로서 함께 묶어줄 수 있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창조성은 경제를 위해서, 곧 그것을 잘 육성하기만 한다면 실질적인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급성장하는 산업에 대해 그것이 큰 기여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Smith, 1998, 148)

위의 인용문에서, 우리는 ‘창조산업’을 전경화하는 것이 신노동당의 위치설정과 관련된 보다

큰 그림으로서 ‘창조성에 관한 담론’의 일환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요컨대, ‘창조산업’을

육성한다는 목표 아래 ‘탁월성’과 ‘창조경제’를 강조함으로써 신노동당은 구노동당의 평등주의와

거리를 두면서, 정보사회와 지식경제의 촉진을 위해 보수당 정권이 개발해온 유산들을 계승할 수

있었다(Pratt, 2005: 32-5). 바로 이것이 우리가 신노동당의 문화정책 속에서 ‘효율성, 효과, 돈에

대한 가치, 시장의 힘과 같은 대처정부 에토스의 성숙’(Roodhouse, 2006: 16)을 인지하게 되는

이유다. 다른 한편으로, 신노동당은 능동적인 국가의 역할이 요구되는 지점으로서 ‘접근’과

‘교육’을 강조함으로써, 문화적 섹터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과 개입이라는 노동당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민영화와 탈규제로만 이루어진 대처 정부의 문화정책과도 스스로를 구별 지을 수

있었다. 이러한 역학 속에서 데모스(Demos)나 코메디아(Comedia)와 같은 노동당 친화적인

씽크탱크들은 그 초기에서부터 창조산업 관련 정책들과 연구자들을 쏟아내는 온상으로서

기능해왔는바(cf. Schlesinger, 2009), 창조산업이라는 새 개념은 문화정책 영역에서 ‘제 3의

길’을 개척하는 데 무척이나 유용한 수단이었다.

그 후 이 개념은 문화적 섹터의 구조조정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감당하게 된다. 우선 개념의

범위를 구성하는 13개의 분야들이 잘 드러내듯이, ‘창조산업’은 ‘창조예술과 문화산업을 결합시킨’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Hartley, 2005: 6). 또한 개념의 정의가 시사하듯이, 그것은 앞의 두

용어들이 포착하지 못했던 신 경제(the new economy)의 새로운 동학을 파악하기 위해 발명된

것임도 분명하다(Cunningham, 2002). 달리 말해서,

‘창조산업’은 이 시대의 정치적, 문화적, 기술적(technological) 지형에 적합한 용어이다. 그것은 쌍둥이

진실, 곧 (i) ‘문화’의 핵심은 여전히 창조성이라는 것, 하지만 (ii) 창조성은 탈산업화된 사회 속에서는

꽤나 다른 방식으로 생산되고, 배치되고, 소비되고, 즐겨진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Hartley &

Cunningham, 2002: 20).

Page 12: 영국 창조산업 정책의 부상: 개념사적 고찰

12

따라서 ‘창조산업’ 개념의 발명과 촉진은 지식경제 또는 신 경제의 점증하는 중요성에 대한

문화적 섹터의, 특별히 정부와 산업계의 야심찬 응답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 시도를 야심차다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 개념이 순수/고급 예술과 문화산업 사이의(Smith, 1998: 144), 더

나아가서는 ‘예술과 상업’(Caves, 2000) 사이의 전통적인 이분법을 무너뜨리고자 한다는

사실에서 발견된다. 그 개념은 이처럼 새롭게 수렴하면서 부상하고 있는 산업영역이 현대

사회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영역 중 하나일 뿐만 아니라, 변화하고 있는 사회적 조건

하에서 어떻게 생존하고 혁신할 것인지를 다른 산업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원형(template)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 결과, 기존에 국가 정책에서 쉽게 무시되던 문화산업이

‘창조성과 혁신의 가장 뛰어난 범례’로서 21세기를 위해 영국을 재-브랜드할 수 있는 전략적인

영역으로 급속하게 부상할 수 있었던 것이다(O’Connor, 2007: 41).

바로 이것이 영국에서 창조적 전환, 즉 창조성 담론에 입각하여 국가의 문화정책이 전반적인

구조조정을 겪게 된 배경이자 과정이다. 그것은 결국 포스트포디즘, 정보화(informationalization),

포스트모더니즘과 심미화(aestheticization), 세방화(glocalization) 등으로 표상되는 ‘탈조직화된

자본주의’(Lash & Urry, 1987; 1994)의 도전에 대한 (보수와 진보를 뛰어넘는) 문화정책계의

응답이었다. 이 때문에 DCMS는 용어의 전환을 그토록 과감하게 밀어붙일 수 있었던 것이며, 전

세계의 다양한 국가들도 그토록 기꺼이 그 이행을 벤치마킹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신노동당에 의해 추진된 문화정책의 개념적, 구조적 변화는 구체적으로 어떤 성과물을 낳았는가?

급격히 부상하고 있으며, 또 널리 확산되고 있는 ‘창조산업’ 담론의 결과로서 어떤 정책

프레임워크가 도출되었을까? 지면과 시간의 제약으로 인해 이러한 쟁점들에 대한 논의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자 한다.

<참고문헌>

Adorno, T. (1991) Bernstein, J. M. (ed.) The Cultural Industry: Selected Essays on Mass Culture, London: Routledge.

Adorno, T. & Horkheimer, M. (1947/1997) Dialectic of Enlightenment, London: Verso.

Barrell, J. (1986) The Political Theory of Painting from Raynolds to Hazlitt: ‘The Body of the Public’, New Haven: Yale

Univ. Press.

Bianchini, F. & Parkinson, M. (eds.) (1993) Cultural Policy and Urban Regeneration: The West European Experience,

Mancherster: Manchester Univ. Press.

Bilton, C. (2007) Management and Creativity: From Creative Industries to Creative Management. Oxford: Blackwell.

Page 13: 영국 창조산업 정책의 부상: 개념사적 고찰

13

Budge, I., Crewe, I., McKay, D. & Newton, K. (2004) The New British Politics, Essex: Pearson Education Limited.

Cunningham, S. (2002) 'From Cultural to Creative Industries: Theory, Industry, and Policy Implications', Media

International Australia, 102: 54-65.

DCMS (1998) Creative Industries Mapping Document 1998, London: DCMS.

DCMS (2001) Creative Industries Mapping Document 2001, London: DCMS.

Garnham, N. (1990) Capitalism and Communication, London: Sage.

Hall, S. (1980a) 'Encoding/Decoding', in S. Hall, D. Hobson, A. Lowe, & P. Willis(eds.), Culture, Media, Language:

Working Papers in Cultural Studies, 1972-79, Hutchinson/CCCS.

Hall, S. (1980b) 'Cultural Studies: Two Paradigms', Media, Culture and Society, 2: 57-72.

Hall, S. & Jacques, M. (1989) New Times: The Changing Face of Politics in the 1990s, London: Lawrence and Wishart.

Habermas, J. (1984) The Theory of communicative Action, vol.1, Boston: Beacon Press.

Habermas, J. (1987) The Theory of communicative Action, vol.2, Boston: Beacon Press.

Hartley, J. (ed.) (2005) Creative Industries, Oxford: Blackwell.

Hartley, J. & Cunningham, S. (2002) ‘Creative Industries: From Blue Poles to Fat Pipe’, in Humanities and Social

Sciences Futures (Papers from the National Humanities and Social Sciences Summit held in July 2001).

Hesmondhalgh, D. (2007) The Cultural Industries, London: SAGE.

Hesmondhalgh, D. & Pratt, C. (2005) 'Cultural Industries and Cultural Policy', International Journal of Cultural Policy,

11(1): 1-13.

Lash, S. & Urry, J. (1987) The end of Organized Capitalism, Cambridge: Polity Press.

Lash, S. & Urry, J. (1994) Economies of Signs and Space, London: Sage Publications.

Lee, T. (2004) 'Creative Shifts and Directions: Cultural Policy in Singapore', International Journal of Cultural Policy,

10(3): 281-299.

O'Connor, J. (2007) The Cultural and Creative Industries: A Review of the Literature, London: Creative Partnerships.

O'Connor, J. & Xin, G. (2006) 'A New Modernity? The Arrival of 'Creative Industries' in China', International journal of

cultural studies, 9 (3): 271-283.

Pratt, A. (2005) 'Cultural Industries and Public Policy', International Journal of Cultural Policy, 11(1): 31-44.

Schlesinger, P. (2007) 'Creativity: From Discourse to Doctrine?', Screen, 48(3): 377-387.

Schlesinger, P. (2009) 'Creativity and the Experts: New Labour, Think Tanks, and the Policy Process', The International

Journal of Press/Politics, 14(3): 3-20.

Smith, C. (1998) Creative Britain, London: Faber and Faber.

Throsby, D. (2008) 'Modelling the cultural industries', International Journal of Cultural Policy, 14(3): 217- 232.

UK parliament (1999) Hansard: Creative Industries Task Force, 3 March.

Wang, J. (2004) 'The global reach of a new discourse: How far can 'creative Industries' travel', International Journal of

Cultural Studies, 7(1): 9-19.

Page 14: 영국 창조산업 정책의 부상: 개념사적 고찰

14

Appendix 1: The British Creative Industries Policy Framework

Appendix 2: The Criticisms of the Emerging Creative Industries Polic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