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호남선비들의 예술세계-유교문화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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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선비들의예술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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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최 : 한국국학진흥원ㆍ전주역사박물관

후원 : 문화관광부, 전주시, 안동시

전시 : 2006. 10. 26~2007. 1. 31 / 한국국학진흥원 유교문화박물관

2006 한국국학진흥원 유교문화박물관 정기기획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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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깊어 가는 10월에 전주역사박물관과 한국국학진흥원 유교문화박물관이 공동

주최하는「 ·호남선비의예술세계」기획전이열리게된것을기쁘게생각합니다.

남과호남은서로맞닿아있는지역임에도불구하고매우먼곳으로느껴지고있습

니다. 지리적인문제보다는심리적인문제가더큰것같습니다. 이는잦은만남과대화를

통해해결될수있을것입니다. 자주만나게되면어색함이없어지고서로를이해하게되

며, 나아가서로신뢰하는관계로발전하게됩니다.

이런점에서이번의기획전은큰의미가있습니다. 남과호남의선비들이추구했던

예술적전통을한자리에모아비교함으로써, 두지역의역사와문화를이해하는계기가

될것이기때문입니다. 비슷하면서도각각독특한멋과맛을지녔던두지역의예술작품

을감상하는이번기회를통하여서로에대한이해가한층깊어지기를바랍니다.

게다가이번전시회에서는격동의시기 던구한말과일제강점기에활동했던분들의

작품들이많이전시되는것으로압니다. 이작품들은올곧은선비의기개를간직하며비

운에처한조국의현실에울분을삼켜야했던분들의삶과혼이예술로승화한것들입니

다. 이러한작품을통해민족의아픔과그분들의정신을깊이음미해보는기회가되었으

면합니다.

끝으로이번기획전시를준비하기위해먼길도마다하지않고수고를다해주신전주

역사박물관이동희관장님과직원여러분, 늘우리전통문화의보존과확산에열과성을

다하시는심우 원장님을비롯한국학진흥원직원여러분, 그리고이번전시를위해기

꺼이소장자료를내주신여러문중어르신과소장자분들께감사의말 을드립니다.

전주역사박물관과한국국학진흥원의무궁한발전을염원하면서이번 호남교류전의

성공적인개최를다시한번진심으로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김 관 용

2006. 10.

한국국학진흥원이사장경상북도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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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만되면이산하山河의아름다움에새삼매료되고맙니다. 황금색으로빛나던들판

은풍요로운결실을맺고만물은새로운내일을위해숨을고르며, 산들은제각기온갖멋

을부리며오색빛옷으로갈아입었습니다.

이렇게아름다운계절에전주역사박물관과한국국학진흥원유교문화박물관이공동으

로의미있는전시를준비하 습니다. 가깝고도먼지역인 남과호남이서로만나이해

하는것은우리사회가당면한중요한과제라고생각합니다. 한국국학진흥원은그러한과

제를위한첫걸음으로이전시회를마련하 습니다. 전주는호남의맛깔스러운문화전통

을올곧게유지해온전통의예향藝鄕으로, 호남지역을대표하는전통문화도시입니다. 안

동은퇴계이황선생이후자타가공인하는한국성리학의본산지로서, 남의유교문화

를대표하는도시입니다. 이두도시가앞장서서 남과호남의만남을이뤄내기로하

고, 그첫걸음으로조선시대선비들의예술세계를맛볼수있는자리를마련한것입니다.

은은한묵향墨香을통해조선시대선비들의우아하고고상한정신세계를소요하는기회를

가지시기바랍니다. 아울러 남과호남의전통문화를함께맛보시면서우리전통문화의

다양성을접해보는소중한기회를마련해보시기바랍니다.

아울러이번기획전은두가지좀더큰목표를위한첫걸음이라는것도강조하고싶습

니다. 남과호남의지속적인교류를통한상호이해의증진이하나이고, 체계적인전통

문화의보존과수집을위해 남과호남이힘을합쳐노력하는계기를마련하는것이다

른하나입니다. 한국국학진흥원은설립이후한국학자료의수집, 보존과전시를위해노

력하 고나름대로큰성과를거두었습니다. 하지만한국국학진흥원이안동에위치한탓

에상대적으로경상북도지역에치중되는한계가있는것또한사실입니다. 이러한한계

를극복하는것은전국각지에우리와뜻을같이하는이들을만나고함께노력하는데있

다고생각합니다. 이런점에서이번기획전이이러한만남과노력을위한첫걸음이되기

를기원합니다.

끝으로이번기획전을위해먼전주에서많은수고를해주신전주역사박물관이동희

관장님과직원여러분, 귀중한자료를선뜻기탁하고대여해주신문중어르신들과소장

자분들, 그리고어려운여건에서도책임감을가지고맡은바소임을다해준한국국학진흥

원직원여러분들께깊은감사의말 을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심 우

2006. 10.

한국국학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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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한국국학진흥원과전주역사박물관이합심해 호남학술교류를하게되어기쁩

니다. 호남과 남은조선의근간이었습니다. 호남이서로의특색을지니면서화합과

상생의길을가려한다는것은그의미가지대하다고봅니다. 그러기위해서는서로간의

사상적문화적이해가필요합니다. 이번호남과 남의문인화교류전은서로의문화적

특질을이해하는데도움이될수있을것입니다.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고했습니다.

남과호남이고유의개성을이해하고살리되서로닮고조화로울수있음을전제로할때

양지역의화합과문화적발전을기대할수있을것입니다.

호남에는19세기만하더라도석정이정직과소치허련의맥을잇는문인화가크게발

전했습니다. 이정직은이기·황현과함께호남3걸이라고칭해지던선비로김제에서태어

나전북에문맥을형성했고, 선비회화남종화의거두인허련은진도에서태어나전남지역

에화단을형성했습니다. 서예에는원교이광사와창암이삼만이있습니다. 또한조선말

최고의학자로칭해지던간재전우와그학맥이있습니다. 이들의작품에는호남의지역

적특질이담겨있습니다. 호남의작품을같이놓고볼때그특색들이잘들어날수있

을것입니다.

오늘의시작은미미하다고할수있습니다. 그러나이런교류가지속되면서서로의이

해의폭이넓어질수있고, 서로의작품세계를통해지역인들의문화적역량도키워질수

있을것으로봅니다. 전주와안동은호남과 남의전통도시를대표하는곳으로자매결

연도시이기도합니다. 안동과전주가중심이되어 호남화합의물꼬를트는이런작품

교류가지속되기를기대하며많은분들의관심과참여를부탁드립니다.

이 동 희

2006. 10.

전주역사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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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기탁 및 자료협조 (가나다순)

대구화랑 도산서원 운 위원회 봉화금씨 매헌종택

봉화금씨 성재종택 안동권씨 송암(관물당)종택 안동김씨 봉화구전종택

예안이씨 체화정주손 의성김씨 제산종택 의성김씨 천전파 대종택

전북대박물관 전북도립미술관 전주 민속화랑

전주 솔화랑 전주역사박물관 전주이씨 송월재종택

진성이씨 상계종택 진주강씨 기헌고택 진주강씨 소우문중`

평해황씨 해월종택 홍정아 횡성조씨 월천종택

흥해배씨 임연재종택

일러두기

※이도록은한국국학진흥원유교문화박물관과전주역사박물관이함께준비하여2006년 10월26일부터안

동과전주를순회전시하는기획전「뜻이도달하면붓은못미쳐도- ·호남선비들의예술세계」의전시

도록이다.

※전시내용은 ·호남선비들의예술세계를시詩, 씨書, 그림畵등3부분으로구분하 다.

※도판설명은작품명, 작자, 시대, 재질, 크기, 문화재지정번호, 소장처의순서로기재하 다. 정확하지않거

나불필요한내용은생략하 다.

※작품의크기는‘세로×가로’순으로표기하 다. 단위는㎝이다.

※결락등으로확인할수없는 자는 로처리하 다.

김형수▶ 호남사림의교유

최재남▶ 남선비들의詩세계

이철량 ▶호남의 씨와그림

논문

014

032

076

164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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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선비들의예술세계I

詩I

퇴계 이황의 친필을 모아 엮은 책. 이황은 조선 중기의 문인이자 대학자로, 조선 성리학을 정립하여

동방의주자朱子로불렸으며서예사에서도‘퇴필退筆’이라고불리는독특한도학자풍의서체를남겼

다. 이것은주자의시를쓴것으로, 퇴계필법의일단을엿보게한다.

노선생필적 老先生筆跡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 I 16세기 I 서첩書帖 I 31.2×21.4한국국학진흥원(봉화금씨 성재종택 기탁)

鐵笛亭 철적정에서

何人轟鐵笛 / 噴薄兩崖開 어떤사람이철피리를울렸나, / 두언덕이용솟음치며열렸네.

千載留餘響 / 猶疑笙鶴來 천년간여운이머물러있으니, / 학을타고피리불며올듯하네.

01

산앞에예전에탈수정이있었는데고인이된시랑호명중(송나라호인胡寅의자)공이일찍

이산에사는은자류겸도군과더불어노닐면서시를짓던곳이다. 류군은젊어서호기

롭고용감하여유협의기질을지녔는데, 만년에다시자취를숨겨스스로산수사이에노

닐었다. 철피리를잘불어구름을뚫고암석을쪼개는소리를내었다. 호공의시에“다시

번거로이철피리를비껴부니, 여러신선과더불어듣는다”는구절이있다. 정자는이제

없어진지오래되었다. 하루는손님과도사몇명과함께그옛터를찾았는데마침피리

소리가수풀바깥에서비장하고침울하게들려와암석이모두떨리는듯했다. 예전의일

을미루어생각하니감회가일어다시정자를지어그장소를표시하고인하여지금이름

으로바꾸었다.

山前舊有奪秀亭, 故侍郞胡公明仲, 嘗與山之隱者劉君兼道游涉而賦詩焉. 劉少豪勇, 游俠使氣, 晩更晦跡, 自放山水之間.善吹鐵笛, 有穿雲裂石之聲. 胡公詩, 有更煩橫鐵笛吹與衆仙聽之句, 亭今廢久. 一日與客及道士數人, 尋其故址, 適有笛聲發於林外, 悲壯回鬱, 巖石皆震. 追感舊事, 因復作亭, 以識其處, 仍改今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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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선비들의예술세계I

詩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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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천 조목의 씨를 모은 필첩. 조목은 퇴계 제자 가운데 유일하게 퇴계와 함께 도산서원에 배향된

인물이다. 여기에소개된시는조목이멀리서온편지를받고반가운마음에쓴시이다. 조목의우정

을엿볼수있을뿐아니라, 단아하면서도노숙한그의서체書體를감상할수있다.

월천선생유묵 月川先生遺墨

월천月川 조목趙穆(1524~1606) I 16세기~17세기 초 I 서첩書帖 I 43.2×32.0한국국학진흥원(횡성조씨 월천종택 기탁)

西來一片素 / 宛接舊風度서쪽에서온편지속에서/ 옛모습을마주대한듯하네.

老病臥江皐 / 蹶然起遐慕늙고병든몸강언덕에누웠으니/ 사무치는그리움만더하네.

月川散人월천산인

02

퇴계退溪 이황李滉의고제인월천조목이주고받은 들을모은책. 여기에소개된시는조선중기의

문신인 신지제申之悌(1562~1624)가 쓴 것이다. 신지제는 아주신씨鵝州申氏로, 자는 순보順甫이고 호

는오봉梧峰·오재梧齋이다. 1589년(선조22) 증광문과에갑과甲科로급제하여정언正言과승지承旨 등

을역임하 다.

월천선생수간 月川先生手簡

월천月川 조목趙穆(1524~1606) I 16세기~17세기 초 I 서첩書帖 I 34.5×20.0한국국학진흥원(횡성조씨 월천종택 기탁)

謹次月川尊丈韻월천어르신의시를따라삼가짓다

川柳時時過 / 風煙日日新때때로시내와버들을둘러보니, / 바람과안개가날마다새롭네.

幽情無限好 / 醉入一杯春그윽한정취가너무도좋아/ 취해서술한잔들었네.

申之悌拜草신지제가삼가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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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선비들의예술세계I

詩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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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연재배삼익이1588년(선조21) 명나라사신으로갈때그의친우들이전송하며쓴시를모은필첩.

여기에소개된시는준봉準峰 고종후高從厚(1554~1593)가쓴것이다. 호남의명문장흥고씨출신인고

종후는임진왜란때아버지고경명高敬明을도와의병을일으켰으며, 진주성전투에서순국하 다.

조천별장 朝天別章

임연재臨淵齋 배삼익裵三益(1534~1588) I 16세기 I 서첩書帖 I 38.0×27.0한국국학진흥원(흥해배씨 임연재종택 기탁)

奉呈陳謝使行軒 진사사로가는행차에받들어올리다

玉帛西馳禮益虔 / 漢庭專對正須賢명나라에사신보내는예가더욱경건하여/ 사절로어진이를선발해서보낸다네.

早知妙選傾朝望 / 莫把閑愁惱別筵오묘한선발은조정의기대를모았으니/ 시름에겨워송별연에서번민하지말라.

花雨濂微浿江路 / 柳絲低拂車門煙꽃비는패강길에부슬부슬내리고/ 버들은계문의안개속에가볍게흔들리네.

回天筆力神應助 / 更待恩綸下日邊응당신이도와천자의마음을돌려서/ 왕명이다시변방에내리길기다리네.

高從厚謹稿 고종후삼가짓다

04

배용길이‘금역당琴易堂’이라는서재를짓고당시의여러명사들에게부탁한 을모은필첩. 배용길

은임연재臨淵齋 배삼익裵三益의아들로, 천문과지리, 율력律曆, 의학등다방면에조예가깊었고특히

역리易理에밝았다. 여기에소개된시는남창南窓 김현성金玄成(1542~1621)이쓴것이다. 김현성은왕

희지체와조맹부체가교차하는조선중기서예사에서조맹부체, 즉송설체松雪體의명가로이름을날

린인물이다.

금역당첩 琴易堂帖

금역당琴易堂 배용길裵龍吉(1556~1609) I 1594년 I 서첩書帖 I 40.6×25.0한국국학진흥원(흥해배씨 임연재종택 기탁)

寄題裵洗馬琴易堂 배세마금역당에대해짓다

臨水背山處 / 有堂常掩門 산을등지고물을임한곳에/ 늘문이닫힌금역당있네.

五絃時自撫 / 三畵夢曾呑 오현금때때로어루만지고/ 주역의괘효를꿈속에삼켰네.

世上知音少 / 胸中至樂存 세상에알아주는이적으나/ 가슴속에참된즐거움지녀

端能辭侶冕 / 唯愛奉晨昏 바르게벼슬을사양하고/ 오직부모봉양에애쓰네.

南窓 남창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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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선비들의예술세계I

詩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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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경별장 赴京別章

구전苟全 김중청金中淸(1566~1629) I 1614년 I 서첩書帖 I 36.5×22.0한국국학진흥원(안동김씨 봉화구전종택 기탁)

奉送而和宗兄朝京종형인김중청이명나라사신으로떠나는것을공손히전송하며

西去朝天値亢陽 / 火雲紅日劇炎荒한창더운때사신이되어중국으로가니/ 불꽃같은구름, 이 거리는태양, 폭염속이네

應知辛繡淸無暑 / 憑仗行臺滿面霜사신은맑아서더운줄모르니/ 사신행렬에의지한얼굴서릿발가득하네.

甲寅夏 淸陰1614년여름김상헌

07

김중청이1614년(광해군6) 천추사겸사은사의서장관으로북경에가게되자, 그의친우들이전송하

면서 쓴 시문을 모은 필첩. 여기에 소개된 시는 병자호란 당시 척화를 주장하고 말년에 선대의 고향

인안동소산에은거했던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1570~1652)이쓴것이다.

의성김씨 천전파川前派 문중의 대표 인물들의 친필을 모아 묶은 필첩. 천전파 중시조인 청계 김진에

서 시작하여, 귀봉 김수일, 운암 김명일, 학봉 김성일, 운천 김용, 애경당 김집 등의 이 들어 있으

며, 내용은 주로 편지 이다. 여기에 소개된 시는 김집金潗(1558~1631)이 쓴 것으로, 벗과의 이별을

아쉬워하는절절한마음을담고있다. 김집은학봉김성일의장남으로, 자는활원活源이고호는애경

당愛景堂이다. 음사蔭仕로세마洗馬를지냈다.

선대수적 先代手蹟

서첩書帖 I 33.8×22.0 I 한국국학진흥원(의성김씨 제산종택 기탁)

醉別취중에이별하다

錦城東閣枕江流 / 獨上把杯送遠遊금성(나주의옛이름)의동각에강물은흘러가고, / 홀로올라술잔잡고그대를보내네.

握手難堪離別苦 / 僕夫登道促鳴騶이별의고통견디기어렵지만/ 마부는떠나자고우는말을재촉하네.

活源拜활원이삼가쓰다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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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선비들의예술세계I

詩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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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홍순 전북 함열 출생. 몰락한 양반집안 출신으로, 일찍부터 선조들을 통해 학문과 씨를 익혀

왔다. ‘서진사徐進士’로불린것이라든가, 헌종때에사마에제수되었다는기록이남아있는것을보

면초시에급제한것으로보인다. 당시명필이었던창암이삼만에게서 씨를익혀각서체에능통하

다. 호남의명필로명성을떨쳤으며, 아들과손자등도모두 씨로유명하 다. 소치허련이그의

집을자주찾았다는것을보면당시호남의대표적사대부로서의기품을지니고있었던것으로추정

된다. 전하는 씨가 적고 그나마 그림은 남아 있는 것이 아예 없어 얼마나 서·화를 즐겼는지 확인

하기 어려우나, 이런 여러 가지를 종합해 볼 때 문장과 시에 밝았던 대표적 선비 음은 분명한 듯하

다. 『호산심서湖山心書』라는탁본집을남겼다.

서첩 書帖

호산湖山 서홍순徐弘淳(1798~?) I 19세기 I 지본묵서紙本墨書 I 58.0×13.0 I 개인 소장08

08-1 08-2 08-3 08-4 08-5 08-6 08-7 08-8 08-9 08-10 08-11 08-12 08-13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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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선비들의예술세계I

詩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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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萬物同流上下 만물과더불어하나되어위아래로흐르니

澹似湯烹第一泉 맑기가제일천의물에끓이고삶은것같구나.

詩思適意寧求好 시가겨우뜻에맞으니어찌더좋기를구하랴.

每愧卷裏相酬句 매양책속의 을읊으니서로주고받던구절일세.

世多君子扶皇極 세상의많은군자가황극皇極*의뜻을붙잡고

學到窮源自不疑 배움이궁극의근원에이르니스스로의심치않네.*제왕이나라를다스리는표준이될만한지극히올바른법.

天放閒人養太和 하늘이한가한사람을놓아주니태화太和를기르고

萬里無雲來宛轉 만리에구름이없으니 완곡하게둘러서돌아오네.

08-1 08-2 08-3 08-4 08-5 08-6 08-7 0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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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선비들의예술세계I

詩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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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將欲走當溪立 산은다만달리고자하나시내를만나서고

懷伊人宛在中央 저사람을그리는마음은완연히중앙에있도다.

九天如水*萬謎侯籤 도서만권은업후謎侯**의서책이네.

水本無聲遇石喧 물은본래소리가없으나돌을만나면웅성거리네.*서체나의미가뒤와연결이되지않는다.

**중국당나라명신인이필의봉호이다.

淸於月白初三夜 밝은달보다도맑은초사흘밤에

自畵湖山舊住邊 스스로호산湖山의옛날살던주변을그리다

08-9 08-10 08-11 08-12 08-13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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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선비들의예술세계I

詩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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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구 絶句송월재松月齋 이시선李時善(1625~1715) I 18세기 I 시판 I 23.8×45.2한국국학진흥원(전주이씨 송월재종택 기탁)

絶句 절구

靑山六七丈 / 白屋二三間 청산은육칠장이요, / 흰집은두세칸이라.

中有一榜士 / 平生述與刪 그속에한오활한선비, / 한평생저술을일삼네.

10

이시선이‘송월재’를짓고그감회를쓴시를새겨놓은시판. 이시선은경당敬堂 장흥효張興孝를사사

했으며, 학문이뛰어났다. 그러나관직에는관심이없어평양, 경주, 개성등의고도古都와금강산등

의명승지를편력하는것으로생을마쳤다. 이시는그의그러한삶을잘보여주는내용으로서, 산천

에은거하며사는선비의기품을잘담아내고있다. 씨또한매우아름답다.

이황이 직접 짓고 쓴 12수의 연작 시조 도산십이곡을 새긴 목판. 퇴계의 한 서체를 감상할 수 있

는 귀중한 자료이다. 도산십이곡은 내용상 천석고황泉石膏英(산수를 사랑하는 것이 지나쳐 마치 불

치병처럼 됨)을 노래한 전반부와 학문과 수양을 통한 성정性情의 도야를 노래한 후반부로 나뉜다.

이런 까닭에 이황은 스스로 도산십이곡을 평하면서 앞뒤의 6수를 각각 마음이 지향하는 바를 읊은

‘언지言志’와배움이지향하는바를읊은‘언학言學’으로구분하기도하 다.

도산십이곡 陶山十二曲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 I 16세기 I 목판 I 24.0×59.5한국국학진흥원(도산서원운 위원회 기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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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선비들의예술세계I

書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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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송대의 대학자인 주희朱熹(1130~1200)가 지은『무이구곡가』가운데 팔곡까지를 초서로 쓴 작

품. 병풍마지막에‘모은거사茅隱居士’가썼다고되어있으나의성김씨천전파에속한인물이라는것

외에는인적사항이분명치않다. 칠곡七曲승구承句아래적힌두구는팔곡으로가야한다.

무이구곡가 武夷九曲歌

모은茅隱 I 연대미상 I 8폭 병풍 I 지본묵서紙本墨書 I 149.0×54.5 I 한국국학진흥원(평해황씨 해월종택 기탁)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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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운회 전남 보성 출신. 가까이에 살았던 이건창에게서 학문과 씨를 배웠다. 6세 때부터 붓을

잡고 씨를썼으며, 예서·전서·초서·행서등두루미치지않는데가없었다. 특히초서는그야말

로“선의 경지에 있는 신필神筆”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주변에서“보성 강물이 온통 설주의 붓 씻는

먹물이다”라는 말이 돌았을 정도로 오로지 씨 쓰는 일로 평생을 일관하 다. 가히 모든 세속적인

활동을외면하고서도書道를통하여올곧고자존심이강한기개를끝까지지켜낸전형적인선비라할

수있다.

무이구곡가 武夷九曲歌

설주雪舟 송운회宋運會(1874~1965) I 20세기 I 10폭 병풍 I 지본묵서紙本墨書 I 173.0×48.5 I 전북대박물관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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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曲山高雲氣深 / 長時煙雨暗平林 다섯굽이산높고구름기운깊은데/ 오랜안개비에넓은숲이어둑하네.

林間有客無人識 / 杳乃聲中萬古心 숲속의나그네를아는이없는데/ 사공의뱃노래에마음이한이없네.

六曲蒼屛繞碧灣 / 茅茨終日掩柴關 여섯굽이푸른절벽은강물을둘 고, / 띠집은종일토록사립문이닫혔네.

客來倚棹巖花落 / 猿鳥不驚春意閑 노저어온길손앞에꽃떨어지지만/ 잣나비와새는봄뜻이한가로워놀라지않네.

七曲移船上碧灘 / 隱屛仙掌更回看 일곱굽이배를옮겨푸른여울에올라/ 은병봉과선장암을다시돌아다보네.

却憐昨夜峰頭雨 / 添得飛泉幾度寒 지난밤산정상에비가내리더니 / 샘물은더욱더차가움을더했네.

八曲風煙勢欲開 / 鼓樓巖下水槃回 여덟굽이바람과안개가개이려니/ 고루암鼓樓巖아래물이굽이쳐흐른다.

莫言此處無佳景 / 自是遊人不上來 이곳에좋은경치없다고말하지말라/ 여기서부터속인은올라갈수없나니.

九曲將窮眼豁然 / 桑麻雨露見平川 아홉굽이장차끝나니시야가확트이고/ 상마우로桑麻雨露*가너른시내에보이네.

漁郞更覓桃源路 / 除是人間別有天 어랑漁郞이다시도원桃源길을찾으나/ 여기가바로인간을떠난신선세계라네.

*뽕나무·삼나무·비·이슬. 선경仙境과대비되는현실세계를상징하는고시어古詩語

武夷山上有仙靈 / 山下寒流曲曲淸 무이산위에는신선의 靈이있고, / 산아래는시린물이굽이굽이맑도다.

欲識箇中奇絶處 / 櫂歌閒聽兩三聲 그가운데빼어난곳알고자한다면/ 삿대소리두세가락한가로운이곳.

一曲溪邊上釣船 / 茶亭峰影備晴川 첫굽이개울가에서낚싯배에오르니/ 만정봉그늘이맑은내에잠겼네.

虹橋一斷無消息 / 萬壑千巖鎖暮烟* 무지개다리는한번끊어져소식이없으나/ 산은온통푸른연기에덮 네.*『주자전서』에는'暮'가'翠'로되어있음.

二曲亭亭玉女峯 / 揷花臨水爲誰容 두번째굽이에우뚝높은옥녀봉이여, / 꽃꽂고물가에이르니누구위한단장인가.

道人不復荒臺夢 / 興入前山翠幾重 도인은황량한누대의꿈을다시꾸지않는데/ 겹겹이푸른앞산, 흥이솟구치네.

三曲君看架壑船 / 不知停棹幾何年 셋째굽이에서구 에매인배를보라, / 노젓기를멈춘지몇해인지모를레라.

桑田海水今如許 / 泡沫風燈堪自憐 뽕나무밭이바다가됨이이와같으니/ 덧없고위태로운세상스스로애처롭다.

四曲東西兩石巖 / 巖花垂露碧監毛籠 넷째굽이동서쪽두개의솟은바위/ 바위틈이슬드리운꽃치 치 푸르네.

金鷄叫罷無人見 / 月滿空山水滿潭 금계金鷄는울기를다해도사람은보이지않고/ 달빛은빈산에가득하고물은못에가득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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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사 조선의대표적인양명학자이자서예가. 산수와초충등여러가지그림에도조예가있었으

나 특히 씨에 뛰어나 조선을 대표하는 서예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힌다. 윤순尹淳에게서 씨를

배웠으며, 진서·예서·전서등모든서체에통달하 다. 특히초서에발군의성취를보여독보적인

경지를 이루었는데, 그의 씨는 특별히‘동국진체東國眞體’로 불리면서 민족적 서체를 이루었다는

평가를받았다. 이작품에서보듯이이광사의초서는 씨라기보다회화를보는듯조형미가가득한

것이특징이다. 나주벽서사건으로큰아버지진유眞儒가처벌될때연좌형으로진도로유배되어말년

을보냈던관계로그의 향이호남지역에많이남아있다.

초서 씨원교圓嶠 이광사李匡師(1705~1777) I 18세기 I 8폭 병풍 I 지본묵서紙本墨書 I 204.0×82.0 I 전북대박물관13

滿月雲山具樂處 둥근달구름산은모두가즐기는것이니

一毫榮辱不須驚 조그마한 욕에도놀랄것없네.**송나라소옹이지은<용문도중>이라는시에나오는구절

雨後靜觀山意思 비온뒤에고요히산의모습을보고

風前閒看月精神 바람앞에한가히달의정기를보네.**송나라소옹이지은<안락와중주일준>이라는시에나오는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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樂意相關禽對語 즐거운뜻이서로관계하니새와마주말을하고

香盛不斷樹交花 향기는성하여끊이지않으니나무가꽃을피우네.**송나라석만경이지은시의구절. 정명도는호연지기를뜻한다고

평하 다.

綠楊有意風前舞 푸른버드나무뜻이있어바람앞에춤을추고

凉月多情海上來 서늘한달정이많아바다위에서떠오르네.**송나라소순흠이지은<화언유만연명월루>이라는시의구절

啼鳥遠聞知晝靜 우는새소리멀리들리니낮이고요함을알겠고

好花相續覺春遲 좋은꽃서로이어피니봄이더딤을깨닫겠네.**송나라장뢰가지은<제주씨원>이라는시의구절

客子光陰詩卷裏 나그네세월은시집속에흐르고

杏前消息雨聲中 살구꽃소식은빗속에들려오네.**송나라진여의가지은<회천경지노인방지>라는시의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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羲皇以上人何似 태고적순박했던사람들어찌같을까

不過淸風臥北窓 맑은바람부는북쪽창가에누운것에불과했네.**도연명이전원생활을즐기면서지은구절을원용한것

樓臺影落魚龍駭 누대에그림자지니고기와용이놀라고

鐘磬聲裏水石寒 종경소리들리는속에수석이차갑네.**송나라왕 이금산사金山寺를두고지은시에나오는구절

이삼만 전주출신(정읍출신이라는설도있음). 부친이가난한선비 던까닭에집안이매우곤궁

하 다. 이때문에특별히재료를구할여유가없어칡넝쿨을꺾어붓을대신하거나종이대신삼베

를빨아가며 씨를연습하 다. 이름을‘삼만三晩’이라한것도가난하여배움이늦었고, 친구사귐

이 늦었으며, 결혼 또한 늦어진 까닭에서 다고 전한다. 이렇게 독학으로 공부한 결과 이삼만의

씨는전국적으로명성을얻어당시“조선국명필이삼만”이라는칭호를얻기도하 다. 그의 씨는

이른바‘유수체流水體’라 불리는데, 이는 씨가 마치 물 흐르듯 유려하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

이다.

초서 씨창암蒼巖 이삼만李三晩(1770~1847) I 19세기 I 8폭 병풍 I 지본묵서紙本墨書 I 110.0×45.0 I 전북대박물관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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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抱孤村遠 / 山通一逕斜 물은외딴마을멀리안고/ 산은외줄기비낀길로통하네.

不知深樹裏 / 還住幾人家 모르겠네. 깊은수풀속에는/ 몇집이나살고있는지.**명나라유구가지은<산거>라는시

竹室鳳自至 / 水淸魚將行 대나무숲속집에봉황이이르고, / 물이맑으니물고기가다니네.

着我草堂裏 / 危坐學長生 초당의뒤안뜰에서/ 무릎꿇고불로장생법을배우네.**원나라조맹부가지은<천관산제 > 28수중하나

老樹葉似雨 / 浮嵐翠欲流 늙은나무잎이비에젖은듯한데, / 뜬아지랑이는푸르러흐르고자하네.

西風驢背客 / 愧斷野橋秋 서풍은노새등위나그네에게부니, / 끊어진들다리에서가을을노래하네.**원나라조맹부가지은<제추산여행도> 라는시

舜石立四壁 / 寒泉飛兩龍 가파른암석이사방벽에둘러치고, / 차가운샘물엔두용이나는구나.

人間苦炎熱 / 仙山已報秋 인간세상은더위에괴로워하는데, / 신선이사는산은이미가을이구나.**원나라조맹부가지은<천관산제 > 28수중하나. 결구의‘보추’는원전에‘추풍秋風’으로되어있다.

明月臨虛幌 / 疎篁舞翠鸞 밝은달은빈휘장속에비치고, / 성긴대나무는푸른난새처럼춤을추네.

獨吟苔上石 / 霜葉媚天寒 홀로이끼낀돌위에올라읊으니,*/ 서리맞은잎은하늘이찬데도어여쁘네.*원나라예찬이묵죽을두고지은시이다. ‘상석上石’이원전에는‘석상石上’으로되어있다.

東塢梅初動 / 香來托意深 동쪽언덕매화가처음피니, / 꽃향기가마음깊이 려오네.

明知在籬外 / 行到却難尋 틀림없이울타리밖에있을것이나/ 나가보아도찾기어렵네.**송나라육유가지은<조매>라는시

息景憩烟霞 / 澄懷臥丘壑 봄안개속에한가히쉬니, / 맑은가슴으로언덕위에누웠네.

久遲蘇仙君 / 莫驚松上鶴 소선군(소식의별호) 이너무늦어/ 소나무위학을놀라게말라.**원나라예찬이지은<제화여보천> 이라는시

靑林藏曲密 / 遠水閒微茫 푸른숲은빽빽한구비를감추고, / 먼곳의물은아득하게흘러가네.

浴鳧飛鷺處 / 人家半夕陽 멱감던오리는백로있는곳으로날아가고, / 인가에는석양이반쯤비추네.**금나라조병문이지은<제자화> 2수중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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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석 전북김제출신. 벽하조주승의큰아들로태어나어려서부터아버지의가르침으로학문과

서화를 익혔다. 선비들이 즐겨 그린 대나무와 난에서 수작들을 많이 남겼다. 그의 대나무 그림은 필

획이분명하며단정하고엄격함을특징으로한다. 특히담묵과농묵의대비를즐겨활용하여화면의

부드러운 효과를 높이고 있는데, 이러한 엄격하고 단정한 붓질은 아버지로부터 받은 선비적 기품과

단정함을그대로보여주는것이라생각된다. 이작품처럼그는 씨에서도매우뛰어난모습을보여

주는데특히예서, 해서등에서좋은작품을많이남겼다.

百畝庭中半是苔 / 桃花淨盡菜花開 백무畝넓이의뜰가운데반쯤은이끼끼고, / 복숭아꽃깨끗이다지니채소꽃이피었네.種桃道士歸何處 / 前度劉郞今又來 복숭아심던도사는어디로돌아가고/ 떠났던사람이이제다시왔구나.*

*당나라유우석이지은<재유현도관> 이라는시

綿陽江色潮添滿 / 彭起秋聲雁送來 심양강빛은조수가 려들어가득하고/ 팽려의호수에가을기러기소리들리네.南望廬山千萬棚 / 共誇新出棟梁材 남쪽으로여산을바라보니천만길이요, / 함께자랑하노니새로내놓은동량감이네.*

*당나라유우석이지은<등청휘루> 라는시

又被時人高姓名 / 春風引路入京城 또세상사람들에게고명한인물로평가되어/ 봄바람에길을떠나서울에들어가네.知君憶得前身事 / 分付鶯花與後生 그대는전생의일을기억하는가/ 후생의삶이꾀꼬리와꽃의분신인것을.*

*당나라유우석이지은<답장시어가희재등과후자낙부상도증별> 이라는시

蝶戀晩花終不去 / 鷗逢春水固難飛 나비는늦은꽃을연모하여끝내가지못하고/ 갈매기는봄물을만나굳이날기어렵네.繆人心地都無着 / 伴蝶隨鷗亦不歸 야인의마음자리도무지집착이없어, / 나비와갈매기좇아또한돌아가지않네.*

*당나라당언겸이지은<야행> 이라는시

당시집구 唐詩集句심농心農 조기석趙沂錫(1876~1935) I 20세기 I 12폭 병풍 I 지본묵서紙本墨書 I 170.0×42.0 I 전북대박물관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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池塘春煖水紋開 / 堤柳垂絲間繆梅 연못은봄이되어물무늬가열리고/ 둑가버드나무휘늘어진사이에들매화피었네.江上年年芳意早 / 蓬瀛春色逐人來 강가에는해마다일찍이꽃이피고/ 봉래산의봄빛은사람을쫓아오네.*

*당나라이약이지은<강남춘> 이라는시

長看岩穴泉流出 / 忽聽懸泉入洞聲 바위에서솟는샘물한참을보노라니/ 골로흘러드는폭포수소리언뜻들리네.莫摘山花抛水上 / 花浮出洞世人驚 산에핀꽃꺾어다가물위에던지지말라. / 꽃이떠서골짜기나가면세상사람놀라리.*

*당나라유상이지은<제수동> 이라는시

黃鶴樓前吹笛時 / 白笭紅蓼滿江湄 황학루앞에서피리불때에/ 흰마름과붉은여뀌는강에가득히아름답네.衷情欲訴誰能會 / 唯有淸風明月知 충정을호소하고싶으나누가능히이해할까/ 오직맑은바람과밝은달만이알아주리라.*

*당나라여암이지은<제황화루석조> 라는시

草鋪橫野六七里 / 笛弄晩風三四穢 풀이덮인넓은들은6, 7리나되는데, / 저문바람에피리소리서너가락들리네.歸來飽飯黃昏後 / 不脫蓑衣臥月明 돌아와배불리먹은밥은해진뒤 고/ 도롱이도벗지않고누웠으니달은밝네.*

*당나라여암이지은< 목동답종약옹> 이라는시

斗笠爲帆扇作舟 / 五湖四海任磅遊 큰갓을돛삼고부채로배를지어/ 오호五湖와사해四海를마음대로놀리라.大千沙界須臾到 / 石爛松枯經幾秋 수많은세계도순간에이르니, / 돌문드러지고소나무말랐으니몇해가지났는지.*

*당나라여암이지은<절구> 라는시

花枝臨水復臨堤 / 閒照江流亦助泥 꽃가지물에임하고다시둑에닿아, / 한가로히강물을비추다가진흙을돕네.千萬春風好擡擧 / 夜來曾有鳳凰棲 천만의봄바람은들어올리기를좋아하여, / 밤사이에일찍이봉황이있어깃들었네.*

*당나라원진이지은<양양위노도기사> 라는시

春水初生乳燕飛 / 黃蜂小尾撲花歸 봄물처음불어나자어린제비날고/ 노랑벌은작은꼬리를꽃에부딪고돌아가네.窓含遠色通書幌 / 魚擁香鉤近石磯 먼빛은 방휘장을통해창에어리고/ 고기는향기로운미끼잡으려고돌여울가까이모여드네.*右唐詩集韻 이시는당시唐詩의운을모은것이다.

*당나라이하가지은<남원> 이라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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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병사 梅花甁史

소우小愚 강벽원姜璧元(1859~1941) I 20세기 I 액자 I 지본묵서紙本墨書 I 56.0×142.0 I 개인소장16

강벽원 경북 주 출신. 자는 윤화允和, 호는 소우小愚·두고산인斗皐山人·만학당晩學堂. 시·그

림· 씨에 모두 뛰어나‘삼절三絶’로 불렸다. 특히 추사체의 기풍이 배어나는 씨로 유명한데, 같

은 시대 중국의 명유名儒 던 강유위康有爲(1858~1927)가 강벽원의 씨를 보고“안진경顔眞卿과 미

불米連의 필법을 얻었으니, 당대 제일”이라고 극찬을 했다는 말은 널리 알려진 일화이다. 그림에도

일가를이루어조화의경지에이르 다는평을받았다. 이 씨는강벽원의말년의필법을잘보여주

는대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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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벽원의서예이론서. 서예에대한학술적접근이드물었던조선후기에서근세에이르는시기우리

서예사의이론적흐름을살펴볼수있는소중한자료이다. 모두두권으로되어있다.노정서결 蘆亭書訣

소우小愚 강벽원姜璧元(1859~1941) I 20세기 I 서첩書帖 I 34.5×24.0 I 한국국학진흥원(진성이씨 상계종택 기탁)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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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사 思無邪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 I 16세기 I 서판95.0×28.0 I 한국국학진흥원(도산서원운 위원회 기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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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의 씨를판각한서판. “자법字法이란본디부

터심법心法의표현”이라는생각에서점과획을모

두순일純一하게할것을요구하 던퇴계의 씨

는 점과 획은 물론 자 하나하나마다 그 짜임새

가 엄정단아한 것을 특징으로 한다. 이렇듯 씨

공부와도학공부를하나로봄으로써우리서예사

에서‘퇴필退筆’이라는 고유한 경지를 열었던 퇴

계의필력을엿볼수있는작품이다.

‘사무사思無邪’는사서삼경의하나인『시경詩經』에

나오는 귀이다. 공자가“생각에사특함이없다”

는뜻으로그의미를풀이한이후, 유학자들사이

에서수양공부의좌우명으로많이애송되었다.

‘사무사思無邪’와함께퇴필退筆의특징이잘드러나있는작품이다.

‘신기독愼其獨’은『중용中庸』과『대학大學』에 나오는 귀로서, “홀로 있을 때 마음가짐을 특히 조심

한다”는뜻이다. 마음의움직임을늘참되게함으로써개인의사사로운욕망을극복하고우주자연의

이치와하나가되고자했던성리학적인수양공부의요체가담겨있는경구이다.

신기독 愼其獨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 I 16세기 I 서판 I 96.5×31.0한국국학진흥원(도산서원운 위원회 기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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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물관만물 一物觀萬物

석전石田 황욱黃旭(1898~1993) I 20세기 I 액자 I 지본묵서紙本墨書

290.0×84.0 I 전북대박물관

一物觀萬物 한가지사물을통하여만물의이치를통찰하다.

書于全北大學校博物館 石田 黃旭 전북대학교박물관에서석전황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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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욱 전북고창출신. 5세때부터한학을공부했을만큼두

뇌가 명석하고 총명하 다. 독학으로 공부를 지속하다 22세

에는금강산에들어가 10년동안깊은자기성찰과함께학문

의 세계를 터득하 다. 평생을 오직 학문과 씨에만 몰두한

전형적 선비생활을 하 으며 죽을 때까지 붓을 놓지 않았다.

60대 이후 오른손 수전증 때문에, 유명한 악필법握筆法(송곳

을 쥐듯 붓을 쥐고 쓰는 필법)을 창안하 다. 나중엔 그 오른

손마저 못 쓰게 되자 왼손을 통한 좌수서左手書를 쓰기도 한

대단한 정신력의 소유자로서, 그야말로 도道의 경지에 이른

무기교의기교를낳은대표적서예가이다.

담락재 湛樂齋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1745~?) I 18세기 I 현판 I 41.0×97.0 I 한국국학진흥원(예안이씨 체화정주손 기탁)21

경북 안동시 풍산읍에 소재한 체화정徇花亭의 현판. 조선후기 최고의 화가로 평가되는 김홍도가 쓴

것이다. 그가 1781년지금의안동시안기동에있던안기역의찰방을지낼때쓴것으로추정된다. 김

홍도가 남긴 몇 안되는 씨라는 점에서, 그리고 화가로 유명한 그의 필법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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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일수 唐詩 一首

강암剛菴 송성용宋成鏞(1913~1999) I 20세기 I 액자 I 지본묵서紙本墨書

135.0×35.0 I 개인소장

行到水窮處 가다가물길이끝난곳에이르러

坐看雲起時 앉아서구름이일어나는것을본다.**당나라왕유가지은<종남별업>이라는시의한구절

22

송성용 전북김제출생. 한학과서화에대가 던유재송기면

의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 밑에서 한학과 학문을 익히며

사대부의 품성을 길 으며, 아버지가 타계한 후 씨와 그림에

몰두하 다. 45세때처음국전에출품하기시작하 고, 후일초

대작가와 심사위원이 되기도 하 다. 이렇듯 장년에 들어 세속

의 활동에 일부 참여하기는 하 으나 시종일관 도포를 입고 갓

을쓰고생활한사실상한국근대이후의마지막선비라할만한

인물이다. 그의 씨는안미치는곳이없을만큼다방면에출중

하 는데 이 작품에서 보듯 필치는 언제 어디서 머무는지를 예

측하기어려울만큼거침이없으며운필의기세역시보는이를

긴장시키는힘을지니고있다.

송시 일수 宋詩 一首유하柳下 유 완柳永完(1892~1953) I 20세기 I 액자 I 지본묵서紙本墨書

125.0×35.0 I 개인소장

水光入座琴書潤 물빛이자리에들어와비치니거문고와책은윤기나고

花氣侵人笑語香 꽃기운이사람에게엄습하니웃으며하는이야기향기롭네.*

柳下 유하쓰다*송나라진관이지은<유감호>라는시의한구절

23

유 완 전북 김제 출생. 석정 이정직에게서 학문과 씨, 그림

등을배웠다. 1917년에조선미술전람회에서특선을하기도하 다.

아들동곡유근상도아버지의 씨를이어받아서예가로활동하

다. 유 하의 씨는특히중국명대동기창류의행서작품이많이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전하는 작품들은 대체로 선이

가늘고 끝이 날카롭게 뻗어나간 특징을 보여 주고 있어 그의 올곧

은선비정신과세속과타협하지않았던청렴한성품을반 하고있

다는평가를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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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선비들의예술세계I

書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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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 일수 宋詩 一首

팔하八下 서석지徐錫止(1826~1906) I 1906년135.8×35.7 I 지본묵서紙本墨書 I 개인소장

市廛差可隱저잣거리도조금은은거할만하여,

未暇泛滄洲신선이사는곳에배띄울겨를이없네.**송나라이심경이지은시

雨航斤正우항에게가르침을청하며

丙午三月日何山翁七十八歲書병오년3월78세의하산옹이쓰다

서석지 대구출신. 팔하외에황

곡黃谷, 하산옹何山翁등의호를쓰기

도한다. 통정대부공조참의를지낸

서항준徐恒俊의 증손자이며, 서철렴

徐撤濂의아들이다. 호남의대서예가

창암이삼만에게서법書法을배웠는

데, 해서와행서에특히능했다. 한

말 남서화계의거두석재서병오

를어렸을때가르치기도하 다.

24 빙호추월 領壺秋月설송雪松 최규상崔圭祥(1892~1956) I 20세기 I 액자 I 지본묵서紙本墨書 I 139.0×45.0 I 전북대박물관

領壺秋月 얼음을담은옥호玉壺와가을달(청렴결백한마음을비유하는말).

25

최규상 전북김제출생. 일찍이 10여세때부터당대최고의대가 던석정이정직의문하에들어

갔으며, 또한 석재石齋 서병오徐丙五와 성재惺齋 김태석金台錫 등에게서도 공부하 다. 군산측량학교

에서신학문을익혀김제군청과백산면등에근무하다일제의강압이깊어지자홀연히관직을던지

고전주로거처를옮겨학문과서예에만몰두하 다. 당시 그의 씨는경향각지에유명하 는데,

1946년에는당대제일가는서화가들과서울에서대동한묵회를결성하여활동하 고, 1954년에는예

술원회원으로추대되기도하 다. 그러나워낙강직한선비적성품을지녀사회적명예에는거의신경

쓰지않았다. 대표적 씨는역시전서라할수있는데, 이는성재김태석에게서 향을받은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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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선비들의예술세계I

書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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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의 씨를모은서첩. 이황은조선중기의문인이자대학자로, 조선성

리학을정립하여동방의주자朱子로불렸으며, 서예사에서도‘퇴필退筆’이라고불리는독특한도학자

풍의서체를남겼다. 이서첩의 씨들은그의그런방정한삶을그대로느끼게해준다.

퇴계 이황 제자들의 친필을 모아 엮은 서첩. 소개된 부분은 고봉高峰 기대승奇大升(1527~1572)이

1571년이황에게올린제문인데『고봉집』제2권에실려있다. 기대승은이황과8년동안서신을통해

주고받은사칠논변四七論辯으로유명하며, 문학과서예에도능했다.

도산제현유묵 陶山諸賢遺墨

16세기 I 서첩書帖 I 지본묵서紙本墨書 I 40.0×25.5 I 한국국학진흥원(진성이씨 상계종택 기탁)27퇴도선생서법 退陶先生書法

16세기 I 서첩書帖 I 지본묵서紙本墨書 I 57.0×33.5 I 보물 제548호한국국학진흥원(안동권씨 송암(관물당)종택 기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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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선비들의예술세계I

書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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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1563~1633)가 쓴녹옥장서綠玉杖序에대해후대문사들이쓴 을묶어서만

든필첩筆帖. 녹옥장은박한朴玉旱(1576~1652)의부친이조모를위해구한지팡이로서, 정경세가쓴서

문에는녹옥장이이집안에들어오게된아름다운사연을반초서로적고있다. 정경세는경북상주출

신으로, 학봉김성일과함께 남퇴계학파의양대산맥을이룬서애류성룡계열의학맥을잇는대

유학자이다.

조선중기의문신이자이황의문인이었던임연재臨淵齋 배삼익裵三益(1534~1588)과 그의아들인금

역당琴易堂 배용길裵龍吉(1556~1609)의 친필을모은서첩. 소개된부분은배삼익의친필시이다. 배

삼익은힘있고유려한필법으로이름을떨쳤는데, 이시에서도그러한면모가여실히묻어난다.

녹옥장첩 綠玉杖帖

17세기 I 서첩書帖 I 지본묵서紙本墨書 I 38.0×23.2한국국학진흥원(무안박씨 해파 화천종중 기탁)

28 배선생양세유묵 裵先生兩世遺墨

17세기 I 서첩書帖 I 지본묵서紙本墨書 I 39.2×25.1한국국학진흥원(흥해배씨 임연재종택 기탁)

醉吟錄呈伊西使君昌樂郵吏求和 취중에이서사군창락찰방에게써서드리고화답을구함

山水千年地 천년의땅산수가좋은곳에

風烟十里間 십리에걸쳐바람안개펼쳐졌네.

相逢莫辭醉 서로만나선취하는걸사양치말게

一笑解愁顔 한바탕웃음에근심어린얼굴펴네

臨淵 임연재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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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선비들의예술세계I

書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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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 전북전주출생. 조선의마지막대유학자라는평을받는학자이자사상가. 14세에부친을따

라 서울로 이사하 으며, 21세에 아산에 머물던 성리학자 임헌회任憲晦를 찾아가 학문을 익혔다.

1905년을사조약이체결되자이에서명한대신들은모조리죽여야한다고상소를올리기도하 으나

1910년끝내일본에의해나라가병합되자고향에돌아와군산과부안앞바다의섬들을떠돌며생활

하 다. 말년에 부안의 계화도界火島에 머물 는데, ‘중화中華’를 잇는다는 뜻에서 섬을‘계화도繼華

島’라고쳐불 다. 도道로서만이나라를구할수있다는신념에서의병에참가하지않았을만큼철저

한도학자 으며, 60여권의저서와많은제자를길러낸당대의대표적인선비 다.

서간 書簡간재艮齋 전우田愚(1841~1922) I 19~20세기 I 서첩書帖 I 지본묵서紙本墨書 I 46.0×32.0 I 개인소장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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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선비들의예술세계I

書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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題金好問遺稿 金君好問天資沈靜近道, 余嘗擧德哲成法以告之. 盖意其能深造自得, 而終成大器也. 孰謂其受福不周, 如程子之言, 而不免於夭乎 今觀其遺文又多嘉言, 余痛惜其有志未就而遽九原也. 因撫卷愴涕, 而書其左方如此云. 削蒙亶安桂月識. 平生所謂未嘗有不可對人言者, 此溫公務實之功, 學者最要務實. 艮老.

김호문金好問의유고遺稿에제題하다

김호문은천성이깊고고요하여도에가까워서나는일찍이덕과지혜를들어법도를이루라고일러주었다. 그가능히깊이나아

가스스로얻어서결국엔큰그릇을이루라는뜻이다. 무엇때문에그가복을받고도고루미치지못하여정자의말처럼일찍죽음

을면하지못하 다고말한것인가? 지금그가남긴 과많은아름다운말을보니그가뜻을두고도나아가지못한채갑작스럽게

죽은것이몹시애석하다. 책을어루만지며마음이아파눈물을흘리며그것을왼편의내용처럼써서전한다.을묘년8월에쓰다.

“평생동안일찍이사람을대하여말하지못할것이없다”고한것은온공溫公(司馬光)이말한‘실질에힘쓰는노력’이니, 배우는사람

에게가장중요한것은곧이실질에힘쓰는것이다. 간재노인

形色天性, 孟子愈足之曰, 氣質本性, 靈覺太極, 滿山靑黃碧綠, 無非是太極. 朱子愈足之, 而滿腔骨肉形氣, 無非是本性. 踐形盡倫, 聖人之能事, 而小學之明倫敬身, 盡之矣. 學焉而不以聖人自期, 則已矣. 學問而不以小學爲本, 則亦僞而已矣. 右老洲先生開示人聖門戶以告人者, 宜深體之. 艮齋病夫.

형색과천성은맹자가덧붙여서말하기를기질과본성은태극을 특하게깨닫는것이니, 산에가득찬청靑·황黃·벽碧·녹綠의

사물들모두이태극이아님이없다. 주자朱子가덧붙여서말하기를마음속에가득찬골육의형기形氣는본성이아님이없다. 도리

를실천하여인륜을온전히실현하는것은성인의능한일이니, 소학의명륜明倫과경신敬身은이이치를다한것이다. 배워서스스

로가성인으로서기약하지않으면말아야할것이오, 학문하면서소학小學으로서본을삼지아니한즉또한거짓일뿐이다. 이상은

노주선생老洲先生(吳熙常)이성인의문호에들어가는것을사람들에게알려줌으로써보여주신내용이니마땅히깊게체득해야할것

이다. 간재병든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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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선비들의예술세계I

書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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君子正其衣冠, 尊其瞻視, 治國平天下之權輿也. 事天·事君·事父母, 其本在敬其身. 此苟庵先生語也. 夫事天事君父治國平天下, 是何求大事 而一敬字爲之本始. 兵, 敬其可忽乎 今先將小學第三篇讀取百千遍, 其餘諸書亦須次第理會. 一一反己體察力行, 庶幾爲有本有末之學也. 艮翁病中, 答丁翰秀問學.

군자가의관을바르게하고보는바를높게하는것은나라를다스리고세상을화평하게하는일의시작이오, 하늘을섬기고임금

을섬기고부모를섬기는그근본은자신의몸을공경히하는데있다. 이는구암(申應朝: 1804~1899) 선생의말이다. 하늘을섬기고

임금과부모를섬기며나라를다스리고세상을화평하게하는이일은어떻게하여야이룰수있을까? ‘경敬’한 자가근본이된

다. 오호라, 경敬을어찌소홀히하랴? 지금먼저소학의3편을백천번읽고그나머지여러책은또한당연히순서대로일일이깨

달아알아야한다. 하나하나몸에반성하고성찰하며힘써행하면본本과말末이갖추어진학문이될것이다. 간재가병중에정한수

가배움에대해물은것에답한다.

許重植遺以白紙, 報之以此, 楮化爲紙, 神乎妙哉. 凡化爲聖, 爾其竭其才. 許奏煥遺余以紙用是爲酬. 領凌燒不熟, 石砂蒸不廂. 士當如此, 而先要做得領凌石砂. 七十五歲艮翁書付十四歲童子許敬模.

허중식許重植이백지를주므로이로보답한다. 닥나무가종이가됨은신기하고묘하다. 범인이변하여성인이되니너도그재주를

다하라. 허주환許奏煥이나에게종이를주므로이를보답한다. 얼음은불태워도익지않고돌과모래는쪄도끈기가생기지않는다.

선비는마땅히이와같아야하며먼저능히얼음처럼불에익지않고모래처럼삶아지지않게됨이중요하다. 75세에간재늙은이

가써서14세동자童子허경모許敬模에게부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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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선비들의예술세계I

畵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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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련 전남진도출생. 초의선사의도움을얻어추사김정희문하에서공부하 다. 처음이름은허

련이었으나후에중국남종문인화의대가왕유의이름을따서허유라고개명하 다. 호는소치小痴·

석치石痴·노치老痴 등을사용했는데, 이는중국원나라말기남종화의대가대치大痴 황공망黃公望을

공경했기때문이었다. 조선말기대표적인남종문인화가로평가받는다. 산수, 문인화등다양한방면

에 일가를 이루었으며, 문인화 중에서 특히 모란을 많이 그려 호남화단에 많은 향을 끼쳤다. 노년

에들어고향진도에운림산방을열고여생을보냈는데, 그의아들허형許瑩, 손자허건許楗 또한그림

을그려대를이어갔다. 이작품은말년에그려진것으로, 담담한필치로욕심없이그렸으며여러초

목들의생태에대한사실성이돋보인다.

문인화소치小痴 허련許鍊(1809~1892) I 19세기 I 6폭 병풍 I 지본묵화紙本墨畵 I 122.0×46.0 I 전북대박물관31

31-6 31-5 31-4 31-3 31-2 31-1

竿長政釣龍三峽 대나무는길어서바로삼협三峽의용을낚고,

節勁終巢鳳一枝 마디가굳세니마침내한가지는봉황의집이되네.

老癡 늙은소치

淸風披拂自多思 청풍이난을스쳐가니스스로생각이많고,

斜日澹雲香滿林 석양의엷게구름낀숲에향기가득차네.

31-1 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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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선비들의예술세계I

畵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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宿露枝頭藏玉塊 간밤이슬은가지위의꽃을감추고,

暖風庭面搖銀杯 따뜻한바람은정원에서잎을흔드네.

繞身無數靑羅扇 몸에수없이두른청라선靑羅扇도

風不來時也不凉 바람이불지않으면시원하지않네.

31-3 31-4

如何不向西州植 어찌하여서주西州를향해심지않았는가,

倒棨綠毛敏鳳凰 거꾸로매달린푸른털은작은봉황같네.

眼看風物年年減 눈여겨풍경을보니해마다줄어지나,

只有黃花似故人 다만노란국화만은옛사람과같음이있네.

31-5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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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균 서울 출신. 가학으로 한문과 씨를 배웠으며, 3·1운동에 참가하여

3개월간 옥고를 치 다. 19세에 석재 서병오의 문하에 들어가 서화를 배웠다.

조선서화협회전3회입선과조선미술전람회연8회입선의화려한경력이있으

며, 서예인최초로대한민국문화훈장을받았다. 50대이후에는스승석재가운

하던교남서화회를물려받아 남서화원으로개칭하고후진양성에힘썼다.

죽농의 씨는황산곡을곁들인행서가주류이며사군자에도뛰어난성취를보

다. 특히 그의 묵매도는 강한 필치를 구사하여 굵은 줄기의 입체감을 두드러

지게 표현하는 것이 특징인데, 완전히 독자적인 경지를 구축한 상당한 수준의

작품으로평가받는다.

매화도 梅畵圖

죽농竹農 서동균徐東均(1902~1978) I 20세기 I 10폭 병풍 I 지본묵화紙本墨畵

182.0×35.4 I 개인소장

淸淺溪橋水 / 短長籬外枝 다리가시내물은맑고잔잔한데/ 울타리밖줄기는들쑥날쑥하네.

底些風骨異 / 瘦盡古今詩 이다지도풍골이다르건만/ 고금의시는모두수척하다하네.**송나라정서의시이다.

歲辛未重陽 公山樵子試 신미년중양일에공산초자가시험삼아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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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벽원 경북봉화출신. 시·그림· 씨에모두뛰어나

“삼절三絶”로 불렸다. 특히 추사체의 기풍이 배어나는

씨로유명한데, 동시대중국의명유名儒 던강유위康有爲

(1858~1927)가 강벽원의 씨를 보고“안진경顔眞卿과

미불米連의 필법을 얻었으니, 당대 제일”이라고 극찬을

했다는 말은 널리 알려진 일화이다. 그림에도 일가를 이

루어조화의경지에이르 다는평을받았다.

묵란도 墨蘭圖소우小愚 강벽원姜璧元(1859~1941) I 20세기 I 8폭 병풍지본묵화紙本墨畵 I 170.0×46.0한국국학진흥원(진주강씨 기헌고택 기탁)

寫蘭不可葉葉相均난을치는데잎사귀마다서로고르게하는것은옳지않다.

不妨若斷若續 意到而筆不到끊어질듯이어질듯해도뜻이도달한다면붓은미치지못해도무방하다.

寫蘭當法兩鄭 然後可以合則난을치는데는마땅히두정씨(정사초와정섭)를본받은뒤에라야법도에합치될수있다.

放葉如壯士倚戟超馬잎사귀를그릴때는장사가창에의지해말을뛰어넘는것과같고,

着花如西晉名士擧杯淸淡꽃을그릴때는서진의명사(죽림칠현)가술잔을들고청담을하는것과같아야한다.

古人有寫蘭不畵土옛사람들은난을칠때흙은그리지않았는데

後人靡然從之후인들은모두이를따른다.

雨打風吹花離披비때리고바람부는데꽃은활짝피었고,

想子江皐夕凄凉저녁쓸쓸한강언덕에서그대를생각하네.

楚客心事一印처량한심사가초나라나그네와다를바없다.

板橋長於懸崖倒蘭판교*는가파른언덕에거꾸로매달린난을치는데뛰어났다.

余欲一臨其則내가그의기법을한번본받아그리고자한다. *시·서·화에능했으며특히그림에뛰어나양주팔괴楊州八怪의한사람으로꼽혔던중국청대의문인정섭鄭燮(1693~1765)의호.

胸中先有文字香書卷氣가슴속에먼저문자향과서권기가있으면

腕下自有一部丘壑팔아래에자연히하나의언덕과계곡이있게된다.

荊棘刺之然後其香益烈가시나무가찌른뒤에라야그향기가더욱강렬하다.

斗皐山人七十五歲 小愚姜璧元漫作두고산인이75세에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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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44: 영호남선비들의 예술세계-유교문화박물관

허건 전남진도출생. 할아버지인소치허련이세운운림산방의

전통적인 화법을 계승하 다. 그러나 선친들의 전통적 남종화 기

법을 그대로 수용하기 보다는 신세대답게 현실을 사생하고 얻어

낸 사실성을 바탕으로 전통기법을 이어낸 작가라는 점이 다르다.

조선미술전람회에입·특선하고국전초대작가등을통해꾸준히

중앙화단과도 교류를 하 으나 끝까지 고향을 벗어나지 않고 전

통적인선비정신을구현해낸작가로평가받는다. 남도해안의어

느한자락을전형적인남종화법을통해구현해낸이작품을통해

서도 알 수 있듯이, 그의 작품 속에는 사실성과 관념성이 묘하게

공존하는모습을보이는특징이있다.

강변산수도 江邊山水圖

남농南農 허건許楗(1908~1987) I 20세기 I 8폭 병풍지본채색紙本彩色 I 160.5×44.0 I 개인소장

徐引淸風納凉 서서히맑은바람을끌어서늘함을즐기다.

己酉夏 南農 기유년여름남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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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선비들의예술세계I

畵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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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모 전북전주출생. 전주에서작가로활동하 으나, 자세한기록은전하지않는다. 당시로서는

서화로 입신하기엔 너무 이른 나이인 30세에 요절한 까닭인 듯하다. 사군자와 기명절지器皿折枝, 그

리고 산수 등과 같은 작품들을 남기고 있다. 여기서 보는 그의 산수화는 전형적인 전통의 관념 산수

형식을 잘 담아내고 있는데, 매우 정갈하고 단정한 화면 속의 담백하고 매끄러운 필치가 마치 잘 차

려입은선비의모습을느끼게해준다. 아마도화보를통해독학한작품으로추정된다.

산수도 山水圖

후운後雲 최순모崔純模(1910~1940) I 20세기 I 10폭 병풍 I 지본채색紙本彩色 I 118.0×32.0 I 개인소장35

無邊玉屑盡紛濂 / 瘦骨山山任意揮 갓도없이옥가루같은눈이온통어지러이날려서, / 뼈만남은듯한산들이마음대로뽐내네. 布就三千銀世界 / 野程迷路鴉倦飛 삼천은세계를벌려놓으니, / 들길은미로가되고까마귀들은날다가지친듯하네.

玉井無聲戶已蓋 / 一庭霜月冷如凝 옥우물에소리없어도문은벌써잠겼으니/ 뜰안의서리같은달빛은차가와엉겨있는듯하네.誰憐寂寞書窓下 / 凍影梅花伴夜燈 누가어여삐여기랴, 적막한 방창문아래/ 얼어붙은매화그림자, 밤등불과짝이되어주네.*

*임옥룡이겨울밤을두고지은시

山下春江一鑑開 / 江廻山轉隔蓬萊 산밑의봄강물은거울처럼열리고, / 강은휘감고산은돌아봉래산을사이에두네.舟行冬廬聞鷄犬 / 時有桃花出峽來 가는배멀어지고닭울고개짖는소리들리는데/ 때로복사꽃잎산골짜기에서흘러내리네.*

*명나라문징명이지은<화제> 8수중하나

天河橫欲曉 / 鳳駕儀應飛 하늘의은하수는비껴새벽을나누고/ 봉황은날개펴고응당날아야하겠지.落落詣粧鏡 / 浮雲勤別衣 화장한거울에나아가니/ 뜬구름도이별하는옷을위로하네.潁逐今鱗盡 / 愁隨還路歸 기쁨은오늘밤에다하고, / 근심도돌아온길을따라돌아오네.猶將宿昔淚 / 更上去年機 오히려옛적의눈물을지니고/ 다시지난해의베틀위에오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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雨過橫塘水滿堤 / 亂山高下路東西 비가못을가로지나가니물이둑에가득하고, / 난산亂山은높고낮아길이동서로갈리었네.

一番桃李花開後 / 惟有靑靑草色齊 도리桃李꽃이한번피고난뒤, / 오직푸름만있음은풀빛이모두다같아서라네.

溪山淸致渾如畵 / 四境無塵水石中 시내와산은지극히맑아온통그림과같고, / 사경四境은티끌없는물과돌가운데일세.

騎驢客子從何處 / 五月江深草閣閒 노새탄길손은어디서오는가/ 오월의강이깊으니초가집도한가롭네.

何以消煩暑 / 端居一浣中 어찌하여야답답한더위가시게할까/ 거처에서한번몸씻는중이리라.

眼前無長物 / 窓下有淸風 눈앞에는쓸모없는물건이없고/ 창아래에는맑은바람이있네.

熱散由心靜 / 凉生爲室空 더위흩어지게함은마음고요하기때문이고/ 서늘함이생김은방이비어있는까닭이네.

此時身自醉 / 難更與人同 이럴때몸이스스로취하면/ 다시는사람과함께하기어려울지니.

無花熟粟過淸明 / 興味蕭然似野僧 꽃없는조는청명을지나며익어가고, / 흥미는소연하여시골중과같네.

昨日隣家乞新火 / 曉窓外與讀書燈 어제이웃집에서정초의새불빌리고, / 새벽의창밖과 읽는등불은함께하네.

蕭蕭赤葉寒溪山 / 落落疎鐘古寺樓 쓸쓸한단풍속찬시내와산, / 드문드문성긴종소리는옛절의다락에서울리네.

石程有客韻寒節 / 疎樹霜花九月秋 돌길에손님있으니추운시절을노래하고, / 성긴나무에서리꽃은9월의가을이네.

池頭六出花飛遍 / 池水無波凍欲平 연못언저리에눈이두루날고/ 못물은물결없이평평히얼고자하네.

一望琉璃三百頃 / 好山西北至爲屛 한눈에바라보니삼백경頃의유리같고, / 좋은산은서북으로병풍되어이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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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직 전북김제출생. 호남의대표적학자이며서화가. 시詩·서書·화畵·문장文章등모든분야

에뛰어났으며, 특히그림의경우독학으로선비회화의경지를뛰어넘는걸작을남겼다. 작품은선

이굵고구도가대범하여힘이넘치는선비의기개를보여주며, 필세또한거침이없고경물에대한

이해가분명하다. 전북의근대화단을형성했던조주승, 송기면과같은제자들을길러낸인물로서도

평가받을 만하다. 이 작품에서도 한국화단의 대표적 문인화가로서 손색이 없는 강렬하고 거침없는

필세와대담한구도, 먹의활달한운용및다양한소재의소화력을여실히보여준다.

문인화석정石亭 이정직李定稷(1841~1910) I 19세기 I 8폭 병풍 I 지본묵화紙本墨畵 I 173.0×42.0 I 전북대박물관36

半落半開臨水岸 / 團情團思媚韶光 반쯤떨어지고반쯤꽃핀물가언덕에임하여, / 모인정모인생각아름다운봄화창한경치네.玉鱗寂寂飛斜月 / 素手亭亭對夕陽 옥비늘(매화꽃잎) 고요히비낀달빛에날고/ 섬섬옥수다소곳이멈추어서서석양빛을대하네.*

*당나라이군옥이지은<인일매화>라는시의앞부분

姑射仙人鍊玉砂 / 丹光晴貫洞中霞 고야산姑射山의신선이옥사를단련하니/ 붉은빛이맑게동중洞中(마을)의노을을뚫도다.無端半夜東風起 / 吹作江南第一花 까닭없이밤중에동풍이일어/ 강남의제일고운꽃을피우노라.*

*명나라정학년이지은<홍매>라는시

曉窓珍瓏錦帳開 / 殿春花事數風臺 새벽창은보배롭고 롱한비단장막처럼열리고, / 전각의봄꽃잔치자주풍대風臺에서이루어졌네. 天公雨露園公力 / 等是批紅判白來 하늘의비와이슬, 원공의힘이니/ 붉은것을비기고흰것을판가름하는것같네.*

*청나라탕우증이지은<화진일작팔절구>라는시중5번째시. 결구의‘비홍판백’은낙양의장인이꽃과나무를잘다뤘다는고사에서유래하 다.

亭北名涯取次看 / 一枝將放倚雕欄 정자북쪽이름난꽃을차례로보니, / 가지하나는놓아주어조각한난간에의지하게해야하리. 梁園記得春深日 / 斗大花開綠牧丹 양원은봄이깊음을기억하게하고, / 말斗만한크기의꽃은푸른모란나무속에피었네.*

*청나라송락이지은<유조원잡시> 7수중4번째시. 양원은한나라양효왕의화려한정원으로토원이라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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托跡不辭巖谷凉 / 異于華艾亦何心 자취를의탁하여바위길을사양치않고오르니골짜기가서늘하고, / 무성한쑥과다름은또한무슨마음인가? 淸風披拂自多思 / 斜日淡雲鬱滿樹 맑은바람에나부껴스스로생각이많고/ 석양에엷은구름빽빽한숲속에가득하네.

春雨春風洗妙顔 / 一辭瓊島到人間 봄비내리고봄바람불어묘한얼굴을씻으니/ 경도瓊島를한번사양하고인간세상에이르 네. 如今究竟無知己 / 打破烏盆更入山 지금결국나를알아주는이가없으니/ 검은화분을부수고다시산으로들어가리.*

*청나라정판교가지은<파분란화>라는칠언절구

骨相玲瓏透入窓 / 花頭倒揷紫荷香 골격이 롱하게창을통해들어오니/ 머리에꽃을거꾸로꽂은자주빛연꽃향기네. 繞盡無數靑羅傘 / 風不來時也不凉 수없이두른청라산靑羅傘도/ 바람이불지않으면시원하지않네.*

*송나라양만리가파초를두고지은시

冷燭無烟綠蠟乾 / 芳心猶自怯春寒 연기없는차가운촛불, 푸른 랍은말랐고, / 꽃다운잎은아직도차가운봄에떠네.一緘書札藏何事 / 會被東風暗阿看 하나로봉한서찰에무슨사연숨겨두었는고. / 동풍을만나면몰래펼쳐보리라.*

*당나라전후가지은<파초>라는시

瓊節高吹宿鳳枝 / 風流交我立忘歸 경절은잠자는봉황가지에높게불어/ 풍류로사귀어돌아가는것을잊었네.最憐瑟瑟夕陽下 / 花影相和滿客衣 가장어여쁨은살살부는석양아래에/ 꽃그림자서로어울려나그네옷에가득한것.*

*당나라이건훈이대나무를두고지은시

春風事亞思君祖 / 綠潤高枝憶蔡邕 봄바람부는것은그대의할아버지생각하는일다음이요, / 푸르게윤이나는높은가지채옹蔡邕을생각나게하네.長聽南國風雨夜 / 恐成鱗甲盡爲龍 오랫동안남국의비바람소리를듣던밤, / 비늘달린생명들모두용이될까두렵네.*

*당나라진도가대나무를두고지은시. 채옹은중국후한의학자·문인·서예가이다.

一種芳姿逈出塵 / 瓊瑤爲骨水爲神 한그루꽃다운자태가속세를향해나오니, / 둥근옥은뼈가되고물은정신이되었네.遙看籬下含盃客 / 疑是窓前映雪人 멀리서울밑잔든나그네바라보니, / 창앞에서눈을읊조리던사람이아니던가.

冷艶未饒梅共友 / 淡粧長愛月爲隣 차갑고고운맵씨가정도에넘치지아니하여매화가벗을하고/ 산뜻한화장을오래도록소중히여기니달이이웃이되었네.幾回曉起鰲髥者 / 認作阿郞共未眞 새벽에그몇번수염치켜든이를깨워/ 낭군으로여기어함께참되지못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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君家健筆利于錐 / 閒寫修篁態亦奇 그대집의굳센붓은송곳보다날카롭고/ 간간히긴대를그리니모습이또한기이하다.自是凌雲有仙 / 墨 浮動尙扮扮 이로부터구름을능가하는신선이있어 / 떠서움직이니오히려아름답도다.

生雪裏 / 琅跏萬 눈속에서돋아나/ 대나무가枕夢 / 一空斜月半稍種 잠결꿈에/ 하늘에지는달, 가지반쯤에걸렸네.

五丁晴夜攫前峰 / 曉起當拒秀色空 오정산맑은밤에앞봉우리를움켜잡고/ 새벽에일어나오르는섬돌, 하늘은빼어난빛.急尋靈鷲天竺外 / 宛置方壺瀛海中 급히 취산을찾으니천축밖에있고/ 완연히방호方壺*는 해瀛海중에두었네.

*신선이산다는삼신산의하나. 방장方丈이라고도함.

百金那用淸捧價 / 兩字應有精神通 백금을어찌청봉의값으로쓰리오. / 두자는응당정신에통함이있네.新待當碑記 / 極遍玉玲瓏 새로이비碑의기록을기다리고/ 매우퍼져서옥처럼 롱하네.

이덕익 전북전주출신의사대부화가. 1639년에진사에합격하여사의司議 벼슬을하 다는것외

에는자세한기록이전하지않는다. 문인화의다양한화제에능하 으며, 특히매화를잘그렸다. 남

아있는작품이적어자세한판단은어려우나, 이작품을통해볼때먹빛이매우유연하고부드러우

며굵고담담한필세를통해서선비적풍모를잘담아내고있는듯하다.

문인화석천石川 이덕익李德益(1604~?) I 17세기 I 6폭 병풍 I 지본묵화紙本墨畵 I 94.0×25.0 I 개인소장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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嫩條雪粉 果報乎春光 어린가지의눈가루는봄빛을알리네.

國色天香 貴是花中王 빛깔과향기는꽃중에서고귀하네.

出於蘆憤 擢於君子名 갈대핀물가에서나와군자의이름을얻었네.

栗里庭畔 凌霜晩節香 율리*의뜰언덕에서찬서리이겨내고향기로운절개를지키네.

簫簫玉竿 晨窓作林影 대나무들의옥같은줄기는새벽창문에숲그림자를만드네.

故封大夫 耐寒貫四時 대부에봉해진소나무는추위를견디며사시사철푸르네.*도연명陶淵明의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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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환 군산출생. 평생을군산에서살며활동하 던것으로추정되나기록이거의전하지않는다.

다만『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에전북옥구임피에서활동하 으며, 특히포도그림에뛰어났다고소개

되어있을뿐이다. 사군자와산수등의그림이전하는데, 그중에서도특히포도그림은한국역사상

제일이라는평가를받는다. 이작품의경우포도넝쿨을원형혹은대각선으로배치한대담한구도와

필세의강건함이돋보이며, 특히농담의대비를살려그려낸포도는사실감이매우뛰어나다.

포도도 葡萄圖

낭곡浪谷 최석환崔奭煥(1808~?) I 1865년 I 4폭 병풍 I 지본묵화紙本墨畵 I 155.0 ×55.0 I 전북대박물관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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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병오 대구출신. 시· 씨·그림·가야금·장기·바둑·의학등에두루능통하여‘8능거사八能

居士’라고불렸다. 특히사군자와행서行書에뛰어났다. 중국과일본을방문하여그곳서화가들과교

류하 고, 대구에서서화연구회를창설하는등후진양성에도힘썼다. 석재의작품세계는 씨의경

우안진경체를바탕으로하면서도여타의체들도두루섭렵하여자신만의독창적인서체를창출하

으며, 사군자로대표되는그림들역시선이굵은호방한붓놀림으로한국문인화의새로운지평을열

었다는찬사를들었다.

수묵화 水墨畵석재石齋 서병오徐丙五(1862~1935) I 1909년 I 10폭 병풍 I 지본묵화紙本墨畵 I 178.3×46.0 I 개인소장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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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牛卯月日

을축년乙丑年 12월에

白峯散人 浪谷백봉산인낭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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傍石移栽穩 / 主人幽意深 돌가에온전하게옮겨심었으니/ 주인의깊은뜻이그윽하네. 扇垂風折葉 / 書展雨推心 드리운잎은바람에꺾이고/ 펼쳐진가지엔비가맺혔네.靜入臨池畵 / 晴供繞恂愧 못에임해고요히그림그리고/ 섬돌을돌며갠날씨에시를읊네. 舊題留半字 / 時有野僧尋 예전에쓴 씨가반 자남았는데/ 때때로중만이찾아드네.

自誦西湖處士詩 / 年年臨水看幽姿 서호처사의시를절로외우며/ 해마다물가의그윽한모습을보네. 晴窓寫出橫斜影 / 絶勝前村夜雪時 해맑은창가에비낀그림자/ 앞마을밤눈내릴때보다경치좋네.

不用密脂染 / 全憑墨有神 붉은물감을쓰지않고/ 전적으로먹의신묘함에의지했네天然直富貴 / 占却許多春 타고난자태는참으로부귀하니/ 허다한봄을문득차지했네.

每日臨池興未機 / 隔簾風舜敢衣單 매일붓잡는흥이다하지않는데/ 발너머세찬바람이홑옷에파고드네. 晩來秋盡山莊石 / 只有幽花待我看 늦은가을산산장의돌에는/ 그윽한꽃만이나를기다리네.

渭北秋風寒瑟瑟 / 郭索橫戈分水出 위수북쪽가을바람차가운데/ 게는창을비껴들고물을가르며나오네. 東坡見之口流涎 / 西子蹙眉而不食 동파는이를보고침을흘리나/ 서시西施*는먹지않고눈살을찌푸리네.

*중국의전설적인미인.

風蒲獵獵弄輕柔 / 欲立璹産不自由 바람에버들이가볍게흔들리니/ 앉으려는잠자리가자유롭지못하네. 五月臨平山下路 / 藕花無數滿汀洲 오월펑퍼짐한산아래길엔/ 연꽃이무수히물가에그득하네.

黃花無主爲誰容 / 冷落疎籬曲逕中 주인없는국화는누굴위해피었는가. / 성긴울타리굽은길에차갑게떨어지네. 細把金錢買脂粉 / 一生顔色付西風 돈으로모두다연지와백분을사니/ 일생의안색을서풍에부쳤네.

影橫車北月臨塞 / 聲斷衡陽霜滿天 달이변새에뜨자계북에그림자비끼고, / 서리가하늘에가득차자형양에소리끊기네. 雨暗荻花愁晩浦 / 露香菰米落秋田 비에어두운갈대꽃은늦은물가에수수롭고, / 이슬향기로운줄의열매는가을밭에떨어지네.

暗雨連朝滿屋來 / 晴雲初與竹門開 아침마다침침한비는집가득히내리는데, / 구름이개이자비로소죽문을여네.笑談歌舞知多少 / 倒引天光入酒杯 담소와가무를아는이누구인가/ 하늘이술잔속에거꾸로들어왔네.

余於戊申冬, 與金友肯石作燕行,渡鴨江天氣慄烈, 此爲甚不得前進.館于安東縣韓人客棧, 棧主卽金公宅俊也. 說與我遊燕一鸚. 情若舊知. 因駐經臘. 首尾三朔. 凡爲我周方不一而足. 今當治裝. 誦懷曷已. 玆作十幅墨畵. 聊證後日鴻雪之資. 公須勿馴. 礪做別後替面. 則幸甚.

靑篆生. 徐薰剪燈試腕. 己酉春五月上元

내가무신년겨울에벗김긍석과더불어중국에가게되었다. 압록강을건너자날씨가매우추워앞으로나아

갈수없어안동현의조선사람여관에묵었다. 여관의주인은김택준공이었다. 나에게중국유람에대해두루

이야기해주었는데 정분이마치오래된친구를대한듯하 다. 그래서이곳에머물며겨울을보냈는데석달

동안나를위해주선한것이한두번이아니고흡족하 다. 이제행장을꾸려떠나려고하니슬픈마음을누

를길없다. 이에열폭의묵화를쳐서부족하나마뒷날의추억의자료로삼으려한다. 공께서나무라지않고

이별뒤의체면으로여겨준다면매우다행이다.

청전생서훈이심지를잘라가며팔을시험하다. 기유년봄5월상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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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만 대구출신. 만석꾼집안출생으로약관의나이에석재서병오를따라중국을주유하며오창

석吳昌碩, 제백석齊白石 등대륙의내노라하는예술가들과교유하 다. 독립운동에투신하여 10년의

옥고를치 으며, 이기간동안세아들도독립운동에헌신하다차례로죽는아픔을겪기도하 다.

석재와함께1920년대대구화단을이끌었으며, 그림에자신의심경을나타내는화제를즐겨써넣는

것으로유명했다. 긍석의작품은스승석재의 향을받아비교적구도가동적인전개를이루어전반

적으로활달한느낌을준다. 좁고긴화폭에두세번크게굴곡지며힘차게뻗은묵매의운필은그의

개성을강하게드러내고있다.

霜禽欲下先偸眼 / 粉蝶如知合斷魂 겨울새가내려앉으려먼저몰래살피니/ 나비는아는듯이이에혼이끊어지네.

幸有微吟可相狎 / 不須檀板共舍樽 다행히가까이할만한시가있으니/ 풍악과술이꼭필요한것은아니네.

苔痕幽處欲煙起 / 水疸上時成雨沾 이끼흔적깊은곳에안개는피어나고/ 수맥이오르니비가많이내릴때라.

也爲淸官仙案牘 / 長敎爽氣透疎簾 청렴한관리가 읽는책상에/ 상쾌한기운이성긴발을통해드네.

수묵화 水墨畵

긍석肯石 김진만金鎭萬(1876~1933) I 20세기 I 10폭 병풍 I 지본묵화紙本墨畵 I 180.0×43.4한국국학진흥원(봉화금씨 매헌종택 기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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枝生大地山河影 / 根老層宵雨露春 가지는산하대지에그림자를드리우고 / 뿌리는숱한나날비랑이슬에늙었구나.

最愛秋天明月夜 / 淡香吹送讀書人 가을하늘밝은달밤, 가장좋을시고/ 담담한향기가 읽는이에게불어오네.

政坐國香到朝市 / 不容霜節老雲霞 제일가는향기로조정과저자에나섰으나/ 서릿발같은절개는구름과노을속에늙었네.

江籬蕙圃非吾甁 / 付與騷人定等差 강가의혜초같은풀은나의짝이아니니, / 시인으로하여금차등을정하게했네.

年少曾爲洛陽客 / 眼明重見魏家紅 일찍이젊을때낙양의객이되고/ 위씨의집에서다시만났네.

西望無由陪勝賞 / 但吟佳句想芳叢 서쪽을바라봐도함께감상할길없어/ 다만좋은시를읊어향기를그리네.

情逐舞鸞偏易感 / 事隨夢鹿渺難窮 춤추는난새를쫓는정은매우쉽게감동되나/ 꿈꾸는사슴을따르는일은아득해서끝이없네.

太湖石畔新凉院 / 何處吹簫月滿空 태호의바위가는서늘한초가을/ 어느곳에서퉁소부는가, 달은하늘에가득한데.

的的紫房含雨潤 / 疎疎翠幄向風開 선명한자주빛꽃은비를머금어윤택하고/ 성긴비취빛잎새는바람을향해열려있네.

詞臣消渴沾新釀 / 不羨金莖露一盃 사신은갈증나서새로빚은술을마시니/ 승로반에받친감로주도부럽지않네.

晩節淸高賢宰相 / 秋容寒瘦古詩人 절의는어진재상처럼청고하고, / 가을모습은옛시인처럼차고야위었네.

繁華全讓閒桃李 / 獨傲西風不占春 번화한도리꽃은꽃인양마라, / 홀로서풍에오만부리며봄을기다리지.

解傳銀浦牽牛信 / 佇望丹山儀鳳巢 은포에서견우의소식을전하고/ 단산에서봉새의둥지를우두커니바라보네.

思可揮毫題絶句 / 癰將酌酒勸新交 겨우붓을휘둘러절구를짓고서/ 수작을부리며새로이교제를트네.

却愛微風動蕭瑟 / 潼疑薄暮倚澧箱 미풍에날리는소리가좋아서/ 옅은저녁에아름다운여인에게기댄듯.

憑君從有蓂溪絹 / 莫與空山結定形 그대에게아계의비단이있을지라도/ 쓸쓸한산과는일정한형체를맺지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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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열 전북전주출생. 전주이씨집안에서태어나어려서부터한학과문장을공부하 다. 이어당

시대표적인문인화가 던조주승의문하에들어가 씨와그림을익혔고, 후일에는호남지역서예

가들의최초모임인한묵회를조직하여활동하며후진들을양성하 다. 말년까지매우청빈한생활

을유지하면서당대의대표적인많은서화가들과교류하는등전형적인선비적풍모를갖춘인물로

평가받는다. 그의작품은이러한성품을보여주는문인화가많은데, 이작품에서보듯먹빛의담백하

고깊은맛과무거우면서도부드러운필선그리고선비의깊은정신세계를연상시키는대담한화면

구성등이특징이다.

사군자 四君子효산曉山 이광열李光烈(1885~1966) I 20세기 I 10폭 병풍 I 지본묵화紙本墨畵 I 176.5×45.0 I 전북대박물관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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祛來渣滓偏憐瘦 찌꺼기를없앴기에수척함이애처롭고

閱盡氷霜似許淸 얼음서리겪었기에맑음을인정한다.

春雨春風洗妙顔 봄비내리고봄바람불어묘한얼굴을씻으니,

一辭瓊島到人間 경도瓊島*를한번사양하고인간세상에이르 네.*중국연경燕京의8경또는12경의하나

一種芳姿逈出塵 한그루꽃다운자태가속세를향해나오니

瓊瑤爲骨水爲神 둥근옥은뼈가되고물은정신이되었네.

遙看籬下含盃客 멀리서울밑에잔든나그네바라보니,

疑是窓前詠雪人 창앞에서눈을읊조리던사람이아니던가.

麝墨芸香小玉叢 사묵麝墨*과운향芸香은작은옥떨기같고

濯烟橫月翠玲瓏 깨끗한연기는달에비끼어푸르고 롱하다.*향기좋은묵

寫此, 楷行草篆之法俱備. 故若一劃失勢, 無可救之道, 是竹終身用工, 而不可忽也.

대를치는데는해서행서초서전서의필법이구비되어야한다.

그러므로만일일획이라도필세筆勢를잃으면도道를구할수없으니,

대는종신토록공력을들여소홀히하지말아야한다.

41-1 41-2 41-3 41-4 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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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선비들의예술세계I

畵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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嫩葉迎風最有情 / 靈根九飯舊知名 바람결에어린잎가장정이가는데/ 신령스러운뿌리는구원九飯*에서옛부터이름있네.

芳洲多少垂靑者 / 入室寗德夏氣淸 향기로운물가에다소드리운푸른난초, / 방에들어와오히려덕스럽게여름기운을맑게하네.* 난초밭을뜻하는고시어古詩語

欲語含嬌君有情 / 齡欄倚石佯無力 예쁘게말하는듯한모습정은있으나/ 난간과돌에의지해서힘은없는듯하네.

芬芳自喜共笙歌 / 狼藉不知伴荊棘 향기풍기며절로가무를즐기느라/ 가시나무처럼낭자해도알지못하네.

驚破幽人春枕夢 / 一空窓月半梢橫 은자가봄잠을자다꿈에놀라니/ 달이뜬창가에가지가어리네.

楚雪春已晴 / 沅湘水初滿 눈이나린봄날씨하마개이니/ 강물이비로소불어나누나.

去年故葉長 / 今年新葉短 작년에난옛잎은길고 / 금년에난새잎은짤막하네.

波明碧沙淨 / 日照紫苔日暗 물결이밝으니푸른모래정결하고/ 해가비치니자줏빛이끼가따뜻하네.

不見澤中人 / 江南冥雲斷 못가운데에사람아니보이는데 / 강남땅이어두운구름으로끊어졌구나.

曉山 李光烈 효산이광열

梅有枝垂性, 前無寫此者. 其於倒枝橫斜, 與此等逈異. 余方硏鑽中成功, 其日貴何時.

매화가지는드리우는성질이있으니전에는이를그린사람이없었다.

그넘어지는듯한가지에비스듬히옆으로비낀것과이것은아주다르다.

내가깊이연구하고는있으나성공하는그날은어느때일까?

41-6 41-7 41-8 41-9 41-10

이근화 초기전북지역에서활동하다월북한작가로, 그의구체적인생애에대한기록은전무하다.

일제강점기민족의식이강했던인물로, 한국근대가낳은불행한지식인들가운데하나라고할수

있다. 남아있는작품의수는많지않지만산수, 모, 화조등그종류는비교적다양하다. 이작품은

검은비단에금분을이용해그린사군자이다. 필치가예사롭지않게활달하고세련되어있다. 젊은

나이에그렸으리라고믿어지지않을정도로안정된필치와균형잡힌구성을갖추고있는작품이다.

사군자 四君子

창하蒼何 이근화李根華(연대미상) I 20세기 I 6폭 병풍 I 견본금니絹本金泥 I 84.0×29.5 I 개인소장42

42-6 42-5 42-4 42-3 42-2 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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畵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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作畵何須得寫眞 / 但將淸韻學前人 그림을그리되어찌하여야참되게그릴수있을까, / 다만청아한음률을지니고선배를배울지니라.

竹枝略如葦枝同 / 瘦瘦圓圓節節重 대나무가지는거의갈대가지와같고/ 가늘고둥근모습마디마디거듭되네.異日江頭作漁父 / 釣竿便在畵圖中 다른날에강가어부의낚시대가되어/ 문득그림가운데있으리니. 題中如字與之誤也 / 蒼何寫幷題 화제속에있는‘여如’자는‘여與’자의잘못이다. / 창하가그리고아울러화제를쓰다

그림은본시법이없으니마음속언저리의정취를묘사할뿐이다. 정취는얕고깊음이있으니깊으면깊을

수록더욱묘해지는것이다. 그런정취가없으면서그림을이룬경우는없다.畵本無法, 不過寫胸中之邊趣而已.趣有淺深愈深則愈妙. 未有無趣,而成畵者也.

老樹龍鐘橫復斜 / 春來便是兩三花 늙고병든나무는다시금기울고, / 봄이오면문득두셋의꽃이피었네.箇中猶有眞眞趣 / 新畵多傳好士家 이중에는진정한흥취가있으니/ 새로그린그림이호사가에게많이전한다.

醉來寫出瀟湘影 / 助我生機樂大年 취하여소상강瀟湘江의경치를그려내니/ 나의생기를도와노년을즐기게하네.

竹影掃榻塵不動 / 月輪穿沼水無痕 대그림자가침상을쓸어도먼지는움직이지않고/ 달빛은연못을뚫어도흔적이없네.

42-1 42-2 42-3 42-4 42-5 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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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병우 대구출신. 시· 씨·가야금·장기·바둑·의학등에두루능통하여‘8능거사八能居士’

라고불렸으며, 그가운데특히사군자와행서行書에뛰어났다. 중국과일본을방문하여그곳서화가

들과교류하 으며, 대구에서서화연구회를창설하는등후진양성에도힘썼다. 그의작품세계는

씨의 경우 안진경체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여타의 체들도 두루 섭렵하여 자신만의 독창적인 서체를

창출하 으며, 사군자로대표되는그림들역시선이굵은호방한붓놀림으로한국문인화의새로운

지평을열었다는찬사를들었다.

疎影橫斜 듬성듬성한그림자가비스듬히비꼈네.石齋試眼 석재가시험삼아그리다

先有文字香書卷氣 然後可以下筆 문자향과서권기를먼저가진뒤에야붓을잡아야한다.石齋試眼 석재가시험삼아그리다

淸淺溪橋水 / 短長籬外枝 시내다리가의물은맑고잔잔하며/ 울타리밖의가지는길고짧구나.石翁作 석옹이그리다

사군자 四君子

석재石齋 서병오徐丙五(1862~1935) I 20세기 I 6폭 병풍 I 지본묵화紙本墨畵 I 184.0×43.0한국국학진흥원(봉화금씨 매헌종택 기탁)

43

43-6 43-5 43-4 43-3 43-2 43-1

43-1 43-2 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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艅舫昨夜下南湖 / 福建蘭花天半高 어젯밤배를타고호수남쪽으로내려가니/ 복건성의난초꽃이하늘한가운데높네. 岸上誰家紅袖女 / 隔簾親手自剪刀 언덕가어느집붉은소매의여인 / 발너머로손수바느질하고있네.石翁作 석옹이그리다

黃華與朱實 / 服之年命長 누런꽃, 붉은열매, / 이것을먹으면장수를누리네.石齋試眼 석재가시험삼아그리다

蒲華翁善用此法 포화옹이이수법을잘사용하 다. 石齋倂題 석재가그리고화제도짓다

서동균 서울출신. 가학으로한문과 씨를배웠으며, 3·1운동에참가하여3개월간옥고를치

다. 19세에석재서병오의문하에들어가서화를배웠다. 조선서화협회전 3회입선과조선미술전람

회연8회입선의화려한경력이있으며, 서예인최초로대한민국문화훈장을받았다. 50대이후에는

스승석재가운 하던교남서화회를물려받아 남서화원으로개칭하고후진양성에힘썼다. 죽농의

씨의경우황산곡을곁들인행서가주류이며사군자에도뛰어난성취를보 다. 그의묵매는강한

필치를구사하여굵은줄기의입체감을두드러지게표현했다. 문기가감도는그의묵매는완전히독

자적인경지를구축한상당한수준의작품이다.

사군자 四君子죽농竹農 서동균徐東均(1902~1978) I 20세기 I 10폭 병풍 I 지본묵화紙本墨畵 I 178.5×43.7한국국학진흥원(봉화금씨 매헌종택 기탁)

44

43-4 43-5 43-6

44-10 44-9 44-8 44-7 44-6 44-5 44-4 44-3 44-2 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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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誦西湖處士詩 / 年年臨水看幽姿스스로서호처사의시를외우며/ 해마다물에임해그윽한자태를본다.

艅舫昨夜下南湖 / 福建蘭花天半高어젯밤배를타고호수남쪽으로내려가니/ 복건의난초꽃이하늘한가운데높네.

東籬秋色동쪽울타리에가을빛깔이들다.

篠篠節節介而分대가지는마디마다서로의지하면서도나누어졌다.

玉露香心구슬같은이슬, 향기로운마음

黃華與朱實 / 服之年命長 누런꽃, 붉은열매, / 이것을먹으면장수를누리네.

疎影橫斜水淸淺 듬성듬성한그림자가맑고잔잔한물에비스듬히비치네.

飯靜風吹亂 / 亭高雨引長 동산이고요하니바람이어지럽게불고/ 정자가높으니비가길게날리네.

正色黃爲貴 / 天然白亦奇 정색인황색은고귀하고/ 타고난흰색도기이하다.

經年求養法 / 隔日記癖時 여러해동안양생법을찾고, / 하루걸러물주는때를기록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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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환 전북김제출생. 조주승과함께이정직에게서서화를익혔다. 어려서부터 공부를하여

한학에밝았으며매우총명하 다고알려져있다. 전북지역에서활동하 으나이와관련된구체적

인기록은거의없다. 학문과선비적풍격을갖춘문인화가전하는데화면구성이독특하여근대적감

각을보여준다. 이난그림은비교적전통적인필법을그대로유지하면서그의선비적인정갈하고단

아한풍모를보여주는작품이다. 난잎의전형적표현인 3절법을통해그가전통적기법등을잘소

화한작가 음을알수있다. 또한담담한담묵표현의바위묘사에서그의선비적기품이잘드러나

고있으며, 좌우로뻗어난난의대칭적구성을통해근대적감각이나타나고있다.

묵매도 墨梅圖

표원表園 박규환朴奎晥(1868~1916) I 20세기 I 액자 I 지본묵화紙本墨畵 I 71.0×40.0 I 개인소장

白玉明月丹砂之光, 與吉金竝永백옥은밝은달과단사의빛이니, 길금*과더불어 원하리라.*그릇따위를만드는데쓰는질좋은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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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玉明月丹砂之光與

吉金竝永

Page 63: 영호남선비들의 예술세계-유교문화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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畵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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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전 김해출신. 한미한가문에서태어났지만, 19세기말에문인과화가로활동하 다. 여러번과

거에낙방한후 10여년을서울에서유랑하며대원군과개화당멤버등다양한사람들과교유하 는

데, 이때의경험, 즉불우한시대속의개인적인고통을창작활동을통해잘드러내고있다. 지재只在

라는호를쓴김해기생강담운과의지순한사랑으로도유명하다. 그는강한내면적표현력을가진

섬세한필치로자신의생활감정을화폭에있는그대로표현한느낌을준다. 다소기교를부린듯한

화제의유려한 씨도그림과절묘한조화를이루어화격을높여주고있다.

매화도 梅花圖

차산此山 배전裵文典(1843~1899) I 19세기 I 액자 I 지본묵화紙本墨畵 I 101.3×43.0 I 개인소장

玉簫起處暗驚神 옥피리소리에가만히정신이놀라니

曲緩瑤臺逸韻眞 곡조완만한요대瑤臺*는참으로운치가있네.

泉石幾年雲冷賈 천석은몇몇해던가, 구름에학은떨고,

關山萬里月愁人 관산만리길에달이사람을시름케하네. *옥으로만든집

香凝老樹調風味 향기엉긴노목에풍미가어울리고,

影落寒窓枕隙塵 그림자진추운창에베개틈먼지이네.

檀板金尊久閑寂 풍악과주연은오랫동안적막하나,

微吟不癎昔時春 나직히시를읊조림은예전봄만못하지않네.

相逢月下是瑤臺 달아래만나는곳바로요대일세,

藉艸淸尊連夜開 초석을깔고밤마다술자리를여네.

明日累醒應滿地 내일이면마땅히맑게술을깨서

空敎飢鶴啄撻苔 공연히굶주린학에게이끼를쪼게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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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선비들의예술세계I

畵I

묵매도 墨梅圖염재念齋 송태회宋泰會(1872~1941) I 1931년족자 I 지본묵화紙本墨畵 I 190.0×80.0 I 개인소장

廻風拂地起회오리바람이땅을스쳐일어나니

時聞轉空香때로퍼진향기를맡노라.

歲辛未春三月初一日 題牟陽城下 雨晴時신미봄3월초하루, 모양성(고창) 아래서비가갠때에제題하다

念齋居士 宋泰會염재거사송태회

송태회 전남 화순 출생. 사호沙湖 송수면

宋修勉(1847~?)에게서 서화를 익혔다. 성장

하여 전북으로 이사하고 고창고등보통학교

에서 한문과 미술을 가르치며 작품 활동을

하 다. 산수화, 사군자 등 문인화 전반에

걸쳐 소화하고 있는데, 전통적인 선비들의

품격을갖춘훌륭한작품들을남겼다. 이매

화그림은그런송태회작품의특성을잘보

여주는 작품 가운데 하나이다. 부드러우면

서도 꼿꼿한 필세가 돋보이고, 화면 하단은

고목들이 서로 얽혀 있고 상단은 넓은 여백

으로 남겨 화제를 배치한 화면의 구성이 완

벽한짜임새를보여준다.

47 묵매도 墨梅圖

동강東崗 정운면鄭雲勉(1906~1948) I 20세기 I 지본묵화紙本墨畵

125.0×30.0 I 개인소장

寸玉銖香愛後 조그만꽃가지향기가좋다고

莫輕攀折損花神 생각없이꺾어화신花神을손상치말라.

蓬簾留待東風返 들창문발에동풍을돌아오게하여

先占人間第一春 인간세의제일춘第一春(매화)을먼저차지하게하리.

庚午夏 東岡散人 경오년여름동강산인

정운면 전남담양출생. 줄곧고향에서활동하 으나아깝게일찍요절

하여꽃을피우지못한천재화가이다. 열 살때부터박홍주에게서한학을

익히고 20대에 잠시 소정 변관식에게서 그림을 익히기도 하 다. 그러나

거의대부분독학으로학문과서화에일가를이루어당시호남에넓게펴

져있던남종회화의정신을독자적으로이루어냈다. 담백하고부드러운전

통남종산수를비롯하여문기文氣 짙은문인화를남기고있는데특히매화

에일가를이루었다. 이 작품도그가얼마나문인화에출중하 는지를보

여주는좋은예이다. 창연한먹빛이아름답고운필또한유려하여저절로

옷깃을여미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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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선비들의예술세계I

畵I

노근란도 露根蘭圖

석재石齋 서병오徐丙五(1862~1935) I 20세기 I 지본묵화紙本墨畵

169.2×45.2 I 개인소장

所南先生每寫露根蘭, 意有所在, 板橋近作多其法, 余故一臨.소남*선생은늘뿌리가드러난난초를그렸는데뜻하는바가있었다.

판교**가근래작품에서그기법을많이사용했기때문에내가짐짓한번따라그려본다.

石翁석옹*송말원초의서화가정사초의호.

**양주팔괴楊州八怪의한사람으로꼽혔던중국청대의문인정섭鄭燮(1693~1765)의호.

서병오 대구출신. 시· 씨·그림·가야금·장기·바둑·의학등에두

루능통하여‘8능거사八能居士’라고불렸으며, 그가운데특히사군자와행

서行書에 뛰어났다. 중국과 일본을 방문하여 그곳 서화가들과 교류하 으

며, 대구에서서화연구회를창설하는등후진양성에도힘썼다. 석재의작

품세계는 씨의경우안진경체를바탕으로하면서도여타의체들도두루

섭렵하여 자신만의 독창적인 서체를 창출하 으며, 사군자로 대표되는 그

림들역시선이굵은호방한붓놀림으로한국문인화의새로운지평을열었

다는찬사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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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도 梅花圖석재石齋 서병오徐丙五(1862~1935) I 20세기 I 지본묵화紙本墨畵 I 165.3×160.4 I 개인소장

坡翁嘗作老梅詩 파옹*은일찍이<노매老梅>라는시를지었다.*송나라의문인소동파蘇東坡

醜怪驚人還媚 사람놀래키는추하고괴이함, 도리어요염한데, 斷魂只有曉寒知 그슬픈마음은다만차가운새벽만이알아주네.

不惟善於詩 寫出畵家韻格 시가좋을뿐만아니라화가의운치와풍격도잘묘사하 다. 丁卯春石齋倂題 정묘년봄에석재가그리고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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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병우 전북함열출신. 서홍순의손자이다.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에는아들로잘못기록되어있

는데, 부친이일찍작고하여할아버지밑에서자랐기때문에생긴오류로보인다. 주로익산에서살

았으며진사에합격했던선비작가로알려져있다. 이런환경때문에일찍부터학문을익히고 씨와

그림에심기를의탁하 을것으로추정된다.

여기서 보이는 6폭의 난 그림은 그가 이처럼 깊은 정신세계를 지닌 예사롭지 않은 문인화가 음을

잘보여준다. 흐드러지게꽃이핀난과혜란을그리면서다양한생태를보여주고있으며, 붓길은단

정하나거침없고유려하다. 마치 살아있는난을대하는듯한느낌을주는실감나는작품이다. 그림

하나하나에스스로새겼다는다양한낙관을보태어재미를더하고있다.

文衡山方窮至理, 三轉而有飛動之勢. 乃免蜃膽挺發, 平淡天然君子德馨.문형산(명나라의문인이자화가인문징명의호)이지극한이치를추구할때세번전환해서날아움직임의형세가있었다. 이에말라빠진것을면하고빼어남을이루었으니, 평담하고천연함이군자의덕처럼향기로웠다.

趙彛齋云. 葉如鐵而花莖亦佳. 此盖多作然後可能, 不可以立地成佛, 當以細心求之內以省困조이재(송나라의문인이자화가인조맹견의호)가말하기를, 잎은쇠와같고꽃줄기또한아름답다. 이는아마도많은작업연후에할수있다. 당장에는성불할수없다. 마땅히세 하게마음에서이를구함으로써병통(결점)을없애야한다.

묵란도 墨蘭圖

호운湖雲 서병우徐丙宇(연대미상) I 19세기 I 지본묵화紙本墨畵 I 39.0×89.0 I 개인소장51

51-6 51-5 51-4 51-3 51-2 51-1

51-1 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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錢堊石云. 畵蘭有三轉之妙. 姜堯章云. 作書有三過之貴. 畵書之悟一源同起, 此乃供蘭與書之金針전탁석이말하기를난초를그리는데세번굴러야변하는묘가있다고한다. 강요장(남송의문인강기의자)은말하기를 씨를쓰는데세가지지나침의귀함이있다고하 다. 그림과 씨는근원이하나임을깨달아야하니, 이는난초와 씨를그리고쓰는데금침金針이되어이바지한다.

陳元來才橫筆豪, 亦有寡磵不馴之氣, 如飛白書狀, 而不拘法門, 高古出群. 模敦古法始乃惟恐不似, 旣乃惟恐太似. 不似則未盡其法, 太似則不爲我法, 放筆三嘆.진원래陳元來는재주가충만하고필력이호탕하며또한고집이세어남에게굽히지아니하여길들이지아니한기운이있어편지 에도비백飛白(한자서체의한가지로 자획에희끗희끗한자욱이나타나도록쓰는것)같아법문에도구애받지않아고상하고예스럽기가무리중뛰어났다. 고법을모방함에처음에는오직같지않을까두려워하고, 이미이에오직크게닮을까두려워하 다. 닮지않은즉그법을다하지못한것이고크게닮으면나의법이되질않는다.붓을놓고세번한탄하는바이다.

纖指之下, 能運金剛鐵杵, 乍時成蘭, 竟敎天公得無勞惱, 怡看韻氣섬세한손가락아래능히금강철저金剛鐵杵(굳센쇠공이)를운용하여잠시동안에난초를이루니마침내는조물주로하여금수고롭게함이없이얻으니, 즐거이운치있는기운을본다.

僧白丁動一葉, 如捉龍捕虎, 着一花如九天仙女, 一面硏池便作滄溟, 筆韻淸曠. 石濤解脫繩束, 品格超絶, 是金中兼金승려백정은잎새하나를삐쳐그리면, 용을잡은듯하고범을잡은듯하며, 꽃하나를붙여그리면구천九天의선녀같고, 한면의벼룻물은 문득푸른바다를이루니필운이맑다. 석도(청나라의서화가)는구속과규범에서벗어나품격이빼어나게높으니이것은금가운데에서도제일좋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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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죽도 墨竹圖

운강雲岡 배효원裵孝源(1898~1942) I 20세기 I 지본묵화紙本墨畵

148.5×36.5 I 개인소장

淸風動高竹 맑은바람이높은대를흔드니

時作鳳凰鳴 때때로봉황새울음이나네.

不有中藏韻 그속에운치가있지않다면

何從得此聲 어디에서이소리가나오겠는가.

爲松雲先生法政 雲岡作 송운선생이바로잡아주기를바라며운강이그리다

53국화도 菊花圖

석재石齋 서병오徐丙五(1862~1935) I 20세기 I 지본묵화紙本墨畵

212.5×50.5 I 개인소장

楚人餐後名傳遠 굴원屈原*이먹은뒤이름이널리전했고,

晋士採來香不休 도연명이딴뒤에향기가그치지않았네.

雪白猩紅多別種 눈처럼하얀것, 잔나비처럼붉은것, 별종도많은데,

世知黃色最居頭 세상사람은황색이가장좋음을안다네.

石齋倂題 석재가치고 도짓다*중국전국시대초나라의애국시인

배효원 경북성주출신. 일본동경에있는청산학교靑山學校를수

료하고, 석재 서병오에게서 서화를 배웠다. 특히 행서와 사군자에

뛰어났으며, 조선미술전람회에 2회부터 9회까지 연속으로 특·입

선을했을정도로실력이출중하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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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선비들의예술세계I

畵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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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순 전북전주출생. 이광열과함께조주승문하에서공부하 다. 전북지역의대표적문인화가

중한사람으로이광열과함께한묵회에서주도적인역할을담당하 다. 산수, 화조, 사군자등다양

한화제의좋은작품들을남기고있는데, 서울에서활동했던이상범, 변관식등당대의대표적작가

들과도교류가깊어여러합작품이남아있다. 이작품에서보듯이그의그림은먹의농담이깊고부

드러우며, 선비적인기품이서린담백함이돋보인다. 단순하게처리한수직의괴석과나란히서서바

람을맞고있는대는선비의곧은정신과삶을보여주는듯하다.

사군자 四君子유당酉堂 김희순金熙舜(1886~1968) I 1932년 I 액자 I 지본묵화紙本墨畵 I 129.0×49.0 I 전주역사박물관

依石淸趣 돌에의지한해맑은흥취

壬申南至月 임신년동지달

老松道人酉堂金熙舜作 노송도인유당김희순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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畵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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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승 전북김제출생. 이정직에게서서·화를배웠다.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에는30년동안

씨를써안진경을배웠고묵난과죽에특히뛰어났다고기록되어있다. 그의난과대그림은대원군이

‘창란벽죽滄蘭碧竹’이라고칭찬했을정도로수준높은경지를보여준다. 줄곧전주에서활동하 으

며말년에는제자들을모아한학을가르쳤다. 그의고고한선비정신은아들조기석을비롯해효산이

광열, 유당김희순등으로이어졌다. 이작품에서도그가선비로서대를사랑한모습이그대로나타

나있는데, 열악한토양에서자라질곡이많은갖가지형태의대모양을통해자신을드러내고있다.

묵죽도 墨竹圖벽하碧下 조주승趙周昇(1854~1903) I 19세기 I 8폭 병풍 I 지본묵화紙本墨畵 I 58.0×31.5 I 전북도립미술관55

嫩綠與老碧 / 森然庭恂中 연한푸르름은늙음과더불어푸르러/ 뜰섬돌은울창한가운데있네.

坐銷三伏景 / 吟起數竿風 앉아서삼복의햇살녹이는데, / 몇그루의 대나무가바람을일으키네.

葉影重還密 / 梢聲遠或通 잎그림자겹치어다시빽빽해지고/ 대나무끝소리는멀리혹은통하기도하네.

更期春共看 / 桃映小花紅 다시봄을기약하여함께볼것은/ 복숭아꽃 롱하여작은꽃잎붉네.

新鞭暗入庭 / 初長兩三莖 새뿌리가만히뜰에들어와/ 처음으로두세줄기겨우자랐네.

不是他山小 / 無如此地生 이를딴데서왔다고별거아니라고하지말게/ 이땅에서난것같이생각되지않으니.

垂梢叢上出 / 柔葉堊間成 드리운키큰대나무떨기위로나오고/ 부드러운잎은죽순자란대껍질사이에나오네.

何用高唐峽 / 風枝掃日明 어찌고당高唐의골짜기만찾을까? / 바람에나부끼는가지는해의밝음을쓰는듯하네.

55-8 55-7 55-6 55-5 55-4 55-3 55-2 55-1

55-1 55-2 55-3 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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亂藤苔錢破 / 參差出小欄 대나무무늬가어지럽게갈라져, / 작은난간에들쑥날쑥삐죽하네.

層層離錦堊 / 節節露琅跏 층층이마디마디비단같은껍질마디는/ 마디마다이슬은낭간琅跏에서떨어지네.**당나라석제이가새로난죽순을두고지은칠언율시의앞부분. 낭간은대나무를이른다.

直上心終勁 / 四垂烟漸寬 곧게위로뻗은마음은끝까지굳세고/ 사방으로드리운연기너그러이터지네.

欲知含古律 / 試剪鳳簫看 옛음률을머금고있는걸알고자하면/ 시험삼아봉소鳳簫를잘라보아라.

盤逕入依依 / 旋驚幽鳥飛 소로길들어설땐조용하더니/ 돌아올땐숨었던새날아놀랐네.

尋多苔色古 / 碎踏*堊聲微 이끼빛은예스럽고/ 대껍질소리는밟아부셔도미미하네.*원문은'踏碎'임.

竹少竹更重 / 碧鮮彊更名 대나무는어린대나무가더욱소중하니, / 푸르고선명하고굳셈으로다시이름을얻네.

有欄常齡立 / 無逕獨穿行 울타리있어항상기대어서게하고/ 길은없어도홀로뚫고가네.

55-5 55-6 55-7 55-8

유 완 전북김제출생. 일찍부터가까이에살고있었던석정이정직에게서 씨와그림과한학을

익혔다. 아울러동시대인물들과교류하면서전형적인선비적풍모를갖추고이를담은문인화를많

이남겼다. 특히대나무를많이그렸는데, 이는그런선비적삶과정신을대에담으려했던노력의결

과로짐작된다. 이작품도그의대표적인대나무병풍가운데하나인데, 붓질이매우단정하고활달

한면을보인다. 특히먹빛의농담이매우부드럽게조화를이루어격조가있다. 유 완의작품은이

처럼붓끝이날카롭고가늘게뻗어나는깐깐한선비의모습을보이는것이특징이다.

묵죽도 墨竹圖

유하柳下 유 완柳永完(1892~1953) I 20세기 I 8폭 병풍 I 지본묵화紙本墨畵 I 125.0×33.0 I 전북도립미술관56

56-8 56-7 56-6 56-5 56-4 56-3 56-2 5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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數竿蒼翠擬龍形 / 舜拔誰敎此地生 두어줄기대는푸르러용의형상에비기고, / 우뚝빼어나니누구로하여금이땅에자라게하 는고.

安排棋局就淸凉 / 森森移得自山莊 바둑판 치고시원한바람쐬러나갔는가/ 무성함은산장으로부터옮겨얻었네.

植向庭前野興長 / 閒約羽人同賞處 정원앞에심은대산야의흥취가일어/ 친구와함께완상하기를약속하네.

輞川竹裏舊題詩 / 畵裏如今似見之 예전망천輞川*의대밭속에서지었던시를, / 그림속에서지금보는듯하네.

滿耳秋聲人不到 / 彈琴長笑月來時 가을소리귀에들려도사람은이르지않고/ 거문고타며길게웃으니달이떠올라오는때이네.*중국섬서성남천현에있는지명.

竹枝略與葦枝同 / 瘦瘦圓圓節節重 대나무가지는거의갈대가지와같으니, / 파리하고동 동 마디마디거듭되네.

他日江頭作漁父 / 釣竿便在畵圖中 다른날에강가어부의낚시대가되어/ 문득그림가운데있으리니.

56-1 56-2 56-3 56-4 56-5 56-6 56-7 56-8

無限野花開不得 / 半山寒色與春爭 무한한들꽃은아직피지않았는데/ 산중턱은찬빛(대나무)으로봄과더불어다투네.

胸中元有勢 / 腕下自生風 가슴(대나무) 속에는원래세勢가있어/ 팔뚝(가지)아래에서스스로바람이생기네.

風韻起何似 / 淸陰宛此中 풍운風韻이일어남은어찌같을까/ 맑은그늘완연하게이가운데로다.

憶昔吳興寫竹枝 / 滿堂賓客動秋思 옛날오흥吳興*에서대나무그릴때를생각하니/ 가득찬손님들은가을생각일으켰다.

諸公老去風流盡 / 相對茶煙聞綠靈 공들은늙으니풍류가다하고/ 푸른수염휘날리며차를끓이네.*중국절강성에있는지명.

寫竹當師竹 / 何須法古人 대를그릴때는마땅히대를스승삼아야지/ 어찌옛사람을본보기로하리오.

今然心眼手 / 下筆自通神 지금마음과눈과손이그러하니/ 붓을내리면저절로신을통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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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호병 전북부안출생. 초기에는이름을호병鎬秉, 호를이당彛堂이라하 으나나중에는이름을

호병好秉, 호를추당이라하 다. 주로고향에서활동하면서 씨와사군자를통해이름을얻었다. 조

선미술전람회에연속4번이나입선을하고전주에서개인전을열기도하 다. 다양한소재를다루었

지만사군자중대나무를특히잘하 다. 이작품도천연덕스럽고물흐르듯가벼운운필에안정된

구성으로그가문인화에대한남다른이해를갖추고있었음을보여준다. 농담의대비가강하고, 대

의크기비례를특히강조하여현대적감각을엿볼수있다. 또한단촐한구성미가특히돋보이는데,

이는그가감각이매우뛰어난인물이었음을말해준다.

묵죽도 墨竹圖추당秋堂 박호병朴好秉(1878~1942) I 20세기 I 지본묵화紙本墨畵 I 120.0×37.0 I 개인소장

高節凌虛拂畵墻 높은마디는허공을질러담장을스치고

渭川君子均遍長 위수渭水에군자(대나무)는고루널리자라네.

小鳳凰聲吹嫩葉 어린잎은작은봉황소리처럼살랑거리고,

短蛟龍尾菊輕煙 짧은댓잎은안개속에서간들거리네.

秋堂 추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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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죽도 墨竹圖

유재裕齋 송기면宋基冕(1882~1956) I 20세기 I 족자지본묵화紙本墨畵 I 107.0×36.0 I 전북도립미술관

瞻彼蓬山, 有竹有恪. 저봉산을바라보니대나무도있고조릿대도있네.

扮扮莖葉, 紫翠盈眼.아름다운줄기와잎, 보랏빛푸른빛눈에가득하네.

嘉實如珠, 靈光回助.좋은열매는구슬같은데신령한빛이감도는구나.

송기면 전북 김제 출생. 아홉 살 때부터 석정 이정직의

문하에서10여년간학문을익혔고, 이어당시부안계화도

에들어가은거하고있던간재전우에게서공부를더보탰

다. 이렇듯당대호남의대표적학자들에게서여러경세와

학문을익힘으로써전형적인문인사대부의소양을갖추었

다. 그의 저술은 매우 다양한 역에 걸쳐 있으나 특히 항

일정신을바탕으로한민족정신을일깨우는문장이많다.

씨와그림에서도이러한의식을거침없이표현해냈는데,

이대나무그림도그가운데하나로세파에꺾이고힘들어

하는자신의모습을날카로운필치로보여주는듯하다.

58 묵죽도 墨竹圖

진재晋齋 배석린裵錫麟(1884~1957) I 20세기 I 액자지본묵화紙本墨畵 I 168.0×48.0 I 전북대박물관

莫道水痕橫走去 먹물을마음대로뿌렸다고말하지말라.

應知神韻淡中來 응당신비하고고상한운치韻致가담담한중에옴을알리라.

晋齋 진재

배석린 충북 동출생. 중년이후전북지방에서활동하면서사군자를

비롯한여러작품들을남겼다. 구한말에전의典醫로활동하 을만큼한

학과학문이깊었으며서화는독학으로공부하 다. 비록독학으로 씨

와 그림을 익혔지만 조선미술전람회에 난그림으로 3등상을 받을 만큼

실력은출중하 다. 보통고시로관직에올라군수등을거치기도했으나

그의행적은오히려당시선비화가 던효산이광열, 유당김희순등과

어울리며선비적풍류를즐기는쪽에가까웠다. 이묵죽작품을통해서

도활달하고시원한운필과화면을폭넓게활용하는대범한구성력을보

게되는데, 이는그의그런선비적풍류를보여주는하나의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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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성용 전북김제출생. 한학과서화에대가 던유재송기면의둘째아들로태어났다. 아버지밑

에서한학과학문을익히며사대부의품성을길 으며, 아버지가타계한후 씨와그림에몰두하

다. 45세때처음국전에출품하기시작하 고, 후일초대작가와심사위원이되기도하 다. 이렇듯

장년에들어세속의활동에일부참여하기는하 으나시종일관도포를입고갓을쓰고생활한사실

상한국근대이후의마지막선비라할만한인물이다. 그의 씨는미치는곳이없을만큼다방면에

출중하 으며, 문인화중에서는유독대그림에몰두하여명작을많이남겼다. 이작품에서도바람에

저항하는풍죽의날카로운맛을잘드러내고있는데이는선비인자신의현신이기도한것이다.

묵죽도 墨竹圖

강암剛菴 송성용宋成鏞(1913~1999) I 20세기 I 액자 I 지본묵화紙本墨畵 I 84.0×184.0 I 전북대박물관

作蘭竹配以石, 眞可謂相稱. 雖然管領自有其人, 試問其人誰也.난초와대를그리는데돌로짝을지우니진실로서로어울릴만하다. 그렇지만주관하는데는스스로적합한사람이있으니시험삼아묻나니그사람은누구인가.

庚申夏 剛菴畸人 寫此경신여름강암기인이이를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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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백련 전남진도출생. 어린시절진도에귀양을와있던정만조문하에서한학을공부하 으며,

청년기에는허형에게서묵화법을배웠다. 1915년일본에건너가메이지明治대학에서법학을공부하

다다시그림공부로전환하 다. 한국화단의마지막남종화가혹은동방의은일자로불리면서광주

무등산에서말년까지은거하며그림을그렸다. 작품은문인화를비롯해다양하나주로문인적품격

이가득배어있는전통남종산수를많이남겼다. 이그림은두부부가머리가하얀파뿌리가될때까

지살라는장수를기원하는전형적인문인화풍의소재를독자적필법으로그려낸작품이다.

백두장춘 白頭長春의재毅齋 허백련許百鍊(1891~1977) I 20세기 I 액자 I 지본채색紙本彩色 I 32.0×122.0 I 개인소장

白頭長春 늙어흰머리로도긴봄을누린다.

毅道人 의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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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만 대구출신. 약관의나이에석재서병오를따라중국을주유하며오창석吳昌碩, 제백석齊白石

등대륙의내노라하는예술가들과교유하 다. 독립운동에투신하여 10년의옥고를치 으며, 이기

간동안세아들도독립운동에헌신하다차례로죽는아픔을겪기도하 다. 석재와함께 1920년대

대구화단을이끌었으며, 그림에자신의심경을나타내는화제를즐겨써넣는것으로유명하다. 긍석

의작품은스승석재의 향을받아비교적구도가동적인전개를이루어전반적으로활달한느낌을

준다. 좁고긴화폭에두세번크게굴곡지며힘차게뻗은묵매의운필은그의개성을강하게드러내

고있다.

기명절지 器皿折枝(蟹·魚)긍석肯石 김진만金鎭萬(1876~1933) I 20세기 I 지본채색紙本彩色 I 125.0×37.0 I 개인소장

老去書生無別事 늙어가는서생이별일이없어

却將文墨送殘年 과먹으로여생을보내네.

秋後湖洲事事幽 가을뒤호수는일마다그윽한데

天眞生計在漁舟 타고난생계가고깃배에달렸네.

肯石 긍석이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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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형 전남진도출신. 부친소치허련과정약용의아들정유산으로부터그림과 씨를배웠다.

10살에잠시서울로이사하 다가다시내려와진도운림산방에서공부하 다. 25세때에목포로옮

겨정착하고평생을서화를즐기며선비처럼살았다. 산수, 사군자등여러화제를그렸으나특히아

버지의 향을받은모란그림이많이남아있다, 이작품은괴석과함께서있는늙은나무한그루를

통해선비의외롭고의연한심정을담아내고있다. 담묵의먹빛이맑은기운을담고있고, 담담하고

소박한필치가꾸밈없이펼쳐져전형적인선비회화의모습을보여준다.

고목과 바위미산米山 허형許瀅(1861~1938) I 20세기 I 액자지본묵화紙本墨畵 I 131.0×61.0 I 전북대박물관

脩篁與枯木 긴대나무, 고목

白石共三淸 흰돌, 이세가지는깨끗함을함께하네.

日暮空山裏 빈산속에해는저물어

無人知此情 이정서를아는이없으리.

米山 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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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건 전남진도출생. 할아버지인소치허련이세운운림산방의전통적인화법을계승하 다. 그

러나 선친들의 전통적 남종화 기법을 그대로 수용하기 보다는 신세대답게 현실을 사생하고 얻어낸

사실성을바탕으로전통기법을이어낸작가라는점이다르다. 조선미술전람회에입·특선하고국전

초대작가 등을 통해 꾸준히 중앙화단과도 교류를 하 으나 끝까지 고향을 벗어나지 않고 전통적인

선비정신을구현해낸작가로평가받는다. 이 작품은그가말년에특히많이그렸던소재인소나무

그림이다. 마치빗자루로쓸어내듯깔깔하고빠른필치의소나무필법은남농특유의것이라할수

있는데, 특별히소나무를통해꿋꿋했던선비의기상을드러내고싶어했던것으로보인다.

소나무남농南農 허건許楗(1908~1987) I 20세기 I 액자 I 지본채색紙本彩色 I 31.5×41.0 I 개인소장

松韻 소나무의노래소리(소나무잎사이로바람이비껴가는물결같은소리)

積翠山房南農 적취산방에서남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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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균 서울출신. 가학으로한문과 씨를배웠으며, 3·1운동에참가하여 3개월간옥고를치

다. 19세에석재서병오의문하에들어가서화를배웠다. 조선서화협회전 3회입선과조선미술전람

회연8회입선의화려한경력이있으며, 서예인최초로대한민국문화훈장을받았다. 50대이후에는

스승석재가운 하던교남서화회를물려받아 남서화원으로개칭하고후진양성에힘썼다. 이그

림은그의장기인묵매는아니지만그의강한필치를느낄수있다.

귀로 歸路죽농竹農 서동균徐東均(1902~1978) I 20세기 I 액자 I 지본묵화紙本墨畵 I 39.6 ×105.0 I 개인소장

歸路 돌아가는길에

甲戌暮春竹農 갑술년늦봄에죽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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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호남사림의교유 ▶김형수(한국국학진흥원자료부연구원)

남선비들의 詩세계 ▶최재남(경남대인문학부교수)

호남의 씨와그림 ▶이철량(전북대미술학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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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선비들의예술세계I

논문I

1. 도학道學의 형성과 호남 사림의 교유

고려후기전래된주자성리학은조선의건국과더불어조선왕조의지배적인이념

으로자리잡게되었다. 조선왕조의개창자들은성리학을중시하고불교를배척하는

방향으로 숭유억불정책을 추진하 던 것이다. 조선초기에는 형이상학적인 정치철

학보다문물제도를정비하고왕권을강화하는등현실의당면문제를해결하는데기

여할실효성있는학문으로서성리학의역할이중시되었다. 조선초기의성리학은권

근~윤상·변계량계통을중심으로형성되었으며, 계유정난이후조선의중앙정계

는이들관학파의성리학을받아들인훈구세력이장악하 다. 당시대표적인관학파

의유학자로는양성지·신숙주·정인지등을들수있다. 이들은대부분세조의왕

위찬탈에동의하 거나, 묵인하 던인물들로세조즉위이후공신으로책봉되었다.

이들의주된관심은부국강병과중앙집권화정책을지지하고민을교화의대상으로

파악하여실용적인측면을강조하는것이었다.

그러나훈구세력들은공신전, 전민의탈점등을이용하여부를축적해나갔고, 이

는조선왕조의기본적인토지제도인과전법체제를붕괴시키는요인이되었다. 이러

한문제에대하여새로이등장한사림들은훈구세력의불법과비행을비판하고이에

대한시정을촉구하 다. 신진세력인사림들은세조대관직에진출한김종직을 수

로주로언관직에종사하면서훈구세력을견제하 다. 이들은주자학적실천윤리를

강조하던인물들로생활의기반이향촌사회에있는중소지주출신이상당한비중을

차지하 다.

사림들이하나의정치세력으로등장한것은성종대를거치면서부터 다. 성종대

는공신이과다하게창출되고, 그들은집중된권력을장악하여남용하는것이근본

적인문제 다. 사림들은현실적으로훈구세력에의한권력의오용과그로인한향

촌의불안정성에직접적으로 향을받는존재들이었다. 따라서이들은주로언관직

에있으면서훈구세력의불법과비위에대한탄핵을감행하 다. 이러한사림의공

호남사림의

교유김형수(

한국국학진흥원자료부연구원)

논문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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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선비들의예술세계I

논문I

절에는최산두와유계린·최성춘·이적·윤신·유맹권등이그에게서학문을배웠

다. 두번에걸친사화로인하여사림들은중앙정계에서는완전히배제되었으나김

굉필의순천유배를계기로호남사림들은 남사림들과연결되었고, 중종조이후사

림파라는하나의정치세력으로결집하게되는배경이되었다.

1506년 중종반정으로 연산군이 폐립되고 연산군의 아우인 중종이 즉위하 다.

중종초기의정국은중종반정공신들이장악하 다. 그러나중종9년조광조의출사

를계기로사림파는다시세력을결집시켰다. 그결과등장한세력이조광조를중심

으로한기묘사림己卯士林이었다. 기묘사림은유교적이상주의, 즉 지치至治를실현

하기위하여과감한개혁을추진하 다. 기묘사림은중종 12년(1517) 향약의실시를

주장하여유교적미풍양속의배양을꾀하는동시에유교적사회질서를정립하기위

하여소격서昭格署를혁파하고, 과거제에대신하여현량과賢良科를실시하는등급진

적인 개혁을 추진하 다. 이러한 기묘사림의 활동은 훈구세력의 반격을 받아 중종

14년(1519) 위훈삭제僞勳削除를 계기로 종식되었다. 기묘사림은 군자·소인의 구별

을엄격히하여훈구세력을소인으로공격하 다. 이러한움직임은훈구세력의반발

뿐만아니라국왕인중종의반발을받았다. 훈구세력에게위훈삭제는집권기반을전

적으로박탈하고자하는의도로인식되었으며, 중종도당초에는훈구세력의지나친

천단을막고자 사림의 정책에호응해 왔으나 사림파의급속한 성장에 따른정국의

불안정과왕권에까지 향력을행사하고자하는그들의과격함에불안과염증을느

끼게되었다. 그결과조광조를비롯한기묘사림들은붕당을지었다는죄목으로투

옥·사사·정배되면서사림세력은다시척결되었다. 이들이대거제거됨으로써사

림파의세력은크게위축되었다. 조광조는능주에유배되어한달만에사사되었으

나호남사림가운데상당수가그의친구로또는문인으로교유하 으며, 이지역에

서죽음을맞이하 으므로호남유학이도학적성격을가지게되는데결정적인 향

을미쳤다. 호남사림의사상이김굉필·조광조의도학사상·지치주의유학과크게

168

격에대한훈구세력의반격이사화 다.

남사림의 수로지목된김종직은비록세조대출사하 으나세조의왕위찬탈에

대하여부정적인인식을가지고있었다. 이러한김종직의활동은당시많은신흥관료

들의 지지를 받게 되어 김굉필·정여창·김일손·유호인·조위·이맹전 등이 그의

문하에출입하 고, 호남출신인최부도그의문하에출입하 다. 이들은『소학』을중

시하 으며, 『소학』을학문과처신의기본으로삼아성리학적실천을강조하 다.

김종직은세조의왕위찬탈을비판하는내용의「조의제문弔義帝文」을저술하 고,

성종사후김일손이「조의제문」을『성종실록』에삽입하고자한것에서촉발되어무

오사화가일어나게되었다. 이 을사초에기록한김일손·권오복등은능지처참되

었고, 이미죽은김종직은부관참시되었다. 문인이었던최부와김굉필등도각각단

천과희천으로유배되었다. 무오사화는훈구세력의비행을사서에기록하고자한사

림들에 대한 훈구세력의 반격이었다. 무오사화가 일어난지 6년 후인 연산군 10년

(1504) 갑자사화가일어났다. 갑자사화는연산군의생모인윤씨가폐위·사사된사

실이연산군에전해진것이빌미가되어관료들이숙청된사건이다. 당시사림들은

무오사화로인하여거의대부분제거되었으나갑자사화의주동자인임사홍은사림

의잔존세력까지숙청하고자하 다. 임사홍일파는사림파가나라일을비방한다고

무고하여윤비폐출·사사사건의연루자들과함께치죄의범위에포함시켰다. 그결

과무오사화때유배되었던김굉필·최부등은사형되고그형제및아들은형벌을

당하고 유배되었다. 무오사화 당시 희천에 유배되었던 김굉필은 연산군 6년(1500)

순천에이배移配되어호남의제자들을양성하 다.

김굉필은 김종직으로부터『소학』을 수학하 다. 이를 계기로『소학』에 심취하여

스스로를 '소학동자'라일컬었을뿐아니라, 평생토록모든처신을그것에따라행하

여『소학』의화신이라는평을들었으며, 나이삼십에이르러서야다른책을접하

다. 김굉필은희천유배시절조광조를제자로맞아학문을가르쳤으며, 순천유배시

Page 82: 영호남선비들의 예술세계-유교문화박물관

171

호남선비들의예술세계I

논문I

心 문제등주자학적여러문제에대하여천착하는것도이와무관한것은아니었다.

이러한노력의결과처음으로나름대로의해법을제시한이는서경덕이었다.

서경덕의 경우 우주론에 있어서 우주의 근원에서 현상에 이르는 원리를, 기氣를

도구로하여파악하는일기장존론一氣長存論에토대를두고있었다. 그는리理만으로

는무위無爲이고기氣만으로는조잡粗雜하기때문에이것이묘합妙合을이룰때기의

완전성이보장된다고하 다. 서경덕의이러한입장은주자학의본령에서벗어났다

고이황과이이의비판을받게된다.

서경덕이주자학에만족하지못하고새삼스레장재철학을재건할필요성을느낀

것은기이외의실재를도저히긍정할수없었기때문이었다. 중국의경우정주학에

서리를궁극적실재로받아들이게되고또한국에서이언적과이황, 이이등이그와

같은입장을취하게된것은장재나서경덕의철학적경험을바탕으로이를비판지

양함으로써비로소가능한것이었다. 예나지금이나현실을중시해온동아시아인들

에게이른바천리天理와같은 '경험적인식을넘어서는관념적실재'는 진정한실재

로인정하기힘든것이었다.

한편비슷한시기독자적인리理철학을수립하 던이언적은시종 '도불리기'道不

離氣, 하학인사下學人事를강조하 다. 이언적은리理를심체心體, 도체道體로파악하

면서 리선기후理先氣後의 입장을 취하 다. 이언적이 옹호하고자 한 주자학적 본체

는그자체로추구될수있는것이아니라항상작용가운데서분수리分殊理의형태

로추구되어야하는것이었다. 이언적이후의성리학자들은본체가현상의다양성을

그것도차등적위계질서를보장해주는궁극적근거로위치해야한다고주장하 다.

이언적이이러한입장을취한것은유교적현실에의긍정과이에대한적극적참여

를유도하기위해, 그리고차등적질서에기반하고있는유교적인륜도덕에존재론

적(본체론적) 근거를제공하기위해, 또한유교적합리성에입각한공론公論의정치

철학을제공하기위해, 무분별·무차별평들을강조하는철학인공空·무無를본체

170

다르지않은것도이와관련이있다. 이는명종조이후본격적으로관계에진출한호

남사림이조식·이황으로대표되는 남사림과연대하여명종말·선조초척신정치

를극복하는데앞장서게되는계기가되었다.

2. 16세기 조선성리학의 정착과 호남 사림의 교유

명종조 초기의 정국은 명종의 외숙이었던 윤원형尹元衡 등의 소윤일파가 지배하

고있었다. 명종즉위년(1545) 8월소윤일파는인종의지원세력이었던윤임의대윤

일파를 척결하기 위하여 을사사화를 일으켰다. 윤임 등 대윤의 주요세력은 참형에

처해졌고출사한사림인권벌權胴은정계에서축출되었다. 사림들은중종말년에극

히일부나마등용되고있었다. 중종 33년 기묘사화시의피죄인들이다시서용되면

서 김안국이 중용되었고, 김안로에 의해 숙청되었던 이언적도 다시 등용되었으며,

이황도이때중앙정계에서두각을나타내기시작하 다. 그러나을사사화직후인

명종 2년(1547) 발생한양재역벽서사건으로인하여송인수·이약빙은사형을당하

고, 권벌·이언적·노수신·류희춘·백인걸 등 20여인이 유배를 당하면서 사림

의세력은극도로위축되었다.

중종조와명종조의훈구정치및척신정치시기를거치면서사림은정계에서활동

을 거의 단념하고 향촌에서 학문적 탐구에 집중하 다. 이들은 기묘사림의 실패의

원인을첫째, 국왕의학문적역량에문제가있었다고파악하고국왕의학문인제왕

학즉성학聖學에대한연구를활발히전개하 고그이론적인기반이되는『대학』에

많은관심을기울 다. 둘째, 개혁주체인사림의이론적기반이취약한것에그원인

을찾았다. 이러한반성을바탕으로향촌에서후학들을교육하여주자학적정치이념

과 학문체계를 수련시킴으로써 앞으로 사회를 주도하게끔 적극적인 교학체계의 확

립에노력을경주하 다. 16세기중반서경덕·이항·조식·이황등에의한학파의

등장도이러한노력의결과 다. 또한당시유학자들이이기론理氣論·인심도심人心道

Page 83: 영호남선비들의 예술세계-유교문화박물관

173

호남선비들의예술세계I

논문I

노수신 비판은 심心이 일신을 주재한다는 주장에 대하여 비판한 것으로 기가 섞일

경우주재자를잃어버릴수있는것이므로그수양방법으로서경을대안으로내세

웠던것이다.

한편 기대승은 이황과 사칠논변四七論辨을 통하여 자신의 입장을 천명하기도 하

다. 기대승은 김인후·류희춘 이후 호남사림을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이황과 기

대승의사단칠정四端七情·이기理氣에관한논쟁은우리나라유학이론발전에하나

의분수령이되었다. 두사람의논변은1553년이황이정지운의『천명도』와『천명도

설』을수정하는작업에참여함으로부터일어났다. 『천명도』의구도舊圖에서는원래

‘사단은리에서발發하고, 칠정은기에서발發한다.’는두구절이있었으나, 이황은

‘사단은리의발發이며, 칠정은기의발發이다’라고수정하 다. 이렇게한번고친

내용은본래의 큰취지와는 관계가 없으나오히려 뒷날이황과 기대승이 논변하게

되는도화선이되었다.

기대승은이황이고친두마디, 즉‘사단이지발칠정기지발四端理之發 七情氣之發’

이라는말과리기로써심心의허령虛靈을나누어설명한점에대해그렇지않다고여

겼다. 사칠논변四七論辨은이렇게시작되어기대승으로부터3회, 이황으로부터3회,

모두 6회의변론으로진행되었다. 두사람은서로의견을달리하 는데, 이는후세

의주리론主理論·주기론主氣論의사상적대립을이끌어낸발단이되었고주자설에

대한회의·비판의효시가되었다. 이황은『천명도설』에서사단과칠정을각각이와

기에 분속시키면서 이선기후理先氣後의 입장을 취하 으나, 기대승은 이기공발理氣

共發의입장에서서논의를전개하 다. 기대승은시원에서리理의일차성을퇴계·

하서와같이인정하나과정에서는이기불상리理氣不相離를강조하 다. 이러한기대

승의입장은 김인후와 이항의입장을 계승한 것으로이항은 태극과 양의는시원과

유행에있어서도혼연일물渾然一物이라하여‘태극없는일물없고, 음양없는태극

없다’라고하고이기는선후가없다고주장하 다. 그는리기理氣가두가지라할지

172

로한초월적형이상학을극복할필요가있었던것이다. 또한그는기氣와심心을본

체로한철학은그것이자의성과우연성을허용할여지를지니고있다는점에서본

질적으로허무적경향의철학과다를것이없다고보았던것이다.

이러한이언적·서경덕의선구적업적은이항·이황·김인후·조식의그것으로

계승되어인심도심논변人心道心論辨·사칠논변四七論辨 등을낳게되었다. 처음논변

이시작된것은노수신盧守愼과이항李恒·김인후金麟厚 사이에서부터 다. 노수신은

경상도상주출신으로을사사화와양재역벽서사건으로인하여호남에유배된후성

리학연구에몰두하 다. 그는인심人心은용用이며도심道心은체體라고주장하면서

'인심人心이인욕人欲이라고한다면도심道心은이발已發이라고하는것이옳지만인

심이선악을겸했다고하면도심은미발未發이라해야옳다'라고하여도심은천리天

理요인심은기발氣發이라고주장하 다.

이러한노수신의입장에대하여이항은‘도심두자는주로도에의해서행위하는

사람으로하여금본다면말할나위도없이그것은리理의용用임을알수있다’하여

비판하고 나흠순의 입장에따라 인심은용이며 도심은 체라고본노수신의 입장을

비판하 다. 한편김인후는노수신의「숙흥야매잠해夙興夜寐箴解」를비판하 다. 「숙

흥야매잠해」는 진백陳柏의「숙흥야매잠」에 노수신이 언해를 붙인 것으로 여기서 노

수신은마음이몸을주재한다고하 다. 김인후는그의설에반대하면서, 마음이몸

을주재하지만기氣가섞여서마음을밖으로잃게되면주재자를잃게되므로, 경敬

으로써이를바르게해야다시금마음이일신을주재할수있게된다고주장해, 이른

바주경설主敬說을내놓았다. 이러한노수신의입장은기대승奇大升에게도비판을받

았다. 기대승은이기理氣를일물一物로보았기때문에인심과도심에이와기를분속

할수없게되어도심을체라하고인심을용이라고하게되었다고비판하 다. 즉

기대승은인심은선악을겸한것이라는노수신의주장을보고인간의행위를통제할

수있는도덕의표준이없는것이라고비판하 던 것이다. 김인후, 이항, 기대승의

Page 84: 영호남선비들의 예술세계-유교문화박물관

175

호남선비들의예술세계I

논문I

중시하 던것이다. 이러한문제의식은이항이노수신을비판한것에서분명히드러

난다. 이항은‘인심과도심이모두미세하게구분되는것이지만선악의구분점’임을

지적하 던것이다.

따라서이들은사림으로서의동류의식을바탕으로현실대응에대한문제를적극

적으로토론하 다. 송순宋純도 1570년편지를보내이황의이기호발설을비판하고

기발이승설을주장하기도하 으며류희춘柳希春도자신이지은『속몽구』를이황에

게보내어질정을받기도하 다. 이러한이유로담양의류희춘, 나주의박순, 보성

의박광전, 광주의기대승, 창평의양자징, 해남의윤강중·윤흠중·윤단중, 장흥의

문위세, 화순의조대중, 무장의변성온·변성진형제등이이황의문하에출입하면

서학문적교류를지속해갔다. 이들은대부분류희춘·김인후를매개로하여이황의

문인이되어학풍을유지하다 16세기말에본인이나그제자들이송순계열과서경

덕계열로분화되었다.

그러나선조8년(1575) 일어난동서분당東西分黨은조선의사림들을크게두부류

로분열되게하 다. 당시 남의퇴계·남명학파와이발·정여립·정개청등화담

학파의호남사림들은대부분동인으로좌정하 고, 정철·류희춘·오겸등송순계

열의호남사림들은서인으로좌정하 다. 이미붕당의조짐은선조5년나타나고있

었다. 선배사림이었던이준경은그의유차遺箚에서동서분당의조짐을예견하고그

타개책을모색할것을주장하 다. 결국선조 8년심의겸·김효원의이조정랑문제

를놓고동서東西로사림들이분열되었다. 이러한상황에서선조22년(1589) 정여립

사건鄭汝立事件을둘러싸고일어난기축옥사는동·서인을완전히적대적인관계로

분열시켰다. 정여립은전주출신으로처음이이李珥의문하에서활동을하다동인으

로 전향한 인물이었다. 이러한 정여립이 모반을 꾀하고 있다고 황해도에서 장계를

올렸다. 그러나당시동인들은무고일지모르기때문에당시전주에있던정여립이

상경하여입장을밝힐때까지기다려야한다고주장하 다. 하지만정여립이자살하

174

라도그체體는하나이며대개‘일이이이이일一而二 二而一’이라고하 다. 그의태

극에대한이해는리기론으로이어져‘조금이라도도체道體를인식한다면리理는기

氣 안에있음을알수있다’고하여기氣 안의리理를인식할수있다고보았다. 이항

의입장에따르면‘천도天道의원형이정元亨利貞과인성人性의인의예지仁義禮智는모

두기가먼저움직이고이또한행하는' 것이었다.

이황은이러한입장에반대하여사단과칠정의소종래所從來를달리파악하고리

와기의가치분별및대립적관계를인정하여리의지배를지향하는입장을보이면

서도기를소멸대상으로간주하지는않았다. 그는기대승과의이기심성논쟁을통해

"사단은리가발하여기가따른것이며, 칠정은기가발하여리가탄것이다四端理發而

氣隨之 七情氣發而理乘之"라고하여리·기를상호따르고올라탄유기적관계로설명

하 다. 이러한이황과기대승의입장차이는주로칠정七情의이해문제와관련이있

었다. 기대승은 '본래는선하나부중절不中節하면악이된다'고주장하 으나이황은

이러한기대승의칠정이해를수용하는듯하면서도 '악으로쉽게흘러간다'고고쳐형

기의질적차이에의해왜곡된형기의작용을주목하 다. 이러한기대승과이황의

토론과대립은중종·명종대를거치면서조선사회가직면한문제를군주및지배층

의도덕적인수신을바탕으로성학정치聖學政治를이루고자하는노력이기도하 다.

16세기후반사림은이기론에서서로의입장차이는있었지만수양론에서경敬을

중시하는 공통점이 있었다. 당시 사림들의 주요한 과제는 척신정치의 청산과 그에

대한대책이었다. 이들은중종·명종대의혼란을지배자들의도덕적해이에서비롯

된것으로보았으며, 이는성리학공부가미진한것에서기인한것으로보았던것이

다. 당시 리기理氣논쟁과 도심인심논쟁道心人心論爭도 단순한 학문적 방법론의 문제

가아니라이를조선사회에적응시키기위하여어떠한방법을적용하는가의문제이

기도했다. 따라서노수신·이항등나흠순의사상을받아들인학자들도경을중시

하는것은마찬가지 으며, 이황·조식등정통성리학자들도경을수양의방법으로

Page 85: 영호남선비들의 예술세계-유교문화박물관

177

호남선비들의예술세계I

논문I

1598년 임진왜란이 종식되자 조선은 이제 전란으로 피폐해진 사회를 재건해야

할필요성이있었다. 이러한시대적요구에부응하여나타난새로운사상적인사조

가실학實學이다. 실학은사회·경제적인문제에초점을맞추었다고할지라도본질

적으로성리학의 역에서벗어난것은아니었고, 성리학의범주속에서사회개혁을

도모한것이었다. 당시학문적인조류는사회·경제적인개혁에관심을기울인실학

도 존재하 지만 오히려 성리학적 사회질서를 재건하여 국가를 재조再造하고자 하

는정통성리학의입장이주류를이루고있었다.

이시기 호남사림의교유는거의나타나지않는다. 이는동인계열호남사림들이

기축옥사로거의멸절되다시피되어호남사림들의주류가서인계열로고착되면서서

로당색黨色을달리하는정적으로변화되었기때문일것이다. 한편동인계열의사림

들은서인에대한입장차이와임진왜란의책임을따지는과정에서류성룡을중심으

로하는남인과이산해·정인홍을중심으로하는북인으로분화되었으나인조반정으

로인하여대북세력이몰락함으로써 남사림은남인이주축을이루고있었다.

이러한상황에서나타나는 호남교유의유일한예가부안의유형원柳馨遠과금

산의 배상유裵尙瑜의 교유이다. 유형원은 서울출신이었으나 32세 때인 효종 4년

(1653) 부안현扶安縣 우반동愚蟠洞으로낙향하여당시사회의문제점을지적하고개

혁론을제시한『반계수록』을집필하 다. 『반계수록』은그의주요저서로농촌생활

에서의체험과농촌경제의안정책등을제시하 다. 여기에서그는학자들이법을

소홀히하고문학중심적생활을일삼음을통렬히비난하면서국가통치제도전반의

개혁안을제시하 다. 이개혁안의목표는모든사람이자신의능력을발휘할수있

고자신의몫을거둘수있는사회를만드는데에있었다. 이를위해서지배층이만

든법제를완전히개혁하여야하며, 제도를합리적으로개혁하여야했다.『반계수록』

의 사상적 특징은 부민富民·부국富國을 위해 제도적인 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자 농민自營農民을육성해민생의안정과국가경제를바로잡는것

176

여버리자옥사는동인을일망타진하는방향으로전개되었다. 당시예학과성리학에

깊은관심을기울여당시호남지방의명유로알려진정개청鄭介淸은정여립과동모

하 다는죄목으로체포되어평안도위원으로유배되었다가다시함경도경원아산

보阿山堡로이배후사사되었다.

기축옥사는당시동인에게치명적인타격을주었다. 이발·이길형제와백유양을

비롯한호남사림들이장살杖殺되거나유배되었고, 남명조식의제자최 경崔永慶도

정여립의편지를한장받은죄로유배되어죽었다. 당시기축옥사의심문을받은위

관委官은 정철鄭澈로, 정철을 비롯한 서인들은 동인을 척결하는 계기로 이용하 던

것이다. 이사건으로인하여호남의동인계열사림들은결정적으로몰락하게되었고

바로앞시기까지활발했던 호남사림들의교유도거의단절되었다.

3. 17세기 실학의 전개와 호남 사림의 교유

1592년 일어난 임진왜란 초기 관군들이 패퇴하면서 전국 각지에서 사림들은 의

병을조직하 다. 대표적인의병으로 남의정인홍·김면·곽재우부대등이있었

고, 호남에서는 김천일·고경명·문위세부대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고경명부대

와같이대규모로 정규전을 펼치는 경우도 있었으나대부분 지리와 지세를이용한

유격전을펼쳐적에게막대한타격을주었고적의후방을교란하여전의를상실하게

하는데주력했다. 그러나당시 호남의병들이협력하여작전을전개한경우는거

의없었다. 1592년 1차진주성전투때고경명부대와곽재우부대가진주에서조우한

적이있었으나수성론을주장한고경명과성을포기하자는곽재우의입장이맞서면

서 합동작전은 결렬되었다. 임진왜란 당시 호남 의병들의 협력이 거의 나타나지

않은것은당시호남의병들은한성수복과왜군타도에목표를둔것에반해 남의

병을비롯한다른지역의의병들은주로향보성鄕保性에치중했다는점에서도그이

유를찾을수있다.

Page 86: 영호남선비들의 예술세계-유교문화박물관

179

호남선비들의예술세계I

논문I

4. 19세기 조선성리학의 현실대응과 ·호남사림의 교유

호남과 남의사림들이다시교유하게되는것은19세기기정진이출현하면서부

터 다. 기정진은 노론계통의 가계에 속하는 인물로 리일분수理一分殊에 바탕한 리

일원론理一元論을제창하 다. 그의사상은이황·이이이후근 300년간계속된주

리·주기의논쟁을극복하고독창적인리理의철학체계를수립한것이었다. 모든사

물은개별의리理를구비하고있으며, 그개별적리理는보편적인하나의리理와동

일함을 설명하는 것이 그의 핵심사상인 리일분수론理一分殊論이다. 그에게 있어서

우주간의모든존재와잡다한일체의현상은어디까지나근원적인일리一理가천만

가지의리理로분화한것으로설명된다. 뿐만아니라본체상의보편적인일리와개

체 속에 내재해있는 개별적인 리理 사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기정진은리기理氣에서뿐만아니라인성人性·인물성동이人物性同異·선악善惡·

사단칠정四端七情 문제등에이르기까지일관된리일분수의논리를제시함으로써독

자적인리철학의체계를수립하 던것이다.

그는주기론자들의이론적체계를계승하여리기불상잡理氣不相雜의원칙에입각

하면서도현실세계에서리약기강理弱氣强으로흐르기쉬운문제를리와기의역할과

속성을철저히구분함으로써해결했다. 즉그는본원적존재는오직리일뿐이라규

정하고, 모든현상세계의변화운동의원인을리로환원시켜기를리의종속적존재

로격하한것이다. 그러므로기정진의이기론은현실세계에서기에대한리의절대

성과주재성을확보하려는입장에서이황과이이의이기론구도를종합하려는의도

이고, 이것은결국리기일체관理氣一體觀을근거로리를중심으로한일원적체계의

구성으로귀결된다고할수있다.

기정진은조선체제의해체현상에따른전통적사회질서의붕괴와제국주의의침

략이라는역사적위기의상황을외면하지않고, 위정척사의대표자로서무너져가는

178

이유형원의주된생각이었다. 그의주장은실현되지는못했지만당시의이상론理想

論이었으며, 후학들의학풍조성에도적지않은 향을주었다. 그의학문은실학의

기반이되어이익·안정복·정약용등으로이어져실학을집대성하는데크게기여

하 다. 이러한 유형원의 개혁론이 정리되기까지 배상유의 도움이 매우 지대하

다. 배상유는소북小北계열의가계에서태어나청년기까지주로한양에거주하 으

나유형원이1653년(효종4) 부안으로내려가자그도다음해조모를모시고경상도

금산으로내려가은거생활을시작하 다. 이때부터유형원과서신교환을자주하면

서 현실대응과 학문에 대한 토론을 하 다. 배상유는 유형원이 죽은 후 5년 만인

1678년숙종에게『반계수록』에제기된개혁안을실행하자고제의하 으며, 유형원

의사돈이자절친한사상적동반자이기도했다.

이들이살았던시대는격심한당쟁이전개되던시기 다. 인조반정으로서인세력

이집권하게되자소북계열의가계에속하 던이들은실세하게되었고, 이후북인

계열에속하던인물들은서인이나남인으로당색을바꾸는경우가많았다. 유형원과

배상유의경우도북인계열에서남인으로전향하 다. 유형원의경우젊은시절주기

主氣적인입장에경도되어있었으나그의현실개혁론이숙성해가는과정에서이황

의주리主理적입장을수용하여실리實理를주장하게되었다. 1673년유형원이사망

하자『반계수록』은유형원의아들이자배상유의사위인유하柳昰의손을거쳐배상

유에게 전달되었다. 갑신환국으로 인하여 남인이 집권하자 배상유는『반계수록』을

당시 남인의 실력자인 윤휴尹頊에게 전달하여 유형원의 개혁안을 실행하도록 권유

하 으며, 윤휴가이에대하여적극적인태도를보이지않자대표적인 남사림이

었던이현일李玄逸에게보이고그서문을받고간행하고자하 다. 이러한배상유의

노력은 남 남인들에게『반계수록』이 유포되고 조 46년 서인 당국자들에 의해

대구감 에서인간人間될수있는바탕이되었던것이다.

Page 87: 영호남선비들의 예술세계-유교문화박물관

181

호남선비들의예술세계I

논문I

180

전통사회의질서를바로세우려는의식적노력을기울 고, 이것의이론적토대로서

성리설을중심으로체계화하는동시에, 성리학적명분질서와가치체계를정립하려

고시도하 다. 이러한그의의도에는기본적으로세계구성에대한존재론적이해가

성리학적가치체계의근간을이룬다는전통적인성리학적사고가깔려있었다. 실제

로그는리기론을모든가치와규범을규정하는기본틀로여겼고, 성리학적지배질

서는이기론을통해정립되는것으로평가했으며, 궁극적으로는성리학적가치의실

현을목적으로하 다. 따라서기정진의리일원적성리설은기울어가는국가체제를

안으로부터정비하여제국주의의침략을막고자하는목적의식하에서이루어진시

대적산물이라하겠다. 즉무너져가는왕조를바라보며기정진이가졌던생각은절

대적인도덕적원리를제시함으로써상대적인선악을극복하고, 성리학적이상세계

를복원하려는의도 다할수있다.

따라서기정진의문인들중삼정문란을해결하기위하여「삼정책」을제출한이최

선이나, 위정척사에충실하 던정재규, 의병활동을전개한기우만등이출현한것

은성리학적명분질서와가치체계를재정립하고자한기정진의입장과무관한것이

결코아니었다. 이들은기정진의학문과사상을한두번의서신왕래나강학만을통

해익힌것이아니라, 수년간기정진의문하에서강학과토론을함께하며그의학

문을전수받고계승하 다. 그들은성리학에대한여러문제들을기정진과함께토

론하며리중심의이기설과성리설의체계를형성하 던것이다. 그리고스승인기

정진과마찬가지로초야에서학문연구에힘썼으며, 도학정신을바탕으로한위정척

사衛正斥邪의 대표적인 학파로 한말 의병운동의 선구자로서 자리잡았다. 19세기의

경우지연·인맥·당색등을매우중시하던시기 는데, 이러한점을고려할때노

사학파의주요인물에호남은물론 남의학자들까지포괄된다는것은특기할만한

것이다.

이러한기정진의문하에많은제자들이운집하 으며, 그중합천의정재규鄭載圭

와하동의조성가趙性家는노사학파의대표적인인물이었다. 조성가는28세때처음

기정진의문하에급문하 으며, 기정진의대표적인저술인「외필猥筆」도조성가에게

보여준것이었다. 기정진의이저술은당시기정진이속해있던노론의철학적입장

과배치되는것으로사단과칠정을호발互發이라고본퇴계나기발氣發만을인정하

는율곡의입장과는다르게기발氣發이곧리발理發이라는독특한해석을함으로써

같은기호계열의간재학파나연재학파등으로부터심한비판을받기도했다. 조성가

도당시학계의핵심쟁점인리기문제에있어 "리는지극히귀하여상대가있을수

없으며, 기도리속에있는것이요, 리가운용될때손발역할[理流行之手脚]을하는것"

이라고 규정한 기정진의 유리론唯理論을 그대로 계승하 다. 즉 기정진이「외필」에

서주장한것처럼퇴계의리기호발설理氣互發說을인정하지않고율곡의기발이승일

도설氣發理乘一途說도부정하는것이다. 오히려성주의한주이진상의입장과심즉리

心卽理설과통하는부분이많은것이었다. 따라서기정진의문하와이진상의문하에

서의병전쟁에적극적이었던문인들이많이배출된것도이러한이들의사상과무관

한것은아니었다.

정재규는 김석구金錫龜·정의림鄭義林과 더불어 노사문하의 3대제자弟子로 꼽히

는 인물이다. 남명 조식의 학문을 존숭尊崇하 으며, 스승인 기정진의 학설을 계승

하 다. 기정진과정재규는다른주리파학자들과는달리리理와기氣를이원二元으

로대립시켜이해하지않고, 일원一元적으로기를리속에포함되는분分의개념으로

파악하여 리일분수理一分殊라는 리체리용理體理用의 논리로 일관했다. 그는 스승의

리기심성理氣心性에 관한 학설이 율곡 이이의 설을 비판한 것이 아니라 선현先賢이

미처발명하지못한것을드러내는것이고, 이러한예는주자에게서도볼수있다고

하면서이이의뜻이제대로계승되지못해주기의설에빠진당시의학자들에게이

이의뜻인‘리理를밝히는것(明理)’이라는입장을재천명하 다.

정재규는이처럼기정진의성리설을충실히계승하 을뿐만아니라그의위정척

Page 88: 영호남선비들의 예술세계-유교문화박물관

183182

사실천정신도계승했다. 노사학파의위정척사정신은한말의병활동으로바로연결

되어나라를지키려는의지를그대로실천한것이라고할수있다. 그는을사조약이

체결되자 호남의유림들에게포고문을보내조약의부당성을각국공관에알려이

를호소하고최익현과함께의거를도모했다는데서도알수있다. 또얼마후경술국

치를당하자포고문을작성하고동지들을규합하고자했으나뜻을이루지는못했다.

이처럼조선시기 호남은 15세기부터일정한학문적교유를하고있었다. 특히

16세기성리학의성숙과조선성리학의정착과정에서 호남사림의교유는깊은

향을미쳤다. 널리알려진이황과기대승의사칠논변이외에도, 이황과김인후, 노수

신과이항등많은 호남의거유들이서로의견을주고받으며, 또서로의공통점과

차이점을확인하면서각각의독자적인사상을구축해나갔다. 이러한교유는학문적

인차원에그치지않았다. 중종·명종대의척신정치에견제세력으로서사림파라는

정치적연대를형성하 으며, 아울러임진왜란당시에는각각의지역에서의병장으

로활동하 다. 그러나성리학에대한이해에서견해차이를보이던 남과호남의

사림들은각각동인과서인으로정치색을달리하 고, 그와중에기축옥사를거치면

서교유가단절되기에이르 다. 호남에도 남사림과정치적지향을같이하는이

들도있었지만, 그들이대부분기축옥사때제거당함으로써그단절의폭이커졌음

은물론이다.

단절된 호남의교유가다시활발해진것은 19세기들어서 다. 물론 16세기처

럼광범한지역에걸치지는못하고, 지리산을중심으로한지역에국한되었다는한

계는있지만, 이시기기정진을중심으로이루어진 호남사림의교유는그당시상

황에 비추어 큰 의미가 있었다. 노사학파로 분류되는 이들은 성리학과 조선사회의

정체성과운명이위협받던시기에위정척사운동의사상적기초를제시하고있었던

것이다.

남선비들의

詩세계최재남(

경남대인문학부교수)

논문❷

Page 89: 영호남선비들의 예술세계-유교문화박물관

185

호남선비들의예술세계I

논문I

2. 남 사림의 정신적 기반

선산善山· 양密陽에연고를두고『점필재집 償畢齋集』에 1,100여제의시를남긴

김종직의시는풍격에있어서호방하고활달함放達·엄숙하고정중함嚴重 등으로높

이평가되며, 송宋나라강서시파江西詩派를배웠으면서도당시唐詩의경지에이른것

으로인정된다.

<낙동 나루에서[洛東津]>와 같은 작품에서는 고향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정이 드

러나고있다. 선산부사로부임하면서어머니를가까이모실수있다는기대와함께

맑은낙동강의물로자신의몸을깨끗하게하겠다는다짐이돋보이고있다.

나루의아전은농瀧의아전이아니요

관리들은곧고을사람이라네.

세편의 로성주에게사직하고

다섯필의말로자친을위로하네.

흰새가노를맞는듯하고

푸른산은손을보내기에익숙하네.

맑은강에는점과선도없거니와

이로써내몸을다스리리.

津吏非瀧吏 官人卽邑人 三章辭聖主 五馬慰慈親 / 白鳥如迎棹 靑山慣送賓 澄江無點綴 持以律吾身

한편악부시등에서는지역의문물과역사에대한관심을보이고있는데, 서술서

정시의형태로쓴 <동도악부東都樂府>와같은작품은역사적사실혹은설화를연속

적으로파악하지않고하나의각편으로만받아들이고있지만후대해동악부체海東樂

府體와연결될수있다. 이와는달리 <낙동요洛東謠>, <가흥참可興站> 등에서중앙과

의대립적시각을보이고있는점도흥미롭게살필수있다.

점필재의문하이며함양咸陽에연고를두고『뇌계집成雷磎集』에서380제이상의시

를남긴유호인의시는풍속이나지역에대한관심을보인것, 두류산頭流山과고향

에대한애정을바탕으로선경仙境을추구한것, 동료와스승과의교유를통한내면

184

1. 서언

이중환李重煥이『택리지擇里誌』에서 "조선의인재는반이 남에있다"라고할만

큼출중한인물이많은 남선비들의시세계를모두살피는일은간단한일이아니

다. 선비들은일반적으로조선시대지식인을가리키는말로이해할수있는데, 남

선비들은 남사림嶺南士林이라고하여집단적성격을띠고있는것으로이해하기도

한다. 그특성을간단하게말할수는없지만시문詩文보다는학문을, 벼슬살이보다는

생활에서의실천을더중요하게인식하고있었던것으로평가할수있다. 그리고고

향에대한애정을바탕으로백성의삶에깊은관심을표명하기도하 다. 비록벼슬

에온마음을두지않아도나라와임금을위한마음은한결같았음을확인할수있다.

이 은한시漢詩를중심으로 남선비들의시세계를점검하되풍류風流의구체

적실상을확인하기위하여우리말노래도일부포함하여검토하도록한다. 아울러

남을대상으로한시를중심으로보도록한다.

우선 남사림의 출발이라고할수있는점필재償畢齋 김종직金宗直(1431∼1492)

의 시를 보고, 다음으로 점필재의 문하들의 시는 뇌계成雷磎 유호인兪好仁(1445∼

1494)·매계梅溪 조위曹偉(1454∼1503)를 중심으로 확인한다. 이어서 분강가단을

이끈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1467∼1555)의 우리말노래와한시를, 그리고관포灌圃

어득강魚得江(1470∼1550)의 한시의 세계를 점검한다. 다음으로 강좌江左의 퇴계退

溪 이황李滉(1501∼1570)과 강우江右의 남명南冥 조식曹植(1501∼1572)의 시를 일별

하고이어서퇴계문인들의시와이른바퇴계학파에속하는선비들의시세계를살

펴보도록한다.

Page 90: 영호남선비들의 예술세계-유교문화박물관

187

호남선비들의예술세계I

논문I

곤궁한민가에는보리가익지않았으니어찌하랴?

어떻게쌀을실은수레를많이얻어서

백성들로하여금실컷배부르게하랴?

眼中捐瘠可能收 斗粟千錢不易謀 / 矯制誰同汲都尉 活民當法富靑州

縱然佳節花如海 其奈窮閻麥未秋 / 安得連雲車載米 盡敎黔首飽休休

함양군수咸陽郡守가되어서전한前漢의급암汲睦이수해와한재를겪은백성을위

하여창고의곡식을방출한일과북송北宋의부필富弼이수재를당한백성을살렸던

일을떠올리면서도스스로그렇게하지못하는안타까움을드러내고있다.

3. 분강가단의 풍류와 흔들리지 않는 여유

스스로만족할줄알고만년晩年의지조가완전한사람, 남들이보기에신선같이

살았던농암이현보는예안禮安에연고를두고있으며, 평생몸소효를실천하면서

이를정서적감동으로이어지게했고, <어부가漁父歌>를 산정刪定하고분강가단汾江

歌壇을열어풍류를즐겼다. 열친悅親과유완遊玩을내용으로펼쳐진분강가단의풍류

는농암의자제들을거쳐향촌의후대에생활문화의핵심으로자리를잡게되었다.

『농암집聾巖集』에서120제이상의시를남긴이현보는어버이가오래사시기를바

라는뜻인애일愛日을당호로삼은<농암애일당聾巖愛日堂>에서,

열집고을의선성宣城은내고향이요

조선祖先께서남기신경사가길게쌓 네.

흰머리의어버이께서는일흔을넘기셨고

슬하에는자손들이이미당에가득하네.

十室宣城是我鄕 祖先餘慶積流長 / 哀哀雙老年踰屬膝下雲仍已滿堂

집안의화목한분위기와어버이를모시는자식들의정성을보이고있다. 그리고

186

적기반의확보등으로그특성을정리할수있다.

점필재의 <동도악부>를이은것으로보이는 <동도잡 東都雜詠> 가운데길쌈내기

와한가위의유래에관하여읊은것을보면다음과같다.

팔월금성에달이참으로밝은데

가늘고가는삼과모시가고움을다투네.

회소소리처량한가배절저녁에

두부의모습이아직도완연하네.

八月金城月正圓 纖纖麻每鬪嬋娟 / 會蘇凄斷嘉徘夕 兩部風光尙宛然

동부와서부가편을갈라서누가길쌈을많이하는지내기를하는과정에서한가

위가 유래되었다는 설화를 수용하여 서술하고 있어서, 지역의 풍속에 대한 관심을

읽어낼수있다.

금산[金山; 金泉]에연고를두고있으며점필재의문하이면서처남이기도한조위

는두시언해杜詩諺解 사업에도참여한바있어서, 두보杜甫의시에대한안목을갖추

고있었던것으로평가할수있다. 『매계집梅溪集』에서300제이상의시를남기고있

는데, <구황救荒> 등과 같이백성을아끼는목민관으로서의자세를읊은것을비롯

하여, 점필재의 <동도악부>의 향을 받은 <계림팔관鷄林八觀>을 포함하여『송도록

松都錄』등에서는역사에대한인식을보여주고있고, 유배생활을하면서지은작품

에서는충분忠憤의자세를보이기도한다.

가뭄에황폐하게된백성을건지려는마음을읊은<구황>은다음과같다.

눈앞의굶는백성어찌하면거둘수있을까?

곡식한말에천전이라쉬이꾀하지도못하네.

조칙을바꾸어시행함을누가급도위汲都尉처럼하랴?

백성을살리는데에는부청주富靑州를본받아야하리.

좋은시절이라꽃은바다같이피었지만

Page 91: 영호남선비들의 예술세계-유교문화박물관

189

호남선비들의예술세계I

논문I

팔 雙磎八詠>과 <동주도원십육절東州道院十六絶> 등을 남겼고, 당대의 시인 가운데

박상朴祥과조신曹伸을높이평가하기도하 다.

<계룡산에들러서[過鷄龍]>와같은시에서는구체적사실에서촉발된내적흥취를

바탕으로화자의기상을펼치고자하는자세를읽을수있다.

곰나루에진을마련함은높은위치에의거함인데

웅장하고빼어남은끝내두류산에양보하지아니하네.

만약날아올라하늘꼭대기에닿게되면

호서쉰고을을다보게되리.

作鎭雄津據上游 雄高終不讓頭流 / 若爲飛上干鱗頂 看盡湖西五十州

어득강은 이념적인 지향에서는 김종직·유호인·조위·정여창鄭汝昌 등의 뒤를

잇는다는자긍심이두드러졌고, 명리名利에담담하고편히양보하는[恬退] 절개를바

탕으로향촌에서의실천적삶을펼친것을보면동시대의이현보·송흠宋欽 등과함

께서울과는변별될수있는향촌의문화를열어가고자한것을알수있다. 벼슬살

이를하다가고향에돌아간감회를서술한 <관암에이르러[到灌菴]>와 같은시가그

러한실천의마음을보이는것이다.

나그네가되어봄부터겨우여름을넘겼는데

도리어어려서고향을떠나늘그막에막돌아온듯하네.

새무덤의푸른풀은사람이없어도자라는데

거친밭의가을오이는나의호미를기다리네.

爲客自春思涉夏 還如弱喪老還初 / 新墳宿草無人長 荒圃秋瓜待我陋

4. 깊고 넓은 도학과 높은 기절

강좌江左의퇴계이황과강우江右의남명조식은여러측면에서대비적으로설명

188

농암이산정한 <어부가>는 세상에전하는장가長歌와단가短歌를각각정리한것인

데, 분강汾江의뱃놀이를바탕으로하여어부의세계를현실의생활공간을뛰어넘는

곳으로설정하여낭만적서정공간을확보한것으로이해할수있다.

한편이휘일李徽逸(1619∼1672)의 <분강의배위에서삼가학사김응조선생의시

에차운하다[汾江舟中 敬次鶴沙金先生韻]>는분강가단의풍류가 17세기후반에도이어

지고있음을보여주고있다.

지금분강호수에서옛날풍류를잇는데

맑고깨끗한어부노래에달빛이배에내리네.

새노래를잡아서점석孀石에새기고싶거니와

분명히천년뒤에도남으리.

汾湖今繼舊風流 漁唱冷然月下舟 / 願把新詞鐫孀石 分明留與後千秋

분강가단의풍류는자식들에게는선친에대한그리움과형제간의우애를내용으

로 펼쳐지다가, 17세기 이후에는 어부가의 현장을 찾은 선비들을 중심으로 집단으

로그풍류를계승하고있다. 위의시는현종3년(1666) 9월에김응조金應祖·금성휘

琴聖徽·김시온金是聞·이휘일·김계광金啓光 등이 분강에서 뱃놀이를 하면서 당시

의풍류를재현하려고지은것이고, 또숙종 44년(1718) 중추에는권두경權斗經·김

용金鏞·김대金垈·이집李集·이수겸李守謙 등이 애일당 아래에서 뱃놀이를 하면서

옛날의풍류를환기하기도하 다.

고성固城에연고를둔관포어득강은실제그이름에걸맞게물을만난고기처럼

자유롭게산시인이다. 세속의변화에구애받지아니하고산수속에서노니는즐거

움을 누리면서, 기이하고 예스러움[奇古]과 기상이 꿋꿋하고 사나움[豪健]의 기풍을

보이고있어서사람됨과시의풍격이같은수준에이르 다고평가받기도한다. 『관

포시집灌圃詩集』에230제이상의시를남기고있으며, 계산溪山과강호江湖에서유람

하면서기氣를배양하면 시사詩思가크게확충될 것으로기대하 으며, 실제 <쌍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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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

호남선비들의예술세계I

논문I

그리고정유일鄭惟一의 <한거이십 閒居二十詠>에화답한시가운데 <시를읊다[吟

詩]>에서는,

시가사람을그릇되게하는것이아니라사람이스스로그릇되며

흥이일어뜻이따르면이미막기어렵다네.

바람과구름이움직이면신명이몰래서로돕고

매운맛과비린맛이사라지면세속의소리가끊어지네.

율리栗里(주; 도잠陶潛)는시를이루면참으로심지心志가즐거웠고

초당草堂(주; 두보杜甫)은고치고나서절로길게읊조렸네.

저로말미암아분명한심안心眼을드러내지못하거니와

내가애태우는마음을묶은것이아니라네.

詩不誤人人自誤 興來情適已難禁 / 風雲動處有神助 吳血消時絶俗音

栗里賦成眞樂志 草堂改罷自長吟 / 緣他未著明明眼 不是吾緘耿耿心

라고하여시가사람을그릇되게하는것이아니라시인이스스로그릇되게할수

있음을경계하고있다. 일어나는흥취를시인이어떤태도로통어統禦해야할것인

지마음의자세가중요함을말하고있는셈이다.

한편<도산십이곡>의언학言學 첫째수에서,

천운대天雲臺도라드러완락재玩樂齋소쇄蕭狸ㅎ、ㄴ듸

만권생애萬卷生涯로낙사樂事무궁無窮ㅎ、얘라

이듕에왕래풍류往來風流를닐어므슴ㅎ、고

라고하여, 천운대天雲臺와완락재玩樂齋를오고가는즐거움을풍류風流로인식하

고있다. 도산서당으로포괄되는완락재에서 을읽다가주변의천운대天雲臺라불

리는 운 천광대雲影天光臺 등을 오고가는 것인데, 서당에서의 마음 공부와 자연을

즐기는놀이를함께하는것을풍류로인식한것이다. 풍류는멋, 여유, 자유를기본

요소로하면서그내용은시대마다약간의편차가있는데, 퇴계는공부와놀이를통

190

되기도 한다. 성호星湖 이익李瀷(1681∼1763)은『성호사설星湖僿說』에서“퇴계는 태

백·소백산아래에서태어나동방유학의종사宗師가되었으니, 그 도는깊고넓으

면서공손하고겸양하여문채의빛남이수사洙泗의풍치가있다. 남명은두류산아

래에서태어나동방기절의최고가되었으니, 그도는고심역행하면서의를즐기고

삶을 가볍게 여겨 이利에도 굽히지 않고 해害에도 피하지 않아, 우뚝 선 절조가 있

다”라고하면서지리地理에견주어두분을말한바있다.

예안禮安에 연고를 둔 이황李滉은 동방 유학의 종사로서 존숭尊崇받을 뿐만 아니

라『퇴계집退溪集』에2,000수가넘는시를남기고있어서, 도학으로알려진명성못

지않게시에있어서도 '높고큰나무'에견주어지기도한다. 젊은시절의시에서는진

솔함을, 늘그막에는 의취意趣를 보여주고 있어서 학문의 성취와 함께 시에서도 그

진폭을가늠하기어렵다고하겠다.

사물에대한인식을바탕으로시적정서를환기하는방식을제시한 <관물觀物>은

사물로 인하여 흥취를 일으키는[因物起興] 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작품으로 주목할

있다.

많고많은만물이어디에서오는가?

넓디넓은샘의근원은빈것이아니라네.

앞의어진이들이흥취가일어난곳을알고자하면

뜰의풀과동이의물고기를살피게나.

芸芸庶物從何有 漠漠源頭不是虛 / 欲識前賢感興處 請看庭草與盆魚

감흥感興은사물에느꺼워흥취를붙이는것으로서정적인식이라할수있다. 뜰

의풀과동이의물고기를관찰하면서도에들어가는[入道] 과정보다, 흥취를일으키

는[起興] 시적 인식을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자득自得을 추구했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고, 이를통해근원에대한탐구가서정적인식으로이어질수있는통로를마련한

것으로보인다.

Page 93: 영호남선비들의 예술세계-유교문화박물관

193

호남선비들의예술세계I

논문I

남명의 이러한 기상은 그의 문하들에게도 이어져서 나라와 민족이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창의倡義로나타나기도하 다. 그러나 17세기초반정치적인이유로남명

의정신을훼손시킨문하門下가있어서그정신이지속적으로이어지지못하는아쉬

움을남기게되었다.

5. 풍류와 학문을 이어가기

남명의 문하와는 달리 퇴계의 문하에서는 스승의 풍류와 학문을 이르면서 남

선비의자세를올곧게이어갔다. 그가운데시에서살필수있는사람은금계錦溪 황

준량黃俊良(1517∼1563)·초간草澗 권문해權文海(1534∼1591)·학봉鶴峰 김성일金誠

一(1538∼1593)·한강寒岡 정구鄭逑(1543∼1620) 등이다.

풍기豊基에연고를둔황준량은농암의손서이며퇴계의문하인데, 분강가단에서

익힌낭만적서정의풍류와도산에서배운학문적성취를시속에서잘보여주고있

다. 『금계집錦溪集』에서 800제가 넘는 시를 남기고 있으며, 이산해李山海(1539∼

1609)가 <금계집발錦溪集跋>에서‘성정에근본을두고음률에잘맞으며, 형식과실

질을아울러갖추고있어서의미가심원하다’라고평가한바와같이풍류와도학을

아울러포괄하면서목민관으로서백성의삶에대한애정과지역의승경에대한관심

을두루드러내고있다.

그 가운데 <금계정자의 터에서[錦溪亭基]>에서는 금양정사錦陽精舍에서의 강학과

금계정錦溪亭에서의놀이를염두에두고있어서농암과퇴계의뒤를이어가고자하

는마음을읽을수있다.

휘어꺾여서맑은산골물을따르고

얽히고돌아서끊어진다리를건너네.

언구름이돌구멍에서피어나고

찬눈은소나무끝에쌓이네.

192

합하여즐기는가운데스스로터득할수있음을말하고있다.

삼가三嘉·산청山淸에 연고를 둔 조식曹植은『남명집南冥集』에 200여 제의 시를

남기고있거니와드높은기상때문에더욱평가를받고있는데, 만년에덕산에은거

한뒤에지은<덕산시냇가의정자기둥에짓다[題德山溪亭柱]>가그의기상을대변한

다고하겠다.

천섬지기종을보라

크게두드리지않으면소리가없네.

어찌하면저두류산처럼

하늘이울어도오히려울지않으랴?

請看千石鐘 非大高無聲 爭似頭流山 天鳴猶不鳴

두류산이보이는산천재山天齋에서어떤외물에도끄떡없이당당하게살아가겠다

는자세를읽을수있다. 남명의이런기상은곳곳에서확인되거니와, 백성을물에견

주고임금을배에견준<민암부民巖賦>와조정의폐단을조목조목지적하면서벼슬에

나아가지않겠다는뜻을밝힌<을묘사직소乙卯辭職疏>에서도분명하게읽을수있다.

자신의삶과견준것으로보이는 <홀로선나무를읊다半獨樹>에서는남들을배려하

면서도자신은돌보지아니하는나무를통해세상에대한태도를드러내고있다.

무리를떠나오직홀로있어서

비바람을스스로막기어려우리.

늙어감에머리는없어지고

상심하여속마음에타버렸네.

아침에는농부가밭을갈다가밥을먹고

한낮에는여윈말이그늘에서쉬네.

거의죽어가는그루터기에서무엇을배우랴?

다만부침하면서하늘에오르리.

離群猶是獨 風雨自難禁 老去無頭頂 傷來寤腹心 / 穡夫朝甁飯 瘦馬午依陰 幾死査寧學 升天只浮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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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

호남선비들의예술세계I

논문I

부질없이살쾡이털을잡고월越나라의노래를짓네.

矮屋蕭條對鶴岑 矢藏龜六老園林 / 龍門薇蕨長牽夢 鷗谷煙霞亶入吟

七載銅魚將底用 百年遽社自關心 / 鴻恩到處深如海 空把狸毛賦越音

한편 <우연히 읊다[偶吟]>와 같은 작품에서는 군더더기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말쑥함을느낄수있다. 전아典雅한풍격이간결한시어에서묻어난다.

걸어서앞시냇가로나가

이끼낀돌에앉아낚싯대를던지네.

해가넘어가도록물고기가물지않아

낚싯대를거두어홀로돌아가네.

步出前溪上 投竿坐石苔 日佯魚不食 收釣獨歸來

이시는억지로꾸미지않으면서정갈한맛을느끼게한다. 기구起句에서홀로걸

어가는어옹漁翁의여유있는모습을, 승구承句에서주변의상황에신경을쓰지않는

단아한자세를, 전구轉句에서집착하지않는느긋함을, 결구結句에서는흔들리지않

는꼿꼿함을각각읽을수있는데이러한품격品格은스무 자의절구를통해집을

나서서자리에앉았다가시간이흐른뒤에다시돌아서는과정을자연스럽게그리고

있기때문에가능하다. 표현에있어서의절제가격조를높이게한것이다. 흔히달밤

에배를타고하는낚시를형상화하는것과는달리낮에걸어나가조용히앉아서낚

싯대를 드리웠다가 해가 저물녘에 홀로 돌아오는 것을 형상화한 것이다. 어울리는

배경을넣으려고애쓰지않은것이오히려시의맛을깔끔하게한것이다.

안동安東에연고를둔김성일은퇴계의적전嫡傳으로학문적공로가뛰어날뿐만

아니라나라를위한희생, 문학적성취등에서어느누구에게도뒤지지않는평가를

받는인물이다. 『학봉집鶴峰集』에900제가넘는시를남기고있어서그양에있어서

도주목할수있거니와그의시는형식이나표현보다는의미나내용에더큰비중을

194

바위모양은자리를편듯이예스럽고

산의겉모습은병풍을두른듯이높네.

봄이되면한초가집에서

돌아가서고기잡고나무하면서늙으리.

屈折沿淸澗 槃回渡斷橋 凍雲生石竇 寒雪胸松梢 / 展席巖形古 圍屛岳面高 春來一茅屋 歸老伴漁樵

예천醴泉에연고를둔권문해는『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을엮고『초간일기草澗

日記』등의소중한자료를남기고있어서주목받는인물인데, 『초간집草澗集』에 220

제 이상의 시를 남기고 있다. 정종로鄭宗魯(1738∼1816)가 <초간집서草澗集序>에서

“다만그시문이부려富麗를공교로움으로삼지않고오직전아典雅를으뜸으로삼은

것을볼수있다”라고지적한바와같이, 웅장하고화려함에힘쓰지아니하고오직

고상하고 우아함을 위주로 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있는데, 이는 안으로는 수헌睡軒

권오복權五福(1467∼1498)으로부터이어지는가학家學과밖으로는퇴계를스승으로

모시면서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학봉鶴峰 김성일金誠一·동강東岡 김우옹金宇裵 등

동학들과의교유에서삶의태도와시의방향을정한것으로해석할수있다.

실제시를보면향촌의안정된삶에대한자신감과그리움, 전아하고간결한시詩

추구, 교유시를통해사람에대한신뢰를구축하는것으로정리할수있다. 연아체演

雅體로쓴<억가산유감이작憶家山有感而作>은매구절조수鳥獸의이름을들어서고향

에대한그리움을드러내고있다.

쓸쓸한작은집은학가산鶴駕山을마주하는데

여섯다리를감춘거북화살은원림에서늙었네.

용문의고사리는길이꿈에끄는데

갈매기골짜기의놀과안개는부질없이읊조림으로들어오네.

일곱해의구리물고기를장차어디에쓰랴?

백년의닭신이절로마음을닫네.

곳곳의기러기은혜가바다같이깊은데

Page 95: 영호남선비들의 예술세계-유교문화박물관

197

호남선비들의예술세계I

논문I

정감의세계를읽어낼수있다. <회연에서우연히짓다[檜淵偶吟]>와같은작품이그

러한예이다.

가천고을이나에게는깊은인연이있는데

한강을차지하고또회연까지얻었네.

흰돌과맑은시내를종일토록즐기나니

세간의무슨일이단전丹田으로들어오랴?

伽川於我有深緣 占得寒岡又檜淵 / 白石淸川終日翫 世間何事入丹田

이어서이들의뒤를잇거나같은학맥에놓이는사람중에서여헌旅軒 장현광張顯

光(1554∼1637)·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1563∼1632)·동계桐溪 정온鄭蘊(1569∼

1641)과후대의갈암葛菴 이현일李玄逸(1627∼1704)을살필수있을것이다.

천永川에연고를둔장현광은벼슬살이도했지만산야에서독서와강학으로삶

을보내어학자로서의명망을얻은인물이다. 『여헌집旅軒集』에많지않은 130여제

의시를남기고있고시인으로서주목받은것도아니지만그의시를살피는일은학

문적태도가시적형상에어떤 향을끼치는지확인할수있을것이다.

남긴 시 가운데 물시詠物詩가 많은데 이들 시의 두드러진 특성은 사물 자체의

형상을주목하기보다사물의내면에본래존재한다고생각하는이치에기반을두고

시로형상화한다는것이다. 그래서그의시는관념적인경향을띠고있다고평가받

는다. 와유당臥遊堂의경물景物을열한수로읊은시에서 <매화梅花>를읊은예를통

하여구체적으로확인할수있다.

섣달눈속에피었으니

봄소식이겨울의막바지까지다가왔네.

해마다때를놓치지않으니

천지의마음을알수있네.

開在臘雪裏 春信到■陰 歲歲不失時 可見天地心

196

두고있음을지적할수있다.

도산서원이막낙성된뒤에도산에들른느낌을서술한<도산에오동나무와대나

무가뜰에가득한데달밤에어슬 거리노라니느꺼운눈물이줄줄흐른다[陶山梧竹滿

庭 乘月徘徊 感淚麓然]>라는시에서,

저녁구름가에유정문은닫혀있고

사람이없는뜰에는달빛만가득하네.

천길을날던봉황은어디로갔는가?

벽오동과푸른대만해마다절로자라네.

幽貞門掩暮雲邊 庭畔無人月滿天 / 千忍鳳凰何處去 碧梧靑竹自年年

라고하여봉황과같은스승에대한느꺼움을여과없이드러내고있다. 도산서당

에서학업을닦던일과스승에대한그리움이짙게배어있다.

경상우병사慶尙右兵使를 제수받고 길을 떠나면서 전별하던 사람들에게 준 <한강

유별漢江留別>에서는죽음을무릅쓰고나라를위해목숨을바치겠다는다짐을읽을

수있다.

부월을들고남쪽길에오르면서

외로운신하는한번죽음을가벼이여기네.

종남산終南山과위수渭水로

머리를돌리노라니남은정취가있네.

仗鉞登南路 孤臣一死輕 終南與渭水 回首有餘情

한편성주星州에연고를둔정구는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1454∼1504)의외증

손으로퇴계와남명두분에게수학하여, 학문하는자세와인격수양의방법은퇴계를

닮았고천성이호방하고원대한기상은남명의모습그대로 다는평가를받는다.

『한강집寒岡集』에 수록된 시는 만사挽詞를 제외하면 30제에 미치지도 못하지만,

Page 96: 영호남선비들의 예술세계-유교문화박물관

199

호남선비들의예술세계I

논문I

한밤중에약한우레가치더니

갈대를태운재가율관에서날리네.

일양一陽이비로소기운을되돌리니

만물은이미빛을머금네.

멀리대궐의뜰에서하례드릴일을상상하면서

부질없이푸른바다에갇힌것을안타까워하네.

봄이되면비와이슬이많이내려서

남쪽극변에따뜻함이먼저돌아오리.

子夜微雷動 枷灰律管飛 一陽初返氣 萬物已含輝

遙想琴庭賀 空憐碧海圍 春來多雨露 南極暖先歸

양陽의기운이움직이기시작하는동지冬至를맞아음陰에처한자신의상황이반

전되기를바라는마음을임금의은혜를비유하는비와이슬을끌어들이면서자신의

내면을드러내고있다.

이들보다후대의인물이면서 해寧海· 양英陽에연고를둔이현일은서애西厓

를 사사한 학사鶴沙 김응조金應祖(1587∼1667)의 학덕을 입고 여헌旅軒에게 사사하

여퇴계의학통을계승하여 남학파의거두로평가받는다. 『갈암집葛菴集』에200여

수의시를남기고있으며관념적인진술이대부분을차지한다고평가받는데, 광양光

陽에유배되었을때<학문의방도를물으러찾아온남명의후예조희점曹希點에게준

시[曹君希點 南冥遺裔也 訪余於光陽之玉龍洞 請問爲學之方 書此以贈之]>에서학문에서가학

家學의 전통을 강조하고 있는 점은 주목할 수 있다. 실제 이현일이 장흥효張興孝

(1564∼1633)의외손으로이시명李時明(1590∼1674)의아들이며이휘일李徽逸의아

우이고이숭일李嵩逸의형이라는점에서스스로학문의전통이가학에기반을둘때

그성취가지속될수있음을체득하고있었던것으로이해할수있다.

도는일상생활의인륜속에있으니

천천히걸으며어른뒤를따름이참으로어려운일이아니라네.

198

일반적으로성리학적사유에바탕을두고매화가지닌상징적의미를지사志士와

연결시키는데, 겨울이끝나고한해를마감하는시점인섣달에핀매화가바로이런

위상을확보하는것이다. 지금눈앞에핀매화의모습이아니라우리들의관념속에

존재하는 매화 일반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열 가지 경물인 반석磐石·괴석怪

石·반송盤松·노송老松·죽림竹林·방당方塘·사계화四季花·석류石榴·포도葡萄·

국화菊花에서도같은설명이가능하다.

상주尙州에연고를둔정경세는서애의고제高弟로퇴계학파의정통에속하여도

학에중점을두었기때문에시에는힘쓰지않았다고하지만, 송준길宋浚吉이“시상詩

想과의경意境을기다려서이루어내었다”라고그의시를평가한바있다. 실제『우

복집愚伏集』에 190여수의시를남기고있으며 <우암愚巖>과같은시는자신의지조

와절의를표현한것으로볼수있다.

만고에부딪치는물결을혼자힘으로맞서느라고

머리를든추한모습이모두바보와같네.

뒷날나를찾아오는나그네가있으면

산아래의푸른바위이것이나라네.

萬古衝波獨力肪頭茫面醜摠如愚 / 他年有客來相訪 山下蒼巖是卽吾

거창居昌에연고를둔정온은정인홍鄭仁弘(1535∼1623)을사사師事하여남명南冥

에서정인홍으로이어지는강개한기질을이어받아매사에과격한자세를보 으며,

인조반정이후정인홍이역적으로몰리게되자남인南人으로자처하면서정구鄭逑를

사사한것으로알려졌다. 그는『동계집桐溪集』에500제가넘는시를남기고있는데,

많은작품이제주도에유배되었을때에지어진것이라는점에서강개慷慨의정서가

드러나는것으로확인할수있다.

<동지冬至>라는시에서임금의은혜를입어유배에서풀려나기를바라는간절한

마음을읽을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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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

호남선비들의예술세계I

논문I

200

지금그대는돌아가구할곳이이미넉넉하거니와

예로부터가학에본래근원이있다네.

道在人倫日用間 徐行後長諒非難 / 今君旣裕歸求地 家學由來自有源

17세기이후해체될정도로남명학南冥學이명맥을잇지못하는상황에서남명의

후손이이현일을통하여퇴계학과의연결고리를마련하고자했을때, 이현일은가

학의전통을강조하면서남명학의부활을기대하고있는것으로이해할수있다.

6. 소결

지금까지15세기의점필재김종직부터17세기후반갈암이현일까지 남선비들

의시세계를몇몇인물을중심으로개략적으로살펴보았다.

남사림으로서의 정신을 지니면서 시문詩文보다는 학문에 큰 비중을 두었다고

하지만, 시를통해학문의깊이를드러내기도하고, 고향에대한애정을보여주기도

하면서, 백성들을아끼고다독이는너그러움도감추려고하지않았다. 그런한편으

로나라에대한한결같은마음을지키고자하여, 과사람이어긋나지않도록노력

하 던것으로확인할수있다.

분량이정해진탓에살피지못한많은 남의선비들의경우에도꼿꼿하게선비

의도를끝까지지키고자하는자세를읽어낼수있어서, 정신의오롯함이오랜기간

문화의큰줄기를이어가고있는것으로이해해도무리는아니라고본다.

이철량(

전북대미술학과교수)

논문❸

호남의

씨와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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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

호남선비들의예술세계I

논문I

의전통음식을비롯한생활문화전반에서한국문화를대표한다. 그중호남의문인

화는판소리와함께대표적인문화유산으로지목된다.

실상한반도미술은남북의유별이비교적뚜렷하며, 동서또한마찬가지라할것

이다. 호남의 미술은 한반도 남반부 미술을 대표하면서 한편으로는 한반도 미술을

대표한다고할수있을만하다. 그것은모든여타의전통예술과함께호남의드넓은

곡창지대의풍요로움에서성장하 기때문에그렇다. 비록호남이역사적으로정치

적중심에있지는않았지만예술문화에있어서만은한반도문화의젖줄이었던것이

다. 그것은 한반도는 농경문화이고, 호남은 한반도 농경문화의 본산이었기 때문에

그렇다.

호남의미술문화는포괄적으로농경문화의특색에서찾아지겠지만, 노령산맥을

축으로남북으로구분된다. 그리고이구분은지형과지리적특징으로만끝나지않

고문화적성격으로이어지면서다소차이를보인다고할수있다. 보통한반도농경

의핵심인호남평야를이야기할땐전북의만경평야를지목한다. 만경평야는덕유산

자락에서발원한만경강을중심으로펼쳐져있으며, 전주부근을지나김제를가로

질러서해로나간다. 그리고만경강남쪽으로또하나의강인동진강이흐른다. 이

역시정읍쪽에서발원하여김제를지나부안으로흘러든다. 이두강물을먹고자란

것이소위호남문화의핵심인데, 이주변에서는일찍부터사람들이모여살았다. 이

미 삼국시대 이전에 15개의 부족국가가 형성되어 있었으며, 이때가 소위 마한시대

이다. 이미여러종류의선사문화유적이발굴되고있으며, 그대표적인유적이고창

의고인돌유적이라할수있다. 고인돌유적으로미루어보아이부근에많은인구

가 집해살았었음을상징적으로알수있다. 이러한역사적흐름이조선조에오면

서각종예술문화의꽃을피우게되었던것이다.

호남의남부지역으로서전남역시 산강을중심으로고대역사가자리잡았다.

산강은노령산맥에서시작하여담양을거쳐나주로흘러간다. 이 산강의하류지

202

호남과 호남미술

소위남도미술이라고일컬어지고있는호남의미술은한국의전통적인문인화가

그주류를이루며발전하여왔다. 호남의미술이이렇듯문인화가주류를이루어왔

던것은아무래도호남의독특한자연환경에서얻어진문화적특색에서찾아진다고

볼수있다. 일반적으로호남이라고하면, 한반도서남부지역을지칭하며특히금강

을기준으로그남쪽지방을지칭한다. 금강이남은독특한지형적구조와기후조건

을가지고있다.

한반도를동서로갈라놓는태백산맥은남·북으로길게늘어져있다. 그 마지막

자락에남부에서제일높은명산지리산을만들어놓고이지리산자락을기점으로

하여전라도와경상도가마주한다. 태백산맥은남으로힘있게내려치다다시소백산

맥을만들고소백산맥은또다시노령산맥을만든다. 소백산맥의중심에는덕유산이

있고, 노령산맥은 호남을 남북으로 나누며 서쪽 깊숙이 내려와 서해안을 바라보고

있다. 그래서호남은전라북도와전라남도로나뉘며다소구색이다른독자적문화

를형성했다고볼수있다.

대부분호남의강들은이산맥들에서발원하여서해안으로흐른다. 그물길은촉

촉하고기름진거대한곡창을만들어냈고또한일찍부터많은사람이모여살게하

다. 이강들이전북의만경강과동진강이고, 전남의 산강이다. 완만하고깊숙한

산자락에서는산간문화가자리잡았고서쪽의드넓은평야에서는농경문화가발달

했다. 호남에는이렇듯각기다른문화들이독자적색깔을가지고발전해왔는데, 이

를테면 판소리의 동편제와 서편제가 그렇다. 동편제는 산간에서 싹터 맺고 끊음이

분명하며 힘이 넘치는 소리이고, 서편제는 평야를 기반으로 하여 가락이 부드럽고

여유로우며매끄러운특징을지닌다. 반면진도아리랑처럼남부해안을중심으로한

남도아리랑은가락이흥겹고흐드러지며, 경쾌한것도또한호남의특색이라할것

이다. 호남의문화는한국의전통소리인판소리에서만찾아지는것은아니다.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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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

호남선비들의예술세계I

논문I

생활을하 다. 하서 김인후가담양에머물 고, 송강 정철이담양, 고산 윤선도가

해남앞바다보길도에서여생을지냈다. 또한한국초서의대가 던이광사도신지

도에서유배와말년을보내기도하 다. 이들외에도많은인물들이남도와인연을

맺었다. 이들 대선비들은 남도에 머물면서 단지 유배생활을 시름으로 보낸 것만은

아니었다. 여러 후학들을 가르치기도 하 으며, 이곳에 그들의 선비정신을 남기기

도하 다. 남도에서원·향교가많은것도이때문이라할것이다. 이들이남긴선

비정신과유학은이고장에많은서원과향교를세울수있었던토양이되었던것이

다. 이곳의유학자들은단지이곳에머문이들뿐만이아니라, 이나라대표적인선

비들의정신을기리기위한서원을많이세웠다. 다만이들이선비의풍류로서의서

화를어떻게즐겼는지는알려져있지않고유품또한많지않아자세한내용을파악

하기는쉽지않다. 어떻든남도는그특유의대쪽같은결단과기개가살아있는선비

의고장이며, 이를바탕으로미술문화가살아있었다고볼수있다.

이지역의고대서화에대하여알려진것은거의없다. 앞서언급한데로오래전부

터이고장은사람이많이모여살았으며, 농경이풍부하여먹고살기에좋았으므로

문화또한발전해왔으리라는것은짐작할수있다. 그러나우리고대사가그렇듯이

서화에대한이해가풍부하지못하 으며, 여러가지재난등으로대부분유실되고

말았다. 그것은우리나라가중세이전의그림이거의남아있지않는것과도맥을같

이한다고볼수있다. 이러한역사적불행이지역에내려오면더욱깊어진현실을

볼수있다. 호남의서화는지금까지 알려진 자료로서 적어도 17세기를 크게 넘어

서지못한다. 그러므로이때까지의호남의미술은완전히단절된역사속에묻혀있

었다고 보여 지는 것이다. 호남의 서화에 대해 서술하자면 먼저 작품이 남아있는

학포學圃 이상좌李上佐(1465~?), 학포學圃 양팽손梁彭孫(1488~1545)과공재恭齋 윤

두서尹斗緖(1668~1715)·호생관毫生館 최북崔北(1712~1786) 등을 떠올릴수있다.

이상좌와최북은전문화가 으며, 양팽손과윤두서는사대부 다. 그러나이들이

204

역은일찍부터서남해안의중심으로무역이활발하여풍요를누리고있었다. 오늘날

전라도라고일컫는것도전주와나주를줄인말이다. 전라도의해안지역은해산물이

풍부하고, 특히소금이생산되는한반도의유일한곳으로서명성과부를길 다. 연

평균기온14도내외의온화한기후와풍부한강우량으로인해곡식이잘자라고해

산물이넉넉하여일찍부터대지주들이많이출현하 다. 특히전주는조선조의발생

지로서소위“풍패지관豊沛之官”의위엄을갖춘격조있는도시로발전하 다. 이리

하여조선시대에는많은선비들이찾아들었으며, 이들이남긴풍류가오늘날전통문

화의핵심을이루고있다고할수있다. 전주를중심으로한선비문화는아무래도대

대로내려오는지주들의학문과예술적풍류에서찾아야할것같다.

반면나주를중심으로한전남의상황은약간다른듯보인다. 이지역의경제적

풍요는기본적으로농경에바탕을하고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산강포구를핵으로

서남해안의교역으로부를키웠다. 중세이후까지호남의무역항은 산포 다.

산강은담양월산에서발원하여장성·광주·나주등을거쳐목포를지나서해안으

로흐른다. 산포주변은기름진옥토가많고사람이일찍부터모여살았다. 나주평

야는 전남평야의 핵심역할을 하 으며, 전라도 남부지역의 중심역할을 하 다.

산강하구에둑이설치되기이전에는나주까지조수가 려들었다. 중국을비롯하여

동남아등지에서들어오는물목은대부분 산포에서내려졌으며이러한교역의중

심으로남부지역은나름의문화적특색을키워왔다. 나주는그배후도시로서핵심적

인역할을담당하 으나실상오늘날남아있는유산은매우적은편이다. 오히려남

도의선비문화는유배문화에서찾아져야될것같다.

남도는한반도의정치적중심지에서너무멀리떨어져있었다. 그래서시대의격

동기마다정치적유배지로서전남내륙과해안지역이자주이용되었다. 정암조광조

가화순에유배왔었으며, 정약용·정약전형제는강진과흑산도에서유배생활을하

다. 조희룡이 신안 임자도에 유배당하 으며, 구한말 최익현은 흑산도에서 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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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

호남선비들의예술세계I

논문I

學圃라하 으며, 조선초기화단의대표적인물로당대의산수화를대변하고있다.

또한 17세기에 활동했던 이제현은 전문화가는 아니었으나 그림을 잘 그렸고 특히

포도를 잘 그렸다고 기록으로 전한다. 17세기 이명욱은 조선중기 화단에서 이목을

끄는화가 다. 기록이나남아있는유작이드물어그의실체를파악하기는매우어

려운데당시도화서의교수를지낸한시각의사위로알려져있으며그또한도화서

화원이었다고한다. 완산인으로아마도시골에서올라간미천한출신으로그림에재

주가뛰어나한시각의눈에띄어발탁된인물이아니었을까하는생각이든다. 이무

렵기록에는올라있지않지만전주인으로최명룡崔命龍이있다. 호를석계石溪라하

으며줄곧지역에서활동했던인물로화가로서보다는학문하는선비로서이름을

남겼는데, 그가남긴유작을통해화가로서도상당한수준이었음을알게한다. 18세

기 후기의 대표적인 인물은 최북崔北이다. 그는 무주인으로 워낙 천부적인 재주와

기행적 인물로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필치는 종횡무진하 으며 전통적인 화풍의

산수와특히조선후기진경화풍을남겨잘알려져있다. 최북외에도18세기에는산

수, 초충, 화훼를잘했던이종현이도화서화원으로활동했다는기록이있으며, 완산

인으로 모에뛰어났던이덕무가있다. 특히이덕무는적성현감등을지냈던사대

부화가로알려져있다. 19세기에들어서면포도를잘그렸다는이일섬, 책거리그

림에뛰어났던이형록, 산수와인물이돋보 던이경립등이기록에올라와있는인

물들이다. 이들 외에도 조선시대에 이세송·양기성·김희겸·한종유·한종일·이

수민·이일섬·이남식·이상필 등 많은 인물들이 이 지역과 연관되어 연구되어야

할인물들로서기록에올라있는경우이다. 어째든이지역은역사적환경으로보아

많은서화가들이활동하 으리라는것은짐작하고도남음이있다. 다만아쉽게도이

들에대한기록이전무하고또한유품들이거의유실되어그실상을파악하기에어

려움이있는것이안타까울뿐이다. 그런가하면남도에서는양팽손이능주, 그리고

윤두서가해남에서출생하 다.

206

후 이 지역의 서화가 본격적으로 역사의 무대에 나서게 된 것은 19세기 들어서의

일이다.유품이남아있지않아그정확한내력은알수없다하여도이지역과연관

되어생각해볼수있는인물들은많다. 예컨대지금까지알려진자료로서우리나라

의 서화가에 대한 기록의 교본으로 알려져 있는『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이나『한국

서화인명사서韓國書畵人名辭書』등을통해보면이지역과연관된것으로생각되는다

수의인물들을발견할수있다. 이를통해보면, 고려시대인물인이 李寧은전주인

이며화공이었다. 이 은고려의대표적화가 으며, 북송의예술천자휘종의칭찬

을 받았다하여 유명해진 인물이다. 서예가로 최균崔均 또한 전주인이었다. 최균과

함께 완산인 이서림李瑞林·익산 금마인 이주李湊·이행검李行儉·전주인으로 최성

지崔誠之·남원인으로각운覺雲 등이기록에올라있다. 이중각운은승려로서남원

만행산승련사의주지 다고기록되어있다.

화가로서는 이 李寧과 그의 아들로 이광필李光弼이 올라있을 뿐 대부분 씨에

능한서예가들이다. 그외동국문헌에올라있던이문정李文挺이서화징에, 그리고석

만우釋卍雨가설각운의서자로서남원용성인으로 씨를잘썼다고기록되고있다.

조선시대에들어오면그수는한층늘어난다. 그리고대체로그림보다는 씨에뛰

어났던인물들이기록에많이올라있다. 그것은당시사회풍조의하나로여길수있

는데, 그림은잡기의하나로천하게다루었던당시선비들의세태를반 한다할것

이며, 씨는선비들이갖추어야할덕목의하나 으니당연하다하겠다. 먼저화가

로서이배연과이상좌李上佐의이름이올라있다. 이배연과이상좌가동일인인지아

니면다른인물인지는분명하지않다. 이배연에관해서는, 이정의부친은승효이고

조부는배연이라는기록이나온다. 한편이정의부친승효는흥효의형으로이상좌

의아들로알려져있다. 이러한정황으로보면이상좌와이배연은동일인일가능성

이매우높다. 다만이들의기록이자세하지않아아쉬울뿐이다. 이상좌는원래노

비 으나그림재주가뛰어나소문이났고, 중종이화원으로발탁하 다. 호를학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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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선비들의예술세계I

논문I

계기가 되었다. 이는 그가 조선에서 최초로 서양학문을 받아들인 인물로 지목되는

대목이다. 그의후손의말을빌리면석정은평생을 읽기와유랑으로세월을보냈

으며집안가사에는무관심하 다고한다. 어떤때는가사가곤궁하여전주에서잠

시한약방을경 하여생계를돕기도하 다. 거의일생을학문에만전념하 던인

물이라할만한데, 당대호남의대표적학자들이었던이기李沂·황현黃玹 등과깊은

교유를 하며 호남 삼걸로 불렸다. 그는 그야말로 호남의 대표적 유학자이자, 시·

서·화에뛰어난문인화가로서손색이없는인물이었다.

한편 이정직보다 다소 앞서 태어난 허련許鍊(1809~1892)은 전라남도 진도에서

태어났다. 그의어린시절은잘알려져있지않지만, 멀지않은해남의윤선도고택

에드나들며윤두서의작품을모사하면서독학으로그림공부를하 던것으로알려

져있다. 그러던중당시해남대흥사에머물던선불교禪佛敎의큰스님이었던초의

선사의소개로 1839년에한양으로올라가추사김정희를만났다. 이처럼한양으로

거처를옮긴허련은김정희문하에서본격적인서화공부를하게된다. 허련은조선

화단말기남종화南宗畵의대가로알려져있는데, 아마도이때김정희문하에서

향을받아남종화의세계를깊이있게이해하고익힌것으로보여진다. 그는자를마

힐摩詰, 호를 소치·노치·석치 등으로 하 고, 말년에는 이름을 허유라고 하기도

하 다. 마힐은 남종화의 시조로 지목되는 당나라 왕유王惟의 호이고, 소치는 원나

라말기역시대표적인남종화가의대가 던황공망黃公望의호가대치 던데서연

유한것이다. 이는그가얼마나깊이있게남종화의정신에몰두했었는가를보여주

는것인데, 실상남종화는선비회화를가리키는말이라해도될것이다. 조선조에중

국남종화를가장잘받아들인사람이김정희 다. 소위김정희일파라고불리는여

러작가들중에서허련은대표적이라할수있다. 남종화는시·서·화가일체를이

룬형식으로서허련은그의작품속에서이러한선비정신을잘구현해내었다. 특히

그의문인화는호남지역의여러후배들에게폭넓게받아들여지고있다. 이두사람

208

비록 묻혀진 역사이지만 이러한 역사적 환경이 토양이 되어 19세기에 들어서면

많은작품들이남아있어옛모습을짐작하는데도움을준다. 그리고이들을통해보

면호남의서화는주로문인화가주류를이루어왔었을것으로믿어지며, 이러한짐

작은여러각도에서추적이가능할것으로보여진다.

호남의 서·화

문인화는기본적으로사대부계층의선비들이즐겨다루었던화목이었다. 그리고

사군자를 비롯하여 여러 모·초목 등을 다루며, 기본적으로 씨와 문장을 함께

다룬다. 그래서이 에서는그림과 씨를함께아우르는서·화라는포괄적언어

를 사용한다. 호남지역의 서화는 19세기에 들어와 이정직李正稷과 허련許鍊에 의해

서꽃을피우게된다. 호남의남과북이서로다른지역적특색을지니고있었듯이

이두사람에의해상이한흐름으로발전하게된다. 그정점에이정직과허련이있으

며이정직은북도에서, 허련은남도에서활동하 다. 이두인물은당대대표적인사

대부로서그들이남긴서화는곧이지역의문인화를대변하고있다.

이정직李正稷(1841~1910)은 호를 석정石亭·석정산인石亭山人·석산인·연석燕石

이라하 으며, 김제백산면상정리에서나서줄곧김제에서활동하 다. 석정의부

친은본래경기도김포에서살았으며후일김제로옮겨정착하고뿌리를내렸다. 그

는어려서부터 읽기를좋아하 으며, 학문에남다른열정을보 다고한다. 고향

에서특별한스승을두지않고이웃의서생으로부터 공부를한것이전부 다. 그

러나그의 읽기는미치지않는곳이없어시문詩文·경사經史를비롯하여음양·

의약·율산律算·도서등다방면에걸쳐있었다. 이렇게쌓아진학문은대체로실용

과실사적인실학적학문에바탕을두었다. 고종 5년, 그의나이 28세때에연행사

를따라청나라에들어가1년여간체류하면서당시의다양한신학문도접하게되었

다. 특히이때서양학문을처음접하면서칸트와베이컨등의철학을흡수하게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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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선비들의예술세계I

논문I

목포에자리잡았던허건이등장하면서소위오늘날의남도화풍을이루었는데, 이는

전적으로허련의회화세계를이어받아이루어낸것으로문인화의정신이바탕이된

것이다. 실제이들두사람은자신들의삶의표본으로운림산방에은거하며선비세

계를이루어낸조부의삶을실천했던인물들이었다.

이들의대표적인작품들은대부분산수화라할수있는데사군자나화조화등전

통적인소재의문인화또한많이남아있다. 허백련은진도에서태어나이미 8세때

부터한학을공부하 고, 어린시절에는허형에게서묵화법을익혔다. 진도보통학교

에다니다가서울에올라가기호학교에다니면서서울화단을둘러본후다시일본에

건너가일본남종화의대가 던고무라小室翠雲에게서수학하 다. 귀국후제1회조

선미술전람회에서 2등상을수상하여본격적인활동을시작하 으며이때부터고향

을지키고전통적인남종화정신을실현시켰다. 1938년 연진회를창설하고후진들

을 길러내며 남도화단을 남종산수화로 일신시킨 인물이라 할 수 있다. 후학으로는

송파이청흠·동강정운면등이있다.

남농허건역시진도에서태어나부친으로부터그림수업을받았다. 그래서초기

의작품들은전통산수를비롯하여고사인물이나화조등전통화법을보여준다. 그러

다가 1940년대이후독특한점묘화법을구사하여조선미술전람회에서총독상을수

상하는등새로운변모를보 는데, 특히선묘를위주로한대상묘사화법을통해개

성적인화풍을창안하 으며, 약간거친듯보이는칼칼한붓질은한국적정서를드

러내는허건만의표현이라할수있다.

이정직과 전북화단

허련을중심으로한전남화단이산수화를중심으로발전하 다면전북은이정직

을중심으로하여전통적인문인화가주류를이루며진행되었다. 그것은아마도이

정직이전의전북화단의흐름을짐작하게하는대목이기도한데, 농경이풍부하 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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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실질적으로조선말기호남지방의문인화를일구었던인물들인데이들이활동했던

당시의 한양화단에는 추사 김정희의 향을 받았던 우봉又峯 조희룡趙熙龍(1797

~1859), 그리고말기의대표적인화가 던오원吾園장승업張承業(1843~1897)·석파石

坡 이하응李昰應(1820~1898)·몽인夢人 정학교丁學敎(1832~1914) 등 걸출한문인화가

들이활동하고 있었다. 허련과 이정직이 당시 조선화단의 대표적인 인물들인 이들

작품의 향을받은것으로보이는것은어쩌면당연한일이라하겠다. 다만허련은

한양에올라가직접적으로이들의화풍을수용하는데반해, 이정직은순전히향리에

앉아독학으로당대의화풍을습득하여독자적경지에올랐다고할수있다. 그런데

허련은문인화에서뿐만아니라문기짙은남종산수화에서일가를이루어조선화단

의마지막남종화가로자리매김하 던데비해, 이정직은격조높은학문을바탕으

로한웅대한기상이서려있는문인화만을그려냈다. 이정직이당시문인들도흔히

다루었던 산수나 선비의 풍류를 소재로 한 소경인물산수화小景人物山水畵를 남기지

않은것은의외로받아들여진다. 허련과이정직이직접적인교류가있었는지는아직

알려지지않고있다. 그러나이정직의그림에서허련의 향이보이고있는것은틀

림없다. 그만큼한세대앞서있는허련의작품이이정직을비롯한호남지역에폭넓

게 향을미치고있었음을알게하는대목이다.

허련과 전남화단

허련은추사의도움으로당대의대표적인작가들과의깊은교유를통해회화세계

를일구었는데, 1856년추사가세상을뜨자낙향하여진도에운림산방雲林山房을열

고 은거하며 말년을 보냈다. 그리고 그의 회화세계는 그의 아들 미산米山 허형許瀅

(1861~1938)에게 이어지고, 다시 손자 남농南農 허건許楗(1908~1987)이 물려받는

다. 또한그의방계증손이되는의재毅齋 허백련許百鍊(1891~1977)은허형에게서그

림을 배워 남종산수화의 맥을 이었다. 남도의 화단은 광주에서 활동했던 허백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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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선비들의예술세계I

논문I

을올곧게이어온마지막선비라할만하다. 이러한전통선비정신을이어온또한사

람으로한국현대서예의대표적인물이었던석전石田 황욱黃旭(1898~1993)이있다.

그의일생은한치도벗어남이없는선비생활그것이었다. 전북고창에서대단히부

유했던소위만석꾼의집안에서태어나어린시절에한학과함께예禮·서書·악樂·

사史등다양한공부를섭렵하 다. 그는줄곧쉬지않고서예에정진하 는데적어

도 70세이전엔해서·행서·초서등여러서체를소화했다. 이후에예술가로서불

행인지 다행인지 심한 수전증으로 고생하 으나, 그의 서예에 대한 집념은 멈추지

않아소위위대한악필법握筆法을창안하여한국서단에우뚝선다. 특히 90세이후

말년에작품을많이남기고있는것은그의처절한창작정신을보여주는일면이다.

이러한선비생활은 1953년 이후전주에옮겨은둔생활로창작에만몰두하 다. 그

뒤 1981년동아일보초대전을통해세상으로부터평가를받았던그의삶은옛선비

세계를그대로보여주는것이었다.

이처럼 강암이나 석전이 현대에 들어서까지 선비정신을 이어낼 수 있었던 것은

앞선선배들의전통을이어받은결과라고볼수있다. 구한말이정직을필두로하여

이지역의문인화가나서예가들의삶과정신은옛선비문화바로그것의실천으로,

벽하 조주승 이후 표원表園 박규환 朴奎晥(868~1916), 염재念齋 송태회宋泰會(1872

~1941), 우운又雲서정민徐廷珉, 심농心農조기석趙沂錫(876~1935), 진재晉齋배석린裵錫

麟(884~1957), 효산曉山 이광렬李光烈(885~1966), 유당酉堂 김희순金熙舜(886~1968),

유하柳下 유 완柳永完(892~1953) 등 대표적인선비화가들로이어진다. 효산과심농,

유당등대표적인문인화가들이조주승으로부터공부하 고유하는김제에서이정

직에게서배웠다. 염재는전남화순에서태어나화순의소호송기면에게서서·화

를익혔으나전북으로이사하여활동하 다. 학문과서·화를통해전통적인선비정

신을이어받은이들은이지역의근·현대까지그들의삶을통해선비문화를이룩해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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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의전통적인문화적풍토속에서이해가가능한것이다. 근자에새롭게발굴된

석천石川 이덕익李德益(1604~?)의작품들을통해서보더라도전북은일찍이전통적

인문인화가폭넓게그려지고있었다고보여진다. 그것은이지역에학문과시詩·

문文을즐겼던사대부들이많이활동하 음을알수있게한다.

이정직은실상이지역에서화가로서처신한적은없다. 오히려호남학파의 3대

거두중의한사람으로알려질만큼그의학문의세계는넓고깊었다. 그리고그림과

씨에출중한작품을남겼다. 또한자신의서·화의세계를알게하는서화관書畵觀

을 로남겨, 전통적인문인화의정신세계를그대로드러내고있다. 그의이러한선

비정신은그대로제자들에게이어졌다.

그의 제자로서 대표적인 인물로 벽하碧下 조주승趙周昇(1854~1903)과 유재裕齋

송기면宋基冕(1882~1956)이있다. 이두사람역시스승의선비적풍모를그대로받

았는데, 조주승은전주에서, 송기면은김제에서태어났다. 음악이나시조등에도일

가를이뤘다는조주승은북경등을여행하며견문을넓히기도하 다. 남아있는작

품은적지만사군자중특히난그림에일가를이루었다고보여지는데여기에는이

하응과스승이정직의필법이들어있다. 그는아들조기석을비롯하여효산이광렬

등전주에서활동하 던후배들을길러냈다.

한편송기면은김제에서태어나이웃하고있었던간재艮齋 전우田愚(1841~1922)

에게서 학문을 익히고, 이정직에게서 10년 동안 다양한 학문과 서·화를 익혔다고

한다. 이시기의대표적인학자로, 그의문장은항일정신을담은망언妄言 2집을비

롯해유고가많이전한다. 그의정갈하고기품있는 씨는특히아들강암剛庵 송성

용宋成鏞(1913~1999)에게로 이어진다. 송성용은 이 지역의 마지막 선비라 할 만큼

선비생활을실천했으며, 이는그의 씨와대나무그림등의유작으로남아있다. 어

쩌면현대생활은옛선비들의풍류와문장에의지하는삶을유지하기어려운여건일

지모른다. 그러나강암은삶의마지막순간까지옛전통의끈을놓지않고그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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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선비들의예술세계I

논문I

던사람이다. 1755년나주괘서사건으로연좌되어완도군신지도에유배되어말년을

보내며여러작품을남겼다. 특히이광사의 씨는전남보성출신인설주雪舟 송운

회宋運會(1874~1965) 등에게 향을끼쳤다. 한편이광사와이삼만이앞뒤로 씨를

남긴서첩이남아있어어느경로로이두사람이작품을함께하 는지궁금하다.

호산湖山 서홍순徐弘淳(1798~?)은 창암에게서 씨를 배웠다고 알려져 있다. 그

는전북함열에서살면서헌종때에사마에제수되는등벼슬을하 는데, 평생 씨

에전념하여몽당붓이항아리에가득찼었다는일화가전한다. 소치허유와교류하

면서그의후손들이소치의가르침을받기도하 으며, 그의아들, 손자등4대에걸

쳐서화를하 을만큼선비적풍모를갖춘집안이라할만하 다.

호남의대표적학자 던간재전우가걸출한 씨를남겼고, 그외이지역의걸

출한서예가가설송雪松 최규상崔圭祥(1891~1956)이다. 설송은김제에서태어나이

정직에게서 배웠는데 그림 보다는 씨에 뛰어났다. 여러 씨체를 다 잘하 으나

특히전서는독보적경지에있다는평을받았고, 위창오세창선생은설송의전서가

당대최고라고극찬하기도하 다. 전북은이러한한국서예사의몇몇걸출한인물

들을통해모름지기서예의고장으로자리매김하는계기를마련하 다.

지리가평온하고기후가온화하며, 곡물과해물들이풍부하여여유로운삶이꾸

려졌던것이많은문인사대부들이호남에자리잡은배경이되었을것이다. 그래서

호남은모름지기한반도선비문화의본고장이었다고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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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사승관계가알려져있지않은특별한인물이낭곡浪谷 최석환崔奭煥(808~?)

이다. 낭곡은군산출신으로인근지역인옥구임피에서생활하 다는것밖에는알

려진것이없다. 이를증명하듯이지역에는그의작품이다수전하는데특히그의

포도그림은당대최고라할만하다. 그가한국화단에서포도를제일잘그렸다는것

은『근역서화징』에도기록되어있다. 그는당시문인화가들이즐겨그렸던사군자나

모, 산수등도잘그렸던것으로알려져있으며, 유품외에자료가전하지않는것

은그가향리에서은둔하며시문과서화에만몰두하 기때문이라고볼수있다.

대체로이지역의선비화가들이시·문과서·화를함께보여주는그야말로정통

문인화가로서의면모를지녔다고할수있다. 한편 씨로만일가를이루어학문과

서예로서선비적삶을보여주는이가있는데, 그가바로 18세기대표적인물인창암

蒼巖 이삼만李三晩(1770~1847)이라고할수있다. 창암은이지역서단에서전설적

인인물이라할수있는데, 이는그가남긴유품이가히신품神品이라할만하고, 당

대최고의지식인이었던추사를통해그의작품의진가가알려지게되었다는점에서

그러하다. 이삼만은전북전주출신이다(정읍출신이라는설도있다). 그리고어린시

절가세가무척곤궁하여 씨를공부할여력이없어시냇가모래밭에 씨를썼으

며, 삼베를빨아가며반복하여연습했다는이야기가전한다. 또한갈대나칡뿌리, 대

나무를쪼개만든붓등을사용하여새로운가능성을개척하는등실험적서법을구

사하기도하 다. 끝내벼슬에나아가지않고정읍과전주를오가며살았던그가나

이 50이넘어세상에 씨로알려지게되었다. 그는거의독학으로서법을익혀독

자적경지를개척하 는데특히철저한고법을바탕으로하여새로운세계를열었다

는평가를받는다. 그는평생외로운서도의세계에머물며세상을등지고살았다.

창암보다한세대앞서호남에서서도로크게활동하 던인물이원교圓嶠 이광사

李匡師(1705~1777)이다. 그는원교체를완성하여세상에크게알려졌을만큼 씨에

뛰어났으며, 담담한선비정신이베어있는산수· 모등의문인화에도조예가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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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선비들의예술세계발행인 심우 (한국국학진흥원장)

발행일 2006년 10월 26일

발행처 한국국학진흥원(출판등록번호제36호) http://www.koreastudy.or.kr

760-933 경북안동시도산면서부리 220번지

TEL : 054) 851-0790, 054) 851-0792, FAX : 054) 851-0749

기획및전시 한국국학진흥원유교문화박물관전시기획실, 전주역사박물관학예연구실

논문 김형수(한국국학진흥원), 이철량(원광대학교), 최재남(경남대학교)

탈초및번역 안태석(전북향토문화연구소), 안진회(전북향토문화연구소),

배경옥(전주역사박물관), 임노직(한국국학진흥원)

교열 김상환(고문헌연구소), 임노직(한국국학진흥원)

진행및교정 김남숙, 김경희, 엄화숙, 진현미, 김향숙, 김수미, 김정현(이상한국국학진흥원),

노은실, 정훈, 박종철, 최우중(이상전주역사박물관)

사진 황헌만

편집디자인·제작 필기획 02) 2275-8005

제작원가 30,000원

ISBN 89-90650-79-8 06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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